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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기탈취 가짜소령­초소장 대화 내용

    ◎대대본부 도 상사 잘있나… 저게 K­2소총인가/간첩도 나타나고… 순찰하게 총·실탄 좀 달라/“수행 하겠습니다”… “필요없다 혼자 돌겠다” 3일 밤 경기 화성군 해안초소에서 육군 소령을 사칭,총기를 사취한 40대 남자는 초소장 남정훈 소위(23·학군 34기)로부터 부대현황에 대한 보고를 받은뒤 10여분간 대화를 나눴다.다음은 국방부가 밝힌 범인과 남소위와의 대화내용이다. ▲범인=살고지초소가 우측에 있느냐.용두리 포구(경비정 위치)는 어딘가.(범인은 소대장 브리핑을 관심없이 들으며)내가 대대본부 도○○상사를 잘 안다.도상사는 잘있느냐.(범인은 총기거치대를 보며)저 총이 K­2 소총이냐. ▲남소위=그렇습니다. ▲범인=내가 소대장 할때는 K­2 소총이 없었다.(K­2 소총을 들고 개머리판을 접었다 폈다해봄)내가 순찰 좀 하겠다.이 지역에는 간첩도 나타나고 취약하다는데 총하고 실탄 좀 다오. ▲남소위=(선임하사의 총과 실탄을 주면서)제가 수행하겠습니다. ▲범인=수행할 필요없다.혼자 돌고 오겠다.(혼자 소초를 빠져나감) 이어 남소위는 근무자교대를 위해 병력을 집결시켜 점검한뒤 초소에 투입.초소에 가짜 소령의 행방을 확인했으나 『보이지 않는다』고 응답하자 뒤늦게 이상하다고 느끼고 선임하사와 상의하던중 중대장 현지순찰때 보고.
  • 군 간이탄약고 폭발 장교 등 넷 사상

    군부대 중대장실에 있던 간이탄약고가 폭발,중사 1명이 숨지고 소대장 1명과 사병 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9일 하오11시30분쯤 경남 사천시 사등동 육군 모부대 기동중대 행정반옆 중대장실에서 석유난로가 과열되면서 화재가 발생,중대장실안의 간이탄약고가 폭발해 화기소대 선임하사 김지웅 중사(24)가 수류탄 파편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또 3소대장 최재원 소위(24)·박재범 상병(22)·전윤진 상병(22)이 각각 중경상을 입었다.
  • 북,중 국경 경비 강화/권 안기부장/500m마다 잠복초소 설치

    권영해 안기부장은 9일 최근 탈북사태와 관련,『북한은 이번 김경호씨 가족 탈북사태를 계기로 주민 통제를 더욱 강화하겠지만 탈북자의 수는 계속 증가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관련기사 4·6면〉 권부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북한이 지난 94년부터 국경선 2㎞마다 1개의 감시초소와 500m마다 잠복초소를 설치하는 등 탈북자 방지대책을 대폭 강화해 왔지만 사회기강의 이완 등으로 가족단위의 탈북이 가능했다』면서 이같이 보고했다고 김종호 정보위원장이 전했다. 권부장은 이어 최근 북한정세와 관련,『북한은 대선 등 우리의 정치일정을 겨냥해 사회혼란과 국론분열을 위한 유언비어 날조 유포는 물론 공작원을 남파,내부소행을 가장한 요인 위해와 공공시설 폭파 등 테러를 자행하거나 해외공관원·상사원·여행자 등을 대상으로 납치공작 등 대남 교란책을 자행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권부장은 또 『지도층의 부정부패 확산과 각종 범죄,탈북자 증가 등 사회 일탈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다 내년에도 2백여만t의 식량부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춘궁기가 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권부장은 『지휘부의 일전불사 의지 표명과 주민들의 이판사판식 의식 팽배로 북한이 매년 실시하는 동계훈련이 남침도발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경계가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최고인민회의를 단 한차례도 개최하지 않는 등 김정일의 비정상적 통치행위가 지속되는 가운데 전방지역에 장거리포를 집중 배치하고 사병들의 제대연령을 연장하는 한편 중대장이하 초급 장교의 결혼을 억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훈련중 수류탄 폭발/소대장 등 2명 사망

    25일 상오11시20분쯤 경남 김해시 상계동 육군 39사단 119연대 4대대 수류탄투척훈련장에서 수류탄투척훈련을 하던 13중대 이인관 이병(21)이 수류탄안전핀을 뽑은뒤 투척하기 직전 손에서 폭발했다. 이 사고로 이이병이 숨지고 훈련을 통제하던 소대장 김영주 소위(25·학군 34기)가 크게 다쳐 김해중앙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중대장 조성준 대위(26·3사 28기)도 다리에 수류탄이 박히는 중상을 입고 마산통합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부대측은 사고가 이이병의 훈련미숙인지 수류탄 자체 결함인지에 대한 정밀조사작업을 벌이고 있다.
  • 남총련 「민족해방군」은 주사파 전투조직

    ◎폭력시위 3년간 1,055회 주도/26명 영장… 증거물 111점 압수/경찰 지난 8월 연세대 폭력시위를 비롯,운동권학생들의 각종 과격시위를 주도한 광주·전남지역 총학생회연합(남총련)산하 좌익폭력조직인 「민족해방군」의 실체가 밝혀졌다.〈관련기사 22면〉 전남지방경찰청은 12일 최근 남총련 민족해방군 조직원에 대한 일제 검거작전을 벌여 호남대 전사대 횃불중대장 윤영호군(22·행정2년)등 26명을 국가보안법 위반(이적단체 구성)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압수한 이적 문건 「불멸의 돌격전사 민족해방군」·「전사의 길」·「민족해방군 선언문」·「전투조직의 기원과 역사」·「생활수칙」등 92종 111점의 증거물을 압수했다. 민족해방군은 전남대의 오월대·조선대의 녹두대·호남대의 전사대 등 광주·전남지역 17개 대학에 800여명의 조직원을 갖고 있으며 남총련 의장의 지시에 따라 투쟁국장과 각 대학 전투조직 책임자 및 중대장·소대장을 거쳐 일선 조직원에 이르는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갖추고 투쟁현장에서 죽음을 함께하는전투조직을 운영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민족해방군은 북한의 김일성주체사상을 투쟁지도이념으로 삼고 김일성 항일유격대의 전통을 이어 받았다고 자처하고 있으며 연세대폭력시위 사태와 지난 94년 6월 송정리역 열차 강제정차 사건 등을 주도했다. 민족해방군은 지난 93년 5월 창설된 이후 광주 아메리칸센터와 검찰청사·신한국당사 등 관공서 기습 151회,불법폭력시위 1천55회를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그동안 시위진압 경찰관 2천372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민족해방군은 대자보나 대학신문을 통해 신규조직원을 공개모집하기도 했으며 가입때는 오른쪽 약지 손가락을 칼로 베어 피로 부대깃발을 만들었다.또 방학이나 MT기간을 이용해 지리산이나 무등산에서 중대별 빨치산식 전투훈련을 실시하고 의식화교육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 정의감 투철「참군인」장렬한 산화/무장공비 소탕 전사자 3인 주변

    5일 무장공비소탕작전도중 숨진 오영안 대령 등 3명은 「참군인」의 길을 걷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지난 9월18일 강릉해안으로 침투한 무장공비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수색현장에서 「이들을 기필코 잡겠다」는 집념으로 젊음을 불태우다 산화한 것이다. ◎기무사 오영안 대령/보안·정보·대공분야 베테랑/간첩 56명 검거 기여… 책임감 강해 5일 공비 소탕 작전 도중 숨진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오영안 대령(47)은 보안 및 정보·대공 분야의 베테랑 장교이다. 충북 청원 출신으로 충남공고,육군3사관학교(4기)를 나와 71년 7월 소위로 임관,군생활을 시작했다. 94년 12월부터 3군단 기무부대장으로 근무해온 오대령은 이날 군단 합동신문조 6명을 인솔,현장 지휘를 하다가 80m 전방의 숲속에 숨어있던 공비가 쏜 총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평소 정보분석을 할 때는 각급 부대 실무자만 참가하도록 되어 있으나,기무부대장인 오대령이 직접 참가한 것은 대공분야의 전문가인데다 이번 공비 침투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고,작전이 장기화됨에 따라 전문가의 정보판단이 절실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는 ▲군인다운 군인이 되자 ▲대공인으로 대공업무에 투철한 직업의식을 갖자 ▲조직의 관리자로서 매사에 솔선수범하자는 글귀를 좌우명으로 삼아 「참군인」의 길을 걸어 왔다. 80년 이후 방첩분야에만 16년간 근무하면서 9건,56명의 간첩을 직접 검거하거나 검거에 기여함으로써 보국훈장 삼일장 2회,대통령 표창 2회,국방부 장관 표창 1회 등 각종 훈·표창을 받았다. 평소 충성심과 책임감이 강하고 과묵한 편이지만 가정에 우환이 있는 부하의 가정을 직접 방문하는 등 자상한 면도 있다. 지난 9월 고향에 있던 어머니 이고매씨(79)를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로 모셔와 지병인 중풍을 간호하는 등 효성도 지극하다. 가족으로는 부인 윤옥순씨(45)와 혁재(19)·혁진(17)군 등 두 아들이 있다.아들에게는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등 인간의 도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돼라』는 교훈을 유언으로 남겼다. ◎특공연대 서형원 대위/간첩도주로·은거지 포착업무 수행 5일 전사한 서형원 대위는 62년8월 경기도 평택군 오성면 교포리에서 태어났다. 86년 단국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학군 24기로 1사단11연대 소대장으로 임명됐다. 90년 중대장으로 진급한뒤 91년11월부터 줄곧 특공연대에서 근무해왔다. 지난 9월30일 현 직책인 703특공연대 본부 정보장교로 옮겨와 대간첩침투작전에서 적 도주로분석 및 예상은거지를 포착하는 업무를 수행해왔다. 평소 입버릇처럼 「군인다운 군인」을 강조하면서 부하들을 인간젖ㄱ으로 이끌어 상하의 신망이 두터웠고 성실하고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지금까지 3군단장 표창 등 모두 11차례 포상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재순씨(35)·동혁(11)·동휘군(9) 등 2남이 있다. ◎을지부대 강민성 상병/가정형편으로 대학포기한 “효자” 숨진 강민성 상병(22)은 서울 동작구에서 2남4녀중 막내로 태어나 서울 상일고를 졸업한 뒤 95년7월 군에 입대했다. 키 170㎝에 건장한 체격을 지녀 육군 을지독수리부대 수색중대 요원으로 선발된 강상병은 투철한 군인정신과 성실한 근무자세로 동료사병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왔다. 특히 운동을 좋아했으며 쾌활한 성격으로 임무완수에도 적극적이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작전투입 직전에도 『성공적으로 작전을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려운 가정형편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군입대전까지 부모를 도와 아르바이트를 했다.입대후에도 아버지의 임파선암을 걱정하는 등 효성이 지극했다고 동료사병들은 전했다.
  • 공비 최후 발악… 혈전 6시간/무장공비 사살­입체 작전 상보

    ◎새벽 매복조에 응사… 도주… 추격… 교전끝 사살 6시간에 걸친 숨가쁜 전투였다.무장공비들은 전사 3명,부상 14명 등 아군에 막대한 피해를 안기며 마지막까지 발악을 하다 최후를 맞았다. 5일 상오 4시28분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3리 연화동 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 신축공사장 부근.전날밤부터 이곳에서 매복작전을 펴고 있던 육군 산악군단 불사조연대 2대대 7중대 소속 박수완 상병(22)과 송명훈 상병 앞으로 수상한 물체가 움직였다. 박상병이 암호인 수화로 신원을 확인하려 하자 그쪽에서는 단지 『나 중사다』라고만 했다.공비임을 직감했다.송상병이 먼저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그쪽에서 「철컥」하고 탄알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뒤이어 박상병 등이 사격을 시작했고 적은 응사와 동시에 수류탄을 밑으로 던졌다. 송상병이 수류탄 파편상을 입는 바람에 일단 교전이 중단됐다. 이어 상오 6시쯤 교전소식을 들은 기무부대장 오영안 대령 등 합신조가 현장 지휘를 위해 최초 교전지점에서 10여m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오대령은 『아직 주변이 어두우니 일단 흩어져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라』고 하는 순간 숲속에서 9발 가량의 총탄이 날아왔다.오대령은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현장에서 전사했고 대대장 박경상 중령은 허벅지 관통상을 입었다. 이어 대대장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는 과정에서 7중대장 김용석 대위,7중대 행정보급관 이동환 상사가 빗발치는 공비들의 사격에 중상을 입었고 통신병이 부상을 입었다. 연대 정보장교 서형원 대위는 부상당한 통신병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다 등에 관통상을 입고 산화했으며 강민성상병도 숨졌다. 공비들은 숲속에 몸을 숨긴 채 아군보다 유리한 고지대에서 차량이나 나무 뒤로 몸을 숨긴 아군을 조준사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피해가 컸다.또 부상 당한 상관과 동료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피해가 늘어났다. 불사조연대의 정면 교전이 계속되는 동안 상오 9시30분쯤부터 장선용상사 등 공수특전단 비호부대원 12명은 산아래 개천을 건너 공비의 후미에서 조심스럽게 전진해갔다. 비호부대원들은 1시간여 동안의 추적끝에 산밑을 향해 조준사격을 하고 있는 공비들을 발견,정조준사격을 가해 이중 1명을 사살했다.이어 장상사는 공비를 생포하기 위해 4차례에 걸쳐 『투항하라』고 외쳤으나 공비가 수류탄을 던지려는 자세를 취하자 일제사격을 가해 사살했다.
  • 공비잔당 2명 사살/어제 상오 인제 야산서

    ◎3차례 교전… 우리측 대령 등 3명 사상·14명 부상/공비,국군일병 납치 살해… 아군복장 위장 김경 무장공비 잔당을 추적중인 군당국은 5일 상오 10시30분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창바우 마을 인근 야산에서 도주중이던 강릉침투 무장공비 잔당과 교전끝에 정찰조원 2명을 사살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이날 하오 발표했다. 합참은 교전 과정에서 오영안 대령(47·3사 4기·303기무부대장)과 서형원 대위(34·학군24기·703특공연대본부 정보장교),강민성 상병(22·을지 독수리부대 수색중대) 등 아군 3명이 공비의 총격과 던진 수류탄 파편에 맞아 전사하고 우황용소위(12사단 51연대 1대대) 등 14명의 장병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군당국은 이날 사살된 무장공비의 유류품을 점검한 결과,공비 한명이 입고 있던 야전 점퍼 등은 지난달 22일 실종된 육군 노도부대 소속 표정욱 일병(22)의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표일병은 당시 13명의 부대원들과 함께 월동준비를 위해 싸리나무를 베러갔다가 실종됐다는 부대원들의 진술로 미뤄 작업중 공비들에 의해납치돼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써 지난 9월18일 강릉 앞바다로 잠수함을 타고 침투했던 무장공비 26명 가운데 현재까지 사살 13명,생포 1명,자폭 11명 등 모두 25명이 소탕됐다.군당국은 이날 2명의 무장공비가 추가로 발견,사살됨에 따라 남은 1명의 무장공비도 아직 우리측 지역을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수색작전을 계속하고 있다. 무장공비 침투에 의한 우리측의 피해는 이날 전사한 오대령 등 군인 9명,경찰 1명,예비군 1명,민간인 4명 등 모두 15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했다. 합참은 수색작전을 벌이던 육군 산악부대 소속 장병들에 의해 무장공비 2명이 사살됐다고 밝히고 사살지점은 육군 을지부대가 전날 하오 3시10분 벙커작업 도중 거동수상자를 발견한 인제군 서화면 서화2리 산머리 곡산에서 남동쪽으로 8㎞ 가량 떨어진 철책선 남방 20㎞ 지점이라고 밝혔다. 합참은 사살된 무장공비가 지난달 강릉으로 침투했을 때의 복장인 얼룩무늬 전투복 차림에 총번호가 없는 M16소총과 일련번호가 없는 탄피가 흩어져 있는 점으로 미루어 지난9월18일 침투한 무장공비 잔당이 확실하다고 밝혔다.그러나 합참은 이들이 추가로 북에서 파견한 무장공비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생포공비 이광수를 현지에 보내 사살공비의 신원을 파악중이다. 군은 이날 새벽 4시28분쯤 사살지역 남쪽 500m 지점에서 공비들을 발견,추적하다 상오 6시50분 1차교전을 벌인데 이어 상오 7시20분 2차교전을 한 뒤 추적수색을 계속하던중 상오 10시30분쯤 공비 2명을 사살했다. 우리 군 부상자 14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중상(8명)=▲박경상 중령(대대장) ▲이종갑 소령(전투정보장교) ▲김용석 대위(중대장) ▲우황용 소위 ▲이동완 상사 ▲이수헌 병장 ▲백승현 상병 ▲송명훈 상병 ◇경상(6명)=▲이정우 대령(특공연대장)▲이채하 중위(연대 군수장교) ▲이윤록 상사 ▲노상현 병장 ▲서정광 상병 ▲김석권 일병 ◎ 육군은 5일 무장공비 소탕작전중 전사한 오영안 대령·서형원 대위·강민성 상병 등 3명에게 각각 1계급 진급과 함께 훈장을 추서키로 했다. 또 이들의 합동영결식을 7일 상오 10시 서울 강서구 등촌동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거행키로 했다.
  • 북군 수색대 삐삐차고 다닌다

    ◎김정일 지시로 작년 중·대대장에 지급/한국군의 무전교신 감청 봉쇄 노린듯 북한군 최전방 수색부대 지휘관들이 러시아제 「삐삐」(무선호출기)를 차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삐삐의 군사적 용도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 13일 귀순한 북한군 곽경일 중사(25·1사단 민경대대 1중대 부분대장)는 29일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2월 김정일의 지시로 최전방의 민경대대(수색부대) 중대장 및 대대장들에게 무선호출기가 지급됐다』고 밝혔다. 지급목적은 전쟁 발발시 총성과 포성으로 인해 대대장과 중대장의 지휘 체계에 혼선이 초래되는 점을 보완하고 상급부대에서 필요할 경우 일선 지휘관을 즉각 호출,전투 현장과 본부의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구축키 위한 용도로 알고 있다고 곽중사는 설명했다. 군 당국은 그러나 국군의 무전 통신감청 기술이 월등하다고 판단한 북한군이 감청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삐삐라는 기초적 통신장비를 도입한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김정일은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최근 『무선호출기를 무기처럼 철저히 관리하라』고지시,사단 전자전 참모가 삐삐의 관리실태를 직접 감독·통제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 「비자금사건」 항소심 첫 공판 이모저모

    ◎재벌총수 대거출정… 관련사 직원들 북새통/“뇌물아닌 단순정치자금” 한목소리로 주장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비자금사건과 관련된 재벌총수와 전직 고위공직자 11명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이 10일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권성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이날 첫 공판이 열린 서울고법 주변은 재벌총수들이 피고인들로 대거 출정한 탓인지 지난 7일의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첫공판 때와는 달리 관련회사 직원들로 북새통. 지난 8월26일 1심 선고공판 때 대우정밀 해고노조원들이 법정안팎에서 소란을 벌인데 대한 대비책으로 대우정밀측에서 직원들을 동원,지난 7일부터 3일 동안 꼬박 밤을 새며 일반방청권 80장을 싹쓸이했다는 후문. ○…상오 10시에 차례로 법정에 들어선 노 전대통령 비자금사건 관련 피고인들 중 김우중 피고인 등 재벌총수들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탓인지 긴장된 표정이 역력. 1심에서 「대가성」이 인정돼 실형을 선고받은 점을 의식한 듯,재벌총수들은 노 전 대통령에게 준 돈은 단순한 정치자금이라며 극구주장. 김우중 피고인이 진해 잠수함기지건설 수주와 관련해 뇌물을 준 적이 없다고 말하자 문영호 대검 중수1과장은 『잠수함기지공사가 동아건설에 넘어갈 것으로 알려지자 피고인이 노 대통령을 찾아가 「만일 공사가 동아로 넘어가면 업계를 떠나겠다」고 했다고 검찰에서 말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쳤고 이에 김피고인은 『업계를 떠날 수 밖에 없지 않았느냐』고만 언급. 재판부는 재판종결 직전 김우중·최원석·정태수 피고인 등의 사면전력 관련서류를 검찰이 제출해 줄 것을 요구해 눈길.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관련된 안현태·성용욱·안무혁 피고인의 변호인들은 최후 변론에서 최근 안보상황을 이용하려는 듯 피고인의 대공관을 부각시키며 선처를 호소. 안현태 피고인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중대장때 김신조를 생포하는 한편 공비 일당을 사살,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고 소개. 성 피고인에 대해서는 지난 83년 아웅산사건때 수사책임자로 현장에 파견돼 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을 밝혀낸 것을 비롯,부산 다대포 무장공비침투사건 등에서공비를 섬멸시키는 등 투철한 국가관의 소유자라고 설명. 성 피고인은 『부끄럽고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며 말을 꺼낸 뒤 잠시 멈췄다가 울음섞인 목소리로 『대공업무로 얻은 명예가 6개월간의 국세청장 재직으로 모두 사라진 것에 대해 스스로를 저주하고 반성한다』고 진술. 안무혁 피고인의 변호인도 안피고인은 안기부장 재직시절 철저한 대북한 대책을 수립했으며 87년 평화적 정권교체와 88년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 등에 많은 공헌을 했다고 변론.〈박홍기·김상연 기자〉
  • 옥수수더미속 수색 발견/공비 추가사살 순간

    ◎3m앞서 총 겨눈채 “투항하라” 외쳐/당황한 공비 저항 기도… 일제히 사격 육군 비호부대 13대대 1중대장 최재호 대위(28)와 10명의 병사들은 30일 하오 3시10분쯤 강릉시 왕산면 칠성산 서쪽 산기슭 해발 400m 속칭 「쇠골계곡」에서 수색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정상 부근에서 야간매복을 마치고 동이 트자 2m 간격을 두고 아래방향으로 훑어 내려오는 중이었다. 옥수수밭이 있는 평지에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김민규 중사(24)는 높이 1.5m 가량의 옥수수대 더미 5∼6개를 보고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김중사는 방아쇠를 쥔 오른손에 힘을 주고 왼손을 옥수수 더미속으로 조심스럽게 밀어넣었다.물컥하는 느낌과 함께 물체가 잡혔다. 「적이다」,순간적으로 물러서며 옥수수 더미를 제쳤다. 더미속에서 웅크린 공비가 초췌한 모습의 얼굴을 쳐들었다. 불과 3m밖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던 최대위와 이용배 상사(38)는 『투항하면 살려준다』고 세번 외쳤다. 당황한 눈으로 쳐다보던 공비는 오른 손목에 밤색 가죽끈으로 묶은 북한제 66식 권총을 일행에게 겨누려했다. 최대위 등 3명의 특전대원들은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공비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발 앞에 놓여있던 1.5ℓ짜리 플라스틱 물병이 순식간에 피범벅이 됐다. 최대위는 『탈진한 공비가 왜,누구를 위해 무모하게 저항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권력승계와 군부실세(이철수 대위의 증언:2)

    ◎80년대 중반 「곁가지 치기 운동」… 동생부터 제거/“김 부자밖엔 모른다” 이진우가 앞장서/보안부 권한강화… 김정일 앞잡이 활용/군서열 김정일→최광→조명록→김영춘→김명국 순/개방틈탄 밑으로부터의 동요 막게 “전쟁준비” 지시 30년 가까이 「김정일이 최고다」「김정일이 온당히 김일성의 대를 이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며 김정일을 부각시켜 왔다.당의 모든 선전·교양사업은 주민들을 김정일의 혁명사상으로 무장시키는데 집중돼 왔다.이 결과 북한 주민들은 현재 「김정일이 위대한 수령이다」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이토록 오랫동안 교육을 해왔으니 김정일이 후계자로 올라서는데 문제가 있을 수 없다.김일성이 살아 있을 당시도 김정일은 모든 업무를 보고받았으며 자기가 처리하지 못할 일만 김일성과 「토론」했다.김일성도 생전에 『나는 조선에 또 한 명의 장군이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자주 말했었다.사정이 이러하니 주변사람들 또한 김일성이 늙어갈수록 오직 김정일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장성택·김정일최측근 김정일의 측근 실세가운데 김정일의 누이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이 최고로 꼽힌다.이미 장성택에게 붙는 사람이 많다.김정일이 주석이 되면 그도 중요한 직책에 임명될 것이다.그러나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김정일 이외는 누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알려주지도 않는다.알려고 하면 문제시된다.김일성과 김정일 이외에 김일성의 가계에 대해 말하거나 알려고 하면 「종파분자」로 몰린다.「조선에는 오직 김정일밖에 없다」고 교육하고,그렇게 믿을 뿐이다.『어느 간부가 좋다.정말 잘한다』는 말을 할 경우에는 군 정치부·보위부에 즉각 포착되고 이름이 거론된 당사자는 영문도 모른채 호출돼 쿠데타음모를 꾸민게 아니냐는 추궁을 받게 된다.「잘한다」고 생각하는 제3자를 보호하려면 아예 『좋다』 『나쁘다』는 식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 이렇듯 군부를 완전히 틀어쥔 김정일은 『총대는 정권에서 나오고 이 총대 위에서 정권이 유지된다.노동당이 총대를 장악해야 한다』고 지시하고 있다.오직 당과 군대를 통해서만 조국통일도 하고,주체혁명 위업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군대와 당 가운데 어디가 우위인가 묻는다면 당연히 당이다.정치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북한으로서 노동당 말고는 볼 게 없다.군부 내 엘리트 그룹들이 쿠데타나 반기를 든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그런 말 자체가 통하지 않는다.쿠데타같은 말은 꺼내지 않는게 현명할 뿐이다.또 있을 수도 없다. ○“김정일 밖에 없다” 교육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없으면 조국도,인민도,우리도 없다.오직 김정일을 따라야 찬란한 내일과 희망이 있다』고 선전하고 그렇게 믿는다.이같은 김정일에 대한 인민들의 신뢰는 「조선의 하느님」이라는 김일성에 대한 믿음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94년 김일성이 죽었을때,인민들이 울며 불며 한 것은 모두 진심에서 나온 것이다.누가 「지금부터 마구 울라」고 지시해서 우는 것 아니다.사람들이 너무 무질서하게 마구 몰려드는 바람에 단체별로 시간을 배정해 참배객을 받기도 했을 정도다.북한 사회를 남한의 잣대로 재서는 안된다.잘못된 것이 분명하지만 그들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서울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을때 당시 연형묵 총리가 남한의 고위층 인사와 술자리를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취해 『우리끼리 싸움하면서 조선사람끼리 서로 죽이는 일이 있어서는 되겠는가.평화적으로 통일하자,그런 다음 함께 옛날 고구려 땅을 같이 찾자』라고 말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김정일은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북한의 속마음은 그런게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를 총리에서 자강도 도당책임자로 떨어냈다. ○오진우 노여움 사 강등 그러나 연형묵이 총리에서 떨어져 나간 「진짜 화근」은 「인민생활이 이렇게 한심한데 국방비에서 1∼2% 떼서 인민생활에 돌리자」고 한 건의였다.당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이 소식을 듣고 김정일에게 말도 안된다며 강력히 반발했고,김정일은 오진우의 말을 따랐다.그만큼 군부의 말에 김정일이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오진우는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하기전인 70년대 초 김일성과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그의 아들 김평일 등이모인 곳에 배석했다가 김정일이 없는 자리에서 후계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보고 『백두산의 김정일이 있는데 누가 흐지부지 다른 사람을 말할 게 있는가』라며 큰 소리를 쳤다고 한다.이같은 호통에 김정일의 친위대인 호위국 요원들이 들어와 「김성애 일파」를 끌어 냈는데 당시 김일성은 한마디도 안했다고 한다.이처럼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세우는데 있어 오진우의 공적은 대단했다.이 때문에 김정일은 오진우가 살아있을때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랐다. 특히 오진우는 지난 80년대 중반 김정일이 「당에서 곁가지를 칠 데 대하여」라는 교시를 들고 나왔을 때 이를 가장 먼저 군에서 실천했다.당시 김정일은 『당에 곁가지가 있을 수 없다.김일성 이외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확고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며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확립을 들고 나왔다.이에 오진우는 인민군대에 「김일성·김정일 이외는 누구도 모른다」는 관점을 갖고 일할 것을 지시했다.이 결과 김평일을 추종하던 종파들은 모두가 제거됐으며 김평일은 이후 외국에 대사로 쫓겨났다. ○김평일 군사지식 탁월 김평일은 김일성의 품격과 인격을 가장 많이 닮았고,미남에 목소리도 김일성과 꼭 닮았다.특히 그는 군사에서도 천재라는 평판을 군 내부에서 듣고 있었다.김일성군사대학을 나왔으며 일선 부대 대대장까지 지냈다.83년 무렵 김일성은 직접 『앞으로 조선의 정치를 보려면 정일이를 보고,군사를 보려면 평일이를 보라』고 말할 정도로 김평일의 군사 지식은 대단했다. 김정일의 「곁가지 치기운동」은 바로 김일성의 이 발언 직후에 나왔다.김정일은 「조선에는 김일성 이외는 누구도 없다」는 이 운동을 펼치며 김평일을 견제하고 꺾어버린 것이다.어쨌든 군부에서는 김평일을 모두가 높게 평가했다.그를 인정하고 추종하는 사람이 많았었던 것은 사실이다. ○군내 정보수집 주업무 그러나 이제는 그같은 일은 있을래야 있을 수도,있지도 않다.그런 말했다가는 「목이 날아간다」.군대내에서는 완전히 정리됐다.반정부 음모 및 반당분자를 밝혀내고 잡아내는 보위부 권한이 현재 북한 군내에서 가장 막강하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과거 군대 조직상 보위부는 정치부의 통제를 받았는데 이제는 「뚝 떨어져 나와」 암행어사식으로 활동한다.국가보위부장은 현재 과거 공군사령관을 지낸 이원웅이 맡고 있다.보위부는 군내 사상동향을 파악하고 반당분자를 적발하는 등 정보수집 업무를 한다. 군부의 인사 결정권은 정치부에 있다.일선부대 정치위원과 정치 지도원,중대 정치지도원,대대 정치지도원 등 정치부 일꾼들이 장악하고 있다.중대장이나 대대장,연대장은 허수아비다.군대 안에는 정치부,보위부,참모부,후방부 등 여러 부서가 있지만 보위부를 뺀 모두가 정치부 아래에 있다. 과거에는 보위부도 정치부의 통제를 받았다.그러나 함북 나남의 6군단 사건으로 보위부의 힘이 세졌다. 함북 청진 나남구역에 6군단 본부가 있는데,현 군 총참모장인 김영춘이 몇년 전 그곳에 군단장으로 부임돼 갔다.군단 실태를 확인해 보니까 군단 전투력이 한심하고 싸움을 할수 없는 정도로 돼 있었다.당시 6군단 보위부는 군단내의 비리현상들,특히 외화벌이와 관련한 숱한 비리현상을 적발,보고하려 했는데 6군단정치부에서 이를 「깔아 뭉갰다」는 것이 확인됐다.김영춘은 이를 「요해」해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했다.김정일은 보위부에서는 일을 제대로 했는데 정치부 때문에 비리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보위부를 정치부에서 「뚝 떼어냈다」.이에 따라 보위부가 자기 맘대로 의심도 하고 뒤로 캐기도 하고 자체 계통을 통해 정보보고를 하게 되자 정치부도 보위부에 절절 메게 됐다.김정일이 보위부의 권한을 높여 준 것이다. 이후 김정일은 지난해 김영춘을 총참모장에 발탁했다.당시 김정일이 김영춘을 총참모장시키기 위해 20년간 검토해왔다는 말이 나돌았다.김영춘은 머리가 좋고 인민무력부에서 못해 본 직무가 없다.정찰국장,작전국장,의료단장,사단장,6군단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나이는 60대이고 러시아 프룬제군사학교를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북한군의 서열은 최고사령관 김정일아래 최광 인민무력부장­조명록 총 정치국장(전 공군사령관)­김영춘 총참모장­김명국 작전국장 순이다. ○정치부가 군부 총지휘 보위부가 독립해서 독자적으로하지만 인사및 북한 군부를 총 지휘하는 것은 정치부이다.김정일은 올 3월에 정치부사람들에 『당 맛을 보여줄 때가 됐다』고 지시했다.당 권한을 「노골적으로 쓰라」는 뜻이다.이때까지는 결함을 보고하면 어떻게든 교양을 시켜 다시 중용했지만 이제는 안되는 사람은 무자비하게 「떼 버리라」는 말이다.정치지도원들은 공공연히 『이제는 비행사 열댓명 없다고 해서 통일 못하는 게 아니다』며 무조건적인 복종과 충성을 강요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신념이 있소,없소』라는 말을 많이 한다.북에서 말하는 과오라는 것은 바로 이 신념이 흔들린다는 뜻이다.당과 끝까지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투철한 신념이 부족한 사람들,일하던 도중에 비리현상이라든가,당 정책하고 맞지 않는 불평불만을 부르는 현상이라든가를 말로만 교육하지 말고 무자비하게 떼어버리라는 말이다. 김정일은 최근의 나진·선봉개발과 조·미,남북회담과 관련해 자기의 정권을 확고히 하고,밑으로부터의 동요를 막기 위해 올 초 다음과 같은 교시를 내려보냈다.「당의 노선과 정책은 변함이 없다.전략과 전술은 시기시기마다 달라진다.지금 일시적으로 경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사회주의 나라 시장들이 다 무너졌으니까 자본주의 시장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그러려면 이런 저런 나라들과 이런 저런 관계를 맺을수 있는데,옆에서 잘못 생각하지 말고 더욱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라」
  • 함장 사살 이상호 대위·조현덕 하사/무장공비­사살 유공자

    ◎“새벽 매복지점 15m앞 공비 발견”/공비,바위뒤 응사… 집중사격… 시체확인 무장공비를 태우고 온 잠수함 함장 정용구(42·중좌)를 사살한 육군 11사단 13연대 9중대장 이상호 대위(28)와 화기소대 2분대장 조현덕 하사(23)는 『적을 발견하는 순간 꼭 잡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방아쇠를 당겼다』고 밝혔다. ­언제 칠성산에 배치됐나. ▲21일 밤 작전명령을 받고 칠성산 9백34m 고지에 매복준비를 마쳤다.3개소대 병력 72명을 1개조에 3∼5명씩 매복시키고 실탄과 수류탄 등을 지급했다. ­매복조는 어떻게 운용했나. ▲능선의 2㎞에 걸쳐 물샐틈없이 주요 목과 지형지물에 매복조를 배치했다. ­공비를 발견할 당시 상황은. ▲22일 상오 6시30분쯤 2분대 매복지점에서 3시 방향으로 15m쯤 떨어진 곳에서 발견했다.당시 공비는 짙은 밤색바지에 흰색 상의,끈없는 운동화 차림이었다. ­사살 순간은. ▲바위뒤에 은신한 공비를 향해 조분대장의 K2 소총사격을 신호로 수류탄 2발을 던졌다.안전핀을 뽑은 뒤 3초후에 던져 상대방이 집어던질 틈을 주지 않았다.이어 소총사격을 했다. ­공비의 대응은. ▲사격이 시작되자 공비도 바위뒤에 숨어 AK 소총으로 4발을 응사해왔다.그러나 아군의 집중사격으로 더이상의 저항은 없었다. ­확인 사살은. ▲사격후 20분뒤에 다시 수류탄 2발을 던졌다.적은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 숨져있었다.앞니에 금이빨 3개를 한 점으로 미뤄 정용구로 판별했다. ­유류품은. ▲AK 소총과 탄창안 실탄 17발,북한제 권총과 실탄 5발을 수거했다.스위스제 시계와 국산담배 디스 5개비,성냥,구운 옥수수 18개가 나왔다.번호표시가 없는 M16 탄알 6발도 갖고 있었다. ­3소대 소속 강정영 상병은 어떻게 총에 맞았나. ▲교전이 끝난뒤 이상유무를 점검하다 왼쪽 이마에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전우를 잃어 착잡하다.
  • 예비군 중대장 강제 해직 “무효”/서울지법

    ◎80년 조치 향군법 규정위반/국가는 34억여원 지급하라 서울지법 민사합의17부(재판장 전민기 부장판사)는 20일 지난 80년 비상계엄하에서 국보위 등이 마련한 사회정화계획에 따라 강제해직당한 전재만씨등 예비군 중대장 9백7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보수금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5백64명에게 34억여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의 정화계획에 따라 공무원을 일괄해임하면서 전씨 등을 해임한 것은 향토예비군 설치법에 규정된 해임사유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보수금은 소송일전 3년 이내분만 지급이 가능하다』며 『따라서 이들이 소송을 냈던 92년부터 3년전인 89년 이전에 정년퇴직할 예정이었던 4백12명은 보수금을 받을 자격을 상실했다』고 덧붙였다. 전씨 등은 비상계엄하의 사회정화계획에 따라 지역예비군 중대장에서 강제해직당하자 지난 92년 4월 공무원의 신분보장 규정에 어긋나는 위법한 처사라며 1백45억원의 보수금 청구소송을 냈었다.
  • 대학생 시위대중 가장 과격/민족해방군 어떤 조직인가

    ◎남총련 산하… 8백명으로 구성/부대별 중·소대장 등 군대식 편제/쇠파이프·화염병 사용 집중 훈련 「한총련」의 연세대사태는 광주·전남지역 학생들로 구성된 「남총련」(광주·전남지역 총학생회연합·의장 최태진·조선대 행정학과 4년)산하 전위 전투조직인 「민족해방군」이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93년 5월 구성된 「민족해방군」은 광주·전남지역의 17개 대학 8백여명으로 조직돼 있다.군대식 편제와 실전을 방불케 하는 조직적인 훈련으로 대학생 시위대 중 가장 과격한 단체로 「정평」이 나있다. 「민족해방군」은 각 대학마다 고유의 명칭을 지닌 단위부대로 나뉘어져 있다.전남대는 「오월대」,조선대는 「녹두대」,호남대는 「전사대」,광주대는 「한별대」,동신대는 「창의대」,교육대는 「백두대」,보건전문대는 「무명용사」,목포전문대는 「봉화대」등으로 불리고 있다. 일명 「사수대」라고도 불리는 이들 단체는 지난 95년 3월 이적단체로 판결을 받았다. 군 편제와 비슷한 조직으로 이루어진 「오월대」의 경우 「진달래」,「비호」,「주장」,「불꽃」 등 4개 중대로 나뉘어진다.소대원은 10∼30명 정도다.각 단위 부대에는 중대장,소대장이 있고 「전술개발담당」 「훈련담당」 「교육담당」 「홍보담당」이 따로 있다. 중대장은 시위 준비과정과 시위 현장의 작전을 지휘하고 소대장은 소대 규율과 소대원의 교양교육을 담당한다. 각 대학에서 신체가 건장하고 정신 무장이 잘된 학생들을 선발,저학년 때부터 쇠파이프 타격법과 화염병 사용법 등을 훈련시키고 사상학습을 별도로 한다. 사상학습은 수업이 끝난 뒤 빈 강의실에서 5∼7명 단위의 학습소조를 편성,김일성 주체사상 등을 교육하고 필답시험까지 치르며 성적이 나쁘면 탈락시키기도 한다. 이들은 지난 93년 1월 광주미문화원 시위에서 화염병 2백여개를 사용,문민정부 최초의 화염병 사용을 주도했고 같은 해 5월 「전두환·노태우 체포 결사대」를 구성,서울 연희동에서 기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또 94년 6월에는 전남 「송정리 열차 강제정차 사건」 및 「홍익대 경찰관 납치·폭행사건」 등을 주도하기도 했다.
  • “폭력시위 희생 다시 없어야…”/김종희 상경 순직…각계인사 반응

    ◎「죽음」부른 시위 한목소리 규탄/학생들 무분별한 행동에 분노/빈소에 동료·시민 등 조문행렬 줄이어 「한총련」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다 학생들이 던진 돌에 맞아 숨진 김종희 상경(20)의 빈소인 경찰병원 영안실에는 22일 유족들의 흐느낌속에 김영삼대통령을 비롯,김대중 국민회의총재,김우석 내무부장관,안응모 자유총연맹총재 등 각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정부는 고인을 상경으로 2계급 특진시키고 보국훈장 광복장을 추서했다.23일 상오 서울경찰청 1기동대에서 경찰청장으로 장례를 치른뒤 서울 동작동 현충원에 안장하기로 했다. ○…가족들은 김상경이 사경을 헤매던 지난 21일 말을 못하는 김상경의 거친 숨소리를 고해성사로 삼아 영세를 받게 했다.이날 영전에는 「요셉」이라는 세례명이 새겨졌고 말끔히 개어놓은 전투복과 경찰정복이 놓여졌다. 외아들을 잃은 슬픔에 망연자실한 부모를 대신해 동료 4명이 상주역할을 맡았다. ○…김상경이 소속된 서울경찰청 1기동대 6중대원 일동은 김상경에게 보내는 편지를 작성,영전에 바쳤다.이들은 편지에서 『지난 6월21일 전입신고를 하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내무반에서 채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너를 떠나보내야 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슬픔을 토로했다. 이어 『네 죽음은 우리에게 지울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안겨주었지만 또다른 의미를 남겨줄 것』이라며 『화염병과 쇠파이프,최루탄과 진압봉이 없이 국민화합으로 평화통일된 조국에 다시 태어나라』고 명복을 빌었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상임의장 이창복)은 이날 애도성명을 내고 『임무수행도중 목숨을 잃은 김상경의 영전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며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와 학생 모두는 자제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폭력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희생과 상처만을 남길 뿐』이라며 『물리력을 동원한 시위나 진압은 이제 더이상 국민들의 동의를 얻기가 힘들다』고 덧붙였다. ○…시민 송상국씨(52·서울 서대문구 창천동)는 『애꿎은 전경이 희생양이 된데 대해 국민 모두가 책임을 통감하고 헛된 죽음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김대환씨(25·연세대 건축과 석사과정)도 『어떤 논리나 명분도 죽음 앞에서는 정당화되지 않는다』며 『젊은이들끼리 싸워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PC통신에도 김상경의 희생을 애도하고 그 책임을 따지는 글들이 하루종일 쏟아졌다.대부분 「한총련」의 폭력시위를 비난했다. 정석근씨(ID:fishery)는 『한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사회구성원 모두 공범이 아닌지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원 3층 중환자실에는 역시 연세대에서 돌에 머리를 맞은 동료 전경 이진광 일경(20)이 사경을 헤매 안타까움을 더해주었다. 두개골이 골절돼 지난 21일 하오 두시간여에 걸쳐 수술을 받은 이일경은 수술뒤의 고통으로 네명의 동료들이 진정시키지 못할 정도로 심한 발작증세를 보여 가슴과 사지를 침대에 묶어놓은 상태다. 이일경이 소속된 서울경찰청 1기동대 2중대장 김철민 경감(37)은 『자식을 기르는 사람으로서 남의 자식을 맡아이같은 사고가 난데 대해 말로 형언할 수 없이 괴롭다』고 말했다.
  • 「12·12」­「5·18」 사실심리 종결

    ◎5일 구형·19일 선고 예정 12·12 및 5·18사건 제26차 공판이 1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심리로 열려 증인 7명에 대한 신문이 진행됐다.〈관련기사 19면〉 이로써 피고인 16명과 증인 40명에 대한 사실심리가 사실상 종결됐다. 오는 5일에는 검찰의 구형이,19일에는 재판부의 선고가 내려진다. 재판부는 『오는 5일 공판에서는 80년 당시 1공수 1대대장이던 김경일씨에 대한 증인신문을 마친 뒤 검찰과 변호인측의 의견을 들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출석한 증인은 이희성·박준병·장세동 피고인을 비롯,박종규 당시 3공수여단 15대대장,김광택 20사단 61연대 2대대 6중대장,이상균 20사단 62연대 2대대 5중대장,최규진 11공수 62대대 4지역대장 등이다.
  • 「12·12」 「5·18」 26차 공판/증인신문 지상중계

    ◎“임무 받고 출동때 부대원들에 실탄 지급”·“차량통행 저지해도 계속 다가와 사격”­김광택 증인/“승용차에 대한 총격 어떻게 발생했나”­재판장 12·12 및 5·18사건 제26차 공판이 1일 서울지법 제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지난 6월27일 제17차 공판이래 마지막 공판은 김광택 당시 20사단 61연대 2대대 6중대장에 대한 증인신문으로 시작됐다.채택증인 91명중 40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날로 마무리 됐다. ○김광택 증인 ▲박봉식 검사=증인이 소속됐던 20사단 61연대 2대대 6중대는 80년 5월21일 하오6시 광주와 목포간 도로를 봉쇄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죠. ▲김증인=그렇습니다. ▲박검사=임무를 부여받고 출동할 때 실탄을 수령해 부대원들에게 지급했습니까. ▲김증인=그렇습니다. ▲박검사=5월21일 밤 10시10분쯤 효천역 부근에서 도로 차단임무를 수행하던중 목포쪽에서 차량 6대에 탑승한 시위대와 교전한 적이 있습니까. ▲김증인=있습니다. ▲박검사=5월22일 새벽 1시쯤 같은 지역에서 근무하던중 광주쪽에서 버스 5∼6대를 타고 오는시위대와 교전한 적이 있습니까. ▲김증인=예. ▲박검사=5월22일 상오 8시30분쯤 효천역 부근에서 광주쪽에서 오던 승용차 1대에 총격을 가해 왕씨 성을 가진 사람을 사망케한 사실이 있습니까. ▲김증인=먼저 총을 뺐기때문에 총격을 가했습니다. ▲김영일 재판장=5월22일 상오 8시쁨 승용차에 대한 총격은 어떻게 발생했습니까. ▲김증인=사병이 차량통행을 막으려 해도 계속 다가와 사격을 했고 총격이 끝나고 가보니 승용차에 탄 4명이 모두 사망했으며 그중 1명이 총일 갖고 있었습니다. ○최규진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당시 11공수여단 62대대 4지역대장이던 증인은 5월21일 하오 1시 전남도청앞에서 11공수여단 병력이 장갑차와 버스를 타고 돌진해 오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최증인=알고 있습니다. ▲김부장검사=5월24일 하오 2시븜 증인의 부대가 주남마을에서 송정리 비행장으로 철수하던중 효천역 부근에 이르렀을때 매복중이던 보병학교 병력이 증인의 부대에게 90미리 무반동총으로 사격을 가했습니까. ▲최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당시 보병학교병력이 신분확인이나,사전경고를 했습니까. ▲최증인=폭도로 오인해서 사전경고는 없었습니다. ▲김부장검사=증인은 보병학교 병력의 당시 총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최증인=잘못된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서익원 변호사=사병들에게 실탄을 분배한 시점은 언제입니까. ▲최증인=구체적으론 기억이 나지 않으나 5월 21일쯤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상균 증인 ▲박태식 검사=당시 20사단 62연대 2대대 5중대장이던 증인이 소속돼있던 2대대는 80년 5월21일 하오 광주 서구 화정동소재 광주통합병원 앞돌고개로 출동해 시위대와 대치한 사실이 있지요. ▲이증인=그렇습니다. ▲박검사=다음날인 22일 하오 연대로 부터 광주통합병원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받고 통합병원쪽으로 이동하던중 이를 저지하던 무장시위대와 민가지역에서 교전한 사실이 있나요.또 당시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병력들은 응사를 하면서 통합병원으로 이동했나요. ▲이증인=교전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대장의 발포지시가 있었던것이 아니고 상대편에서 발포함에 따라 병사들이 스스로 자위권을 위해 총을 쏜 것으로 생각합니다. ▲서익원 변호사=5월22일 돌고개 작전 전후에 자위권 발동 지시나 관련지침을 받은 사실이 있나요. ▲이증인=총기 사용은 지시가 있을 때까지 절대 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또 출동에 앞서 중대장과 병사들의 작전에 임하는 자세애 대한 설명도 있었습니다. ▲서변호사=당시 총기를 일체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만 있었고 총기사용 허가는 22일 통합병원으로 이동할 당시 이후의 일이지요. ▲이증인=그렇습니다. ○박종규 증인 ▲이부영 검사=당시 3공수여단 15대대장이던 증인은 3공수여단 병력이 5월22일 새벽 0시40분 광주교도소 앞에서 시위대와 교전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시위대의 서종덕등이 총상으로 사망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박증인=알고 있습니다. ▲서익원 변호사=광주에 있을 동안 정호용 특전사령관이나 상급부대로부터 자위권 발동 지시를 받거나 계엄사령관의 자위권천명 방송을 본적이 있습니까. ▲박증인=지시를 받거나 방송을본적은 없었고 광주교도소로 이동하고난뒤 교도소에 뿌려진 삐라를 보고 알았습니다. ○박준병 증인 ▲이부영 검사=당시 20사단장이던 증인은 5월22일 광주 효천역앞에서 20사단 병력이 승용차에 총격을 가해 민간인 3명을 사살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박증인=알고 있습니다. 시신을 광주 국군 병원에 인계했습니다. ▲이검사=5월26일 광주 재진입 지시는 최종적으로 누가 했습니까. ▲박증인=전교사령관이 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세동 증인 ▲김수연 변호사=달시 특전사 작전참모였던 증인은 광주사태 기간 정호용 특전사령관을 수행해서 광주에 내려간 사실이 있습니까. ▲장증인=세차례 수행했습니다. 5월21일과 23일,26일 세차례 내려가 각각 다음날 올라왔습니다. ▲이부영 검사=7공수여단장이 전교사에 머문 사실을 알고 있죠. 7공수 33대와 35대대는 31사단에 작전배속돼 여단장에게는 작전 지휘권이 없는데도 7공수여단이 전교사에 상황실을 만든 사실은 틀림없죠. ▲장증인=상황실인지 여단장의 통신축선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상황판과 무전기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 장세동 피고­국선변호인 「불협화음」/26차 공판 이모저모

    ◎방학 맞은 여고생들 재판 참관 “눈길” 12·12 및 5·18사건의 피고인과 증인들을 상대로 한 사실심리가 1일의 26차공판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5개월에 걸친 「마라톤 재판」이 막바지에 접어든 이날 방청석에는 방학을 맞은 여고생 3∼4명이 나란히 앉아 재판과정을 지켜봐 눈길. 대원외국어고 김수현양(17)은 『역사적인 재판을 직접 보는 것이 살아있는 공부라고 생각해 반 친구들과 함께 방청하게 됐다』고 소감을 피력. 전남대 송기숙 교수 등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문인 10명도 공판시작 20여분 전부터 일찌감치 방청석에 자리잡고 재판과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박종규 피고인은 증인신문 말미에서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진술강요나 협박을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한참동안 뜸을 들이다 다분히 감정적인 목소리로 『그렇다』고 답변.박피고인은 『나이도 어린 검사가 「이 사람아,그게 아니잖아」,「당신,밤새워 조사받아도 좋아?」라는 등 반말조의 말을 해 모욕감을 느꼈다』며 『협박은 아니지만 검찰로부터 자백을 유도받은 사실이 있다』고 주장. ○…장세동피고인은 국선변호인의 신문내용이 헬기의 내부구조등 지엽적인 문제로 흐르자 『변호인께서 무엇을 물어보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퉁명스럽게 답변해 변호인과 「불협화음」을 내기도. ○…현역군인(육군 중령)으로 증언대에 선 김광택 전20사단 61연대 6중대장은 『당시 시위대를 진압하면서 검문에 불응했을 경우 경고­하퇴부 조준사격이라는 수칙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고 진술,계엄군이 무차별 진압을 했다고 증언. ○…최규진 전11공수여단 62대대 4지역대장은 증언을 마친뒤 『계엄군으로 참가한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숙연한 표정. 최씨는 80년 5월24일 보병학교 병력이 철수중인 자신의 부대에 총격을 가한 사건과 관련,『사전에 아무런 신분확인 조치없이 중화기로 공격을 받아 많은 희생자가 났다』며 『육군장교로서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었으며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회고. ○…김영일재판장은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12·12 국정조사 국방위원회 7차회의록 등 20여점과 12·12 사건당시사용된 38구경 권총탄환·M16 소총탄환 등 5점의 압수물을 증거로 채택. 특히 우국일 전보안사 참모장의 업무일지와 일기사본이 증거물에 포함됐으나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5공전사」는 피고인들이 모두 채택에 부동의,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박은호·김상연 기자〉
  • 철원 육군 최전방부대 산사태 참사현장

    ◎새벽 단잠 자다 “꽝”… 아수라장/내무반 형체조차 없이 부서져/흙더미에 깔려 “살려달라” 비명 25일 밤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져 장대비로 변한 26일 상오 4시25분쯤.강원도 철원군 대마리 육군 5사단 29연대 2대대 병영은 「꽝」하는 소리와 함께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동안 부대원들이 전방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자주찾던 뒤편 무명동산의 붉은 토사가 무너져 내려 순식간에 1·2내무반 막사 2개동을 덮쳤다. 곤히 잠든 전우들을 보살피며 불침번 근무중이던 김현우 상병(23)은 갑자기 「우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내무반 건물이 해일에 밀리는듯한 느낌을 받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 잠시후 정신을 차리자 무너져내린 막사와 흙더미에 깔린 전우들이 『살려달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전우들은 서로 이름을 부르며 어둠속에서 뒤엉켜 있었다. 김상병은 함께 불침번을 섰던 하태웅 일병(21)과 함께 맨손으로 정신없이 흙더미를 헤쳐 나갔다. 가건물 내무반의 부서진 조각들과 흙더미속에서 내무반의 고참으로 제대 날짜만을 기다리던 이완희 병장(22)의 사체를 맨 처음 발견했다.울음도 나오지 않았다.곁에서는 3내무반원들과 선임하사·중대장도 억수같은 장대비 속에서 울부짖으며 흙더미를 헤치며 부하들을 찾고 있었다. 3시간여가 지난 7시30분쯤 장비가 도착했다.민간인 포크레인 1대와 공병 포클레인 2대 불도저 2대 덤프트럭 4대가 고작이었다. 장비가 동원됐다 해도 맨손으로 동료들을 찾아 헤매기는 매 일반이었다. 최일병·이일병·전일병 그리고 부대의 막내인 윤일병등의 사체가 속속 발굴됐고 앰뷸런스가 달려와 후송이 시작됐다.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부대 막사로 오는 길이 끊기고 빗줄기가 줄지 않아 당초 예상했던 헬기를 동원한 후송이 없었던 것이 아쉽기만 했다. 하일병과 함께 불침번을 서던 정들었던 1내무반은 아예 형체조차 없이 흙속으로 사라졌고 2내무반은 새벽의 참담함을 말해주듯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단지 내무반옆에 우뚝 서있던 아름드리 아카시아나무 1그루만이 말없이 서있을 뿐이었다. 무너진 내무반에는 제대후 영국유학이 꿈이라고 말했던 신일병의 유학안내책과 토플책 그리고 지난밤 누군가가 먹다남긴 건빵부스러기만이 흩어져 있었다. 『조국을 위해 전방고지에서 젊음을 함께 한 전우들이었는데…』 오열하는 김상병의 얼굴에 빗줄기가 내리고 있었다.〈철원=조한종·박용현 기자〉 ◎야산 깎아내 “참사 자초”/산아래 불과 10m 거리에서 막사 설치/형식적 안전점검으로 사고 못막아 26일 새벽 발생한 강원도 철원군 군 부대 내무반 산사태 매몰사고는 해빙기나 여름철 장마때 철책선 부대에 상존하는 위험이 현실화 됐다는 점에서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군은 철책선 부대의 경우 통상 막사를 적의 수류탄 투척 등에서 보호하기 위해 산 남쪽 뒤쪽에 짓고 있다.사고가 난 육군 모부대 본부대대도 2백65m 고지의 야산을 깎아 내고 본부중대와 통신대 등의 막사를 설치했다. 더욱이 이 야산은 경사 45도 가량의 가파른 산이어서 집중호우가 내릴 경우 산사태에 속수무책일 가능성이 높았던 것으로 지적된다. 특히 이날 새벽 강원도 지역에 3시간 남짓안에 1백78㎜의 폭우가 내렸고 산사태가 시작된 9부능선은 작전을 위해 일부 깎아낸 것으로 알려져 폭우가 시작된 25일 밤부터 산사태 여부를 지속적으로 관찰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고가 난 부대는 군사분계선 남방한계선에서 5백m∼1㎞ 남짓 남쪽에 위치한 최전방부대로 이날 상오 2시30분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직후 상급부대로부터 『안전점검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육안으로 산의 상태를 점검하는 선에서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산사태로 매몰된 막사가 이처럼 취약한 야산 아래에서 불과 10m 거리에 설치된 점도 인명피해가 커진 이유로 꼽힌다. 한동안 수작업으로 매몰자 구조작업을 벌인것도 사망자와 부상자가 늘어난 이유로 꼽혀 이래저래 천재와 인재가 겹친 보기 드문 군 대형참사로 기록되게 됐다. ◎사고 난 부대는?/철책 전투병력 후방 지원부대/대부분 통신·정훈·취사 등 “특과” 산사태 매몰사고가 난 군부대는 중대단위로 전방철책선 일대에 투입되는 전투병력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통상 철책선 근무자라 하면 비무장지대내 군사분계선과 남방한계선에 있는 전방초소(GP)나 높은 지대에서 적의 동향을 살피는 관측초소(GOP) 근무자를 일컫는다.이번에 사고를 당한 사병들은 전투부대가 아니라 주로 통신·정훈·의무·취사·대대본부 등이 있으며 철책선 근무는 하지 않는다. 이들은 전방투입부대에 대한 지원업무와 함께 전방에서 올라오는 상황을 상급부대에 보고하는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적을 바라볼 수 있는 전방의 남방한계선 일대에서 근무하는 전방투입부대와는 달리 부대위치도 적 전방에서 관측되지 않는 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병력수도 철책선에 투입돼 6개월동안 내려오지 않는 전투부대에 비해 적다.〈황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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