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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량지원 북 주민이 알게하자/김주영 작가(서울광장)

    북한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다.그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익히 알고 있었다.몇년전 소설쓰기의 답사를 위해 두만강과 압록강 상류나 중류의 국경선 일대를 수차에 걸쳐 다녀본 적이 있었다.그 답사 경험에 의하면 북한은 95년과 96년의 치명적이었던 수해이전 92년이나 93년경부터 식량부족 사태가 심각했던 것으로 기억된다.중국의 집안과 북한의 만포가 마주보고 있는 압록강 한가운데는 조그만 섬이 하나있다.그 섬은 북한의 영토인데,배를 타고 그 섬을 관찰해 보았을때는 섬 전체가 옥수수밭이었다.그런데 수확기였던 그때 옥수수밭에는 수확할 옥수수가 보이지 않았다.식량부족을 겪고있던 그들은 옥수수대에서 옥수수 싹이 나오는대로 꺾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정작 수확기에는 수확할 옥수수가 없다는 것이었다.집안에 살고있는 중국인들의 말이었으니까 그건 확실하고 또 그런 정상이 94년 이전의 일이기도 하였다.그것은 북한이 식량부족사태를 맞게된 것이 2년에 걸친 수해의 타격뿐만 아니라,그들의 농업정책에 구조적 함정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여름이 되면 양쪽 강안에 많은 주민들이 나와서 목욕을 하거나 빨래를 하고있는 장면들을 목격하게 되는데,가까이 다가가서 보노라면 북한주민들의 헐벗은 모습이란 가슴이 찡할 정도다.그리고 담배 피는 사람조차 볼수 없다.중국인들이 탄 배가 다가가면 손짓으로 담배를 달라는 아이들의 요구를 흔히 보게된다.그리고 그것이 거절당했을때 보여주었던 아이들의 전투적인 행위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굶주린 모습 가슴 아파 이유야 어쨌든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에 우리들은 너나 할것없이 가슴아파하고 있고,그들의 굶주림을 덜게 만들 방법들을 찾고 있다.굶주린다는 일차적인 문제와 마주치게 되면 대개의 사람들은 비겁하게 된다.그런데 그것을 내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들의 모습이 또한 안쓰럽기 짝이 없다. 민간단체와 종교단체들이 모금운동을 벌여 그들에게 식량을 원조하자는 열기가 확산되고 있다.그러한 과정에서 남한의 곡식을 사서 보내자는 여론도 있고,혹은 연변의 옥수수를 사서 손쉬운 경로로 보내자는 주장도 있고,또는 종교인들이 직접 북한을 방문하여 그 곡식들이 북한 주민들에게 확실하게 전달되는가를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혹은 그들의 군량미를 푼다면 주민들의 아사사태를 막을 수도 있다는 진단결과도 있다.이러한 여러 갈래의 주장과 진단들이 저마다 어떤 설득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식량원조에 딜레마가 존재한다.그리고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북한 당국이 보여주는 여러 측면의 부정적인 요소들 때문에 발벗고 나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외면하고 있을 수도 없는 곤경에 처해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몇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 있다고 생각된다.첫번째 일로는 남한의 곡식을 구입하여 선박편으로 실어보내든 연변의 옥수수를 대량 구입하여 보내든 그 방법에 구애받지는 않더라도 그 곡식을 받아야할 북한 주민들이 그것이 남한의 주민들이 보낸 곡식이라는 것을 알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생색을 내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주장에는 생색 이상의 무엇이 있다.그러나 북한 당국은 그것을 막아오고 있다. ○원조창구 단일화해야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것을 제지하고 있다.그런데 북한 당국의 그런 단호한 태도에는 자신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선 국민들은 굶어죽어도 좋다는 배타적인 논리에서 나온 살의가 숨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북한은 이 시점까지 배급이라는 식량운영제도를 가지고 그들의 국민들을 통솔하고 다스려왔다.그렇기 때문에 구호식량 문제,특히 남한에서 왔다는 식량을 국민들이 알았을때 보여줄 불신과 괴리감을 북한 당국은 두려워하는 것이다.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대로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우리들이 갖고 있는 순수성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식량을 원조하려는 사회단체 혹은 종교단체들이 중구난방식의 주장이 난무해서는 우리들에게 정서적 혼란을 야기시킬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통일된 주장의 유지가 필요하다.
  • 중 동구개혁 모델 삼아야/왕산(해외논단)

    ◎정치 민주화 이룬후 경제성장 힘써야 중국이 추구하고 있는 실용주의적인 개혁의 미래에 대해 여러 가지 가정과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제3의 눈으로 중국을 바라보자」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북경 「문화개발사」의 왕 산 기획국장은 최근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은 정치,사회적 민주화의 길을 통해 개혁을 성공으로 이끈 동구권의 성공사례로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다음은 그의 기고문 「등소평 이후의 중국이 동유럽의 개혁에서 배울 점」의 요지이다. 등소평은 개혁·개방정책을 통해 중국에 고도의 경제성장이라는 과실을 갖게 했지만 많은 사회적 문제점도 남겼다.특히 등소평은 싱가포르 등 권위주의적 정치제도의 다른 동아시아국가들의 경제성장의 길을 따르는 것이 고도성장을 담보해줄 것으로 믿었다.그러나 이들 국가들의 경험이 중국의 상황과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예컨대 이들 국가들처럼 중국도 높은 저축률을 보이고 있다.저축고가 4조위안(한화·약 4백조원)에 이른다.물론 높은 저축률은 자본집중에는매우 유리한 조건이 되지만 중국의 경우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할 가능성도 높다.중국은 다른 아시아국가들보다 거대한 부실 국영기업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중국 국영기업들은 7조위안(약 7백조원)의 자본을 축적하고 있으나,반면 5조위안(5백조원)의 빚도 지고 있다.거대 국영기업들이 중국인민들의 저축을 거의 대부분을 써버리고 있는 것이다.중국은 특히 사회안정을 유지해주는 중간계층이 없다.대신 해고된 노동자들과 땅을 갖지 못한 농민들이 꾸준히 늘어나며 수억명의 불만에찬 노동자 계층을 만들어낸 것이다.중국으로서는 큰 재앙임에 틀림없다. 합리적인 사회·정치환경을 성공리에 이룩한 동유럽국가들이 경제개혁면에서 중국을 앞선다고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물론 동유럽국가들은 개혁과정에서 중국보다 더많은 대가를 치렀다.중국이 보다 발전하려면 싱가포르 모델보다 동유럽모델에서 배울점이 많다고 생각한다.중국은 민주화 및 정치개혁을 연기하면서 지속적인 경제성장 드라이브정책을 추구해왔다.중국도 정치개혁의 가속화에최우선 순위를 둬야만 경제개혁을 심화시키고 개방적인 사회환경을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여기에는 국영기업의 개혁문제도 포함된다. 90년대 강택민 시대에서도 국영기업의 개혁 필요성은 분명히 있었다.지난 19년동안 중국개혁이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라 대부분 정치문제로 이뤄져 왔기 때문에 별다른 진보가 없었다.실업 및 도시 노동자들의 경제적 어려움의 광범위한 확산은 정치적 안전을 위협하는 수준의 사회적 소란과 위기를 낳고 있다.따라서 사회안정을 위해서는 국영기업의 비효율성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현재 동유럽국가들은 국가부문 개혁을 완전히 수행한데다 이에 따른 사회적 고통도 이미 극복했다.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인한 부작용도 거의 없다.반면 중국은 아직도 많은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정치개혁은 예상치 못할 혜택을 가져다 줄수 있다.경제개혁은 이미 중국사회에서 계층간 격차를 더욱 뚜렷하게 했다.중국인들은 지금의 사회 및 정치제도의 아래에서 그들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발표할 채널을갖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방법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정부직위의 남용 현상도 범죄 및 도덕성의 상실을 초래하며 특히 경제개발이 가져오는 혜택을 관리들이 착복하는 경우도 증가해 심각한 사회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 동유럽국가들은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조화를 이루는 복수주의의 정치제도를 이루었다.이런 정치제도는 다양한 사회그룹들에게 정치적 견해를 표현할 기회를 제공한다.이런 다원화를 통해 경제개혁 시행과정에서 파생되는 여러 부작용들이 마찰없이 해소될 수 있게 해준다.이 덕분에 동유럽국가들의 사회 및 정치환경은 중국보다도 더욱 더 개방적이며 사회 안정성도 더욱 높다.중국 지식인들 다수가 동유럽국가들의 개혁방식이 결과적으로 사회개혁에 유리하다고 믿는지는 알수없다.하지만 중국의 지도자들이 등소평이 남긴 유산으로부터 벗어나기는 분명 쉬운 일이 아니고 매우 많은 용기와 카리스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중국사회에서는 현재 정치 및 철저한 경제개혁의 필요성이 이미 강도높게 제기되고 있다.개혁이 지속되지 않고는 「포스트 등소평시대」에서 중국사회의 안정은 기대하기 힘들다.〈중국 북경 문화개발사 기획국장/정리=김규환 기자〉
  • 아시아의 대조류/미 존 나이스비트(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아주가 2000년대 세계 지배한다”/저명 미래학자의 30년 탐구 결실판/한·일·중 등 12국 분석/8가지 큰 흠름 예정/탈서구 경제를 구축/세계 중심역 되찾아 「아시아의 대조류」는 2000년대 국제사회에서 아시아의 위상을 예측한 책으로 『우리의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는 아시아의 8가지 대조류』라는 부제에 나타난 바와 같이 세계 중심축의 아시아로의 이전양상을 다양한 논거를 제시하며 설명해 나가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는 미래학 분야의 베스트셀러 저자로 유명하며 30년간에 걸친 자신의 다양한 아시아와의 접촉을 바탕으로 세계문명의 발상지였던 아시아가 과거의 중심적 위치를 되찾는 「아시아판 르네쌍스」를 진행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90년대부터 시작된 이같은 아시아 시대로의 진입은 2000년대 들어 아시아를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세계의 지배지역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옛 아시아는 문화,언어,정치적 이데올로기,종교철학,지리적 차이 등으로 분열돼 있었지만 새 아시아는 경제통합,기술,특히 전자통신,주민들의 역동성 등으로 용해되어 하나의 응집된 「지역화」현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60년대 들어 유럽의 젊은이들이 영국인 독일인 프랑스인이라는 말 대신에 「유럽인」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듯이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점차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아시아인」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책에서는 이같은 아시아의 변혁을 개개국가별로 소개한 것이 아니고 각 주제별로 아시아의 단면에 대한 기술과 예측을 시도하고 있다.또한 파키스탄 동부에서 러시아 남부,태평양으로 둘러싸인 30여개국을 아시아로 지역구분 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한국을 포함해서 중국 홍콩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지아 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타일란드 베트남 등 12개국을 주분석대상으로 삼고 있다. 90년대 이전까지는 모든 세계질서가 서구가 세워놓은 룰(규칙)에 의해 움직였으며 일본의 경제부흥 역시 그 룰 안에서 이뤄진 것이었다.그러나 이제 아시아인들은 스스로의 룰을 창조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금년 7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뒤 99년말 마카오의 반환으로 서구의 아시아지배는 막을 내리며 400년만에 최초로 아시아땅이 아시아인들에 의해 지배받는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시아 우위의 논리 전개에 앞서 크게 두가지 전제를 내세우고 있다.첫째는 이제 동양이 서양을 필요로하는 것보다 서양이 동양을 더 필요로 한다는 사실과 두번째는 아시아의 현대화는 아시아의 서구화로 생각되어져서는 안되며 아시아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저자가 8개 장으로 분류해 설명하고 있는 아시아의 여덟가지 대조류는 다음과 같다. 첫째,민족국가에서 네트워크로=일본의 경제지배는 정점에 도달해 있으며 아시아및 세계에서의 상대적 지위는 장기적으로 하강국면에 있다.민족국가로서의 일본의 힘은 중국 네트워크의 역동적인 협력구조 앞에 쇠퇴하고 있다.중국과 해외중국인들과의 움직임은 중국이 전체 태평양지역의 중심국으로 아시아의 의사결정을 주도할 것이라는 예측을 낳고 있다. 둘째,전통에서 선택으로=주어진 운명은 다양성과 새로운 개인주의로 대체되고 있다.경제력 경쟁에서 서구는 동양이 아직 채택하지 않고 있는 엄청난 복지 부담때문에 휘청거리고 있다.그러나 아시아인들에게는 모든 생활에 있어 새로운 선택이 열려 있다. 셋째,수출주도에서 소비주도로=수출로 이룩된 아시아 경제는 새로이 부상하는 중산층들의 소비에 의해 더욱 성장되고 있다.2000년까지 아시아는 중산층으로 인정될 수 있는 인구가 5억에 달하게 된다. 넷째,정부통제에서 시장주도로=중앙정부의 통제와 지역경제의 일정한 지향은 폭발적 경제성장과 기회제공으로 표현되는 시장경제로 대체되고 있다.이같은 변화는 아시아 국가들간의 전에 없던 경제협력과 협동으로 가능케 된다. 다섯째,농촌에서 대도시로=농촌지역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아시아의 사회적 변혁은 아시아를 농업사회에서 다음 세기의 발전된 사회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여섯째,노동집약에서 하이테크로=우리는 노동집약적인 농업과 공업으로부터 첨단과학기술화된 공업과 서비스로의 극적인 변혁을 지켜보고 있다. 일곱째,남성지배에서 여성출현으로=여성기업의 증가에서 명백히 보여주듯 아시아 전역에서 남성지배로부터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중국에서는 여성기업이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여성의 정치참여,구매력 신장 등이 두드러지고 있다. 여덟째,서쪽에서 동쪽으로=과거에는 세계는 곧 서구세계를 뜻했다.그러나 오늘날 세계는 동양의 융기라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지구에 영향을 끼치는 중심축이 서에서 동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원제는 「Megatrends Asia」,시몬&슈스터(Simon & Schuster)사 발행,298쪽,12달러.
  • 중국인 탈홍콩 미 불법이민 “러시”/뇌물주고 비자발급 받아 출국

    ◎관영방송 “밀입국자 수년간 수백명 추정” 【홍콩 AFP 연합】 수백명의 중국인들이 지난 수년간 홍콩 주재 미국 연방이민국(INS) 관리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미국 입국 비자를 불법 발급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홍콩의 관영 라디오 방송이 6일 보도했다. 홍콩 라디오 방송의 이같은 보도는 미국 연방이민국 홍콩지부 고위 관계자가 비자부정 발급 등 불법 밀입국을 주선한 혐의로 체포된 지 하루 만에 나온 것이다. 라디오 방송은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홍콩의 부패 사정당국은 미국 비자 발급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당수의 중국인들이 「특별한 배려」를 받기 위해 미국 연방이민국관리들에게 뇌물을 제공했으며 이같은 뇌물 관행이 지난 수년간 계속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홍콩 당국은 5일 제임스 디베이츠 미국 연방이민국 홍콩지부 지부장 대행 부부를 체포해 심문을 벌였으며 미국 법무부와 공동으로 연방이민국 홍콩지부의 부패 및 직권 남용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디베이츠는 적어도 9개월동안 이민자 불법 밀입국에관여해 상당한 금액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외교관 면책특권이 적용돼 홍콩 당국의 조사 직후 석방됐었다.
  • 석유도시 대경의 조선족(송화강 5천리:23)

    ◎중 최대 유전도시개발 대역사 참여/인구 87만중 5천여명… 유화업종에 종사/석유관리국 최기남 총공정사 “돌출한 과학자”로 두각/민족교육에는 뒷전… 자체 유치원시설 한곳없어/한어교육에 집착… 중국인 한국어교습 열풍과 대조 조선족과 모국어 하얼빈 서북쪽 160㎞ 밖에는 대경이라는 석유도시가 있다.하얼빈과 만주리간 공로를 고물 버스로 4시간을 옹골지게 달려 대경시에 도착했다.이른바 흑하지구에 해당하는 대경일대는 농사도 잘되었지만,대부분이 버려진채 묵어나는 황무지격의 무인지대였다.그런데 1957년 유전이 발견되면서 석유화학공업지대로 탈바꿈했다.공산당이 국가를 세운지 10주년이 되는 해에 유전이 발견되어 크게 경사스럽다는 뜻에서 대경이라는 지명을 붙였다는 것이다. ○표본 공업지대로 명성 대경의 첫 인상은 도시라기 보다는 드넓은 평원에 마을들이 띄엄띄엄 들어앉은 거대한 군락처럼 보였다.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무인지대가 수십리씩 이어졌다.무인지대에는 석유를 탐사하는 시추기가 여기저기서 돌아갔다.과연 중국 최대의유전지대라는 생각이 들었다.대경의 유전면적은 2천334㎢에 이르고 있다.중국전체 석유매장량이 47%를 차지하고 대경유전은 중국의 표본공업지대이기도 했다.모택동은 생존시 틈만 있으면 「공업은 대경을 따라 배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고 한다.그래서 대경은 중국인들 귀에 못이 박힌 석유화학공업지대인 것이다. 대경의 첫 석유는 정확히 1959년9월26일 하오 송기3호 시추기가 박힌 탐사정에서 분출되었다.석유가 본격 생산되면서 근로자와 그 가족을 위한 마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이 무렵 중국정부는 석유개발과 함께 개간농업을 추진하기 위해 근로자 가족들을 끌어들였다.그래서 대경은 1979년 시로 승격한 이후에도 농공결합도시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석유 말고도 옥수수·밀·조·수수·콩·농사 등 대경의 농업이 유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날 대경시 인구는 87만9천명으로 집계하고 있다.이 가운데 조선족은 5천35명으로,모두가 유전과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다.유전개발 당시 와서 뿌리를 박았거나,그 이후 학교는 졸업하고 직장을 따라 온 간부·기술자·근로자와 그 가족들로 구성되었다.조선족 대표인물로는 대경석유관리국 시추제1공사 최기남 총공정사(56)를 꼽는다.1963년 북경석유학원을 졸업하고 기술원으로 대경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후 30여년간 석유공업 발전에 뚜렷한 공을 세웠다.그는 「돌출한 과학전문가」와 유전의 「10대 우수종업원」이라는 영예를 얻은 탁월한 인물이었다. 대경시는 조선족들이 석유공업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했다.그러나 민족을 위한 사업에 발벗고 나선 사람들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5천명이나 되는 조선족들은 자기네 문화관 같은 시설 하나를 챙기지 못했다.교육도 예외는 아니었다.소학교 307군데,중학교 92군데,대학 및 전문학교 27군데가 모두 한족학교다.대경에서 유일하게 한글로 창작을 하는 작가 이주천씨(34)의 말을 들어보면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직장이 같지 않으면 한 자리에 모일 수가 없습네다.조선족이 많기는 하지만,동서남북으로 멀리 흩어져 살기 때문이디요.교육도 기래요.조선족 학교를 세운다고 해도 기숙제를하지 않고는 학교를 보낼수가 없다 이 말입네다.그래서리 대경의 조선족들은 자식을 유치원에서부터 한족교육을 그대로 받고 있디요』 ○영·일어 이어 한국어 인기 조선족 모두가 잡거구에 사는 터여서,아이들이 조선족유치원에 들어가지 않고는 모국어를 알 턱이 없다.어린시절을 한족유치원에서 보내고 조선족소학교를 가도 중국에서 조선어라 호칭하는 한국어가 외국어처럼 되기는 매한가지다.그렇다고 조선족 어른들이 신경을 쓰는 것도 아니다.왜냐하면 중국에 살자면 어차피 중국어에 능통해야 된다는 선입견으로 해서 아이들의 한족학교 입학을 별로 아쉬워하지 않았다.서글픈 감회가 들었다. 조선족학계에서도 한국어보다 한어를 우선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중국에 자리를 잡은만큼 한어가 국어고 한국어는 모국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한국어를 영어나 일어 정도로 보아야한다는 한어 주창론자들은 조선족들의 못리판인 연길에서도 한어를 모르면 문밖을 나설수 없지 않는가라는 반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견해에 날카롭게맞서는 이들도 있다.말은 민족의 마음이고,글은 민족의 얼굴이어서 모국어를 멀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따라서 한국어가 만약 일어나 영어와 같은 외국어 위치에 놓인다면 민족은 자기의 모습을 잃어버린 꼴이 된다는 것이다.그러면서 모국어 옹호론자들은 한국어가 세계에서 17번째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상기시켰다. 한국의 중국 투자가 늘어나면서 한족들의 한국어 학습열기가 대단히 높아지고 있다.모국어 옹호론자들 입장에서 보면 뿌듯할 수 밖에 없다.그래서 언어의 표준화 및 규범화,우리말과 우리글의 보급이 시급하다는 옹호론자의 주장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이는 소수민족의 자기언어 우선은 물론 소수민족지구 한족간부들도 해당 소수민족 언어를 배우도록 부추기는 중국 정부 소수민족정책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족간부들 가운데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많다. 한국어는 지금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외국어로 자리잡았다.길림성 교하시 조선족소학교 교원 허순옥씨는 산동성 위해시 직업학교 교장으로부터편지 한 통을 받았다.내용은 한국의 외국어학원과 비슷한 한국말학습반이 호황을 누리고 있으니 위해로 와서 한국말을 가르쳐 줄 뜻이 없느냐는 것이었다.말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은 많은데,교사가 부족한 현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리고 중국 전역에서 「제2외국어로 통하는 한국말을 배우고 싶은데,교과서를 구할 수 없느냐?」는 편지가 수없이 날아든다고 했다. ○대학서도 관련학과 설치 붐 지난 1995년 하얼빈에서는 처음으로 조선족유치원이 문을 열었다.정원이 110명이었는데,50명을 초과할만큼 인기가 높았다.이는 1991년5월 하얼빈시 조선족 기초교육건설 모금위원회가 하얼빈시에 여러 차례 건의하여 이루어진 사업이다.지난 해에는 정부 허가를 받은 하얼빈중급한국어학교가 설립되어 150명의 신입생을 받아들였다.그리고 흑룡강성 외국문서점에서는 「한국어백일통」「한한대조 365」「현대한국어회화」를 내놓았다.이탈리아어와 러시아어를 단숨에 제치고 영어와 일본어에 이어 3위에 오르면서 판매량이 높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한국어 바람은 중국내 유명대학에까지 불어 한국어학과 설치가 늘어나고 있다.그 때문에 연변대 조선어학과 출신들을 앞다투어 모셔가는 일이 벌어졌다.조선족들의 한국어 외면과 달리 한족들에게 오히려 한국어 열풍이 일고 있는 것이다.
  • 「기름개구리 잡이」 부업 인기

    ◎함경북도 주민 보신용으로 중국인에 팔아/1마리당 북한돈으로 50∼60원이나 호가 함경북도 주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부업은 기름개구리 잡이다.이 지역의 기름개구리를 보신식품으로 여기는 중국인들이 많이 찾아 돈벌이가 잘되기 때문이다.이 기름개구리 잡이에는 보통 3∼4명이 함께 나서는데 하루 평균 포획량은 1인당 50마리 정도.건조된 기름개구리의 거래가격은 1마리당 북한돈으로 50∼60원이며 기름 1㎏은 1만∼1만5천원을 호가한다.이처럼 가격이 비싼 이유는 북한당국이 기름개구리를 「국가 통제품」으로 지정,개구리 잡는 행위를 불법으로 단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북한주민들의 부업은 지방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지방과 도시는 확연히 구별이 된다.도시여성의 경우 재봉 편물 신발때우기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비해 농촌여성들은 송이버섯 고사리 더덕 두릅 등 산나물 채취를,어촌여성들은 해삼 멍게 조개 미역 등 해산물 채취를 주된 부업으로 갖고 있다. 부업으로 얻는 수입은 한달 평균 1백50원.일반 직장 노동자 월평균 임금 80원의 두배 가까운 액수다.
  • 금세기 마지막 부분일식 관측 이모저모

    ◎“정말 달이 해 삼키네” 전국서 탄성/9시50분경 태양 76%가 가려져 절정/일부지역 구름많아 안보이자 “발동동” ○…우리나라에서 관측할 수 있는 20세기 마지막 일식현상이 진행된 9일 상오 대전 대덕연구단지내 천문대에는 이른 아침부터 방송·신문사 취재팀이 몰려와 촬영 및 취재 준비로 분주. 이날 천문대에는 상오 6시40분쯤부터 KBS와 YTN등 방송사 중계팀이 찾아와 일식현상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촬영준비를 마쳤으나 일식이 시작된 8시48분 이후에도 낮게 깔린 구름이 걷히지 않자 발을 동동 구르는 등 안타까워 하는 모습. 일식이 시작된 지 35분만인 9시23분 엷은 구름사이로 우측상단이 4분의1쯤 가려진 태양이 나타나자 천문대에 모인 40여명의 방송팀과 일반인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 ○…이날 부분일식은 전국적으로 상오 9시50분을 전후해 태양의 76%가 까맣게 가려지면서 절정에 도달.마침 휴일을 맞아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가족들은 옥상으로 몰려가 『태양이 하현달처럼 변했다』며 탄성.또 남산에는 부모와 함께 나온 어린이들이 시력보호용 검은 아크릴판을 이용해 일식을 관측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되기도. ○…이날 전국적으로 맑을 것으로 예상됐던 날씨가 일부지방에서 갑자기 구름이 많이 낀 흐린 날씨로 변하자 지역에 따라 일식을 보려는 사람들의 희비가 교차. 이날 서울과 영남·영동지방은 아침부터 맑은 날씨가 계속돼 처음부터 일식이 진행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나 대전과 청주·군산 등 충청권 서해안지역은 짙은 구름으로 가끔씩 엷어진 구름사이로 해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몽골·중국북부 등선 개긱일식/헤일­밥 혜성 동시 출현 “황홀한 우주쇼” ○…이날 몽골과 중국 북부,러시아의 시베리아지역 등에서는 태양이 달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일식 현상과 함께 헤일­봅혜성이 길게 꼬리를 끌며 하늘을 가르는 장관을 연출. 중국 흑룡강성 모헤현에는 개기일식현상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5천여명의 아마추어 전문가,취재진들로 며칠전부터 방을 구하기 조자 힘들 정도.몽골에도 4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쇄도. 북극지방에가까운 모헤현은 이날 기온이 영하 38도까지 떨어졌음에도 불구,역사적인 「우주쇼」 관람을 위해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하늘의 신비에 빠져들기도. 개기일식 취재를 위해 모헤현을 찾은 중국 기자 웨인 구안(38)씨는 『해가 완전히 가려져 어두워지면서 밝게 빛나는 혜성이 하늘을 두조각으로 가르며 지나갔다.평생 잊을수 없는 감동이었다』고 소감을 피력. 한편 현지 중국인들은 『옛부터 최고 지도자가 죽으면 하늘이 심상치 않은 조화를 보였다』면서 이번 개기일식을 지난달 등소평 사망과 연계시켜 말하기도.
  • 「등」이후 중국­동북아­세계:Ⅰ(지구촌 칼럼)

    ◎본사 지구촌칼럼 필진4명 국내전문가 1명 공동진단 중국 현대사의 「작은 거인」 등소평옹이 타계했다.등의 개혁·개방정책 덕분에 중국은 세계적인 공산체제 붕괴에도 아랑곳없이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거듭,21세기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주도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하지만 등의 사거는 중국대륙에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가져다줄 것이며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에도 영향을 미칠게 분명하다.서울신문사의 지구촌 칼럼니스트들과 유세희 한양대 아·태 지역학대학원장의 진단을 통해 「등사후의 중국·동북아,그리고 세계」를 조망해본다.◎한·중 관계/유세희 한양대 아태지역학대학원장/한반도정책 변화엇을듯/남북한­주변국 관계따라 유동적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의 설계사이며 오늘의 중국에 있어서 실질적 구심점이었던 등소평이 사망함으로써 세계의 관심은 그가 없는 중국의 향방에 쏠리고 있다.즉,그의 사망이 중국의 국내정치와 대외정책에 미칠 영향에 대하여 갖가지 추측이 일고 있다.특히 우리와는 사귄지 얼마 안되고 북한과는 오랫동안 친구인 중국이 그의 사망으로 인해 우리와 북한에 대한 태도에 있어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인가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갖게됨은 당연한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등의 사망으로 인해 중국의 국내 정치와 한반도 정책이 입을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그 주요 이유는 우선 중국의 국내정치 측면부터 보자면 강택민을 중심으로한 현재의 권력구조는 등의 사후에 대비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만들어져 가동되어온 체제라는 것이다.즉 89년의 천안문사태 이후 강택민은 중국의 최고의 실무자였으며 특히 1994년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등이 실무에서 거의 완전히 손을 뗌으로써 강택민은 명실 공히 국가 운영의 최고 실력자가 되었다.일각에서는 강이 등소평과 같은 카리스마가 없기 때문에 이제부터 홀로서기를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말하고 있지만,실제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즉,집단지도제를 종용해온 등이 사라짐으로써 이제부터 권력은 오히려 강택민에게 점차로 집중될 수 있으며,이는 사회주의체제 권력의 속성상 더욱 그러하다. 한편 강택민은 앞으로 개혁개방정책의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는 지역간,계층간의 소득격차,당정 간부들의 부패문제,지방에 대한 중앙의 통제력 약호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등소평이 살아있더라도 어차피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이다.다시 말해서 앞으로 중국이 중국식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감에 있어서 장기적으로 볼 때 정치적 기복은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러한 문제들은 등소평의 사망으로 야기되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다음,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등의 사망이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별로 영향을 못 미칠 것으로 보는 첫째 이유는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정책은 실용주의에 의한 개혁개방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개혁개방정책이 지속되는 한 중국의 한국정책 기조는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은 그들의 국가목표인 경제발전을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추진하지 않을수 없다.중국이 한국과 관계개선을 하지 않을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관계개선을 통해 경제적 실리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이익을 얻을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그리고 이러한 요소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우리에 대한 정책기조에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는 두번째 이유는 설령 등소평의 사망으로 내부적인 권력구조에 커다란 변동이 생긴다 하더라도 국가간의 관계는 국가 이익의 추구라는 현실주의가 대체로 그 바탕을 이루기 때문에 누가 권력을 장악하든 대외정책의 변화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하물며 앞에서 지적하였다시피 등소평의 후계체제인 강택민을 중심으로한 현재의 체제가 지속할 가능성이 큰 이상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기조는 지금의 그것에서 별 변동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등소평의 사망이 지금까지의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별로 영향을 안줄 것이라는 말이지 중국의 우리에 대한 태도에 있어 앞으로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왜냐하면 우리와 중국과의 관계는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기조가 변하지 않는다고만 해서 안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다시말해서 한중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무척이나 많다.북한의 내부상황,북한과 미국관계,북한과 일본관계,남북한 관계,그리고 중국의 미국과의 관계 등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 실제로 북한이 개혁개방을 늦추고 남한관계의 개선을 기피하고 정전체제의 일방적인 파기와 잠수함사건에서 보여주듯이 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하는 현재와 같은 경직된 태도를 지속하는 한편,남한은 모든 주변국가들과 평화와 선린의 관계를 추구하고 북한에 대해서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합리적인 정책을 계속 추구해 나아갈때,중국은 앞으로 더욱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보다 소원해질 것으로 보인다.여기에는 남한이 앞으로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더욱 내실을 이루어갈수 있음이 전제됨을 물론이다. ◎중국의 미래/여신 중 사회과학원 부원장/“정치안정”… 개방개혁 가속/올 홍콩 인수·전당대회 “분수령” 등소평의 서거는 중국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등의 서거에 대해 세계 각국에선 깊은 애도와 함께 그의 공백이 중국에 미칠 영향과 변화방향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그의 죽음은 다시 한번 중국의 최고지도층으로부터 일반국민들에까지 그의 유지를 계승하자는 국가적 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국내외 중국전문가들이 확인했듯 그의 죽음에도 모든 국가업무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정치도 안정돼 있다.그가 시작한 현대화 건설사업도 차질없이 진행중이다. 이같은 흔들림없는 안정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그것은 이미 8년여전 권력승계문제를 매끄럽게 처리한 덕택이다.차기지도자의 선택 및 권력승계의 조기해결은 등소평의 심원한 탁견에서 이뤄진 것이었다.그는 국가운명이 한 두사람 개인의 권위에 의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는 종신집권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지도체제를 확립했다.89년 11월 그는 모든 직무에서 사임하고 자신이 핵심이던 「노인집단지도체제」에서 강택민을 핵심으로 한 새로운 집단지도체제를 출범시켰다.권력을 이어받은 강택민은 등소평의 지도방향에 따라 국가사업을 순조롭게 처리하고 국민의 신뢰와 권위를 쌓아왔다.그는 등소평 퇴직이후에 단단한 기반을 쌓아왔다.이는 등의 서거가 「권력진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이는 또 앞으로 중국이 안정속에 순조로운 발전을 이룩할 것이란 점을 보여준다.시기를 앞당겨 권력교체를 이룩한 것은 등소평의 마지막 대업이다. 소위 「권력진공」으로 표현되는 정치혼란 우려와 함께 등 사후 대두되는 또하나의 관심사는 중국이 등소평 생전에 확립한 노선과 정책을 변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유지할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지난 18년동안 개혁개방 실천과정을 이해한다면 중국이 앞으로도 등소평의 노선과 이론을 변함없이 밀고 나갈 것이라는데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다.만약 어떤 변화가 온다면 그것은 개혁개방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의 변화일 것이다. 등소평은 문화대혁명의 재난으로부터 중국을 개혁개방으로,현대화 건설로 매진시켰다.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생활이 나아지고 중국의 국제지위가 올라가고….개혁개방 성과를 중국인들은 몸과 마음으로 느낀다.이같은 경험은 개혁개방정책이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고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어떤 힘도,어떤세력도 이같은 흐름의 방향을 막을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등소평의 추도사 등 이미 여러차례 기회를 통해 강택민도 등소평노선과 개혁개방정책이 계승,추진될 것임을 강조했다.이는 중국국민의 바람이며 굳건한 의지다. 이같은 입장에서 안으로 법치주의 확립,사회주의 민주제도 정착,부정부패일소,정치제도 개혁 등 정치분야의 개혁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시장경제에 맞게 경제구조를 조정하는 시장개혁,경제체제개혁 심화도 계속될 것이다.밖으로는 주변국가와의 우호관계 등 「독립자주,평화외교정책」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중국은 세계평화유지 노력과 함께 국제정치·경제의 신질서 확립을 추구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이같은 정책방향은 등소평이 창안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이론의 실천방향이며 등소평 이후 정책기조이기도 하다. 국내적으로 중국은 올해 두가지 대사를 앞두고 있다.그 하나는 7월1일 홍콩에 대한 주권 회복이다.국가적 치욕을 씻는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평화통일,일국양제」라는 등소평의 통일구상을 실현하는 계기다.특히 대만을 포괄하는 중국의 통일정책을 실천하는 첫걸음이란 점에서 무게를 더한다.다른 하나는 하반기(9월말로 예정)로 예정된 중국공산당 15차 전당대회다.이 대회는 21세기 중국의 정책방향결정과 지도부 선발이란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이 대회에선 등소평이 창시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이론의 기치를 높이 들고 그의 이론과 노선의 더욱 확고한 집행을 결의할 것이다. 등소평은 세상을 떠났다.그러나 이 두가지 대사는 그의 사상,이론의 지도 아래 진행될 것이다.등소평은 없지만 그의 사상과 이론은 중국의 미래를 이끄는
  • 「등」이후 중국­동북아­세계:Ⅱ(지구촌 칼럼)

    ◎본사 지구촌칼럼 필진 4명 국내전문가 1명 공동진단/국제정세 영향/리처드 하스 미 브루킹스연 외교정책실장/당분간 대외마찰 최소화/정치안정·경제번영땐 영향력 확대 등소평의 죽음은 우리에게 대답보다는 질문을 더 많이 남기고 있다.그의 죽음은 중국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그리고 세계에는. 분명 등소평이 중국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고 지금도 지대하다.현재의 중국은 모택동보다는 등소평의 국가라고 말해도 결코 과장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미래는 탄탄대로라든가 분명하다는 것관 거리가 멀다.중국은 시장경제 변화의 도입과 세계경제와의 연계증대를 굳게 약속한 것처럼 보인다.그렇지만 등 시대에 이런 일들이 아주 점진적으로 이뤄진 사실은 곧 커다란 의문들이 상존함을 뜻한다.강택민 등은 힘있지만 비능률적이고 돈이 많이 드는 국영기업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그들은 또 광범위한 부패,정부보조금의 축소,경제활동에 대한 국가통제의 완화지속 등을 헤쳐나가야 한다.이런 방향으로 움직여 나갈 때에만 중국은 세계무역기구에 합류할 수 있고세계에서 성공적으로 경쟁할 수 있다. 중국의 정치적 미래는 한층 불확실하다.공산당이 정부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합법적인 후계를 위한 공식절차도 없고 민중의 반정부 시위를 다룰 법조항도 별로 없다.시간이 지나면 무엇인가가 주어져야 한다.경제개혁에 고삐를 물리고 중국의 잠재적이며 정치적인 개혁을 제한할 어떤 것이 나오던가 아니면 중국 지도자들의 힘을 제한하는 어떤 것이 나오든가 해야 할 것이다. 이 질문이 답해지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그러나 이것의 현실적인 파장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크다.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번영할 때만 중국은 국경선 너머로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국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으로서는 등소평의 사망이 중국의 바깥 세계와의 관계에 미칠 충격은 작아 보인다.등소평이 몇년에 걸쳐 차근차근 퇴장한 결과로 그가 지목한 후계자들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세력 변수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은 의미깊다.후계는 그의 사망 이후부터가 아니라 이전부터 이뤄졌다. 그럼에도 등의죽음은 새로운 불확실한 상황들을 야기한다.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의 역사는 후계결정의 시기에 합법성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권위가 채 확고하지 못한 후계가능 인물들은 대담한 정책이나 폭넓은 타협책을 택하기를 꺼리게 된다고 일러준다. 이것은 결국 앞이 보이는 장래,최소한 올 가을의 당대회 이후 상당기간까지는 상황이 예전과 아주 비슷하게 돌아갈 것이란 점을 말한다.미국은 이 기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미국에는 예의 주시와 분명성과 일관성과 현실주의가 요구되는 때이다. 미국정부가 인권에 관해 장기적인 접근법을 택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중국지도자들이 갑자기 세계인권 규약준수를 다짐하고 반정부 인사를 석방하고 감옥에 대한 국제사찰을 허용할 리는 없다.변화는 오로지 시간이 지나야만,경제개혁과 중국지도자들의 자신감 확대의 결과로서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공개적인 압박보다는 은밀한 재촉이 진전을 이뤄낼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 관리들은 홍콩에 대해서도 현실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홍콩의 이양은 시간표대로행해질 것이 확실하다.더구나 중국지도자들이 홍콩의 민주적 관행들이 계속되고 발전되도록 허용하리라고 기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중국은 그러나 그들의 홍콩에 대한 태도가 많은 미국인들의 중국관에 큰 영향을 줄 것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 또다른 민감 사안인 대만 문제에서 중국은 자기의 권리주장에 절대적인 자세를 견지할 것이며 국제사회가 대만 정부와 어떤 관계라도 맺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다.대만에 전투기를 판매하려는 미국의 계획도 큰 저항을 받을 것이다.우리는 중국 군사력이 대만을 위협할 능력을 시범보인 지난해의 긴장사태가 어떤 식으로든 재연되는 것을 목격할 수도 있다.그럼에도 미국은 대만에 대한 의무를 완수하고 흔들림없는 자세를 지켜야 한다. 그밖의 지역에 대해 중국이 어떻게 나올까는 덜 분명해 보인다.그이유는 등 사망 이전에 관련 정책들이 정해지지 않은 것이 주요 원인이다.그래서 중국이 북한 식량난 문제에 개입해 대량의 식량지원에 나설지는 확실치가 않다.하지만 미국은 전쟁을 피하고 북한의 어떤 붕괴사태도 관리될 수 있도록 상호정책 협의를 할 만큼 중국을 개입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아시아 경제/노조에 신이치 일 아세아대학 교수/중국도약은 아주발전 “핵”/개혁·개방의 흐름 단절 안될것 혁명가 등소평옹이 타계했다.그가 남긴 업적과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할 생각은 없지만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등이 주도한 개혁·개방정책은 사람들의 욕망에 불을 붙여 중국경제를 「거대한 용」으로 소생시키며 21세기에는 미국과 유럽,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의 잠재적 「핵」으로서 세계경제 틀 안으로 진입시킬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그러한 것은 중국인들에게 강한 희망과 자신감을 가져다주었다.중국의 개혁·개방 흐름이 등소평의 죽음에 의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경제가 시장경제로 이행함으로써 고도성장이 이룩됐다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경쟁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시스템의 도입으로 경재발전이 가능하게 된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자본주의를 초월하는 것으로 등장한 사회주의경제 시스템이 사실은 규제의 덩어리로 발전을 저해했다는 것은 옛 소련이나 중국의 경험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로 등소평 사망직전에 일어난 북한의 황장엽 서기 망명사건은 상징적이다.주체사상의 창시자라고 하는 황서기의 망명은 김일성체제의 종언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다.더욱 주목해야할 것은 북한이 경제적으로는 이미 붕괴했다는 점이다.황서기도 「사람을 굶기는데 무슨 사회주의인가」라고 지적했다.북한은 80년대말 배급제도가 기능하지않아 계획경제체제는 붕괴되고 말았다.망명자의 속출은 인민이 자기체제를 포기했음을 의미한다.「인간이 주체」라고 계속 주장해도 인민을 철저히 지도자에 복종시키고 감시하지 않을수 없는 체제에서의 경제발전은 어렵다는 것이 분명하다.그러한 북한에 경제원조를 얼마나 하더라도 그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지나지않는다.북한의 연착륙설은 환상이라고 말할수 밖에 없다. 그런데 위에서 지적한 중국경제의 세계경제로의 등장은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는 동아시아경제에 거대한 충격을 주고 있다.일본을 선두로 아시아의 신흥공업경제군(NIEs),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경제발전이 차례로 당구와 같이 연쇄반응해온 동아시아에 있어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기관차의 등장은 동아시아경제의 발전가능성을 더한층 높이는 것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세계의 투자가의 눈이 아시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중국경제의 거대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론이 없을 것이다.그러나 중국경제가 앞으로 순조롭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중국의 지금까지의 발전이 외자 유입에 주로 의존했다는 것은 명백하다.문제는 그 발전을 보다 내실있고 영속성 있는 것으로 할수 있는가하는 점이다.이를 위해서는 중국이 국제규범을 준수하고 경쟁원리에 의해 움직이며 투명성 있는 시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런 의미로 ASEAN 국가가 중국에 투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시장개방을 적극적으로 권장해온 것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그것이 ASEAN 국가의 계속적인 발전을 보증하고 있다.주목하고싶은 것은 그 문제가 ASEAN이나 중국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미국경제의 재생,일본경제의 어려움이라는 대조적인 현상도 그점에 깊이 관련돼 있다고 말할수 있다.다시말해 규제완화 등 보다 매력적인 투자환경 정비를 추진한 미국 경제가 부활한 반면 그것이 불충분하고 대응이 늦은 일본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김영삼 대통령 정권은 출범과 함께 종래의 권위주의적인 정책운영방식에서 탈피,「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능동적 창의」를 원동력으로 하는 새로운 정책운영방식을 추구할 것을 분명히 했다.그러한 아이디어는 상술한 세계적인 움직임에 대응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한국경제의 약진은 그러한 아이디어의 실천에 의한 것이라고도 말할수 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도 그 결과이다.그러나 한보철강 부정융자사건의 발생은 권위주의적 정책운영방식이 여전히 청산돼지 않은채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OECD가입에 따라 한국은 앞으로 보다 개방적이고 투명성 높은 정책운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그것은 한국경제에 큰 고통과 마찰을 가져다 주겠지만 그러한 진통을 극복하여 한국경제는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탈바꿈할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북아 정세/예브게니 바자노프 러 외교아카데미 부원장/일 대외영향력 확대 제동/한반도 균형유지정책 계속 추진 중국 고대의 진시황제가 죽었을때 각종 희귀보물에 덮인 지하궁전과 거대한 석조전사등이 만들어졌다.살아있는 짐승과 사람까지 제물로 바쳐지기도 했다.1976년 혁명지도자 모택동이 죽었을때는 수천만 중국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중국에는 모의 초상화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었다.그러나 중국개혁의 원로 등소평은 특별한 거만도 떨지않고 조용히 역사속으로 사라졌다.거의 모든 중국인들은 울지 않았다. 등소평의 그러한 죽음은 중국의 많은 진전을 나타내는 것이다.(서방처럼) 곧바로 죽음을 알리고 당국은 장례위원회를 구성,그에게 경건한 조의를 표시했다.수천년 중국역사를 더듬어 보면 개혁주의자들은 처참한 말로를 맞았다.독살을 당하거나 능지처참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개혁주의자들을 용인하지 않는 전통은 중국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많은 선각자들은 당대 많은 학대를 받아왔다.고대 그리스·로마가 그랬고 독일·프랑스·러시아·이란등 현대국가에서도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났다. 세계의 관심은 등이 사라진후 그가 추진한 개혁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첫번째 시나리오는 개혁의 중단이다.등의 개혁으로 심천 일부 해안지방의 도시들은 서방국가 도시 이상으로 성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반체제인사들은 탄압을 받고 소수민족문제가 악화되고 있다.이런 문제들이 중국개혁에 장애물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더욱이 후계자 문제가 통치위기로 까지 이어질지 모른다.지배엘리트가 분열되고 이것이 지방 작은 도시까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소수민족의 항거가 일부 국경에서 일어나고 있다.이것이 다시 대도시의 사회혼란으로 이어질지 모른다.1920∼1940년대 상황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일부는 러시아에서 동지를 구할 것이고 다른 일부는 미국과 미국의 협력자 대만에 손을 뻗칠지도 모를 일이다.이렇게 되면 중국은 더이상 한반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못할 것이다.힘도 없고 한반도문제에 간여할 욕심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등소평식 개혁이 무너질거라는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많은 어려운 문제가 있었음에도 중국은 이미 경제발전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일궈냈다.가까운 장래에 「아시아의 큰 용」으로 변해있을지 모른다.홍콩이 반환되면서 용의 힘은 더 커질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힘을 느끼는 쪽은 조만간 동남아시아가 될 것이다.이와함께 북경은 세계무대에서 정치적 군사적 입지를 확대하려는 일본의 영향력에 제동을 걸 것이다.중국과 일본은 동남아시아시장에서 주요 경쟁자가 될 것이다.이같은 두번째 시나리오 아래서 중국은 북쪽(러시아)에 대해 강경한 입장에 설 것이다.지금도 엄청난 수의 중국인 정착민들이 시베리아 지역과 극동지역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다.중국은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대해 러시아의 영향력을 대체하려 할 것이다.이렇게 되면 워싱턴과 모스크바,도쿄는 중국의헤게모니를 견제하기 위해 자연스레 뭉칠 것이다.그러나 동맹국가내 복잡한 사정때문에 실질적인 결속력은 강하지 못할 것이다.미국­일본의 무역분쟁,러시아­일본의 영토분쟁,미국­러시아의 유럽안보분쟁 등의 문제가 있다. 중국은 이러한 시나리오 아래서는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남아있는한 북한쪽에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동시에 중국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동원,한국을 가능한 한 미국과 떼어놓으려 할 것이다.두번째 시나리오에 상당수 전문가가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이는 「제3의 시나리오」만 못하다.세번째 시나리오는 등소평식 개혁이 계속되며 중국은 안정과 경제성장을 지속한다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은 남을 것이며 북경정부는 계속 현대화의 필요에 외교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이다.그러한 외교정책은 현실적이고 온건한 외교노선이다.이는 갈등과 대결을 피하면서 동·서방 모두에게 이로운 측면이 있다.이러한 전략의 틀내에서 중국은 한반도에 균형유지정책을 계속할 것이다.적대적인 두개의 한국을 가급적 머리를 맞대게 할것이다.북한이 만일 붕괴된다면 중국은 슬쩍 발을 떼내 현상에 순응할 수 있다.결론적으로 등의 사후에는 「제3의 시나리오」가 가장 이상적일 것으로 본다.
  • 등 이후 절대지도자 없을것(해외사설)

    20세기 중국과 세계에 큰 업적을 남긴 중국의 최고 지도자 등소평이 사망했다.등은 모든 공직에서 은퇴했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이 곧바로 중국의 대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는 중대한 관심을 갖고 그의 죽음이 중국에 미치는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등이 추진했던 개혁·개방노선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등이 지원했던 강택민체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인가.더욱이 21세기 중국은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등의 죽음은 이러한 중대한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등은 문화혁명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발전시켜 중국을 세계 여러나라가 투자하고 싶어하는 매력있는 나라로 만들었다.그는 또 「일국 양체제」라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홍콩의 반환을 실현시켰다.「개혁·개방」과 「일국 양체제」는 등의 철저한 현실주의로 부터 나온 것이다. 그러한 등없는 중국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그것이 세계적인 관심사다.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때 중국이 다시 옛 사회주의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은완전히 바뀌었다. 강택민을 중심으로한 후계체제도 당분간 지금까지와 같은 집단지도체제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당장은 권력투쟁의 양상은 보이지 않는다.하지만 개혁·개방정책을 둘러싸고 지도층내의 미묘한 갈등이 있어 권력투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일당독재아래의 집단지도체제라는 것은 개인독재로 이행되는 과도기라는 사실은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그러나 모택동이나 등과 같은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나타날 것 같지 않다.중국사회도 정보화시대를 맞아 가치관이 다원화되고 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발전하면 여러가지 소유와 경제의 형태가 나타난다.또 민주화가 진행되면 경제의 실태와 정치형태와의 괴리가 나타나 일당독재로는 한계가 있다. 중국에는 또 그동안 등의 권위에 묻혔던 여러가지 모순이 분출할지도 모른다.등의 죽음으로 정치적 일원화,경제적 다원화라는 「중국적 사회주의」도 큰 시련에 직면해 있다.그러나 중국은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제적 발전과 함께 민주화를 착실히 진척시켜야 할 것이다.
  • 등소평 사망­집권 20년 공과

    ◎개혁·개방 총지휘… 강대국 토대 구축/주변국과 평화유지·대만 고립 성공/일당독재­시장경제 갈등 해소 과제 계급투쟁과 이데올로기를 강조했던 10년간의 문화대혁명의 파장으로 경제파탄과 사회혼란이 채 가시지 않았던 중국은 지난 78년부터 등소평이 이끈 개혁개방정책을 통해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미래 초강대국을 향한 물질적 기초와 토대를 마련했다.등이 만든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길로 전진하자」는 구호는 20년동안 변함없는 원칙으로 남아있다. 그의 개혁·개방정책은 세계 최빈국이던 중국을 세계11위의 무역대국으로,세계 두번째의 외환보유국(1천억달러)이자 투자대상국으로 변모시켰다.국민절대다수를 먹이고 입히기조차 불가능했던 중국정부는 이제 물질적 풍요를 초보적으로 구가하는 상태에 도달했다고 자부하게 됐다.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은 중국의 경제기적과 함께 2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을 국제 정치외교무대의 강대국으로 우뚝서게 했다.모택동시대의 고립과 빈곤을 탈피하고 경제적 성장과 함께 외교적 입지마련에도 성공한 것이다.경제개발을 위한 주변국가들과의 평화유지와 안정도 대만 고립정책과 병행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이같은 성과를 거둔 개혁개방을 이끈 등을 가리켜 중국인들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즐겨 부른다. 그러나 지난 78년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개혁개방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그리고 국민의식의 변화는 국가제도와 질서에 대한 개혁 압력및 요구를 높여가는 결과를 낳고 있다.공직사회의 부패와 빈부및 지역격차,급격한 사회변동 등은 개혁개방의 틀에 충격을 가하는 수준으로 진전되고 있다.권력남용과 부패에 대한 견제·감시와 사회경제적 발전에 따른 국민의 참여 및 욕구증가를 어떻게 수용해가느냐는 등이후의 과제이다.군에 해당하는 현급 인민대표자의 직선제실시등 기초적인 정치개혁이 실시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틀과 개혁은 요원하다는 평이다. 『4개 기본원칙은 변함없다.사회주의의 길,공산당 영도,무산계급 독재,마르크스,레닌 및 모택동사상…』.등소평주의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이론을 확립하면서 78년이후 고속경제 성장을 이룩하는 공로를 세웠지만 이제는 서구적 관점에서 보아선 사회경제적 변화를 가로막는 보수이념이 되고 있다.연안 장정시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21세기까지 연장하려는 등소평의 이론은 이제 중국의 사회경제변화를 수용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란 지적도 적잖다.일당독재라는 정치적 운영방식과 자유주의적인 시장경제의 운영이 점점 「어색한 동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20년간 등의 개혁개방정책이 중국의 경제발전과 안정의 원동력이었다면 앞으로의 20년은 등의 정치사상을 어떻게 21세기의 개방사회에 맞는 사회주의 사상으로 유연성을 더하면서 극복·발전시켜 나갈수 있을지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 윌리엄 오버홀트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이즈 기고­요약(해외논단)

    ◎중국 등 사후도 안정견지/강택민 등 3세대 지도자들 합의통치 예상 등소평 사망후 중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등 사망전에 발표되었지만 권위있는 「포린어페어즈」에 게재된 윌리엄 오버홀트의 「등 이후의 중국」을 소개한다.「중국의 부상:경제개혁이 어떻게 새 슈퍼파워를 창조했는가」란 책을 쓴 저자는 아주 낙관적인 전망을 흥미있게 전개하고 있다. 중국 권력의 후계는 4가지 측면을 갖는다.누가 최고지도자가 될 것인가,어떤 세대가 주요 권력을 좌지우지할 것인가,정부는 어떤 모습으로 짜여지고 정책은 어디를 지향하는가.특히 누가 최고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는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이나 누가 되든 모택동이나 등소평 같은 위치에 오르기는 좀체 어려울 것이다.후계 예상 지도자들의 자질이 뒤져서가 아니라 중국의 구조가 변하기 때문에 그렇다.2차대전은 루스벨트,트루먼,아이젠하워,처칠,드골 등을 차례로 배출했다.마찬가지로 혁명의 모진 시련 속에서만 모나 등과 비슷한 그릇의 지도자가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등사후 중국은 다수 지도자들에 의해 다스려질 것이며 정책도 한 개인의 취향보다는 권력엘리트들의 광범위한 지지와 합의에 달려있게 될 것이다.새 지도자 세대는 「불멸의」 선배지도자들보다 이념적으로 아주 모호하다.강택민,이붕,주용기 등 이른바 3세대 지도자들은 대개 소련 스타일의 전기엔지니어들로 이뤄졌다.그러나 많은 기관에서 좀더 전문관료적이고 시장체제 지향적이며 정치적으로 더 관대하며 서구지향적인 40대들이 세력을 떨치고 있다.더 빠른 경제발달이나 더 무난한 대외관계를 원하되 이념적,민족적 슬로건의 강도는 수그러들기를 바랄때는 이 전통적인 3세대를 지지할 것이며 동시에 한층 빠르게 무게중심이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4세대로 옮겨질 것이다. 20년전 미국은 박정희 대통령이 죽자 한국이 어떻게 될까 막막하게 생각했다.박대통령 등장 이전에 한국을 휩쓸었던 혼란과 이념적 양극화가 재발할지 모른다고 거의 모든 관심있는 미국인들은 걱정했다.그러나 최고 자리를 차지하려는 무서운 투쟁에도 불구하고 박대통령의 경제적,외교적방향은 결코 도전받지 않았다.장개석 사후의 대만,이광요 총리 퇴진후의 싱가포르,프렘 틴술라논다 후의 태국도 마찬가지였다.박대통령 아래서 한국인들은 경제발전 일념의 권위적 정치와 수출주도 시장경제의 마술적 결합을 발견하였고 점차 기아에 대한 공포,전쟁의 불길한 조짐,외국에 대한 수치감이 씻은듯 사라져갔다. 영국지배의 홍콩을 예외로 하고 아시아의 대도약들은 초기엔 위대한 지도자에게 매여진채 진행되지만 그후엔 합의에 의해 계속된다.그리고 모든 경우 이 합의는 독재적 통치의 완화를 가져왔다.이는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와 상이한 패턴이다.아시아에서도 인도와 필리핀처럼 성공의 정도가 근본적 합의를 이끌어낼 만큼 충분하지 못한 예도 있지만 중국에서는 경제발전의 중요성에 대한 전체적 합의는 결국 정치면의 진보를 유도할 것이다. 어떤 정책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냐에 관해 중국은 광범위한 합의가 이뤄져 있다.경제발전에 압도적인 우선순위가 주어져 있고 이와 연관된 시장체제로의 점진적 이동도 핵심적으로 중요시된다.최고위층 50명 가운데 국가가 농장을 다시 소유해야 한다든가 폐쇄경제로 되돌아가자든가 옛 소련처럼 국영기업 전체를 정부가 보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냉전종식후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마치 한국과 대만 국민들이 지난 80년대 중반까지 그랬듯이 경제 우선정책은 올바른 것이며 정치적 자유화는 느려도 괜찮다는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지도층이 경제를 망치면 모르지만 이같은 컨센서스는 국민 대다수가 식량,주거 및 자녀의 건강 등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게 되기까지의 장래 1,2세대동안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그런뒤 한국과 대만처럼 정치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중국이 지금처럼 급속하게 발전하다 보면 어느날엔가 용기있는 반정부 인사들이 미래를 안내할 수도 있다.그러나 이는 등 사망 직후에 올 물결은 아니다.중국인들의 불만은 그간 점점 더 가시화되어 왔지만 등 사후의 중국은 지난 200년간 그 어느때보다 통일되고,안정되며,안전한 모습을 견지할 것이다.〈정리=김재영 워싱턴 특파원〉
  • “황씨 「제2 방려지」 가능성”

    ◎중,남북한 틈새 고민… 공관 장기체류할 수도 황장엽 비서의 신병처리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이번 사건이 「제2의 방려지」화될 가능성이 조심스레 거론되고 있다.중국의 반체제 물리학자인 방려지는 지난 89년 천안문 유혈사태 직후 북경주재 미국대사관에 피신,망명을 신청한뒤 그의 출국을 싸고 중국과 미국이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꼬박 385일간 미국대사관에서 지냈던 인물.결국 영국으로 출국한 뒤 미국에 망명했다.자칫 황비서도 출국때까지 한국영사관에서 이 정도 장기체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가능성은 먼저 중국이 절대로 북한과의 관계에 큰 손상을 가져올 행동은 하지않을 것임을 전제로 한다.중국이 북한과의 전통적인 유대나 여러가지 외교적 이해득실을 저울질해 한국의 요구만 일방적으로 들어주거나 조기출국을 허용치는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더욱이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참고 기다리는데는 이력이 난 기질을 보여왔다. 그렇다고 북한으로의 강제송환 가능성도 희박하다.왜냐하면 망명자 처리에 대한 국제관례나국제여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남북한 양자의 체면을 저울질하고 국제여론도 고려하는 제3의 선택이 바로 「방려지식」으로 여론이 잠잠해질때까지 시간을 끌어간뒤 처리한다는 것이다.
  • 일 전 문부상 「위안부」 또 망언

    ◎“한국인이 현지포주 통해 모집·일부선 자원” 【도쿄 AFP 연합 특약】 일본 자민당의 시미무라 요시노부 홍보부장이 5일 2차대전중 일본군을 위해 끌려온 종군위안부들은 일본군에 의해 끌려온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나 중국인 등 외국인들에 의해 끌려왔다고 말했다. 문부사을 지내기도 했던 시마무라는 이날 기자들과 가진 비공식 간담회에서 종군위안부들은 대부분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현지의 포주들을 통해 모집했으며 일부 여성들은 스스로 종군위안부를 자원하기도 했다고 말한 것으로 지지통신은 전했다. 그는 또 2차대전후 일본의 창녀들은 미군들을 상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수 있었던데 대해 의기양양해 있었다고 말하면서 가난에 찌든 여성으로 사는 것과 『헬로』라고 멋지게 말하면서 사는 것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낳았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 동서고금의 흥미로운 「상징문화」/박영수씨의 「행운의 풍속」

    ◎새로운 사람들간/불행 막기위한 로마인의 열쇠 태우기 등/21가지 주제통해 분석한 인류의 신앙행태 고대 로마사람들은 매년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의 축제일(8월17일)이 다가오면 앞다퉈 문 열쇠를 불속으로 던졌다.불행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소유」의 상징인 열쇠를 정화하는,일종의 액막이 행위였다.원화소복의 의식 혹은 문화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인다.하지만 행운을 기원하는 인간의 마음만은 언제나 닮은 꼴이다.최근 출간된 「행운의 풍속」(새로운 사람들,박영수 지음)은 행운과 금기에 관한 풍속과 유래,상징문화를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이 책은 21가지의 상징적인 주제를 통해 인류의 삶과 맥을 같이해 온 행운의 실체에 접근한다.인류의 풍속사를 살펴보면 행운기원 보다는 불운방지의 관습이 더 널리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특히 부적은 보이지 않는 신의 대용품으로 인류의 시작과 함께 한 신앙형태다.고대 멕시코의 아즈텍인들은 손모양의 붉은 무늬가 재앙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해준다고믿어 벽에 그 무늬를 그렸으며,이집트인들은 풍뎅이를 부활의 상징으로 신성시해 풍뎅이 무늬를 새긴 반지를 끼고 다녔다.또 중국인들은 악귀에 대항하는 주문을 노란 종이위에 써서 태운 다음 그 재를 물에 타서 삼키는 이른바 「소회탄부」로 악귀를 쫓았다. 독일의 미술사가인 빌헬름 보링거는 『문양은 인간의 내적인 불안으로 생긴 공간공포를 진정시키기 위한 추상충동에 의해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그렇다면 인류가 그려온 수많은 무늬속에는 과연 어떤 뜻이 담겨 있는 것일까.이 책은 풍부한 사례를 통해 각 문화권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무늬의 상징성을 밝힌다.특히 동양문화권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문양인 박쥐무늬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 눈길을 끈다.동양에서 박쥐는 오복을 가져다주는 동물이자 다산을 상징하는 동물이다.태국에서 박쥐는 장수를 상징하는 영물로 인식되며,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는 풍년을 상징하는 신령한 동물로 간주된다.중국에서도 박쥐는 행복과 장수의 상징이다.그러나 서양에서는 박쥐야말로 부정적 이미지의표상이다.바빌론시대에는 악령이나 유령으로 묘사됐으며,중세시대부터 셰익스피어시대까지는 죽음·공포·불운·악마를 상징했다.마녀나 드라큘라가 집에 들어올 때는 박쥐모습을 한다고 믿었으며 박쥐를 악귀들의 심부름꾼으로 여기기도 했다. 히틀러는 그의 저서「나의 투쟁」에서 이렇게 썼다.『붉은 바탕은 우리가 벌이는 운동의 사회적 이상을 나타내고 흰색원은 민족적 이상,하켄크로이츠는 아리안족의 승리를 위한 투쟁의 사명을 나타낸다』 이 책에서는 나치스의 당장인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에 담긴 뜻을 면밀하게 살핀다.하켄크로이츠는 유럽백인의 원조인 아리안족 최고의 상징으로,「불의 요람」 또는 행운을 뜻했다.대중조작 기술이 뛰어났던 히틀러는 바로 이 「불의 요람」에서 불·힘·권력의 속성을 파악했으며,국가사회당의 지도권을 장악했던 1920년에는 하켄크로이츠를 문장으로 선택했다. 거울의 상징성에 대한 동서양 문화권의 해석을 비교·소개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서양에서는 거울을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믿었다.고대신화를 보면 메두사를 퇴치하는데 거울을 사용했으며,뿔달린 백마 유니콘을 유혹하기 위해서도 거울을 이용했다.거울은 주구나 신기,나아가 통치자의 상징물로도 활용됐다.거울에 왕권을 부여했음은 진시황제나 고려·조선의 예에서 알 수 있으며,일본 왕실의 삼보에 거울이 포함돼 있는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려태조 왕건은 객상 왕창근이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고경에 새겨진 글자를 해석한뒤 용기를 얻어 고려건국을 결심했고,조선태조 이성계는 거울이 깨지는 꿈을 꾼뒤 길몽이라는 해석에 자신감을 얻어 조선을 세웠다는 기록이 전해진다.이 책은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위주의 책이라기 보다는 동서양 상징문화를 「행운과 불운의 방정식」으로 풀이한 풍속 소사전이라 부를수 있다.
  • 중 중고품시장 유례없는 호황

    ◎중산층의 신상품 선호 선진국형 소비에/도시 저소득층 수요 맞아떨어져 급성장 중국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중고품시장이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고 있다. 북경의 대표적인 중고품 판매회사인 무역신탁공사의 매출액은 지난 90년대초 6천만위안(60억원상당)에서 8천만위안대로 뛰어올랐고 대표적인 휴일 중고품·골동품 노천시장인 심가원 시장은 2천여 노점상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또 인민일보에 따르면 상해의 중고품 판매업체의 월 판매액도 3억4천만위안(3백40억원상당)으로 급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천진시의 천보로 중고시장과 항주의 개선로 편의시장도 각각 하루 1천만원대이상의 판매를 기록하고 있다. 중고품시장의 거래품목은 TV,비디오 플레이어,냉장고 등 가전제품서부터 자전거,각종 잡화류,골동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인민일보는 중고품시장이 이처럼 호황속에 급성장하는 것은 신상품 개발주기가 빨라진 가운데 호주머니가 두둑해진 중국인들과 저소득 주민들의 필요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중국인들이 고장날때까지 물건을 쓴다는 것은 옛말이고 싫증이 나면 새것으로 바꾸는 등 유형과 첨단에 민감해지는 선진국형 소비자로 변모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다가 전반적으로 소득이 높아졌지만 아직 넉넉지 못한 대도시주변의 농민과 소도시 소비자들이 중고품시장에 와서 중고품과 제고품들을 사가기 시작한 것도 이같은 중고품시장 「이상과열」의 원인이란 분석이다.거주이전 제한이 풀리면서 대도시로 급속히 유입된 노동력과 유동인구도 이같은 중고품 시장의 주요 고객으로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 중 외식산업 “번창 일로”

    ◎사유재산권 확대로 투자자 78년비 21배 늘어/체인점 등 250만개… 96년 상반기 매출 105억불 중국의 외식산업이 무서운 기세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12억 인구라는 토양위에 70년대 말부터 도입된 시장경제 정책이 낳은 결과다. 관영 신화통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빠른 성장을 거듭해온 외식산업의 96년 상반기 거래총액은 8백73억위안(미화 1백5억달러)이었다.이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6.3%나 증가한 수치다.95년 상·하반기 총 거래액은 1천5백80억위안이었다. 레스토랑과 갖가지 체인점,거리의 간이식당 등을 망라한 전체 식당수는 2백50만개.시장경제 채택초기인 78년보다 21.3배로 늘었다.그 결과 인구 1천명당 식당수도 78년 0.12개에서 현재 2개 이상꼴로 불어났으며 이로써 7백만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외식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초래한 직접적인 원인은 사유재산권의 확대에서 찾을수 있다.과거 국영식당만이 존재하던 시절과 달리 순수개인 재산이 다투어 수익성 좋은 외식산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이는 현재 운영중인 전체 식당의 90%가 민간자본으로 세워진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외국자본의 투자러시도 이 나라 외식산업을 부흥시키는데 단단히 한몫을 했다.개혁·개방으로 중국인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외식산업은 외국자본의 주된 공략대상이 된지 오래다. 중국의 웬만한 주요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맥도널드」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은 외국투자 러시의 한 단면이다.이들 체인점은 중국전통의 국수집 또는 경단집 바로 옆구리를 파고들면서 중국인들의 입맛을 바꿔놓기에 여념이 없다.
  • 로버트 조얼릭 내셔널 인터리스트 기고(해외논단)

    ◎미국,장기적인 대중정책 수립해야/중국의 현실인정… 미 입장 강요 말아야 새해들어 미·중 관계의 중요성이 한층 강조되는 가운데 로버트 조얼릭 전 미국 국무차관(부시행정부)은 미국의 보수계 계간지 「내셔널 인터리스트」 최신호 기고를 통해 미국은 보다 장기적이고 사실에 바탕을 둔 중국정책을 세울 때라고 주장했다.「관여정책의 요건」이란 제목의 그의 글을 요약한다. 미국은 20년동안 통일된 중국정책을 지녀왔지만 그러한 일관성은 천안문사태로 끝났다.그러나 이제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의 도전으로 미국은 일관되고 굳건하며 장기적인 관점의 중국 전략이 필요하다.미국은 장래의 대통령들과 의회가 계속적으로 지지할 전략에 바탕을 둔 초당적인 중국정책을 재건할 때다. 미국의 과거 중국정책은 중국과 관련한 두가지 상이한 전통을 반영해왔다.하나는 미국의 선교활동 경험에서 중국,중국인 및 그들의 궁극적인 구원 등의 이미지를 이끌어내는 전통이다.다른 전통은 세력,국익 및 강대국간의 균형관계 등 현실주의자적 관념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접근방법이다.미국은 가끔씩 이 어울리기 어려운 두 전통을 섞어 교묘한 조합품을 빚는데 성공하곤 했다. 미국은 중국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다.시계추처럼 번갈아 가면서 중국을 낭만적으로 좋게 그리기도 했고 악마인냥 여기기도 했는데,이같은 상반된 태도들은 정책변경으로 이어졌다.미국의 중국선교 경험이 이같은 관점을 형성하는데 큰 역을 맡았다.중국인들이 미국과 미국적 방식을 포옹하면 미국은 중국에 홀딱 빠진다.그러다가도 미국이 당연히 그러리라고 상상했던 것처럼 되는 것을 중국이 거절하거나 더 나아가 미국을 거부하면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으면서 화를 내는 것이다. 현실주의자들의 중국관은 중국의 혼이 아닌 힘에 포커스가 맞춰진다.닉슨 전 대통령과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당시 중국의 힘이 옛소련과의 균형에 활용될 수 있다고 인식했다.정치체제에서 미국과 중국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이들은 「적의 적은 나의 친구다」라는 현실주의자의 철칙을 적용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옛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경이로운경제성장은 현실주의자들에게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중국은 이제 더이상 옛소련에 대항한 지구적 게임의 「카드」가 아닌 것이다.어떤 의미로 이 카드가 새 게임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잠자는 사자,중국이 깨어나면 세계가 흔들릴 것이라는 나폴레옹의 예언이 들어맞았다. 여러 면에서 오늘의 중국은 지난 세기말의 독일과 유사하다.세계적 영향력이 잠재된 신흥 지역강대국인 당시의 독일과 지금의 중국은 모두 오만함과 불안정함을 특징으로 드러낸다.이 두 국가는 예나 지금이나 자신들이 진지하고 중요하게 취급될 것으로 기대했고 기대한다.세계는 이들 국가들이 지역및 세계의 체제안으로 통합하면 혜택을 볼 것이나 이 체제의 규칙을 인정하지 않으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독일의 부상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것에 실패함에 따라 70년간의 갈등과 45년간의 유럽분단이 뒤따랐다. 미국은 이와 비슷한 실수를 피할 중국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이제 시계추같은 중국 정책과 노선을 중단할 때다.미국은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인정해야 한다.중국은 거대하고,복잡다단한 나라이며 거창한 변신의 와중에 있는 고대문명의 상속자인 것이다.동시에 미국을 있는 그대로,미국이 상징하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접근법이 요구된다.미국은 특수한 전통의 목표에 접목된 현실적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정책 재조정과정을 통해 「적극적 관여」(engagement)라는 용어를 내놓았다.이는 올바른 방향이긴 하나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피할 수 없는 문제들을 다룰 통합된 전략이 갖춰지지 않는 미국과 중국간의 임시변통적 상호관여는 위기 미봉을 위한 단기적이며 근시안적인 정책만을 양산할 따름이다.또 이는 두나라간에 정치적 마찰을 증가시킨다. 무엇보다 미국은 자신이 상상하는 중국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인정해야 한다. 중국에 대한 현실적 정책추구는 미국의 특별한 국가 주체성에 기반을 둔 원칙·주장을 장려하는 방법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또 이 원칙들은 미국의 이미지가 반영된 낭만화한 중국의 이미지가 아니라 사실을 바탕으로할때 가장 효과적으로 뻗어나갈수 있다.중국을 지역및 세계 그룹으로 통합시키기 위해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자유시장 이념의 힘과 매력을 십분 활용하면 보다 큰 효과를 볼 것이다.〈정리=김재영 워싱턴특파원〉
  • 중국에선 여권 조심을/분실사고 작년 750여건

    ◎최고 1천만원에 암거래 한국인들의 분실여권을 이용해 제3국으로 출국을 시도하는 중국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10일 주중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한국여권을 위조해 출국하려다가 공항등에서 검거되는 중국인들의 불법출국건수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달평균 10여건을 넘어서는 등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이와함께 중국체류 한국인들의 여권분실건수는 지난 94년 282건,95년 418건이던 것이 지난해 750여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현재 중국에서는 한국인의 분실여권이 2만∼3만위안(2백만∼3백만원)에 거래되고 있으며 미국이나 일본등의 비자가 찍힌 한국여권은 10만위안(1천만원)에 암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불법출국하려는 중국인들은 이들 분실된 한국여권에 사진을 바꿔넣고 직인을 위조,한국인으로 위장해 제3국으로의 입국을 시도하고 있다.
  • “페루인질사태 일 영향력 확대에 찬물”/로저 버클리(해외논단)

    로저 버클리 도쿄 국제신학대학 역사학과 교수는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페루 인질사건은 적은 돈으로 국제적 영향력만 높이려는 일본의 얄팍한 속셈을 드러내는 일례라고 지적하고 일본이 진정으로 국제적 영향력을 강화하려 한다면 인도적 구호노력등 국제사회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다음은 그의 칼럼 요지. 페루 좌익 게릴라들에 의한 리마주재 일본대사관저 인질사건은 세계무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일본에게는 하나의 악몽이다.일본대사관저 인질사건은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총리가 이끄는 일본정부가 국제무대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려는 때에 일어났다. 페루인질사건에 대한 전세계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와 올초 멕시코에서의 일본인 인질에 대한 몸값요구,조어도(일본명 센카구열도)점거에 따른 중국인들의 홍콩 주재 일본영사관 공격 등 일련의 사건들은 해외에 거주하는 일본인 및 일본인 재산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일본정부를 딜레마에 빠지게 하고 있다.그러한 사건들은 또 일본의 해외투자를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페루 인질사건은 더욱이 안락한 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세계무대에서 보다 큰 국제적 책임을 떠맡으려는 일본인들을 더욱 놀라게 하고 있다.일본은 2차대전중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 저지른 야만적 행위에 대한 유감표시에는 인색하면서도 2차대전에서의 패전과 전후 미국이 만든 평화헌법의 제약을 받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상황 극복은 간단하지 않다.때문에 하시모토 정부는 해외원조와 유엔에서의 영향력 제고라는 비교적 안전한 두가지 방법을 통한 국제적 역할증대를 꾀하고 있다.그러나 인질사건을 벌이고 있는 페루 좌익 게릴라들은 페루에 대한 일본정부지원과 일본기업들의 투자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악한 행위로 간주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페루 반군들의 이같은 시각은 해외개발원조라고 부르는 일본의 원조가 제3세계를 도와주는 고마운 지원이라고 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한 많은 일본인들에게는 충격적인 뉴스이다.하지만 일본의 해외원조는사실 국가예산의 매우 적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그리고 국외자들은 일본의 대외원조가 가난한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보다는 비교적 번영된 국가인 동남아시아에 왜 집중돼 왔는지 의심하기도 한다. 페루인질사건은 일본의 대외원조가 일본기업들의 사업번성과 계약을 따내는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일본은 물론 이를 부인한다.그러나 일본대사관저 인질들의 명단은 마치 일본재계의 명단과 유사하며 이는 일본계 대통령이 이끄는 페루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많은 일본원조를 받았다는 점에서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페루 인질사건이 시작되기 몇시간전만 하더라도 하시모토 총리는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의지를 재확인했다.하지만 하시모토총리의 희망은 일본의 국제적 역할증대가 일본에 보다 큰 리스크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일본 국내여론이 비등하는 동안에는 실현되지 않을 것같다. 위험부담을 안지 않으려는 일본의 이러한 경향으로 일본정부는 유엔평화유지활동에서의 인적지원과 인도적대규모 구호활동 대신 자금지원을 선호하고 있다.그러나 일본군이나 일본구호활동가들에게 닥칠지 모를 위험한 상황을 배제한다면 일본의 유엔안보리에 진입이 과연 가치있는 일인지 의문이다.만일 일본이 그처럼 소심하다면 국제사회는 유엔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보류하는 것이 당연하다. 페루 인질사건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일본열도를 벗어난 세계에는 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위험한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설명하며 보다 대외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페루 인질사건은 국제무대에서 보다 큰 역할을 모색하는 일본에게는 하나의 좌절이다.이번 사건으로 국제적 역할을 확대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은 둔화될 것이다.〈일본 도쿄 국제신학대학 교수/정리=김규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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