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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또 궁상떨고 있네. 어미로서 피붙이를 두고 모질게 폄하하면 안 되지. 구월이가 못 들었으니 망정이지 알았다면 어미를 얼마나 원망하겠소.” “잔술 팔아 연명하는 숫막 여편네가 내지른 천출이긴 합니다만, 도감 어른도 아시다시피 제 소생이 됨됨이가 워낙 맵짜고 성깔도 다부지지 않습니까. 용모도 그만하면 천출치고는 밉상은 아니지요. 그런데 명색 내 속으로 내지른 여식을 술청 심부름이나 시키고 본데없는 사내들과 겨끔내기로 희롱이나 받고 채다 보면 나중에는 염전에 있는 부잣집 후취로 내주기 십상이 아니겠습니까. 묵사발이라고 우습게 알고 함부로 내돌리다 보면 깨지지 않으란 법이 없지 않습니까.” “염전 부자들 후취가 어때서? 그런 인연 찾아내기도 갈밭에 꽂힌 화살 찾기처럼 어려운 일이잖소.” “부자 아니라, 울진 질청의 구실아치들이라 하더라도 후취 자리라는 것이 저년에겐 거적문에 백통 돌쩌귀 달기가 아닙니까. 분수에 넘치는 인연은 나중 가서 필경 소박당하기 마련입니다. 천출은 천출끼리 인연을 맺어야 뒤탈이 없는 법입니다. 후취 자리라는 것이 십중팔구 사내 구실 못 하는 늙고 병든 병추기 만나기 십상일 것이고, 풍 들린 시어머니 병수발에 날밤이나 새우고 해코지를 못 해서 눈깔이 시뻘건 전처 소생들 등쌀에 하루하루를 살얼음 밟듯 살아야 하는데, 그 고초와 수치를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그것들이 처음에는 구박하다가 나중에는 소박하여 필경 친정으로 내쫓고 말겠지요. 도감도 아시다시피 재치와 총명이 남다른 아이인데. 앓느니 죽고 말더라고 우리 구월이 그런 후취 자리에다 내던지기는 죽기보다 싫소. 언감생심 칼 물고 뜀뛰기지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비석거리에 뻔질나게 드나드는 방물장수 여편네들도 있지 않소. 그네들이 방방곡곡 휘젓고 다니면서 보고 듣는 견문이 많고 반죽도 좋아서 혼사를 맺어 주는 일이 많다고 하지들 않소. 말래에 가면 매파도 없지 않고.” “약고 꾀바른 봇짐장수 여편네들은 중신한답시고 구전에만 눈이 어두워 걸핏하면 손바닥부터 내민답디다. 그렇다고 이 첩첩산골에 매파가 찾아올 리도 없지요.” “어리석은 사람. 오뉴월 황소 불알 떨어지면 구워 먹으려고 다리미에 불 담고 다닌다더니 주모가 그 짝 났구려.” “아닙니다. 비록 산협 숫막에서 술막질하고 있는 견문 없는 계집이지만, 나름대로 안목은 있답니다.” “조금 전에 듣자 하니, 신랑감을 눈여겨보아둔 것 같던데?” “예.” “그게 누구요?” “귀를 좀 빌립시다요.” 주모에게 귀를 빌려준 정한조가 처음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나중에는 떨떠름해서 면상이 일그러졌다. “슬하에 일 점뿐인 여식을 떠나보내면, 주모 혼자서 그 소슬한 세월을 어찌 보내려 하나. 지금 당장은 애물단지라지만,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서 홀연히 떠나보낸 것을 후회하며 밤낮으로 눈물짓게 될 것이오.” “걱정은 내 몫입니다. 도감께서는 혼사가 성사만 되도록 알선해 주십시오.” “중신애비가 되어 달란 얘기겠는데, 물론 운을 떼어 보겠네만 대답이 어떻게 나올지 장담할 수는 없으니 그리 알고 있으시오.” “말귀가 어둡긴 하네요. 그러니깐 데릴사위 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하지 말라는 말은 못 들어 보았소? 당사자가 처가살이를 바라겠소? 누워서 침 뱉기지만, 행상꾼은 좋은 신랑감이 아닙니다. 건장한 남편이 집을 보전하려고 상인이 되었다네.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 머리는 어느새 백발로 뒤덮이어 자손이 장성하였지만, 서로 알아보지 못하네. 집으로 돌아온 그를 보고 노인이 된 안해는 어디서 오신 뉘시냐고 물었다는 옛말이 있다는 것 아시오?” “남의 복장 풀쑥풀쑥 지르지 말고 저년 연분이나 맺어 주오.” “주모가 눈썰미 한 가지는 제법이오. 내가 운은 떼어 보겠다고 하지 않았나.”
  • 새터민 “탈북 브로커, 인신매매단과 다름 없어”

    “북에 있는 가족들이 위험해질 수 있으니 선글라스를 끼고 나오라고 했지만 맨 얼굴로 왔습니다. 선글라스를 쓰면 북한 주민들의 인권 실태가 거짓처럼 포장될 것 같았어요.” 30대 중반의 북한 이탈 주민 이소연(여·가명)씨는 울먹거렸다. 30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서울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해 북한의 인권 상황을 증언하는 자리에서였다. 이씨는 “북한군 4군단에서 10년을 복무하고 부모님도 대학교수였지만 먹고살기 위해 아무리 발버둥쳐도 하루 한 끼 옥수수죽을 먹기도 힘들어 탈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2006년 ‘한국으로 보내주겠다’는 브로커의 말만 믿고 두만강을 건넜다. 그러나 브로커는 이씨에게 한국행 표를 건네는 대신 ‘뜀뛰기’를 제안했다. 그가 이씨를 농장 등으로 판 뒤 도망쳐 나오면 농장으로부터 받은 돈의 30%를 떼어 준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중국에 믿을 사람이라고는 브로커밖에 없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한국에 와서 북에 있는 가족을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씨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도망쳐 나오면 브로커는 이씨를 다른 곳에 다시 팔았다. 이씨처럼 탈북한 여성들을 성폭행하기도 했다. 이씨는 몇 차례의 인신매매를 경험한 뒤에야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2008년 북한 국경을 넘은 박소연(35·여·가명)씨도 브로커에게 속아 인신매매를 당했다. 박씨는 “한국에 가는 것보다는 돈을 벌어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했다”면서 “돈을 벌게 해준다는 브로커의 말이 매매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김근식 경남대학교 교수는 “북한 정권 타도를 통한 인권문제 해결은 실질적인 인권개선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초래되는 남북의 긴장고조로 인해 결과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게 된다”면서 “북한 체제에 대한 인정과 체제안정이 오히려 인권 향상의 조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실패한 기업인들이 찾는다는 그 섬… 4주간 무슨 일이

    [주말 인사이드] 실패한 기업인들이 찾는다는 그 섬… 4주간 무슨 일이

    해마다 100만여명이 창업을 하지만 80여만명이 폐업을 한다. 금융위원회와 중소기업청 자료에 따르면 창업 기업의 생존율은 3년 후 55%, 5년 후 39%, 10년 후 24%에 불과하다. 창업자 10명 중 5명이 3년 내 문을 닫는 셈이다. 창업 기업의 폐업 횟수는 1.3회, 재창업 횟수는 0.8회로 폐업 후 50%는 재기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번 쓰러지면 재기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실패한 기업인은 죄인이 아니지만 일순간 ‘인생의 낙오자’로 전락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의 재기를 ‘힐링’으로 접근한 색다른 시도가 남해의 외딴섬, 경남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 죽도에서 진행되고 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조차 없이 벼랑 끝에 몰린 19명이 지난 2월 24일 무거운 마음으로 섬을 찾았다. 4주간의 시간,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지난달 21일 통영에서 배를 타고 1시간 만에 도착한 죽도는 인적이 드문 조용한 섬이다.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이 폐교를 리모델링한 죽도연수원에서는 ‘실패 중소기업인 힐링캠프’가 진행되고 있었다. 2011년 11월 첫 캠프를 연 뒤 5회째다. 캠프는 3월과 6월, 11월 등 매년 3차례 진행된다. 연수원으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험난했다. 가파른 오르막길에 세워진 표지판이 눈에 띈다. “묵은 마음 비워서 맑고 둥근 마음만 가득 채워 가는 곳…허밀청원.” 섬에 내리기 전까지 ‘외인구단’이나 ‘실미도’를 연상했기에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글귀다. 가쁜 숨을 돌리려 들어간 연수원 식당에서 형광색 점퍼를 입은 이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캠프 참가자들이다. 퇴소를 앞두고 그동안 생활했던 텐트와 침낭 등을 정리해 햇볕에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표정이 밝은 그들의 모습에서는 얼마 전까지 ‘인생 실패자’로 자책하며 방황했다는 사실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상하(43) 원장은 “이곳에서 ‘재기’는 재창업이 아니라 잃었던 용기를 되찾고 깨진 가족이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라며 “실패한 사람에게는 실패 마인드가 숨어 있는데 치유 없이 정상적인 패자 부활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4주간 무료로 진행되는 힐링캠프는 방목 형태로 진행된다. 주입식 강의나 창업 스킬 등 성공 기법을 전수하는 과정은 없다. 100명이 넘는 재능 기부자 중 컨설턴트는 배제하고 종교인과 심리치료사 등이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철저하게 ‘의도된 불편함’을 극복하며 스스로 마음을 관리하는 시간의 반복이다. 사업 실패로 같은 아픔을 경험했던 설립자와 한 원장의 신념, 그리고 재기 과정에서 간절히 필요했던 것을 녹여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캠프는 술과 담배, 휴대전화, 지갑을 수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4주간을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라는 취지다. 오전 5시 50분 기상과 함께 편치 않은 산길을 헤치고 명상 바위에 오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취침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다. 식사는 하루 2끼만 제공하고 입소 다음 날부터 퇴소 전날까지 26일간 텐트에서 야영한다. 초기 2주간은 강의장을 제외하고는 대화도 차단된다. 캠프에서는 자급자족을 하기에 농촌 활동도 필수 일과다. 한 원장은 “실패한 기업인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환경을 탓하고 남을 원망한다”면서 “신세 한탄이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전했다. 강당에는 “나는 지금 여기에 왜 와 있는가”, “고난과 좌절은 성공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나는 모든 면에서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자기 암시 글들이 곳곳에 걸려 있다. 캠프 참가자는 3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하다. 처음에는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고 쉽게 말문도 열지 않는다. 실패의 기간이 길수록 이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얼굴은 죽을상이고 의욕은 찾아볼 수 없다. 참가자들은 구구절절한 사연을 토로하지만 캠프에서는 철저히 무시한다. “나는 잘했는데…”라고 할 때마다 “너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했는가”라는 질문이 되돌아간다. 휴먼 영화를 시청하고 100배 절을 올리고 사이코드라마에 직접 출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마음의 변화를 겪는다. 야영은 캠프의 ‘백미’다. 산속에 설치된 텐트 간 거리는 30m가 넘는다. 아무런 간섭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회한, 후회의 뜨거운 눈물을 수없이 흘린다고 한다. 18년간 전자계통사업을 하다 2008년 폐업한 김경곤(59)씨는 “여기 온다고 뭐가 해결될까 하는 고민과 창업자금을 받는 데 유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반신반의했다”면서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털어내면서 몸과 마음이 맑아졌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식품제조유통업을 했던 정영준(51)씨는 위기 탈출을 위해 입소했다. 정씨는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 왔지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가 없었는데, 매우 유용한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실패한 기업인들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김경곤씨는 “아침이 밝아 오는 것이 싫었고 내 이름이 적힌 우편물을 받는 게 두려웠다”면서 “특히 나 때문에 가족까지 피해를 당하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고 회고했다. 김씨는 “당시 자살하는 사람에게 공감이 갔다”면서 “남을 원망하는 마음만 들고, 내가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면서 술로 시간을 허비했다”고 회고했다. 사업이 망한 이들은 대부분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 작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신용을 회복해야 하는데 상당수는 빚의 늪에서 헤어날 방법을 찾지 못한다. 익명을 요구한 40대 후반 남성은 “신용 회복을 하더라도 카드 발급이나 대출이 안 되는 등 재기를 위해 기댈 언덕이 없다”면서 “사업이 잘되면 금융권이 제일 먼저 고개를 숙이며 찾아오지만 반대 상황에서 가장 먼저 발목을 잡는 것도 금융권”이라고 성토했다. 캠프를 거쳐 간 68명 중 50%가 재창업(12명)을 하거나 취업에 성공했다. 5년간의 아픔을 딛고 대구에서 재기한 향천의 김영만(47) 대표. 그는 2차례 누룽지 제조 업체를 운영하다 무일푼으로 쫓겨났다. 2008년 이후 신용불량자로 4년간 ‘바닥 인생’을 경험했다. 지난해 3월 2회 캠프에 참가한 후 중소기업청의 재창업 프로그램을 통해 재기했다. 김 대표는 “항상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스스로에게 경종을 울린다”고 전했다. 지난달 22일 4주간의 일정을 마친 5회 캠프 참가자들이 1명의 낙오자도 없이 섬을 나섰다. 그토록 힘겨워했던 현실 속으로 다시 들어선 것이다. 오늘의 실패를 자산이자 축복으로 되돌리는 항해가 시작됐다. 글 사진 죽도(통영)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그래픽 길종만 기자 kjman@seoul.co.kr
  • “日, 대지진 후 보수 가속화… 교육 개입 거세질 것”

    “현재 상황은 1980년 나카소네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검정교과서에서 ‘침략’을 ‘진출’로 수정하던 때와 비슷하다. 일본은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 등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서종진 연구위원은 27일 ‘2013년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진단하다’는 긴급 학술회의에서 전날 발표된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의 의미와 문제점을 지적한 뒤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의 보수화가 가속화하고 보수 성향의 자민당과 정치인이 전면에 등장해 ‘교육재생’이란 핑계로 정치의 교육 개입이 더욱 거세질 것을 우려”했다. 그는 “일본 교과서 검정제도의 변화로 독도 관련 기술이 강화되고 편협한 역사관을 가진 우익보수단체가 발간하는 교과서의 채택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수 연구위원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나 고유 영토론을 반박하고,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을 외국인에게 잘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사상가 요시다 쇼인이 1858년 메이지 유신의 핵심 인물인 기도 다카요시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 만주를 지배하려면 죽도(울릉도)는 제일의 대기실’이라고 썼다”고 소개하며 “당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대륙 진출을 향한 야욕이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일본의 독도 교육은 근현대사 위주로 진행된다”면서 “신라의 이사부가 울릉도를 정복한 뒤로 독도는 한국의 국토였다는 내용의 전근대와 1905년 독도가 침탈되고 간도협약이 체결됐다는 근대를 중심으로 독도 교육을 하는 한국에서 일본의 주장을 격파할 만한 체계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현주 연구위원은 ‘학습지도요령 개정 후의 일본군 위안부 서술’이란 주제에서 “일본에 대한 공습, 오키나와 전투, 원폭 투하 등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반면 일본군 위안부 등 아시아의 피해를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아 일본 학생들이 일본이 끼친 해악에 대해 자세히 배울 기회가 줄어든다”고 우려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먹으면 잠 못자는 200% 강력한 커피 나왔다

    먹으면 잠 못자는 200% 강력한 커피 나왔다

    정말 커피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커피가 나왔다. 일반 제품보다 카페인이 무려 200%나 더 함유된 이 커피의 이름은 ‘데스 위시’(Death Wish). 이름만큼 무시무시한 이 커피는 포장에 해골까지 그려져 있어 보기에도 살벌하다. ‘먹고 죽어도 책임 못진다’는 이 커피를 만든 회사는 미국 뉴욕에 자리잡은 ‘데스 위시 컴퍼니’로 평소 원두를 판매하다 고객들의 요청으로 이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회사 측은 “이 제품은 세계에서 가장 맛과 향이 강렬한 유기농 원두 커피”라면서 “몸이 약한 사람들은 마시지 말라.”고 경고했다. 지난해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이 제품은 출시 직후 부터 꾸준한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유명 바리스타와 고객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고객들은 회사 홈페이지 등에 “이 커피를 마신 후 36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죽어서 천당에 간 기분” 이라는 평을 남겼다. 한편 이 커피의 가격은 1파운드 당 19.99달러(약 2만 2000원)로 인터넷을 통한 구매만 가능하다. 인터넷뉴스팀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쓸개 떼어 냈으니 쓴맛 볼 일 없겠지

    한 날, 모 대학 교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나이도 비슷하고 죽도 잘 맞아 허물없이 지내는 터수였다. 모처럼 만나 커피를 나누는데 뭔가 머뭇거리는 데다 안색도 어두웠다. 이상하다 싶어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제서야 속내를 털어놨다. “복통이 있는데 복통뿐 아니라 소화도 안 되고 안색도 누리끼리하게 변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몸속에 뭔가 변화가 있긴 있는데 암 생각이 자꾸 난다”고 털어놨다. 그의 불안이 이해가 됐다. 여기 저기 떠돌며 시간강사 하느라 마흔에야 결혼을 했고, 늦게 얻은 아이는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다음 날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게 했다. 검사 끝에 내려진 결론은 담낭에 염증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의료진은 암에 대해 말을 아꼈지만 암이 생겼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임을 직감했다. 주치의의 의견은 복강경으로 상태를 확인하겠지만 아마 쓸개를 절제하기가 쉽다는 것이었다. 한밤중에 그의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혹시 다른 일은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암 얘기를 꺼내는 건 섣부르다 싶어 입을 닫았다. 수술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의료진은 담낭 부위에서 암성 징후가 확인돼 담낭과 담도를 포괄적으로 제거했으며 정확한 결론은 조직검사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직검사 결과 암세포가 확인됐다. 다행히 지금까지도 이상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식사 자리에서 만난 그 친구는 예전보다 명랑했다. “쓸개가 없으니 인생에서 더는 쓴맛을 볼 일이 없어 마냥 즐겁다”며 웃었다. 큰 병을 겪으면서 세상을 사는 방법이 바뀐 것인데, 아무래도 그게 정답처럼 여겨졌다. 누구도 건강만큼은 장담하지 말랬는데 문득, 터무니없이 내 건강을 과신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떠나지 않았다. 자꾸 되짚어 생각해도 건강에 대한 믿음이 황당하다 싶어 자꾸 가슴 한편이 졸아들던 날이었다. jeshim@seoul.co.kr
  • 1924년 日교과서도 ‘독도는 조선땅’

    1924년 日교과서도 ‘독도는 조선땅’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독도를 강제 편입했지만 1924년 발간된 일본 교과서에 ‘독도가 조선땅’이라고 분명하게 명시해 가르친 증거가 발견됐다. 한일문화연구소장인 김문길 부산외대 명예교수는 27일 독도를 조선땅이라고 기술한 일본의 근대 중등학교 교과서를 공개했다. 1924년 10월 1일 일본 메이지 서원에서 발간한 이 교과서에는 러일전쟁 당시 전투 상황을 담은 지도 ‘일본해해전도’(日本海海戰圖)가 실려 있다. 이 지도에는 1905년 5월 28일 오전 10시 일본 제4함선이 전투를 지휘했다는 설명과 함께 지명을 소개하는 색인란에 죽도(독도)가 조선에 속한다고 명시돼 있다. 일본은 1905년 이전에는 일본이 독도를 ‘송도’라고 불렀지만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강제 편입한 뒤 독도를 ‘죽도’로 명명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독도를 일본 영토와 다른 색으로 표시한 지도는 있었지만, 독도를 조선땅으로 명시한 일본 교과서가 발견된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안다”면서 “일본이 1905년 독도를 빼앗고 이름도 바꿨지만, 일본 학생들에게는 독도가 조선땅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가르쳤다는 증거”라고 전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새 여왕이 나타났다, 평단과 대중 매혹한

    새 여왕이 나타났다, 평단과 대중 매혹한

    그녀가 처음 존재를 드러낸 건 2008년쯤. 열여덟이었다. 예쁘지는 않았다. 할리우드에 그 정도 외모의 여배우는 수두룩하다. 목소리는 걸걸하고 ‘운동부’ 출신처럼 듬직했다. 소녀도, 여인도 아닐 무렵 우리에게 왔다. 데뷔 초에 정상적인 가족관계는커녕 밑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둥거리는 역을 주로 맡았다. 베니스영화제 신인상을 품은 ‘버닝플레인’(2008)에선 엄마가 다른 남자와 바람난 걸 알고 겁을 주려다 사고로 죽음까지 가져온 소녀였다. ‘포커하우스’에서는 마약 중독자 엄마로부터 두 동생을 지켜 내는 맏언니였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윈터스 본’(2010)에선 시골의 소녀 가장인 것으로도 모자라 주민들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 평론가들은 흥분했고 관객들도 묘하게 끌렸다. 또래답지 않은 리더십과 강인한 투지, 카리스마가 있었다.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판타지 ‘헝거게임’ 시리즈의 여전사로 캐스팅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터. 할리우드 여배우들은 또래 남성(혹은 삼촌 팬)에겐 판타지(?)의 대상으로, 여성에겐 닮고 싶은 ‘뷰티 멘토’로 사랑을 받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보호해 줄 것 같은 모계사회의 가장 이미지로 각인됐다. 제니퍼 로렌스(23)다. 23일 열리는 제85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주목할 영화 중에는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14일 개봉)이 있다. 섹스 중독자 티파니를 연기한 로렌스는 아카데미의 전초전 격인 골든글로브(뮤지컬·코미디 부문)와 배우 조합상을 비롯해 지난해 연말 이후 대부분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지금 분위기라면 2년 전 놓친 오스카 트로피도 품을 듯하다. 이미 두 번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이들 중 최연소 기록도 세웠다. 122분짜리 영화에서 로렌스는 처음 20여분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순간, 분노가 폭발해 불륜 상대를 묵사발로 만든 조울증 환자 팻(브래들리 쿠퍼)이 극을 이끈다. 티파니는 영화가 시작되고 25분쯤 지났을 때 ‘조연’스럽게 등장한다. 팻 친구의 아내의 동생이다. 남편의 죽음 이후 외로움과 우울증이 겹쳐 회사 내 모든 동료(심지어 여자까지)와 관계를 맺다가 해고당한 골칫거리다. 그런 티파니가 어느 날 팻의 조깅 코스에 뛰어든다. 막무가내다. 자기도 원래 그 코스로 달린다고 생떼를 부린다. 그렇게 둘은 시작한다.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쯤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아카데미 8개 부문 후보로 올랐을 땐 이유가 있다. 증세(?)는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 모두 하나쯤 나사가 풀렸다고 러셀 감독은 말한다. 정신병원에 수용된 팻이나 섹스 중독으로 동네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은 티파니, 아내 앞에선 꼼짝 못 하다가 차고에서 메탈리카 노래를 틀고 물건을 두들겨 부수는 팻의 친구, 전 재산을 사설 스포츠 도박에 거는 팻의 아버지도 다를 건 없다. 내 잣대로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는 얘기다. 남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할 때 이해하고 사랑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로렌스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숨겨 놓았던 매력을 뭉텅이로 풀어낸다. 거침없이 솔직하면서도 한없이 여리고 사랑스러운 티파니 자체다. 이 역을 강력하게 원했던 앤젤리나 졸리 대신 로렌스에게 역을 맡긴 감독의 선구안이 빛난다. 특히 동네 싸구려 식당에서 팻과 저녁을 먹던 티파니가 상을 뒤집어엎는 장면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멕 라이언, 춤 경연 대회에 팻과 출전한 티파니의 모습에선 ‘펄프픽션’의 우마 서먼이 각각 떠오를 만큼 인상적이다.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 출신의 로렌스는 한 번도 연기 지도를 받은 적이 없다. 14살 때 배우가 되기로 한 뒤 부모를 설득해 뉴욕으로 갔다. 철없는 애들은 할리우드로 달려갔을 텐데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남보다 2년 빨리 졸업했다니 영민했던 모양이다. 열다섯살 때 TBS의 시트콤 ‘빌잉그볼쇼’ 주연으로 데뷔했다. 이후 행보가 독특했다. 영화 ‘21그램’ ‘바벨’의 각본가 기예르모 아리아가의 입봉작 ‘버닝 플레인’을 시작으로 ‘포커하우스’ ‘윈터스 본’까지 R등급(17세 미만은 성인 동반 관람 가능)의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평론가들은 그녀를 추어올리기에 바빴지만 여전히 10~20대에게 ‘핫한’ 배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윈터스 본’ 개봉 넉달 뒤 로렌스는 남성 잡지 에스콰이어지의 표지 모델로 나선다. 비키니 화보도 찍었다. 로렌스는 MMM(맨해튼 무비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데뷔 무렵 세 편의 영화가 모두 어두웠다. 에스콰이어의 화보를 찍은 까닭이다. 사람들은 내게서 다른 모습도 보길 원한다.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각한 영화에 뛰어들든, 옷을 좀 덜 입고 사진을 찍든 다를 바 없다. 물론, 난 가슴 큰 바보로 사람들 뇌리에 남고 싶진 않다. 난 똑똑하고 재능도 있다. 그 정도는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독 한국에서는 흥행과 멀었지만 로렌스는 이미 티켓 파워와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헝거게임’은 6억 8653만 달러(약 7432억원)를 벌어들였다. 속편 ‘헝거게임: 캐칭파이어’가 11월에 개봉한다. 또 하나의 블록버스터 ‘엑스맨: 데이스 오브 퓨처 패스트’도 2014년 7월에 개봉한다. 지난해 온라인 남성 잡지 애스크맨닷컴이 뽑은 ‘전 세계 남성들이 원하는 여성’ 랭킹 1위를 차지한 데서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그의 상승세는 당분간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액션 여주인공은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다. 23일 아카데미시상식을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잊을 만하면 온다, 더 짜릿하게

    잊을 만하면 온다, 더 짜릿하게

    영화 통계 사이트 박스오피스모조에 따르면 2011년 북미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10편의 영화 중 9편, 2012년의 박스오피스 톱10 가운데 7편이 속편이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2013년 개봉을 앞둔 속편 혹은 프리퀄(1편보다 시간상 앞선 이야기)은 27편에 이른다. 전편이 북미에서 2억 달러 이상 벌어들인 작품만 9편에 이른다. 투자 위험을 최소화하려다 보니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들이 시리즈물 제작에 올인하는 셈. 개봉을 앞둔 속편(혹은 프리퀄) 중 눈길을 끄는 4편을 들여다봤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 ‘영웅경력’ 25년… 아들과 대테러 1988년 ‘다이하드’가 나올 때만 해도 브루스 윌리스(당시 33)는 풋풋했고 머리숱도 제법 많았다. 죽도록 고생을 하는 상황에서도 냉소적인 유머를 잃지 않는 뉴욕 경찰 존 매클레인 캐릭터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오더니 어느새 25년이 흘렀다. 1~4편까지 누적 수익은 11억 3042만 달러(약 1조 1993억원). 특히 1편(1억 4076만 달러)부터 4편(3억 8353만 달러)까지 전 세계 흥행수익이 꾸준히 늘어난 것 또한 이 시리즈의 특징이다. 공상과학(SF)이나 판타지, 코미디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인 액션물이 이 정도로 성공한 건 007시리즈와 더불어 유이하다. 2007년 ‘다이하드 4.0’(원제: 라이브 프리 오어 다이하드)에서 (영화 속 매클레인의) 딸을 등장시키더니, 5편 ‘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원제: 굿 데이 투 다이하드)’에선 얼굴은 전혀 안 닮은 아들이 나온다.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테러를 가는 곳마다 몰고 다니는 매클레인이 이번에는 난생 처음 러시아 모스크바로 여행을 간다. 역시나 악당들의 음모에 휩쓸리고, 다혈질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들과 함께 테러리스트들과 맞선다. 아들로 나오는 제이 코트니는 최근작 ‘잭 리처’의 악역으로 영화팬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새달 7일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개봉한다. ◆다크니스 ‘스타트렉’ 리부트 이어 속편도 1966년과 87년, 92년, 95년 등 네 차례에 걸쳐 새롭게 TV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스타트렉’ 시리즈의 인기는 독보적이었다. 당연히 영화로 만들어졌다. 1979년부터 2003년까지 1~10편을 쏟아냈다. 그사이 대중의 관심은 시들해졌다. 위기를 느낀 파라마운트도 리부트(reboot·이미 존재하는 영화 콘셉트와 캐릭터를 가져와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시작)를 결심했다. 2009년 JJ 에이브럼스는 크리스 파인(커크 선장), 재커리 퀸토(스팍) 등 새 얼굴을 기용한 것은 물론 시대 변화에 걸맞게 캐릭터들을 직조했다. 진화된 컴퓨터그래픽(CG)으로 창조된 엔터프라이즈호의 전투 장면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전 세계에서 3억 8568만 달러(약 4092억원)를 벌었으니 성공적인 리부트인 셈. 4년 만에 에이브럼스가 속편 ‘다크니스’(원제:스타트렉 인투 다크니스)를 들고 나타났다. 가는 곳마다 황폐화시키는 사내를 찾으려고 전쟁터에 뛰어든 커크 선장의 시련을 그렸다. 영국 드라마 ‘셜록’의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무시무시하면서도 냉철한 이성을 지닌 테러리스트 존 해리슨 역을 맡았다. 촬영 방식 또한 관심을 끈다. 그는 “2D로 촬영해 3D로 변환한 영화는 애초부터 3D로 찍은 영화만 못하다는 건 거짓말”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5월 개봉. ◆ 아이언맨3 ‘자뻑 영웅’ 벌써 세번째 이야기 2009년 월트디즈니는 마블엔터테인먼트를 40억 달러(약 4조 2440억원)에 인수했다. DC코믹스와 더불어 미국 코믹북 시장의 양대 산맥이라곤 하나 값어치가 이 정도일 줄 몰랐다. 마블의 몸값을 띄운 일등 공신은 엑스맨과 아이언맨. 특히 ‘아이언맨’은 마블이 직접 제작한 첫 번째 영화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단 두 편으로 전 세계에서 12억 910만 달러(약 1조 2828억원)를 빨아들였다. 마블의 캐릭터들이 총출동한 ‘어벤저스’(2012년 북미 흥행 1위·6억 2335만 달러)에서 가볍게 몸을 푼 아이언맨이 3편으로 돌아온다. 2편이 끝난 시점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늘 자신만만하고 장난꾸러기인 ‘자뻑 영웅’ 아이언맨이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린다. 우려는 현실이 된다. 한 번도 공격당하지 않은 본거지가 악당 만다린에 의해 산산조각 난다. 만다린은 원작에서도 아이언맨의 강력한 맞수로 등장한 인물이다. 인간이긴 하지만 머리가 비상하고 무술도 빼어나다. 또 외계에서 불시착한 우주선에서 첨단과학은 물론 10개의 강력한 반지를 얻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귀네스 팰트로, 돈 치들이 고스란히 나온다. 만다린 역은 명배우 벤 킹슬리가 맡았다. 1, 2편 연출을 맡은 존 파브로 대신 셰인 블랙이 바통을 이어받은 건 불안 요인이다. 5월 개봉. ◆맨 오브 스틸 침체된 ‘슈퍼맨 시리즈’ 리부트 올해 가장 궁금한 영화다. DC코믹스의 간판은 누가 뭐래도 배트맨과 슈퍼맨이다. 1930년대 후반부터 우려먹은 탓인지 팬들도 조금씩 싫증을 냈다. 워너브러더스 수뇌부는 2005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에게 배트맨 부활을 맡겼다. 놀런의 3부작-‘배트맨비긴스’ ‘다크나이트’ ‘다크나이트 라이즈’-은 영화사에 남을 걸작이 됐다. 슈퍼맨도 거듭나길 원한 워너는 2006년 ‘유주얼서스펙트’ ‘엑스맨’의 감독 브라이언 싱어에게 맡겼다. 하지만 ‘슈퍼맨 리턴즈’는 기대에 못 미쳤다. 어정쩡한 리메이크에 그친 탓이다. 워너는 아예 배트맨처럼 리부트를 시키기로 결심했다. ‘300’과 ‘왓치맨’의 잭 스나이더가 연출을 맡고, 배트맨을 되살린 놀런이 제작·각본에 참여하면서 기대치는 솟구쳤다. 캐스팅도 흠잡을 데 없다. 고(故) 크리스토퍼 리브(1~4편), 브랜든 라우스(‘슈퍼맨 리턴즈’)에 이어 3대 슈퍼맨(클락 켄트)에 미드 ‘튜더스’, 영화 ‘신들의 전쟁’의 헨리 카빌이 낙점됐다. 슈퍼맨의 연인 로리스 레인은 ‘캐치 미 이프 유 캔’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의 에이미 애덤스가 꿰찼다. 러셀 크로가 슈퍼맨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조엘 역을, 악역 조드 장군은 미드 ‘보드워크 엠파이어’의 마이클 섀넌이 맡았다. 케빈 코스트너와 다이앤 레인은 슈퍼맨을 길러 준 부모로 나온다. 6월 개봉.
  • [저자와 차 한 잔] ‘인간의 조건’ 쓴 한승태씨

    [저자와 차 한 잔] ‘인간의 조건’ 쓴 한승태씨

    섭씨 영하 10도 안팎의 날씨에도 얇은 셔츠에 얇은 점퍼 하나만 걸친 채 나타났다. 2007년 겨울 전남 진도 서망항의 꽃게잡이배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편의점과 서초구 서초동 주유소, 충남 아산의 돼지농장과 당진의 자동차부품공장 용역직, 강원 춘천의 오이 비닐하우스까지 거친 그의 이력으로 보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이력에 어울리지 않게 손가락이 하얗고 길었다. 춘천의 한 대학 경영학과를 나온 그는 스물여섯 무렵부터 한 달 죽도록 일한 대가로 100만원 남짓 쥐는 밑바닥 일터들을 맴돌았다. 위장취업의 불온함, 그 흔했던 문학수업,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 돈이 필요해 그런 곳을 돌아다녔다. 중학생 때 작가가 되면 좋겠다고 꿈꿨던 것을 편의점과 주유소에서 일하던 2008년 가을쯤, 신림동 고시원의 가로 1.2m에 세로 2.3m 방에서 기억해 내고는 농업, 축산업, 제조업 일자리를 모두 거친 뒤 책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를 부제로 거느린 ‘인간의 조건’(시대의창 펴냄)을 쓴 한승태(31·필명)씨를 26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만났다. 그는 서문에 ‘누구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법한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보여주고 싶어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잊힐 게 분명한 사소한 사항들로 책을 가득 메우고 싶었다’고 적었다. 그의 의도대로 깨알같은 사연들이 넘쳐난다. →요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비닐하우스 일을 그만 둔 게 지난해였습니다. 그때부터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돈을 모아 원고를 쓰고 돈이 떨어지면 일하는 식으로 지냈습니다. 지금은 도배일을 하고 있고요. 그냥 무거운 것 들어주고 기술 배우는 수준이지요. 일당 5만원입니다. 신림동과 난곡 일대에서 일하는 팀에 속해 있습니다. 오늘은 연락이 안 와 놉니다. 일 있는 날 전화 오면 형편 닿는 사람이 일하는 식이지요. 제가 지금 거주하는 신림동과 난곡 일대에도 저와 비슷한 또래, 처지의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책은 어떻게 낸 거지요. 비닐하우스 일을 그만 둔 지난해 가을부터 쓰기 시작해 올해 4월 마쳤습니다. 제 책에 가장 흥미를 느낄 만한 출판사를 골랐는데 그게 시대의창이었습니다. 원고 일부를 읽어보시고 곧바로 연락이 와 나머지를 모두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보냈더니 곧바로 일주일이 안돼 책을 내자고 했어요. 일사천리로 진행됐죠.   편집자 이정남씨는 “워낙 원고 정리가 잘 돼 거의 손 댈 것이 없었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책의 성격상 정확한 르포르타주로도 훌륭하고도 개성 넘치는 문학으로도 읽힐 수 있어 출판사 입장에서 포지셔닝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나중에 한씨를 통해서 들으니 출판사는 대통령선거와 새 정부 출범 등의 워낙 큰 이슈에 묻힐까 우려했다고 했다.   →그래서 다 쓰고 난 뒤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홀가분한 느낌이었습니다. 짐을 벗었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다 썼으니까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지요. 전 그냥 제가 떠돌던 곳들이, 동시대 사람들이 아무런 관심도 애정도 기울여주지 않는 공간에서 시간이 멈춘 듯 공존하는 게 너무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느껴지고 했어요. 해서 이쪽의 사람들에게 그런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 그곳에서도 사람들이 살 부대끼며 살아간다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는데 그 얘기를 다 마친 셈이지요.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했어요. -네, 그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요. 스스로 많이 닮고자 노력했어요. →책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요. -정말 쓰는 게 즐거웠는데요. 쓰는 동안 제가 갖고 있는 불안감 때문에 괴로웠지, 쓰는 것은 즐거웠어요. 과연 (독자들이) 받아주기나 할까, 계속 글만 쓸 수는 없어 생계비를 버느라 잠깐 멈추고 그랬지요. 제 머리 속에 들어 있던 거를 다 쏟아냈으니 만족합니다. 자신에 대한 불안감말고는 딱히 어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술도 못 마시면서 배 위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견뎌냈어요. -재미있는 게요, 돈 많은 사람들은 막 먹이고 그럴텐데요. 그 사람들은 돈이 없으니 입이 하나 줄면 그게 좋은 거예요. 술 마시라고 하는 시기가 어느 정도 지나면 ‘너 안 먹으면 좋지, 내가 더 먹을 수 있으니’ 이렇게 돼요. →워낙 키가 크니 군대에서 혹시 ‘고문관’ 아니었나요. -네, 키만 컸지. 체력이 뛰어나게 좋은 것도 아니고. 특히 제가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서. 그래도 제가 운이 좋았던 건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아서. 좋게좋게 넘어가고 그랬던 거 같아요.   →책에는 비닐하우스 여주인과 다툰 뒤 하우스 안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을 때-그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그는 정말 키가 크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와 웃다가 짐짓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대목이 나온다. 어쩼든 큰 키 때문에 가는 곳마다 재미있는 사연들이 많이 나온다.   -특별히 그런 일 구하다 보면 키 큰 사람 좋아해요. 전구 가는 용도(?)로도 쓸모있지만,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이 토익이나 뭐 그런 것들이 스펙이 되듯 제게도 스펙이 되는 거지요. 인력시장에서 전 스펙이 굉장히 좋은 편이었어요. 한국사람이지, 30대 초반이고 키도 아주 크고, 최고의 스펙이라 할 수 있죠.(웃음)   처음 출판사를 통해 인터뷰를 섭외할 때부터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아 할 것 같았다. 두 가지 이유를 어렵지 않게 댈 수 있었다. 역시나 그랬고 몇번의 밀당 끝에 마주앉기는 했다. 앞으로도 평생 비슷하게 살텐데 취업에 어려움이 따른다며 사진 촬영을 극구 마다하는 그를 설득할 수가 없었다. →돼지농장에서 Belle & Sebastian의 노래들을 흥얼거렸다는 대목에서 지독한 패러독스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던데요. 늘 책보고 음악 듣지요. -예. 배에서도 일기를 썼어요. 그런 것들이 다 모여 책이 된 거고요. 늘 떠돌아 다녔으니 여자친구를 만나거나 할 상황도 아니었고. 만난 사람만 만나고 그렇지요. →형님들이나 아저씨들이 뭐라 하지 않나요. -상관 안하세요. 배 처음 탈 때는 굉장히 무섭고 두려웠는데 그곳 사람들, 의외로 관대해요. 처음엔 한두 번 뭐라 핀잔도 하고 눈치도 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용납되고. →돼지농장에서 자돈(子豚)을 버리는 끔찍한 경험 같은 것들이 내면화되거나 해 괴롭거나 하지는 않는지요. -물론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게 있지요. 누구나 그러는 건데 가끔식 떠오르거나 연상되곤 하지요. 길에서 죽은 고양이 시체를 봤을 때 그런 것들. 굳이 그런 이미지 때문에 생활을 못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요. 또 워낙 제가 잘 잊는 편이라. 너무 자연스럽게 돼지농장 사람들의 꿈은 다 로또였어요. 사회 초년생들이야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나가는 과정을 밟겠지만 그곳 사람들이야 극단적으로, 초월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지요. 그곳을 빠져나오든가 굶든가 둘 중의 하나인 거지요. 혼자인 저야 논외지만 그들은 가족도 있고 아이 공부도 시켜야 하고 부모도 모셔야 하고, 빚도 있으니까. 현재와 미래를 단계적으로 그려볼,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그럴 경황이 없는 거지요. 그래서 더 공상적이 된다는 그런 느낌으로요. →함께 일했던 분들이 보고 싶거나 그런가요. -연락하고 싶기는 한데, 이를테면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제가 일만 하며 어느 곳을 떠돌다 만나면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으니 선뜻 연락하기도 힘들고 같이 일할 때에는 제 개인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그렇게 일하는 분들 역시, 멀리 있는 인연을 가까이 끌어 당기는 것에 부담스러워 하는 걸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분들끼리는 당장 배 위나 돼지농장에서 닥친 상황,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만 신경쓰니까. 그런 연락을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부자가 됐으면 합니다. 부자가 돼 하고 싶은 일하며 사는 것인데 제게는 글 쓰는 일이 되겠지요. 생계비 걱정 않고 글 쓰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전업작가로 살려면 한달 얼마 정도? 물론 다른 이에 견줘 한참 낮겠지요. -한달에 80만~90만원 정도. 또 그런 게 죽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쉽지는 않지요. (책에 나오는) 고시원 방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임시로 가는, 도저히 생활이 안되는 공간고요. 싼 데를 찾아보면 한달에 방세 30만~35만원, 식비는 30만원, 이것도 처음엔 아껴서 먹어요. 하루에(한끼가 아니다!) 7000원 정도씩 먹다가 더 이상 못 참겠다며 확 먹어버려서 대중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무리 아껴도 한 30만원 들어요. 여기에 공과금 전화세 교통비 등 합쳐 그 정도만 있으면 글만 쓰며 살 수 있지요. →문학 인생의 설계 같은 게 있나요. -당장은 없어요. 제 특성이기도 하지만요. 눈앞의 것만 확 처리하는 게 바쁘니까. 글 쓰며 살아야겠다, 생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뭔가를 채워넣지 못하죠.. →2권을 생각하나요. -이걸로 끝입니다. 다음 책은 아마 다른 주제일 겁니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요. -이 책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제가 책을 읽을 때 가슴에 뒀던 것은 사람들이 위로와 위안 받았으면 좋겠다, 이 정도로 생각했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 앞에서 얘기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과 함께 최근에는 존 툴 케네디가 쓴 ‘바보들의 결탁’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미국의 한 또라이 백수가 부모님 재산 축내며 살다가 안되겠다 싶어 직장 구하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워낙 이 친구 정신세계가 독특해 계속 쫓겨나는 일을 실었어요. 얼핏 굉장히 우울하게 들리는 얘기인데 너무 유쾌하게 썼어요. 캐릭터가 특이하고 좋아서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1984’나 ‘동물농장’을 보고 오웰이 유머가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앞의 책을 보면 유머가 충만하죠. 제 나름대로 중점을 뒀던 대목은 이 책에도 진지한 정치적 사회적 성찰을 요하는 그런 부분이 있는데 이런 이슈에 관심없는 사람들도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출판사에서는 치밀하고 객관적인 르포르타주와 특이하지만 잘 쓴 문학작품의 경계가 혼재해 포지셔닝이 쉽지 않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제겐 후자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좋은 읽을거리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진지한 사회적 성찰은 이미 좋은 책들이 많고 제가 깊이를 따라갈 수 없이 훌륭한 책들이 많아요. 제 책은 아카데믹하기보다 엔터테인먼트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비꼬는 글의 맛, 그런 것을 좋아해요. 더글러스 애덤스의 책이나 영국 작가들에 그런 게 특히 많은데 그런 걸 살리려고 조금은 했어요. →그러면 앞으로도 알바하고 글 쓰고, 그런 그림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겠네요. -네. 새 봄에는 누가 소개해줘 경남 합천의 대나무농장에 가서 일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러면서 틈틈이 계속 글 써야죠.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과학고 조기졸업 80% → 20%로 축소

    상당수의 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이 2년 만에 고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는 조기졸업 관행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현재 80%에 달하는 과학고등학교 조기졸업자의 비율을 20%까지 낮추고 과학고의 교육과정 편성에 자율권을 확대하는 내용의 발전방안을 20일 발표했다. 과학분야 인재로서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3년간의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하도록 하기 위한 취지다. 우선 과학고의 수학·과학 전문교육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과정 편성에 자율성이 확대된다. 내년부터 기존 교육과정에서 14개에 그쳤던 수학·과학 심화과목에 고급수학이나 생명과학 실험, 과학문명사 등 13개 과목이 추가되고, 한 학기당 최대 8과목으로 제한된 이수과목 수에서 과학실험 과목은 예외로 해 실험과 체험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일반계 고교에서 일주일에 5시간을 들어야 하는 과학Ⅰ, 과학Ⅱ 과목을 과고생들의 수준을 감안해 3시간으로 줄이고 남은 시간에 과제연구나 융합과목 등 심화과목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이 밖에 모든 학기에 예체능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음악, 미술, 체육 과목 등을 여러 학기에 분산시킬 계획이다. 현재 상당수 과고생들의 대학 진학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조기졸업제도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현재는 2학년 재학생이 3학년 교육과정을 평가받는 조기이수 인정 평가시험을 통과하면 조기졸업을 할 수 있어 전체 재학생의 80% 정도가 조기졸업을 택하지만 2014년 입학생부터는 조기졸업생을 2학년 재학생의 20% 미만으로 제한된다. 교과부 관계자는 “조기졸업은 학업성취도가 특히 뛰어난 학생에게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3년 과정으로 짜인 교육과정을 성실히 이수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과부는 조기졸업자 수 제한으로 인해 늘어난 재학생 수에 따라 노후화된 교실이나 기숙사 등 시설을 개선하는 인센티브를 줄 계획이다. 2014년 입학생부터 과고 조기졸업자 수가 현격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자 과고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예비 과고생들은 당황하는 기색이다. 서울지역 과고 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중학교 2학년 최현우(14)군은 “과학고에 가는 건 조기졸업해서 대학에 빨리 진학하려는 목표도 큰데 이제 공부 잘하는 애들 사이에서도 또 죽도록 경쟁을 해야 한다니.”라고 말했다. 과학고 진학전문 학원의 한 관계자는 “많은 과고생들이 카이스트 조기졸업자 전형을 노리거나 2학년 마치고 유학을 떠나는 경우가 많은데 조기졸업을 못하면 대학 진학 방법이 한 가지 줄어드는 것으로 받아들여 반발이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朴, 마지막이라는데 짠하데이” … “文, 정권교체 발언에 공감”

    단상의 대선 후보들은 전국 곳곳을 돌며 때로는 격렬하게 상대를 비판하고 때로는 그럴싸하게 지역 개발을 공약한다. 지지자들의 박수가 나오기도 하고 환호도 들리지만 정작 유세를 지켜보는 일반 유권자들의 표정은 제각각이다. 서울신문 취재진은 30일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유세장 현지에서 유권자들을 만나 이들이 후보들의 연설 내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속마음을 들어봤다. ■朴 ‘마지막 정치여정’ 강조에…50대 이상 중장년층 ‘감성’ 움직여 “저의 마지막 정치 여정을 모두 바쳐서 부산 발전으로 보답하겠다.”(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데 짠하데이. 함 찍어줘야 안 되겠나.”(부산 부산진구 부전시장 50대 여성 상인) 박 후보는 30일 부산 유세에서 9곳을 돌며 ‘마지막 정치 여정’이라는 어구를 한번도 빼놓지 않았다. 부산·경남(PK) 지역 50대 이상 유권자들의 감성을 겨냥한 것이었다. 부산 유권자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기 후반 이후 줄곧 홀대받았다는 지역적 박탈감에 싸여 있었다. 그런 탓인지 박 후보의 지역 쟁점 공약을 유독 반겼다. 반면 박 후보가 전례없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를 날 세워 비판하는 대목에선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날 오전 금정구 서동시장 유세장. 부인과 함께 옷 가게를 운영하는 이정우(52)씨는 한숨을 쉬었다. 이씨는 “부산 경제가 바닥에 바닥을 쳤다. 이렇게 먹고살기 어렵기는 생전 처음”이라고 했다. 박 후보가 “중산층을 70%까지 재건하고 민생 경제를 살려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옳소!”라며 박수를 보냈다. 박 후보를 믿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래도 다른 정치인보다 내뱉었던 말을 정직하게 실천해 온 인물이 아닌가 싶다.”고 답했다. 앞서 사상구 괘법동 서부버스터미널 유세에서 만난 사업가 박성진(49)씨는 가덕도 신공항, 해양수산부 부활 공약에 대해 “지역 발전 공약을 확보된 예산 범위 내에서 약속하지 않나. 믿음이 간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박 후보가 문 후보와 민주당을 비판하는 대목에선 반감을 표출하는 이도 만만찮았다. 박 후보는 “문 후보가 선거운동 첫날부터 부산에 와서 저의 과거사 공격만 늘어놨다.”며 ‘실패한 과거 정권 핵심 실세’ ‘온 나라를 분열·혼란으로 몰고 간 장본인’ 등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부전시장에서 이 연설을 잠자코 듣던 한 40대 자영업자는 “저렇게까지 안 해도 찍어줄 낀데 머하러 저런 말까지 하노.”라며 혀를 끌끌 찼다. 일부 공약에는 회의적인 반응도 보였다. 정치 검찰 청산 공약에 대해 직장인 하영진(35)씨는 “개인 의지만으론 한계가 있다.”면서 “늘 그래 왔듯 박 후보가 원칙론만 나열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부산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울산대생들에게 목도리 선물받고… 20대 젊은층 지지 한몸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 파탄 공동 책임자 아닙니까.”(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먹고살기 바빠서 잘 모르겠습니다.”(울산 중구 태화시장 생선 상인) 문 후보의 30일 울산 중구 태화시장 유세 현장. 문 후보의 연설을 듣는 유권자들은 귀를 쫑긋 세우면서도 일부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유세 장소가 장터인 탓인지 “장사 잘되게 해 주는 사람이 됐으면 합니더.”라는 반응이 많았다. 유세장 옆에서 탕제원을 운영하는 김상배(47·자영업)씨는 고개를 내저었다. 김씨는 “아무리 비판해도 과거 한나라당 텃밭이어서 야당 후보는 고전할 거다.”라면서 “울산에서 야당 지지율은 20~30%뿐”이라고 귀띔했다.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묻자 “문재인이 왔는데 아무 말 안 하면 알지.”라고만 했다. 채소를 파는 김점자(66·여)씨는 연설을 들으면서 “서로 헐뜯어서 (당선)돼서 뭐하겠노.”라고 혀를 차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포항시 죽도시장 유세장에서는 ‘이명박 정부 심판론’에 대해 거북해하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았다. 박 후보의 지지세가 강한 대구의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유세에서 문 후보는 예상치 못한 성원을 받았다. 문 후보 측은 “현재까지 가장 뜨거운 반응이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유세장에서 50여m만 떨어지자 “문재인은 대구에서 안 돼. 박근혜. 박근혜.”를 외치는 시민이 일부 있었다. 안희연(51·여)씨는 “문재인은 사람은 마음에 들지만 소속된 당이 별로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대학가 민심에서는 미묘한 차이가 감지됐다. 울산대 앞에 문 후보가 도착하자 한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 대학생이 손님의 주문을 받다 말고 스마트폰을 든 채 뛰어나가기도 했다. 울산대의 수화동아리 학생들은 흰색 털목도리와 장갑, 귀마개를 문 후보에게 선물했고 한 지지자는 울산대 앞 건널목 앞에서 스무 송이의 노란색 장미를 건네기도 했다. 지역세와 무관하게 문 후보가 20대들에게 강세를 보이는 듯했다. 울산·포항·대구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文 “MB주변 포항인사 어디에” 영포라인 직격탄

    文 “MB주변 포항인사 어디에” 영포라인 직격탄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30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지지세가 확고한 울산과 경북 포항, 대구를 돌며 영남 민심 확보에 열을 올렸다. 사실상 적진 깊숙이 뛰어든 문 후보였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박 후보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울산대·영남대·경북대 등을 찾으며 캠퍼스 민심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 지역에서 박 후보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승부수가 바로 20대 표심에 있다고 본 까닭이다. 그는 울산 태화시장, 포항 죽도시장, 대구 대구백화점 앞 등에서 가진 집중 유세에서 ‘이명박 정부 심판론’과 ‘박 후보 공동 책임론’을 망설임 없이 꺼내 들었다. 특히 문 후보는 포항 죽도시장에서 벌인 유세에서 “포항만 해도 이명박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줬지만 과연 지난 5년 동안 지역 발전이 있었나.”라고 물으면서 “대통령 주변에서 큰소리치던 포항 출신 인사들 지금 어디 있는가.”라며 이른바 ‘영포라인’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이래도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새누리당 찍어주시겠는가.”라고 덧붙였다. 문 후보는 대구백화점 앞에서 벌인 유세에서 “대구 시민들은 믿는 도끼에 수십번 발등을 찍혔다.”며 새누리당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는 있고 박 후보에게는 없는 것으로 ‘서민’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삶’ ‘역사 인식’ ‘도덕성’ ‘소통의 리더십’을 꼽은 뒤 “박 후보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삶을 살아본 일이 없으며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손톱만큼도 기여한 일이 없다.”면서 “불통과 오만의 리더십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문 후보의 유세장에는 1000여명(경찰 추산)의 인파가 몰렸다. ‘새누리당의 심장’으로 불렸던 대구의 시민들이 문 후보의 연설에 뜨거운 호응을 보이자 문 후보와 민주당 관계자들의 입가에는 시종 웃음이 묻어났다. 울산·포항·대구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귀국선은 오지 않았다…조국은 사할린을 버렸다

    귀국선은 오지 않았다…조국은 사할린을 버렸다

    “귀국선은 오지 않았다.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사할린에는 ‘이제 곧 귀국한다’, ‘조선인이 먼저 떠난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다. 1949년 7월 23일 마지막 일본인들을 태우고 간 귀국선 ‘운센마루’는 돌아오지 않았다.” 파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귀국선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열여덟 살 청년. 그는 이제 팔순의 노인이 됐다. 경기 안산시 고향마을 영주귀국노인회의 고문 성점모(81)씨는 “일본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러시아 사할린(당시 일본령)으로 끌려간 강제동원 피해자 1세대의 후손이었다. 2010년 12월 가까스로 아버지의 나라에 돌아왔지만 망향의 설움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일본은 “1965년 한·일 협정에 따라 사할린 동원자의 재산권은 소멸했다.”며 보상을 거부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버티기에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참다 못한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2295명은 지난 23일 “국가가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성씨는 이 자리에서 사할린 동포들의 수난사를 기록한 수기 ‘망향의 반세기, 사할린 동포의 눈물 젖은 과거’를 서울신문에 제공했다. 성씨의 아버지는 하루 12시간 넘게 도로 건설에 노동력을 착취당했지만 우편저금 등의 명목으로 빼앗긴 임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수기에는 한인들의 고통과 분노가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하루 한 줌도 안 되는 콩밥과 간한 청어 한 토막으로 2년을 버텼다. 분노를 참지 못해 반항하면 아이구… 때리고 또 때리고 죽도록 얻어맞았다.”(사할린 탄광에서 일했던 이기복) “어렸을 때 그물로 멸치를 잡던 일이 어제 같다. 그 멸치를 삶은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으면 왜 그렇게 맛이 있던지.… 한 번이라도 가봤으면 한다.”(노동에 시달리다 현지에서 사망한 울산 출신 김길용) 광복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황국신민화정책’을 통해 일왕에 충성을 강요했던 일제는 전쟁이 끝나자 사할린 동포들의 국적을 박탈한 뒤 모르쇠로 일관했다. 소련은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이들을 억류했다. 그들의 모국은 힘이 없었다. 동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소련 국적을 취득하거나 무국적자로 남았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배상의 길이 열리는가 했지만 사할린 문제는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성씨는 “그때 ‘조선이라는 것은 잊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모국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 접고 러시아어를 배워 모스크바 법과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모국 대신 생존을 택한 이들을 새롭게 가로막은 것은 이념 갈등이었다. 북한과 소련은 한국 정부와 교류가 없었다. 사할린 동포들은 일본과 소련에서 귀향 운동을 시작했다. 경기도 출신 도만삼씨는 1977년 소련 공산당위원회 앞에 가서 “한국으로 보내 달라.”고 외쳤다. 소련은 어쩐 일인지 “귀국 준비를 하라.”고 답했다. 그러나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두만강 기슭이었다. 북한 장교가 ‘환영 인사’를 건넸을 때 도씨는 충격에 휩싸여 기절했다. 성씨는 “도씨 등 조선인 40명이 북한으로 추방된 뒤 한인사회는 공포에 휩싸여 귀향에 대한 말은 입 밖에도 낼 수 없었다.”고 적었다. 귀향의 꿈은 1980년대 고르바초프가 소련 사회를 개방한 뒤에야 찾아왔다. 1990년 6월 제주도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과 소련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있었다. 그해 한국 가수들이 찾아와 사할린에서 위문 공연을 가졌다. 성씨는 “너무 늦었지만 드디어 잃었던 모국을 찾았다.”면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눈시울을 적셨다.”고 회고했다. 1992년부터 영주귀국 사업이 시작돼 지난 3월까지 4000여명의 동포 및 배우자, 장애 자녀가 귀국했지만 망향의 한은 지워지지 않았다. “남한 노인들이 말하더군요. ‘사할린 동포들은 사할린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랏돈을 받는다’고. 나라를 잃고 설움 속에 헤맨 우리들의 고통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단일화에 맞서는 朴 고향서 힘 얻다

    단일화에 맞서는 朴 고향서 힘 얻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23일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TK) 지역을 방문했다. 박 후보의 대구행은 대구·경북 선대위 출범식이 있었던 9월 28일 이후 두달여 만이다. 박 후보는 경북 안동 중앙신시장과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 포항 죽도시장 등 3곳을 돌며 지역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격전지인 수도권을 비롯해 충청·호남권을 집중 공략해야 하는 박 후보로서는 이 지역 방문이 대선 전 사실상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야권 단일화 국면에서 대선 후보 등록일(25~26일)을 앞두고 텃밭에서 대선 승리 결의를 다지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이날 일정은 재래시장 방문에 집중됐다. 박 후보는 상인들과 일일이 접촉하며 ‘서민·민생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했다. 박 후보는 중앙신시장에서 지지 인파에 둘러싸인 채 떡 가게와 채소 좌판, 반찬 가게 등을 돌아보며 온누리상품권으로 통문어, 간고등어, 생굴무침 등을 구입했다.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박 후보는 5000여명(경찰 추산)이 몰려든 가운데 직접 지게차에 타 보기도 하고 한 상인이 감기에 걸리지 말라며 주는 유자청을 받고 환하게 웃기도 했다. 앞서 박 후보는 대구 지역 국회의원, 당원, 지지자 등 400여명과 오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박 후보를 직접 보고 싶어 하는 곳이 많으니 우리는 더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박 후보는 “여러분이 ‘내가 바로 박근혜’라고 생각하고 지역에서 뛰어 달라.”고 당부했다. 조원진 의원은 “박 후보가 오찬 자리에서 ‘이번 대선이 나의 마지막 정치다. 모든 것을 바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 다 같이 함께 하자’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서상기 의원은 “대구는 우리가 지킬 테니 대선일까지 다른 곳에서 열심히 하시고 대구는 오늘이 마지막 방문이 되는 게 내 바람”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후보 등록일인 25~26일 중 비례대표 의원직에서 물러날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누면서 손 통증이 도진 박 후보는 이동 중 휴게소에 들러 얼음을 구입하기도 했다. 대구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영화프리뷰] ‘트랜짓’ 인질된 가족 구한 멋진 가장 2% 부족한 추격신은 어쩌나

    [영화프리뷰] ‘트랜짓’ 인질된 가족 구한 멋진 가장 2% 부족한 추격신은 어쩌나

    현금 수송 트럭이 4인조 무장 강도에 의해 강탈당한다. 경찰은 시 외곽을 빠져나가는 모든 차량을 샅샅이 뒤진다. 무장 강도 두목 마렉은 주유소 옆에 세워진 네이트 가족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지붕에 한가득 실린 짐 보따리에 현금 400만 달러가 들어 있는 돈 가방을 옮겨 놓는다. 부동산 사기 혐의로 연방교도소에서 복역하고 나온 네이트는 두 아들, 아내와 함께 가족 재결합을 위해 캠핑을 가던 길이었다. 경찰의 검문을 피한 마렉 일당은 곧 네이트 가족을 뒤쫓는다. 영문을 모른 채 마렉 일당에게 습격을 당하자 가족들은 네이트가 또다시 사고를 쳤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불신과 마렉 일당의 추격 속에 네이트의 사투가 펼쳐진다. ‘트랜짓’은 삼성 투수 오승환의 돌직구 같은 영화다. 영화전문 데이터베이스 IMDB에 따르면 고작(?) 500만 달러(약 5억 4000만원)의 돈으로 찍었다. 스타 캐스팅도, 특수효과도 없다. 오로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있을 뿐이다.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이 전직 경찰·군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과 달리 ‘트랜짓’은 평범하고 무능력하던 가장이 인질로 잡힌 가족들을 구하려고 죽도록 고생한다는 설정이 매력적이다. 악당들의 잘 빠진 스포츠카와 네이트 가족의 평범한 SUV가 벌이는 추격 장면, 속도감 있는 편집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오승환이 위력적인 건 그가 9회에 등판하기 때문이다. 1회부터 9회까지 완투를 한다면 타자들이 못 쳐낼 리 없다. ‘트랜짓’도 마찬가지다. 87분의 상영 시간 내내 추격전 외엔 볼거리가 없다. 무장 강도들도 두목 마렉을 제외하면 오합지졸 수준. 뒤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갈등을 빚던 네이트 가족이 외부 위협에 맞서 변화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악당 캐릭터도 공들여 세공했어야 했다. ‘매트릭스’ ‘리셀웨폰’ ‘다이하드’ 시리즈를 제작한 흥행 제조기 조엘 실버의 다크캐슬엔터테인먼트 작품이란 점을 떠올리면 아쉽다. 콜롬비아 출신의 신예 안토니오 네그레트가 조너선 모스토 감독의 ‘브레이크다운’(1997)을 봤더라면 좋았을 법했다. ‘브레이크다운’은 황량한 고속도로 주유소에서 아내가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동네 주민부터 경찰까지 한통속인 가운데 아내를 찾으려고 남편(커트 러셀)이 고군분투한다. 큰돈을 들이지 않은 건 ‘트랜짓’이나 마찬가지다. 시골 마을의 평범한 가장, 이웃사촌이 악당일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와 탄탄한 시나리오, 주조연의 호연 덕에 상영 시간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 ‘프리퀀시’에서 3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무선통신으로 교신하려던 아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선 예수 그리스도로 나왔던 제임스 카비젤이 주인공 네이트를 맡아 분투한다. 마렉 역의 제임스 프레인은 영국 헨리 8세 시대를 다룬 미국 드라마 ‘튜더스’에서 토머스 크롬웰로 나왔던 배우다. 22일 개봉.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뉴욕총영사관에도 ‘독도는 일본땅’ 말뚝테러

    뉴욕총영사관에도 ‘독도는 일본땅’ 말뚝테러

    미국 뉴욕과 뉴저지 일대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적힌 푯말 등이 잇따라 발견됐다. 미 경찰은 최근 이틀 새 비슷한 사건이 세 건이나 발생함에 따라 배후 수사에 착수했다. 뉴욕총영사관은 27일(현지시간) 맨해튼의 민원실 현판 밑에 ‘죽도(竹島)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문구가 적힌 하얀색 푯말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총영사관은 전날에도 같은 곳에서 ‘일본국죽도’(日本國竹島·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의미)라는 문구가 인쇄된 스티커가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총영사관 측은 “범인 색출과 민원실 주변 경계 강화를 경찰에 요청했다.”며 “경찰이 정보 부서를 통해 이들 사건의 배후를 밝히는 수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26일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팰팍)시 공립도서관 앞의 위안부 기림비에서도 뉴욕총영사관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종류의 푯말과 1m 길이의 흰색 말뚝이 발견됐다. 팰팍 위안부 기림비는 미 연방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지 3년여 만인 2010년 10월 뉴욕·뉴저지 시민참여센터 등 미 동포들의 풀뿌리 운동의 결과로 세워졌다. 뉴욕·뉴저지 교민들 사이에서는 지난 6월 서울에서 발생한 사건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들이 일본인의 의도적이고 계획된 소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제임스 로툰도 팰팍 시장은 “조사를 통해 인종이나 증오 관련 범죄로 확인되면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며 “경찰과의 공조를 통해 이들 사건의 연관성과 조직적 범죄 여부를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실종 MB 8촌누나 시신 상태 살펴보니

    실종 MB 8촌누나 시신 상태 살펴보니

    가족과 함께 송이버섯을 따러 산에 들어갔다가 지난 15일 실종된 이명박 대통령의 8촌 누나 이근이(87·포항시 북구 죽도동)씨가 실종 9일째인 23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날 오전 9시 53분쯤 경북 청송군 파천면 어천리 속칭 ‘덤버들’ 주변의 하천에서 이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당시 이씨 시신은 덤버들 인근의 반변천 뭍에서 약 2m 지점 물에 떠 있는 상태였으며, 외상 등 범죄와 관련한 흔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곳은 이씨가 송이 채취를 위해 머무르던 파천면 송강리 움막과 직선거리로 3㎞가량, 마지막으로 폐쇄회로(CC)TV에 찍힌 안동시 임동면 지리마을과는 2㎞ 떨어진 지점이다. 경찰은 외상 흔적이 없는 만큼 치매 증상이 있던 이씨가 혼자서 이동하다가 길을 잃어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범죄에 희생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주변으로 통하는 CCTV를 정밀 분석하는 등 사건 경위를 조사하기로 했다. 포항에 사는 이씨는 지난달 중순쯤 송이를 캐려고 큰아들(51)과 딸 2명, 사위 등 가족 4명과 함께 파천면 송강리 야산에서 지내왔으며, 지난 15일 오전 가족들이 식수를 가지러 마을에 간 사이 실종됐다. 청송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MB 8촌 누나 실종 9일만에 숨진 채 발견

    가족과 함께 송이버섯을 따러 산에 들어갔다가 지난 15일 실종된 이명박 대통령의 8촌 누나 이근이(87·포항시 북구 죽도동)씨가 실종 9일째인 23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날 오전 9시 53분쯤 경북 청송군 파천면 어천리 속칭 ‘덤버들’ 주변의 하천에서 이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당시 이씨 시신은 덤버들 인근의 반변천 뭍에서 약 2m 지점 물에 떠 있는 상태였으며, 외상 등 범죄와 관련한 흔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곳은 이씨가 송이 채취를 위해 머무르던 파천면 송강리 움막과 직선거리로 3㎞가량, 마지막으로 폐쇄회로(CC)TV에 찍힌 안동시 임동면 지리마을과는 2㎞ 떨어진 지점이다. 경찰은 외상 흔적이 없는 만큼 치매 증상이 있던 이씨가 혼자서 이동하다가 길을 잃어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범죄에 희생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주변으로 통하는 CCTV를 정밀 분석하는 등 사건 경위를 조사하기로 했다. 포항에 사는 이씨는 지난달 중순쯤 송이를 캐려고 큰아들(51)과 딸 2명, 사위 등 가족 4명과 함께 파천면 송강리 야산에서 지내왔으며, 지난 15일 오전 가족들이 식수를 가지러 마을에 간 사이 실종됐다. 청송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야산서 송이캐다 사라진 MB 8촌누나… 실종 미스터리

    지난 15일 오후 2시 20분쯤 경북 안동시 임동면 지리 마을 앞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한 80대 노인이 찍혔다. 이명박 대통령의 8촌 누나 이근이(87·포항시 북구 죽도동)씨로 같은 날 인근 청송 야산에서 송이를 채취하다 실종된 지 1주일째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이씨는 이 대통령 증조할아버지 형제의 증손녀다. 경찰은 치매 증상을 앓고 있는 이씨가 길을 잃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도 범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21일 청송경찰서 등에 따르면 청송 파천면 송강리 야산에서 송이를 채취하던 이씨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된 것은 지난 16일 오전 11시 14분쯤. 이씨는 하루 전인 15일 오전 10시쯤 산에서 함께 송이를 채취하던 큰아들(51)과 딸 2명, 사위 등 가족 4명이 식수를 가지러 산에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 오후 3시 사이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일단 실종 가능성에 무게 경찰은 CCTV 등에 찍힌 이씨의 당일 행적으로 봐서 일단 실종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신고를 받고 수색에 나선 경찰이 같은 날 오후 1시 10분쯤 청송 진보면 후평2리 마을 앞 CCTV에서 이씨를 발견했고, 이어 오후 2시 20분쯤 안동시 임동면 지리 마을 앞 CCTV에서 이씨의 모습이 찍힌 것이 각각 확인됐기 때문. 경찰 관계자는 “CCTV에는 이씨 혼자서 지팡이를 들고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소방서는 이날까지 연인원 1000여명과 수색견 등을 동원해 인근 민가와 야산, 요양시설 등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다. ●‘교통사고 가능성’도 수사 경찰은 이씨가 송이를 채취하던 곳에서 8~10㎞ 떨어진 청송 진보면 후평2리·안동시 임동면 지리까지를 이동할 때 도로를 이용했을 것으로 보고 교통사고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안동 지리마을 주민들은 이씨가 청송 파천면과 진보면 후평마을로 통하는 마을 앞 지촌교를 걸어서 오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주민들은 “당시 이씨의 걸음걸이가 매우 빨라 80대 노인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이씨가 귀가 많이 어두운 것 같았다.”고 했다. 경찰은 이 일대 도로변에 대해 사고 흔적 등을 조사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특별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신고과정 등 미심쩍은 요소 조사 경찰은 이씨 가족들을 대상으로 실종 신고 등에 대해 경위를 파악했다. 가족들은 이씨가 실종되기 5일 전인 지난 10일 오전에도 송이를 채취하다 사라져 밤 10시가 돼서야 찾았고, 이번에도 가족들이 실종된 이씨를 찾아 헤매다 결국 나타나지 않자 뒤늦게 신고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씨 가족들이 이씨를 혼자 산 속에 두고 산을 내려온 데 대해 “이씨가 평소 혼자서 송이를 따는 데 자신감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고집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청송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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