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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영우’ 박은빈 오스카·폭행·눈물”… 유튜브 가짜뉴스 이대로 괜찮나 [넷만세]

    “‘우영우’ 박은빈 오스카·폭행·눈물”… 유튜브 가짜뉴스 이대로 괜찮나 [넷만세]

    ‘[긴급속보] 한국 배우 최초로 우영우 박은빈, 2022 미국 오스카 대상 트로피! 전무후무한 대기록, 한류 드라마’ 유튜브에 올라온 한 가짜뉴스 영상 제목이다. 열흘 전 한 가짜뉴스 전문 채널에 올라온 이 영상은 16일 기준 27만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제목만 봐도 황당무계한 가짜뉴스임을 짐작할 수 있지만, 이 같은 가짜뉴스를 사실로 믿고 소비하는 시청자들이 있고 그럼으로써 수익이 나기에 유튜브에는 이와 비슷한 채널들이 점점 활개 치고 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튜브발(發) 가짜뉴스에 대한 경고음이 높아지는 가운데 명백한 가짜뉴스 전파 채널을 방치하고 있는 유튜브에도 비판이 쏟아진다. 15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ENA 채널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를 연기하고 있는 배우 박은빈과 관련, 가짜뉴스로 인해 이상한 연관 검색어들이 뜬다는 내용의 글이 화제를 모았다.실제로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박은빈’을 검색하면 전혀 관련 없는 미국 최고 권위의 영화상 ‘오스카’(아카데미상)가 가장 먼저 연관 검색어로 노출된다. 구글에서도 ‘오스카’, ‘폭행’ 순으로 검색어가 자동 완성되고 유튜브에서도 비슷한 검색 결과가 확인된다. 사이트 이용자들이 많이 검색한 검색어가 연관 검색어에 반영되는 알고리즘을 감안하면, 황당한 가짜뉴스에 속아 이를 사실로 믿고 검색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문제의 유튜브 채널에는 이 밖에도 ‘김연아 결혼식에 아사다 마오 축의금 5000만원’, ‘톰 크루즈, 한국인과 결혼·한국 귀화’, ‘중국 톱스타 판빙빙, 한국 망명’, ‘중국 싼샤댐 붕괴, 한국 교민 120만명 탈출’ 등 아무런 근거도 없는 가짜뉴스들이 게재돼 있다. 이 채널의 구독자 수는 무려 19만명으로, 더 큰 문제는 이런 채널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날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펨코)에 올라온 관련 글에서 글쓴이는 “박은빈 가지고 대충 어그로 끄는 것도 아니고 ‘사살, 퇴출 시위, 집단 폭행, 긴급 체포’ 이런 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비판했다. 펨코 이용자들은 “찌라시도 아니고 상상 창조 수준이다”, “저런 거 보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더 충격” 등 공감하는 반응을 보였다.일부 이용자들은 “엄마 혼자 유튜브 보다가 낚여서 나한테 묻더라”, “아빠가 박은빈 오스카 받았냐고 해서 그런 거 좀 보지 말라고 했다”, “저런 걸 누가 보나 했더니 우리 형이 보네” 등 주변에서도 가짜뉴스로 인해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유튜브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펨코 이용자들은 “유튜브는 신고해도 검토하는지 모르겠다. 가짜뉴스나 루머 채널 보일 때마다 보일 때마다 신고하는데 영상도 안 내려간다”, “국가 수준에서 유튜브에 건의할 수준까지 온 듯” 등 의견을 달았다. 다른 커뮤니티들에서도 비판 여론이 높았다. “저런 영상 놔두는 유튜브도 참… 어떻게 법을 바꿔야 없어질까”(클리앙), “저런 수익 창출 다 끊어야 하는데 유튜브가 살 깎아서 장사한다”(인벤), “엄빠세대 은근 잘 낚인다. 우리 엄마도 안젤리나 졸리가 한국인 며느리 얻어서 한국으로 이사 온다고 알고 있더라”(웃긴대학) 등 댓글이 달렸다. 유튜브는 ▲스팸 및 현혹 행위 ▲민감한 콘텐츠 ▲폭력적이거나 위험한 콘텐츠 ▲규제 상품 ▲잘못된 정보 등의 커뮤니티 가이드에 따라 콘텐츠들을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가짜뉴스 채널이 얼마간의 제재 후 다시 부활하기도 하고, 명백한 가짜뉴스 영상이 네티즌들의 신고에도 계속 유지되는 등 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많다. [넷만세] 네티즌이 만드는 세상 ‘넷만세’. 각종 이슈와 관련한 네티즌들의 생생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습니다.
  • 21년간 목숨 걸고 일본군과 싸운 ‘조선 잔다르크’

    21년간 목숨 걸고 일본군과 싸운 ‘조선 잔다르크’

    ‘조선 잔다르크’ ‘백마 탄 여장군’ 광복 77주년을 맞아 뒤늦게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항일 독립운동가 김명시(1907~1949) 장군. 국가보훈처는 광복절을 계기로 김명시 장군을 건국훈장 애국장에 포상하기로 결정했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 국가 수립에 뚜렷한 공을 세운 자나 국가의 기초를 다지는 데 뚜렷한 공적이 있는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올해 독립유공자 포상은 총 303명으로, 이 중 김 장군과 같은 건국훈장 애국장은 19명에게 추서된다. 김명시 장군은 19살이던 1925년 모스크바 공산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1927년 중국 상해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1930년 하얼빈 일본영사관 공격을 주도했고, 1932년 귀국해 활동하다가 붙잡혀 7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에는 중국 화북지역에서 조선의용군 부대 지휘관을 맡아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42년 조선의용군 여성부대를 지휘하면서 한 손엔 총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확성기를 들고 일본군과 맞서며 ‘백마 탄 여장군’, ‘조선의 잔다르크’로 불리기도 했다. 해방 후 신탁통치 반대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유치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2019년 1월 국가보훈처에 김명시 장군에 대한 독립유공자 등록을 신청한 이후 올해까지 관련 자료를 확보하며 재신청과 재심의를 요청해 왔다. 김명시 장군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추진해 온 희망연대는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21년간 일제와 목숨 걸고 싸운 독립운동가에게 국가가 해야 할 당연한 예우지만 너무 늦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독립운동가의 명예회복뿐만 아니라 반쪽을 잃어버린 대한민국 독립운동사를 복원하는 일이라 생각했다”고 소회를 밝혔다.유관순 열사만? 여성 독립유공자 567명 ‘3·1 운동’과 영화로 널리 알려진 유관순·남자현 외에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존재한다. 여성가족부와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여성 독립유공자는 567명이다. 전국적인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했으며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미국, 멕시코 등 세계 각국에서 여성 항일단체를 만들어 구국활동을 전개했다. 독립운동가 조마리아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로 유명하지만 본인도 은금폐지부인회를 통해 국채보상의연금을 납입하고 상해 재류 동포 정부 경제 후원회, 대한민국 임시 정부 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는 일본 동경에서 유학 중에 2·8 독립선언문 수십장을 갖고 귀국해 3·1 운동 준비에 참여했으며 황해도 지역에서 조직 규합을 담당했다.이후 대한애국부인회 회장을 역임하고 대한적십자회 대한지부를 결성하며 임시정부를 위한 군자금을 모금했다. 독립운동가 정정화는 한국혁명여성동맹 조직,대한애국부인회 재건 등에 참여해 항일활동을 전개했으며, 미주 한국여성단체들과 긴밀한 연락을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지 성원을 두텁게 했다.독립운동가 김락은 경북 안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과 3·1 운동에 참가했는데, 이 일로 일제의 고문을 받아 두 눈을 실명했다.독립운동가 김순애는 교사로 재직 중 우리나라의 역사를 가르치다 일제에 발각돼 만주로 망명했다.대한애국부인회,한인여자청년동맹, 신한청년당과 의용단 조직에 힘 썼다.1920년에는 일본이 간도 출병에서 저지른 만행을 폭로했고 1926년에는 임시정부경제후원회를 발족했다. 독립운동가 안경신은 독립 운동 중 동료들이 체포되자 상해로 망명을 했다가 1920년 8월 미국의원단이 내한할 때 국제적 여론을 환기시킬 목적으로 파견된 광복군총영의 제2대에 이산부의 몸으로 참가했다. 장덕진, 박태열 열사 등과 함께 평남경찰국 청사와 평양시청, 평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독립운동가 조신성은 진명여학교를 설립하고 민족 교육에 전념했으며 이후엔 대한독립청년단 결성, 여성실업장려회 조직, 조선교육학교 설립 등에 힘썼다. 할아버지는 의병장, 아버지는 광복군 독립운동가 오광심은 광복군 제3지대장인 남편 김학규와 함께 제3지대 간부로 활동했으며 “광복군은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글을 통해 여성의 광복군 참여를 독려했다. 독립운동가 박차정은 의열단장 김원봉의 아내로, 의열단 활동을 하다가 의열단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설립하자 제1기 여자부교관으로 선정돼 사관생도를 양성했다. 이후 남경조선부인회를 조직하고 대일본 라디오 방송, 기고 등을 담당했다. 1938년엔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을 조직해 단장으로 활동했으며 항일 무장투쟁에 참여하다가 부상을 당해 광복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독립운동가 권기옥은 3·1 운동, 군자금 모집으로 각각 옥고를 치렀으며 평양청년회 여자 전도단 조직 후 비밀 공작을 전개하다가 다시 일본에 발각되자 목선을 타고 상해로 탈출했다. 상해에서 임시정부 활동을 하던 중 운남육군항공학교를 졸업했고 졸업 후에는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복무했다.독립운동가 오희옥은 현재까지 유일하게 생존해있는 여성 독립운동가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오 지사에 이르기까지 3대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독립운동 명문가’이다. 1926년생으로 1939년 14세에 중국에서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에 입대해 일제 대상 정보 수집과 한국인 사병 탈출에 기여했다. 2018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진지 올해로 5년째 접어든다.
  • [서울포토] 한국광복군 선열 합동봉송식

    [서울포토] 한국광복군 선열 합동봉송식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정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을 책임있게 예우하는 데 한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애국선열 17위의 합동봉송식 추모사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름도 남김없이 쓰러져갔던 영웅들을 우리가 끝까지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이같이 밝혔다. 이날 행사는 수유리 광복군 합동묘역에 안장됐던 선열 17위를 국립묘지로 봉송하는 것으로, 임시 안치된 서울현충원에서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주빈으로 참석해 충열대·묘소에 참배한 데 이어 봉송식에서 광복군 선열 17위에 헌화했다. 윤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우리가 마음껏 누리는 자유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현실과 절망 속에서도 오직 자유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진 분들의 희생 위에 서 있는 것”이라며 “선열들의 영전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수유리 한국광복군 합동 묘소에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중국지역에서 일제에 항거하다 전사하거나 옥중 순국하신 13분을 포함해 17위의 선열들이 지난 60여년간 모셔졌다”며 “광복 77년 만에 17위 선열 모두를 국립묘지로 모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 일제에 체포된 후에도 결코 앉아서 죽을 때를 기다릴 수 없다면서 탈출을 시도하다 순국한 백정현 지사 ▲ 체포돼 잔혹한 고문이 계속되자 군사기밀을 누설하지 않기 위해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옥중자결한 김순근 지사 ▲ 광복 후 귀국해 호림부대에 입대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대북 작전 중 전사한 이한기 지사 등 선열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했다. 윤 대통령은 “무명의 희생과 헌신도 국가의 이름으로 끝까지 챙기고 기억할 것”이라며 “선열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 잃어버리고 위치도 모르는 미국 핵폭탄 적어도 셋, 옛소련은 “비밀”

    잃어버리고 위치도 모르는 미국 핵폭탄 적어도 셋, 옛소련은 “비밀”

    미국이 냉전이 기승을 부리던 1950년대와 60년대에 적어도 세 개의 핵폭탄을 잃어버렸는데 아직껏 정확한 위치조차 모른다는 지난 4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BBC 기사는 충격적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왜 이렇게 무책임하지? 질문들을 퍼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무지했거나 관심이 너무 없었구나 하는 자괴감을 지울 수 없다. 1966년 1월 17일 오전 10시 30분, 스페인의 새우잡이 어민이 하늘에서 흰색 물체가 뭔가를 길게 드리우며 파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거의 같은 시간 근처 팔로라메스 항구의 주민들은 두 개의 거대한 불덩어리가 자신들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건물이 흔들렸고, 파편이 땅에 꽂혔다. 사람들의 신체 일부가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 뒤 몇주 동안 전 세계 신문은 끔찍한 사고를 풍문으로 전했다. 두 대의 미 군 B47 폭격기가 공중에서 충돌해 4개의 B28 열핵폭탄을 떨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세 개의 폭탄은 지상에서 재빨리 회수했는데 하나는 남동쪽 바닷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110만t의 TNT 폭발력과 1.1메가t의 위력을 갖춘 탄두를 찾기 위한 사냥이 시작됐다. 사실 이 사건은 핵무기를 분실한 유일한 사례가 아니다. 보통 핵무기를 분실하면 ‘부러진 화살’(broken arrow)이라고 한다.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다. 지금까지 미국에게는 최소 32건이 있었다. 실수로 떨어뜨리거나 비상상황에 투하한 다음 회수하곤 했다. 하지만 세 개의 미국 핵폭탄은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 1958년 2월 5일 조지아주 타이비 섬 근처에 떨어진 폭탄이 첫 번째였다. 조종사는 안전하게 착륙해야 한다며 기체의 무게를 덜기 위해 핵폭탄을 떨어뜨렸다. 두 번째 핵폭탄은 1965년 12월 5일 미 해군 순양함 티콘데로가 함상에에서 바다로 떨어뜨린 B43 열핵폭탄이었다. 세 번째는 1968년 5월 22일 그린란드 툴레의 미 공군기지에서다. 비행기에 화재가 발생했고, 승무원들은 탈출해야 했으며, 비행기는 핵무기를 탑재한 채 바다에 추락했다.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제임스 마틴 비확산 연구 센터의 동아시아 비확산 프로그램 책임자인 제프리 루이스는 “우리는 대부분 미국 사례에 대해 알고 있는데 전체 목록은 1980년대 미국 국방부의 기밀 해제가 이뤄졌을 때에야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 대해 잘 모른다. 영국이나 프랑스, 러시아, 중국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완벽한 셈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소련의 핵 과거는 특히 흐릿한데 1986년 기준 4만 5000개의 핵무기를 비축하고 있었는데 국가가 핵폭탄을 분실하고도 회수하지 않은 건들이 제법 알려졌다. 미국과 달리 모두 잠수함에서 발생한 점이 특이하다. 해서 접근할 수는 없지만 해당 위치가 알려져 있는 건들이 있다. 1970년 4월 8일에 소련의 K8 원자력 잠수함이 대서양 북동쪽의 위험한 물길인 비스케이 만에서 잠수하는 동안 에어컨 시스템을 통해 화재가 확산됐다. 잠수함에는 4개의 핵어뢰가 탑재돼 있었고 곧바로 침몰했을 때 방사능 화물이 잔뜩 있었다. 1974년에도 소련의 K129 잠수함이 태평양에서 의문의 침몰을 했는데 세 개의 핵미사일이 탑재돼 있었다. 미국은 곧바로 회수하기 위한 비밀 작전(?)을 결정했는데 루이스는 “그 자체로 아주 미친 얘기였다”고 말했다. 조종사와 영화감독 등 다양한 활동으로 유명한 미국의 괴짜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가 갑자기 심해 채굴에 관심을 갖게 된 척했다. 루이스는 “사실은 심해 채굴이 아니라 해저까지 내려가 잠수함을 잡아 다시 들어올릴 수 있도록 작업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아조리안(Azorian) 프로젝트였는데 불행히도 작동하지 않았다. 그 잠수함이 인양되는 과정에 부서져 버린 것이다. 물론 핵무기는 다시 바다 밑바닥으로 떨어져 녹슨 무덤에 갇혀 오늘날까지 그곳에 있을 것이다. 이따금 미국의 잃어버린 핵무기가 발견됐다는 보고가 있었다. 1998년 퇴역 장교 데릭 듀크와 파트너가 40년 전 타이비 섬 근처에 떨어뜨린 폭탄을 찾아내겠다고 결심했다. 두 탐험가는 문제의 조종사와 수십년 동안 폭탄을 수색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대서양 근처 바사우 만으로 수색 범위를 좁혀 몇년 동안 두 사람은 샅샅이 뒤졌고, 그들은 조종사가 지목한 지점에서 다른 곳보다 10배 많은 방사선 패치를 확인하고, 정부에 보고했다. 정부는 즉각 조사팀을 파견했는데 핵무기가 아니었고, 해저 광물에서 나온 방사선 영향인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미국의 잃어버린 수소폭탄 3개와 소련 어뢰 다수가 바닷속에 잠들어 있다.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하는 묘비마냥 보전돼 있지만 대부분 잊혀지고 있다. 왜 우리는 이 모든 불량 무기를 아직도 찾지 못했을까? 폭발할 위험은 없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팔로마레스 폭탄 수색 과정을 장황하게 방송은 소개했다. ‘베이지안 추론’과 최첨단 심해잠수정 알빈(Alvin)을 이용하고 낚싯바늘을 이용해 폭탄을 들어올리는 작업을 했는데 실패를 거듭하다 마침내 성공했다. 잃어버린 세 개의 핵무기가 폭발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방송은 전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초기의 것으로 비키니섬 실험 당시에도 개발자들은 에너지의 연쇄 폭발 반응이 멈출 것이란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1950년대와 60년대 사용된 차세대 핵무기는 중수소와 삼중수소(방사성 수소)를 포함해 수천 배 강력해졌지만 안전장치를 더욱 충실하게 보강했다. 해서 앞의 타이비 섬 상공 9144m 지점에서 B47 폭격기끼리 충돌한 뒤 넓은 지역을 방사성 물질로 오염시켰는데도 핵분열 반응에 필요한 핵 물질을 무기 자체와 분리한 덕에 연쇄 폭발로 이어지지 않았다. 낙하산이 펼쳐져 지상이나 바다와 접촉할 때의 충격을 줄여준다. 나중에는 핵 장치가 활성화되지 않고 꺼지지 않도록 하는 ‘원포인트 안전’ 기능이 더해졌다. 하지만 항상 안전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많은 안전 기능을 갖추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1961년에도 B52 폭격기가 노스캐롤라이나주 골드즈버러 상공을 비행하다가 두 개의 핵무기를 지상에 떨어뜨렸다. 낙하산이 잘 펼쳐쳐 핵무기 하나는 비교적 손상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4개의 안전 장치 중 3개가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1963년 기밀 해제된 문서를 통해 당시 국방장관은 “약간의 기회, 글자 그대로 두 개의 전선이 교차하지 못해 핵폭발을 피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다른 핵폭탄은 땅에 떨어졌고, 그곳에서 부서져 결국 들판에 묻혔다. 대다수 부품은 회수됐지만 우라늄을 함유한 부품 하나는 15m가 넘는 진흙 아래에 남아 공군은 주민들이 흙을 파내는 것을 막기 위해 주변 땅을 매입했다. 어떤 사건은 너무 놀라워 거의 꾸며낸 얘기처럼 들린다. 1965년 티콘데로 함상에서 A4E스카이호크가 B43 핵폭탄을 탑재한 채 비행기 엘리베이터에 잘못 앉혀졌다. 갑판원이 조종사에게 브레이크를 잡으라고 손을 휘저었다. 불행히도 중위였던 조종사는 수신호를 보지 못했고 필리핀해로 사라졌다. 오키나와 근처 수심 4900m 아래에 여전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 루이스는 잃어버린 세 개의 핵폭탄을 끝내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눈으로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고, 블랙박스나 위성위치측정(GPS) 송신 장치가 같은 것도 없기 때문에 또 타이비 섬 수색 때처럼 방사능 스파이크를 찾는 것도 어렵다. 핵폭탄이 실제로 특별히 방사능을 띠지 않기 때문이다.1984년에는 또 다른 소련 핵잠수함 K-278 콤소몰레츠가 노르웨이의 바렌츠 해에서 침몰했다. K8과 마찬가지로 원자력 추진력을 갖고 있으며 핵어뢰 두 발을 탑재하고 있었다. 수십 년째 그 난파선은 북극해 1.7㎞ 아래에 누워 있다. 루이스에게 핵무기 분실 얘기는 그것들이 지닌 잠재적인 위험이 아니라 위험한 발명품을 안전하게 취급하기 위해 겉보기에 정교해 보이는 시스템을 갖췄다고 우리는 자신하지만 실은 취약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핵무기를 다루는 이들은 우리가 아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어떻게든 다르고 실수가 적거나 더 똑똑하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핵무기를 취급하는 조직이 다른 모든 인간 조직과 같아 실수를 저지르고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핵폭탄이 모두 회수된 팔로마레스에서도 토양은 여전히 재래식 폭발물로 터진 방사능으로 오염돼 있다. 토양의 표면을 삽으로 떠 넣은 미군 일부는 정체 모를 암에 걸렸다. 생존자들은 미국 보훈처 장관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했는데 상당수가 70대 후반과 80대다. 루이스는 냉전 기간에 일어난 일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핵폭탄을 탑재한 비행기가 더 이상 비행 훈련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핵잠수함이며, 오늘날에도 아찔한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현재 14척의 탄도미사일잠수함(SSBN)을 운용하고 있으며 프랑스와 영국은 각각 4척을 운용하고 있다. 핵 억지력으로 작동하려면 이 잠수함들은 해상 작전 중 위치가 탐지되지 않아야 한다. 2018년에도 영국 군의 SSBN이 페리에 거의 부딪힐 뻔한 것을 비롯해 많은 사고가 일어났다. 핵무기를 잃어버리는 시대는 끝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방송은 섬뜩한 경고로 마무리했다.
  • 재미 탈북자 “우크라 파병 10만 의용군 최하층 성분일 것”

    재미 탈북자 “우크라 파병 10만 의용군 최하층 성분일 것”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를 돕기 위해 10만명의 북한 의용군을 파병하는 방안이 준비되고 있다는 러시아 국방전문가의 주장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이고르 고로첸코가 러시아 국영 채널원 TV에 출연해 털어놓은 얘기를 미국 일간 뉴욕 포스트가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는데 북한이 러시아에 이런 제안을 했다는 여러 건의 보도를 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은 일절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을 이탈해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370여명 가운데 한 명인 그레이스 조(30, 가명)는 6일 뉴욕에서 격주 발행되는 잡지 내셔널 리뷰와의 인터뷰를 통해 보도된 대로 북한 의용군이 꾸려진다면 가장 낮은 성분 출신들일 것이라며 이들은 정부에 의해 강제로 전장에 끌려가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레이스는 북한에서의 자원(自願) 개념은 미국에서와 완전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정부가 “러시아를 돕기 위해 많은 사람을 보내겠다”고 명령을 내리면 “사회계급 질서” 가운데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먼저 선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성분을 따지는 것인데 51가지 범주로 나눠 세 주요 계급으로 분류된다. 한 사람의 사회정치적 지위가 성분에 의해 결정돼 교육, 군 복무, 주거, 심지어 식품배급에서도 차등이 주어진다. 최하위 계층은 전체 인구의 27%를 차지하는데 “한국전쟁 때 남한을 도운 반동지주나 자본가, 종교인, 정치범들이나 반당분자거나 외부세력에 결탁한 이들의 후손들”이다. 두 남자형제와 아버지를 기근으로 잃은 그레이스는 굶어죽을 지경을 간신히 벗어나 북한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함께 중국에 건너 와 음식을 구하던 언니를 잃었다. 지금은 미국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하며 탈북자들의 미국 정착을 돕기 위해 기획된 반체제(Dissident) 프로젝트에 참여, 학생들에게 사회주의 체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교육한다고 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의용군을 보내려 하는 이유를 묻자 그녀는 러시아가 부모 나라이기 때문에 북한이 거절할 이유가 없으며 두 나라는 밀접한 쌍무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북한은 러시아군이 점령한 동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N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NR)과 동시 수교한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다. 러시아와 시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외교 관계를 맺었다. 결이 약간 다르지만 북한 건설 인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된 돈바스 지역을 재건하는 임무에 파견될 가능성이 있다고 알렉산데르 맛세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는 지난달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았다. 그는 “북한 건설 노동자이야 말로 뛰어난 자격을 갖추고 열심히 일해 가장 힘든 여건에서도 진지하게 일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라며 돈바스의 파괴된 인프라를 재건하는 데 긴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일간 뉴욕 포스트는 다섯 달을 훌쩍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스러진 러시아군 병사가 1만 5000~2만 5000명을 헤아리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더 이상 자국 병사들을 전선으로 보낼 정치적 명분이 바닥 나 쩔쩔 매는 형국에 북한의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이 고로첸코로 하여금 세계 여론을 떠보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북한 의용군을 이른바 ‘대포 밥’(cannon fodder)으로 제공 받으려는 술책이란 것인데 결코 이런 일이 현실이 돼선 안될 것이다.
  • 중국의 ‘하와이’ 싼야시, 깜짝 전면 봉쇄에 관광객 8만명 발동동

    중국의 ‘하와이’ 싼야시, 깜짝 전면 봉쇄에 관광객 8만명 발동동

    중국의 ‘하와이’로 불리는 대표적 관광명소인 하이난다오 싼야(三亞)시가 지난 4일부터 코로나19 확산으로 전면 봉쇄되면서 방문객 8만 명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싼야시 당국은 봉쇄를 단 몇 시간 앞둔 지난 3일 밤 돌연 시 일대에 대한 봉쇄 방침을 공고했고, 이어 6일 오전 6시부터 싼야시 전역에 대한 대대적인 전면 봉쇄를 통보했다. 이 때문에 싼야시 전역의 이동이 제한, 기존의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은 전면 운행을 중단한 상황이다. 또 모든 지역의 주민들은 생필품을 사기 위해 이틀에 한 번 외출이 가능해졌다. 그마저도 각 가정당 1명 만 1시간 이내의 짧은 외출만 허가되며 필수적이지 않은 장소들의 운영은 전면 중단된 상태다. 이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이들은 단연 휴가철을 맞아 싼야를 찾은 외부 방문객들이다. 싼야시 당국은 지난 5일 밤 이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공고문을 발표, “싼야는 전시 상황에 직면했다”면서 “대중들은 당국의 정보에 귀 기울여달라. 핵산 검사 요구에 신속하게 응하고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며 도시를 떠나지 말라”고 강조했다. 또, 허시강 부시장은 6일 오전 브리핑을 갖고 “싼야시에 총 8만 명의 외부 관광객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면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관광객들이 밀집한 장소와 주민들의 밀접 접촉지역에서 주로 확산되고 있어 싼야 베이와 야롱 베이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현재 싼야에 봉쇄돼 외부 탈출 경로가 전면 차단된 관광객들의 동요는 매우 큰 상황으로 보인다. 상당수 관광객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현재 자신들이 강제로 봉쇄돼 있는 상황을 공개하고, 외부로 향하는 항공권을 수소문하는 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상태다. 실제로 중국 중앙방송 CCTV 보도에 따르면 싼야에서 상하이로 향하는 편도 항공권의 가격은 기존 2880위안대였던 것이 봉쇄 이후 1만 5000위안대로 크게 치솟았다. 또 중국 국내 도시들은 싼야행 항공편을 전면 중단했다. 이날 오전부터 베이징과 싼야를 연결하는 직항 노선은 모두 취소됐다. 현재 싼야를 떠나기 위해서는 48시간 이내에 두 차례 검사한 핵산 음성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한편, 싼야시 당국은 지난 1~5일까지 싼야에서 확인된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총 375건으로, 그 중 62건이 무증상 감염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싼야시에는 코로나19 감염 고위험 지역 95곳, 중위험지역 50곳이 지정돼 대부분의 주민들의 이동이 통제된 상태다. 
  • [특파원 칼럼] 대중무역 3개월 연속 적자… 위기 탈출 해법 있나/류지영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대중무역 3개월 연속 적자… 위기 탈출 해법 있나/류지영 베이징 특파원

    지난달 우리나라가 4개월 연속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7월 누적 적자도 150억 달러에 달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133억 달러)을 이미 넘어섰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최대치라고 한다. 대한민국 성장 엔진인 수출에 ‘비상등’이 켜졌다. 베이징에서 지켜보는 기자에게 더 큰 우려는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과의 교역에서도 석 달 연속 적자가 났다는 것이다. 7월 대중 무역은 5억 7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해 5월(-10억 9000만 달러)과 6월(-12억 1000만 달러)에 이어 3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 갔다.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기록한 것은 1992년 8월 두 나라가 수교한 뒤로 처음이다. 한국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만성적인 무역적자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외환보유고 세계 9위’ 국가로 환골탈태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에서의 꾸준한 흑자가 결정적이었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전 세계를 덮친 2008년과 코로나19로 지구촌이 멈췄던 2020~2021년에도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적이 없었다. 수교 이후 지난해까지 29년간 대중국 누적 수출액은 2조 2818억 달러, 수입액은 1조 5754억 달러로, 모두 7064억 달러의 흑자를 거뒀다. 이런 중국과의 교역이 적자로 돌아섰다는 것은 우리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오고 있음을 뜻한다. 대중 무역적자의 직접적인 원인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발생한 원자재 가격 폭등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우리 정부는 글로벌 공급망 교란 등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도시 봉쇄 등으로 중국 경제에 불확실성이 커지자 본토 기업들이 한국산 철강 및 석유화학 제품 수입을 잠시 중단하고 재고부터 소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이 경제 정상화에 속도를 내는 8월부터는 흑자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구조적 문제로 볼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으로 현 상황을 진단하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중국이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 분야에서 빠르게 경쟁력을 키워 서서히 한국산 제품을 밀어내고 있다는 반론도 상당해서다. 중국의 전반적인 기술 수준이 우리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실제로 2018년 556억 달러나 되던 대중 무역흑자는 2019년 290억 달러, 2020년 237억 달러, 2021년 243억 달러 등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가 뚜렷하다. 올해 역시 1~4월 누적 흑자가 65억 달러로 전년에 크게 못 미치다가 5월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상반기 전체로 보면 아직 42억 달러 흑자지만 전년 동기(116억 달러)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코로나19 봉쇄가 아니었어도 ‘대중무역 적자 전환’은 우리가 언젠가 받아들여야 할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중국을 다니다 보면 ‘메이드 인 코리아’가 갈수록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중소기업들의 탈(脫)중국이 줄을 잇고 대기업들 역시 주재원의 수를 줄이고 있다. 반면 중국 업체들의 한국 시장 공략은 시간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이런 구조가 고착화되면 일본에 시달리는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중국에서도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중국이 따라오지 못할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보다 규제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이것이 말처럼 쉬울까. 근본적인 위기 탈출 해법이 요구되는 때다.
  • ’한한령’ 여전 中영화관 흥행 휩쓴 이 영화, 원작은? 조석 작가 웹툰 ‘문유’

    ’한한령’ 여전 中영화관 흥행 휩쓴 이 영화, 원작은? 조석 작가 웹툰 ‘문유’

    조석 작가의 네이버 웹툰 ‘문유’를 원작으로 한 중국 영화 ‘두싱웨추’(独行月球)가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흥행 돌풍 주역이 됐다. 지난 29일 중국 전역 극장을 통해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수익만 무려 3억 위안(약 580억 7400만원)을 기록했다. 중국 영화 예매 사이트 먀오옌(猫眼)은 지난 29일 개봉한 영화 ‘두싱웨추’가 중국 전역 상영관 총 18만 7700곳에서 흥행 돌풍 주역이 됐으며, 이는 중국 국산 영화 중 지난해 2월 개봉 첫날 상영관 18만 7600여곳에서 일시 상영됐던 영화 ‘당인가탐안 3 : 밀실 살인사건’ 상영관 수를 넘은 역대급 사례로 집계했다고 중국 경제전문 제일재경이 30일 보도했다.  영화 ‘두싱웨추’는 조석 작가의 웹툰 ‘문유’를 기반으로 지구가 멸망한 후 달에 홀로 남은 주인공의 우주 적응기와 탈출 등 생존기를 다뤘다. 영화를 상영 중인 다수의 영화관에서는 영화 배경이 되는 달 위의 우주 기지들을 3D로 체험할 수 있는 영화관을 다수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매체 신징바오는 이와 관련해 개봉 전날이었던 28일까지 사전 예매 건수가 58만 7000건을 넘어서 1위를 기록했으며 중국 비평 전문 사이트 도우반(豆瓣)에서 평점 7.3점을 받는 등 하반기 최고 영화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영화는 개봉 일주일 전이었던 지난 22일 오후 1시 11분을 기준으로 사전 예매 건수가 1000건을 넘어선 바 있다. 먀오옌(猫眼)은 올 여름 중국에서 영화 총 25편이 개봉돼 총 43억 6500만 위안(약 8449억 7670만원) 상당 박스오피스 수익을 거둬 들일 것으로 짐작했다. 중국예술연구원 쑨쟈산 부연구원은 “올해 여름 시즌 동안 수익 약 43억 위안을 거두는 등 지난해 같은 시기 대비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무작정 낙관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전염병 확산 상황에 따라 전국 영화관 운영 상황이 유동적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아직 크다”고 전망했다. 먀오옌(猫眼)에 따르면 지난 2~6월 중국 전역 영화관 중 다수의 영화관이 코로나19 사태로 무기한 운영 중지 상황에 직면했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기준, 상하이 소재 영화관의 영업률은 80.5%, 전국 극장 영업률은 70.6%에 그치고 있는 수준이다.
  • [여기는 중국] 홍콩 민주화 인사들 ‘해외 의회’ 설립 움직임

    [여기는 중국] 홍콩 민주화 인사들 ‘해외 의회’ 설립 움직임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 티베트망명정부(CTA)를 세운 지 62년 만에 이번에는 홍콩이 해외 망명 정부를 설립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매체 자유아시아방송은 중국식 국가보안법 등의 탄압을 피해 해외로 도피한 홍콩 민주 활동가들이 최근 해외 각국 있는 민주화 인사들을 규합해 해외 의회를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28일 보도했다.  이들은 티베트망명정부의 형태를 참고해 지난 27일 캐나다 토론토에 ‘홍콩 선거 조직 위원회’를 출범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이어가는 상황이다. 이번에 캐나다 토론토를 기반으로 추진된 해당 위원회 설립 비용은 익명의 기부자로부터 100만 캐나다달러(약 10억 원)의 기부금 받아 해외 망명 정부로의 첫 발을 뗄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기금은 최근 홍콩 정부의 압박을 피해 캐나다로 도피한 바지오 식스투스 렁 전 홍콩 입법회 의원을 통해 위원회에 전달됐으며, 위원회 소속 총 17명의 위원들은 첫 해외 의회 선거를 앞두고 선거 방식과 조직 인원 등에 대해 상세한 토론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이들 위원들은 중국화 된 홍콩의 압박을 피해 영국, 미국, 캐나다 등 세계 각국으로 도피한 민주 활동가들을 규합하고, 홍콩에 남아 있는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홍콩 의회로의 역할을 제공하기 위해 이번 해외 홍콩 의회 설립을 빠르게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지난 2020년 홍콩에 국가보안법이 강제 시행된 이후 전직 야당 의원과 학자, 언론인 드 다수의 해외 도피 민주화 인사들이 이번 의회 설립에 한 목소리로 뜻을 모으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의회가 가진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가 모아졌다. 다만 국가보안법 상 체제 전복 등의 혐의로 수감, 구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홍콩에 거주 중인 홍콩 주민들의 이번 의회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더욱이 해외에 근거지를 두고 운영될 것이라는 점에서 홍콩과 관련한 실질적인 권한을 갖기 어렵지만, 상징적인 의미에서 홍콩 민주화 인사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한편, 지난해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통과된 홍콩 선거법 개정안에 따라 ‘애국자치항’(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린다)의 원칙이 홍콩에 팽배한 상태다. 사실상 민주진영 인사들의 공직 선거 출마가 제한되면서 지난해 12월 치러진 입법회(의회) 선거는 친중 후보들만의 잔치가 됐다는 평가를 피하지 못했다.  이로 인한 민주화 인사들의 좌절감은 ‘엑소더스(탈출)’ 현상으로 이어졌다. 홍콩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1년 동안 약 9만 명이 해외로 이주했다. 또 2019년부터 최근까지 영국해외시민(BNO) 여권을 발급받은 홍콩인만 54만여 명에 달한다.
  • 충무공 전승 도운 척후장… 왜군 포로 됐다가 탈출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충무공 전승 도운 척후장… 왜군 포로 됐다가 탈출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 소속의 5개 수군진 가운데 사도진과 방답진은 종3품의 첨절제사가 지휘하는 거진(巨鎭), 곧 핵심 수군기지였다. 오늘날의 여수 돌산도에 있었던 방답진이 좌수영을 방어하는 역할이라면 사도진은 여도진·발포진·녹도진을 거느리고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고흥반도를 지켰다. 사도첨사 김완은 조선수군의 첫 번째 승전인 옥포해전부터 척후장으로 출전해 왜적의 위치와 선단의 규모를 기선(旗船)에 알리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함으로써 이순신 수군이 전승을 거두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완은 훗날 칠천량해전에서 왜군의 포로가 돼 일본에 끌려갔다가 탈출하기도 했다. 사도진의 옛터는 이제 한적한 시골 어항(漁港)이 됐다. 전남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 사도마을이다. 전선(戰船) 정박지였을 마을 앞바다에는 작은 고기잡이배들만 한가롭다. 전라좌수영의 대표적 수군기지로 제법 큰 규모의 진성(鎭城)도 있었다지만 자취는 간데없다. 마을 보건지소 앞에 있는 첨절제사 선정비가 유일한 흔적인데 이것조차 비바람에 깎여 주인공을 알 수가 없다. 다만 금사리(錦蛇里)라는 마을 이름이 사도진(蛇渡鎭)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최근 ‘사도진해안길’이라는 길 이름이 붙여지면서 사도진 터를 찾아가기가 쉬워졌고 역사도 조금은 살아나고 있는 느낌이다.●전라좌수영 대표 기지·진성 흔적 없어 그런 만큼 옛 사도진의 복원 작업에 시동이 걸린다면 새로운 역사관광 자원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리호 발사로 크게 각광받고 있는 나로우주센터가 가깝고, 총길이 3462m에 이르는 해창만방조제는 바로 금사리에서 시작한다. 방조제 둑에는 오토캠핑장, 야외 공연장, 산책로로 이루어진 해창만간척지공원이 조성됐으니 나로우주센터와 짝을 이루는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간척지 둑을 사이에 두고 앞에는 바다, 뒤로는 담수호가 펼쳐져 있어 낚시인들도 즐겨 찾는다. 사도첨사 김완(金浣·1546~1607)은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1554~1611)과 품계는 같고 나이는 8살이나 많았다. 그럼에도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1545~1598)은 사도첨사 김완이 아닌 방답첨사 이순신에게 좌수영 5개 수군진의 선임을 맡겼다. 충무공이 좌수사에 부임하고 전란을 대비하는 과정에서 사도첨사 김완을 그리 미덥지 않게 생각했다는 것은 ‘난중일기’를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임진년 2월 충무공의 관내 순시는 휘하 지휘관의 전쟁 준비 태세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충무공은 25일자 ‘난중일기’에 ‘여러 가지 전쟁 준비와 관련해 (사도진에) 결함이 많이 보여 군관과 관리들에게 벌을 주었고, 첨사는 잡아들이고 교수는 내보냈다’고 적었다. 교수(敎授)는 향교에서 생도를 가르치는 지방관의 보좌관이다. 충무공은 ‘사도진의 방비가 다섯 포구 중 가장 못하건만 관찰사가 표창하는 공문서를 올렸기에 죄상을 검사하지 못하니 참으로 기가 막혀 웃을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3월 20일자 일기에도 김완에 대한 불신은 이어졌다. 충무공은 관내를 돌아보라는 명령을 제 기한에 따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순천부 책임자들을 벌주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사도첨사 김완은 혼자서 수색했다면서 반나절 동안 나로도 안팎과 대평도 및 소평도를 모두 수색하고 그날로 포구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엉뚱한 거짓말이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자 흥양현감과 사도첨사에게 문의하는 공문서를 보냈다’고 적었다. 그리고 ‘몸이 몹시 안 좋아 일찍 들어왔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당시 전라도관찰사는 이광(1541~1607)이다. 왜란 개전 이후 4만의 전라도 군사를 근왕병으로 이끌고 북상하다가 경기도 용인에서 소수 왜적의 기습을 받고 패퇴한 인물이다. 그의 이력을 보면 1589년 전라도관찰사에 한번 올랐다가 파직되고 1591년 다시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됐다. 1589년이라면 김완이 사도진첨절제사에 임명된 시기이기도 하다. 김완과 이광 사이에는 기록에 남지 않은 무언가 끈끈한 관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제 할 일을 태만히 하는 부하를 가장 싫어하는 충무공이다. 게다가 태만의 배경에 상급자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사도첨사와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김완 쪽에서 봐도 충무공은 적극적으로 모시기에는 떨떠름한 상관이 아닐 수 없었다. 김완이 종3품 사도첨사에 제수된 그해 이순신은 종6품 정읍현감이었다. 충무공은 일찌감치 1580~1582년 전라좌수영에서 18개월 동안 종4품 발포만호를 지냈으니 10년 가까이 지난 이후 전라좌수사에 오른 것을 ‘벼락출세’라고 할 수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김완이 느꼈을 갈등은 오늘날에도 흔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충무공은 ‘난중일기’ 앞쪽에서는 좀처럼 김완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진년 9월 이후가 되면 권준이나 어영담, 방답첨사 이순신에 버금가게 김완과 활을 쏘거나 술을 마셨다는 언급이 잦아진다. 1594년(갑인년) 어느 날 일기에는 ‘경수(景受·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이순신, 순천부사 권준, 발포만호 황정록, 사도첨사 김완과 함께 사인암에 올라 하루 종일 취해서 이야기하다 돌아왔다’는 내용도 보인다. 충무공과 깊이 교감하는 참모로 탈바꿈하고 있는 모습이다.●1595년 충무공 장계, 조방장으로 승진 김완은 전쟁 준비 기간 신뢰를 받지 못했던 자신의 이미지를 전장(戰場)에서 바꿀 수 있었다. 충무공과의 관계 개선도 급속히 이루어졌다. 이순신이 첫 전투인 옥포해전에서 승리한 뒤 조정에 올린 ‘옥포파왜병장’(玉浦破倭兵狀)에 이런 대목이 있다. ‘5월 7일 새벽 출정해 천성, 가덕으로 가다가 옥포 앞바다에 이르니, 우척후장 사도첨사 김완과 여도권관 김인영이 신기전을 쏘아 사변이 났음을 보고하므로, 여러 장수들에게 “덤벙대지 말라. 태산같이 침착하라”고 엄하게 명령하고는 대열을 갖추어 일제히 나아갔습니다.’ 이어 충무공은 휘하 장수들의 공로를 나열하면서 ‘사도첨사 김완은 왜대선 1척을, 여도권관 김인영은 왜중선 1척을 각각 당파했다’고 했다. 김완이 척후 역할에 그치지 않고 적선을 공격해 작지 않은 전공을 세운 것을 알 수 있다. 당파(撞破)는 포격을 가해 적선을 분쇄한 것을 뜻한다. 김완은 이어진 한산도대첩과 부산포해전을 비롯해 이순신의 주요 해전에서 척후장으로 활약했고 1595년에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장계로 조방장(助防將)으로 승진했다. 조방장이란 통제사나 절도사를 보좌해 적의 침입을 막아 내는 역할을 하는 장수다.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1597년에는 겸직으로 거제도 복병도장(伏兵都將)을 맡아 도장포와 다대포의 왜적을 격파하기도 했다. 복병도장은 적이 지나는 길목에 포진하고 있다가 기습하는 해상 게릴라부대 총대장을 뜻하는 듯하다. 거제도와 북쪽 칠천도 사이에서 벌어진 칠천량해전은 1597년 7월 15일에 벌어졌다. 선조실록은 ‘원균을 비롯해 패주한 장수들의 처벌 문제를 논의하다’라는 기사에서 ‘칠천량해전의 수군 장수들은 힘을 겨루며 싸우다가 패멸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나 죽은 자나 모두 달아나기에 바빴던 사람들’이라면서 ‘중론을 참고해 보니 힘을 다하여 싸우다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전사한 자는 조방장 김완뿐’이라는 도체찰사 이원익의 발언 내용이 실려 있다. 당시 김완이 분전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김완은 왜적과 싸우며 수세에 몰리자 자결하고자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포로가 됐다. 김완은 전후의 이야기를 ‘용사일록’(龍蛇日錄)이라는 일기체 회고담에 담았는데, 대마도(對馬島)와 일기도(日岐島), 낭고야(浪古也)를 거쳐 곡고라(曲高羅)의 감시인 집에 감금됐다고 했다. 낭고야와 곡고라는 나고야(名護屋)와 고쿠라(小倉)의 음차 표기다. 그는 1598년 1월 일본에서 탈출한 뒤 4월 18일 다대포에 이르렀고, 4월 29일 양산에 도착해 군수 박응창이 순찰사에게 보고하니 선조에게 상세한 내용의 장계가 올라갔다. 선조는 ‘동방의 소무’라는 뜻으로 ‘해동소무’(海東蘇武)라 쓴 어필과 함안군수 벼슬을 내렸다. 소무(蘇武)는 중국 전한시대 흉노에 붙잡혀 복속을 강요당했으나 굴하지 않아 바이칼호 주변에 19년 동안 유폐됐다 돌아온 인물이라고 한다. ‘용사일록’의 내용은 김완의 후손들이 1918년 간행한 ‘해소실기’(海蘇實紀)에도 담겼다. 무덤은 고향인 경북 영천시 자양면 노항리에 있다.
  • 칠천량해전 홀로 분전, 포로되어 끌려간 일본에서 탈출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칠천량해전 홀로 분전, 포로되어 끌려간 일본에서 탈출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 소속의 5개 수군진 가운데 사도진과 방답진은 종3품의 첨절제사가 지휘하는 거진(巨鎭), 곧 핵심 수군기지였다. 오늘날의 여수 돌산도에 있었던 방답진이 좌수영을 방어하는 역할이라면 사도진은 여도진·발포진·녹도진을 거느리고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고흥반도를 지켰다. 사도첨사 김완은 조선수군이 첫번째 승전인 옥포해전부터 척후장으로 출전해 왜적의 위치와 선단의 규모를 기선(旗船)에 알리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 이순신 수군이 전승을 거두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완은 훗날 칠천량해전에서 왜군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다가 탈출하기도 했다.  사도진의 옛터는 이제 한적한 시골 어항(漁港)이 됐다. 전남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 사도마을이다. 전선(戰船) 정박지였을 마을 앞바다에는 작은 고기잡이배들만 한가롭다. 전라좌수영의 대표적 수군기지로 제법 큰 규모의 진성(鎭城)도 있었다지만 자취는 간데 없다. 마을 보건지소 앞에 있는 첨절제사 선정비가 유일한 흔적인데 이것조차 비바람에 깎여 주인공을 알 수가 없다. 다만 금사리(錦蛇里)라는 마을이름이 사도진(蛇渡鎭)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최근 ‘사도진해안길’이라는 길이름이 붙여지면서 사도진 터를 찾아가기가 쉬워졌고 역사도 조금은 살아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 만큼 옛 사도진의 복원 작업에 시동이 걸린다면 새로운 역사관광 자원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리호 발사로 크게 각광받고 있는 나로우주센터가 가깝고, 총길이 3462m에 이르는 해창만방조제는 바로 금사리에서 시작한다. 방조제 둑에는 오토캠핑장, 야외 공연장, 산책로로 이루어진 해창만간척지공원이 조성됐으니 나로우주센터와 짝을 이루는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간척지 둑을 사이에 두고 앞에는 바다, 뒤로는 담수호가 펼쳐져 있어 낚시인들도 즐겨 찾는다.  사도첨사 김완(金浣·1546~1607)은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1554~1611)과 품계는 같고 나이는 8살이나 많았다. 그럼에도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1545~1598)은 사도첨사 김완이 아닌 방답첨사 이순신에게 좌수영 5개 수군진의 선임을 맡겼다. 충무공이 좌수사에 부임하고 전란을 대비하는 과정에서 사도첨사 김완을 그리 미덥지 않게 생각했다는 것은 ‘난중일기’를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임진년 2월 충무공의 관내 순시는 휘하 지휘관의 전쟁 준비 태세를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충무공은 25일자 ‘난중일기’에 ‘여러가지 전쟁 준비와 관련해 (사도진에) 결함이 많이 보여 군관과 관리들에게 벌을 주었고, 첨사는 잡아들이고 교수는 내보냈다’고 적었다. 교수(敎授)는 향교에서 생도를 가르치는 지방관의 보좌관이다. 충무공은 ‘사도진의 방비가 다섯 포구 중 가장 못하건만 관찰사가 표창하는 공문서를 올렸기에 죄상을 검사하지 못하니 참으로 기가 막혀 웃을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3월 20일자 일기에도 김완에 대한 불신은 이어졌다. 충무공은 관내를 돌아보라는 명령을 제 기한에 따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순천부 책임자들을 벌주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사도첨사 김완은 혼자서 수색했다면서 반나절동안 나로도 안팎과 대평도 및 소평도를 모두 수색하고 그날로 포구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엉뚱한 거짓말이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자 흥양현감과 사도첨사에게 문의하는 공문서를 보냈다’고 적었다. 그리고는 ‘몸이 몹시 안좋아 일찍 들어왔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당시 전라도관찰사는 이광(1541~1607)이다. 왜란 개전 이후 4만의 전라도 군사를 근왕병으로 이끌고 북상하다가 경기도 용인에서 소수 왜적의 기습을 받고 패퇴한 인물이다. 그의 이력을 보면 1589년 전라도관찰사에 한번 올랐다가 파직되고 1591년 다시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됐다. 1589년이라면 김완이 사도진첨절제사에 임명된 시기이기도 하다. 김완과 이광 사이에는 기록에 남지 않은 무언가 끈끈한 관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제 할 일을 태만히 하는 부하를 가장 싫어하는 충무공이다. 게다가 태만의 배경에 상급자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사도첨사와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김완 쪽에서 봐도 충무공은 적극적으로 모시기에는 떨떠름한 상관이 아닐 수 없었다. 김완이 종3품 사도첨사에 제수된 그해 이순신은 종6품 정읍현감이었다. 충무공은 일찌감치 1580~1582년 전라좌수영에서 18개월동안 종4품 발포만호를 지냈으니 10년 가까이 지난 이후 전라좌수사에 오른 것을 ‘벼락출세’라고 할 수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김완이 느꼈을 갈등은 오늘날에도 흔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충무공은 ‘난중일기’ 앞쪽에서는 좀처럼 김완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진년 9월 이후가 되면 권준이나 어영담, 방답첨사 이순신에 버금가게 김완과 활을 쏘거니 술을 마셨다는 언급이 잦아진다. 1594년(갑인년) 어느 날 일기에는 ‘경수(景受·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이순신, 순천부사 권준, 발포만호 황정록, 사도첨사 김완과 함께 사인암에 올라 하루 종일 취해서 이야기하다 돌아왔다’는 내용도 보인다. 충무공과 깊이 교감하는 참모로 탈바꿈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완은 전쟁 준비기간 신뢰를 받지 못했던 자신의 이미지를 전장(戰場)에서 바꿀 수 있었다. 충무공과 관계 개선도 급속히 이루어졌다. 이순신이 첫 전투인 옥포해전에서 승리한 뒤 조정에 올린 ‘옥포파왜병장’(玉浦破倭兵狀)에 이런 대목이 있다. ‘5월 7일 새벽 출정해 천성, 가덕으로 가다가 옥포 앞바다에 이르니, 우척후장 사도첨사 김완과 여도권관 김인영이 신기전을 쏘아 사변이 났음을 보고하므로, 여러 장수들에게, “덤벙대지 말라. 태산같이 침착하라”하고 엄하게 명령하고는 대열을 갖추어 일제히 나아갔습니다.’ 이어 충무공은 휘하 장수들의 공로를 나열하면서 ‘사도첨사 김완은 왜대선 1척을, 여도권관 김인영은 왜중선 1척을 각각 당파했다’고 했다. 김완이 척후 역할에 그치지 않고 적선을 공격해 작지 않은 전공을 세운 것을 알 수 있다. 당파(撞破)는 포격을 가해 적선을 분쇄한 것을 뜻한다. 김완은 이어진 한산도 대첩과 부산포 해전을 비롯해 이순신의 주요 해전에서 척후장으로 활약했고, 1595년에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장계로 조방장으로 승진했다. 조방장(助防將)이란 통제사나 절도사를 보좌해 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역할을 하는 장수다.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1597년에는 겸직으로 거제도 복병도장을 맡아 도장포와 다대포의 왜적을 격파하기도 했다. 복병도장(伏兵都將)은 적이 지나는 길목에 포진하고 있다가 기습하는 해상 게릴라부대 총대장을 뜻하는 듯하다.  거제도와 북쪽 칠천도 사이에서 벌어진 칠천량해전은 1597년 7월 15일에 벌어졌다. 선조실록은 ‘원균을 비롯해 패주한 장수들의 처벌 문제를 논의하다’는 기사에서 ‘칠천량패전의 수군 장수들은 힘을 겨루며 싸우다가 패멸된 것이 아니라 살아 남은 자나 죽은 자나 모두 달아나기에 바빴던 사람들’이라면서 ‘중론을 참고해 보니 힘을 다하여 싸우다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전사한 자는 조방장 김완 뿐’이라는 도체찰사 이원익의 발언 내용이 실려있다. 당시 김완이 분전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김완은 왜적과 싸우며 수세에 몰리자 자결하고자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포로가 됐다. 김완은 전후의 이야기를 ‘용사일록’(龍蛇日錄)이라는 일기체 회고담에 담았는데, 대마도(對馬島)와 일기도(日岐島), 낭고야(浪古也)를 거쳐 곡고라(曲高羅)의 감시인 집에 감금됐다고 했다. 낭고야와 곡고라는 나고야(名護屋)와 고쿠라(小倉)의 음차 표기다. 그는 1598년 1월 일본에서 탈출한 뒤 4월 18일 다대포에 이르렀고, 4월 29일 양산에 도착해 군수 박응창이 순찰사에게 보고하니 선조에게 상세한 내용의 장계가 올라갔다. 선조는 ‘동방의 소무’라는 뜻으로 ‘해동소무’(海東蘇武)라 쓴 어필과 함안군수 벼슬을 내렸다. 소무(蘇武)는 중국 전한시대 흉노에 붙잡혀 복속을 강요당했으나 굴하지 않아 바이칼호 주변에 19년동안 유폐됐다 돌아온 인물이라고 한다. ‘용사일록’의 내용은 김완의 후손들이 1918년 간행한 해소실기(海蘇實紀)에도 담겼다. 무덤은 고향인 경북 영천시 자양면 노항리에 있다.
  • 中 난징대학살 주범을…日 ‘A급 전범’ 기리는 위패 봉안한 中 사찰 폐쇄

    中 난징대학살 주범을…日 ‘A급 전범’ 기리는 위패 봉안한 中 사찰 폐쇄

    중일전쟁 당시 30만 명의 중국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일본군 전범들의 위패를 봉안해 온 사찰이 논란이 있은 지 하루 만에 사찰 현판이 내려졌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관찰자망은 23일 관할 난징시 정부가 최근 일본군 위패 문제로 논란이 된 난징의 쉬안짱(현장사)사의 주지 스님과 책임자, 담당 공무원 전원을 면직하는 징계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전날 한 누리꾼의 폭로로 난징대학살의 주범인 마쓰이 이와네 등 일본군 전범 4명의 위패가 사찰에 봉안돼 있던 사실이 공개된 지 단 하루만에 나온 발 빠른 조치다. 그는 1937년 12월 1일 난징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12일 오후 5시경 국민당 난징 수비 부대가 도시를 버리고 탈출한 직후 난징에 남겨진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량학살을 명령한 인물이다. 곧 일본군의 무자비한 대학살로 최대 35만 명이 희생된 난징대학살의 주범을 현지 사찰이 위패로 모신 셈이다. 이와 함께, 사찰에 돈을 내고 일본 전범 위패 봉안을 의뢰한 인물로 ‘우야핑’이라는 실명의 한 남성이 지목됐다. 관할 경찰 측은 우야핑이라는 남성이 지난 2018년 수백만 원의 봉안비를 지불해 위패 봉안을 의뢰했다는 점에 주목해 그를 추적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난징시 역시 해당 인물을 색출해 철저한 추가 진상 조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뿐만 아니라, 관할 정부와 현지 매체들은 이번 사태의 주요 책임자로 지목된 사찰 주지 촨전스님의 각종 부당 이득 혐의도 연이어 공개했다. 현지 매체는 ‘사찰 주지인 촨전스님은 과거 난징시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 출신이라는 점을 악용해 고위 관료 출신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친분을 과시해왔다’면서 ‘하지만 그가 금전 문제로 여러 차례 송사에 휘말렸으며, 서화를 고가에 판매한 혐의로 관광객들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등 구설수가 있는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보도에 따르면, 촨전스님은 난징의 또 다른 사찰의 주지로 이름을 올린 인물로, 여행사와 엔터테인먼트회사, 식품공장 등 총 4곳의 민간 업체를 직접 운영하며 일부 업체에는 고위 임원으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한편, 논란이 된 사찰 쉬안짱(현장사)사는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온 당나라 고승 현장법사의 사리를 봉안한 곳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난징시와 장쑤성은 쉬안짱사를 제1청소년 애국주의 교육기지로 지정해 청소년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 발생 단 하루 만에 관할 정부는 쉬안짱사의 ‘제1청소년 애국주의 교육기지’로의 기능을 폐쇄한 상태다. 
  • ‘탈(脫) 홍콩’ 이민 열풍에 ‘청년 취업 문 열렸다’ 환호한 홍콩 당국

    ‘탈(脫) 홍콩’ 이민 열풍에 ‘청년 취업 문 열렸다’ 환호한 홍콩 당국

    강력한 중국식 제로코로나 정책과 홍콩판 국가안보법을 강행하는 홍콩을 탈출하려는 사례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는 상황에서 홍콩 당국이 ‘이때가 바로 청년 취업자들에게 절호의 취업 기회’라는 전망을 내놓아 비판을 받고있다. 홍콩 매체 더 스탠다드는 최근 이민 열풍 등 홍콩을 떠나는 시민들로 인해 일자리 공석이 증가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홍콩 인사부 한 임원이 “홍콩 청년 취업자들에게 오히려 낙관적인 취업 기회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22일 보도했다. 최근 들어와 홍콩은 국가안보법 시행과 제로코로나 강제, 중국판 애국주의 교육 등의 논란으로 매년 10~20대 인구 수가 크게 감소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된 상태다. 전통적으로 홍콩 학교들은 공립학교와 국제학교, 대학교 등을 불문하고 모두 입학 경쟁이 치열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홍콩의 이민 물결 속에서 각 학교가 학생 수 감소로 신음하는 상태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친중적인 목소리를 내 왔던 홍콩 당국과 전문가들은 오히려 청년 취업 기회가 확대됐다는 등의 지나친 낙관론을 내놓는 분위기다. 왓슨 컨설팅 쑨 랩만 이사는 더 스탠다드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홍콩의 청년 취업자들의 취업 성공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민 열풍 등으로 인해 현재 홍콩 일자리에 많은 공석이 생겼고, 청년 취업이 이전과 비교해 분명히 쉬워진 것을 사실이다. 많은 수의 졸업생들이 3~5월 중 취업 시장의 문을 두들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교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의 직군에서는 고용률이 90% 이상 치솟을 것으로 전망됐다. 또, 일부 이 분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경찰력과 출입국 관리부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인력 채용에 나섰기 때문에 공공 부문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한편, 이 같은 전망이 잇따라 공개되자 홍콩 누리꾼들은 “실력자들은 다 떠나고 남은 공석에 경험과 경력이 없는 미숙한 사회 초년생들이 들어간다면 그 회사는 이전과 같은 회사라고 볼 수 없다”면서 “아시아 허브로의 기능을 했던 홍콩은 다 옛말이 됐다. 그때의 위상을 홍콩에게 기대하는 것은 사치다”고 우려했다. 
  • 中 난징대학살 사찰에…日 ‘A급 전범’ 기리는 위패 발견 논란

    中 난징대학살 사찰에…日 ‘A급 전범’ 기리는 위패 발견 논란

    일본군의 무자비한 대학살로 최대 35만 명이 희생된 중국 난징에 일본 전범을 기리는 사원이 몰래 운영되고 있던 사실이 발각됐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중국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중국인을 대상으로 강간, 방화 등을 자행한 학살 사건이다. 중국 장쑤성 난징시 동북부의 쉬안우구 미족종교사무국은 공식 웨이보 채널을 통해 사찰인 쉬안장사에 봉안된 위패 중 일본 전범의 것 5개가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고 22일 공개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미 일본 전범을 기리는 위패가 있다는 신고는 지난 2월 이미 한 차례 관할 경찰서에 신고된 바 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에 의해 해당 사찰 측은 시정 조치를 받았지만, 이번에 또 한 번 전범 위패 논란을 불러 일으키면서 중국인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 사찰은 난징 지우화산 공원 안 쉬안장사로 총 4명의 일본군 전범의 위패가 보기 좋게 봉안된 상태다. 4명의 일본 전범 중 한 명은 난징대학살의 주범인 A급 전범 마쓰이 이시네로 알려졌다. 마쓰이 이시네는 난징대학살 당시 일본군 육군 대장으로 1937~1938년 일본군을 이끌고 난징을 침략해 난징대학살의 주범으로 지목된 전범이다.그는 1937년 12월 1일 난징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12일 오후 5시경 국민당 난징 수비 부대가 도시를 버리고 탈출한 직후 난징에 남겨진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량학살을 명령한 인물이다. 당시 잔혹했던 상항과 관련해 중국 매체 관찰자망은 ‘일본군의 칼에 무참히 학살당했던 난징 주민들의 시신을 쌓으니 작은 산을 이루었다. 난징에서 살인 경진대회가 열렸다’는 내용의 1938년 1월 25일 외신 기록을 보도했다. 또, 이 매체는 ‘난징대학살 명령이 내려진 지 불과 72시간 만에 무고한 난징 주민 3만 구의 시신이 도심 일대에서 발견됐으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여성들이 일본군에게 강간 당한 뒤 살해됐다’면서 ‘당시 일본군은 난징에서 총 28건의 대학살을 벌여 19만 명의 중국인을 학살했고, 산발적인 규모로 학살을 자행한 것만 858건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위패들의 주인은 2급 전범 야타니 히사오, 노다 다케시 가즈미, 다나카 군요시 등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안에 대해 쉬안우구 민족종교사무국은 사찰을 정비하고, 민족 감정에 위배되는 행위를 끝까지 추적해 조치할 것이라고 강력한 고발 의사를 밝힌 상태다. 한편, 난징대학살의 현장인 난징시의 한 사찰에 일본군 전범 위패가 모셔진 사실이 공개되자 현지 누리꾼들은 크게 분노하는 분위기다. 한 누리꾼은 "대체 누가 그들의 위패를 절에 모시는 것을 허락했으며, 얼마 동안 위패가 있었는지, 또 이 사찰을 최종 관리 감독하는 기관과 담당자는 누군이지 반드시 찾아내서 그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며 격분했다. 
  • 중국의 역대급 기상 재해…폭우로 가로수 300그루 뽑혀 날아가

    중국의 역대급 기상 재해…폭우로 가로수 300그루 뽑혀 날아가

    한낮 기온 40도를 웃도는 폭염이 한 달째 계속되고 있는 중국에서 이번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중국 매체 극목신문은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간) 오후부터 자정까지 중국 동북부 랴오닝성(省) 선양시(市) 일대에 폭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시내 중심가 일부가 침수되고 가로수 300그루가 일제히 쓰러지거나 뽑혔다고 15일 보도했다.  선양에 내린 폭우로 쓰러진 가로수들로 인해 도로 위에 주차돼 있었던 자동차 수십 여대가 부서지고 훼손됐다. 인명 피해와 관련한 내용은 아직까지 보도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 14일 오후 갑자기 쏟아진 폭우는 단 11시간 만에 선양시 일대에 300mm 넘게 내리면서, 선양시 일부 주택가는 완전히 물에 잠겼다. 또, 선양시 남북을 오가는 간선도로 칭녠다제의 여러 구간과 시내 주요 도로와 차량이 물에 잠겨 차량 안에 있었던 운전자들이 탈출하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선양시 기상서비스세터는 지난 14일 오후 5시부터 15일 0시까지 이 일대에 시간당 최대 80.9mm의 폭우가 내렸으며 이로 인해 폭우 강풍주의보 최고 등급인 13단계 경보를 발부했다고 밝혔다. 폭우 강풍주의보 13단계 경보는 이 지역에 기상국이 설립된 지난 195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때문에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홀로 집에 고립됐던 주민들이 급히 구출됐고, 물에 잠기 도로에 멈춰선 통학 버스에서 학생들이 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빠져나온 사례 등이 현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7일에도 선양시를 중심으로 쏟아진 폭우로 인해 도심 외곽의 논밭과 농장 등이 완전히 물에 잠겨 농민들의 피해가 컸다. 당시 폭우로 선양시 소방구조대는 물에 빠져 생명이 위독했던 주민 28명을 구조해 인근 병원으로 급히 이송한 바 있다.  한편, 선양시 도시관리부서 관계자는 “현재 폭우와 강풍으로 인해 뽑힌 가로수는 약 300여 그루에 달한다”면서 “대부분 공원 인근과 도심을 가로지르는 도로에 있던 수목들로 가로수가 넘어져 인근 차를 부순 사례가 상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했다. 
  • 인류는 모두 노마드… 북극이 ‘약속의 땅’ 될 수도

    인류는 모두 노마드… 북극이 ‘약속의 땅’ 될 수도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의 평균)은 0.8명으로 5년 연속 최저치를 경신했다. 역대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를 막기 위해 15년간 400조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생산 가능 인구 감소와 성장률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출산율 제고만이 해법일까.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했던 국제관계 전문가 파라그 카나는 ‘대이동의 시대’에서 앞으로의 인류 문명은 국가·민족의 배타적 공동체를 넘어서 유목본능을 되살린 ‘이동’이 생존의 필수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저출산 고령화는 한국뿐 아니라 어느 정도 부를 쌓아 올린 국가들 공통의 문제다. 현재 일본은 해마다 50만명의 인구가 줄어들고, 중국은 향후 10년 내 인구가 정점에 도달한 이후 감소하고 2040년에는 노년층 숫자가 15세 미만 인구의 2배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연금과 노인 요양 지출이 증가하며 노동력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대이동의 시대 파라그 카나 지음/박홍경 옮김 비즈니스맵 펴냄/448쪽/1만 9000원 하지만 저자는 지난 6만년간 인류가 자원과 안정적 환경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조상의 이주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사회의 밑바탕이 되는 생물학적·문화적·사회적 다양성을 누리고 있다. 기후변화가 인류의 존폐를 위협하는 위기로 치닫고 경제가 붕괴하면서 이제 더 나은 삶과 정치 체제를 찾으려는 이주민의 수용은 불가피해졌다. 현재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냉전이 막을 내린 이후 30년 안에 태어났다. 대다수가 MZ세대인 이들에게 ‘민족 국가’ 개념은 예전 같지 않고 물리적·디지털 접근성 측면에서 이동성이 강한 집단이다. 이주민이 현지 사회에 동화되지 않을 우려가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유럽에 도착하는 무슬림이 이슬람교를 버리고 독일의 모스크에서는 동성애자를 환영하는 등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인도인·베트남인도 독일인이 되는 만큼 독일에선 ‘독일인다움이 어떤 의미인가’를 놓고 진지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 단일 민족이란 환상을 벗어난 ‘잡종 인류’는 이제 필연이다. 그렇다면, 현재 서른 살 미만의 세계인들은 지금부터 2050년까지 주로 어디로 이동하게 될까. 기후변화로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농지가 사막화되고 경제가 파탄 상태에 빠지면서 북반구 국가로 이동하고,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에서는 해수면 상승으로 더 많은 인구가 탈출할 것이다. 북미와 아시아 해안 지대가 침수되면서 내륙으로 중심축이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인간은 가장 비옥하고 살기 좋은 북위 25~45도에 많이 몰렸지만, 저자는 기후변화로 기온과 인구 밀도가 낮은 북극으로 인류가 대거 이동할 가능성도 제시한다. 수십년에 걸쳐 캐나다의 북쪽과 그린란드,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스텝 지대에 이르기까지 이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던 지역에 신도시 수십개가 조성될 가능성을 점치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유럽으로 이주하는 미국인이 100만명을 넘어선 현실에 주목한다. 유럽의 공공안전, 저렴한 의료 서비스, 소비자 친화적 규제, 고용 정책의 혜택보다 열위에 있는 미국이 매력을 잃고 있음을 경고한다. 전 세계가 청년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을 시작한 만큼 안정성과 복지 혜택이 주요 변수가 됐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유목과 농업사회(문명 1.0), 산업화(문명 2.0)를 넘어 이동과 지속 가능성이 필요한 ‘문명 3.0’ 시대를 맞아 인류가 보다 광범위한 지역으로 흩어질 것으로 예측한다. 아시아인은 해안 대도시에서 히말라야산맥, 중앙아시아, 러시아의 광활한 동쪽 지역으로 퍼져 나간다. 이주가 증가하면 선진국과 빈국의 간극이 메워지면서 세계가 집단적으로 가난해지거나 불평등해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현재는 각국이 이주민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논쟁을 벌이지만, 미래에는 새로운 이주민을 흡수할 수 있는 역량에 주목할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21세기 한국은 이주민들에게 어떤 매력이 있는 나라일까. 정부가 ‘이민청’ 신설을 검토하는 상황에서 저자가 우리에게 되묻는 듯하다.
  • 통일부 “탈북어민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강제북송 분명히 잘못”(종합)

    통일부 “탈북어민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강제북송 분명히 잘못”(종합)

    2019년 11월 탈북어민 살해 혐의 관련 “당시 국가안보실 요구로 브리핑 진행”文정부 당시 탈북민 2명 판문점으로 北추방통일부가 11일 문재인 정부 시절 발생한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과 관련, “탈북 어민은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당시 북송 조치는 잘못됐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조중훈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2019년 11월 발생한 이 사건과 관련해 당시 정부 대응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묻자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 통일부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조 대변인은 “다만 통일부는 탈북 어민이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고, 북한으로 넘겼을 경우에 받게 될 여러 가지의 피해를 생각한다면 탈북 어민의 북송은 분명하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선원들 보호 요청 취지 서면 제출”당시 北어민 귀순의사 통일부 인지 당시 탈북 어민들이 귀순 의사를 밝혔는지를 통일부가 파악하고 있었는지를 묻자, 조 대변인은 “2019년 11월 국회 보고 당시 통일부는 ‘선원들이 (자신들에 대한) 보호를 요청하는 취지를 서면으로 작성해 제출했다’는 내용을 국회에 보고한 바 있다”고 답해, 사실상 어민들이 귀순 의사가 있었음을 통일부가 인지했다고 답했다. 사건 당시 통일부가 브리핑에서 탈북 어민들이 동료선원 16명을 살해하고 도주했다고 밝힌 데 대해선, 통일부가 직접 확인한 사안은 아니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조 대변인은 이날 “당시 통일부가 (그런 내용으로) 언론브리핑을 진행한 것은 맞다”면서도 “합동조사 및 선원 추방 결정이 이뤄진 직후 통일부가 국가안보실로부터 언론브리핑 요구를 받았고 이후에 브리핑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즉 통일부는 당시 합동조사에 참여하지 않아 탈북어민의 살해 혐의와 관련한 부분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국가안보실의 요구에 따라 공유받은 내용대로 언론에 브리핑했다는 것이다. 탈북어민 북송사건은 2019년 11월 2일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한 사건이다. 당시 정부는 동료 선원을 살해한 혐의로 북한 남성 2명을 조사 5일 만인 같은 달 7일 판문점을 통해 강제 북송했다. 이들이 북에서 타고 온 15m 길이(17t)의 오징어잡이배에서 가혹 행위를 하는 선장을 죽인 뒤 처벌이 두려워 잠을 자던 16명을 2명씩 차례로 불러내 40분 간격으로 살해하고 도주했다고 자백해 추방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최근 국정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당시 합동조사를 강제 조기 종료시킨 혐의 등’으로 서훈 전 국정원장을 고발한 상태다.2019년 11월 北주민 귀순 배·선원 옷국정원 요청으로 나포 당일 즉각 소독김연철 “그들 귀순 의사 표명했으나 일관성 없어 신뢰 없다 판단해 추방” 검역당국에 따르면 북한 주민이 타고 온 배와 선원의 옷 등은 나포 당일인 2019년 11월 2일 국가정보원의 요청으로 그날 오후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의해 즉각 소독됐다. 정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소독 차원이라고 해명했지만 당시 야당(현 국민의힘)에서는 증거인멸 의혹을 제기했다. 살인 증거와 관련해 당시 김연철 통일부 장관(2019년 11월 7일)은 국회에서 “배에 여러 가지 흔적이 있었다”고 밝혔지만 이후 정부는 북의 증거 훼손 시비를 우려해 혈흔 감식 등 정밀조사를 하지 않은 채 나포 5일 만인 그해 11월 8일 오후 배를 북한으로 돌려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통일부 김은한 부대변인도 “실체적 진실 규명에 한계가 있어 추방을 고려했다”며 증거 확보의 어려움을 밝혔다. 이에 따라 남겨진 진술 외에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물증은 사라졌다. 당시 정부는 북한 주민 2명이 16명을 살해한 뒤 시신과 살인도구 등을 모두 바다에 버렸다고 발표했다. 살해 가담자 1명은 북한에 체포됐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앞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북송 당일(2019년 11월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들은 우리 해군에 진압된 직후 귀순의사를 표명했으나 일관성이 없어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해 추방했다”고 밝혔다. 귀순의사의 진정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국정원도 이들이 나포 과정에서 북방한계선(NLL)을 넘나들며 도주해 해군이 나포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정부는 합동심문 조사 과정에서 범행 사실과 이동 경로, 북한 내 행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이들이 순수한 귀순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려워 보호 신청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2019년 12월 강제북송과 관련해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정경두 전 국방부 장관을 형법상 살인방조죄, 불법체포·감금죄,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은 보도자료를 통해 “일부 언론은 이들 청년 2명이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했다는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살인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목선을 통해 탈출을 주선하던 탈북브로커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어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탈북민 “남한에서 법대로 처벌했어야” 복수의 탈북민들은 기자와 만나 “엔진 시동을 끄면 매우 고요한 해상에서 2명이 16명을 아무도 모르게 죽이기는 정말 어렵다고 본다”면서 “(탈북 과정을 미뤄볼 때) 두 사람이 한국 정부의 조사 과정에서 살인했다고 하지 않았다면 배에 탔던 자들의 신원을 다 불어야 했을텐데 그러면 북에 남은 사람들이 다치게 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탈북민 사회에서는 정부가 조사과정에서 북송된 2명이 흉기를 이용해 살해했다면서도 혈흔 감식 등 정밀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배를 북한으로 돌려보낸 점도 살해 가능성이 낮은 이유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탈북민들은 “북에서는 살기가 어려워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많고, 탈북 과정에서 살기 위해 북한군을 죽인 사람들도 있다”면서 “설령 사람을 죽인 흉악범이라도 한국에서 한국법에 따라 재판 받고 감옥에서 영원히 수감하거나 교화 과정을 거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탈북민은 “2012년 10월에도 북한군 2명을 죽이고 온 탈북민을 한국군이 전투태세를 갖춰 대응하며 받아줬는데 정말 상반된다”고 전했다.헌법학자 “만약 살인했다면 북송 아닌헌법 3조 따라 한국법 적용·처벌했어야” 익명을 요구한 한 헌법학자는 “헌법을 제정할 때 대한민국은 대한제국과 그 이전에 한국을 계승한 것으로 돼 있다”면서 “현 정부가 건국 100주년을 강조하는 상해 임시정부 때부터 현재의 헌법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당연히 그때의 한반도 국민과 영토는 다 한국의 것이라고 헌법 3조는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주민이 중국에서 망명을 원한다고 말할 때 헌법에 의한다면 어디까지나 한국 국민인 만큼 우리나라에서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면서 “헌법에 따르면 한국의 주권은 부속도서뿐 아니라 한반도의 북한 주민들에게도 적용하기 때문에 만약 그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면 한국에서 처벌할 수 있고 한국 법률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이탈주민법 9조에 집단살해 등 국제형사범죄자나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에 대해서는 보호대상자로 결정하지 않는다고 보는 규정을 북송 근거의 하나로 내세웠다. 그러나 헌법학자들은 하위 법령이 상위 법령인 헌법과 상충될 경우에는 통상 상위 법령을 더 존중하는 관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북한이탈주민법) 3조에는 한국의 보호를 받으려는 의사를 표시한 북한이탈주민을 적용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탈북자들은 이 법에 의해 신속히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보호와 지원을 받는다. 해당 법 4조 기본원칙에는 보호대상자(탈북민)를 인도주의에 입각해 특별히 보호하고 한국의 자유민주적 법 질서에 적응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 러 시리아 난민 300만명 목숨에 거부권…이 아이에게 뭐라 답할까

    러 시리아 난민 300만명 목숨에 거부권…이 아이에게 뭐라 답할까

    러시아가 내전으로 고통 받는 시리아인 300만명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을 연장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8일(이하 현지시간) 거부권을 행사했다. 터키 국경을 넘어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 사태를 촉발하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분석이 서방에서 제기된다. 시리아 북서부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에 반대하는 반군 세력에 장악돼 있다. 지하드의 동맹인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과 터키의 지원을 받는 반군 단체들이다. 러시아와 가까운 알아사드 대통령은 터키 남동부 국경을 통해 건너오는 유엔의 식량 원조 프로젝트가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대해 왔다. 그런데도 2014년부터 달마다 1000대의 트럭이 난민들에 제공할 식량과 약품, 피난처 물품 등을 싣고 국경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유엔 안보리 결의안 덕이었다. 그런데 기존 결의안 종료일(10일) 이틀을 앞두고 연장 결의안이 부결된 것이다. 영국 BBC 방송의 안나 포스터 기자는 얼마 전 유엔의 원조 호송대를 따라 시리아 깊숙이 들어간 기억을 되살려 이번 결의안 부결이 미칠 참상을 전망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립주 시골에 들어선 알사다카 난민촌에 머무르는 소녀 움 알리는 일곱 아이들을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불길을 살리려고 골판지와 쓰레기들을 아궁이에 밀어넣는다. 유엔의식량 구호물품은 늘 턱없이 부족해 적은 재료를 넣고 끓여 양을 불린다. “매일 아이들은 알루미늄캔, 나일론 가방 및 다리미를 주우러 쓰레기 매립지에 간다. 그렇게 모아 팔아봤자 빵 네 덩어리, 한 끼 식사, 아침 식사 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원조는 감사한 일이지만 충분치 않다고 여겨왔는데 이제 그마저 끊기게 된 셈이다. 그렇잖아도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식량 구입 비용이 2년 새 8배로 올랐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은 시리아 내전 11년 만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난민들의 숫자는 더 늘어났다고 호소했다. 움 알리는 국제 원조 없이는 가족이 살아갈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국제 정세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의 목숨을 위협한다고 비정부기구(NGO)들은 입을 모은다. 처음 유엔 프로젝트가 시작했을 때는 이라크와 요르단 국경을 통해서도 식량 트럭이 시리아에 들어왔지만 러시아는 이 루트도 결의안 거부권으로 막아버려 지난 두 해 동안 밥 알하와(Bab al-Hawa)가 유일한 루트가 됐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나빠진 미국과 러시아 관계 때문에 이 루트마저 막힐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지난 몇 주 동안 더 많은 물품을 제공하기 위해 더 많은 트럭들이 국경을 넘었다. 그런데 이제 모든 상황은 난민들에게 훨씬 불확실해졌다. 유엔 안보리는 노르웨이와 아일랜드가 작성한 타협안을 먼저 표결에 부쳤는데 6개월만 연장한 뒤 자동으로 여섯 달 더 갱신하는 안이었다. 15개 안보리 이사국 중 13개국이 찬성했지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유일하게 거부권을 던졌다. 중국은 기권했다. 그 뒤 러시아는 내년 1 월에 적극적인 갱신이 필요한 6 개월 연장안을 내놓았는데 이번에는 중국이 찬성하고, 미국·영국·프랑스가 반대했다. 나머지 10개국은 기권했다. 결의안이 통과되려면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과 함께 다섯 상임이사국 중 한 곳도 반대하지 않아야 한다. 유엔 안보리는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으로 위기에 직면한 북서부 주민 410만여명에게 2014년부터 1년 단위로 결의안을 연장하며 식량과 의약품 등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이번 부결로 당장 10일 이후 구호물자를 반입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러시아가 시리아 주민의 마지막 생명줄을 끊은 셈이라며 규탄했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부결 직후 발언권을 얻어 “시리아 주민에겐 사활이 걸린 문제”라며 “뻔뻔하게 거부권을 행사한 국가 때문에 그들의 삶은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러시아를 정조준했다. 러시아는 표면적으로는 터키를 통하는 유엔 지원 경로가 시리아의 주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서방과 갈등이 깊어진 것이 배경에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드미트리 폴리안스키 유엔 주재 러시아 차석 대사는 6개월 연장안이 아니면 거부권을 다시 행사할 것이란 입장을 고수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앞서 외교관들은 “시리아로 가는 마지막 지원 경로가 막히면 수천명이 시리아를 탈출해 유럽과 중동의 난민 사태가 악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고 뉴욕 타임스(NYT)는 전했다.
  • [대만은 지금] “영원한 친구 잃었다” 아베 사망에 비탄에 빠진 대만

    [대만은 지금] “영원한 친구 잃었다” 아베 사망에 비탄에 빠진 대만

    친(親) 대만 행보를 이어온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가 피격으로 사망하자 대만은 깊은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67세의 아베 전 총리는 지난 8일 오전 11시 30분경 일본 나라시(奈良市) 거리에서 선거 유세를 하던 중 뒤에 있던 한 남성이 쏜 총에 맞은 뒤 이날 오후 5시 46분경 사망했다. 대만 현지 언론들은 이날 아베 전 총리 피격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루며 그간의 행보에 주목했다. 아베 전 총리는 중국에 반기를 든 친대만파로 공개석상에서 매번 대만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더군다나 그는 이달 말 대만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그의 사망 소식은 많은 대만인들로부터 관심을 모았다. 대만 차이잉원 총통은 “국제사회가 중요한 지도자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대만도 중요한 친구를 잃었다”며 깊은 슬픔과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대만 정부는 폭력적이고 불법 행위를 규탄했다. 장둔한 총통부 대변인은 아베 총리가 수년 동안 대만과 일본 관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 대변인은 이어 일본이 대만에 기증한 코로나 백신 뒤에는 아베 총리의 노력이 있었다고 밝혔다. 앞서 일본은 자국에서 생산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대만이 필요할 때마다 무상 공급했다. 대변인은 그러면서 “대만 사회와 국민들은 그의 대만 사랑에 대한 열정과 대만과 일본 관계에 대해 평생 공헌한 것을 항상 그리워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의 랜드마크인 타이베이101은 이날 현지시간 저녁 8시부터 아베 신조를 추모하며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띄웠다. ‘아베 총리 추모’, ‘대만의 영원한 친구’, ‘대만을 위한 지지와 우정에 감사하다’라는 등의 문구가 타이베이의 밤하늘을 밝혔다. 타이페이101측은 “아베 총리는 대만이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항상 곁에 있었다”며 추모의 이유를 밝혔다.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 대부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과 함께 아쉬움과 애도의 메시지를 쏟았다. 특히, 대만은 일본이 주도하는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을 희망하고 있으며 이에 대만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지역 농산물 금수 조치를 해제했다. 지난 3월 차이 총통은 처음으로 아베 전 총리와 화상 회담을 가졌다. 이들은 대만의 CPTPP 가입 문제 및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이 논의했다. 회담에서 아베 전 총리는 지역 정세를 비롯해 일본과 대만 간의 우호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전 총리는 대만해협 문제에 대해 “대만 문제는 곧 일본 문제”라며 중국에 날을 세웠다. 그는 지역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만과 일본이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이에 앞서 대만의 파인애플이 중국으로부터 금수 조치를 당하자 아베 전 총리는 대만산 파인애플과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며 홍보대사를 자처하는가 하면 “대만 힘내라”는 메시지가 쓰인 종이를 들고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또 미국의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대만 전략은 ‘전략적 모호성’에서 ‘전략적 명확성’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52세에 최연소 총리에 올라 피격의 비운을 맞은 아베 전 총리는 두 번에 걸쳐 약 8년 9개월 동안 총리직은 맡은 역대 최장수 총리다. 여당 자민당에서 강경파 인사로 꼽히는 그는 자민당의 최대 파벌인 ‘아베파’를 이끌었고,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아베표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를 탄생시켰다.
  • 탈북해 미국에서 인권운동 박연미씨 “미국이 북한 닮아가 무서워요”

    탈북해 미국에서 인권운동 박연미씨 “미국이 북한 닮아가 무서워요”

    탈북자 출신으로 미국에서 인권활동가로 일하는 박연미(29) 씨가 15일(현지시간) 폭스뉴스 디지털과 줌(Zoom) 인터뷰를 갖고,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좌파들로부터의 대량 세뇌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아들은 미국 나이로 네 살이라고 했다. 양강도 혜산 출신인 그녀는 열세 살 때인 2007년 어떻게 북한을 탈출했는지 설명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중국에서 그녀는 인신매매업자들의 손에 감금돼 끔찍한 경험을 강요당했다고 했다. 몽골을 거쳐 남한에 왔다가 2014년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미국에서조차 자유를 위해 싸우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아들이 학교에서 “사회주의자처럼 생각하도록” 교육받고 있으며 사회주의야 말로 “좋고 자애로운 시스템”이란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있다는 것이 두려워 밤잠을 설치게 될 줄은 결단코 몰랐다”고까지 했다. 박씨는 사회주의는 독재자들과 엘리트들이 모든 권력을 틀어쥐게 만드는 “전술교범(playbook)”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사회주의의 정의는 정부에 모든 권력을 넘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생산수단을 결정하고 우리 삶의 모든 구석을 결정한다. 그리고 성과를 자기들 입맛대로 조작한다.” “내 말은 (아돌프) 히틀러의 유소년들이나 마오의 청년들, 김일성의 청년들이다. 그들은 아직 인생을 충분히 살아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그들로부터 앗아간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많은 이들을 죽인다. 그들은 항상 젊은이들을 동원한다. (날 무섭게 하는) 진실은 부모인 내 스스로도 지금 당장 미국에서 우리 아이를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씨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폭스 뉴스에 출연했다. 지난해 캔슬 문화가 유행했을 때도 김정은 정권과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유사한 구석들이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내년에 책을 낼 예정인데 제목이 ‘시간이 남아 있을 때, 탈북자의 미국에서 자유 찾기’(While Time Remains: A North Korean Defector’s Search for Freedom in America)이다. 검열이 횡행하고 특정 집단을 악마화하는 등 미국과 북한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 탐구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물론 그녀는 시사주간 타임이나 뉴욕 타임스(NYT) 같은 진보 성향 매체에도 등장해 북한에서 경험한 기근과 압제에 대해 털어놓은 적이 있다. 이미 2016년에 출간한 베스트셀러 ‘살기 위해, 북한 소녀의 자유로의 여정’(In Order to Live: A North Korean Girl’s Journey to Freedom)은 아마존 리뷰만 1만 2000건 가까이 달렸다. 일부는 “삶이 확 달라졌다”는 후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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