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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희대 주최 학술회의 스칼라피노 교수 주제발표 요지

    ◎“아태는 21세기 세계질서 시험대”/평화·번영 낙관… 국제·민족주의 동시 발흥 주목 2일 계속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주최 국제학술회의에서는 21세기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일,러 등 주변 4강국의 역학관계 변화가 집중 조명됐다.이날 ‘아시아 태평양 21세기의 힘과 영향력’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한반도 및 동북아문제의 세계적 권위자 로버트 스칼라피노 명예교수(미 버클리대)의 주제발표를 간추린다. 지난 세기에는 아시아지역의 질서를 형성하는 힘이 각 국가의 근대화 수준과 그에 따른 능력에 따라 다양하게 변했다.최근에는 미국이 두드러진 세력이었으나 21세기에는 능력보다는 복잡하고 다양한 장면이 전개될 것이다. ○신중한 대중 관찰 필요 아태지역의 주요국가들을 살펴보면,중국은 주요한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는 주요세력이 될 것이다.아태지역에서 중국의 역할이 증가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중국이 선의의 역할을 할지 위협적인 것이 될 지는 현재로선 예측하기 여렵다.중국에 대해서는 상호의존과 온건화를 증진시킬수 있는 다양한 다자 및 양자관계를 확대시키는 정책을 펴면서 성급한 판단보다는 시간을 두고 관찰하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그와 동시에 발생할 지도 모르는 부정적인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이 지역에서의 전략적 균형의 유지를 통해서 대비해야 한다.중국문제는 단순히 봉쇄냐 개입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센티브와 억지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문제이다. ○러시아 주유세력 복귀 일본은 현재 경제·정치적 변화를 겪고 있다.일본은 이 지역에서 주요한 경제세력으로 존재할 것이고,이러한 사실을 그들의 영향력을 구축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그러나 이것이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군사정책으로 귀결될 것 같지는 않다.일본은 계속 ‘포괄적 안보’를 추구할 것이다.약간의 군사적 능력의 확대가 있겠지만 여전히 다자주의와 미국과의 안보동맹에 의존하는 안보정책이 유지될 것이다.이러한 일본의 입장은 새로운 세기가 도래하면서 전반적인 차원에서 힘의 속성변화에 대한 증거가 될 것이다. 러시아는 21세기의 어느 시점에서 주요한 세력으로 복귀할 것이다.현재 러시아의 최우선의 과제는 국내구조를 재건하는 일인데 한편으로는 러시아는 이미 세계적 차원에서의 외교정책을 펴려 하고 있다.이 시점에서 다른 국가들은 러시아가 광범위한 국제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동시에 러시아 국민들의 상처받은 자존심이 미래에 과도한 외국인 혐오증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불확실한 한반도 통일 한반도의 장래는 통일문제를 둘러싸고 불확실성으로 덮혀 있다.그러나 21세기의 어느 시점에서 적절한 정도의 비용으로 통일될 것을 가정하면 한국은 이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통일된 한국은 다른 주변강국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노력과 동시에 미국과의 특수한 관계를 계속 유지할 것이다. 동남아시아는 다양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고 중요한 문제들의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미 비용·위험부담 늘듯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계속 개입할 것이다.미국은 점차 다자주의에 의지하겠지만 주요한 양자 유대를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미국은 장차 더 많은 비용과 위험부담을 추구할 것이다.그러나 미국국민들이 여러 사안들의 복합성과 특정한 문제들에 미국이 계속 관여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수용할 것인가가 미국 영향력의 관건이 될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때 상대적으로 평화적이고 번영하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전망은 밝다.전문가들은 국제관계에 있어서 점차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여러 행위자들의 자발적 동의와 참여를 확보할 수 있는 절차가 점차 중요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국가주권의 낡은 개념은 재고되어야 한다.나아가 국제주의 민족주의와 공동체주의가 동시에 발흥하는 현상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할 것이다.이러한 모든 면에서 아태지역은 미래의 세계질서에 주요한 시험무대가 될 것이다.
  • 세계정치학회 참석 석학 대담

    ◎한·중·일 동북아질서 중심역할 담당해야/제도·사고 등 유연성 갖춰야 국제경쟁서 생존/법치주의 토대 견고할때 민주주의 정착 가능 □참석자 ·이홍구 세계정치학회 서울대회 명예위원장 ·테드 로이 세계정치학회장 ‘세계 정치학자들의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세계정치학회(IPSA) 서울대회가 21일 폐막됐다.세계 130여개국에서 2천여명에 이르는 세계 석학들이 참석한 이번 대회는 21세기의 새로운 국제질서의 방향과 동북아 지역의 세력 재편,한반도 통일전망,한국의 민주화 등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토론이 있었다.폐막 다음날인 22일 롯데호텔 아테네룸에서 이뤄진 이홍구 서울대회명예위원장과 테드 로이 세계정치학회장(미 코넬대 교수)의 대담을 통해 아시아지역에서는 처음 열린 제17차 세계정치학회를 결산해 봤다.〈편집자주〉 ▲이홍구 명예위원장=21세기의 세계는 ‘하나’라는데 특징이 있습니다.과거의 세계는 하나라기 보다 유럽과 미국 중심이었고,그들 중심으로 움직여온게 사실입니다.세계정치학회만 보더라도 지난 49년부터 유럽지역에서 12번,미국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각각 1번씩 열렸습니다.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가 처음입니다.이게 무얼 의미하겠습니까.아시아가 또하나의 세계축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징후입니다.이제 세계가 유럽과 미국 중심에서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머리속에서 그려보거나 학문의 차원이 아닌 실질적인 변화이기도 합니다. ○시장경제 강력한 힘 발휘 ▲테드 로이 회장=21세기가 된다고 해서 새로운 이념이라든가 시대정신이 당장 나타나지는 않을 것입니다.21세기는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20세기의 연장이기 때문에 20세기말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념이 21세기로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그러한 맥락에서 신자유주의의 조류가 강화되는 가운데 자유시장경제주의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그러나 냉전시대 강력한 블럭을 형성했던 공산주의는 더이상 세계의 주요 이념으로 등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사회주의도 중국 등 일부에서 아직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점점 쇠퇴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보입니다.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유시장경제체제에 패배한 것은 자유시장경제주의 자체가 강력한 이론이며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세계경제 현실에 맞기 때문입니다.경제가 더욱 중요시 될 것으로 보이는 다음 세기에는 자유시장경제를 채택하는 나라가 더 늘어날 것입니다. ▲이위원장=21세기 동북아 안보환경을 결정짓는 여러 요인이 있으나 한반도 상황이 가장 큰 문제일 것입니다.북한 사회과학협의회도 세계정치학회(IPSA) 멤버이나 이번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황장엽씨가 그 협의회 회장인데,우리나라로 와버렸으니 어찌보면 사실 말이 안되는 거지요.한반도는 이렇게 재미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그러나 한반도의 미래는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하고,이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입니다.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으로 백년전만 해도 약소국이었습니다.하지만 이제는 강대국들이 패권을 다투는 긴장을 만들어내는 중추부로써 세계의 지역발전에 기여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봅니다만. ○사회주의 쇠락의 길 ▲로이 회장=사실 21세기에는 동북아시아에도 여러가지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미국과 중국·일본과의 역학관계가 결정적 변수로 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미국은 과거부터 미군을 이 지역에 주둔시키며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경제파워로 힘을 축적한 일본도 국제정치 무대에서의 역할이 증대될 것이고 중국도 강력한 국가가 될 것입니다.한국도 이미 이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한국은 앞으로도 중국·일본과 함께 동북아시아의 중요한 국가로 존재할 것입니다. 또 미국·중국·일본의 경쟁이 심화되며 상호견제와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경쟁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고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상호발전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필요한 요소입니다.중국의 미래가 앞으로 동북아질서에 중요합니다만 중국의 군사적 위협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중국은 물론 세계 최대 국가입니다.그러나 중국은 경제발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이 때문에 외국과의 마찰을 유발하기보다는 국제룰을지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국제협정이나 외국과의 계약도 존중하고 있습니다. ○세계경제 통합 추세 ▲이위원장=20세기가 끝나면서 나타난 큰 흐름은 민주화와 시장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의 통합현상입니다.민주주의는 더 많은 시민의 참여를 낳았고,이들의 요구 또한 날로 커지고 있는 실정입니다.나아가 세계 각국은 치열한 국제경쟁에 나서야 하고 여기에서 살아 남아야 합니다.즉 제도 사고 등 모든 분야에서 경직성을 떨쳐버리고 유연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금세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이데올로기가 다음 세기에서도 그 영향력을 유지할 지,아니면 크게 약화될 것인지도 새로운 질서구축에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로이 회장=냉전이 끝나자 세계 곳곳에서 내전과 종교갈등,지역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냉전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의 대결속에 내전과 지역갈등이 미국과 소련이라는 큰 틀의 대결속에 묻혀있었습니다.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붕괴되며 이데올로기 대결속에 묻혀있던 민족주의가 분출하고 있습니다.그러한 민족주의적 갈등이 내전이나 지역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이는 21세기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많습니다.그러나 21세기에는 전쟁보다는 외교적 타협이나 협상을 통한 문제의 해결을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21세기의 세계질서는 정치 강대국간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의한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앞으로는 경제가 더욱 중요할 것이며 공정한 경쟁은 세계를 더욱 발전시킬 것입니다. ▲이위원장=한국은 강대국이나 약소국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나라입니다.약하면 국제사회에서 기여하고 싶어도 기여할 수 없으며,역으로 상대국을 위협할 수 있는 강대국이 되어도 주변국의 신뢰 속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기가 어렵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침략 가능성을 갖고 있지도,그렇다고 상대국으로부터 무시당할 만큼 약체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평화공존과 핵전쟁 방지 등에 있어 중심적 역할이 가능하다고 봅니다.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한 경수로도 그렇고….나아가 정치학도 그동안의 역할에서 더욱 발전시켜 전쟁없는 국제평화를 위해 기여해야 할 시점이며,이것이 이번에 참석한 많은 정치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고 보는데…. ○핵·화학무기 위험 상존 ▲로이 회장=세계 질서에서 경제가 중시되고 정치가 인류에 희망을 주는 방향으로 간다해도 핵이나 화학무기의 위험은 여전히 존재할 것입니다.강대국간의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많지 않지만 대량살상무기가 테러에 이용될 위험성이 높습니다.일본에서 발생한 사린가스 사건은 화학무기가 테러에 이용될 위험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리비아나 이라크 등 일부 국가들이 핵·화학무기등을 테러에 사용할 우려가 상존하고 있습니다. ▲이위원장=한반도통일은 이제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닙니다.국제환경이 급변하고 있고,북한체제의 동요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전지고 있습니다.남북한간 힘의 균형을 전제로 한 현 통일정책도 그런 의미에서 손질이 불가피하다고 봅니다.또 한반도 주변 강대국,특히 중국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어 어느 때보다 외교적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드는 데…. ▲로이 회장=한국의 통일은 완만한 연방형태를 거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같은 민족이며 같은 전통을 갖고 있는 한반도가 분단된 것은 비극입니다.그러나 한반도 통일은 긴 안목을 갖고 추구해야 합니다.남북한간의 교류를 활성화시키며 동질성을 회복하고 상호이해을 높혀가는 점진적인 통일접근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동서독의 통일방법은 좋은 모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북한은 동독과 달리 가까운 장래에 공산주의를 포기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통일정책 손질 불가피 ▲이위원장=한국의 민주화와 세계화로 시각을 옮겨보면 한국에서는 오는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열립니다.이어 2002년에는 한일 공동으로 월드컵축구대회가 개최됩니다.두 행사는 한국의 민주화와 세계화의 큰 흐름이 될 것입니다.2002년 월드컵도 한일관계의 감정적 측면에서 바라보지 말고 아시아의 선두국가로써 양국이 자리잡았다는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을 갖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일본과 같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서 월드컵대회를 나란히 치르는 아시아의 선두도 중요하다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로이 회장=한국의 민주주의는 피어나는 꽃과 같습니다.그러나 그 뿌리가 깊지 않습니다.한반도에는 대규모 군사력이 대치하고 미군도 주둔하고 있는 등 냉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민주주의는 필요합니다.민주주의가 정착하려면 법치주의라는 견고한 토대가 마련돼야 합니다.한국의 정치지도자나 정치학자들은 국민들에게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해야 합니다.민주주의는 실험의 과정이며 완결이 아닙니다. ▲이위원장=독일이 통일되고 유럽통합 또한 가속화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분단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이 시기에 세계정치학회가 아시아에서 그것도 분단국인 한국에서 처음 열렸다는 자체가 뜻깊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또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과 세계평화,나아가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다양한 주제들이 광범위하게 다루어졌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고자 합니다.일반 대중들의 정치에 대해 만연된 회의를 해소하는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기대도 갖고 있습니다. ○통일 점진적 접근 바람직 ▲로이 회장=세계정치학회가 서울에서 열린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정치학회 세계대회가 아시아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서울대회는 지금까지의 서구적 보편성에 편중된 정치학회의 흐름에 아시아적 특수성을 부각시킨 대회였습니다.특히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문제 등을 다룬 의미있는 대회였습니다.〈정리=이창순·양승현 기자〉
  • 인도 내일 독립50돌/민주주의 정착 최대 성과

    ◎네루­간디­라지브 3대총리가 정치틀 잡아/작년부터 연립정권 정치실험… 정국 표류/관료주의·경제불균형 타파 개혁작업 박차 15일 독립 50주년을 맞는 인도는 의회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점을 최대의 성과로 꼽을수 있다.민주주의 정착의 최대 공신은 자와할랄 네루 초대총리를 비롯,그의 딸 인디라 간디,간디의 맏아들 라지브 간디 총리를 중심으로 집권한 국민회의당.이들이 바로 1천여개의 언어와 방언,수백개의 종교,9억6천만명에 이르는 국민들로 구성된 ‘공룡’ 인도를 하나로 묶어 민주적인 정권을 지속적으로 창출해온 주인공들이다. 인도는 그러나 지난해부터 새로운 ‘정치실험’을 하고 있다.줄곧 정권을 잡아온 국민회의당이 작년 5월 총선에서 힌두 민족주의 정당인 바나티야 자나탈당(BJP)에 패배,새 연립정권이 들어선 것이다.이 새로운 실험의 성공 여부를 예단하기에는 짧은 기간이지만,연립정권의 총리가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는 등 정국이 표류하는 점을 감안하면 정치의 활력은 예전보다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부문에 비해 경제부문은 훨씬 뒤떨어져 있다.독립초부터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도입한 인도는 외국자본의 진입을 반대하고 민족자본 육성을 모토로 하는 강력한 경제구조를 구축한게 오히려 ‘자충수’로 작용했다.이같은 경제구조가 관료주의의 폐단을 초래,연 3∼4%의 저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경제는 성장의 탄력성을 잃어버렸다.인공위성·핵무기 등 일부 부문에서는 세계적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전체적으로는 사회간접자본시설(SOC)의 미비 등 극심한 경제적 불균형만 초래한 것이다.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한 인도는 지난 91년부터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해오던 관료주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과감한 개혁조치를 단행했다.인도는 ▲세제의 간소화 ▲국영기업의 축소 ▲외국인들의 투자자유화 ▲관세인하 등을 통해 외국자본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이 때문에 남부도시 방갈로르는 인도의 ‘실리콘 밸리’로 불릴 정도로 정보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뉴델리와 뭄바이도 중국보다 매력적인 유망 투자지로 떠오르고 있다. 원래 인도와 한몸이었으나 인도에서 떨어져나온 파키스탄은 인도보다 하루 빠른 14일 독립 50주년을 맞지만 아직도 인도와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채 고난의 연속이다.지난 50년 동안 3번의 군사정권이 들어서는 등 정치는 암울하고 경제도 빈사상태에 놓여 있다.특히 민간정부와 군사정권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부패공화국’으로 전락했다.‘파키스탄의 희망’으로 불리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마저 지난해 부패 혐의로 자리에서 물러났다.흔들리는 정치는 자연히 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내몰아 인구 1억3천만중 3분의2가 아직도 절대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 제국의 종말/존 키(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서구 식민주의의 종식 ‘홍콩 반환’/20세기후반 가장 극적인 경제성장의 촉진제 “1997년 6월30일,중국에의 홍콩 반환과 함께 제국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바스코 다 가마가 아시아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지 정확하게 500년만이다.30년대 초까지만해도 세계인구의 절반이 미국,영국,프랑스,네델란드 식민통치의 신민으로 돼있었다.그후 두세대가 지난후 동양에서 서구 제국들은 모두 소멸했다.그 과정을 지나오면서 한때 고요,신비,정체 등의 수식어로 빈정거림을 받던 동양은 현대적이고 역동적인 모든 것의 대명사가 되었다.그 사이에 무엇이 발생했는가? 500년 식민통치의 유산들은 무엇인가?“ ‘제국의 종말(Empire's End)’의 저자인 역사학자 존 키(John Keay)는 중국에의 홍콩 반환을 진정한 의미의 서구 식민주의의 종식으로 규정지으면서 그 참의미를 규명해나가기 위해 이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극동의 역사­식민주의 전성기로부터 홍콩까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저자는 동양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홍콩의 반환과 서양 제국주의 지배의 종말을 단순히 ‘승리와 패배’,‘성공과 실패’,‘상승과 하강’과 같은 이분법적 기준을 적용시키지 않았다.그는 백인들이 지난 300여년 동안 우수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극동문제들 장악해온 것이 사실임을 지적하면서도 백인들의 우월성이라는 개념 자체에는 의문을 제기한다.왜냐하면 백인들의 우월성이 동양을 변화시킬수 있었던 요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이같은 제국의 일원으로서 미국의 경우 비록 후발주자이지만 유럽인들의 식민지 매카니즘에 조금도 손색없는 식민주의를 감행했음을 지적했다. ○홍콩이 ‘마지막 거점’ 저자는 동아시아에서 탄탄하던 제국 지배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시기를 1930년대,영국이 조차중이던 산동반도의 위해위를 중국에 반환했을때로 보고 있다.그때를 기준으로 40년후인 70년대,과거와 같은 제국의 위력은 하나도 남지 않았으며,60년후인 오늘날에는 ‘마지막 거점(Last Post)’인 홍콩을 돌려줌으로써 제국의 종말이 오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제국의 종말에 대한 통상적인 의미의 해석을거부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역사적으로 영어 사용권에서의 제국의 종말은 로마제국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가 없었다.즉 제국은 문명과 합리성을 대표하는 용어였고 그 멸망은 상대적으로 야만과 미신으로 가득찬 세계의 도래를 의미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에서의 제국의 멸망은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해왔다.식민세력이나 그 신민들이나 어느 누구에게도 궁극적으로 대재앙은 아니었다.야만적인 행동이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오히려 동아시아 또는 동남아시아에서의 탈식민화는 20세기 후반 가장 극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촉진제가 되었던 것이다.서구에서도 식민지 해체의 경험이 보다 평화적이고 통합적이고 번영된 유럽 공동체를 이루는 계기를 만드는데 기여했다는 주장이다.결국 제국의 마지막 거점은 서구의 경제질서와 자유 양심이 적극 수용되고 동양의 자긍심과 민족주의적 야망이 커가면서 그 존립기반을 상실하게된 것이다. 홍콩 반환과 관련,저자는 비관주의자들의 두가지 지적을 소개했다. 첫째는 중국이 홍콩 반환과 관련된 84년의 공동선언을 지킨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또한 그들이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가치를 충실하게 신봉하는 국가들의 박수를 받으며 기꺼이 홍콩을 중국에 이양했고 또 아시아에 최선봉의 민주주의사회를 이룩,그들 주민의 뜻으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수 있는 사회를 건설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그래서 제국은 영광의 팡파레 없이 사라져가도 적어도 ‘마지막 거점’의 숭고한 위업은 간직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동양서 서구제국 소멸 이같은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 이 책은 전체 3부,15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나부끼는 깃발’이라는 제목하에 식민지배가 절정에 달했던 1930년대의 상황을 인도네시아,중국 해안지방,인도지나반도,필리핀,말레이반도 등을 중심으로 기술했다. 2부는 ‘반기’라는 제목으로 1930년부터 1945년까지의 동양 각 신민지의 상황을 나타냈다. 3부는 ‘깃발의 하강’을 제목으로 1945년부터 1976년까지를 대상기간으로 잡고 있다.그러나 실질적인 종말의 시점은홍콩의 중국으로의 반환때로 잡았다. 이 책의 저자 존 키는 주로 인도를 포함한 동양 역사에 관한 서적을 집필해왔다.그의 저서로는 ‘명에로운 회사­영령 동인도회사’,‘인도네시아 ­사방에서 메로키까지’,‘서히말라야의 탐험가들 1820­1893’등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영국의 스코틀랜드에 거주하며 역사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뉴욕의 스크리브너(Scribner)간,397쪽,30달러.
  • ‘팍스 시니카’시대 오나/범화교상권 결속 경제대국 부상

    ◎패권주의 지향땐 세계질서 재편 팍스 시니카(Pax Sinica)홍콩 반환으로 얻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거대한 군사력과 정치외교적인 힘을 얻게된 중국,즉 「대중화」가 21세기 아시아·태평양및 세계평화 질서의 핵으로 역할하게 될 것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미국 러시아의 세력균형에 의해 세계 평화가 유지된 팍스 러소 아메리카나(Pax Russo­Americana)에 이어 팍스 시니카의 시대는 도래할 것인가. 냉전이후 국제사회 최대의 화두였던 「대중화제국」「대중화권」「중국위협론」 등 중국 중심의 신질서론은 1일 홍콩이 중국에 공식 반환되면서 눈앞의 현실로 다가섰다. 「21세기 초강국 중국」론의 근거는 먼저 중국의 경제에서 나왔다.중국은 78년 경제개방정책이후 연평균 경제성장률 9%를 기록했다.2010년 쯤에는 미국의 경제력을 능가하리라는 추산이 있다.여기에 세계7위 무역대국,외환보유 7위,1인당 국민구매력 5위란 우수한 경제성적표를 가진 홍콩이 편입돼 기름을 부은 효과를 낸다.또 99년 돌려받는 마카오,이미 경제적으로 결속돼있고 장기적으로「접수」할 대만,그리고 동남아 화교상권까지 합해져 이변이 없는 한 21세기 세계경제중심권으로 부상할 것이란 게 그 근거다. 중화주의·민족주의에 근거한 아시아 패권 확보라는 내부의 요구를 받고있는 중국은,실제로 경제력에 걸맞는 군사력 확충을 꾀하며 2010년까지 원양함대를 창설하기로 했다.2020년까지 국민소득을 4배로 올리다는 장기비전을 제시한 중국은 조만간 강택민의 연설을 통해 대중화건설을 골자로 한「21세기 중국의 비전」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위협론및 팍스 시니카 패러다임은 설득력을 지닌다.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이 소련이라는 적이 사라진 지금,아시아의 패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우려한 미국과 일본 중심의 서방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내놓은 과장된 시나리오라는 지적도 강하다. 서진영 교수(고려대)는 “대중화제국건설의 가능성이 일면 타당하지만 중국경제의 질적인 문제,또 고속성장이 지속가능한가 하는데는 의문이 많다”고 말한다.양적인 측면을 놓고 본 군사력도 기술력 등에서 미·일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하다는 설명이다.특히 경제의 경우 중국내부에서 가속화되는 힘의 하향분산,즉 지방분권화의 조짐은 이런 팍스 시니카의 가설에 어두운 측면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홍콩의 중국반환은 세계를 새로운 힘의 게임장으로 몰고 가고 있다.중국은 대중화건설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실용적인 외교노선을 펼쳐나갈 것이다.또 중국에 대한 경계강화에 나선 미국 일본은 중국과 경쟁·협력·견제의 다양한 정책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과거 냉전시대의 팽팽한 힘의 균형에 의한 평화와는 다른 차원의 평화질서가 구축된 것만은 틀림없다.
  • 새로운 출발(홍콩 차이나:1)

    ◎‘일국양제’ 새날 밝았다/사회­자본주의 공존 인류 첫 실험/“항인항치 준수땐 성공할 것” 낙관 홍콩의 새 역사가 시작됐다.홍콩은 156년간 계속된 영국지배의 시대를 마감하고 다시 중국의 영토가 됐다.중국속의 홍콩특별행정구로 출범하는 홍콩의 미래는 홍콩뿐 아니라 중국의 미래 및 동북아질서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홍콩의 앞날과 중국의 변화 등을 시리즈로 알아본다. 홍콩의 크라운 운송회사에 다니는 셔레이씨(29·여)는 6월30일이 영국지배의 마지막 날이었지만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그녀는 역사가 바뀌어 중국영토가 되는 7월1일에도 자신의 생활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56년 영 지배 마침표 홍콩의 많은 사람들은 홍콩이 다시 중국의 일부가 되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지만 셔레이씨와 마찬가지로 영국지배 때와 같은 생활을 생각하고 있다.자신들의 미래가 걸린 이 역사적인 변혁을 담담하게 맞고 있는 것이다.그들은 물론 20세기의 제국주의시대를 마감하고 중국 근대사의 굴욕적인 역사를 청산하는홍콩반환을 민족주의적 차원에서 환영하고 있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역사성 보다는 현실적 생활에 더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생활 큰변화 없을것” 홍콩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공존하는 인류 최초의 실험무대이다.중국이라는 사회주의 틀속에 홍콩이라는 자본주의 지역이 통합되는 등소평의 ‘1국가 2체제’ 아이디어가 마침내 현실이 된 것이다.그러한 실험은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민주화된 ‘동구 대혁명’이라는 80년대 말의 역사적 흐름과는 반대의 현상이다. 중국은 물론 홍콩의 자본주의체제를 보장하고 외교·국방을 제외한 홍콩의 자치를 허용한다고 약속했다.중국이 그 약속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홍콩의 미래도 결정될 것이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의 낸시 스미스 논설실장은 “북경 지도자들은 홍콩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그들은 홍콩의 발전이 중국의 번영에 도움이 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홍콩에 대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스미스 논설실장은 중국이 약속을 지킨다면 홍콩의 발전은 계속되고 ‘1국가 2체제’ 실험도 성공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중국의 강택민 국가주석도 29일 ‘1국가 2체제’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겠다고 강조했다.중국은 1국가 2체제의 실험을 성공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홍콩의 발전을 지원하려고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홍콩의 성공은 중국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대만통일의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시위·집회 제한 중국은 그러나 홍콩이 반사회주의 활동의 거점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이때문에 홍콩의 시위·집회와 정치활동을 제한하고 있다.그러나 중국인이며 서구의 자유주의적 가치관을 갖고 있는 홍콩인들이 중국의 정책과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그러한 마찰을 얼마나 최소화하는 냐는 동건화 초대행정장관 등 홍콩지도부의 지도력에 달려 있다.그들이 지도력을 발휘하여 홍콩인들의 서구적 가치관과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킬수 있는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관’을 성공적으로 접목시키면 홍콩의 안정을 가져올수 있을 것이다. ○먼 장래 “아무도 몰라” 홍콩의 안정은‘1국가 2체제’ 실험을 성공시키는 열쇠다.안정이 무너지면 동서양의 가교 역할을 해온 홍콩의 국제적 역할과 홍콩의 번영도 중단될 것이다.그러나 홍콩의 번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공무원인 대니스 라이씨도 단기적으로는 홍콩의 미래를 낙관한다고 말했다.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아무도 모른다고 그는 강조했다.그의 진단은 많은 홍콩인들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홍콩에 새 역사의 장이 열리지만 그것은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를 헤쳐나가야 하는 도전의 시작이다.
  • 미 유권자 외교정책에 너무 무관심/폴 월포위츠(해외논단)

    ◎아시아부상과 연계 중요성 인식을 탈냉전이후 유일한 슈퍼파워인 미국의 국민들이 갈수록 외교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내는 가운데 폴 월포위츠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장은 다가오는 21세기 및 아시아의 부상과 연관지어 이에 대한 각성을 촉구했다.미국 정치계간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에 게재된 그의 「세기에 다리를 놓으며」를 소개한다. 미국에서 지난해 대통령후보 공개토론회때 사회자의 호소가 있고서야 외교분야 질문이 제기됐고 그것도 따지고 보면 주변적인 것에 불과했었다.미국 유권자들이 이처럼 외교정책에 무관심한 이유로 우선 미국 및 미국의 이익과 관련해 세계가 냉전 때보다 훨씬 안전해졌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클린턴 행정부의 외교 능력하곤 상관없이 미국의 이익에 대한 위협은 있는다고 해봤자 예전에 비하면 소소하고 저 멀리 떨어진 감을 주었다. 클린턴 2기 행정부는 딴 일 제쳐두고 국민들에게 이같은 무사태평함은 합당한 근거가 없으며 외교정책은 탈냉전의 현재도 중요하고 여기에 커다란 이해가 걸려있다는 점을인식시켜야 한다.길고도 고통스러운 투쟁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라 긴장이 이완될 수 밖에 없고 거기다 분명한 적도 떠오르지도 않은 마당이라 국민들의 긴장을 죄고 각성시키는 일은 여간 힘들지 않을 것이다.다음 세기로 가는 다리를 놓자는 말이 풍미하는 이때 1백년전의 세기말과 비교해서 금세기말인 현재는 어떤 모습인가를 살펴보도록 하는 것도 각성의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20세기 말과 19세기 말은 묘하게 경제적 번영및 기술 진보에 대한 낙관 그리고 세계평화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1백년을 건너뛰어 공유한다.그러나 평화와 번영에 대한 커다란 희망에 의문점을 찍는 현상에서도 이 두 기간은 닮았다.지난 세기말 세계는 일본·독일 등 신흥 세력들의 출현을 제대로 풀어가지 못했다.오늘날 빈곤을 줄이고 통상을 확대하고 새 중산층을 양산하는 특출난 경제성장은 또한 신흥 경제대국 그리고 덩달아 새 군사대국을 창출하고 있다.특히 아시아에서 이는 명확하다. 아시아에서 작은 나라로 치는 태국·필리핀·베트남 등은 아시아 기준으로 작을 따름이다.6천만 내지 8천만명의 인구는 유럽의 대국과 맞먹으며 유럽 큰나라보다 매해 4∼6%씩 더 급속하게 경제가 성장하는 현 추세를 계속한다면 이들은 20년내지 40년안에 유럽강국을 따라잡게 된다.아시아 큰나라는 어떤가.중국은 통일독일보다 더 큰 지방성이 3개나 되며 인도는 9억인구에 GDP가 1조달러를 넘어섰고 5%이상의 경제성장을 기록한다.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지평선에 떠오르고 있는 통일한국은 유럽강국과 비슷한 크기이며 현재 한국 혼자만으로도 경제대국의 하나로 올라서고 있는 중이다. 중국의 부상은 그 자체로 상당한 문제를 제기한다.그래서 다른 여러 아시아 파워와 함께하는 중국의 부상은 극도로 복잡한 방정식 문제를 내놓는 셈이다.중국의 경우 「아웃사이더(국외자)」라는 불길한 요소가 있고 이는 지난 세기말의 독일과 뚜렷하게 겹쳐진다.독일은 당시 자기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대명천지에서의 자리」가 거부되었고 다른 강국들에게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으며 따라서 민족주의적 공세로서 자기 자리를 찾고자 맘먹었다.물론 19세기말엽의 독일과 20세기말엽의 중국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확신있게 말하기 어렵다.유럽 강국과 일본으로부터 학대받았다는 중국의 생각은 독일의 경우보다 더 뿌리가 깊다.더구나 1차대전 발발에 큰 영향을 끼친 독일의 지도층 전환과 현재 중국의 지도층 교체는 아주 유사하다.20세기는 19세기말의 기대에 맞게 진행되지 않았다.중반경에 이미 역사상 가장 피를 많이 흘린 세기가 되고 말았는데 이 피의 상당부분이 유럽의 독일과 아시아의 일본 등 신흥세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 흘렸다.20세기는 놀랄 정도로 평화의 톤을 띠며 마감을 맞고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유혈이 낭자한 세기였다는 점이다. 미국인은 현재의 무사태평함에 안주하고 있어 외교정책 담당자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막 눈에 띨가말까하는 문제들을 왜 지금부터 심각하게 눈여겨 보지 않으면 안되는가를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것이다.다음 세기가 이번 세기보다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된다면 인류는 살아남지 못한다.반대로 평화가 잘 유지된다면 그 열매는 진짜 달디 달 것이다.미국은 오늘날의 문제가 지금 당장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그 이유만으로 세계를 소홀히 할 그런 여유는 가질수 없다.〈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장/정리=김재영 워싱턴 특파원〉
  • 미국의 새로운 도전/폴 브래켄 미 예일대 교수(지구촌 칼럼)

    ◎낡은 정치·경제제도의 창조적 파괴 관심 2차 세계대전이후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은 미국의 경제적 지위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왔다.미국의 경제는 전후 세계경제를 만들어냈다.서유럽이 전쟁복구를 시작할 필요가 있었을때 서유럽은 미국의 자본을 가지고 시작했다.일본이 60년대 번영을 위해 수출주도형 정책을 시작했을때 목표는 미국의 개방된 시장이었다.그후 한국이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폈을 때도 미국의 시장은 역시 개방돼 있었다.70년까지 미국의 기업들은 전 세계 외국인 직접투자액의 50%를 소유하고 있었다. 미국의 이러한 지배적 경제지위가 지금 사라진 것은 분명하다.그러나 이것이 미국이 쇠퇴해 가고 있는 나라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근본적인 경제·정치적 추세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켜 주고 있다.세계경제의 추세는 아시아부터 남미까지의 국가들이 시장경제체제로 나아감에 따라 더욱 자본주의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또하나의 사실은 특히 기업이 오늘날 미국에서처럼 정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시대에 있어서 미국보다 자본주의에 있어 앞선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 지배는 옛말 미국에서는 정치제도,기업과 정부의 관계구조등 모두가 기업을 장려하지만,정부가 기업의 결정에 너무 깊숙히 개입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미국의 경우 기업의 결정은 정부의 결정보다 훨씬 빠르게 전파되고 있으며 앞으로 몇년안에는 이같은 현상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없을 것이다.이것이 미국을 과거보다 훨씬 기업국가로 만들고 있으며 점점 자본주의적으로 변해가는 세계환경에 잘 적응토록 하고 있다.일본에서는 기업의 힘이 막강하다.너무 강력하다보니 일본경제의 규제철폐와 분산화의 필요성까지 막고 있다.한국에서도 일본과 비슷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기업이 너무 강력해 새로운 상업분야개척을 위한 혁신 능력을 제한할 지도 모른다. ○시장경제 체제 앞서 세계경제는 민간소유,시장체제로 나가고 있지만 미국보다 그 방법을 이끌기에 적합한 나라는 없다.미국의 기업과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돈을 버는 것을고상한 행동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는 종교적신념에 아주 가깝다.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커가고 있는 종교는 돈 버는 것을 신을 즐겁게하는 행위로 강조하고 있는 몰몬교같은 종교다. 최근의 미국 경제활력의 신호들은 많은 기대와는 정반대로 세계에 사실상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이 도전은 경제와 기업의 힘에 근거한 것이며 2차 세계대전이후 초기에 나타났던 미국의 도전처럼 중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당시 미국의 도전은 서유럽국가들을 개방시켜 서로서로를 경쟁하게 하고 미국과도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그러한 미국의 도전으로 서유럽 경제는 완전히 변화됐다.미국의 새로운 도전은 지난 50년동안 유럽에서 만들어진 체제를 견지하며 다른 유형의 경제 모델을 제공함으로써 유럽경제의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불투명한 앞날 여전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를 주도하는 모델국이 되고 있다.러시아·중국 그리고 다른 신흥국가들이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대해 모델국이 미치는 영향은 보다 중요한 정치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새로운 미국의 도전이 가장 영향을 끼치는 곳은 일본과 한국이다.일본에서 미국은 자유시장이 어떻게 보통시민들에게 수준높은 생활을 제공할 수 있느냐를 보여줄 수 있다.한국은 일본보다 미국의 새로운 도전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한국 기업들은 일본의 기업들보다 국가에 의존한 기간이 더 짧기 때문에 경쟁시장에서 더 혁신적일 수 있다. 새로운 미국의 도전은 서유럽·일본 심지어 한국에서 안정적인 정치·경제적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문제는 이들 국가들이 미국의 높아가고 있는 경쟁력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중국이나 다른 국가들이 고도로 경쟁력을 갖추게 되면서 이들 국가에 대한 압력도 커질 것이다.중국과 동남아시아같은 신흥시장들이 제한적인 형태의 자본주의를 채택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라 할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위험성은 다른 나라들이 시대의 기본적인 경제조류와 시장개방 및 자유무역에 반발하는데 있는게 아니다.오히려 이들 나라들이 엄청난 정치적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고 이를 완전히 받아들이는데 있다.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세계경제가 필요로 하는 국제주의와 국가내부의 정치적 결집을 위해 필요한 민족주의 사이의 긴장이 존재하는 과도기에 있다.그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균형이 이룩된 곳은 많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지난 10년동안 균형이 형성돼 왔다.새로운 미국의 도전은 전 세계의 낡은 정치·경제 제도의 창조적 파괴다.하지만 그 다음에 어떻게 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 황장엽씨 서울도착을 보며/최평길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민주체제 포용력으로 감싸자 한국에 온 칠순의 황장엽 비서를 보는 시각은 통일 견해만큼이나 다양하다.우선 황장엽은 그 근본이 철학자이고 그 나름의 민족주의자이며 북한 정권의 소프트웨어라는 것이다. ○권력 소프트웨어 역할 황장엽은 북한정권이 들어선 이듬해인 1949년,그의 나이 26세에 모스크바 대학 대학원과 철학과에 입학하여 1년간 러시아어를 배우고 다시 3년간의 각고 끝에 1954년에 철학 준박사를 받고 귀국하면서 바로 김일성 대학 철학과장이 된다.그리고 김일성파·연안파·소련파들이 권력을 분점하고 전쟁복구 사업에 전력하여 북한 수준에서 학문활동공간이 있던 1956년 김일성대학 창립10주년 기념 논문집에서 학위논문 「부정의 부정 법칙」을 공산북한사회에 맞추어 발표하게 된다. 그 내용은 낡은 사회인 봉건사회가 부정된 것이 자본주의 사회이고,그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모순의 부정이 공산사회이며,공산주의사회 역시 자기부정으로 한단계 높은 자기긍정의 통합단계로 발전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축적되어온 자본주의 사회의 전통문화와 우수한 생산시설은 그대로 계승된다는 발전의 연속성을 인정하고 노동자계급을 공산사회주의에서 또 한번의 자기부정을 통해 단순노동자­피착취자가 아닌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역량을 가진 인간으로 그려내고 있다. 1956년 3월,20차 소련 공산당 대회에서 후루시초프가 밝힌 스탈린 개인숭배와 1인장기집권 비판 입김은 평양에도 들어온다.따라서 6·25전후복구와 경제발전의 지지부진함을 빌미로 소련파·연안파 제휴세력에게 협공당하던 1956년 제3차 노동당 전원회의를 기점으로 김일성은 정치적으로 자주·경제적으로 자립,군사적으로 자위하는 국가를 이루기 위해 주체적으로 자기운명을 개척하고 노동당 주위에 하나로 뭉치자는 주체이론을 정립한다.이 시기로부터 황장엽은 김일성 정권의 정당성에 이론적 밑받침을 제공하고,이를 계기로 그의 나이 40대에 김일성 대학총장,50대에 최고인민회의 의장,60대에 사상담당비서,70대에 국제담당비서로 권력 핵심부에 진입한다.황장엽은 힘있는 집행부서보다는 사상 또는 국제분석 담당 분야에서권력 소프트웨어로서 일해왔다.러시아·중국,과거 동구 공산국가에서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비서는 외무장관,KGB 등 대외부서의 보고서를 종합하는 외교안보의 최고위직이지만 북한에서 그의 당내 권력서열은 20위에 불과하여 김영남 외교부장이나 같은 비서인 계응태,전병호,한성룡 등은 오히려 10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민족주의자로서 고뇌 이렇게 황장엽은 권력 핵심부의 분명한 공산주의 사상가이기는 하지만,북한공산주의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올곧은 철학도였으며,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북한동포를 살리려 북한에서 남쪽으로 온 그나름의 민족주의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또한 그는 6·25전쟁 전인 1949년에 소련에 가서 유학생활을 하고 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에 귀국하여 엄밀한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전범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극우·극화논리 극복을 따라서 황장엽의 망명동기가 민족주의자로서 고뇌와 번민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주체사상은 출범 초기에는 대내외 자주·자위·자립을 강조하는 정리된 하나의 이념체계였으나 70년대 이후 김일성 개인 우상화의 바이블이 되면서 황장엽은 스스로 이러한 변질된 김일성종교에 거리를 두게 되고,김정일은 아버지의 리더십과 차별화를 노리는 과정에서 스승인 황장엽보다는 신세대 황장엽을 대체하려는 것 같다. 그는 공산독재에 항거하여 저항운동을 벌였던 북한판 솔제니친은 아니다.그러나 이제 남한에 오는 그를 북한에서 경험하고 본 바 대로 정직한 북한 현대사를 쓰게 하고 남한에서 보고 싶었던 것을 보게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여,나머지 여생을 조용히 사색하고 집필하며 살 수 있도록 하는 우리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의연함을 보여줄 때이다.그의 망명으로 그의 가족은 물론 12촌 친척까지 숙청이 되었다는 소식이 있고 보면 우리는 그의 인간적 비애를 이해하고,황장엽 리스트 폭로와 국내정국 타개용 카드 사용 그 자체가 국내정치적 이용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동시에 북한정보 획득같은 기술 접근방식보다는 원로철학가,북한전문가,지각있는 정보분석가들로 하여금 그의 대화 파트너가 되게 하여 본인 스스로가 자연스러운의견 개진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황장엽을 보는 극우,극좌 논리를 극복한 우리의 균형감각이 필요한 때이다.
  • CIS장래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알렉산더 바자노프(지구촌칼럼)

    지난 4월 2일 러시아와 벨라루시아는 옛소련 부활의 전조로 보이는듯한 협정을 맺었다.다음달에는 두나라가 각각 통합에 대한 국민여론을 수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토론과정을 거쳐 여론수렴 후 5월3일 두 정상은 공식적으로 협정을 체결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협정 막판에 옐친 대통령이 협정초안의 대폭수정을 요구했고 이 때문에 루카센코 대통령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점이다.이는 바로 옛소련국가들의 모임인 독립국가연합(CIS)의 통합과정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하는 전조에 다름아니다.기본적으로 러시아는 옛소련국가들과 통합하는 쪽을 선호한다.옛소련이 무너지면서 많은 경제난관이 시작됐고 러시아의 35 인종이 분열돼 나갔다.이산가족이나 친구들과의 해후도 어렵게 됐다.관세와 무역장벽,에너지문제 등도 파생됐다.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에 속하는 많은 러시아인들은 초강국의 지위를 상실하고 러시아가 2등국가로 전락한 사실에 무척 애석해 한다.초강국에 대한 미련이 통합을 재촉하는 변수다. ○러­벨로루시 통합 옐친 대통령과 주변사람들은 CIS국가와의 통합을 가속화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옐친은 1991년 소련을 해체시킨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장본인이다.영토가 축소되고 초강국 지위를 상실시킨 연유로 옐친 대통령은 괴로워해왔다.체첸전쟁을 일으킨 것은 애국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다시 세우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그렇지만 그는 전쟁에서 졌다.옐친은 이제 전쟁이 아니라 옛 소련국가와의 통합을 시도하면서 러시아를 강국의 지위로 복원시키기를 원한다.가장 쉬운 목표가 벨라루시아와의 통합이다.벨라루시아는 인종·언어·문화적으로 러시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벨라루시아인들은 「통합=삶의 질의 향상」으로 보며 미래복지의 상징으로 본다. 통합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초안협정」을 맺은 날 러시아의 모든 언론은 통합에 반대한다는 입장에 섰다.옐친의 상대가 루카센코같은 독재자의 초상이라면 반대해야 한다는 소리가 더욱 높았다.옐친쪽에서 보면 초안에 따라 구성될 지도자들이 대부분 반개혁적·친공산주의적 인물이어서 이대로 통합했다간 옐친 자신이 밀려날 수 있는 소지도 있다. 향후 최종문안을 정리할 때 크렘린당국은 CIS의 운명을 배려해야 한다.자칫 설득력이 없는 통합을 추진하면 CIS국가들은 오히려 러시아로부터 이탈할 소지가 많다.벨라루시를 제외한 다른 CIS국가들은 어렵사리 찾은 자신의 주권을 한결같이 강조한다.러시아가 옛소련을 닮는듯한 지도력을 내보이면 매우 민감해지며 러시아가 행여 내정간섭을 할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당분간 갈등 되풀이 실제로 러시아와 CIS국들간의 관계는 악화일로에 있다.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에 넘겨준 크리미아반도를 다시 요구한다.크렘린당국은 흑해함대문제와 무역관계규정,에너지공급문제를 놓고 우크라이나와 실없는 협의만 펼친다.러시아는 카자흐스탄정부가 인구의 36%를 차지하는 러시아인을 박해하는데 못마땅해 한다.역으로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인들이 인종갈등을 일으키며 CIS정책에서 차별당한다고 비난한다.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 카라바흐같은 큰 땅을 놓고 대립을 계속중이며 그루지아는 러시아가 분리주의자운동을 부추기고 있다고 불평한다. CIS국가들 사이에는 당분간 경제·사상·인종·종교·문화·역사적 갈등이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CIS 모든 국가를 휩쓰는 현재의 위기 역시 통합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일단 독립한 CIS국가들은 CIS국경 밖에서 그들 나라에 번영을 갖다주는 파트너를 찾는다.우크라이나와 아르메니아 그리고 그루지아는 미국 등 서방국가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카자흐스탄,아제르바이잔,우즈베키스탄은 터키나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같은 「성공적인」 회교국에 눈길을 돌린다.한국과 일본 중국은 CIS국가가 가장 관계를 가지고 싶어하는 국가군에 속한다.CIS국가간 무역거래가 뜸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러시아의 대외무역에서 CIS국가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20% 정도다.때문에 서방분석가들은 CIS를 가리켜 「영혼이 없는 육체」에 비유하기도 한다. ○상호협조 통해 해결 하지만 나는 CIS의 장래가 비관적이라는데는 동감하지 않는다.많은 문제가 있지만 이 공동체는 미래가 있다고 보여진다.실제로 옛소련국가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또 통합을 필요로 한다.그들은 수세기 동안 한지붕 아래서 살았다.인구구성도 서로 복잡하게 섞여 있다.우크라이나 고위관리의 반이 러시아인이며 그 반대도 그렇다는 예가 있다.매우 유사한 문화적 전통이 계속됐다.지정학적으로도 가깝다.경제도 상호의존적이었다.자원이나 기반시설을 공유했었다.이는 서로 잘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라는 것이다.이들 사이의 군사·정치적인 문제들은 상호협조와 노력을 통해 해결될 것으로 본다.이들의 운명은 상호의존적이며 세계 다른 어느 나라들도 CIS 자신만큼 CIS국가들을 돌볼수 없다.미래의 통합환경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시간과 러시아의 경제부흥이라고 본다.새 국가들이 주권을 공고히 하고 이들의 경제가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 통합에 대한 무게도 분명히 실릴 것이다.
  • 올브라이트 미 국무 미 해사연설

    ◎“미 동아시아문제 적극 개입”/한·중·일 관계 중요… 아태공동체 건설 노력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15일 매릴랜드주 애나폴리스의 미 해군사관학교에서 개막된 연례 외교정책 국제회의에서 행한 기조연설에서 동아시아문제에 미국의 적극적 개입을 주장했다.「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목표와 원칙」이라는 제목으로 행한 올브라이트 장관의 연설을 요약한다. 냉전이 종식됐을때 일부 아시아 지도자들은 미국이 아시아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졌다.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이 여러 차례 명백히 한 바와 같이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세력으로 남아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목표는 외교적 군사적 안정유지와 경제적 유대,그리고 미국의 이상을 전파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하다.우리의 행동은 미국의 이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지역의 항구적 안보는 우리에게 매우 긴요하다.지난 반세기 동안 3차례의 전쟁을 치렀고 이 지역에서의 어떤 국제적 폭력도 우리와 우리 우방의 복리에 위협을 가하기 때문이다.이지역의 항구적 경제발전도 우리에게 유익하다.폭발적 인구성장을 거듭하는 이 지역은 이미 우리 무역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또 이 지역에서 정치적 안정 역시 우리에게 유익하다.우리는 이들과의 협력으로 무기확산,테러리즘,마약불법거래,환경침해 등 새로운 지구적 위협에 대처한다. 우리는 또 세계 최대의 인구 밀집지역인 이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지원하고 인권을 존중토록 도와야 한다.국제경제 체제의 활성화와 정치질서는 상당부분 군사적 안보에 달려 있다.경제 안정화는 위태로운 분쟁을 감소시킨다.이들 요인 각각이 강력하게 받쳐줄 때 전진이 가능하다.그러나 한가지 요인이라도 붕괴된다면 다른 요인들에 미치는 부담은 몇 곱절이 된다. 이같은 이유에서 우리는 이 지역에서 경제성장을 포함한 법치,평화의 공유 등 전반적 이익을 기초로 한 아시아·태평양공동체 건설을 위해 동맹국 여부를 불문하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핵심동맹국들과의 결속을 강화하고 군대의 전방배치를 유지하고 아세안 지역포럼과 같은 새로운 다자간 안보대화를 지지하고 있다.또한 미국의 상품과 기술과 자본을 위해 시장을 개방하기 위한 협정들을 논의하고 있다.그리고 정치적 개방을 위해서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동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들과 긴밀한 쌍무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일본,한국,중국과 특별히 중요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50년전 우리의 선배들은 2차 대전으로 파괴된 일본을 복구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그 결과 위대한 민주주의와 세계 최대의 경제를 이룩한 두 국민의 결속은 어떠한 반대적 요소에도 저해받지 않고 있다.오히려 미·일 협력은 지구상에 평화와 번영과 민주주의와 경제및 정치발전을 위한 것이 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파트너십은 아·태지역에서 미국 역할의 모델이 되고 있으며 아시아 안보에 핵심적 기여를 하고 있다.이와 마찬가지로 한국과의 우호 역시 아시아 안보에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40여년 전 휴전협정 이래 한국은 가난과 폐허를 딛고 경제적으로 발전되고 현대화된 활발한 민주국이 되었다. 오늘날 한미간 연간 무역액은 500억달러가 넘고있으며 우리는 한국정부와 정치적 문제들도 함께 의논하고 있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동맹국으로서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공동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한국과의 동맹은 안정의 기반이자 자유를 수호하는 생명선이 되고 있다.북한은 외부와의 접촉을 늘리면서 개방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앞으로 북한의 군사도발을 막기 위한 정책을 확고히 유지하는 가운데 북한에 대해서는 「협력의 대가」를 분명히 제공해 나갈 것이다.한반도의 장래문제는 한국인들이 결정해야 하며 미국의 역할은 한국의 평화구축 노력을 지원하는 것이다. 21세기 아시아가 나아갈 길을 형성하는데 중국보다 더 큰 역할을 할 나라는 없다.미국에는 중국의 부상을 경계,우리의 정책이 중국을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그러나 그같은 정책은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 분명하다.억제정책은 아시아 동맹국들을 분열시키고 중국을 편협한 민족주의와 군사주의에 빠지도록 부추기는 꼴이 된다.우리의 이익은 분열이 아니라 함께 있을때 이뤄진다.지금 아시아에서 문명들이 충돌하고 있는게 아니다.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새로운 기회를 시험받고 있다.그 시험의 성공 여부는 우리가 상호 이익이 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왜냐하면 우리는 각자의 안보와 번영을 지키는 일이 상대를 패배시키지 않고도 이루어질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이는 우리가 지금 누리는 특권이다.〈정리=나윤도 워싱턴 특파원〉
  • 불확실성의 세계 정세/칼 킨더만 독 뮌헨대학 교수(지구촌 칼럼)

    올해의 국제정세는 여느해와는 달리 불확실하며 불안해 보인다.우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안보체제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확대문제로 서방세계와 러시아간에 갈등과 대립을 보이고 있다.나토안에서는 옛소련 위성국가들을 새회원국으로 받아들이자는 동방팽창정책을 지지하는 회원국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러시아는 나토팽창 움직임을 북아메리카와 유럽에서 자신들을 몰아내고 불이익을 주려는 의도로 보고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동방팽창정책이 러시아에 보상 등을 제공하며 그들의 동의를 얻고 추진될지 아니면 러시아의 동의 없이 진행될지 지금 협상이 진행중이다.세계 2번째 강국으로 엄청난 핵과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는 서방과의 협상에서 새로운 냉전체제로의 회귀와 군축협상 거부 카드로 위협하고 있다.러시아의 결정은 옐친 대통령의 자국내에서의 위치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나토와 협상에서 옐친은 거의 모든 정당들이 러시아 서쪽 국경선으로 나토의 영역을 확대하는데 반대하고 있는 만큼 이들을 이해시켜야만 한다. ○동진정책 협상 진행 서방 전문가들은 러시아 인근 동유럽국가들의 나토편입은 러시아의 불안정한 민주주의에 해를 주고 러시아가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 가까워지는 반면 서방세계와는 한계를 긋는 쪽으로 외교정책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아직 민주주의가 비교적 불안정한 국가들을 영입,나토를 확장하는 것보다 러시아와의 건설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세계평화 증진에 더욱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이처럼 중요한 러시아와 서방간의 관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가 미해결로 남아있는 것이다.오는 5월말에 열릴 예정인 나토 16개국 지도자들과 옐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진전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3월25일 유럽연합(EU) 15개국 외무장관들은 지난 57년 서유럽 6개국 대표들이 로마에서 사실상 유럽을 묶는 유럽경제공동체(EEC)를 만들자는 조약에 서명했던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로마에서 만났다. ○EU통합도 불협음 당시에는 이 조약이 입법 사법 외교정책및 국방분야 등과 관련된 유럽기구의 태동에 영향을 줄 수있을 것으로 믿었다.그후 유럽의회가 만들어졌고 정치적 공조를 위한 유럽국가 회의도 구성됐던 것이다.그리고 지난 91년 마스트리히트 회의에서는 외교와 안보분야에 대한 공동대처 능력을 강화시키는 또 다른 수단으로서 유럽 경제통합과 화폐통합까지 합의했었다. 그러나 며칠전 조약기념일에 열린 EU 외무장관회의에서 중요한 안건에 대해 불협화음이 일었다.특히 영국은 국가의 주권을 제한할 수 있는 외교와 안보의 통합에 대해서 격렬히 반대했던 것이다.최근 보스니아 사태에 대해 유럽이 효과적으로 공동대처하는데 실패한 사례가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해주고있다.또 화폐단위 통합에 참여할 수 있는 국가의 자격기준과 언제 어떻게 통합하느냐 하는 문제도 해결을 보지 못한 상태다. 중동지역의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이 맺은 평화협정도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적인 새정부에 의해 아주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거의 깨진 상태다.분노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새정부가 자신들의 시위를 공격적인 전쟁행위로 간주함에 따라 과거의 자위수단이던 폭력테러행위로 대응하고 있다. 극동의 경우에는 중국이 7월1일 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인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돌려받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에 세계적 관심이 쏠려있다.중국과 대만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새로운 힘과 부를 얻은 중국정부가 보다 공격적인 정책들을 편다면 동아시아는 중국과 대만간 및 서태평양 지역에서의 심각한 긴장고조에 대비해야 한다. ○북 제한적 개방 늘듯 유럽전문가들은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는 조심스런 낙관론을 보이고 있다.북한은 김영삼 대통령과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제안한 4자회담에 참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지난 89년 필자가 평양에 갔을때 만찬에서 단둘이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는 황장엽 노동당비서의 망명은 한국의 지도자들에게는 최근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북한내의 사정과 지배구조 등에 대한 고급정보를 얻을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김정일 지도체제는 북한주민들을 강력히 통제하면서도 제한적이기는 하나외부세계와 접촉을 늘려나갈 것이다.북한의 변화와 함께 세계는 다가오는 한국 대통령선거 진행과정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 중국과의 분쟁이 다가온다(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미 러처드 번스타인­로스 먼로/중의 「아주최강국 패권주의」 경계/군사력 증강·민족주의 우려… 미 적극대응 촉구 시장경제도입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한 중국이니만큼 느리지만 자연스럽게 서구와 비슷한 민주주의국가가 될 것이리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고 경고한 책.특히 미국은 형편이 나아진 중국이 부드러운 용의 미소를 띠고 있는데 안심하다간 나폴레옹의 말처럼 어느날 「이미」 잠에서 깨어난 사자의 발톱에 채이고 말 것이라고 단단히 단속하고 있다. 저자인 리처드 번스타인은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초대 북경특파원을 지냈으며 로스 먼로 역시 캐나다의 글로브 앤드 메일지 북경특파원을 거쳤다.현재 뉴욕타임스 서평담당자인 번스타인은 마침 이 책이 서점에 나올 무렵 등소평이 사망하는 통에 미 주요방송국 대담프로에 인기 중국전문가로 초대되어 「중국의 미소에 속지 말고 숨겨진 발톱을 경계하자」는 자신의 논점을 전파했다.최근 미 대통령 의회선거에 로비성 불법자금을 살포했다는 의혹을 받고있는 중국은 미국에서 큰반향을 얻고있는 이 책을 「편견과 인종적 차별주의에 사로잡혔다」며 강력히 성토하고 나설 정도다. ○중 “인종차별·판견” 성토 저자들의 중국경계론을 살펴보자.지난 4반세기동안 미국의 대중국 정책결정자들과 전문가들 대부분은 중국이 필연적으로 서구처럼 비이념적,실용주의적,물질주의적이 되어 점차 그들의 문화와 정치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믿어왔다.중국에 대한 이같은 비전은 80년대 중·후반까진 그런대로 맞는 말이지만 지금은 낡아빠지고 잘못된 것이다.현재 중국의 여러 행동과 발언들은 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라이벌로 급부상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지금 중국은 1949년 공산혁명이후 어느 때보다 열려있고 국제적으로 상호 연관되어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말이래 등소평의 반은퇴와 함께 국정을 맡게 된 그룹들을 필두로해서 중국지도자들은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목표를 꾸준히 세워오는 중이다.민족주의 감정,과거 역사의 수모를 만회하려는 열망,국제적 대국이고자 하는 욕구 등에 자극되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아시아에서 최강자역을 맡고자 하는 것이다. ○국제문제 사사건건 개입 80년대말이후 중국은 미국을 전략적 파트너가 아니라 자신의 전략적 야망을 가로막은 제일의 장애물로 보게 된다.이에 따라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일본과 미국이 「중국견제」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것을 저지하며 군사력을 크게 증강하고 이 지역 주요항로를 통제하기 위한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의 입지확대를 열심히 꾀해 왔다.말 그대로 거대한 영토,내재된 힘,세계문화의 중화라는 자부심,굴욕스런 약자 취급의 수백년간을 벌충하고자 하는 열망 등이 중국을 아시아 패권쟁탈로 내몰고 있다.이 지역 어느 나라도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는 국제적인 일,예컨대 일본이 동중국해에서 석유채굴권을 갖고자 하고 대만이 달라이 라마를 초대할 때라든지 태국이 미국 함정의 정박을 허용하는 것 등을 할 수 없다. ○연 국방예산 870억달러 아시아에서 최고의 지위를 얻고자 하는 중국의 목표는 어느 한 나라가 아시아에서 압도적인 힘을 보유하는 것은 저지돼야 한다는 미국의 전통적 정책과 상충된다.중국의 군사력 현대화만큼 아시아의 패자가 되려는 중국의 목표와 자기 이미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은 없다.중국의 공식 연 국방비는 최근 87억달러로 2천6백50억달러의 미국,5백억달러의 일본에 크게 뒤지지만 이는 숫자상의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국방에 들어가는 중국예산을 미국식으로 계산하면 최소 공식수치의 열배인 8백70억달러로 미국의 3분의1이며 일본보다 75%가 더 많다. ○중 최혜국대우 중단 필요 결국 저자들은 상당수가 믿고 있는 것처럼 중국이 변화를 거듭한 끝에 평화적이며 자유적인 민주자본주의국가가 되는 대신 『일종의 협조 조합주의적,군사대국적,민족주의적 국가로서 무솔리니나 프랑코의 파시즘과 유사한 체제가 될 것』이라는 아주 도발적인 진단을 내리고 있다.따라서 미국은 중국의 인권문제를 보다 큰 소리로 제기해야 하며 현재의 지도층들과는 「냉정하며 따질 것은 따지는」 관계만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도 중단하고 세계무역기구 가입 역시 들어주지 말아야 하며무엇보다 미국은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시아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중국 견제요충인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반중국적인 이 책에 대해 중국은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미국은 아시아 패권장악에서 「힘센」 중국이 장애가 되리라 싶어 마치 범죄를 저지른 악한이 자신이 기소되기 전에 희생자를 고소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이 책이 주장하는 논지가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다는 평도 많다.그러나 그동안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중국이 「힘세지만 민주적인」 사자로 변신하리라는 시나리오를 선호하던 습관을 한번 짚고 넘어가게 해주는 책이다. 원제는 「The Coming Conflict With China」이며 출판사는 알프레드 크놉(Alfred Knopf),300쪽,23달러.
  • 중,반혁명죄 폐지 검토/안보저해죄 등 11개 항목 월내 신설

    【북경 AFP 연합】 중국은 반혁명죄를 없애고 모든 인민이 법 앞에 평등함을 규정하는 내용으로 현행 공산주의 범죄법을 개선할 계획이라고 6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현재의 15개 반혁명 범죄조항이 없어지고 『국가통합을 저해한다』는 구절이 붙은 국가안보저해죄 및 외국자금 수수죄 11개 항목이 신설될 예정이다. 그러나 지난 79년 입법된 「범죄법」의 이같은 정치적인 수정은 중국 정치체제를 비판하는 대다수 민족주의자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 전복을 선동하거나 중국의 미래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반혁명죄를 자의적으로 적용해왔다. 전인대는 3월 중순께 개정 범죄법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 「등」이후 중국… 나카지마 미네오 기고(해외논단)

    ◎중 사회주의 모순 분출… 체제유지 회의적/강택민 군사력 증강·민족주의 강화 가능성 등소평이후의 중국에는 사회적 모순이 분출될 가능성이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현재의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일본의 중국전문가 나카지마 미네오 도쿄외국어대학 학장이 21일 요미우리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주장했다.그의 칼럼을 요약한다. 중국의 최고 실력자였던 등소평의 죽음은 중국의 현대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해온 등은 모택동 모델의 중국사회를 변혁시킨 지도자다. 등은 3번씩이나 실각하면서도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으며 모택동이 죽은후 78년에는 마침내 화국봉을 밀어내고 중국공산당내 주도권을 확보했다.등은 그후 최고 실력자로 황제와 같이 군림해왔다.하지만 그러한 등의 인치를 비판하는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으며 민주화 움직임은 1989년 6월4일 천안문사태로 발전했다.등은 천안문사건을 철저히 진압하지않은 조자양 당시 총서기를 실각시키고 강택민을 총서기에 임명했다. 등은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이때문에 중국은 등의 사망이후 정치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사회적 혼란을 피할수 있을 것인가 하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그러한 문제들은 장기적으로 큰 불안을 안고 있다.무엇보다도 지금의 개혁·개방정책이 중국민중들에게도 혜택을 주며 등사망이후에도 중국의 경제·사회가 순조롭게 발전해 나가면 그러한 불안은 크게 완화되겠지만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중국은 현재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있지만 많은 사회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압력솥」과 같은 상황이다.천안문사건후에도 개혁·개방정책을 둘러싸고 당내 논쟁이 끊이질 않았으며 민주화운동의 불씨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이때문에 포스트 등시대에 거대한 역사적 변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한 변동은 민주화운동을 다시 고양시키고 농민반란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폭발을 촉발시킬 가능성도 있으며 옛소련과 같이 등이후에 정치적 실권을 쥔 지도자에 의한 위로부터의 「반혁명」이 될 가능성도 있다.그러한 두가지현상이 연계되어 일어나며 큰 혼란없이 공산당독재체제가 조용히 붕괴될지도 모른다.그럴 경우 대만과 홍콩으로부터 불어온 「남풍」의 사회적 침투력도 무시할수 없을 것이다. 최근의 중국 권력중심부에서는 등이후의 혼란에 대비,견고한 위기관리체제를 구축하기위해 등과 거리를 두는 일종의 「비등소평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94년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택민 총서기의 측근인 황국 당시 상해시장 등 이른바 상해인맥이 당중앙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도 그러한 흐름의 반영이었다. 강택민 주석은 지금 당(총서기),정(국가주석),군(국가군사위원회주석)의 3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등에 의해 현재의 지위에 올랐음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그렇기 때문에 강택민은 등의 영향력이 쇠퇴하는 것에 비해 등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지만 그러한 강의 기반강화 움직임에 보수파 원로들과 군지도자들이 어떻게 대응할지도 주목거리다.앞으로 수주에서 수개월사이에 교석 등 최고 지도자들의 권력투쟁이 격화되면 군의 움직임도 주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역사적 흐름인 탈사회주의 조류에 의해 등이 주도한 개혁·개방정책이 가속화되고 있다.그렇기 때문에 등사망후의 중국은 장기적으로 사회주의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21세기에는 「일국다정부」 형태의 중국으로 재편될지도 모른다.오는 7월에 반환되는 홍콩의 운명,대만인들의 정체성 성숙,소수민족의 반란움직임 등이 그러한 전망의 가부를 결정할 중대한 문제다. 중국이 그러한 불확실성의 과정에 들어서면 중국은 군사력을 증강하며 대외적으로 대중화 민족주의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그렇게 될경우 미국과 중국,일본과 중국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일 도쿄외국어대 학장/정리=강석진 도쿄특파원〉
  • 중,남·북한 균형외교 지속될 듯/등소평 사망­향후 한·중 관계

    ◎한반도 평화·안정정책 유지 전망 정부는 20일 『등소평의 사망이 한국과 중국 관계에 특별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유광석 외무부 아시아태평양 국장을 통해 공식입장을 밝혔다.중국은 등소평이 지난 89년 공식 직책을 모두 내놓은 이후 강택민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를 다져왔기 때문에,이미 예견돼온 등의 사망이 현실화된 뒤에도 심각한 정치적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따라서 중국은 앞으로도 남북한에 대한 균형외교를 통해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기본정책을 유지해갈 것으로 외무부 당국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지난 92년 8월24일 수교한 이후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급속한 관계진전을 이룩해왔다.현재 중국은 한국의 세번째 교역국이고,한국은 중국의 네번째 교역국이다.지난해 양국 교역액은 200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또 한국과 중국은 양자관계에서 뿐만아니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시아유럽회의(ASEM),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와 같은 다자간 지역기구에서 협력관계를 쌓아가고 있다.정부는 중국의 중요한 외교목표인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적극 지지하고 있다.한중 관계는 이미 지도자 개인의 호불호와 같은 특수한 사정에 따라 부침하는 수준을 넘어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외무부 당국자의 설명이다.특히 향후 집단지도체제 내에서 중국을 이끌어갈 강택민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이붕 총리,교석 전인대상무위원장 등 세명의 실력자가 각각 95년과 94년,95년 한국을 방문했으며,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도 각각 92년과 94년 중국을 방문했기 때문에 양국 정부 지도자간의 상호 이해도 단단한 기반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중국에서 권력승계의 과도기에는 군부 등 보수파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추세가 나타났으며,이러한 경향은 단기적으로 향후 한중관계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수 있을 것으로 당국자들은 분석하고 있다.등소평 사후 나타날 수 있는 혼란을 막고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중국 지도부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애국주의,민족주의를 고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특히다음달부터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4자회담 설명회 및 본회담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주목된다.전문가들은 중국이 4자회담 추진과정에서 북한이 필연적으로 제기할 주한미군의 철수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민족통일연구원의 신상진 연구위원은 등소평 사망이후 정부의 대중국 외교 과제로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확립 지원 ▲대만과의 관계 개선 신중 ▲한미관계의 틀을 벗어나지 않은 수준에서의 한중 안보협력 추진 ▲중국과의 상호불가침을 내용으로 하는 기본관계조약 체결 추진 ▲북한접경의 길림성 요녕성 등 지방정부와의 교류 강화등을 제시했다.
  • 안보·통일외교 강화 급하다(박화진 칼럼)

    북한붕괴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황장엽의 귀순을 보며 우리통일·안보정책에 대한 독일등 해외지도자들의 충고를 떠올리게 된다.『북한이 당장 붕괴되더라도 주변국 도움없는 한반도 안보·통일은 불가능하다.한국은 북한지배계층의 「대남공포」를 줄이고 그들을 포용하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 경험으로는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이 노력이 부족하다는 충고인 것이다. 『한반도통일을 위해선 우선 국제적 분위기가 먼저 조성돼야한다.독일통일과정에서 느낀 것은 주변국 도움없는 통일은 불가능 하다는 사실이었다.통일은 결코 한나라의 문제가 아니다.독일외교의 핵심은 신뢰구축 정책이었다. 독일통일을 경계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우선 프랑스와의 화해를 추구했고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회원이 됐으며 옛소련·동구와의 협력정책을 추구했다.그결과 유럽국경을 변경할 수 있다는 헬싱키조약을 얻어낼 수 있었다.한국도 주변국을 설득하는 작업을 펼쳐나가야 한다』 독일 통일외교 주역 겐셔 전 외상의 충고다. ○주변국 설득작업 계속해야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가장 큰영향을 받게 될 이웃은 중국이다.중국이 반대하는한 한국통일은 불가능하다.중국과의 관계강화가 중요한 것이다.그러나 미국과의 유대 또한 당연히 확실하게 다져야 한다.독일통일이 미·영·불 동맹체제 위에서 가능했듯이 한국통일도 미·중·일 특히 미국과의 확고한 동맹관계가 없다면 불가능하다.그리고 프랑스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주었기 때문에 독일의 참회가 쉽게 이루어질수 있었다.일본에 대해서도 한국이 먼저 프랑스와 같은 이웃이 되어준다면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슈미트 전 총리의 권유도 겐셔의 그것과 비슷한 내용이다. 독일내무성 동·서독 문화통합 실무책임자인 아커만씨는 한걸음 더나아가 주변국뿐아니라 내부의 두려움도 완화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특히 통일상대인 북한지배계층의 「대남 공포」를 완화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이대목에 대해선 클라크 미 일본학회회장의 글이 보다 구체적이다.통일후 독일에선 과거 동독지배계층에 대한 보복사례가 거의 없었다며 한국도 통일후의 운명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 북한의 일반주민은 물론,특히 지배계층에 대한 최대한의 관용을 약속하는 조치를 선언한다면 통일은 훨씬 앞당겨 용이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북 주민 대남공포 해소를 통일선진국 독일과 맹방 미국 지도자들의 이같은 충고에 접하면서 우리는 그동안 통일 촉진이 아니라 정반대의 지연노력을 해온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그리고 우리의 통일은 외부의 그누구도 거부할수 없는 우리의 당연한 권리라는 생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도 일깨우게 된다.대중 관계는 큰진전을 보인 것이 사실이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경계심을 완화하는 노력은 너무도 소흘했던 느낌이다. 국회일부에서 있었던 「백두산 찾기운동」이라든가 혹은 연변조선족 중국인을 상대로한 민족주의감정 고취 등은 중국의 경계심을 완화는 커녕 자극한 사려깊지 못한 행동이 아니었던가.서독의 폴란드·동독 국경수용에 비교되는 통일후의 한·만 국경준수선언 같은 것은 중국의 경계심 완화에 큰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통일 지연시키는 행동 자제 그러나 지나친 중국접근은 미·일의 경계심을 자극하는 부작용을 수반한다.우리사회 진보계층이나 일부언론의 무책임한 반미 분위기 고취는 결국 우리통일을 지연시키는 결과가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대북관계 등에서 미국의 행동이 옛날같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현재와같은 대일 자세가 우리통일에도 도움이 되는 것인지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과거사반성 문제 등에 대한 시각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수 있는 것이다.감정이나 정서보다는 현실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일·중·러 등 주변4강을 모두 만족시키는 일은 불가능 하겠지만 우리통일에 대한 그들의 경계심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장기적이고 사려깊은 노력과 정책의 우선순위에 따른 추진은 우리통일과 안보의 필요불가결한 전제조건임을 독일지도자 등의 충고는 일깨운다고 할 수 있다.아울러 북한주민들에 대한 배려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황장엽 등의 귀순은 그런 노력의 강화를 재촉하는 경고의 하나라 할수 있다.〈심의·논설위원〉
  • 북 엑서더스 기폭제… 민족사의 대사건/황장엽 망명­전문가 좌담

    ◎군부 입김 강화… 「붉은기 철학」 등 사상통제 수정/김정일에 치명타… 친중 제3권력 등장 가능성 □참석자 ·김창순 북한연구소 이사장 ·유창렬 외교안보연 교수 ·김종일 서울신문 국제전략연 소장 김정일 측근이자 북한의 주체사상 대부인 당비서 황장엽의 예상치못한 망명은 남북한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황이 왜 망명했는지,그의 망명이 북한은 물론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북한문제전문가인 김창순 이사장(북한연구소),유석렬 교수(외교안보연구원)와 김종일 소장(본사 국제전략연구소)과의 좌담을 통해 알아본다.〈편집자주〉 ▲김종일 소장=북한의 거물인 황장엽의 망명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입니다.북한이 황의 망명에 대해 즉각 「불가능한 일」이고 납치라고 억지를 부리는데서 볼 수 있듯이 북한에 준 충격과 당혹감은 이루말할수 없을 것입니다.그동안 김정일의 각별한 보살핌과 북한에서 특혜를 받아오던 황장엽이 왜 북한을 등지고 한국에로의 망명의 길을 택했는지,먼저 탈북동기부터 짚어볼까요. ○망명 의도 오래된 듯 ▲유석렬 교수=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직접적인 동기는 일본 방문목적이 실패한 것에서 찾을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번에 일본을 방문했던 것은 표면적으로는 주체사상연구소의 초청에 참석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식량난과 대일관계의 돌파구를 뚫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북한은 식량지원때문에 황의 방일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이게 무산된 것이고 빈손으로 돌아가게된 황은 면목이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두번째로 김정일의 통치방식에 황이 동의할 수 없게 된 것도 큰 이유로 들 수 있습니다.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폐쇄적으로 나가지 말고 개혁과 개방을 해야한다는 것이 황의 생각인데 이는 김정일의 통치스타일및 사상과는 다른 것이죠.또 주체사상의 수령론은 황장엽의 체계적인 이론에 근거한 것입니다만 김정일이 여기에서 일부 필요한 것은 뽑아쓰고 주체사상을 변질시킴으로써 주체사상이 결과적으로 점점 약화되어갔고 황이 중심세력에서 멀어져 간 것도 그의 심기를 무척 불편하게 했을 것입니다.세번째로 북한사회에 더이상의 희망이나 전망이 없다는 생각도 큰 작용을 했을 것으로 봅니다.암담한 상황에서 도피하기 위해 상당기간 망명을 생각했을 것으로 봅니다. ▲김창순 이사장=그렇습니다.황장엽은 오래전부터 생각을 해왔을 것으로 보입니다.황은 북한에서 혁명1세대도 아니고 일본에서 학교를 나온 사람이죠.김일성시대에 만들어진 이론가인데 지식인인만큼 통치이념면에서 남다른 고민을 해왔을 것입니다.이념정치가이기 때문에 탈냉전시대를 맞아 더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세계 어떤 민족주의든간에 세계사방향에서 일탈한 민족주의가 살아남은 일이 없으니까 황장엽은 주체사상이 탈냉전시대에 살아남을수 있겠느냐고 고민했을 것입니다.시대가 바뀌는 등 모든게 변하고 있는데 북한의 이념은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에 주체사상이란 이념적 토대를 구축했던 그가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느낀 갈등은 대단했을 것입니다.심각한 이념적 갈등을 겪어온 것이 본질적인 탈북동기라고 봅니다. ▲김소장=자세한 망명동기는 그가 한국에 와서 본인의 입을 통해밝힐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두분이 공통적으로 지적하신대로 이념적 면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봅니다.황장엽의 망명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김정일식 사상 준비 ▲유교수=첫째 주체사상을 체계화했던 사람이 망명을 했으니까 주체사상이란 이념의 존재이유가 없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이념의 종언」이라고 할 수 있지요.그런데 현재 김정일에게는 주체사상보다 더 새로운 이념이 필요하게 됐습니다.김일성이 죽은지 3년이 지난 마당에 아버지와 다른,차별화된 이념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고난의 행군정신,붉은사상,붉은기 철학입니다.이런 측면에서 황장엽의 입지를 오히려 약화시키려는 생각을 갖게되었고 실제로 작년에 황장엽을 겨냥,주체사상의 권위와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논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그런만큼 황장엽의 망명은 주체사상보다는 새로운 이념을 끌고가려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봅니다.두번째로 특권지도층에 이념적인 혼란을 가중시키고 갈등을 증폭시켰을 것입니다. ▲김이사장=황장엽의 망명은남북한관계나 우리민족사에서 중대한 사건입니다.유교수께서 이념적인 면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만 북한에서 김일성시대에 입은 이데올로기의 옷을 벗는 작업은 90년부터 시작됐습니다.91년 6월 노동신문에 등장한 민족제일주의를 읽어보면 「민족」이란 말이 220번 나옵니다.김정일시대를 맞아 주체사상이란 것도 낡은 것이 돼서 붉은기사상이란 것이 나왔는데 이는 주체사상과는 미묘한 관계에 놓이게 됐지요. ▲김소장=「믿었던 도끼에 찍힌 격」이 된 황장엽의 망명은 김정일과 북한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을 게 분명합니다.어떤 면에 어느정도의 타격을 주게 될까요. ▲유교수=그동안 김일성부자와 특별한 관계에 있었고 북한에서 특혜를 누려온 황이 망명한 것은 지도층을 동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을 것입니다.그래서 김정일은 앞으로 측근들까지도 충성도를 챙기고 북한 주민들을 더욱 경계하게 될 것입니다. ▲김이사장=현재 북한에서 인텔리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은 약 1백70여만명이 됩니다.북한체제의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인텔리계층이이념의 대부인 황장엽마저 떠난 것을 보고는 얼마나 충격을 받고 동요를 하겠습니까. ▲김소장=북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는 말씀이군요. ▲유교수=그렇습니다.권력지도층이 흔들리면 주민들은 오죽하겠습니까.그동안 북한은 주민들의 탈북을 막기위해 안간힘을 써왔는데 이번 황장엽의 망명은 대탈북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본격화된 붕괴 조짐 ▲김소장=황장엽의 망명은 북한을 발칵 뒤집어 놓았을게 분명합니다.그 충격이 큰 만큼 황의 망명은 김정일의 공식적인 권력승계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당장 16일 김의 55회생일행사가 어떻게 치러질지 궁금합니다. ▲유교수=생일행사야 그런대로 치러지겠지만 과연 승계를 하게 될는지는 두고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당초 계획됐던대로 일이 되어간다면 10월쯤 총비서에 취임하겠지만 총체적인 난국이 심화될 경우는 승계한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김이사장=승계준비는 하겠지만 「정치적 대공황」이라고 할 정도로 그 파장이 너무 큰 만큼 승계를 못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제2의 황장엽이 나오지 않도록 통제를 강화할 것이 분명합니다. ▲김소장=이번 황장엽의 망명은 경제붕괴에서 이념파괴로,그리고 앞으로 체제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이를 북한붕괴의 전주곡으로 봐도 되는지요. ▲유교수=일단 김정일정권의 붕괴조짐이 본격화했다고 봅니다.김정일은 인민무력부를 중심으로 한 사실상의 계엄체제로 국가를 끌어가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입니다.권력을 승계하려면 계엄체제를 풀어야 하는데 계엄을 풀 경우 분출할 사회 전반의 일탈이 두려워 계엄을 풀지 못하고 있고 권력승계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황장엽같은 고위층이 망명을 결행한 것은 북한체제가 더이상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같은 민심이반은 결국 김정일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김이사장=당장 북한정권이 붕괴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붕괴한다면 북한정권이 아니라 김정일정권이 무너질 것입니다.그러나 현재처럼 북한을 돌봐주고 있는 중국이 있는 한 북한정권은 살아남을것이고 김정일정권이 무너진다면 친중국성향의 제3의 권력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소장=주체사상의 대부인 황장엽이 망명한 이후 주체사상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유교수=워낙 오랜 세월동안 유지돼왔기 때문에 황장엽의 망명에도 불구하고 당장 없어지진 않을 것으로 봅니다.현재 김정일은 소위 「붉은 기 철학」과 「고난의 행군정신」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로 보아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점차적으로 퇴색시키고 앞서의 두가지 이념을 자신의 새로운 혁명이념으로 수정해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소장=황장엽의 망명이 향후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유교수=기왕에도 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국면으로 빠질 수밖에 없겠지요.황장엽이 서울로 오게 될 경우 북한은 아마도 이 사실을 왜곡,대남 비난에 더욱 열을 올릴 것입니다.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이 통미봉남 정책을 써온 터여서 더 악화될 것도 없다고 봅니다.하지만 대북 식량지원이나 경제협력같은 것은 당분간 중단될 것으로 봅니다. ○테러 감행 가능성도 ▲김이사장=북한이 황장엽의 망명을 왜곡시킬 것은 자명하고 같은 연장선상에서 남북관계가 더 껄끄러워질 질 것 또한 분명합니다.더 나아가 황장엽의 망명이 북한체제유지를 어렵게 하는 상황으로 발전할 경우 「안되겠다」는 심산에서 DMZ 이남에서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그러나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특히 북한의 뒤를 봐주고 있는 중국이 있는 한 전면전은 어렵다고 봅니다. ▲김소장=황장엽망명 이후 북한의 대내정책에도 적지않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유교수=주민에 대한 철저한 통제와 사상교육이 실시되고 동시에 제2의 황장엽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의 고삐를 더욱 옥죌 것이 분명합니다.특히 군부로 대변되는 북한 강경파의 대남 적대가 강화될 것이며 더이상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협박과 함께 언제든지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준비가 돼있다는 강경발언으로 우리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심복 중심으로 통치 ▲김이사장=군부의 입김이더욱 강화될 것이며 노동당서열에서 황장엽에 앞서는 원로들의 행보가 어려워질 것입니다.그렇잖아도 혁명1세대를 버거워하던 김정일로 하여금 그들을 멀리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해준 셈이죠.김정일로선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심복들을 중심으로 북한을 꾸려나갈 것으로 봅니다. ▲유교수=사실 김정일은 김일성 세대에 부담을 느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형식적으로 예우는 하되 권력측면에선 거세해 나가고 있는 과정이죠.이에따른 혁명 1세대들의 불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황장엽도 김정일에게서 느끼는 소외감이 적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이 이번 망명을 결심하게 한 동기가 됐을 가능성이 많습니다.〈정리=장수근·유은걸 서울신문국제전략연구소 연구위원〉
  • 중 최대명절 설 풍속 변화/경제적 풍요·핵가족화…봄맞이휴가 간주

    ◎가족상봉 뒷전… 올 해외여행객 작년 5배 중국 최대명절인 설날,춘절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고향찾기와 가족·친지들의 상봉으로만 여겨지던 춘절이 경제적 풍요와 핵가족증가속에 봄맞이 휴가라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올 주국 설날은 우리보다 하루앞선 7일.국가공식휴일은 5일이지만 보름가까이 쉬는 회사들이 적잖다.그동안의 유동인구는 총 17억명.긴 휴가를 이용,국내외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북경의 대형 여행사인 국여엔 지난해 300여명이던 해외여행객이 1천500여명으로 늘었으며 다른 여행사들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북경청년보는 보도했다.태국등으로 돌리는 중국여행객이 공항마다 줄을 잇는다고 현지 신문들은 지적한다. 제주도격인 해남도의 호텔방은 한달전 동이났다.국내여행객의 증가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여행사마다 춘절맞이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근교농촌서 1∼3일동안 쉬어가는 프로그램도 인기다.북경에선 춘절을 이용,놀러다니기 위해 차를 세내는 새로운 풍속이 생겨나 변화하는 춘절모습을 실감케한다.북경의 대표적 택시회사인 수도기차공사에선 300대의 택시가 설날휴일을 즐기려는 행락객들에게 예약돼 나간 상태다. 올해는 민족주의 및 전통문화에 대한 강조속에 천안문에 대형 아치 및 등이 설치되고 각 주요기관 및 상점 외벽에도 플래카드들이 설치돼 명절분위기를 돋우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상해 문회보는 상해시민의 절반이상이 춘절은 마음껏 돈쓰고 즐기는 일년중 가장 중요한 소비의 날로 여긴다고 보도했다.그러나 최근 국유기업 개혁직전에 따라 급여를 제때 못주는 공장과 반실업자군이 늘면서 임금대신 한달이상의 휴가를 주는 현상이 는 것도 올 춘절 특징중 하나다.이같은 변화속에서도 식구끼리 모여 만두 빚어먹고 마작과 포커로 밤을 지새우는 중국현대인들의 춘절은 변함없다.
  • 김송죽 소설 「번개치는 아침」(송화강 5천리:17)

    ◎북만일대 조선족 삶과 투쟁 생생히/비적의 약탈에 맞서 결성한 무장지위대/후일 공산군부대 편입… 국민당군 토벌나서/항일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반동으로 찍혀/중국 문혁시기 혹독한 핍박·고초겪어 흑룡강성 화천면 성화향 성화촌에 사는 김송죽 선생(59)은 퇴직교원이다.자식들은 모두 대학을 나와 하얼빈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나가있다.그래서 두 내외가 넓은 한족식 집을 지켰다.그는 80년대 초에 처녀작 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을 발표한데 이어 90년대 초에는 장편실화 「혈전」을 내놓았다.이미 문명을 얻은 그는 요즘 「관동의 밤」이라는 장편소설을 탈고했다. 처녀작 「번개치는 아침」은 그의 부친을 모델로 한 소설이다.광복직후 조선족부대가 비적과 싸운 투쟁의 역사를 그렸다.국민당군 별동대 성격의 비적은 광복직후 북만일대에서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다.공산당을 적으로 싸워야했던 당시 국민당에 북경에서 먼 북만은 사실상 통치지역 밖이었는지 모른다.그런 탓에 국민당을 돕는답시고 나선 별동대속에는 만주국시절 헌병이나 경찰관도끼여있었다는 것이다. ○피땀어린 농토 등지고 유랑 그리고 실제 국민당 비호를 받았다.국민당 제15집단군 총사령 상장 사문동과 제1집단군 총사령 상장 이화당,국민당 동북 정진군 총지휘 중장 장우신이 별동대를 조종했다.당시 그들의 횡포를 고발한 노래말에 「사(사문동),이(이화당),장(장신우)은 불지르고 살인하니」라는 내용이 들어갈 정도였다.북만일대의 주민들은 이들에게 등을 돌렸다.공산당이 일찍 뿌리를 내린 이유도 이들 때문이었다. 이들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마을이 불타버리고 주검이 들판을 덮었다.더구나 조선족은 늘 사냥의 대상이 되어 무참한 죽음을 맞았다.그런 일로 해서 조선족들은 피땀으로 일군 땅을 버리고 다시금 유랑을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이 무렵 조선족 선각자들이 일어났다.무장자위대를 만들어 마을을 지켰던 것이다.그러고 나서 얼마있다가 공산당 군부대에 속속 편입되었다. 그러한 무장자위대 가운데 맨 먼저 공산당 군부대에 편입한 조선독립대대는 1945년 11월25일 연안에서 주덕해와 손을 잡았다.조선의용군 제3지대로 개편한 조선독립대대는 다음해 4월28일 하얼빈에서 국민당군과 싸웠다.하얼빈이 국민당군 손에서 떨어져나오자 당기관과 발전소,송화강철교,비행장 경비를 담당했다가 국민당군 토벌에 나섰다.1946년 9월2일 하얼빈시 향방구 사리툰전투에서는 제3지대 소속 조선족 21명이 전사했다. 김송죽 선생의 부친이자 소설 「번개치는 아침」의 모델 김병념은 광복직후 동북민주연군에 참가했다.제1연대 조선족대대인 제2대대 5중대 1소대에 배속되었다.소대에서 3반장 직책을 맡은 그는 1946년 가을 대대를 따라 흑룡강성 화남현 발전소로 이동했다.그해 11월6일 주변정찰을 나갔다가 국민당군 병력과 교전이 붙었다.그 전투에서 김병념은 대대참모 김해정 등과 함께 전사했다.그리고 얼마뒤인 11월20일 국민당 제15집단군 총사령 사문동이 붙잡혔다.사문동은 12월23일 벌리현에서 총살되었다. 김송죽 선생은 소년시절을 부대에서 보냈다.부친 김병념이 전사한 이후에도 모친이 부대 재봉대에서 군복을 짓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냥 영내에서 살았다.그러다 부대가 북한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모친과 함께 벌리현에 남았다.할아버지 김석길이 아직 생존해있던 때로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애국계몽운동가이자 교육자요,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엄하게 자랐다. ○소년시절 군부대서 생활 할아버지 김석길은 1884년 평남 수난 태생이었는데,1912년부터 계몽운동에 참여했다.3·1운동에 적극 가담한 연고로 지명수배를 받자 제자 9명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넜다.집안과 휘남을 거쳐 왕청에 와서 대종교에 입교하고 북로군정서의 일원이 되었다.그리고 1925년 신민부에 들어갔다.1928년에는 김좌진 장군이 파견한 의란현에서 이도강 등에 4개의 학교를 세웠다. 김송죽 선생이 스무살 나던 해인 1958년에 할아버지 김석길은 흑룡강성 화남현에서 세상을 떴다.그러나 독립운동에 참가한 민족의사들은 대접을 못받고 있다.항일운동을 했으면서도 공산당이 이끈 투쟁대열에 서지 않은 사람은 모두가 배제되었다.오늘날 흑룡강성 항일열사 가운데 민족독립운동가는 한 사람도 없다.물론 김석길 같은 분들도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 후손들은 오히려 모진 핍박을 받았다.더구나 문화대혁명시기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겪어야했던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김송죽 선생은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이유로 반동민족주의자가 되었다.그의 죄목은 반동민족주의자 말고도 역사반혁명분자의 아들,반혁명집단의 두목,반당분자,반사회주의분자 등 10가지에 이르렀다.부친 김병념이 국민당군과 투쟁한 사실도 깡그리 무시해버렸다.부친이 광복전 강제로 끌려가 철도경호대에 있었다는 사실만 들추어 혁명열사가 계급의 적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김송죽 선생 자신이 써놓았던 소설 「번개치는 아침」의 원고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비적토벌을 내용으로 한 것까지는 그런대로 넘어갔으나,김동철·김해정이 조직한 조선족부대를 문제로 삼았다.김동철과 김해정은 본래 항일연군 8군에서 일제와 싸웠다.그러다 1939년 군장 사문동이 일제에 투항하자 숨어있다가 광복과 더불어 조선족부대를 창설했던 것이다.그 뒤에 동북민주연군 제1연대 제2대대에 편입되었던 조선족부대가 1949년북한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을 반동으로 몰았다.문화혁명 당시 중국에서는 북한을 수정주의로 보았던 터라 조선족부대는 반동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농사일 틈틈이 습작 그는 옹골진 4년을 감옥에서 보냈다.모진 매를 맞고 이른바 돌림투쟁을 숱하게 당했다.그래도 푸른 대나무처럼 곧게 살라는 뜻에서 지어준 자신의 이름(송죽)에 먹칠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감옥생활 4년을 버티었다.감옥에서 나온 뒤에도 소설 「번개치는 아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1965년 탈고하고 하얼빈 조선족문화관에 원고를 보내놓은 상태에서 날벼락을 맞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출판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내 문학수업은 어떤 의무감에서 이루어졌디요.청소년기를 할아버지와 함께 하면서리 독립운동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서 그걸 언젠가 정리한다는 생각을 했습네다.할아버지 유언도 일제에 대항한 독립운동과 비적의 횡포를 역사로 기록하라는 것이었디요.할아버지한테 듣고,어렴풋하나마 어려서 실제 보아왔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에서 소설을썼던 것이외다.1957년 벌리중학을 나와 농사일 틈틈이 그런 꿈을 키우면서 실제 습작을 해왔디요.할아버지 유언과 내 꿈은 실로 오랜만에 이루어졌습네다』 김송죽의 「번개치는 아침」은 1983년에 출판되었다.원고를 탈고한지 꼭 18년만에 햇빛을 본 것이다.그에게는 물론 가족사를 문학적으로 정리했다는 뿌듯한 성취감을 안겨주었다.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억속에서 차츰 멀어지고 있는 조선족들의 삶과 투쟁을 복원한 대서사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요즘 탈고한 장편소설 「관동의 밤」도 북만의 독립운동사를 형상화한 것이다.자그마치 75만자나 되는 작품을 출판할 길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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