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중국집
    2025-09-03
    검색기록 지우기
  • 전시회
    2025-09-03
    검색기록 지우기
  • 소속사
    2025-09-03
    검색기록 지우기
  • 고발
    2025-09-03
    검색기록 지우기
  • 사나
    2025-09-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75
  • 아들 찾으려다 함께 ‘지옥’에 갇힌 아버지의 붉은 눈시울[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아들 찾으려다 함께 ‘지옥’에 갇힌 아버지의 붉은 눈시울[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7>1982~1987년, 형제원 강제수용된 정용태씨 진술서동네 형과 영문도 모른채 순경한테 끌려가곡괭이 자루·연탄 집게 빳다에 성폭행까지아들 찾아 나선 아버지까지 형제원에 감금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달 2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동네 형과 부산역 앞에 갔다 붙들려…순경이 태운 탑차에 갇힌채 형제원으로 39년 전 어느 날, 친구를 마중하러 간다던 동네 형을 따라 집을 나섰던 정용태(49·가명)씨는 그날의 가벼운 발걸음이 자신을 지옥으로 향하게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집으로 다시 보내 준다던 파출소 순경의 말은 새빨간 거짓이었다. 탑차를 타고 형제원에 도착함과 동시에 시작된 구타와 학대는 10살짜리 어린 아이였던 정씨에게 맞설 수 없는 공포를 느끼게 했다. 도대체 왜, 누가 자신을 형제원으로 보냈는지 모른채 시작된 형제원 생활은 고문에 가까웠다고 정씨는 말한다. 강제 노역은 일상이었다. 각종 작업에 동원돼 시간 안에 작업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매질을 당해야 했다. 작은 체구로 몸집만한 돌덩이를 등에 지고 옮겨 나르는 일은 예사였다. 매일 밤 음악 선생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을 불러낸 30대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해도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하면 기절할 정도로 맞았다. 30년 넘는 세월이 지났어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이다. 정씨가 형제원을 나온 뒤에도 평범한 인생을 되찾을 수 없었던 이유다. 정씨에게 더 큰 충격은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파출소에 항의한 아버지까지 형제원에 끌려온 것이었다. 아버지는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1987년 형제원 생활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씨는 형제원을 나왔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형제원에 갇혀 있다. 피해자들은 국가를 향해 이제 그만 자신의 삶이 형제원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달라며 힘겨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래는 김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정용태 진술내용: 1982년 9월23일 목요일 저녁 9시쯤 부산 초량동 부산역 앞 화단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옆집에 사는 형과 함께 광주에서 오는 형의 지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파출소 순경 두명이 우리를 보고 다짜고짜 파출소로 끌고갔습니다. 파출소에서 ‘우리는 지금 누굴 마중 나왔으니 빨리 보내달라’고 하니 순경 한사람이 ‘곧 보내 줄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탑차 한 대가 파출소 앞으로 왔습니다. 알고보니 형제복지원 차였습니다. 건장한 남성 두 명이 우리를 인계받아 강제로 탑차 뒤 칸에 실고 밖에서 문을 잠궜습니다. 얼마후 철문을 여는 큰 소리가 났고, 우리는 형제원 안으로 잡혀 왔습니다.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아버지와 누나가 너무나 보고 싶었고 창고같은 건물안에서 옷도 입지 않은채 얼차려를 받고 있으니 너무나 무섭고 겁이 났습니다. 같이 잡혀온 일행이 집에 연락해달라고 항의하자, 형제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몽둥이와 발길질로 마구 때렸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어서 시키는대로 고무신과 형제원 마크가 박힌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그때부터 수형번호 82-2167 번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작업속도 쫓겨 피 흘려도 방치···밤마다 불러내 성폭행 한 음악선생, 소리 지르면 샌드백 치듯 때려 형제원에서는 인권이라는 것은 없이 짐승같은 대우를 받으며 지냈습니다. 눈뜨면 낚시 공장에서 낚시바늘 포장작업을 했습니다. 낚시 바늘을 낚시줄에 감아서 네모난 종이에 곱게 감는 작업인데, 10분 안에 10개 이상을 포장하지 못하면 곡괭이 자루와 연탄 집게로 못채운 갯수만큼 빳다(몽둥이)를 맞았다. 어느 날은 낚시 바늘이 손톱 뒤쪽에 박혀 뺄수가 없는데 그 바늘을 생으로 뽑아서 손톱이 반쯤 빠지고 또 낚시 바늘이 볼 뒤쪽 귀밑에 박혔는데 그것도 그냥 뽑아서 피가 철철 흘렀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치료 해주지 않았습니다. 장난감 공장에서는 장난감 권총을 포장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포장 도구인 아크릴에 호치케스를 찍는 일이었는데, 이 작업도 시간 안에 못하면 맞으니까 빨리 하려고 하다보니 손등과 손가락에 호치케스를 박는 일이 하루에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또 형제원 안에 있는 교회 확장 작업을 한다고 열두살 어린애가 등에 20㎏이 넘는 돌을 지고 형제원에서 제일 높은곳에 위치한 교회까지 200미터 남짓한 거리를 매일 몇 개월 동안 날랐습니다. 이모든 일들이 지금은 글로 표현하려니 한계가 있지만 격어보지 않고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고통이었습니다. 13소대. 13소대는 음악소대였습니다. 70명이 한방에서 생활하는데 음악 선생은 밤만 되면 나를 자기 침대로 불러서 성폭행을 했습니다. 자기 성기를 내 항문에 찌르고 아파서 참다 못해 소리를 지르면 거의 기절할 만큼 폭력을 가했습니다. 아직도 치가 떨리고 그때가 생생합니다. 너무나 수치스럽고 입에 담기도 그렇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 당했습니다. 30대의 건장한 남성의 힘으로 그 어린 나를 샌드백 치듯 때렸으니 죽고 싶었습니다. ‘아들 찾아달라’고 항의하다 끌려온 아버지…형제원 생활 후유증으로 3년 만에 세상 떠나 1984년 10월 정확히는 며칠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점심인지 저녁인지 밥을 먹으려고 줄을 맞춰 식당으로 이동 중 이었다. 저쪽에서 14소대 소대원들도 식당으로 이동중 이었습니다. 그런데 14소대 소대원중에 저의 아버지를 보았다.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우리 아버지였습니다. 부친께서는 저를 찾아 달라고 파출소에 항의하다 저처럼 형제원에 끌려와 감금되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부친께서는 저를 보고 당신이 무능해 부자가 함께 갇혀있는 게 속상하신지 가끔 스쳐 지나치실 때 마다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속상하고 힘드셨을지. 제 아버지는 1년에 한번 명절 날이면 1인당 하나씩 나눠주는 노란 시루떡을 당신은 드시지 않고 가슴 안쪽에 감추고 계시다가 식당 앞쪽에서 마주칠 때면 몰래 손에 쥐어주고 가시곤 하셨습니다. 지금도 시루떡만 보면 화가 치밀고 눈물이 납니다. 아버지는 1987년 4월 사건이 터지고 사회로 나와서 형제원의 폭력과 작업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그해 1987년 10월 14일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1982년 9월 형제복지원이 국가의 ‘내무부훈령410호’로 강제노동·강금·폭행 등 인권유린을 당하고, 가족도 잃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설곳이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을 한 곳에 가둬두는 이런 일이 세상에 있을 수 있습니까. 형제복지원을 나와 혼자서 안해본 일이 없습니다. 신문팔이, 중국집 배달원, 김 양식, 구두닦이 등 직업을 전전했습니다. 그 때의 고문같은 생활로 인해 올바른 직업 한 번 갖지 못하고 악몽과 트라우마로 점철된 30년을 살았습니다. 지금도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살고 있습니다. 국민을 위해 있어야 할 이 나라, 이 국가가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이 억울함과 분노·고통을 국가가 보상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형제복지원 피해자 정용태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3>고문당해 ‘도둑질’ 거짓자백하자 강제 수용…‘부랑아’ 낙인 계속됐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3>고문당해 ‘도둑질’ 거짓자백하자 강제 수용…‘부랑아’ 낙인 계속됐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달 2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 해운대서 놀던 꼬마 잡아간 경찰, 허위자백 받아내 형제원으로박상현(47·가명)씨는 37년 전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간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놀고 있던 그를 붙잡아 간 경찰들은 “배달하다 돈을 훔쳐 도망나온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매질과 물고문을 당한 박씨는 결국 강압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했고, 이튿날 형제복지원으로 보내졌다. 박씨는 1987년 형제복지원이 폐쇄될 때까지 3년 동안 아동소대와 청소년소대에 머물렀다. 흙벽돌을 만들고 흙마대를 나르는 작업에 강제로 동원됐다. 할당량을 못 채우면 기합을 받았다. 소대 안에서 폭력은 일상이었고 밤마다 소대장에게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 13살 때 형제복지원을 나온 박씨는 시설을 전전했다. 부산소년의집에서 서울소년의집으로, 다시 부산소년의집으로 옮겨다니며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시설은 형제복지원보다는 나았지만, 구타는 여전했다. 박씨는 스무살이 되어서야 수소문 끝에 가족을 찾았다. ‘형제복지원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가족들의 시선조차 곱지 않았다. 한때 취업을 하기도, 직업군인이 된 적도 했지만 그의 유년기를 알게 된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결국 박씨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일용직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부산을 떠나 연고가 없는 한 도시에 자리잡은 그는 지금도 제 과거를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될까봐 하루하루가 두렵다. 아래는 박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 [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박상현 진술 내용: 1. 형제복지원 입소경위와 피해사실 1984년 4월 10일 오후에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놀고 있었는데 사복 입은 형사 2명이 저를 잡더니 다짜고짜 집이 어디냐고 묻지도 않고 “어디서 배달하다가 도망 나온 거냐?” “뭐 훔치고 도망 다니는 거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아니라고 했지만, 바로 해운대파출소로 데리고 갔습니다. “훔친 적 없다”고 그렇게 말을 했지만 제가 행색이 초라해서인지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중국집에서 배달하다가 돈 훔쳐서 도망 나온 거냐?”고 묻길래 “절대 아니다”라고 했지만, 제 말은 듣지도 않고 바른 대로 말하라고 하면서 무릎을 꿇게 하더니 수건 같은 것을 허벅지에 올리고 경찰봉으로 허벅지를 때렸습니다. 그래도 아니라고 하니 수갑을 뒤로 채우고 경찰봉을 무릎 뒤로 끼우더니 책상 양쪽에 걸고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얼굴에 씌우고 주전자의 물을 얼굴에 붓는 고문을 했습니다.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형사들이 말하는 대로 배달도 했고, 주인의 시계와 돈을 훔쳐서 도망 나온 것이라고 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원하는 대답을 들은 후에야 풀어주면서 유치장은 아니고 의자 구석에 수갑을 채운 채로 자라고 했습니다. 너무 아프고 졸려서 잠을 청했습니다. 한참을 자다가 깨워서 일어나니 “내일이면 집에 갈수 있다. 저 차를 타고 가면 저 아저씨들이 내일 집에 보내 준다”는 말에 아무런 의심 없이 그 차를 탔습니다. 흙벽돌 만들고 흙마대 나르고, 매일 구타에 성폭행까지 당해 한참을 달려 내린 곳이 형제복지원이었습니다. 새벽에서야 도착했고 차에서 내리자 마자 몽둥이로 때리면서 어느 건물로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줄을 세워놓고 옷을 다 벗게 했습니다. 소방호스로 찬물을 한참을 뿌리고 이상한 하얀 가루를 머리부터 뿌리고 체육복 같은 것을 입히더니 자게 했습니다. 물론 철문은 굳게 잠겨 있었기에 도망갈 엄두도 못 냈습니다. 단지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밤을 지새웠을 뿐입니다. 잠깐 잠을 자고 나니 새벽에 기상을 시켰고 밥을 선착순으로 먹게 했습니다. 그후에 아동소대인 24소대에 배치돼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24소대에는 저보다 어린애들도 있었고 저보다 나이 많은 조장들도 있었습니다.그날부터는 매일이 지옥 같은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하루라도 안 맞은 날은 정말이지 행복해 할 정도였습니다. 매일매일 맞았고, 형편 없는 식사조차 항상 선착순이였습니다. 밤에는 소대장이라는 사람한테 성폭행도 당했었습니다. 저녁 점호가 끝나면 어김없이 철창문과 철문이 이중으로 잠겼으며, 그 철문이 잠기고 나면 또다른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차라리 맞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소대원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소대장이 따로 불러 성폭행을 했습니다. 거부할 경우에는 조장들이 따로 불러 폭행과 얼차려를 했습니다. 조장들한테는 기본적으로 매일 몽둥이로 맞고 ‘얼차려’는 일상이였습니다. 낮에는 학교를 다녔지만 수업이 끝나면 작업장에 불려나가서 흙벽돌을 만드는 데 동원됐습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역시 얼차려를 받거나 맞아야 했습니다. 할당량을 채웠다고 하면 기껏 앙꼬(앙금) 없는 빵 한 조각과 콩물이 전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교회 뒤쪽에 공사를 할 때도 흙마대를 지고 날라야 했으며, 시에서나 어디서든 손님이라도 오게 되면 평소엔 나오지도 않은 보여주기식의 음식이 조금 나왔습니다. (손님이 온다고) 나눠줬던 옷들도 다시 수거해 반납을 하게 했습니다. 운동장 스탠드 밑에는 소를 가져다놓고 보여주기식으로 도축도 하는 그런 실정이였습니다. 먹는 것은 항상 부실했고, 썩은 냄새 진동하는 정어리 젓갈은 항상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3년 가량 형제복지원에서 지낸 생활은 정말이지 뼛속 깊이 상처가 되어 지금, 아니 이후로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 고통이 될 것입니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터진 후 소년의집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형제복지원 안에서 개금분교를 다니고 있었기에 (부산)소년의집으로 이동한 후 면담을 했고, 초등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서울소년의집으로 다시 이동했습니다. 소년의집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졸업생들은 부산소년의집으로 다시 옮겨 왔습니다. 부산에서 소년의집 안에 있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수녀님과 신부님의 도움으로 학업은 이어갈 수 있었지만, 그 곳 역시 보호시설이었기 때문에 선배들에게 구타를 당했습니다. 구타당한 사실을 알리면 또다시 보복을 당했기 때문에 알릴 수가 없었습니다. 소년의집에서 생활을 하면서 형제복지원보다는 나아졌지만 역시나 구타와 괴롭힘은 있었으며, 저의 어린 시절은 제가 원하지 않는 단체 생활과 폭력과 폭언, 구타와 괴롭힘의 생활이 항상 따라다녔던 것 같습니다. ‘형제복지원 출신’ 낙인에 가족도 직장동료도 떠났다 2. 형제복지원과 소년의집 퇴원 후의 생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소년의집에서 호적을 만들어주셔서 취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다니던 초등학교와 포항 북부 경찰서 등을 찾아 가출 신고를 한 흔적을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살던 동네를 찾아서 가게 됐고, 거기서 어머님의 친구 분 소식을 접하고 제가 어머님을 찾으러 왔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어머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을 만나고 나니 제 이름과 생일 모든 것이 제 기억과는 달랐고 집을 찾았기에 소년의집에서 만들어주신 호적과 제 본래 호적이 2개가 되어 호적 정정 신청을 해 소년의집 호적은 말소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과의 오랜 단절이 있었고 제가 지낸 곳이 형제복지원과 소년의집이라는 걸 알게 된 가족과 친지들은 저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족의 일원이라는 것을 거의 부정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그 후에 가족들과의 거리는 여전했고 다니던 직장에서도 제가 형제복지원과 소년의집에서 자란 것을 알게 돼 대인관계를 형성하기가 너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직장도 그만두게 됐고, 가족들과도 멀어지게 되면서 저는 도피처를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도피처로 군대를 선택했고 직업군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직업군인 생활조차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편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지내온 어린 시절을 인정해주지 않고 오히려 선입견을 가지고 저를 피하고는 했습니다. 그래서 제대를 결심하게 되었고, 제대 후에도 직장생활은 제게 사치였습니다. 저의 사정을 알게 된 사람들의 날선 시선과 선입견 속에 지내는 게 너무 힘들다보니 직장생활도 힘들었고 저는 택배일과 퀵 서비스 같은 일용직 일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만난 지 27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왕래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 역시 제대로 된 직장 생활은 힘들어 퀵서비스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저를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항상 싸우고 있습니다. 자연히 대인기피증도 생기고 어린 시절의 그 고통과 아직도 마주하고 있습니다. 생활고는 당연한 것이며, 주위에 아는 지인조차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어린 시절의 제가 겪었던 일들을 두서없이 적은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지난 고통과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저희는 지금까지 버티고 버티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희의 지난 고통과 아픔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습니다. 뼛속까지 사무쳐 있습니다. 이 억울하고 슬펐던 지난 날들을 조금이나마 보상받고 치유가 될 수 있도록 저희의 마음을 헤아려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기세등등 암릉에 안길쏘냐…찰박찰박 붉은해 품을쏘냐…곱디고운 쪽빛에 물들쏘냐

    기세등등 암릉에 안길쏘냐…찰박찰박 붉은해 품을쏘냐…곱디고운 쪽빛에 물들쏘냐

    하늘은 맑고 대기는 따스했다. 전남 진도의 관매도 가는 길. 바람은 다소 세찼지만 누구라도 기분이 좋아질 법한 날씨였다. 한데 진도항(옛 팽목항) 여객선 터미널의 매표원이 전한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심드렁한 표정의 그는 메마른 목소리로 내일 날씨가 안 좋다고, 돌아오는 배가 뜨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새벽부터 먼 길을 달려온 여행자로선 그야말로 ‘멘붕’의 순간이었다. 자연의 제약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섬사람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금부터 전하려는 건 그날 진도의 남쪽에서 만난 별 같은 풍경들에 대한 이야기다. 비유하자면 ‘멘붕 끝에 낙이 온다’ 정도려나. 관매도와 아직 마주하지는 못했어도, 절대 꿩 대신 닭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높이는 뒷동산, 난이도는 1000m급 ‘동석산’ 진도항 가는 길에 시선을 사로잡은 산이 있었다. 그 산은 해안가에서 흔히 보는 육산과 결이 달랐다. 보통의 산들은 바다와 만나면서 어딘가 유순하고 말랑말랑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산은 강경했다. 육지를 내달려 오던 그 기세 그대로 완강하게 서 있었다. 오르고 나서야 알았다. 그 산이 등산가들 사이에서 소문난 동석산(銅錫山·219m)이란 것을. 왜 동네 뒷산만큼 작은 산을 오르면서 오금이 저려야 했는지, 그리고 그게 그리 창피해할 일이 아니란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됐다. 동석산은 진도 남쪽에 솟은 산이다. 높이는 낮지만 나라 안의 200m급 산 중에선 가장 빼어나다는 상찬을 받는다. 바닷가에 솟은 덕에 산정에서 굽어보는 다도해 풍경도 그만이다. 등산을 즐기는 이들이 오르기 힘든 산을 두고 자주 쓰는 표현들이 있다. 가장 흔한 건 “암릉 종합선물세트”일 터다. “산은 높이로 말하지 않는다”거나 “높이는 뒷동산급, 난이도는 1000m급”이란 표현도 종종 듣는다. 동석산은 이런 표현들이 적확하게 들어맞는 산이다. 사실 오르는 것 자체가 힘들지는 않다. 어느 고산준봉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아찔한 스릴, 그로 인해 몸이 느끼는 ‘저세상 텐션’ 탓에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지 싶다. 동석산 들머리는 세 곳이다. 남쪽의 종성교회와 천종사, 북쪽의 세방마을이다. 남쪽은 ‘흉악하기 짝이 없는 악산(岳山)’이고 북쪽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육산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완만한 곳을 선택하는 게 상식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동석산의 남쪽을 ‘봐 버린’ 눈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들머리로 삼는 곳은 종성교회다. 예전엔 천종사 코스로 오르는 이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나마 등산로의 흔적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안전했기 때문이다. 철제 난간, 등반 로프 등 각종 안전 설비가 마련된 요즘엔 바뀌었다. 오금 저리는 상황을 즐기려는 이들이 부러 종성교회 코스를 찾는다. 물론 안전 설비가 갖춰졌다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한때 ‘목숨 걸고 오른다’고 했을 만큼 난코스였던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특히 칼날능선(사실 칼보다는 두툼한 모양새가 작두에 더 가깝다) 같은 곳은 말 그대로 칼날처럼 날카로운 암릉 구간이어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강풍도 잦다. 조산운동 초기에 항아리처럼 둥글었을 바위가 칼날처럼 날렵하고 매끈한 모습이 된 건 십중팔구 풍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관매도에 들지 못한 이유를 다시 상기해 보시라. 걸핏하면 배가 끊기는 이유도 이 세찬 바람 때문이었다. ●급치산 오르니 다도해 경관 오롯이 내눈에 들머리의 교회도, 절집도 이름에 하나같이 ‘쇠북 종’(鍾)자가 들어간다. 그 이유는 산 중턱의 종성바위에 오르면 알게 된다. 종성바위는 바람이 지날 때면 종소리가 난다는 곳이다. 신라 때 한 승려가 지나는데 동석산 봉우리들이 일제히 종소리를 토해 냈다지. 그때부터 산 아래는 종성골이라 불렸고, 동쪽 직벽 아래에 1000개의 종을 뜻하는 ‘천종사’, 남쪽 바위 아래에는 ‘종성교회’가 들어서게 됐다고 한다. 정상까지 빠르게 오르려면 천종사 코스가 낫다. 동석산 가운데쯤에서 출발해 정상과 가깝다. 반면 산자락 초입의 암릉미를 감상하려면 갔던 길을 되짚어 와야 하는 단점이 있다. 동석산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암릉이다. 어디서 출발하든 ‘워밍업’ 따위는 없고 곧바로 오르막이다. 3~4시간 소요되는 원점회귀가 일반적이지만 석적막산, 애기봉 등을 거쳐 세방마을로 내려서는 종주산행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이 경우 산행 시간은 5시간 이상으로 늘어난다. 동석산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에 진도의 명소들이 매달려 있다. 제때 제자리에 서려면 시간 안배를 잘해야 한다. 1박 2일 여정일 경우, 첫날 마지막 목적지는 당연히 세방낙조 전망대여야 한다. 여건만 맞는다면 일생에 두 번 보기 힘든 해넘이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동석산 바로 옆은 급치산이다. 다도해 경관을 한눈에 품을 수 있는 곳이다. 급치산에도 낙조전망대가 있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호젓한 것이 장점이다. 주변 의식할 필요 없이 마음껏 셀피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오르는 도로도 잘 닦여 있다. 한데 노을 풍경으로만 보자면 세방낙조나 동석산에 견주기는 어려워 보인다.●갯벌 따라 마음 적시는 해넘이 ‘세방낙조’ 세방낙조 전망대 주변은 ‘시닉(Scenic) 드라이브 코스’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동안 차창 밖으로 줄곧 빼어난 풍경이 매달린다. 해넘이는 세방낙조 전망대에서 맞는다. 사위가 노을로 붉게 물들 때면 주차장과 도로가 차들로 북새통이다. 전망대 아랫마을에서 맞는 해넘이 장면은 좀더 서정적이다. 바닷물이 찰박대는 갯벌 너머로 붉디붉은 해가 넘어간다. 두 채의 펜션이 나란히 선 곳이 포인트다. 둘 다 사유지여서 꺼려지긴 하지만, 염치 불고하고 들어가야 한다. 민망한 시간은 짧고 남겨질 사진의 시간은 길다. 동석산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10분 남짓 내려가면 팽목항(현 진도항)이 나온다. 대한민국 사람 누구에게나 가슴 한 켠에 상흔처럼 새겨졌을 지명이다. 팽목항 주변에 당시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다. 누구나 갖고 있을 먹먹한 아픔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차분하게 고백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팽목항 상흔 지나면 ‘삼별초 항전’ 남도석성 팽목항에서 서망항을 지나면 곧 남도석성이다. 삼국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이다. 고려 때 진도까지 밀려온 삼별초가 몽골군에 맞서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곳이다. 남도석성 앞에 쌍홍교와 단홍교 등 두 개의 홍예교(무지개다리)가 있다. 편마암 판석을 겹쳐 세워 질박한 아름다움이 일품이다. 진도 일대에는 삼별초와 관련된 유적들이 많다. 남도석성, 용장산성 등이 대표적이다. 굴포리엔 이 포구에서 전사한 삼별초 장군 배중손의 사당이 조성됐고, 의신면엔 왕족 왕온을 모시던 궁녀들이 몸을 던졌다는 삼별초 궁녀둠벙이 정비돼 있다. 남도석성 바로 앞은 동령개 마을이다. 대단한 볼거리는 없지만 동령개 소공원, 해안가 숲 등에서 넋 놓고 쉬어갈 만하다. 동령개는 여느 갯마을과 달리 해안이 몽돌이다. 바닷물이 들고 날 때마다 나는 독특한 소리가 마음을 다독이고 가라앉혀 준다. 여귀산 돌탑길은 이름 그대로 여귀산 아래에 돌탑들을 세워 조성한 길이다. 안내판에 따르면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여귀산 남신과 여신 전설을 돌탑의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돌탑 주변엔 시비도 세웠다. 이 지역 문인들이 쓴 창작시들이다. 돌탑길 아래에 탑립마을, 아리랑마을 등이 있다. 진도아리랑 가락을 보듯, 유연하게 굽이치는 마을길이 일품이다. 죽림리의 해안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일대 바다는 물색이 아주 곱다. 연한 사파이어빛 바다와 갯벌이 잘 어우러져 있다. 죽림마을 앞 솔숲은 얼추 400년 역사가 담긴 방풍림이다. 낮은 돌담이 둘러친 마을 안길을 자박자박 걸어도 좋고, 솔숲에 앉아 쉬어 가도 좋겠다.의신면 도로변엔 ‘훈장님탑’이 있다. 이름 그대로 ‘서당 훈장님’들을 기리며 세운 탑이다. 공덕비도 여럿 세웠다. 의신면으로 ‘위리안치’됐던 한양 출신 훈장님도 있고, 출세길에 나서지 않고 고향에 남은 훈장님도 있다. 나라 안에 ‘사또님’ 공덕비 무리는 숱하게 봤어도 훈장님의 공덕을 칭송하는 탑과 비석 무리는 처음인 듯하다.●유배지서 웰빙 등산길로… ‘섬 속의 섬’ 접도 이제 접도를 말할 차례다. 진도 동남쪽 여정에서 긴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다. 접도는 섬 속의 섬이다. 진도와 접해 있다고 해서 접도다. 해안선 길이라야 12㎞ 정도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1989년에 접도대교가 놓이면서 진도와 연결됐다. 접도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배지 중 하나였다. ‘유배지 공원’ 안내판에 따르면 1703년 박필위를 시작으로 모두 21명이 유배를 왔다고 한다. 접도는 아담하고 예쁘다. 대표 명소는 ‘웰빙 등산로’다. 접도 최고봉인 남망산 일대의 숲과 해안을 아우르는 길이다. 들머리는 수품항과 여미주차장 등 두 곳이다. 여미주차장 코스가 비교적 짧지만, 그마저 최소 3시간은 잡아야 한다. 일반 여행객들이 준비 없이 나서기는 사실 쉽지 않은 거리다. 여기서 ‘꿀팁’ 하나. 쉽고 편하게 남망산 정상에 오르는 방법이 있다. 수품항 초입 언덕에서 오른쪽 남망산 방향으로 도로가 나 있다. 도로 중간쯤 여미재에 차를 대고 오르면 10분 만에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체력은 정력’이라는 ‘거창한’ 표지석이 세워져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등산을 꺼리거나 시간이 없는 도시 여행자에게는 그야말로 ‘웰빙’ 등산로이지 싶다. 남망산은 밖에서 보면 별 특징이 없는 야산처럼 보인다. 한데 숲 안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수종의 상록수림이 펼쳐진다. 정상은 쥐바위(159m)다. 표지석이 세워진 곳보다 맞은편 바위에서 보는 전망이 훨씬 좋다. 남망산 아래 수품항도 예쁘다. 항구 주변에 낚시 공원이 조성돼 가족들이 편히 낚시를 즐길 수 있다. 글 진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뜸부기탕은 진도의 독특한 먹거리 중 하나다. 해초인 뜸부기를 소갈비 등과 함께 끓여낸다. 읍내 신호등회관, 맛나식당 등에서 맛볼 수 있다. 소담은 수제 돈까스, 김치찌개 등을 맛깔스럽게 낸다. ‘신비의 바닷길’ 인근에 있다. 용궁관은 현지인들이 ‘강추’하는 중국집이다. 특히 홍합짬뽕은 앵두를 씹는 것처럼 차지고 포실한 홍합 맛이 일품이다. 양도 푸짐하고 재료도 신선하다. 세방낙조와 가까운 지산면 소재지에 있다. -세방낙조 주변에 펜션들이 많다. 다만 인근에 맛집들이 많지 않아 지산면이나 진도읍에서 먹고 들어가야 한다. 접도 쪽도 먹거리 사정은 좋지 않은 편이다. 접도 끝자락의 수품항에 작고 깔끔한 커피숍이 한 곳 있다.
  • [길섶에서] 교동도 잠깐여행/서동철 논설위원

    30년도 넘은 일이다. 출장길에 대천항 가까이에 있는 중국집에 들어갔다. 짬뽕 맛은 한마디로 놀라웠다. 싱싱한 해산물이 많이 들어 있었다. 이후 항구 주변에서 구미에 당기는 식당이 눈에 띄지 않으면 짬뽕을 먹곤 한다. 그날의 풍성한 해산물과 진한 국물맛을 기대하면서. 지난 주말 교동도로 차를 몰았다. 교동도와 강화도를 잇는 연륙교는 2014년 개통됐다.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모두 다른 대답을 하겠지만, 나에게 이 섬에서 가장 좋았던 장소가 어디냐고 물으면 화개산 중턱에 있는 화개사라고 답하겠다. 고려시대 목은 이색이 공부했다는 작은 암자인데, 고려는 물론 조선시대 흔적도 찾기 어려운 새절이었다. 절 마당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한 폭 그림이다. 이웃한 석모도 보문사의 바다풍경이 호쾌하다면 화개사의 그것은 아기자기했다. 교동도 대룡시장은 ‘레트로 감성’이 넘치는 문화거리로 유명해졌다. 시장을 둘러보다 ‘여기도 바닷가지’ 하는 생각에 중국집을 찾아나섰다. 낮잠을 청하던 주인을 깨워 짬뽕 한 그릇을 주문하는 것이 미안했다. 곧 할머니 한 분이 들어와 “짜장면 세 그릇을 네 그릇으로 나눠 주면 안 되겠냐”고 하자 친절한 주인은 “네 그릇도 더되게 넉넉하게 담았다”며 음식을 건넨다. 이런 점심이 맛이 없을 수가 있나.
  • 법망 피했던 중고 플랫폼… 판매자 밝힌다고 망하는 게 ‘당근’일까

    법망 피했던 중고 플랫폼… 판매자 밝힌다고 망하는 게 ‘당근’일까

    “내 신원정보가 언제 어떻게 유출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당근마켓에 함부로 제공하기 싫다.” vs “사기를 당했을 때 피해 구제를 신속하게 받으려면 판매자 신원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당근마켓을 비롯해 중고거래 온라인 플랫폼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사업자가 관리하던 판매자의 신원정보를 구매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전자상거래법 전부 개정안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개인정보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구매자 보호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9일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는 개인이 플랫폼에서 물건을 판매하고자 할 때 이름, 전화번호, 주소 같은 신원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또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플랫폼 사업자는 구매자에게 신원정보를 알려 분쟁 해결을 도와야 한다. 실제 법이 적용되는 시점은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다. 업계에선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로 거래가 위축돼 플랫폼 생태계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누구나 판매자인 동시에 소비자가 되는 C2C(소비자 대 소비자) 거래에서 신원정보 제공을 의무화하는 것은 2000만 소비자의 개인정보를 공개하라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분쟁 과정에서 개인 사용자가 취득한 타인의 신원정보는 거래 종료 후 자동으로 파기되지 않아 악의적인 목적으로 악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당근마켓 이용자들도 업체에 신원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 반감을 표시했다. 직장인 이모씨는 “소일거리 겸해서 안 쓰는 물건들을 가볍게 동네에서 판매하려는 건데, 필요 이상으로 개인정보를 요구하면 이용이 꺼려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제품에 하자가 있는데도 판매자가 환불을 거부하며 연락이 두절되거나 사기 사건이 발생했을 때, 분쟁 해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때만 신원정보 제공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B2C(기업 대 소비자) 거래처럼 사업자 정보가 일반적으로 공개되는 것과 달리 어디까지나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을 때만 제공이 된다는 의미다. 현재 당근마켓은 개인정보 인증 없이 전화번호만으로 가입이 가능해 대포폰으로 가입하더라도 걸러낼 방법이 없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실제로 한 이용자는 “최근 당근마켓에서 사기를 당해 신고했는데, 경찰이 판매자 특정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공정위는 현행 전자상거래법에도 플랫폼 사업자가 이름이나 전화번호 같은 신원정보 열람 방법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돼 있으나, 당근마켓 등이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행법상 ‘일상용품이나 음식료 등을 인접 지역에서 팔기 위한 거래에 대해선 정보 제공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이 있지만, 이는 중국집과 같은 배달음식점에 해당되는 것이지 당근마켓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이번 개정안을 통해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는 해당 예외 조항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말했다. 세종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어이 브라더~ 대구시의 비대면 위로를 아는가?

    어이 브라더~ 대구시의 비대면 위로를 아는가?

    영화 ‘신세계’를 패러디한 ‘신대구’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대구시는 코로나19로 인해 가족들과 모이지 못 한채 설 연휴를 보내는 시민들을 위한 제작한 영상이 15일 기준 조회수 14만 이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영상은 대구에서 최초로 시행했던 ‘코로나19방역 모범사례들’과 ‘대구홍보 요소들’ 2편으로 구성됐다. 이 영상은 지난해 추석에 공개돼 인기를 끌었던 ‘가족과 함께’(영화 ‘신과 함께’ 패러디) 후속 작품으로 기획됐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빵’터지는 웃음은 물론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쓰기 의무화’ 등 코로나19 방역 관련 사례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특히 ‘어이 브라더~’ 대사로 유명한 신세계의 중국집 장면에서는 대구에서 최초로 시작된 ‘착한 임대료 운동’과 ‘대구 수돗물’을 언급하는 형식으로 엮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2021년에도 코로나19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지만, 국채보상운동, 2.28 민주화운동 등과 같이 이번 위기도 잘 이겨내자’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영상을 시청한 사람들은 ‘영상이 재미있다’, ‘이런 센스, 다음편을 기대하겠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되었다’, ‘연기력이 좋다. 설마 공무원은 아니죠?’ 등의 반응이다. 이번에는 대구시 홍보브랜드담당관실 모든 직원이 출연해 대구시민을 응원하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권기동 대구시 홍보브랜드담당관은 “앞으로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온라인 대구시정홍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어이 브라더~ 대구시의 비대면 위로를 아는가?

    어이 브라더~ 대구시의 비대면 위로를 아는가?

    영화 ‘신세계’를 패러디한 ‘신대구’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대구시는 코로나19로 인해 가족들과 모이지 못 한채 설 연휴를 보내는 시민들을 위한 제작한 영상이 15일 기준 조회수 14만 이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영상은 대구에서 최초로 시행했던 ‘코로나19방역 모범사례들’과 ‘대구홍보 요소들’ 2편으로 구성됐다. 이 영상은 지난해 추석에 공개돼 인기를 끌었던 ‘가족과 함께’(영화 ‘신과 함께’ 패러디) 후속 작품으로 기획됐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빵’터지는 웃음은 물론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쓰기 의무화’ 등 코로나19 방역 관련 사례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특히 ‘어이 브라더~’ 대사로 유명한 신세계의 중국집 장면에서는 대구에서 최초로 시작된 ‘착한 임대료 운동’과 ‘대구 수돗물’을 언급하는 형식으로 엮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2021년에도 코로나19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지만, 국채보상운동, 2.28 민주화운동 등과 같이 이번 위기도 잘 이겨내자’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영상을 시청한 사람들은 ‘영상이 재미있다’, ‘이런 센스, 다음편을 기대하겠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되었다’, ‘연기력이 좋다. 설마 공무원은 아니죠?’ 등의 반응이다. 이번에는 대구시 홍보브랜드담당관실 모든 직원이 출연해 대구시민을 응원하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권기동 대구시 홍보브랜드담당관은 “앞으로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온라인 대구시정홍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젊은층 떠나고 상가는 문 닫고… 화려한 세종시의 그늘

    젊은층 떠나고 상가는 문 닫고… 화려한 세종시의 그늘

    “관리비만 내고 쓰라고 상가 점포를 임대 주는 주인도 있어요.” 세종시청 인근에 있는 우진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최병철(46)씨는 “세종시 아파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값이 뛰는 것과 달리 상가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비다시피해 있다”면서 “세입자의 턱없이 낮은 임대료 요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2007년 7월 출범한 행정도시 세종시가 눈부신 발전과 함께 도시가 성숙해지면서 그늘도 드러나고 있다. “서울 강남 못지않은 도시가 될 것”이라는 시민들의 기대 속에 아파트값이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으면서 자금력이 떨어지는 청년층의 이탈과 인구증가 둔화, 극심한 상가 침체는 ‘자족도시 기반 확충’ 등을 목표로 올해 착수해 10년간 진행할 마지막 3단계 사업에 적잖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행정수도’ 격상과 2030년 인구 80만명 목표도 도시의 양극화 극복에 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상가 빌딩 1층조차 빈 곳 많아 일요일인 지난 24일 찾은 보람동 시청 인근 도로는 무척 썰렁했다. 오가는 시민은 드물고, 문 닫은 상가도 자주 눈에 띄었다. 최씨는 “코로나19 탓도 있지만 주말에 집이 있는 서울로 올라가는 공무원이 아직 많은 것도 이유”라고 전했다. 상가 빌딩 2층은 고사하고 1층도 많이 비어 있다. 일부 음식점 등이 들어섰지만 벽과 창문 곳곳에 ‘임대’라고 써 붙어 있다. 최씨는 “69㎡ 점포라면 전용면적은 35㎡쯤 된다. 이걸 4억 2000만원 안팎에서 분양받아서 매달 150만~160만원은 임대료를 받아야 하는데 임차인이 70만원 정도를 요구하니 계약이 되겠느냐”면서 “중심상권조차 이러니 다른 곳은 말해 뭣하겠느냐”고 혀를 찼다. 법원·검찰청이 들어올 소담동 법조타운 길 건너편은 더 심했다. 상가 빌딩 1층조차 10여개 점포 중 임대한 곳은 서너 곳에 불과했다. 일부만 중국음식점 등이 입점해 있다. 잡초 무성한 부지 앞에 ‘법원 검찰청 건립 예정부지’라는 플래카드만 나부꼈다. 28일 세종시에 따르면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이 집계한 지난해 3분기 세종시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8.2%로 전국 평균 12.4%를 훨씬 웃돈다. 소형 점포도 10.3%로 전국 평균 6.5%의 1.6배다. 행복도시건설청이 조사한 지난해 1분기 중앙부처 이전지 신도시의 상가 공실률은 무려 26.3%에 달한다. 중앙행정기관 44개, 국책연구기관 16개가 옮겨오고 시 인구 36만명 중 27만명이 신도시에 살지만 상가는 침체 상태를 못 벗어나고 있다. 시에서 상가활성화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대응에 나설 정도다. 이상훈 주무관은 “상가 공실이 많은 건 과잉공급과 고가 분양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시에 대한 장밋빛 미래가 극대화되면서 아파트나 주상복합 등이 건설될 때마다 당초 계획보다 더 많은 상가를 지었다. 최씨는 “아파트단지 안에 10개 정도의 점포가 필요하면 수십개로 늘린 곳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귀띔했다. 세종시의 부동산 붐이 일면서 초기만 해도 점포 분양이 속속 이뤄지자 분양가도 엄청 높어졌다. 최씨는 “초기에는 웃돈까지 붙여서 팔았는데 3년 전쯤부터 침체를 시작했다”고 했다. 점포 주인은 버티기에 들어가거나 일부는 경매에 몰리기도 한다. 경매 시장에 매달 10건 안팎이 나오지만 낙찰률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려는 사람이 드물다는 얘기다. 낙찰이 돼도 감정가의 절반 이하로 이뤄진다. 소담동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A씨는 “가게를 열어도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소상공인들이 많다”고 했다. A씨는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되니까 그전에 잘나가던 음식점과 카페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공무원 도시여서 점심을 먹으면 반드시 커피 한 잔씩 하지 않느냐”면서 “그런데 요즘에는 다른 지역처럼 치킨과 중국집 등 배달 음식점이 그나마 근근이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전용면적 84㎡ 아파트 10억 돌파 반면 아파트는 널리 알려진 대로 상승률이 전국 최고다. 전용면적 84㎡ 아파트가 ‘10억 시대’를 열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은 새롬동 새뜸10단지 더샵힐스테이트 전용 84㎡가 지난달 중순 11억 5000만원에 거래됐다고 기록했다. 지난해 6월 9억 3000만원에서 급상승했다. 다정동 가온4단지 e편한세상푸르지오 전용 84㎡는 최근 10억 4700만원에 팔렸다. 다정동 가온마을12단지 더하이스트 84㎡도 10억 9000만원에 거래되며 단숨에 10억원 고지를 넘었다. 한솔동 첫마을3단지 퍼스트프라임 84㎡는 10억원을 넘본다. 서울 중저가 아파트가 밀집한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과 견줘도 손색없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은 전국주택가격동향을 통해 지난해 세종시 아파트값이 37.05% 상승해 전국 최고였다고 발표했다. 최씨는 “국회의사당 이전 등 행정수도 격상에 대한 기대감과 신축 아파트가 갈수록 줄어드는 점이 아파트값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아직 강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25년이 지나면 경기도 과천 정도는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세도 크게 뛰었다. 그는 “지난해 초에 82.5㎡ 아파트가 1억원 초에서 3억원, 112.2㎡가 1억원 후반에서 4억원으로 올랐다”며 “집값이 엄청 오르면서 젊은층이 세종시 외곽이나 타 지역으로 밀리는 문제도 있다. 도시 활력이 떨어질 수 있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전출인구 5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어 세종시는 2015년부터 지금까지 전입 인구가 7만~8만명 수준을 유지하지만 전출은 2015년 3만 950명에서 지난해 1~11월 5만 9332명을 기록해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전입은 충청권인 대전·충남·충북이 2015년 4만 3233명에서 지난해 1~11월 2만 4508명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한 반면 전출은 두 배쯤 늘었다. 2015년 세종시민 8897명이 충청권으로 떠났으나 지난해 1~11월에는 그 숫자가 1만 7021명으로 커졌다. 세종시 전입자는 대전에서 온 사람이 가장 많다. 하지만 2015년 2만 5788명에 이르던 대전에서의 전입이 지난해 1~11월 1만 3856명으로 크게 줄었다. 같은 기간 세종에서 대전으로 이전한 시민은 3684명에서 7629명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보람동의 한 30대 시민은 “세종시 초기에는 전세가 훨씬 싸고 아파트를 분양받을 기회도 있어 대전에서 대거 이사를 왔는데 요즘은 엄청 오른 아파트값에 분양받기도 힘들어 유턴하는 젊은 부부가 많다”고 했다. 특히 충북은 세종시 순이동 주민이 2015년 6753명에 달했으나 지난해 1~11월 세종시에서 충북으로 이전한 시민이 160명 더 많아 역전됐다. 세종시 안에서 이전하는 시민들도 늘었다. 2015년 1만 3990명에 그쳤으나 지난해 1~11월 2만 6472명으로 두 배 정도 급증했다. 신도시 아파트값을 감당하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난 것이다. 세종시 평균연령은 37.3세로 전국 광역시 중 가장 낮다. 안찬영(한솔동) 세종시의원은 “신도시 상가 침체는 한솔동 등이 심하고 도담동 등은 그나마 나아 편차가 있다. 젊은이가 많은 도시여서 온라인 거래가 활발한 것도 상가 침체를 부추기는데 상가 공급 계획 등이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벌어진 부분도 있다”며 “이 같은 도시성장 과정의 진통을 줄이고 지속적 성장동력 확보와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려면 신도시 외곽지역에 작은 학교(유치원, 초중고)를 많이 세우는 등 젊은층이 만족할 수 있는 교육 및 생활 기반을 충분히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졸업 특수 사라졌다”… 학교 주변 꽃집·식당 ‘침울’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언택트(비대면) 방식 등 각급 학교의 졸업식 풍경이 변하면서 화훼 농가와 인근 식당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연말연시에 이어 졸업 시즌의 특수를 놓친 농가와 학교 인근 식당들은 정부의 실질적인 보상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11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남사 화훼집하장’의 A화원 사장 윤모(53)씨는 “5년 동안 화원을 운영하면서 이렇게 어렵기는 처음”이라며 한숨지었다. 광명시 노온사동 서서울화훼유통단지도 침울한 분위기였다. 이날 열린 광명 지역 고등학교 졸업식이 온라인으로 진행돼 손님을 구경하지 못했다고 아우성이었다. 유통단지의 한 관계자는 “지금 화훼시장은 엄동설한처럼 꽁꽁 얼어붙었다”며 “임대료 지원, 세금 감면 등 실질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남 순천시 조례동의 C꽃집 사장 김모씨는 “업종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면서 각급 학교 주변의 식당들도 이중고를 겪고 있다. 순천시 연향동의 D중국집 사장 이모씨는 “학생들과 같이 온 학부모가 한 명도 없었다”며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지난 5일 아들의 고교 졸업식에 참석했던 김모(50)씨는 “축하와 아쉬움을 가족·선후배와 함께 나누던 졸업식의 풍경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전국종합
  • 코로나19로 졸업식 특수 사라져...자장면과 꽃집은 울상

    “이전에는 각 학교들의 졸업식 날짜 목록이 나왔는데 올해는 알림 자체가 없어졌습니다. 각 학교들이 언제 졸업식을 하는지도 모르고, 소비가 없다 보니 꽃이 판매된다는 기대 조차도 못하고 있어요.” 순천 조례동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자영업도 문을 닫는 상황에 꽃 문화는 사치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졸업식 특수도 사라지고 있다”며 “요즘에는 개인들이 인터넷으로 꽃을 구입한 후 졸업식 등에서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 일반인에게 까지 손님을 뺏기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이렇게 하소연했다. 코로나19가 기존의 활기찬 졸업식 모습을 모두 바꿔버렸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졸업식으로 학부모 참가를 막는 학교가 많아지면서 졸업식 특수를 기대하던 화훼 농가와 인근 중국집 등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면서 학생들에게는 평생 한번 있는 추억의 졸업식 현장이 사라지고, 꽃을 사거나 식당을 찾는 모습이 없어지는 등 삼중고 현상을 보이고 있다. 드라이브 스루로 졸업장만을 받고 귀가하는 새로운 풍속도 생겨났다. 11일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남사 화훼집하장’에서 4년째 화원을 운영하는 윤모(53)씨는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이제껏 한번도 하지 않은 꽃배송을 준비중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와 송년회는 물론 졸업 시즌도 특수를 기대하기는 물건너 간것 같다”고 한숨 지었다. 인근에서 화원을 운영하는 이모(60)씨 사정도 마찬가지다. 윤씨는 “다가올 졸업식을 위해 꽃다발 70여개를 준비했지만 사가는 사람이 없어 진열장에서 시들어가는 꽃만 바라보고 있다”면서 “작년보다 훨씬 적은 꽃다발을 준비했는데 이 마저도 팔지 못해 폐기 처분해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광명시 노사온동 서서울화훼유통단지도 침체된 분위기는 매 한가지다. 연말연시 기업의 인사철에도 찬바람 이었고, 이날 열린 광명지역 고등학교 졸업식도 집에서 온라인 졸업식을 하는 통에 꽃이 안팔린다고 아우성 이었다. 서서울화훼유통단지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김영란법 때문에 한 차례 폭풍을 맞았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코로나19로 지금 화훼시장은 엄동설한에 꽁꽁 얼어붙었다”며 “임대료 지원, 세금 감면 등 실질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입맛이 변했다 해도 졸업식 하면 으레 찾는 자장면집도 어려움을 토로하기는 마차가지다. 순천 연향동에서 20년 넘게 중화요리집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학생들과 같이 온 학부모가 한명도 없었다”며 “졸업식이 열렸다는 말도 처음 들어본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 5일 고교 졸업식에 참석했던 김모(50) 씨는 “교문에서 아들과 사진만 찍고, 음식을 포장해 집으로 곧장 갔다”며 “올해 졸업생들은 축하 모습은 커녕 살아가면서 암울한 텅 빈 교정만 기억할 것 같아 안쓰럽다”고 씁쓸함을 보였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종로 유명 중식당 ‘하림각’마저…코로나 여파에 영업 일시중단

    종로 유명 중식당 ‘하림각’마저…코로나 여파에 영업 일시중단

    서울 종로구의 유서 깊은 중식당 ‘하림각’이 코로나19 여파로 영업을 잠정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하림각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을 버티지 못하고 새해 첫날부터 운영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하림각 출입문에 ‘하림각 영업종료 했습니다. 그 동안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으면서 한때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하림각이 완전히 폐업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남상해(82) 하림각 대표이사 회장은 “영업 종료는 아니고 임시 중단”이라고 밝혔다. 남 회장은 “장사가 너무 안돼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다. 할 수 없이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영업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하림각 개업 이후 영업 중단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다만 예식장(AW컨벤션센터)은 그대로 영업을 지속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1987년 개업한 하림각은 최대 3000명의 손님을 동시 수용할 수 있다고 알려진 대규모 중식당이다. 중국집 배달로 시작해 호텔 조리부장 등을 거친 남 회장의 이력은 MBC TV 다큐멘터리 ‘성공시대’로 널리 알려졌다. 하림각은 정가 인사들이 자주 드나들어 정당 워크숍이나 오찬, 간담회 등의 행사가 많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배달 종업원 교통 위반 땐 사장님도 처벌

    중국집이나 치킨집에서 고용한 오토바이 배달원이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면 사업주도 쌍벌 처벌을 받는다. 사업주는 종업원이 ‘총알 배달’을 하지 않게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경찰청은 이런 내용의 ‘이륜차 음식배달 종사자 보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배포한다고 27일 밝혔다. 가이드라인은 배달 대행 종사자의 교통사고 예방과 안전 보호를 위해 사업주가 지켜야 할 준수 사항과 권고 사항을 담고 있다. 음식배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이용 활성화와 배달 대행 시장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종사자의 안전관리 강화와 이륜차 교통사고를 줄이려는 조치다. 사업주는 종업원이 도로교통법령을 준수하도록 주의·감독해야 하며, 종업원이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면 종사자 처벌과 더불어 사업주 또한 함께 처벌받는다. 종사자가 배달앱에 등록하는 경우 종사자의 이륜차 운행면허와 안전모 보유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또 종업원에게 교통사고가 나지 않도록 배달에 걸리는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배달 플랫폼 업체는 배달 사원에게 업무 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30분,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식이 이뤄질 수 있게 안내 메시지를 송출해야 한다. 종사자가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거나,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적발되면 종사자용 배달앱 사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중국집 배달 종업원 교통법규 위반하면 사장도 ‘쌍벌’ 처벌

    중국집 배달 종업원 교통법규 위반하면 사장도 ‘쌍벌’ 처벌

    배달 대행 종사자가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면 사업주도 쌍벌 처벌을 받는다. ‘총알배달’을 하지 않게 배달에 걸리는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경찰청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이륜차 음식배달 종사자 가이드라인’을 마련, 배포한다고 27일 밝혔다. 가이드라인은 배달 대행 종사자의 교통사고예방과 안전보호를 위해 사업주가 지켜야 할 준수사항과 권고사항을 담고 있다. 음식배달 모바일 앱 이용 활성화와 배달대행 시장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종사자의 안전관리 강화와 이륜차 교통사고를 줄이려는 조치다. 사업주는 종사자가 도로교통법령을 준수하도록 주의·감독해야 하며, 종사자가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면 종사자 처벌과 더불어 사업주 또한 함께 처벌받는다. 종사자가 배달앱에 등록하는 경우 종사자의 이륜차 운행면허와 안전모 보유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또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안전사고를 유발할 수 있을 정도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 전속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종사자에 대해서는 종사자의 입·이직을 신고하고 산업재해보상보험료도 분담하도록 했다. 보호조치도 권고했다. 종사자가 배달앱에 처음 등록하면 안전교육 이수 여부를 등록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교육 이수 여부를 확인하도록 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자 고객이 배달앱 온라인 선결제를 할 경우 고객과 종사자가 마주치지 않게 배달앱 기능을 설정해야 한다. 배달업무 시간이 4시간인 경우는 30분,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식이 이뤄질 수 있게 안내 메시지를 송출해야 한다. 종사자가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거나,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적발되면 종사자용 배달앱 사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김성배 국토부 물류정책과장은 “주요 배달 플랫폼사들은 산업안전보건법 등 안전관련 법령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만, 중소·신생 배달대행업체나 종사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한다”고 말했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열린세상] 환경정책·사업의 비용편익분석과 불확실성/안소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 환경정책·사업의 비용편익분석과 불확실성/안소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의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다. 중국집에서 점심 메뉴로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를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저녁에 마음 맞는 지인들과 한잔할 것인지, 가족과 시간을 보낼 것인지, 아니면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할 것인지를 두고 저울질을 하는 일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리고 선택의 밑바닥에 작동하는 원리는 선택지별로 예상되는 득과 실을 비교하는 일이다. 공공부문의 의사결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책목표가 설정되면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대안이 마련되고, 정부는 제시된 대안 중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선택해야 한다. 비용편익분석(benefit cost analysisㆍBCA)은 공공정책·사업의 대안 평가에 광범위하게 활용돼 온 의사결정 분석 틀이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비용편익분석은 정책·사업 대안별로 예상되는 편익과 비용을 현재가치(기준연도로 환산된 편익과 비용의 화폐가치)로 산정한 후 이를 비교해 최선의 대안을 확인하는 기법이다. 의사결정 기준이 경제적 효율성인 셈이다. 공공부문 비용편익분석이 개인의 의사결정과 다른 점은 편익과 비용의 관점이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옮겨 간다는 것과, 정책·사업의 영향이 오랜 기간을 두고 발생하기 때문에 시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결국 핵심 단어는 사회적 편익, 사회적 비용, 시간(할인율)이다. 여기에 환경이 더해지면 조금 더 복잡해진다. 환경부문 정책·사업의 비용편익분석은 환경영향 평가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환경정책·사업 비용편익분석의 주요 쟁점 중의 하나는 불확실성이다. 물론 환경부문이 아니더라도 불확실성은 있다. 그러나 비용편익분석 틀에 환경을 반영하려면 불확실성의 요소와 크기가 상대적으로 증가한다. 환경영향의 측정은 누가, 어디서,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만큼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인가를 정책·사업의 이행 전에 예측하는 것이 필요한데, 현상의 복잡성으로 인해 과학적으로 그 경로를 규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확인된 환경영향에 대해서는 화폐화 작업까지 진행해야 한다. 긍정적인 영향은 환경편익이라는 이름으로, 부정적인 영향은 환경비용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경제적 효율성에 근거한 의사결정을 원한다면, 환경부문의 불확실성 역시 비용편익분석 틀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몇 가지 방법은 있다. 민감도 분석(sensitivity analysis)이 그중 하나다. 정책·사업의 주요 변수, 예를 들어 할인율 또는 환경편익·비용 산정의 범위와 방법론을 차별화해 분석결과를 제시하는 방법이다. 정책·사업의 위험성을 의사결정에 반영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이다. 다음으로는 환경영향 평가와 환경편익·비용 산정 간의 과학적 연결고리를 견고히 해 분석의 정확성을 높이는 작업이 있다. 환경부문 비용편익분석에 대한 비판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환경편익·비용 산정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이는 퍼즐의 반쪽만 보는 일이다. 정책·사업으로 예상되는 환경영향의 과학적 규명이 먼저다. 그리고 그 결과가 환경편익·비용 산정으로 연계돼야 퍼즐은 완성된다. 이는 전문가의 몫이며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협업이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환경영향의 정량화 내지는 화폐화에 따라오는 불확실성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수용할 수 있는 불확실성의 수준을 바꾸는 것도 하나의 해결 방법이 되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 사회도 공공정책·사업 평가 시 수용 가능한 불확실성의 크기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다양한 불확실성 요소에도 불구하고 비용편익분석에 환경을 고려하고자 하는 이유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환경편익과 비용을 반영함으로써 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는 불확실성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1992년 리우 선언(Rio Declaration) 제15원칙에서 과학적 불확실성이 환경악화 예방 조치를 지연시키는 구실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사전예방의 원칙을 천명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 ASF·군부대 축소에 코로나까지… 접경지엔 손님 그림자조차 없다

    ASF·군부대 축소에 코로나까지… 접경지엔 손님 그림자조차 없다

    “군까지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인제와 철원 등 접경지 상권이 초토화되고 있습니다.” 군부대 이전·축소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 이어 코로나19까지 확산되면서 강원 접경 지역의 상권이 무너지고 있다.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등 강원 접경 지역 주민들은 24일 군 장병은 물론 지역 주민들이 코로나19의 무더기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어려워진 지역 경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울먹이고 있다. 특히 연말 대목을 앞두고 터진 코로나19 확산으로 줄도산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최근 철원 지역 군부대에서 하루 사이 33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데 이어 지역 주민의 확진이 이어지면서 철원의 중심가는 행인들의 그림자조차 찾기 어렵다. 해당 부대가 있는 철원군 서면 자등리 주민들은 “군인들의 무더기 확진이 외출·외박 금지로 이어지면서 지역 상권이 사실상 붕괴됐다”며 한숨지었다. 인구 4만 6000여명의 철원 지역에서는 전날까지 코로나19 확진자가 117명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인구가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동송읍도 ASF 창궐에 이어 코로나19까지 확산되면서 대부분의 상점이 개점휴업 상태다. 이날까지 6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화천군도 사정은 비슷하다. 27사단이 해체되는 화천 사내면 일대는 현역 군인 1명 등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지역경제가 급속히 얼어붙었다. 사내면의 한 중국집 사장 김모씨는 “가게를 열어도 찾는 사람이 없다”면서 “당장 생활비가 막막하다”며 울상 지었다. 인근 주민도 “1.5단계 이상 격상되면 칸막이 설치비와 인건비가 더 들어가니 차라리 문을 닫는 것이 낫다”고 하소연했다. 류희상(27사단해체반대비대위원장) 화천군의원은 “사단 해체에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역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다”면서 “접경지를 살리는 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인제군은 겨울 축제의 원조격인 빙어축제 개최를 전격 취소했다. 인제군은 “고심 끝에 빙어축제를 접고 방역과 지역경제를 살리는 방안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옥수 한국외식업중앙회 인제군지부장은 “군부대 입소식이 있는 날이지만, 지역 내 음식점 10곳 중 7곳 이상이 문을 닫은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지역 소상공인의 줄폐업이 현실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원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민주, ‘성추행’ 박원순·오거돈 후임 시장 후보 낸다… 86.6% 찬성(종합)

    민주, ‘성추행’ 박원순·오거돈 후임 시장 후보 낸다… 86.6% 찬성(종합)

    압도적 찬성으로 ‘문재인 당헌’ 폐기이낙연 “유권자 선택 존중이 공당의 책임 있는 자세… 유능한 후보 찾을 것”野 “박원순·오거돈 성범죄 석고대죄하라”여직원 성추행 사건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시장직을 사퇴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내년 4월 보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당헌을 바꿔 시장 후보를 내기로 결정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31일과 지난 1일 이틀간 권리당원 투표를 진행한 결과, 압도적인 86.64%가 당헌 개정 및 재보선 공천에 찬성했다고 2일 밝혔다. 이로써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만든 당헌은 휴짓조각이 됐고 민주당은 1년 4개월 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초전이 될 서울·부산시장 선거를 치를 수 있게 됐다. “‘후보 공천해 시민 선택이 책임정치’지도자 결단 전폭적 지지” 민주당에 따르면 전체 권리당원 80만 3959명 가운데 21만 1804명(26.35%)이 투표에 참여해 86.64%가 찬성했고 13.36%가 반대했다. 지난 3월 비례연합정당 참여 투표(투표율 30%, 찬성률 74.1%), 5월 더불어시민당 합당 투표(투표율 22.5%, 찬성률 84.1%) 당시보다 높은 찬성률이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86.6%라는 압도적 찬성률은 재보선에서 공천해야 한다는 당원의 의지 표출”이라며 “재보선에서 후보를 공천해 시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 책임정치에 더 부합한다는 지도부 결단에 대한 전폭적 지지”라고 밝혔다.중대 범죄 저질러도 후보 공천 가능해져‘문재인 무공천 원칙’ 5년 만에 폐기 이낙연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서울·부산 시민, 성추문 피해 여성에게 거듭 사과한 뒤 “유권자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이 공당의 책임 있는 자세다. 철저한 검증과 공정한 경선으로 가장 도덕적이고 유능한 후보를 찾아 유권자 앞에 세울 것”이라고 했다. 이번 당원 투표 결과에 따라 2015년 문재인 당 대표 체제 때 정치 혁신의 일환으로 도입된 ‘무공천’ 원칙은 5년 만에 폐기되게 됐다. 현행 당헌 96조 2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당헌을 원칙대로 적용한다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 의혹 등 민주당 소속 단체장의 귀책 사유로 치러지는 내년 4월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 어렵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유권자가 가장 많은 서울·부산에서의 공천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당의 지배적인 기류였다.이낙연 “시장 후보 공천이 도리”“유권자 선택권 지나치게 제한” 앞서 이낙연 대표는 지난달 29일 의원총회에서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관련해 국민과 피해자에 사과한다면서도 “후보 공천을 통해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있는 도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며 공천 방침을 밝혔다. 이 대표는 “당헌에는 당 소속 선출직 부정부패 등 중대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을 실시할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면서 “당헌에 따르면 우리 당은 2곳 보선에 후보를 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에 대해 오래 당 안팎의 의견을 들은 결과,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이 아니며 오히려 공천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있는 도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며 “순수한 의도와 달리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은 유권자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지적도 들었다”고 덧붙였다.당 일각 “실천 없이 당헌개정, 책임정치 역행, 투표로 책임 떠넘기기” 직후 현행 당헌에 ‘전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 공천 길을 열어주는 방안을 당원 투표에 부쳤다. 투표를 통해 당원들의 여론이 확인됨에 따라 민주당은 이날 당무위원회, 다음날 중앙위원회를 거쳐 속전속결로 당헌 개정을 완료할 예정이다. 이후 곧바로 중앙당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 선거기획단 구성 등 본격적인 선거 준비에 돌입한다. 이와 함께 자정 노력의 일환으로 윤리신고센터와 젠더폭력신고상담센터를 열고 성인지 교육을 강화해 성 비위·부정부패 문제 발생을 방지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공천 명분으로 ‘책임정치’를 내세웠지만, 무공천 원칙을 만든 뒤 사실상 실천한 적이 없는 상황에서 당헌을 바꾸는 것은 오히려 책임정치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당 안팎에서 제기된다. 지난 4·15 총선에서 비례연합정당 참여 결정에 이어 재보선 공천 같은 중요한 결정을 당원 투표로 확정하는 것도 책임 떠넘기기라는 지적이 나온다.박원순, 성추행 피소된 뒤 극단적 선택오거돈, 성추행 인정 기자회견 후 사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지난 7월 9일 집무실 등에서 여비서가 성추행을 당했다며 박 전 시장을 고소한 다음 날 잠적한 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박 전 시장의 장례는 이후 서울시장장으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같은 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박 전 시장의 사망으로 사건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 만큼 진상규명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총선이 끝난 직후인 지난 4월 23일 “여직원에 대해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한 데 대해 사과한다”며 성추행 사실을 시인하고 시장직에서 사퇴했다. 오 전 시장은 6개월 전 성추행 논란이 일자 “소도 웃을 일”이라며 “100억원대 소송을 내겠다”고 말해 적반하장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김종인 “피해자에 대한 3차 가해”“반성보다 ‘박원순 정신 계승’ 운운” 김종인 “진영 논리에 이성·양심 마비” 야권은 민주당의 당헌 개정을 맹비난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에 대한 약속을 당원들 투표만 가지고 뒤집는 것이 온당한 것인가. 피해자에 대한 3차 가해”라면서 “문 대통령도 당헌·당규 개정에 동의하는지 국민 앞에 분명히 입장 밝혀달라”고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전날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재보선 공천 추진을 당장 철회하는 것이 피해자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며, 상식이라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란다”며 이러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지금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은 피해자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국정감사에서조차 박원순·오거돈 관련 증인은 다 막으며 권력형 성폭력을 조직적으로 옹호했다. 이제 당헌 (개정으로) 서울·부산시장 재보선 공천을 강행하려고 하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권은 그동안 반성보다는 ‘박원순 정신 계승’ 운운하며 영웅 만들기에 몰두했다.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하며 2차 가해를 하기도 했다”며 “진영 논리에 이성도 양심도 마비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안철수 “성범죄 석고대죄부터 하라”“당원투표? 중국집 사장 모셔 놓고 중식, 일식 뭐가 낫냐 물어본 것”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후보를 공천하려면 지도부가 박원순, 오거돈 두 사람의 성범죄에 대해 광화문에서 석고대죄하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안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내년 보궐선거에 기어이 후보를 내겠다면 두 가지 조건이 있다”면서 민주당 지도부의 사과와 함께 “세금으로 충당되는 선거비용 838억원 전액을 민주당이 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안 대표는 선거 공천을 결정한 민주당의 전당원 투표에 대해서는 “중국집 사장님들 모셔놓고 중식과 일식 중 뭐가 낫냐고 물어보는 것”이라며 “범죄자가 셀프 재판해서 스스로 무죄를 선고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당선자의 중대범죄로 인한 재보궐 선거의 경우 원인 제공 정당의 공직후보 추천을 당헌이 아니라 법률로 원천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이낙연 “피해 여성에 사과”…안철수 “광화문 석고대죄해야”(종합)

    이낙연 “피해 여성에 사과”…안철수 “광화문 석고대죄해야”(종합)

    민주당, 서울·부산 보선 공천 결정이낙연 “서울·부산시민에 사과…도덕적으로 유능한 후보 내려는 것”안철수 “선거비용 838억 부담하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2일 전 당원 투표에서 서울·부산 보궐선거 공천 결정이 나온 것과 관련해 “저희 당은 철저한 검증, 공정 경선 등으로 가장 도덕적으로 유능한 후보를 찾아 유권자 앞에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유권자의 선택권을 존중해 드리는 것이 공당의 책임 있는 자세라고 생각해 후보를 내려고 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당원의 뜻이 모였다고 해서 서울·부산 시정의 공백을 초래하고 보궐선거를 치르게 한 저희 잘못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서울·부산시민을 비롯해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를 드린다. 피해 여성에게도 거듭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당은 윤리감찰단을 새로 가동한 데 이어 오늘은 윤리신고센터와 젠더 폭력신고 상담센터를 열고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와 주요 당직자의 성비위 및 부정부패 조사, 후속 조치 등에 임할 것”이라며 “성인지 교육도 강화했고 더 강화하겠다. 그런 잘못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이낙연 대표 등 지도부가 박원순, 오거돈 두 사람의 성범죄에 대해 광화문 광장에서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내년 보궐선거에 기어이 후보를 내겠다면 두 가지 조건이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민주당 지도부의 사과와 함께 “세금으로 충당되는 선거비용 838억원 전액을 민주당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대표는 선거 공천을 결정한 민주당의 전당원 투표에 대해서는 “중국집 사장님들 모셔놓고 중식과 일식 중 뭐가 낫냐고 물어보는 것”이라며 “범죄자가 셀프 재판해서 스스로 무죄를 선고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당선자의 중대범죄로 인한 재보궐 선거의 경우 원인 제공 정당의 공직후보 추천을 당헌이 아니라 법률로 원천 봉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전당원 투표 결과 당헌 개정을 거쳐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내기로 결론지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1일 이틀간 권리당원 투표를 진행한 결과, 투표에 참여한 권리당원의 86.64%가 당헌 개정 및 공천에 찬성했다. 민주당은 이에 따라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현행 당헌 규정에 ‘전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다는 방식으로 당헌 개정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심현희 기자의 술이야기] 호텔에서 만취하기

    [심현희 기자의 술이야기] 호텔에서 만취하기

    술꾼의 삶을 살다보면 종종 권태기가 찾아옵니다. 좋은 사람들과 유쾌하게 먹고 마시고 떠드는 자리가 어느 순간 부질 없게 느껴지고 지루할 때가 있죠. 그럴땐 잠시 중원을 떠나 ‘혼술’을 하거나 금주 를 시도하는 것이 클래식한 방법이지만,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컨셉으로 술을 마시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중국집, 포장마차, 순대국집, 노가리 호프집 모두 지긋지긋 하시다고요? 이번엔 깨끗하고 고급스럽게 정돈된 호텔에서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깨알같은 식음료(F&B) 프로모션을 잘 이용한다면 생각만큼 비싸지도 않습니다.먼저 지겨운 회식 장소를 산뜻하게 바꾸어보고 싶은 직장인들에게 여의도 글래드호텔을 추천합니다. 이 호텔은 최소 3인부터 최대 12인까지 스위트 객실에서 와인,맥주,위스키 등 다양한 주류와 함께 호텔 셰프가 만들어주는 요리를 즐길 수 있는 ‘호텔에서 회식해’ 프로모션을 갖추고 있는데요. 모임 인원에 맞게 테이블을 세팅해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6시간 동안 마치 레스토랑의 프라이빗 다이닝 룸처럼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3~6인을 위한 메뉴로는 사천식 전복구이, 주류는 소주 5병, 맥주 10캔이 제공되며 6~8인은 전복구이, 광동식 우럭찜, 주류는 로손리트리트 까베르네 소비뇽 레드 와인 4병, 8~12인은 전복구이, 우럭찜, 동파육, 해삼주스와 함께 달모어 위스키 12년산 1병,맥주 10캔이 제공됩니다. 가격은 각각 30만원, 40만원, 50만원입니다.평소 “술은 속도다”라는 철학을 가진 분들께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파크하얏트 서울과 중구 남산의 밀레니얼힐튼 호텔이 적합합니다. 해피 아워 2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술과 음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가성비 좋은 만취가 가능합니다. 파크하얏트 서울의 바 ‘더 팀버 하우스’에선 이번달 말까지 통통하게 살이 오른 풍천 장어구이와 덮밥 메뉴와 함께 전통주 ‘토끼 소주’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합니다. 토끼 소주는 한국에서 영어강사를 하던 미국인 브랜드 힐이 전통주에 매료돼 양조법을 배워 미국 뉴욕에서 만들어 팔면서 화제가 된 술입니다. 취향에 따라 23도 짜리 화이트라벨과 40도 짜리 블랙 라벨도 자유롭게 골라 마실 수 있답니다. 허용된 시간은 오후 5시부터 7시까지이며 가격은 6만 9000원입니다.남산 언저리에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 계절을 만끽하며 맥주와 와인을 배가 터질때까지 마실 수 있습니다. 호텔에 있는 바 ‘오크룸’에서 요리된 고기를 고객 앞에서 직접 썰어주는 ‘카베리 뷔페’를 이용하면 부산의 유명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인 ‘고릴라브루잉’의 다양한 맥주 라인업을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이 프로모션은 오후 5시 30분부터 3시간 이용할 수 있고, 가격은 5만 4000원이라고 하네요. 여기에 2만원을 추가하면 뉴질랜드 쇼비뇽블랑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클라우드 베이’ 와인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으니 화이트와인 중독자라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겠죠.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신고하면 ‘배달 테러’…국내 최대 ‘원조 온라인 사기단’ 조직 잡았다

    신고하면 ‘배달 테러’…국내 최대 ‘원조 온라인 사기단’ 조직 잡았다

    국내 최대 규모이자 원조 온라인 물품사기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제주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범죄단체조직, 협박 등의 혐의로 강모(38)씨 등 30명을 검거하고 이중 14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21일 밝혔다. 국내 원조 온라인 사기단인 이들은 강씨를 주측으로 3명의 사장단을 꾸리고 조직원 모집책 1명과 통장 모집책 4명, 판매책 32명을 꾸려 2014년 7월부터 사기 행각을 이어갔다.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필리핀에 사무실을 차리고 2020년 1월까지 장장 6년에 걸쳐 5000여명을 상대로 49억원대 사기행각을 벌였다. 범행 수법은 치밀했다.32명의 판매책은 네이버 중고나라와 블로그, 중고거래 사이트에 냉장고와 TV, 휴대전화, 상품권 등 대대적인 판매 글을 게시했다.가짜 명의의 사업장이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포털사이트에 업체 등록까지 했다.판매물품은 전자기기에서 명품시계, 상품권, 여행권, 골드바, 농막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가격도 1개당 4만5000원에서 최대 3120만원까지 광범위했다. 이들은 기존 대포통장 방식과 달리 실제 통장 명의자를 섭외해 돈세탁에 이용했다. 대부분 주부들인 통장 주인들은 자신들이 재택근무 알바 형태로 정당한 일을 한 것으로 착각했다.최종 수익금의 80%는 사장단 3명이 챙기고 나머지 20%는 모집책과 판매책이 나눴다. 이들은 피해자가 추적을 하거나 경찰에 신고하면 곧바로 보복에 나섰다. 이미 확보한 피해자의 이름과 연락처, 집주소를 활용해 ‘배달테러’를 자행했다.이들은 피해자 거주지 주변 피자와 치킨, 중국집 등에 전화해 수십만원 상당의 음식을 피해자 집으로 배달시켜 치를 떨게 했다.이 과정에서 애꿎은 배달업체가 고스란히 피해금액을 떠안았다. 경찰은 검거 당시 사장단은 고급 외제 차량을 타고 필리핀에 부동산까지 투자하는 등 호화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오규식 제주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은 “보복테러로 피해자들을 협박해 그동안 장기간에 걸친 범행이 가능했고 이들 조직에서 파생된 다른 신생조직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조선 공업의 산실… 대형 솥단지만 남긴 ‘영등포 맥주史’

    조선 공업의 산실… 대형 솥단지만 남긴 ‘영등포 맥주史’

    서울 영등포가 서울에 편입된 것은 1936년이다. 조선총독부의 ‘대경성 도시계획’에 따라 경기도 시흥군 북면에서 갈라져 나온 영등포읍이 경성부의 출장소가 된 것이다. 영등포역은 남경성역으로 한동안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이미 명실상부한 ‘조선 최대의 공업지대’로 떠오른 영등포였다. 서울사람들에게 한강 남쪽의 중심이 영등포라는 인식이 뚜렷했다. 서울신문과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함께하는 ‘2020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의 제20회 주제는 ‘영등포의 추억’이다. 해설자로 나선 한이수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영등포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그는 ‘진짜 강남’은 영등포라고 강조한다. 가수 문희옥의 ‘서울의 거리’가 나온 것이 1989년인데, 그때까지도 지금의 강남은 ‘영동’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남초등학교는 상도동에 있고, 강남교회는 노량진에 있으며, 강남맨션도 영등포에 지어졌다고 한다. 당산역 앞 래미안아파트가 강남맨션 자리라고 설명한다. ●110일 만에 쌓아올린 윤중제 투어는 서울 지하철 여의도역 1번 출구 앞에서 시작됐다. 여의나루길을 따라 여의도샛강 쪽으로 걷다 보면 짙푸른 그늘을 드리우는 가로수가 인상적이다. 나무도 여의도 개발의 역사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탓이다. 여의도를 둘러싼 윤중제는 1967년 불과 110일 만에 쌓았다고 한다. 여의도 개발은 1966년 발표한 ‘대서울 도시기본계획’에 따른 것이다. ‘대경성 도시계획’이 인구 110만명의 도시를 상정했다면 ‘대서울 도시기본계획’의 목표 인구는 550만명이었다. 땅이 필요했고, 비행장으로 쓰다 방치돼 있던 여의도는 적지였다. 개발 과정에서 밤섬을 파괴한 것은 윤중제를 쌓기 위해 골재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개발지의 규모를 키울수록 강폭이 줄어드는 만큼 한강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불가피했을 것이다.윤중로를 건너 윤중제 아래로 내려서면 샛강생태공원이다. 샛강공원의 길이는 6㎞ 남짓이라고 한다. 1997년 조성 당시 사진을 보면 인공 공원의 모습이 뚜렷했는데 이제는 버드나무가 우거지고 갈대가 무성한 자연습지의 모습을 상당 부분 회복하고 있다. 샛강공원에 사는 생물들의 바이오리듬을 깨지 않으려 밤에도 불을 켜지 않는다고 한다. 놓아 기르는 비단잉어가 아닌 야생의 누런 토종잉어가 떼 지어 헤엄치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 지도사의 어린 시절 샛강은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이 됐다고 한다. 하긴 필자도 그 시절 경복궁 경회루며 창경궁 춘당지로 스케이트를 타러 다녔던 기억이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자리에 있던 서울운동장 야구장도 겨울이면 바닥에 물을 가둬 스케이트장을 만들었다. 경회루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어묵이며 떡볶이를 사 먹었으니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다. 샛강공원에서 여의도와 신길동을 잇는 샛강문화다리로 올라선다. 문화다리는 샛강의 곡선을 거스르지 않도록 곡선으로 지어졌다. 문화다리를 하늘에서 보면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봐도 학이 날개를 편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문화다리 전망대에 서니 여의도의 동쪽은 금융가의 고층 건물이 즐비하다. 반면 서쪽은 국회의사당과 KBS를 비롯해 나지막한 건물만 보이는 게 새삼스럽다. ●강점기 일본인 모여 살았던 영등포 문화다리를 건너면 지하철 1호선 신길역이다. 투어단은 영등포로 지하에 놓인 굴다리를 건넜다. 영등포 토박이가 아니면 잘 알기 어려운 샛길이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에는 다세대주택이 많이 들어섰지만, 일제강점기 지은 일본식 주택도 눈에 띈다. 이 일대는 과거 수해 상습 피해지역이었던 영등포 일대에서 비교적 지대가 높은 편에 속한다. 영등포가 공장지대가 되면서 일본인들이 이 주변에 모여 살았다고 한다.물론 일본인들이 몰려들기 전에도 일대 언덕은 사람이 사는 지역이었다. ‘방학곳지 부군당’의 존재도 이런 사실을 알려준다. 부군당이란 마을의 수호신을 모셔 놓은 신당을 말한다. 주로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마을굿당을 이렇게 불렀다. 방학곳지라는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다. 서울지명사전에는 샛강 나루터에 돌출된 바위가 있어 바위곶이라고 했던 것이 방학곶이나 방학곳이로 변했다고 설명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암곶(바위곶이)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주변 나루터는 방학호진이라고도 불렸다. 한강 본류의 마포앞을 서호, 압구정 앞을 동호라고 했듯 일대 여의도 샛강은 방학호라 부른 듯하다. 이번 투어에서 찾지는 못했지만 주변에는 ‘방학호진 터’를 알리는 표석도 2016년 세웠다고 한다. 서울 시내의 부군당은 대부분 사라진 상황에서 방학곳지부군당은 그래도 굿당 하나는 남아 있다. 하지만 마당도 없이 굿당만 달랑 철재 울타리에 갇혀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부군당은 방학나루를 건너는 사람들의 뱃길 안전을 비는 역할도 없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 상습 수해 지역에서 물난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기원이 더 절실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동네에는 윤정승이 한강물이 넘치는 바람에 물살에 휩쓸렸을 때 잉어가 나타나 등에 태우고 강기슭에 내려주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이후 후손들이 한 해 3차례씩 부군당에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부군당 옆에는 이런 설화를 담은 벽화도 그려져 있다. 영등포문화원은 이 설화를 ‘잉어가 사람 구했네’라는 마당놀이로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다. ●추억으로만 남은 한국 맥주의 역사 부군당 골목을 나서 신길로를 건너면 영등포공원이다. 오비맥주가 있던 자리로 공장이 1997년 경기 이천으로 옮겨가자 공원을 조성했다. 공원에는 1933년 만들었다는 대형 담금솥이 있다. 맥아와 홉을 끓이는 데 썼던 대형 솥이다. 조금 더 서쪽으로 걸어가 영등포역을 지날 무렵 왼쪽에 나타나는 푸르지오 아파트 단지는 오늘날의 하이트맥주인 크라운맥주 공장이었다. 과거 기차를 타고 주변을 지날 때면 크라운맥주 공장의 왕관 모양 상징물이 눈길을 잡아끌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맥주의 추억’은 남아 있지 않다. 일본 삿포로에는 ‘삿포로 팩토리’가 있다. 1876년 지어진 삿포로 맥주공장이 이전하자 1993년 건물 일부와 굴뚝을 살려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굴뚝은 삿포로를 상징하는 명물이 됐다.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맥주 공장을 보존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없지 않다. 오비맥주의 전신은 소화기린맥주, 크라운맥주의 전신은 대일본맥주로 오늘날 아사히맥주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삿포로의 경우와 다른 것은 영등포의 맥주 역사가 한국 맥주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일본 맥주의 식민지 진출 역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등포 맥주 역사의 흔적이 솥단지 하나만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오비맥주 공장이 있던 영등포공원에서 크라운맥주 공장이 있던 방향으로 걸으면서 상상 속에서 맥주냄새가 진동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른바 ‘맥주 문화 거리’로 이보다 좋은 입지조건과 스토리를 갖고 있는 장소가 또 있을까. 영등포공원도 좋고 골목길도 좋다. 작은 ‘맥주 역사박물관’을 하나 세우면 어떨까. 그리고 오비 공장에서 크라운 공장으로 이어지는 맥주의 거리를 조성하는 것이다. 영등포역에 내려 타임스퀘어가 보이는 광장의 반대편으로 나서면 바로 나타나는 골목이다. 지하철이 닿는 수도권 주민 전체가 고객이 될 것이다.●441개 쪽방에 500명 주민 거주 답사단은 크라운맥주 공장 터 앞에 놓인 구름다리로 철길을 건너 영등포역 북쪽으로 간다. 계단을 내려서면 ‘쪽방도우미봉사회’의 무료 급식 봉사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온다. 영등포 쪽방촌이다, 441개 쪽방에 500명 남짓한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이 간신히 몸을 누일 수 있는 크기의 방이 대부분이다. 1960년대 형성됐던 집창촌이 퇴락하면서 저소득계층의 월세방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부분 공동화장실과 공동샤워장을 쓰며 절반이 넘는 주민이 휴대용 가스버너로 취사를 해결한다. 그러니 영등포 쪽방촌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음에도 원형 보존보다는 큰 폭의 생활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쪽방촌에서 경인로로 나서면 영등포역 방향에서 비스듬하게 북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볼 수 있다. 영신로다. 이 길을 따라 영등포역 고가도로가 놓여 있다. 영등포에는 과거 기와공장과 벽돌공장만 있었지만, 1911년 지대가 높아 물난리 피해가 적었던 당산동에 조선피혁 공장이 들어섰다. 이에 따라 영등포역에서 조선피혁을 잇는 철도 인입선이 건설됐는데 영신로는 이 철도부지를 따라 난 길이다. 그 철길 초입의 서쪽은 대선제분 터다. 1940년 세워진 일청제분 밀가루공장이 전신이다. 대선제분은 영등포공장 설비를 2013년 아산공장으로 옮겼는데 1만 8963㎡ 넓이의 공장터와 곡물저장고를 비롯한 건물 일부는 조만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한다. 영신로의 동쪽이 타임스퀘어다. 초입에는 집창촌이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작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메리어트호텔, CGV아트홀이 몰려 있는 첨단 복합 유통단지가 자리잡고 있으니 그 불균형이 놀라울 뿐이다. 경방이 운영하는 타임스퀘어는 이 기업의 전신인 경성방직이 있던 자리다. 경성방직은 일제강점기 면방직업계에서 한국인이 세운 유일한 대기업으로 1923년 영등포 사옥과 공장을 완공했다.투어는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타임스퀘어의 경성방직 사무동을 둘러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사무동 건물은 지금 젊은이 사이 이른바 ‘빵지순례’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빵집 ‘오월의 종’이 쓰고 있어 하루 종일 손님으로 북적인다. 근대문화재 활용의 모범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필자를 비롯한 일행 몇몇은 투어가 끝나고 영등포소방서 옆 중국집 송죽장에서 짬뽕이며 짜장면을 먹었다. 송죽장은 오래된 가게지만 젊은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는 명소가 됐다. 이렇게 영등포의 문화적 저력은 간단치가 않다. 글 서동철 문화재 위원 해설 한이수 서울도시문화지도사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다음 일정 - 제21회 몽마르뜨 공원 가든길 ●출발 일시 10월 17일(토) 오전 10시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