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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1)안중근의사 의거현장 하얼빈역

    90여년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병탄되자 수많은 의사 열사들이 국내외에서 피끓는 항일독립운동에 나섰다.때로는 일제의 합방원흉들에게 단신으로폭탄을 던졌고 때론 일본군과 대규모 전투를 벌이며 독립의지를 해외만방에떨쳤다.대한매일은 이같은 애국선열의 고귀한 희생과 드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연말까지 매주 1회씩 미·소·중·일 등 4개국에 흩어져 있는 항일유적지를 탐방한다. 중국에서는 하얼빈역의 안중근 의사 의거현장을 비롯한 24곳을돌아보고 임정요인 및 독립군이 걸은 가시밭길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또 옛소련에서는 하바로프스크 독립군 전적지 등 5곳을 살펴본다.미국에서는 전명운의사의 친일미국인 스티븐스 저격현장인 샌프란시스코 등 5곳을,일본에서는 저항시인 윤동주 등이 숨진 후쿠오카형무소 등을 찾아본다.대한매일은 현장의 모습과 관련문서,생존자 증언 등을 통해 민족의 제단에 몸바친 애국선열의 불굴의 독립정신을 새롭게 정리한다. 중국의 동북3성(省) 가운데 가장 위쪽에 위치한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성도(省都) 하얼빈.하얼빈은 우리 항일운동사에서 상징적인 의열투쟁으로 일컬어지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현장으로 우리에겐 낯익은 곳이다.일제당시 이곳은 만주와 러시아일대 한인들의 독립운동 거점으로 숱한 항일 애국지사들의피와 땀이 서린 곳이다.이곳은 또 아직도 일제의 가혹한 통치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시내 곳곳에는 일제때 세워진 러시아풍의 관공서 건물들이 여전히 옛 영화를 자랑하듯 버티고 서 있다.안 의사 의거로부터 90년이 지났지만 안 의사의의거관련 유적 역시 고스란히 남아 그 날의 의거를 전해주고 있다. 특히 시내 외곽에는 생체실험으로 악명높았던 일본 관동군 예하 731부대의 잔흔이참혹했던 과거사를 생생히 증언해 주고 있다.하얼빈은 근대 동북아시아의 영욕의 역사를 간직한 현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재팀이 ‘역사의 현장’인 하얼빈을 찾은 것은 지난 7월 8일 오후 1시.취재팀은 안 의사의 총탄을 맞고 쓰러진 이토가 91년전 이곳을 향해 출발한 열차의 출발점이자 만주국의 옛 수도였던 창춘(長春)을 출발,세시간 반을 달려 이곳에 도착했다.취재팀을 맞은 것은 30도를 오르내리는 하얼빈의 무더위였다.열차는 3번 플랫폼에 정차했다.승객들을 따라 지하통로를 지나 취재팀이 나온 곳은 1번 플랫폼이었다.바로 안중근 의사의 의거현장 근처였다. 관련자료에 의하면 안 의사는 출구쪽의 역사(驛舍)와 인접한 1번 플랫폼에서 이토를 처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의거현장에는 이곳이 안 의사의 의거현장임을 알려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의거현장을 정확하게 알고있는 역무원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취재팀은 전문가의 고증을 받기로했다.숙소로 돌아와 이 지역 독립운동사의 권위자인 헤이룽장성 당사(黨史)연구소 김우종소장(71)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김 소장은 “1번 플랫폼 지하통로 옆,즉 2등 대합실 출구 앞”이라며 “당시 일제가 이토의 흉상을 세웠으나 8·15후 소련군이 철거했다”고 증언했다.현재 그 자리에는 작은 화단이조성돼 있다.구내에서 안 의사의 의거를 전해주고 있는 것은 철마가 잠시 쉬었다 가는 1번 플랫폼 뿐이었다. 하얼빈 시내에는 안 의사 관련 유적이 이밖에도 몇 군데 더 있다.보존상태는 대부분 양호한 것으로 취재과정에서 확인됐다.우선 안 의사 의거와 인연을 맺고 있는 역으로 하얼빈역에서 15㎞ 떨어진 채가구역이 있다.이 역은 안의사의 동지인 우덕순 의사가 이토가 탄 기차가 이곳에 정차할 것에 대비,이토를 기다렸던 곳이다.하얼빈역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채가구역은 러시아풍의 단층 건물 옛 모습을 그대로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안 의사가 의거후 현장에서 체포돼 러시아 군헌(軍憲)에게 처음 신문을 받은 곳은 동청(東淸)철로국 공안국 건물이었다.하얼빈 역에서 500m 가량 떨어진 대로변에서 위치한 이 건물은 2층 건물로 현재는 하얼빈 철로국 공안국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한편 안 의사가 이곳에서 간이신문을 마치고 이송된 곳은 하얼빈주재 일본영사관이었다.안 의사가 체포된 후 두 손이 뒤로 묶인채 쇠사슬을 두르고 찍은 사진의 현장이 바로 이곳이다. 이곳 일본영사관 지하감방에서 일제 관헌으로부터 가혹한 신문을 당한 항일투사가운데 남자현(南慈賢) 의사가 있다.1872년 경북 영양 출신인 남 의사는 남편이 의병전투에서 전사하자 1919년 만주로 망명,서로군정서에서 항일운동을 하였다.1925년 국내로 들어와 동지들과 사이토 총독 암살계획이 미수에 그치자 만주로 다시 돌아가 재만(在滿) 독립운동단체의 통일에 참여하였다.1931년 김동삼(金東三) 선생이 하얼빈에서 체포되자 온갖 탈출노력을 시도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후 만주주재 일본대사를 처단하기 위해 걸인 노파차림으로 무기를 운반하다가 하얼빈시내 정양가(正陽街)에서 일경에 체포돼 이곳 영사관 지하감방으로 옮겨져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남 의사는 감옥에서 6개월동안 단식투쟁끝에 보석으로 석방됐으나 1933년 8월 22일 이곳 이국땅 하얼빈에서 순국했다.남 의사의 유해는 하얼빈 시내 천주교 묘지에 묻혔다.그후 문화공원으로 불려온 이곳은 현재 하얼빈 유락원(遊樂園)으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취재팀이 방문한 현장은 각종 놀이기구와수영장 등이 들어선 놀이공원으로 바뀌어 있어 어디에서도 남 의사의 흔적은찾을수 없었다. 보훈처의 해외 항일유적지 조사 답사팀과 함께 하얼빈을 찾은 박환 수원대교수(사학과)는 “해외 항일유적지 조사는 선열들의 업적을 현창하는 일 가운데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사업”이라며 “그동안 현지 촌로들의 증언에만의존하는 학술차원의 조사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현지 연구자로 답사팀에합류한 유병호교수(옌볜대학 민족연구소)는 “93년 엔벤대학에서 조선사 공개강좌를 개설했을 당시 단군을 아는 조선족 학생이 5∼6명에 불과한 것을보고 놀랐다”며 “한중우호 차원에서라도 항일독립투쟁사를 제대로 교육할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하얼빈은 안 의사의 의거관련 유적은 물론 시내 외곽에는 일본 관동군예하 731부대의 구지(舊址)가 아직도 남아 있다.시내에서 북쪽으로 20㎞ 떨어진 평방구(平房區)에는 지난 95년 해방 50주년을 맞아 중국 당국이 건립한 ‘731부대 죄증(罪證)진열관’이 당시의 참상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진열관 앞 100m 지점,즉 731부대 북쪽 끝에는 당시 731부대에서 필요한 전기·에너지 등을 공급한 ‘동력반(動力班)’의 대형 굴뚝이 철거되다만채 흉한 모습으로 잡초 속에 방치돼 있었다.이 앞쪽에 위치한 부대 터에는 민가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현재 철거작업이 한창 진행중이었다.이곳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현재 중국 당국에서 이곳을 역사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해 민가를철거중이라고 했다. 한편 그동안 731부대의 흔적은 동력반의 굴뚝 정도만 상징적으로 남아있고나머지는 대개 철거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 취재과정에서 아직도 상당수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지역 출신의 한 주민은 취재팀에게 “한국인과 중국인은 모두 같은 피해자”라며 “731부대의 지하통로가 하얼빈 시내까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증언했다. 하얼빈 정운현기자 jwh59@
  • [끊어지지 않는 지구촌 분쟁](4)티베트의 홀로서기

    반세기동안 계속되는 티베트의 독립·분리운동은 중국에게는 피하고 싶은아킬레스건이다.티베트내의 인권상황은 중국을 국제사회에서 곤혹스럽게 한다.97년 장쩌민(江澤民) 중국 주석의 미국 방문때 공식거론 여부를 놓고 막판까지 논란이 됐었고 최근 티베트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방한문제로 한-중간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올초에는 티베트 불교계 서열 3위인 카마파 라마(14세)가 인도로 월경,중국-인도관계가 불편해졌다. 비폭력 독립운동을 이끌어온 달라이 라마가 98년 11월 티베트 독립 포기를선언하고 ‘완전 자치’를 요구하면서 티베트 문제는 새 국면에 들어섰다.공은 중국 정부에게로 넘어갔다. [분쟁의 역사] 티베트는 13세기 이후 중국과 영국의 통치를 번갈아가며 받아왔다.1911년 신해혁명이후 한족을 몰아내고 1950년 중국이 지배권을 주장하며 무력 침공할 때까지 독립을 유지해왔다.중국은 1906년 티베트에 대한 권리를 인정한 영국과의 조약을 근거로 티베트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1951년 5월 베이징 정권이 무력을 이용,달라이 라마 정부와 17개조의 ‘티베트 평화해방협정’을 체결했다.정교일치 체제의 존속은 인정하되 토지개혁을 포함한 사회개혁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그러나 1959년 중국의 점령에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중국군에 의해 진압됐다.이후 79년까지 100여만명의 희생자가 생겨났다. 달라이 라마는 59년 추종자 6,000여명을 이끌고인도로 망명했다. 중국 정부는 65년 티베트에 자치구(서장)를 세웠다.67년 문화대혁명(∼1977년)이 시작되면서 역사적 유산이 모조리 파괴됐다.마오쩌둥(毛澤東) 사망을계기로 화해를 시도했지만 티베트 민족주의 저항은 약해지지 않았다.봉기 30주년인 1989년 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결국 90년 5월까지계엄체제가 지속됐다. [분쟁원인]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으로서는 ‘살아있는 부처’인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한 신권정치를 인정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티베트가 갖는 군사적·지리적 요충지로서의 의미도 빼놓을 수 없다.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티베트 고원은 지리적으로 무기배치와 개발에 이상적이다.중국의 로스알라모스(미국 뉴멕시코주에 있는 원자력 연구 중심지)에 해당하는 ‘제 9아카데미’가 티베트 북동부에 주둔하고 있다.중국과 인도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티베트가 미사일 및 핵시설등을 갖춘 중국의 전진 군사기지화되면서인도의 견제가 심화됐다. 중국은 목재·수자원·광물자원과 세계 최대의 우라늄 광산에 대한 개발권도 놓치고 싶지 않다.여기에 티베트의 독립 내지는 완전자치가 다른 소수민족에 미칠 파급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전망] 중국은 헌법에 소수민족의 자치를 인정하고 있다.하지만 티베트에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풍부한 자원개발 및 전략적 요충지인 티베트 고원에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일을중국이 선택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당분간 무리일 것 같다. 김균미기자 kmkim@. *티베트 분쟁 일지. ●1913.1 달라이 라마 13세,티베트 독립 선포. ●1950.10 중국군,티베트 무력 점령. ●1951.5 티베트,중국 서장자치구에 편입. ●1959.3 티베트서 독립요구 대규모 시위, 달라이 라마 인도로 망명. ●1965.9 중국,티베트 자치구 성립 선언. ●1987.9 달라이 라마 ‘평화 5항목’제안,중국 거부. ●1987.10 대규모 독립요구 시위. ●1989.3 59년 독립시위 30주년 대규모 시위로 6명 사망,100여명 부상.중국사상 최초로 계엄령 선포. ●1989.10 달라이 라마,노벨평화상 수상. ●1992.4,1993.10 티베트서 폭동 발생,사원들 폐쇄. ●1998.11 달라이 라마,티베트 독립포기 발표. *열매 맺는 망명정부 외교.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 망명정부는 인도와 네팔 부탄 등에 흩어져 사는 13만여 티베트인들의 중심이 되고 있다. 망명정부는 완전 자치를 쟁취하기 위해 대(對)유엔,미국,유럽 등 국제적인지원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이같은 노력의 결과 미국은 특히 티베트 문제를중국의 민주주의,인권문제에 포함시켜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망명정부는 사법부인 티베트 최고사법위원회와 입법부인 국민대표국회,행정부로 이뤄져있다.내각과 국회는 5년마다 선거로 구성원들을 선출한다.또 뉴델리와 뉴욕 런던파리 등 10여개 도시에 대표사무소를 설치,티베트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는데 활용하고 있다. 현재는 ‘국제 티베트 운동’의 후원 아래 세계 곳곳에 있는 수백개의 ‘티베트 우호회’ 지부들이 티베트 돕기에 나섰다.특히 미국의 영화배우 리처드기어 등 헐리우드 인사들이 티베트 돕기운동에 동참하고 티베트 관련 영화‘쿤둔’과 ‘티베트에서의 7년’이 개봉되면서 티베트에 대한 세계인들의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티베트의 인권보호와 문화를 지키기 위한 ‘세계 티베트의 날’ 행사가 매년 열리는 등 국제적인 지원행사가 끊이질 않고 있다.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운동과는 별개로 티베트 독립운동세력은 한때 미국과타이완의 지원을 받아가며 중국에 무력으로 대항하기도 했다. 하지만 70년대이후 미국과 중국관계가 호전되면서 지원이 끊어졌고 지금은 비조직적인 소요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김균미기자. * 印 다람살라 망명정부 르포. [다람살라(인도) 김성호기자] 인도 동북부 해발 1,900m의 산악지역인 다람살라.망명자들을 비롯,티베트와 인도 전역에 퍼져 사는 티베트인들이 고유의종교와 문화를 잃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자치에의 염원을 이어가는 이색지대다.마치 일제하 상하이 임시정부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중국의 폭압이 한창이던 59년 6,000여명의 측근과 함께 티베트를 탈출한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네루 당시 인도 총리의 주선으로 정착하면서 세계의 이목이 쏠리게 된 망명도시.89년 달라이 라마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뒤 본격적견제에 나선 중국 정부와 이에 맞선 티베트인들의 줄다리기가 오늘도 팽팽히 벌어지고 있다. 망명 티베트인 1만명이 사는 고지대와 인도인 2만명이 거주하는 저지대를합쳐 인구는 총 3만명.소형차 한대가 간신히 통행할 수 있는 비좁은 길을 따라 상가와 집들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다.망명정부 청사가 자리잡은 거리를중심으로 사원과 학교가 산재하며 어느 곳에서든 티베트 승려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거리에는 티베트 불교가 좋아 무작정 찾아든 서방세계의 젊은이들이 불상이며 탱화를 벌여 놓은 좌판 주위에 몰려 있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손님 주위에는 어김없이 인도 걸인들의 구걸이 이어진다. TCV(Tibetian Children’s Village)와 도서관은 티베트의 전통과 종교를 이어가려는 노력이 가장 두드러진 곳.달라이 라마의 누이동생 제툰 페마가 총괄하는 TCV는 일종의 종합학교로 티베트 불교 중심의 9년 과정.인도 전역에7개의 학교가 운영되는데 다람살라에는 700명이 수학중이며 한국 학생도 4명이 있다.59년 망명 때 티베트인들이 등짐을 져 날라온 경전 7,000종이 고스란히 보관된 도서관엔 각국 학생·승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티베트 문화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곳은 역시 사원.조캉사원엔 티베트에 불교를 전한 파드마삼바바와 관세음보살상 옆에 60년대 문화혁명 때 티베트에서 파괴된 불상의 목 2개가 함께 봉안돼 있다.티베트 불교와 티베트인들의비극을 그대로 보여준다.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에 파괴된 티베트 사원은 6,000여개.산꼭대기 달라이 라마의 거처 주변에 자리잡은 중앙대회당에는 1년에한번씩 달라이 라마의 법어가 내려지며 남걀사원 역시 정월 대보름 달라이라마의 법문을 듣기 위해 북새통을 이룬다.사원 곳곳에서 손을 뻗고 엎드려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는 승려와 일반인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예비 비구니들이 10년에 걸친 교육을 통해 사미계를 받는 비구니 강원을 들어서면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예비 승려들이 읽는 독경소리가 신비감을 전한다. 토속 주술신앙과 티베트 불교가 혼합된 독특한 형태를 갖춘 네퉁사원은 신통을 받은 승려가 달라이 라마에게 행동지침을 전하는 신탁의 장소다. 정부 청사거리.달라이라마가 신왕(神王) 위치에 있지만 총리 1명,장관 7명으로 구성된 내각 카샥과 망명 티베트인들이 뽑은 46명의 의원이 모인 의회등 나름대로 자치의 틀을 갖추고 있다.중국 대륙을 통일한 공산당이 50년 티베트를 쳐들어오면서 트기 시작한 비극의 싹이 결국 이곳으로 귀결된 것이다.59년 중국 침공에 맞선 독립시위에는 잔혹한 진압이 따랐고 그때 티베트 전체 인구의 20%인 12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정치적인 이유로 감옥에 갇히거나행방불명된 이들은 헤아릴 수 없다.티베트에서 최근 망명한 전직 경찰관 탐딘 체링씨(56)는“폭압의 잔혹성은 59년 끝난 게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있다”면서 “60년 이후 약 20만명이 더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옛 티베트의 면모를 아스라히 풍기면서도 차츰 현대문명의 물결이 스며들고있는 다람살라가 언제까지 티베트 고유의 문화와 종교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티베트인들이 더이상 달라이 라마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이될 때 나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란 달라이 라마의 말이막연하게나마 다람살라의 앞날을 점쳐볼 수 있게 한다.
  • 색다른 맛… 화제의 평론집 2題

    그동안 수많은 저서를 펴냈던 문화및 문예비평가 이어령이 처음으로 문학이론서인 ‘공간의 기호학’(민음사)을 내놓았다. 청마 유치환의 시 총 599편을 대상으로 ‘문학 공간의 기호론적 분석’을시도한 그는 현재의 문학비평연구가 작가의 전기나 역사적 사회 상황 같은것에 초점을 맞추는 외재적 연구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고 지적하면서 내재적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저자는 예컨대 청마의 시 ‘깃발’과 관련,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시에서‘기(旗)’를 전기적으로 풀이하거나 시대에 얽힌 역사적인 의미로서 파악하려고 하지만 이는 피상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공간 기호론으로 깃발을 분석했을 때 ‘기’는 하늘과 땅의 중간부분에 위치하는 사물이 되며 어떤 사물이나 이미지가 하늘과 땅의 수직구조에서 그 중간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면청마의 ‘깃발’과 동일한 의미를 갖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론은 시만이 아니라 소설,희곡 등 모든 문학 장르와 회화,건축,그리고 무용 같은 비언어적 예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할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을 따라 남하해서 ‘지리산 유격 지대를 가다’‘바다가 보인다’ ‘우리는 이렇게 이겼다’ 등의 종군르포를 남긴 작가 김사량(1914∼1950)의 평전이 나왔다. ‘김사량 평전’(문학과지성사)은 재일동포 문학평론가 안우식(68)씨의 1972년작(이와나미 문고)을 번역(심원섭 옮김)한 것이다. 평양의 부르주아 집안 출신으로 도쿄제국대학 독문과를 나온 김사량은 1939년 일본어로 쓴 단편 ‘빛 속으로’가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에 올랐다.1945년2월 친일적인 학도병 위문단으로 중국에 파견된 길에 탈출했으며 해방후 재북 작가로 활동했으나 남한은 물론 북한에서도 충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평전 작가는 김사량의 ‘낭만적 정신’을 주목하면서 ‘성실한 한 명의 민족작가의 모습’을 꼼꼼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려내고 있다. 김재영기자
  • 여자농구 여름리그 한빛銀, 삼성에 첫승

    중국용병 량신이 이끈 한빛은행이 우승후보 삼성을 연패의 늪에 빠뜨렸다. 한빛은행은 19일 장충체육관에서 속개된 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 7차전에서량신(27점 12리바운드)이 골밑에서 분전하고 박순양(18점 3점슛 4개)이 외곽슛으로 거들어 삼성생명 비추미를 79-71로 눌렀다.이로써 한빛은행은 프로출범 이후 삼성에 9패를 당한 끝에 첫 승리를 거두며 3승째(5패)를 챙겨 하위권 탈출의 발판을 마련했다.2연패를 당한 삼성은 공동 1위에서 3위(5승3패)로 밀렸다. 국민은행은 포인트가드 김지윤(26점 8어시스트)의 폭넓은 플레이로 천난(34점 12리바운드)이 분전한 금호생명 팰콘스를 74-68로 꺾고 3승4패로 4위를지켰다.
  • 남북정상회담/ 美 전문가들 성사배경 분석·전망

    [워싱턴 AFP 연합]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배경 가운데 하나는 북한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열악한 경제를 개혁해야만 한다는 점을인식했기 때문이라고 일부 북한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주한 미국대사와 주중 미국대사를 역임한 제임스 릴리씨는 “북한이 경제파탄에서 탈출하기 위해 정상회담에 응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중국을 비공식 방문한 것도 변화를 기꺼이 수용하고 한 걸음 나아가 서방 세계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려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북한 문제에 정통한 평론가들은 북한의 최근 활발한 외교적 행보를경제개혁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직결시킬만한 증거는 없다면서 신중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정치적 반대파에 대해 편집광적인 태도를 보이는 북한 정부가 경제개방 과정에서 수반되는 통제를 완화할 준비가 돼 있는지 여부는 여전히 의문이다. 북한의 개혁이 극빈상태에 처한 국민들의 곤경을 완화시키는 쪽으로 전개될지,아니면 막강한 군사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지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북한 경제가 정치에 종속돼 질식상태에 빠져 있는데다미숙련 노동력과 전무하다시피 한 사회 인프라,사업상 거래를 관리하는 법률적 구조의 부재 등으로 중국과 베트남,옛 소련 등의 중앙계획시스템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워싱턴에 있는 맨스필드 공공문제연구소의 골든 플레이크 연구원은 북한에서 사업을 하려던 남한 기업들이 북한의 낙후된 제반 사정 때문에 상당수가사업계획을 재고하고 있다고 밝혔다.그는 “현재와 같은 각종 규제와 노동시장 여건하에서는 북한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기업인들을 많다”고 말했다. 한편 분쟁조정절차가 전무하고 투자한 돈과 사업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는법적 뒷받침이 갖춰지지 않는 한 외국 투자가들의 투자를 선뜻 기대하기는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컬럼비아대학의 노정호 법학과 교수는 “(북한의)법률 체계는 매우 정치적이며 서방 세계에서와 같은 법규정이 북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중국이나 다른 투자대상국이 있는데 왜 북한에 투자하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랜드 연구원은 개혁에 따른 잠재적 댓가는 어마어마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코카콜라와 펩시 등 미국 기업들이 이미 대(對)북한투자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지만 북한의 최대 희망은 한국에 있다고 지적했다. 놀랜드 연구원은 “중국이 홍콩과 대만에서 전문기술을 얻고 옛동독이 서독의 지식을 이용했던 것처럼 북한은 ‘돈줄’인 한국으로부터 배워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국제사회가 북한으로 하여금 경제를 개방하고개혁을 시행하는 댓가가 얼마나 생산적이고 북한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를 제시한다면 북한이 예전과 같이 고립정책을 펼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강조했다.
  • 6월4일 中 天安門 사태 11주년/ 현주소

    6 ·4 톈안먼(天安門) 사태 11주년을 이틀 앞두고 재평가와 책임자 처벌을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왕훙쉐 등 반체제인사들은 톈안먼사태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하는 공개 탄원서를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 등 중국 지도층에게 보냈다.톈안먼의 어머니 ‘딩즈린(丁子霖)전 중국인민대 교수를 비롯한 6·4 유족108명이 리펑(李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장에 대한 형사고발안 신속처리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은 보내 중국 사법당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하지만 이같은 연례적인 재평가 요구운동 이외에 올해에는 사회 곳곳에서예년과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임박하면서 사회·경제·정치개혁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진 것.중국 관료 출신으로 현재 연구소를 운용하는 리판은 “WTO 가입은 개혁과 개방을 의미하며 이는 언론의 자유를 확대시킬 것이다.더 많은 자유는 민주주의의 가속화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이는 중국 지도부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경제개혁은 가속화시키되 정치개혁에는 난색을 표하며 정경분리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중국 당국은 지난달 말부터 사회주의 이념을재무장하기 위한 대대적 캠페인을 전개하는 등 이미 정치·사회 민주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나섰다.또 지식인층에 대한 ‘옥죄이기’에도 들어갔다. 장쩌민 주석은 지난달 말 상하이와 장쑤,저장성 등 동부지역을 순시하면서서서히 밀려오는 서구화 물결을 경계하는 연설을 했다.그는 “민간사업 부문을 위한 당 대책기구 구성은 전혀 새로운 일”이라며 서구문명의 창구 역할을 하는 민간 부문에 대한 통제를 강조했다. 중국 당국은 또 정치·사회 민주화를 지지하는 지식인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배포하면서 이들에 대한 감시도 강화했다.외신에 따르면 현재 민영화와민주적 개혁을 지지하는 8명의 지식인들 명단이 돌고 있고 최근에 17명의 이름이 추가돼 출판사와 언론사에 배포돼고 있다고 전했다.이들의 책이나 글이일반인들에게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중국 당국이 언론과 지식인층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면서 민주화를 요구하는목소리가 다소 잦아들기는 했다.그러나 국제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이 정보화와 시장개방이 가속화되면 언제까지 이같은 방법으로 중국인들의 민주화 요구를 잠재울 수 있을 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는 6·4사태와 관련 213명이 복역중이다. 김균미기자 kmkim@. * 텐안먼(天安門) 사태 당시의 주역들 어디서 무얼하나. 89년6월4일 텐안먼(天安門) 시위를 이끌었던 반체제 주역들의 현주소는 11년이 지난 지금 다양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 아직도 반혁명분자의 꼬리표를 달고 수감중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국으로망명해 유학하거나 첨단산업에 종사하면서 행복한 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다. 중국이 사태 진압 직후 수배령을 내린 21명의 학생지도자중 서방에 망명한인사는 류강(劉剛·38)을 비롯해 12명.중국에 남은 9명중 2명은 수감중이며나머지 7명은 당국의 감시 속에 장사 등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거나 행방이 불확실한 상태다. ‘수배 1호’였던 베이징대 역사학과생 왕단(王丹·31)은 6년5개월간의 복역 끝에98년5월 병보석으로 풀려나 미국으로 건너갔다. 매년 6월이면 민주화와 인권보장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여온 그는 96,97년 연속 노벨 평화상 후보에 추천됐다.지난달 천수이볜(陳水扁) 타이완 총통의 취임식 참석 여부를 놓고 중국을 긴장시켰으나 모습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수배 2호’였던 시위대 대표 우얼카이시(吾爾開希·32)는 중국을 탈출한뒤 미국의 한 중국어 방송사에서 일하다 타이완 여자와 결혼,미국과 타이완을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다. 96년5월 홍콩으로 탈출한 뒤 미국에 망명,중미관계를 불편하게 했던 류강(劉剛)은 뉴욕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여학생 지도자 차이링(紫玲·33)은 미국에서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으며 보스턴 금융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 남은 학생지도자중 왕여우차이(王有才·34) 등 2명은 현재도수감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美언론보호위원회 선정…세계 ‘언론 10적’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의 비영리 언론공익단체인 ‘언론보호위원회’(CPJ)는 1일 세계언론자유에 커다란 제약을 가하고 있는 인물 10명을 선정,‘언론 10적’으로 발표했다. CPJ가 선정한 언론 10적에는 이웃나라에서는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으며 최근 경제위기에서 탈출하는데 힘쓴 모하마드 마히티르말레이시아 총리도 선정돼 국가발전과 언론발전의 묘한 함수관계를 보여줬다. 또 나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지네 알압딘 벤 알리 튀니지대통령 등도 옛 소련을 연상시키는 수준의 언론탄압을 이유로 선정됐다. 특히 호세 에두아르도 산토스 앙골라 대통령,시에라리온 포대이 산코 혁명연합전선 지도자 역시 언론인의 학살과 불법체포에 앞장선 혐의로 악명을 얻었다. 기존부터 단골손님이던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유고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여전히 잔류됐으며,최근 헌법을 무시하고 3선을 노린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도 악명을 얻었다. hay@
  • 탈북소년 장길수군 ‘눈물로 그린 무지개’

    오는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모든 사람들이 들뜬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하지만 중국에는 탈북자들이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탈북 소년 장길수군의 ‘눈물로 그린 무지개’(문학수첩)는 길수와 그의 가족들이 북한과 중국을 떠돌며 겪은 이야기를 담아 놓았다. 길수 가족의 탈북은 지난 97년 외할머니가 북한을 빠져나오면서 시작됐다. 중국에서 살다 북한으로 간 외할머니는 ‘성분 미해명자’로 분류돼 불이익을 당해 오다 북한을 탈출했다.외할머니는 98년에 다시 두만강을 건너 남편과 아들을 데려 왔고 길수도 99년 탈북했다. 길수는 그 후 북한에 몰래 들어가 형과 어머니를 모셔왔지만 학교 선생님인 아버지는 ‘죽어도 북쪽에서 죽겠다’고 고집해 북한에 남았다. 길수는 책 첫 부분에 실린 편지 원본에서 ‘저는 너무 배가 고파서 살 길을찾아 총을 멘 경비대를 피하며 며칠 굶고 얼면서 자유의 세상이라고 하는중국으로 왔습니다’라고 탈북 동기를 밝히고 있다.이어 탈북자들의 고통스러운 생활과 탈북자에게도신분 차별이 있음을 증언한다. 책에 실린 길수의그림 가운데 20여점은 지난해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NGO 대회 때 전시돼 큰반향을 일으켰었다. 김명승기자
  • 남북 정상회담/ 이산가족문제 어떻게

    남북간에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실향민들은 이산가족 상봉의 꿈에 한껏 부풀어 있다. 이산가족문제 해결은 50년만의 ‘민족 화해’란 회담의 상징적 의미를 감안할때 어떤 형태로든 성과를 이뤄낼 것으로 기대된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1일 국무회의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4대 과제의 하나로 제시한 베를린 선언을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상정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산가족상봉 방안은 ▲고향방문단운영 ▲고령자의 생사확인 및 상호방문▲판문점 및 제3국 지역의 면회소 설치 등으로 요약된다. 고향방문단의 운영은 북한측으로선 가장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이다.상황에 따라 일회성 이벤트로 마감할 수도 있다는 유연성때문에 북측에겐‘매력’이다.과거에 운영해본 경험도 있다. 또 고령자의 생사확인이나 제한된 상호 방문허용은 북측에겐 충격이 적다는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높다. 판문점이나 금강산지역 또는 중국의 단둥(丹東)∼신의주 등의 면회소 설치도 여러 방안중 하나로 꼽힌다.이 안은 당국자회담에서도 여러 차례논의된 바 있다.실질상봉의 전단계로 화상 전화를 통한상봉및 생사확인도 고려할 수 있다. 북한은 이산가족 교류가 대대적으로 이뤄졌을 경우 체제동요가 따를 것으로우려해왔다. 예민한 정치 문제라는 시각이다.‘북한체제를 반대하고 탈출한반체제 성향 인사들’의 고향방문이나 이들 친족들의 서울방문은 북한체제의동요를 가속화 할 수 있다는게 북측의 판단이다. 이점에서 대규모 이산가족 교류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북측이이같은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는 남북관계의 발전 방향을 함축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정부는 실향민 2·3세대를 포함한 이산가족을 767만명 가량으로 추산하고있다.이중 52세 이상의 이산가족 1세대는 123만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 종교·사회단체 탈북동포돕기 본격화

    최근 중국과 북한에서 탈북자들에 대한 강제소환과 처형이 잇따르고 있는가운데 한국 개신교 교회와 민간단체들이 탈북동포를 돕기 위한 대대적인 연합운동에 나섰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대표회장 이만신 목사)는 지난달 27일 오는 16일부터 23일까지를 ‘탈북동포 특별기도와 선교주간’으로 선포하고 전국 4만여 교회와 신자들에게 특별기도와 후원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이와관련,북한이탈주민지원민간단체협의회 소속 17개 단체는 5월 21일부터 27일까지를 ‘북한이탈주민후원주간’으로 정해 다양한 행사를 벌이기로 했다. 한기총은 ‘탈북동포 특별기도와 선교주간’선포에 즈음한 성명에서 “탈북난민을 위해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와 탈북자지원을 위한 사역,재정적 지원으로 16일부터 시작되는 올해의 고난주간을 전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피해 탈출한 탈북난민과 함께 고난을 나누는 기회로 삼자”고 말했다. 한기총은 북한이탈주민후원주간동안 100만 후원회원모집 캠페인과 함께 귀순자 합동결연식 및 위로잔치,북한이탈주민 후원의 밤,자선음악회,세미나,북한음식전 등을 연다. 지난 95년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탈북자들은 현재 최대 30여만명에 이르는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종교단체들의 탈북자에 대한 보호 구제활동이 늘고국제적 관심이 쏠리면서 중국과 북한은 조직적인 탈북자 체포·송환을 벌이고 있는 분위기다.교계 관계자들은 “중국과 북한당국이 탈북자와 한국 종교·사회단체의 접촉을 막아 현지에서 구호활동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성호기자
  • [타이완 51년만의 정권교체]

    *현지표정. 타이완(臺灣) 총통선거 막바지까지도 계속 됐던 타이완에 대한 중국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휴일인 19일 양안에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나 양측군부는 비상경계령을 풀지 않은채 팽팽한 긴장을 이어갔다. □타이완 해협 중국 군부는 총통 선거후 타이완의 독립 움직임 가능성에 대비,고도의 경계태세에 들어갔다고 홍콩의 중국계 신문 문회보(文匯報)가 18일 보도.이 신문은 군 소식통을 인용,독립지지 후보가 총통에 선출되면 타이완이 ‘시끄러워질’ 가능성을 중국이 배제하지 않고 있다면서 인민해방군이군사행동으로 막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타이완 군도 17일 전군에 내린 최고경계태세를 당초 19일 오전 해제할 예정이었으나 무기한 연장키로 결정. 이같은 긴장감 속에 일부 주민들은 식료품을 사재기 하는가 하면 부유층에선 타이완 탈출을 위한 항공권 구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타이완 언론들은보도. □중국 달래기 천수이볜(陳水扁) 당선자는 투표전 “총통에 당선된다 해도독립을 선언하거나 헌법에 ‘2국론’을 집어넣지는 않을 것”이라며 중국 달래기에 나섰다.이는 또 타이완의 장래를 결정짓는 국민투표 가능성을 배제했다.천 당선자는 “타이완인들은 독립을 위한 투표를 할 기본적 권리를 갖고있으나 반드시 이 권리를 행사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 □정계개편 31만표차로 낙선한 무소속 쑹추위(宋楚瑜) 후보는 18일 총통선거출마를 위해 탈당했던 국민당에 복귀하지 않고 신당 창당을 선언. 국민당 당원 1,000여명은 이날 저녁 총통 관저에서 2㎞ 떨어진 국민당 본부에 집결,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이 당 분열과 이로 인한 선거패배에 책임이있다고 비난하면서 총재직 사임을 요구. 전문가들은 야당으로 전락한 국민당개편과 국민당 인사의 민진당,쑹의 신당참여 등으로 대대적 정계개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 □당선자 진영 천 당선자는 19일 아침 민주화운동 지도자 묘역을 찾아 참배하는 등 당선자로서의 첫 일정을 시작. 앞서 천 당선자 진영의 대변인 비 킴 치아오는 “타이완 국민들이 말문을열었고 우리의 꿈이 실현됐다”고 기뻐했다.타이완 독립지지운동을 벌이던반체제 인사들이 86년 창당한 민진당은 15년만에 여당으로 변신하는데 성공. 타이베이(臺北) 김규환특파원 khkim@. *각국 반응. 타이완 총통선거에서 천수이볜(陳水扁) 후보가 당선된데 대해 세계는 중국을 의식, 조심스러운 환영을 나타내며 한결같이 중국-타이완간 긴장이 고조되어서는 안된다면서 대화를 촉구 말했다. □중국 거듭된 무력위협에도 불구하고 타이완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천 후보가 당선된데 대해 충격을 받은 듯 비교적 조용하면서도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반응을 보였다. 18일밤 당-정부 공동명의로 발표된 성명은 “타이완의 지도자 선거와 그 결과가 타이완이 중국 영토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고 강조하면서 “우리는 천 당선자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그가 양안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지 지켜볼 것이다”고 밝혔다.이 성명은 이어 “평화통일은 ‘하나의 중국’ 원칙이 전제조건으로 천 당선자가 이를 인정한다면 기꺼이 대화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그러나 어떤 형식이든 타이완의 독립은 결코허용되지 않을 것이다”고 밝혀 천 당선자와 민진당에게 경고를 보냈다.이같은성명 내용은 종전과 같은 무력 위협은 가하지 않아 천 당선자와의 대화 가능성은 남겨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홍콩 중국사회과학원의 양안관계 전문가인 리지아콴 연구원은 천 당선자가5월 총통에 취임한 뒤 양안 간에 ‘대결과 긴장’ 국면이 조성될 것이라고경고했다. □미국 천 후보가 당선된 것은 타이완 민주주의의 저력과 활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중국이 주장해온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계속 지지할것이라고 다짐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18일 “천 후보의 승리를 축하한다”면서 “이번 선거는 타이완 민주주의의 힘과 활력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선거로 타이완과 중국 양측이 서로 접촉해 대화를 통해 이견을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고 본다”고 밝힌 뒤 “미국은 양측의 대화를 강력히 지지하며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번영을 촉진할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중국과 타이완이 직접대화를 통해 긴장을해소할 것을 기대하는 한편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의 퇴임 후 일본 방문 계획으로 일본이 중-타이완 긴장관계에 말려들 것을 우려했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총리는 19일 “중국을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한 1972년의 공동성명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중국정책에는 아무 변화도 없을 것이다.타이완과 관련,일본은 중국과 타이완간에 조속히 대화가 재개돼양자간 문제들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편 일본언론들은 19일 민진당의 천 후보가 당선돼 50여년만에 최초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는 기사를 일제히 1면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동남아 싱가포르 동아시아 연구소의 중국-타이완관계 전문가인 쳉용니안연구원은 천 후보의 당선으로 양안간 긴장이 고조돼 동남아시아 정국이 불안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베이징·워싱턴·도쿄·싱가포르 외신 종합
  • 김동문 ‘시드니 2관왕’ 예약

    ‘복식의 달인’김동문(삼성전기)이 시드니올림픽 2관왕에 파란불을 밝혔다. 13일 막을 내린 최고 권위의 전영 오픈배드민턴대회에서 김동문은 나경민(눈높이)과 짝을 이룬 혼합복식에서 맞수 리 우용-게 페이조(중국)를 2-0으로 물리친 데 이어 팀 동료 하태권과 조를 이룬 남자복식에서도 한솥밥 라이벌이동수-유용성조를 2-1로 제압,2관왕에 올랐다. 특히 김동문은 앞선 준결승에서 세계 1위인 인도네시아의 찬드라 위자야-토니 구나완조를 2-0으로 완파,명실상부한 최강임을 입증했다.김동문은 96애틀랜타올림픽에서 길영아와 짝을 이룬 혼복에서 박주봉-나경민조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시드니 2관왕에 오르면 혼복 2연패도 자동 달성된다. 세계 3위 김-하조는 시지트-위자야,위자야-구나완조 등 인도네시아팀들과줄곧 물고 물리는 접전을 이어왔고 최근에는 코리아 오픈 등에서 팀 동료인세계 2위 이동수-유용성조에 연패해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그러나 ‘짝꿍’하태권이 부상에서 탈출,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정상의 자리를 되찾은 것. 권승택 대표팀 감독은 “김동문이 올림픽을 앞두고 최상을 컨디션을 유지해다행이다.하태권도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돼 이동수-유용성조와 금메달을 놓고 형제 대결이 기대된다”며 만족해 했다. 김민수기자
  • 30代수입업자 中서 한때 피랍

    지난 1월 중국을 방문했던 30대 사업가가 조선족이 포함된 괴한에 납치돼 2만달러를 이들이 지정한 은행 계좌에 입금한 뒤 탈출한 사실이 드러났다. 7일 경찰에 따르면 중국으로부터 민물새우 등을 수입하는 박모씨(38·서울강서구 방화동)는 지난달 14일 중국 선양(瀋陽)에서 평소 거래하던 조선족수출업자와 물품대금 지급 차액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 수출업자 등 18명에게납치됐다. 납치범들은 박씨를 아파트로 끌고 가 1주일 동안 감금,폭행했으며 4만달러를 은행 계좌에 넣으라고 협박했다.박씨는 이중 2만달러를 입금해 범인들을안심시킨 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출,곧바로 중국 공안당국에 신고했다. 중국 공안당국은 현지에서 정모씨 등 4명을 붙잡았으며 박씨가 빼앗긴 돈도되찾아줬다. 경찰은 박씨가 이같은 사실을 지난 6일 신고함에 따라 인터폴을 통해 중국공안당국과 공조 수사하기로 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탈북 귀순자 정용·최은실씨 결혼식

    ‘북한에서 씨앗을 뿌려 새 천년 첫 봄 서울에서 꽃피운 사랑을 아시나요’ 탈북 귀순자 정용씨(30)와 최은실씨(27·여)의 결혼식이 7일 오후 6시 서울 송파구 송파2동 새벽교회(담임목사 李承榮)에서 이 목사의 주례로 열렸다. 세기를 넘은 사랑의 결실을 맺은 것이다. 정씨 가족은 북한에서 엘리트 가문이었다.정씨는 ‘혁명 유자녀’만 들어갈 수 있는 만경대혁명학원을 나와 조종사 수업을 받았고 아버지는 조선경비대 대좌를 지냈다.어머니 장인숙씨(60)는 김일성주체탑 설계에 참여했다.그러나 90년 12월 러시아 우크라이나 공과대학에 유학중이던 큰 형 정현씨가 한국으로 귀순하면서 정씨 가족은 함북 온성으로 쫓겨나 강제노동을 지내야 했다. 술로 울분을 달래던 정씨는 96년 겨울 온성에서 최씨를 만나 결혼을 약속하며 삶의 희망을 갖게 된 것.이후 귀순한 형이 소식을 전해 오며 탈출을 권유,정씨와 이씨 가족이 97년 8월과 같은해 10월 각각 중국으로 탈출하면서 헤어졌다.최씨는 지난해 7월 천신만고 끝에 정씨와 연락이 닿아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 1년9개월여 동안 중국에서 식당 종업원,가정부 등을 전전하며 온갖역경을 겪어야 했다. 최씨는 “정씨와 헤어진 뒤 2달 동안이나 섭씨 40도를 웃도는 열병을 앓았다”며 “돈 많고 나이 많은 중국인과 결혼,가족을 돌보라는 주변의 충고도있었지만 밤마다 일기를 쓰며 사랑하는 이와 다시 만나기를 기원했다”고 털어놨다. 결혼식이 치러진 새벽교회는 지난해 4월 한 어린이가 2만여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북한 어린이 돕기에 써달라”고 헌금한 것을 계기로 ‘북한선교기금 100억원 조성운동’을 벌여 현재 약정액이 71억여원에 이르렀다. 이 목사는 주례사를 통해 “죽음을 무릅쓰고 맺어진 사랑이니 더욱 많은 이웃사랑을 실천해 달라”면서 “특히 통일조국의 초석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정씨와 최씨는 이날 분단의 벽을 뒤로 한 채 결혼행진곡에 맞춰 행복을 향한 첫 걸음을 힘차게 내디뎠다. 전영우기자 ywchun@
  • “중국내 한국인 납치사건 보도 부정확”

    요즘 외교부 내에선 ‘항변’의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중국내 한국인들의 잇따른 납치·살해 등 피해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 때문이다.‘부정확한’ 보도로 인해 외교부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인식이 부정적으로굳어질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외교부는 최근 발생한 김수흥(金秀興)·조명철(趙明哲)씨 납치사건 등을 날짜·시간대별로 세분,“적절하고 신속하게 대응했다”는 요지의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우선 언론에서 지적한 ‘늑장대응’과 ‘직무유기’ 부분에 대해 외교부측은 “자체조사 결과 지난 2월8일 칭다오(靑島)총영사관이 김씨의 신고 연락을 받은 뒤 즉시 영사관 직원 2명과 차량을 현지로 보내 김씨와 동행,귀환했다”고 반박했다. 이에 김씨는 “감금 장소에서 탈출,칭다오 총영사관으로 직접 걸어가 신고했다”는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다. ‘관할권 다툼’ 여부에 대해서도 외교부는 강하게 반박했다.김씨는 “칭다오 총영사관측에서 관할 구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도움요청을 거절했다”고주장했다.이에 외교부측은 “2월8일부터 12일까지 4박5일간 이모 영사가 묵고 있는 궤이두(貴都)호텔에 김씨를 투숙시켜 물심양면으로 귀국을 도왔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탈북자 조씨 납치사건의 경우 “주중 대사가 인지조차 못했다”고 여론의질타를 받았다.이에 외교부측은 “지난 2월2일 사건발생 즉시 중국 공안으로부터 사실을 확인했지만 조씨의 특수 신분 때문에 발표를 늦췄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최근 7개부처 합동대책회의를 주재한 반기문(潘基文)차관은 지난 2일 “언론이 잘못 지적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이를 토대로 국민들의 신변안전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중국 공관들의 24시간 비상체제 가동 등 신변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오일만기자 oilman@
  • [장윤환 칼럼] 고위공직자와 펀드매니저

    고위공직자들의 주식투자를 통한 재산증식이 사회적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있다.많은 국민들이 이를 의혹의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입심 좋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혹시 이런 말들이 오고 가지는 않을까? “경제부처 아무개장관은 부인이 주식투자를 해서 1년 동안 2억5,000만원을 벌었다더군”“그 양반 마음 놓고 중국에 가도 되겠구만.납치되더라도 몸값은 낼 수 있으니까”“난 또 무슨 말이라고… 그렇다면 2억6,000만원을 번아무개차관은 몸값을 내고도 1,000만원이 남겠구만” 중국에서 조선족에게 납치되어 몸값 2억5,000만원을 지불했다가 탈출 뒤 되찾은 귀순인사 조아무개씨 사건에 빗대서 하는 말이다.그리고는 이런 비아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앞으로는 고위공직자들을 펀드매니저로 모셔와야되겠군.쪽집게처럼 우량주를 고를 게 아니겠나”“그것도 현직에 있을 때나가능한 일이지” 국민들의 ‘입초시’에 오르내리게 된 고위공직자들로서는 무척 억울할 것이다.국민들이 너나없이 주식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마당에 고위공직자라고 주식투자를 하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는가?고위공직자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주식투자를 할 ‘엄연한 권리’가 있다. 주식투자 앞에 만민은 평등하기 때문이다.운이 좋아 우량 주식에 투자를 해서 돈을 벌었을 뿐이다.주식투자를 한 고위공직자들 가운데 손해를 본 사람도 있지 않은가?“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우리를 싸잡아 매도하지말라”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말이더라도 그것을 곧이 곧대로 믿어주지 않는 ‘특수한 상황’에 우리는 살고 있다.지난 70∼80년대에 많은 고위공직자들이 개발지역에 관한 정보를 미리 알고 부동산 투기를 통해 엄청난 재산을 끌어모은사실(史實)을 국민들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당수 현직 고위공직들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라도 관여한 지난날 국정운영의 실패가 불러온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하루 아침에 망했거나직장을 잃은 국민들은 참담한 심경으로 그들에게 묻는다.“당신 혹은 당신가족들은 모두 주식투자에 귀재(鬼才)인가?”‘잘 나아갈 때는 운도 따르는법’이라고 대답해도 좋다. 그렇다면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를 비롯해서 주택공사 수자원공사 등 고위간부들이 직무관련 업체들의 주식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굳이 에둘러 말할 필요도 없다. 국민들은 일부 고위공직자들에 대해 ‘내부자 거래’에 가까운 어떤 혐의를두고 있는 것이다.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책임’이나 ‘오이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은 이미 현실 규정력을 잃었다.그러나 고위공직자들이 예비펀드매니저로 비아냥을 받아서야 되겠는가.고위공직자의 주식투자를 일괄 규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국민들의 의혹은 어떻게든 씻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식투자의 투명성을 크게 높여야 하며 적어도 직무관련 업체의 주식에 대한 투자는 막아야 한다. 정부도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손을 쓰기 시작했다.공직자 주식투자에 관한 선진국 사례는 그동안 충분히 거론됐다.문제는 고위공직자들이 그중핵을 이루고 있는 정부의 의지다. 논설고문 yhc@
  • [외언내언] 미국 인권의 잣대

    미국과 중국의 ‘인권 대결’이 한창인 것으로 외신이 전한다.미국은 지난달 25일 발표한 세계 인권보고서를 통해 중국 내의 인권 침해를 신랄히 비난했고,중국 또한 이에 질세라 바로 이틀 뒤 ‘1999년 미국의 인권기록’이란보고서로 정면으로 맞섰다. 이 보고서는 미국에서 연평균 100만건에 이르는 총기 사고,인종 차별,빈부격차 등으로 수없이 많은 인권 침해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이러고서야 어디인권 천국(天國)인 양 남의 나라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겠느냐는 식이다. 미·중 두 나라의 인권 분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특히 중국의 개방·개혁 이후 격화됐다고 봐야 할 것 같다.톈안먼(天安門)사태 발생 4개월 전인지난 89년 2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도 당시 자오쯔양(趙紫陽)당총서기는 중국에 대한 미측의 잦은 인권문제 간섭을 경고했다. 부시 대통령이 만찬에 초대한 중국의 반 체제 인사이며 국제적 물리학자인팡리즈(方勵之)는 중국 경찰의 제지로 만찬 참석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결국 그는 톈안먼사태 이후 베이징 시내 미 대사관으로 피신했고 1년 뒤 영국으로 출국했다. 톈안먼사건으로 미·중의 인권 대결은 더욱 격렬해졌다.물론 중국은 13억 인구의 평안한 삶과 안정된 국가 발전을위해 내정 불안을 야기하는 사건에 대한 진압이 불가피함을 밝혔다. 그러나 미국 외에도 적잖은 서구 국가들이 시위 군중을 무력으로 해산시킨중국 조치에 항의했는데 그 가운데 영국이 두드러졌다.시위 주도자들이 영국식민지인 홍콩으로 탈출토록 도와 주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당시 미·영 두나라와 중국 당국의 인권 분쟁은 볼 만했다. 또 미·영의 공격에 중국은 한치도 물러섬이 없었다.미국에 대해선 죄 없는인디언 학살의 사실(史實)을 예로 들었고,영국에는 많은 중국 백성을 아편으로 병들고 죽어 가게 한 ‘아편전쟁’을 떠올리며 인권 운운(云云)할 자격이없다는 식으로 들은 채도 안했다. 지난 98년 6월 정상회담때도 클린턴 대통령이 “톈안먼 무력 진압은 잘못”이라고 한데 대해 장쩌민 주석은 “우리는남의 나라 내정 간섭은 않는다” 며 참견할 일과 안할 일을 잘 구별하라는식으로 되받아쳤다. 미국의 세계 인권보고서가 중국만 자극한 건 아닌 것 같다.베트남,인도,아프가니스탄 등도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하는 것으로 외신은 전한다. 우리는 어떤가.가끔씩 벌어지는 미 병사의 위안부 살해사건을 비롯, 국내의 미국인 범죄수사 과정에서 가해자에 비해 한국측 피해자 인권이 무시된 예는 꽤 많은 편이다.인권에도 민족적 차별이 있을 수 있나. 결코 아닐 것이다. 한국측에 불리하게 돼있는 한미행정협정(SOFA)의 시급한 개정은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의몫이다. 우홍제 논설주간
  • [중국내 한국인 피랍 무엇이 문제인가]

    *피해 실태. 지난 92년 한·중 수교 이후 관광이나 사업,유학,포교 등을 위해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늘고 있다.이와 비례해 중국에서의 한국인 납치 등 사건·사고도 급증하고 있다.한국인을 노리는 강력 범죄는 조선족이 몰려 사는옌볜 등 동북 3성에 집중됐었다.그러나 최근에는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대상도 유학생,사업가,관광객 등 무차별적이다.범죄 유형도 단순 강·절도에서 납치나 살해 등으로 흉포화하고 있다.최근 잇따르고 있는 중국 내 한국인 납치사건 등 피해실태와 사건이 잦은 이유,한·중 수사 공조문제 등을짚어본다. 수교 이듬해인 93년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은 19만명에 불과했다.그러나 지난해 100만명을 훌쩍 넘었다. 유학생 수도 1만여명에 이른다.한국은 97년 일본을 제치고 중국에 가장 많은 유학생을 보낸 나라가 됐다.기업체 주재원과 가족 등 장기간 머무는 교민도 2,000여명이나 된다. 96년 8월 옌지시에서 한국인 관광객 노부부가 대낮에 유흥주점에서 커피를마시다 조선족 폭력배들이 흉기로 위협하는 바람에 23만원을 내고 위기를 넘기는 사건이 발생했다.당시 이 사건은 교민 소식지에 보도됐으며 한국인 교민사회를 분개하게 했다. 97년 3월에는 베이징과 톈진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이 잇따라 납치됐다.조선족 납치범 4명은 신고를 받은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곧 붙잡혔지만 거주민들에겐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 있다. 같은해 톈진의 한국 회사인 한창공예유한공사 정모과장(34)이 강도로 돌변한 조선족 택시 운전사에게 피살됐다.업무로 베이징을 방문한 S증권 최모과장(36)은 납치됐다가 이틀 만에 구출됐다. 중국 당국은 한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가 잦아지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98년9월 베이징에서 한국인을 상습적으로 납치하거나 강도 행각을 벌였던 조선족3명을 사형에 처했다.7명은 중형 선고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사고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중국 내 한국인 관련 사건·사고(신고기준)는 182건으로 98년 84건에 비해 두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발생한 한국인 관련 사건·사고는 피살이나 강도 피해 등 강력 범죄가 대부분이다.피살 4명을 포함,사망자가 18명,강도 피해자 14명,상해 피해자 18명 등이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범죄꾼들은 처음부터 범죄 대상이 한국인인 줄 알고 접근한다”며 “중국에서 일본인을 납치하는 사건은 한해에 1건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이 늘면서 한국인 사장과 고용관계에 있는조선족 근로자 사이의 채권 채무와 관련된 범죄도 늘고 있다.중국 하청공장현장관리인인 조선족 윤원택 등 4명에게 납치됐다가 탈출해 지난달 29일 귀국한 신아무역 대표 김수흥(金秀興)씨는 완구류 납품대금 5,700만원을 제때갚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여권을 빼앗거나 훔치는 사건도 올 들어 10건이나 될 정도로 늘고있다.한국 여권은 변조하기가 쉬운 데다 비자면제 협정을 맺은 국가가 많아중국을 빠져 나가려는 범죄자들 사이에서 고액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인 모임인 ‘한국상회’는 중국 공안당국에 한국인의 신변 안전을 위한 조치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베이징의 한국 총영사관 김병권(金柄權)영사는 지난달 25일 교민 소식지 ‘베이징저널’을 통해 ‘납치 주의령’을 내렸다.하지만 교민들은 중국측의 미온적 태도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중국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는 한 기업인은 “한국인 피랍사건이 발생해도중국 언론은 한국 관광객의 발길이 끊길 것을 우려,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민들은 한국계 신문에 이름이 나면 조선족 폭력조직이 보복하지 않을까 겁에 질려 있다”고 토로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왜 범죄 표적되나. 최근 중국에서 한국인 피랍사건이 속속 드러나면서 한국인의 섣부른 행동이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한국보다 물가가 낮은 중국에만 가면 ‘졸부’행세를 하는 한국인이 많기 때문이다.최근의 피해는 한국인들이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이모씨(27)는 지난 97년 중국 베이징에서 1년 동안 어학연수를 하면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용돈을 벌기 위해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다 한국인 사업가들의 돈 씀씀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업차 베이징에 들른 B무역회사 사장 최모씨는 귀국 전날 이씨를 베이징의한 고급 커팅(歌廳·단란주점)에 데려가 “고생했다. 남은 돈을 다 쓰고 가자”며 호기를 부렸다. 최씨가 당시 쓴 돈은 7,500위안(元),우리 돈으로 90여만원이나 됐다.술과‘2차’를 포함한 값이었다.베이징의 직장인들의 월급이 보통 1,000∼1,500위안인 것을 감안하면 5개월치 이상의 돈을 하룻밤에 쓴 것이다. 돈을 앞세워 우쭐거리는 한국인의 행태는 ‘돈부채’라는 말이 생겨난 데서도 알 수 있다.한국인들이 조선족들 앞에서 빳빳한 미화 100달러짜리 여러장을 펴서 부채질을 하며 돈 자랑을 했다는 데에서 나온 신조어다. 96년 중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온 송재복(宋在馥·29·서울 서초구 우면동)씨는 “돈 자랑을 하고 다니는 한국 유학생이나 사업가가 범죄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한국인의 어리섞은 행동이 조선족들에게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한국인을 경멸토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족들의 ‘한탕주의’도 주요 요인이다.자본주의가 도입된 이후 ‘돈이면 뭐든 할 수있다’는 황금만능주의가 퍼지면서 한탕만 잘하면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이 범죄를 부추기고 있다.돈 자랑을 늘어놓는 한국인들에대해 동포라는 생각보다는 범죄 대상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조선족의 범죄는 몇년 전부터 조직화하는 추세다.조선족들이 주로 모여 사는 지린,헤이룽장,랴오닝 등 동북 3성에는 현재 옌볜파,지린파 등 서너개의폭력조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일부 조직은 마약과 납치,강도사건 등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져 중국 공안당국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불법 체류하고 있는 조선족 최모씨(46·중국 지린성 창춘시)는 “조선족들은 최근 한국인들의 피해에 대해 ‘안됐다’는 생각보다는 ‘당해도싸다’라는 분위기”라고 털어놓았다. 김재천 박록삼기자 patrick@. *외교부 허술한 대응. 최근 잇따르고 있는 중국 내 한국인들의 사건·사고는 정부의 재외국민 보호정책 부실에 따른 필연적 결과로 보인다. 중국 내 베이징대사관을 비롯한 현지 재외공관들의 안일한 대처와 파견 부처들간의 ‘부실 공조’,중국 공안당국의 비협조 등이 어우러져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매년 100만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중국을 방문하는 상황에서 ‘재외국민 보호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우선 외교부와 다른 부처간의 비협조는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이다.최근 탈북자 조명철(趙明哲)씨 납치사건이 대표적 사례다.사건을 최초로 접한 국정원측은 ‘수사 기밀’을 이유로 외교부와의 정보 공유를 거부했고 외교부측은 언론을 통해 사건을 인지할 정도였다. 재외공관에 파견된 경찰과 국정원 협력관들이 현지 총영사의 지휘 계통에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 이기주의’로 인해 유기적 협조체제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우리 정부의 보이지 않는 ‘저자세 외교’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측면이 있다.자국민들의 신변 문제가 걸릴 경우 모든 채널을 동원,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미국이나 일본 등과 달리 우리 정부는 한·중관계 악화를 고려,중국당국의 미온적 태도를 ‘방치’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이런 분위기는 중국공안당국의 협조 부실로 이어져 한국인을 표적으로 노리고 있는 조선족 범죄조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현재 7∼8개로 추정되는 이들 조직에 대해 대사관과 경찰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어 잇단 납치·강도사건이 대체로 미제로 남아 있다.조선족 범죄조직을 새로운 범죄로 유혹하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실정이다. ‘영사 전문가 부재’도 재외국민 보호정책의 걸림돌로 지적된다.영사직을기피하는 외교부 내의 분위기와 잦은 인사 교체가 중국당국과의 원만한 채널구축을 가로막는 분위기다.‘관계’를 중시하는 중국 문화에 맞춰 전문가 양성 등 영사 업무의 영속성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사건·사고 신고에 대한영사관들의 ‘관할권 다툼’도 재외공관의 ‘매너리즘’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韓·中 수사공조 어떻게. 인터폴이라는 국제형사경찰기구에는 전 세계 178개국의 경찰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회원국들은 인터폴협약에 따라 긴밀한 공조수사 체제를 갖추고 있다. 한국의 인터폴 전담 부서는 경찰청 외사3과다.중국 역시 인터폴 회원국으로우리와 돈독한 수사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지난해에만 인터폴을 통해 중국측의 협조를 받아 15명을 송환했다.올 들어서도 6명을 송환했다. 경찰청 외사3과는 국내 피의자가 중국으로 달아난 사실이 확인되면 중국 인터폴에 피의자 신원과 혐의내용,수사 협조사항 등을 전문으로 보낸다.중국측은 수사를 해 그 결과를 한국에 통보한다.중국 현지에서 용의자를 붙잡으면한국측의 의사를 물어 강제 추방할 수 있다. 중국에는 한국의 경정급 주재관 3명이 베이징과 칭다오,홍콩에 1명씩 상주하고 있다.현지 주재관은 별도의 수사권한은 없다.하지만 중국측에 수사를독려하고 수사내용 등을 신속히 국내로 보낼 수 있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일본 등 주요국에 모두 13명의 주재관을 두고 있다.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미국(4명)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주재관을 중국에상주시키는 등 중국은 한국의 주요 수사 협조국이다. 그러나 경찰은 조선족에 의한 한국인 납치사건 수사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경찰은 공조수사를위해 당초 1일 중국에 경찰관 4명을 파견할 예정이었으나 두 나라 외교당국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해 보류한 상태다. 한국은 지난달 24일 중국과 사법공조 조약을 맺었다.이에 따라 한국 경찰은이 조약이 효력을 갖게 되는 오는 24일부터 법무부를 통해 중국에 ▲범죄인의 소재 및 신원 파악 ▲압수수색 요청 ▲증인 또는 피의자 이송 ▲범죄 관련 정보 제공 등을 요청할 수 있다. 김경운기자.
  • 조선족에 납치된 30대 완구업자 김수흥씨 어제 항공편 귀국

    30대 완구 수출업자가 중국에서 조선족에게 납치된 뒤 감금돼 있던 아파트화장실의 쇠창살을 뜯고 38일 만에 극적으로 탈출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이 과정에서 재외공관과 국내 경찰이 미온적으로 대처해 중국을 드나드는한국인들의 신변 안전에 구멍이 뚫린 사실도 다시 확인됐다. ◆납치=29일 귀국한 신아무역 대표 김수흥(金秀興)씨는 지난해 12월28일 오후 8시쯤 상하이공항에 도착,마중나온 조선족 윤원택씨를 만났다.윤씨는 지난 6년 동안 김씨의 통역을 맡아왔다. 김씨는 윤씨와 함께 숙소인 호텔로 가기 위해 윤씨가 잡아 둔 택시를 탔다. 그러나 택시는 공항 근처 한 아파트에 도착했다.아파트 입구에는 건장한 체격의 조선족 2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김씨의 양 팔을 뒤로 꺾고 아파트 방에가뒀다.방에는 윤씨를 포함,6명이 있었다. ◆협박=범인들은 김씨를 의자에 앉히고 손발을 뒤로 묶은 뒤 “몸값 5만달러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범인들은 다음날부터 지난 1월3일까지 김씨 부인이미숙(李美淑)씨와 아들이 살고 있는 서울 신림동 집에 1시간 간격으로 전화를 걸어 “돈을 입금하지 않으면 남편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이씨는 12월30일 오후 급한 대로 100만원을 입금시켰다.1월5일에는 추가로2,500만원을 보냈다.이씨가 “더 이상 돈을 구하기 힘들다”고 말하자 범인들은 “구정(2월4일)까지 돈을 보내지 않으면 남편을 풀어주더라도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협박했다. ◆탈출=범인들은 1월13일쯤 김씨를 상하이에서 칭다오의 한 아파트로 데려갔다.설날이 다가오면서 살기를 느낀 김씨는 탈출을 결심했다.아파트가 1층이라 화장실의 쇠창살을 손톱 등으로 뜯어내면 가능할 것 같았다.6일 만인 2월3일 오후 10시쯤 창살이 벌어지자 몸을 창 밖으로 빼내 탈출에 성공했다.맨발로 정처없이 뛰었다.김씨는 마침내 7일 칭다오영사관에 도착했다. ◆공관과 경찰의 미온적 태도=김씨는 탈출 직후 칭다오영사관에 전화를 걸어 신변 보호와 도움을 요청했다.그러나 영사관측은 “상하이에서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상하이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결국 칭다오에 도착한 지 9일 만에 승용차를 얻어 타고 상하이로왔다. 서울에 있던 부인 이씨도 남편이 납치된 다음날 서울 송파경찰서에 신고했다.하지만 경찰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이씨는 그 뒤 남편의 탈출 소식을 들었으나 귀국이 늦어지자 외교부에 “남편의 귀국을 도와달라”고 통사정을 했다.하지만 “현지 공관에 연락하라”는 말뿐이었다. 29일 낮 12시 중국 동방항공 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한 김씨는 “수십차례 중국을 드나들어 별다른 의심 없이 조선족을 따라 갔다가 변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탈출한 뒤에도 칭다오영사관의 무성의한 태도 때문에 귀국이 늦어져불안에 떨었다”고 덧붙였다. 김경운 전영우기자 kkwoon@. *38일만에 극적 탈출한 김수흥씨 일문일답. 중국에서 조선족에게 납치돼 38일 만에 극적으로 탈출한 김수흥(金秀興)씨가 29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다음은 김씨와 부인 이미숙(李美淑)와의일문일답. ◆납치 경위는= 지난해 12월28일 상하이공항에서 6년 전부터 사업관계로 아는 조선족 윤원택을 만났는데,윤과 함께 탄 택시가 호텔이 아닌 한 아파트로 향했다. ◆탈출 결심은 언제했나= 납치범들은 ‘구정(2월4일)까지 잔금을 입금하지않으면 손과 발,목을 자르겠다’고 협박했다.그때 탈출을 결심했다. ◆가족과 전화 통화를 했나= 처음에 아내에게 ‘납치됐으니 돈을 입금시키라’고 말했다.잔금이 입금되지 않은 사실을 알았지만 아내의 사정도 어려울것 같아 더 이상의 통화를 거부했다. ◆탈출 경위는= 6일 동안 매일 5분씩 화장실 쇠창살을 뜯어냈다.죽이겠다고벼르는 전날인 2월3일 밤 10시쯤 쇠창살을 뜯고 밖으로 나왔다. ◆영사관에서 어떻게 대했나= 신변보호를 요청했으나 영사관 관계자가 ‘여기는 관할 지역이 아니니 다시 상하이로 가라’로 요구했다.그 관계자는 상하이에서 해야 할 일을 메모에 적어 건넸다. ◆협박범은 잡았나= 2월15일 밤 10시쯤 중국 공안요원과 함께 윤씨의 근무지에서 윤씨를 잡았다.그 뒤 2명을 추가로 잡았다. 김경운기자
  • [사설] 한국인 납치 대책없나

    중국 베이징(北京) 등지에서 한국인들의 납치사건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가운데 한국인 사업가가 조선족 직원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까지 발생해서 큰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10여건이 넘는 납치사건이 발생했고,피해 당사자가 신고하지 않은 경우를 포함하면 실제 납치건수는 훨씬 많을것으로 추산된다.중국 내에서 한국인을 납치하는 범인들이 조선족 동포들로구성된 조직적 범죄단체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더욱이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들의 범행동기와 배경이다.범인들은 범행과정에서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당한 설움과 피해 때문에 보복을 자행한다며 범행의 명분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우리 유학생들이나 여행객들의 무절제한 사치성 낭비와 허장성세도 이들의 범행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도 이들의 납치범행은 정당화될 수 없다.특히 납치범들의범행수법이 환전상 등 전문 브로커를 고용,한국에 은행계좌까지 개설하고 송금케 하는 전형적인 국제범죄 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철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이와함께 잇따른 납치사건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응책 마련에 소홀한 당국의 미온적인 자세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물론 중국당국과의 원활한 협조체제가 이뤄지지 못한 가운데 현지공관의 부족한 인력으로 한국인들의 신변안전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은 인정된다.하지만 그동안 발생한 납치사건과 관련한 국내수사에서도 사건내용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고 관계부처간 정보교환마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직무유기의 비난을 받아마땅하다. 특히 탈북자 조명철(趙明哲)씨 납치사건의 경우는 정부기관의 은폐,축소설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왜냐하면 조씨의 피랍과 탈출과정,몸값 송금과 지불정지,그리고 관련자 수사 등 모든 부분에서 의문투성이이기 때문이다. 김일성대학 교수출신의 특수신분 탈북자인 조씨가 뚜렷한 목적 없이 베이징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같이하고 납치됐다는 것도 석연치 않다.몸값2억5,000만원의 출처와 4개은행에 분산입금됐던 돈을 전화 한 통화로 고스란히 되찾았다는 대목도 납득하기 어렵다.조씨의 몸값이 입금된 계좌주인 4명과 환전상을 조사하고도 무혐의 처리한 것은 더욱 그렇다. 따라서 당국은 지금까지 파악된 사건진상을 모두 밝히고 앞으로 다각적인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중국 내에서의 신변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높이고 납치예방요령 홍보도 강화해야 한다.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한·중양국이 형사사건 해결을 위한 공조체제를 강화해서 사건재발 방지에 최선을다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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