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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하자마자 난리”…지성, 첫 방송부터 시청률 6.9% 터뜨린 ‘이 드라마’

    “공개하자마자 난리”…지성, 첫 방송부터 시청률 6.9% 터뜨린 ‘이 드라마’

    배우 지성 주연의 MBC 새 금토드라마 ‘판사 이한영’이 첫 방송부터 분당 최고 시청률 6.9%를 기록한 데 이어 2회에서도 시청률 상승세를 보이며, 지난해 부진을 겪었던 MBC 드라마국의 ‘구원투수’로 떠올랐다. 4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방송된 ‘판사 이한영’ 2회는 전국 가구 기준 시청률 4.4%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일 첫 방송이 기록한 4.3%보다 소폭 상승한 수치다. 1회 방송 당시 지성이 죄수복을 입고 피고인석에 앉아 울부짖는 장면은 순간 최고 시청률이 6.9%까지 치솟으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판사 이한영’은 거대 로펌의 지시를 따라 부당한 판결을 일삼던 적폐 판사 이한영(지성 분)이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10년 전 단독판사 시절로 회귀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정의 구현 회귀 판타지다. 2회에서는 누명 끝에 사고를 당하고 죽음을 맞이한 후 10년 전으로 회귀한 이한영의 정의 구현이 시작됐다. 과거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으며 본격적인 복수의 서막을 열었다. 이 작품은 지난해 시청률 고전을 면치 못했던 MBC 드라마국이 자존심을 걸고 내놓은 승부수다. MBC는 지난해 총 9편의 드라마를 선보였지만,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는 단 한 편도 없었다. 올해 방영된 MBC 드라마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은 서강준 주연의 ‘언더커버 하이스쿨’로 자체 최고 시청률 8.3%에 그쳤다. ‘1%대’ 굴욕을 맛본 드라마는 무려 세 편에 달한다. 특히 노정의, 이채민 등 신예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바니와 오빠들’은 0%대 시청률을 7번이나 기록하며 ‘MBC 금토드라마 역대 최저 시청률’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킬미, 힐미’로 MBC 연기대상을 받았던 지성이 10년 만에 MBC로 복귀했다는 점은 방송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지성은 ‘올인(최고 시청률 47.7%)’, ‘뉴하트(최고 시청률 32.0%)’, ‘커넥션(최고 시청률 14.2%)’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tvN 드라마 ‘악마판사’와는 또 다른 결의 판사 캐릭터를 선보이며 호평받고 있다. 방송 직후 시청자 게시판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지성 연기는 역시 믿고 본다”, “사이다 전개가 기대된다.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다 쓸어버리길”, “박희순과의 기 싸움 장면에서 숨도 못 쉬고 봤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 21년 만에 돌아온 무기수… ‘출소 3개월’ 만에 노모를 잿더미 속에 묻다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1년 만에 돌아온 무기수… ‘출소 3개월’ 만에 노모를 잿더미 속에 묻다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자정의 화염, 그리고 돌아온 아들의 절규2010년 5월 16일 자정 무렵, 경기도 파주시의 한 다세대주택 골목. “불이야!” 하는 다급한 비명이 정적을 깼다.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온 이웃 A씨(51)는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는 옆집을 보며 얼어붙었다. 그 집에는 70대 노모 최 모(72) 씨와 50대 큰아들 김 모(53) 씨가 살고 있었다. 현장에 있던 아들 김 씨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는 A씨에게 “어머니가 안에 있다. 빨리 119에 신고해 달라”고 애원했다. 소방차가 도착하고 주민들이 몰려나와 “지금이라도 들어가서 어머니를 구하라”고 소리쳤지만, 김 씨는 불길이 무서운 듯 문밖에서 어린아이처럼 울부짖기만 했다. 김 씨는 출동한 경찰에게 “동료와 술을 마시고 들어왔는데 현관을 열어 보니 이미 집 안에 불길이 가득했다”며 넋이 나간 듯 진술했다. 불은 10평 남짓한 집을 모두 태우고 꺼졌다. 작은방에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까맣게 탄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김 씨의 어머니였다. 겉으로 보기엔 술에 취해 귀가한 아들이 화재를 뒤늦게 발견해 노모를 구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고처럼 보였다. 하지만 파주경찰서 형사들의 직감은 달랐다. 단순 화재로 보기엔 석연치 않은 점들이 감지됐다. “죽은 자는 숨 쉬지 않는다”시신의 훼손은 심각했다. 화마는 표면적인 증거들을 대부분 삼켜버렸다. 하지만 현장감식반은 타버린 시신의 콧속으로 조심스럽게 면봉을 밀어 넣었다. 화재사(燒死) 여부를 가리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결정적인 ‘기도 내 매연 부착’ 검사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기도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나온 면봉에는 그을음이 전혀 묻어 있지 않았다. 살아있는 사람은 화재 현장에서 본능적으로 호흡하며 유독가스와 매연을 들이마신다. 이 때문에 기도와 폐에는 반드시 검은 흔적이 남는다. 이것이 ‘생활반응’이다. 그러나 최 씨의 기도는 깨끗했다. 이는 불이 나기 전, 최 씨가 이미 호흡을 멈춘 상태였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살해당한 뒤 불이 질러졌다는 강력한 증거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도 이를 뒷받침했다. 시신의 목과 턱밑에서 미세한 출혈이, 기관지에서는 거품이 발견됐다. 전형적인 목 졸림에 의한 질식사 소견이었다. 사건은 화재 사고에서 존속살해 및 방화 사건으로 전환됐다. 21년 전의 악몽, 그리고 3개월 만의 파국경찰은 즉시 아들 김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의 신원을 조회하던 형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김 씨는 초범이 아니었다. 그는 21년 전, 4세 여자 아이를 납치해 성폭행하고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중범죄자였다. 사회로부터 영구 격리된 줄 알았던 그는 모범적인 수형 생활 등을 이유로 사건 발생 불과 3개월 전인 지난 2월, ‘특별감면’을 받아 가석방된 상태였다. 21년 만에 세상에 나온 그를 받아준 유일한 혈육은 칠순의 노모뿐이었다. 어머니 최 씨는 흉악범으로 낙인찍힌 아들을 거두어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동거는 3개월 만에 참혹한 비극으로 끝이 났다. 김 씨는 범행을 극구 부인했다. 그는 “집에 불이 난 지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집에 도착했다”며 자신의 알리바이를 주장했다. 화재 발생 추정 시각에 자신은 집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2개월여에 걸친 끈질긴 탐문 수사와 CCTV 분석, 통신 기록 조회를 통해 김 씨의 동선을 1분 단위로 복원해냈다. 그 결과 김 씨의 주장은 완벽한 거짓임이 드러났다. 김 씨는 화재 발생 1시간 30분 후가 아니라, 화재 발생 1시간 30분 전에 이미 집에 도착해 있었다. 결정적인 증거는 또 있었다. 김 씨가 범행 후 알리바이를 조작하기 위해 교통카드 회사에 전화를 걸어 “버스를 타고 내린 시간이 기록으로 남느냐”고 문의한 녹취록이 확보된 것이다. 스스로 제 발등을 찍은 셈이었다. 또한, 화재 발생 전 집 안에서 모자가 크게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웃의 증언도 확보됐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이 제시되자, 김 씨는 결국 고개를 떨궜다.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저질렀습니다.” “교도소에서 모은 돈 쓰지 마라” 한마디에…드러난 범행 동기는 허무하고도 비열했다. 사건 당일, 술을 마시고 들어온 김 씨에게 어머니 최 씨가 훈계를 했다. “네가 교도소에서 어떻게 모은 돈인데…. 그 돈을 유흥비로 낭비하지 마라. 정신 좀 차리고 살아야지.” 어머니는 아들이 수감 생활 동안 영치금 등을 아껴 모은 돈을 술값으로 탕진하는 것을 걱정해 나무랐던 것이다. 하지만 21년 만에 사회에 나온 아들은 어머니의 걱정을 잔소리로만 받아들였다. 격분한 김 씨는 순간적으로 어머니의 멱살을 잡고 흔들다 목을 졸라 살해했다. 자신을 기다려준 어머니를 죽인 후, 그는 자신의 범죄 경력 때문에 가중 처벌을 받을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방화’였다. 그는 시신과 범행 현장을 은폐하기 위해 라이터로 옷가지에 불을 붙여 방 안에 던졌다. 그러고는 밖으로 도망쳐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보내다, 불길이 거세지자 다시 돌아와 목격자 행세를 했다. 화마도 태우지 못한 ‘패륜의 흔적’파주경찰서는 김 씨를 존속살해 및 사체손괴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무기징역수에서 21년 만에 특별감면으로 풀려난 그는 다시 재판부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타버린 어머니의 폐 속에 남겨진 ‘깨끗한 공기’는 아들의 비정한 범행을 고발하는 침묵의 증언이었다. 어머니는 20년 넘게 감옥에 있는 아들을 기다렸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감사의 인사가 아닌 죽음의 손길이었다. 잿더미가 된 집터에는 불길로도 지워지지 않는 끔찍한 패륜의 흔적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 스스로 ‘착한 사위’로 칭한 살인자… 유서에 남겨진 결정적 실수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스스로 ‘착한 사위’로 칭한 살인자… 유서에 남겨진 결정적 실수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010년 9월 20일 밤 10시, 굳게 닫혀 있던 노래방 문이 5일 만에 열렸다. “어머니가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딸의 다급한 신고로 119 구조대가 문을 개방했을 때, 지하 노래방 특유의 곰팡내 사이로 비릿한 부패취가 섞여 나왔다. 내실에서 발견된 노래방 여주인 A씨의 시신은 언뜻 보기에 전형적인 자살처럼 보였다. 좁은 방에 반듯하게 누운 시신, 그 곁에 놓인 빈 소주병 두 병, 그리고 타자로 정갈하게 작성된 A4 용지 두 장 분량의 유서까지. 유서에는 “빚 때문에 힘들다”,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신변 비관 내용이 담겨 있었고, 마지막 장에는 도장까지 찍혀 있었다. 시신 옆에는 피 묻은 부엌칼이 놓여 있었고, A씨의 왼쪽 손목에는 주저흔으로 보이는 자상이, 가슴에는 치명상이 남아 있었다.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고 문은 잠겨 있었다. 모든 정황이 ‘삶을 비관한 여주인의 극단적 선택’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건은 그렇게 단순 변사로 종결될 수도 있었다. 형사들의 눈에 들어온 미세한 ‘부조화’들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위화감이 든 현장에서 발동한 베테랑 형사들의 ‘촉’현장을 살피던 베테랑 형사들은 직감적인 위화감을 느꼈다. 4.5cm 깊이의 가슴 자상은 심장을 찌를 정도로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신 주변 바닥이 지나치게 깨끗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스스로 가슴을 찔러 사망에 이를 정도라면 현장은 비산된 혈흔으로 낭자해야 했다. 그러나 현장은 마치 누군가 걸레질을 한 듯 말끔했다. 과학수사팀이 루미놀(혈흔 반응 시약)을 뿌리자, 감춰졌던 진실이 푸른 형광빛으로 떠올랐다. 바닥 곳곳에서 누군가 피를 닦아낸 흔적이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자신의 피를 닦고 죽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타살의 강력한 징후였다. 더 결정적인 모순은 피해자의 옷에서 발견됐다. A씨는 가슴에 깊은 칼 찔림을 당해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정작 그녀가 입고 있던 블라우스에는 칼이 통과한 구멍이 없었다. 검은색 치마 역시 깨끗했다. 이는 명백한 결론을 가리켰다. 범인이 A씨를 살해한 뒤, 피 묻은 옷을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는 것.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시신을 ‘세팅’한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는 쐐기를 박았다. 손목의 상처는 살아서 생긴 것이 아니라 죽은 뒤에 만들어진 ‘사후 손상’이었으며, 가슴의 자창은 한 번 찔렀다가 뽑지 않고 다시 힘을 주어 찌른 잔혹한 확인 사살의 흔적이었다. 이 죽음은 자살이 아닌, 치밀하게 연출된 살인극이었다. 유서에 숨겨진 범인의 목소리수사팀은 범인이 현장에 남긴 가장 큰 단서인 ‘유서’를 프로파일링하기 시작했다. 범인은 피해자가 쓴 것처럼 꾸미기 위해 “컴퓨터를 못 해서 PC방 직원이 가르쳐 줬다”, “창피하니 빨리 가야겠다” 등의 구절을 넣어 현실감을 살리려 애썼다. 그러나 그 내용은 오히려 범인의 정체를 폭로하고 있었다. 유서는 기이할 정도로 특정 인물을 옹호하고 있었다. 피해자의 둘째 딸과 교제하다 헤어진 전 남자친구, B씨였다. 유서는 “B가 너 때문에 힘들어하는 게 불쌍하다”, “너도 B가 마음에 있다면 꼭 결혼해라”, “아빠 돌아가셨을 때 B가 곁에 있어 주지 않았냐”며 집요하게 B씨와의 재결합을 종용했다. 죽음을 앞둔 엄마가 남기는 유언이라기엔, 특정 남성에 대한 호의가 지나치게 작위적이었다. 심지어 재산 상속에 대한 부분은 범죄의 동기를 암시했다. “재산은 막내아들에게 주되, 둘째 딸이 함께 살며 챙겨주라”는 내용은, 둘째 딸과 결혼하여 그 재산을 가로채려는 범인의 장기적인 플랜이 투영된 문장이었다. 유가족들 역시 “평소 엄마의 말투가 전혀 아니다”라고 진술했고, 유서에 찍힌 도장 또한 피해자의 것이 아닌 급하게 새로 판 막도장임이 밝혀졌다. 범인을 특정할 물증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피해자의 막내아들은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나갈 때 치마가 아닌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시신에는 치마가 입혀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바지를 입고 나갔다는 것이다. 가짜 유서가 가리키는 인물, 그리고 현장을 조작해야만 했던 이유. 모든 화살표는 단 한 사람, 둘째 딸의 전 남자친구인 20대 남성 B씨를 가리키고 있었다. 삐뚤어진 욕망이 부른 비극 경찰에 체포된 B씨의 범행 동기는 황당하고도 잔혹했다. 그는 사건 발생 2주 전, A씨를 찾아갔다가 “내 딸 그만 쫓아다니고 네 인생이나 똑바로 살아라”라는 핀잔을 들었다. 자신을 사위로 인정해주지 않고 무시했다는 배신감, 그리고 A씨 가족이 보유한 재산에 대한 탐욕이 그를 살인자로 만들었다. 9월 15일, 그는 노래방에 침입해 A씨를 결박하고 흉기로 위협해 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인근 ATM에서 100만 원을 인출한 그는 다시 노래방으로 돌아와, 강도 살인으로 잡힐 것이 두려워 현장을 자살로 위장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이미 숨진 A씨의 옷을 갈아입히고, 바닥의 피를 닦아내고, 미리 준비한 시나리오대로 유서를 작성해 출력해 오는 기행을 저질렀다. 그의 대범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는 범행 직후, 아무것도 모르는 피해자의 막내아들을 만나 태연하게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어머니의 소재를 걱정하는 아들을 위로하는 척하며 함께 노래방(범행 현장) 입구까지 가보는 연기까지 펼쳤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완벽하게 꾸미려 했던 유서가 결국 그를 잡았다. 국과수 감식 결과, 유서 용지에서 B씨의 ‘쪽지문(부분 지문)’ 두 점이 발견된 것이다. 소주병과 칼, 문손잡이의 지문은 완벽하게 지웠지만,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것이라 믿었던 유서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남긴 것이다. 재판부는 B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법원은 범행의 치밀함과 잔혹성, 그리고 반성 없는 태도를 엄벌했다. 이 사건은 범죄자가 아무리 현장을 조작하고 시나리오를 설계해도, 과학적 수사와 논리적 모순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범인은 피를 닦아내면 완전범죄가 될 것이라 믿었지만 루미놀 반응을 몰랐고, 옷을 갈아입히면 결박 흔적이 사라질 거라 믿었지만 청바지를 남기는 실수를 범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착한 사위’로 포장하려던 유서 속의 욕망이 수사관들에게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단서가 되었다.
  • 낭비 없이 빼곡히 채운 사랑과 존경… 절실함으로 써내려간 ‘김대중 옥중서신’[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낭비 없이 빼곡히 채운 사랑과 존경… 절실함으로 써내려간 ‘김대중 옥중서신’[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희호 여사에 보낸 엽서편지 4장큰 시련 앞에 아내 향한 감사 인사한 자 한 자 깨알같은 글씨에 감동김우진·박화성·차범석·김현을 기리며바다 굽어보는 언덕 위 ‘목포문학관’목포가 사랑한 문학가들과의 만남동료·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 전시‘목포는 항구다.’ 이 말에는 ‘개항장 목포’의 근현대와 격동이 담겨 있습니다. 전남 목포시는 그 세월을 여태껏 몸에 지닌 채 살아낸 도시입니다. 시간을 덧대어 쌓은 근대의 골목에서 만난 모든 것이 편지처럼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에게 빼곡히 눌러쓴 옥중서신이, 문학평론가 김현을 떠나보내고 쓴 소설가 이청준의 편지를 읽다가, 그들의 말과 글이 자꾸만 눈에 밟혀 당신에게 전하는 새해 편지에 슬그머니 옮겨 적고 말았습니다. ●빼곡하게 적어나간 마음 목포에 오기 전, 꼭 두 눈으로 보고 싶던 편지가 있었습니다. 우연히 본 사진 한 장 때문이었는데요. 편지의 실물을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내용을 모두 읽기도 전에 발신인의 진심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곧장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을 향합니다. 목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학창 시절을 보내고 정치 생활을 시작한 곳입니다. 그의 부모는 목포진 인근에서 영신여관을 운영했고요. 지금은 소년 김대중 공부방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공부방 창가로는 목포 앞바다와 삼학도가 보입니다. 소년 김대중은 이 풍경을 보며 꿈을 키웠겠습니다. 그러니 삼학도에 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과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 위치한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삼학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라서 차로 오갈 수 있습니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1층은 카페테리아가 있고 벽면에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전시실은 2층에 해당합니다. 2000년 노벨평화상 시상이 이뤄진 노르웨이 오슬로 현장을 재현한 공간에서 출발해 노벨평화상과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편지는 ‘동아시아 민주화를 위해 걸어온 길’이라는 제목이 붙은 제3전시실에 있습니다. 우선 옥중 생활을 재현한 공간을 들여다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76년 3·1민주구국선언과 19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6년 넘게 감옥에서 보냈지요. ‘인동초’라는 별명은 그때 생겨났고요. 창가에는 그가 옥중에서 읽은 ‘서양철학사’, ‘역사의 연구’, ‘이방인’ 등의 제목이 적혀 있는데요. 수감 중에 무려 6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제가 두 눈으로 보고 싶었던 네 장의 엽서 편지는 그 맞은편에 있네요. 아내 이희호 여사에게 쓴 편지에는 읽을 책들을 청하는 내용이 보이고요.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와~’하는 감탄이 일어요. 숨을 턱 멎게 하는 빼곡한 글씨가 단박에 시선을 끌거든요. 훨씬 큰 지면일 줄 같았는데 고작 A4 한 장 크기에 불과했습니다. 덕분에 실체가 주는 감동은 훨씬 컸고요. ●편지지 빛 바래갈수록… 빛 발하는 감정 김대중 대통령의 편지는 옥중에서 써 내려간 편지입니다. 긴 시간 이어진 편지는 두 권의 책으로 출간할 만큼 방대한 양입니다. 옥중서신은 크게 세 시기로 나뉩니다. 1976년 3·1민주구국 선언으로 복역하던 진주교도소, 1977년 12월 서울대병원 특별감옥, 그리고 19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청주교도소에서 갇혔던 시기입니다. 서울대병원 특별감옥에서는 펜이 없어 못(철사)으로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소장한, 잉크 없는 편지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은 진주교도소와 청주교도소 시기에 쓴 편지를 전시합니다. 펜으로 쓴 편지 역시 못으로 쓴 편지 못지않습니다. 무엇보다 글씨의 모양이 깨알처럼 작습니다. ‘깨알 같다’는 소소하게 재미있는 사건을 비유적으로 쓰는 단어일 텐데요. 이 편지는 글자 그대로 깨알 같습니다. 낭비 없이 가득 채워 촘촘하지요. 어떤 심정이기에, 어떠한 절박함이기에 이리도 절실한 글들을 담아 건넸을까요. 편지의 글씨는 쉬이 읽을 수 없을 만큼 작았습니다만, 다행히 원본 옆에는 확대 스크린이 있어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며 사랑하는 당신에게.” ‘사랑하는’ 앞에 ‘존경’을 표하는 사이라니요. 받는 이를 향한 편지의 첫 호칭은 이미 많은 것을 말합니다. ‘존경하며 사랑하는 당신에게’로 시작하는 이 편지는 1980년 11월 21일에 썼다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로 지목돼 사형을 선고받은 두 달 후였지요. 편지 안에는 두 사람의 오롯한 관계 속에서, 편지지의 빛이 바래갈수록 외려 빛을 발하는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빈틈없는 편지는 진심의 다름 아닐 테고요. 김대중 대통령은 “일생을 두고 겪은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큰 시련 앞에서 아내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믿음이란 느낌이나 지식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의 결단으로 이뤄지는 것“이라 씁니다. 편지 속 장래, 행복, 희망 같은 단어가 왜 그리도 낯선지요. 아마도 죽음을 앞둔 이의 언어처럼 보이지 않아 그랬을 겁니다. 전시하는 편지는 아니지만 ‘옥중서신2’(시대의 창)에는 같은 날 밤 이희호 여사가 쓴 답장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존경하는 당신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는 “내일에 대한 희망 꼭 가지세요”라고 적혀 있습니다. 옥중에서도 흔들림 없이 곧고 단단한 사랑이 못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편지 전시를 보고는 어록 푯말의 통로를 지납니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다’, ‘용기는 최고의 미덕이다’ 같은 용기에 관한 말들이 유독 많습니다. 인동초라 불린 그 또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겠지요. 씩씩하고 굳센 기운이 몹시도 필요한 날이 있었을 겁니다. 그 가운데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라는 말이 마음을 움직입니다. 깨알처럼 작은 믿음일지라도 모이고 쌓이면 신념이 될 수 있겠지요. 한 해의 초입에서 그 말들을 가슴에 새겨 품어봅니다. ●문학보다 더 문학적인 편지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에서 삼학도 서쪽 해안을 따라가다 보면 목포문학관이 나옵니다. 목포문화예술회관 맞은편 입안산 자락입니다. 바다를 굽어보는 언덕 위 문학관은 그 자체로 문학입니다. 이곳에서 목포가 사랑한 4인의 문학가를 만납니다. ‘난파’ ‘산돼지’ 등을 쓰고 성악가 윤심덕과 열애한 극작가 김우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장편 소설 ‘백화’를 쓴 소설가 박화성, 드라마 ‘전원일기’의 얼개를 만든 사실주의 극작가 차범석,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 김현이 그 주인공입니다. 목포문학관은 이들 네 문인의 주제 전시관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 희곡 최초로 국가등록문화유산에 등재된 김우진의 친필 원고와 차범석이 쓴 ‘전원일기’ 첫 집필본, 후배 소설가 박완서가 선배 소설가 박화성에게 보낸 ‘작은 것이나마 선생님이 아껴주실만한 것’으로 시작하는 짧은 편지를 읽습니다. 그리고 김현관에서 꽤 오래 머뭅니다. 김현은 진도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 목포로 이사 왔다고 해요. 1977년에는 김병익 등과 함께 계간 문예지 ‘문학과 지성’을 창간했고요. 김현관은 그의 문학전집을 비롯한 노트와 필기 자료, 작가들이 건넨 선물 등을 전시합니다. 저는 김현이 김병익, 이청준 등 동료 작가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꼼꼼하게 읽어 나갑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학 시절이던 1975년 2월에는 이청준에게 이런 편지를 씁니다. “대답없는 편지인 줄” 알고 있지만 “너에게 밖에 편지할 놈이 없다”는 푸념으로 써나간 편지는 막역한 사이를 짐작하게 합니다. 자신이 읽은 책 가운데 감명 깊었던 대목을 옮겨 적는 게 전부이지만, 편지의 마지막에는 “불행의 사진을 그리지 말거라”라고 당부합니다. 김현이 편지를 쓴 이유는 이청준이 “고통하고 있는” 소설가이기 때문입니다. 아파할 줄 아는 이가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이청준의 ‘알리바이 문학’에도 나오지요. 이청준은 김현이 세상을 떠난 2년 후 그의 아들 김상구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늘 생각하고 있다”로 시작하는 편지는 김현의 글을 읽는 것이 이청준에게는 “절실한 추모”라 전합니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자극이 되며 격려가 되는 친구였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편지는 단순한 편지로 읽히지 않습니다. 내게 가까운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 그들의 안부를 묻고 싶어지는 날입니다. ●새날의 아름다운 것들에게 목포의 옛 시간이 남은 근대역사문화공간에서는 포도책방에 들릅니다. 일제강점기 미곡창고로 지었고 한동안 지역독립영화관이 있던 곳이라지요. 양쪽 벽면과 책방 가운데 커다란 원형 책장이 눈길을 끕니다. 특이한 건 책방의 ‘주인’입니다. 무려 218명이나 됩니다. 200명이 넘는 책방지기가 각각 책장의 한두 칸을 차지하고 ‘엄마별의 뒤죽박죽 책방’ ‘행복@로컬’ 등의 문패를 내걸었습니다. 그러므로 책장의 칸칸은 작은 서점이 됩니다. 알알이 맺힌 포도송이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포도책방이겠습니다. 새 책도 있고 헌책도 있고 소품도 있습니다. 책방지기 가운데는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작가도 있고 평범한 우리네 이웃도 있지요. 홍보도 기발합니다. 펜션 주인장인 어느 책방지기는 펜션 할인권을 내걸기도 했네요. 책방을 나와서는 몬도마노에 머물며 새해 첫 여행의 시간을 갈무리합니다. 몬도마노는 이탈리아어로 ‘한없는 세계’를 뜻하는 숙소입니다. 연극인인 호스트는 작은 집과 방과 뜰에 무한히 확장하는 세계의 염원을 담았지요. 일제강점기 창고를 리모델링한 내부는 층고가 높은 스튜디오 스타일의 복층입니다. 지난해 연말에는 변방연극제가 열리기도 했다 합니다. 숙소였다가 연극의 무대였다 다시 숙소로 돌아온 셈입니다. 삶과 연극이 따로이지 않다는 전갈이겠습니다. 자그마한 뒤뜰 또한 매력적입니다. 저는 자그마한 창 너머 겨울의 뜰을 품은 방에서, 몇 년 동안 쌓인 글들을 읽습니다. 먼저 머물다 간 이들의 글과 주인장이 답장하듯 써놓은 글은 한 권의 편지 모음이라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저는 그들처럼 앉은뱅이책상에서 당신에게 건네는 새해 첫 편지를 씁니다. 목포는 항구라는 뻔한 말 대신 목포는 희망이라고 적습니다. 그리고 목포문학관에서 읽은 김현의 문장을 옮겨 적습니다. “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바다로 가는 노력을 나는 그쳐본 적이 없다.” 아름다울 수 있는 것들을 희망하다 보면 아름다운 것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새해는 우리가 그렇게 살아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 오전 9시 ~ 오후 6시(입장 마감 오후 5시 30분), 월요일 휴관, http://www.kdjnpmemorial.or.kr ● 목포문학관 - 오전 9시 ~ 오후 6시, 월요일 휴관, https://biz.mokpo.go.kr/munhak
  • [훔치고 싶은 문장]

    [훔치고 싶은 문장]

    주인 노예 남편 아내(우일연 지음, 강동혁 옮김, 드롬) “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훌륭한 인간의 노예가 되기 보다 잉글랜드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에게 2024년 퓰리처상을 안긴 장편 소설. 1848년 12월, 미국 조지아주 메이컨의 흑인 노예 부부가 자유와 존엄을 찾아 8000㎞의 여정에 나선 실화를 감동적으로 그렸다. ‘병약한 백인 남성 주인’으로 변장한 아내 엘렌과 ‘충직한 흑인 노예’로 위장한 남편 윌리엄은 대서양을 건너 자유의 땅에 닿을 수 있을까. 688쪽, 2만 2000원. 자작나무 숲(김인숙 지음, 북다) “할머니, 자작나무 숲이야.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죽은 할머니는 지금 내 차 안에 있고, 나는 그런 할머니를 버리러 가는 길이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죽은 사람은 과연 대답할 수 없는 것일까.” ‘산1번지’의 오래된 집 마당에는 억울한 원혼이 잔뜩 묻혀 있다. 그 위로는 끔찍한 기억들이 촘촘히 쌓여 있다. 그 무엇도 버리지 못하는 노인, 쓰레기가 가득 쌓인 삶, 할머니의 죽음을 절박하게 기다리는 손녀.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산1번지’라는 공간에 응축된 ‘여성의 서사’를 담은 공포 스릴러. 384쪽, 1만 7800원. 얼음 사냥꾼(세라핀 므뉘 글, 마리옹 뒤발 그림, 성미경 옮김, 분홍고래) “지구의 담수 20퍼센트가 바이칼 호수에 있어요. 에피슈렐라들이 끊임없이 호수를 청소해서 물이 아주 깨끗하죠. 얼음 사냥꾼이 없으면 호숫가 사람들은 몇 달 동안 물 없이 지내야 해요. 얼음을 베어내는 일은 고달파요. 눈물이 얼어서 뺨에 진주처럼 맺히죠.” 자연에 대한 깊은 정보를 서사적 감수성과 함께 엮어낸 다큐멘터리 그림책. 시베리아 혹독한 자연 환경 속에 살면서 반복되는 이별을 겪는 소년 유리의 이야기와 그 안에서도 미래의 희망을 찾으려는 마음을 광활한 풍경 속에 담아 보여준다. 40쪽, 1만 8000원.
  • 한 단어, 한 줄 툭… 시마가 불쑥 찾아왔다

    한 단어, 한 줄 툭… 시마가 불쑥 찾아왔다

    ‘시마(詩魔)가 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피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 시마와 나눈 22일 동안/ 그 애증의 기록을 남긴다.’ ●시마와 한 달간 동고동락 시를 쓰듯 시인의 말을 남겼다. 정일근(68) 시인은 ‘시의 마귀’가 아니라 ‘시를 짓고자 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일종의 마력’으로 “시마가 찾아와 지난해 10월 한 달 꼬박 동고동락하며 같이 보냈다”고 했다. “시인이 만드는 열정의 이름”이자 “피할 수 없는 유혹” 같은 시마가 불쑥 다가와 시의 한 단어, 한 줄을 툭, 건네주고 사라졌다. 시인은 그것으로 시를 짓고 62편을 추려 ‘시 한 편 읽을 시간’을 냈다. 제목은 ‘밤 열한시 오십육분의 시’에서 가져왔다. ‘지친 바람처럼 무너져 돌아’와 일찍 자리에 누운 어느 날 밤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아직 오늘의 귀퉁이가 조금 남았다, 밤 열한시 오십육분// 이 얼마나 고마운 시간인가, 오늘이 끝나지 않은 것이// 아직 기도할 시간 있는 것이// 시 한 편 읽을 시간 남아 있다는 것이’라며 하루의 끝자락에서 흐르는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헤아린다. 오늘과 내일, 삶과 죽음의 경계에 다다라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품게 된 아쉬움일 수도 있다. 1984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정일근 시인은 한국일보 신춘문예(1985년·시), 서울신문 신춘문예(1986년·시조)에 연이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1987년 첫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창비) 이후 영랑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서정’의 얼굴이 됐다. ●40년 시력… 언어적 경계를 넘어서 이번 신간은 시인의 열다섯번째 시집이자 ‘난다시편’의 다섯번째 책이다. ‘정일근의 편지’와 수록작 ‘시란’(A poem is)의 영문판(정새벽 반역)이 수록돼 있다. “여기 우리들 시를 거기 우리들 시로 거처를 옮겨 언어적 경계를 넘어볼 수 있겠다는 또 하나의 재미를 꿈꿔보자 했다”는 게 출판사의 부연이다. 꽃 한 송이로 꽃밭 다 보여주듯 씨앗 한 톨로 숲을 보여주는 시(‘시가 꾸는 꿈’ 중), 깔끔한 맛과 화려한 향기의 시를 마시며 취하고 싶은 날 찾게 되는 시인(‘시를 도정하듯’ 중)이고 싶은 바람이 시 곳곳에 묻어있다. ‘내 몸을 때려 편경(編磬) 소리 내며/ 시를 읊듯 노래하며 살았으면’(‘다시, 만어’ 중) 하고 40년 시력을 녹여냈다. “제 시의 페이지를 넘기는 당신의 손, 그 손바닥에 손금의 온기로 고스란히 남고 싶습니다.”(‘정일근의 편지’ 중)
  • [책꽂이]

    [책꽂이]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하녀, 공장노동자, 지방 도시의 연금 생활자 등 평생 노동계급의 일원으로 머물렀던 한 여성의 삶을 그려낸 책이다. ‘프랑스 노동계급 여성의 전형적 일생’에 관한 사회학적 논의를 거쳐 다시 ‘노년’과 ‘노인’이라는 사회적 범주, 나아가 늙음과 장애를 숙명적으로 겪는 인간 주제의 취약성과 연대에 관한 이론적 성찰로 이야기를 확장해간다. 366쪽, 1만 8000원. 다시, 사람을 배웁니다(강원국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이었던 저자가 성숙하게 관계 맺는 법을 전수한다. 관계 공부를 위한 핵심 키워드는 중심, 경계, 리더십, 여유, 결단력, 회복이다. 관계의 확장보다는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손을 내미는 ‘마음 근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288쪽, 1만 9000원. 오스만제국사(캐럴라인 핑클 지음, 이재황 옮김, 책과함께) 서아시아, 동유럽, 북아프리카 세 대륙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600년 넘게 통치한 오스만제국. 세계사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지만,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서 폄하되고 왜곡됐다. 15년 이상 튀르키예에 거주하며 연구를 수행해온 저자는 제국의 탄생부터 튀르키예공화국 수립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를 내부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서술한다. 1096쪽, 6만 3000원.
  • 끊이지 않는 케네디家의 비극… 35세 외손녀 혈액암으로 숨져

    끊이지 않는 케네디家의 비극… 35세 외손녀 혈액암으로 숨져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외손녀인 타티아나 슐로스버그가 30일(현지시간) 백혈병 투병 끝에 별세했다. 35세. 슐로스버그의 가족은 이날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박물관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아름다운 타티아나가 오늘 아침 세상을 떠났다”며 “그는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망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다. 고인은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이자 외교관인 캐럴라인 케네디와 디자이너 겸 예술가 에드윈 슐로스버그 사이에서 태어났다.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고인은 옥스퍼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언론계에 진출해 과학·기후 분야 전문기자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뉴욕타임스(NYT)에서 활동했고, ‘눈에 띄지 않는 소비: 당신이 모르는 환경적 영향’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2021년 12월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런던 지하철의 에너지를 활용해 가정에 열을 공급하는 지역 실험에 대해 보도해 주목받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해 ‘뉴요커’에 실린 ‘내 피와의 싸움’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2024년 5월 둘째를 출산한 뒤 희귀 돌연변이를 동반한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 진단과 함께 1년 미만의 시한부 인생이 선고받다고 밝힌 바 있다. 슐로스버그의 죽음으로 케네디 가문은 또한번 비극을 맞이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1963년 총격으로 암살당했고, 동생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도 1968년 유세 도중 총격으로 숨졌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아들인 존 F 케네디 주니어는 1999년 경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고인은 앞서 기고문에서는 케네디 가문의 비극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죽음이 가족에게 끼칠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적기도 했다. 그는 “나는 평생 착한 학생이 되고, 착한 여동생 되고, 착한 딸이 되려고 노력했다”면서 “이제 나는 우리 가족의 삶에 새로운 비극을 더했고, 이를 막을 방법이 전혀 없다”고 썼다.
  • 도망치지 않는 시-황유원론 ①/배민정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평론]

    1. 새로움이라는 단절언제부터 시작된 풍습인지그걸 아무도 모른다- ‘루마니아 풍습’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소음’이 ‘노래’가 되었을 때, ‘침묵’은 야만이었나.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②이라는 아도르노의 위치에서 다시 묻는다. 아도르노는 독일 나치에 따른 인류 최악의 참극 이후, 예술이 억압적인 현실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에 관한 근본적 물음을 던졌다. 물론 이러한 질문은 포스트-주의 세례의 여파가 여전한 현시점에서 새삼스러울지 모른다. 한국 현대시는 2000년대부터 “시인(1인칭)의 내면 고백”이라는 통념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③음을 선언하지 않았던가. 2000년대 시가 정치적으로 무력한 ‘나’ 대신 3인칭의 낯선 존재에 집중함에 따라, 2010년대 시가 역사란 ‘끊임없는 쇠락’과 ‘그에 따른 폐허의 잔해’라는 인식에 머물기를 택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가령 “절벽은 무너진 다음의 가능태”(백은선, ‘중력의 대화자들’, 가능세계, 문학과지성사, 2018)라는 희망 없는 세계에서, “나를 위해서 날지 않기로 마음먹”(김복희, ‘새 인간’,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 민음사, 2018)는 인간-동물의 사유와 같은 것, 혹은 “여기는 사망맵이야”(문보영, ‘배틀그라운드-사막맵’, 배틀그라운드, 현대문학, 2019)라는 식의 농담 속에 공통으로 파국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던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금은 새나라입니까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은 구구 울지 않습니다”(윤지양, ‘오 혹은 없음’, 기대 없는 토요일, 민음사, 2024)라고 말하는 오늘에까지 발견된다. 세계는 개선될 여지가 없고 세계 바깥의 타자는 끝내 파악할 수 없는 채 멎어 있다면, 시가 향할 곳은 오직 ‘기대 없음’ 상태의 내면 공간뿐인 것이다. 2000~2010년대 전위·실험시는 시적 자아의 영역을 넓힌 하나의 성과였으나,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과연 우리는 ‘인간’과 ‘비인간’을 동등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혹 기존 관습에 대한 변화라는 이유로 새로움에 막연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가 화해의 손을 내밀 대상은 세계 바깥의 타자가 아니라, 기대조차 없는 이 현실일지 모른다는 의혹이 황유원의 시에는 담겨 있다. 시인이 “우린 문득 노래란 그런 것임을 절감하고 / 그 노래의 후렴구나 따라 불러야 했네” (‘시베리아 주제에 의한 다섯 개의 사운드 트랙’, 세상의 모든 최대화)라고 말했을 때, “노래”는 곧 부르는 순간 “후렴구” 같은 그리움만을 남기고 떠나는 특별한 언어일 것이다. 그리고 ‘시인의 말’에서 그가 “존재의 소음을 최대한 증폭”시키는 길과 “최대한 잠재워 보는 길”④을 가 보겠다고 밝혔을 때, “소음”은 곧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라 볼 수 있다. 그러니 이쯤에서 이 글의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황유원의 언어를 빌려 보면, “‘소음’이 ‘노래’가 되었을 때, ‘침묵’은 야만이 되었다”는 것은 모든 언어를 시적인 것으로 승화시켜 윤리를 실천하는 최근 시적 경향에 의하여, 정체성의 규율 내에서 ‘침묵’을 지키는 예술 일반은 자연히 비윤리로 규정되고 말았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때 황유원 시는 예술과 현실이 지닌 ‘차이’가 아닌, 그 차이를 ‘수용할 방법’에 주목한다. 그 점에서, 우리는 꿈과 현실의 ‘관계 방식’에 대해 묻는 황유원 시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시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불가능한 꿈’의 요소들은 꿈꿀 수 없는 현실과 소통할 수 없는 타자를 모두 포용하고자 한다. 몰이해에 빠져 있을 때 ‘꿈’이라는 비약은 늘 이해의 다리를 건널 수 있게 하므로. 2. 첫 번째 되감기: 작은 불행에서 최대 불가능성으로오늘 밤 동안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天天來’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이상하게도 파국이 예견된 현실에서 이미 해 본 걱정을 재차 반복할 때, 우리는 묘한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최근 시가 그러한 순간들로 하나의 묵시록적 세계관을 형성했다면, 황유원 시는 “생각만으로 혼미해지는 / 믿을 수 없이 빛나는 횡설수설의 밤”(‘지네의 밤’, 세상의 모든 최대화)에 도취함으로써 당대적 분위기와 갈라진다. 물론 현실 공허를 토로하는 시와 끝내 사라질 신기루를 그려 내는 시, 둘 중 무엇이 더 적합한지 묻는 일만큼 무의미한 것도 없겠지만, 황유원의 시에 그려진 냉혹하고 왜소한 현실은 동시대 시가 빚어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의 시에서 불가능한 꿈의 형상은 현실을 똑바로 직시할수록 점점 더 또렷해질 따름이다. 늘 허무로 귀결되는 환상은 현실과 만날 때라야 비로소 진실성을 얻는다는 것. 냉엄한 현실에도 희망은 피어나듯, 우리의 진심이 꿈을 향한다고 해서 마냥 헛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화물칸에 일렉기타를 한 만 대쯤 싣고 가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무거운 마음그 속을 누가 알겠냐마는 철로만은 알지,짓밟힌 몸길이를 짓밟힌 시간으로 나눠 기차가 절망하기 시작한 지점에서부터 자기 합리화에 성공하는 지점까지 걸린 속도를 계산해 내며 자기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짓밟고 가는 기차의 무게를 참고 견디지기차가 아무리 짓밟고 가도 손가락도 발가락도 잘리지 않는 건 손가락도 발가락도, 아무것도 없어서(…)현실도피란 없어 현실의 최대화만이 있을 뿐- ‘세상의 모든 최대화’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 예술이란 결국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예술 작품은 결국 ‘내’가 꾸는 꿈에서 시작해 ‘내’가 그것을 실현했다고 믿는 한에서만 그 의미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허무 의식에 사로잡힐 때, “일렉기타”를 가득 싣고 가는 예술가의 마음은 길고 무거워진다. 온전히 꿈만 꾸고 싶은 사람일수록 도리어 그것이 허상이라는 진실에 강력히 얽매이게 되기 때문이다. 음악가는 기타 연주를, 시인은 시를 쓰면서 자신의 무능을 자각한다. 그들이 음악과 시를 사랑할수록 그들은 “손가락도 발가락도, 아무것도 없”는 꿈이라는 허무 의식을 견고히 쌓아 간다. 그럼에도 왜 이들은 구태여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자기기만의 꿈을 꾸기를 포기하지 않는가. 현실을 바꾸는 건 오직 꿈뿐이라고 말하는 예술가적 허기는 기계가 생존과 번영을 책임지는 오늘의 시대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문제적 현실을 한층 더 발전된 현실로 해결하는 시대 속에서, 꿈은 현실 억압과는 무관한 일종의 자유로서 되려 그 존재감과 의의를 상실하고 만다. 그러나 우리가 발전과 해결이라는 단일의 명분으로 얄팍해져 가는 현실의 두께를 자각할 수 있다면, 꿈은 여전히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으로 존재할 수 있다. 현실과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는 “현실도피”로서의 꿈이 아니라, 예술은 결코 ‘나’라는 한계를 벗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을 넘어서려는 “현실의 최대화”라는 꿈인 것이다. “도피”의 결말이 ‘꿈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허망한 결론에 닿는다면, “최대화”의 결론은 ‘꿈’ 혹은 ‘현실’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나’의 진정성에 도달한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것을 끝까지 잊으려 애쓰는 시는 어떤 실제와도 맞바꾸지 못할 내면을 간직할 수 있다. 꿈의 귀결점이 ‘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우리는 황유원이 전통 시론을 계승한다고 굳게 믿게 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최대화’가 꿈 안에서 ‘현실 인식’을 통해 비탄과 진정성을 획득한다면, ‘무한대의 밤’은 ‘진정성 있는 꿈’이기를 넘어서 진실한 내면의 순간을 생생히 숨 쉬게 할 장소이길 자처한다. 그곳에서라면 한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사랑하는 백치의 마음도 그리 우스꽝스럽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만이 ‘진짜’ 마음일지도. 물이 든 병에 천천히 꽃다발을 꽂아 주듯병든 꽃다발에 천천히 물을 부어 주듯서로 상처 주고또 용서하고…깨고 나니 꿈이었다깨고 나니 꿈이었다(…)난 사진 찍는 거 싫어하는데 그 꽃을 그 모든 꽃을 모조리 다 찍을 수 있는 모든 각도에서 찍어 간직했죠 오직 그대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 한 장 한 장을 모두 기억했어요 그대는 내게 말했죠 네가 이렇게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대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 모든 게 그대 때문이라고 말해요 이상한 봄이 왔어요 그대로 인해 모든 게 그대로인데 그대로이긴 한데 난 그대에게 이게 다 당신 때문에 핀 거라고 당신은 내게 이제 너는 너무 자유로워졌다고 이렇게 아름다운 꿈을 꾼 적이 없어 나는 눈물이 흘러 전 세계의 모든 계절에 피는 꽃들이 다 피어 있는 언덕, 거기서 난 눈을 떴는데눈을 뜨고도 생생한 꿈이어서도무지 꿈 같지가 않았다-‘무한대의 밤’ 부분(초자연적 3D 프린팅) 황유원 시에서 ‘현실 인식’이 헛된 꿈의 진정성을 획득하는 방식이라면, 지금-여기에서 느껴지는 ‘실감’은 그 진정성을 믿을 만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먼저 이 시에 드러난 꿈과 현실 인식의 관계를 살펴보자. 인용 시의 첫 연에는 냉철한 인식이 “상처”가 되고, 병적인 내면이 “용서”가 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내가 사는 물속인데도 거기 발을 담그는 일이 “상처”가 되는 것은, “물이 든 병에 천천히 꽃다발을 꽂아” 줄 때까지 내가 허공을 걷는 줄 착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회복 불능의 병세가 완연한 게 “용서”되는 까닭은, “병든 꽃다발에 천천히 물을 부어” 줄 때와 같이 누구나 타락에 기대어 무의미한 생을 건너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꿈은 분명 현실이 아니지만, 간혹 ‘가능할 것만 같은 기분’으로 현실에 잔류한다. 그때 ‘꿈같다’는 말은 ‘불가능’이 아니라, ‘잠재된 가능성’으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 시인이란 바로 그 잠재적 가능성의 느낌을 최대한 이어 가고자 생생한 언어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아닌가. 그렇기에 황유원은 “깨고 나니 꿈이었다”라는 허무감을 “도무지 꿈 같지가 않았다”라는 애틋함으로 전환하고자 놀랍도록 “생생한 꿈”을 펼쳐 놓는다. ‘무한대의 밤’은 장시의 형식을 취하면서 “깨고 나니 꿈이었다”의 반복과 변주를 보여 주는 한편, 그 사이에 다양한 고백과 경험의 순간들이 파편적으로 기입된다. 이러한 불연속적인 전개는 그의 꿈을 무시간성의 순간으로 붙잡아 두는 동시에 그 순간에만 머물고 싶은 ‘나’의 내면을 형상화한다. 인용문에서 감정이 가장 고조되는 4연에는 횡설수설한 발화가 펼쳐지고 있다. “그대”를 향한 애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우리는 화자의 정서를 내 것인 양 온전히 느껴 볼 수 있다. 믿을 만한 것이 마땅치 않은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도 믿고 싶은 하나의 진실이 생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대한 사건일지 모른다. 3. 두 번째 되감기: 영원을 위한 반복진한 피맛이 날 때까지 하늘을 사랑하는-‘북유럽 환상곡’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꿈꾸는 주체인 ‘나’는 현실 인식이라는 한계에 투신함으로써 단일한 ‘나’의 권능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황유원 시를 읽는 우리는 여전히 헛된 꿈에 몸을 내던질 수 없다. 세상에 ‘있을 법한 환상’이란 남아 있지 않은 시대에, 현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문학에서조차 ‘순수’가 부담스러워진 시대에, 꿈은 어디까지나 ‘불안한 위안’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계속해서 덧없는 꿈을 꾸고, 그 실현을 믿기 위해 시를 쓴다. 그의 시에는 늘 일시적이고 불명확할 따름인 믿음을 재차 확인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 기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비관은 끝까지 무언갈 믿고 싶었던 순수의 뼈아픈 흔적이자, 더는 무너질 수 없는 ‘나’의 최후 방어선이라는 것. 이때 황유원 시의 반복은 진실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한 장치가 된다. 그의 시에서 “무언어”로 일관한 채 이뤄지는 윤회는 ‘나’의 내면을 널리 초월케 하는 ‘종교적’인 순간과 연결되어 있다. 미켈란젤로 프람마르티노 감독의 영화 ‘네 번’ DVD 뒤에는Language 무언어Subtitles 무자막Running time 88분이라고 되어 있었다매일 저녁 노인은염소젖과 바꿔 온 한줌의 성당 먼지를물에 타 마시고그러면 자신의 병이 나을 거라고굳게 믿는다(…)말과 말 사이말 잠깐 쉬는 곳에서먼지를 가루약처럼 물에 타 마셨다멀리멀리 퍼졌다-‘무언어’ 부분(하얀 사슴 연못) 이 시에 등장하는 영화 ‘네 번’은 “무언어”, 즉 침묵으로 일관한다. 여기서의 ‘침묵’은 언어 아닌 ‘공백’이면서 삶 아닌 ‘죽음’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노인”은 자신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매일 “한줌의 성당 먼지”를 물에 타 마신다. “먼지”가 병을 낫게 한다는 그의 믿음은 허무맹랑하지만, 그렇기에 그 믿음은 더욱 신실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노인”은 먼지를 구하지 못한 단 하루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된다. 여기서 노인의 죽음을 색다르게 해석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지”가 노인의 헛된 꿈이었다는 식의 논리가 아니라 노인의 ‘죽음’ 자체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영화는 ‘노인-염소-전나무-숯’의 삶과 죽음을 통해 총 네 번의 윤회를 보여 준다. 이때 윤회의 과정은 “노인”의 죽음이 염소, 전나무, 숯의 삶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영생을 향한 “노인”의 꿈은 그가 죽고 난 후에야 진정 이뤄질 수 있었음을 말해 준다. 사실상 “노인”의 소망을 실현시킨 건 매일 같이 마신 “성당 먼지”가 아니라, ‘죽음’의 침묵이었던 셈이다. 그렇기에 이 시에서 “멀리멀리 퍼졌다”는 구절은 불변의 영적인 순간을 형성한다. 모든 존재는 ‘죽음’ 앞에 비로소 평등하기 때문에 황유원 시에서의 종교성은 절대적 신성함이나 우월감으로 고립되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 바깥의 존재들에게 선뜻 다가섬으로써 인간 삶의 고결함을 증명한다. 이러한 사유를 “말과 말 사이”에서 “먼지”를 물에 타 마시는 화자에게로 옮겨 와 언어적 차원에서 살펴보자. ‘무언어’에서 ‘시’가 갖는 초월적 의미는 두 가지다. 먼저, 시적 언어는 불필요한 언어를 제거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의미만을 남겨 놓는다. 이때 언어의 공백은 언어가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영원성으로 초월하게 만드는 기제다. 다른 한편으로, 시는 자신의 내부에서 불가능을 향해 나아가는 고통이기도 하다. 시가 갖는 헛된 희망은 역설적이게도, 현실에서 간과되어 온 가치가 있음을 밝혀 주는 윤리가 될 수 있다. 아마 황유원 시의 고요함과 맑음 속에 그 나름의 독특한 온기가 느껴졌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니었을지. ‘무언어’가 윤회라는 종교성을 띤 반복을 통해 영원의 온기를 증명하고자 한다면, ‘존재와 시간’은 실없는 말장난을 통해 영원을 체험한다. 뒤틀린 시간 의식과 현실의 균열을 일으키는 말장난에 의해 이뤄지는 반복은 끝없이 새로워지는 우리들의 속된 삶을 향해 있다. “벌써 올 시가이 지놨는데 저 셰기 고장난 거 아이야?”곧 친구가 올 거라며 큰소리쳐 보지만각 한구석 잿빛 신문지 위에 쌓인 굵고 기다란 순대들시계 밖으로 꺼내져 토막난 시간의 내장처럼고요하기만 해24시간 영업하는 가게에 걸린 시계라고 해서 다른 시계보다 특별히 더바쁠 리는 없고고장이 나서 어쩌다 하루 24시간이42시간이 돼 버리는 일도 일어나진 않을 텐데(…)조금 있다 다시 보면흘러가 버리고 없다테이블에는 때마침 현재진행형으로 펄펄 끓는 순댓국 한 그릇과 찬 소주 한 병이 올려지고 있는데문득, 영감이 그토록 고대하던 친구가어쩌면 나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존재와 시간’ 부분(일요일의 예술가) 24시간 순댓국밥집에서 얼큰히 취해 친구를 기다리던 “영감”은 엉뚱하게도 멀쩡한 시계와 시비가 붙었다. ‘ㅣ’와 ‘ㅖ’를 뒤바꿔 “시계”라는 정(正)과 “셰기”라는 반(反)을 오가는 시의 말장난은 합(合)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영감”의 일그러진 음성에 의해서 “영감”과 그의 현실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균열을 드러낸다. 주어진 시간을 그저 충실히 살았을 뿐인데, 이제 보니 내 삶은 어디서부터 단단히 잘못되었다. 이런 “영감”의 회한은 그 시작점을 가늠할 수 없는 지난한 과거까지 소급되며, 또한 실상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친구”를 기다리는 허황한 미래에까지 뻗어 나간다. 시에서 “24시간”이라는 후회가 “42시간”이라는 선망으로 뒤바뀌고, 또 그런 “42시간”의 꿈이 부상했다가 다시 “24시간”이라는 지극한 현실로 떨어지길 반복하는 동안, 그런 “영감”의 모습을 관찰하는 화자의 시선은 줄곧 현재 시제를 견지한다. “영감이 그토록 고대하던 친구가 / 어쩌면 나였는지도 모르겠다”는 화자의 생각이 과거와 미래라는 양단의 불가능성에 갇힌 “영감”의 존재를 “현재진행형”의 시간성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화자와 “영감”이 있는 곳은 어디까지나 지금 ‘이 시공간’이자, ‘그냥 여기서부터’ 시작되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장소이며, ‘이제’ 식사를 마치면 또 다른 시공간이 펼쳐질 모든 것의 ‘처음’이다. 이 시점에서 “영감”의 “토막난 시간의 내장” 같은 허름한 과거는 “흘러가 버리고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그가 선망하는 미래 또한 소유 불가능성으로 인해 “둘이기에 잠시나마 하나가 될 수 있”(‘백호의 손’, 일요일의 예술가)는 영원의 가능성으로 변모된다. 즉 후회와 선망이 무한히 교차되는 찌든 삶 속에서, “현재”는 화자와 “영감”이 “친구”가 되어 볼 수 있는 무한한 시간성으로 잠재해 있는 것이다. 4. 세 번째 되감기: 타자에게 보내는 안부너처럼 나도 그렇게 항상네 옆에 있을 것-‘새들의 선회 연구’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그리하여 낭만에서부터 출발한 황유원의 시는 최근 시의 화두인 타자 사유에까지 도달한다. ‘낯선 존재의 새로움’이라는 하나의 흐름과 ‘타자는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인식 사이에서 그의 시는 의문을 품고 있는 듯 보인다. 과연 시가 타자를 더 많이 비춘다고 해서 인간의 자기중심적 사고는 약화될 수 있는가? 본래 인간의 뇌는 ‘나’와 무관한 일에 특별한 정서를 느끼기 어려워한다. ‘나’가 사라진 시에서 애초에 내가 왜 벌레나 먼지만큼 작아져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윤리적 구호는 ‘나’의 비대함만 부각시킬 뿐, 어떠한 실천도 이끌어 낼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다고 말하기란 쉽지만, 그것이 곧 주체 중심 사고와의 결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문학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대중의 목소리는 아마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몸과 마음으로 직접 느낄 수 없는 윤리적 목소리는 가짜 화해, 가짜 자유, 가짜 욕망에 불과하다.⑤그런데 왜 우리는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주장할 뿐, 이 난점에 대해 고민하지는 않는가. 그렇기에 황유원은 현재 이곳이 편협한 지대라는 사실부터 깨닫고자 한다. 시는 명백한 고발에 의해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꿈처럼 억압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가상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⑥불화를 불화답게, 결핍을 결핍답게 그려 낸 황유원의 시에서 우리는 윤리를 본다. 그곳만이 더 나은 삶을 위한 태도를 고민할 장소로서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불을 켜자마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벌레들이 있습니다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당신이 불을 켜기 전 벌레들이 담겨 있던 어둠은얼마나 아늑하고 그윽한 것이었겠습니까?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벌레들을 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며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아 사과도할 수 없다는 사실에망연자실해 하며 자, 한번 곰곰이생각해 봅시다당신이 불을 켜기 전 벌레들은얼마나 천천히얼마나 우아하게 이 욕실 바닥 위를 기어다니고 있었겠습니까?(…)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깊이 공감해 봅시다당신에게는 깊은 공감 능력이결여되어 있습니다(…)그 속에 들어앉아아직 채 가라앉지 않은 떨림 속에서아까 듣던 그 음악을계속이어서 들어 봅시다-‘밤의 벌레들’ 부분(초자연적 3D 프린팅) 이 시각, 벌레들은 인간 없는 곳에서 “아늑하고 그윽”하다. 인간을 피해 자기 터전에서조차 몸을 숨겨야 하는 벌레에게서 “아늑하고 그윽”함을 보는 것은 최근 시의 경향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황유원은 여타 시들과 같이 이 땅이 벌레와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터전이라 말하지 않는다. 인간 혹은 벌레, 둘 중 하나는 만났다 하면 “혼비백산”, 한쪽은 박살이 나는 것이 진실된 풍경이기 때문이다. 이 시의 화자는 다분히 ‘인간’적인 입장에서 ‘벌레’의 심정을 대변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라는 말에는, 벌레의 존재성을 긍정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야만 하는 인간의 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미 불이 켜진, 낭만적 환상이 끝나 버린 이곳에서 “우아”했을 벌레의 매력을 음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시인은 최근 시에 자주 등장하는 해체적 사유의 틀 없이도, 인간과 벌레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사유하도록 우리를 이끌고 간다. 이 시에서 벌레를 향한 인간의 “공감”은 역설적이게도, 화자가 인간과 벌레 사이의 해소 불가한 단절을 인정한 지점에서 이뤄지고 있다. 다시 한번 살펴보자. 화자가 ‘우아함’이라는 욕망을 충족하고자 “벌레”를 등장시켰을 때, 이 시의 목적은 ‘인간 욕망의 실현’이라 보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화자의 관심은 애초에 우상이나 소유욕과 같은 질서 세우기가 아니라, 인간과 벌레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대다수의 낭만이 욕망을 원리로 삼는 것에 반해, 황유원 시의 낭만은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깊은 공감 능력이 결여”된 인간이 벌레를 “공감”하게 된 원리가 인간이 벌레만큼 작아졌기 때문인 것 또한 아니다. 이 시의 인간은 그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벌레”에게 느낀 그 “떨림 속에서 / 아까 듣던 음악을 계속” 듣고 싶을 뿐이다. “음악”이라는 아름다운 꿈을 꿀 때, 인간은 벌레를 감각을 선사하는 대상으로서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 시에서 벌레와 인간은 각자가 ‘있는 그대로’ 충분히 평온하다. 그러니까 진짜 문제는 “인간”과 “벌레”의 좁혀지지 않는 ‘차이’가 아닐 것이다. 꿈 없이는 차이를 발견하려는 여유도, 발견 후 그것을 깊이 고민할 여력도 남아 있지 않은 이 협소한 세계. 바로 여기에 우리 삶이 놓였다는 사실이 가장 위급한 문제다. 그렇기에 황유원은 평등이 도래한 장소에서도 계속해서 ‘너’와 ‘나’의 차이를 견지하고자 한다. 고통을 경험한 ‘나’의 내면으로부터 사회적 관계에 따른 ‘너’를 향한 존중과 배려를 가능하게 한다. 충분한 추위가 없으면일부러라도 눈을 내려설산에 오른다여러 고난을 겪을수록여러 사람의 고난을 이해하게 되고나는 여러 사람이 되고갑자기 하늘 어두워지면지그시 눈을 감아 그 어둠두 배로 어둡게 만든다어느덧 두세 배로 불어난 어둠속에서하지만 두 배든 세 배든실은 그냥 같은 어둠일 뿐인어둠 속에서하산을 시작한다함께 내려가는 여러 사람들다 돌아간 카세트테이프의 나머지 한쪽이마저 돌아가기 시작한다-‘오토리버스’ 전문(하얀 사슴 연못) 한 사람이 “여러 고난을 겪”었음을 고백할 때, 우리는 비단 그 사람의 고난의 깊이만을 가늠하지 않는다. 흔히 ‘그것이 얼마나 아픈지 알기에 더욱 슬프다’는 위로는 한 사람의 고난이 얼마나 넓은 아량을 갖게 하는지를 알려 주는 말인 것이다. 한 사람의 고난이 ‘나’라는 단수를 넘어 “여러 사람”으로 향하고자 마음먹을 때, ‘나’의 고난의 깊이는 “여러 사람의 고난”을 이해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 이 시의 “고난” 역시 “설산에 오른다”고 마음먹는 순간, 가늠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로 확장된다. 그런데 이러한 화자의 태도는 구태여 헛된 꿈을 꾸면서 현실에 관해 남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는 시인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시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4연에서 화자는 “두세 배로 불어난 어둠”이라는 다수의 두려움을 “실은 그냥 같은 어둠일 뿐인 어둠”이라는 ‘나’의 두려움으로 응축시키기도 한다. 이때 두려움은 “하산을 시작”하는 순간 발생하는 것이며, 이윽고 “함께 내려가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그 기세를 잃고 만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의 꿈이 그것의 덧없음을 알게 된 뒤에 진정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시인이 일부러라도 시에 고통과 상실의 감각을 새겨 넣는 이유는, 그리하여 기껏 올라간 정상에서 “하산”할 운명을 하릴없이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 공연한 움직임 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인 것이다. 이 시에서 공연한 움직임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설산에 오른다”와 “하산을 시작한다”라는 상하(上下)의 움직임이고, 다른 하나는 “카세트테이프” 한쪽이 다 돌아갔을 때 자동으로 재생되는 “나머지 한쪽”과 같은 끝에서 끝으로의 움직임이다. “설산”이라는 한쪽에서 아름다움 혹은 꿈처럼 고양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하산”해 돌아가는 다른 쪽에서는 무력감과 현실에 대한 고통스러운 인식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때 발생한 고통은 더 나은 현실을 살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시인의 꿈은 부질없는 것일 때부터 이미 희망을 내포한 것이 된다. 황유원의 시가 자꾸만 예술이라는 끝과 현실 인식이라는 끝을 되감는 까닭은, 환상이 현실에 대한 불편감을 표할 때마다 현실은 변화의 가능성을 갖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시는 스스로 이룰 수 없는 고통이 됨으로써 익숙하기 그지없는 현실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다. 이때 꿈을 꾸는 시는 우리의 삶과 태도를 진정 변화시키는 윤리가 될 수 있다. 5. 희망은 어떻게 이어지는가나는 걷는다내가 널 버려도너는 버려지지 않는다-‘사랑하는 천사들’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영원할 것만 같았던 모험도 언젠가 끝이 나기 마련이다. 열 장 남짓한 페이지 안에서 황유원의 시는 어디든 오갈 수 있었다. 메마른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꿈’으로, ‘성스러운’ 영원에서 ‘속된’ 영원으로, 타인 같은 ‘나’로부터 ‘나’ 같은 타인으로. 이런 모험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황유원의 시가 ‘나’라는 주체를 잃지 않았기 때문일 터다. 그의 시의 ‘나’는 극에서 극을 오가면서 넓어지고, 또 깊어진다. 그러나 이렇게 한층 넓어지고 깊어진 ‘나’는 역설적이게도 더 큰 아픔과 대적해야 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가령 야심찬 꿈과 다짐들은 사실상 냉혹한 현실 논리에 강력히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혹은 성스러운 약속들은 때로 세속적인 삶의 회한보다도 생명력이 희미하다는 사실을, 혹은 타인은 ‘나’ 같지 않고 ‘나’ 역시 타인과 결코 같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남김없이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렇게 넓어지고 깊어진 ‘나’는 어떠한 삶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또 다른 극점을 만나리라는 여지를 항상 남겨 둘 줄 아는 넉넉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한 ‘나’는 간절히 바라던 끝이 허무하게 사라진 장소에서도 ‘과정’으로서 자신의 생을 충분히 살아갈 수가 있다. 그리하여 황유원의 시는 “마지막 페이지는 이미 정해져 있음”을 “완벽하게 체감”시키는 이 결론에 다다라 “원래 없던 눈을 / 누구보다도 검게 꼭”(‘12월’, 일요일의 예술가) 감는다. 그의 시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잊지 말라고. 이곳이 어디든, 꿈이든, 현실이든, 모험이 끝나 버린 직후이든, 우리가 잠시 시를 잊을지라도 시는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고. 지금 이곳에서 다시 출발하는 그의 시는 보다 깊어진 걸음으로 또 한발 나아간다.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다음을 향해. ① 황유원은 2013년 등단 이후 다섯 권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세상의 모든 최대화(민음사, 2015),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현대문학, 2019), 초자연적 3D 프린팅(문학동네, 2022), 하얀 사슴 연못(창비, 2023), 일요일의 예술가(난다, 2025). ② T W 아도르노, 홍승용 역, ‘문화비평과 사회’, 프리즘, 2004. 29면. ③ 신형철, ‘2000년대 시의 유산과 그 상속자들’, 창작과비평41, 2013,3. 165면. ④ 하얀 사슴 연못 중 시인의 말. ⑤ 김현, ‘문학은 무엇에 대하여 고통하는가’, 김현문학전집 1, 문학과지성사, 1991. 57면. ⑥ 같은 곳.
  • 언어의 고고학/김세정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소설]

    언어의 고고학/김세정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소설]

    학과 필수모듈인 어학 파트에서 ‘초급 그리스어’를 들을 거라고 말했을 때, 홍은 조금 놀란 듯했다. 당장 졸업 작품부터 준비해도 모자랄 세 번째 학기였다. 그리스어나 라틴어는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쪽 친구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걸 잘 알지 않느냐고, 차라리 일본어를 듣는 편이 도움이 될 거라고 홍이 종용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은 겨우 열 명 남짓이었다. 상대적으로 비인기 언어라 그런지 학생 수는 다른 수업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원탁으로 빙 둘러앉은 좁은 강의실에서는 쿰쿰한 곰팡이 냄새와 학생들이 흘리는 땀내가 뒤섞여 불쾌한 냄새가 났다. 교수가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그리스어 학습 동기를 물었을 때, 그들 대부분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그리스 계통이지만 자신은 그리스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는, 아마 높은 확률로 거짓말일 것임이 분명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아마 수업 하나쯤은 먹고 들어가려는 심산이겠지. 사실 그런 학생들은 생각보다 흔했다. 이쪽은 어머니가 프랑스인이고, 저쪽은 할머니가 러시아인이고, 쟤는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았던 삼촌이 루마니아인이래, 하는 이야기는 너무 흔하디흔해서, 그런 일에 누군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조차 우스꽝스러울 지경이었다. 곧 교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는 강의실에서 유일하게 동양인인 내가 그리스어 수업을 들으려는 이유를 내심 궁금해하는 듯했다. 그 호기심 어린 미소에 힘입어, 그럭저럭 교수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내놓을 수도 있었다. 가령, 코흘리개 시절부터 그리스 신화에 관심이 있어 제대로 연구해 보고 싶었다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에 희랍어가 등장한다는, 꽤 그럴듯한 말로 이야기의 물꼬를 틀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학습 동기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였고, 이들에게 그 이유ㅡ‘아오리스트의 마지막 습작을 읽기 위해서’라는 말은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그 말을 독일어로 제대로 설명할 자신도 없었다. 나는 그저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고, 그 사람이 내게 들려줬던 이야기를 생각했다. 그 사람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일생에 한 번쯤은 안티고네를 원서로 읽어 보고 싶어서요. 금발로 덮인 두피 곳곳에 희끗한 새치가 돋아난 중년의 교수가 나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턱에 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흥미롭다는 듯 빙긋 웃더니, 다른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이 학생이 아주 ‘야심 찬 계획’(ambitionierten Plan)을 가져온 것 같다는 모호한 농담을 던졌다. 그는 말했다. 그 계획에 이르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그리스 방언을 익혀야 하는지. 현대 그리스어에 대한 배경지식은 물론, 고전 그리스어의 아티카 방언, 이오니아 방언과 아이올리아 방언까지. 소포클레스나 호메로스 같은 작자들을, 화자가 사라진 언어를 읽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 아냐면서. 시대와 지역별로 나눈 그리스어의 기원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설명 방식은 내 어깨를 점점 짓눌렀다. 마치 모든 학생 앞에서 나의 ‘야심 찬 계획’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이 자리에서 당장 밝혀내겠다는 듯. 그의 눈빛은 이제 처음 드러냈던 조소를 넘어 약간의 경멸마저 내비치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내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는 것, 그 사실에 관해서라면 이미 오래전에 들은 적이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수업에서 학습 동기를 제대로 밝혔더라면, 어쩔 수 없이 나의 ‘계조모’(Stiefgroßmutter)라고 소개해야 했을, 적어도 내가 아는 지구상의 유일한 아오리스트(Aorist)인 나의 할머니 하나코 씨로부터 말이다. * 시제(Tense)는 시간(Time)과 시상(Aspect)과 함께 작동한다. 할머니의 ‘아오리스트의 필사 노트’는 그렇게 시작된다. * 내가 그 노트를 처음 발견한 것은 라이프치히대학 문창과에서 석사 첫 학기를 보낸 직후였다.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학기 과제를 제출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초봄이었다. 많이 아프셔? 출국하기 전에도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다. 어제 쓰러지셨어, 라고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말했다. 또? 엄마는 답하지 않았다. 조금 지친 목소리로 첫 학기도 보냈는데 한국에 한 번 들어와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아무 음악도 영화도 틀지 않은 채 맞은편의 화면을 응시했다.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노란 경로를 따라 비행기 모형이 느리게 움직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한반도 오른편에 있는 섬나라를 바라보았다. 문득 홍의 고향인 하코다테와 후추시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궁금했다. 엄지와 검지를 펼쳐 그 사이를 가늠해 보았다. 겨우 손톱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좁은 너비였다. 부모님은 대학에 합격한 후에야 유학에 대한 나의 의지를 인정했다. 엄마는 애초부터 내가 독일에 가는 것을 반대했다. 왜 거기까지 가서 또 글을 쓰려고 하냐고. 대체 돈은 언제 벌 셈이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굳이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찬성하지도 않았다. 아마 아버지는 내심 형과 함께 시장의 곡물 가게를 이끌어 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독일에 오기 전까지 나는 서울로 도망간 형 대신 아버지의 쌀가게 일을 도왔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의 얼굴은 생각보다 밝아 보였다. 불과 삼 주 뒤에 죽음이 임박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혈색에, 당황한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나중에 병실 복도에서 엄마에게 들은 바로는 내가 한국에 도착하기 전날부터, 할머니의 정신이 거짓말처럼 맑아졌다고 했다. 나를 보자마자, 할머니는 거친 손으로 내 뺨을 매만졌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느냐고, 애가 왜 이렇게 피골이 상접해 뱃가죽이 등에 눌어붙었느냐면서. 요 몇 달 동안, 자신의 모습을 한 번도 거울에 비춰 본 적 없는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손길이 낯설기도 했고 멋쩍기도 했다. 할머니가 그 정도로 내게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녀가 나의 손을 잡아 침대 위에 살며시 놓았다. 나는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몰라 할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창밖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물어 가는 햇빛이 할머니의 눈동자 속에서 반달 모양으로 일렁이면서 반짝였다. 그녀의 눈 밑에 오랜 세월 동안 자리 잡았을 것임이 분명한 푸르스름한 그림자가 비쳐 보였다. 할머니는 해외 생활은 잘 맞는지, 음식은 어떤지, 앞으로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약간의 시차를 둔 채 차분히 물어왔다. 침묵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잠시 창밖을 보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와 나누는 대화는 항상 그랬다. 할머니는 서른이 다 되도록 취업하지 않은 나의 처지를 별달리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에게 묻는 것은 미래뿐이었다. 그것이 정말 나의 미래를 궁금해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현재에 딱히 관심이 없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배우고자 하는 문학을 진지하게 궁금해하는 사람은 가족 중에서 할머니가 유일했다. 입원하기 전부터 종일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끼고 살았던 할머니였다. 그녀는 내가 유럽에서 인종차별을 겪지는 않았는지, 왜 라이프치히를 선택했는지, 독일의 문학 수업에서는 정말 그리스 신화들을 중요하게 읽는지, 평소 자신이 궁금해했던 질문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나로서는 평생 장사를 하면서 살아온 외할머니와 동년배임에도 불구하고, 질문의 방향이나 밀도가 전혀 다른 할머니의 목소리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하면서도, 가슴속에서는 그런 지적인 대화를 가족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독일에서 지내면서 궁금해진 것들도 많았다. 가령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할머니의 시간에 대해. 홍과 같은 나라에서 나고 자랐으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그녀의 발자국-그 삶의 궤적에 대해. 그러고 보니 너 마침 잘 왔다. 한참 동안 질문을 쏟아내던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다고, 혹시 집에서 노트 한 권을 가져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노트요? 희랍어 노트 말이야. 요즘에도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계시냐고, 내가 깜짝 놀라 묻자, 할머니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일생에 한 번쯤은 안티고네를 원서로 읽어 봐야 하지 않겠니. 나는 조금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옆에 앉아 있던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는지 어서 갔다 오라는 듯 문을 향해 조용히 턱짓했다. 나는 외투를 챙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생긴 노트인데요? 아오리스트. 네? 표지에 아오리스트의 필사 노트라고 적혀 있어. 처음 들어 보는 단어였다. 내가 반사적으로 아오리스트가 무엇이냐고 묻자, 할머니는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왜 이리 군말이 많아. 일단 가져와. 그러면 다 설명해 주겠다고, 할머니는 힘도 없으면서 내 엉덩이를 팡팡 내려치고는 지갑에서 오만 원을 꺼냈다. 갔다 오면서 밥도 먹고 와. * 아오리스트(Aorist)는 무정시제이다. 아오리스트로 포착된 사건은 완결적으로 제시되며, 문맥에 따라 과거에만 묶이지 않고 다양한 시간으로 퍼져 나간다. α -(아니다) όριστος(규정된, 한정된)는 정해지지 않은(αόριστος) 불확정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όριστος는 ὅρος(경계)에 맞닿아 있다. ‘무정’은 ‘부정’(不定)일 수도 있고 ‘미정’(未定)일 수도 있다. ‘부정’(不定)과 ‘부정’(否定)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구별되어야 한다. * 사실 할머니의 일생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였고, 그때 우리는 구포시장 근처에 있는 고급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당시는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지도 겨우 한 달밖에 안 된 시기여서, 나는 그 모든 상황이 이상하고 낯설기만 했다. 할머니는 외할머니와 같은 나이인데도 열 살은 더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와 부드러운 말투 때문인지 외할머니에게선 느낄 수 없던 우아한 기품이 느껴졌다. 할머니의 첫인상은 내게 꽤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건 그날, 내가 절반쯤 남겨 버린 짜장면을 할머니가 자신 앞으로 가져가 거침없이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이미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와 배가 부른 상태였다. 조금 전부터 할머니가 내 그릇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긴 했지만, 갑자기 그릇을 가져가 처음 보는 아이가 남긴 잔반을 거리낌 없이 먹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네가 입이 짧은 모양이구나. 할머니가 조용히 입을 닦으면서 말했다. 내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부모님을 바라보자, 아버지가 아무리 그래도 잔반을 드시냐고, 아직 출출하시면 한 그릇을 더 시켜 드리겠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 손으로 손사래를 쳤다. 됐다. 그냥 딱 한 입 정도만 더 먹고 싶었어. 그리고 할미가 손주가 남긴 음식을 먹는다는데. 그깟 잔반이 뭐가 대수냐. 할머니가 반대편 손으로 냅킨을 꺼내 들며 덧붙였다. 이제 가족인데. 당시, 나는 그런 할머니의 행동에 내심 감동을 받았다. 물론 그것이 완벽하게 의도된 행동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마 아버지의 남동생 내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 여자가 나이가 어린 엄마를 가족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분위기를 내심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렬한 첫 만남에도 불구하고 나와 할머니 사이의 감정적 거리는 꽤나 오랫동안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할머니는 구포동에 있는 오래된 주공아파트 단지에 홀로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치 분기 보고서를 쓰듯, 의무적으로 식재료를 잔뜩 사서 할머니를 방문했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는 의례적인 감사 인사를 건넸다. 내가 할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그때가 전부였다. 하지만 정작 할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나는 그 어색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괜히 할머니의 방안을 둘러보곤 했다. 안방의 벽에는 그 흔한 가족사진 한 장조차 붙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런 시간들 속에서 할머니를 조금씩 알게 됐다.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를 엿들으면서-이제 돈 쓰는 법도 좀 배우세요. 평생 고된 일만 하시고. 저희가 하지 말라고 해도 식당 일에, 식모 생활에… 몸 쓰는 일만 하셨잖아요-그녀의 성격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아들이 용돈을 줘도 일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그렇게 번 돈의 대부분을 저금하는 사람. 남편의 병수발을 들고, 두 아들이 먹을 반찬을 만드는 데 평생을 보낸 사람. 그러나 정작 두 아들은 일본식 반찬을 학교에 가져가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집에 두고 가고, 먼저 간 남편은 자신을 호적에 올리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 일생을 거부당한 사람. 그래서 누구보다 상처받은 사람이 할머니였다. 그래서 가끔 아버지가 못마땅했다. 한 시간이 지나 정해진 칭찬의 레퍼토리가 모두 소진되면, 마치 알람 시계라도 설정해 놓은 사람처럼 이제 그만 가 봐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면, 할머니의 기만당한 삶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도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가장 가까이서 보고 들었을 텐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쏜살같이 일어나 집을 나서려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마치 아버지의 진심을, 아직 오지 않은 불편한 미래를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머니 인생도 굴곡이 많았지. 아버지는 종종 제사를 지낼 때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할머니가 친모가 아니라 계모라는 사실, 친모는 아버지를 낳은 지 이 년도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그때 들었다. 구포동 할머니는 1928년에 도쿄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조선으로 넘어와 구포에 정착했다고.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조선인 남자와 눈이 맞아 결혼했지만, 불과 일 년 만에 병에 걸린 남편과 사별했다고 했다. 일본인 송환 때 돌아가지 않으신 걸 보면 아는 친척도 없으셨던 모양이야. 우리한테는 아들을 조선에서 키우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셨지만. 하나밖에 없던 아들은 전쟁 중에 죽었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스물세 살 때 할아버지를 만난 거라고 아버지는 덧붙였다. 아버지 바람기가 보통이 아니니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지. 제사상에 할아버지의 영정을 놓을 때마다 아버지는 그 시절이 떠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구포동 할머니를 들이기 전까지 집안에 몇 명이 거쳐 갔는지. 다들 하나 같이 화장이 진한 술집 여자들이었다고 했다. 구포동 할머니는 어린 아버지가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은 유일한 여자였다. 다른 여인들처럼 분 냄새를 풍기지도 않았고,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산만한 아버지를 따끔하게 혼냈다고. 그래서 아버지는 이 사람이 아니면 싫다고 했다. 다른 여자들은 싫다고. 어머니로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어린 아버지의 고집에, 할머니는 얼마 가지 않아 쌀가게 사모님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참 박하게 사셨지. 같이 시장에 가면 사람들이 수군거리지를 않나. 그때만 해도 말을 좀 어눌하게 하셨으니. 대놓고 쪽발이라고 부르는 못된 인간들도 많았어. 나나 동생도 사춘기 때는 참 못됐지. 길가에서 친구들이랑 걷다 어머니를 만나면 일부러 못 본 척하고 피해 다녔으니. 어머니도 숨통 트일 때라곤 가끔 일본인 친구들 만나러 가는 게 전부셨을 거야. 거기 모임 이름이 뭐랬더라, 부영회였나? 나중에 검색해 보고서야 나는 그 모임의 이름이 ‘부용회’(芙蓉會)라는 걸 알게 됐다. 아버지는 자신의 생떼로 별난 할아버지 곁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던 할머니의 삶을, 할아버지의 권유로 이른 나이에 아이를 세 번이나 유산해야 했던 그녀의 인생을 얼마간 가엾게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아버지는 할머니에 대해, 하나코라는 인간에 대해 그 이상의 의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에게 할머니란 그저 어머니, 지극히 언어적인 의미로서의 ‘어머니’일 뿐이었다. * 무정시제 연습 55 지배하다 현재 시제 : 지배하고 있다 과거 시제 : 과거에 지배를 했고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다 완료 시제 : 과거에 지배를 했고, 현재에도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무정 시제 : 과거에 지배를 했지만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무정 시제 연습 178 잃어버리다 현재 시제 : 잃어버리고 있다 과거 시제 : 과거에 잃어버렸고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다 완료 시제 : 과거에 잃어버렸고, 현재에도 여전히 잃어버리고 있다 무정 시제 : 나는 과거에 잃어버렸으나,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고, 지금도 잃어버리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과거에 아이를 잃었으나, 그 일은 그때 한 번으로 완결되었고 지금도 잃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만 지속되거나 반복되는 일이 아니기에 이것은 미완료가 아니다. 과거에 발생한 그 일이 현재에 하나의 상태로 고정돼 있다고 말할 수 없기에 완료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잊지 않는다. 영원히 재현할 수 없다. 늘 불완전한 중얼거림으로 남아 있다. 이 모든 것이 그 死語(사어)로부터 비롯되었다. * 홍과 만난 것은 베를린에서 어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어학원 친구의 소개로 시내에 있는 한식집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홍은 내가 살고 있던 사설 기숙사 근처에 살고 있었다. 한 번 외식을 할 때마다 잔고가 추락하는 독일의 미친 물가 덕에, 우리는 제법 큰 공용주방이 있는 나의 기숙사에서 함께 요리를 하면서 가까워졌다. 홍이나 나나 독일의 행정은 지긋지긋해했지만, 맥주만은 사랑했다. 홍의 아버지가 외교관이라는 것, 일본에서 태어나 하코다테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다는 것, 일본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그때 들었다. 솔직히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얼마간 비참해지기도 했다. 그건 아마 잦은 변화 속에서도 자상함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홍의 아버지에 대한 인상이 나의 친부에 대한 의문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친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친가와도 교류가 없었다. 친부는 고등학교 때까지 복싱선수로 활동하다 부상을 당한 뒤부터 구포시장의 도축업자로 일했다고 들었다. 내가 다섯 살 때, 심장병으로 죽은 그는 나에게 자랑할 만한 번듯한 직업조차 남기지 않았다. 고집불통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간. 아들보다는 딸을 원해 내 이름을 중성적으로 지어버려, 늘 사람들에게 나는 남자라고 해명하게 만든 사람. 그것이 내가 엄마에게 들은 친부에 대한 전부였다. 어릴 때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괜히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우리 아버지는 지금 해외에 계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읊어 놓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지 않았다. 엄마가 재혼한 뒤부터는 나에게도 번듯한 아버지가 생겼으니까. 나는 새아버지를 친아버지처럼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곡물 사업을 하고 있다는 모호한 말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은근히 조장했다. 친구들과 격투기 시합을 볼 때면 우리 아버지도 복싱을 했었다고 말했고, 식당에서 시킨 소고기가 생각보다 적어 보일 때는 아버지가 축산업을 해서 아는데, 라는 말로 운을 뗐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렇지 않았다. 오류는 있었을지언정 틀린 말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 할머니도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하시지 않았어? 언젠가 홍이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물론 홍은 그 할머니가 혈연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나는 언젠가 그 말을 하려 했다. 때가 되면 홍의 머릿속에서 파편적으로 떠다닐 나의 가족들을 구분 지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일본인이셔. 술에 취한 그날에도 그랬다. 나도 모르게 말을 내뱉고서야 아차 싶었지만, 말을 고치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야. 그럼 너, 어떻게 보면 일본인 혼혈인 거네? 나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듯한 그 미소가 좋았다. 그 미소가 나도 모르게 거짓을 사실처럼, 허구를 진실처럼 이야기하게 만들었다. 그런가? 나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근데 부모님도 아니고 기껏해야 할머닌데…. 얘 좀 봐. 21세기에 무슨 그런 시대착오적인 발언이야. 피곤함에 지쳐 있던 홍의 눈빛이 갑자기 선명해졌다. 됐고. 할머니 이야기 좀 더 해 봐. 혹시 자세히 말해 줄 수 있어? 그즈음 홍은 소논문을 위해 일본 여성들의 이주사를 정리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해명하는 일을 포기했다. 구포동 할머니가 도쿄도 후추시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오랫동안 부용회라는 재한일본인 처들의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던 사람이었다고 아버지에게 들은 그대로 말했다. 쌀가게에서 나오는 수익을 몇 번이나 빼돌려 해방 후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들의 생계를 돕고, 홀로 이국땅에서 죽은 그들을 위해 손수 장례까지 치러 주는 바람에 할아버지에게 죽도록 맞은 적도 있다고. 그러고 보니 이번에 장례식 끝나고 할머니 노트 가져왔는데. 노트? 무슨 노트? 그게… 할머니가 좀 특이한 분이셨거든. 그리스어 공부가 취미셨어. 나는 서랍 어딘가에 있는 할머니의 노트를 가져왔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에, 엄마가 버리려던 것을 겨우 말려서 들고 왔다고. 구포동 할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 썼던 수십 권의 노트들 중 하나라고 했다. εἰ μέν κ᾽ αὖθι μένων Τρώων πόλιν ἀμφιμάχωμαι 만약 내가 여기 머물며 트로이의 도시를 두고 싸운다면, ὤλετο μέν μοι νόστος, ἀτὰρ κλέος ἄφθιτον ἔσται 내게서 귀향은 사라지겠지만, 불멸하는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할머니는 이 부분을 반복적으로 필사하셨어, 라고 나는 말했다. ‘일리아스’의 문장이래. 왜? 그야 나도 모르지. 잠깐 줘 봐. 홍이 할머니의 노트를 들고 가더니 빠르게 뒤쪽의 페이지를 훑었다. 할머니랑은 한국어로 소통했어? 응.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어가 침투해오는 부산식 한국어긴 했지만. 너희 할머니 작가였어? 무슨 소리야? 너 뒷부분 안 읽어 봤어? 그냥 필사노트라 앞쪽만 읽었는데? 홍이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다시 노트를 건넸다. 그러고는 마지막 몇 페이지를 다시 읽어 보라고 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에게서 노트를 건네받았다. 그녀의 말대로 뒤페이지에는 앞쪽의 시제 연습과는 달리 꽤 긴 산문이 있었다. 모두 그리스어로 기술돼 있었다. 할머니는 그 위에 일본어로 ‘아오리스트의 마지막 습작’이라고 적어 놓았다. 나는 홍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이국의 문자들을 멍하니 응시했다. * 모든 아오리스트는 언어의 흐름 속에서 소외된 존재다. 그러나 소외되었다는 사실이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오리스트는 단일하고 완결된 사건이지만 지속성과 반복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아오리스트는 사라짐이 아니라 한순간의 존재다. 아오리스트는 불멸하는 명성을 추구한다. 끝났으나 끝나지 않은 것들을 찾아 헤매고, 떠나왔으나 정주하지도 귀향하지도 않으며, 죽었으나 결코 죽음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다. 마치 나의 아이처럼. 마치 아이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나처럼. 알 수 없는 것으로 끊임없이 남겨 두려 하는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영원한 탐구가 가능해진다. 나는 무정시제이다. 나는 한 명의 아오리스트다. * 그리스어 수업은 처참한 성적표와 함께 끝났다. 홍의 말대로 나는 이미 수준급의 그리스어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 틈에서 시간이 갈수록 기가 죽었고, 독일어로 작품을 써내느라 수업조차 제대로 참석하지 못한 날이 잦았다. 그리스어를 다시 공부하기로 결심한 것은 그로부터 반년 뒤였다. 졸업작품을 최종적으로 제출한 늦가을부터였다. 홍과는 그즈음을 전후로 헤어졌다. 나는 학업에 뜻이 없었고, 독일에 계속 체류할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었지만, 홍은 미국에서 박사 유학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이국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깔끔하게 돌아섰던 마지막조차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느껴졌다. 한국에는 돌아가기로 결정했어? 아직 잘 모르겠어. 교수님이 졸업 작품을 출간해 보자고 하시는데. 너는 마음에 안 들지? 홍의 즉답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결말 부분을 좀 더 고치고 싶어서. 신중하게 써야지. 홍이 말했다. 너희 할머니 얘기잖아. 나는 그 말에도 잠시 주춤했다. 이번에도 홍의 대답이 곧장 돌아와서는 아니었다. ‘너희 할머니’라는 말.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일본에서 보고 싶은 게 있어. 겸사겸사 한국도 잠시 가고. 다른 계획은 있어? 그냥 친구들이나 만나겠지. 그간 미룬 성묘도 좀 가고. 홍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건 좀 궁금하네. 뭐가? 너희 할머니가 쓴 글들. 너는 마지막까지. 왜, 연구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그간 미국행 준비로 바빴는지 홍의 얼굴이 부쩍 수척해져 있었다. 아니, 라고 말하면서 홍이 미지근하게 미소 지었다. 그건 너만 알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오래전처럼 화면 속의 경로를 응시했다. 홋카이도와 도쿄. 고료카쿠 타워와 도쿄 타워. 이제 나는 그곳으로부터 밀려나고 있었다. 오쿠니타마 신사와 유쿠라 신사로부터. 내가 한때 가깝다고 느꼈던 공간들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장소들에 대한 체감까지 사라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 웅크려 있던 그 수많은 장소들의 생동감까지 잃고 있는지는. 언젠가 홍과 함께 하코다테시의 도심을 거닐었던 적이 있다. 홍은 유년을 보낸 그곳에 다시 가고 싶어 했고, 그해 여름, 우리는 홍의 고향인 홋카이도로 떠났다. 홍은 이곳에 올 때마다 자신이 여기서 살았는지 헷갈린다고 했다. 그 시절이 자신에게 정말로 존재했는지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때 이곳을 떠났고, 떠남에 고통을 느꼈지만,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그런 느낌이 있다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나는 그것이 지극히 아오리스트적인 느낌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을 아오리스트적 사고로 접근하니, 그 모든 일들을 아오리스트적 사건으로 남겨 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친모를 잃었고, 그때 그 일은 완결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잃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죽은 친부는 나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때 그 일은 완결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남기고 있지 않은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날,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주인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이름 아래에는 ‘손자’라고 적힌 칸이 있었고, 그곳에 내 이름은 없었다. 아버지는 경황이 없었다고 했다. 남동생이 기입을 맡았는데 자신이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그래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냐…. 작은아버지란 사람은 여전히 엄마와 나를 무시했다. 나는 그 장례식장 구석에서 양복을 차려입고, 서울에서 몇 년 만에 내려온 형과 마찬가지로 몇 년 만에 만난 사촌 동생이 사람들을 맞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에겐 애도할 권리조차 없구나. 그런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그 학기에 교수가 기말과제를 내주며 했던 말-이번 학기에는 신화적 원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세요-이 연이어 생각났다. 그때 느낀 박탈감은 이미 완결되었다. 그러나 그 박탈감이 아직까지 어딘가에서 지속되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서…. 너는 이야기를 만들지. 그날 병원에서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왜 그러고 싶니? 아이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창밖에서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내가 가져다준 노트를 유심히 보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계속 쓰다 보면 잊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누구에게도 고백한 적 없는 진심이었다. 엄마에게도, 한국에서 글을 쓰던 친구들에게도, 라이프치히 학우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진심. 변주하다 보면 그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러자 할머니가 갑자기 나의 손을 덥석 잡아들었다. 그러지 마. 네?…. 나는 당황했다. 그런 신음에 가까운 말을 내뱉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할머니는 왜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그때는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할머니가 나보다 오랫동안 글을 쓴 사람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비록 할머니에게 나는 지극히 언어적인 차원에서의 손자에 불과했지만. 할머니의 글을 읽으면서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왜 일본어도 한국어도 아닌 언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평생토록 자신의 삶을 부정당한 사람은 그 부정조차 부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이중부정이 삶을 긍정의 세계가 아니라 영원한 미지의 세계로, 비타협의 상태로 남겨 둔다면 어떨까? 미정도 부정도 아닌 그런 상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 왕복운동으로 인해 삶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비록 할머니의 글에 신화와 문법에 대한 오독이 있을지라도, 나는 할머니가 노년에도 조화나 타협을 포기한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내가 할머니에게 완료형이 될 수 없는 시제였던 것처럼, 나에게도 예술가 하나코는 완료형이 될 수 없는 시제다. 할머니와 나는 그런 점에서 닮았다. 우리는 현재와의 연결성이 불확실한 아오리스트였다. 어쩌면 그래서 여전히 그리스어를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오리스트를 쓰기 위해. 아오리스트로 말하기 위해. * 나는 무덤이 되고 싶다. 한때 무정시제라는 언어체계였으나 그 야성적인 규칙에서마저 빠져나가 버린, ‘정해지지 않았다’는 규정에서조차 탈출해 버린 야성의 시간이 묻힌, 어느 범박한 무덤*이 되고 싶다. * 후추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다. 미리 예약해 둔 호텔에 들러 체크인을 했다. 할머니의 노트를 넣은 백팩을 메고 바깥으로 나오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식당은 신사 근처였다. 신사 정문에서 본당까지는 꽤나 기다란 돌길이 일자로 뻗어 있다. 홍과 하코다테를 방문했을 때 들렀던 유쿠라 신사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말끔하게 도색된 유쿠라 신사의 도리이와 달리, 이곳의 석조 도리이에는 검은 이끼들의 흔적이 역력했다. 밝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단지 회색빛으로 수수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을 뿐. 길을 따라 양쪽에 늘어선 나무 도리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성역의 기둥들은 차라리 무덤가에 꽂힌 묘목들에 가까워 보였다. 할머니의 소설은 이곳, 오쿠니타마 신사의 어둠 축제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이곳을 떠났던 어린 할머니와 같은 나이인 여덟 살 소녀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천 년의 역사를 지닌 신사로 들어선 소녀. 그러나 어째서인지 일본식도 한국식도 아닌 안티고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얼굴 위로 노란 등빛이 번진다. 나는 할머니의 소설을 손에 쥔 채 그들의 맞은편에 쭈그려 앉는다. 이곳에는 빛이 없지만 저곳에는 빛이 있다. 그 빛 속에서 소녀는 부모님에게 신사의 전설을 듣는다. 대장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부인의 순산을 기원했던 이곳에는 늘 행복과 결연의 신이 사람들의 운명을 예언하고 있다고. 앞으로 우리 딸은 어떻게 살려나. 그런 물음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오로지 어머니와 딸의 대화로만 이루어진다. 마치 미래를 단정 짓듯, 혹은 예언하듯 미래형의 아오리스트로 기술된 이 소설에서 할머니는 미래를 잃지 않는다. 비록 단발성과 완결성으로 끝난 사건일지라도, 아오리스트의 불확정성이 이미 완결된 운명적 사건에 대한 상상을, 그 미래에 관한 끝없는 고투를 가능하게 한다. 그 습작에서 할머니는 농사꾼이었던 남편과 다시 사별하게 된다. 그러나 일 년 만에 헤어지지는 않는다. 할머니는 그를 더욱 극진히 간호했고, 사별하게 될 남편은 무려 일 년을 더 살게 된다. 그 일 년 동안, 할머니는 그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조선어가 서툴러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분명한 목소리로 고백한다. 할머니는 소설에서도 할아버지와 결혼한다. 시장 사람들에게 쌀가게 사모님으로 불리고, 결국 이번에도 할아버지의 주사에 뺨을 맞고, 결국 이번에도 임신했던 아이를 유산한다. 그러나 유산할지언정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할머니는 아이와 함께 육 년을 살게 된다. 아이는 여섯 살이 되던 해, 피란길에 장티푸스에 걸려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지만, 그가 죽기 두 달 전, 할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고향인 후추시에 방문한다. 바로 이곳에 와서 아이와 함께 밤의 축제를, 가부키극을, ‘거대한’(μέγα) 건물과 ‘넓은’(εὐρὺ) 하늘, ‘꺼질 줄 모르는’ (ἄσβεστον) 불빛들을 지켜본다. 어느새 그들이 바라봤던 집은 허공 속으로 사라지고, 하늘의 풍경도, 그들을 비추었던 불빛도 희미해진다. 시간은 아이를 잃고 하나코 씨를 잃는다. 돌길 한편에 쭈그려 앉아 그들을 바라봤던 나도 잃어서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만, 반대로 무언가 분명 거대하게 남을 것이라고, 아오리스트는 말한다. 하늘을 바라봤던 사람의 심장에 단발성의 고통이 있었고, 그것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 고통이 얼마나 넓었는지 미래의 자신은 분명 알 것이라고, 아오리스트는 말한다. 한때 이곳에서 손을 잡고 있었던 사람들을 밝혔던 불빛, 한순간의 빛과도 같은 그 시간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 순간은 꺼지지 않을 것이고, 그 시간은 어느새 내가 될 것이며, 나는 미래에도 이곳에 있다고, 아오리스트는 말한다. *허수경, ‘꽃핀 나무 아래’(‘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1992), ‘나는 비애로 가는 차 그러나 나아감을 믿는 바퀴/살아온 길이 일테면 자궁 하나/어느 범박한 무덤 하나 찾는 거라면’
  • 불의 기운 지닌 ‘붉은 말’처럼 힘차게 달려라 [2026 적토마의 해]

    불의 기운 지닌 ‘붉은 말’처럼 힘차게 달려라 [2026 적토마의 해]

    천간과 지지 모두 ‘불의 성질’ 지녀생명력·활동성·변화가 강조되는 해현대차 포니·美 머스탱 등 ‘말 상징’인간과 신을 잇는 매개체로도 인식‘푸른 뱀의 해’ 을사년(乙巳年)을 보내고 ‘붉은 말의 해’ 2026년 병오년(丙午年)을 맞았다. 말은 털빛에 따라 다양한 표현이 있는데, 이 가운데 털빛이 붉은 말을 부르는 한글식 표현은 ‘절따말’이다. ‘붉은 말의 해’는 동아시아 전통 역법 체계에 근거한다. 하늘의 기운을 풀어낸 열 개 천간(天干)과 땅의 기운을 나타내는 열두 개 지지(地支)로 시간과 우주의 질서를 표현한다. 천간 중 병(丙)은 오행에서 불, 동물 상징과 연결된 지지 중 오(午)는 말을 상징한다. 오 또한 불의 성질을 지닌 지지로 분류되기 때문에, 병오년은 천간과 지지 모두 불의 기운을 지닌 해로 해석된다. 불은 붉은 색, 태양, 열, 생명력, 확산과 표출의 의미를 갖는다. 계절로는 여름, 시간으로는 정오에 해당한다. 이런 불의 속성이 말이라는 형상과 결합한 병오년은 전통적으로 활동성과 변화가 강조되는 시기로 인식됐다. 말은 인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동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인간은 야생마를 길들여 타고 다니면서 이동의 범위를 크게 확장했다. 이는 전쟁과 교역, 탐험을 가능하게 한 이동 수단이자 노동력이었으며, 문명이 형성되는 데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 근대 이후 운송수단이 기차와 자동차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옛 기억은 분명히 남아있다. 현대자동차가 처음 독자 생산한 승용차는 포니(조랑말)였고, 에쿠스 역시 라틴어에서 말을 뜻한다. 미국 자동차 머스탱도 북미 지역 야생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탈리아 자동차 페라리는 도약하는 말을 상징으로 쓴다. 속세의 이동 수단인 말은 또한 다양한 문화에서 생과 사, 인간계와 신성한 세계를 잇는 경계의 존재로 여겨졌다. 신라 천마총에서 출토된, 하늘을 힘차게 날아가는 말 그림인 천마도(天馬圖)가 대표적이다. 동아시아 전통에선 십이지지 동물들을 방위와 시간을, 인간의 삶을 수호하는 존재로 형상화해 십이지신(十二支神), 또는 십이신장(十二神將), 십이신왕(十二神王)이라 불렀다. 열두 동물은 각각 의미를 갖는다. 자신(子神·쥐)는 지혜와 다산, 축신(丑神·소)은 인내와 성실, 인신(寅神·호랑이)은 용맹과 용기, 사신(巳神·뱀)은 통찰과 신비, 유신(酉神·닭)은 성실과 경계 등이다. 이중 오신(午神)은 수행과 안락, 자유,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관장하는 존재로 설명된다. 한국 무속에서는 말을 탄 신(神)을 표현한 형상이 자주 등장한다. 하얀 말을 탄 백마신장은 장군신으로서 공동체를 수호하는 존재로 여겨졌으며, 무신도에는 붉은 말을 탄 장군의 모습도 나타난다. 말 색깔은 달라도 인간과 신을 매개하는 역할은 동일하며, 붉은 말은 불의 힘과 전투성을 강조하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불교 회화에서도 말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태고사 시왕도와 같은 불교 탱화에는 저승사자가 말을 타고 망자를 인도하는 장면을 묘사해놨다. 이는 죽음 이후의 이동과 이행을 상징한다. 장례 행렬에 사용된 상여 장식 꼭두에 말 탄 인형들이 있는데 역시 이런 인식과 연결된다. 이육사는 시 ‘광야’에서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며 고난과 희생 속에서도 미래를 향한 강한 믿음을 노래하기도 했다. 말과 관련된 속담도 많다. ‘말은 타 봐야 알고 사람은 사귀어 봐야 안다’는 경험을 통한 판단의 중요성을, ‘말이 천 리를 가고 고삐는 손에 있다’는 능력에 대한 통제와 책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좋은 말은 마구간에 있어도 빛이 난다’는 본질적 가치가 환경과 무관하게 드러난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한반도 역사에서 병오년에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병오박해다. 1846년(조선 헌종 12년)에 발생한 병오박해는 다른 박해에 비해 희생자가 적었지만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이자 성인으로 시성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순교한 사건으로 중요도는 크다. 띠로 성격을 파악하거나 십이간지에 색깔을 입혀 해석하는 게 과학적이지 않다는 건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소한 의미라도 붙잡아 마음을 다잡고 싶은 게 새로운 시작, 새해를 맞이하는 심정이기도 하다. 붉은 말의 해에는 달리되 고삐를 쥐고, 불타오르되 소진되지 않는, 속도 속에서도 쉬어가고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배울 수도 있다. 말의 등에 어떤 마음으로 올라탈지는 각자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 민경욱 “尹은 3년 내내 안 보냈는데…” 이 대통령 연하장 공개

    민경욱 “尹은 3년 내내 안 보냈는데…” 이 대통령 연하장 공개

    그동안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며 현 정부와 각을 세워온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신년 연하장을 받았다고 공개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민경욱 전 의원은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대통령 명의의 연하장 사진을 올리며 “무서운 일”이라고 적었다. 그는 “내가 죽음의 골짜기에 서서까지 당선을 위해 애를 썼던 윤석열에게서도 3년 내내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엽서를, 나의 부정선거 투쟁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이재명이 보내왔다”고 밝혔다. 공개된 연하장에는 ‘인천 연수구 민경욱 귀하’라고 수신인이 명시돼 있고, 발신자는 ‘대한민국 대통령 이재명’으로 적혀 있다. 민 전 의원은 이에 대해 “국정 홍보를 위한 가용 예산이 훨씬 많아서 가능했을까, 아니면 얻어걸린 것일까, 고도의 심리전일까”라며 연하장 발송 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다. 민 전 의원은 과거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부정선거 주장을 이어왔고, 윤석열의 비상계엄을 지지하는 발언 등으로 논란을 빚어왔다. 이런 인물에게 정반대 정치적 입장에 있는 이 대통령이 연하장을 보낸 점이 당혹스럽다는 취지다. 청와대는 “국회 예우 차원에서 대한민국헌정회의 협조를 받아 여야 전직 국회의원들에게 신년 연하장을 일괄 발송했다”고 설명했다. 민 전 의원이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만큼 자동으로 발송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 26일 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신년을 맞아 국가 발전과 국민 생활 안정을 위해 헌신한 각계 주요 인사, 국가유공자, 사회적 배려 계층, 외국 정상과 재외동포 등 약 4만 5000명에게 연하장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연하장 겉면에는 청와대와 주변 풍경을 전통 산수화 미감으로 표현해 “국정 운영의 중심이 국민에게 돌아왔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 “47.6% 찍었던 여배우도 못 살렸다”…MBC 연기대상 ‘무관’ 19금 드라마

    “47.6% 찍었던 여배우도 못 살렸다”…MBC 연기대상 ‘무관’ 19금 드라마

    ‘시청률 보증수표’ 배우 이보영의 MBC 복귀작으로 주목받았던 드라마 ‘메리 킬즈 피플’이 저조한 시청률로 아쉬움을 남긴 가운데 연말 시상식에서도 외면당한 채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 지난 3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25 MBC 연기대상’에서 ‘메리 킬즈 피플’은 주요 부문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13년 만의 MBC 복귀로 기대를 모았던 이보영 역시 무관에 그치며, ‘조력 사망(안락사)’이라는 무거운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메리 킬즈 피플’은 불법적으로 환자들의 조력 사망을 돕는 응급의학과 의사 우소정(이보영 분)의 이중생활을 그린 서스펜스 드라마다. 동명의 캐나다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의 존엄성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방영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조력 사망이라는 무거운 소재에 더해 미성년자 동성애 코드 등 파격적인 설정이 지상파 시청자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했고, 전 회차 ‘19세 이상 관람가’ 판정 역시 흥행에 걸림돌이 됐다. 첫 방송 시청률은 3.2%로 비교적 무난하게 출발했지만, 이후 하락세가 이어졌고 마지막 회에서 1.2%를 기록하며 종영했다. 이번 ‘무관’ 결과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보영이 그간 쌓아온 독보적인 필모그래피 때문이다. 이보영은 과거 KBS2 ‘내 딸 서영이’를 통해 최고 시청률 47.6%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국민 배우’ 반열에 올랐고,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로 연기대상까지 받은 바 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탄탄한 연기력으로 출연작마다 호평을 이끌어온 배우인 만큼, 이번 작품의 부진은 이례적인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올해 ‘MBC 연기대상’의 영예는 ‘언더커버 하이스쿨’의 주연 배우 서강준에게 돌아갔다. MBC는 올 한 해 ‘시청률 가뭄’ 속에서도 비교적 화제성과 성과를 거둔 ‘언더커버 하이스쿨’과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에 수상을 집중시키는 선택을 했다. MBC는 올해 총 9편의 드라마를 선보였지만,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는 단 한 편도 없었다. 올해 방영된 MBC 드라마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은 ‘언더커버 하이스쿨’로 자체 최고 시청률 8.3%에 그쳤다. ‘1%대’ 굴욕을 맛본 드라마는 무려 세 편에 달한다. 특히 노정의, 이채민 등 신예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바니와 오빠들’은 0%대 시청률을 7차례나 기록하며 ‘MBC 금토드라마 역대 최저 시청률’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 케네디家 또 비극…35세 외손녀, 암 투병 끝에 사망

    케네디家 또 비극…35세 외손녀, 암 투병 끝에 사망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외손녀가 30대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케네디 전 대통령 장녀인 캐럴라인의 둘째 딸이자 환경 전문기자인 타티아나 슐로스버그(35)가 30일(현지시간) 숨졌다고 케네디 도서관 재단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가족 명의의 게시글에서 전했다. 게시글에는 “우리의 아름다운 타티아나가 오늘 아침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항상 우리 마음에 있을 것”이라고 적혔다. 슐로스버그는 희귀암으로 투병해왔다. 그는 케네디 전 대통령이 암살당한 지 62주년이 되던 지난 11월 22일 미 시사주간 ‘뉴요커’에 올린 기고문에서 자신이 지난해 5월 딸을 출산한 직후 희귀 돌연변이를 동반한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 진단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기고문에서 수영과 달리기 등으로 건강했던 자신이 암 진단을 받은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했으며, 항암치료와 골수이식 등 투병기를 자세히 적기도 했다. 슐로스버그는 케네디 가문의 일원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현 보건복지부 장관을 “나와 직계 가족에게는 부끄러운 존재였다”라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민주당계 정치 명문가 출신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RFK 주니어)가 지난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공화당)을 지지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 각료로 활동 중인 것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드러낸 것이었다. 슐로스버그의 죽음은 유독 불행한 사건이 많았던 케네디 가문에 또 다른 비극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경우 1963년 암살당했고, 그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도 5년 뒤 유세 도중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아들 케네디 주니어(JFK 주니어)는 38세였던 1999년 경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졌다.
  • 교통지도 중 사망한 아빠…교육청 “자발적 봉사” 해명에 학부모들 분노 [여기는 중국]

    교통지도 중 사망한 아빠…교육청 “자발적 봉사” 해명에 학부모들 분노 [여기는 중국]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아빠의 교통지도가 아이와의 마지막 인사가 됐다. 30일 중국 언론 지우파이신문에 따르면 중국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지도를 서던 아버지가 갑작스레 쓰러져 끝내 숨졌다. 해당 활동은 ‘후쉐강’(护学岗)이라고 불리는 자원봉사 교통지도로 한국의 ‘녹색어머니회’와 유사한 성격이다. 사고 후 자발적 참여였다는 교육청의 설명과 달리,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할당제”라며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2분 만에 쓰러진 아버지… 끝내 사망 사건은 지난 29일 오후, 후난성 장자제시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발생했다. 해당 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자녀를 둔 학부모 A(45)씨는 교통지도에 나선 지 불과 2분도 지나지 않아 갑자기 쓰러졌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학교 측은 “해당 학부모는 20분 가까이 다른 학부모와 이야기하고 담배를 피우는 등 평온해 보였다”며 “기저질환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쓰러지자마자 병원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관할 교육청은 “해당 활동은 학부모 자원봉사로 강제는 아니다”라며 “공안에 신고하고 절차에 따라 처리 중”이라고 밝혔다. ●“자발적? 순번 돌려 서라는데요?” 학부모들 뿔났다 하지만 정작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이 활동이 ‘자발적’이었다는 설명에 강한 반발이 나오고 있다. 중국 소셜미디어(SNS)에는 “도대체 뭐가 자발이냐”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학교가 말 안 하면 누가 먼저 나서요? 교문 앞 조끼는 또 누가 줬나요?”, “학년별, 학번순으로 명단 짜서 돌아가면서 하잖아요. 저도 휴가까지 내고 나갔어요.”, “모두 반 단위로 할당돼요. 누가 그냥 자발적으로 나가요?”라는 비판적인 반응이 빗발쳤다. 또 “예전엔 이런 거 없었는데 요즘은 부모가 다 해야 해요.”, “학교에서 일정 공지하고 배정하는데, 이게 자발이라고요?”, “학교랑 무관하다면서 왜 유족이 학교에 협의하러 가죠?”라는 반응도 있었다. 교육청의 해명과 달리 댓글에서는 ‘후쉐강은 사실상 할당제’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선 학부모에게 조끼와 명찰이 지급되고, 학번이나 반별로 순서를 정해 교통지도를 서도록 한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책임 소재 불분명… 학교, 안전관리 의무 있었나 사망 사건 이후, 법적 책임 여부를 둘러싼 논의도 커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핵심은 후쉐강이 진정한 자발적 참여였는지, 그리고 학교가 기본적인 안전 보장 조치를 취했는지가 관건”라고 짚었다. 적절한 보호 장비나 응급 체계 없이 교통지도를 맡겼다면, 학교에 일정 책임이 있다는 의견과 함께 “기저질환으로 인한 사고였고, 학교가 즉시 조치했다면 면책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를 지키려다 숨진 한 아버지의 죽음이, ‘자발적’이라는 말 한마디로 덮여선 안 된다며 책임여부를 철저히 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프랑스 영화의 상징” “인종차별 극우주의”

    “프랑스 영화의 상징” “인종차별 극우주의”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사망 후 그를 위한 국가 추모식 개최 여부를 두고 정치권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29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극우 국민연합(RN)의 동맹 세력인 공화국우파연합(UDR)의 에리크 시오티 대표는 이날 엑스(X)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바르도를 위한 국가적 추모 행사를 개최해 줄 것을 촉구한다. 이 특별한 인물은 마땅히 이러한 추모를 받아야 한다”고 적었다. 시오티 대표는 UDR이 바르도의 국가 추모식을 위한 청원도 시작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대표 배우로 활동하다 동물 복지 운동가로 전향한 바르도는 1992년 극우 정치인 장마리 르펜의 고문인 베르나르 도르말과 네 번째 결혼한 후 공개적으로 극우 성향을 드러냈다. 반(反)이민 정책과 외국인 혐오 발언을 공개적으로 내놓던 그는 인종차별 혐의로 다섯 차례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바르도의 이런 정치적 성향 탓에 좌파 진영은 국가 추모식에 회의적이다. 올리비에 포르 사회당 대표는 엑스에 올린 글을 통해 “바르도는 누벨바그의 상징적 배우였고 빛나는 매력으로 프랑스 영화계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 공화주의 가치를 저버렸고, 인종차별 혐의로 여러 차례 법적 처벌을 받았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녹색당의 산드린 루소 의원도 전날 소셜미디어 블루스카이에 “돌고래의 운명에는 마음 아파하면서 지중해에서 죽어가는 이주민들 죽음에는 무관심하다면 이는 도대체 어떤 수준의 냉소인가”라고 꼬집었다. AFP통신에 따르면 국가 추모식 여부와 관계없이 바르도는 생전에 거주했던 생트로페의 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 김수용 살린 김숙, 매니저와 번갈아 심폐소생술…“지옥 맛 봤다”

    김수용 살린 김숙, 매니저와 번갈아 심폐소생술…“지옥 맛 봤다”

    방송인 김숙이 김수용의 심정지 순간에 대해 전했다. 29일 유튜브 채널 ‘김숙티비’에는 ‘죽음에서 돌아온 자 김수용, 그날의 이야기(ft. 임형준, 가평소방서 구급대원분들)’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최근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김수용과 심폐소생을 도왔던 임형준이 출연해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숙은 “오늘 좀 귀한 손님이 온다. 못 볼 뻔한 사람을 다시 보게 돼 너무 설렌다. 그분은 저승을 다녀왔다면 저는 지옥을 맛봤다”고 운을 뗐다. 김숙은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진짜 아무 소리 안 냈고 (가슴을) 부여잡고 무릎 꿇고 바로 뒤로 쓰러졌다. 오빠(김수용)가 연기를 그렇게 잘하지 않는다. 장난이 아닌 게 딱 느껴지더라”고 했다. 김숙은 “쓰러지자마자 바로 심폐소생술을 했다. 매니저와 번갈아 가며 심폐소생술을 했고, 손이 너무 하얘져서 손을 계속 주무르라고 했다”고 했다. 임형준은 “숙이가 모든 걸 다 정리정돈해 줬다. 거의 감독같았다”고 했다. 임형준은 “내가 (목걸이에 있는) 약을 풀어서 입에 넣었는데 형이 약을 뱉어내더라. 숙이가 약을 다시 주웠다”고 했다. 김숙은 “(김수용이) 입을 앙 다물고 있길래 힘으로 벌렸다”고 설명했다. 임형준이 “턱뼈는 괜찮냐”고 묻자 김수용은 “약간 아프던데 너구나. 턱뼈 빠진 것 같은데”라고 했다. 김숙은 “다시 여기로 돌아와줘서 너무 고맙다. 형준 오빠와 구급차를 따라가면서도 계속 이야기했는데, 오빠에게 혹시라도 잘못된 일이 생기면 당분간 방송을 쉬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형준 오빠와 나는 오빠 얼굴을 끝까지 보고 있던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이어 “구급차가 오기까지 약 9분 정도 걸렸는데 하루처럼 길게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 ‘심정지’ 김수용, 전기충격만 11번…“깨어난 게 기적이라더라”

    ‘심정지’ 김수용, 전기충격만 11번…“깨어난 게 기적이라더라”

    개그맨 김수용의 심정지 당시 긴박했던 상황이 공개됐다. 29일 유튜브 채널 ‘김숙티비’에는 ‘죽음에서 돌아온 자 김수용… 그날의 이야기 (ft. 임형준, 가평소방서 구급대원분들)’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서 김수용은 개그우먼 김숙, 배우 임형준과 함께 자신이 심정지를 일으켰던 캠핑장을 다시 찾아 당시를 떠올렸다. 김숙은 쓰러지던 순간을 두고 “진짜 아무 소리도 안 내고 가슴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더니 바로 뒤로 쓰러졌다”며 “장난이 아니라는 게 얼굴을 보는 순간 느껴졌다”고 말했다. 임형준은 “숙이가 ‘이 오빠 장난 아닌 것 같다’고 바로 말했었다”고 했고, 김숙은 119 신고를 지시한 뒤 심폐소생술을 진행하는 등 현장을 수습했다고 전했다. 김숙은 “119 신고를 당부한 뒤 김수용의 신발을 벗기고 하얗게 된 손을 주물렀다”며 임형준이 가져온 약을 먹이기 위해 “힘으로 입을 벌렸다”고도 했다. 김숙은 “구급차가 9분 만에 왔는데도 하루처럼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이후 세 사람은 당시 현장에서 응급 처치했던 구급대원을 만나 감사 인사를 전했다. 구급대원은 “전기충격을 11번까지 한 경우는 흔치 않다”며 “깨어난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고 말했다.
  • 1급 과실치사로 체포된 33세男…‘탕탕탕’ 소리 들리더니 현관서 노인 숨져

    1급 과실치사로 체포된 33세男…‘탕탕탕’ 소리 들리더니 현관서 노인 숨져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에 자택 뒷마당에서 권총을 쏘던 남성의 총알이 수백 미터 떨어진 이웃집을 강타해 현관에 있던 여성을 숨지게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가해자는 1급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됐다. 27일(현지시간) 미국 피플지 보도에 따르면, 오클라호마주에 사는 코디 웨인 아담스(33)가 산드라 펠프스를 총으로 쏴 사망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스티븐스 카운티 보안관 사무소는 지난 25일 오후 3시 15분쯤 코만치의 한 주택에서 총상을 입은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당시 펠프스는 지붕이 있는 현관에 앉아 왼팔에 아기를 안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총알에 맞았다. 총알은 먼저 팔을 관통한 후 가슴에 박혔다. “일행은 집 북쪽에서 누군가 몇 분에 걸쳐 주기적으로 5~7발씩 총을 쏘는 소리를 들었다”고 기소장은 밝혔다. “펠프스는 ‘누군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총을 받았나 보네’라고 말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야’라고 말하며 쓰러졌다. 이후 더 이상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펠프스는 현장에서 사망 선고를 받았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주변을 조사해 아담스의 집으로 찾아갔다. 수사관들이 펠프스가 총에 맞아 사망했으며 그가 원인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아담스는 크게 동요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 아담스는 자신의 집에서 남쪽을 향해 사격했다고 인정했다. 밴 경위가 펠프스의 죽음을 그가 초래했다고 판단한다며 할 말이 있냐고 묻자, 아담스는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아담스는 1급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돼 기소됐다. 그는 지난 26일 법정에 출석했으며 보석금은 10만 달러(약 1억 4400만원)로 정해졌다.
  • “독살당한 시바견 이용해 돈벌이”…카메라 앞 우는 中부부에 비난 봇물

    “독살당한 시바견 이용해 돈벌이”…카메라 앞 우는 中부부에 비난 봇물

    중국에서 귀여운 미소로 소셜미디어(SNS)에서 유명했던 시바견이 독극물을 먹고 죽은 뒤 주인 부부가 반려견의 죽음을 이용해 돈을 벌려 한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부부는 정말로 가족처럼 대했다고 반박했지만 죽은 개를 안고 우는 영상을 여러 장소에서 촬영해 공개한 것이 논란이 됐다. 2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사랑스러운 미소로 SNS 플랫폼을 합쳐 약 5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시바견 ‘페파’의 중국인 주인 부부가 반려견의 죽음을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부부는 페파가 생후 3개월 때부터 키웠다. 최근 주인 부부가 신혼여행으로 고향인 중국 동부 산둥성 시골 마을을 방문했는데, 페파는 길에서 독극물이 묻은 음식을 먹고 죽었다. 지난 17일 공개된 영상에는 남편이 죽은 페파를 품에 안고 울면서 가끔 몸을 흔드는 모습이 담겼다. “제발 깨어나 페파”라고 남편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러나 이 영상은 부부가 반려견의 죽음을 이용해 계정 조회수를 올리려 한다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한 네티즌은 “이런 상황에서도 세 곳의 다른 장소에서 영상을 찍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했다. 공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다른 이는 “몸을 그렇게 세게 흔들지 마라. 이제 그만하라”고 비난했다. 이 남편의 아내는 반박에 나섰다. 그는 돈을 위해 개를 키운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남편이 개를 좋아해서 생후 3개월 된 페파를 데려왔고, 3살이 됐을 때부터 영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남편은 매일 페파를 돌봤다. 닭고기와 닭 간을 직접 요리해서 먹이를 준비했다. 정말 페파를 가족으로 대했다”고 아내는 강조했다. 그는 페파가 사업 기회를 가져다준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개의 온라인 명성 덕분에 많은 광고 제의를 받았다고 인정했다. 아내는 산책할 때 목줄을 하지 않은 것이 자신들의 실수였고, 이것이 부분적으로 페파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시인했다. “페파는 목줄을 싫어했다. 배변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뛰어다니고 자유로운 것을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시골길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범인을 찾기 어려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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