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시론] ‘아시아 중추국가’의 비전
지나간 1000년을 돌이켜볼 때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조건이 한국의 대외적인위치를 결정해왔다.한반도는 동아시아의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마주치는 접점이었다.
대륙세력인 중국은 한반도를 ‘해양’으로 헤게모니를 확장하기 위한 교두보로 이용하려 하였고,해양세력인 일본은 한반도를 중국대륙으로 진출하기위한 ‘다리’로 인식하였다.
원(元)제국의 일본원정,임진왜란,청·일전쟁,한국전쟁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패권경쟁 각축장이었고,패권확장의 도약대 역할을 강요당해 왔다.우리는 반도가 갖고 있는 지정학적 이점과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 채 비용만을 치러야 했다.
새 천년,새 세기의 대외전략을 수립함에 있어서 우리는 반도라는 지정학적조건에 주목하여야 한다.반도는 기회이자 제약이다.반도는 주변 강대국의 패권확장 교두보와 길목이 될 수도 있지만 사람과 물자와 문화가 모이고 흩어지는 중추(hub)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반도가 제공하는 제약을 최소화하고 기회를 극대화하여 21세기에 우리는 대외적으로 아시아의 정치,경제,물자,문화,교육이 한국으로 모이고 한국으로부터 전파되는 아시아 중추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중추국가(hub state)가 되기 위해서는 패권주의를 지양해야 한다.해양의 강대국인 미국,일본과 대륙의 강자인 중국,러시아 사이에 위치한 한국이 물리적인 패권을 추구하다가는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깨고 다시금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어 민족의 생존을 위협받게 될 것이다.
중추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이 아시아의 평화가 만들어지고 전파되는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패권경쟁관계에 있는 주변 4대강국을 연결하고 중재하여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질서의 수립자,중재자,촉매자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패권국가가 아니라 중재국가·연결국가 (linker state)·촉매국가 (catalyst state)를 지향할 때,우리는 21세기에 한반도 통일을 위한 국제적 지지기반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중추국가가 되었을 때,세계강국의 힘이 교차되고 있는 동북아에서 통일한국이 세계평화의 발원지가 될 수 있도록 하는 통일방식의 디자인이 가능해질것이다.그것은 폐쇄적·공격적 민족주의가 아닌 국제주의,세계평화주의에 기초한 통일공식이다.
한국은 또한 비즈니스의 중추국가가 되어야 한다.동북아의 십자로라는 지리적 이점은 아시아의 물류,금융,관광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자원이다.부산항과광양항을 동아시아의 중추항만(hub port)으로, 영종도공항을 동아시아의 중추공항으로 육성하고,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를 대륙과 일본을 잇는 대륙 연계철도·대륙 연계도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구축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금융,통신, 컨벤션센터 등의 인프라와 국제비즈니스를 지원할 수 있는법,제도, 인력이 마련된 아시아의 금융중심이 되어야 하며, 아름다운 천혜의자연을 활용하여 아시아의 관광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리적 이점만으로는 중추국가가 될 수 없다.중추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와서 살고 싶어하는 한국,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사랑하는 한국이 되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문화가 다양하고 포용력이 있는 나라,정신이 아름다운 나라,매력적인라이프 스타일의 나라,인권이 존중되는 나라,평화를 사랑하는 나라,국제적 책임을 다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중추국가는 패권국가가 아니다.중추국가는 이웃국가 그리고 세계와 더불어살면서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려는 21세기 대외적 국가비전이다.
임혁백 고려대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