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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캔들의 역사/루스 웨스트하이머 등 지음

    스캔들의 역사/루스 웨스트하이머 등 지음

    1970년대 초 미 국무성에 근무하던 키신저는 아름다운 여성들과 잦은 회합을 가졌다. 강한 영국식 억양에 당당한 풍채를 지닌 중년 외교관이었던 그는 질 세인트 존이나 말로 토머스 같은 신인 여배우들과의 부적절한 만남에 대해 해명을 요구받자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권력은 최고의 최음제다.” 물론 이를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남자가 지닌 권력이 최음제 역할을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성 권력자는 남성 권력자와는 현저히 다른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다. 선박왕 오나시스의 부(富)의 권력은 그에게 재클린이란 매력적인 여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반면,‘처녀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정치적 권력은 그녀가 적당한 파트너를 찾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됐다.“남자들은 실질적인 권력을 지닌 여자들을 경멸한다.”고 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의 말은 그런 점에서 정당한 지적인지도 모른다. ‘스캔들의 역사’(루스 웨스트하이머 등 지음, 김대웅 옮김, 이마고 펴냄)는 이처럼 복잡다단하고 역동적인 권력과 섹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역사적으로 볼 때 권력을 지닌 남성들은 늘 주위에 많은 여성들을 거느림으로써 자신을 과시해왔다. 이런 현상이 제도화된 전형적인 형태가 바로 하렘(harem, 이슬람 사회에서 부인이 거처하는 방)이다. 책은 오직 남편의 성적 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처첩들의 집단이라는 하렘의 이미지는 서양인들의 몰이해와 환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한다. 하렘은 오히려 ‘수녀원’과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이다. 하렘은 남성들의 권력 전시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능한 여성 정치인 양성소 구실도 했다.20여년이나 오스만제국을 통치한 쾨셈 술탄은 하렘이 배출한 대표적인 여성 통치자다. 이같은 일부다처제는 오랫동안 남성 팬터지의 원천이 돼왔다. 이슬람문화권에서는 어떤 남자도 성적 파트너를 여럿 갖는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일처제가 공식화된 오늘날 사정은 다르다. 책은 그 대안의 하나로 자기보다 훨씬 젊고 매력적인 여성과 결혼하는 이른바 ‘전리품 아내(trophy wife)’현상을 다룬다. 전리품 아내란 말은 1989년 ‘포천’지에서 “유력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조강지처를 버리고 자신보다 젊고 아름답고 세련된 ‘전리품 아내’를 배우자로 선택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만일 여자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의 모든 돈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 오나시스가 재클린과 결혼한 것이야말로 ‘전리품 아내’ 현상의 상징적인 예다. 이 책에서는 더이상 새롭지 않은 이 현상을 지도급 인사들의 ‘자기탐닉 문화’의 한 단면으로 간주한다. ‘섹스를 위한 권력’이 있다면 ‘권력을 위한 섹스’도 있다. 여성이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섹스를 이용해온 전통은 유서가 꽤 깊다. 구약성서 ‘룻기’는 가장 오래된 사례 가운데 하나다. 룻은 죽은 남편의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모압에 살던 과부. 그들은 너무 가난해 들에서 수확하고 남은 곡식을 주워먹으며 연명할 정도였다. 결국 룻은 나오미의 강요에 의해 나오미의 돈많은 친척 보아즈의 발 앞에 자신을 던지고 만다. 현대 들어 가장 극적인 사례는 에바 페론이다. 아르헨티나 팜파스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그녀는 섹스 파트너들의 도움을 받아 배우로 성공했고, 페론 대령과 만나 마침내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당 현종의 애첩 양귀비나 프랑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도 이와 비슷한 범주에 속한다. 미국 사람들은 대통령의 사생활에 유난히 관심이 많다. 대중매체 또한 이에 영합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이 책은 뿌리 깊은 미국 대통령들의 스캔들 역사를 다룬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평등을 외치며 노예를 소유했고, 흑인과 백인의 결혼을 비난하면서도 자신의 흑인노예였던 샐리 헤밍스를 정부로 삼아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보여줬다.19세기 후반 아일랜드 민족자치운동의 기수 찰스 스튜어트 파넬은 유부녀 캐서린 오셰이에 빠져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재촉했고 결국 몰락했다. 사랑과 권력의 제로섬 게임을 벌인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밖에 클레오파트라에 얽힌 팜므 파탈의 신화와 오해, 대영제국을 일군 엘리자베스 1세의 ‘처녀성의 정치’, 금기의 벽 앞에 무릎 꿇은 게이 정치가 등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준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시네마 천국]로맨틱 영화 ‘노트북’

    ‘노트북’(The Notebook·26일 개봉)은 사랑의 나이를 귀엣말처럼 속삭여주는 로맨틱 영화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청춘에 나눴던 벼락 같은 사랑에서, 생의 끝자락에 반추해보는 깊고 적요한 사랑까지. 주제어 ‘사랑’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온도와 농도를 달리 하며 극을 관통하는, 모처럼 사려깊은 할리우드산 드라마다. 17세의 부잣집 딸 엘리(레이첼 맥애덤스)와 시골 목수 노아(라이언 고슬링)는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지만, 집안의 반대로 헤어진다. 7년이 흐른 뒤 결혼을 앞둔 엘리는 우연히 신문광고에서 노아의 소식을 접하고 그를 찾아온다. 첫사랑을 한순간도 잊지 못한 노아, 미래를 보장해줄 능력있는 남자와 이미 약혼한 엘리는 현실의 완강한 벽 앞에서 다시 좌절한다. 아련한 회고담의 얼개로 살을 붙여가는 사랑이야기다. 치매로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노파(지나 롤랜즈)와, 매일같이 그녀를 찾아와 소설을 읽어주는 노인(제임스 가너)을 통해 한편의 러브스토리가 화면에서 재구성되는 식이다. 웬만큼 눈치있는 관객이라면 두사람이 엘리-노아 커플임을 꿰맞추는 건 시간문제. 따사로운 자연광선이 스민 고즈넉한 사랑이야기를 기다려온 관객, 특히 중년관객들에게 맞춤일 듯하다. 잔잔한 감동으로 기억되는 영화 ‘병 속에 담긴 편지’의 원작자 니컬러스 스파크스의 동명소설이 원작.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9)속초 아바이마을의 삶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9)속초 아바이마을의 삶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도 보고, 찾아도 봤던 그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피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홀로 왔다.’던 무수한 그 ‘아바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속초시의 바닷가 마을 청호동의 이른바 ‘아바이마을’로 더 유명한 ‘함경도촌’을 찾아가면 그네들이 살아온 삶의 내력을 엿볼 수 있다. 속초에서 서울로 오자면 미시령을 넘게 마련인데, 그 고갯목에 차를 세우고 굽어보면 속초 시내와 동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왼쪽의 영랑호, 오른쪽의 청초호, 그 뒤편으로 동해가 배경막처럼 놓여져 산과 바다와 호수의 동네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토록 아름답던 청초호의 길이 1㎞, 너비 80여m 남짓한 백사장에 함경도 피란민들이 처음 피란선의 닻을 내렸다. 그럭저럭 살다보면 돌아갈 수 있으려니 생각했으나 영영 불귀의 몸이 되어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1세대 세상은 거의 막을 내렸고,2세대도 이제는 거의 중년을 넘겼다. 그렇게 50여년을 청초호 바닷가에 뿌리 내리고 살았다. 속초는 본디 자그마한 읍내였다. 속초면이 속초읍이 된 시점이 1942년, 해방 이후는 38선 이북에 포함되어 있었다. 설악산을 병풍처럼 끼고 있고, 석호가 그야말로 그림같이 펼쳐져서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던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주민들은 어업보다 주로 농업에 종사했다.1930년대, 정어리떼가 청초호로 몰려들어 배들이 새까맣게 닻을 내렸을 때도 정작 속초배들은 별로 없었다. 전쟁은 중앙의 역사만이 아니라 지역사도 송두리째 바꿔 놓았으니 속초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업에 종사하는 피란민이 원주민보다 많아지면서 급속도로 어업 중심지로 바뀌었다. 종전 이후에도 연고를 찾아 몰려드는 연쇄 이동이 맞물렸다.‘일가 친척 없는 몸’들이 고향 사람을 찾아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5만여명이 배를 타거나 육로로 내려와 이곳에 여장을 풀었다. 선단을 이룬 이들은 청초호 모래톱에 배를 댔다. 육로로 내려온 이들은 학사평(지금의 공설운동장 쪽)에 ‘해방촌’을 꾸렸으나 차차 흩어져서 도시 속에 녹아들었다. 반면, 본디 어업에 종사하던 청호동 사람들은 강인한 단결력을 과시하며 지금껏 버티고 있는 중이다. ●쌀로 빚은 가자미식해·북청 사자놀이 일품 함경도, 그 중에서도 함경남도 사람들이 7할 정도 차지한다. 정평 이원 영흥 단천 흥원 신창 신포마을 등 청호동 집단취락명은 이네들이 내려와서도 응집력을 갖고 살아왔음을 웅변한다. 이 중에서도 단천과 신포마을이 헤게모니를 쥐고 살았다. 속초에는 지금도 함남도민회, 원산시민회, 함흥시민회, 북청군민회 등등 무수한 ‘월남 조직’이 있어 ‘피란민 도시’의 면모를 보인다. 이들이 석호의 모래톱에 불과한 청호동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무엇보다 국가 소유 해빈(海濱)인지라 무단 정착이 용이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밥벌이 기술’인 어업을 지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분단기에 이북 어민들이 전국 해안에 뿌리를 내리면서 ‘어업의 장기지속성’을 보여준 사실에 대한 연구는 본격적으로 이뤄진 적이 없다. 그러나 전국을 돌아보면 해안 곳곳에 이들이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서해안 덕적도 진리포구는 황해도민이 집단 거주하며, 화성의 마산포같이 작은 포구에도 황해도촌이 존재한다. 인천시 화수부두에도 유별나게 황해도민이 많았으니, 김금화같은 무당들이 인천을 거점으로 배연신굿을 하는 토대도 바로 이곳이다. 전쟁때 선단을 통한 대대적인 피란과 정착이 이뤄졌음을 말해준다. 모진 해풍이 불어닥치는 낯선 바닷가에 당도하여 고생고생한 대목은 필설로 이루 말하기 어렵다. 한 마디로 분단의 비극이었다. 미군부대의 철조망 주변에 널린 레이션 박스를 주워 오고, 부서진 배 등을 엮어서 집이랄 것도 없는 집을 지었다. 겨울이 오면 흙을 발라서 흙집이 되었다. 구겨진 드럼통을 펴서 지붕을 얹기도 했고, 주변에 돌아다니는 모든 물건들을 주워 모아 청호동을 만들어 나갔다. 남해안의 여수, 거제 등으로 피란 갔던 이들, 경상도의 후포, 구룡포, 강원도의 양양, 대포 등에도 이들은 몰려 들었다. 나중에는 이른바 ‘반공포로’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찾아 들었다. 참으로 모진 세월이었다. 청호동에서도 모래톱 맨끝에 형성된 신포마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신포는 오늘날 북한 최대의 수산사업소가 있는 어업 전진기지이며, 일제시대에 함경도 어업의 최대 거점이었다. 한마디로 신포사람들은 동해안에서 가장 뛰어난 어민들이었으니, 이들의 저력이 모여 강원도 유수의 어항 속초를 만드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포는 남쪽으로 봉화반도가 뻗어 나왔고, 서쪽과 북쪽에 산이 있어 바람을 피하기 좋다.‘한국수산지’(1905)에 따르면, 호수 300, 인구 1360여명이었으며 명태 집산지로 이름 높았던 곳이다. 당시에 인구 1000명이 넘는 포구라면 상당한 규모다. 식민지로 접어들자 시가가 번창하며 기선 출입이 잦고 일본인 거주자가 증가했다. 건너편 북청으로 정기선이 다녔으며, 성진 원산 부산 등지로 연안 회항선도 다녔다. 1905년 당시에 이미 일본인 거주자는 수비대, 헌병대를 제외하고도 남자 31, 여자 23명이 살았으며, 직업도 무역상 기선업 잡화상 매약상 여인숙 음식점 과자상 우육상 등 다양했다. 신포 바로 앞의 마량도 출신인 박임학(79)옹의 증언.“북청군 신포읍 마량도가 고향이지요. 지금 경수로 만드는 곳까지 포함해 신포시가 되었어요. 신포 앞 섬, 거기가 내 고향 마량도지요. 신포 읍내에서 마량까지 수로로 10리 밖에 안되요. 연락선이 있었는데, 하루에 세번씩 다녔지요. 마량도는 12개 마을(리)로 되어 있었습니다. 소방서, 주재소, 그리고 국민학교도 있고,300여 호가 살았지요. 평지 대신 산이 많았고….” 지도를 펼쳐볼 필요가 있다. 신포와 홍원 사이의 마량도가 바로 코앞이다.12개의 마을이 형성될 정도의 크기이니 동해안에 섬이 없다는 우리들의 통념을 깰만 하다. 밑으로는 함흥이 있고, 함흥만 아래에 원산이 있어 천혜의 산란장이다. 이른바 한반도의 허리라고 하는 바로 그곳이다. 신포사람들은 청호동에 정착한 이래 한 시도 배를 떠나지 않았다. 함경도 명태잡이 기술이 이곳에 고스란히 전파되었다. 피란민을 통한 어업기술의 전파가 이루어진 것. 당연히 ‘아바이 말씨’와 음식도 함께 와 뿌리를 이어갔다. 덕분에 지금도 청호동 골목길에는 아바이순대를 비롯하여 함흥냉면 간판 등이 줄지어 서있다. 단천 출신으로 단천식당이란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윤복자(63)씨는 함경도 음식 중에서 해산물로 명란젓 창란젓 아가미젓 꽁치젓 메가리젓 오징어젓 등의 젓갈류를 꼽았는데, 그 중 가장 함경도적인 것으로 가자미식해(食)를 내세웠다. 생선을 소금에 절이면 염장어가 되고, 발효시키면 식해 또는 어장(魚醬)이 되는 것이니, 이런 유의 음식은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다. 생선식해는 이른바 ‘감주’식혜와는 다른 것이지만, 발효시킨다는 뿌리는 같다. 곡식과 생선을 섞어 발효시킨 것이 가자미식해이니, 동해안의 원래 주인공인 동예(東濊)나 발해인들이 바로 이 식해를 먹었을 것이다. 곡식과 생선을 버무려서 발효시켜 저장하는 기술은 선사시대 이래의 식생활이니 가자미식해는 한반도에 흔치않게 남아있는, 그 자체가 바로 살아있는 무형의 문화유산 아니겠는가. ●명태잡이 어업기술 고스란히 전파 사실 동해안에 가자미만큼 흔한 고기도 없다.“왜 식해를 만들때 수많은 생선 중에서 가자미를 쓰느냐.”는 질문에 “뼉다구가 날래 물르기(빨리 삭기) 때문”이란다. 덧붙여 “가재미 식해는 뼈가 물러야지 좋으니까.”라고 사족을 단다. 재미있는 것은 조밥 대신에 쌀밥을 쓴다는 점.“경상도 사람들이 조밥을 넣지, 여기서는 그리 안해요.”이런 습속은 다른 곳도 같아 강릉시 사천면 진리 일대 등 여타 강릉시 일대에서도 흰 쌀밥을 이용해 식해를 만든다. 조로 만드는 것과 비교해 맛이 어떠냐고 묻자 “조밥보다 쌀밥이 더 맛있어요. 예전에는 값도 쌀이 비쌌지요. 삼척 넘어가고 경상도 가니까 다 조밥 넣데요. 그러나 이 인근은 모두 쌀밥으로 해요.”우리가 알던 ‘조밥 가자미식해’와는 다르다. 반백년쯤 지나다보니 아바이들의 삶도 서서히 변해 갔다.2세대들은 강원도 원주민과 많이 결혼했으며,3세대들은 학교, 직장 문제 등으로 외지로 나가 사는 경우도 많아 ‘아바이마을’의 정체성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속초시는 낙후된 이 일대를 대대적으로 ‘개선’하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지금도 드라마 ‘가을동화’에 등장한 ‘갯배’라는 독특한 도항 수단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새 다리가 완공되면서 거대한 교각에 마을 경관이 눌린 꼴이 되고 말았다. ●취락지 보존 ‘아바이박물관’으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2세,3세로 내려가면서 피가 섞이고, 함경도적 정체성도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청호동 바닷가 취락지를 보존해 ‘살아있는 아바이박물관’ 정도로 했으면 하는 희망이다. 분단시대의 박물관이자 분단의 균열 속에서도 고향의 응집력을 지니고 반백년을 살아온 그네들의 삶은 그 자체가 ‘역사자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양문화사적으로 그들의 어업기술사는 이북의 신포와 마량도 어업사를 고스란히 옮겨온 경우에 해당된다. 옛 사진첩에 1950년대의 북청사자놀이가 확인되니,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훨씬 이전부터 고향의 춤과 노래를 계속 이어왔다는 증거 아닌가. 쌀밥으로 빚은 가자미식해와 북청사자놀이의 호탕한 대륙적 음악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아바이 삶’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시신을 화장하여 속초 바닷가에 뿌리면서 바닷물을 통해서라도 고향으로 되돌아가길 기원하는 아바이들이 존재하는 한, 청호동은 지켜지고, 또 살아 남으리라.
  • [이경기의 스크린 1인치]할리우드는 커닝의 마법사?

    할리우드는 다양한 소재를 새롭게 녹여내는 용광로다.2004년에도 어김없이 각국에서 히트된 영화 사연을 재빨리 각색해 관객들의 구미를 맞추고 있다. 평범한 중년 남자가 어느날 우연히 댄스 교습소에 들렀다가 삶의 활력을 찾는다는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쉘 위 댄스’(96년)는 늘상 반복되는 일상에서 일탈을 꿈꾸는 남성에게 춤이 인생의 의미를 되찾아 준다는 설정으로 관객들의 환대를 받아냈다. 현재 미국 흥행가를 달구고 있는 리처드 기어 주연의 할리우드 버전에서는 원작의 샐러리맨을 변호사로 직업을 바꾼 것 외에는 대부분의 상황이 원작과 흡사하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산과 할리우드산에서는 묘한 동서양의 가치관 차이를 엿볼 수 있는 구성 형식을 보여준는 것. 일본 작품에서 춤은 상하 복명의 엄격함에 짓눌려 있는 중년 남자가 자유분망한 춤으로 이러한 억압감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기둥 줄거리. 미국판에서는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춤을 탈출구로 선택했다.’는 주인공의 말을 통해 욕망의 문제에 초점을 두었다. 뤽 베송이 제작을 맡은 ‘택시’는 피자 배달부가 택시 운전사로 전업했다가 천부적인 운전 솜씨를 활용해 마르세이유 지역의 소심한 경찰의 사건 수사 파트너로 활약한다는 내용. 힙합 가수 퀸 라티파가 주연을 맡은 미국판 ‘택시’는 스피드광인 수다스런 여자 택시 운전수가 뉴욕의 은행 강도단을 일망타진하려는 형사와 팀웍을 이룬다는 것으로 변경됐다. 맷 데이먼 주연의 ‘리플리’는 유럽에서 방탕스런 생활을 하고 있는 백만장자 아들 디키를 개과천선시켜달라는 부탁을 받은 리플리가 물질적 욕망에 사로 잡혀 친구인 디키를 교살한 뒤 그를 대신해 호화스런 생활을 하다 결국 행각이 탄로돼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리플리’는 60년대 유럽 출신 미남 스타로 주가를 높였던 아랑 드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의 미국판. 스위스 출신으로 영국에서 주로 활동했던 여류 작가 패트리시야 하이스미스는 ‘리플리’를 비롯해 ‘리플리 게임’ ‘리플리 돌아오다’ 등의 3부작을 통해 ‘탐욕으로 인해 손에 잡을 수 없는 행운을 잡으려다가 나락으로 빠지는 청춘상’을 묘사해 공감을 얻어냈다. 콜린 세로 감독의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85)는 합숙을 하고 있는 3명의 총각이 어느날 문앞에 방치된 갓난 아이의 육아를 떠맡게 되면서 벌이는 해프닝을 다룬 드라마.2년 뒤 ‘스타 트렉’에서 스포크 선장으로 우리에게도 낯이 익은 레오나드 니모이가 메가폰을 잡고 3명의 총각들이 미혼모가 버리고 간 아이를 키우게 된다는 ‘3남자와 아기’로 리메이크 됐다. 파트리샤 브라우데 감독의 ‘네프 무아’(94)는 아버지가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남자가 동거녀가 의도하지 않게 임신을 하게됐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자는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점차적으로 한 생명이 뱃속에서 성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에 감추어져 있는 뜨거운 부성애를 찾게 된다. 이 소재는 휴 그랜드 주연의 ‘나인 먼스’(95)로 각색됐다. 흥미로운 점은 프랑스 히트작들이 미국 시장에서 번번이 재활용되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프랑스 영화인들은 ‘할리우드의 아이디어 뱅크는 바로 자신들’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 낙엽길따라 - 선암사 · 남이섬 · 상림

    낙엽길따라 - 선암사 · 남이섬 · 상림

    지는 가을을 만나러 길을 나섰습니다. 가을색 짙은 목소리가 매력 만점인 가수 최헌의 노래가사처럼 그리움이 눈처럼 쌓이는 곳으로 말입니다. 어디 그리움뿐이겠습니까. 그 곳에선 정말 새털처럼 가벼운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이 바싹 마른 이파리가 되어 팔랑팔랑 굴러다녔습니다. 삶의 무게가 버거운 양 애처롭게 처진 중년 남성의 서러움도, 야윈 늦가을 햇살을 쪼이는 노인의 쓸쓸함도 하나 둘 내려앉고 있었구요. 그래도 눈처럼 쏟아져 날리는 이파리들은 팍팍한 일상을 사느라 헛헛해진 가슴속을 푸근히 채워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소담스럽게 쌓인 샛노란 은행잎을 하늘 높이 뿌리며 동화를 꿈꾸고 있었지요. 호젓한 선암사 오솔길과 함양 상림, 그리고 춘천 남이섬. 지는 가을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세 곳으로 안내합니다. 글 사진 선암사·남이섬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선암사 11월 늦은 오후에 찾은 선암사엔 반쯤 진 가을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1500년 연륜의 고즈넉한 사찰 뒤로 얼기설기 난 오솔길은 아직 단풍 반 낙엽 반. 바람이 불 때마다 쏟아져 내리는 낙엽에 ‘어머 어머!’하고 여자들의 탄성이 터진다. 역시 남자보다는 여자의 감수성이 예민한가 보다. 선암사 뒤 낙엽 산책길은 대략 네 갈래다. 선암사∼운수암, 삼인당∼대승암, 매표소∼삼인당 그리고 선암사∼송광사 코스 등. 각각 독특한 운치를 지니고 있다. 우선 삼인당∼대승암 길로 가보자. 인공연못인 삼인당 갈림길에서 왼쪽의 대승암·송광사 길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삼인당(三印塘)은 길쭉한 알 모양의 인공연못이다. 신라 경문왕때 도선국사가 축조했다고 전해진다. 알속의 노른자처럼 연못 안에 작은 섬을 두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삼인당 주위의 붉게 물든 단풍, 그리고 낙엽이 수면을 덮은 풍광이 제법 화사하다. 부도탑을 지나 왼쪽으로 난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옹달샘과 함께 낙엽길로 들어선다. 여기서 직진하면 대승암, 오른쪽의 큰 길을 따라가면 송광사로 넘어가는 등산로가 이어진다. 대승암으로 이어지는 낙엽 오솔길은 약간의 오르막이다. 길 왼쪽으로 하늘 높이 솟은 삼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들리는 것은 사각사각 밟히는 낙엽소리뿐. 암자까지 외길인지라 등산객을 만나기 어려워 더욱 호젓하다. 선암사∼운수암길은 선암사 오른쪽으로 나 있다. 강선루를 막 지나면 나오는 첫번째 부도탑에서 오른쪽 오솔길을 따라가면 된다. 이미 황갈색 낙엽이 길을 뒤덮고 있다. 5분쯤 비탈길을 올라가니 운수암에 닿는다. 새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는 암자. 암자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만추의 절정을 보여준다. 양지쪽이어선지 맞은편 산등성이는 아직 오색단풍이 한창이다. 암자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마치 불타는 단풍 속으로 뛰어드는 것 같다. 매표소∼삼인당 길은 선암사를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과해야 하는 곳으로 가장 널찍하다. 왼쪽 아래는 맑고 투명한 계곡. 조계산을 붉게 물들였던 가을이 계곡물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흘러 내려간다. 발걸음은 승선교 앞에서 자연스럽게 멈춘다. 승선교는 선암사에서도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 곳. 자연석을 이용해 만든 무지개 모양의 다리다. 다리 일부에 균열이 생겨 지난 1년여간의 해체 보수를 거쳐 최근 제모습을 찾았다. 승선교(昇仙橋)는 글자 그대로 신선이 하늘로 오를 때 발을 디딘다는 다리. 반대로 승선교 앞에 버티고 서 있는 2층 높이의 강선루(降仙樓)는 신선이 내려온 누각이라고 한다. 승선교 아래엔 항상 사진작가들이 다리 아래서 올려다보이는 선암사 풍광을 잡기 위해 진을 치고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조계산 능선을 넘어 송광사까지 가는 낙엽 트레킹에 도전해 보자. 선암사∼선암굴목재∼송광굴목재∼송광사 등의 순으로 대략 8.5㎞쯤 된다. 단풍과 낙엽의 운치를 즐기며 천천히 걸으면 3시간 정도 걸린다. 자동차를 가져왔다면 길을 되짚어 오거나 송광사에서 택시를 타고 선암사 주차장까지 와야 한다. 왕복 트레킹에 5시간은 족히 걸린다. 호남고속도로 승주IC에서 빠져 22번 국도와 857번 지방도를 차례로 탄 뒤 선암사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나들목에서 차로 10분 정도면 선암사 주차장에 닿는다. 열차를 이용할 경우 순천역에서 내려 1번 또는 100번 시내버스를 타면 선암사까지 갈 수 있다. 선암사 아래 길상식당(061-754-5599)의 한정식이 깔끔하고 맛도 괜찮다.3인 기준 1인 1만 2000원. 장원식당(754-6362)의 산채비빔밥도 유명하다.5000원. 주변에 새조계산장(751-9200), 산암장여관(754-5666) 등 여관이 많다. ■남이섬 이번이 세 번째다.20년 전 대학시절 여름 MT 왔던 게 첫번째, 지난 여름 확 달라졌다는 남이섬을 확인하러 온 게 두 번째다. 처음 왔을 때는 인공숲이 빈약해 그저 널찍한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시던 생각밖에 안 난다. 지난 여름에 와선 거대한 숲의 섬으로 변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고, 아기자기한 산책로가 참 마음에 들었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남이섬의 진수는 이번 세번째 나들이에서 본 것 같다. 단풍이 반쯤 진 남이섬. 연인들이 걷는 오솔길이든 아이들이 뛰노는 잔디밭이든 땅바닥은 그야말로 오색 도화지다. 나무를 떠난 이파리가 이토록 아름다운 줄 미처 몰랐다. 11월의 오후. 짧아진 가을햇살에 고목이 긴 그림자를 벗한다. 사각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살아온 날들을 반추하는 듯한 노부부, 날아갈 것처럼 숲길을 누비는 10대,20대 커플, 자전거를 타고 바람같이 내달으며 쌓인 낙엽을 날리는 아이들. 남이섬은 신기하게도 이처럼 모든 세대를 아우르며 품는다. 반달 모양의 남이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400여m의 잣나무 길. 늘푸른 잣나무는 녹슨 꼬마열차 궤도를 벗한 채 아직도 여름을 꿈꾼다. 잣나무 길 양쪽으로 널찍한 잔디밭이 이어지고, 그 너머엔 갖가지 단풍나무들이 오색찬란한 가을빛을 내뿜는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유명한 메타세쿼이아 길은 잣나무 길과 연결되는 십자로의 오른쪽에 있다. 황갈색 옷으로 갈아입은 메타세쿼이아 터널 너머로 햇빛에 반사된 강물이 하얗게 넘실댄다.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은행나무와 잣나무길엔 ‘연인들의 산책로’란 이름이 붙었다.80년대 중반 젊은이들의 눈물샘을 꽤나 자극했던 영화 ‘겨울나그네’가 촬영된 곳. 추풍낙엽이라고 했던가. 느낄듯 말 듯한 가벼운 바람도 버티지 못하고 은행잎이 쏟아져 내린다. 햇살을 받으며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낙엽비.2인용 자전거를 타고 샛노란 비를 맞는 연인들의 연가가 아름답다. 섬 동쪽으로 이어지는 강변 산책로엔 튤립나무와 자작나무숲이 이국적 자태를 뽐낸다. 숲 사이로 자리잡은 삼각형 모양의 방갈로 지붕위로 단풍잎이 수북이 쌓여 있다. 간간이 놓인 나무벤치는 어김없이 연인들의 차 지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오솔길은 남이섬에서 가장 운치 있는 곳. 은행잎은 벌써 7할쯤, 단풍잎은 반쯤 졌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번쯤은 멈춰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숲속은 동물들의 세상이다. 아이들의 뜀박질에 화들짝 놀란 청설모들이 잽싸게 기어올라간다. 잿빛 토끼 한 마리는 멀찌감치서 잔뜩 긴장한 자세로 사람들을 주시한다. 국도 46번 경춘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청평읍, 가평을 거쳐 경춘주유소 4거리에서 우회전해 2.4㎞ 정도 들어가면 남이섬 선착장이 나온다. 주차료는 4000원, 도선·입장료를 합해 왕복 5000원(어린이 2500원). 드라마카페 ‘戀家之家(연가지가)’의 ‘옛날 벤또 도시락’은 남녀노소, 특히 연인들이 좋아하는 메뉴. 양철 사각 도시락통에 밥을 담고, 그 위에 김치와 계란 프라이를 얹어 뚜껑을 덮은 뒤 연탄난로 위에서 데워 먹는다. 먹기 전 두꺼운 장갑을 낀 손으로 도시락을 들어 사정없이 흔드는 게 ‘요리’의 포인트.4000원. 문의 남이섬 관리사무소 서비스센터(031-582-5118). ■상림 경남 함양 상림(上林)은 ‘낙엽의 천국’이다. 산도 아닌 벌판 한 가운데를 크고 작은 활엽수들이 가득 덮고 있는 곳. 여름이면 하늘을 가려 한 줌 햇살도 허용치 않을 만큼 무성했던 이파리들이 지금은 반쯤 졌다. 숲 가운데의 큰 길은 물론 사이사이 난 오솔길은 온통 낙엽 천지. 길이 아닌 숲속으로 들어가니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더미가 부스럭거리며 낯선 손님을 경계한다. 상림은 1100여년 전 조성된 인공활엽수림이다. 통일신라 말 진성여왕 때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이 천령군(함양의 옛이름) 태수 부임후 조성했다고 한다. 마을을 가로지르던 위천(渭川) 범람을 막기 위한 호안림(護岸林)이다. 당시 심은 나무들이야 늙어 죽었지만 그들이 뿌린 씨앗은 대를 이어 1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귀중한 활엽수림으로 남았다. 상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국내 유일의 활엽수림이다. 당시엔 상림과 하림을 합쳐 6만여평이었으나, 지금은 길이 1.4㎞, 폭 200m,2만 7000여평만 남아 있다. 상림엔 수십년에서 수백년 수령의 110여종 2만여 그루의 나무가 자란다. 졸참나무, 느티나무, 팥배나무, 사람주나무, 감나무 등이 주요 수종. 나무의 종류가 다양하고 굵기도 제각각이어서 통일신라 때 조성됐던 숲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낙엽색깔도 조금씩 다르다. 참나무 계통은 떨어질 때부터 갈색이지만, 느티나무나 감나무 이파리는 떨어진 뒤에도 마르기 전까지는 붉거나 노란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인근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소풍을 나왔나보다. 어른들에겐 사색의 대상인 낙엽도 아이들에겐 그저 놀이의 수단일 뿐. 두 손 가득 낙엽을 집어 뿌려대는 아이들 표정에 천진함이 넘친다. 상림엔 숲을 가로지르는 실개울과 군데군데 세워진 함화루, 초선정, 화수정 등 정자들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 숲 한편엔 최치원 신도비와 척화비 등 함양에서 선정을 베푼 위정관들을 기리는 비석들을 모아놓았다. 또 최치원을 비롯해 연암 박지원, 김종직 등 함양에서 태어났거나 살았던 대학자 11명의 흉상을 세워놓은 인물공원이 조성돼 있다. 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88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함양IC 표지판이 보이면 빠져나와 우회전해 5분쯤 가면 함양읍이다. 가던 길로 직진해 읍내를 지나가면 위천이 나온다. 위천을 건너기 전 우회전해 천변 도로를 5분쯤 달리면 상림과 만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함양까지 고속버스가 5회 출발한다. 함양읍에서 택시를 타면 상림까지 기본요금에 간다. 상림 주변 및 함양읍내에 별궁장여관(055-963-9241∼3), 상림장여관(055-963-1170) 등 여관이 많다. 상림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거창 방면으로 가다 보면 안의면사무소 소재지가 나온다. 안의고추갈비찜으로 유명한 곳. 매콤달콤하면서 부드럽고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옛날할머니 갈비식당’(055-962-0163) 등 갈비찜을 내는 식당이 도로변에 늘어서 있다.1접시 2만 5000원(2인)∼3만 5000원(3인).
  • 40대이상 절반 ‘고개숙인 남성’

    우리나라 40대 이상 남성 2명 중 1명은 발기부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남성과학회(회장 김제종)는 전국단위로 실시한 ‘국내 발기부전 역학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49.8%가 발기부전 증세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최근 밝혔다. 이번 조사는 무작위로 추출한 전국의 40∼80세 남성 1570명을 대상으로 해 면접조사 방식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 40대 33.2%,50대 59.3%,60대 79.7%,70대 82%가 발기부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나이가 들수록 유병률이 급격히 높아졌다. 특히 사회·가정적 역할이 중요한 40∼50대 중년층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43.4%가 발기부전을 겪는 것으로 나타나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게 했다. 발기부전은 고혈압, 당뇨, 전립선 질환 등 남성 건강과 밀접한 상관성이 있는 ‘선행 질병’의 성격이 강해 이를 통해 우리나라 남성의 전반적인 건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주목되는 연구 결과로 보인다. 이번 연구 결과는 최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린 제11회 세계 임포텐스학회(ISSIR)에서 발표됐다. 연구를 주도한 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 안태영 교수는 “이번 조사는 국내 발기부전 환자의 규모를 정확히 측정했다는데 의미가 있다.”며 “40대 이상 한국 남성 2명 중 1명이 발기부전이라는 것은 놀라운 결과”라고 말했다. 학회 김제종 회장도 “스트레스와 서구화된 식생활 등으로 많은 중년 남성들이 심각한 질병에 노출돼 있으면서도 치료를 기피, 병을 키우는 사례가 많아 안타깝다.”며 적극적인 치료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대한남성과학회는 한국화이자제약 후원으로 11월 한달동안 전국에서 남성 건강캠페인 ‘자신만만 중년만세’행사를 갖는다. 이 기간 동안 발기부전, 전립선 비대증, 과민성 방광 등 40대 이후 중년 남성에게 흔한 질환 정보를 널리 알리기 위해 서울 등 전국 8개 도시에서 중년 부부를 대상으로 연극 ‘다시 서는 남자 이야기’를 무료 공연한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 공주의 발/아네스 드자르트 글

    여자아이들이 동화속 백마 탄 왕자를 흠모하는 것처럼 남자아이들은 신데렐라 같은 공주를 꿈꾼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열살 소년 이반도 마찬가지. 엄마, 여자 선생님, 여자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이반에게 진짜 여자는 공주뿐이다. 모리세트 할머니의 발관리 센터에서 조수 노릇을 하게 된 이반은 드디어 꿈에 그리던 공주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푼다. 보나마나 공주는 신데렐라처럼 예쁜 발을 갖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환상은 첫날부터 산산이 깨진다. 손님이라곤 온통 중년부인들인 데다 차마 사람의 발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울퉁불퉁한 흉터투성이였다. 예쁜 발을 가진 공주를 만나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이반은 뜻밖의 소중한 발견을 하게 된다. 그저 따분하기만 한 줄 알았던 할머니에게도 꿈으로 가득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고, 사랑의 상처가 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여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것. 이반은 할머니들의 뒤틀어진 발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만큼 마음의 키가 훌쩍 커진다. 맨발로 축구하는 여자 친구 이렌을 보면서 ‘오로지 공주만이 맨발로도 축구를 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는 이반의 고백은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공주의 발은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에 신겨진 가냘픈 발이 아니라 씩씩하고 건강한 발임을.8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2003년 칸 심사위원 대상 ‘우작’

    2003년 칸 심사위원 대상 ‘우작’

    현란한 세상의 속도를 비웃듯 긴 호흡으로 끌어가는 롱테이크 화면. 처음엔 지루한 듯하지만 이내 우리가 품고사는 무기력한 일상의 유머러스함에 흠칫 놀라게 된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처럼 프레임 속의 정물들은 아름답고도 정적인 구도를 지니지만, 그 안엔 날카롭게 동시대의 얼굴을 담아내는 영화.5일 코엑스아트홀에서 개봉하는 ‘우작’(Uzak)은 드문 미학적 형식으로 열정을 잃은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정수리를 콕 찌르는 작품이다. 아내와 헤어진 뒤 정부에게서 외로움을 달래며 살아가는 중년의 사진작가 마흐무트(무자파 오즈데밀). 어느날 고향에서 일자리를 구하러 사촌동생 유스프(에민 토팍)가 올라오면서 둘의 사소한 신경전이 시작된다. 집을 어지럽히고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는 유스프에게 신경질만 쌓여가는 마흐무트. 하지만 동생만 방에 들어가면 몰래 포르노를 지켜보거나 숨어서 동생을 훔쳐보는 인간에 불과하다. 유스프 역시 순박하지만 구직활동도 변변찮고 여자 뒤꽁무니나 좇는다. “넌 타르코프스키 같은 사진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하곤 했지. 왜 그 때의 열정을 지우려고 하니? 넌 네 이상을 죽일 자격이 없어.” 마흐무트를 향한 한 친구의 대사는 모든 상황을 압축한다. 세상과 삶에 대한 열정과 이상을 잃어버린 사람들. 영화는 그들의 얼굴에 스민 피곤함과 지루함을 슬프고도 우스꽝스럽게 지켜본다. 이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감독 누리 빌게 세일란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동생을 은근히 시계도둑으로 몰고, 아내까지 다른 남자와 외국으로 떠난 뒤 혼자 남은 마흐무트. 벤치에 앉아 오래도록 바닷가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만으로도 관객의 가슴에 깊은 각인을 남길 영화다.‘우작’은 터키어로 ‘아득히 먼’이란 뜻. 지난해 칸영화제는 이 작품에 심사위원 대상과 두 배우에게 공동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미국 알링턴 성인교육 현장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미국 알링턴 성인교육 현장

    지난 19일 저녁 7시.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카운티의 클레어렌든 중심가에 자리잡은 ‘알링턴 성인교육센터’를 방문하자 3층 상황실에서 근무하던 톰 로이스 야간국장이 반갑게 맞아줬다. 로이스 국장은 기자를 ‘이베이에서 물건 사고팔기’라는 제목의 강좌가 열리는 213호 강의실로 안내했다. 컴퓨터와 인터넷 전문가인 찰스 매쿨이 중년의 남성 1명, 여성 4명과 함께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경매사이트인 이베이에 접속, 물건을 사고 파는 과정을 실행해보고 있었다. 로이스가 “한국에서 온 기자가 수업을 참관하고, 촬영도 하고 싶어한다.”고 양해를 구하자 한 여성이 “안녕하세요.”라는 또렷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지난 19일 저녁 7시.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카운티의 클레어렌든 중심가에 자리잡은 ‘알링턴 성인교육센터’를 방문하자 3층 상황실에서 근무하던 톰 로이스 야간국장이 반갑게 맞아줬다. 로이스 국장은 기자를 ‘이베이에서 물건 사고팔기’라는 제목의 강좌가 열리는 213호 강의실로 안내했다. 컴퓨터와 인터넷 전문가인 찰스 매쿨이 중년의 남성 1명, 여성 4명과 함께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경매사이트인 이베이에 접속, 물건을 사고 파는 과정을 실행해보고 있었다. 로이스가 “한국에서 온 기자가 수업을 참관하고, 촬영도 하고 싶어한다.”고 양해를 구하자 한 여성이 “안녕하세요.”라는 또렷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알링턴(미 버지니아주)이도운특파원| 이 강좌에서는 매일 수억개의 상품이 새로 올라오는 이베이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상품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지 등 매우 실용적인 내용의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수강자들은 주로 은퇴한 뒤 이베이에서 작은 사업을 구상중이거나 창고에 쌓아둔 물건들을 처분하고 가외 소득도 올리려는 중산층 백인들이다. 교육센터 2층과 3층에서 진행되는 영어와 컴퓨터 기초과목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대부분 아시아와 중남미, 동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었다. 알링턴 성인교육센터 관계자는 “언어와 컴퓨터 등 직업교육에는 이민자들이, 취미교실에는 미국의 중산층 주민들이 주로 참가한다.”고 말했다. ●하루에 두번 문 여는 학교 다음날인 20일 오후 7시. 알링턴 카운티 볼스턴에 자리잡은 워싱턴 리 고등학교. 사방에 어둠이 깔렸지만 교실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 학교는 하루에 두번 문을 연다. 오전에는 고등학생들을 위해서, 그리고 저녁 7시에는 성인 학생들을 위해서다. 프랑스 태생인 프란 벨 심스 선생님이 가르치는 ‘수채화 그리기’는 최고 인기 강좌다. 수업중인 127호실로 살짝 들어가자 심스 선생님을 중심으로 10여명의 아마추어 화가들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도화지에 스케치와 채색 작업을 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학생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과목은 스페인어 강좌.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의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미국내에서 스페인어의 효용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히스패닉풍의 의상을 차려입은 조시 사르미엔토 선생님이 20명이 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초급 스페인어 문법과 회화를 가르치고 있었다. 대통령 후보간의 TV토론이 벌어지든, 메이저 리그 월드시리즈가 열리든 이 강의실에서는 빈 자리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한국어강좌에는 대기자 명단도 스페인어 수업이 진행되는 116호실 건너편의 117호실에서는 한국어 강의가 한창이었다. 사학을 전공하던 대학시절부터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쳤던 경험이 있는 박명은씨가 하와이 대학에서 출판한 ‘Integrated Korean(통합 한국어)’이라는 교재로 수업한다. 강좌는 정원 12명을 채우고도 현재 5명이 ‘대기자 명단’에 올라있다. 박씨는 “한국에서 입양됐거나 어머니가 한국인인 사람 등 우리나라와 직접 인연이 있는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순수한 미국인 학생”이라며 “한국인 여자친구를 둔 남자도 있고, 직장의 한국인 동료들에게 ‘한국문화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하려고 우리말을 배우는 미국인도 있다.”고 학생들의 구성을 설명했다. ●이민자 미국화하는 용광로 역할 알링턴 성인교육센터는 75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교육센터가 보관중인 1952년의 카탈로그에 따르면 당시의 주요 강좌는 이민자들을 ‘미국인화’하기 위한 영어교육과 미국인들의 실생활을 돕기 위한 속독·속기와 전기 등 기술관련 분야의 재교육이었다. 현재도 그같은 교육목표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다만 시대와 기술의 발전에 따라 강좌가 다양해지고, 미술 등 취미관련 강좌가 늘어났을 뿐이다. 워싱턴 리 고등학교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출신인 리티 라투바니아(38)는 “7년전 이민왔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계속 고생하다 몇년전 교육센터에서 영어교육을 받은 뒤 세븐일레븐에 취직했다.”면서 “앞으로 여유가 생기면 성인교육센터에서 대학수준 강좌를 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알링턴 성인교육센터가 제공하는 강좌는 가을학기 260개, 겨울·봄 학기 230개 등이다. 교육은 클레어렌든의 본부를 중심으로 알링턴 각 지역에 산재한 2개의 직업센터와 7개의 학교에서 이뤄진다. 강좌에 참가하는 학생수는 1년에 6500명 정도. 보통 2∼3달간 일주일에 한번 2∼3시간 정도씩 수업을 하며 적게는 32달러에서 많게는 292달러의 수업료를 낸다. 교육센터측은 최근 들어 ▲수업료를 내기 어려운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 프로그램 ▲50세 이상 성인 남녀가 함께 대학에서 강의를 듣고 대화할 수 있는 사교 프로그램 ▲부모와 자녀가 함께 와서 같은 시간대에 각각 필요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가족 프로그램을 적극 추진중이다. dawn@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몽유섹스

    |오클랜드(뉴질랜드) 연합|낮에는 착실하게 가정을 지키는 모범적인 중년 여인이 밤만 되면 아무도 모르게 집밖으로 빠져 나가 낯선 남자와 즉흥적인 섹스를 하기 위해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아주 희한한 병이 호주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호주 일간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최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로열 프린스 알프레드 병원의 수면장애 전문의인 피터 부캐넌 박사는 “의사들도 처음에는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얼마전에 치료한 환자 중에 분명히 그런 환자가 있었다.”고 밝히고 “이 환자는 잠을 자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하는 몽유 섹스 환자였다.”고 설명했다. 부캐넌 박사는 이 환자는 무척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자기가 한 일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남편의 증언과 집안 여기 저기에 떨어져 있는 콘돔 등 여러 가지 정황, 뇌 검사에 나타난 이상 징후 등으로 볼 때 수면장애의 일종인 몽유 섹스 환자가 분명하고 말했다.
  • 드라마 ‘용서’ 제주 촬영현장

    드라마 ‘용서’ 제주 촬영현장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옥빛 바다가 내려다 뵈는 제주도의 한 해변가. 두 중년 남녀가 마주보고 서있다. 여자는 대학 동창 남자 친구의 불륜 고백을 듣고는 타박한다.“그래서 그 여자와 잤단 말야?” 남자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동안 남편이라는 족쇄 때문에 참고 눌러야 했던 사랑의 감정을 이제 막 끄집어냈다고 믿는 그다. 새달 1일 첫 전파를 타는 KBS 2TV 아침드라마 ‘용서(극본 김지수 연출 전성홍)’는 ‘불륜’과 ‘사랑’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드라마다. 결혼과 불륜, 이혼과 복수라는 아침드라마의 진부한 도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목소리는 있다. 이혼을 ‘절반의 실패’가 아닌 ‘절반의 성공’을 위한 선택으로 보고 있는 것. 불임으로 자식을 갖지 못해 시어머니와 고부갈등을 일으키는 아내(정선경),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남편(정보석), 유부남인 그와 사랑에 빠지는 젊은 여자(최정윤). 옛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 ‘용서’는 이들 세 남녀의 삼각관계를 이야기 전개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제주도 촬영현장에서 드라마속 ‘불륜’을 실감나게 연기할 두 연기자의 각오를 들어봤다. #관습에 맞서는 요즘 여자 “이미지 변신의 기회죠. 욕심이 났어요. 제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고요.” 최정윤(28)은 젊은 나이임에도 ‘아줌마 드라마’를 선택했다. 그것도 ‘미혼모’연기다.“한번 굳어진 이미지는 지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섞인 말에 당찬 답변을 내놓는다.“‘여인 냄새’가 나지 않는 제 약점을 극복하고 싶었어요.‘옥탑방 고양이’로 굳어진 악역 이미지도 벗고, 평소 원하던 애절한 멜로 연기도 해보고 싶었죠. 무엇보다 대본이 너무 좋았어요.”언젠가는 자신도 나이를 먹어 아침드라마에 출연할 텐데 조금 빨리 변화된 모습을 선보이는 것 뿐이라며 미소짓는다. 벌써 데뷔 8년차인 그녀는 이 드라마에 출연하기 전까지 영화 ‘분신사바’, 뮤지컬 ‘크레이지 포 유’ 등을 통해 끊임없는 변신을 시도했다.“꾸준히 오래가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오직 연기뿐이거든요.” #나약한 요즘 남자 “제 연기를 통해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요즘 남자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정보석은 사극에서 멜로, 코믹연기까지 연기의 폭이 넓은 배우지만, 여전히 차갑고 진지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언제부터인가 이미지가 고정되고 연기 패턴도 정형화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어요. 이걸 어떻게 깰 수 있나 고민했죠. 해답은 ‘변신’뿐이었어요.”영화 ‘오 수정’과 드라마 ‘인어아가씨’를 통해 ‘가벼운’모습을 선보인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단다. 그가 일하면서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인간관계’다.“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치중하는 부분은 ‘사람’입니다. 함께 작업했던 작가, 연출자들이 부르면 대본이나 배역에 상관 없이 그냥 출연하죠.”그러면 비슷한 배역만 맡게 되지 않을까.“그 분들도 연달아 똑같은 분위기의 작품은 피하거든요. 제 캐릭터를 다양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는 기자에게 나이를 밝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나이라는 외부 환경이 배우의 이미지에 덧씌워지면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된 캐릭터를 전달할 수 없어요. 배우가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죠. 배우 연기를 나이보다 이미지로 봐줬으면 해요.” 제주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마니아]내사랑 셔틀콕

    [마니아]내사랑 셔틀콕

    ∼슉…헛∼얍.” 빠른 속도로 네트를 넘나드는 ‘셔틀콕’소리에 간간이 선수들의 기합소리가 섞여 들린다. 서울시 성북구 돈암동 돈암초등학교 체육관에 오후 7시가 되면서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이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40여명으로 북적댔다.얼핏봐도 모두 ‘호리호리’한 몸매에 보기 좋은 다리 근육을 갖춘 ‘몸짱’이다. 몸매가 엉망이 되기 십상인 중년의 아줌마들도 마찬가지.이들은 모두 ‘신생 명문’ 배드민턴 동호회 ‘돈암클럽’의 회원들이다. “보시다시피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돈암초교 체육관은 6개 코트에 냉·난방 시설,개인 사물함은 물론 샤워시설까지 모두 갖춰져 있는 최상의 시설이죠.아마 서울시 전체를 따져봐도 우리보다 좋은 조건에서 운동하는 클럽은 없을 겁니다.” ‘돈암클럽’의 회장을 맡고 있는 윤채혁(60·자영업)씨는 현재 클럽의 저녁반 회원수가 100여명이고 아침반 70여명까지 더하면 ‘서울시 최대’라고 자랑을 이어갔다. “지난 2∼3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치러진 제14회 서울시연합회장기 대회때 성북구가 종합점수 1만 9000여점을 얻어 2위 송파구를 큰 점수차로 제치고 종합우승을 차지했어요.그때 우리 ‘돈암클럽’회원들이 적잖게 기여했습니다.” ●회원 170여명… 서울시 최대 서울시대회는 구별 대항전으로 치러지는데 남자복식,여자복식,혼합복식 등 3개 부문에서 20대부터 70대이상까지 연령대를 구분하고 다시 선수들의 입상경력을 바탕으로 급수를 구분해 총 81개 종목에 걸쳐 경기가 치러진다.각 종목 1∼3위에게 최하 150점부터 최고 500점까지 점수를 주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3위 안에 입상하느냐에 따라 종합우승의 향방이 정해진다. 이번 대회에서 ‘돈암클럽’은 10개팀을 성북구 대표로 출전시켜 4000점을 획득해 성북구 총 점수의 20%정도를 보태는 등 발군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40대 연령 A급에 출전해 3위를 차지한 서대복(51·자영업)씨는 “연령대를 낮춰 출전했기 때문에 체력에서 밀린듯 하다.”면서 “실력은 우리 ‘돈암클럽’을 따라잡을 곳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드민턴 신흥 명문 클럽 사실 ‘돈암클럽’은 돈암초등학교 체육관 완공과 함께 올해 1월 1일 만들어진 신생 클럽이다.회원들은 대개 인근 야외클럽과 실내클럽에서 상당기간 활동한 ‘우수 경력자’들이다. 좋은 시설에서 상당한 실력을 갖춘 회원들이 모이다 보니 성적은 자연스레 좋은 것.여기에 후원자들의 면면도 심상치 않다. 이 클럽 경기이사를 맡고 있기도 한 서대복씨는 “오는 23일 아테네 올림픽 출전 배드민턴 선수단이 이곳 체육관을 방문해 시범경기를 보여준다.”면서 “그게 다 국회의원이면서 성북구 배드민턴연합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신계륜 의원이 노력해 준 덕분”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돈암클럽’회원들은 아침반과 저녁반으로 나눠 매일 운동을 한다.아침반은 학생들의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해 등교시간 이전인 새벽 5시 30분부터 2시간동안 운동하며,저녁반은 오후 7시부터 밤 10시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된다. 배드민턴을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다는 윤 회장은 자신도 처음엔 배드민턴을 얕잡아 봤다고 털어놨다. ●“배드민턴 얕잡아 보면 큰 코” “많은 사람들이 배드민턴 라켓을 ‘파리채’라고 하며 ‘쉬운 운동’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어요.하지만 배드민턴을 직접 해 보는 순간부터 생각이 달라집니다.” 윤 회장은 특히 배드민턴은 야외와 실내의 차이가 크다고 강조했다.야외는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움직임이 많지 않아도 되는 반면,실내 배드민턴은 빠른 속도로 격렬하게 진행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 게임 뛰고 나면 땀이 ‘한 바가지’는 흘러요.중년의 상징인 ‘뱃살’이 생길 틈이 없죠.”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인지 ‘돈암클럽’에는 14쌍이나 되는 부부 회원들이 있다.홍승호(55·건축업)·정경해(여·51)부부는 최근 ‘돈암클럽’에 가입한 막내 부부. “여성도 쉽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에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운동 중에는 배드민턴이 최고인 것 같아요.함께하면 가정도 화목해지고 부부금실도 좋아져요(웃음).”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왜 ‘셔틀콕’인가 배드민턴은 구기(球技)종목으로 분류되지만 공은 없다.공 대신 ‘셔틀콕(shuttlecock)’이란 물체를 사용하는 것. 셔틀콕은 새끼 염소의 가죽을 씌운 작은 반구형의 코르크 가장자리에 16개의 거위 털을 동그랗게 꽂아 만들어진다.예전에는 닭털을 사용했다고 해서 왕복이란 뜻의 ‘shuttle’과 닭을 의미하는 ‘cock’을 합쳐 ‘셔틀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그러나 닭털보다는 거위털이 바람의 저항을 덜 받기 때문에 나중에는 거위털만 사용하게 됐다. 1900년대 초반까지 배드민턴은 비싼 셔틀콕 가격 때문에 일부 귀족들만 즐길 수 있는 상류층 스포츠였다.하지만 1940년대 영국에서 플라스틱 재질의 저렴한 셔틀콕이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고,이는 배드민턴의 세계적인 대중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처럼 플라스틱으로 만든 셔틀콕이 널리 보급되기는 했지만 지금도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등 국제대회에서 쓰이는 셔틀콕은 살아 있는 거위의 털만을 고집하며 만들기 때문에 비싼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보통 국제대회 한 경기에서 여자 선수들은 10개가 넘는 셔틀콕을 교체하며 이보다 더 강한 스매시 등을 구사하는 남자 선수들은 20개가 훌쩍 넘는 셔틀콕을 교체한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눈에 띄네~ 이 얼굴]‘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스칼렛 요한슨

    요즘 할리우드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여자배우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스칼렛 요한슨.이제 겨우 스무살인 이 배우,참 복도 많다고?아니다.이력을 들춰보면 벌써 십여편에 달하는 영화가 빽빽히 차 있다. 갑자기 뜬 것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1994년 ‘노스’로 데뷔해 ‘호스 위스퍼러’(98년)에서 사고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 소녀,‘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1년)에서 빌리 밥 손튼의 마음을 뺏는 소녀 등을 맡았던 그녀는 그동안 앳된 ‘소녀’에 불과했으니까. 십대의 반항적 이미지와 성숙된 여인의 매력이 섞이기 시작한 것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년)부터다.권태로움이 자연스레 새겨진 표정은 중년의 위기를 겪는 남성과 정신적 교감을 나눌 정도로 성숙돼있었다.그리고 그 영화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그녀는 아역배우가 아닌 당당한 여성 톱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다시 16세로 돌아가지만 더이상 그저 어리기만 한 소녀는 아니다.막 터질 것 같은 봉오리처럼 사랑에 들뜬 채 그것을 꼭꼭 마음 속에 눌러담는 절제된 연기는 ‘사랑도‘와 일맥상통하는 매력을 풍긴다.순수하면서도 인생의 깊이를 아는 듯한 표정 때문인지 최근 그녀의 상대역은 모두 나이든 배우들.‘사랑도‘의 빌 머레이,‘진주‘의 콜린 퍼스에 이어 ‘바비 롱의 러브송’에서도 존 트라볼타와 호흡을 맞췄다. 현재 61회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과 비경쟁부문 초청작 ‘바비‘의 주연 여배우 자격으로 베네치아를 방문 중인 그녀는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한 남성기자로부터 “당신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는 애정공세를 받기도 했다.역시 요즘 스칼렛 요한슨의 주가는 최고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길섶에서] 존재감과 다변/이목희 논설위원

    아이들 만화책을 뒤적이다 보니 불쌍한 중년남자 얘기가 나온다.직업은 선생님이다.‘존재감’이 없는 극단적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남들의 관심을 끌 만한 재주가 없어 완전히 무시당한 채 살아간다.나름대로 튀는 행동을 해보지만 학생들은 때때로 그가 현장에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맺어진 모임에 갔다.연령대로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 모였다.서로 얘기를 하려 드니까 정신이 없었다.주제도 중구난방이었다.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머릿속이 산란했다.“나도 그렇고,주변 사람들이 나이를 먹나 보다.” 중년의 존재감을 ‘다변(多辯)’으로 확인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는 교회 목사님 중 한 분이 기분 좋은 말을 해줬다.“요즘 남자들 대부분이 처져 있는데,당당해 보인다.”는 것이다.사실 교회에 가면 쑥스러워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편이다.‘다변’과 ‘존재감’은 꼭 비례하지는 않는 것인가.논어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이나 되새겨야겠다.“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10년째 재활원 순회음악회 우광혁 한국종합예술대 교수

    18일,성남의 한 재활원에 갑자기 꿍짝짝 꿍짝짝 음악소리가 퍼졌다.재즈드럼,신시사이저,콘트라베이스 등과 멋진 턱시도를 입은 중년의 남자가 앞에서 백파이프를 불며 스코틀랜드의 아름다운 민요를 연주했다.순간 리듬이 신나게 바뀌는가 했더니 ‘엿장수 가위’를 들고 리듬에 맞추어 몸을 흔들어 댔다.‘곰 세마리가 한 집에 있어‘오카리나 연주에 맞춰 좀체 움직이기 쉽지 않은 재활원 아이들도 힘겨운 몸짓으로 춤추기 시작했다. 턱시도를 입은 채 아이들과 춤을 추는 사람은 우광혁(42) 한국종합예술대학 교수.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음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통파 예술가인 그가 예술의 전당처럼 근사한 콘서트홀이 아니라 음향,조명 시설이라곤 없는 방에서 이렇게 망가(?)진다. “망가지면 어떻습니까. 저를 반갑게 맞아주고 음악을 듣고 즐거워해 주고 힘겨운 웃음을 지어주는 아이들이 있는데….”호탕한 웃음에 그가 얼마나 이곳에서의 연주를 즐기는지 단번에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이 좋은 음악이란 혜택을 나를 위해서만 쓴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당연히 나눠야지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그는 1995년 의정부 교도소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고아원,소년원,재활원 등 음악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다녔다.1인 음악회는 어디서든 환영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당시 근무 중이던 서울시립대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했다.‘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자.언제까지 이렇게 이기적으로 살 수 없지 않으냐.’그때 합류한 학생들이 6명이었고,소문이 퍼지면서 지금은 뜻을 같이하는 제자들과 연극,무용인 등 50여명의 단원들과 함께 ‘앙상블,빛소리 친구들’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그는 단장이다. 우교수는 ‘음악’을 ‘밥’에 비유한다.“음악에 가장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악이라는 밥을 퍼주고 싶습니다.그것도 최고 좋은 쌀로 지은 밥으로 말입니다.”그래서 그는 10평도 안 되는 조그만 재활원의 방에서 공연을 할 때조차도 턱시도를 차려 입고 제대로 악단을 구성한다.예술의 전당을 통째로 옮긴다는 생각이다. 전국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280여차례 공연을 한 그는 가장 음악이 필요한 곳은 재활원이란 생각이 들어 3년 전부터는 재활원에만 순회공연중이다.“움직이기 쉽지 않고 행동이 통제 안돼 공연장으로 가서만 음악을 들어야 한다면 평생 들을 수 없거든요.”그의 재활원 순회에는 또다른 뜻도 있다.“그곳에서 봉사하는 선생님들을 위로하기 위한 연주회이기도 해요.정신적,신체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을 돌보느라 선생님들은 늘 피곤하고 외롭거든요.‘힘드시지요’,한 마디만 건네도 눈물을 왈칵 쏟을 정도입니다.” 거창하게 음악가의 사회적 역할을 논하지 않아도 인간적으로 자신의 것을 나누어줄 줄 아는 마음을 가진 넉넉한 음악가로 살고싶다는 우 교수,헤어지면서 그는 당부의 말을 했다.“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인내의 대상입니다.” 글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15일종영 ‘파리의 연인’이 남긴것

    15일종영 ‘파리의 연인’이 남긴것

    꿈의 시청률 50%를 돌파하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아온 SBS 주말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15일로 막을 내린다.‘애기야’라는 유치한(?) 호칭이 젊은 연인은 물론 중년 부부의 입에서조차 흘러나오고,방영시간인 주말 오후 10시가 되면 거리가 썰렁할 정도로 ‘파리의 연인’은 국민적 관심을 샀다.하지만 ‘파리의 연인’은 아쉽게도 ‘반쪽짜리’ 국민드라마로 기억될 듯하다.‘뻔한 신데렐라 이야기’라는 통속적인 소재의 한계를 딛고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는 호평과 함께,노골적인 간접광고로 방송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는 오점을 남겼다.‘파리의 연인’이 남긴 것들을 3개의 키워드로 정리해본다. #팬터지 ‘파리의 연인’의 인기비결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대리만족’.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황당무계한 스토리(가정부로 고용돼 재벌2세와 결혼)와 인물 설정(삼각관계에 놓인 두 남자가 알고 보니 아버지가 다른 동복 형제)에도 불구,‘팬터지’라는 극적 장치를 활용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여성들은 외모·능력은 물론 사랑에 목숨을 거는 로맨틱한 면까지 완벽히 갖춘 한기주라는 ‘백마탄 왕자’를,남성들은 순종적이면서도 유쾌함까지 던져주는 강태영이라는 ‘신데렐라’를 바라보며 행복감에 채널을 고정시켰다.드라마가 현실의 우울함과 답답함,지친 삶의 무게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해방구’로 작용한 것이다. #신드롬 ‘파리의 연인’은 온갖 유행 코드를 생산해냈다.대표적인 것이 주인공들의 극중 명대사를 모은 ‘어록’.‘애기야 가자.’(박신양),‘이 안에 너 있다.’(이동건),‘눈물은 아래로 떨어지지만,밥숟가락은 위로 올라간다.’(김정은) 등이 그것.‘∼하지’체로 끝나는 박신양의 극중 말투와 함께 대중들 사이에 ‘흉내내기’ 열풍을 몰고 왔다.박신양의 ‘귀족 패션’,김정은의 ‘캔디 패션’은 거리 곳곳은 물론 의류업계에 유행을 일으켰다. 드라마 주제곡 ‘너의 곁으로’와 극중 박신양이 사랑을 고백하면서 부른 노래 ‘사랑해도 될까요’는 휴대전화 벨소리와 통화연결음 시장을 평정했다. #PPL ‘드라마인가 광고인가?’ ‘파리의 연인’은 방송 첫회부터 정도가 지나칠 정도의 낯뜨거운 간접광고(PPL:Product Placement)로 이같은 비아냥을 들었다.제작 지원업체인 GM대우와 복합상영관 CGV,의류업체 PAT,팬택&큐리텔 등의 업종과 상품명을 기초로 해 줄거리와 대사를 구성했다.화면엔 ‘GM대우자동차’를 ‘GD자동차’로,‘CGV’를 ‘CSV’로 교묘하게 바꾸는 등 협찬 업체의 로고와 제품 이름을 연상시키는 장면을 지겨울 정도로 반복해 보여줬다.결국 종영을 5일 앞두고 방송위원회로부터 ‘시청자에 대한 사과’ 명령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바이엘 교묘한 ‘암시적 간접광고’ 제재

    한국 바이엘이 대중을 상대로 광고를 할 수 없는 전문의약품을 암시하는 광고를 게재,논란이 일고 있다.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제재를 받기까지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2일 “광고 자체에 특정 제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약사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경고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약사법은 전문의약품에 대해 전문지나 의사를 상대로 한 광고 이외의 대중광고를 금하고 있다.이를 위반하면 1차 경고조치하고,다시 어기면 광고업무 정지,판매업무 정지 등의 제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식약청 이승훈 사무관은 “바이엘의 경우 약사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경고 조치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 바이엘은 지난달 주먹을 움켜쥔 남자 팔뚝 사진에 ‘대한민국 중년들이여,단단함을 지키자.’라는 제목의 기업 이미지 광고를 일부 중앙종합일간지,경제지,스포츠지,주간지 등에 약 1주일간 게재했다. 문제는 이 광고가 한국바이엘의 발기부전치료제를 연상시키는 암시적 간접광고라는 주장이 한국제약협회 등 일각에서 제기되면서 논란을 빚었다. 결국 식약청이 바이엘에 대해 제재를 함으로써 ‘암시적 간접광고’라는 제약업계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한국 바이엘 관계자는 “기업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기업 광고로,특정 제품에 대한 광고는 아니었다.”면서 “식약청이 2주 전쯤에 광고 중단 요청 공문을 보내와 곧바로 광고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강동형기자 yunbin@seoul.co.kr
  • [여성&남성] 여성들이 말하는 드라마속 신데렐라

    회사원 서윤영(41·여)씨는 얼마 전부터 ‘파리지엔’이 됐다.프랑스 파리에서가 아닌,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방영되는 서울에서다.“유치하다.”는 남편과 아이들의 성화도 소용없다.팍팍한 일상에 그런 활력소가 없다.남자주인공(박신양)이 “애기야,가자.”를 외칠 때면 “역시 드라마는 어쩔 수 없어.” 하며 피식 비웃지만 여주인공(김정은)의 기분을 상상해본다.서씨는 주말마다 ‘60분간의 판타지’를 통해 김정은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렇지만 ‘드라마를 통해 젊은 날의 꿈들을 보상받으려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그러나 곧 마음을 추스른다.“깊이 생각할 것 없어,어차피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니까.” 할 말 다 하고,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여주인공을 보고 있노라 면 가슴까지 후련하다.일종의 ‘정신적 휴식’이다. ●다시 부는 신데렐라 신드롬 ‘신데렐라 신드롬’이 다시 불고 있다.‘파리의 연인’ ‘황태자의 첫사랑’ ‘풀하우스’ 같은 TV드라마가 그 공간이다.이들 주인공은 불황의 골이 깊을수록 사회·경제적으로 변두리에 내몰리기 마련인 여성들이다. ‘백마탄 왕자’ 스토리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올 여름 부쩍 신데렐라 신드롬이 안방을 점령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경기침체에서 비롯된 여성의 각박한 현실에서 찾고 있다.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 교수는 “현실이 어려울수록 판타지가 주는 매력은 커진다.”면서 “취업 등으로 고민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드라마 속 스토리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함 교수는 “여성의 현실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피부로는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더 판타지에 탐닉해 가면서 이중 삼중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려제일신경정신과 김진세 원장도 “‘왕자 이야기’는 각박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청량음료 같은 판타지”라면서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에서 탈출시켜주는 ‘왕자의 구원’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학생 조혜은(22·여)씨는 주말의 짜릿한 판타지를 즐기고 있다면서도 대리만족에 대한 확대해석에는 일침을 가했다. 조씨는 “판타지라고 표현하면 여성들이 아무 생각없이 꿈에만 빠져 허우적대는 느낌이 있는데,드라마는 주인공에 나를 투영해 짧은 순간 삶의 활력을 주는 ‘달콤한 사탕’ 정도”라고 선을 그었다. ●점점 정교해지는 판타지 시간이 흘러도 ‘신데렐라 신드롬’이라는 고전적 소재가 호응을 얻으려면 정교한 포장은 필수다.양성평등의 확산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도 살짝살짝 반영하면서 보다 현실에 가깝고 ‘쿨한’ 왕자와 공주가 등장,그 판타지도 흐름을 놓치지 않고 진화하고 있다. ‘파리의 연인’은 10년 전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차인표와는 사뭇 다르다.젊은 기업인이라는 점은 매 한가지이지만 박신양은 차인표처럼 조각 같은 몸에 재즈바에서 멋지게 땀흘리며 색소폰을 불어주는 ‘환상적인 왕자’가 아닌 여자친구에게 “콧구멍 크다.”고 놀려대는 장난기 가득한 남자다. ‘황태자의 첫사랑’의 차태현도 외모나 캐릭터로 볼 때 어딘가 좀 허술한,‘황태자’와는 거리가 있다. 여주인공도 마찬가지다.‘백마 탄 왕자’만 목놓아 기다리며 눈물만 빼는 신데렐라는 더 이상 없다.김정은은 털털하고 푼수기 넘치는,그러면서도 자기 꿈이 분명한 ‘캔디형’ 요소가 가미돼 있다. ‘황태자의 첫사랑’의 유빈(성유리)은 가난한 집 딸로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에 대한 절박함으로 비련을 연출하거나 꿈을 이루는 방편으로 황태자 건희(차태현)에게 비굴하게 굴지는 않는다. 한국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강혜란 사무국장은 “정형화된 캐릭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이 식상해 하는 요소들을 교묘히 피하면서,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는 소재의 함정을 벗어나 여성들의 심리를 보다 효과적으로 자극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화평론가 정윤수씨는 “만약 ‘파리의 연인’의 주인공이 김희선이었으면 여성들은 더 거리감을 갖게 됐을 것”이라면서 “김정은처럼 푼수기 있는 평범한 캐릭터가 현실적으로 다가오면서 비현실적인 판타지와 결합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고 분석했다. ●신데렐라를 넘어서 그러나 ‘파리의 연인’류의 드라마들을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다양한 여성의 등장이라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올해 초 ‘씩씩한 30대 여성들의 일과 우정’을 그리며 선풍적 인기를 얻었던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좋은 예다.성공한 여자들에 대한 동경을 담아낸 것은 물론,‘일과 사랑 중 택일’이라는 공식마저 가볍게 깨버렸다. 대리만족이라는 측면에서 ‘중년의 설레는 사랑’도 인기있는 소재다.지난해 ‘앞집 여자’는 평범한 주부가 알쏭달쏭한 불륜의 감정을 넘나드는 심리를 경쾌하게 그려 인기를 얻었다.주부 이모(38·여)씨는 “현실에서는 도덕적 이유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내면의 욕구를 드라마에서 치밀하게 묘사해 재미있었다.”면서 “타인의 스토리를 보며 느끼는 유쾌한 대리만족”이라고 말했다. 평론가 정윤수씨는 “드라마는 30∼40대 여성들이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들에 비해 훨씬 더 갇혀 있는 상황에서 갖는 일탈심리를 배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여성과 드라마라는 판타지의 관계를 부정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대학원생 문모(25·여)씨는 “재미있게 보지만 관찰자적 입장에서 그칠 뿐”이라고 강조했다. 성균관대 정외과 김비환 교수는 “포르노가 남성의 성적 판타지라면 신데렐라 류의 드라마는 여성의 판타지라는 측면이 있다.”면서 “포르노에 대한 논쟁도 찬반이 팽팽하듯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대리적인 카타르시스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현실을 도피하려 하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판타지’를 주입할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日 산케이 “욘사마 경제효과 수천억원대”

    |도쿄 이춘규특파원|드라마 ‘겨울연가’ 열풍이 일본과 한국을 넘나들며 맹위를 떨치고 있다.특히 일본 중년여성들의 겨울연가 촬영지 방문 특수 등으로 인해 ‘한국이미지 개선 효과’가 수천억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고 산케이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신문은 겨울연가 붐이 한국에 역상륙했다고 분석했다.이것이 이른바 ‘욘사마(배용준) 경제효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올들어 한국을 방문한 일본관광객이 40% 정도 증가했다.관련상품 매출액도 증가일로다. 지난주 제주도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겨울연가 붐을 최우선 화제로 거론했다. 일본 중년여성의 욘사마 신드롬에 따라 강원도 춘천시는 겨울연가 촬영지에 8000만원을 투입,‘테마거리’를 조성하고 있다.일본 언론들은 이 사실을 전하면서 (춘천시가)배용준의 대형 사진을 이용한 안내간판도 만들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춘천시가 무료개방한 남자주인공 ‘준상’의 집에는 매일 300명 정도의 일본인이 관광버스로 방문한다. 일본 NHK지상파방송이 겨울연가를 내보낸 올 4월 이후 춘천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은 작년에 비해 5배 증가했고,연말까지 겨울연가 테마상품에 따른 일본인 관광객은 25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일본에서도 ‘욘사마 붐’과 관련있는 상품의 총매출액이 20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그래서 “한국 남자가 일본인 여성에게 이처럼 인기가 있는 것은 긴 한·일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라고 산케이신문이 평가할 정도로 배용준의 인기는 대단하다. 일본 정치권도 예외는 아니다.제1야당인 민주당이 참의원선거에서 약진한 것은 겨울연가 덕분이라고 민주당 센고쿠 요시토 정조회장이 26일 오카다 가쓰야 당대표의 후원회에서 말했다고 도쿄신문이 전했다.겨울연가를 보는 세대의 여성들이 오카다 대표와 ‘키스나 악수도 없는 연애’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선거 때 지지했다고 말한 것이다. taein@seoul.co.kr
  • [DVD 폐인]어! 못본 영화 잖아 무드잡고 더위잡고

    [DVD 폐인]어! 못본 영화 잖아 무드잡고 더위잡고

    휴가철을 겨냥해 새로 나온 ‘따끈따끈한’ 비디오,DVD들이 많다.극장개봉때 미처 못 봤거나 느긋하게 다시 보고 싶던 작품이 출시됐는지 어디 한번 살펴보자. 앗! 동네 대여점으로 달려가 찜해놓자,지금 당장! 잠 안 오는 한밤에 제일 만만한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닐까.올해 골든글로브가 다이앤 키튼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화제작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 눈에 띈다.잭 니컬슨이 중년 플레이보이로 변신해 “로맨스여,다시 한번”을 외친,남녀노소 모두에게 감상포인트가 큰 로맨틱 코미디.슈퍼마켓 점원이 인기최고의 남자배우와 로맨스를 엮는 내 생애 최고의 데이트는 꿈처럼 달콤한 팬터지에 푸∼욱 잠길 수 있는 작품. 온가족이 함께 보기엔 프리키 프라이데이가 무난하다.엄마와 딸의 몸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들에 폭소가 터진다.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브라더 베어도 나왔다.빙하기를 배경으로 인디언 청년과 꼬마곰의 모험을 그린 디즈니산. 국산 화제작들도 줄줄이 선보였다.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지난 4월 개봉해 ‘웰메이드’ 범죄스릴러로 주목받은 범죄의 재구성,신현준·송윤아가 콤비를 이뤄 지난달 개봉한 공포영화 페이스도 벌써 나왔다. 골치아프지 않게 웃기는 신작 코미디를 찾는다면,스쿨 오브 락과 아메리칸 파이:러브가 좋겠다.‘아메리칸 파이’야 설명이 필요없을 할리우드 코믹시리즈물.‘스쿨 오브 락’은 위장취업한 가짜교사가 학생들과 록밴드를 조직해 경연대회에 나가기까지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담았다.록밴드 리드싱어 출신의 코믹배우 잭 블랙이 주인공. “와이어는 가라!”라는 포스터 카피로 소문난 태국산 리얼액션 옹박,분신(分身)을 소재로 한 일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스릴러 도플갱어도 만날 수 있다.유쾌하되 그윽한 시선으로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팀 버튼 감독의 팬터지 드라마 빅 피쉬를 어찌 빼놓을 수 있을까.어른관객들에게 인생을 이해하고 또 한번 꿈꾸게 다독이는 ‘품 넓은’ 영화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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