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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리아, 레바논서 완전철군 합의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레바논 주둔 시리아군의 전면 철군을 요구한 유엔 결의안 1559호를 이행하기로 합의했다고 테르예 로에드 라르센 유엔 중동특사가 12일 밝혔다. 라르센 특사는 이날 시리아 북부 도시 알레포에서 아사드 대통령과 회동한 뒤 성명을 발표, 시리아가 레바논에 주둔시키고 있는 1만 4000여 병력과 정보요원을 2단계로 나눠 완전 철수하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1주일전만 해도 아사드 대통령은 시리아군을 국경 쪽으로 재배치하겠다고 언급했을 뿐 전면 철군을 위한 시간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지난 7일 에밀 라후드 레바논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도 “새 레바논 정부가 구성되면 철군 협상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혀 각국의 전면 철군 압력을 비켜가는 듯한 자세로 일관했었다. 라르센 특사가 발표한 시간표는 1단계로 이달 말까지 시리아군과 정보요원의 3분의2를 동부 베카계곡에 재배치하고 나머지 3분의1을 레바논에서 완전 철수하기로 했다. 나머지 병력과 장비, 정보요원이 철수하는 2단계 일정은 시리아와 레바논 정부가 추후 협상을 통해 결정하는데, 라르센 특사는 다음달 7일까지 양국이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2단계 철수가 오는 5월 레바논 총선 이전에 시작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라르센 특사는 13일 레바논 정부 고위 관리들과 만날 예정인데 BBC는 이 자리에서 시리아, 이란과 가까운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영구 무장해제 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시리아군 철수안은 미국의 완전철수 요구에는 못미친다고 밝혔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시리아군의 철수 보도가 나쁜 소식은 아니지만 유엔 결의안 1559호에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베카계곡에 머무르던 시리아군의 일부가 11일 밤 차량에 나눠 타고 국경선을 넘어 시리아로 철수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한편 에밀 라후드 레바논 대통령은 12일 국영TV 연설에서 “시리아 찬반 세력의 시위와 행진이 계속될 경우 내전이 일어날 수 있다.”며 자제를 촉구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현대를 삼성보다 앞세우는 사람들은 현대의 창업 정신을 강조한다. 현대는 남이 일궈놓은 기업을 인수하기보다는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주춧돌을 올렸다. 건설이 그랬고, 자동차가 그랬으며, 중공업이 그랬다.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은 이를 평생의 긍지요, 자랑으로 여겼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끌려가서도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인천제철만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 내 손으로 말뚝을 박고 길을 닦아 시작하지 않은 공장이 없다.”며 기업 강제 통·폐합에 맞섰을 정도였다. 1947년 5월25일 서울 중구 초동의 허름한 자동차 수리공장 한 귀퉁이에 ‘현대토건사’라는 간판을 내건 지 60여년. 삼성보다 10년 가까이 늦은 출발이었지만 현대는 이내 1위 기업으로 우뚝 섰고,‘경영권 다툼’이 일어났던 2000년까지 그 지위는 차돌만큼이나 단단했다. 이때 현대그룹의 자산규모가 87조여원. 계열사 수만 40개가 넘었다. 비록 그룹이 쪼개지면서 외형상의 규모가 작아지고 재계 서열은 떨어졌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전화위복’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현대차그룹), 유통(현대백화점), 해운·제조(현대그룹), 조선(현대중공업), 금융(현대해상·현대기업금융) 등 각자 전문그룹의 길로 나서면서 경쟁력은 더 강화되고 동반 부실의 위험은 현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그룹들이 이제서야 계열분리 등으로 홍역을 앓는 동안 현대의 대표주자들은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현대산업개발,KCC, 한라, 성우 등 창업주의 형제들이 이끄는 그룹들도 각자 독자영역을 굳혀가고 있다. 언뜻 봐도 느껴질 만큼 현대에 뿌리를 대고 있는 기업들은 유난히 굴뚝업종이 많다. 고용된 인원과 딸린 부품·협력업체가 많다는 얘기다. 국민경제 기여도로 따지면 현대가 여전히 1위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또 한 가지, 현대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현대정신’이다. 현대에는 일단 해보자며 덤비는 정신,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때로는 비합리성을 낳기도 하지만 현대맨들은 이를 “맨바닥에서부터 기업을 일군 현대만의 저력”이라고 자부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이를 “진정한 기업가(起業家) 정신”이라고 불렀다. 제각각 ‘마이 웨이’를 걷고 있는 오늘날의 현대가를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기도 하다. ●담(淡)한 혼맥… 후한 연애결혼 다른 재벌가에 비해 현대의 혼맥은 의외로 소박하다. 낭만을 즐겼던 고 정 회장이 자식들의 연애에도 너그러웠던 영향이 가장 크다.‘왕 회장’이라는 별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그 자신, 강원도 통천의 평범한 고향처녀(변중석)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했다. 슬하에 9남매(8남1녀)를 두고 동생이 일곱(한명은 어려서 사망)이나 됐지만 눈에 띄는 혼사는 손가락을 꼽는다. 직계가족 중에 굳이 꼽자면 다섯째아들 고 몽헌(MH)씨와 여섯째아들 몽준(MJ)씨를 들 수 있다. 몽헌씨는 신한해운 현영원 회장의 딸 정은씨와, 몽준씨는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막내딸 영명씨와 각각 결혼했다. 오랜 세월 재계를 주름잡았던 현대의 위상에 견줘 혼맥이 조촐한 데는 창업주의 성공과정과도 무관치 않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부두 막노동꾼을 거쳐 대기업 총수에 오른 그는 살아생전 “세상에 공짜란 없다.”며 담(淡)한 마음을 갖자고 입버릇처럼 강조하곤 했다. 권력이나 부(富)를 결코 싫어하지 않았지만 굳이 혼사줄까지 대가며 공짜를 탐할 이유 또한 없었던 것이다. 정략결혼의 흔적이 적은 대신에 유난히 많은 손(孫)과 맞닥뜨리는 게 현대라는 집안이다. 이런 현대가 대(代)를 건너뛰면서 LG, 롯데, 한진, 이건, 비비안 등 내로라하는 그룹들과 사돈을 맺은 점은 흥미롭다. 현대가의 2세들이 ‘몽(夢)’자 돌림이라면 3세들은 딸이 ‘이(伊)’, 아들은 ‘선(宣)’자 돌림을 쓴다.4세는 ‘진’자(딸),‘창’자(아들) 돌림이다. ■ 현대의 핵심축 아들들 ●장남 몽필… 쌍용가와 인연 큰아들 몽필씨는 나이 50도 안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국영 적자기업 인천제철을 인수해 정상화에 여념이 없던 1982년 4월 어느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그가 탄 승용차가 트레일러를 들이받았다. 이 때가 마흔아홉살. 수도여대 출신의 부인 이양자씨와 두 딸 은희·유희씨는 망연자실했다. 몽필씨가 떠난 지 한달 뒤, 정주영 회장은 동서산업 공장장이던 이영복씨를 사장으로 파격 승진시켰다. 이씨는 몽필씨의 처남, 즉 이양자씨의 친동생. 졸지에 가장을 잃은 장남 가족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이양자씨마저 91년 위암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큰딸 은희씨는 최근 미국에서 귀국했다. 둘째딸 유희씨는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결혼해 두 아들(진석·진하)을 두었다. 지용씨는 현재 용평리조트 상무를 맡고 있다. ●2남 몽구… 글로벌 현대차그룹 리더 몽필씨의 죽음으로 사실상 집안의 장남 역할을 도맡아 한 이는 둘째아들 몽구(MK)씨였다. 유희씨가 결혼할 때 부모 역할을 대신 한 사람도 몽구씨 부부였다.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 시절,‘갤로퍼 신화’를 만들어낸 그는 기아차마저 인수해 지금의 현대·기아차 그룹을 이끌고 있다.2000년 자동차전문 그룹으로 출범한 지 몇 년도 안돼 그룹을 세계 6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출범 당시 10개였던 계열사 수는 28개로 불어났다. 그룹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85조원.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소비자 보고서(컨슈머 리포트)’는 최근 현대차의 뉴쏘나타를 세계에서 가장 결함이 적은 차로 선정했다. 갤로퍼 신화 때부터 MK가 강조해온 ‘품질 경영’의 힘이다. MK는 평범한 집안의 딸 이정화씨와 결혼해 3녀1남을 두었다. 큰딸 성이씨는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이자 영훈의료재단을 설립한 고 선호영 박사의 아들 두훈씨와 결혼했다. 둘째딸 명이씨는 정경진 종로학원장의 아들 태영씨와, 셋째딸 윤이씨는 미국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신성재씨와 결혼했다. 둘째사위와 셋째사위는 그룹 계열사인 현대카드·캐피탈 사장, 현대하이스코 사장을 각각 맡고 있다. 막내이자 외아들인 의선씨는 지난 11일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룹내 직함은 현대·기아차기획총괄본부 담당 사장으로 기아차의 기획, 재무, 수출, 연구·개발(R&D) 등 핵심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일찍 결혼해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부인은 정도원 강원산업 부회장의 큰딸 지선씨다. ●3남 몽근… 소리없이 유통명가 키워 셋째아들 몽근씨는 일찌감치 유통을 넘겨받아 현대백화점 그룹을 이끌고 있다.‘빅3’(MK·MH·MJ)에 가려 조명은 덜 받았지만, 묵묵히 외길을 걸으면서 소리없이 유통 명가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현대백화점, 현대H&S(非 백화점 계열), 현대홈쇼핑 등 주력 계열사를 토대로 지난해 5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문 최고경영자(CEO)들이 소신있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면서도 거의 매일같이 매장을 둘러봐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위 형 몽구씨와는 고등학교(경복고)-대학교(한양대) 동문인 데다 선굵은 외모까지 비슷하다. 옛 현대그룹에서 고문을 지낸 우호식씨의 딸 경숙씨가 부인이다. 두 아들은 각각 부회장,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큰아들 지선씨는 고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인 서림씨와 결혼했다. 둘째아들 교선씨는 자동차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큰딸 승원씨와 지난해 말 깜짝 결혼식을 올렸다. 교선씨의 결혼식에는 큰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집안 어른들이 대거 참석해 모처럼 우애를 다지기도 했다. 현대가는 한때 딸만 남기고 떠난 몽필씨의 대를 잇기 위해 지선씨를 양자로 입양하는 방안을 의논했었다. 유교식 법도대로라면 바로 아래 동생인 몽구씨의 아들을 입양해야 했으나 의선씨가 외아들인 탓에 지선씨가 선택된 것.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입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때 의선씨가 ‘종손’ 자격으로 고인의 영정을 든 것은 이 때문이었다. ●외사위 희영… 천마산스키장 운영, 이건·비비안과 사돈 현대가는 자손이 많은데도 딸은 귀한 편이다. 외동딸 경희씨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 그러나 바깥 활동은 없다. 대신 남편(정희영)이 선진종합㈜ 회장이다. 공교롭게 고 정주영 회장의 여동생 희영씨와 이름이 똑같다.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19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입사 동기다. 조선 수주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 창업주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됐다. 정주영 회장은 딸 경희씨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자 희영씨를 도쿄법인 이사로 발령내 자연스러운 교제를 유도했다고 한다. 이후 희영씨는 조그만 해운회사(선진해운) 하나를 갖고 독립, 장인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천마산 스키장은 오롯이 그가 독립해 만든 회사다. 외아들 재윤씨가 선진종합㈜ 상무다. 두 딸은 각각 이건그룹과 비비안그룹으로 시집갔다. 큰딸 윤미씨의 남편이 이건창호 박승준 상무, 둘째딸 윤선씨의 남편이 비비안 남석우 부회장이다. ●4남 몽우… BNG스틸 통해 부활 넷째아들 몽우씨는 숙명여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인’ 이행자씨와 연애결혼했다.40대에 현대알루미늄 회장을 맡은 그는 그러나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결국 1990년 4월 45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겨진 유족을 돌보는 일도 사실상의 장남 몽구씨의 몫이었다. 조카 셋을 모두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BNG스틸(전 삼미특수강)에 입사시켰다. 큰조카, 즉 몽우씨의 장남인 일선씨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최근 BNG스틸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일선씨에 이르러 비로소 현대는 내로라하는 재벌가와 사돈관계를 맺는다. 일선씨의 부인은 구자엽 희성전선 부회장의 딸 은희씨다. 구 부회장은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조카이다. 일선씨의 동생 문선씨는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씨와 결혼했다. ●5남 몽헌… 못다 이룬 꿈, 현 회장이 힘찬 날갯짓 ‘비운의 황태자’ 몽헌씨는 1998년 그룹 공동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한 비상을 시작했다.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설립해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으면서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끌어냈다.2000년에는 형들을 제치고 그룹 단독 회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2003년 8월4일 서울 계동사옥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부인 현정은씨가 경영에 뛰어들었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황망히 그룹을 물려받았지만 사업가 집안의 딸답게 배포와 합리적 리더십으로 1년 만에 그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현대상선, 올해 첫 흑자를 넘보고 있는 현대아산, 주가 1000시대의 수혜주 현대증권 등을 축으로 재계 10위권 진입(현재 19위)을 눈앞에 두고 있다.2010년까지 매출 20조원을 달성해 10위권에 진입한다는 ‘2010’ 프로젝트를 가동중이다. 현 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이 직접 ‘점지한’ 며느리로도 유명하다. 현 회장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결혼 뒷얘기는 이렇다.“당시 현대상선 회장이던 아버지(현원영)를 따라 선박 명명식차 울산에 내려갔다가 남편을 처음 만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명예회장(정주영)께서 나를 선보러 미리 내려오셨었다. 명예회장께서 중매를 서신 셈이다.” 큰딸 지이씨는 현대상선 재정부 대리로 근무 중이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고3 수험생이었던 외아들 영선씨는 졸업후 미국 유학을 준비중이다. ●6남 몽준… 세계1위 현대중공업 ‘건조’ 지금은 정치인의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세계 일류 현대중공업의 뒤에는 기업인 몽준씨가 있다. 형제중에 학벌(서울대-미국 MIT 경영대학원)이 가장 좋아 ‘신문대학’(소학교만 졸업한 정주영 회장은 신문을 통해 지식의 대부분을 얻었다며 자신을 신문대학 출신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출신인 왕 회장이 유난히 예뻐했다는 몽준씨는 31세에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1988년 금배지를 처음 달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시도했다. 경영은 CEO에게 맡기고 자신은 대주주로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만 내리고 있는 것. 지금도 현대중공업의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다. 공식 직함은 5선의 국회의원이자 축구협회 회장.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현대중공업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10조원. 웬만한 그룹과 맞먹는다. 부인 김영명씨와는 미국 유학시절에 만나 결혼했다. 큰아들 기선씨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올해 학사장교(ROTC)로 임관했다. 이로써 부자(父子)가 ROTC 선후배가 됐다. 두 딸 남이씨와 선이씨는 미국 유학 중이다.‘월드컵 베이비’로 유명한 늦둥이 아들 예선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우리나라가 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을 최종 통과한 것을 기념해 이름을 ‘예선’으로 지었다고 한다. ●7남 몽윤… 현대해상으로 컴백 몽윤씨는 지난해 말 업계 2위의 손해보험회사인 현대해상의 등기이사 겸 이사회 의장으로 돌아왔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8년 만의 전격 복귀였다. 방카슈랑스(은행상품과 보험상품의 교차판매) 확대 시행 등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맞춰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1981년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의 딸 혜영씨와 연애결혼해 정이양과 경선군을 두었다. ●8남 몽일… 할부금융으로 내실 막내아들인 몽일씨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마친 뒤 현대상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현대기업금융을 차려 독립했다. 기업대출 등을 주로 취급하는 회사다. 권영찬 현대파이낸스 회장의 딸 준희씨와 결혼해 고등학생인 현선(영국 유학중)군과 중학생인 문이양을 두고 있다. ■ 현대의 또 다른 축 형제들 고 정주영 회장의 형제들은 동생이기 이전에 창업 동지요, 사업 동료였다.6·25전쟁 직후 고령교(대구와 거창을 잇는 교량) 복구 공사를 덜컥 떠맡았다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을 때, 내남없이 살던 집을 팔아 돈을 내놓은 것도 동생들과 매제였다. 이 때문에 20명이 넘는 대식구가 한 집(돈암동)에 모여 살아야 했지만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독립해 각자의 그룹을 이끌고 있다. ●옛 영화 꿈꾸는 한라·성우 동아일보 외신부 기자로 활동하던 첫째 동생 인영씨는 1953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하면서 경영에 본격 합류했다.75년 말 중동 진출 때 신중론을 펴 형과 이견을 빚을 때까지 그룹의 초석을 닦았다. 당시 독립해 만든 한라그룹은 한라건설·한라시멘트·한라중공업·만도기계 등을 거느리며 재계 서열 12위로까지 도약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그룹이 부도나는 시련을 겪었다. 지금은 둘째 아들 몽원씨가 한라건설 회장을 맡아 재기를 꿈꾸고 있다. 큰 아들 몽국씨는 94년 아버지가 동생을 그룹 후계자로 지목하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한때 배달학원 이사장을 맡았으나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부인 이광희씨는 배달학원 계열인 한라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대시멘트·성우종합건설·성우리조트·현대종합금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성우그룹은 둘째 동생 순영씨 일가가 이끌고 있다. 순영씨는 명예회장으로 물러앉고 2세 경영을 정착시켰다. 큰아들 몽선씨가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을, 둘째아들 몽석씨가 현대종합금속, 셋째아들 몽훈씨가 성우전자, 넷째아들 몽용씨가 성우오토모티브를 각각 맡고 있다. 몽선씨는 사촌인 정몽윤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과 함께 정몽헌 회장의 부검을 임관하기도 했다. ●‘기계박사’가 일군 한국프랜지 자동차부품회사인 한국프랜지공업의 김영주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의 유일한 매제다. 정주영 회장은 ‘이 땅에 태어나서’라는 두 번째 자서전에서 “그가 다가가기만 해도 기계가 저절로 고쳐졌다.”며 매제를 ‘기계박사’라고 불렀다.1946년 정주영 회장이 미 군정에서 불하받은 토지에 ‘현대’(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상호를 처음 내걸었을 때, 감격적으로 지켜본 이도 영주씨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로부터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기직종이던 운전기사 출신의 영주씨는 황해도 홀동광산에서 역시 운수업을 하던 정주영 회장과 뜻이 맞아 사업을 같이 도모했고, 매제까지 됐다. 부인 정희영씨는 2001년 정주영 회장이 노환으로 세상을 떴을 때 “대통령 한번 못해보고…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쩔거나.”하며 가장 서글프게 울었던 동생이다. 장남 윤수씨가 회사를 물려받아 한국프랜지공업 회장으로 있다. 둘째아들 근수씨는 독립해 울산화학·퍼스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후성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윤수씨의 장남 용석씨가 프랜지공업 계열사인 서한산업(자동차부품회사) 대표이사 사장이어서 3세 경영체제를 갖춰 가고 있다. 둘째아들 용범씨는 이름을 용태로 바꿨다. ●‘포니 정’ 부자(父子)의 변신 ‘포니 정’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넷째 동생 세영씨는 외아들 몽규씨와 함께 1999년 3월 현대그룹에서 독립해 건설시장에서 영역을 확실하게 굳혔다. 꼼꼼한 시공과 치밀한 분양으로 현대산업개발을 국내 도급순위 4위 업체로 키워놓았다.‘포니 정’이라는 별명은 1976년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국산 고유모델 자동차 1호 ‘포니’를 만들어낸 데서 붙여졌다. 이같은 열정과 헌신을 인정받아 87년 형에게서 현대그룹 회장직을 물려받기도 했다. 분가한 뒤로는 현대산업개발 경영에만 매달렸다. 몇 년 전 폐암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희수연을 치렀을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회사 경영은 아들 몽규(회장)씨가 책임지고 있다. 지금의 서울 삼성동 사옥은 몽규씨가 직접 지었다.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현대가 맺은 최고위층 사돈도 세영씨 집안에서 나왔다. 큰딸 숙영씨가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장남 경수(서울대 교수)씨와 결혼한 것. ●“아… 신영아”-교통사고 아닌 병으로 요절 다섯째 동생 신영씨는 고 정주영 회장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동생이다. 서울대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로 있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함부르크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1962년. 처음에 어떤 기자가 교통사고사로 쓰면서 오랜 세월 세상에 잘못 알려졌지만 정확한 사인은 지병이라고 유족은 본지에 밝혔다. 당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일에서 떠나본 적이 없는 정주영 회장이 일주일을 손놓았을 만큼 가족의 슬픔은 컸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첼리스트였던 미망인 제수씨(장정자)에게 현대학원(현대고)을 경영토록 했다. 지금도 현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정자씨는 남북이산가족 상봉때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남한측 방문단장을 맡았었다. 장홍선 전 극동도시가스 회장의 누나다. 신영씨는 1남1녀를 두었다. 아들 몽혁씨는 32살의 젊은 나이에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로 취임해 인천정유(구 한화에너지)를 인수하고 오일뱅크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외자유치와 함께 2002년 전문경영인에서 물러나 그 해 건축자재 유통회사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를 설립해 돌아왔다. 부인 이문희씨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동원 이홍근 선생의 손녀이다. 사업가이자 문화재 수집가였던 동원 선생은 평생 모은 문화재 4941점을 198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딸 일경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블룸버그대학 회계학과 교수인 남편 임광수씨와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 ●‘리틀 정주영’이 이끄는 KCC 막내동생인 상영씨는 ‘불에 타지 않는 바닥재’ 등으로 유명한 자재 전문그룹 KCC를 이끌고 있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성격 등이 고 정주영 회장을 가장 많이 닮아 ‘리틀 정주영’으로 불린다. 큰형과 나이 차이가 21살이나 나 아버지처럼 따랐다. 장조카 몽구씨와도 2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또 다른 조카인 고 정몽헌 회장이 자금난에 몰렸을 때 200억원을 선뜻 내놓았을 만큼 의리도 강하다. 그러나 조카의 죽음 이후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면서 다소 빛이 바랬다. 그룹 경영은 두 아들에게 맡긴 상태다. 큰아들 몽진씨가 대표이사 회장, 둘째아들 몽익씨가 대표이사 부사장이다. 셋째아들 몽열씨는 계열사인 금강종합건설 사장을 맡고 있다.KCC는 몽익씨를 통해 롯데·한진그룹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몽익씨의 부인 은정씨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조카(신 회장의 여동생인 정숙씨의 딸)이다. 은정씨의 언니 은영씨는 한진해운 조수호 회장의 부인이다. 몽익씨와 조 회장이 동서지간인 셈이다. ●현대가의 여자들 현대가의 딸이나 며느리들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화여대(정경희-이양자-현정은-김혜영-정유희 등) 출신에 해외유학(김영명-정지선-황서림-허승원 등)까지 다녀온 재원들이 적지 않지만 경영에 참여하거나 대외활동에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남편을 따라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드물다. 유일한 경영자인 현정은씨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전업주부’였다. 오너 일가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한 관계자는 “지금도 명절 때면 청운동 집(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오랫동안 살던 집)에 몇 대에 걸친 며느리들이 모두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직접 장만한다.”면서 “옷차림들도 수수하고 인상이 소박해 언뜻 봐서는 재벌가 며느리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미인들이다. 어떤 이는 그 이유를 ‘유난히 많은 연애결혼’에서 찾는다. ●그룹분리 가속화시킨 ‘경영권 분쟁’ 2000년 ‘형제간 다툼’은 현대가를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핵분열시킨 결정적 계기였다.99년 12월 마지막 날, 고 정몽헌(MH) 회장쪽 인사로 분류되던 박세용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정몽구(MK) 회장 계열의 현대차 회장으로 전격 발령나면서 시작된 형제간의 경영권 갈등은 그룹 후계자로 MH를 지목한 고 정주영 회장의 육성 테이프가 공개되기까지 석달여에 걸쳐 숨막히게 전개됐다. 효심이 남달랐던 MK는 아버지의 육성이 공개되자 깨끗이 승복하고 자동차 계열사를 이끌고 그룹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아픔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의 지배구조를 선진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는 21일 왕 회장의 4주기에 모처럼 형제들 모두가 함께 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이날은 공식적으로 가족화합이 됐음을 안팎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현대가에 정통한 소식통은 전했다. hyun@seoul.co.kr ■ 정주영 회장의 ‘빈대론’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은 ‘해당화가 찬란하고 눈(雪)이 많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에서 1915년 6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죽어라고 일해도 콩죽을 면할 길이 없는 농군이 진절머리나게 싫고 지겨워”(첫번째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열네살 무렵부터 줄기차게 가출을 시도했다. 무작정 길을 나서 보기도 하고, 아버지의 소 판 돈을 훔쳐도 봤다. 그러기를 네번째. 열아홉살 마지막 가출에 성공해 인천부두 막노동꾼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한 푼이 아까워 몸을 기댔던 곳이 노동자 합숙소. 뼈가 으스러지는 중노동으로 누가 떠메고 가도 모를 만큼 고단했지만 좀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빈대들의 공격 때문이었다. 궁리 끝에 밥상 위에 올라가 잠을 잤다. 빈대들의 공격이 잠시 뜸해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내 밥상다리를 타고 기어올라와 온 몸을 물어 뜯었다. 다시 머리를 써야 했다. 무릎을 탁 칠 만한 묘안이 떠올랐다. 밥상다리 네 개를 물 담은 양재기 넷에 하나씩 담근 뒤 그 위에 올라가 잔 것이다. 빈대를 밥상다리로 유도해 양재기 물에 익사시키자는 계략이었다. 쾌재를 부른 것도 이틀여. 빈대들은 또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양재기 물을 건넌 것일까.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불을 켜본 젊은 정주영 회장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빈대들이 밥상다리 대신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사람을 겨냥해 뚝 떨어져 목적 달성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역경에 부딪칠 때마다 정주영 회장은 ‘빈대의 노력’을 떠올렸다.“난관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든지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는 단골 지청구는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 아무것도 없는 백사장(울산 염포리)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조선소 투자금액을 유치할 때나,20세기 최대 역사(役事)로 꼽히던 중동 주베일 공사 입찰전에 뛰어들 때나, 직원들이 불가능하다고 도리질칠 때면 “이봐, 해봤어?”라고 불호령을 쳤던 것도 빈대의 집요한 노력을 떠올리면서였다. “자본가가 아니라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던 정주영 회장은 근검과 노력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등한 자본금” “한강에 기적은 없다. 성실하고 지혜로운 노동이 있을 뿐” “고선지부지설(苦蟬之不知雪;여름철 서늘한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만 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없어지는 매미는 한겨울 펑펑 쏟아지는 눈을 알 수 없다)” ‘아산 정주영 어록’에 실려있는 그의 유명한 말들이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대모’ 변중석 여사 열여섯살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섯살 연상의 고향총각 정주영에게 시집온 변중석씨는 현대가의 산 증인이다. 올해로 84세. 젊어서 남편이 사준 재봉틀 하나를 자신 소유의 유일한 재산으로 여기며 한결같은 근검과 후덕함으로 ‘현대가의 여자’라는 상징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동생들과 자식들에게 근검을 가르쳤다면, 변씨는 새벽 3시반부터 손아래 동서·며느리들과 아침 준비를 함께 하면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겸손하라.”고 일렀다. 가혹하리만치 자식 교육에 엄격했던 정주영 회장이 아이들을 자가용으로 등교시키는 며느리들을 보고 “젊었을 때 콩나물 버스에 시달려봐야 나중에 자가용을 샀을 때의 기쁨을 안다.”며 역정을 내자 “손주녀석들 키우는 문제에까지 시아버지가 잔소리를 할 거냐.”며 막아준 이도 변씨였다. 칭찬에 인색했던 정주영 회장도 아내를 가리켜 “늘 통바지 차림에 무뚝뚝하지만 60년을 한결같고 변함이 없어 존경한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했을 정도다.“아내를 보며 현명한 내조는 조용한 내조라는 생각을 굳혔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식을 먼저 땅에 묻는 참척의 고통과 여자로서의 마음고생을 거치면서 ‘살아있는 보살’도 탈이 났다. 거동이 불편해 10년 가까이 병원(현대아산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상 맏며느리인 이정화씨 등 며느리들이 틈날 때마다 병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월드 이슈] 태풍의 눈-中 반국가분열법

    중국의 타이완 독립에 대한 무력 저지를 정당화한 ‘반국가분열법’ 제정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오는 14일 제 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3차 전체회의 폐막일에 통과가 확실시된다. 중국 지도부는 반국가분열법 제정을 통해 타이완 독립에 대해선 무력 동원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관철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 법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와 우려를 표시하며 법 제정의 재고를 촉구했다. 전후 60년을 맞아 새로운 냉전의 기운이 커가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반국가분열법은 새로운 ‘뇌관’으로 등장했다. ■ 동아시아에 미칠 파장 중국의 반국가분열법은 채택도 되기 전부터 주변국가들의 반발과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타이완에 대한 무력 공격의 법적 기반을 제공하는 근거법이란 점에서 최악의 경우 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군이 타이완을 공격할 경우 미국, 일본의 개입 가능성도 있어 국제전으로 확대될 위험도 있다.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 호주도 병참지원, 기지사용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쟁에 끌려들어갈 수도 있다. 8일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경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류 대변인은 “호주가 타이완을 둘러싼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 내용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국제전’은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관련국가들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만큼 개연성이 높다. 노무현 대통령이 8일 유사시 주한미군을 동북아지역에 투입하는 ‘전략적 유연성’에 거부 의사를 표시한 것도 이같은 우려를 반영한다. 미국과 일본은 전략적으로나 명분상 중국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타이완의 존속을 원한다. 타이완마저 중국 손에 들어갈 경우 아·태지역의 세력균형의 추가 중국쪽으로 기울 것으로 우려한다. 미국은 중국과 수교 직후인 지난 1979년 4월 타이완의 안보가 위협받을 경우 자위수단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는 내용의 타이완 관계법을 제정, 타이완에 무기판매 등 사실상의 군사지원을 유지해오고 있다. 미·일 두 나라가 전쟁에 무력 개입을 않는다고 해도 경제제재 등 중국에 대한 강도높은 응징책을 채택할 가능성도 높다. 또 ‘세계의 공장’, 중국경제의 순항에 차질이 생기고 기우뚱댈 경우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파장은 불가피하다.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엔 경제적 태풍이 되어 밀어닥칠 수도 있다. 당사자 타이완의 반응은 격렬하다.8일 중국 전인대의 반국가분열법 심의가 시작되자 중국을 맹비난하며 강경대응책을 천명했다. 중국 의도와는 달리 독립의지를 꺾기는커녕 오히려 독립 열망에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헌법조항에서 중국 대륙과의 연관성을 언급하는 내용을 삭제하자는 의견에서부터 반분열법에 대항하는 ‘반병탄법’ 제정 의견까지 다양하다. 타이완 정부는 화물전세기 운항 계획 연기 등 양안 개방정책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류즈젠(劉志堅) 타이완 국방부 대변인도 “중국의 비평화적인 수단이나 경솔한 조치에는 적절한 대응조치로 맞설 것”이라고 결연한 대응 의지를 표시했다. 타이완군은 중국의 공격이 시작될 경우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 도시를 공격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전쟁이 당장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이 법이 미·중 및 중·일관계 악화 등 동북아지역의 긴장을 부추기고 중국 견제를 주장하는 중국위협론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요동치는 타이완 해협의 문제가 동북아평화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법안마련 경과와 中의 속셈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4일 인민대회당에서 ‘타이완에 대한 4개항의 지침’을 제시했다. 이날 발표된 ▲‘하나의 중국’ 원칙 견지 ▲평화통일 노력 ▲독립·분열 활동 반대 등은 ‘반국가분열법안’의 예고탄이었다. 4일 후인 8일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3차 전체회의에서 처음 공개된 이 법안은 타이완이 실질적으로 독립을 시도할 경우 즉각 전쟁에 돌입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담고 있다. 수년 전부터 학자들 사이에서 시나리오로 논의돼 오다가 지난해 5월 천수이볜(陳水扁) 타이완 총통 취임 이후 법제화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완 독립 움직임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중국 지도부가 무력 저지라는 ‘마지노선’을 택한 것이다. ‘전쟁불사’의 배수진을 통해 천수이볜 총통의 개헌 움직임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다. 중·장기적으로 민진당 등 분리주의 세력의 고립과 친중국 세력으로의 정권교체를 겨냥했다. 초안은 입법 취지, 타이완 문제의 성격, 평화통일, 비평화적 방식 동원 등 4개 부분으로 구성됐다.▲타이완 독립세력에 의한 분열행위 ▲타이완 분열을 가져오는 중대사건 발생 ▲평화통일 조건의 완전한 소멸 시 국가주권과 영토 보전을 위해 비평화적 방식과 필요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동안 중국이 제시해온 ‘평화통일, 일국양제’의 기본 방침과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평화통일 8개항 원칙’이 망라돼 있어 향후 양안관계의 최종 나침반이 될 전망이다. 중국 언론들도 법안의 당위성에 초점을 맞춰 대대적인 선전을 시작했다.CCTV 등 방송들도 긴급 대담을 편성, 내부 공감대 형성에 노력하고 있다. 중국 군부의 지지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인민해방군 전인대 대표들은 “타이완 독립 기도를 저지하고 외국의 중국내정 간섭을 방지하기 위한 방어용”이라고 주장했다. 총후근(군수)부 부부장 왕타이펑(王大風) 중장은 “타이완 분리주의자들의 독립기도와 외국세력의 간섭 때문에 군은 강군을 건설하고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며 반분열법 지지를 분명히했다. 미국과 일본 등 서방국가의 반대 목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중국 정법대학 법률연구센터 샤자쥔(夏家駿) 소장은 “국가 주권과 영토 보전은 국제적 관례며 미국과 영국 등 모든 국가들도 분열을 반대하는 관련 법률이 있다.”고 일축했다. 법안에 ‘타이완 문제는 중국 내정으로 외국세력의 간섭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법안 통과가 중국 지도부의 주장처럼 ‘국가의 분열을 제지하기 위한 마지막 선택’인지 동아시아 냉전의 새로운 신호탄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oilman@seoul.co.kr ■ 美·日의 입장과 전략 |도쿄 이춘규특파원|미국과 일본은 ‘반국가분열법안’이 성립되어 타이완해협의 긴장이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최선은 평화적 해결이다. 그러면서도 가상 적인 중국에 대한 포위망 구축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 2월 두나라 안전보장협의회에서 “타이완해협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아·태지역 안보의 공동목표로 설정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타이완 문제와 관련, 미·일의 정책은 ‘현상유지’다. 미국은 정부 고위관리나 의원 등이 반국가분열법안 처리 움직임을 “양안 관계의 긴장 완화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스콧 매클렐런 미 백악관 대변인은 중국 정부에 법안 통과의 ‘재고’를 촉구했을 정도다. 그러면서 타이완에 대해서도 중국을 더 이상 자극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독립을 겨냥한 주민투표나 신헌법 마련 움직임에도 냉정하게 반응하고 있다.‘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며 타이완 독립도 지지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미국은 중국에 의한 타이완 무력통일에 반대하고, 타이완에도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 ‘현상유지 정책’을 밝히고 있다. 이라크 부흥및 중동평화, 유럽과의 관계개선, 북한과 이란 핵문제 등 막중한 외교과제가 산적한 때 중·타이완 긴장은 피하겠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1년 4월엔 “타이완을 돕기 위해 필요한 어떤 일도 할 것”이라면서, 타이완해협에서의 군사개입도 “확실하게 하나의 선택수단”이라고 말해 중국을 ‘전략적 파트너’라고 불렀던 클린턴 전 대통령과 대비되는 친타이완 정책을 취했다. 부시 2기에 들어서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취임 직전 의회 증언에서 “중국은 상당히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등 중국을 ‘전략적 경쟁상대’로 규정했던 부시정권의 본질이 다시 표면화되는 분위기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아울러 중국의 군비증강 정책을 우려하면서 ‘중국위협론’을 부각시키겠다는 생각이다. 호소다 관방장관은 반분열법안에 대해 “양안관계에 영향이 있다고 염려는 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외무성 간부들도 “타이완해협의 긴장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긴장하고 있다. 일본은 타이완 독립 저지를 명분으로 한 중국의 무력행사를 법률적으로 용인하는 반분열법이 성립되면 “동아시아의 안정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는 국제여론전을 펴고 있다. 즉, 타이완해협의 긴장 고조는 한반도 문제와 함께 일본과 미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국가들에도 최대의 불안요인라는 점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taein@seoul.co.kr
  • 두바이유 또 사상최고가 배럴당 44.33달러 기록

    두바이유가 하락 하루 만에 상승세로 반전, 최고가를 또다시 경신했다. 9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8일 현지에서 거래된 중동산 두바이유는 전날보다 0.35달러 상승한 배럴당 44.33달러로 이틀 만에 다시 44달러대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WTI)도 0.75달러 오른 54.61달러에 거래돼 지난해 10월 26일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을 보였으며, 북해산 브렌트유도 1.58달러 상승한 53.18달러에 장을 마쳤다. 선물시장의 경우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WTI와 런던 국제석유거래소(IPE)의 브렌트유는 각각 0.70달러,0.79달러 오른 54.59달러,52.84달러를 기록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시리아 지지” 레바논 50만명 시위

    레바논 주둔 시리아군의 부분적인 철수가 시작된 8일(현지시간) 베이루트에선 시리아를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려 미국 등 외국의 내정간섭을 규탄했다. 이날 시위는 레바논 남부에 근거를 둔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의해 주도됐다. 앞서 야당의 기독교 세력이 2주일 동안이나 이끈 ‘반(反)정부’ 및 ‘반(反)시리아’ 시위를 완전히 압도했다. 시위 참여자는 수십만명으로 전해졌으나 AP통신은 50만명이 운집했다고 보도했다. 레바논 인구 370만명을 감안할 때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건재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이날 시위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중동 전역에 자유의 바람이 불고 있다.”면서 시리아에 완전 철군을 촉구한 것과 맞물려 이슬람권내 반미감정을 적극 대변했다는 지적이다. 시위대는 “외국 간섭에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면서 “유엔결의 1559를 반대한다.”는 깃발을 흔들었다. 거리에는 친시리아계의 에밀 라후드 레바논 대통령과 바사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포스터가 내걸렸다. 헤즈볼라의 지도자 세이크 하산 나스랄라는 “레바논에서 시리아의 희생에 감사하고 시리아 철군과 유엔 결의안에 반대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미국에 의해 레바본이 분열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의 암살 이후 시리아가 국제사회로부터 철군 압력을 받고 있으나 상충하는 이같은 대규모 시위는 레바논에서 정파간 갈등이 재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수니파가 다수인 시리아와 달리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을 받아 온 시아파 무장단체이지만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맞서 오랜기간 시리아와 함께 반미 공동노선을 구축해 왔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OPEC ‘유가 논쟁’ 팽팽

    오는 16일(현지시간) 이란의 이스파한에서 열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례회의를 앞두고 국제유가의 적정 가격 수준과 증산 결정 여부를 둘러싸고 회원국 사이에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OPEC 의장 겸 쿠웨이트 석유장관인 셰이크 아흐마드 파하드 알 아흐마드 알 사바는 7일 “(회원국들은) 시장에 충분한 양이 공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가격급등이 이어지고 있는 데 우려하고 있다.”며 생산여력으로 볼 때 연말까지 하루 300만배럴 이상의 증산이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공식적인 OPEC의 하루 생산쿼터는 2700만배럴이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왕세자 외교정책 보좌관인 아델 알 주베이르 역시 유가가 비현실적으로 높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올루세군 오바산조 나이지리아 대통령도 “회원국이나 비회원국 모두 OPEC의 가격조정 제도에 따라 높은 유가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호소했다. 반면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현 유가가 적정하다는 입장이다. 이란 대표인 호세인 가젬푸르 아르데빌리는 “회원국들은 현 유가 수준에 만족하고 있고 가격변동이 필요없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차기 사무총장이 유력시되는 그의 발언은 지난해 OPEC이 폐기한 배럴당 22∼28달러 가격대로의 복귀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다. 라파엘 라미레즈 베네수엘라 석유장관도 “미 정유시설 가동 중단과 달러화 하락 등을 고려할 때 현 유가는 산유국들에 공정하다.”며 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한편 뉴욕시장에서 미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7일 증산결정이 내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란 등의 전망 영향으로 전날보다 18센트 오른 배럴당 53.86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두바이유는 나이지리아 등의 전망이 뒤늦게 반영돼 4센트 떨어진 43.98달러에 거래됐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OPEC이 회원국의 증산 움직임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각에서 우려하는 고유가 지속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OPEC이 장기적으로 50달러를 상회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이태원 봄, 쇼핑객 넘친다

    이태원 봄, 쇼핑객 넘친다

    ■ 이태원의 봄… 쇼핑객 다시 붐벼 ‘외인촌’으로 불리는 서울 이태원에 봄이 완연하다.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데다, 소비 심리가 회복 조짐을 보이며 보세 상품을 선호하는 쇼핑객들이 크게 몰려들어 붐비기 시작했다. 특히 이태원 입구에서 한남2동까지 1.4㎞ 구간에 자리잡은 이태원의 심장부격인 관광특구는 의류·구두와 가방 등을 판매하는 쇼핑가와 각종 음식점, 유흥·오락시설, 무역상, 여행사, 관광호텔 등 2000여개의 외국인 대상 점포가 밀집해 있어 쇼핑의 즐거움은 물론, 아르헨티나·쿠웨이트 등 외국 대사관저 등도 ‘늠름하게’ 들어서 있어 ‘이국정취’에 흠뻑 빠져 들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글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보세품 가게·음식점등 즐비 세계인의 거리로 명성 높아 ‘외인촌’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은 이름부터 외색(外色)이 짙게 밴 동네다. ‘이태원(梨泰院)’은 배밭이 많아 불렸다는 설과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귀화해 살던 곳으로 ‘이타인(異他人)’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왜군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 살던 보육원인 ‘이태원(異態園)’이 있던 장소라서 유래됐다는 주장도 공존한다. 여하튼 이태원은 관리와 여행자를 위해 제공되는 ‘원’으로 원래 위치는 용산중·고등학교에 있던 숙박시설이었다. 이태원 마을은 현재 이태원 2동 중앙경리단 일대였으나 서울시의 도시계획에 따라 이태원로가 뚫리면서 이태원의 축이 해밀턴 호텔쪽으로 이동했다. 한국전쟁이 끝나자 용산에 미군기지가 자리를 틀면서 인접지인 이태원은 위락지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해방촌’과 외국공단, 군인아파트 등이 건설되면서 본격적인 도시화를 이뤘다. 하지만 1950∼60년대에는 생활용품과 잡화류 위주의 상가들이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1970년대 초 부평에서 121후송병원이 미8군 영내로 옮기면서 1만여명의 미군과 관련 종사자가 유입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드러냈다. 70년대 섬유산업이 호황을 맞자 이태원은 보세물품의 쇼핑가를 형성했다.1980년대 각종 국제회의와 두 차례의 국제 경기가 열리면서 쇼핑명소로 두각을 드러냈다.90년대에는 미군과 일본 관광객뿐만 아니라 홍콩, 중국, 동남아, 아프리카, 중동지역 등 다양한 국가에서 관광객이 쏟아지면서 세계인의 거리로 탈바꿈하고 있다.1997년 서울시 최초로 관광특구로 지정돼 현재 하루 7000여명 연간 240여만명이 이곳에 발자국을 새겨, 연간 12억달러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현재 이태원의 중심축을 이루는 이태원관광특구는 이태원 입구에서 한남 2동까지 1.4㎞의 구간,11만여평을 말한다. 구두와 의류, 가방 등을 취급하는 쇼핑가를 비롯해 각종 음식점, 유흥·오락시설, 무역상, 여행사, 관광호텔 등 2000여개의 점포가 밀집해 있다. 관광특구의 면모 외에도 이태원은 하얏트 호텔에 이어 형성된 고급주거지역으로 유명하다. 아르헨티나와 쿠웨이트 대사관을 비롯, 각국 대사관과 관저 등 담이 높은 고급주택과 빌라가 많다. 또 다른 한 편인 용산2가동과 닿은 곳은 월남민의 주거지역인 ‘해방촌’이 마을의 또 다른 성격을 규정한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서울광장] TV드라마 수출 1억달러시대/이용원 논설위원

    [서울광장] TV드라마 수출 1억달러시대/이용원 논설위원

    2003년 가을 동남아 한 국가의 총리 부부와 각료들이 방한했다. 청와대 오찬을 앞두고 총리 부부는 탤런트 김현주·소지섭과 자리를 함께하도록 해 달라고 특별히 요청했다. 그들이 주연한 SBS 드라마 ‘유리구두’는 그 나라에서 서너달 전 방영돼 사상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두 사람이 등장하자 장관들은 사인을 받으려고 늘어섰다. 그들은 “우리집 애들이 사인을 받아 오라고 해서”라고 변명했지만, 사인을 받은 뒤 희희낙락하는 모습이 여느 팬들과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대통령이 주최하는 오찬은 예정보다 늦게 시작됐다. 한국 TV드라마의 위력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이 일화는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관가에서 한동안 화제가 됐다. ‘한류(韓流)’ 현상이 아시아 일대를 휩쓴 지도 여러해 됐다. 대중가요·영화·TV드라마 등의 한류 주역 가운데 인기 품목은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핵심은 역시 TV드라마라 할 수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가 손쉽게 접근해 즐기기에는 TV드라마만한 장르가 없기 때문이다. 그 TV드라마를 아시아인들이 얼마나 즐겨 보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자료가 나왔다. 문화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TV 프로그램의 수출액은 모두 7146만달러이며, 이 가운데 91.8%인 5771만달러가 드라마 수출분이었다. 한국 드라마 수출액이 5000만달러를 넘어섰다니! TV 채널을 기껏 돌려봐야 셋에 불과하던 시절 드라마는 미국산 외화 시리즈가 주도했다. 요즘 젊은 세대가 고전처럼 되새기는 ‘맥가이버’‘제5전선’들이 그 예다. 그때는 TV용 드라마의 수출입 규모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그러던 게 2002년부터 수출액이 수입을 능가했고 지난해에는 100대44로 급격히 격차를 벌려 놓았다. 드라마 수출 5000만달러 돌파는 그러나 머잖아 빛이 바랠지 모른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올해 1억달러 달성이 가능하리라는 분석 때문이다. 그 장밋빛 전망의 요인으로는 먼저 편당 수출가의 상승을 들 수 있다.2003년 2198달러이던 평균 수출가는 지난해 4046달러로 84.1% 올랐다. 이 상승폭을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지레 낮출 근거도 따로 없다. 일본 시장이 급속히 커지는 것도 기대를 높여 준다. 수출액 가운데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재작년 19%에서 지난해 57.4%로 급성장했다. 현재 방송 중인 MBC 드라마 ‘슬픈 연가’를 후지TV가 4월 말부터 방영하기로 하는 등 한국 드라마에 대한 일본 방송가의 러브콜은 올해 더욱 확산되리라 보인다. 이밖에 동남아에서의 인기 상승, 중동 지역 진출 등이 호재로 작용하리라 기대된다. 그러나 국산 드라마의 아시아 확산이 꼭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곳곳에서 한류 열풍이 정점을 지났다거나, 유지되더라도 몇 년 새 끝나리라는 경고음이 들린다. 예컨대 연초 타이완·베트남·캄보디아를 순방해 조사한 국회 문화관광위 팀은 “한류 열풍이 길어야 5년, 짧게는 2∼3년 안에 끝난다.”는 현지 관계자들의 부정적인 전망을 전했다. 문화상품 수출이 가져오는 부가가치를 새삼 길게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다만 드라마 수출 규모가 1억달러를 돌파한다면 아시아 무대에서 한국과 한국인 그리고 한국상품은 상당히 친숙한 존재로 자리잡았다고 자신해도 될 듯하다. 이를 위해 방송사를 비롯해 드라마 제작사, 정부, 국민은 각각 제 할 일을 돌아보고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하프타임] 본프레레호 사우디전 15일 출국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이 오는 14일 소집돼, 이튿날 2006년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A조 2차전(26일)을 위해 출국한다. 본프레레호는 일단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 머무르며 오는 19일 또는 20일 중동의 한 대표팀과 최종 평가전을 치를 예정이다. 본프레레 감독은 이르면 8일 오전 사우디전에 나설 22명의 명단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③-신세계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③-신세계그룹

    신세계그룹은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한 기업들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2004년 재계 서열 21위(자산 기준)로 한솔그룹(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녀 이인희 고문, 재계 36위), 새한그룹(차남 고 이창희 회장, 워크아웃 중),CJ그룹(장손 이재현 회장, 재계 23위)보다 앞섰다. 창업주의 5녀(막내딸)인 이명희(62) 회장은 1997년 계열 분리 때 백화점과 조선호텔만 갖고 나왔다. 그리고 그룹을 국내 최고의 유통 ‘명가’로 키웠다. 삼성에서 떨어져 나온지 불과 7년만에 백화점과 할인점 이마트를 주축으로 한 유통사업 외에 신세계건설, 신세계푸드시스템, 조선호텔, 신세계인터내셔널 등 13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자신은 여성 캐피털리스트 1위를 고수하던 올케 홍라희(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호암미술관장을 제치고 2001년 이후 국내 최고의 여성 부호가 됐다. 이 회장은 삼성가(家)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는 전형적인 정중동(靜中動) 행보의 오너다. 외부에 나서지는 않지만 소리없이 막후에서 회사의 중심을 잡으면서 방향을 제시하는 스타일이다. ●창업주의 귀여운 막내딸 이명희 회장은 창업주로부터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2세다.8남매(3남5녀) 중 막내딸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삼성그룹 출신 인사들은 “고 이병철 회장은 늘 이 회장을 데리고 다녔다.”고 회고한다. 고 이병철 회장은 회장직을 물러난 뒤 1년에 네차례 정도 일본 도쿄를 방문했는데, 이때 항상 이인희 고문과 이 회장을 동행토록 했다. 큰언니인 이 고문은 이 회장보다 열네살 많다. 이 회장은 부친이 사무실에서 먹는 과일도 먼저 맛을 보고 부친이 좋아하는 정도의 당도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들여보내곤 했다. 그래서 당시 고 이병철 회장 비서실팀 직원들은 사무실옆 간이 주방에서 꼼꼼하게 과일을 챙기는 이 회장을 두고 ‘감독관’이라고 수근댈 정도였다. 이 회장은 1943년생으로 이화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했다.197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본부 이사로 경영수업을 시작,80년 신세계백화점 상무로 승진한 뒤 97년 부회장에 올랐다. 무려 17년동안이나 상무직함을 유지했다. 그룹 회장이 된 것은 98년 말이다. 이 회장은 1967년 정재은(66) 명예회장과 중매로 만나 결혼, 아들 정용진(37) 신세계 부사장과 딸 정유경(33) 조선호텔 상무를 뒀다. 용진씨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와 동갑내기다. 사촌지간인 두 사람은 경복고 동창으로 서울대에 함께 입학하다 보니 사이가 매우 각별하다. 용진씨는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다니다가 유학을 떠나 미국 아이비리그인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1995년 미스코리아 출신 인기 탤런트 고현정씨와 결혼했다가 지난해 이혼해 많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 고씨와의 사이에 아들 해찬(7)군과 딸 해인(5)양을 뒀다. 유경씨는 서울예술고, 이화여대 응용미술학과를 거쳐 미국 로드아일랜드대학교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 유경씨는 2001년 3월 초등학교 동창인 문성욱(33)씨와 결혼, 장녀 서윤(3)양과 차녀 서진(2)양을 두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은 문씨는 SK텔레콤 전략기획실을 거쳐 소프트뱅크 코리아의 자회사인 벤처스코리아에서 투자심사역(차장)을 지낸 뒤 현재는 유학 중이다. 문씨의 부친은 아리랑TV 사업본부장을 지낸 문청씨다. ●부친을 경영스승으로 삼고 있는 오너 재계에서는 ‘신세계가 삼성보다 더 삼성 같다.’는 얘기가 나돈다. 그만큼 기업문화, 경영스타일이 닮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창업주의 형제들 가운데 누구보다 부친을 닮으려고 애쓰는 이 회장의 숨은 뜻이 담겨 있다. 부친의 선견지명과 직관력이 소개된 한 일간지를 복사해 수첩에 항상 갖고 다니며 경영의 시금석으로 삼을 정도로 이 회장은 부친을 가슴 속에 품고 산다. 신세계백화점 본사 회의실과 자신의 아들 정용진 부사장 방에도 부친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부친의 경영철학을 신세계 맨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오는 8월 문을 여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사무실 로비에 부친의 흉상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렸다.“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내가 있겠느냐.”는 것이 이 회장의 생각이다. 이 회장은 누구보다 평소 부친의 경영 스타일을 빼닮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우선 ‘疑人勿用 用人勿疑’(믿지 못하면 아예 쓰지를 말고, 일단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라.)는 용인술과 전문 경영인 체제 운영방식이 그렇다. 메모하는 습관과 업무의 중요성을 따져 챙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확실히 구분짓는 스타일도 비슷하다. 이 회장 스스로도 자신의 경영 스승이 선친임을 신세계 2005년 1월호 사보에서 드러낸 바 있다.“선대 회장께서 가장 힘쓴 것이 인재 육성이었다. 선대 회장께서는 성공한 일을 다시 돌아보지 않았고 늘 새로운 것을 찾으셨다.”면서 자신의 메시지를 부친의 육성에 담아 신세계 맨들에게 전했다. 이 회장이 무엇을 강조할 때 나오는 화법이 바로 “선대 회장은 이렇게 하셨는데….”이다. 이 회장은 실제로 젊은 시절 부친이 제일모직 등 일선 현장을 방문할 때 언니인 이인희 고문과 함께 수행하며 경영수업을 쌓았다. 창업주는 국내외 주요 인사들과 회동 때 “명희야, 들어온나.”해서 늘 이 회장을 합석시켜 보고 배우도록 했다. 신현확 전 총리, 민복기 전 법무부장관 등 당시 국내 정·관계의 실세를 만나 식사를 하거나 골프를 할 때도 항상 ‘명희’를 불렀다. 일본 정·관계의 원로와 회동에도 꼭 자리를 함께 하도록 했다. 그러다보니 이 회장은 부친이 교류하는 각계의 주요 인사들을 다 알 정도였다. ●섬세하면서도 ‘통 큰’스타일 이 회장은 한해에 고작 한두차례 회사를 방문, 업무 보고를 받을 뿐 경영에 일일이 간섭하지는 않는다. 부친과 마찬가지로 결재 서류에 사인을 해 본 적이 없다. 주요 사안이나 인사에 대해서도 사후보고를 받을 정도로 전문경영인을 믿고 맡겨 ‘통 큰’ 경영을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인희 고문은 동생의 경영스타일을 두고 “명희는 (전문 경영인에게) 다 맡기는 스타일인데도 회사가 잘된다.”며 부러워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다고 해서 이 회장이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는 8월 문을 여는 신세계 본점 재개발 사업, 신규 백화점 진출, 명품 브랜드 유치 등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챙기며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을 문 열 때는 매일 그곳으로 출근하는 열성을 보였다. 특히 백화점의 사각지대로 알려졌던 지하 식품매장을 일일이 다니며 꼼꼼하게 챙겼다. 이 덕분에 위층에서 쇼핑을 하다가 식품매장으로 내려 오는 ‘샤워효과’가 아니라 지하 매장을 방문토록 만든 뒤 위층까지 고객을 끌어들이는 ‘분수효과’를 톡톡히 거두도록 했다는 후문이다. 이 회장을 아는 이들은 그가 여성스러운 섬세함과 대담함을 함께 지녔다고 평가한다. 격식을 싫어해 회사 내에 비서실은 물론 개인 비서도 두지 않고 있다.90년대까지 1년에 한차례 서울 한남동 자택으로 임원들을 초청, 식사를 대접하는 자상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큰 오빠인 맹희씨는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그의 따뜻함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부친으로부터 눈밖에 나서 유랑생활을 하던 맹희씨는 이 책에서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말을 못하고 있으면 늘 지갑을 열고 가지고 있던 돈 전부를 나에게 쥐어준 것도 명희였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명희는 내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었고 늘 따뜻한 마음씨로 나를 감싸주었다.”는 것이 맹희씨의 설명이다. ●신세계 핵심 축 구학서 사장 신세계는 1999년 구학서 사장이 총사령탑에 앉은 이후 계속 상승곡선을 그려 왔다. 구 사장은 명실상부한 전문경영인으로 이 회장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전문 경영인은 무한 책임을 지고 일해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그는 회사 부채율을 230%에서 130%대로 낮췄다. 취임 당시 5만원했던 주가를 5년만에 30만원대로 끌어올려 이 회장을 한국 최고의 여성부호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신세계 신화’를 일궈낸 주역이지만 그는 한결같이 겸손한 모습이다. 오히려 신세계를 통해 자신이 성공한 데 대해 감사해한다.“56세에 은퇴하려고 했는데 59세에 사장을 하고 있으니 목표를 초과 달성하지 않았느냐.”며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구 사장은 겉으로는 부드러운 스타일이지만 실제로는 승부욕, 추진력, 결단력을 두루 갖췄다. 매일 새벽 5시면 집 근처 우면산을 오르고, 오전 7시30분이면 어김없이 회사에 출근한다. 일주일에 7∼8권의 책을 읽으며 신세계의 미래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고민한다. 구 사장의 취임 당시 신세계의 위상은 롯데, 현대에 밀려 3위로 내려앉은 초라한 신세였다. 그는 그때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적절히 활용했다. 종합금융을 매각하고 카드사업에서 손을 떼는 등 대대적인 ‘메스’를 가한 것이다.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홀세일을 매각하면서 들어온 1억달러로 전국 알짜의 상권부지들을 헐값에 사들여 이마트 부지로 확보했다. 이때 사들인 부지들이 이마트에 국내 최대의 할인점이라는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산본의 백화점 부지도 이마트로 업종을 변신시키는 등 자산 회전율을 높이며 기업의 수익구조를 끌어 올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삼성그룹에서 재무통으로 커온 경력이 뒷받침됐다. 이런 신세계의 성장을 구 사장은 전문경영인 체제 덕분으로 돌린다. 스스로 “(이 회장이)너무 많은 권한을 주셔서 오히려 책임이 무겁다.”고 말할 정도로 오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소신껏 일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350억원짜리 한국 최대의 매머드 쇼핑몰인 부산 센텀시티 부지 매입 응찰 때도 사후에 이 회장에게 보고할 정도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호랑이 등에 탄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972년 삼성에 공채 12기로 입사했다. 재계의 인재사관학교로 불리는 삼성 비서실, 삼성전자, 제일모직, 삼성물산 등을 거쳐 삼천리그룹으로 갔다가 96년 신세계 경영지원실 전무로 발탁됐다. 당시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도 구 사장에게 눈독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실력파 임원들로 포진 전문경영인 체제의 기업답게 구 사장을 필두로 쟁쟁한 임원들이 포진하고 있다. 석강 백화점 부문 대표는 점장과 영업본부장을 역임한 정통 영업통. 신세계 백화점이 새롭게 문을 여는 점포마다 점장을 맡을 만큼 치밀한 전략과 강한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책임질 수 있다고 판단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자신감과 신념의 소유자다. 신세계백화점의 면모를 일신시킨 서울 강남점을 문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 본점 재개발 사업과 죽전 역사 개발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진행하며 ‘제2전성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검소한 생활에 유머감각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경상 이마트 부문 대표는 백화점과 이마트에서 점장과 지원본부장, 경영지원실장 등 요직을 걸쳤다. 인화를 중시하는 전형적인 덕장형이지만 치밀한 분석력과 경영자로서의 안목을 두루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백화점 미아점장 시절 처음으로 점장이 광고모델로 등장,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스타일을 보여줬다. 영등포점장 시절 다른 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지하층을 젊은이들만의 공간으로 꾸민 ‘영웨이브’를 탄생시켰다.‘영웨이브’는 백화점 테마형 매장의 효시로 인정받고 있다. 유원형 경영지원실장(부사장)은 삼성그룹 계열사인 중앙개발 출신. 유통전문 건설업체로 급부상한 신세계건설에서 탁월한 관리 업무로 수익창출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2000년 신세계로 옮겼다.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섬세한 업무 스타일이 돋보인다. 백화점부문의 팀제 운영 실시 등의 아이디어로 재무 건전성과 인력 효율화에 기여했다. 신세계건설 노태욱 사장은 LG건설 상무 등을 지내다 신세계건설에 합류한 건설 분야 베테랑이다. 건설업계의 투명경영을 선도하기 위해 업계 최초로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을 도입, 지난해 공정거래 자율준수 우수기업으로 공정거래위원장상을 수상했다. 신세계푸드시스템 최병렬 사장은 20년의 서예 경력에 단전호흡의 달인으로 불린다. 또 체력 등 자기관리가 뛰어난 만능스포츠맨이다. 백화점과 이마트 부문에서 풍부한 현장 경험을 쌓았다. 신세계I&C 이상현 사장은 삼성비서실, 삼성카드에서 주로 전략기획 업무를 담당해온 브레인. 삼성카드 재직시절 고객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한 CRM(고객관계관리)을 도입했다.‘좋은 생각이 좋은 경영을 만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조선호텔 이석구 사장은 호텔 부문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호텔을 경영하는 것은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과 같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객실의 디지털화, 객장의 글로벌화를 강조하고 있다. 공항에서 에스코트를 받은 뒤 프런트 앞에서 기다리지 않고 객실에서 곧바로 체크인할 수 있는 ‘익스프레스 체크인’ 서비스를 국내 처음 도입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장성규 사장은 1주일에 30개 이상의 매장을 꼭 방문하는 현장 중시 스타일이다. 그의 책상 한편에는 800명 이상의 직원 이름과 나이, 특징 등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를 통해 영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신세계드림익스프레스 송주권 사장은 백화점 물류관리 업무를 담당해 온 현장관리 출신이다. 새로운 수익 아이템들을 꾸준히 개발해 적자사업을 흑자로 돌려놓은 그룹 내 물류 전문가다. bori@seoul.co.kr ■ 경영수업 받는 2세 이명희 회장에 이어 신세계를 이끌 후계자는 장남 정용진(37) 부사장이다. 모친 이 회장과 부친 정재은 명예회장에 이어 3대 주주로 자리를 굳혀 이미 경영권 승계 작업의 토대를 마련해 놓았다. 정 부사장은 미국 유학을 끝내고 1994년 삼성물산 경영지원실에 입사,95년 신세계로 자리를 옮긴 뒤 97년까지 신세계백화점 일본 도쿄사무소에서 근무했다. 이어 신세계백화점 기획조정실 그룹 총괄담당 상무로 진급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 삼성의 구조조정본부와 같은 성격의 경영지원실 소속인 그는 월·수·목요일은 신세계 본사로, 화·금요일은 이마트로 번갈아 출근하며 그룹 전반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점장회의 등 각종 회의에 참석, 업무 보고를 받는다. 조용히 듣기만 하고 거의 발언은 하지 않지만 지나가면서 던지는 질문이 날카롭다고 한다. 사원들과도 격의 없이 어울린다. 소주에 삼겹살도 먹고 이마트 오픈시 지내는 고사에도 참석, 직원들이 건네는 막걸리를 몇잔이고 받아 마신다. 직원들에게도 꼭 두 손으로 술을 따르며 몸을 낮춘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지하 구내 식당에서 직원들과 식사도 한다. 식품과 패션분야에 조예가 깊다. 이마트 매장을 둘러 볼 때도 식품의 신선도, 진열방식 등을 꼼꼼히 챙긴다. 즉석 조리상품 코너를 지나치다 “소스가 안 맞는다.”거나 “외국에는 이런 상품도 있는데 한번 도입해 보라.”는 제안도 심심찮게 한다. 특히 초밥 등 신선식품은 꼭 포장지를 뜯어보고 “밥알이 굳었다. 신선도가 좋지 않다.”는 등의 평가를 한다. 명품잡지에 등장하는 모델이 입고 있는 옷들이 어느 제품인지 다 알 정도로 디자인의 흐름을 꿰고 있어 담당자들을 놀라게 한다. 그렇지만 후계자로서 영향력을 발휘하려 들지 않는다.1990년대 후반 벤처 열풍에 인터넷뱅킹사업 등 벤처사업을 무척 하고 싶어 했지만 회사측에서 “유통업체로서 바람직한 사업은 아니다.”고 결론 내리자 조직의 결정을 순순히 따랐다. 당시 재계 2,3세들은 앞다퉈 정보기술(IT) 관련 벤처사업에 뛰어 들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까먹었지만 그는 회사의 결정을 따름으로써 ‘화’를 면했다. 그는 자신이 추진하고 싶은 사업 아이템에 대해서도 강하게 밀어붙이지는 않는다.“검토해 주십시오.”라는 수준에서 경영진들에게 얘기할 따름이다. 그 때문에 “삼성가의 전통을 이어받아 오너로서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어머니한테 교육을 잘 받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정 부사장의 여동생 유경(33)씨는 조선호텔 프로젝트 실장(상무)이다. 전공을 살려 그동안 객실 리노베이션과 인테리어 작업에 참여, 호텔의 품격을 한단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텔업계에서는 최초로 비주얼 디자이너를 채용토록 하는 등 호텔 소품부터 리노베이션까지 비주얼 디자인업무를 지휘해 왔다. 지난해 초 자신이 리노베이션했던 자연주의풍의 이탈리아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를 돌아다니며 손님들의 반응을 물어보기도 한다. 영국 사라 퍼거슨 전 왕세자비의 결혼 때 부케를 맡아 유명해진 꽃집 ‘제인파커’를 아시아 최초로 조선호텔에 들여오고, 신세계백화점에 입점시키며 꽃집의 명품 브랜드 시대를 열기도 했다. 명품에 관심이 많아 국내 처음으로 수입 멀티숍 바람을 일으켰던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분더샵’ 도입에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차원에서 구입하는 각종 미술품과 캘린더 제작에도 유경씨의 안목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촌지간으로 나이가 비슷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녀 부진(35·신라호텔 상무)씨와 같은 호텔업계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bori@seoul.co.kr ■ 정재은 명예회장은 누구 정재은(66) 신세계 명예회장은 부인 이명희 회장처럼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다만 이 회장과 달리 1년에 한차례 부장급 이상 간부를 조선호텔에 모아 놓고 세계 경제 흐름, 기업의 사회적 책임, 윤리경영 등에 대해 강연을 한다. 오너 일가의 일원으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삼성 출신 경영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회사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서다. 정 명예회장은 경기고,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대학원에서 수학한 엘리트다. 결혼 뒤에는 삼성그룹에서 활발한 경영활동을 펼쳤다.1969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후 20여년간에 걸쳐 삼성전자부품 부회장, 삼성물산 부회장, 삼성항공 부회장, 삼성종합화학 부회장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다.97년 신세계가 삼성에서 공식 분리되자 조선호텔 회장을 맡으면서 삼성을 떠났다. 그는 전자공학, 산업공학 등 자신의 전공을 살려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장인(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그는 고 이병철 회장의 특명으로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재일교포 2세 손정의(일본 소프트뱅크 사장)씨를 만나기도 했다. 고 이 회장은 그에게 “손씨가 삼성에 필요한 인물인지 한번 만나봐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당시에 그를 만난 정 명예회장은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그 뒤 손 사장의 성공을 보고 선대 회장의 예지력에 감탄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정 명예회장은 1977년 삼성전자 이사 재직시 미국 HP사와 손잡고 HP사업부를 시작한 데 이어 84년 삼성전자 사장 시절에는 자본금 1000만달러를 들여 삼성HP를 설립, 현재의 삼성전자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삼성은 컴퓨터가 전무했던 시기에 컴퓨터, 의료기기, 계측기기 분야에서 HP와 인연을 맺어 기술력을 확보하고 삼성 제품이 미국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기술력이 취약한 삼성이 HP와 같은 기업과 손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독서를 즐기는 학구적 면모를 보여 주위에서 “대학교수를 했으면 잘 했을 것 ”이라는 말을 곧잘 듣곤 했다. 경제잡지는 물론 일본 경제신문 등도 정기 구독한다.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는 책자는 임원들에게 보내고, 기사는 밑줄까지 쳐 읽어 보길 권한다. 화려한 이력과 배경 때문에 엘리트 분위기를 풍기지만 사람들과 격의없이 사귀는 소탈한 면도 있다. 부친 정상희씨는 3,5대 국회의원과 삼호방직·삼호무역 회장을 지냈다. 정상희씨는 삼성가(家)와 인연을 맺은 뒤 삼성전자 사장, 삼성물산 사장, 삼성생명 사장 등을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을 역임했다. 정 명예회장(차남)의 맏형인 고 정재덕 전 신세계고문은 경기고, 미국 노스이스트미주리주립대를 졸업하고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장, 건설부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국제상사 사장, 연합철강 사장, 하나실업 회장 등을 지냈다. 고려대 출신인 동생 재환(57)씨는 현재 삼성전기 중국동관사업장 법인장 전무로 일하고 있다. bor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두바이유 44달러 돌파

    두바이유가 사상 처음으로 44달러대의 벽을 넘었다.6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4일 거래된 중동산 두바이유는 전일보다 0.18달러 오른 배럴당 44.02달러로 5일 연속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WTI) 현물가도 53.68달러로 전일보다 0.13달러 올랐다. 그러나 북해산 브렌트유는 전날보다 0.98달러 하락한 52.4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선물시장의 경우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WTI는 53.78달러로 전일보다 0.21달러 오른 반면 런던 국제석유거래소(IPE)의 브렌트유는 51.9달러로 0.15달러 떨어졌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씨줄날줄] 영변 공습계획/이목희 논설위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CVID)’-그동안 한국과 미국이 내놓은 북한핵 해결 방안이다.‘완전한 핵폐기’로 용어를 단순화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핵폐기의 실현이 쉽지 않은 게 문제다. 김정일은 핵무기라도 가져서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결의를 곳곳에서 비친다. 경제보상을 노린 협상용으로 치부해선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울 듯싶다. 북한이 끝내 핵무장을 추구한다면 해법은 두가지뿐이다. 첫째, 무력사용 혹은 견디기 힘든 제재로 목줄을 죄는 것이다. 둘째, 핵무기로 얻는 것 이상의 체제보장을 해주는 방안이다. 애슈턴 카터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영변 핵시설 공격이 이뤄졌다면, 어떠한 방사능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성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터 교수는 1990년대 1차 북핵위기 당시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국방부 차관보를 지냈다.94년 영변 핵시설 공습계획을 지휘한 인물이다. 북폭은 김영삼 정부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 모의실험 결과 B-2스텔스기와 B-52폭격기를 동원한 영변 공습은 1∼2일안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공습후 90일안에 한반도 전면전으로 한국군 49만명, 미군 5만 2000명과 수백만 민간인이 희생당하는 끔찍한 시나리오가 예상되기도 했다. 휴전선 주위의 인구밀도가 워낙 높기 때문이다. 중동지역 전쟁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럼에도 카터 교수는 “많은 미국민들은 한국에서의 전쟁이 이라크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부시 행정부 역시 ‘제한북폭론’의 유혹을 느끼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에는 제한전이지만, 한국으로선 전면전이 된다는 점이 북핵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로 인해 한국 정부의 북핵 정책은 사실상 ‘관리’ 수준이다. 전쟁방지에 신경쓰다 보니 북한이 이미 개발한 것으로 보이는 핵을 폐기할 정도의 체제보상안을 미국이 내놓게 설득할 여력이 없다. 북한 핵무기를 조잡한 수준에서 머물도록 관리하는, 고육책을 이어가는 처지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핵전쟁 위기, 일본·타이완의 핵무장 등 엄청난 후폭풍이 우려된다. 한반도 안정을 위해 미국의 ‘화끈한 당근’이 필요하다. 북·미수교, 불가침 서면약속 등 북한 체제와 관련된 획기적 대북 제안을 미국측과 만들어내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중간급유없이 67시간 단독비행

    67시간이 걸렸다. 미국의 억만장자 모험가 스티브 포셋(61)이 특수 설계된 단발 엔진 제트기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지난달 28일 오후 6시47분(현지시간) 이륙한 캔자스주 설라이나 공항에 3일 오후 1시48분 안착했다. 중간급유 없는 세계일주 단독비행을 67시간 만에 달성한 것이다. 포셋은 초콜릿 밀크셰이크로 식사를 대신했고 잠은 몇분씩 쪼개 자며 캐나다와 대서양, 아프리카, 중동, 인도, 중국, 태평양을 거쳐 3700㎞를 비행했다. 출발한 지 몇시간 안돼 항법장치가 고장나는 바람에 포셋은 지원팀의 도움이 없었다면 기록 달성에 실패할 뻔했다. 공항 착륙 후 포셋은 수천명의 축하객들 환호 속에 “이것은 내가 오랫동안 꿈꿔온 열망이었다.”며 “난 지독한 행운아”라고 외쳤다. 그는 “지금도 전혀 졸립지 않다.”며 “어쨌든 오늘밤은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기 제작 비용을 댔던 버진애틀랜틱 창업자이자 포셋의 오랜 친구인 리처드 브랜슨 경도 마중나와 샴페인을 터트리며 대기록 달성을 축하했다. 포셋은 일본에서 하와이로 향하던 2일 8145㎏의 연료 가운데 1170㎏이 사라졌다는 얘기를 지원팀으로부터 듣고 하와이에 착륙할까 고민했지만 계속 비행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다행히 강한 제트기류를 만나 몇시간 후 로스앤젤레스 상공에 이를 수 있었다. 기록 도전을 위해 제작된 제트기 ‘글로벌 플라이어’는 11.7m의 몸체에 날개 길이만 35m에 이르며 10t의 연료를 실을 수 있다. 조종석은 조종사가 누워서 잠을 청할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하게 제작됐다. 단발 엔진으로 시속 460㎞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수소경제/우득정 논설위원

    미국의 문명비평가 제러미 리프킨은 1990년대 중반 ‘노동의 종말’‘소유의 종말’이라는 저술을 통해 기존 사회 통념을 통째 흔들어 놓았다.2002년에는 ‘수소혁명-석유시대의 종말과 세계 경제의 미래’라는 저술에서 수소가 미래의 에너지가 될 것임을 단언했다.‘해저 2만리’의 작가 쥘 베른이 1874년 발표한 공상과학소설 ‘신비의 섬’에서 예견한 수소 에너지시대의 도래를 선언한 것이다. 리프킨의 전제는 단순하다. 한정된 화석연료인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는 2002년 기준으로 204년,40.6년,60.7년 후면 바닥난다. 최근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중동 두바이유에서 보듯 석유는 더이상 값싼 연료가 아니다. 지구촌 분쟁의 씨앗이다. 화석연료는 재생 불가능할 뿐더러 공해유발 물질이다. 영국의 기상학자 존 휴튼은 화석연료가 초래하는 지구온난화 현상을 대량 살상무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래서 리프킨이 주목한 것이 지구 표면물질의 70% 이상, 우주 질량의 75%를 구성하고 있는 수소다. 수소는 어느 곳에서나 흔히 구할 수 있다.‘에너지의 민주화’‘영원한 에너지’‘마법의 에너지’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수소는 단위 질량당 에너지량이 가솔린의 4배에 이른다. 이런 이유로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3년 의회 연설에서 “수소 기술은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에너지 기술”이라면서 향후 5년간 수소 기술개발에 12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미 1990년대부터 ‘수소에너지개발법’을 제정하고 에너지부 주도로 수소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2002년 “연료전지가 수소사회의 문을 여는 열쇠”라면서 3년내 자동차 및 가정용 연료전지를 실용화하겠다고 천명했다. 특히 아이슬란드는 풍부한 자연에너지를 활용해 수소 자원을 생산하는 ‘북구의 쿠웨이트’가 되겠다는 ‘2040년 수소사회’ 프로젝트를 주요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석유수입 세계 4위로 에너지 과다 소비국으로 분류된 한국도 뒤늦게 수소기술 개발경쟁에 뛰어들었다. 산업자원부가 3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새해 업무보고를 하면서 수소경제 마스터플랜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선진국보다 5년 뒤졌다는 수소기술 격차를 얼마나 빨리 단축시킬지 주목된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두바이유 연일 최고치…정유·항공업계 비상

    국제유가가 자고 나면 뛰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승세가 4월 이후에나 다소 꺾일 것으로 내다봤다.4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3일 현지에서 거래된 중동산 두바이유는 전날보다 0.79달러 오른 배럴당 43.84달러로 나흘 연속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북해산 브렌트유 현물가도 2.57달러 오른 53.47달러로 현물거래가 시작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종전 최고가는 지난해 10월22일 52.16달러다. 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WTI)도 53.55달러로 0.45달러 오른 채 장을 마쳤다. 이날 국제유가는 미국 텍사스의 정유사에서 설비가동이 중단돼 공급 차질이 우려되고, 미국 동북부지역의 한파가 지속돼 난방유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보돼 상승세를 이어갔다. 석유공사 구자권 해외조사팀장은 “유가 하락 요인이 없어 이달 말까지는 유가 상승세가 지속될 전망”이라면서 “특히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달러화 약세와 맞물려 목표 유가를 상향조정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어 두바이유의 3월 평균가격은 전달(39.91달러)보다 높은 40달러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원유 수입량의 80%를 차지하는 두바이유는 상승세가 두드러지면서 WTI 및 브렌트유와의 가격차이를 좁히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문배 박사는 “저가의 두바이유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 경우 ‘경제 마진’을 높일 수 있어 그동안 중국 등 아시아지역에서 수요가 꾸준히 늘었다.”면서 “지난해 16달러 안팎이던 두바이유와 WTI·브렌트유의 가격차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우며,7∼10달러의 가격차가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바이유가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산업계도 초비상이다. 특히 전체 비용 중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항공업계는 가시방석이다. 연간 2600만배럴의 유류를 쓰는 대한항공은 유가가 1달러 오를 때 연간 2600만달러에 이르는 손해가 추가된다. 아시아나항공은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를 때마다 연간 150억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싱가포르항공 유가가 이미 배럴당 64달러를 돌파했다.”면서 “헤지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유가 부담을 덜기 위한 대책은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화섬업계도 아우성이다. 제품 가격에 유가 인상분을 반영하기가 쉽지 않아 갈수록 채산성이 떨어지고 있다.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어 고유가가 장기간 계속될 경우 기업의 생존 문제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정유업계도 24시간 유가 모니터를 강화한 가운데 수입선 다변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경두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6일 TV 하이라이트]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50분) 1936년 소련, 스탈린의 부하인 보안부장 이바노프는 한 아파트에 입주하게 된다. 최고 간부들과 상위 1%의 사람들만 살 수 있다는 모스크바의 강변 아파트에 입주한 이바노프는 입주 날부터 한 주민의 죽음을 보게 된다. 과연 아파트 속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1시25분) 이라크, 이스라엘, 요르단과 인접한 중동국가 시리아는 그동안 주변국과의 전쟁으로 고통을 받아왔다. 여름에는 45도의 무더위, 겨울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연교차를 보이는 불모의 초원지대가 국토의 절반 이상이다. 또 폭발적인 인구·가축의 증가로 국토의 사막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곳. ●특선 다큐멘터리(EBS 오후 7시10분) 이집트의 동쪽 지방에서 시리아 반군세력이 파라오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왕권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젊은 투트모세 3세는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투트모세 3세가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동시에 이집트왕국이 제국으로 거듭나게 되는 메기도 전투를 살펴본다. ●TV 동물농장(SBS 오전 9시40분) 동물농장 농장주, 신동엽이 일일 수의사에 도전한다. 수중 바다생물을 만나러 간 윤현진.‘견생역전’ 유기견은 내가 지킨다, 버림받은 개들의 수호천사가 된 정선희. 사자들의 대부,‘라이언 킹’에 도전하는 김생민. 이들이 펼치는 기상천외한 미션 도전기가 펼쳐진다. ●부모님 전상서(KBS2 오후 7시55분) 창수는 성실에게 빈 집에서 자기 싫다며 재워 달라고 말하지만 성실은 허락하지 않는다. 술 한잔하며 생모에 대한 생각을 털어 버리려는 금주의 마음을 헤아려 고모방에 모여 술자리를 한다. 미연과 아리는 같이 상을 치우다가 문제가 생겨 서로 마음이 상하고…. ●불멸의 이순신(KBS1 오후 9시30분) 거북선 때문에 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고, 이순신 역시 어떤 처벌을 받을지 모르는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이순신은 기방을 전전하며 술독에 빠져 있는 나대용을 직접 잡아와 거북선과 함께 목숨을 잃은 병사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이대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고 호통친다.
  • 두바이유 43弗 첫 돌파

    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WTI)가 53달러대를 4개월 만에 다시 돌파하고 중동산 두바이유가 사상 처음으로 43달러를 넘어서는 등 국제 유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2일(현지시간) 두바이유는 전날보다 0.25달러 상승한 배럴당 43.05달러로 3일 연속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이날 가격은 지난달 평균보다 3.14달러나 높은 것으로 10일 이동평균가격은 41.66달러,20일 평균가격은 40.21달러에 달했다. 4월 인도분 WTI 가격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전날에 비해 배럴당 1.37달러(2.65%) 상승한 53.05달러에 마감, 지난해 10월 이후 4개월 만에 다시 53달러대를 돌파했다. WTI 선물 가격은 이로써 지난 1년간 45% 상승했으나 사상 최고기록인 지난해 10월25일의 배럴당 55.67달러에는 못 미쳤다. 이같은 유가 급등은 미국의 난방유 재고가 예상보다 큰 폭인 170만배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 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텍사스 정유공장 화재 등으로 미국 정유공장 가동률이 89.3%에 그치고 투기자금이 매입세에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블룸버그 통신은 분석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긴급진단] 혼미의 레바논 정국

    레바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중동 불안의 최일선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영토 분쟁이 있지만 이·팔 분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게 바로 레바논의 복잡한 사정이다. 이스라엘의 이웃 국가로서 팔레스타인에 동조해야 한다는 감정이 레바논 내에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반면 팔레스타인의 무력 도발을 규제하기 위해 레바논 내 친팔레스타인계 세력을 억제하는 게 급선무라는 주장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피크 하리리 총리 암살 이후 계속된 레바논 야당측의 시위로 오마르 카라미 총리 내각이 총사퇴했지만 차기 내각 구성 문제를 논의할 야당측이 시리아군의 완전 철군이 보장되기 전에는 정부구성 협상을 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는 것도 레바논 내 친팔레스타인계 헤즈볼라 그룹에 대한 시리아의 영향력을 의식한 때문이다. 결국 레바논을 사이에 두고 시리아와 이스라엘간에 간접적인 힘의 대결이 중동 평화구도를 결정짓는 중대 변수로 작용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같은 힘의 균형이 지난달 14일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을 계기로 무너졌다. 시리아의 지원을 받아온 정부에 대해 불만을 가져온 레바논 야당은 이 기회에 시리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이스라엘과의 독자적 관계를 모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레바논 내에 거점을 두고 이스라엘에 대한 무력투쟁을 주도해온 대표적 무장단체인 헤즈볼라의 무력화를 희망하는 미국 등은 당연히 레바논에서 시리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독자 세력으로 성장한 헤즈볼라 등 반(反)이스라엘 무장저항단체가 시리아의 철군이 이뤄지더라도 무력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시리아군의 철군에서 느끼는 위기감으로 인해 대이스라엘 무력투쟁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중동 갈등을 더욱 증폭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가까스로 정국 안정을 유지해온 레바논이 국내정국 안정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쳐온 시리아의 철군으로 정국 불안에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지 모른다는 데 있다. 레바논에서는 안정을 희구하는 세력과 아랍민족주의에 기초한 강경투쟁파가 공존하고 있다. 권력 안정을 지탱해온 시리아의 철군은 이 두 세력간 힘의 균형을 무너뜨려 레바논을 내전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두바이유 1배럴 42.80弗

    중동산 두바이유가 이틀 연속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갔다. 이런 가운데 국제유가는 공급 부족과 투기 확산 등의 영향으로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2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1일 현지에서 거래된 두바이유는 미국 동북부 지역의 폭설과 투기자금 유입 등의 영향으로 전날보다 0.12달러 오른 배럴당 42.80달러였다. 전날 기록했던 사상 최고가를 하루만에 갈아치웠다. 북해산 브렌트유도 현물가의 경우 0.11달러 오른 50.06달러로 50달러대에 재진입했다. 런던 국제석유거래소(IPE)의 선물가도 0.05달러 상승한 50.11달러에 거래됐다. 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단기 차익을 실현한 매물이 증가하면서 현물가와 선물가가 각각 0.03달러,0.07달러 내린 51.63달러,51.68달러에 장을 마쳤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오는 16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총회를 앞두고 OPEC 의장이 증산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어 고유가로 인해 감산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관계자들의 발언이 잇따르면서 유가 급등을 상당부분 억제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날 2월 보고서를 통해 중국 등에서 수요가 늘어 올해 원유 수요는 1월 전망치보다 하루 평균 10만배럴 증가하는 반면 OPEC에 포함되지 않은 국가들의 원유 생산량은 20만배럴 감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올 1분기에 하루 평균 60만배럴 초과 공급에서 10만배럴 공급 부족으로 전망을 재조정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美 최대 관심은 ‘중동평화’

    美 최대 관심은 ‘중동평화’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대외정책의 관심은 압도적으로 중동 지역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핵보유 문제를 안고 있는 북한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라크, 중국, 이란 등에 이어 미국의 다섯번째 관심 대상국인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신문이 올 1,2월 두달 동안 미 국무부가 실시한 31차례의 정례 브리핑을 분석한 결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 문제가 30차례나 거론돼 미국의 가장 큰 관심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11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사망한 뒤 마무드 아바스 내각이 출범, 협상 의지를 밝히고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도 가자지구에서의 철수를 본격 추진하는 등 일련의 평화 정착 과정이 진행되는 데 따른 것이다. ●이·팔협상 30회 언급… 중동국가 압도적 두번째로 브리핑에서 많이 거론된 나라는 이라크로 총선과 계속되는 테러 및 안정화 문제들이 23회에 걸쳐 언급됐다. 특히 이라크는 반군의 저항이 끊이지 않아 미군 사상자가 계속 발생하면서 국내정치와도 연계되기 때문에 브리핑에 단골로 오르고 있다. 또 이란이 네번째, 시리아·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레바논이 각각 7·8·9·12번째를 차지하는 등 국무부 브리핑에서 중동국가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해 조지 부시 대통령 2기 행정부의 ‘중동 민주화’ 정책이 적극 추진되고 있음을 방증했다. 또 개별 나라와는 별개로 중동지역 전체로도 세번이나 브리핑에서 거론됐다. ●이란과 북한의 우선순위는? 부시 대통령이 이른바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이라크와 이란, 북한 모두 국무부 브리핑에서 자주 거론되는 국가들이다. 특히 이라크가 훨씬 많고, 이란과 북한은 주제에 오른 횟수가 비슷하지만 이란이 약간 많은 것은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번째로 많이 등장한 국가는 중국.16번 가운데 6번은 타이완과의 이른바 ‘양안 관계’가 도마에 올랐다. ●“핵 개발하는 한국이 싫다?” 북한 문제가 13차례 브리핑에서 거론된 데 비해 한국 관련 현안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워싱턴 방문 당시를 포함해 2번 등장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우방국은 국무부 브리핑에 자주 오르내리지 않았다. 영국이 3번, 일본과 폴란드가 2번씩 거론됐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는 별도 국가로는 질의 대상이 되지 않았고 유럽연합이나 유럽,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등의 주제 아래 거론됐다. 북핵 문제가 자주 국무부 브리핑과 언론을 장식하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미국인들은 북한이 아닌 남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은 미국 언론사에 “동맹국인 한국이 왜 핵 개발을 해서 말썽을 부리느냐.”는 식의 항의가 들어온다고 전했다. ●두달 동안 58개국 거론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는 사실을 반영하듯 지난 두달간 국무부 브리핑에서는 무려 58개국이 등장했다. 여기에 유엔과 유럽연합, 나토 등 국제기구와 유럽·중동 등 지역, 쓰나미 등 자연재해, 환경, 테러리즘 등이 브리핑 주제로 추가됐다. ●최우선 현안은 역시 이라크 국무부가 브리핑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언급한 ‘핫 이슈’를 별도 분석한 결과로는 이라크가 6차례로 가장 많았다. 선거와 테러 등 굵직한 뉴스가 계속 생산됐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많았던 핫 이슈는 북핵 문제였다. 북한이 지난달 10일 핵무기 보유와 6자회담 무기한 중단을 선언하면서 최우선 현안으로 세차례 등장했다. 세번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었으며 이집트와 우크라이나도 각각 두번씩 최우선 현안으로 거론됐다. 두달 동안 최우선 현안으로 언급된 국가도 18개국에 이른다. 국무부 브리핑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낮 12시쯤(현지시간) 실시되며 이곳에서 국무부 대변인들이 주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을 설명한다. 보통 40분 정도 이어지는 브리핑에서 적게는 3∼4개국, 많게는 10개국이 질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da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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