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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진씨 둘째아들 해광군의 탈북기/우리가족 로정의 일기 전문:Ⅰ

    ◎“탈북=지도자 배신” 생각들어 갈등/농촌일손 가들랴 폐품 모으랴… 공부시간 몇이나/기차안서 굶주려 사람 보고 “누구때문” 울분 22일 귀순한 김영진씨 일가의 탈북기록인 김씨의 둘째아들 해광군의 「우리가족 로정의 일기」는 우리 맞춤법에 틀리거나 낯선 북한용어도 있지만 생생한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살려 게재했습니다. 나는 애어린 14살 아이이지만 살길을 찾아떠나가는 노정을 기록하여 어느때에 이사실이 세상에 공개되며 북조선 나의 동무들이 이 글을 볼 수 있을까 손꼽아 기다리며 한자 두자 일기로 적고저 한다.내가 살던 고향 집 앞에는 들판,뒷산 옆에는 4월,5월이 되면 과수나무들이 흰색옷을 입는듯 만발한 꽃으로 봄을 알리는 배나무들이 지켜섰습니다. 아름다운 내고향과 정다운 동무들을 버리고 나는 왜 떠나야 했는지,…. 그것는 배고픔에 못이겨서인지 아니면 북조선의 무상교육 무상배려가 좋은데 내가 일년에 공부하는 시간이 도대체 몇날,몇시간이 되었던가. 북조선에서는 한창 배울 나이에 공부를 배우는 시간보다 농촌자원에 동원했고 폐철모우기 폐유리모우기 폐고무 폐동 등등,모우기를 하루도 그칠날이 없으니 그런것이 어디에 있으량 하는수없이 나의 동무들은 선생님의 성화에 못이겨 공장,농장 주민의 것을 훔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결국 그것이 도리어 나라에 좋은일 한다는 것이 학생들에게 도적질을 배워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우리 학급 인원은 42명이다. 거기서 학교에 오는 동무들은 하루에 절반밖게 못온다.절반숫자의 동무들은 왜 학교에 오지 못하였던가? 그것은 참기어려운 배고픔때문이다. 나는 정말 배우고 싶은 심정이다.어디로 가야 배움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1996년3월18일 월요일 날씨 맑음 이날은 정든고향,정다운 동무들과 이별하고 3월19일 기차를 타고 함경북도 무산군으로 향하였다. 기차에 오른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많은지? 이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목적으로 집을 떠나 다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침침컴컴한 기차에 올라서니 사람들이 밀고당기고 힘내기를 하는 바람에 나는 넘어질듯 하였다. ◇1996년3월20일 수요일 이날도 기차안에서 무대기였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사람들이 서로 붐비면서 자기보따리를 찾는 사람,아이들이 배고파 우는소리,여성들이 신경질적으로 아우성치는 소리에 기차간은 그야말로 난장판 수라장이었다. 더욱이 내가 목격한 것은 굶주림에 시달려 숨을 방금 지울듯한 한 청년이 기차한막판에 누워 있었다. 그누구도 그사람을 동정과 위안해주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끝내 그사람은 굶주림에 못이겨 숨을 거두고 말았다.그때 나는 어린 마음에도 처참한 참상을 보고 울분을 금할수 없었다.나는 처음으로 어린 나이에 내눈으로 직접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다. 나는 학교에서 공산주의 도덕교양을 받을때 웃사람을 존경하고 아래 사람을 사랑하며 곤란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교양을 받은 나로서 아직도 그참상은 나의 눈앞에 생생이 나마있다. 어째서 이 비참한 참상,한 인간의 운명을 보고도 모르는 척 하는가? 아직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과연 누구탓이며 누구 때문인가? ◇1996년 3월21일 목요일 지루함을 느끼면서 타고온 기차는어느덧 끝내 목적지 무산읍에 도착하였다. 이날은 마을이 서글퍼서 인지 하늘 그름을 뭉게뭉게 나의 마음을 쓸쓸하게 한다. 목적지인 외할머니네 집에 들어서니 할머니는 없었고 누나가 우리를 맞이하였다. 무산에서는 외할머니네 생활처지는 내고향의 생활처지와 다름이 없었다. 피곤한 나머지 나는 할머니가 들어서 오시는줄도 모르고 잠에 골아 떨어졌다. ◇1996년 3월22일 금요일 날씨(맑음) 아침 새벽에 나는 잠결에 할머니와 어머니 간에 말씀하는것을 들으니 먹을것이 없어 풀뿌리로 끼니를 채우며 겨우 장사를 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너희들이 또왔으니 반가움대신 근심이 된다고 걱정하는것이 였다.나는 비롯 나어린 마음이지만 또다시 마음속 충격을 받았다. ◇1996년 3월23일 토요일 맑음 아침에 깨여나 보니 벌써 할머니는 장사를 나가고 없었다.나의 아버지니와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무슨 토론을 하고있었다.그때나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앞으로 우리들의 살길을 찾는 심정에서 모데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아버지어머니한테 묻고 싶었지만 어른들의 말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아침을 강냉이 뿌리로 만든 국수로 대충끼니를 하고 우리 온가족은 두만강 구멍을 나갔다. 두만강 기슭을 따라 얼마쯤 내려가니 유달리 화려한 집이 두만강 건너에 있었다. 후에 알아보니 그집은 남조선 사람들이 와서 지은집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때에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되여 남조선 사람이 자기 나라도 아닌 중국땅에 와서 훌륭한 집을 지을수 있는가고 생각하여 나는 이사실을 알고 싶었지만 부모님한테 선듯 묻지 않았다. 이때 아버지께서 하는 말씀이 이제는 더는 북조선에서 살길이 막막하여 더는 살수없으니 너희들이 보다시피 할머니에 집도 생활이 구차하며 하루하루끼니를 이어가는 형편인데 너희들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고 묻는 것이었다. 이때 나는 아버지에게 정확한 대답을 올리지 못했다.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살길은 다만 남조선에 가야만이 너희들은 공부도 마음대로 할수있고 마음놓고 배불리 먹을수도 있고 희망의 날개를 펼칠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였다. 이때 나는 아버지가 나라를 배반하고 친애하는 지도자품을 떠나자고 여기로 데리고 왔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이때 나는 나의 아버지이지만은 나쁜 사람이 아닌가고 생각되어 내 생각대로 절대로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품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고 아버지께 말씀올리었다. 이때 나의 형님 누나는 이구동성으로 나의 말을 찬성하였다.우리 행동을 보신 아버지께서는 먼 남쪽하늘만 쳐다보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였다. 침묵을 지키며 서로 얼굴만 쳐다보던중 어머니께서는 그러면 너희들은 어디로 갔으면 좋겠는가? 우리는 집도없고 재산도 다 팔고 할머니를 크게 믿고 왔댔는데 보다시피 할머니네 집 신세역시 구차하여 먹을것이 없어 하루살이로 생명을 유지하는데 우리까지 어떻게 같이 있겠는가고 하였다. 어머니 말을 듣고 우리 형님은 우리를 데리고 한쪽에 가서 말을 좀 하자고 하였다. 나의 형님은 우리보고 너희 생각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고 물어보는 것이였다. 이때 나와 누나는 한결같이 우리는 절대로 지도자동지품을 떠날수 없다고 말하였다. 우리 형제 사이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때 아버지께서는 우리들의 침묵을 깨뜨리면서 하는 말씀이 너희들은 지도자 동지품이 좋다고 하지만 우리 온집안을 거처하여 먹여 살릴수가 없을 뿐만아니라 아버지는 이제는 고향으로 갈래야 갈수가 없는 몸이라고 말하였다.내가 왜서인가고 물으니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몇년전부터 남조선 방송을 들으면서 남조선은 자유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시었다. 또한 15명을 조직하여 북조선정치는 불모순 정치며 남조선정치는 자유정치라는 것을 선전하던중에 아버지는 노출되어 갈 수 없는 문제라고 알기싶게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이때 형님은 잘돼도 우리아버지 못돼도 우리아버지인데 아버지 뜻을 따르자고 말하였다. 나는 이때 생각이 많았다. 하나는 나의 아버지이고 하나는 조국의 품이었다. 이 갈림길에서 나의 심정은 아버지와 이별하고 싶지 않고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의 품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현실은 하나의 길만 선택하여야 했다.하지만 현실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기본 선차적 문제로 생각할때 아버지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 상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 아버지께서는 명령하다싶이 요구성을 높여 무조건 남조선으로 가야만이 삶의 길이라는 것을 결심하면서 너희들은 꼭 부모들의 의향대로 움직이라고 강박하는 것이었다.아버지께서 결심하신 그날 저녁 밤10시부터 중국도강준비에 들어갔다. 음력 2월6일이라 조각달은 지고 두만강 기슭옆에 캄캄한 밤 아버지를 따라 두만강 기슭에 가깝게 접근하였다.은밀히 접근하여 새벽2시까지 정찰하면서 보호병 움직임,조명등,불바침의 시간적으로 하산하여 아버지께서 명령을 내리시었다. 우리 자식들을 생각하는 부모님들은 우리를 꼭 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백포로 우리를 위장시켜 한치 한치 두만강을 도강하기 시작했다. 끝내 새벽 3시30분에 성공하여 중국땅을 밟게 되었다. ◇1996년 3월 24일 일요일(맑음) 이날은 유달리 날씨도 쨍쨍하게 맑은 날씨였고 하늘도 우리를 도와주는듯 기분이 상쾌하게 날씨가 맑았다. 새벽4시에 중국 조과향에도착하여 산에 오르기 위하여 사람들의 눈을 피해 50도가량인 벼랑급한 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산에 오르자니 급한 벼랑에서 아차 한발 실수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아슬아슬한 벼락산이었다.이때에 어린 여자의 몸으로 산을 오르는 나의 누나는 기진맥진하여 겨우 형님의 도움을 받으며 산등성이에 올라 섰을때 새벽 6시30분이 되었다.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아침식사 준비에 굴뚝에서 연기들이 뭉게뭉게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그때 나의 정든 고향 생각을 하며 다시한번 강건너 북조선을 바라보았다. 이때 어머니께서는 사람들이 볼수없는 산에 좀더 들어가 불을 피우고 아침식사를 하자고 하는 말에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또다시 우리 일행은 지친 발길을 돌리며 눈이 무릎까지 오는 북쪽 산으로 향했다. 1시간쯤 눈길을 걸어 나무가 우거진 깊은산에 불을 피울장소를 찾았다. 우리들은 불을 피우고 젖은옷을 말리며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물이 없어 눈을 녹이며 물을 만들어 먹었다.식사를 끝낸후 피곤에 몰려 나도 모르게 잠에 떨어져 꿈나라로 갔다. 꿈속에서 나의 동무들이 나를 보고 나라를 배반한 변절자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을때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이런 꿈을 꾸고 있을때 어머니께서 나를 깨우는 바람에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때 나무하러온 조선족 중국부부가 올라오고 있었다.그들이 하는 말이 북조선에서 온 사람이 아닌가? 물어볼때 우리 온가족은 어쩔바를 몰라 몹시 당황하였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자기는 나쁜사람이 아니라고 하며 북조선 생활정황을 잘알고 있으니 우리를 동정하여 말하면서 자기 집으로 내려가자고 하였다.우리는 중국집에 들어섰을때 나는 아주 놀라며 이집은 중국에서 제일 부유한 부자 집이 아닌가고 생각하였다. 집에 들어서니 한눈에 안겨오는 것이 냉동기 텔레비전 재봉기 등 가정품들이 일제히 꾸려져 있었다. 나는 이집 주인님이 여기에서는 이밖에 고깃국을 정상적으로 먹는다고 할때 크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이때 어머니께서는 이것이 사실인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다시 물어보시었다. 주인은 웃으며 중국은 개방이후 발전되어 백성들의 생활이 보다시피 좋다고,집집마다 생활형편이 모두가 이정도는 된다고 하면서 우리집은 보통 생활이라고 말하였다. 나는 중국땅을 처음 밟았을때 중국에서 사는 조선족 부부가 나에게 준 첫인상은 정말로 내가 상상도 하지못한 인상이었으며 자연적으로 중국과 조선을 대비해 보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중국땅에 처음와서 만난 사람은 담배농사를 지으며 산에서 나무를 해다 불을 때어 온실관리를 하고 있는 집이다. 밤11시가 되도록 주인님의 말을 들으니 정국정황을 다소나마 알게 되었다. 집주인은 우리에게 중국 낡은 옷이지만 조선옷과 바꾸어 입혀주면서 화룡현까지 갈 차비를 주어 우리일행은 버스를 타고 화룡까지 수월히 오게 되었다. ◇1996년 3월 25일 월요일 (맑음) 화룡시에 들어서니 북조선에서 볼수없는 휘황하고 유명한 시장거리,사람마다 웃음이 가득찬 거리,생기발랄하고 환희가 넘치는 얼굴들.그모든 모습들.없는것없이 차려놓은 시장과 과일류,복장류,당가루류 등등 없는 것없이 그득히 차려놓는 시장거리 그야말로 영화의 한장면을 펼쳐 놓은듯 하였다. ◇1996년 3월26일 화요일 (흐림) 우리일행은 노비가 떨어지며 화룡시에서부터는 도보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상오 9시30분부터 걷기 시작한것이 어찌 피곤하고 힘들던지 저녁 10시에 서성명함에 도착하였다.한밤중에 낯설고 물설은 이국땅에 오니 잠자리가 근심이 되어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한집에 들어가 길가는 손님이니 하룻밤 쉬고 가자고 애원하고 사정하였다.첫집에서는 안되고 열집만에 애원하던중 11번째 집에서는 우리를 받아들여 밥도 주고 잠도 잘수 있게 되었다. ◇1996년 3월27일 수요일 우리일행은 도보로 걸어서 연길시내에 도착하였다. 연길시내에 들어서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한국사람만 만나면 도움을 받는다고 하여 한국사람을 찾았다.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하려고 공동전화 하는 곳에 가니 한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 북조선에서 오지 않았는가 하며 자초지종을 물으며 반갑게 대하는 것이었다.그는 북한에 오빠가 있다고 하며 북한실정을 물어 우리는 북한생활 형편을 말하며 우리는 망명자가 아니라,중국에 친척방문왔다고하였다. 박아주머니는 우리는 북조선돈 3천원을 가지고 중국돈도 바꾸어주어 90원을 생활에 보탰다. ◇1996년 3월 28일 목요일 연길시 장백공사 리화의 김래삼아저씨네 집에서 하루 묵게 되었다. 이집은 채소농사를 하며 살아가는 집이었다. 우리를 반갑게 대해주면서 하는말이 어째서 온 가정이 한창 공부시킬 나이에 아이들까지 데리고 먼길을 떠나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흑룡강 오상현에서 빚에 시달려 빚재촉에 못견디어 살수없어 연변에 친척을 찾아온다고 말하였다. 살수없이 연변에 친척 찾아 온다고 말하였다. (이말은 로라를 처음 만났던 부부가 이렇게 알려 주었다)
  • 훔친 차로 부녀자 강도·성폭행/전문대생 낀 일당 넷 구속

    ◎합승 가장해 태운뒤 범행/신고못하게 사진찍기도 훔친 차량을 이용해 부녀자를 납치,성폭행하고 6천2백여만원을 빼앗는 등 상습적으로 강도·강간행각을 벌여온 전문대생이 낀 일당 4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2일 박주민씨(20·속초D전문대 1년·서울 강동구 천호동)와 송병철씨(19·M전문대 1년·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등 4명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긴급구속하고 이들이 갖고 있던 차량번호판과 등산용칼,휴대폰,예금통장 등을 압수했다. ▷범행모의◁ 박씨 등은 중·고등학교 선후배들로 지난달 초 강동구 천호동의 모중국집에서 만나 『돈 한번 마음껏 써보자』고 결의한 뒤 차량을 훔쳐 부녀자들을 상대로 금품을 털기로 했다. ▷범행◁ 이들은 지난달 30일 강동구 천호동 45의2 앞길에서 시동이 걸린 채 주차돼 있던 경기54가 7378호 영업용 소나타 승용차를 훔쳐 미리 준비한 차량번호판을 갈아끼웠다.이어 강남구 논현동 영동호텔 앞길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던 박모양(20·여)을 합승으로 가장해 태운 뒤 흉기로 위협,경기도 구리시 야산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고 64만원을 빼앗았다. 또 지난 9일 강남구 논현동 안세병원 앞길에서 같은 수법으로 훔친 승용차를 이용해 김모씨(25·여)를 합승으로 태운 뒤 대치동 공항터미널 부근 주택가 골목길에서 김씨를 등산용칼으로 위협,현금 40여만원을 빼앗는 등 지금까지 21차례에 걸쳐 부녀자들을 상대로 6천2백여만원을 빼앗고 성폭행했다. ▷범행수법◁ 이들은 시동이 걸린 채 자리를 비운 영업용택시 3대를 훔친 뒤 미리 준비한 번호판으로 갈아끼우는 수법을 사용했으며 지리가 익숙한 강남,강동,서초동,경기 구리시 일대를 무대로 삼았다.또 성폭행한 뒤에는 신고하지 못하도록 성폭행장면을 즉석카메라로 찍어 협박하기도 했다. ▷검거◁ 경찰은 박양의 신고를 받고 일당중 박씨를 지난 18일 검거했다.또 박씨를 추궁,범인들이 근거지로 이용한 강동구 천호동의 한 사우나 주변에 3일간 잠복한 끝에 잔당을 모두 붙잡았다.
  • 탈북주선 최영도씨 부부 뉴욕 회견

    ◎“연변서 3차례 만나 탈북계획 세워”/4년전 교회장로 통해 딸가족 소재 확인/김일성사망후 송금 제대로 전달안돼 김경호·최현실씨 일가족의 탈북을 도운 최씨의 아버지 최영도씨는 9일 하오 뉴욕시 플러싱에 위치한 중국집 「미동각」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딸 일가족의 북한 탈출성공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최씨는 이날 부인 최정순씨(77)와 아들 철호씨(47),그리고 세딸등 미국거주 가족들과 함께 딸 최현실씨 일가 17명의 탈출동기·탈북계획 수립에서부터 탈출과정 등을 비교적 자세하게 털어놓았다. ­언제 딸 현실씨의 소식을 처음 알게 됐으며 그후의 탈출계획을 소개해달라. ▲북에 남겨두고 온 딸이 그리워 4년전 교회장로인 믿을 만한 사람을 통해 딸의 행방을 찾아낸 뒤 그동안 서신연락과 함께 생활비 명목으로 얼마간의 송금을 해줬었다.그동안 50∼60통의 편지가 오갔다.김일성이 죽고 난 뒤에는 돈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북한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늘어나는 등 살기가 어렵다는 딸의 호소에 따라 친구들과도 상의해 딸 일가족을 탈북시키기로결심했다.아내가 연변에서 딸과 헤어진지 50년만에 처음 본 지난 7월부터 탈출계획을 세웠다. ­그후의 진척상황을 말해달라. ▲아내가 딸 일가족이 지난 10월26일 연변으로 탈출할 때까지 2차례나 더 연변에서 딸을 만나 세부적인 계획을 세웠다.아내가 두번째 연변에 갔을 때는 마침 두만강물이 장마로 불어 딸이 돌아갈 수가 없어 두달을 같이 지냈는데 어머니의 소식이 궁금한 외손자 금철·성철형제가 헤엄쳐 두만강을 건너와 상봉했다.남편(김경호씨)이 중풍을 앓아 거동이 불편해 자신과 두아들만 탈출하겠다는 딸의 생각을 전해들었으나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희생되니까 같이 넘어올 수 있으면 넘어오고 그렇지 못하면 넘어오지 말라고 했다. ­부인 최씨의 활동을 소개해달라. ▲내가 처음에는 연변으로 가려고 중국비자까지 받았는데 지난해 심장수술을 두번씩이나 받아 건강이 안좋아 아내가 나섰다.딸 일가족이 연변으로 최종 탈출할 때는 아내가 서울에 있는 동생(최전도씨)·며느리(이정희씨)와 함께 5일 먼저 연변에 도착해 딸 일가족의 탈출을기다렸다가 간신히 만났다.아내는 딸 가족이 무사히 탈북한 것을 직접 목격하고 바로 서울을 거쳐 10월28일 뉴욕에 도착했으며 아들이 뉴욕영사관에 탈북사실을 신고하고 협조를 구했다.이후의 진행사항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딸 가족들이 홍콩으로 들어온 이후부터는 전화통화도 못했다. ­탈북자금은 어느 정도 소요됐는가. ▲딸 가족에게 생계비로 몇달에 한번씩 5백달러를 보냈지만 돈도 없어 많이는 쓰지 않았다.그러나 심부름하는 사람들의 교통비·항공비등을 포함해 지금까지 몇만달러는 썼다.미국에 있는 딸들의 도움이 컸다. ­딸 가족들의 탈출결심은 어떠했는가. ▲아내를 통해 북한에서 굶어죽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아 탈북권유를 하고 넘어 올 계획을 세우라고 했더니 주저없이 자신있게 나오겠다고 했을 정도로 결심이 굳었다.딸 가족은 한때 연변으로 탈출한 뒤 아내등과 연락이 닿지 않아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북한 공안당국에 붙잡힐 경우에 대비해 소지한 극약을 먹고 자살하려고도 했었다.북한으로 돌아가느니 죽겠다는 결심이었다.­딸 가족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 세운 것은 없다.그러나 어디에 있든 노동을 해도 이북보다야 낫지 않겠느냐.내가 물질적으로 도와줄 길은 없으며 미국초청도 잘 안된다고 들었다.딸 일가족을 만나보기 위해 당장이라도 가고 싶지만 건강이 좋지 않다.
  • 23년전 가출 사망처리된 30대(조약돌)

    ◎검문중 신원확인… 가족품으로 ○…23년전에 가출해 7년전에 이미 사망한 것으로 호적이 정리된 백모씨(35·강동구 천호동)가 경찰의 도움으로 가족들과 상봉. 서울 강동경찰서는 27일 하오 11시 23분쯤 천호2동 경마중계소에서 기소중지자 불심검문을 하던 백씨를 검거,신원을 조회를 하다 백씨가 사망한 것으로 나타나 고향에 살고 있는 백씨 어머니와 전화 통화,지난 88년에 실종신고와 함께 사망신고를 한 것으로 확인. 백씨는 지난 73년 전남 완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중국집 가죽공장 등을 전전하며 지금까지 고향에 있는 부모 형제들에게는 연락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생활해왔다고.〈김태균 기자〉
  • 빨리 빨리(외언내언)

    한국인 여행객이 하와이에서 겪은 경험담 하나.중국집 앞에 「한국식 자장면」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가 주문을 했다.주문을 하고 한국식으로 『빨리 달라』고 했더니 중국인 주방장이 화를 내며 음식을 팔지 않겠다고 쫓아냈다.『그 「빨리 빨리」 소리 듣기 싫어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겼는데 여기까지 와서 또 그 소리 듣는다』며 진절머리를 내더라는 것이다. 「만만디」의 중국인과 성급한 한국인을 겨냥한 우스개인데 실제로 외국여행을 하다 보면 관광지의 행상이나 안내인들이 쓰는 외마디 한국어 가운데 「빨리 빨리」가 들어 있어 실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그들이 한국인 여행객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한국말이 「빨리 빨리」였기 때문에 그 말을 익힌 것이다. 이화여대 이근후 교수가 최근 대학생 5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국민성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으로 「급한 성격과 행동」이 꼽혔다는 것은 이런 일화나 우스개를 뒷받침하는 셈이다. 국민성이란 한 사회의 공유된 습관이나 사고방식으로 그 개념이정의된다.즉 한 사회의 구성원이 서로 나누어 갖고 있는 학습적인 경험의 결과이자 동기가 바로 국민성이다.따라서 국민성은 그 구성원이 겪은 삶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 국민성은 한동안 성급함과는 정반대인 「은근과 끈기」로 얘기된 적이 있다.그런가 하면 13세기 몽골제국에 파견된 프랑스의 카톨릭 수사 기욤 드 뤼브로크는 자신이 만난 고려인들의 외모나 국민성이 중국인보다 스페인 사람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몽골제국여행기」에 썼다.18세기 「중국의 고아」를 쓴 프랑스 소설가 볼테르와 20세기초 일본주재 프랑스 대사를 역임한 시인 폴 클로델은 한국인이 산악지형의 영향으로 강인하고 활발한 성격을 지녔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다음세기 우리의 국민성은 어떤 모습을 지닐까.가능하면 정보화 사회에 걸맞은 쪽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임영숙 논설위원〉
  • 보사행정 “오락가락”/돼지기름 “유해” 발표 7일만에 번복

    중국집에서 사용하는 돼지기름이 몸에 해롭다고 발표한 행정당국이 일주일 여만에 무해하다고 입장을 번복해 국민을 혼란케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6일 돼지가죽·내장 등에 면장갑과 비닐봉지 등이 뒤섞인 원료로 만들어 불량하다고 발표했던 신영유지·동광농산·서울산업 등 3개 회사의 돼지기름(돈지)이 인체에는 무해하다고 발표했다. 복지부는 이들 3개 회사의 제품을 국립보건원에 의뢰,두차례나 유해성 검사를 했으나 전 제품에 위해요소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다만 신영유지의 1월18일자 생산제품에서 식품포장재로 쓰이는 합성수지인 폴리에틸렌(PE)성분이 검출돼 해당제품을 폐기처분토록 했으나,폴리에틸렌은 인체에 흡수되지 않고 밖으로 배출되므로 인체에 유해하지는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폴리에틸렌이 유지식품에 녹아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달 31일 전국 대부분의 중국음식점에서 돼지기름을 사용하고 있다고 발표했다가 매출격감에 따른 업소들의 반발로 파문이 확산되자 1백69개 업소를 표본조사한 결과 28%인 48개 업소만 돼지기름을 사용했다고 정정발표했었다. 복지부는 이들 3개사에 대해 식품위생법상 규격기준 위반으로 1개월간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도록 해당 시·도에 지시했으나 신영유지의 1월18일자 생산분을 제외한 전 제품은 그대로 유통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불량 돼지기름 중국집 대량공급/보건복지부,3개업체 적발

    ◎가죽·내장섞어 수년간 40억대 제조 돼지 비계만으로 만들어야 하는 식용돈지를 돼지의 가죽,내장 등으로 제조해 전국 중국식 요리음식점에 판매해 온 업체들이 적발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돈지 제조업체에 대한 특별 단속을 벌여 관련법규를 위반한 신영유지(대표 박상숙·경남 고성군 고성읍),동광농산(대표 차태일·경북 영천군 금호읍),서울산업(대표 김상갑·충북 음성군 삼선면) 등 3개업체를 적발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단속에서 신영유지는 서울 마장동 등지의 도축장에서 비위생적으로 모은 가죽제조용 돈피와 뼈,간,콩팥,허파 등 부산물을 원료로 튀김용 식용돈지를 연간 2천7백t(16억원상당)을 생산해 수년동안 도매상을 통해 전국 중국식요리 전문점에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광농산은 신영유지와 같은 방법으로 연간 2천8백t(21억원 상당)의 돈지와 쇼트닝유지를 제조해 수년동안 판매해 왔다. 또 돈지 반제품 제조업체인 서울산업도 돼지 부산물 등이 섞인 원료를 사용해 연간 원료돈지 반제품 9백t(4억원 상당)을 만들어 수년동안 식용유지제조업소에 판매했다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 중국화 되는 한인촌(압록강 2천리:15)

    ◎보산촌 1백여가구중 초가는 1채뿐/높은담·철대문·온돌방 없는 벽돌집으로/닭장·돼지우리까지 복 비는 주련 써 붙여/설 인사조차 재물일기 바라는 “공희발재”로 변해 압록강유역의 중국땅에서 조선식 초가를 만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연변 조선족 마을에서 보는 풍경과 사뭇 달라 조선족 제2의 개척지 보산촌도 예외가 아니었다.조선족 1백27가구가 사는 못자리판속에 조선식 초가집은 단 1채에 불과했다.평안도 초가였는데,중국식 가옥으로 짓기 위해 자재를 다 준비한 터여서 그나마 없어질 운명을 맞고 있다. 보산촌에 와서 며칠을 묵은 문영빈 당서기의 집은 전형적인 중국식 벽돌집이라서 담이 유난히 높았다.그리고 철판으로 대문을 달아 열릴 때마다 요란한 쇳소리가 났다.온돌방도 둘이었지만 방에 봉당이 달려있기 때문에 신발을 신고 드나들었다.조선족 생활 흔적이라고는 부엌에 걸어놓은 수입품 알루미늄 솥 하나 뿐이었다.그러나 옆에 걸린 철갑모처럼 생긴 중국식 솥들이 조선식 알루미늄 솥을 압도해버렸다. 문영빈 서기의 부인 최철순씨는 중국식 집에 사는 것이 그리 탐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조선족의 주거문화를 소에 비유한 그녀는 연변 조선족 토박이로 살다가 압록강쪽으로 시집을 와서인지 중국식 집에 불편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이었다는 것이다. ○공중변소서 신년인사 『처음 시집 왔을 때는 중국집이 안좋더구마.온돌이 봉당에 빼앗겨 좁으니까 추워서 솜옷을 입었지비.신발을 신고 드나들어 위생이 말도 아니고….친정 어머니가 딸네집에 왔다가 춥다고 이내 돌아갔지 믿둥.조선사람은 소마냥 쉴라면 앉고 누워야 편한데 중국식 온돌은 앉아도 걸터 앉지비』 사람들의 심성도 변하는 것일까.문영빈서기의 집에는 길하고 복되기를 기원하는 온갖 주련이 대문으로 부터 집안까지 가득 붙어있다.그것은 중국의 풍속인데,닭장과 돼지우리에도 주련을 써서 붙였다.주련은 한족의 음력 정월풍속으로 붉은색 종이에 금색 글씨를 가로 넉자,세로로 일곱자씩 대련으로 써 넣었다.주거용도에 따라 주련의 뜻도 물론 달라 별별 내용이 다 들어 있다. 대문에 가로 글씨는 부자로일어나 재물이 생기라고 「발부생재를 적었다.그리고 침실문의 대련 한 줄을 들여다 보았더니 재물을 불러들여와 더욱 늘어나라는 내용의 「영재내재가재보」라고 되어있다.더욱 웃으운 것은 닭장이나 돼지우리의 주련이다.돼지우리에 써 붙인 주련은 작은 돼지가 달마다 늘고(소저월월증),큰 돼지는 해마다 새끼를 나라(대저년년생)는 내용이다. 이 주련을 보고 상을 찌푸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모두가 박장대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 주련은 다 재물과 연계되었다.옛날 중국에서 식탁이 비었던 시절 설날에 함께 변을 보는 사람과 나눈 인사는 『식사를 했는가?』였다.왜 하필이면 변소가 신년인사 자리가 되느냐고 의아하게 여길지 모르나,중국에서는 거의가 칸막이 없는 대형 공중변소를 사용하고 있다.어떻든 중국 12억인구를 먹여살리자면 한국돈으로 하루 3조원이 필요했으니까,먹고 살기가 어려운 시대가 분명히 존재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가 풀렸다.중국에서는 지금 돈이 많고 적다는 사실을 근거로 사람을 평가하는 시절이 되어설인사가 「삼가 재물이 일어 기쁘기를 바란다」(공희발재)는 식의 내용으로 바뀌었다.그러고 보면 중국식 주련은 멋이 아니다.한 푼의 돈이라도 모아 담장안으로 끌어들인다는 뜻이 들어있을 것이다.실제 그런 생활로 돈을 모으고 있는 사람들이 한족이다. ○푼돈벌이도 마다 않아 단동시에서 만난 중년의 한족은 압록강 건너 북한 땅을 자주 드나든다고 했다.북한에 사는 한족 화교들에게 장사물건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다.별 스러운 돈도 안되고 양쪽의 까다로운 해관(세관)검사가 번거롭지만,한 푼이라고 더 벌어보겠다는 생각에서 부부가 함께 다닌다는 것이다.혼자 가면 35원을 받는데,아내를 데리고 가면 두 몫을 운반해서 70원을 받는다고 너털웃음을 웃어댔다. 나라의 땅덩이를 솥에 비유한다면 구 소련 다음으로 중국처럼 큰 가마솥은 없다.그만큼 담을 것도 많고 끓는 속도도 더디다.그래서 푼돈 벌이도 마다하지 않는 한족은 그렇다고 솥을 서둘러 채우는 일도 없다.솥을 채우지 않고 불을 지피는 일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임어당이 일찍 중국문화를 가리켜 「울타리문화」라고 한 까닭이 바로 여기 있지않나 하는 것이다. 나라는 장성을 쌓고 집은 담장을 높였다.그속에 사는 사람들도 역시 마음을 쉽사리 열지않는 가운데 나름대고 문을 닫았다.중국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를 보고 「엉큼하다」는 말을 서슴지않지만 사실은 「웅숭깊다」는 쪽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높은 담벼락안에서 하는 일을 좀처럼 드러내 보이지 않는 한족을 재평가하면 경망스럽지 않은 민족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요령성 단동시 관전민족자치현 석호구향의 보산촌 사람들은 중국의 발전모델을 채택한 조선족이다. 요령성에 흩어져 사는 25만 조선족 가운데 극소수인 5백여명이 모여 잘사는 마을을 이룩했음에도 지금까지 소리소문을 내지 않았다.15년이나 바깥 세상에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원인은 매스컴의 무관심에도 있다.그러나 더큰 원인은 먼저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조선족 습성에서 해탈한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5백여명이 부촌 일궈 한족의 심성을 헤아릴 만한 글귀는 닭장에도 있다.금닭이 가득한 우리라는 뜻의 「금계만권」이라는 주련은 그저 그러려니 했으나,「은단송국가」라는 주련을 보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은빛의 달걀을 나라에 바친다는 뜻을 담은 이 주련은 얼핏 허풍스러운 애국표어 처럼 보인다.그러나 한족의 깊은 속마음을 알고보면 누구나 수궁할 것이다. 한족은 전통적으로 나라와 집은 조화로운 관계를 가진 것으로 생각해왔다.나라(국)와 가정(가)을 합쳐 국가라는 말을 만들어 낸 속뜻도 헤아릴만하다. 이는 집이 잘되면 나라가 부강해질 뿐 아니라 따라서 집도 넉넉해진다는 것이다.그래서 보산촌 사람들이 닭장에 붙여놓은 주련내용을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맛이났다.
  • 조사받던 피의자 잇단 투신/서울경찰청 감시소홀 틈타… 1명 사망

    경찰에서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경찰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건물 밖으로 투신하는 2건의 사고가 하루 사이에 발생,이 가운데 한명이 숨졌다. 13일 하오 5시15분쯤 서울 종로구 인의동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에서 상습 본드흡입 혐의로 조사를 받던 박석배씨(20·강북구 번3동 주공아파트 205동 511호)가 6층 화장실 창문을 통해 뛰어 내리다 부상을 입고 인근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 졌으나 1시간여 만에 숨졌다. 박씨는 이날 하오 3시쯤 서울 강북구 번3동 M중국집 앞길에서 형사기동대 소속 형사들에게 연행돼 조사를 받던 중 본드흡입으로 인한 심한 구토 증세를 일으켜 수갑을 풀고 화장실로 데려가자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안전장치가 없는 창문을 통해 15m아래 중앙선관위 건물 마당으로 뛰어 내렸다. 이에앞서 이날 새벽 0시30분쯤에도 형사기동대 3층에서 절도혐의로 조사를 받던 이봉룡씨(37)가 화장실에 갔다가 창문을 통해 밖으로 뛰어 내려 다리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고 이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수십억대 가짜 상어지느러미 유통/판매·재료상 7명 구속

    ◎유명 중국집주인 등 6명 입건 서울지검 서부지청 특수부(부장검사 서영제)는 14일 유수송(48·화교·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씨 등 중국요리재료제조업자와 판매상 7명을 식품위생법위반 및 사기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강남구 신사동 「중국성」 「만리장성」,종로구 부암동 「하림각」,영등포구 여의도동 「외백」,안산시 고잔동 「송월대반점」,서초구 잠원동 뉴코아백화점 「양자강」 등 유명 중국음식점 주인과 직원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유씨 등은 지난 90년부터 시중의 중국요리재료상에서 상어지느러미 찌꺼기로 만든 불량 상어지느러미와 식품응고제용 젤라틴으로 만든 가짜 상어지느러미를 1㎏에 3만원씩 구입,자연산인 것처럼 가공한뒤 이들 유명 중국음식점에 6만원씩에 팔아온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유씨 등이 중국 음식점에 한해 1천만원∼1억여원어치씩 6년동안 수십억원어치를 팔아왔다고 밝혔다.
  • 포장은 사양/용기는 작게/쓰레기 줄이기 “비상”/종량제 여파

    ◎가정·백화점·업체마다 묘안백출/플라스틱 그릇 담아서 배달/중국집/단골엔 규격봉투에 담아줘/슈퍼 쓰레기종량제 전면실시후 가정과 기업에서 쓰레기량을 줄이기 위한 각종 묘안이 백출하고 있다. 화장품을 비롯한 각급 소비제품 제조사 및 백화점 등 유통업체들은 쓰레기종량제 실시에 따르는 소비자의 쓰레기부담을 줄이기 위해 포장지·포장용기 등을 최대한 줄이는 동시에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로 바꾸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제일제당은 식용유 플라스틱용기를 포장하고 있는 비닐봉지를 없애는 방안을 연구중이며,세탁세제 팩의 손잡이마저 소재를 플라스틱에서 종이류로 바꿨다.또 화장비누 포장지의 비닐코팅을 제거,1백% 종이류로 바꾸는 등 모든 포장지 및 팩의 재활용화를 추진중이다. 제조업체의 이같은 노력과는 달리 일부 편의점등에서는 컵라면을 사먹는 손님에게 쓰레기수거비용명목으로 1백원씩 더 받고 있어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리고 있다. 가정배달시 스티로폴식기를 사용해온 중국요리집은 다시 플라스틱그릇으로 바꿔 회수하기 시작했으며,일부 슈퍼마켓은 종량제규격봉투를 준비,일정액이상의 과일을 사는 소비자에게는 아예 규격봉투에 담아주기도 한다.
  • 지하철공사장 철판 15층까지 튀어/사고현장 주변 이모저모

    ◎폭발현장엔 6m 깊이 웅덩이/귀고리로 사망부인 확인 “통곡” ○…사고직후 30여m이상 화염이 치솟으면서 공원 부근 아현1동 8·9·42번지 일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으며 특히 이 일대가 전통 한옥과 불량주택 등이 밀집한 지역인데다 때마침 강풍이 불어 40∼50여채의 건물이 20여분만에 전소. 주민 2백여명은 안전지대에 위치한 골목길에서 자신의 집과 가게가 불길에 싸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발을 굴렀으며 일부 주민은 위험을 무릅쓰고 가게와 집에 들어가 귀중품 등을 들고 나오기도. ○…사고당시 5∼6차례의 폭발음이 울리면서 지하철공사에 사용되는 철판 3장이 고려아카데미빌딩 15층 높이까지 올라간 뒤 떨어질 만큼 폭발은 위력적. 행인 김영수씨(43·회사원)는 『화재현장 앞길에 10여대의 차량들에 있던 승객들이 급히 내려 대피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편 불기둥이 30m이상 치솟으면서 가까운 여의도는 물론 을지로 등에서도 검은 연기를 볼 수 있었다는 것. ○…사고현장 주변은 마치 폭탄이 투하된 전장처럼 각종 시설물과 가로수 등이 형체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소.특히 가스저장소 위에 조성된 2백여평 남짓의 도심공원에는 나무와 벤치 등 각종 시설물이 들어서 있었으나 사고 직후 형체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라져 버렸으며 폭발로 5∼6m 깊이의 웅덩이가 생겨나기도.또 공원과 인접한 골목길 등에 주차해 있던 서울1르 5903 프라이드 승용차를 비롯한 30여대의 차량들도 전소돼 거대한 숯덩이를 방불.하오 4시30분쯤 사고현장 한 주택에서 30대 남자가 인명구조대원들에 의해 구조돼 나오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울부짖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이날 폭발사고로 머리와 왼팔·양쪽발에 화상을 입은 최명숙씨(42·여·서울 마포구 아현동 606의5)는 어렵게 마련한 집과 계원들로부터 받은 곗돈 8백여만원을 날리고 한숨. 최씨는 사고현장 부근에 있는 중국집 태화장과 자신이 일하는 우기용달사무실등의 계원 50여명으로부터 15만원씩 받은 곗돈을 안방에서 계산하고 있던 중 『펑』하는 굉음과 함께 들이닥친 불길을 피하기 위해 몸만 빠져나오느라전 재산을 몽땅 날려버렸다는 것. ○…마포구청에 설치된 사고대책본부는 하오 11시쯤 조삼섭 구청장과 박청부 가스공사사장,구의회의원등이 참석한 가운데 사고대책회의를 열고 소의국교 등 2곳에 분산수용된 이재민들에게 전세금 지급과 함께 생활필수품 수급을 논의. 또 사고원인과 책임소재를 따지지 않고 가스공사측이 전액을 피해보상하기로 서울시와 가스공사간에 합의가 이뤄졌다고 발표. ○…진화작업이 계속되는 동안 주민 50여명이 현장에 몰려와 『공원앞에는 평소 「비상대피소」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면서 『비상시에는 가스관 때문에 오히려 더맣은 희생자가 생길 것이 뻔한데도 이곳을 비상대피소로 지정할 수 있느냐』고 격렬히 항의. ○…사고현장 부근에서 식당일을 하고 있는 이정엽씨(43)는 사고당시 식당 2층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부인 조순옥씨(38)를 찾지 못해 해메다 사망자가 안치된 서대문구 세림병원영안실에서 조씨의 귀소리를 보고 사망을 확인한뒤 망연자실. ◎대형 가스사고 일지 ▲74·11·16= 서울 응암동 남찬가스서부저장소 폭발,30명 중상 ▲78·10·16=서울 현대아파트 가스폭발,12명 부상,1백12가구 파손 ▲78·10·22=서울 명동 LP가스 폭발,재산피해 1백41억원 ▲81·8·13=안양시 보신탕집 프로판가스 폭발,10명 사망 20명 부상 ▲81·12·26=서울 대한화재보험 지하식당 가스폭발,3명 사망 1백30명 부상 ▲82·5·10=부천시 우풍회사 공장 가스폭발,31명 사상 ▲85·5·6=서울 마포·서대문구 14개동 도시가스 연쇄폭발,가옥 20채 파손 ▲90·7·22=울산시 유공 에틸렌공장 부탄가스 저장탱크 폭발,재산피해 1억원 ▲91·10·12=울산시 현대아파트 가스폭발,8명 사망 1명 부상 ▲93·11·9=여수시 삼성전자 판매장 LP가스 폭발,20명 부상 ▲93·11·29=울산시 현대미포조선소 LPG운반선 폭발,10명 부상 ▲94·1·9=광주시 무등주유소 LP가스 폭발,3명 사망 5명 부상 ▲94·4·27=전남 나주군 신진냉동 가스폭발,5명 사망 2명 부상 ▲94·8·30=서울 도봉2동 4층 건물 LP가스 폭발,1명 사망 5명 부상
  • 돈과 여자엔 양보없다(최두삼 귀국리포트:14)

    ◎노름빚 떼먹으려면 목숨걸어야/옛날부터 여자 부족… 노총각은 마카오에 들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중의 하나로 마카오반도에서 바로 앞 타이파섬까지 연결하는 타이파대교(대교)를 들 수 있다.마치 거대한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모습의 이 다리는 대형선박들이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도록 다리 중심부분을 어림잡아 수면위로 70∼80m나 높게 축조한게 특이하다. 이 중심부 꼭대기는 용도가 특이하다.「도박의 도시」인 이곳에서 도박으로 돈을 몽땅 잃고 나면 우선 자식들을 팔아먹고,그 다음 마누라까지 잡혀놓고 최후의 한판을 벌이다 실패하면 마지막으로 갈 곳이 이 다리 꼭대기밖에 없다고 한다.여기가 인생을 마감하는 자살장소로는 그만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이곳에서 자살하려면 어떨 때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까지 있다. 한국이라면 노름빚따윈 얼마든지 떼어먹어도 큰 탈이 없다.법으로도 이런 빚은 보장을 받지 못한다.하물며 마누라를 잡혀먹는 일따윈 그 자체가 불법행위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는게 한국이다. 그러나 마카오나 홍콩·대만·중국본토등 중국인이 사는 곳은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중국인 사회에서는 여자와 노름빚에 양보가 없기 때문이다.노름빚을 안갚으려 잔꾀를 부리다간 칼부림을 당해 목숨마저 제대로 보존하기가 어려운게 현실이다. 중국인들에겐 단돈 1위안(원)이라도 빌렸으면 반드시 갚아야 하는게 철칙이다.이 원칙은 심지어 부자지간에도 지켜지는 생활관습이어선지 노름빚이라 해도 절대 예외가 없다고 한다. 대만에 체류중인 한국인들중에는 이런걸 모르고 전화통화나 버스비로 중국친구에게 꾼 돈을 잔돈이라며 의도적으로 갚지 않는 경우가 많다.그래서 대북에 오래 주재해온 무역진흥공사의 한 간부는 『한국인들이 이곳에 오면 가장 먼저 주의할 사항으로 중국인에게 꾼 돈은 반드시 갚으라』고 일러준다고 말한다. 중국인들은 남에게 꿔준 돈을 절대로 잊지도 않는다.친구지간에도 『내 수첩엔 자네가 몇년 몇월 며칠날 얼마를 꿔간 것으로 적혀있네』라고 정확히 상기시켜 준다.한국에서도 직장 근처 중국집에서 자장면 한그릇을 외상으로 먹고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겨 4∼5년쯤 지났다해도 안심할게 못된다.언젠가는 반드시 외상값을 받으러 찾아오기 때문이다. 돈을 아끼는 만큼이나 절대 양보 못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여자다.중국사내들이 목숨을 걸고라고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게 자기 아내다.그것은 아마도 오랜 세월을 여자의 절대부족속에 살아온 때문일 것이다.최근의 통계로도 중국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6%나 더 많다.5살이하의 갓난아이의 경우 남자가 10%가량이나 더 많아 앞으로 이들의 혼인때는 더욱 심각한 처녀쟁탈전이 벌어질 판이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장가 못든 청년들이 두눈에 불을 켠채 신부감을 찾고 있으나 웬만한 처녀들은 모두 도시로 줄행랑을 치기 때문에 쉽지가 않다.그래서 외딴 산간벽촌에서는 인신매매혼이 그치질 않는다.홍콩신문들에 따르면 처녀들을 납치해 산간에 팔아먹는데 요즘 이런 신부값은 약 5천위안(50만원)이다.이 정도의 돈을 산간벽지에서 마련한다는 것은 10여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그래선지 산촌 총각들은 이렇게 사들인 신부를 경찰에서 내놓으라 하면 『내돈 주고 내가 샀는데 무슨 말이냐』고 항변하면서 그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산간벽지로 팔려간 여자가 도망이라도 치려한다면 목숨을 내걸어야 한다.온마을 사람들이 지키며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고 있는데다,또 멀고도 험악한 산길을 애써 도망친다 해도 인가를 발견하기 전에 사나운 산짐승에게 잡혀먹힐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여자가 이처럼 귀해지자 30∼40세가 넘도록 장가를 들지못한채 총각귀신이 되어가는 오빠를 둔 누이동생은 환친결혼이라는 묘한 관습의 희생물이 되기도 한다.환친결혼이란 장가못든 노총각과 누이동생을 동시에 두고 있는 두 집안끼리 서로 교차로 결혼을시키는 것이다.즉 A집안의 노총각은 B집안의 처녀에게 장가를 들고 반대로 B집안의 노총각은 A집안의 처녀와 결혼을 하는 것이다.이 경우 두 집안은 서로 손해볼 것이 하나도 없어서 가난한 농가에서 이따금 애용하고 있는 혼인방법이다.
  • 살인집단 「지존파」의 성장 과정

    ◎“가난하고 못배워「가진자」를 증오했다”/학업 중도포기→가출→공장직공 진전/공사판서 만나 “부유층 저주” 의기투합 울산 삼정기계 소윤오사장부부등을 살해한 연쇄납치 살인범 6명은 대부분 가정형편이 어려운 시골에서 태어나 학업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일찍이 가출,공사판 막일꾼등으로 생활하던중 서로 「의기투합」해 범죄조직인 「지존파」를 결성했다.이들의 학력은 모두 중·고등학교 1∼2년 중퇴의 저학력.강문섭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특수절도·상해등의 전과가 기록돼 있었다. ▷김기환◁ 「지존파」를 만든 장본인이자 두목.김은 2년전 대전·성남·분당등지의 막노동판에서 일하다 알게된 같은 고향 출신의 강동은,김현양,문상록등 3명을 규합,홍콩영화 「지존무상」에서 본뜬 「지존파」를 조직 납치살인 범죄단의 명칭으로 정했다. 3살때 아버지를 여읜 김은 영광 모중학교 2학년을 중퇴한 것이 학력의 전부.지난 6월 불갑면에서 10대 소녀를 추행,경찰에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돼 이달 29일 선고공판을 앞둔 상태.거칠고 잔악한 김에게 조직원들은 무조건적인 충성을 맹세하고 따랐다. 범인들이 합숙하면서 범행장소로 사용한 영광군 외딴 농촌마을에 있는 아지트도 두목 김씨 소유.막노동판에서 각자 번돈을 적립,4천여만원을 만든뒤 그 돈으로 직접 자재를 구입해 지었다는 것이다. 김은 기존의 농촌형가옥을 헐고 지난 3월부터 새집(아지트)을 짓기 시작,7월말쯤 완공했으며 이때 이웃주민들에게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집을 짓는다』고 위장했었다. 그러나 10여년전부터 중풍을 앓아온 그의 어머니 최모씨(65)는 인근 방마리마을에 셋방을 얻어 혼자 살도록 했다. ▷강동은◁ 두목 김이 구속된후 사실상 지존파를 이끌어온 강은 양부모가 생존해 있고 비교적 넉넉한 가정형편에서 자랐으나 형제가 많아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주변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폭력혐의로 구속된 전과경력을 갖고 있는 강은 전과기록을 빼기위해 막노동판에서 모은돈 1천5백만원을 변호사에게 주었다가 몽땅 날린뒤 가진자에 대한 적개심을 싹틔우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4년동안 일정한 직업없이서울등지를 떠돌아 다닌 강은 고향 선배인 두목 김과 친구인 김현양을 만났다. 강의 이웃주민들은 『강이 어렸을때는 착한 모범생이었으나 서울로 떠난 뒤에는 전혀 소식을 모른다』면서 강의 범죄행각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강의 집은 이들의 범행아지트에서 불과 5백ⓜ떨어진 지척에 있었다. ▷김현양◁ 주범격인 김도 아버지가 사망하자 본적지인 백수읍의 모중학교를 2학년 중퇴한 전형적인 결손가정 출신. 현재 홀어머니(46)는 영광에서 식당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입대예정인 남동생(19)과 취업준비중인 여동생(17) 등 일가족이 보증금 3백만원짜리 전세방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 김은 중국집을 경영하던 아버지가 84년 사망한뒤 88년 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가출,뚜렷한 기술이 없어 직장을 잡지 못하고 전기공·공사장잡부 등 떠돌이 생활을 해왔다. ▷이경숙◁ 유일한 여성조직원인 이는 2년전쯤 대전에서 일하다 영광으로 내려와 주점접대부로 일해 왔다.이곳에서 강동은을 만났으며 강은 지난 17일 숨진 소사장부부로부터 몸값으로 받은 8천만원가운데 1천6백만원을 이양이 일하는 주점주인 정모씨(42)에게 『경숙이와 결혼한다』며 돈을 주고 이를 빼냈다는 것. 그녀 역시 여중2년을 중퇴했으며 아버지의 주벽과 교도소생활을 견디지 못해 가출한 전력을 갖고 있다.어머니 신모씨(46)는 온양에서 다방을 운영하고 있으나 딸과는 소식을 끊고 사는 상태다. ▷문상록◁ 본적이 영광읍 남천리로 기록돼 있는 문은 91년 아버지가 사망했으며 이보다 6년 앞서 먼저 형마저 사망해 별다른 생계수단없이 어머니(54)와 남동생(17)을 부양해 왔다. 고교를 중퇴한 문은 92년 성남시로 이사한뒤 공사장에서 막노동으로 가장노릇을 해왔으며 이때 김기환등과 악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문섭◁ 조직원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강(20)은 전북 부안이 고향.아버지(50)와 함께 고향을 떠나 고모집인 충남 논산군 연무읍 안신2리에서 성장했다. 이곳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강은 고교에 진학했으나 누나(24)가 가출하고 아버지 강씨마저 고향으로 돌아가자 혼자 남아 있다가 가출. 이웃주민들은 『아버지가 연무읍에서 공사판을 전전하며 어렵게 생활했다는 것만 알뿐 주위와는 교류가 없어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 소문난 음식점 별미강좌 인기

    ◎한식집 동촌/장아찌·홍합조림 등 밑반찬 중심/중국집 향원/중국음식의 고유한 맛내기 전수/호텔신라/매주 중식·양식·한식 번갈아 실시 『유명식당의 별미음식을 가정에서 직접 요리한다』 깨끗하고 전통있는 음식맛으로 소문난 호텔 및 식당들이 마련하는 고객 대상의 요리강좌가 살림 잘하는 주부들에게 인기를 끌며 자리잡아가고 있다. 유명음식점들의 경우 독특한 음식이 있다 해도 비법이라며 맛내는 방법을 안알려 온것이 상례라면 이런 강의를 갖는 곳들은 좀 특이한편. 호텔 요리 강습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은 호텔신라.지난 81년부터 「레이디스 클럽」회원을 중심으로 일식 중식 양식 한식등 각종 음식부문에 걸쳐 매주 1회 실시하고 있다.가입비 5만원에 1회 참가비는 재료비포함 2만∼4만원선.이곳은 결혼을 앞둔 미혼여성들이 많이 찾고 있다. 스위스 그랜드호텔이 주로 실시하는 것은 이탈리아 요리 강습.지난 89년 부터 시작,매년 봄·가을 2달 기간으로 하는 집중 코스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정식집 「동촌」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전통한정식에 들어가는 김장아찌 홍합조림등 갖가지 밑반찬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전통요리 전문가인 주방장겸 주인 조정강씨가 직접 강의를 맡고 있어 전통식을 배울 기회가 없던 젊은주부들에게 인기다. 김영삼대통령이 야당 총재시절 애용했던 식당으로 더 유명한 이 곳은 한달에 두번 금요일에 강의하고 있다. 회비는 1만원. 『중국음식점은 많지만 실제로 가정에서 중국요리를 해먹을 수있는 주부는 거의 없어요.비싸다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방법만 알면 중국 음식은 저렴한 비용으로 충분히 고유한 맛을 즐길 수 있어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전통중국요리점 「향원」을 15년째 운영하고 있는 화교 3세 이향방씨(46). 지난 88년부터 음식점 한쪽을 터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중국요리전문학원을 열고 전통중국요리 강습을 실시해오고 있다. 이 지역주부들을 비롯,외국에서 현지인들을 상대로 다양한 파티를 열어야 하는 대사부인들과 강남지역의 주부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한다.1920년대에 중국 상동지방에서 이민 온 외할머니에 이어 중국음식점을 열고 있는 이씨는 중국의 전통음식 문화를 한국 가정에 보급하는게 주 목적이라고. 「상해복무음식전문학교」와 결연을 맺고 김치·장아찌등 한국음식을 현지에 소개도 하고 있는 이씨는 한·중 수교 5년전부터 중국을 드나들며 각 지역의 요리법을 배웠고 대만정부 외교관이던 시아버지를 따라 대만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중국요리는 지역에 따라 큰 특징이 있다고 이씨는 설명한다.즉 가장 널리 알려진 북경요리는 중국 궁중요리가 많이 섞여 있어 담백한 맛과 화려한 외양이 특징이며 사천요리는 마파두부등 매콤한 맛이,상해요리는 해물을 이용한 요리가 두드러진다.특히 우리 입맛에도 맞는 민물게를 이용한 요리가 대표적이라고 한다.광동요리는 원숭이 고양이 쥐 뱀 개구리등에다 강한 향신료가 들어간 「별미음식」으로 유명하다.
  • 서울 아현동 윤순희씨/우리집에선:4(녹색환경가꾸자:25)

    ◎「폐식용유 비누」 만들어 이웃 나눠쓰기 4년 『폐식용유로 비누를 만들기 시작한지 올해로 4년째인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비누를 만들었던지 제가 만든 비누를 연결하면 글쎄,서울부터 부산까지는 안되어도….여하튼 수만장은 될 겁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사는 주부 윤순희씨(51)는 동네에서 「폐식용유 비누공장 아줌마」로 불릴만큼 많은 숫자의 폐식용유 비누를 만들어 기회 있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며 수질환경 보호를 외쳐온 소문난 환경 파수꾼. 『몇년전 우연한 기회에 폐식용유가 강물을 오염시키고 가정에서 사용한 폐식용유를 무심코 하수구에 쏟아부었을 경우 오염된 강물을 원상복귀시키려면 튀김기름 5백㎖에 3백ℓ들이 물통으로 3백30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윤씨는 그때부터 비록 작은 힘이라도 자신부터 수질보호 운동을 실천하기로 결심한후 쓰고 버리는 폐식용유를 모아 비누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들려준다. 윤씨는 폐식용유 비누의 경우 폐식용유와 가성소다(양잿물)·물만 있으면 되므로 경제적 부담이 전혀 없고 만드는 과정도 아주 간단하다고 밝힌다.물론 가성소다를 구입하기 위해 화공약품을 파는 종로5가까지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정도 노력없이는 결코 푸른 환경을 가꿀 수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 『폐식용유 비누를 본격적으로 만들어 나눠주게 되면서 부터는 가정에서 나오는 기름만으론 원료가 부족,중국집이나 통닭집처럼 튀김기름을 많이 쓰는 곳에 부탁,버리는 기름을 모아왔는데 집이 언덕배기라 들고 올라오려면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이때문에 처음엔 식구들이 『괜한짓을 한다』며 싫은 소리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환경을 지키려는 윤씨의 정성에 감동,가족은 물론 이웃도 모두 협력자가 돼주고 있다고 밝힌다. 『폐식용유 비누를 만들땐 먼저 커다란 스테인통에 가성소다를 넣고 물을 부어 1∼2분쯤 가성소다를 녹인후 기름을 붓는데 그다음 나무 막대기로 쉬지않고 한 30분쯤 반드시 한 방향으로 계속 저어줘야 하는 것이 제일 힘들지요』 그런데 윤씨는 요즘 이 과정을 남편 이학선씨(56·사업)가 대신해주기 때문에 너무 수월하다고 자랑스러워 한다.그외에도 멀리서 기름이나 가성소다를 운반해오는 날은 남편과 딸들이 버스 정류장 등에서 기다렸다 들어주며 격려할 정도라고. 『집 사람은 비누만 만드는것이 아니고 신문지와 병종류를 중심으로 쓰레기 분리수거도 하고 우유팩을 모으며 특수 휠체어를 만드는 주재료라는 알루미늄 캔 꼭지를 모으는등 하도 여러가지를 하기때문에 집안이 온통 쓰레기장 같아요.그래서 처음엔 신경질도 났지만 우리 환경은 남이 아닌 나를위해 지켜야 한다는 아내의 굳은 의지를 지켜 보면서 그냥 아내 혼자만의 일인양 모른척 할 수가 없었습니다』남편 이씨의 이야기. 이씨는 특히 물과 가성소다를 섞어 젓는 과정에서 연기가 나고 열이 오르면 뜨거워지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해서 스스로 자청,그 일을 하게 됐다고 설명한다.기름을 부은후 잘 저어 물엿처럼 되면 두부목판이나 우유팩에 일일이 부어 보관했다가 한 20일쯤 지나면 비누로 쓰기 시작하는데 이런 과정도 모두 남편 이씨가 챙겨야 할 몫이다. 『폐식용유 비누는 써본 사람이 아니면 그 효과를 모른다』고 말하는 윤씨 부부는 『강물오염의 주범인 합성세제보다 세탁효과가 우수한것은 물론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고 설거지를 할때 세제대신 쓰면 분해가 빨라 그릇에 세제가 남아있을 염려가 없어 더없이 위생적』이라며 다소 번거롭더라도 모든 주부들이 하나가 되어 이 운동에 참여하길 희망했다.
  • 도장포­인쇄소 “실명제 특수”

    ◎「확인필」 고무인·신청서 금융기관주문 쇄도/장시간 대기… 다방·식당 붐벼/동사무소옆 사진관 “주민증 발급” 호황 금융실명제 실시로 은행·증권회사·투자금융사 주변의 도장포·음식점·다방·인쇄소와 동사무소 근처 사진관등이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이가운데 가장 바쁜 곳이 금융기관 주변의 도장업자들. 실명제가 전격 발표된 다음날인 지난 13일부터 은행과 증권회사·투자금융사가 몰려있는 서울 명동·강남구의 압구정동·논현동·청담동·개포동등지의 도장포는 각 금융기관에서 주문한 「실명확인필」등 4∼5종류의 고무인과 은행 고객들이 주문한 도장을 새기느라 비상이 걸렸다. 각 금융기관은 첫 실명 거래자의 통장과 예금원장등에 찍을 고무인을 창구직원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고무인이 대량으로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각 은행과 증권사등이 주문한 고무인은 보통 한 지점당 30∼40여개. 덕분에 은행과 직거래를 하던 도장업자들의 경우 한개에 5천원가량의 고무인을 하루 평균 1백여개씩 납품,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서울중구 충무로에서 고무인전문 하청공장을 경영하는 홍순영씨(64)는 『도장업자들로부터 한개 5천∼1만원짜리 고무인 5종류 3백여개를 주문받아 한나절만에 납품하느라 혼났다』고 말했다. 또 인쇄업자들 역시 각 금융기관에서 주문한 실명확인양식서류와 안내장·설명서등을 인쇄하느라 비성수기인 한여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서울 중구 인현동 1가 대동마스터인쇄소의 경우 실명제 안내문과 서식 1만여부를 근처 2∼3개 은행으로부터 주문받아 밤샘작업을 하기도 했다. 서울시내 각 동사무소의 경우 주민등록등본과 주민등록증 재발급 신청자가 평소보다 갑절이나 늘었다.마포구 연남동 동사무소는 주민등록등본 신청자가 하루 평균 75통정도에서 1백80통으로,주민등록증 재발급 신청자는 7건 정도에서 12건으로 크게 늘어나 주변 사진관이 증명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금융기관 주변의 음식점과 다방도 예외는 아니다. 명동 한일관의 경우는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뒤 점심시간에 손님이 10%가량 늘었는 데 주로 3∼5명씩 짝을 지어 찾는 40대 주부들이 많다.이곳 증권빌딩에 있는 한 커피숍의 경우에도 실명제실시 이전보다 20%쯤 많은 손님이 몰리고 있다. 일부 은행이나 투자신탁회사는 직원들이 업무 폭주로 점심시간에도 밖으로 나오지 못해 주변의 김밥집·도시락업체·중국집등은 배달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 못말리는 YS(외언내언)

    힐러리 거센 치맛바람으로 유명한 미클린턴대통령이 이번엔 얼굴에 상처를 입고 나와 또한번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대변인이 「면도하다 베인 것」으로 발표했으나 클린턴대통령은 「딸 첼시와 어릴때처럼 딩굴고 장난하다 다친 것」이라고 말했다.더더군다나 「애들처럼 놀아선 안되겠다」는 애교있는 변명에선 대통령도 사생활에선 남의 남편인 바에야 부부싸움을 할 수도 있다고 웃음짓게 했다. 김영삼대통령을 소재로 한 유머집 「YS는 못말려」가 나왔다는 보도에 사람들은 그 제목만으로 벌써 즐거운 화제만발이다. 특히 정주영과 중국집에서 단무지 한개를 놓고 벌이는 실랑이는 단순하게 웃어넘길 일만도 아닌 웃음속의 「경구」다. 「니 맞고 먹을래,아니면 내가 먹을까」YS제안에 「때려봐라.난 맞더라도 먹는다」고 정이 대답,정이 단무지를 먹어버리자 YS는 신나게 두들겨 패고는 손을 털며 자리에 앉아 「여기 단무지 하나 추가」를 외친다. 짧은 유머속에 깃든 번뜩이는 기지,해학과 풍자마저 풍겨 YS의 어떤 면모를 가차없이 표현한 대목이나 아닌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퍼스트레이디 이름자 밑에 붙이는 「여사」호칭을 「여자」로 교정이 잘못 나왔다고 해서 징계를 받아야 했던 「양해」없던 시절에 비하면 확실히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찬란한 변화다. 과연 문민시대 개막과 함께 YS는 주춤거리는 기색없이 청와대 앞길 인왕산 개방,안가 철수,공직자 재산공개 등을 일사불란하게 진행시켜 이땅에 민주화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클린턴의 상채기나 YS유머집은 다같이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친밀감을 느끼게 했다는데 호감을 준다. 또 대통령은 더이상 청와대 저쪽의 권위나 카리스마같은 성역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이기도 하다.구질구질하고 우울할때 새옷을 갈아입으면 상쾌해지는 것처럼 대통령 유머집 아닌 대통령의 유머를 기대해도 괜찮을 것같다. 어쨌든 이런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한 것만 봐도 정말 「YS는 못말려」다.
  • 주택가서 강간·절도/고교생 등 10명 영장

    서울 송파경찰서는 3일 최모군(15·B상고 1년·송파구 가락동)등 고교생 7명이 낀 10대 10명을 특수강간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김모군(16·H고 1년)등 10대 8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중학교 동창사이인 이들은 지난 1월5일 상오3시쯤 평소 알고지내던 지모양(16·송파구 마천동)을 서울 송파구 문정동 M국교로 유인해 집단 성폭행하는 등 91년 8월부터 지금까지 6차례에 걸쳐 10대 소녀들을 강간해온 혐의를 받고있다. 이들은 또 지난해 11월24일 하오11시쯤 송파구 문정동 D중국집 출입문 자물쇠를 드라이버로 뜯고 들어가 잠자고 있던 종업원 이모씨(20)의 허벅지를 흉기로 찌르고 현금 6만7천원을 빼앗는등 송파구 일대 음식점과 주택가를 무대로 지금까지 10여차례에 걸쳐 강·절도를 일삼아 43여만원을 턴 혐의도 받고 있다.
  • 먹거리용어 우리말로 씁시다/문화부,341개 단어 어법에 맞게 고쳐

    ◎깅깡→금귤,감주→단술,모밀→메밀 등 문화부는 음식업소나 각종 요리 관련 서적·강좌 등에서 사용되고있는 외래어 및 잘못된 식생활 관련용어를 순화하여 20일 그 내용을 발표했다. 이번에 순화된 식생활 관련용어는 국립국어연구원이 지난해부터 한식집 중국집 일식집 양식집 분식집 등 서울시내 80여개 대중음식점과 시장 백화점 잡화상의 식품부를 비롯하여 교과서 및 각종 요리책에 있는 식생활 관련용어 4천여개를 조사,순화대상용어를 선정한 후 국어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한 것이다. 이들 용어는 일본어투 용어를 비롯한 지나친 외래어와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는 한자어 용어 2백81개와 맞춤법·표준어 규정 및 외래어 표기법에 어긋나 잘못 쓰이고 있는 식생활 용어 60개 등 총 3백41개 용어를 어법에 맞게 다듬은 것이다. 순화용어 주요사례는 다음과 같다. ▲다방→찻집 ▲닭도리탕→닭볶음탕 ▲레스토랑→식당 ▲감주→단술 ▲개수통→설거지통 ▲깅깡→금귤 ▲곰장어→먹장어 ▲강력분→차진밀가루 ▲다대기→다진양념 ▲소맥분→밀가루 ▲조미료→양념 ▲무우→무 ▲스탠드바→선술집 ▲생선묵→어묵 ▲스낵코너→간이음식점 ▲함박스테이크→햄버그스테이크 ▲후라이→프라이 ▲모밀→메밀 ▲사라다→샐러드 ▲분식→가루음식 ▲마호병→보온병 ▲대두→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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