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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칼럼] 베이징올림픽 ‘그 후 1년’/박홍환 베이징특파원

    [특파원 칼럼] 베이징올림픽 ‘그 후 1년’/박홍환 베이징특파원

    베이징의 시민단체인 이런핑(益仁平)에서 활동하는 류샤오위안(劉曉原) 변호사의 써우후(搜狐) 블로그는 지난달 28일부터 접속불가 상태다. 20 06년 2월25일 개설해 3년반 동안 400만명 이상의 네티즌이 다녀갔고, 그가 작성한 1400여편의 글에 달린 댓글만 10만개가 넘을 정도로 인기 블로그였다. 그동안 그가 올린 글을 써우후 측이 임의로 삭제해 몇 차례 법정공방까지 가긴 했지만 이번처럼 아예 블로그 문을 닫아버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어떤 이유로도 블로그 공간에서의 언론자유를 침해할 수는 없다.”며 써우후 측에 명확한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시민단체 가운데 하나인 공멍(公盟) 홈페이지도 지난주부터 막혀 있다. 공공이익과 법치주의 구현 등을 주요 이념으로 내세운 공멍은 지난해 멜라민 분유 파동 당시 피해부모 등에 대한 법률지원에 나서는 등 중국 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군 역할을 자임해왔다. 최근 사무실을 압수수색당하고, 단체 대표가 체포되는 등 수난을 겪고 있다. 중국은 8일로 베이징올림픽 개최 1주년을 맞는다. 올림픽 이후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 1500억달러나 쏟아부은 탓에 베이징의 공기는 과거와는 확연히 대비될 정도로 좋아졌다. 몇 년만에 베이징을 찾은 사람들은 “이곳이 진짜 베이징이냐.”고 반문할 정도다. 공공장소에서의 줄서기 등 시민의식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국민들의 자신감 회복이다.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총지휘 속에 진행된 올림픽 개막식은 19세기 중반 제국주의 세력의 침탈 이후 움츠러든 중국인들의 가슴에 ‘대국의 부활’이라는 희망을 던져줬다. 올림픽 직후 찾아온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런 희망을 현실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전 세계가 중국 경제를 주목하면서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실상의 ‘G2’ 반열에 올랐다. 중국인들이 150년만에 대국의 지위를 되찾았다고 기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과연 긍정적인 변화만 있는 것일까. 중국 내 민족주의 경향 확대를 지켜보면서 외부 세계에서는 ‘중국위협론’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까지 나서서 ‘음모론’이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최근 중국의 행보를 지켜보면 중국위협론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느낌이다. 달라이 라마나 레비야 카디르 등 중국에 걸끄러운 인사들과 관련된 국가들을 힐난하는 모습이나 비축한 외환으로 전세계 자원을 싹쓸이하는 풍경 등은 아이로니컬하게도 19세기 중국이 제국주의 열강에 억압당했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내부적으로는 또 어떤가. 최근 들어 부쩍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량해고, 환경오염, 비인도적 처우 등에 대해 시민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곳곳에서 시정을 요구하는 집단행동이 터져나오고 있다. ‘삶의 질’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의 대두는 우리도 이미 1980년대 말 올림픽 직후 겪은 바이다. 문제는 중국 정부의 대응이다. 툭하면 인터넷 등 언로를 봉쇄하고, 시위를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한 관료들을 문책하는 땜질식 처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막는 데만 급급하다 보니 상처는 속으로 곪아터질 지경이다. 중국 중앙 정부는 최근 각 지방 정부에 오는 10월1일 국경절까지 지방 민원인들의 베이징 입성을 저지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대하게 치러야 할 건국 60주년 행사가 민원인들로 인해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심산일 것이다. 베이징올림픽 1년, 중국은 안팎으로 큰 도전에 직면해 있고, 세계는 중국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박홍환 베이징특파원 stinger@seoul.co.kr
  • 덩샤오핑 미망인 줘린여사 타계

    덩샤오핑 미망인 줘린여사 타계

    │베이징 박홍환특파원│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의 21세기를 건설한 덩샤오핑(鄧小平) 전 국가주석의 미망인 줘린(卓林·오른쪽) 여사가 29일 노환으로 타계했다. 93세. 신화통신은 덩샤오핑이 사망한 지 12년 만에 줘 여사도 이날 낮 베이징에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그녀는 중국 공산당이 게릴라군으로서 민족주의자들과 일본군에 맞서 싸우던 시기인 1938년 공산당원이 됐으며 다음해 덩샤오핑과 결혼, 세번째 부인이 됐다. 덩샤오핑과의 사이에 5명의 자녀가 있다. stinger@seoul.co.kr
  • [新아시아시대-한국의 미래] 황석영·김지하 구상 재구성

    [新아시아시대-한국의 미래] 황석영·김지하 구상 재구성

    동북아연합은 한국, 중국, 일본이 전세계의 중심이라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특히 서구열강이 제국주의,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넓히면서 수백년간 변방으로 밀려났던 아시아 지역의 부활에 한국이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동북아연합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는 개념이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일본과 13억 인구를 기반으로 언젠가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인정받는 중국에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그 힘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이같은 연합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섣불리 예상하기 힘들다. 세 나라와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할뿐더러 이 지역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이들 사이에 끼어있는 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논의의 진전 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때문에 동북아 연합은 ‘아세안과 같은 경제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문화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연대가 되어야 한다.’ 등 아이디어 차원에서만 거론돼 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동북아 연합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1970년대 이후 한국 문학계에서 진보진영을 대표했던 김지하(69·작가, 동국대 석좌교수)씨와 황석영(67·작가)씨다. 이들은 풍부한 작가적 상상력을 펼치며 정치·경제적 문제를 뛰어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동북아 연합이 실제로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시해 왔다. 생명·평화를 기반으로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말하는 김씨와 남·북한과 몽골을 중심으로 한 ‘알타이 문화연합’을 주창하고 있는 황씨의 주장은 ‘연합’이라는 대전제에서는 닮았지만 방법은 판이하다. 김씨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문화’를, 황씨는 ‘민족성에 기반한 공감대’를 연합의 핵심으로 생각한다. 물론 공통점도 있다. 두 사람은 본인들의 주장이 학문의 영역으로 승화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현실에 참여할 수 있는 실제 영역에서 평가되고 논의되기를 바란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의 주장은 국내·외 상황에 맞춰 끊임없이 발전하고 바뀐다. 황씨는 “큰 틀에서 우리 민족의 문제를 풀어 보자는 희망적 시각을 제시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동북아 연대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지난 세월동안 내가 펼쳐왔던 동북아 문화연대론은 희망이자 긍정적인 생각의 발로였다.”면서 “북한 문제를 대하는 오바마의 강경한 정책과 중국의 어정쩡한 태도를 지켜보면 당초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이 2000년대 이후 각종 언론 인터뷰와 기고, 학술대회 등에서 주장해온 동북아 시대의 의미와 구상을 재구성해 봤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황석영씨의 주장 “친(親) 한국적인 국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황석영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동북아 연대 전도사’다. 황씨가 주장해온 한반도와 유라시아 연합 구상은 최근 ‘알타이 문화 연합’과 ‘몽골+2코리아’로 구체화됐다. 특히 황씨의 이 같은 구상이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운 ‘신아시아 외교’와 일치하면서 황씨는 이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순방에 동행하기도 했다. 황씨가 동북아 연대를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 자신감은 그의 국제적인 인맥에서 나온다는 해석이 많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몽골의 문화계 인사들과 한국의 가교 역할을 해 왔으며 미국이나 유럽 학자들과도 폭넓게 교류해 왔다. 실제로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황씨에 대해 “한국 문단에서 노벨상에 근접한 유력 후보 중의 하나로 범세계적인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고 있다.”고 전제한 뒤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가장 세계적인 구상을 할 수 있는 작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황씨의 알타이 연합 개념은 민족적인 동질성에 기반하고 있다. ‘몽골의 한 유력 학자가 한글을 자신들의 문자로 수입하자고 제의할 정도로 민족성이 친밀한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황씨의 주장이다. 이를 발판으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6개국과 중국, 일본까지 포함하는 ‘정치적 컨소시엄’이 바로 ‘알타이 연합’이다. 황씨 역시 이 같은 일이 손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들고 나온 개념이 사전 정지 단계인 ‘알타이 문화 연합’이다. 문화예술인과 학자가 앞장서 알타이 문화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서구식 근대 문명의 대안도 찾아보는 작업을 거치면서 서서히 정치, 경제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씨의 이 같은 구상은 그가 참여한 ‘한·중 문학인대회’나 현재 계획 중인 ‘알타이 국제 학술·문화 행사’를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 황씨는 참여하는 국제 모임마다 동북아 작가들끼리 거주지를 맞바꿔 생활하고 작품을 쓰는 레지던스 프로그램 등을 제안하고 있다. 그의 구상에는 동북아 연대의 최대 걸림돌로 꼽히는 남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담겨 있다. 남한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몽골의 광대한 땅에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해 농사를 짓자는 것이다. 그는 “광활한 토지에 옥수수, 밀, 콩 등을 심으면 북한은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남한은 이들 작물의 부산물에서 무공해 연료인 에탄올을 생산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몽골+2코리아’ 구상이다. 동몽골의 개발대상 농지는 400만㏊로 남한 경작지 120만㏊의 세배가 넘는다는 것이 그의 추산이다. 이에 대해 “이것이 바로 한국의 진보진영이 꿈꿔왔던 ‘느슨한 연방제’”라면서 “남북관계가 풀린다면 곧바로 동북 중앙아시아 연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황씨의 또 다른 구상인 ‘유라시아 평화열차’는 남북 철도 연결을 좀더 확대한 개념이다. 파리에서 출발해 서유럽, 동유럽을 거쳐 압록강과 서울을 잇는 유라시아 평화열차가 실제 연합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김지하씨의 주장 황석영씨의 ‘알타이 연합’이 구체적이고 직설적인 데 반해 김지하씨의 ‘동북아 문화연대’는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다. 개념 자체도 추상적이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듣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난해한 용어들이 등장하고, 이미 사멸한 것으로 간주돼 역사책 속에서나 다뤄지던 동학사상도 서슴없이 끌어낸다. 이에 대해 김씨는 “정치학자나 사회학자처럼 현안을 분석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최대한 희망적인 전망을 제시하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김씨만큼 동북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명과 연합에 대해 고민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고 평가한다. 특히 실질적이고 당면한 과제인 개념을 역사 속의 사상이나 세계적 흐름 속에서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왔다. 김씨가 처음부터 동북아 문화연대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1980년 7년간의 옥고를 마치고 형 집행정지로 석방된 이후 그가 처음에 들고 나온 화두는 ‘생명’이었다. 10년 넘게 홀로 생명의 길을 모색하던 김씨는 유라시아 여행을 통해 고조선 시대의 ‘신시(神市)’ 정신이 중앙아시아 국가에 남아 있다는 데 주목했다.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상징하는 상생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김씨의 구상을 본격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는 세계생명문화포럼으로 이어져 전세계의 생태학자와 환경운동가, 사상가, 문화이론가들이 참여해 생명담론을 실천하기 위한 대안적 사회를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 김씨의 구상이 학자들의 학설과 다른 점은 현실의 변화와 긴밀하게 교감한다는 점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의 역사적 대응이 본격화되자 “동아시아 고대사의 르네상스가 세계적 문화 대혁명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한반도와 동북아는 기존 세계를 지배해온 유럽의 생태학, 생물학의 한계를 넘어 우주적 생명학을 창조하고 이를 통해 새 문화로서 풍류(風流), 새 정치로서 화백(和白), 새 경제로서 신시(神市)를 재창조해 민주·자본주의 정치·경제와 이중적 교호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때문에 상고사(上古史)와 동학정신 등을 통해 이 같은 사상을 기저에 갖고 있는 한국민이 새로운 시대의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본격화된 촛불시위는 김씨에게 한국사회에서도 풍류, 화백, 신시 등 세 가지 현상이 모두 나타날 수 있다는 증거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그는 “향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는 거대한 정치·경제·문화·사상적 대변동이 오는데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사상·철학적 대응이 시급하다.”면서 “초창기의 순수한 촛불시위에서 보여줬던 집단 지성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해 동북아 문화 르네상스를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만 김씨의 주장이 동학의 예언론적 사고에 상당부분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그의 주장이 확산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인종·국경 이유로 곳곳서 분쟁… 통합 없인 발전 요원

    인종·국경 이유로 곳곳서 분쟁… 통합 없인 발전 요원

    신(新) 아시아 시대의 첫 번째 과제는 단연 ‘통합’이다. 아시아의 역량을 결집시키지 못한다면 아시아의 잠재력은 ‘죽은 잠재력’에 불과할 뿐이다. 유럽국가들이 유럽연합(EU)이란 거대한 작품을 통해 초강대국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통합’의 시너지 효과에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시아도 이같은 통합의 수순을 밟을 수 있을까. 과연 힘을 하나로 모을 합의의 결정체를 아시아가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시아는 지구촌 6개 대륙 가운데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팩트북에 따르면 세계 10대 인구 대국 가운데 아시아 국가는 중국(1위)과 인도(2위), 인도네시아(4위), 파키스탄(6위), 방글라데시(7위), 일본(10위) 등 6개국에 이른다. ●아시아의 ‘피의 역사’, 그리고 통합 인구가 많은 만큼 아시아의 인종과 언어, 종교 등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중국의 경우 통계에 집계된 민족만 56개에 이른다. 인도의 공식어는 힌두어이지만 지방 언어가 너무 많은 까닭에 영어가 공식어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인도의 각 주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언어만 22개이며 인도 전역에 사용되는 언어는 1652개에 달한다. 인종 구성은 더욱 복잡하다. 인도-아리안족, 드라비다족, 몽골족 등 수많은 인종들이 함께 뒤엉켜 살아가고 있다. 인도를 비롯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 지역의 인종과 언어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다양성은 아시아의 문화발전에 큰 역할을 해냈다. 수많은 종교를 탄생시켰고 아시아를 예술의 중심지로, 더 나아가 문명의 발상지로 승화시켰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피의 역사’도 시작됐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 언어가 복잡하게 서로 얽히고설키며 갈등은 시작됐고 서로 죽고 죽이는 참혹한 전쟁으로 비화됐다. 이런 갈등은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에도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통합은 그렇게 요원해졌다. 영토분쟁과 이념분쟁, 분리주의 운동, 종교분쟁, 테러전쟁 등 다양한 분쟁들로 인해 국제통합은커녕 국내 통합조차 어려웠다.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인도는 종교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파키스탄과 스리랑카로 분리됐다. 힌두교의 국가 인도에서 이슬람교도와 불교도가 독립, 각각 파키스탄과 스리랑카를 세운 것이다. 특히 냉전 시기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 보유 경쟁에 가담했다. 무차별 테러도 계속됐다. 2008년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뭄바이 테러의 근본적인 원인도 파키스탄 계열의 이슬람 무장세력과 인도의 힌두 민족주의의 반목이 주요 원인이 됐다. 대외 관계의 문제만은 아니다. 국가 내부에서도 인종과 언어, 종교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인도는 지역 반군들의 분리주의 내전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6만여명이 사망했다. 스리랑카 내부의 종교 갈등은 세기적 사건이었다. 다수파인 불교계 싱할라족과 이슬람계 타밀족간의 내전으로 50여년간 몸살을 앓았다. 타밀족은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를 조직, 자치를 요구하며 격렬히 저항했지만 결국 정부의 공격에 무릎을 꿇었다. 이 과정에서 7만명이 희생됐고 16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CIA팩트북에 따르면 내전의 여파로 22%의 스리랑카 주민들이 공식적인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이렇듯 아시아의 분리주의 운동은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분쟁을 낳았다. 미얀마는 내전으로 2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인도에서 쫓겨난 파키스탄 난민들이 자치를 요구하며 내전을 했던 방글라데시는 5000명이 희생됐다. 동북아시아는 서남아시아 등에 비해 비교적 치열한 분쟁은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통합을 저해하는 많은 갈등들이 산재해 있다. 한국도 그 대열에 있다. 일본과의 독도 영토분쟁과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는 동북아의 통합을 저해하는 주요 심리적 변수로 떠올랐다. 최근 미사일과 핵문제 등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북한은 동북아 통합 문제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아시아는 이렇게 다양한 역사적 배경과 다양한 민족구성, 종교 문제의 첨예성 등으로 인해 갈등 요인이 항상 상존해 왔다. 이런 불확실한 안보 요인으로 통일된 의사결정을 이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아시아 통합론’은 아직 초기단계에도 근접하지 못했다. ●‘아시아 통합론’ 가능할까. 물론 일각에서는 근대 서구의 제국주의가 아시아의 갈등을 더욱 강화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서구의 국가들이 아시아를 수탈하면서 내부의 갈등을 교묘히 이용, 서구에 대한 적개심을 서로에 대한 반목으로 유도시킨 결과라는 것이다. 가령, 영국은 1905년 ‘벵골 분할령’을 선포했다.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갈등을 이용, 민족적 결집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는 1911년 철폐됐지만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한국전쟁도 미국과 소련 냉전의 대리전 양상을 띠었다. 오랜 식민경험으로 인해 아시아 국가들은 제국주의와 냉전의 잔재들을 안고 살아갔다. 하지만 이제 통합 논의는 과거의 잔재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비록 서구의 제국주의가 분열의 단초를 제공했다 해도 유럽 통합의 선례는 아시아에 큰 교훈이 된다. 유럽도 스페인의 바스크와 아일랜드의 북아일랜드공화군(IRA)의 분리주의 운동으로 수세기 몸살을 앓았지만 통합의 힘으로 지금은 극복 단계에 도달했다. 다민족 국가인 스위스는 국가 공식 언어가 독일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 등 4가지일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가지만 상호 분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신(新) 아시아시대의 서곡은 이렇게 통합의 바탕 위에서 시작된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시론]한족 제국주의와 변강 민족주의/김태승 아주대 중국 근현대사 교수

    [시론]한족 제국주의와 변강 민족주의/김태승 아주대 중국 근현대사 교수

    1957년 중국 전인대 민족위원회가 소집한 민족사업좌담회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화가 한 민족이 폭력으로써 다른 민족을 유린한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반동적인 것이다. 그러나 동화가 여러 민족이 자연적으로 융합돼 번영으로 나가는 데서 이뤄진 것이라면 그것은 진보적인 것이다.” 그는 “현대화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 반드시 이뤄 내야 할 것”이 민족단결이며 그것은 “대(大)한족주의와 지방 민족주의 극복”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심과 주변, 제국과 변강 관계로 설정됐던 소수민족과 중앙정부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재구성해 내지 못하는 한, 중국의 사회주의 현대화는 이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지난 5일 신장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족 충돌은 그런 우려가 아직도 진행형임을 분명하게 드러냈고, 사후 처리과정을 보면 중앙정부의 의지가 어떤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 사건이 중국정부의 민족정책과 관련해 중요한 점은 그 충돌이 ‘국가 권력’ 대 ‘저항적 소수민족’ 사이의 전형적 대립이 아니라 민간에서의 ‘대한족주의’와 ‘지방민족주의’의 대립과 갈등의 산물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신장 지역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위구르인이 처한 상황에 우려를 갖게 된다. 일부 성공한 사람들이 있기는 하나, 삶의 질에서 위구르인들은 자신들의 땅에서조차 중심에서 배제된, 주변적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관광지 주변에서도 위대한 위구르인의 역사를 만나기는 어렵지만, ‘실크로드’를 ‘개척한’ 한족 신화는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그것은 신장을 바라보는 한족의 시각이 식민지 확대에 골몰하고, 그것을 찬양했던 제국의 시선에 머물러 있음을 증언한다. 그래서 위구르자치구는 여전히 한족의 찬란했던 역사를 보여 주고 한족 식민지로 해석되는 제국의 변강으로 비쳐지게 된다. 중국의 서부 대개발 정책과 함께 확대된 시장경제의 신장 침투는 제국적 관점을 더욱 강화해 나갔다. 시장 적응력을 확보한 한족과 그렇지 못한 위구르인 사이의 경쟁관계에서 나타나는 위구르족의 좌절을, 이주해 온 한족들은 ‘게으르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으면서 불만 많은 위구르족의 한계’라는 인종주의적 편견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는 제국의 관점이 시장논리와 결합해 내면화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런 논리체계와 ‘제국의 신민’들이 ‘변방 야만족’을 바라보던 과거 시선 사이에서 차이를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중국 정부는 이 사건에 조직화된 배후가 있다며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1일 상하이에서 나온 한 관변단체 성명서도 ‘테러리즘, 분열주의, 극단주의와 외부세력과의 합작’으로 이 문제의 본질을 정리했다. 이런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외부 영향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영향이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을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성찰이 중요한데, 중국 정부와 사회는 이 부분에서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저우언라이가 지적했듯이 동화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민족을 폭력으로 유린하거나 현실을 은폐해서는 위구르인들이 중국인으로 남아 있기 어려울 것이고, ‘진보적’ 민족문제 해결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제국을 지향하는가. 이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중국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때다. 김태승 아주대 중국 근현대사 교수
  • [新아시아시대-힘 받는 美·中 ‘G2론’] 외교·군사·문화 위상 급부상… 세계가 中을 두려워한다

    [新아시아시대-힘 받는 美·中 ‘G2론’] 외교·군사·문화 위상 급부상… 세계가 中을 두려워한다

    중국은 아시아의 맹주가 될 것인가.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팍스아메리카나’ 대신 ‘차이메리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세계는 중국의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중국은 막강한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세계 자원을 끌어모으고 있다. 대국의 자세가 부족하다는 비난도 쏟아진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은 엄연한 현실이 되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한동안 경제를 비롯한 세계의 주요 현안에 대한 헤게모니는 미국과 중국이 행사할 것이다.” 지난해부터 제기되기 시작한 이른바 ‘G2(미국과 중국)론’의 핵심이다. 중국은 자국을 G2로 대우하는 데 대해 다른 형태의 ‘중국 위협론’이라며 경계하고 있지만 중국의 급부상 속에서 부인하기 힘든 대세론으로 자리잡고 있다. 중국 내부적으로는 이런 대우를 내심 즐기는 기색도 없지 않다. 실제 경제를 필두로 외교, 군사,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중국의 위상 변화는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노’라고 외치는 데서 나아가 공공연하게 “불쾌하다.”는 감정을 쏟아낸다.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독일을 제친 데 이어 일본까지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문화 역량 등 ‘소프트파워’(연성권력) 확충에도 애쓰고 있다. ●높아지는 목소리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중국의 힘은 특히 경제 분야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왕치산(王岐山) 부총리 등은 2조달러(약 2540조원) 가까운 미국 채권 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십분 활용,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내에서 인권문제나 티베트문제 등 중국의 민감한 현안들이 제기되면 어떤 식으로든 반박했다. 올해 2월 발표한 ‘2008년 미국 인권기록’에서 중국은 “미국은 세계 최대 무기 수출국일 뿐 아니라 이라크전쟁으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앗아간 나라”라며 “미국은 다른 나라의 인권을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고 쏘아붙였다. ‘달러 때리기’의 선봉장인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인민은행장은 달러를 대체할 새로운 기축통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 이른바 브릭스(BRICs)의 나머지 국가들을 비롯한 신흥 개발도상국들이 중국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때문에 ‘베이징 컨센서스’가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체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민족주의 대두 1949년 신중국 건국 이후 중국이 이처럼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드높인 적은 없었다. 유력한 차기 지도자로 꼽히는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은 지난 2월 중남미 순방중 “배부르고 할 일 없는 외국인들이 중국을 비판한다.”며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됐다. 실제 중국에서 민족주의 색채는 더욱 농후해지고 있다. 13년 전인 1996년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中國可以說不)을 출간했던 중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지난 3월 속편격인 ‘중국은 불쾌하다’(中國不高興)를 펴냈다. 이들의 논조는 중국이 더 이상 수세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세계를 이끌어 가는 대국의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중국 정부가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며 기다림)를 대국굴기(大國?起·대국으로 우뚝 솟음) 보다 우선시하고 있어 이같은 서적 출간에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많은 중국인들이 이들의 의견에 동조했다. ‘중국은 왜 불쾌한가’ ‘중국에게 모델은 없다’ 등 유사 서적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소프트파워 키우기 소프트파워 확충에도 여념이 없다. 이를 위해 2010년까지 전 세계에 500여개의 공자학원을 세운다는 목표다. 2004년 시작했지만 벌써 324개가 설립됐다. 세계인들의 중국어 교육을 돕고, 중국 문화를 확산한다는 목표의 국가사업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소프트파워 확충을 통한 ‘친중파’ 양성이 숨겨져 있다. 실제 2008년 외교백서에서는 “소프트파워 역량을 키우기 위해 공자학원 설립을 확대하고, 중국어 교사를 더 많이 파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즈핑(胡志平) 공자학원 총부 부주임은 “‘중국위협론’ 등 서방의 잘못된 시각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공자학원의 목적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stinger@seoul.co.kr
  • 美·러시아 곡물 주도권 싸움

    美·러시아 곡물 주도권 싸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등 흑해 연안 국가들을 규합해 ‘곡물 OPEC(석유 수출국기구와 유사한 곡물기구)’을 구축하기 위한 움직임을 나타내자 미국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과 러시아가 전 세계 식량 주도권을 놓고 기싸움에 들어간 모양새다. ●러, 식량위기로 곡물블록 탄력 로이터 통신은 7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된 세계곡물포럼(WGF)에 참석한 미 농무부의 마이클 미치너 해외농업국장의 말을 인용, “러시아가 흑해 연안국가 등을 규합해 곡물 OPEC을 구축하려는 것은 카르텔을 결성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러시아의 신중한 대처를 촉구하지만, 그래도 강행한다면 이는 자유무역에 저해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가 이 구상을 고집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올해 안에 WTO 가입을 추진해 왔다. 러시아가 곡물 OPEC을 추진하고자 하는 명분은 2006~2008년의세계 식량 위기였다. 당시 곡물가격이 2~3배 이상 폭등, 각국이 식량 수출을 줄이면서 식량 민족주의가 ‘뜨거운 감자’가 됐다. 결국 전 지구적 대안이 요구됐고 이 문제를 협의할 수 있는 블록 구성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특히 전 세계 경작 가능 지역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는 이 문제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러시아는 “향후 10~15년 동안 곡물 생산을 50% 증가시키고 수출도 2배 늘릴 수 있다.”고 이점을 피력했다. 최근 엘레나 스크리니크 농업장관은 “세계 곡물 무역에 불필요한 장막을 없애고 곡물 생산을 증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러시아는 이를 위한 시작단계로 이전 소비에트 연방국이자 주요 농업국인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과 손잡아 곡물 저장 상태를 함께 관리하고 항구와 철도 개발을 공동 추진해 수출을 원활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美·러 곡물 분쟁 시작될까 문제는 미국과 러시아간의 곡물 주도권 싸움이다. 러시아는 곡물 가격 폭등을 계기로 최근 자원 문제와 더불어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식량 문제에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중국과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 4번째 밀생산국인 러시아가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와 손을 잡게 되면 세계 식량 생산에 훨씬 강한 통제력을 얻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세계 석유생산의 40%를 점유하는 OPEC이 석유시장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로이터는 “러시아는 흑해 연안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세계로 수출되는 식량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시키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러시아의 식량블록 카드를 못내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다. 한편 이번 WGF에서는 최근 러시아가 제안한 ‘세계 단일 곡물비축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포럼 참석자들은 “이 시스템 실현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정확한 재고 데이터를 만드는 데 몇 년이 소요될 것”이라면서 “설사 그 작업을 진행하더라도 곡물시장 여건상 국제사회가 아닌 지역 데이터베이스 작업에 그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글로벌 시대] 한중일은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해야/남상욱 유엔공업개발기구 서울투자진흥사무소 대표

    [글로벌 시대] 한중일은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해야/남상욱 유엔공업개발기구 서울투자진흥사무소 대표

    1792년 영국왕의 사절 조지 매카트니가 청나라의 건륭제를 만나러 수만리 바다를 건너 황제의 여름 휴양지 열하에 도착했다. 황제를 배알하려는데 굴욕스러운 의전 문제가 생겼다. 황제에게 세 번 엎드리고 아홉 번 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천하의 중심으로 여기던 중국의 위세는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반세기 후 영국은 사절 대신 군함과 대포를 앞세우고 중국을 유린했다. 중국은 서구열강의 도도한 동진정책에 밀리고 심지어 오랑캐로 여기던 일본에마저 참패해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해 갔다. 더불어 중국인의 자존심도 무참히 허물어졌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이런 몰락과정에서 자주독립과 자존심을 되찾자는 운동으로부터 출발했다. 한편 명치유신 이래 서구의 기술과 제도를 도입하여 급속히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은 식민정책도 모방해 조선과 중국을 삼키려 했다. 일본의 민족주의는 망해가는 중국과 달리 욱일승천하는 국력을 배경으로 일본 중심의 아시아·태평양을 건설(대동아공영권)하자는 도전적 열기로부터 배태되었다.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 중·일의 민족주의는 확연히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백년의 잠에서 깨어나 다시금 비상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현재 미국, 일본, 독일 다음 세계 4위인 중국의 경제규모가 2040년쯤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의 군사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 칭다오에서 개최된 해상 열함식은 세계로 뻗어 가는 중국의 군사력을 상징한다. 일본의 민족주의도 우경화 경향을 보이는 전후세대를 중심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전후세대는 과거사를 반성하기보다 오히려 히로시마 원폭과 같이 자신도 과거사의 희생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들은 일본도 정상적인 국가, 즉 정치대국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군사력도 증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 핵문제와 로켓 발사는 일본 우익의 재무장 요구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문제는 부상하는 중국과 경제대국 일본의 민족주의가 경쟁 내지 대립의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일 사이에는 과거사문제, 일본의 우경화와 군비증강, 중국을 겨냥한 미·일 동맹, 타이완문제, 댜오위다오 영토분쟁, 일본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진출 문제 등 난제가 수북하다. 이 모든 근저에는 21세기 아·태지역의 패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도사리고 있다. 중·일 민족주의와 관련, 우선적으로 경계해야 할 두 가지 위험변수가 있다. 첫째, 중국 정부가 중화민족주의를 대내외 정책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외적으로 동북공정의 예와 같이 국제이슈에 민족주의 이념을 투입함으로서 장차 국제분쟁을 자초할 우려가 있다. 대내적으로 중화민족주의와 공산당 장기집권의 당위성을 교묘히 엮어서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장차 민족주의의 열기가 정부 통제를 벗어난다면 예상치 않은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일본 집권당의 우경화와 민족주의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 태도다. 전후 장기집권해온 자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온건, 중도세력은 점차 도태되고 우익인사가 당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우익은 국내 인기저하를 만회하기 위해 과거사, 군사재무장 등을 거론함으로써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있다. 두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한국으로서 중·일 민족주의가 대립하거나 충돌하게 되면 악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중·일 양국의 민족주의가 폐쇄적 중화나 대동아공영권 식으로 흐르지 않고 호혜평등과 근린협력에 입각한 열린 민족주의로 발전해 나가도록 중간자적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 역시 민족주의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는 만큼 우리 스스로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포옹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남상욱 유엔공업개발기구 서울투자진흥사무소 대표
  • [열린세상] 메르코수르, 이름과 현실의 괴리/이성형 외교안보연구원 객원교수ㆍ중남미 전문가

    [열린세상] 메르코수르, 이름과 현실의 괴리/이성형 외교안보연구원 객원교수ㆍ중남미 전문가

    1991년에 아순시온 조약을 맺었으니 만 18년이 지났다. ‘남미공동시장’(Mercosur)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네 나라가 결성한 경제연합체이다. 본격적인 성년기에 접어든 이 ‘공동시장’은 아직도 불완전하다. 4개국은 재정·환율 정책의 조정을 통해 공동시장을 창설한다고 했지만 아직도 미숙한 공동시장이며 사실상 자유무역지대에 가깝다. 관세동맹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예외도 많고 한 나라에 환율 위기가 생기면 바로 무역전쟁으로 비화한다. 최근 경제위기에도 아르헨티나는 보호무역 조치를 강화하려 하고 브라질은 반대하는 형국이다. 2008년에 출범한 남미국가연합(우나수르)도 마찬가지이다. 남미의 12개국이 결합한 ‘국가연합’이란 명패에서 우리는 유럽연합과 같은 정치·경제 공동체를 머리에 떠올린다. 하지만 명패는 미래지향적인 목표일 뿐이다. 매년 모여 정상회담을 열어서 이것저것 논의하는 회의체에 불과하다. 먼 미래의 목표는 있지만 이를 수행하는 제도와 규범은 초보적 수준에 불과한 또 하나의 통합기관일 뿐이다. 남미에는 너무 많은 통합체가 있고, 세 달에 한 번씩 대규모 정상회담이 열린다. 하지만 각료회의나 전문가 회의는 거의 열리지 않는다. 메르코수르든 우나수르든 통합이 심화되지 않는 까닭은 단순하다. 메르코수르의 역내 무역고 비중은 15% 수준에 맴돈다. 유럽연합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다. 비대칭성도 큰 문제이다. 브라질의 비중이 너무 크다. 브라질의 인구가 1억 9000만명인데, 제2위국 아르헨티나는 4000만명에 불과하다. 680만명의 파라과이, 350만명의 우루과이는 거의 중량감을 느낄 수 없다. 이런 비대칭성 때문에 결국 통합체는 브라질이 구사하는 대외정책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브라질의 수출 시장은 유럽연합, 미국, 아시아, 메르코수르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러니 브라질은 메르코수르에 몰입하지 않는다. 임기응변의 불완전한 관세동맹을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역내 확장을 도모할 뿐이다. 메르코수르나 우나수르의 의미는 브라질이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기 위한 하나의 포석에 불과하다. 브라질은 미국, 유럽연합, 중국, 인도, 남아공, 다자기구 등에 외교역량을 많이 투입한다. 그러니 남미 연합체의 제도화와 규범 수립에 적극적이지 않다. 브라질의 리더십도 역내에서 제한적이다. 그동안 메르코수르 내부의 비대칭성에 대한 소국들의 성화는 컸다. 비로소 2006년에야 1억달러 규모의 구조적 수렴기금이 조성되었고, 2008년 연말에 2억 2500만달러로 증액되었다. 하지만 소국들의 입장에서는 새발에 피일 뿐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물티라티나’라 불리는 중남미계 다국적기업의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내무역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현상이고, 경제통합의 효과를 간접적으로 방증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도좌파 정부들이 남미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면서 이들의 활동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대중과 국내기업들의 요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중도좌파 정부들은 물티라티나의 기업 활동을 불공정 경쟁이나 불법 행위로 몰아 규제를 한다. 이미 볼리비아가 가스 산업을 국유화하면서 페트로브라스와 불화에 빠졌다. 브라질은 이타이푸 수자원 이용을 둘러싸고 파라과이와 갈등 관계에 놓여 있다. 아르헨티나는 야시레타 강의 수자원 개발을 둘러싸고 파라과이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고, 우루과이와는 펄프제지 회사의 건립을 둘러싸고 험악한 관계를 연출했다. 에콰도르는 브라질 기업 오데브렉트의 불법 활동을 이유로 채무 관계를 무효화했고, 외교관계가 어려움에 처했다. 통합과 연대에 대한 열망이나 담론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지만 현실에서는 민족주의 열정이 분출하고 국가이익이 앞선다. 이성형 외교안보연구원 객원교수ㆍ중남미 전문가
  • 4월 스크린은 중화권 영화로 물든다

    4월 스크린은 중화권 영화로 물든다

    중화권 스타 감독과 배우들이 몰려 온다. 지난 9일 개봉한 ‘천하무적’과 16일 개봉하는 ‘매란방’, ‘엽문’에서 중국의 역사와 풍광을 만날 수 있다. 자국에서 호평을 받은 기대작들인 만큼, 국내에서도 큰 호응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가장 먼저 스크린에 걸리는 작품은 ‘천하무적’(감독 펑 샤오강). 관용어로 쓰이는 ‘하늘 아래 대적할 상대가 없다.’(天下無敵)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하늘 아래 도둑이란 없다.’(天下無賊)는 뜻이다. ‘천하무적’은 대륙횡단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소매치기들의 집단 대결을 다룬다. 티베트에서 일하며 결혼자금을 모은 청년 사근(왕바오창)은 드디어 고향행 기차에 오른다. 그러나 기차에는 소매치기 커플 왕보(류더화)와 왕려(류뤄잉)뿐만 아니라, 도둑 호려 일행까지 타고 있다. ‘도둑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믿는 사근은 그들에게 경계심을 품지 않는다. 왕려는 사근의 순박한 꿈을 지켜 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근의 돈을 훔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야연’, ‘집결호’의 펑 샤오강 감독은 뛰어난 연출력으로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끊임없이 안겨 준다. 티베트의 광활한 대지와 아름다운 사원들을 만끽할 수 있다. 웬만한 무협영화 콧대를 꺾어놓을 만큼 재기 넘치는 소매치기 액션과 두뇌싸움도 매력적이다. 게다가 홍콩 인기 배우인 류더화의 천연덕스러운 도둑 연기, 10회 홍콩금자형장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류뤄잉의 호연 등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2004년 중국 개봉 당시 150억원의 흥행 수익을 올린 작품이다. 12세 이상 관람가 ‘엽문’(감독 예웨이신)도 만날 수 있다. 리샤오룽의 스승이자 중국 무술인 영춘권의 전설적 고수 엽문의 인생을 담았다. 1930년대 중국의 불산은 무술가들의 메카로 성황을 이룬다. 최고의 무술 실력으로 명성을 떨치는 엽문(전쯔단)은 그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화목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불산은 일본의 지배하에 놓인다. 일본의 비열한 술수에 죽어가는 무인들이 늘자, 엽문은 제자를 받지 않겠다는 신념을 버리고 민족자존심을 찾기 위해 무예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엽문’은 중국에서 존경을 받는 실존 영웅의 일대기를 흡입력있게 담아 냈다. 예웨이신 감독의 전작 ‘용호문’, ‘도화선’에서도 함께 호흡했던 액션 스타 전쯔단은 실제 엽문의 아들 엽준에게 전수받은 영춘권을 실감 넘치게 펼쳐 보인다. 무술의 진수를 보여 주는 현란한 몸놀림은 예술의 경지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자국 관객들의 높은 호응에 힘입어 현재 ‘엽문2’의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후속편에서는 엽문이 홍콩으로 건너가 영춘권을 대중화시키는 에피소드가 전개될 예정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매란방’은 1993년 고 장궈룽 주연의 ‘패왕별희’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천 카이거 감독의 작품이란 점에서 시선을 끈다. 중국대표 경극배우 매란방의 예술혼과 사랑을 다루었다. 경극가문에서 태어난 매란방(리밍)은 시대를 앞선 무대 스타일로 관객을 휘어 잡는다. 스승을 넘어 경극계 일인자로 부상한 그는 남장 경극배우 맹소동(장쯔이)을 만나면서 운명적 사랑을 나누게 된다. 영화는 1920년대 후반 중국인 최초로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고, 1930년대 후반 일본 치하에서 공연하기를 거부한 매란방의 위인적 면모도 빼놓지 않는다. ‘패왕별희’의 광휘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매란방’은 다소 밋밋하게 다가온다. 매란방의 일대기를 연대기순으로 나열하는 데만 치중해 극적인 묘미나 캐릭터의 생동감을 살리지 못했다. 지난 2월 59회 베를린 영화제 상영 당시 147분이었던 상영시간이 국내 개봉에서는 118분으로 줄어들면서 편집이 매끄럽지 못하게 이뤄졌다는 의견도 많다. 12세 이상 관람가. 한편, ‘엽문’과 ‘매란방’은 실존인물의 삶을 영화화한 팩션이란 점에서 중국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1920~30년대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을 당시를 배경으로 해 애국주의·민족주의적 색채가 짙다는 점도 비슷하다. 두 작품 모두 최근 주연 배우들이 직접 방한해 예열까지 해놓은 만큼 얼마나 흥행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화제의 책 ‘불쾌한 중국’ 중국인들 왜 열광할까

    화제의 책 ‘불쾌한 중국’ 중국인들 왜 열광할까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이달 초 출간된 ‘불쾌한 중국(中國不高興)’이라는 책에 중국인들이 열광하고 있다. 출간 보름 만에 텅쉰왕(騰訊網) 등 각종 포털사이트 책 코너의 인문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물론 전체 도서 목록에서도 1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큰 시대, 큰 목표와 우리의 내우외환’이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책은 새로운 시대, 중국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국은 왜 불쾌한가?’ ‘중국의 주장’ ‘작은 자비심을 내던지고 위대한 목표를 빚어내자’ 등 3부분으로 이뤄진 이번 책의 요지는 중국이 더 이상 엎드려 있지 말고 큰 나라답게 세계를 이끌자는 것이다. 13년 전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中國可以說不)’을 출간해 중화 민족주의의 불을 댕긴 쑹창(宋强)과 봉황위성TV 군사평론가 쑹샤오쥔(宋曉軍), 사회학자 황지쑤(黃紀蘇) 등 5명이 공동 저술했다. 중국인들이 이 책에 열광하는 것은 중국이 군사력 팽창과 경제대국화, 티베트 문제 등으로 서방세계의 타깃이 되고 있는 현실적 정세와 무관치 않다. 이 책의 저자들은 중국이 더 이상 수세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세계를 이끌어 가는 대국의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인 쑹창 등은 24일 국제선구도보(國際先驅導報)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걸을 수 있는 중도노선은 없다.”며 “중국은 충분히 세계를 이끌 능력이 있다.”고 역설했다. 13년 전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이 ‘치국(治國)’을 거론했다면 이번 책은 ‘평천하(平天下)’를 주장하는 셈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달라이 라마 면담 이후 조성되고 있는 중국·프랑스 관계악화에 대해 프랑스에 대한 ‘징벌외교’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등 노골적인 표현이 적지 않은 데다 최근의 사건과 뉴스를 인용해 직설화법을 사용한 것도 책의 인기비결로 꼽힌다. 베이징의 한 독자는 “저자들은 중국의 세계제패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중국인이 정정당당하게 일어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며 “중국은 세계에 큰 공헌을 하는 대국으로서 엄연히 발언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stinger@seoul.co.kr
  • “민중이 역사 주체로 떠오른 3·1운동 세계 反제국주의 투쟁 선봉장 역할”

    “민중이 역사 주체로 떠오른 3·1운동 세계 反제국주의 투쟁 선봉장 역할”

    3·1운동 90주년을 앞두고 동아시아와 세계사의 맥락에서 3·1운동을 재평가하려는 학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전세계적으로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이 극렬했던 시기에 일어난 3·1운동은 한국 독립운동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높이 평가해야 할 역사적 사건이라는 자각의 목소리가 드높다. 이와 함께 3·1운동을 기점으로 역사의 주체로 전면에 나선 민중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논의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범세계적 이상과 지향점 제시 김희곤 안동대 교수는 “3·1운동은 세계 반제국주의 투쟁의 선두주자로서 인류가 지향해야 할 범세계적인 이상과 지향점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새달 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하는 ‘3·1운동 90주년 기념 국제 학술강연회’를 앞두고 미리 배포한 발제문에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세계사적 의의를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세계 식민지 해방투쟁사에서 우뚝한 위상을 갖는다. 국가를 세우고 정부 조직을 구심점으로 삼아 무려 27년 가까이 투쟁한 사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3·1운동은 바로 그러한 역사를 만들어내는 시점이자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세계 개조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나선 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강연회에선 겅윈즈 중국 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연구원이 ‘중국 근대사와 5·4운동의 역할’, 마쓰오 다카요시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가 ‘일본의 1919년과 다이쇼 데모크라시’, 토머스 녹 미국 서던 메소디스트대 교수가 ‘윌슨의 이념과 세계질서’를 각각 발표한다. 한국근현대사학회가 27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최하는 ‘3·1운동의 세계사적 맥락과 해외 한인사회’ 학술대회에서도 3·1운동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민족운동으로만 평가해선 안돼 3·1운동을 통해 부상한 ‘민중’에 대한 재평가도 주목을 끈다. 김희곤 교수는 “3·1운동은 전통적인 피지배계급이 아니라 민중이 새로운 국가와 정부조직체를 요구했고, 이에 맞춰 임시정부가 조직돼 한국 역사에서 최초로 민주공화정 체제가 등장했다.”면서 “구성원 거의 모두가 참가한 저항은 곧 민중의 결속력을 보여주는 것이자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강조했다.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등이 26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최하는 ‘3·1운동, 기억과 기념’학술대회에선 역사의 주체로서 역량을 보여준 민중의 부상과 그들의 기억 속에서 새롭게 탄생한 근대 시위 문화 등에 대해 토론한다. 주최측은 “그간 3·1운동에 대한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3·1운동 배경, 전개과정, 영향 등에 국한되어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오로지 하나의 결론, 즉 거족적인 민족운동으로만 평가했던 점을 극복하고자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학술 심포지엄은 좌와 우, 남과 북이라는 권력 주체의 기억과 기념 방식, 대중적 상징성을 갖는 유관순 영웅 만들기의 역사, 역사 교육을 통해 재구성된 3·1운동의 기억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3·1운동의 기념이 관성화되고, 타성화되는 데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대한민국 극&극] 最古 재외공관 美 LA총영사관 vs 最新 재외공관 키르기스스탄 대사관

    [대한민국 극&극] 最古 재외공관 美 LA총영사관 vs 最新 재외공관 키르기스스탄 대사관

    지구촌 곳곳에서 국익수호의 최전방에 나가 있는 재외공관들. 세계 금융위기와 자원 민족주의가 심화되는 가운데 재외공관의 역할과 비중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해외에 주재하는 우리 대사관·총영사관 등 재외공관은 지난해 말 현재 153개다. 188개국과 수교를 맺고 있지만 인근 국가들을 겸임하는 공관이 있어 공관 수는 수교국가 수보다 적다. 재외공관 탄생의 역사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난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8월 미국과 수교를 맺은 뒤 가장 먼저 신설된 재외공관은 주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관이었다. LA 총영사관은 워싱턴 주미 대사관보다 4개월이나 빠른 1948년 11월21일 문을 열었다. 반면 중앙아시아의 주 키르기스스탄 대사관은 지난해 하반기 개설이 결정된 6개의 재외공관 가운데 하나로, 지난해 10월 문을 열고 올 들어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올해로 개설 62년째를 맞은 주 LA 총영사관의 김재수(51) 총영사와, 탄생한 지 3개월을 갓 넘긴 주 키르기스스탄 대사관의 초대 공관장을 맡은 김병호(55) 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최고(最古)·최신(最新) 재외공관의 역할과 애환, 새해 포부와 바람을 들어봤다. ●김재수 LA총영사 지난해 5월 특임공관장으로 부임한 김 총영사의 별명은 ‘발총’이다.‘발로 뛰는 총영사’로 평가받는 동시에 그렇게 더 열심히 하라는 뜻에서 지어준 별명이라고 한다. “LA 총영사관은 대한민국 전체 재외공관 가운데 가장 오래됐을 뿐 아니라 규모 면에서도 주요국 대사관을 제외하면 최대 수준”이라는 김 총영사의 설명에서 LA 총영사관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총영사는 외교통상부 역사상 재외동포 출신이 현지 공관장으로 선임된 첫번째 사례다. LA 총영사관은 ‘코리아타운’ 등을 중심으로 맡고 있는 관할지 내 한인동포만도 70만명에 육박한다. 영사 및 현지 행정직원도 50여명이나 된다. 우리나라 재외공관 중 가장 큰 민원실을 운영하고 있다. 민원 창구도 14개나 된다. 관할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인회 등 동포단체만 해도 250여개에 이른다. 김 총영사는 “지금은 규모도 크고 인력도 많지만 1948년 개설 당시에는 LA 다운타운의 한 빌딩 4층에 방 2개를 빌려 시작했다고 한다.”며 “당시 LA에는 초기 이민자를 중심으로 한인이 1000여명쯤 있었다.”고 말했다. LA 총영사관이 문을 열자마자 290명이 재외국민으로 첫 등록한 기록이 있다. 워싱턴의 정무적 업무보다 LA의 교민 업무 중요성이 부각돼 공관도 먼저 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관 개설 초기에는 한인들을 위한 사랑방 구실도 했다고 한다. 찾아오는 유학생들에게 밥과 김치를 대접하느라 빠듯한 살림살이가 더욱 쉽지 않았다는 당시 총영사관 직원들의 증언도 남아 있다. LA 총영사관이 지금과 같은 위용을 갖추게 된 것은 지난 1972년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 안필립씨가 한국 정부에 건의, 당시 16만달러를 들여 관저를 매입하면서 시작됐다. 김 총영사는 “현재 LA의 전통 고급 주택가에 있는 관저는 300만달러가 넘는다.” 며 “공관 건물은 그 뒤로 몇 군데 임차를 더 거쳐 서울올림픽 직후인 1988년 10월 현재의 건물로 입주했으니 벌서 2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LA 총영사관을 거쳐간 총영사만 해도 17명이나 된다. 이들 중에는 이승만 정부의 초대 교통부 장관을 지낸 민희식씨와 노신영 전 국무총리, 김항경 전 외교부 차관 등이 있다. 외교부뿐 아니라 법무부·경찰 등에서 파견돼 근무했던 직원들까지 서울에서 정기 모임을 한다. 이들은 1992년 4월 발생한 LA 폭동에 따른 한인타운 피해 등 이민사의 희로애락을 함께 겪었다. 이는 오늘날 LA 총영사관의 역사가 됐다. LA 총영사관은 개설 당시 소수 민족으로 미국에 정착한 교민들을 위한 업무 뿐 아니라 한국을 제대로 알리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 미국인들이 한국을 일본의 속국 정도로 알고 있었던 탓이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내 최대 규모의 한인 동포사회를 담당하면서 그들이 최근 경제위기 등 어려운 상황을 헤쳐가는 데 도움이 되도록 뛰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라고 한다. 지난해 10월부터 한인상공회의소와 함께 ‘한인타운 경제 살리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의 미국 내 지지를 위해서도 가장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김 총영사는 부임 후 FTA 관련 연방 하원의원들을 면담, 지지를 요청해 왔다. 또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VWP), 한·미 대학생 연수취업(WEST) 프로그램 시행에 따른 양국간 인적 교류 지원도 큰 과제이다. 김 총영사는 “재미동포가 이 땅에 정착한 지 100년이 지났으며 동포사회 주역도 이민 1세대에서 2세대, 3세대로 넘어가고 있다.”며 “동포사회의 미국 내 정치력 신장, 흑인·라티노(미국에 사는 라틴 아메리카계 시민) 커뮤니티와의 화합 등 다양한 과제를 잘 풀어갈 수 있도록 적극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미간 재화·서비스 유통이 활발해지고 수출도 늘어나도록 한·미 FTA 비준을 적극 지원하고 우리 기업과 지방자치단체 등을 미측과 연결하고자 한다.”며 “지난해 말 열린 한 바자회에서 남녀 운동화 두 켤레를 기증했는데 운동화를 신고 산책하며 건강도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말했다. 올해도 재외국민과 한·미 양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더 열심히 뛰겠다고 다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김병호 키르기스스탄 대사 “이 달부터 본격적인 영사 업무를 시작했고, 대사관 홈페이지도 이달 하순쯤 선보일 겁니다. 외교통상부 홈페이지와도 연결될 것이고요.” 중앙아시아 5개 공화국 중 이름도 생소한 키르기스 공화국(통칭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 지난해 10월 초 혈혈단신 도착, 2개월여 만인 12월 중순 공관 공식 개관 행사를 마친 김 대사는 지난 3개월여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분주한 나날들을 보냈다. 이미 활동 중인 다른 공관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소수의 직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하나씩 풀어가느라 하루도 쉬지 못했다고 한다. 공관 건물도, 관저도 없는 타국 땅에서 맨손으로 시작한 것이다. 사람을 채용하는 것도, 팩시밀리 1대를 놓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키르기스스탄에는 20세기 초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당한 한인인 고려인이 2만명이나 살고 있고, 최근 에너지·자원 거점 지역으로도 부각돼 지난해 7월 공관 신설이 결정됐다. 키르기스스탄은 중국과 인접해 우리 기업들이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는 교두보로 중요하다. 또 키르기스스탄을 상대로 한 자원외교는 석유·가스도 중요하지만 수송이 가능한 희귀광물 등에 대한 협력이 더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김 대사가 초대 공관장으로 선임돼 현지로 날아간 것은 공관 신설 결정이 있은 지 3개월 후. 공관 개설을 준비할 임시 공간을 얻어 직원 2명과 함께 업무를 시작했다. 우선 공관 건물 확보가 관건이었다. 김 대사는 “다른 나라들은 대사가 현지에 부임하기 전에 공관이 개설되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는 대사가 가서 공관이나 관저 건물을 물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현지에 가서 빨리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데 제도적으로 후진적인 면을 벗어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대사는 또 “당시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수습 비서의 실수로 대사 부임 후 가장 중요한 일인 해당국 대통령에 대한 신임장 제정일을 뒤늦게 알게 돼 신임장도 겨우 제정했다”며 아찔했던 순간도 회상했다. 그래도 현지 교민들과 고려인들의 열렬한 환영이 큰 힘이 됐다. “우리 교민들이 공관 개설을 굉장히 기다렸던 것 같아요. 늦게 열게 된 만큼 그 분들의 기대도 높아서 그에 부응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 대사는 개설 준비 2개월여 만에 다른 부지를 확보해 공관 건물을 지으려는 계획을 접고 임시 공간을 확장, 사용키로 결정했다. 공관 신설에 드는 시간을 줄여 하루빨리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이어 대사관의 공식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12월22일 국립오페라극장에서 한인단체장, 국회의원, 유학생 등을 초청해 기념음악회를 열었다. 음악을 공부하는 유학생들이 연주하는 한국 가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대사관 개설을 축하했다. 김 대사는 “키르기스 국회의원 등 현지인들과 함께 우리 노래를 함께 불렀는데 한국어와 키르기스어가 교착어로서 언어구조가 같을 뿐 아니라 발음도 비슷하다는 것을 체감한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새해 들어 업무가 활성화하면서 현지인과 고려인 등 행정직원 채용도 시작하는 등 대사관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나가고 있다. 추후 여건이 되면 새 건물을 찾아 이사하거나 부지를 얻는 것도 추진키로 했다. 김 대사는 “건설·자원 개발 등 사업과 학업, 선교 등을 위해 800~1000여명의 우리 국민이 이곳에 정착, 생활하고 있으며 영향력도 더 커지고 있다.”며 “어느 우리 기업인은 ‘이곳에 2년째 나와 있는데 인·허가 문제 등이 힘들어 20년은 지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했는데 공관이 이런 문제도 적극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사는 또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은 비슷한 점이 많은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나라가 이룬 발전 경험과 가치를 공유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인적 교류도 확대해 서로 도우면서 함께 발전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키르기스스탄 초대 대사로서 양국 관계의 발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그래픽 김선영기자 ksy@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 가기] “미네르바는 박모씨가 아니라 금융계 7인 그룹” “아기접종비 20만원로 밀린 대부업체 이자 갚았어요” [씨줄날줄]인사청탁해 패가망신한 경우 못 봤다 ‘시들시들’ 발기부전은 정말 나이 탓일까? ‘승부사’ 한화 김승연 이번엔 패 접나 명절 앞두고 암행감사 비상령…관가 ‘덜덜’
  • “왜 나라가 이렇게 됐나 파고들어야”

    “왜 나라가 이렇게 됐나 파고들어야”

    l케임브리지(영국) 이종수특파원l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는 여전히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대공항 이후 지구촌 최대의 위기라는 이 카오스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해법은 무엇일까? 혼돈의 와중에서 지난 6일 장하준(46)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만났다. 그는 금융 위기가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 준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이 위기를 계기로 한국 경제가 실물 경제를 튼실히 해서 역동성을 회복해야 한다며 지난 10여년간 맹목적으로 추종해온 신자유주의 노선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아울러 혼돈을 겪고 있는 진보진영에는 전통적인 좌·우파의 틀에 갇히지 말고 유연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을 것을 당부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전문. 어떻게 지내세요?  =글쎄요 뭐, 저야 공부하는게 직업이니까 공부 계속하는 게 제일 중요하구요. 저같이 정책 관련 연구하는 사람들은 정책 입안자들과 대중들과 많이 소통해야하잖아요. 그래서 기회있으면 여기 저기 가서 강연도 하고 언론에 기고도 하고 가끔 한국 라디오에 출연해 제 생각을 알리고 합니다. 구체적 계획이 있다면?  =2월 말에 아프리카 개발은행 강연 등을 비롯 6개월 동안 미국 영국 유럽 등 10여 나라에서 대학 등에서 강연할 예정입니다. 요즘 같은 때는 남들이 안하는 소리 하는 입장에서는 한 군데라도 더 가서 생각을 설명하고 전파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열심히 돌아다닐 생각입니다. 최근 관심사는 아무래도 경제위기겠죠?  =그렇죠. 한국이 97년 금융위기 겪으면서 금융도 좀 관심이 생겼습니다. 주요 전공은 산업 정책이지만 요즘은 그걸 안 볼수도 없으니 공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늘 하던 산업 정책 공부도 해야죠. 당장 일어나는 데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본래의 영역이 있으니까요. ●국내 현안 금산분리 지난해말과 올해초 국회에서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이른바 금산법 개정을 놓고 여야가 대치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국회에서 난리가 났었죠. 그러나 전, 사실, 뭐랄까, 부차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97년 외환 위기 이후 우리나라가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뭐,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로 노선을 바꾼게 아닙니까? 저는 그게 잘못됐다고 보기에 금산 분리는 부차적 문제라고 봅니다. 이전에 한창 금산법 논란을 벌일때 금산 분리를 주장하는 많은 분들이 금융자본주의 논리에 동조하면서 주주자본주의 논리를 가진 분들이 많았거든요. 그분들이 금융 허브도 이야기 한 거고... 그 논리 틀 안에서 보자면 지금 논의되는 것은 재벌이 금융자본화하는 것을 허용할까 하는 것인데요. 저는 그 기본틀이 잘못됐다고 보기에 그게 안 바뀌면 재벌이 금융자본화하든지 아니면 그걸 막아서 미국 일본 자본이 들어와서 우리 금융자본을 주무르게 하든지... 이는 보통사람들이 볼 때는 2차적인 문제거든요. 은행을 재벌의 사금고화하는 걱정도 있겠지만 그 역시 2차적 문제라는 거죠. 우리가 방향 자체를 잘못잡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 더 오른쪽으로 갈건지 왼쪽으로 갈건지 논의하는 것은 큰 안목에서 볼 때 문제가 있는 논쟁이라고 봅니다. 금산법이 왜 문제가 되는 건지요?  =결국 세부적으로 얘기하자면 민주당이나 이런 쪽 분들이 걱정하는게 이렇게 되면 재벌이 은행을 소유해서 은행을 사금고화하는게 아니냐 이런 건데요. 그런 걱정할 만하죠. 그러나 그 문제는 뜻만 있으면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금융기관은 재벌 계열사에 대출을 아예 못하게 하든가.물론 그렇게 하면 재벌끼리 대출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경우도 5대 재벌은 다른 재벌 소유가 조금이라도 있는 은행의 돈을 못빌리게 할 수도 있고..또 재벌들이 공동으로 소유할 경우를 우려하면 5대 혹은 10대 재벌을 정해서 그 재벌이 아무리 지분을 많이 갖고 있어도 그 재벌이 임명하는 이사 수가 3분의 1이 넘지 못하도록 묶으면 되거든요. 안 할려고 하니 안하는거죠. 그건 부차적 문제죠. 재벌이 사금고화해서 자기네 산업 키우는데 이 돈을 끌여다 써서 잘못된 일을 하는가 하는 것인데...  지금 우리가 해야할 걱정은 반대입니다. 재벌이 자기 본령의 산업을 버리고 금융자본화하는 겁니다. 미국 같은 경우도 많이 드러났지만...미국 경제가 취약해진 이유가 제너럴 일렉트릭이니 GM이니 하는 것들이 금융업 진출해서. GM도 자기 자동차가 안된 것도 있지만 지맥이라는데가 문제가 됐고 그런 식으로 본업을 잊고 금융자본화 한 것이든요.우리 재벌도 걱정스러운 것은..자동차고 반도체고 어렵고 한데 쉽게 금융해서 먹고살자는 금융자본화하는 것 아닌가? 이번 금융위기에서 봤다시피 실물에 기반하지 않은 금융자본은 사상 누각이거든요. 재벌이 그런 식으로 금융자본화 해버리면 또 무너질 수도 있고...이미 한번 10년 전에 타격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는데 한번 더 받으면 장기적으로 큰 일나는 거거든요. 저는 도리어 이게 더 걱정스럽습니다. 그러면 금산법을 완화시켜야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는게 아닌가요?  =그렇죠. 아니 그러니까, 말하자면 지금 노선을 잘못 잡아서 우리가 차를 몰고 벼랑끝으로 가고 있는데, 분명히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단 말이죠. 거기서 요렇게 돌아갈지 이렇게 돌아갈지 논쟁하는 거니까 이런 문제로 국력을 소모할 게 아니죠. 왜 우리가 금융자본주의로 환골탈태한다고 했는데 성장은 안되고 투자도 안되고 일자리도 없고 불평등은 늘어가고 자살률은 OECD 2위인 데다 왜 나라가 이렇게 됐냐 이거를 질문해야 한다는 거죠.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건데 어떤 식으로 가자는 건지?  =간단히 말하면 경제를 하는 데 지름길이 없다는 것이죠. 계속 투자하고 열심히 연구하고 시장개척하고 그런 식으로 하는 것 밖에 없는데..지난 4반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한 금융자본주의는 뭐 그런 걸 힘들게 하지 말고 파생상품 만들어서 잘 팔아서 하면 훨씬 돈 많이 벌고 하는데..대표적 인물이 제너럴일렉트릭의 잭 웰치 아닙니까. 그런 것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거죠. 우리나라도 계속 경제가 문제가 되는 게 실물을 등한시했기 때문이거든요.삼성전자처럼 연구개발 안하면 바로 밀리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하는 기업도 있지만 5대 재벌 밑으로 내려가면 연구개발 안하거든요. 계속 그런 식으로 단기적으로 돈 벌 길은 뭡니까? 비정규직 늘리고,월급 깎고 외주 주고 해서 단기 이익은 올리지만 국민들은 어려워지고 그러니 내수는 더 위축되거든요. 결국 그런 식으로 해서 장기적으로는 자기 살 깎아 먹기거든요.그런 의미에서 실물의 중요성, 장기적 투자의 중요성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기본에 충실하자는 말이죠?  =그럼요. 바로 그겁니다. 역사적으로도 보면 금융 뭐 이런게 자기 혼자 발전하는게 아니거든요. 물론 룩셈부르크 정도되면, 인구 50만에 부자 나라가 옆에 붙어 있으면 금융 만으로 먹고 살수 있겠지만 싱가포르만 해도 1인당 공업생산량이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나라 아닙니까.금융 허브라고만 생각하지만...그리고 역사적으로 금융허브라는 것도 결국 제조업 중심지를 따라다니는 거거든요. 17세기 금융 허브가 암스테르담인데요. 당시 벨기에 네덜란드의 모직업을 중심으로 그곳이 중심지엿거든요. 그 뒤엔 영국이 산업혁명해서 금융 중심지가 됐고 미국이 영국을 따라 잡으니 금융중심지가 런던에서 월스트리트로 넘어간 거죠. 지금은 그런 꿈도 허상이었다는게 드러났죠. 미국 자체의 투자은행이 다 망하는데.  얼마 전까지도 우리 나라 많은 정책 입안자들이 생각하던게 제조업은 그냥 중국이 자꾸 쫒아오고 힘드니까 어떻게 금융업 진출해서 먹고 살아보자 생각했는데, 그 모델 자체가 망했고. 제가 항상 하는 얘기가 남이 쫒아오는거만 생각하고 도망가는 건 생각하지 않느냐고? 중국이 우리 제조업 위협해서 우리가 금융업 간다고 해도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가 우리나라 봐줍니까? 거기서 또 우리가 못 올라오게 막거든요. 그게 문제라는 거죠. 결국 금산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했는데 진보진영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특히 진보진영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민주당이야 그 법안이 국회에 와 있으니 어떤 식이든 자기 입장을 정해야 될거고 고칠 것은 고쳐야겠지만...진보 진영 입장에서는 그런 기본적 틀에 대해 질문하는 게 중요한 거죠. 이와 관련 재벌과 사회의 대타협을 주장하셨는데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프렌들리 비즈니스와 닮았다는 오해를 받으신 것 같은데?  =처음 그 얘기를 꺼낸 결정적 계기는 2003년 SK-소버린 사태였습니다. 당시 구도가 소버린이라는 사모펀드가 SK주식을 사 모아서 그쪽 M&A 전문가 얘기하기를 잘 몰아갔으면 SK그룹을 좌지우지할 정도까지 갈수도 있었다고 했는데..일부에서 우리 재벌이 외국에 먹힌다고 걱정하니까...또 한편에서는 세계화 시대에 자본에 국적이 어디 있느냐는 주장도 나왔죠? 해서 제가 당시 ‘국적없는 자본은 없다’는 기고로 파문을 일으켰죠. 지금 우리 재벌이 잘못한 것도 많은데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외국 유수 기업도 손에 때 안 묻히고 돈 번 기업 없거든요. 철강왕 카네기, 유에스 스틸 등은 파업하면 사립탐정 고용해서 총으로 쏴 죽였거든요. 영국의 유명한 HSBC은행은 아편전쟁 때 영국 정부에 돈 대주고 따지면 다 나쁜 짓 한건데..제 주장은 그걸 용서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그런 도덕적 얘기에 얽매여 있을 때냐? 국제금융자본이 재벌을 접수하면 싸우지도 못한다. 지금은 정씨네집 이씨네집 이름이라도 알고 누군지도 알지만, 당시 소버린 사태가 발생했을 때 소버린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뉴질랜드집 큰 수퍼마켓 체인을 갖고 있는 형제가 갖고 있는데 그 사람만이 아니라 뭐 어디에 페이퍼 컴퍼니 세우고 또 그게 브뤼셀에 역외 자본 시장을 세우는 등 세번,네번 돌려서...그런 사람들이 우리나라 기업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싸울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입장에서 제일 좋은 게 뭔가? 재벌이 원죄도 있고, 소유구조도 불안하기 때문에 차라리 빅딜을 해서, 그렇다고 자자손손 아무리 잘못해도 구해주겠다고 약속해서는 안되지만 어느 정도 잘 하기만 하면 경영권 위협받지 않게 제도적으로 만들어주고 그 대신에 예를 들면 삼성 같으면 노조도 인정하고 세금 더 많이 내서 복지국가 만들고...그런 식으로 고용 안정시켜주고 타협하자는 제안이었죠.  물론 백지에다 천국을 그려보라면 뭣하라고 거기다 삼성을 그려 넣겠습니까? 그나마 우리가 갖고 있는게 그나마 삼성이고 또 그런 걸 잡아먹겠다고 소버린이니 론스타 같은게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돌아 다니니까...그런 상황에서 그래도 더 성장이 잘되고 일자리도 만들고 복지국가도 만들 수 있는 현실성이 있는-물론 그것도 어렵지만- 뭔가를 찾다보니 그런 얘기가 나왔어요.  그런 얘기를 하면 뭐, 이명박 프렌들리 비즈니스 와 다를게 뭐냐고 이야기도 하시는데, 사실 저는 다릅니다. 저는 기업이 잘 돼야 나라가 잘 된다는 입장인데 그런 면에서는 프렌들리 비즈니스라 할 수도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는 기업이 하고픈대로 놔두라는 것이거든요. 저는 그게 아니거든요. 지금 미국 보세요, 기업이 하고픈 대로 놔두다 보니 나라가 망한거 아녜요? 정부가 나서서 할 역할이 있고 규제가 있거든요.  때로는 풀고 때로는 규제도 하고 그런 식으로 실용주의적으로 해야 한다는 거거든요. 이명박 정부는 말은 실용주의 하지만 굉장히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유방임이 옳은 거라고 자꾸 얘기하니깐요. 그런 의미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지만, 아니 그렇잖아요? 애들을 잘 키운다는 게 애들이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게 아니잖아요. 어떨때 혼도 내야 하고 어떨때는 하고 싶은 것도 못하게 해야 되고 하기 싶은 일도 하게 해야잖아요. 그게 지나칠 수도 있고 너무 자식을 눌러서 기르면 부작용도 생기죠. 보통 일에서는 적당히 그런 것을 섞여야 한다고 말을 하지만 왜 정부 개입 이야기 나오면 무조건 푸는 게 좋다고 얘기하냐는 거죠. 풀어준다고 그게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아니거든요.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정책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정리해주신다면...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가 둘 다 신자유정부라고 규정했는데..물론 둘이 차이는 있지만..기본적으로 시장에 맡겨두는 게 맡고..예를 들어 노무현 대통령이 한때 유명한 말을 했었죠.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좋든 싫든 시장에 맡겨두는게 맞고..한미 FTA로 대표되듯이 개방에 동참하는 게 맞다, 우리 민족주의 노선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한 점에서 둘다 신자유주의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점은 이명박 정부는 순수한 신자유정부이고 노무현 정권은 약간 거친 데는 약간 부드럽게 한다고 예를 들면 사회적 안전망을 약간 확충한다든가..사실 그것도 노무현 정부는 많이 확충했다고 했지만, 우리 사회복지 시설이 OECD 회원국에서 거의 최하위권이거든요. 많이 이룬 건 아니지만 그런 생각은 있었고 재벌에 대해서 좀 견제와 규제를 했고 부동산에 대해서 규제를 많이 했지만 90% 이상은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규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죠.  어떻게 보면 모든 면에서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보다 더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게, 재벌 정책 경우 노무현 정권의 논리라는 것은 주식시장에 맡겨서 외국 금융자본-그게 사모펀드든 헤지펀드든-이 들어와서 가져가면 가져가고 재벌 통제도 주주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이씨 집안 삼성 5%도 안 갖고 있는데 어떻게 좌지우지하냐며 통제하려고 했거든요...그런 면에서 보면 더욱 더 주주자본주의 논리에 충실한 더 신자유주의에 더 충실한 면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뭐 더 신자유주의다 덜 신자유주의다 말하긴 힘들지만, 둘이 기본 노선은 같되 그래도 노무현 정부는 일부 신자유주의 노선의 거친 면을 완화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계속) ●그는 누구?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 지닌 ‘천상 경제학자’  l케임브리지(영국) 이종수특파원l 장하준은 천상 경제학자였다.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에게 이메일로 “6일 오후 2시30분경에 만나자.”며 캠브리지 대학 연구실로 오는 방법을 자상하게 설명해주었다. 파리~런던~케임브리지의 교통수단을 분(分) 단위로 나눠서 ‘경제학적으로’ 안내했다.  연구실에 도착하니 33㎡ 정도 공간은 전공 서적과 논문 등으로 가득했다. 근황을 물었더니 “6개월 동안 미국,아프리카, 유럽 등 10개국에서 강연 계획이 잡혀 있다.”며 “남들이 안하는 소리 하던 입장에서 한 군데라도 더 가서 열심히 설명하고 생각을 전파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의 해악을 주장했던 터라 국제무대에서 그를 찾는 ‘수요’가 늘어난 것 같다.  2시간여 인터뷰 동안 해박한 지식과 정확한 통계로 막힘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알프레드 마셜이 경제학도들에게 요구했다는 덕목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떠올랐다. 그는 한국의 좌우파로부터 동시에 공격받고 있지만 뜨거운 가슴을 지닌 경제학자였다. ‘모든 사람이 다 잘 사는 사회’라는, 더 정확히는 그에 가장 근접하는 사회를 이루고 싶다는. 이를 위해 그는 차가운 머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고 1990년부터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사다리 걷어차기’(2004년) ‘쾌도난마 한국경제’(공저,2005년) ‘국가의 역할’(2006년) ‘나쁜 사마리아인들’(2007년) 등을 출간했고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뮈르달 상(2003년), 경제학 지평을 넓힌 레온티예프 상(2005년)을 받았다.  “전통적인 좌우파라는 틀에 갇히기 싫다.”는 그는 늘 현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그가 언제, 어떤 또 새로운 화두를 던질지 궁금해진다.  vielee@seoul.co.kr
  • “한국의 아나키즘은 민족해방 수단”

    “한국의 아나키즘은 민족해방 수단”

    “한인 아나키스트들은 일본이라는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민족의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숙명적인 과제 아래 민족해방운동의 한 수단으로 아나키즘을 받아들였다.” 조세현 부경대 사학과 교수는 프랑스 진보 성향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월호에 기고한 ‘프루동 탄생 200주년 한·중·일의 아나키즘’에서 한국 아나키즘의 특징을 이같이 규정했다. 15일은 ‘아나키즘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 사상가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1809~1865)의 탄생 200주년 기념일. 모든 정치조직과 권력 체제를 부정하고,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주창한 아나키즘은 프루동이 1840년 발표한 ‘소유란 무엇인가’로 이론적 토대를 완성한 뒤 세계로 퍼져나갔다. 조 교수는 “동아시아의 아나키스트들은 본래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이상 사회를 건설하고자 서양의 아나키즘을 받아들였지만 개인의 문제보다는 사회 문제의 해결에 좀더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면서 “동아시아 개별국가도 그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아나키즘의 성격에 일정한 차이가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아나키스트들은 반자본, 반천황제의 논리를 가지고 노동자 파업을 통한 부르주아 계급의 타도와 사회주의 건설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서유럽의 아나키즘과 가장 유사한 길을 걸었다. 반면 반식민지 혹은 식민지의 상황에 놓인 중국과 한국의 경우는 상황이 달랐다. 중국의 아나키스트들은 1911년 황제 체제가 붕괴한 이후 곧바로 군벌 정치가 시작되면서 중국 사회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정치 혁명을 넘어서 문화운동에 집중했다. 조 교수는 “한국의 아나키즘은 민족해방운동의 수단으로서 민족주의 사조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대체로 망명객이 많았던 까닭에 대중 운동보다는 주로 테러, 파괴와 같은 폭력수단에 의존해 운동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동아시아 아나키즘 운동은 민족주의적 성향을 띠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국제주의를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1900년대 초기 중국인 혁명가와 일본인 아나키스트들이 함께한 ‘아주화친회’는 아시아 각 나라의 혁명달성을 목표로 한 동아시아 최초의 반제국주의 조직이었다. 이 단체는 일본인과 중국인이 중심이 되어 결성했으나 인도, 한국,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인 혁명가들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中교수 “한국은 中문화보존에 기여했다” 논란

    최근 중국의 한 학자가 “한국은 중국 문화 보존에 큰 기여를 했다.”는 발언을 던져 중국내 파문이 일고 있다. 상하이 중국역사지리연구소 및 푸단(復旦)대학 소속의 거젠슝(葛剑雄)교수는 지난 27일 ‘개혁개방과 중국의 현대화’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이 같이 발언했다. 거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국민성과 민족주의에 관한 의견을 피력하다 “전 세계에는 각각 민족마다의 특별한 차이가 있다. 민족주의는 피하기 어려운 것”이라면서 “모든 정부가 민족주의를 이용하지만 정도껏 해야 한다. 중국인들은 한국인과 역사적인 부분에서의 과도한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인들이 역사를 과장되게 이해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과장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며 “한국은 중국전통문화를 보존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시비를 따질 것이 없다.”며 중국인들의 민족주의를 넘어선 과도한 자국주의에 일침을 가했다. 이를 접한 중국 네티즌들은 1만 3000여개가 넘는 댓글을 달며 거 교수를 비난하고 나섰다. 유력 포털사이트 QQ.com의 한 네티즌은 “그는 매국노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중국을 대표하는 대학의 교수로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올렸고 또 다른 네티즌은 “한국은 중국문화를 보호한 적이 없다. 중국의 것을 강탈했을 뿐”이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이밖에도 “나라 망신이다.”, “교수 되려고 너무 열심히 공부하다 정신병에 걸린 모양이다.”, “중국의 유구한 역사는 절대 훔칠 수 없다.”등의 댓글로 분노를 표했다. 이에 반해 일부 네티즌들은 “과거 한국인들은 중국의 문화를 잘 받아들이고 전승했다. 왜 중국인들은 한국의 우수한 문화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가.”, “한국이 종종 과할때도 있었지만 중국 또한 현명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등의 상반되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中 개혁 개방 30년 (下)] 수교 16년만에 전례없는 교류

    [中 개혁 개방 30년 (下)] 수교 16년만에 전례없는 교류

    ㅣ베이징 이지운특파원ㅣ 중국은 개혁·개방 14년째인 1992년에서야 한국에 문을 열었다.미국과 올해로 수교 30년,일본과 36년째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늦은 편이다.그러나 교류의 속도와 깊이로 따지면 한·중 관계는 전례가 없을 정도다. 수교 당시 64억달러이던 대중교역액은 2007년 1450억달러로 23배 증가했다.중국은 한국의 제1투자 대상국이다.지난해 한국은 중국에 52억 3000만달러를 실제 투자했다.2007년 478만명의 한국인이 중국을 찾았고,107만명의 중국인이 한국을 방문했다.한국의 6개 도시와 중국의 31개 도시가 주 830편의 항공편을 운항 중이다.한·미간에 260편,한·일간 417편,중·일간 731편,중·미간 238편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분명해진다. 한때 중국에서는 매일 1억명 이상의 시청자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한국에는 130여개 대학이 중문과를 개설하고 있으며,중문과 졸업생이 매년 3000명씩 쏟아져 나오고 있다.중국에 온 외국 유학생 3명 중 1명은 한국인이다.전 세계적으로 중국어 능력시험인 한어수평고시(HSK)를 치르는 응시생 역시 3명 가운데 1명은 한국인이다.베이징에는 왕징(望京)에 한국인 밀집 거주 지역이 형성됐다.7만에서 10만명 이상의 한국인이 몰려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중국에서 ‘한류(韓流)’가,한국에서‘한풍(漢風·중국바람)’이 나타난 이유들이다. 정치·군사적으로 보면 ‘적대적 관계’→‘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두 나라는 ‘협력 동반자 관계’를 거쳐 ‘전면적 협력의 새로운 단계’로,이어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까지 진전돼 왔다.지난 11일에는 베이징에서 양국간 첫 고위급 전략대화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부작용도 빠르게 나타났다.올해 베이징올림픽을 즈음해 중국에서의 민족주의가 강화되면서 ‘혐한류(嫌韓流)’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한국에서도 역사 문제를 비롯한 ‘민족주의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동북공정,탈북자 문제 등은 언제든지 양국 관계를 냉각시킬 수 있는 아킬레스건으로 자리한 지 오래다. 한편으로 올 하반기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는 16년만에 처음으로 중국의 한국인 수를 감소시키는 현상을 낳기도 했다.왕징(望京)은 최근 몇 개월간 최소 20% 이상의 한국인이 귀국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jj@seoul.co.kr
  • [하재봉의 영화읽기]신기전

    [하재봉의 영화읽기]신기전

    역사적 고증과 과학적 합리주의에 기초하고 있다고는 하나, 의심할 바 없이 <신기전>의 영화적 위치는 고양된 민족주의적 정서를 자극하는 데 우뚝 서 있다. 설계도가 남아 있는 세계 최초의 로켓 <신기전>의 흥분된 이야기는, 조선 건국 초인 1448년, 세종 30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고려조의 유민이 아직 잔존해 있던 건국 초기의 불안한 정세 속에서, 조공을 바치던 강대국 중국의 눈치를 보며 조선이 명나라 몰래 놀라운 병기, 세계 최초의 로켓포를 계발하려고 했다는 가설을 <신기전>의 내러티브는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물론 <신기전>의 근거는 지금도 문헌으로 남아 있는 《총통도감》에 기초해 있지만, <신기전>의 피와 살을 형성하고 있는 구체적인 인물이나 내러티브는 모두 허구적 상상력의 소산이다. <신기전>의 이야기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30년 9월 13일, 세종은 총통등록을 각 도에 전달하며 ‘화기를 개발하고 쏘는 연습을 하라’고 어명을 내렸다. 지금도 남아 있는 《총통등록》은 최무선에 의해 화약이 계발된 이후 화기인 주화로부터 시작된 신기전, 그리고 화기를 나르는 화차 개발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세종 당시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의 여진족과 싸우며 4군 6진을 만들고 영토확장을 이루는데 신기전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기전은 소·중·대 3가지 종류가 있는데 화살 끝에 화약이 장착되어 있으며 대신기전의 경우 화차에서 발사되면 약 2km 이상을 날아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서양의 로켓 개발보다 무려 300여 년 앞선 과학적 쾌거였다. 임진왜란을 거쳐 영조 4년(1728년) 안성에서 반군을 제압하는데 신기전이 사용되었다는 문헌 이후 우리 역사 속에서 실종된 신기전의 존재가 다시 세상에 나타난 것은, 1975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채연석 박사에 의해서였다. 채 박사에 의해 다시 발견된 신기전의 설계도는 세계우주항공학회로부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로켓 설계도로 인정받았다. 왜 조선 역사 속에서 신기전의 존재가 희미하게 남아 있고 나중에는 실종되어 버린 것일까? 중국이나 일본 등 신기전 개발을 달가워하지 않던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부국강병의 꿈을 잃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신기전>은 사료에 기초해서 신기전 개발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국제역학관계를 현실에 빗대어 생각할 수 있게끔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다. 영화 <신기전> 속 꿈같은 이야기는 상당 부분 역사적 근거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 이만희는 이러한 사료를 기초로 작가적 상상력을 작동시켜, 고려 유민의 후손으로 반역죄로 처형당한 아버지의 한을 품고 상인으로 살아가는 설주(정재영 분), 최무선의 손녀딸로 신기전 계발의 핵심 역할을 하는 홍기(한은정 분), 세종의 밀명을 받고 명의 감시를 피해 신기전 개발에 힘을 보태는 호위무사 창강(허준호 분), 명나라의 감시를 피해 학계의 응축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민간차원에서 신기전이 개발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세종(안성기 분) 같은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었고, 현실적으로 수긍할만한 이야기를 완성했다. <신기전>의 드라마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분위기로 시작된다. 창강은 신분을 알 수 없는 홍리의 신변보호를 상인 설주에게 의뢰한다. 물론 거액의 보수가 따르지만, 창강이 특별히 설주에게 홍리를 부탁한데는 이유가 있다. 홍리는 고려 말 화약 제조자 최무선의 딸이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홍리와 함께 신무기 개발을 하던 중 명나라 자객단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 조선이 로켓포를 만드는 것을 경계해 왔던 명나라는 사신을 보내 세종과 궁궐 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세종은 명나라의 감시망을 피해 은밀히 신기전이 완성될 수 있도록 창강에게 명하고 창강은 신기전 개발의 키를 쥐고 있는 홍리를 설주에게 맡긴 것이다. 지금은 상인이지만 그 역시 역모혐의로 처형당한 아버지와 함께 화약 개발에 참여했던 경력이 있다. <신기전>은 크게 명나라의 감시를 피해 설주-홍리 커플이 신기전을 개발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미묘한 감정이 싹트는 두 사람의 사랑, 명나라와 여진의 10만 연합군에 맞서 신기전을 이용해 조선군이 승리를 거두는 피날레로 이루어져 있다. <신기전>에는 상투적인 로맨스, 신파에 가까운 사랑 장면이 들어 있고, 국수주의적 시각도 있지만, 강대국 아래서 자주국방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세종의 신기전 개발 이야기가 현재 우리 상황과 맞물려 많은 이야기를 던져주고 있다. <신기전>을 볼만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이만희 작가의 튼튼한 극본 때문이다. 이만희 작가는 “침대에 누워 졸린 눈을 달래가며 조선시대 외교문서를 꾸역꾸역 읽어 내려가다 나는 어느 대목에서 벌떡 일어나 고쳐 앉았다. 그것은 ‘발칙한 조선은 듣거라’ 라는 명나라 황제가 조선의 왕에게 칙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한 말이었다. 피가 거꾸로 치솟았다. 발칙한 조선이라니…, 이런 저급한 말은 하인에게도 아니 쓴다. 아, 조선은 이랬구나.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초라하게 당했구나. <신기전>은 울분으로 쓴 작품이다. 이런 굴욕과 울분은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다. 난 신기전을 통해 선조들이 이 강산을 어떻게 지켜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약속>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스케일을 가진 <신기전>을 만들면서 김유진 감독은,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짜임새 있는 연출 감각을 보여준다. 웃음을 줄 때와, 긴장감을 지속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할 때의 완급조절을 부드럽게 이끌면서 결과적으로 긴장과 이완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대중적 재미와 흥행력을 갖춘 영화를 만들었다. 이 감독은 “신기전은 우리 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는 아주 명쾌하고 유쾌한 영화다. 웃음, 슬픔, 액션, 하나의 잘 짜여진 드라마까지… 복합적인 재미를 주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서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라고 김유진 감독은 기대하고 있었다. “온 가족이 볼 수 있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영화를 생각하고 만들었다. 신기전은 그렇게 오락영화를 추구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면서 사실과 허구의 차이점에 대해 묻는 질문에 핵심을 피해나갔다. “신기전은 사극이지만 코미디와 멜로 요소가 많이 들어 있으며, 처음부터 액션, 사랑, 웃음, 슬픔을 한 구조 속에 녹여서 가려고 생각했다. 흥행에 대한 특별한 의식 없이도 당연히 코미디와 멜로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신기전>이 역사적 사실과 허구와의 경계를 교묘하게 흔들면서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하는 영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흥행력과 영화적 재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야사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허구적 상상력의 소산인 종반부 명나라와의 대결에서, 조선의 비정규군이 사용하는 신기전 발사 장면은 통쾌함을 안겨준다.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 그때 만약 우리가 신기전을 진짜 개발했고 그것을 이용해서 만주 땅을 되찾았다면, 혹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을 초토화시키고 대마도까지 정벌해 버렸다면. 이런 가정은 부질없는 것이지만, 그런 가정이 지금의 현재적 역사에 주는 교훈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대중들의 국수주의적 정서를 자극하며 민족적 자긍심에 기대어 흥행 홈런을 노리는 <신기전>이지만, 그 이유만으로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미래의 역사라는 것은 현재의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며, 과거의 역사가 새로운 현실인식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부여한다면 충분한 의의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글 하재봉 시인, 영화평론가, 동서대 교수
  • [한국사회 오바마를 말하다] ‘코리안 드림’ 꿈꾸는 아이들

    [한국사회 오바마를 말하다] ‘코리안 드림’ 꿈꾸는 아이들

    버락 오바마가 미국 첫 흑인대통령으로 탄생하면서 국내의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흑인혼혈인 미식축구 선수 하인즈 워드의 방한 등을 계기로 다문화가정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나아지긴 했지만, 이들이 사회로부터 받는 차별은 여전하고 뛰어넘어야 할 벽은 높다. 이에 한국사회의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원인, 그리고 해결책 등을 3회에 걸쳐 싣는다. 흑인 혼혈 2세로 고등학교 2학년인 김모(17)군의 성적은 반에서도 상위권에 든다. 김군의 희망은 변호사가 돼 이주노동자, 혼혈인 등을 돕는 것이지만 가정형편이 힘들어 대학 진학이 어려운 상태다. 아버지 김모(44)씨는 한국사회의 편견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고, 일용직 노동자로 전전했다. ●주민증 내밀때마다 “위조한 거 아냐” 의심 역시 흑인 혼혈 2세인 박모(34)씨는 중학교를 중퇴한 뒤 일용직 일자리를 전전하며 살아왔다.‘우리는 단일민족국가’라는 교과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친구들의 편견이 싫었다. 학교에서 도난사고가 발생하면 으레 자신을 의심하는 시선도 참을 수 없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주민등록증을 내밀 때마다 ‘위조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오바마가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시민들은 “오바마를 선택한 미국인들에게서 다문화 존중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오바마를 꿈꾸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여전히 사회적 무관심과 편견으로 위협받고 있다. ●“엄마는 외국인” 왕따 당할까봐 개명 오바마의 승리를 지켜본 직장인 유환선(40·성남시 분당구)씨는 “민주주의가 정착된 선진국답다. 우리나라도 사회·문화적으로 여러 인종들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지영(29·여·서울시 강남구)씨도 “보수적인 미국인들이 그를 택했다는 게 놀랍고 배울 만하다.”면서 “그가 미국경제를 회복시켜 한국경제도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성결혼이민자들은 한국사회는 다문화에 인색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아이가 학교에서 놀림을 받지 않도록 국적변경뿐 아니라 개명도 해야 한다. 1999년 12월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혼인 이주한 성모(32)씨는 올해 초 한국이름으로 바꿨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 정모(8)양이 친구들에게 “엄마가 아프리카 사람이냐.”는 등의 놀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농촌의 경우 다문화가정이 도시보다 많지만 사정은 더 열악하다. 도시와 달리 어린이집이나 학원이 없어 기초적인 한글 교육이 힘들고, 농번기에는 더욱 아이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다. 전남에 사는 황모(29·여·베트남)씨는 “7살된 아들의 한글실력이 또래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글을 가르쳐주지 못해 늘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떤 법도 편견을 없앨 수는 없다 혼혈아이를 둔 부모들은 사회적 편견은 아이의 정서에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왕모(39·여·중국)씨는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아동 심리치료를 받도록 해야 했다. 외국인 아내를 둔 유모(45·조선업)씨는 “따돌림 당할 게 뻔해 학교에서 엄마가 외국인이라고 절대 말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떤 법도 사회적 관심보다 못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한국사회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홍보는 많지만 실질적인 대책은 부족하다. 배기철 국제가족총연합회장은 “교과서에서 ‘순혈주의’·‘단일민족’이라는 단어만 빠졌을 뿐 한국인들의 단일민족주의는 여전하다.”면서 “지금 한국의 오바마를 꿈꾸는 아이들이 컸을 때는 사회가 많이 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03년 차별금지법이 생겼지만 이마저도 강제력이 없다. 사회적 편견은 이들이 변호사나 정치인 등 사회주류로 편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나마 연예계나 체육계 진출이 이들에게는 희망이다. 여성정책연구원 장미혜 연구원은 “제도나 정책보다 사회적 차별을 없애도록 다른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감수성을 강화하는 시민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현재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교육을 일반학생과 시민들에게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주 장형우기자 kdlrudwn@seoul.co.kr
  • [심층 인터뷰] 마이클 아머코스트 前 미 국무부 차관 訪韓

    [심층 인터뷰] 마이클 아머코스트 前 미 국무부 차관 訪韓

    마이클 아머코스트 전 미국 국무부 차관은 “북한이 시간벌기를 하면서 핵무기 개발능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다.”면서 “한·미·일 등 관련국들이 공동대응을 굳건히 하면서 당근과 채찍을 병행한 적극적인 대응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산정책연구원(이사장 한승주 전 고려대총장)과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공동 주최한 ‘코리아 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하기 위해 방한한 아머코스트 전 차관을 28일 웨스틴조선호텔서 만나 북핵 문제의 해법과 동북아 정세에 대해 들어봤다. 1 北, 핵개발 위한 ‘시간벌기’ ▶북한 핵문제가 더 악화되고 있다. 위기로 치달을까. -플루토늄의 불능화 작업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 재개를 오랫동안 묶어놓을 수 있다고 잘못 생각했다. 북한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핵 재처리작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라늄 농축에서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것 같다. ▶북한의 핵개발 재개 시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한국과 미·일·중 등 관련국가들이 단합된 공동 전선을 펼쳐서 북한을 움직여야 한다.‘압력없는 협상’은 성공할 수 없다. 효과적인 압력 행사는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이고 상대방이 협력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정치·경제적인 양보도 시의적절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협력하지 않을 경우 경제·정치적 혜택이 박탈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동안 북한은 관련국가들의 입장 차이를 파고들면서 시간을 버는 데 성공했다. 핵물질 농축 양을 늘리고 핵무기화를 진전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어왔다. ▶6자회담 관련국들의 대북한 공조는 잘 되고 있나. -중국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다. 북한에 대해 엄청난 영향력과 설득 수단을 갖고 있지만 북한 핵개발을 막기 위해 강한 압력을 행사하기는 꺼린다. 북한의 혼란과 붕괴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난민 발생, 누가 북한 현정권을 대체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핵물질의 유출 및 관리문제 등이 중국을 주저하게 하는 이유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게 하는 데 중국이 더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할 수 있나. -중국은 북한의 정권교체(regime change)와 (중국식 개혁·개방과 같은)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국경을 맞댄 북한이 핵을 갖게 되고 이 탓에 동북아의 핵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 핵실험이후 중국이 전에 없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분노까지 숨기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상업적인 차원의 교역을 확대하면서 북한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 정권의 붕괴라는 불확실성을 무릅쓰려고는 하지 않을 것 같다. 북핵 해결과정에서 중국은 6자회담 주최국이란 지위를 즐겨 왔다. ▶김정일의 건강악화와 북한의 핵개발 재개는 앞으로 한반도 및 동북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국과 한국 정부의 적잖은 고위 관리들은 김정일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고 확신한다. 김정일체제 이후 당장 개발해 놓은 핵무기가 어찌 될는지도 걱정거리로 떠올랐다.‘김정일 이후’ 군부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다. 이들이 비핵화과정에 동정적이지도 않고 ‘더 많은 양보’로 비쳐지는 행동도 거부할 것이다. ▶북한 체제가 전에 비해 비교적 안정돼 있다는 평가도 있다. -나는 북한이 더 취약해졌다고 생각한다.90년대 중반보다 더 개방됐고 더 많은 사람들이 외부 상황을 알게 됐다. 주변 국가들, 한국과 중국이 얼마나 번영을 이뤄냈는지를 보고 듣게 됐다. 북한이 얼마나 비참한 지경에 있는지도 회의하며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2 中 부상으로 동북아 정세 급변 ▶이명박 정부의 상호주의 강조가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있는데. -역대 한국정부들은 늘 북한과 접촉과 교류를 확대해 가기를 원하는 ‘개입정책(engagement policy)’을 쓰려고 노력했다. 문제는 어떤 조건에서의 개입정책이냐는 거다. 한국의 관점과 국익에서 상호주의에 기반한 교류 틀을 새로 만드는 것은 필요하다. 존경과 신뢰를 보냈는데 경멸이 돌아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호주의 요구는 당연한 것이며 상황에 따라 어떻게 유연하게 적용하느냐가 관건이다. ▶동북아가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중국의 부상이 가장 주목할 일이다. 한국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결정해야 한다.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미국, 일본 등 해양세력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중국과의 관계를 격상시키면서 ‘중국이란 마차’에 올라타는 거다. 중국이 앞으로 한국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잠재적으로 좌지우지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한 편을 버리고 다른 한 편을 취하는 것과 같은 배타적인 선택이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전략적으로 어느 나라하고의 관계를 더 무게를 두고 중요시할 것인지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우선 순위의 문제다. 누가, 어떤 종류의 위협이 될지, 지정학적으로나 정치·경제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누가 더 믿을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을지 판단해야 하는 숙제를 한국인들은 안고 있다. ▶중국이 동북아 현상유지를 무너뜨리고 질서파괴자가 될 가능성도 있나.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개발과 국력 증진, 내부 갈등 해결에 몰두해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주변국가들과의 안정적인 관계를 원해 왔고 상당기간 그럴 것이다. 중국의 부상이 앞으로 상당기간 중·미간 충돌로 비화되지 않을 것이다. 강대국간에는 합리적인 대화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지역문제를 해결할 제도적 틀도 확대되고 있다. 미래를 비관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중국의 부상이 인접한 한국에 대한 지나친 영향력 확대로 이어지고 한국의 행동반경을 좁히지 않을까. -중국의 내부사정이 어려워지면 국민 불만과 시선을 돌리기 위해 보다 민족주의적이고 강경한 대외정책을 쓸 가능성도 있다. 주변국가들의 이익을 완력과 압력으로 침해할 수 있는 것이다. 기존의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새로운 균형이 만들어질 때 종종 나타나는 일이다. 이런 우려 때문에 한·미 동맹, 미·일 동맹등이 더 큰 효용을 갖는다. 3 한·미, 미·일동맹 강화돼야 ▶6자회담을 지역안보문제를 논의하는 안보대화의 틀로 확대해나가자는 움직이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어진 6자회담은 동북아 안보협력의 모태가 되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에는 잘 활용되지 못한 측면이 있지만 관련국가들이 제대로 활용한다면 유용한 틀이 될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가치 동맹을 통한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데. -민주적 정치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들끼리 친근감을 갖고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핵의 비확산, 에너지, 환경문제, 전염병 통제 등 전인류적 현안을 어떻게 민주국가들만 모여서 풀어나갈 수 있겠나. 이런 문제들을 중국 협조없이 해결할 수 있겠나. 글 이석우국제전문기자 jun88@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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