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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대표단 오늘 방중

    【북경 로이터 연합 특약】 이종옥북한정무원부총리가 이끄는 북한대표단이 27일부터 10월4일까지 8일간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중국관영 신화통신이 26일 외교부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이부총리는 지난 7월 김일성사망이후 중국을 방문하는 북한관리로는 최고위층이라고 신화통신은 밝혔다.북한은 최근 핵개발 의혹등과 관련,서방과 마찰을 빚고있어 이부총리의 중국방문은 주목을 끌고있다.
  • 대만 언론계대표단 첫 방중/열흘간 시찰/뉴스교류·취재장벽 개선협의

    ◎양측 긴장시점서 주목 【홍콩 연합】 대만 언론계의 사장등 책임자들로 구성된 23명의 대표단이 15일 중화항공편으로 처음으로 중국방문길에 올랐다고 대만의 반관영 중앙통신이 이날 크게 보도했다. 신문·통신·TV·라디오방송국의 사장등으로 구성된 대만 언론계 대표단은 시극민중앙통신사사장을 단장으로 25일까지 북경·상해·서안을 시찰하면서 양측간 뉴스교류와 대만언론의 중국내 취재애로사항들을 중국측과 협의한다. 시극민단장은 중국측에 대만언론매체들이 중국뉴스 취재때 당하고 있는 시간·장소·사람수제한과 다른 많은 불리한 대우들을 빨리 개선하도록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언론계 책임자 대표단의 첫 중국방문은 최근 양측관계가 다시 긴장되고 있는 시점에 나와 관심과 주목을 끌고 있다고 중앙통신은 덧붙였다.
  • “중국 주내 핵실험 조짐”/일 정부,정보 입수/도쿄소식통

    ◎무라야마 방중 연기 시사 【도쿄 교도 연합】 일본정부는 최근 중국이 금주중 핵실험을 실시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으며 핵실험이 강행될 경우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의 중국방문은 연기될 것이라고 정부소식통이 9일 밝혔다. 소식통은 중국의 핵실험이 이뤄질 경우 무라야마총리의 조기 방중계획은 무산될 것 같다고 말했으나 정부가 입수한 정보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강택민 중국국가주석겸 당총서기가 지난달 가토 고이치 자민당정조회장과 가진 회담에서 무라야마총리의 중국방문을 공식요청한 것과 관련,다음달중순 총리의 방중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정부는 지난해 10월과 금년 6월 두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실시한 중국에 대해 그동안 핵실험을 중단하라고 촉구해왔다. 이와 관련,가키자와 고지(폐택홍치) 전일외상은 지난 6월13일 북경에서 전기침 중국외교부장과 가진 회담에서 핵실험은 일본의 향후 대중 경제지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일본의 공식개발지원(ODA)수혜국들은 군축을 촉진해야 한다는 정부지침에 비춰볼 때 중국의 핵실험은 유감이라는 입장을 전달했었다.
  • “클린턴,방중 수락”/중 외교부대변인

    【북경 AP 연합】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해달라는 중국측 초청을 수락했으나 정확한 방문일자는 아직 잡히지 않았다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8일 밝혔다. 심국방 대변인은 이날 주례뉴스 브리핑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중국방문 초청을 수락했음을 시사했으며 적절한 시기에 중국을 방문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유학생 중국서 칼부림/술마시다 시비끝 동료살해

    【북경=이석우특파원】 중국서 유학중이던 한국 유학생끼리 싸움을 벌이다 상대방을 칼로 찔러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중국방문객과 여행자가 늘면서 한국인과 관련된 사건 사고가 늘고 있다. 5일 0시30분쯤 중국 요령성 심양시 요령대 기숙사에서 이 대학에 어학연수를 받기위해 머물고 있는 김태곤씨(25)가 같은 대학에서 언어연수를 받기 위해 올 가을학기에 언어진수반(언어연수반)에 새로 입학한 홍석수씨(24·서울 송파구 오륜동 올림픽아파트 109동 201호)와 말다툼을 벌이다 홍씨가 휘두른 칼에 가슴과 옆구리 등 3곳을 찔려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사망했다. 심양시 공안당국과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이들은 이날 하오 10시쯤 학교근처의 술집에서 한국학생 5∼6명과 함께 술을 마시다 시비가 붙어 다투다 학생들이 말려 기숙사로 돌아온 뒤 이날 0시30분쯤 홍씨가 자신의 방에 있던 과도를 들고 김씨의 방으로 가 김씨를 찔러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 중,미에 러무기구매 위협/“금수조치 계속땐 첨단장비 구입할것”

    【홍콩 연합】 중국 외교부는 미국이 89년 천안문사태후 중국에 내린 무기판매 금지조치 및 경제제재조치를 해제하지 않으면 러시아 등 다른 나라들로부터 무기를 구매하겠다고 위협했다고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 외교부 심국방 대변인이 론 브라운 미상무장관이 6일간의 중국방문을 마치고 떠나던 1일 강력한 어조의 성명을 통해 미국이 천안문사태후 내린 제재조치들을 계속 해제하지 않으면 선진 군사장비를 다른 나라들에서 구매하겠다고 명확하게 밝혔다고 말했다. 심대변인의 위협은 중국이 미국이 팔기를 거부하고있는 전투기·미사일 및 정교한 무기들을 러시아로부터 구매하겠다는 것을 밝힌 것이라고 외교분석가들은 말했다. 이들 분석가는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 카드」를 공개적으로 사용한 것은 최근 들어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이를 주목하고 있다고 포스트지는 말했다. 천안문사태후 미국이 중국에 가한 제재조치는 무기금수 이외에 ▲미상품의 해외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보험과재정을 지원하는 미정부기구인 해외민간투자공사(OPIC)의 대중 지원금지 ▲중국 무역발전 지원금지 등 여러 경제제재조치들이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포스트지와 홍콩련합보는 강택민 총서기의 2일 러시아방문은 군사무기구매와 군사협력이 주요의제라고 말했고 성도일보는 중국이 러시아와 항공모함 구매를 협상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 미·중/인권회담 재개 합의/미,중과 50억불계약 체결

    ◎방중 브라운상무/“새달 전외교부장 방미때 논의” 【북경 로이터 연합】 론 브라운 미상무장관은 30일 미국기업들이 중국과 수십억달러규모의 사업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브라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날 하오까지 중국방문 이틀반만에 발전소건립 및 통신분야 등에 걸친 47억달러규모의 상업계약을 체결,당초 기대치를 충족시켰다』고 만족해 했다. 이와 관련,미국관리들은 브라운장관이 이번 주말 출국하기 전 더 많은 사업계약이 발표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또 강택민 중국국가주석겸 당총서기와 이날 상오 약 40분간 회담,『양국관계 전반에 걸쳐 논의했으며 매우 생산적이었다』고 평가한 뒤 이 자리에서 빌 클린턴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관리들은 경제사절단으로 입국한 브라운장관의 중국방문이 성과를 거둠에 따라 클린턴대통령의 방중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북경 AFP 로이터 연합】 중국은 미국과 인권문제에 관한 대화를 갖는데 합의했다고 론 브라운 미상무장관이 30일 밝혔다. 브라운 장관은중국 방문 4일째인 이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양국간 인권문제 논의 재개를 발표하게 돼 기쁘다』면서 그 시기는 전기침 중국외교부장이 미국을 방문하는 다음달 말에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운장관은 인권문제 논의를 재개하겠다는 중국측 결정을 방금 전해들었다고 말하고 전부장의 구체적인 미국방문 세부사항과 인권논의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 미상무 중국방문때 수십억불 계약 체결

    【북경 AP 연합】 중국 대외경제무역합작부는 26일 론 브라운 미국 상무장관의 중국방문과 관련,중·미 양국무역에 있어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라면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대외경제무역합작부의 시 지안신 미주국 부국장은 브라운 미상무장관이 지난 5월 중국의 인권문제를 양국간 무역관계에 연계하지 않을 것이라는 클린턴미대통령의 결정이후 중국을 방문하는 최초의 미국 각료가 될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브라운장관은 27일 밤 미국 유수기업의 임원 24명을 대동하고 북경에 도착,8일간의 중국방문일정에 들어가 홍콩과 상해등도 방문할 계획인데 이번 방중기간중 수십억 달러규모의 각종 민간계약이 확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 “한국정부,미제차 사라/조달분야도 중요 개방 대상”/브라운 미상무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론 브라운 미상무장관은 24일 한국정부가 미제 자동차의 구입을 정부구매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분명한 입장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브라운장관은 이날 중국방문을 앞두고 가진 내셔널 프레스빌딩 기자회견에서 「캔터 미무역대표가 한국 자동차시장의 개방확대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면서 미자동차의 정부구매를 촉구한데 대한 입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분명히 정부구매는 시장을 개방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하면서 『일본·중국·한국등 세계 그 어느 나라라 할지라도 정부조달분야는 개방될 필요가 있는 중요한 분야』라고 말했다.
  • 미 브라운상무 27일 방중/“양국경협 새시대 열겠다”

    ◎재계대표 대동… “수십억불 계약체결 기대” 【워싱턴 AFP 교도 연합】 론 브라운 미상무장관은 23일 이번주에 있을 자신의 중국 방문이 경제분야에 있어 미·중간의 새로운 시대를 개막하는 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27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유수의 미국기업 24개사 대표들을 이끌고 방중하게 될 브라운 장관은 이날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연설에서 이번 방문기간중『21세기에 미국이 갖게 될 가장 중요한 경제관계중의 하나』를 위한 기초가 마련될 것이며 방문기간동안 미국기업들은 수십억달러의 사업계약을 추진,또는 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지난 5월 26일 무역∼인권 연계정책을 포기하고 중국에 무역최혜국(MFN) 지위를 경신한 이후 미각료로서는 처음 중국을 방문하는 브라운 장관은 『미·중관계에 있어 항상 여러 문제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엄청난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면서 이번 방문은 중국과의「새로운 관계」확립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브라운 장관과 함께 중국을방문하는 24개 미국기업들은 통신·교통·발전·금융등 4개분야 회사들로 브라운 장관은 이들 분야가 『향후 중국에서 가장 성장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편 그는 방문기간동안 이붕 중국총리 등과 회담할 예정이며 강택민 국가주석과의 면담도 추진중이다. ◎브라운 왜 북경 가나/연2백억불 무역적자 해소 행보/고성장 거대시장 겨냥… 지재권문제 거론할듯/중선 가트가입 위해 일부요구 수용 불가피 론 브라운 미국 상무장관의 이번 중국방문은 다소 과장해 「빚받으러」 가는 고자세의 여행이다.그만큼 중국은 미국이 마음먹고 걸고 넘어지면 꼼짝없이 당할 빚이 상당하게 쌓여있다. 우선 중국은 지난 5월말 클린턴 미 대통령이 장고 끝에 평소의 공언을 뒤집고 베푼 무역최혜국(MFN) 대우연장 결정에 어떤 식으로든 감사를 표해야 할 입장이다.클린턴의 연장 결정은 중국의 최대 약점인 인권문제를 일단 무역및 경제분야와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것으로 미중관계에서 경제가 정치에 종속된 기존틀을 깨면서 경제분야의 당당한 독자성 확보를 뜻한다.중국경제가 아무튼 커졌다는 걸 웅변하는데 클린턴대통령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나라에서 미국의 수출확대 기회가 유실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그후 3개월이 지났지만 이번 방문을 맞아 브라운장관이나 중국정부나 경제·수출을 유난히 강조한 클린턴의 이 말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현재 중국은 미국에 일방적 무역흑자라는 「빚」을 지고 있다.미국은 중국이 다른 방식이 아닌 무역불균형의 해소를 통해 감사표시를 하기를 기대한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에서 88억달러를 수입한 반면 3백15억달러를 수출,무역흑자가 무려 2백28억달러에 이르러 대미흑자 6백억달러의 일본에 버금가는 무역충격을 미국에 가했다. 중국이 경제에 관해 미국에 지고 있는 큰 빚은 이밖에도 두 가지나 더 있다.먼저 지적재산권 문제로 미국의 음반·소프트웨어·서적·영화 회사들은 중국시장에서 불법해적판이 대량판매돼 지난해만 약 9억달러의 손실을 보았다고 주장,근본적인 시정책을 요구한다. 그리고 중국은 올해안으로 지난 5년동안 추진·시도해온 가트 가입을 성사시키고자 하기 때문에 미국의 무역불균형 해소및 지적재산권 보호 요구를 결코 무시할 처지가 아니다. 중국은 가트에 가입하면 모든 나라와 똑 같은 관세가 매겨지는 혜택이 주어져 대미 쌍무관계에서 더 이상 최혜국대우에 연연할 필요가 없게 된다.이와함께 지난해 9백10억달러로 세계11위인 수출규모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 김덕룡의원 「변신 모색」/마부서 기수로?

    ◎“외부접촉 확대” 선언 왜 나왔나 민자당의 서울시지부장으로 정치일선에 복귀한 김덕용의원이 이미지 변신을 모색하는 것 같다.지금까지 김의원은 대체로 김영삼대통령의 핵심측근,막후참모,밀사의 모습으로 각인 돼왔다.그의 이름은 「정권의 핵심인사들과 창가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귀엣말을 나누며 이따금씩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그런 그가 이제는 보다 개방적이고 포용력 있는 「대중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그러한 변신의 노력에는 지금까지 해온 「마부」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말을 타고 달리는 「기수」로 정치의 전면에 나서보겠다는 뜻도 담겨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물론 김의원 스스로는 그 반대라고 말한다. 지난 20일 김의원이 중국방문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중나갔던 측근들은 그에게서 몇가지 달라진 점을 발견했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언론기피증」이 사라졌다고 한다.이날 공항에 도착한 김의원은 「자발적」으로 기자들과의 간담에 응했다.카메라의 집중조명을 받으면서도 어색함 없이 서울시지부장으로 임명된 소감을 밝혔다.또 서울시장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못박은 것을 비롯해서 「주사파」문제,당 운영방식,앞으로의 포부,심지어는 민주계 내의 알력부분에 대한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변을 해나갔다.『사람을 피한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말을 아껴온 김의원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놀라운 변화였다. 측근들은 김의원의 표정도 많이 밝아진 것 같다고 말한다.김의원은 사람들과 마주칠 때 마다 내내 미소로 맞았고 악수하는 손 끝에 힘을 모았다. 이와함께 업무에 대한 적극성도 한층 더한 것 같다.20일 하오 귀국한 김의원은 곧바로 서울시지부 요원들과 시내에서 만찬을 나누며 업무보고를 받았다.김의원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생각해온 당운영방침에 대해 일가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이같은 「이상현상」은 22일에도 계속됐다.김종필대표와 당3역등 당직자들에게 인사하러 여의도 당사에 들른 김의원은 만나는 사람들과 격의 없는 몸짓으로 인사를 나눴고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도 가졌다.이런 변화에 대해 김의원의 측근들은 『주어진 역할에 맞춘 당연한 변신』이라고 설명한다.김의원 스스로도 『서울시지부를 홍보하는 차원에서 외부와의 접촉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김의원의 이미지 변신노력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하다.
  • “반대파 숙청 신호”­“노선 갈등”/심상찮은 「김정일의 북한」

    ◎92년 승계거론때도 “야심가 책동” 경고/후계체제 마무리에 이상 있을지도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이 꼬리를 물고 있는 가운데 북한 중앙방송이 느닷없이 「야심가·음모가들의 배신행위」를 경고하고 나오는 등 심상찮은 북한의 내부 동향이 외부로 불거져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이같은 조짐은 김이 오는 10월1일 중국측의 건국행사에 참석요청을 받고도 거절했다는 일부 외신 보도와 맞물리면서 김정일체제의 이상설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이상징후들은 아직 정부당국도 그 진위를 검증하지 못하고 있는 첩보단계에 불과하다.예컨대 중국측이 건국 45주년 행사에 김을 초청했는지의 여부도 확인이 필요한 보도라는 것이다. 또 『후계자 문제를 바로 해결하지 못하면 야심가·음모가들의 배신행위로 당과 혁명이 농락당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22일자 중앙방송 보도도 반김정일세력이 부상하고 있는 징후로만 받아들이기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일부 북한전문가들은 오히려 주석이나 당총비서 취임 등 김의 권력승계 공식화를 위한 마무리 정지작업이 임박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야심가 운운하는 보도는 권력투쟁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게 아니라 김정일체제 구축에 소극적인 인사들을 숙청하기 위한 전주곡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도 『김이 지난 92년 10월10일 당창당 47돌을 기념해 승계문제를 거론하며 음모가와 야심가들에 대한 책동에 경고를 보내는 등 최근의 중앙방송 보도내용과 같은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그래서 『김정일체제에 이상이 생겼다기 보다는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사태에 대한 일종의 경고이자 대비인 것으로 분석된다』는 설명이다.요컨대 김일성에 대한 추도분위기를 김정일에 대한 추대분위기로 전환하기 위한 신호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정부내에서 조차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독재국가일수록 언론매체가 물밑 권력이동의 흐름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므로 좀더 지켜봐야 김정일체제의 순항여부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북한의 공식선전매체들은 김정일의 핵심측근인 당선전담당비서 김기남이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전제,『이 때문에 북한의 방송·신문들이 김정일 우상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후계체제가 안착됐다고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김기남은 『우리식대로 살자』,『우리 당중앙 목숨으로 사수하자』 등 북한의 유명한 구호를 만든 장본인으로 김의 심복중의 심복이다.하지만 폐쇄사회의 권력교체기에는 역시 무력을 장악하는 군부나 공안 쪽이 힘을 쓰게 마련이다.따라서 후계체제의 마무리 여부도 김이 군부 등을 제대로 장악했느냐에 따라 검증되겠으나 아직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일성만한 장악력도,카리스마도 없는 김이 일단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후계자로 기정사실화 됐으나 내부 권력서열 재조정과 핵문제 등 대내외 노선을 둘러싼 내부 갈등에 직면해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양 갈래 분석을 염두에 둔다면 김정일체제의 이상설에 대한 정확한 진상은 오는 9월9일 북한정권 창건일이나 10월10일 노동당 창당일을 전후한 시점에 윤곽이드러날 것으로 보인다.이 때까지도 김이 승계절차를 마무리짓지 못한다면 김정일체제에 분명한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 이상설」 정치권 촉각/김사망 연루·건강에 문제 가능성/민자/“권력구조 이상”·“문제없다” 양론/민주 정치권은 여와 야를 막론하고 김정일의 신상및 권력승계작업과 관련한 여러 가설들을 제시하면서 최근 다양한 갈래로 나타나고 있는 이상 징후들이 북한의 권력구도 재편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민자당◁ ○…오래 전부터 김일성의 사망원인에 대해 의문을 표시해온 이세기정책위의장은 『지금 나타나고 있는 북한의 이상기류들은 바로 김일성의 사인문제에서 비롯되고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이의장은 특히 김일성의 사고사 가능설이 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김일성의 사인에 대한 김정일의 연루문제로 후계작업의 매듭이 늦어지는 것 같다』고 피력. 이의장은 『김정일은 북한주민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만약 김일성의 사인에 대한 의혹이 북한내부에서 확산되면 김정일은 궁지에 몰릴 것이며 탈출수단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김정일체제의 확립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전망했다. 이달초 한­이란의회친선협회장으로 이란을 방문,과거 김정일과 단독면담을 몇차례 가졌던 이란의 북한담당 고위관리와 의회지도자들을 만나고 돌아온 김정남의원은 『김정일의 정신건강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던 그들의 말을 최근의 북쪽소식과 비교해보니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고 전하고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그의 건강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조부영경제담당정조실장은 『과거 중국이나 소련의 예를 보더라도 1인 독재정권이 와해되면 과두체제 또는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라고 전제,『북한 역시 시차는 있을지 몰라도 과두체제의 등장이 필연이며 현재의 불투명한 상황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자세한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당의 공식적인 판단은 유보하고있다.의원들도 북한의 권력구조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측과 예상대로 김정일 단일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전망하는 측으로 나뉘고 있다.정보부족인 탓이다.다만 우리 정부가 보다 확실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전제 아래 불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지나치게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회 외무통일위의 이부영의원은 『비단 김정일의 중국방문 거부사실을 들지 않더라도 사회주의 국가가 국가원수를 한달 이상 공석으로 두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북한 권력구조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관측. 이의원은 『뭔가 북한의 지도체제에 대단히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면서 『이런 때일 수록 정부는 북한에 대해 포용적인 자세를 보여 그들의 안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도와야 할 것』이라고 주장. 반면 김원기최고위원은 정보부족을 전제하면서도 김정일의 권력승계에는 이상이 없을 것으로 전망. 김최고위원은 『어떤 형태는 김정일의 권력장악은 기정사실화된 것 아니냐』면서 『문제는 김일성이 누리던 권력을 얼마만큼 승계하느냐일 뿐 정변등의 기미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피력.
  • 김정일,방중 초청 거부/새달 예정

    ◎“주석 미승계·중병설” 등 추측 난무/일 교도통신 보도 【도쿄 AFP 연합 특약】 북한의 김정일은 오는 10월의 중국방문초청을 거부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북경의 소식통을 인용,21일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김정일이 오는 10월초 중국공산당 창립45주년기념식에 참석초대를 받았다고 말했다. 북한은 김정일이 중국공산당창립기념일 참석을 거부함에 따라 부총리를 파견할 것으로 보인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김정일의 중국방문 초청거부 이유는 확실하지 않으나 ▲김일성주석의 애도기간이 끝나지 않았고 ▲김정일이 아직 공식적으로 주석직을 승계하지 않았으며 ▲김정일이 중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김정일은 지난달 20일 김일성주석의 장례식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김정일은 지난 83년 중국을 방문한적이 있으며 그 이후 초청제의는 거부하고 있다고 교도통신은 밝혔다.
  • 북,단동·도문접경 재개방/어제부터/국경무역·친지방문 허용

    【단동=이석우특파원】 북한은 김일성 사망직후 금지시켰던 북한주민들의 중국내 친지방문과 국경무역을 위한 상호방문 등을 21일부터 다시 허용하기 시작했다. 중국 요녕성 단동시 단동세관과 길림성 도문시 도문세관등 중국 북한관리들은 북한당국이 21일 중국측의 방문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물론 중국내 친척방문을 위한 북한주민들의 중국방문을 허용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또 북한당국은 여권소지자와는 별도로 신의주 단동간을 왕래하는 두나라 국경도시 사이의 통행증소지자의 장기체류를 이날부터 다시 허용했다. 단동시 진흥구에 사는 4촌을 방문하기 위해 21일 단동에 들어온 북한주민 최모씨(42·신의주거주)는 『통행증으로 한달간 체류허가를 받아왔다』며 『가지고온 해산물등을 팔아 옷가지와 자전거등을 마련해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단동세관의 한 관계자도 장기체류를 위해 도강증(통행증)만 가지고 입국한 북한주민이 3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 백두산 호랑이 공개후 관람객 3배 증가(은방울)

    ○…김영삼대통령의 중국방문때 기증받은 백두산호랑이가 서울대공원에서 일반에 공개된 이후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공원관람객은 모두 6만5천8백5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만7천7백82명의 2백37%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1일 백두산호랑이가 일반에 공개된뒤 야행적인 백두산호랑이를 보고싶어하는 관람객을 위해 관람시간을 2시간 연장한데 따른것. 한편 서울대공원측은 15일 『백두산호랑이를 산림청과의 위탁관리협약에 따라 오는 11월30일까지만 사육전시하고 12월1일부로 이전사육 하도록 넘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 김상현의원 월말 소환

    서울지검 특수1부는 14일 민주당 김상현의원의 1억1천만원 수수사건과 관련,김의원이 중국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이달말쯤 소환,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김정일 조기방중/중 강택민이 요청/북서도 적극검토

    【도쿄 연합】 중국의 강택민 국가주석겸 당총서기는 김정일 북한노동당 비서가 가능한한 빨리 중국을 방문해주도록 요청했다고 일본 도쿄신문이 홍콩의 중국소식통을 인용해 13일 보도했다. 도쿄신문은 또한 북한측도 김정일의 중국방문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강택민주석은 지난 11일 북경의 주중국 북한대사관에 마련된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주창순북한대사에게 김의 중국방문을 요청했다. 도쿄신문은 김정일이 곧 김일성의 후계자로 정식 결정될 것으로 보여 중국방문은 김정일로서는 김일성주석의 후계자로서 승인을 받는 「의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비정한 권력투쟁가… 유례없는 반세기 독재/김일성 82년의 인생역정

    ◎유년 평양·만주 전전… 20세에 빨치산 활동/해방후 구소점령군 배경업고 권력장악/도전세력 가치없이 제거… 1인체제 구축/민족통일 빙자 6·25남침… 「전범」 낙인/67년 주체사상 만들어 사회주의 통치도구로 활용하기도 김일성.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기집권을 누린 독재자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난 45년 소련군을 등에 업고 한반도의 절반인 북한땅의 통치자가 된 뒤 거의 반세기동안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러왔다.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라는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어마어마한 권력집중적 직책도 모자라 북한주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민족의 태양」으로 부르기를 강요한 전제군주적 독재자였다. 김은 어찌보면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전지전능하고 무오류의 존재로 인식되도록 주민들을 세뇌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먹을 것이 모자라 하루 두끼 먹기운동을 벌이면서도 철저한 사상무장과 외부 정보통제로 주민들로 하여금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믿도록 만드는능력을 갖춘 인물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다. 김은 1912년 4월15일 평양의 한 농가에서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을 부모로 하여 철주와 영주를 동생으로 둔 삼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본명은 성주였으나 만주에서 빨치산활동을 할 때 일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우상화과정에서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엄청나게 날조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그의 출생지가 평남 대동군 룡산면 하리 칠골에 있는 외가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을 거쳐 다시 일성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김일성의 「공식」생가는 평양 대동강변 언덕에 자리잡은 지금의 만경대이며 이른바 「혁명의 요람」으로 북한의 모든 주민들에게는 참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은 어린 시절 한때 외할아버지가 개신교 장로를 지내는 등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외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강반석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그는 만경대에서 짧은 유년시절을 보낸 뒤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다.그후 김은 만주의 중국계 소학교인 모예산소학교,팔도구소학교와 평양근교 외가인 칠골에 있는 외조부 강돈욱이 교감으로 있던 창덕학교 등을 전전하며 파란많은 소년기를 보내다 26년 역시 중국계인 무송소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32년 유격대활동에 적극 가담하기까지의 기간은 뚜렷한 활동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다만 북한에서 나온 그의 전기들은 이 기간중 장춘과 길림 사이에 있는 가륜에서 한인농민들에게 사상교화작업을 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31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32년 중순부터 중국 공산당 산하의 항일 빨치산집단에 참여한다.이때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김의 항일투쟁경력은 그가 북한정권을 장악한뒤 유일체제를 강화하면서 그에 대한 우상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과장·미화되었다.북한의 선전용 김일성 전기들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32년 그가 조선공산당을 창설했다고 하지만 당시 불과 19세였던 그는 당시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그는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양세봉이라는 한인이 이끄는 유격조직에 들어감으로써 항일빨치산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후 그는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에 사병으로 들어가 활동하다 우수한 중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나중에 대대장급으로 승진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일대에서 소규모 유격활동을 벌이던 김은 37년 유격대원 2백명을 이끌고 국경 마을인 함남 보천보를 습격했다.일본경찰지서와 우체국 등을 방화하고 추격해오는 경찰서장을 비롯한 일경 7명을 살해한 이른바 「보천보전투」를 벌여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김은 이 전투가 자신이 참여한 빨치산 전투중 가장 성공적인 전투였다고 자랑하며 보천보에 자신의 동상과 혁명박물관까지 세우고 북한 주민들에개 참관을 강요했다.하지만 보천보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김일성이 아니라는 소수 의견을 내는 학자들도 있다.즉 보천보사건의 김일성은 그해 11월 죽었으며 그의 부하였던 사람이 소련으로 도피한 뒤 그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보천보사건 이후 일본이 중국 본토 침략의 전초전으로 만주의 빨친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에나서는 바람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했다.때문에 김도 41년 8월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서쪽으로 피신해야 했다. 소련은 이 무렵 만주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중국인과 한인유격대원들을 모아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등지에 「88독립저격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했다.김도 김책,최용건,이동화 등 빨치산 동료들과 함께 이 부대에 들어가 43년에는 대위급으로 진급한다. 김은 여기서 만주에서 함께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김정숙과 결혼했다.그녀는 16세 때인 35년에 김일성의 빨치산부대에 가담해 주방일 등 잡일을 보았던 여자였다. 김은 42년 그녀와의 사이에 첫아들인 정일(소련명 유라)을 낳았다.하지만 그녀는 49년 평양에서 사산아를 낳다가 사망했다. 해방과 함께 무명의 소련군 장교로 평양에 입성한 그는 이후 소련의 절대적 후원과 타고난 권모술수로 재빨리 권력을 장악한다.소련 점령군은 친소세력에 의한 공산정권 수립의 필요성에 따라 자신들의 협조자들 가운데 하나를 북한지도자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김이 바로 그같은소련의 의도를 기민하게 포착한 것이다. 소련점령군이 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어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지명하면서 정치지도자로서의 그의 기반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1949년 3월에서 4월까지 한달동안 자신을 도와준 소련에 감사를 표시하기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인 6월 24일 북로당과 남로당 중앙위원회연석회의를 열어 당 위원장자리를 차지했다.이 회의에서 당의 명칭도 북조선노동당에서 조선노동당으로 바꾸었다. 당과 정부기관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김일성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가차없이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그는 자신에게 협력했던 인사도 자신에 도전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숙청 또는 암살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는데 심지어 자신과 유격대활동을 함께했던 빨치산대원들까지 가차없이 제거하기도 했다. 그는 조만식과 같은 민족주의자뿐 아니라 박헌영,김두봉등과 같이 자신에게 협력했던 수많은 인물들을 한국전쟁에 대한패전책임을 덮어씌우거나 종파주의를 부추키고 있다는등의 갖가지 죄목을 걸어 제거함으로써 결국 북한정권을 족벌체제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소련의 힘을 빌려 48년 북한정권의 초대수상에,49년 조선노동당 초대위원장에 오른뒤 도전세력들을 가차없이 제거하기 시작했다.그는 조만식 등 민족주의자는 물론 현준혁 등 국내파,박헌영 등 남로당계,김두봉을 위시한 연안파,허가이 등 소련파를 차례로 숙청해 결국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김은 자신의 권좌가 어느 정도 다져진 50년 6월25일 한반도의 적화통일이라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마침내 무력 남침을 감행한다. 그 자신이 식은죽먹기라고 여겼던 적화통일이 유엔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음에도 그는 전혀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김일성이 무력 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47년부터였다.그는 신년사를 통해 『단합된 민주조선의 건설은 남한에 있는 반동적인 매국노들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민군과 보안대를 강화시켜야한다』고 역설했다. 김일성은 모든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밤도둑처럼 새벽야음을 틈타 남침을 했으나 유엔군이 참전하고 중국의용군이 자신을 도와주러 왔을때는 이미 전쟁이 자신의 관리능력 밖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었다.국제정세를 너무 단순하게 보았던 판단착오의 결과였다. 김일성은 자신의 실수로 엄청난 결과가 빚어지자 동료들을 숙청했다.그는 1950년 12월 21일 강계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그의 빨치산 동료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으며 그 가운데서 김일,최광,임춘추,김열,무정등은 당에서 축출해버렸다. 김일성은 뒤이어 당의 재조직문제를 놓고 자신과 이견을 보인 소련파의 거두 허가이를 숙청했으며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파들도 정부전복을 기도하고 미국을 위해 스파이활동을 했다는등의 죄목으로 체포해 사형에 처하는등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더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세력은 여지없이 제거하는 비정함을 보였다. 김일성은 50년대 중반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도전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 67년에 「주체사상」을 만들어 냈으며 72년에 와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통치이념으로 명문화시켜 통치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체사상과 김일성에 대한 극단적인 우상화가 맞물리면서 북한정권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지는 요인이 됐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김일성에 대해 『가랑잎을 띄우고 대하를 건너가는 만고의 영웅이며 그가 한번 노려보기만 하면 원쑤도 가을 풀같이 쓰러진다』고 보도할 정도로 북한은 이후 유사종교집단적 사회구조를 띠면서 경직적인 김일성 1인체제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김일성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철저한 폐쇄체제로 주민들을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 아들인 김정일에게로 후계세습작업을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나름대로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72년 12월 비공개리에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거쳐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그도 소련의 스탈린 등의 전례를 보고 자신의 사후에 대해 대비를 시작한 것이다.다시 말해 스탈린 사망후 대대적인 격하운동에 충격을 받은 김이 사후 안전판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부자간 권력승계라는 희화적 구도를 상정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에 대한 우상화 이상으로 김정일에 대한 상징조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면서 권력을 하나씩 아들에게 이양하기 시작했다.김정일에 대한 호칭을 「당중앙」에서부터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향도의 별」 등으로 격상시켜나가면서 노동당 조직비서(73년),노동당 정치 상무위원회 위원(80년),인민군 최고사령관(91년),국방위원장(93년) 등 핵심요직을 하나하나 물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에게 「살아있는 신」으로 우상화작업을 펴온 김일성도 끝내 죽음을 거부할 수 없는,한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그 자신도 70년대 이후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건강유지에 발버둥쳐온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김일성의 질환은 지난 73년께부터 확인된 뒷머리의 혹에서부터 고혈압·당뇨·난청·신경통·뇌일혈을 비롯해 그를 8일 새벽 마침내 죽음으로 몰고간 심근경색 등 10여가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그는 분단 반세기만에 초유의 역사적 사건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급사했다.그를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이 그의 일생일대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에 대한 준비과정에서의 과로 때문인지,아니면 경제난과 대외적 고립에 따른 누적된 스트레스 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영생불사의 존재로 신격화된 그도 죽음 앞에 아무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철리를 그의 맹목적인 추종세력들에게 마침내 일께워 준것이다. 그의 공과는 후세의 사가가 엄정하게 평가해줄 것이다.그가 역사의 장에 어떻게 기록되든 과대망상에 빠진 권력의 화신이었다는 사실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미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연표◁ △1912.4.15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출생(본명은 김성주) △1923 만주 장백현 팔도구 소학교 졸업 △1926 만주 길림 육문중학 중퇴,재학중 공청 가입 △1930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개명 △1931 중국공산당 입당 △1932 중국공산당 조선인부대 지대장 △1935 김일성으로 재개명 △1936 조국광복회 조직 △1937.6 함남 보천보 습격 △1937.9 함남 증평리 습격 △1940말 소련으로 망명 △1945.8 소련군 소좌 △1945.9 소련점령군 비호하 입북 △1945.10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참석 △1945.10 「김일성장군」환영 평양시군중대회에 등장 △1945.12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1946.2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1946.7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장단 의장 △1946.8 북조선노동당 부위원장 △1947.2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 △1948.8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1948.9 수상(제1차 내각) △1949.3 경제문화 협정체결차 소련방문 △1949.6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0.6 군사위원회 위원장 △1950.7 인민군 최고사령관 △1953.2 원솔칭호 △1953.7 영웅칭호 △1956.4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7.9 수상(제2차 내각) △1957.11 당 및 정부 대표단장으로 소련 10월혁명 40주년 기념식 참석 △1959.1 소련 제21차 공산당대회 참석 △1959.9 중국 정권창건 10주년 기념식 참석 △1961.7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조약 체결차 소련 중국 방문 △1961.9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및 정치위원회 위원장 △1961.10 소련공산당 제22차대회 참석 △1962.10 수상(제3차 내각) △1966.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1967.1 소련방문 △1967.12 수상(제4차 내각) △1970.11 노동당 총비서 겸 정치위원 △1972.12국가주석 △1972.12중앙인민위원회 위원겸 국방위원회 위원장 △1975.4중국방문 △1975.5루마니아·알제리·모리타니·불가리아·유고 순방 △1977.11국방위원회 위원장 △1977.11인민군 최고사령관(원수) △1977.12 국가주석 △1980.5 유고 티토대통령 장례식 참석 및 루마니아 방문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총비서·군사위원장 △1982.4 국가주석 △1982.9 중국 방문 △1984.5 소련등 동구권 8개국(소련·폴란드·동독·체코·헝가리·유고·불가리아·루마니아)순방 △1986.10 소련 방문 △1986.12 국가주석 △1988.6 몽골 방문(중국·소련 경유) △1989.11 중국 방문 △1990.5 국가주석 △1991.10 중국 방문 △1992.4 대원솔 칭호 △1993.4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발표 △1994.4.8 사망
  • 남측예비접촉대표/「통일정책」 베테랑 포진/양측진용의 면면과 컬러

    ◎전원 「남북한문제」 종사… 정상의중 잘 파악/일면직없는 사이… 우리측 협상 처음나서 우리측의 이홍구통일부총리 정종욱 청와대외교안보수석 윤여준 총리특별보좌관,그리고 북한측의 김용순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 안병수 조평통부위원장 백남준 정무원책임간사.오는 28일 정상회담준비를 위한 예비접촉에 나서는 남북 대표단의 면면들이다.양측 모두 대북·대남정책 종사자들로 구성돼있다.특징은 이들이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특히 우리 대표들은 모두 북한과의 협상에 당사자로 나서본 적이 없다.그래서 첫 접촉이 상견례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반면 북측대표들은 경험으로 보면 우리 대표들에 비해 프로급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순조롭게 진행되던 회담을 한순간에 결렬로 몰고갈 수도 있는 협상의 베테랑들이다.일부에서 예비접촉이 북한측의 페이스에 끌려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측 대표진용을 보면 역사적인 정상회담문제들을 협의하는데 최적임자들을 골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수석대표인 이부총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북한문제 최고브레인으로 이론과 실무를 겸하고 있어 이번 예비접촉에서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정수석 역시 이론가인데다 대통령외교안보수석으로써 예비접촉에서 대통령의 의중을 잘 반영해 협상을 원만히 끌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윤보좌관도 6공때 대통령 정무비서관및 정무1장관보좌관 등을 역임하면서 막후협상등 정치력을 발휘한 바 있어 이번 회담의 가닥과 방향을 잡아나가는데 적지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측 김단장은 대남및 국제문제전문가로 김일성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일성의 친척이라는 얘기까지 나돌 정도.노동당 대남비서인 그는 지난 90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서독 등을 방문한 뒤 김일성에게 개방의 필요성을 건의했다고 한다.북한체제의 속성상 웬만한 측근이 아니면 꺼내기 힘든 이야기다. 또 91년 10월 김일성의 중국방문을 수행하고 12월에는 김일성의 특사로 쿠바를 방문하는등 김일성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몇 안되는실세로 분류되고 있다.그는 김일성이 외국인사를 접견할 때 빠짐없이 배석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김용순은 미국 일본과의 관계개선에도 개입하는등 북한의 대서방 교섭창구로도 잘 알려져있다.지난 90년 가네마루 신(김환신) 당시 일본 자민당간사장과 「조일관계에 관한 공동선언」에 합의한 바 있다.또 92년 2월에는 북한의 핵안전협정 서명을 앞두고 열린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에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그리고 부시행정부 시절 아놀드 캔터 미국무부정무차관과 뉴욕에서 몇차례 회담을 갖기도 했다.현재 13명이나 되는 조평통부위원장직도 겸하고 있다.당내 서열은 26위쯤. 안병수는 이번 북한측 대표 가운데 우리쪽에서 가장 껄끄럽게 생각하는 선전선동전문가.입심이 굉장히 센 사람으로 전해진다.그래서 회담에서 논쟁을 도맡아 한다.남북고위급회담 대변인 자격으로 서울에도 온 적이 있다. 백남준도 안병수와 경력이 거의 비슷하다.김일성대학을 졸업했으며 폴란드대사로 잠시 외유를 한 것을 빼고는 72년 남북적십자회담때 자문위원을 시작으로 계속 대남정책에 관여해왔다. ○…이번 예비접촉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할 남측의 이수석대표와 북측의 김단장은 몇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이 특색.두사람 모두 34년생 동갑내기로 이수석대표의 생일이 김단장보다 두달정도 빠르다. 두 사람은 또 통일문제와 남북관계에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겸비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있다.이수석대표는 통일안보정책을 총괄하는 통일부총리로 현정부의 통일정책 모태가 된 「한민족통일방안」을 6공때 마련한 통일문제전문가이며 김단장은 북측에서 통일정책을 포함한 대남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 남북한 정상회담 합의… 각국 반응

    김영삼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자는 김일성 북한주석의 제의를 전격수락한데 대해 중국·러시아·일본·유럽등은 북한핵문제 해결과 한반도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환영하면서도 실질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치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남북간의 큰 이견차 등을 들어 개최전망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정상회담에 대한 이들의 반응을 모았다. ◎“핵과거 덮어둬선 안된다”/일/철저한 준비로 실질 성과 거둬야/유럽/상호실제 처음 인정하는 상징성/러시아/“YS 흡수통일 불원”이 북 끌어내/중국 ▷일본◁ 가키자와 고지(폐택홍치)외상은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문제 해결의 도움이 될 것으로 환영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여러번의 제의가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결코 낙관하고 있지 않다. 정상회담 합의는 한반도문제에 주도권을 잡으려는 한국의 의향과 미·북한교섭을 위해 유리한 환경조성을 노리는 북한의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이지만 정상회담에 대한 남­북한의 의도가 서로 달라 의제와 시기등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접촉에서 많은 대립이 나타날 것으로 보여 정상회담이 실제로 열릴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특히 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북한이 이미 추출했을지도 모르는 플루토늄등 「과거」의 문제를 불문에 부쳐서는 결코 안된다고 강조한다. ▷유럽◁ 프랑스·영국·독일등 유럽국가들은 남­북한 정상회담합의에 일제히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프랑스와 영국의 관리들은 『남­북한 대화를 지지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입장』이라고 밝히고 『남­북한 정상이 분단사상 처음으로 대좌해 현안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커다란 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들은 또 『남­북한의 정상이 만나 핵문제 등의 해결과 동시에 통일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하면 큰 발전을 이룰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또다른 관리와 독일의 관리들은 『통일에 가는 준비가 과연 갖추어져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철저한 사전준비를 통해 정상회담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러시아◁ 남­북한 정상회담개최에 대한 러시아정부의 입장은 한마디로 조건없는 환영이다.러시아는 20일 주러 한국대사관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 개최및 우리정부의 예비회담 제의사실을 통보받고 이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러시아외무부의 한 고위관리는 사견임을 전제,정상회담 개최는 실질성과에 관계없이 남­북한이 최초로 상호실체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상징성을 갖는다고 말했다.그는 『국경남쪽에 안정된 통일국가 탄생을 희망해온 러시아에 정상회담 개최는 이런 점에서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상회담 전망에 대해선 정치·이념·경제 등에 있어 남북간 이견차가 워낙 커 낙관키 힘들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중국◁ 중국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적극 환영하는 것은 물론 힘닿는데까지 도와줄 용의도 갖고 있다는게 이곳의 일반적 관측이다.이는 정상회담을 계기로 골치아픈 핵문제가 자연스레 풀릴수 있을 뿐 아니라 ▲비핵화 ▲평화와 안정 ▲당사자간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등 이제까지 중국이 취해온 입장과 전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주목되는 것은 지난 3월 김영삼대통령의 중국방문시 강택민국가주석을 통해 김일성에게 보낸 메시지가 얼마나 먹혀들었느냐는 점이다.당시 김대통령은 한국이 흡수통일할 생각을 전혀 갖고 있지 않고 미·북한간 관계수립을 방해할 생각도 없으며 남북대화를 원하고 있음을 전해줄 것을 중국측에 얘기했었다.이곳 관측통들은 이같은 김대통령의 말이 김일성의 마음을 굳히는데 기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카터,평양회담 뒷얘기 소개/「유해송환」 김성애덕에 합의/거부하던 김일성 그녀 조언듣고 “좋습니다”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지미 카터 전미대통령은 한국전쟁 당시 실종된 미군유해 송환요구에 대해 김일성주석은 처음에 거부했으나 부인인 김성애가 승낙의 뜻을 표시하자 결국 동의했다고 전했다. 카터전대통령은 19일 김주석과의 협상과정에 있었던 비화를 소개하면서 김성애가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말하자 김주석은 당초의 거부입장을 바꿔 『좋습니다.됐습니다』라고 큰소리로 말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카터 전대통령은 자신이 미군 유해송환을 요구하자 『김주석은 앞으로 있을 협상에 그 문제를 포함시켜 논의하자며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며 『그러나 나는 내가 요구하는 것은 추후협상이 아니라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전했다.카터는 『그 순간 김성애가 들어와 그에게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며 『그것은 멋진 장면이었고 그녀는 매력적인 여자였다』고 자신이 받은 인상을 말했다. 카터는 북한방문에서 자신이 한반도의 전쟁위기에서 미국을 건져냈다고 믿고 있으며 미군유해송환 문제외에 다른 몇가지 문제들도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고 말하고 있다.그는 평양의 네온불빛과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가게의 북적거리는 인파,북한관리들의 우호적이고 숨기지 않는 태도,82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정력적이고 지적인 지도자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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