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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臨政 유적 찾아 보수·보존 추진”/金 대통령 임정 청사 방문

    【상하이 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은 15일 오전 상하이(上海)임시정부 청사를 둘러봤다.金대통령은 먼저 백범 金九 선생 등이 사용하던 청사 1층 회의실에 들러 베이민디앙(貝民强)청사관리소장으로부터 청사 복원배경 에관해 설명을 듣고 백범 선생이 사용한 탁자에 앉아 방명록에 서명했다. 金대통령은 ‘불석신명 유방만세(不惜身命 遺芳萬世)’라고 쓴 뒤 “애국지사·선열들이 신명을 바쳐 이룩하려 했던 것이 향기가 돼 만세에 남을 것”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이말 뒤에 ‘한중우의(韓中友宜)’도 추가했다. 회의실엔 장방형 테이블과 의자,대형 태극기 2개,찻잔,주전자 등이 옛 모양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金대통령은 청사관리소로 옮기는 도중 기념품판매대에서 백범선생의 ‘독립정신(獨立精神)’ 친필이 담긴 기념품을 샀다. 金대통령은 “상하이 임시정부는 중국내 여러곳으로 옮겨다녔으므로 앞으로 그 유적도 찾아 보수·보존하는 일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의 보존·개선에 협력해준 중국정부와 상하이시에 감사드린다”고 사의를 표시했다. 한편 관리소측은 김대통령이 지난 94년11월 이곳을 방문했을 때 서명한 방명록과 金대통령 가족 사진을 전시해놓는 등 세심한 준비를 했다.
  • 日軍 학병서 광복군까지(항일독립군 장정따라 6천리:上)

    ◎臨泉 軍訓地서 ‘광복꿈’ 회상/銅山路 日 부대터에 中軍병영/연병장·단층막사 ‘옛 그대로’/끌려간 日 병영탈출 감행 뿌듯 한국 독립유공자협회 회원들이 조국 광복을 꿈꾸며 젊은 날 이역만리에서 피 흘렸던 중국땅을 찾았다.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韓光班) 출신 광복군 초급장교들로 흔히 광복군 마지막 세대로 분류된다. 일본군의 학병으로 끌려왔다가 탈출,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이 항일투쟁의 족적을 찾아 나선 것은 광복의 참뜻을 지금의 시대 정신으로 승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중국 중부 장쑤(江蘇)성 쉬저우(徐州)에서 쓰촨(四川)성의 충칭(重慶)까지 장장 6,000리길. 일본군 탈출부터 광복군 훈련장,항일 지하공작 거점 등 열하루간 동행했던 이들의 답사 행로를 3회에 나눠 소개한다. ‘마지막 독립군’들의 첫 현장 답사는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에서 시작됐다. 베이징(北京)서 814㎞. 기차로 8시간. 54년전에 거쳐온 길을 더듬기 위해 1시간 남짓한 비행기편도 마다했다. 1944년 2월초. 평양을 출발,기차에 강제로 실려 닿은 곳은 일본군과 중국군이 대치하던 최전방 쉬저우. 7월까지 쉬저우와 슈저우(宿州),푸양(阜陽)일대 전선에 배치됐던 이들은 그해 3월부터 7월까지 하나둘 일본병영을 탈출했다. “일본군이 되어 동포들의 가슴에 총을 겨누느니 차라리 탈출하다 죽기로 했다”고 50여년전 결의를 회상했다. “상당수는 우선 충칭에 있던 임시정부를 찾아가기로 했었습니다” 회고담은 이어졌다. 당시 쉬저우 주변에선 일본군이 밀집해 있었고 중국으로 끌려온 ‘조선학병’ 3,000여명의 대부분도 부근에 배치됐다. 때마침 텐진(天津)에서 시작된 진푸선(津浦線)철로가 쉬저우를 지나 상하이(上海),푸둥(浦東)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노 광복군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일본군은 철도와 주변을 점령,광대한 중국대륙을 ‘선’과 ‘점’으로 연결하는 전략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끌려갔던 학병들은 대부분 철도역 주변에 주둔해 있었단다. 밤을 틈타 3m가 넘는 철책을 넘었다. 짧게는 2∼3일에서 일주일이상을 풀잎이나 과일로 연명하며 낮에는 수수밭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들판을 달렸다. 대개는 중국 유격대와 조우했고 당당한 광복군이 되었다. 44년 6월 ‘宿縣부대’ 제4중대에서 탈출했던 金柔吉 부회장과 全履鎬 회원은 슈저우역에서 2㎞쯤 떨어진 곳을 찾아 헤맨끝에 당시의 탈출지점을 찾아냈다. 지금은 ‘宿縣 付小樓 村庄’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2∼3층의 주택들이 병영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에 앞서 5월에 같은 부대 보병중대에서 津浦線을 넘어 탈출했던 石根永 회원도 슈저우에서 50㎞ 떨어진 구쩐(固鎭)역부근에서 병영터를 찾아냈다. 일본군은 철도가 파괴되거나 공격받으면 주변의 중국인을 몰살시켜 보복했다고 악몽같은 50년전을 떠올렸다. 중국 유격대원이 생포되기라도 하면 총검술 연습의 표적으로 삼아 살해하기도 했단다고 치를 떨었다. 대부분의 병영들은 푯말하나 남지않고 촌락 등으로 바뀌는 등 사라졌지만 尹慶彬 회장과 金永錄 회원이 탈출했던 쉬저우시 통산로(銅山路)의 부대터는 지금도 ‘중국 인민해방군’ 주둔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부대안을 돌아본 尹慶彬 회장 등은 연병장앞의 3층 본부 건물,검은 벽돌과 돌로 지어진 단층 막사가 옛 그대로라며 회상에 젖었다. 높은 천정의 막사안에는 시멘트바닥에 철로 만든 2층 침대 10여개와 간단한 사물함이 눈에 띄었다. 張俊河 선생 등과 함께 尹회장 일행 4명이 44년 7월7일. 일본군의 이른바 ‘중국침략 기념일’로 경계가 느슨해 틈을 타 ‘취침전 15분의 자유시간’을 이용했다. 일본군을 벗어난 이들은 이틀밤을 앞만 보고 달리다 먼저 탈출해 중국 유격대에 와 있던 金俊燁(전 고대 총장)씨와 해후했다. “중국의 여러 유격대에 흩어져 있던 탈출자들은 린촨(臨泉)로 모였지요. 린촨에서 군사훈련을 받으며 광복의 꿈을 키워 대일항전의 장정(長征)을 시작했습니다” 노 독립군의 회고는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따라 어느새 50년전의 린촨에 닿고 있었다. ◎독립유공자협회/항일전 참가 175명이 결성… 현 회원 220명 한국독립유공자협회는 광복회와 함께 항일투쟁의 일선에 섰던 독립운동가들의 양대 산맥. 81년 독립운동가 175명에 의해 발족됐다. 초대회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趙擎韓 선생. 한국전력 사장을 지낸 朴英俊 회장에 이어 尹慶彬 회장이 3대 협회를 이끌고 있다. 회원은 220명. 광복회가 독립지사의 유가족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비해 항일투쟁을 벌였던 본인만이 가입할 수 있다. 회원 모두 건국훈장을 받았다. 일제말기 학병 등으로 중국전선에 끌려갔다가 탈출,광복군에 합류했던 독립운동의 마지막 세대가 협회의 주축. 金九 선생을 보좌,충칭(重慶) 임시정부서 일했던 마지막 생존자들이기도 하다. 대부분 70대후반에서 80대초반. 색이 바라가는 독립정신을 드높이기위한 연구,탐사 등 학술사업과 사회사업,독립운동 사적에 대한 복원운동을 벌여왔다.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80주년이 되는 내년 충칭시 광복군 총사령부건물 표지석 건립작업 등 후세에게 민족애국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중이다. ◎광복군/임정 정규군… 美와 對日 공동작전 활약 광복군이 정규군으로 발족한 것은 40년 9월. 무력으로 조국을 되찾겠다며 중국으로 온 젊은이와 일본군에 끌려왔다가 탈출한 학병이 주축이 됐다. 총사령관은 李靑天 장군이었고 참모장 李範奭 장군.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는 한편 지하활동 등 갖가지 군사활동을 감행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였다. 3개의 직할부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李範奭 장군이 지휘하는 2지대는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을 거점으로 일본군 전력을 교란시키는 활동에 주력했다. 최전방에서 일본군과 필사의 전투는 3지대의 몫. 안후이성 푸양에 본부를 두고 산둥성(山東省) 등 화북지역에서 지하공작 활동도 병행했다. 44년부터는 일본군에서 탈출한 학병들이 합류하면서 미국 첩보기구인 전략사무국(O.S.S)과 함께 일본군에 결정타를 가하기 위해 한반도침투 등 특수공작을 준비하기도 했다.해방직전 광복군은 700여명. 광복이 될 무렵에 중국에 거주하는 교포들로 30만여 군병력을 조직하는 계획에 착수하기도 했다. ◎임천사관학교/日軍 탈출한 한국인 광복군 간부 양성소 안후이성(安徽省) 린촨(臨泉)에 있던 ‘광복군 사관학교’. 더 정확히 말하면 44년 7월 린촨 중국 중앙군관학교 제10분교안에 설치됐던‘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일명 한광반(韓光班)’. 중국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군서 탈출한 한국인을 광복군 간부로 양성하던 곳이다. 44년 7월에 들어온 첫 입학생들은 48명. 33명은 대학졸업후 일본군으로 징병돼 중국전선까지 끌려왔다가 탈출한 학병. 15명은 조국광복을 꿈꾸며 중국으로 건너왔던 애국청년들. 5개월 과정을 마친뒤 白正甲 등 25명은 6,000리 길을 걸어서 쓰촨성(四川省)충칭(重慶)의 임시정부를 찾아가 광복군본류에 합류한다. 나머지 8명은 최전방 안후성에 남아 정보수집 등 대일투쟁을 벌인다. 25명중 尹慶彬은 임시정부 경위대장으로,鮮于鎭은 金九 선생비서로 白凡 선생을 최후까지 보좌하게 된다. 또 張俊河,金俊燁,金柔吉 등 일부는 한·미군사협력으로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으로 가 한반도진입을 위한 특수훈련을 받는다. 현재 한광반 첫 수료생 가운데 국내엔 11명이 생존해 있다.
  • 재외동포특례법 예상된 좌초/秋承鎬 기자·정치팀(오늘의 눈)

    해외교민에게도 국민에 준하는 각종 혜택을 주는 내용의 ‘재외동포특례법’이 입법예고까지 하고 좌초 위기에 몰렸다. 아직까지 확정 발표는 나오지 않았지만 관련부처인 법무부와 외교통상부의 기류는 사실상 ‘보류’쪽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최근 양 부처 장관 모두,연내 입법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자국내 소수민족의 민족의식 고양을 극도로 경계해온 중국이 처음부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해오다 끝내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한국이 이 법 제정을 강행할 경우 오는 11일로 다가온 金大中 대통령의 방중(訪中)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후문이다. 재외동포특례법의 ‘예상된 좌초’는 좋은 입법취지에도 불구하고 절차와 형식에 있어서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기 때문이다. 입법을 주도한 법무부가 주변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밀어붙였다. 지난 8월 25일 법무부가 언론에 법안을 발표하자마자 외교부는 “법무부가 대(對)언론 발표 하루 전에야 관련부처 국장협의를 열었고 외교적 마찰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한 귀로 흘려버렸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정책결정의 기본인 주무부처간 의견조율조차 무시한 ‘졸속행정’이었던 것이다. 두 부처간 대립상이 언론에 노출되고 우리 교포가 많은 중국과 러시아 정부에서도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자 한달만인 9월29일 법무부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우리 공관에서 발행하려던 ‘재외동포 등록증’ 대신 국내입국 동포에 한해 ‘거소신고증’을 내주는 것이 그 골자였다. “외교부의 설득으로 중국이 오해를 풀었고 이번 개정으로 외교마찰 소지를 없앴다”면서 “이제 외국정부가 문제를 제기하면 내정간섭”이라며 기세좋게 입법예고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후에도 중국은 “국적이 아닌 혈통중심으로 재외동포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은 문제”라며 외교경로를 통해 유감을 표시했다. 중국정부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안타깝게도 두달전 본지가 우려했던 상황(8월29일자 24면)이 현실화되고 있다. 모국이 자신들을 특별대우할 것이란 소식에 들떠하던 동포들. 이국하늘 아래서 전해들은 모국의 ‘식언(食言)’에 더욱 씁쓸해할 것이다.
  • 재임중 金正日과 회담 기대/金 대통령 뉴스위크誌 회견

    ◎옛 西獨의 통일정책 對北 정책에 참고 金大中 대통령은 2일 미국의 시사주간지‘뉴스위크(11월 9일자)’와의 회견을 통해 재임중 북한의 金正日 국방위원장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金대통령은 옛 서독의 대(對)동독정책을 대북(對北)정책의 참고로 삼고 있다면서 모든 분야에서 인내심을 갖고 상호교류를 촉진한다면 이같은 기대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북한 방문이 (궁극적으로)남북한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金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이 실현될 경우,모든 군사분쟁의 가능성을 억제하는 조건들과 쌍방에게 이익이 되는 경제교류 협력의 길을 우선 모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金대통령은 또 이달 중순 중국방문 기간동안 북한을 흡수통합할 의사가 없음을 중국정부에 설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南北 안중근 의사 유해 찾자(金三雄 칼럼)

    오는 10월26일은 安重根 의사가 하얼빈에서 국적 이토 히로부미를 처형한지 89주년이다. 흔히 ‘10·26’이라면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안기부장에게 암살된 날로 기억하지만 항일투쟁사에 길이 빛나는 안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날이다. 안의사는 의거 이듬해인 1910년 3월26일 일제 형법에 따라 불법적으로 중국 뤼순(旅順)감옥의 형장에서 형이 집행되었다. 이때 定根·恭根 두 아우를 통해 남긴 유언이 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안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것 이다. 우리는 안의사가 순국한 지 88주년, ‘국권이 회복’된 지 반세기가 지난 오늘까지 안의사의 유언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안의사는 당일 오전 10시15분 교수형으로 순국하여 5분 후 백포(白布)에 싸인 관은 성당에 안치되었다가 오후에 시 감옥 묘지에 매장되었다. 우리 항일 투쟁사에 으뜸가는 애국자 안의사는, 중국 袁世凱가 안의사 서거를 슬퍼하여 지은 “몸은 삼한 땅에 있었지만 이름은 만국에 빛났고/생은 백보가 못 되었지만 죽음은 천추에 남을 것이다”란 시 그대로 겨레의 스승이다. ○남북정부 유해발굴 나서야 남북한 정부는 ‘국권회복’ 5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의거일을 맞아 공동조사단을 구성하여 안의사 유해를 찾아야 한다. 안의사의 유해는 뤼순의 시 감옥 묘지에 묻혀 그후 돌보는 이 없다가 현장의 개발과정에서 유실된 것으로 알려진다.지난 8월 朴三中 스님과 조선족 동포 및 재일교포 몇 분이 안의사가 수감돼 있던 동(東)수감동 앞뜰에 추모비를 세우고 녹두장군 전봉준 생가에서 가져간 무궁화 10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뜻있는 분들의 추모사업도 필요하지만 안의사의 유해를 찾아 고국에 봉환하는 일이 중요하다. 여러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해방 반세기가 지난이때까지 안의사의 유해를 해외에 방치해온 것은 한민족 모두의 부끄러움이다. ○판문점 부근에 기념관을 지금이 안의사의 유해를 찾는 최적기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전후 처음으로 ‘통절한 사죄’를 함으로써 안의사를 죽인 죄업에도 사죄를 받게 되었으며, 안의사가 이루고자 했던 ‘동양평화’가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또한 새정권의 수립과 함께 민간차원의 남북교류가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남북관계에도 조금씩 화해의 서광이 보인다. 이럴때 남북에서 함께 ‘가장 존경받는 역사인물’로 꼽히는 안의사의 유해를 찾는 일을 양쪽 정부가 공동으로 추진한다면 화해와 통일을 위해 값진 계기가 될 것이다. 그동안 중국정부는 남북의 눈치를 보면서 안의사의 유해 확인에 비협조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해주 출신인 안의사의 유해에 대한 북한의 ‘연고권’ 주장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다행히 중국은 남북한과 국교를 갖게 되고 ‘동양평화’를 위해서도 안의사의 유해를 찾아 봉환하는데 협조할 터이다. 문제는 우리의 의지에 달렸다. 유해만확인되면 남북합의에 따라 판문점 부근에 기념관을 지어 모시고 통일의 상징으로 삼으면 어떨까. ‘연고권’ 문제는 안의사를 욕뵈는 일이다. 안의사의 유언을 실행하자. 정부는 즉각 북한에 제의해주었으면 한다. 정부 레벨이 안되면 민간차원이라도 나서자.
  • 中,내년 위안화 절하 가능성/換銀경제硏 보고서

    ◎수출 부진 따른 흑자 급감·엔화 하락이 원인/北京 당국 부인불구 세계금융불안 관련 주목 중국의 위안화 절하 부인에도 불구,내년 초 아니면 내년 말에 평가절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동남아국가들의 통화가치 하락에 따른 수출부진과 내수부진,양자강 홍수가 겹쳐 경제성장률 목표(8%)의 달성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시장에서는 이미 위안화의 평가절하를 위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외환은행 부설 환은경제연구소는 18일 ‘중국 위안화와 홍콩 달러화의 향후 전망’이란 보고서에서 “중국정부는 8%인 경제성장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수 부양책을 쓰고 있으나 수출둔화와 국내수요 부진으로 6.8%로 낮아질 것”이라면서 이같이 전망했다.러시아의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선언 이후 세계금융시장의 불안감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가운데 그 시기까지 제시하며 위안화의 평가절하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연구소는 “종전에도 중국은 위안화의 평가절하는 없다고 주장하다가도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 어김없이 평가절하를 단행했다”며 “올 상반기 226억달러의 흑자를 내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으나 하반기 이후에는 흑자 폭이 급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즉 과거의 절하추세로 미뤄볼 때 성장률이 크게 낮아지고 무역수지 흑자 역시 급감할 것으로 보이는 98년 말 이후에는 위안화 절하압력이 극에 달해 99년 초 아니면 99년 말에는 평가절하를 실시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이어 무역수지 외에 일본 엔화 추세도 위안화 절하 여부를 결정할 변수라고 전제,일본이 금융시스템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지 못하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돼 엔화 환율이 달러당 150∼160엔까지 오를 경우 위안화의 평가절하는 더욱 앞당겨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엔화 환율이 폭등하면 중국의 대일(對日)수출 감소와 동남아국가들의 통화가치 하락으로 중국의 수출경쟁력은 더욱 악화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82년 이후 다섯차례(85,86,89,90,94년)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했으며 그 시기는 무역수지가 적자를 낸 해나 그 다음 해였다.
  • 中 관광객 訪韓 러시/여행자유국 지정후 어제 124명 첫 내한

    ◎5박6일 일정… 이달중 600여명 찾을듯 중국정부가 지난 5월 한국을 여행자유화국가로 지정한 뒤 20일 처음으로 관광비자를 받은 중국 단체관광 여행객이 서울∼광저우(廣州) 아시아나 항공 직항노선을 통해 한국을 방문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 124명은 이날 하오 6시5분 중국 광저우(廣州)를 출발한 아시아나항공 3365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22일에는 136명,24일에는 48명의 단체관광객이 잇따라 입국할예정이어서 중국 단체관광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들은 1인당 약 90만원의 여행비를 들여 5박 6일간 서울,경주,제주 등 국내 명승지를 둘러본다. 서울에서는 이틀간 경복궁,88올림픽공원,롯데월드,전쟁기념관을 관광한다. 이어 관광버스로 경주로 이동,하루를 묵은 뒤 불국사,첨성대,천마총을 구경하고 부산에서 항공편으로 제주도로 떠난다. 제주도에서는 이틀 동안 성산일출봉 등을 둘러본 뒤 홍콩을 경유,중국으로 돌아간다. 한편 아시아나항공은 다음 달 1일 상하이∼제주 정기노선 취항에 앞서 오는 25일과 29일 중국 단체관광객 300여명을 제주도로 유치하기 위해 전세기를 투입,운항한다.
  • 러시아 모라토리엄­업종별 파장과 전망

    ◎전자 등 對러 수출 20∼30% 줄듯/선적 연기… 합작공장 설립도 재검토/현금결제로 직접적 타격은 적은편/러 숨은 달러 많아 구매 늘어날수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 선언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수출에 주름이 늘게 됐다. 당장 수출에 미칠 1차 충격보다도 동유럽 국가와 일본 중국 등 주요시장의 환율인상,국내 투자자금 회수 등 연쇄반응으로 이어지는 2차 충격이 우려되고 있다. 지난 상반기 우리나라의 대(對) 러시아 수출은 7억1,800만달러로 전체 676억3,000만달러의 1.06%에 불과하다. 대(對) 아세안 수출액의 10분의 1 규모다. 기계류(1억6,000만달러)와 컬러TV 등 전자제품(1억4,500만달러),농수산물(1억3,500만달러),섬유류(1억2,300만달러)가 주류를 이뤘다. 수입 역시 5억1,300만달러에 그쳤다. 교역규모가 적은 만큼 당장 수출입 차질에 따른 파장은 그리 크지 않다. 더욱이 러시아 수출은 선적을 전후로 대금을 미리 받는 현금결제나 TT(전신환송금)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당장 돈을 떼일 염려는 적다는 것이 수출업계의 설명이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수출에 대해서는 이미 돈을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우려할 상황은 아닌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의 수출이다. 산업자원부 洪元柱 구아협력과장은 “러시아 경제불안과 이에 따른 수출업체들의 기피심리로 지난 상반기 10.8%가 감소한 러시아 수출이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러시아 수출실적 1위를 차지한 전자업계는 이번 사태로 20∼30%정도 현지시장이 축소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적어도 30% 정도 수출시장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우즈베키스탄 생산공장 설립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LG전자도 현지의 TV 합작생산에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고 대책을 강구중이다. 시장 침체 뿐아니라 루블화 평가절하에 따른 가격경쟁력 약화도 악재로 떠올랐다. 대(對) 달러 환율 변동상한선이 9.5루블로 50% 오른데다 앞으로 더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분석이다. 수출대금 회수 차질,시장 축소,가격경쟁력 약화 등의 악재 속에서 국내 종합상사들은 러시아 수출 선적을연기하거나 아예 수출선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상반기 1억4,000만달러로 국내업체 가운데 가장 많은 수출을 기록한 (주)대우는 일단 모든 수출품목에 대해 선적을 1개월 연기했다. 현지 주요 바이어들의 자산 등 신용도를 전면 재평가하면서 수출 지속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실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18일 현지 무역관들의 정보를 취합, 분석한 끝에 각 수출업체에 당분간 선적을 미룰 것을 당부했다. 러시아의 1,700여 민간은행들의 연쇄부도 가능성이 높은 만큼 현지 수입상의 신용도를 정밀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비관적 전망과 달리 일각에선 오히려 대 러시아 수출을 늘릴 호기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민간부문에 숨겨진 달러화가 의외로 많기 때문에 이번 루블화 평가절하가 구매력 증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는 분석이다. (주)대우 관계자는 “현지 지사측의 분석에 따르면 중·상류층의 구매력이 높아져 컬러TV등 가전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라며 “현금결제 등을 통해 리스크를 철저히 예방한다면 어느 정도 수출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亞洲 경제 또 난기류/印尼도 ‘지불유예’ 가능성/마르크 지키려 엔 매각땐 위안화까지 도미노 우려/日,시장개입 시기 저울질 아시아 지역 경제가 또다시 난기류에 휩싸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의 금융조치가 다시 아시아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금융구조가 취약하고 국제통화기금(IMF) 지원이 제한된 인도네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일본 대장성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재무관은 18일 “모라토리엄 선언이 러시아에 가장 많은 채권을 가진 독일 마르크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달러화 강세를 유지하게 함으로써 투자가들이 ‘엔화를 팔자’쪽으로 돌아설 것”이라며 “엔화를 끌어올리기 위해 시장 개입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경제학자 첸 후안은 “아시아 금융위기와 양쯔강 대홍수,루블화 평가절하까지 겹쳐 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러시아 위기가아시아 통화 및 엔화 약세라는 새 국면을 유발,중국 위안(元)화에 거센 평가절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일본과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투자액이 적고 교역량도 미미해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찮다. 요사노 가오루(與謝野馨) 일본 통산상은 “무역수지로 보면 1대 4 비율로 수입쪽이 많고 신용공여액도 구미(歐美)보다 훨씬 적어 영향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정부의 한 관리는 “러시아와의 교역량은 비교적 소규모여서 중국이 받는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각국 표정/세계 증시 충격 벗고 오름세로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과 루블화 평가절하에 대해 미국 유럽 일본 등 관련 각국으로부터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주요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18일까지 ‘러시아 악재’의 효과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17일 러시아의 결정은 일회성 사건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사한 상황을 유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 겸 전망.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또 “국제통화기금(IMF)과 합의한 안정화 계획 등 신뢰회복 조치들을 신속하게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 ○…러시아 정부가 17일 모라토리엄을 발표했지만 시장에서는 대상범위를 놓고 해석이 분분. 추바이스 대통령 국제금융기구담당 특사는 이날 “이같은 조치는 단지 내부부채의 상환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발표,혼란을 야기. 이 주장대로라면 모라토리엄은 외국인 소유의 단기국채(GKO)등 일부에 국한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 ○…미국 신용평가 회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17일 러시아 장기 외화표시 채권의 신용등급을 지급불능가능 범주의 가장 낮은 단계인 ‘B-’에서 지급불능 범주인 ‘CCC’로 한단계 낮추었다고 발표. ○…일본 등 세계 주요시장은 러시아 정부의 조치로 인한 충격파를 발빠르게 벗어나는 모습. 일본 닛케이 평균 주가는 18일 단숨에 2%가 상승,1만5,000엔대를 회복했다. 필리핀 페소화는 2.7%가 올랐으며,인도네시아 루피아화도 2.5%가 회복됐다. 이에 앞서 미국 뉴욕 증시는 17일 개장초 급락했다가 급반등,1.8%가 올랐으며 영국이 0.22%,독일이 0.16% 올랐다.
  • 中 “大刀闊斧”식 공공개혁/鄭鍾錫 경제과학팀장(데스크 시각)

    중국정부가 근년 대대적인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내건 대원칙은 ‘정간정부(精簡政府 정예화·간소화한 정부)’의 구현이다.다시 말해 ‘작은 정부’의 중국적인 표현이다. 사회주의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3철(鐵)’타파운동이 벌어져 왔다.철밥통(鐵飯碗 평생직장 보장)과 큰솥밥(大鍋飯 평등분배),쇠의자(鐵椅子 신분보장)의 세가지 ‘철(鐵)문화’를 일컫는 말이다.한번 일자리를 얻으면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문화에 익숙해 온 중국인들에게 최근 주룽지(朱鎔基) 총리를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의 등장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 격이다.하루 아침에 철밥통이 날아가버린 까닭이다. ○공무원 47% 감축 추진 중국정부도 ‘샤강(下崗 대량실업)’에 따른 고용안정의 중대성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의 국가지도자들은 ‘대도활부(大刀闊斧 큰 칼이나 도끼를 휘두름)’라는 접근방법을 택했다.중요한 일일수록 과감하게 처리한다는 기본전략이다. 중국의 공공부문 개혁은 우리처럼 지금 한창 진행중이며,성패를 따지기에는 성급하다.다만 그들은 놀랍게도 지난 봄 1차로 국무원 산하 40개 부처를 29개 부처로 줄인데 이어,최근 국무원의 규모를 다시 47.5% 감축하는 내용의 2차 정부조직 축소안을 마련,시행한다는 소식이다.그들의 ‘대도활부’스타일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최근 정부가 공기업민영화 계획을 발표,포항제철이나 한국중공업 같은 거대 공기업이 곧 민간에 넘어갈 전망이다.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건전한 국가경쟁력을 착근시키는다는 방침아래 공공부문 전체에 걸쳐 유기적인 군살빼기가 이뤄지는 개혁이 아닌가 싶다. 우리 정부에서는 지난 2월 행정조직 개편으로 7,762명을 줄인 지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1만여명의 증원요청이 쇄도(본지 6월29일자 24면 행정뉴스보도)하고 있다고 한다.지난 정권 때도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합쳐 재정경제원을 만드는 등 소란을 떨었다가 실제 숫자는 줄이지도 못하고 공룡부처를 만들어,오히려 정책적인 행동반경만 스스로 좁혀놓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공직 집단 이기주의 기승 지금 시중에는 ‘BJR(배째라)’라는 말이 성행하고 있다.국제통화기금(IMF) 체제로 온 나라가 열병을 앓고 있는 데도 소수 기득권층과 상당수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이에 무관하게 집단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최근 일부 퇴출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보이는 퇴직금챙기기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은 바로 BJR식 집단 이기주의의 단면인 것이다. ○거침없는 개혁 배울때 중국은 그동안 한국의 경제발전을 모델로 해서 새로운 ‘21세기 초강대국’을 꿈꾸어온 나라다.그래서인지 한국과 중국은 요즘 비슷한 경제상황에 처해 있다.두 나라 똑같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경제개혁과 구조조정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 파생하는 대량실업 문제는 두나라 모두 사회적으로 심각하다.지금 중국은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맞은 한국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물론 한국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한국이 중국을 배워야 할 때가 됐다는 느낌이다.중국의 국가지도자들이 공공부문을 개혁하면서 어떤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저항세력들을 잠재우며,개혁을 지속하고 있는 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정간(精簡)’에 입각한 ‘대도활부식 접근방법’은 지금 우리에게도 매우 필요한 것 같다.
  • 조선족 漢醫 柳海峰씨 올해 노벨의학상 후보

    【베이징 연합】 가문의 비방으로 골절(骨折)치료 특효약을 개발한 젊은 조선족 한의사가 중국정부에 의해 올해 노벨 의학상 후보로 추천돼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인물은 베이징의 수도골상병(首都骨傷病)연구소와 하이난(海南)의 산화(三花)약업유한공사 등 5개 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베이징 산화(三花)그룹 柳海峰 회장(40). 金聖恩 전 국방장관이 그의 셋째 외삼촌이다. 중국 국무원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국제 노벨상심사위원회가 올해 의학상을 골절치료 분야에 크게 이바지한 의학자에게 수여한다는 소식에 접한 후 여러명의 대상자를 놓고 심의를 거쳐 柳 회장을 추천했다. 그는 가문의 비방으로 내려오던 골절 치료용 탕약 ‘천군산(穿君散)’을 현대 과학이론과 방법에 의해 산제(散劑·가루약)로 개량하고 약 이름도 ‘산화접골산(三花接骨散)’으로 바꾼 뒤 다양한 임상실험을 통해 그 탁월한 효능을 인정받았다.
  • ‘한지붕 두가족’ 불협화음/홍콩 반환 1년

    ‘동방의 진주’ 홍콩이 7월1일로 중국에 반환된 지 꼭 한돌이다.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홍콩 차이나의 1년’은 세계인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비록 법적으로는 ‘1국가 2체제’로 자유분방한 영국식 정치환경이 보장됐지만,역사적 주권 귀속이 주민들에겐 무겁게 다가왔을 것이다. 아직 ‘생부모’(중국)보다는 150년을 함께 생활해온 ‘양부모’(영국)쪽에 더 마음이 쏠린 그들이었다. 더욱이 때마침 밀어닥친 아시아권 경제위기에서 홍콩도 예외가 아니다.변혁의 물결로 소용돌이치는 홍콩의 오늘을 진단해 본다. ◎급속 中國化 부작용… 국제 비즈니스센터 위상 흔들/개혁세력 선거 승리… 시민 상당수 “英領시절 그립다” 홍콩이 50년 시한부인 특별행정구라는 지위로 중국에 귀속된 지 어언 1년. 사회주의 체제하의 12억 본토인과 시장경제하의 650여만 홍콩인들이 ‘한지붕 두가족’처럼 딴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1국 2체제’구도는 겉보기엔 순조롭게 뿌리를 내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질적인 체제의 접목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큰 몸살을 앓고 있다. 변화의 방향은‘탈(脫)영국 중국화’로 요약된다. 홍콩은 더 이상 동서양가치가 조화롭게 공존하던,과거의 ‘동양의 진주’가 아니다. 올들어 홍콩거주 영국인들의 ‘엑소더스’도 가속되고 있다. 반환 이전 3만1,400여명을 헤아리던 영국인들이 현재 2만7,000여명으로 줄었다. 중국 정부의 음양의 간섭으로 서구식 자유주의도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문제는 급속한 ‘중국화’과정에서 장점보다는 부작용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영국 통치의 강점이었던 ‘법의 지배’가 약화되는 대신 인치와 연고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영국령일 때보다 한층 무질서해진 교통질서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중국어 전용이나 서구적 질서의 실종은 그렇찮아도 위기국면인 홍콩경제의 주름을 깊게 하고 있다. 금융·무역 등 국제 비즈니스센터로서의 홍콩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있는 까닭이다. 다수 홍콩인들의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최근 홍콩대 사회과학원의 여론조사가 이를 입증한다. 주민 대다수가 영국 통치를 그리워하는 역설적인결과가 나온 탓이다. 이는 지난해 9월 주권반환 100일에 즈음한 홍콩정부의 여론조사 결과와는 극히 대조적이다. 당시엔 주민의 80%가 “‘홍콩 차이나‘가 더 안정되면서 번영할 것”으로 내다봤다. 요컨대 홍콩과 중국이 협연하고 하고 있는 ‘1국 2체제’교향악은 아직 미완성 상태로 불협화음을 빚어내고 있는 셈이다. 중국 귀속후 처음 실시됐던 지난달 입법회(의회)선거에서도 이 여론이 반영됐다. ‘홍콩발전민주연맹’ 등 친중국계는 불공정 시비 속에 간선제로 뽑는 의석을 독식,억지로 다수파가 됐다. 하지만 민주당 등 개혁세력이 직선제인 지역구 20석중 15석을 석권,사실상 승리를 거뒀다. 이 결과는 중국 귀속 이후 상황에 대한 홍콩인들의 강력한 불만표출로 받아 들여진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기묘한 동거체제가 벌써 삐걱거리고 있는 징후인 것이다. ◎홍콩은… 홍콩은 홍콩섬과 대륙의 구룡반도,그리고 부근의 240개의 조그마한 섬들로 되어 있다. 모두 합해 면적은 1,067㎢. 제주도가 1,845㎢이니 제주도의절반보다 조금 큰 편이다.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동서양간 경제교류의 징검다리로 보물과 같은 존재라 해서 흔히 ‘동방의 진주’로 불린다. 그러나 157년전만 하더라도 홍콩섬은 불모의 땅이었다. 고작 해적의 소굴에서 ‘동방의 진주’로 변신한 것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부터. 1841년 아편전쟁의 와중에 홍콩섬에 영국군이 처음 진주했고 이듬해에 아편전쟁이 끝나면서 영국에 할양된다. 18년후 2차 아편전쟁이 4년만에 매듭지어지며 구룡반도와 스톤 캐터스섬이 영국 영토가 된다. 그리고 1898년의 의화단 사건을 수습하면서 영국은 란타나오섬을 비롯한 200여개의 섬들을 또 넘겨받는 대신 할양기간을 99년으로 조정하는 조약을 맺었다. 60년대에서 80년대를 거치며 홍콩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면서 영국이나 중국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다. 실제로 중국정부는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게 했던 조약들이 평등하지 않다면서도 공식적으로 반환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79년 반환협상을 시작했고 84년 협상에서 역사적인 ‘97년 홍콩반환에 관한 공동성명’에 조인하면서 97년 7월1일 157년만에 본래의 중국 땅이 되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누가 이끄나/董建華·陳方安生 1국2체제 실험 주도/李柱銘 민주당수 “개혁세력의 희망봉”/통화전문가 任志剛 경제 조타수 역할 ▲둥젠화(董建華·61) 행정장관=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부터 가장 많은 스폿라이트를 받았던 인물. 지난 1년동안 톈안먼(天安門) 사태 추도행사를 보장하고 입법회의 선거를 실시하는 등 유화 정책을 많이 썼다. 홍콩의 초대 행정장관으로서 앞으로 4년간 ‘1국 2체제’실험을 주도해나갈 인물이다. ▲천팡안성(陳方安生·58) 행정총리=둥젠화 행정장관 아래 홍콩의 관료들을 이끄는 제2인자. ‘홍콩의 대처’로 불린다. 영국 통치시절 홍콩 번영의 반석이라 할 깨끗한 행정관료 조직을 중국 귀속 이후에도 별 흔들림없이 잘 지켜내고 있다는 평이다. ▲스투화(司徒華) 지련회 주석=홍콩 민주 운동 단체의 대부격인 ‘애국민주운동을 지원하는 홍콩시민들의 연합회’(약칭 지련회)주석. 톈안먼 사태 기념 촛불시위 등을 주도. 중국의 인권탄압상을 국내외에 알리며 홍콩시민의 민주화 교사역을 하고 있다. ▲리주밍(李柱銘·60) 민주당 당수=5월24일 홍콩이 중국이 반환된 후 처음 치러진 입법회 선거에서 화려하게 재기했다. 귀속 전 최대 정당인 민주당의 수장. 이번 입법회 선거에서 민주당 등 개혁세력이 지역구를 휩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민주주의 수호자’인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하는 길에 당연히 자신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해 미국측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조셉 얌(任志剛·50) 홍콩 재정사 금융관리국 총재=아시아 경제위기를 통해 급부상한 통화정책 전문가. 지난해 10월 미국 달러에 대한 홍콩달러 가치 하락 압력이 거세자 하룻밤 사이에 홍콩 이자율 280% 인상을 단행,환율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주역이다. 홍콩 경제 순항의 열쇠를 쥔 인물이다. ◎달라진 것들/北京語 배우기 열풍… 모르면 2류시민/“아편전쟁은 침략전쟁” 中 역사관 주입/영국紋章 사라지고 紫荊化도안 사용 홍콩 특별행정구의 거리에선 이제 그 흔하던 대영제국(大英帝國)의 왕관 로고를 찾아볼 수 없다. 엘리자베스 여왕 동상은 물론 우표에 찍힌 여왕 흉상도 사라져 버렸다. 대신 특별행정구를 상징하는 박태기나무꽃(紫荊花 자형화)도안이 행정특구 깃발에서부터 경찰제복에 이르기까지 뒤덮고 있다. 지난해만해도 어색하던 지하철과 공공장소에서의 보통화(普通話 베이징 표준어)의 사용도 자연스런 일이 됐다. 영국 통치 시대 홍콩에선 영어와 광둥어(廣東語)만을 사용해 보통어는 소통이 불가능한 외국어에 불과했다. 초등학교 등 각급 학교에선 보통화 교육이 필수가 됐다. 아직 완벽하지 못한 보통화를 배우려는 공무원과 직장인들로 학원은 계속 호황이다. 영국 치하에서 영어에 능숙하지 못하면 2류 시민이 됐던 것처럼 이제 매끄러운 보통화 실력없이는 설땅이 좁아지고 있다. 각급 학교의 교과서가 개정된 것은 물론이다. 중화민국은 타이완(臺灣)으로 격하됐고,역사는 영국의 식민지배적 관점에서 중국의 역사관으로 대체됐다. 예전 영국령 홍콩 시절 교과서에서는 아편전쟁이 자유무역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일어났다고 기록했지만 이제는 본래 모습대로 침략전쟁으로 제자리를 찾았다. 공휴일도 달라졌다. 6월 두번째 토요일부터 시작되던 ‘여왕 탄신 기념일’연휴는 지난해로 홍콩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대신 10월1일부터 3∼4일간 이어지는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수립일이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뒤덮는 불꽃놀이 속에 가장 성대한 축제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7월1일 이전까지 법원의 최종 판결은 영국의 추밀원에서 결정했으나 이제는 홍콩에도 최종심 법원이 설치돼 자체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거리의 외환 환전창구에선 인민폐(중국돈)를 바꿔주고 있고 인민폐를 홍콩돈처럼 받는 상점도 늘고 있다. 물론 ‘베이징 바람’이 점점 거세질 수록 ‘홍콩 차이니즈’들의 정치적 참여와 비판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홍콩의 중국화는 어쩔수 없는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경제/불황 주름살/1분기 마이너스성장 실업률 15년래 최악 중국 반환 1주년을 맞는 홍콩이 요즘 우울하다. 홍콩의 버팀목은 단연 경제. 꼭 영국과 결별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마침 닥친 아시아 경제위기에 휩쓸리며 어려움을 격고 있다. 90년대 들어 5%대의 경제 성장율을 유지해 왔으나 올들어 1·4분기에는 -2%를 기록했다. 경제가 침체되다 보니 실업률도 최악의 상황이다. 1.4분기 실업률은 4.1%. 최근 15년이래 가장 높은 것이다. 96년의 실업률은 2.8%,지난해 2.5%였다. 지난해 중국 귀속을 앞두고 불안심리가 팽배하면서 오르기만 했던 부동산 가격과 주식의 폭락은 사뭇 심각하다. 주가는 1년 전보다 절반 아래로 떨어졌고 부동산도 40∼50% 수준에 머물고 있다. 홍콩 경제가 자랑하는 고정 환율제마저 흔들리고 있다. 홍콩 달러가 실제가치보다 높게 평가되면서 수출 경쟁력이 탄력을 잃고 1년 내내 붐비던 관광객마저 발길이 뜸해졌다.중국에 편입되면서 11%나 줄었던 관광객이 올들어 24%나 더 감소했다. 재무장관격인 도널드 창(曾蔭權) 재정사(財政司)는 지난 17일 올 경제성장률 3.5%의 달성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몇년간경제 전망도 어둡다고 털어 놨다. 버팀목인 경제가 허약해지자 홍콩 사회가 흔들린다. 실제로 최근 홍콩대학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홍콩장래에 대한 불신도(不信度)도 지난해 9%에서 25%로 늘어났고 신뢰지수는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동북아와 동남아의 요충지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세계최고의 컨테이너 수송능력과 첵납콕 신공항 등으로 요약되는 아시아 금융·무역의 중심지 홍콩. 그러나 싱가포르와 상하이(上海)가 홍콩의 자리를 맹렬히 추격하는 상황에서 ‘동방의 진주’가 얼마나 더 ‘제 색깔’을 유지할지, 의구심이 커가고 있다.
  • 클린턴 中 인권개선 촉구/訪中 3일째

    ◎반체제인사 연행 소식에 당혹감 표시/미­대만 정책은 기존 관계법 기조 유지/오늘 북경서 정상회담… 양국현안 논의 【시안(西安) AP DPA 연합】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26일 첫 도착지인 시안(西安)의 방문을 마치고 이날 저녁 베이징(北京)에 도착했다. 클린턴은 27일 톈안먼(천안문)광장 환영식에 참석한 뒤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에 앞서 25일 시안에 도착해 가진 첫 연설에서 중국 지도층에게 시민들의 충분한 잠재력 개발을 위해 보다 많은 자유를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P.J.크롤리 백악관 안보담당 대변인은 클린턴 대통령이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정부의 간섭이 없는 정치적 대화가 보다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26일 중국정부가 반체제 인사들을 다시 연행했다는 보도와 관련,당혹감을 표시하면서 “사실이라면 중국이 전향적이거나 최선의 상태가 아닌 과거로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임스 새서 주중 대사는 클린턴의 지시에 따라 중국 정부에 공식 항의했다. 또 타이완(臺灣)정책과 관련,이번 정상회담에도 불구,미·중 공동성명과 타이완 관계법을 기조로 하는 기존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은 또 “강대국으로서 우리는 세계 미래에 대한 특별한 책임을 갖고 있다”면서 동서간의 긴밀한 관계는 21세기 평화와 안정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26일 중국의 주룽지(朱鎔基) 총리와 다이샹룽 중국 인민은행장을 만난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은 이들로부터 위안(元)화를 평가절하자지 않겠다는 ‘확실한’ 언질을 받았다고 말했다.
  • “美·中 정상회담 순탄치 않을 것”/양국 외교가 한 목소리

    ◎미­티베트 독립 등 인권문제로 공세 예상/중­“대만에 무기판매는 잘못” 반격할듯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이 25일 시작됐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클린턴 대통령의 이번 방문을 ‘금세기 가장 중요한 중국의 외교활동’이라고 공언한데서 짐작해 볼 수 있듯 클린턴 일행에 대한 중국의 환대는 극진했다.미국 방문단 역시 1,200여명의 매머드급으로 가히 ‘세기의 외교 이벤트’로서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의외로 결실은 빈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화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고 두 나라 외교가에서는 입을 모은다. 톈안먼(天安門)사태와 티베트 문제로 요약되는 중국의 인권 문제와 미국의 타이완(臺灣) 정책이 우선 클린턴의 나들이 길을 가로 막을 난제다.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한 입장은 매우 비타협적이다.이번 방문에서 클린턴과 반체제인사의 면담을 봉쇄키로 했다. 클린턴의 중국 방문을 취재하기 위해 입국하려던 라디오프레스 아시아(RFA)기자들의 입국 비자를 취소해 버렸다.티베트 문제와 톈안먼사태에 대해 중국 정부를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클린턴 대통령은 방문에 앞서 “중국정부에 항의를 할 것이며 이번 결정을 재고토록 요청할 것”이라고 말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중국의 당초 방침은 흔들림이 없다. 미국이 인권 문제에서 공세적이었다면 중국은 타이완 문제로 반격할 것이다.미국은 82년 중국과 맺은 협정에서 타이완에 무기판매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기로 다짐했지만 지금까지 첨단무기 판매를 계속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중국이 파키스탄이 최근 핵실험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는판단 아래 이란이나 미얀마 같은 나라에 미사일과 각종 무기 제작기술을 이전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다짐을 받아 내려할 것이다.
  • 美,中에 위성판매 재검토/첨단기능 군사 목적 사용 우려

    【워싱턴 AFP 연합】 백악관은 지난 96년 중국에 판매토록 승인받은 위성이 중국군에 첨단통신수단을 제공할지 모른다고 우려,6억5천만달러 규모의 이 위성 거래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지가 18일 보도했다. 타임스는 정부관리들의 말을 인용,국방부와 국무부가 이 고성능 첨단 위성이 중국정부의 통제를 받으면서 중국군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 회사에 판매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타임스는 소식통들을 인용,중국에 판매하기로 한 위성은 중국이나 혹은 이 지역의 다른 국가에서 이동전화교신을 도청할 수 있는 강력한 안테나를 갖추고 있으며 이는 중국군이 중국 변방에 메시지를 송신하는데 이용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 분단국가들 긴장·분쟁 다시 고조/칼 킨더만(地球村 칼럼)

    20세기 후반들어 분단됐던 국가들은 또다시 긴장과 분쟁의 지역으로 되어가고 있다.대부분 분단이 그랬듯 정치적 체제가 달라 비롯되고 있다.앞으로 통일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베트남과 예멘 두나라를 보면 한쪽이 무력으로 다른쪽의 정치체제를 붕괴시키면서 통일을 이루어냈다.독일은 선거혁명을 통해 동독을 서독과 같은 체제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하면서 통일이 완성되었다.반면 남한과 북한,중국과 대만,그리고 팔레스타인이나 키프로스 등은 문제를 풀지 못한 채 분단상태가 이어지고 있다.21세기에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다.분단상황의 전형격인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보자.49년 이래 변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80년대 이후 실질적인 변화가 많았다. ○체제대립 21세기 계속 양쪽의 대치는 1927년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출범한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사이의 마무리되지 않은 내전에서 비롯됐다.국민당 정부는 싸움에서 패했으나 망하지는 않았다.장제스(蔣介石)의 지도 아래 대만에 중국과 똑같은 의회를 구성하고 국가체제를 갖췄다.한국전의 발발로 미 제7함대가 대만에 상륙하고 미국이 외교,군사,경제적으로 지지하면서 자유중국이 됐다.닉슨 미 대통령은 핑퐁외교로 중국과 미국 사이에 화해무드를 조성했고 카터 대통령은 78년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정상화시켰다.미국은 중국의 요구대로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했지만 미 하원은 1년 후 대만이 중국의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대만을 방어해 주는 것을 인정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후 대만의 저항을 무력화시키려는 중국의 희망은 거의 완벽하게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대만의 장징궈(蔣經國) 총통은 죽기 직전 대만 국민들의 본토여행을 허용,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간접 경로를 통한 교역과 본토에 대한 투자도 허용됐다.지난해 양국간 교역은 244억달러에 달했다.대만은 중국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국가중 하나가 됐다. ○“하나의 중국” 전력투구 대만에도 최근 대만에서 태어난 인물들로 집권층이 교체되면서 정치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국민당은 스스로 일당 독재를 포기하고 다당제를 발전시켰다.중국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현안들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준(準)공식 기구도 여럿 만들었다.대만에서 두번째로 큰 정당 민진당(DPP)은 대만독립을 공개적으로 주창하고 나섰다. 반면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책 아래 몇 남지 않은 대만의 수교국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대만은 외교범위를 넓히는데 전력투구함으로써 이에 맞서고 있다.중국정부는 급기야 95년에는 대만과의 준공식적 관계조차 파기했다.96년 대만에서 처음으로 국민투표로 총통을 뽑을 때는 군사적 요충지 부근 해협에서 대대적이고 위협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그러나 중국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리덩후이(李登輝)가 총통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당시 미국은 대만 부근에 항공모함을 보냈고 중국의 군사훈련에 자극받아 일본과 군사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했다. ○쟁점 타결 어려울듯 요즘 몇달 사이 중국과 대만 사이에 대화 재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중국은 ‘하나의 중국’ 문제를 논의하고 싶어하고 대만은 실질적인 신뢰관계를 다지기 위한 대화를 원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의 일부라고 주장하지만 대만은 중국과 동등한 외교권을 갖길 희망하고 있다.일개 지방이 나머지 전체와 같은 위상을 가질 수 없다는 입장인 중국은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밀어붙이지만,대만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재통일의 전제조건으로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대만이 독립을 선포해 중국과의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대만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중국은 대만이 독립을 선포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해왔다. 중국과 대만이 올해 안에 대화를 재개하더라도 쟁점들에 대한 타협은 어려워 보인다.오히려 ‘분리주의’를 표방하는 민진당이 올해말 총선에서 승리하거나 2000년 총통선거에서 이긴다면 양국 관계는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마저 크다.
  • 엔低/美 ‘느긋’ 日 ‘초조’ 中 ‘자신’

    ◎미국/“국내경기 좋아 무역적자 문제없어”/亞 통화 평가절하로 환란 재연 우려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미국은 국내경제 보다는 아시아 및 세계경제에 미칠 파장이란 측면에서 일 엔화의 속락을 우려하고 있다.엔화 가치하락으로 무역적자 증대가 예상되지만,워낙 미 국내경기가 좋고 경제기반이 탄탄해 수출,무역적자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우존즈 주가지수가 폭락한 것도 무역 전망 때문이 아니라 엔화 속락세로 아시아에 투자한 미기업들의 수익이 좋지 않을 것이란 예상에서 비롯됐다.일반인들은 주식시장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엔화의 속락을 주시하고 있다. 한편 미 정부는 엔화 약세가 아시아 경제위기국들의 수출에 타격을 입히고 이들을 연쇄적 통화 평가절하로 내몰아 아시아 금융위기가 재연될 것을 가장 우려한다. 그러나 미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더라도 1주일에 수조달러에 달하는 외환시장 규모로 볼 때 효력은 미미하다는 게 미정부의 시각이다.이처럼 효과없는 임시방편식 시장개입 대신 일본의 세제개편,금융시장 구조조정,시장개방 등 근본대책이 우선이라고 미국은 주장한다. 엔화 속락을 미국내 주식시장에 다소 악영향을 주는 정도로 파악하는 한 아시아 경제위기 재발 우려라는 추상적 위기의식에 머물고있는 미정부로부터 실질적 개입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일본/외환시장,정부 시장개입여부 주목/“경제에 플러스요인” 회의론이 다수 【도쿄=姜錫珍 특파원】 끝없는 일본 엔화의 하락 행진 속에 도쿄외환시장은 일본 정부와 통화당국이 엔화 하락을 막기 위해 시장에 개입할 것인지 여부를 주목하고 있다. 개입설의 근거는 엔화 하락이 일본 경제에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엔화가 하락하면 일본 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국내외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간다.해외에 달러화 표시로 빌려준 은행 대출자금의 엔화 표시액이 늘어나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진다.대출기피 현상이 심해져 기업활동이 더 위축될 우려도 있다.전문가들은 1달러당 1엔이 떨어지면 일본 금융기관 전체가 BIS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1조엔의 대출을 줄여야 한다.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기본적으로 엔화 하락은 소비 부진에 허덕이는 일본 경제에 플러스 요인.엔화가 1달러당 10엔 떨어지면 경제성장률을 0.2% 올릴 수 있다.또 미국이 ‘강한 달러’를 원하기 때문에 개입하더라도 일본 단독개입이 되기 쉬워 충분한 효과를 얻기 어렵다. 그래서 일본의 개입설은 하락세를 늦춰 보겠다는 의도일 뿐인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미국의 금융버블이 올해말이나 내년쯤이면 꺼질 것으로 예상하면서 일본이 그때에 대비,경기부양 수단을 비축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역시 엔화하락을 반전시킬 만큼 일본 정부와 통화당국이 적극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중국/“경제기반 탄탄… 위안화 안정에 자신”/수출·외국인투자 급감추세가 문제 엔화의 140엔대 추락으로 경제위기 조짐은 곳곳에서 감지되지만,‘위안화의 평가절하는 불가(不可)하다’는 중국의 방침은 아직까지는 확고하다. 다이샹룽(戴相龍) 중국 인민은행장은 최근 “엔화의 약세행진이 중국의 대외무역 환경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그는 그러나 “중국경제의 기반이 탄탄해 위안화 환율을 현재의 수준에서 안정시키는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런민르파오(人民日報)도 13일 위안화의 안정성 여부는 경제상황에 달려 있지만 현재 ▲인플레율이 거의 0%에 가깝고 ▲7% 이상의 건실한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며 ▲외환보유고도 올초보다 10억달러나 늘어난 1,409억달러나 되고 ▲위안화가 외환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평가절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제금융계에는 중국정부가 올 연말이나 내년초 쯤 위안화의 평가절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도 많다.위안화의 상대적 고평가로 수출경쟁력이 급속히 떨어져 중국 경제성장의 쌍두마차격인 수출과 외국인 투자가 급감하는 추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중국의 수출액은 97년 5월보다 1.5% 적은 149억2,700만달러로 22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고,외국인 투자 규모도 지난해 5월보다 19%나 줄었다.
  • 중국도 ‘내집마련’ 걱정/국가 주택배분제도 50년만에 폐지

    ◎서민들 집값부담 늘어 생계난 우려 중국대륙이 술렁이고 있다.사회주의 국가에서 내집을 마련해야 되기 때문이다.중국은 49년 정권수립 이후 시행해온 주택배분제도를 오는 7월1일부터 폐지하기로 했다. 각자가 생활해 나갈 집을 자본주의 국가에서처럼 목돈을 주고 사든지 아니면 예전보다 10배 가까이나 많은 월세를 내라는 것이다.지금까지는 국유기업이나 각급 기관에서 집을 지어 거의 공짜에 가까운 임대료를 받고 빌려 주었다. 극소수 부유층이야 차제에 저택를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려 반가운 조치가 될 것이다.그러나 대다수 일반 서민들이 집값을 치를 목돈을 마련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비록 현 거주자들에게 우선 주택 매입권을 준다지만 값은 제대로 내야 한다. 따라서 가계지출의 3%선에 불과했던 주택비 부담이 20%에서 많게는 30%까지 늘어났다.때문에 집걱정 따위는 아예 없었던 다수 중국의 도시민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게다가 베이징(北京)을 비롯한 도시지역에서는 집값이 이미 올랐다.주택과 땅값의 오름세가 불을 보듯뻔하니 미리 사두는 게 유리함은 중국사회라고 예외가 아니다.중국이 주택분배제도 폐지를 결정한 것은 정부와 국유기업의 부담과 적자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한마디로 적자재정구조를 뜯어 고쳐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주택경기의 활성화도 부수적으로 노리는 효과다. 새 제도는 주민들간의 빈부격차를 더 심화시키면서 나아가 위화감을 조장할 것이다.국유주택의 판매가격은 일반 민간주택의 3분의 1수준이다.그만큼 서민적이라는 얘기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유주택이라도 살 수 있는 계층은 중상층 이상에 한정될 형편이다. 중국정부가 파생되는 부작용을 모를 리가 없다.그러나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하라는 대로만 하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먹여 주고 재워 준다는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한 고비를 맞고 있는 셈이다.
  • 한반도 평화와 韓·中,韓·러 관계 세미나 특강

    아태정책연구원(이사장 申熙錫)은 8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한·중,한·러시아 관계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개최했다.이 세미나에는 장팅옌(張庭延) 주한 중국 대사와 예브게니 아파나시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가 참석해 특별강연을 했다. ◎한·러 관계의 전망/한반도 통일 러 국익에 직결/아파나시예프 주한 러 대사 한반도 상황은 민족통일문제라는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대립상황이 러시아 국경 근처의 분쟁상황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욱 중요하다.따라서 남북한 문제의 해결에 러시아가 적극적 역할을 담당하고자 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차원을 넘어 러시아 국익과도 관련된다. ○남북 직접대화가 최선 러시아는 이같은 문제를 공개 원칙하에 다루고 있다.첫째 우리는 한반도 정전협정이 지속돼야 한다고 본다.둘째 러시아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셋째 한반도 문제의 논의형태가 남북한 당사자에 중국과 미국이 참여하는 ‘2+2’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이에 이의가 없으며나아가 이를 지지한다.동시에 우리는 일정한 단계에 가서 이러한 협상형태를 국제적 규모의 회담으로 확대시키는 것이 유용할 것이라고 믿는다. 러시아는 남북한 관계의 해결과 한반도 정상화를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남한과 북한간의 직접대화를 일관되게 지지해왔다.다른 국가들은 남북간 협정체결을 위한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거나,필요하다면 각국의 권한으로 협정체결을 보장함으로써 한반도문제 해결과정에 기여할 수 있다. 한국이 북한에 힘의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북한과 다양한 차원의 접촉과 경제협력을 시도하는 것이 모두에게 생산적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러시아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이익이 된다.무엇보다 러시아 국경 근처의 오랜 분쟁의 화약고가 제거되며 동북아 전체의 상황이 개선될 것이다.경제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한반도가 통일되면 러시아는 시베리아와 극동지역 개발을 위한 협력자를 얻게 될 것이다. 한편 53년 체결된 정전협정에 기초한 현재의 평화체제가 시대에 뒤떨어져 새로운 체제로 대체되어야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전협정 대체 신중히 그러나 정전협정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유일한 협정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협정체결은 신중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는 91년 이래 상당히 냉각됐다.이는 양국의 이데올로기적 공통분모가 사라진 것일 뿐 아니라 고위 정치회담이 실종된 결과다.러시아는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자 북한과 정치접촉의 수위를 높이고 경제 문화과학 등의 교류를 강화할 예정이다. ◎동북아의 평화와 한·중관계/남북 화해 동북아 안정에 긴요/張庭延 주한 중국 대사 한국과 중국,양국수교는 비록 늦었지만 6년도 안되는 기간에 급속한 발전을 이룩했으며,이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각국 국내정세의 안정과 경제의 발전은 지역평화와 안정의 중요한 요소이다. 지난해 하반기 동아시아 국가는 금융위기를 맞아 경제발전에 어려움을 겪었다.중국경제도 이에 압력을 받았지만 총체적으로는 안정발전의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위기의 확대를 막기 위해 중국정부는 책임있는 자세로 중국 인민폐 평가를 절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금 현재 ‘완화’로 가고 있는 동북아지역의 정세는 역내 국가 공동노력의 결실이며 완화로 나아가는 세계의 흐름과도 일치한다.물론 역내 불안요소도 없지 않으나 그 중에는 한반도정세의 변화가 주목된다.중국의 대한반도문제의 입장은 남북이 접촉과 대화를 통한 신뢰구축과 관계개선 그리고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실현할 것을 충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 긴장완화 조짐 역사의 원인으로 조성된 한반도 문제는 반세기에 걸친 남북 상호불신 등으로 화해하기까지 오랜 기간 진지한 대화와 협상이 필요하다.근본적으로 한반도의 주체는 남북이다.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담보가 있을 수 없다.금년들어 남북관계에 완화의 움직임이 나타나 상호왕래가 늘어나고 협력이 강화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4자회담 자체가 진전 중국은 4자회담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갖고 있고 협상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과 당사국 간의 관계개선을 바라고 있다.4자회담 1,2차 회의에 실질성과가 없었지만 정전후 44년만에 4자가 한자리에 모여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 자체가 진전이다.지금은 4자의 성의와 융통성,건설적 노력이 필요한 때다.중국은 정전협정의 서명국이고 4자회담의 당사국들과 공식관계를 갖고 있지만 결코 중재자가 아니며 어느 편을 들어주는 입장도 아니다. 한·중 양국은 지리적으로 인접하고,유사한 문화전통이 있으며 외래침략을 받은 경력도 있다.게다가 양국 경제 무역측면에서 보완성을 지녀 짧은 기간에 관계를 급속히 발전시킬 수 있었다.금융위기에 처해 있는 한국은 경제발전에 영향을 받고 있지만 우리는 이것이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한다.개혁과 구조조정을 하고 온국민이 같이 노력한다면 능히 이 난관을 극복할 것이라고 본다.
  • 白凡 재조명:2­2(정직한 역사 되찾기)

    ◎백범 사상/“민족만이 영원할 뿐”/열린 민족주의 바탕 인류의 평화 역설/문화의 힘 드높은 ‘아름다운 나라’ 소망 백범이 바라는 한국의 미래는 아름다운 문화국가였다.그는 자서전 ‘백범일지’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높은 문화의 힘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의 힘과 가치를 강조했다.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사랑의 문화평화의 문화로 우리와 인류전체를 잘 살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백범사상은 이러한 문화주의와 민족주의 자유주의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고 백범연구가들은 분석한다.그의 사상은 ‘백범일지’ 끝부분에 있는 ‘나의 소원’에 잘 나타나 있다.동학 유교 불교 기독교 등을 두루 포용했다.그의 종교·사상은 민족애로 수렴됐다.백범일지에서 “철학도 변하고 정치·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지만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민족만이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백범은 독립운동과 해방후 민족통일 노력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강조했다.독립운동 과정에서의 민족주의는 저항 민족주의였다.그러나 저항 민족주의는 식민통치라는 시대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서 나타난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민족과 민족관계,국가와 국가관계는 배타적이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그는 “민족주의의 최대 과업은 완전한 자주 독립국가 건설이다.피압박 국가의 독립이 궁극적으로 세계평화의 기본적인 전제다”라고 말했다.백범의 민족주의는 이 때문에 유럽의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와는 다르다.자유의 존중과 독재의 배격을 강력히 내세운 민주적 성격을 담고 있다.편협한 국수주의가 아니라 세계사적 보편성을 갖는 열린 민족주의다.백범의 민족주의를 종족관념 또는 저항 민족주의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백범 민족주의의 원류는 열린 민족주의다. 백범은 보편성을 갖는 민족주의와 함께 자유의 소중함을 강조했다.그는 백범일지에서 “나의 정치이념은 한마디로 자유다”라고 표현했다.백범이 말하는 자유는 ‘나라의 주인이 백성이라야 한다’는 주권재민 사상과 연계된다.“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을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에 달렸다.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온다”고 백범일지는 강조하고 있다.자유 아님의 대표적 예는 계급독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무서운 것은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독재로 보았다.소련식 공산당을 독재정치의 모든 특징을 갖고 있는 극단적인 독재정치로 인식하고 있었다.그는 독재를 막고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범의 민족주의·자유주의·문화주의는 각각 별개의 사상이 아니다.큰 틀속에 하나의 고리로 이어져 있다.백범 사상의 이상은 열린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모든 나라의 자주독립과 문화의 힘을 통한 인류의 평화라 할 수 있다.그 이상을 실현하는 열쇠는 자유의 보장이다. 세계는 그의 이상대로 문화의 힘이 중시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미래학자들은 21세기는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백범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中國 피난처·臨政청사 복원 金九 선생이 일본경찰의 추적을 피해 숨어있던 중국의 자싱(嘉興)은 우리에겐 잊혀진 도시였다.그가 일본의 눈을 피해 숨어 있었듯이 자싱은 우리의 망각 속에 묻혀 있었다.그러나 이제는 망각의 도시가 아니다.金九 선생이 숨어있던 집이 유적으로 복원되며 우리곁으로 돌아왔다. 백범은 1932년 李奉昌·尹奉吉 의사의 의거이후 일본경찰의 추적이 집요해지자 상하이(上海)에서 서남쪽으로 80㎞ 정도 떨어진 작은 도시 자싱으로 피해왔다.그는 자싱에서 추풍청(저보성)씨가 마련해준 집에서 은신했다.그곳은 추씨의 수양아들 별채였다.백범은 일본 정탐꾼이 자싱까지 오자 하이옌(海鹽)으로 피신했다. 중국정부는 96년 백범이 약 2년간 숨어있던 두 곳을 복원해 유적지로 지정·관리하기 시작했다.자싱에 있는 백범 유적지는 메이완 거리에 있다.2층 건물 현관 입구에는 ‘대한민국 김구 선생 항일시기 피난처’라고 한자로 쓴 녹색간판이 붙어 있다.백범이 당시 접견실로 썼던 1층 벽에는 백범과 그를 헌신적으로 도와준 추씨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2층에는 침대와 옷장 등이있다. 하이옌에 있는 피난처는 주쟈루이씨 집안의 별장이었다.주쟈루이씨는 백범을 하이옌으로 피신시킨 추씨의 장남 펑장(鳳章)의 부인이다.펑장씨는 자신의 부인을 백범의 부인으로 위장시켰다.대나무숲 속에 단장돼 있는 유적지에는 백범의 흉상과 함께 ‘김구 피난처’라는 한자 간판이 있다.전시실에는 백범과 임시정부 요인,추풍청,주쟈루이 등의 경력과 활약상을 담은 각종 사진과 자료가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돼 있다. 金九 선생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의 해외독립운동 구심점이었던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도 93년 복원됐다.청사는 26년부터 7년동안 사용했던 3층 연립주택이다.삼성물산 등의 지원으로 61년만에 복원된 청사는 1층 회의실·접견실·부엌,2층 국무령 집무실과 직원사무실,3층 요인숙소 및 전시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회의실과 집무실에는 당시 사용했던 책상·의자 등 집기와 비품이 갖춰져있다.3층 전시실엔는 尹奉吉 의사의 의거장면 등 독립운동관계 사료 1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임시정부는 32년 李奉昌·尹奉吉 의사의 의거후 일제의 탄압과 추적공세가 강화되자 상하이를 떠나 유랑하다 40년 충칭(重慶)에 정착했다.임시정부는 충칭에서 광복을 맞았다.임시정부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충칭의 청사도 95년 복원됐다.중국은 백범이 경계한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그의 독립운동과 민족사랑을 높이 평가,그의 발자취를 복원했다. ◎국민의 힘으로 기념관을/과거 집권층 왜곡­평가절하 탓/애국혼 깃들일 곳 없이 반세기/26일 종합계획 발표… 내년 기공 金九 선생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다.그러나 사후 반세기나 지났지만 그의 국내 발자취는 여전히 망각의 역사속에 묻혀 있다.1945년 중국에서 돌아온 후 머물렀던 경교장(京橋莊)은 병원의 일부로 사용되고 기념관도 아직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의 鮮于鎭 상무이사는 “기념관 건립과 발자취 복원이 제대로 안되는 것은 그의 위업을 왜곡하고 평가절하했던 집권층과 잘못된 사회풍토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념사업협회는 그러나 기념관 건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金泳三 전 대통령 집권때인 96년 8월14일에는 발기인대회도 열렸다.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金九 선생을 가장 존경한다는 金泳三 전 대통령이 기념관 건립을 위해 담당 비서관까지 지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기념사업협회는 金大中 대통령의 등장이후 기념관 건립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金대통령은 金九 선생에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어 기념관 건립이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鮮于이사는 말했다. 그러나 건립기금과 장소선정 등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鮮于이사는 “국민성금과 정부지원으로 기금을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그러나 IMF시대의 경제난 때문에 성금 모금운동이 어렵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그는 말했다. 장소도 문제다.金九 선생과 인연이 깊은 곳을 선정하고 싶으나 현실적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고 기념사업협회측은 말한다.기념사업협회는 金九 선생 서거 49주년인 6월26일에 전체적인 마스터플랜을 발표할 예정이며 서거 50주년인 내년에 기공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기념관은 총건평 1,200평의 지상 3층 건물로 구상되고 있다.1층은 유물 전시실,2층은 자료실·도서실·사무실,3층은 국제회의장·소회의실·영사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념관 건립은 金九 선생의 사상이나 업적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민족교육을 위해서도 하루 빨리 실현돼야 한다고 역사학자들은 지적한다.그들은 범국민운동을 펼치고 정부도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金九 선생의 애국혼이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팀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 클린턴 25일 訪中

    【클리블랜드 (미 오하이오주) AFP 연합】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6월25일부터 7월3일까지 중국을 공식 방문한다고 백악관이 3일 발표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시안(西安)과 베이징(北京),샹하이(上海),지린(吉林) 및 홍콩을 방문한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중국정부는 이미 지난달 27일 쿵런르빠오(工人日報)를 통해 클린턴 대통령의 방문을 보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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