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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태헌기자 방문기(일본은 지금…:5·끝)

    ◎기업 경영/“불황탈출” 해외시장 개척바람/대외합작 급증… 소니사 올 해외생산 15% 늘려/“어려움 모르는 세대” 21세기대비 신입사원 교육 적자를 모르던 일본 기업들도 최근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전 세계적인 경기부진에다 엔고라는 걸림돌을 만났기 때문이다.일본 경영의 강점으로 꼽히던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제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JAL은 올해 1백50명을 조기퇴직시키기로 하고 특별보너스를 주는 조건으로 희망자를 모으고 있다.지난 75년의 석유파동 이후 처음으로 신규채용도 않기로 했다.가와사키제철도 앞으로 3년동안 3천2백명을 줄이기로 했다. 올 봄 대졸자의 채용규모는 지난해보다 20% 이상 줄었다.내년에는 더욱 줄 것으로 예상돼 취업전쟁이 치열해지고 있다.취직이 어려워지자 종전과 달리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까지 대졸자들이 구름처럼 몰리고 있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과 기업인들의 견해는 언론과 다르다.일본경제 연구센터의 가나모리 히사오회장은 『기업들이 해외투자를 늘리는등 엔고에 대응해 왔기 때문에 큰 타격은 아니다』라면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종신고용제를 고수하고 있다』고 말한다. 기업들은 신규채용의 축소등 조직을 슬림화해 체질을 개선하는 소극적 대응 이외에 해외투자와 해외생산도 늘리고 있다.소니는 해외생산 비중을 지난해 35%에서 올해 50%까지 올릴 계획이며 스즈키는 중국기업과 합작계약을 체결,중국에서 경자동차를 생산하기로 했다.인건비가 싼 동남아와 중국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엔고보다 더 큰 어려움은 일만 알던 일본인들이 최근 생활과 가족을 더 중시하는 경향으로 바뀌는 점이다.사회평론가인 요시다 히로시씨는 『가정을 희생하면서까지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과거와 달리 직장을 옮기는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승진을 해 지위가 높아지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므로 승진을 달가워하지 않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출산율이 낮아지는 점이다.지도층에서는 2천년대에 노동력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고 있고 기업들은 자동화에 더욱 힘쓰고있다. 일본 기업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입사원들의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설비기계를 만드는 중견기업인 세이코전기의 오시마 준이지사장은 『요즘 세대는 어려움을 모르기 때문에 사원 연수시 소방서등에서의 봉사활동,수㎞의 행군,절에서의 명상등을 반드시 포함시킨다』고 말한다. 도요타는 대졸 신입사원의 경우 6개월간 연수를 시키고 직위가 올라갈 때마다 별도의 교육을 시킨다.세이코전기도 신입사원에게 4개월의 연수를 시키고 각종 국내외 연수와 강연회,설명회등에 직원들을 파견한다. 이처럼 집요한 교육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셈이다.또 이러한 교육을 통해 시절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신입사원들이 실무능력을 쌓고 인간적인 수양도 하게 돼 경제대국의 직장인,사회인으로 성장한다.본질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기업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셈이다.
  • 참사의 교훈(4·29 폭동 1년 그뒤의 LA:하)

    ◎흑인 등 소수민족간 유대강화 시급/정재계 영향력확대로 피해 줄여야 「4·29폭동」은 교민사회로 부터 많은 것을 빼앗아 갔지만 역으로 한인사회에 많은 것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엄청난 물질적·정신적 피해가 전자에 속하는 것이라면 합중국인 미국사회에서 한인들이 나아 가야할 방향을 곰곰이 따져보게한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후자에 속한다. 소수민족인 한인들이 살길은 다른 인종과의 화합과 협조에 달려 있다는 점을 「4·29폭동」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폐쇄적이었던 한인들만의 「끼리끼리의 삶」의 의미가 미국의 두터운 인종의 벽 앞에는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지도 확인시켜 주었다. 미국의 어느 곳을 가도 코리아 타운만큼 넓게 자리를 잡고 영어가 아닌 자국어 홍수속에 「이질집단」을 이루고 있는 소수민족 사회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같은 현상은 다른 인종들의 접근을 아예 막아 버리는 요인으로 작용,스스로의 고립을 자초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4·29폭동」이전까지 로스앤젤레스의 한인사회는 흑인과 그들 사회를 몰라도너무 몰랐던 것같다.살빛이 검고 노예의 후예들이며 가난과 범죄로 얼룩진 사우스센트럴지역에 몰려사는 보잘 것 없는 인종집단쯤으로 치부했던게 인식의 전부였다. 그러나 오랜 인고의 새월속에서도 미국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수적인 성장 못지않게 요소요소에 그들의 지도자들을 진출시킨 흑인들의 질적인 성장은 간과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선 무서운 잠재력을 갖고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히스패닉계 사회도 마찬가지다.숫자면에서 흑인들을 제치고 제1의 소수민족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히스패닉계 사회와의 화합,유대의 필요성을 이번 폭동은 교민들에게 여실히 일깨워 주었다. 이제 미국사회속에서의 교민사회가 가야 할 방향은 정해졌다. 많은 교포들이 다른 인종과의 화합,교민끼리의 단결,범죄다발지역인 흑인·히스패닉계 지역으로부터의 탈출등이 동시에 이뤄져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전문직종으로의 전환,부유촌으로의 진출,업종의 다변화 주장도 나오고 있다.말처럼 쉽게 이뤄질 일은 아닐터이지만 어차피 시간을 두고 장기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아닐수 없다. 미국 전체인구의 1%도 못미치는 「수적인 열세」를 「질적인 우세」로 극복해야 한다.즉 6백여만명의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후예들을 정·재계,법조·언론·학계등에 대거 진출시킴으로써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태인들의 정착모델은 우리 교민들에게는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당장에 교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심화되고 있는 불경기속에서 강탈당한 폭동의 「재앙」을 서둘러 해결하는 일이다. 폭동의 후유증이 피해자들의 손실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교민사회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잃은 피해교민들.재기할 자본도 의욕까지도 잃고 있다.그렇다고 영구귀국을 할 수도 없는 한인들.그들은 오늘도 고민속에 좌절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 북의 거동이 심상찮다(사설)

    각종보도와 정보통로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북한의 최근동향이 크게 주목되고 있다. 평양주변의 대규모 군사이동이 탐지된데 이어 평양근교의 순안비행장이 폐쇄된 것으로 알려졌다.핵문제로 중국과의 외교접촉이 중단되었으며 국경충돌로까지 번져 중국인 수명이 살해됐다는 보도도 나왔다.신의주의 대규모 시위·폭동설이 유포되고 있는가하면 최근 중국으로 탈출하는 주민이 늘어나 발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편 러시아보도나 우리정부 당국자는 금년81세의 김일성주석 건강이 최근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다고 전하고 있다.하루평균 3∼4시간밖에 자지못하는 노인성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손발이 심히 떨리고 오른발의 거동이 부자유스러운 것으로 관측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일부 부인되기도 했으며 수년전 김일성사망설 소동때처럼 그 모든것이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결코 정상적일수 없는 일련의 북한동향은 때도 때이니만큼 심상케 보아넘길 일만은 아니라 생각한다.누가 보아도 지금 북한은 심각한 국가적 위기에 직면해있다.식량·에너지등의 경제난 가중에 핵고집으로 자칫하면 중국한테도 외면당할지 모를 심각한 국제고립의 2중수렁에 빠져있다. 게다가 북한은 개혁을 할수도 안할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하면 체제가 위태롭고 안하면 살아남기가 힘든 운명인 것이다.어느쪽도 간단히 결단할수 없는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할수 있다.현재로선 핵무장카드로 이 위기를 극복해가려는 심산인 것으로 보이나 그나마 국제압력의 가중속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말하자면 오늘의 북한에선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그런 상황이라 할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핵개발을 원하지 않는만큼 갑작스런 붕괴나 폭발의 혼돈도 바라지 않는다.경제적인 파탄이나 고립의 심화도 원하지 않는다.가장 바라는 것은 점진적이고 질서있는 북한스스로의 러시아및 동구형 민주화 변화다.중국형 개방개혁도 좋다.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희망사항이지 북한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것이 아닌가하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결국 우리는 북한의 모든 가능성을 상정하고 철저히 대비·대응해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현실은 희망한다고 오고 원하지 않는다고 비켜가는 것은 아니다.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이기 때문이다.흔히 하는 이야기지만 북한의 붕괴가 뜻밖에 갑자기 밤도둑처럼 오게될지도 모르며 궁지에 몰린 반발이 엉뚱한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부정비리척결의 개혁에 정신없는 우리지만 그러한 북한동향에 대한 감시와 대응도 절대 소홀히해선 안될 것이다.
  • 평양 신축아파트 붕괴/북한군 2백여명 사망/지난달 25일

    【북경 연합】 평양시내 창광거리에 신축중이던 고층아파트가 지난달 25일 붕괴되는 바람에 이 공사에 투입돼 작업중이던 북한군 병사 2백여명이 사망했다고 북경의 한 북한소식통이 16일 말했다. 평양을 자주 왕래하는 이 소식통은 북한당국이 사고직후 주민들의 동요를 우려해 사고현장및 그 주변지역에 대한 일반주민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이어 북한당국은 최근 극심한 식량난과 이같은 대형 아파트붕괴사고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김정일의 직접통제를 받는 3대혁명 소조원들을 동원,불평분자 색출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주민들이 중국으로 탈출하는 것을 막기위해 중국 동북지방과의 접경지역에 국가안전보위부원들을 증원배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북한당국은 휴전선 근처지역에 거주하는 상당수의 주민들을 내륙오지로 강제이주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다. 한편 북한은 김정일이 김일성주석으로부터 사실상 권력을 이양받은 지난 80년대초부터 군병력을 동원해 평양시내 광복거리와 통일거리등에 5만가구규모의 아파트단지를 건설하고 있다.
  • 신엔화강세와 경쟁력 강화노력(사설)

    최근 일본 엔화의 강세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해외시장에서 우리상품의 수출증대가 얼마나 이뤄질수 있느냐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과거 3저호황때 엔화강세의 이득을 적지않게 보았던 우리로서는 수출부진에서 벗어날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최근의 신엔고바람이 언제까지 지속되고 과거의 3저시대와 상황이 어떻게 달라져 있느냐,또 기회활용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어느만큼이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일본 엔화는 최근 60여일동안 8.9%가 상승,1달러당 1백13엔대에 들어섰으며 1백엔대의 진입을 시간문제로 보는 견해도 있다.예측대로 엔화강세가 장기화되면서 상승률이 커질 경우 우리수출경쟁력은 상당한 효과를 얻을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엔고의 영향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쪽으로만 해석할 수도 없게끔 상황변화가 일어나고 있다.지난 3저때에는 동남아국가중 우리만이 집중적으로 엔고의 득을 보았으나 지금은 중국·태국·대만이 동시에 나눠갖지 않으면 안된다.또 일본이 그동안 엔고탈출구로 동남아에 해외현지공장을 집중적으로 건설했다는 점이다.연간 2천억달러로 추산되는 이 해외공장의 생산물량은 우회수출의 통로가 될뿐아니라 일본부품의 중요한 수출시장의 하나가 되고있다. 특히 일본상품의 특이성이다.일본상품은 가격보다는 품질경쟁력이 강해 해외시장에서 가격에 의한 수요탄력성이 극히 낮다.이렇게 볼때 엔고에 따른 한국상품의 수출증대 효과는 떨어질수 밖에 없다. 무역협회는 엔화가 10% 절상할때 수출효과는 8억4천만달러,수입효과는 4억달러로 무역수지효과가 4억4천만달러에 이른다고 분석하고 있다.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5억2천만달러의 무역수지 개선효과가 있다고 전망했다.외부적인 영향에 의한 이러한 효과가 얼마나 지탱될수 있느냐는 것인데 이 문제는 전적으로 우리의 무역구조 개선과 경쟁력 강화노력에 달려 있다.그것은 자력에 의한 가격경쟁력의 강화와 함께 품질경쟁력의 향상이다.과거 3저의 효과를 우리경쟁력의 강화탓으로 잘못 인식됐던 아픈 경험을 딛고 이번 엔고가 실질적인 경쟁력강화의 모티브가 되도록 해야할 것이다. 우선 대일수입의존도가 크다는 점에서 엔고가 자칫 수출제품의 원가상승요인이나 대일무역역조의 심화로 작용되지 않도록 수입선다변화를 획기적으로 추진하면서 수입대체산업의 육성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또한 품질만이 최종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신기술에 의한 제품의 고급화 노력이 이어진다면 신엔고의 영향은 최대한 활용될수 있을 것이다.
  • 「북한의 NPT탈퇴」 관·정가 스케치

    ◎“고립화 치닫는 북한”에 냉철 대응/해외공관에 훈령·각국의 반응 주시/사태의 심각성 직시… 초당적인 협력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선언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관련 부처들은 13일 다각적 대책마련에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여야 정당도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초당적 자세로 북한의 NPT탈퇴철회를 촉구했다. ▷청와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탈퇴가 한반도의 평화와 국제사회의 안전에 대한 중대위협이라고는 인식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를 「위기상황」으로까지 보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반응. 김영삼대통령은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민자당 4역등과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북한이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세계여론을 비등케 했다.미소가 강경성명을 발표하고 일본의 사회당까지 비난했다』는 정도의 우려를 표명. 김대통령은 이어 예정에 없던 수석비서관회의를 소집,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현재 상황을 점검,분석하는 수준이었고 즉각적인 대응방안에 대한 결론은 없었다는 전문.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남북간의 비핵화공동선언의 무효화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이론적으로 볼 때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여운. ▷외무부◁ ○…북한 핵 담당부서인 외무부는 특별대책반을 구성하고 해외공관에 훈령을 내리는 한편 해외공관으로부터 들어오는 각국의 반응을 접수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서도 정부의 북한 핵 정보 부재를 지적하는 정치권의 목소리에 꽤 신경이 쓰이는 눈치. 한승주 외무부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 서두에서 『정부는 오래전부터 북한의 IAEA 사찰 거부 움직임을 예의 주시,북한의 NPT탈퇴라는 극단적 행위등 여러 가능성을 상정해 대비해왔다』면서 『언제 어떤 방법으로 이같은 조치가 취해질지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었다』고 해명성 발언. 한장관은 이어 『정부는 유엔과 IAEA등 국제기구 소재 공관과 주요국 주재대사에게 훈령을 내려 필요한 조치를 지시하는등 지금까지는 효과적으로 대응해왔다』면서 『북한의 NPT탈퇴가 전쟁발발과 같은 극단적 위기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방향에서 의연하게 대처했다』고 다분히 여론을 의식한 듯한 인상. ▷통일원◁ ○…한완상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13일 상오 출근하자마자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북한의 NPT탈퇴발표에 이은 후속사태를 점검. 한부총리는 특히 이인모노인의 방북허용결정발표가 나온지 하루만에 이같은 사태가 벌어지자 향후의 대북정책기조를 어떻게 잡아나가야할지 고민하다 밤잠까지 설쳤다는 후문. 그러나 한부총리의 이같은 의욕에 비해 대부분의 통일원 직원들은 핵문제가 외무부의 소관업무여서 통일원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듯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 ▷여야정당◁ ○…민자당내에서는 북한의 이번조치가 김일성의 신변에 이상이 생겨 이를 탈출하기 위한 모험이 아닌가 분석. 이와관련,외무통일위의 이만섭의원은 『김정일이 지난번 중국방문을 돌연 취소한것과 계속 나돌고 있는 김일성의 중병설등을 감안할때 모종의 사태가 북한내부에서 발생했을 개연성이 있다』면서 『이라크사태와 같은 무력충돌,더나아가 최악의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 이의원은 『이를위해 정부는 현실보다 이상을,실제보다 이론을 중시하지 말고 현사태의 심각성을 직시,강력한 대비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언급. 그러나 국회 국방위의 유학성위원장은 『북한은 서방측이 당장 강경조치를 취하진 않을것 이라는 속셈에서 시간벌기작전을 펴는것 같다』고 해석하며 『조금 더 지켜봐야할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 ○…민주당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한 것을 「심각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당 차원의 대처방안등을 논의. 이기택대표는 이날 하오 국회 대표실에서 정종욱청와대외교안보수석의 예방을 받고 북한의 움직임및 우리측의 대응방향등을 보고받은뒤 초당적 협조를 약속하는 한편 『정부가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적절히 대비해 달라』고 당부. 민주당은 이어 이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들과 장재식정책위의장,손세일통일국제위원장,외무위·국방위간사,군장성출신의원등이 참석한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이대표가 정수석의 방문결과를 설명한뒤 여야관계를 초월,국가적인 차원에서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기로 의견을 집약.
  • “쓰레기통에 감금 전자총 고문”/“LA악몽 4일”채홍찬씨 귀국술회

    ◎“차태워준다” 속여 납치… 3일간 굶기고 폭행/새벽 감시범 잠든새 수갑찬채 필사의 탈출 『범인들이 자기네들끼리 나를 죽이자는 말을 여러번 하기에 살길이 없는줄 알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미국에서 납치돼 4일동안의 감금생활끝에 극적으로 탈출,11일 하오 귀국한 채홍찬씨는 이역땅에서 쓰레기통에 갇혀 지냈던 악몽의 순간을 회상했다. 채씨가 납치된 것은 지난 5일 낮 12시25분.지난 88년 섬유업체인 E사에 함께 다니던 범인 김진범씨(43·서울 묵동)가 마중나와 숙소로 태워주겠다고 자청해 김씨의 승용차에 타면서부터였다.물론 채씨는 주범 김씨가 지난해 14억여원을 횡령하고 미국으로 도피,경찰로부터 수배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김씨와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백미러를 통해 이들의 안주머니에 권총이 들어 있고 비슷한 차량이 줄곧 따라붙어 납치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상대로 범인들은 한인타운내의 한 아파트로 끌고갔다.,채씨가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9만볼트짜리 전자총을 허리에 갖다댔으며 넘어지지 않자 권총으로머리를 3번이나 내리쳤다. 범인들은 이어 뇌진탕 증세를 보이는 그의 손발에 수갑과 족쇄를 채운뒤 경보장치가 설치된 쓰레기통속에 가뒀다. 범인들의 요구는 홍콩과 국내의 친지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들의 국내 계좌에 입금시키라는 것이었다.시키는대로 하지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전자총고문을 했다.전화를 할때와 감금 3일만에 설렁탕 1그릇을 먹을 때만을 빼고는 쓰레기통 속에서 나올 수 없었다.범인들은 채씨가 움크리고 있는 쓰레기통 속에서 조금만 움직이면 『죽이겠다』며 발로 걷어차기 일쑤였다. 『이들 가운데는 김씨등 등 한국인 3명외에 중국인과 월남인도 끼여 있었는데 이따금 외부로부터 살인청부를 받는 것같은 얘기를 나누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어차피 죽을 바에야 하는 생각에 8일 새벽2시 감시하는 범인 2명이 잠든 틈을 타 경보장치를 건드리지 않고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수갑을 찬채 속옷차림으로 무조건 달렸더니 한인상점의 간판이 보여 이 곳에서 3시간동안 숨어있다가 조기축구를 하러 나온 한인교포들에게 도움을 요청,악몽과 같은 4일동안의 피랍생활을 벗어났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43)

    ◎길림시절:2/체류시기의 왜곡/육문중 재학기간 실제보다 1년 늘려/마적활동설 등 평단중시절 비행 은폐/27년 8월 입학을 1월로 주장 김일성이 길림 육문중학교에 들어간 것은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1927년 1월 17일이 아니라 사실은 그 해 8월이다.61년에 발간된 「조선근대혁명운동사」는 그가 「육문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26년8월 공산주의 청년동맹에 가맹했다」고 쓰고 있는데 26년이나 입학,공청동맹 가맹 같은 것은 다 사실이 아니지만 8월이란 날짜만은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김일성의 27년8월 길림행은 3가지근거로 증명할 수가 있다. ○사실확인의 세 근거 그 첫째는 앞에서 말한 이선일 증언이다.그는 27년8월 심양 평단중학교 입학 때 그 직전 김일성이 이 학교를 중퇴한 소문을 들었다.그리고 그는 30년에 최덕현 오가자에서 김일성과 같이 있게 되었을 때 이 사실을 직접 본인으로부터 확인하고 있다.27년 당시 심양의 한인 인구는 적었으므로 중학생 김일성의 동향은 곧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을 것이다. 둘째는 김일성이 29년 5월에 길림 육문중학교를 중퇴한 사실을 들 수 있다.이 때 허소가 만든 「조선공산청년회」란 조직에 길림의 정의부계통 청년들이 망라되고 있었다가 일본 길림총영사관 경찰에 발각되었다.그 속에 김일성도 있었는데 그는 도망쳐서 길림을 탈출하고 체포를 면하였다. 그는 이에 따라 육문중학교도 중퇴했다.최형우는 김일성이 다닌 중학교를 잘못 알고 있었지만 중퇴사실 자체는 다음과 같이 정확히 말하고 있다. 「…김일성은 졸업기를 목전에 둔 제오중학의 교문도,소년탐험대의 자리도 떠나서 단신 방랑에 가까운 여인이 되었다」 이상과 같은 일본 기록과 최형우의 서적으로 우리는 김일성이 29년 5월,3년제인 길림초급중학교 3학년을 중퇴한 것을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필자가 평단중학교 문제 때 소개한 중학교 학년학기 일정표이다. ○방학기간 이용 이동 이 일정표에 의하면 당시 중국의 2학기 마감은 6월 28일로 되어 있다.따라서 졸업식은 그후 며칠 안가서 진행되는데 김일성은 바로 「졸업을 목전에 둔」5월 중순에길림성성을 탈출하여 중학교를 중퇴한 것이다. 또 이 일정표는 1학기 수업개시가 8월 24일로 되어 있다.그래서 이 날짜를 가지고 그의 재학 가능표를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1926년 8월 24일 1학년 입학 1927년 8월 24일 2학년 진학 1928년 8월 24일 3학년 진학 1929년 5월 중순 3학년 중퇴 그런데 이상의 표에서 26년 입학 가능성은 그것이 길림 육문중학교 같으면 현재 김일성이 스스로 부인하고 있는 것과 같이 있을 수가 없다.그는 1학년 시절은 대체로 심양 평단중학교에 있었다.또 일정표를 보면 당시 여름 방학은 6월 29일부터 8월 23일까지의 약 2개월이었다.이선일의 증언과 같이 그는 이 방학기간에 심양으로부터 길림으로 이동한 것이다. 따라서 김일성의 길림시절을 사실대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가 중학교에 있었던 1927년 8월부터 29년 5월까지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그는 육문중학교에 가기 직전에 심양에서 길림으로 왔고 20개월 후 일종의 학생 비밀결사조직에 있었다가 일본 경찰의 검거를 피하여 길림을 떠났다.이 1년 10개월동안이 김일성이 길림에 있었떤 전 기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북한에서는 이같이 주장하지 않고 있다.그들은 김일성이 27년 1월에 무송에서 와서 29년 가을 길림감옥에 투옥될 때까지 길림에서 「혁명활동」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위해 길림체제기간을 27년 1월부터 8월까지의 6개월간과 29년 5월부터 가을까지의 약 6개월간씩 넓히게 되었다.모두 1년 정도 김일성이 길림에 더 있었던 것으로 꾸민 것이다. 여기서는 김일성이 넓힌 이 「활약기간」중 그의 길림 입성을 둘러싼 문제만 다루어 놓았다.그가 8월에서 1월로 반년이나 길림 입성을 앞당긴 것은 그의 전기 작성상 다음과 같은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⑴그는 평단중학교 시절의 진상을 철저히 은폐할 수 있게 되었다.그의 이 시기 생활이란 학생 기준으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슨 상궤를 벗어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그가 일종의 마적떼에 있었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므로 학교생활도 짐작이 갈 것이지만 그는 이런 일들을 은폐한 것이다. ○「주체형 조직」강변 ⑵이 시절을 은폐하는 것으로 그는 26년 가을부터 27년 여름까지 10개월 정도 우상화를 위한 어떤 날조물이라도 집어넣을 수 있는 세월을 획득하게 되었다.그는 이 기간을 26년과 27년으로 양분하고 26년에는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새날소년동맹,반일부녀회 등 대체로 29∼30년에 있었던 민족주의단체 국민부의 하부조직이나 변두리조직을 「주체형」의 조직으로 제멋대로 왜곡,변형해왔다. ⑶따라서 육문중학교에 들어가기 이전인 27년 상반기란 텅 비운 시일도 김일성이 앞으로 거기에 무엇을 집어넣는가는 불문가지일 것이다. ①동서 232면 ②평전 212면 이하 ③29면 ④평전 107면종
  • 한국과 통일독일 두 정상의 만남 (사설)

    헬무트 콜독일총리가 1일부터 3일간 한국을 공식방문한다.인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일본을 거쳐 서울을 방문하는 것이며 김영삼우리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관심사를 논의한다. 패전의 폐허에서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기술대국을 건설한 독일이다.우리와는 이데올로기분단의 아픔을 함께했으며 탈냉전의 기회를 맞아 신속한 흡수통일을 이룩했다.콜총리는 그 통일을 주도한 독일지도자다.그가 독일총리로선 처음으로 방한한다.우연의 일치지만 때마침 우리는 32년만의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직후다.콜총리는 이례적으로 미·일아닌 독일정상으로서 김영삼새한국대통령의 첫정상외교상대가 되는 것이다.여러가지로 주목되며 특별한 관심을 갖게하는 콜총리의 방한이 아닐수 없다. 그동안 독일은 경제건설과 통일기반조성에 몰두하면서 대외관심의 초점을 구미에만 집중해온 감이 없지 않았다.아시아는 관심밖에 있었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콜총리의 이번 아시아순방은 그러한 독일관심의 세계화를 의미한다.통일후유증으로 금년의 경우 제로성장이 예상될만큼 심각한 경제부진의 돌파구마련과 통일독일의 국제정치적 역할확대모색에 가장큰 목적이 있는 순방이다. 한국방문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 할수있다.한국은 91년현재 독일에 대해 37억달러수입에 32억달러수출 적자무역고의 세계5위 교역상대국이다.우리에게 있어 독일은 미·일다음가는 세계3위의 교역국이기도 하다.당장의 경제현안으로 독일은 한국고속전철 건설사업참여를 놓고 일본·프랑스와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있다.이경쟁의 유리한 고지확보가 이번 콜총리방한의 최대관심사란 관측도 있다. 경제회복과 분단의 완화·해소가 가장 중요한 국가적과제로 등장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상황에서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찾아오는 독일총리의 방한은 충분히 활용해야할 좋은기회라 생각한다.우리가 지금 독일에게서 가장 필요로하는 것의 하나는 기술일 것이다.우리에게 결정권이 있는 고속전철등 중요사업 참여조건중 가격보단 기술전수의 정도에 최대비중을 두는것도 어려운 선진기술획득의 효과적 방책의 하나일 것이다.독일이 원하는 중국등 아시아대상 공동경제진출을 통한 기술획득의 길을 여는 방법도 생각해봄직할 것이다. 경제와 기술뿐 아니라 통일의 지혜와 경험도 중요한 관심사다.콜총리는 판문점도 방문하고 국회연설도 한다.통일을 위해서는 물론 독일과 같은 조기흡수통일의 후유증을 방지할수 있는 바람직한 통일방안마련을 위해서도 독일통일경험자의 충고와 조언은 큰도움이 될수있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콜총리의 이번 방한이 우리경제회복과 통일의 신한국건설은 물론 독일경제의 탈출구 마련에도 도움이 되는 호혜의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 콜 총리,경제활로찾기 나들이/아주5국 순방 왜 나서나

    ◎스케줄 대부분 기업인과 회담에 배려/한국선 고속전철 입찰문제 거론 확실/판문점도 방문… 「한반도통일」 언급할듯 헬무트 콜 서독총리가 18일 한국을 비롯,인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일본등 아시아 5개국 순방길에 오른다.그는 독일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오는 3월1일부터 3일사이 우리나라를 방문,김영삼 차기대통령의 취임후 첫번째 국빈이 된다.콜총리의 아시아순방은 당초 지난해 10월말로 예정돼 있었으나 유럽통합문제를 둘러싼 이견의 해소를 위해 긴급소집된 에딘버러 EC 정상회담때문에 연기됐었다. 2주간으로 짜여진 순방 일정의 상당부분이 상공회의소등 방문국 경제인들과의 회담인데서 엿보이듯 콜총리의 이번 아시아방문은 경제부문에 중점을 두고 있다.세계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세계 제2의 인구대국 인도,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선진국으로의 발돋움을 시작한 한국등으로 방문국이 짜여진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할수 있다.결국 통일이후 독일이 겪고 있는 경제침체로부터의 탈출구를 아시아에서 찾아보려는데 주목적이 있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독일은 「유럽경제성장의 견인차」로 불려왔으나 통일이후 막대한 통일비용의 부담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더욱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부진에다 지난해말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 미국과 유럽,일본과 유럽의 무역마찰등 전세계적 무역전쟁의 조짐으로 독일은 유럽통합을 통해 성장을 추구하는 길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콜총리의 한국방문은 김영삼 차기 대통령과의 첫인사를 겸한 것이기도 하지만 세계최대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시장에 한국과의 공동진출을 모색하려는데도 중점이 두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독일은 뛰어난 기술과 풍부한 자본을 갖고 있고 한국은 우수한 노동력 외에 이미 개척된 판로망등 아시아시장에서 어느정도의 기득권을 갖고 있다고 할수 있다.독일로선 특히 일본과의 경쟁에 대비해 한국,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등과 협조체제를 마련해 놓아야 할 형편이다. 콜총리의 한국방문에서 또 주목되는 점은 그의 판문점방문이다.한국을 찾는 외국국가원수의 상당수가 판문점을 찾는 것은 사실이지만 콜은 한국과 같이 분단국이었던 독일의 재통일을 이룩한 인물로서 그의 판문점방문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그는 또한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의 통일문제에 대해 언급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독일의 통일에 대해 통일이후에 대비한 사전연구와 준비가 거의 없이 너무 성급히 추진됐다는 비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콜총리가 이룩한 독일의 재통일은 위대한 역사적 성과임에 틀림없다.독일통일을 주도한 인물로서 독일이 통일이후 겪고있는 많은 시행착오들을 스스로 비판하는 것은 물론 어렵겠지만 그같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느낀 콜총리의 경험에는 우리가 귀기울여야 할 대목이 상당부분 있을게 틀림없다. 그밖에도 한독간 쌍무무역문제와 프랑스·일본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고속전철 건설문제도 이번 한국방문때 함께 논의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그러나 김영삼차기대통령으로선 취임하자마자 대형사업을 성급히 결정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므로 이번 방문을 통해 고속전철 문제가 해결되기는어려울 것이라는게 일반적 관측이다.
  • 중국 교혁때 인육식 자행/반체제 작가 폭로

    ◎홍위병,반혁명분자 잔인한 “응징”/광서성에서만도 1백여명 희생 1966∼76년 중국의 문화혁명 때 혁명을 주도했던 홍위병과 공산당 관리들이 혁명의 달성을 위해 인육을 먹는 등 잔혹한 행위들을 자행했다고 6일 미국에 망명한 중국의 저명한 반체제 작가 「정이」씨(Zheng Yi)가 말했다. 천안문 사태 때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중국정부에 수배된 정씨는 이날 탈출에 성공,부인 베이 밍씨(Bei Ming)와 함께 미국에 도착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폭로했다. 정씨는 또 『당시 중국 남부 광서성에서만 1백명 이상이 인육식을 당했음을 입증할 수 있는 관련정부 문서들을 입수했다』고 말하고 『이같은 식인행위는 일부지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당시 중국 전역에서 흔히 행해졌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6일 이같은 사실을 처음 보도한 미국의 뉴욕 타임스지는 정씨가 중국정부로부터 빼낸 이 비밀 문서를 인용,당시 한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교장을 살해,시신을 먹었으며 정부에서 운영하는 식당들은 인육을 손님에게 접대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이 가운데 한 문서를 인용해 『사람을 살해해 그 고기로 저녁을 만들기도 하고 사람들을 청해서 먹이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 도전과 시련,위대한 선택과 성취의 한해/1992년을 보내며(사설)

    다시 한해가 간다.19 92년 임신년도 오늘 하루면 끝이다.언제나처럼 기대와 불안의 엇갈림 속에서도 영광과 발전이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시작했던 한해다.그 한해가 저무는 지금 세계는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우리는 무엇을 달성하고 어떤 아쉬움을 남겼는가.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게 되는 엄숙한 순간이다. 고르바초프소련의 붕괴와 옐친러시아의 출범으로 시작된 세계의 지난 한해는 한마디로 탈냉전의 변화와 새질서모색의 갈등을 벗어나지 못한 전환기적 혼돈의 연속이었다.이데올로기를 대신해 탈냉전의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민주주의와 경제제일주의의 도전이 극성을 부린 한해였다.지역과 국가와 민족간의 집단리기주의가 맹위를 떨친 1년이기도 했다. 정치·경제적 민주화개혁을 서두르고있는 러시아등 구소련권과 동구제국의 끝이보이지않는 시행조오는 여전히 계속되었다.구소·유고등의 민족분규는 유혈내전으로 세계를 경악시켰으며 보수·개혁파간의 극심한 갈등은 내일을 예측키 힘든 불안의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러시아선 옐친의 개혁에 급제동이걸렸으며 동구일부선 구공산당이 재부상하는 복고주의경향도 대두되었다.구사회주의권의 개혁혼돈은 내년에도 세계의 발목을 계속 붙드는 불안요인이 될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주목되고 걱정스런것은 경제지상주의의 세계적 팽배다.유럽에 이어 북미에도 새로운 지역경제블록인 NAFTA가 탄생했으며 아세안중심의 동남아도 경제적 결속을 강화했다.세계무역의 배타적 지역화와 보호주의화 경향이 두드러진 한해였다고 할수 있다.미국경제재건을 지상의 공약으로 내세운 무명의 클린턴이 현직의 부시를 물리치고 차기미국대통령에 당선될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세계적인 경제지상주의 분위기의 반영이라 할수 있는 것이었다.무역전쟁의 파고가 더욱 높고 거칠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세계의 변화라 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국제환경의 격변속에 우리가 겪은 지난 한해도 결코 만만치않은 도전과 시련의 연속이었다.세계적인 불황과 보호무역경향의 파고에 밀린 경제부진의 늪은 우리만의 시련은 아니었다.자금압박으로 사업에 실패한 중소기업의 연이은 도산과 기업인 자살사건들은 가슴아픈 일이었다.그러나 한때 두자리수까지 육박했던 물가가 4.5%내외로 떨어져 6년만의 최저를 기록하는등 내수과열에 따른 고성장→고물가의 악순환이 어느 정도 치유되고 허물어진 경제안정기조가 다시 회복되는 기미를 보인 것은 성취의 측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해에 두차례나 큰 선거를 치르면서 지방단체장선거를 둘러싼 대립에 전군수의 관권선거부정폭로,재벌정치참여의 혼돈,이동통신사건,정보사땅사기사건등 큼직큼직한 사건들로 녕일이 없었던 시련의 1년이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살얼음판을 걷는 것같이 아슬아슬했던 한해였다.그 혼돈속의 온갖 도전과 시련을 겪으면서 이렇게 무사히 이 세모의 언덕에 서 있는 우리가 신기하고 대견스럽단 생각도 드는 지금이다.92년의 최대과제는 역시 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다음5년의 우리를 이끌 차기대통령선거를 어떻게 무사히 성공적으로 치를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그리고 우리는 세계도 인정한 민주공명선거의 실현을 통해 그것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않았는가.대립과 갈등과 증오의 충돌도 있었다.김권과 관권시비에 흑색선전의 오염도 만만치않았다.그러나 그것은 발전과 성숙의 불가피한 진통음이었다.헌정사상 처음으로 집권당당적까지 버린 결연한 의지의 노태우대통령과 중립내각의 의연한대처및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던 온국민의 현명한 호응이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성공을 만들어 낼수있게 했던 것은 정말 위대한 선택들이 아닐수 없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영광도 우리의 민주적 자긍심을 일깨우고 드높인 쾌거로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92년의 보람이었다.금메달 12개의 세계7위란 긍지에 일장기를 달았던 손기정이후 처음이된 황영조의 마라톤제패의 감격을 어찌 잊을수 있겠는가. 북방외교의 성공적 마무리도 92년의 큰성과로 기록돼야 할 것이다.중국·베트남과의 수교달성에 우리대통령의 역사적인 방중과 옐친러시아대통령의 서울방문이 이루어졌다.통일의 국제적 기반과 여건을 크게 신장시킨 귀중한 성과의 한해였다.아쉬운 것은 남북한관계의 냉각이다.기본및 부속합의서가 발효되는등 진전을 보였으나북한의 핵고집과 「남조선노동당」간첩사건의 덫에 걸려 지지부진 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미대통령선거의 결과를 기다리는 관망적 분위기의 결과였다고 할수 있다.한·미의 새 정부가 출범하는 93년엔 새로운탈출구가 마련될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우리는 버리지 않고 있다. 다시 한번 도전과 시련이 벅찼던 92년이었음을 실감한다.많은 아쉬움도 남겼지만 그만큼 극복의 보람과 영광도 컸던 한해가 아니었던가.92년의 아쉬움은 반성하고 영광과 보람은 더욱 살리고 발전시켜야 할것이다.안정속의 개혁을 통한 「신한국건설」의 비전을 제시한 김영삼대통령당선자는 그에따른 고통을 국민과 함께하겠다는 결의를 다진바 있다.93년엔 「다시 뛰는 한국」을 보고 싶다.
  • 북,식량습격 주민 공개처형/독지 현지취재 보도

    【베를린=유세진특파원】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속에 식량배급소를 습격한 시민을 공개적으로 사형에 처하고 있다고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최신호가 보도했다. 슈피겔은 위르겐 크렘프 특파원이 평양.원산.함흥 등의 도시와 농촌지역을 직접취재한 특집기사를 통해 북한의 식량배급소 앞에는 경찰이 차례를 기다리는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으며 「배급소를 습격한 노상강도들은 처형되고 그 가족은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진다」는 벽보가 나붙어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함흥에서는 보안대원들이 많은 군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사형을 집행하고 있었으며 죄목이 「사상불순과 노상강도」로 돼있는 사형수의 입에는 비명을 지르지 못하도록 재갈이 물려있었다고 크렘프기자는 전했다. 슈피겔은 또 북한주민의 약 1%가 전국에 산재한 수십개의 교화소와 죽음의 수용소에 감금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히면서 최근 함흥 소재 「제15캠프」에서 중국을 거쳐 홍콩으로 탈출했던 2명의 북한청년은 이곳에선 매년 15명 가량이 처형됐으며 수용자들은 사형집행에 앞서사형수에게 돌을 던지도록 강요받았다고 증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북 강제노동수용소/러 TV서 방영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러시아 TV는 27일 시베리아에 있는 북한의 강제노동수용소 장면을 방영했다. 러시아 TV는 이 노동수용소에서 일하다 지난해 8월 탈출,남한으로 망명한 강봉학씨의 회견 모습에 뒤이어 수용소 장면을 내보냈다. 방영된 필름장면들은 아시아인들이 벌목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작업장은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촬영일자는 밝히지 않았으나 최근의 모습인 것처럼 보였다. 이 TV는 특히 독일 슈피겔지에 올여름 게재됐던 기사를 인용,중국과 국경을 접하고있는 시베리아 동부 하바로프스크의 체르그도민 수용소에 2만2천명의 북한인들이 수용돼 있다고 전했다.
  • 「조교」이용 중국탈출 주민 체포

    ◎북녘혈육 내세워 포섭,밀정으로 활용/실적따라 포상… 대남동향·정보도 수집 북한은 중국으로 탈출한 주민들을 색출·체포키 위해 북·중국경지역에 거주하는 중국교포를 「밀정」으로 포섭,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북한은 이들 밀정을 「해외공민 조선족 교포」(일명 조교)로 부르고 있으며 국가보위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까지 「조교」조직원으로 활동한 한 중국교포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은 이 조직을 관리·통제하기 위해 매월 3∼4회씩 국가보위부원을 중국에 있는 친척 방문자,무역인 또는 장사꾼으로 가장시켜 중국에 밀파하고 있다는 것이다.밀파된 국가보위부원들은 「조교」들에게 활동자금과 지침을 하달하고 탈출주민 체포 및 방한경력을 가진 중국교포들과 한국에 대한 중국교포사회의 반응·동향 등을 수집하는 한편 새로운 밀정을 포섭해 오고 있다고 한다.증언에 의하면 북한당국은 ▲북한에 직계가족이 거주하고 있는 자 ▲친·인척이 거주하고 있는 자 ▲북한국적 소유자중 친북성향자 ▲생활빈곤자 등을 「조교」포섭대상으로 삼아 조직을 확대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포섭방법은 북한에 가족이나 친척이 있는 교포에게 접근,사업에 협조해 주면 북한거주 가족(친·인척)들을 초급 당간부 수준의 혜택을 누리게 해주겠다고 회유하고 있으며 포섭대상자가 거절할 경우에는 북한거주 가족 및 친·인척이 정치·경제적으로 심대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협박,대부분의 교포들이 거절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회유·협박과 함께 북한은 「조교」들의 환심을 끌기 위해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등의 명의로 「조교」들을 연 2∼3회 평양으로 초청,실적에 따라 각종 상훈과 상품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즉 「조교」들이 직접 국경탈출 북한주민을 체포했을 때는 「포상금」과 함께 자전거나 컬러TV·세탁기 등의 가전제품을 상품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에따라 사전에 치밀한 계획없이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주민들은 거의가 이들 「조교」들에 의해 소재가 파악되어 밀파된 국가보위부원들에게 체포된다는 것이다.
  • 한국과 베트남,17년만의 수교(사설)

    아시아 사회주의대국의 하나인 베트남과의 수교가 22일 어루어진다.대중국 수교에 이어 우리 북방외교가 거둔 또하나의 큰 성과요 결실이다.베트남은 구공산권 중요국중 마지막 남은 미수교국이었다.베트남과의 수교로 노태우대통령의 우리정부가 추구해온 북방외교목적은 거의 완벽하게 달성된 셈이다. 베트남과의 수교는 구소련이나 중국과의 경우와는 또다른 측면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 생각한다.베트남은 우리와는 특별한 관계의 나라다.우리와 같은 이데올로기희생의 분단국이었으며 전쟁을 통해 적화통일을 달성한 나라다.우리도 31만의 군대를 파견해 그들과 싸운 과거가 있다.적화통일의 달성에도 불구하고 가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지금은 중국과 같이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도 이데올로기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며 개혁을 서둘고 있다.베트남의 성공은 우리 북방외교목적의 하나인 북한개방개혁유도의 중요자극제가 될수 있을 것이다.때문에 우리는 베트남의 개혁을 도와야할 입장에 있다고도 할수 있다. 베트남은 북방외교의 차원을 넘어서도 우리에겐 중요한 나라의 하나라 할수 있다.세계로 나가는 해상관문의 하나인 동남아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자연자원이 풍부한 33만㎦ 면적에 인구 6천6백만의 큰 나라다.사회주의제국에서 흔히 볼수 있듯이 지금은 1인당 GNP 2백30달러의 빈곤국이지만 장차의 잠재력은 큰 나라다.동남아의 마지막 남은 투자유망국이란 평가도 받고 있다. 동남아 정치경제협력기구인 아세안에도 곧 가입한다.그리고 동남아는 세계적인 보호무역경향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우리경제 탈출구의 하나로 대단히 중요한 지역이다.미일과 함께 우리도 이미 하노이에 무역관을 설치했으며 30여개 민간기업이 진출한 상태다.무역규모는 지난1월부터 9월말까지 2억5천만달러에 달했으며 14건 8천5백만달러상당의 투자도 하고 있다.이번 공식수교는 내년부터 시작되는 메콩강개발사업참여의 문을 여는 등 그동안의 경제관계를 더욱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중요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베트남은 그동안 북한과의 관계를 희생하더라도 우리와의 수교를 달성하겠다는 강한 희망을 피력해왔다.미래를 위해 적대적이었던 과거도 문제삼지 않는 적극적인 자세였다.그러나 일본이나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경험한 감정이 베트남인들에게도 없을리 없다면 원하든 않든 우리도 베트남과의 관계에서 불행했던 지난날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노력은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라 생각한다.양국관계의 보다 건전하고 긴밀한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말도 좋지만 보다 적극적인 협력의 행동으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노력이야말로 가장 바람직스런 방법이 아닐까 한다.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 15호 북한정치범수용소:4)

    ◎죽어가는 사람들:다/붙잡힌 탈출자 처형전 이미 초주검/총살·교수형뒤 시신에 돌팔매 강요/돌 안던진 북송교포 뭇매… 선혈 낭자 3일동안 학생 9백여명을 비롯한 수용소내 전 인원이 총 동원됐다.수용소주변의 모든 산봉우리와 골짜기들을 몽땅 뒤져야 했기 때문이다. 수용소에서 도망친 3명을 찾기위해서였다.동원된 사람들은 수십명씩 조를 짜 골짜기에서 봉우리로 일렬로 수색해 올라가는 일을 반복했다. 보위부원들은 눈에 불을켜고 어린 우리들까지 닥달했다.만일 도주자들을 찾지 못할 경우 그들은 일시에 감시자에서 수감자로 전락할 처지였던 것이다 보위부원들은 『도주자를 찾는 사람은 수용소에서 석방시켜 준다』고 했기에 같은 수감자 처지임에도 모두 기를쓰고 이들을 찾아 나섰다. 3일이 지났다.평풍산골짜기 덤불속에 숨어 있던 도주자 3명이 붙잡혔다.눈덮힌 산자락을 꼬챙이로 쑤시고 다니던 우리들의 수색도 끝이 났으나 경험은 이제부터 시작됐다. 도주자들의 처형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그도 그럴 것이 이미 북한사회에서 사라진 지 오래된 이들에 대한 처형은 거리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붙잡힌 다음날 수용소내 모든 사람들이 다시 소집됐다.넓은 공터에 모인 우리들은 눈이 한곳에 집중됐다.총을 든 9명이 한쪽을 향해 일렬로 도열해 있었다.처형은 총살형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소장이하 수용소내 감시원들이 한쪽옆에 도열해 있다가 이윽고 소장이 뭐라고 일장 연설을 했다.나는 소장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오직 눈앞에 펼쳐질 「총살형」이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되도록 잘 보기위해 많은 사람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갔다. 보위원들이 세사람을 끌고 나왔다.나는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죽음을 느낄 수 있었다.이미 모든것은 포기한듯 그들은 힘없이 이끌려왔다. 모두들 긴장했다.처형자들의 목과 가슴 다리 3부분이 처형대에 묶일 때에는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절차가 끝나고 드디어 총이 겨누어졌다. 『조준』 『…』 『발사』 귀가 찢어질듯한 총성이 3번 반복됐다.총소리가 터질 때마다 나는 경련을 일으켰다. 첫번째 총성에 얼굴을 묶은 밧줄이 끊어지면서세사람의 머리가 앞으로 꺽어졌다.두번째 총성에는 그들의 가슴에서 피가 튀면서 앞으로 꼬꾸라졌다.순간 나는 총을 더 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총성은 또 들렸고 이들은 나무토막 처럼 땅에 쓰러졌다. 그들의 주검 주변으로 선혈이 흘러 있었다.이것으로 처형은 끝난 줄 알았다.그러나 보위부원 한명이 시체앞으로 다가갔다.그는 권총을 꺼내더니 죽은이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순간 소름이 끼쳤다.그것이 생사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음은 한참 뒤에서야 알았다.그뒤 시체는 어떻게 됐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것이 내가 격은 첫번째 수용소내 처형이었다.지난1978년4월의 일이었다. 내가 본 두번째 처형은 그로부터 7년뒤인 지난85년8월의 일이다. 그때도 역시 2사람이 수용소를 탈출했다.이 두사람은 현역군인으로 있다가 말을 잘못해 이곳으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다.그런데 이번은 지난번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보통군인도 아닌 특수훈련을 받은 이들은 수용소 사상 처음으로 요덕군 수용소구역을 완전히 벗어나 탈출한 것이다.벌집을 쑤신듯 난리가 났다. 한달여동안 계속된 수색작업도 허사였다.이미 밖으로 도망간 이들이 눈에 띌 리 없었다.수용소 사람들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구역에서 탈출한 이들의 능력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도 철저히 통제된 사회속에서 끝까지 버틸 수는 없었다.한명은 함경남도 금양군까지 도주했다 붙잡혔고 다른 한명은 국경을 넘어 중국 단동까지 갔다 중국공안원들에 의해 잡혀 신병이 인도됐다. 1주일 먼저 잡힌 한 사람은 그동안 너무 얻어맞아 이미 몰골이 흉악했다. 이들에 대한 처형은 『총알이 아깝다』는 것과 시각적 효과를 높힌다는 이유에서 처음으로 교수형으로 정해졌다.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날 수용소내 강변 어귀 자갈밭 공터에 ㄱ자형 교수대2개가 설치됐다.하늘높이 치솟은 교수대는 죽음의 갈고리처럼 보였다. 먼저 잡힌사람은 이미 반죽음 상태였고 나중에 잡힌 사람은 지친듯 보였어도 워낙 체격이 건장해 아직 힘은 남아 있어보였다. 둘은 소장앞에 꿇어 앉혀졌다.소장은 『공화국 형법 ○○조에 따라…』라며 난데없이법조문을 들먹이며 재판흉내를 내더니 이윽고 『사형』이라고 외쳤다. 교수대에 올려진 두사람은 머리에 두건이 씌어졌고 이내 올가미에 목이 감겨졌다.그야말로 침 넘어가는 소리도 들릴듯 조용했다. 침묵속에 몇분이 지났을까.『일렬로 정렬하라』는 소리가 들렸다.소장이 우리들에게 하는 소리였다.멍하고 있던 사람들이 제정신을 차려 움직였다.소장은 우리들에게 『모두 돌을 들어 죽은 놈들에게 던지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들 돌을 주워 힘차게 던지는 것이아닌가.잘보여야 편한 일을 할 수 있다는 필사적인 생존의식이 이처럼 인간성을 완전히 말살시킨 것이다. 매달린 시체는 언제부턴가 살점이 너덜너덜 떨어져 나가 뼈가 드러난 부위도 있었다.시체아래로 돌이 수북이 쌓였다. 그러나 사건은 또 이어졌다.일본에서 20세까지 살다 이곳에 온 교포가족세대의 성신휘라는 청년이 돌 던지기를 무시하고 교수대 앞을 그냥 지나친 것이다. 보위부원들이 가만 둘 리 없었다. 보위부원들은 돌을 던지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행렬 옆에서 성신휘를 구둣발로 짖이겼고 사람들은 이미 혼이 나간듯 그의 얼굴이 엉망으로 찢어지면서 흘러내리는 선혈을 보고도 무표정했다.
  • 북,언제까지 「핵장난」 할것인가(사설)

    북한의 핵의혹과 관련된 내외의 움직임이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탈출구가 열릴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긴장의 불씨가 될것인가.오랜 교착과 소강의 끝이라 더욱 주목된다.우리는 그것이 북한의 핵의혹제거를 향한 노력의 조짐들이기를 바란다. 오스트리아 빈에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한핵사찰결과 검토를 위한 이사회가 3일 시작되었다.북한원자력부장이 블릭스 IAEA사무총장을 두차례나 만난 것으로 보도되었다.한국에 대해선 핵통제위 전체회의개최를 제의했으며 11일엔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된다.우리 정부는 통일관계장관회의를 통해 핵문제의 의미있는 진전이 있을경우 준비단계의 대북경협을 실시단계로 전환한다는 등의 협력자세를 보였다.그리고 북한의 은닉된 핵시설물이 녕변근방서 새로 발견되었다는 미첩보위성사진이 공개되기도했다. 남북한관계와 북한의 대미일관계를 가로막고있는 북한핵문제는 핵의혹의 확실한 해소를 보장할 남북한 상호사찰을 북한이 거부하고 있는데서 비롯되고 있다.북한이 남북한관계냉각의 구실로 내세우고있는 팀스피리트훈련 재개준비도 결국 북한이 남북핵상호사찰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북한이 상호사찰을 수락하는등 핵의혹해소의 실질적 진전이 이루어진다면 대북경협 본격화는 물론 팀 스피리트 준비의중단도 즉각 이루어질 것이 틀림없다. 팀 스피리트의 중단은 처음부터 북한의 대한 화해협력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핵사찰거부등 북한의 진의를 믿을 수 없게 되어도 중단한다는 약속은 아니었다.북한의 상호사찰수용등 성의있는 호응이 없는 이상 그 재개는 너무도 당연한 순서라 생각한다.팀 스피리트 재개준비를 오히려 핵상호사찰 거부구실의 역선전 수단으로 삼는것은 지나친 적반하장이요,본말의 전도라 하지않을 수 없다.팀스피리트가 싫으면 상호사찰을 수용하면 되는 것이다. 북한은 국제환경의 변화를 하루빨리 직시해야 할것이다.북한의 핵보유는 절대로 불가능하다.우선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하고 있지 않는가.대북핵지원 중단을 발표한 바있는 러시아는 북한의 대남도발억제노력을 다짐하는 외교독트린까지 마련한 것으로 보도되었다.미국에선 북의 핵문제에대해 부시보다 더 엄격한 민주당의 클린턴정부가 탄생한다.IAEA도 4차례의 사찰결과에 불만이며 앞으로 원하는 시설에대한 사찰을 북한이 의도적으로 기피할 경우 강제사찰을 실시하는 문제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우리는 북한의 국제고립과 고사를 원치않는다.IAEA의 강제사찰을 받게되는 긴장사태도 바라지 않는다.역사와 대세를 거역한다면 남는 것은 비극뿐일 것이다.조속한 남북핵 상호사찰수용의 활로모색을 권하고싶다.한미의 선거도 이젠 끝났고 끝나가고있다.더 기다릴 상황도 없다.북한의 대응을 주목한다.
  • 불법체류 중국교포 1만9천명/탈주사건 계기로 알아본 실태

    ◎약재 판매·공사장 인부에서 매춘까지/적발돼도 강제출국 고작… 처리 골치 중국교포들의 탈출사건을 계기로 이들에 대한 처리여부와 국내에서의 실태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88년 서울올림픽이후 한국경제성장의 소식이 본격적으로 중국땅에까지 알려지면서 몰려들기 시작한 중국교포들은 지난해 6천9백여명에서 올해는 9월말 현재 1만9천4백여명이 국내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법무부는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30일만기 관광비자로 국내에 들어와 서울역·시청역 지하도등 이른바 「중국교포 만남의 장」에 모여 한약재를 팔거나 서로 정보를 교환,음식점·여관·공사장등에 취업하고 있다. 이들은 질병·친척찾기등의 핑계로 30일씩 2차례에 걸쳐 체류기간연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대부분 최대 체류허용기간인 3개월까지 머물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가져온 녹용이나 웅담·청심환등 한약재를 팔거나 공사장 잡역부·음식점종업원등으로 일하며 「돈맛」을 본 이들은 3개월이 지난뒤에도 불법체류를 감행하며 돈벌이에 나서고 있는 사람들도허다하다. 중국에서의 평균월급이 2만∼3만원에 불과한 이들에게는 3개월정도만 국내에서 일하면 중국에서 2∼3년 버는 것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심지어 중국에서 학교교장·은행원·의사·공장간부등으로 일하던 사람들도 공사장 인부나 유흥업소종업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같은 사례는 한·중수교이후 더욱 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젊은 여성교포들 가운데 다방이나 술집·여관종업원으로 일하며 윤락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어 교민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서울역·용산역·청량리역 주변의 값싼 여인숙에서 4∼5명씩 짝을 지어 살면서 직장을 자주 옮기거나 사고를 당해도 불법체류사실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신고조차 안하고 있어 단속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중국교포와 관련된 사건도 잇따르고 있는데 지난 7월에는 불법체류하며 식당에서 일하던 교포여인과 딸을 위협,강제폭행한 사건이 일어났는가 하면 지난달 17일에는 중국교포여성들을 여관에고용해 윤락행위를 시키다 적발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현행 규정상 불법체류를 하다 적발되더라도 강제출국시키는 것외에는 별다른 처벌조항이 없는데다 같은 핏줄인 교포들을 다른 외국인들처럼 냉정하게 다룰 수도 없어 당국으로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소나 경찰관계자들은 『늘어나는 불법체류자들로 인한 범죄를 막는다는 차원에서 단속을 하고있으나 중국교포들을 동남아등 불법체류 외국인들과 똑같이 취급하기도 어려워 곤란을 겪고있는 실정』이라면서 『중국교포들이 중국으로 돌아가면서 일제 전자제품등을 무더기로 사가는등 외화유출의 요인도 많아 이들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추방대기 중국교포 17명 탈출/출입국관리소서

    ◎4명은 부상 입고 붙잡혀/감시소홀 새벽에 자물쇠 뜯어/5층서 소방호스 타고 달아나 30일 상오5시15분쯤 서울 양천구 신정6동 319의2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5층 수용소에서 불법체류자로 적발돼 조사 대기중이던 중국교포 최성철씨(38)등 21명이 탈주를 시도,17명이 달아나고 4명은 부상을 입고 현장에서 잡혔다. 최씨등은 2중잠금장치가 된 문의 자물쇠를 뜯고 보호실안의 소방호스를 5층 창문틀에서 아래로 늘어뜨려 타고 내려와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김순녀씨(44·여)모녀등 4명은 호스를 놓쳐 15m아래 환기통 철제덮개위로 떨어져 척추골절상등을 입고 양천성모병원과 대림성모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있다. 김씨는 병원에서 『어제(29일)서울역에서 장을 보러 나갔다 붙잡혔다』면서 『잠을 자다 딸이 나가자고해 따라 나섰다』고 말했다. 탈주당시 수용소보호실에는 조사2과 소속 주명식씨(32)등 2명이 근무를 하고 있었으나 자리를 비워 탈주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산책나왔던 주민 김경영씨(77·양천구 신정동)의 신고로 뒤늦게 이들의 탈출을 알았다.이날 보호실에는 방글라데시인 11명등 외국인 28명과 함께 중국교포 70명이 수용돼 있었다. 이들은 법무부가 11월을 불법체류자 중점단속기간으로 설정,29일 하오1시부터 9시까지 지하철 서울역 구내와 남대문시장 등지에서 벌인 일제단속에서 여권미소지로 적발돼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넘겨졌으나 보호실의 6개방 적정인원이 10여명이어서 나머지 사람들은 복도에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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