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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백악관 상황실/전경하 논설위원

    [씨줄날줄] 백악관 상황실/전경하 논설위원

    2011년 5월 1일 미국 동부 시간으로 밤 11시가 넘은 시각에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정의는 실현됐다”며 9·11테러를 지휘한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며칠 뒤 사살 장면이 생중계된 백악관 상황실 사진이 공개되면서 오바마의 모습이 다시 이목을 끌었다. 현장 작전팀과 교신하는 합통특수작전사령부 부사령관 마셜 웹 준장이 군복을 입고 테이블 상석에 앉아 있었다. 최고 군 통수권자인 현직 대통령은 폴로 티셔츠에 잠바를 입고 구석에 놓인 접이식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테이블 옆에 있는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보다 지위가 낮아 보였다. 백악관 전속 사진작가 피트 수자가 촬영한 이 사진에 얼굴이 조금이라도 나오는 사람은 13명.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모든 사람의 시선은 모니터 화면에 꽂혀 있었다. 백악관 상황실에는 여러 회의실이 있고 평상시에는 앉는 자리가 정해진 회의실에서 회의가 열린다고 한다. 피트 수자는 빈라덴 사살 작전인 ‘넵튠의 창’을 보려고 안보팀이 작은 회의실로 옮겼고, 오바마 전 대통령이 그 자리를 골랐다고 사진설명에 썼다. 이날 100장 정도 찍었는데 방이 붐벼서 모두 구석에서 찍은 사진들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7일(현지시간) 공개된 사진은 오마바 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단히 다른 스타일’(AP통신)을 보여 준다. 백악관이 이슬람국가(IS)의 수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을 상황실에서 지켜봤다며 공개한 사진에는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등 6명이 앉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 휘장을 뒤로한 채 한가운데 있고 참석자는 모두 양복이나 군복 정장 차림이다. 사람들 시선이 카메라를 향해 있어 꼭 기념사진 분위기다. 그래서 연출된 사진이라는 의혹까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상황실 사진에서 뭘 보여 주고 싶었을까. 자신의 권력을 보여 주려고 긴급 기자회견까지 연 모양인데 언론은 군사상 공개하지 않아도 될 너무 많은 정보를 공개했다면서 부정적인 반응이다. 상황실 사진은 되레 오바마 전 대통령의 사진과 비교되면서 뒷말만 무성하다. 지도자가 찍힌 사진 한 컷은 의미가 많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의 그 작전 사진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기념’ 사진을 만들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데 그 사진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했다면 저런 사진을 찍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찍히는 사람의 의도를 넘어서 본성을 드러내는 사진은 정직하다. lark3@seoul.co.kr
  • 쪼그리고 앉아 상석 내준 오바마…기념 촬영하듯 센터 지킨 트럼프

    쪼그리고 앉아 상석 내준 오바마…기념 촬영하듯 센터 지킨 트럼프

    백악관은 2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진이 ‘이슬람국가’(IS) 수장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을 지켜보는 사진을 공개했다. 8년 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공개한 빈라덴 제거 작전 상황실 사진을 연상케 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상반된 두 전·현직 지도자의 성향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백악관이 이날 공개한 사진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회의실 테이블 정중앙에 앉았다. 또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참모진이 정복과 정장 차림이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기념사진을 찍는 분위기다. 반면,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회의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고, 테이블 상석에는 작전 실무를 담당한 마셜 웹 공군 준장이 앉았다. 실무 책임자에게 상석을 양보한 오바마 전 대통령의 ‘배려’였다. 또 정복과 정장 차림은 단 두 사람뿐이고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간편한 복장이다. 그뿐만 아니라 카메라 앵글이 회의실 가운데가 아니라 한쪽으로 비켜나면서 묘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놀란 듯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모습도 절묘하게 포착됐다. AP통신은 “위험한 군사작전과 백악관의 극적인 순간은 비슷하지만, 두 장의 사진에서 드러나는 대통령의 스타일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실 사진은 ‘연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의 상황실 사진을 찍었던 피트 수자 전 백악관 사진가는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 메타데이터는 17시 5분 24초로, 실제 작전 시간 오후 15시 30분과 차이가 크다”며 연출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의 메타데이터는 시간을 비롯한 촬영의 모든 조건이 기록된다. 위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26일 어린이대공원서 ‘광진가족 백일장’

    서울 광진구가 오는 26일 어린이대공원 열린무대에서 ‘제24회 광진가족 백일장’을 개최한다고 23일 밝혔다. 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이번 백일장은 1996년에 처음 시작돼 올해 24회째 이어지는 광진구의 대표적인 가족 축제다. 가족 간의 화합을 도모하고 구민의 숨은 글솜씨를 뽐낼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됐다. 참가부문은 시와 산문 부문이며 참가대상은 광진구민으로 초등부와 일반부(중학생 이상 청소년 및 성인)로 나뉜다. 참가방법은 시와 산문 중 하나를 선택해 당일 발표되는 글제를 바탕으로 원고 작성 후 시간에 맞춰 제출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제출된 원고는 광진문인협회 소속 심사위원 4명의 엄정하고 공정한 심사를 거쳐 부문별·대상별로 각각 장원 1명, 준장원 2명, 가작 2명 등 총 20명을 선정해 시상할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3·5행시 부문은 광진구민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3·5행시 각 6명씩 총 12명을 선정해 시상할 계획이다.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팝페라 공연, 피에로 벌룬쇼, 매직쇼, 레크리에이션, 경품권 추첨 등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진다. 김선갑 광진구청장은 “온 가족이 참여하는 행사인 만큼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KADIZ 도발 방지 요구하자 러 “국제 규범 지켰다” 발뺌

    러 “정례비행 일환” 기존 입장 되풀이 직통전화 등 우발적 충돌 대책 공감대 브룩스 전 美사령관 “한미일 균열 노려” 한국과 러시아 군 당국이 23일 연례 합동군사위원회를 개최하고 러시아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무단 진입에 대한 재발방지책을 논의했다. 하지만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이날 “장성급 실무 연례 군사협의체인 한러 합동군사위원회 회의가 오늘과 내일 서울 합동참모본부 청사에서 개최된다”며 “오늘 회의에서는 최근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및 KADIZ 침범에 대해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국 측은 남완수 합참 작전3처장이 대표를 맡았고 러시아 측은 국방부 소속의 소장(한국의 준장급)이 이끄는 실무단이 참석했다. 이번 회의는 지난 22일 조기경보통제기(A50)와 전략폭격기(TU95) 등 러시아 군용기 6대가 무려 3시간가량 동·서·남해 KADIZ를 헤집고 다닌 지 하루 만에 열려 관심을 모았다. 한러 양측도 최근 사태를 의식한 듯 이번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하고 결과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한국 측은 러시아 군용기의 잇단 KADIZ 진입에 항의했지만 러시아 측은 “정례 비행의 일환으로 국제규범을 철저히 준수했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러 양측은 이번 회의에서 KADIZ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발적 충돌방지 방안을 협의했다. 직통전화(핫라인)를 설치해 KADIZ 및 인근 상공을 비행하는 항공기에 대한 비행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 양측은 핫라인 설치를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 시기 및 형식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핫라인 설치는 지난해 8월 구두 합의됐고 같은 해 11월 MOU 문안까지 협의됐다. 하지만 아직 공식 체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실무자는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괜찮은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진행됐다”며 “핫라인 설치 등 우발적 충돌 예방과 관련해서는 이전보다 공감대가 형성돼 앞으로 빠른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이날 VOA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KADIZ 무단 진입에 대해 “한미일 삼각공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하고 이를 약화하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러시아가 역내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번 사건을 일으켰다”며 “북한과의 상황이 어떻든 한국은 여전히 특정 지역에서 점점 더 활발해지는 러시아와 방공식별구역에 침입하는 중국과도 싸워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군사안보지원사령관에 전제용 소장

    군사안보지원사령관에 전제용 소장

    정부는 19일 제2대 군사안보지원사령관에 참모장인 전제용(54·공사 36기) 공군 소장을 중장으로 진급시켜 임명한다고 밝혔다. 전 소장은 제103기무부대장, 제606기무부대장, 참모장 등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주요 직위를 역임하며 군 방첩과 방산 보안 분야에 전문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참모장에는 안보지원사 1처장인 박재갑(52·학군 35기) 해군 준장을 소장으로 진급시켜 임명했다.안보지원사의 전신인 국군기무사령부를 통틀어 군 보안·방첩 기관에 비(非)육군 출신이 사령관과 참모장에 동시에 임명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기무사에서도 공군·해군 출신 사령관은 없었다. 이는 현 정부의 육사 배제 기조가 이번 인사에서도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군 댓글 공작’ 연제욱 前 사이버사령관 금고 2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을 전후해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온라인 여론조작 활동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연제욱(소장) 전 사이버사령관이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부장 이수영)는 25일 정치 관여 혐의로 기소된 연 전 사령관에게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금고 2년을 선고했다. 금고는 강제노역이 없는 일종의 징역형이다. 1심에서 선고유예였던 옥도경(준장) 전 사이버사령관은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연 전 사령관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이태하 전 심리전단장,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부대원들 등과 전체적인 모의가 없었더라도 순차적, 암묵적으로 상통해 정치적 댓글을 달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사이버사령부는 어느 조직보다 상명하복의 원칙을 중시하고, 피고인의 지위나 역할, 조직 지휘 및 보고 체계와 사이버 심리전에 대한 관여 정도를 보면 피고인이 부대에서 순차적으로 공모해 범행에 가담했음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옥 전 사령관에 대해서는 “1심에서는 2013년 6월 피고인이 작전 정지를 구두 지시했다는 이유로 이후 정치적 공표 행위를 무죄로 판단했는데 그렇게 지시했다는 업무수첩 기재만으로는 이후 공모 관계가 부정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범행으로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의사가 왜곡됐고, 합리적인 정치를 위한 선택의 기회를 침해당했다”며 “사건의 재발을 막고 군의 정치적 중립에 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이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영공방위 새로운 골키퍼 등장 ‘30㎜ 차륜형대공포’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영공방위 새로운 골키퍼 등장 ‘30㎜ 차륜형대공포’

    지난달 5일 방위사업청은 보도자료를 내고 신형 30㎜ 차륜형 대공포가 시험평가 결과 군의 요구기준을 모두 충족하고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30㎜ 차륜형대공포는 기존에 사용되던 육군의 20㎜ 발칸포를 대체하는 무기로 국내 최초로 차륜형 장갑차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20㎜ 발칸포는 분당 1,000발 혹은 최대 3,000발의 포탄을 소나기처럼 쏟아내는 기관포로 잘 알려져 있다. 발칸은 로마신화 속 불과 대장일의 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전투기의 기총으로 개발된 20㎜ 발칸포는 미 육군에 의해 비행기 잡는 대공포로도 주목을 받았고, 1967년부터 미군에 배치되기 시작한다. 우리 군은 1973년 최초로 미 군원을 통해 M167 견인발칸포를 도입하게 된다. 도입과 함께 국방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M167 견인발칸포의 국산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핵심장비인 레이더를 비롯한 사격통제장치는 당시 국내 기술수준으로 개발이 불가능해서, 결국 한미공동생산방식으로 만들어진다. 1975년까지 도입된 M167 견인발칸포는 국가 중요 시설의 대공방어에 사용되었으며, 이후 성능이 향상된 국산 KM167A1 견인발칸포를 야전에 배치 운용하게 된다.1980년대 중반에는 한국형장갑차인 K200에 20㎜ 발칸포를 탑재한 K263 자주발칸포가 개발되었으며, 지금도 기계화 부대의 대공포로 사용되고 있다. 이번에 개발 성공한 30㎜ 차륜형대공포는 차체는 육군에 배치중인 보병전투용 K808 차륜형 장갑차를 사용했고, 포탑에는 30㎜ 기관포 2문과 추적및 조준장치를 장착했다. 비록 발사속도는 기존 20㎜ 발칸포에 비해 느리지만 사거리가 1.6배 늘어나고, 스스로 이동이 가능한 자주대공포로 개발돼 기동부대와 함께 방공작전 지원이 가능하다. 또한 네트워크 중심전 개념이 도입되어 방공지휘통제경보체계 등 사격통제체계와 연동하여 실시간 작전을 할 수 있다. 연동 불가 시에는 포탑에 장착된 전자광학 추적장치로 자체 표적 탐지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존 20㎜ 발칸포 대비 주야간 전천후 임무수행이 가능하며 명중률도 대폭 향상되었다.30㎜ 차륜형 대공포는 화력운용 분석모델 전투실험 모의 분석 결과 임무수행능력이 현재보다 약 4배 향상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20㎜ 발칸포와 달리 운용인력의 절반 이하 즉 중대 기준 48명에서 18명으로 운용이 가능해, 미래 군 구조개편에 따른 운용인력 감소에도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2015년 6월부터 550억 원을 투자하여 한화디펜스〮한화시스템과 개발에 착수한 30mm 차륜형대공포는 주요 방산업체 5개 사와 중소협력업체 200여 개 사가 참여했다. 이밖에 국산화율이 95%이상으로 국내 방산 업계 활성화와 관련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파급효과도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개발에만 성공했을 뿐 구체적인 양산계획은 아직까지 잡혀있지 않다. 이 때문에 드론과 같은 새로운 방공위협에 대한 대비와 수출을 위해서라도 조속히 양산계획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군 및 방산관계자들의 의견이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암살이 꼬리 문 혼돈의 에티오피아, 어디로 가나

    암살이 꼬리 문 혼돈의 에티오피아, 어디로 가나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주지와 육군참모총장 등 요인에 대한 잇따른 암살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24일(현지시간) 북부 암하라주 주도 바히르다르에서 최근 쿠데타를 시도한 아사미뉴 치게 준장이 보안군과의 총격전 끝에 사망했다고 밝혔다고 AP, AFP통신 등이 전했다. 외신들은 이날 총상을 입었던 암하라주 검찰수장이 숨지면서 ‘쿠데타 세력’의 공격으로 인한 사망자가 5명으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앞서 22일 오후 암하라주 고위 공무원들이 회의하고 있을 때 ‘암살단’이 들이닥쳐 총기를 난사해 주지사 등 고위직 여러 명이 숨졌다. 몇 시간 뒤 500km 떨어진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서 세아래 메코넨 육군참모총장은 경호원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이 두 사건을 공조된 공격으로 추정했다. 아비 아머드(42) 총리는 23일 군복을 입고 TV에 나와 쿠데타 기도가 진압됐다고 말했다. TV에 나온 총리의 뒤배경을 모두 뿌였게 처리됐다. 이와 관련해 총리의 위치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을 진단했다. 아비 총리는 지난해 군인 수백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총리관저로 처들어와 자신을 살해하려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방탄유리 속에서 연설해 왔다.이번 사태와 관련해 에티오피아 당국은 사망한 치게 준장을 꼭집어 비난했다. 그는 2009년 쿠데타 기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약 10년간 수감생활을 하다 지난해 대사면에 따라 석방됐다. 강경한 암하라 인종주의자인 그는 군대를 모집하고 이웃한 티그레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 왔다. 민간인들에게 무장하라고 선동하는 영상을 최근 페이스북에 게재하기도 했다. 그가 속한 암하라 지역은 에티오피아에서 두번째로 큰 지역으로, 8개 자치주에 약 80개의 인종이 혼재한다. 암하라주 대추장이 에티오피아가 백년 이상 통치하기도 했다. 정치·경제적 소외로 거의 2년간 반정부 시위의 선봉 역할을 했다. 반(反) 아비주의자이지만 세아래 메코넨 육군참모총장의 암살 이유는 불투명하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쿠데타 시도라고 보지만 쿠데타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고 AFP는 전했다. 에티오피아 전문가 게라드 프루니에르는 “쿠데타를 암시할 군대의 중요한 이동이나 공항이나 방송 같은 전략 포인트를 장악하려는 움직임은 없었다”며 쿠데타 기도 가능성을 일축했다. 국제위기그룹(ICG) 전문가 윌리엄 데이비슨은 “이번 건은 암하라주 지도력에 대한 명백한 공격이지만 공격 의도는 명확하지 않다”고 AFP에 말했다.이와 관련해 아비 총리의 개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보 장교 출신인 아비 총리는 다수의 정치적 개혁과 함께 에티오피아항공 등 국영기업 민영화를 시도했다. 이는 정치적 기득권층을 밀어내는 것이어서 정적이 많아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진단했다. 프루니에는 “총리는 외교에 능숙하고 매우 지적인 인물이지만 불행하게도 에티오피아 정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특히 암하라주의 종족 민족주의 힘을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했다. 데이비슨은 “아비 정부는 질서를 회복하고 지역의 민감한 문제가 악화도 확산도 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티오피아의 정국 불안이 이웃 수단으로 번지면서 중부 아프리카의 혼돈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경단녀 출신’ 미군 첫 女 보병사단장

    ‘경단녀 출신’ 미군 첫 女 보병사단장

    미군 사상 최초의 여성 보병사단장이 탄생했다. 군의 여러 분야에서 ‘금녀의 벽’이 허물어졌으나 보병 지휘관은 여전히 여군이 넘볼 수 없는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10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미 캘리포니아 주방위군(CNG)은 제40 보병사단장에 블랙호크(UH60) 헬기 조종사 출신 ‘경단녀’인 로라 이거(54) 준장을 임명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거 준장은 전역하는 마크 말랑카 소장의 지휘봉을 이어받아 약 1만명의 병사를 이끄는 야전 지휘관이 됐다. 1986년 미 육군에 입대해 캘리포니아주립대 학군단(ROTC) 조교로 군 생활을 시작한 이거 준장은 3년 만에 헬기 조종사 자격을 취득해 블랙호크 헬기 의무대 조종사로 활약했으나 아들을 출산하고 육아 문제 등으로 미 육군에서 퇴역하면서 한동안 경력 단절을 겪기도 했다. 이후 다시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으로 돌아온 그는 2011년 제40 전투비행여단 부여단장으로 이라크에 파병됐으며 험지에서의 활약상을 인정받아 2016년 준장으로 진급했다. 이거 준장의 사단장 취임식은 오는 29일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로스알라미토스 합동 훈련기지에서 열린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금녀의 벽’ 허문 미군 첫 女 보병사단장...블랙호크 조종사 출신 ‘경단녀’

    ‘금녀의 벽’ 허문 미군 첫 女 보병사단장...블랙호크 조종사 출신 ‘경단녀’

    미군 사상 최초의 여성 보병사단장이 탄생했다. 군의 여러 분야에서 ‘금녀의 벽’이 허물어졌으나 보병 지휘관은 여전히 여군이 넘볼 수 없는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10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미 캘리포니아 주방위군(CNG)은 제40 보병사단장에 블랙호크(UH60) 헬기 조종사 출신 ‘경단녀’인 로라 이거(사진·54) 준장을 임명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거 준장은 전역하는 마크 말랑카 소장의 지휘봉을 이어받아 약 1만명의 병사를 이끄는 야전 지휘관이 됐다. 1986년 미 육군에 입대해 캘리포니아주립대 학군단(ROTC) 조교로 군 생활을 시작한 이거 준장은 3년 만에 헬기 조종사 자격을 취득해 블랙호크 헬기 의무대 조종사로 활약했으나 아들을 출산하고 육아 문제 등으로 미 육군에서 퇴역하면서 한동안 경력 단절을 겪기도 했다. 이후 다시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으로 돌아온 그는 2011년 제40 전투비행여단 부여단장으로 이라크에 파병됐으며 험지에서의 활약상을 인정받아 2016년 준장으로 진급했다. 캘리포니아 주방위군 역사상 네 번째 여성 장군이 된 이거 준장은 지난해 텍사스주 포트 블리스의 미 북부사령부 태스크포스팀 지휘관으로 옮겨 가 주목받았다. 이거 준장은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에서 대대·여단·사단 지휘관을 모두 맡아 유리천장을 깬 첫 여성으로도 기록됐다. 그가 이끄는 제40 보병사단은 1917년 창설돼 1·2차 대전과 한국전쟁에도 참전한 전통의 부대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지에도 파병됐었다. 이거 준장은 2016년 진급 당시 인터뷰에서 “여성으로서 군은 다른 어떤 직업도 필적할 수 없는 기회를 내게 제공했다. 여성은 군대 내에서 소수임이 분명하지만 내가 맡은 모든 임무에서 대부분의 남성 동료와 부하, 상급자들은 나를 지지하고 존중하며 조언해 줬다”고 말했다. 이거 준장은 또 헬기 조종사로 복무하다 소장으로 제대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언급했다. 이거 준장의 사단장 취임식은 오는 29일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로스알라미토스 합동 훈련기지에서 열린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5·18 발포하던 날, 헬기 타는 전두환 목격했다” 증언 나와

    “5·18 발포하던 날, 헬기 타는 전두환 목격했다” 증언 나와

    당시 헬기 운용 부대장 운전병 오원기씨, JTBC와 인터뷰서 증언 주한미군 정보요원이었던 김용장씨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기간 중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헬기를 타고 광주에 왔다고 증언한 가운데, 같은 날 서울에서 전두환씨가 헬기를 타고 이륙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인이 나왔다. 서울 대방동 공군 706보안부대장의 운전병이었던 오원기씨는 16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1980년 5월 21일 오전 전두환씨를 용산 헬기장에서 직접 봤다고 증언했다. 오원기씨는 당시 전두환씨가 육군이 아닌 공군 헬기를 이용했다면서 해당 기종이 UH-1H로 당시 공군의 ‘귀빈용 헬기’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전두환씨가 당시에 수행원도 없이 극비리에 와서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출발 상황을 목격한 사람은 자신과 헬기 조종사, 부조종사, 기관사(정비사),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운전사, 전두환씨, 그리고 자신의 부대장이었던 신동만 현 예비역 준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활동하던 미 육군 방첩부대 소속 한국인 정보요원 김용장씨는 “전두환씨가 1980년 5월 21일 점심시간 전 K57(제1전투비행단·광주 송정) 비행장에 와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보안대장 등 4명과 회의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 “오자마자 K57비행단장실에서 회의를 했다”고 증언했다. 전두환씨가 이 회의에서 계엄군에 발포 명령을 내렸을 것이라고 김용장씨는 추정했다. 계엄군은 그날 오후 1시쯤 시민군을 향해 발포했다. 그 동안 전두환씨 측은 당시 광주에 간 바가 절대 없다고 강하게 부인해 왔다. 오원기씨는 전두환씨가 헬기를 타고 출발한 시각을 정확히 기억하진 않지만 오전 10시 30분쯤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오원기씨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그 동안 전두환씨가 광주에 도착했다는 증언에 서울에서 출발한 상황을 목격한 구체적인 증언이 더해지면서 진실에 좀 더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다만 오원기씨가 헬기 운용 부대의 운전병이었기에 전두환씨가 당시 헬기를 타고 어디로 향했는지 증언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러나 JTBC는 향후 결정적인 증언이 나올 가능성도 전했다. 바로 오원기씨의 직속 상관인 신동만 예비역 준장의 증언 가능성이다. JTBC는 오원기씨가 당시 신동만 부대장을 수행하던 운전병이라는 사실을 신동만 준장 본인을 통해 직접 확인했다. 그러면서 전두환씨가 당시 헬기를 타고 광주에 갔다는 주장에 대해 묻자 신동만 준장이 이를 부인하거나 하진 않고 ‘전화로 얘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고 JTBC는 전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중동 향하는 美 항모·폭격기·패트리엇… 이란 “물러설 수 없다”

    이란이 지난 8일 미국의 제재에 맞서 핵 활동을 일부 재개한다고 선언한 이후 미국이 이란과의 무력충돌에 대비해 항모전단과 전략폭격기에 이어 패트리엇 요격미사일 포대와 상륙함까지 중동으로 보내기로 했다. 이란도 미국의 압박에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페르시아만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미 관리를 인용해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이 미 중부사령부가 요청한 탄도미사일 요격체계 패트리엇 미사일 포대의 중동 지역 배치를 승인했다고 전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패트리엇 포대의 중동 배치 결정은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가 운용하는 소형 선박에 군장비와 미사일이 실렸다는 첩보가 입수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군은 지난해 말 바레인과 쿠웨이트, 요르단에 배치된 패트리엇 포대를 철수해 이들 국가 중 한 곳에 패트리엇 포대가 재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만 5000t급 해군 대형 수송상륙함 ‘USS알링턴’도 중동으로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미 중부사령부는 지난 9일 B52H 전략폭격기 여러 대가 전날 카타르 알우데이드 공군기지에 착륙한 사진을 공개했다. 미 해군도 지중해의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전단이 이집트 수에즈운하를 통과해 홍해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항모를 보유 중이지만 그것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압박했다. 이에 대해 이란 혁명수비대 정치국의 야돌라 자바니 준장은 10일 “미국은 감히 이란에 대한 군사적 행동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며 “미국과의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맞불을 놓았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김영철 오만방자한 태도, 정세현 “얕잡히지 않겠다는 계산 밖에”

    김영철 오만방자한 태도, 정세현 “얕잡히지 않겠다는 계산 밖에”

    “요번에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서 물러난 김영남이 1년 전 저보고 정세균 의장이라고 하면서 국회를 잘 이끌어줘 고맙다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두 달쯤 지나 평양 찾았을 때 일부러 다가가 ‘위원장님, 전 정세균이 아니라 정세현입니다’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러게요’ 하더군요. 제가 정세균 때문에 손해가 많아요.(웃음)” 4·27 판문점 정상회담 1주년을 며칠 앞둔 지난 25일 제26회 서울신문 광화문 라운지에 연사로 초청된 정세현(74) 전 통일부 장관의 회고다. 1980~90년대 중소분쟁 때 등거리 외교를 실행해 재미를 봤던 김영남(91) 전 위원장의 수하들인 리수용, 리용호 등이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을 타개하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을 지렛대로 활용하는 전술을 구사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였다. 김 전 위원장이 물러날 때가 훨씬 넘어섰음을 강조하는 뜻이기도 했다. 정 전 장관이 이날 나이를 따져 입에 올린 북쪽 인사가 한 명 더 있다. 요즘 김여정과 함께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김영철(73) 전 통일전선부장이다. 정 전 장관의 발언이다. “원래 김영철은 미국에서 안 좋아했다. 인상도 그렇지 않나.(웃음) 4·27 때 저보고 그래요. 원래 군인이기 때문에 만날 일이 없었는데 서로 이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많이 봤겠지요. 냉면 만찬 하는데 쓱 저한테 오더니, 이 친구가 주름도 많고 저보다 한 살 아래인데도 저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여요, 머리(칼) 갯수도 저보다 적고, 1990년 9월 시작된 남북총리회담에 말석 대표였다, 그런데 어느새 커가지고 통전부장 겸 중앙위 부위원장 돼서 세도를 부렸는데, 쓱 보더니 ‘세월은 어쩔수 없구만이요’ 하는 것이다.(웃음) 백악관 집무실에까지 들어가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앉아 얘기를 했으니 북한으로선 굉장히 큰 건데, 당 서열로 보면 리수용보다 한참 아래다. 리수용은 나이도 있지만 김정은과의 친밀도 때문에, 스위스 유학 때도 보좌 역할해서 당 서열이 한참 높았다. 그런데도 대남비서가 항상 상석에 앉고 (리수용) 국제비서를 밀어냈으니 내부에서 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하노이 회담 후 일종의 권력 투쟁도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나이나 경력이나 직급으로 한참 아래인 김영철이 말을 거침없이 하는 것에 정 전 장관은 적잖이 마뜩찮았던 것이다. 다음은 26일자 동아일보의 횡설수설 한 대목이다. ‘1990년 9월∼1992년 9월 8차례에 걸쳐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다. 당시 군사분과위원회 북한 측 대표인 44세의 김영철 소장(73)은 우리 측 대표인 박용옥 준장에게 회담 내내 “준장이 뭐야? 그건 거의 장군이 아니잖아”라며 하대했다. 북한군 소장은 별 하나로 우리의 준장과 같지만, 용어 때문에 자신이 우리 군 소장급인 것처럼 행세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김영철이 네 살이나 더 많은 박 준장을 “남쪽 준장”이라 부르며 계속 건방을 떨자 1992년 5월 7차 회담을 앞두고 박 준장을 소장으로 승진시켰다. 김영철은 별 두 개를 달고 등장한 박 소장을 보고 머쓱해했다고 한다.(중략)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지난해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김영철은 정치군인에 불과하다. 북-미 외교와 남북 관계 총책이라는 자리는 분에 넘친다. 나중에 숙청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천안함 폭침의 배후인 김영철은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남 정치꾼인’으로 불릴 만큼 협상 중에도 도발 등 뒤통수를 치며 골탕 먹이는 데 능란했다. 천안함 폭침 문제를 다룬 2014년 10월 남북군사회담에 수석대표로 나타나는 뻔뻔함을 지녔다.’정 전 장관의 회고와 일치하는 대목이 적지 않고 태영호 전 공사의 예지 능력도 화제가 됐음은 물론이다.사실 북한 고위층이나 협상 대표들의 거친 표현은 늘상 있는 일이다. 퍼뜩 떠오르는 게 ‘오지랖’이다. 외교 관계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오만방자한 표현이다. 2017년의 삭풍을 뚫고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 협력의 기운이 퍼졌던 지난해에도 가끔 거친 입말이 눈에 띄었다. ‘목구멍으로 냉면이 넘어가느냐’는 리선권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정 전 장관은 과거에도 북쪽 파트너가 ‘뭐 주는 사람만 자존심 있나 받는 사람도 자존심 있지’, ‘남쪽은 옛날 (형제끼리 볏짚을 몰래 얹어주는) 미풍양속도 모릅네까, 당신네는 뭐 하나 주고 바로 도장 찍으라고 합네까’라고 맞받은 적도 있다고 돌아봤다. 북쪽의 이런 태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 대한 정 전 장관의 결론이자 답변이다. “전 열등의식과 표리 관계에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약자이기 때문에 무시 안 당하려고 오히려 더 세게 나오는 것이다. 북쪽이 1970~80년대만 해도 회담장 나와 체제 선전 하려고 했다. 그러다 1990년대 경제 내리막에 공산권 붕괴되고 하니까 달라졌다. 약자이기 때문에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고, 그런 정도의 계산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바시르 수단 전 대통령 정적들 가둔 감옥에 이제는 자신이

    바시르 수단 전 대통령 정적들 가둔 감옥에 이제는 자신이

    지난 11일 군부 쿠데타에 의해 30년 권좌에서 쫓겨난 오마르 알 바시르 전 수단 대통령이 엿새 만에 교도소로 옮겨졌다고 영국 BBC가 17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궁에서 삼엄한 경계 아래 연금됐던 바시르는 코바르의 교도소에 갇힌 신세가 됐다. 30년 집권을 하는 와중에 많은 정적들을 이 감옥에 보냈는데 이제 자신이 독방에 갇혀 혹독한 감시를 받게 됐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헨리 오르옘 오켈로 우간다 외무장관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바시르 전 대통령이 원하면 그에게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영장이 발부돼 있지만 정치적 망명을 받아들일지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간다는 ICC 회원국이어서 그가 도착하면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ICC는 아직 이렇다 할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바시르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쿠데타 성공을 이끌었다가 하루 뒤 역시 축출된 아와드 이븐 아우프는 바시르가 “안전한 장소”에 머무르고 있다고만 밝혔다. 이븐 아우프마저 축출된 뒤 압델 파타 압델라흐만 부란 준장이 과도 군사위원회 의장이 돼 실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4개월 동안 시위를 벌여 바시르를 물러나게 한 시위대는 여전히 곧바로 민정 이양을 마무리할 때까지 물러나지 않겠다고 맞서고 있다. 수도 하르툼의 군 사령부 앞에서 캠핑을 하는 시위대의 연좌시위를 해산하려는 시도가 15일에도 있었지만 새로운 대원이 가세하는 바람에 진압 병력도 대치했다가 한 발 물러났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수단 쿠데타 주역 “물러나겠다”, 시위대는 “군부 물러나라”

    수단 쿠데타 주역 “물러나겠다”, 시위대는 “군부 물러나라”

    30년 동안 집권한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만든 군부 쿠데타 지도자가 쿠데타 성공 하루 만에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아와드 이븐 아우프 수단 국방장관은 12일(현지시간) 국영 텔레비전을 통해 군사위원회 위원장 직에서 물러나며 후임으로 압델 파타 압델라흐만 부란 준장이 승계한다고 발표했다. 알바시르 퇴진에 앞장선 시민들이 쿠데타 지도자들이 알바시르와 너무 가까운 인물들이라며 민간정부에 권력을 넘기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번 결정이 나왔다. 시위대는 군의 통금령 선포에 맞서 수도 하르툼에 있는 군 사령부 앞에서 야영을 하며 해산 명령을 무시하고 있다. 이들은 군부가 민간정부에 권력을 이양할 때까지 시위를 중단하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사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집권할 뜻이 없으며 군은 선거만 관리하고 물러날 생각이며 수단의 미래는 시위자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겠지만 군대로선 공공 질서를 회복하고 정정을 불안케 하는 행동은 묵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알바시르 전 대통령을 추방해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세우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븐 아우프는 2000년대 다르푸르 내전 때 군 정보기관 총수로 2007년 미국의 제재 대상에 포함됐으며 직업군인 출신인 알바시르 대통령은 1989년 6월 민선 정부를 무너뜨리고 국가비상령을 선포한 뒤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30년 동안 집권하며 수단을 이슬람 국가로 전환하고 기독교 세력을 소외시켰다. 다르푸르 내전은 2003년 다르푸르 지역 자치권을 요구하는, 기독교계를 주축으로 한 반군과 정부 간 무력 충돌에서 시작해 사망자 30만명과 난민 200만명이 발생했다. ICC는 2009년과 2010년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알바시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4개월 동안 알바시르 퇴진 시위가 이어졌으며 지금까지 시위 과정에 적어도 38명이 숨졌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사망자 1만 4256명… 23%가 아동·청소년, ‘사건’ ‘항쟁’ ‘혁명’ 논쟁에 공식 명칭 없어

    사망자 1만 4256명… 23%가 아동·청소년, ‘사건’ ‘항쟁’ ‘혁명’ 논쟁에 공식 명칭 없어

    ‘고립된 섬’ 제주에서 1948년 4월 3일부터 6년여간 발생한 학살 사건인 ‘제주4·3’은 우리 현대사의 대표적 비극이다. 하지만 ‘전 국민 제주4·3사건 인식조사’(2017) 결과를 보면 광주민주화항쟁(162명 사망), 노근리 양민학살(135명 사망)과 비교해 사망자가 100배(1만 4256명) 많은 데도 국민적 인식도는 가장 낮았다. 2일 4·3 71주년을 맞아 들어는 봤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이 사건에 대해 정리했다. Q. ‘제주4·3’은 왜 이름이 없을까 A. ‘제주4·3’에는 아직 공식 명칭이 없다. ‘제주4·3 사건’으로 흔히 불리지만 시민사회와 학계에선 이를 ‘사건’으로 볼지, ‘항쟁’으로 볼지, 또는 ‘혁명’으로 볼지 의견이 분분하다. 항쟁 또는 혁명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쪽에서는 당시 시위대가 미 군정과 서북청년회의 횡포, 남한만의 단독선거로 인한 분단에 반대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반면, 미군의 발포 사건 이후 남로당 제주도당의 활동으로 이 사태가 커졌다는 지점에선 이념 논쟁이 불거진다. 가해자처럼 보이는 경찰·군인의 가족도 여럿 죽거나 다쳤기에 상황이 더욱 복잡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4·3특별법을 통해 모든 조사가 마무리된 뒤 최종적으로 이름을 붙이자는 데 대부분 동의했다. Q. 피해자들이 왜 외국에도 있을까 A.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강제노역, 유학, 항일 운동, 막일 등을 하던 6만여명의 제주도민은 해방 이후 제주로 귀환했다. 그러나 4·3은 갓 돌아온 이들을 다시 고향 밖으로 뛰쳐나가게 했다. 무장대와 토벌대 간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을 피해 수많은 도민들이 산이나 굴 등으로 피신했다. 해방 뒤 고국으로 돌아왔던 주민들은 학살극을 피해 일본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끝까지 한국에 오지 못하고 타국에서 사망한 사람도 많다. Q. 미국에 책임을 묻는 이유는 A. 4·3의 발단이 된 경찰 발포 사건은 미 군정기인 1947년 3·1절 행사에서 일어났다. 당시 미군 문건에는 미 군정이 4·3 초기부터 강경 진압을 고수했다는 여러 증거가 남아 있다. 1948년에는 브라운 대령이 군경 토벌대 최고지휘관으로 파견돼 제주를 싹쓸이식으로 진압하는 ‘평정 작전’을 주도했다. 이듬해엔 주한미군사고문단 단장인 로버츠 준장에게 지휘권이 넘어가 군경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을 격려했다는 기록도 있다. Q. 피해가 얼마나 컸나 A. 지난해 말 기준 정부가 인정한 민간인 피해자는 1만 4363명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는 1만 4256명이다. ‘제주4·3사건위원회 신고서’에 따르면 피해자 중 20세 이하 아동·청소년이 23%였다. 60세 이상 고령 피해자는 6%였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희생자까지 합하면 피해 규모는 3만~9만명일 것으로 예측된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첫 스텔스기 ‘F-35A’ 청주기지 도착…매달 2대씩 도입

    첫 스텔스기 ‘F-35A’ 청주기지 도착…매달 2대씩 도입

    우리 공군의 전략무기로 운용될 첫 스텔스 전투기 F-35A 2대가 29일 한국에 처음 도착했다. 방위사업청은 “오늘 오후 2시 35분쯤 F-35A 전투기 2대를 운영기지인 공군 청주기지에 안전하게 인계했다”고 밝혔다. 우리 공군의 첫 F-35A 2대는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의 루크 공군기지에서 출발해 하와이 등을 거쳐 총거리 1만 3800여㎞를 비행해 청주기지에 안착했다. 미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KC-135 공중급유기로부터 공중급유를 받으며 타고 왔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명실상부한 스텔스 전투기 보유국 반열에 오르게 됐다. F-35A는 뛰어난 스텔스 능력을 바탕으로 지원 전력 없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은밀히 침투해 목표물을 선별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전략무기다. 3·4세대 전투기를 주력으로 하는 우리 공군의 전술·전략이 변화하고, 공중급유기까지 함께 운영하면서 공중 전투 행동반경도 획기적으로 늘게 됐다. 전쟁억제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군은 평가했다. 왕정홍 방사청장은 “안정적 사업관리를 통해 계획된 일정에 따라 정상적으로 도입하는 것”이라며 “주변국들의 스텔스기 도입에 따른 대응 등 전방위 대비태세 확립을 위한 공군의 작전능력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청주기지에 도착한 F-35A는 우리 공군이 작년 말까지 미국 현지에서 인수한 6대 중 2대다. 국내 처음 도착한 F-35A 2대는 공군 자체 수령절차를 거쳐 4~5월쯤 전력화될 예정이다. 다음 달부터도 거의 매달 F-35A 2대씩이 국내에 도착할 예정으로, 올해 총 10여대가 전력화될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 한 관계자는 “2021년까지 우리 정부가 주문한 F-35A 40대가 모두 예정대로 전력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공군은 이날 첫 F-35A 스텔스기 국내인도 환영 행사를 청주 제17전투비행단장(준장) 주관으로 거행했다. 이왕근 공군참모총장은 이날 F-35A 전력화 현장 점검 등을 위해 청주기지를 찾았으며, F-35A 환영행사에도 참석했다. 공군은 “이 총장이 F-35A를 조종해 인계한 미 공군 조종사들에게 꽃다발을 증정하고 격려했다”고 전했다.최대 속력 마하 1.8로 전투행동반경이 1093㎞인 F-35A는 공대공미사일과 합동직격탄(JDAM), 소구경 정밀유도폭탄(SDB) 등으로 무장한다. 특히,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기능 때문에 적 미사일을 탐지, 추적, 파괴하는 일련의 작전개념인 ‘전략표적 타격’(옛 ‘킬체인’) 핵심 전력으로 꼽힌다. 앞서 정부는 2014년 3월 24일에 열린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7조 4000억원을 투입해 F-35A 40대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20대를 추가 구매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2017년 말부터는 우리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미국으로 파견돼 비행훈련을 받았고 작년 7월에는 미국 루크 공군기지에서 한국 조종사가 처음으로 단독비행 훈련을 했다. F-35A가 처음으로 국내 도착함에 따라 우리 군의 전력증강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온 북한의 반응도 주목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월 20일 남측의 스텔스 전투기 F-35A 도입을 비판하며 “군사적 대결이 관계개선의 분위기를 망쳐 놓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이스라엘 가정집에 로켓 떨어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부터 25일(현지시간) 오전 이스라엘 가정집을 향해 로켓이 날아와 7명이 다쳤다. 총선을 보름 앞두고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마치자마자 급거 귀국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공식 트위터를 통해 “오늘 새벽 5시 20분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 1발이 이스라엘 집을 타격했다”며 “로켓이 집을 타격했을 때 안에는 가족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마스(가자지구 무장정파)에 로켓 발사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며 “로켓은 이스라엘을 가로질러 75마일(120㎞)을 날아와 집을 파괴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인 로넨 마넬리스 준장은 현지 언론에 이 로켓이 가자지구 남부의 하마스 초소에서 발사됐다고 말했다. 로켓 공격 이후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와 가까운 이스라엘 남부에 보병부대 등 병력을 추가로 배치하고 일부 예비군에 대한 동원령도 내렸다. 로켓의 공격을 받은 가정집은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북동쪽으로 20㎞쯤 떨어진 농촌 지역이다. 로켓에 맞은 가정집은 심하게 부서지고 불에 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현지 구급 단체는 부상자 7명 중 상대적으로 심하게 다친 여성 두 명 외에 갓난아기 한 명과 어린이 둘을 포함해 경상을 입은 5명을 치료하고 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측에서 지금까지 이 공격의 배후를 자처하는 세력은 등장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을 ‘범죄’로 규정하고 보복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것(로켓 공격)은 이스라엘을 향한 범죄 공격”이라며 “우리는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K-2 전차 방산비리’ 수억원 챙긴 예비역 장군 등 재판에

    ‘K-2 전차 방산비리’ 수억원 챙긴 예비역 장군 등 재판에

    터키 무기 방산비리로 뒷돈 수억원을 챙긴 예비역 장군 등이 재판에 넘겨졌다. 2016년 언론 보도로 세간의 화제가 됐던 ‘파나마 페이퍼스’가 수사 단초가 됐다.7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예세민)는 전날 예비역 준장(전 터키 주재 무관) 고모씨와 전 방산업체 임원 김모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2016년 ‘대형 방산업체 연관 유령회사 발견…스위스 계좌 신설’ 제목의 뉴스타파 보도로 불거진 터키 방산비리 사건과 관련해 뒷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2009년 1월까지 터키 주재 무관으로 근무하다 퇴역한 고씨는 우리나라 K-2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대가로 터키 무기중개상 K사로부터 컨설팅 명목으로 3년에 걸쳐 총 72만 달러(약 8억 1000만원)을 챙긴 혐의(부정처사후수뢰죄)를 받고 있다. 국방과학기술을 수출할 경우 방위사업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고씨는 사전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생산업체 관계자와 방위사업청 공무원들을 종용해 계약을 이끌어낸 것으로 나타났다. 방산업체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에서 2009년 4월까지 근무한 김씨도 K사로부터 K-9 자주포 성능개량사업에 터키업체 제품이 납품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을 받고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총 120만 달러(약 13억 5000만원)를 챙겼다. 나아가 국내외 방산부품 납품업체로부터 납품 성사 대가로 금품 7억원을 받은 정황도 추가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무기중개상 K사가 조세회치퍼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운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작됐다. 국내 방산업체들이 검은돈을 은닉한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가 나온 이후 관세당국은 관련자들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조사했고, 지난해 초 자료를 넘겨받은 검찰은 1년 동안 수사를 진행해왔다. 검찰은 이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기각함에 따라 모두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통영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만난 동생… 인제 전투서 생사 달리해”

    “통영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만난 동생… 인제 전투서 생사 달리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20회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9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했다. 20년간 노력해 마침내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은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 송성환 어머니·친형 인터뷰 일시: 1999년 2월 15일 장소: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 271-5 장간란 씨 자택 대담: 장간란(전사학생 송성환 어머니) 송종환(전사학생 송성환 친형) 이경종(인천학생 6·25 참전관 설립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 ※송성환은 전쟁 중에 전사했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와 친형의 인터뷰로 대신합니다.친동생 송성환에게 부모·집 지키라고 당부 6·25사변 때 나(송성환의 친형 송종환)는 철도공무원으로 철도국에 다녔다. 1950년 가을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하여 우리 인천이 또다시 북한괴뢰군에 점령당할 위기에 몰리자, 그해 12월 초에 국민방위군(제2국민병) 소집통지서가 나한테 왔다. 1950년 12월 17일 6년제 인천중학교(현재 제물포고교)에 모인 국민방위군(제2국민병)들과 같이 남하하였다. 나는 남하하는 전날 밤 내 동생 성환이에게 너는 아직 어리니까 부모님 모시고 집을 지키고 있으라고 당부의 말을 하였다. 하루 50㎞씩 걸어 국민방위군 수용소 도착 1950년 12월 17일 날 나는 인천에서부터 걸어서 내려가서 이듬해 1951년 1월 3일이 되어서야 경상남도 통영방위군 제3수용소(통영충렬국민학교)에 도착하였다. 그때 하루에 120리(약 50㎞) 길을 걸었을 때도 있었는데 내려가는 도중에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때 굶거나 얼어 죽은 국민방위군(제2국민병)들이 많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문경새재도 걸어서 넘어갔으며, 고생고생하며 경상남도 통영에 도착하였다. 그때 통영충열국민학교에 들어갔는데 들어가 보니까 그곳은 국민방위군(제2국민병) 제3 수용소였으며 그곳이 마지막 집결지였다. 통영충열국민학교에서 친동생 송성환 만나 그때 막 통영충열국민학교에 도착하였는데 “형”하고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까 거기에는 생각지도 않게 내 동생 송성환이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 “네가 여기까지 웬일이냐”고 물으니까 동생 성환이가 “형이 인천에서 내려간 이튿날 친구들과 같이 인천학도의용대를 따라 남하하여 여기 통영까지 오게 되었는데 와서 보니까 인천에서 떠난 국민방위군(제2국민병)이 여기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형님이 이곳에 오지 않나 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때 이러한 내 모습이 안 돼 보였던지 성환이는 자기가 갖고 있던 양담배 채스타 한 갑과 끼고 있던 은반지를 내게 빼 주면서 “형, 나는 아직 쓸 돈이 남아 있으니까 염려 말고 이것 받아요. 우리들은 곧 부산에 있는 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들어가니까 형 몸조심하세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친동생 송성환이 준 은반지 팔아 밥 사 먹어 그때 나도 동생에게 “군에 입대하더라도 몸조심하고 우리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라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때 내 동생이 준 은반지를 팔아서 허기를 달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통영 방위군 제3 수용소(통영충열국민학교)에서 3월까지 수용되어 있다가 제주도로 건너가 육군 제1 훈련소에 입소하여 훈련받고 060 군번을 받고 육군이 되었다. 그 후 나는 육군 보충대를 거처 강원도 전투지역으로 배치되었다. 당시 5사단장은 민기식 준장이었다. 그때 내가 간 전투부대가 5사단 27연대 2대대였다. 이때 3대대에는 인천학도의용대로 인천에서부터 같이 온 내 아우 친구들도 많이 보였다. 그때 우리 5사단이 속해 있는 군단이 포위되면서 후퇴할 때 많은 병력 손실이 있었다. 인제 전투에서 당한 손 부상으로 명예제대 그때 포위당해 매일 걸어서 후퇴하는데 며칠 몇 밤을 잠을 못 자고 후퇴만 하니까 그때는 ‘잠 한번 실컷 잤으면…’ 하는 것이 제일 큰 소원이었다. 그때 내가 인제 전투에서 손에 부상 당해 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게 되었을 때인데 며칠을 후퇴하면서 전투하느라 씻지를 못해 손을 치료해야 하는데 손에 때가 많이 묻어 있어 간호사한테 손 내밀기를 주저한 일이 있었다. 그 후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그 해 1951년 10월에 그 부상으로 인하여 나는 상이 명예제대를 하게 되었다. 친동생 송성환의 전사 사실 뒤늦게 알아 이렇게 제대를 하여 인천 집에 돌아와 보니까 내 동생 성환이의 전사통지서가 와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동생 전사통지서를 받으신 우리 아버지께서 낙담하시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속이 상하셨던 우리 아버지께서는 전사한 동생 때문에 한이 되시어 상심하시다가 동생의 전사통지서를 받고 2년 뒤 44세의 젊은 나이에 그만 세상을 하직하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5사단 강원도 인제지구 전투에서 거의 같은 날에 동생은 전사하고 나는 부상당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제대한 후에야 알게 되었으며 제대하기 전 5사단에 있을 때 내 동생 친구들은 동생이 전사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나한테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다.송성환 어머니 “전사 아들 생각 때마다 눈물” 우리 성환이는 6년제 공립 인천공업중학교 3학년이었던, 사변 나던 해(1950년) 겨울 집을 떠날 때 전쟁에 나가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고 떠났어… 어렸을 때부터 전쟁놀이를 좋아했는데 전쟁놀이를 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시늉을 할 때는 쓰러지면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면서 쓰러지곤 하였는데 끝내는 피어보지도 못하고 전쟁터에서 쓰러져 전사했어. 49년 전에 전사한 아들이지만, 그 전사한 아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요.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호에 21회 계속 ■ 참전기 20회를 마치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중학교 3학년 16살에 자원입대 후 참전하여 전사한 아들을 49년간 그리워하면서 슬퍼한 어머님의 눈물이 이 나라를 지킨 것이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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