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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핑크 카펫/박홍기 논설위원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많은 이들과 스치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지하철엔 별별 풍경이 다 있다. 그중 하나가 핑크 카펫이다. 작년에 등장했다. 영화제에 나오는 레드 카펫을 본뜬 듯싶다. 어감도 나쁘지 않다. 핑크 카펫은 좌석이다. 긴자리 양쪽 끝에 지정돼 있다. 의자도, 발판도, 등받이 뒤쪽도 분홍색이다. 동그란 스티커에는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 바닥에는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핑크 카펫’이라고 씌어 있다. 임신부를 위한 배려석이다. 출근길 핑크 카펫은 여성들의 독차지다. 임신부가 앉지만 여학생, 젊은 여성, 중년 여성 등의 좌석일 경우도 허다하다. 북적댈 때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서 있는 승객에겐 ‘배려’처럼 생각한 적도 있다. 공간이 넓어져서다. 퇴근길엔 주인이 없다. 먼저 앉는 승객이 임자다. 얼굴이 불그스레한 젊은이가 졸다 일어나자 중년 남성이 얼른 차지한다. 이어 대학 점퍼를 입은 여성이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는다. 핑크 카펫에라도 지친 몸을 기대고 싶어서일까. 문구가 눈에 띄지 않아서일까. 출근길과는 영 딴판이다. 핑크 카펫을 비워 놓았으면 싶다. 임신부들이 부담 없이 앉을 수 있도록.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장부 가져와… 韓손님 줄어…” 식당 한쪽선 외화 상납 추정 대화

    “장부 가져와… 韓손님 줄어…” 식당 한쪽선 외화 상납 추정 대화

    “13명이나 탈출요?” 종업원 술렁… 휴일에도 손님 없어 파리만 날려 “중국 내 조선(북한) 식당에서 종업원들이 탈출했다는 소식 들었나요?”(기자) “종업원 ‘둘’이 탈출했다고요?”(종업원) “둘이 아니라 열세 명요.”(기자) “네? 열세 명이나요? 금시초문입니다.”(종업원) 10일 점심 때 찾아간 중국 베이징의 북한 식당 ‘평양대성산관’은 정상 영업을 했다. 그러나 넓은 홀에서 점심 식사를 한 손님은 기자 일행이 유일했다. 이 식당은 평양냉면으로 유명해 그동안 휴일에도 가족 단위 외식객이 많았지만 유엔 대북 제재 개시 이후엔 파리를 날리고 있다. 점심값을 지불한 뒤 가게 문 앞까지 배웅해 주는 앳된 여종업원에게 참았던 질문인 종업원 탈출 얘기를 건넸다. “금시초문”이라고 말하는 종업원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을 때 짓는 딱 그런 표정이었다. 눈빛에는 불안감도 엿보였다. 점심을 먹는 동안 한 남성이 들어와 기자 일행을 힐끗 보더니 가장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다. 식당 관리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서둘러 그와 마주 앉았다. 이 여성이 평양 사투리로 “장부 가져오라”고 하니 종업원이 서류철을 들고 갔다. 두 사람의 대화에는 ‘조국’이라는 단어가 계속 나왔다. 멀리 떨어져 있어 대화 내용을 정확히 들을 수는 없었으나 돈 문제가 대화의 주제임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없다. 나도 더 기다릴 수가 없다”고 말하는 남성은 보고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 같았고 “1주일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하는 중년 여성은 보고자처럼 보였다. ‘월세’ ‘하루 4000위안’ ‘옆방 수리 후 재임대’ 등의 말도 들렸다. 외화 상납과 관련된 말로 들렸다. “한국인이 너무 줄고 있다”는 말은 또렷하게 들렸다. 실제로 베이징에 있는 북한 식당들은 요즘 고객의 80%를 차지하던 한국 손님이 뚝 끊겨 집단 폐업 직전의 위기 상황이다. 가격이 한국 식당보다 50% 이상 비싸도 북한 음식이라는 특수성과 미모 여종업원들의 공연 때문에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핵실험 이후부터는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인 대신 중국 고객을 잡기 위해 중국 요리 비중을 늘리면 북한 식당 특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중국화’도 어렵다. 한편, 북한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출한 곳으로 지목되는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의 류경식당은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중국인 관계자들은 언론에 “북한인이 모두 도망쳐 영업을 할 수 없다”면서 “언제 재개할지도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류경식당은 지난해 카페거리인 난탕라오제 2기에 들어선 호화 식당이었으나 영업 실적은 극히 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종업원들이 집단 탈출한 것은 지난 4일이나 5일쯤으로 추정된다. 식당 종업원들이 집단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취업비자를 받고 들어와 여행이 자유로운 데다 이들의 여권을 관리하던 책임자도 함께 탈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베이징의 한 대북 소식통은 “이들은 탈북자가 아니라 여행이 자유로운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이번 탈출로 북·중 관계는 한층 험악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사건이 한·중 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소식통은 “중국 정부의 묵인 아래 탈출이 이뤄졌다는 얘기가 계속 나올수록 중국 정부는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면서 “한국 정부의 이례적이고 신속한 탈북 사실 공개에 중국 정부도 놀란 것 같다”고 전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조국 서울대 법대교수 3년 간 스토킹한 중년여성 입건

     서울대 법학과 조국 교수를 3년 동안 쫓아다니며 스토킹한 중년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8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A(48·여)씨는 이날 오후 6시 20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주차장에서 퇴근하려는 조 교수의 차 안에 뛰어들어 조수석에 타고 내리지 않으려고 한 혐의다.  조 교수는 이 여성이 내리지 않자 교직원을 불러 경찰에 신고해 그를 끌어내고 경찰에 넘겼다. 경찰은 이 여성을 입건해 9일부터 구체적인 사건 경위와 이유를 파악할 계획이다.  조 교수에 따르면 해당 여성은 3년 전부터 ‘결혼하자’고 요구하며 연구실로 선물과 연애편지를 보내왔으며, 최근 한 달 전부터는 연구실로 직접 찾아왔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외출의 계절..요실금 걱정? 로앤의 요실금 수술+예방 수칙 보니

    외출의 계절..요실금 걱정? 로앤의 요실금 수술+예방 수칙 보니

    흐드러지게 피어난 봄꽃이 만발하고 완연한 봄 날씨가 지속되고 있는 요즘, 가족여행 또는 주말 나들이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야외활동이 늘어나는 봄철이지만 여행 중 긴 이동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물론, 가까운 외출조차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이 있다. 결혼 10년차 주부 유 모씨(44)의 경우, 1년 전 시작된 요실금 증상이 어느새 웃거나 재채기만 해도 소변이 새어나오기 시작하면서 외출을 꺼리게 되었다. 우리나라 중년여성 10명 중 3명이 앓고 있는 흔한 질환인 요실금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소변이 나오는 증상을 말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국내 중년 여성의 40~50% 정도가 요실금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요실금은 출산 경험과 더불어 골반근육이 약해진 중년 여성들에게 많이 나타나며 특히나 요도의 길이가 짧은 여성들의 발생 빈도가 더욱 높게 나타난다. 최근엔 스트레스, 비만, 당뇨, 과다한 카페인 섭취, 늦은 출산 등으로 인해 젊은 30대 여성에게도 요실금 증상이 급증한다. 요실금은 그 증상과 원인에 따라 크게 복압성 요실금과 절박성 요실금으로 구분된다. 먼저 복압성 요실금은 압력이 증가할 때 방광의 수축 없이 소변이 나오는 현상으로 요실금 전체 환자의 80~90%가 복압성 요실금에 해당되며 임신 및 출산, 골반 부위 수술, 에스트로겐 농도 저하가 주요 원인이다. 이어 절박성 요실금은 평소 소변을 자주 보고, 갑작스러운 소변을 참기 어려워 화장실 가는 도중 소변이 나오는 증상으로 주로 방광의 노화로 인한 수축, 저장능력 감소로 인한 과민성방광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불어 요실금은 폐경기 여성들에게 오는 갱년기와 더불어 우울증과도 겹치게 되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여성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한 요실금을 오랜 기간 방치할 경우 다른 골반 장기들에 영향을 줘 골반장기탈출증, 자궁탈출증 등을 동반할 수 있어 보다 빠른 대처가 중요하다. 이처럼 여성들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요실금, 과연 어떻게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 로앤산부인과 의정부점 송지민 원장은 “효과적인 요실금 수술 중 하나로 ‘미니슬링(Mini Sling)’ 을 꼽을 수 있는데 ‘미니슬링’은 신개념 4세대 요실금 수술로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약 15분 가량의 짧은 수술시간과 당일 퇴원이 가능하며 또한 미니슬링은 수술 후 통증 및 합병증이 기존의 수술방법에 비해 거의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많은 여성들의 요실금 고민을 해결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요실금 수술 외에도 일상생활 속에서 요실금을 확실히 예방하는 방법으로 평소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적정체중을 유지하는 것과 평소 식습관 개선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으므로, 방광을 자극해 이뇨작용을 촉진하는 자극적인 음식이나 탄산, 카페인이 함유된 음료 같은 음식 섭취는 삼가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봄 통영, 백석의 달뜸과 한숨이 묻어 있는 곳

    봄 통영, 백석의 달뜸과 한숨이 묻어 있는 곳

    길은, 어제의 기억과 오늘의 삶 사이에서 끝없이 이어졌다. 대처로 떠나는 자식의 발걸음이 잠시 떨리며 머뭇거렸음을, 옷고름 사이로 떨어진 어미의 눈물방울이 짭짜름했음을 동구밖 길은 아주 오래 기억했다. 동네를 감아 도는 그 길을 걸었다. 1930년대 중반 그 봄, 충렬사 돌층계에 주저앉으면 통영 앞바다가 훤히 펼쳐졌을 게다. 여황산자락 아래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이어진 집들을 지난 눈 속에는 쉴 새 없이 고깃배가 오갔고, 부푼 꿈을 안고 오는 이, 또 다른 꿈을 이고 타향으로 떠나는 이가 엇갈리는 낡은 선창이 비쳤을 테다. 하지만 사랑을 잃은 사내에게는 아름다운 통영의 풍경도 오롯이 아름답기 어려웠으리라. 한참 나중에 호사가들이 통영을 일컬어 ‘한국의 베니스’ 운운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칭송했지만, 스물넷 평안도 출신의 청년시인 백석(1912~1995)에게는 실연의 상처가 훨씬 컸을 수밖에 없었다. 백석은 사랑을 위해 멀리 남쪽 바다까지 헛걸음을 반복해야 했다. 한 번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 다른 두 번은 사랑을 기억하며 가슴 먹먹함을 달래기 위해 찾았다. 그러나 한 번 떠난 사랑이 돌아올 리는 없는 법. 통영을 다녀왔던 길은 그의 작품 속 중요한 지역의 하나로 자리매김시키는 것으로 갈무리됐다. ●삼도수군통제영 복판 여황산 끼고 돌아 백석의 발길로부터 80년의 시간이 흐른 봄, 통영을 찾았다. 그가 시 ‘통영1’에서 묘사한 것처럼 통영 여황로에는 마침 ‘김 냄새 나는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부터 차들은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고, 타관의 학생들을 실은 수학여행 버스들은 줄을 지어 여황로 길을 지나고 있었다. 여황로는 174m의 야트막한 여황산(艅山)에서 비롯된 이름의 길이다. ‘여황’은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임금이 아끼던 화려한 배로, 훌륭한 군세를 갖춘 큰 전선을 상징했다. 통영항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산세를 펼치고 있는 삼도수군통제영의 복판에 자리잡은 산이니 딱 걸맞은 이름이다. 통영시 북쪽 여황산 아래쪽으로 4113m 이어지며 문화동, 북신동, 명정동 등을 감싸고 돈다. 통영은 현대문화예술의 보물창고와도 같다. 특히 여황로 하면 일단 백석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여황로 충렬사 앞에는 백석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통영2’라는 시다. 편의상 ‘통영1’, ‘통영2’라고 했지만 발표 당시 원래 제목은 모두 ‘통영’이었다. ‘통영2’는 그가 통영에 대해 쓴 시편 중 가장 길고 유려하며 음율을 잘 살렸다. 그는 ‘통영2’에서 이곳을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 또 ‘난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에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라고 노래했다. 사랑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여황로 길가에 앉아 한껏 달떠서 혼자 히죽거리는 백석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곧 깨지고 말 단꿈이었지만. 여기에 원체 아름다운 통영의 풍광까지 한눈에 들어왔으니 시인의 시심이 절로 우러났을 것임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백석 시비 앞 명정샘 박경리가 소설에 써 ‘난’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백석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다. 막 문청을 벗고 등단해 시인이 된 그는 한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통영 출신의 이화고녀 졸업반이던 박경련을 만나고, 첫눈에 반해 사귄다. ‘난’이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그는 박경련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통영을 찾았지만 걸음이 엇갈려 만남이 어긋나게 됐다. 난의 집이 충렬사 근처인 명정동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 사이 그의 직장(조선일보) 동료이자 친구였던 이가 난과 결혼을 해 버리고 말았다. 사랑과 친구를 함께 잃은 아픔 탓이었을까. 그는 그해 조선일보를 그만뒀다. 그리고 기생 자야(子夜·본명 김영한·역시 백석이 붙여준 애칭이다)를 만나 불 같은 사랑을 나눴고, 고향집 부모님의 성화에 다른 여인과 혼례를 치렀지만 다시 자야에게 돌아갔다. 1940년 자야마저도 떠나 고향땅인 신의주, 정주로 갔다. 그가 통영에 대해 직접 남긴 작품은 ‘통영 1, 2’ 외에 ‘남행시초2-통영’ 등 모두 세 편이다. 특히 ‘남행시초2-통영’ 시편 마지막에는 난의 외사촌 오빠인 ‘서병직씨에게’라고 적었다. 그를 통해 통영 장터며 선창 등을 둘러봤음을 알게 해준다. 백석이 들여다본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골 명정샘은 지금도 여황로 시비 앞에 있었다. 충렬사 문화해설사인 옥복주(47)씨는 “일(日)정과 월(月)정 두 개의 샘이 있어 명정(日+月=明井)이 됐다.”면서 “1670년 만든 이후 몇 년 전까지 330년 넘도록 식수로 썼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은 여전히 맑지만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통영2’ 중)을 찾을 수는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명정골은 통영이 고향인 박경리(1926~2008)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문장 속에도 그 흔적을 흩뿌려 놓았다. 박경리는 명정골에 대해 ‘고을 안의 젊은 각시, 처녀들이 정화수를 길어내느라고 밤이 지새도록 지분내음을 풍기며 득실거린다.’고 했다. 박경리의 생가는 여황로 충렬사 주차장 맞은편 바로 곁의 좁은 골목길인 ‘토영 이야길’을 따라가면 있다. 하지만 현재 다른 이가 살고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 표지판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남편과 사별한 시조시인 이영도(1916~1976)에게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무려 5000통의 연서를 보냈던 유부남 청마 유치환(1908~1967)의 사연이 남겨진 곳도 그리 멀지 않다. 유치환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보이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행복’ 중)고 노래했던 통영중앙우체국은 여황로에서 서문로를 따라 7~8분 남짓 내려오다가 세병로(청마거리) 오른쪽으로 접어든 뒤 3~4분쯤 걸어가면 있으니 그리 멀지 않다. ●지긋한 뱃사람도 시 한 구절 읊어 이른 아침 여황로 어귀에서 만난,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는 늙수그레한 중년의 김모(58)씨는 “그 사람들이야 먹고살만 하니까 그림도 그리고, 소설도 썼겠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뭐….”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하면서도 유치환, 이영도의 ‘아름다운 불륜’이며, 시인 김춘수, 화가 김용주,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 박경리 등 통영 출신 예술가의 이름들을 줄줄이 들먹였다. 흔히 돈을 잘 버는 동네에서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들 하는데, 통영이라면 ‘중늙은이 뱃사람도 시 한 구절, 소설 한 토막쯤 읊조린다.’는 말이 좋이 쓰일 법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후딱 오른 미륵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통영시내 쪽으로는 강구안길이며, 여황산이 보이고, 다도해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한산도, 매물도, 그리고 멀리 대마도까지 한눈에 푹 안긴다. 산과 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과분할 만큼의 통영이다. 이곳의 길 위에서 시집 한 권, 소설 한 권 옆구리에 끼고 그 옛 기억과 향취까지 가져간다면 더욱 어울릴 법하다. ● 역사의 보고 통영의 길들 동피랑·서문까꾸막… 토박이말 길이름 천국 통영은 바다의 왜적들과의 싸움, 그리고 평화에 대한 바람으로 다져진 곳이다. 통영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 역사의 현장으로 뚜벅뚜벅 들어감을 의미한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4년(선조 37)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겨 세운 뒤 ‘통영’이라는 지명이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통제영의 약칭에서 따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사당인 충렬사와 통제영의 일종의 객사 역할을 했던 세병관(洗兵館·세병로 27), 그리고 북포루(北樓) 등은 통영 출신 학생들의 단골 소풍 장소이고, 다른 지역 학생들에게는 수학여행 필수 방문지다. 길 이름 역시 이러한 역사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리 없다. 세병로, 충렬로 등은 물론이고 통제영을 굳게 지키던 문들도 이름을 남겼다. 동문로(東門路)와 서문로(西門路)는 모두 옛 통영성의 4대문 가운데 하나였던 동문과 서문의 이름을 그대로 땄다. 두 문 모두 고갯마루의 정상쯤에 위치해 있었으니, 통영 토박이들의 말로 ‘동문까꾸막’(동문고개), ‘서문까꾸막’(서문고개)이라고 불렀던 길들이다. 북신로(北新路) 역시 통영성 북문 바깥에 새로 만들어진 마을길이라는 뜻이다. 또한 세병로와 여황로 사이를 잇는 갈림길인 운주길은 옛 통제영의 관아였던 운주당(運籌堂)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남해안대로에서 갈래져 나온 원문마을길은 통제영 입구였던 원문성(轅門城)에서 따온 마을 이름을 달았다. 이 밖에 통영을 찾는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동피랑길은 정겨운 마을 벽화로 유명하다. ‘피랑’은 벼랑을 일컫는 통영 말이다. 통영시의 동쪽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배기로 통영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을 자랑한다. 통영성과 동포루(東樓)의 유적이 있다. 사진=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통영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중국소녀 분노의 주먹, ‘송중기 오빠 얼굴을 불태우다니’

    중국소녀 분노의 주먹, ‘송중기 오빠 얼굴을 불태우다니’

    최근 한 중국 소녀가 자신의 우상인 송중기가 길거리에서 판매되는 지전에 인쇄된 모습을 보고 분노해 지전을 갈갈이 찢고, 노점상을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전'은 죽은 사람의 편안한 저승길을 위해 준비하는 것으로 청명절에 이를 태워 고인의 넋을 기린다. 보통 염라대왕이나 옥황상제 같은 인물이 그려지는데, 최근 송중기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자 한국돈 5만원 권에 송중기 얼굴이 그려져 나온 것이다. 샤먼(厦门)의 지역신문인 해협보도(海峡导报)의 6일 보도에 따르면, 우(吴·19)씨는 5일 오후 3시30분경 환다오루(环岛路) 바이청(白城) 해변가를 산책하던 중 한 중년남성이 길가에서 지전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무심결에 지나치다 문득 지전에 인쇄된 꽃미남의 외모에 눈길이 갔다.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다름아닌 꿈에도 그리는 ‘송중기’의 모습이었다. 순간 우씨는 치솟는 분을 삭히지 못하고, 달려들어 송중기의 얼굴이 나온 지전을 움켜쥐고 갈갈이 찢어버렸다. 영문을 모르고 앉아 있던 노점상은 우씨에게 왜 지전을 찢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우씨는 노점상에게 달려들어 다짜고짜 주먹 다짐을 했고, 놀란 노점상은 줄행랑을 쳤다. 우씨는 도망치는 노점상을 쫓아 치열한 추격전을 벌였다. 한바탕 소동에 인근을 순찰 중이던 경찰이 달려와 우씨를 제압했다. 경찰은 우씨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뒤 우씨에게 85위안(약 1만5000원)의 보상금을 노점상에게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쌍방은 화해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경찰은 우씨에게 “개인적인 취향에 발끈해서 법률에 저촉되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강력히 훈계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송중기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관련된 희한한 치안사건들도 덩달아 늘고 있다. 사진=동남쾌보(东南快报)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불륜 짐작”…낚싯대로 식당서 중년 남녀 신발 훔쳐

    “불륜 짐작”…낚싯대로 식당서 중년 남녀 신발 훔쳐

    “밤늦게 중년 남녀가 식당에 온것을 보니 틀림없이 불륜관계일 거야.” 지난 2월 25일 오후 10시쯤 부산 금정구의 한식당 앞. 이곳을 지나가던 양모(57)씨는 식당으로 들어가는 중년 남녀 한쌍이 확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밤늦게 식당에 온 이들은 틀림없이 불륜관계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순간 이들을 골탕먹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인근에 주차해놓은 차량으로 뛰어갔다. 낚시광인 그는 차 트렁크에다 늘 낚시도구를 싣고 다녔다. 트렁크에서 부랴부랴 낚시대를 꺼낸 그는 식당으로 되돌아왔다. 식당 출입구 밖에서 주인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게 안으로 낚싯대를 밀어 넣어 카운터앞 신발장에 있던 여성운동화를 낚아챘다. 이 같은 방법으로 2차례에 걸쳐 여성 운동화 2컬례를 훔쳤다. 한 시간 뒤 피해자들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 양씨의 범행을 확인했다. 경찰은 양씨의 차량 번호를 조회해 신원을 알아낸 뒤 검거했다. 경찰 관계자는 “양씨는 피해자들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고, 이들이 불륜관계일 것이라고 짐작해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양씨를 절도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내 아들 심장소리가…” 장기기증 가족과 수혜자 눈물 상봉

    "당신의 가슴 속에서 내 아들의 심장소리가 들리네요"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州) 오마하의 한 병원에서 중년의 부인이 처음보는 남자를 꼭 안고는 눈물을 흘렸다. 부인의 이름은 노스다코타 출신의 리사 스완슨 그리고 남자는 네브래스카주에 사는 테리 후퍼(64)였다. 이들의 사연은 지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8세 청년이었던 레비 슐츠는 집 인근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리고 슐츠의 가족은 큰 결단을 내린다. 바로 장기기증. 특히 가족들은 슐츠가 생전 장기기증에 서약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돼 고인과 가족의 숭고한 결단은 더욱 아름다웠다. 이날 처음 만난 스완슨 부인이 바로 슐츠의 모친이고 후퍼는 심장을 이식받게 된 수혜자였다. 처음만난 사이지만 두 사람은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며 서로를 뜨겁게 안았다. 특히 이날 스완슨 부인은 후퍼가 심장 초음파 진단을 받는 장면을 지켜보며 죽은 아들의 심장이 다른 사람의 몸에서 힘차게 뛰는 소리를 듣고 눈물을 훔쳤다.   스완슨 부인은 "아들의 심장소리를 듣는 순간 너무나 행복하면서도 슬펐다"면서 "지금 내 아들은 이곳에 없지만 후퍼를 살릴 수 있어 행복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장기기증 수혜자인 후퍼 역시 시종 눈물을 흘렸다. 지병인 심근증으로 심장 펌프기능에 장애가 있었던 그는 슐츠의 사망 3일 후 완벽한 심장을 이식받아 새 인생을 살 수 있게됐다. 후퍼는 "고인은 나의 영웅"이라면서 "매일매일 그의 심장소리를 느끼면서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있다"고 말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여고생 제자와 ‘성관계’ 한 유부남 교사, 그 제자와 결혼

    여고생 제자와 ‘성관계’ 한 유부남 교사, 그 제자와 결혼

    여고생 제자와 성관계를 가진 중년 교사가 그 제자와 결혼해 처벌을 피한 사건의 후일담이 전해졌다. 최근 미국 뉴욕데일리뉴스 등 현지 언론은 앨리배마주 검찰이 전 고등학교 교사 매튜 새인 웹스터(38)의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에 대해 유죄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한 편의 막장 드라마인지 아니면 나이와 신분을 뛰어넘은 러브스토리인지 모를 이 사건의 주인공은 앨리배마주의 수학교사 출신인 웹스터와 그의 제자 제다 에이미 니콜 콕스(18)다. 지난 2014년 유부남 교사인 웹스터는 제자인 콕스와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어 지난해 초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당연히 일자리도 잃고 이혼까지 당한 그에게 남은 것은 이제 ‘쇠고랑’ 뿐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몇 달 후 제자인 콕스와 결혼해 증명서까지 발급받았다. 콕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8세가 되는 5월까지 기다린 것이다. 두 사람의 결혼에 가장 난감한 것은 검찰이었다. 이 사건의 유죄를 입증하는데 있어 핵심이 바로 콕스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피해자이면서도 아내가 된 콕스의 증언이 법정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이에 언론들은 사건이 기각될 것이라 입을 모았지만 검찰은 조용히 칼을 갈고있었다. 사건을 맡은 검사 파렐라 카세이는 "두 사람의 결혼은 법정에서의 증언을 피하기 위한 엉터리"라면서 "웹스터는 분명히 콕스를 유혹해 성관계를 가진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어 "앨리배마주 법이 배우자의 증언을 인정하고 있지 않으나 그 효력을 인정한 이와 유사한 사건의 대법원 판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해외여행 | [Surprising China] 톈진-북방 최대의 무역 항구 도시 톈진

    해외여행 | [Surprising China] 톈진-북방 최대의 무역 항구 도시 톈진

    톈진(천진, 天津)은 베이징(북경, 北京), 상하이(상해, 上海), 충칭(중경, 重慶)과 함께 중국 4대 직할시 중 하나다. 해안가 시골에 불과했던 톈진이 지금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베이징의 동부 해안 방어선 군사기지 역할을 하면서부터였다. 이후 1858년 톈진항이 외국에 개항되면서 급속도로 성장, 북방 최대 무역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역사가 길지 않아 볼거리가 풍부하진 않지만 발달된 중국 산업도시의 면모와 유럽식 건축물들의 이국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톈진 최고의 전망대 천탑 천탑天塔은 톈진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톈진의 랜드마크이다. 톈진 TV 방송국의 송신탑으로 높이가 무려 415.2m에 이른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타워로 천탑호天塔湖라는 인공호수 중앙에 우뚝 서 있다. 엘리베이터를 탑승하면 전망대까지 초고속으로 올라간다. 주변에 산이 없는 톈진 시내는 그야말로 도심의 지평선을 보여 준다. 사방 모두가 끝없이 이어지고 아주 먼 어딘가에서 하늘과 맞닿는다. 특히 해가 질 무렵에는 하나 둘 불을 밝히는 빌딩들과 도로를 수놓는 자동차들의 황금 불빛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전망대에서 한층 더 올라가면 레스토랑이다. 좀 더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이곳에서 식사를 하며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주의할 점은 날씨다. 흐리거나 미세먼지가 많은 날은 가시거리가 짧아 온통 뿌연 세상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지하철 1호선과 3호선이 만나는 영구도营口道역 주변은 쇼핑의 중심지다. 특히 보행자 전용도로인 빈강도滨江道는 톈진의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번화가다. 백화점과 쇼핑센터,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빈강도 남쪽 끝에서 길을 건너면 역시 양쪽에 쇼핑센터가 들어서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여행자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쇼핑센터보다 정면에 보이는 서양식 건축물이다. 바로 톈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성당인 서개천주교당西开天主教堂이다. 1917년, 조계 시절 프랑스인에 의해서 세워진 서개천주교당은 붉은색 벽돌과 화강암이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이다. 양쪽에 두 개의 첨탑이 세워져 있으며 첨탑의 돔은 연한 초록색이다. 내부의 벽면과 기둥은 흰색이며 천장은 외부의 돔처럼 연한 초록색이다. 전체적으로 황금색 라인이 장식되어 있어서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런 느낌이다. 벽면에는 각종 성화 액자가 걸려 있으며 중앙 제단 주변에는 예수의 희생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장식되어 있다. 미사가 없을 때는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지만 엄숙한 분위기를 깨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톈진 속 작은 유럽 이태리풍경구 1856년 벌어진 애로Arrow호 사건은 2차 아편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사건은 영국 국기를 달고 있던 중국인 소유의 해적선 애로호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영국 국기가 강제로 끌어 내려지며 영국은 명예가 손상되었다며 배상금과 사과문을 요구하는 억지를 부린다. 청나라는 이를 거부했고 영국은 이를 빌미로 프랑스와 연합하여 광저우를 점령하고 본격적인 2차 아편전쟁을 벌였다. 톈진까지 점령한 영국은 1858년 불평등한 톈진조약까지 맺었고 톈진의 8배에 달하는 지역을 조계지로 삼았다. 이후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 버린 톈진에는 1902년까지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등 9개국의 조계지가 들어섰다. 이러한 외세 침략의 아픈 흔적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톈진 도심 곳곳에 남아 있는 유럽풍 건축물들이 그것들이다. 특히 이탈리안 거리로 불리는 이태리풍경구意大利风景区는 테마파크가 연상될 정도로 조계지 시대의 건축물들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태리풍경구는 민족로와 자유도가 교차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장방형으로 퍼져 있다. 두 개의 길이 교차하는 지점은 마르코폴로 광장이다. 광장 중앙에는 시원한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석주 정상에는 날개 달린 여신상이 월계관을 높이 들고 있다. 사방으로 뻗어 있는 도로의 주변은 온통 2~3층 높이의 이국적인 건축물들이며 1층은 대부분 카페나 레스토랑들이다. 해가 질 무렵 카페에 앉아서 시원한 생맥주에 피자나 파스타를 곁들인다면 이곳이 중국이란 것을 새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다. 청대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고문화가 톈진에서 가장 주목 받는 곳은 누가 뭐라 해도 고문화가古文化街다. 100여 년 전 톈진의 부자들이었던 소금상인들이 모여 살던 고문화가는 현재 청대 거리를 재현해 놓은 쇼핑 지구로 패루가 세워진 입구를 지나면 고풍스런 2층 규모의 건물이 길게 늘어서 있다. 대부분 근래 조성된 건물들이지만 청대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판매하는 물품들도 차나 다기, 도장과 벼루, 골동품과 전통 장신구들이 많아서 예스럽다. 고문화가 한복판에는 천후궁天后宮이 자리하고 있다. 천후궁은 천비궁天妃宮 또는 낭랑묘娘娘廟라고도 부르는데 바다 또는 물의 신인 천후를 모신 사원이다. 전설에 따르면 천후는 어릴 때 도사를 만나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되었는데 거대한 파도 앞에서 위기를 맞은 어민을 구해낸 후 사람들은 그녀의 영험한 능력을 특별하게 여겨 바다의 여신으로 칭송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해상 교통의 요지인 톈진에 천후궁이 세워진 것은 원나라 때인 1326년. 사원 내부는 시끌벅적한 고문화가와는 달리 매우 조용하고 차분하다. 출입문 하나만을 통과했는데도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온 느낌이 들 정도다. 사원 안에는 천후를 모신 정전正殿을 비롯해 10개가 넘는 전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천후궁에서 나와 북쪽 출입구 방향으로 걷다가 우측 골목으로 빠져나가면 옥황각玉皇閣이 자리한다. 2층 규모의 옥황각은 톈진에서 가장 큰 도교 사원 건축물로 명나라 초기인 1427년에 중건된 것으로 의미 있는 건축물이다. 또 고문화가 북쪽 출입구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해하海河강 위에 자리잡은 관람차 톈진아이天津之眼를 만나게 되는데 해하강 주변 풍경을 시원하게 감상하기에 이만한 것이 없다. 톈진 시민의 휴식처 수상공원 톈진 남쪽에 자리한 수상공원水上公園은 톈진 시민들이 사랑하는 휴식처다. 총 면적도 167만km2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사각 모양의 공원은 출입문이 여럿인데 지하철 3호선 주등기념관周邓纪念馆역에서 하차하면 곧바로 북쪽 출구와 연결된다. 공원에 들어서면 수상공원답게 넓은 호수가 가장 먼저 시선을 압도한다. 수상공원은 크게 동호와 서호로 나뉘는데 북쪽 출구에서 마주하는 호수는 서호다. 호숫가 산책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산책 나온 많은 시민들을 만나게 된다.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즐기기도 하고 제기차기를 하기도 한다. 제기차기는 중국의 어느 공원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놀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전통적인 제기뿐 아니라 핸드볼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공을 이용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롤러블레이드를 즐기는 시민들도 꽤 많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 중년 이상이라는 것. 입구에서 400여 미터를 내려가면 아치형의 석교를 건너게 되는데, 좌측에 보이는 호수가 동호다. 다리 건너 작은 언덕에는 3층 규모의 콘크리트 누각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 오르면 수상공원 전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호수와 숲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평온해진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동호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회전목마와 바이킹, 후룸라이드 등을 비롯해 다양한 놀이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놀이공원이 자리한다. 이곳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역시 관람차. ‘수상공원’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는 관람차는 기념사진을 찍기에도 안성맞춤이다. 3층 누각 전망대에서의 전망이 아쉬웠다면 관람차를 타고 시원한 전망을 감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수상공원 남쪽에는 180여 종, 1,800여 마리의 동물과 조류들을 보유한 톈진동물원天津动物园이 있다.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로 사자, 호랑이, 기린, 하마 등을 비롯해 수십 종의 파충류 등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희귀한 백호와 손오공의 모델이 되었다는 황금원숭이도 만날 수 있다. 주은래의 삶과 업적을 한눈에 수상공원 북쪽 출구 바로 옆에는 주은래등영초기념관周恩来邓颖超纪念馆이 자리하고 있다. 주은래기념관이나 주등기념관이라고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주은래등영초기념관이다. 정치가이자 혁명가였던 주은래는 장쑤성강소성, 江蘇省 후아이안회안, 淮安에서 태어나 톈진의 남개대학에서 수학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졸업 후에는 일본에서 유학했다. 1919년, 항일운동이자 반제국주의 운동이었던 5·4 운동 때는 톈진에서 활약하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1920년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으며 1921년에는 파리에서 공산당 프랑스 지부 결성에 참여했다. 1924년 귀국 후에는 꾸준하게 공산당 혁명 운동을 이끌었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이 수립되자 초대 수상 겸 외교부장 자리에 올랐다. 당대 함께 활동했던 모택동毛澤東이 중국의 영웅으로 추앙 받고 있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모택동이 엄하고 강한 이미지의 정치가였다면 주은래는 인자하고 포용심 많은 정치가로 인정받고 있다. 늘 중국 인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을 뿐만 아니라 모택동이 이끌었던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중국의 문화유산을 지켜내기 위해 애썼던 인물이다. 기념관은 1998년 2월28일 주은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개관했다. 기념관 입구에 있는 황동 간판 글씨는 강택민江澤民이 쓴 것이다. 기념관 내부로 들어서면 홀 정면에 세워진 주은래와 부인 등영초邓颖超의 흰색 조각상을 먼저 만나게 된다. 너나 할 것 없이 조각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기념관 1층에는 주은래의 일생과 관련된 자료들이 꼼꼼하게 전시되어 있다. *본문에 나오는 중국의 지명은 중국어 발음으로 적고 한자 음과 한자를 동시에 표시했다. 관광지, 사람 이름, 산 등 지명 이외의 것은 한자 음을 적고 한문을 병행 표기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el info 天津 Airline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중국국제항공 등이 톈진까지 직항편을 운행한다. 운항 회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매일, 중국국제항공은 주 1회. 소요시간은 약 1시간 50분. 여행이 목적이라면 톈진 직항보다 베이징 직항을 이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톈진보다 베이징 직항 항공권 요금이 훨씬 저렴하고, 톈진과 베이징 간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TIP가는 길┃베이징에서 톈진까지는 고속철로 30분이면 갈 수 있다. 베이징남역에서 출발하며 도착역은 톈진역과 톈진남역 두 곳이다. 톈진역과 톈진남역을 모두 정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목적지에 따라 각각 다른 열차를 선택해야 한다. 톈진 시내 교통┃톈진 시내에서는 지하철로 이동하면 편하다. 톈진은 현재 4개의 지하철 노선이 운행 중이다. 기차역인 톈진역과 톈진남역도 모두 지하철이 연결돼 있다. 주은래등영초기념관┃입장료는 무료지만, 외국인은 여권을 소지해야만 입장권을 받을 수 있다. 여권을 꼭 챙기자. 촬영 명소┃이태리풍경구에서 고문화가에 이르는 길은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다. 해하강을 따라 북쪽으로 800m 정도 이어지는데, 유럽풍 건축물이 줄지어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걷다 보면 보행전용 다리가 나오는데, 이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고문화가 남쪽 출입구를 만나게 된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박동식 여행작가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서울지국 www.visitchina.or.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자치단체장 25시] 현장에서 답 찾는 ‘나찾소’… “중랑코엑스 동력 삼아 일자리 창출”

    [자치단체장 25시] 현장에서 답 찾는 ‘나찾소’… “중랑코엑스 동력 삼아 일자리 창출”

    “서울시가 어떤 곳인지 알아? 거긴 절대 가지 마.” 36년 전인 1980년, 패기 넘치던 한 신입 사무관이 배치 희망 부서를 말하자 선배들은 깜짝 놀랐다. 28살 된 새내기 공무원은 서울시에서 일해 보겠노라고 말한 터였다. 선배들은 “복마전 같은 곳”이라고 했다. 당시 시 공무원이 각종 청탁을 받은 대가로 수사기관에 끌려가는 일이 흔했으니 당연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사무관의 생각은 달랐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시간이 긴 중앙부처보다 현장에서 시민과 몸 부딪치는 시청 일이 더 재밌을 것 같았다. 만류의 손길을 뿌리치고 발들인 서울시 청사에서 그는 꼬박 30년을 일했다. 15명의 시장을 모셨고 서울올림픽 개최, 지하철 2~9호선 완공, 청계천 복원과 버스 준공영제 도입, 서울광장과 광화문 광장 조성 등 역사적 사건과 함께했다. 서울시정의 산증인인 나진구(64) 서울 중랑구청장의 이력서다. 2010년 6월 행정1부시장 직을 끝으로 시청에서 나온 그는 행정 노하우를 쏟아붓고 싶어 2014년 6월 구청장 선거에 나서 당선됐다. 구청장 생활 2년째, 그의 시선은 여전히 ‘현장’에 꽂혀 있다. 구민과 직접 만나는 ‘나찾소’(나진구가 찾아가는 소통현장)를 15차례 열어 2000여명으로부터 의견을 듣고 정책을 내놨다. 나 구청장은 4일 구청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랑코엑스와 면목패션특정개발진흥지구를 동력 삼아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면서 “서울장미축제도 올해 업그레이드해 관광객 30만명이 찾게 하겠다”고 말했다. ●민선 시장 4명 모시며 행정 노하우 쌓아 나 구청장은 10·26사태로 정국이 얼어붙었던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그가 속한 행시 23회는 관운 넘쳤던 기수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유정복 인천시장, 기재부 장관을 지낸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등이 동기다. 그는 “장차관급을 지낸 동기만 50명이 넘을 정도로 인물이 많았다”고 했다. 나 구청장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실력을 키웠다. 현장에서 답을 찾는 나 구청장의 스타일은 젊은 시절부터 두드러졌다. 실상을 알려고 화장실을 순례했던 일화도 있다. 시 기획관리실 계장으로 일할 때 “시내 공동화장실 실태를 조사하라”는 상부 지시가 떨어졌다. 당시 집에 변소가 없는 서민층은 공동으로 화장실을 설치하고 한 번 쓸 때마다 요금을 내 청소와 분뇨 처리를 했었다. 그는 ‘달동네’였던 금천구 시흥동 일대 이주민 거주지를 돌며 실태를 살폈다. 아침 녘 풍경은 비참할 지경이었다. 한 중년 남성은 화장실을 차지하려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왔고 어느 여성은 긴 줄 뒤에 울상 지었다. 나 구청장은 “대한민국 수도에서 시민들이 배변욕조차 해결 못 하는 현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후 일대 모든 공동화장실을 일일이 돌며 이용자 수와 이용료, 평균 대기 시간 등을 샅샅이 조사했다. 오후 늦게서야 사무실에 들어섰는데 직원들이 일제히 인상을 구겼다. 몸에 밴 심한 악취 탓이다. 목격담을 토대로 작성한 현장감 있는 보고서는 시장에게 보고돼 서울의 공동화장실을 공중화장실로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서울시 대중교통시스템 전면 개편과 서울형 복지 체계 수립 등 시정의 큰 방향을 움직이는 정책도 만들어 봤지만 서민의 기본적인 어려움을 덜어준 게 가장 보람 있었던 기억”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에서 감사관과 경영기획실장, 행정1부시장 등을 지낸 나 구청장은 민선인 조순·고건·이명박·오세훈 전 시장과 함께 일했다. 각자 다른 색채의 정치 거물과 호흡을 맞춘 경험은 행정가로서 큰 도움이 됐다. 나 구청장에게 각 시장의 장점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그는 “조순 전 시장은 영등포 OB맥주 공장 등을 공원화해 어메니티(삶의 쾌적성)의 중요성을 일깨웠다”고 평가했다. 고건 전 시장에 대해서는 “소통법을 알던 리더였다”면서 “정책 추진 때 주민과 갈등이 생기면 당사자를 만나 30분 이상 듣기만 했다. 상대도 말하다 보면 억울함이 누그러져 꼬였던 상황이 자연스럽게 풀렸다”고 말했다. 나 구청장의 간판 사업인 ‘나찾소’도 고 전 시장에게 배운 것이다.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해서는 청계천 복원과 버스 준공영제를 추진한 집념을 높게 평가했고 오세훈 전 시장은 “서울시라는 거대 도시에 디자인을 입힌 젊은 시장이었다”고 평했다. ●“올 핵심 정책 궤도에 올려놓을 것” 나 구청장은 “4년 임기의 반환점을 도는 올해 핵심 정책을 궤도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째 목표는 일자리 만들기다. 지역 최대 개발 프로젝트인 ‘중랑 코엑스’ 사업이 일자리 창출의 엔진으로 역할을 한다. 중랑 코엑스 조성은 지역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상봉·망우역 일대를 상업·문화·엔터테인먼트 시설이 집중된 복합공간으로 만드는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의 하나로 지어진 41층 건물인 상봉동 ‘듀오트리스’가 지난 1월 완공돼 멀티플렉스 상영관과 쇼핑센터, 식당가 등이 들어서고 있다. 중랑구는 CGV, 한샘, 이랜드 등 듀오트리스 입주 기업과 협약을 맺고 중랑구민이 이곳에 우선 채용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지난달 쇼핑몰 판매직, 시설관리직 등으로 구민 100여명이 채용됐다. 나 구청장은 “현재 지역 내 호텔 2~3곳이 조성되고 있거나 건설 계획 중인데 이런 곳에 필요 인력을 발굴해 일자리가 필요한 지역 주민과 연결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봉제업 천국’이었던 지역의 옛 명성을 회복시킬 ‘면목패션특정개발진흥지구’ 계획을 추진한다. 봉제·패션산업은 여전히 중랑구 제조업의 70%를 차지하지만 1980년대 이후 인건비가 높아지고 중국·베트남 등으로 생산 공장이 옮겨 가면서 경쟁력을 잃어 왔다. 나 구청장은 “정책자금을 투입해 봉제·패션업체를 교육하고 지원할 센터 등을 짓기 위해 서울시에 특정개발진흥지구 지정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특정개발진흥지구가 되면 업체들이 세제 지원과 용적률 완화 등 혜택을 보게 된다. 서울의 대표적 봄축제로 자리잡은 서울 장미축제에 매력을 더해 보령머드축제나 화천 산천어축제처럼 국가대표급 행사로 만들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나 구청장은 취임 후 첫 축제 때였던 지난해 유명 행사 기획자를 총감독으로 영입하는 등 공들여 전년보다 30배 이상 많은 관광객 15만 5000명을 끌어모았다. 그의 꿈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는 5월 20~22일 장미축제가 열리는데 관광객 30만명이 찾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너무 큰 꿈 같아 보이지만 그만큼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세계적 장미축제를 여는 불가리아의 노하우를 전수받으려고 불가리아 대사관과 협력하기로 했고 불가리아 출신 유명 셰프인 미카엘 아시미노프 등도 축제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또,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시내 대학의 한국어학당 등을 찾아 홍보할 계획이다. 가난한데도 충분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빈곤층을 위한 중랑형 복지정책도 계속 추진한다.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가 있는 나 구청장이 미는 대표 정책은 ‘행복중랑플러스 통장’ 사업이다. 중위소득 80%(4인 가족 기준 351만원) 이하인 저소득 가구가 3년 동안 매달 10만원씩 통장에 저금하면 구가 민간후원금을 재원 삼아 매달 10만원씩 추가로 입금해 주는 사업이다. 나 구청장은 “예산이 한정된 탓에 공공재정으로는 빈곤층을 충분히 돕기 어려웠다”면서 “지역민과 기업 기관 등을 상대로 벌써 1억 6000여만원을 모았는데 연말까지 3억 5000만원을 모아 구민들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글로벌 시대] 다마스쿠스의 커피/이옥순 인도문화연구원장

    [글로벌 시대] 다마스쿠스의 커피/이옥순 인도문화연구원장

    2007년 여름에 시리아의 수도를 방문했을 때다. 새벽에 일행과 도시탐험에 나섰다가 작은 골목에 자리잡은 아담한 카페를 지나게 되었다. 어둑한 새벽에 환히 불을 밝힌 가게 안에는 여러 명의 중년남자들이 불빛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가게 문을 밀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그 남자들이 마시는 것을 달라고 말했다. 아랍어 메뉴판을 읽지 못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이 다였다. 물론 동네 아저씨들이 담소를 즐기며 검은색 음료를 홀짝거리는 모습이 근사해 보인 탓도 있었다. 근데 이윽고 우리 테이블에 놓인 찻잔의 음료를 한 모금 맛본 우리 일행은 모두 쓴웃음을 주고받으며 잔을 내려놓았다. 커피의 맛이 몹시 썼기 때문이었다. 독하다, 독약 같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진했다. 그건 아라비아산 커피 원두를 갈아 만든 나름의 에스프레소였다. 우리는 더이상 그 진한 커피를 마시진 못했으나 아주 오래된 도시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문화와 아침 분위기를 느끼며 한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리아는 내전으로 피폐해지고 우리가 들렀던 성경에 나오는 도시 다마스쿠스는 부서지고 무너진 모습으로 외신을 타고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새벽에 행복한 표정으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던 그 사람들, 오밀조밀한 모습으로 이어진 천년고도의 그 좁은 골목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보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눈에 띄게 증가한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마실 때면 문득문득 그날의 새벽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의 커피 수입량이 최고기록을 경신했다는 소식이 지난 몇 년간 반복되었다. 수입량이 많다는 건 소비량이 많다는 뜻이다. 국민 1인당 커피 소비량이 하루 2잔이고 커피를 파는 전문점이 1만여 곳을 돌파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서울 등 대도시엔 크고 작은 커피전문점들이 도로를 두고 마주 보거나 약간의 거리를 두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경쟁을 펼치는 풍경이 낯설지가 않다. ‘대한민국은 커피공화국’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다. 물론 수입문화인지라 새벽부터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아직 많지 않다. 하지만 우후죽순처럼 커피전문점이 생기고 커피를 마시는 인구가 늘어만 가는 현상을 낭만적으로만 해석할 순 없다. 커피 한 잔의 위무와 커피 성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고단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진한 커피가 선사하는 각성상태가 사람들에게 이성적으로 더 일하도록, 더 열심히 살도록 부추긴다. 우리가 기호품으로 분류하는 홍차와 커피는 산업혁명 이전엔 금기시된 음료였다. 영국에서 홍차를 마시는 풍습이 급속하게 퍼진 건 산업혁명과 연관이 있었다. 산업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술 대신에 홍차를 마시도록 은근히 장려했다. 그렇게 하여 노동자들은 다음날 생산 작업에 영향을 가져오는 음주보다 설탕이 들어간 고칼로리의 홍차를 마시면서 길고 힘든 노동을 견디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홍차와 커피는 술과 달리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면서 마실 수가 있고, 카페인이 든 그 음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더 오래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우리나라에서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던 그날의 다마스쿠스가 종종 생각나는 건 그래서다.
  • ‘111명 묘는 세 평vs 개 묘지는 수천 만원’…개만 못한 중국사람

    ‘111명 묘는 세 평vs 개 묘지는 수천 만원’…개만 못한 중국사람

    14억 인구의 중국은 넓은 땅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온 매장 풍습의 혁신이 절실한 이유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4일 친환경적인 장례문화 방법으로 수목장, 화단장을 비롯해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수장, 해장, 가족을 합장한 가족묘 등 장례문화의 변화를 소개했다. 국가가 나서서 화장을 기본으로 하는 생태장례 문화 확산을 권유한 셈이다. 구체적인 사례로 광시(廣西)좡족자치구의 류저우(柳州)에서 최근 거행된 집단 화단장을 들었다. 무려 111명의 유골을 함께 묻었지만 그들이 차지한 공간은 10여㎡에 불과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등 9개 중앙부처는 지난 2월 도시화가 가속화되고 토지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토지자원이 급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목장, 수장 등 친환경 안장방식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란 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또다른 이면은 오히려 사람들을 참담하게 한다. 상하이에 있는 애완동물 공동묘지는 개별묘와 단체묘로 구분된다. 개별묘의 경우 2만 위안(약 360만원)부터 시작해 10만 위안(약1800만원)을 넘는 경우도 있다. 단체묘 역시 3000위안~2만 위안에 달한다.전국 곳곳에 이와 같이 호화로운 애견 공동묘지가 있다. 허난(河南) 지역에서는 애완동물 묘지를 8888위안에 제공하는 곳도 있다. 숫자 ‘8’은 중국어의 ‘파차이(发财·돈을 벌다)’와 발음이 같아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숫자다.애견묘에는 인형, 생화는 물론, 애견용 동물뼈, 껌, 소시지, 과자 등 특별한 제사용품이 놓여진다. 청두시(成都市) 롱취안이취(龙泉驿区)의 푸공잉(蒲公英) 애견 공동묘지 관리자 말에 따르면, 한 중년 여성은 2년 동안 매주 애견묘에 생화를 가져 오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푸공잉 애견 묘지는 10년 전 지어져 3000개의 애견묘가 있다. 최근 3년 사이 주문량은 20% 증가했고, 청명절이면 제사를 지내러 몰려드는 인파로 붐빈다. 죽어서도 개만도 못한 사람 팔자가 한동안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잠정통계에 따르면, 중국 전역 반려견 수는 1억5000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 애견 사망률 6%을 적용하면, 한해 900만 마리의 애견들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메디컬 인사이드] 가슴 타는 고통 “엄마, 왜 그렇게 참으셨어요”

    [메디컬 인사이드] 가슴 타는 고통 “엄마, 왜 그렇게 참으셨어요”

    “불이 치밀어 올라 죽겠어요”울분 삭이고 삭이다 생긴 병 보복운전이 우리 사회의 큰 이슈가 됐습니다. 처벌이 강화돼 상대 운전자에게 위협을 가하다 적발되면 최대 징역 1년의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화를 잠시도 참지 못하고 주변에 표출해 버리는 ‘분노조절장애’는 이런 보복운전과 맞닿아 있습니다. 극심한 생존 경쟁에 내몰리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우리의 삶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면 어떻게 될까요. 한 해 10만~20만명이 화를 스스로 삭이다 참다못해 병원을 찾는다고 합니다. 바로 ‘화병’(火病)입니다. 주변에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보다 쓰린 가슴을 스스로 부여잡고 달래는 것을 미덕으로 알았던 어머니들이 주로 병원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참아야지”라며 수십 년 동안 화를 삭이고 또 삭이다 병이 됐는데 과연 치료가 가능할까요. 궁금증을 풀기 위해 3일 전문가들에게 물었습니다. ●얼굴 화끈·가슴 답답한 폐경기 증상과 비슷 화병은 뚜렷한 신체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폐경기 증상과도 비슷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경험하셨듯이 ‘가슴에서 불이 치밀어 오르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을 때 “가슴이 타는 것 같다”고 호소합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답답하며 소화불량이 심해집니다. 화를 억지로 참아내면서 뇌가 과도하게 각성되고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균형이 깨지면서 우울증이 심해집니다. 극도로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증상도 나타납니다. 정영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많은 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는 극심한 체중 감소”라며 “소화 기능이 떨어져 1~2년 사이에 5~10㎏씩 빠지고 바짝 마르며 신경이 날카로워진다”고 했습니다. 조철현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신체 증상이 반복되면 ‘나는 안 되는구나’, ‘고통 속에서 살 필요가 없다’고 자포자기해 극단적인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며 “우울증은 뚜렷하지 않은데 극도로 초조해하는 환자의 경우에도 당장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쁜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감염질환만 전염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질환도 전염된다고 합니다. 조 교수는 “우울한 감정과 무기력감은 전염력이 있기 때문에 가족도 지치고 기가 빠지며 고통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50대 女환자가 男환자보다 2배 이상 많아 1996년 미국 정신과학회에서 우리말 화병(Hwa-Byung)을 한국인 특유의 정신질환으로 분류해 ‘문화증후군’으로 규정하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화병은 문화증후군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분류된 질병코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트레스 적응장애, 우울증, 불안장애 등의 증상이 모두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화병 환자가 있는지 참고 자료만 존재할 뿐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병원을 찾은 것으로 추정한 화병 환자 수는 2011년 11만 5000명, 2012년 12만 1000명, 2013년 11만명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에 따르면 2010년부터 5년간 진료 환자 수가 100만명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50대 이상에서는 여성 환자가 남성보다 2배 이상 많았습니다. 설 연휴 다음인 3월과 추석 연휴 기간인 9~10월에 진료 환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조 교수는 “화병도 대부분의 정신질환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나 갈등을 적절하게 해소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면서 만성화됐을 때 뇌의 변화가 유발돼 생긴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과거에는 모두가 그랬기 때문에 여성들이 주관적으로 불합리성을 덜 느꼈을 수 있지만 사회가 변화하면서 여성들의 기대치는 높아졌는데 성 역할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며 “여성들의 스트레스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주관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스트레스가 증가한다고 분석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 교수는 “여성 환자가 많은 것은 아무래도 과거부터 이어진 가부장적 문화의 영향이 클 것”이라며 “남성은 동료와 술을 마시면서 풀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화를 풀 수 있는 통로가 그래도 많은데 중년 여성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상담원·판매원 서비스업 종사자도 많이 앓아 중년 여성 환자가 많다고 해서 꼭 주부만 해당되는 병은 아닙니다. 상담원, 판매원 같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도 많이 나타납니다. ‘고객 갑질’을 참다못해 신체 증상으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정 교수는 “갑과 을의 관계에서 느끼는 피해의식, 결국 을에 해당하는 사람이 화병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고 표현했습니다. 병원을 찾아 증상을 치료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항불안제나 항우울제를 처방받으면 1~2주 안에 서서히 증상이 개선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장애를 단기간에 치료하려는 조급증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꾸준히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해야 합니다. 조 교수는 “정신질환 치료는 인내심이 필요하고, 만성질환처럼 관리하는 병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며 “약물 치료로 1~2주면 점점 좋아지는 느낌을 받지만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를 일으키려면 2주 이상의 투약과 전문가 상담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정 교수는 “길게 약물 치료를 하더라도 보통 3개월 정도면 종결된다”며 “중요한 것은 본인의 깨달음”이라고 했습니다. 정 교수는 “예후가 좋지 않은 환자는 근본적인 문제, 즉 시어머니와의 갈등, 남편의 외도 같은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은 의사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부분”이라며 “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상담 치료를 계기로 스스로 스트레스를 풀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음주는 독… 오히려 우울증 악화시켜 화병에 음주는 독(毒)과 같습니다. 각성 상태를 술로 강제로 이완시킨다고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울증을 악화시키고 몸의 피로도만 높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는 숙면을 취할 수 없어 술을 마시고 잠드는 분이 많습니다. 정 교수는 “술을 먹고 억지로 이완시켜도 다음날 다시 증상이 나타나 악순환이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화병 환자에게 참는 것은 미덕이 아닙니다. 화병의 여러 증상으로 심각하게 고통받고 있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 전문가와 상담할 때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주변에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화를 내고 감정을 소모하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수십 년을 억누르고 살았던 사람이 단숨에 감정을 내보일 방법도 많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주변의 인간관계를 두텁게 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대화를 나누며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조 교수는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여건상 사회적 관계 형성이 어렵다면 종교를 갖는 것도 좋다”며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처럼 우리 마음과 정신을 위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취미생활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정 교수는 “하루 내내 올라갔던 긴장감과 각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사진=pixabay
  • [World 특파원 블로그] 中여교사는 순번제로 둘째 임신하라?

    중국 허난성 중무현의 명문 고등학교인 제1고급중등학교가 최근 ‘순번제 임신’ 학칙을 정했습니다. 허난방송이 이 소식을 전하자 누리꾼들이 “여교사들의 생육 권리 박탈”이라며 들고 일어섰습니다. 하지만, 중무현의 교육국 책임자는 “학교는 학생을 가르치는 곳이지 둘째를 낳는 곳이 아니다”라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정인지 좀더 볼까요. 이 학교는 여교사가 200여명으로 남교사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올해부터 정부가 한 자녀 정책을 포기하고 둘째 아이 출산을 허용하면서 많은 여교사가 임신을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교사들이 무더기로 임신할 조짐을 보이자 수업 차질을 우려한 교장이 급기야 ‘순번제 임신’ 학칙을 구상했고 남교사 중심의 교사 노조도 이를 승인했습니다. ‘순번제 임신’을 확실히 실행하기 위해 이 학교는 여교사에게 임신 순서를 정해 줬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15명, 하반기에는 16명만 임신할 수 있습니다. 올해 명단에서 탈락한 한 여교사는 “나는 2020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학교는 “몰래 임신한 교사는 학교 매점에서 근무하게 하고 그래도 지켜지지 않을 경우 해고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학교는 여교사를 대상으로 3개월마다 임신 여부를 검사하기로 했습니다. 임신 가능자 중 6개월이 넘도록 임신이 안 되면 맨 끝 순번으로 가서 줄을 다시 서야 합니다. 이 학교의 학칙이 다소 유별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지역의 학교들도 비슷한 규제가 있습니다. 둘째 아이 허용 정책과 여교사 초과 현상이 충돌하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죠. 베이징시의 여교사 비율은 80%에 이르고 상하이시도 75%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고령화에 따른 생산 인구 감소를 타개하기 위해 도입된 둘째 아이 허용은 노산(産)에 따른 합병증 급증, 산부인과 부족 현상도 초래하고 있습니다. 중국 국가생육계획위원회에 따르면 둘째를 낳는 부부의 50%가 40대 이상입니다. 젊은이들은 취업난과 주택난, 남녀 성비 불균형으로 출산은커녕 결혼도 하지 못하는데, 고속성장기의 과실을 누린 중년층은 둘째 아이를 갖는 꿈에 부풀어 있는 셈이죠. 인구 대국 중국이 ‘인구 딜레마’를 어떻게 풀지 지켜볼 일입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대낮 슈퍼마켓에 들어가 노부부 흉기 찌른 2인조 검거

     휴일 대낮 슈퍼마켓에 들어가 노부부를 흉기로 찌르고 달아난 강도 용의자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전남 목포경찰서는 3일 강도 행각을 하며 흉기를 휘둘러 2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살인 등)로 이모(38)씨와 중국동포인 장모(36)씨를 긴급체포했다.  이씨 등은 이날 오후 3시 15분쯤 목포시 산정동의 한 슈퍼마켓에 들어가 주인 부부에게 흉기를 휘둘러 아내 A(68·여)씨를 숨지게 하고 남편 B(73)씨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금품을 요구하다 반항하는 노부부를 흉기로 찌른 것으로 알려졌다. 주인 부부는 이날 오후 3시 56분쯤 슈퍼마켓을 찾은 손님에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용의자의 인상착의가 중년에, 보통 키, 검정색 상·하의를 입고 각각 뚱뚱하고 마른 체격이라는 진술과 인근 CCTV를 토대로 행방을 쫓았다. 경찰은 이날 오후 8시 15분쯤 광주 서구 광천동 종합버스터미널 인근 모텔에서 이씨 등을 검거했다.  경찰은 일용직 노동을 하며 알게 된 이씨와 장씨가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범행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광주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길섶에서] 노인과 스마트폰/최광숙 논설위원

    며칠 전 퇴근길 지하철에서의 일이다. “스마트폰을 다 없애 버려야 해” 하고 한 할아버지가 큰소리를 쳤다. 노약자석을 찾았다가 빈자리가 없자(노인들이 다 앉았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화를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는 승객들에게 쏟아붓기 시작했다. 다행히 한 중년 아저씨가 할아버지께 자리를 양보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내 나이가 84살로 다리가 아프다. 그런데 젊은 애들이 스마트폰 보느라 노인들을 본체만체한다. 스마트폰으로 기껏 하는 게 게임이나 연속극 보는 것 아니냐”고 연방 분통을 터뜨리신다. 가만 보니 할아버지가 그 난리를 치시는데도 옆자리의 젊은 아가씨는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에 열중이다. 할아버지가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아예 모른 체하고 있는 듯했다. 할아버지의 계속된 노기에 급기야 중년 아저씨가 “할아버지 손녀들도 다 저러고 다녀요”라고 한마디했다. 가족으로 치자면 스마트폰을 둘러싸고 3대가 충돌하는 장면이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소통의 도구가 되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세대 간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는 현장을 보니 문득 스마트폰 없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광주 학운동 예술마을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광주 학운동 예술마을

    3월 중순, 햇살부터 서울과 다른 이곳은 벌써 봄기운이 완연하다. 성질 급한 꽃들은 벌써 폭죽을 터트리며 봄을 축복한다. 광주 무등산 아래 학운동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봄을 느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학운동은 무등산 서쪽 아래 위치한 학동과 운림동을 아우르는 행정명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광주시 동구에 속한다. 학운동 예술마을은 증심사 아래 의재미술관에서 시작해 학동의 홍림교에 이르는 3㎞ 정도의 의재로를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을 일컫는다. 의재미술관 외에도 현대미술의 무등 현대, 추상 설치미술의 우제길, 지역 예술의 중심인 국윤미술관과 문화예술공간, 예술가 레지던시, 교육원 등이 이 일대에 있다. 맛집과 카페 등도 늘고 있어 등산객뿐만 아니라 젊은 층 사이에서도 뜨는 명소로 꼽힌다. 학운동 예술마을을 이야기할 때 의재미술관의 주인공 의재 허백련(1891~1977) 화백을 빼놓을 수 없다. 학운동 예술마을의 중심을 이루는 행정상의 거리 이름 또한 ‘의재로’로 칭할 만큼 의재는 광주는 물론 남도를 상징하는 예술가다.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운림산방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공재 윤두서, 강진의 다산 정약용, 진도의 소치 허련 등의 영향을 받아 남종화의 꽃을 피웠다. 최근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열린 의재 허백련 특별전에서는 ‘전통회화 최후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 붙었다. 광주에서는 광주 미술의 오늘을 이야기할 때 꼽는 두 거장 중의 한 명으로 의재를 지목한다. 의재미술관이 문을 연 것은 그가 무등산 자락에 묻히고도 20여년이 지난 2001년이었지만 무등산 자락에서의 그의 삶은 중년 이후 30여년에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의재가 무등산 자락에 자리잡게 된 동기는 미술에 있지 않다. 한국 전쟁 후 ‘사람들이 잘살아야만 예술도 있다’는 생각으로 선진 농업을 가르치는 농업기술학교를 증심사 옆에 세우면서였다. 이후 산업화의 영향으로 농업기술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의재는 계속 이곳에 머무르며 다른 사회 운동을 펼쳤다. 그에게 그림은 일상이었다. 그가 농업학교 건너 계곡 너머 작은 집 춘설헌에 거주하면서 자연스레 작업실도 겸하게 됐다. 의재의 손자이자 동양화가인 허달재 의재미술관 관장은 “기술이 아닌 스스로 갈고닦음으로써 그림이 완성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살아생전 그림으로 내세운 것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냥 그렸을 뿐이다. 미술관을 열라는 주위의 성화에도 잘 살면 후대 누군가가 알아서 세워 줄 것이라며 연연해하지 않았다. 오로지 무등산을 오르내리며 농업에 이어 차 문화 운동 등 사회 운동에 더 적극적이었다. 의재의 가장 한국적이면서 호남적인 그림은 그렇게 탄생했다. 스스로 그림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사람들과 남도를 사랑하며 그의 그림을 완성해 갔다. 후학들은 알아서 모여들었다. 홍림교 못 미쳐 의재로 길가에 세워진 또 하나의 역사적인 명소인 연진미술원은 그렇게 모여든 후학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의재가 세운 농업기술학교 자리에 세워진 의재미술관은 산속에 있는 현대적인 건물임에도 튀지 않고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다. 그러면서도 그만의 개성을 잃지 않는다.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기 세계를 열고 실천하며 인간을 사랑한 의재와 닮아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작은 건물 안에는 등산로처럼 비스듬히 경사진 통로를 설치하고 8폭 병풍처럼 큰 통유리로 창을 만들어 무등산의 풍경을 담았다. 전시실 이동 경로 또한 의재가 농업학교와 춘설헌 등을 오갔던 무등산 계곡 길을 재현하려 했다. 이 건축물은 ‘소규모 다기능 건축의 백미’라는 평가를 받으며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았다. 미술관에는 동양화를 중심으로 한 기획 전시와 의재의 작품을 보여 주는 상설 전시가 계속 열린다. 미술관 로비에서 큰 창을 통해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8폭 병풍이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다. 미술관 맞은편 계곡 너머에는 춘설헌과 함께 의재의 무덤이 있으며 의재가 만든 무등산 차밭에서 만든 차를 맛볼 수 있는 쉼터가 있다. 증심사 너머 의재가 키우던 차밭을 구경할 수도 있다. 4~5월이면 여린 찻잎을 따는 풍경이 장관이다. 미술관 안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보고 느끼는 것이 더 많은 관람, 바로 의재미술관의 특별한 감상법이다. 의재 이후 이 예술마을에 자리잡은 예술가들은 장르를 넘나든다. 현대, 추상 등 저마다 개성이 강하다. 그러한 개성이 그들의 공간마다 담겨 있다. 다른 장르의 매력을 찾아보고 작가의 작업실까지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마을을 돌아보는 방법이다. 사실 무등산은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을 보듬어온 산이다. 무등산 동쪽에 위치한 담양, 화순은 예부터 가사문학과 누정문화가 발달해 왔다. 정치에 실망하거나 내쳐져 낙향한 문인들을 아끼고 보듬어 당대 최고의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게 했다. 의재와 함께 광주의 대표 미술가로 꼽히는 서양화가 오지호도 또 다른 무등산 자락인 지산동에 거처를 두고 말년을 보냈다. 이 밖에도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예술마을의 중심인 의재로는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까지 이어진다. 앞으로 이곳을 더욱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 여행수첩(지역번호 062) →가는 길:광주 지하철1호선 학동증심사입구역 하차. 1번 출구 9번 마을버스 종점 하차. →축제:지난해 무등산 학동 운림동 예술의 거리는 국윤, 무등현대, 우제길미술관, 무등산국립공원사무소, 전통문화관(광주문화재단), 한국제다 등 6개 업체가 협의회를 구성해 무등산문화예술축제를 시범적으로 열었다. 올해는 의재미술관, 증심사, 주변 마을 등의 참여를 도모해 10월 한 달 동안 정식 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함께 가볼 만한 곳:의재미술관 바로 위의 증심사를 빼놓을 수 없다. 1200년의 역사를 가진 통일신라시대 사찰로 보물인 철조비로자나불 좌상 등을 품고 있는 무등산 대표 사찰이다. 크지는 않지만 무등산의 둥근 산등성이와 어우러져 아름답다. 점차 모습을 갖춰 가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광주 근대화의 역사가 남아 있는 양림동도 함께 돌아보기 좋다. 증심사 등산로 입구에서 버스나 차로 10여분이면 도착한다. →맛집:증심사 아래 운림동 부근은 닭볶음탕이 유명하다. 중앙식당(222-1834)에서는 철판 위에 빨갛게 양념된 닭볶음이 나온다. 나비야 청산가자(263-4477)는 돼지불고기, 바비큐 등이 인기다.
  • [나우!지구촌] 중국에는 수천 만원 짜리 개 묘지가 있다?없다?

    [나우!지구촌] 중국에는 수천 만원 짜리 개 묘지가 있다?없다?

    "사랑하는 또또, 어디에 있든 우리 가족은 너를 잊지 않을게”, “사랑하는 샤오큐, 우리와 13년을 함께 해 줘서 고마워. 다음 생에서도 가족으로 만나자!” 중국의 반려견 묘지에서 볼 수 있는 메시지들이다. 중국은 청명절이 되면 애견묘를 찾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전국 곳곳에 호화로운 애견 공동묘지가 있으며, 가격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300위안에서 1만 위안(한화 178만원)이다. 1만 위안 이상을 호가하는 곳도 많다. 상하이 애완동물 공동묘지는 개별묘와 단체묘로 구분되는데, 개별묘의 경우 2만 위안부터 시작해 10만 위안(한화 1800만원)을 넘는 경우도 있다. 단체묘는 3000위안~2만 위안에 달한다. 허난(河南) 지역에서는 애완동물 묘지를 8888위안에 제공하는 곳도 있다. 숫자 ‘8’은 중국어의 ‘파차이(发财·돈을 벌다)’와 발음이 같아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숫자다. 애견묘에는 인형, 생화를 비롯해 특별한 제사용품들이 올라온다. 애견용 동물뼈, 껌, 소시지, 과자 등이 놓여진다. 애완동물 공동묘지에는 대부분 반려견들이 90%를 차지하고, 고양이는 5%, 나머지는 토끼, 밍크, 햄스터 등의 동물들도 안장된다. 팽(彭)씨는 지난해 애완견 뉘뉘를 청두시(成都市) 롱취안이취(龙泉驿区)의 푸공잉(蒲公英) 애견 공동묘지에 묻었다. 그녀는 왕복 90Km에 달하는 장거리지만 매달 한 번씩 이곳을 찾아 새 장난감을 놓아준다. 그녀는 “뉘뉘는 7살인데, 활발하고 영리한 강아지였어요. 7살에 견온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지요. 천당에서 건강하고 행복했으며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뉘뉘를 보낸 지 1년이 다되어 가지만, 지금도 묘지에 오면 눈물을 흘린다. 이곳에는 1만2000위안(한화 224만원)짜리 애견묘도 있는데, 고급 화이트대리석 묘비를 천사 모양으로 조각했다. 묘지 관리자 말에 따르면, 한 중년 여성은 2년 동안 매주 애견묘에 생화를 가져 오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푸공잉 애견 묘지는 10년 전 지어져 3000개의 애견묘가 있다. 최근 3년 사이 주문량은 20% 증가했고, 청명절이면 제사를 지내러 몰려드는 인파로 붐빈다. 잠정통계에 따르면, 중국 전역 반려견 수는 1억5000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 애견 사망률 6%을 적용하면, 한해 900만 마리의 애견들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 묻힐 땅도 부족해 ‘돈 없어서 죽지도 못할 판’이라는 중국에서 이 방대한 애견묘를 어떻게 처리할지 사뭇 궁금하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펠레 “삼성전자 초상권 침해” 소송

    펠레 “삼성전자 초상권 침해” 소송

    ‘브라질의 축구 전설’ 펠레(75)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펠레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타임스에 초고화질(UHD) 텔레비전 광고를 게재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부적절하게 사용했다고 주장하며 이달 초 대리인을 통해 시카고 연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고 AP통신 등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펠레 측은 “광고 문구에 펠레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흑인 중년 남성 모델의 얼굴이 펠레와 매우 닮았고, TV 화면 속 경기 장면에서 모델이 펠레의 주특기인 바이시클 킥(가위차기 동작)을 하고 있어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초상권 가치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표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3000만 달러(약 345억 5000만원)를 요구했다고 AP통신이 밝혔다. 한편 다니엘 마이스터 코헨 삼성전자 대변인은 이날 이메일을 통해 “회사 측은 이 소송과 관련해 ‘노코멘트’”라고 밝혔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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