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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댐」 건설 수의계약 추궁/평화댐 국정조사/「전씨 증인채택」공방

    국정조사 사흘째인 2일 국회 건설위는 국회에서 건설부로부터 평화의 댐 건설 추진경위및 현황을 보고 받고 질의를 벌였으나 전두환전대통령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문제를 놓고 여야가 대립한 끝에 자동유회됐다. 국방위는 이날 상오 감사원에서 율곡사업에 대한 감사 관련문서를 검증한 데 이어 하오에는 군부대에서 K­1한국형전차의 성능을 검증했다. 건설위에서는 민주당의원들이 전전대통령을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정회 상태에서 여야가 절충을 시도했으나 타결을 보지 못했고 이에 민주당의원들이 회의 참석을 거부해 회의가 속개되지 못했다. 민주당의원들은 감사원이 평화의 댐 건설을 정권안보용이라고 발표한데다 이제까지의 조사과정을 통해 전두환전대통령과 안기부가 주도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전전대통령의 증언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으나 민자당의원들은 당초 여야 합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반대했다. 민주당측은 전전대통령과 함께 윤태균 당시국방부정보본부장(현 민자의원),안순부 당시국방부북한정보부장(현역 준장),최영박 당시토목학회장(현 수원대총장)등 3명을 추가증인으로 채택하자고 제의했으나 회의가 유회됨에 따라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에 앞서 건설부에 대한 질의에서 여야의원들은 댐건설 과정에서 건설부의 역할과 참여업체를 수의계약으로 선정하게 된 경위등을 추궁했다. 고병우건설부장관은 보고를 통해 평화의 댐 활용방안에 대해 『앞으로 남북한간 수자원 공동이용을 위한 협조체제가 구축될 경우 배수터널에 수문을 설치,용수공급댐으로 전환시키겠다』고 밝혔다.
  • 6·25참전 마지막 현역 별달고 예편/육군 3사교수 정육진대령

    ◎17세 입대… 43년간 참군인 외길/대통령이 특진지시… “최고 영예” 홍안의 미소년으로 6·25전쟁에 참전한뒤 국토방위에 평생을 바쳐온 마지막 참전용사가 마침내 군복을 벗는다. 『오로지 참 군인으로 살아왔던 군생활 43년을 마치려고 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국가에 충성하는 것을 군인의 기본으로 알고 복무해 온 지난날이 자랑스럽습니다』 육·해·공 3군의 현역 가운데 유일한 6·25참전용사인 정육진대령(60·육군3사관학교 교수)은 오는 30일 준장으로 진급,「하루장군」을 거친뒤 31일 42년8개월의 군생활을 마감한다. 정대령의 장군특진은 뜻밖의 일.당초 국방부는 정대령의 전역에 앞서 김영삼대통령과의 오찬을 추진했으나 일정이 맞지않아 표창상신으로 바꿨는데 정대령의 얘기를 전해들은 김대통령의 특진지시로 뜻하지않은 전역선물을 받게 됐다. 한국군의 산증인으로서 숱한 일화를 남긴 정대령이 군에 입대한것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서울한성중학교 5학년생이었던 그는 17살의 어린나이에 학도병으로 입대,1주일동안 총쏘는법만 배우고 육군 8사단에 배속돼 말단 소총수로 참전했다. 몇고비의 사선을 넘나들었던 그는 51년 8월엔 전사에 남는 강원도 양구북방 김일성고지(965고지)탈환작전에 참가하기도 했다.1953년 9월 갑종간부 57기로 육군소위에 임관한 그는 일선 소대장과 작전·군수·정훈장교를 두루 거친 뒤 62년 국비장학생으로 단국대법대를 졸업하고 미육군특수전학교 심리전과정을 이수하는등 학구파로서의 면모도 과시했다. 정대령은 대위이던 65년10월 맹호부대 정훈장교로 월남전에 참가,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외신기자들에게 한국군의 전투상황 및 주민선무작전을 소개,사이공주재 외신기자들이 경쟁적으로 한국군에 관한 보도를 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런던타임스지는 당시 1면에「고보이전투의 교훈」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군이 한국군처럼 작전을 했더라면 월남전은 이미 끝났을 것』이라고 찬양하기도 했다. 대령으로 진급한 이듬해인 77년부터 줄곧 경북 영천의 3사관학교 교수로 봉직하면서 「공산주의 전략전술론」「현대의 이데올로기」등을 강의하고 있다. 전역후 국군홍보관리소의 논설고문으로 일할 예정인 정대령은 『군은 오직 국민의 군대로서 존재한다는 인식속에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한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을 군후배 장병들에게 남기고 싶어했다.
  • 율곡비리 28명 징계/국방부/박웅 전차관보 등 6명 면직·해임

    ◎근신 2명·경고 19명·27명 불문에 붙여 국방부는 25일 율곡사업과 관련,박웅 전국방부제2차관보와 김학옥 전국방과학연구소장등 2명을 면직하고 박연용해군군수사령관(소장·해사 18기)·주윤돈해군조함사업단장(준장·해사 19기)등 4명을 보직해임한 것을 비롯,징계 및 인사조치자 55명에 대한 처리결과를 감사원에 통보했다. 국방부가 감사원에 통보한 인사조치자는 이들외에 근신 2명,경고 19명, 불문 27명,총무처에 징계를 요구한 일반직 서기관 1명등이다. 보직해임자 4명중에는 군무원 2급 1명,산하단체직원 1명이 포함됐으며 근신처리자는 모두 영관급 장교인 것으로 밝혀졌다. 국방부는 징계 및 인사조치자에 대한 처리를 위해 특별위원회를 설치,수차례 심의를 했으며 고의 또는 중대 과실을 범한 사람에 대해서만 엄정 처벌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그러나 징계 및 인사처리자의 명단은 해당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구체적으로 공개하기를 거부했다. 국방부의 이같은 조치는 지난달 9일 감사원이 율곡사업 비위관련자로 분류,국방부에 문책을 요구한 징계조치 27명,인사조치 26명 수준(추가통보자 2명 제외)에 크게 미흡한 것이다.
  • 핵통위 10일 재개 제의/“상호사찰 규정 조속 마련을”

    ◎정부,북에 전통문 정부는 4일 황인성국무총리의 전화통지문을 통해 오는 10일 상오 10시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남북핵상호사찰 문제를 논의하기위한 핵통제공동위 전체회의를 열자고 북한측에 제의했다. 황총리는 이날 전통문에서 『남북이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한반도의 비핵화 실현과 이를 확인키위한 상호사찰 실시를 약속한지도 어언 1년반이 되어가고 있다』고 상기시키면서 『남북핵통제공동위를 정상화시켜 비핵화공동선언에 따른 핵사찰 규정을 조속히 마련,이에 따라 상호사찰을 실시하자』고 제의했다. 황총리는 또 『귀측이 미국과의 접촉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이행의 중요성을 재확인,남북회담을 빠른 시일내에 시작할 용의를 표명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 『지금이야말로 핵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함으로써 남북관계 진전의 돌파구를 마련할 때라고 생각한다』며 북측의 호응을 거듭 촉구했다. 정부는 이날 이승곤 우리측 핵통제공동위원장(외무부 본부대사)과 정세현부위원장(대통령외교안보비서관)을 비롯,장재용(외무부 미주국장) 임대순(통일원 자문위원) 김쌍렬(국방부 준장) 이승구(과기처 심의관) 정의부(총리실 심의관)위원 등 우리측 위원 7명의 명단을 북측에 통보했다.
  • “태평양시대 맞아 기동항모 도입을”/해군 「해양력 심포지엄」 중계

    ◎군구조 재편통해 번영·통일에 대비해야 해군은 4일 경기도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제3회 국제해양력 심포지엄」을 열고 동북아 안보정세변화와 한반도 주변강대국들의 해군전력을 분석하고 우리나라 해군의 향후 발전방향을 모색했다. 5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심포지엄은 해군해양력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와 대내외적인 공감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한국·미국·일본·러시아·영국등 국내외 학자 30여명등 1천여명이 참석했다.이날 주제발표자들의 발표요지는 다음과 같다. ○20년내 2함대 가능 ◇한국 군부의 사고와 해군력 발전방안 모색(강영오 해군연구위원·예비역해군준장)=군의 준비태세가 향상됨에 따라 육군의 방어전략은 지난 80년 중반부터 초공세적 전략으로 변했다.해군의 임무는 경제번영과 평화적 통일,태평양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재정립돼야 하며 한국해군의 세력구조도 재개발돼야 할 것이다.이에따라 3개 함모기동함대가 신설돼야하며 항모기동함대를 한국본토로부터 1천마일이내에서 호위할 수 있도록 유도탄구축함 2척과 유도탄호위함4척씩으로 구성된 최소 5개 수상함전대가 필요하다.국민총생산 성장률이 연간 5%이고 해군예산반영비율이 계속 유지된다면 20년이내 2개의 항모기동함대를 갖출 수 있다. ○일은 정규군화 모색 ◇아시아 안보에 대한 러시아의 시각과 해군력 정책(러시아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 군사연구실장·세르게이 E 블라고볼린 박사)=안보영역에서 러시아가 당면한 정책과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미국,그리고 유럽공동체(EC)와의 제도화된 관계,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방해하는 문제들에 대한 신속한 해결책,한국과의 협력확장 및 강화등이다.아시아지역에서 러시아해군의 정책은 복잡한 개혁단계에 있으나 태평양에서의 러시아해군의 새로운 역할을 찾는데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일은 정규군화 모색 ◇아시아 안보에 대한 일본의 시각과 해군력 정책(일본 히타치연구소 마쓰무라 쓰도무박사)=방위비의 압박, 자위대의 젊은 보충세력 부족과 결손등으로 일본의 안보정책에 대한 완전한 재평가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으며 결코 급변하지 않을 것이다.군사력 보유권리를 허용하지 않은 일본헌법 개정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많은 일본국민은 일본내에서 법적으로 보장된 정규군을 갖기를 원하고 그에따라 세계평화에 평균역할을 담당하기를 바라고 있다.일본 북부 4개섬과 관련된 영토문제에 대해 러시아는 경제원조 협상을 정치와 분리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일본정부는 정치와 경제원조가 집약된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 이종구씨와 사전모의 여부 초점/이진삼씨 구속의 배경

    ◎관련자 진술로 사법처리 자신감/범행지시등 자백 확보가 급선무 정보사의 민간인테러사건은 테러를 직접 지시한 혐의를 받고있는 이진삼전정보사령관이 31일 구속됨으로써 1차 수사가 마무리 됐다. 검찰은 이전사령관이 테러에 개입된 사실을 밝혀낸 군 수사당국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뒤 이씨에 대한 사법처리방침을 굳히고 혐의를 입증할 증거와 관련자 진술을 확보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해왔다. 하지만 사건의 열쇠를 쥐고있는 한진구전정보사3처장(54·예비역준장)과 박동준전보안사정보처장(55·예비역소장)이 잠적하거나 해외로 도피하는 바람에 이들의 직접 진술에 의한 이전사령관의 혐의입증과 사법처리는 사실상 어렵거나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김영삼 당시 민추협공동의장집 절도사건과 양순직의원에 대한 테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한씨 등을 먼저 소환해 이전사령관의 지시여부를 확인한뒤 그것을 토대로 이씨를 사법처리하는 것이 무리없는 수사의 수순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그러나 지명수배된 한씨와 박씨에 대한 조기 신병확보가 어렵게 되자 한씨 등이 군수사당국에서 진술한 내용과 이미 구속된 이상범중령(44)등 행동대원들에 대한 조사결과만으로도 이전사령관의 사법처리가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이씨를 먼저 소환해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이씨의 구속으로 김영삼 민추협공동의장집등 최소 3건의 정치인테러가 5공당시 정보사령부의 사전계획에 따라 실행에 옮겨진 사실이 재확인된 셈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검찰수사에서는 보안사가 어떤 식으로 개입됐는지와 이종구 당시 보안사령관이 이진삼씨와 모의를 했는지는 밝혀지지않아 앞으로의 검찰수사방향도 이 부분에 초점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드러난 보안사의 개입정도는 미국으로 달아난 박동준 당시 정보처장이 한전정보사3처장에게 테러임무를 부여했으며 테러자금중 일부가 보안사에서 흘러나왔다는 정도이다. 따라서 박씨가 귀국해야만 보안사의 개입여부가 명백히 드러나겠지만 자진귀국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이상 율곡사업비리에 연루돼 구속 수감중인 이종구씨를 직접 조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검찰이 이 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철야조사에서 범행을 지시한 적도,테러가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한 이진삼씨의 자백을 받아내는 일이다. 정보사와 보안사가 범행을 공모했다면 직접 지시를 내린 이씨가 그 사실을 몰랐을리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씨가 범행을 시인하더라도 85년 발생한 김영삼 당시 민추협의장집 절도사건은 공소시효 7년이 이미 지나 처벌은 불가능하다. 이씨의 범죄사실에도 이 사건은 제외됐다.
  • 국방장관 2명­총장 5명 구속/6공 군수뇌부 수난

    ◎「12·12」관련 최세창·김진영씨도 “위태”/이양호 전공군총장은 합참 의장 “영전” 6공때 노태우전대통령이 임명한 국방부장관과 육·해·공군참모총장등 전직 군최고수뇌들이 무더기로 수난을 겪고 있다. 율곡사업 및 군인사비리로 이미 구속된 이상훈·이종구전국방장관,김종호·김철우전해군총장,정용후·한주석전공군총장등 6명 이외에 31일 이진삼전육군총장이 구속됨으로써 모두 7명이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무려 28개의 별이 법정에 서게된 것이다. 이들 가운데 이종구전장관의 경우 육군총장까지 역임해 공교롭게도 국방장관 2명,육군총장 2명,해군총장 2명,공군총장 2명씩이 똑같은 운명을 맞이한 셈이다. 이날 구속된 이전총장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은 수뢰액이 모두 1억원을 넘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수수죄로 처벌받게 되는데 그들의 군경력 등을 감안해 작량감경(작양감경)을 하더라도 최저 5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게 된다. 노전대통령이 임명한 군최고 수뇌부는 11명으로 이 가운데 최세창전국방부장관등 3명만 화를 모면 했을 뿐이다.최전장관은 김영삼대통령이 취임한뒤 개각때 권령해현장관에게 자리를 넘겨주었고 김진영전육군총장은 임기가 올 연말까지 남아 있어 유임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전격 경질됐었다. 최전장관과 김전총장은 당시 경질되지 않았더라도 「12·12」사태에 대한 책임과 관련,불명예퇴진 했을 것임이 틀림 없었다. 그러나 이들 2명도 이젠 안심 할 수만은 없게 됐다. 「12·12」사태 당시 신군부측에 지휘권을 박탈당했던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등 22명이 주동자 34명을 내란등의 혐의로 고소하면서 이들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최전장관은 사건당시 3공수여단장(준장),김전총장은 수경사33단장(대령)으로 거사에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공군참모총장에 임명됐던 이양호전총장만이 유일하게 현직에 남아 합참의장으로 영전,부러움을 사고 있다.
  • 이진삼씨 철야조사/정보사 테러/범행지시여부 등 추궁

    ◎오늘안에 영장 청구/검찰 정보사 민간인 테러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조준웅부장검사)는 30일 지난 86년 양순직신민당 부총재에 대한 테러를 지시한 혐의를 받고있는 당시 정보사령관 이진삼씨(57·전체육부장관)를 소환,철야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씨를 상대로 ▲지난 86년 정보사 3처장이었던 한진구씨(54·남성골프장 사장)에게 양의원의 테러를 지시했는지 여부 ▲이 사건과 관련해 당시 양심선언을 한 뒤 노량진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행동대원 김형두씨(41)의 신병을 인수하도록 지시했는지 여부 ▲보안사 등 다른 정보기관의 개입여부등에 대해 집중추궁했다. 검찰은 이와함께 이미 공소시효(7년)를 넘겨 사법처리가 불가능하게 된 지난 85년 10월의 김영삼 당시 민추협공동의장 집 서류절취 사건에 대해서도 진상규명 차원에서 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이씨의 혐의내용을 확인한뒤 빠르면 31일중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이에 앞서 지난 14일 군검찰부는 당시 정보사 3처장인 한씨를 소환조사한 결과 『이사령관의 지시로 85년 10월10일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 박동준준장(55·예비역 소장·미국 도피중)을 만나 김영삼민추협공동의장 집에서 정보가치가 있는 문건을 훔쳐내라는 임무를 받았으며,86년 4월 양부총재를 폭행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사령관에게 이를 보고하자 그대로 시행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을 받아냈었다. 검찰은 또 구속된 이상범중령(44)을 조사한 결과,『양의원 테러사건과 관련해 김형두씨가 양심선언을 한 뒤 이진삼사령관에게 심한 질책을 받았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군검찰부에서 이미 한씨의 진술을 확보해 둔데다 다른 참고인들도 이씨의 범행지시 사실에 대해 일부 진술하고 있는만큼 잠적한 한씨를 조사하지 않더라도 이씨의 사법처리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씨는 이날 하오 2시35분 승용차편으로 서울지검 청사에 도착,보도진들의 질문에 『테러를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대답한 뒤 11층 특별조사실로 올라가 서울지검 공안1부 황교안검사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 준장 20% 대령 9% 내년 진급정원 감축/국방부 확정 발표

    국방부는 23일 올해 하반기 장교 진급심사(94년도 진급대상)에서 준장과 대령의 진급정원을 지난해보다 각각 20%와 9%씩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이날 확정,발표한 「94년도 진급지침」에 따르면 준장은 지난해 75명에서 올해 60명으로 20%가 줄었으며 군별로는 ▲육군 43명 ▲해군 9명 ▲공군 8명으로 각각 6명,4명,5명이 감소했다. 대령은 3백24명에서 2백96명으로 8.6%(28명)가 감축돼 ▲육군은 2백7명에서 1백90명으로 ▲해군은 54명에서 48명으로 ▲공군은 63명에서 58명으로 각각 줄었다. 반면 중령은 육군 5백30명,해군 1백15명,공군 1백55명등 8백10명으로 전년도보다 14.1%(1백명) 늘었으며 소령은 전체적으로 10%가량 감소했다. 국방부는 오는 97년까지 장군은 정원수준으로 조정하고 기타 계급은 정원범위안에서 인력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 「12·12」주역들 법정에 서게 될까/집단고소로 새 국면 맞아

    ◎공소시효 1년여 앞두고 형사절차/순수법률문제로 접근어려워 처리관심 12·12사건 당시 신군부의 반대편에 섰던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등 22명이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을 비롯,이 사건 핵심 관련자 34명을 19일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공소시효(15년)를 1년여 남겨두고 이 사건 피해자들이 형사고발함에 따라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에앞서 김영삼대통령은 이 사건에 관련됐던 이필섭전합참의장등 현직 장성을 최근 해임하는 선에서 「역사의 심판」에 맡기겠다고 강조했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이들이 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공소시효를 바로 앞두고 소를 제기한 것도 달라진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왜냐하면 지난 6공 당시만해도 노전대통령이 직접 당사자였기 때문에 현실여건이 이를 따라주지 않았다는 견해다. 검찰은 이에 따라 고소인조사와 함께 피고소인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됐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전직 대통령들까지 조사해야 하는 부담을 걸머지게 돼 상당히 난처한입장에 처하게 됐다. 정전총장등은 고소장에서 『이 사건 발생 직후부터 이들 반란 행위자들의 범죄행위에 대해 준엄한 법적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상기시키고 『그들에 의해 지배되던 강권 통치시대가 마감되고 이들에 대한 공정한 사법적 조치를 실현할 수 있는 새 시대가 왔다고 판단해 법적책임을 묻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소장을 제출한 피해자들은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 없이는 이 사건의 진상이나 실체를 밝힐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역사적 평가는 그 연후에 가능하다며 톤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정전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새정부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므로 검찰도 엄정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번사건을 순수하게 법률적인 문제로 접근하기는 어려운데다 특히 2명의 전직대통령이 관련돼있다는 점에서 검찰이 어떻게 다룰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피고소인·고소인 명단◁ 「12·12」 관련 피고소인과 고소인 명단은 다음과 같다(괄호안은 당시 계급 및 직책). 피고소인 △전두환(소장·보안사령관) △노태우(소장·9사단장) △유학성(중장·국방부 군수차관보) △차규헌(중장·수도군단장) △황영시(중장·1군단장) △박희도(준장·1공수여단장) △최세창(준장·3공수여단장) △장기오(준장·5공수여단장) △백운택(준장·71방위사단장) △박준병(소장·20사단장) △장세동(대령·수경사 30단장) △김진영(대령·수경사 33단장) △허삼수(대령·보안사 인사처장) △이학봉(중령·보안사 대공처장)△허화평(대령·보안사 비서실장) △정도영(준장·보안사 보안처장) △김정용(대령·특전사 보안부대장) △우경윤(대령·육군 범죄수사단장) △성환옥(대령·육군본부 헌병감실) △최석립(중령·33헌병대장) △이종민(중령·육군헌병대장) △조홍(대령·수경사 헌병대장) △신윤희(중령·수경사 헌병단부단장) △정동호(준장·청와대 경호실장직무대리) △고명승(대령·청와대 경호실 작전과장) △박희모(소장·30사단장) △이상규(준장·2기갑여단장) △송응섭(대령·30사단 90연대장) △서수렬(중령·1공수여단 제2대대장) △박덕화(중령·1공수여단 5대대장) △박종규(중령·3공수여단 5대대장) △신우식(대령·특전사 작전참모) △구창회(대령·9사단 참모장) △이필섭(대령·9사단 29연대장) ▷고소인◁ △정승화(대장·계엄사령관) △이건영(중장·3군사령관) △윤흥정(중장·전투병과교육사령관) △이재전(중장·청와대 경호실차장) △문홍구(중장·합동참모본부장) △신현수(중장·국방부 특검단장) △전성각(중장·제3군단장) △최영식(중장·제2군단장)△정형택(중장·육본 예비군참모부장) △최명재(중장·군수참모차장) △안종훈(중장·육본 군수참모부장) △황의철(소장·육본 정보참모부장) △김한용(소장·육군대학총장) △신정수(소장·육본 민사군정감) △안철원(소장·육본 전술공사 통제단장) △한국섭(준장·전육본경리감) △하소곤(소장·육본 작전참모부장) △장태완(소장·수경사령관) △김계일(소장·국방통신정보부대 부부대장) △김종찬(소장·38사단장) △윤흥기(준장·9공수여단장) △김진기(준장·육본 헌병감)
  • 소장·준장 10명선 내주초 인사/율곡비리 문책

    ◎새 정부 군부개편 일단락/방위산업 전반 제도개선 추진/국방부 율곡사업비리와 관련된 중장급이상 군고위직에 대한 문책인사가 끝난데 이어 내주 초 10명이내의 소장·준장급 문책인사가 있을 것으로 보여 이 사건에 연루된 장성급에 대한 인사는 조만간 마무리될 전망이다. 물론 대령·중령급등 영관급에 대한 인사가 시차를 두고 단계적으로 뒤따를 것이지만 장성급 인사로써 문책인사의 큰 줄거리는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문책인사는 율곡사업의 비리에 대한 책임을 묻는 형식으로 취해졌으나 5·6공당시 대표적인 정치군인으로 알려진 조남풍1군사령관을 전역시킴으로써 내용적으로는 새 정부의 군부개편 완료를 의미하고 있다.조전1군사령관의 전역조치는 그가 군을 좌지우지해 온「하나회」의 핵심인물이며 마지막 보루였다는 점에서 「하나회」인맥의 완전한 정리로 이해되고 있다.그의 경질은 새 정부출범 이후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었으나 율곡사업비리 감사결과를 계기로 그 시기가 다소 앞당겨졌다. 조전1군사령관의 후임에 비「하나회」이며군수통인 이준국방군수본부장이 대장진급과 동시에 임명된 것은 새 정부의 군부성격을 비정치적 실무형으로 구성하려는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인사기조는 앞으로의 소장·준장급 문책인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날 것으로 관측된다. 감사원의 감사결과 「면죄부」를 받은 권령해국방장관은 이번 인사를 통해 율곡사업관련팀을 재정비할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의 인사방향은 자연히 율곡사업에 정통한 실무형 우대로 흐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그러나 뒤늦게 동생 녕호씨(51·금천실업대표)가 무기중개업체인 학산실업으로부터 5천만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권장관의 거취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권장관의 문제가 율곡비리 문책인사와 맞물려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도덕성을 강조하고 있는 문민정부로서 권장관 문제 처리는 또하나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여하튼 이번 율곡사업 문책인사는 율곡사업 전반에 대한 재검토 및 제도적 개선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율곡사업에 관여한 인사의 인적 청산보다는 제도적 개선에 비중을 두겠다는 것이 군 고위층의 생각이고 보면 앞으로 당분간 제도개선책이 활발하게 논의될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이와관련,무기선정과정에 투명성이 보장되고 책임소재가 분명해지는 방향으로 논의의 초점이 모아져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율곡사업비리와 관련돼 감사원이 징계 및 인사조치를 요구한 26명의 영관급 장교들중 일부가 『위에서 시키는대로 했을 뿐인데 문책인사를 당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재심의를 요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따지고보면 무기선정과정이 공개되지 않고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율곡사업비리 문책인사는 예상치 못한 선까지 미칠 소지도 없지않으나 앞으로 군내부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이라는 분명한 원칙을 보여주고 있다.
  • “증거확보 자신” 끝내기 수순 돌입/율곡비리수사 이모저모

    ◎검찰수뇌부 “안보 고려 수사공개 고민”/뇌물공여자 불구속방침 “지나친 관용” 율곡사업 비리수사는 이종구전국방장관등 관련 피고발인들의 소환·조사를 남겨두고 있으나 이들에게 뇌물을 준 무기중개상 및 방산업체에 대한 조사를 거의 마무리한 상태여서 끝내기 수순만 남겨두고 있다.이에따라 이번 사건은 당초 검찰 전망대로 이번주안에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수사가 시작되면서 보도진과의 접촉을 극도로 자제해왔던 김태정대검중수부장은 15일 기자실에 들러 지금까지의 수사상황을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 김부장은 『군사기밀보호와 국가안보라는 차원에서 수사내용의 공개여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놓고 『각 수사관들에게도 수사에 신중을 기하도록 지시했다』고 소개. 그는 또 검찰이 지난 13일 보도진을 따돌린채 현대정공 정몽구회장을 소환·조사한 사실과 관련,『현대그룹이 현재 심한 노사분규를 겪고 있어 정회장의 소환사실이 근로자들에게 알려질 경우 엉뚱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것 같아 극비리에 정회장을 소환했다』고 해명.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의 검찰소환문제가 적극 검토돼 재계는 물론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지난 89년 「5공비리」수사 당시 정주영현대그룹회장이 일해재단비리와 관련해 조사받은 적이 있으나 재계 총수의 경우 지금까지 검찰의 조사를 받은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 검찰수사관계자는 『이상훈전국방장관이 감사원 조사과정에서 대우측으로부터 1억2천만원을 받은 사실을 완강히 부인한데다 지난14일 소환된 대우중공업 윤영석부회장도 뇌물제공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이전장관과의 대질신문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면 김회장을 소환할 방침』이라고 설명. ○김종호씨는 무혐의 ○…군인사비리와 관련해 뇌물수수혐의로 이미 구속된 김종호전해군총장은 감사원으로부터 고발 당시 6천7백만원을 받은 것으로 돼 있었으나 검찰조사 결과 율곡사업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무혐의 처리. 김전총장이 제일교역 대표 이종대씨로부터 받은 5천만원은 김전총장이 군인사비리때 해군 이의근준장으로부터 받은 1억원에 포함된 것이었고 나머지 1천7백만원은 해군총장을 물러난뒤 무기중개상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직무관련성이 없다고 설명. 제일교역 대표 이씨와 이준장은 경남 J고 동기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씨가 이준장의 승진을 위해 이같은 거금을 내놓았다는 후문. ○4성장군 예우 신경 ○…검찰은 이종구·이상훈전국방장관,김철우전해군총장,한주석전공군총장등 피고발인 4명이 모두 「4성장군」출신들인 점을 감안,이들의 소환방법에 대해 내부논의를 여러차례 가진 끝에 한꺼번에 소환하되 구속집행은 시간간격을 두기로 결정. 이종구전장관이 구속될 경우 이미 구속된 김종호전해군총장,정용후전공군총장에 이어 각군 최고사령관들인 3군총장이 모두 쇠고랑을 차는 셈. ○…피고발인들에게 수천만원에서 6억원까지 뇌물을 제공한 무기중개상과 방산업체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불구속 입건할 가능성이 커지자 이는 대기업을 봐주기 위한 처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대두. 검찰주변에서는 그동안 뇌물수수 사건의 경우 수뢰액이 1억원을 넘을 경우 뇌물공여자도 대부분 구속수사를 해왔으나 이번에는왠지 지나치게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 것 같다고 머리를 갸우뚱.
  • 군정보기관이 주도한“정치공작극”/드러나는「정치인테러」수사 중간점검

    ◎열쇠 쥔 박씨 도미… 물증확보가 과제/이진삼씨 부인… 배후규명도 난제로 5공후반 정보사의 정치인 테러사건은 정보사와 보안사(현 기무사)등 2대 군정보기관이 「합작」한 정치공작극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충격적이다.보안사가 「머리」역할을,정보사가 「수족」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이번 사건은 이진삼당시 정보사령관의 지시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군검찰에서 2회에 걸쳐 참고인 조사를 받은 한진구 당시정보사3처장의 진술에 따른 것이지만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신빙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한씨는 군검찰에서 『당시 이진삼사령관으로부터 보안사 정보처장 박동준준장을 만나보라는 지시를 받고 박준장으로부터 테러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물론 한씨의 진술에 대해 군검찰의 조사를 받은 이씨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하고 있으며 박씨는 한씨가 조사받기 전인 지난 10일 미국으로 출국해버려 대질신문은 하지 못하고 있다.이 때문에 이번 사건은 자칫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정치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미국으로 「도주」한 박씨가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박씨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는 한 이번 사건의 배후를 밝히기는 어렵게 되었다. 군검찰이 현재까지 밝혀낸 부분은 행동대원 총책으로 활동했던 이상범중령(구속)에게 한씨가 범행을 지시했다는 사실일뿐 「정치적 연결고리」등의 배후세력은 전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따라 이번 사건과 관련된 한씨등 민간인 수사를 맡을 서울지검의 수사방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군검찰은 특히 박씨가 한씨의 소환조사가 이루어 지기 불과 4시간 전에 미국으로 뚜렷한 이유도 없이 출국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한씨가 소환되기 전에 「입맞춤」을 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으로 연루된 보안사 조직이 노출될 수도 있다고 판단,도피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당시 보안사의 정보처장직은 대민관련은 물론 각종 정치정보를 역이용,「공작정치」를 자행해 왔다는 비판을 받았던 자리다.박씨는 이 때문에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이종구전국방장관등 「상부선」에 미칠 정치적 파장을 우려,피신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적으로 과거 군사정권의 산물인 공작정치의 한 표본이라 할 수 있다.이 점에서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정치적 의혹이 더욱 증폭되면서 파문을 일으킬 조짐이다.
  • 「테러 공작」 진삼·진백형제는 누구

    ◎육사15기 9·9 인맥의 핵심인물/진삼/오홍근씨 테러 정보사령관직 해임/진백 제28대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역임한 이진삼씨는 37년 군생활 대부분을 전방에서 보낸 순수 야전군 출신이다. 충남 부여 출신인 이씨는 하나회 및 9·9인맥(노태우전대통령의 9공수여단·9사단출신)의 핵심인물.이씨는 육사 15기의 선두주자로 대대장·공수여단장·사단장·군단장·참모차장·1군사령관등 보기 드물게 정통 군요직을 거친 전형적인 무골로 알려져있다.준장진급(80년1월)과 소장진급(82년12월)은 동기생의 선두자리를 유지했으나 87년1월 중장진급은 동기생 고명승·권병식씨보다 6개월이 늦었다.이를 두고 5공당시 주위에선 노대통령의 사람으로 분류됐기 때문에 전두환전대통령측에 견제를 받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씨는 79년 「12·12」당시 태릉사격지도단장(대령)으로 있으면서 당일 동기생 2명과 함께 장성진급 1차진급자로 통보를 받아 놓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당시 그는 새 정치판을 짜려는 신군부 실세들로부터 민정당충남지부위원장 자리와 함께 지역구 출마제의가 들어왔으나 『군복이 좋다』며 군에 남아있었다. 이씨는 노전대통령의 집권이후인 89년4월 대망의 대장으로 승진,1군사령관을 역임한뒤 90년6월 마침내 「별중의 별」자리인 육군참모총장에 오르는 행운을 안는다. 육사 4년선배인 노전대통령과 끈끈한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노전대통령이 방첩부대 방첩과장(소령)시절 그를 특수부대에 추천하면서 부터였다.위관장교였던 그는 이때부터 싫든 좋든 테러와 연을 길러 왔다는게 그를 잘아는 사람들의 얘기다.64∼65년 D일보기자 및 정치인등에 대한 일련의 테러사건에 그가 연루됐다는 소문도 있다. 『한마디로 군인 그 자체』였던 그가 정보사령관으로 있을 당시에 자행된 이번 정보사테러사건의 「주요인물」이 된 것과 연관지어 보면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의 동생도 정보사령관을 지낸 진백씨(53·갑종153기·예비역 소장).형제가 한때 별 6개를 달아 유명했다. 공교롭게도 진백씨도 88년 정보사령관으로 보직해임돼 예편한 이유가 오홍근전중앙경제사회부장 테러사건이었다는 사실이 두 형제의 「테러 기연」을 말해 주고 있다.진백씨가 예편될 당시의 육군참모총장은 이종구씨였다.당시 육군참모차장이었던 이씨는 이런 이유등으로 해 이후 이종구씨와는 상당히 소원한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 정보사테러/「보안사와 합작」/국방부/“이진삼·한진구­박동준씨개입”

    5공후반 정치인테러사건은 당시 정보사와 보안사가 합작했으며 이 사건에는 이진삼 당시 정보사사령관(57·전육참총장·전체육부장관·육사15기)이 깊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수사해온 국방부 검찰부는 14일 참고인 조사를 벌여온 전정보사3처장 한진구예비역준장(54·육사18기·남성대골프장대표)으로부터 당시 정보사 고위간부에게 보고하고 테러를 벌였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한씨를 포함,당시 정보사령관 이진삼씨,전보안사 정보처장 박동준예비역소장(55·갑종151기)등 3명에 대한 수사를 서울지검에 의뢰했다.이들 가운데 박씨는 군검찰이 한씨를 소환,조사하기 4시간전인 10일 상오 미국으로 출국했다. 군검찰은 이와함께 테러단의 행동대장으로 활동한 혐의로 지난 8일 구속된 정보사 이상범중령(44·3사2기)을 금명간 기소키로 했다. 군검찰은 이날 정보사테러사건 수사결과 발표에서 두차례 참고인 조사를 받은 한씨로부터 『이진삼 당시 사령관이 보안사 정보처장 박동준준장을 만나보라고 지시함에 따라 85년 10월10일 박준장을 만나 김영삼 민추협공동의장집에서 정보가치가 있는 물건을 절취하라는 임무를 받고 이사령관에게 보고후 지시를 받아 범행을 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한씨는 또 86년 4월 박준장을 다시 만나 당시 신민당 부총재인 양순직의원 폭행임무를 받고 이진삼씨에게 보고한 뒤 실행했다고 말한 것으로 군검찰은 전했다. 군검찰 수사결과 이중령은 지난 85년 10월 중순쯤 한씨의 지시를 받아 정보사 전역병인 김형두씨(41·무직)및 이·주·김모씨 등 4명과 함께 김영삼 당시 민추협의장 상도동 자택에 침입,탁상용 일기책 1권,카세트테이프 1개,명함 2장 등을 훔쳤으며 86년 4월29일 하오10시쯤에는 김형두씨등 2명과 함께 서울 신대방동 양의원집 앞길에서 양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 이 2개를 부러뜨린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수사착수 서울지검 공안1부(조준웅부장검사)는 14일 국방부가 정보사 민간인 테러사건을 이첩해옴에 따라 본격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이날 국방부 합동조사단으로부터 관련자료 일체를 넘겨받아 정밀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 검찰은 자료검토 작업이 끝나는대로 빠르면 다음주초부터 「정보사 테러단」을 운영하면서 범행을 지시한 이상범중령(44·구속)이 군수사당국에서 진술한 내용을 토대로 당시 정보사령관 이진삼씨와 3처장 한진구씨등을 소환조사키로했다.
  • 고발된 율곡비리 6인의 행적

    ◎KFP기종 F16기로 변경/이종구씨/89년 공군연습기 도입 간여/이상훈씨/6공 외교·국방정책의 실세/김종휘씨/대잠합 초계기 선정에 관계/김종호씨/총장재임내내 투서 잇따라/김철우씨/기종변경 의혹 관련 뒷소문/한주석씨 감사원이 9일 율곡사업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뇌물수수 혐의자로 고발조치한 이종구·이상훈전국방부장관,김종휘전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김종호(구속중)김철우전해군참모총장,한주석전공군참모총장등 6명은 6공시절 국방안보분야 「실세」들로서 문제가 되고 있는 대형 군전력증강사업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들이다. 특히 문제가 되고있는 KFP(차세대전투기)사업은 F18을 밀었던 이상훈전국방·정용후전공군총장과 F16을 지지했던 김전외교안보수석·이종구전국방·한전공군총장라인으로 대별된다.고발된 6명이 어떤 군사업에 관여했나 알아본다. ▲이종구전국방장관=가장많은 7억8천만원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난 이전국방장관은 KFP·대잠수함초계기 도입등에 관련됐다.「군내 TK세력의 핵심」이었던 그는 육군참모총장으로 예편한지 4개월만인 90년 10월 국방부 장관에 취임,이듬해 3월 KFP기종을 F18에서 F16기로 변경시켰다. 또 90년말 대잠수함초계기 기종선정때도 영향력을 행사,기술이전·가격·운영 등 종합적인 면에서 우리측에 유리한 것으로 평가되던 프랑스 닷소사의 애틀랜틱­2를 제치고 미 록히드사의 P3C가 선택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상훈전국방장관=KFP사업에 있어서 공군의 희망대로 F18을 지지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89년 공군연습기 도입에는 의문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탈리아의 MB­339기와 영국의 호크기가 경합을 벌였던 공군연습기는 예상을 뒤업고 호크기가 결정됐다. ▲김종휘전대통령외교안보수석=지난 5월 미국으로 출국한 김전수석은 6공내내 재임하면서 외교국방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실력자.이종구전국방과는 관계가 껄끄러운 사이였으나 KFP사업과 관련,F18로 최종 결정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종호전해군총장=군인사 비리파문으로 구속된 김전총장은 대잠수함초계기 선정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그는 소신이강하고 업무추진이 저돌적이어서 TK인맥을 이용,자신의 뜻을 요로에 반영시켜 결국 P3C도입을 따냈다.89년9월부터 91년9월까지 해군총장으로 있으면서 구축함 건조관련 장비도입사업과 잠수함 부품업체선정에 있어 소수업체에 특혜를 주었다는 소문이 많았다. ▲김철우전해군총장=「깨끗한 신사」라는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수뢰랭킹3위(3억원)를 기록했다.그는 잠수함건조와 한국형 구축함계획등 해군전력증강에 특히 주력했던 해군총장이었기 때문에 율곡비리에 관련돼 감사원에 소환됐을 당시 해군에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지난 5월까지 재임한 그는 재임 6개월전부터 투서가 끊이지 않아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한주석전공군참모총장=KFP기종이 F18기로 변경됐던 당시의 공군총장으로서 기종변경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구설수에 오르는 「단골 손님」.정전공군총장 인사비리사건으로 공군준장 5명이 구속될 때 영관급 장교들이 KFP의혹 해명과 함께 그의 비리규명을 집단으로 요구했을 정도로 뒷소문이 많았다.
  • “정치인 테러 지시”/한진구 당시 정보사 3처장 시인

    정보사 정치인 테러사건을 수사중인 국방부 합동조사단(단장 유순곤대령)은 8일 테러가 행해졌던 85년 당시 정보사 3처장이었던 한진구대령(53·육사18기·예비역준장·경기도 성남시 남성대골프장 대표)이 테러단을 운영하면서 범행을 지시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한씨를 7일에 이어 이날 다시 참고인자격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조사에서 한씨는 당시 대통령 직선제 개헌요구등 시국이 불안해지자 개인적 충성차원에서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테러단을 조직한 뒤 이상범중령(44·구속)에게 정치인 테러를 지시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씨는 그러나 범행대상자는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상급자들은 이 사건에 관계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한씨는 85년 10월 당시 행동대원들이 민추협 공동의장이었던 김영삼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에 침입,훔쳐온 명함·달력·녹음테이프등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소각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수사당국은 한씨와 이중령을 대질신문,한씨의 진술 신빙성을 조사한 뒤 한씨가 민간인 점을 감안,금명간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군수사당국은 이날 또 이번 사건에 관계된 것으로 알려진 현역 영관급 장교 3명을 소환,테러단의 조직 및 활동상황등에 대해 집중조사를 벌였다.
  • “당시 정보사 3처장 테러 지시”/한진구 예비역준장 소환

    ◎범행자백 이상범중령 구속/이진삼 전 사령관 조사방침/군검찰 정보사 정치테러사건을 수사중인 군수사당국은 7일밤 테러단을 조직,지휘한 혐의가 드러난 정보사소속 이상범중령(44)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상습절도행위교사)및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상습폭력행위교사) 혐의로 구속했다. 지난 5일부터 이 사건을 본격 수사해온 국방부합동조사단은 7일하오 이중령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짓고 사건을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검찰부에 넘겼으며 검찰부는 이날밤 9시쯤 권영해국방부장관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이중령을 구속했다. 이중령은 합동조사단에 소환되기전에 이미 정보사의 자체조사를 받았었다. 합동조사단은 그동안 이중령으로부터 당시 정보사3처장 한진구대령(53·육사18기·예비역준장·경기도 성남시 남성대골프장대표)이 지난 85년10월 당시 「민추협」공동의장이었던 김영삼대통령의 상도동자택침입등 일련의 범행을 지시했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7일하오 한씨를 참고인자격으로 불러 조사했다. 그러나 한씨는 이중령의 진술내용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검찰부는 이중령에 대한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검토한뒤 한씨를 참고인자격으로 재소환,관련여부를 밝힐 계획이다. 군수사당국은 이중령과 한씨 이외에도 현역 영관급장교 3∼4명이 이 사건에 관련된 사실을 밝혀내고 8일중 이들을 소환,조사키로 했다. 또 이들보다 상급자였던 당시 정보사령관 이진삼전육군참모총장과 참모장 김윤각전2군사령관등에 대해서도 관련여부를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방부는 8일상오 이 사건에 대한 군수사당국의 조사결과를 공식발표할 예정이다.
  • 육군진급 올부터 4심제로/새달 정기인사부터 적용

    ◎대위­준장 심사과정 공개 육군은 올해부터 대위·소령·중령·대령·준장 진급심사때 4심제를 도입하고 진급심사과정을 모두 공개하기로 했다. 육군이 6일 발표한 「94년도 진급심사제도안」에 따르면 오는 8∼10월로 예정된 94년도 진급대상자에게 4심제를 적용,기존의 갑·을·병 3개 추천위원회 이외에 선발위원회의 위원장을 별도로 임명,추천심사의 모든 과정을 감독케 했다. 또 최종 선발위원을 각 추천위 위원장과 위원 1명 등으로 골고루 편성,3개 추천위에서 추천된 인원을 최종선발토록하고 진급결과에 대해서는 공동책임을 지도록했다. 육군은 지난 90년부터 3심제를 도입,갑·을·병 3개 추천위를 각각 5명으로 구성하고 위원회별로 진급대상자를 패수로 추천한 뒤 다시 추천위의 최선임자(갑반위원장)와 각 추천위에서 2명씩으로 선발위원회를 재구성해 최종선발해왔다. 그러나 3심제는 진급선발때마다 갑반위원(위원 7명중 위원장포함 3명차지)의 의견이 편중 반영됨으로써 객관성이 미흡하다는 지적과 함께 모든 의결을 비밀투표제및 비공개를원칙으로 함으로써 공정성에 많은 의혹이 제기돼왔다.
  • 정읍 황토연(한국의 종교성지:4)

    ◎동학농민군이 전라감영군과 싸워 대승한곳 1894년(천도교 포덕35년) 4월7일 동학농민군이 전라감영군을 맞아 싸운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곳.전북 정읍군 덕천면 하학리에 있다. 그해 1월 고부민란을 계기로 3월20일 동학혁명운동 발발이래 관군과의 최초의 접전이었던 이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은 관군 2백여명의 사상자를 내는 큰 승리를 기록,사기를 높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제폭구민 광제창생의 기치를 내걸고 군사행동에 들어갔던 고부접주 전봉준은 이 거사의 목적에 수운대신사(최제우)의 신원이 포함돼 있음을 역설,도인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했다. 동학군은 4월27일에는 전주성을 완전 점령,전라도를 장악하는등 기세를 떨쳤으나 일본군의 막강한 무력에 밀려 이해 11월 우금치 논산등지의 전투에서 패배,혁명을 막내리고 말았다. 60년대 초부터 시작된 황토현전적지정화사업에 따라 이 일대에 「갑오동학혁명기념탑」「만석보유지비」「전봉준장군고택」등 동학혁명 관련 유적들이 정비돼 있으며 황토현전적지기념관(사적제293호)이 세워져 있다.매년 5월11일 이곳에서 천도교주최 기념식과 갑오동학문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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