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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대의 한반도 시계] 바이든의 종전선언, 과연 평화인가/군사전문가

    [김종대의 한반도 시계] 바이든의 종전선언, 과연 평화인가/군사전문가

    8월 말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시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9월 21일 유엔 연설에서 “이 끝없는 전쟁의 시대를 닫으면서 이제는 끝없는 외교의 시대를 열어 가겠다”고 선언했다. 더불어 그는 “미국의 군사력은 우리의 첫 번째 수단이 아니라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하며 우리가 전 세계에서 보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으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8월의 마지막 날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년간 미국은 단 하루도 전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며 이제는 전쟁을 종식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테러와의 전쟁이 미국에 얼마나 감당할 수 없는 재난인가도 설명했다. 연인원 80만명의 미군이 참전한 아프간에서만 총 2400명이 전사하고 2만명이 부상했다. 아프간에서 군비와 재건에 총 2조 달러, 하루에 3억 달러를 투입했다. 이 수치는 이라크 전쟁까지 포함했을 때 2배 이상으로 불어난다. 미국에서는 이라크, 아프간, 소말리아 등에 참전했던 군인 가운데 하루에 18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하고, 재정적 어려움, 이혼, 외상과 스트레스증후군으로 시달린다. 미국의 상처를 거리낌 없이 공개하는 미국 대통령의 종전선언이자 부전(不戰)의 맹세라고 할 만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제 문제에서 미군을 퇴장시키고 경제와 외교를 앞세워 팬데믹 종식, 기후위기 해결, 글로벌 세력 균형 관리, 무역, 사이버 및 신흥 기술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세계의 규칙을 형성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얼핏 보면 1차 세계대전 직후에 특정한 적을 상정하지 않고 규칙으로 작동하는 평화로운 세계 질서를 주창한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의 이상주의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실상은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한 ‘대경쟁의 시대’, 또는 ‘장기 전략 경쟁의 시대’라는 선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지금은 ‘새로운 기술로 열리는 가능성의 시대’라고 했다. 신흥 기술이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제공하는 새로운 문명의 문턱에서 중국과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 추월당하면 미국의 쇠퇴는 가속화된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국과 협력해 생명 공학에서 양자 컴퓨팅, 5G, 인공지능에 이르는 기술 영역에서 확고한 우세를 확립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당분간 미국은 상업적인 영역, 신흥 기술을 토대로 한 디지털 전환에서 중국을 압도하는 전략을 추구할 것이다. 만일 중국이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에 통신 기지국을 건설하고 저렴한 통신장비로 장악한다면 미국은 4만 6000개의 소형 위성으로 완전히 지구를 덮는 우주 기반의 디지털 제국 건설로 대응할 것이다. 중국의 화웨이 독점을 깨고 세계를 미국의 표준으로 유인하는 ‘신의 한 수’는 개방형 랜 네트워크(Open RAN Network)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군사적 도전을 상쇄시키는 군사정보·과학기술 혁명을 촉진한다. 기존의 대규모 방위산업체와 결별하고 실리콘밸리가 주도하는 시스템 전환이 미군을 근원적으로 개혁하게 된다. 미군 지휘통제에 분산 컴퓨팅(Edge computing)과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이 도입되면 전투 양상은 근원적으로 변한다. 지금은 미국이 변혁을 위한 인프라에 투자하는 단계지만 2030년대에는 중국을 완전히 제압하는 전혀 새로운 군대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을 추월하려는 중국의 기대와 야망이 좌절됐을 때가 더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강대국으로 도약하려는 지도자의 야심이 위험에 직면했을 때 큰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나 일본은 자신이 원하는 질서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에서 현상을 타파하기 위한 출구전략으로 확전을 선택했다. 마찬가지로 중국과 러시아는 도약의 기회가 물거품이 되는 상황을 인내하지 않을 것이며,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강압 정책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최근 에너지와 건설에서 위기에 빠진 중국이 더더욱 위험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의 산업과 군사정책이 오로지 중국과 러시아 견제를 위한 것이라면 이것이 과연 평화라고 말할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콜린 파월 “내 부고에 이라크전쟁 오점 기록될 것”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콜린 파월 “내 부고에 이라크전쟁 오점 기록될 것”

    18일(현지시간) 코로나19 합병증으로 84세 삶을 접은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은 베트남전쟁 영웅에다 ‘파월 독트린’을 내놓은 군사·국가 전략가였다. 유색 인종에게 드리운 장벽을 넘어선 인물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네오콘(신보수주의)에 막혀 첫 흑인 대통령의 꿈이 좌절된 정치인이기도 했다. 이라크전쟁 개전의 책임도 그의 인생에 오점으로 남았다. 자메이카 부모 아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베트남전을 거쳐 전쟁 영웅으로서 성공적 길을 걸었다. 냉전 시절 군 최고위급 장성으로서 가능한 한 무력 개입을 피하되 국가 이익을 위한 개입이 불가피할 경우 압도적인 군사력을 투입, 속전속결로 승리를 결정짓는다는 이른바 ‘파월 독트린’을 정립해 미국인들의 기억에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아버지 조지 HW 부시 행정부 당시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을 지낸 그는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발탁으로 미국 역사상 첫 흑인 국무장관에 올랐다. 백인 중심의 미국 정계에서 개척자이자 선구자로서 족적을 남겼다. 공화당의 첫 흑인 대통령 후보로도 거론됐다. 하지만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네오콘 매파 중심의 백악관에서 온건파인 고인의 입지는 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북핵 문제를 비롯해 중동·이스라엘 관계 등 주요 외교 사안에 있어 파월 장관의 역할은 강경파에 막혀 제한적이었고, 주로 부시 행정부의 극단적 성향을 완화하고 재앙을 막는 데 한정됐다고 평가했다. 당시 행정부에서 그는 ‘노인(old man)’ 취급을 받았고 핵심 정보에서 사실상 배제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일관된 기조인 대북 포용 정책을 계승할지를 놓고도 파월은 부시 행정부 안에서 갈등을 빚었다. 취임 초 그는 대북 정책 기조의 변화는 없다고 했지만 매파의 대북 강경노선과는 거리가 한참 있었다. 결과적으로 ‘대북 속도조절론’으로 노선 변화가 불가피했다. 특히 2002년 부시 전 대통령이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뒤 북미 대화는 사실상 경색 국면을 면치 못해 재임 내내 이어졌다. 그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북미 직접 대화에는 일관되게 선을 긋고 다자 틀을 고집했으며, 2002년 11월에는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에 제공했던 중유 공급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1973년부터 1년 가량 한국에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자서전 ‘나의 미국 여행’에서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착을 드러냈다. 그는 “주한 미8군 사령부 산하 동두천에 있는 부대의 보병 대대장으로 근무했을 때가 직업군인으로서 가장 만족스럽고 활력이 넘쳤던 때”라며 “서울에서 경제 기적을 예고하는 징후들이 서서히 나타났다”고 회고했다. 카투사에 대해서도 “내가 지휘한 병사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병사들”이라며 “미군 병사의 하룻밤 술값에 지나지 않는 3달러의 한 달 봉급으로 부대 내 생활을 하는 등 끈기있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줬다”고 돌아봤다. 그의 정치 인생 최대 오점은 이라크전쟁 결정이었다. 4000명 이상 미국인이 죽고 다쳤다. 2003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의혹을 제기하는 연설을 했지만, 이듬해 잘못된 증거를 제공받았음을 뼈아프게 인정해야 했다. 파월은 스스로 “내 부고 기사에서 중요한 단락을 차지할 것”이라고 회고했다. 중도파로서 늘 신중하고 온건했던 파월 전 장관은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며 든든한 지원군의 역할을 자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종차별 언행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 목소리를 냈다.지난해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고,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태 이후에는 공화당을 정치적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흑인 정치의 한 역사를 쓴 파월 전 장관의 별세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미국을 강하게 하는 민주적 가치에 헌신했다. 그는 자신과 정당, 그 무엇보다 조국을 최우선에 뒀다”며 “그는 위대한 미국인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음모 이론이 난무하고 누군가 내 믿음에 의문을 표했을 때 파월 전 장관이 그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도움을 줬다”며 2008년 대선 당시 무슬림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 고인이 지지했던 일을 돌아봤다. 부시 전 대통령은 “그와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달랐지만, 항상 그를 존중했고 그의 업적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고 밝혔다. 최초의 흑인 국방장관인 로이드 오스틴 장관은 “세계는 가장 위대한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을 잃었다”며 “그는 오랫동안 나의 멘토였다”고 기렸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그는 국무부에 경험과 애국심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며 “그는 우리에게 품위를 줬고, 국무부는 그를 사랑했다”고 했다.
  • “구관 명관” vs “신인 패기”… V리그 외인 전쟁

    “구관 명관” vs “신인 패기”… V리그 외인 전쟁

    레오 ‘왕의 귀환’… 링컨, 팀 2연패에 도전女 켈시만 재계약… ‘한국 손녀’ 라셈 주목 2021~22시즌 V리그 코트에서 외국인 선수의 호쾌한 스파이크와 파워를 감상하는 것도 또 다른 볼거리다. 남녀 프로배구 14개 구단은 코로나 19 여파로 외국인 선수를 비대면으로 선발했다. 대부분 V리그를 경험한 선수를 선발했다. 우선 ‘왕의 귀환’으로 불리는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31·OK금융그룹·등록명 레오)의 녹슬지 않은 기량을 다시 보는 것도 팬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2012~13시즌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은 레오는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레오는 V리그 사상 최초로 3시즌 연속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2015년 삼성화재를 떠난 그는 중국과 중동 등을 거쳐 이번에 V리그에 복귀했다. 레오가 과거형이라면 지난 시즌 최고는 노우모리 케이타(20·KB손해보험)다. 케이타는 폭발적인 점프력과 공격력으로 득점왕(1147점)에 올랐다. KB는 케이타와 일찌감치 재계약하며 전력을 한껏 끌어올렸다.우리카드의 ‘주력’ 알렉산드리 페헤이라(30)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매 경기에서 꾸준히 고득점을 유지한 알렉스는 알토란 같은 선수다. 이 밖에도 디펜딩챔피언 대한항공은 2m의 호주 대표팀 출신 링컨 윌리엄스(28)에 기대를 걸고 있다. V리그 경험이 있는 다우디 오켈로(26)는 이번 시즌 한국전력에서 활약한다.여자부에서 외국인 선수 중 유일하게 재계약한 켈시 페인(26·한국도로공사)은 올 시즌 득점왕 후보로 꼽힌다. 할머니의 나라에서 뛰는 레베카 라셈(24·IBK기업은행)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뜨겁다.신생구단인 AI페퍼스가 1순위 지명권을 사용해 합류한 헝가리 출신의 엘리자벳 이네 바르가(22)는 다재다능한 플레이어로 꼽힌다. 그는 켈시와 함께 이번 시즌 득점왕 경쟁이 점쳐지고 있다. 여자부 외국인 선수 중 최장신인 196㎝의 야스민 베다르트(25·현대건설)도 높이를 앞세운 공수에 유리하다는 평가다.
  • 북 첩보조직 일하다 6년 전 서울로 “90년대 청와대에까지 잠입했다”

    북 첩보조직 일하다 6년 전 서울로 “90년대 청와대에까지 잠입했다”

    김국송(가명) 씨. 30년 동안 북한의 막강한 첩보 조직에서 일해 최고 직위에까지 올랐는데 2015년 북한을 탈출해 현재 서울에서 살며 국가정보원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 BBC의 서울 특파원 로라 비커가 단독 인터뷰한 내용을 11일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충격적인 내용이 적지 않다. 검은 색 선글라스를 쓴 채로 사진 촬영에 응했고 인터뷰 날짜와 장소를 잡기까지 몇 주 동안 논의를 했으며 그 전에 누구라도 인터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봐 극도로 신경을 썼다고 했다. BBC 취재진 가운데 두 명만 그의 진짜 이름을 알고 있다고 했다.  비커 특파원은 그가 폭로한 충격적인 내용들을 일일이 검증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의 신원에 대해서는 일정한 검증 작업을 마쳐 일부 주장이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런던 주재 북한 대사관과 뉴욕 주재 북한 공관에 북한 정찰총국에서 5년 동안 대좌(한국의 대령)로 근무했더 그의 신원 등에 관한 문의를 했지만 아직까지 어떤 답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김씨가 폭로한 내용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1990년대 초반 우리 청와대에 그가 파견한 요원이 잠입해 5~6년 근무하다 나중에 다시 북한으로 안전하게 돌아와 노동당의 314 연락실에서 근무했다는 주장이다. 90년대 초반이라면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이다.  그는 “북한 공작원들이 남한의 중요 기관 뿐만아니라 각계 사회 조직에 침투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국가정보원은 “탈북민 신상 및 주장에 대해 확인해 드릴 내용이 없다”면서도 “다만 ‘90년대 초 청와대 5~6년 근무’ 관련 내용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지금은 간첩을 파견해 사회 조직에 암약하게 하는 것보다 6000명 넘는 사이버 해킹 요원들이 남측에 관한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1980년대부터 명령해 사이버전쟁을 준비해왔다고 했다. 모란봉 대학에서 똑똑한 학생들을 선발해 6년 동안 특별 교육을 시킨다고 그는 증언했다. 이른바 라자루스 그룹이란 해커 집단이 2017년 영국 건강보험(NHS) 등 많은 나라의 기관들을 엉망으로 만든 사례가 있다. 이 그룹은 2014년에도 미국 영화사 소니 픽처스의 고급 자료들을 해킹한 바 있다.  김씨는 연락소 414가 이들 해커들을 모두 관리하는데 최고 지도자가 직접 전화로 연결된 유일한 연락소라고 주장했다.  “빨갱이 중의 빨갱이였다”는 그는 북한 지도부가 마약 거래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무기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현금을 벌려고 필사적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의 전략과 한국 정권을 목표로 한 공격에 관해서 이야기했으며 북한의 첩보와 사이버 네트워크가 전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최고 첩보부대에서 김씨가 마지막으로 보낸 몇 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 초기 자신이 세계에 어떻게 비치고 싶어했는지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전사”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젊은이였다.  북한은 2009년에 ‘정찰총국’이란 새로운 첩보기관을 창설했는데, 뇌졸중으로 쓰러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뒤를 이을 준비를 하던 시기였다. 총국장은 김정은이 가장 신뢰하는 보좌관 중 한 명인 김영철이 맡았다. 김씨는 2009년 5월 한국으로 망명한 전직 북한 관리를 살해하는 ‘테러 대책반’을 구성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령이 “김정은으로선 ‘최고지도자’라는 전사된 입장에서 그것을 위안해주고 풀어주고 (김정일에게) 만족을 드리기 위한 하나의 행위”였다고 했다.  “극비리에 황장엽 선생을 테러하기 위한 TF팀이 꾸려지고 공작이 진행된 것이지요. 저는 직접 지휘, 공작을 수행하는….내 말에 따라서 이 사람들이 같이 협의하고 토론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황장엽은 북한 정권에 대해 극도로 비판적이었고, 김씨 일가는 복수를 원했지만 암살 시도는 빗나갔다. 북한군 소령 두 명이 한국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북한 당국은 관련 내용을 부인했고 한국이 암살 시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2010년에는 대한민국 해군 함정 천안함이 어뢰에 맞아 침몰해 46명이 목숨을 잃었다. 북한 당국은 늘 개입설을 부인해 왔다. 같은 해 11월에는 북한에서 날아 온 수십 발의 포탄이 연평도를 강타했다.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누가 그 공격을 지시했는지 논쟁이 크게 일었다.  김씨는 “천안함이나 연평도 작전에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정찰총국 일정한 간부들 속에서는 비밀이 아니고 통상적인 자랑으로, 긍지로 그렇게 알고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상부의 지시가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절대적으로 북한에서는 도로 하나 만들어도 최고지도자의 재가(허락) 없이는 할 수 없어요. 하물며 천안함 폭침이라던가 연평도 포격이라던가 이런 것은 충성심 경쟁으로 할 일이 못 된다”며 “이런 것은 반드시 김정은이 특별 지시에 의해 공작되고 이행된 군사작품이지요. 성과품”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김정은이 최근 다시 그 때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강조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당시 작전부서에 있었고 최고 지도자를 위한 ’혁명 기금‘을 조성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불법 마약 거래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 과업을 제가 받고 해외에서, 밝혀야 되겠는지 안 밝혀야 되겠는지 일단 접어놓고, 3명의 외국인을 북한으로 들여와서 북한에서 조선노동당 715 연락소라고 있습니다. 거기에 훈련관에 생산기지를 만들어 놓고 마약을 생산했죠.아이스(필로폰의 은어)라고 알죠? 그걸 달러로 만들어가지고 김정일 혁명자금으로 바쳤죠.”  영국 주재 북한 공사로 일하다 망명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2019년 오슬로 자유포럼에서 북한 당국은 마약 밀매에 관여했고 북한 내부에 만연한 마약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마약으로 번 돈이 어디로 갔는지 물어봤다. 실제로 북한 인민을 위한 자금으로 쓰였을까?  “참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북한에는 모든 돈이 김정일이 김정은이 개인 것입니다. 그 돈을 가지고 자기 별장도 짓고 차도 사고 먹기도 하고 입기도 하고 향수(향응)를 누리는 거죠.”  김씨는 또 작전부가 관리하는 이란 불법 무기 판매에서 자금이 나왔다고 했다. 북한이 “특수소형잠수함, 반잠수함, 65잠수함급 이런 잠수함들을 아주 첨단화시켜가지고 잘 만든다”고 했다. 거래가 잘 돼서 북한 해운 부부장이 이란 총참모장을 자신의 수영장으로 불러들여서 판매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김씨는 북한이 또한 장기간 내전을 치르고 있는 국가들에 무기와 기술을 판매했다고 했다. 최근 몇 년간 유엔은 북한이 시리아, 미얀마, 리비아, 수단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유엔은 북한에서 개발된 무기가 세계 곳곳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김정은의 고모에게서 받은 벤츠 차량을 사용했고 북한 지도자를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희귀 금속과 석탄을 팔아 수백만 달러의 현금을 모았다고 말했다. 그 돈은 여행 가방에 담겨 북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김씨는 결혼을 통해 강한 정치적 인맥을 형성해 여러 정보기관을 오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와 가족도 위험에 처했다. 2011년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정은은 숙부인 장성택을 포함해 그가 위협 요소로 여긴 사람들을 숙청하기로 결정했다. 장성택이 곧 처형되겠구나 알고 있었다고 했다. 2013년 12월 북한 관영 매체가 장씨의 처형을 알리자 김씨는 “신변의 위험을 확 느끼게 된 것이다. 내가 더 이상 북한에서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로구나 깨달았다”고 했다. BBC 제작진은 여러 차례 회의를 하면서 그가 왜 지금 인터뷰를 하기로 했는지를 가장 궁금해 했다고 했다. 해서 질문을 던졌더니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의무”라고 답했다. “북녘 동포들을 독재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키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 앞으로 난 더 활발한 활동으로 북한 동포들을 독재의 억압에서 해방하고, 참다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전심하려고 지금과 같은 인터뷰에 응한 것이다.”  10일 노동당 창건 76주년 기념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0년간 빛나는 성과를 거뒀다. 인민이익을 침해하는 일을 용납 안하겠다”고 공언했다. 최근에 남북 통신연락선을 복원하는 등 남북, 북미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는 의향을 내비치고 있다.  김씨는 “전략에 따라 지금 흐름세가 가고 있는 거죠. 우리가 다시 알아야 할 것은 북한이 지금까지 0.01%도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용병이 된 콜롬비아 군인들… 왜 암살·쿠데타에 등장하나

    용병이 된 콜롬비아 군인들… 왜 암살·쿠데타에 등장하나

    십여년 전 17세의 칼로스 마르티네스는 부모가 써 준 입대 동의서를 들고 콜롬비아군에 입대했다. 이 나라의 가난한 청년들에게 미성년 군 입대는 낯선 선택이 아니다. 입대 말고 선택할 직업의 폭은 좁았다. 이후 10년 동안 현역 복무한 뒤 마르티네스는 안데스 지역에서 무장단체 및 마약 밀매업자들을 상대로 싸우는 특수부대에 합류했다. 미국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전개되는 ‘마약과의 전쟁’이 20년 넘게 진행 중인 콜롬비아에서 마르티네스 이전에 이미 수백만명의 군인이 게릴라전을 경험했다고, 마르티네스의 사연을 소개한 월드폴리틱스리뷰(WPR)가 전했다. 마르티네스 인생의 문제는 ‘마약과의 전쟁’ 복무가 끝날 무렵부터 생긴다. 이십대를 꼬박 군에서 보낸 마르티네스와 같은 군인들은 진급에서 탈락하거나 군에서의 일탈 행위에 휘말려 군을 떠난다. 운 좋게 계속 진급해 군에 남더라도 20년 복무기간을 다 채우면 40대 초중반 무렵에 제대한다. 22만명 규모를 유지하는 콜롬비아군은 매년 1만~1만 5000명을 제대시키는 구조다. 혈기왕성한 시기 직업을 잃게 된 이들이지만, 연금과 같은 사회보장망은 열악하다. 군 생활 외 사회경험이 부족한 이들은 구직은커녕 민간에 적응하는 일조차 힘겨워한다. 이들은 결국 다른 분쟁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이것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예멘의 전장으로 콜롬비아 용병이 향하는 이유다. 전장뿐만이 아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송유관을 지키는 경비대나 콜롬비아와 이웃한 국가의 지주들을 방어하는 경호대, 심지어 지난 7월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 암살 현장에서도 콜롬비아 용병이 등장했다. ●용병 산업 아프간·이라크 전쟁에 급성장 민간기업에 고용돼 전쟁과 분쟁 지역에 투입되는 용병 산업(PMC)은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기점으로 폭발적 성장을 이뤘다. 2003년 출간된 PMC의 부상을 다룬 책인 ‘전쟁대행 주식회사’를 쓴 피터 싱어는 전 세계 PMC 산업 규모가 2005년 약 1000억 달러 규모였고 2010년 2배로 성장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중동의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석유 시설물 보호, 테러 대응활동에 PMC를 활용하면서 이 산업은 계속 호황을 누렸다. 뉴욕타임스(NYT)는 2011년 UAE가 국가 자산 보호를 위해 미국의 PMC 회사인 블랙워터를 통해 콜롬비아 용병 수십명을 고용했고, 2015년에는 수백명의 콜롬비아 용병이 예멘에서 후티 반군과 싸웠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전시와 평시 또는 국가 업무와 기업 업무의 경계 없이 활동하는 용병의 활동이 가끔 언론의 레이더에 잡히기도 하지만 전체 산업의 규모와 운영 방식은 상당 부분 베일에 싸여 있다. PMC의 주요 고객군인 중동엔 라틴아메리카 출신뿐 아니라 짐바브웨, 네팔, 파키스탄 출신의 용병이 모여 있다. 이 중에서도 콜롬비아 용병은 특히 고용주들이 선호하는 집단으로 분류되는데, 그 이면엔 미국이 있다. 미국은 2000년부터 시작된 콜롬비아의 마약과의 전쟁인 ‘플랜 콜롬비아’를 지원하며 콜롬비아 군경을 훈련했다. 플랜 콜롬비아가 출범한 2000년 이후 7년 만에 콜롬비아 군경 규모는 27만 9000명에서 41만 5000명으로 증가했고 군경의 소탕 대상인 좌익 무장단체 조직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규모는 1만 6000명에서 8000명으로 줄었다. 양측 숫자의 변화는 그 기간 빈번했던 게릴라전의 횟수와 비례한다. 즉 콜롬비아 용병들이 군 생활 동안 실전 게릴라 전투 경험을 충분히 쌓았다는 뜻이 된다. 보고타에 기반을 둔 컨설팅회사인 콜롬비아리스크분석의 세르히오 구즈만 이사는 WPR 인터뷰에서 “실제 전투라는 시험대를 통과했다는 것이 ‘콜롬비아 용병’의 마케팅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미국식 훈련을 받았지만 미군 출신에 비해 인건비가 낮다는 점도 콜롬비아 용병을 선호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NYT는 익명의 전직 콜롬비아군 장교의 고백을 인용, “콜롬비아 군인들은 많아야 최저임금의 2배가 조금 넘는 수준인 월 300달러(약 36만원)를 받지만, 용병으로 고용되면 최소 월 2700달러(약 320만원)를 번다”면서 “군 시절의 9배에 달하는 보상이 있기 때문에 콜롬비아 용병들이 카불, 멕시코, 예멘, UAE로 향하는 것”이라고 전했다.●민간인 사살 등 각국서 용병 폐해 드러나 용병은 각국의 군대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지만,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정규군과 정반대 지점에 있다. 예컨대 군은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존재감을 드러내는 반면, 용병은 작전이 실패하거나 국제질서에서 일탈하는 작전을 수행했을 때 그 존재를 알리게 된다. 대표적인 PMC 회사인 블랙워터만 해도 2007년 9월 이라크 바그다드 시내에서 갑자기 사방으로 사격을 퍼부어 민간인들을 사망케 한 일탈 행동을 계기로 회사의 존재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콜롬비아 용병의 존재 역시 지난 7월 아이티의 모이즈 대통령 암살 사건이란 일탈 행위 이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대통령궁에서 대담하게 벌인 잔인한 암살 이후 콜롬비아 용병 18명이 미국인 2명과 함께 체포됐다. 아이티 검찰은 미국에서 훈련을 받기도 했던 이 콜롬비아 전직 군인들이 아리엘 앙리 현직 총리 측의 의뢰를 받아 암살을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후 앙리 총리가 이 사건 담당 검사를 해임하며 진상 규명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콜롬비아 용병들이 다른 나라의 권력분쟁 과정에 연루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근처 해안선에 무장세력이 침투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들을 체포한 베네수엘라 당국은 이들이 미국의 PMC인 실버코프 소속으로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의 전복을 노렸다고 발표했다. 당시 베네수엘라 당국에 체포된 괴한들은 미군 출신과 미국에서 훈련받은 베네수엘라 군경 출신, 그리고 콜롬비아군 출신들로 구성돼 있었다. 아이티 대통령궁 암살 사건에서처럼 미군 출신과 콜롬비아군 출신이 혼재된 조합이 당시에도 적발됐던 것이다. ●유엔에 조사 요청 등 용병 산업 공론화 지난해 미국과 콜롬비아를 맹비난하는 정도로 대응했던 베네수엘라는 아이티 대통령 암살사건을 계기로 후속 행동에 다시 나섰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8월 “아이티 대통령을 암살한 용병들과 관련된 미국·콜롬비아 용병들이 (지난해) 마두로 대통령 암살과 정부 전복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쳤다”고 주장하며 유엔에 용병 관련 조사를 요청했다. 베네수엘라의 사무엘 몬카타 유엔 대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에게 제출한 서한에서 “중남미 정부 전복을 위해 콜롬비아 용병과 미국 용병으로 구성된 초국가적 조직범죄 네트워크가 작동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엔이 몬카타 대사의 주장을 얼마나 진지하게 검토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20여년 동안 세계의 분쟁과 혼란을 양분 삼아 자라난 용병 산업이 공론장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이티 대통령 암살을 감행한 콜롬비아 용병들은 이라크 전장에서 용병이 민간인 사상을 일으켰을 당시에 이미 제기됐어야 했을 질문을 일깨웠다. ‘PMC 회사는 각국 정부와 계약을 맺을 수 있을 정도로 합법적인 회사들이다. 그러나 그 회사에서 일하는 용병들의 활동도 합법일까’에 관한 질문이 그것이다.
  • [황성기 칼럼] 아프간 철군의 나비효과/평화연구소장

    [황성기 칼럼] 아프간 철군의 나비효과/평화연구소장

    탈레반의 카불 점령, 미군 철수에 대한 북한 반응은 미미했다. “미국이 진정한 인권과 ‘인도주의 수호자’라고 선전하면서 다른 나라 내정에 횡포무도하게 간섭한 ‘인권범죄’”라는 북한 외무성 논평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중국, 러시아 당국자나 언론의 미국 비난을 인용하는 ‘전언’이 대부분이다. ‘미 제국주의자들’의 ‘부당한’ 아프간 20년 전쟁에 큰소리로 포효할 법했으나 북한의 자제는 뜻밖이다. 쫓기듯 카불공항을 이륙하는 비행기에 오른 미군을 보면서 평양 지도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혹자는 한국, 미국과 싸우지 않고도 이긴 것 같은 심리적 성취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한다. 다른 전문가는 1975년 사이공 함락과 2021년 카불 점령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미군 철수를 보고 북한이 고무됐을 것 같지는 않다고 분석한다. 어느 쪽이든 양쪽 모두이든 북한의 절제된 반응은 평양이 아프간 사태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신중하게 따져 보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아프간 이후 미국의 세계 전략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중국 견제 집중과 인도·태평양 군사력 강화로 수렴할 것이라는 데 일치한다. 8월 31일 미 철군 시한 보름 전쯤 나온 미 의회조사국(CRS)의 ‘새로운 미중 전략 경쟁’은 이라크와 시리아 등 중동 국가와 아프간 등 서아시아 등 2개의 지역 분쟁에 뒀던 전략 비중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을 뚜렷이 드러낸다. 카불을 떠나는 미군은 미국의 세계 전략에 비춰 보면 쫓기는 게 아니라 새로운 전환 배치 지역을 찾아 예정을 좇아 이동하는 모습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미국이 유럽과 인도·태평양, 동북아 동맹국에 대한 압력을 키울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미국의 국익을 앞세워 개입을 줄여 나가는 대신 중국을 압박하는 민주주의 연합과 동맹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따라서 아프간 철군 직후 주한 미군 철수에 대한 우려가 나왔을 때 미국이 즉각 부인하고 나선 것은 의미가 있다. 즉 주한 미군의 재배치나 조정은 가능해도 북한이 바라는 철수는 있을 수 없으며, 거꾸로 미국이 바라는 한국의 역할은 증대될 가능성이 크다. 힘이 빠진 미국의 공백을 한국과 일본, 호주, 인도, 뉴질랜드, 필리핀 등이 채워 줄 것을 미국은 요구해 올 것이다. 오커스(AUKUS)가 그렇다. 이렇게 보면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구이든 한미의 결합은 보다 단단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대중 압박 동참 요구는 한중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매김돼 있는 양국이 그 이하의 관계로 격하하는 일은 중국의 대한국 외교 셈법에서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한미 결속에 비례해 중국에 대해 가지는 레버리지 또한 커져야 하는 만큼 차기 정권의 대미, 대중 외교는 훨씬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문제는 비핵화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북핵은 풀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한미와 대화를 차단하고 있는 북한을 북미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현재로선 중국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방한 때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쏘아올려 왕 부장 체면을 구기게 했지만,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은 북한을 협상장으로 데리고 나오겠다면서 다자협상 등을 카드로 제시할 수도 있다. 미국은 비핵화에서 중국의 역할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에 고개를 숙여서까지 북핵 협력을 애원하진 않을 것이다. 각 전선에서 미중의 대립이 격화되고 균열을 일으켜 급기야 미국이 비핵화를 정책 후순위로 돌려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프간 미군 철수가 한반도 정세, 특히 비핵화 프로세스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보다는 부정 쪽이 크다. 오바마 시대의 ‘전략적 인내’ 시즌2가 벌써 시작됐다는 징후도 보인다. 지난 4년간의 ‘불안한 평화’가 코로나19가 끝나면 깨질 수 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보유국 지위 인정에 매달린다면, 그래서 비싸게 핵을 팔아먹을 수 있는 ‘비핵 버스’에 올라타지 못하면 대북 제재 울타리에 갇혀 고립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장기화할 수 있다. 아프간 이후 북한은 유연한 대미 전략을 짜되 핵시설 재가동이나 전략무기 발사 같은 자충수를 두지 않아야 한다. 남한의 대선 이후도 기회다. 2018년 평창을 뛰어넘는 지렛대를 만들도록 남북이 지혜를 짜내야 한다. 미국을 견인하고 비핵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것 말고 뾰족한 수는 없다.
  • 인도·대만 이어 아프간까지… ‘세 개의 전선’ 펼친 中

    인도·대만 이어 아프간까지… ‘세 개의 전선’ 펼친 中

    중국이 미국 등 서구세계의 압박에 맞서고자 인접국을 상대로 동시에 세 개의 전선을 펼치는 모양새다. 중국 인민해방군(PLA)은 티베트에서 인도군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중국군 폭격기도 연일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해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군이 주둔하던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를 접수해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을 견제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8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 6일 인민해방군은 홈페이지를 통해 최근 티베트에서 펼친 군사 훈련 모습을 공개했다. 보병과 포병, 특수작전부대는 고도 4700m 산악 지역에서 인도 정찰기와 흡사한 드론을 격추하고 적의 지휘 본부도 미사일로 타격했다. 적군이 명시되지 않았지만 인민해방군 출신 군사 전문가 쑹중핑은 “히말라야 산맥을 두고 국경 분쟁을 벌이는 인도군”이라고 설명했다. 양국의 갈등은 지난해 5월 군인 250명이 라다크에서 난투극을 벌이면서 시작됐다. 이틀간 이어진 투석전으로 양측 군인 11명이 다쳤다. 다음달 15일 순찰을 하던 인도 병력이 좁은 산등성이에서 중국군과 마주쳐 싸움이 다시 시작돼 20여명이 숨졌다. 이후 두 나라는 극한의 대치를 이어 가고 있다. SCMP는 “중국은 인도의 거대한 시장이 필요하다”며 “이번 훈련은 인도 측에 ‘실제 전쟁을 감행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쿼드(미국·인도·일본·호주가 참여한 중국 견제 협의체) 등을 끌어들여 분쟁을 키우지 말라’는 경고의 뜻”이라고 분석했다. 중국군은 대만도 위협했다.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5일 중국군 군용기 19대가 대만 남서부 ADIZ에 진입해 무력시위를 벌였다. H6 폭격기 4대와 J16전투기 10대, SU30 전투기 4대, Y8 전자교란기 1대 등이다. 이 가운데 H6 폭격기는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다. 글로벌타임스는 “중국군과 대만군의 전력 격차를 보여 주기 위한 일상적 훈련”이라고 전했다. 미국과 밀착해 독립을 추구하려는 대만에 고통을 주려는 의도다. 이에 미군 정찰기도 같은 날 대만 ADIZ에 정찰기를 진입시켜 맞대응했다고 홍콩 명보가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군이 아프간 주둔 미군이 쓰던 바그람 기지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8일 US뉴스 앤드 월드리포트(US뉴스)에 따르면 중국 군 당국은 향후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고 ETIM의 테러 위험을 차단하고자 바그람 기지에 병력과 지원인력 등을 파견하는 문제를 검토 중이다. US뉴스는 내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미국처럼) 기지를 통째로 장악하지 않고 탈레반 정권의 초청에 따라 필요한 인력과 장비 등을 파견하는 형식을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중국 입장에서 바그람 기지 진출은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거점을 마련하고 아프간에서 미국을 대신해 ‘질서 수호자’ 역할을 하는 핵심 교두보다. 현실화된다면 중동 및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미중 간 전략경쟁이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 “중동 현실과 삶의 비대칭… 우리는 포용할 수 있을까”

    “중동 현실과 삶의 비대칭… 우리는 포용할 수 있을까”

    “현재 아프가니스탄 상황과 마찬가지로 서방이 중동 문제에 개입하면서 여전히 무력감과 슬픔을 느낀다. 9·11테러,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정말 우리 자신과 아주 달라 보이는 사람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2018년 뉴욕타임스, 뉴요커 등이 선정한 ‘올해의 책’으로 미국 사회에 반향을 일으킨 소설 ‘비대칭’(현대문학)의 작가 리사 할리데이(45)는 최근 서울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시대를 초월해 독자들에게 전쟁의 복합성과 아픔을 보여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할리데이는 첫 장편소설인 이 책으로 2017년 유망한 신인 작가에게 수여되는 ‘화이팅상’(Whiting award)을 받았다. ‘비대칭’은 소설가 지망생인 20대 기독교도 백인 여성 앨리스와 이슬람교도인 이라크계 미국인 경제학자 아마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 힘의 불균형 문제를 다룬다. 아무 관련 없어 보이던 두 사람의 접점은 뜻밖에 앨리스의 연인이자 70대 유명 소설가 에즈라 블레이저를 통해 드러난다. 할리데이는 이야기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심화한 미국 배타주의를 비판하는 한편, 인간은 무수한 ‘비대칭’에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문학, 예술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라크 국민의 불안정한 삶을 보여 주며 중동에 대한 미국의 무지와 대외정책 실패를 꼬집는다. 앨리스와 아마르의 운명 비대칭을 그린 작가는 “자신의 외모나 말투, 종교 때문에 정체성을 의심받고 억류당한 아마르에게 내 감정과 정치적 의견이 많이 투영됐다”면서 “미국이 개입한 이라크와 아프간 등 중동의 현실에 마음이 편치 않다”고 부연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하버드대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할리데이의 원래 꿈은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하는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글쓰기를 통해 충만한 삶의 재미를 알게 됐고, 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자신의 일부를 남겨 놓고 싶다는 생각에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그는 “다음 작품으로는 이탈리아와 미국을 배경으로 음모론과 진실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한 번도 오진 않았지만 한국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높다. 그는 “이문열 작가의 군더더기 없고 힘이 느껴지는 문체를 존경한다”고 한 데 이어 “지휘자인 성시연과 김은선, 첼리스트 장한나 같은 한국인 음악가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고 관심을 전했다.
  • ‘비대칭’ 작가 할리데이의 질문 “시대, 인종, 지역을 초월한 포용이란”

    ‘비대칭’ 작가 할리데이의 질문 “시대, 인종, 지역을 초월한 포용이란”

    “현재 아프가니스탄 상황과 마찬가지로 서방이 중동 문제에 개입하면서 여전히 무력감과 슬픔을 느낀다. 9·11 테러,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정말 우리 자신과 아주 달라보이는 사람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2018년 뉴욕타임스, 뉴요커 등이 선정한 ‘올해의 책’으로 미국 사회에 반향을 일으킨 소설 ‘비대칭’(현대문학)의 작가 리사 할리데이(45)는 최근 서울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시대를 초월해 독자들에게 전쟁의 복합성과 아픔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할리데이는 첫 장편소설인 이 책으로 2017년 유망한 신인 작가에게 주는 ‘화이팅 상’(whiting award)을 받았다. 관계 없는 듯한 두 사건의 절묘한 연결인종·성별·부·권력 등 힘의 역학 풀어내‘비대칭’은 소설가 지망생인 20대 기독교도 백인 여성 앨리스와 이슬람교도인 이라크계 미국인 경제학자 아마르의 이야기를를 통해 우리 시대 힘의 불균형 문제를 다룬다. 1장에서 앨리스는 선망의 대상이던 70대 유명 소설가 에즈라 블레이저의 연인이 되지만 그를 통해 열등감과 무력감도 함께 느낀다. 2장에서는 아마르가 가족을 만나러 이라크로 가다 경유지인 영국에서 테러범으로 몰려 억류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된다. 얼핏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3장에서 앨리스의 연인 블레이저의 입을 통해 연결고리가 드러난다. 할리데이는 이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 들어 심화한 미국의 배타주의를 비판하는 한편, 인간은 무수한 ‘비대칭’에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문학과 예술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미국의 이라크 전쟁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는 이라크 국민의 불안정한 삶을 보여주며 중동에 대한 미국의 무지와 대외정책 실패를 꼬집는다. 그는 “앨리스와 아마르의 이야기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며 두 사람 운명의 비대칭을 강조하고 싶었다”면서 “자신의 외모나 말투, 종교 때문에 정체성을 의심받고 억류당한 아마르의 모습을 형상화하려고 저 자신의 감정과 정치적 의견을 많이 투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동 문제는 복잡하지만 이라크와 아프간이 현재 평화롭고 민주적인 국가가 되지 못한 상황에 대해 마음이 편치 않다”고 전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하버드대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할리데이의 원래 꿈은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하는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다음 이야기는 음모론과 진실에 관해군더더기 없는 이문열 작가 문체 존경 하지만 글쓰기를 통해 충만한 삶의 재미를 알게 됐고, 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자신의 일부를 남겨놓고 싶다는 생각에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그는 “다음 작품으로는 이탈리아와 미국을 배경으로 음모론과 진실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는 가본 적 없지만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다”며 “이문열 작가의 군더더기 없고 힘이 느껴지는 문체를 존경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집필 중인 소설을 위해 자료 조사를 하다가 성시연, 장한나, 김은선 같은 한국인 음악가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고 관심을 전했다.
  • 탈레반에 다시 넘어간 혼돈의 아프간… 정상국가로 인정받을까

    탈레반에 다시 넘어간 혼돈의 아프간… 정상국가로 인정받을까

    탈레반, 韓美 등 100국과 주민 이주 약속허가 대로 외국 이동 보장할지는 미지수 예산 80% 원조 의존, 외환 94억弗 동결돼물가·에너지값 급등, 국민 33% 끼니 걱정 中도 테러단체와의 단절·포용정치 주문IS-K 제압·합법정부 국제승인 쉽지 않아 파키스탄 “난민 수용 못한다” 국경 폐쇄EU는 이웃 국가에 6억 유로 지원책 강구9·11테러 20주년에 맞춰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를 완료하고 ‘국익 없는 전쟁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려던 미국의 계획은 실패했다. 미군이 철수하고 아프간군이 3~6개월, 아니 최악의 경우 한 달은 버틸 것이라는 미 정보 당국의 분석은 크게 빗나갔다. 탈레반은 주요 도시들에 대한 공세에 나선 지 보름 만인 지난달 15일 수도 카불을 장악했고 결사항전을 천명했던 아프간 대통령이 이튿날 외국으로 도망가면서 아프간은 20년 만에 다시 탈레반 치하로 돌아갔다. 미국이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지난달 30일 완전 철수할 때까지 국제사회는 카불을 떠나려는 사람들과 이를 막으려는 사람들로 극도의 혼돈에 빠진 아프간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하늘길은 막혔고, 국경 경비도 강화됐다. 탈레반 통치가 시작된 아프간 사회가 어디로 향할지 국제사회는 주시하고 있다. ●국제사회, 여성 인권 개선 등 살피며 입장 신중 탈레반은 3일(현지시간) 최고 지도자인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가 이끄는 아프간 새 정부 구성을 발표할 것이라고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이 아프간 톨로 뉴스통신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을 비롯해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에도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탈레반이 테러 세력과의 단절 및 여성 등 인권 개선 약속 등을 이행하는지 봐 가며 일원으로 받아들일지 결정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탈레반의 최우선 과제는 사회 안정을 회복하고 악화할 대로 악화한 경제를 어떻게든 되살리는 것이다. 또 탈레반을 적 내지 미국의 꼭두각시로 여기며 지난달 말 카불 공항에 대한 폭탄 공격을 감행했던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을 제압해 명실상부한 아프간의 합법정부로 인정받는 일이다. 그 어느 것도 녹록지 않다. 특히 미국의 지원 없이는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 이란 등이 미국이 빠진 자리를 차지하려고 눈독 들이고 있지만, 이들 국가 역시 테러단체와의 단절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최근 아프간의 새 정부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정치체제, 온건한 대외정책, 테러 세력과의 단절 등을 주문했다. 탈레반과 서방과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카타르는 탈레반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면 불안정만 증폭된다며 국제사회와 탈레반의 관계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신 탈레반은 테러리즘과의 전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을 비롯해 한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100여개국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자국민과 이들 나라로부터 이동허가를 받은 아프간 주민이 아프간 밖으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탈레반이 보장했고, 이를 이행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제사회는 탈레반에 대피 보장 약속의 이행을 계속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탈레반이 외국인은 몰라도 아프간 주민들까지 아프간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약속처럼 허용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美 ‘20년 적’과 바로 관계 개선·지원 어려워 탈레반이 필요한 국제사회의 경제적·외교적 지원을 위해 미국의 역할이 중요한데, 20년간 적으로 싸워 온 데다 최대의 외교적 실패를 안겨 준 상대를 미국이 하루아침에 파트너로 인정하고 지원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미국 내 여론과 의회의 반대도 거세다. 미국이 베트남과 국교를 정상화하기까지 사이공에서 철수 후 20년이 걸렸다. 그사이 비공식적인 교류는 이어져 왔다. 아프간을 베트남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미국이 자국민의 안전과 안보, 아프간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위해 탈레반과 협력할 수 있지만 새 정부로 인정하기까지는 수년에서 수십년이 걸릴 수 있다고 미국의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아프간은 미국이 20년 동안 지원했지만 최빈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경제적 지원은 정부 관료들의 부정부패로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아프간은 전체 국가 예산에서 해외 원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달했다. 해외 원조가 끊기거나 줄면 타격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면서 미국은 현재 아프간 정부의 외환 94억 달러(약 10조 8000억원)를 동결했다. 탈레반 통치에 불안해하는 아프간 사람들이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려고 하지만 잔고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美 “국제적 의무 준수 조건 인도적 지원 계속” 아프간은 또 대부분의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아프간의 외환 보유 규모는 18개월 동안 수입을 감당할 수 있는 액수이다. 하지만 이 돈이 묶여 있고, 동결이 장기화한다면 통화 위기와 식량 및 연료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아프간에서는 탈레반의 장악 이후 물가와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아프간에 인도적 재앙이 닥칠 수 있다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촉구했다. 아프간 인구의 절반인 1800만명에게 긴급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며 3명 중 1명이 끼니 걱정을 하고 있다고 심각성을 경고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도적 지원은 계속 하겠지만, 탈레반의 국제적 의무 준수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웠다. 지원하더라도 탈레반이 아닌 비정부기구나 국제기구를 통할 것임을 강조했다. 탈레반의 집권으로 아프간에서 탈출하려는 난민 문제가 국제적 이슈가 되고 있다. 파키스탄은 더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국경을 완전 폐쇄했다. 유럽 국가들은 시리아 등 중동에서 100만명의 난민이 쏟아져 들어왔던 2015년 난민 위기를 떠올리며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아프간 난민을 직접 수용하기보다 파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 이웃국가들이 수용하도록 하고 대신 6억 유로(약 8212억원)를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최근 전했다. 지원금은 10억 유로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EU는 1차 난민 위기 직후인 2016년 터키가 시리아 난민을 수용한 사례를 들고 있다. EU는 당시 터키와 난민협정을 맺고 터키가 유럽으로 가려는 시리아 난민을 자국 내 수용하는 대신 60억 유로(약 8조원)를 지원했다. 파키스탄 등이 EU의 제안을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아프간 현지에서 전하는 외신들에 따르면 탈레반 통치가 시작되고 인권, 특히 여성의 인권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여성 언론인 상당수가 더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구타나 정치적 보복행위도 목격되고 있다고 한다. 탈레반 지도부의 방침이 일선의 탈레반 대원들 사이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현지 주민들의 증언을 외신은 전하고 있다. ●“언론이 외면한 전쟁, 지속적 관심·보도 중요” 아프간 상황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8월 31일까지 미군을 완전 철수한다고 발표할 때까지 미국 언론에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탈레반의 진격 속도가 빨라진 8월 이후 늘어나기 시작해 최근 2주간 폭증했다. 그러면서 아프간 전쟁 패배와 미 언론의 역할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한창이라고 온라인매체 악시오스가 전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벤저민 홉킨스 미 조지워싱턴대 남아시아 역사 교수는 “아프간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래 미 언론에서 가장 덜 다뤄진 전쟁”이라고 지적했다. 언론은 대부분 아프간 전쟁 패배와 혼란스러웠던 탈출 과정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하지만 역사학자와 언론학자들은 누구의 책임보다 왜, 무엇이 잘못됐고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얻은 교훈을 다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프간 전쟁은 20년 동안 지속되면서 국제적 관심사에서 점점 멀어졌다. 특히 주둔 미군 규모와 희생자가 줄어들면서 미국 일반 시민이나 정치인들조차 선거 때만 잠깐 관심을 보일 뿐이었다. 유럽이나 한국 등 아시아 언론도 사정은 비슷했다. 아프간 기사는 언론 입장에서는 팔리지 않는 아이템이었다. 앞으로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다. 당분간은 아프간의 인권 상황과 탈레반과 테러단체들과의 관계 등이 외신을 통해 외부 사회에 전달되겠지만, 언론과 국제사회 관심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있다. 홍콩과 미얀마 기사가 급감한 것처럼. 국제사회와 언론의 공적 책임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 마지막으로 아프간 떠나는 미군은?…정체는 공수부대 사령관

    마지막으로 아프간 떠나는 미군은?…정체는 공수부대 사령관

    지난 30일(이하 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이 완전히 철수한 가운데 마지막으로 이 땅을 떠난 미군의 신원이 공개됐다. 31일 미 국방부는 '아프간을 떠나는 마지막 미군'(The last American soldier to leave Afghanistan)이라는 제목과 함께 사진 한장을 공개했다. 이 사진 속 주인공은 미 육군 82공수부대 사령관 크리스 도나휴(52) 소장이다.   그는 이날 미군 중 마지막으로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에서 C-17수송기에 올라타며 지난 20년 간의 길고 길었던 아프간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지난 2001년 911 테러 직후 시작된 아프간 전쟁으로 총 77만 명이 넘는 미군이 복무한 가운데 도나휴 소장이 마지막 미군이 된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30년 이상 군 생활 중 중동과 북미, 특히 주한미군으로도 복무했다. 8월 중순 경 약 4000명의 공수부대원과 쿠웨이트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곳에서 카불 공항 경비를 위해 대기했다.AP통신에 따르면 도나휴 소장이 탄 마지막 수송기가 아프간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을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 마크 밀리 미 합동참모본부 의장 등 군 수뇌부가 미 국방부 지하 작전본부에 모여 초조한 분위기로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침묵이 너무 무거워서 바닥에 핀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으며 수뇌부는 마지막 수송기가 이륙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전했다. 한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아프간 내 20년 미군 주둔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미군은 지난 17일 간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수작전으로 12만 명이 넘는 미국과 동맹의 시민을 대피시켰다”면서 “아프간에서 20년간의 우리 군대 주둔이 끝났다”고 밝혔다.
  • 20년 아프간전은 끝났지만 ‘축하는 없었다’

    20년 아프간전은 끝났지만 ‘축하는 없었다’

    30일 밤 11시 59분에 마지막 미군 수송기 철수16일간 미국인 6000명 포함 12만 3000명 대피미국인 100명 정도 귀국 못해 향후 큰 논란 될듯 카불공항에서 170여명 사망한 자폭테러 큰 오점 ‘테러와의 전쟁’ 끝날지 여부 등은 아직 알수 없어미국이 2001년 9·11 테러로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30일(현지시간) 끝냈다. 30일 밤 11시 59분 미군의 C-17 수송기가 카불 공항을 이륙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어떤 축하행사도 없었다. 미국의 각종 오판으로 철수 중 큰 인명피해가 났기 때문이다. 이슬람국가 아프간 지부(IS-K)의 지난 26일 카불 공항 자폭테러에 대해 미국은 지속적인 보복을 선언한 상태여서 테러와의 전쟁이 끝날지도 아직 미지수다. AP통신, USA투데이 등 미 언론들에 따르면 중동과 중앙아시아 군사작전을 책임지는 케네스 프랭크 매켄지 미 중부사령관은 이날 국무부 브리핑에서 “아프간 철수의 완료와 미국 시민, 제3국인, 아프간 현지인의 대피 임무 종료를 선언하기 위해 섰다”고 밝혔다. 그는 예고됐던 철수 시점인 31일을 불과 1분 앞두고 미군 수송기가 카불에서 이륙하면서 철수를 완료했다며, 지난 14일 이후 아프간 대피작전으로 총 12만 3000여명이 아프간을 탈출했다고 전했다. 이중 미국인은 6000명이었고, 시간 내에 카불 공항에 도착하지 못해 대피하지 못한 미국인은 100명 수준이라고 했다. 이날 미군의 철수 완료로 탈레반은 아프간 전역을 통제하는 한편 완전 독립을 이루게 됐다. 20년만에 아프간을 재장악한 것이다. 여성인권 하락 등의 우려가 나온다. 2001년 아프간을 장악했던 탈레반이 9·11 테러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인도를 거부하면서 미국의 아프간전이 시작됐다.당시 아프간전 개시 법안은 상원에서 ‘98대 0’, 하원에서 ‘420대 1’로 압도적이고 초당적으로 통과됐고, 미군은 불과 한 달만에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탈레반을 몰아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미군이 빈 라덴을 사살한 건 무려 10년 뒤인 2011년이었고, 아프간전은 14년간 치른 베트남전의 기록을 넘어서 20년간 계속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2월에 탈레반과 올해 5월 1일까지 미군을 철수하는 합의를 맺었고 지난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철군 시점을 8월말로 연기했다. 이 와중에 바이든은 2014년 종전선언을 한 뒤 테러조직의 공격 재개로 아프간에 회군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사례를 감안한 듯 ‘무조건 철수’를 못박았다. ‘테러세력 약화’라는 전쟁 목표를 달성했으니, 아프간 내전을 위해 더 이상 청년들의 희생과 돈을 소모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의 각종 지원에도 민주주의, 치안안정, 투명성, 여권신장 등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한 것은 ‘아프간 정부의 무능’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의 각종 오판은 세계 최강대국의 자리를 흔드는 결과를 가져왔고, 트럼프와 다를 것이라던 바이든의 미국 역시 ‘국익을 위해 동맹을 버릴 수 있다’는 신호를 줬다. 바이든은 “미국이 20년간 30만명의 아프간 정부군을 훈련시켰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아프간 정부가 월급을 더 타내려 장부를 눈속임한 것에 불과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도 지난 22일 미군 철수 후 탈레반의 점령까지 수개월에서 2년은 걸릴 것으로 봤지만 “약 11일 동안 일어났다”며 오판을 시인했다.특히 미국은 민간인보다 미군을 먼저 철수시키는 실수를 했다. 지난 7월 1일 12만명이 상주하는 소도시급 ‘바그람 공군기지’를 포기하면서 정보자산 및 요충지도 잃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군기지가 아니라 테러 대응이 힘든 카불 공항으로 철수 루트를 일원화하면서 IS의 자살폭탄테러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 결과 전세계는 1975년 베트남 사이공(현 호치민) 주재 미 대사관 옥상에서 미국인들이 쫓기듯 헬기로 대피하는 상징적인 장면을 아프간에서 다시 한번 보게 됐고, ‘사이공 패배의 재연’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아프간전은 끝났지만 미국의 퇴장으로 알카에다, IS 등이 아프간이라는 은신처를 얻었다는 점에서 향후 테러리즘의 득세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20년간 아프간전의 총 희생자는 약 17만명이고, 미군 사망자는 2400명을 넘는다. 미국의 전쟁 비용은 1조 달러(약 1165조원)에 이른다.
  • 미국 최장기 해외전쟁이 끝났다…아프간 철군 완료(종합)

    미국 최장기 해외전쟁이 끝났다…아프간 철군 완료(종합)

    미국의 최장기 해외전쟁인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의 전쟁이 30일(현지시간) 20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1년 뉴욕 무역센터 등에 대한 무장조직 알카에다의 9·11 테러에서 촉발된 아프간전은 이날 미국이 미군 철수와 민간인 대피 완료를 선언함에 따라 공식 종료했다. 철수시한 31일 1분 앞두고 마지막 수송기 이륙AP통신에 따르면 중동과 중앙아시아 군사 작전을 책임진 프랭크 맥킨지 미 중부사령관은 국무부 브리핑에서 미군의 마지막 비행기인 C-17 수송기가 아프간 현지시간 30일 밤 11시 59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을 이륙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철수 시한으로 정한 31일을 불과 1분 앞두고 철수를 완료한 것이다. 맥킨지 사령관은 브리핑에서 “아프간 철수의 완료와 미국 시민, 제3국인, 아프간 현지인의 대피 임무 종료를 선언하기 위해 섰다”고 말했다. 미국인 6천명 아프간 탈출…“100명 미만 탈출 못해”대피 작전이 본격화한 지난 14일 이후 12만 3000명이 아프간을 탈출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지금까지 6000명의 미국인이 아프간을 떠났다고 밝힌 가운데 맥킨지 사령관은 100명에 못 미치는 미국인이 탈출을 희망했지만 시간 내에 공항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AP통신도 미국의 마지막 비행기가 출발했다는 탈레반 경비대원의 발언을 전하면서 카불에 이를 축하하는 총성이 울려퍼졌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탈레반은 아프간 완전 독립을 주장하면서 전역을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9·11테러 배후 빈라덴 인도 거부하며 전쟁 시작아프간전은 9·11 테러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인도 요구를 당시 아프간 집권 중이던 탈레반이 거부하자 동맹국들과 합세해 아프간을 침공함으로써 개시됐다. 미국은 탈레반을 축출한 뒤 친미 정권을 세웠고, 이후 2011년 5월 당초 전쟁의 직접 계기였던 빈 라덴까지 직접 사살했지만, 아프간 전쟁의 수렁은 깊었다. 탈레반은 아프간 산악 지대와 인접국을 오가며 테러와 저항을 이어나갔고, 새 아프간 정권의 통치는 불안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해 5월 1일까지 미군을 철수하는 합의를 탈레반과 작년 2월 맺었다. 지난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전임 정부의 철군 결정을 뒤집지 않고 올 4월 미군 철수를 결정하면서 아프간전 종식 의지를 공식화했다. 탈레반 빠르게 카불 장악…철군 일정 어그러져그러나 미국이 최소 연말까지는 친미 성향의 아프간 정부군이 탈레반의 공격을 버틸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이는 오판이었다. 탈레반이 파죽지세로 수도 카불을 향해 진격하는 가운데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수뇌부가 저항을 포기하고 국외로 도피하면서 정부군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결국 탈레반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수도 카불을 장악했고 지난 15일 사실상 무혈 입성했다. 이에 미국의 철군 일정은 물론 민간인 대피에도 큰 혼선이 빚어졌다. 미국 역사상 최장기 해외전쟁…전쟁 비용 1조 달러 미국-아프간 탈레반 전쟁은 미국 역사상 최장기 해외전쟁이다. 아프간전은 미국과 아프간 모두에 큰 상처를 남겼다. 지난 4월 기준 아프간전으로 희생된 이는 약 17만명으로, 아프간 정부군(6만 6000명), 탈레반 반군(5만 1000명), 아프간 민간인(4만 7000명) 등 아프간 측 피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미군 역시 2448명이 숨졌고, 미국 정부와 계약을 맺은 요원 3846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동맹군 1144명 등 미국과 동맹국 역시 적지 않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특히 미국이 20년간 쏟아부은 전쟁 비용이 1조 달러(1165조원)에 달한다.
  • 미국 최장기 해외전쟁이 끝났다…아프간 철군 완료

    미국 최장기 해외전쟁이 끝났다…아프간 철군 완료

    미국 국방부는 30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던 미군이 완전히 철수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이에 따라 2001년 뉴욕 무역센터 등에 대한 9·11 테러에서 촉발된 미국과 아프간 탈레반과의 20년 전쟁이 이날부로 공식 종료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중동과 중앙아시아 군사 작전을 책임진 프랭크 맥킨지 미 중부사령관은 미국의 마지막 비행기가 아프간 수도 카불 공항을 이륙했다고 밝혔다. 맥킨지 사령관은 이날 국방부 브리핑에서 “아프간 철수의 완료와 미국 시민, 제3국인, 아프간 현지인의 대피 임무 종료를 선언하기 위해 섰다”고 밝혔다. AP통신도 미국의 마지막 비행기가 출발했다는 탈레반 경비대원의 발언을 전하면서 카불에 이를 축하하는 총성이 울려퍼졌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아프간전은 9·11 테러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인도 요구를 당시 아프간 집권 중이던 탈레반이 거부하자 동맹국들과 합세해 아프간을 침공함으로써 개시됐다. 미국은 탈레반을 축출한 뒤 친미 정권을 세웠고, 이후 2011년 5월 당초 전쟁의 직접 계기였던 빈 라덴까지 직접 사살했지만, 아프간 전쟁의 수렁은 깊었다. 탈레반은 아프간 산악 지대와 인접국을 오가며 테러와 저항을 이어나갔고, 새 아프간 정권의 통치는 불안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해 5월 1일까지 미군을 철수하는 합의를 탈레반과 작년 2월 맺었다. 지난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전임 정부의 철군 결정을 뒤집지 않고 올 4월 미군 철수를 결정하면서 아프간전 종식 의지를 공식화했다.
  • 테러·보복에도 “예정대로 철군”… 바이든 ‘카터의 실패’ 재현하나

    테러·보복에도 “예정대로 철군”… 바이든 ‘카터의 실패’ 재현하나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테러를 저지른 이슬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에 보복 공습을 단행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주말인 28일(현지시간) 국가안보팀과 백악관 상황실에 머물며 현지 상황을 주시했다. 주말에 델라웨어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던 평소 일정과 다르게 주말 동안 백악관에 머문 것이다. 카불이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에 함락당했던 지난 15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있다가 16일 백악관으로 복귀해 연설한 뒤 다시 캠프 데이비드로 떠나 비판을 산 것과도 달라진 행보다. 탈레반 재장악, 호라산의 테러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철군 일정을 계획대로 추진하는 바이든의 행보를 두고 여러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바이든 스스로는 이날 성명에서 “예정대로 철군”을 천명하는 한편 보복 공습에 대한 의지도 분명히 했다. 미군의 추가 희생은 용인할 생각이 없으며, 아프간 전쟁을 자신의 임기에서 종결지어 ‘20년 전쟁을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미국이 이번 테러에 빠른 응징을 단행한 것도 추가 도발 가능성을 낮춰 대피 작업을 순조롭게 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같은 철수 계획은 중동 정책 실패로 연임에 성공하지 못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이날 보도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장기간 인질로 잡히는 사태가 발생하고, 미국은 이듬해인 1980년 인질 구출 작전을 펼쳤지만 작전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1980년 이란 인질 구출 작전 실패가 카터 행정부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듯 아프간 철수 실패가 바이든 정부에 그런 역할을 할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카터 전 대통령의 연임 실패는 경제 불황에 기인한 것이지만, 이 작전의 실패로 미국인들을 크게 실망시킨 것도 주요 원인이었다고 기사는 지적했다. FT는 “같은 민주당 출신이고, 둘 다 이슬람에 발목을 잡혔다는 점에서 카터와 바이든 대통령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도 전했다. 다만 카터의 중동 정책 실패는 선거를 바로 앞두고 나왔지만 바이든은 아직도 임기를 3년이나 남겨두고 있어 만회할 시간이 있다는 게 다른 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FT는 “미국이라는 코끼리가 아프간이라는 모기에 꼼짝 못하는 것을 보여 주는 사건으로 세계인들의 뇌리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 테러·보복에도 “예정대로 철군”… 바이든 ‘카터의 실패’ 재현하나

    테러·보복에도 “예정대로 철군”… 바이든 ‘카터의 실패’ 재현하나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테러를 저지른 이슬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에 보복 공습을 단행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주말인 28일(현지시간) 국가안보팀과 백악관 상황실에 머물며 현지 상황을 주시했다. 주말에 델라웨어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던 평소 일정과 다르게 주말 동안 백악관에 머문 것이다. 카불이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에 함락당했던 지난 15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있다가 16일 백악관으로 복귀해 연설한 뒤 다시 캠프 데이비드로 떠나 비판을 산 것과도 달라진 행보다. 탈레반 재장악, 호라산의 테러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철군 일정을 계획대로 추진하는 바이든의 행보를 두고 여러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바이든 스스로는 이날 성명에서 “예정대로 철군”을 천명하는 한편 보복 공습에 대한 의지도 분명히 했다. 미군의 추가 희생은 용인할 생각이 없으며, 아프간 전쟁을 자신의 임기에서 종결지어 ‘20년 전쟁을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미국이 이번 테러에 빠른 응징을 단행한 것도 추가 도발 가능성을 낮춰 대피 작업을 순조롭게 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같은 철수 계획은 중동 정책 실패로 연임에 성공하지 못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이날 보도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장기간 인질로 잡히는 사태가 발생하고, 미국은 이듬해인 1980년 인질 구출 작전을 펼쳤지만 작전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1980년 이란 인질 구출 작전 실패가 카터 행정부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듯 아프간 철수 실패가 바이든 정부에 그런 역할을 할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카터 전 대통령의 연임 실패는 경제 불황에 기인한 것이지만, 이 작전의 실패로 미국인들을 크게 실망시킨 것도 주요 원인이었다고 기사는 지적했다. FT는 “같은 민주당 출신이고, 둘 다 이슬람에 발목을 잡혔다는 점에서 카터와 바이든 대통령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도 전했다. 다만 카터의 중동 정책 실패는 선거를 바로 앞두고 나왔지만 바이든은 아직도 임기를 3년이나 남겨두고 있어 만회할 시간이 있다는 게 다른 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FT는 “미국이라는 코끼리가 아프간이라는 모기에 꼼짝 못하는 것을 보여 주는 사건으로 세계인들의 뇌리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 [서울광장] 신그레이트 게임/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신그레이트 게임/오일만 논설위원

    아프가니스탄은 역사적으로 제국의 무덤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그리스 제국을 시작으로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도 아프간에서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19~20세기 초까지 대영제국은 중앙아시아 패권을 잡고자 남하하는 러시아를 막으려고 아프간에서 사활을 건 경쟁을 벌였다. 그 유명한 그레이트 게임이다. 당시 영국은 세 차례나 아프간을 침공했지만 처참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냉전의 한 축이었던 소련도 아프간의 사회주의 정권 붕괴를 막고자 개입했다가 10년 전쟁 끝에 손을 들고 나온 전례가 있다. 이번에는 세계 최강 미국이 당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를 감행한 알카에다를 응징한다는 명목으로 아프간을 침공한 이후 최장 전쟁으로 기록된 탈레반과의 20년 전쟁을 벌였다가 패배했다. 미국은 20년 동안 공을 들여 아프간 군대와 경찰 육성을 토대로 친미 정권을 수립했지만 역부족이었다. 2005년부터 아프간군기금(ASFF)으로 지원한 자금만도 750억 달러(약 88조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지난 5월 미군 철수가 시작된 뒤 공들여 키운 30만명의 정부군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의 해외 도피 하루 만에 수도 카불이 점령되는 사태를 맞았다. 전의를 상실한 아프간 군대의 최후는 이렇게 허망했다. 이번 사태는 1975년 베트남전 패배 이후 최강 미국의 자존심이 구겨진 패배로 기록되고, 앞으로 닥칠 세계 군사안보 지형의 변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철군 이유로 “국익 없는 전쟁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반복하지 말아야 할 실수’ 세 가지를 제시했다.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분쟁에 개입하는 것, 군사 개입으로 국가 내전을 가속화하는 경우, 영구적 미군 배치를 통해 국가 재건을 시도하는 경우다. 미국이 뼈아픈 실패를 곱씹으며 국익 우선주의를 설파하자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면 한미동맹에 더욱 밀착해야 한다’는 주장들도 쏟아졌다. 주로 보수 언론과 극우 유튜버들 사이에서다. 스스로 나라를 지킬 의지가 없었던 정부와 군대의 최후를 목격한 상황에서 한미동맹 지상주의를 부르짖는 것은 자국의 운명을 다른 나라에 맡기자는 전형적인 사대주의적 발상이다. 스스로를 돕지 않으면 남도 돕지 않는다는 교훈을 목도하지 않았나. 전시작전권을 전환하고, 군작전 능력을 키워 자강의 안보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일 것이다. 미국의 국익 우선주의는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 사실 미국이 아프간에서 발을 뺀 이유 중 하나는 ‘중동 석유’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이다. 그동안 아프간의 전략적 중요성의 핵심은 ‘석유’였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은 표면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으로 포장했지만, 그 이면에는 본질적으로 ‘석유 전쟁’이 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석유를 서방 시장으로 연결하려면 반드시 아프간을 통과해야 하는 지정학적 특징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셰일가스 혁명에 성공해 미국의 중동 원유 의존도를 낮추는 획기적 변화가 있은 뒤 중동 석유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됐다. 손익분기점을 넘어 버린 아프간에서 발을 빼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탈레반 재집권 이후 미중 패권 전쟁이 새로운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에도 유의해야 한다. 아프간과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국가가 중국이다. 중국과 아프간은 ‘와칸회랑’을 통해 약 73㎞에 달하는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아프간에서 메스아이나크 구리 광산, 아무다리야 분지의 유전 개발권 등도 따냈다. 사활을 건 일대일로 핵심 프로젝트도 아프간과 연결돼 있다. 더욱이 탈레반은 이슬람 수니파에 속한다.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분리 독립을 꿈꾸는 무장단체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 역시 수니파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탈레반이 교리상 형제인 신장의 무슬림의 분리 독립 운동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다. 탈레반 대변인이 최근 “우리는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면서 중국의 경제적 지원에 손짓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신장위구르 분리 독립을 저지하려는 중국과 경제 재건이 시급한 탈레반이 일시적으로 손을 잡을 수는 있어도 항구적 안정과 평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중국을 주적으로 삼고 있는 미국이 ‘탈레반’이라는 핵폭탄급 난제를 남겼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미중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바뀔지 주목된다.
  • 아프간 파병 미군 “거짓말에 넘어가, 19년전 철군했어야”

    아프간 파병 미군 “거짓말에 넘어가, 19년전 철군했어야”

    아프가니스탄에서 해군으로 복무했던 퇴역 군인이 아프간의 진실을 단 두 문장으로 요약했다. 첫째는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했던 2001년부터 지난 20년간 정치인과 군사 지도자들은 거짓말만 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지난주에 아프간에서 일어났던 비극은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이나 복무한 루카스 쿤스는 23일 미국 언론 ‘캔자스 시티 스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절절한 심정을 토해냈다. 현재 쿤스는 민주당으로 미 상원 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쿤스는 “지금 아프간에서 보고 있는 것들은 전혀 충격적이지 않다”며 “우리는 조직적인 거짓말에 빠져들었을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프간 공식 언어인 파슈토를 배웠고 두번이나 특수작전팀으로 아프간에서 근무했다. 그는 국가보안군으로 불리는 아프간 정부군은 미국인이 낸 세금으로 아프간 사람들에게 직업 훈련을 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이 사실을 모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쿤스는 이라크에서도 복무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임무와 책임에 대한 도표를 받게 됐다. 초록색은 괜찮음, 노란색은 개선 필요, 붉은색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뜻이라며 색깔로 명기된 도표였다. 하지만 이내 이는 도표일 뿐이며, 전쟁을 계속하기 위한 수작일 뿐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아프간에서도 이라크에서와 똑같이 거짓말이 자행되었으며, 올바른 철수 시기는 2002년이나 2003년이었다고 주장했다. 매년 이슬람 무장조직으로 아프간을 차지한 탈레반은 미군에 대항하는 기술과 전략을 새롭게 갈고 닦았다. 20년 동안 2조 달러(약 2340조원)의 돈과 2500명의 미국인이 생명을 잃었으며, 2021년은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기에 너무 늦은 때일 뿐이라고 봤다. 쿤스는 “전쟁에 목마른 매파들은 우리의 군인이 전혀 해를 입지 않는다고 했지만, 우리 부대의 유능한 해군을 두 명이나 잃어야 했다”면서 “엘리트들은 아프간의 비극이 미국 책임이라고 하지만, 똑같은 미국인들이 수년간 아프간에 대해 거짓말만 해댔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중동 재건을 위해 6조 4000억 달러를 쓰는 대신 바로 미국에 그 돈을 썼어야 했다고 부연했다. 게다가 아프간에 대한 거짓말이 중요한 것은 들어간 예산이나 희생당한 생명의 숫자때문만이 아니라 아프간이 시스템적 거짓말로 미국을 완전히 파괴시켰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영화 속 전쟁 떠올린 아프간 대사 “공습 경보에 대피”

    영화 속 전쟁 떠올린 아프간 대사 “공습 경보에 대피”

    최태호 주아프간 대사, 18일 화상인터뷰카불공항에 아프간인들 몰려 아수라장총소리 들리고 우방국 헬기 상황경계“필수 물품 가져오느라 양복도 못챙겨”“영화에서 보는 전쟁과 같은 비슷한 상황이었다.” 지난 1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에는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을 피하려는 아프간인들이 몰려들면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아프간인들은 민간공항 활주로를 점거하고 필사적으로 항공기에 매달렸다. 저녁부터는 총소리도 들리고, 우방국 헬기가 공항을 맴돌며 상황 경계를 했다. 현지에 체류 중인 교민 1명의 출국을 지원하기 위해 잔류했다가 뒤늦게 중동 제3국으로 철수한 최태호 주아프간 대사는 18일 기자들과 화상 인터뷰에서 “공습 경보가 울려 (저는) 옆 건물로, (군용기 탑승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하는 직원들은 대합실로 대피했다”며 당시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최 대사는 지난 15일 오전 11시 30분쯤(현지시간) 외교부 본부와 회의를 하던 중에 대사관 경비업체로부터 탈레반 부대가 차로 20분 떨어진 거리까지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후 회의가 끝날 때쯤 우방국 대사관으로부터 “탈출하라”는 공지를 전달받았다. 최 대사는 추가 상황 판단을 위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우방국 대사들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이들은 전화를 안 받거나 다급한 목소리로 “정말 급한 상황이다. 빨리 가야 한다”고 해 최 대사도 “철수가 필요하겠구나”라는 판단을 한 뒤 곧바로 정의용 외교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이후 철수 지시를 받은 최 대사는 매뉴얼대로 대사관 내 중요 문서를 파기하고 직원들에게도 짐을 싸도록 했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우방국 대사관으로 이동한 뒤 공항까지는 헬기로 이동했다. 그는 “필수적 물품만 가져오느라 양복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교민 1명이 출국을 주저하면서 최 대사는 공관 직원 2명과 함께 현장에 남았지만 이 교민도 결국에는 마음을 바꿔먹고 군용기에 몸을 실었다. 교민부터 먼저 보내려고 했으나 16일 오전 민간공항에 들어왔던 아프간인들이 군 활주로까지 들어오면서 군용기 운항도 중단됐다. 17일 새벽에서야 현장이 정리됐고, 최 대사 등 남은 대사관 직원들도 교민 보호도 할 겸 같이 출국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같은 군용기를 타고 아프간을 떠났다. 최 대사는 “배를 타듯 수송기 바닥에 모여 앉았다”면서 “탑승자 대부분은 미국인이고, 제3국인, 아프간인도 일부 있었다”고 전했다.
  • 아프간 대통령 벌써 국외 도주, 20년 만에 다시 탈레반의 나라로

    아프간 대통령 벌써 국외 도주, 20년 만에 다시 탈레반의 나라로

    얼마나 허망하게 정권이 무너질 수 있는지를 아프가니스탄이 거의 ‘빛의 속도’로 보여주고 있다. 9·11 테러와 미군 침공 이후 20년 만에 다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나라가 됐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 타슈겐트로 달아났다. 압둘 사타르 미르자크왈 아프간 내무부 장관은 15일(현지시간) “과도 정부에 평화적인 권력 이양이 있을 것”이라며 탈레반에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아프간 내무부의 한 고위 관리는 이날 가니 대통령이 아프간을 떠났다고 밝혔다. 스푸트니크 통신도 가니 대통령이 타지키스탄을 향해 출발했으며 그곳에서 제3국으로 갈 것이라고 전했는데 타슈겐트로 향한 것으로 정정됐다. 그는 “무의미한 희생과 파괴를 막기 위해” 국외로 피신하기로 했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로이터는 이날 밤 탈레반 전투원들이 대통령궁에 진입했다고 전했다.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한 후 수도 카불까지 진입하자 정부 측이 백기 투항한 것이다. 탈레반으로서는 2001년 미국의 침공으로 정권을 잃은 지 20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한 것이다. ‘카불 최후의 날’이 다가오면서 현지 주민은 패닉 상태에 빠졌고 국제공항에는 국외로 탈출하려는 이들이 몰려들었다. 현지 각국 대사관도 혼비백산한 채 탈출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미국 대사관은 본격적으로 철수를 시작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를 지원하기 위해 미군 5000명 배치를 승인했다.탈레반은 1994년 남부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결성됐으며 이슬람 이상국가 건설을 목표로 내걸고 세력을 넓혀갔다. 파키스탄 등의 지원을 등에 업은 탈레반은 1996년 무슬림 반군조직 무자헤딘 연합체로 구성된 라바니 정부까지 무너뜨렸다. 하지만 탈레반은 9·11 테러의 배후인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넘기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미군의 침공을 받고 정권을 잃었다. 이후 정부군 등과 20년 전쟁을 이어가며 세력을 회복해 지난 5월 미군 철수 본격화를 계기로 전국적인 총공세를 펼쳤다. 부패한 데다 사기마저 저하된 정부군은 추풍낙엽처럼 무너졌다. 탈레반은 카불을 무력으로 점령할 계획이 없다며 ‘평화적 투항’을 촉구했고 결국 아프간 정부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탈레반은 곧바로 권력 인수 준비에 들어갔다. 아프간 정부군에게 귀향이 허용될 것이라며 군대 해산을 요구했고 공항과 병원은 계속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지역 경찰이 초소를 버리고 떠남에 따라 약탈을 막기 위해 조직원에게 카불로 들어가라고 명령했다”고 밝혔다. 또 로이터는 탈레반 관리 2명을 인용해 탈레반이 과도 정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적인 권력 인수를 기대한다고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카불 내 여러 곳에서 총격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카불의 한 병원도 트위터를 통해 카불 외곽에서 발생한 충돌로 40명 이상이 다쳐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카불 주민들은 달러 사재기와 함께 앞다퉈 현금 인출에 나서는 모습도 보였다.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은 최근 카불에 온 피란민은 약 12만명이고 이들 중 7만 2000명이 아동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카불은 1028㎢ 크기로 서울 면적(605㎢)의 두 배가량이며 약 460만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달 말로 철군 시한을 제시한 미국은 현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이날 카불 주재 대사관 외교관들의 철수를 시작했다. 외교관들은 민감한 문서나 자료 등을 폐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수 작업에는 헬기가 동원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날 아프간 내 미국 요원의 안전한 감축 등을 위해 기존 계획보다 1000명 늘린 5000명의 미군을 배치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인 요원과 임무를 위험에 빠뜨리는 어떤 행동도 신속하고 강력한 군사적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를 탈레반 측에 전달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나라의 내정에 미국의 끝없는 주둔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철군 방침도 재확인했다. 미국 행정부 고위 관계자도 탈레반이 미군 철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기존 철군 전략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1970년대 베트남전 막바지 상황과 비슷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미군이 철수한 후 무능한 정부가 순식간에 무너졌고 민간인과 외교관의 탈출 과정에서 아수라장이 빚어졌다는 점에서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결정으로 우리는 치욕적인 ‘1975년 사이공(현재 베트남 호찌민) 함락’의 속편으로 나아가게 됐고 심지어 상황이 그때보다 나쁘다”라고 지적했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등도 대사관 철수 작전에 들어갔다. 한국 정부도 아프간 주재 대사관을 잠정 폐쇄하고 공관원 대부분을 중동지역 제3국으로 철수시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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