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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친미 무바라크 물러나도 무슬림형제단 집권만은…

    美, 친미 무바라크 물러나도 무슬림형제단 집권만은…

    이집트 시위 상황이 격화되면서 포스트 무바라크 체제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 행정부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시위 초기 무바라크 정권의 퇴진에는 반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미국은 현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본격적으로 ‘무바라크 이후’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무바라크 정권 붕괴가 이슬람형제단 등이 주도하는 반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막아야 한다는 게 미 행정부의 판단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9일과 30일 잇따라 영국, 이스라엘,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 각국 정상과 전화통화를 하며 공동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30일 CBS방송에 출연해 “질서 있는 전환을 촉진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힐러리 장관의 이 같은 언급에 대해 30일 “무바라크의 퇴진이 자칫 이집트에서 정치적 진공상태를 초래해 반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9일 일리애나 로스레티넌 하원 외교위원장이 “책임 있는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기준을 충족하는 후보들이 참여하는 선거만 지지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무슬림형제단을 겨냥한 발언이라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미국은 무엇보다 이라크 집권세력의 굳건한 버팀목이 돼 온 군부를 다독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30일 무함마드 후세인 탄타위 이집트 국방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장시간 사태 수습 방안을 논의했던 것으로 AP통신 등이 전했다. 미국은 이집트 군부에 대한 설득작업을 통해 이들을 무바라크 정권이나 시위대 어느 한 쪽도 아닌 ‘중립지대’로 묶어두는 한편 그 다음 수순으로 이집트 내 주요 정치세력이 체제 전복과 같은 극단적 방법이 아닌 협상과 타협을 통해 ‘포스트 무바라크 체제’를 꾸려나가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급작스러운 체제 전복으로 혼란이 이어질 경우 미국으로서는 자칫 대 중동전략의 핵심축을 잃게 될 뿐더러 자칫 극단적인 반미 세력이 집권할 경우 아랍권 전체에 반미 기류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미국의 경계대상인 무슬림형제단은 1928년 결성된 이집트 최대 정치·사회단체로, 하마스 등 중동 과격단체의 뿌리에 해당한다. 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2005년 총선에서는 조직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전체 의석의 20%나 되는 88석을 차지할 정도로 강한 조직력을 자랑한다. ‘이슬람법(샤리아)에 근거한 사회’를 목표로 삼지만 최근 폭력 사용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고 다원주의를 수용하는 등 전에 비해서는 온건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제 테러단체인 알카에다와는 수십년간 앙숙 관계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 허락받고 AG 출전한 까닭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 허락받고 AG 출전한 까닭은?

     ‘수백년을 사막에 터를 잡고 살았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뒤 서구 열강들이 회의를 하더니 다른 민족에 땅을 양보하란다. 이 민족이 수천년전 사막의 주인이었다며 한쪽 구석으로 쫓아냈다’  약소국 팔레스타인과 강대국 이스라엘의 얘기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내준 한쪽 땅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됐다. 다른 국가로 가려고 할 때에도 이스라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팔레스타인 선수 41명도 이스라엘의 허가를 받고서야 겨우 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스라엘은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지 못한다. 유럽에 편성돼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축구 지역예선도 유럽 국가들과 치른다. 이스라엘과 관계가 좋지 않은 또다른 국가들의 ‘입김’에 의해 아시안 게임 출전이 오래전에 막혔다.  이스라엘은 지리적으로 아시아에 속한다. 레바논·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 등과 인접해 있다. 예전에는 아시안 게임은 물론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에도 참가했다.  하지만 1948~1973년까지 4차례 중동전쟁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이집트·시리아 등 중동 국가가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패하면서 이들간의 관계는 최악에 이르렀다. 이 여파가 스포츠까지 번졌다. 중동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아시안 게임 참가를 반대했다. 대회에 출전해 맞붙을 경우 기권을 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결국 이스라엘은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을 끝으로 더이상 출전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이 아시아 지역내 스포츠 경기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이유다. 42억 아시아인의 화려한 축제의 한편에서는 어느 한쪽만을 탓할 수 없는 그림자가 남아 있다. 서울신문 김진아 수습기자 jin@seoul.co.kr
  • 통쾌한 승리? 왕따의 시작!

    통쾌한 승리? 왕따의 시작!

    첫날 오전 8시45분, 세 개의 이스라엘 전투기 편대는 시나이 반도와 수에즈에 있는 이집트의 모든 공군 기지를 기습, 쑥대밭으로 만든다. 400여대의 전투기가 폭격되며 이집트 공군력은 궤멸된다. 둘째 날 오전 1시, 요르단령인 동예루살렘으로 이스라엘 공수부대원들이 투입된다. 요르단 후세인왕은 전의를 상실한다. 오전 5시45분 시리아는 뒤늦게 골란고원 국경 즈음에서 이스라엘과 교전을 시작했지만 곧바로 패퇴당한다. 셋째 날, 새벽녘 이집트군의 3분의1만이 시나이 반도를 탈출, 수에즈 운하를 건너 목숨을 건진다. 이스라엘은 저녁 무렵 요르단령이었던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을 완전히 점령한다. 요르단은 항복과 마찬가지의 휴전을 요청한다. 넷째 날, 이집트가 손을 들었고, 다섯째 날 시리아의 골란고원 점령을 마쳤고, 여섯째 날 시리아마저 백기를 흔든다. 태초에 ‘이 전쟁’이 있었다. 1967년 6월5~10일, 지중해 동부를 접한 중동의 일부 지역에서 단 6일 동안 벌어진 ‘이 전쟁’은 반 세기 넘게 자행되고 있는 테러와 학살, 파괴와 통곡 등 반문명적 혼란과 악순환을 불러일으킨 결정적 첫걸음이었다. 또한 중동 지역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거듭되는 반(反) 미국, 반 이슬람 등의 갈등 한가운데 있도록 만들었다. 이스라엘의 승리였다. 근대 세계 전쟁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운 대승(大勝)이자 쾌승(快勝)을 거뒀을뿐더러 이스라엘로서는 아랍 국가들 틈바구니의 위태로움 속에서 근대 국가 성립의 확실한 토대를 닦을 수 있었다. 3차 중동전쟁인 이 전쟁을 이스라엘과 서방 사가(史家)들은 ‘6일 전쟁’이라 불렀고, 아랍에서는 ‘6월 전쟁’이라 불렀다. ‘6일 전쟁’은 속전속결 전투의 전형이었다.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첩보와 미국, 유럽의 군사지원을 바탕으로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쿠웨이트, 이라크 등 주변 아랍 연합에 기습 공격을 가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서안 지구, 동예루살렘, 시나이 반도, 골란고원 등을 차례로 점령했다. 이스라엘이 경제, 외교, 군사 등 모든 면에서 중동의 새로운 패자(覇者)임을 만방에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결코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6일 전쟁’의 승리는 중동 지역에 몰아친 비극과 증오의 시작이었고, 고통과 학살은 쉼없이 확대 재생산됐다. 영국 BBC의 중동 통신원을 지낸 제러미 보엔은 ‘6일 전쟁’(김혜성 옮김, 플래닛미디어 펴냄)을 통해 이 전쟁이 치러진 6일 동안을 정확하고 치밀한 시간, 장소, 인물별 묘사로 재구성한다. 기자 특유의 방대한 인터뷰 취재 자료를 바탕으로 마치 한 걸음 곁에서 전쟁의 모든 상황을 지켜본 듯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풀어나간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침 없는 객관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미덕을 보여준다. 저자 보엔은 한 편의 전투 소설을 읽는 듯 긴장감을 끌어올리다가도 어느새 냉엄한 현실 속의 역사 인식을 깨우쳐 주곤 한다. 이스라엘은 이미 1948년 영국 등 UN의 지지를 등에 업고서 건국을 선포하며 아랍 국가들과 1차 중동전쟁을 치렀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 78%를 점령했고, 팔레스타인 사람 80만명은 난민이 됐다. 이후 1956년 이집트와 대결하는 2차 중동 전쟁을 거치고 10년 뒤 치른 ‘6일 전쟁’은 이스라엘 입장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전쟁이었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은 오만함으로 바뀌었고, 점령 지역을 돌려주라는 유엔의 권고 사항마저 무시하고, 팔레스타인과 평화 협상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자국 총리(이츠하크 라빈)를 암살했을 정도의 폭력이 일상화된 나라로 바뀌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기도 하다. 요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유대인 정착촌 건설도 ‘6일 전쟁’ 이후에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테러와 분쟁, 갈등의 최전선에 일반 유대인들을 보낸 뒤, 그들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을 추가로 배치하는 식이다. 과거 역사 속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라는 면죄부를 앞세워 폭력과 광기를 무시로 자행하며 100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역사의 또 다른 피해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냐, 아랍이냐 하는 정치적 호불호, 혹은 종교적, 이념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중과 경외, 평화의 선순환 체제 마련이 절실한 이유다. “만약 우리가 생명을 위해 싸웠다면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통곡의 벽을 위해 싸웠다면 그것은 새끼손가락만큼의 가치도 없다.” 통곡의 벽은 이스라엘이 6일 전쟁을 통해 점령한 예루살렘 구시가지(동예루살렘)에 있으며 유대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일 전쟁 중에 아들을 잃은 한 이스라엘 어머니가 외치는 이 절규가 전쟁이 품고 있는 반 생명적 속성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 준다. 2만 5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기획 한국군 무기 21] 국군이 보유한 러시아 전차 T-80U

    [기획 한국군 무기 21] 국군이 보유한 러시아 전차 T-80U

    1996년 9월, 우리나라는 세계최초로 ‘T-80U’ 전차를 수입했다. 이 전차는 러시아의 주력전차로 개발국인 러시아조차 그때까지 400여 대밖에 도입하지 못했던 최신 장비였다. 아무리 냉전이 끝났다고는 해도 러시아의 최신 전차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미국의 동맹국에 수출된 것은 전례가 없는 큰 사건이었고, 실제로 도입 직후 전차를 분해해 그 성능이 연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일은 당시 러시아가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나라는 냉전이 끝난 직후 소련에 경협차관을 제공했으나 소련 붕괴 후 이를 승계한 러시아가 경제난을 겪으면서 차관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차관을 현금이 아닌 방위산업 물자로 돌려받는 ‘불곰사업’이 계획된다. 1995년부터 진행된 1차 불곰사업의 결과 ‘BMP-3’ 장갑차와 ‘메티스-M’ 대전차 미사일 등 러시아제 무기가 대량으로 도입됐고 30여 대의 T-80U 전차도 이때 국내로 들어오게 된다. ◆ 서방 측을 긴장시킨 T-80 전차 T-80U 전차의 원형인 ‘T-80’ 전차는 1976년 최초로 등장했다. 이때는 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전차의 성능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간간이 습득된 정보를 통해 이 전차의 성능이 조금씩 드러나자 서방측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T-80 전차가 ‘T-64’ 전차를 개량한 전차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T-64 전차는 125㎜ 활강포와 강력한 장갑을 채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다른 무기와는 달리 전혀 수출이 되지 않고 소련군만을 위해 배치됐다. T-64 전차의 기계적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려졌기 때문에 서방 측은 이 전차를 두려워했다. 실제로 T-80 전차는 T-64 전차의 신뢰성을 개선하기 위해 개발돼 명중률이 향상된 신형 사격통제장비, 신형 장갑, 1000마력의 가스터빈 엔진을 탑재해 동시기의 서방측 전차보다 우수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소련은 중동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을 겪으면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포탑을 완전히 새로 설계해 방어력을 대폭 향상시키고 사격통제장비 등을 개량한 T-80U 전차를 개발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러시아 고문단도 놀란 T-80U 1991년 걸프전 당시,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전차부대를 보유하고 있던 이라크군은 미군 전차부대를 맞이해 전투다운 전투조차 벌이지 못하고 일방적인 패배를 당했다. T-80 전차에 비해 성능이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동급의 화력을 지닌 ‘T-72’ 전차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던 이라크군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는 미군조차 예상치 못했다. 나중에서야 이라크군의 T-72 전차가 러시아의 전차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수출형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무기를 사오는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지만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진국들이 흔히 취하는 조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T-80U 전차는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수출형이 별도로 개발되지 않은 T-80U 전차였기 때문에 러시아군이 쓰기 위해 생산해 놓은 전차가 그대로 도입됐다. 기술자문을 위해 초빙된 러시아 고문단조차 기술유출을 막기 위한 별도의 조치 없이 전차가 수출됐다는 점에 놀랐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또 적성 장비연구를 목적으로 도입됐기 때문에 기관총은 물론 승무원들의 헬멧까지 러시아제가 그대로 들어왔다. 다만 무전기만 국산 장비가 탑재됐다. ◆ 육군, T-80U에 만족하다 T-80U전차 도입 직후 기계화학교에서 연구용으로만 운용됐다. 성능이 떨어진다기보다 북한의 전차와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실전 상황에서 피아식별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T-80U 전차를 경험해본 전차병들은 이 전차의 우수성에 대해 입을 모은다. 3세대 전차 중에서는 가벼운 축에 속하는 46t의 무게를 가지고 있지만 엔진 출력은 가장 높은 1250마력에 달해 시속 70㎞라는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 자동장전장치를 탑재해 흔들리는 와중에도 신속하게 포탄을 재장전 할 수 있으며 사정거리가 5㎞에 달하는 포발사 대전차 미사일인 ‘9M119’도 사격할 수 있어 공격력도 우수하다. 또 K-1A1 전차에도 없는 양압장치와 방사선을 막을 수 있는 특수장갑을 갖추고 있어 화생방 상황에서도 작전을 계속할 수 있다. 양압장치는 실내의 기압을 약간 높게 유지해 외부의 오염된 공기가 유입되지 못하게 하는 장치다. 이는 T-80U 전차가 냉전 당시에 개발된 까닭에 핵전쟁 상황에서도 작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T-80U 전차의 우수한 성능과 기계적 신뢰성에 만족한 육군은 2차 불곰사업을 통해 지휘용인 T-80UK 전차 2대를 추가로 도입, 2005년 무렵 동부전선에 실전배치하기에 이른다. ◆ T-80U 전차 제원 길이 : 9.66m 폭 : 3.6m 무게 : 46t 주무장 : 2A46M-4 125㎜ 활강포(포탄 45발) 보조무장 : 7.62㎜ PKT 기관총 1정   12.7㎜ NSV 중기관총 1정 엔진 : GTD-1250 가스터빈 엔진(1250마력) 항속거리 : 약 340㎞(보조연료통 추가시 450㎞) 속도 : 최대 약 70㎞/h 도하수심 : 약 5.5m 승무원 : 전차장, 조종수, 포수 등 3명 서울신문 M&M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슈 Q&A]팔레스타인·이스라엘·미국 분쟁원인과 향후 전망

    [이슈 Q&A]팔레스타인·이스라엘·미국 분쟁원인과 향후 전망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또다시 국제사회의 주요 뉴스로 부상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 5500여명과 이스라엘인 1000여명, 외국인 64명이 목숨을 잃었던 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봉기)가 일어난 지 10년 만에 3차 인티파다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스라엘이 무슬림 성지 바로 옆에 시나고그(유대교 예배당)를 세우면서 시위가 격해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스라엘과 미국은 정착촌 건설 문제를 둘러싸고 외교적 갈등을 겪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현대사를 전공한 홍미정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로부터 팔레스타인·이스라엘·미국 3자를 둘러싼 갈등의 원인과 향후 전망을 들어봤다. Q: 이·팔 갈등의 핵심은. A: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게 근본 원인이다. 그 중에서도 정착촌 건설이 핵심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때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뒤 국제법을 어긴 채 정착촌을 건설하고 있다. 정착촌 거주민이 동예루살렘만 22만여명, 서안지구까지 합하면 50만명이 넘는다. 정착촌이 들어서면 그 다음은 정착민 안전을 이유로 군대가 주둔하고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강제철거시킨다. 정착촌이 수자원을 독점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겪는 물부족도 심각하다. Q: 이스라엘 정착촌 강행 이유는. A: 이스라엘만의 이스라엘 건설 이·팔 평화협상과 관련한 논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동등한 이스라엘 시민으로 인정하는 ‘1국가 해법’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2국가 해법’이 있다. 이스라엘은 1국가 해법을 대단히 싫어한다. 팔레스타인 난민까지 합하면 ‘이스라엘인’보다 인구가 두 배나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를 건설하더라도 계속 국경선과 영공을 통제하려고 한다. 논의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 그러는 와중에 이스라엘은 정착촌을 늘리며 팔레스타인인들을 계속 몰아내고 있다. Q: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 전망은. A: 확대 이스라엘이 지난 15일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시나고그 재건축 봉헌식을 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무슬림들이 3대 성지로 꼽는 알아크사 사원에서 400m가량 떨어진 곳에 시나고그를 세웠다. 통행을 명분으로 사원 밑으로 터널을 뚫는 바람에 사원이 파손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이 알아크사 사원을 무너뜨리려 한다고 의심한다. 지난 2000년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전 총리가 군인들과 함께 알아크사 사원을 시찰한 것이 2차 인티파다의 계기가 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Q:이·팔 문제해결에 미국이 도움줄까. A:글쎄 미국이 의지만 있으면 이·팔 문제는 당장 해결 가능하다. 미국은 해마다 막대한 군사원조를 이스라엘에 제공한다. 2011회계연도 정부예산안에서도 30억달러를 책정했다. 정부차관과 민간 지원까지 합하면 연간 100억달러 수준이다. 미국이 당장 군사지원만 동결하면 이스라엘은 바로 손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도 그걸 잘 안다. 미국은 이·팔 문제의 핵심인 정착촌 문제에 대해 늘 어정쩡한 자세였다. 냉소적으로 말한다면 그동안 미국의 태도는 어린이 두 명이 서로 싸우는데 한 아이에게만 몽둥이를 쥐어주면서 대화로 해결하라고 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Q:최근 미국과 이스라엘 갈등 원인은. A:미국의 체면손상 이스라엘이 미국의 체면을 깎아내린 게 원인이다. 이스라엘은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 중일 때 정착촌 신축 계획을 발표했다. 또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착촌 건설 강행 의사를 밝혔다. 미국은 단단히 화가 났다. 16일로 예정됐던 조지 미첼 중동특사 방문도 취소했다. 결국 이스라엘이 적당한 선에서 미국의 체면만 살려주면 미국과 이스라엘 갈등은 자연스레 잠잠해질 수밖에 없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팔레스타인 유엔표결로 독립추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상이 정착촌 문제로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유엔 안정보장이사회에 독립국 지위 보장을 요청할 것이라고 협상 최고 책임자가 15일 밝혔다.신화통신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의 사에브 에레카트는 이날 ‘보이스 오브 팔레스타인’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독립 선언은 필요 없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유엔 안보리와 총회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11년 전인 1988년 이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선포한 바 있다.또 그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준비가 되면 우리는 행동으로 옮길 것”이라면서 국제사회의 도움을 얻기 위해 아랍 국가와 협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만간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남미를 방문해 남미 국가들의 동조도 이끌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팔레스타인의 살람 파야드 총리는 독립에 대비한 2년짜리 개발 계획에 착수했다.에레카트의 발언이 알려지자 이스라엘의 실반 샬롬 부총리는 “일방적인 조치는 우리 모두가 달성하길 원하는 결과에 이르지 못하게 만들 것”이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직접 협상만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실제로 유엔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의 국경선을 따라 독립 국가를 수립하길 원하는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지지하더라도 이는 실현되기 어렵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미 이곳에 50만명의 이스라엘 정착민이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만명의 이스라엘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가장 안전한 장갑차 ‘아크자리트’

    가장 안전한 장갑차 ‘아크자리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급조폭발물(IED)에 대한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뒤늦게 주목받고 있는 장비가 있다. 바로 이스라엘군의 ‘아크자리트’(Achzarit) 보병 수송 장갑차(APC). 아크자리트는 히브리어로 ‘잔인함’이란 뜻이다. 이 차량은 다른 장갑차들과 달리 원래 ‘전차’였기에 방어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특징이 있다. 보통 장갑차들은 기동력과 생산성 등을 이유로 가볍고 단단한 알루미늄 합금을 이용해 만들어진다. 때문에 기관총탄 정도는 막아낼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대구경 포탄이나 ‘RPG(로켓추진유탄)-7’ 같은 대전차무기에는 취약하다는 단점을 갖는다. 특히 RPG-7은 고열의 화염을 발생시키는 탓에 열에 약한 알루미늄이 녹아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RPG-7에 명중당한 ‘M-113’ 장갑차에 화재가 발생해 타고있던 병사들이 모두 사망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하지만 아크자리트는 이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 이스라엘이 3, 4차 중동전을 치루면서 아랍군으로부터 노획한 수백 대의 ‘T-55’ 전차를 이용해 만들어졌기 때문. 이스라엘은 먼저 포탑을 제거하고 엔진을 뒤에서 앞으로 옮겨 보병이 탈 만한 공간을 만든 후, 장갑을 추가해 더욱 강력한 방어력을 갖춘 아크자리트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아크자리트의 무게는 44톤에 달하게 돼 ‘중장갑 보병 수송차’ (HAPC, Heavily Armored Personnel Carrier)라는 새로운 분류를 만들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장갑차가 됐다. 네 차례의 전쟁과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개발돼 400대 이상 만들어진 아크자리트는 우수한 방어력으로 팔레스타인 세력과의 전투에서 수많은 이스라엘 병사들을 보호했다. 이에 만족한 이스라엘은 자국산 ‘메르카바’(Merkava mk IV) 전차를 이용한 ‘나메르’(Namer)라는 새로운 장갑차를 개발해 아크자리트를 대체하고 있다. 사진 = military today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발언대]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윤은기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

    [발언대]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윤은기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

    해마다 9월이면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59년 전에 발발했던, 우리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6·25전쟁의 포화 속에서 조국을 구하고자 1950년 9월 전쟁터로 달려온 재일(在日) 학도의용군의 참전정신이다. 그들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해 전세가 역전되고 ‘9·28 서울수복’을 맞아 중앙청에 다시 태극기를 게양하는 감격을 경험했다. 흔히 애국심을 이야기할 때 1967년 제3차 중동전 당시 이스라엘 유학생들을 예로 들지만 재일 학도의용군은 이스라엘 유학생들보다도 뛰어난 애국정신의 표상이 되고 있다. 지금은 노병이 됐지만 당시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구하고자 자진 참전한 재일 학도의용군의 애국충정은 뜨거웠다. 내년이면 6·25 발발 60주년이다. 이를 기념하는 것은 참혹한 전쟁 그 자체를 미화하거나 지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역사적 사실로서의 전쟁을 잊지 않고, 그 교훈을 인식함으로써 다시는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것을 움직이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앞으로 나아가고, 그 방향과 속도 또한 구성원들의 결집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말이 있다. 저명한 역사학자인 E 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지 않았던가. 과거를 잊은 민족에 비극은 되풀이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마침 우리 정부에서는 6·25 발발 60주년에 대비해 범정부적으로 추진기획단을 발족하고 지난 8월5일 기념사업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8월27일에는 유엔 참전 21개국 주한공관 관계자 및 무관을 초청해 기념사업 설명회를 개최했다. 다행한 일이다. 이 같은 조치는 6·25 전쟁을 기억하고 평화의지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윤은기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
  • “무사비 압승 입증할 비밀문서 입수”

    이란 대선의 결과를 뒤집을 만한 비밀문서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은 지난 12일 대선에서 미르 호세인 무사비 후보가 압승했다는 내용이 담긴 비밀문서를 입수했다고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동전문기자 로버트 피스크가 입수한 이 사본은 사데크 마수리 이란 내무장관이 대선 직후인 13일 작성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문서에는 무사비 후보가 1900여만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560여만표를 얻어 3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내용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62.6%의 득표율로 압승했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또 문서에는 “선거 이후 야당과 후보자들은 엄격한 감시 아래 놓일 것”이라며 “진짜 선거 결과는 최고 지도자만 보시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하지만 문서의 진위 여부는 불분명하다. 피스크 기자는 “서민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아마디네자드가 560여만표에 그쳤고, 지지층이 불분명한 메흐디 카루비 후보가 2위에 올랐다.”면서 위조문서일 가능성도 덧붙였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오바마 ‘스마트 외교’ 이란에 통할까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스마트 외교’의 본격 가동에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이란력(曆) 새해에 맞춰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이란 지도자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제의했다. 그는 이어 핵프로그램과 이스라엘과의 적대관계에 대해 이란과 직접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다. 기존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운 하드파워 이외에 외교와 문화교류, 원조 등 소프트파워의 조화를 이룬 이른바 스마트 외교를 강조한 것. 미국에 대한 위협을 거둔다면 언제든 손을 내밀어 잡을 수 있다고 밝혔고, 비디오 메시지는 이같은 선언에 대한 첫 제스처인 셈이다.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미 행정부가 앞으로 이란과의 대화를 위해 추가적인 화해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은 이번 화해 제의가 일과성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이란의 반응은 미국의 화해제의의 진정성을 지켜보겠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21일 이란 북동부의 라샤드에서 수만명의 지지자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제의는 ‘구호’에 불과하다며 30년간 지속된 적대정책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의 발언은 오바마 대통령의 화해제의에 대한 이란의 첫 공식 반응이다. 하메네이는 미국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의혹과 테러리즘 지원을 계속 문제 삼는 한 화해 제의는 구호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가 이달 초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연장한 조치 등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미국이 1953년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축출하는 데 관여한 것에 대한 사과와 함께 이스라엘과의 관계 전면 재검토,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및 미국내 이란 자산동결 해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화해제의가 그렇다고 덮어 두고 관계개선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로버트 우드 미 국무부 대변인 직무대행이 20일 정례브리핑에서 외교를 통해 핵개발 의혹과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테러단체 지원 등 현안들을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대목이 이를 뒷받침한다.미국의 중동전문가들은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추가적 화해조치로 이란에 대한 여객기 부품 판매금지 해제, 미국 내 이란 자산 동결 해제 등을 검토할 것으로 보고 있다.미국은 이란을 중동정책의 핵으로 보고 있다. 이란과의 관계개선 여하에 따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테러정책,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등이 달려 있다고 본다. 언제쯤 국제무대에서 미국과 이란의 직접 접촉이 이뤄질지 주목된다.kmkim@seoul.co.kr
  • 인간 문선명을 만나다

    “하나님은 왜 나를 불렀을까요? 나는 고집불통에다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소년일 뿐이었습니다. 내게서 취하실 것이 있었다면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는 마음, 하나님을 향한 애절한 사랑이었을 겁니다. 지금도 나는 지독하게 하나님의 사랑에만 목을 매고 사는 미련한 사람입니다.” 지난 1월 구순(九旬)을 맞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문선명 총재가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김영사)를 펴냈다. 3년간의 기획을 거쳐 2년여의 집필과 탈고, 수정 끝에 나온 자서전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베트남 전쟁, 중동전 등 전쟁과 분열로 점철된 20세기를 관통하며 종교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살아온 문 총재의 역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문 총재는 자서전을 통해 “16세 되던 해 부활절(4월17일) 아침, 기도 중 홀연히 인류 구원에 대한 천명을 자각하고 일평생 공의의 노정을 걷기로 다짐했다.”고 밝히고 있다. 평양과 부산에서 뜻을 펴다 서울 청파동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회)를 창립해 본격적으로 선교에 나선 게 1954년. 1957년 일본에서 해외선교를 시작해 1972년 미국에 진출하면서 세계 선교를 본격화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문 총재는 책에서 일제 식민통치 시대와 북한 공산정권,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치렀던 여섯 번의 투옥, 평화 전도사로 활동하다 목숨을 잃을 뻔한 뒷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 나간다. 광복 이후 성경책 하나만 달랑 들고 평양에서 교회의 문을 열었을 때는 이렇게 회고한다. “평양에 가서 교회를 시작했을 때 나를 그렇게 반대하고 돌을 던지던 기성교회가 부산에서도 역시 나를 반대했습니다. 이단, 사이비는 내 이름 앞에 붙는 고유명사였습니다. 이단 사이비니 하는 접두사 없이 그냥 이름만으로 불려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책에는 특히 대학가에서 이단으로 몰려 문 총재를 따르는 학생과 교수들이 퇴학·퇴직당하던 이야기며 초기 미국 선교 시절 ‘한국이라는 보잘것없는 나라에서 온 종교 지도자가 감히 미국을 상대로 회개하라는 소리를 하느냐.’며 멸시하던 일에 대한 고백이 솔직하게 담겨 눈길을 끈다. 384쪽 1만 45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英타임스가 꼽은 역대 ‘애주 정치가’는?

    나카가와 쇼이치 일본 전 재무상이 지난 14일 열린 G7(선진 7개국) 기자회견에서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결국 사의를 표한 가운데 영국 타임스가 술을 지나칠 정도로 좋아했던 역대 ‘애주 정치가’ 9명을 꼽아 눈길을 끌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전 대통령은 ‘애주 정치가’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보드카 마니아로 알려진 그는 재임 중에서 음주를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잦은 음주 때문에 술에 얽힌 실수담 또한 가장 많았다. 옐친 전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술 취한 모습을 종종 보였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격식을 차려야 할 외국 방문길에서도 술에 취해 국가에 불명예를 안기기도 했다. 그는 지난 1994년 아일랜드를 찾았을 때에는 술에 취해 제대로 비행기에서 내리지 못했고 예정된 정상회담도 펑크냈다. 또 독일을 방문했을 때도 술에 취한 듯 환영 군악대에게 다가가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옐친 전 대통령만큼이나 술을 좋아했던 정치인으로 미국 37대와 38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꼽혔다. 닉슨 전 대통령 역시 지우고 싶은 ‘술 실수담’이 전해진다. 나중에 알려진 기록에 따르면 4차 중동전쟁으로 국제사회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던 지난 1973년 닉슨 전 대통령은 술에 만취해 때마침 걸려온 영국 총리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이외에도 윈스턴 처칠 영국 전 총리도 대표적인 ‘술 마니아’였다. 그는 신문기자 시절 보어전쟁 취재를 가면서 포도주 36병, 스카치 위스키 18병, 브랜디 6병을 전선에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 파티에서는 노동당의 베시 브래독 하원의원이 “당신 끔찍하게 취했군요”라고 말하자 “당신은 끔찍하게 못생겼소. 나는 내일 아침이면 (술에서)깨기나 하지”라고 맞받아친 일화가 있다. 다음은 타임스가 언급한 정치인 -Shoichi Nakagawa -George Brown -Boris Yeltsin -Aneurin Bevan -Winston Churchill -Richard Nixon -Kevin Rudd -H.H. Asquith -Charles Kennedy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월드이슈] 오바마 ‘중동 프렌들리’ 의 한계

    오바마 대통령의 ‘중동 프렌들리’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정작 중동의 분위기는 회의적이다. 특히 최근 이스라엘 가자지구 침공으로 미국에 대한 반감은 더욱 깊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침묵을 지켰던 사실도 회의론을 더욱 부채질했다. ●분열하는 중동국가 현지 언론들은 “이스라엘의 배후엔 미국이 있고 오바마도 그 틀을 벗어날 수 없다.”고 연일 비난하고 있다. 특히 최근 알 자지라 등 방송은 가자사태로 희생된 팔레스타인인들의 사연과 이스라엘의 만행을 24시간 내내 아랍어와 영어로 방영하고 있다. 하지만 반미 기치 아래로 중동국가들이 모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중동 국민들의 반미 정서는 대단하지만, 정작 정권의 지도층은 미국과 깊은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는 중동 제일의 친미국가다. 걸프전에서 미국으로부터 수혜를 입은 쿠웨이트, 미군의 공군기지가 있는 카타르 등도 마찬가지다. 1950~70년대 중동전쟁을 이끌었던 중동의 맹주 이집트는 1979년 이스라엘과 캠프데이비드 평화협정을 맺은 뒤 미국과 이스라엘의 우방이 됐다. 이후 중동 내부의 분열은 가속화됐다. 특히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교적 논쟁은 분열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란을 중심으로 하는 시아파 세력과 이집트와 사우디를 중심으로 하는 수니파 국가간의 보이지 않는 패권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분열된 중동의 상황은 오바마 정부에는 상당한 호재다. 중동이 내분에 휩싸이는 동안 미국은 그 틈새를 공략해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까닭이다. ●통합하는 무장세력 하지만 오바마는 부시 전 행정부로부터 ‘무장세력의 통합’이라는 유산도 물려받았다. 반미 구호를 외치는 중동 정권은 이란 등 손에 꼽힐 정도로 적지만 이슬람 무장세력은 더 강한 통합력을 보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수니파 세력인 하마스, 레바논 시아파 헤즈볼라, 수니파 근본주의자 알카에다 등은 종파를 초월해 단단한 결속력을 자랑한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 입장에서 당연히 악재다. 오바마가 대(對)중동 ‘햇볕정책’을 구사하든 않든 무장세력에는 관심 밖이다.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에 반환하고 미국이 중동에서 완전히 물러나지 않는 이상 그들과 타협점을 찾기란 어렵다. 회의론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AP통신 등 외신은 오바마의 테러정책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점쳤다. ‘9·11의 상흔’이 큰 상처로 남아 있는 미국민들에게 테러리스트로 규정된 이들 무장세력과 손을 잡는 모습을 오바마가 보여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결국 오바마가 중동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도 말로만 그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의 말처럼 오바마도 ‘경우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가자지구 전운 고조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재공습에 나서 이 지역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특히 이번 공습은 이집트가 제시한 1년 휴전안을 하마스가 수용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재개된 것이다.AFP통신은 2일(현지시간) 의료 단체와 팔레스타인 주민의 말을 인용,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의 라파 지역을 공습해 1명이 죽고 4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최근 하마스의 로켓 공격이 재개된 것에 따른 보복조치로 풀이되고 있다. 전날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중부의 팔레스타인 경찰서 건물과 남부 국경의 땅굴지대 등 최소 세곳을 공습한 바 있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로켓탄을 발사하면 일대일 방식의 보복을 해왔던 과거의 게임 규칙이 아닌 새로운 규칙에 따라 ‘거세고 불균형하게’ 재공습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하지만 아랍권 방송인 알 아라비야 TV는 이날 하마스 소식통의 말을 인용, 이집트가 제안한 이스라엘과의 1년 휴전안을 하마스가 수용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집트의 휴전중재안 중 핵심사항인 이집트-가자 지구 사이의 라파 국경통과소 관리문제와 관련,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보안군이 이곳에 배치되는 데도 동의했다고 방송은 전했다.특히 이스라엘의 공습 재개에도 불구, 하마스가 처음으로 이스라엘 국가의 실체를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해 휴전 낙관론도 점쳐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일간 앗 샤르크 알 아우사트는 2일 “시리아에 은신 중인 칼리드 마샤알 하마스 정치국 위원장이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전 국경으로 이스라엘이 철수한다면 이스라엘 국가의 실체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세계의 화약고 이스라엘·美 vs 팔레스타인 치명적 삼각관계

    세계의 화약고 이스라엘·美 vs 팔레스타인 치명적 삼각관계

    ‘당신이 살고 있는 집에 누군가 쳐들어와 1300년 전에 할아버지들이 살던 땅이었다며 차지한 뒤 ‘공평한 절충안’으로 방 한두 칸을 내주겠다고 제안한다면 당신은 받아들 수 있을까.’(203쪽) 만약 ‘어떤 머저리가 그러겠어. 야구방망이로 패서 쫓아버려야지.’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중동문제의 당사자인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거의 똑같은 입장을 보인 것이다. 그것이 지난 61년동안 ‘세계의 화약고’이자 ‘미래 제3차 세계대전’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중동 문제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최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뿌리를 뽑겠다며 가자 지구에 무차별 폭격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600여명,특히 어린이 120여명을 사망케 한 사태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숙명의 트라이앵글’(노엄 촘스키 지음,최재훈 옮김,이후 펴냄)은 중동문제의 본질이 종교와 인종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며 이스라엘과 미국, 팔레스타인 간의 치명적인 삼각관계에 집중했다. 특히 미국 정부와 편향적인 보도를 일삼는 주류 미국 언론을 집중적으로 비판해 언어학자 출신의 정치비평가인 지은이가 왜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지를 잘 드러낸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비인도적 군사 행위를 용인하는 이유는 누구나 알 만하다. 미국 정부가 세계에서 석유가 가장 많이 묻혀있는 중동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전략적 자산’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1978~1982년 이스라엘은 미국이 전 세계에 제공한 군사원조의 48%, 경제원조의 35%를 제공받았다. 1983년 회계연도의 경우 레이건 행정부는 전체 원조 예산 81억달러의 30%인 25억달러를 의회에 요청했다. 같은 해 미국 의회도 해마다 이스라엘이 상환해야 하는 부채보다 더 많은 원조가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해외원조 수정법안’을 내놓았다. 이스라엘이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하여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살해하는 등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던 1983년에 이뤄진 지원이다. 그런 시기조차 미국 정부와 의회는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유린하면서 거리낌없이 군사 행위에 나설 수 있도록 도왔다고 촘스키는 비판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아랍인으로 둘러싸인 중동에서 ‘안전에 대한 위협’을 토로하는데 그것도 정치선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촘스키는 이런 반문도 한다. 이스라엘 건국을 유럽과 특히 미국정부, 미국 지식인들이 열렬히 지지했다면 팔레스타인 대신 독일 남부의 바바리아나 영국 같은 유럽의 어느 나라, 미국의 매사추세츠나 뉴욕에 유대 국가의 건설을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느냐고. 나치범죄 등 유럽인들이 수 세기 동안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범죄를 보상하는데 왜 아랍인이 희생돼야 하느냐는 것이다. 유대국가 탄생 이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시민적, 종교적 권리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을 전후로 대대적인 군사행동을 개시해 대규모의 팔레스타인 난민을 만들었다. 현재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한 ‘토지강탈’은 지속되고 있다는 보고다. 유대인의 고대 유적을 찾는다며 팔레스타인 사람의 집을 파괴하고,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한 뒤 유대인을 이주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60~70년 사이에 약 500만~600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했다. 촘스키는 중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엔(UN) 결의안과 국제사회가 꾸준히 요구하듯 이스라엘이 국경선을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으로 되돌려 놓고 그 지역에 팔레스타인인이 독립된 국가를 설립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미국이 무차별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외교정책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수 십년동안 국제법과 국제사회의 여론을 무시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 61년간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와 웨스트 뱅크에서 매일 겪어야 하는 신체·사회· 정치적 위협들이 일제 강점기를 35년이나 겪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개정판이지만 번역자가 바뀌면서 원문을 새로 번역해 신간과 다름없다는 평가다.3만 8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이·팔·하, 카이로서 휴전 협상

    이스라엘이 프랑스와 이집트가 제시한 휴전안을 조건부로 수용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등 3자가 휴전 협상에 참여키로 했다. 하지만 당사자간의 이견을 좁히고 중재안에 합의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마게드 압델아지즈 유엔 주재 이집트 대사는 7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이번 사태와 연관된) 모든 당사자측 협상 대표가 이집트 카이로에서 만나 이집트와 프랑스가 제시한 휴전안을 놓고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AP 등 외신들이 8일 보도했다. 협상안에 대한 세부 사항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자 지구에 인도적 지원을 하기 위해 일정 기간 휴전한다는 내용이 우선 논의될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망했다.하지만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합의안 도출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 중단과 이집트 국경과 연결된 지하 터널을 통한 가자 지구로의 무기 밀반입 중단을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방부 관계자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가자 지구 국경을 보호하는 것은 좋지만 자유로운 통행 보장 방안에는 합의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하마스는 가자 지구 봉쇄 해제를 휴전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휴전 협상을 앞두고 레바논이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그동안 가자 사태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레바논이 이날 이스라엘 북부에 로켓포를 3~4차례 발사했고 이에 이스라엘도 레바논을 공격했다. 전날 레바논의 무장 강경 정파인 헤즈볼라의 최고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에 맞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겠다.”고 선언한 바 있어 헤즈볼라가 로켓포 발사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레바논 정부와 이스라엘 정부 모두 헤즈볼라와 로켓포는 상관없다고 밝혔다. 로켓포 발사 주체가 밝혀지지 않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양국의 공격이 확대될 경우 제5차 중동전쟁에 대한 우려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스라엘은 총리 주재 안보회의를 열고 가자 지구에 대한 강도 높은 지상전을 포함한 ‘3단계 군사작전’을 승인했다. 휴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이지만 협상이 결렬될 경우 확전에 불을 붙일 수 있는 결정이다. 이에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맞불을 놓았다.7일 오후 1시(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는 포성이 사라졌다. 가자 지구에 구호품 전달 등 인도적 지원을 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한시적 휴전 요청을 이스라엘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마스도 이스라엘에 대한 로켓포 공격을 중단했다.3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가자 주민들은 생이별했던 가족과 재회하는 기쁨을 누렸다.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장례식을 치르는 이들의 전쟁에 대한 분노가 가자 지구를 뒤덮었다. 또 유엔의 구호물자를 수송하던 트럭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아 트럭 운전자가 사망, 이스라엘군이 조사에 착수했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자 이스라엘은 어김없이 폭격을 재개했다. 이집트와 연결된 지하 터널 수백개가 밀집해 있는 가자 남부 도시인 라파에 공습을 예고하는 전단지를 살포한 뒤 다음날 새벽부터 이 지역을 40여차례 맹공했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사설] 중동지역의 폭력 확산을 우려한다

    이스라엘이 지난 27일부터 사흘째 팔레스타인 과격 무장세력 하마스가 다스리고 있는 가자지구를 맹폭하고 있다.1967년 제3차 중동전 이후 가장 격렬한 공습이라고 한다.이미 300여명이 죽고 8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이 가운데 3분의1 이상이 민간인 희생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스라엘군은 곧 지상군을 투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하마스는 보복을 다짐하고 있어 전면전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즉각 무력사용을 중단해야 한다.더 이상의 무력 행사는 보복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킬 뿐이다.이스라엘군은 이번 공격이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민간거주지역 포격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한다.하지만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과잉 무장공격’이라고 이스라엘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가자지구처럼 인구밀집지역을 공습하면 대규모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할 것을 이스라엘이 모를 리 없다.민간인을 대상으로 삼거나,민간인 희생자가 대규모로 발생하는 모든 무력사용은 평화로 가는 길에 암운을 드리울 뿐이다.미국의 공정한 중재 노력도 긴요하다.이스라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뿐이다.이스라엘이 공습에 나선 배경과 관련,오바마 새 정권이 하마스를 대화의 상대방으로 삼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하마스는 총선으로 집권한 합법적 통치 세력이지만 부시 정권은 하마스를 외면해 왔다.새로 출범하는 오바마 정권조차 이스라엘 일방주의에 기울면 중동지역 정세는 급격하게 악화될 것이다.오바마 새 정권은 출범 전이라도 이스라엘에 무력사용 중단을 설득하는 한편 공정한 자세로 중재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 이스라엘, 하마스에 전면전 선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했다.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29일 “가자지구 주민에게는 아무런 적대감이 없다.”면서 “하지만 하마스와 그 대리인들과는 전면전을 벌이는 중”이라고 밝혔다. 바라크 장관은 “이 작전은 필요한 만큼 범위가 넓어지고 강도도 세어질 것”이라며 “(로켓포 공격이 이뤄지고 있는) 이스라엘 남부 지역의 상황을 바꾸고 (이런 공격을) 자행하는 하마스에 타격을 주기 위해 전쟁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을 하마스 압박용을 넘어서 체제 붕괴를 목표로 밀어붙일 경우 양국의 무력 충돌은 ‘제5차 중동전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이스라엘은 이날 3일째 공습을 이어가면서 가자지구 국경 주변으로의 지상군 배치에 박차를 가했다.이날까지 사망자는 318명이며 부상자는 1400명 이상에 이른다고 가자응급구조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AFP가 보도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이,가자지구 대공습… 전면전 조짐

    이스라엘이 27일에 이어 28일 이틀 연속 과격 무장세력 하마스가 지배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모두 290여명이 사망하고 800명이 다쳤다.이는 1967년 발생한 3차 중동전쟁(6일 전쟁) 이래 최대 규모의 공습으로 이 지역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27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11시30분쯤 전투기 60여대로 가자지구 남부지역을 시작으로 중·북부 지역으로 폭격을 확대했다.하마스의 보안시설 50여곳과 로켓탄 진지 50여곳이 폭격 대상이 됐으며 대부분의 보안시설물이 파괴됐다.28일 새벽엔 하마스가 운영하는 알아크사 TV 방송국 건물과 가자지구 시내의 시파 병원 인근 모스크에 폭격을 가했으며 하마스가 무기류를 밀반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땅굴을 공격하기도 했다.사망자 중에는 민간인이 15명 이상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가자지구 접경지대에 이스라엘 지상군이 집결하고 있어 추가 공격에 이어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감지되고 있다.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싸워야 할 시기이며 앞으로 전투가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스마일 하니예 하마스 지도자는 “우리는 우리 땅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신이 아니면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라고 결사항전을 다짐,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국제사회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가자지구의 심각한 폭력과 유혈사태에 경악했다.”면서 군사행동 중단을 촉구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이날 긴급회의를 개최해 폭력사태에 우려를 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프랑스,러시아,바티칸 등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이들은 양측이 무력공격을 즉각 중단할 것과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촉구했다.미국은 하마스 책임론에 무게를 뒀다. 중동 국가들도 가세했다.아랍연맹은 이스라엘을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으며 새달 2일 카타르 도하에서 비상회의를 열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한 대책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그루지야 사태 불똥 중동 화약고로 튀나

    그루지야 사태의 불똥이 번지면서 전통적인 ‘화약고’인 중동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뇌관’은 이스라엘이다. 그루지야에 무기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 조치는 노골적이다. 러시아는 이스라엘을 둘러싼 아랍권 국가에 무기를 제공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아나톨리 노고비친 러시아군 부참모장은 “이스라엘이 그루지야에 무인 항공기 8종과 지뢰 등 각종 무기류를 지원하고, 전문가들을 그루지야에 파견해 특수부대를 훈련시켜 왔다.”고 말한 것으로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 등이 20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최근 그루지야의 거듭된 무기지원 요청을 거절했다.”며 즉각 해명에 나섰다. 이스라엘 일간 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이스라엘 정부 전략가들이 그루지야와 러시아 사태를 예견해 무기 판매를 중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화 노력에도 러시아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나아가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시리아 카드를 빼들었다.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지 않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20일부터 이틀 동안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이번 기회에 그루지야 사태에서 편을 든 시리아에 무기 제공으로 ‘보은’을 약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아사드 대통령은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단거리 미사일 이스칸데르를 시리아에 배치하려 한다면) 시리아의 답은 원칙적으로 ‘예스’”라고 말했다. 그루지야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기 제공이 시리아와 러시아 간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폴란드 북서부에 미사일 방어체계(MD)를 구축하려는 미국에 맞서겠다는 러시아의 계획과 시리아의 이해관계가 이스라엘을 사이에 두고 맞아 떨어진 셈이다. 이스라엘의 전략분석가 라아난 기신은 예루살렘포스트에서 “러시아의 중동전략은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를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새로운 글로벌 게임의 일환”이라면서 “러시아는 새로운 동맹인 시리아에 대한 군사 공격의 방어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리아에 넘어간 러시아 무기가 헤즈볼라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긴장도 최고조에 이른 상황이다. 최근 이란이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로켓 기술로 위성 발사 시험에 나서자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시설을 공격할 것이라는 설이 끊이지 않았다. 레지 타기푸르 이란 우주항공청장은 지난 18일 국영 방송에 출연해 “이란은 이웃 이슬람 국가의 위성 발사를 도울 준비가 됐다.”며 발사가 성공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이란 공격을 반대하는 미국은 보잉 767을 개조한 공중급유기를 사고 싶다는 이스라엘의 요청을 거부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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