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중과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분양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시청자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9억원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5월 18일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895
  • 민간인 공무원 특별임용 범위 1∼3급 20%까지 단계적으로

    정부조직법의 최대쟁점인 ‘개방형 임용제’의 폭이 1∼3급 공무원의 ‘20%까지 단계적 확대’로 가닥을 잡았다.국민회의가 자민련과 한나라당의 의견을 반영,당초 30%였던 정부 안에서 후퇴한 것이다. 국민회의 제 1정조위원장인 이상수(李相洙)의원은 26일 오후 “개방형 임용제를 단계적으로 1∼3급의 20%까지 실시하기로 당내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에앞서 이날 오전 열린 수석부총무 회담에서 여야 3당은 개방형 임용제의 필요성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다만 “일시 대량특채로 인한 공무원 사회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단계적으로 추진키로 합의했다.한나라당과 자민련은 당초 10% 개방을 주장해왔다. 이의원이 밝힌 국민회의의 입장은 정부안과 자민련·한나라당 의견의 절충인 셈이다. 또 개방형 범위도 과장급까지 포함시켰던 정부안을 수정,과장급은 일단 제외하기로 3당 수석부총무간에 합의했다.실무책임자인 과장급까지 포함시킬경우,여파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국민회의는 대통령의 인사권 집중과 장관의 위상 약화를 염려하는 자민련과 한나라당을 의식,단서조항을 달기로 했다.국민회의 장영철(張永喆)의장은 이날 오후 정부조직법 제 7조 5항에 “각부 장관이 중앙인사위원회의 심사결과에 따를 수 없는 경우,재심의를 요구하지 않고 중앙인사위가장관의 의견을 첨부,임용제청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삽입키로 했다고 밝혔다.오전 수석부총무 회담에서는 공무원과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소위원회를신설,장관 추천 승진 후보자의 결격사유를 심사하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정부 구조조정이란 큰 방향에 어긋나 채택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중앙인사위의 소속 문제에서는 국민회의가 대통령 직속,한나라당은 총리실산하를 주장해 입장차가 여전하다.또 해양경찰청장의 차관급 격상과 문화재관리국의 문화재청 승격,청소년보호위의 청소년위로의 확대개편도 평행선을달리고 있다.국가홍보처 신설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은 해외홍보처로 이름을바꾼다면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국민회의는 정부의 업무수행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27일 정부조직법을 표결처리키로 했으며 한나라당은 실력저지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추승호 기자 chu@
  • 취임 한달 맞은 鄭相千 해양수산부장관 인터뷰

    “한·일 및 한·중 어업협정은 새로운 해양법 질서에서 불가피한 선택입니다.하지만 우리 어민입장에서 보면 갑자기 어업조건 등이 제한을 받기 때문에 피해의식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23일로 취임 한달을 맞은 정상천(鄭相千) 해양수산부 장관은 “어민과 국민의 일부 잘못된 시각을 고치도록 어업협정에 따른 어민피해 지원과 한·중어업협정 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다짐했다.정 장관은 “우리나라는 모든 국가전략 사업이 육지에만 집중돼 왔으나 21세기에는 바다에 눈을 돌려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해양입국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앞으로는 ‘해양강국’이 되도록 바다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일 어업협정 파동을 겪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 기초적인 통계였습니다.수산행정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정보화기금 20억원을 확보,전산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오는 9월까지 통계확보 체제를 전면 재정비하고 분석시스템을 구축,한·중과의 어업협상 및 일본과의 내년도 입어조건 교섭에 철저히 대비할 계획입니다. 한·중 및 한·일 어업협정에 따른 어업인 보상은. 정부는 한·일 어업협정 체결에 따라 영향을 받는 어업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1,891억원의 재원을 마련 중입니다.폐업에 따른 보상은 현실가액으로 100% 정부가 지원합니다.실직 어선원에 대해서는 4개월치 급여를 실직급여로 지불하고 부두건설사업 등 일자리를 주선해 줄 방침입니다.지원기준 현실화를위해 관계부처와 협의하고 있으며 신속하고 종합적인 지원을 위해 의원입법으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일 어협을 통해 난맥상을 드러낸 수산행정시스템과 해양부 인력구조의 개편방향은. 수산정보 종합데이터베이스화를 위해 시·도 및 수산진흥원,통계청과 수협무선국간에 상호연계시스템을 구축하겠습니다.어업협상의 전문성을 제고하도록 국제 감각을 갖춘 외부전문가를 채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앞으로 한·중 어업협상 대책은. 학계,업계,전문가,시·도 관계자 등을 총망라해 ‘어업협상추진기획단’을구성했습니다.수시로 협상에 따른 자료지원과 조언을 하게 됩니다.협정체결에 따른 어업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상호입어를 추진,조업어장을 최대한 확보하고 중국수역 조업이 어려운 업종은 업종전환 및 대체어장 개발지원,영어자금 우선지원 등에 역점을 두겠습니다. 해양 주권과 어자원을 지킬 수 있는 장비 및 인력 보강계획은. 일본,중국과의 어업협정 등 EEZ(배타적경제수역) 체제에 따른 자원관리를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어업지도선과 해경정의 대폭적인 보강이 절실합니다. 어업지도선을 2004년까지 현재 20척에서 35척으로 늘리고 해경함정도 8척에서 2003년 27척으로 확충할 계획입니다.해양수산부,해경,시·도 등 관계기관별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하겠습니다. 일본은 EEZ 및 중간수역에 대한 어선 단속을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한·일 양국간 배타적 경제수역을 제외한 중간수역에서 일본은 직·간접적인 지도·단속을 할 수 없습니다.양국의 어선은 자유롭게 조업하고 불법어업단속 및 재판관할은 자국의 법령을 적용하도록 돼있습니다.따라서 우리 어선에 대한 지도는 물론,불법조업에 따른 해상분규 등 해상안전을 위해 해양경비정 활동으로 철저히 대처하겠습니다. 금강산 관광선을 외항선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업계의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관광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이왕에 금강산 관광선을 개발하기로 한 이상 외항선화해 외국인 관광객을 적극 유치하도록 할 필요가있습니다. 대담 정종석 경제과학팀장 정리 함혜리기자 lotus@
  • [특별기고] 장애인의 재활과 사회통합

    4월은 열아홉번째 맞는 ‘장애인의 달’이다.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환기시키고,이들을 위해서 실시해 온 국가정책과 제도를 점검하고 평가하는계기가 되는 달이기도 하다. 1981년 유엔은 ‘완전 참여와 평등’의 주제 아래 ‘세계장애인의 해’를선언했다.장애인의 인권존중과 사회통합을 겨냥한 정책적 함의를 지닌 선언이었으며,장애인도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생활과 사회발전에 완전히 동참할수 있어야 하고,사회적·경제적 발전의 결과로 이룩된 생활조건의 향상 역시 장애인들에게 평등하게 배분돼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리고 장애인들이 충분히 사회에 통합될수 있도록 이들의 사회적 적응을 도와야 하고 재활을 통해서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실천강령도 포함됐다. 그간 우리나라도 정부차원에서 장애인의 복지향상과 재활 및 직업을 통한사회통합을 위해서 꾸준히 정책적 관심과 배려를 해왔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서는 상당히 개선되고 향상된 결과를 낳고 있다.그 가운데서도 1991년부터실시되기 시작한 ‘장애인 의무고용제’와 ‘장애인 고용촉진공단’의 출범은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위한 가장 대표적인 제도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국민의식과 관행,제도적 측면에서 장애인의사회통합을 가로막는 숱한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다.이들 요소의 제거야말로사회통합을 위한 필수조건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현재 100만명을 넘는 장애인이 어렵게 생활하고 있으며,장애 발생의 88%가 각종 사고와 재해 등 후천적 원인에 의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한국인의 의식구조에는 동질적이고 평균된 보편성의 인간상에 가치를 부여하는 성향이 강하게 내재돼 있어 이질적인 개성을 지니고 있는 장애인들을비가치화하고 멸시와 편견의 눈으로 보는 경향이 일반화돼 있다해도 과언이아니다.이러한 부정적인 멸시와 편견의식은 하루빨리 불식돼야 한다.그리고이들을 이질성과 특유의 잠재력을 지닌 개성있는 인간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의식전환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아울러 장애인 가족과 장애인 스스로도 장애 사실을 현실로 인정하고 낙심이나 비관할 것 없이 자기 나름대로 창조적인 발전책을 모색하는 긍정적인태도를 가져야 한다.긍정적인 태도야말로 자신을 재사회화(再社會化)하여 적응능력을 높여주는 길이며,사회통합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이다. 장애인을 사회에 연결해 통합을 촉진시키는 가교의 역할을 하는 주택,공공시설,교통수단 등 공간구조적,물리적 환경의 조성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지금껏 계획과 투자면에서 미흡했고,또한 이들의 생활환경과 관련된 대부분의법률이 의무규정이 아닌 선언적 규정으로 되어 있다는 점도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잠재능력의 일부가 결손되어 있는 장애인의 경우,잔존 능력의 개발과 촉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알맞은 특수교육이 필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직업 재활능력을 높이고 사회적 참여와 통합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데도 이를 실시하기 위한 특수학교의 수용능력은 크게 부족하다. 또한 시설과 설비 및 실습자료비 부족,그리고 전문적 기술지도교사의 확보난 등으로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보편화돼 있는 개별화(個別化)와 최적화(最適化)의 교육방법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회통합의 핵심적 제도인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회피하고 그 대신 부담금을 납부하고 있는 점이다.최근까지의 장애인고용실태를 살펴보면,공공기관과 민간기업체 할 것 없이 법적 고용률 2%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용의무사업체의 장애인 고용률은 0.46%에 불과하고,정부 및 공공기관 1.15%,정부투자기관 0.79%,정부출연기관 1.27%이다.솔선수범해야 할 정부와공공기관마저 의무고용비율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장애인들을 크게실망시키고 있다. 장애인 사회통합의 최선의 길은 재활과 직업교육을 통해서 정상인과 동일한 자격으로 스스럼없이 사회에 진출하여 취업하는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능력있는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 지역별로 정부출연의 보호작업장(Samhall)을 마련해 취업기회를 극대화하고,제품의 유통까지도도와주고 있는 스웨덴의 장애인 통합정책은 오늘의 한국 장애인정책에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文石南 전남대 교수·사회학]
  • 국민회의 全大 8월 개최 확정…총선 대비

    국민회의 전당대회가 8월 개최로 최종 확정됐다.21일 국회에서 열린 당무위원회,지도위원회,의원총회 연석회의에서 정리됐다.이번 결정은 불투명했던모든 정치일정을 8월까지 명확히 하겠다는 뜻이 담겼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정치일정의 불투명은 정치불안 가중과 노사불안,실업대란 등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됐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이같은 상황에서‘예측 가능한 정치’로 현안들을 풀어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한 것으로 볼수 있다. 정균환(鄭均桓) 사무총장도 이를 명확히 했다.“개혁입법 등 해결해야 할정치현안이 많은데다 현재 진행중인 선거법 개정 협상이 마무리되면 어차피지역구를 재조정해야 하므로 전당대회를 당헌에 따라 늦추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8월 전당대회 때까지는 선거구제 협상을 비롯한 정치개혁 협상과 젊은 피수혈작업에 총역량을 집중할 것 같다. 젊은 피 수혈작업은 한화갑(韓和甲) 총재특보단장을 중심으로한 총재특보단이 해야 할 일이다.국민회의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새 시대에 맞는 역량있는신진인사에게 일부 사고지구당을 맡기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바람을 불러일으킨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8월에 축제분위기 속에서 열릴 전당대회는 내년 4월의 총선을 앞둔 출정식의 성격이 짙다.“8월의 전당대회는 본격적으로 총선준비에 들어간다는 의미”라는 게 김수진(金洙振) 총재 정치특보의 얘기다. 곽태헌기자 tiger@
  • 충무공 선영에도 쇠말뚝…보수작업중 식칼등 22개 발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부모 묘소 등에 식칼과 쇠말뚝이 각각 11개씩 꽂혀있는 것이 후손들에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0일 오전 8시50분쯤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산 2의1 충무공의 부친(덕연 부원군 李貞)과 모친(정경부인 초계 변씨)의 묘소에서 봉분 보수작업을하던 충무공의 14대손 종학씨(47)가 두 묘소에서 식칼과 쇠말뚝을 발견한데이어 충무공의 형제·후손 등의 9기 묘소에서도 식칼과 쇠말뚝이 각각 9개씩 꽂혀 있는 것을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종학씨는 이날 “최근 내린 비로 봉분 일부가 무너져 내려 인부 6명을 동원,보수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두 묘소에 식칼과 쇠말뚝이 각각 1개씩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발견된 식칼은 전체 길이 34㎝(칼날 길이 23㎝,손잡이 11㎝)의 크기로 두봉분 맨 윗부분에 밖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각각 손잡이 부분까지 깊숙이 박혀 있었으며 전혀 녹슬지 않은 상태였다.또 쇠말뚝은 길이 30㎝,직경 3㎝ 크기로 한쪽 끝이 매우 뽀족하며,종학씨 등이 봉분을 굴착기로 파내는 과정에서 각각 발견됐다. 식칼과 쇠말뚝이 발견된 충무공의 부모 묘는 충무공 묘역에서 500m가량 떨어진 능선을 따라 마련된 덕수이씨 종중 선영(30여기)의 상단 3번째에 위치해 있다. 경찰은 이 선영이 있는 야산이 봉황새 형국의 명당자리로 누군가 후손들에게 해를 끼칠 목적으로 이같은 짓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지관및 풍수지리가 등을 상대로 조사중이다.경찰은 덕수이씨 문중과의 개인적인원한 관계에서 비롯됐을 가능성도 배제치 않고 수사하고 있다. 대전 최용규기자 ykchoi@
  • 「오늘 ‘4·19’ 39돌」4·19세대-대학생 좌담

    4·19는 민주와 자유를 열망하는 지식인과 민중들의 힘이 폭발적으로 분출된 혁명이었다.하지만 39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4·19는 ‘미완(未完)의 혁명’으로 남아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정치·사회·문화적 갈등구조와 맞물려4·19정신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구현되지 못해 왔다는 것이다.4·19세대인이영일(李榮一) 국민회의 의원과 한영우(韓永愚) 서울대 인문대학장,고려대대학원 이준복(李準馥·신방과 석사 과정)씨와 연세대 손수진(孫秀眞·여·신방과 4년)씨의 좌담을 통해 4·19의 의미를 되새기고 4·19정신의 완성을위한 과제와 방안을 짚어본다. 이영일 4·19가 우리 정치사에 준 교훈은 4·19를 계기로 주권재민(主權在民)의식이 국민의 가슴 속에 자리잡았다는 사실입니다.또 우리가 미래에 구현해야 할 비전을 민주주의 형태로 완성했다는 것입니다.4·19가 ‘미완의혁명’이라고 불리는 것은 1년 만에 군사정권에 의해 붕괴됐기 때문입니다.4·19 이후 25년 동안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4·19는 맥을 추지 못했습니다.국민이 국회의원을 바꿀 힘은 가지게 됐지만 정권을 바꿀 만한 힘은 갖지 못했습니다.그러다가 97년 12월18일 비로소 국민의 손에 의해 정권까지 바꾸게됐습니다.국민의 정부 탄생으로 비로소 4·19의 이념이 구현된 것이지요.그래서 4·19의 지향성이 국민의 정부에서 꽃피웠다고 봅니다. 손수진 ‘4.19세대는 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4·19세대는 사회적으로영향력 있는 위치를 점하면서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는 지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그래서 4·19세대가 변절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영일 4·19때 반독재투쟁에 앞장섰다는 사실만으로 평생 투사로 살다 죽으라는 논리는 맞지 않습니다.백이(白夷) 숙제(叔齊)처럼 살 수는 없는 것이지요.물론 4.19때 불의에 저항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4·19가 민족 대 반민족의 투쟁이라면 불타협의 투쟁을 계속해야 하겠지요.4·19세대에 대한 평가는 당시 어떤 위치에 있었느냐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합니다.4.19때의 활약상을 소개하겠습니다.나는 당시 서울대 문리대 수학과에 다니던 김치호라는 친구와함께 남산합창단 단원이었습니다.종로 5가에서 곤봉을 맞고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문리대 앞 쌍과부집에서 우동을한 그릇 먹은 뒤 그 친구에게 시위하러 다시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그랬더니 그 친구는 도서관에 가방을 가지러 간다고 하면서 경무대로 달려가 죽음을택했습니다.해마다 4·19묘소에 가면 그 친구의 묘에 꼭 들립니다. 한영우 나는 당시 서울대 사학과 4학년으로 후배들을 인솔해 시위를 했습니다.태평로에 있는 옛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할 때 외칠 구호가 없어옆에 있는 조선일보사에서 몇사람이 구수회의를 해 즉석에서 구호를 만든 일이 있습니다. 4·19는 준비된 혁명이 아닙니다.그래서 ‘미완의 혁명’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프랑스혁명은 계몽사상가들이 이념적 토대를 제공했고 지지세력도 있어 폭발적 힘을 발휘했습니다.하지만 4·19는 혁명 뒤에 이념이 만들어져 왔습니다.당시에는 합의된 이념이 없었습니다.막연한 애국심을 가지고 시작된뒤 나중에 학문적이고 이론적으로 다듬어지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당,야당,재야,혁신에 이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화됐습니다.군사정권에 협조한 사람도 있고,군사정권에 대항해 옥살이를 한 사람도 있습니다. 4·19는 작게 보면 3·15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이 도화선이 됐습니다.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선비들이 개혁의 선두에 나섰던 역사의 전통이 반복된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영일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살고 있습니다.4·19때 87달러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지요.시민·사회단체,정당,이익집단,언론 등많은 집단이 더 이상 학생들의 신세를 지지 않고도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학생은 이제 국민의 울분을 대변하는 유일한 집단이 아닙니다.21세기는 정보화시대입니다.정보화에 관한 지식이 가장 중요한 재산입니다.후배 대학생들에게 경쟁력을 갖춘 신지식인으로서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한영우 4·19때 군이 중립을 지켰던 것은 연구 대상입니다.논문에 따르면부정선거와 발포책임자인 최인규 내무부장관 등이 김정렬 국방부 장관에게협력을 요청해 계엄을 선포했는데 국방부 자체가 협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 것은 미국이었습니다.미국이하야를 요구한 것은 이승만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정권은 한반도를 민주주의 진열장으로 만들려는 미국의 의도에 맞지않았습니다.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한·미·일 연합방위체제를 구축하려는 구상에 맞지 않았습니다.이승만은 강력한 반일(反日)주의자였기 때문에일본과 손을 잡기를 꺼렸습니다. 이준복 현재 전체 대학사회에는 다양성이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고 있습니다.학생운동에 대한 관심과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도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떨어집니다.이같은 변화는 93년 들어,특히 93학번부터 뚜렷합니다.90·91·92학번은 87년 6월항쟁의 경험이 있는 87·88학번이 군 복무 뒤 복학했을 때학교를 같이 다녀 80년대 학번들의 영향력 속에서 80년대의 정서를 지니고있습니다.그러나 93학번부터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합니다.이는 고교생 때부터 약자를 배려하는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정의감은 정권을 가진 사람에게 억압당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민입니다.그런데 이른바 ‘왕따’문화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없앴습니다.또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부모세대들의그릇된 생각과 모 재벌의 광고처럼 1등만 강조하는 분위기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약화시켰습니다.지금의 대학사회는 4·19와 70·80년대의 정신을 구현하려는 노력이 부족합니다. 손수진 4·19가 ‘미완의 혁명’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혁명은 진보세력이 혁명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비로소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4·19는 완성된 혁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지식인은 자기 만족에 빠져 자기들만의 우리에 갇혀 있었으며,민주화와 자립경제를 시급하게 수립해야 한다는 문제를 인식했으면 민중과 함께 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력을 형성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영우 4·19를 완전 성공으로도,완전 실패로도 보지 않습니다.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4·19는 미성숙 상태에서 일어났으며 지금도 풀어가는 과정입니다.4·19에 0점을 주는 것은 너무지나칩니다.역사는 단번에 100점으로 갈 수 없습니다.현재는 100점으로 가고 있는데 60∼70점에 도달한 상태입니다.지나치게 허무주의적으로 보면 도그마(dogma)에 빠지게 됩니다.도그마에 빠지면 현실에 입각한 생존논리를 주체적으로 만들지 못하고 외래논리를 도식적으로 적용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준복 해방 뒤 우리는 친일파와 변절자에 대한 청산 과정을 거치지 못했습니다.좌·우 이념대립이 반공주의로 나타나면서 청산의 문제가 흐지부지됐습니다.4·19 뒤 부정부패와 비리 청산이 다시 문제로 떠올랐지만 장면(張勉) 정부에서 청산이 되지 않았으며,군사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청산의 문제는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손수진 저는 4·19가 부패로 점철된 이승만정권을 물러나게 하고 사회운동이 조직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합니다.한 교수께서는 4·19등 우리나라의 중요한 사건에서 지식인의 노력이 컸는데 지금의 지식인과 학생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영우 4·19를 바탕으로 1년 앞으로 닥친 21세기의 우리 모습을 그려 나가야 합니다.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방적 민족주의입니다.우리 정서에 맞는 민주주의를 해야 합니다.신자유주의 경쟁원리도 적당한 수준에서 받아들여야 하지만 민족주의를 도외시해서는 안됩니다. 이준복 언론은 학생운동의 이념성을 걱정합니다.그러나 그 이념성은 4·19를 촉발한 정의감과 다르지 않습니다.다만 이념이 더 선명해졌을 뿐입니다. 저는 학생운동의 이념이 불순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손수진 학생운동은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폐쇄적인 면을 띠고 있습니다.운동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학생운동이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설득력을 잃어가는 이념을 고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한영우 21세기가 문화의 세기라는 말에 동의합니다.21세기에는 사회과학적 이념보다 전통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중요합니다.자애(自愛)의식을 기른 뒤 세계와 협력해야 합니다.그리고 전통문화를 정치·경제·사회 등모든 분야를이끄는 견인차로 승화시켜야 합니다.20세기 우리 전통문화를 무너뜨렸던 서양문명과 전통문화를 용해시켜 새 문명을 탄생시켜야 합니다. 이준복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사상적 스펙트럼이 보다 다양화돼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공공연히 언급할 수 있는 분위기가조성돼 있지 못합니다.하지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포괄하지 못하면 4·19는 영원히 진행형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손수진 자라나는 세대들이 통일 후 ‘우리 민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면 회의가 듭니다.교육을 통해 인도주의와 민족 동질성을 가르치고,통일이 앞으로 실현해야 할 미완의 과제라는 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 조현석 김미경기자 hyun68@
  • 소설가 박상륭씨 소설집 ‘평심’ 산문집 ‘산해기’

    ‘죽음과 재생’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한국 문학계에서 독특한 영역을 구축해온 소설가 박상륭(59)의 문학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30년 동안의 캐나다 이민생활을 끝내고 지난해 영구 귀국한 박씨가 24년만에 소설집 ‘평심(平心)’과 산문집 ‘산해기(山海記)’(문학동네)를 낸데 이어 생존 작가로는 드물게 ‘박상륭 문학제’가 23∼24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전북 장수 출신인 박상륭은 63년 ‘사상계’에 예루살렘 지역의 방언을 표제로 삼은 단편 ‘아겔다마’가 입상하면서 문단에 나왔다.이후 ‘하원갑 섣달 그믐’‘시인일가네 겨울’‘열명길’‘산동장’ 등 단편을 발표하다 69년캐나다로 취업이민을 떠나면서 그는 문단에서 증발됐다.그러나 캐나다에서도 그는 ‘죽음의 한 연구’‘칠조어론’‘산해기’등 삶과 죽음의 문제를 탐색하는 작품들을 모국어로 발표하며 문학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박상륭의 문학은 인간존재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사유로 가득하다.종교와신화를 아우르는 우주적 상상력,장대한 스케일과 형이상학적 비전,생명과 존재의 비의를 파고드는 치밀한 사유와 논리,화려하면서도 정교한 문체 등을특징으로 하는 그의 문학은 결코 한 두마디의 개념어로 요약될 수 없다.현란한 상징체계는 읽어내는 일 자체를 고통스럽게 만든다.이러한 난해함과 형식 파괴의 생경함,국내 문단에서의 공백은 박상륭의 작가적 비중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학사에서 제대로 자리 매김할 수 없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번에 나온 창작집 ‘평심’은 박상륭 문학의 절정인 장편 ‘칠조어론’이 94년 완간된 이후 국내 문예지에 발표한 8편의 중단편들로 구성됐다.이 중표제작 ‘평심’은 젊은 왕자의 구도행을 추적하는 내용으로,박상륭 문학의키워드인 ‘마음의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작품이다.‘마음의 우주’는 ‘말씀의 우주’‘몸의 우주’를 전제로 하는,박상륭 사유체계의 동심원적 중심이다.작가는 자신의 우주론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우주는 마음의 우주,말씀의 우주,몸의 우주로 이뤄졌다고 봅니다.신이인간과 짐승의 아름다운 부분만 닮은 희랍신화의 우주는 몸의 우주랄수 있고,예수가 등장하면서 말씀의 우주가 도래했지요.그러나 인간이 최고로 도달해야 할 곳은 마음의 우주가 아닌가 하는 것이 제 소설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작가는 현대 문명사회는 ‘몸의 우주’의 단계로 추락해 있다고 진단한다. 인간이 짐승의 상태,곧 축생도(畜生道)에서 들끓고 있다는 것이다.산문집 ‘산해기’에서 작가는 이 축생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물신의 노예가 되어버린 자본주의의 말기적 징후를 신화적으로 재구성해 조롱한다.그리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산해기’에서는 니체가 아니라 박상륭이 창조해낸 자라투스트라가 포효한다.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신은 죽었다”고 했지만 박상륭의 자라투스트라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신은 탄생했다”고 말한다.이 때의 신은 마음의 우주로 가는 ‘개아(個我)’.그러나 개인으로서의 자아는 눈멀고 귀먹어 저열한축생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이와 같은 개인적 자아를 회복하고진리를 깨닫는 길로 작가가 제시하는 것이 바로 소설 ‘칠조어론’의 중심개념인 ‘중도론’이다. 너무앞서 있었던 탓에 오랫동안 고독했던 소설가 박상륭.소수의 ‘신도’들에 의해 전파돼 왔던 그의 문학은 이제 대중의 곁으로 한발 다가설 채비를 하고 있다.그의 문학세계를 영화·연극·무용 등 다양한 예술양식을 통해조명하는 ‘박상륭 문학제’는 박상륭이 더이상 ‘대중과 유리된 난해작가’가 아님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리가 될 것같다.
  • [제2공화국과 張勉](15)분출하는 욕구(下)/기고

    1961년 2월4일 장면(張勉)총리는 반도호텔에서 열린 관훈클럽 창립4주년 기념모임에 초청받아 ‘언론의 자유와 그 책임’을 주제로 강연한다. 장면은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이라고 전제한 뒤 “북한 괴뢰의 앞잡이들이 ‘조선인민보’나 ‘해방일보’를 발행하겠다고 등록신청을 해도 막을 도리가 없을 만큼 완전한 언론출판의 자유가 허용되고 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무책임하고’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며’ ‘독선적인’ 언론이 횡행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장면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압제에 반대해야 하는 것과 같이,자유가 자유 그 자체를 파괴하도록 방임해서도 안된다”는 말로 연설을 끝맺었다.무절제한 언론에 대한 이 경고를,관훈클럽은 훗날 발간한 ‘40년사’에서“언론에 경종을 울리는 진지하고도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승만(李承晩)독재권력을 무너뜨리는 데 신문은 학생세력·민주당과 더불어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자유당 정권은,비록 그후의 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시대만큼 가혹하지는 않았지만그래도 독재체제를 유지하고자 언론에 대해 탄압을 거듭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59년 4월30일 경향신문을 폐간시킨 것이다.가톨릭계인 경향신문은 그 무렵 자유당 정권에 가장 비판적이었으며 장면이 대표하는 민주당 신파를 지지했다.따라서 60년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몇가지 꼬투리를 잡아 경향신문에 철퇴를 가했다. 그러나 도하 각 신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유당 정권의 비정(秕政)과 ‘3·15 부정선거’,그리고 이에 따른 학생·시민의 항거를 끊임없이 보도했다. 따라서 4월혁명후 언론은 명실공히 입법·사법·행정에 못잖은 ‘제4부’로떠올라 그 힘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강력했다. 언론계의 변화는 먼저 양적인 팽창으로 나타났다.1960년 3월31일 현재 국무원 사무처에 등록된 각종 정기간행물의 숫자는 그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일간신문은 4·19 전의 41종에서 112종으로,일간통신은 14가지에서 274가지로,주간신문은 136종에서 476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그야말로 ‘사무실 한평에 등사판 하나만 갖추면 통신사 간판을 내걸고 실업자 서너명만 모으면신문사 간판을 내걸 수 있는’시절이었다. 언론사가 급증하자 사이비기자가 판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고 이에 따라강경·논산 등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사이비기자 물러가라”며 데모하기도 했다.한국일보가 1961년 2월 말 연재한 ‘기자가 취재한 기자군(記者群)-공갈기자’시리즈를 보면 그들의 성분과 폐해를 짐작할 만하다. “‘공갈기자’와 ‘진드기기자’들에게는 전직이 있다.…연무대 주변에서진을 친 이들의 대부분은 전직이 헌병대 문관 아니면 형사,또는 CIC군관,이밖에 퇴역군인이다.그래서인지 ‘진드기기자’들의 취재 태도는 이미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보고듣는 것이 아니고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탐색하고 사람을 취조하는-말하자면 ‘범죄수사’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전통있는 언론사야 행태가 물론 달랐지만 그들 역시 정부 시책을 사사건건물고 늘어져 비난하는 것을 신문의 의무로 아는 듯했다.당시 언론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3·15 부정선거’의 주범 가운데 하나인 자유당 간부장경근(張暻根)이입원중인 병원을 탈출,일본으로 밀항한 사건이 발생한다.이에 서울일일신문은 “면이와 경근이 때문에 창피해서”라는 설명과 함께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을 그린 만평을 실었다.‘장씨 종친회’라는 제목의 이 만평은 국무총리 장면과 부정선거 혐의로 구속된 장경근을 한데 엮어 비난한 것이었다. 장총리의 공보비서관인 송원영(宋元英)이 서울일일신문의 이관구(李寬求)사장을 찾아가 항의하니 이사장도 “이건 너무했다”면서 윤전기를 멈추고 만평을 뺐다고 한다(송원영 회고록에서). 경향신문 정치부장으로 있다 바로 공보비서관이 된 송원영은 “모든 매스컴이 장면정권을 두들겨팼다.마치 언론자유는 장정권을 타도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처럼”이라고 회고했다. 한편 신문이 보도 면에서 신중과 자제를 잃어(宋建鎬 표현) 독자들에게 수난을 당하는 사태도 자주 일어났다.부산일보는 동아대 학생들의 습격을 받아 20일동안 휴간했으며,한국일보는 ‘혁명전야’라는 연재소설에서 작가 정비석(鄭飛石)이 연세대생을 모욕했다는 항의를 받자 연재를 중단했다.박태선(朴泰善)장로교회 신도 수천명이 대낮에 동아일보 사옥에 침입,난동을 부린일도 있었다. 장면정부는 언론의 이런 태도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설득하는 이외의 방법은 쓰지 않았다.장면정부의 언론 주무장관인 정헌주(鄭憲柱) 국무원 사무처장은 “심지어는 없는 사실도 만들어서 쓰곤 했지만 그래도 정부로서는‘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자리를 잡겠지’하는 생각에서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언론도 세월이 흐르면 책임을 깨닫고 스스로 바로 설 것이라는 그 자율기능을 믿은 것이다. 장면정부는 오히려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애썼다.가끔 ‘대통령 유시’나 발표하고 기자회견은 1년에 한 두차례 하는데 그쳤던 이승만과는 달리 기자회견을 매주 한차례 정례화했다.그럴 때면 전 각료를 동원하다시피해 갖가지 질문에 답했다. 또 KBS라디오를 통해 ‘주례 국정보고’도 방송했다.매주 토요일 오후 7시30분에 시작한 이 방송에서 장면은 민주당 정부의 방침을 국민들에게 설득조로 이야기했다. 4월혁명을 이룰 때까지 민주당과 신문은 ‘동지’였다.그러나 장면정부가들어서자 어제의 동지는 ‘적’으로 돌변했다.5·16쿠데타후 신문은 장면정부를 망친 ‘3신(新·신문,민주당 구파가 분당한 신민당,신파 소장파 모임인 신풍회)’ 가운데 하나로 인구에 회자됐고 군사정권 아래서 모든 자유를 빼앗겼다. 이용원기자 ywyi@[기고] 언론자유 수호 自淨운동 싹 틔워4·19로 이승만(李承晩)정권이 무너진 후 한국 언론은 비로소 자유를 누릴수 있게 됐다.정부의 언론에 대한 간섭과 통제가 급격히 사라졌고,언론 스스로도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려고 노력했다. 허정(許政)과도정부는 1960년 7월1일 법률 제553호로서 ‘신문 및 정당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을 공포했다.이로써 허가제를 규정한 미 군정법령 88호는 폐지됐고,이제 등록만 하면 누구나 정기간행물을 발행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과거 대통령 직속의 독립된 부서였던 공보실이 폐지됐고,국가보안법과선거법에 삽입된 언론통제 조항도 삭제됐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한동안 언론은 과거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자유를 누렸다.그러나 갑자기 언론자유가 주어지자 우후죽순처럼 정기간행물이 쏟아져 나와 일간지나 주간지가 4·19 전에 비해 3배 가량 늘어날 정도가 되면서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언론인들로 인한 폐단도 적지 않게 드러났다. 한편 1960년 5월 부산을 시작으로 하여 대구·서울 등지의 여러 신문사에서 노조가 차례로 결성됐고,KBS도 ‘방송중립화 운동’을 펼쳐 공정방송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그리고 1961년 2월13일에는 일본 거류민단계의 조용수(趙鏞壽)가 중심이 되고 국내 혁신계 인사인 송지영(宋志英) 윤길중(尹吉重)고정훈(高貞勳) 등이 참여한 민족일보가 창간되어 혁신계 세력을 대변하게됐다. 이런 가운데 자신들에 관한 보도에 불만을 품은 일부 독자들이 신문에 대해 항의시위나 난입,그리고 불매운동을 벌이는 일도 생겼다.이같은 사태는 무책임하고 부정확한 보도를 한 언론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막으려고 한 일부 독자들의 잘못된 의식도 작용한 결과였다. 이렇듯 제2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언론자유가 급격히 신장됐지만,언론자유는점차로 제약되는 경향을 보였다.집권 이후 국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 민주당 정권은 언론규제 장치로 ‘외국 정기간행물 국내 배포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었다.이것은 신문이 등록제로 대체되면서 폐기된 미군정법령 88호중 제5조만 유효하다는 유권해석과 함께 그것을 대신하는 법령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또한 창간되기도 전에 민족일보에 대해 국회에서 조총련계 자금으로 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도 있었다.창간 이후 민족일보는 서울신문 공무국에서 제작됐는데,민주당 정권은 61년 3월 초에 서울신문에 압력을 가하여 이 신문의 조판과 인쇄를 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정권이 직접 언론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과 통제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언론자유는 대체로 보장된 편이었다.또한 ‘신문망국론’이라는 비난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던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언론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론계가 스스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제2공화국 시기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언론자유가 처음으로 허용됐고 또 이를 정착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언론계 스스로의 노력도 시작됐다는 점에서역사적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모처럼 보장된 언론자유를 지키고 언론을 발전시키기 위한 자율적인 노력이 결실을 맺기도 전에 5·16쿠데타가 터졌다.5·16 이후 언론자유는말살되고,언론은 정권의 통제와 특혜 속에 제 몫을 하지 못하며 기업적 성장에만 집착하게 됐다. [박용규 상지대 교수·신문학]
  • 金대통령 첫 지방순시 “인천국제공항 적극 지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5일 전국 16개 시·도에 대한 ‘지방행정개혁보고회의’의 첫번째로 인천광역시를 방문,회의를 주재하고 “인천국제공항은 중요한 사업이므로 적극 지원할 것이며 송도미디어밸리 사업도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날 최기선(崔箕善)시장으로부터 주요 지역현안과 행정개혁 추진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인천은 공중과 지상,바다 등 여건상 미래가 창창한 도시로 21세기에 적응할 수 있는 지식기반사업을 육성해야 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지역언론과의 회견에서 “외환위기를 극복한 만큼 국제통화기금(IMF) 차관 190억달러 가운데 올해말까지 총 130억달러를 갚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지난 1일부터 외자유치촉진법이 완화됐으며 앞으로도 외자유치에 걸림돌이 되는 법은 과감히 개정할 것”이라고 말한 뒤 수도권제한정비법은 수도권 인구집중을 막기위해 현행대로 유지하는 대신 벤처기업 등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梁承賢기자 yangbak@
  • [사설] 시급한 중산층 대책

    자신을 중산층으로 인식하고 있던 국민 3명 중 1명이 하류층으로 전락했다고 여긴다면 우리 사회에 무력한 계층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증거다.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국의 기혼남녀 993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외환위기 이전에 중산층으로 생각하고 있던 61%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19.7%가자신을 하류층으로 인식하고 있으며,그중에서 79%가 3년 안에 중산층 복귀가 힘들 것으로 점치고 있다.그동안은 보다 많이 가진 자와 보다 적게 가진 자 사이에서 특별한 불만이나 불평 없이 살아온 것이 우리의 중산층이다.최고급 사치나 낭비는 할 수 없어도 저축하면 남이 사는 물건을 살 수 있고,가고 싶은 해외여행도 할 수 있었다.그렇지만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 반납,월급삭감,실직 등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불투명해지면서 하류층으로 전락하는낭패감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실업자는 날로 늘어나는 반면 호화 유흥업소들이 날 새는 줄 모르고 흥청거리는 가운데 빈부의 양극화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그러나 중산층 몰락은 건전한 자본주의경제체제와 사회공동체 유지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현상이다.중산층은 자동차와 주택 등 소비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데다 양질의 노동력을 공급하여 경제성장의 주원동력으로 기능을 하는 등 사회안정의 버팀목이 돼왔다.크게 잘살지도 않지만 못살지도 않는 중산층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는 안정감을 지킬 수 있었으나 경제위기로 밸런스는 깨어져버렸다.때마침 14일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중산층을 위해 중소기업,벤처기업,문화·관광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시책을 강조한 점은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이번 기회에 관계 당국은부유계층의 불로성(不勞性)소득이나 은폐된 음성소득을 철저히 가려내 중과세함으로써 저소득·중산층의 세부담을 덜어주는 조세행정을 강화토록 당부한다.또 고소득 중과세가 핵심인 금융소득종합과세제도를 부활시키고 중산층 이하의 근로소득세율을 낮추는 방안 등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중산층 몰락은 생활난으로 가정파괴를 초래하는 등 갖가지 병리현상을 일으킬 소지가 얼마든지 있다. 때문에 건강한 사회발전의 중요한 축(軸)을 이루는 중산층이 삶의 목표와 의욕을 잃지 않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이미 상당 부분 해체된 데다 빠른 시일 내에 재구축이 어려운 것으로 조사된 만큼 정부의 다각적인 배려와 대책마련이 있기를 거듭 당부한다.
  • 金대통령 ‘충효사상의 현대적 해석’ 기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충효사상의 현대적 해석’을 국내 모영자신문과자매지인 경제신문 14일자에 기고했다.지난 3월18일 유교지도자들과 오찬에서 행한 ‘충효사상을 오늘에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라는 연설을 기초로정리한 것이다. 김대통령은 이 기고문에서 “지난날의 충효는 임금이 임금답지 않아도 신은 신다워야 했고,부모는 부모답지 않아도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일방적관계였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개인의 인격과 사회계약사상을 토대로 한 오늘날 민주주의의 도덕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이 연장에서 오늘의 충의 대상은 국가가 아닌 국민이며,헌법에도 국민이 주권자임을 명시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효도 이제는 부모와 자식 사이가 상호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인격적 관계로 발전돼야 가능하다고 역설했다.그런 점에서 “젊은 과부 며느리가 시부모를 위해 개가하지 않고 일생을 희생하거나 젊은 여성이 가난한 부모 봉양과 형제 교육을 위해 화류계에 투신하는 일을 효라고 권장해서는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특히 주목되는 대목은‘사회적 효’다.정부가 자식들의 세금을 받은 예산으로 노인들을 보살피는 등의 복지정책을 펴는 것을 효로 연결시켰다.
  • [사설] 투기조짐의 아파트분양

    최근 들어 수도권지역을 중심으로 한 아파트 신규분양이 과열로 치닫고 투기조짐이 두드러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구리토평지구의 경우 8개 건설업체 모델하우스가 문을 연 지난 26일 무려 4만여명의 인파가 몰려 주변교통이 마비되는 북새통을 이룬 것으로 보도됐다.또 수백명의 속칭 ‘떴다방’(이동부동산중개업소) 사람들이 가세해 평형에 따라 보통 2천만~5천만원의 프리미엄을 내세우는 등 투기를 부채질하는 것으로 전해진다.당첨 즉시 웃돈을 받고 분양권을 전매하는 일반청약자들도 적지않다는 것이다.지난 22일 용인 수지지역과 지난달 서울 영등포의 한 조합아파트 분양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주택경기 활성화를 통해 실물경제 회복을 뒷받침하고 실업문제를 해소하려는 당초 정부의 의도가 엉뚱하게 빗나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정부는 그동안 얼어붙은 부동산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분양권 소유자의 환금성을 높여주기 위해 이의 전매를 허용했지만 투기조장의 역기능이 더 심각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더욱이 현재 무주택자로 제한돼 있는 지역주택조합 가입자격도 앞으로 소형주택 소유자에게까지 확대할 것으로 알려져 무주택 서민들의내집 마련은 더욱 힘겨워질 전망이다. 신규 아파트 분양이 투기양상을 보이는 것은 최근 실질 예금금리가 6~7%선으로 대폭 하향조정되고 주가가 보합세를 보임에 따라 마땅한 투자대상을 찾지 못한 시중 여유자금이 주택시장에 몰리고 있는 데서 크게 비롯된다.또 이러한 자금 유입은 경기부양 파급효과가 큰 아파트 등 주택건설을 촉진함으로써 내수진작을 뒷받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경기활성화 못지않게 신경을 써야 할 것이 투기붐이며 어떤 경우에도 이는 허용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경기부양 명분 아래 무질서하고 냄비 끓는 듯한 전매차익 챙기기와 아파트값 올리기는 가진 자들의 주머니만 채워주고 실수요자에게 재산상 피해를 입힐 뿐만 아니라 무주택 서민들의 상대적빈곤감을 가중시킨다.이 때문에 관계당국은 투기를 조장하는 악덕 부동산중개업자에 대해서는 세무조사 등을 통해 폭리분을 중과세하고 미등기전매에의한 아파트가격 상승을 막는 보완대책을 마련토록 촉구한다.이와 함께 청약과열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앞으로 무주택자를 비롯,실수요자들에게 세제·금융상 지원을 크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주택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 헌재,“룸살롱 재산세 중과는 위헌”

    룸살롱과 요정 등 고급오락장의 기준과 범위를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대통령령에 위임,재산세를 무겁게 물리도록 규정한 구 지방세법 조항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졌다. 헌재 전원재판부(주심 趙昇衡 재판관)는 정모씨 등 12명이 지방세법 188조등에 대해 낸 위헌제청 신청사건에서 “조세법률주의와 포괄 위임 입법금지원칙에 어긋난다”면서 이같이 결정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어떤 수준의 오락장이 고급오락장에 해당하는지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세 기준을 대통령령에 위임한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任炳先 bsnim@
  • 시한부 종말론의 실체는 무엇일까

    92년의 휴거소동 이후 한동안 잠복해 있던 시한부 종말론이 일부 사교집단을 중심으로 음성적으로 다시 번져가고 있다.특히 올해는 한 세기 뿐 아니라 밀레니엄(1,000년)을 마감하는 해이자 ‘1999년 7월 하늘로부터 큰 재앙이닥칠 것’이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등으로 시한부 종말론이 그 어느때보다 활발하게 활동할 소지가 있는 해이기도 하다. 세기말을 맞아 시한부 종말론이 기승을 부릴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시한부 종말론의 실체와 그 문제점을 알리기 위한 자리가 마련된다.한국종교인평화회의(회장 오고산,불교조계종 총무원장)가 29일 오후2시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세기말적 종교현상,어떻게 볼 것인가’라는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토론회에서 ‘폐쇄적 신앙집단의 사회적 분석’에 대해 발표하는 서울대 종교학과 김종서교수는 최근들어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교집단이늘어난 것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종교다원주의 추세에 따라 ‘틈새종교’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들의 전도방식이 포섭기술로 무장한‘종교삐끼’를 동원할 정도로 고도화돼 있고 집요하기 때문에 이들 집단에연관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시한부 종말론을 사회심리학적으로 조명한 연세대 심리학과 이훈구교수는“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나 ‘Y2K 문제’,‘IMF위기’등으로 시한부 종말론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면서 “언론도 종말론을 흥미위주로 다루지말고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며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주지시키는데 초점을 모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한부 종말론을 신학적 측면에서 분석한 장로회신학대 김명용교수는 “시한부 종말론과 기독교의 종말론은 구분돼야 한다”면서 “시한부 종말론은세상과 역사에서 도피하려는 탈역사적인 삶을 불러오는 매우 위험한 것이지만 기독교 종말론은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의(義)를 위해 싸울 것을 가르치는 교리이자 역사의 어둠속에서 역사의 희망을 가르치는 교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강대 종교학과 길희성 교수는 ‘종교적 광신과 시민사회의 윤리’라는 발제문을 통해 “시민사회에서 종교의 자유는 오직 상호존중과 관용 위에서만 작동한다”면서 “광신적인 종교집단이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것 자체가 시민사회의 혜택인 만큼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거나 타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집단이라면 당연히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제2공화국과 張勉](8)尹潽善과의 갈등(下)/윤보선과 평가

    1961년 5월16일 새벽2시쯤 張勉은 총리 숙소로 쓰는 반도호텔 809호실에서경호대장의 다급한 목소리에 일어났다.張都暎 육군참모총장이 급한 일로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張都暎은 “육군 30사단이 장난질 하려는 것을 막았고,현재 해병과 공수부대일부가 서울로 들어오려는 것을 한강다리에서 막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어“염려마시고 그저 그런 일이 있다는 것만 아십시오”라고 덧붙였다. 張勉은 와서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하고 기다리지만 張都暎은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총성이 요란하게 들려오자 張勉은 경호대장 등과 함께 지프를타고 반도호텔을 떠났다.거리가 가까운 미국대사관과 대사관 사택을 찾았지만 문을 열지 않아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잠시 몸을 피하려고 아무도 짐작하지 못할 혜화동 수녀원으로 갔다”(회고록 중에서).그리고는 55시간이 지난 18일 낮12시쯤에야 모습을 드러내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내각 총사퇴를 발표한다. 尹潽善은 새벽 3시30분에서 4시 사이 침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張勉과 마찬가지로 張都暎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었다.張都暎은 “쿠데타가 일어나 헌병을 동원해 한강다리에서 저지하려 했으나 중과부적으로 뚫렸다. 쿠데타군이 시내로 들어왔는데 진압될 것같지 않다”고 우려했다(尹潽善 회고록에서). 尹潽善은 “피신하라는 말처럼 들렸지만 일신의 안전만을 위해 300만 서울시민을 버릴 수 없고” 또 “그들하고 사리를 따져볼 수도 있을 것이요, 설령피살이 된대도 그리 부끄러울 것은 없다고 생각해” 자리를 지킨다. 5·16쿠데타가 발생해 제2공화국이 결국 무너지기까지 국무총리 張勉은 몸을 숨겼고 대통령 尹潽善은 현장에 남아 ‘유일한 헌법기관’으로서 쿠데타세력을 상대한다.쿠데타를 적극적으로 분쇄하지 못하고 자기 한몸 피신하는 데 그쳤던 張勉은 제2공화국 붕괴에 변명할 여지가 없다.그렇다면 尹潽善은 제 할일을 다한 걸까. 16일 낮 쿠데타 주역인 朴正熙소장과 柳原植대령이 청와대로 尹潽善을 찾아왔다.이 자리에는 玄錫虎국방장관과 張都暎 등이 함께 있었다.玄錫虎는 쿠데타 소식을 듣고 반도호텔로 가서 張勉을 만나고 헤어진 뒤 쿠데타군에게 체포된 상태였다. 접견실에서 朴正熙 일행을 만난 尹潽善은 “올 것이 왔구나”라는 말로 입을열었다.이 말은 훗날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되었다. 尹潽善을 비난하는 쪽은 “쿠데타를 기다렸다는 투의 이 표현이야말로 그가대통령 직에서 물러나기까지 쿠데타세력과 관련해 보여준 행동을 설명하는키워드”라고 풀이했다.현장에 있던 玄錫虎는 회고록에서,尹潽善이 이 말에이어 “나라를 구하는 길은 이 길밖에 없었다”면서 張勉정부에 비난을 퍼붓고 朴正熙의 거사에 찬사를 보냈다고 밝혔다. 尹潽善의 설명은 물론 다르다.“그들(朴正熙 일행)을 대하는 마음이 서글퍼나도 모르게 이 말이 떨어졌고,당시 사회적·정치적 혼란상을 생각할 때 당장 무슨 일이 터지고야 말 것같아서”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尹潽善은 “군인들끼리 피를 흘리는 일이 없도록 잘 수습하라”는 말로 발언을 끝낸다.모두 물러갔다가 朴正熙와 柳原植이 다시 들어왔다.柳原植이 “저희는 이 혁명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면서과거에도 대통령에게 충성을다했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마치 張勉내각이 물러나면 권력을 尹潽善에게 넘길 것처럼 들리게끔 하는말이었다. 尹潽善은 이 자리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미 국무부 자료를 보면,그는 白樂濬 참의원의장을 쿠데타군쪽에 보내 ‘헌법 69조에 따라 尹대통령이 새 총리를 임명한다면 군부가 권력을 이양하고 철수할 것인가’를 타진한다. 한편 朴正熙 일행에 이어 마셜 그린 주한미대리대사와 매그루더 UN군사령관이 함께 尹潽善을 방문한다.두 사람은 이미 “張勉총리 영도 하의 합헌적인정부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뒤였다.두 사람은 “서울시내에 들어온쿠데타군은 4,000명이 채 안되므로 4만 병력만 출동시켜 서울을 포위해 들어가면 쿠데타군이 항복할 것”이라며 무력진압을 주장했다. 그러나 尹潽善은 “국군끼리 전투를 벌여 서울이 불바다가 되면 북한 인민군이 기회를 노려 남침한다”는 논리로 끝내 반대한다.그린은 “각하의 이번결정으로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군부통치가 계속될 것”이라는 ‘경고’를 남기고 돌아간다.매그루더는 尹潽善과의 면담후 본국 합참본부에 전문을 보내“尹대통령은 張총리를 몰아내고 싶어 가능한 법적 절차를 찾고 있다”고 보고한다. 尹潽善은 이날 오후 張都暎이 요청한 계엄령을 승인했으며 17일 오후 2시에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해 “군사혁명위원회가 정부 기능을 대신한다”고 밝혀 張내각 퇴진을 기정사실로 만들었다.또 쿠데타를 “애국적인 군사혁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편 張勉은 수녀원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사태의 전개를 알고 있었고 16일아침 그린 대리대사와 통화도 한다(그린의 증언).그는 내각 총사퇴를 결심한 이유를 “미대사관에서 尹씨의 태도를 연락받았는데 그가 쿠데타 진압을 방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쓰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회고록에서밝혔다.그러나 張勉은 尹潽善에게 직접 연락해 쿠데타 저지를 논의하거나,최소한 그의 뜻이 무엇인지를 직접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尹潽善은 張勉의 행방을 알지도 못했지만 그와 상관없이 제2공화국을 지키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다. 정치적 지향과 인적 구성 등에서 이질적이었던 민주당의 신·구파,그리고 그들의 대표격인 張勉총리와 尹潽善대통령의 갈등과 대립은 갓 피어난 민주주의의 싹을 짓밟히게 하는 크나큰 비극을 초래한다.제2공화국 붕괴의 책임을저울질한다면 張勉과 尹潽善 그 어느쪽으로도 저울추가 결코 기울지는 않을것이다. 이용원- [기고] 張勉과 尹潽善 평가 5·16쿠데타가 일어나 張勉총리의 소재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尹潽善대통령이 “올 것이 왔다”며 쿠데타를 추인한 것은 두 사람의 비극적 결합을잘 말해준다.우리가 슈뢰더 독일총리는 알아도 대통령 이름은 잘 모르듯 내각책임제 아래 대통령은 명목상 존재에 불과하다.그런데도 尹潽善은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처럼 행세하다 막상 단호한 조치가 필요한 때 “올 것이 왔다”며 쿠데타를 추인해 버렸다. 尹潽善에게 쿠데타가 ‘올 것’인 이유는 자신의 파벌이 정권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당시 집권당은 한민당 후신인 구파와,재야 민주화세력인 신파의 연합으로 구성된 민주당이었다.申翼熙·趙炳玉같은 비중 있는 지도자가사망한 뒤 구파를 이끌게 된 尹潽善은 전형적인 과거형 정치가였다. 구파의 전신인 한민당은 우익민족주의 세력과 친일파 세력이 혼재한 정당이었다.UN한국위원단이 ‘보수적 지주정당’이라고 지적했듯이 해방직후 토지개혁에 반대하고 반민족행위처벌법에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으며,李承晩의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했다.따라서 한민당이 李承晩과 결별하고 야당의 길을걸은 것은 이념과 정책상의 대립이라기보다 李承晩의 권력독점에 대한 반발때문이었다.한민당은 해방이후 좌익세력의 급진성과 李承晩의 독선이 낳은‘반감(反感)’이란 정치적 공간을 적절히 점유해 생존한 과거형 정당인 것이다. 4월혁명후 ‘대통령=구파,총리=신파’라는 합의 덕에 대통령에 선출된 尹潽善이,자파인 金度演을 총리로 지명한 것은 정치적 합의를 휴지조각으로 여기는 과거형 정치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대통령과 총리를 모두 차지하려던 계획이 실패하자 구파는 결국 민주당을 뛰쳐나가 신민당을 창당한다.尹潽善은대통령으로서 이런 분열적 행위를 제지하기보다는 부추기는듯한 처신을 보였고,정부를 비판하는 담화를 발표해 張勉정부 흔들기에 여념이 없었다.개인과 파벌의 이익을 모든 가치보다 우선시한 행위인 것이다. 반면 신파를 이끈 張勉은 1960년대 한국상황에서는 등장이 너무 빨랐던 미래형 정치가이다.자유민주주의에의 신념과 종교적 경건함이 밴 구도자적(求道者的) 정치가인 張勉은 2000년을 눈앞에 둔 현재에도 시기상조일지 모를 정도로 선진적인 정치가였다.그는 尹潽善이 이끄는 구파의 끝없는 시비를 인내하면서,1960년 10월 제2공화국 경축식에서 말한대로 “정부의 시정목표로서경제제일주의”를 주창한 실질적이고 선각적인 지도자였다. 쿠데타 세력이 마치 자신의 업적인양 내세운 경제개발5개년계획이나 국토건설사업은 모두 張勉정부에서 경제제일주의를 실천하고자 수립한 것들이다.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해 경제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 張勉정권의 경제개발계획이 실천되었더라면 5·16이후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재벌신화’라는 어두운 경제성장사는 ‘국민신화’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5·16후 두 사람의행보도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張勉은 쿠데타를 막지 못한 역사의 죄인이란 죄의식 속에 참회하다가 죽어간 반면,尹潽善은 ‘올 것이 왔다’던 쿠데타세력의 朴正熙 후보와 1963년과 67년 두 차례 대결했으나 패배했다.현실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꿈을 접었을 무렵인 1980년대에는 全斗煥 정권에 협력하다가 세상을 떠났다.쿠데타후 두 사람의 삶은 현재우리 정치의 낙후성의 한 원인을 말없이 웅변해준다. [李德 一 역사평론가·문학박사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
  • 경제협력 주요 내용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일본 총리의 이번 방한(訪韓)에서 눈에 띄는 결과물이 있다면 ‘한·일 경제협력 의제 21’을 꼽을 수 있다.경제협력 의제에는 크게 새로운 내용은 없다.작년 10월 양국이 합의한 ‘행동계획’에 나와있다.이중 중점 추진사항 5개에 대해 ‘향후 과제’를 정리함으로써 조기 완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제협력 의제는 투자 자유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투자 가운데 일본 투자비중이 5%에 불과,시정이 필요하다는 양국의 공통인식에 따른 것이다.우선,한·일투자협정을 조기 체결하기로 했다.투자협정은유치국의 제도개선 노력을 법적으로 확인시켜준다는 의미가 있다.양국은 지난달 1차 예비회담에서 기본입장을 교환,투자범위와 출입국관리 등에서 사소한 차이만을 확인한 만큼 연내 타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양국은 올 가을 통상장관과 무역진흥기관장이 참여한 민관투자협의회를 개최하기로 했다.또 작년 10월 양국이 서명한 이중과세 방지협약에 대해 조속히 국회비준을 받아 오는 2001년 발효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양국은 상대국의 품질평가를 상호 수용하며 양국의 국내규격을국제규격화하고 국제규격을 개발하는데 협력키로 하는 등 기준·인증분야에서도 공조하기로 했다.
  • ‘명성황후’ 새단장… 새모습 보인다

    뮤지컬 ‘명성황후’(이문열 원작·김광림 각색·윤호진 연출)가 새로 단장하고 19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을 찾아온다. 이번 무대는 95년 초연 이후 97년 뮤지컬의 고장 브로드웨이에 진출,98년뉴욕·로스앤젤레스 순회공연을 통해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세부적인 사항을 수정 보완한 최신 버전이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무대장치.청 러 일 등 3국간섭을 다룬 2막에서는 이중 회전무대를 공중으로 들어올린 다음 바닥에 설치된 아다미 별장을 무대전면으로 끌어낸다.이 별장은 시해음모를 꾸민 곳.12m높이의 2중 회전무대를 설치해 황후 시해장면을 장중하게 연출한 바 있는 박동우가 새로 고안했다. 일본의 시해 음모와 평화로운 궁정의 모습을 대조시키려는 뜻이다. 다음은 배역.기획을 맡은 에이콤은 지난 달 오디션을 통해 뽑은 12명의 새얼굴을 투입한다.명성황후의 보디가드인 홍계훈으로 나올 주성중과 이오누에역의 김덕환 등이 그들이다. 주성중은 홍계훈 역을 맡아 김민수의 이미지와 경쟁을 벌이게 됐다.김민수는 이전에 홍계훈역을 맡아 칭찬을받았었다.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서울시립뮤지컬 단원으로 활동중인 주성중이 ‘김민수의 홍계훈’을 뛰어 넘어자기만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또 김원정 이태원이 번갈아 나오던 명성황후역도 이태원이 홀로 맡는다. 국내 팬에겐 무과시험 장면도 처음 보는 부문이다.택견을 가미한 고난도의무용으로 남성미를 듬뿍 담아 지난 해 해외공연에서 호평을 받았다.4월5일까지.(02)761-0300
  • 중고교 특별활동 ‘흐지부지’

    올해부터 전면 폐지된 중학생과 고등학교 1학년의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대체하기 위해 도입된 방과 후 특별활동이 시작부터 흐지부지되고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뒤 학원에 다니며 부족한 공부를보충,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만 커지고 있다. ‘새학교문화 창조를 위한 초·중·고교 정상화 방안’에 따라 도입된 방과 후 특별활동은 주입식 교육의 폐단을 없애고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을 살려주려는 목적으로 마련됐다.영어·일본어회화,논술 등 수업 시간에 충분히 할 수 없는 공부와 농구·탁구 등 운동,기타·피아노·바이올린 등 악기 연주,음악감상,합창,그림 그리기,서예,컴퓨터 등 다양한 학습과 여가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당수 학교들은 아예 시행하지도 않고 있다.가장 큰 이유는 준비나 홍보 부족 때문이다.이번 학기부터 특별활동을 실시해야 한다는 사실조차모르는 교사나 학생들이 많다.많은 학교들이 담당 교사를 확보하지 않았고교육 과정도 짜지 못한 상태이다.예산 타령도 한다. 실시중인 학교에서는 특별활동의내용이 알차지 못하고 형식에 그치기 일쑤다.학교측이 특별활동에 소극적이다보니 학생들은 외면할 수밖에 없다. 서울 K중 3학년 崔모군(16)은 “방과 후 특별활동이 3∼4개 정도 마련됐지만 형식적으로 이루어져 한반에서 5명 정도만 참석하고 있다”면서 “수업이 끝나고 학원으로 가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서울 S고 1학년 鄭모군(17)은 “특별활동에 어떤 과목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학생들도 많다”고 전했다. 특별활동이 비교적 다양한 서울 M중과 K고,경기도 B고 등에서도 학생들의참여율이 저조하기는 마찬가지다.서울 M중 3학년 李모양(16)은 “참여하는학생들이 적어 폐강된 수업도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방과 후 시간을 어떻게 활용토록 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다.사교육비 걱정만 늘었다.고교 1학년 자녀를 둔 權모씨(40·여)는 “강압적인 보충·자율학습이 폐지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이를 대신할 특별활동이 부실해 학원에 보내고 있다”고 불평했다. 흥사단 사무부총장 張東玄 박사는 “방과 후 교육이 잘 이뤄지지 못한다면사교육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 강원도 ‘별장 중과세’ 한시 폐지

    강원도내 별장용 주택 및 부동산에 적용되던 중과세가 오는 2001년말까지한시적으로 폐지된다. 도는 별장용 부동산에 대한 지방세 중과세 관련 조례를 4월중 개정,시행할계획이라고 16일 밝혔다.행정자치부로부터 최근 허가를 받았다. 도는 별장으로 분류되는 아파트와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등 공동주택과 단독주택에 대해 최고 7.5배까지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현행 조례를 고쳐 일반세율로 낮출 방침이다. 단독주택에 대해서는 강원도에 원적이나 본적이 있는 소유자에 한해 일반세율을 적용할 계획이다. 지방세 중과 세목은 취득세 10%,재산세 및 종합토지세 각 5%이나 조례를 개정하면 취득세는 2%,종합토지세는 0.2∼7%로 낮춰진다. 분양가가 8,000만원인 별장용 아파트의 경우 현재는 취득세 800만원 등 모두 1,17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나 중과세가 폐지되면 취득세 160만원 등총 413만원만 내면 된다. 도는 별장기준에 대한 민원이 많고 지방재정 기여도가 미미할 뿐 아니라 관광개발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시·군의 의견을받아들여 중과세를 폐지하기로 했다.
  • 이상민-맥도웰 MVP 동반2연패/소감

    - 정규리그 기자단 투표선정 이상민과 조니 맥도웰(이상 현대)이 최우수선수(MVP) ‘동반 2연패’에 성공했다.또 신기성(나래)은 신인왕 타이틀을 따냈다. 이상민은 15일 취재기자들의 투표에서 총유효표 67표 가운데 56표를 얻어 98∼99프로농구 정규리그 MVP로 뽑혔다.맥도웰도 34표를 획득해 최우수 외국인선수가 됐다.이상민과 맥도웰은 지난 시즌에 거푸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경합이 치열했던 신인상에서는 신기성이 37표를 얻어 서장훈(SK)을 9표차로따돌렸다.이밖에 신종석(나래·34표)은 식스맨,봉하민(기아·40표)은 기량발전(MIP)상을 차지했다.이상민 강동희(기아·이상 57표) 맥도웰(56표) 김영만(기아·39표) 서장훈(37표)은 ‘베스트5’로 선정됐다. 한편 정규리그 시상식은 오는 17일 오후 6시 하얏트호텔에서 열린다. - MVP 이상민“오빠부대 많은 컴퓨터 가드” “우승으로 보답하겠습니다”-.2년 연속 MVP의 영예를 차지한 이상민(27·182㎝)은 가장 많은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컴퓨터가드. 현란한 드리블과 송곳같은 패스가 일품이며 조니맥도웰과 함께 펼치는 속공은 상대팀들을 늘 주눅들게 한다.간간이 쏘아 올리는 3점포와 예상을 깬드라이브 인슛도 적중도가 높다.올시즌 34경기에서 평균 36.89분을 뛰며 14. 4득점 4.9리바운드 7.85어시스트(1위) 2.12가로채기(5위)를 기록했다.특히어시스트 부문에서 ‘터줏대감’ 강동희를 제치고 처음으로 타이틀을 거머쥐었다.스스로 쉽게 흥분하고 승부욕이 지나친 것이 흠이라고 반성 한다. 폭발적인 인기와는 달리 “현재 사귀는 여자는 없다”며 “평범하고 편안한 여자와 결혼할 계획”이라고 속내를 밝혔다.홍익중·고와 연세대를 졸업했다. 오병남- 신인상 신기성“외곽슛 일품·트리플 대기록” “동료들과 팬들의 성원에 감사할뿐 입니다.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알고 은퇴하는 날까지 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생애 단 한번뿐인 신인왕 타이틀을 따내 슈퍼스타로 가는 등용문을 통과한신기성(24·180㎝)은 스피드와 외곽슛이 뛰어난 포인트가드.농구명문 송도중·고와 고려대를 거쳐 입단과 함께 허재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즐비한 나래의 게임메이커를 당당히 꿰찼다.시즌 초반에는 적응력 부족으로 믿음을 주지 못했으나 2라운드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팀을 4위로 끌어 올렸고 정규리그 폐막 하루전인 13일 대우전에서 신인으로서는 세번째로 트리플 더블을 작성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올시즌 45경기에서 평균 33.81분을 뛰며 12.9득점 3.6리바운드 4.1어시스트(10위) 1.91가로채기(8위)의 성적을 냈다. 오병남- 외국인 MVP 맥도웰 “욕심없이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최우수 외국인선수 2연패를 이룬 조니 맥도웰(28·191㎝)은 국내에서 활약하고 있는 용병 20명 가운데 골밑 장악력이 가장 뛰어나다. 103㎏의 체중과 보디빌더를 연상케하는 체격을 바탕으로 한 골밑돌파는 “1대1로 막기가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올시즌에서는 지난 시즌의제이 웹 대신 영입된 센터 재키 존스가 외곽공격에 치중하는 바람에 골밑을대신 지켜야 하는 부담까지 떠안았지만 이상민과의 절묘한 콤비속공과 한층세련된 플레이로 잘 극복해냈다.특히 무리한 돌파를 자제하고 어시스트에 주력함으로써 상대팀들의 집중수비를 역이용하는 노련미가 돋보였다. 올시즌 45경기에서 평균 36.13분동안 뛰면서 24.62득점(4위) 13.53리바운드(2위) 3.4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오병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