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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발레왕국 꿈꾼다/대스타 요코 배출… 전국에 지망생 수십만

    일본이 서구인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돼온 발레무대에서 세계적인 프리마 발레리나 왕국의 꿈을 불태워가고 있다. 동양인들이 서구인에 비해 짧고 굽은 다리를 가졌다는 신체적 핸디캡만을 연상한다면 이는 백일몽에 지나지 않는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여기에 르네상스 시기부터 이어져온 유럽의 오랜 발레 역사를 뒤돌아 본다면 동양인들은 발레에 관한한 영원한 관객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신체적 핸디캡이 큰만큼 확실히 동양인들에게 있어 발레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도전이자 동시에 고난의 과정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 꿈을 얼마든지 실현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이미 세계적인 프리마 발레리나 요코 모리시타를 배출해냈기 때문이다. 요코는 어두운 과거를 딛고 성공한 발레리나로서 일본 발레리나 지망생들의 꿈이다.요코는 원폭 투하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48년 히로시마에서 조산아로 태어났다.허약한 아이였던 요코는 3살때 의사의 권유로 발레를 시작했다. 이렇게 발레를 시작한 요코는 그후 세기의 발레 스타 루돌프 누레예프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해적선」 「로미오와 줄리엣」을 포함,지금까지 1천회의 공연기록과 5백회의 주연기록을 갖고 있다.요코는 또 74년 불가리아에서 열린 바르나 국제발레대회 금메달과 85년 영국의 로렌스 올리버상을 수상,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했다. 요코는 동양인의 굽은 다리가 훈련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해주었다.그녀는 훈련을 통한 근육 형성으로 자신의 굽은 다리를 극복해냈다. 요코로 인해 오늘날 일본의 발레수준은 상승을 거듭하고 있다.오늘날 일본인들은 일본이 수십만의 발레리나 지망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 피아니스트 백낙호씨(이세기의 인물탐구:38)

    ◎음악혼 불사르는 건반의 마술사/풍부한 예술감각·정상의 기량으로 청중 매료/연주회 2백여회… 베토벤곡 “환상적 해석” 평가 「스위스 루체른호에서 달빛을 받고 일렁거리는 조각배」. 이는 베토벤 월광소나타를 듣고 19세기 유럽시인들이 평한 찬사다. 한번 귀기울이기 시작하면 그곳에 흠뻑 빠지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현란한 음의 희롱과 꿈결같은 멜로디,우울과 불안과 기대와 사랑에 눈먼 쓰라림을 극복하려는 듯 4분의 4박자 프레스토는 걷잡을 수 없는 파도처럼 몸부림친다. 피아노의 거장 프란츠 리스트는 「사람의 혼을 조용히 일깨우는 아다지오 소수테누토와 격정의 프레스토 사이에서 행복감을 노래하는 제2악장」을 향해 가라앉은 분위기의 리타르단도와 점점 거세지는 크레센도의 「두개의 심연속에 놓여진 꽃」 또는 이 둘 사이의 「금빛 가교」에 비유하기도 했다. 백락호의 「월광」은 좀 더 영롱하다.처음엔 구름을 헤치고 활짝 드러낸 얼굴처럼 눈이 부시리 만큼 한점 티없이 휘황찬란하다.절제된 감정과 은은하고 환상적인 녹턴(야상곡)의 분위기는 듣는 이의 가슴을 진주 타래로 꾸며준다.그러다가 차츰 음 하나하나가 생동감있게 연결되고 종장으로 치닫는 속도가 거세지면서 달빛은 산산조각 분쇄되어 폭우로 퍼붓는다. ○확신에 찬 두들김 그의 연주는 어느 경우에도 애매하다든가 모호한 감은 찾아볼 수 없다.간혹 화창한 봄날의 청람같은 무드가 느껴지는가 하면 확신을 가지고 두들기는 건반은 청중에게 안심과 안도를 안겨준다. 음악평론가 이강숙씨는 그의 베토벤 연주는 「음악의 혼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화성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남다르다」고 말한다.음악적 진실에 과장이 없고 음악의 상을 명확하게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그의 연주는 그만큼 설득력이 강하다.한치의 오차없이 음색의 변화에 깊이 파고들어 곡의 완성과 함께 벅찬 감동과 품위있는 여운이 깃들어 있다. 그가 연주하지 않은 피아노곡은 거의 없다.모차르트에서 베토벤,베버와 슈베르트 멘델스존 쇼팽 차이코프스키 스크리아빈에 이르기까지 지난 45년간 그가 애정과 정성을 쏟지않은 곡은 없다고 할 수 있다.그중에서도 베토벤과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해석은 「환상적 경지」란 평을 듣고 있다. 「노워크 아워」지의 에드워드 버가미니나 그와 두차례나 협연한 바 있는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벌 세노프스키도 「어느 한 대목에도 허점이 없이 면밀한 주의력과 힘찬 핑거레이션」에 감탄한 바 있다. 대부분의 연주가들이 그런 것처럼 그도 5살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서울 가회동에서 의학박사 백태성씨(고)와 조은희여사(86)사이의 5남4녀중 장남으로 출생.외과의사인 부친은 플루트를 직접 연주하고 집안은 언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는 병원에서 큰 수술이 있으면 시술하는 것을 눈여겨 보기도 했지만 폴란드의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파데레프스키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월광에 호소하는 듯한 천상의 소리와 엘먼의 달콤하고 매력적인 바이올린 선율에 매료되어 장차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부친은 의사가 되기를 원했으나 장남이 음악에 심취하자 파데레프스키가 빈의 거장 레세티츠키 밑에서 피아노를 사사하던 이야기,베를린파리 런던 뉴욕에 진출하여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기까지의 입지전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때부터 단 한번의 회의나 갈등없이 그는 음악의 길로만 똑바로 걸어왔다고 말한다.『음악은 이미 숙명이며 나의 생애였기 때문에』 그는 어떤 곡에도 당황하지 않는다.수많은 평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처럼 「확신에 찬 두들김」으로 청중의 가슴을 정확하게 두들길 뿐이다. ○음악을 숙명으로 75년 대구 영남대가 강당을 새로 짓고 그를 초청했을때 연주회가 시작되자마자 불이 나간 적이 있었다.그날의 첫 곡은 슈만 피아노 협주곡 2번. 빠른 템포의 알레그로 비바체로 힘찬 화음에 이어 제1테마가 나타나기도 전에 불이 나간 바람에 장래가 술렁거리는 중에도 그는 아름다운 안단티노에서 스케르초와 프레스토까지 17분의 연주를 완벽하게 끝냈다.물론 다음곡 다음곡에서도 불이 들어오지 않아 촛불이 출렁거리는 속에서 연주를 진행해나갔고 어느때보다 뜨거운 박수를 받았으나 그는 「연주자를 믿는 청중의 태도」에 박수를 되돌렸다. 지난해 런던 비숍스게이트홀에서의 피아노 독주도 마찬가지다.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연주중에 어디선가 벌이 날아들어 아무리 피아노를 두들겨도 그의 왼쪽 손등에서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다.벌에 쏘일 경우 손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오로지 연주에만 몰두했다.청중은 이를 알리 없었고 그의 매니저인 찰스 핀치씨만이 이 사실을 알고 발을 동동 굴렀다.그리고 그의 끈질김과 인내심과 암보에 감탄했다. 백낙호씨는 온화하고 겸허하다.정중하고 진솔한 성격으로 좀체 희비의 높낮이를 드러내지 않는다.다만 음악에서만은 좀더 공부하고 싶은 갈망에 목말라 했으나 유학의 길은 손에 닿지 않았다. 부친은 개성에서 경북등 도립병원으로 전전하는 월급쟁이에 불과했고 형제가 많은데 외국유학까지 가겠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뜻하지 않은 행운이 날아들었다.당시 미국대사관부영사이자 아마추어 첼리스트였던 마이클 베이츠가 그의 독주회에서 베토벤 「비창」과 「열정」을 듣고는 예일대 장학생으로 추천해준 것이다. 베토벤은 이처럼그와 인연이 깊다.후에 빈 교향악단의 지휘자 쿨트 뵈스와도 바로 「월광」연주가 계기가 되어 「황제」협연이 이루어졌다.그는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53년 예일대에서 1학년부터 다시 시작했다.그러나 크나이젤 하계 음악학교에서 아튀르 발삼교수를 만나 사사하고 예일대 관현악단과 협연을 하게 되기까지 그는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해야만 했다. 낮에는 학교공부와 시간강사 피아노조교로,밤에는 접시닦이와 청소 아르바이트 그리고 새벽엔 연습등 예일에서의 6년은 인생의 전환이 될만큼 슬픔·고뇌·가난으로 점철되었고 비로소 뉴욕 줄리어드로 진출하면서 그의 앞길에 연분홍빛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첫번째 행운은 음악도의 선망인 에델마커스교수에게 지휘법·실내악·피아노문헌을 공부한 일이고 폴 주코프스키와의 줄리어드정기연주 협연,타운홀 WQXR(뉴욕FM)방송국에서의 독주회,그리고 잊지못할 일은 정명화·경화자매의 줄리어드 입시때 피아노반주를 맡은 일,루빈스타인·리히터·하이페츠연주와 뵈링의 마지막 「토스카」를 본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행운은 이어져 모교인 서울대가 그를 교수로 불러들였고 귀국독주회에서 특유의 베토벤 「열정」소나타 바하 「파르티타」 쇼팽·스크리아빈·드뷔시를 고루 선보여 유한철·박용구·김형주등 국내 평자들로부터 「진실한 예술성」 「세련된 의지」 「맑은 쾌감」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의 탁월한 테크닉」등의 화려한 평에 휩싸였다. 그해 KBS의 인기아나운서이던 이정희씨를 만나 결혼,1남2녀가 모두 빈음대 졸업후 음악가가 된 것도 행운의 하나다(장녀 혜영씨는 KBS 교향악단 제1바이올리니스트,차녀 혜선씨는 뉴서울 필하모니 첼리스트,아들 정엽씨는 빈음대서 피아노 전공후 연구과정중). 그는 요즘도 새벽5시에 일어나서 예일대 줄리어드 음대시절과 똑같이 연습에 임하고 있다.75년이후 런던 심포니 매니저인 찰스 핀치씨와 계약되어 동남아·유럽연주 스케줄을 짜기 때문에 그는 교수와 연주활동을 적절하게 누릴 수 있게 되었다.따라서 하루 2시간씩의 매일 연습으로 해외연주 서울 지방연주 협연 등에 대비하고 있다.음악없이 어떻게 살 수있었을까.그는 피와 살과 그를 구성하는 세포하나까지도 음악으로 이루어졌음을 부인하지 않는다.입속에서 한소절의 허밍만으로도 벌써 몸속에 희열과 의욕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낀다. ○7년만에 독주회 91년 학교와 연주외에 모처럼 IMC(국제음악협의회)한국대표로 참여,지난 제25차 총회에서 동양권에서는 처음으로 임기 6년의 집행위원에 피선되었고 한달에 한번씩 예일대 재경 동문회 조찬에 나가는 정도.술은 맥주 한두잔에 애연가.선배인 전봉초,동료 이남수씨 등과 전람회장,연주회장 등에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그는 수많은 지방연주 해외연주 협연등 2백여회의 연주에도 불구하고 지난봄 호암아트홀서 7년만의 서울 독주회를 개최,그날의 「월광」소나타는 세월이 갈수록 영롱함과 격정이 진하여 피아노의 칸타빌레는 한층 우아하고 리타르단도와 크레센도는 정열의 다이내믹스로 절정을 이루었다. 마침내 그의 월광은 산산조각으로 분산되었고 청중도 연주자도 달빛의 폭우에 흠뻑 젖어 한동안 침묵에서 헤어 나올줄을 몰랐다.내년이면 대학교수 정년,그의 예술의 열정시대가 아마도 그때부터 막을 올리게 됨을 예고하고 있었다. □연보 ▲1929년 서울 출생 ▲1946년 개성 송도중 졸업 ▲1946년 서울대음대 입학 ▲1949년 서울대 음대관현악단 협연으로 「신인연주회」데뷔 ▲1950년 6월24일 백낙호 피아노 독주회(서울시공관) ▲1950년 해군교향악단 입단 ▲1952년 서울대 음대 졸업(김원복 윤기선사사) ▲1953년 서울대 강사·도미 ▲1957년 예일대 음대 졸업(예일대교향악단협연) 아튀르 발삼 사사 ▲1958년 예일대 음대대학원 졸업·예일대 강사·에델마커스 갈라미안 사사 ▲1962년 줄리어드 음대 연구과수료·줄리어드 정기연주회협연 ▲1962년 뉴욕 타운홀에서 피아노 독주회 ▲1963년 귀국 서울대 음대 재직 ▲1963년 서울시공관서 귀국독주회 ▲1964년 KBS교향악단과 협연(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 ▲1972년 대북 시립교향악단과 협연 ▲1972년 싱가포르에서 피아노 독주회 ▲1975년 빈교향악단과 협연,쿨트 뵈스지휘 ▲1975년 하와이대학서 피아노 독주회 ▲1976년 방콕서 피아노 독주회 ▲1977년 빈교향악단과 협연·서울시향협연(홍콩 시민회관)·말레이시아시향 협연(콸라룸푸르)·국향협연(국립극장) ▲1978년 방콕·싱가포르 피아노 독주·일본 도쿄교향악단 협연 ▲1979년 하와이대학서 피아노 독주회 ▲1980년 빈 교향악단과 협연·핀란드시향협연(81년)·미시간에서 피아노 독주회(82년)·빈교향악단·핀란드교향악단·서울시향협연(84년)·영국 아바딘 음악제서 서울대음대교향악단과 연주(85년)·KBS교향악단과 서울 수원 부산 인천 연주·대전 협연(87년)등 협연·해외독주등 2백여회 ▲1987년 서울대 음대 학장·LA심포니·춘천시향협연·이탈리아 우르비노 하기 국제대학초빙교수(88년)·KBS교향악단과 데뷔 40주년기념 연주회(89년)·이탈리아 페사로 하기음악제초빙교수(90년) ▲1992년 영국 런던 비숍스게이트홀서 피아노독주회및 런던음악제 초빙 교수 ▲1993년 3월 서울 호암아트홀서 피아노독주회및 부산 대구 대전서 독주회 서울대 음대 교수·IMC(국제음악협의회)한국대표(91년이후)한국음악협회 부이사장·한국 피아노 학회 회장·IMC 집행위원 대한민국 문화예술상·80년 올해의 음악상(음협제정)·「월간음악」상·영창음악상·예술대상(예총)
  • 「세계의 문화기행­오페라시리즈」 방송

    ◎K­TV,19일부터 매주 화요일 KBS­1TV에서는 예술 다큐멘터리 「세계의 미술관」에 이어 오는 19일부터 매주 화요일 「세계의 문화기행­오페라 시리즈」를 방송한다.세계의 우수 예술프로그램으로 오페라 10개 작품을 엄선,줄거리와 숨은 이야기를 원작의 배경이 되는 장소에서 해설을 곁들인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으로 구성돼있다.특히 영화 「벤허」「십계」등으로 국내 영화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노익장 찰턴 헤스턴이 해설을 맡았다. 「오페라 시리즈」를 통해 안방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된 오페라들은 「일 트로바토레」를 비롯해 「토스카」「마농 레스코」「라보엠」「오델로」「아이다」「박쥐」「앙드레 셰니에」 등이다.세계의 3대 성악가중 한 사람인 플라시도 도밍고를 포함해 키리테 카나와,미렐라 프레니,레노토 부루손등과 줄리니,리카르도 무티,시노풀리등과 같은 지휘자들을 TV 화면을 통해 만날 수 있다. 한편 해설자로 등장하는 원로 영화배우겸 감독인 찰턴 헤스턴은 연극,영화이외에 고전음악에도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있다.50여편이 넘는 영화,연극에 출연해 명성을 날린 그는 지난 71년 영화감독으로 데뷔,셰익스피어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감독,출연하였다.
  • 엑스포인기 더하는 황홀한 민속춤/각국이 펼치는 전통예술의 현장

    ◎람바다·삼바 등 정열적 가무공연/브라질/아낙 등 악기연주·의상쇼도 볼만/말연 대전 엑스포에서 참가국들이 과학기술 소개나 상품선전 못지 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국의 고유 민속전통예술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각종 민속공연행사다.이 때문에 대전엑스포는 큰 돈을 들여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각국의 민속전통예술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6개국 날마다 행사 1백8개 참가국중 86개국이 번갈아가며 여는 내셔널데이의 공연행사와는 별도로 브라질·뉴질랜드·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콰도르·스리랑카등 6개국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자국을 소개하는 전통춤·노래등 민속공연을 펼쳐 관람객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브라질관=상오11시부터 4회공연을 갖는 브라질관은 전시관내 50여명이 관람할수 있는 조그만 무대를 마련해 놓고 있다. 정열적인 「리우축제」의 나라답게 우리에게 잘알려진 람바다춤을 비롯해 유럽인들의 차분하면서도 다이내믹한 율동이 가미된 가우샤춤,아르헨티나·우루과이·파라과이등 3개국의 문화를 한데모은 라틴춤, 브라질 북부의 열정적인 프레보춤,삼바및 뮤지컬등 주로 전통춤을 소개하고 있다. ◇뉴질랜드관=뉴질랜드관의 민속공연은 원주민 마오리족의 민속춤과 노래.마오리족 남녀 8명이 나와 하오4시 공연을 시작으로 하루 4회,15∼20분동안 민속춤과 노래를 선보인다. ○전사춤 추고 막내려 간이무대가 열리면 마오리족 한명이 나와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큰 조개껍질 모양의 콘취를 분다.곧바로 관람객들에게 환영과 평화를 노래하는 「호카마이춤」,소녀 마오리족이 공처럼 생긴 포이를 흔들며 허리춤을 추는 「오우에하춤」으로 이어진다.티티토리아란 막대기로 두들기거나 마주보고 돌려받으면서 「호에아라춤」을 춰 분위기를 고조시킨 다음 불의 여신을 노래하는 「에 파라춤」,환영의 노래와 춤을 곁들인 「카랑아티아라춤」등의 순으로 전개된다.이어 건장한 마오리전사들이 나와 출정전 전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함성을 지르며 「하카춤」을 추고 나면 공연은 막을 내린다. ◇말레이시아관=상오 11시30분부터 하루 3차례 공연을 갖는 말레이시아관은 민속공연단원 20여명이 창앙·이부·아낙등 전통악기와 플루트·아코디언 등을 들고 나와 20여개이상의 전통춤과 음악·의상쇼를 선보이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손님들에게 환영을 의미하는 서무를 시작으로 「사페」라는 밴조형태의 현악기를 가지고 코뿔소의 땅이라는 뜻의 「다툰 줄리드춤」,말레이시아인 다음으로 많은 중국인들의 리본춤과 부채춤으로 엮은 「중국민속춤」등 의 전통민속춤을 선보인다. 이밖에 축제의식때 공연되는 「돈당 사양춤」,풍성한 수확을 조상들의 은공으로 돌리는 「와우불란춤」,클랑탕·아식·페락등 전통의상쇼와 전사들의 춤인 「다부스춤」등도 무대에 올린다. ◇인도네시아관=전시관내 1백여명이상의 관람객들이 앉을 수 있는 객석과 무대장치를 갖춘 인도네시아관은 하오1시에 공연을 시작으로 하루 두차례 공연을 갖는다. ○한국가요도 잘 불러 무대위에서는 인도네시아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무용수들이 대나무로 만든 앙쿨룽이라는 전통악기에 맞춰 틀란쟁춤·즌드라와시춤·란탁춤·라툿춤등 20여가지 전통춤을 춘다.가수들은 전통민요와「사랑해」등 우리 대중가요를 한국가수 뺨치게 잘 부른다. ◇에콰도르관=중남미공동관내 에콰도르관에서는 치차수요악단및 민속공예단이 내한,상오10시 공연을 시작으로 하루 3회공연을 펼친다. 에콰도르 옵타발로 인디오족 8명으로 구성된 이 공연단은 우리나라의 피리와 같은 프라우타,퉁소의 게나,북의 봄보와 론다도르·삼포니아등 전통악기로 인간과 캥거루와의 평화를 상징하는 「캉구로 투 수이」,에콰도르의 대표적 여성인 카르렐리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카르렐리나」,백인들의 원주민 탄압을 우회적으로 묘사한 「코마드로나」등의 노래를 들려준다. ○장구를 닮은 악기도 ◇스리랑카관=50여평규모의 레스토랑에서 공연을 갖고 있는 스리랑카관은 상오11시부터 공연을 한다.공연내용은 장구처럼 생긴 게트베레아­단메타마라는 전통악기연주와 코브라탈춤 등을 엮었으며,공연은 하오8시까지 계속된다. 스리랑카관은 레스토랑형태여서 관람객들은 해설을 들으며 망고로 만든 푸딩과 카레·빵등 스리랑카 음식을 곁들일수 있는 것이 특이하다.
  • 악의없는 가명도 적지않을 것을(박갑천칼럼)

    초대면의 남녀끼리 잠깐 문학으로 화제를 돌렸던듯하다.「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었느냐는 한쪽의 물음에 대해 상대방이 한 대답인즉­『로미오는 읽었는데 줄리엣은 미처 못읽었군요』.한자리 우스개치고는 너름새가 있다. 이 우스개의 틀을 그대로 좇아본다면 서화얘기 끝에 이렇게 말한다고 할수가 있겠다. 『예,추사에 대해선 좀 알고 있습니다만 완당은 미처…』 추사나 완당이나 실학자이자 서법의 대가인 김정희의 호가 아니던가.그의 호는 1백가지 가까이나 쓰였다 한다.몇가지 적어보면­ 예당·시암·노과·농장인·천축고선생·노완·금천(금천)·삼십육구초당·고계림인·동방유일사·해당화하희아손·나가산인·소봉래학인·매화구주·묵소거사·승설학인·단파거사·승련노인… 등등. 옛사람들에게는 이름이 많았다.이름의 가짓수부터 그렇다.정식이름이라고 할 항렬에 따르는 관명이 있기 전의 아명이 있고 자가 있으며 호·별호가 있고(그것도 여럿)벼슬이 높을 때는 시호까지 있다.고종황제의 관명은 희이지만 아명은 장수하라는 뜻에서 개똥이또는 명복이라고도 했다.이순신의 자는 여해이고 시호는 충무이다. 호가 여럿인 경우는 김정희 외에도 얼마든지 있다.가령 양광의 생육신 김시습 만해도 동봉·매월당·청한자·벽산청은·췌세옹외에도 설잠이라는 법호까지 지니고 있었다.하기야 금강산같이 이름많은 산도 있다.봄은 꽃이 뒤덮여 「금강」이며 여름은 계곡마다 녹음이 깔려 봉래이고 가을은 단풍이 고와 풍악이며 겨울은 뼈만 앙상하기에 개골이 되는것 아니던가.그러고도 열반·지달같은 이름이 더 있다. 실명제라는 것 때문에 시끄럽다.실명이란 곧 관명.그 관명아닌 이름으로 은행거래한 사람들이 가짜이름 많은죄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추사선생이 오늘에 살아있다면 「김정희」란 이름으로만 은행거래를 했을 것인지 어쩐지.본디 「이름명명」자는 어두움과 관계가 있다.어두운저녁(석)에 제이름을 입(구)으로 알려 남을 불러세웠대서 생겨난 글자이니 말이다(설문).숱한 가명은 그 「어둠속의 입」이던가.그렇다 해도 악의없는 가명도 적지않을 것을.
  • 선진기술 도입만이 능사 아니다/전일동 연대 물리학교수(해시계)

    1992년 당시 우리나라 노태우 대통령과 일본 미야자와 총리가 경도에서 비공식으로 회동한 자리에서 한·일간 과학기술 협력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게 되었다.그 실무 작업을 우리측에서는 정부 차원으로 설정하였으나 일본측에서는 민간 차원으로 하자고 주장하였다.여러차례 의논한 끝에 결국은 한국과학재단과 일본학술진흥재단이 이 사업을 추진하는 창구가 되었다. 당초 우리 정부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기술 이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희망하였으나 일본 정부는 첨단 기술은 민간기업이 갖고 있으므로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고 거절한 것이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태도 때문에 과학기술협력사업은 축소되었으며 그나마 일본 학술진흥재단에 할당된 예산도 너무나 미미한 것이어서 사업을 추진하기 힘들 정도이다.그간 우리나라에서는 기술이전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기초과학 분야의 교류를 하기로 하여 각 분야의 전문가 35명을 선정하여 예산 2억원을 확보하였다.그러나 일본측은 이에 대해서도 상당히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사정을 표면적으로만 살펴본 많은 사람들은 일본정부의 불성실한 태도를 비난할 것이다.그러나 반드시 일본만 비난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정확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만이 21세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열쇠이며 새로운 첨단 과학기술 개발이 얼마나 힘들고 투입되는 엄청난 개발비를 생각하면 쉽게 그 기술을 남에게 줄리가 없다.설마 그럴리는 없겠지만 첨단 과학기술을 거저 준다하더라도 현시점에서 우리나라는 그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컴퓨터를 막 배우기 시작한 국민학생에게 최고 기능을 가진 486컴퓨터를 제공해 주어도 결국 그 기능을 이용하지 못하고 그것보다 기능면에서 훨씬 뒤떨어진 AT컴퓨터로 할 수 있는 작업밖에 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최고 수준인 첨단 과학기술을 제공 받고 최고 상품이나 새로운 첨단 기술을 창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류,삼류 제품밖에 못만든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우선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우리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이며 새로운 첨단 과학기술 소화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또한 첨단 과학기술의 개발 능력과 취약점을 철저히 분석하여 우리가 어떤 과학기술을 필요로 하고 있는가를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그리고 일단 도입된 첨단 과학기술은 완전히 소화시켜서 그것을 토대로 더욱더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을 배양해야 할 것이다. 선진국가에 기술 이전을 요청할 것이 아니라 젊은 인재를 계속 다량으로 보내고 기술을 습득해 오도록하는 인해전술을 펴야 하고 또한 그 인재를 충분히 활용하는 정책을 하루빨리 수립해야 한다.
  • 아르메니아­아제르 영토분쟁 5년(포연속의 코카서스에 가다:상)

    ◎이기동특파원 한국기자 최초 현지취재/요충 아그담시에 피난민·패잔병 물결/카라바흐지역만 53만명 “끝없는 유랑”/35도 폭염·허기·폭격 삼중고에 시달려 아르메니아인자치주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독립운동으로 시작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간의 영토분쟁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채 5년여 계속되고 있다.이 지역은 독립국연합(CIS)내 유사한 여러 분쟁해결의 하나의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한국기자로는 최초로 분쟁현장에 특파된 서울신문 이기동모스크바 특파원이 최일선에서 취재한 아제르바이잔정정과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현지인들의 참상을 3회에 나누어 싣는다.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폭격으로 불타는 마을들,죽은 가족과 재산을 남겨두고 통곡하며 마을을 떠나는 피란민들,가재도구를 닥치는대로 실은 차량행렬,후퇴하는 병사들,영문도 모른채 피란대열에 합류한 양떼들.지난달 23일 아르메니아군의 공격에 무너진 아제르바이잔의 전략요충지 아그담시 외곽은 연옥을 방불케 했다. ○양국 전면전 양상 아그담은 지난 88년부터 시작된 나고르노 카라바흐자치공을 둘러싼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분쟁의 막바지 전선이다.아르메니아군은 이미 카라바흐 전역을 점령했고 여기에다 켈바자르,라친,피줄리 등 아제르 영토 상당부분을 차지했다.전쟁은 아제르 영토 깊숙이서 진행되며 양국간 전면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아제르바이잔군은 사실상 전쟁수행능력을 상실한 것 같았다.4일째 아그담시에 대한 아르메니아군의 공격이 계속되는데도 수도 바쿠에서는 지난 6월말 정권을 탈취한 반란군 구세이노프대령의 새 지도부가 쫓겨난 대통령 엘치베이의 신병처리문제로 시끌시끌했다. 아르메니아군은 아그담주의 남서북 3개 방향에서 진격해들어와 3일동안 이 주의 1백10개 마을중 40여개 마을을 점령해버렸다.주도인 아그담시를 차지함으로써 아르메니아군은 이제 아제르바이잔의 수도까지 진격할 수 있는 주요 국도 2개를 모두 확보했다. ○곳곳에 임시천막 아그담시에 이르는 국도는 피란행렬과 철수하는 군차량으로 완전히 뒤덮였다.도로주변 땡볕을 가려줄 나무 몇그루라도 있는 곳이면 난민들의 임시천막이 새카맣게 들어차 있다.혹시 전황이 뒤바뀌어 마을로 되돌아 갈 수 있을까 싶어 멀리 가지 않고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솟는 아그담쪽을 기웃거리고 있는 것이다. 마스블루마을에서 왔다는 10여명의 난민들은 21일 새벽 밤새 로켓포를 퍼붓던 아르메니아군이 마을을 점령,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이자 이불보따리만 겨우 챙겨 마을을 빠져나온 사람들이었다.호스도로(37)라는 사람은 『군대는 이틀전 철수하고 마을남자들 30여명이 군대서 자위수단으로 지급해준 자동소총을 들고 대항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죽었을 것』이라며 마냥 흐느꼈다. 찰리크마을에서 왔다는 난민들 가운데는 양 발이 몽땅 잘린 사람 수명이 한구석에 모여 있었다.지난 92년 2월 아르메니아군의 공격을 받아 아제르인 주민 1천여명이 살해당한 호잘리시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산속에서 12일을 헤맬 때 동상에 걸려 다리 절반씩을 절단한 사람들이었다.모두 반쯤 넋이 나간 사람들 같았다.이런 난민이 카르바흐지역에서만 53만여명으로 집계돼 있다.5년 전쟁에서 죽은 사람의 수가 쌍방 합쳐 6천여명을 헤아린다. 나고르노 카라바흐는 국가·민족·종교간 분쟁 등 소위 냉전종식 이후의 여러 문제가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곳이다.볼셰비키혁명뒤 소련정권은 연방내에 거주하던 각 민족들에게 마치 「떡주듯」 영토를 나누어 주었다. 1923년 스탈린은 당시 이곳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카라바흐자치공을,서쪽 아르메니아 영토내 아제르인들에게는 나키체반자치공을 허용해주었다.지금의 전쟁은 카라바흐내 아르메니아인들이 구차한 자치공이 아니라 당당한 독립국으로서의 제몫을 찾겠다는 몸부림에서 시작된 것이다. ○러 남부 비화 우려 이 일대의 지도를 펴놓고 보면 마치 거대한 장기판을 보는 것 같다.장기말 대신 여러 민족·종교집단이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말 하나를 섣불리 움직이면 엄청나게 불행한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돼있다.카라바흐를 아르메니아군이 점령했지만 이제 곧 나키체반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 뻔하다.그리고 불은 내전중인 북부 그루지야의 압하지아로 옮겨붙을 것이다.그루지야는 아제르바이잔과 상호원조조약이 체결돼 있고 반면 아르메니아는 러시아를 비롯,독립국가연합(CIS)과 공동방위협정을 맺고 있다. 전술핵이 배치돼 있는 러시아 남쪽영토로 불이 옮겨붙을 경우 그 결과는 예측불허가 될 것이다. ○지루한 「땅빼앗기」 분쟁은 이제 거창한 이념대결 대신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죽이는 원초적인 「땅빼앗기 싸움」으로 나타나고 있다.
  • 미 휘트니 비엔날레/서울서 사상 첫 해외전

    ◎21일 국립미술관서 “세계 정상의 현대미술제”/리히텐슈타인등 62명의 최신작품 선보여 미국을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부각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현대미술제 휘트니비엔날레가 사상 처음 서울에서 열린다. 31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막,9월8일 폐막된다. 6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휘트니비엔날레가 미국밖에서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으로,「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유력지들은 지난2월 「휘트니비엔날레,사상처음으로 1만마일 떨어진 서울로 날아가다」라는 제하로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지난4월5일부터 6월13일까지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열린 올해 휘트니비엔날레에는 영화 「말콤 엑스」로 유명한 스파이크 리 감독,신디 셔먼·키키 스미스·로버트 고버등 지난2년간 가장 주목할만한 활동을 한 미국작가 82명이 참가했으며,한국계 미국작가 크리스틴 장과 바이런 김도 포함돼 있다. 1백50여점의 출품작들은 대부분이 미디어와 컴퓨터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설치작품으로 걸프사태를 보도한 CNN 방송내용을 프로젝트로 만든 작품도 있다. 역대휘트니비엔날레는 백인남성위주로 진행돼와 아시아계 작가들은 물론 여성작가들의 항의시위까지 벌어졌으나 올해는 미국사회 전반의 복합다원주의와 페미니즘 경향을 반영,휘트니비엔날레사상 가장 많은 소수민족계및 여성작가들이 참여했다. 「휘트니비엔날레 인 서울」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서울전에는 막대한 운송비와 보험료 관계상 미국전 출품작가82명중 약3분의2가 되는 62명의 작품이 왔다. 특히 이번 서울전은 세계적 아티스트 백남준씨가 서울에서 열도록 강력히 권유,일본을 제치고 결정됐는데 일본의 한 미술관은 휘트니비엔날레 유치비용으로 3백만달러를 제의했다고. 이에 비해 서울전 유치에 든 비용은 모두 70만달러로 이가운데 백남준씨가 25만달러를 개인비용으로 부담하고 나머지는 기업등의 협찬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휘트니비엔날레는 미국 현대미술의 최신경향을 과감히 수용하여 많은 유명화가들을 배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성미술가 조지아 오키프를 비롯,라우센버그·리히텐슈타인·재스퍼 존스등의 팝아티스트,제프 쿤스·바바라 크루거·줄리앙 슈나벨·키스 헤링·신디 셔먼등 세계화단을 주름잡는 수많은 스타급 미국작가들이 이 미술제를 통해 등단,휘트니비엔날레 출품은 미국 미술인들의 「꿈」이 되고있다. 어쨌든 이번 휘트니비엔날레의 국내상륙은 미술관계자는 물론 많은 미술학도와 애호가들에게 세계미술의 최신조류를 접하게 할수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것으로 보인다.
  • 성기선/장윤성/지휘자 데뷔 첫 국내무대

    ◎독·미 등서 체계적 지휘자 수업/“탄탄한 실력다져 성공 자신감” 두사람의 겁없는 신예지휘자가 국내음악계에 선을 보인다. 9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신진지휘자데뷔음악회에 나설 장윤성씨(30)와 성기선씨(25)가 그들. 두 젊은이는 『성공하기 위해 무대에 선다.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패도 두렵지 않다』고 외치는 자신만만함까지 보인다. 이들의 이런 자신감은 물론 국제무대에서 다져진 탄탄한 실력에서 오는 것.서울예고와 서울대를 다닌 이들은 박은성씨에게 배우며 아르스챔버오케스트라를 통해 일찍이 대지휘자로의 꿈을 키웠다.이어 장윤성씨는 빈국립음대로,성기선씨는 줄리어드로 각각 건너갔다. 성기선씨는 91년12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데 브랑코지휘자콩쿠르에 최연소로 참가해 3등을 차지,포르투갈의 교향악단을 3차례 지휘하게 됐다.장윤성씨는 지난 2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1회 프로코피에프지휘자콩쿠르에서 2등을 차지해 레닌그라드필하모닉을 지휘했고 키로프오페라에도 진출한다. 이들은 『국내 지휘계의 앞날은 매우 희망적』이라고 입을 모았다.현재 유럽과 미국에서 체계적인 지휘공부를 하는 한국젊은이가 줄잡아 40명은 된다는 것이다.오히려 이들이 국내무대에 서는 때가 되면 지휘자 과잉이 우려될 지경이라고 했다. 장윤성씨는 그러나 그렇게 되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고 했다.그것은 음악계가 지휘자 문제를 걱정하기에 앞서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기선씨도 『지휘는 혼자서 배울수 없는 분야라는 것을 국내 음악계가 좀 더 인식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성공적인 연주회는 고사하고라도 실패하려고 해도 실패할 기회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세종문화회관대강당에서 열리는 이번 연주회에서 장윤성씨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1번」,성기선씨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을 지휘할 예정.이들은 『연주회 소개는 적어도 좋으니 잘했든 못했든 연주 자체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실어달라』고 당당히 주문했다.연주문의는 738­3082.
  •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씨(이세기의 인물탐구:31)

    ◎독자적 음악어법·「긴장의 선율」 일품/화려한 경험·탁월한 직관으로 곡핵심 용해/“정상의 기량·풍부한 감성” 연주로 청중 매료/13년간 「바로크 합주단」 이끌어… “노력이 최고덕목” 삶 일관 칼라일의 말처럼 「음악은 천사의 스피치」,만일 자기자신 안에 아무런 음악적 감흥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는 아마도 영원히 불행한 사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나기같은 박수를 받으며 김민이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활을 움직이기 이전의 숨막힐 듯한 정적까지도 그것은 이미 「절묘한 무음의 음악」이다.피치카토 스타카토 트레몰로로 번뜩이는 자유분방한 테크닉과 모든 음악적 패시지는 청중을 무리없이 곡의 핵심속에 침투시킨다.특히 스마트한 론도의 테마를 제시하면서 코다의 영광으로 소연되는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협주곡은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인해 청중은 가슴죄는 초조감마저 느껴야 한다.바로 이 싱싱한 긴장감이 김민연주의 특징이며 음악적 능력이다. ○난해한 음악에 집착 그의 직관력은 음악적 형태를 순식간에 포착하여 작곡의 모티브에 유연하게 밀착하는 곡해석으로 유명하다.난해하다고 지적되는 부분을 쉽게 소화하면서 작곡자가 의도하는 비밀을 보석처럼 캐내고 다듬어낸다.그러나 자신에게 맞지 않는 테크닉은 그것이 아무리 「하이페츠 테크닉」이라 할지라도 철저하게 외면한 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오랜 연주경험을 통해 「자기 음악을 위한 마음의 환경을 잘 가꾸고 있는 연주가」이며 또는 「음악의 모든 프레이즈(구)들이 음악이 원하는 자연스러운 호흡속에서 상호의존적으로,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계획에 의해 짜여진 노래이자 노골적인 계획에 의해서 불려지는 노래가 아닌 불가사의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이만한 연주가가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하고 자랑스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는 한 음악전문지가 기획한 「한국의 명연주가 집중연구」에 음악평론가 이강숙씨가 김민을 추천하면서 쓴 글이다.한상우씨도 「진지하고 확연한 음악적 틀위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과 음악어법을 지닌 존재」임을 전제,특히 김민이 집착하는 브리튼이나프로코피예프,슈니트케와 츠빌리히등 현대음악이 갖는 난해성을 「활력있는 테크닉의 조화를 통해 긴장감과 함께 리듬을 확대시켜 강한 공감을 형성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과연 그에게서 긴장감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그에게서 음악이 사라지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는 어릴 때부터 「확실한 가능성이 돋보이는 유망주」로 성장한 케이스다.본격적으로 바이올린수업을 받던 서울예고시절부터 첼로 정명화와 함께 예고실내악단을 조직하여 활동했고 아직 고교2학년때 서울대음대가 주최하는 전국고교생 음악경연대회에서 선배·동료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1등,대학에 들어가자 바로 국립교향악단(현KBS교향악단)에 입단,65년 첼리스트 전봉초씨가 창단한 바로크합주단 부악장등 문자그대로 음악의 탄탄대로 한가운데를 거침없이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시련의 독유학 시절 그러나 그가 유학한 독일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파란과 시련을 한꺼번에 안겨주었다.예술가로서의 첫 갈등과 회의속에서 그는 「이제 나는 모든 것이 끝났는가」라는 좌절감에 허우적거렸다.이제까지 알고 있던 자신의 모습은 엄청난 허상이었으며 그런 자신의 실상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소스라칠만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함부르크국립음악원에서 만난 빌프리트 한케교수는 바흐 바이올린곡을 첫과제로 내주었다.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심오한 환상과 고고한 기품,음악의 모든 정교한 기법을 담아야 하는 이 절후의 명작은 고국연주때 「풍부한 음악적 감성」으로 호평받았고 그도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의 하나였다. 그러나 한케교수는 1악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연습해올 것을 명령했다.1주일후 다시 교수 앞에 섰으나 이번엔 『이곡을 연주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교수의 이말은 그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짓밟았다.여기에 일본인 학생과 비교되는 수모까지 겪으면서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가파른 위기의식을 느꼈다.여기서 도망친다면 영영 그만이다.자존심을 천재로 알던 그로서는 이때의 모욕의 충격에서 한동안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는 서울예고시절 오케스트라연습에 늦었다는 이유로 당시지도교수이던 이재헌씨가 「주의」했을 뿐인데도 그 길로 연습실을 빠져나가 연주회에 나타나지 않은 적이 있었다.관현악 대신 쳄버오케스트라로 편성하여 바이올린의 비중이 어느 때보다 컸으나 교수는 김민을 나무라지 못했다.건드리면 옥죄는 식물처럼 선병질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끝내 「크리스탈 유리잔 다루듯」했다는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그때 내가 크게 꾸짖었다면 오늘의 김민의 대성은 없었을 것이다.자존심만 상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할일을 투철하게 해내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런 김민이 독일에서 당한 모욕은 일생일대 대사건일 수밖에 없었다.6개월 만에 바흐 통과후에도 불가사의한 인내심으로 그는 2년간 한케교수 밑에 머물렀다.그리고 한케교수의 손꼽히는 제자로 인정받게 되자 미련없이 그로부터 떠나버렸다. ○세계30국 순회 연주 이번엔 베를린국립음악원 교수이자 혈기왕성한 토마스 브란디스교수를만났다.브란디스 사사를 원하자 한케교수는 크게 실망하며 「너의 재능과 개성을 키워줄 사람은 나」라고 설득하려 들었다.그러나 그는 여러 스승을 섭력한다는 의지로 브란디스문하에 들어갔고 여기서의 시련은 한케 이상의 고통이었다. 곡마다의 프레이스를 수백번씩 되풀이하면서 이를 다시 자신의 음악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문자그대로 피나는 훈련이었다. 한케교수가 완벽주의라면 브란디스교수는 이미 인정된 가능성 위에서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고 탐색해나가는 노력파였다. 그는 지금도 제자들을 가르칠 때 자존심을 다쳐 결정적인 상처를 주기보다 끈질긴 집념에의한 노력에의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섬세한 예술가의 심성이란 작은 상처에도 영원한 좌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끈질긴 노력끝에 눈부신 성취감을 가르쳤다. 음악성을 인정받아 재학중에 함부르크 클라이네 뮤직홀에서 첫독주로 서독음악계에 데뷔,입단이 까다로운 북독일라디오방송교향악단,로린마젤이 지휘자로 있는 베를린방송오케스트라와 함께 전세계 30개국 순회공연했고 그때 만난 줄리어드음대 출신인 피아니스트 윤미경(한양대교수)과 74년에 결혼,지금까지 음악의 협력자·조언자로서의 이상적인 생활을 누리고 있다.둘사이엔 아들 하나(태원·고2). 독일체류 10년만인 79년에 돌아와서 국립교향악단(현 KBS교향악단)악장취임,서울대음대교수·바로크합주단 재창단등 다양한 역할을 빈틈없이 맡아 「자신이 지닌 것과 음악이 원하는 사이를 훌륭하게 중재한다」는 주위의 평을 듣고 있다. 오케스트라보다 규모가 작은 실내악앙상블은 그 음악적 질이 한층 치열하고 치밀한 것이 특색이다.또 섬세하고 투명하여 독주자로서의 세련된 기량을 지니면서 여러 소리를 한데 묶어주는 음악적 조직측면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3년간 그는 악장과 지휘를 겸하는 리더로서 이무지치에 비견되는 위치로 바로크합주단을 올려놨고 최근에는 세계정상급 매니지먼트인 콜럼비아 아티스트와 계약,내년부터 세계투어에 들어간다. ○예술가 집안서 성장 그는 원로서예가이며 플루트를 연주하던 심당 김제인씨(82)와 이전 피아노과 출신인 이재순여사(82)의 3남매중 장남.여동생 장희씨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화가,남동생 춘씨는 그래픽 디자이너등 예술가집안에서 어릴때부터 그가 하고 싶은 일들을 주저없이 누려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림솜씨가 뛰어나 예고진학 때는 미술과 음악을 놓고 망설이기도 했으나 스승인 임원식씨와 이재헌씨의 강력한 조언으로 바이올린의 길을 택했다. 검은 안경과 검은 티셔츠,북유럽풍의 자유분방한 옷차림을 즐기는 만년소년같은 모습은 어느 한 구석에도 세월의 흔적이나 인생의 혹독한 시련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또 「모든 것은 내가 열심히 한 탓이 아니라 내 위에서 나를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고」그 누군가를 위해 연주한다는 그의 자세는 음악외엔 도무지 딴관심이나 욕심이 없는 듯 검은 연주복,눈부시게 흰 소매끝에서조차 바그너의 무한선율이 언제까지나 끝없이 흘러나올 뿐이다. □연혁 ▲1942년 서울출생 ▲1960년 서울예고졸업(안용구·이재헌 사사)서울대 음대입학(국립교향락단입단·서울대실내악단·한국학생실내악단 활동) ▲1962년 동아음락콩쿠르 입상 〃 국향과 비에니아프스키협연 데뷔 ▲1964년 서울대 음대졸업 ▲1965년 바로크합주단(단장 전봉초)창단멤버 부악장 ▲1968년 피아니스트 신수정과 서독유학독주회 ▲1969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악원(빌프리트 한케,토마스 브란디스 사사) ▲1972년 재학시 함부르크 클라이네 뮤직홀 첫독주 ▲1972∼74년 쾰른실내악단 부악장,솔리스트,악장 ▲1974년 일시귀국 국립극장 개관기념 독주회 〃 쾰른 실내악단과 캐나다·미국·중남미등 30개국 순회연주 ▲ 〃 북독일라디오방송(NDR)단원및 독주자 ▲1976∼79년 베를린방송 교향악단 단원및 독주자 ▲1977년 바이로이트 바그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단원선발이후(해외다연주참가) ▲1979년 귀국,국립교향락단 악장취임(이후 정기연주·협연참가) 〃 독일문화원주최「바흐,베토벤,프로코피예프를 위한 소나타의 밤」연주 ▲1980년 바로크합주단 재창단 악장겸 리더,해마다 정기연주 4회및 초청연주외 1백50여회연주와 미국등 해외연주 ▲1981년 KBSTV콘서트 텔레만 탄생 300주년 기념 연주 ▲1982년 제4회 독주회 겸 부인인 피아니스트 윤미경과 열번째 부부연주 ▲1984년 KBS교향락단과 일본및 동남아 순회연주 ▲1985년 호암아트홀 초청독주회 ▲1986년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 월드필오케스트라 제1바이올린 초청연주 ▲1987년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과 듀오이벤트(멜버른) ▲1990년 바로크 합주단 창단 25주년 기념연주 ▲1991년 바로크합주단 동남아 순회연주 ▲1993년3월 서울대 교수 실내악단 창단 첫 연주,한미 우호협회 한국주재 미군과 미국관계자 초청 6월축제 78 한국펜클럽선정 「이달의 음악가상」,87 한국음악가협회제정 「올해의 음악가」,87 바이로이트 바그너페스티벌 10년참가감사패,89 음악동아「올해의 음악가상」,바로크합주단 CD출반
  • 샌님·말뚝이 등 한국 나무탈 한눈에/심이석옹 원색사진집 출간기념전

    평생 나무탈만을 깎아온 심리석옹(82)이 우리의 나무탈 원색사진 33점이 담긴 책「한국의 나무탈」을 내고 이를 기념하는 전시회를 18일부터 서울 동숭동 스페이스 샘터(742­03 39)에서 갖고있다. 오는24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사라져가는 나무탈의 생김새도 보고 작가와 함께 나무탈 그림을 그려보는 자리. 심옹은 전시중 매일 하오2시부터 5시까지 전시장에 나와 관객과 함께 탈을 그리고 구수한 탈이야기도 들려주는 노익장을 과시하고있다. 이 자리는 특히 서양문화에 젖어 아그리파·비너스·줄리앙·흰도깨비상등에 익숙한 우리 어린이들에게 선인들의 숨결이 밴 샌님·말뚝이·취바리·소무등의 모습을 그릴수있는 뜻깊은 기회가 되고있다. 한편 심옹의 글과 사진작가 김영수씨의 나무탈사진으로 구성된 「한국의 나무탈」(열화당간)은 고려와 조선,그리고 19 60년대에 제작됐으나 지금은 삭고 부패한 것들을 심옹이 복원 제작한 것들을 수록했다. 이 책에서 심옹은 평생 나무탈만을 깎아오면서 겪은 체험과 미학을 어떤 연구논문보다 설득력있게 밝히고있다.
  • 김해은 첼로 독주회/15일,예술의전당서

    예원여고와 줄리어드 예비학교를 거쳐 예일대 음악대학 2학년에 재학중인 김해은양(20)이 15일 하오8시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 홀에서 첼로독주회를 갖는다. 연주곡목은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소나타 D단조 작품 40」,카사도의 「첼로 모음곡」,쇼팽의 「소나타 G단조 작품 65」와 「화려한 폴로네이즈 C장조」. 공부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고국에서 독주회를 갖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김양은 자신을 아끼는 주변사람들에게 그동안 배운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무대를 마련했다고.또 오는11월에 예일대등에서 개최하는 외국무대에도 서게 돼 자신을 정리할 필요도 느꼈다고. 88년 이화·경향콩쿠르와 89년 서울 청소년 실내악 콩쿠르에서 1등과 금상을 차지한뒤 도미해 쥴리아드와 예일대에서 첼로를 가르치고 있는 알도 파리소교수에게 사사했다.김양은 『과분한 무대인데다 두려움과 긴장이 앞서지만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 서울심포니 객원지휘/미 매크레이(인터뷰)

    ◎“단원들 재능 풍부… 좋은 연주회 될것”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그린보로심포니오케스트라와 시카고의 레이크포리스트심포니의 음악감독 폴 안토니 매크레이씨(46)가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 위해 지난달 30일 내한했다. 5일 하오 7시30분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갖게 될 이번 공연은 지난해 콜로뉴 국제피아노콩쿠르와 데 안젤로 청소년콩쿠르에서 1등을 한 피아니스트 김혜정과의 협연무대이다. 매크레이의 지휘는 음악적인 서정성과 정밀한 기교,그리고 풍요로움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때문에 그가 제작한 음악비디오 시리즈는 전세계 6백여개 음악학교에서 교재로 쓰이고 있을 정도다. 그린보로 심포니는 지난87년 그가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예술적으로 탁월한 성장을 해왔다는 평을 듣고 있다.또 레이크포리스트심포니는 91년 시카고에서 열린 전미 오케스트라회의에서 주목할 만한 활동을 펼친 연주단체로 선정됐었다. 그는 한국의 음악인과도 여러차례 하머니를 이뤘다.미국의 무대에서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는 김혜정에 대해서는『대단히 정열적이고,연주회를 이끌어가는 힘이 있는 촉망받는 음악인』이라고 평했다.그는 또 정경화와 협연하기도 했으며,김영욱과는 음악으로 맺어진 친구사이라고 전했다.오는 9월에는 그린보로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최근 각광을 받고있는 재미 천재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양과도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이번에 지휘할 곡목은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리스트의 드라마틱한 작품인「피아노 협주곡 1번 E장조」,베에토벤의 「교향곡 5번 c단조­운명」으로 짜여졌다.음악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하나의 흐름을 유지하고 있어 좋은 무대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루 3시간씩 리허설을 갖고 있는 그는 『아직까지 완벽한 조화는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그러나 『단원들이 열심인데다 음악적 잠재력도 풍부해 공연일에는 관객들에게 좋은 연주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한국을 처음 찾은 그는 『서울이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그는 서울의 풍광에대해 「팬태스틱」이라는 표현을 여러번 사용했다.
  • LA/한인 고교생 수석졸업 “사태”/20일까지 남녀 9명 배출

    ◎“미 최고” 위트니고선 4명 공동영예 고교졸업 시즌이 다가오고 있는 요즘 미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일원에서는 한인고교생들의 수석졸업 소식이 잇따라 화제가 되고 있다. 20일 현재 밝혀진 수석 졸업자만도 9명에 이르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남가주 최고의 명문고에서 수석졸업의 영광을 차지,한인고교생들의 우수성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영광의 수석졸업생들은 서니힐즈고교의 에드워드 박군을 비롯,우드브리지고교의 레오 김군,웨스트고교의 피터 김군,위트니고교의 줄리 박양,대니엘 정군,개리 신군,패트릭 이군 등 9명. 특히 한인집거주지역인 세리토스시 소재 위트니고교는 입학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하는 남가주 최고의 명문이자 미전국의 최고 명문이어서 이들 4명의 공동수석졸업은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또 우드브리지고교의 레오 김군은 수석졸업뿐만 아니라 졸업생 대표연설자로 뽑히는 영광도 함께 안았다. 미국의 고교졸업식은 6월중순∼하순 사이에 치러지게 돼있어 아직 수석졸업자가 발표되지 않고있는 학교가 많은점을 감안한다면 한인2세 수석졸업생의 숫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라는게 교민 소식통의 전언이다.
  • 안드레오티 전 총리/이 상원 면책특권 박탈

    【로마 AFP 연합】 이탈리아 상원은 13일 줄리오 안드레오티 전총리에 대한 면책특권 박탈을 표결 통과시킴으로써 검찰이 그의 마피아 관련혐의에 대해 제한없이 조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올해 74살로 종신 상원의원직을 갖고 있는 안드레오티 스스로도 그간 상원에 자신의 면책특권 박탈을 요청하면서 그래야만 마피아 관련혐의 등에 대해 해명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안드레오티는 자신이 총리재직시 마피아와 깊게 연계됐다는 주장을 완강히 부인해왔다. 상원 전체회의는 이날 안드레오티의 신상발언을 들은 후 그의 면책특권 박탈여부를 거수표결에 부쳐 통과시켰다.
  • 면책특권 박탈 희망/이 전 총리

    【로마 로이터 연합】 줄리아노 안드레오티 이탈리아 전총리는 2일 자신의 의원면책특권이 박탈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이 총리,오늘 내각구성/전 총리 면책특권 박탈 건의

    【로마 로이터 AFP 연합】 카를로 아젤리오 참피 이탈리아 총리 지명자는 28일 난항끝에 조각을 완료,이날밤이나 29일중 내각 명단을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조반니 스파돌리니 상원의장이 밝혔다. 공화당 출신으로 총리를 역임한 스파돌리니 의장은 기자들에게 『조각이 완료됐다』 면서 『오늘이나 내일중으로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국영 RAI­1TV도 참피 총리 내정자가 이날밤 12시(한국시간)께 부패 스캔들로 멍든 정부를 이끌 새 내각 명단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퇴임하는 줄리아노 아마토 전총리는 외무장관직을 맡아 달라는 참피총리 지명자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카르멜로 콘테 도시장관이 전했다.
  • 연극인 강계식씨(이세기의 인물탐구:26)

    ◎“무대를 신앙으로” 외길인생 50년/열과 성으로 완벽하게 배역 소화 “관객 매료”/“40∼50년대 최고 명우” 「춘향전」 등서 불꽃연기/진실일념으로 삶 일관… 고 이해랑씨 “진정한 연기자” 칭송 햄릿이나 위대한 줄리어스 시저는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관객의 감동과 갈채를 한몸에 받는다.하나의 연극에서 주역으로 발탁된 이들은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며 자신의 기량을 활기차게 펼친다.관객은 그때마다 환호하며 주인공의 희비에 침몰하듯 매료된다.그때도 이를 희생적으로 뒷받침하는 단역배우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그들은 있는듯 없는듯 미미하게 존재할 뿐,모든 영광과 기쁨은 주인공의 차지다. 원로 연극배우 강계식씨의 연극인생은 언제부턴가 단역에 머물러있다.흥분한 어조로 「정의」와 「불의」에 대하여 「사랑」과 「미움」에 대하여 열렬히 외치는 극중 주인공은 이미 아니다. 역할이 크든 작든 대사가 짧든 길든 한마디의 대사가 없을 때라도 그의 역할은 작품전체를 구성한다는 사명감에 투철하다.따라서 어떤 배역이 돌아와도 그 역할에 완벽하게 용해되어 한낱 연기가 아닌 무대의 한 모습처럼 형형하게 서있다.그리고 확실한 목소리와 움직임과 형상을 보여준다.그의 나이에서는 연극속의 각 배역과 그 배역들이 하나같이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섬세하게 보조하는 위치다. 어차피 하나의 역할은 무대에서 창조될 뿐 현란한 조명과 불꽃같은 연기는 폐막과 함께 속절없이 소멸된다.주역의 영광도 단역의 비감도 일순간에 지나지 않아 또다른 다음 역할을 위해 새로운 삶속에 곤두박질치듯 파고들어야 한다. ○자신의 역할 예감 연극에 몸담은지 50년이 넘었건만 강계식씨는 지금도 첫무대에 서는 듯한 긴장과 설레임을 떨치지 못한다.무대는 그에게 있어 고통이자 환희다.삶이자 희망이며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대본을 받아든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역할을 귀신처럼 예감한다.그것이 누구의 작품이며 연출자가 누구냐에 따라 인물이 갖는 사회적 시대적 환경과 성격,인품과 직업,체질과 용모를 몸속에 형성한다. 동네노인으로 나와 서성거리는 역에 불과할 때도 자신의 움직임이 어떤 모양새로 연극을 바쳐주느냐.연극의 흐름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몸짓해준다.번뜩이는 열기와 광기,돋보이는 개성을 어필시킬 기회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다만 다른 연기자의 대사와 동작을 효과적으로 살려내고 대사와 대사사이,동작과 동작사이의 침묵을 묵시적인 연기로 다음 장면에 연결시킨다.그에게 있어서의 연극은 「신앙이자 종교」다.역할을 맡을 때마다 「내 생애 최고의 역할」로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다. 연습시간에도 언제나 남보다 일찍 나온다.두시간 공연에서 맨 마지막 장면의 한 동작을 위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극의 흐름에 호흡을 맞추고 있다.무대를 떠나지 않는 그를 가리켜 연출가 오사양씨는 「선생이 창출하는 역은 항상 진실과 신뢰가 뒤따르고 높은 격조와 깊은 함축을 시사하고 있다」고 존경해 마지않았다.그의 연극초기시절부터 연극활동을 함께 해왔던 고 이해랑씨는 「작은 역이라도 열과 성을 다해 몰두하는 진정한 연기자」가 있음을 언제나 자랑삼았다.그리고 「그의 나이와 그의 성격에 맞는 역할로 그의 노년을 빛내주고 싶다」고 별러왔으나 숙제를 마치지 못하고 먼저 길을 떠났다. 물론 그는 처음부터 조역·단역배우는 아니었다.40년대와 50년대 우리 연극사에서 그는 단연 뛰어난 주역배우의 한사람이었다. ○토월회극 보고 꿈꿔 특히 유치진작 서항석연출의 「춘향전」에서의 이도령은 유치진씨가 살아생전에 「40년대 강계식의 춘향전은 지금까지 최고」였다고 손꼽던 무대다.그는 당대 명우였던 유계선 김양춘을 상대로 수차례의 「춘향전」앙코르 무대를 탄생시켰고 당시의 극단 현대극장 극단 민예와 청포도·신지극사·신청년·창조·상록극회에 이르기까지 각 극단의 간판배우로서 관객을 매료했다. 강계식씨가 연극을 하게된건 보통학교시절 고향인 충남 온양에 지방공연왔던 토월회의 연극 「디아블로」를 보고나서다.삭막하고 쓸쓸한 어둠을 가슴속에 뿌렸던 이 연극을 보고 그는 막연히 연극의 주인공이었던 이백수같은 배우를 꿈꾸게 되었다. 후에 서울로 올라와 경성실천상업학교에 다닐때도 연극구경에 미쳐있었고 북경에 있는 일인회사에 다니다가 연극을 포기할수없어 39년에 귀국,같은해 유치진 함대훈 이해랑씨가 주축이 된 극단 현대극장의 부설 연기자 양성소인 국민연극연구소에 들어갔다.3백명의 응시자중 10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하여 본격적인 연기수업 받는동안에는 꿈에 그리던 토월회의 이백수씨와 「흑룡강」을 공연,연구소 수료후 41년 유치진작 서항석 연출의 「대추나무」에서 주인공인 「동욱」역을 맡아 부민관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그때 광화문 네거리까지 길게 늘어섰던 구경꾼의 행렬은 지금 생각해도 잊을수없는 감격이다.충청도 양반다운 예절과 겸손이 몸에 밴 그는 말과 행동이 한결같이 의연하여 연출자·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모든 공연에서는 주인공을 도맡았다.남부럽지않은 주인공시대를 마음껏 누린 황금기였다. 그러나 50년 극단 창조를 창립하고 「황진이」지방공연중 6·25를 만나 가족을 고향에 남겨둔채 부산으로 피란,피란지에서 영화배우 조미령의 남편인 이철혁을 비롯,변기종 김승호 최남현과 함께 박동근 연출의 중국고전인 「추해당」공연을 갖기도 했다.주인공엔 그와 유계선이 캐스팅됐다. ○전례없는 흥행 기록 다른 사람들은 단칸방이나 판잣집이라도 제집이 있었지만 그는 국제시장이나 남성여고 교실에서 합숙으로 새우잠을 자던 때여서 도무지 연극연습을 할수가 없었다.그는 몸이 달아 뜬눈으로 밤을 밝혀야했다.공연이 임박하자 이를 보다못한 유계선씨가 연출자에게 『연극을 살리기위해선 배역을 바꿀수밖에 없다』고 제의했다.그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말에 눈앞이 아찔했다.배우가 배역을 뺏긴다는 건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단한번도 선배들을 거역해본적이 없던 그는 「죽을 결심」으로 연출자인 이철혁씨를 찾아갔다. 『개런티는 안줘도 좋다.연습할수있는 방만 해결해달라.나는 죽어도 이 연극을 해내고야 말겠다』고 사정했다.이렇게해서 남포동 해변가에 하숙방을 얻어 1주일을 앞두고 동작연습 대사연습에 들어갔다.이 연극은 부산극장에서 상연되어 전례없는 흥행을 기록했고 사람들은 『그의 진실한 몸짓은 바위라도 뚫을수 있다』고 호평해주었다.자존심을 굽힌것이 결국자존심을 지킨 결과임을 경험한 순간이다. 그는 충분한 연습으로인해 무대에서 실수한 적은 없다.동랑청소년극단의 「방황하는 별들」에서 손주뻘의 어린 연기자들과 공연할때도 충실하게 자신의 할바를 지키면서 미숙한 연기자들을 말없이 감싸주었다.「일체의 영합을 배격하며 연극의 공리적 속념을 거부하고 진실일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잃지 않은 것이다. 인생을 관조하는 노년의 노련미와 진실의 모순속에 방황하는 지성인,삶의 무게가 힘겹게 느껴지는 스산한 서민층,숱한 인생을 재현하고 체험하면서,그가 연극에서 확인한것은 인생은 「무상」이며 「고통이 할퀴고 간 사랑이라야만 진실하다」는 진리다.그리고 『언제 어느장소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있건 그것은 그에게 있어선 연극을 위한 터득이었으며 연극은 그의 인생을 터득케해준 바로미터였음을 술회한 바 있다. 그는 극단 현대극장시절의 동료였던 이용남여사(68)와의 사이에 4남3녀. 『7남매의 등록금을 대느라고 돈도 많이 꾸러다녔고 울기도 많이 했다』『세 아이가 한꺼번에 대학에 다닐 때는 다른아이는 시험에서 떨어져으면 한적도 있으나』7남매가 모두 대학에 합격하여 장남(희열씨·47)은 서울대공대 졸업후 현재 미국 컴퓨터회사에 근무,6남매가 모두 출가하고 지금은 노부부가 이대미대를 졸업한 막내딸과 도봉동아파트에 살고있다. ○“연극인생 후회없어” 주역의 뒷자리,그의 생애가 헤아릴수 없는 시련과 고통 가난의 슬픔으로 얼룩졌다해도 그는 결코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황금이 정신을 지배하는 시대에서 그의 연극은 황폐한 인간사이에 구원의 빛을 뿌리고 있음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이제 더이상 자기자신이 적나라한 정오의 햇살이 아님을 그는 알고있다. 『이로스야!이 갑옷을 좀 벗겨다오.하루일이 끝났다』연극 시저에서의 마지막 대사처럼 어느날 그도 무대위에서 연극의상을 벗게 될지 모른다. 오로지 정직하게 천직을 지켜온 이 노 예술가의 가슴은 값지고 아름다운 금빛훈장으로 현란하게 장식되어도 다하지 못할것 같다. □연보 ▲1917년 4월21일 충남 온양출생(호 화방) ▲1937년 경성 실천상업학교 졸업 ▲1938년 지방 관리 양성소 수료 ▲1940년 극단 현대극장부설 국민 연극연구소수료(연수기간중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순정해협」「흑룡강」 함세덕작 허집연출 「전설」출연) ▲1941년 극단 현대 극장입단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대추나무」 정식대뷔,지방공연외 「청춘」「봉선화」「맴도는 남편」「춘향전」「에밀레종」「산적」「낙화암」「무장선샤먼호」외 ▲1945년 극작가 이광래와 극단 민예 극장 창단 「카츄샤」「젊은그들」「민족의 전야」「백일홍 피는집」「동학군」「피는 물보다진하다」「피어린 역사」「지옥과인생」외 ▲1946년 연출·극작가 이상백등과 극단 청포도 창단,「초원의 발전」 ▲1947년 극단 신지극사 창단 「태양의 그리워」「언덕에 꽃은피고」 ▲1947년 중앙극장 전속극단,극단 신청년 창단 「오남매」「혈맥」「사랑의 가족」「상해야화」「골든보이」「어머니와아들」「여죄수의 고백」「공작부인」「송화강의 애수」「반역자」「사육신」외 ▲1950년 극단 창조극단 창단「황진이」지방공연중 6·25 ▲1951년 상록 극회창단 ▲1953년 극단 신협 창단멤버입단 「빌헬름텔」「햄릿」「오델로」「맥베드」「줄리어스 시저」「붉은장갑」「마의태자」「원술랑」「맹진사댁경사」「나도 인간이 되련다」「한강은 흐른다」외 ▲1957년 국립극단입단 「인생차압」「딸들자유연애를 구가하다」「가족」「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대수양」「카라마조프의 형제들」「성웅 이순신」「죄와벌」「손탁호텔」「마을의 봉팔이」「순교자」 80년대까지 70여편 ▲1980년∼현재 극단 배우극장 소속 「천일의 앤」「정복되지 않는여자」「분노의 계절」「신장한몽」「어머니」외 「그래도 우리는 볍씨를 뿌린다」「이대감 망할대감」「붉은 카네이션」「밤주막」「출세기」등 타극단 공연 참가 ▲1986년 고희기념공연 윤정선작 주요철 연출「나는 어이 돌이되지 못하고」 등 2백여편 1946년부터 영화 「청춘의 행로」「쌍룡검」외 TV드라마등 1백여편. ▲국립극단 부단장·총무역임. 86,동아연극상 특별공로상 87,백상연극상 특별상 92,문화훈장 옥관장 서훈·고희기념문집 발간
  • 김 전 총장 무기까지 가능/해군 인사비리 어떤 처벌 받나

    ◎남편구속땐 신씨 불구속 전망/뇌물준 장교는 5년이하 징역/부인 단독범행이면 전역조치 김종호 전해군참모총장의 인사와 관련한 금품수수혐의가 사실로 드러남에 따라 이들 당사자의 사법처리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뇌물수수액이 1천만원을 넘으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가중처벌을 받게 된다.수뢰액이 1천만∼5천만원이면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을,5천만원 이상인때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이 경우는 김전총장에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금품수수 시기도 89∼91년 사이로 공소시효(5∼7년)를 지나지 않았다. 김전총장의 부인 신씨도 공범으로 처벌할 수는 있다.설령 신씨가 남편은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해도 뇌물전달죄가 성립된다.이에 대해 대법원판례는 증뢰자나 수뢰자가 아닌 제3자가 증뢰자로부터 수뢰자에게 전달할 금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그 금품을 받으면 죄의 구성요건이 된다.그뒤 금품을 전달했는지 여부는 죄의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뇌물전달죄의 법정형량은 5년 이하의 징역. 공무원이 취급하는 사건이나 직무에 관해 청탁 및 알선을 한다는 명목으로 금품을 받았을때는 변호사법위반혐의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가해진다.신씨가 남편에게 말해 진급시켜주겠다고 돈을 받았다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경우다. 김전총장에게 직접 인사를 청탁한 현역 장군이나 장교는 뇌물공여죄가 적용된다.그러나 부인들을 조사하더라도 남편의 관련사실을 털어놓을리 없어 이들에게 뇌물공여죄를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대신 범죄의 개연성은 충분하기 때문에 전역이나 보직해임등 인사조치의 구실이 될수있다.그러나 그들의 부인들은 뇌물공여혐의로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부인들이 남편의 진급을 부탁하면서 김전총장에게 잘 말해달라고 신씨에게 돈을 건네줬을 경우에 해당된다.아무런 조건없이 돈을 건네줄리는 없기 때문이다.
  • “부패추문” 이 아마토정부 퇴진/차기내각 구성 어떻게 될까

    ◎후임총리엔 개혁파 세니 등 3명 각축/구시대 고질 “정당간 나눠먹기” 불가피 줄리아노 아마토 이탈리아총리가 22일 사임함으로써 전후 이탈리아의 51번째 정부도 예전의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단명으로 끝을 맺었다. 기민당을 축으로 4개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한지 9개월만에,그리고 정치권의 부정부패스캔들이 폭발한 때로부터는 14개월만의 일이다. 아마토총리의 사임은 이미 예정됐던 일이기 때문에 「부패한 이탈리아정치판 물갈이의 시작」이라는 의미 외에 다른 특별한 의미는 없다.다만 그의 공식사임으로 지금까지 부패스캔들 수사쪽에 온 신경이 집중됐던 정치권 및 일반국민들의 관심이 당분간은 총리인선과 후속 내각구성에 쏠리게 됐다. 총리임명권자인 오스카르 루이지 스칼파로대통령은 아마토의 사의표명 하루 뒤인 23일 상·하양원 의장을 만난데 이어 23,24일에도 주요정당 지도자들과 연쇄접촉을 갖는 등 후임총리 인선작업을 서두르고 있다.따라서 차기총리는 이르면 일요일인 25일쯤 결정,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차기총리로 가장유력시되는 인물은 얼마전 부패스캔들에 염증을 느끼고 집권 기민당을 탈당,신선감과 개혁지향성을 인정받고 있는 마리오 세니의원이 꼽히고 있으며 그 뒤를 이어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하원의장과 지오바니 스파돌리니 상원의장이 지목되고 있다.이들의 약점이라면 세니의원은 최대 정당 기민당이 반대하는 인물이라는 점이,나폴리타노 하원의장과 스파돌리니 상원의장은 각기 유럽에서 몰락하고 있는 공산당의 후신인 민주당과 「부패의 온상」 기민당출신이라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따라서 일각에서는 아마토의 재임명을 점치기도 한다. 그러나 누가 총리를 맡든 차기정부는 지난 18일의 국민투표에서 확인된 개혁일정에서 벗어날수 없게 돼있다.즉 하원의원선거법 개정등 일련의 법률개정작업과 그에 기초한 조기총선 실시가 불가피해 또 한번의 단명 과도정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정부구성에서도 구시대의 고질적 관행으로 지탄받고 있는 정당간의 제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그래서인지 거대정당이 되느냐,아니면 몰락하느냐 하는 운명이 결정될다음 총선을 의식하고 있는 각 정당들은 이번 정부구성문제에 대해 더욱 활발한 물밑접촉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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