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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랄·기괴한 ‘4色 사랑’

    발랄·기괴한 ‘4色 사랑’

    연극에서 극작가는 항상 ‘가려진’ 존재다. 극의 근간을 놓았지만 화려한 조명은 당초 이들의 몫이 아니다. 몸을 감추고 아무런 성격조차도 나타내지 않는 것이 본분인양 살아온 극작가들이 모처럼 시선을 한몸에 받을 흔치 않은 기회가 마련됐다. 국립극장과 공연기획사 모아엔터테인먼트가 손잡고 추진하는 기획공연 ‘시선집중’시리즈. 지난해 연출가들에 이어 올해는 극작가들과 눈을 맞춘다. 김나영(33), 최원종(31), 강석호(35), 김민정(34) 등 극작가 4인방은 자신들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극장 앞에 내걸리고 팸플릿에 박혀 나오는 것이 마냥 쑥스럽다. 이들은 사랑을 주제로 지난 1년간 머리를 쥐어짜며 작품을 썼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정도를 걷는 연극, 작가 중심의 연극을 한다는 기쁨과 결과물에 대한 설렘으로 가슴이 차오른다.18일부터 3월6일까지 ‘소풍’‘외계인의 사랑’‘줄넘기’‘섬’이 하루에 두 작품씩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석(이름 가운뎃자)=사전에 교통정리가 없었어요. 작품마다 색깔, 느낌이 전혀 달라요. 저희들도 기대가 많이 되죠. “멜로는 처음”이라는 강석호는 남자 여우와 여자 늑대간의 사랑을 다룬 ‘줄넘기’를 썼다. 지난해 강원도 양구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여우가 수컷이라는 데서 영감을 얻었단다. 민=보통 우리가 말하는 ‘남자는 늑대, 여자는 여우’라는 상식을 뒤집었다는 발상 자체가 재미있어요. 석=전 민정씨 작품이 좋았어요.‘브라질리아’에서 느꼈던 좋은 점들이 다시 보였죠. 아빠랑 둘이 사는데 고래를 잡았더니 남자(하멜)가 나오더라. 이런 생각 아무나 할 수 없죠. 민=평소 혼자 살다 보면 이렇게 돼요. 거의 위험한 독신녀 수준이죠. 섬에 사는 ‘이쁜이’와 ‘탱자’는 사춘기 소녀들. 작품은 왜곡된 남성상을 상징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살다가 고래에서 나온 ‘하멜’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혼란, 환상, 탈출 등을 다룬다. 김민정은 누구보다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민=사랑에 대해 정색하고 쓰는 것도 그랬지만 소녀적 감수성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더 힘들었어요. 60대 노부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풍’은 아내가 남편에게 35년 전 한 남자와의 짧지만 강렬했던 사랑을 고백하면서 시작한다. 나=부모님이 ‘왜 나이든 사람들 볼 연극이 없냐.’고 했을 때 한번 써봐야 겠다고 맘먹게 됐죠. 시아버지가 환갑잔치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부모보다 더 살았으니까 남은 인생은 덤이다.’덤으로 얻은 인생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거죠. 석=결혼도 하고 애도 둘이나 낳은 사람이니까 내공이 있어요. 난 쥐뿔도 모르고 입만 나불댄거고. 나=누가 30년도 더 된 외도를 털어놓을까.“말도 안돼!”하는 반응이 나오면 작품을 못쓸 것 같아 엄마한테조차 물어보지 않았죠.‘난 할 수 있을지도 몰라.’하는 생각을 가지고 썼어요. 용기가 필요했어요. 4편 가운데 가장 실험성이 짙은 작품을 꼽는다면 최원종의 ‘외계인의 열정’이다. 거대 비만환자 ‘지옥’과 그의 내면적 자아인 섹스중독자 ‘연옥’. 우연히 이 여자의 삶에 뛰어든 남자 ‘무간도’가 빚어내는 사랑 이야기는 기괴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석=원종이 작품에는 유독 뚱뚱한 여성 캐릭터가 많이 나와. 왜 그럴까? 원=저한테는 외로움이,(두 팔을 넓게 벌리면서)이렇게 뚱뚱한 사람들의 외로움과 같아요. 뚱뚱하다고 다 외롭고 죽고 싶을까. 원=이런 사람들은 누가 사기를 치려고 다가오면 뻔히 알면서도 속아주죠. 재수를 한 적이 있는데 영혼을 팔아서라도 대학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이 사람들도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 파는 거예요. 민=이해가 가요. 원=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다는 데서 사랑이 시작될 때가 있죠. 이런 사랑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관계가 나빠지고 폭력으로 이어지죠. 상처 치유를 거부하고 독립적인 사랑을 해나가는 두 인물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석=‘소풍’하고 ‘외계인의 사랑’이 연이어 오르는데 홈드라마가 끝나고 잔인한 스너프(snuff) 필름이 나오는 느낌일 텐데…(웃음). 작가전이라 가능한 거죠. 극단적인 색깔의 작품이 한 무대에서 공존하는 것 자체가 매우 실험적이에요. 김영환(극단 비파), 문삼화(극단 유), 김태수(극단 완자무늬), 권호성(극단 모시는사람들) 등 중견들이 각 작품의 연출을 맡았다.(02)744-0300.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과소비로 빚지고 못갚아도 직장있으면 개인회생 가능

    Q.1999년 은행 직원의 권유로 신용카드를 만들었습니다. 만들기는 했지만 지갑에 넣고만 다니는 정도였습니다.2001년 친구를 사귀면서 용돈이 많이 들자 통장 잔고만으로 사용대금 결제가 안돼 현금서비스로 막았습니다. 현금서비스 한도도 500만원까지 늘었기에 매달 30만원 이상 초과 지출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자와 수수료가 누적돼 2002년 말 채무가 1000만원이 넘었습니다. 여러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돌려막고, 사채까지 쓰다 보니 2004년 말에는 빚이 5000만원이 넘었습니다. 저의 월급 100만원으로는 이자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빚 독촉에 회사조차 다니기 힘들고, 남자친구의 결혼제의조차 받아들일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파산으로 새 출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저처럼 과소비한 경우에는 면책받기 어려운 것 아닌가요. -한수지(29) A. 신용카드에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흔히 감자칩증후군(potato chip syndrome)이라고 하는데, 감자칩의 맛이 ‘딱 하나만 더’ 먹겠다는 마음이 들게 해서 결국 사람을 비만에 빠지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신용카드도 당장 결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만 더 쓰고….”하는 마음을 들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카드회사의 공격적인 영업과 결합되면 전문적 식견이 없는 사람은 중독되기 쉽고 상황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변제능력을 상실한 뒤입니다. 물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데도 감당하지 못할 소비를 선택한 데 대한 책임은 1차적으로 카드를 쓴 사람에게 있습니다. 마치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많이 마셔 폐나 간이 병드는 것 같은 불이익을 소비자가 입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술·담배의 판매자가 중독자를 만들 듯이, 신용카드를 비롯한 소비자신용의 확대가 채무의 노예를 만들어내는 현실을 똑바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파산법상으로는 낭비로 재산을 감소시킨 경우 면책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단순히 소득의 규모를 초과하는 소비지출이라는 것만으로 낭비했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돈을 빌려 카지노나 경마장 출입, 해외관광을 상습적으로 한 경우에는 일벌백계 차원에서 면책을 부인합니다. 하지만 충동적 미용성형수술, 간헐적 명품 구입, 신혼여행 정도는 상관이 없습니다. 새출발을 허용해도 갈 길이 먼 가난한 젊은이를 풀어주는 것이 저출산 시대의 바람직한 정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낭비로 채무가 늘어났더라도 직장이 있는 사람이라면 개인회생을 할 수 있습니다. (파산·개인회생 전문 변호사) ●김관기 변호사의 ‘채무상담실’ 상담신청은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올 ‘패션 포인트’ 어떤게 있나

    올 ‘패션 포인트’ 어떤게 있나

    김성민(25·대학원생)씨의 옷장 한켠에는 토트백·숄더백·백팩 등 20여개의 가방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검정 갈색의 기본 색상에서 노랑 연두와 같은 튀는 색상까지 시즌별로 유행하는 가방은 모두 가지고 있다. 그는 가방 유행에 민감한 이유를 “가방만큼 스타일을 확실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소품은 드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방만큼은 잡지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 계획된 쇼핑을 하고, 지난 유행의 가방도 절대 버리지 않는다.“I’m a bagaholic.(나는 가방에 중독됐다.)” 지난해에는 패션 포인트가 구두였고, 구두중독자 ‘슈어홀릭(shoeaholic)’이 유행어로 떠올랐다면 올해는 가방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가방중독자 ‘배거홀릭(bagaholic)’이 유행을 주도할 태세를 갖췄다. 파티에나 들 만한 작은 가방도 패션 포인트로써 등장하고 있고 유색 보석이나 프린트 가방도 인기다. 옷은 평범해도 현란한 가방 하나면 화려한 연출이 가능할 뿐아니라 수입브랜드의 다른 아이템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사치를 즐길 수도 있다. 올해는 가방이 더욱 사랑받을 전망이다. 그 어느때보다 다양한 크기, 다채로운 색상, 현란한 프린트와 장식으로 패션 피플을 유혹하고 있다. 그래서 2005년 봄·여름 패션쇼들은 ‘가방을 위한 쇼’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생동감이 느껴지는 자연으로 올 봄 백의 뚜렷한 경향은 자연주의. 도시화된 삶에서 벗어나 환경과 인간을 고려한 자연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스타일이 주류를 이룰 전망이다. 색상도 자연을 모티브로 해 바다의 신비감이 느껴지는 블루, 열대과일의 옐로와 오렌지, 옐로그린 등 경쾌하면서도 생동감이 느껴지는 색상이 강세다. 아무리 가방 디자인의 춘추전국시대라해도 트렌드는 있다. 양극단으로 흐르는 ‘빅 앤 스몰(Big and small)’.SBS드라마 ‘봄날’에서 고현정이 맨 커다란 초록색 가방처럼(물론 그는 집을 떠나면서 멘 것이지만) 여행가방으로 쓸 수 있을 법한 큰 오버사이즈의 백이나, 수납 기능을 강조한 멀티 포켓 장식의 백이 두드러진다. 반대로 인형놀이에 나올 듯한 앙증 맞은 백들도 함께 선보인다. 화려한 코사주와 주름, 체인 등으로 장식성을 최대한 살린 것이 특징. 돌체 앤 가바나는 올 봄·여름 트렌드를 가장 잘 보여준다.‘극단’을 테마로, 벨트나 허리에 두를 수 있는 아주 작은 사이즈의 ‘마더 앤 도터 백’과 뱀피나 악어가죽으로 장식한 아주 큰 사이즈의 ‘스트로 백’으로 패션쇼를 장식했다. 프라다의 ‘룩34 백’은 가로 길이가 40㎝나 될 정도로 크고, 악어가죽과 타조가죽으로 만들어 고급스럽다. 보라 주황 노랑 빨강 초록 등을 매치해 화려한 느낌이다. 크리스챤 디올은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4가지 테마 중 하나로 넉넉한 크기의 ‘디텍티브(detective) 백’을 올 3월에 선보인다. 금강 핸드백은 멀티포켓을 자랑하는 오버사이즈 백, 더 작을 수 없는 마이크로백, 큐빅 장식의 화려한 반달 모양 호보백, 주름치마 같은 셔링백 등 다양한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기능과 멋을 동시에 올해는 남성들에게도 가방이 개성표현을 위한 중요한 소품으로 자리매김할 것같다. 최근 열린 밀라노 남성복 컬렉션에서 구찌, 프라다, 질 샌더, 로베르토 카발리 등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유행할 의상들과 함께 멋진 가방들을 선보였다. 소재와 디자인이 더욱 다양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크기가 커져 기능성과 멋을 동시에 살린 것이 남성 가방의 전반적인 특징. 노트북, 서류, 소지품들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실용적인 디자인에 짧은 비즈니스 여행이나 주말 여행의 동반자로도 손색이 없다. 구찌는 부드러운 소재로 어깨에 메는 커다란 가죽 가방을, 베르사체는 짙은 회색 양복에 가죽과 캔버스천이 섞인 어깨에 메는 큼직한 가방을 각각 소개했다. ‘밤의 사냥꾼’이라는 독특한 주제로 올해 컬렉션을 발표한 로베르토 카발리는 부드러운 가죽 소재의 큼직한 손가방, 모피로 장식한 숄더백 등을 다채롭게 제안했다. 밀라노 함혜리특파원·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한국의 ‘마지막 황제’

    |파리 함혜리특파원|마지막 왕손인 이석(63)씨는 한국의 ‘마지막 황제’와 같은 인물이라고 프랑스의 AFP통신이 전주발로 보도했다. 한복 차림의 이씨 사진과 함께 소개된 이 기사는 고종의 손자로 태어났지만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어 가수, 군인, 방랑자, 알코올 중독자, 수도승 등으로 전전하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씨 조선의 본향인 전주에 내려와 안착하게 된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이 마치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의 삶을 옮겨놓은 듯하다고 소개했다. 그의 존재는 한국의 과거 역사와 현재, 전쟁과 가난, 풍요와 산업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인터뷰에서 “천년 역사를 지닌 이씨 왕조가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한때 있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나를 끝으로 왕조의 역사는 막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진실이 나를 절망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면 나는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천운영,‘포옹’ 천운영 소설에 대한 보다 정확히 말해,‘바늘’이 출간되고 난 후 이 작가의 첫 소설집을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엽기성’,‘동물성’,‘야생성’,‘야수성’,‘육식성’,‘파괴성’,‘공격성’,‘관능성’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천운영 소설에 이르러 우리 문학은 “가부장적 질서를 난도질하는 육체적 질감을 지닌 현장(김양선,‘기이하고 낯선 가족과 여성이야기’)”을 갖게 되었다는 식의, 지난 연대의 여성 소설과 천운영 소설을 구획짓고자 하는 시도가 여러 평문에서 발견되는 것은 그러므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불감증, 거식증, 불임, 도벽 등과 같은 히스테리적 징후로서만 즉, 부정으로서만 여성 소설의 위반성을 거론할 수 있었던 지난 연대와는 달리,“맹수의 이미지를 띤 여성인물들(황종연,‘탈승화의 리얼리즘’)”은 유례없이 “전복적이고 파괴적인(황도경,‘환상 속으로 탈주하라’)”힘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작가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신선한 살과 피를 원하는 이 짐승의 다음 먹잇감은 무엇이 될 것인가(남진우,‘늑대의 후예’)”쯤으로 표현되는 것이 지금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육체적 질감”,“신선한 살과 피” 등의 앞서 인용한 비평적 수사에서 은연 중 드러나듯, 천운영 소설이 보여 주는 이러한 특징은 무엇보다 그 생생한 현장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이제는 잘 알려진 ‘발로 쓰는’ 이 작가의 스타일이나 그로 인한 생동감 넘치는 디테일의 창출에도 불구하고, 천운영이 정작 공들여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가 취재한 세계, 바로 그 곳으로부터 도출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직접 회를 뜨고, 야나기상의 문신을 보고, 소머리 가르는 접칼을 쥐어도, 작가의 시선은, 장어를 다루는 횟집 주방장의 손놀림에서 텅 빈 수족관 앞에 망연히 앉아 있는 그의 ‘아내’에게로, 남자의 육체에 수놓아진 화려한 거미 문신에서 문신사의 자살한 ‘어머니’에게로, 뼈와 살이 갈려진 소머리에서 우시장 노동자의 ‘할머니’와 ‘연인’에게로 이동한다. 한 세밀한 묘사가 담고 있는 내용이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좌우하는 데까지 미치지는 못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 앞에서, 우리의 포커스 또한 이동할 때가 된 듯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질문들;천운영 소설의 세밀한 묘사와 이에 기반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가려 미처 드러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저토록 야수적이고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인물들 내면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 작가의 두 번째 창작집 ‘명랑’이 출간된 지금, 우리가 시도해야 할 작업은 엽기성과 파괴성의 이면 혹은, 공격성과 야수성의 연원을 추적해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그 그로테스크함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비평적 키워드들의 시발점의 하나가 되었던 천운영 소설 인물들의 ‘몸’으로부터 출발해 보자.“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신체를 보여(심진경,‘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로지르는 섹슈얼리티의 모험과 위반’)”주면서 “몸의 해부학적 묘사라 할 만큼 유난히 신체에 대한 묘사에 집착(황도경, 앞의글)”한다고 평가받는 이 작가의 소설에서, 몸, 그것으로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주목하는 몸의 일부는 얼굴이 아니다. 바로 ‘등’이다. 우리 중 누군가 자신의 ‘등’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이 있을까. 등은 인간의 육체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대개 죽을 때까지 자신의 등의 실제 모습을 모르고 산다. 심지어 거울 앞에서도. 그 실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무의식의 세계를 은유하고 있으며, 나조차 알지 못하는 이면을 타자는 볼 수 있다는 인식은 불안과 공포의 근원으로 자리한다. 만약 자신의 등이 “굽은 등”이고, 자신이 “곱사등이”이라면, 그 불안과 공포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포옹’의 ‘나(인경)’는 “평면만을 보여주는 거울의 기만성(1:213, 이하 괄호안의 표기는 수록소설집:페이지수)”을 충분히 알고 있다.“그렇게 화장을 하고 차려 입으니 너무 예쁘구나(1:213)”라는 거울 속 어머니의 말은 그러므로 거짓이라는 것도. 일찍이 멜라니 클라인이 말한 대로 거울의 드라마가 막을 내릴 때 더 이상 엄마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아이의 고통은 원초적인 것에 육박하지만, 거울이 제공하는 이 기만적인 나르시시즘은 자기정체성을 구성해 내고, 거울을 통과한 후에야 아이는 자신을 3인칭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굽은 등을 보기를 두려워하는 인경은 여전히 엄마의 일부일 때에만 완전하다고 느낀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엄마 품에 안겨 거울 속 나를 바라보(1:213)”며, 자신의 뒷모습이 “백지”로 남기를 바란다. 진실이 절망을 가져다준다면 그 진실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 그것은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믿는 그녀가 불우한 삶을 견뎌 내는 일종의 방법론이다. ‘포옹’에서 인경의 등은, 어머니를 제외한 그 누구도 손대기를 꺼려한다는 점에서는 나조차 어찌할 수조차 없는 내 안의 괴물―‘바늘’에서 곱추를 연상시키는 ‘나’의 등이나,‘숨’에서 육식동물을 연상시키는 할머니의 단단한 등뼈를 보라―이지만, 거꾸로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요구한다는 점에서 소통을 불러오는 몸의 유일한 창구가 된다.“어느 누구도 자신의 등을 쓰다듬을 수는 없는 법이며, 타인만이 그 등을 쓰다듬고 보듬어 줄 수 있”(‘등뼈’)다는 소설 속의 한 전언은 천운영 소설에서 타인과의 소통이란 것은 곧 위무의 다른 말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자신은 볼 수조차 없지만 타자는 볼 수 있으며, 자신은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없지만 타자는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있기 때문에,“아내의 굽은 등”“할멈의 굽은 등”(‘행복 고물상’)에서 번져 나오는 고독감은 남편과 이웃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지친 이를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편은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멍게 뒷맛’)이며, 위로받는 가장 좋은 방법 또한 “등을 내맡기는”(‘아버지의 엉덩이’) 것이다. 천운영 소설에서는 환상 속에 잠깐 이루어진 만남 또한 “등을 만졌던 것 만 같다”(‘월경’)라고 표현된다. 이런 식이라면 타인에 대한 분노나 타인으로부터의 외면은 등을 돌리거나, 등을 치는 것으로 그려질 성싶다. 마치 아버지를 경멸하는 아들이 제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보”고, 그 아버지의 “등짝을 후려”치고 싶어 하는 것(‘아버지의 엉덩이’)처럼, 친구들이 대항할 힘도 없는 ‘나’를 “등을 밀쳐 땅바닥에 넘어뜨리”던 것(‘세번째 유방’)처럼, 살인 장면의 마지막 기억이 “남자가 정말 당신 등을 밀었다”(‘멍게 뒷맛’)로 남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무엇보다 천운영 소설에서 등은 대부분 대상­타자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작중인물의 불안을 담고 있다. 등을 돌린 사람 혹은, 돌아선 사람의 등에 대한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사례들;“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남편 뒤에서 그의 아내는 “침묵하는 당신(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그 “등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왜소한 그 등을 보이고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당신의 바다’)며 견딜 수 없어 한다. 연인들의 연애의 끝은 또 어떠한가. 꿈 속에서 골목을 헤매던 여자는 길 모퉁이에서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가지만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모퉁이만 계속해서 나타날 뿐이고(‘모퉁이’), 연인에게 입 맞추던 여인은 “등을 보이고 돌아”선 후 그로부터 “점점 멀어진”다(‘세번째 유방’). 이렇듯 도저한 상실감이 등의 이미지를 빌려 가장 성공적으로 형상화된 소설은 그 표제가 아예 ‘등뼈’이다. “여자가 떠났다”라는 간결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등뼈’는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집착하던 여성이 떠난 이후 전개되는 남성의 황폐한 내면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아무런 징후나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1:138)”라는 구절에서 강조되고 있듯이, 여자의 실종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어서 남자에게 그것은 “떠난 것이 아니라 증발한 것(1:143)”에 가까우며, 남자는 당연히 여자의 그러한 증발에 대비할 수 있는 아무런 준비도 해 놓지 못한 채이다. 그러나 “그때 왜 여자의 등을 쓰다듬어주지 못했을까(1:148)”라는 소설 속의 한 구절을 제외한다면 남자가 여자의 사라짐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남자는 특이하게도 “여자가 떠난 뒤 살 속에 숨은 뼈에 집착하기 시작(1:150)”한다. 주위 사물들에서 뼈를 연상해 내고(1), 원인을 알 수 없는 요추디스크로 고통받다가(2), 급기야 뼈를 찍은 엑스레이 필름을 닥치는 대로 모으며(3), 결국 아무런 식욕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어 그의 몸엔 뼈만 두드러지게 된다(4). 여자가 떠난 후 이 남자가 보여주는 모든 증상((1)∼(4))은 그러니까 ‘뼈’에 대한 집착으로 수렴된다. 그런데 왜 하필 ‘뼈’일까? 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손을 돌려 등을 만졌다. 손끝에 등뼈 마디마디가 분명히 잡혔다. 남자는 욕조에서 기어 나와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서린 김을 걷어내자 남자의 퀭한 얼굴이 보였다. 광대뼈가 툭 튀어 나오고 눈이 쑥 들어간 낯선 사람이 거울 속에 들어 있었다. 남자는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거울에 등을 비추어보았다. 등골이 패고 뼈가 튀어나온 등이 어렴풋이 보였다.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었다.(1:158) ‘뼈’에 대한 남자의 집착은 그의 일상을 와해시키고 결국 그 자신을 말 그대로 뼈만 남게 만들어 버리는데, 사라진 여자가 등뼈는 말할 것도 없고 광대뼈, 턱뼈, 어깨뼈, 복사뼈까지 유난히 뼈가 도드라졌으며 식성도 특이해서 생선뼈, 닭갈비뼈, 조개껍데기와 같이 뼈에 붙은 살들만을 골라 먹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남자의 집착은 그녀에 대한 남자의 무의식적 동일시 즉, 사라진 대상을 불완전하게나마 보유하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동일시가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지면 누구나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 유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현실적인 요구와 함께 대상에 투자되었던 리비도는 다시 회수된다(프로이트,‘애도와 우울’). 이것이 상실된 대상에 대한 상식적인 ‘애도’의 과정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에 대한 리비도가 너무나 강해서 현실에서 상실된 대상을 대체할 만한 다른 대상을 찾지 못할 때, 주체는 상실된 대상을 내면화(internalization) 혹은 합체(내적 동일화,incorporation)함으로써 계속 보유하고자 한다(J 버틀러,‘멜랑콜리적 젠더/거부된 동일시’).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상실된 대상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살아 있는 현재로 끊임없이 소환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자가 가까스로 거울에 비춰본 자신의 등에서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환상으로 처리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러한 맥락에서 음미해 볼 만하다.“뼈가 튀어나온 등”은 현재의 환상 속에서 과거의 상실된 대상과 남자가 조우하는 장소로 공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은 이처럼 상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 저항이 지극히 위장된 형태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멜랑콜리적 주체의 성격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 상실로 인한 슬픔이 애도로 승화되지 못한 원인은 무엇보다 이들이 도저한 상실감의 원인이 된 대상에 대해 ‘의식적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환상 속에서조차 대상과의 만남이 허락되지 않을 때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난폭한 짐승(2:119)”이 출몰하게 된다. 이 “난폭한 짐승” 혹은,“광포한 짐승” 혹은,“제 속에 든 짐승”은 인물들 특히, 여성인물들을 숨이 차도록 달리게 만들기도 하고, 그녀들에게 무서운 식욕을 부추기기도 한다. 다음을 보라:애도할 만한 죽음이 나타나면 여자 속에 숨은 짐승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슬픈 일이 일어나기를, 짐승을 다스릴 만한 제물이 나타나기를 여자는 빌었다(‘모퉁이’, 강조 인용자).“애도할 만한 죽음”이 여자 속 숨은 짐승을 사라지게 하고,“무언가 슬픈 일”이 그 짐승을 다스릴 것이라는 저 여자의 내면이 가리키는 것은, 자신의 상실감의 원인이 되는 대상이 앞에 있다면 그 상실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막한 기대이다. 통제 불가능한 내면은 분명 무언가의 상실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된 대상이 눈 앞에 있어 이를 애도할 수 있다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내면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기억-내용은 이미 소실되었으되 기억-감정이 남아 있어 유사한 심리적 기제가 주어지면 어김없이 리비도가 투자된다. 그러나 그 대상이 상실된 바로 그 대상은 아니기에 상실의 흔적은 그녀들에게 애도해야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애초에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남자의 유골을 뿌리러 제주도로 향하는 여자(‘포옹’)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또한 바로 그것이다. 천운영의 소설들에서 누군가의 죽음 혹은 (갑작스러운) 사라짐은 서사를 이끌어 가는 가장 기본적인 모티프이다. 이 작가의 어느 작품을 들춰 보아도 이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명랑’‘아버지의 엉덩이’‘세번째 유방’에서는 할머니가,‘바늘’‘명랑’‘월경’‘당신의 바다’에서는 아버지가,‘바늘’‘멍게 뒷맛’‘월경’‘아버지의 엉덩이’에서는 어머니가,‘숨’‘그림자 상자’에서는 양친부모 모두가,‘등뼈’‘멍게 뒷맛’에서는 여자가,‘모퉁이’에서는 연인이,‘당신의 바다’에서는 남편이 죽거나, 실종되거나, 아무런 예고 없이 주인공 곁을 떠난다. 이러한 상실이 대개 가장 기본적인 삶의 단위인 가족 관계에서부터 발생한다는 것은 이렇게 열거한 목록에서도 금방 포착되는데,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할머니)의 빈자리이다. 천운영 소설이 가족관계 안에서의 갈등을 그 기본 축으로 하면서도 ‘모퉁이’‘그림자 상자’‘세번째 유방’을 제외하면 형제나 자매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소설들에서마저도 언니, 오빠, 동생은 화자를, 부모 특히 어머니 곁에 가까이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쟁자로서만 그 의미를 지닌다. 천운영 소설 속 주인공들의 어머니에 대한 집착 혹은 애증은 그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다. 최근 한 평론에서는 천운영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로 ‘부재하는 아버지’가 거론되었거니와(남진우, 앞의 글), 이 논자의 지적대로 무능하고 비루한 아버지의 초상은 이 시대 거세된 남성성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물론 아버지가 부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부재하는 아버지’는 실로 오랫동안 우리 소설의 한 테마였고,‘아비-부재’,‘아비-찾기’,‘아비-되기’,‘아비-부정’의 기나긴 순환 속에서 우리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 정체성의 근거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불안과 함께 지금껏 성장해 왔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운영 소설에서 아버지의 죽음, 그 부재의 효과는 말 그대로 그저 ‘없음’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특징적이다. 아버지의 위치가 지극히 주변화되어 있음에도, 이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들들에게서는 그에 대한 어떠한 연민도, 이를 복권하려는 의지도, 스스로 가부장으로 전신하고자 하는 충동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천운영 소설에서 강력한 입법자로서의 아버지란 ‘세번째 유방’의 아버지를 빼고는 찾아보기 힘들며, 심지어 ‘아버지―법’은 “어머니를 닮은 부라보콘”에게까지 자리를 내준다(‘눈보라콘’);“오직 부라보콘만이 내 운명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1:90)”다.‘∼하지 말라’가 사라진 자리에서, 가위를 든 “이발사” 아버지가 사라진 바로 그 자리에서,‘나’는 어머니를 마음껏 향유하고자 한다.‘눈보라콘’에서 부재하는 아버지는 그러므로 이후 도래할 어머니의 빈자리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그치게 된다. 또 다른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아버지의 엉덩이’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버지는 느낄 수 없을 만큼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텔레비전을 본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상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본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쇼핑호스트가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소개하고 있다. 앞치마를 두른 쇼핑 호스트는 크기가 각기 다른 밀폐용기를 쌓아놓고 얼마나 저렴한지에 대해 과장되게 말하며 전화주문을 유도한다.(……) 아버지는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조금씩 내려가는 숫자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2:172) 위 장면의 등장인물의 성(性)을 여성으로 치환시켜 놓으면 즉, 아버지와 아들의 식사장면이 아니라 어머니와 딸의 그것으로 바꾸어 놓으면, 우리 눈 앞에 매우 익숙한 광경이 펼쳐진다. 늙은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딸이 “상”을 차려 들어간다, 어머니의 모습에 “신경질”이 난 딸은 그녀를 “쏘아 본다”, 텔레비전에서는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선전하는 “홈쇼핑”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어머니는 숫자판에 넋을 놓고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의 주인공은 분명 아버지와 아들이다. 홈쇼핑 중독자인 아버지의 “게걸스런 주문과 반품”이 “외출”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히스테리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 혹은 홈드라마의 역전된 판본이라 할 만한다. 그러나 이 장면을 언급한 것은 이 시대의 ‘아버지 부재’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한다. 아버지의 ‘엉덩이’라는 발칙한 상상력이 말해 주듯이 다만,‘어머니 부재’로 세계의 중심을 잃어버린 한 “엄마”의 아들로서만,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이 소설의 아버지와 아들, 두 남성 주인공을 움직이는 숨은 작인은 아버지가 아니라 부재하는 어머니이다. 자신의 어머니 묘소 앞에서 “이제 막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갓난아이처럼 우는(2:166)” 아버지는 물론이고, 태어나자마자 잃어버린 “따뜻한 자궁(2:167)”을 그리워하는 아들 역시 포도나무 가지에서조차 “침묵하며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2:182)”를 발견한다. 이들 부자(父子)에게 ‘부재하는 어머니(할머니)’는 모성적 초자아(maternal superego)의 형상으로 그녀의 아들들을 조종한다. 남성인물을 움직이는 모성적 초자아의 형상은 ‘숨’에서는 ‘차가운 자궁’의 이미지를 빌려 섬뜩하게 변주된다. 할머니를 설득하는 마지막 방편인 송치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 ‘나’가 불법적인 물먹이기를 감행하다가 경찰에 발각되어 도망치는 대목에서, 단속반의 추격을 피해 숨어든 장소가 높이 2미터, 영하 20도의 “거대한 냉장창고”라는 점을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추격의 장면이 마치 사냥의 한 대목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점―할머니가 “육식동물”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이 발각으로 인해 할머니의 의사를 거스른 미연과의 결혼이 틀어질 위기에 처한다는 점, 그 안에서 ‘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숨을 죽여(1:55)”야 한다는 점 등은 이 냉동고가 ‘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얼어붙은 자궁’이 물질화된 것임을 암시한다.‘숨’에서 아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냉동고가 이처럼 은유적 차원에서 자궁의 부정적 이면을 함축하고 있다면,‘행복고물상’에서 그것은 “유산된지도 모르고 보름 동안이나 자궁 속에 죽은 아이를 넣고 다녔던(1:162)” 아내를 빌려 실체화되고 있기도 하다. 자궁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자궁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는 천운영의 소설들에서는 빈번하게 출물하면서 작품의 기저음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당신을 둘러싼 바다 밑바닥 같은 어둠”(‘당신의 바다’)과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천운영 소설에서 어둠, 바다는 의미론적인 층위에서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 놓이는 경우가 흔하며,“깊은 어둠(1:195)”,“어두운 바닷 속으로 깊숙이(1:139)”,“바다 깊숙한 곳(1:156)”,“물 속 깊숙이(1:158)”,“깊은 바다로 침잠(1:136)” 에서와 같이 곧잘 하강 혹은 침잠의 이미지와 함께 나타나는데,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최종지점에 어머니―모체―자궁이 자리한다.“탄생 이전의 따뜻한 양수 속으로 돌아가고 있는” 할머니(‘명랑’)나,“태아처럼 몸을 구부리”고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해진 어둠”을 즐기는 아이(‘유령의 집’)는 천운영 소설의 주인공들에서 발견되는 모체―자궁으로의 회귀욕을 보다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위와 같은 사례들에서 다음과 같은 해석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무력한 아버지를 대체하는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법에 내포된 헤게모니의 일시적인 전복을 읽어낼 수도 있고, 성적 관계의 절대적 방해자로 나타나는 할머니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손자의 서사를 아버지―질서의 외부를 꿈꾸는 딸의 서사의 역전된 판본으로 체감할 수도 있으며, 빈번히 등장하는 자궁 회귀욕으로부터 주체―대상의 이분법에 이전하는 원초적 충동으로서의 모체 회귀욕을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 소설들에서는 그것이 의존성이건, 억압이건, 회귀이건 간에 어머니의 부재가 스토리―시간 내에서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며,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죽음(‘아버지의 엉덩이’)이나 재혼(‘눈보라콘’)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버려짐이나 내쳐짐의 쓰라린 감각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대상―타자의 상실을 ‘버려짐’으로써 격렬하게 경험하는 인물들은 무엇보다 ‘바늘’‘멍게 뒷맛’‘월경’‘모퉁이’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이다. 울음보가 터졌다.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다락 계단을 기어오르면서부터 나는 이미 울고 있었다. 코피가 나올 것처럼 콧잔등이 매큼해지고 입술은 움찔움찔 울음을 품었다. 엄마는 내 울음소리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었다. 내 울음이 엄마를 돌려세울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울음을 그칠 수는 없었다.(2:100) ‘모퉁이’는 주인공 ‘나’가 ‘엄마’와 헤어지는 인상적인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엄마를 잃어 비통한 한 소녀의 심사는,14줄에 걸쳐 집요하게 서술된다. 마치 그것을 영원한 이별이라 예감하는 듯이 소녀는 줄기차게 울어댄다. 그러나 소녀가 그토록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엄마는 단지 아빠의 공장에 밥을 가져다주러 나선 길일 뿐이다. 매일 반복되었을 이 일상적인 엄마의 떠남 앞에서 소녀는 한참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놓는다고 생각되는 존재는 “뱃속의 아이”라도 저주하는 소녀,“엄마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악을 쓰고 울었(2:112)”던 그 소녀,“우는 것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2:105)”이었던 바로 그 소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남자”에게는 여전히 “울음소리”로 존재한다.‘멍게 뒷맛’,‘바늘’에서 역시, 어머니와의 이별은 언제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것이며, 성장한 그녀들이 겪는 모든 상실의 밑그림이 된다. 엄마들은 결국 떠난다. 엄마가 떠난 길목을 바라보며 꼼짝도 못하고 있던 그날을 기억하는 ‘나’(‘바늘’)나, 좋은 옷을 차려 입고 기차에 올랐을 때부터 이미 엄마에게 “버려질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당신’(‘멍게 뒷맛’)은, 그런 점에서는 모두 닮은 존재들이다. 이 세 작품에 비해 어머니의 비중이 미미하게 그려진 ‘월경’에서조차, 주인공 ‘나’는 어머니의 화사한 보석함에, 손톱 자른 것, 빠진 머리카락, 상처에서 떼어낸 딱정이와 같이 제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을 모아둠으로써, 뿌리깊은 분리 불안을 드러낸다. 이 소설들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들은 어린시절, 주로 어머니로 대표되는 대상-타자에게 강렬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되, 필연적으로 그 애착이 거부(혹은 금지)됨을 경험한다. 가령,‘모퉁이’에서 그것은 금지의 양상(“엄마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젖무덤을 헤치는 내 손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나는 엄마의 매정한 손이 야속했다. 엄마는 내게 동생이 생길 거라고 했다. 동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되우 맞은 사람처럼 휘청거렸다(2:109)”)으로,‘바늘’에서 그것은 거부의 양상(“엄마가 내민 보자기에는 꽤 많은 돈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스님의 옷을 들고 집을 나섰다.‘나는 그곳으로 가야겠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말이었다.(1:24)”)으로 전면화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금지/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욕망은 부인된 형태로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할머니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은 뒤 그녀의 뼛가루를 생전의 할머니가 명랑가루 먹듯 맛보는 손녀가 “내 내부에는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침묵하는 그녀가 있다(2:37)”고 고백하는 것(‘명랑’)처럼, 상실이 일어났을 때 상실을 부인하고 상실된 대상의 속성을 취하여 이를 내면화하는 것이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생존전략이라고 한다면,‘바늘’과 ‘월경’의 ‘나’는 바로 그 길을 간다. ‘바늘’과 ‘월경’은 각각 그로테스크한 인물 묘사와 도착적인 섹슈얼리티로 인해 발표된 직후부터 유독 많은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 온 작품들이다. 이 글의 관점에서 역시, 두 작품은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두 소설을 집중적으로 되짚어 보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 단서들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먼저 두 소설 모두 여성 화자들이 이미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임에도 여전히 아동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으며 또한 공히 인물이 비성적인 단계―통상적인 의미로―에서 성적인 단계로 이행하는 순간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 인물들은 각각 어머니(‘바늘’) 혹은 아버지(‘월경’)와의 이별을 하나의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반대성(性)의 부모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는 점 등이 그 단서들로, 이로부터 우리는 천운영 소설에 나타나는 도저한 공격성(/도착성)의, 이면(/연원)을 다시금 집약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왜냐하면 ‘바늘’과 ‘월경’에서는 여성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한 쪽 부모의 상실이 그녀들의 자아정체성의 형성에 결정적인 기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바늘’에서는 그로테스크한 삽화가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다음의 세 장면은 특히 문제적이다;(1)먼저, 죽어가는 새끼고양이. 간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절에서 살던 시절 ‘나’는 “어미고양이의 날카로운 울부짖음(1:20)”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새끼고양이를 변기통에 버리고는 그 변기통 속으로 고양이가 자취를 감추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2)다음으로, 전쟁기념관에서의 상상. 전쟁기념관에서 ‘나’는 전시된 무기들을 하나씩 꺼내 스님을 공격하는 불온한 상상을 해보지만 스님의 심장이 관통당하고 내장이 갈가리 찢기고 발에서 피가 솟구쳐도, 그녀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좀더 강인하면서 잔인한”“엄마가 할 수 있는 그런 방법(1:21)”이 아니었기 때문에.(3)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자살 소식 직후 행해지는 육식. 형사로부터 어머니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의연히 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기 한 점을 집어 먹으며, 바위에 찢긴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 보지만 ‘나’의 머릿속엔 “여자의 하얀 알몸만 떠오를(1:31)” 뿐이다;상식적인 수준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행위들이 무대화되고 있는 이 세 장면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러니까 ‘나’의 공격적인 행위의 메커니즘을 해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첫 번째 장면에 대한 질문 하나. 어미고양이에게서 떨어져 나와 변기통 속으로 빠져 들어간 새끼고양이는 마찬가지로 버려진 ‘새끼’인 ‘나’의 분신과 다름 없을 터. 그렇다면 이 장면은 ‘나’에게 지극한 고통을 유발했을 것임에도 왜 ‘나’는 이를 스스로 자행하며 게다가 “오랫동안” 지켜 볼 수 있었던 것일까? 마조히스틱한 쾌감 때문에?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상실이 곧 결핍을 부른다는 오래된 통념은,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 앞에서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아가 포기된 대상의 심리적 저장고이며 상실된 대상은 구성적 동일시의 하나로 자아 안에 거주하면서 자아와 함께 출몰한다는 사실은 일찍이 프로이트가 ‘자아와 이드’에서 기술한 바 있으며, 버틀러는 그러하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대상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위상을 외부적인 것에서 내부적인 것으로 전이하는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J 버틀러, 앞의 글). 즉, 상실에 대처하는 멜랑콜리적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상실 자체를 무화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나’가 새끼고양이를 변기통 속에 버릴 수 있었던 까닭으로 이미 그녀의 자아 안에, 거부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어머니가, 멜랑콜리적 동일시를 통해 그 자아의 일부로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어머니는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숨쉰다! ‘나’의 행위에서 ‘나’의 위치와 어머니의 위치가 이중적으로 얽혀있는 것은 이러한 내면화의 결정적인 증거다. 버려짐과 버림을 동시에 구현하는 새끼고양이의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스님을 잔인하게 공격하는 상상이나, 자살 소식 직후의 육식 또한 마찬가지의 메커니즘 아래에서 작동한다. 스님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어머니를 빼앗아간 존재에 대한 응징이라는 점에서 그 일차적 의미가 있지만, 그 방식은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던 방법 혹은 어머니가 스님을 살해했던 바로 그 방법에는 미치지 못하기에 ‘나’는 그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수가 없다.‘나’가 공격으로부터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그녀의 내부에서 그녀와 함께 공존하는 어머니의 시선 바로 그것을 체현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기 한 점을 씹어 삼키면서 찢겨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는 그녀로부터 우리는, 어머니가 여전히 ‘나’에게는 알몸의 여자로 현현하는 에로틱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유추함과 동시에,“상실하기보다는 차라리 조각내고 분해하고 자르고 삼키고 소화하고”자 하는 곧, 대상을 먹음으로써 그 대상을 제 안에서 부활시키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식인 행위의 환상(J 크리스테바,‘검은 태양’)의 한 풍경과 마주하기에 이른다. 정신이 아득해져온다. 가슴 한쪽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솟구쳐 올라온다. 나는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그리고 그가 했던 것처럼 팔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한다. 누구를 향해 팔을 휘둘렀는지 모른다. 푸른 모자가 튀어오른 것 같기도 하고 계집의 찢어지는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1:83) ‘바늘’에서와 같이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에도 여전히 아동으로 남겨진 듯한 여성 주인공은 ‘월경’의 ‘나’로 재등장한다.‘월경’의 ‘나’는 스무살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월경(越境)하지 못한 채 바로 그 경계 위에 서 있다.‘나’의 말을 빌리자면 ‘나’의 “몸은 작정이라도 한 듯 자라기를 멈추었다(1:62).” 이 소설의 주된 관심사가 바로 그 경계를 넘어서는 한 순간에 있다는 것은 제목에서부터 암시되는 바다. 그런데 ‘바늘’과 마찬가지로 한쪽 부모의 상실을 초점화하고 있는 이 소설을 전작 옆에 나란히 놓고 따져볼 때 새롭게 부각되는 측면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그 상실이 ‘나’의 젠더 정체성 형성에 개입됨으로써 ‘나’의 젠더 정체성을 매우 불안정하게 구조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월경’에서는, 천운영 소설에서는 이례적으로, 어머니의 떠남이 아니라 아버지의 떠남이 ‘나’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나’가 떠나버린 아버지를 하나의 이성으로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 또한 수차례 등장한다. 그녀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칭하지 않고 ‘그’라고 지칭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인상을 강화하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은 일렉트라 콤플렉스의 천운영식 판본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울 듯하다. 그러나 프로이트에게 이성부모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과 그 욕망의 금지가 여아에게 여성성을 최종적으로 선사하는 것과는 달리 이 소설에서 ‘나’의 젠더 정체성은 오히려 남성의 그것에 가깝게 드러나고 있어 차별적이다. 즉,“가슴도 가슴이지만 계집의 엉덩이는 정말 탐스럽다. 표주박 두 개를 나란히 놓은 듯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툭 불거지는 모습이 여간 아니다(1:70)”라는 구절을 비롯한 소설의 여러 대목에서 나타나듯이 ‘나’는 “은하수 계집”을 성인 남성의 시선으로 욕망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여러 평자들로 하여금 ‘월경’을 도착적 섹슈얼리티가 전경화된 소설로 주목하게 한 주요한 요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함께 트럭 짐칸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면 온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았고, 별들은 작은 이슬방울이 되어 우리의 배 위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1:63)”에서와 같이 지극히 감상적으로 또 지극히 여성적인 시선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기억하고 또 애타게 그리는 ‘나’가 어떻게 동시에 “은하수 계집”을, 그것도 저러한 시선으로 욕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불균형은 작가가 도발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몰두한 나머지 그 일관성은 신중히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함에 불과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상실한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내면화하고자 했던, 그럼으로써 상실로 인한 상처를 무의식적으로 무화하고자 했던 ‘바늘’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월경’의 ‘나’ 역시 상실한 아버지를 그러한 방식으로 제 속에 부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즉, 그녀의 자아 안에, 상실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가, 그 자아의 일부로서 공존하고 있다고 말이다.“은하수 계집”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이에 대한 한 근거가 됨은 물론이거니와,‘나‘가 “은하수 계집”을 여러모로 ‘그녀(어머니)’와 견주어 보면서 ‘그녀(어머니)’의 분신처럼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정을 뒷받침해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위치하는 사건 곧,“은하수 계집”과 “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정사장면을 ‘나’가 목격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그 사건에서,‘나’가 ‘그(아버지)’의 위치를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과거의 ‘그(아버지)’―‘그녀(어머니)’―“낯선 남자”의 구도를, 현재의 ‘나’―“은하수 계집”―“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구도로 전이시키고 있다는 점은 그 결정적인 증거로 제출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요컨대 ‘월경’에서 ‘나’는 아버지를 욕망하는 데서, 아버지의 욕망을 그리고 아버지가 욕망할 것이라 추정되는 대상을 욕망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나’의 젠더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한 근본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의 시발점에 현실에서의 상실을 절대로 수락할 수 없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내면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읽는 이를 순식간에 포박하는 천운영 특유의 자질 뒤편에 도사리고 있는 상실과 박탈의 어두운 그림자……, 누군가는 사라지고 그 사라짐이 가족 내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저토록 결정적인 흔적을 남긴다. 그리하여 이 작가에게 가족은 천운영식으로 표현하자면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 같은 유령의 집(‘유령의 집’)” 즉,‘아가리(구강기)’적 욕구에 충실한 “괴물”스러운 인물들이 집 안을 떠도는 “유령”의 “어두운” 그림자와 씨름하는 전쟁터나 다름없다.“핏줄”과 얽혀진 인간 욕망의 가장 원초적인 그래서, 들여다보고 싶으면서도 그러기에는 두려운 “하수도” 속 같은 “어둠”이야말로 이 작가의 해부 대상인 것이다. 이어지는 ‘유령의 집’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라;“보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이면에 삶은 존재하니까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고 해보세요. 그건 때때로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겁니다.” 천운영이 꾸며놓은 유령의 집을 방문한 독자에게 이 보다 더 친절한 안내가 또 있을까. 천운영은 이렇게 근본적인 상실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그것도 가족 내부에서 끈질기게 문제화한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 문단에서는 매우 독특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배수아, 백민석 같은 바로 앞선 연배의 작가는 물론이고, 비슷한 연배이며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정이현이나 김윤영에 견주어 보아도 이는 이 작가 특유의 자질이다. 앞서 살펴본 작품들에서처럼 특히나 천운영은 가족 안에서의 상실을 한 인간을 배태해내는 결정적인 그 무엇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제 전환을 맞을 때가 온 것은 아닐까.‘늑대가 왔다’나 ‘그림자 상자’와 같은 비교적 근작들에서는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파괴적 욕구가 분출되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가족이 부여한 운명으로부터의 탈출은 아직 환상 속에서만 가능하고 결국에는 처참한 결말을 맞지만 말이다. 앞으로 이 작가에게 “배꼽을 버리고자 하는(‘그림자 상자’)” 욕구가 앞설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운명론에 더 깊숙이 천착할 것인지, 우리는 이 작가를 계속 눈여겨 지켜볼 필요가 있다. ■ 당선 소감 하루 평균 서른 통 정도의 전화를 받고 또 그만큼의 전화를 하며 두 해를 보냈다. 맞춤법을 묻는 전화부터 부고를 알리는 전화까지. 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하며 또 누군가의 수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 역시 그리 다르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누군가의 호소에 응답하는, 그러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마음껏 공부할 수 없어 애태우던 나날들이었지만 헛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족함을 스스로 잘 알기에 당선은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응모한 글에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공이 아니라 주위 여러분들의 은덕이다. 국문과 은사님들과 조남현 지도 교수님,202호와 326호에서 동고동락했던 선후배 동료들, 이 분들께 더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다. 결점이 많은 글을 너그러이 감싸주신 김윤식 선생님과 정과리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결같이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언니, 동생, 오랜 벗들에게는 쑥스럽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고백하건대,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이제는 다른 길을, 그것도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쓸쓸하다. 그러나 약속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세상을 향한 내 새로운 수화기를 함부로 놓지 않겠노라고. 그것이 지금 주어진 이 지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인 것 같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약력 ▲1976년 대구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이번에도 평론의 기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이론에 대한 지식을 과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설익은 개념들이 횡행하면서 작품을 파괴하거나, 작품과 겉도는 독무를 추는 글이 적지 않았다. 이론이 문학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니 배울수록 좋다. 그러나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니 작품 분석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네 편이다. 김수영의 시를 다룬 정경은의 ‘생활의 뒤란, 시’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김수영의 시를 장식해가면서 시의 변주를 다룬 재미있는 글이다. 그러나 그 상상력이 김수영 시의 이해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장욱과 김행숙의 시를 다룬 송승환의 ‘청동 방패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은 동일성의 부정이라는 기본적인 전제 하에 새로운 시의 존재 가능성을 탐색한 글이다. 꼼꼼한 분석이 돋보이고 설득력도 있었다. 오랫동안 시를 써본 사람이라는 짐작이 간다. 다만 구도가 지나치게 단순한 게 흠이었다. 최윤의 세 장편을 분석한 허병식의 ‘진정성의 서사와 주체의 귀환’은 ‘기원의 부재’라는 현대 이론의 신화에 깊이 침윤된 글이다. 그래서 마치 소설이 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씌어진 것처럼 읽었다. 그것이 약점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주체의 귀환이라는 명제를 끌어낸 것은 글쓴이만의 독창적 사유의 결과이다. 전체적으로는 대상 작품에 들어맞았지만 세목들에서는 무리한 적용이 많았다. 천운영의 소설 세계를 해부한 차미령의 ‘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은 ‘등뼈’ 이미지를 천운영 소설의 핵심 징조로 보고 그것으로부터 소설의 무의식의 ‘작업’과 변주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파고든 글이다. 분석과 해석이 요령을 얻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기존의 상식적인 해석을 뛰어넘으려는 패기가 돋보였다. 마무리를 서둘러 처리했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글 전체가 보여준 가능성은 그런 약점을 무시해도 좋게 하였다. 당선을 축하한다. 김윤식·정과리
  • 피의 역사/더글러스 스타 지음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재미있는 자료가 공개됐다. 수혈용 혈액이 부족하다고 앓는 소리를 하던 대한적십자사는 제약회사에 팔 수 있는 혈장 채집에만 몰두해왔다는 것이다. 혈장은 알부민제제의 원료가 되기 때문에 혈액 가운데 꽤나 비싸게 팔리는 부분이다. 여기에다 주된 헌혈 대상자인 군인들에게 피를 뽑기 위해 대한적십자사는 군부대에 시설공사와 물품제공 등을 해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고귀한 봉사와 헌신’의 이미지로만 윤색되어 있는 헌혈에 이렇게 복잡한 뒷배경이 있다는 사정은 외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신간 ‘피의 역사’(더글러스 스타 지음, 박범수 옮김, 이룸 펴냄)는 ‘피와 자본’간의 함수관계를 다룬 꽤나 재미있는 역사책이다. 서점이나 책을 다루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미시사’로 분류한 것처럼 이 책은 오직 ‘피’를 둘러싼 의학계와 산업계의 주장과 관련, 시대상황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피를 둘러싼 시대상황 집중 묘사 흔히 피는 산업계의 석유와 비교된다. 그러나 석유보다도 더 위험한 게 피다. 질병이 옮겨갈 수도 있고 헌혈의 봉사적 성격 때문에 원재료에 대한 비용이 적은데다 문화적인 의미와 결합되어 있어 더 다루기 어렵다. 처음 문제가 된 것은 문화적인 장벽이다. 생기론의 영향으로 피는 어떤 밝혀지지 않은 힘이 있는 체액으로 간주됐다. 이 때문에 목과 다리 부분을 절개해 일부러 피를 흘리는 방혈(放血)이 수천년간 치료법으로 행해졌다. 또 순한 새끼양의 피를 광인(狂人)에게 넣으면 정상인으로 되돌아갔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웃을 일이 아니다.2차대전 중 독일군은 극심한 혈액 부족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아리아인’이 준 피 외에는 수혈받지 않았다. 미국 역시 백인과 흑인의 피를 항상 분리해뒀다. 우리는 아직도 혈액형으로 사람 성격을 구분짓고 있다. ●대형제약회사들이 생산·유통 장악 그러나 과학의 발달도 피를 자유롭게 해주지는 못했다. 혈액에 대한 분석이 이뤄지고 수혈기술이 발달하면서 자본이 끼어들기 시작한다. 피에 대해 신화에 젖어 있을 때는 우스꽝스러웠을망정 피에 대한 경건함이라도 있었지만 잘 포장된 혈액은 그냥 상품일 뿐이다. 석유를 세계 7대 산유국이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대형제약회사들이 혈액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 회사들은 쉽게, 다량의 피를 얻기 위해서는 결국 빈민가를 털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마약중독자나 극빈층에게서 피를 받다가 비난을 받게 되자 3세계로 손을 뻗쳤다. 이 부분에 이르면 군인과 학생들의 헌혈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현실과 대비가 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기에다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수혈이 외려 생명을 단축시키는 사태가 일어나고 세계 각국은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지은이가 신문기자 출신이어서인지 드라마틱한 구성이 많은데다 간결하면서도 재치있게 꼬아논 문장이 많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3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이경기의 스크린1인치]태국은 지금 ‘할류’ 열풍

    ‘아름다운 해변, 불교 신앙이 서려 있는 사원과 왕궁의 나라’. 아시아 동남쪽으로 인도와 중국 사이에 위치한 태국은 서구 영화계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줄담배를 피우는 33세,66kg 노처녀가 미남 변호사와 플레이보이 직장 상사 사이를 오가며 사랑의 줄다리기를 한다는 것이 ‘브리짓 존스의 일기’. 르네 젤위거를 할리우드 톱 스타로 부상시켜준 이 소재는 2부 ‘열정과 애정’이 공개되면서 두꺼운 ‘지방층’을 갖고 있는 여성의 애정 편력기(?)에 다시 한번 관심을 쏟게 만들고 있다. 미모의 인턴 유혹 때문에 브리짓과의 결혼을 망설이고 있는 런던의 유능한 변호사 마크(콜린 퍼스). 이 틈바구니를 하이에나처럼 노리고 비집고 들어온 사나이가 다니엘(휴 그랜트). 마크와 다툰 뒤 심사가 불편한 브리짓을 위해 다니엘이 제안한 것이 태국으로의 여행. 코끼리 탑승과 그림 같은 절경이 돋보이는 타일랜드 관광을 통해 두 사람은 밀어를 나누게 된다. 동양의 신비를 간직한 장소로 각광받고 있는 태국은 뛰어난 산수(山水)로 인해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주려는 할리우드 영화인들이 단골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장소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 비디오 게임 중독자인 미국 청년 리처드(리어나도 디캐프리오). 그가 방콕 호텔에서 의문의 자살을 한 남자의 방에서 입수한 지도를 갖고 오지로 여행을 떠나면서 겪는 사건을 다룬 것이 대니 보일 감독의 ‘비치’(2000년). 카오 야이 국립 공원(Khao Yai National Park)을 비롯, 크라비(Krabi), 피 피 레 섬(Phi Phi Leh Island), 푸켓(Phuket) 등 오염되지 않은 쪽빛 바다 풍경은 태국만이 갖고 있는 천혜의 절경을 유감없이 보여준 본보기가 됐다. 태국을 언급할 때 떠오르는 영화가 율 브리너 주연의 ‘왕과 나’(1955년). 1862년. 영국 출신의 중년 여성 안나(데보라 카)가 시암(오늘의 태국) 왕국의 가정 교사로 입국해 여성을 무시하는 완고한 왕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지만, 왕가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서서히 왕과 여인 사이에 끈끈한 친분 관계를 맺게 된다. 개화된 왕이 안나의 권유로 무도회에서 함께 춤을 출 때 흘러 나왔던 ‘Shall We Dance’는 뮤지컬 명곡으로 자리잡고 있다. 경쾌한 남성들의 휘파람 소리가 전쟁의 비극을 다소나마 감소시켜준 ‘보기 대령의 행진곡’으로 유명세를 얻은 작품이 ‘콰이 강의 다리’(1957년). 타이 서부에 위치한 콰이강은 현지에서는 ‘Khwae Noi’로 알려져 있다. 태국과 미얀마 국경의 테나세림 산지에서 발아돼 칸차나부리에서 매클롱강에 합류, 타이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도 태국은 단골 배경지.‘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1974년)에서는 방콕과 팡 느가(Phang Nga)가 배경지로 등장한다. 매스컴 재벌이 오보를 통해 3차 대전을 일으켜 세계 정복을 획책하려는 것을 진압한다는 ‘네버 다이’(1997년)에서는 본드와 본드걸의 숙소로 방콕 웨스틴 반야 트리 호텔(Westin Banyan Tree Hotel)이 등장해 영화 공개 후 관광 특수를 누렸다. ‘친구’‘챔피언’을 히트시켰던 곽경택 감독, 장동건 주연의 신작 ‘태풍’은 해군 특수장교와 바다를 떠도는 해적단의 대결을 묘사한 해양 액션물. 이 영화도 해적단의 실감 나는 활동상을 묘사하기 위해 태국 해안에서 현지 촬영 중이어서 태국 로케이션 열풍에 일조하고 있다.
  • [그것이 알고싶다]새영화 ‘엘프’

    15일 개봉한 영화 ‘엘프(Elf)’는 덜도 더도 아닌, 딱 크리스마스용 기획 상품이다. 가족애라는 주제, 뉴욕 곳곳의 크리스마스 풍경을 담은 볼거리, 그리고 산타 클로스에 대한 믿음 회복이라는 동화적 팬터지까지 성탄 분위기를 북돋우는데 모든 공력을 기울였다. 엘프는 북유럽에서 전해져오는 전설속의 요정. 영화에 등장하는 신장 60㎝의 작은 엘프는 일년 내내 산타 클로스를 도와 크리스마스 선물을 만드는 재주 많은 요정들이다.‘엘프’는 산타의 선물 보따리에 들어갔다가 북극 요정마을까지 가게 된 인간 버디의 ‘아빠 찾아 삼만리’다.190㎝를 넘는 거구에 연륜을 풍기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정신연령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버디의 좌충우돌 코믹 연기가 영화의 관람 포인트. 하지만 버디가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친아빠 월터는 성공을 위해 가정을 등한시하는 일중독자다. 게다가 새엄마는 물론 열살짜리 이복 동생까지 산타든 엘프든 아무것도 믿지 않으니 기가 막힐 노릇. 가족간의 사랑도 회복해야 하고, 산타의 썰매를 날게 하는 연료인 사람들의 믿음도 얻어야 하는 까다로운 임무를 버디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억지스러운 설정과 상투적인 갈등해결 과정 등 허점 많은 영화지만 크리스마스에 온가족이 함께 보기엔 큰 무리가 없다. 천방지축 순진한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낸 버디역의 배우는 윌 페럴.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NBC TV시리즈 ‘Saturday Night Live’를 통해 유명해진 코미디 배우다.‘사랑할 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딥 임팩트’등으로 낯익은 배우 겸 감독 존 파르보가 연출했다. 전체관람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대마초는 마약? 기호품? 공개토론회 공방전

    “사회적 해악이 낮은 대마초를 마약으로 처벌하는 것은 무리다.”“대마초도 남용하면 사회적 위험성이 높으므로 규제해야 한다.” 일부 문화예술인이 ‘대마초 합법화’를 주장하는 선언서를 내는 등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한국마약범죄학회(회장 전경수·광운대 마약범죄학 교수)가 10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합리적 마약정책 수립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대마관련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재판부에 낸 영화배우 김부선씨는 이날 “4년 동안 몇번 피운 것으로 돌림병 환자 취급을 받고 있다.”고 밝히고 “마치 사법부가 너는 죽든지 이 나라를 떠나라고 하는 것 같다.”며 대마초 합법화를 요구해 눈길을 끌었다. ●마약이다 vs 아니다 첫 발제자로 나선 최용민 위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대마는 환각성이나 사회적 영향을 볼 때 마약으로 분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마의 환각·중독 정도가 담배나 알코올보다 위해한지는 정확한 근거가 없어 판단할 수 없다.”면서도 “많은 양을 섭취하면 빠른 감정의 변화를 경험하며 집중력의 상실과 자아상실감, 환상 같은 증상이 나타나며 남용하면 정신분열증까지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반면 김부선씨의 변론을 맡고 있는 김성진 변호사는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은 대마초를 마약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반박했다. 김 변호사는 “1995년 세계보건기구가 실시한 ‘알코올과 대마초, 니코틴 사용에 대한 보고서’는 대마초가 술이나 담배보다 훨씬 덜 해롭다고 결론지었다.”면서 “사회 윤리에 해를 끼칠 정도가 아닌 한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마약으로 규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대마규제 합리적 방안 필요” 전경수 마약범죄학회장도 “대마초는 어디까지나 대마초일 뿐 진짜 마약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마초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분리시키는 대신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책임있는 국가공인감정기관에서 마약, 필로폰 같은 향정, 알코올, 니코틴, 대마 가운데 어느 것이 사회적·육체적·정신적으로 더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논의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대마초를 무겁게 처벌하면 밀거래 등의 과정에서 대마 사용자들이 범죄 집단의 덫에 걸려 공갈·협박을 당하는 등 제2의 범죄에 시달릴 수 있는 부담도 있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나선 원정숙 경희대 간호과학대 교수는 “대마가 마약이 아닌 점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그러나 사회부적응자나 의지박약자에게는 심리적 의존성을 유발시켜 마약과 같은 폐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진경 숙명여대 가정학과 교수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마약중독자 가족을 상담한 결과, 대마중독자도 다른 마약중독자와 같는 고통을 주고 있었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박충선 목포과학대 간호학과 교수는 한걸음 나아가 “합리적 마약 정책을 논의하는 데 있어 대마 허용 문제는 대상이 될 수 없다.”면서 “대마를 포함한 마약 전반을 관리할 수 있는 약물법원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약 사범의 37%가 대마 한편 경찰청은 이날 “지난 10월20일부터 50일 동안 마약류 사범을 집중 단속한 결과 37%가 대마초나 대마수지를 흡입한 대마 사범”이라고 밝혔다. 필로폰, 엑스터시 등 향정신성의약품 사범이 56%로 가장 많았고, 아편, 헤로인 등 마약 사범은 7%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개인의 행복추구권보다 보건사회적 폐해 예방이 우선”이라며 “대마초를 합법화하자는 주장은 지극히 위험하다.”고 일축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누드 브리핑]서울 노숙자들은 자유주의자?

    “거리 노숙자들은 워낙 자유주의 사상(?)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들이라 설득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지난 14일 오전 11시쯤 서울시청 기자회견장이 이러한 줄거리의 설명회로 내내 웃음바다를 이뤘다. 이해돈 사회과장은 최근까지도 “노숙자 숫자는 늘어나는데 시가 운영하는 보호시설은 미치지 못하는 등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등 따가운 시선을 받는 데 대해 “잘못 알려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담당 부서로서 노숙자 관리에 어려움이 많으니, 그 처지를 이해해 달라는 당부도 곁들였다.“술을 자주 먹거나 가벼운 정신질환을 앓는 경우만 아니라 보호시설의 단체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 나오는 노숙자가 많고, 쉼터에 가면 신분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신용불량자들이 입소를 꺼리고 있어요.” 따라서 보호시설 장기 입소는 현실적이지 않아 일일보호 위주의 드롭인(Drop-in)센터 이용, 또는 쪽방 임대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발표한 노숙자 숫자가 정확한 것이냐?”고 묻자 “그들의 주특기가 무엇인지 다 알고 있을 정도”라며 손사래를 쳤다. 여기서 주특기란 정신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지, 알코올 중독자인지, 신용불량 경력이 있는지 등 개인적 신상에 대한 정보를 가리킨다. 밤낮 가리지 않고 현장을 쫓아다니며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고도 했다. 노숙자들이 어디에서 좋은 점심식사를 제공받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있는 데다, 나름대로 끼리끼리 자신들의 근황에 대해 알려오기 때문에 리스트까지 작성해가며 관리하고 있다고 우려를 씻기에 안간힘을 썼다. 그는 또 “소문에 들리기로 서울에 가면 더 나은 환경에서 식사제공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상경을 부추긴다더라.”는 말도 보탰다. 서울시는 복지여성국 사회과에 사무관급 팀장 등 직원 5명으로 이뤄진 노숙자대책반을 두고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병든 간 속에 건강한 간 키운다

    “병든 간(肝) 속에 건강한 새 간을 키운다?” 간 이식 대신 줄기세포를 이용해 간을 재생시키는 방법이 개발돼 올해 안에 인체실험을 하게 된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14일 보도했다. 영국 해머스미스병원과 임페리얼대의 연구진이 개발하고 있는 이 방법은 우선 환자의 간에서 피를 뽑은 뒤 백혈구를 분리하고 줄기세포를 추출한다. 이어 줄기세포를 간 세포의 성장과 관련있는 혈관에 주입한다는 것이다. 이 줄기세포들이 충분히 증식하면 간이 기능을 되찾게 되고, 결국 환자들은 5년 안에 건강한 간을 갖게 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 연구를 총괄하고 있는 임페리얼대 내이지 해비브 교수는 “간 이식과 달리 면역거부 등 문제가 없고 원재료인 줄기세포를 얻기도 쉽다.”면서 “실용화되기까지는 몇 년 걸리겠지만 성공 가능성은 높다.”고 설명했다. 해비브 교수는 이 방법이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우선 15명에게 임상실험을 할 계획이다. 이 방법이 성공한다면 특히 알코올 중독자들에게는 희소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이식협회에 따르면 2003∼2004년 이식을 받은 686명 가운데 258명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간 경화를 앓는 환자들이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Doctor & Disease] 삼성서울병원 장기이식센터 조재원 박사

    [Doctor & Disease] 삼성서울병원 장기이식센터 조재원 박사

    핵심 장기인 간(肝)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 붙이는 간 이식술은 의학기술에 있어 또 하나의 경이였다.“우리나라에서는 1988년에 처음으로 간이식수술이 시작됐지요. 그러나 당시는 엄밀한 의미에서 생존을 위한 수술이라기보다 ‘의미있는 시도’라는 측면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우리 병원만 하더라도 성공률이 95%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간이식 360여차례 시술 간 이식술이란 병증에 노출된 간을 잘라내고 다른 사람의 건강한 간을 옮겨 붙이는 수술이다. 지금까지 간 이식수술을 360례나 시행하는 등 괄목할 실적을 축적해 온 삼성서울병원 장기이식센터 조재원(48·이식외과 과장) 박사를 만나 간 이식의 전모를 살폈다. 간 이식수술이란. -주로 말기 간경변, 예전에 간경화증이라고 불렀던 병증에 적용하는 수술이다. 간은 혈관이 무척 발달한 장기여서 이식한 간이 제 기능을 못할 경우 출혈을 억제하지 못해 사망에 이르기도 하는데, 실제로 초기에는 이런 문제로 환자가 채 한달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수술 기술은 물론 혈액 응고와 수혈에 대한 지식이 축적됐고, 안전한 면역억제제가 개발돼 있으며, 수술장비도 예전과 크게 달라 수술후 1년 생존율이 90%나 된다. 간경변은 어떻게 오나. -간경변이란 섬유화가 진행돼 점차 간이 굳어지는 병이다. 감의 염증이 반복되다가 만성화되면 바로 섬유화로 진행된다. 원인은 바이러스성이 많아 B형 간염에 의한 경우가 70%나 된다. 또 술에 의한 알코올성, 유전적 소인이 작용하기도 한다. 참고로, 이웃 일본에는 B형 대신 C형 간염에 의한 간경변이 많아 우리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간경변 발병 추세는 어떤가. -국가적으로 B형 간염 백신을 투여해 장기적으로는 크게 줄 것이다.B형 간염 보균율도 절정기인 30%보다 낮아지고 있다. ●성공률 높아지자 수요도 늘어나 조 박사는 간경변의 진행이 확인되면 서둘러 적기에 수술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간경변을 방치하면 자체의 병증이 심화되는 것은 물론 신장과 폐, 그리고 간 혈관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좀 더 빨리 수술을 하는 게 좋은 예후를 담보하는 조건이 됩니다. 간이식수술의 관건은 혈관을 잘 잇는 것인데, 혈관이 손상된 뒤에 수술을 하면 그만큼 혈관을 보존할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간이식 수술의 추세는 어떤가. -전체적으로는 크게 늘고 있다. 뇌사자의 장기 기증이 수요에 턱없이 못미쳐 간을 통째로 이식하는 전간이식은 답보상태인 반면 다른 사람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생체이식은 크게 늘었다. 아마 간 이식의 성공률이 높아져 수술을 받고자 하는 사람도 많이 늘었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식술의 방법에 대해서도 얘기해 달라. -기증자의 간을 떼어 환자에게 이식할 때 같은 장소에 붙이는 동소성과 다른 장소에 붙이는 이소성이 있는데 요즘에는 대부분 동소성을 적용한다. 또 간 전체를 이식하는 전간이식과 일부를 이식하는 부분이식이 있는데, 전간이식은 모두 뇌사자의 간을, 부분이식은 가족이나 기증자의 간을 옮겨 붙이는 방식이다. 예후는 크기도 충분하고 합병증도 적은 전간이식이 좋다. 그러나 기증자가 제한돼 있어 상황이 급한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면 기증자가 비교적 많은 부분이식은 크기가 제한돼 수술이 까다롭고 상대적으로 장기적인 합병증 우려도 높다. ●중국 원정수술은 ‘득보다 실’ 조 박사는 이 대목에서 최근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중국 원정 간 이식수술에 대한 우려를 털어놨다.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간 수급이 쉬운 건 맞습니다. 그러나 의술이 낙후하고 비위생적이어서 수술 완성도도 크게 떨어지고, 치명적인 감염을 얻어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단순하게 수술비만 보면 쌀지 모르지만 체재비 등을 감안하면 싸지도 않고요. 오죽하면 그런 시도를 하겠습니까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수 있어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의사에게 치료비를 묻는 게 어색하지만, 이식수술 비용은 얼마나 되나. -입원, 수술비만 평균 5000만원 정도다. 그러나 초기 및 수술후 치료비를 감안하면 1억원 정도 든다고 본다. 만만한 비용이 아닌데, 돈없어 수술 못받는 사람들 보면 정말 안타깝다. 수술 성공률과 예후는 어떤가. -성공 여부는 수술후 1년 생존율을 기준으로 하는데, 우리의 경우 90%에 가깝다. 재발률은 통상 15% 정도인데, 재발하면 예후가 썩 좋지 않다. 이식수술에 적용하는 기준이 따로 있는가. -이식술은 간경변 외에도 간암, 급성간부전, 선천성 대사성 간질환, 소아의 담도폐쇄증 등에 적용할 수 있다. 이런 경우라도 65세 이상의 고령자, 전신에 종양이 있거나 감염 및 약물중독자, 심폐기능에 장애가 있거나 에이즈 환자는 수술후 적응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간이식을 할 수 없다. ●이식 대기자 1200명 기증은 50건도 안돼 조 박사는 우리나라도 장기기증이 더 활성화돼 생명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병원에도 기약없이 기증자를 기다리는 간 이식 대기자가 80명이나 되며, 전국적으로는 1200여명이 대기중이나 우리나라 연간 간 기증자는 50건에도 못미칩니다. 뇌사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부분이식이라도 원활히 되도록 모두가 마음을 열었으면 하는게 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 조재원 박사는 △서울대의대 및 대학원(박사)△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전임의△미국버지니아의대 전임의△현, 성대의대 교수 및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과장△현,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실장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아편, 그 황홀한 죽음의 기록/마틴 부스 지음

    아편, 그 황홀한 죽음의 기록/마틴 부스 지음

    신비의 약인가, 죽음의 물질인가. 오늘날 아편이란 단어만큼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도 드물다. 아편은 원래 고대 그리스에서 ‘양귀비 꼬투리의 수액’이란 뜻으로 사용한 평범한 단어였다. 그러나 지금은 결코 그 본래의 뜻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편 하면 으레 부정적인 연상이 앞선다.‘아편, 그 황홀한 죽음의 기록’(마틴 부스 지음, 오희섭 옮김. 수막새 펴냄)은 바로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쓴 아편의 문화사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역사기록 작가인 저자는 그리스와 로마시대부터 중세와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편을 둘러싼 갖가지 인간사를 다룬다. ●고대~현대 아편을 둘러싼 인간사 아편은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약품으로 인간문명 속으로 들어왔다. 기원전 3400년경 인류 최초의 문명인이었던 수메르인들은 양귀비를 ‘기쁨을 주는 식물’이라는 뜻의 ‘헐(hul)’ 또는 ‘길(gil)’이라 부르며 양귀비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양귀비는 기원전 2000년 말까지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죽은 사람에 대한 슬픔을 잊기 위해 아편을 복용했으며, 로마인들은 양귀비를 수면과 죽음의 상징으로 여겼다. 중세 스위스의 유명한 의사이자 화학자인 파라셀수스는 아편을 ‘불멸의 돌’이라 찬양하며 우울증 환자와 궤양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아편은 인류 문화의 창조에도 적잖이 기여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아편에 익숙했다. 토머스 드 퀸시, 조지 크래브,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존 키츠, 윌키 콜린스, 월터 스콧, 찰스 디킨스, 에드가 앨런 포, 장 콕토 등 수많은 문인들이 아편의 몽환적 특성을 창작에 활용했다. 셰익스피어 또한 아편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그의 작품 곳곳에서 그런 성향을 찾아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아편을 “사람을 졸리게 하는 시럽”으로 묘사했다.‘어느 아편중독자의 고백’이라는 자전소설을 남긴 영국 작가 토머스 드 퀸시는 아편을 가리켜 “공기와 같이 삶에 없어서는 안될 성스러운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비의 명약으로 인식되던 아편은 18∼19세기 들어 사람들에 의해 남용되면서 중독의 폐해를 낳기 시작했다. 또 영국 등 제국주의 열강은 대포와 아편을 이용해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 열을 올렸다. 영국과 중국 사이의 아편전쟁이 대표적인 예다. 이 책에서는 ‘중화(中華)에서 중독(中毒)으로’라는 제목으로 중국의 아편 역사와 문화를 다룬다. 아편은 일반적으로 7세기에 아랍인들에 의해 중국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전에 아편에 관한 문헌이 중국에 있었음을 감안하면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중국과 아편은 종종 동의어처럼 인식된다. ●중독폐해·진통기능등 양면성 지녀 19세기 중반부터 중국인들의 해외 이주가 시작되면서 아편도 세계화의 길을 걸었음을 암시한다. 외국으로 나간 중국 노무자들은 이른바 ‘돼지무역’의 대상이 돼 혹사당하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그들은 오로지 아편을 통해 비천한 삶을 위로받았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에서 처음으로 아편을 흡입하게 된 것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때 들어온 중국인 노무자들에 의해서다. 그렇게 시작한 아편은 이제 마약이 돼 미국을 ‘중독된 거인’으로 만들고 있다. 옛날에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다. 하지만 오늘날 모든 마약은 미국으로 통한다. 미국의 66번 고속도로는 다름아닌 헤로인의 운송로다. 얼마나 많은 헤로인이 이곳을 통해 운반되는가는 밀수업자들이 즐겨 부르는 롤링스톤스의 ‘66번 국도’라는 노래가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아편의 역성을 드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아편은 인간이 사용한 최초의 의학적 물질 가운데 하나였으며 수많은 이의 고통을 잠재워준 신의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아편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약도 되고 독도 될 수 있다.2만 1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인천 차이나타운

    [뒷골목 맛세상] 인천 차이나타운

    작가 오정희의 빼어난 단편 ‘중국인 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고 절망적이며 게다가 퇴폐적이다. 주정뱅이, 양공주, 아편중독자 등이 우글거리는 1950년대 전쟁 직후의 ‘중국인 거리’에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주인공 소녀는 앞날에 대한 한 가닥의 희망도 없이 초조(初潮)를 경험한다. 기실 작가에게 있어서 ‘중국인 거리’란 갓 자의식에 눈뜨는 자신의 내면풍경에 다름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일찍이 구한말 이래 ‘청관’이란 이름으로 인천의 북성동과 선린동 일대에 자리잡고 살아온 화교들의 참혹한 생활사가 단색 판화처럼 실사적 풍경으로 드러나 있기도 하다. ‘…저녁 무렵이 되면 바구니를 팔에 건 중국인들이 몰려들었다. 뒤통수에 쇠똥처럼 바짝 말아붙인 머리를 조금씩 흔들며 엄청나게 두꺼운 귓불에 은고리를 달고 전족한 발을 뒤뚱거리며 여자들은 여러 갈래로 난 길을 통해 마치 땅거미처럼 스름스름 중국인 거리를 향했다. 남자들은 가게 앞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말없이 오랫동안 대통 담배를 피우다가 올 때처럼 사라졌다. 그들은 대개 늙은이들이었다. …늙은 중국인들은 우리들에게 가끔씩 미소를 지었다. 통틀어 중국인 거리라고 불리는 동네에, 바로 그들과 인접해 살고 있으면서도 그들 중국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아이들뿐이었다. 어른들은 무관심하게 그러나 경멸하는 어조로 ‘뙈놈들’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과 전혀 접촉이 없었음에도, 언덕 위의 이층집,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한없는 상상과 호기심의 효모(酵母)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밀수업자, 아편쟁이, 누더기 바늘땀마다 금을 넣은 쿠리, 그리고 말발굽을 울리며 언 땅을 휘몰아치는 마적단, 원수의 생간(肝)을 내어 형님도 한 점, 아우도 한 점 씹어먹는 오랑캐, 사람 고기로 만두를 빚는 백정, 뒤를 보면 바지도 올리기 전 꼿꼿이 언 채 서 있다는 북만주 벌판의 똥덩어리였다. 굳게 닫힌 문의 안쪽에 있는 것은, 십년을 사귀어도 좀체 내뵈지 않는다는 깊은 흉중에 든 것은 금인가, 아편인가, 의심인가.‘ 비단 작가 오정희의 작품 속에서만이 아니라도, 화교라는 이름으로 100년이 넘게 살아온 중국인들에게 우리나라는 척박한 황무지를 넘어 차라리 유형지에 흡사할 터였다. 애오라지 끈질긴 인내심 하나만으로 세계 곳곳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하여 어디에서나 나름대로 전통과 문화를 간직한 채 꼿꼿한 자긍심을 지켜온 화교들로서도 유일하게 발을 붙이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걸어야 한 곳이 바로 우리나라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쇠락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역시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화교들에 대한 각종 제도적인 제한과 거의 악랄하기까지 한 경제적, 사회적 차별정책 때문이었으리라. 그렇듯 어둡고 참담하고 부정적이며 어디를 둘러보아도 단 한 점의 희망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쇠락의 대명사 ‘중국인 거리’가 오늘은 관광특구 차이나타운이란 이름으로 화려하게 거듭 태어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이르러 IMF 극복을 위한 외국자본 유인책의 하나로 외국인들에게 부동산 취득을 가능하게 하면서 화교들에 대한 각종 제한과 차별정책 또한 사라진 것이 빌미가 되어, 일찍이 이 땅을 떠나 타이완, 동남아시아, 미국 등으로 나갔던 2,3 세대의 화교들이 되돌아오고 덩달아 화교 자본도 함께 들어온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월 초순 열린 ‘제3회 인천중국의 날 문화축제’때 둘러본 차이나타운은 옛날 가난에 찌든 어두운 모습은 거의 흔적조차 사라진 채 관광특구답게 보다 산뜻하고 이국적인 향취가 풍겨나는 화려한 거리였다. 중국풍의 백화점을 위시한 새로운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는가 하면,20여곳이 넘는 중화요리 식당과 중국잡화점, 중국식품점, 무역회사 등이 한창 번성하고 있었다. 이중에서도 새로 들어선 중화요리 식당들은 저마다 우리가 인천의 차이나타운이라면 습관적으로 떠올리는 자장면의 본고장이라는 식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들의 입맛에 초점을 맞추어 거의 퓨전에 가까운 새로운 메뉴들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자장면 하나에도 태림봉의 유슬자장면, 자금성의 향토자장면, 태화원의 채식자장면, 북경장의 시금치를 갈아 면을 뽑은 녹색자장면, 본토의 고구마자장면 등, 각 식당의 특성에 따라 전혀 새로운 자장면들이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었다. 태림봉(032-763-1688)은 일반 자장면을 약간 고급화하여 유슬자장면(5000원)이라는 특색 있는 자장면을 내었는데, 원래 유슬이란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가늘게 채 썰어서 볶는다는 뜻으로, 거기에 죽순, 표고버섯, 양파, 팽이버섯, 호박, 당근 등의 야채도 함께 채를 썰어서 자장소스를 만들어 보다 격조 높은 자장면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태림봉에서 맛본 요리 중 으뜸은 튀김초면(8000원)이라는 약간 생경한 이름이었다. 원래 팔진초면으로 더 알려져 있는데, 초면이란 일본의 라면처럼 면발을 기름에 튀겨 꼬불꼬불해진 것을 일컫는다. 팔진초면은 이름처럼 8가지 진기한 재료가 들어간다고 해 붙여진 것이다. 초면에 새우, 조개, 키조개, 오징어, 해삼, 소라 등의 해물과 죽순, 피망, 총각버섯, 샐러리, 청경채 등의 야채를 그릇 가득히 담아 내오는데,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드는 맛이 아연 일품이다. 만일 중화요리에 대하여 일가견을 가진 마니아가 있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태림봉의 기아해삼이란 비싼 요리를 권하겠다. 해삼의 내장을 빼내고 그 속에 새우며 키조개, 전복 등을 다져넣어서 통째로 찌고 튀기고 다시 볶아낸 다음에 한 입 크기로 먹기 좋게 잘라낸 이 기아해삼은 원래 쇼양해삼으로 불리는 요리이다. 그런데 옛날 기아자동차 회장이 이 요리에 심취한 나머지 거의 날마다 찾다 보니 중화요리 주방장들 사이에서 마침내 제 이름보다는 기아해삼으로 더 유명해져 버린 것이었다. 기아해삼의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드는 맛은 거의 황홀하여 비단 기아자동차 회장이 아니라도 깊게 빠질 수밖에 없는데, 한 접시에 6만원이나 되는 가격이 아깝지 않게 여겨질 정도였다. 향토자장면(4000원)으로 유명한 자금성(032-761-1688)은 태화원(032-766-7688)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이 곳에선 채식요리들을 권하고 싶다. 태화원의 채식요리는 중국요리로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다. 돼지고기나 닭고기, 쇠고기 같은 일체의 육류는 물론 생선마저도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콩, 표고버섯, 두부, 찹쌀, 감자 등으로 육류며 생선 맛을 내고 있다. 이를테면 콩으로 햄을 만들고 두부로 고기 맛을 내며 한천으로 해파리를 만들고 동고버섯 줄기로 생선을 만들어 내는 식이다. 이렇게 만들어내는 채식요리는 해파리냉채, 라조생선, 라조육, 탕수육, 팔보채, 샥스핀 등으로 물경 50여 가지에 이른다. 공화춘(032-766-0571)에서는 코스요리를 주문할 것을 권하고 싶다.1만 5000원짜리 코스요리에는 3품냉채, 유산슬, 팔보채, 탕수육, 새우칠리소스가 나오고 식사로는 자장면이 따른다.2만원짜리 코스요리에는 삼선샥스핀과 라조생선, 부추잡채가 추가되는데,1만 5000원짜리 코스로도 쉽게 포만감에 이른다. 차이나타운의 중화요리집은 이밖에도 부엔부, 청관, 대창반점, 본토, 신승반점, 주경루, 성림장, 황금성, 향만성, 풍미 등 많다. 만일 이국적인 향취에 취해 거리의 이곳저곳을 느긋하게 구경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한 끼를 때우기 위해서라면 하고많은 식당 중에서 구태여 어느 한 곳을 찾아 기웃거릴 필요가 있을까. 식당 주인들뿐만 아니라 주방장 같은 요리사들을 위시해 종업원 대부분이 화교출신이며 저마다 요리 전문가이다. ●자장면 나이는 121세 자장면이 처음 태어난 것은 1883년 인천이 개항되면서 청국지계가 설정되고 주로 산둥지방의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와 자연스럽게 청요리집들이 생겨나면서 부터였다. 이때 처음으로 청요리를 접한 서민들이 신기한 맛과 싼 가격에 놀랐고, 청요리가 인기를 끌자 누군가가 부두 노동자들을 상대로 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산둥지방에서 즐겨먹던 춘장에 생각이 돌아, 마침내 춘장으로 자장소스를 만들어 국수를 비벼먹는 자장면이 탄생한 것이었다. 자장면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메뉴로 내걸고 장사를 하기 시작한 것은 1905년에 문을 연 공화춘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공화춘은 지금은 당시 화려했던 옛건물의 자취만 남아 있지만 이미 일제 때부터 크게 이름을 날린 고급 요릿집이었다. 물론 지금 차이나타운에 있는 공화춘과는 무관하다. ●“아무거나 고르세요” 차이나타운의 식당 중에 문득 현관에 ‘자장면 없습니다.’라는 쪽지를 붙인 원보(032-773-7888)가 있다. 아니, 자장면을 팔지 않는다니!그러고도 장사가 되나? 약간은 어이없는 기분으로 슬쩍 식당 안을 들여다보면 웬걸 빈 자리가 없게 손님들이 바글거린다. 주로 중국식 만두를 전문으로 하는데 왕만두, 물만두, 찜만두, 군만두가 각각 3000원이고, 생선물만두와 별미만두국이 4000원이다. 어느 만두도 다 맛이 있지만, 별미만두국이야말로 이름 그대로 별미다. 별미만두국은 조개, 굴, 새우, 동죽살 같은 해물에다가 호박과 당근, 양파, 죽순, 송이버섯 등의 야채를 채 썰어 넣어 만두 위에 고명처럼 가득히 얹어준다. 자칫 그릇 밖으로 넘쳐날 것처럼 푸짐하지만 시원하면서도 고소한 국물 맛이 입안에 오래 머문다. 다 먹고나면 정말로 값이 4000원인가 싶게 그 양이며 맛이 뛰어나다. 원보에는 이밖에도 삼선해물탕(5000원), 오향장육이며 오향족발, 해파리냉채, 산동소계라는 닭고기요리가 저마다 1만원인데, 어느 요리든 눈 감고 주문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원보의 유천해 사장은 굳이 자장면을 먹으려면 북경장(032-766-4455)의 자장면을 먹으라고 권했다. 그이의 주장인즉 차이나타운의 자장면이야 맛이 도토리 키재기로 거기에서 거기인데 북경장 자장면이 2000원으로 값이 가장 싸다는 것이었다.
  • [국감 초점] 과기정위-청소년 인터넷 중독 ‘위험수위’

    날로 심각해지는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에 대한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졌다. 1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인터넷 중독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나라당 진 영 의원은 전국 초중고교생들의 인터넷 중독의 심각성을 자료를 통해 제기했다.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2.7%(약 11만명),중학생의 3.6%(약 7만명),고등학생의 7.1%(약 12만 4000명)가 ‘고위험 사용자’이며,전체 초등학생의 13.4%(약 55만명),중학생의 17.1%(약 33만명),고등학생의 17.3%( 약 30만명)가 ‘잠재적 위험사용자’라는것. 진 의원은 그러나 “인터넷 중독에 대한 집단상담을 하는 학교는 최근 3년간 총 103개교,참여자는 총 1228명에 불과하다.”면서 “예방적 활동과 진단,상담이 연계돼야 하고 학생과 교사를 연계한 사업추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은 “지난 7월 정통부와 문화진흥원의 조사에서 만 9∼39세 전국 남녀 2000명 중 전문가 도움이 필요한 인터넷 중독자가 3.3%,인터넷 중독 위험이 있는 사용자가 11.4%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상황이 심각한데도 인터넷 중독 예방상담센터의 인력은 3명에 불과하고 예산도 4억 2400만원밖에 안 된다.”며 예산과 전문인력을 확충할 것을 주문했다. 같은당 강재섭 의원은 “인터넷 중독상담센터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고 중요한 것은 ‘예방’ 기능”이라며 “문화진흥원 주관의 ‘국민정보이용능력평가’에 인터넷 중독을 예방할 수 있는 평가항목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원은 일반인의 인터넷 중독 문제를 제기했다.그는 “온라인 게임이 청소년 인터넷 중독의 주 원인이지만 최근에는 일반인에게로 확대되고 있다.”면서 “인터넷 중독 예방을 위한 범사회적인 노력과 방안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대안으로 “포털사이트의 성인 검색창을 이용할 때 인증 절차를 강화하고 운영자와 회원간의 공동 준수사항 제정 등 보다 강화된 관리방안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인신매매땐 3년이상 징역

    강력한 성매매 방지법이 23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성매매라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단면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법 시행에 맞추어 전국 일선 경찰서별로 특별반속반을 편성해 이날 0시부터 불법 성매매에 대한 집중단속에 들어갔다. 기존의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대체하는 성매매 알선 등 처벌법과 성매매 피해자보호법은 불가피하게 성매매를 한 여성을 ‘피해자’로 규정한다.대신 성매매를 강요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해 업주들의 착취구조를 근절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새로운 성매매 방지법 시행에 따라 바뀌는 제도를 문답으로 풀어봤다. 성매매 피해자란. -위계나 협박,폭력 등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한 사람이다.고용인이 시켜 마약에 중독된 채 일을 하거나 인신매매된 여성,청소년,중대 장애인,심신이 약한 사람 등도 포함된다. 성매매도 일종의 범죄인데 굳이 피해자를 분류하는 이유는. -연소자와 빈곤층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 성매매 구조로 유입되는 것은 국가가 나서서 보호해야 할 사회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피해자의 개념을 마약중독자,청소년,심신미약자,인신매매를 당한 자 등으로 제한해 구체적인 타당성을 가질 것이다. 성매매가 적발되면 누가 처벌받나. -자발적인 성매매자는 처벌받지만,강요에 의한 성매매는 처벌받지 않는다.그러나 성을 구매한 사람은 예외없이 입건된다.6개월 이하의 보호관찰 또는 100시간 이하의 사회봉사나 수강명령 등에 처한다. 카드 빚을 갚으려 3000만원의 선불금을 받았다면 값아야 하나. -안 갚아도 된다.그동안 업주에 빚진 선불금 때문에 성매매를 계속하거나,신고한 이후에도 성매매 여성이 고소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하지만 새 법은 ‘성매매와 관련된 채권은 계약의 형식이나 명목에 관계없이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다. 외국인이 일하는 업소에서 성매매를 해도 처벌되나. -당연히 구매자는 처벌대상이다.또 외국인여성이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했다면 그 여성이 처벌대상이지만,강요에 의해서라면 업주가 처벌대상이 된다. 퇴폐이발소 등 직접적인 성행위가 없어도 처벌되나. -구강이나 항문 등 신체의 일부나 도구를 이용한 유사 성교행위도 성매매로 규정됨에 따라 똑같이 처벌된다.따라서 퇴폐이발소,유리방은 물론 노래방에서도 불법행위가 있다면 단속된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고교생 총기사건 다룬 ‘엘리펀트’

    오프닝 장면인 전봇대 위로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처럼 영화 ‘엘리펀트’(Elephant·27일 개봉)의 카메라는 한 고교의 일상을 무심한 듯 따라간다.하지만 별 사건도 없이 이 학생 저 학생의 뒤를 따라가다 다다른 결말은 충격적인 총기난사.그리고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삐죽 모습을 드러낸다. 총기난사 사건으로 얼룩진 미국 고교의 현실을 담은 이 영화는,같은 소재를 다룬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과 대척점을 찍는다.‘볼링‘이 다큐지만 미국의 폭력문화를 고발하기 위한 장면들만 의도적으로 따와 극적인 구성을 취했다면,‘엘리펀트’는 픽션이지만 총기사건을 전후한 16분간의 일상을 극적 전개 없이 무심코 쫓아가면서 오히려 더 사실적인 느낌으로 찍었다.이 영화가 노린 건 총기사건에 대한 원인 규명이나 비판이 아닌,사실 그대로의 고찰이다.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 때문에 학교에 늦은 존,사진이 취미인 일라이,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미셸,다이어트를 하느라 먹은 것을 바로 토해버리는 치어리더들….영화는 이들 중 한 명의 뒤를 롱 테이크로 쫓아가거나 등장인물들을 겹치게 하면서 다각도로 일상을 조명한다. 그 속에는 아무 것도 과장되어 표현되지 않는다.학교폭력,가정문제 등이 일상 속에 웅크려있을 뿐 모든 것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흘러갈 뿐이다.심지어 총격장면조차도 보통의 영화에서처럼 비장하거나 소란스럽지 않다. 사실 그것이 현실이다.피아노를 치다가 인터넷에서 총기를 구매해 사건을 일으킨 알렉스와 에릭이,스토리를 가진 영화처럼 명확한 이유를 갖고 기승전결에 따라 행동하진 않았다. 제목인 ‘엘리펀트’는 장님 몇 명이 코끼리 몸의 다른 부위를 만지면서 그것이 코끼리의 본질이라고 믿는다는 불교설화에서 따왔다.총기난사 사건도 한 가지만으로 규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오디션을 통해 실제 고등학생 가운데서 뽑았고,대사도 애드리브로 이루어졌다.화면비율은 1.33대 1.‘아이다호’‘굿 윌 헌팅’의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이 영화로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감독상을 수상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공무원시험도 나이제한 사라질까

    공무원시험도 나이제한 사라질까

    공무원 공채시험에도 나이제한이 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원임용시험의 나이제한 조건을 폐지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자 공무원 수험생들 사이에 “교원임용시험뿐 아니라 다른 공무원 시험의 나이제한 조항도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공무담임권과 평등권 침해다.” 교원임용시험은 시·도별로 40∼45세로 응시연령을 제한하고 있었다.인권위는 지난달 13일 이 조항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폐지하라고 권고했다.교육은 특수하고 전문적인 업무인 데다 40세를 기준으로 시·도별 조정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40세로 제한하는 효과를 내고 있었다는 지적이었다.미국이나 영국 등 외국에서도 연령제한이 없다는 점도 참고됐다.교육부는 관련 규정을 고쳐 2006년부터 나이제한을 완전히 없애기로 했다. 이같은 결정이 알려지자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공무원시험에도 나이제한이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김모(31)씨는 “공무원 채용이 공채시험 형식으로 이뤄지는 것은 형평성과 개방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현실적으로 연령제한을 즉각 폐지하기 어렵다 해도 단계적으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정모(34)씨도 “청년실업 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민간기업에 연령제한을 폐지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공무원 채용시험에서부터 모범을 보이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반대논리도 만만치 않다.아무래도 나이든 사람은 체력이나 업무의 습득 및 처리 능력이 떨어지게 마련이어서 조직의 활력을 해칠 위험이 있다.또 고시처럼 ‘공무원시험 중독자’가 생겨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현재 국가직 7급시험은 20세 이상 35세 이하,9급은 18세 이상 28세 이하로 정해져 있다.지방직 공무원 응시제한 연령은 지역이나 직렬별로 일부 차이가 있긴 하지만 18∼20세 이상부터 시작해 공채시험은 대개 35세 이하까지,특채시험은 45세까지로 정해져 있다. ●장기적으로 검토할 문제 공무원시험의 나이제한 조항도 인권위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공무원시험 나이제한에 대한 진정서가 접수되고 있기 때문이다.인권위 관계자는 “연간 50건 정도가 접수되고 올해에는 26건 정도 들어왔다.”고 말했다.그런데 이들 진정은 대부분 중간에서 취소돼 인권위에서 진지하게 논의된 경우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수험생들 입장에서는 공무원시험 종류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다른 공무원시험으로 방향을 돌리거나 아예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 등으로 시험 종류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식 논의되더라도 쉽게 풀릴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교원임용시험은 교육부만 관련된 데 반해 공무원임용시험은 19개 정부부처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지 않다. 또 교원임용시험은 이미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임용 여부 시험인데 반해,공무원시험은 교원임용시험과 같은 ‘자격’이라는 개념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인권위나 중앙인사위원회 역시 “교원임용시험과 공무원시험을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며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인사위는 그러나 이런저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연령제한 폐지가 장기적으로는 검토돼야 할 문제라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젊고 유능한 공무원을 발탁해 안정적인 국가행정을 도모하는 것이 연령제한의 가장 큰 이유라지만 하나씩 따지고 들면 꼭 그렇게 볼만한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다만 아직은 이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우선 공무원 사회가 직위분류제가 아닌 계급제 형태로 조직이 짜여 있는 데다 응시자격에 연령을 제외하고는 학력·경력·성별 등 다른 제한 요소가 거의 없다.여기에다 학생들과 주로 접촉하는 교원과 달리 조직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공직사회의 특수성과 우리 사회에서의 나이 개념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인사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공직사회의 개혁 개방과 함께 연령제한 폐지도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조태성 강혜승기자 cho1904@seoul.co.kr
  • 마약환자 재활돕는 ‘투캅스’

    “흉악범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가정과 사회에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10년 전 서울 용산경찰서 강력반의 반장과 형사가 마약투약 전과자들의 사회 적응을 돕는 ‘마약치료 전도사’로 거듭났다.1999년 학자로 변신한 전경수(사진 왼쪽·51) 광운대 마약범죄학과 교수와 방배경찰서 강력반 조형근(오른쪽·48)형사가 그 주인공이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한솥밥을 먹으며 용산 일대의 강력 사건을 해결해내던 두 사람이 마약치료 전도사로 나서게 된 데는 조 형사가 지난해 전 교수의 학과에 입학한 것이 계기가 됐다.전 교수가 지난 2월 강남구 논현동의 ‘한국 사이버 시민 마약감시단’에 마약 환자를 무료로 치료해주는 ‘라파 의료조정 교실’을 열자 조 형사도 뛰어들었다. 이들이 하는 일은 마약을 투약하여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풀려난 이들에게 다시 마약에 기대고 싶은 욕망을 통제하도록 돕는 것.주로 일과시간 이후에 짬을 내 사무실을 찾는다. 전 교수는 8일 “사무실을 찾는 마약 전과자들이 이제 입소문을 타고 제법 늘었다.”면서 “열악한 환경이지만 이들이 치료를 마치고 고맙다고 찾아올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조 형사도 “마약중독자들의 재기를 도우면서 범죄자를 새 사람으로 만드는 노력도 검거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고 밝혔다. /연합
  • 청소년 20%가 인터넷 중독

    청소년 20%가 인터넷 중독

    청소년의 인터넷중독이 위험수위에 이르러 사회문제화 가능성이 크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만 9∼19세 청소년의 경우 인터넷 ‘고위험 사용자’가 전체평균 4.3%,중독에 가까운 ‘잠재적 위험 사용자’는 16%로 10명 중 2명이 인터넷 중독권에 있었다.이는 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지난 5∼6월 한 달에 한 차례 이상 인터넷을 사용하는 만 9∼39세 남녀 2000명의 ‘인터넷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서 나왔다. 인터넷중독자들은 일반사용자에 비해 6배나 많이 ‘대인관계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인터넷이 대인관계 횟수를 큰 폭으로 줄이면서 청소년을 중심으로 ‘나홀로 족’을 크게 늘려 개인주의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됐다. 고교생인 K군의 경우 게임을 시작하면서 밖에 나가는 빈도도 떨어지면서 한 두명 있던 친구도 없어진 케이스다.게임에 빠지면서 자신을 극도로 회피하는 경우였다.L군은 중학교 2학년때 게임에 몰입돼 자퇴한 경우.L군은 3년가량 집에서 하루 8∼9시간 혼자 게임을 하면서 주의력 결핍,과잉 행동장애를 보였고 가족과도 정서적 친밀도를 맺지 못하고 있었다.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는 만 16∼19세 청소년 100명 중 7명은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야 할 정도의 ‘고위험 사용자’로 인터넷 중독현상을 보였다.전체 조사대상의 2배가 넘었다. 또 13∼19세의 경우 1000명 중 17명이 인터넷 중독 가시권에 있었다. 청소년 조사대상 73.4%가 게임을 하기 위해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응답,게임이 중독의 주 원인이었다. 또 성인물 사이트를 이용한다는 응답도 3.7%에 이르러 청소년이 성인물에 노출돼 있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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