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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안함 6개월 취재기자의 비망록]정부 신중대응…춤췄던 기사…아련했던 진실

    [천안함 6개월 취재기자의 비망록]정부 신중대응…춤췄던 기사…아련했던 진실

    천안함이 침몰한 지 26일로 꼭 6개월이 됐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이 사건은 16년 전 언론인의 밥을 먹으면서부터 숱한 대형사건을 다뤘던 기자도 감당하기 벅찼던 취재대상이었다. 아직도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믿지 않는다는 국민이 30%가 넘는다고 한다. 기자도 신(神)이 아닌 이상 100% 진실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동안 신문에 싣지 못했던 남은 비화들을 추려 보도함으로써 독자들의 판단에 얼마간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기자는 천안함 사건을 취재하면서 개인의 이념이나 성향, 호불호, 선입견을 버리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도했다고 자부한다. 독자들도 이 글을 읽는 순간만큼은 개인의 이념이나 성향, 호불호, 선입견을 떠나 공정한 심판자의 자세로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헤아려 봤으면 한다. 3월 26일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금요일 밤이었다. 자잘한 기사 하나 올라오지 않았다. 밤 10시 야간 회의에서 “특별한 것 없습니다.”라는 보고를 하고 회사를 나섰다. 그날 따라 버스에 타고 있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이윽고 집 앞 정류소에 내려 신선한 밤 공기를 들이켜는 순간이었다. 주머니 안에 넣어둔 휴대전화가 울렸다. 회사였다. ‘이 시간에 무슨….’ 조금은 불길한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야근 중인 김정은 기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달려들었다. “선배, 서해에서 군함이 침몰했대요.” 버스로 돌아 온 길을 택시를 잡아타고 한달음에 되밟았다. ‘혹시 북한이? 설마…단순 사고일 거야. 그런데 만약 북한이라면 보통 일이 아닌데….’ 회사로 향하는 그 길지 않은 시간에 머릿속에 온갖 상념이 난무했다. 11시30분쯤 회사로 돌아오니 편집국은 발칵 뒤집혀 있었다. 모든 부서의 야근자들이 TV 긴급뉴스를 체크하며 정치부의 야근을 거들고 있었다. 마감이 1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방부와 청와대 쪽에서 들어오는 제한된 정보를 취합해 1면 스트레이트와 3면 박스 등 최소 3~4개 기사를 출고해야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사의 방향, 즉 북한 소행이냐 아니냐를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처음엔 북한의 도발 같다는 정보가 청와대 쪽에서 들어왔다. 그래서 그 방향으로 해설 기사를 쓰고 있는데 청와대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북한 연관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기사를 다시 고쳐야 했다. 일단 이날은 내부폭발에서부터 외부공격, 암초충돌까지 모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안전한’ 톤으로 신문을 만들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처음에 청와대 쪽에서 여과 없이 나온 정보, 즉 북한 소행인 것 같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취재를 집중했다면 진실에 더 빨리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과적으로 사건 초기에 청와대가 북한 연관 가능성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을 두고 사려깊었다는 호평이 나중에 국내외에서 나왔다. 처음부터 북한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냉전시대식 접근법과는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일부 외신에서는 한국 정부가 어떤 동기로 이런 변화된 자세를 보였는지를 취재하러 입국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천안함 침몰 다음날 미국 쪽에서 “북한군의 개입은 감지되지 않았다.”는 공식 반응이 나왔다. 세계 최고의 첨단 탐지장비를 운용하는 미군의 얘기였기에 무시하기 힘들었다. 3월 28일 하지만 일요일인 28일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을 뒤쫓다가 당한 것 같다는 정보가 국방부를 출입하는 오이석 기자의 취재망에 걸렸다. 이 역시 지금 돌이켜보면 진실에 좀 더 근접한 정보였지만, 당시는 기사로 채택하기 어려웠다. 책임있는 당국자의 발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날 외교통상부 고위 관계자도 기자가 ‘북한 잠수정이 침투했다면 미군 첨단 장비가 못 잡아낼 리 있겠느냐.’고 묻자 “아무리 미군이라도 물밑에서 움직이는 잠수정을 100% 잡아낼 수는 없다.”고 답했다. 이 역시 되돌아보면 의미 있는 발언이었으나, 당시만 해도 북한 관련성 부분은 워낙 민감한 사안이었던 탓에 정색하고 보도하지 못했다. 언론의 취재가 본격화하면서 각종 의혹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튀어나왔고, 침몰 원인에 대한 온갖 분석이 홍수를 이뤘다. 어뢰공격 가능성, 기뢰폭발 가능성, 내부폭발 가능성, 암초충돌 가능성에 더해 일각에서는 노후한 선체가 저절로 쪼개지는 ‘피로 파괴’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여러 가능성에 대해 기술적으로 파고들수록 더욱 진실이 아리송해지는 역설이 펼쳐졌다. 모든 가설에 모든 반론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4월 1일 이런 와중에 국방부는 북한 잠수정의 침투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정부의 공식 발표였기에 내용을 1면톱으로 크게 보도했다. 하지만 바로 며칠 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북한 소행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고, 이때부터 침몰 원인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북한’ 쪽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4월1일의 국방부 발표는 결과적으로 언론의 오보를 유발한 셈이다. 이 즈음 기자가 쓴 기사는 한마디로 춤을 췄다고 할 수 있다. 군함 침몰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이 없고 정부 발표가 못미더운 상황에서 찔끔찔끔 드러나는 정황과 많지 않은 전문가들의 견해에 입각해 진실에 접근해야 했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이때 기자가 쓴 기사는 어제는 내부폭발 가능성, 오늘은 어뢰공격 가능성 하는 식이었다. 당시 몇몇 지인들은 기자가 천안함 사건 취재 현장에 있다는 이유로 사석에서 진짜 침몰 원인이 무엇인지를 묻곤 했다. 그러면 기자는 뭔가 깊은 정보를 알려준다는 투로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는데 결과적으로 틀린 것이 많아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4월 7일 사고 당시 정황과 관련한 국방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혹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국방부는 환자복을 입은 천안함 생존 병사들을 TV 카메라 앞에 앉히는 ‘극약 처방’을 불사했다.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생존장병들은 “쿵” “꽈앙~”하는 폭발음이 2차례 연속으로 들렸고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암초충격설과 피로파괴설을 부인했다. 이 회견으로 외부충격설이 좀 더 설득력을 얻었으나 이 가능성을 상쇄시키는 발언도 있었다. 한 병사가 “당시 갑판 위 함교 옆에서 배가 진출하는 쪽을 관찰하기 위해 나와 있었는데 물기둥 같은 특이한 점은 볼 수 없었다.”고 증언한 것이다. 4월 15일 침몰 원인을 놓고 분분하던 분석들은 천안함 함미(艦尾)가 인양되면서 북한 어뢰 공격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물 밖으로 드러난 함미의 절단면이 단순 사고로 보기엔 너무 처참하게 찢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민간 해양·선박 전문가들은 TV 화면으로 나타난 절단면만 보고도 이구동성으로 어뢰 공격을 침몰 원인으로 꼽았다. 기자가 인터뷰한 전문가 중 피로파괴나 암초충돌, 내부폭발, 기뢰폭발 가능성을 거론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만 어뢰에 의한 직접 타격이냐, 버블제트(비접촉 수중 어뢰폭발)에 의한 절단이냐에 대한 견해만 갈렸다. 피로파괴는 절단면이 깨끗해야 하는데 천안함은 너덜너덜하게 찢겨 있었다. 암초충돌이라면 배 밑바닥에 강하게 긁힌 자국이 있어야 하는데 천안함은 그렇지 않았다. 내부폭발이라면 배 안에 폭탄이 터진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민·군 합동조사단에 따르면 그런 것이 발견되지 않았다. 또 기뢰 폭발이라면 배가 산산조각 나야 하는데 천안함은 두 동강이 났고, 미군 오폭설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배를 요격하려면 여러 관측장비를 동원해 정조준하는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무심코 무슨 단추 하나를 잘못 눌러서 오발탄을 날리기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기자가 개인적으로 만난 일반시민들의 견해는 전문가들과 차이가 났다. 북한 소행이라고 보는 시민들은 많지 않았고, 정부가 뭔가를 숨기고 있을 것이라는 음모론 쪽에 더 치우쳤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를 대지는 못했다. 정황상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정부에 대한 일반인들의 불신이 뿌리깊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4월16일 민·군 합동조사단은 “내부폭발보다는 외부폭발 가능성이 높다.”고 처음으로 북한 소행일 가능성에 공개적으로 무게를 실었다. 5월 2일 기자는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했다는 ‘결정적인’ 발언을 들었다. 합조단의 조사가 상당히 진척된 시점에서 나온 언급이라 의미가 컸다. 이 관계자는 기자가 ‘한국 정부가 너무 북한 어뢰 쪽으로 몰아가는 건 아니냐.’고 공격적으로 묻자 “북한이 아니라면 누가 했겠느냐.”고 정색하고 답변, 기자를 놀라게 했다. 그는 그러면서 “지금까지 나온 증거와 정황으로 판단할 때 어뢰 공격일 가능성이 99% 이상 확실하다.”고 했다. 이후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 발표일인 5월20일까지 관심은, 합조단이 과연 북한을 꼼짝못하게 할 ‘스모킹 건’(smoking gun·결정적 증거)을 제시할 수 있느냐에 집중됐다. 5월10일을 전후해 엇갈린 정보들이 포착됐다. 외교부 쪽에서는 합조단이 결정적 증거를 찾아낸 것 같은 기류가 감지됐으나 국방부 쪽에서는 스모킹 건을 찾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결국 20일 발표에서 합조단은 불과 5일 전인 5월15일에야 결정적 증거물인 어뢰 추진체를 해저에서 발견했다고 했다. 발표대로라면 드라마와 같은 기적이 막판에 일어난 셈이다.) 20일이 임박하면서 정부 관계자들의 얼굴에 자신감이 확연했다. 그동안 지나치게 신중한 답변으로 취재진의 원성을 샀던 한 외교부 당국자는 5월19일 기자들이 ‘국제사회가 합조단 조사결과를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란 질문에 “증거가 말해줄 것”이라고 한 줄로 자신있게 답해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5월 20일 조사결과 발표에서 외국 전문가들까지 참여한 합조단은 예상을 뛰어넘는 스모킹 건을 제시했다. ‘1번’이라고 씌어진 어뢰 추진체를 증거로 공개한 것이다. 합조단 윤덕용 공동단장(민간측)은 “천안함은 북한제 CHT-02D 어뢰에 의한 외부 수중 폭발(버블제트)의 결과로 침몰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합조단에 참여했던 미군의 에클레스 준장은 “여러 가지 증언과 과학적 상상을 통해 분석했다.”면서 “현재 결과에 모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합조단 발표 이후 어뢰 추진체에 손으로 숫자를 쓴 점이 이해가 안 된다거나 바닷물 속에서 잉크가 지워지지 않은 점, 그리고 북한은 ‘1번’이 아니라 ‘1호’라고 표기한다는 식의 또 다른 의문들이 제기됐다. 한마디로 ‘1번’이라는 표기가 너무 ‘남한스럽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합조단은 과거의 예를 들어 북한도 ‘1번’이란 표기를 하며, 손으로 쓰는 경우도 있고, 바닷물에서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씌어졌다고 설명했다. 5월 24일 합조단의 최종 조사결과 발표가 나온 지 나흘 뒤 정부는 외교·통일·국방부 합동으로 전방위 대북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이어 6월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천안함 사건을 회부했다. 6월10일 감사원은 천안함이 북한 어뢰 공격에 침몰한 직후 군 당국의 대응이 허점투성이였다고 발표했다. 감사원 조사 결과는 ‘전쟁을 치르지 않는 군대’가 얼마나 형편없는 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늑장보고, 허위보고, 근무태만, 기강해이 등 온갖 부조리가 드러났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같은 지휘관만 군에 있었어도 천안함 사건과 같은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7월 9일 이후 결국 유엔 안보리는 7월9일 만장일치로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중국의 반대로 북한을 공격 주체로 직접 명시하지는 못했지만 전체적인 문맥으로는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했으며 이에 따라 안보리는 북한을 규탄한다는 해석이 가능했다. 정부는 “이번 의장성명은 강력하고 충분한 정치적 메시지”라고 자평했다. 반면 북한도 직접적 문구가 없다는 점을 들어 ‘외교적 승리’라고 큰소리쳤다. 그러면서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북핵 6자회담을 운운하며 ‘대화공세’를 폈다. 이를 두고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당시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증거를 차치하고라도, 북한이 진정 결백하다면 저런 반응을 보이겠느냐. 볼펜 한 자루 훔쳤다는 누명을 써도 분통이 터지고 화병이 나는데 북한이 정말 누명을 썼다면 어떻게 저렇게 태연하게 이제 그만 대화하자고 할 수 있겠는가.” 다른 당국자는 “북한 소행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도 북한 잠수정이 어뢰로 천안함을 쏘는 동영상이 있다 하더라도 조작됐다며 믿지 않을 것”이라면서 “합조단 조사결과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믿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라도 했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 어느 언론보다 치우침 없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하는 기자도 사견을 말하자면, 이런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합조단 조사결과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뒤집어보면 이런 말이 될 수 있다. 즉, 천안함 생존장병 58명이 모두 진실을 숨기기로 입을 맞추고, 합조단 조사에 참여한 민간 전문가도 군 당국과 짝짜꿍이 돼 모두 거짓말을 하고, 역시 합조단에 참여한 스웨덴(북한과도 수교하고 있는 나라), 호주 등 제3국 전문가들도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얘기다. 인터넷이 날아다니는 개명한 시대에 이렇게 완벽한 다국적·다층적·대규모적 사기(詐欺)가 가능한가. 더욱이 북한을 비호한다는 중국, 러시아도 북한에 대한 징계에는 이견을 보일지언정 합조단 조사결과가 틀렸다고 밝히지는 않았다. 한편에서는 북한의 천안함 공격은 극소수 핵심라인만 관여했기 때문에 대다수 북한 당국자들은 실제 알지 못하는 일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천안함 공격은 우리로 치면 과거 실미도 부대원 같은 비밀 특수부대가 감행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돌이켜보면 이런 일도 있었다. 천안함 수색작업에 참여하고 돌아가던 저인망 어선 금양 98호가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던 4월2일도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3월26일과 비슷한 야근 상황이었다. 당시에도 별다른 일이 없어 밤 10시가 넘어 회사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는데, 도중에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택시로 귀사해야 했다. 그날 “선배, 배가 또 침몰했대요.”라고 전화한 야근자는 3월26일 밤 전화로 천안함 침몰 사실을 알린 김정은 기자였다. 기자는 지금 밤 11시 넘어 휴대전화가 울리면 깜짝깜짝 놀라는 트라우마(trauma)를 안고 산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하늘을 나는 치타’ 60년만에 내한

    ‘하늘을 나는 치타’가 6·25 전쟁 발발 60년 만에 방한한다. 서울시는 6·25 전쟁에 참전한 남아공, 필리핀, 태국, 터키, 그리스, 콜롬비아 등 7개국 참전 용사와 참전국 수도 시장들을 명예시민으로 위촉한다고 26일 밝혔다. 이중에는 ‘하늘을 나는 치타’라고 불린 남아공의 공군 제2전투비행대대 소속 예비역 준장 3명도 함께 온다. 이 비행대대는 남아공의 베테랑 공군 부대로 한국전 당시 청천강 이북지역, 평양, 수원, 진해, 여의도, 횡성 등을 거점으로 해군과 지상군에 대한 항공지원작전 등을 수행하며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시는 29일 오후 삼청각에서 위촉 행사를 열어 7개국 참전용사 22명과 참전국 수도인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태국 방콕 시장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한다. 이외에도 시는 청와대 오찬과 서울역사박물관의 참전국 도시 특별전 관람, 현충원과 비무장지대(DMZ) 방문 등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윤필용 사건’ 다시 재판

    ‘윤필용 사건’ 다시 재판

    현대사의 최대 권력 스캔들 중 하나로 꼽히는 ‘윤필용 사건’이 37년 만에 법정에서 재논의될 전망이다. 이미 고인이 된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을 대신해 그의 아들 해관씨가 재심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12일 법무법인 바른 등에 따르면 1973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의 측근으로 수도경비사령관으로 근무하다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로 구속됐던 윤 전 사령관의 아들인 해관씨가 지난달 말 고등군사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고등군사법원은 재심 개시를 위한 심리를 진행해 윤 전 사령관 사건의 재심 여부를 판단하고, 재심을 군사법원 또는 민간법원에서 진행할지를 결정할 예정이다. 1973년 일어난 ‘윤필용 사건’은 윤 전 사령관이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식사를 하던 중 “형님이 각하의 후계자”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윤 사령관과 그를 따르던 장교들이 쿠데타 모의 혐의로 구속돼 처벌받은 것이다. 당시 보통군법회의는 윤 전 사령관을 비롯해 수경사 참모장 손영길 준장, 육군본부 진급 인사실 보좌관 김성배 준장 등 장성 3명 등 장교 10명에게 모반죄가 아닌 횡령, 수뢰, 근무이탈죄 등을 적용해 각각 1~15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군 수사기관이 쿠데타 모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고 최고 권력자의 명령에 따라 각종 구실을 붙여 군부 내 신진세력인 ‘하나회’의 대부로 통하던 윤 전 사령관과 그 추종세력을 제거한 셈이다.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김 전 준장은 앞서 고등군사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아 지난해 12월24일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가 김 전 준장이 보안사로 끌려가 구타와 가혹행위, 고문을 당해 쓴 진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시 관련자들의 재심 청구가 잇따르고 있다. 윤 전 사령관의 참모장이던 손 전 준장은 지난달 말 고등군사법원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아 재심이 시작됐고, 함께 처벌받았던 당시 육군본부 신재기 전 대령도 재심 개시를 신청했다. 윤 전 사령관은 지난 7월 24일 83세로 별세했으며, 재심개시가 확정돼 무죄를 선고 받게 되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그동안 지급이 정지됐던 군인연금을 비롯한 위로금과 형사보상금 등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마오쩌둥·류샤오치 악연… 후대엔 해빙무드?

    마오쩌둥·류샤오치 악연… 후대엔 해빙무드?

    최근 중국내 최연소 장군으로 승진한 마오쩌둥 전 주석의 손자 마오신위(왼쪽·毛新宇·40) 군사과학원 전략연구부 부부장에게 장군 계급장을 달아준 사람이 마오에게 숙청당했던 류샤오치(오른쪽·劉少奇) 전 주석의 아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 군부내 태자당(당·정·군 원로의 자녀들)간의 미묘한 가족사가 화제다. 마오신위는 5일 인터넷 매체인 왕이(網易)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20일 오전 군사과학원 내에서 장군 진급식이 있었다.”면서 “군사과학원 정치위원인 류위안(劉源·59) 상장(대장)이 소장(준장) 계급장을 달아줬다.”고 말했다. 류샤오치와 그의 두번째 부인인 왕광메이(王光美) 사이에서 태어난 류 상장은 1982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이후 허난성 부성장을 지낸 뒤 1992년부터는 인민해방군 소속인 무장경찰 부대로 옮겨 요직을 두루 거쳤다. 지난해 최고 계급인 상장으로 승진했다. 마오쩌둥의 유력한 후계자였던 류샤오치는 마오가 주도한 대약진운동 실패 직후인 1959년 중국의 제2대 주석에 올랐으며 시장경제 정책을 도입하는 등 마오를 강하게 비판하던 중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당에서 제명당한 뒤 가택연금됐다. 1968년 7월18일 홍위병의 습격을 받아 폭행과 폭언을 당한 뒤 지병이 악화돼 1969년 11월12일 허난성 카이펑(開封)에서 사망했다. 한편 마오신위는 자신이 최연소 장군으로 승진한 것과 관련, “가족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며 할아버지의 ‘후광’ 때문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또 “정치와 관련된 일에 관여하고 싶다.”며 정계 입문 의사도 피력했다. 이 같은 발언은 지난 2일 중국 관영매체가 그의 최연소 장성 진급을 보도한 이래 처음 나온 것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부고] 권오태 전 국회의원

    3선을 지낸 권오태 전 국회의원이 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84세.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준장으로 예편했다. 제9대·10대·12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통일민주당 부총재와 한나라당 상임고문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수자 여사와 딸 도희, 수현씨 등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이며 발인은 5일 오전 5시.(02)2072-2091~2.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마오쩌둥 손자 中 최연소 장군으로

    마오쩌둥 손자 中 최연소 장군으로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국가주석의 유일한 손자인 마오신위(毛新宇·40) 군사과학원 전략연구부 부부장이 최연소 장군이 됐다고 문회보 등 홍콩 언론들이 1일 중국의 지역 인터넷사이트를 인용, 일제히 보도했다. 마오는 이미 대교(대령)에서 소장(준장)으로 진급함에 따라 1970년대 이후 세대 가운데 첫 장군이 됐다. 마오는 지난 29일 쓰촨성 광위안(廣元)에 있는 삼국시대 유적 소화고성(昭化古城)을 방문했을 때 소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은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정협) 개막식에 대교 군복을 입고 참석한 마오는 “7월쯤 소장 계급장을 달게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동해 한미연합훈련] 하늘에서 ‘현존최강 F-22 베일 벗어’…바다에서 ‘적잠수함 가상격파훈련’

    [동해 한미연합훈련] 하늘에서 ‘현존최강 F-22 베일 벗어’…바다에서 ‘적잠수함 가상격파훈련’

    사상 최대 한·미 연합훈련 ‘불굴의 의지’ 이틀째인 26일 오후 동해 상에서 양국 전투기와 함정, 잠수함이 참가한 편대 및 전술기동훈련이 진행됐다. 오전 11시쯤 경북 포항 동북쪽 160㎞ 해상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는 미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9만 7000t급)를 중심으로 아시아 최대 수송함인 독도함(1만4000t급)과 한국형 구축함(KDX-Ⅱ·4500t급), 미 이지스 구축함 등 13척의 함정이 물살을 가르며 기동하기 시작했다. ●함재기 끊임없는 출격과 대잠훈련 조지 워싱턴호 오른쪽으로 독도함과 문무대왕함, 최영함을 비롯해 호위함(2300t급) 충남함, 초계함(1200t급) 군산함과 진주함 등 우리 해군의 주력함정들의 모습이 보였다. 미측은 조지 워싱턴호와 이지스 구축함(9200t급)인 매켐벨호, 라센호, 커티스윌버호, 정훈호를 비롯해 LA급 원자력 추진 잠수함(7900t급) ‘투산’이 참가했다. 조지 워싱턴호의 비행갑판은 이동 중에도 쉼없이 바빴다. 수십 대의 전투기 등 함재기들이 임무 수행을 위해 수초 간격으로 이착륙을 반복했다. 항모의 주력 기종인 F/A-18E/F(슈퍼호넷)와 F/A-18A/C(호넷)는 10초 정도 제트엔진을 가열하다가 급발진해 2초 만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륙한 전투기들은 항모 주변 상공을 전방위로 감시하며 날았다. 이들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는 항모의 심장인 ‘지휘통제실(CDC·Combat Direction Center)’로 모였다. CDC에는 이번 훈련에 참여하는 모든 부대의 연락장교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훈련 상황을 지켜보며 의견을 교환하고 각 부대로 작전사항을 실시간 전달했다. CDC에서 계획된 전술기동 명령을 하달하자 양국 함정들은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자기 위치로 이동했다. 항모의 함수 오른쪽의 문무대왕함 뒤로는 커티스윌버호와 미측 8300t급 구축함인 정훈호가 물살을 가르며 뒤따르고 있다. 정훈호는 한국계 미 해군 제독의 이름을 딴 구축함으로 하와이에 배치되어 있다. 양국 함정들의 앞에는 잠수함 ‘투산’이 물 위로 반쯤 모습을 드러낸 채 앞장섰다. 투산은 1995년 9월 취역해 하와이 진주만을 모기지로 활동하고 있으며 미 해군의 대표적인 공격 잠수함이다. 1600㎞ 원거리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24기를 탑재하고 있다. 하늘에서는 처음으로 한국 언론에 공개된 F-22(랩터) 2대를 비롯한 F-16, F/A-18A/C, F-15K 등이 편대를 이뤄 항모 위로 비행했다. 전투기들은 기러기가 나는 모양으로 5~6대씩 편대를 이뤄 항모 전방위를 감시했다. 모두 30대의 양국 전투기가 6차례 걸쳐 편대비행을 했다. F-22를 제외한 나머지 전투기들은 강원도 필승사격장으로 날아가 공대지 사격훈련도 했다. 현존하는 세계 최강 전투기로 꼽히는 F-22는 편대 비행으로 한반도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F-22는 총 4대가 훈련에 참가했으며 이 가운데 이날 편대비행에 참가한 2대는 훈련 후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로 복귀했다. ●F-22 랩터·공중급유 훈련 첫 공개 항모 주변에서는 적의 잠수함을 탐지하고 공격하는 ‘대잠 자유공방전 훈련’이 조용히 진행됐다. 은밀히 침투하는 잠수함을 탐지해 격파하는 훈련이다. 천안함을 침몰시킨 북한의 잠수함(정)에 대한 공격과 방어 훈련인 셈이다. 항모전단장인 댄 크로이드 해군 준장은 “이번 훈련의 목적은 대비태세 강화와 한·미 합동성 강화, 대북 억지력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서 “대잠수함, 대수상함, 공중 등 입체적으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경기도 오산 미7공군기지 활주로 한쪽에서 이번 훈련을 위해 가데나 기지에서 파견된 미 공군 18비행단 909 공중급유대대 소속 공중 급유기(KC-135)가 출격 준비에 한창이었다. 오전 11시40분쯤 기지를 떠난 공중급유기는 30분 만에 연합훈련이 이뤄지고 있는 동해 상공에 도착했다. 10분 후 4대의 F-16편대가 공중급유기의 꼬리날개 쪽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한 대의 전투기가 급유기와 통신하면서 후미로 접근하는 동안 두 대의 전투기는 좌측에서 대기했다. 다른 한 대는 우측 날개 옆에서 편대비행을 펼쳤다. 급유기의 후방 조종사는 동체 뒷부분에 마련된 급유 파이프 조종 시스템을 이용해 전투기 급유기와 연결을 시도했다. 전투기와 급유파이프가 연결되자 불과 3~4분 만에 연료가 채워졌다. 4대의 F-16이 모두 급유를 마치는 데 불과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공동취재단·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부고] 윤필용 前 수도경비사령관

    [부고] 윤필용 前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이 24일 별세했다. 83세. 가족들에 따르면 7년 전 식도암 수술을 받은 윤 전 사령관은 두 달 전 지병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한 뒤 이날 0시15분쯤 세상을 떠났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윤 전 사령관은 1961년 최고회의 의장실 비서실장과 1965년 육군 방첩대장 등을 거쳤다. 1970년 제3대 수도경비사령관 자리에 오르며 탄탄대로를 걸은 그는 이른바 ‘윤필용 사건’에 휘말리면서 군복을 벗었다. ‘윤필용 사건’은 1973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던 그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식사를 하던 도중 “형님이 각하의 후계자”라고 발언했다는 이유로, 윤 사령관과 그의 부하 장교들이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혐의로 처벌된 사건이다. 이후 이 사건은 지난해 12월 당시 윤 사령관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 3년이 선고된 김성배 전 준장에 대한 재심이 서울고법에서 무죄로 결론 나면서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윤 전 사령관은 예편 이후 한국도로공사 사장, 한미친선회 이사, 한국전매공사 이사장, 한국담배인삼공사 사장 등을 역임한 뒤 거양(巨洋) 회장직을 맡아 왔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허필순(77)씨와 해관(거양 대표이사 사장)·보경·혜경씨 등 1남2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7일 오전 8시. 02)3410-6915.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천안함사건 이달말 軍문책

    천안함 사건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토대로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가 이달 말 이뤄질 전망이다. 군 고위 관계자는 11일 “감사원의 징계조치 요구 대상자들의 과실 범위 등을 판단하고 이달 말 징계수위를 결정,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해 징계위원회는 군별로 열리지 않고 국방부에서 통합적으로 열기로 했다. 국방부는 현재 감사원의 조사결과 외에 자체적으로 관련자들에 대한 추가조사를 벌이고 있다. 군 수사기관이 관련자들을 소환해 감사원이 지적한 사안들에 대한 잘잘못을 가리는 작업이다. 당초 감사원이 징계 통보한 대상자는 이상의 전 합참의장 등 대장 1명과 중장 4명, 소장 3명, 준장 5명 등 장성 13명과 대령 9명, 중령 1명 등 영관장교 10명, 고위 공무원 2명 등 총 25명이다. 이 가운데 이 의장 등 3명은 이미 전역하거나 전역이 예정돼 있으며, 합참 근무 장성 3명은 이미 인사가 마무리됐다. 군 관계자는 “지속적인 소환조사를 통해 감사원 감사결과에 대한 충분한 해명 기회를 주고 있다.”면서도 “명백히 잘못된 부분들에 대해서는 무거운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감사원은 천안함 사건 발생 때 군의 전투태세 준비 미흡과 사건발생 후 상황 보고 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장군 13명을 포함해 모두 25명을 징계대상으로 통보했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부고]

    ●박광박(경남대 교수)광준(기상청 차장)씨 부친상 3일 마산시민장례식장, 발인 5일 오전 7시 (055)224-3943 ●정선태(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위원장·전 서울고검 검사)희태(미국 거주·사업)준태(SBS 콘텐츠허브 부국장)지태(전 대우전자 스페인법인장)씨 부친상 박준모(리비아 대수로공사 현장소장)배민식(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씨 장인상 4일 서울성모병원,발인 7일 오전 7시 (02)2258-5951 ●유영록(김포시장)씨 모친상 4일 김포우리병원, 발인 6일 오전 9시 (031)985-1740 ●김진건(전 삼양제넥스 부사장)씨 모친상 도형(삼성코닝정밀소재)씨 조모상 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6일 오전 6시 (02)3410-6903 ●박신서(MBC 편성제작국 국장)씨 장인상 4일 부평 세림병원, 발인 6일 오전 8시 (032)508-1348 ●조종규(한국야구위원회 심판위원장)씨 모친상 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6일 오전 10시 (02)3010-2230 ●황종우(예비역 육군 준장)씨 별세 성영(AKIS 대표이사)순영(한국가스기술공사)중영(한국광물자원공사)씨 부친상 배세영(건양대 경영·행정대학원장)씨 장인상 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6일 오전 8시 (02)3410-6916 ●김태진(남송개발 회장)씨 별세 인정(남송개발 사장)인아(〃 이사)인실(미국 거주)인경(〃)씨 부친상 남주현(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김대기(미국 거주·사업)박명철(미국 JP모건체이스 회계사)씨 장인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6일 오전 8시 (02)3010-2295 ●이승준(한국항공대 교수)남희 성희(전 고려대 안암병원 수간호사)명희(서울 금천구 공무원)씨 부친상 4일 고려대 안산병원, 발인 6일 오전 6시 (031)411-4441 ●한영조(HCN부산방송 보도제작팀 차장)씨 모친상 4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6일 오전 7시 (02)2227-7566 ●문지성(문비뇨기과의원 원장)윤성(7321디자인 실장)씨 모친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6일 오전 5시30분 (02)3010-2252 ●김윤근(BB코리아 인사총무부장)씨 부친상 황종철(구미시청 투자통상과장)윤보석(자영업)조영태(우정팜텍 부장)박인호(신신콘덴샤 영업과장)씨 장인상 3일 경북 구미차병원, 발인 5일 오전 8시 (054)452-1974 ●이창기(유성냉동 대표)씨 별세 창수(사업)씨 형님상 김경진(사업)정남기(한겨레신문사 논설위원)씨 처남상 3일 대전 유성 선병원, 발인 5일 오전 10시 (042)825-9494 ●장병섭(한국은행 울산본부 업무팀장)씨 장모상 3일 인천 남구 용현3동 492 자택, 발인 5일 7시30분 (032)882-7530 ●박종복(전 현대건설·세연기공 부사장)씨 별세 한수(미국 하버드의대 연구원)씨 부친상 이정은(삼성서울병원 내과 교수)씨 시부상 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5일 오전 8시 (02)3410-6902 ●신유재(MBN 작가)씨 부친상 3일 파주장례식장, 발인 5일 오전 11시50분 (031)8071-4899
  • [오늘 한국전쟁 60주년] “수용인민군들, 반대파 토막살해뒤 바다 버려”

    [오늘 한국전쟁 60주년] “수용인민군들, 반대파 토막살해뒤 바다 버려”

    “분뇨통을 들고 나오는 포로의 얼굴을 보는 순간 ‘성규(가명)야.’라고 외쳤죠.” 국군 헌병단으로 1949년에 입대, 1954년에 전역한 강옥(80) 일등중사는 휴전이 다가오던 1953년의 어느 날 한양공고 동창으로 절친한 친구인 성규씨를 자신이 감시하고 있던 거제포로수용소에서 만났다. 그는 성규씨와 고교 시절 축구부로 함께 생활했다. 강 중사는 “함께 공을 차며 지냈죠. 참 보고 싶었었는데 안타까운 만남이었죠.” ●축구 시합 준비 중에 전쟁 소식 고교 졸업 후 연락이 닿지 않던 성규씨는 전쟁이 나자 인민군에 붙잡혀 의용군으로 끌려오게 됐다. 친한 친구를 만난 반가움과 함께 포로로 잡혀온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이 끓어올랐다. 강 중사는 성규씨를 도와줄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도와주고 싶었지만… 당시엔 국군이 포로와 친하게 지내면 엄청난 의심을 받거나 고초를 겪게 되니까… 쉽지 않았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성규씨는 1953년 6월18일 반공포로 석방 때 풀려나 국군에 입대했다. 하지만 그들의 우정은 고교시절로 돌아가지 못했다. 1950년 6월25일. 강 중사는 경기도 의정부에 주둔하고 있던 7사단 헌병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일요일이던 전쟁 발발 당일에 그는 부대원들과 축구시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쟁을 예상하지도 못했고, 믿어지지도 않았다. 북한군은 국군이 방어선을 구축할 겨를도 없이 밀고 내려왔다. ●반공포로 석방 헌병도 당일 아침에 알아 전세는 유엔군의 지원으로 역전됐다. 국군과 유엔군은 평양을 넘어 북으로 올라갔다. 1951년 중공군이 가세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1·4 후퇴 길에 올랐다. 강 중사는 당시 평양 포로수용소 경비를 담당했다. 밀고 내려오는 인민군과 중공군을 피해 포로들을 데리고 진남포 항구에서 수송선에 올랐다. 그와 포로들은 거제포로수용소로 이동했다. 1950년 11월 만들어진 거제포로수용소에는 10만명 이상의 전쟁포로가 수용됐다. 유엔군이 제네바 협정에 따라 포로를 관리하고 국군 헌병단은 그 외곽 경계를 담당하게 됐다. “유엔군이 제네바협정에 따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했죠. 국군들보다 포로들의 차림새가 더 좋았어요. 배가 부르니까 폭동도 일으키고….” 당시 포로수용소 안은 제네바협정을 준수한 유엔군 덕에 포로들만의 규율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부는 나무로 모형 총과 칼을 만들어 제식훈련을 하고, 일부는 국기게양대를 만들어 경례를 하고 군가를 불렀다 특히 인민군들은 포로들 가운데 사상이 불순하다고 판단되면 재판을 거쳐 살해하고 토막내 바다에 버리기도 했다. “포로들은 매일 아침 수용소를 나와 거제 앞바다에 분뇨통을 비웠는데 거기에 살해한 포로의 시체를 토막내 함께 버렸어요. 한동안 그렇게 해오다 수상히 여긴 헌병의 검열에 비인간적인 행위가 들통났죠.” 1952년 5월7일 수용소장 F T 도드 준장이 76포로수용소 시찰 중 납치 감금됐다. “포로들이 분뇨통을 비우기 위한 시간에 도드 준장이 시찰을 나왔다가 당했죠.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었죠.” 도드 준장이 납치되자 국군과 유엔군은 거제수용소를 탱크로 에워싸고 구출을 시도했다. 도드 준장의 납치 배경에는 유엔군 측이 송환원칙을 어기고 포로들에게 본국 귀환을 포기시키려고 협박과 고문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강 중사는 유엔군이 제네바 협정을 잘 지켜줬다면서 협박과 고문이 있었다는 말에 의문을 달았다. 당시 도드 준장 납치 사건은 4일 후 미국이 협박 등의 행위를 인정하면서 해결됐다. 1953년 6월18일 갑작스럽게 이뤄진 반공포로 석방은 당일 아침에야 알 수 있었단다. 비밀리에 진행된 반공포로 석방은 외곽을 경계하는 헌병단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갑자기 새벽에 포로들이 도주하더라고요. 외곽을 경계하던 우리에겐 전혀 연락 온 바가 없었죠.” 당시 국군은 이들의 석방을 도주로 오해해 사격하기도 했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휴전협정이 맺어지고 전쟁은 중단됐다. 강 중사는 이듬해 4월까지 근무하고 전역했다. 강 중사의 아들은 현재 공군 중령으로, 며느리는 육군 중령으로 군문(軍門)의 대를 잇고 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기무사령관 배득식 - 해병대사령관 유낙준

    국방부는 23일 국군기무사령관에 배득식(56·육사 33기) 소장을, 해병대사령관에 유낙준(53·해사 33기) 소장을 각각 중장으로 진급시켜 임명하는 등 장성 27명의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대북 경계태세 등 해군의 중요성이 부각된 가운데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인 황기철(53·해사 32기) 소장이 중장 진급과 함께 해군작전사령관에 임명됐다. 또 육군참모차장에는 조정환(55·육사 33기·중장) 5군단장이, 해군참모차장에는 최윤희(56·해사 31기·중장) 해군사관학교장이 각각 자리 이동했다. 육군은 육사 34기인 서길원 육본 인사참모부장, 심용식 합참 작전기획참모부장, 이준구 국방부 군수관리관이 각각 중장으로 진급해 군단장으로 진출한다. 합참 전력기획부장으로 근무하던 정홍용(육사 33기) 소장은 2년 임기제 중장으로 진급해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을 맡게 됐다. 육사 37기의 박찬주·신원식·이재수 준장 등 11명은 소장으로 진급해 사단장으로 진출한다. 민·군 합동조사단의 윤종성(육사 37기) 과학수사분과팀장도 소장으로 진급했다. 항공작전사령관 대리 근무를 했던 배명헌(육사 34기) 준장도 소장으로, 기무사의 이봉엽 1처장도 임기제 소장으로 각각 승진해 현 직책을 향후 2년간 수행하게 됐다. 해군은 해사 32기 출신의 손정목·원태호 소장 등 4명이 중장으로 진급했다. 해사 35기 출신의 김광석·문병옥·엄현성 준장은 소장으로 각각 진급해 함대사령관으로 일하게 됐다. 특히 합조단 대변인을 지낸 문 준장은 3함대사령관에 임명됐다. 해병대의 이영주 준장은 소장으로 진급해 해병 1사단장에 임명됐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實錄, 한국전쟁] (5) 또 다른 주역-맥아더·트루먼의 갈등

    [實錄, 한국전쟁] (5) 또 다른 주역-맥아더·트루먼의 갈등

    미국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의 또 다른 주역이다. 전쟁을 도발한 공산진영의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과 맞선 자유진영의 대표주자였다. 한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으로, 또 한 사람은 5성 장군 계급장을 달고 한국전쟁을 맞이했다. 끝까지 함께 가지 못했다. 정책결정자 트루먼은 휴전협정이 진행 중이던 1952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맥아더의 최후는 참담했다. 연합군이 중국군에 쫓겨 38선 이남으로 후퇴한 1951년 4월11일 트루먼으로부터 연합군 사령관직 등 모든 직위에 대한 해임통보를 받았다. 상원청문회장에 선 ‘전설적 장군’은 문민통제에 대한 불복종과 오판은 물론 거짓말까지 줄줄이 드러나 고개를 숙여야 했다. 미 의회는 전쟁영웅에 대한 예우를 참작, 청문회 공식 보고서를 내지 않았다. ●도쿄에 머문 맥아더 전세 파악못해 루스벨트라는 걸출한 대통령의 그늘에서 인기 없는 상원의원과 부통령직을 지낸 트루먼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그는 후세 역사가들로부터 스탈린과 함께 냉전의 양대 축으로 평가받았다.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이뤄진 트루먼 대통령의 확신에 찬 해군 및 공군 출동명령과 엿새 만의 지상군 참전결정이 없었다면 낙동강전선 사수와 인천상륙작전의 역공, 서울수복과 압록강 국경까지의 북진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다. 트루먼은 재임 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정치적 앙숙인 맥아더를 사장시킨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매도당했다. 한국 땅에서 미국의 젊은이 3만 3000여명을 전사시키고도 전쟁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대통령이었다. 맥아더 해임 당시 트루먼은 패배자였지만, 후일 승리자로 기록됐다. 정치적 결정이 아니라 대통령의 군사자문기구인 합동참모본부가 만장일치로 승인한 ‘군사적 결정’이란 점이 작용했다. 맥아더 원수의 인천상륙작전은 트루먼의 참전결정과 함께 한국전쟁의 양대 분수령이었다. 보급라인이 길어진 인민군의 허리를 끊고, 9월28일 서울을 수복해 전세를 단숨에 역전시켰다. 맥아더는 상륙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전쟁역사상 육군의 공급선을 차단하면 열에 아홉은 무너지기 마련”이라고 큰소리쳤다. 사실이었다. 맥아더 일대기에는 “그의 인생에서 군인으로서 천재성을 인정받은 날은 1950년 9월15일 하루였다.”고 적혀 있다. 성공확률 5000분의1의 거대한 도박에 성공한 것이다. 성공확률은 맥아더 자신의 언급이었다.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편찬한 ‘한국전쟁’에 따르면 맥아더는 “이 작전이 도박이라면 후에 1달러로 변해 나오게 되는 5센트를 항아리에 던져 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맥아더가 남한사람들에게 영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소는 한반도를 민주국가로 통일시키겠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맥아더는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을 지지하는 유일한 미국 장군이었다. 이승만 정부로부터 ‘수호자’로 숭배를 받았다. 한국의 통일이 바람직하다고 천명한 1950년 10월의 유엔결의가 맥아더의 호승심(好勝心)을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워싱턴의 행정부 및 군 수뇌부는 중국과 옛 소련의 의도를 확신하지 못했고, 군사적 충돌을 우려했다. 한국전쟁이 세계 제3차대전으로 확전되지 않도록 제한된 목표를 위하여, 제한된 수단으로 전쟁을 수행하려 했다. 맥아더의 거침없는 북진이 못마땅했지만, 상륙작전 성공 이후 ‘전쟁의 신’으로 격상된 맥아더의 권위에 감히 도전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맥아더는 중국정부의 개입 경고를 무시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도 엄포라며 한 귀로 흘렸다. 오히려 원폭투하 발언과 압록강 교량 폭격으로 가뜩이나 민감해진 중국 지도부를 자극했다. 오만에 빠진 맥아더의 결정적 오판이었다. ●1951년 전시중 해임통보 받아 미국 합참이 펴낸 ‘한국전쟁-제10장 맥아더의 해임’ 편을 보면 미국 대통령과 내각, 국가안전보장회의의 군사정책에 관련된 정책수립 및 자문기구를 맡는 합참과 맥아더의 관계가 속속들이 드러나 있다. 이 책은 “합참요원은 예외 없이 맥아더 장군보다 후임이었다. 합참의장 브래들리 원수는 육사 12년 선배인 맥아더 준장 아래서 소령으로 근무했다. 콜린스 육참총장과 셔먼 해군참모총장은 맥아더가 육사교장이었을 때 초급장교였다. 반덴버그 공군참모총장은 사관생도에 불과했다.”고 기술했다. 또 “군사조직이 이러한 인적관계로 구성됨에 따라 그 영향이 의사전달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맥아더 장군이 보낸 서신에서는 합참에 대한 암시적인 훈계 또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태도가 발견됐다. 역으로 합참은 맥아더 장군에게 결정적인 방법으로 명령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그들이 기안한 지침서는 선임자에게 실례나 되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 공손한 말로 표현됐다.”고 적었다. 맥아더는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발발 1보를 보고받은 트루먼과 맥아더의 반응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도쿄의 극동사령부에서 이 소식을 들은 맥아더는 무관심하면서도 초연했다. 함께 있던 덜레스 국무부 고문이 걱정하자 맥아더는 “단순한 정찰병력이며 등 뒤에 한 손을 묶은 채로도 처리할 수 있다.”고 신경 쓰지 않았다. 26일에도 천하태평이었다. 오히려 덜레스가 “무초 미 대사가 서울을 탈출했다.”는 급보를 전하자 그때야 알아보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적어도 1945년부터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맥아더에게 한국은 관심 밖의 나라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주둔 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의 거듭되는 보고를 무시했으며, “남한문제는 알아서 잘 처리하라.”는 지시가 전부였다. 맥아더의 보좌관 바워즈의 회고에 따르면 맥아더는 한반도 문제에 개입을 꺼렸으며, 한국문제는 국무부 소관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만들어진 인물” 맥아더는 한국전쟁을 지휘하는 동안 한국에서 하룻밤도 보내지 않았다. 전용기를 타고 전황을 살펴보러 잠시 들렀다가 곧바로 도쿄로 돌아가곤 했다. 인천상륙작전 때나 북진공격 때도 마찬가지였다. 압록강까지 거침없이 북진하면서 “중공군의 개입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장담과 달리 중국군의 개입으로 연합군이 뒤로 밀리자 워싱턴의 합동참모본부 대표들은 맥아더가 한국의 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총사령관이 자리를 지키지 않는 전쟁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맥아더가 파면된 이후 자리를 이어받은 리지웨이 장군은 종전 후 40년이 흐르고 나서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싸워야 했는지 도쿄의 사령부가 알지 못했다는 점이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들었으며 그런 상황을 만든 총사령관을 용서할 수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트루먼의 대처는 단호하고 빨랐다. 미국은 결코 ‘한반도 내전’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던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판단을 비웃듯 신속하게 참전을 결정했다. 1950년 6월30일 새벽 5시 지상군의 투입을 승인했다. 유엔 안보리도 한국에서의 무력사용을 의결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콜디스트 윈터’에서 “1950년 6월25일자로 트루먼과 맥아더의 삶이 함께 엮였다. 대통령은 장군을 통제하지 못해 위엄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장군은 대통령직을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위상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라고 분석했다. 또 “트루먼은 우연히 대통령이 되었지만, 맥아더는 철저하게 만들어진 인물이었다.”고 썼다.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미국독립전쟁의 영웅이었던 아서 맥아더 장군의 아들이었다. 웨스트포인트 4년 동안 역대 최고 학점을 기록했고 미군 역사상 모든 최연소기록을 갈아치웠다. 1918년 처음 별을 단 이래 최연소 사단장, 웨스트포인트 교장, 육군 참모장, 소장, 대장, 원수에 올랐다. 1944년도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는 떼어 놓은 당상으로 보였다. 트루먼은 결단력이 뛰어난 인물이었고, 직선적이고 꾸밈이 없었다. 함정을 파거나, 말을 돌리지 않고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현직에 있을 때보다 저격당한 지 90년이 지난 뒤에야 훌륭한 대통령으로 추앙받은 링컨을 거울로 여겼다. 트루먼은 사적인 자리에서 “문제는 그가 극동지역의 황제가 되고 싶어 했다는 거야. 자기가 일개 육군장교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상관은 바로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게 잘못이지.”라고 맥아더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인생은 쇼, 세상은 무대’라고 생각하는 맥아더가 보기에 트루먼은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경쟁자였다. 워싱턴에 있는 반대세력의 수장이었다. 대학도 나오지 못했고, 군 경력은 주 방위군 대위 계급장이 전부인 ‘미주리 촌놈’에 불과했다. 자신을 파면한 트루먼을 탄핵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봤다. 그가 도쿄를 떠날 때 25만명의 일본인이 성조기를 흔들며 울었고, 뉴욕에 도착해 행진을 벌였을 때 700만명의 인파가 열광하면서 장군의 귀향을 슬퍼했다. 미국인들은 그를 한국전쟁의 순교자로 여겼다. 맥아더 해임은 ‘남북전쟁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 헌정위기를 불러왔다.’고 기술될 정도로 혼란상을 가져왔다. 상원청문회가 열렸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던’ 장군의 진면목은 매일 3000만명이 지켜보는 TV중계 앞에서 발가벗겨졌다. 일흔 살 대원수의 진실은 미리 준비한 연설과 달리 사흘 내내 계속된 청문회에서 바닥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등을 돌렸다. 그는 대통령에게 경례하지 않은 처음이자 마지막 장군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대면했던 10월17일 웨이크섬 회담에서 맥아더 장군은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경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두 번씩이나 본국소환에 불응하는 기록을 세운 전무후무한 장군이기도 했다. ●군사작전 실행후 추후 보고 합참은 맥아더에게 결정타를 먹였다. 4월8일 전원회의에서 참모들은 ‘예외 없이 맥아더 해임’에 찬성했다. 미국 합참이 펴낸 ‘한국전쟁’에서 공식적으로 열거한 맥아더 해임의 주요 이유는 타이완 문제에 대한 대통령과의 불화였다. 맥아더는 중립을 추구하는 트루먼 정부의 타이완 정책을 따르지 않았다. 중국의 개입에 대한 오판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 뒤 38선 돌파와 압록강까지 북진, 압록강 교량 폭격 같은 중요한 군사작전을 실행 후 추후 보고형식으로 승인받았다. 이 밖에 대외정책에 대해 공개 언급하지 말라는 대통령 훈령을 여섯 번이나 위반했다. 맥아더가 3월24일 중국본토로의 확전을 언급하자 트루먼은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군통수권자로서의 나의 명령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나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더는 그의 불복종을 참을 수가 없었다.”면서 해임을 결심했다고 미국 합참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부고]

    ●김기태(전 거제 장목중 교장)씨 별세 종대(현대자동차 생산과장)종모(이건산업 부장)영미(거제고 교사)씨 부친상 옥유전(우리은행 금호산업 자금관리단장)강점석(대우STI 전무)씨 장인상 임명숙(부산 명서초 교사)씨 시부상 김기춘(전 법무장관)기근(전 진도그룹 전무)기신(일신건축 설계 부사장)씨 형님상 20일 거제 백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55)636-0099 ●김재정(전 LG애드 미디어본부 상무)씨 모친상 임채권(전 우성건설 이사)씨 장모상 20일 을지병원, 발인 23일 오전 9시 (02)970-8444 ●박병구(예비역 공군 준장·전 한국석유시추 사장)씨 별세 영채(드림어학원 대표)씨 부친상 이상훈(동국산업 과장)씨 장인상 2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6시 (02)3410-6901 ●이윤상(법률신문 기자)씨 부친상 21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3일 오전 10시 (02)2227-7587 ●김원한(세명대 사무처장)씨 부인상 사현(연세대 박사과정)대현(경희대 입학사정관)씨 모친상 이내근(화양초 교사)전유원(한국디지털미디어고 교사)씨 시모상 2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4시50분 (02)3010-2291 ●이문형(사업)씨 부친상 윤장한(코런 상무)씨 장인상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30분 (02)3010-2233 ●석준(청주 석내과 원장)씨 부친상 김종경(한양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이영환(건국대 국제학부 교수)구윤모(인하대 생명공학과 교수)씨 장인상 21일 청주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30분 (043)224-2898 ●이인재(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서울중앙지방법원장)병태(이병태치과 원장)씨 부친상 20일 부산의료원, 발인 22일 오전 8시30분 (051)607-2659 ●임홍순(오름인더스트리 대표)씨 부인상 2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8 ●김병술(한국무역협회 광주·전남본부장)씨 모친상 2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4 ●유기홍(전 전경련 국제경영원 본부장)기환(세세교역 대표)경삼(GM대우 생산기술연구소 차장)씨 부친상 최완기(FS코리아 대표)박준기(제스미디어 이사)조계일(그린아트 대표)씨 장인상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9시 (02)3010-2265 ●조삼규(전 강진·고흥·승주군수)씨 별세 현재(매일경제신문 편집국장)완재(담양 현대의원 원장)정재(캐나다 거주)씨 부친상 양형모(메디필안과 원장)씨 장인상 21일 조선대병원, 발인 24일 오전 9시 (062)231-8901 ●이순하(충청남도 지적담당)씨 부인상 21일 충남 공주장례식장, 발인 23일 오전 8시 (041)854-1122
  • 사고 시간 9시15분…‘1’에 ‘ㄴ’그려 45분으로

    합동참모본부의 장군은 모두 21명이다. 이 가운데 10일 감사원으로부터 징계 등 조치를 하도록 국방부장관에 통보된 장군은 7명으로 3분의1이다. 합참 수장인 이상의 의장(대장)부터 합동작전본부장·전략기획본부장(이상 중장), 작전참모부장(소장), 작전처장·정보작전처장·전비태세검열실 차장(이상 준장) 등이 포함됐다. 우리 군 조직 피라미드의 최고 상위 그룹인 합참의 작전라인이 초토화된 셈이다. 도대체 합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합참 인사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의장과 전비태세검열실 차장이다. 이 의장은 사건 발생 당일인 지난 3월26일 밤 계룡대에서 열린 합동성 강화 토론회에 참석했다. 금요일 저녁인 데다 합참이 야심차게 준비한 토론회인 터라 참석한 인사들과 술잔도 여러 잔 돌았다. 술이 오른 상태로 KTX를 타고 상경길에 올랐다. 합참 지휘통제실에 복귀한 것은 오후 10시40분을 조금 넘겨서다. 감사원은 폐쇄회로(CC)TV 화면에서 만취한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의장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지통실에 대기했다가 27일 새벽 1시40분쯤 자리를 떴다. 2시간 뒤 지통실을 지키던 작전본부장은 비상경계태세를 지시했다. 집무실에서 잠시 쉬었다는 이 의장은 새벽 5시쯤 일어나 지통실로 다시 내려왔다. 새벽 상황 등에 대해 보고 받은 그는 작전본부장 명의로 내려간 지시사항에 ‘주말에 골프치지 말라.’는 내용을 추가해 오전 6시 자신의 이름으로 예하부대에 다시 지시를 내렸다. 합참은 또 사건 발생 다음날인 27일부터 초동조치의 문제 등을 조사하기 위해 전비태세검열에 들어갔었다. 이후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감사원에 감사를 의뢰하면서 사실상 종료됐다. 전비실은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되면서 관련 조사 내용을 모두 넘겼다고 했다. 당시 국방부는 고강도의 전비검열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감사원의 징계 대상에 전비실 장교들이 명단에 올랐다. 검열을 지휘한 장군부터 대령들까지다. 상식적으로 감사원의 조사내용과 같은 사안을 점검했던 전비실이 왜 징계대상에 포함됐는지 군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전비실은 ‘부실조사’라는 죄명이 달렸다. 전비실은 초동조치 등에 대해 검열하라고 했더니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 의장도 서명했다. 합참은 2함대사령부에서 보고한 사건발생시각 오후 9시15분도 임의로 수정했다. ‘1’에 ‘ㄴ’을 그려 9시45분으로 발표했다. 보고 내용에서 ‘폭발음 청취’도 삭제했다. 감사원은 합참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사설] 軍 전투태세 전면정비, 무너진 자존심 세우길

    감사원이 어제 군의 천안함 사태 대응 체제에 대한 감사 중간결과를 발표하면서 군 지휘부 25명의 징계를 요구했다. 징계 요구 대상자는 장성급 13명과 영관급 10명 등 현역 군인 23명, 그리고 국방부 고위 공무원 2명이다. 현역 군인은 대장 1명, 중장 4명, 소장 3명, 준장 5명이었고 영관급은 대령 9명과 중령 1명이었다. 대규모 징계 요구는 군 대응태세가 문제투성이였음을 상징한다. 국방부는 조만간 대상자의 징계 여부와 주의, 경고, 견책, 감봉, 정직, 강등, 해임, 파면 등 징계 수위를 정할 예정이다. 우리는 징계가 적정하게 이뤄질지를 지켜보겠다. 또 군 전투태세를 전면 정비할 것을 촉구한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은 위기대응 과정에서 어이없는 허점들을 노출했다. 사건 발생 이후 끊임없이 제기된 지휘보고체계 및 초동조치 문제점이 사실이었음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46용사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침몰사건에서 보여준 군 당국의 대응은 종합부실세트였음이 드러났다. 특히 상황보고 및 전파 등 군 지휘체계, 전투준비태세 등 위기 예방 및 대응조치에서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구멍이 곳곳에서 노출됐다. 국민들을 아찔하게 하는 군의 현주소가 염려스럽다. 어제 감사원 발표에서는 군사 기밀과 관련된 예민한 사항이 고스란히 제외돼 군의 대응실태는 더 커다란 문제들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감사원은 공개해도 군의 작전 등에 큰 차질이 없는 것만 선별해서 발표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감사원의 발표는 천안함 사태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 가운데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군 당국의 문제는 감사원이 공개 지적한 내용보다 훨씬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군에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각오를 요구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군 일각에서 벌써 대규모 문책성 인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천안함 사태는 테러성 기습공격인데 군수뇌부에 대한 대규모 문책성 인사를 할 경우 자칫 군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사기를 내세워 징계수위 물타기를 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부적절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군은 뼈를 깎는 자성을 통해 전투태세를 전면 정비해야 한다. 일벌백계를 통해 무너진 군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는 것만이 군의 사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 합참의장 교체땐 육사 31·32기 대장 대이동

    합참의장 교체땐 육사 31·32기 대장 대이동

    감사원이 10일 천안함 사태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함에 따라 국방부와 군에 ‘피바람’이 몰아칠 전망이다. 국방부는 일단 겸허히 수용한다는 입장이지만 예상보다 큰 폭의 대규모 징계 통보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인사 후폭풍, 의장은 징계 못해 감사원이 국방부에 통보한 징계대상자는 대장 1명·중장 4명·소장 3명·준장 5명 등 장군 13명과 대령 9명·중령 1명 등 영관장교 10명, 고위 공무원 2명이다. 대장은 이상의 합참의장, 중장은 박정화 해군작전사령관, 황중선 합참 합동작전본부장, 오창환 공군 작전사령관, 김기수 전략기획본부장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장은 김동식 해군 2함대사령관, 김학주 합참 작전참모부장 등 3명이다. 준장은 5명으로 이들은 합참과 해군의 작전계통에 있는 장군들이며, 고위 공무원은 모두 국방부 소속 공무원이다. 국방부는 일단 감사원이 통보한 대상자들에 대한 사전 심의를 통해 징계 대상자를 선별할 예정이다. 감사원의 통보는 강제력이 없어 국방부와 군이 징계 대상자를 다시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징계 대상자가 선별되면 군 인사법상 징계위원회를 소집해 징계절차를 밟게 된다. 이에 따라 중장 이하 장군들은 다음 주로 알려진 장성급 인사에서 징계성 인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대장인 합참의장은 임면권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의 ‘결심’이 없으면 징계할 수 없다. 이 의장이 김태영 국방장관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하고 전역지원서를 내면 징계성 인사를 대신하게 된다. 일단 이 의장이 교체되면 육사 31기와 32기 출신 대장들의 이동이 예상된다. 32기 출신 중에서 대장 승진자가 추가로 나오게 되며 장성들의 대규모 인사가 불가피하다. 게다가 징계 통보가 이뤄진 장성들 중 사실상 전역이 예정됐던 장군들이 포함돼 있어 후속인사는 메가톤급 인사폭풍으로 번질 전망이다. 군 고위관계자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이번 인사를 통해 군 구조개혁을 이뤄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온정주의를 배제하고 능력에 맞는 파격적인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겉으론 겸허, 속으론 당혹 현역 대장을 포함해 25명의 고위 인사들이 징계대상에 오르면서 국방부와 군은 침통한 표정이다. 국방부 원태재 대변인은 “국방부는 감사원의 조사결과를 겸허히 수용한다.”면서 “이번 조사결과를 기초로 관행적으로 해 오던 일을 철저히 돌아보고 과감히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겸허한 입장과 차분한 모습이다. 하지만 군 일선과 국방부 내부에선 침통함 심정을 드러냈다. 특히 25명 중 15명의 징계대상자가 소속된 합참은 말 그대로 ‘초상집’ 분위기다. ●15명 징계대상 합참 초상집 분위기 합참의 한 장교는 “모시고 있는 지휘관부터 동료까지 모두 징계대상자에 포함됐다.”면서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징계를 받아야 하지만 외부기관으로부터 감사를 통해 징계권고를 받았다는 점에서 씁쓸하다.”고 말했다. 일선 부대의 한 장교는 “감사 결과가 충격적”이라면서 “보고가 생명인 군 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부 합참 및 국방부 관계자들은 군의 고유 기능인 ‘작전’ 분야에 대해 첫 외부기관 감사결과가 충격적으로 드러나면서 후속 불똥이 어디로 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1950년 입교 생도2기 전원 ‘자랑스러운 육사인상’

    1950년 6월1일 생도 2기생으로 입교했다가 20여일 만에 6·25전쟁 발발로 전쟁에 참전한 생도 2기 전원에게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이 수여됐다. 생도로 입교한 지 60년 만이다.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는 4일 생도 2기 동기회 등 동문들에게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육사 교내 화랑연병장에서 열린 행사에서 장정열 전 병무청장(생도 2기)을 비롯한 생도 2기 동기생 전원에게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이 주어졌다. 또 홍성태(14기)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고(故) 김동수(32기) 전 국방과학연구소 본부장도 함께 자스러운 육사인상을 받았다. 생도 2기는 1950년 한국군 최초의 4년제 육사생도로 333명이 입교했다가 25일 만에 6·25전쟁이 발발해 포천지구 전투부터 낙동강 방어선 전투까지 참전했다. 이 과정에서 86명이 전사했으며 12명이 실종됐다. 이들은 모두 생도 신분이었다. 장교로 임관한 2기생 가운데 45명도 전사했다. 전체 동기생 중 43%가 전사한 셈이다. 생존한 2기생들은 전후 중장 2명, 소장 6명, 준장 11명 등 19명의 장성과 47명의 대령을 배출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역대 총동창회장, 원로기수 동기회장, 생도 2기 동기생, 14기 동기생, 32기 동기생 등 1500여명이 참석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부고]

    ●황영일(CTS기독교TV 부사장)씨 장모상 26일 건양대병원, 발인 28일 오전 9시 (042)600-6664 ●홍강의(전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씨 누님상 경자(전 서울대 간호대학장)씨 언니상 박건춘(서울아산병원 의료원장)씨 처형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10시 (02)3010-2295 ●안경희(동서대 취업지원실 팀장)용희(현대중공업 산업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희숙(재송중 교사)씨 모친상 김재철(부산MBC 뉴스총괄팀 부장)씨 장모상 임정희(신정중 교사)씨 시모상 25일 부산 좋은강안병원, 발인 28일 오전 9시 (051)610-9677 ●황대기(신동아골프 차장)씨 부친상 조현경(SK 마케팅앤컴퍼니 부장)씨 시부상 정해근(한맥코퍼레이션 부장)박정헌(유원건축 감리이사)박금춘(유민모터스 대표)씨 장인상 26일 경기 부천 세일장례식장, 발인 28일 오전 7시 (032)662-3850 ●남상유(전 한덕개발 사장)씨 별세 준우(사업)영미(미국 거주)은미(이대목동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씨 부친상 지용훈(곽앤지성형외과 원장)씨 장인상 홍선경(음대 교수)씨 시부상 2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 (02)3010-2230 ●박봉석(전 불광상가 회장)씨 별세 충호(전 한국일보 제작국 부장)선기(사업)삼인(전 한국일보 제작국 사원)씨 부친상 김승식(사업)안호국(명성운수)씨 장인상 25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30분 (02)2227-7550 ●민성기(사업)은기(약사)씨 모친상 황환교(전 상지대 부총장)강신성(경북대 명예교수)조종성(대한궁도협회 회장)이철훈(사업)씨 장모상 황보람(부산대 교수)황아름(의사)조문환(SK브로드밴드 홍보팀 매니저·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씨 외조모상 26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8일 오전 5시 (02)2258-5953 ●김정식(전 대한항공 이사·예비역 육군 대령)씨 별세 유상(국방연구소 연구위원·예비역 육군 준장)유태(건설상역 대표이사)씨 부친상 손태환(세종대 교수)전영범(미국 거주)씨 장인상 2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8일 오전 7시 (02)3410-6901 ●장영섭(대한다업 회장)씨 별세 기선(대한다업 전무이사)씨 부친상 2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8일 오전 6시 (02)3410-6914 ●권오선(자영업)오열(기획재정부 법사예산과장)오상(국립암센터 운영지원팀 부팀장)씨 부친상 문동진(동진실업 대표)씨 장인상 26일 평촌 한림대성심병원, 발인 28일 오전 6시 (031)386-2345
  • [對北제재조치 이후] 美 7함대 일부 서해배치 논의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서울 홍성규 기자│김성찬 해군참모총장과 주한 미해군사령관인 피터 구마타오타오 준장은 25일 해군본부에서 회담을 갖고 천안함 사태 관련 대북조치 이행을 위한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김 총장과 구마타오타오 사령관은 전날부터 시행된 남북 해상항로대 폐쇄 조치와 이르면 6월 실시 예정인 한·미 연합 대잠수함훈련, 올해 하반기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역내외 해상차단 훈련 등 한·미 합동 해상훈련을 원활히 이행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고 해군 측은 밝혔다. 한·미 해군은 서해상의 대북 억지력 강화를 위해 일본 요코스카에 본부를 둔 미군 7함대의 일부를 서해안에 전진 배치하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군은 미 7함대의 전진배치 전력 등 구체적 증강계획은 한·미 연합사와 합참을 통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군은 이와 별도로 오는 27일 서해 태안반도 격렬비열도 해상에서 2함대 산하 함정 10여 척을 동원해 기동훈련을 벌이기로 했다. 해군은 이번 훈련에서 함포 사격 훈련과 함께 대잠수함 폭뢰 투하 연습도 실시할 예정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해군이 서해상에서 해상 기동훈련에 나서기는 처음이다. 이에 앞서 미 국방부는 24일(현지시간) 한·미 양국군이 가까운 장래에 공동으로 대잠수함 훈련과 해상 선박저지 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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