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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열증시 대책 서둘러야(해외사설)

    올 4월이후 뜨거워지기 시작한 증권시장이 10월부터는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4월1일부터 12월9일까지 상해증권시장의 종합지수는 120%,심천은 340%씩 각각 뛰어올랐다.국제증권사상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세간에선 증권투기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으며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증권시장에 뒤질세라 뛰어들고 있다. 증권교역소에선 지난 몇달동안 증시 신규참여자가 8백만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전체투자자는 2천1백만여명을 돌파했다.우리는 증권시장의 현 상황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올들어 증권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그러나 최근의 폭등현상은 비정상적이며 비이성적이다.증시이익은 상해증권시장이 44배,심천은 55배나 된다.뉴욕 19배,런던 17배,독일 29배,홍콩 18배를 감안할때 유별나게 이익들이 높음을 알 수 있다.교역액에선 금년 9월 상해와 심천증시의 교역액이 87억위안이었고 12월5일 하룻동안엔 3백50억위안을 기록,전세계를 놀라게 했다.이 액수는 중국의 증권유통액보다 10배이상 큰 홍콩증시의 최고거래 기록을 3배나 앞지른 액수다.국내 증권시장이 과도한 투기상황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폭등의 주요원인은 거대투자자들의 시장 조작,증권투가 기업에 대한 은행의 편법대출,일확천금에 대한 헛된 믿음의 확산 등이다.우리의 증권시장은 아직 성숙되지 못했다.정부는 92년부터 「법제·감독·자율·규범」이란 목표아래 증권시장의 제도완비를 위해 각종 법령을 반포하고 있다.증권시장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감독강화 및 공급증가,올바른 지도및 안정 유지가 필요한 시점이다.감독강화를 위해 적극적인 증권투기상황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은행자금이 증권시장으로 흘러드는 것을 철저히 근절해야 한다.우선 인민은행 분행과 증권감독사무소 등이 자체 조사를 벌인뒤 주요 대기업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상장업체의 내부자거래 근절과 증권교역소의 철저한 개혁도 필요하다.등락에 따른 매매중지제도 및 정보공개제도의 도입도 필수적이다. 전국의 증권시장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제도의 도입도 시급하다.증권시장의 규범마련은 사회의 건강한 발전과 안정을 위해서도 필요한 시점이다.
  • 탈북 일가족 서울 도착­회령서 서울까지

    ◎“폭 20m 두만강 20리도 넘는듯”/북경 천안문서 사진 찍으며 관광객 위장/심천서 모터보트로 10분만에 홍콩 도착 『10분이 열흘보다도 길었다』­김경호씨 일가 등 17명이 북한을 탈출,서울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인 「북한판 엑서더스」는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시켰다. 이들은 북한을 탈출,중국대륙을 가로지른뒤 마침내 심에서 홍콩으로가는 모터보트에 몸을 실었으나 사실상 최후의 관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보트에서의 짧은 10분이 이렇게 더디게 만 느껴졌다. 함북 회령시의 김경호씨(61)·최현실씨(57)부부와 이들의 자녀등 일가족 16명과 이들과 함께 망명하기로 결정한 사회안전부 안전원 최영호씨(김씨의 미국거주 장인 최영도씨의 조카) 등 모두 17명의 북한인은 10월26일 새벽4시 두만강을 안전하게 건넜다.마침 겨울이라 강물이 크게 줄어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강폭이 20∼30m에 불과한데다 수심이 어른의 허리밖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이에 앞서 이들 17명의 일행은 새벽2시 회령을 떠나 2시간만에 두만강에 도착했다.일행은 두만강에서탈북자를 막기 위해 창설된 특수부대인 10군단으로 통칭되는 국경경비대에게 포착됐다.그러나 안전원 최영호씨가 『식량을 구하러 간다』면서 성의표시를 하자 경비병은 그냥 통과시켰다. 두만강을 건넌 이들 일행은 용정에 도착했다.김씨 부부,이들 부부의 다섯 자녀와 며느리·사위,5명의 손자·손녀,안전원 최씨등 17명은 남들의 이목과 북한의 체포조를 피하기 위해 2∼4명씩 나누어 심양으로 이동,친지가 살고 있는 집에서 김씨의 장모 최정순씨와 상봉했다.이들 일행은 이곳에서 장모 최씨가 준비한 중국옷으로 갈아입고 홍콩으로 떠날 기회를 노렸다.때맞춰 미국 뉴욕에 사는 최씨의 며느리 이정희씨가 현지인 가이드 2명과 함께 11월12일 심양에 도착했다. 이들은 이튿날인 14일 심양에서 북경행 열차를 탔다. 북경에 도착한 이들은 당일 북경서 광주로 내려가는 경광철도의 연결시차로 인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천안문 광장과 군사박물관등지를 돌며 사진을 찍는등 관광객 행세를 했다. 이들은 이날 밤10시19분 경광철도에 몸을 싣고 32시간의 긴 열차여행끝에 16일 새벽6시쯤 광주역에 도착,미리 대기시켰던 봉고버스편으로 심천으로 이동했다.그러나 마지막 관문인 심천에서 홍콩으로 가는 수단을 선택하는데에 일주일이란 긴 기간이 소요됐다.결국 철조망을 뚫어야 하는데다 감시망까지 삼엄한 육로보다는 해로를 이용키로 결정한뒤 모터보트 2척을 확보해 11월23일 승선,해상국경선을 통과해 마침내 홍콩땅을 밟게 됐다. 홍콩의 해상수비대에 체포된 이들은 자신들이 한국망명을 희망하는 북한주민임을 밝히고 상수감호소로 이송됐다.이들은 9일 하오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서울행 대한항공 618편에 탑승했다.
  • “서울까지 반세기 걸렸소”/탈북 김경호씨 일가 입국

    ◎가족들과 감격의 상봉 지난 10월26일 북한을 탈출한 김경호(61)·최현실(57)씨 일가족 16명과 북한 사회안전부 안전원 최영호씨(30) 등 17명이 9일 하오5시17분쯤 대한항공 618편으로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김씨 일가족은 김포공항에 도착,5시45분쯤 17번 게이트를 통해 밖으로 나와 서울에 사는 김경호씨의 친형 경태씨(70)와 조카 흥석씨(33),최현실씨의 작은아버지 최전도씨(78)와 사촌조카 최철욱씨(43·서울 베델의원원장) 등 가족 7명과 눈물로 상봉했다. 김씨 형제는 6·25가 일어난지 얼마후 경호씨가 인민군에 징용되면서 헤어졌고 최현실씨도 10살때인 50년 월남한 아버지 최영도씨(79·미국 뉴욕거주),작은아버지 최전도씨와 헤어졌다. 최현실씨는 이어 가진 기자회견에서 『따뜻하게 받아줘 정말 감사하다』면서 『일행 17명이 빨리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똘똘 뭉쳐 행동했기 때문에 이렇게 서울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최씨는 『북한에는 상당수 주민이 생활고 등을 이유로 중국으로 탈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으나당국의 검거를 두려워해 막상 실행에 옮기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탈북경위 등에 대해서는 『적당한 기회에 밝히겠다』고만 말했다. 이들은 44일동안의 대탈주기간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이들은 관례에 따라 귀순동기 등을 조사받고 귀순절차를 밟기 위해 하오6시쯤 서울시내 모처로 출발했다. 공항 관계당국은 이날 김씨일행의 신변안전을 위해 공항경찰대 5개 중대를 배치,일반인의 접근을 막는 등 경비를 강화했다. 김씨일행은 이에 앞서 이날 상오 16일동안 머물던 홍콩 상수 보호감호소를 출발,하오1시쯤 홍콩 카이탁공항에 도착했다. 이어 홍콩정청 이민국 직원의 안내로 공항보안구역을 통과,서울행 대한항공기에 탑승한 뒤 우리측 호송요원에게 정식으로 인계됐다. 김씨 일가족은 부인 최현실씨의 부친인 재미교포 최영도씨의 도움으로 지난 10월26일 새벽 함경북도 회령의 집을 떠나 두만강을 건너 재미 친척들이 고용한 조선족의 안내로 심양∼북경∼광주∼심천을 거쳐 28일만인 지난달 23일 홍콩에 밀입국,한국망명을 요청하며 상수보호소에 수용돼왔다. 김씨는 6·25당시 인민군에 강제징집돼 월북,평양에 거주하다 최씨와 결혼했으나 남한출신이라는 이유로 중국과의 국경지역인 회령으로 추방되는 등 심한 억압을 받고 식량난까지 겹치자 탈출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 북 정보원 주장 1명 망명요청/중서 활동 전학철

    ◎최근 삼천거쳐 홍콩 탈출 김경호씨 일가족 등 17명이 북한을 집단으로 탈출,한국에 망명을 요청한데 이어 이번에는 중국에서 활동중인 북한 정보원이라고 주장하는 한 남자가 홍콩으로 탈출해 한국정부에 망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6일 관계기관에 따르면 최근 심천을 거쳐 홍콩으로 탈출해 망명을 요청해온 전학철(29)이란 남자가 자신은 북한 노동당 해외부 반탐과 소속으로 지난 95년9월부터 중국 요령성 대련에 정박중인 북한의 해상호텔 삼지연호에서 활동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 반탐과란 북한이 한국의 안기부에 대항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정보기관으로 전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한체제 유지를 위한 핵심 통치조직의 하나인 정보기관 출신이란 점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한 정보원은 아닌듯/노동당 「반탐과」 없어”/정부 당국자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 정보원이라고 주장하는 전학철이 탈북자인지 조선족인지의 여부는 홍콩정청을 통해 조사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러나 전이 소속기관이라고 밝힌 노동당 해외부 반탐과는 노동당에는 없는 조직인 점 등으로 미뤄 조선족 노동자가 한국망명을 위해 허위주장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재미교포 최영도씨 탈북 어떻게 도왔나

    ◎작년 7월 딸 상봉후 탈출극 준비/연변서 수차례 사전접촉… 자금 전달/조선족 안내원은 며느리 통해 물색 김경호씨(62) 일가족 등 17명의 북한 대탈출극을 막후에서 연출한 것으로 알려진 장인 재미교포 최영도씨(84·뉴욕 플러싱 거주)가 마련한 탈북주선 자금은 어느 정도이며,이를 어떻게 북한의 가족들에게 전달했을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탈북주선 자금의 정확한 액수는 알 수가 없으나 관계자들에 따르면 북한 사회안전요원의 생사를 건 탈북도움을 위시해 두만강 도강 이후 용정∼심양∼북경∼광주∼심천을 거쳐 홍콩까지 오는데 중국 조선족의 안내가 없었다면 불가능하다고 볼때 상당한 액수의 탈북자금이 필요했을 것은 확실하다.북·중국 국경을 넘을때 북한경비병들에게나 중국으로 넘어간 탈북자를 잡아들이는 「조교」(북한출신 중국교포)들에게는 검문시 통행료로 1백달러씩을 집어주는 것이 관례로 돼 있는데다 일행이 눈에 잘 띄는 대규모라는 점,김씨가 10년 전부터 중풍을 앓아 거동이 불편하다는 점에서 매수자금 외에 통행자금도 적잖이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탈북에 필요한 자금은 최씨와 부인 최점순씨(77)가 지난해 미국시민권을 획득한 뒤 수소문한 딸 현실씨(57)를 수차례 중국연변으로 불러내 만났을 때마다 건네주었을 것으로 추측된다.지난해 7월 처음 부인 최씨와 현실씨의 「연변 상봉」이 이뤄지면서 탈출극이 꾸며지기 시작했으며 중국 조선족 안내원은 주로 며느리인 재미교포 이정희씨가 중국을 왕래하며 물색한 것으로 전해졌다.부인 최씨는 또 지난 10월14일 한국을 거쳐 홍콩으로 들어간 뒤 김씨 일가족 탈북사실을 확인하고 10월28일 뉴욕 플러싱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탈북자금과 관련,최씨는 월세 8백달러짜리 영세민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등 미국에서 그렇게 생활이 넉넉한 편이 아니어서 대부분을 서울의 친인척에게 의존했을 것으로 보인다. 최씨는 한국방문 당시 서울의 친인척들에게 그동안의 「탈출거사」 과정을 설명하고 행동시점을 통보했을 가능성이 높다.최씨 부부는 최근 서울의 친인척들과 잦은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미국 현지에서 김씨 일가족 탈북사건이 알려지기 전 미국의 딸 집으로 추정되는 뉴욕주 인근으로 피신한 것도 서울에서부터 「피신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
  • 홍콩 상수보호감호소는 어떤곳인가/중 망명·불법입국자 임시수용소

    ◎심천과 국경부근 신옥령에 위치/현재 북한탈출자 상당수 수용설 【홍콩 연합】 북한을 탈출한 김경호씨(62) 일가족 등 북한 주민 17명이 수용돼 있는 홍콩의 상수 보호감호소는 홍콩 정청 이민국 직할로 주로 중국에서 건너오는 불법 이민자를 수용한후 중국으로 추방하는 임시 수용소다. 중국을 탈출,홍콩 및 서방 망명을 희망하는 중국 반체제 인사들도 이곳에 수용되는데 정치적 망명 희망자는 국적과 망명 동기 등 엄격한 심사를 받은후 망명희망국과의 접촉이 이루어진 연후에 망명여부가 결정된다. 중국 심천과의 바로 국경 부근인 신옥령에 위치한 이 수용소는 홍콩내에서 보안이 가장 철저한 곳으로 출입구에는 3개의 검문소가 있는데 특별 출입증이 없는 일반인은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다. 이민국 직원 10명이 상주하는 이 수용소에는 현재 김씨 가족 외에도 북한 탈출자가 상당수 수용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인의 홍콩 불법이민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80년대에 설립된 이 수용소의 수용기간은 최대 4개월으로 정치적 망명 동기가 입증되더라도 이를 받아주는 국가가 없을 경우 대부분 탈출했던 지역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용 인원과 경비인력까지도 보안이 지켜지는 이 수용소는 중국인 불법 이민자가 하루 1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미뤄 매우 많은 수를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 탈북일가 17명 내주초 입국/사회안전부원 1명 포함

    ◎10월 두만강건너 홍콩서 망명 신청 함경북도 회령에 거주하던 김경호씨(62)의 일가족 16명이 사회안전부 안전원 최영호의 인도를 받아 북한을 탈출한뒤 홍콩으로 밀입국,한국으로의 망명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5일 밝혀졌다. 이에따라 홍콩의 상수 수용소에 수용돼 있는 김씨 일가와 안전원 최씨등 17명의 송환교섭을 위한 한국협상단이 이날 홍콩에 도착했으며,김씨 일가는 빠르면 이번 주말 김포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홍콩당국은 김씨 일가의 한국 망명의지가 확실하기 때문에 유엔고등난민판무관(UNHCR)의 입회조사 절차 없이 망명을 허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는 김씨와 부인 최현실씨(57),김·최 부부의 5남매와 그 가족등으로,임신부 1명과 5명의 어린이가 포함돼 있다고 서대변인은 밝혔다. 김씨 일가는 지난 10월26일 새벽 회령을 출발,최영호의 인도로 두만강을 건넌뒤 현실씨의 부친인 재미교포 최영도씨(79)가 채용한 중국 조선족의 안내로 용정과 심양 북경 광주 심천을 경유,지난달 23일 홍콩에 도착했다. 북한의 체제유지를 담당하는 사회안전부 안전원이 주민들을 이끌고 귀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이는 북한 체제의 이완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정부 당국자는 말했다. 17명이나 되는 북한 일가족이 한꺼번에 귀순한 것도 이번이 처음으로,지금까지는 지난 87년 2월 김만철씨 일가 11명이 귀순한 것이 최대규모였다.
  • 북 일가족 집단탈출/회령∼홍콩 탈북대장정 28일

    ◎재미장인이 북 왕래하며 탈북 주선/“남한출신” 박대… 10·26 새벽 두만강 건너/친척뻘 사회안전원 대동 국경검문 피해/농가일 거들며 숙식해결… 중국대륙 종단 뉴욕 플러싱에 살고 있는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재미교포 최영도씨(79).6·25전쟁 뒤 미국으로 건너와 어렵게 사업을 이루었지만 평생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왔다.전쟁중에 남하하면서 북한에 남겨두고 온 딸 현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94년 최씨는 교포사회에서 귀가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미국인신분이면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을 만날 수 있고 송금도 가능해졌다는 것이다.잘만하면 이산가족을 북한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최씨는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딸이 고향인 회령시 남문리에 살고 있는 것을 알았다.백방의 노력끝에 지난해 처음 북한으로 가는 비행기편에 몸을 실었다.최씨는 할머니가 된 딸 현실로부터 사위 김경호를 처음으로 소개받을 수 있었다. 서울 출신인 사위 김경호는 6·25때 인민군에 강제로 징집됐다가 전쟁이 끝나면서 어쩔 수 없이 북한에 눌러앉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김씨는 부인 최씨와 결혼한 뒤 한동안 평양에 살았으나 결국 출신성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57년 처가의 연고지인 함북 회령시 농업지구로 쫓겨났다.김씨는 농사를 짓다가 최근에는 공업지구의 공장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최영도씨는 지난해부터 몇차례 딸집을 방문,쌀도 사주고 돈도 줘봤지만 어차피 북한에서 살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것을 깨달았다.현실씨는 특히 94년7월 김일성 사망당시 아파 병석에 있다가 문병온 이웃주민 앞에서 미소를 지었다가 「어버이수령 상중에 미소를 지었다」는 이유로 신고를 당해 심한 고초를 당한 적도 있다.남편 김씨는 당시 돼지 한마리를 뇌물로 바치고 풀려났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사회에 대한 회의는 깊어만 갔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최영도씨는 지난해 딸과 사위를 방문한 자리에서 탈북계획을 은밀하게 꺼냈다.회령부근에는 김경호·최현실부부와 금철등 5남매의 가족 등 모두 16명의 일가가 살고 있었다.김씨부부는 기왕에 북한을 떠나려면 일가를 모두 데려가기로 했다.어차피 일부만 탈출하면 남아 있는 피붙이는 죽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최영도씨 등은 치밀한 연구끝에 홍콩을 통해 남한으로 가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이에 따라 ▲회령에서 두만강도강 ▲중국종단 ▲중국에서 홍콩으로 가는 3단계 탈출계획을 세웠다.우선 회령에서 두만강을 건너는 것이 문제였다.16명이나 되는 일가가 한꺼번에 움직이면 남의 눈에 쉽게 띄는 데다 일행 가운데는 임산부와 어린아이가 포함돼 있었다.고심 끝에 주민의 동태를 감시하는 사회안전부 안전원을 일행에 합류시키기로 했다.김경호씨는 처가의 먼 친척뻘인 안전원 최영호를 지목했다.돈과 자유를 약속하는 대가로 설득에 성공했다. 탈출감행일인 10월26일 새벽 2시.17명의 일행은 회령을 떠나 두만강을 향했다.대규모 일행이었지만 사회안전부 요원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두려움은 없었다. 일행은 두만강에서 「10군단」으로 통칭되는 국경경비대에게 포착됐다.10군단은 탈북자를 막기 위해 창설된 특수부대였다.그러나 안전원 최영호가 『식량을 구하러 간다』면서 100달러를 건네주자 경비병은 입을 다물지 못하며 통과시켜 주었다. 이날 새벽 4시.일행은 두만강을 건넜다.두만강은 그동안 강바닥이 높아져 물이 어른의 허리까지밖에 차지 않았다.10월 하순의 새벽이었지만 흥분과 긴장·기대감 때문에 물이 차갑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두만강을 건너자 최영도가 고용해둔 조선족이 기다리고 있었다.중국땅으로 넘어갔다고 해서 안전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북한당국은 중국으로 넘어간 탈북자를 잡아들이기 위해 이른바 「조교(북한출신 중국교포)」나 국가보위부·사회안전부 요원을 각지에 파견하고 있었다. 일행은 조선족 안내인을 따라 용정과 심양·북경·광주·심천을 거쳐 홍콩으로 향했다.일행은 중간중간 농번기의 중국농가에서 일손을 도와주고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28일간의 장정끝에 11월23일 드디어 홍콩의 문턱에 도착했다.그러나 홍콩으로 진입하는 관문의 경계가 심했다.최근 중국인의 불법진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을 받았다. 홍콩에 들어선 뒤 곧바로 행정부인 정청을찾았다.그리고 신계지역에 위치한 상수특별감호소에 수용돼 조사를 받았다.김경호씨의 일가는 남한으로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씨일가는 며칠 있으면 지금까지 북한을 탈출,남한으로 망명한 최대규모의 일가가 되게 된다.
  • 「차이나 주식지수」 나온다/39개 대표기업 경기변동 반영

    ◎새달에… 건전한 시장발전 모색 중국에서도 다음달부터 주식시장 전체상황과 중국 국민경제의 경기상황을 나타내는 주식 지표가 발표된다. 중국 국무원 산하 경제일보는 주식시장의 변동상황과 경기를 반영하는 4가지의 주식 지수를 올 12월부터 시행한다고 최근 보도했다. 이 지수는 「중국경제 100지수」를 비롯,「중국경제 39지수」,「중국경제 상해지수」「중국경제 심천지수」등 4가지다.이들 지수 가운데 「중국경제 100지수」는 상해,심천 주식시장의 100개 대표적인 주식의 시장 액면,교환율,거래달성액 등을 종합해 산출된다. 이들 지표의 주요 기능은 상해,심천 2대 주식시장의 가격변동 및 이를 통해 중국 경제전반의 경기변동 상황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중국 39지수」는 상해,심천 주식시장중에서 39개 대표적 대형기업들의 주식을 선정해 종합한다.상해지수와 심천지수는 각 해당지역의 전체유동액면의 80%를 차지하는 주식들을 평균해서 각각 측정한 것이다. 경제일보측은 중국의 주식시장이 급격히 확대,보편화되고 있는 상황에서일부의 시장조작을 막고 건전한 주식시장 발전을 위해 지난 93년부터 청화대학측과 공동으로 주식지표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고 밝혔다.
  • 선경/내년 매출 36조 목표/사업계획 확정

    ◎경쟁력 확보 목표 5조원 투자 선경그룹은 내년에 기술개발 등을 위해 5조원을 투자하고 올해보다 11% 늘어난 매출액을 달성키로 했다. 선경그룹은 경쟁력 확보를 내년도 중점목표로 삼고 기술개발 투자 확대,핵심역량사업분야 강화,인력양성 등을 통해 내실경영체계를 구축해 나가기로 했다. 선경그룹은 지난 12일 사장단회의를 갖고 이같이 내년도 사업계획을 확정했다. 게열사별로는 (주)선경 5조2천억원,유공 9조원,선경건설 1조7천억원,선경인더스트리 8천5백억원,SKC 8천억원,유공해운 1조1천억원,기타 5조3천5백억원 등 국내부문에서 24조원의 매출을,해외부문에선 12조원의 매출을 달성키로 했다. 투자는 설비투자 2조3천억원,시장투자 7천억원,해외투자 8천억원,연구개발투자 8천억원,기타 4천억원 등으로 올해의 4조5천억원보다 11% 늘렸다. 특히 SKC 미국 조지아공장 신설에 3천2백억원,유공 중국 심천정유공장 신설에 2천2백억원,선경인더스트리 인도네시아 공장 증설에 8백억원을 각각 투자한다.
  • 새달 11일 홍콩행정장관 선출/친중 동건화에 친영 양철량 도전

    ◎중 추선위 일정 확정/선거인단 4백명 확정… 친중국계 일색/홍콩 첫 대의방식 행정수반 선출에 의미 내년 7월1일 출범할 홍콩 특별행정구(SAR)의 최고지도자인 행정장관 선거인단 및 선출일정이 확정됐다. 2일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폐막된 SAR 주비위원회(위원장 전기침 부총리겸 외교부장) 6차회의는 선거인단(제1기 홍콩정부 추선위원회·SC)400명을 확정하고 오는 12월11일 첫 행정장관 선출을 결정했다.또 기존의 홍콩 의회를 해산하는 대신 SC에서 12월21일 이를 대치할 임시 입법회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중국정부의 홍콩주권 접수를 위한 홍콩지역의 최고책임자 선출이 몇달 지연됐지만 사실상 중국의 의도대로 마무리됐다.선거단의 대다수가 친중국 색채의 인사들로 구성됐다는 것이다.또 행정장관 및 국회의원선거가 올해내 모두 끝남에 따라 97년부터는 중국의 홍콩내 영국총독 정부의 권력 인수작업이 본격화되고 기존 크리스 패턴 총독 정부의 권력누수현상도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확정된 선거인단 400명 가운데 340명은 홍콩의 공·상업계및 금융계의 실업인 100명,노동·종교 등에서 100명,전문직 종사자 100명,전직 정치인 40명 등으로 구성됐고 나머지 60명은 홍콩지역 중국 정치협상회의 위원 및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으로 구성됐다. 이같은 선거인단 선출은 「제한된 범위내에서의 선거」 「부자 클럽모임」 「친중국 인사들로 구성된 잔치」라는 홍콩내 일부 비판에도 불구,홍콩 역사상 처음으로 최고 행정수반을 임명이 아닌 대의방법으로 뽑는다는 의미를 지닌다.12월 행정장관이 선출되면 행정장관 선출자는 곧 내년7월 출범될 특구 정부의 각 행정부문 고위관리들을 임명,그림자내각(섀도 캐비닛)의 구성에 들어가는 등 본격적인 정권 인수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현재 행정장관 경선은 홍콩의 해운왕으로 불리는 실업가 동건화와 지난주 행정장관 출마를 위해 홍콩의 대법원장격인 수석 대법관직을 사임한 양철양의 2파전으로 압축되고 있다.동은 현재 동방해외국제 그룹의 회장이며 중국정부의 지지를 받고 있다.특구주비위 부의장,정협의원,중국정부의 홍콩사무고문 등의 감투를 마다하지 않으며 중국정부를 도와왔다.이에비해 양철양은 런던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친영국성향의 인사로 알려져 있다.한편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오는 12월12일 홍콩 특별행정구 주비위원회 전체회의를 심천에서 개최한다면서 「일국양제」 및 「홍콩에 대한 고도자치」를 다시한번 강조했다.행정장관을 선출한뒤 영국정부와의 정권인수와 관련된 현안문제를 협의해 나가겠다는 것이다.중국의 홍콩인수를 앞두고 정치자유화 폭을 넓히고 각종 예산사업을 벌여 마찰을 일으켜오던 영국정부가 이같은 결정에 어떤식으로 협조할지 정권인수 초읽기에 접근하면서 관심이 모이고 있다.
  • 중 동­서부지역 경제협력 강화/빈부차 해소방안

    ◎성간 결연… 합작사업 강제 할당 【홍콩 연합】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연안 동부지역과 서부 내륙지방간의 경제적 격차가 심해짐에 따라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부유한 동부지역에 대해 빈곤한 서부지역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도록 하는 내용의 강제규정을 마련했다고 홍콩의 명보가 14일 보도했다. 국무원은 산하 부빈개발영도소조의 보고서를 채택,북경·친전·상해·광동성·강소성·절강성·심천 등 13개의 부유한 직할시·성·경제특구 등에 각각 서부 내륙의 빈곤한 대상지역을 강제적으로 할당,경제협력을 강화하라는 행정지침을 시달했다고 신문은 전했다.소식통들은 북경은 내몽골,천진은 감숙성,상해는 운남성,광동성은 광서성,감소성은 섬서성,절강성은 사천성,산동성은 신강위구르 자치구,심천·대련·청도·영파 등은 귀주성과 각각 파트너가 돼 대규모 경제합작 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빈곤지역의 개발성 사업에 투자하는 기업은 이들 지역에 할당된 투자기금을 활용할 수 있고 새 투자기업은 3년간 소득세가 감면되거나 면제되며,외국인 기업의 경우 투자영역이 확대되고 교통이나 철도 등에 필요한 물자는 유통제한이 완화된다. 북경당국의 이러한 정책은 개혁·개방이후 실시해온 동부지역을 먼저 부유하게한 후 파급효과가 자연히 서부지역으로 옮겨질 것이라는 「선부정책」에 입각한 사다리이론이 실제에선 맞지 않고 동부와 서부의 경제적 격차가 심해져 정권및 사회불안의 요인으로 대두함에 따라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나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한국기업/중 심천특구 최대 투자자로/홍콩 대공보 보도

    ◎삼성 등 500여개 기업을 올 4억8천만달러 기록 【홍콩 UPI 연합】 한국기업들이 중국의 날로 번창하는 남방경제특구인 심천에서 올들어 최대투자자로 부상했다고 친중국계 대공보가 8일 보도했다. 삼성 등 한국기업들이 금년들어 지난 8월까지 모두 4억8천5백만달러를 투자해 이웃 홍콩의 투자를 앞지르고 1위를 차지했다.한국무역협회의 한 관계자는 한국기업들이 그간 중국 북부에 집중적으로 투자했으나 지금은 남부 지역을 포함한 중국의 기타지역으로 투자를 다변화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하고 심천이 특별한 매력을 끄는 이유는 이미 500개 한국기업이 진출한 홍콩이 이웃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올 첫 8개월간 심천에 대한 전체 외국투자는 11억2천만달러로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8.6%가 늘어난 것이다.
  • 직장은 홍콩… 잠은 심천서/일가양제 홍콩인 크게 늘어

    ◎중 반환전 체제융합 가속도… 하루 12만명 이동/생활비 싸고 삶의 방식 비슷… 일부는 눌러앉아 「일가양제」를 이루는 홍콩인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에도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다는 「일국양제」를 빗댄 이 말은 홍콩의 중국반환을 앞두고 홍콩과 심천이 빠르게 융합되면서 사업기반및 직장은 홍콩에 둔채 심천에서 생활하는 현상을 일컫는다.홍콩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심천의 경제수준 향상과 함께 생활방식이 비슷해진데다 생활비도 저렴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홍콩과 심천으로 통하는 길목의 나호변방검사소에 따르면 현재 심천으로 들어가는 홍콩인들은 하루 12만명선.이들 대부분은 심천에 있는 자녀들에게 줄 종이기저귀와 분유를 든 홍콩인들이다.「일가양제」를 이루는 홍콩인들은 사업이나 생활비 절약,U턴,결혼 등 4가지 부류로 나뉜다. 진귀우씨는 사업 때문에 심천에 눌러앉게 됐다.홍콩 신계출신으로 영국에 유학한 그는 홍콩으로 되돌아와 심천에 최신 유행패션점을 개업,1주일의 절반을 심천에서 생활하고 있다.진씨는 『패션점을 열 때는 1주일중 5일을 심천에 머문 탓인지 「심천은 나의 삶의 터전」이라고 생각한다』며 『홍콩과 생활방식이 엇비슷해 별 어려움이 없다』고 밝혔다. 이광생씨는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심천에 정착한 경우.홍콩정부의 일용직으로 근무하는 이씨는 3년전 심천에 4층건물을 지어 이사왔다.이씨는 3∼4층은 가정집으로 쓰고 다른 층은 세를 줘 받은 돈을 생활비로 쓰고 있다.그의 월급 9백달러로는 홍콩에서 생활하기에는 벅찬 탓이다.이씨는 『심천에 온 뒤 생활비가 싸 저축을 조금씩 하고 있다』며 『홍콩에서 내 월급으로는 저축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정벽임씨(여)는 사업기반을 심천으로 옮기는 바람에 U턴한 케이스.심천 출신인 그녀는 79년 아버지와 함께 홍콩으로 이주,식료품공장을 경영하다가 89년 심천에 식료품 가공공장을 설립하면서 심천으로 되돌아왔다.홍콩에 직원 24명만 남겨 기본업무를 보게 하고 본사는 심천으로 옮긴 것.정씨는 『나는 반은 홍콩인이고 반은 심천사람』이라며 『홍콩에서는 홍콩사람답게,심천에서는 심천사람답게 행동하는 요령도 터득했다』고 말했다. 결혼을 통해 정착하는 홍콩인들도 증가하고 있다.93년부터 95년까지 심천의 아가씨들과 결혼한 홍콩인은 1천7백여쌍.80년대초만 해도 심천의 아가씨들이 「탈빈」을 위해 홍콩의 막노동꾼들과 결혼하거나 첩으로 들어갔으나 요즘은 오히려 홍콩인들을 심천의 처가로 불러들이는 「역현상」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낮에 홍콩에서 일하고 저녁에 심천으로 퇴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바로 이들인 셈이다.
  • 북경­홍콩 철도/새달 1일 개통

    【북경 로이터 연합】 북경과 홍콩을 연결하는 철도가 다음달 1일 개통된다고 중국 철도부가 14일 밝혔다. 철도부는 오는 9월1일부터 하루 10편의 여객 열차와 40편의 화물 열차가 운행될 것이며 앞으로 늘어나는 수송 수요에 대비해 열차편을 늘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경­홍콩간 철도 개통에도 불구하고 내년 7월1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이전까지는 열차가 홍콩으로 들어가지 않고 국경 지대의 경제 특구인 심천까지만 운행될 예정이라고 철도부는 전했다. 북경­홍콩 철도 건설은 4백억위안(48억달러)이 투자된 중국 사상 최대의 철도 공사로 2천3백56㎞ 구간에 1천45개의 교량과 1백50개의 터널이 포함돼 있다.
  • 미 월마트 중국 진출/심천에 회원제상점

    【북경 DPA 연합】 미국의 거대 체인 스토어인 월마트가 중국 남부의 경제특구 심천에 첫 회원제 상점을 개점함으로써 중국시장에 진출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13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월마트의 한 간부의 말을 인용,「샘스 멤버숍」이란 이름의 이 상점이 이미 3만명이상의 회원을 모집했으며 회원들은 80%가 중국내에서 생산된 이 상점의 상품을 독점적으로 구입할 권리를 가진다고 말했다.
  • “나진·선봉 외국인투자 2010년까지 13억달러”

    ◎한국개발연 추산 북한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지난 93년 설치 이후 오는 2010년까지 모두 13억5천9백33만달러(공업부문 8억4천2백78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정동 연구위원은 11일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의 경제적 효과 전망」이란 보고서를 통해 중국 심천 경제특구의 성장속도를 감안할 때 3억8천8백43만달러의 차관을 포함,실제이용 외자는 모두 17억4천7백76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박위원은 개발초기단계에는 비제조업이나 제조업중 노동집약적 업종과 조립형태에 투자가 집중돼 외자기업 유치로 인한 산업구조개선효과나 산업연관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북한이 외자유치로 인한 기술·선진관리방법의 이전을 성공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고학력 노동력 배치,노동자의 장기체류를 위한 법적보장과 권익보호,사회간접자본 확충,외국인을 위한 편의시설 개발,행정권력 남용방지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직접투자가 본격화되면 나진·선봉지대가 중국의 경제특구와 같이 남북한간 경제교류를 활성화시키는 연결고리와 북한과 외부세계와의 교류를 활성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무역지대의 오는 2001∼2010년까지 10년간의 수출총액은 56억7천51만달러,수입총액은 46억1백61만달러로 10억달러 정도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됐으나 이중 외자기업에 의한 수출총액은 20억4천1백38만달러,수입총액은 20억5천6백92만달러로 2010년까지도 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취업자는 외자기업 13만1천여명을 포함,41만2천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김주혁 기자〉
  • 주말은 심천서 출근은 홍콩으로/홍콩­광동성 생활통합 현장

    ◎직통열차­버스 운행… 입국때 짐검사도 없어/홍콩제조업 80% 진출,광동인구 20% 부양 홍콩서 광동성 수도,광주까지는 직통열차가 다닌다.2시간30분 만에 시중심 광구역에 도착하면 짐검사도 않고 여권에 신속하게 도장을 찍어준다.하루 4번 오가는 「직통열차」 뿐아니라 홍콩섬의 완차이,구룡반도의 침사초이,몽콕,사틴,추엔완 등에선 더 손쉽게 「직통버스」를 타고 홍콩과 광동성 각지를 드나들 수 있다.이미 홍콩과 광동성은 하나의 생활권이다. 홍콩에 살고 있는 한국인 등 외국인들은 휴일이면 심천에 가서 골프를 친다.일부 홍콩인들은 심천서 토·일요일을 보내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기도 한다.세관수속은 오히려 중국쪽이 더 간편하다.홍콩과 광동성의 통합은 경제적으로 보면 더욱 분명하다.광동성 주강 삼각주지역에서 조업하고 있는 홍콩기업은 2만여개.홍콩제조업의 80%가 이곳에 몰려 있다.광동인 4백만명을 홍콩기업이 고용하고 있다.광동성 5가구중 1가구가 홍콩기업에 의지해 밥을 먹는다는 계산이다.광동성은 홍콩의 제조업 기지인 셈이다. 홍콩의 중국에 대한 투자는 6백억달러 규모.전체외국인 투자의 60%가 홍콩의 투자다.그 직접적인 수혜자는 광동성이다.홍콩은 그동안 해외자본과 기술을 공급해주는 창구였다.관세·비관세장벽과 무역관행 등 때문에 지금도 대중국 무역의 60%는 홍콩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주권반환 이후 홍콩경제의 낙관도 중국경제에 미치는 홍콩의 역할 때문이다. 중국 경제특구의 모델은 홍콩이다.5대 경제특구중 심,주해,산두가 광동성에 몰려 있는 것도 홍콩과 인접성 때문이다.홍콩없이는 개혁·개방은 불가능했다고 심심화여행집단의 왕강항씨는 지적 한다.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이상형 광주관장은 『홍콩이 국제금융,무역중심지인데 비해 광주는 화남경제권의 금융·무역·교통 중심지로서 홍콩의 보완적 기능을 맡고 있다』면서 『홍콩반환과 맞물려 무역센터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했다.홍콩과 광주가 주축이 돼 화남경제권을 빠르게 구체화시켜 나갈 것이란 전망이다. 이같은 홍콩기업의 광동성 집중 현상에 대해 중국정부는 홍콩기업인들에게 연고지역인 광동성 뿐 아니라 상해와 내륙지역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캐피털 차이나그룹의 하종태회장은 강택민주석 등을 홍콩기업가들이 직접 만났을 때도 이같은 당부를 했다며 홍콩반환 이후 홍콩기업의 상해투자러시도 예상된다고 전망했다.〈광주(광동성)=이석우 특파원〉
  • “홍콩반환 1년 남았다”/북경 대대적 경축행사

    ◎사진전 개최… 기념화폐 발행 【북경=이석우 특파원】 홍콩반환 1년을 남겨놓고 중국 정부와 언론기관들이 홍콩의 주권반환을 기념·경축하는 각종 행사와 특집방송을 시작,홍콩반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특히 1일은 중국공산당 창립 75주년으로 이와관련 당지도부에서 민족단결과 사상무장을 강조하고 있고 모범 당원과 근로자에 대한 당과 정부의 대규모 표창식이 있을 예정이어서 애국주의및 민족주의 물결도 고조되고 있다.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처는 1일 상오 천안문 광장옆 역사혁명기념관에서 홍콩역사와 변천 등을 담은 대형 사진전을 연다.3백여점의 대형 사진을 선보이는 이 전시회는 20일부터 천진·상해·광주·심천을 순회하게 된다.중앙TV(CCTV)는 1일 저녁부터 홍콩의 굴욕과 발전,중국과의 관계및 주요관계자의 인터뷰로 구성된 3백시간 길이의 대형 다큐멘터리 「홍콩의 격변」을 방영한다.중앙라디오 등 8개 방송국도 합동으로 1일부터 「중국 통일문제 대가」좌담회를 시작한다.이 프로그램은 1년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당 선전부 등은 1일 밤 사회각계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북경서 홍콩반환 1년전을 기념한 특별예술제를 개최할 계획이며 중국 체신총공사는 기념화폐와 봉투 등을 발행한다.
  • 홍콩(중국반환 앞으로 1년:1)

    ◎“예측못할 미래” 낙관·불안 혼재/중국과의 경제통합 가속화… 무역중심지 자부심/주민 대부분 대륙출신… 체제·인권문제엔 회의적 세계적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 홍콩은 여전히 역동적이다.침사초이와 몽콕등 홍콩의 중심가는 번쩍이는 네온사인으로 밤 11시가 넘도록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그러나 그 화려함 속에는 불안도 함께 증폭되고 있다.내년7월1일로 예정된 중국반환이 1년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홍콩에는 미래에 대한 낙관과 불안이 혼재하고 있다.홍콩의 반환은 단순히 홍콩이라는 영국식민지의 반환을 의미하지 않는다.19세기 제국주의 잔재의 청산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접목이라는 세기적 실험의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중국은 홍콩이라는 새로운 체제를 귀속시키며 발전의 기회와 동시에 도전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홍콩에는 실업률이 3.5%에 이르고 물가도 6.5%선을 넘어서는등 경제적 우려와 함께 반환후의 불안감이 증가하고 있다.하지만 94년 폭등이후 내리막길이던 부동산값이 올들어 4∼5%가량 오르고 있고 연간 1천만명을 넘어선 여행객과 외국출장자들의 행렬이 이어지는등 미래에 대한 낙관도 건재하고 있다.신공항 건설사업,지하철 확장,부두 확장,간척사업,대형 건물 신규건설등….대형 토목사업이 제주도의 5분의 3만한 크기에 인구6백30만명의 복잡한 도시를 더 역동적으로 만들고 있다. 홍콩의 대표적 TV채널인 TVB 기자 곽방씨(28·여)는 『지난 84년12월 중·영 공동성명을 통해 반환이 발표된뒤 10여년간 시민들이 개인적으로 마음의 준비를 거쳐 비교적 담담한 상태』라고 소개했다.80년대초 부모따라 북경서 이주해온 곽씨는 『달라질 것이 없다.경제 통합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낙관했다.지금도 매일 1백여명의 대륙인들이 중·영 합의에 따라 홍콩이주를 계속하고 있다. 부동산 및 건설업,금융등의 업체를 갖고 있는 캐피털 차이나그룹의 매니저 마이클 탕씨(40세)도 『홍콩과 중국경제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상태』라며 『오히려 홍콩 통합은 무역활동에 도움이 되고 경제발전에 추진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주재 미국상공인회와 일본상공인회도 지난해말 조사결과,경제적으로 장래를 낙관한다는 결과를 얻었으며 이같은 관점은 여전하다고 일본무역진흥회(JETRO) 마사루 이노우에 홍콩소장은 지적한다.이런 낙관론뒤에는 금융과 무역경제지로서의 장래에 대한 자신과 낙관이 깔려있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 10여년간 중국정부의 유화적 태도와 설득도 친중파의 세력을 더욱 확고하게 확산시키고 있다.중국지도층은 향후 50년간 자본주의제도를 유지시킬 것이라는 1국 2체제 방침,홍콩은 홍콩인들에 의한 고도의 자치를 보장할 것이라는 향인향치원칙등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과연 그러한 약속을 지킬지에 대한 의문과 미래에 대한 불안도 강하다.홍콩인들의 불안은 80년대초 해마다 2만명가량되던 해외이민자수가 87년 3만명으로 늘더니 반환이 임박한 92년엔 6만6천명,93년 6만2천명,95년 4만3천명으로 급증하는 데에서도 상징적으로 나타난다.떠나간 사람의 절반가량이 고학력 전문직이거나 부유층이란 사실도 홍콩사회에 타격이 되고 있다.대부분의 홍콩인들이 49년 대륙공산화와 함께 광동과 상해에서탈출해왔거나 62·63년 문화대혁명초기에 이주해온 사람들이고 보면 이들의 불안은 오랜 뿌리를 갖고 있다. 지척거리인 광주의 중산현이 고향이라는 택시운전자 황철일씨는 『불안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같은 서민들에겐 더이상 갈곳이 없다.오직 잘되길 희망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그는 『많은 사람들이 내색은 않지만 대륙에서 살려고 넘어온 사람들』이라면서 『정치개혁을 하지않는 중국의 영향이 이곳까지 미칠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홍콩의 상위계층 6분의1가량이 다른나라 여권과 국적을 취득하고 있다는 사실도 미래에 대한 강한 불안의 한 단면을 말해준다.이들은 캐나다나 호주,영국등에 집이 있고 아이들도 이곳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두집 살림」을 하는 예가 대부분이다.홍콩에선 돈을 벌수 있기 때문에 계속 머물러 있지만 언제고 사태가 악화되면 훌훌털고 떠나겠다는 입장이다.경제에 대한 안정된 전망에도 불구,이런 불안은 인권과 행동의 자유를 보장할 정치권리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대표적인 친중계 신문 대공보의 부사장겸 편집국장인 증덕성씨(47)는 『홍콩인 스스로가 홍콩을 관리하게됐으며 서구 식민지를 청산하게 됐다는 민족적 자부심의 회복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 가치관과 국가운영방법의 차이로 인해 두체제간에 갈등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양면적이고 이중적인 감정이 적잖은 것 같다』고 반환을 1년앞둔 홍콩인들의 심리상태를 설명했다. 홍콩은 중국표준어인 보통화(북경어)로는 의사소통이 안될 정도로 중국과는 이질적 요소가 적지않다.홍콩은 국민소득이 중국의 46배인 2만3천달러며 대외교역은 세계8위인 자유무역의 도시다.1백50년동안의 식민지로 영국식으로 길들여져온 홍콩과 홍콩 차이니즈들이 어떻게 1국2체제의 실험속에서 자유와 번영의 꽃을 피울수 있을지….평화적 주권이양과 1국2체제 실험에 세계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잇단 정치개혁… 중­영 갈등 불씨로/“민주개혁 명분의 중국견제용,친중파 비난 홍콩 구룡역에서 출발하는 심천행 전철은 40분이면 심천 나호세관 입구에 도착한다.나호세관 쪽으로 이어진 10m 남짓한 다리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세관건물 벽에 설치된 반환시계가 눈에 띈다.남은 반환일을 일수와 초로 나타내는 이 전자시계는 북경 천안문광장옆 역사기념박물관의 대형 반환시계와 같은 것이다.최근 홍콩에선 신화사,대공보,중국계 기업들이 이 시계의 축소모형을 만들어 기념품으로 돌리면서 반환분위기를 북돋우고 있다. 반환이 임박하면서 중국정부의 주권접수 준비도 가속화하고 있다.주해의 특구 주비위(PC)는 지난달 전체회의에서 8월 전체회의를 다시 열어 추천위(SC)의 구성방법을 최종결정하기로 했다.4백명으로 구성될 추천위는 홍콩특구의 첫 행정수반인 행정장관을 선임하고 현행 국회를 해산하는 대신 잠정 입법의회를 선출하는 문제를 결정한다.추천위 구성원의 색깔에 따라 홍콩특구의 모습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신화사 홍콩분사 관계자들은 95년 11월 이후 12차례에 걸쳐 홍콩정청 국장급 이상 관계자들로부터 관련업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홍콩경영 준비에 대비하고 있다.그러나 정치분야에서의 중·영대립은 첨예하다.중국은 영국이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제한하다가반환이 초읽기에 들어간 뒤에야 민주개혁이다 직접참여 확대다 법석을 떠는 것은 여론조정과 반대파 육성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처사라고 불만이다. 91년 6월 기본권법 제정,92년10월 각급선거에서의 연령 인하(18세 선거권 부여)와 직접참여 확대를 골자로 한 정치개혁 등은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또 지난해 9월 치러진 입법의회(국회) 선거에 대해선 중국측과 합의되지 못한 사항임을 들어 97년7월 이후 해산을 선언했다.총건설비 2백2억달러 가량이 소요될 첵납콕 신공항건설 등 대형토목사업에 대해서도 중국은 재정을 바닥내고 이익은 영국계회사들이 챙기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보이고 있다.그럼에도 중국은 반환 시간표대로 홍콩접수를 위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고 홍콩내 친중파의 목소리는 높아가고 있다. ◎약사 ▲1841.1=영국,1차 아편전쟁을 계기로 홍콩섬 점령 ▲1842.8=남경조약 체결로 홍콩섬,영국에 영구할양됨 ▲1898.7.9=북경조약에 따라 신계를 영국에 99년간 조차 ▲1941∼45=일본,홍콩점령 ▲1979.3=등소평,홍콩총독과 만나 홍콩반환문제 첫 논의 ▲1979.4=등,97년 홍콩반환후 현체제 유지의사 표명 ▲1983.7=중·영,홍콩반환회담 개시 ▲1984.4=하우 영국외무,97년이후 홍콩통치는 「비현실적」선언 ▲1984.5=등,97년이후 인민해방군의 홍콩주둔방침 천명 ▲1984.12=중·영,홍콩반환협정 조인(영국은 97년7월1일 0시를 기해 홍콩을 반환하고 중국은 50년간 홍콩의 자본주의체제 유지 약속) ▲1990.4=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홍콩기본법 비준 ▲1992.10=패튼홍콩총독,입법국 직선의원확대등 민주개혁안 발표 ▲1993.7=중,홍콩반환에 대비할 예비운영위원회(PWC)설립 ▲1994.8=중,홍콩기본법에 따르지 않고 구성된 입법국 해체경고 ▲1994.9=홍콩입법국선거서 반중국 민주당 압승 ▲1996.1=중,PWC를 대신할 홍콩특별행정구주비위 발족 ▲1996.3=홍콩정청,홍콩인들에 대한 영국여권 발급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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