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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부내 공산세력 조직적 활동 첫확인/「김창룡 일지」를 보고

    ◎「숙군 작업중 마찰」등 피살 배경 밝혀져/이중업 탈주­고희두 사건 내막도 담겨 김창룡 중장은 어떤 인물이며,육군 특무부대장으로서 어떤 일을 하였고,왜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피살될 수밖에 없었는가.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자료 「김창룡일지」를 서울신문이 발굴했다.당시 주한미대사관 1등서기관 존스가 번역한 것으로 1957년 2월20일 국무부로 보내진 것이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비밀일지 전문을 찾기 위해 탐문중에 있지만 우선 흥미를 끄는 부분이 많다.베일에 쌓여 있는 「김창룡암살사건」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김창룡은 일제시대 관동군에서 특무공작에 종사하였으며,해방후 육사3기로 입대하였다.그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동기생 가운데 김지회 ·홍순석·박호산 등 약 8할이 공산주의자였다고 한다.일지는 당시 불법화된 공산당에서는 이중업을 시켜 조선경비대에 공산계열을 침투시킬 것을 계획하고,이재복을 군사책,김영식을 군사레포로 하여 2만여명정도의 공산주의자 혹은 그 동조자를 군내에 조직하였다고밝혔다.경비대 간부는 물론 생도대장 오일균,교수부장 조병건 등 육사 간부급 거의 전부가 공산주의자에 의해 점유되었던 것이다.김창룡의 「타공」은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정황을 읽을 수 있다. 육사 졸업후 김창룡은 제1연대 정보참모부에 배속받았다.거기서 그의 숙군작업이 시작되었다.통위부 고문관 가소(Kasso)소령이 그를 적극 후원했다는 사실도 이 일지를 통해 알 수 있게 되었다.김창룡은 경비대총사령관 송호성 준장도 공산주의자와 내통하고 있었다고 밝혔는데 그것은 이재복과 김영식의 채포에 의해 밝혀졌다.다시 말하면 군내에 침투한 공산주의자의 명단및 공작금수령 영수증등의 자료에서 입증했다. 송호성에 대하여 김창룡은 숙군에 앞장선 자신을 6회에 걸쳐 전출시켰고,여순반란사건을 일으킨 육군 제14연대 최남근 연대장등은 적극 비호했다고 규탄한다.송호성이 공산주의자와 연계했었다는 김창룡의 판단은 정확했다.송호성은 뒷날 월북하여 1956년 「재북평화통일협의회」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김창룡은 정부수립후 방첩대장으로서숙군을 위하여 서대문형무소에 한 방을 얻어 부하들과 그곳에서 기거하는 과정에서 남로당 조직총책 이중업을 체포하여 남로당을 붕괴시키기에 이른다.그의 일지에는 이중업의 육군형무소 탈주사건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이 사건에는 김형륙과 여간첩 김수임 및 그의 정부이던 베트중령등이 관련된 것으로 말한다. 비밀일지에서는 1949년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킨 고희두 사건에 대하여 그 내막과 이면에 얽힌 이야기도 자세히 정리하고 있다.사건을 직접 조사한 당사자가 아니면 알려지지 않을 내용들이다. 김창룡은 한국전쟁시기와 그 이후에도 반공의 최선봉에서 활약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적을 만들었고,그에 대한 살해위협도 계속되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 미 비자발급 오늘 재개/주한 대사관 발표

    주한미대사관은 96회계연도 예산안에 대한 미행정부와 의회간의 대립으로 인해 연방정부의 기능이 정지됨에 따라 지난 15일부터 중지한 비자발급업무를 21일부터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주한미공보원측은 이날 주한미대사관측의 비자발급업무 재개는 예산안 타결에 따른 것이며,대사관 영사관업무 중단에 따라 비자인터뷰가 취소된 비이민 비자신청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어느날이든 이미 약속한 같은 시간대에 인터뷰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 미 비자 발급 일시중지/주한대사관 연방정부 업무정지 따라

    주한미대사관측은 15일 이미 제출된 여권과 비자신청업무를 제외한 비자신청처리 등 통상적인 영사업무를 일시중지한다고 예고했다. 주한 미국공보원측은 이날 배포된 보도자료를 통해 미연방정부의 업무정지에 따라 각국에 있는 미국 대사관들이 이같은 지시를 받았다면서 『그러나 소수의 영사과 직원들이 미국시민 관련업무를 비롯한 긴급한 업무를 처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한 미공보원측은 또 『15일 이후의 비자인터뷰는 모두 취소되었다』면서 『비자인터뷰 재개여부는 후일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 미,「63년 박정희 정권 부패상」 극비 보고

    ◎주한 미 대사관 작성… 32년만에 비밀해제로 밝혀져/정보부 62년 증권파동 조작… 60억환 이득 챙겨/일 택시 특헤수입등서 막후 개입… 비자금 조성/김종필 중정부장 요정서 1주에 5백만환써 주한미대사관은 지난 63년 2월 박정희 정권의 비자금 조성 내막을 포함한 당시 한국 권력핵심부의 부패상을 상세히 언급한 비밀 보고서를 본국에 보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미대사관의 필립 하비브 정무참사관이 작성하고 서명한 보고서(미국무부 문서번호: A­640)는 빽빽이 기록된 모두 13장 분량으로 미당국의 정보 공개 원칙에 따라 올해초 비밀 해제됐다.「한국의 부패 문제」란 제목이 달린 63년 2월20일자 이 보고서는 ▲부패의 구조적 성격 ▲박정권의 군사혁명정신 퇴색상 ▲중앙정보부가 연계된 62년 주가 조작 사건 등 비자금 조성 내막 및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63년 1월 사퇴:현자민련총재)을 비롯한 일부 권력 핵심부 인사의 주변 상황과 동향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에서 『공직이 케이크를 먹을 수 있는 기회로 간주되고 있다』면서 『특정인이 너무 오랫동안 「케이크를 먹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정부업무의 연속성을 저해하는 근본적인 이유의 하나』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부패의 부활」이란 소제목을 가진 부분에서 『(부패하기 쉬운)한국인의 생활 패턴을 척결하려는 (군사정권의)격렬한 시도가 예상대로 대부분 실패했다』면서 『(군사정권에 의해 폐쇄됐던)요정들이 (다시)문을 열고 군정과 중정인사들을 최고의 단골로 확보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어 『김종필 중정부장의 경우 이런 곳들에서 일주일에 5백만환(약 4천달러)상당을 쓰는 것으로 전해진다』면서 『그 액수가 얼마인지에 관계없이 분명한 점은 그와 그의 사람들이 아낌없이 돈을 쓴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패의 새로운 성격」이란 부분에서 보고서는 『부패가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이 여전히 분명하다』면서 『(군사)정권은 스케일이 큰 공작들을 통해 비자금을 확보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고 밝혔다. 지난 62년의 증권 파동에 대해 보고서는 『62년 2월부터 5월까지의 주가파동은 정보부의 부추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서 『이 파동을 통해 정보부 및 이에 연계된 측이 챙긴 이득은 최소한 40억환에서 많게는 아마도 60억환(최소한 약 3천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분석했다.보고서는 『이것이 한국 역사상 발생한 단일한 재정 쿠데타(Financial Coup)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군사혁명이 난 후 몇달간은 경제계의 부패가 급격히 없어지기는 했다.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부패의 행태가 점차 부활됐다.김종필이 부상한 이래 김해금씨 일문이 득세한 얘기들이 설왕설래하고 있다.국무총리,참모총장,참모차장,최근의 재무장관,중정의 경제공작 책임자인 「김용태」 및 많은 인물이 이에 포함되며 이들 대부분은 김종필과 출신 지방이 같다. 정보부는 자금을 축적하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활용하는 한편 통제,압력 및 비밀(공작)을 수행해왔다.그리고 고도로 조직된 계획을 실행해왔다. 중정이 관여한 워커센터(워커힐)건설에 약 5백만달러 상당이 투입된 것으로 전해진다. 새나라자동차회사는 중정의 밀접한 대일본 비즈니스와 연계돼 세워졌다.중정은 처음에 택시 2백50대를 일본으로부터 특혜 수입했다.중정의 소유로 알려진 이들 택시는 한달에 근 12만달러 상당을 벌어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비자금과 관련해)빈번히 제기되는 의문은 이 풍부한 비자금이 개인의 호주머니로 흘러 들어갔는지 아니면 긴급을 요하는 국가적 목적들을 위해서 쓰여졌느냐는 것이다.김장군과 그의 동료들은 후자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확인되지않은 바에 따르면 김은 증권시장을 통해 개인적으로 거금 10억환(약 75만달러)이란 이익을 봤다고 한다.
  • 미에 「한국인 노비자」 요구/공 외무

    ◎미선 발급기간 단축 등 개선 약속/SOFA(주한미군 지위협정) 조기 개정키로 【유엔본부=이건영 특파원】 정부는 최근 미국을 방문하려는 한국인들의 최대 민원사항인 비자발급과 관련,미국정부에 무사증(노비자)제도를 도입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정부가 공식으로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사증제 실시를 요청하기는 처음이다. 이에 대해 미국정부는 당장 무사증제도로 전환하기는 어려우나 이를 신중히 검토하겠으며 우선적으로 비자발급 기간단축을 위해 획기적 개선조치를 내년초 시행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측의 비자발급제도 개선책에는 ▲전화나 우편을 통한 비자인터뷰 시간 예약제 ▲일정한 요건을 갖춘 신청자들에게 인터뷰를 생략하는 여행사 보증제도(TARP)확대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을 방문중인 공로명외무장관은 2일 하오(한국시간 3일 상오)숙소인 유엔플라자호텔에서 피터 타노프 미국무차관과 만나 한국인들이 주한미대사관 비자발급 지연으로 큰 불편을 겪고 있음을 감안,바람직한 양국관계를 위해서도 무사증제도의 조속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장관은 『현재 우리의 비자 거부율이 7.9%로 무사증제도 기준인 2%에 미달한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이중 유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특수상황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미국측의 정치적 결단을 거듭 촉구했다. 미국 정부는 EC등 대부분의 서구국가와 캐나다,그리고 동양권 국가로는 유일하게 일본에 대해 단기 방문의 경우 비자면제조치를 이미 실시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서는 또 한·미 두나라간 미묘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개정과 관련,양국은 빠른 시일내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정토록 노력해나가기로 했다고 서대원 외무부 대변인이 밝혔다. 공장관이 형사관할권 문제를 포함,현안에 대한 조속한 해결을 요청한데 대해 타노프차관은 『한국의 민감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서 SOFA의 조속한 개정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 조세 주권 지킨 차협상 타결(사설)

    한­미 자동차협상은 미국측이 한국측에 요구한 관세인하부분을 철회하는 대신 우리는 미국측이 요구한 자동차세의 인하를 일부 수용함으로써 극적으로 타결됐다.한­미양국이 상호협력 차원에서 타협과 양보를 통해 협상을 마무리지은 것은 평가할만한 일이다. 미국측이 그동안 협상무기로 사용한 미 통상법 301조의 우선협상대상국 지정이라는 「강자의 논리」를 자제한 것은 온당한 자세다.이번 협상에서 미국은 실리를 얻었고 한국은 명분을 살렸다는 논평이 있으나 타결을 보기위한 양국의 상호 노력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가 7단계로 되어 있는 자동차세의 누진구조를 5단계로 줄이라는 미국측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것은 경제외교의 커다란 성과로 볼 수 있다.7단계 누진단계를 유지하면서 2천5백㏄이상 차량에 대해 평균 30%정도 세율을 인하하는 선에서 양보,조세주권을 지키겠다는 당초의 정부의지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개도국에 대한 포함외교의 비난을 피하면서 대형 자동차세 세율을 인하 받음으로써 실질적인 이득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또 형식승인문제의 경우 미국측이 2천대마다로 대폭 늘리라는 주장에서 한걸음 물러나 1천대선에서 절충점을 찾은 것도 합리적인 타협으로 보인다. 특히 마지막 협상과정에서 2천5백㏄이상 승용차에 대해 단일세율을 적용하라는 미국측의 요구를 한국측이 뿌리친 것을 아주 높이 평가하고 싶다.이는 명분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조세주권주의를 지킨 것이기 때문이다.이밖에 TV광고문제를 주한미대사관과 한국방송공사간의 추후협상과제로 넘긴 점도 잘한 일이다. 이번 자동차협상에서 양국정부가 보인 양보와 타협의 정신이 향후협상에서도 지속되기를 기대한다.그러자면 미국정부는 「강대국 논리」에 입각,상대방국가의 주권을 침해하는 통상압력을 넣지 말고 우리 정부는 국제기준에 어긋나는 통상관련 법규나 제도를 하루 빨리 정비해서 외국과의 통상마찰을 사전에 제거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 전시경제와 통화(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37)

    ◎전비 하루 10억∼40억원 지출… 인플레 심각/52년 화폐발행고 1조… 100대1로 화폐개혁 1951년 봄 전선에서는 수 많은 인명이 죽어갔으나 전선은 진지밖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그렇다고 숱한 인명의 희생이 국민들에게 어떤 반대급부적 대가를 안겨준 것도 아니었다.후방은 그저 전선이 멀리있다는 사실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 뿐 날로 가중되어가는 경제적 궁핍이 먼저 피부에 와 닿았다.당시 경제문제는 전선의 전투못지 않게 심각했던 것이다. ○부산 빈민도시 전락 대한민국 임시수도 부산에는 1백50만명의 인구가 들끓었다.전쟁전 43만명의 인구를 포용했던 매력있는 도시 부산은 제 모습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남한의 피란민은 물론 북한을 탈출한 피란민,전쟁고아,전상자들이 삽시간에 부산을 빈민가로 만들어버렸다.전국의 후방 도시들도 마찬가지였다.부두에는 태평양에서 꼬리를 물고 입항한 거대한 선박들이 매일 산더미같은 짐을 풀었다.그러나 당장 끼니거리가 없는 피란민들에게 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전쟁은 이들을돌볼 겨를을 주지 않았다.한국정부는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하루 10억원에서 40억원의 전쟁비용을 지출하는 입장이었다.이는 유엔군이 필요로 하는 원화경비를 지출키로 합의한 이른바 대구협정에 따른 것이다.유엔군에게 꾸어주는 대여금 이었지만 이를 흡수할 실물경제의 기반은 계속 허물어졌다.봇물이 터지듯 쏟아져 나온 돈의 홍수는 결국 한국통화의 지독한 인플레현상을 불러일으킨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정부의 재정은 말이 아니었다.전쟁은 벌써 2년째에 접어들어 세입이 전무한 상태였다.그래서 세입은 한국은행에서 꾸어오는 인플레 방식의 한은차입금이 큰 줄기를 이루었다. 한국은행은 1951년 한햇동안 5천5백79억원의 화폐를 발행했다.이 수치는 전년도 화폐발행고 2천2백92억원에 비해 자그마치 3천2백87억원이 늘어난 것이다.그해 51년의 통화량은 전년도 보다 3천9백77억원이 많은 6천4백98억원을 기록했다. ○2년새 6배 치솟아 그것은 가장 기초적인 경제원리 조차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물가가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수 밖에없었다.해방 당시 도매물가지수를 1백으로 할 때 1951년 초에 이미 5천을 뛰어넘어 52년에는 단숨에 3만을 돌파했다.배고픈 피란민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 쌀값은 1946년 1월 기준 1만6백50원에서 1952년말에는 9만원대로 치솟았다. 한국전에 개입한 미군 주축의 유엔군은 한화가 필요했다.그래서 한국정부는 대전에서 철수한 1950년 7월28일 대구협정을 맺었다.한국정부는 유엔군 지출관이 요구하는 액수의 원화를 필요한 장소에서 무제한 공급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이후에 어떻게 갚는다는 조항을 두지않고 일방적으로 공급의무 만을 규정한 이 협정은 오랫동안 말썽을 빚었다.이 협정에 따라 한국은 유엔군에게 원화를 꾸어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다. ○한은 20억 북에 뺏겨 그러나 현찰이 없었다.유엔군 대여금 보다 더 급했던 한국군에 공급할 현찰도 부족한 판이었다.한국은행은 전쟁이 일어난 직후 6월26∼27일까지 20억원을 서울에서 풀었다.그리고나서 피란지로 수송한 돈은 5억원에 불과했다.금고에 그냥 두었던 20억원은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 의해 남한경제 교란에 악용되었다.이때에 화폐인쇄용 원판을 서울 원효로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 빠뜨리고 온 실책을 저질렀다.대전에서 이 정보를 수집한 미 대사관은 곧바로 맥아더 사령부에 통보했다.그래서 원효로 일대는 개전 초기 미공군으로부터 엄청난 폭격을 받았다. 한국은행은 궁여지책으로 저액권 지폐에 고액 스탬프를 찍는 작업에 착수했다.10원짜리 지폐에 「당백원」 또는 「당천원」을 새긴 고무도장을 찍었다.이 지폐가 유통되지는 않았다.미 경제협조처(ECA)와 맥아더 사령부의 주선으로 19 50년 7월 하순부터 일본 토쿄에서 이승만대통령의 얼굴 도안이 들어있는 새 화폐를 찍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한국은행 토쿄지점이 발권업무를 맡아 서북항공(NWA) 전세기와 DC4 쌍발수송기로 부산 수영공항에 공수되었다.비행기만으로는 수송능력이 모자라 9·28 수복 이후에는 캐나다 선적의 1만t급 상선 아일랜드사이드호가 8일 간격으로 인천항에 닻을 내렸다. 한국정부는 유엔군에게 꾸어준 대여금을 받아내는 일이 시급했다.특히 이승만 대통령의 상환독촉은 보통이 아니었다.그러나 미국의 반응은 냉담했다.미국은 원화대여금을 전쟁이 끝난 뒤 그동안의 전비와 상쇄할 전도금으로 해석한 것이다.한·미간의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하다가 1952년 1월10일 우선 유엔군 휴가비로 나간 한화를 달러로 받았다.처음으로 한국정부 손에 들어온 외화는 1천2백15만5천7백14달러였다. 미국은 그 뒤에도 대여금 상환을 놓고 한국과 줄다리기를 계속했다.미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4월 클레어렌스 마이어를 대통령특사로 한 사절단 12명을 부산에 보냈다.백두진 재무장관을 수석대표로 한 한국대표단과 이들의 회담은 5월에 접어들어서도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미국은 달러를 되도록 덜 주면서도 지불시기를 늦추고 지불한 돈에 대한 사용처를 명시한다는 입장이었다.이와달리 한국은 많은 액수를 빨리 받아 자유롭게 써야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미국 쪽에서 먼저 2천8백만달러를 제시하고 나섰다.이 액수는 지금까지 가져간 돈 가운데 52년 1월∼4월까지 4개월분을 달러로 환산한 것이다.한국대표단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이승만대통령은 고개를 저었다.마이어는 이 대통령을 직접 예방하고 5개월분을 제시하고 수락을 간청했다.이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장장 40일간의 마라톤 회담이 5월24일 타결되었다.이를 양국 대표가 서명했는데 바로 유명한 마이어협정이다. ○6천대1 환율 적용 마이어협정은 미국의 대여금 상환 말고도 고용 한국인에 대한 노임 및 물자대(월 4백만달러)상환내용 등이 들어있다.여기서는 6천대1의 환율이 적용되었다.이 협정에서 주목되는 대목은 통화팽창과 투자억제를 골격으로 한 한국정부의 의무조항이다.의무조항은 한국의 통화개혁을 부추켰다. 1952년 여름에 접어들어 화폐발행고는 1조원을 넘어서고 말았다.그해 가을 백두진재무장관이 국무총리 서리 겸임 발령을 받았다.백서리로부터 통화개혁 기초작업 착수보고를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단호히 조치해보라』는 말로 이를 동의했다.백두진과 김유택 한국은행 총재를 필두로 김정렴,배수곤 등이 실무팀으로 참여했다.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진 통화개혁 작업은 11월말 가닥을 잡았다.그 내용은 당시 통용화폐 원을 1백대1로 낮추어 환(원)으로 하고 일정액 이상의 통화를 예금으로 동결시킨다는 것이었다.백두진팀이 쉽게 통화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것은 「유에스 프린트」라는 사용하지않은 신권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그것은 미군정이 화폐교환을 위해 1947년 미국에서 인쇄한 화폐였는데 그 도안이 절묘했다.이 미사용 신권지폐는 1천원,1백원,10원권 등이 「원」으로 표기되었지만 「환」으로 호칭한다는 원칙 아래 1953년 2월15일부터 통용되었다. ◎미 대사관 보고서 「조인트 위카」/미,통화개혁후도 원화 평가절하 요구/다스카 사절단 내한… 백두진 총리에/53년 1달러=60환서 18환으로 올려 한국정부가 1953년 2월15일 통화개혁을 단행한 이후에도 미국으로부터 원화의 평가절하 요구를 계속 받아들여 이를 수용했다.이는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입수한 주한미대사관 무관들의 19 53년 5월15일자 주간보고서 「조인트 위카」(JOINT WEEKA)에서 드러났다. 「조인트 위카」에 따르면 한국에서통화개혁이 이루어진 지 약 2개월 이후인 53년4월에 다스카가 이끌고 온 다스카사절단은 백두진 국무총리에게 원화의 평가절하를 요구했다.당시 한국의 공정환율은 1달러당 60환(원)이었는데 다스카의 평가절하 요구액은 1달러당 2백20환이었다.이에 대해 백총리는 1백80∼2백환선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스카는 미국의 요구가 수용되어 쉽게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는 기록이 「조인트 위카」에 나온다.다스카의 예상은 사실상 적중했다.그해 12월 백총리와 우드간에 체결한 한미합동경제위원회협약을 통해 1달러당 60환이었던 환율이 자그마치 3배나 오른 1백80환으로 결정되었다.다스카의 애초 제시한 2백20환 보다는 적지만 원조 공여국인 미국의 요구가 어느정도 관철된 셈이다. 다스카는 방한중에 파악한 한국경제상황을 근거로 「다스카 보고서」를 작성했다.이 보고서에 실린 한국원조 3개년 계획안은 군사원조,구호,재건사업으로 나누어 모두 8억8천3백달러를 투자하는 내용을 담았다.그러면서 한국이 악성 인플레이션과 환율문제를 해결하지않고는 어떠한 시설투자도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입장에서 원조물자의 구성을 소비재 7,시설재 3을 제시했다.
  • 외언내언

    현대적 개념의 비자(VISA·입국사증)제도가 시작된 것은 1차세계대전때부터.외국인 간첩의 입국을 막으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지금은 이민억제나 노동인력 유입등을 조절하기 위해 다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특정인에게 비자를 내주거나 발급을 거부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지금 미국과 중국간 미묘한 갈등을 빚게 한 이등휘대만총통에 대한 미국의 비자발급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세계가 급속도로 좁아지고 국경개념이 흐려지면서 비자발급조건도 완화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우리나라와 비자면제협정을 맺고 있는 나라의 수도 7월 현재 65개국에 이르게 됐다. 문제는 미국비자.미국비자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까다롭다.『미국비자 한번 받고나면 확실한 반미주의자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도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금년에만 미국비자발급 신청자가 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미대사관의 영사업무담당자수는 신청자가 10만명내외에 머물던 70년대와 크게 달라진게 없다.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느는데 공급은 제자리걸음인데서 오는 당연한 현상이다. 금품이 오가는등 비자비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미국측에서는 예산이 없어 인원을 늘리기 어렵다는 것이나 비자를 받으려는 쪽에서는 미국사람들이 한국인의 불편정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인상도 받고 있다. 이번에 대통령을 수행해 미국에 갔던 공로명외무장관과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이 26일 워싱턴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조속한 해결에 나서기로 합의했다.이어 주한미대사관에서 비자발급업무를 부산 대구 광주등 4곳으로 확대하는등 몇가지 개선안을 내놓았다.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레이니 미대사의 말처럼 비자발급 지연으로 미국이 「자기발에 총을 쏘는 격」이 돼서는 곤란하다.비자업무가 전적으로 당사국이 알아서 할 고유 영사업무라지만 일이 이토록 꼬이도록 방치한 우리 외무부도 문제다.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 서방기업/북한진출 물밑 추진

    ◎최근 GM·로열 더치 셸사 등 극비 평양방문/인프라 열악·정권 신뢰못해 투자까진 “먼길” 세계의 거대기업 중 일부는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희망속에 북한에 대한 진출을 꾸준히 타진하고 있다. 로열 더치 셸사와 제너럴 모터스(GM)사 등 서방의 거대기업들은 지난 수개월 동안 여러차례에 걸쳐 자동차부품과 극동아시아산 원유정제시설의 최적지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북한을 은밀히 방문했다. 북한을 두차례나 방문했던 GM사의 찰스 랜돌프는 『북한이 경제를 대외에 개방할때 우리를 선구자로 기억할 것이며 자동차산업과 관련,GM을 먼저 고려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했다. 그러나 서방기업들의 이같은 장밋빛 희망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북한은 그리 안전하고 매력적인 투자처로 인식되지는 않고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정부가 지난 1월 미­북간 핵협정 타결 이후 40여년간 지속돼온 대북한 경제제재 완화조치를 발표하자 AT&T사가 미­북간 장거리통화 서비스를 즉각 개시하고 미네랄스 테크놀로지사가 북한산 마그네사이트 수입협상에 나서기도 했으나 북한의 전반적인 투자조건은 아직 미흡한 상태이다. 북한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북한이 외국자본의 유입을 허용하려면 열악한 도로와 식량부족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으며 미네랄 테크놀로지사의 북한산 마그네사이트 수입을 중재했던 짐 영 전주한미대사관 무관은 『북한은 입장을 자주 바꾸는 매우 힘든 상대』라고 협상과정의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또 정치적인 면에서 북한이 한국과 대립하고 있다는 점과 미국기업들이 한국기업보다 앞서 북한에 진출한다면 한­미관계에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북한에 대한 외국기업의 진출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올여름 미 여행 한인/4주전 비자신청을/주한미대사관

    주한미대사관은 30일 올여름에 미국을 여행하고자 하는 한국인들은 비자신청을 가급적 출발예정일 4주전에 해줄 것을 당부했다.
  • 남북의원 미초청/사이먼 상원의원

    남북한 국회의원의 미국 동시방문이 추진되고 있다고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이 26일 밝혔다. 지난해 12월중순 머코스키 상원의원(공화)과 함께 남북한을 방문했던 폴 사이먼 상원의원(민주)은 최근 미 국무부와 협의를 거쳐 자신의 명의로 남북한 의원을 동시에 초청하겠다는 뜻을 주한미대사관을 통해 우리 국회와 정부에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 미,평양사무소 요원 4월께 파북/초대소장에 한국통 리처드슨 유력

    ◎국무부 소식통/“외교행낭 판문점 통해 전달” 의견 접근 【워싱턴=이경형 특파원】 미국무부는 북한에 파견할 연락사무소요원들을 이미 선발,교육중에 있으며 남북한관계 등 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나 일단 오는 4월에 개설한다는 목표로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미국정부의 이같은 파견요원 훈련은 통상 부임 6개월전에 내정인사를 실시,현지업무 수행에 필요한 준비를 하도록 하는 국무부의 내부관행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초대 평양연락사무소장에는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스펜서 리처드슨씨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국무부의 북·미 연락사무소 전문가회담에 관계하고 있는 정통한 소식통은 지난 17일 『연락사무소장의 인선과 그 직급에 대한 최종 결정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외교소식통은 주베트남 연락사무소장에 전직 국무부 관련부서 과장이 임명된 전례에 비추어 평양 연락사무소장에 리처드슨씨가 가장 유력하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데이비드 브라운 현한국과장의 바로 직전 한국과장인 카트만씨는 현재 주한미대사관 부대사로 있고 카트만씨의 바로 전임자가 리처드슨씨로 그는 현재 국무부에서 실무를 떠나 국방관계기관에 파견되어 있다고 전했다. 연락사무소 개설과 관련한 그동안의 실무협의에서 양측은 10명 내외의 인원을 상주파견키로 했으며 미측의 외교행낭은 판문점을 통해 주한미대사관에 전달할 수 있도록 하고 파견요원및 가족의 급환시에도 판문점을 통과할 수 있으나 그외는 북경 또는 도쿄 등 제3국을 거쳐 서울에 가도록 의견이 접근되었다는 것이다.
  • 미,한국인 비자 12.6% 퇴짜/국무부 자료

    ◎일인보다 4배 많아… 10년간 18만명/“불법체류 우려” 86%로 으뜸/정부/애매한 기준 등 시정 촉구키로 지난 84년부터 93년까지 10년동안 미국의 한국인에 대한 입국비자발급 거부율은 12.6%로 신청자 열명에 한명꼴로 비자발급을 거부당해온 것으로 16일 밝혀졌다.또 미국측이 밝힌 거부사유는 99%가 불법체류 가능성과 서류미비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남북한을 연쇄 방문한 프랭크 머코스키 미 상원의원(공화·알래스카주)이 외무부에 전달한 미 국무부 자료에서 확인됐다. 정부는 이같이 높은 비자발급거부율과 관련,국무부 자료를 면밀히 분석한뒤 미 정부에 시정을 강력 촉구할 방침이다. 머코스키의원이 지난 10월 미 국무부로부터 제출받아 한국 외무부에 보내온 자료에 따르면 지난 84년 6만5천1백65명의 한국인이 비자를 신청,그중 9천9백77명(15.3%)이 비자를 발급받지 못하는등 93년까지 비자발급을 거부당한 사람이 전체신청자의 12.6%에 달했다는 것이다.거부율이 가장 높은 해는 87년도로 신청자 9만6천7백31명중 2만2백18명(21%)이 발급받지 못했다. 올해는 1월부터 6월까지 신청자중 7%가 비자발급을 거부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측이 제시한 거부사유를 보면 84∼93년 10년동안 「불법체류우려」가 전체거부자의 대부분인 86.4%(16만60명)였고 서류미비가 13.4%(2만4천8백20명)로 이 두가지 사유가 전체의 99%를 차지했다. 자료는 「비자발급기준」에서 『한국인 신청자라 해서 소득수준,나이,고용연한등의 특별한 조건을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히면서도 『영사가 「신청자가 불법체류할 것 같다」고 판단할 경우 신청자가 영사의 판단을 바꿀만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면 비자발급을 거부할 수 있다』고 돼 있다.이는 미측이 비자를 발급할 때 정교한 기준 없이 영사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에만 의존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미국의 비자발급거부율이 3.5%이하인 나라는 영국·일본등 25개국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미 정부는 지난 10년동안 한국인 비자신청자가 6만5천여명(84년)에서 30만여명(93년)으로 5배나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대사관의 영사담당자나 예산을 거의 늘리지 않았으며 금년들어서는 오히려 인력·예산을 감축했다. 그동안 외무부는 빗발치는 미국비자민원 해결을 위해 주한미대사관측에 수차례 비자발급거부율등 비자발급현황 자료를 요청했으나 『자칫 반미감정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며 자료공개를 거절해왔다.
  • 미 비자발급/영사 자의적 판단 의존/한국인 왜 거부 많이 당하나

    ◎“영구체류 의심땐 거부” 지침 명시/선의피해자 양산… 제도개선 시급 미국무성이 프랭크 머코스키상원의원 요구자료에서 제시한 한국인의 비자발급 거부사유는 모두 8가지로 정리된다.이 가운데 다수를 차지한 사유는 「불법체류예상자」로 84년부터 93년까지 10년동안 전체 거부자 18만5천여명 가운데 86.4%에 이르렀다.이 부분에 대한 미국의 비자발급기준은 이민법 214조 ⓑ항. 이 조항은 「비자를 발급받으려는 자는 미국에 영구체류의사가 없다는 것을 영사에게 보여주어야한다」라고 피상적으로 규정돼 있다.국무성 지침은 이 조항에 따라 미대사관의 영사들이 신청자의 「통장잔고증명」 「소득세납부영수증」 「은행거래기록부」의 제출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들 증명서가 반드시 구비돼야 비자발급을 해준다는 규정은 없다. 따라서 영사들은 이같은 신청서류를 토대로 신청자의 경제·사회적 위치를 판단,발급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고작이다.특히 국무성의 비자발급지침을 보면 영사들이 ▲신청자가 불법체류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거나 ▲신청자가 이를엎을 만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할 때 비자를 거부하도록 하고 있다.비자발급을 거부당한 한국인의 대부분은 이같은 영사의 「자의적인」 판단 때문에 선의의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머코스키의원은 이와 관련해 두차례의 질의과정에서 실제로 한국인이 미국으로 건너가 불법체류하고 있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해당자료를 국무성에 요청했다.그러나 국무성측은 『그 비율은 계산하기 힘들며 소관도 아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두번째로 많은 거부사유는 「서류미비」.전체 거부자의 13.4%가 이 사유에 해당된다.미국측의 홍보부족이나 우리 여행사의 경험부족 때문이라는 지적이다.말하자면 법적구비서류조차 갖추지 못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측은 이번 자료에서 서류를 보완하면 대체로 비자발급을 해주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그러나 지난 10년동안 서류미비로 1차 거부를 당한 사람 가운데 신청자의 25%가 비자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측이 당초 우려하던 테러리스트·범죄유발가능자·전과자·마약사범·여권위조자등의 이유로 한국인이 비자를 거부당한 사례는 전체 거부자의 0.2%에도 못미친 것으로 나타났으며 테러우려 때문에 거부당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외무부의 당국자는 『한­미간 비자발급에 관한 문제해결을 위해 주한미대사관측에 수차례에 걸쳐 미국측의 비자발급현황을 요청했으나 미국측은 「한국인의 반미감정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며 자료공개를 거절해왔다』고 말했다. 머코스키의원은 자신의 출신지인 알래스카주당국에서 『비자발급에 관한 한국인 사업가와 관광객의 불평이 대단하다』는 지적을 전해듣고 그동안 한국인에 대한 비자면제협정을 추진해왔다.이후 그는 유독 한국인에 대한 비자발급거부율이 높다는 국무성의 자료를 받고 정확한 현황파악을 위해 지난 9월과 10월 국무성에 주한미대사관의 10년동안 비자발급현황·대사관인력운용현황·예산사용실적·비자거부 사유별현황등을 재차 요구했었다.
  • 미국물장사(외언내언)

    일명 광천수로 불리는 생수는 지하 1백m 이상의 암반층에서 끌어올린 지하수를 말한다.생수는 깨끗함이 생명인 만큼 소비자들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복잡한 여과및 위생처리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우리 국민들이 생수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이유는 두말할 필요없이 수돗물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여기에 최근들어 시판생수중 일부가 음료수로서 부적합하다는 판정이 난 뒤 생수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마디로 생수는 미네랄등 인체에 유익한 성분이 많아 수돗물보다 좋다고 할 수 있다.특히 우리나라의 생수는 약알칼리성으로 용존산소가 풍부하다.예로부터 산 좋고 물 좋은 나라여서일게다.그래서 프랑스의 에비앙이나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아쿠어 같은 유명 생수들에 비해 수질이 훨씬 좋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부는 지난 4월 생수허가 절차등을 규정하는 내용의 음용수 관리법안을 마련했다.이 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여 빠르면 내년부터 국산생수의 본격적인 시판과 함께 외국산 생수의 수입도 가능할지 모른다.잘못하다간 국내 1천억원 생수시장을 놓고 때아닌 국제적 생수전쟁이 벌어질 판이다. 실제로 로키 마운틴사등 미국생수업계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시장 진출공략에 나섰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그렇지만 그들이 주한미대사관을 통해 생수관련 법규중 시장진출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강력한 로비를 벌여왔다는 사실은 참으로 괘씸하고 방자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아무리 상술이라 해도 남의 나라 법규까지 고치게 하려 들다니 그런 무례함이 어디 있단 말인가. 국내생수의 시판을 허용하면서 덩달아 외국산 생수까지 수입 판매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깨끗한 수돗물공급을 위한 노력도 배가해야한다.제발 물만이라도 우리 물을 마시게 되길 바란다.
  • 미 생수업계,한국진출 로비/주한대사관 통해 “법규 완화” 압력

    【워싱턴 연합】 미생수업계가 자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한국시장 진출을 적극 추진해온 것으로 24일 드러나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미업계는 한국의 생수 관련 법규중 시장 진출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주한미대사관을 통해 강력한 로비까지 벌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미 캘리포니아주 산타페 스프링스 소재 생수회사인 록키 마운틴사 관계자는 24일『한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노력해왔다』면서 『이와 관련해 이미 2개에이전트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간 주한미대사관 등을 통해 한국 시장 진출을 위한 각종 정보를 받아왔다』면서 『가장 최근 대사관측과 접촉한게 약 3개월 전』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게 물론 현재로선 쉽지 않다』면서 『그러나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오래 전부터 계획을 세워 노력해왔음』을 거듭 강조했다. 한미 통상 문제에 밝은 한 미관계자는 『미생수업계가 한국 시장 진출을 쉽게 하기 위해 미정부 지원하에 한국의 생수 관련 법규가 일부 손질되도록 강력한 로비를 벌여왔다』고 귀띔했다. 미생수업계는 한국에서 얼마전 생수 시판을 허용하는 법원 판결이 내려지자 주한미대사관을 통해 은밀히 시장 조사를 실시하는 등 한국 진출을 차분히 준비해온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 “북지원 중유값 분담 안한다”/청와대/“클린턴발언은 사실과 달라”

    ◎클린턴이 “한·일서 지불” 밝혀 파문 김영삼대통령은 22일 클린턴 미대통령이 경수로지원외에 대체에너지인 중유의 제공도 한국이 재정부담을 대부분 맡아야 한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이는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고 주돈식 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박관용 비서실장등 전수석비서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대북 중유제공 분담문제는 우리와 전혀 상의한 바 없다』며 『우리가 이를 부담토록 돼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종욱 외교안보수석도 이와 관련,레이니 주한대사가 『클린턴대통령의 문제된 발언은 잘못 얘기된 것』이라고 전화로 해명해왔다고 보고했다. 이에앞서 정부는 주한미대사관을 통해 클린턴대통령의 발언진의를 확인할 것과 이에 대한 미국정부의 공식입장을 표명해줄 것을 요청토록 긴급지시했다. 외무부는 이날 장기호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클린턴대통령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고 『미국측으로부터 이에 대한 해명이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장대변인은 대체에너지제공과 관련,『미국의 재정지원요청이 없었으며 우리 정부로서 이를 약속한바 없고 또 이에 대해 고려하고 있지도 않다』고 강조했다.그러나 클린턴대통령의 「대체에너지 한국부담」 발언은 「향후 구성되는 경수로지원 국제컨소시엄에서 대체에너지의 추가제공여부를 논의한다」는 북·미간의 합의문에 따라 관련국간 외교적 논란소지도 없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워싱턴=이경형특파원】 클린턴 미대통령은 21일 북한에 대한 경수로 건설지원 경비뿐아니라 중유제공 경비도 대부분 한국등이 떠맡을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대통령은 이날 백악관기자회견에서 『일본과 여타 나라들의 지원아래 한국은 북한의 핵에너지 상실을 보상해주기 위한 연료공급 경비의 대부분을 떠맡을 것』이라면서 한국 일본등은 대체전력시스템(경수로원자로 지칭) 비용도 지불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의 고위 한국외교관들은 중유경비를 한국이 떠맡는 문제는 아직 전혀 논의되지 않은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클린턴대통령이잘못 알고 발언한 것으로 보며 한국은 현단계에서 중유제공 경비를 떠맡을 생각이 없다』고 못박았다.
  • 남북정상 만난다/김 대통령,“무조건 회담” 김주석 제의 수락

    ◎카터가 중재/빠르면 주내 날짜·장소 실무협의 김영삼대통령과 김일성북한주석은 18일 언제 어디서든 조건없이 빠른 시일안에 남북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김대통령은 이날낮 청와대에서 3박4일동안 평양방문을 마치고 온 카터전미국대통령으로부터 「언제 어디서나 조건없이 김대통령을 빠른 시일안에 만나고 싶다」는 김주석의 구두메시지를 전달받고 이를 즉각 수락했다고 주돈식청와대대변인이 발표했다. 김대통령은 『실무적인 협의가 필요한 것은 실무진을 통해 논의하자』는 김주석의 제의에 대해서도 수락했다. 주대변인은 김대통령의 수락은 카터전대통령에 의해 김주석에게 전달될 것이라고 말하고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나오면 그후에 남북한 실무진 사이에 협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빠르면 이번주부터 남북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를 선정하기 위한 남북한 실무협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카터전대통령은 이날 김대통령과의 오찬회동이 끝난 뒤 주한미대사관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김주석이 김대통령에게 보내는 몇가지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으나 청와대는 김주석의 정상회담 희망 메시지만 공개했다. 주대변인은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에 대해 『속단할 수 없으며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북한핵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김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주대변인은 정상회담 제의의 성실성과 관련,『시발과 전개과정이 종전과는 다른 점에 주목한다』고 말하고 『카터전대통령이 직접 가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메시지를 가져온 것이 종전과는 다르다』고 설명해 성사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주대변인은 유엔의 북한핵 제재추진에 대해서는 『정상회담의 추진과 제재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 비이민 비자신청 「예약제」 실시/주한미대사관 발표

    주한미국대사관은 20일 오는 23일부터 비이민비자신청에 대해 비자신청예약제도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미국대사관측은 최근 미국비자신청이 급증,비자발급희망자들이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불편을 덜기 위해 예약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비자신청예약제도는 신청자들이 미국출발예정일 2주이전에 신청서를 제출하면 지정된 시간에 출두,인터뷰를 한 뒤 비자를 발급받는 제도라고 미국대사관측은 설명했다. 미국대사관측은 또 컴퓨터로 처리되는 모든 비자신청에 대해 6월하순부터 20달러의 수수료를 새로 징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한총련 80명 기습시위/패트리어트 배치 반대

    27일 하오4시30분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주한미대사관 앞길에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소속 대학생 83명이 「쌀시장개방반대」와 「패트리어트미사일 국내 배치반대」등의 구호를 외치며 10여분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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