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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레스타인 의료진 이스라엘군 총격에 숨져

    장례식에 수천명… 팔 전역 분노 부상당한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돌보던 여성 의료진이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스러졌다. 사망자가 피격 당시 의료진임을 알리는 옷을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레스타인 전역이 분노에 휩싸였다. 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의료 자원봉사자 라잔 아쉬라프 나자르(21·여)가 전날 가자지구 남부의 칸유니스의 분리장벽 부근에서 팔레스타인 시위대의 부상자를 응급 처치하던 중 총에 맞아 숨졌다. 자와드 아와드 팔레스타인 보건장관은 “나자르가 피격됐을 때 의료진이라고 표시한 옷을 입고 있었다”며 “이것(나자르 사망)은 전쟁범죄”라고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니콜라이 믈라데노프 유엔 중동특사는 트위터에 “의료진은 목표물이 아니다”라고 썼다. 이날 가자지구에서 열린 나자르의 장례식에는 팔레스타인인 수천명이 모여 분노와 애도를 표현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팔레스타인 국기로 감싼 나자르의 시신을 안고 행진했으며, 나자르의 가족은 나자르의 피로 물든 옷을 들고 장례를 치렀다. 피격 당시 나자르와 함께 있었던 사촌 이브라힘 나자르는 “그녀에게 장벽에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얘기했지만, ‘죽음이 두렵지 않다. 다친 젊은이들을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 관계자는 “우리는 표준 절차에 따라 행동했다”면서 “장벽 인근에서 작전 교범에 따라 사상자를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불행하게도 테러집단인 하마스가 민간인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고 반박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허무하게 끝난 ‘조·올의 꿈’… 북·미 18년 만에 다시 꿈꾼다

    허무하게 끝난 ‘조·올의 꿈’… 북·미 18년 만에 다시 꿈꾼다

    2000년 10월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군복을 입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가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을 방문했다. 북한 권력 서열 2위로 김 위원장의 최측근이자 군부를 대표하는 실력자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인민무력부 총정치국장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북한 고위급 인사가 미국 땅을 밟은 것이다.조명록은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예방하고 이튿날 북·미 관계 개선과 평화체제 구축 의지를 밝힌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했다. 뒤이어 같은 달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평양을 전격 방문해 김 위원장을 면담하고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전격 합의했다. 불가능해 보이던 북핵 문제 해결과 북·미 적대관계 청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성사됐다면 한반도의 운명을 바꿨을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은 같은 시기에 터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그해 11월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으로 물거품이 됐다. 그후 북한은 6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무력을 완성했고 지금에 와서야 다시 북·미 정상회담이 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18년 전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지금이야말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라는 얘기가 나온다. 조명록의 뒤를 이어 31일 북한 고위급 인사로는 18년 만에 미국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조명록과 올브라이트가 못 다 이룬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도정의 마지막 단계인 김영철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만남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18년 전 조명록의 방미가 이뤄진 때는 미국의 ‘페리 프로세스’ 발표로 북핵 위기가 누그러지고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선언에 이어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한반도 문제의 획기적 진전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 시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4·27 남북 정상회담과 5·26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한 것처럼, 당시에도 한국 정부의 활약이 빛났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의 대화 의지를 확인한 김대중(DJ) 당시 대통령은 회담 직후 황원탁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백악관에 급파해 클린턴에게 회담 결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미 관계를 개선하려면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반응은 좋았다. 7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아지역안보포럼을 계기로 북·미는 즉각 첫 외교장관 회담을 열어 김정일의 미국 특사 파견 문제를 협의했다. 김정일은 그로부터 석 달 뒤 특사 파견을 결정했다.샌프란시스코를 거쳐 10월 9일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도착한 조명록은 군복 차림으로 클린턴을 만나 김정일의 친서를 전달했다. ‘북한 인민과 군대가 안보에 아무런 위협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미국이 우려하는 안보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며 관계 정상화를 희망한다는 요지의 친서였다. 클린턴을 평양으로 초청한다는 김정일의 메시지도 전달했다. 이에 클린턴은 “먼저 사전 조율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며 올브라이트의 평양 방문을 제안했다. 이런 북·미 공감대를 바탕으로 올브라이트는 미국 고위층 인사로는 처음으로 2000년 10월 23일 오전 7시 평양 땅을 밟았다. 웬디 셔먼 대북정책조정관, 스탠리 로스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로버트 아인혼 비확산담당 차관보, 찰스 카트먼 한반도평화회담담당 대사, 잭 프리처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담당 국장 등 선발대 50여명과 기자단 57명 등 210여명이 수행했다. 올브라이트의 첫 일정은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이었다. 김정일 면담은 방북 둘째 날 있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첫날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올브라이트는 회고록에서 “도착 첫날 점심식사를 하던 중 오후에 예정된 모든 일정이 취소되고 김 위원장을 만나기로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올브라이트는 김정일에게 클린턴의 친서를 전달하고 3시간가량 회담했다. 그는 김정일에게 “북한 미사일과 관련한 만족스러운 합의 없이 내가 클린턴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권유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자 김정일은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며, 미사일 문제는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면서 “성실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다면 우리가 못 해낼 일은 없다”고 밝혔다.이 자리에서 김정일은 시리아와 이란에 미사일을 수출하는 것은 외화벌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회담 뒤 올브라이트는 김정일의 안내로 5·1경기장에서 열린 집단체조와 카드섹션 ‘아리랑 공연’을 관람했다. 당시 평양 군중의 일사불란하고 거대한 매스게임을 보고 놀라는 올브라이트의 표정은 큰 화제가 됐다. 공연 중간에 대포동 미사일 발사를 묘사하는 대목에서 김정일은 올브라이트에게 “저것은 우리의 처음 미사일 발사입니다만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북·미 관계 개선을 향한 복합적인 메시지가 담긴 말이었다. 북·미 회담은 시간문제로 여겨졌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공화당은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반대했다. 우파 전문가들도 북·미 정상회담을 반대했다. 올브라이트는 “그간 추진해 오던 미사일방어(MD) 계획을 클린턴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수포로 돌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고 회고했다. 임기 말의 클린턴은 정치적 반대를 물리칠 동력을 상실했다. 더 큰 문제는 중동 평화협상이었다. 12월이 다가오며 클린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문제를 매듭짓는 일에 매달려야 했다. 다급해진 미국은 김정일에게 회담 장소를 평양이 아닌 워싱턴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거부했다. 결국 클린턴은 북·미 회담을 포기하고 12월 21일 아침, 우리 정부에 “평양을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29일에는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벌어진 심각한 폭력 사태에 클린턴 대통령이 중재에 나서게 되면서 방북 일정을 잡기가 애매해졌다”며 평양 방문 포기를 공식 발표했다.훗날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회고록에서 “웬디 셔먼 대북정책조정관은 나에게 김 위원장의 ‘시간 개념 부족’을 탓했다. 만일 김정일이 조명록의 방미를 한 달만 앞당겼어도 역사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란 얘기였다”고 밝혔다. 새로 출범한 부시 행정부는 2001년 3월 워싱턴을 방문한 DJ에게 “대북한 정책 검토를 끝내기 전까지는 북한과 협상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첫 북·미 정상회담 추진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지만 18년 전과 지금은 다른 측면도 많다. 당시는 미국 정권 교체기였지만, 지금은 한·미의 대통령이 모두 임기 초반이다. 18년 전보다는 북·미 정상회담 합의를 지킬 ‘시간적 변수’가 유리한 셈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수요 에세이] 국제 원유가, 지금까지는 괜찮아!/문재도 무역보험공사 사장

    [수요 에세이] 국제 원유가, 지금까지는 괜찮아!/문재도 무역보험공사 사장

    국제 원유가가 오르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60% 이상 상승해 배럴당 80달러에 근접했다. 향후 국제 석유 시장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비롯한 산유국들이 감산 합의를 이어 가고 세계경제가 좋아지면서 원유 수급 상황이 빡빡해지고 있다. 미국의 이란 제재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심화될 경우 중동 지역의 원유 수급 상황이 갑자기 나빠질 수 있다. 이럴 때 투기성 금융자본이 들어온다면 국제 원유가의 변동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토탈(Total)은 1배럴당 100달러까지 올라갈지 모른단다. 국제 원유가가 얼마나 올라갈까? 정유업계는 적절한 원유 구입 시점을 정하기 위해 고민한다. 유전 개발 사업자는 신규 유전 투자를 할지 말지를 검토하기 시작한다. 정책 담당자들은 안정적 경제 운영을 위해 정확한 예측을 하고 싶어 한다. 2014년 하반기 국제 원유가가 100달러대에서 출렁이기 시작할 때였다. 정유업계 최고경영자(CEO) 한 분과 유가 전망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유가가 80달러대까지 내려갔는데 한 2, 3달러 더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지 고민이라며 필자의 의견을 물었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40달러대까지 수직 하락했다. 사실 변동성이 큰 시점에 원유가가 어느 시점에 어디까지 갈지 예측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저 현 유가를 기준으로 상정하고 수급 상황에 따라 상승 또는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 다음에 꼭 사족을 붙인다. ‘예기치 못한 요인에 따라 급등 가능성 상존’이라고. 그러면 저유가가 좋을까? 2015년에 중동의 석유회사 관계자와 나눈 이야기이다. 국제 원유가가 하락해 자기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한국은 좋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우리와 같이 다변화된 경제 상황에서는 저유가도 고유가도 아닌 예측 가능한 안정적인 유가 수준을 희망한다고 답한 바 있다. 지금까지는 괜찮다. 현재의 원유가는 중동 등 산유국 입장에서 재정 수요를 충족할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소비국인 우리 입장에서도 휘발유 등 유류 가격이 아직은 물가를 위협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산유국에서 플랜트 건설 수요가 회복되면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미국도 셰일 오일 산업이 호조를 보이면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문제다. 국제 원유가가 계속 오른다면 민간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 국제수지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벌써 지난해 4월에 비해 수입물가가 4% 넘게 올랐다. 과거 경험상 우리 수입액에서 에너지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어서면 경제에 큰 부담이 되었다. 미국도 최근 휘발유값이 심리적 부담선인 갤런(약 3.8리터)당 3달러 수준에 이르렀는데 국제유가가 더 오른다고 당장 셰일 증산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최근의 유가 흐름에 우려를 표하며 사우디가 국제 유가 안정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 달라고 트윗을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 뜻대로 산유국들이 시장 안정화에 협조해서 국제 원유가가 다시 하향세로 돌아서길 바란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반대로 움직인 적이 많았던 것이 우려를 낳는다. 당장 시장은 단기적으로 상승을 예상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수급 불안 같은 시장 구조적 요인보다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더 비중을 둔다. 그러나 정책은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단기적 급등 우려에 대한 비상 대응 능력을 갖추고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저소비형 경제구조로의 전환과 같은 지속 가능성을 지향한다. 1990년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같은 지정학적 요인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국내 유가 완충을 했지만 미진했다. 전쟁이 끝난 후 국제석유시장은 원상 복귀했지만 우리는 국내 유가를 충분히 올리지 않아 발생했던 1조원 이상의 재정 부담을 갚기 위해 역설적으로 국내 유가를 올렸던 경험도 있다. 국내 유가가 자유화된 이 시점에는 꼭 맞지 않는 사례이지만 비상시에 좀더 정상적인 정책을 펴려면 미리 대응태세를 점검하는 것이 좋겠다.
  • [스포트라이트] 美 대표가 “밥맛”이라던 이 남자… 브로맨스로 바꾼 ‘협상의 달인’

    [스포트라이트] 美 대표가 “밥맛”이라던 이 남자… 브로맨스로 바꾼 ‘협상의 달인’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영화 ‘타짜’의 주인공 고니가 스승 평경장의 복수를 위해 아귀와 마지막 한 판을 벌이기 직전 화투판에 흐르는 극도의 긴장감을 설명하는 대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협상 분위기를 이 한마디로 대신했다. 이 관계자는 “한·미 모두 국익 극대화를 위해 지난 1월부터 약 3개월 동안 진행한 개정 협상을 도박판과 비교하긴 어렵지만 양국 경제를 놓고 벌어진 큰판이었던 만큼 역대 FTA 협상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공방전”이라면서 “협상 때마다 살얼음판을 걸었다”고 말했다.실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 행정부가 ‘아메리칸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면서 대미 무역 흑자국인 한국에 대한 통상 압박 강도를 높여 우리 측은 협상에서 수세에 몰렸다. 하지만 지난 3월 말 양국이 원칙적 합의안을 발표하자 한국이 ‘선방’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우리가 ‘레드 라인’(금지선)으로 못박은 농산물시장 추가 개방을 저지했고, 자동차시장을 일부 내주긴 했지만 25%에 이르는 철강 관세를 면제받는 등 성과를 거둬서다. 이를 두고 정부 내에서는 협상을 지휘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특유의 ‘싸움의 기술’이 제대로 먹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20일 산업부 통상실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본부장의 협상 전략은 ▲꿇리지 않는 자신감 ▲1대1 담판 ▲본능적 판단 등으로 요약된다.# “판 깰 생각 없었다고? 난 깰 생각 있었다” 우선 김 본부장은 이번 협상에서 한국이 먼저 FTA 자체를 깰 수 있다며 오히려 미국을 압박하는 배짱을 보였다. 김 본부장은 ‘미국이 농업 문제를 꺼내는 순간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라’고 우리 협상단에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미국 측에도 언제든 FTA를 깰 준비가 돼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이에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나중에 김 본부장을 만나 “사실 나는 한·미 FTA를 깰 생각은 없었다”고 전했지만, 김 본부장은 “나는 깰 생각이 있었다”고 받아쳤다. 김 본부장은 1대1 담판을 즐긴다. 협상단을 이끌고 장시간 여러 사안을 논의하기보다 상대국 통상 수장을 만나 양국이 원하는 핵심 사안에 대해 빠르게 해법을 찾는 전략이다. 실제 김 본부장은 게리 콘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 미 행정부와 의회 인사들을 만날 때 동행한 직원들에게 “단둘이 얘기할 테니 나가 있어라”라고 말한 적이 많다고 한다. “니네 이거 알아?”라는 ‘기 죽이기’ 협상 기술도 유명하다. 김 본부장은 미국 측 인사들을 만나 협상을 시작할 때 해박한 미국 스포츠·정치 상식을 뽐냈다. 미국에서는 스포츠와 정치에 관심이 많아 이에 대한 얘기가 화제로 자주 등장하는데 딱딱한 분위기를 깨면서도 관련 정보를 미국인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 기선을 제압하는 효과다. 산업부 관계자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어라? 한국인이 이 정도로 미국 문화를 잘 알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면서 “김 본부장이 뭔가 처음부터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가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도 “콘 전 위원장과도 처음 5분 동안 긴장 관계가 있었는데 스포츠를 이야기했다”면서 “동양인이 자기네처럼 영어를 하고 문화를 이해하니까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세계 정세 재미있게 풀어… 외국인사 만남 요청 김 본부장의 협상술을 싫어하는 상대방도 있다.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가 대표적이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첫 화상회의 직후 미국 기자들에게 “저 밥맛 떨어지는 김현종 본부장 때문에 술 한잔 해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본부장은 “나중에는 친해져서 ‘브로맨스’(브라더+로맨스) 수준까지 갔다”고 뒷얘기를 전했다. 반면 김 본부장을 좋아하는 외국 인사들도 꽤 있다. 미 정부·의회 관계자들이 김 본부장에게 먼저 만나자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 본부장이 한반도와 세계 정세 관련 역사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주기 때문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김 본부장은 임진왜란부터 시작해 구한말 러·일 전쟁 등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해양과 대륙 세력의 다툼에 대한 역사를 꿰고 있다”면서 “김 본부장에게 이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미 인사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 내 머릿속의 빅데이터… 기억력·순발력 甲 김 본부장은 담판에서 빠른 판단으로 상대방과 합의에 이른다. 산업부 관계자는 “협상장에서 잔뼈가 굵어서 그런지 순간순간 본능적으로 판단을 내린다”고 전했다. 김 본부장이 통상 현안 전반에 대한 데이터를 머릿속에 넣고 다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른 직원은 “직원들 보고 내용을 거의 다 기억할 정도로 기억력이 좋다”면서 “과거와 다른 통계를 갖고 가거나 보고 내용이 달라지면 ‘저번에 한 얘기랑 다른데’라면서 지적이 바로 들어오기 때문에 보고 전에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주요 사안을 결정하기 전에 버릇이 하나 있다. 1~2시간가량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FTA 협상 방안을 비롯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할 때는 직원들과 회의를 하다가도 잠시 나가 있으라고 말한 뒤 혼자 생각을 정리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때 협상 전략 등을 짜는 것”이라면서 “회의가 재개되면 김 본부장이 직원들에게 착착 지시를 내린다”고 전했다. # ICT교역 활용 ‘한국주도 첫 메가 FTA’ 추진 한·미 FTA 개정 협상이 일단락되면서 김 본부장은 최근 신남방·신북방 정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중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특성상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고 ‘사드 보복’ 재발 등 중국의 지리·경제적 리스크에 대비하려면 신흥국으로 수출 시장을 넓혀야 해서다. 김 본부장은 지난달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을 만나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등 동남아시아와 중동 출장길에 자주 오르고 있다. 김 본부장은 한국이 주도하는 최초의 메가 FTA도 추진 중이다.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ICT)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국가 간 교역 활동으로 전자무역과 전자상거래, 데이터 주도 사업까지 포함한 ‘디지털 통상 FTA’다.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의료와 제조업 분야에서 디지털 건강관리와 스마트 제조 등 관련 산업의 글로벌 플랫폼 선점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김 본부장은 “데이터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면서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칠레 등과 메가 FTA를 추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김응교 교수-작가의 탄생] 희생의 혁명가… 강아지똥도, 몽실언니도 행복했어요

    [김응교 교수-작가의 탄생] 희생의 혁명가… 강아지똥도, 몽실언니도 행복했어요

    주리지 않을 정도만 먹고, 몸만 가릴 정도로 입고 살던 종지기였다. 내 몫의 이상을 쓰는 것은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라고 그는 말했다. 한 달에 5만원 정도를 쓰며 청빈하게 살았던 그는 남긴 돈 10억여원과 매년 1억원 정도의 인세로 북녘 어린이를 도우라는 유언을 남겼다.●강아지똥 혁명가 윤동주 탄생 100주년으로 화제였던 작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또 한 명의 작가가 있었다. 지난해 탄생 80주년, 서거 10주기를 맞았던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다. 1937년 일본 도쿄 변두리에서 태어나 큰 명성을 떨쳤지만 2007년 작고할 때까지 검소한 삶을 이어 갔다. 그냥 지나면 안 되겠기에 권정생 재단 사무처장이었던 시인 안상학과 문학기행을 만들었다. 회원을 모아 버스 한 대에 태우고 권정생 문학기행을 했었다. 퇴계 이황과 이육사 시인을 배출했던 경북 안동의 풍성한 정신은 권정생 문학으로 이어진다. 가는 길에 그의 대표작 ‘강아지똥’을 생각했다. 꿈이 없어 절망하는 아이를 위해 그는 처마 밑의 강아지똥을 보고 이 이야기를 썼다. 민들레 싹에 강아지똥이 녹아들어, 향긋한 꽃 냄새를 퍼뜨리는 이야기다. 강아지똥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 버려진 존재가 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1969년 그를 작가로 만든 ‘강아지똥’은 그의 삶 전체를 요약하고 있다. “네가 거름이 돼 줘야 한단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 “어머나! 그러니? 정말 그러니?” 강아지똥은 얼마나 기뻤던지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아 버렸어요. 권정생의 삶은 강아지똥 자체였다. 사흘 동안 비를 맞고 온몸이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진 강아지똥의 헌신은 권정생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의 글과 삶은 조용한 혁명가의 모습을 보여 준다. 민들레 싹을 피워낸 강아지똥처럼 그는 흙집에서 살았다. 권정생이라는 작가의 탄생은 바로 여기 강아지똥이 자디잘게 부서지는 현장에서 싹텄다.●고난을 견뎌내는 절름발이 소녀 반공 이야기만을 강조하던 시대에 권정생은 장편동화 ‘몽실언니’(1984)를 발표했다. “절름발이 찜발이”라며 놀림받는 소녀 정몽실이 무시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역경을 극복하는 이야기다. 이 책은 그의 삶처럼 지지리도 슬프다. 자기 이야기가 슬프지만, 그는 그 슬픔은 절망이 아니라고 했다. “서러운 사람에게 남이 들려주는 서러운 이야기를 들으면 한결 위안이 된다. 그것은 조그만 희망으로까지 이끌어 줄 수 있다.”(‘빌뱅이 언덕’의 ‘나의 동화 이야기’)고 그는 썼다. 슬픔이 주는 위로만이 이 동화의 매력은 아니다. 그의 글에는 고유어가 숭늉처럼 은근히 맛을 낸다. 어머니는 밀양댁, 새어머니는 북촌댁, 이 외에 빨래 옹배기, 부엌데기, 나물다래끼 등 좁쌀 같은 토속어가 근원적인 친근감을 불러 일으킨다. 댓골, 살강, 노루실, 우찻길, 까치바윗골, 샛들 같은 땅 이름도 살갑다. 마치 둬야 할 곳에 바둑알을 놓듯이, 그는 꼭 둬야 할 단어를 정확히 둔다. 우리말을 제대로 쓰자고 주장했던 이오덕 선생과 벗했던 문인답다.몽실이가 하마터면 두고 가 버릴 뻔했던 소꿉을 찾으러 가는 장면을 보자. “뒤란 담 밑에다 모아 둔 사금파리랑 병뚜껑, 구멍 뚫린 고무공, 조롱박 한 짝, 구질구질한 소꿉 살림은 건넛집 희숙이와 주워 모은 것”(‘몽실언니’, 9면)이라고 눈에 보이듯 구체적으로 나열돼 있다. 섬세한 묘사는 텍스트 밖의 리얼리티를 독자의 뇌 속에 구성시킨다. 낯선 할머니를 묘사하면서 “오징어 다리에 붙은 멍울 같은 사마귀가 있고, 쪼글쪼글 주름투성이”라는 생생한 표현은 자꾸 읽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슬픔이 묘하게 위로로 다가오는 그의 동화는 돌아가면서 낭독하면 더 생생한 울림을 준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고 쉽다. 너무도 쉬운 말로 쓴 문장 둘레의 빈자리에서 뭔가 울린다. 그 울림은 무엇일까. 우리가 잃어버린 진정성이 아닐까. 이 작품에는 여성과 아동에 대한 잔혹한 폭력 문제도 제시한다. 해방 후 빈민의 삶, 빨갱이라 불리는 산사람, 전쟁터로 끌려가는 아버지, 갑자기 나타난 인민군, 인민군 노래를 배우는 아이들 이야기 등 혼돈의 역사가 펼쳐진다. 버려진 인간들 한 명 한 명을 진정으로 대하며, 궁핍하지만 몽실이는 고유한 단독자로 성장해 간다. 몽실이는 그 시대에 쉽게 볼 수 있는 문제적 개인이었다. 아울러 여자 인민군이 몽실이와 친밀하게 지내는 등 권정생은 북한 사람도 우리와 한가족이라는 사실을 담았다.●공생의 유토피아 그가 살던 흙집은 말이 방 두 칸이지 한 사람이 가까스로 누울 수 있는 방 하나와 발 펴고 앉기도 좁은 방 한 칸으로 구성됐다. 요 작은 방에서 그는 개구리, 쥐와 함께 지냈다. 하느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밤에는 소나기가 쏟아져 우리 방에 동지들이 여나믄 마리나 들어왔습니다. 동지라면 잘 모르실 테고, 정말은 개구리올시다. 개구리를 동지라 불러도 하느님은 노하시지 않으실는지요? 하지만 하느님, 저는 지금 동지들이 아쉽습니다. 동지가 많아야 통일도 속히 이루어지고, 온 세계는 한 형제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이 지으신 세상에 평화가 이루어지자면 우리가 모두 동지가 되어야 합니다. 개구리는 물론 파리도, 모기도, 미꾸라지도, 메추라기도, 산돼지도, 노루도, 강아지도, 원숭이도 모두 동지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이라면 저의 기도를 속히 이루어 주십시오.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의 ’개구리 배꼽’) 동화 속의 이 기도는 작가 자신의 기도였다. 경북 안동 일직교회 종지기로 살았던 그의 토방집에는 개구리도, 파리도, 모기도, 미꾸라지도, 메추라기도 들어왔다. 그의 세계는 산돼지도, 노루도, 강아지도, 원숭이도, 돼지도 모두 함께 가족으로 사는 세상이다. 비 오는 날 방 안에 개구리가 들어오고, 겨울이면 아랫목에 들어와 추위에 떨던 생쥐가 몸을 녹였다고 한다. 생쥐가 발고락을 물기도 하여, 발밑에 베개를 두고 잤다고 한다. “하느님이 지으신 세상에 평화가 이루어지자면 우리가 모두 동지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그의 기도에는 분단이니 통일이니 하는 거대한 단어 이전에 ‘하나님-자연-인간’이 삼각형을 이루며 평안을 이룬 큰누리가 그의 기도문 안에 담겨 있다. 그가 꿈꾸던 공생의 세계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1:28)는 구절을 연상하게 한다. 그는 “자연생태계에서는 공생이라는 규범이 있다. 공생의 균형이 깨지면 너도나도 모두 파멸에 이른다.”(‘빌뱅이언덕’)며 생태계와 더불어 사는 삶을 평생 강조했다.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하나님을 꼭짓점으로, 자연과 인간이 원을 이루며 사는 원뿔삼각형으로 그릴 수 있겠다. 자연과 인간관계가 깨어지자, 인간과 인간관계도 깨어지고,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깨어졌다. 그 관계를 복원하는 호소가 권정생의 희망이었다. 권정생은 혈연적 가족주의를 넘어서고 있다. 권정생 작품에는 어머니, 누이 등 가족이 등장하지만, 그 가족은 혈연주의에 갇혀 있지 않다. 평생 가까스로 누울 수 있는 흙방에서 종지기 작가로 살았던 그가 운명했을 때 놀랍게도 통장에는 10억원 정도가 저축돼 있었고, 1억 5000만원 정도의 인세가 들어 있었다. 그는 그 돈을 북한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해 써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티베트 어린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그가 바라던 대로 그의 책 인세는 ‘남북 어린이’를 위해 쓰였고, 지금도 쓰이고 있다. 남북 관계가 험악했던 지난 정권 몇 년간에도 그의 정신을 따르는 권정생 재단 사람들은 그의 인세로 미국 재단을 통해 북녘 아이들을 위한 약을 구해 보냈다. 이 글을 시작할 때 윤동주와 권정생을 비교했다. 윤동주 시인이 ‘오줌싸개 지도’ 등을 발표했던 ‘카톨릭소년’에 권정생이 ‘몽실언니’를 연재했다는 사실도 독특한 인연이다. 윤동주 시인과 권정생 작가는 부패한 종교에 대해 비판하고 ‘예수처럼’ 살고자 했다. 윤동주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십자가’)라며, 일제 말에 교회 종을 떼어 전쟁 무기로 바치고, 예언의 종소리를 울리지 않는 부패한 기독교를 비판했다. 찬송가 가사를 쓰기도 했고, 신앙과 일치된 삶을 살았던 권정생의 산문들은 폐부를 찌르듯 날카롭다. 세습이나 논문 표절이나 하며 예수와 정반대의 길을 도모하는 사이비들은 진정한 기독교인이 무엇인지를 두 작가의 글에서 배워야 한다. 권정생 선생은 단편동화 120여편, 장편동화 6권, 장편소설 2권, 소년소설 3권, 산문집 2권, 시집 1권, 위인전 1권 등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방대하지만 그의 작품은 그의 첫 작품 ‘강아지똥’의 풍성한 반복이다. “혁명가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되고 공정치 못한 일이면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바로 고쳐 나가는 사람이다. 개인의 사소한 일이나 사회와 국가의 일 모두가 이와 같은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 공부하는 마지막 목표다.”(‘빌뱅이 언덕’) 그는 자신의 글처럼 스스로를 희생하는 혁명가가 돼 삶의 목적을 이루었다. 온몸을 부숴 민들레꽃을 피워낸 강아지똥이 됐고, 그의 저작들은 민들레꽃으로 환생해 만방에 조용히 퍼지고 있다. 우주와 인간은 한 가족, 남과 북은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며 2007년 69세를 일기로 민들레꽃씨로 날아간 종지기, 매년 5월 17일 그의 기일엔 잠에서 깨라며 영혼의 새벽종이 울린다. 시인·숙명여대 교수
  • [데스크 시각] 이란 핵협정 파기, 북ㆍ미 접촉 언제부터였을까/이지운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이란 핵협정 파기, 북ㆍ미 접촉 언제부터였을까/이지운 국제부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협정(JCPOA) 파기를 고려한 것은 아마 ‘처음부터’였을지 모른다. 협정 파기의 원인(遠因)을 일부 미국 언론들은 이란에 대한 트럼프의 ‘증오’에서 찾기도 한다. 이 증오가 본질적으로 트럼프 자신의 것인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유대계 인사들의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아무튼 유럽의 친구들이 찾아와 말리고, 세계가 반대해도 지난 8일 기어이 협정을 파기했다. 그래서인지 사흘쯤 뒤인 10일 이스라엘과 이란이 군사적으로 충돌했다. 이스라엘군은 시리아 내 이란 혁명 수비대 측 무기고와 병참기지, 정보 시설 등을 대대적으로 공습했다 하고, 이란은 골란고원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이스라엘로서는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최대 외부 공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가 북핵 문제 해결을 준비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1994년 미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 보인 ‘세상의 핵’에 대한 그의 특별한 사명감을 고려한다면 이 또한 처음부터였을 수 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미국 대통령의 주요 임무 중 하나로, 핵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북한과 미국이 핵 합의를 위해 ‘접촉’을 시작한 게 트럼프 행정부 공식 출범 이전부터라는 얘기가 나오는 건 그래서인 듯하다. 워싱턴에서 ‘대북 보상비용’ 얘기가 흘러나온 게 지난해 하반기인 걸 보면 접촉 시점은 훨씬 이전이라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일단 그 출발점은 앤드루 김 미국중앙정보국(CIA) 한국임무센터(KMC)장으로 알려진다. CIA 한국지부장과 아시아ㆍ태평양지역 담당자를 역임하다 퇴임한 뒤 KMC 초대 팀장을 맡았다. KMC는 지난해 5월 북한 전담조직으로 신설된 조직이다. 그런데 왜 5월이었을까. 혹 북ㆍ미 접촉 시점과는 연관이 없을까. 지난해 5월 미국은 이미 북한과의 접촉량과 범위가 늘어나 조직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었을 수 있다. 관련 작업의 출발점이었던 앤드루 김의 활동 공간을 공식화해 주는 측면도 고려했을 수 있다. 아무래도 지난해 이맘때 전쟁을 불사할 듯 보였던 북한과 미국의 대결 분위기는 당시 세상이 생각했던 그런 상황과는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이후 이어지는 지난해 하반기는 주지하듯 미국이 중국을 비틀어 북한을 쥐어짜는 기간이었다. 행동과 보상 사이를 고심하는 북한에 압박을 병행한 것은 미국으로서는 필수 코스였다. 이 무렵 보상 얘기가 구체화되면서 ‘비용’ 얘기가 흘러나온 것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은 미국과 직거래하는 일정 기간 중국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아마 국면 전환을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한국이었을 수 있다. ‘통 큰 결단’을 남한을 통해 극대화한 김정은의 선택은 영리한 것이었다. 2018년 새해 벽두부터 평창올림픽에, 김여정의 방남과 판문점 회담까지 김정은은 보도의 중심이었다. 사실관계는 아직 드러난 것이 없다. 그래도 트럼프 정부 출범부터 북·미 정상회담 확정 발표까지 한국과 중국이 소외된 구간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두 나라 당국은 지금 이 소외된 구간을 복기해 재구성하고 있을 것인데, 한국은 누구보다 자세하고 치밀하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판 마셜플랜’이 거론되고 있는 요즘이다. 예컨대 김정은 정권은 최대한 ‘북한 내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자본과 계획을 원할 것이고, 북·미가 이 문제를 어디까지 논의했는지 친절하게 알려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중국이 알려 왔다’, ‘백악관이 사전 고지했다’ 정도로는 설명하기도 어려운 문제다. jj@seoul.co.kr
  • [퍼블릭 뷰] 시리아 내전 사태로 본 남북 대화채널의 중요성

    [퍼블릭 뷰] 시리아 내전 사태로 본 남북 대화채널의 중요성

    최근 40여 일 사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지난 수년간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때마다 한국과 미국은 보다 건설적인 중국의 역할을 요청했음에도 북한이 더이상 중국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변명하던 중국 지도층이 갑자기 북한과 긴밀한 협력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중국을 거치지 않고 남북한이 직접 대화가 가능하게 됐고 또한 북·미 간 접촉선이 구축됐기 때문이다.필자는 2015년 11월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계기에 한구석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상기된 얼굴로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국가(IS) 문제를 두고 면담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2014년 2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이후 서방국가와 러시아의 관계가 상당히 경색돼 있어 정상회담에서도 별다른 성과가 없었지만, 양측은 서로 잘못된 해석으로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느 순간에도 연락 채널을 끊지 않았다. 이는 남북한 채널이 중단됐기에 북한에 관한 정보를 외국에 의존해야 했고 그에 따라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안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되돌아보게 한다. # 미·러, 시리아해법 대립에도 연락 채널은 유지 2011년 이후 전개돼 온 시리아 내전 역시 한반도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엄중한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50여년 이어온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국가공권력이 붕괴돼 힘의 공백이 생기면서 IS·반군세력·쿠르드 등 세력이 끼어들었다. 시리아를 둘러싸고 사우디·이란·터키 등 중견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러시아·유럽 등 강대 세력도 관여했다. 이는 북한에서의 변화되는 상황에서뿐만 아니라 특히 힘의 공백이 생길 경우 주변국들이 어떠한 형태로든 관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뿐만 아니라 관여 과정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및 발전보다는 자국의 이해를 위해 한반도 문제를 투시할 것이며, 중국의 최근 변화가 그 대표적인 예다. 시리아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이란은 시리아·이라크와 시아파 연대를 구축했고, 사우디는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반(反)시리아 세력을 지원하고 있으며, 터키는 시리아 정권 세력 약화를 틈타 쿠르드 자치정부가 이뤄지는 것에 촉각을 세우면서 군사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은 지상군 파병 대신 쿠르드 반군 지원을 통해 소극적인 관여를 하고, 유럽은 인권·자유 대신 난민 유입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유럽이 시리아 문제에 단결된 입장이 아님을 간파해 2015년 9월부터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대규모 군사 지원을 했고 그 결과 중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력이 됐다. 시리아를 둘러싸고 관련국들이 보이고 있는 행태는 동상이몽으로 시리아인의 안전은 후순위이고 자국의 이해 증진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됐다. 이 결과 지난 7년간의 내전에서 2200만명의 시리아 국민 가운데 1100만명이 국내외에서 떠돌고 5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 남북 간 협력 진전될 때 주변국도 함께 움직여 이러한 행태에 비춰 한반도 문제에서도 관련 국가들이 자국의 이해 측면에서 수시로 입장을 바꿀 것이다. 남북한 채널이 없는 상황에서는 주변국의 도움은 미온적이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비핵화를 통해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을 견고하게 하면서 남북한 간 대화와 협력을 진전시켜 나가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몫이다. 이러한 조치가 이뤄질 때 주변국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실제로 남북한 접촉 이후 주변국들은 이전과는 다른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다만 향후 전망에 대해 국내 대다수가 북한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쏟아내고 있지만 동서독 통일 과정이 보여준 바와 같이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남북 및 주변국가들과의 협상 과정에서 일부 후퇴가 있을 경우 비판하기보다 또 다른 진전을 기대하는 가운데 한반도 문제를 우리 스스로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일희일비하기보다 차분함이 요구되는 때다.
  • 美 핵합의 파기후 이스라엘·이란 국지전…백악관 “이르면 내주 이란 추가 제재안”

    美 핵합의 파기후 이스라엘·이란 국지전…백악관 “이르면 내주 이란 추가 제재안”

    여객기 공급 등 8월 다시 제재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파기하자마자, 이란과 이스라엘이 세 차례 국지전을 벌였다. 양측의 강대강 격돌이 이어지면서 전면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일(현지시간) AFP통신,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하면서 국지전에 불을 댕겼다. 이스라엘은 지난 8일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핵합의 파기를 발표한 직후에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의 이란 혁명수비대가 주둔 중인 군사기지를 미사일 공격했다. 시리아군은 이스라엘 미사일 2기를 요격했다고 밝혔으나,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이 공격으로 9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이란은 이날 이스라엘군이 점령한 시리아 골란고원에 로켓 20여발을 발사해 보복했다. 이스라엘군은 혁명수비대의 정예부대인 ‘쿠드스군’을 배후로 지목했다. 이스라엘군의 대변인인 조너선 콘리쿠스 중령은 “이번 공격으로 우리 측 사상자는 없었다”면서 “이번 공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스라엘도 재차 보복에 나섰다. AFP통신은 다마스쿠스 상공에 전투기가 나타났으며 폭발음이 들렸다고 전했다. 콘리쿠스 대변인은 “시리아 내 목표물 수십 곳을 공격했다”며 “목표물은 이란군의 미사일이 발사된 지점들과 정보·물류·저장 거점 등”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을 노린 시리아 방공 시스템도 목표물이었다. 시리아 국영 사나통신은 “시리아군이 이스라엘의 추가 미사일 공격을 방어했다”고 밝혔다. 하레츠는 이스라엘 보안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이날 공습은 1974년 시리아와의 휴전 이후 이스라엘이 수행한 최대 규모의 작전”이라고 보도했다. 익명의 미 국무부 관계자는 타임 오브 이스라엘에 “우리는 이란의 악의적인 행동에 맞서 이스라엘 편에 서며, 이스라엘의 방위권을 강력히 지지한다”면서 “(이란의 공격이 사실이라면) 이란 핵협정을 끝내기로 한 우리의 결정을 강화할 뿐”이라고 말했다. 골란고원은 1967년 6월,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의 이른바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리아의 영토다. 중동 일대에서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 정부는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를 준비 중이라고 발표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추가 제재안이 이르면 다음주에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샌더스 대변인은 “우리는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과 대규모 제재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며 “모든 제재는 협상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합의 파기로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는 복원된다. 미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설명에 따르면 제재 복원 시점은 적용 시기에 따라 90일과 180일 두 부분으로 나뉜다. 여객기 공급 등 90일 유예 기간이 설정된 제재는 오는 8월 6일부터 원상 복구하고, 석유 부문을 비롯한 나머지 부문에 대한 제재는 180일 뒤인 11월 4일 재개한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이방카 부부, 트럼프 대신 이스라엘 美대사관 이전식 참석

    미국 백악관은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4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리는 미국 대사관의 이전식에 참석할 대통령 대표단을 지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지 않고 대신 대표단을 보낸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존 설리번 국무부 부장관이 이끌 이번 대표단에는 데이비드 프리드먼 주이스라엘 대사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큰딸인 이방카 트럼프 고문, 제이슨 그린블랫 백악관 국제협상 특사가 지정됐다. 이 중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쿠슈너 선임고문과 므누신 장관은 유대인 혈통이다.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나 주무부처 장관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대표단 명단에서 빠졌다. 이는 북·미 정상회담 막판 조율과 실무 준비 등으로 미국을 비울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하면서 ‘중동의 화약고’에 불을 댕겼다. 이 같은 발표에 당시 팔레스타인과 아랍 국가들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까지 ‘팔레스타인을 자극해 평화협상 타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강하게 반대했다. 현재 대부분 나라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의 수도로 인정하지 않고,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해 동예루살렘을 점령했다. 그러나 유엔은 예루살렘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의 성지라는 점을 고려해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국제도시로 규정하고 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이란 핵합의 ‘운명의 날’ 닷새 앞으로…佛·英, 트럼프 파기 저지에 막판 총력

    마크롱 “전쟁 일어날 수도 있다” 英외무 “중동 핵군비 경쟁 촉발” 항공기 등 무역 이익 지키기 나서 로하니 “탈퇴 즉시 후회” 전쟁 시사 미국이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파기 여부를 결정할 시한이 임박한 프랑스와 영국이 파기를 막기 위한 마지막 설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합의를 파기하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라면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핵합의를 갱신하라고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 갱신일인 오는 12일까지 미국이 요구하는 핵심 사항을 반영한 재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를 파기하고 대(對)이란 제재를 부활하겠다고 경고해왔다.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은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트럼프 대통령의 합의 수호를 요구하는 칼럼을 썼다. 그는 “핵합의를 파기하면 중동에서 핵 군비 경쟁을 촉발하게 될 것”이라면서 “핵합의 약점이 있지만,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제약을 없애버려 이득을 보는 것은 오직 이란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영국, 프랑스, 독일이 핵합의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이 합의를 유지하는 것이 테헤란(이란 정부)의 지역 내 공격적인 행동에 대응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존슨 장관은 미국 정부에 합의 갱신을 요구하려고 이날 방미했다. 그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회동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접견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유럽이 미국과 이란의 중재에 발 벗고 나선 것은 중동 정세 안정뿐만 아니라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고려해서다. 유럽 기업들은 핵합의로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가 해제된 2016년 이후 이란에 진출했다. 프랑스 에어버스는 이란에 190억 달러(약 20조 4630억원)에 항공기 100대를 판매하기로 계약했고, 프랑스 석유기업 토탈은 2억 달러 규모의 이란 사우스파스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또 독일 폭스바겐은 지난해 17년 만에 이란 시장에 들어갔다. 유럽연합(EU)과 이란의 무역은 2013년 62억 유로(약 8조원)에서 지난해 210억 유로 규모로 늘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호라산주 사브제바르시에서 한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이 핵합의를 탈퇴하는 즉시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한 후회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면서 “이란은 트럼프가 어떤 결정을 하든 이에 대비한 계획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어 “몇 달 전부터 이란 원자력청과 경제 부처에 핵합의 탈퇴 시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면서 “우리는 전쟁이나 긴장을 원하지 않지만, 우리의 권리를 강력하게 방어할 것이다. 미국은 우리 조국 이란에 어떤 짓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로하니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국영방송으로 이란 전역에 생중계됐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휴전선 도발과 철책

    [그때의 사회면] 휴전선 도발과 철책

    1960년대 초반까지 휴전선에는 철책이 없었다. 남방·북방한계선을 경계로 남북군이 경계를 서고 있었을 뿐이다. 철책이 없었기에 북한군이나 공비가 남방한계선을 넘어 우리 지역으로 침투해 도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휴전선을 넘어 북한군이 귀순하거나 반대로 월북하는 일도 자주 발생했다.군대에 다녀온 장년층이 군복무 중 들었던 “북한군이 내려와 우리 병사들을 죽이고 귀를 베어 갔다”는 증언도 틀린 게 아니다. 신문에 전부는 아니겠지만 북한군의 도발 사실이 보도됐다. 1976년 8월 18일 발생한 북한군의 판문점 도끼 만행은 철책선 설치 이후에 발생한 사건이지만 철책선이 없을 때는 휴전선은 전장과 큰 차이가 없었다. 북한의 도발은 소위 4대 군사노선을 채택한 후인 196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1962년 7월 14일 북한의 정찰부장이 직접 북한군을 지휘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내려와 장병 4명을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해 11월 20일 밤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유엔군 감시 초소에 북한군이 수류탄을 던쳐 미군 병사 1명이 사망했다. 유엔군 초소를 공격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듬해 7월 29일에도 미군 2명이 북한군의 기습을 받고 사망했다(동아일보 1963년 7월 31일자). 우리 쪽에서 응사는 당연했고 비무장지대 주변에서 교전이 수시로 벌어져 전쟁을 방불케 하는 살벌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휴전선에 목책을 설치하기 시작한 때는 1964년이다. 당시 6군단장 한신 중장이 남방한계선 일반전초(GOP)에 목책을 설치했다. 휴전선 철책의 효시다. 그러나 전 전선에 설치되지는 못해 침투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북한군의 도발은 더 격화됐다. 1966년 11월 2일 서부전선에서 한ㆍ미 장병 6명이 북한군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존슨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고 떠난 직후였다. 1967년 4월 12일에는 중동부전선에 북한군 소대 병력이 침입한, 휴전 이후 최대의 침입 사건이 일어났다. 같은 해 육군 21사단에 북한군이 침투해 모 연대 부연대장 홍두표 중령의 목을 베어 갔다고 전해지고 있다. 북한군 소행이 확실하지만 목을 베어 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도발이 심해지자 휴전선 155마일 전 전선에 철책 설치 계획이 세워졌다. 1967년 1야전군사령관 서종철 대장이 주도했다. 미군 지원으로 난공사 끝에 2중·3중 철책이 설치됐다. 그러나 초기의 철책은 몹시 허술해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철책을 자르고 침투했다. 붙잡힌 김신조씨가 현장검증에서 발로 철책을 찼더니 뻥 뚫렸다. 철망을 자르고 표시나지 않게 붙여 놓은 줄 군이 몰랐던 것이다. 사진은 1970년 1월 휴전선 철책 근무를 보도한 기사(경향신문 1970년 1월 7일자). 손성진 논설주간 sonsj@seoul.co.kr
  • 종전선언 7월 27일 유력…평화협정 남·북·미·중 참여할 듯

    종전선언 7월 27일 유력…평화협정 남·북·미·중 참여할 듯

    비핵화·체제안전 보장 맞교환 새달 북·미 정상회담이 첫 관문 中 종전선언 참가 여부는 미지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서 연내 종전선언을 진행하고 이어 평화협정을 추진키로 함에 따라 향후 일정에 관심이 쏠린다. 전문가들은 종전선언의 경우 정전협정 체결일인 오는 7월 27일쯤을 유력한 시점으로 봤다. 평화협정 시기는 비핵화 속도나 미국 의회 비준 등에 달려 있지만 연내 체결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판문점 선언 3조 3항에는 ‘남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명시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5월 하순 중 개최할 것이라고 밝힌 북·미 정상회담이 첫 관문이다. 여기서 담판을 지을 비핵화 로드맵의 핵심 내용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북한 체제안전보장(평화협정, 북·미 관계 정상화) 간 맞교환이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은 전쟁을 끝내겠다는 상징적 의사표시다.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면, 이를 시작하기 위해 ‘출구’에서 미국까지 뜻을 더하는 과정이다. 정전협정 당사국인 남·북·미·중이 모두 참여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중국이 종전선언 단계에서부터 참여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문정인 대통령외교안보특보는 지난달 31일 한 심포지엄에서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의 10·4 정상선언에도 종전선언 합의가 있었는데,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동의했지만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답을 주지 않아 3자 또는 4자라는 표현이 들어갔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종전선언은 올해 일정상 1953년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쯤이 유력하다. 5월 하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비핵화 로드맵을 타결한다면 7월 말까지는 로드맵에 따라 양측이 비핵화를 위한 첫 조치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또 6월까지 남·북·미·중 간 여러 건의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어 당사국 간 조율도 끝낼 수 있다. 평화협정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법적·제도적 합의문서라는 점에서 정전협정 대상국인 남·북·미·중이 모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1953년 정전협정문에 사인한 당사자에 남측은 빠져 있어 2007년에 이어 참여 주체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또 법적 구속력이 발휘되면서 유엔사령부 해체가 불가피할 수 있고 주한미군의 지위, 한·미 동맹 재조정 등 까다로운 과제들이 남아 있다. 미 의회의 비준 절차도 필요하다. 일각에서 평화협정의 연내 체결은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빠르게 진행되면 4자가 모여 가능한 합의만 담은 1차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다”며 “중동의 경우 단계별로 평화협정을 맺은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남북 정상은 27일 정상회담에서 ‘속도’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 신년사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달려온 속도를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밝혔고 김 위원장은 “‘만리마 속도전’을 남북 통일의 속도로 삼자”고 답했다. 한국 정부의 궁극적 목표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이다. 평화 정착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 시작된 평화체제가 장기화, 심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월드 Zoom in] FPDA 안보 챙기는 英, 한반도 북핵 위협 적극 개입

    [월드 Zoom in] FPDA 안보 챙기는 英, 한반도 북핵 위협 적극 개입

    아태지역 옛 식민지 안보 제공자, 브렉시트 이후 英연방 협력 부각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화 모드로 전환한 반면, 미국의 가장 가까운 우방 영국 정부는 북한을 압박하며 각을 세우고 있다. 북한과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영국이 안보 위협을 강조하며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는 양상이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영국 해군은 지난 11일 북한의 불법 해상 교역을 단속한다는 명목으로 미 7함대의 모항인 일본 요코스카에 호위함 ‘서덜랜드’호를 파견했다. 일본 지지통신에 따르면 서덜랜드호는 27~28일 일본 해상 자위대와 연합해 북한 해상 밀수 차단 및 대(對)잠수함 훈련을 실시한다. 지난 13일에는 영국 해군 상륙함 ‘알비온’호가 싱가포르에 입항했다. 영국 해군은 연내 또 다른 함정 ‘아길’호도 태평양에 추가 배치해 이들 3척을 북한 핵개발 자금원으로 추정되는 불법 해상 교역 감시 임무에 활용한다. 영국이 한반도 인근 아시아 태평양 해역에 군함을 상시 배치한 것은 2013년 이후 5년 만이다. 가빈 윌리엄 영국 국방장관은 “북한의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까지 동맹국들과 협력해 엄격하게 제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이에 대해 16일 조선중앙통신 성명을 통해 “영국은 전 세계가 환영하는 평화 증진 흐름에 악영향을 미치고 우리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지난 1월 말에도 영국이 ‘워너크라이 사이버 공격’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한 데 대해 “미국을 추종하는 영국은 다른 나라를 도발하기보다 본인들의 문제를 챙기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국 외교부는 지난해 말 조직 개편을 통해 북한 담당 부서를 과(課)에서 별도의 국(局)으로 격상시켰다. 영국군은 북한과 미국 간 전쟁이 일어날 경우 항공모함을 급파해 미 해군을 돕는 비상 계획도 마련했다고 데일리 메일이 지난해 10월 보도했다. 이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이 북한의 핵 위협을 예사롭게 보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영국 하원 국방위원회는 지난 5일 ‘북한의 위협’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지금 같은 속도라면 향후 6~18개월 내 영국까지 도달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역량을 갖추게 된다”며 “영국은 한국에 군사 지원을 제공할 법적 의무가 없지만 북한이 한국과 미국에 적대적 행동을 개시하면 방관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국방위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할 가능성은 낮고 회담이 북한 체제 선전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불신을 드러냈다. 영국은 북한에서 런던까지의 직선거리가 8672㎞로, ICBM 사거리 측면에서 북한~미국 로스앤젤레스 거리(9567㎞)보다 가깝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북한이 실제로 영국으로 ICBM을 날리면 발사체가 중국과 러시아의 상공을 통과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북한으로선 유럽 집단 안보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인 영국에 핵 공격을 가할 전략적 이익도 거의 없다. 북한에 의한 안보 위협이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영국이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이유는 우선 8000명 이상으로 알려진 한국 체류 영국인의 안전과 연관이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유럽과의 교역이 위축될 영국으로서는 영연방 국가들이 대거 포함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보·경제 협력이 그만큼 더욱 중요해졌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북한은 아태 지역에서 가장 큰 안보 불안 요소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매체 더 디플로맷은 최근 “영국이 동아시아의 주요 행위자로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은 지난 5일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 지점인 중동 바레인에 해군 기지를 개설했고 싱가포르에도 보급 기지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은 특히 옛 식민지이자 영연방 국가인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와 ‘영연방 5개국 방위협정’(FPDA)이라는 공동 안보 협력체를 운영하는 만큼 북한 위협에 맞서 이들 국가들에 든든한 안보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보여줘야 한다. 세계 5대 공인 핵보유국의 하나인 영국이 핵억지력을 유지하는 명분으로 북한의 핵위협을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은 ICBM 대신 핵전력으로 핵잠수함(SSBN) 4척과 사거리 1만 2000㎞의 ‘트라이던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 전력은 노후화됐다. 집권 보수당은 영국이 핵보복 전력을 갖는 게 강대국으로서의 위상과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해 2016년 신형 잠수함 건조 계획을 승인했다. 하지만 여전히 거액을 들여 핵전력을 가져야 하느냐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마크 프랑수아 전 국방부 부장관은 지난해 “북한의 점증하는 핵위협이 영국이 트라이던트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서방 vs 러 대리전 격전지… “8년째 시리아인 삶만 무너졌다”

    [글로벌 인사이트] 서방 vs 러 대리전 격전지… “8년째 시리아인 삶만 무너졌다”

    지난 14일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전격적으로 시리아에 토마호크 등 미사일 105발을 쏟아부으면서 시리아 내전이 서방과 러시아의 대립으로 불붙고 있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이란 등 중동 국가들까지 끼어들면서 8년째 접어든 내전의 출구는 여전히 안갯속이다.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미국 등 서방 3국의 공습에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의기양양하하다. 친시리아인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공격에 대한 의혹이 영국 정보기관의 ‘가짜’, ‘조작’일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미국 등의 공습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실효성 없는 서방 3국의 공습으로 시리아의 독재 정권에 반발의 빌미만 주고 시리아 국민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NYT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시리아 공습 이후, 시리아인들은 다음엔 뭔가라며 궁금해한다’는 기사에서 “미국 등 서방 3국의 공습이 대부분 시리아인의 삶에 어떠한 변화도 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알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공격에 대한 의혹이 일었던 동(東)구타 두마에서는 수천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NYT는 “이는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의 참상이 서방의 일회적인 공습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등 서방이 알아사드 정권에 책임을 물어 황폐해진 시리아의 재건을 지원하는 등 도움을 줄 경우, 시리아인들의 삶은 더욱 악화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조슈아 랜디스 오클라호마대 중동학센터 소장은 “(이번 미국의 공습은) 알아사드 정권에 벌을 내리는 게 아니라 가난한 시리아 국민을 징벌하는 것”이라면서 “미국의 목표가 대테러리즘과 안정화, 난민 귀환이라면 이것들은 모두 실패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동구타 두마 출신의 반정부 활동가 오사마 쇼가리도 “미국 공습은 시리아인들의 어떤 것도, 지상에 있는 어떤 것도 바꾸지 못했다”고 단정했다.●美·이스라엘·사우디 VS 러·이란·터키 시리아 내전의 본질은 중동의 패권 경쟁이라고 전쟁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미국·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대 러시아·이란의 전통적인 중동 패권 경쟁이 시리아에서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2014년 시리아 내 극단주의 테러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몰아낸다는 명분으로 시리아에 군 병력을 파견했다. 알아사드 정권의 반대편인 반정부군을 지원하며 시리아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차지했다. 이에 소련 시절인 197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실패 이후 좀처럼 중동 지역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러시아가 IS 격퇴전과 시리아 내전을 빌미로 다시 중동 지역에서의 영향력 찾기에 나섰다. 러시아는 2015년 시리아에 군 병력을 파견하기로 전격 결정한다. 이후 미국과 달리 알아사드 정권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며 영향력을 키웠다. 시리아 내전 초반만 해도 알아사드 정권의 정부군은 미국과 유럽연합(EU) 및 터키, 수니파 국가 연합군이 지원하던 반군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만 했다. 그러던 중 러시아가 2015년 9월 대테러전 명목으로 이란과 함께 알아사드 정권을 도우면서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시리아 정부군은 파죽지세로 반군을 제압해 나갔고,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의 마지막 반군 거점인 동구타까지 사실상 탈환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7월 시리아 흐메이민 공군기지를 앞으로 49년간 더 쓰기로 시리아 정부와 합의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초에는 타르투스 해군기지에 전함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2배로 늘리기로 했다. EU 국가와 언제든 맞서 싸울 수 있는 전초기지를 마련한 셈이다. 또 미국의 방치 속에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이 시리아에서 러시아와 손잡고 영향력을 키워 나가자, 시아파의 반대인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가 다급해졌다. 이에 사우디는 미국을 사이에 두고 어색한 동거를 했던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경제협력을 모색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오만 등과의 연대를 더욱 강화하고, 이집트의 경제 지원에 나서는 등 ‘세’를 불리고 있다. 반면 터키는 쿠르드 민병대(YPG)를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이란과 부쩍 가까워졌다. 터키는 미국이 지원하는 YPG가 대테러전에서 성과를 내며 시리아 북부 일대에 세력권을 형성하자 뒤늦게 시리아 내전을 해결할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터키가 반대편으로 건너가면서 러시아·이란·터키라는 새로운 삼각축이 생겼다. 이는 기존 미국·사우디·이스라엘 삼각축과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다.●美, 시리아서 영향력 되찾기 어려울 듯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IS 격퇴전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고 ‘수개월 내로 철군하겠다’고 말했다. 알아사드 정권이 퇴진한 이후 새로 수립될 민주정부에는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밝히는 등 시리아 내전에서 발을 뺄 것이란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와 EU는 시리아를 발판으로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이 점점 막강해지는 러시아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다. 따라서 이번 미·영·프의 공습은 미국과 EU가 지난 2~3년간 급속도로 약화된 중동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되찾고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본격적인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그렇지만 이번 공습에도 미국이 시리아에서 영향력을 되찾지 못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친러’ 행보 때문이다. 지난 15일 CBS에서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시리아의 화학무기 공격에 대한 책임으로 러시아를 독자 제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헤일리 대사의 발언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되지 않은 러시아 제재가 공식화됐다’며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백악관은 러시아 제재를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시기를 결정하지 못했다며 뒤로 물러섰다. 또 ‘이란보다 러시아가 더 위협’이라며 강하게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한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도 지난 3월 22일 전격 경질됐다. 워싱턴의 한 외교관은 “백악관 보좌진들의 우려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러브콜’을 거두지 않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시리아에서의 영향력 되찾기나 러시아 견제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라고 전망했다. 35만명이 목숨을 잃은 시리아 내전은 ‘아랍의 봄’의 영향을 받아 2011년 3월 15일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면서 시작됐다. 아랍의 봄은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돼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진행된 민주화 시위를 말한다. 197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하페즈 알아사드 시리아 전 대통령과 2000년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그의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40년 넘게 시리아를 억압적으로 다스렸다. 시리아인들은 이들의 독재와 세습 행위에 반발해 ‘바샤르는 대통령에서 물러나라’며 2011년 3월 15일 대규모 시위를 시작했다. 하지만 알아사드 대통령은 퇴진을 거부한 뒤 시위대를 난폭하게 진압했다. 국민은 분노했고, 이는 내전으로 이어졌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국제사회가 금지한 화학무기를 자국민에게 서슴지 않고 사용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이 이어졌다.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와 유엔 등에 따르면 2011년부터 현재까지 시리아 내전에서 260건 이상의 화학무기 공격이 발생했다. 알아사드 정부는 2013년 8월 수도 다마스쿠스의 동부 외곽 지역인 동구타와 자말카 아인 타르마 마을을 화학무기로 공격했다. 당시 유엔 조사단은 사린가스가 사용됐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그해 9월 시리아의 화학무기를 폐기하기로 합의했으나, 시리아 정부는 이듬해인 2014년 4월 또다시 독가스 공격을 개시했다. 시리아 정부는 2015년 5월에도 반군이 장악한 사르민 마을에 화학무기 폭탄을 투하했고, 2016년 9월에도 염소가스가 담긴 폭탄으로 공격했다. 지난해 4월에는 시리아 반군이 장악한 칸 셰이쿤 지역에서 사린가스를 이용한 공격으로 어린이를 포함해 지역 주민 80명 이상이 숨졌다. 이때도 유엔은 배후로 시리아 정부군을 지목했다. 유엔의 한 관계자는 “국제사회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시리아의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으면 안 된다”면서 “하루빨리 독재정권인 알아사드 정권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시리아가 정상적인 국가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국제적십자위원회 직원 예멘에서 총격으로 사망

    국제적십자위원회 직원 예멘에서 총격으로 사망

    국제적십자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 이하 ICRC)는 예멘에서 미션 수행 중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한 하나 라우드(Hanna Lahoud) 직원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레바논 국적의 하나 라우드씨는ICRC의 현장과 스위스 본부에서 2010년부터 일해왔으며 전쟁포로와 수감자들의 구금 상황에서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예멘에서 ‘구금 프로그램 (detention programme)’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헌신적인 구호요원이었다. 그는 21일 오전, ICRC 차량을 타고 구금된 수감자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예멘 타이즈 지역 외곽에서 무장괴한들의 습격을 받았다. 라우드씨는 병원으로 바로 이송됐으나 총격으로 입은 상처로 인하여 끝내 사망했다. ICRC 중동지역 국장 로버트 마디니는 “우리는 헌신적인 구호 직원에 대한 명백히 고의적이고 잔인한 이번 공격을 강력히 비난한다”고 성명을 밝혔다. 이어 “우리는 너무나 큰 충격과 슬픔 속에 있다”며 “하나는 우리 모두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동료이자 친구였으며 그 무엇도 그의 죽음을 정당화 할 수 없다”고 심정을 밝혔다. 예멘은 계속되는 폭격과, 끝나지 않는 내전, 만성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콜레라로 2천만 명이 넘는 인구가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인도적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ICRC는 2018년도에만 400만 명에 이르는 예멘 사람들에게 음식과 깨끗한 식수, 필수적인 생활 용품들을 지원하고 있으나, 더 많은 지원이 절실하다. ICRC는 국제적·비국제적 무력충돌, 내란 혹은 긴장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혹은 제네바협약을 근간으로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국제 인도주의 기구로, 이러한 분쟁상황에서의 미션 중, 직원들은 종종 납치와 살해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1863년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도주의 단체 중 하나로서, 오늘날 전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국제적십자·적신월운동을 탄생시켰고 제네바협약과 국제인도법의 수호자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러한 국제인도법에서는 전쟁 중에도 민간인과 구호요원에 대한 공격은 철저히 금지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값비싼 ‘불꽃놀이’였던 시리아 공습작전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값비싼 ‘불꽃놀이’였던 시리아 공습작전

    지난 13일(현지시간) 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비롯한 주요 도시와 군사시설 인근에서 연이은 폭음이 청취됐다. 곳곳에 배치된 시리아군 진지에서는 대공포탄과 지대공 미사일이 하늘로 솟구쳤고, 지상은 물론 공중에서도 폭음과 화염이 관측됐다.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응징으로 미·영·불 연합군이 공습에 나선 것이었다. 현지 시각으로 토요일 새벽 4시를 기해 일제히 실시된 공습에는 미·영·불 3개국의 해군력과 공군력의 최첨단 장비들이 대거 동원됐다. 가장 먼저 불을 뿜은 것은 홍해와 페르시아만에서 대기 중이던 미 해군 이지스함들이었다. 홍해에서 작전 중이던 이지스 순양함 몬터레이(USS Monterey), 이지스 구축함 라분(USS Laboon), 페르시아만에 있던 이지스 구축함 히긴스(USS Higgins) 등 4척의 함정에서 66발의 토마호크(Tomahawk) 미사일이 연달아 발사됐다. 지중해에서는 미 해군 최신예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 존 워너(USS John Warner)와 프랑스 해군 스텔스 구축함 아키텐(FS Aquitaine)이 토마호크와 스칼프(SCALP) 순항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키프로스섬에서는 영국공군 토네이도 GR.4(Tornado GR.4) 전투기 4대가 최신형 공대지 미사일 스톰 섀도우(Storm Shadow)를 장착하고 이륙했고, 요르단에서도 프랑스 공군 라팔(Rafale)과 미라지 2000(Mirage 2000) 전투기가 공대지·공대공 무장을 장착하고 출격했다. 카타르의 우데이드(Udeid) 공군기지에서도 미 공군 B-1B 초음속 폭격기가 스텔스 순항 미사일인 JASSM을 가득 탑재하고 이륙했고, 시리아 국경 인근 상공에는 러시아·시리아군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연합군 전투기들을 보호하기 위해 EA-6B 전자전기가 대기했다. 구축함과 잠수함, 전투기와 폭격기에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발사된 105발의 미사일은 타이밍을 맞춰 동시다발적으로 시리아 내 미리 설정된 표적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대량으로 동시 발사된 이들 미사일이 향한 곳은 시리아의 화학무기 제조시설과 지휘통제시설이었다. 동구타 화학무기 공격에 사용된 신경가스를 생산한 것으로 의심되어온 바르자(Barzah) 과학연구센터에는 무려 76발의 미사일이 쇄도했고, 힘 신사르(Him Shinsar) 지휘통제소에는 22발의 미사일이 집중됐다. 공습 이후 케네스 메켄지(Kenneth McKenzie) 미 합참 전략기획부장은 “바르자에는 3개의 건물과 격납시설이 있었지만 지금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표적이 초토화되었다고 평가했다. 공습 다음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임무완수(Mission accomplished)”라며 작전이 성공적이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연합군의 이러한 평가와 달리 공습 직후 시리아는 너무도 멀쩡했다. 공습 다음날 시리아 정부군은 동구타 지역을 비롯한 주요 전선에서 대규모 공습을 동반한 총공세를 펼쳤다. 그 결과 반군이 장악하고 있던 주요 도시 몇 개가 순식간에 정부군의 손에 떨어졌다.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 시리아 대통령 역시 언제 공습이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공개석상에 나타나 러시아 의회 대표단을 접견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는 “1970년대 개발된 러시아제 방공무기로 대부분의 미사일을 요격했다”며 여유 있는 모습까지 보였다. 휴일 새벽 연합군이 시리아를 향해 날린 약 2000억 원 어치의 미사일이 아사드 정권과 시리아 정부군에는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시리아는 공습 직후 연합군이 발사한 105발의 미사일 가운데 무려 67%인 71발의 미사일을 요격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를 부정했지만 그럴 개연성은 충분하다. 시리아 정부군은 토마호크나 드론과 같은 소형 표적 요격에 특화된 최신형 방공체계인 SA-22, 일명 ‘판치르-S1E‘ 시스템은 물론 저고도-중고도-고고도에 걸친 중첩 방공망을 다수 운용 중이며, 여기에 최신형 방공무기로 무장한 러시아도 이번 방공작전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은 공습에 나서기 전 전자전기 등을 동원해 적 방공망을 마비시킨 뒤 미사일 공격을 퍼붓는 전술을 구사해 왔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이러한 선제적 방공망 제압 작전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그 결과 2000억 원어치의 미사일을 쏟아 부었음에도 절반 이상의 미사일이 격추되고 고작 3개소의 표적 건물 몇 동만 파괴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얻고 말았다. 이런 황당한 결과의 배경에는 ‘명분’은 필요했지만 ‘확전’이 두려웠던 트럼프와 푸틴의 복잡한 셈법이 작용했다. 트럼프는 국내 정치적으로 여러 복잡한 사건에 얽혀있고 11월 선거 이전에 대외적으로 뭔가 확실한 ‘한방’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푸틴 역시 최근 재선에 성공했지만,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집권 초기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기 위해서 뭔가 강력한 ‘한방’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트럼프와 푸틴의 이해관계 접점은 시리아였다. 트럼프는 대대적인 시리아 공습을 통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며 인권을 유린하는 전쟁범죄자를 응징했다는 명분을 챙겼다. 최근 무역 분쟁으로 관계가 소원해진 영국·프랑스와 공동작전을 통해 돈독한 동맹관계를 재확인했다는 명분은 덤이다. 푸틴은 이번 공습의 최대 수혜자다. 핵심 동맹국인 시리아를 서방세계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냈다는 명분도 챙겼고, 서방세계의 위협으로부터 우방국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던 러시아 초음속 폭격기의 이란 공군기지 배치 협의도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는 중동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사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러시아제 무기의 우수성을 홍보해주는 홍보 효과는 덤이다. 이러한 전략적 이익을 위해 트럼프와 푸틴은 계획된 각본대로 움직였다. 미국은 러시아와 시리아가 공습 예정일을 예측하고 미리 대피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고 전투기와 군함을 눈에 띄게 이동시켰다. 표적 선정 과정에서도 러시아 관련 시설은 철저하게 배제됐다. 쇼맨십을 위해 대량의 미사일이 동원되었지만 대부분의 미사일은 동일 표적에 중복 사용되었다. 가장 많은 미사일을 얻어맞은 바르자 과학연구센터는 축구장 2개 정도 되는 면적 위에 고작 3개 동의 건물이 있었지만 여기에 무려 76발의 미사일이 날아갔다. 상당수는 요격되었지만, 집중 공격을 받은 바르자 연구센터는 잔해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초토화됐다. 연합군의 2순위 공습 표적이었던 힘 신사르 지휘소 역시 단 2개뿐인 강화 콘크리트 출입구에 무려 22발의 미사일이 집중되어 문자 그대로 잿더미만 남았다. 미군이 적의 지휘소를 공격할 때 통상적으로 퍼붓는 수준의 4~5배에 달하는 수준의 미사일이 불과 2개의 출입구에 집중된 것이다. 미·영·불 연합군의 공습이 시작되기 전 시리아군은 핵심자산을 타르투스와 흐메이님 등 러시아군 주둔 지역으로 대피시키는 한편, 야전군 부대들을 주둔지 밖으로 이동시켜 공습에 대비했다. 미군은 시리아군의 대피 상황을 위성과 정찰기를 통해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덕분에 연합군의 대규모 공습에도 불구하고 전력을 온전히 보전한 시리아 정부군은 공습 직후 반군을 향해 대공세를 펼 수 있었다. 이후 정부군은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반군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는 중이다. 막대한 예산을 쓰며 시리아를 공습했지만 서방세계가 당초 예상했던 모습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지의 지적대로 이번 공습은 값비싼 불꽃놀이(Expensive firework display)에 불과했다. 그 불꽃놀이의 수혜자는 푸틴과 아사드였고, 트럼프는 대통령의 군사력 사용권을 제한하는 전쟁권법 개정과 미국 안팎의 비판이라는 값비싼 청구서 앞에 내몰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일우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시리아 공습 후폭풍] ‘중동 리스크’ 커져 국제유가 비상

    [시리아 공습 후폭풍] ‘중동 리스크’ 커져 국제유가 비상

    美·中 무역전쟁 재점화 가능성 일회성 공습 땐 영향은 제한적‘시리아 리스크’로 촉발된 국제 유가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국내 석유화학 회사와 정유 업체에 ‘호재’로 작용할수 있지만, 금융 시장 전체에 미칠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16일 “유가가 오르면서 석유화학 관련주가 뚜렷하게 반등세를 보이고 있고, 오는 2분기에 정유업체가 높은 정제 마진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안남기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이번 공습이 지난해 4월처럼 ‘일회성 공격’으로 끝나 국제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란 전망이 우세하다”면서도 “향후 각국의 대응을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리아 공습은 미국의 ‘중국과 중동에 대한 경고’로 해석돼, 국내 증시에 미·중 무역전쟁 리스크가 커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 된 중국이 중동에 원유 위안화 결제를 요구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에 중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뜻이다. 대신 미국이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아져 북핵 리스크 부담은 줄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류용석 KB증권 시장전략팀장은 “미국의 요구를 중국이 보아오포럼에서 수용했지만, 미국이 다시 중국을 압박하면서 국내 수출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국내 증시는 작은 종목이 출렁이고 전반적으로 움직임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유가는 고공 행진을 이어갈 전망이다. 이미 배럴당 80달러에 달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올해와 내년의 유가 전망을 속속 높였다. 전문가들은 시리아 공습으로 석유화학이나 정유 업체들이 혜택을 입을 것으로 진단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재점화할 가능성이 높아져 국내 수출주가 다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 공습’을 예고하자 국제 유가는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지난 13일(현지시간) 3년 5개월 만에 배럴당 67.39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날 두바이유도 배럴당 67.80달러까지 올랐고, 북해산 브렌트유는 72.58달러로 80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시리아를 둘러싼 미국·영국·프랑스와 러시아·이란·시리아의 대결 구도가 부각되면서 시장의 불안감이 커졌다. 시리아가 세계 산유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01%에 불과하지만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이란 등과 인접해 있어 시리아가 설비에 타격을 입으면 주변국의 원유 생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JP모건 체이스는 지난 13일 보고서를 통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란을 제재할 수 있다”면서 “올해 여름 브렌트유가 배럴당 8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크레디트스위스도 내년 브렌트유 가격 전망을 60.75달러에서 70달러로, WTI는 58달러에서 65달러로 높였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오바마의 미국도 ‘불량 국가’였다…트럼프의 미국처럼

    오바마의 미국도 ‘불량 국가’였다…트럼프의 미국처럼

    파멸전야노엄 촘스키 지음/한유선 옮김/세종서적/420쪽/1만 8000원 불평등의 이유노엄 촘스키 지음/유강은 옮김/이데아/224쪽/1만 7000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1일 트위터를 통해 “시리아에 미사일이 갈 것이니 러시아는 준비하라”고 으름장을 놨다. 지난 7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외곽 동구타 지역에서 정부군 소행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공격이 있었던 데 따른 조처다. 미국은 ‘국제사회가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에 대한 응징’을 이유로 시리아에 미사일을 겨눴다. 시리아를 원조하는 러시아가 이를 받아 반격할 경우 전쟁은 미-러 전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정의의 사자’를 자청하며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런 식의 전쟁을 벌여 왔다. 이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도 있다. 예컨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인물로 기억된다. 그러나 오사마 빈 라덴 암살 작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사뭇 달랐다. 미국 시사 잡지 ‘애틀랜틱’은 “부시의 정책이 용의자를 체포하고 고문하는 것이었다면, 오바마는 그냥 암살해 버린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테러 무기로 쓰이는 드론과 암살부대 소속 특수부대원을 활용하는 빈도가 오바마 정부 때 급격히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부시와 오바마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쏟아부은 전쟁 비용은 대략 4조 4000억 달러로 추정된다. 2011년 미국 국방 예산은 거의 전 세계 모든 국가의 국방 예산을 합한 수준에 이르렀다. ‘아메리칸 드림’으로 요약되는 미국의 역동적인 번영, 그리고 압도적인 군사력을 앞세운 위압적인 카리스마는 종종 우리의 눈을 가린다. 그 뒤에서 벌어지는 깡패 같은 미국의 행태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폭로하는 이가 바로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명예교수다. 세계적인 언어학자인 그는 1970년대 베트남 반전 운동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미국의 진보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미국 비판에 앞장서 오고 있다.최근 국내에 출간한 ‘파멸전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운 ‘원대한 지역’(Grand Area) 장악 전략과 그 위험을 다뤘다. 미국 국무부와 외교 정책 전문가들은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중동, 서반구와 극동, 그리고 옛 대영제국 영토를 포함해 ‘미국이 장악해야 할 지역들’을 선정했다. 그러다 ‘건수’가 생기면 압도적인 군사력을 내세워 개입하고 잇속을 챙겼다. 2차 대전은 미국의 대공항을 종식시켰고 미국 산업의 규모도 네 배로 증가시켰다. 반면 경쟁국들은 전쟁 때문에 산업 전면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휘청거렸다.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국방력을 갖춘 미국은 전쟁이 끝나자 전 세계 부의 절반을 차지했다.그러면 미국인들의 삶은 풍요해졌을까. 촘스키 교수는 이어서 쓴 ‘불평등의 이유’에서 미국의 패권주의가 보통 사람들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지적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원대한 지역에 개입하며 승승장구했다. 촘스키는 앞선 책 ‘파멸전야’에서 이런 미국이 1970년대 새로운 위기를 맞았다고 설명했다. 미국 내 제조업 수익률이 하락했고 금융화에 따른 경제 위기의 증가, 생산 시설의 해외 이전 등이 미국의 쇠락을 불렀다. 촘스키는 이와 관련, “고소득층, 특히 상위 0.1% 초고소득층에게 부가 극적으로 집중되면서 이들의 정치력이 강화되는 악순환이 함께 시작되었다(본문 108쪽)”고 분석했다. ‘불평등의 이유’는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10가지를 제시했다. 이는 ▲민주주의를 축소하라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라 ▲경제를 개조하라 ▲부담을 전가하라 ▲연대를 공격하라 ▲규제자를 관리하라 ▲선거를 주물러라 ▲하층민을 통제하라 ▲동의를 조작하라 ▲국민을 주변화하라로 요약된다. 다만 촘스키는 불평등이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사람들이 조직화한다면, 자신들의 권리를 얻고자 싸운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으며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두 권의 책이 담은 메시지는 간결하고도 명확하다.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의 위협, 그리고 기후 변화에 따른 전 지구적 위협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인의 삶은 팍팍해지고 있다. 그러나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연대해 이겨 내라는 것이다. 구순을 맞은 학자가 사회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냉철하고, 촌철살인의 표현은 꺾이지 않았다. 미국 상류층의 생생한 민낯을 들추며 날카로운 말로 폐부를 찔러 댄다. 미국 보수층이 왜 구순의 노인을 ‘가장 위험한 인물’로 여기며 미워하는지 이해할 수 있음 직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이란 견제 나선 사우디 실세 빈살만 “유대인들 이스라엘 땅 소유는 권리”

    이란 견제 나선 사우디 실세 빈살만 “유대인들 이스라엘 땅 소유는 권리”

    아랍 지도자 첫 ‘유대 영토’ 인정 美·이·사우디 ‘삼각동맹’ 형성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이스라엘의 영토를 인정하는 듯한 이례적인 발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권은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국가를 부정해 왔다. 빈살만의 언급은 사우디의 앙숙인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밀월 관계를 구축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미국을 방문 중인 빈살만 왕세자는 이날 발행된 미 ‘애틀랜틱’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유대인들이 조상의 땅에 민족국가를 세울 권리가 있다고 믿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각각의 사람이 어느 곳에서라도 평화로운 나라에 살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며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이 그들 자신의 땅을 소유할 권리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모든 이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관계 정상화를 이루기 위한 평화적 합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랍 지도자가 유대인 선조의 땅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는 발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사우디는 지난 수년간 이스라엘을 향해 “(양국 간) 관계 정상화는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빼앗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철수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양국은 아직까지 정식으로 수교하지 않았다. 아랍권에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곳은 요르단과 이집트뿐이다. 이번 인터뷰를 진행한 애틀랜틱의 제프리 골드버그 기자는 “빈살만 왕세자가 유대인들의 ‘자신의 땅’에 대한 권리를 인정했다”며 그는 이스라엘에 관해 나쁜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빈살만 왕세자가 이스라엘과 관련해 그동안 아랍권의 어느 지도자도 하지 않았던 발언을 내놓은 것은 이란을 공동의 위협으로 간주해 온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가 최근 부쩍 친밀해졌음을 시사한다. 이란의 중동 내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두 국가가 ‘대이란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빈살만 왕세자의 이번 미국 방문을 계기로 이란을 공적으로 둔 미국과 사우디, 이스라엘 간 ‘삼각동맹’의 윤곽이 확실히 드러나게 됐다. 사우디는 이란이 2015년 핵협상을 타결하면서 제재에서 벗어나 정치·경제적으로 급부상하자 이란에 지역 주도권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빠져 있다. 특히 지난해 이슬람국가(IS)가 몰락한 이후 사우디와 이란이 중동 주도권 경쟁을 벌이며 이 지역 긴장이 고조되면서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다. 사우디는 지난달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향해 가는 직항 여객기에 영공을 개방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이스라엘의 한 고위급 관료는 오랜 기간 소문으로만 나돌던 사우디와의 비밀접촉을 처음으로 시인하기도 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이스라엘은 규모에 비해 큰 경제를 갖고 있고 경제가 계속 성장하고 있다”며 “평화만 조성된다면 당연히 우리는 물론 이집트, 요르단,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들과 이스라엘이 공유하는 이익이 많을 것”이라고 양국 관계의 변화를 암시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푸틴 없으면 러시아도 없다… 구원과 애국, 18년 파워

    푸틴 없으면 러시아도 없다… 구원과 애국, 18년 파워

    “미국은 탄도요격미사일제한(ABM)조약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고 우리의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방어(MD) 시스템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 (미국이) 우리 동맹국에 핵공격을 한다면 러시아에 대한 핵공격으로 간주하고 즉각 보복할 것이다.”블라디미르 푸틴(66) 러시아 대통령이 대선을 보름여 앞둔 지난달 1일(현지시간) 국정연설에서 러시아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소개하며 미국을 자극했다. 비위가 상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전화 통화로 “만약 당신이 군비 경쟁을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길 것이다”라고 응수했다고 NBC가 보도했다. 하지만 4선에 성공한 푸틴 대통령은 끊임없이 ‘세계 질서 파괴자’란 오명을 감수하며 거침없이 서방과의 일전을 불사하고 있다.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기준 1조 4693억 달러(세계 12위)로 1위인 미국(19조 3621억 달러)의 13분의1에 불과하다. 국방비 지출은 692억 달러로 미국(6860억 달러)의 10분의1 수준이다. 그럼에도 푸틴 정권은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2015년부터는 시리아 내전에 적극 개입해 미국이 지원하는 시리아 반군을 공격했다.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 지난달 4일에는 영국으로 망명한 전직 러시아 이중간첩 암살 시도 등 여러 의혹도 사고 있다.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24개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 14일부터 러시아 외교관 150명을 추방했고, 러시아는 다시 이들 국가 외교관을 맞추방하는 등 서방과의 ‘신(新)냉전’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오는 6월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고립을 자초하는 일련의 행보에는 푸틴의 팽창주의적 대외정책뿐 아니라 지난 18년간 러시아 사회를 이끌어 온 ‘푸틴이 없으면 러시아도 없다’는 정서가 함축돼 있다. 2000~2008년 보리스 옐친의 뒤를 이어 러시아의 3·4대 대통령을 지낸 푸틴은 헌법상 3연임 금지 조항 때문에 대통령직에서 내려왔다. 대신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5대 대통령으로 내세우고 ‘실세 총리’로서 막후 영향력을 행사했다. 2012년 6대 대선을 통해 크렘린으로 복귀한 뒤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리고는, 지난 18일 76.7%의 높은 지지율로 7대 대선에 승리해 2024년까지 대통령직을 맡게 됐다. 미국 시사 주간 타임은 2일(현지시간) 러시아 엘리트층 어느 누구도 푸틴이 2024년 이후 권좌에서 물러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번 임기에서 장기집권을 위한 조처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대판 ‘차르’(황제) 푸틴의 집권 요인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 세계의 압박을 대내 정치에 활용한 전략이 적중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옛 소련 시절과 같은 ‘강한 러시아’에 대한 향수를 자극해 국민들을 결집시켰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선거운동 기간 러시아의 국방력을 자랑했고 언론들은 연일 미·영이 러시아에 가하고 있는 위협에 대해 보도하는 등 반(反)서방 정서를 자극했다. 모스크바타임스가 지난달 26일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 이중간첩 암살 시도 사건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는 영국 조사 결과가 타당하다고 믿는 러시아인은 응답자의 5%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치평론가 스타니슬라브 벨코브스키는 AFP통신에 “러시아의 대외정책은 외부 대립을 지속하면서 결속을 응축시키는, 일종의 자기파괴적 에너지로 이끌어 왔다”면서 “푸틴 대통령의 국내 기반 역시 서방과 갈등이 심할수록 공고해진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푸틴의 높은 인기를 설명하기 어렵다. 수출의 80%를 원유에 의존하는 러시아 경제는 2012년 푸틴의 3선 이후 국제 저유가와 서방의 제재로 침체 일로를 걸어왔다. 2015년 GDP 성장률은 -3.7%로 떨어졌고 2016년에는 -0.6%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푸틴의 국내 기반은 확고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2일 인터넷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보다 애국주의 정서가 강한 ‘푸틴 세대’를 집중 조명했다. 지난해 연말 여론조사업체 레바다 센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러시아 성인들의 81%가 푸틴을 지지한다고 응답했으며 18~24세 청년층의 지지율은 86%에 달했다. 특히 ‘러시아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데 찬성한 응답자는 전체의 56%에 달했으나 청년층에서의 찬성률은 67%로 높았다고 WP는 전했다. 인터넷을 통해 역사상 가장 많은 외부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대가 역설적으로 푸틴의 권위주의 정부를 뒷받침하는 기반이 된 셈이다. 푸틴이 권력을 장악한 지 18년이 지난 지금 이들 세대는 푸틴 이전의 러시아를 알지 못하고 푸틴 이외의 러시아 지도자를 상상하지 못한다. 졸업 후 언론인을 꿈꾼다는 한 청년은 WP에 “스마트폰을 통해 푸틴 정부를 비판하는 일부 독립 언론의 기사를 접하긴 하지만 지금처럼 중대한 시기에 야당에 정권을 넘기고 변화를 추구했다가는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소련은 1989년 12월 지중해 몰타에서 냉전 종식과 새로운 협력을 선언했고 2년 뒤인 1991년 12월 소련이 붕괴했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은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역대 정부들이 러시아를 동등한 파트너로 대하지 않고 패전국 취급했다는 피해의식을 느껴 왔다. 특히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2002년 ABM 탈퇴를 선언하고 MD 구축에 나서자 이 같은 인식은 확산됐다. 푸틴은 이를 활용해 ‘러시아의 수호자’ 이미지를 자처하고 나섰다. 푸틴은 특히 2008년 두 번째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총리로 물러날 때부터 자신이 러시아 역사에서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를 고심했다고 타임은 분석했다. 측근인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으로 있던 2011년 중동에서 ‘아랍의 봄’ 열풍과 함께 리비아 무아마르 알 카다피 정권이 전복되는 것을 보고 그 배후에 서방 국가들이 있으며 서방의 다음 목표는 러시아가 될 것이라는 확신과 자신만이 러시아를 구원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푸틴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에 맞서는 공세적 방어전략에 따라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합병했고 자국의 핵심 이익을 지켜내는 단호함을 보여 줘 국민들로부터 ‘푸틴이 없으면 러시아도 없다’는 인식을 심었다. 리언 에런 미국 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은 월스트리트 기고문을 통해 “러시아 역사를 보면 전쟁을 일으키거나 제국을 확장할 때 ‘러시아는 특별하다’는 메시지를 자주 사용해 왔고 이는 푸틴의 세계관에 단초를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푸틴의 집권 기반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기제로 러시아인의 70%가 신자인 동방정교의 힘을 빼놓을 수 없다. 동방정교는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을 근거지로 한 비잔틴(동로마) 제국(395~1453년)의 유산으로 러시아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그리스, 세르비아 등 동유럽 대다수 국가의 제1종교다. 역대 러시아 황제는 비잔틴 제국의 계승자와 동방정교의 수호자임을 자처해 왔고 마찬가지로 푸틴도 동방정교의 수호자 이미지를 부각하며 정교회의 정치적 후광을 받았다. 2011년 11월 당시 총리였던 푸틴이 이듬해 세 번째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자 격렬한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푸틴의 도움 요청을 받은 그리스 동방정교 아토스산 바토페디 수도원의 에프라임 신부는 동방정교에서 성물(聖物)로 여기는 ‘성모 마리아의 허리띠’를 지참하고 러시아로 가 39일 동안 이를 순회 전시했다. 이 기간 300만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불임여성도 잉태하게 한다는 이 성물에 참배했다. 공항에서 에프라임 신부를 영접한 푸틴은 자연스럽게 이 성물의 첫 번째 참배객이 됐다. 이 모습은 고스란히 TV 생중계로 러시아 전역에 방송됐고 푸틴은 성물을 러시아로 가져온 수호자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2012년 2월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키릴 대주교는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혼돈의 상태였으나 신과 현명한 지도자의 도움으로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고 푸틴에게 감사하기도 했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차 국제 규범 위반에 스스럼없는 푸틴 정권의 성향상 신냉전은 예측하기 어려운 양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폴란드의 러시아 전문가 블라디미르 이노젬세프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푸틴은 냉전 당시 소련 지도자들과 달리 유럽의 기존 질서를 약화시킬 그 어떤 정책도 추구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가 가해국이 아닌 피해국이라고 한다”고 평가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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