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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부동산 떠나는 차이나머니

    중국이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1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종합보험그룹인 안방은 최근 미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가 보이는 엑세스 하우스 등 15개 호텔을 처분하기로 했다. 2년 전 55억 달러(약 6조 1700억원)에 사들인 것이다. 매물 규모가 큰 만큼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등 ‘글로벌 큰손’들이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WSJ가 전했다. 중국 하이항(HNA)그룹은 최근 맨해튼 오피스빌딩 ‘245 파크애비뉴’를 매각했다. 이어 맨해튼 트럼프타워 인근 21층짜리 빌딩도 매각하라는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명령을 받았다. HNA그룹은 2016년 이 빌딩의 지분 90%를 4억 6300만 달러(약 5194억원)에 매입했다. 외국인 투자의 국가안보 위협 여부를 심사하는 CFIUS는 명령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타워 경비 강화가 주요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분석업체 리얼 캐피털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중국의 미 상업용 부동산 매도액은 12억 9000만 달러(약 1조 4473억원)에 이르지만 구입액은 1억 2620만 달러(약 1415억원)에 그쳤다. 미 부동산에 대한 중국 자본의 투자가 순매도를 기록한 것은 2008년 이후 처음이다. 안방보험과 HNA그룹 등 중국 대기업들은 2~3년 전 호텔 등 미국 내 주요 부동산을 무차별적으로 사들였다. 중국이 해외 투자 규제를 완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안방보험은 2015년 뉴욕의 랜드마크인 아스토리아호텔을 미 호텔 가격으로는 사상 최고액인 19억 5000만 달러(약 2조 1879억원)에 매입했다. 무역전쟁의 영향으로 HNA그룹 소유의 트럼프타워 인근 빌딩에 대한 매각 명령처럼 미 정부의 외국인 부동산 매입 제한도 중국 기업들이 미 부동산을 매각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법무법인 폴헤이스팅스의 데이비드 블루멘펠드 홍콩 파트너는 WSJ에 “미국에 대한 중국의 부동산 투자는 지정학적 기후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민주 ‘은산분리 완화’ 격론… “지분 보유 한도 25~34%엔 공감대”

    “재벌 사금고화 우려된다” 신중론 반영 당론 채택 불발… 다음 의총서 추인키로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 개혁을 위한 대표적인 정책으로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 규제 완화를 꼽은 가운데 20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은 규제 완화에는 공감대를 이뤘지만 범위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여 당론 채택이 불발됐다. 강병원 원내대변인은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정무위에서 충분히 논의한 다음 다시 정책 의총을 열어 (당론을) 추인하기로 했다”며 “지분 한도를 25%에서 34% 사이에서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데 공감대가 이뤄졌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의총에서 이르면 30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인터넷전문은행 규제완화 특례법 등 규제혁신 법안 등을 논의했다. 의총은 2시간 30분 가까이 진행되면서 격론이 이어졌다. 의원들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규제 완화 방침에 큰 틀에서는 공감했다. 하지만 일부 의원은 ‘재벌 사금고화가 우려된다’는 등 은산분리를 대폭 완화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앞서 관련 상임위인 정무위원회 민주당 간사 정재호 의원은 산업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현행 4%에서 34%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 법안을 두고 민주당 내부에서 한도가 너무 크다며 반대 의견이 나왔다.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박영선 의원은 34%는 지나치다며 지분 보유 한도를 25%(상장 시 15%)로 규정한 법안을 발의하며 제동을 걸었다. 박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중국도 30% 정도까지밖에 허용을 안 했는데 우리가 34%까지 허용을 하면 다시 또 재벌이나 대기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남태평양판 사드 보복/팔라우, 중국 관광객 끊기며 큰 타격

    남태평양판 사드 보복/팔라우, 중국 관광객 끊기며 큰 타격

    중국이 대만과의 단교를 요구하며 지난해 말 남태평양 섬나라 팔라우에 대한 단체관광을 중단시킨 뒤 현지 관광업계가 초토화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20일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팔라우 수도인 코로르 시내에 있는 호텔과 식당이 텅 비어 있으며, 많은 여행사가 문을 닫았다. 유명 휴양지를 오가는 관광용 선박은 대부분 부두에 정박한 상태이다. 이는 팔라우 관광산업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던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들며 나타난 현상이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자국인 관광객의 팔라우 송출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며 대만과 단교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팔라우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이후 중국은 실제로 단체관광객 송출을 중단했고,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을 차지했던 중국인 관광객이 오지 않으면서 팔라우 관광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2015년 9만 1000 명, 2016년 7만 명에 달했던 팔라우의 중국인 관광객은 중국의 여행 제한령 이후 지난해 5만 5000 명으로 감소한 데 이어 올해 1∼6월 사이에는 2만 5000 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팔라우의 유일한 항공사인 팔라우태평양항공은 중국인 관광객 감소에 따른 경영난으로 이달부터 홍콩 및 마카오 노선 운항을 중단했다. 더구나 중국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팔라우 해변에 건설 중이던 여러 호텔도 공사가 중단됐다. 이는 중국이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놓고 갈등을 빚은 한국을 대상으로 단체관광 상품판매를 중단하는 보복조치를 취한 것을 유사하다. 필리핀과 괌 사이에 있는 팔라우는 대만과 공식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18개국 중 하나다. 중국은 지난 2016년 5월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정부 출범 후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들에 경제적 수단 등을 동원해 단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차이 총통 취임 2년 사이 아프리카 서부의 소국인 상투메 프린시페를 시작으로 파나마, 도미니카 공화국, 부르키나파소가 대만과 외교관계를 끊고 중국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중국의 압력에도 팔라우 정부는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 토미 레멩게사우 팔라우 대통령은 “중국의 투자와 관광은 환영하지만, 우리 정부의 원칙과 민주적 이상은 대만과 더욱 가깝다”며 중국의 대만 단교 압박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대만과 의리 지켰다 中 관광객 빠져 초토화된 팔라우

    대만과 의리 지켰다 中 관광객 빠져 초토화된 팔라우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팔라우가 대만과 중국 사이의 외교전쟁에 끼어 관광산업이 초토화됐다.  로이터통신은 20일 중국이 지난해 연말 단체관광을 금지하면서 대만과 수교한 18개 국가 가운데 하나인 팔라우의 관광산업이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로 한국에 가한 제재 조치 가운데 하나인 단체관광 금지를 팔라우에도 똑같이 실시한 것이다. 지난해 팔라우를 찾은 12만 2000명의 관광객 가운데 5만 5000명은 중국인이었고 9000명은 대만인이었다.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썰물빠지듯 사라지면서 팔라우의 호텔은 텅텅 비고 스노클링하는 사람들로 붐볐던 해변은 황량해졌으며 현지 여행사는 문을 닫았다. 해변가를 따라 팔라우의 호텔 등에 투자하던 중국 자본가들도 모두 철수했다. 99년 계약으로 60개의 호텔이 중국 투자로 건설중이었지만 현재는 죄다 중단됐다. 지난달 팔라우 퍼시픽 항공은 4시간 거리인 중국행 항공편을 아예 폐지해야만 했다.  관광객 숫자가 절반으로 뚝 떨어진 팔라우 정부는 중국 외교부에 관광금지 조치에 대해 문의했지만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이 모든 나라와 우호적인 협력을 하는 데 있어 전제 조건이자 정치적 기초”란 외교적인 답변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대만 외교부는 중국이 지난 2년 동안 우호적인 차관과 투자를 제공하는 ‘경제 외교’로 4개 국가를 대만과 단교하게끔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토미 레멩게사우 팔라우 대통령은 “중국이 대만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라며 “하지만 ‘하나의 중국’ 원칙은 팔라우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관광객 숫자는 팔라우의 주요 수입원이 아니며 우리는 관광의 양이 아니라 질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팔라우의 주요 관광명소인 해파리 호수는 폐쇄할 수밖에 없었는데 너무 많은 관광객들로 해파리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대문이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In&Out] P2P 대출 법제화, 더이상 늦출 수 없다/이효진 8퍼센트 대표

    [In&Out] P2P 대출 법제화, 더이상 늦출 수 없다/이효진 8퍼센트 대표

    세계적 회계 컨설팅기업 KPMG와 핀테크 벤처투자기관인 H2벤처스가 지난해 11월 16일 공동 발표한 ‘2017 핀테크 100’에 따르면 핀테크 100대 기업은 미국이 19개로 가장 많았고 호주(10개), 중국(9개), 영국(8개) 순이었다. 업종을 보면 P2P(개인 대 개인) 금융회사가 32개로 가장 많았고 지급결제(21개), 자본시장(15개), 보험(12개) 순이었다.우리나라도 P2P 금융과 간편 송금·결제 분야를 중심으로 관련 산업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다만, 신산업의 성장은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P2P 대출 산업의 건전한 성장을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중국 P2P 업체로 포장했던 이쭈바오(e租寶)가 투자자들에게 나중에 투자한 사람들의 투자금을 주는 9조원대 ‘폰지사기’를 벌였다는 것이 2016년 2월 드러났다. 2년이 지나 국내에서도 P2P 대출을 가장한 허위 대출 및 유사수신 사례가 발생했다. 이에 대응해 8퍼센트를 비롯한 다수의 P2P 대출 기업은 강화된 자율 규제를 통해 투자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P2P 금융의 장기적인 성장을 꾀하고 있다. 고객의 대출 채권이 회사 계정과 분리될 수 있도록 신탁화하고, 위험 자산 대출 취급에 대한 규제 사항을 세우고 있다. 투자자 예치금과 대출자 상환금을 회사의 운영 자금과 분리하고 외부 감사 기준을 강화한 것이다. 금융당국과 국회 역시 건전한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국내 P2P 대출 산업은 과거 금융감독원 핀테크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사업구조를 정비했다. 이어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이 P2P 대출 기업에 벤처캐피털(VC) 투자가 가능해지도록 규정을 마련하면서 P2P 대출을 활성화시킬 발판을 마련했다. 국회에서도 P2P 대출 관련 법안이 4건 발의되어 법제화를 통해 P2P 대출의 건전한 육성을 도모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용자 또한 신중히 투자해야 한다. 일명 ‘고고단’으로 불리는 고수익, 고리워드(금리 이외에 얹어주는 보상), 단기 상품에 충동적으로 투자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P2P 투자는 비대면으로 운영하므로 기존 금융 기관 대비 절감한 비용을 돌려줄 수 있는 일종의 전자상거래 서비스이다. 통계적인 리스크를 감안해 소액으로 분산투자하면 예금 대비 2~4배 정도 수익에 추가 수익도 가능하다. 금융감독원에서도 100개 이상의 P2P 투자 상품에 분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제도적 기반이 완비되고, 올바르게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중금리 대출이 활성화될 수 있다. 고신용자와 저신용자 사이의 금리 절벽이 완화되고, 중소상공인에게 단비 같은 자금이 공급될 수 있다. 투자자 보호도 강화될 것이다. P2P 대출을 건전하게 육성해서 얻을 과실은 우리 사회의 지향점과도 일치한다. 민간 금융업은 자생적으로 포용적이고 생산적인 금융을 도모하고, 금융 소비자 보호도 강화하고 있다. 핀테크 기업의 자율과 혁신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법제화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 제주2공항도 ‘신고리 원전’처럼 결정하나

    찬반 논란을 빚는 제주 제2공항 건설 여부를 공론 조사로 결정하나. 위성곤(서귀포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5일 KBS 제주방송총국 ‘쟁점과 토론’에 출연, “국토교통부와 성산읍 반대 주민들이 공론 조사를 위해 협의 중이며 결과를 어떻게 반영할지도 의견 개진 중”이라고 말했다. 또 위 의원은 “공론 조사는 정부가 하는 것은 아니고 제주도나 제주도의회 등 공식적인 기구를 통해서 진행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 의원은 “공론조사위원회와 진행 중인 타당성 재조사 용역진의 의견을 항공정책심의위원회에 제출하면 (제2공항 건설 여부를) 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겠다는 게 국토부 의견”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제주도는 16일 해명 자료에서 “제2공항 공론 조사와 관련해 협의된 사항이 없고 제2공항 개발 사업은 국책 사업이어서 제주도가 나서 공론 조사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2015년 11월 기존 제주국제공항의 포화에 따른 항공 수요 분산 등을 위한 제2공항 건설을 확정했으나 제주 지역에서 환경 파괴와 오버투어리즘 우려 등 찬반 논란이 3년째 계속되고 있다. 일부 반대 주민과 환경단체 등이 국토부의 제2공항 입지 선정 타당성 조사가 부실하다며 문제를 제기해 국토부가 타당성을 재조사하는 중이다. 한편 제주에서는 중국 자본이 투자한 국내 1호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허가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불거져서 제주도가 숙의형 공론 조사를 통해 영리병원 개설 허가 여부를 결정키로 하고 현재 공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홍석경의 문화읽기] 상하이에서 읽는 동아시아

    [홍석경의 문화읽기] 상하이에서 읽는 동아시아

    사람마다 꿈꾸는 도시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 도시는 상하이였다. 오랫동안 프랑스에 살았기에 올 8월에야 처음 방문하게 된 상하이. 물론 국제학회에서의 발표를 위해 왔지만, 도시 전체가 텍스트인 이곳, 하루 정도 ‘발로 하는 독서’의 매력을 물리칠 수 없다. 아편전쟁의 결과로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에 조계를 내줄 수밖에 없었던 이곳은 오랫동안 서구와 동아시아 간 순간이동 터널 역할을 했다. 상하이를 통로로 서구가 동아시아로 쏟아져 들어왔고, 동아시아인은 상하이에서 멀고 먼 프랑스와 영국 등 서구의 일부를 만났다.서구에도 상하이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는 신비한 곳이었다. 오손 웰스의 1947년 영화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주인공 리타 헤이워스는 상하이에서 보낸 몇 년의 과거와 중국어를 한다는 사실에 힘입어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팜파탈의 반열에 오른다. 그녀는 유명한 거울 신 속에서 죽는데, 이 장면이 중국을 다시 글로벌한 동서 간 문화교류 속으로 끌어들인 이소룡에 의해 ‘용쟁호투’(1973)에서 패러디됐던 것도 우연이 아니리라. 대한민국에게 상하이는 문자 그대로 동아시아에 열린 서구의 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젊은 장군 드골이 대서양을 건너가 런던에 임시정부를 세울 것을 생각하기 무려 20년 전 근대국가를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하고 식민지가 됐던 조선의 엘리트들은 3·1운동으로 깨어나 이곳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웅지를 틀었다. 이 사건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는 당시 조선의 어두운 미래와 조선인의 힘든 삶을 실감할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청나라에 이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대륙 침탈을 준비하는 일본의 기세 속에서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내걸어 민족의 정당하고 자주적인 미래를 도모한다는 결의와 실행은 얼마나 큰 결심과 신념이 있어야 가능했을까. 레지스탕스를 부르는 드골의 런던 행보에 대한 프랑스의 역사적 대접을 보면서 임시정부에 대한 그간의 한국 내 이견이 부끄러웠다. 당시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암살’ 속에서 주인공들이 거사 전날 모여 샹송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에서 임시정부의 상하이 커넥션이 강하게 암시된다. 1930년대 상하이와 조선의 커넥션은 영화 속에서 임시정부를 넘어선다. 중국 영화사에서 가장 빛나는 별 진린은 한국인이었다.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중심이었던 당시 상하이의 위상을 고려할 때, ‘동양의 루돌프 발렌티노’라고 불렸다는 이 한국인 남자 배우의 의미는 되새겨볼 만하다. 한국 이름 김염, 그의 부친은 독립운동가 김필순이고 고모부가 무려 김규식이니, 아무리 험난한 세월 속 인척 간 교류와 교육의 영향이 크지 않았더라도 그의 존재는 조선의 독립운동과 상하이, 중국을 잇는 노드(node)다. 동아시아의 초국적 인기인의 전형과도 같은 노래하는 배우 장국영과 그 뒤를 잇는 한류 스타들이 있기에 앞서서 1930년대 글로벌 상하이에 한국인 배우 김염이 있었던 것이다. 밤이 되니 팔월에 크리스마스같이 치장한 불야성의 상하이가 펼쳐진다. 강의 이쪽과 저쪽이 이처럼 극적으로 서로 다른 모습이라니. 하늘을 향해 다투어 치솟는 푸둥 고층 건물들의 화려한 파사드를 마주 보는 와이탄의 강변로에는 프랑스 니스 해변의 콜로니얼 건축을 닮은 건물들이 육중하게 늘어서 있다. 와이탄 지역은 명·청대의 상점과 정원을 배경으로, 70년대 재개발 서민촌을 닮은 거리를 감추고 있다. 어두운 골목 끝 고담시티를 연상시키는 상하이타워가 구름 속으로 치솟는다. 중국의 들끓는 자본주의적 욕망처럼.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는 훙구공원에 해가 뉘엿뉘엿하자 노인들이 배 두드리며 나와 바람을 쐰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 서구 문호들의 동상 군집에서 멀지 않은 곳엔 새로 세워진 중·일 청년들의 우의를 다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시내 도처에서 한국어가 들리지만 한국 사드가 지나간 중국 어느 곳에도 한류의 자취는 없고, 일본식 바와 음식점이 즐비하다. 거대한 쇼핑몰 벽에 붙은 한류 스타를 똑 닮은 중국 배우의 모습이 묘하게 과거와 현재의 상하이, 그리고 동아시아의 굴기 속 중국의 욕망을 느끼게 해 준다.
  • 제조업 위기가 고용·가계소득 후퇴 불렀다

    제조업 위기가 고용·가계소득 후퇴 불렀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제조업의 위기가 고용과 가계소득 후퇴라는 더 큰 후폭풍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제조업 분야의 ‘좋은 일자리’가 줄면서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실업률이 급증하고 임금 인상폭이 자본소득 증가폭을 따라잡지 못하는 모양새다.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기반을 둔 소득주도성장에 성공하려면 자동차를 비롯한 주력 산업의 부활을 이끌어 제조업 취업자 수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 제조업 분야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2만 6000명(-2.7%) 줄었다. 지난해 1월(-17만명) 이후 1년 5개월 만에 감소폭이 가장 컸다. 제조업 취업자 수가 줄어든 원인은 자동차와 화학, 조선, 철강 등 주력 산업의 부진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6월 제조업 생산은 전월 대비 반도체(11.2%)와 전자부품(3.1%) 등에서는 증가했지만 자동차(-7.3%)와 화학제품(-3.6%) 등이 줄면서 0.8% 감소했다. 반도체 수출이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면서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있지만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업종의 취업유발계수(10억원의 재화를 만들 때 창출되는 고용자 수)는 5.3명에 불과하다. 자동차 8.6명, 조선 8.2명 등보다 훨씬 낮아 고용 창출 효과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제조업 환경이 경쟁 국가에 비해 뒤처지는 것도 문제다. 최근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발표한 ‘글로벌 제조업 평가표’를 보면 한국의 제조업 환경은 세계 주요 19개국 중 7위에 머물렀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에도 밀렸다. 조세와 규제 등 정부 정책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은 게 원인으로 작용했다. 전문가들은 제조업 부활 정책을 펼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들면서 제조업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외로 나간 우리 기업들이 국내로 유턴할 수 있도록 세제·예산 지원을 확대하고 기업의 고용·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핵심 국정 과제로 추진하는 혁신성장과 맞닿아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반도체와 전자 등 대기업 주력 산업은 고용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 첨단산업이어서 정부가 베트남 등 해외에 공장을 세운 중소 제조기업들을 다시 국내로 돌아오게 할 유인책을 늘려야 한다”면서 “반도체 이후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4차산업을 중심으로 규제 완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하늘길 넓힌 지방공항 지역경제 부활 ‘날갯짓’

    하늘길 넓힌 지방공항 지역경제 부활 ‘날갯짓’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지방공항들이 지역을 살리는 효자 역할을 내세우며 시설 확충 등에 나서고 있다.15일 전국 자치단체와 지방공항들에 따르면 지방분권시대를 맞아 지방공항들이 국내외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며 지방 도시들의 국제화 관문 역할을 해 내고 있다. 국내외 이용객이 늘면서 자치단체마다 새로운 공항과 자체 항공사 운영을 바라고 있다. 2002년 개항한 강원 양양국제공항은 정기선 폐지와 함께 애물단지라는 불명예까지 얻었지만 전세기를 통해 연간 10만명 안팎의 해외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며 강원 영동권 관광의 관문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평가를 듣는다. 항공편이 없으면 해외에서 찾기 힘든 영동권의 국제 관광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양양공항에는 국내외 9개 노선 전세기를 통해 항공기 1932편이 운항됐다. 이를 통해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 관광객 6만 5856명이 다녀갔다.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전인 2014년 25만명, 2015년 12만 8000명 등 해마다 10만명을 웃도는 해외 관광객이 방문했다. 이에 힘입어 강원도 내 자치단체들은 관광객들이 머물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며 지역 소득과 연계시키고 있다. 이명진 강원도 항공해운과 항공팀 주무관은 “양양공항을 모항으로 ‘플라이 강원’ 자체 항공사도 운영하기로 했다”며 “민간자본으로 2021년까지 180석 규모의 저가항공기 10대를 띄운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북도민들은 국제공항 건설이 꿈이다. 민간공항이 없는 곳이라 제주도를 가기 위해서는 군산에 자리한 미국 공군기지를 빌려 쓰는 저가항공(LCC)을 이용한다. 하지만 저가항공이 하루 편도 3편밖에 없어 여의치 않을 땐 전남 무안공항을 이용해야 한다. 군산공항에서 제주를 가는 비행기는 거의 만석으로 연간 이용객이 35만명에 이른다. 송하진 전북지사는 최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도 이제 광역지자체마다 국제공항을 한 곳씩 건설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면서 “정부에서 인허가만 해 주면 지방비를 투입해서라도 공항을 건설하겠다”며 공항 필요성의 절박함을 호소했다. 예컨대 코흘리개만 벗어나면 혼자서도 해외여행을 떠나고 들어오는 시대에, 특정 지역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에게만 열차나 버스를 타고 먼 공항을 이용하도록 하는 건 맞지 않다는 논리다. 김해국제공항 이용객은 최근 5년간 12.3% 늘었다. 국제선은 16.9%, 국내선은 7.6%다. 국제선 이용객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게 눈길을 끈다. 이처럼 늘어나는 공항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현재 주차빌딩 등 시설 확충에 바쁘다. 신공항추진범시민운동본부 박인호 상임대표는 “제2의 도시 공항이 ‘도떼기시장’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이 부끄럽다”면서 “2단계 국제선 청사 확장을 서두르고 외국 항공사의 미주·유럽 노선 취항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명실상부한 제2의 허브공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국제공항 국내선 이용객도 2016년 211만 8000명에서 지난해 238만 5000명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125만 1000명이 이용해 지난해를 웃돌 전망이다.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지난 6월 지방선거 때 청주공항 노선 다변화와 지역 거점 항공사 육성을 공약했다. 이승열 충북도 공항지원팀장은 “국내선에선 제주 노선만 운항할 수밖에 없고 결국 노선 다변화를 국제선에서 꾀해야 하는데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로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29만 8000명이었던 무안국제공항 이용객은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29만 3000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누적 17만 1000명에 비해 13만 2000명(82%) 늘었다. 앞으로 광주공항 민항기가 무안공항으로 이전할 계획이어서 탑승객은 훨씬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전남도는 무안공항 시설 확충을 위해 국고 400억원을 건의한 상태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무안 공항의 국제노선을 다변화하고 충분한 교통 인프라를 갖추면 호남권 허브 공항으로 육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올 상반기 울산공항 이용객은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76% 증가했다. 이 같은 증가세는 LCC인 에어부산 정기 취항 등으로 제주노선 운항편수가 증가한 영향인 것으로 풀이된다. 대구국제공항 이용객도 크게 늘고 있다. 2013년 국내선과 국제선 이용객이 108만명이던 것이 2015년 203만명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2016년에는 253만명, 지난해에는 356만명으로 증가하더니 올해는 400만명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통합 신공항을 조속히 건설해 대구경북 상생발전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양양 조한종 기자·전국종합 bell21@seoul.co.kr
  • ‘터키발 외환쇼크’ 中 위안화도 덮쳤다

    ‘터키발 외환쇼크’ 中 위안화도 덮쳤다

    위안화 가치 추가 하락… 1년새 최약세 홍콩, 고정환율제 지키려 외환시장 개입 ‘자본유출 비상’ 인니, 금리 0.25%P 올려터키 외환시장의 불안이 확산되면서 홍콩, 중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통화가 함께 흔들렸다. 홍콩 당국은 15일 홍콩달러가 고정환율제 상단까지 치솟자 3개월 만에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했다. 중국의 위안화도 달러 기준환율이 5일 연속 상승하면서 휘청거리며 지난해 5월 이후 최약세를 보였다.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이날 약 3억 미국달러(약 3388억원)를 풀어 홍콩달러를 사들였다. 전날 홍콩달러 매입에 2억 7500만 달러(약 3106억원)를 푼 데 이은 시장개입이다. HKMA는 14일 미국 뉴욕 외환시장에서 홍콩달러의 가치가 급락해 자국의 고정환율제가 위협받자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했다. 1미국달러에 7.75∼7.85홍콩달러 범위로 고정해 놓은 페그제를 운용하고 있는 홍콩의 HKMA가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은 올해 5월 18일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우려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터키발 혼란이 신흥시장에서 투자자들의 리스크 기피를 부추겨 미국달러에 대한 수요를 늘려 홍콩달러 가치가 하락 압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1미국달러당 7.85홍콩달러 바로 근처(고정환율제 상단)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어 홍콩 당국의 향후 추가 개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통화가치 급락과 자본유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중앙은행은 올해 5월 이후 네 번째 기준금리 인상을 이날 단행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BI)은 기준금리로 삼는 7일물 역환매조건부채권 금리를 5.25%에서 5.50%로 0.25% 포인트 올렸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신흥국 통화들의 약세 속에 지난 1일 달러 대비 가치가 1% 증발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터키 리라화 급락 사태의 여진 속에 중국 위안화 가치도 추가로 하락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이날 달러당 위안화 환율을 전 거래일보다 0.23% 오른 6.8856으로 고시했다. 위안·달러 기준환율은 5일 연속 상승했다. 이는 지난해 5월 12일(6.8948)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위안·달러 환율이 오른 것은 그만큼 위안화 가치가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날 중국 외환시장에서 장중 위안·달러 환율은 한때 6.9105까지 올라 지난해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관리변동환율제를 적용하는 중국에서 시장 환율은 인민은행이 고시한 기준환율의 상하 2% 범위에서 움직인다. 위안화 가치는 미·중 무역분쟁이 본격화하면서 최근 석 달 사이에 7.6%나 떨어졌다. 홍콩 역외시장에서도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장중 한때 6.9291까지 올라가면서 중국 당국이 마지노선으로 정한 7선에 바짝 근접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2018년 상하이에서 감상해 본 1930년대 동아시아

    2018년 상하이에서 감상해 본 1930년대 동아시아

    사람마다 꿈꾸는 도시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 도시는 상하이였다. 오랫동안 프랑스에 살았기에 올 8월에야 처음 방문하게 된 상하이. 국제학회에서의 발표를 위해 왔지만, 도시 전체가 텍스트인 이곳, 하루 정도 ‘발로 하는 독서’의 매력을 물리칠 수 없다. 아편전쟁의 결과로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에 조계를 내줄 수밖에 없었던 이곳은 오랫동안 서구와 동아시아 간 순간이동 터널 역할을 했다. 상하이를 통로로 서구가 동아시아로 쏟아져 들어왔고, 동아시아인은 상하이에서 멀고 먼 프랑스와 영국 등 서구의 일부를 만났다.서구에도 상하이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는 신비한 곳이었다. 오손 웰스의 1947년 영화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주인공 리타 헤이워스는 상하이에서 보낸 몇 년의 과거와 중국어를 한다는 사실에 힘입어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팜파탈의 반열에 오른다. 그녀는 유명한 거울 신 속에서 죽는데, 이 장면이 중국을 다시 글로벌한 동서 간 문화교류 속으로 끌어들인 이소룡에 의해 ‘용쟁호투’(1973)에서 패러디됐던 것도 우연이 아니리라. 대한민국에게 상하이는 문자 그대로 동아시아에 열린 서구의 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젊은 장군 드골이 대서양을 건너가 런던에 임시정부를 세울 것을 생각하기 무려 20년 전 근대국가를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하고 식민지가 됐던 조선의 엘리트들은 3·1운동으로 깨어나 이곳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웅지를 틀었다. 이 사건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는 당시 조선의 어두운 미래와 조선인의 힘든 삶을 실감할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청나라에 이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대륙 침탈을 준비하는 일본의 기세 속에서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내걸어 민족의 정당하고 자주적인 미래를 도모한다는 결의와 실행은 얼마나 큰 결심과 신념이 있어야 가능했을까. 레지스탕스를 부르는 드골의 런던 행보에 대한 프랑스의 역사적 대접을 보면서 임시정부에 대한 그간의 한국 내 이견이 부끄러웠다. 당시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암살’ 속에서 주인공들이 거사 전날 모여 샹송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에서 임시정부의 상하이 커넥션이 강하게 암시된다.1930년대 상하이와 조선의 커넥션은 영화 속에서 임시정부를 넘어선다. 중국 영화사에서 가장 빛나는 별 진린은 한국인이었다.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중심이었던 당시 상하이의 위상을 고려할 때, ‘동양의 루돌프 발렌티노’라고 불렸다는 이 한국인 남자 배우의 의미는 되새겨볼 만하다. 한국 이름 김염, 그의 부친은 독립운동가 김필순이고 고모부가 무려 김규식이니, 아무리 험난한 세월 속 인척 간 교류와 교육의 영향이 크지 않았더라도 그의 존재는 조선의 독립운동과 상하이, 중국을 잇는 노드(node)다. 동아시아의 초국적 인기인의 전형과도 같은 노래하는 배우 장국영과 그 뒤를 잇는 한류 스타들이 있기에 앞서서 1930년대 글로벌 상하이에 한국인 배우 김염이 있었던 것이다. 밤이 되니 팔월에 크리스마스같이 치장한 불야성의 상하이가 펼쳐진다. 강의 이쪽과 저쪽이 이처럼 극적으로 서로 다른 모습이라니. 하늘을 향해 다투어 치솟는 푸둥 고층 건물들의 화려한 파사드를 마주 보는 와이탄의 강변로에는 프랑스 니스 해변의 콜로니얼 건축을 닮은 건물들이 육중하게 늘어서 있다. 와이탄 지역은 명·청대의 상점과 정원을 배경으로, 70년대 재개발 서민촌을 닮은 거리를 감추고 있다. 어두운 골목 끝 고담시티를 연상시키는 상하이타워가 구름 속으로 치솟는다. 중국의 들끓는 자본주의적 욕망처럼.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는 훙구공원에 해가 뉘엿뉘엿하자 노인들이 배 두드리며 나와 바람을 쐰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 서구 문호들의 동상 군집에서 멀지 않은 곳엔 새로 세워진 중·일 청년들의 우의를 다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시내 도처에서 한국어가 들리지만 한국 사드가 지나간 중국 어느 곳에도 한류의 자취는 없고, 일본식 바와 음식점이 즐비하다. 거대한 쇼핑몰 벽에 붙은 한류 스타를 똑 닮은 중국 배우의 모습이 묘하게 과거와 현재의 상하이, 그리고 동아시아의 굴기 속 중국의 욕망을 느끼게 해 준다. 글·사진: 홍석경 서울대 언론학과 교수
  • 매년 25㎝씩 가라앉는 도시는? 아시안게임 여는 자카르타!

    매년 25㎝씩 가라앉는 도시는? 아시안게임 여는 자카르타!

    한 해에 무려 25㎝씩이나 지반이 내려앉는 지역을 끼고 있는 무시무시한 도시는? 오는 18일 제18회 하계아시안게임의 막을 올리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다. 1000만명이 모여 사는 이 도시는 해마다 산불로 인한 연무, 극심한 공기 오염, 하수구 같은 수질로 악명 높은데 앞으로 32년쯤 뒤에는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길 것이란 끔찍한 경고까지 나와 있다. 원래 늪지에 건설된 이 도시는 자바해가 끊임없이 밀려와 뭍을 갉아먹고 13개의 강물이 흘러 홍수가 일상 다반사가 됐다. 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 거대한 도시가 차츰 땅 밑으로 가라앉는 것이라고 영국 BBC가 12일(현지시간) 전했다. 반둥공과대학에서 지난 20년 동안 자카르타의 지반 침식을 연구한 헤리 안드레아스는 “자카르타가 수면 아래 잠길 가능성은 웃어넘길 문제가 아니다”며 “우리의 예측 모델에 따르면 2050년이면 북자카르타의 95%가 물 아래 잠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전조가 시작됐다. 북자카르타는 10년 동안 2.5m가 가라앉았다. 이는 해안을 낀 전 세계 대도시의 평균 침하 폭의 곱절이 넘는다. 자카르타의 연간 침하 폭은 1~15㎝이며 이미 시의 절반 가까이가 해발고도 아래 위치해 있다.특히 북자카르타가 심각한데 무아라 바루 지구에는 통째로 폐가가 된 건물이 있는데 어업회사가 소유했다가 포기했는데 1층 베란다 빼대만 남아 있다. 1층 바닥에는 물이 잔뜩 고여 있다. 자동차로 5분 거리의 노천 생선시장 건물 중에도 금간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건물이 적지 않다. 중국계 자본이 뛰어들어 이곳을 고급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하는 노력도 한창이다. 자카르타의 다른 지역도 천천히 진행될 뿐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자카르타의 지반은 매년 15㎝씩 가라앉고, 동자카르타는 10㎝, 자카르타 정중앙은 2㎝, 남자카르타는 1㎝ 가라앉고 있다. 세계의 바다를 낀 대도시는 어디나 예외없이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 상승이라는 위험에 맞닥뜨리고 있지만 자카르타는 그 속도를 훨씬 뛰어넘어 전문가들도 놀라게 한다. 그런데도 자카르타 시민들은 날마다 마주하는 일상이라 여겨 별달리 놀라지도 않고 대책 마련의 목소리를 내지도 않는다는 것 때문에 또한 번 전문가들을 놀라게 만든다.원인은 지하수를 과다하게 뽑아 쓰기 때문으로 모아진다. 먹는 물이나 씻는 물 등등으로 무분별하게 관정을 파 쓰기 때문이다. 대다수 지역에 수돗물이 공급되지 않아 모두들 각자 관정을 파 지하수를 쓰고 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지하수가 비워지면 지반이 내려앉는 식이다. 단독주택 소유자건 대형 쇼핑몰 주인이건 마음대로 관정을 파게 하는 느슨한 규제도 한몫 한다. 당국은 자카르타만 바깥 바다 32㎞에 걸쳐 17개의 인공섬들을 만들고 연안에 담을 세워 도시를 구하는 프로젝트에 400억달러를 쏟아부을 계획이다. 네덜란드와 한국 정부도 팔을 걷어붙여 인공 산호를 만들어 바닷물 높이를 낮추고 강물의 범람을 막는 계획을 돕고 있다. 이렇게 하면 비가 올 때 문제가 됐던 범람을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 환경단체 등은 지난해 보고서를 내 인공섬 계획이 지반 침하를 막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 물연구소 델타레스의 얀 얍 브링크먼은 “오직 한 방법 밖에 없으며 모두가 그걸 알고 있다”며 “모든 지하수 개발을 중단시키고 빗물이나 강물, 인공 저수지에서 가져오는 수돗물 등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아니에스 바스웨단 자카르타 주지사는 덜 극적인 방법에 기대고 있다. 법적으로 허용된 양만큼만 지하수를 퍼올리게 하고 이른바 ‘배수구’라 불리는 방법을 해보자는 것이다. 구멍을 뚫을 때 그 구멍을 통해 지상의 물이 지하로 스며들 수 있게도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도쿄가 50년 전에 시도했던 이 방법은 너무 비싸게 든다는 문제점이 있다. 일본 정부는 당시에 지하수 개발을 전면 금지했고 기업들은 쓰는 만큼 관정 비용을 대게 했다. 그 결과 상당히 지반 침하에 제동이 걸렸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자카르타 주민들이다. 그들 대다수가 그저 운명처럼 지반 침하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소피아 포르투나는 “여기 사는 건 위험한데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그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월드 Zoom in] 심상치 않은 위안화의 가치 하락…中 “환율, 무역전쟁 무기 아니다”

    위안화 절하, 무역충격 일시 완화책 美 10월 환율조작국 재지정 땐 ‘역풍’ 1달러당 심리적 마지노선은 7위안 “위안화 절하는 1000명의 적을 죽이기 위해 800명의 우리 군인을 희생시키는 것과 같다.” 미·중 무역전쟁 발발 이후 중국 위안화의 가치 하락이 심상찮다. 지난 4월부터 따지면 10% 포인트, 6월 중순부터 계산하면 6.3% 포인트 떨어졌다. 원화 대비 위안화 환율도 2월 초 173원까지 기록했지만 12일 현재 163원 수준으로 10원 가까이 떨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파이’라고 비난했던 35만여명에 이르는 유학생의 미국 학비를 대야 하는 중국 부모들의 등골이 휠 지경이다. 현재 위안화 환율은 2015년 7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홍콩 씨티은행의 투자전략가 컨펑의 위와 같은 말처럼 인위적인 화폐 가치 절하에 따른 위험은 매우 크다. 당장 미국이 부과한 관세 폭탄 효과를 위안화 약세에 따른 수출 증대로 줄일 수는 있다. 중국이 수출하는 상품의 가격을 낮춰 무역량을 늘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위안화 절하다. 그러나 화폐 가치 하락은 자본의 해외 유출을 낳고, 중국 당국이 그동안 힘들게 벌여 온 ‘부채와의 전쟁’을 모두 수포로 돌릴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소비 위축으로 중국 경제가 아예 망가질 수도 있는 위험한 수단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중국이 환율을 조작할 정도로 경제가 막판으로 몰리지는 않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국이 오는 10월 15일 발표 예정인 환율보고서를 통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만약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이는 1994년 이후 23년 만이다. 환율조작국이 되면 중국에 투자한 미국 기업에 대해서는 금융 지원이 중단되고, 중국 기업은 미국 조달시장 입찰이 금지된다. 또 미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중국에 대한 감시 강화를 요청하는 등 각종 제재를 가하게 된다. 중국 당국은 환율을 무역전쟁의 무기로 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인민은행은 지난 10일 2분기 통화정책 보고서를 발표하며 “위안화 환율은 시장 수급에 의해 결정되며 무역 분쟁을 다루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의 위안화 하락도 중국 당국의 주장대로 시장에 따른 것으로 보는 분석이 많다. 무역전쟁이 격화되는 와중에도 중국 주식시장에 유입된 외국인 투자자의 돈은 6~7월 두 달간 498억 위안(약 8조원)에 달했다. 1~7월 해외 펀드의 중국 주식시장 유입액은 1166억 위안이다. 위안화의 1달러당 가치는 7위안을 심리적 저항선이자 마지노선으로 본다. 달러당 7위안을 넘는 포치(破七)가 일어날 가능성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6.5%대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적다는 것이 금융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무역전쟁을 기회로 중국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등 경제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제학자 셰궈중(謝國忠)은 “중국은 국내 정치가 경제 정책에 지나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를 대폭 줄이지 않으면 현 위기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조언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中 공유경제 시대 막 내리나…첫 파산 업체 등장

    中 공유경제 시대 막 내리나…첫 파산 업체 등장

    11만 명의 유료 회원을 거느린 대형 공유자전거 업체가 파산을 선언했다. 지난 11일 오전 중국 남방 지역 2~3선 도시를 중심으로 운영됐던 공유자전거 회사 ‘샤오밍’(小鸣)이 창업 2년 만에 돌연 파산했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업체는 운영 자금 35만 위안(약 5800만원)에 구멍이 생긴 것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업체가 돌연 파산에 이르면서 해당 회사에 유료로 회원 가입을 했던 11만 명에 달하는 회원들은 일체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처했다. 이용자들은 회원 가입 시 1인당 199위안(약 3만 3000원)을 지불했다. 계약대로라면 회원 탈퇴 시, 이 보증금을 전액 환불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업체 파산으로 회원들이 지급받지 못하는 보증금의 규모만 약 5000만 위안(한화 82억 3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 파산 소식이 전해지자, 현지 유력 언론들은 ‘중국의 공유자전거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국영언론 CCTV는 이날 방송을 통해 ‘자본금 621만 위안이라는 소액으로 창업에 성공, 누적 이용자 수 400만 명, 총 수익금 8억 위안을 벌어들인 창업 신화 샤오밍이 파산한 것은 매우 충격적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파산한 업체가 소유하고 있던 공유자전거 처리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수거하지 못한 채 무방비 상태로 거리에 버려진 업체 소속 공유자전거가 도시의 흉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보에 배치됐던 자전거 가운데 상당수는 녹이 슬거나 훼손된 채 보행자들의 보행에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일제히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도시 공공자원을 이용한 새로운 교통 서비스로 각광받았던 공유자전거가 이제는 과도한 투기와 관리 불량으로 인한 도시 속의 자전거 무덤을 양상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분위기다. 일부 네티즌들도 도시에 방치된 공유자전거에 대해 ‘좀비 자전거’라고 지칭, 공유 자전거 서비스에 대한 수요에 맞춘 서비스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한편, 이 같은 비판에 대해 파산을 선언한 해당 업체 관계자 측은 “이미 중국재생자원개발유한공사에서 자전거 한 대당 12위안에 구매, 자체적으로 회수해 나갈 것이라는 방침”이라며 입장을 표명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증권사도 ‘전자지급결제 대행업’ 가능해진다

    간편 결제 더 쉬워져 소비 증가 기대 주식 거래내역 통지 문자·앱으로 확대 국내 증권사들이 알리페이나 위챗페이와 같은 해외 핀테크 업체와 제휴를 맺고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를 대행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또 투자자들의 주식 거래 내역을 문자메시지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통지할 수 있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국내 증권사와의 면담을 거쳐 이러한 내용의 제도 개선 사항을 발굴했다고 9일 밝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증권사가 전자지급결제대행업(PG)을 겸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PG란 가맹점과 카드사 사이 온라인 거래에 따른 지급·결제 업무를 대행하는 것으로, 특히 중국의 간편결제 업체들은 업무 제휴 대상을 금융회사로 한정하고 있어 국내 PG 업체들과의 협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PG 겸업이 가능한 일부 은행을 거쳐 결제하거나 가맹점주들이 아예 간편결제 단말기를 중국에서 사오는 일까지 벌어졌다. 안창국 금융위 자본시장과장은 “PG업 겸영이 허용되면 전통시장 등에서 중국 관광객들이 주로 활용하는 알리페이 등 간편결제가 더 쉬워져 소비를 늘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증권사들도 PG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또 금융투자업 규정 등을 개정해 증권사의 거래내역 통지 수단으로 기존 등기, 전자우편 외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앱 알림을 추가하기로 했다. 현재도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매수·매도 체결 내역을 문자메시지 등으로 알리고 있지만 법에 명시되지 않은 탓에 서면이나 전자우편으로 재차 통보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거래가 빈번한 투자자에게는 매달 책 한 권 분량의 매매 내역을 발송해 회사 입장에서도 번거로운 부분”이라고 전했다. 금융위는 법령 개정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이달 중 개정안을 마련해 다음달부터 개정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또 증권사에 이어 오는 22일에는 자산운용사를 현장 방문해 규제 개선 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경운궁 日 방화 추정’ 특종 뒤 해고당해… 대한매일신보 창간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경운궁 日 방화 추정’ 특종 뒤 해고당해… 대한매일신보 창간

    일본에서 무역업을 하던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은 러일전쟁이었다. 고베에서 안정적 생활을 하던 베델은 돌연 영국 일간지의 특별통신원이 돼 한국에 왔다. 그가 훗날 항일 언론인으로 죽어가던 조선을 위해 싸우게 될 줄은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베델이 잠시 사업을 접고 새로운 일을 모색하던 1904년,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는 한반도와 만주 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전운이 감돌았다. 2월 8일 일본 함대가 중국 랴오닝성 뤼순항을 기습 공격하면서 러일전쟁이 시작됐다. 베델은 이때까지도 일본에서 평상시와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었다.당시 전쟁은 언론사들의 최고 인기 아이템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월드컵이나 미국 대선처럼 세계인이 큰 관심을 갖는 뉴스거리였다. 유명한 종군 기자는 슈퍼스타 대접을 받았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종군기자로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와 같은 작품을 썼다.러일전쟁을 전후해 ‘로이터’를 비롯한 영국의 주요 매체들은 한국으로 특파원을 보냈다. 영국 총리를 역임한 윈스턴 처칠도 종군기자로 러일전쟁 취재차 한국을 찾았다. ‘데일리 크로니클’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쏟아내는 전장을 하루라도 빨리 묘사하고자 우선 동북아 사정을 잘 아는 현지 통신원을 채용하기로 했다. 영국 런던에서 정식 특파원을 파견할 경우 물리적으로 한 달 가까이 시간이 걸리는 데다 일본이나 러시아 사정에 밝지 않아 배경지식이 풍부한 기사를 쓰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데일리 크로니클’은 전쟁 발발 직후 일본에 있던 토마스 코웬을 임시직인 특별 통신원에 임명해 조선에 보낸 뒤 베델을 두 번째로 파견했다. 3월 10일이었다. 일본 업체들의 소송과 형제 간 불화 등으로 고베 사업을 접었던 베델은 ‘데일리 크로니클’에서 통신원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조선행을 결심했던 것 같다. 지금도 영국에서 기자라는 직업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브리스톨 지역 최고 사립고교를 졸업한 베델 역시 기자로서의 바탕은 충분했다. 이때부터 그에게 언론인이라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한국 황궁의 화재’ 5면 톱기사로 실려 당시 일본은 러일전쟁 관련 기사가 전 세계로 퍼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들의 기사가 적국인 러시아에 들어가면 군사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이 사실을 모르던 외신기자들은 종군 취재 허가를 받으러 도쿄에 갔다가 4월 초순까지 발이 묶였다. 이들은 일본어를 몰랐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지만 고베에서 16년을 살며 일본어에 능통했던 베델은 이들보다 한 달이나 앞서 조선에 들어왔다. 베델은 조선에 온 지 36일 만에 ‘특종’을 발굴했다. 4월 16일자 ‘한국 황궁의 화재’ 기사였다. 베델은 14일 저녁 고종이 머물던 경운궁(현 덕수궁)에서 발생한 의문의 화재 사건을 추적해 ‘일본군이 방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기사를 전송했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은 이듬해부터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런 궁궐에 어느 날 갑자기 불이 나 중화전과 그곳에 있던 보물이 모두 탔다. 당시 ‘데일리 크로니클’은 그가 쓴 기사를 5면 톱기사로 편집해 전 세계에 타전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베델과 코웬은 이 기사 때문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친일 성향의 데일리 크로니클이 일본에 비판적 기사를 쓴 베델을 문책했다는 것과 전장인 한반도에 통신원을 두기보다 본지 기자들이 일본 정부에서 자료를 받아 기사를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데일리 크로니클, 일본에 우호적 기사 지시” 훗날 베델은 이 사건에 대해 “‘데일리 크로니클’에서 일할 때 받은 지시는 ‘우리 신문은 일본에 우호적이기 때문에 통신원이 쓰는 기사 역시 이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면서 “또 동양에 간 특파원들이 전쟁터에서 얻는 정보보다는 영국 런던 주재 일본대사관에서 듣는 사실이 더 많았다는 이유도 있었다”고 말했다. 참고로 1872년 창간된 ‘데일리 크로니클’은 1930년 ‘데일리 뉴스’와 합병해 ‘뉴스 크로니클’로 바뀌었다. 이 매체는 1960년 ‘데일리 메일’에 흡수돼 지금도 운영 중이다. 학계에는 베델이 ‘데일리 크로니클’에서 경운궁 화재 기사 한 건만 쓰고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말고도 그가 쓴 기사가 하나 더 있다는 주장이 있다. 서울신문이 취재도중 만난 영국 출신의 역사연구가 에이드리언 코웰(62·싱가포르 거주)에 따르면 베델은 경운궁 화재 기사보다 보름 앞서 4월 1일자에 조선의 전통놀이인 ‘석전’(두 편으로 나뉘어 돌팔매질로 승부를 겨루던 놀이)과 축구를 비교하는 글을 썼다. 해당 기사는 지금도 ‘데일리 크로니클’ 데이터베이스(DB)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베델은 통신원으로서 모두 2개의 기사를 쓴 것이 된다. 코웰은 “당시 통신원들은 자신이 쓴 기사를 다른 매체에도 팔 수 있었다. 이 글을 뉴질랜드 언론사에도 판매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그 기사도 찾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32세 나이에 3개월 만에 신보와 KDN 펴내 특종 기사를 남기고 회사를 떠나게 된 베델은 곧바로 자신이 이곳에서 직접 신문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고는 단 3개월 만에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발행했다. 그의 나이 32세였다. 20년 가까이 무역 일만 하던 베델이 갑자기 일사천리로 언론사를 창간한 이유를 두고 지금까지도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다. 우선 신문 발행은 당시로서는 첨단산업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종이 몇 장만 사면 알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의 정보화 혁명에 비견될 충격이었다. 19세기 말부터 동북아시아 지역은 영자신문 창간이 유행처럼 번졌다. 특히 조선에는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영어신문이 하나도 없었다. 서울에서는 1896년 서재필이 한글판 ‘독립신문’과 영문판 ‘인디펜던트’를 창간했지만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1899년 12월 폐간했다.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미국인 호머 허버트(1863~1949)가 월간지로 발행하던 ‘코리아 리뷰’가 유일한 영어 간행물이었다. 베델은 이런 조선에서 하루빨리 영어신문을 창간해 시장을 선점하면 장기적으로 큰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또 투자금을 모아 회사를 차리는 일은 베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본을 모으는 이른바 ‘펀딩’은 16년간 무역업을 하며 돈의 흐름을 읽을 줄 알던 베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였다. 여기에 그는 일본 시절부터 언론 친화적 모습을 보여줬다. 베델이 고베에 있을 때 발행되던 영어신문 ‘고베 크로니클’은 그가 활동하던 스포츠 클럽 고베 레가타 앤드 어슬래틱 클럽(KR&AC)이 주최하는 연례 총회와 스포츠 경기, 콘서트 등을 단골 기삿거리로 삼았다. 그 역시 여기에 수차례 기고글을 쓰며 논쟁을 즐겼다. 마지막으로 그가 영국에서 상당한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베델연구가 코웰은 “19세기 당시 영국 사정을 감안할 때 베델 정도면 (귀족이나 거대자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면서 “소규모 언론사를 운영하거나 기사를 쓰는 데 있어 기본적인 소양은 충분했다”고 말했다. 고베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싱가포르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시진핑의 ‘일대일로’ 빚더미 암초… 美는 돈 줄 죈다

    시진핑의 ‘일대일로’ 빚더미 암초… 美는 돈 줄 죈다

    78개 참여국 대부분이 저개발 국가 파키스탄 등 8개국은 ‘빚의 덫’ 빠져 프로젝트 진행 中 국영기업도 빚 심각 美 “ IMF, 中에 구원투수 되면 안 돼” ‘일대일로’ 참여국 자금지원 차단 검토중동과 동아시아가 만나는 지정학적 요지인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구에는 연간 6만여대의 통과 선박 중 한 척도 정박하지 않고 있다. 빚더미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함반토타 항구는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야심 차게 실행하고 있는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사업으로 마힌다 라자팍사 스리랑카 전 대통령의 고향에 세워졌다. 스리랑카 정부는 항구를 건설하느라 지게 된 부채를 갚다가 결국 지난해 12월 중국에 99년 동안의 운영권을 내주게 됐다. 중국 정부는 국제공항을 포함한 60㎢에 이르는 항구 주변의 땅도 소유하게 돼 함반토타는 영국 식민지였던 ‘제2의 홍콩’과 같은 운명이 됐다. 중국은 현재 78개 국가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이 자국 국유 은행을 통해 자본을 해당국에 빌려주고, 자국 국유기업을 통해 사회간접자본(SOC)을 구축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일대일로 참여국도 부채가 많은 저개발국가들인 데다 프로젝트 진행으로 중국 국영기업들도 부채를 떠안게 된다는 점이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부작용으로 중국의 부채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는 비판론자들의 지적이 커지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 보도했다. 대표적인 일대일로 참여국인 파키스탄은 620억 달러의 채무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채무의 상당 부분은 일대일로 참여에 따른 인프라 건설 비용이다. 78개 국가 가운데 동아프리카의 지부티,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동남아시아의 라오스와 인도양의 섬나라 몰디브, 몽골, 발칸반도의 몬테네그로, 파키스탄 등 8개국이 ‘빚의 덫’에 빠진 나라로 지목된다. 미국도 경계의 날을 세우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최대 출자국인 미국은 일대일로 참여국가들에 대한 IMF 자금 지원을 차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IMF 자금으로 중국의 구원투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RFI)은 이날 미국 상원의원 16명이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일대일로 참여로 채무위기에 몰린 국가들이 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면 어떻게 대응할지 질의했다고 보도했다. 스리랑카는 이미 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파키스탄도 재정난 타개를 위해 조만간 구제금융을 요청할 예정이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IMF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므누신 재무장관도 지난 4월 IMF 춘계회의에서 “많은 국가들이 중국 등 투명도가 떨어지는 신흥국가의 국가펀드를 통해 상환하기 어려운 규모의 돈을 빌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내부에서도 일대일로로 인한 자국 기업 부채 규모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당국이 금융 리스크를 챙기며 신규 투자 감축 등 고삐를 죄는 이유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경제 우클릭 논란에도 ‘국민체감 정책’… 신성장·고용 드라이브

    보유세 증세 빠지고 은산분리 완화 靑, 지지층 비판 알고도 릴레이 행보 참여연대·경실련 “공약 파기” 반발 정부 “진보진영 개혁 조급증·경직성” 일각 “토론의 장도 없이 밀어붙인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놓고 진보 진영에서 ‘우(右)클릭 논란’이 일고 있다. 올 들어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 노선을 고수하면서도 ‘혁신성장’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비롯됐다. 특히 지난 7월 인도 방문 중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만남을 일각에서는 재벌정책의 변화 신호로 받아들였다. 세제개편안에 보유세 증세가 빠진 점도 진보 진영은 우클릭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정부는 “진보 진영의 개혁 조급증과 경직성”(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라고 반박한다. 먹고사는 문제, 나아가 문재인 정부의 개혁 성공을 위해서는 규제 혁신을 통한 경제·고용 성과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를 위해 은산 분리(산업자본이 의결권이 있는 은행 지분의 4% 초과 보유를 제한) 규제의 예외적 완화 방침을 밝히면서 논란은 증폭됐다. 지난 6월 말 전격 취소됐던 규제혁신점검회의의 핵심 안건도 이 문제였다. 휴가 복귀 이후 첫 현장 행보란 점에서 이목이 집중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은산 분리 완화를 꺼내 들면서 규제개혁의 상징으로 부상한 것이다. 참여연대·경실련 등 진보 진영에선 “은산 분리 규제 완화는 공약 파기”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8일 “공약집에도 ‘금융산업구조 선진화 추진’을 밝혔고 ‘인터넷전문은행 등에서 현행법상 자격 요건을 갖춘 후보가 자유롭게 진입할 환경을 조성하겠다. 완화된 진입장벽으로 경쟁을 촉진하는 대신 사후 규제를 강화한다’고 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신년회견에서도 ‘다양한 금융산업이 발전하게 진입규제를 개선하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공약 파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청와대가 일부 지지층의 비판을 예상하고도 드라이브를 거는 까닭은 뭘까. 인터넷전문은행과 맞물린 핀테크 산업을 혁신성장의 동력이자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중국 방문 당시 노점상에까지 일반화된 모바일 결제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수많은 규제개혁 현안 중 이 문제를 먼저 꺼낸 것은 공감대가 무르익고, 시급한 데다 관련법의 국회 통과 가능성을 포함해 ‘진도’가 나갔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진보진영의 우려는 더 설득하고, 부작용을 막을 수단들을 설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에서 이번 논의를 정태호 일자리수석과 윤종원 경제수석이 주도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은산 분리 완화를 금융산업 발전과 신성장 동력은 물론 고용창출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얘기다. 금융위에 따르면 인터넷은행 규제완화가 현실화되면 5000명의 장기적 고용유발 효과가 있다. 여권 핵심 인사는 “정책에 관한 한 대통령 의중을 가장 꿰뚫는 인사는 정 수석이다. 원칙을 훼손하지 않고 일을 되게 하는 쪽으로 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윤 수석은 대통령 현장행보에 앞서 지난 6일 언론 인터뷰에서 “인터넷전문은행 등 은산 분리 원칙에 막혀 있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며 여론 정지작업을 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규제개혁은 장하성 정책실장이 총괄하지만 이번처럼 사안에 따라 각 수석실이 고유의 ‘롤’을 부여받고, 때론 협업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산 분리의 예외적 완화에 대해서는 ‘가야 할 길’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참여정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은산 분리 원칙은 지켜야 하지만 QR코드 간편결제 방식 같은 것은 이미 중국에서도 보편화된 상태이고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책을 너무 이념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시스템 리스크가 생기지 않는다면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클릭 논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 교수는 “개혁 후퇴라고 보는 것은 성급하다”면서도 “금융이든, 부동산이든 전체를 조합해서 하나의 건물을 짓는 데 청사진이 부족하고 정리가 덜 된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우클릭 논란에 불을 지폈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날 한 신문 칼럼에서 “우클릭에 대한 우려가 점증하고 있음에도, 토론의 장조차 거치지 않은 채 특공작전하듯이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사설] 제자리걸음 ‘은산분리 완화’ 더이상 늦춰선 안 돼

    지난해 4월 케이은행, 7월 카카오뱅크의 출범으로 인터넷 전문은행 시대가 열린 지 1년이 지났다. 공인인증서 없는 거래, 24시간 이용, 수수료 인하 등 혁신으로 올 상반기 기준 고객 700만명과 총대출액 8조원의 성과를 냈다. 기존 은행의 대출금리와 수수료를 끌어내린 ‘메기 효과’도 입증됐다. 하지만 출범 초기의 열기를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산업 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를 제한하는 ‘은산분리’ 규제로 자본 확충에 어려움을 겪어 혁신은커녕 생존을 고민하는 처지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인터넷은행 규제혁신 현장 방문 행사에 참석해 “은산분리는 우리 금융의 기본 원칙이지만, 지금의 제도가 신산업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며 은산분리 완화를 재차 강조했다. 대선 공약 파기라는 일각의 비판에도 은산분리 완화에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이유는 분명하다. 금융권 전체의 혁신을 이끌 인터넷은행이 처한 현실적 난관을 더는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우리와 출발이 비슷했던 중국은 인터넷은행뿐만 아니라 금융과 첨단기술을 결합한 핀테크 분야에서 날개 단 듯 발전하고 있다. 정부가 규제 혁신의 속도와 타이밍을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은산분리가 완화되면 국민의 예금이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는 충분히 염두에 둬야 할 사안임엔 틀림없다. 2013년 동양그룹이 계열 금융회사인 동양파이낸셜과 동양증권을 통해 자금을 불법 지원받아 부실 사태를 키웠고, 그 피해를 투자자들이 고스란히 뒤집어썼던 전례가 절대 반복돼선 안 된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가서야 되겠는가. 현재 국회에 제출된 은산분리 완화 관련 특례법안들은 대주주의 자격을 제한하거나 대주주와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혁신의 문은 활짝 열되 부작용을 차단할 보완 장치를 튼튼히 갖추면 될 일이다.
  • [시론] 미·중 무역갈등 악화에 대비해야/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국제통상학)

    [시론] 미·중 무역갈등 악화에 대비해야/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국제통상학)

    미·중 무역갈등의 향방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중국산 제품 2000억 달러에 대해 10%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표에 대해 중국은 미국의 조치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 표명 이후 구체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확전으로 인한 손익 계산이 길어질 수 있고,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이 1300억 달러에 불과하므로 관세 외 다른 대응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 수도 있다.미·중 무역갈등의 결말에 대해 두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중국의 양보로 갈등이 봉합되는 낙관적 시나리오와 상호 보복을 통해 확전되는 비관적 시나리오 모두 가능하고 어느 쪽이 우세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기업인들을 상대로 물어보면 전자가 우세하나 통상 전문가들의 의견은 반반으로 엇갈린다. 낙관적 시나리오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중국이 양보할 만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5년 전 대권을 잡으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몽’과 ‘중국 굴기’를 내세웠고, 지난 3월 중국 전국인민대회(국회에 해당)에서 공산당 헌장을 고쳐 주석의 임기를 없애면서 강한 중국 건설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대가 트럼프 대통령이기에 굴복했다는 이미지를 중국 국민에게 보여 줘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또는 국제사회의 중재를 빌미로 미국에 양보할 수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WTO를 무력화시켰기에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 무역전쟁의 피해를 예상할 수 있지만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실현될 것으로 확신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국내 사정을 보면 어느 쪽도 양보할 처지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게이트’ 등 국내 정치 스캔들에 대한 이목을 돌리기 위해 무역전쟁을 이슈화해야 하고 선거 공약을 지키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보여 줘야 하므로 중국이 굴복할 때까지 밀어붙이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무역보복의 판을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관세전쟁이었고 대미 수입액이 1300억 달러로 작아 관세전쟁에서 쓸 수 있는 카드가 마땅찮은 중국은 비관세 장벽을 동원하는 무역전쟁으로 판을 바꿀 수 있다. 중국이 활용할 수 있는 비관세 장벽은 많다. 앞서 중국은 지난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당시 소방 안전 등을 이유로 롯데 매장을 폐쇄시킨 바 있고, 협회를 통한 한국으로의 단체관광객 모집을 금지하기도 했다.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이 미·중 갈등을 우려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 통상 당국은 미·중 갈등이 양국 간 무역 문제로 국한되고 조만간 봉합될 것이므로 우리 경제에 대한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봤다. 미·중 갈등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통상 당국은 일부 연구기관에서 제시한 우리나라 피해액이 총수출의 0.1% 감소 정도로 별거 아니라는 분석을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가 과연 적을까. 낙관적 시나리오와 비관적 시나리오 중간쯤이 될 가능성이 높고 중국은 각종 비관세 조치로 대응하다가 위안화 평가절하(환율 인상)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사후적인 법적 공방을 피하기 위해 미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의 기업에 비관세 조치를 적용할 것이다. 국유기업들의 과도한 부채와 그림자금융(제2금융권) 부실 문제가 누적되는 가운데 미·중 갈등으로 수출까지 부진해지면 중국 경제도 위험해질 수 있다. 만약 중국이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줄이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늘리게 된다면 분명 우리나라의 대중 자본재 수출이 타격을 받을 것이다. 또 미국에 대한 수출을 줄이는 대신 제3국으로 수출을 늘리면서 해외 수출시장에서 우리나라 제품을 중국산으로 대체하게 될 것이다. 우리 경제에 대한 영향이 비교적 작을 것으로 예상한 낙관적인 시나리오하의 영향 분석에서는 이러한 점들이 반영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글로벌 가치사슬(GVC)에 입각한 현재의 국제분업 구조 훼손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쯤 되면 피해액 계산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통상 당국이 뒤늦게나마 대책을 세운다고 나섰지만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 결국 개별 기업이 리스크 관리를 할 수밖에 없다. GVC 타격이 덜한 지역으로의 설비 이동과 재수출 시장 다변화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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