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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교포시인 김철씨 시집 ‘북한기행’

    ◎따뜻한 가슴으로 그린 ‘분단 현실’/고목밑에/녹슬은 철모하나/…패랭이꽃 한송이/원혼의 넋으로 피어 있었다…/남은 ‘풍요의 비극’ 북은 ‘빈곤의 비극’ 현실 통탄 〈…비애의 절정을 딛고 선 보릿고개는/해발 1만 미터 상공에서 /이지러진 속세의/비운을 탄식한다/고개 너머엔 무엇이 기다릴지/허망한 꿈을 안고/타박타박 무거운 발길이/허기진 세상/가파른 황톳길을 덮고 있었다〉(‘원산가는 길목에서 만난 보릿고개’중에서) 중국 교포시인 김철씨(65)가 최근 북한의 모습을 한권의 시집 ‘북한기행’(문학사상사 펴냄)에 담아냈다.중국의 2백만 조선족 교포를 대표하는 그가 이번 시집 출간을 위해 서울에 왔다. 중국 55개 소수민족을 대표하는 문학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의 기관지 ‘민족문학’의 주필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1억을 헤아리는 중국의 소수민족을 이끌어가는 ‘1급문인’.특히 이번 시집은 분단 52년만에 처음으로 북한의 안타까운 현실을 서정적인 시어로 고발한 ‘기행시집’이란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모두 4부로 나뉘어진 이 시집에서 김씨는 분단현실이 낳은 북한의 참혹한 정황과 정경을 이데올로기를 넘어 따뜻한 시인의 가슴으로 그린다.시인은 남한에는 ‘풍요와 포만의 비극’이,북한에는 ‘빈곤과 굶주림의 비극’이 휩쓸고 있는 현실을 통탄한다.그리고 ‘죽음 아니면 통일’을 목청껏 외친다.〈…가슴에도 걸려 있는 가시철망을 거두어/용광로에 처넣어 쟁기를 만들고/가벼운 저 구름 하­얀 넋이 되어/남과 북 훨훨 거침없이 날아봤으면…〉(‘녹슨 철보망 앞에서’)분단을 극복하려는 민족의 한은 상감령 마루 전투에서 산화한 병사의 영혼에도 어김없이 깃들여 있다.〈포탄에 허리 잘린/고목 밑에/녹슬은 철모 하나/뚫어진 탄구멍을 비집고/패랭이꽃 한 송이/원혼의 넋으로 피어 있었다…〉(‘휴전선 상감령 마루에서’중에서) 한국전쟁 당시 죽은 병사의 소망과 그리움이 마침내 풀꽃이 되어 통일의 넋으로 피어있음을 시인은 절절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김씨는 조선족으로는 드물게 우리말을 아름답게 구사하고,민족전통의 원형을 살려내 미학적으로 형상화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원로시인 구상씨는 그를 탁월한 민족시인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그의 시편에는 우리 겨레 고유의 심미적 정서의 표상인 ‘멋’과 ‘한’의 가락이 배어 있다.그는 긍·부정간의 이념적 당위성이나 선입견 없이 오직 사무사한 시심으로 노래한다”는게 구상시인의 말이다. 전남 곡성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무렵 부모를 따라 중국 길림으로 이주한 김씨는 57년 첫 시집 ‘변강의 마움’을 낸뒤 25권의 우리말 시집과 두권의 중국어 시집을 냈다.이번에 나온 ‘북한기행’은 88년과 89년에 각각 나온 장편서사시 ‘동틀 무렵’(동광출판사)과 ‘샛별전’(을유문화사)에 이어 한국에서 펴낸 세번째 작품집.중국의 ‘계관시인상’과 극소수의 문인에게만 주어지는 ‘국가특수공헌상’을 수상한 김시인은 지난 91년에는 한국문인협회가 수여하는 제2회 ‘한국해외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 컴퓨터부품 제조 대만 무스탕그룹(G7으로 가는 길:80)

    ◎25년간 생산성향상 400배… 10대 중기로/“품질개선” 1인 연매출액 1억3천만원/전공정 컴퓨터로 자동화… 인력절감 출근길을 가득 메운채 질주하는 소형 오토바이 군단들.이들이 내뿜는 소음과 함께 인구 400만의 대북시 하루가 시작된다.꽉 막힌 도로위에 길게 늘어선 벤츠와 BMW,포드,닛산의 행렬.오토바이 군단들은 그 틈새를 요리조리 잘도 빠져 나간다.그 모습이 마치 선진국의 거대 기업들 사이를 비집고 세계시장을 누비는 작은 대만기업들을 연상케 한다. 대만에는 규모는 작지만 세계시장에서 1,2위를 다투는 기업들이 수두룩하다.세계 무대에서 위용을 떨치는 「작은 챔피언들」이다.컴퓨터 부품 제조업체인 무스탕그룹(중국어명 동협전기공업)도 그중 하나다. 대북현 신장시는 공장 밀집지역으로 서울의 구로공단과 흡사한 곳이다.무스탕그룹은 차 두대가 겨우 비껴갈수 있는 골목길의 양쪽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다.한쪽은 사무실로 쓰는 낡은 2층 건물이고,건너편으로 육중한 몸집을 한 기계들이 쉴새 없이 돌아 가는 공장이 자리잡고 있다.허름한겉모습이 지난 25년동안 종업원 1인당 생산성을 400배나 높인 회사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제너럴·필립스사도 고객 이 회사는 컴퓨터 모니터에 들어가는 각종 플래스틱 및 금속제 부품들을 생산하고 있다.반도체 연결부품인 점퍼의 경우 50㏄(가로·세로·높이가 약 4㎝)들이 용기에 5천개를 담을수 있는 초소형 부품으로 1일 1백만개를 생산하고 있다. 무스탕그룹의 고객명단은 이 회사의 제품이 세계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제너럴 인스트루먼트,톰슨,필립스,포워드,미쓰미,에파 등 하나같이 세계 초일류 전자회사들이다. 무스탕그룹의 공장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모든 공정이 컴퓨터에 의해 통제되는 자동화 생산라인으로 이뤄져 있다.류팅판(류정반) 회장은 “지난 20여년간 임금이 평균 40배나 올랐기 때문에 수작업을 최대한 줄이고 자동화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류 회장은 “회사 설립후 현재까지 생산성 및 품질 향상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그는 반도체 연결부품인 점퍼를 그 예로 들었다.인건비와 재료비를 합쳐 코스트는 회사설립 초기인 지난 72년에 비해 40배나 비싸졌다.무스탕그룹은 그런데도 공급가를 지난 72년에 개당 1달러에서 지금은 0.1달러로 대폭 낮췄다.생산성을 400배 이상 높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그는 비약적인 생산성 향상의 비결이 종업원들의 끈질긴 품질개선 운동과 자동화 투자라고 말했다. 대만에는 현재 1백만여개의 중소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다.컴퓨터 관련업체만도 수만개에 이른다.무스탕그룹은 이 가운데 대만 최초로 ISO-9002 인증을 획득했다.지난해의 종업원 1인당 매출액은 4백만원(한화 약 1억3천만원)이다. 무스탕그룹이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70년대 초반에 닥친 오일쇼크와 대만화폐의 강세는 무스탕그룹과 같은 수출형 중소기업들에게 심각한 경영위기를 초래했다. 기업에게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앞뒤면과 같다.7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어져온 무스탕그룹의 범사적 품질개선운동이 그 한 예이다.소규모 기업의 위기극복 사례연구 대상으로 삼아볼 만하다. 우선 각부서의 대표 1명씩 모두 40명이 참여하는 품질관리팀을 구성한다.품질관리팀은 매주 한차례씩 모임을 갖고 부서별로 소관 업무에 대한 종합적인 품질기준을 만든다.해당부서는 품질기준을 시행해 보고 개선이나 시정이 잘 안되는 문제점들을 파악한다.파악된 문제점들을 가지고 품질관리팀과 해당부서가 공동으로 해결책을 모색한다. ○범사적 품질개선운동 공장 건너편의 사무실용 낡은 2층건물 1충에는 품질관리부,플래스틱제품부,제품연구개발부 등이 들어있다.2층의 대부분은 경리부가 차지하고 있다.류 회장은 경리부 한쪽편에 붙어 있는 3평짜리 방을 회장실로 사용하고 있다.10년은 지났음직한 목재 테이블과 3명이 겨우 앉을수 있는 손님용 소파와 탁자가 가구의 전부이다. 무스탕그룹은 우수 종업원에 대한 이익환원과 회사의 경영개선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독특한 제도를 고안해냈다.이익배분제가 그것이다.회사는 매달 전체 수익률 뿐만 아니라 각 부서별 수익률도 따로 산출해 수익률이 높아진 부서의 종업원들에게 전달 수익금의60%를 보너스로 지급하고 있다.지난 해에는 경영실적이 우수하고 장래성이 있는 대만의 10대 중소기업으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중소기업상을 받았다. ○72년 창업 계열사 3개 류 회장은 지난 72년에 이 회사를 설립했다.지금은 동협전기공업 이외에 동걸소교,소주동협,동걸공업 등 3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그러나 이들 4개 회사를 모두 합해도 종업원이 200명이 안되는 미니그룹이다. 각 계열사들 간에는 권한 및 역할 배분이 잘 이뤄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모그룹인 동협전기공업은 계열회사의 재무관리만 한다.계열사는 주요제품별로 4개 사업부로 나눠 각 사업부의 장에게 독자적인 경영권을 부여하고 있다. ◎인터뷰/무스탕그룹 회장 류팅판/“최고의 품질 가장 큰 무기/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 ­이익배분제를 자세히 소개해달라. ▲예컨대 A부서의 수익률이 4월에 5%에서 5월에 6%로 높아졌다면 A부서의 종업원들은 월급날에 정규급여 이외에 4월분 수익금(5%)의 60%를 더 받을수 있다.이 제도 시행이후 종업원들의 사기와 근무열의가 한층 높아졌다.종업원들은 보너스를 받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하고 있다.그 결과 회사는 더욱 많은 이익을 낼수 있어 일석이조다. ­연구개발투자는 얼마나 하고 있나. ▲지난 93∼95년중 전체 매출액에서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연평균 2% 수준이다.중소기업이기 때문에 많은 재원을 연구개발에 투입 하기는 어렵다.그러나 이익배분제는 연구개발에도 큰 성과를 가져오고 있다.연구개발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일반부서들도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이전보다 생산성이 높은 새 공정을 개발해 내는 등 독자적인 연구개발능력을 배양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해외사장은 어떻게 개척하나. ▲제품의 우수성이 가장 큰 무기이다.우리의 옛 고객들이 새 고객을 소개해서 찾아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객수가 많은 것은 아니다.그러나 대부분이 선진국의 유명회사들로 10년이상 장기거래를 하는 안정적인 고객층이라는 점이 큰 특징이다. ­근로자들의 임금인상 요구에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근로자들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다.근로자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지는않는다.대만은 지난 수년간 연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이 3% 정도로 안정돼 있다.우리 회사는 연평균 8%정도 임금을 올렸다. ­대만기업들의 경쟁력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대만인들의 근면성과 노력의 결실이다.품질을 중시하는 풍토가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이다.대만 기업들은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 싹쓸바람(외언내언)

    태풍의 계절이다.영어에서는 태풍을 Typhoon 혹은 Hurricane이라고 한다.Typhoon은 북태평양 남서부에서 발생한 열대성 폭풍우를 칭하는 것이고 Hurricane은 주로 서인도제도에서 부는 강풍우를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이맘때쯤 몰아치는 태풍은 Typhoon이다.서구에서 쓰는 Typhoon의 어원은 중국이란 설이 유력하다.유럽에서 Typhoon이란 말이 처음 사용된것은 1504년 프랑스에서다.Typhon이라고 ‘o’하나를 빼고 썼다. 당시로서는 기이한 용어였던 Typhon은 아랍어의 Tufan에서 유래된 것이었다.아랍인들이 쓴 Tufan은 바로 중국어의 구풍을 아랍말로 옮긴 것이었다.중국을 드나들며 장사를 하던 아랍인들이 구풍을 Tufan으로 표기했던 것이다. 한국 기상청은 바람의 종류를 그 세기에 따라 12가지로 분류해 이름을 붙이고 있다.가장 약한 바람이 ‘실바람’이다.풍향계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초속 0.3∼1.5m의 바람이다.깃발이 휘날리는 정도는 ‘산들바람’,길거리의 종이 조각이 날릴 정도면 ‘건들바람’이다. 초속 17m가 넘으면 ‘큰바람’이고‘노대바람’은 나무가 뿌리째 뽑힐 정도다.가장 센것이 ‘싹슬바람’.태풍은 중심 최대풍속이 초속 17m 이상인 것을 말하므로 ‘큰바람’부터가 태풍권에 들어간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태풍은 ‘싹쓸바람’으로 분류하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상청의 희망일뿐 ‘싹쓸바람’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기상청이 “싹쓸바람이 발생했으니 주의해 주십시요”라고 예보했다간 예보효과가 전무할 것이다.언어란 어느 특정인이나 기관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되는 것이 아니다.보통사람들이 알고 일상적으로 써야 비로소 말이 되는 것이다. 11호 태풍 ‘티나’가 큰 피해를 주지않고 동해로 빠져 나갔다.다행한 일이다.그러나 태풍은 이제부터다.항상 유의하고 대비해야 할것이다.
  • 5일 개최 4자예비회담 뭘 논의하나

    ◎4국대표,본회담 절차 등 실무협의/북측 식량문제 제기땐 토의 방침/객관적 입장 표명 중 역할에 관심 오는 5일 뉴욕 콜롬비아대에서 개최될 4자회담 예비회담은 남·북한 미국 중국 등 4국 차관보급이 대표로 참석,4자 본회담개최에 관한 실무적인 논의를 벌이는 자리다. 정부는 그러나 예비회담을 본회담과정의 시작으로 보고,본회담의 절차문제뿐 아니라 북한이 제기하는 다른 논제들도 토의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즉 북한이 제재완화와 식량문제를 들고 나올 경우 이 문제를 회피하기 보다는 함께 논의한뒤 “식량문제 등은 본회담개최와 동시에 논의할 수 있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북측에 전할 계획이다. 또 본회담 의제(Agenda)는 4자회담의 주제인만큼 ‘한반도의 평화와 신뢰구축’ 등으로 광범위하게 설정할 방침이다.정부당국자는 “북한이 제기하고 있는 주한미군지위문제나 평화협정체결 등은 토론(Discussion)거리이지만 의제는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예비회담에서는 무엇보다 중국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진다.중국측은 예비회담에 앞서 “불편부당한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해 행동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중국은 북한이 4자회담에서 ‘3대 1’의 불리한 입장이라고 여기는 피해의식을 해소하는데 주의할 것이라고 정부 당국자는 내다봤다. 한편 각국 대표들은 예비회담 전날인 4일 한·미,미·중,한·중간에 예비회담 의제에 관해 사전협의를 거친뒤 5일 상오 10시에 시작하는 예비회담에서는 4개국 대표 기조발언에 이어 사안별 토론을 개최할 예정이다.내용은 본회담의 시기,장소,대표수준 및 규모,본회담 의제,진행방법 등 세부사항 등이 될 전망이다.또 회담에서는 남·북이 마주보고 앉고 통역은 각국에서 두명씩 참가할 계획이다.우리측에서는 중국어,영어통역담당자가 배석한다. 이어 6일에는 특별한 일정은 잡혀있지 않지만 실무선 또는 소규모집단간에 회의를 한차례 갖고 7일에는 국가별로 예비회담에 관한 평가를 실시할 예정이다.정부는 4∼5일간의 일정으로 마무리짓고 8일쯤에는 귀국한다는 방침이지만 북한의 태도에 따라 일정은 가변적이다.
  • 북경 부시장 부패혐의 정직

    【홍콩 AFP 연합】 단강 북경시 농업담당 부시장이 지난 95년에 발생한 북경시의 대규모 부패 스캔들인 이른바 「왕보삼(전 상무 부시장) 부정사건」과 관련,정직됐다고 홍콩의 중국어 월간지 경보가 북경 소식통을 인용해 1일 보도했다.
  • 한·중·일 선어업협정 검토/한·중 실무회의 폐막

    ◎EEZ와 분리 ‘잠정 해결안’ 강구 한국과 중국은 지난 28일부터 30일까지 상해에서 열린 제3차 한·중 어업실무회담에서 배타적경제수역(EEZ)획정교섭전에 조속히 어업협정을 체결하는 등 어업문제해결을 위한 ‘잠정적 해결방안’을 강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합의는 최근 한·일 외무회담에서도 ‘잠정적 해결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방침을 표명한 뒤 나온 것으로 향후 한·중·일 3국간 어업협상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일본과 중국도 이달초 EEZ획정 이전에 이같은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를 봤다. 외무부 당국자는 31일 “중국은 한국과의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획정 합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어업문제에 대한 잠정적 해결방안을 강구하기를 희망했다”면서 “정부는 이에대해 EEZ 경계획정과 어업협정체결을 위한 양교섭을 병행해 나가되 잠정적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일단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양측은 협정대상수역 등 EEZ경계문제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계속 협의해 나가는 한편 나머지 조항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열릴 다음 회담에서 문안 표현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양측 수산관계자간 별도회의를 통해 북방한계선 부근 특정수역 및 영해내에서의 중국어선 불법조업문제에 대해 중국측의 적극적인 시정조치를 강력히 촉구했다. 이번 회담에는 신정승 외무부 아태국 심의관,유대군 중국외교부 조약법률국 부국장이 각각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보호합시다”

    ◎환경부,‘CITES’홍보 팸플렛 배포/규제대상·위반시 벌칙 등 자세히 소개 환경부는 30일 국어 영어 중국어로 된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홍보 팸플릿 5만부를 제작,해외 관광객과 교포를 대상으로 홍보에 나섰다. 이 팸플릿은 CITES의 내용,규제대상 동식물,위반시 벌칙 등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호랑이뼈나 곰쓸개는 물론 악어가죽으로 만든 가방 또는 핸드백도 반출 및 반입 규제대상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로 만든 약재나 이들 성분이 함유된 의약품을 허가없이 수출입하거나 반입하면 약사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을 승인 또는 허가없이 수출입하거나 반입할 경우 자연환경보전법과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 현대시인 애청의 금화(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5)

    ◎생가어귀엔 수령 500여년 느티나무가…/절강성 중심부에 위치한 비산비야/대시인 기리는 3층높이 방려 이채 이제 발걸음을 강소성에서 훌쩍 절강성으로 옮겼다.옛날 춘추때 같으면 오나라에서 월나라로 건너온 것이다. 금화는 절강성의 중부,그 수도인 항주에서도 남쪽으로 약 170㎞.그토록 멀리 깊숙이 나래를 편 것은 거기가 매력적인 작가로 명말 청초의 희곡가요,소설가인 이어와 중국 현대시 80년사에 가장 많은 독자를 지녔던 공산당 당적을 가진 시인 애청(1910∼1996·중국발음 아이칭)을 낳았기에 말이다. 애청은 필자가 맨처음 해후했던 사회주의 시인이다.아직도 냉전시대였던 83년1월,싱가포르정부가 주최한 제1회 세계중국어작가회의에서 만난뒤,우리는 여러차례 감격의 회동이 있었음에도 막상 그의 고향을 찾은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65년간 시집 20여권 남겨 금화는 비산비야였다.금화시에서 북으로 30여㎞를 달렸을때 작은 소읍 부성을 만났다.부성에서 애청의 생가가 있는 반전장으로 좌회전할때 난데없이 하늘을 뚫을듯 커다랗게세워진 방려을 보고 나를 동행하던 아동문학가요,전 절강사대 총장이었던 장풍씨는 내 어깨를 쳤다. 과연 놀랍도록 높았다.족히 삼층 높이였다.필자가 문학기행하는 동안 처음 보는 시인을 위한 방려다.사실 애청이 이 나라 이 체제에 끼친 문학적인 지위는 이 방려의 높이에 상당했다.1932년부터 지난해까지 65년동안 벌써 스물몇권의 시집에,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이란 감투도 그러했다.그러나 그의 외형적인 간판보다는 중국이 가장 암울했던 30년대와 40년대,50년대를 겪는 동안 중국인에게 민족의 긍지와 광명의 추구를 절규함으로써 중국인의 정서를 비장하게 무장시켰던 시인이다.특히 30년대,그의 출세작인 ‘따옌허,나의 유모여!’를 비롯해 ‘북방’‘횃불’‘태양에게’‘눈은 중국의 대지에 내리고 있다’‘거지’‘나는 이땅을 사랑한다’‘나팔수’ 등 중일전쟁때의 작품들은 모든 중국인에게 눈물없이는 읽을수 없었던 민족의 감동이었다. 방려에서 서쪽으로 5리 남짓.편편한 농촌으로 차를 돌렸다.여기가 ‘반전장’이다.애청의 본명 장해징대로 여기는 장씨의 집성촌이다. 그는 여기 장씨 마을에서 대농이요,지주의 아들로 태어나서 1928년 항주의 국립미술대학에 진학하기까지 18년동안 살았다. ○대농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차가 이윽고 마을 복판에 있는 공터에 닿았다.바로 그 앞 2층집 하얀 흙벽 까만 대문위에 ‘애청고거’라는 글씨가 붙어있다.필자는 왈칵 치미는 감개에 목이 메었다.우선 생전에 깊었던 교분때문이요,다음은 최근 10년동안 그는 매년 10월마다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마지막까지 각축을 벌였던 석패의 주인공이었다는 점, 거기다가 그는 지방 토호의 아들이요,전위적인 화가였고,애국적인 당원이었지만 한 평생 울분과 불우속에 살다 간 비국의 화신이었다.사실 필자는 그의 뜨거운 눈물을 여러차례 보았다.다만 그의 만년이 순풍이었지만 그것은 욕된 안일이었다. 애청은 출생과 함께 미신의 희생물이었다.그의 명줄이 짧아서 남에게 출양해야 오래 산다는 점쟁이 말대로 그는 장씨 마을에서 10리쯤 떨어진 따옌허(대언하)’라는 빈촌,거기서 빈농으로 살아가는 조(1878∼1924)씨라는 아낙네에게 4년을 입양,다섯살때에야 부모의 슬하로 돌아왔다. 또 한번의 울분,1932년,그가 상해에서 ‘중국좌익미술가연맹’에 가입,‘춘지예술사’를 조직했다가 국민당 정부에 체포,4년이나 옥살이한 것이다.그는 비록 옥중에서 그의 출세작 ‘따옌허­나의 유모’등 많은 명작을 썼지만 국민당에 대한 설원이 깊어 그의 필명을 ‘애청’으로 정했는데 바로 애자는 국민당의 수령인 장개석의 장씨 그 초두를 가위표로 부정한 것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4년동안 옥살이도 또 한번은 중공이 건국한 뒤,‘중국문학예술가연맹’을 발족하고 중국 대표적인 문학지인 ‘인민문학’이나 ‘시간’ 등을 창간하고 그를 편집하는 등 활동을 펴던 1957년 뜻밖에 우파로 몰려 1978년 복권되기까지 20여년 흑룡강·신강 등 변방지역에서 강제노동을 당했던 것이다. 필자는 문안으로 들어섰다.목조 2층,약 80평의 생가는 입구자 구조,작은 마당 복판에는 우물,우물가 건넌방이 애청의 공부방이란다.그때 쓰던 홍목 책상과 걸상이 당년의 부잣집 흔적임이 역연했지만 벌써 70여년전 소년 장해징의 쓸쓸한 휘파람 소리가 어디선지 들리는 듯했다. 애청의 생가를 나와 뒷 터로 나갔다.거기는 커다란 연못에 500∼600년 수령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수호신인양 서있다.애청의 시집속에 나오는 ‘두그루 나무’나 애청의 그림속에 자주 나오는 고목이 바로 여기서부터 얻은 시상이요,화상임을 확인했다. ○무덤엔 황량한 풀더미만… 실상 필자가 애청의 생가를 찾은 것은 애청 문학의 발화점인 따옌허를 찾기 위해서였다.따옌허는 애청 유모가 살던 고을 이름이요,동시에 애청 유모의 이름이기도 했다.우리 나라도 그렇지만 시집온 아낙네를 그 친정 고을로 부르는 택호를 썼기 때문이다. 그 따옌허는 농촌 개조로 원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현지의 말때문에 그만 두고 그대신 따옌허의 무덤이 생가에서 불과 5리 떨어진 논가 작은 언덕에 있다는 것이다.귀가 번쩍 트였다.사실 말이지 따옌허같은 여인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애청은 없었을지 모른다.애청이 그녀의 젖을 먹고 그녀의 두꺼비같은 손으로 지어준 밥을 먹고 자랐기에 겨레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것이다. 그 무덤은 황량한 풀더미였다.하지만 그의 ‘대연하지묘’라는 묘표와 ‘따옌허는 나의 유모입니다.나는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하는 비명이 모두 당대 최고의 시인 애청의 친필로 세워졌다는 사실도 필자를 감동시켰다.
  • 중 총리 주용기 내정

    【홍콩 AFP 연합】 주용기 중국 부총리(69)가 올가을 당 제15기 전국대표대회(15전대회)에서 총리로 임명될 예정이라고 홍콩의 중국어 신문 쾌보가 28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주부총리가 차기 총리가 될 것이 ‘매우 확정적’이라면서 이에 따라 이붕 현 총리(69)는 국가 부주석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 소식통에 따르면 이같은 인선 내용은 북대하 회의에서 결정됐으며 강택민 당총서기는 차기 총리로 주 부총리를 원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경제적 능력을 인정,이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 정산종사 탄생 100돌 앞으로 3년/원불교 대대적 추모사업

    ◎탄생지 경북 성주군일대 성지 조성/법어 번역·대규모 학술대회 추진도 원불교는 오는 2000년 첫 종법사 정산종사(1900­1962)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올해부터 추모사업을 대대적으로 준비한다. 우리 고유의 민족종교인 원불교는 최근 ‘정산종사 탄생 100주년기념사업회’(회장 김삼용·전 원광대총장)를 발족,정산종사(본명 송규)의 뜻을 기릴수 있는 각종 사업계획을 확정했다. 1943년 열반한 원불교 교조 소태산 대종사에게 법통을 이어받은 정산종사는 해방 전후부터 60년대 초반까지 원불교의 기반을 탄탄히 다져 오늘의 교단을 육성한 주역.기념사업회는 정산종사 탄생지인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동 일대를 교단의 성지로 지정하고 부지 1만1천여평을 매입,‘정산기념관’을 건립할 예정이다.오는 2000년 완공될 이 기념관은 순례자의 훈련관과 기도실,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원불교 제2의 성지로 태어난다. 사업회는 또 2000년안에 영남지역에 대규모 공원묘지도 조성하는 한편 청소년 훈련소도 건립하고 문제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안학교’도 대구 인근에 세운다.전북 익산에 중앙총부를 두고있는 원불교가 올해를 계기로 과거 전남·전북지역의 포교에서 벗어나 영남지역 교화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방침이다. 사업회는 또 학술과 편찬,역경사업에도 전에 없는 관심을 쏟기로 했다.98년 익산에서 99년 대구에서 차례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2000년에는 서울에서 대규모 국제학술대회를 연다는 것.또 기념논문집인 ‘정산종사와 원불교사상(가제)’ ‘삼동윤리와 종교협력운동(가제)’ 등을 펴내고 정산종사 법어도 영어와 일어·중국어·에스페란토어로 번역한다. 탄생 100주년 해당년도인 2000년에는 대규모 기념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원불교예술제 사진전서예전 미술전시회 등도 개최하고 정산종사의 전기집필과 삼동윤리의 사회화운동 전개 등도 계획중이며 3년전부터 추진중인 FM라디오방송국인 ‘원음방송국’설립도 추진한다. 정산종사는 9살때 ‘통감’을 읽고 나라를 바로잡는 큰 인물이 되겠다는 뜻을 품은뒤 스승을 만나기 위해 1917년 전북 정읍을 찾아 ‘불법연구회’라는 교단을 창설한 소태산대종사를 만나 그를 스승으로 삼고 원불교 교단을 창건했다.소태산 대종사가 열반하자 그의 유지에 따라 교단발전에 진력,원광대학을 설립하고 원불교역사 ‘불법연구회 창건사’,깨달음의 세계를 읊은 시 ‘원각가’,해방후 국가건설 강령을 제시한 ‘건국론’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특히 열반때 남긴 게송 ‘삼동윤리’는 그의 사상을 대표하는 것으로,소태산 대종사의 일원주의에 입각한 세계평화의 실천이념이 잘 드러나 있다.삼동윤리란 ‘한 울안 한 이치’라는 뜻의 동원도리,‘한집안 한권속’의미의 동기연계,‘한 일터 한 일꾼’이라는 뜻의 동척사업을 일컫는다.
  • 북 경비정 또 북방한계선 침범/어제 연평도부근

    ◎1시간50분 머물다 돌아가 북한 경비정 한 척이 4일 상오 8시52분쯤 서해 연평도 서남쪽 27.78㎞ 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2.78㎞ 가량 침범한 뒤 아군 고속정 5척이 대응 기동하자 1시간50여분만에 북으로 돌아갔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북측 지역인 등산곶에 머물던 북한 경비정 한 척이 북한 영해 근처에서 조업중이던 중국어선 단속차 남하하다 NLL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2일 하오 10시49분에도 북한 경비정 한척이 중국어선을 단속하다가 서해 북방한계선을 침범,5시간동안 머물다 되돌아갔었다.
  • 북 경비정 북방한계선 침범/연평도부근 5시간 머물다 돌아가

    합동참모본부는 북한경비정 1척이 2일 하오 10시49분쯤 서해의 북방한계선(NLL)을 침범,연평도 서남쪽 14마일 해상에서 5시간 가량 머물다 해군 함정이 출동하자 돌아갔다고 3일 밝혔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 경비정이 황해남도 등산곶 앞바다에서 조업을 하다 단속을 피해 남하하는 중국어선을 4∼5척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북방한계선의 남쪽 3마일까지 내려왔다』면서 『연평도 주둔 아군 고속정 3척이 출동하자 3일 상오 3시50분쯤 되돌아갔다』고 말했다.그러나 우리 군은 이번 북방한계선 침범이 의도적인 도발이 아니라고 판단,경고방송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 중 대사관서 홍콩비자 발급/반환후 달라지는것

    ◎HONG KONG,CHINA로 표기/홍콩달러 계속 사용… 국제전화 동일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반환되면 비즈니스나 출입국 절차는 어떻게 달라질까.홍콩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알아야할 주요 내용들을 문답식으로 풀어본다. ­홍콩 출장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입국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나. ▲14일 이내 체류를 목적으로 홍콩에 입국할 경우 반환 이전과 마찬가지로 비자를 발급받을 필요가 없다.그러나 홍콩을 경유해 중국으로 갈 경우 사전에 한국에서 중국입국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홍콩 비자신청은 어디 가서 하나. ▲서울의 중국대사관에 가서 해야 한다. ­홍콩에 국제전화시 중국 국가번호를 사용하나. ▲홍콩의 기존국가번호 852를 그대로 사용한다. ­홍콩달러화가 그대로 사용되나.또 환율제도는. ▲홍콩달러화는 법정화폐로 그대로 사용되며 환율이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물론 중국의 원화도 공식화폐로 함께 사용된다. ­홍콩에도 중국과 동일한 수입관세가 부과되나. ▲자유항으로서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는 만큼 법률이별도로 정하지 않는한 관세를 징수하지 않을 것이다. ­반환뒤의 공용어가 중국어 하나로돼 영문계약서 수정이 필요한게 아닌가. ▲그럴 필요가 없다.영어는 중국어(보통어 및 광동어)와 마찬가지로 홍콩의 공용어로 계속 사용되기 때문이다. ­홍콩에서도 중국어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나. ▲그렇치 않다.영어도 공용어로 남는 만큼 우리 기업입장에서는 국제적으로 관례화되고 상용화된 영문 계약서를 계속 사용하는게 좋다.왜냐하면 중문 계약서는 불명확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선적서류에 홍콩명칭이 그대로 사용되나. ▲그렇치 않다.HONG KONG,CHINA라고 써야 한다.
  • 김 대통령 유엔·멕시코 순방여로­뉴욕 이틀째

    ◎“DMZ 생태계 보존노력”에 큰 호응/한·불 정상회담­톰슨 파문 유감 표명에 시라크 사과/한·탄자니아 회담­77그룹의 비동맹외교 지평 넓혀/한·헝가리 회담­“OECD 신규회원국 사이 긴밀 협력” 유엔 방문 이틀째를 맞은 김영삼 대통령은 24일 상오(이하 한국시간) 유엔특별환경총회에서 연설한데 이어 프랑스,탄자니아,헝가리 정상들과 연쇄정상회담을 갖고 협력관계를 다졌다. ○3개국 정상과 연쇄회담 ▷유엔총회 연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환경특별총회에서 「세계화 시대의 환경협력」이란 주제로 연설.21번째 연사로 나선 김대통령은 10분간에 걸쳐 한국의 환경보전정책을 소개하는 한편 ▲개도국에 대한 재정지원 ▲공공기술 이전 ▲방사성 폐기물 안전관리 등을 촉구. 김대통령은 특히 연설에서 『한반도의 분단현장인 비무장지대의 자연생태계를 한반도 평화와 환경생명의 모범지역으로 보존할수 있도록 남북한 협력의 장이 열리기를 기대한다』고 제안,많은 참가국으로부터 호응을 얻기도. ○…김대통령은 연설 시작 30분전에 총회장에 도착,앞줄에서 5번째인 우리나라 대표단석에 착석해 다른 나라 정상들의 연설을 경청. 김대통령은 라잘리 의장(주유엔 말레이시아대사)의 소개로 상오 5시 정각 중앙연단에 등단,차분한 목소리로 연설.김대통령의 연설은 유엔의 평소 관례대로 영어와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중국어 아랍어 등 6개국어로 동시통역됐다.유엔측은 김대통령의 연설 시작과 동시에 연설문의 영문내용을 즉시 각국 대표들에게 배포하기도. 손명순 여사도 회의장 우측에 마련된 특별석에서 김대통령의 연설을 경청. ○G8정상회담 결과 설명 ▷한­프랑스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유엔환경총회 연설이 끝난뒤 본회의장 뒷편에 마련된 임시회의장에서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과 약 30분간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공동관심사에 대해 협의. 김대통령은 회담장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시라크 대통령이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며 악수를 청하자 『정말 반갑습니다』라고 화답. 두 정상은 회담장 입구에 세워진 유엔기를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위한 포즈를 취한뒤 양국 외무장관등이 배석한 가운데 회담에 들어갔다. 시라크대통령은 먼저 인사말을 건네면서 김대통령의 무릎에 잠시 손을 얹어 친근감을 표시한뒤 덴버에서 열린 8개국(G­8) 정상회담 결과를 상세히 설명. 김대통령은 지난번 콩고사태때 한국민을 대피시키는데 도움을 준데 감사를 표시했으나 대우의 톰슨사 인수파문과 관련해서는 『우리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으며 한국기업이 공정하게 대우받기를 원하고 있다』고 유감을 표시. 시라크대통령은 『대우와 김우중 회장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책임을 통감하며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정중히 사과. ▷한­탄자니아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이날 밤 벤자민 음카파 탄자니아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실질협력 증진방안 등을 논의. 김대통령은 숙소인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 4층 스위트룸 입구에서 음카파 탄자니아대통령을 맞으며 반갑게 악수한뒤 기념촬영에 이어 정상회담을 시작.김대통령은 탄자니아 진출 한국기업에 대한 탄자니아정부의 관심과 지원을요청했으며,음카파대통령은 협조를 약속. ○진출 한국기업 지원 약속 김대통령은 이어 양측 사정으로 올해 안에 실현되지 못한 음카파대통령의 방한이 추후 적절한 시기에 성사되기를 희망. 동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탄자니아는 비동맹그룹인 「77그룹」 의장국을 맡고 있으며 그동안 친북외교를 펼치다 지난 92년 4월 우리나라와 수교. 김대통령을 수행중인 외무부 관계자는 『탄자니아는 비동맹권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나라』라며 『이번 회담이 양국 정상간 첫 대좌로서 우리의 비동맹외교 확대에 좋은 계기가 됐다』고 평가. ▷한­헝가리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이어 25일 새벽 같은 장소에서 아라파드 곤츠 헝가리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 통상 등 실질협력을 확대시켜 나가기로 합의. 두 정상은 특히 양국이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신규회원국으로서 서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나가기로 다짐. 김대통령은 지난 3월 헝가리를 방문해 정상회담을 가질 계획이었으나 한보사건 등 국내사정으로 취소했었다.
  • D­12/언론변화(홍콩 주권반환:6)

    ◎언론사 생존위해 자체검열 도입/중,수년전부터 길들이기 공작… 공공연히 탄압/명보 등 유력지 대륙 비판자체 눈치보기 극심 「자체검열」이라는 단어는 오늘의 홍콩 언론상황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중국으로의 귀속을 앞두고 홍콩언론들이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주권반환후에도 살아남기 위해 중국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홍콩언론은 영국의 자유민주주의 영향을 받아 그동안 많은 자유를 누려왔다.그러나 홍콩언론들은 중국의 「홍콩언론 길들이기」에 화답하며 자체검열을 통해 중국에 우호적이 되고 있다. 홍콩에서 가장 권위있는 신문으로 중국에 비판적이던 중국어 신문 명보와 영어신문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등도 중국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대표적인 반중국적 신문이었으나 홍콩반환을 앞두고 중립적 논조를 띄며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 홍콩언론들의 중국 눈치보기는 지난 4월 이주명 민주당 총재의 미국방문 보도에서도 잘 나타났다.대분분의 홍콩언론들은 중국에 가장 비판적인 이 총재가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고 홍콩의 민주주의 보장을 강조했을때 일방적으로 그의 태도를 비난했다. 홍콩 중문대학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553명의 언론계 인사중 50.3%가 「중국정부에 대한 비판을 조심하고 있다」고 대답했다.반면 주권반환후에도 언론자유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대답은 7.4%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은 겉으로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말한다.등소평도 죽기전에 홍콩의 계속적인 번영을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말했으며 홍콩반환협정도 언론자유를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언론사 사주등에게 은밀히 정치·경제적 압력을 넣거나 회유하는 등 중국의 언론길들이기는 수년전 부터 진행돼 왔다고 홍콩의 한 언론인은 말한다. 중국의 언론길들이기는 빈과일보의 경우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빈과일보는 중국에 비판적인 신문으로 역사는 짧지만 최대 신문중의 하나로 발전했다.빈과일보의 성공은 가격파괴와 흥미위주의 대중지를 지향한 전략적 측면도 있지만 중국에 비판적인 기사가 홍콩독자들의관심을 불러 일으킨 측면도 있다고 할수 있다.빈과일보는 중국의 권력투쟁등 민감한 부분도 보도해왔다.그러나 중국에 대한 비판적 기사로 중국의 보복을 당했다. 중국당국은 빈과일보가 이붕 총리를 비판한 기사를 보도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사주인 지미 라이씨가 경영하는 기업의 중국내 매장을 강제 폐쇄시키고 계열사들의 홍콩 증권시장 상장을 저지했다. 홍콩에는 현재 6백40만 인구에 비해 너무 많은 60여종의 일간신문과 6백종류가 넘는 각종 잡지가 발행되고 있다.그 결과 언론사들은 대부분 영세성을 면치못하고 있다.이때문에 중국에 우호적인 기업들이 광고를 주지않으면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다. 그러나 일부 언론인들은 반환후 중국의 탄압을 우려,미국이나 캐나다 등으로 이민가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문회보 편집장과 월간지 당대 편집장을 지낸 정상씨는 지난 4월 싱가포르로 이주했으며 홍콩의 저명한 언론인중 한명인 라부 전 신만보 편집국장은 샌프란시스코로 이민갈 예정이다. 일부 언론인들의 이러한 홍콩탈출과 중국의 언론 길들이기 등은 홍콩의 언론자유 미래가 밝지 않음을 예고하고 있다.이 민주당총재는 『언론의 자유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강조한다.일부 언론인들은 홍콩반환과 함께 「언론의 자유」도 반환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 「서유기」의 무대 연운항(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9)

    ◎“손오공의 출생지” 화과산 곳곳에 전설이…/삼원궁경내 현장법사의 기념관 우뚝/칠십이동 괴석원에 「저팔계」도 의젓이/지장암·숙성촌에 아직도 신라고승·무역상 체취가… 중국 4대 기서의 하나로 「서유기」의 발상지요,그 주연인 당승 삼장법사와 돌원숭이 손오공의 출생지인가하면 청대의 「홍루몽」과 「유림외사」의 혼성 아류소설로 보여지는 또 하나의 명작 「경화연(경화연)」의 산실은 바로 강소성 북단 항구인 연운항이다. 그곳은 명작의 무대요 산실일 뿐 아니라 우리와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위도상 부산과 목포에서 줄곧 서쪽으로 황해를 건너면 닿는 곳.일찍이 당나라때는 신라 사람들이 무역하던 해상의 거점이요,신라의 고승들이 도를 닦느라 부락을 이룬 곳이다. 중국문학사상 가장 성공한 신마소설로서 오승은(1504∼1582)의 「서유기」는 시작부터 황당무계했다.화과산 산상에 있던 한덩이 신선 바위.그 바위가 열리면서 알이 나오더니 석란은 바람속에서 돌원숭이로 변하고 돌원숭이는 수렴동 동굴속에서 동천복지를 발견,거기다 뭇 원숭이를 거느리고 깃들이다가 그들로부터 「미후왕」으로 추대되고,그 뒤 천궁과 지부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삼장법사를 도와 팔십일난을 극복,끝내 서천인 인도로 가서 불경을 얻어오기까지 위기를 배제하고 요마들을 소탕하는 용감하고 슬기있는 손오공의 영웅신화인 것이다. 그 돌원숭이 영웅인 손오공과 당승 삼장법사의 출생지인 화과산이 바로 오늘날 연운항시 동쪽 15㎞지점의 운대산이라서 거짓말같은 사실에 누구나 얼얼할 수 밖에 없다. 「서유기」그 첫회를 펼치면 12만9천600년을 1원으로 하는 천지의 역수로부터 망망묘묘한 혼돈의 세계를 말하면서 영기를 통한 원숭이가 태어난 화과산을 묘사했다. 「동승신주,해외일국토,명왈오래국.국근대해,해중유일명산,환위화과산.차내십주지조맥,삼도지래용,자개청탁이입,홍판후이성,진개호산!」 (동승신주의 바다 저쪽에 또 하나의 국토가 있나니 이름하여 「오래국」.오래국은 넓은 바다를 끼고 바다 한복판에 산이 솟았나니 이름하여 「화과산」.이 산은 십주의 할아버지요,3도의 기원으로 천지가개벽되어 청탁이 갈라진 뒤의 정말 명산이었다)고. 물론 중국에는 여러곳에 「화과산」이 있다.1982년 10월,연운항시에서 전 중국의 「서유기」전공학자들이 모여 제1회 「서유기」학술세미나를 개최하여 현지 답사와 많은 문물의 고증을 통해 연운항시외에 있는 화과산이야말로 「서유기」의 발상지임을 공인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서유기」의 저자인 오승은의 고향­회안에서 불과 130㎞요,외가가 연운항인데다 오승은이 두번이나 화과산을 올랐다는 방증 외로도 「서유기」에 묘사된 화과산이 사실과 근접했고,「서유기」의 스토리가 연운항 일대에서 수백년 전래했던 전설과도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필자는 서둘러 화과산으로 차를 몰았다.불과 20분에 작은 어촌을 방불케하는 화과산향에 이르렀다.거기서 동쪽으로 운대산의 주봉인 화과산(해발 625m)까지는 갈수록 비탈이었다.그 산구 왼편에는 대촌댐,댐옆으로 그 유명한 아육왕탑.그것은 40.6m의 높이에 9층8각탑,북송 천성1년(1023)무렵에 고대 인도의 아육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뒤 열네차례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탑.강소 북부지역에서 가장 오래고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산구에는 높이 12m,가로 28m의 아치형 산문,거기에는 원숭이를 비롯,사자·호랑이·돼지·곰등 백쌍의 동물이 형형색색의 조각으로 섰으니 과연 손오공의 고향임을 실감케 했다. 산문을 지나 선인교를 넘고 다시 남천문.한참을 오르자 사로탑,그 옆에 해발 580m의 청풍정에 운대산 그 복부를 굽어보는 삼원궁이 있다.삼원궁은 화과산의 가슴이다.당승 3형제를 기린다는 그 절에는 현장법사의 기념관이 있고 「서유기」의 유적이 모두 삼원궁을 중심으로 분포되었다. 거기서 동북으로 오르면 높은 벼랑에 동굴,그 동굴밖에 드리운 물줄기,이름하여 「수렴동」이라 일컫지만 물은 마른채 「고산유수」라는 각자가 선명했고,그 각자가 쓰여진 명·가정23년(1544)은 「서유기」의 저작시기보다 몇십년 빨랐다.수렴동에서 북으로 오르면 옥황각,내려가면 후원,그 아래로 칠십이동에 괴석원,물론 팔계석도 그 곁에 있다.그 괴석의 숲속을 거닐다 보면 「서유기」의 교과서를 읽는 양 흥미진진했다.어떤 것은 「서유기」의 등장인물에 유사했고 어떤 것은 억지 춘향인데,400여년전 여기 어디쯤 「서유기」를 구상하며 거닐었을 오승은의 발자국이 찍혔으리라. 그렇게 오르내리다가 문득 만난 것이 문자 그대로 바다를 바라본다는 정각­조해정에 이르렀을때,멀리 굽어보아도 바다는 보이지 않고 괴석들만 어수선했다.옳지! 이 화과산이 300년전엔 강소 유일의 해도에 솟은 산이었지.1668년의 대지진때 운대산 해안선이 북으로 14㎞나 이륙된데다 토사에 메운채 1700년대부터 벽해가 상전 되었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그때는 이 산이 출렁이는 황해속에 우뚝 솟았고 사슴과 여우가 뛰놀면서 기화요초와 송백·지란을 품에 안았겠지.뿐만 아니라 이 산의 서쪽 골짜기 지장암과 숙성촌에는 신라의 중들과 신라의 선원들이 도를 닦고 부락을 형성했던 곳이다.하긴 조선 성종때 우리나라 최세진이 엮은 중국어교재인 「박통사언해」속에는 벌써 「서유기」를 소개한 바 있으니 해주(연운항의 옛 이름)는 여러모로 한·중 교류의 거점이었다. 화과산을서둘러 하산한 뒤,필자는 다시 남쪽으로 20㎞지점인 판포까지 단숨에 달렸다.「경화연」의 산실을 찾아서. 당나라 여황이었던 무칙천의 황제 찬탈과 붕괴과정을 겉으로 과거에 낙방한 당오란 사람이 해외 40여개국을 나들이한 견문과 당규신 등 백명의 재녀들이 여권을 신장하는 고사를 안으로 쓴 재자소설로 윤리성·애정성·사회성·무협성·철학성·풍자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 소설의 저자 이여진(1763∼1830)이 스무살무렵 그의 고향인 북경을 떠나 이곳 포구에 와서 그의 불우했던 벼슬살이의 체험을 살려 20년에 걸쳐 완성했는데 1818년에 출판,중국은 물론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그 산실이 여운항시 판포진 동대가에 재현되었는데 지금은 비옥한 농촌이지만 당시는 소금을 만들던 염장.역시 상전벽해를 느끼게 했다. 그런데 「경화연」속의 「군자국」이 예의지국으로 그려졌는데 그 군자국의 모델이 신라라는 설이 있어 우리 입맛을 다시게 했다.
  • 29년만에 전면 개정된 천주교 기도문

    ◎한국가톨릭 현대화·생활화 역점/우리말 미사이은 토착화 성과… 국악성가도/8월15일 성모승천 대축일부터 시행키로 천주교가 현재 사용중인 모든 기도문을 29년만에 전면 개정함으로써 지난해 연말 미사통상문 개정과 함께 한국 교회의 현대화·생활화 작업이 큰 진전을 보게 됐다.또 일부 성직자들과 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미사에 국악성가가 도입되고 한복을 입은 성자와 성인들의 모습이나 상본(상본·천주 천신 또는 성인의 모상) 등 음악과 미술분야의 토착화 노력들이 선보이고 있어 한국 가톨릭의 변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선교 213주년을 맞는 한국 천주교는 전래 당시 로마교회의 전례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교회사가들은 『한국교회는 로마교회보다 더 로마적』이라는 평을 해왔다. 1963년 제2차 바티간 공의회가 열린 이후 전세계 천주교는 각국별로 사목헌장·교회헌장·전례헌장 등에서 토착화 작업을 추진,가톨릭 본래의 의미인 보편교회를 강조해오고 있으나 한국 교회의 보편화는 우리말 미사가 유일한 성과라고 할만큼 토착화 작업을 추진하지 못했다. 라틴어로만 미사를 드리던 우리 교회는 모국어 사용을 권장한 63년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말로 미사를 드리기 시작했으나 미사통상문과 기도서는 현대어에 맞지않는 고어와 중국어 직역 등이 많아 신세대와 새 신자들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교리적·사상적·신학적 측면에서 한국교회의 토착화 작업을 진행해온 한국사목연구소(소장 김종수 신부)와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소장 심상태 신부)는 지난 87년 「가톨릭 상제례토착화 시안」도 마련,전례위원회에 상정했으나 이또한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천주교주교회의 전례위원회(이병호 주교)가 가톨릭기도서의 최종 개정안을 확정하고 이를 오는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부터 시행키로 함으로써 우리 교회의 토착화는 큰 발걸음을 떼놓게 된 것이다. 전례위원장 이병호 주교는 『기도문을 현대어로 고치는 것 이외에도 앞으로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기도서 전체의 구성과 내용도 완전히 바꾸겠다』고 말했다.천주교의 한 관계자는 『한국교회가 추구해야할 신앙의 토착화 작업은 한국의 전통과 현실안에서 복음의 진리를 보다 적합하게 선포하고 생활화 하는 작업』이라며 『이는 한국인의 종교심성,정감,언어구조,문학 유형에 상응하여 언어화 하는 가운데 한국의 토양위에 깊이 뿌리내리고 결실을 맺게 된다』고 강조했다..
  • 북 보트피플 귀순­서해남하 어떻게 가능했나

    ◎레이더시설 등 낙후… 해상경계 “구멍”/경제난에 외화벌이배 출항 제한 없애/유류부족 심화… 감시선 활동도 느슨 안선국,김원형씨 탈북사건은 북한주민들이 선박만 구입하면 쉽게 해상으로 탈북할 수 있는 북한 해상경계의 허점을 드러냈다. 북한은 전자장비,특히 레이더시설이 낙후돼있고 연료가 부족해 최근 감시활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또 경제가 급격히 악화된 요즘,「외화벌이용」 어선이 출항할 경우에는 북한당국이 제한을 두지 않아 이를 이용한 탈북은 별 어려움이 없다고 귀순자들과 북한문제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지난 89년 북한 인민군 2군단에서 근무하다 임진강을 헤엄쳐 귀순한 김남준씨(35·기아자동차 근무)는 『북한에서는 최근 외화벌이를 위해 중국 기업 등과 개별접촉을 권장하고 있기 때문에 외화벌이 지도원인 안선국·김원형씨가 외화로 배를 구입하는 일은 쉬웠을 것』이라면서 『북한의 해안경비대는 남쪽 배의 해상침투를 막는 일에 주력하고 북한배에 대해서는 특별히 감시하지 않는다.북한의 선박은 대부분 고기잡이용이기 때문에 기업소(기업)의 소유라는 번호만 있으면 의심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94년 3월20일 가족 3명과 함께 중국,홍콩을 거쳐 귀순한 여만철씨(51·방지거병원근무)는 『지난 87년 김만철씨가 배를 타고 귀순한뒤 선박의 출항때 북한 보위부가 엄격한 관리를 하고 있다.보위부에서는 기관장,갑판장,선원 등 신분이 확인된 4명이상이 배를 타지 않으면 출항을 시키지 않는다.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노모까지 있는 안씨와 김씨의 가족들이 어디서 배에 탔는지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여씨는 『하지만 해상경비는 매우 허술한 편이어서 일단 출항과정만 통과하면 탈북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한 북한문제전문가는 『북한의 해상감시활동이 약화돼 최근 우리 어선이 가끔 북쪽 영역으로 들어가도 별 반응이 없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때문에 이번 탈출어선도 제대로 추적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또 『북한 인민무력부는 무역회사를 따로 운영하는 등 자체적으로 돈을 벌고 있다.이번 배의 뱃머리에 인민무력부가 부여한 특정번호가 있고 선미에 중국어선 이름이 따로 쓰여있는 것으로 보아 김씨가 중국에서 사들인 이 어선을 김씨가 속해있는 총참모부 공병부 소속으로 지정해준것 같다』고 덧붙였다.
  • 미국은 홍콩의 자유 수호해야(해외사설)

    홍콩의 중국반환은 미국 힘에 대한 하나의 사례연구가 될 것이다.외교·군사적 압력이라는 관습적 수단은 홍콩의 자유를 지키는데 적절치 않으며 중국의 모든 무역특권을 무효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경제적 제재는 앞으로의 문제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홍콩반환은 중국의 주요 강대국 출현이라는 문제의 일부이다.이는 오늘날 가장 어려운 국제적 도전일 지 모른다.중국은 미국의 우방도 아니지만 적도 아니므로 냉전시대의 적대및 봉쇄정책은 어울리지 않는다.12억의 인구를 갖고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국가이자 군사강국의 야심을 키우는 중국은 언젠가는 미국의 경쟁국이 될 것이다. 홍콩은 곧 중국의 인내와 의도에 대한 시험장소가 될 것이다.많은 홍콩의 기업가들은 중국이 자유스런 금융시장을 위협하지 않는한 희미해가는 민주주의에도 만족할 것이다.지역언론 특히 중국어 신문은 요청받지 않았음에도 이미 중국의 비판에 입을 다물고 있다.싱가포르 식의 독재정치가 서서히 올지 모른다. 미국과 다른 민주국가들은 중국에게 홍콩의 자유및 법의지배를 말살하는 것은 중국의 국제적 지위에 손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말해야 한다.클린턴 대통령은 이를 말하는데 주저하고 있다.미국은 홍콩에서의 중국의 독재는 미 국방부와 중국 군부와의 사이에 증가하는 교환을 멈추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중국이 알게 해야 한다. 6월에 의회투표가 예정된 중국에 대한 무역특권의 배제는 극단적 접근방법이다.이는 중국제 싼 제품을 사서 쓰는 저소득 미국인들에게도 타격을 줄 것이다.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보잉사같은 일부 미국회사들도 피해를 입을 것이다.그러나 보통의 수단으로서 일괄적인 관세인상같은 위협책은 버려서는 안된다.이 문제를 6개월마다 재검토하자는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의 제안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른 산업선진국들의 협력이 있으면 보다 선택적인 무역제재가 적당할 것이다.미국관세가 인상되면 중국은 제2의 시장을 찾을수 있겠지만 유럽과 일본과의 공동노력은 중국무역에 중대한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중국의 인수날짜가 다가올수록 미국은 홍콩의 자유수호에 결단적일 뿐 아니라 창조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미국 뉴욕타임스 5월11일〉
  • 어선 타고 “필사의 남행” 나흘/북 두가족 귀순까지

    ◎“안씨 신의주 출발… 철산서 김씨 합류/오성홍기 걸고 중국 어선들 속숨어 탈출 북한 주민 안선국씨(46)와 김원형씨(57) 일가족 14명의 탈출 과정은 피말리는 위기의 순간으로 점철된 극적인 드라마였다.32t짜리 목제 어선에 의지,나흘동안의 사투 끝에 자유의 땅을 밟았다는 안도감에 이들은 마냥 눈물만 흘렸다. 『라디오 수신기를 통해 평소 남한 사회를 동경해 왔습니다』 탈출 선박에서 우리 해군 함정으로 옮겨탄 이들은 떨림과 감격에 한동안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안씨는 탈출선박의 선장,김씨는 기관장.배는 조선해상인민군 1669부대 소속 수산부 부업선이었다.두사람의 거주지는 신의주였다. 이들은 평소 라디오를 통해 간간히 전해들은 남한사회를 이심전심으로 동경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탈출의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평북 철산군 동천리 수산부업선 부두에 정박 중이던 중국 어선의 출항일이 지난 10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날을 D데이로 잡기로 했다. 「잡히면 끝장」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마다 망설이기도 했지만 자유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까지 생기는 북한은 생지옥과 다름 없었다. 선장 안씨가 9일 가족과 함께 신의주를 출발,다음 날인 10일 통천리 부두에서 기관장 김씨의 가족을 태우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배는 중국어선으로 위장하기로 미리 짜 두었다. 9일 상오 11시30분 안씨는 가족 5명을 배에 태우고 신의주항을 출발했다.중국 어선 「오상어 3043호」로 위장했다.중국 깃발을 배위에 내걸었다. 김씨는 자동차에 가족을 태우고 신의주를 떠나 철산으로 향했다. 배는 이튿날인 10일 하오 1시 동천리 부두에 도착했다.이어 하오 9시쯤 부두에 도착한 김씨 가족은 어둠을 틈타 배에 올랐다. 이들이 동천리 부두를 출발한 시간은 다음 날인 11일 하오 1시.중국 선단을 따라 부두를 빠져나왔다.목숨은 하늘에 맡겼다. 얼마동안 배를 몰다 야간항해를 위해 4시간 가량을 철산 앞바다의 탑도에서 대기했다. 하오 8시가 되자 남서쪽으로 선수를 잡고 9시간 가량을 항해한 뒤 남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시 7시간을 달렸다. 얼마를 달렸을까.동이 트면서 이들은 백령도 부근에서 어로작업중인 중국 어선단을 발견,합류했다.북한 경비정이 있는지를 감시하며 남한 해군 함정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12일 하오 2시25분쯤.먼발치에서 남한 해군 함정이 시야에 들어 왔다.중국 어선의 움직임을 감시 중이던 773 경비정이었다.망설일 것도 없이 중국 선단에서 빠져나왔다.이어 해군함정이 보내는 신호에 따라 귀순의사를 밝히고 해군함정의 뒤를 따랐다.이 때가 하오 4시28분. 이들이 해군함정에 옮겨탈 당시 목선의 중앙 밑부분은 침수된 상태였다.그리고 4시간 후에는 서해 해상에 폭풍주의보가 발효됐다. □탈출 상황일지 ▲9일 상오11시30분=안선국씨 가족,수산부업선을 타고 신의주항 출발.비슷한 시각,김원형씨 가족도 자동차로 신의주 출발. ▲10일 하오1시=안씨 가족,평북 철산군 동천리 부두 도착. ▲ 〃 하오9시=김씨 가족,동천 부두에 도착해 안씨 가족과 합류. ▲11일 하오1시=동천 부두 출항,철산 앞바다 탑도에서 4시간 정박. ▲ 〃 하오8시=7시방향으로항해. ▲12일 상오5시=5시 방향으로 항해. ▲ 〃 낮12시=4시 방향으로 항해. ▲ 〃 하오2시25분=우리 해군 함정에 발견. ▲ 〃 하오4시28분=구조. □귀순자 명단 ◇선장 안선국씨 일가 ▲안씨(48) ▲어머니 김봉선씨(68) ▲부인 김화옥씨(42) ▲장남 일천군(7) ▲장녀 일심양(13) ▲차녀 일영양(9) ◇기관장 김원형씨 일가 ▲김씨(57) ▲부인 김의준씨(54) ▲장남 희근씨(29) ▲며느리 서정심씨(25) ▲손자 남수군(2) ▲차남 희연씨(26) ▲3남 희성씨(20) ▲장녀 순희씨(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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