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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거래 내용 요구 가능/감사원/국회 본회의 통과법안 요지

    ◎미결수 변호인접견 내용 청취 불가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5개 법안 및 2개 청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정부조직법(이하 개정안)=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재정경제원으로 통합.건설부와 교통부는 건설교통부로 통합.상공자원부는 통상산업부로,체신부는 정보통신부로,환경처는 환경부로,보건사회부는 보건복지부로 개편.교통부의 관광기능을 문화체육부로 이관.공정거래위를 국무총리 소속기관으로 개편하고 중앙행정기관으로 위상을 격상.경제기획원의 기획조정 및 심사평가 기능을 행정조정실로 이관.중앙행정기관의 주요 과장 직위에 4급 말고도 3급의 배치가 가능하도록 복수직급제를 도입. ◇병역법=각군 참모총장이 현역병 가운데 상근예비역 소집 대상자를 선발가능하도록 규정.군법무관으로 입영하지 않는 변호사 및 공익근무요원 소집대상 보충역 가운데 지원자를 공익법무관으로 편입. ◇행형법=미결수의 변호인 접견 때 교도관이 내용을 청취 또는 녹취하지 못하도록 명시.교화상 또는 처우상 특히 부적당한 사유가 없는 한 원칙적으로 외부와의 접견,서신 교환을 허가. ◇지방자치법=지방자치단체 소속 국가공무원을 임명할 때 지방자치단체장이 제청하도록 함. ◇감사원법=감사원 실·국 설치 및 정원 책정 때 국무회의와 협의하도록 하는 조항 삭제.감사교육 기관을 감사교육원으로 승격.금융기관 특정점포에 금융거래 내용에 관한 정보 또는 자료의 제출 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함. ◇삼청교육대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청원=삼청교육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입법을 적극 추진하도록 정부에 촉구. ◇80년대 강제해직 지역예비군 중대장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청원=국방부가 80년대에 해직된 예비군 중대장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특별입법을 적극 추진할 것을 촉구.
  • “하극상 연대장도 알아”/항소심/조소위,“사단참모까지 보고받아”

    육군 53사단 장교무장탈영사건과 관련,1심에서 군무이탈죄등을 적용받아 각각 징역 7년씩을 선고받은 조한섭(24·학군32기),김특중(22·육사50기)소위 2명을 포함한 관련자 9명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이 21일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서 제1재판부 심리로 열렸다. 조소위등은 이날 대체로 혐의사실을 시인했으나 장교탈영사건의 발단이 된 사병 장교집단폭행사건과 관련,지난 10월 육군이 공식발표했던 것과는 달리 연대장 신모대령과 일부 사단참모까지 당시 사건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육군은 지난 10월 사병 장교폭행사건에 대해 대대장 장두혁(44)중령까지만 알고 있었다고 밝혔었다.장중령은 구속기소된뒤 1심에서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조소위등의 진술에 따르면 지난 8월23일 53사단 해안대대 14중대 45초소장 이모소위(22·학군32기)가 손신(22)병장등 사병 4명으로부터 집단 구타당한뒤 중대장등으로부터 『사단참모들이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느냐』며 경위를 추궁받았다는 것이다. 또 연대장 신모대령은 지난 9월16일 이소위에게 문제사병을 엄중문책할 것을 약속했으나 손병장등 2명만 상관폭행혐의가 아닌 지시불이행혐의로 15일 입창조치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 인정신문과 변호인신문만 가졌으며 2차공판일은 추후통보키로했다.
  • 소령·대위 3천명 정신교육/국방부 내년에

    ◎“사명감 고취”1주일 과정 국방부는 12일 중대장등 일선지휘관의 지휘통솔력을 강화하기 위해 95년 한햇동안 중대장 요원(대위)2천여명과 소령 1천여명을 대상으로 1주일씩 인성개발과 군인정신 함양을 주내용으로 하는 특별교육을 실시키로 했다. 국방부는 이 특별교육을 중대장반·소대장반으로 구분,서울 은평구 수색동 국방정신교육원에서 5박6일의 일정으로 강의 및 토론회를 갖기로 했다. 이 특별교육은 ▲의식개혁 ▲군인정신함양 ▲국민정신 함양등 크게 세가지로 나눠지며 세부적으로는 한국사회 병리현상 진단과 극복,국가안보와 현실인식,원활한 인간관계,직업군인의 역할과 사명등을 주제로 하게 된다. 국방부는 이 특별교육의 성과가 좋은 것으로 판단되면 모든 중대장 요원과 소령급을 대상으로 교육을 확대키로 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어려운 일을 참지 못하고 상급자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한 신세대 사병의 특성을 고려,일선 지휘관들에게 사병 정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장교들의 지휘능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남부 포격 인책/대만,장교2명 해임

    【대북 DPA 연합】 대만군장교 2명이 지난 14일 발생한 하문포격사건의 책임을 물어 해임됐다고 현지 언론이 18일 보도했다. 해임된 장교들은 소금문도 주둔군 중대장 1명과 대대장 1명이다.
  • 군은 그 「자리」에 있다/이재근(서울광장)

    군인으로서 더러 열등의식을 느껴본적이 있느냐에 대해 장교 48%,하사관67%,병은 64%가 그렇다고 응답했다.장교의 88%,사병의 71%가 언제나 또는 때때로 군복무에 보람을 느낀다.사병의 경우 학력수준이 높을수록 보람감은 낮아진다.고졸이하는 77%,고졸은 75%,대학중퇴 또는 대학재학자는 68%,대졸이상은 41%만이 보람을 느끼고 있다.어느 사회학자가 설문조사한 우리 군인들의 직업적 자부심의 정도다.몇년전의 조사지만 그만하면 의무병역으로서의 우리 군 장병들의 사기는 유지돼있다고 볼수있다.누가 뭐래도 우리 군은 국방안보의 의무를 다하며 항상 「그 자리」에 서있다. 지난 주초였다.한 사병의 총기난동사건이 있던날 저녁,사고지역과 인접한 다른 부대의 사격장 근무사병인 막내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총기사건 뉴스에 놀라있던터라 군말없는 안부 닥달에 아이는 『아무런 이상없다』며 태연해했다.역시 그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연이어 터진 크고 작은 군관련 사고에 걱정이 태산같지만 그래도 우리 군이 어떤 군대인가. 그간 몇가지 충격적인 사건 사고들을 놓고 군의 기강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무엇이 군을 그같은 무질서한 조직으로 비치게끔 했는지 국민들은 매우 참담한 심정이었던게 사실이다.그것이 혹시 지난 1년여간의 군 개혁작업과 「바로 서기」과정에서 생긴 무사안일속의 기강해이라면 그 또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그래서 군 책임자를 질책하고 장교와 하사관들의 전반적인 자질을 탓했다.버릇없이 자라 군에 적응치 못하는 이른바 신세대 사병들의 문제점들을 지적했고 군 당국의 냉철한 진단과 처방을 요구하기도 했다.그리고 이윽고는 군내부의 기강과 사기에 영향을 미칠수밖에 없는 바깥사회의 온갖 일그러진 모습들을 돌아보며 자책한 바도 없지 않았다. 일컬어 「지존파」참극에 온보현사건,세금횡령사건과 증인보복 살인사건의 와중에 성수대교 붕괴,관광유람선 침몰사건등 어처구니없는 사건 사고들의 어두운 그림자는 여과없이 그대로 군사회에 젖어들었을 것이다.사고내기 얼마전 바깥사회에 나들이 갔던 범행사병은 가정사정으로 「끼니도 찾아먹지 못한채」마음 상해서 귀대했다.그렇다고 범행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다만 그 무렵의 세태가 또한 어지러웠음을 어른들은 유념할 필요가 있었다는 말이다. 직업군인으로서의 장교와 하사관을 제외한 모든 사병들은 입영전에 이미 성인이었다.모두들 제나름대로 하나의 인격체인 것이다.그런점에서 사병들은 그 개개인이 모두 바깥사회의 반영이다.그들은 대부분 의무복무기간의 군생활을 자신의 가정이나 사회의 연장선으로 생각한다.그래서 엄격하게 말하면 군조직은 그들을 통제할 수는 있어도 흔히 말하듯이 「개조」할수는 없다.촉망받던 동료장교의 주검을 바라보며 『군경력이 1년도 안되는 사병을 가리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라고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고 한 어느 장교의 말은 신세대 장병들의 행태에 관한한 정확한 표현이었다. 군이 사회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하위체계라고 볼때 군대사회와 그 군사회의 배경 또는 환경으로서의 바깥사회는 직접적으로 연결될수밖에 없다.따라서 상위개념으로서의 일반사회가 건강하고 활기넘치면 하위체계로서의 군의사기와 군기는 확고하게 유지되지 않을수 없다.확실한 것은,요즘의 의무사병들은 영내 생활에서도 그 자신이 결코 바깥사회를 벗어나지 않고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몸은 군에 있으되 마음은 밖에 나가있다.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현실이다.사병들의 이른바 장교길들이기의 잠재의식적 연원은 여기서 찾아질수 있다.이 점을 파악하면 거꾸로 장교들의 사병길들이기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군생활에 불만을 가진 사병이 탄약고에서 수류탄을 꺼내 내무반에 던지려할때 그 사병의 머릿속에 부모가 떠오르면 그는 결국 범행을 저지른다.그러나 소·중대장의 얼굴이 떠오르면 수류탄을 던지지 못한다』어느 예비역장성의 경험담이다.지휘관은 사병과 골육의 정(골육지정)을 나눠야 한다는 교훈이기도 하다.「지휘는 아버지처럼,통솔은 어머니처럼」이라는 지휘 통솔요령이 있다.위로부터의 지휘는 합법적 권위로서 할수있지만 전체로서의 통솔은 인격으로 해야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동안의 사건·사고를 위요한 군에 대한 질타와 가편은 이쯤해두자.그리고이제부터 군 조직·제도의 효율화및 경쟁력 제고노력과 함께 사회와 군대­민·군관계의 재정립등을 통한 강군육성책을 논의할 때이다.국방안보의 보루로서의 군의 경쟁력은 근본적으로 민·군의 협조체제가 얼마나 자발적이냐에 달려있고 이는 곧 민·군간의 신뢰관계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수있다.민·군관계를 개선하는 이상의 효율적인 군 사기진작책은 달리 없다고 본다.
  • 군기특별대책 세워야겠다(사설)

    엊그제 군부대 사격장에서 발생한 총기난사사고는 훈련중 일어난 돌발사고가 아니라 군의 인사및 조직관리의 잘못에서 비롯된 군기사고였다.군의 기강이 얼마나 해이돼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고였다.개탄과 함께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사병이 소대장을 구타하는 한심한 사태로 장교가 무장탈영한 것이 불과 한달여 전의 일이다.그런데 이번엔 사병이 장교를 사살한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엄격해야 할 군의 조직에서 생각할 수도 없고 도저히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군기는 군의 생명이나 다름없다.군기가 빠져 있으면 군은 이미 군대로서의 명예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전력 또한 저하되는 것은 필연적이다.군은 엄격한 군율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고 전력도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사격장에서의 군기는 극히 엄격해야 한다.그런데 그 사격장에서 사병이 총구를 돌려 직속상관인 중대장과 소대장을 사살했으니 군으로서는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는가.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그 정도로 군령이 서 있지 않은 군대한테 어떻게 국민의 생명과안전을 맡길 수 있겠는가.국민이 충격을 넘어 위기감까지 느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군당국은 사건의 원인을 군내부문제라기보다는 사고사병의 불우한 가정환경 탓이라고 밝혔다.지휘체계나 기강에는 별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우선 사고사병을 사격훈련에 참가시킨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본다.그가 늘 불우한 처지를 비관해왔고 그날도 탈영할 마음을 비추기까지 했다는 것이다.그런데도 사격훈련을 시킨 것은 사고를 자초한 셈이다.평소 지휘계통을 통해 개인면담등을 한다든가 하여 사병관리를 제대로 해왔다면 사고는 막을 수도 있지 않았나 한다. 어느 사회나 나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그런 사람이라고 모두 사고를 내는 것이 아니다.뿐만아니라 이런 사건은 개인문제와 조직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나기가 쉬운 것이다.이번 사건도 사고사병의 개인문제외에 장교탈영사건 이후 사병들에 대한 장교들의 지나친 통제등이 일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견해가 있다.개인적인 문제만으로 장교들을 골라 총격을 가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군은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그리고 전반적인 군기쇄신을 서둘러야 한다.단순한 사고수습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군의 신세대윤리개발이나 장교요원의 자질향상책등 종합적인 방안이어야 한다.사고와 관계된 지휘관들의 철저한 문책도 뒤따라야 한다.
  • “서일병 장교에 조준사격”/총기사고수사

    ◎탄창 받은후 “엎드려… 탕… 탕” ○○사단 사격훈련장 사병 총기난동사건을 조사중인 육군 3군사령부는 1일 범인 서문석일병(21)이 불우한 가정환경과 군생활에 대한 불만으로 지휘통제장교를 조준사격,소속중대장 김수영대위(30·육사44기)등 2명을 숨지게 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군수사당국은 기무·헌병·인사·감찰등으로 합동조사단은 구성,서일병의 동료장병등을 대상으로 철야조사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육군에 따르면 서일병은 지난 31일 하오 1시쯤 중대사격훈련을 위해 사격훈련장에 도착,1시간25분쯤 대기하다 자신의 사격순서가 돼 10발들이 탄창 2개를 지급받자 탄창1개를 K2자동소총에 결합하고 총을 쏘았다는 것이다. 서일병은 주위에 있던 60여명의 병사들에게 『비켜,엎드려』라고 소리친뒤 자신의 뒤편에 서있던 자신의 소속소대장 황재호중위(23·학군31기)에게 2발을 발사해 숨지게 하고 황중위 옆에 앉아있던 2소대장 조민영중위(23·학사22기)에게 2발을 쏘아 중상을 입혔다. 서일병은 이어몸을 돌려 16m쯤 떨어진 사선에 서있던 소속3중대장 김수영대위에게 2발을 쏴 숨지게 한뒤 오른쪽 5m전방에 엎드려있는 분대장 김효열병장(22)에게 총구를 겨눴다.서일병은 그러나 김병장이 총을 뿌리쳐 총을 떨어뜨렸으며 김병장은 이 틈을 타 달아났다. 서일병은 주위에 놓여있던 다른 사병의 총을 집어들어 손에 들고 있던 나머지 탄창1개를 결합한뒤 사선을 향해 여러발의 공포를 난사하고 총구를 우측머리에 대고 발사,자살했다는 것이다. 군수사관계자는 이와 관련,『서일병이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평소 사회와 군에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동료들에게 총을 쏴 몇사람을 죽이고 탈영하겠다는 의사를 여러차례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조사결과 군지휘체계의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일병이 소속된 3중대는 11월로 예정된 중대전투력측정에 앞서 중대원 1백여명 가운데 다른 주특기교육을 받고 있는 장병을 제외한 나머지 66명의 사병을 대상으로 사격훈련을 실시했다. 한편 군합동조사단은 이날 상오 10시쯤 사건이발생한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덕도리 사격훈련장에서 민주당 정대철·강창성의원등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5명의 의원들과 보도진들에게 현장을 공개하고 사고경위를 밝혔다. 군조사단은 현장공개에서 서일병이 부대내 영점사격장에서 실거리축소사격훈련중 4조4번째로 실탄을 받은 직후 총을 쏘았다고 밝혔다. 군은 서일병은 모두 17발의 실탄을 쏘았다고 말했다.
  • 서일병,17발 난사… 사대 곳곳 핏자국/「총기난사」 현장조사 주변

    ◎범인 형도 군복무중 자살 밝혀져 ○…1일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덕도리 육군 기계화사단내 사격장에서 실시된 총기난사 현장조사는 국회 국방위소속 민주당의원들이 사고원인과 대책을 묻고 군관계자들이 답변한후 현장검증을 하는 식으로 약 1시간40분가량 차분하게 진행. 이날 현장조사에는 정대철·임복진의원등 국회 국방위 민주당소속 의원 5명이 참석했으며 군에서는 26사단 박노숙사단장등 20여명이 배석. ○…사건 현장에는 사고 발생 이틀이 됐으나 여기 저기 핏자국이 선명해 당시의 참상을 짐작케 했다. 사대 앞 간이 탄약대를 중심으로 5m 반경내에는 숨진 중대장 김수영대위와 소대장 황재호중위 등 사상자와 자살한 서문석일병이 흘린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부하 사병의 총격으로 숨진 김대위는 외동아들 방환군의 돌잔치를 하루 앞두고 참변을 당해 주위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특히 김대위는 사고 5일전 장교의 최고 영예인 「강재구소령상」을 수상했으며 평소 모범적인 군생활로 상사와 부하들로부터 촉망받는 장교였다.김대위와 같은 대대에서 복무하다 지난 3월 제대해 TV를 통해 사망소식을 듣고 이날 김대위의 시신이 안치된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덕계리 국군덕정병원에 조문온 김태환씨(26)은 『대대에서 후배를 가장 아끼는 장교로 소문나 있었으며 인내심이 부족한 사병들에게 몸소 군인정신을 실천한 군인의 표상이었다』며 울먹거렸다. ○…서일병이 자신이 지니고 있던 자동소총으로 자살했다는 군 발표와 관련,K­2 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으나 일선 군관계자들은 K­2소총이 한국인 체형에 맞게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자살할 수 있다고 해명. K­2 소총은 총구에서 개머리판까지의 전장이 98㎝에 이르나 개머리판을 접고나면 총구에서 방아쇠까지의 길이가 60여㎝에 불과하다는 것. ○…서일병이 난사한 총탄은 모두 17발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군 관계자는 『서일병이 소대장 2명에게 발사하자 사병들이 모두 엎드렸으나 서일병과 16m간격을 두고 사로에 서있던 김대위가 몸을 피하지 않은 채 서일병을 바라보다가 조준사격을 당해 후송도중 숨졌다』고 말했다. ○…서일병의 친형인 광석씨도 91년 군복무중 자살한 것으로 군 조사결과 밝혀졌다.부대 관계자에 따르면 서일병의 둘째 형인 광석씨는 91년 3월 21일 ○○사단에서 사병으로 복무하던 중 신체 허약 및 유격훈련을 앞둔 두려움에 청산가리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사건으로 숨진 김대위와 황중위의 영결식은 2일 이들의 사체가 안치돼 있는 국군 덕정병원에서 여단장 주관으로 치러질 예정.
  • 사병 총난사 장교 2명 사망/양주 사격훈련중

    ◎6∼7명 부상… 본인은 자살 【양주=김명승·곽영완·주병철·김환용기자】 31일 하오 2시20분쯤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석우리 육군 ○○기계화사단 사격장에서 사격훈련을 받던 이 부대 ○○여단 3중대 소속 서문석일병(21)이 K2자동소총을 난사,중대장 김수영대위(30·육사44기)·소대장 황재호중위(23·학군31기)등 2명이 총에 맞아 그자리에서 숨지고 소대장 조민영중위(학사22기)는 중상을 입었다. 서일병도 갖고있던 총으로 자살했다. 국방부는 사고직후 조중위 말고는 부상자가 없다고 밝혔으나 경찰은 사고당시 주변에 서일병 소속 중대원들이 몰려있었기 때문에 부상자들이 6∼7명선인 것으로 보고 있다. 중상을 입은 조중위는 헬기편으로 서울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으나 총탄이 오른팔과 복부를 관통,중태이다. 사망자는 양주군 국군덕정병원에 안치됐으며,부상자는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있다. 서일병은 이날 하오 1시쯤 사격장에 도착,1시간남짓 영점조준 사격훈련을 받은뒤 순서가 되자 사선에 올라가 지급받은 탄약을 장전한뒤 갑자기 뒤돌아서서 사격장 지휘통제 장교들을 향해 총을 쏜 것으로 전해졌다. 군은 영점사격 때 통상 3∼9발의 실탄을 지급하고 있으나 이날 서일병이 몇발의 실탄을 장전하고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있다. 육군은 서일병이 지휘장교들을 향해 총을 쏜 사실을 중시,사고직후 헌병·기무사등으로 합동조사단을 편성하고 정확한 사고원인과 과정을 조사중이다. 서일병은 서울 Y공고를 졸업한뒤 지난해 12월9일 입대했으며 지난 4월 20일 이 부대로 전입했다. 서일병은 아버지가 국민학교 5학년때 사망하고 어머니는 재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최근 휴가를 다녀온뒤 주위 동료들에게 『가정문제로 괴로워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일단 서일병이 가정문제로 고민하다 우발적으로 총기사고를 일으켰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장교들에게 총기를 난사한 점으로 미뤄 병영생활의 문제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육군 ○○부대는 사건현장은 물론 김대위와 황중위의 시신이 안치된 경기 양주군회천읍 국군덕정병원에도 30여명의 위병들을 배치,바리케이드를 치고 외부인의 출입을 완전 통제했다. 육군 ○○부대는 그러나 사건현장은 그대로 보전되어 있으며 1일 상오 10시 국회국방위 소속 여야의원들과 언론에 현장과 발생원인·경위등에 대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숨진 김대위의 가족들은 이날 하오 5시쯤 병원에 도착,사망소식을 듣고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울부짖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김대위는 88년 소위로 임관한뒤 뛰어난 지휘통솔력을 보여 올해 「강재구 소령상」을 받는등 모범지휘관으로서 신망이 높았으며 황중위는 지난해 대구대 정보통신공학과를 졸업한뒤 임관했다.
  • 대대장 기소유예/「장교탈영」 검찰부

    장교 무장탈영 사건을 수사중인 육군 53사단 검찰부(부장 신면주소령)는 19일 직무유기 혐의로 지난달 29일 구속됐던 해안4대대장 장두혁중령(41·3사 11기)을 기소유예키로 결정했다. 육군은 『장중령이 하극상 사건이 발생한지 20여일 지난뒤 보고를 받았고 그 때는 이미 중대장 선에서 관련 사병들에 대한 자체징계가 끝난 뒤여서 관련자들을 다시 사법처리하기 어려웠던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 오락실 60억 탈세 확인/수뢰 세무서계장·경관 추가 구속

    ◎오림포스 슬롯머신수사 【인천=김학준기자】 인천 오림포스호텔 슬롯머신업소 뇌물사건을 수사중인 인천지검은 18일 자진출두한 전 인천세무서 부가세과 계장 정두채씨(50)와 이 업소로부터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아온 인천경찰청 기동대1중대장 김승수경사(38·전 인천경찰청 방범과)를 뇌물수수혐의로 긴급구속했다. 검찰은 그러나 백성훈씨(44·전 인천세무서 특별소비세과)등 잠적한 3명의 하위직 세무공무원들이 아직 출두하지 않음에 따라 이들이 오림포스호텔 슬롯머신업소의 세금포탈에 주도적으로 개입했을 것으로 보고 이들을 검거하기 위해 경인지방국세청에 명단을 통보,출두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인천지방경찰청 직원 10명으로 검거반을 편성,연고지등에 급파했다. 검찰은 이들이 지금까지 밝혀진 부가가치세 탈세액 31억1천만원을 포함,특별소비세·종합소득세등 각종 세금 60여억원을 탈세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특히 슬롯머신업소 입장객 1인당 1천원씩 부과하는 특별소비세의 경우 전체 입장객수를 검증하는 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해 업소가 자진신고하는 자료를 그대로 세액으로 산정해온 사실을 중시,이 세목에서 상당액의 탈세가 이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 하극상 사병 3명 15∼10년 구형/군사재판 첫 공판

    ◎탈영 소위2명 10년·하사15년 【부산=김정한기자】 장교및 하사관의 무장탈영사건 피고인들에게 최고 징역 15년에서 최하 3년까지의 중형이 구형됐다. 10일 상오 9시30분 육군 제11군단 보통군사법원(53사단 법정)에서구속된 29명가운데 1차로 기소된 9명에 대한 1차공판이 재판장 강운학중령 심리로 열렸다. 군검찰은 논고를 통해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지고있는 현역장교와 하사관이 무기를 훔쳐 군부대를 이탈,소총을 난사한데다 통신선을 절단해 초소의 통신을 마비시켜 전군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국민을 불안케한 행위는 엄벌에 처함이 마땅하다』고 구형이유를 밝혔다. 이날 재판에서 군검찰은 무장탈영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특중소위(22·육사50기)와 조한섭소위(24·학군32기)에게 각각 징역10년,황정희하사(22)에게는 15년을 구형했다. 소대장을 폭행한 혐의(속칭 소대장길들이기)로 구속기소된 손신병장(22)에게는 징역15년,신원식병장(22)과 유영민상병(22)등 2명에게 각각 징역10년이 구형됐으며 상관폭행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김헌중대위 (31·학군 28기)와 김기환대위(31·3사후보생5기)등 2명은 징역3년,탈영장교의 훔친 수류탄을 보관한 윤종천이병(22)은 5년이 구형됐다. 재판에서 피고인들은 대부분 혐의사실을 순순히 시인했으며 탈영했던 김·조 소위와 황하사는 『하극상 문제이외에 개인적이 동기로 탈영한 것이 아니냐』는 군검찰관의 추궁에 『하극상 문제를 사회에 알리기위해 탈영했을뿐 개인적인 탈영동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재판에는 가족들에게만 출입이 제한되는 등 비공개로 이뤄졌던 지금까지와 달리 피고인가족 20여명과 군부대관계자,취재진등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선고공판은 오는 13일 상오 10시 53사단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1차공판 스케치”/“일병이 하사에 담배달라 반말… 분개” ○…이날 첫공판에참석한 구속자가운데 김기환대위를 비롯한 장교4명과 황정희하사는 짧은 스포츠형,신원식병장등 사병4명은 삭발하고 입장했으며 모두 군복상의를 하의 밖으로 드러낸채 헌병들과 함께 법정에 도착. ○…이날 피고인에 대한심리는 계급순으로 진행.구형도 김기환·김헌중대위부터 시작,탈영한 장교 2명과 황하사 및 탈영장교가 훔친수류탄을 보관했던 윤종천이병에 이어 마지막으로 소대장을 폭행한 신병장등 3명에 대한 순으로 이뤄졌다. 소대장 폭행사실을 알면서도 상부에 보고하지않은 김기환 대위는 피고인 진술에서 『초급장교인 소대장과 대대장급이상의 고급장교와의 허리역할을 해야할 중대장으로 책임을 다하지 못해 이런 불미스런 사태가 발생했다』며 『본인이상의 장교에 대한 처벌을 하는 것은 군의 사기를 위축시킬 수 있고 자신에게 모든 잘못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만 책임을 물어달라』고 말한뒤 결국 눈물을 흘려 법정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무장탈영을 주도했던 김특중소위는이날 군내에 만연한 하극상에 대해 많은 소대장들이『어차피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며 2년만 있으면 제대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어 이대로는 안되겠다싶어 무장탈영을 결심하게 됐다』고 털어놔 지금까지 사병들의 하극상에 대해 장교들의 적극적인 대응이 없었던 점을 시인했다. ○…군사법정에서 황정희하사는 지난해 5월 해안초소 선임하사로 배치되자 사병이 『야 담배있나』고 반말을 하는가 하면 일병이 『이곳에서 생활하려면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일병 이상에게 경어를 사용하라.계급 높다고 까불지 마라』는 등 모욕적인 언행을 일삼았다고 군기문란을 생생히 진술. 또 김특중소위는 지난 7월 초 사병들이 말을 잘 안듣는다는 이유로 해안을 향해 실탄 1발을 발사했는가 하면 내무반에서 수류탄으로 소대원들을 위협하기도 했으며 조소위도 지난8월 중순 내무반에 전 소대원을 집합시켜 놓고 M16소총으로 천장에 실탄 2발을 발사한 것으로 드러나 지휘체계가 한계에 달했음을 짐작케 하기도.
  • 화 자초한 군/이건영 정치2부차장(오늘의 눈)

    군이 스스로 화를 부르는 우를 범하고도 이유를 몰라한다.이번 장교무장탈영사건과 관련하여 군당국은 대대장·중대장등 상급지휘관 3명을 포함,29명을 사건발생 직후 대거 구속했으면서도 쉬쉬해오다 언론에 의해 이같은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진상을 축소·은폐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자초한 결과가 됐다. 관련자 구속과 동시에 이런 사실을 공표했더라면 군 기강해이라는 사건발생의 원인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더라도 군기확립을 위한 「일벌백계」의 조치라는 일견 긍정적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그러나 관련자 대거구속사실을 숨김으로써 『군이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시키려 국민을 또한번 속였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것이다.즉 관련자를 슬그머니 연행조사하다 여론이 계속 시끄러우면 「구속」으로 가고 조용하면 어물쩡 넘어가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군수뇌부의 대처능력부족이 호미로 막을 상황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힘든 형국을 불렀다는 자조감이 군내부에서 조차 일고 있다.사태가 이토록 꼬인 것은 아직도 개혁정신과는 동떨어진보신제일주의가 군 일각에 남아 있다는 것을 뜻한다. 군은 이제 제2의 개혁시대를 맞고 있다.무엇보다 군의 기강이 땅에 떨어져서는 군사문화의 인적 청산을 넘어 제도적 청산으로 나갈 2차 개혁의 성공이 불가능해진다. 조그마한 해안 후방부대에서 일어난 하극상의 파장이 이처럼 재확산된 데 대한 책임소재를 가리기에 앞서 이렇게 밖에 될 수 없었던 군내의 상황을 곱씹어 봐야 할 것 같다. 관련자 구속발표를 조사가 완전히 끝난뒤 하려다 시기를 잃었던 것인지,아니면 일부에서 지적하고 있는 진상축소를 염두에 두었던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이번 사건과 관련,국정감사장에서 어느 의원도 관련자 처리등 후속조치의 내용을 묻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행정부와 국회의 「총체적 직무유기」라는 비판마저 일고 있다.공허한 「책임론」「인책사퇴론」만을 외치다 판이 끝나 버렸던 것이다. 공허한 책임공방은 이제 끝내야 한다.지금은 보다 구체적이고 확실한 군 기강확립방안을 마련하는데 군과 행정부 뿐 아니라 국회도 동참한다는 각오를 보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우리의 안보태세에 뚫린구멍은 그것이 비록 작은 것이라도 결코 방치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대대장·중대장 등 29명 구속/육군,장교탈영 수사

    ◎사단장·연대장도 문책 방침/「소대장 길들이기」 하극상 전군 실태조사 육군은 지난달 27일 발생한 장교 무장탈영사건과 관련,지휘책임을 물어 대대장(중령)과 중대장(대위)2명등 지휘관 3명을 구속하는등 모두 29명을 구속수사중인 것으로 5일 밝혀졌다. 사건발생부대인 육군53사단 관할헌병대는 탈영사건 직후인 지난달 28∼29일 탈영자인 김특중(22·육사50기)·조한섭(24·학군32기)소위 외에 이 부대 제4대대 대대장 장두혁중령(41)과 13중대장 김기환(3사 31기)·14중대장 김헌중대위(27·학군28기)등 지휘관 3명을 직무유기혐의로 구속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 중대 이모소위(24)를 집단구타한 신원석병장(22)등 사병 4명과 탈영당시 위병소를 지켰던 이정부(22)·김현호(24) 두 방위병도 상관폭행및 직무유기 혐의등으로 구속됐다. 육군은 또 수사과정에서 신병장등과 함께 이른바 「소대장 길들이기」를 주도했거나 적극 가담한 것으로 드러난 사병 17명(병장∼이병)을 지난 1∼2일 상관면전모욕혐의로 추가구속했다. 이로써 이번사건 관련 구속자는 지휘관 3명,황정희하사(23)를 포함한 탈영자 3명,상관폭행및 모욕 사병 21명,위병 2명등 모두 29명이 됐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중이어서 구속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없지않으며 해당부대 사단장과 연대장도 지휘책임을 묻게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군수사당국에 따르면 구속된 신병장등은 평소 소대장 방에서 화투놀이를 하는등 「신임소대장 길들이기」로 지휘체계를 문란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육군의 한 관계자는 『장교탈영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병들이 상관면전에서 모욕행위를 저지르는등 군기를 문란케 한 사실이 드러나 관련사병등을 구속했다』면서 『당초 조사가 끝난 뒤 발표할 예정이어서 구속사실을 대외비로 해왔다』고 밝혔다. 한편 국방부는 군특명검열단으로 하여금 이와는 별도로 오는 10일부터 군기위반실태에 대한 특감을 벌이도록 하고 전군에 대해서도 군기조사를 실시키로 했다.
  • 장교 명령 안먹히는 군기/장교탈영 계기로 본 문제점

    ◎엄격한 통솔 옛말… 하극상 잇따라/“인내심 부족” 신세대자질 한 몫 창군이래 처음 발생한 27일의 현역장교 무장탈영사건은 곤두박질치는 군기강을 대변해 주고 있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군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앞으로 군개혁이 「군다운 군 건설」을 위해 내실있게 추진돼야 하며 이를 위해 군 스스로 현재 안고 있는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점검,대책을 시급히 강구해야 할 시점에 도달해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신정부 출범이후 군개혁은 정치군인의 배제에 초점을 두고 추진돼 군기강확립,근무여건 개선등의 실질적 문제는 「찬밥신세」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이번 사고는 해안초소라는 특정근무환경에서 발생했으며 해안초소의 경우 병사들이 대부분 한고향출신으로 민간인과 접촉이 빈번해 각종 사고가 빈발,전방부대등과는 환경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있다. 육군에 따르면 이번에 탈영한 육군 00사단 해안 4대대 13중대소속 조한섭소위(24·학군32기)와 14중대소속 김특중소위(22·육사50기)는 지난 7월 함께 첫 근무지로 이부대에 온뒤 병사들이 「말을 듣지 않아」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육군은 탈영소위들이 소대원들이 경례나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시를 충실히 따르지 않았으며 일부병사는 반말을 서슴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김소위는 이같은 군기문란을 수차례 소속 중대장 김모대위(28·학군 27기)에게 보고,시정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불만을 갖고 있던중 조소위 소속 14중대서 발생한 하극상사건을 중대장이 미온적으로 처리,탈영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23일 하오 14중대의 이모소위(24·학군32기)가 이등병을 구타하는 소대원 신모병장을 말리면서 『구타는 못하게 돼있으니 차라리 나를 때리라』고 하자 신병장이 『못때릴줄 아느냐』면서 이소위의 뺨을 한차례 때린뒤 이소위가 멱살을 잡자 다른 사병 3명과 함께 집단구타한 것이 하극상사고의 전말이다. 중대장 김대위는 이에 대해 이소위에게 『부대통솔을 잘하라』고 꾸짖는 한편 신병장은 군법회의에 넘기지 않고 얼차려조치만 내려 불만이 극에 달하게 됐다는 것이다. 군관계자들은 이같은 탈영사고에 대해 군의 낙후된 교육과 흐트러진 군기강,인내심없는 신세대장교의 자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현재 군은 사병들의 경우 50%가량이 전문대졸업이상의 학력을 지니고 있어 자존심이 강한데다 자기 주장이 강하다고 군고위관계자들은 지적한다. 따라서 과거 계급조직에서 명령과 지시로 규율이 엄격했던 장교들의 통솔방법이 먹혀들지 않고 있으며 최근들어서는 병사들이 일부장교의 지시에 걸핏하면 반발,하극상사고등이 많아지고 있다는게 군관계자의 설명이다. 하극상사고는 90년 1백13건이었으나 93년 1백32건이고 항명은 90년 2백59건에서 93년 4백13건으로 크게 늘고 있다. 이에 대해 군관계자는 『병사나 장교나 신세대들은 대부분 인내심이 부족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 군기문란과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군윤리나 합리적인 지휘관통솔기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이런 교육이 없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장교가 자기주장이 무시된다고 무장탈영의 방법을 택했다는 점은 있을 수 없으며 이들은 장교자질이 전혀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장교 무장탈영의 전말/“희생감수 병폐 근절”… 두소위 투합/소대원에 불만 많던 하사도 가담 「장교탈영」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빚은 조한섭소위는 지난 8월말 군부대를 찾아온 아버지 조철호씨(57·예비역 중령·창원시 용호동 롯데아파트 213동 201)등 가족들에게 군내부생활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었다. 조소위는 당시 지난달 8월23일쯤 인근소대에서 있었던 사병들의 소대장 구타사건과 이에 대한 상급 지휘관의 미온적인 처리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고 한다.조소위는 가족들에게 『인근 소대 소대원 사병 4명이 아들과 학군장교동기인 소대장을 집단으로 마구 구타한뒤 해당 소대장에게 식사도 챙겨주지 않는다』며 『장교로 군생활을 했던 군선배인 아버지는 이같은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군체질에 대한 어려움을 설명했었다. 실제로 23일 조소위 소대의 인 해안초소장 이모소위(학군 32기)가 부하인 신모병장이 한 이병을 구타하는 것을 보고 『이병이 뭘 알겠느냐 그러려면 차라리 나를 때리라』고 했다고 한다.그러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신병장이 이소위를 한차례 때린 것이다.이소위가 신병장의 멱살을 잡는 등 승강이가 벌어졌다.곁에서 구경하던 현역사병 4명까지 가세해 사병이 소대장을 구타하는 집단적인 하극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와관련,이소위와 그의 학군동기인 조소위,소대원들이 반말을 하는 등 통솔에 어려움을 겪어온 김특중소위 등 3명은 지난 21일 모임을 갖고 대책을 논의했었다.그 때 조소위가 우리가 희생되더라도 부대의 병폐를 근절시키자며 무장탈영을 제안,김소위가 즉각 동조했으나 정작 당사자인 이소위는 부정적이었다.이에 따라 조·김소위 두사람만 탈영하기로 하고 탈영차량확보를 위해 승용차를 가진 황정희하사(22)를 끌어들이기로 결정했다.의사타진 결과 평소 소대원들이 지시에 잘 따르지 않아 불만을 품고 있던 황하사도 쉽게 동의했다. 가족들은 이같은 정황으로 볼때 군기강해이등 문제가 군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낀 이들 젊은 장교들이 이같은 사실을 양심선언을 통해 외부에 알리기 위해 부대를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 군기 빨리 바로 잡아라(사설)

    현역 육군장교와 하사등 3명의 무장탈영 사건이 국민들에게 주는 충격은 엄청난 것이다.다행히 일찍 검거돼 대형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사건의 성격이나 발생원인으로 보아 군의 기강해이와 지휘체계문란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최근 잇따라 발생한 엽기적 살인사건으로 사회가 보통 어수선한 것이 아니다.그런 마당에 국가안보의 보뢰인 군에서 장교의 집단무장탈영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터졌으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두 장교의 행위는 동기가 어디에 있든 결코 용납될 수 없다.초급장교로서 소대원들을 지휘하는데 어려움은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고충을 무장탈영이라는 극단의 방법으로 해결하려했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하사관이나 사병의 탈영을 막아야할 그들이 스스로 탈영을 감행하고 하사관마저 대동하다니 어디 말이나 되는가.장교로서의 자질자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탈영하게된 직접적인 동기를 보면 더욱 한심하기 짝이 없다.이들 장교는 부대내 군기문란을 소속 중대장에게 여러차례 시정해 주도록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데 불만을 품어왔다고 한다.그러다 최근 사병이 장교를 구타한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중대장이 이를 미온적으로 처리하자 탈영을 결심했다는 것이다.사실이 그렇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어떻게 사병이 장교를 구타할 수 있는가.상급자도 하급자를 구타하는 일이 금지된지 오래다.그런데도 중대장이 사건을 유야무야 처리했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문제를 쉬쉬하고 덮어두려 한 자체가 잘못이다.중대장은 사건을 즉시 상부에 보고하고 이를 적극 개선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옳았다.어느새 보신주의와 복지불동 분위기가 군내부에까지 확산된것이 아닌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건은 한마디로 최악의 군기사고였다.일어나선 안될 사고였다.군의 기강이 제대로 잡히고 지휘체계가 바로 서 있는 군대라면 이런 사고는 일어날 수가 없다.평상시에 군의 기강이 이 정도라면 비상시 군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우리 군은 문민정부 탄생이후 그간 자체 개혁을 통해 새로 태어나려고 노력해 왔다.그 점 높이 평가받을 만 하다.그러나 개혁이 군의 지휘부에 대해선 어느 정도 성공했을지 몰라도 하부조직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의심된다. 국가안보의 제1차 담당집단은 바로 군이다.군의 철통 같은 방위태세가 있기에 국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국민이 굳게 믿는 군이 더 이상 해이된 상태로 남아있어선 안되겠다.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은 기강과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확립하길 당부한다.
  • “사병들 소대장 집단폭행/미온적 처리에 불만” 탈영

    ◎국방부,장교 탈영동기 중간 발표 27일 발생한 현역장교와 하사등 3명의 무장탈영사건은 사병의 소대장 구타등 군내부의 군기문란과 지휘권 실종등에 대한 불만으로 일어난 군기사고로 밝혀졌다. 육군은 28일 무장탈영 11시간만에 자수한 조한섭(24·학군32기)·김특중(22·육사50기)등 소위 2명에 대한 중간수사발표를 통해 이들의 탈영동기를 이같이 밝혔다. 육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23일 조소위가 소속된 육군 ○○사단 해안14중대에서 동료 이모소위(24·학군32기)가 하급자를 구타하던 신모병장을 만류하다 오히려 신병장에게 구타당하는 하극상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중대장 김모대위(28·학군27기)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자 이에 반발,탈영했다는 것이다. 육군은 이번 사건이 군기사고인 점을 중시해 육군본부의 인사·법무·헌병·기무·감찰등 5부 합동조사단을 ○○사단으로 보내 탈영동기등 사고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있다. 육군은 또 이번 사건의 지휘책임을 물어 14중대장 김대위부터 연대장급까지의 지휘관들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소대장을 구타한 신병장등 직접 관련자들을 구속키로 했다. ◎황 하사 수사 계속 【울산=이용호기자】 군부대를 탈영,도피중인 황정희하사(23)를 추적하고 있는 군·경합동수색대는 28일 하오 현재까지 울산군 상북면 이천리 주계마을,사슴목장·무지개농장부근과 간월산·천황산일대를 수색했으나 황하사를 찾는데 실패했다.
  • 장교 2명 무장탈영… 10시간만에 투항/울산 초소

    ◎함깨 달아난 하사1명 계속 추적/하극상등 군생활 불만인듯 【울산=이용호·김정한기자】 27일 상오 3시쯤 경남 울산 주둔 육군모부대 해안초소에서 근무중이던 초소장 김특중소위(23)와 소대장 조한섭소위(25),초소 선임하사 황정희하사(23)등 3명이 M16소총 2정과 수류탄 6발,실탄 1백발을 휴대하고 무장탈영했다.이들중 김소위와 조소위는 이날하오 울산군 상북면 이천리 배내골까지 달아났다가 검거됐으며 황하사는 계속 도피중이다. 군경합동수사반에 따르면 이들 3명은 이날 상오 2시45분쯤 초소내에서 전화선을 끊은뒤 수류탄과 소총을 들고 취침중인 사병들을 내무반으로 집합시키고 『따라오지 말라.만약 따라오면 모두 죽인다』며 위협한 후 초소앞으로 나와 공포탄3발을 발사한뒤 미리 준비한 황하사 소유의 프레스토승용차를 타고 달아났다. 이들 탈영병들은 울산군 상북면 이천리 배내골에서 미리 대기중이던 군경수색대와 대치하다 하오1시25분쯤 조소위와 김소위는 투항했고 황하사는 계속 승용차를 몰고 달아나다 타이어에 펑크가 나자 차를 버리고 인근 가지산쪽으로 도주,군경이 수색을 벌이고 있다. 조소위는 전날밤 울산시내에서 술을 마시고 늦게 내무반에 들어와 사병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부대원들과 다툰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대장에게 남긴 메모지에 『후배들은 자신들처럼 탈영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글을 남긴 점으로 미뤄 하극상이나 군생활에 대한 불만으로 탈영한 것으로 보고있다. 이날 무장탈영사건이 발생하자 군당국은 사건을 숨긴채 자체적으로 수습하려다 3시간50분이 지난 상오6시30분쯤에야 관할 울산동부경찰서에 검문검색을 요청,탈영병들을 일찍 검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 신병 훈련중 수류탄 터져/훈련병 등 2명 사망

    지난달 22일 하오3시쯤 육군 9사단 신병교육대 수류탄투척훈련장에서 이 부대 1중대소속 김문일훈병(20)이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이 터져 투척호안에 함께 있던 소대장 조광성중사(22)와 김훈병이 숨지고 참호밖에 있던 중대장 김경수상사(33)등 3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실이 12일 뒤늦게 밝혀졌다. 육군에 따르면 사고당일 숨진 조중사가 투척호안에 들어가 훈련지휘를 하는 가운데 김훈병이 수류탄을 던지려다 실수로 떨어뜨리자 조중사가 이를 집어 참호밖으로 던지려는 순간 수류탄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 이달의 독입운동가 양세봉장군/압록강 순시한 사이토총독 저격

    ◎조선혁명군 이끌고 만주서 항일투쟁/일군과 2백차례 혈전… 밀정에 살해돼 『나를 따라 생명을 각오하는 동지들은 손을 들어주십시오.조국광복군과 동만백만동포의 생명을 두 어깨에 짊어진 우리는…』 1932년 조선혁명군사령관 벽해 양세봉장군(1896년6월5일∼1934년8월12일)이 만주 흥경현에서 일제 관동군과 대회전을 갖기에 앞서 동료 독립운동가들에게 행한 연설의 일부다. 양장군은 이 전투를 포함,일제와 밀정들에게 붙잡혀 순국한 34년까지 2백여차례이상 혈전을 치른 신화적인 무장항일투사였다. 선생은 30년대 만주지역에서 활약한 최후의 독립군 명장으로 항일독립운동사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선생이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26세때인 22년부터.이전에도 3·1만세 시위운동을 펼치는등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나 이즈음부터 무장독립운동가로 본격 활약하게 된다.선생은 의주·삭주 경계의 천마산을 근거지로 해 항일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무장단체 천마산대(대장 최시흥)에 가입,창성군 대유동 경찰서와 금광사무소·영림창을 습격하고군수물자를 빼앗는등 기염을 토했다. 5백여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천마산대는 유격전을 능숙하게 구사하면서 일제에 위협을 가하던 단체였다. 선생은 천마산대가 일제의 대대적인 「토벌」로 활동불가능 상태에 빠지자 여러 독립운동단체들이 연합해 구성한 대한통의부등에서 의용군으로 활약했다. 대한통의부 의용군이 발전해 참의부가 결성되자 제3소대장에 임명된 선생은 24년5월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평북 초산군·강계군에서 일경과 교전해 수명을 사살했으며 압록강을 순시하던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재등실)일행에 총격을 퍼부어 일제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선생은 일제의 배후조종을 받은 마적단의 습격으로 통의부 신팔균총사령이 전사한뒤 통의부·대한군정서·의성단등이 정의부로 확대통합되자 정의부 의용군 중대장에 임명돼 일경·친일분자의 처단에 앞장섰다. 정의부는 김동삼선생을 의장으로 지역군사·재정·행정·교육·사법등 모든 부문을 국가체제에 맞춰 틀을 짰다. 선생은 이어 만주지역에서 벌어진 좌우합작운동의 영향으로 정의부를주축으로 여러 독립운동단체들과 연합해 민족유일당 조직동맹을 결성,이 동맹이 다시 조선혁명당으로 발전하자 소속 부대인 조선혁명군 부사령의 중책을 맡게 된다. 조선혁명군은 30년대 적기관을 습격하고 밀정을 처단하는 한편 대중조직및 거점확보를 위해 특수공작원을 국내로 특파하는등 독립운동사에 맹활약을 펼친 것으로 기록돼있다. 선생은 31년 일제가 중국 동북지방을 침략한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한·중 공동대응을 위해 중국인 실력자 왕동헌의 요령 농민자위군과 협의해 연합부대를 편성했다. 이런 가운데 32년 조선혁명당은 비밀간부회의를 열었으나 정보를 입수한 일경의 급습으로 간부 83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선생은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혁명당의 총사령에 취임하는 동시에 혁명투사 양성을 위해 조선혁명당이 설립한 속성사관학교 명예교장에 추대된다. 선생은 또 중국 의용군 총사령 이춘윤과 요령 민중자위군 결성 협정을 체결,일제와 2백여차례에 걸쳐 혈전을 치렀다.32년3월 신빈현 남쪽에서 벌어진 일제 관동군과의 접전에서선생의 부대는 일군의 주둔지를 빼앗는 전과를 올렸다. 같은 달 하순 일제가 폭격기까지 동원해 반격전을 펼치자 선생은 한중연합군 1만여명을 투입,치열한 전투 끝에 일제를 물리치는 억센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한중연합군은 그러나 관동군이 두달후 세력을 재결집,대대적인 공세를 가해옴에 따라 10월까지 5개월동안 여러차례 전투를 치렀으나 일제 공군력에 밀려 주공격력을 잃게 된다. 선생은 이에 따라 다음해인 34년1월 조선혁명군 재건을 위해 총사령에 취임,같은해 5월 황해도 사리원경찰서를 습격하는등 유격전에 나선다. 조선혁명군은 이어 장개석의 국민군에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흥경현 진주령에서 일본군 병력수송기차를 습격,수십명을 사살하고 경기관총·대포등을 노획하기도 했다.또 1개 대대병력으로 기습해온 일군을 물리치고 오히려 추격전을 펼쳐 일군 80여명을 사살한다. 선생은 그러나 34년 평소 혁명군을 지원해온 중국인을 만나기 위해 환인현 소광구 골짜기로 나갔다가 일제 밀정등의 총격을 받고 장렬하게 순국한다.이 중국인은일제 밀정의 꾐에 빠져 변절하고 선생을 인적드문 골짜기로 유인한 것이었다. 일제는 후에 선생의 묘를 파헤치고 시신에세 목을 떼어 가져가는 만행을 저지르는등 잔악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조선혁명군은 선생의 순국이후 급격히 세력이 위축돼 소규모 유격전으로 독립군의 명맥을 유지하는데 그쳤다. 선생은 동지는 물론 주민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은 명장이었으며 항일무장투쟁사에서 김좌진·홍범도등과 함께 3명장으로 손꼽히고 있다. ▷고침◁ 7월의 독립운동가 이준열사는 1859년1월12일 출생,1907년7월14일 순국했기에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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