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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안보환경과 해병대」 심포지엄

    ◎“미래의 해병은 「다목적 역할」 수행”/유엔가입국 30% 이상이 해병대 보유/대양해군 건설로 통일시대 대배해야 해병대 발전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7일 상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전도봉해병대사령관 등 군 고위관계자,국내외 학자 등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21세기 안보환경과 해병대」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심포지엄은 향후 해병대의 역할과 중요성을 대외적으로 인식시키고 미래지향적 해병대 발전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대양해군 건설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최측은 밝히고 있다.이날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전사로 통해본 상륙전력의 가치와 효용성 ▲세계주요국가의 안보환경과 상륙전력 ▲한국해병대의 역사와 미래 ▲대양해군 건설과 해병대 ▲통일후의 동북아지역의 안보환경과 상륙전력문제등이 집중적으로 토의되었다.다음은 심포지엄 참가자의 주제발표 내용 요지이다. ◇리처드 버코테른(미 해병대 작전계획처장·준장)=국가의 경제적 생존성이 국가안보에 직결된다는 점을 인식하면 해상교통로의 자유를 유지하는 것은 그 지역의모든 국가들에 사활을 건 목표이며 이는 해군력의 필요성을 정당화시키는 이유가 된다. 신속타격 및 신속대응군으로서 해병대의 가치는 전 세계에 인식되어 오늘날 유엔 가입국 3분의 1이상의 국가가 해병대를 보유하고 있거나 해병대 또는 해군 보병부대를 창설하기 위해 진행중이다. 미래의 분쟁은 대부분 인종 및 종교적 대립,천연자원의 고갈,대량 파괴무기의 확산과 관련된 것이 될 것이다.따라서 발생한 위기상황에 대해서 국가지도자가 대처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기 위해선 그 위기가 확대되기 전에 안정시킬 수 있는 신속대응군이 필요하다.또한 위기가 확대될 경우에도 해병대는 그 장소에 대규모의 중무장한 병력투입을 촉진시키는 부대로서 제공될 수 있다.미래의 해병대는 위기가 발생한 지역에는 어디든지 원정군으로 가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 동맹과 조약의 범위에 한정된 지상기지의 불확실성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짧은 시간을 보상하는 해상기지를 확보해야 한다.또한 군수적인 자립과 고도의 준비태세를 확보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함정을 이용한 적극적인 지원체계를 보유해야 한다. ◇노계용(국방연구원 연구위원)=해병대의 주 임무와 역할은 상륙작전이며 상륙군의 선봉으로서 상륙작전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두어야 할 것이다. 전략기동 예비전력으로서 지상군의 공세기동전력에 투입 운용되어 지상공세작전을 수행하고 미래의 다양한 전투양상에 부합되는 다목적 전략군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미국이나 영국 해군처럼 신속대응군으로 분쟁지역에 최초 투입,운용되는 전력으로서의 역할과 상륙 돌격 양동 등으로 전역계획에 기여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해병대는 전략기동 예비전력으로서 지상 공세작전을 수행하고 미래의 다양한 전투양상에 부합되는 다목적 전략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해안선에서 40㎞가량 떨어진 초수평선에서 고속 입체적 상륙작전을 벌일 수 있는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해병대는 최소한 여단급의 단독 상륙작전 능력을 확보해야 하며 이를 위해 헬기와 공기부양정,대규모 수송함및 전투지휘소 자동화체계(C⁴I)를 갖춰야 한다. 해병부대의 구조도소형·경량화·기동화시켜 강력한 화력을 갖춘 여단급 부대를 지향하고 상륙작전만을 전담하는 부대에서 탈피해 다목적 전략타격군으로서의 부대 및 전력구조를 지향해야 한다.전투지원 부대의 원거리 지원 및 기동능력을 향상시켜 적지 전투능력을 확대시키고 보병부대 위주의 부대구조로부터 기동력을 갖춘 부대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 「세기의 재판」 진기록·진풍경

    ◎두전대통령 동시 재판 세계 처음/1심공판 34회·사건기록 20만쪽/군출신 피고인들 별 합치면 50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사건과 12·12 및 5·18사건이 지난해 11월16일 노 전 대통령이 구속된 이후 9개월여에 걸친 「대장정」끝에 5일 피고인 16명에 대한 검찰의 구형이 내려졌다. 노·전 피고인이 구속수감된 지 각각 2백3일, 1백85일만이다. 이 과정에서 「세기의 재판」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각종 진기록과 진풍경을 양산했다. 우선 최다 1심공판횟수. 5일의 27차 공판에서 구형이 내려졌으므로 오는 19일의 선고공판까지 합하면 무려 28차 공판이 된다. 여기에 전·노 피고인의 비자금사건 공판이 각각 3차례 열린 것까지 합하면 34차의 공판으로 1심재판이 막을 내리는 셈이다. 지금까지는 지난 89년의 「우지라면사건」 재판이 가장 많은 공판횟수를 기록했다. 피고인이 불구속상태였기 때문에 무려 4년2개월여동안 심리했다.하지만 공판은 22차례 열렸을 뿐이다. 지난 93년 박철언씨의 「슬 롯머신사건」도 1심 구속만기 6개월을 다 채웠지만 7차공판만에 끝났다. 피고인들의 화려한 면면도 미증유의 기록으로 남게 됐다. 최고권좌에 오른 전직대통령 두명이 동시에 법정에 섰다. 12·12 및 5·18사건의 나머지 피고인 14명도 모두 군장성 출신이다. 전·노 피고인 등 대장 출신 10명(유학성·황영시·이희성·차규헌·정호용·박준병·최세창·주영복)과 중장 1명(장세동),소장 2명(신윤희·박종규),준장 3명(이학봉·허삼수·허화평)이다.합하면 자그마치 별이 50개에 이른다. 정승화 전 육참총장·노재현 전 국방장관·윤성민 전 합참의장 등 증인까지 합하면 1백여개를 족히 넘는다.말 그대로 「별들의 전쟁」이었다. 검찰·변호인·피고인 등 등장인물의 수도 최대다. 공판 참여검사는 문영호 대검중수2과장(이하 전직책)·김성호 특수3부장·김상희 형사3부장 등 20여명에 이른다. 변호인단은 더 많다.이양우·한영석·김유후 변호사 등 40여명이다. 피고인은 노씨 비자금사건을 포함해 35명, 법정에 선 증인도 41명이다. 여기에 재판부까지 포함해 모두 1백40여명이 등장한 형사재판사상 유례가 없는 초매머드급이었다. 피의자 및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사람도 1천여명을 넘는다. 12·12 및 5·18사건에서는 5백16명이 조사를 받았다. 노 피고인과 전 피고인 비자금사건과 관련해서도 각각 4백여명과 1백여명이 검찰에 출두했다. 사건기록도 엄청나다. 12·12 및 5·18사건 18만여쪽에 비자금사건기록을 합하면 20만쪽을 넘는다. 밤을 꼬박 새워 30초에 1장을 읽는다 치더라도 70여일이 걸린다.〈박은호 기자〉
  • 경총 고급 인력센터 구직신청 쇄도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춘 고급퇴직인력의 재활용을 위해 개설된 고급인력정보센터에 구직신청이 몰리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 한국경총회관에 고급인력정보센터가 문을 연 후 지금까지 상장기업 임원급이상 고급인력 1백21명,상장기업 부장급이상 중견인력 2백57명 등 모두 3백78명의 퇴직자가 구직신청서를 냈다고 4일 밝혔다. 6일동안 하루평균 63명이 구직를 신청한 셈이다. 구직신청자중 88%인 3백33명(고급 84명,중견 2백49명)이 정식취업을 희망했고 강의직 희망자는 45명(고급 37명,중견 8명)이다. 이 가운데 1백15명이 취업(1백13명) 또는 강의(2명) 조건으로 일자리를 소개받았다. 반면 구인건수는 구직신청건수의 8분의 1정도인 46개 기업 46명(고급 14명,중견 32명)에 불과해 아직까지 업계의 관심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센터는 최근 3년이내에 퇴직한 2만2천여명의 퇴직인력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는다. 고급인력은 상장기업 및 금융기관의 임원,정부투자기관 이사,각 군의 준장이상으로 2년이상 재직한 사람,중견인력은 상장기업 부장,30대그룹 및 금융기관의 과장,정부투자기관 1급,각 군의 중령이상으로 3년이상 근무한 사람을 일컫는다.〈우득정 기자〉
  • 김치와 일본인(외언내언)

    『요즘 일본사람도 제법 매운 음식을 즐겨 먹고 있다.특히 젊은 세대는 매운것을 즐겨 먹는 사람이 꽤 많다.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역시 김치가 보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94년 서울신문사가 국내 처음 마련한 「한국김치대축제」의 한 행사 「외국인김치글짓기대회」에서 준장원을 차지한 일본인 후세 겐이찌씨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그의 글을 좀더 읽어 보자.『일본의 여러 도시나 지방의 식료품점을 들여다 보면 김치 없는곳이 없다.작은 가게에도 꼭 한두가지가 놓여 있고 슈퍼마켓 같은 곳이라면 몇가지나 놓여 있다.그중에서도 가장 인기있는것이 한국에서 수입된 것이다』 겐이찌씨는 한국김치가 인기있는 이유로 다음 3가지를 든다.첫째는 맛.일본의 「가짜김치」(기무치)와 한국의 「진짜김치」맛은 비교가 안된다는것.둘째는 자연재료를 사용해 건강에 좋다는것.인공양념과 조미료를 사용하는 일본김치보다 값이 비싼데도 한국김치를 즐겨 사먹는 이유다.셋째는 김치가 건강뿐 아니라 미용에도 좋다는것.고춧가루에 몸의 지방을 분해하는 성분이 있고 김치의 섬유질이 장운동을 활발하게 한다.한국여성의 피부가 아름다운 이유는 김치를 즐겨먹기 때문이라고 김치 먹는 일본인들은 생각한다는것. 농촌진흥청 농촌생활연구소가 한국인과 일본인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김치 기호도」조사결과 일본인들이 김치를 더 좋아하는것으로 나타났다.맛 냄새 색 질감등 김치에 대한 항목별 기호도에서 평균 7.7점(만점 9점)으로 한국인들의 6.3점보다 더 높았다는것.반면 한국의 남자어린이 10.4%와 도시 여대생 5.8%는 아예 김치를 먹지 않으며 매끼 김치를 먹는 여대생은 31.7%에 불과했다. 이러다가 김치종주국의 위치를 일본에 넘겨줄까 겁난다.지난 93년 한국방문에 앞서 일본에 들른 클린턴 미국대통령부부에게 김치를 대접한 일본은 94년 한국에 앞서 김치의 국제규격화를 시도한 바도 있다.세계 김치시장의 70%는 일본의 「기무치」가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일본인들이 한국김치를 좋아하는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우리가 김치를 외면하고 김치의 지적소유권을 잃는것은 어리석은 일이다.〈임영숙 논설위원〉
  • 자카르타 도심 병력배치/야 주도 유혈 반정시위로 긴장 고조

    【자카르타 AFP 연합】 27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벌어진 야당 지지자들의 반정부 시위에서 2명이 숨졌다고 군대변인이 28일 밝혔다. 아미르 스야리푸드딘 준장은 『2명의 사망자 중 1명은 병원에서 심장발작으로 숨졌고 다른 1명은 방화의 피해를 입은 은행의 경비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외에도 21명이 부상했다면서 전날 시위참가 용의자로 연행된 자는 앞서 경찰소식통이 밝힌 1백81명이 아니라 1백71명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다른 소식통들은 부상자수가 최고 87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서방 외교소식통들은 이와관련,27일 시위 참가자수가 7천∼1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스야리푸드딘 준장은 자카르타는 28일 진정을 회복했으며 더이상의 소요를 방지하기 위해 군병력이 시내 도처에 포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 록히드,군 장비 가격 “뻥튀기”/비용 이중계상

    ◎한국 등 수출 「랜턴」 1억4천만불 부풀려/지난해 미 연방법원에 제소당해 【올랜도(미 플로리다주) AP 연합】 미국의 방위산업체인 「록히드 마틴」사가 한국과 미국,이스라엘 등 8개국에 전투기용 야간조준장치 「랜턴」을 판매하면서 판매가격을 1억4천7백만달러나 부풀린 혐의로 미연방법원에 제소된 사실이 밝혀졌다. 랜턴 개발계획의 비용관리 책임자였던 앨버트 캠벨은 록히드사가 미공군을 포함한 8개국과 60억달러 상당의 랜턴 시스템 판매계약을 체결하면서 서류를 위조하고 비용을 이중계상,가격을 과다책정했다며 지난해 법원에 이를 제소했는데 지난주에야 미올랜도 지방법원에서 이같은 사실이 공개됐다. 캠벨은 개인이 세금이 잘못 지출되고 있다고 생각할 경우 미국정부를 대신해 기업을 제소할 수 있도록 규정된 「부정행위 고발법(FCA)」에 의거,록히드마틴을 제소했다. 캠벨의 변호사인 앤드류 그로소는 『록히드사의 이같은 가격조작을 미국정부가 묵인했다』며 정부에 제시한 가격이 잘못된 경우는 과거에도 많았지만 『이번처럼 많은 나라가 개입된 경우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록히드측은 23일 변호사들이 이같은 주장을 분석중이며 대응방법을 모색중이라고 밝혔다. JSA연구소의 국방전문가 폴 니스베트는 계약자와 정부간에 가격분쟁이 발생하는것은 드문 일이 아니며 미국정부가 이 분쟁에 개입할 경우 5억달러의 벌금을 물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록히드 마틴과 공급계약을 체결한 나라는 한국 미국 이스라엘 이집트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그리스 바레인 등이다.
  • 장성·영관급 장교 등 진급 예정인원 발표/국방부

    국방부는 16일 97년도 준장 진급예정인원 65명을 비롯한 대령·중령·소령 등 내년에 진급할 육·해·공군 장성급,영관급 장교 진급예정인원을 발표했다.
  • 경복궁모임·신촌모임·전씨 최 대통령 면담/왜 같은 시각에 열렸나

    ◎검찰·전씨 “고의”­“우연” 공방/검찰­경복궁모임은 사전모의 쿠데타 실행과정·정 총장 연행위해 장태완씨 등 「신촌」에 격리/전씨­신촌모임은 조홍씨가 진급 자축위해 마련/대통령 면담일정은 비서실서 지정 통보 12·12 당시 「경복궁 모임」과 「신촌 모임」,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최규하 대통령 면담 등 세가지 일정은 공교롭게 하오 6시30분으로 잡혔었다.고의인가,우연의 일치인가. 「경복궁 모임」은 유학성·황영시·노태우 장군 등 신군부가 수경사 30경비단에서 만나 군사 쿠데타를 주도한 회동을 말한다. 「신촌 모임」은 수경사 조홍 헌병단장이 준장에 진급한 것을 자축한다는 명목으로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김진기 헌병감,정병주 특전사령관에게 신촌의 한식집에서 저녁을 대접한 자리다. 검찰은 경복궁 모임이 신군부의 치밀한 쿠데타 사전모의와 실행과정을 잘 보여준다고 강조한다.전 사령관이 정승화 육참총장 연행일을 12일로 잡고 노씨 등에게 미리 모이라고 연락했다는 것이다. 신군부는 정 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이를 막으려는 육본측 병력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신촌 모임은 정총장 연행을 위해 정총장 계열인 장사령관 등을 격리키 위한 술책,즉 「양동작전」이었다고 밝혔다. 전 피고인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정총장 연행 배경을 원로 장성과 소장파 장성들에게 알려 협조를 얻기 위한 게 경복궁 모임의 취지라는 주장이다.신촌 모임은 조단장이 마련한 자리로 자신도 초청대상이었을 뿐이라고 한다. 다만 조단장이 추천한 날짜를 자신이 12일로 바꿨다고 밝혔다. 최대통령의 면담 스케줄도 비서실이 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당일 상오 면담을 요청했더니 비서실이 하오 6시30분으로 정해주었다는 것이다. 면담의 목적은 정총장 연행에 대한 재가를 얻기 위해서였다.면담과 보고는 제때 이뤄졌다.그러나 노재현 국방부장관을 배석시키라는 최대통령의 지시와 노국방부장관의 소재파악이 안 돼 결재는 13일 상오 5시10분쯤 이뤄졌다. 전사령관은 신촌 모임에 불참했고,경복궁에는 당일 하오 9시부터 30분 동안 머물렀다. 이양우 변호사는 『대통령 면담일정이 당일에 결정됐기 때문에,두 모임에 이를 맞췄다는 것은 오해』라고 주장했다. 같은 시간에 있었던 세 모임의 실체가 12·12 진상규명의 열쇠인 셈이다.〈박선화 기자〉
  • 세일정보통신 사장 최대용씨

    한국전력공사의 전액 출자회사인 세일정보통신은 13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임기가 만료된 이호림 사장 후임에 한전 부사장을 지낸 최대용씨를 선임했다. 감사에는 예비역준장 출신인 김일수씨,부사장에는 한전 자재본부장을 지낸 손봉업씨를 각각 임명했다.
  • 3군장성 인사/5명 중장·11명 소장 승진

    국방부는 13일 중장 승진 5명,소장 승진 11명등 육·해·공군 장성급 승진 및 전보인사를 단행했다. 이날 인사로 국방부 박용옥 정책실장(육사21기)이 소장에서 중장으로 승진했으며 정보사령관 서태석 소장(육사21기)은 중장으로 승진,국방부 정보본부장에 보임됐다. 이와함께 정영진 육본 정보작 전 참모부장(육사23기)과 안성용 육본 군수참모부장(육사23기)이 중장으로 승진,각각 군단장으로 진출했으며 해군에서 이지두 소장(해사19기)이 1계급 승진,해사교장에 발령됐다. 이어 육군 오치운 준장(육사25기)등 9명이 1계급 승진함과 동시에 사단장에 진출하고 육군 헌병감 조래원 준장(학군5기)이 소장으로 진급하는 한편 해군에서 김명환 준장(해사22기)이 해병대 사단장에 승진,발령됐다. 또한 공군은 작전사령관 배양일 중장(공사12기)을 참모차장에 전보하는 한편 박춘택 참모차장(공사12기)을 작전사령관으로 보임했다. 이번 인사로 육사 26기가 처음으로 사단장에 진출했으며 군단장으로 진출한 정영진 장군은 지난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20사단 61연대 대대장으로 광주에 투입된 경력을 갖고 있다. 한편 국방부는 이달중으로 보임 2년이 되는 장성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유임시키는 한편 내주중으로 후속 인사를 단행할 계획이다.〈황성기 기자〉
  • 군출신 16명… 재야 6명…/당선자 출신별 분류

    ◎군출신­45명 출전해 35%가 “금배지”/자민련 6·신한국 5·무소속 3명 제15대 총선에는 45명의 영관장교 이상 군 출신 인사가 후보로 나서 35%인 16명이 지역구와 전국구를 통해 금배지를 달게 됐다.36명이었던 지난 14대때보다 군 출신 국회의원이 20명이나 줄었다. 정당별 군출신 당선자는 자민련이 6명으로 가장 많고 신한국당 5명,국민회의 2명,무소속 3명의 순이다. 신한국당에서는 4선을 기록한 경남 산청·함양의 권익현(육사11기·예비역육군대령),인천 중동·옹진의 서정화(육사 19기·예비역 육군중령)씨 등 4명이 지역국에서,박세환 예비역 육군대장(ROTC 1기)이 전국구로 국회에 진출했다. 자민련에서는 충남 부여 김종필 총재(육사 8기·예비역 육군준장)가 7기 후배로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이진삼씨(육사15기)의 도전을 가볍게 물리쳐 8선을 기록했다.대국 동구갑에서 노태우 전대통령의 처남인 김부동씨(육사 11기·예비역 육군중장) 등 군출신 12명이 출전,절반이 넘게 당선됐다. 국민회의는 광주 남구 림복진씨(육사 7기·예비역 육군소장)는지역구로,천용댁씨(육사16기·예비역 육군중장)는 전국구로 국회에 진출했다. 무소속으로는 신한국당에서 탈당한 허화평 의원(육사17기·예비역 육군준장·구속중)이 경북 포항갑에서,권정달씨(육사15기·예비역 육군준장)는 경북 안동을에서 당선됐다.그러나 12·12와 5·18의 주역으로 옥중출마한 정호용(육사 11기·예비역 육군대장),허삼수(육사17기·예비역 육군준장)씨는 낙선하는 등 신한국당과 등을 진 인사들도 희비가 엇갈렸다.〈황성기 기자〉 ◎가신­부산·호남출마자 전원 당선/서초을 김덕용 의원 3선 기록/한화갑씨 압승… 박지원씨 고배 이번 총선에서는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국민회의총재,김종필 자민련총재를 측근에서 보좌해 왔던 이른바 「가신」들의 희비도 엇갈렸다. ▷신한국당◁ 김영삼 대통령의 비서출신들 가운데 부산지역에 출마한 후보들은 전원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사하갑)과 박관용전청와대비서실장은 각각 5선의 고지를 점령했다.박종웅 의원(사하을)은 재선에 성공했고 홍인길 전 총무수석(서구),김무성 전 내무차관도 첫배지를 달았다. 서울에서는 김덕용 의원(서초을)이 3선을 기록했다 경기 가평·양평의 김길환 전 청와대비서관은 치열한 접전끝에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상도동 출신은 아니지만 한승수 전 청와대비서실장(춘천갑)이 재선에,윤원중 전 청와대비서관이 전국구로 배지를 달았다.〈김경홍 기자〉 ▷국민회의◁ 동교동캠프 역시 텃밭격인 호남에 출마한 가신들은 전원 당선됐다.정동채 총재비서실장이 광주서구에서 승전보를 올렸으며 공천과정에서 이영권·유인학 의원 등 현역의원을 따돌린 김옥두 의원은 영암 장흥에서,한화갑후보도 김대중 총재의 출신지인 신안에서 압승했다.전북에서 김총재 비서출신인 최재승 의원이 익산갑에서 재선고지에 올랐고,민주당 김원기 공동대표에 맞서 정읍에 표적공천했던 윤철상 사무부총장도 금배지를 달았다. 반면 수도권 동교동 가신들의 성적표는 반타작 수준이었다.서울의 도봉을의 설훈후보와 광명갑의 남궁진 의원이 어렵게 당선됐다.하지만 부천 원미을의 배기선후보와 부천 소사의 박지원 대변인은 분루를 삼켰다. ▷자민련◁ 광의의 가신그룹인 이긍규 총재비서실장이 충남서천에서 당선됐으나 광운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JP비서였던 장일후보는 도봉을에서 낙선했다.〈오일만 기자〉 ◎여성계­추미애·임진출씨 지역구 점령/추씨­남성후보 5명 따돌리고 “승전”/임씨­보수성 강한 고부서 “4전5기” 맹렬여성 2명이 지역구에서 금배지를 획득했다. 현직 판사로 정치에 입문,화제를 모았던 서울 광진을의 추미애 당선자(37·국민회의)와 경주을의 임진출 당선자(54·무소속). 85년 12대 총선때 서울 성북갑에 출마했던 김정례전의원이후 11년만에 여성지역구의 맥을 잇는 주인공들이다. 추씨는 경북출신으로 국민회의에 입당,지역성 타파의 계기를 제공했고 림씨는 보수성이 강한 고도에서 4전5기의 신화를 창조하는 우먼파워를 과시했다. 정치초년생인 추당선자는 중견 언론인출신,재선 현역의원등 5명의 남성후보을 여유있게 따돌렸다.전통적으로 야세인 지역특성과 당지도부의 각별한 배려등도 승리의 요인이 됐다.세탁소집 딸이라는 서민출신의배경을 대처전 영국수상과 같은 이미지로 연결시킨 홍보전략도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막판까지 신한국당의 백상승후보와 접전을 벌였던 림당선자는 12대때부터 「한우물」을 팠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94년 민자당 서수종의원의 갑작스런 사망에 따른 보궐선거때는 여당 간판으로 출진했으나 민주당바람에 휩쓸려 또다시 좌절을 겪었다. 신한국당 공천탈락에도 굴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또다시 도전,마침내 「오뚝이」신화를 일궈냈다. 림씨는 『이번 승리는 모든 여성과 딸을 둔 부모의 승리』라며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번에 전국구로 원내에 진출하는 여성은 신한국당의 권영자·오양순·김영선씨와 국민회의 정희경·신낙균·한영애씨,민주당 이미경씨등 7명이다.〈전경하 기자〉 ◎언론·방송인­맹형규씨 등 앵커출신 돌풍/박성범·이윤성·정동영씨 등 승리/심재철씨등 기자출신들은 고배 「앵커 출신 돌풍,기자출신 참패」 이번 총선의 결과다. KBS 9시뉴스 앵커였던 박성범씨(서울 중구·신한국당),역시 KBS 9시뉴스 앵커 출신 이윤성씨(인천 남동갑·신한국당),SBS 8시 뉴스 메인 앵커 맹형규씨(서울 송파 을·신한국당),MBC 뉴스 앵커 정동영씨(전주 덕진·국민회의) 등 TV 3사 「4인방」이 모두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정씨는 9만7천8백58표를 얻으며 전국 최다득표의 영광도 안았다.박씨는 4선 관록의 국민회의 정대철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MBC 아나운서를 지낸 변웅전씨도 충남 서산·태안에서 자민련 후보로 출마,「금배지」를 달게 됐다. 반면 기자출신 「정치 초년생」들은 고배를 들었다.극명한 대조였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경기 군포에서 출마한 심량섭씨(자민련)는 3등으로 낙선했고 경기 하남·광주에서 나온 전 한겨레신문 기자 문학진씨(국민회의)는 신한국당의 정영훈후보에게 밀려 분루를 삼켰다. 전 동아일보 북경특파원으로 서울 광진 을에 출마한 신한국당의 김충근씨도 국민회의 「추미애 돌풍」에 휘말려 좌초했고 경북 고령·성주의 송인식 전 세계일보 편집부국장(자민련)도 낙선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전 MBC기자 심재철씨(신한국당·경기 안양동안 갑)는 가수 최희준씨(59·국민회의)에게 밀렸고 인천 연수에 출마한 정구운 전 국민일보 편집국장(51·국민회의)도 고교동창인 서한샘 후보(52·신한국당)에게 6천여표차로 쓴맛을 봤다. 이밖에 국민회의가 영입한 송파 갑 김희완 후보(40·전 중앙일보기자),인천 부평 을 신용석 후보(55·전 조선일보 논설위원),마포 갑 김용술후보(56·전 경향신문 편집국장)도 모두 낙선했다. 대구 달성의 전 연합통신 부국장 김정훈씨(자민련)와 강원 홍천·횡성의 전 동아일보 기자 원용강씨(무소속)도 고배를 마셨다.〈김성수 기자〉 ◎재야­이우재씨 등 대거 여의도 입성/「색깔론」 주장 유권자들에 안먹혀 이번 총선에서는 무엇보다 재야출신 인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특히 문민정부 출범 이후 여당에 영입된 민중·노동운동가 출신 인사 가운데 상당수가 기성 정치인의 높은 벽을 허물어 주목됐다. 70년대 학생운동의 상징격인 국민회의 김근태씨는 서울 도봉갑에서 재선 경력의 신한국당 양경자후보를 물리쳤다.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중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으로 투옥된 이래 20여년 동안 수배·투옥을 겪었던 학생운동 수난사의 주인공이다.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학생연합」(전학련)의장 등을 맡아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2년8개월의 옥고를 치렀던 서울 영등포 을의 국민회의 김민석씨는 최연소 당선의 영예도 거머쥐었다. 경기 부천 소사에서 전 국민회의 대변인 박지원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김문수씨도 5공 때 인천 5·3사태를 주도하는 등 20여년을 노동투쟁에 몸바쳐왔다.94년 신한국당에 입당했을 때 「색깔논쟁」이 일기도 했지만 이번 당선으로 잡음을 완전히 잠재웠다.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금천과 서울 은평을 야당 중진의원을 물리치고 당선된 이우재씨와 이재오씨는 옛 민중당의 대표와 사무총장을 지낸 민중운동가 출신. 지난 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던 학생운동권 출신 설훈씨(서울 도봉을)도 운동권 선배인 민주당 유인태후보를 물리쳤다. 김근태씨와 함께 재야운동의 양축을 이뤘던 서울 동작갑의 장기표씨(민주당)도 14대에 이어 낙선했다.〈김태균 기자〉
  • 「북 DMZ 의무포기」 파문­관계부처 움직임

    ◎“무력도발의 전조” 심야 긴급회의/북 선언 3시간만에 대응책 신속 발표­안보회의/소규모 국지전 대비 군작전태세 만전­국방부 정부는 북한측이 4일 하오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유지 및 관리에 대한 의무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자 이를 「무력도발」의 전조가 될 수 있는 중대한 사태로 보고 긴급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를 소집하는등 이날 심야까지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청와대◁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측의 담화 발표 내용을 유종하 외교안보수석으로부터 보고받은뒤 「철저한 대책」을 세우도록 지시했다고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전했다. 유수석은 이에따라 바로 통일원과 연락을 취해 안보조정회의를 소집하고 국방부도 상응한 대비태세를 갖추도록 긴급 연락. 청와대는 또 유수석을 비롯한 외교안보수석실의 외교·안보·통일비서관실은 이날 밤늦게까지 비상근무를 하면서 북한측의 속셈과 함께 이후 전개될 상황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안보조정회의◁ ○…정부는 4일 하오 5시 북한이 평양방송을 통해 비무장지대 의무 포기를 선언하자3시간만인 하오 8시 권오기 통일부총리 주재로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정부의 대응책을 발표하는등 신속한 대응태세를 보였다. 정부는 당초 이날 안보조정회의에 앞서 외무부와 국방부의 성명서를 각각 준비했으나 북한의 도발기도를 강력히 차단한다는 차원에서 국방부가 마련한 안을 채택하기로 결정. 김광일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양호 국방부장관은 이날 조정회의가 시작되기 앞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이같은 도발적 행동은 이미 예견됐던 것』이라며 『이때문에 김대통령이 이날 전방부대를 시찰하는등 정부가 준비태세를 철처히 취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장관은 『북한의 주장은 구체성을 결여,내용이 모호하다』고 분석하고 『북한이 이날 선언에 따른 즉각적인 후속조치는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 통일원의 한 당국자는 『북한의 이날 선언은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파괴하기 위한 지속적인 압박 과정이므로 아직 무력출동 여지는 남아있다』고 신중론을 펴기도.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에서 열린 이날 안보조정회의는 드물게 언론에회의 도입부분을 공개했는데 한 당국자는 『북한의 호전적 도발에 대해 정부가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 ▷국방부◁ ○…국방부는 북한의 비무장지대 임무포기선언이 나온 직후인 이날 하오 5시50분쯤 박용옥 정책실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갖는 등 북한이 「선언」을 발표한 배경분석과 대책마련에 분주한 모습. 국방부는 이날 「선언」이 북한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해온 정전체제 무실화 책동의 하나로 보고 있으나 「선언」에 따른 소규모 국지적 도발에 대비,이달말까지로 예정된 동계작전태세를 점검하는 등 군사대비태세에 만전을 기하라고 시달했다. 한편 이양호 국방부장관은 이날 저녁으로 예정됐던 합동참모본부의 소장·준장급 간부들과의 만찬을 취소하고 통일안보조정회의에 참석.〈황성기·이도운 기자〉
  • 전 총무처장관 최창윤씨 별세

    전 총무처장관 최창윤 국제교류재단이사장이 30일 상오7시20분쯤 서울 삼성의료원에서 지병으로 숨졌다.향년 57세. 고인은 지난 62년 육사를 졸업(18기)한 뒤 육군사관학교와 국방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83년 준장으로 예편했으며 서울대와 미 하와이대에서 수학,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5공화국 출범당시 국보위 외무분과위원으로 참여한 뒤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관계에 진출,6공들어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과 공보처 장관을 지냈다. 김영삼 대통령이 민자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 총재비서실장으로 발탁돼 보좌했으며 문민정부 첫 총무처장관을 거쳐 95년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으로 일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주인숙씨(51·의사)와 딸 윤희(28)·주희씨(27),막내아들 현진씨(19·경희대1년)가 있다. 발인은 3일 상오9시 삼성의료원,장지는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묘지. 연락처 교류재단 757­3463∼5,삼성의료원 3410­0469
  • 「빛 바랜 별」50개 피고인석에/12·12재판의 각종 진기록

    ◎「최장기 미제사건」 16년만에 해결/수사기록 13만쪽… 높이 4m 넘어 11일 첫 공판이 열린 12·12 및 5·18사건은 그 규모와 성격에 걸맞게 여러가지 진기록을 양산했다. 먼저 사건발생 16년여만에 법적 단죄가 시작됐다는 점이다.형사소송법에는 범죄행위가 끝난 시점부터 최장 15년이 지나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무슨 범죄라도 이 기간을 넘기면 면죄부가 주어진다. 그러나 「12·12…」사건은 특별법의 제정으로 공소시효라는 걸림돌이 사라졌다.사실상의 「최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하는 셈이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비롯한 피고인 16명의 화려한 면면도 손꼽힌다.모두 군·관·정계에서,또 이 경계를 넘나들며 한 시대를 좌지우지하던 인물들이다. 전직대통령을 빼더라도 정호용·주영복씨 등 11명은 장관급 공직을 맡았었다.허삼수·허화평·박준병씨 등 5명은 각각 1∼3선의 전직국회의원이거나 현역의원이다. 전·노씨와 유학성·황영시·정호용·박준병·최세창·이희성·차규헌·주영복씨 등 10명은 4성장군 출신이다.장세동(중장),허화평·허삼수·이학봉씨(준장) 등을 합하면 모두 50개의 떨어진 별이 피고인석에 서는 셈이다. 수사기록 역시 방대하다.12·12사건은 2만3천여쪽,5·18사건은 11만4천여쪽으로 모두 13만7천여쪽이다.차곡차곡 쌓을 경우 높이가 4m이상이며 1분에 한장씩 기록을 검토한다 해도 꼬박 석달이상 걸린다. 21명으로 구성된 변호인단도 메머드급이다.전씨에게만 이양우·석진강·전상석 변호사 등 7명의 초중량급 변호인이 동원됐다. 삼엄한 경찰의 경계 역시 기록이다.서울·안양구치소와 영등포교도소 등 3곳에서 오는 호송버스의 길목과 법원주변에 각각 6개 중대 7백20명의 경찰이 배치됐다.
  • 이종찬 특수본부장­전·노씨 인생유전

    ◎대위·준장으로 만난 인연/검사·피고로 재회 어제는 특수전사령부(특전사)의 검찰관과 여단장.당시의 대위와 준장이 오늘은 수사본부장과 내란죄의 피고인으로 만났다.인생유전의 기연이다. 전자는 12·12 및 5·18사건의 특별수사본부장인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검사이고 후자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다. 이본부장은 지난 70년 사시 12회에 합격한 뒤 73년부터 75년까지 특전사에서 검찰관으로 복무하다 대위로 전역했다.당시 사령관은 조문환소장(예비역 중장·87년 작고)이고,1공수특전단장이 전두환준장. 복무중 사령관이 조장군에서 정병주소장으로 바뀌었고 3공수여단장은 노태우준장,7공수여단장이 정호용준장이었다.이검찰관은 정사령관(89년 작고)과 전·노·정여단장을 모신 셈이다. 묘하게도 이들의 개인적 인연은 거의 없었다.단지 검찰관으로서 사령부의 공식회의나 행사장에서 경례를 붙이는 정도였다. 검찰관이 당시의 상관들을 기억할 뿐,그들이 당시의 검찰관을 기억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이검찰관은 군에서결혼하던 75년 상관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다. 5∼6공시절에도 군에서의 인연을 가슴에 묻고 주어진 자리를 지켰다.혹시라도 시류에 영합했다면 그들의 변호인으로 섰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본부장은 오는 11일의 12·12 및 5·18사건 첫 공판준비에 바쁘다.군대에서의 상관이었지만 이제는 치열한 법리논쟁을 벌여야 할 상대다. 이본부장은 『피고인들을 일반인처럼 철저히 신문하되 전직대통령인 만큼 예우를 갖추라』고 수사검사들에게 주문한다.특별한 심경이 배어 있는 것인지 흥미롭다.
  • 귀순 인민군 최주활 상좌 증언서 밝혀진 「새로운 사실들」

    ◎김정일 군부 4중감시… 저항 원천봉쇄/소장급이상 「장령」 활동상황 매일 낱낱이 체크/기상부터 취침까지 온종일 움직임 기록 보고 북한군부는 김정일에 의해 완전장악되고 있으며 국가정책과 관련,군부의 이의제기나 반대는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또한 북한의 모든 정책은 최종적으로 김정일의 결심을 받은 후에 집행되고 있으며 이같은 체제와 메커니즘에 불만을 품을 경우 살아남을 수 없다는게 귀순자의 증언이다.다음은 서울신문과 북한군 귀순자 가운데 최고 계급자인 최주활 상좌(우리의 중령·95년 10월 귀순)와의 대담(2월17일)을 통해 밝혀진 북한의 「새로운 사실」들이다. ▷김정일 안 거치고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산하 대외사업국이 사업과 관련,김정일로부터 받는 「친필지시」는 연평균 1백60건이 넘는다.예를 들어 러시아군사대표단을 초청할 경우 초청 대상자 선정에서부터 구체적인 사업내용에 이르기까지 수십건에 달하는 문건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김정일의 수표(결재)를 받아야 한다.대외사업국 1개국의결재 건수가 이 정도이므로 정무원 산하 부서 등을 통틀을 경우 김정일의 결재서류는 산더미가 될 수 밖에 없다.지난 86년 정치국원이며 평남도당 책임비서겸 인민위원장인 서윤석은 부식난 해결을 위해 평양지역 학생을 대량 동원,달래캐기에 나선다는 계획을 세웠다.사안의 성격으로 보아 그가 능히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이었다.그러나 그의 전결은 통하지 않았다.고작 달래채취를 위한 학생동원이었지만 김정일의 결재가 있은 후에야 가능했다. 북한은 지난달 수재지원과 관련,더 이상 외국으로부터의 원조를 받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그러면서 「군부의 반대」를 이유로 들었다.이같은 북한측 태도변화와 관련,서방국가들은 강경파인 군부와 외교부로 상징되는 온건파간의 파워게임에서 외교부가 밀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했다.그러나 최씨에 따르면 그같은 발언은 「전술적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외교부 관리의 그같은 발언은 어느 단계에 이르면 『군부가 반대한다』는 발언을 흘리도록 한 김정일의 지시에 따른 것일뿐 실제로 군부가 국정에관여,이래라 저래라 할 여지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인민무력부의 「상전」은 당중앙위 조직부 13과◁ 인민무력부는 조선국방위원회의 직접 지도와 통제 아래 1백만 이상의 인민군을 지휘,통솔하는 힘 센 부서다.특히 김일성 사망후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장령(장군)들의 서열이 당비서들을 앞지르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북한에서 군부의 위상이 파격적으로 높아진게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그러나 당이 지배하는 국가답게 인민무력부 머리 꼭대기에는 이 부서의 소관 업무를 지도,감독하는 상전이 따로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바로 당중앙위 조직부 13과다.비록 서열은 낮지만 그 끗발은 하늘을 찌른다.바로 『당중앙위 일꾼은 나로부터 위임을 받아 과업을 하므로 나를 대하듯 하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조직부 13과가 떴다 하면 군지휘관들은 이들에게 잘보이기 위해 갖은 아양을 다 떤다. ▷군지휘관 행동일지로 통제◁ 북한에서 군부가 중심이 된 조직적 저항이나 반발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지휘관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겹겹의 감시체제에 의해 낱낱이 체크돼 세규합이 어렵기 때문이다.특히 소장(우리의 준장)급 이상 장령들의 경우는 매일 매일의 활동상황이 총참모부 작전국에 의해 일지형식으로 체크되기 때문에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북한군 장령들을 옥죄는 「4중감시 통제장치」는 다음과 같다. ⑴당조직선체계:인민무력부 총정치국 조직부 당생활지도과 소관.소장(우리의 준장)이상의 장령에 관한 모든 분석자료를 6개월에 한번씩 막바로 김정일에게 보고한다. ⑵당통보선:역시 인민무력부 총정치국 조직부 통보과에서 담당하며 수시로 소장 이상 장령들의 「객관적 자료」를 김정일에게 보고한다. ⑶인민군보위국 미행자료:소장 이상 장령들의 사상동향과 교우관계,매일매일의 동정 등을 파악,보고한다 ⑷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작전국 행동일지:이 행동일지에는 장령들의 모든 활동내용이 세밀하게 담긴다.아침기상부터 취침까지의 전일 움직임이 망라되기 때문에 이 감시망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따라서 10명 이상의 회동이나 세력의 결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할뿐아니라 설사 조직적 모의가 이뤄지더라도 어디서든 꼬리가 밟혀 군부저항은 철저히 봉쇄될 수 밖에 없다. ▷군실세 서열 직책과 무관◁ 북한군의 실세가 누구냐를 두고 한국과 서방세계에서는 해석이 분분하다.그러나 북한에선 고위직을 지키고 있다고 해서 그가 꼭 실세는 아니라는 것이다.한마디로 김정일과의 친소관계는 직책으로 설명되지 않고 ▲그가 김정일로부터 어떤 고급 주택과 승용차를 제공받고 있느냐와 ▲김정일이 얼마나 자주 그의 집을 찾느냐로 평가된다고 한다.김정일이 그의 집을 무시로 방문,군인사등과 관련해 허심탄회하게 견해를 묻곤한다면 직책과 무관하게 김정일의 실세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씨는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김광진 차수,인민무력부 총참모장 김영춘 차수,인민무력부 총정치국장 조명록 차수,인민무력부 총정치국 부총국장 박재경 상장,인민무력부 총정치국 선전부장 한동근 소장,인민무력부 보위국장 원응희 대장,총참모부 작전국장 김명국 대장,제3군단장 장성우 대장 등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인민군당위비서처서 군내의 모든 정책 결정◁ 북한군의 성격은 「노동당의 무장력」이란 점에서 잘 드러난다.이에 걸맞게 인민군과 관련한 모든 정책결정은 인민군내 당위원회 비서처에서 내려진다.비서처의 구성멤버는 인민무력부장,총정치국장,보위국장,총참모부 총참모장,총참모부 작전국장 등 5명이다.의장은 인민무력부장이 아닌 총정치국장이 맡으며 전원합의가 이뤄져야만 김정일에게 품신이 가능하다.서열로 보면 인민무력부장이 상위직이긴 하나 그가 김정일에게 단독보고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그만큼 인민군내서 총정치국장이 점하는 비중은 막중하다는 얘기가 된다.
  • 북한 바로 알고 바로 대처하자:상

    ◎귀순 북한군 고급장교가 진단하는 오늘의 북 실태/“북 고위층 서방비디오 돌려봐 「바깥」 알지요”/겉으론 충성… 자녀 해외빼돌리기 계속 늘 것/인민군 4중감시,조직적 저항·반란 불가능/주민 굶어도 군량미 안풀어… 전쟁 1년 수행능력 □대담 이웅평 현공군대령 최주활 전 인민군 상좌 최근들어 북한 내부가 심상치않음을 감지케하는 조짐이 여러곳에서 나타나고 있다.외교관 부부의 망명에 이어 김정일 전 동거녀의 서방탈출 및 평양주재 러시아대사관에서의 망명기도사건이 잇따라 일어나 북한 체제가 곧 붕괴될지 모른다는 견해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서울신문은 지난 95년 10월에 망명한 최주활 상좌와 83년에 귀순한 이웅평 대령,이동복 전 안기부장특보와 정용석 단국대교수등 장교출신 귀순자 및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연쇄 대담을 통해 북한이 과연 붕괴위기에 직면하고 있는지를 정밀 진단하고 우리의 대처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긴급 점검한다. ▲이웅평 대령=저도 공군에 근무하면서 북한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해오고 있습니다만 최근의 탈북·망명사태를 보면 뭔가 심상치않다는 생각을 갖게됩니다.최상좌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최주활씨=최근 증가하고 있는 탈북자의 신분을 보면 고위 계층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이들이 탈북을 하는데는 그들 부모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즉 북한의 고위 공직자들이 겉으로는 김정일에 절대충성을 맹세하고 있지만 집에서는 다른 소리를 하고 있다는 얘깁니다.감시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집에 들어오면 열악한 경제문제나 김일성부자의 권력세습 등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때문에 자녀들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아 북한정권의 장래에 회의를 품고 탈북을 결심하게 된다고 봅니다. ○군장성 활동 1일 체크 물론 자유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실망도 작용했을 것이구요.사실 북한당국이 단속은 하고 있습니다만 외교일꾼이나 외화벌이 일꾼 등을 통해 서방 비디오가 많이 유입돼 상층부에선 암암리에 돌려보고 있습니다.이를 매개체로 하여 외부 사조가 적잖이 틈입하고 있는거죠.그러다보니 자연 상층부에선 바깥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게되고 북한체제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일부 고위층이 자녀들을 외국으로 빼돌리는 것도 내 자식들만은 북한이 무너져도 살아남게 하겠다는 부모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이대령=우리 언론의 보도를 보면 북한이 곧 붕괴될 것 같은 데…. ▲최씨=탈북자가 조금 늘어나고 있다고 해서 당장 북한정권이 무너진다고 예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저는 북한정권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유지될 것으로 봅니다.그 이유는 감시와 통제체제가 완벽해 조직적 저항이나 반란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인민군의 경우 감시체제가 4선으로 구축돼있습니다.당조직선보고,당통보선보고,보위국 미행,작전국 행동일지등을 통해 꼼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소장(우리의 준장)이상 고급 장령의 경우 매일 활동상황이 총참모부 작전국에 의해 일지형식으로 체크되고 또한 보고됩니다.따라서 10명 이상 규합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아무리 치밀하게 조직적 모의가 이뤄지더라도 이 4선 감시체계를 빠져나가기란 도저히불가능합니다.그러니 특히 군부의 반정부활동이나 쿠데타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었는 일입니다. ▲이대령=최상좌 말씀대로 단속의 문틈을 비집고 들어간 외부정보가 특히 북한 고위층 자녀나 외화벌이 일꾼들의 탈북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동구권 몰락에 이어 소련마저 붕괴되자 북한은 급변하는 바깥정세에 적잖은 불안을 느껴왔습니다.북한이 『부르조아 사조는 맹아기에 짓밟아 버리라』는 김정일 지시를 충실히 따르고는 있습니다만 88서울올림픽 이후 전파된 소문,즉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잘살고 있다는 정보가 확산된 이후 단속이 제대로 되질 않는 것 같습니다.때문에 집단적인 탈출은 어려울지 몰라도 재외공관이나 무역관련회사등을 통한 특권층이나 무역일꾼들의 망명사태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그러나 근간에 급증하고 있는 북한주민들의 탈북이 북한정권의 붕괴로까지 연결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공산당이 지배하는 북한은 현재 2백30만에 가까운 당원을 갖고 있습니다.이 조직이 살아 움직이는 한 북한은 버텨나갈 것입니다.독재와 통제의 울타리를 벗어난 후세인의 사위가 그렇게 비난을 퍼부어도 이라크는 여전히 건재하잖습니까.또 쿠바의 경우도 똑같지요.결코 남일 수 없는 카스트로의 딸이 미국으로 망명했지만 쿠바도 까닥도 않고 있습니다.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북한 고위층들은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탈북을 시도할 경우 3만∼4만명 희생시키는 것 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것입니다.결론적으로 북한은 외력이 가해지지 않는 한 스스로 주저않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 빈민 보며 사상학습 ▲최씨=그렇습니다.경제난·식량난이 문제인데 이런 것들도 끝임없는 사상교양과 학습·교화를 통해 대처해나고 있습니다.북한의 관영TV에는 먹을게 없어 죽어가는 일부 아프리카 국가 빈민들의 모습이 자주 방영됩니다.자,봐라.지구상에는 이렇게 못먹고 굶주려 죽어가는 생명들이 많다.그러나 북한은 어떠냐.위대한 지도자 동무의 지도로 인민 모두가 골고루 잘 먹고 잘 입고 살고 있지 않는냐.그러니 북한이야말로 인민의 낙원이다,이런 식으로 쇄뇌를 시킵니다.외부 세계의 정보와 접촉할 길이 없는 북한주민들은 이런 정부의 쇄뇌에 길들여질 수 밖에 없습니다.그러니 체제에 대한 불만도 갖지 않습니다.거기에 덧붙여 북한은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항상 먹을 수 없는 이유로 한국과 미국을 팝니다.즉 한국과 미국이 북한압살을 획책하고 있다,주민들이 항상 이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없는 이유도 대북압살정책에서 나온 경제제재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그러다 보니 주민들의 한국과 미국에 대한 증오심이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또 북한은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한국과 미국이 공격해오려 할 것이기 때문에 전쟁준비를 해야 한다고 교양을 합니다.92년 김정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강냉이밥에 된장을 찍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주의 고수와 국방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말입니다.따라서 북한주민들은 현재 그들이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없는 이유가 한국과 미국의 압살에 대비,전쟁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이 시기만 극복하면 누구나가 잘먹고 잘 살게 된다는 믿음 때문에 불평을 안하는거죠. ▲이대령=최근에 있었던 러시아무역대표부 총격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까.제가 보기엔 우리 언론들이 너무 요란하게 보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물론 특이한 사건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만 북한당국의 통제로 외부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을뿐 북한에서의 총기사고는 흔한 일입니다.저는 이번 사건도 흔히 있는 총기사고의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외신은 문제의 조명길하사가 망명요청을 했다고 전하고 있지만 그 대목의 진위는 좀 더 두고 봐야 진상이 밝혀질 것 같습니다.그리고 이번 사건을 북한붕괴의 한 조짐으로 보는 시각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총기사고 흔히 있는 일 ▲최씨=이대령의 말이 맞습니다.다만 보도 통제로 알려지지 않고있을 뿐이지 평양을 포함,북한에서 인민군에 의해 일어나는 총기사고는 자주 일어납니다.지난 93년엔 평양 고려호텔에서 호위국요원이 총기를 난사한 일도 있었습니다.무기를 휴대하는 군조직의 경우 대개 중대 무기고에 실탄을 보관합니다.이 무기고의 열쇠는 당직자가 보관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실탄을 빼낼수 있습니다.이번 조하사도 아마 그런 식으로 실탄을 빼낸게 아니가 싶습니다.평양방어사령부는 초병들에게 상시 실탄을 휴대케하고 있을뿐 아니라 단속이나 검문에 불응할 경우 그 상대가 누구든 발포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대령=김정일이 공식적인 권력승계를 미루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십니까.김이 북한군부를 완전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있는데…. ▲최씨=저는 김정일의 군부 장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김정일이 지난 70년대부터 김일성후계자로서 모든 일을 처리해오는 과정에서 군부내에도 자기 인물을 요소요소에 포진시켰기 때문에 군부가 세를 규합해 김정일에 반기를 들수는 절대 없습니다.지난해 인민군총정치국장에 임명된 조명록도 따지고 보면 김정일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김정일은 청렴결백한 조명록을 신임해왔습니다.조명록 또한 김정일에게 절대충성을 맹세한 처지입니다.김정일이 조명록을 총정치국장에 임명한 것은 정치위원을 통한 완벽한 군부통제를 겨냥한 포석이라 보여집니다.김정일이권력을 승계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즉 현재 북한이 처한 외화·원료·식량부족 등 소위 3난을 해결,지도자로서의 체면을 세운 뒤 전면에 나서기 위한 과도기여서 권력을 공식승계하지 않고있다는 해석입니다.또 대미·대일관계개선이란 가시적 성과를 주민들에게 내세울 수 있기까지 시기가 무르익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대령=저도 김정일의 군부장악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그 이유는 김정일에 의해 심어진 김정일 사람들이 핵심부서는 물론 군의 중추기관에 박혀있기 때문입니다.김일성사망후 인민군대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도자 동지가 위대한 김일성수령을 모시듯 김정일동지를 모시자』는 교양에서 보듯 현재 김정일에 대한 군부의 충성은 확고한듯 합니다.주지하다시피 북한은 당이 지배하는 국가입니다.동시에 군은 당이 이룩한 혁명업적을 무력으로 담보하는 집단입니다.그러므로 당을 장악하고 있는 김정일에게 군이 장악되지 않는 상황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따라서 근간 대북쌀지원과 관련,북한 외교부관리들이 『군부의 반대로 쌀을 더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한 발언은 「군을 파는」전술적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야합니다.군부가 정부에서 하는 일에 끼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습니다.김정일의 사병이나 다름없는 인민군은 이미 그로부터 『인민군은 오직 전쟁수행에만 신경쓰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입니다.북한에서 김정일 지시없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따라서 외교부 관리가 『군부의 반대로 쌀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발언했다면 이미 어느 시기에 가서 그런 발언을 하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무턱대고 한 발언일 수는 없습니다. ▲최씨=저도 똑같은 생각입니다.현단계는 김정일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한 과제는 피폐해진 경제소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여기와서 들으니 북한이 휴전선에 무력을 증강하고 있다고들 하는데,당장 군사적 모험을 감행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그렇다고 무력도발 가능성을 전면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아마 다음과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김정일은 무력도발의 유혹을 느낄 것입니다.첫째 경제회생에 실패,주민들 앞에 얼굴을 들고 나서기가 어려워질 때입니다.이럴 경우 김정일은 더 이상 주민들을 설복시켜 주체사상과 사회주의의 기둥에 묶어두기가 민망하다고 판단,전쟁을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둘째의 경우도 앞서의 이유와 비슷한데 주민들에게 김일성때부터 약속한 이밥에 고깃국을 먹이지 못하게 될 경우 역사의 오점으로 남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허물을 남쪽에서 찾기 위해 전쟁을 일으킬 것입니다. ▲이대령=북한의 전쟁준비는 이미 완료됐습니다.그리고 전쟁지속능력도 1년 이상 있다고 봅니다.일찍이 김정일은 『현대전은 「알전쟁」,「기름전쟁」이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여기서 말하는 알은 포탄이며 기름은 휘발유나 중유입니다.김정일은 또 『죽어도 군사 비축미를 다쳐선 안된다』고 지시를 내렸습니다.따라서 북한군은 적어도 1년치 이상의 전쟁물자와 군량미를 비축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인민군이 식량난 해결을 위해 군량미를 풀었다는 얘기는 일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일반 주민들이 굶어 죽어도 군량미만은 축내지 않겠다는 게 북한입니다. ○대북 경각심 해이 위험 ▲이대령=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은 북한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알고 바로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전쟁은 전쟁을 치러낼 수 있는 힘을 갖출 때 막아진다』고 했습니다.따라서 대북경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곧 북한이 붕괴될 지 모른다느니 해서 방심할 경우 허를 찌릴 수 있다는 인식의 공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최씨=다시 말하지만 북한은 일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부서질 수 없는 권력집단 입니다.설사 김정일이 죽는다 하더라도 북한정권은 유지되리라는게 저의 생각입니다.김정일이 죽을 경우 북한의 권력집단은 그들이 향유하고 있는 여러가지 특권을 계속 누리기 위해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를 내세워서라도 김일성 일가에 의한 통치를 계속할 것으로 봅니다.왜냐하면 현재 북한에서 김일성 일가를 대신할 지도계층이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며 김일성 일가외에 북한주민들의 충성과 맹목적 복종을 이끌어낼만한 동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 미 항모 한국 언론에 첫 공개/서해서 훈련 인디펜던스호

    ◎구축·순양함 등 수십척 호위… “거대한 기지”/F­14·18등 최신예기 쉴새없이 뜨고내려/위성통해 북한은 물론 걸프만까지 포착 떠다니는 작은 도시였다. 퇴역을 2년 앞두고 정례적인 기동훈련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은 미국 7함대 항공모함 인디펜던스호.37년간 태평양일대를 누비며 자유민주국가의 안전을 지켜온 미 해군의 상징이다. 한국과 미국·일본의 보도진을 태운 20인승 C­2수송기가 서울 인근 ○○기지를 이륙,인디펜던스에 착륙한 것은 1시간만인 16일 낮 12시50분쯤.군산 앞바다 공해상에 폭풍주의보가 내려져 2∼3m가량의 물결이 일었으나 항모는 「움직이는 기지」답게 흔들림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항모전투단의 주력기인 F­14요격기를 비롯,F­18전폭기,E­2C조기경보기,S­3대잠수함초계기 등 함재기가 1백50m에 이르는 2개의 활주로에 쉴새 없이 뜨고 내렸다.데이브 폴라티함장(대령)은 이륙은 20초,착륙은 50초에 1대꼴로 가능하다고 했다.27분이면 이 항모에 실린 76대의 함재기가 한꺼번에 작전에 투입될 수 있는 셈이다. F­14와 F­18의 꽁무니가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이들 전투기를 끌어당기고 있던 캐터필드가 놓여지자 2초만에 튕겨나가듯 항모를 이륙했다. 1척의 항모와 5척의 구축함,2대의 순양함,2척의 잠수함 및 지원보급함으로 구성된 항모전투단은 하루 7백40㎞를 이동하며 한반도 유사시 며칠 안에 가장 먼저 투입되는 미국의 초기대응전력이다.이 전투단의 제임스 엘리스단장(48·준장)이 근무하는 지하 3층의 전투정보실(CIC).4개의 대형화면에서는 북한군의 함정 등 한반도 해상의 배는 물론 작전권역인 8천마일이내 걸프만해역의 움직임까지 인공위성을 통해 포착하고 있었다. 이 항모에 근무하는 인원은 5천6백명.빵집·이발소·교회·병원·대학 등 도시의 자족시설은 물론 현금자동지급기도 있었다.그러나 알려진 것과는 달리 축구장·수영장 등 대형체육시설이나 여자승무원은 1명도 없었다.폴라티함장은 『여승무원을 위한 별도의 시설이 없기 때문이며 오는 98년 인디펜던스를 대체할 항모인 콘스틸레이션에는 여승무원이 탑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이 항모에는 치과의사로 일하는 한국인 이민1세도 만날 수 있었다. 데이비드 서(37)씨는 『중학생 때 이민가서 의대를 졸업한 뒤 경험을 쌓기 위해 해군에 입대해 1년전 인디펜던스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인디펜던스호는 우리 해군과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17일 부산에 잠시 정박한 뒤 19일 모항인 일본 요코스카로 떠난다.
  • 「폭약트럭」 돌진… 중앙은 “화염”/스리랑카 폭탄테러

    ◎55명 사망·1천4백명 부상/타밀반군 용의자 2명 채포 【콜롬보 로이터 AFP 연합】 스리랑카 중앙은행 건물에서 31일 강력한 자살 차량폭탄테러가 발생,최소한 55명이 사망하고 1천4백여명이 부상했다고 AHM 포우지 스리랑카 보건장관이 밝혔다. 포우지 장관은 콜롬보 종합병원에서 가진 회견에서 『병원에 55명의 시신이 안치돼 있지만 아직 사고현장에 사망자가 남아 있으며 한두명씩 시신이 계속 도착하고 있어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부상자는 대부분 경상이긴 하지만 그 숫자가 1천4백명에 달한다』 말했다. 스리랑카경찰은 폭탄차량테러가 발생한 직후 2명의 타밀반군게릴라를 테러 용의자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스리랑카군대변인 사라스 무나싱게 준장은 이번 자살폭탄테러를 타밀반군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그들 외에 누가 이런 짓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스리랑카 국방부는 또 『콜롬보 시내에서 경계태세를 강화했으며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TV를 통해 발표했다. 목격자들은 중앙은행 건물과 주변 건물들이 화염에 휩싸여 있으며 건물 안에는 탈출하지 못한 수백명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으나 불길이 거세 구조작업이 지체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12년전 타밀 내전이 발생한 이후 수도 콜롬보에서 발생한 최악의 테러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목격자들은 이날 무장괴한들이 중앙은행 경비요원들에게 총격을 가한 뒤 폭약으로 가득찬 트럭을 몰고 건물로 돌진했으며 이후 1분 간격으로 두차례의 강력한 폭발음이 들렸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사고후 국민들에게 헌혈에 동참해줄 것과 안정을 호소했으며 휴가중인 의사들에게 즉각 병원으로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 「12·12」·「5·18」 핵심 5명 영장

    ▷유학성◁ 피의자는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황영시·차규헌·박준병 등과 함께 79년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7시 사이에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그곳 참석자중 최상서열자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모임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함. 하오 9시30분쯤 자신의 주도하에 전두환·황영시·차규헌 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찾아가 최규하대통령에게 집단적으로 정승화총장의 연행조사를 재가해달라고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함. 그 무렵 육군 정식지휘계통에서 피의자등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진압할 움직임을 보이자 정승화총장 연행에 항의하는 장태완수경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쪽으로 오라』고 회유함. 또 하오 9시부터 11시 사이에 윤성민참모차장,김용휴국방차관,1·2군사령관,제3군사령부 참모장 등에게 전화를 걸어 육본측 지시에 따른 병력출동의 저지를 부탁한 것을 비롯,출동가능성이 있는 제9공수여단 제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에 전화를 걸어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아달라고 회유하는 등 각 부대의 출동을 사전에 저지함. 전두환등과 함께 80년5월27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령으로 제안된 국보위설치령을 의결하게 한뒤 공직자숙정계획에 따라 공직자 8천6백1명에게 사임을 강요하고 각 언론사에 언론인 3백36명의 해직을 종용하는 등 계엄하의 고유업무와 무관한 조치들을 결정함. 이를 통해 전두환등의 국정수행능력을 내외에 과시,유일한 집권세력으로 부각시키는데 이용하면서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을 무력화하고 10월29일부터 81년 4월10일까지 국가보위입법회의가 국회의 권한을 대행하도록 함. 80년 9월1일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언론을 계속 통제한 상태에서 집권과정의 제반조치들을 헌법에 반영하고 신당을 창당,정계를 재편하는 등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81년 1월24일까지 비상계엄상태를 유지함. 이로써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황영시◁ 피의자는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유학성·차규헌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7시 사이에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해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그곳 참석자중 최고령자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모임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함. 하오 9시30분쯤 자신의 주도하에 전두환·유학성·차규헌 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찾아가서 최규하대통령에게 집단적으로 정승화총장의 연행재가를 요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또 육군 주요지휘관이나 참모장에게 전화를 걸어 육본 정식지휘계통에 따른 병력출동을 저지하는 한편 12월13일 0시30분쯤 이상규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도록 지시하고 1시10분쯤 박희도에게 고려대학교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는 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반란을 일으킴. 80년 5월초 전두환·노태우·유학성 등과 함께 수시로 만나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시국수습방안을 지지하는 결의를 하도록 한뒤 이를 추진하기로 모의함. 5월17일 전군에 소요진압부대 투입작전명령을 하달,5월18일 하오 2시30분쯤 광주의 전남대·조선대를 포함한 전국 92개 주요대학과 국회 및 신민당사와 공화당사,언론기관,공공기관등 1백36개 주요 보안목표에 계엄군 2만5천여명을 배치하여 각 해당시설을 점거함. 5월18일 상오 1시쯤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된 계엄포고 제10호를 발령하고 국회의원들의 국회출입을 저지함으로써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함. 피의자등의 정국장악을 위한 비상계엄확대조치와 계엄군 투입 및 정치인들의 체포에 반대하고 전두환의 퇴진과 민주화추진을 요구하는 광주 학생·시민들을 진압봉으로 가격하고 발포하는 등 강경진압함. 이후 공직자 숙정,언론 통·폐합,국가보위입법회의 설치등 자신들의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81년 1월24일까지 비상계엄상태를 유지하는 등 폭동하여 내란을 일으킴. ▷최세창◁ 피의자는 1957년 6월 육군사관학교를 제13기로 졸업했으며 10·26사건 당시에는 제3공수여단장으로 근무했던 자임. 피의자는 10·26사건과 관련,정승화육참총장을 강제 연행해 군 지휘권을 박탈하는 한편 군의 정식지휘계통이 이를 저지할 경우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이를 제압해 군의 주도권을 장악한다는사전계획을 세웠음. 이에 따라 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백운택·박희도·장기오·장세동·김진영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쯤부터 하오 7시쯤까지 사이에 경복궁내 수경사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유사시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했음. 피의자는 같은날 하오 11시30분쯤 자신이 여단장으로 있는 특전사 제3공수여단 육군중령 박종규에게,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체포하라고 지시했음. 박종규는 이날 자정쯤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전사령부에서 제3공수여단 제15대 소속 1개 지역대 병력 38명에게 사령부 외곽을 포위하도록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육군대위 김홍열·육군대위 나영조·육군중사 신현수·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육군하사 6명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 정병주와 비서실장 육군소령 김오랑이 집무실에 있는 것을 확인했음.이어 육군하사 6명이 이들에게 M16소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해 김오랑을 살해하고 정병주에게 중상을 입힘. 피의자는 또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을 위반하고 다음날인 13일 상오 2시쯤서울 송파구 거여동 제3공수여단 연병장에서 2개 대대병력 6백여명을 인솔하고 천호대교·강북로·한남동을 거쳐 3시경 경복궁으로 진주했음. 피의자는 이같이 반란군 지휘부 결성과정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자신의 부하인 박종규에게 지시하여 직속상관인 정병주를 체포하고,제3공수여단 2개대대 병력을 인솔하여 경복궁으로 진주하는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반란중요임무종사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장세동◁ 피의자는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의 잦은 월권행위와 지휘체계 문란행위 등을 문제삼아 인사조치할 것으로 알려지자 그 지휘권을 박탈하고 무력으로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결의함.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박준병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하오 7시 사이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함. 하오 7시40분쯤 허화평으로부터 정승화총장을 무사히 연행하였으며 전두환이 정승화총장 연행조사문제를 보고하기 위해 총리공관에 갔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해 있는 장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줌. 잠시후 허화평으로부터 총장연행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연행하러간 우경윤대령이 부상을 입었으며 동원된 제33헌병대 병력이 공관경비를 맡고 있는 해병대 병력에 포위되었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장성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준 뒤 제33헌병대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김진영으로 하여금 제30경비단 소속 5분대기중대 병력 80여명을 인솔하고 총장공관으로 가서 사태를 수습하도록 조치함. 수경사에서 비상이 발령되고 장태완수경사령관으로부터 주요 지휘관 비상소집 명령이 하달되었음에도 소집에 응하지 않음. 제30경비단 상황실로 전파되는 상황과 각 부대에 전화하여 파악한 상황등을 통해 육본 수뇌부가 비상을 발령하고 정승화총장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과 제9공수여단 제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에 병력출동을 전제로 한 준비명령을 하달된다는 첩보 등을 수집,제30경비단장실에 모인 장성들에게 전파함. 중요임무종사자로서 반란군 지휘부 결성과정에서 장소를 제공하고 정승화총장 연행,부대동향 및 병력이동 상황을 수시 파악,지휘부에 전파하면서 총장공관에 억류된 합수부측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무장병력을 출동시키는 등 전두환 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이학봉◁ 피의자는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인 「10·26사건」당시 보안사대공처 대공수사과장으로 근무하고 육군준장으로 전역한 뒤 13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자임. 1,79년 「10·26」사건 합수부본부장으로 임명된 전두환은 계엄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마찰을 빚어왔음.이에 정총장의 지휘권을 박탈,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김재규의 범행에 관련됐는지 여부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승화총장을 강제연행키로 결의했음.연행일을 12월12일로 결정한 전두환으로부터 연행장소 등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허삼수 등에게 통보했음.또 79년 12월12일 하오 6시20분쯤 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 정동렬과 함께 전두환을 수행해국무총리 공관으로 가서 정총장의 연행재가를 요구했음. 피의자는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정총장에 대한 연행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연행장소를 결정했음.허삼수등이 정총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합수부수사관 7명을 지원하는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반란을 일으킴. 2,80년 5월초 군이 전면에 나서 정국을 장악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전두환의 지시를 받았음.그뒤 전국계엄의 실시,과도정부적 성격의 소극적인 내각을 통제하기 위한 비상기구 설치 및 국회해산 등 「시국수습방안」을 추진했음.5월16일 보안부대 대공과장들을 보안사로 불러 소요 배후조종자 및 권력형 부정축재자등의 검거대상자 명단을 주고 검거를 지시,사회혼란 조성등 혐의로 김대중 국민연합공동의장,문익환목사등을 체포하고 권력형부정축재라는 불분명한 범죄혐의로 김종필 공화당총재,이후락·박종규국회의원등을 구속했음.11월12일 45개 언론사 사주들로부터 언론통폐합 조치에 이의가 없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았음. 피의자는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주요정치인·재야인사에 대한 수사계획을 수립,이들을 체포·구속했음.국가기관을 강압으로 전복하거나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으며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자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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