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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이 알고 싶다 ‘동화의 집’ 유기치사 혐의 위탁모 구속 “숨지기 한달 전부터 옴 패혈증 증세”

    그것이 알고 싶다 ‘동화의 집’ 유기치사 혐의 위탁모 구속 “숨지기 한달 전부터 옴 패혈증 증세”

    그것이 알고 싶다 ‘동화의 집’ 유기치사 혐의 위탁모 구속 “숨지기 한달 전부터 옴 패혈증 증세” 경북 울진경찰서는 11일 가정위탁 형식으로 맡은 아이가 아픈 데도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아 죽도록 방치한 혐의(유기치사 등)로 조모(46·여)씨를 구속하고 남편 김모(47)씨에 대해 불구속 입건했다. 이 사건은 지난 9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동화의 집 미스터리, 어린이 연쇄실종의 비밀’ 편에서 조명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들 부부는 지난해 3월 인터넷을 통해 김모(25)씨의 아들 정모(2009년생)군을 맡아서 키우던 중 올해 3월 31일 패혈증으로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패혈증은 미생물에 의해 감염돼 온몸에 염증이 나타나고 심각한 경우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부부는 정군이 숨지기 한 달 전부터 고열이나 기침 등의 패혈증 증세가 나타났음에도 병원에서 치료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법의학과 교수, 소아청소년 전문의, 감염내과 의사로부터 조씨의 행위가 의료방임에 해당한다는 공통된 의견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조씨는 정군의 변사 처리과정에서 2011년 잃어버린 자신의 두 번째 입양아 김모(2007년생)군으로 속여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씨는 대전에서 살던 중 2011년 6∼7월 쯤 김군이 사라졌으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을 자는 사이 김군이 사라졌다. 당시 셋째를 입양할 준비를 하고 있어서 실종 사실이 알려지면 입양자격이 제한될 것이 두려워 신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조씨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해 조사했으나 특별한 범죄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다. 조씨는 거짓말탐지검사를 거부하고 있다. 경찰은 조씨 부부가 숨진 정군의 사망신고때 실종된 김군 이름을 사용한 혐의(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 공전자기록등불실기재)에 대해서도 입건했다. 조씨는 김군의 실종사실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아동복지법 위반)와 실종 이후에 양육수당을 10개월간 100만원을 부당하게 탄 혐의(영유아보육법 위반)도 받고 있다. 경찰은 실종사건에 대해서는 실종지 관할인 대전둔산경찰서로 넘기고 변사자 인적사항 정정을 위해 행정기관에 통보했다. 박후서 울진경찰서 수사과장은 “이들 부부가 숨진 아이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방임한 혐의는 드러났지만 다른 아이를 학대한 혐의는 뚜렷하게 드러난 점이 없다”고 밝혔다. 네티즌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 동화의 집 미스터리 옴 합병증 패혈증 사망, 아이를 위탁받았으면서 이렇게 방치해서 어떻게 하려고 했나”, “그것이 알고 싶다 동화의 집 미스터리 옴 합병증 패혈증 사망, 이런 위탁모는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동화의 집 미스터리 옴 합병증 패혈증 사망, 정말 끔찍하다. 어떻게 위탁모가 저렇게 아이를 방치해서 죽게 하나”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속보]그것이 알고 싶다 ‘동화의 집 미스터리’ 옴 방치 유기치사 혐의 위탁모 구속·남편 불구속 입건

    [속보]그것이 알고 싶다 ‘동화의 집 미스터리’ 옴 방치 유기치사 혐의 위탁모 구속·남편 불구속 입건

    [속보]그것이 알고 싶다 ‘동화의 집 미스터리’ 옴 방치 유기치사 혐의 위탁모 구속·남편 불구속 입건 경북 울진경찰서는 11일 가정위탁 형식으로 맡은 아이가 아픈 데도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아 죽도록 방치한 혐의(유기치사 등)로 조모(46·여)씨를 구속하고 남편 김모(47)씨에 대해 불구속 입건했다. 이 사건은 지난 9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동화의 집 미스터리, 어린이 연쇄실종의 비밀’ 편에서 조명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들 부부는 지난해 3월 인터넷을 통해 김모(25)씨의 아들 정모(2009년생)군을 맡아서 키우던 중 올해 3월 31일 패혈증으로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패혈증은 미생물에 의해 감염돼 온몸에 염증이 나타나고 심각한 경우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부부는 정군이 숨지기 한 달 전부터 고열이나 기침 등의 패혈증 증세가 나타났음에도 병원에서 치료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법의학과 교수, 소아청소년 전문의, 감염내과 의사로부터 조씨의 행위가 의료방임에 해당한다는 공통된 의견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조씨는 정군의 변사 처리과정에서 2011년 잃어버린 자신의 두 번째 입양아 김모(2007년생)군으로 속여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씨는 대전에서 살던 중 2011년 6∼7월 쯤 김군이 사라졌으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을 자는 사이 김군이 사라졌다. 당시 셋째를 입양할 준비를 하고 있어서 실종 사실이 알려지면 입양자격이 제한될 것이 두려워 신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조씨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해 조사했으나 특별한 범죄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다. 조씨는 거짓말탐지검사를 거부하고 있다. 경찰은 조씨 부부가 숨진 정군의 사망신고때 실종된 김군 이름을 사용한 혐의(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 공전자기록등불실기재)에 대해서도 입건했다. 조씨는 김군의 실종사실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아동복지법 위반)와 실종 이후에 양육수당을 10개월간 100만원을 부당하게 탄 혐의(영유아보육법 위반)도 받고 있다. 경찰은 실종사건에 대해서는 실종지 관할인 대전둔산경찰서로 넘기고 변사자 인적사항 정정을 위해 행정기관에 통보했다. 박후서 울진경찰서 수사과장은 “이들 부부가 숨진 아이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방임한 혐의는 드러났지만 다른 아이를 학대한 혐의는 뚜렷하게 드러난 점이 없다”고 밝혔다. 네티즌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 동화의 집 미스터리 옴 합병증 패혈증 사망,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되겠네”, “그것이 알고 싶다 동화의 집 미스터리 옴 합병증 패혈증 사망, 황당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 동화의 집 미스터리 옴 합병증 패혈증 사망, 무섭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통일준비위, 초당적 구상만이 실효 거둔다

    남북통일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통일준비위원회가 어제 출범했다. 대통령직속기구로 설치된 통일준비위는 박근혜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학계와 정·관계 인사 50명이 참여, 한반도 평화통일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작업을 벌이게 된다. 한반도의 유동성 확대로 언제 급작스러운 통일 과정에 들어서게 될지 모를 상황에서 통일준비위 구성과 체계적인 통일 방안 논의는 때늦은 감이 있다 싶을 만큼 서두를 사안임은 분명하다. 통일부나 민주평통자문회의가 있는 마당에 자칫 옥상옥이 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남북 관계 전반과 대북정책 기조는 지금처럼 통일부가 관장하고 통일 과정의 법제와 대외전략 등 큰 틀의 장기 통일구상은 통일준비위가 맡는다는 점에서 이는 운용의 문제라고 본다. 통일준비위 앞에 놓인 과제는 따로 있다. 지속 가능한, 그리고 현실적인 통일 담론을 이뤄나가는 일이다. 무엇보다 통일준비위가 정권의 향배와 관계없이 지속적인 활동을 펼쳐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대통령령으로 마련된 통일준비위 설치·운영 규정은 통일준비를 위한 기본방향과 통일 준비 관련 각 분야 과제 연구, 통일에 대한 세대 간 인식 통합 등 사회적 합의 촉진, 통일 준비를 위한 민·관 협력, 기타 대통령 자문 등을 통일준비위의 기능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나같이 현 정부 임기 안에 끝낼 일들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위원회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원회가 돼야 가능한 일들이다. 이명박 정부가 통일 비용 조성과 통일에 대한 사회적 관심 제고를 위해 만든 ‘통일항아리’는 지금 자취를 찾아볼 길이 없다. 사업 첫해인 2012년 7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7억 5800만원이 모금됐으나 현 정부 들어서는 100만원도 채 걷히지 않았다고 한다. 확고한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한 탓도 있겠으나 현 정부가 관심을 두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다. 통일준비위가 그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통일 과정을 슬기롭게 헤쳐갈 방안과 통일 한국의 뼈대를 설계할 기구다. 정권에 따라 논의가 갈팡질팡한다면 속된 말로 죽도 밥도 안 되고 사회 갈등만 증폭될 일이다. 박 대통령 말대로 통일이 대박이 되려면 그에 걸맞은 면밀한 준비가 돼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과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어제 첫선을 보인 통일준비위원 면면은 높은 경륜과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정파적 대립의 벽을 뛰어넘을 구성인지에 대해선 다소 의문이 남는다. 야당 의원 1명과 진보성향 인사가 일부 참여했다지만 범정파, 탈이념 기구로 보긴 힘들 듯하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통일 담론 형성과 그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향후 통일준비위의 범정파적 인적 보완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
  • [노주석의 서울 택리지 테마기행] 지명(상)

    [노주석의 서울 택리지 테마기행] 지명(상)

    ●북악인가 백악인가… 조선 초기부터 명실공히 백악산 경복궁 뒤에 피지 않은 한 떨기 모란 꽃송이처럼 솟구친 수려한 산의 이름은 둘이다. 백악(白岳)이기도 하고 북악(北岳)이기도 하다.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이 산을 놓고 면악, 공극산 등 다양한 지명이 등장하지만 결국 두 개의 이름만 살아남았다. 이 산의 이름이 중요한 것은 조선의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도록 결정지은 산이기 때문이다. 이 산이 있었기에 새로운 나라의 수도를 송악(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겼다. 우리는 이런 중요한 산 이름을 별 생각 없이 극과 극을 달리는 두 개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또 어떤 이는 백악인지 북악인지 헷갈린다면서 뭉뚱그려 북한산이라고도 부른다. 곡할 노릇이다. 청화산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태조가 중 무학(무학 대사)을 시켜 도읍 터를 정하도록 하였다. 무학이 (삼각산)백운대에서 맥을 따라 만경대에 이르고, 다시 서남쪽으로 비봉에 갔다가 한 개의 돌비석을 보니 ‘무학오심도차’(無學誤尋到此·무학이 길을 잘못 찾아 여기에 온다)라는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도선(신라 도선국사)이 세운 것이었다. 무학은 길을 바꿔 만경대에서 정남쪽 맥을 따라 바로 백악산 밑에 도착하였다. 세 곳 맥이 합쳐져서 한 들로 된 것을 보고 드디어 (경복궁)궁성 터를 정하였는데, 곧 고려 때 오얏(자두나무)을 심던 곳이었다”고 한양천도 당시 주산 백악과 명당 경복궁 택지에 얽힌 일화를 전한다. ‘오얏을 심던 곳’이라는 표현은 고려 중엽 때 비롯된 것이었다. 도선의 ‘도선비기’에 전해지는 ‘목자득국’(木字得國·이씨 성을 가진 자가 나라를 얻어 한양에 도읍 하게 된다)의 도참설을 깨고자 삼각산 면악(백악) 남쪽에 오얏(李木)나무가 무성하자 윤관 장군 등 벌리사(伐李使)를 보내 싹둑 잘라 기를 누른 사례를 말한다. 이 마을을 ‘벌리’라고 불렀는데 ‘번리’(?里)를 거쳐 지금의 강북구 번동으로 변했다. 오패산 혹은 벽오산이라고 불리다가 지금은 ‘북서울 꿈의 숲’ 공원이 조성됐다. 이렇듯 한양천도는 풍수지리의 원리에 따라 백악을 주산(主山)으로 정하고서 산 아래 명당 혈 자리에 남쪽을 향해 왕궁을 짓기로 하면서 현실화됐고, 오늘에 이르렀다. 조선 초기 이 산의 이름은 명실공히 백악이었다. 산꼭대기에 진국백(鎭國伯)이라는 여신(女神)을 모신 백악신사(白岳神社)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고산자 김정호가 남긴 ‘수선전도’나 ‘경조오부도’ 등 대표적 지도에도 백악이라고 기록돼 있다. 백두산이나 태백산이 그렇듯 산 이름에 ‘흰 백’(白)자를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우리는 흰 백자를 ‘밝다’ 또는 ‘으뜸’이라는 의미로 썼다. ‘흰 머리를 인 으뜸가는 산’이라고 풀 수 있다. ‘북녘 북’(北)자는 꺼렸다. 북쪽을 향해 머리를 두지도, 눕지도 않았다. 북망산(北邙山)처럼 죽음을 나타낼 뿐 아니라 패하다, 등지다, 분리하다, 도망하다는 뜻이 들어 있어 금기시했을 법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북악산 또는 북악이 지배 지명이 됐다. 근대 이후 만들어진 대부분의 지도와 책에 이 지명이 자리 잡았다. 단서를 찾아보니 중종 때(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북악산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앞에는 남산이 솟았고, 뒤에는 북악산이 높다”라고 적었다. 이 산의 수호신이 한양의 풍수를 관장하는 북 현무(北 玄武)이고, 사람들에게 친숙한 남산이나 한강의 북쪽에 자리 잡은 산이어서 그렇게 불렀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후 나온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백악부아암도’ 등 그림이나 지도에서는 어김없이 백악이라고 썼다. ●삼각산이냐 북한산이냐… 일제에 의해 잊혀져간 삼각산 1940년 창씨개명(創氏改名)을 통해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시도한 일제가 사전 정지작업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내세워 대대적인 창지개명(創地改名)을 꾀하면서 성스러운 산 이름에 분탕질했을 것으로 의심된다. 무엇보다 서울의 조상 산인 ‘세 개의 뿔’ 삼각산(백운대·인수봉·만경대)을 북한산이라고 의도적으로 바꿔 버린 명확한 증거가 있다. 경성제국대학 교수 이마니시 류가 1916년 조선총독부에 제출한 ‘북한산 유적조사 보고서’가 그것이다. 그는 삼각산이라는 멀쩡한 이름을 두고 북한산이라는 지명을 보고서에 사용했다. 한양과 한강의 북쪽에 있는 산이라는 게 이유였다. 고구려 때 북한산군(北漢山郡)이라고 불렸으며, 백제 개루왕 때 북한산성을 쌓았고, 조선 숙종 때 북한지(北漢誌)를 발간하는 등 북한산이라는 지명이 생경한 것은 아니지만, 삼각산이라는 민족정기를 상징하는 신령스러운 지명이 사라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83년까지 두 이름이 혼용됐지만, 정부가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삼각산은 힘을 잃었다. 일본인 학자만 책망할 일이 아니다. 역사의식 없는 행정 당국의 잘못이 더 크다. 조선총독부와 총독관저가 경복궁 뒤 고려 이궁 터에 틈입했고, 경무대와 청와대가 이어받으면서 백악이라는 이름은 잊혀 갔다.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 출입이 통제되면서 갈 수 없는 산이 돼 버렸다. 북악스카이웨이와 북악터널이 상류층의 드라이브 코스나 요정 가는 길로 인기를 끌면서 북악이라는 지명의 사용 빈도가 높아졌다. 2006년 폐쇄됐던 숙정문을 38년 만에 열고 난 뒤 문화재청은 백악신사가 있던 산마루에 ‘백악산 342m’라고 새긴 돌비석을 세웠다. 또 2009년 백악산을 국가지정 명승 제67호에 올렸다. 이 산의 명칭을 백악산이라고 공식 인정한 것이다. 더불어 삼각산도 명승 제10호로 제 이름을 찾았다. 그러나 아직 대한민국 국민 열 명 중 아홉 명이 백악은 북악, 삼각산은 북한산이라고 부른다. 안내 표지판과 안내책자, 역사책에도 여전히 그렇게 적혀 있다. 이름을 찾은 건 다행이지만 제 이름으로 불러야 산의 영험함이 살아난다. ●백악산·삼각산 공식 인정… 국가 지정 명승지로 지명(地名)이란 땅 이름이다. 사람에게 인명이 있듯이 땅에도 지명이 있다. 인명이 사람의 뿌리라면 지명은 인명을 낳은 땅의 뿌리인 것이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가 펴낸 ‘서울 지명사전’에 따르면 “땅 이름도 사람 이름과 마찬가지로 그 장소가 다른 장소와 구별되는 개성을 지닌 존재라는 의식과, 그 장소가 쓸모가 있어서 이름을 붙일 가치가 있다는 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지명의 존재성과 유용성을 설명하고 있다. 지명학(地名學)에서 지명은 ‘사람을 제외한 모든 자연과 삼라만상의 이름’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를 둘러싼 향토 역사문화가 집대성된 기록인 셈이다. 사람을 둘러싼 지리적, 역사적, 민속학적, 유전자적 특성과 흔적이 지명 속에 살아 숨쉬는 것이다. 우리말의 어휘 중 가장 숫자가 많고 사용 빈도가 높은 것도 지명이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기 이전까지 말과 글이 달라 그 전까지 존재했던 우리말 자료가 거의 없다. 우리말 소리에 맞는 한자를 빌려 표기한 향가 25수를 제외하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에 기록된 옛 지명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명은 인명을 낳은 땅의 뿌리… 역사의 수수께끼 푸는 열쇠 지명은 한 번 붙여지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역사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이다. 서울은 고대 부여의 도읍 소부리와 신라의 도읍 서라벌에서 음운 변화된 유일한 우리 고유어 지명이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이천 년 이상을 버틴 하나밖에 없는 우리말 지명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한성’(漢城)이라고 적고 ‘한청’이라고 읽는 불편을 없애겠다면서 ‘수이’(首爾)라는 억지춘향식 한자 이름을 붙이고 ‘셔우얼’이라고 읽도록 했다. 얼빠진 발상이다. 우리는 이미 백두산정계비에 쓰인 ‘토문강’(土門江)이라는 두 개의 지명 탓에 드넓은 동간도를 중국에 빼앗긴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현재도 독도 대 다케시마(죽도), 동해 대 니혼카이(일본해)라는 지명을 놓고 일본과 피 터지게 다투고 있다. 불명확한 지명 표기 탓에 겪은 숱한 불이익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조선 건국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은 경복궁과 종묘·사직 그리고 한양도성 성곽을 축성했다. 궁 이름은 물론 근정전과 광화문 등 전각의 이름을 명명했다. 숭례문·흥인지문·돈의문·숙정문 등 사대문과 보신각, 광희문·혜화문·창의문·소덕문 등 사소문의 이름이 그때 붙여졌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남북 간 축선상에 육조거리(광화문광장)를, 동서 간 축선에 운종가(종로)를 두고 시전행랑을 들였다. 도읍건설을 완성한 뒤 “앞은 한강수여 뒤는 삼각산이여”라고 도성의 위용을 읊었다. 삼봉은 한양(한성부)을 5부 52개 방으로 행정구역을 나눴고 이름도 직접 지었다. 이때 지은 52개 지명 중 현존하는 지명은 적선, 서린, 가회, 안국 등 4개밖에 없다. 몇몇 지명은 길 이름이나 학교 이름 등에 남았지만 나머지 지명은 다른 지명과 합쳐지거나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변질되거나 멸실됐다. 산업화 과정에서 혁명적 변화가 수반됐지만 40년에 불과한 식민시대에 벌어진 지명 훼손과 왜곡은 뼈저렸다. 일제는 단군 이래 5000년 내려온 지명의 역사를 갈아엎었다. 지명에 담긴 사람과 자연의 역사를 짓밟았다. 한국땅이름학회 조사에 따르면 서울 중심 8개 구의 법정동 명칭 중 3분의1이 그때 일그러졌다. 종로구 지명의 3분의2가 난도질당했다. 광복 후 빼앗겼던 사람 이름은 되찾으면서 비틀린 땅이름은 바로잡지 못했다. 남은 지명은 유래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 선임 기자 joo@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고려시대 도예기술 ‘연리문’ 부활시킨 노경조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고려시대 도예기술 ‘연리문’ 부활시킨 노경조 교수

    보면 볼수록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다. 색깔이 다른 것 같지만 하나로 잘 어울려 은은함이 있다. 비색 유약 속에 대리석이 자유분방하듯 조용히 새겨져 있다. 여러 모양의 병(甁)도 있고 통(筒), 합(盒)도 있다. 이른바 연리문(練理紋) 기법으로 탄생된 도자기다. 연리문은 대리석 무늬를 의미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도예기술이다. 당나라 때 기원을 두고 있으나 고려시대에 등장했던 도자기법이다. 그러나 13세기 이후 거의 사라졌다. 백토, 흑토, 자토(紫土) 등 각기 다른 색깔의 흙을 사용해서 도자기를 빚어내는 제작과정의 어려움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전통 도예가 노경조(63) 국민대 교수는 그러한 연리문 도자기법을 부활시키고 40년 넘도록 일관되게 작업을 해와 연리문 도자기의 대가로 유명하다. 이론적 연구와 오래된 가마터를 찾아다니며 여러 도자 파편들을 채집한 뒤 고려시대의 전통 연리문 기법을 재현시키는 데 최초로 성공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는 동안 영국과 미국 등 세계 20여개국 박물관에 자신의 작품을 보란 듯 전시할 정도로 해외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1982년 한·영수교 100주년 기념으로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첫선을 보인 뒤 1990년대, 2000년대 작품 등 10년 주기별로 그의 대표 작품이 이곳에 영구소장 됐다. 또한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에서는 1990년대 대표작이 영구 전시될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다. 보통 2년 주기로 주제를 바꿔 도자기를 전시하는 데 비해 노 교수의 작품은 보기 드물게 영구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한·독 수교 100주년, 한·미 수교 100주년 때에도 도자기를 들고 현지에 나가 한국 도자기의 강점을 알리기도 했다. 현재는 샌프란시스코 공항미술관에서 내년 2월까지 예정으로 성황리에 전시되고 있다. 도자기 작업이란 얼핏 보면 단순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매우 어렵고 까다롭게 진행되는 일이다. 노 교수의 작품은 서로 다른 색깔의 흙을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런 과정 속에 노 교수는 한국인의 감성, 한국의 산하를 담아낸다. 다시 말해 한국인의 감성으로 세계를 매료시킨다고 할 수 있다. 2001년과 2011년 세계 유명미술관 큐레이터 30여명이 한국에서 워크숍을 가진 적이 있다. 이때 대부분의 큐레이터들이 노 교수의 작품을 보고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한국의 유산을 이어주는 듯하다. 현대적이면서도 우아한 감성을 잘 담아내고 있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노 교수의 작품에 대해 “그의 연리문은 우리의 전통에서 터득한 여러 가지 맛을 자신의 조형감각에 호소해 새로 창조해낸 것이다”면서 “담담한 연리문 작업을 통해 흙의 참 아름다움과 흙의 참맛, 흙의 참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렇듯 그는 연리문의 대가답게 천년 전의 도예기술을 습득하는 데 성공했고 이것을 현대 도자공예 분야에서 차별화된 스타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래서 감상하는 이들에게 묘한 흙의 향수를 자극시킨다. 그는 도예뿐만 아니라 회화작품도 그리고 전시를 한다. 화가이자 도예가라는 이름을 듣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지난 7일 서울 정릉동 국민대 연구실에서 노 교수를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국 도자기의 우수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유럽은 18세기 돼서야 도자기를 자체 생산했고 일본은 17세기에 시작했습니다. 반면 조선은 15세기이고 고려는 더 앞서서 도자기를 생산했지요. 우리는 이러한 문화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도자기를 아주 귀중한 문화적 자산인데다 역사가 담겨 있어 황금보다 더 소중하게 여길 정도입니다. 일본은 도자기 때문에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도자기를 유럽에 팔아서 2차 대전의 물자를 확보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도자기 강국답게 지금에라도 각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서 주제별로 정리를 잘해놓는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외국 미술관에 가 보면 역사의 흐름을 잘 조망할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도자기는 썩지 않기 때문에 스토리에 따라 제대로 진열해 놓으면 오래도록 문화적 자긍심을 간직할 수 있으며 역사를 읽을 수 있는 단서를 오랜 세월동안 꾸준히 제공해줄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에게 연리문의 특징을 물었다. “연리문은 서로 다른 흙을 섞어 무늬를 만드는 것이지요. 소고기에 마블링이 있듯이 대리석 물결무늬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토, 백토 등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문양 유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당나라와 고려시대 때 사용됐는데 요즘 현대작가들이 즐기는 기법 중 하나가 됐습니다. 주로 철분이 많은 흙을 사용합니다.” 원래 도자기라고 하면 둥근 모양을 떠올리지만 그는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사각형 등 여러 모양으로 만들어내 마치 회화를 연상케 한다. 거치문 장식이 달린 도자기도 만들어내는 자유분방함이 있다. 그의 작업실은 경기 양평의 자작나무 숲이 있는 곳에 자리해 있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옹기들도 있다. 소주고리도 있고, 조선의 사방탁자도 있다. 이곳에서 자연의 놀라움, 생명에 대한 경외심 등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 또한 연작시리즈의 회화작품도 그린다. 전국의 도요지를 다니면서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자기의 파편들도 모았다. 그에게는 황금보다 더 귀한 파편들이다. 잠시 그의 손을 쳐다봤다. 나이에 비해 손이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태어날 때 손과 발만 있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흙에는 미백효과의 물질도 있지 않느냐”며 웃는다. 이어 “흙을 다루는 일은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모든 과정을 손으로 작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음식에서 할머니 손맛을 내는 것처럼 흙 반죽도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한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시간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1년 정도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만큼 도자기를 빚는 일은 기다림의 미학이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린아이는 울고 웃으며 신호를 보내지만 흙은 절대 말을 안 합니다. 흙은 아무 말 없이 스스로 깨지고 그러기 때문에 항상 정성껏 살펴야 하지요.” 그는 1951년 서울의 학구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친할머니는 일본의 우에노 음악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울대 약대를 나왔다. 아버지는 국립중앙의료원 창립 멤버로 병원에서 초대 약국장을 지냈다. 어렸을 때 손이 유난히 커서 할머니는 장차 피아니스트가 되라며 피아노를 가르쳐 줬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러나 부모는 외아들이 화가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피아노는 이성적이고 계산적이지만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아주 편안했다. 사춘기 방황도 그림으로 치유할 수 있었던 같다”고 회고한다. 그가 그림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미술을 공부하는 동네 형 집에 놀러 다니다가 그림 그리는 것이 재미있어 보여 따라 그리면서 시작됐다. 어릴 적 얘기가 나오자 추억 하나를 회고한다. 서울사범대 부속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이다. 하굣길에 그는 아버지가 일하는 국립중앙의료원에 자주 놀러 갔다. 당시 의료원에는 스웨덴과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에서 파견된 의사들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 의사들의 자녀와 만나 친하게 지냈다. 레고 같은 장난감도 선물 받았다. 이 레고는 지금도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소중히 간직하는 골동품이 됐다. 또한 아버지는 당시 스웨덴 등 유럽 출장을 갈 때면 그림엽서를 자주 보내왔다. 그는 이 엽서를 자랑삼아 학교에 가지고 갔고 환경미화 시간이면 그림엽서를 벽에 떡하니 붙이고 그 옆에 세계지도를 그려넣곤 했다. 그는 화가가 되려고 했으나 “그림보다는 도자기가 더 생산적이지 않느냐. 그리고 나중에 그릇이 부족한 아프리카에 거서 그릇을 만들어주면 추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할아버지 말씀’ 때문에 방향을 바꿔 대학에서 요업공예과를 선택했다. 대학에서는 원로 도자공예가 정규 선생을 스승으로 삼으면서 도자공예, 재료학 등을 섭렵하고 틈나는 대로 옹기가마에 가서 수련했다. 1973년 대학을 졸업하자 다시 대학원에 들어갔으며 논문 ‘고려 상감청자 연구’를 발표했다. 이때 연리문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1979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 돈암동에 가스가마를 만들고 백자와 분청사기, 연리문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국내외 많은 전시를 통해 도예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자녀 얘기를 꺼냈더니 “아들 둘을 두었는데 다들 잘 자랐다. 학교 다닐 때에는 성적표 얘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다만 졸업할 때 ‘사춘기를 잘 보내줘서 감사하다’라고 했다”며 웃는다. 현재 디자인 계통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우리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세계 각국 미술관에 계속 전시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제자들도 그 뒤를 따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노경조는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동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영화배우 안성기와 가수 조용필이 중학교 동창이다. 원래는 화가가 되려고 했으나 경희대 입학 때 요업공예과를 택했다. 대학에서 원로 도자공예가 정규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다. 1973년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동대학 대학원에 들어가 졸업 때 ‘고려 상감청자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때 연리문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1977년 일본에 가서 우리 도자공예와 다른 도자기 공예를 2년간 접했다. 1979년 일본에서 돌아와 서울 돈암동에 가스가마를 만들어 본격적인 연리문 작업을 시작했다. 그해 공간사 공모전에서 도예상을 시작으로 동아공예전대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개인전은 일본 가나자와 갤러리(1979년), 서울공간미술관(1981년), 미국 버밍햄 박물관 초대전(1982년), 미국 뉴올리언스 박물관(1983년), 노경조 도예 30년전(서울, 2005년) 등 수십여 차례 열었다. 영국 대영박물관, 미국 세인트 피터스버그 미술관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이탈리아 파엔자 도예학교, 중국 의홍박물관 등 해외 20여개국의 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국민대 조형대학장을 지냈으며 현재 조형대학 도자공예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60대 아르헨 할아버지의 ‘죽도록 축구사랑’

    60대 아르헨 할아버지의 ‘죽도록 축구사랑’

    죽도록 축구를 사랑한 할아버지가 승리의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숨졌다. 아르헨티나 지방 산티아고델에스테로에 사는 62세 남자 마누엘 움베르토 산티얀은 축구사랑이 남달랐던 축구광이다. 최근 산티아고델에스테로에선 아마추어 지역리그 축구경기가 열렸다. 바호 알레그레와 산 페드로가 격돌한 경기에서 마누엘 할아버지는 평소 사랑한 바호 알레그레를 열렬히 응원했다. 경기는 무승부로 비겨 결국 승부차기로 승패를 가리게 됐다. 승리의 여신은 바호 알레그레에 미소를 던졌다. 승부차기 끝에 바호 알레그레는 힘겨운 경기를 감격적인 승리로 장식했다. 마누엘 할아버지가 가슴을 잡고 쓰러진 건 그때였다. 곁에 있던 관중들과 바호 알레그레 선수들이 쓰러진 마누엘 할아버지를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병원은 사인을 심장마비로 진단했다. 관중들은 “경기 내내 마누엘 할아버지가 녹초가 될 정도로 열심히 응원을 했다 “ 면서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승리가 너무 큰 충격(?)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리베랄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진화하는 동해안 해수욕장

    진화하는 동해안 해수욕장

    ‘비키니 선탠해변, 어린이해변, 외국인해변, 연인해변, 가족·청소년해변, 장애인해변…. 올여름 피서는 테마가 살아 있는 동해안 특화 해변으로 고고싱.’ 다음달 1일부터 개장하는 강원 동해안 해수욕장들이 테마가 있는 특성화된 해수욕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강원도에서는 해수욕장을 해변이라고 부른다. 맑은 물, 푸른 파도 등 청정 이미지만을 내세우는 단조로운 피서지로는 취향이 다양하게 바뀌는 피서객들을 잡지 못한다는 위기감에서다. 해변으로 몰리던 피서객이 숲과 계곡 등지로 분산되고 눈높이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수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체험과 힐링 열풍 역시 특화 해수욕장으로의 변신을 부추긴다. 이 같은 욕구 충족을 위해 지방자치단체마다, 해수욕장마다, 마을마다 피서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백사장 문화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접목한 해수욕장을 오픈하며 ‘호객’에 혈안이 돼 있다. 1년에 40~50일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해수욕장에서 지역상인과 주민들이 연간 수입의 대부분을 벌어들이는 지역경제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피서객을 많이 유인해 잘살아 보려는 지자체와 마을들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새달 1일 개장… 휴가철 맞아 피서객 잡기 특화된 해수욕장은 아직 실험 단계이지만 급속히 늘면서 내용은 갈수록 알차지고 있다. 조만간 세계인들이 찾는 유명 해수욕장도 나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한다. 그동안 동해안에서 추진됐던 특성화 해수욕장의 역사는 눈물겹다. 수년 전에는 고성과 강릉 등 곳곳에서 누드해변을 추진했지만 실행도 못해 보고 여론의 질타를 받아 좌절됐다.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한적한 해변을 골라 누드 전문 해변으로의 변신을 꾀했지만 매번 구상 단계에서 접어야 했다. 유교적 사고가 남은 국내 정서에서 누드해변은 시기상조였다. 10여년 전에 구상한 누드해변이 정착됐다면 지금쯤 동해안 곳곳에 누드해변이 들어서는 변화가 일어났을 터다. 강릉시 사천면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최종민(52)씨는 “해변들이 살아남기 위해 누드해변 운영을 계획하고 홍보도 했지만 시도조차 못해 보고 접어 일부 주민들은 아쉬움이 컸다”고 회상했다. 강릉은 지난해 여름 사근진해변에서 운영했던 애견 전용 해변을 “개털과 배설물이 해변을 오염시킨다”는 주민들의 민원에 밀려 올여름엔 포기했다. 지난해 애견해변에는 피서객 1만 4020명과 애견 8980마리가 찾아올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애견 동호인들은 “지난여름 전국 처음으로 애견 전용 해변이 문을 열어 가족과 같은 애견을 데리고 피서를 즐겼는데 올해에는 애견과 함께하는 피서를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이처럼 거듭된 실패에도 피서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해수욕장의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비키니를 입고 선탠하는 전용 해변이 생겨나고 어린이 전용, 외국인 전용, 캠핑족 전용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진 해수욕장들이 생기면서 피서객들의 입맛 맞추기에 나섰다. 사근진해변에서는 올여름엔 전국에서 처음으로 선탠 마니아들을 위한 비키니 선탠해변을 운영한다. 비키니만 걸친 피서객들이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햇볕을 쬐면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이를 위해 사근진해변에서 큰 도로 쪽으로 대규모 옥수수밭을 조성해 자연적인 차단벽을 만들었다. 해변에는 선탠 전용 베드와 파라솔 등을 비롯해 전용 카페까지 갖춰 유럽풍의 이국적인 분위기도 만들었다. 강릉시 관계자는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비키니 마니아들이 늘어나지만 마음 놓고 선탠을 즐길 수 있는 전용 해변이 없어 올해 처음 비키니해변을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비키니해변은 다음 달 11일부터 8월 25일까지 운영한다. ●지자체·마을, 톡톡 튀는 아이디어 ‘눈길’ 어린이 전용 해변도 생긴다. 강릉시 사천면 소돌해변에 조성한 어린이 전용 해변은 백사장과 바위가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지고 바닷물이 얕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 머물며 피서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더구나 소돌해변의 바위들은 1억년 전 쥐라기 시대에 바닷속에 있다가 지각변동으로 솟아오른 바위들이라 어린이 자연학습장으로도 제격이다. 바위 가운데 죽도의 큰 바위는 소원을 한 가지씩 말하면 이뤄진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이 바위는 주민들 사이에서 소원을 빌면 자식을 낳는다고 알려져 ‘아들바위’로도 불린다. 주변에는 기도하는 사람과 아기의 조형물, 파도노래비가 세워져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파도노래비는 1960년대 유명했던 가수 배호의 히트곡 가운데 ‘파도’ 노랫말을 새겨 놓고 주변에 스피커를 설치해 500원 동전을 넣으면 파도 소리를 들으며 파도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최종율 시 관광지도계장은 “아들바위 공원과 인접해 어민들이 직접 잡은 싱싱한 자연산 해산물도 맛볼 수 있는 작은 어시장까지 있어 두 배의 즐거움이 있다”고 말했다.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 힐링 해변도 있다. 강릉시 연곡면 동덕리 연곡천 하구에 만들어진 해변은 한자리에서 해수욕과 담수욕, 낚시, 등산이 가능하다. 율곡 선생이 극찬했다는 소금강이 지척에 있어 가벼운 산행이나 등산을 즐길 수 있고, 물이 맑은 연곡천에서 은어낚시도 할 수 있다. 어린이를 위한 해수풀도 있어 피서객이 늘고 있다. 백사장 뒤로는 야영장도 있다. 텐트 대여도 가능하다. 근처에 주문진 어시장이 있어 싼 가격에 각종 해산물을 구입해 저녁 해산물 바비큐도 가능하다. 주차장, 샤워장, 급수대, 탈의장 등 각종 편의시설도 완벽하게 갖췄다. 주변에 소금강 온천, 영진항, 주문진항 등이 있어 다양한 테마로 즐길 수 있다. ●양양 낙산 해변은 거리 공연 명소로 변신 정동진해변은 연인들의 ‘추억과 낭만의 해변’이다. 이곳은 피서철뿐 아니라 사계절 관광지로 각광받는다. 일출과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이 얕은 수심의 바다, 울창한 송림과 어우러져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돋이 관광열차가 운행되고 해변 주변에 비스듬히 누운 해송, 1년 동안 모래를 떨어뜨리는 대형 모래시계, 북한 잠수함과 해군 퇴역함정, 산꼭대기에 위치한 썬쿠르즈리조트 등이 있어 추억 만들기에 딱 맞다. 속초해변은 장애인·외국인해변으로 조성됐다. 도심을 끼고 형성된 속초해변은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해 장애인들과 외국인들이 머물기에 최적의 해수욕장이다. 장애인들을 위한 쉼터로 몽골텐트 2개 동 등을 설치했고 휠체어, 구명조끼 등도 갖췄다. 외국인을 위해 별도의 몽골텐트와 파라솔, 도우미, 통역요원, 수상안전요원을 배치했다. 양양 낙산해변은 거리공연해변으로 변신을 꾀한다. 주변 바위와 배 위에서의 바다낚시는 물론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해변으로 바뀌고 있다. 올여름부터 음악과 연극, 마술 등이 어우러진 ‘낙산해변 버스커스 페스티벌’이 7월 30일~8월 3일 열린다. 페스티벌에는 33개 팀이 참가해 5개의 무대와 거리에서 공연을 펼쳐 피서객을 즐겁게 할 예정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과 김일성 별장이 있는 고성 화진포해변은 ‘조용한 힐링해변’으로 유명해졌다. 송림과 바다, 호수, 섬들이 있고 고인돌 유적지, 왕곡마을이 조화를 이뤄 조용하게 머물며 도심 속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 수 있다. 강원지역 동해안 91개 해수욕장은 다음달 1일 속초해변을 시작으로 11일 강릉·경포와 동해 망상 등 모든 해수욕장이 개장하고 8월 31일까지 실정에 따라 운영된다. 한영선 강원도 환동해본부 해양관광계장은 “지난해 2567만명이 찾은 동해안 해변은 올여름 다양한 특성화·차별화 전략을 통해 3000만명을 유치하는 게 목표”라면서 “피서객들의 취향에 맞게 다양한 해변을 개발해 다시 찾고 싶은 해변으로 자리 잡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릉·속초·고성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독도 관련 日의 100대 거짓·왜곡 주장 낱낱이 반박

    독도 관련 日의 100대 거짓·왜곡 주장 낱낱이 반박

    경북도는 독도와 관련한 일본 주장의 허구성과 억지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한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 문제 100문 100답에 대한 비판’을 발간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는 일본 시마네현이 지난 2월 ‘다케시마의 날’에 맞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다케시마 문제 100문 100답’을 펴낸 데 대한 대응 조치다. 총 380쪽인 이 책은 시마네현이 발간한 책을 번역 소개하며 여전히 모순되고 자국에만 유리한 자료를 선별해 교묘하게 논리를 왜곡하는 것에 대해 역사적·국제법적으로 분명히 독도가 한국 땅임을 규명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이 17세기에 다케시마 영유권을 확립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에도(江戶) 막부가 1696년 1월 ‘죽도(울릉도) 도해 금지령’을 내림으로써 독도가 조선령으로 결말이 난 사항이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메이지(明治) 정부가 1877년 태정관 지령을 통해 독도가 한국령임을 다시 한번 인정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러·일 전쟁 중이던 일본이 군사적 요충지로 이용하려고 독도를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한 것은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불법이어서 1905년 이후 시마네현이 취한 모든 행정적 조치는 불법이며 무효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책은 관계 기관에 무료 배포하고 있으며 원본 파일을 경북도 사이버 독도 홈페이지(www.dokdo.go.kr) 자료실에 게시했다. 경북도 독도사료연구회 김병렬(국방대 교수) 회장은 “시마네현 다케시마문제연구회가 발간한 다케시마 홍보 책자를 그대로 방관하면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 사람까지도 ‘100문 100답’에서 기술한 내용을 사실로 여길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그 책의 주장을 1대1로 반박, 우리 국민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정리했다”고 밝혔다. 이어 “책자를 통해 일본의 논리가 허구임을 밝히고 우리 국민과 전 세계에 독도가 한국 땅임을 체계적으로 홍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씨줄날줄] 생활가전의 진보/문소영 논설위원

    국수는 밀·메밀·감자 등의 가루를 반죽하여 얇게 밀어서 썰거나 국수 틀로 가늘게 뺀 것으로 삶아 국물에 말거나 비벼서 먹는 음식을 말한다. 국수의 재료에서 따와 한자로 ‘면’(麵), ‘면자’(麵子)라고도 쓰는데 국수(?水)도 사실은 한자다. 삶은 면을 물로 헹구어 건져 올린다고 해서 부른 말이다. 한반도에서는 국수를 언제부터 먹었을까. ‘고려사’에 ‘제례에 면을 쓰고 사원에서 국수를 만들어 팔았다’는 내용이 있어 아무리 시기를 늦춰도 고려 때는 먹었을 것으로 본다. 당시 국수는 상품화됐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 따르면 국수의 주재료인 밀은 기원전 7000년쯤 메소포타미아에서 재배되던 야생종 밀이 그 기원으로, 기원전 1~2세기 서아시아에서 중국에 전해졌다고 한다. ‘본초강목’에는 전한의 무제가 장건을 서역에 파견했는데 그때 밀이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장건이 서역에서 가져온 새로운 품종은 밀 이외에도 포도, 수박, 참깨, 마늘, 후추, 호두 등이다. 중국은 처음에는 넓적한 수제비 형태로 먹다가 후한(後漢) 때 가늘고 긴 형태의 국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6세기 중국 농서인 ‘제민요술’에 국수 만드는 법이 자세히 나온다고 하니 대중화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중국 문화권 안에 있었던 삼국시대부터 국수를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학자들은 송나라 때 한반도에 국수 만드는 법이 전해져 통일신라 때부터 먹었다고 보수적으로 시기를 잡는다. 조선시대에도 밀가루는 진말(眞末)이라 부르는 귀한 식자재였다. 따라서 국수는 결혼식이나 회갑연 등 특별한 날에 먹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한반도는 특히 밀이 더 귀해서 근대 이전에는 주로 메밀을 비롯해 고구마, 옥수수, 녹두, 마, 칡, 도토리 등으로도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냉면도 국수로 분류된다. 기다랗게 생긴 것이 장수를 뜻한다고 해서 면을 잘라 먹는 것은 금기시했다. 국수를 만들려면 반죽도 어렵고, 밀대로 얇게 밀고자 노동력을 많이 써야 했기 때문에 외식이 활성화되기 전 칼국수는 별미였다. 하지만 조선 중기부터 이미 국수 틀을 사용해 국수를 만든 것을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1900년대부터 가내수공업적인 회전압력식 국수 틀이 개발돼 건조 밀국수가 보급됐다. 최근 생활가전이 장족의 발전을 해 기름 없는 튀김기가 나오는가 하면 가정용 즉석 면 제조기가 개발돼 일본에서 시판됐다. 밀가루와 소금, 계란(또는 물)을 넣어주기만 하면, 10분 만에 생면이 뽑아져 나온다. 면의 종류도 국수, 파스타, 우동 등 종류별로 뽑을 수 있다. 굵은 팔뚝도 필요 없고, 얇게 면을 만들기 위해 힘 좋은 남편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얼마나 매우면”…방독면 쓴 요리사의 ‘죽이는 요리’

    “얼마나 매우면”…방독면 쓴 요리사의 ‘죽이는 요리’

    ”죽도록 맵다!” 요리사조차도 방독면과 특수 의상 등 보호장비를 착용한 채 만드는 요리, 과연 누가 먹을 수 있을까? 영국의 한 식당에 등장한 정체불명의 요리사는 안정된 호흡을 위한 방독면을 착용하고 요리를 한다. 손에 낀 장갑이나 입고 있는 점프수트 역시 일반 요리사들이 쓰는 것들이 아니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한 이 도구들로 사람이 먹는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요리사의 이름은 무하매드 카림(34). 그가 만드는 요리는 심지어 안면마비까지 유발할 수 있는 엄청난 강도의 맵기를 자랑한다. 그가 만드는 ‘초강력 매운 닭다리 요리’는 매운 강도를 나타내는 ‘스코빌 척도’에서 무려 1200만 등급을 자랑한다. 한국 사람들이 즐겨먹는 청량고추가 7000~1만인 것을 감안하면, 맛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카림은 자신의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가장 처음 가르치는 것이 바로 ‘응급처치’다. 직접 만든 매운 음식을 먹고 갑작스러운 발작이나 소화불량 증상을 보이는 손님들을 위한 ‘배려’(?)다. 그는 “이 음식을 먹는 즉시 몸이 반응하면서 최대 30분 정도 안면마비가 올 수 있고, 몸이 심하게 떨릴 수 있다”면서 “손으로 뺨을 마구 때려도 전혀 아픔을 느낄 수 없는 정도의 마비”라고 설명했다. 이 가게는 15분 내에 이 요리의 닭다리 요리 10개를 먹는데 성공하는 손님에게 상금 100파운드를 걸었다. 지금까지 총 20명의 손님이 도전했지만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카림의 남다른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방글라데시 출신의 어머니가 현재 혼합교배종의 고추를 키우고 계시다. 이 고추는 스코빌 척도가 300만에 이를 것“이라면서 ”이것으로 더 매운 요리를 만들어 보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포항서 선거벽보 훼손한 40대 여성 검거

    경북 포항남부경찰서는 29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벽보를 훼손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A(45·여)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A씨는 28일 오후 1시 25분쯤 포항시 남구 해도동의 한 병원 벽에 붙은 선거벽보에서 빨간색 펜으로 지지하는 후보 사진에 하트를 그리고 지지하지 않는 후보에 비난하는 글을 남기는 등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25일에도 포항시 북구 죽도동의 한 초등학교 담에 부착된 선거벽보에도 같은 방식으로 낙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출동해 현장에서 A씨를 붙잡았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 결과 특별한 목적을 띠고 낙서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죽은 사마귀에서 빠져나오는 ‘거대 연가시’ 포착

    죽은 사마귀에서 빠져나오는 ‘거대 연가시’ 포착

    수년 전 한국에서 히트했던 영화 ‘연가시’에 나왔던 기생충이 죽은 사마귀에서 빠져나오는 섬뜩한 장면이 포착됐다. 21일(현지시각) 영국의 인터넷 매체 데일리메일은 죽은 사마귀 몸에서 거대한 기생충이 빠나오는 영상을 소개하면서 “영화 ‘에일리언’에서 보던 장면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졌다”고 전했다. 영상을 보면 한 남자가 사마귀에게 살충제를 분사하고, 사마귀는 곧 죽는다. 그리고 몇 초 후 죽은 사마귀의 뒷부분에서 기생충이 꿈틀거리며 기어나온다. 죽은 사마귀 만한 크기의 이 거대한 기생충은 모상선충이나 선충류로 한국에서는 연가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곤충이나 바다에 사는 갑각류에 기생하며 발육하다가, 성장 후에는 개울가에서 서식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기생충은 자신의 산란처인 물로 감염된 곤충이 빠져 죽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상을 본 전문가들은 사마귀가 먹은 음식으로 인해 사마귀의 몸 안에서 기생충이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영상=News Insight Today/유튜브 김형우 인턴기자 hwkim@seoul.co.kr
  • 국수를 통해 이어가는 父子의 정, 그리고 인생

    국수를 통해 이어가는 父子의 정, 그리고 인생

    어린 시절 한없이 큰 존재였던 아버지.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의 삶을 닮고 싶다 말하는 젊은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국수가게 사장 김민균(32)씨도 다르지 않았다. 국수에 평생을 바치느라 가족에 소홀했던 아버지가 죽도록 미웠고 그 길을 밟지 않으리라고 수백 번 다짐했다. 하지만 민균씨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위해 국수의 길에 들어섰다. 20일 오후 10시 50분 KBS 1TV에서 방송되는 ‘다큐 공감’에서는 국수를 통해 아버지의 꿈을 이해하게 되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충남 예산읍 시장 길목에 있는 ‘쌍송국수’. 건물 입구와 2층엔 새하얀 국수 가락이 가지런히 널려 있고 가게 안에는 낡은 기계소리와 밀가루 향기가 그득하다. 어린 시절 늘 혼자였던 그는 부모님을 놔주지 않던 국수가 미웠다. 아버지는 휴일도 없이 매일 새벽 3~4시면 가게로 나가 온종일 국수를 만들고, 일이 끝나면 술을 마시는 일과를 반복했다. 그러던 2011년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다. 아버지는 병상에서도 오로지 국수 걱정뿐이었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국수를 부탁한 아버지. 아들은 그 마지막 약속을 지키려고 아버지가 걷던 길을 따른다. 아들은 태어난 지 100일이 된 아들을 위해 더 열심히 국수를 만드는 아버지가 됐다. 햇살 좋은 날엔 국수 널어야겠다는 생각부터 하고, 손님들을 위해 하루 한 끼는 꼭 국수를 먹는다. 국수 맛을 기억하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힘들어도 결코 놓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국수. 그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오늘도 아버지의 고단했던 삶을 성실하게 걸어가는 아들, 민균씨는 국수 인생을 차곡차곡 채우고 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세월호 참사 한달-우린 뭘해야 하나] “물·라면 등 지원받는 게 전부… 우리도 이젠 너무 지치네요”

    [세월호 참사 한달-우린 뭘해야 하나] “물·라면 등 지원받는 게 전부… 우리도 이젠 너무 지치네요”

    “비가 좀 오네. 오늘은 실종자 수색작업이 쉽질 않겠는데….” 14일 오전 8시 서망항. 하늘을 쳐다보던 10t급 낚싯배 덕원호의 박태일(62) 선장의 시선이 바다를 향했다. 팽목항과 불과 1㎞ 남짓 떨어진 서망항에 낚싯배 선장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여객항인 팽목항과 달리 서망항은 낚싯배와 어선이 주로 정박하는 곳이다. 진도군낚시어선연합회 회원 8명은 지난 1일부터 매일 오전 8시에 모여 세월호 실종자를 찾는 수색작업과 기름 유출로 인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 이날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렸지만 선장들은 개의치 않고 바다로 향했다. 10t급 낚싯배 8척이 4척씩 둘로 나눠 수색작업과 방제작업을 하루씩 번갈아 한 지 벌써 2주일째다. 박 선장은 “유실물 중 학생들의 것들로 보이는 물건을 수거할 때마다 가슴이 무척 아프다”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은 덕원호 등 3척이 방제작업을, 블루피싱호 등 3척이 수색작업을 맡았다. 오일흡착포 1롤과 고무대야, 뜰채, 갈고리를 배에 실은 덕원호는 오전 8시 50분쯤 서망항을 출발해 장죽도, 죽항도, 관매도를 지나 한 시간 뒤 사고 해역에 들어섰다. 수중 수색 중인 바지선과 해군 함정, 해경 수색선, 해경 방제선 등 40여척의 배가 시야에 들어왔다. 사고 해역 주변에는 침몰한 세월호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박 선장은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 만큼 흔들리는 배 위에서 능숙하게 흡착포를 자르더니 배 양옆에 매달기 시작했다. 3m 길이로 자른 흡착포를 5개씩 양옆에 모두 10개를 일정한 간격으로 묶어 바다에 띄운 뒤 이를 건져냈다. 30여분째 작업에 몰두하던 박 선장은 “이제 누가 이곳에서 낚시를 하려 하겠느냐”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선주들은 대부분 대출을 받아 배를 구입했는데 한 달 대출이자만 50만~100만원에 이른다고 했다. 덕원호 옆을 지나던 골드피싱호에는 허재균(49) 선장 등 4명이 동승했다. 이들도 갈고리나 뜰채를 하나씩 손에 들고 방제작업을 했다. 오일흡착포 1롤을 다 쓰고 나니 오후 1시가 됐다. 허 선장은 “참사 이후 ‘인천세월호’라고 써진 구명조끼나 구명튜브 등을 수거했다”면서 “뭐 하나라도 건져서 가족들 품으로 보내줘야 되는데 내 맘대로 잘 안 된다. 가슴이 아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참사가 한 달이나 된 터라 혹시나 시신이나 유실물이 먼 곳으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그래서 수색 작업을 할 때에는 4척 중 두 척은 사고 해역에서 먼 곳을 돈다. 블루피싱호의 최영국(54) 선장도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낚싯배를 한 지 6년째라는 그는 “기존 손님들도 진도 쪽으로는 안 오고 여수나 완도 쪽으로 빠져버렸다”며 “진도는 세월호 사건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우리들은 방제, 수색 빼고는 지금 할 일이 하나도 없다”고 토로했다. 진도군에서는 현재 이들에게 물과 라면 등 약간의 물품을 지원해 주는 게 전부다. 그는 “유족과 실종자 가족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얘기할 것도 못 되지만 그래도 이제는 너무 지친다”고 했다. 작업을 마치고 항구로 돌아가는 선장들의 머리 위로 부슬비가 계속 내려앉았다. 글 사진 진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공무원 독도탐방 울릉군 강행 논란

    세월호 침몰 사고에도 불구하고 경북 울릉군이 전국 자치단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외유성 관광 성격이 짙은 행사를 강행해 빈축을 사고 있다. 울릉군은 23일부터 25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울릉도 및 독도 현지에서 ‘독도 아카데미’ 프로그램 운영에 들어갔다. 이 프로그램은 군이 2008년부터 독도 영유권 강화 및 국가관 확립 등을 위해 정부 및 자치단체 공무원, 국영기업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 올 들어 벌써 네 번째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전국 8개 자치단체 공무원 127명이 참가했다. 자치단체별로는 경남 합천군 40명, 경북도(시·군 보건진료소 공무원) 34명, 안동시 19명, 부산시 16명, 포항시 8명, 충남 공주시 5명, 부산 기장군 4명, 연제구 1명 등이다. 참가비는 1인당 40만원으로 각 자치단체가 전액 지방비로 부담했다. 그러나 군이 정부 부처와 전국 대부분의 자치단체가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주민과 공무원 등 행사 및 교육을 줄줄이 취소하는 분위기 속에 이 프로그램 운영을 강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프로그램이 울릉도의 문화 유적 및 관광지(죽도 유람선, 독도 전망대, 모노레일, 관음도, 봉래폭포 등) 탐방 위주로 짜여져 관광성 행사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프로그램 첫날 명사특강(60분), 상생협력을 위한 워크숍(60분), 독도 영상 시청(40분) 등이 실질적인 교육의 전부다. 이런 문제점으로 경북 봉화군과 광주광역시는 이번 프로그램에 19명과 4명을 각각 참가시키려던 당초 계획을 취소했다. 봉화군 관계자는 “전국적인 여객선 참사 희생자 추모 분위기에 동참하기 위해 계획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울릉군도 향후 독도 프로그램 운영(4월 30일~5월 2일)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주민들은 “독도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세월호 침몰 참사 속에서도 강행한 것은 상식 밖의 행위”라고 비난하며 “사고 수습 때까지는 프로그램을 연기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울릉군 관계자는 “행사 연기도 검토했지만 참가 신청 기관들의 희망과 주민들의 관광수입 감소 등을 고려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세월호 침몰사고 사흘 뒤인 지난 19일 8박 9일 일정으로 소속 직원 5명을 ‘국외 선진지 견학’ 명목으로 터키로 출국시킨 부산 해운대구 담당국장이 23일 직위해제됐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가수들 음원 발매 미루고 스포츠계 행사·응원 자제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의 애도 분위기 속에 17일 문화·스포츠 행사들도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가요계는 음원 발매 및 프로모션 일정을 대부분 연기했고 방송계와 영화계도 제작발표회, 언론시사회 등 행사를 미뤘다. 엑소는 한국과 중국에서 각각 활동할 유닛인 엑소-K와 엑소-M이 오는 21일 새 미니앨범 ‘중독’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취소했다. 18일 새 싱글 앨범 ‘싱크로 퓨전’을 발매할 예정이었던 박정현도 일정을 미뤘다. 박정현의 소속사인 블루프린트뮤직은 “국가적인 재난인 만큼 애도에 동참하기 위해 발매일을 미뤘다”고 말했다. 17일 신곡을 발매할 계획이던 정기고도 음원 공개를 연기했으며 그룹 블락비, 에이핑크도 음원 발매를 미루고 예정된 팬미팅을 취소했다. ●방송 ·영화계, 제작발표회·시사회 취소 방송·영화·공연 쪽도 마찬가지다. SBS는 19일로 잡았던 새 주말극 ‘기분 좋은 날’의 첫 방송일을 미뤘다. MBC에브리원은 17일 예정된 ‘쇼타임 버닝더스트’ 2회를 결방하고 18일 열릴 ‘나인투식스 시즌2’ 제작발표회도 취소하기로 했다. 영화계에선 송승헌과 임지연 주연의 영화 ‘인간중독’이 17일 오전 예정됐던 ‘19금 제작보고회’를 전격 취소했다. 같은 날 예정됐던 애니메이션 ‘리오2’의 VIP 시사회와 18일 계획됐던 ‘표적’의 ‘예체능 쇼케이스’ 등도 열지 않았다. 뮤지컬 ‘풀 하우스’도 18일 오후 예정된 시연회를 갖지 않기로 결정했다. ●K리그 화려한 골 세리머니·폭죽도 금지 공문 스포츠계도 대회와 행사를 취소하거나 응원을 자제하기로 하는 등 자숙 분위기다. 17일부터 22일까지 경남 창원 해군사관학교 앞바다에서 열릴 예정이던 해군참모총장배 전국요트대회가 사고 당일 취소된 데 이어 같은 날 4개 구장의 프로야구 경기에서 집단 응원과 앰프 사용을 자제토록 했던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8일부터 이어지는 주말 3연전도 가급적 조용한 분위기에서 치르도록 했다. 프로축구연맹 역시 주말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 경기 도중 행사와 응원 자제를 당부하는 공문을 구단들에 발송했다. 특히 안산을 연고지로 하는 K리그 챌린지(2부리그) 경찰청은 20일 예정된 홈 경기를 연기했고, 나머지 구장에서도 화려한 골 세리머니와 폭죽, 음악, 영상 등을 자제하기로 했다. 이 밖에 대한장애인체육회는 18일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서 개최하려던 어울림생활체육대회를 취소했다. 1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개막하는 국제테니스연맹(ITF) 서울오픈 챌린저·퓨처스, 같은 날 강원 태백에서 열리는 CJ슈퍼레이스 개막전에서는 경기 직전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묵념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특히 자동차경주인 CJ대회에서는 차량 꼬리 날개에 검은색 리본을 부착하고 시상식 세리머니는 물론, 레이싱 모델들도 출연시키지 않도록 했다. ●고양국제꽃박람회 이벤트 대폭 축소 한편 경기 고양시 산하 고양국제꽃박람회도 오는 24일부터 5월 11일까지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리는 ‘고양국제꽃박람회’ 행사를 대폭 축소했다고 밝혔다. 고양국제꽃박람회는 24일 저녁 예정된 개막 축하 불꽃쇼를 전격 취소하고 개막식만 차분하게 치르기로 했다. 행사기간 1000회 이상 계획된 공연 프로그램과 이벤트도 축소해 진행할 계획이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日 독도영유권 허구성 학술적으로 규명”

    영남대가 일본 아베 정권의 우경화와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사실 왜곡의 실상을 규명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영남대는 영남대 독도연구소가 주최하고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 후원으로 18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영상회의실에서 이번 학술대회를 연다고 16일 밝혔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 배경과 동향을 분석하고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진단한다. 또 일본 시마네현 죽도문제연구회가 지난달 14일 발행한 ‘죽도 문제 100문 100답’의 핵심내용을 분석한 연구결과가 발표된다. 먼저 아베 정권의 영토정책을 진단하는 제1부에는 고선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교수가 ‘아베 정권의 보수우경화 경향과 향후 전망’,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가 ‘아베 정권의 우경화와 동아시아의 국제관계’, 아사바 유키 니가타현립대 교수가 ‘아베정권의 우경화와 한일관계’에 대해 각각 주제 발표한다. 2부 죽도문제연구회의 ‘죽도 문제 100문 100답’ 비판에서는 독도 강탈 정당화 논리에 대한 허구성을 규명하고 사실 왜곡의 실상을 밝힌다. 송휘영 영남대 교수가 ‘죽도 문제 100문 100답’의 ‘죽도도해금지령’과 ‘태정관지령’ 비판, 최장근 대구대 교수가 한국 고지도·고문헌의 ‘우산도·석도·독도’ 비판에 대한 재비판, 동북아역사재단의 곽진오 박사가 ‘대한제국칙령 41호’와 ‘시마네현 고시 40호’에 대한 견해 비판에 대해 주제 발표한다. 이어 토론 시간에서는 최재목 영남대 독도연구소장을 좌장으로 경북대 하세헌·이정태 교수, 계명대 이성환 교수, 영남대 김영수·김호동 교수, 홍익대 김웅기 교수 등 관련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종합 토론을 진행한다. 최재목 소장은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일본의 사실 왜곡 실상을 철저하게 분석 비판하고, 이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책 마련을 위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인어공주가 사는 ‘봄의 왕국’

    인어공주가 사는 ‘봄의 왕국’

    여기는 태평양에 뜬 절해고도. TV 일기예보에서나 간간이 들었던 ‘남해 동부 먼바다’에 속한 섬이다. 바다 건너온 봄이 가장 먼저 온기를 풀어놓는 곳, 전남 여수의 거문도다. 섬 주변 절벽엔 벌써 수선화가 곱게 피었고, 섬집 돌담엔 유채꽃이 흐드러졌다. 피보다 붉은 동백도 여기저기서 피고 지기를 거듭하는 중이다. 이처럼 섬은 때론 거칠게, 때론 보드랍게 꽃을 어루만지며 애면글면 봄을 틔워내고 있다. 여기에 39개 섬들이 웅장하게 늘어선 백도까지 묶어 돌아본다면 봄날의 여정은 더없이 풍성해질 터다. 거문도는 여수항에서 남쪽으로 114.7㎞쯤 떨어져 있다. 여수와 제주도의 중간쯤 되는 곳이다. 거문도는 동도, 서도, 고도 등 3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고도가 가장 번화하다. 여객선 선착장과 면사무소 등 주요 시설이 밀집돼 있다. 고도와 서도는 삼호교로 연결되어 있다. 반면 동도는 서도선착장에서 도선으로 이동해야 한다. 동도와 서도를 잇는 연도교는 올 연말께 개통될 예정이다. 거문도는 종종 백도를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쯤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거문도관광여행사의 최민기 가이드는 “거문도 방문객의 90% 정도가 백도와 거문도 등대 정도만 ‘찍고’ 돌아간다”고 했다. 한데 이거 단단히 잘못됐다. 거문도에서 ‘기와집몰랑’(175m)과 녹산곶을 빼면 ‘팥소 빠진 찐빵’과 다름없다. 보통 배 시간에 맞추느라 두 곳 모두 건너뛰기 십상인데, 아침 잠을 줄여서라도 반드시 둘러보길 권한다. 거문도에서 가장 이름난 볼거리는 거문도 등대다. 거문항 선착장을 기준으로, 거문도 등대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보로봉(170m)과 수월산(128m) 아래로 난 약 4㎞ 길이의 산책로, 혹은 덕촌마을에서 불탄봉(195m) 방향으로 올라 약 5㎞ 길이의 기와집몰랑길을 따라간다. 산책로는 왕복 두 시간, 기와집몰랑길은 세 시간쯤 걸린다. 두 길은 무넹이(목넘어)에서 합쳐진 뒤 거문도 등대까지 줄곧 함께 간다. 대개의 여행객들은 산책로를 선호한다. 걷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와집몰랑길은 거칠고 남성적이다. 야트막한 산을 올라야 하는 게 다소 힘들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기와집몰랑길을 외면하지는 말길. 능선 위에서 맞는 장쾌한 풍경을 놓친다면 이는 명백한 손해다. ‘몰랑’이란 산마루란 뜻의 사투리다. 풀자면 기와집 형태의 산마루란 뜻이다. 능선에서 보면 그저 해안절벽이지만, 바다에서는 장대한 기와집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단다. 불탄봉과 보로봉을 거쳐 가는 기와집몰랑길은 정비가 잘돼 있다. 박석 깔린 능선길을 걷다 보면 바다 위에 선 듯한 느낌도 든다. 길옆 ‘비렁’(벼랑의 사투리) 아래로는 바다가 쉼 없이 넘실댄다. 비렁과 몰랑이 반복되는 길, 이게 기와집몰랑의 본질이다. 능선 너머로는 웅장한 해안 절경이 펼쳐져 있다. 특히 거문도 등대가 서 있는 수월산 쪽 해안 풍광은 감탄사가 입술을 비집고 터져 나올 정도다. 기와집몰랑의 끝은 무넹이다. 보로봉과 수월산을 잇고 있는 낮은 갯바위지대다. 물이 넘나든다는 뜻의 수월산(水越山) 이름도 무넹이에서 비롯됐다. 수월산 끝은 거문도 등대다. 1905년 남해안에선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 등대 끝의 관백정(觀白亭)은 백도를 볼 수 있다는 뜻의 정자다. 정자 아래 단애에는 수선화와 유채꽃 등이 피어 이국적인 느낌을 더하고 있다. 거문도 남쪽에 수월산이 있다면 북쪽엔 녹산곶이 있다. 근육질의 수월산에 견줘 녹산곶은 한결 여성적이다. 바다를 향해 부드럽게 펼쳐진 능선이 일품이다. 여인의 삼단 머릿결 같은 잡초들은 바람 불 때마다 일어선다. 곶부리를 둘러싼 바다는 파랗다. 하늘빛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위에 녹산등대가 촛대처럼 서 있다. 이 같은 풍경에서 ‘신지끼’ 전설이 싹 튼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신지끼는 상체는 여인, 하체는 물고기인 인어다. 섬사람들은 신지끼를 섬의 수호신으로 여겼다고 한다. 큰 풍랑이 일어나기 전날 어김없이 나타나 절벽에 돌을 던져 이를 알렸기 때문이다. 신지끼가 출몰했다는 신지끼여(수중바위)는 원래 녹산등대 맞은 편에 있다. 하지만 실제 신지끼 조각상이 세워진 곳은 녹산곶 아래의 야트막한 언덕이다. ‘인어해양공원’이라는 거창한 명칭 대신 ‘신지끼 언덕’이란 소박한 이름으로 부르는 건 어떨까 싶다. 신지끼 조각상은 서구형 미인의 외모를 하고 있다. 소라 귀걸이와 조개 머리핀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오른손엔 예의 돌을 든 채 초승달을 타고 앉았다. 영화 ‘인어공주’의 외모와 빼닮았다. 1885년(고종 22) ‘거문도 사건’을 일으킨 영국군이 섬에 주둔한 이후 생긴 전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게다가 배꼽 바로 아래부터 물고기 비늘이 시작되는데 지나치게 육감적이다. 이쯤 되면 성적 매력이 ‘메릴린 먼로급’이다. 거문도 여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백도(국가명승 7호) 유람이다. 거문도에서 28㎞ 떨어진 백도는 상백도와 하백도 등 39개 섬들로 이뤄진 무인군도다. 매바위, 병풍바위, 서방바위, 각시바위, 거북바위 등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거문도엔 아픈 역사가 남아 있다. 영국 함대가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봉쇄한다며 1885~1887년 사이 약 2년 동안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거문도 사건’이다. 당시 거문도는 ‘해밀턴 항구’로 불렸다고 한다. 거문초등학교 옆 돌담길을 따라 우리나라 최초로 생겼다는 ‘해밀턴 테니스장’과 영국군 묘지 등이 잘 정비돼 있다. 글 사진 거문도(여수)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여수여객선터미널(663-0116)에서 하루 두 차례(오전 7시 40분, 오후 1시 40분) 거문도행 여객선이 출항한다. 나로도와 손죽도, 초도 등을 들러 거문도 고도까지 간다. 2시간 20분 소요. 배삯은 편도 3만 6600원이다. 고흥 녹동항에서도 거문도까지 여객선이 운항한다. 녹산등대의 들머리인 장촌마을까지는 택시나 자전거를 이용해 가는 게 낫다. 거문항에서 6㎞쯤 떨어져 있어 걸어서 오가기는 다소 멀다. 택시는 고도에서 녹산곶까지 왕복하는 데 4만원이다. 승합차량이기 때문에 여럿이 돈을 추렴해 이용할 수도 있다. 자전거는 1시간에 4000원, 하루 2만원이다. 대여점은 고도에 있다. 거문도등대에서 녹산등대까지 거문도 종주에 나서는 이들도 있다. 거리는 8㎞가 채 안 되지만 족히 6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백도는 오가는 데 2시간 이상 소요된다. 배삯은 2만 9000원. 거문도관광여행사(www.geomundo.co.kr)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도 좋겠다. KTX 등 교통편과 숙식, 그리고 거문도 종주코스와 기와집몰랑코스, 백도관람 등이 포함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665-7788. →잘 곳 삼산면사무소(659-1257)가 있는 고도에 모텔과 민박 등이 몰려 있다. 거문도 등대(666-0906)에서도 무료로 숙박할 수 있다. 이용 신청은 희망일 2주 전 여수지방해양항만청(yeosu.mof.go.kr)에서 받는다. →맛집 식당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감성돔, 참돔 등은 6만원, 삼치는 1㎏에 4만원 정도 받는다. 모둠해물은 5만원 선. 무엇보다 곁반찬이 ‘감동’이다. 개상어 회무침, 문어숙회, 돌낙지, 군소 숙회, 뿔소라 등 도회지에선 맛보기 힘든 음식들이 곁들여진다. 섬마을식당(666-8111), 충청도횟집(665-1986) 등이 알려졌다. 섬마을 식당은 아침에도 문을 연다. 각종 해산물과 나물이 곁들여진 아침상이 소박하고 맛있다.
  • 포항운하 준공 축하 퍼레이드

    포항운하 준공 축하 퍼레이드

    포항시 죽도동 어시장 앞 포항항에서 지난 1일 포항운하 준공식과 포항시의 모태였던 영일군의 출범 100주년을 기념하는 수상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포항시 제공
  • 통영시, 섬 7곳 테마 관광섬으로 개발

    남해안 한려수도의 중심지인 경남 통영시의 크고 작은 섬 7곳이 주제가 있는 관광섬으로 조성된다. 경남도와 통영시는 25일 올해부터 2018년까지 5년 동안 시·도비와 민간자본 등 모두 968억원을 들여 7개 유·무인 섬을 관광섬으로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봉도, 납도, 내초도, 수우도, 용초도, 상·하죽도, 송도 등 7개 섬 고유의 자원과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시는 개발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지난해 말 모두 완료했다. 쑥이 많아 쑥섬이라고도 불리는 봉도(0.122 ㎢·무인도)는 자연치유의 섬으로 만든다. 쑥을 치유재로 활용해 자연친화적인 체류 휴양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내초도(0.45㎢·무인도)는 방문객들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힐링센터, 성인병 치유원 등을 갖춘 생명의 섬으로 조성한다. 기암괴석과 동백숲 등 자연경관이 빼어난 수우도(1.284㎢·유인도)는 산악·레포츠센터와 암벽타기 등을 갖춘 웰빙 모험 관광 명소로 가꾼다.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 흔적이 있는 용초도(3.405㎢·유인도)는 전쟁기념공원 등을 만들어 역사 유적의 섬으로 꾸민다. 송도(0.118㎢·유인도)는 항만시설과 산책로 등을 조성해 생태보전 관찰 섬으로 만든다. 통영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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