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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시각] 금기를 깨기엔 아직 이르다

    [데스크 시각] 금기를 깨기엔 아직 이르다

    독일인이 한국 여행을 하면서 깜짝 놀라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 절에 갔을 때다. 사찰에 있는 만(卍)자는 각도는 다르지만 히틀러와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와 비슷하다. 불교에서는 길상의 표시인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점령당한 유럽 많은 나라에선 과거의 상처를 연상시켜 사용을 금지한다. ‘가해국’ 독일에서 하켄크로이츠를 공공연하게 사용하면 최대 징역 3년형까지 처해질 수 있다. 최근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가 독일 유니폼 기념품에 등번호 44번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유럽의 4 표기는 각이 진 알파벳 S처럼 보여서, 44가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나치 친위대 SS 문양을 떠올리게 한다는 게 이유다. 나치와 동맹을 맺은 베니토 무솔리니 정권을 경험한 이탈리아에선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한 뒤에 팔을 하늘로 향해 뻗는 로마식 경례도 금지한다. 지난 1월 로마 동남부 지역 파시스트 집회에 모인 200여명이 이런 경례를 하면서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지난해 연말에는 국방부가 2024년 달력에 무솔리니 정권 전범을 미화한 듯한 문구를 넣어 논란이 일었다. 정치인들과 반파시즘 단체들은 “친파시스트 세력이 역사를 다시 쓰려고 한다”며 반발했다. 2차 대전은 세계 지형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양분했고, 경제 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등 세계사를 뒤흔들었다. 80년이 지나도록 영향이 남아 전쟁을 발발시킨 3국 중 독일은 나치 역사를 끝없이 반성하고 사죄하면서 스스로 제어하고 있다. 이 시기에 한반도를 식민 지배한 일본은 독일·이탈리아와는 또 다른 행보를 보인다. 패전국으로서 전쟁이나 무력행사 등을 못 하도록 한 ‘헌법 9조’(평화헌법)를 끊임없이 개정하면서 전범국의 지위를 청산하려고 시도해 왔다. 최근에는 일본 육상자위대가 공식 소셜미디어(SNS)에 태평양전쟁을 미화하는 용어인 ‘대동아전쟁’을 언급했다. 1941년 일본이 아시아 해방을 내세워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일으킨 전쟁을 일컫는다. 패전 후 미국·영국 등 연합군은 일본식 표현을 금지했고, 이후 전 세계가 태평양전쟁으로 불렀다. 이런 금기어가 자위대 SNS에 올랐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한국은 더더욱 우려할 만한 일이다. 이 와중에 서울시의회 일부 의원들이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를 금지하는 조례를 폐지하는 안을 발의했다가 철회하는 일이 있었다. 폐지안 제안 동기는 “시민들에게 반제국주의 의식이 충분히 함양되어 있고, 제국주의 상징물의 사용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독일이 나치 상징을 금지하는 건 전체주의 의식이 낮아서가 아니다. 자국민을 비롯한 전 세계인에게 고통을 준 자신들의 과오를 잊지 않고 대중이 다시 고통당하는 일이 없도록 국가 차원에서 친 보호막이다.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을 보면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때’라기보다는 한국이 국가 차원의 방어막을 더욱 견고하게 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미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은 중국 견제가 목표인 미국을 앞세워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미·영·호주의 공조(오커스)에 필리핀과도 군사협력을 하는 등 여러 군사력 발현 도구를 갖게 됐다. 미국과 일본이 결합하는 반대 쪽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끈끈하게 밀착한다. 이런 동아시아 대결 구도 속에서 한국의 위치 선정 역시 고심해야 할 상황이다. 지금껏 정부가 해 왔던 것처럼 일본의 과거사를 털어 주고 ‘가해국’ 일본이 교전할 수 있는 국가가 되도록 놔둘 것인가. 가장 쉬운 방법처럼 보이지만, 이는 독립과 해방의 역사를 저버리는 일이다. 한일 협력에서 얻을 이익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대립각을 세울 수도 없다. 역사를 바로 세우면서 미래로는 한반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전략, 한국 정부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최여경 국제부장
  • EBS 다큐 ‘돈의 얼굴’ PD들 “돈의 진짜 얼굴을 보여드립니다”

    EBS 다큐 ‘돈의 얼굴’ PD들 “돈의 진짜 얼굴을 보여드립니다”

    “돈의 얼굴이요? 그 돈을 만지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던데요.” 오는 15일 첫 전파를 타는 EBS의 6부작 다큐멘터리 ‘돈의 얼굴’을 제작한 이혜진(41)·박재영(32) PD는 2년간 미국, 중국, 일본, 터키 등 세계 9개국에서 파헤친 적나라한 돈의 민낯을 카메라에 담았다. ‘돈의 얼굴’은 EBS가 ‘자본주의’ 이후 10년 만에 선보인 경제 대기획으로 사람들이 갈망하는 돈의 속성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다큐에서 1인 9역을 연기하며 해설자로 돈의 실체를 전하는 ‘머니맨’은 배우 염혜란이다. 교육방송에서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종횡무진하는 염혜란을 보는 건 허를 찌른 느낌이다. 지난 12일 전화로 만난 두 PD는 세계적인 경제 석학부터 각국의 채무자, 은행강도까지 만났다고 했다. 이 PD는 “경제하면 어렵고 큰 주제인데 돈이라면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기획했다”라고, 박 PD는 “코로나 팬데믹 때 감자탕집 손님들이 미국 연준의 금리 인하를 얘기하는 걸 보고 돈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다큐에는 미국 월가가 ‘닥터 둠’으로 부르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굿하트 법칙’의 창시자 찰스 굿하트 런던 정경대 명예교수, 경제학자들의 선생으로 평가받는 대럴 더피 스탠퍼드대 교수, 세계 최초 전자화폐 ‘이캐시’ 개발자 데이비드 차움, 일본 금융위기를 예측한 가네코 마사루 등 쟁쟁한 대가들이 출연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5대의 모니터 앞에서 온종일 주식 거래만 하는 90대 일본 노인의 일상과 최악의 경제난에 빠진 레바논에서 은행강도가 된 예금자들을 인터뷰한다.이 PD는 “경제 석학들의 인터뷰 섭외를 위해 정성과 진심을 담은 메일들을 보냈다”라며 “노벨상 수상자 등 세계적인 지성들이 출연한 ‘위대한 수업’ 제작진이 전수해준 노하우를 활용했다”라고 말했다. ‘돈의 얼굴’에는 ‘위대한 수업’의 김미란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이 PD는 저명한 경제학자들에게 속물적 질문도 건넸다고 했다. 그는 “당신 앞에 150파운드 가치의 금과 현금이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냐고 물었더니 다수가 현금을 선택한 게 인상적이었다”며 “석학들에게 중학생 눈높이로 경제 원리를 설명해달라고 했더니 당혹해하면서도 EBS 다큐라는 걸 이해해줬다”고 웃음을 지었다. 박 PD는 “지난해 7월 만난 레바논 베이루트의 은행강도는 인출이 막힌 자기 돈을 찾기 위해 분투한 평범한 예금자였다”며 “베이루트 곳곳의 은행들이 예금 인출을 중단한 이후 습격당하는 현장을 보며 돈의 파괴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는 돈 때문에 나라가 들썩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2000달러 남짓인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는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비트코인 거래국이다. 통화 가치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 때문이다. 박 PD는 “인플레이션에 통화(나이라) 가치가 곤두박질친 나이지리아 정부가 화폐 개혁으로 구권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고 디지털 화폐 도입으로 국가가 극심한 갈등과 불신에 빠진 걸 보며 돈에 대한 신뢰를 의심하게 됐다”라고 했다. 비트코인 채굴업자부터 은행원, 대출자 등 1인 9역으로 ‘돈의 얼굴’이 된 염혜란은 “돈이 주제인 다큐에서 시청자들의 편한 길잡이가 되고 싶었다”고 출연 이유를 전했다. 그는 “역할에 따라 다양하게 모습을 바꿔가며 연기하는 것이 재밌었고, 시청자에게 생각거리를 담백하게 전달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돈을 좇고 돈에 쫓기는 다큐 속 사람들이 떠올린 ‘돈의 얼굴’은 무엇일까. 두 PD는 “누군가는 악마라고 몸서리치고, 누군가는 절대 마음을 주지 않는 친구라고 한다”며 “돈과 인간의 욕망이 뒤얽힌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각자가 돈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스마트팜 효과… 한국 농가 20분의1 네덜란드, 농산물 수출은 11배[대한민국 인구시계 ‘소멸 5분전’]

    스마트팜 효과… 한국 농가 20분의1 네덜란드, 농산물 수출은 11배[대한민국 인구시계 ‘소멸 5분전’]

    농업 강국 네덜란드의 비결연중 절반 이상 비 내리는 악조건스마트팜 보급해 유리온실 3배로농산물 年180조원 수출 강국 변신OECD 식량안보 최하위 한국 GDP 대비 농업 지원 상위권인데㏊당 작물 생산량 하위권 맴돌아“기업형 스마트팜이 돌파구 될 것” 3만 3000평의 유리온실에서 스테비아 토마토 등을 재배하는 충남 부여의 농업법인 ‘우듬지팜’은 지난해 9월 국내 스마트팜 기업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2011년부터 스마트팜 설계와 생산, 제품 유통까지 이어지는 체계를 구축하며 얻은 결과였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등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스마트팜 기술을 수출하는 우듬지팜은 지난해 563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K-스마트팜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와 청년인구 유출 등으로 소멸위기를 맞은 농촌에 스마트팜이 새로운 활로로 떠오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스마트팜이나 수직농업은 생산된 농산물뿐 아니라 농업 기술 자체로도 해외시장 진출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라며 K-스마트팜의 미래에 힘을 실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내 농가의 스마트팜 도입 면적은 약 7700㏊로 전체 시설원예 면적 5만 5000㏊의 14.0%에 불과하다고 9일 밝혔다. 해당 면적은 5년 새 57.0%가 증가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 일상화된 기후위기의 영향을 덜 받고 노동력 위주의 저효율 농업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스마트팜으로의 전환은 식량안보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중 29위인 우리로선 절박한 과제다.1970년 248만 3300가구였던 농가 수는 2022년 102만 2800가구로 59% 감소했다. 같은 기간 60세 이상 농가 인구 비중은 7.9%에서 65.0%까지 증가했다. 농업 생산성도 악화일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스마트팜 산업 활성화 전략’ 보고서를 보면 2022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농업지원 비중은 1.5%로 필리핀, 중국, 튀르키예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반면 1㏊당 작물 생산량은 조사대상국 36개국 중 22위에 머물렀다. 반면 지난해 세계 농산물 수출국 3위를 기록한 네덜란드는 스마트팜을 통해 노동력과 기후 취약점을 극복한 대표적인 농업 강국이다. 2022년 네덜란드의 농산물 수출액은 1223억 유로(약 179조 3138억원)였다. 이 중 식품 수출액은 1181억 달러, 스마트팜 등 전후방 산업 수출액은 145억 달러였다. 같은 해 우리나라의 K푸드 플러스 수출액은 118억 달러에 불과했다. 네덜란드는 농가 수가 우리나라의 20분의1 수준인 5만 980가구인 데다 1년 중 절반 이상 비가 내리는 등 농업에 불리한 기후환경을 가졌지만 스마트팜으로 악조건을 극복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농장을 폐쇄하고 스마트팜을 보급해 농장 규모를 키웠다. 대학과 민간 기업이 주체가 돼 농식품 스타트업과 혁신 기업에 스마트팜 기술을 보급한 결과 2000년 0.95㏊ 불과했던 네덜란드의 농가 1가구당 유리온실 경지 면적은 2022년 3.02㏊로 3배 이상 늘었다. 우리나라의 0.56㏊에 비하면 5.4배 수준이다. 한국도 2027년 스마트팜 도입률 30%를 목표로 정부 차원에서 스마트팜 기업과 청년농, 기존 농업인을 대상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 전국 네 곳에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조성해 스마트팜 기업이 제품 설계부터 실증, 빅데이터 분석, 전시 및 체험까지 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했다. 연간 200여명의 청년농을 대상으로 20개월간 스마트팜 교육을 진행한 뒤 수료자에게 3년 동안 스마트팜을 임대하는 등 초기 정착을 지원한다. 농업 규모가 작고 나이가 든 농업인에겐 기존 시설을 현대화해 노동을 단순화, 전문화할 수 있는 기초 단계의 스마트팜 기술을 보급 중이다. 한국농산업조사연구소가 2022년 스마트팜 도입 1년차 농가 79가구의 농업 효율성을 조사한 결과 1평(3.3㎡)당 생산량이 도입 전에 비해 32.1%나 증가했다. 해당 농업인의 노동시간은 7.7% 줄고, 대신 농업 소득은 46.0%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스마트팜 도입률을 높이고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 만큼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선 농가 중심의 스마트팜 산업 확산과 기업 참여 활성화가 필수적이다. 이정삼 농식품부 스마트농업정책과장은 “네덜란드에서 스마트팜 보급 초창기부터 기업 차원의 대규모 스마트팜을 조성했던 것처럼 기업형 스마트팜 육성은 중요한 과제”라면서 “농가가 기업형 스마트팜으로 규모를 키우고 우듬지 사례처럼 수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초기 자본과 인력 육성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3일부터 스마트팜과 농기계를 한국무역보험공사 단기수출보험 우대 프로그램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스마트팜의 수출 지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선거는 ‘민주적 선출’ 포장일 뿐… 장기 집권 노리는 권위주의자들[글로벌 인사이트]

    선거는 ‘민주적 선출’ 포장일 뿐… 장기 집권 노리는 권위주의자들[글로벌 인사이트]

    21세기 들어서면서 민주주의가 부식되고 있다는 징후가 여기저기서 포착된다. ‘민주주의 본산’을 자부하던 미국도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남긴 분열과 반목이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그가 다시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제 많은 국가에서 선거는 권위주의 지도자에게 ‘민주적 선출’ 명분을 제공하는 포장지 역할에 머물고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 수준의 장기 집권 체제가 아닌데도 종교 원리주의와 포퓰리즘 등을 교묘히 활용해 장기 집권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가 의외로 많다.●‘인도를 힌두교의 나라로’ 모디 총리 미중 전략경쟁 국면에서 존재 가치를 크게 높인 인도는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대표적인 나라로 꼽힌다.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뒤 서구식 민주주의를 국가 운영 원칙으로 삼았지만 나렌드라 모디(74) 인도 총리와 여당인 인도인민당(BJP)이 2014년 5월 집권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모디 총리는 경제 성과와 글로벌 영향력 확대에 힘입어 오는 19일 시작되는 총선에서 3연임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소수민족을 억압하는 힌두 민족주의와 언론 장악 등 비민주적 행보도 우려된다. 그는 올해 1월 북부 아요디아의 힌두교 사원 개관식에 참석했다. 원래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터였지만 1992년 힌두교도가 이를 파괴했다. 이를 계기로 전국 곳곳에서 ‘종교 충돌’이 발생해 2000명 넘게 숨졌다. 모디 총리는 이를 잘 알면서도 일부러 힌두교 사원을 찾은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인도는 힌두교의 나라’임을 선언하려는 속내다. 14억명의 인도에서 약 80%는 힌두교, 14%는 이슬람 신자다. 모디 총리가 3연임에 성공해 ‘15년 통치’에 들어가면 국명을 ‘바라트’로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바라트는 힌두교의 뿌리가 되는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가져온 단어다. 이슬람교도와 소수민족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지만 모디와 BJP 의원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힌두교 외 종교를 분리하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미 인도 주요 언론은 모디 총리와 가까운 재벌들에 장악돼 사회 비판 기능이 무뎌졌다. 지난해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인도는 180개국 가운데 161위에 그쳤다. 영국 싱크탱크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도 “집권 초기인 2014년만 해도 인도의 민주주의 순위가 27위였지만 2022년에는 46위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를 십분 활용하려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모디의 이런 행보를 눈감아 주고 있다. ●민족주의 불 댕긴 에르도안·네타냐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70) 튀르키예 대통령은 ‘21세기 술탄’으로 불린다. 그에게 이 별명이 붙은 것은 20년 넘게 튀르키예를 통치한 것도 모자라서 사실상 종신 집권을 추구하고 있어서다. 축구 선수 출신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1년 고교 동창들과 함께 중도 성향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했고 2003년 총리에 올랐다. 3연임을 통해 11년간 튀르키예를 통치한 뒤 임기 막판 개헌에 나서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꿨다. AKP 당헌이 총리 4연임을 금지해 이를 우회하려는 의도였다. ‘선거만 하면 이긴다’는 자신감을 토대로 2014년 총리에서 대통령으로의 ‘환승 통치’에 성공했다. 이후 다시 개헌을 감행해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변경하고 총리 자리도 없애 버렸다. 이번 임기 마지막 해인 2028년에 조기 대선이 실시되면 79세가 되는 2033년까지 집권이 가능하다. 현재 튀르키예는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고 연간 물가 상승률이 60%를 넘는 등 총체적 난국에 빠졌지만 ‘투르크 제국의 부활’을 원하는 다수 지지자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중동에서 몇 안 되는 민주주의 제도를 운영하는 이스라엘에서도 베냐민 네타냐후(75) 총리가 숱한 비난을 받고 있다. 삼권분립 원칙을 파괴하고 아랍 세계와의 전쟁을 불사하는 초강경 외교 행보를 보여서다. 1996년 6월~1999년 7월 총리를 지낸 뒤 2009년 3월 다시 총리에 올라 내리 6선을 역임했다. 2021년 6월 개인 비리 혐의 등으로 물러났지만 극우 세력과 손잡고 2022년 12월 다시 정권을 잡았다. 일각에서는 그의 우향우 행보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를 자극해 2023년 10월 가자지구 전쟁을 촉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의 탈법적 정치활동에 사사건건 제동을 건 사법부를 무력화한 데 이어 의회 내 야당의 견제조차 차단하고 있다. 그의 ‘사법 개혁안’에 반대해 수도 텔아비브 등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지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그가 뇌물 수수 혐의 등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물타기하고자 일부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판을 키운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직간접적으로 그가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기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불안 먹고 자라는 포퓰리즘 이 밖에도 인구 기준 ‘세계 3위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조코 위도도(63·조코위) 대통령은 올해 2월 치러진 대선에서 집권당이 아닌 야당 후보 프라보워 수비안토(72)를 밀어줘 논란이 됐다. 헌법상 대통령 3연임이 불가능하자 조코위 대통령이 자신의 정적이던 프라보워를 지지해 당선시킨 것이다. 대신 프라보워는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인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36)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조코위 대통령이 자신의 아들을 내세워 ‘정치왕조’를 구축하려 한다는 비난이 거셌다. 헝가리 ‘최장수 총리’인 빅토르 오르반(61)은 1차 총리 재임기(1998~2002년)에만 해도 민주화 개혁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2차 재임기(2010년~) 이후에는 언론 자유 축소와 삼권분립 침해 등 전형적인 권위주의 경로를 걸었다. 그는 헝가리뿐 아니라 우랄알타이 어족의 대단결을 바라는 ‘투란주의’를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르크족(튀르키예)과 핀족(핀란드), 마자르족(헝가리) 등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한 민족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부식’ 현상은 이들 국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9일(현지시간) 독일 싱크탱크인 베르텔스만 재단의 ‘베르텔스만혁신지수(BTI) 2024’는 “137개 신흥국 가운데 74개국이 ‘독재국가’로 분류됐다”고 밝혔다. 2014년 54개국에서 10년 사이에 20개국이 늘었다. 반면 민주주의 국가는 75개국에서 63개국으로 줄었다. 독재국가에서 민주국가로 바뀐 곳은 말레이시아와 네팔, 스리랑카, 아르메니아 4개국에 그쳤다.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2024년)의 저자인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경제평론가는 이 현상을 신자유주의 질서에 기반한 세계화가 양극화를 부추겨 대중의 불안감이 고조된 결과로 해석한다. 세계화에 적응하지 못해 좌절과 분노를 느끼던 주민들이 하나둘 포퓰리즘에 감염돼 권위주의자 통치를 허락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언제라도 글로벌 경쟁에 밀려 사회 위계질서의 최하위로 떨어질 수 있다는 소시민들의 걱정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구호)와 같은 독선의 리더십을 찾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승기를 잡은 권위주의 정치인들은 야당과 사법기관을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서서히 잠식한다. 세계화의 근본적 부작용에 대해 지구촌 전체가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는 신호다.
  • ‘3N’ 후발주자, 게임포털로 뒤집다… 24년 만에 재계 41위 ‘레벨업’[2024 재계 인맥 대탐구]

    ‘3N’ 후발주자, 게임포털로 뒤집다… 24년 만에 재계 41위 ‘레벨업’[2024 재계 인맥 대탐구]

    2N과 달리 개발자 아닌 투자 창업 2000년 자본 1억 직원 8명 ‘첫발’벤처 최초로 대기업에 지분 매각모두의마블·세븐나이츠 등 흥행작년 매출 83%, 해외시장서 얻어2000억 투자 ‘하이브’ 2대 주주로‘정수기·비데 1위’ 코웨이 등 인수 “나 이런 사람이야.” 2017년 5월 12일 넷마블게임즈(현 넷마블) 코스피 상장 기념식이 열린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가수 DJ DOC의 노래에 맞춰 선글라스를 끼고 떼춤을 췄던 방준혁(56) 의장과 임직원들의 모습은 넷마블 성공 신화를 보여 주는 한 장면으로 꼽힌다. 넥슨(1994년 설립), 엔씨소프트(1997년 설립)와 함께 국내 3대 게임사를 일컫는 ‘3N’ 가운데 후발주자로 시작한 넷마블이 성공 궤도에 올랐음을 확인하는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 넷마블은 2017년 코스피 상장 당시에는 시가총액 규모 14조원을 넘어서며 게임 대장주로 올라섰다. 2018년에는 자산 규모 5조원을 넘기며 공정거래위원회 공시대상기업집단 57위에 올랐고, 2021년에는 자산 규모 10조원을 넘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4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기준 매출 2조 5020억원으로 국내 게임사로는 넥슨(3조 7675억원)에 이어 매출 기준 2위 업체로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해외 매출 비중이 전체의 83%(2조 786억원)를 차지하는 등 K 콘텐츠 수출에도 앞장서고 있다. 넷마블은 1999년 게임개발사 아이팝소프트에 방 의장이 외부 투자를 유치하는 사외이사로 참여하며 태동했다. 이듬해인 2000년 3월 방 의장은 자본금 1억원을 유치해 아이팝소프트 개발자 8명과 함께 넷마블을 설립했다. 넷마블이란 사명은 네트워크의 ‘넷’(Net)과 넷마블 보드게임인 ‘퀴즈 마블’에서 따온 귀중한 돌, 대리석이라는 의미의 ‘마블’(Marble)이 더해진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새로운 놀이문화를 펼치겠다는 뜻을 담았다. 3N의 다른 회사 창업자들과는 달리 개발자 출신이 아닌 투자자 입장에서 게임 사업에 뛰어든 방 의장은 당시 유행이던 대규모 다중역할수행게임(MMORPG) 장르가 초기 개발 기간이 길고 투자자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10대와 여성 이용자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 게임 개발에 집중했다. 사업 첫해에는 ‘배틀가로세로’, ‘퀴즈마블’과 같은 교육용 게임을 만들었고, 이듬해인 2001년 5월 기존의 테트리스 게임에 학교 대항전과 같은 실시간 대결을 가미해 2002년 1월 회원 수 1000만명을 돌파했다. 넷마블은 자사 게임포털을 통해 다른 게임 개발사의 게임을 유통하는 게임포털을 업계 최초로 구축했다. 이후 당시 넷마블과 함께 ‘5N’이라고 불렸던 넥슨, 엔씨소프트, NHN, 네오위즈 등 경쟁사도 게임포털 모델을 도입했다. 넷마블은 2001년 12월 로커스홀딩스(2002년 4월 플래너스엔터테인먼트로 사명 변경)에 합류했다. 당시 로커스홀딩스에는 각종 기획사, 영화사, 제작사 등 대중문화 산업 관련 회사들이 모여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다. 시네마서비스, 프리머스시네마, 싸이더스, 예전미디어, 청어람, 아이엠픽쳐스, 김종학프로덕션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차츰 분사해 나가면서 넷마블이 2003년 5월 모회사를 인수한 뒤 그해 10월 사명을 플래너스로 바꿨다. 코스닥 상장사 플래너스 최대 주주였던 방 의장은 2004년 4월 ㈜CJ와 CJ엔터테인먼트에 주식 400만주(당시 21.71%)를 800억원에 넘겼다. 국내 벤처기업 중 최초로 대기업에 지분을 매각한 사례다. 이 회사는 이후 CJ인터넷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2011년 3월 CJ E&M에 합병됐다. 플래너스를 넘기고 건강 악화를 이유로 회사를 떠났던 방 의장은 CJ E&M 게임사업 부문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던 2011년 다시 복귀했고, 약 321억원을 들여 다시 대주주가 됐다. 이어 2014년 CJ E&M에서 게임 부문을 떼어내 넷마블게임즈를 설립하며 독립했다. CJ E&M(현 CJ ENM)은 지금도 넷마블 지분(21.78%)을 가진 2대 주주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방 의장은 CJ E&M 게임 부문 총괄 상임고문으로 복귀한 후 2012년 3월 모바일사업본부를 만들고 그 해 말 출시한 모바일 레이싱 액션 게임 ‘다함께 차차차’를 시작으로 모바일 보드게임 ‘모두의 마블’, 모바일 액션 역할수행게임(RPG) ‘몬스터 길들이기’, 모바일 수집형 RPG ‘세븐나이츠’ 등을 연달아 흥행시킨 뒤 2014년 8월 CJ에서 분리 독립했다. 2015년 2월 엔씨소프트와 전략적 제휴 체결 후 2016년 12월 출시한 모바일 MMORPG ‘리니지2 레볼루션’도 역대급 흥행 기록을 세웠다. 넷마블은 대규모 투자 유치와 지분 투자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2014년 중국 1위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로부터 530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유치했다. 2015년에는 엔씨소프트와의 지분 교환을 통해 엔씨소프트 지분 8.9%를 가진 3대 주주가 됐다. 2018년에는 가수 방탄소년단(BTS)이 속한 빅히트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에 2014억원을 투자했다. 지난해 기준 하이브의 2대 주주(지분 18.21%)이다. 넷마블은 2019년 업계 1위 넥슨 인수전에 뛰어들기도 했으나 넥슨 측의 매각 철회로 무산됐다. 넷마블은 2019년 국내 1위 정수기·비데 기업인 웅진코웨이(현 코웨이) 지분 25.08%를 1조 7400억원에 인수했다. 2021년에는 모바일 카지노 게임사인 스핀엑스를 2조 500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 “한일 대륙붕 협정은 화약고, 선 긋기보다 공동구역 늘려 이익 공유해야”[황성기의 오쿨루스]

    “한일 대륙붕 협정은 화약고, 선 긋기보다 공동구역 늘려 이익 공유해야”[황성기의 오쿨루스]

    2025년 6월이면 한일 대륙붕 남부협정의 봉인이 풀린다. 2028년 협정 시한을 3년 앞두고 한일 어느 한쪽의 종료 통보가 가능해진다. 대륙붕 협정은 양국 모두에 만지기 싫은 ‘뜨거운 감자’다. 그렇다고 뚜껑을 닫은 채로 가는 것은 한일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쉽지 않다. 사카구치 히데 일본 사사카와평화재단 해양정책연구소장은 기발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는 지난달 14일 일본 도쿄 재단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경계선을 긋지 말고 지금보다 더 넓게 공동개발구역을 설정하면 된다”고 제안했다.‘시한폭탄’ 대륙붕 협정내년 6월부터 한쪽서 종료 통보 가능반세기 양국 입장은 안 변해 문제 반복그렇다고 묵혀 두면 미중에만 좋은 일국제법상 200해리 룰 문제점은미국이 2차 대전 당시 주장한 개념섬 많은 아시아에 적용하면 싸움만새 룰 만들자고 다투면 개발만 늦어공동 개발 실마리는한일중 민간 합작회사 형태 해 볼 만3국 정치적 협력이 전제돼야 투자북극포럼 때처럼 ‘되는 일’부터 해야-한일 대륙붕 남부협정이 시한폭탄 같다. 해결책이 있을까. “올해가 대단히 중요하다. 양국 입장이 1974년 합의한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현명하지 않다. 서로가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도 다시 뚜껑을 덮으면 주변국 좋은 일만 시킬 뿐이다. 주변국이라는 건 중국과 멀리서 보고 있는 미국을 뜻한다. 역발상이 필요하다. 가장 어려운 문제에 가장 좋은 대답이 있다. 대륙붕 해법을 한일 관계의 모델로 만들어야 한다. 경계선은 그어서 좋은 것과 절대 그으면 안 되는 게 있다. 대륙붕 남부협정은 어떤 경계선을 긋더라도 나쁜 결과를 낳는다. 긋지 않고 폭넓은 공유 영역을 설정하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넓은 공동개발구역을 설정해 한일이 함께 개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해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중간선을 긋자는 게 일본 생각이다. 현재보다 넓은 공동개발구역을 일본 보수우파가 납득할까. “선을 그어서 이쪽은 일본, 저쪽은 한국이라고 해 놓으면 화근이 남는다. 화근은 절대 만들어선 안 된다. 한일이 추구할 건 이익이다. 공동구역을 설정해 함께 개발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계산을 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공동구역을 설정해 공동 개발할 때의 이익과 선을 그은 뒤 한일 양국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각각 추산해 정부에 제안하는 게 우리 같은 싱크탱크가 할 일이다. 어느 게 이익인지는 명확하다.” -대륙붕 200해리 개념은 미국식 아닌가. “배타적 경제수역(EEZ)이나 대륙붕, 유엔해양법협약의 국제법은 미국이나 유럽 대륙 주변 해역의 권익에 대한 룰이다. 아시아처럼 섬이나 대륙, 섬과 섬, 반도나 섬이 인접한 지역에서 구미의 룰을 적용하면 분쟁이 생길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중국, 한국, 일본 사이에 작은 섬이 있다. 200해리를 적용하면 싸움만 생긴다. 바다가 넓은 인도네시아와 호주조차도 다투지 않나. 백인 사회가 이게 국제법이라고 아시아에 밀어붙였다. 200해리 룰을 제안한 것은 미국인데 정작 그들은 비준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륙붕이 뻗어 있다(대륙연장선론)고 하고 조사한 증거도 있다. 일본은 가운데에 선을 긋자(중간선론)고 한다. 이러면 당연히 문제가 일어난다.” -어떻게 200해리 개념이 만들어졌나.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은 태평양·대서양을 전부 조사했다. 군함 밑에 소나(음향탐지기)를 장착해 해저를 조사했다. 미국 해안으로부터 200해리 안에는 석유 자원이 존재함을 확인했다. 200해리 바깥의 해저지형이나 유기물 축적을 조사했더니 유의미한 자원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200해리다.” -아시아 특성에 맞는 국제해양법의 새로운 룰이 필요한가. “새 룰은 좀처럼 인정받기 어렵다. 아시아 국가끼리 대륙붕을 차지하려고 다툰다면 개발이 늦어진다. 바로 룰을 정하고 개발을 진행하는 구미의 에너지 정책에 종속될 가능성이 있다. 한일중은 공동으로 개발하고 이익을 나눈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 서로 다퉈 봐야 진전이 없다. 미국과 유럽에 비해 압도적으로 불리해진다. 3국 간에 전쟁이라든가 식민 지배 등의 응어리가 남아 있지만 대륙붕 문제를 50년 이상 방치해 두면 서로에게 손해다. 윤석열 대통령도 한국, 중국, 일본의 경제적 협력을 강조한다. 윤석열 정권이 있을 때 그런 틀을 만들면 좋을 것이다. 일본은 중간선을 그어 대륙붕을 늘린다고 하지만 그런 방법으론 제대로 갈 리가 없다.” -한일중 공동 개발의 실마리는. “먼저 3국이 민간 합작회사를 만들어 함께 하면 좋을 것이다. 법 규제가 생기기 전에 한국과 공동 개발을 해야 한다. 지금은 한일이 공동 개발하면 안 된다는 법 규제가 없어 개발이 쉽다. 문제는 개발을 하려 해도 조사조차 어렵다는 점이다. 민간 회사는 조사를 하고 타당성을 따져야 개발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어느 정도 벌 수 있는지를 어림한 뒤 투자하는 것이다. 민간 회사가 조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합작회사가 가장 좋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문제다. 에너지 개발에서 정부의 정책 자본은 최초에 투자되는 법이다. 민간 회사는 거기에 기대를 한다. 정부의 자본 투자가 없으면 꺼린다. 현명한 투자가에게 이해를 시키고 큰 리스크를 지지 않는 길을 열어 줘야 한다. 한일중의 싱크탱크가 뭉쳐 전략을 개발하고 자본을 투자하면 수익이 나온다는 걸 숫자로 제시해야 한다. 아시아가 서로 다투는 것은 구미가 바라는 바다.” -3국이 해양개발에 착수했을 때 투자처는 과연 있을까. “개발 계획과 이익 배분을 명확히 하지 않거나 어딘가 폭탄이 있는 듯한 계획이라면 투자하지 않는다. 파산하지 않도록 3국 간 정치적 협력을 우선해야 한다. 이런 전제가 없다면 투자자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3국이 바다를 공동 개발하면 미국이 견제하지 않을까. “그렇다. 한일 양국만 하라든가 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선 일중이 싸우고 한중이 싸우면 손대지 않고도 편하다. 그렇지만 그 상태가 계속되면 해저 자원 개발, 바다의 이용, 바다의 평화적인 상태를 만드는 일은 진전되지 않는다. 동북아 안전보장은 가장 마지막의 일로 놔두고 경제면에서 한일중은 협력해야 한다.” -바다에서 한일중이 협력할 다른 분야는 있나. “2022년 3월 도쿄에서 북극정책포럼을 했다. 한일중은 북극권은 아니지만 2013년 북극평의회 회의에 3국과 인도네시아, 인도가 들어갔다. 옵서버 국가로서 할 일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2018년부터 한일, 일중 관계가 나빠져 3국의 고위급 회의는 유감스럽게도 중단됐다. 그러던 차에 일중 북극대사끼리 사이가 좋아졌다. ‘한일중이 북극권에서 환경문제를 함께 생각해 보자’는 제안을 한국의 북극대사에게 했다. 3국 정부가 하나의 테이블에 모였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고 했다. 한국과 중국에는 쇄빙선이 있지만 일본 쇄빙선은 2026년에나 만들어진다. 한국의 쇄빙선에 일본과 중국의 연구자가 타고, 중국 쇄빙선에 한일 연구자가 타고, 2026년 이후에는 일본 쇄빙선에 한중 연구자를 태우자고 했다. 북극에 따로따로 몇 번이나 가는 비효율적인 일은 하지 말고 3국 공통의 틀을 만들어 예산을 절약하면서 북극 개발을 효율적으로 해 보자고 했다.” -북극의 한일중, 바다의 한일중 개발에 대해 찬동하는 일본인이 많나. “많지 않다. 해양에 관해서는 한일중, 한일이 과제를 안고 있다. 사례를 하나 들겠다. 과거 중국에는 중국 시설이나 배에 일본인이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중국이 만든 해양연구소에 좋은 시설이 많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조사를 중국과 같이 하면 어떻겠느냐고 일본 정부에 제안했더니 무조건 안 된다고 하더라. 최근 그런 벽이 중국에선 사라졌다. 중국 연구소 소속의 배에 타고 시설에도 갔더니 “당신이 여기 들어온 최초의 일본인”이라고 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모으면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과도 함께 일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 안 되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되는 것을 찾아 같이 하는 게 좋을 것이다.” ■ 사카구치 히데 소장은 교토대에서 농업공학부 학사, 석박사를 거쳤다. 박사 논문은 ‘입상매체의 패턴 형성’. 호주 과학기술연구기구의 주임 연구원을 거쳐 일본 해양과학기술센터에 들어가 ‘바다 연구’와 접목했다. 도쿄대 지진연구소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국립 해양개발연구기구의 이사를 거친 뒤 2021년부터 사사카와평화재단 해양정책연구소장을 하고 있다. ‘계층 구조의 과학: 우주, 지구, 생명을 잇는 새로운 시점’ 등의 저서가 있다.●한일 대륙붕 협정 ‘바다의 영토’라 불리는 대륙붕의 경계선 획정을 놓고 한일이 협상을 벌여 1978년 발효시킨 2개의 조약. 동해 쪽은 한일 간에 중간선을 그어 무기한의 ‘북부협정’을 체결했다. 한반도 남서쪽 경계선 획정에 난항을 겪자 공동개발구역을 설정해 50년 기한으로 묶어 둔 게 ‘남부협정’이다. 2028년 6월 협정 시한을 앞두고 있어 재협상이 불가피하다.
  • “단기 수익 쉽지 않아”…외신도 주목한 ‘김치 프리미엄’

    “단기 수익 쉽지 않아”…외신도 주목한 ‘김치 프리미엄’

    비트코인의 가격이 사상 최고를 기록한 이후 ‘김치 프리미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3일(한국시간) CNBC 등 외신은 한국의 암호화폐 거래소와 미국, 유럽 거래소와 가격 격차가 나는 현상을 칭하는 일명 ‘김치 프리미엄’에 대해 주목했다. 김치 프리미엄이 표면적으로는 차익 거래의 기회로 보일 수 있지만, 이 전략은 실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게 방송의 지적이다. 지난 3월 16일 한국 프리미엄 지수는 2021년 5월 이후 최고치인 10.88%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에서 비트코인 거래 가격이 글로벌 현물 가격보다 약 10% 높음을 의미한다. 매체는 가격 격차가 발생하는 요인 중 하나로 종종 폐쇄적인 시장 환경을 가진 것으로 언급되는 한국의 높은 수요를 꼽았다. 암호화폐 데이터 플랫폼 ‘체이널리시스’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가상화폐 거래소 계좌를 개설하려면 개인과 관련된 특정 유형의 은행 계좌가 필요해, 기관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든다”고 밝혔다. 이는 기관 및 외국인 투자자가 자유롭게 참여할 수 없고, 주로 개인 투자자가 수요를 주도해 다른 글로벌 거래소보다 가격이 높다는 지적이다. 체이널리시스는 한국이 2022년 7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총 1118억 2000만 달러(약 151조원) 규모의 가상화폐를 취득했고, 이는 동아시아 국가 중 최대 규모며 일본과 중국을 능가한다고 전했다.차익거래로 수익 볼 수 있을까?…전문가들 “어려울 것” 전문가들은 차익거래로 수익을 보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해외에서의 원화 송금은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으며, 비트코인을 이체하는 데 비트코인 가격이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원화 규제가 엄격하고, 원화의 국외 송금도 통제되면서 거래자들로서는 운용에 적지 않게 제약을 받고 있다. 캘거리대학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차익 거래 전략에는 다른 위험도 따른다. 컨설팅업체 언스트앤영(EY)의 글로벌 블록체인 책임자인 폴 브로디는 CNBC에 “김치 프리미엄이 한동안 존재했지만, 범죄 예방 등의 이유로 송금이 어려워지는 등 과거보다는 차익 거래를 수행하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평가했다. 이에 매체는 “현실에서는 시간과 수수료, 자본 통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런 전략을 활용하는 것이 매력이 떨어지거나 실행 불가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7만 달러선에서 거래되던 비트코인이 이날 미 국채 수익률과 달러 강세 속에 큰 폭의 하락세를 나타내며 6만 5000달러선 아래까지 떨어졌다.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미 동부 시간 기준 이날 낮 12시쯤 비트코인 1개당 가격은 24시간 전보다 4.71% 급락한 6만 4854달러(8771만원)에 거래됐다. 비트코인 가격이 6만 5000달러 아래로 하락한 것은 지난달 24일 이후 약 10일 만이다. 지난 3월 중순 기록한 최고치(7만 3798달러) 대비 12% 넘게 하락했다.
  • 홍콩 발칵 뒤집은 ‘두바이 왕자’ 정체는? “필리핀 온라인 가수”

    홍콩 발칵 뒤집은 ‘두바이 왕자’ 정체는? “필리핀 온라인 가수”

    미중 패권 경쟁으로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된 홍콩에 거액을 투자하기로 해 중국 정재계를 들뜨게 한 ‘은둔의 두바이 왕자’의 이력이 드러났다. 최근까지 필리핀서 활동한 온라인 가수로 확인되면서 그의 실체를 둘러싼 홍콩 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3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홍콩에 5억 달러(약 6500억원)를 투자해 패밀리오피스(거부들의 개인 자산운용사)를 세우겠다고 선언한 셰이크 알리 라시드 알리 사에드 알막툼(28) 두바이 왕자가 지난해 상반기까지 필리핀에서 ‘알리라’라는 예명의 가수로 공연했다”고 보도했다. 매체가 확보한 2021년 동영상에는 알막툼 왕자와 똑같이 생긴 가수 알리라가 노래를 부르며 공연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미국 안면 인식 사이트 페이스쉐이프에서 두 사람의 얼굴을 비교한 결과 유사성이 100%로 나왔다. 2021년 개설된 알리라 공식 홈페이지에는 “아랍에미레이트(UAE) 출신 가수 겸 작곡가”라면서 “타갈로그어(필리핀 현지어)와 힌두어, 영어, 프랑스어로 노래하는 글로벌 아티스트”라고 소개돼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주무대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하반기에 자취를 감췄다. 공교롭게도 이 무렵부터 알막툼 왕자가 갑자기 등장해 홍콩 정재계 인사와 접촉하기 시작했다. 알막툼 왕자는 코로나19 대유행과 미중 갈등 심화, 국가보안법 제정 등으로 홍콩에서 해외 자본이 빠져 나가는 상황에서도 ‘역발상 투자’를 단행해 화제가 됐다. ‘구세주’의 등장에 홍콩 수반인 존 리 행정장관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지난달 말 그를 직접 초대해 환대했다. 단박에 알막툼 왕자는 홍콩에서 가장 ‘핫한’ 인사가 됐다. 그런 그가 패밀리오피스 개소식 전날 계획을 전면 유보하고 두바이로 떠나면서 정체를 둘러싼 의혹이 불거졌다. 두 가지 가능성이 제기된다. ‘진짜’ 두바이 왕자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부캐’(부캐릭터)로 필리핀에서 가수 활동을 했거나 ‘가짜’ 두바이 왕자가 외자 유치에 목마른 홍콩의 사정을 이용해 대담하게 사기행각을 벌이려 했다는 것이다. SCMP는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자 두바이와 홍콩의 알막툼 왕자 사무실에 수 차례 연락했지만 아무 답변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 쿠팡은 어쩌지…中 타오바오 “‘진짜 로켓’으로 로켓 배송, 전 세계 1시간 이면 OK”[핫이슈]

    쿠팡은 어쩌지…中 타오바오 “‘진짜 로켓’으로 로켓 배송, 전 세계 1시간 이면 OK”[핫이슈]

    중국의 최대 전자상거래기업인 알리바바가 중국 내 로켓 개발사와 손 잡고 1시간 이내에 전 세계로 상품을 배송하는 서비스를 추진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1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중국 로켓 개발 스타트업인 ‘스페이스 에포크’는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공식 계정을 통해 “알리바바의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와 함께 조만간 관련 실험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알리바바 역시 “많은 위대한 노력이 처음에는 농담처럼 보인다”면서 실제 로켓을 이용한 ‘로켓 배송’을 준비중이라고 전했다. 스페이스 에포크는 2019년 창립한 회사로, 재사용 로켓을 주로 개발해 왔다. 타오바오의 ‘전 세계 1시간 배송’ 이라는 원대한 계획의 중심에는 재사용 로켓 ‘XZY-1’이 있다. 해상에 내려앉는 이 로켓은 적재 공간이 120㎥에 달해 최대 10t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이스 에포크는 “로켓을 이용한 배송이 가능해진다면 중소형 크기의 일반 택배부터 승용차와 소형 화물차 등 대형 화물도 운송할 수 있다”면서 “이것은 장기적으로 대단하고 의미있는 탐사가 되겠지만, 단기간 내 목표를 이루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을 대표하는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는 최근 급성장하는 중국의 또 다른 업체들과 치열한 경쟁 중이다. 이에 물류 서비스 개선 필요성을 느낀 알리바바는 지난해 ‘5일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독일과 프랑스, 포르투갈 등에 이어 지난달에는 미국으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했다.앞서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기업 스페이스X도 로켓 수송과 관련한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2021년 6월 머스크는 해상 우주항공인 ‘데이모스’를 건설해 로켓 수송의 거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로켓과 해상공항을 이용할 경우 비행기로 약 14시간이 소요되는 뉴욕-베이징간 이동 시간을 30분 이내로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 머스크의 주장이다. 해당 계획은 제안 단계에서 멈췄으며, 일각에서는 사실상 해당 프로젝트가 종료된 것으로 보인다는 추측도 내놓았다. 다만 머스크의 해상공항과 로켓을 이용한 계획, 알리바바의 ‘전 세계 1시간 배송’ 계획 등은 전자상거래 배송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특히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 알리바바가 ‘진짜 로켓 배송’을 현실화한다면, 전 세계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올 1월 기준 전 세계 월간 이용자수 상위 10개 이커머스 중 무려 7개가 중국 기업, 혹은 이들 자본이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업체는 국내 시장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지난달 알리익스프레스 앱 월간활성이용자수는 818만 명으로 11번가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고, 테무의 역시 581만 명을 기록해 G마켓을 앞지르며 4위로 뛰었다.
  • 경제 나빠지면 분노 번지는 사회…포퓰리즘·전제정치가 파고든다

    경제 나빠지면 분노 번지는 사회…포퓰리즘·전제정치가 파고든다

    트럼프·시진핑·푸틴 등 사례 제시경제 불안에 세계 민주주의 훼손시장경제의 회생 더디게 만들어사람들 하나로 묶는 시민성 강조 정치와 경제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정치가 부실하면 경제가 망가지고, 경기가 나빠지면 분노한 이들을 향해 포퓰리즘이 고개를 든다. 현재 안정적인 국가들은 정치에서는 민주주의를, 경제에서는 자본주의를 축으로 나아가고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지위의 평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사람이 공공의 문제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자유 시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소유한 것을 사고팔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도 상호의존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둘이 좋은 관계일 때 세계는 번영했고 그렇지 못할 때 절망했다.저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대공황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한 경제 불안이 세계의 민주주의를 훼손했고, 훼손된 민주주의는 시장경제의 회생을 더디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를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에 비유한 이유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쇄신하는 방법으로 시민성의 복원을 제시한다. 소비자, 노동자, 사업주, 예금자, 투자자 입장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생각해야 두 가지 문제를 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시민성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끈인데, 시민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할 때 민주적인 정치 공동체가 생존하고 번영한다. 이 끈이 끊어지면 민주적 정치는 무너지고 그 자리를 포퓰리즘, 독재, 전제정치가 파고든다고 경고한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탄생을 지켜보며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 저자는 트럼프 외에 시진핑, 블라디미르 푸틴, 김정은,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이런 사례로 제시한다. 시민성의 관점에서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대안을 제시한 부분이 눈에 띈다. 예컨대 중국과 대립 관계를 이어 가는 미국에 대해 충돌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들과 동맹을 조직해 문제를 풀 것을 제안한다.
  • 로열 패밀리인가, 희대의 사기꾼인가

    로열 패밀리인가, 희대의 사기꾼인가

    미중 패권 경쟁에 끼어 지정학적 위기가 커진 홍콩에 거액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홍콩 정재계를 들뜨게 한 ‘은둔의 두바이 왕자’가 사무실 개장을 하루 전에 돌연 연기하더니 황급히 떠나자 무성한 소문이 이어지고 있다. 외자 유치에 목마른 홍콩의 사정을 이용해 대담하게 중동 왕족 사기행각을 벌이려다 덜미가 잡힌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8일 “홍콩에 5억 달러(약 6500억원)를 투자해 패밀리오피스를 세우기로 한 셰이크 알리 라시드 알리 사에드 알막툼(28) 두바이 왕자가 개소식 직전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보도했다. 왕자의 사무실 측은 “두바이에서 긴급한 문제가 생겼다. 알막툼 왕자의 개인적 문제”라며 구체적인 설명을 거부했다.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두바이 정부가 긴급 소환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패밀리오피스는 거부들이 자산 증식을 위해 만든 자산운용사로 아시아에서는 홍콩과 싱가포르가 유치 경쟁을 벌인다. 글로벌 회계법인 딜로이트는 홍콩에만 2700개 넘는 패밀리오피스가 자리잡고 있다고 집계했다. 알막툼 왕자의 행보가 유독 관심을 끈 것은 코로나19 대유행과 미중 갈등 심화, 국가보안법 제정 등으로 홍콩에서 해외 자본이 빠져 나가는 상황에서 ‘역발상 투자’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8일 블룸버그와 패밀리오피스 개소를 알리는 인터뷰를 하면서 “(UAE 총리이자 두바이 통치자인) 셰이크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의 조카”라고 소개한 뒤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웨강아오 대만구(광둥·홍콩·마카오를 하나로 묶는 경제구상)의 잠재력에 기대를 걸고 홍콩 투자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반응은 즉각 달아오르면서 알막툼 왕자는 홍콩에서 가장 ‘핫한’ 인사가 됐다. ‘구세주’의 등장에 홍콩 수반인 존 리 행정장관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지난 26일 그를 초대해 환대했다. 그런 그가 패밀리오피스 개소식 전날 계획을 전면 유보하고 떠난 것이다. 뒤늦게 홍콩에서 그의 정체를 두고 의혹이 확산하고 있다. SCMP는 “그에 대한 공식 기록이 많지 않다”면서 “그가 정말로 알막툼 총리의 가족이 맞는지, 자신의 돈으로 홍콩 사업을 하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이에 아랍에미리트(UAE) 총영사관은 SCMP에 “알막툼 왕자가 두바이 ‘지배 가문’ 출신이 맞다”면서 “UAE 왕족은 패밀리오피스를 운영하는 사례가 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동 왕실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매체에 “알막툼 왕자는 지배 가문에서 (촌수가) 먼 분파”라고 설명했다. 알막툼 총리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어 보인다는 분석이다. 매체는 또 “알막툼 왕자의 두바이 사무실 주소지를 확인해 보니 (고급 오피스 구역이 아닌) 중산층 주거지였다”면서 ‘슈퍼리치 왕족’의 사무실치고는 너무 소박하다고 전했다. 그의 개인 홈페이지도 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활동 내용이 올라와 있고, 대부분 홍콩과 관계된 것들이었다. 이 때문에 일부 누리꾼은 그를 ‘애나 델비 사건’과 비교한다. 애나 델비(33)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독일로 이민 간 여성으로 2013년 미국 뉴욕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석유 재벌로 포장하고 4년간 초호화 생활을 누리다가 사기 혐의로 체포됐다. 그의 이야기는 ‘애나 만들기’라는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홍콩 정부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그의 투자를 치켜세워 위신을 떨어뜨린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 숨겨진 왕족? 희대의 사기꾼? 홍콩, ‘두바이 왕자’ 투자 미스터리로 시끌

    숨겨진 왕족? 희대의 사기꾼? 홍콩, ‘두바이 왕자’ 투자 미스터리로 시끌

    미중 패권 경쟁에 끼어 지정학적 위기가 커진 홍콩에 거액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홍콩 정재계를 들뜨게한 ‘은둔의 두바이 왕자’가 사무실 개장을 하루 전에 돌연 연기하더니 황급히 떠나자 무성한 소문이 이어지고 있다. 외자 유치에 목마른 홍콩의 사정을 이용해 대담하게 중동 왕족 사기행각을 벌이려다 덜미가 잡힌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8일 “홍콩에 5억 달러(약 6500억원)를 투자해 패밀리오피스를 세우기로 한 셰이크 알리 라쉬드 알리 사에드 알막툼 두바이 왕자가 개소식 직전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보도했다. 왕자의 사무실 측은 “두바이에서 긴급한 문제가 생겼다. 알막툼 왕자의 개인적 문제”라며 구체적인 설명을 거부했다.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두바이 정부가 긴급 소환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패밀리오피스는 거부들이 자산 증식을 위해 만든 자산운용사로, 아시아에서는 홍콩과 싱가포르가 유치 경쟁을 벌인다. 글로벌 회계법인 딜로이트는 홍콩에만 2700개 넘는 패밀리오피스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집계했다. 알막툼 왕자의 행보가 유독 관심을 끈 것은 코로나19 대유행과 미중 갈등 심화, 국가보안법 제정 등으로 홍콩에서 해외 자본이 빠져 나가는 상황에서 ‘역발상 투자’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8일 블룸버그와 패밀리오피스 개소를 알리는 인터뷰를 하면서 “(UAE 총리이자 두바이 통치자인)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막툼의 조카”라고 소개한 뒤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웨강아오 대만구(광둥·홍콩·마카오를 하나로 묶는 경제구상)의 잠재력에 기대를 걸고 홍콩 투자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반응은 즉각 달아오르면서 알막툼 왕자는 홍콩에서 가장 ‘핫한’ 인사가 됐다. ‘구세주’의 등장에 홍콩 수반인 존 리 행정장관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지난 26일 그를 초대해 환대했다. 그런 그가 패밀리오피스 개소식 전날 계획을 전면 유보하고 떠난 것이다. 뒤늦게 홍콩에서 그의 정체를 두고 의혹이 확산하고 있다. SCMP는 “그에 대한 공식 기록이 많지 않다”면서 “그가 정말로 알막툼 총리의 가족이 맞는지, 자신의 돈으로 홍콩 사업을 하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이에 아랍에미리트(UAE) 총영사관은 SCMP에 “알막툼 왕자가 두바이 ‘지배 가문’ 출신이 맞다”면서 “UAE 왕족은 패밀리오피스를 운영하는 사례가 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동 왕실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매체에 “알막툼 왕자는 지배 가문에서 (촌수가) 먼 분파”라고 설명했다. 알막툼 총리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어 보인다는 분석이다. 매체는 또 “알막툼 왕자의 두바이 사무실 주소지를 확인해보니 (고급 오피스 구역이 아닌) 중산층 주거지였다”면서 ‘슈퍼리치 왕족’의 사무실치고는 너무 소박하다고 전했다. 그의 개인 홈페이지도 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활동 내용이 올라와 있고, 대부분 홍콩과 관계된 것들이었다. 이 때문에 일부 누리꾼은 그를 ‘에나 델비 사건’과 비교한다. 애나 델비(33)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독일로 이민 간 여성으로, 2013년 미국 뉴욕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석유 재벌로 포장하고 4년간 초호화 생활을 누리다가 사기 혐의로 체포됐다. 그의 이야기는 ‘애나 만들기’라는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홍콩 정부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그의 투자를 치켜세워 위신을 떨어뜨린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 ‘해군 장교’ 출신 SK그룹 차녀 민정씨, 美 스타트업 차렸다

    ‘해군 장교’ 출신 SK그룹 차녀 민정씨, 美 스타트업 차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녀 민정(33)씨가 최근 미국에서 건강관리 스타트업을 창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대기업 오너 3세가 스스로 회사를 차리는 것 자체가 이례적으로 앞서 민정씨는 해군 장교로 자원입대해 청해부대에서 복무했고, 미국 유학 시절 NGO(비정부단체)에서 무료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등 재벌가답지 않은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민정씨는 최근 미국에서 인공지능(AI) 기반 심리 건강 헬스케어 스타트업 ‘인테그랄 헬스’(Integral Health)의 공동 설립자로 이름을 올렸다. 인테그랄 헬스는 미국 헬스케어 기관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행동 건강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업체다. 회사 홈페이지에는 창업 목적으로 ‘미국 성인 5명 중 1명은 심리 문제를 겪고 있지만 의료비 부담의 문제로 건강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수준의 행동 건강 서비스를 제공해 환자가 필요로 하는 시점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민정씨는 평소에도 건강을 비롯해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런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 위해 회사 창업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 회사에는 미국 예일대학교 출신 의학 박사 등 여러 전문가도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민정씨는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딸로 위로는 언니 최윤정(35)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 아래로는 남동생 최인근(29) SK E&S 매니저 등이 있다. 민정씨는 그동안 재벌가답지 않은 도전적인 행보로도 주목받았다. 중국 베이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민정씨는 대학에서 자본시장과 인수합병(M&A), 투자분석 등을 공부했다. 지난 2014년 재벌가 딸로는 이례적으로 해군 사관후보생으로 자원입대해 화제가 됐다. 전역 이후 중국계 투자회사인 ‘홍이투자’(Hony Capital)에 입사해 글로벌 M&A 업무 경력을 쌓았고, 2019년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SK하이닉스에 대리급으로 입사했지만 2022년 초 돌연 휴직한 뒤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원격 의료 스타트업 ‘던’에서 무보수 자문역을 맡고, NGO ‘스마트’(SMART)에서 지역 내 취약계층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 교육 봉사를 하기도 했다.
  • 집에 보내달라우! “北 노동자들, 아프리카서 폭동”

    집에 보내달라우! “北 노동자들, 아프리카서 폭동”

    북한 당국이 외화벌이를 위해 파견한 노동자들이 아프리카에서도 폭동을 일으킨 것으로 확인됐다고 일본 산케이신문이 북한 사정에 밝다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26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아프리카 콩고공화국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는 북한 노동자 수십명은 지난달로 예정됐던 귀국이 연기되자 이에 반발하며 폭동을 일으켰다.앞서 산케이는 북한 국방성 산하 업체가 노동자를 파견한 중국 지린성 허룽시 의류 제조 공장과 수산물 가공 공장에서 지난 1월 임금 체불 문제로 처음 폭동이 일어났고, 2월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의류 공장에서도 노동자 약 10명이 귀국을 요구하며 출근을 거부하는 등 집단행동이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산케이는 북한 당국이 1월 지린성 폭동 이후 밀린 임금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한편, 비밀경찰을 대거 파견해 공장 간부와 폭동 가담자를 조사했다고 전했다. 이어 “고문을 포함한 가혹한 조사로 공장에 근무하는 북한 대표가 다쳤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도 있었다”며 “북한 당국이 폭동을 주도한 약 200명을 구속해 본국에 이송한 것으로 판명됐는데, 이들은 처형되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지는 등 엄벌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주장했다.지린성 폭동과 관련해서 한 소식통은 산케이에 “북한 당국에 충격이었던 것은 ‘장마당 세대’라고 하는 30세 전후가 폭동을 주도했다는 사실”이라며 “그들은 이전 세대와는 분명히 다르다”고 말했다. 장마당 세대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에 태어나 국가 배급 혜택을 받지 못하고 생활을 ‘장마당’이라고 불리는 시장에 의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케이는 “열악한 주거환경, 외출과 스마트폰 이용 금지 등 자유가 박탈된 데 대한 불만도 지린성 폭동 동기였다”며 “김정은 정권이 자본주의 사회를 동경하는 세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젊은 층의 반발을 억누르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또 “북한이 정보를 통제하고 있지만, 첫 폭동과 관련된 소문이 중국과 러시아 등에 있는 10만여 명의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 [지방시대] 부산 거점 항공사 지켜야 가덕도신공항 성공한다

    [지방시대] 부산 거점 항공사 지켜야 가덕도신공항 성공한다

    큰맘 먹고 해외여행을 하려 해도 부산에서는 갈 만한 곳이 중국, 일본 아니면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 정도다. 미국이나 유럽 등 더 먼 곳으로 떠나려면 인천공항을 거쳐야 한다. 김해공항에는 5000㎞ 이상 장거리 노선이 없어서다.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려면 KTX 교통비 약 12만원과 10시간 정도를 더 들여야 한다. 탑승시간에 따라 하루 먼저 도착해 공항 근처에서 숙박할 때도 있다. 그러면 일주일 남짓한 휴가의 상당 부분을 이동시간으로 날리게 된다. 남부권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와 사정이 비슷하다. 여행자뿐만 아니라 신속하게 이동해야 하는 항공 물류도, 사업가도 마찬가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게 개항이 5년 남은 가덕도신공항에 거는 기대다. 그동안은 이 공항을 지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였지만, 이제는 개항 이후에 제 역할을 하게 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 시기다. 가덕도신공항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국제선 노선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노선을 많이 확보하려면 가덕도신공항을 거점으로 삼은 항공사가 많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공항을 다 지었다고 항공사들이 취항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난해 국제선 공급석 8350만 3442석 중 6797만 5239석(81%)을 인천공항이 차지했다. 김해공항은 767만 3869석으로 2위였지만, 인천공항의 11%에 불과했다. 부산 지역사회가 김해공항을 거점으로 하는 유일한 항공사인 에어부산에 주목하는 이유다. 에어부산은 지난해까지 10년 연속 김해공항 여객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김해공항 이용객 1369만 4710명의 약 36%를 에어부산이 수송했다. 가덕도신공항을 거점으로 삼을 가장 유력한 후보인 셈이다. 에어부산 지분 42% 정도를 보유한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에 합병되면 에어부산은 대한항공 산하 저비용항공사(LCC)와 통합된다. 통합 후에도 김해공항을 거점으로 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부산에서는 통합LCC 본사를 부산에 두거나, 그도 아니면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합병에서 에어부산을 떼어내 매각하라는 요구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통합LCC 본사 유치는 결실을 얻지 못했다. 주 채권은행으로 아시아나를 관리하는 산업은행에 부산시와 지역 기업들이 에어부산 분리 매각을 요구했지만 뚜렷한 답은 얻지 못했다. 거점 항공사를 지키는 데 부산 지역사회만 안달하는 것은 분명 잘못됐다. 정부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도 함께 답을 찾아 나가야 한다. 가덕도신공항은 부산을 국제적 자본과 인재가 몰려드는 글로벌 허브로 만들기 위한 필수 인프라다. 부산이 글로벌 허브가 돼 남부권의 발전을 이끌고, 남부권을 제2 성장축으로 균형발전을 이룬다는 게 정부의 그림이다. 가덕도신공항의 성공을 위해 부산 거점 항공사를 지키는 게 부산만의 일은 아니다. 정철욱 전국부 기자
  • 1월 경상수지 30억원 흑자 … 반도체·승용차 수출 호조에 10개월 연속 흑자 행진

    1월 경상수지 30억원 흑자 … 반도체·승용차 수출 호조에 10개월 연속 흑자 행진

    1월 경상수지가 30억원 흑자를 기록하며 9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반도체와 승용차 수출 호조에 힘입어 상품수지는 10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8일 한국은행의 국제수지 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 1월 경상수지는 30억 5000만 달러(4조 519억원) 흑자로 집계됐다. 지난 5월 이후 9개월째 흑자다. 다만 흑자 규모는 전월(74억 1000만 달러)보다 줄었다. 송재창 한은 금융통계부장은 “연말 연초 계절적 요인으로 1월 경상수지 흑자 폭이 전월보다 축소됐다”면서도 “2월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2월 경상수지 흑자 폭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항목별로는 상품수지가 42억 4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해 전월(80억 4000만 달러)보다 흑자 폭은 줄었다. 그럼에도 지난해 4월 이후 10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수출은 552억 2000만 달러로 지난해 10월에 전년 동기 대비 반등 전환한 뒤 4개월째 증가세를 이어갔다. 수출 품목 중에서는 반도체(+52.8%)와 승용차(+24.8%), 기계류·정밀기기(+16.9%), 석유제품(+12.0%) 등의 증가세가 뚜렷했으며 지역별로는 미국(+27.1%), 동남아(+24.4%), 중국(+16.0%) 등으로의 수출이 늘었다. 반도체는 서버용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요 회복이 본격화됐고, 국가별로는 중국에서의 수요가 늘고 있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수입은 509억 8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8.1% 줄었다.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면서 원자재 수입이 전년 동월 대비 11.3% 감소했다. 또 내수 부진의 영향으로 자본재 수입(-3.8%)과 소비재(-4.2%) 수입이 줄었다. 해외여행 증가에 따라 여행수지가 14억 7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하는 등 서비스수지는 26억 6000만 달러 적자를 냈다. 본원소득수지는 16억 2000만 달러 흑자로 전월(24억 6000만 달러 흑자) 및 전년 동기(66억 7000만 달러 흑자)보다 적었다. 국내 기업의 해외 자회사 배당 수입이 줄면서 배당소득수지 흑자 폭이 전월 대비 9억 달러 줄어든 영향이다.
  • [정재정의 독사만평] 쿠바 수교와 아바나의 추억

    [정재정의 독사만평] 쿠바 수교와 아바나의 추억

    지난달 13일 정부는 쿠바와의 국교를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쿠바가 1949년 한국을 승인했다가 1959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단교한 이래 65년 만에 이루어진 외교 성과다. 반면에 북한은 형제국가라 자랑하던 쿠바가 한국과 수교했으니 외교 실패라 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국을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국가로 매도한 직후여서 그 타격은 더 클 것이다. 한국과 쿠바의 수교 소식을 듣는 순간 불현듯 27년 전 아바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1997년 2월 중순 쿠바를 여행하고 있었다. 2월 12일 날짜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날 호텔 텔레비전에서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역임한 황장엽(1923∼2010)이 수행원 김덕홍과 함께 베이징의 한국대사관에 망명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깜짝 놀랐다. 황장엽은 이른바 주체사상을 체계화하고 김정일의 스승으로서 후계 작업을 주도하던 인물이다. 북한 권력 서열 13위에 오른 핵심 인물이었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주체사상연구회 국제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베이징으로 왔다고 했다. 그런 황장엽이 한국에 망명하다니 북한이 정말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닌가, 그런 놀라움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며칠 전 서울에서 만났던 연변대학의 김모 교수는 은밀하게 말했었다. 기차로 북한을 오가다 보니 산기슭에 엎어져 죽은 시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는 것이다. 기차는 시속 20㎞로 느린 데다 정전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겨울산은 헐벗어 주변을 잘 볼 수 있었단다. 그는 중국 국적을 가진 공산당원으로서 북한을 자주 왕래하며 현지 사정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고난의 행군 3년여 동안 2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는 게 헛소문이 아니라고 했다. 황장엽 망명과 그 교수의 말이 겹쳐 묘한 긴장감과 기대감이 발동했다. 일행 몇 명이 고급 지역에 위치한 북한 대사관을 찾아갔다. 굳게 닫힌 대문 틈으로 대사관 안을 들여다보니 의외로 내부는 태연했다. 그렇겠지. 수만 리 떨어진 쿠바와는 상관없는 일 아닌가. ‘꾸바 공화국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이라는 동판이 부착된 높은 담벼락에는 김정일의 동정을 보여 주는 큰 사진이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아름다운 아바나 구시가지는 역사의 향기를 물씬 풍겼다. 고색창연한 콜럼버스 묘지는 쿠바가 400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음을 웅변했다. 혁명광장 건물 벽면을 가득 채운 체 게바라의 얼굴은 쿠바가 사회주의 혁명을 계승하고 있음을 일깨웠다. 그러나 아바나 거리의 아름다움은 50m쯤 떨어져 봤을 때까지였다. 가까이 가 보면 건물은 낡아 무너질 듯했고 페인트가 벗겨져 곰팡이가 끼어 있었다. 50년 동안 물자 부족으로 보수와 색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들도 한 세대 전의 모델이었다. 관광객들 눈에 낭만적이었을 뿐 현지인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생활이었다. 바라데로 해변은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과 코발트빛 해수욕장을 낀 천혜의 휴양지였다. 모래는 밀가루처럼 곱고 바다는 유리창처럼 맑았다. 그러나 손님은 프랑스인 몇뿐이었다. 미국 휴양객들로 붐비던 멕시코 칸쿤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예약 없이 식당에 들렀더니 간단한 점심을 준비하는 데 두 시간 걸렸다. 종업원이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식재료를 조달했다. 미국의 제재 때문이라고 말끝마다 불만을 터트리던 안내원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럼에도 쿠바의 가능성은 크다. 한국보다 1만 5000㎢나 넓은 국토의 대부분이 기름진 평지인 데다 북회귀선에 걸쳐 있어 1년에 2·3모작이 가능하다. 쿠바가 노선을 바꿔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활용하면 1000만명 가량의 쿠바인은 곧 잘 먹고 잘 살게 될 것이다. 늦게나마 한국과의 수교가 시발점이 되기를 기원한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 탈북→북송→탈북… “北 인권침해 알리려 책 썼죠”

    탈북→북송→탈북… “北 인권침해 알리려 책 썼죠”

    “유럽 사람들이 북한을 과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 정도로 생각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북한은 인권 침해가 일상이 된 전체주의 체제인데도 말이죠. 실상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이지만 영국에 삶의 뿌리를 내린 인권운동가 박지현(56)씨는 2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가려진 세계를 넘어’를 쓴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책은 2019년 프랑스어로 먼저 출간됐고 중국과 한국, 영국, 미국에서 차례로 번역본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옛 공산권 국가 중 처음으로 체코에서 출판돼 화제를 모았다. 박씨는 청진농업대학을 졸업하고 고교 수학 교사로 일했다.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1998년 두만강을 넘었지만, 인신매매 브로커에 속아 중국 농촌으로 팔려 갔다. 공안에 붙잡혀 2004년 4월 강제 북송됐을 땐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다. 가까스로 같은 해 말 두 번째 탈북에 성공했다. 베이징에서 2년여간 반찬을 팔며 숨어 지냈다. 그러다가 손님으로 오던 미국 국적 한인 목사의 도움으로 유엔 난민기구와 연결됐고, 2008년 영국 맨체스터에 정착했다. “한국이나 미국으로 가려다가 공안에 잡혀 북송되면 처벌이 더 엄격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북송됐던 악몽이 떠올라 ‘남쪽’은 선택지에서 지웠어요. 안전하게 유럽으로 가자고 생각했죠.” 영국에 도착한 이후 밤낮없이 한인 식당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틈틈이 영어 공부를 했다. ‘평범한 삶’을 원했지만, 어느 순간 마음속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2014년 영국의 한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북한 실상을 알리는 작업을 하던 중 통역을 맡은 채세린(59)씨를 만났다. 같은 언어를 쓰는 한민족이지만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이들이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박씨는 “자본주의 체제의 한국인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사기도 친다고 배웠기 때문에 경계심이 앞섰다”고 했다. 채씨도 “북한 사람이라서 솔직히 무섭고 걱정도 됐다”며 “하지만 대화하다 보니 다른 삶을 살아왔어도 같은 민족이란 걸 깨달았다”고 전했다. 3년여의 교류 끝에 박씨가 책을 함께 써 보지 않겠냐고 먼저 제안했다. 2016년부터 박씨가 구술하면 채씨가 글로 옮기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2019년 프랑스어로 출간된 이후 입소문이 나 다른 국가에서도 출판 제안이 이어졌다. 지난해 말 발간된 체코어판은 2개월 만에 2000부가 완판돼 1500부를 더 찍었다. 박씨는 2019년엔 영국 하원 청문회에서 탈북민 인권 실태에 대해 증언했고 이듬해 2월 국제앰네스티 영국지부가 수여하는 ‘앰네스티 브레이브 어워즈’를 수상했다. 지금은 자신과 같은 인신매매 고통을 겪은 여성들을 돕는 인권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박씨는 “탈북자들과 함께 글을 쓰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북한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공론화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 ‘독한 이웃들’ 독일 vs ‘일단 미국 편’ 일본… 평판 바꾸다

    ‘독한 이웃들’ 독일 vs ‘일단 미국 편’ 일본… 평판 바꾸다

    2018년 11월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프랑스 북부 콩피에뉴 숲을 방문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사실상 항복을 선언한 휴전협정을 체결한 곳이었다. 메르켈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살갑게 포옹하고 “독일은 세계가 더 평화로울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고 했다. 바로 전달에 있었던 일본과 중국의 정상회담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거대한 양국의 국기 앞에서 굳은 얼굴로 어색하게 손을 잡았다. “중일 관계 발전의 새로운 역사적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양국은 밝혔지만, 지금까지 두 나라 사이는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독일은 과거에서 상당히 벗어났지만, 같은 전범국인 일본은 아시아 국가들에 여전히 발목 잡혀 있다. 이를 두고 “독일은 피해국들에 진심으로 사과했고, 일본은 뻔뻔하게도 과거를 뉘우치지 않아서”라고 지적한다.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와 주요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이미지가 떠오를 터다. 누군가는 독일과 일본의 문화적인 차이나 정치 지도자들의 공과를 거론한다. 심지어 나라의 민족성까지 문제로 들기도 한다.책은 이런 통상적인 견해들에 독일·프랑스, 독일·폴란드, 일본·한국, 일본·중국의 관계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들어 반박한다. 행정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저자는 우선 독일이 프랑스·폴란드와 성공적으로 화해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 요인을 분석했다. 반성과 사과, 경제적 협력, 협력관계 변화 등을 추적하고 이를 그대로 일본과 한국, 그리고 일본과 중국의 관계에 적용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 이후 정권에 따라 양국의 우호도 등을 면밀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독일은 유럽연합이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같은 지역 기구에서 자신들이 믿을 만한 동반자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지속해서 입증한 점이 도드라졌다. 반면 일본은 역대 총리 등이 사과 발언을 여러 차례 하긴 했으나, 신뢰를 강화하는 적극적인 협력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말만 해 놓고 행동이 따르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그러지 못했을까. 저자는 그 원인으로 지역주의와 미국을 지목한다. 독일은 유럽의 지역 기구를 중심으로 한 다자주의를 바탕으로 삼은 이웃 국가들과 화해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아시아에서는 미국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일본은 독일처럼 이웃 국가들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었다는 것이다.저자는 미국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다르게 행동한 점에 대해 제국주의와 인종주의를 이유로 꼽았다. 미국이 국제정치 무대에서 유럽의 나라들을 대등하게 대한 것과 달리 아시아 동맹국들은 자신의 발아래에 두고 내려봤다는 의미다. 세계대전 이후 국제 정세도 이런 분위기를 부추겼다. 당시 소련이 팽창하면서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자본주의 동맹국들은 공산주의의 위협에 직면했고, 미국은 동맹국들을 강력하게 움켜쥐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주장에 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긴 어려울 터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가 과거사에 대한 두 전범국의 행보를 연구했으나, 딱 부러지게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다만 여전히 답보 상태인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시선도 필요해 보인다. 삼일절을 앞두고 이런 의견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 남과 북 두 여성의 만남… “우리가 책을 쓰게 된 이유는요”

    남과 북 두 여성의 만남… “우리가 책을 쓰게 된 이유는요”

    “유럽 사람들이 북한을 과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 정도로 생각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북한은 인권 침해가 일상이 된 전체주의 체제인데도 말이죠. 실상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이지만 영국에 삶의 뿌리를 내린 인권운동가 박지현(56)씨는 2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가려진 세계를 넘어’를 쓴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책은 2019년 프랑스어로 먼저 출간됐고 중국과 한국, 영국, 미국에서 차례로 번역본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옛 공산권 국가 중 처음으로 체코에서 출판돼 화제를 모았다. 박씨는 청진농업대학을 졸업하고 고교 수학 교사로 일했다.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1998년 두만강을 넘었지만, 인신매매 브로커에 속아 중국 농촌으로 팔려 갔다. 공안에 붙잡혀 2004년 4월 강제 북송됐을 땐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다. 가까스로 같은 해 말 두 번째 탈북에 성공했다. 베이징에서 2년여간 반찬을 팔며 숨어 지냈다. 그러다가 손님으로 오던 미국 국적 한인 목사의 도움으로 유엔 난민기구와 연결됐고, 2008년 영국 맨체스터에 정착했다. “한국이나 미국으로 가려다가 공안에 잡혀 북송되면 처벌이 더 엄격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북송됐던 악몽이 떠올라 ‘남쪽’은 선택지에서 지웠어요. 안전하게 유럽으로 가자고 생각했죠.” 영국에 도착한 이후 밤낮없이 한인 식당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틈틈이 영어 공부를 했다. ‘평범한 삶’을 원했지만, 어느 순간 마음속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2014년 영국의 한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북한 실상을 알리는 작업을 하던 중 통역을 맡은 채세린(59)씨를 만났다. 같은 언어를 쓰는 한민족이지만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이들이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박씨는 “자본주의 체제의 한국인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사기도 친다고 배웠기 때문에 경계심이 앞섰다”고 했다. 채씨도 “북한 사람이라서 솔직히 무섭고 걱정도 됐다”며 “하지만 대화하다 보니 다른 삶을 살아왔어도 같은 민족이란 걸 깨달았다”고 전했다. 3년여의 교류 끝에 박씨가 책을 함께 써 보지 않겠냐고 먼저 제안했다. 2016년부터 박씨가 구술하면 채씨가 글로 옮기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2019년 프랑스어로 출간된 이후 입소문이 나 다른 국가에서도 출판 제안이 이어졌다. 지난해 말 발간된 체코어판은 2개월 만에 2000부가 완판돼 1500부를 더 찍었다. 박씨는 2019년엔 영국 하원 청문회에서 탈북민 인권 실태에 대해 증언했고 이듬해 2월 국제앰네스티 영국지부가 수여하는 ‘앰네스티 브레이브 어워즈’를 수상했다. 지금은 자신과 같은 인신매매 고통을 겪은 여성들을 돕는 인권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박씨는 “탈북자들과 함께 글을 쓰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북한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공론화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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