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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농구] 동부, PO 보인다

    [프로농구] 동부, PO 보인다

    동부가 4연승을 거두며 단독 6위로 뛰어올랐다. 동부가 22일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12~13 KB국민카드 프로농구 LG와의 경기에서 79-71로 이겨 올 시즌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권인 단독 6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16승19패가 된 동부는 오리온스(15승18패)를 밀어내고 5위 KT를 반게임차로 추격했다. 반면 LG는 8위로 내려앉았다. LG는 2쿼터 중반까지 김영환, 박래훈, 아이라 클라크의 3점슛으로 경기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동부의 추격이 매서웠다. 전반 종료 2분여를 남기고 진경석이 3점슛으로 36-36 동점을 만들더니 박지현의 자유투로 전세를 뒤집었다. 이후 동부는 줄리안 센슬리-김주성-이승준 트리플 타워의 위력을 뽐냈다. 센슬리가 수비 리바운드를 따낸 데 이어 이승준이 골밑에서 감각적으로 패스한 것을 김주성이 놓치지 않고 득점으로 연결했고 기세가 오른 동부는 센슬리의 2점슛으로 점수를 6점차로 벌렸다. 동부는 3쿼터 초반 로드 벤슨과 송창무에게 득점을 내주며 42-42 동점을 허용했으나 리차드 로비와 박지현의 3점슛으로 LG의 추격을 뿌리쳤다. 4쿼터 4분여를 남긴 상황에선 벤슨과 김주성이 거칠게 볼 경합을 하다가 두 선수 모두 테크니컬 파울을 당했고 승부의 추는 동부로 기울었다. 이미 테크니컬 파울이 있던 벤슨이 결국 퇴장당한 것. 24득점 15리바운드 더블더블의 기록도 팀 패배로 빛이 바랬다. 동부는 이후 이광재와 박지현의 3점슛으로 점수를 13점차로 벌려 승기를 굳혔다. 이날 김주성은 19득점을 올려 박지현(16득점)과 함께 팀 승리를 견인했다. 강동삼 기자 kangtong@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헨리스 크라임’ 어설프고 착해서 감옥까지 간 남자…은행을 턴다는데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헨리스 크라임’ 어설프고 착해서 감옥까지 간 남자…은행을 턴다는데

    고속도로 톨게이트 부스에서 일하는 헨리는 어수룩한 남자다. 주변 사람이 아무리 화를 돋우어도 화를 내는 법이 없고, 그들이 이상한 말을 해도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간다. 친구들이 그를 은행털이에 이용하고 난관에 빠트려도 그는 순순히 상황을 받아들인다. 범죄에 진짜로 가담한 친구들의 이름을 밝히는 대신 헨리는 감옥에 들어가는 길을 택한다. 감방에서 만난 동료 맥스가 물러 터진 헨리를 야무진 인간으로 바꾸어 보려고 애쓰지만, 순진한 남자는 요지부동이다. 1년 후 가석방으로 세상에 나온 헨리는 아내가 예전 친구와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박스 하나를 들고 백 하나를 짊어지고 집을 떠난다. 어느 날 길에 서서 친구들이 턴 은행을 우두커니 바라보던 헨리는 지나가는 차에 치이고, 운전 중이던 여배우 줄리와 인연을 맺는다. ‘헨리스 크라임’은 은행털이 범죄 영화를 가장한 로맨스 드라마다. 헨리와 맥스가 손을 잡고 은행을 털기로 작정하지만, 영화는 범죄보다 세 주인공의 관계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이다. 혹시 액션이 버무려진 범죄 영화를 기대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 빠른 카메라의 움직임, 긴박한 전개, 화끈한 액션, 놀라운 반전 같은 건 이 영화에 없다. 인물만 어설픈 게 아니라 영화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헨리스 크라임’은 아마도 영화 역사상 가장 느리고 심심한 은행털이 영화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키아누 리브스라는 흥행 카드가 있음에도 한국에서 늦장 개봉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접고 대하면 재미있는 구석이 없지 않은 영화다. 왁자지껄한 현대 범죄 영화가 문제지 ‘헨리스 크라임’ 자체는 별 죄가 없다. 세 주인공 헨리, 맥스, 줄리는 공히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들이다. 톨게이트 부스에서 일하는 헨리는 매일 여기저기로 떠나가는 차를 보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다. 사기꾼인 맥스는 감옥을 도피처로 삼아 산다. 바깥이나 안이나 먹고 자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감옥은 편히 지낼 만한 곳이다. 소도시 극장의 연극배우인 줄리는 복권 광고의 모델로 더 알려졌다. 할리우드로 가서 번듯한 연기를 펼치고 싶지만, 여배우로 새롭게 출발하기에는 그녀의 나이가 적지 않다. ‘헨리스 크라임’에서 은행털이라는 행위는 삶의 돌파구를 위한 핑계일 뿐이다. 그들은 범죄를 저지르거나 그것에 동조한다기보다 꽉 막혔던 인생에 구멍을 뚫는 것처럼 보인다. 설령 범죄의 리듬이 느리더라도 그들의 삶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본다면 지루하지 않다. 어느새 범죄 영화의 영역을 침범한 건 슈퍼히어로 영화다. 아니면 거대한 제작비를 들인 액션 영화가 유명 범죄 영화로 행세한다. 지난해 개봉한 ‘런던 블러바드’ 정도를 제외하면 진중하고 어두운 범죄 영화 혹은 반대로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범죄 영화는 보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헨리스 크라임’은 범죄 영화의 위기를 정직한 자세로 통과한 작품이다. 고전적이고 영화적인 인물과 벌이는 드라마의 게임이 나쁘지 않으며, 극중극인 ‘벚꽃 동산’을 빌려 과거와 쉽게 결별하지 못하는 인물의 상황을 은유하는 방식이 좋다. 21세기에 1960~70년대 스타일의 솔로 승부하는 샤론 존스와 더 댑 킹스의 음악을 활용한 것도 주효했다. 31일 개봉. 영화평론가
  • 뉴욕 ‘메트오페라’ 감동 그대로…

    뉴욕 ‘메트오페라’ 감동 그대로…

    오페라 팬이라면 한 번쯤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보고 싶을 터. 지갑 사정도, 시간도 여의치 않은 게 문제다. 아쉬운 대로 서울 삼성동 베어홀에서 메트오페라의 2012~13시즌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20일과 27일, 첫 작품으로 도니제티(1797~1848)의 오페라부파(희가극) ‘사랑의 묘약’ 을 볼 수 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목소리로 익숙한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로 유명한 작품이다. 이탈리아 시골 농장주의 딸 아디나와 그녀를 사랑하는 농사꾼 네모리노, 하사관 벨코레의 삼각관계에 엉터리 사랑의 묘약을 파는 약장수 둘카마라가 얽힌 경쾌한 희극이다. 테너 매튜 폴렌자니가 네모리노 역을, 당대 최고의 프리마돈나 안나 네트렙코가 여주인공 아디나를 맡았다. 이 밖에 마우리시 크비에치엔이 벨코레 역을, 엠브로지오 마에스트리가 둘카마라 박사 역을 맡았다. 이번 시즌 메트오페라에는 탄생 200주년을 맞은 베르디의 작품이 유독 많다. ‘오텔로’(2월 2, 17, 24일)를 시작으로 ‘가면무도회’(5월), ‘아이다’(6월), 리골레토(9월)가 이어진다. 한국인 베이스 연광철이 데보라 보이트, 수전 그레이엄과 함께 출연하는 베를리오즈의 ‘트로이사람들’(7월)도 눈길을 끈다. 이 밖에 아데스의 ‘템페스트’(3월), 모차르트의 ‘티토황제의 자비’(4월), 도니제티의 ‘마리아스투아르다’(8월), 바그너의 ‘파르지팔’(10월), 잔도네이의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11월), 헨델의 ‘줄리오 체사레’(12월)가 대기한다. ‘트로이사람들’과 ‘파르지팔’, ‘줄리오 체사레’는 전막 상영한다. 나머지는 장일범·유정우·유형종·황지원씨의 해설과 함께 1시간 30분 정도 하이라이트를 보게 된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지성이면 공격인데

    ‘센트럴 팍(Park)’의 공격 DNA가 사라졌다? 박지성(32·퀸스파크 레인저스)이 12일 런던 로프터스로드에서 열린 2012~13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2라운드 토트넘과의 홈경기에 풀타임 출전했으나 팀은 0-0으로 비겼다. 중앙 미드필더로 나선 그는 스테판 음비아와 호흡을 맞추며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 데 기여했으나 공격 활로를 뚫는 데는 실패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토트넘 지휘봉을 잡았던 해리 레드냅 감독조차 강등권 탈출을 위해 승점 3이 반드시 필요한 경기에서 1을 챙기는 데 만족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소극적이었다. 박지성이 나이 때문에 이런 쓰임새에 고정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을 만했다. 최전방 공격수 아델 타랍은 여전히 개인기에 의존한 플레이를 하다 절호의 기회를 놓쳤고 숀 라이트 필립스는 잠깐 드리블이 번뜩인 순간도 있었지만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강팀 킬러’ 박지성은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에 보였던 공격 본능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후반 들어 체력적인 부담 탓인지 백패스를 하거나 반 템포 느린 패스로 공격의 흐름을 끊기도 했다. QPR은 골키퍼 줄리우 세자르의 선방이 없었다면 승점 1도 못 챙길 뻔했다. 세자르는 전반 5분 에런 레넌이 페널티 지역 왼쪽에서 날린 강력한 슈팅을 손끝으로 쳐 냈고 이 공이 왼쪽 골대를 맞고 나온 것을 에마뉘엘 아데바요르가 재차 슛으로 연결하자 몸을 날려 쳐 내는 등 서너 차례의 실점 위기를 막아냈다. 유럽 축구 전문 매체 ‘ESPN FC’의 칼럼니스트 존 브루인은 “레드냅 감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수비력이 아닌 공격의 창의성”이라고 일침을 놓았고 “박지성은 공격적인 역할을 맡아야 할 선수지만 정작 수비형 미드필더인 음비아보다 더 희망이 없는 공격을 했다”고 혹평했다. 한편 기성용(24·스완지시티)은 13일 에버턴과의 원정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했으나 역시 팀은 0-0으로 비겼다. 스카이스포츠는 “충분히 괜찮은 플레이”란 평가와 함께 평점 6을 매겼다. 챔피언십(2부리그)에서 뛰는 이청용(24·볼턴)은 밀월과의 홈경기에 선발 출전해 0-1로 뒤진 전반 34분 페널티킥을 유도해 시즌 첫 도움을 기록했다. 팀은 1-1로 비겼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손흥민(21·함부르크SV)은 정규리그 후반기를 앞두고 열린 빈(오스트리아)과의 친선 경기 후반 14분에 결승골을 터뜨려 2-0 승리를 이끌었다. 강동삼 기자 kangtong@seoul.co.kr
  • 책에 빠진 어린이 ‘초절정 엄친딸’ 되다

    아메리칸발레학교에서 발레리나를 꿈꾸다 줄리어드 예비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영재학교 헌터스쿨을 나와 예일대에서 프랑스문학을 공부했고,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돌연 법의 매력에 빠져 하버드 법대에서 법을 공부한 뒤, 미국 대법원의 법률서기와 뉴욕 맨해튼검찰청 검사를 거쳐 한국계 최초로 하버드대 법대 교수에 임용됐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숨이 찬다. 이후 하버드 교수단 심사를 만장일치로 통과, 아시아 여성 최초로 하버드 법대 종신교수에 선출됐다. 미국 아시아태평양 변호사협회 본부에선 ‘40세 미만 최고의 변호사’ 중 한 명으로, 미국의 유력 일간지 ‘보스턴글로브’에선 ‘2010년 가장 스타일리시한 25인의 보스턴인’ 중 한 사람으로 각각 꼽았다. 최고의 예술가 등에게 수여하는 ‘구겐하임 펠로십’, 뛰어난 법률서적에 수여하는 ‘허버트 제이콥’ 상 등을 받았고 2011년엔 ‘자랑스러운 한국인’ 상까지 거머쥐었다. 이 모두가 한 여성을 수식하는 표현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초절정 엄친딸’ 석지영(40·미국명 지니 석) 교수 얘기다. 여섯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그가 열정과 끈기로 자신의 꿈을 이뤄내기까지 겪었던 일들을 책으로 녹여냈다.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북하우스 펴냄)다. 책은 팩트 위주로 간결하게 전개된다. 미간 찌푸리며 행간의 뜻을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저자 스스로 밝혔듯 책엔 불완전성도 내포돼 있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들은 실제 일어났던 일들이라기보다 어린아이가 받았던 인상에 더 가까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실제 비중에 견줘 과장됐을 개연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익숙하되 울림이 큰 두 가지 지적으로 독자의 가슴을 찌른다. 먼저 저자가 주장하는 삶의 원칙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되 놀이처럼 즐길 것, 언제나 새로운 일을 시도하되 위험을 감수할 것, 적절한 시점에 일을 멈추고 휴식하며 스스로에게 상을 줄 것” 등이다. 늘 주변에서 듣던 경구다. 그러나 저자의 부모가 진작에 불화를 겪고 이민을 결심했듯, 대한민국 사회에선 늘, 그리고 여전히 실행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둘째는 책읽기다. 저자는 책읽기가 “나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고 했다. “늘 책에 푹 빠져 산 덕택에 상상력과 문화적 감수성, 그리고 보편적 교양을 얻을 수 있었다”고도 했다.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 탄탄한 인문학적 소양이었던 셈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입만 열면 닮아야 한다고 외치는 게 한국의 교육열인데, 저자는 되레 이를 부정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저자는 오는 18일 서울 숭실대 한경직 기념관에서 강연회를 연다. 1만 4000원.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부츠·스키니진… 바흐에 맞춰 춤춘다고 피아니스트의 열정이 사라진 건 아니다

    부츠·스키니진… 바흐에 맞춰 춤춘다고 피아니스트의 열정이 사라진 건 아니다

    다섯 살 때쯤이었다. 꼬마는 교회에서 듣고 온 찬송가 멜로디를 집에 있던 피아노로 고스란히 재현했다. 음악학원을 운영하던 엄마는 아들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봤다. 4년 뒤, 꼬마를 뒷바라지하고자 온 가족이 미국 이민을 떠났다. 엄마의 선택이 옳았음은 곧 증명됐다. 뉴욕 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주최한 영아티스트콩쿠르에서 최연소(만 10세)로 우승했다. 매니지먼트회사 IMG는 소년이 러시아의 천재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처럼 될 걸 기대하고 냉큼 계약했다. IMG 역사상 최연소 아티스트가 됐다. 여기까지가 ‘클래식 아이돌’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지용(22)의 1막이다. 마냥 행복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이것저것 경험하고, 적성을 탐색한 끝에 들어선 길이 아니었다. “미국에선 엄마랑 늘 싸웠어요. 예컨대 농구도 잘할 수 있는데 엄마는 손 다친다고 못하게 했죠. 반항한다고 농구팀 들어갔다가 손가락을 접질린 채 리사이틀을 하기도 했어요. 어렸을 땐 팝 음악가처럼 화려한 삶도 꿈꿨던 것 같아요. 한때는 나쁜 길(?)로 접어든 적도 있고…. 흐흐흐.” 어린 나이에 거대 매니지먼트 회사의 소속원이 된 것도 양날의 칼이었다. “회사에서는 유명 피아니스트들이 가는 길을 그대로 걷길 원했어요. 콩쿠르도 적당히 나가고, 원하지 않는 지휘자(혹은 오케스트라)와 협연도 하면서 커리어를 쌓기를 바랐죠. 2009년 IMG에서 잘릴(계약해지를 ‘잘렸다’라고 표현했다) 때쯤 연주는 물론 클래식에 대한 흥미를 잃었답니다.” 한 달쯤 피아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2009년 미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했지만 1년간 휴학했다. 뭐가 그토록 혹독한 통과의례에 들게 한 걸까. “알면 그 지경까지 안 갔겠죠”라며 웃었다. 이어 “IMG에 있을 때도, 나오고 나서도 힘들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가장 좋았다. 나에 대해 많이 배우고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방황은 끝났지만, 자신을 돌이켜 보는 ‘솔 서칭’(soul searching)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정신력이 강해야, 나만의 목소리가 있어야 살아남고, 다른 사람도 날 존중하고 건드리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래 연주자들과 ‘앙상블 디토’ 활동, 발레나 현대무용과의 협업, 비주얼프로젝트 등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잃었던 열정을 되찾았다. 본인 의지로 피아니스트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지난해 초였다고 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3~4년간 날 괴롭히던 회의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자신을 위해 이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아기가 생기면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 같다. 결혼을 할지 안 할지 모르지만, 아기는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지용에 대한 편견(혹은 선입관)은 남아 있지 않았다. 무대에서 턱시도 대신 부츠에 스키니진을 입고, 패션잡지 화보 촬영을 한 것은 물론 자신이 연주한 바흐의 샤콘에 맞춰 웃옷을 벗은 채 격렬한 춤사위를 선보인 뮤직비디오를 발표하는 등 파격 행보를 벌인 ‘클래식의 아이돌’이라고 평가절하했던 게 미안했다. 지용은 “세상이 날 어떻게 보고 평가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매번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겉모습이나 퍼포먼스 때문에 낮춰 본다면 어쩔 수 없다. 나에겐 음악이 최우선이고 다른 일들은 재미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재밌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음악을 사랑했던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미니 앨범 ‘바흐 엑시비션’을 내놓은 지용은 이번에 리사이틀을 연다. 동자승처럼 파르라니 깎은 헤어스타일을 보는 건 팬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다. 12일 고양 아람누리에서, 1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바흐의 샤콘과 파르티타,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브람스의 ‘인터메조’ 등을 들려준다. 1577-5266.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2013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젤리피시/조수경

    [2013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젤리피시/조수경

    분홍빛 바다가 출렁인다. 수심이 가장 깊은 곳에 토막 난 엉덩이가 바짝 엎드려 있다. 둥근 엉덩이 사이로 크기와 모양이 서로 다른 페니스들이 서 있다. 페니스들은 물살이 지나갈 때마다 일제히 부드럽게 흔들린다. 한쪽에서는 실리콘 가슴이 유두를 꼿꼿하게 세운 채 먹잇감을 찾고 있다. 위험을 감지한 듯, 무지개빛깔 콘돔 무리가 빠르게 헤엄쳐 지나간다. 나는 눈을 감는다. 바다 깊은 곳까지 파고든 햇빛을 향해 고개를 든다. 눈꺼풀을 투과한 빛이 안구를 따스하게 감싼다. 빛은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 온몸에 뿌리내리고 있는 뼈마디를 녹인다. 몸이 점점 더 가벼워진다. 나는 분홍빛 바다를 부유한다. 나는 휠체어 바퀴를 탄력 있게 밀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휠체어를 미는 손에는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다. 방향을 틀 때마다 짧고 가느다란 두 다리가 하늘거렸다. 출입문이 열리며 사십대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의 얼굴 위로 분홍빛 조명이 물결처럼 흘러갔다. 나는 카운터 위에 달린 회전 조명등을 껐다. - 천천히 돌아보세요. 휠체어를 밀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는 나를 남자의 시선이 뒤쫓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의 시선이 진열대 쪽으로 튕겨 나갔다. 남자의 눈동자는 진열대에 놓인 성인 잡지와 DVD, 콘돔 상자와 딜도를 빠르게 훑으며 한 칸씩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줄리’ 앞에서 멈췄다. ‘줄리’는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었다. 그것은 유명한 포르노 여배우가 자신의 성기를 직접 본떠 만든 것이었다. 남자는 ‘줄리’의 우윳빛 허리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허리부터 허벅지까지, 토막 난 몸뚱이를 쓰다듬던 남자는 여배우의 그곳을 구석구석 살피며 촉감을 확인했다. 남자의 턱관절이 점점 느슨해지며 입이 벌어졌다. 모니터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앉아 있을 때도 남자는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삼 개월 할부로 몸값을 치르고, 남자는 토막 난 연인을 끌어안은 채 가게 밖으로 사라졌다. 비록 신체 일부분이긴 하지만 남자는 매일 밤 포르노 스타와 밀애를 즐기게 될 것이었다. 이곳에 있는 상품 중 완전한 것은 없었다. 모두 분절된 신체기구뿐이었다. 발기된 페니스를 본뜬 고가의 바이브레이터, 살짝 벌어진 여자의 성기, 둥글고 탐스러운 엉덩이, 가슴 사이에 질이 달린 기형적인 기구까지 온통 토막 난 몸뚱이뿐이었다. 토막 난 몸뚱이들은 나와 제법 어울렸다. 아이처럼 작은 몸에 달린 성숙한 여자의 젖가슴, 근육이 잘 발달된 짧은 팔,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붙어 있는 가늘고 휘어진 다리는 몸통을 중심으로 하나로 이어져 있으나 각각 떨어져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법했다. 내 몸뚱이는 버려진 재료를 모아다가 아무렇게나 조립해 만든 결과물 같기도 했다. 나는 가끔 가게 안에 분해된 채로 진열된 내 몸뚱이를 상상해 보곤 했다. 오후 두 시. 노인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노인의 손에는 쟁반이 들려 있었다. 나는 카운터 뒤쪽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노인은 방 안에 쟁반을 밀어 넣은 뒤 내 몸을 들어 올렸다. 가느다란 두 다리가 아무 의지도 없이 덜렁거렸다. 노인은 나를 방 안에 내려놓은 뒤 문지방에 걸터앉아 천천히 신발을 벗었다. - 오늘은 유난히 바빴어. 공영주차장 공사가 시작됐거든. 그쪽 인부들이 다 왔지 뭐야. 한동안 바쁘겠어. 노인은 안주인과 함께 1층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동네 이름을 따서 지은 평범한 상호에, 따로 메뉴도 없이 그날그날 안주인이 만든 국과 반찬을 내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일하는 공업사 사람들 대부분이 노인의 식당을 찾았다. 젊은 시절, 노인은 이 근방에서 기계 다루는 일을 했다. 안주인은 노인이 일하는 곳 근처에 세를 얻어 식당을 열었다. 공업사와 공구상가가 밀집된 지역이었다. 식당은 벌이가 꽤 괜찮았다. 노인은 일을 그만두고 식당에서 안주인을 거들거나 상가로 배달을 다니곤 했다. 세를 얻어 식당을 차린 노인 부부는 이제 식당이 딸린 3층짜리 건물의 주인이 되었다. 내가 노인의 건물 2층에 세를 얻어 산 것도 벌써 6년째 접어들었다. 노인은 내가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게끔 화장실을 개조해 주었다. 노인이 아니었다면 가게를 시작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었다. 끼니때가 되면 노인은 식당에서 밥과 반찬을 챙겨다 주었다. 때로는 나를 안고 식당에 내려가기도 했다. 한창 바쁘게 손님을 치르고 난 안주인까지 함께 둘러앉아 늦은 점심을 먹을 때면 ‘가족’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올랐다. 공업사 사람들은 노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밥알을 씹으며 노인 같은 사람이야말로 선행상을 받아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노인은 쑥스럽게 웃으며 “딸자식 같아서…”라고 겸손하게 말하곤 했다. -갈치조림이야. 손님상에 내려고 만든 건 아니고… 며느리가 보낸 걸 내가 몇 토막 졸여 달라고 했지. 방으로 들어온 노인이 쟁반을 덮고 있던 신문지를 걷어냈다. 매콤한 갈치조림 냄새가 침샘을 자극했다. 노인은 손으로 갈치 한 토막을 집어 들고 몸통 양 옆에 박혀 있는 가시를 빼냈다. -이렇게 가시를 미리 빼두면 먹기 좋지. 갈비처럼 손에 들고 뜯어 먹기도 좋고. 양념장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빨며 노인이 말했다. 나는 젓가락을 들고 갈치 살을 발라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갈치는 꽤 먹음직스러웠다. 발라낸 살을 입안에 넣자마자 연약한 살점이 부서졌다. 그제야 허기가 밀려왔다. 자작자작한 국물에 뜨거운 밥을 비벼 입에 넣고,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무를 베어 먹었다. 노인은 남은 갈치 토막을 집어 들고 가시를 제거한 뒤 살점을 발라내 밥 위에 얹어 주었다. 살점을 씹고, 국물을 삼키는 나를 보며 노인은 기름으로 번들번들해진 손가락을 자꾸만 빨았다.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는 밥그릇 가장자리에 들러붙은 밥알을 떼어 냈다. 손톱으로 접시에 말라붙어 있는 갈치 비늘을 긁어냈다. 손톱 사이로 은빛 비늘이 반짝였다. 나는 신문지로 빈 그릇을 덮었다. 노인은 쟁반을 방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나는 갈치 기름으로 얼룩진 신문지 귀퉁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손님이 올 거예요. -그래, 그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문지방에 걸터앉아 신발을 꿰신었다. -저녁 올려다 주마. 노인이 쟁반을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나는 방 한쪽에 쌓아 놓은 상자더미 쪽으로 기어갔다. 어제 들어온 상품 몇 개를 새로 진열해 놓을 생각이었다. 상자더미 옆에는 계단식으로 만든 나무받침대가 있었다. 노인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 나는 받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였다. 몸집이 큰 그는 사람들과 섞여 있어도 쉽게 눈에 띄었다. 식당에 내려가 밥을 먹을 때 그와 몇 번인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선한 눈을 갖고 있었다. 그는 마치 바다 속 포유류 같았다. 그가 맞은편에 위치한 자동차 공업사에서 일한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그리고 공업사 2층에 딸린, 내 방에서 마주 보이는 방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곧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받침대에 올라갈 때마다 창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작업을 마친 그는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툭툭 털어내고 동료들과 함께 공업사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맨 위에 올려져 있던 상자에서 ‘투 러버스’를 꺼냈다. 페니스 모형 두 개가 하나로 이어진 상품인데, 한쪽은 딱딱하고 다른 한쪽은 부드러운 질감을 하고 있는 기구였다. 이것은 마치 머리가 둘 달린 뱀처럼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튜브 걸’도 꺼냈다. 여체를 본뜬 비닐 튜브에 바람을 주입한 뒤, 성기 부분에 실리콘으로 제작한 질 모형을 끼워 넣고 사용하는 상품이었다. 모양이나 촉감은 ‘리얼 돌’에 못 미치지만 저렴한 가격이 ‘튜브 걸’의 장점이었다. 나는 두 개의 상품을 들고 가게로 나갔다. ‘투 러버스’를 딜도 옆에 나란히 진열해 놓은 뒤, 납작하게 눌린 ‘튜브 걸’의 몸에 숨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밋밋한 얼굴과 유두 없는 가슴이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흐느적거리던 비닐 다리에도 팽팽하게 공기가 차올랐다. 나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튜브 걸’의 다리를 벌리고 핑크빛 질을 끼워 넣은 뒤 무릎 위에 앉혔다. 공기처럼 가벼운 여인을 한 팔로 끌어안고 가게 중앙으로 휠체어를 밀었다. 나는 춤을 청하듯 정중하게 ‘튜브 걸’에게 손을 내밀었다. ‘튜브 걸’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동그란 원을 그리듯 휠체어를 밀었다. 멀어질 듯 밀착되고, 흐느끼듯 가라앉다 이내 경쾌하게 튀어 오르던 춤. 오래전 영화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흘러나왔던 연주곡을 흥얼거리며 나는 ‘튜브 걸’과 함께 가게 안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췄다.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춤추기를 멈췄다. -제법인데. P공업사 사장 최 씨였다. 최 씨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가게를 찾아왔다. 최 씨는 나에게서 ‘튜브 걸’을 빼앗아간 뒤, 춤을 추는 시늉을 했다. 나는 ‘튜브 걸’을 거칠게 낚아채 한쪽에 세워 두고 가게 문을 잠갔다. -이쪽으로 오세요. 최 씨가 나를 따라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알코올로 기구를 닦아 내는 동안 최 씨는 양말과 바지, 그리고 팬티를 차례로 벗었다. 나는 최 씨 쪽으로 기구를 밀었다. 무릎을 세운 채 다리를 한껏 벌리고 있는, 여자의 하반신을 본뜬 기구였다. 최 씨는 내가 건넨 윤활제를 자신의 성기에 발랐다. -거기 있어. 네가 보고 있으면 더 흥분이 되거든. 이곳에 찾아오는 남자들 대부분이 내게 자신들의 행위를 지켜봐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나에게 섹스를 요구한 사람은 없었다. 기구가 아닌 진짜 여자와의 섹스를 원했다면 그들은 다른 곳에 갔을 것이었다. 대신 그들은 내가 여자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했다. 나는 남자들이 기구 안에 사정을 할 때까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그들을 지켜보곤 했다. 때로는 기구에서 여자의 상반신이 자라나는 상상을 하거나, 기구처럼 남자들의 상반신이 사라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일을 마친 최 씨가 기구에서 몸을 빼냈다. 나는 전기주전자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커피 잔에 인스턴트커피를 쏟아부었다. 황갈색 커피 알갱이가 잔 위로 우박처럼 떨어졌다. 하얀 프림이 쏟아지며 커피 알갱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입자가 고운 프림은 카리브 해의 모래를 닮았다. 카리브 해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해파리가 산다고 했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 언젠가 TV에서 본 그 해파리의 이름을 천천히 발음해보았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는 성장과 퇴행을 무한히 반복한다고 했다.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 1cm도 안 되는 이 작은 해파리는 죽지 않고 끊임없이 번식하며 전 세계 바다로 퍼져 나가 생태계를 위협한다고 했다. 지구상에서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다 해도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는 태고로부터 멀고 먼 미래까지, 끝없이 헤엄쳐 갈 것이었다. 바다를 가득 메운 영생불사의 생명체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헤엄쳐 오는 환영. 나는 몸을 떨었다. 아주 오래전, 나는 해파리였다. 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흐물흐물한 두 다리는 내가 해파리의 삶을 살았다는 흔적기관으로 남아 있었다. 분출하는 법은 잊었지만, 여전히 분비되고 있는 독이 동맥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며 현기증이 일 때도 종종 있었다. 물이 끓었다. 나는 최 씨에게 커피를 건넸다. 뜨거운 커피를 후루룩 마시고 최 씨는 커피값을 기구 옆에 내려놓았다. 나는 해변에 누워 바다를 바라본다. 수평선 끝에 태양이 반쯤 걸려 있다. 태양은 바다 위로 황금빛 길을 만들고 있다. 황금빛 길을 따라 무언가 해변을 향해 헤엄쳐 오고 있다. 그것은 수면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헤엄쳐 온다. 물살이 점점 거세진다. 하지만 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해변에 가까워지면서 그것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검은 고래다. 고래와 나는 서로 마주 본다. 나는 고래의 등 위로 기어 올라간다. 고래의 등은 생각처럼 미끄럽지 않다. 그리고 따뜻하다. 나를 태우고 고래는 다시 바다로 헤엄친다. 내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고래는 수면 가까이에서 헤엄친다. 물살에 발등이 간지럽다. 낯설다. 나는 내 다리를 내려다본다. 길고 튼튼한 다리가 쭉 뻗어 있다. 나는 다리를 한껏 뻗어 물살을 가른다. 잠결에 쇠가 또 다른 쇠붙이 안으로 파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떴다. 철컥, 하고 가게 출입문이 열린 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다시 출입문이 슬며시 닫히는 소리, 쇠붙이가 돌아가며 문이 잠기는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로 허공을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는 귀가 예민해지는 법이었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방문이 천천히 열렸다. -벌써 잠이 든 게냐? 노인이었다.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방문을 등지고 돌아누웠다. -저녁상 봐왔다. 불을 켜지도 않은 채, 노인은 방 한쪽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저녁은 먹고 자야지. 노인은 문지방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었다. -갈치찌개다. 남은 갈치 넣고 끓였는데 맛이 아주 개운하다. 노인이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오며 말했다. 노인이 등 뒤에서 나를 끌어 안았다. 노인의 손이 티셔츠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노인의 피부는 차갑고 거칠었다. 노인은 내 가슴을 성급하게 움켜쥐었다. 노인은 내 등 뒤에 바싹 붙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물을 벗고 있는 커다란 곤충이 등 뒤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멀리,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간간이 쇠를 자르는 날카로운 소리도 들려왔다. 공업사에서는 종종 야간까지 작업을 하곤 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나는 어두운 방 안에 누워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쇠가 잘리는 소리는 비명소리 같았다. 그것이 쇠붙이에서 피 맛이 느껴지는 이유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불로 온몸을 꽁꽁 감싸고 누워 기계가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소리를 듣다 잠이 들곤 했다. 노인이 긴 숨을 토해냈다. 허물처럼 노인의 몸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았다. -입맛 없으면 뒀다가 아침에 데워 먹어라. 방문을 닫기 전, 노인이 말했다. 가게 문이 열리고 다시 닫힐 때까지 나는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노인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난 뒤, 나는 기구를 소독하듯 내 몸 구석구석을 닦아 냈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배고픈 아기마냥 희미하게 울다가도 이내 앙칼진 비명을 질러댔다. 안주인은 또 잠에서 깨어났을 것이었다. 그녀는 평소에 전화벨이 울려도 못 들을 만큼 깊은 잠에 빠지는 편인데,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리면 이상하게 잠에서 깨어난다며 투덜거리곤 했다.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다 보면 단순히 교미를 하고 있는 짐승이 아닌, 이제 막 성의 유희를 알게 된 계집 같다며 몸서리치기도 했다. 나는 노인이 두고 간 쟁반을 끌어당겼다. 밥공기를 거꾸로 들고 흔들었다. 차갑게 식은 밥덩이가 갈치찌개 위로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비닐봉지 안에 담은 뒤 나무받침대 맨 위까지 기어 올라갔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응시했다. 캄캄한 골목길에서 몸집이 작은 고양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비닐봉지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비린내를 맡은 고양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곧 생명을 잉태할 어미 고양이에게는 충분한 영양 공급이 필요할 것이었다. 전봇대 아래 둥그런 물체가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쓰레기더미일 것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맞은편, 그가 살고 있는 방을 바라봤다. 불이 꺼져 있었다. 창문은 밤하늘보다 더 어두운 빛깔을 하고 있어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낮에 본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자동차 보닛을 열고 부품을 교체하던 중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육중한 부품들을 그는 날렵한 동작으로 들어내고 또 갈아 끼웠다. 그의 손을 거치고 나면 자동차는 매끄러운 엔진 소리를 냈다. 그는 무엇이든 고칠 수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그는 내 몸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괴한 모양으로 붙어 있는 팔과 다리를 몸통에서 분해한 뒤 정상적인 팔과 다리를 다시 이어 붙이고 조립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 그의 집 창가에 커다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나는 재빨리 몸을 숨기며 받침대에서 기어 내려왔다. 안주인이 자꾸만 하품을 했다.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지난밤 잠을 설친 탓이었다. 투덜거리면서도 그녀는 손으로 열무를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노인이 두부조림을 반으로 잘라 내 밥 위에 얹어 주었다. -양념장이 간간하니 입맛이 돌 게다. 나는 노인이 얹어 준 두부를 입안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두부에 배어 있던 물기가 밥알 사이로 스며들었다. 노인은 배추김치를 손으로 찢어 밥 위에 올려 주고 코다리찜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주었다. 안주인이 열무를 집어 먹던 손을 앞치마에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을 먹으면서도 식당 출입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안주인의 오랜 습관이었다. 곧 식당 문을 밀고 남자 몇몇이 들어왔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 중에 그가 있었다. 빈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는 나와 마주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안주인이 부엌에 들어가 국을 데우는 동안, 노인은 밑반찬을 가져다 날랐다. 나는 밥알을 씹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는 코다리찜을 한입에 넣고 씹다가 입을 우물거리며 가시를 뱉어냈다. 그의 젓가락은 계란말이를 자주 집어 들었다. 그는 국그릇을 한 손으로 들고 후루룩 국물을 삼켰다. 콧등에 땀이 맺히자 손등으로 스윽 닦아냈다. 숟가락질 서너 번 만에 그는 밥 한 공기를 비웠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물로 입가심을 하던 그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노인이 맞은편 자리로 와 앉았다. -다 먹은 게냐? 노인이 물었다. 노인 뒤로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노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나를 안으려는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올려다 줄게요. 그가 노인에게 말했다. 노인 옆에 서자 그의 몸집은 더 커보였다. 노인은 그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그가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는 나를 안은 채로 식당 문을 열고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그의 새끼손가락이 내 가슴에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었다. 나는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콧날에서 인중으로, 인중에서 다시 윗입술로 이어지는 선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윗입술에 비해 아랫입술이 들어가 있고 아래턱이 짧아 그는 고집 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는 휠체어에 나를 내려놓았다. 그의 목덜미가 내 얼굴에 닿을 듯했다. 그는 후, 하고 숨을 짧게 내뱉었다. 그는 물건을 사러 온 손님처럼 가게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나는 휠체어를 밀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나를 돌아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뭐 좀 마실래요?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게 들어오라는 시늉을 하고 방문을 열었다. 방바닥에는 포장하려고 꺼내 놓은 상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인터넷 쇼핑몰 주문량이 나날이 늘고 있었다. 나는 상품들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그가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방에 들어온 그는 바지주머니에 손을 반쯤 찔러 넣고 머뭇거렸다. 방바닥에 앉아서 바라보니 그는 더욱 커 보였다. 엉거주춤하게 선 자세로 방안을 휘휘 둘러보던 그가 갑자기 창가로 걸어갔다. -내 방이 마주보이는군요.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는 정말 모르고 있었던 걸까. -저기가, 그가 손을 쭉 뻗으며 맞은편을 가리켰다. -내 방이거든요. 그가 천진하게 웃었다. 방바닥에 앉아 있는 나는 창문 너머 그의 집을 볼 수가 없었다. 그제야 눈치 챈 듯, 순식간에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창문 앞에 놓인 나무받침대를 흘끗 쳐다보고 내 옆에 와 앉았다. 나는 전기주전자 쪽으로 몸을 끌었다.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손을 짚은 곳까지 엉덩이를 끌어당겼다. 작고 가느다란 두 다리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꼬리처럼 흐물흐물 따라왔다. 그가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더 무거워졌다. 전기주전자에 물이 끓는 동안 그는 주문 목록을 집어 들고 천천히 훑어봤다. 상품명을 일일이 소리 내어 읽다가 그는 중간중간 주변을 돌아보며 해당 상품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름만으로는 도무지 어떤 상품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커피를 건네고 나서야 그는 주문 목록이 적힌 종이를 내려놓았다. 나는 바닥에 늘어놓은 상품들 중 딜도를 손에 쥐었다. 나는 익숙한 솜씨로 딜도를 포장해 상자에 넣었다. 사은품으로 지급하는 콘돔 두 개도 빠뜨리지 않았다. 상자를 테이프로 봉한 뒤 나는 ‘식스팩맨’을 끌어당겼다. 탄탄한 복근부터 허벅지까지 만들어놓은 것으로 ‘초콜릿 복근’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출시된 상품이었다. ‘식스팩맨’을 개발한 회사에서 상품을 광고할 때 내건 문구는 ‘지금은 여성 상위시대’라는 말이었다. 광고 문구를 읽을 때마다 나는 구시대의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나는 레즈비언 커플을 위한 기구를 포장했다. 벨트를 허리에 두르면 여자도 남자의 성기를 몸에 지닐 수 있었다. 내가 상품을 포장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그가 여자의 엉덩이를 본뜬 상품을 집어 들었다. 그는 내 손놀림을 곁눈질해가며 여자의 엉덩이를 포장했다. 엉덩이를 움켜쥐는 그의 손등 위로 핏줄이 일어섰다. 나는 페니스 모형을 말아 쥐었다. 불끈 튀어나온 핏줄까지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상품이었다. 그의 시선이 느껴져 손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나는 페니스를 더욱 세게 말아 쥐었다. 그는 포장한 엉덩이를 상자에 넣고, 이번에는 실리콘 가슴 모형을 끌어당겼다. 그의 커다란 손 안에 한쪽 가슴이 가득 찼다. 그의 시선이 내 가슴 쪽으로 옮겨 왔다. 순간, 아랫도리에 더운 피가 고여 들었다. 나는 실리콘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그의 손을 끌어다 내 가슴에 가져다댔다. 잠시 멈칫했던 그의 손이 이내 옷 속을 파고 들었다. 나는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두 개의 다리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옷 속을 파고든 그의 손이 몸의 굴곡을 따라 느리게 움직였다. 온기가 지나간 자리에 소름이 돋아났다. 가슴과 배꼽 위에 차례로 머물던 따스한 기운이 순간 사라졌다. 그가 치마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나는 그의 손을 다급하게 막았다. -일 끝내고, 나는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빛이 한창 쏟아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짧고 가느다란 다리가 여과 없이 보일 터였다. 다리를 보게 되면 햇볕에 말라죽은 강장동물의 사체라도 발견한 듯, 그의 눈은 경멸로 가득해질 것이었다. -밤에 다시 와줄래요? 그가 내게서 몸을 뗐다. 그는 몸의 열기를 빼내듯, 숨을 길게 내뱉고 일어났다. 포장이 끝난 상자 몇 개를 한쪽에 쌓아 두고 그는 방에서 나갔다. 오후 일곱 시. 나는 딜도를 크기별로 보기 좋게 정리했다. DVD를 진열해 놓은 선반을 손바닥으로 쓸어 보니 먼지가 묻어났다. 물티슈를 뽑아 선반에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 내친김에 다른 진열장에 쌓여 있는 먼지도 닦았다. 출입문 손잡이 부분은 늘 손님들의 지문으로 얼룩져 있었다. 나는 물티슈를 한 장 더 뽑아서 손잡이 부분을 닦았다. 휠체어를 뒤로 밀어 얼룩이 남은 곳이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봤다. 카운터 주변까지 정리를 마치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택배기사가 상자를 수거해 가고 난 뒤에 방안을 쓸고 걸레질까지 했지만, 나는 물티슈로 방바닥을 한 번 더 훔쳐 냈다. 가지런히 개어 놓은 이불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노인의 냄새가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불 귀퉁이에 향수를 살짝 뿌려두고 나서야 나는 안심했다. 욕실 문을 열고 쓰윽 훑어봤다. 거울도, 세면대도, 바닥도 모두 말끔했다. 세면대 옆에 걸어둔 수건이 낡아 보였다. 나는 서랍장을 열고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수건을 찾아 욕실에 새로 걸어 두었다. 그가 퇴근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카운터 서랍을 열고 화장품을 꺼냈다. 파우더 퍼프를 두드려 이마와 콧등의 기름기를 지웠다. 턱을 살며시 들고 마스카라를 덧발랐다. 손거울 안에 들어있는 여자의 얼굴이 제법 도도해 보였다. 나는 턱을 든 채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움직여 보기도 하고 입 꼬리를 올려 웃어 보기도 하다가 키스를 기다리는 여자처럼 입술에 긴장을 풀었다. 거울을 끌어당기고 살짝 벌어진 입술 안을 들여다보았다. 세상을 향해 처음 속살을 내보인 패류(貝類)처럼 나는 재빨리 입술을 닫았다.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카운터 서랍을 급히 닫고 미리 띄워 놓은 인터넷 쇼핑몰 창을 들여다보며 주문량을 확인했다. 문이 열리며 발자국 소리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제야 모니터 너머로 고개를 빼고 출입문 쪽을 바라봤다. 노인이었다. -문 닫고 내려가서 저녁 먹자. 일곱 시 사십 분. 평소대로라면 벌써 가게 문을 닫았을 시간이었다. -손님이 올 거예요. 나는 다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노인은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 출입문 밖으로 나갔다. 노인의 발자국 소리가 희미해지자 나는 가게에 불을 켜둔 채 방문을 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이미 어두웠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걸까. 나는 상체를 숙여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엉덩이를 끌어내렸다. 쿵, 소리가 났지만 이 정도 충격에는 이미 단련되어 있었다. 나는 어두운 방안을 기어갔다. 방바닥에 가로등 불빛이 창문 모양으로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나는 계단식으로 만들어 놓은 나무받침대를 한 칸씩 올라갔다. 팔 근육은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 더 굵고 튼튼했다. 창밖으로 그의 방 창문이 보였다. 불이 꺼져 있었다. 공업사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빠른 속도로 나무받침대를 내려왔다. 휠체어에 올라타고 카운터로 나갔다. 모니터에 인터넷 쇼핑몰 창을 띄워 놓은 채, 나는 가끔씩 출입문 쪽을 바라봤다. 배송해야 할 상품목록을 정리하고, 제조사에서 보낸 신상품 카탈로그를 살펴봤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어느덧 아홉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두운 방안을 기어 나무받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의 방 창문이 보였다.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창가에 바짝 붙어 그의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나무 책상이 보였고 침대 모서리가 보였다. 멀리서 자동차가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지나갔다. 소리는 점점 멀어지다 사라졌다. 침대 모서리 밖으로 하얀 다리가 튀어나왔다. 창틀에 가려져 다리의 일부만 보였지만 그의 것은 아니었다.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려 벽에 등을 기댔다. 나는 침을 삼켰다. 나는 다시 몸을 낮추고 창밖을 내다봤다. 하얀 다리 사이로 그의 커다란 몸뚱이가 보였다. 하얀 다리가 그의 허리를 감쌌다. 곧은 뼈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탄력 넘치는 근육. 근육이 움직이며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곡선. 관절의 거칠고도 부드러운 움직임. 실리콘도, 비닐 튜브도 아닌 살아 있는 다리. 만져 보고 싶었다. 나는 카운터 위에 달린 회전 조명등을 켰다. 꼿꼿이 서 있는 딜도와 납작하게 웅크리고 있는 엉덩이 위로 분홍빛이 내려앉았다. 휠체어를 밀고 가게 안을 둘러봤다. 나는 포르노 스타의 토막 난 몸뚱이 앞에서 멈췄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질을 가지고 있는 포르노 스타 옆에는 실리콘 가슴이 누워 있었다. 나는 계속 가게 안을 둘러봤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성인 잡지에서 종종 봤으나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았다. 나는 잡지를 집어 들고 휠체어를 밀었다. 나는 여자의 얼굴이 크게 인쇄된 면을 찾아 방바닥 한가운데에 잡지를 펼쳐 놓았다. 그 아래로 실리콘 가슴을 가져다 놓았다. 나는 다시 포르노 스타의 토막 난 은밀한 부위, 그리고 여자의 다리를 본뜬 쿠션을 차례로 가져다 놓았다. 나는 내가 창조해 낸 여자 옆에 나란히 누웠다. 카리브 해의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여자와 나는 백사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분홍빛 파도가 밀려와 여자와 내 몸을 적신다. 여자의 분절된 몸이 하나로 이어진다. 여자는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운다. 한 걸음씩 발을 내딛다 여자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전라의 아름다운 육신이 부드럽게 출렁인다. 여자는 춤을 추며 내게 다가온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 여자는 주문을 외우고 섬세한 손길로 내 다리를 쓰다듬는다. 숨을 불어넣은 ‘튜브 걸’처럼 가늘고 휘어진 두 다리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며 감각이 되살아난다. 탐스럽게 살이 오른 두 다리가 공중으로 뜨기 시작한다. 다리와 함께 내 몸도 붕 떠오른다. 내 몸은 분홍빛 바다 위를 떠다닌다. 따스한 물결이 몸을 부드럽게 감싼다. 투명한 몸에서 빛을 발하는 해파리들이 바다 깊은 곳에서 하나둘씩 떠올라 해면을 부유한다. 해파리들이 헤엄쳐와 내 몸을 핥듯이 뒤덮는다. 목을 감싸고 가슴 위로 미끄러지고 내 몸 안을 깊숙이 파고든다. 태양과 바다가 맞닿은 곳을 향해 나는 해파리들과 함께 헤엄친다. [당선소감] 연인이 세상 떠난 벼랑끝, 거짓말 같은 일이…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삼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쏟아졌고, 나의 연인은 세상을 떠났다. 감당이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이쪽이 아닌, 저쪽 세상을 바라보던 시간이었다. ‘나’도 잃고 ‘언어’도 잃은 시간이었다. 두려웠다. 벼랑 끝에서, 당선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달려가며 세상을 편리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느리게 걸으며 주변을 돌아보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 나는 후자 쪽을 꿈꾼다. 어릴 때부터 꿈은 하나였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언제나 명확했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삶의 사각지대였고, 나는 그것을 문장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제, 간신히 ‘입장권’을 받은 기분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임을 잘 알고 있다. 글. 그림. 여행. 세상 구경 실컷 하고, 아이들, 동물들과 사랑을 나누는 삶.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글’의 힘을, 나는 믿는다. 늦게 출발한 만큼 더 열심히 쓸 것이다. 제게 ‘숨’인 소중한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좌뇌를 물려주신 아빠, 우뇌를 물려주신 엄마, 가장 소중한 우리 가족, 사랑합니다. 등단하면 찾아뵙겠다며 지금껏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어요. 조해룡 교수님, 곧 찾아뵐게요. 대모님을 비롯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많은 분, 믿고 응원해 준 친구들, 특히 집 밖에 나가지 않는 나를 위해 식량과 각종 영양제를 배달해 준 재경양, 모두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던 모습 그대로, 내 안에 영원히 방부 보존되어 있을 당신, 그곳에서 늘 지켜봐 주세요. ■약력 ▲1980년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현재 SBS 라디오 작가 [심사평] 인간의 깊은 내부세계 들여다보는 문제작 서울신문 신춘문예는 전통적으로 좋은 작품, 좋은 작가를 새롭게 배출하는 자리로 알려져 왔다. 최근 이은선, 차현지, 김가경과 같은 재능 있는 작가들을 문단에 새로 내놓았고 이들은 이미 활발한 문단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 ‘힘센’ 서울신문 신춘문예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본심을 맡으면서 우리는 비상한 관심과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모두 열두 작품 정도. 생각보다 많은 예심 통과작은 심사위원들로 하여금 시간적으로도, 마음 씀씀이로도 쉽지 않은 일을 하도록 했다. 두 사람이 미리 배송해 받은 예심 통과작을 읽고 그 가운데 몇 편을 추려 꺼내 놓은 후보작은, 한 사람은 두 편, 다른 한 사람은 네 편. 공교롭게도 한 사람의 네 편 가운데 다른 사람의 두 편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 두 편의 제목은 조수경의 ‘젤리피시’와 이완의 ‘아빠의 네트워크’. 두 작품 모두 나무랄 데 없는 수작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아빠의 네트워크’는 아들의 시선으로 아버지의 세계를 조명한 독특한 작품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중 화자의 시각이나 생각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녹록지 않은 생활을 이어 가는 인물들 모두의 삶에 흐르는 생기나 활력은 이 소설의 작가가 성숙한 세계인식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수경의 ‘젤리피시’는 어떻게 보면 더 독특하면서도 문제적인 생각을 전달하는 것 같다. 성인용품 판매점에서 일하는 고독한 장애 여성의 시점을 취한 것은 이 작품을 쓴 사람이 세태와 시류를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유행감각의 소산이 아니다. 이 작가는 인간의 깊은 내부 세계를 들여다보는 안목을 갖추었다. 또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묘사 능력도 탁월했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조수경의 ‘젤리피시’를 당선작으로 올렸다. 문제작을 당선작으로 올린 것에 만족한다. 조수경에게 축하드리며 정진을 당부한다. 이완은 이것으로 낙심하지 말고 힘내시길.
  • [2013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들/유인혁

    [2013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들/유인혁

    1 이야기의 끝, 혹은 끝없는 이야기 이집트의 영조(靈鳥) 피닉스는 수명이 다하면 헬리오폴리스에 있는 태양의 신전으로 날아가 스스로 불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피닉스는, 이윽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이 영조는 불사조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보르헤스는 불 속에서 파괴되며 재생하는 이 영원한 순환을 묘사한 적이 있다. ‘원형의 폐허들’의 주인공은 ‘불의 신전’에서 한 소년을 만들었다. 그는 꿈속에서 소년의 폐동맥과 심장, 뼈대, 눈꺼풀, 셀 수 없이 많은 머리카락 등을 눈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생생하게 떠올렸다. 정교한 상상 속에서, 소년은 마침내 실체가 되어 현신했다. 그런데 이 창조자는 소년이 언젠가 자신이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챌 것이라 걱정했다. 불의 신전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결국 불이 될 것이다. 환영은 불에 탈 리가 없으므로, 언젠가 소년은 불에 닿았을 때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고민으로 천일 하고도 하루 동안 노심초사하다가 불타는 신전으로 뛰어들었다. 이 기나긴 고민을 끝내줄 죽음을 기다리면서. 그러나 불타는 폐허 안에서, 그는 자신이 불에 타지 않음을, 그러니까 자신도 누군가의 환영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소년 또한 먼 훗날 환영을 만들 것이다. 이 과정은 영원히 반복 되리라…. 피닉스와 보르헤스의 환영은 모두 반복을 통해 영원을 성취한다. 그것은 끝없이 뻗어나가는 직선이 아니라, 영구히 되돌아오는 원환이다. 그러니까 끝이 무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시작이 펼쳐진다는 뜻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메시지는 바로 반복이다. 끝에 도달했을 때, 모든 것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끝과 무한(無限). 최근 소설쓰기 자체를 주제로 삼은 일련의 메타픽션 속에서 발견되는 문제는 참으로 이렇다. 한유주는 “내가 쓰고 싶었던 문장들은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다. 나는 읽어본 적이 없는 문장들을 베끼고 또 베낀다”(한유주, ‘농담’,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30쪽)고 말한다. 이때 새로운 글쓰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제시된다. 대홍수가 인간의 문명을 송두리째 박살낸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의 세계에서, 창작의 가능성은 이 세상과 함께 종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한유주는 끈질기게 자신이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때 한유주는 자기 글쓰기의 한 조건으로 ‘이야기의 끝’을 상정하고 있다. 이미 “이야기는 오래전에 모두 매진되” (한유주, ‘죽음의 푸가’, “달로”, 문학과지성사, 2006, 48쪽)어서 그 어떤 처녀작도 새로 쓰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최제훈은 끝없는 이야기의 모델을 보여준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다”는 사실은 오히려 충만한 자유를 제공한다. ‘괴물을 위한 변명’에서 “프랑켄슈타인”을, ‘퀴르발 남작의 성’에서는 흡혈귀 전설을, ‘셜록 홈스의 숨겨진 사건’에서는 셜록 홈스의 이야기를 솜씨 있게 패러디했던 그는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 애거사 크리스티, 에도가와 란포, 오스카 와일드, 스티븐 킹, 로베르트 비네 등을 종횡무진 누빈다. 기성의 작품이 많으면 많을수록, 최제훈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한유주에게 제약이었던 것이 그에게는 기회요,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최제훈은 바로 이러한 조건 아래서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이야기” (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82쪽)를 상상했다. 2 플롯 없는 소설들 왜 차라리 ‘소설의 끝’이 아니라 ‘이야기의 끝’인가.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에서 진실로 끝나버린 것은 바로 플롯이다. 바꿔 말해 시작과 끝을 유기적으로 형성하는 서사가 부재하고 있다. 한유주의 소설에서 내용이 짐작 가능한 이야기는 드물게 출현한다. 한유주의 소설은 대부분 그녀의 의식을 (불)투명하게 묘사하는 데 진력할 뿐이다. 무엇인가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그 진위는 참으로 모호하다. ‘흑백사진사’에서 ‘아이’는 유괴당한 지 일주일 만에 목이 졸려 살해됐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소설의 화자는 납치된 지 나흘 째 되는 날 풀려났고 중학생이 되어 사건을 회상하고 있다. 이 의도적인 교란은 화자의 모든 진술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때 이야기는 진술들의 나열일 뿐이지 통일되고 연속적인 흐름을 형성하지 못한다. 심지어 한유주의 소설에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단위로서의 사건(event)도 없다. 그녀의 소설에서는 사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한유주는 어떤 행위를 묘사하거나 진술한 다음, 곧바로 그것을 부정한다. 누군가 담배를 피웠는데 “연기는 나지” 않고 “재는 떨어지지”(한유주, ‘재의 수요일’, “얼음의 책”, 문학과지성사, 2009, 208쪽) 않는다는 식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소설 속의 내용이 사실 허구(虛構)라는 점을 계속해서 인식시킨다. 이것은 부정문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허구0’에서 한유주 본인으로 짐작되는 화자는 현재진행형 시제의 문장을 활용하여 자신의 생각, 행동, 계획들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허구0’이라는 제목은 이 모든 진술들이, 그러니까 가장 투명하게 작가의 머릿속을 베껴낸 이 문장들이 모두 거짓이라고 암시한다. ‘불가능한 동화’ 역시 같은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부정문, 혹은 명명(命名)을 통해 이루어졌던 일들이 이제 소설의 형식 자체를 통해 실천된다. 이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우선 앞에서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소녀의 테러리즘을 다룬다. 이 소녀는 반 급우들의 일기에 “나도 죽여보고 싶다”, “바늘 끝은 뾰족하다”, “불은 뜨겁다” 따위의 문장들을 몰래 적어 넣었다. 선생님은 이 테러의 진의를 알 수 없다. 그는 아이들에게 성을 내지만, 이것이 왜 나쁜 행동인지는 좀처럼 설명할 수 없다. 이 교실에는 “없어진 것도, 사라진 것도 없”으므로. 그저 “의미도 불분명하고 출처도 없는 문장들이 있을 뿐”이므로(한유주, ‘불가능한 동화’, “문학과 사회” 2011년 겨울호, 165쪽) 이것은 타인의 문장에 가해진 목적이 불분명한 테러인 것이다. ‘불가능한 동화’는 이렇듯 모호한 폭력을 가한 소녀를 중심으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발아시킨다. 이름이 주어지지 않으므로 소녀의 정체는 미스터리이다. 그녀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도 알 수 없다. 한편 소녀는 미아라는 급우가 자신의 범행을 알고 있을 것이라 의심하고 있다. 그래서 소녀는 미아를 살해하고 도망친다. 이제 우리는 미스터리의 해결(소녀는 누구인가)과 서스펜스의 지속(소녀는 잡힐 것인가)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한유주는 어느 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는 한 여성을 조명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수업 도중 강의실 뒤편에서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크게 놀란다. 그 아이는 바로 ‘소녀’. 자기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아이는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처럼 자신의 창조주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왜 자신을 끔찍한 모습으로 창조했는지 따져 묻는다. 이제 한유주는 앞선 이야기가 모두 허구였음을 고백하고, 허구란 대체 무엇인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한유주 소설의 시그니처와 같은 부정문은 형식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그녀는 말한 다음, 바로 부정한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제시한 다음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노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마치 만다라와 같은 작업이다. 형형색색의 모래를 뿌려 만들어지는 이 신성한 그림은, 완성과 동시에 물에 씻겨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유주가 가지고 있는 언어에 대한 회의 때문에 생겨났다. 그녀는 언어가 현실을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좀처럼 갖지 못한다. 이는 사전에 대한 불신 속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K에게’에서 사전은 “모두 다섯 권이었지만, 첫 번째 사전부터 마지막 사전까지 합친 두께가 손바닥 한 뼘을 넘지 않”는 “무성의한 생일 선물”에 불과하다. 그것은 “조야한 방식으로 선별된 하나의 작은 세계”를 펼쳐 놓고, “수수께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낼 뿐 아무런 해답도 내어놓지 않는”다. 그래서 한유주는 “백과사전이라는 이름은 틀린 것”이라고 진술한다(한유주, ‘K에게’, “얼음의 책”, 문학과 지성사, 2009, 72~73쪽). 사전이 결코 세계를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언어는 현실을 투명하게 재현할 수 없다. 플라톤이 말한 바와 같이 문학은 세계를 열등하게 모사한 것에 불과하므로, 우리는 문학에서 삶과 현실을 찾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한유주는 자신의 글이 “아무것에도 봉사하지 않을 것이”(한유주, ‘허구0’, “얼음의 책”, 문학과 지성사, 2009, 19쪽)라고 선언한다. 언어는 그런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어는, 소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유주의 해답은 바로 메타픽션이다. 글쓰기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다. 언어는 결코 현실을 적절히 재현할 수 없으므로 차라리 언어 자체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유주에게 ‘이야기의 끝’이란 단순히 모든 이야기가 이미 쓰였다는 인식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야기가 현실을 재현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시대가 이미 오래전에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때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도대체 이야기를 쓸 수 있는지 의심하는 행위가 된다. 이러한 한유주 소설의 특징은 좀처럼 요약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오이디푸스왕’을 오이디푸스에게 일어난 몇몇 사건들을 중심으로 요약할 수 있다. 라이오스왕의 죽음, 이오카스테와의 결혼, 모호하면서도 분명한 신탁…. 하지만 한유주의 소설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수고롭게 그러한 작업을 한다고 해도 그녀 소설의 특징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요약할 수 없다는 것은, 최제훈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최제훈이 한유주처럼 사건을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최제훈의 소설에서 사건은 너무 많이 일어난다. 다만 그것들은 좀처럼 결말을 향해 회수되지 않는다. 최제훈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장편소설’로 소개되고 있지만, 실은 ‘여섯번째 꿈’, ‘복수의 공식’, ‘π’, ‘일곱 개의 고양이 눈’ 네 편의 소설이 느슨하게 연결된 연작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여섯번째 꿈’에 나오는 민규, 현숙, 세나, 연우, 영수, 태식 등의 인물들은 뒤의 세 작품 안에서 조금씩 설정과 역할을 달리하여 변주된다. 예를 들어 ‘여섯번째 꿈’의 연우와 ‘π’의 M은 동일인물로 보인다. 연우와 M은 모두 번역가인데, 자기가 번역을 맡은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운명을 바꾼 일이 있다. 비중이 거의 없는 인물을 슬그머니 죽은 것으로 오역했던 것이다. 하지만 연우가 스페인어 번역가인 데 반하여 M은 일본어 소설을 번역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죽음을 맞는다. 연우가 눈이 오는 산장에 고립되어 수수께끼의 살인마에게 살해당했다면, M은 소설을 쓰다가 탈진해 쓰러졌다.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려는 탐욕스러운 셰헤라자드에게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은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58쪽). 한 편의 장편소설에서 인물이 복수(複數)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사실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소설은 인간의 삶을 재현한 것이고 어떠한 인간도 두 번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죽음은 삶의 의미를 확정하는 사건이다. 발터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는데,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삶의 의미는 오로지 그들의 죽음에 의해서만 비로소 해명될 수 있다.”(발터 벤야민, 반성완 편역, ‘얘기꾼과 소설가’,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1983, 185쪽). 많은 소설들이 등장인물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적과 흑”은 줄리앙 소렐의 죽음으로 끝나며, “레미제라블”은 장 발장의 죽음으로 끝나고, “보바리 부인”은 엠마 보바리의 죽음으로 끝난다. 그들의 죽음이 삶과 소설의 의미를 확정짓는 것이다. 하지만 최제훈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여러 겹의 삶을 살아가고, 복수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은 삶이 아니라 차라리 연극이다. 예컨대 햄릿의 죽음은 연출가의 각색에 따라 매번 달라지지 않는가. 이러한 최제훈 소설의 특징은 그가 중심적으로 사용하는 기법에 의해 촉발되었다. 바로 패스티시다. 한유주 소설이 부정문의 특징을 형식적 차원에까지 확장한 결과라면, 최제훈은 패스티시의 가능성을 극단까지 활용하여 “일곱개의 고양이 눈”을 쓴다. 예를 들어 ‘여섯번째 꿈’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쥐덫’, 그리고 에도가와 란포의 ‘붉은 방‘을 인용하고 있다. ‘여섯번째 꿈’에서 민규, 현숙, 세나, 연우, 영수, 태식 등은 연쇄 살인범의 세계를 탐구하는 ‘실버 해머’라는 인터넷 동호회의 회원들이다. 이들은 어느 겨울 ‘악마’라는 별명을 가진 회장의 초대장을 받고 산장에 모였다. 그런데 정작 ‘악마’는 나타나지 않고, 회원들은 폭설로 고립된 산장에서 하나씩 하나씩 살해당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 ‘악마’가 숨어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는 판사, 사업가, 의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열 명의 사람이 외딴섬에 모인다. 그들은 어느 사업가에게 초대 받았다. 그런데 ‘여섯번째 꿈’과 마찬가지로 초대장의 주인은 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의 노랫말에 맞추어 한 명씩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한편 ‘쥐덫’에서도 사람들은 밀실에 갇혀 있다. 이들은 ‘여섯번째 꿈’과 마찬가지로 폭설이 내리는 산장에 고립된 것이다. 그리고 에도가와 란포의 ‘붉은 방’에서 ‘붉은 방 클럽’은 ‘실버 해머’처럼 극단적이고 파격적인 취미에 빠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때 ‘여섯번째 꿈’은 애거사 크리스티와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을 인용하고, 수정하는 가운데 쓰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여섯번째 꿈’은, 그리고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 다른 소설을 재현하는 글쓰기이다. 소설의 인물이 두 개의 죽음을 경험하는 이유는, 그들이 각각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제훈의 소설에는 이야기만 있을 뿐 그 이야기가 재현하는 인간의 삶이 없다. 그런 것은 도무지 중요하지가 않다. 이야기가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인물들이 선택되는 것이다. 이때 소설에서 인간적 삶의 내용은 사라지고 주인공은 그저 한 기능으로 퇴락한다. 그러니까 “돈키호테”에서 이 우스꽝스러운 기사는 다만 “무관한 일화와 에피소드의 모음으로 떨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것에 통일을 주기 위해”(프레드릭 제임슨, 윤지관 옮김, “언어의 감옥”, 까치, 1977, 61쪽) 고안되었다는 식이 된다. 소설은 한 인간의 삶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야기 재료들의 짜깁기가 되는 것이다. 3 전문가로서의 작가 그래서 패스티시의 소설은 반인간적이다. 소설 속의 인간에게 고유한 삶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스티시는 소설 바깥의 인간에게서도 존엄성을 빼앗는다. 그러니까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에게서 창조주의 권위를 앗아간다. ‘π’에서 M은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직업은 소설가가 아니라 번역가이다. 즉, 그는 타인의 언어를 거쳐야 비로소 무엇인가를 쓸 수 있는 존재이다. 이는 M이 결코 글쓰기의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암시한다. M은 어느 날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밤마다 M에게 으스스한 이야기를 속삭인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M이 쓰고 있는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이 된다. 그러니까 그녀는 M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셰헤라자드이자, M의 영감의 원천이 되는 뮤즈이기도 하다. 그런데 셰헤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소설이 되기 위해서, M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이는 맵시벌의 다큐멘터리에서 우의적인 방식으로 설명된다. 맵시벌은 거미의 몸에 알을 깐다. 세월이 흘러 다 자란 “유충은 쓸모없어진 거미의 몸을 뚫고 밖으로” 나간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 숙주의 목숨이 희생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M은 “맵시벌 다큐멘터리를 전에도 본 것 같았다”(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44쪽). 채널을 돌려도 화면에는 계속 맵시벌만 나타났다. 여기서 M은 사실 환상적인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그의 배역은 다름 아닌 거미인데, 이야기가 완성되자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은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M의 운명은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이라고 지칭했던 현상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바르트가 주장한 바, 근대적 글쓰기는 “수많은 문화의 온상에서 온 인용들의 짜임”(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 “텍스트의 즐거움”, 동문선, 1997, 32쪽)이다. 이때 작가는 작품의 유일하고도 온전한 ‘아버지’가 아니다. 그는 마치 신이 인간을 창조하듯이 소설을 쓰지 않는다. 그는 다만 다른 소설을 베끼는 필경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저자의 죽음은 단지 M의 운명을 통해 우의적으로 표현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문학론은 실제 ‘π’의, 그리고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작법(作法)을 통해 실현된다. ‘π’는 그 자체로 “인용들의 짜임”이다. 우선 우리는 “천일야화‘의 이야기꾼인 셰헤라자드의 흔적을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일 표현주의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의 영향을 감지하게 된다. ‘π’의 액자 속 주인공 하루는 어느 터널에 49일이나 갇혀 있었고, 결국 미쳐버렸다. 그는 이제 정신병원에 있다. 그리고 정신병원의 의사, 간호사, 동료 환자들을 상상 속에서 변형시키며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로베르토 비네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한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프란시스는 박람회에서 칼리가리 박사의 상자를 보게 된다. 그 상자에는 체사레라는 몽유병 환자가 누워 있다. 체사레는 프란시스의 약혼녀인 제인의 죽음을 예언하는데, 칼리가리 박사는 이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 제인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상의 이야기는 매우 기이하다. 비현실적이며 악몽을 닮아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프란시스가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칼리가리 박사는 정신병원의 원장이며, 체사레는 병원의 직원이다. 제인은 프란시스와 마찬가지로 정신병을 앓는 환자였다. 프란시스는 자신의 망상 속에서 이들 인물을 변주하여 이야기를 자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이러한 아이디어는 이미 대중문화 안에서 여러 번 변주된 바 있다. 최근에는 리들리 스콧의 ‘토탈 리콜’(1990)이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오픈 유어 아이즈’(1997),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마틴 스코세이지의 ‘셔터 아일랜드’(2010)에서 활용되었다. 요컨대 이미 널리 알려진 수법이라는 뜻이다. 그런 만큼 최제훈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독창적이지 않다는 것을 넌지시 인정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작가의 역할은 사실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작가는 이제 독창적인 트릭을 고안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트릭에 의존한다. 다만 그 트릭을 끊임없이 변주한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붉은 방’을…. 이때 최제훈은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창조자라 할 수는 없다. 그는 저자가 아니다. 자기 작품의 “유일하고 동일한 목소리”(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 “텍스트의 즐거움”, 동문선, 1997, 28쪽)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타인의 언어와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있으므로 자기 작품에 대해 독점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돈키호테가 서로 다른 우스꽝스러운 사건에 통일을 부여하는 기능인 것처럼 그는 서로 다른 이야기의 묶음에 통일을 부여하는 기능이다. 이제 소설의 인물과 작가는 모두 하나의 기능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최제훈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마 창조는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의 피조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노동일까? 그는 문화산업의 많은 ‘크리에이터’(creator)들이 하고 있는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불가사리’(1962)가 ‘고질라’(1956)를 참조하고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 ‘지상 최후의 사나이’(1964)를 차용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다만 진귀한 구경거리(spectacle)를 생산하고 있는 것인가? 반쯤은 옳다. 그는 창조하기보다 생산한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부품을 조립하여 완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비유할만한 것이다. 아마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아버린 M의 모습은 초과노동에 시달리는 어느 현대 노동자의 비유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는 좀처럼 잠을 자지 못하지 않는가. 하지만 최제훈은 뒤샹이 예술가인 만큼은 예술가이다. 레디메이드를 활용하더라도 그것을 조합하는 방식은 자유에 맡겨진다. 아무리 풍부한 재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아무나 그것에 형식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뉴욕의 어느 배관공이 ‘샘’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정말이지 없다. 뒤샹 스스로 인정했듯이, “당신의 가능성은 나의 가능성과 같지 않은 것이다”(“Your chance is not the same as my chance.” (Calvin Tomkins, The Bride and the Bachelors: Five Masters of the Avant-Garde, Penguin, 1968, p.33)). 여기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전문가(specialist)로서의 작가이다. 무엇인가 짜깁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 재료를 많이 구비해 두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재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짜깁기의 예술은 풍성해질 수 있다. 이것은 규칙을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참가할 수 있는 게임이다. 그래서 최제훈은 자신의 생산물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노동자로 볼 수 없다. 자기가 조작하는 이야기의 관습을 썩 훌륭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유주는 이러한 점을 좀처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다. 한유주는 ‘저자의 죽음’을 자신에게 주어진 문학적 조건으로 뼈아프게 인식하고 있다. 이미 “문장들은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심지어 미리 “읽어본 적이 없는 문장”들을 적을 때도 그것은 베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한유주는 “모든 사물들은, 혹은 모든 사물화 된 문장들은, 일종의 자연사 박물관에 귀속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에 따르면 도서관의 어느 서가에 진열된 책들은 모두 일종의 “전시된 죽음들”이며, “검은 플라스틱판에, 흰 글씨로 이름을” 새겨 넣은 명패가 달린 박제이다(한유주, ‘자연사 박물관’,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87쪽). 한유주는 이러한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녀가 누구를 참조하고 있는지, 도대체 누구를 ‘베끼고’ 있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다. 예컨대 ‘허구0’이라는 제목은 “픽션들”이라고 하는 보르헤스의 단편집 표제를, 그리고 “얼음의 책”이라고 하는 표제는 ‘모래의 책’이라고 하는 보르헤스 단편의 제목을 떠올리게 만든다. 허구의 영점(零點)과 허구의 복수형은 분명한 대비를 형성한다. 거기에 만들어지자마자 모두 녹아 사라지는 얼음의 책과, 영원히 모래처럼 변화하며 두 번 다시 같은 페이지를 펼칠 수 없는 모래의 책은 모두 의미가 고정되지 않거나, 아예 사라지는 책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추측에 지나지 않으며, 그녀는 주의 깊게도 단서를 남겨놓지 않았다. 이것은 한유주 스스로 어떤 작품을 베끼고 있다고 주장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한유주는 ‘자연사 박물관’,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인력이거나, 척력이거나’ 세 편의 작품을 통해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끼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상의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오히려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와 달라지려 하는 한유주의 부단한 노력이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는 연극에 대해 논문을 쓰려는 한 사내가 어느 광인을 만난다는 이야기이다. 이 광인은 자신이 22년 전에 살해한 여성의 옷과 구두를 몸에 걸치고 있다. 한유주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이 짤막한 이야기의 틈을 헤집고 억지로 자신의 언어를 밀어 넣는다. 한유주는 이 사내와 광인을 각각 트리스탄과 햄릿이라 명명하고, 그들의 조우에 복잡한 운명을 부여한다. 그런데 아마 한유주가 토마스 베른하르트라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면,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의 흔적을 알아챘을 것이다. 이 두 소설의 공통점이란 시간을 물어보는 행위, 다리 위에서의 대화 등 몇몇 지점에서 눈치채기 어려운 방식으로만 나타난다. 아무리 주의 깊은 독자라도 이 정도의 단서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그림자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흔적을 알아채는 것은 훨씬 어려워진다. 주인공 하령은 대재앙이 닥쳐 대륙의 절반이 물에 잠기고, 인구의 절반이 죽어버린 세계에서 소설을 쓰고 있다. 그녀는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껴서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를 쓰려 한다. 하지만 그녀가 베끼려고 하는 소설은 책장에 없거나, 아니면 물에 젖어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다. 무엇인가 베끼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189쪽). 하령은 무엇인가 참조할 때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결말과는 다른” 페이지들을 마주하게 된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203쪽). 그래서 하령의 베끼기는 계속해서 원작과 달라진다. 이것은 굉장히 수고로운 작업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이야기와 언어의 관습들을 익혀야 한다. 이미 모든 이야기들은 다른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으므로, 잠깐의 방심은 ‘베끼기’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표절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모든 멜로디를 검토하는 작곡가나, 신기술을 개발하기 전에 기존의 특허를 검토하는 기술자의 태도에 비견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한유주는 이러한 자신의 노력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한유주는 담담하게 토로하고 있는데, “언어는 진화하지 않고, 문학은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베끼는 와중에 조금씩 변화할 뿐이다. 그것은 진화의 개념이 사라진 돌연변이와 같다. 대재앙 이후의 세계에서 호랑이는 아가미를 발달시켰다. 물에 잠긴 세계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것이 “진화인가 퇴화인가” 말할 수 없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201쪽). 한유주의 소설 역시 ‘자연사 박물관’에 박제된 모습과는 다른 형태로 제시된다. 그녀의 ‘베끼기’가 박제를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이 문학을 ‘진보’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노력이 다만 돌연변이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 그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끝’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의 세계에서 새로운 글쓰기의 가능성은 인류와 함께 절멸했다. 이 ‘끝’에서 문학은, 그리고 글쓰기는 과거의 박제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창조의 엿새는 오래전에 지나가 버렸으므로. 4 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이야기의 끝’이거나 ‘끝없는 이야기’이거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새로움’의 쇠퇴이다. 이제 작가는 매우 제한적인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만든다. 그는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으며, 다만 기왕의 설계도를 다소 변형시키는 선에서 만족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한유주와 최제훈의 작품이 새롭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이 타자의 언어를 베끼고 있음을 드러내지만, 그들의 작품은 전에 없이 독특하다. 우리는 아무렇게나 펼친 페이지에서도 한유주의 문체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부정문을 사용하는 방식은 참으로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제훈은 기성의 관습들을 짜깁기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마치 괴물처럼 낯설다. 이것은 개인의 창조성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가들이 역설적인 방식으로 창조적이라는 아이러니와 무관하지 않다. 존 케이지는 문자 그대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4분33초’를 만들었으며, 앤디 워홀은 대중문화 속의 이미지를 조합해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 여기서 예술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새로운 것은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은 파천황의 것이며 예술의 경계를 도전적으로 확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움은 공허한 것이다. 마치 ‘4분33초’처럼 덧없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하지만 그 다음은? ‘4분33초’는 결코 녹음되거나 재연(再演)될 수 없다.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의미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앤디 워홀의 작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워홀의 유명한 병뚜껑, 혹은 메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바라보며 이것이 어째서 예술인지 질문하고, 대체 예술이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다. 이 새로움은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는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공허함을 다음과 같이 간파했다. “앤디 워홀의 ‘다이아몬드 가루 신발’은 반 고흐의 신발이 가진 직접성을 전적으로 결여한 채 우리에게 말을 건다. 정말이지 나는 그것이 우리에게 실제로 어떤 말도 걸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프레드릭 제임슨, 강내희 옮김, ‘포스트모더니즘 ― 후기자본주의 문화논리’, 정정호·강내희 편, “포스트모더니즘론”, 문화과학사, 1989, 150쪽)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분명 새롭다. 그들은 우리에게 소설이란 무엇인지, 소설쓰기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소설은 “아무것에도 봉사하지 않”으며 어디에도 “사용되지 않”(한유주, ‘허구0’, “얼음의 책”, 문학과지성사, 2009, 19쪽)기 때문이다. 이때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모든 책무로부터 자유롭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용한 형식이 된다. 즉, 자족적인 동시에 자기폐쇄적인 형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유주와 최제훈 소설의 공간들이 감옥을 닮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자연사 박물관은 모든 생명들이 박제되어 진열된 공간이며,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에서 사람들은 온통 물에 잠겨버린 건물에서 고립되어 살아간다. ‘불가능한 동화’에서 선생님은 마치 취조실의 형사처럼 아이들을 겁주고 추궁한다. 최제훈을 살펴보면, M은 맵시벌의 둥지에 갇혔고, 하루는 동굴 속에 갇혔으며, 영수는 산장 안에 갇혔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 액자 속의 미미는 스토커에게 납치당해 갇혔고, 액자 바깥의 ‘나’는 망막박리에 걸려 눈이 먼 채 병실에 갇혔다. 모두가 갇혀 있다.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메타픽션이며, 이들은 모두 알레고리 속의 인물이다. 이들을 가두고 있는 감옥은 사실 상징적인 방식으로 글쓰기 자체를 가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이것은 바로 언어의 감옥이다. 한유주와 최제훈의 글쓰기가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단지 타인의 언어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마치 모든 발화가 랑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소설 역시 글쓰기의 관습이나 전통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타인을 흉내 내며 말을 배운다. 소설이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어디에 있는가.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은, 소설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폐쇄적인 형식이 된다는 뜻이다. 이때 언어는 자기를 가리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한 동어반복과 다름없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말을 사용하는 것이며, 작가란 발언을 하는 사람(parleur)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요구하기 위해, 혹은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심지어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글을 쓴다(장 폴 사르트르, 정명환 옮김,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8, 27쪽). 그러니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 말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책무가 다만 다른 소설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되었을 때, 글쓰기는 베끼기가 된다. 이때 독서란 소설 안에 존재하는 다른 소설의 흔적을 찾는 놀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이라는 것을 그렇게 높이 평가할 수 없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김수용 옮김, “파우스트” 1부, 책세상, 2006, 78쪽). 오직 언어로 이루어진 곳을 헤매는 것이 독서라면, 그것은 언어로 이루어진 테마파크를 유람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그렇다면 언어의 감옥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지나야 그곳이 감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 그러니까 “폐쇄된 미로에 갇힌 사람은, 얼마나 헤매야 그 미로가 폐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될까?”(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179쪽). 그리고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파우스트는 평생에 걸쳐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게다가 신학까지 열성을 다하여 연구”한 끝에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탄식했다. 그가 마술의 세계에 몸을 맡기기로 결심했던 것은, 정통한 지식들이 세계에 대해 조금도 알려주지 않는 “부질없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김수용 옮김, “파우스트” 1부, 책세상, 2006, 31~33쪽). 그가 악마와 계약하여 처녀를 희롱하고, 신화 속의 전쟁에 뛰어들고, 바다를 메우는 개간사업을 시작했던 것은 ‘태초에 말이 있었다’는 세계관을 거부하고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고 선언한 후였다. 가장 열심히 말의 세계를 믿었던 자가, 행동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아마 파우스트와 같은 모험이 필요할 것이다. 파우스트가 자신의 서재를 벗어나 시공을 뒤집는 모험에 나섰던 것처럼, 한유주와 최제훈도 이야기의 끝, 혹은 끝없는 이야기라는 감옥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때 소설 역시 감옥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엄을 되찾을 것이다. ■당선소감 책은 끝없는 미로… 내 모든 단어 빚지고 있어 아직 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은데 덜컥 당선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더듬더듬 잘 모르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문득 어지럽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길은 앞이 명확했던 적이 없었다. 책을 한 권 읽으면, 세상은 그만큼 분명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 권의 책을 숙제로 남겼다. 그러니까 이 길은 목적지가 분명한 대로가 아니라,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미로이다. 이 미로를 열심히 헤매고 싶다. 고마운 사람이 너무 많다. 사실 나는 그들이 전해준 것을 비로소 적었을 뿐이다. 나는 모든 단어들을 빚지고 있다. 그래서 당선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는 말은 단순히 수사가 아니다. 우선 나는 박광현 선생님에게 글쓰기의 모든 것을 배웠다. 내가 지키고 있는 규칙들은 전부 선생님에게 받은 것이다. 황종연 선생님은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보여주셨다. 한만수 선생님은 어떻게 학문이 정의로워질 수 있는지 알려주셨다. 그리고 김춘식 선생님께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배웠다. 더불어 오랫동안 함께 공부한 ‘책읽기의 즐거움’의 멤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허병식 선생님, 복도훈 선생님, 서희원 선생님, 조형래 선배, 김민선, 박진솔, 임세화, 전호성, 한정현, 홍덕구 등 모두들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이들에게 동의하거나, 혹은 반박하면서 비로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또한 내 글을 가장 먼저, 그리고 아마도 가장 즐겁게 읽어준 경연에게 감사한다. 너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고집 센 아들의 선택을 지금까지 지지해주신 부모님께는 가장 큰 감사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많이 부족한 글에서 가능성을 보아주신 두 심사위원 선생님께 고개 숙여 인사드리고 싶다. ●약력 ▲1983년생 ▲ 2002년 동국대 국문과 입학 ▲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심사평 균형적 함의 도출 … 평론가로서의 앞날 기대 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모두 17편이었다. 심사위원 두 사람은 이들 작품을 통독하고 그 가운데 최종 논의 대상으로 4편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를 정독한 후 장시간의 논의를 거쳐 당선작을 확정하였다. 심사기준으로는 응모 평론이 기본적으로 작품의 가치를 잘 부각시키고 이를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가에 두었으며, 글의 전체적인 통일성과 비평적 견식을 담보할 수 있는 문장력도 면밀히 살펴보았다. 대체로 올해의 평론 응모작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 성향에 있어서도 여전히 세부적 탐색과 분석에 치중하고 동시대 사회 속에서 해당 작품이 가진 의미를 구명하는 데는 소홀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평론이 단순하게 한 작품의 성과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배태하고 산출한 환경과 문학사적 친연성 등을 두루 고찰하고 있을 때 객관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터이다.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4편의 평론 가운데 이은이의 ‘희미해져가는 인간다움에 대하여’는 유연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문장이 뛰어났다. 하지만 보다 정치한 시각과 정론적 방식으로 대상 작품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정영의 ‘비린내, 혼종의 정체성에 저항하는 존재성’은 후각적 관점을 중심으로 작품을 규정하는 독창성이 참신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독창적 사유가 총괄적 해석력을 확보하는 데 미흡했고 비린내와 혼종성의 상관관계도, 좀 더 명료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만영의 ‘유령의 서사, 열림의 정치’는 시종일관 무난하고 균형성 있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분석 대상이 된 두 작품의 저변을 보다 치열하게 드러내고 그 상관성에 대해서도 입체적 조명이 있었으면 하는 후감이 있었다. 당선작이 된 ‘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는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이 가진 문학적 함의를 비교적 정확하고 균형성 있게 도출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에 있어서도 폭넓은 공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는 또한 평론가로서의 앞날에 대한 기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낙선한 분들께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다음 기회의 분발을 바라마지 않는다.
  • [프로농구] 동부, 살아있네… 시즌 첫 4연승

    [프로농구] 동부, 살아있네… 시즌 첫 4연승

    줄리안 센슬리(동부)가 자신의 한 경기 최다 득점을 경신하며 ‘친정’을 울렸다. 동부는 30일 강원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삼성과의 경기에서 센슬리의 30득점 활약을 앞세워 71-63으로 이겼다. 올 시즌 첫 4연승을 달린 동부는 9승(17패)째를 올렸고 1, 2라운드에서 삼성에 당한 패배도 설욕했다. 전반을 36-30으로 앞선 동부는 3쿼터 초반 센슬리를 앞세워 달아났다. 중거리슛과 3점슛을 잇달아 성공한 센슬리는 바스켓 카운트까지 얻으며 순식간에 8점을 몰아넣었다. 동부는 4쿼터 초반 상대 이규섭에게 3점포를 얻어맞고 한때 2점 차까지 쫓겼다. 그러나 센슬리가 경기 종료 4분 31초를 남기고 결정적인 3점슛을 꽂아 넣는 등 4쿼터에만 13점을 넣었다. 지난 10월 26일 브랜든 보우만과 맞트레이드돼 동부 유니폼을 입은 센슬리는 친정 팀에 톡톡히 분풀이를 했다. 울산에서는 모비스가 LG에 84-49 완승을 거뒀다. 18승(8패)째를 올린 모비스는 전자랜드를 밀어내고 단독 2위에 올랐다. 리카르도 라틀리프(23득점 12리바운드)와 함지훈(16득점)이 공격을 이끌었다. 모비스는 전반에만 44-19로 25점이나 앞서며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다. 전날 KGC인삼공사를 상대로 올 시즌 첫 100득점을 넘어선 LG는 모비스의 명품 수비에 막혀 50득점도 못 넘기는 수모를 당했다. KCC는 전주에서 오리온스를 62-59로 꺾고 7연패에서 탈출했다. 지난 26일 SK에 코트니 심스를 내주고 데려온 이적생 김효범(23득점)과 크리스 알렉산더(10득점 13리바운드)가 펄펄 날며 값진 승리를 안겼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프로농구] 종료 2초 전 솟은 ‘동부산성’

    [프로농구] 종료 2초 전 솟은 ‘동부산성’

    ‘동부산성’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타짜’를 울렸다. 동부는 28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 경기 종료 2초 전 터진 이광재의 극적인 역전 슛에 힘입어 86-85 한 점 차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올 시즌 첫 3연승을 달린 동부는 8승(17패)째를 올리며 8위 KT를 2경기 차로 추격했다. 이승준(24득점)과 김주성(18득점) 트윈타워가 공격을 이끌었고 이광재(13득점)도 결정적인 순간 제 역할을 했다. 1쿼터를 20-21로 뒤진 동부는 2쿼터에서 무려 30점을 뽑으며 승기를 잡았다. 빅맨 김주성과 이승준, 줄리안 센슬리가 장신을 이용해 전자랜드 골 밑을 농락했다. 전반을 50-40으로 앞선 동부는 3쿼터 들어 이광재의 3점포까지 불을 뿜으려 한때 16점 차까지 달아났다. 그러나 3쿼터 후반 들어 전자랜드의 맹렬한 추격을 받았다. 승부처에서 강해 ‘타짜’ 별명이 붙은 전자랜드의 리카르도 포웰이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순식간에 점수 차를 좁혔다. 동부는 4쿼터 시작하자마자 강혁과 포웰에게 연달아 3점슛을 얻어맞고 결국 동점을 허용했다. 경기 막판까지 일진일퇴의 공방을 펼치던 양 팀의 희비는 극적으로 갈렸다. 동부는 종료 5초 전 포웰에게 미들슛을 허용하며 84-85로 몰렸지만 이광재가 곧바로 레이업을 성공하며 귀중한 승리를 따냈다. 울산에서는 홈팀 모비스가 문태영(19득점)과 함지훈(15득점)의 활약에 힘입어 삼성을 71-56으로 꺾었다. 3연패에서 탈출한 모비스는 17승(8패)째를 올리며 2위 전자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프로농구] 동부 ‘압박의 마술’

    [프로농구] 동부 ‘압박의 마술’

    강동희 감독이 화이트 크리스마스 선물로 2연승을 받아 들었다. 동부는 25일 원주체육관에서 열린 2012~13 KB국민카드 프로농구 LG와의 경기에서 이광재(17득점)-김주성(10득점)-이승준-줄리안 센슬리(이상 15득점)의 고른 활약에 힘입어 65-52로 이겼다. 올 시즌 LG에 당한 2패도 설욕하며 7승(17패)째를 거뒀다. 반면 LG는 이날 KCC를 따돌린 삼성과 함께 12승12패, 공동 5위가 됐다. 이날 경기는 동부의 높이와 LG 외곽포의 대결이었다. 동부는 초반부터 압박 수비로 상대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1쿼터는 김주성-이승준-센슬리 삼각편대가 고르게 득점하며 14-7로 앞선 뒤 단 한 차례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 집중력을 보였다. 특히 동부의 높이가 2쿼터 6분여를 남기고 위력을 발휘했다. 센슬리가 가로채기에 성공한 뒤 달려오는 이승준에게 패스해 화려한 투핸드 덩크슛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곧바로 이승준은 3점슛까지 터뜨려 10점 차로 달아났다. 동부는 잘나가던 지난 시즌으로 돌아간 듯 신바람을 냈다. 이광재는 고비마다 3점슛을 폭발시켜 LG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특히 친정팀의 비수를 꽂으려던 로드 벤슨을 강한 압박으로 봉쇄하며 7득점으로 묶은 것이 주효했다. 삼성은 전주체육관에서 대리언 타운스의 21득점 19리바운드 활약을 앞세워 KCC를 69-61로 꺾고 3연패에서 탈출했다. 삼성은 12승12패, 승률을 5할로 맞췄다. 반면 최하위 KCC는 이적 후 펄펄 날던 이한권이 막판 부상으로 교체되는 불운을 맞는 등 좀처럼 반전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며 6연패에 빠졌다. 한편 SK는 8000여 홈 관중 앞에서 김선형(17득점)과 애런 헤인즈(21득점)의 활약을 묶어 KT를 77-60으로 완파하고 4연승을 질주했다. 19승5패가 된 SK는 공동 2위 전자랜드, 모비스(이상 16승7패)와의 승차를 2.5경기로 벌리며 단독 선두를 굳혔다. 강동삼 기자 kangtong@seoul.co.kr
  • [프리미어리그] “QPR선수 몸값 못해”… 박지성 겨냥?

    “퀸스파크레인저스(QPR)에는 자신의 가치, 능력, 팀 기여도보다 돈을 많이 받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해리 레드냅 감독이 23일 영국 뉴캐슬 세인트제임스파크에서 열린 2012~13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8라운드 뉴캐슬과의 원정경기에서 후반 36분 숄라 아메오비에게 결승골을 얻어맞고 0-1로 패한 뒤 이렇게 말했다. 그는 특히 내년 1월 시작하는 겨울 이적시장을 앞두고 “구단은 이미 많은 돈을 쓰고 있다. 구단이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홈구장 수용 인원이 1만 8000명인 구단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임금에 쏟아부어서는 안 된다. 뉴캐슬은 홈구장이 5만 2000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QPR처럼 높은 몸값을 받는 선수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평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레드냅 감독이 이 같은 불만을 토로한 데는 마크 휴즈 전 감독이 의욕을 불태우며 영입한 몸값 비싼 앤디 존슨, 보비 자모라, 박지성, 줄리우 세자르가 부상에 시달리는 데다 에스테반 그라네로, 지브릴 시세, 조세 보싱와 등 스타급 선수들의 활약이 기대에 못 미친 때문으로 풀이된다. 설상가상 풀럼전에서 벤치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도 집에 가버린 보싱와에게 2주치 임금인 13만 파운드(약 2억 2700만원)의 벌금을 물도록 하면서 휴즈 감독이 영입한 선수들에 대한 불만이 더욱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박지성도 예외는 아니다. 휴즈 감독 시절과 달리 지난달 27일 선덜랜드 경기와 이달 1일 애스턴빌라 경기에서 교체 출전했으나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8일 위건전에서는 아예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더욱이 지난 15일 풀럼전을 앞두고는 무릎 부상이 도져 명단에서 빠졌다. 레드냅 감독은 대신 제이미 마키, 아델 타랍, 라이언 넬슨 등 기존 멤버들을 주전으로 기용했다. 그럼에도 QPR은 이날 전력이 약화된 뉴캐슬을 상대로 2연승에 도전했으나 날카로운 공격력을 보이지 못하며 결국 무너졌다. 다행스러운 건 이날 최하위 레딩이 맨체스터 시티에 종료 직전 아쉽게 골을 허용, 0-1로 지는 바람에 간신히 꼴찌를 면했다는 사실. QPR는 박싱데이인 26일 웨스트브로미치와의 홈 경기에서 2승에 도전한다. 카디프시티의 김보경은 레스터시티와의 챔피언십(2부리그) 23라운드 원정경기에 선발 출전했으나 공격 포인트는 올리지 못하고 후반 10분 교체됐다. 카디프시티는 전반 25분 크레이그 벨라미의 결승골을 앞세워 1-0으로 이겼다. 이청용(볼턴)도 피터보로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로 나섰으나 후반 5분 교체됐고 팀은 난타전 끝에 4-5로 졌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미혼의 여성대통령, 아버지가 만든 ‘제2부속실’ 없앨 듯

    미혼의 여성대통령, 아버지가 만든 ‘제2부속실’ 없앨 듯

    대한민국 최초의 싱글 여성 대통령을 맞아 청와대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사상 처음으로 여주인을 맞게 되는 청와대에서는 그동안 ‘퍼스트 레이디’인 영부인의 비서 업무를 맡았던 제2부속실이 사라지는 것이 제일 큰 변화가 될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측은 제2부속실을 굳이 존속시킬 필요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제2부속실은 영부인의 일정 및 행사 기획, 활동 수행 및 비서업무, 대내외 네트워크와 관저생활 등 영부인의 24시간을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김윤옥 여사를 보좌하는 제2부속실의 직원은 모두 6명이다. ●대통령 부인 일정관리·행사 수행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선거운동을 할 때부터 같이 일했던 미용 담당자, 코디네이터 등도 제2부속실에 소속되어 있다. 제2부속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대통령 부속실에서 독립시켜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김두영 전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은 육영수 여사 시절 제2부속실 업무에 대해 “어린이 관련 행사 사회를 보고, 청와대에 들어온 진정서 내용을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조직은 대통령령으로 결정 가능한 사항인 만큼 모든 결정은 새 대통령이 하게 되지만, 아버지가 만든 제2부속실이 딸에 이르러 사라지게 됐다. ●행안부 “의전상 변화 없을 것” 의전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정부의 주요 의전행사를 맡은 행정안전부 의정관 관계자는 “여성 대통령의 취임식은 의전상 변화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선인이 굳이 퍼스트 레이디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은 정치적 비중이 낮거나 사회적 소외계층을 돌보는 것이어서 이 같은 역할은 국무총리실이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박 당선인은 1974년부터 5년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한쪽에서는 정상 부부가 동반하는 외교 행사를 대비해 ‘퍼스트 젠틀맨’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미혼 여성 지도자의 부부동반 만찬에는 총리 부인이나 외교장관 부인이 배석하기도 한다. 현재 세계 정상 가운데 박 당선인처럼 미혼인 여성 정상은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를 포함해 3명이 있다.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아이슬란드 대통령은 합법적인 동성애자이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던 남편과 사별했다. 길라드 총리는 팀 매티슨과 정식 결혼이 아닌 사실혼 관계에 있다. 매티슨은 미국 미셸 오바마 여사가 주최한 퍼스트레이디 모임에 유일한 청일점으로 참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매티슨은 ‘퍼스트 젠틀맨’이 아니라 ‘퍼스트 블로크’(bloke·남성을 뜻하는 속어)라 불렸다. ●태국 女총리는 나홀로 행사에 박 당선인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남편은 요아힘 자우어 훔볼트대 교수다. 그는 별명이 ‘오페라의 유령’이다. 자우어 교수는 정상회담에 가끔 참여하긴 하지만, 대중 앞에 나서길 꺼리고 ‘메르켈의 남편’이라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전한다. 하지만 오페라를 워낙 좋아해 가끔 메르켈 총리와 함께 음악 축제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고 해서 ‘오페라의 유령’이란 별명이 붙었다.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도 공식 행사에 거의 남편을 대동하지 않는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발레·애니·다큐… 볼거리 풍성한 성탄절

    발레·애니·다큐… 볼거리 풍성한 성탄절

    ‘도로는 주차장이고 어디를 가도 북적거린다. 웬만한 카페나 레스토랑은 크리스마스 특별 요금이랍시고 바가지’라고 생각하거나, 연말 공연 티켓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면 성탄 연휴에 TV와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BS는 오는 24일 오후 6시 50분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 실황을 방송한다. 고전 발레의 완성자로 불리는 마리우스 프티파(1822~1910)의 안무를 아론 S 왓킨과 제이슨 비치가 새롭게 해석했다. 무대 장치는 드레스덴의 츠빙거 궁전과 슈트리첼마르크트(크리스마스 즈음에만 열리는 전통시장)에서 영향을 받았다. 로베르타 구이디 디 바노의 화려한 의상도 볼거리다. 소녀 마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호두까기 인형이 왕자로 변한다는 줄거리는 다를 게 없지만 전개 방식이 특이하다. 보통 ‘호두까기 인형’은 1막에 등장하는 어린이 역을 성인 무용수들이 맡지만, 이 공연에서는 팔루카 국립무용학교 청소년들이 맡았다. 마리 역도 리디아 얀이 맡다가 꿈 속 장면이 시작되면 성인 발레리나 안나 메르쿨로바가 이어받는다. 벨로 펜이 지휘하는 드레스덴 국립관현악단의 음악 역시 작품의 포인트다. 25일 오후 7시 35분에는 애니메이션 ‘공주가 된 올리비아’를 방송한다.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600만부 이상 팔려 나간 미국의 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이안 포크너의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닮은꼴 올리비아와 스테파니 공주가 딱 하루만 서로 역할을 바꾸기로 하지만, 계획이 틀어지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이어 오후 8시부터 애니메이션 ‘괴물 그루팔로’를 방송한다. 영국 작가 줄리아 도널드슨이 쓴 그림책 ‘그루팔로’가 원작이다. 힘 없고 작은 생쥐가 숲속에서 교활한 여우를 만나 잡아 먹힐 위기에 처하자 그루팔로라는 상상 속의 괴물을 지어내 여우로부터 도망친다는 게 작품의 얼개다. 크리스마스에 빠지면 섭섭할 매컬리 컬킨 주연의 ‘나홀로 집에’도 방송된다. 채널 CGV는 25일 오후 1시부터 ‘나홀로 집에 1’과 ‘나홀로 집에 3’을 연속 방송한다. OCN에선 25일 오전 8시 살아 움직이는 장난감들의 모험담을 그린 픽사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3’를, 10시부터 홀로 뉴욕으로 가게 된 케빈의 좌충우돌 모험을 담은 ‘나홀로 집에 2’를 방송한다. 지적 호기심이 넘치는 이들에겐 다큐멘터리도 나쁘지 않을 터.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는 24일 오후 7시 구약 성경에 대한 고고학적 접근을 담은 ‘숨겨진 성경의 비밀’을 방송한다. 고대 유대인의 기원과 아담과 이브 이야기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준다. 25일 오후 7시부터 예수 출생의 비밀을 다룬 ‘예수는 누구인가’와 예수 죽음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본티오 빌라도를 재조명한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를 연속 방송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필리핀·싱가포르서 ‘2세들’ 활약중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으로 첫 번째 ‘부녀(父女) 대통령’이 탄생함에 따라 세계의 부녀 대통령, 부자(父子), 모자(母子) 대통령 및 총리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녀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의 아크멧 수카르노와 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필리핀의 디오스다도 팡간 마카파갈과 딸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등 세계적으로 두 집안뿐이다.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전 대통령(1901~1970)은 1927년 인도네시아 국민당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하다 온갖 고초를 다 겪었다. 1949년 독립과 함께 초대 대통령에 선출돼 1963년 종신 대통령에 올랐으나 군부 쿠데타로 1967년 수하르토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고 가택연금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다. 1998년 수하르토가 실각하자 부통령이 된 딸 메가와티는 2001년 와히드 대통령이 부정부패로 탄핵돼 2004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필리핀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전 대통령(1910~1997)은 제헌의회 의장 출신으로 마르코스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신헌법을 제정하는 등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1957년부터 1961년까지 부통령을 역임한 그는 1961년부터 1965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딸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는 2001년 부패 혐의로 사임한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나머지 임기를 승계해 대통령에 취임한 뒤 2004년 재선에 성공해 2010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통치 기간 중 저지른 부정부패 혐의로 군병원에 구금된 상태다. 미국에는 2대 존 애덤스와 6대 존 퀸시 애덤스, 41대 조지 H 부시와 43대 조지 W 부시 등 지금까지 두 가문에서 부자 대통령을 배출했다. 필리핀에서는 모자 대통령이 배출됐다. 베그니노 노이노이 아키노 현 대통령은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싱가포르 리콴유(李光耀)와 리셴룽(李顯龍)은 부자 총리이고 태국의 탁신 친나왓과 잉락 친나왓은 남매 총리다. 현재 세계적으로 여성으로서 국가 지도자로 활약 중인 인물은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호주의 줄리아 길라드 총리,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등이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프로농구] ‘골밑 점령’ 김선형 SK 단독선두 탈환

    [프로농구] ‘골밑 점령’ 김선형 SK 단독선두 탈환

    SK의 포인트 가드 김선형의 골밑 돌파가 눈부셨다. SK가 16일 강원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열린 2012~13 KB국민카드 프로농구 동부와의 경기에서 김선형의 23득점 활약을 앞세워 76-66으로 이기며 16승5패로 다시 단독 선두로 나섰다. 반대로 홈경기 6연패 늪에 빠진 동부는 5승16패에 그쳤다. 동부는 전날 KGC인삼공사와의 경기에서 부진했던 이승준과 김주성, 줄리안 센슬리 삼각 편대를 재가동했으나 이날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1쿼터에서 파울 3개를 범해 발목이 잡혔던 김주성은 3쿼터 5반칙으로 나가면서 추격할 동력을 잃었다. 반면 SK는 고비마다 김선형의 골밑 돌파로 연달아 득점을 성공시켜 점수를 10점차 이상으로 벌렸다. 동부는 점수를 좁힐 상황에서 리바운드를 너무 쉽게 내주는 일이 되풀이됐다. 특히 경기 종료 3분여를 남기고 진경석과 센슬리의 3점슛으로 5점 차까지 추격했으나 헤인즈와 최부경에게 잇따라 공격 리바운드를 내주며 무너졌다. 이날 동부의 리바운드는 16개에 그친 반면 SK는 무려 46개로 30개나 더 잡아내며 웃었다. 로비는 홀로 21득점하며 분투했으나 팀 패배로 빛이 바랬다. 3위 전자랜드는 경기 종료 20초를 남기고 제스퍼 존슨에게 자유투를 허용, 67-67 동점이 돼 연장까지 가는 듯했다. 하지만 종료 2.2초를 남기고 터진 리카르도 포웰의 결승 3점슛에 힘입어 KT에 70-67 극적인 승리를 일궈 2위 모비스를 반 게임 차로 추격했다. 반면 KT는 5연패 수렁에 빠졌다. 한편 삼성은 창원 LG전에서 전반을 14점차로 앞섰으나 3쿼터 로드 벤슨에게 12점, 4쿼터 박래훈에게 7점을 허용하며 60-69로 역전패했다. 삼성과 LG는 나란히 11승10패로 공동 5위가 됐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강남스타일’ 말춤 춘 뒤 사망한 40대 남성 충격

    ‘강남스타일’ 말춤 춘 뒤 사망한 40대 남성 충격

    영국의 한 40대 남성이 싸이의 ‘강남스타일’ 말춤을 춘 뒤 심장마비로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미러, 미국 허핑턴포스트 등 해외 언론의 12일자 보도에 따르면, 에몬 킬브라이드(46)라는 남성은 얼마 전 회사 주최로 열린 크리스마트 파티에 참석했다 황당한 변을 당했다. 부부동반으로 참석한 에몬은 ‘강남스타일’ 음악이 나오자 무대로 뛰어나가 열정적으로 말춤을 추며 파티를 즐겼다. 하지만 노래가 끝난 뒤 아내의 곁으로 돌아온 그는 갑작스럽게 두통을 호소하더니 정신을 잃고 말았다. 에몬은 곧장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검시관이 밝힌 사인은 ‘갑작스러운 격렬한 운동 후 생긴 급성 심부전으로 인한 심장마비’다. 그의 아내인 줄리아는 텔레그래프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행복하게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고 있었고 에몬은 막 열정적으로 강남스타일 춤을 추고 돌아왔다. 하지만 곧 정신을 잃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숨이 멈췄다.”면서 “그는 춤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뉴캐슬대학의 심장병전문의인 버나드 키브니 박사는 “평상시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연말 파티에서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격렬한 활동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프로-아마 최강전] 동부 옛모습 찾을까, 전자랜드 상승세 이을까

    프로-아마 최강전 개최로 약 2주의 휴지기를 보낸 프로농구가 9일 재개되는 가운데, 전반기 최악의 부진을 겪은 동부가 부활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최다승(44승)을 거둔 동부의 전반기 성적은 처참했다. 4승14패로 9위로 처지며 지난해 위상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강동희 동부 감독은 최강전을 앞두고 “팀 전력을 추스르는 기간으로 삼겠다. 컵 대회지만 승리를 거둬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겠다.”고 밝혔다. 어느 정도 들어맞은 듯하다. 동부는 최강전 8강에서 강호 모비스를 꺾고 준결승에 진출하는 등 옛 모습을 서서히 되찾았다. 특히 부상에서 돌아온 이광재가 모비스전에서 21득점을 터뜨리는 등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전반기 막판 부상을 입었던 김주성이 충분한 회복시간을 가졌고, 줄리안 센슬리도 조만간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최강전이 동부에는 보약이 됐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최진수와 김동욱의 부상으로 신음했던 오리온스도 한숨을 돌렸다. 스스로 팀을 떠난 테렌스 레더를 대체할 외국인 선수로 스캇 메리트를 확정하는 등 후반기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개막 전 다크호스로 분류됐던 오리온스는 8승9패로 6위에 처져 있지만, 후반기 선두권 도약을 노리고 있다. 디펜딩 챔피언 KGC인삼공사는 주축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며 후반기를 준비했다. 지난달 28일 중앙대전에서 주전을 모두 빼 눈총을 받았지만, 김태술과 이정현, 양희종 등을 끝내 투입하지 않고 아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센터 오세근이 발목 부상으로 빠지고 가드 박찬희를 상무에 보내 이들의 체력 부담이 컸기 때문. 최강전에서 정예 요원을 내보내 결승까지 진출한 3위 전자랜드가 상승세를 살릴지도 주목된다. 전자랜드는 강혁이 최강전 첫 경기에서 부상을 입었지만 심각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새 잡아먹는 괴물 메기떼 충격

    새 잡아먹는 괴물 메기떼 충격

    새를 잡아먹는 커다란 메기떼가 학계에 보고돼 충격을 주고 있다. ▶새 잡아먹는 메기 영상 보러가기 세계적인 과학잡지 디스커버 매거진은 5일(현지시간) 온라인판을 통해 프랑스 연구진이 프랑스 남서부에 사는 메기 무리가 비둘기를 사냥하는 법을 터득한 사실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플로스원을 통해 발표됐다. 보도에 따르면 이 메기는 평균 몸길이가 1~1.5m나 되는 유럽메기종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민물고기로 알려졌다. 이 메기 종은 지난 1983년 프랑스 타른 강 일대에 유입된 외래종으로 먹잇감을 찾는 과정에서 비둘기를 사냥하는 법을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전했다. 연구진은 지역 어부들에게 소문을 듣고 지난 2011년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메기가 비둘기를 사냥하는 모습을 총 54번 촬영할 수 있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메기들의 사냥 성공률이 28%나 됐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메기의 주둥이에 난 민감한 수염이 비둘기가 움직일 때 수면을 통해 전달되는 진동을 포착해 사냥 성공률을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를 이끈 줄리앙 뀌쉬루세 프랑스 국립과학원(CNRS) 박사는 “비둘기를 사냥하는 메기들의 행동이 마치 바다사자를 습격하는 범고래와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사진=플로스원 캡처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피플 인 스포츠] 스포츠클라이밍 김자인[동영상]

    [피플 인 스포츠] 스포츠클라이밍 김자인[동영상]

    ‘나비’로 느껴졌는데 암벽에 달라붙으니 ‘거미’로 변신한 듯했다. 올해 그 만큼 종목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스포츠 스타가 또 있었을까. 지난달 19일 슬로베니아 크란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리드 월드컵 마지막 9차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하면서 세계 랭킹 1위로 2012시즌을 마친 김자인(24·노스페이스)을 지난 4일 서울 강북구 수유역 근처에 있는 소속사의 아웃도어문화센터에서 만났다. 2주의 휴식을 마감하며 혼자 전남 순천을 다녀왔다고 했다.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넘어가는 조계산 길을 걷고 법정 스님이 머물던 불일암에도 들렀다.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게 만든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피겨 개척한 김연아 닮은 그녀 웃으니 ‘피겨 여왕’ 김연아와 닮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김연아의 고려대 체육교육학과 선배. 그는 역시 크란에서의 아쉬움으로 말문을 열었다. “예선과 결선을 완등한 데다 컨디션도 좋아 완등을 자신했는데 주최 측이 절 응원하려고 했는지 ‘강남스타일’이 울려퍼지더라고요. 순간 관중석에서 큰 웃음이 터졌는데 그게 왜 그런지 불편했어요. 마음 다잡고 어려운 구간들을 통과했는데 36홀드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완등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게 가장 아쉽지요.”라며 희미한 미소를 흘렸다. 리드 월드컵 9개, 볼더링 월드컵 4개, 파리 세계선수권과 국내 선수권·아시아선수권·하이안비치게임·오사카 초청대회 등 모두 18개 대회를 치렀으니 작은 체구에 예삿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리드란 15m 이상의 암벽에 로프와 하네스(안전벨트)를 매고 가장 높이 올라간 선수가 이기는 경기, 볼더링은 5m 미만의 벽에 미리 세팅된 문제들을 가장 빨리 해결하는 이가 승리하는 경기다. ●153㎝ 키로 남들 2배 시즌 소화 김자인은 “리드와 볼더링을 함께 하니까 저는, 남들보다 시즌이 두 배인 셈이지요. 시즌 후반 체력이 떨어지긴 했어요. 볼더링에서 리드로 넘어오는 시기에 가장 힘들었어요.”라며 “지난 3일부터 내년 시즌 준비를 시작했어요. 내년엔 20대 중반에 접어드니까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치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클라이밍을 한 지 12년이 됐는데 이 종목을 좋아하면서 자연 암벽 등반에 대한 욕심도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나이 들어서도 자연 암벽은 즐길 수 있으니 지금은 훈련과 대회에 집중해야겠지요.”라고 되물었다. 특별히 집중할 요소로는 “키(153㎝)가 작다 보니 몸의 탄력, 점프해서 붙잡는 순발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얘기하고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심리적인 면도 많이 가다듬어야겠지요.”라고 덧붙였다. ●몰입 즐거움에 하루 한끼 버텨 숱한 대회에 참가하며 라몬 줄리앙(31·스페인)이란 남자선수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고 했다. “키가 159㎝여서 남자로선 저보다 훨씬 불리한 여건에서 운동하는데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련미나 파워를 보면 반하지 않을 수 없어요. 자연암벽도 잘 타고, 무엇보다 클라이밍을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이 느껴져 좋아하고 있어요.” 스포츠클라이밍의 매력에 대해선 “몰입하는 느낌이지요. 잡념 없이 그 순간에만 집중하게 되는 점이 좋아요. 힘들게 최선을 다한 끝에 마지막 홀드를 잡고 정상에 섰을 때 느끼는 성취감도 대단하고요.”라고 말했다. ●산악인 가족… 오빠가 코치 시즌에는 적정 체중을 유지하느라 하루 한 끼만 먹었는데 요즘 ‘엄마표’ 갈비찜과 브라질에 살 때 맛을 들인 토마토 소스로 스테이크를 마음껏 즐긴다고 했다. 산악회에서 인연을 맺은 김학은(56), 이승형(54)씨 부부는 2남1녀의 이름을 색다르게 지었다. 큰오빠 자하(28)는 자일과 하켄, 올시즌 코치로 돌본 작은오빠 자비(25)는 자일과 (카라)비너의 첫 글자를 모았다. 막내 자인은 자일과 (북한산) 인수봉에서 따왔다. 마침 인수봉에는 상서로운 눈이 앉아 있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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