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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펜타곤 「새 동아태 전략」 보고서

    ◎한·일 발판 전진배치 전략 지속/북­중 잠재위협 증대… 역내 집단안보구축 필요 미국방부는 냉전종식에 따른 아태안보정세의 변화에 부응하기위해 27일 「동아시아태평양전략보고서(EASR)」를 공개했다.다음은 이 보고서 요지이다. 아시아 방위전략 미국은 주요 맹방인 한국과 일본을 발판으로 아시아와 태평양에 대한 전진배치 전략을 계속할 것이다. 이에 따라 역내에 10만 미군이 유지되며 맹방들과 협조해 무기 현대화도 적극 밀고나가야 한다.특히 태평양을 사이에 둔 지리적·시간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일본·동남아 지역 등에 미군의 영구기지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시아태평양시장은 미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경제 잠재성이 엄청나기 때문이다.한 예로 중국,대만 및 홍콩등 3개국은 오는 2000년까지 사회간접부문에 모두 5천억달러 이상을 투입할 계획이다. 미국의 아시아및 태평양에 대한 교역은 미전체 무역의 무려 36% 이상에 달한다.1인당 수입 기준으로 아시아가 유럽보다 많은 미국상품을 수입한다. 아·태 권역은 지난 92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1천4백50만배럴의 석유를 사용,역시 유럽을 앞지르고 있다.아·태국가들은 현재 석유 수요의 70%를 걸프 산유국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석유 해상 수송로를 보호하는 일이 중요하다.그러나 아·태 지역의 불안 요인은 여전하다.따라서 미군을 역내에서 더 이상 빼내서는 안된다.미국은 이곳에 충분히 개입해야 한다. 지역안보체제 미·일 안보협력은 미국에 무엇보다 중요하다.이는 ▲안보동맹 ▲정치협력 ▲경제·무역 관계란 3개축으로 이뤄지고 있다.따라서 미·일간 통상마찰 해소는 무척 시급하다. 한·미간 방위협력도 3개축으로 형성돼있다.▲상호방위조약 ▲한·미연합사 ▲연례안보협의회가 그것이다.휴전협정은 여전히 발효되고 있다.이를 적절한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은 남북대화로만 가능하다.미국은 북한의 위협이 설사 없어진다고 해도 지역 안보와 관련해 한국과 계속 강력한 방위협력을 유지할 방침이다. 미국은 특히 일본등 아·태 맹방들이 국제 평화유지 활동에 보다 많이 기여하길 바란다.이와 관련해 걸프전 때와같은 다국적군이 바람직한 모델이 될 수 있다.이는 물론 미국의 주도로 이뤄지게될 것이다. 미국은 지난 40년 이상 아시아·태평양국가들과 각각 상호동맹을 유지하는데 비중을 둬왔다.그러나 탈냉전에 따른 역내 집단안보체제 구축의 필요성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다.역내 경제 통합추세와 함께 이들간의 상호 연계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미국은 이와 관련해 아세안 6개국과 한·미·일·러시아 등이 동참하는 아세안지역포럼(ARF)을 구축하는 한편 별도로 동북아 안보협의체도 형성되길 바란다.북·미 기본합의는 동북아 안보협의체 구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중국은 탈냉전에도 불구하고 일·러시아와는 달리 국방비를 계속 늘리고 있다.해군력도 강화하고 있다.따라서 중국과 군사 유대를 확대하는 것이 시급하다. 한반도 전쟁억지력 한미상호방위조약과 3만7천명에 이르는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반도에서의 어떠한 분쟁에도 미국이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개입할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해준다.따라서 이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것이다.보병 1개사단과 1개 전투비행단이 계속 유지될 것이다.또 유사시에 대비해 장비도 사전 비축되고 있다.주한미군 추가 철수 계획도 영구히 중지됐다.주한미군에 추가하여 미 제7함대와 해병대 병력도 한반도의 전쟁억지에 기여할 것이다.주한미군의 최대 역할은 미경제에 중요한 발판인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군은 탱크,중거리포,요격포,레이더,장갑차 및 항공기 등을 계속 도입하고 있다.정부예산의 24∼30%,국민총생산(GNP)의 3.6∼4.2%를 방위비로 쓰고 있다.지난 5년간 미국에서 모두 35억달러어치 이상의 무기를 샀다.한국에는 65만명의 정규군과 2백만명이 넘는 예비군이 있으므로 한반도 분쟁에 미군이 개입해도 지상 방위의 거의 대부분은 여전히 한국군이 맡아야 한다.미국은 대신 상대적으로 강한 해·공군력과 인공위성 등을 통한 첩보 부문에 주력할 것이다. 미국은 한미연합군사력에서 점진적으로 한국에 주역을 넘기는 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이다.한국은 95회계연도중 주한미군에 3억달러와 무상기지 임대 및 면세 혜택등을 부여할 예정이다.한국이 경제 성장에 걸맞게 방위 분담금을 늘리길 기대한다.한국과 미국은 전투구조와 병참지원구조를 꾸준히 개선해 나갈 것이다.이는 한·미 양국의 군사력을 강화시켜주는 수단이기 때문에 전쟁억지력의 핵심적 요소이다. 북위협에 대한 평가 북한은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군비증강에 최우선적인 관심을 쏟고있다.공격적인 형태로 배치된 지상군의 기계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막강한 화력과 세계최대 특수부대를 강화하고 있다.또 탄도미사일의 개발도 계속 추진하고 있다.핵무기개발은 한반도안보에 중대한 위협이지만 재래식무기에 의한 위협도 감소하지 않았다. 주일미군 일본에는 미국의 군사력이 막강하게 포진하고 있다.▲해병신속군(오키나와 주둔) ▲1개 항공모함 전단▲상륙대기단 ▲1개 이상 전투비행단 및 ▲7함대의 통상적인 서태평양 순찰의 보호를 계속 받을 것이다. 일본은 시설비와 건설비 10억달러를 포함해 연간 약 50억달러를 주일미군에 지원하고 있다.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및 F­15기등 첨단무기 구입에도 박차를가하고 있다.향후 미·일간 방위기술협력을 기대한다. 주일미군은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안보공약의 이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오키나와의 해병신속군을 계속 유지하고 항공모함과 수륙양용 기동단을 계속 전진배치할 것이다. 일본 자위대의 약점은 해상수송로 방어에 취약하다는 것이다.또한 공중조기경보와 함대함,지대공 능력의 보강이 필요하다. 일본의 미사일 방어체제도 약점이 있다.미국은 일본에 대해 전역미사일(TMD)방어망 구축을 위한 협조를 계속 요청할 것이다.
  • 정전협정부터 준수하라(사설)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와해시키려는 북한의 책동은 어리석은 짓이다.북한은 북측지역에 있는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폴란드 대표단에게 28일까지 철수하라고 통고하고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불법입국자로 간주하겠다는 부당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이같은 행위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칠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질서를 유린하는 무분별한 작태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정전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려는 북한의 공작적 공세는 그동안 여러차례 자행되어 왔다.92년 유엔군사령부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를 미군장성에서 한국군장성으로 바꾼이후 정전위소집을 거부해 왔으며 93년 체코를 중립국감독위원회에서 철수시켰고 94년에는 군사정전위 중국대표의 철수를 관철시킨바 있다. 북한이 정전체제를 무력화시키려는 속셈은 뻔하다.우리 정부를 배제시킨채 미국과의 쌍무협상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으로 이는 궁극적으로 한·미 방위조약폐기와 주한미군철수를 겨냥하고 있다.한마디로 적화통일의 기반을 다져 보겠다는 노림수다.우리도 한반도의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협정의 대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그러나 그 당사자는 남북한이어야 한다.남북기본합의서에도 그것은 명시되어 있다.따라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남북의 책임있는 당국자간 회담이 선행되어야 하며 남북이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까지는 정전체제가 유지되어야 한다. 한·미 양국정부는 최근 북한의 정전체제 와해책동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키로 했다.당연한 일이다.미국의 국무부대변인은 『만약 북한이 정전협정기능을 소멸시킴으로써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으려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판단』이라고 경고했다.북한당국은 이 경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그러지 않을 경우 국제사회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며 미·북 제네바합의이후 서방국가와의 관계개선을 시도해온 북한의 의도는 중대한 타격을 입게될 것이다.
  • 파 대표단 철수압력… 한·미의 강경대응 안팎

    ◎북의 정전체제 무력화 기도쐐기/“평화협정 논의 않겠다” 입장단호/6·25참전 16국과 대북압력 공조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유지하려는 한국과 미국, 이를 무력화시키려는 북한 사이의 힘겨루기가 폴란드의 중립국감독위원회 철수문제를 둘러싸고 표면화되고 있다. 북한은 23일 『오는 28일까지 중감위 대표단 6명을 철수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로 간주하겠다』는 최후통첩을 폴란드측에 전달했다.폴란드를 중감위에서 축출함으로써 정전체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제네바 합의로 관계정상화의 물꼬를 튼 미국과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협의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의도다. 이에 대해 한·미 양국 정부는 24일 각각 외무부대변인 명의의 논평과 유엔사측 성명을 통해 『북한의 정전체제 와해 책동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미국측은 아예 『절대 북한측과 평화협정을 논의하지 않겠다』고 쐐기를 박아버렸다.또 한·미 양국은 폴란드외에 스웨덴,스위스등 중감위 3국,중국,유럽연합(EU),그리고 한국전 참전 16개국을 통해 북한에 국제적 압력을 행사할태세다.경우에 따라서는 이 문제가 유엔차원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폴란드도 『유엔으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며 중감위 대표단 고수의 뜻을 거듭 천명했다.이는 김영삼 대통령과 레흐 바웬사 폴란드대통령간의 합의사항이기도 하다. 정부는 북한이 국제적인 압력과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폴란드 대표단을 강제로 축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이는 북한이 바라고 있는 미국,서유럽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북한이 물리력을 동원하면 폴란드 대표단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어떤 형식이든 폴란드가 판문점에서 철수케 된다면 체코에 이어 북한측이 지명한 중감위 대표가 모두 철수하는 결과가 돼 이미 상당부분 기능이 축소된 정전체제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타격을 입게된다.따라서 북한이 폴란드 대표단 축출을 감행한다면 제네바 북미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한·미 양측의 공통된 입장이다.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제네바 합의의 기본 목적은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자는 것』이라면서 『북한이 정전체제를 무력화하려 한다면 미북합의의 성실한 이행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감위는 군사정전위원회와 함께 지난 53년 7월 유엔사·중국군·북한군 사이에 체결된 휴전협정을 이행하는 기구이다.그러나 지난 92년 유엔사측이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를 미군에서 한국군측의 황원탁소장으로 바꾼뒤부터 북한측은 정전체제 무력화공작에 나섰다.93년 체코를 중감위에서 철수케 하고 자신들의 「군사정전위 조선인민공화국대표」를 「조선인민군대표부」로 바꿨다.또 군사정전위의 중국대표를 철수토록 요청,이를 관철시켰다.이들의 공세는 대미 평화협정체결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주한미군철수가 이뤄질때까지 계속될 것임은 불을 보듯 분명한 상황이다.
  • 한남동 모녀 감금사건 관련/미군측서 사과서한/법무부에

    법무부는 24일 지난해 10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빌리지 정문에서 발생한 미군헌병의 김금순(67)·설은주(29)씨 모녀에 대한 체포사건과 관련,주한미군측으로부터 사과서한을 받았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날 『미군측이 사과서한을 통해 미군 헌병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인정하고 정중한 사과와 함께 앞으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고 덧붙였다. 미군측은 재발방지책으로 ▲미군헌병은 미군영내에서도 한국인을 체포하지 못하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 범죄혐의자에 한해 검문은 허용하되 검문후에는 신속히 한국경찰에 인계하거나 석방하도록 했으며 ▲수갑은 미군인에 대해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예외적으로 헌병이나 피해자·피의자 등에 대한 가해행위 방지를 위해 사용하도록 하되 단순한 상황제압을 위해서는 사용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고 전해왔다. 이들 모녀는 지난해 10월 25일 하오 9시30분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빌리지 정문에서 쌀과 쇠고기 등을 들고 나오다 PX물품 불법판매상으로 오인한 미군 헌병대 리어릭중사 등 2명에 의해 강제 연행돼 5시간동안 수갑을 찬채 폭행당했다며 서울지검에 고소했었다. 한편 리어릭중사는 보직해임된 것으로 알려졌다.
  • 모스크바 3상회의(새로쓰는 한국현대사:8)

    ◎미,「신탁통치」 제의… 좌·우 극렬대립 초래/처음엔 온국민 “반탁”… 며칠새 좌익은 “보탁” 돌변/해방정국 혼란의 늪에… 「남북분단 고착」 빌미로/“한국문화·생활수준 높다” 미 군정서도 신탁 반대 광복의 기쁨이 채 가라앉기도 전인 19 45년 겨울 모스크바에서 불어온 한줄기 삭풍은 민족의 가슴을 꽁꽁 얼어붙게 했다.「미국 소련 영국 중국 등 4개국이 한반도를 최장 5년 동안 신탁통치한다」는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은 비보 그것이었다. ○미 43년초 탁치 첫언급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은 분노로 들끓었다.새 국가의 체제를 놓고 경쟁하던 우익·좌익 양대 세력은 반탁,찬탁으로 갈라서 서로가 적대관계 노선을 치달았다.또 한민족의 신탁통치 반대투쟁 과정을 지켜본 미·소 양국은 「한반도 독차지」의 야욕을 포기하고 자국 세력권에 각각 단독정부를 세우는 쪽으로 선회해버린다.결국 모스크바 삼상회의가 몰고온 「신탁통치 바람」은 남북분단을 고착하는 빌미로 작용했을 뿐이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은 이처럼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확한 내용은 물론 어느 나라가 신탁통치 계획을 주도했는지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한반도를 신탁통치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이를 실현시키려고 애쓴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인 1943년 초 이같은 구상을 처음 드러냈다.그해 3월27일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영국 외상 이든과 만난 자리에서 전후 한국과 인도차이나에 신탁통치를 실시할 뜻을 비쳤다.이어 11월 열린 테헤란회담에서 루즈벨트는 소련의 스탈린에게도 같은 생각을 슬쩍 흘렸다. ○루스벨트 구상 흘려 이후 미국의 계획은 갈수록 구체화됐다.43년 12월 카이로회담에서는 한국을 「적당한 시기에」독립시킨다는 표현으로 나타났다.그리고 얄타·포츠담회담에서는 더욱 은밀하게 추진된다.루즈벨트가 얄타회담에서 필리핀을 예로 들며 한국에서도 20∼30년간의 훈련기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이에 스탈린은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고 대답하기에 이른다. 전쟁이 끝나 38선을 경계로 남북에 미·소 양군이 진주하고 군정이시작되면서 「신탁통치」건은 얼핏 사라지는 듯 했다.그러나 10월1일 미국 삼성조정위원회는 맥아더 장군에게 「미군정에 이어 효과적인 4국 신탁통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섭을 시작하라」는 통고를 보낸다.이어 미국이 신탁통치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한 고위관리의 발언으로 명확하게 표출됐다.국무성 극동국장 J C 빈센트는 그달 중순 외교정책협의회 포럼에서 『한국에는 당장 자치를 할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은 우선 신탁관리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 내용은 즉시 한국 언론에 보도돼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매일신문(10월20일자)은 논평에서 신탁통치 기도를 『그것은 식민지화이며,다름아닌 쇠사슬』이라고 비난했다.좌우익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우익인 한민당은 미군정과의 협력을 중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좌익인 인민공화국도 『신탁통치를 강제 결의한다면 한국인은 목숨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거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식민지의 연장” 비난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국립문서보관소(WNRC)에서 최근 찾아낸 미 외교문서와 「신탁통치에 관한 보고서」 등에 따르면 주한 미군정도 사실상 신탁통치안을 반대했다.하지의 정치고문 랭던은 11월20일 맥아더 연합군사령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해방된 한국을 한달 동안 관찰한 경험에 미루어 신탁통치는 불가능하므로 철회해야 한다』고 충고했다.그 까닭을 『한국은 일제치하를 제외하면 남다른 역사를 산 민족이고,문자해득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문화와 생활수준이 높기 때문』이라고 밝혔다.하지도 이 무렵 합동참모본부에 보낸 보고서 「한국의 상황」에서 『신탁통치가 지금 또는 장차 적용된다면 한국인들은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우익지 “소련서 제안” 이런 상황속에서 12월16일 소련 수도 모스크바에는 미국의 번스 국무장관,소련의 몰로토프 외상,영국의 베빈 외상 등 3명이 회동했다.얄타회담의 후속으로 마련된 이 모임에서는 한국 말고도 유럽·아시아지역의 여러국가들에 대한 처리방안이 논의됐다. 삼상회의 마지막날인 27일 「한국에 관한 결정」이국내에 보도됐다.우익지의 대표격인 D신문은 27일자에서 「워싱턴 25일발 합동 지급보」란 설명을 붙여 그 내용을 전했다.『소련은 신탁통치 주장,소련의 구실은 분할 점령,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란 제목의 기사는 벌집을 쑤셔놓은듯 파급이 컸다.미국의 「성조지」와 KPP통신도 이날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결국 이같은 첫보도는 한국민에게 ▲「모스크바 결정」의 주내용은 신탁통치 실시이고 ▲이를 주장,관철시킨 쪽은 소련이라는 인상을 깊이 각인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이 회담에서 미국은 4대국에 의한 신탁통치를 5년 동안 실시하되 10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제의했다.반면 소련은 한국의 정당·사회단체와 협의해 임시정부를 수립한 다음 4개국이 원조하자는 안을 내세웠던 것이다. 「한국에 관한 결정」은 미·소 양국안을 절충한 형태로 내려졌다.4개항의 요지는 ①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 ②준비모임으로 미소공동위원회 구성 ③5년 이내의 신탁통치 실시 ④2주 내 남북 주둔군사령부 대표자회의 개최 등으로 돼 있다.따라서 절차상 예비기구 설치를 규정한 조항을 빼놓고 본 주요내용은 「임시정부 수립」과 「5년 이내 신탁통치 실시」이다.특히 「임시정부 수립」에 우선 목표가 주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공산주의 음모」 오해 당시 일반적인 국민감정은 「어떤 형태로든 외국 지배가 연장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백성의 분노는 당연히 왼쪽을 겨냥했다.더욱이 처음 반탁에 동참했던 좌익세력이 며칠새 찬탁으로 입장이 돌변하면서 「신탁통치 기도는 공산주의의 음모」라는 시각이 자리를 굳혔다.그러나 사실은 곧바로 드러났다.46년 1월25일 소련 타스통신은 『신탁통치를 제안한 쪽은 미국』이라며 미국안을 공개했다. 미국이 신탁통치를 먼저 제의했다는 증거는,서울신문사 특별취재반이 역시 WNRC에서 입수한 「번스 국무장관이 주한미군 정치고문 베닝호프에게 보낸 전문(46년 1월26일)」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이 전문은 「타스통신 보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를 묻는 베닝호프에게 보낸 답신으로,번즈 장관은 『그 내용이 맞다』고 시인한 뒤 『하지 장군이 적절하게 판단해 처리하도록』지시했다. 하지만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의 핵심내용이 무엇인지,누가 신탁통치를 획책했는지가 새로 밝혀졌다고 해서 대세가 달라지지는 않았다.반탁·찬탁 투쟁을 통해 이미 전면전에 들어간 좌우익 세력은 상대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했다.이에 따른 좌우익 충돌은 해방정국을 더욱 깊은 늪으로 빠뜨렸다. ◎한·소 신탁통치 결정 속셈/자기세력권 확보에 유리 판단/한국독립과는 무관… 냉전체제 대비 노려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한국에 신탁통치를 실시하기로 합의한 미국·소련 양국의 속셈은 무엇일까.신탁통치 구상이 처음 나와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결정되기까지 양국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 미국은 전후 세계 질서 재편의 한 방안으로 한반도를 비롯한 여러 식민지 국가들을 신탁통치령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미국의 의도는 명확하다.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측을 주도한 미국은 전후세계가 자국 중심으로 개편되기를 원했다.다른 나라보다 보유 식민지가 적었던 미국은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패전국은 물론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은 영국·프랑스의 식민지들을 「민족 독립」의 명분으로 풀어주고자 했다.이는 실질적으로는 해당국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독립한 국가들을 자연스럽게 자국 세력권으로 유도하는 방안이었다.또 당시 이미 싹트고 있던 냉전체제에 대한 대비이기도 했다. 한국에 「4국 신탁통치」가 실시되면 미국은 영국·중국과 손잡고 소련을 견제함으로써 한국을 미국 세력권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같은 이유로 소련은 처음 신탁통치안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그러나 「8·15」 후 북쪽에 진주한 소련은 신탁통치를 하더라도 한반도를 공산주의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나름대로 갖게 됐다.북쪽은 물론이고 남쪽에도 좌익세력이 만만치 않아 결국 대세를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소 양국의 신탁통치 결정은 애당초 한국에 자주독립국가를 세운다는 것과는 상관 없었다.한반도에 들어선 정부를 자국 세력권으로 확보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고 그 전략으로서 신탁통치가 양국의 입맛에 들어맞았을 뿐이었다.
  • “북한,특수부대·탄도미사일 증강”/럭 주한미사령관 청문회증언/요지

    ◎팀훈련 중단해도 임전태세 문제없어/한·중 합작 원자로 미·북합의 이행 도움 개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은 16일 미 상원군사위의 청문회에 출석, 한반도의 안보상황등에 관해 증언을 했다. 다음은 이날 있은 럭장군의 증언내용을 요약한것이다. ◇럭 장군증언=한반도의 안보상황은 여전히 매우 긴장되고 위험스럽다. 김일성의 사망,김정일의 후계체제,미북한간의 제네바합의등 최근 일련의 상황변화에도 불구하고 비무장지대를 따라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의 증강과 전진배치가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내부 상황의 대부분을 바깥에는 감추고있지만 기본적인 경제·정치·사회적인 개발을 넘어서 군사력을 계속 증강하고 있다는 설득력있는 증거들이 있다.북한은 비무장지대를 요새화하고 현역지상군의 대부분을 남한의 수도를 강타할 수 있는 거리로까지 전진배치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년간 군사력을 점차 남쪽으로 이동시켜 한국에 대해 적대적인 배치를 해놓고 있다.북한의 이러한 전진배치병력은 현역전투부대의 40%에서 약 65%로까지로 늘여놓았다. 북한은수년간의 흉작,경제악화에도 불구,여전히 군사력에 최우선순위를 두고있다. 북한은 핵개발의 모색뿐아니라 부족한 국가재원을 지상군의 기계화에 투입하고 포대진형구축을 확대하고 세계 최대규모의 특수전 병력을 강화하는가 하면 탄도미사일도 확충하고 있다. 이같은 대규모 전진배치군사력은 합당한 방위의 필요성을 넘어가는 것이다. 북한이 핵합의문의 이행을 포기한다면 세계는 제재조치를 포함해 북한의 불이행을 번복시킬 수 있는 적절한 조치들을 고려해야할 것이다. 지난 5년간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약 35억달러에 달하는 무기와 부품을 구입했으며 이는 한국의 해외구매지출의 83%를 차지하고있다. 한국은 또 지난 5년간 정부예산의 22·5∼26·3%를 방위비로 계상해왔고 이를 한국의 GNP대비로 계산해보면 3·3∼3·8%에 해당된다. ­북한이 난방및 전력용으로 제공한 중유를 군사적으로 전용함으로써 제네바합의를 위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일부 중유가 북한군부에 의해 빼돌려졌다고 의심할만한 여지가 있다. 이같은 의심은 주한미군사령부외부로부터 입수한 간접정보를 인용한 것이다. 우리는 그 문제에 관해 북한측에 주의를 환기시켰으며 그들은 전용행위를 중단한 것으로 생각한다. ­팀스피리트훈련을 미북한간의 합의등 정치적 이유로 중단할 경우 미군의 훈련이 줄어들어 임전태세면에서 약화되는 것은 아닌가. ▲한국군과 미군을 합동으로 훈련하는 방안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훈련면에서 팀스피리트보다 더좋은 방법이 있다고 본다.만약 팀스피리트훈련을 하지못할경우 다른 군사훈련으로도 그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따라서 주한미군의 임전태세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한국이 중국의 원전건설에 참여,원자로를 공동개발하는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같은 한·중원자로 공동개발이 북한의 한국형경수로 수용에 어떤 영향을 미칠것으로 보는가. ▲그같은 사실에 대한 정보는 없으나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미북합의이행에 도움을 줄수있을 것이다.
  • 미서 북에 제공한 중유/군용 전용가능성/럭 주한미군사령관

    【워싱턴=이경형 특파원】 개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은 16일 북한의 핵개발동결 조건으로 미국이 제공한 중유가 군사용으로 전용되는 결과를 낳을수 있다고 말했다. 럭 사령관은 이날 상원군사위에 출석, 한반도군사상황에 관해 증언하는 가운데 중유의 군사전용 가능성을 캐묻는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자신의 증언이 주한미군사령부 외부로부터의 간접 정보를 인용한 것임을 전제한뒤 이같이 말했다. 럭 사령관은 1차분 5만t의 중유는 북·미간의 합의에 의해 난방및 전력용으로 한정되어 제공되었기 때문에 북한이 쉽게 군사용으로 전용할수 없을 것이나 이미 제공된 일부를 군사용으로 빼돌렸을 것으로 『의심할만한 여지가 있다』고 말하고 『우리는 그 문제에 관해 북한측에 주의를 환기시켰으며 그들은 전용행위를 중단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럭 사령관은 구체적인 내용은 비공개 회의에서 추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케이 허치슨 의원(공화·택사스)은 『우리가 중유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비축하고있던 연료를 군사용으로 전용토록한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는데 럭장군의 답변은 『발전소로 가야할 중유가 군사용으로 갈수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있어 「군사용」에 대한 개념이 다소 모호한 것으로 해석된다.
  • 지역안보 도모

    【워싱턴=이경형 특파원】 미국태평양사령부는 냉전이후의 새로운 전략개념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는 「협력적 개입」전략을 확대,관할 지역내의 쌍무적 군사협력보다 다국간 군사협력을 통한 전략적 안정을 적극 추구해나갈 방침이다. 미태평양사령관 리처드 매키제독은 15일 상원 세출위원회 국방소위(위원장 테드 스티븐슨)에 출석,태평양지구 방위에 관한 증언을 하는 가운데 이같이 말했다. ◎동북아 다국합훈 추진 매키제독은 이같은 전략의 추진을 위해서는 주한미군을 포함,이 지역에 전진배치된 미군사력의 현수준을 앞으로 상당기간동안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하고 한국·일본·러시아·중국등의 병력이 미군과 함께 참가하는 다국간 군사협력훈련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키제독은 한반도주변국처럼 태평양 역내 국가들간에는 역사적인 적대감이나 인접국가에 대한 우려가 강해 이 지역에선 오직 미국만이 「정직한 중개자」로서 역할을 할수 있다고 신뢰하고 있으며 또 그러한 능력을 수행할수 있다고 말하고 역내 다국간 군사활동의 강화를 통해 이 지역의 다국안보접촉을 활성화시켜 나갈수 있다고 말했다.
  • “북 지도부 고립… 향후 행동 예측 불허”

    ◎미,한반도주변국 군사 상황평가/“생존 위협” 인식땐 강력히 반발할것/중,해방군 현대화 폭·속도 계속 증대 리처드 매키 미태평양사령관은 15일 미상원 세출위 국방소위에 나와 「태평양의 방위」에 관한 증언을 하는 가운데 한반도주변국에 대한 군사상황을 평가했다.다음은 매키제독의 국가별 군사상황평가의 요지. ▷한반도◁ 주한미군은 대한방위공약 차원에서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동북아의 안정을 보장하는 가장 가시적인 재확인이다.북핵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은 매우 위협적이며 비무장지대로부터 1백㎞이내에 1백만병력의 65∼70%를 배치하고 있다.북한지도부는 계속 고립되어 있으며 향후 행동에 대해 예측을 불허하고 있다. 그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체제의 생존문제다.미국은 그들의 생존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인식을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만약 그들이 위협을 느낀다면 격렬하게 반발할 것이다.우리는 북한에 대한 억제능력을 갖고 있으며 필요시 강요할 수도 있다.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가 증진되어나간다면 장기적으로는 그들의 안보를 확인시켜주는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현재의 억제력을 손상시키는 일은 해서는 안되며 우리는 내다볼 수 있는 장래까지는 현재수준의 주한미군을 유지해야 한다. ▷일본◁ 주일미군은 전역을 통해 단기경보로도 병력을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북한의 재래식 무기의 위협에 대한 억제력을 강화시켜주고 있다.일본은 미군주둔경비의 3분의 2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중국◁ 나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협력적 개입」전략이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중국과 미국 사이에는 인권·통상문제등에 있어 견해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동시에 여러 영역에서 보완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립과 대결보다는 대화를 강조하는 접근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중국은 그들의 군사력을 정책의 제일 우선순위에 두고 있지는 않지만 인민해방군은 내부안정,경제발전,외부로부터의 존경등 모든 목표에 중심이 되고 있다. 우리가 중국군부와 군사적 접촉을확대해나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앞으로 인민해방군은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군현대화계획의 폭과 속도를 계속 증대할 것이다.이에 따라 주변국가들의 우려도 높아질 것이다.그러나 중국의 군사력이 가까운 장래에 미국이나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이해에 위협이 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그러나 미국이 중국에 협력하고 안심시키는 대신 고립정책을 택한다면 나의 이같은 평가는 달라지게 될 것이다.최선의 접근책은 정치·경제·군사적 분야에 중국과 협력적 방법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본다.태평양사령부로서는 그같은 군사적 대화에서 주요한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러시아◁ 러시아는 더이상 미국의 적이 아니다.러시아의 초기민주주의의 성공여부는 이 지역은 물론 미국의 국방계획에 심대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러시아개혁은 군부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핵무기감축,핵기술확산방지를 도와주고 군부간의 접촉확대를 통해 대결이 아닌 안보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 핵합의 파기땐 대북제재/주한미사령관 상원 증언

    ◎전세계차원 이행방안 강구 촉구/남·북 긴장완화에 외교·상업교류 필요/군사력 증강도 병행해야/“동북아 다국군사협력 추진”/대평양 사령관 【워싱턴=이경형 특파원】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은 16일 『북한이 북핵합의 이행에 대한 약속을 저버릴 경우 전세계는 가능한 제재를 포함해 북한의 합의불이행 태도를 바꿀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럭 사령관은 이날 상오 상원군사위에 출석,주한미군에 관한 증언을 하는 가운데 이같이 말하고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를 위해 외교적·상업적 방안들을 추구하면서도 군사력 및 경계의 강화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럭 사령관은 주한미군의 한국방위부담과 관련,『한국정부는 지난해 2억6천만달러에 이어 금년엔 3억달러의 직접 경비를 부담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이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3분의1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럭 사령관은 또 한국정부는 이같은 직접경비외에 세금감면,토지 및 시설의 무료이용,전기·수도료 등의 할인 등을 통해 적게잡아도 10억달러에 해당되는 간접비용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지난 5년간 미국으로부터 약35억달러에 해당하는 무기와 부품을 구매했으며 이는 한국의 해외구매지출의 83%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그는 한국은 지난 5년간 국가예산의 22%내지 26.3%를 방위비에 투입했으며 이는 한국 GNP의 3.3∼3.8%에 해당되고 지난해 국방예산은 1백26억달러에 달했다고 말했다.
  • “미 「주한군감축 백지화」 곧 발표/공외무/북경수로 미·일부담금

    아직 미정”/남북 경협관련 뇌물 엄중처벌/김덕총리 공로명 외무부장관은 15일 『멀지 않아 주한미군 감축계획을 백지화하는 결정이 미국 정부에 의해 발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 장관은 이날 상오 국회 외무통일위에 출석,지난 6∼7일의 미국 방문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크리스토퍼 국무장관과 페리 국방장관,레이크 대통령 안보보좌관 등 미국 고위관료들과의 회담결과를 소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공 장관은 또 『지금까지 74개국이 우리나라의 유엔 안보리 진출에 지지의 뜻을 나타냈다』고 밝히고 『이 문제를 올해 최우선 외교과제의 하나로 추진,유효득표수인 1백20개국의 지지를 얻어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북한 경수로건설 지원문제에 대해서는 『남한이 설계와 원전형,기자재,시공등을 현물지원의 형식으로 전담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아직 미국,일본과 부담금에 대한 어떤 협의도 없었으나 부담 규모가 결정되면 반드시 국회의 승인절차를 밟겠다』고 덧붙였다. 공 장관은 『교섭과정에서 북한이 특유의 벼랑끝 전술을 구사할 것으로 보이지만 끝내 한국형에 동의하지 않을 때는 미국과 북한의 합의 자체가 위태롭게 될 것이라는 데 한·미 두나라가 뜻을 같이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김덕 부총리겸 통일원장관는 남북경협과 관련해 일부 기업들이 북한 당국에 뇌물공세를 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차원의 조사가 마무리단계에 있다』고 밝히고 『혐의가 드러나면 관련기업인을 엄중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 미,「동북아군」 신설 검토/아사히 보도

    ◎태평양군서 분리… 한·중·일 등 전담 【도쿄=강석진 특파원】 미국 정부는 현재 9개의 통합군으로 구성돼 있는 통합군 체제의 정례적 보완작업을 통해 「북동아시아군」을 신설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14일 미국의 주간지 「방위뉴스」지를 인용 보도했다. 아사히 신문은 미군체제의 보완작업을 벌이고 있는 「군의 임무와 역할위원회」가 한국 중국 일본 등 북동아시아 지역의 중요성을 고려해 부담이 과중한 현재의 태평양군으로부터 이들 지역의 미군은 분리하는 안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미 국방부가 1∼2주안에 발표할 동아시아 전략의 수정 구상 가운데는 동북아시아의 주한·주일미군 등 「10만명 유지」와 미·일 동맹관계의 재확인 등 「현상유지」가 강력히 표방돼 있어 「역할위원회」의 통합군 체제 개편 구상과는 거리가 있으나 위원회의 통합군 체제 개편 구상은 동아시아 전략 수정보다 상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위원회의 권고가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고돼 인가되면 이것이 우선 실시되게 된다고 전했다. 통합군체제의 개편은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의 구상으로 동북아시아의 중요성이 앞으로 계속 높아지는 반면에 태평양군은 60개국이상을 담당하고 있어 이 지역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거론됐다는 것이다.
  • “한·미 「팀」 훈련 재개방침/일요미우리

    ◎새달28일부터 4월2일까지 【도쿄=강석진 특파원】 북한과 미국의 경수로제공에 관한 협의가 한국형 경수로 지원을 둘러싸고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지난해 중단했던 한미합동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훈련을 예년보다는 규모가 작게 3월28일부터 4월2일까지 실시하기로 내부 방침을 결정했다고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이 12일 서울의 외교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북한과 미국은 4월21일까지 경수로지원 계약의 체결을 목표로 협상을 하고 있지만 한국형 경수로 지원 여부와 북한의 추가요구등으로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다. 이 신문은 이번에 한미 양국이 팀스피리트훈련을 재개하기로 방침을 결정한 것은 북한측의 결단을 이끌어내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북한의 강한 반발이 예상돼 앞으로 북미합의의 이행문제 및 남북대화의 재개문제에 영향을 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요미우리신문이 인용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한반도의 긴장완화라는 현실을 감안해 훈련규모는 한미 양국군 모두 합쳐 3만명으로 93년도의 4분의 1수준으로축소하며 미국 본토로부터의 부대 파견 및 상륙훈련은 하지 않은채 한국군과 주한미군만으로 훈련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한미 양국은 또 북한이 한국형 경수로를 받아들이고 남북대화 재개에 전향적으로 대응할 경우 연습을 중지할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미 군정 3년의 공과(새로쓰는 한국현대사:7)

    ◎일 관리 47년 8월까지 행정 참여/초기 미군정요원 배치안해 정책 혼선/친일파 중용… 「부일배경찰」 85% 넘어/소 의식한 본국반대불구,「한국군」 창설추진은 성과 한국의 미군군정은 미 제6·7·40사단으로 구성된 제24군단의 38도선 이남 점령임무 수행으로부터 시작되었다.일본 민간인의 본국귀환,법과 질서유지,미국의 정책 속에서 정부역할 수행이 당초의 주임무였다.미군정은 1945년 9월12일 주한미군 본부 내에 독립된 사령부 성격을 띠고 「주한미군정」(USAMGOK)이라는 명칭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한국에 처음 진주한 제24군단 병력 가운데는 군정을 수행할 요원은 하나도 없었다.군정부대는 그로부터 40여일이 지난 10월21일 인천에 내렸다.그것도 한국점령에 대비한 것이 아니라 일본 주요지역 통치를 위해 훈련받은 요원들이었다.그 병력은 4개 전술보조부대와 캘리포니아 몬테리에서 민정훈련을 받은 20개 중대로 충원되었다.그들은 먼 항해 끝에 도쿄에 도착하고 나서 한국으로 가는 사실을 인천상륙 1주일 전에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초기의 군정은 전술부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이는 점령지역을 통치하는 과정에 혼란을 가중시킨 요인이 되었다.지방이 특히 심했다.서울에서는 인공 산하의 치안대 활동이 멈추었으나,일부 지방에서는 술집에서 난동을 부린 미군들을 체포할 정도였다.이 가운데는 행방불명이 된 미군도 있다.전남의 경우 제40사단과 교체한 제6사단 20보병연대는 인민위원회를 반대하면서 치안대를 공공건물로부터 몰아내는 등의 강공책을 썼다. 미군정의 군정장관으로 육군소장 A V 아놀드가 임명되었다.지난날 총독이 행사한 권한을 손에 쥔 군정장관은 전술부대에 소속하지 않은 모든 군정요원을 지휘했다.군정장·차관 밑에 총독부 정무총감 위치와 비슷한 민정장관을 두었는데,그 자리는 B B 프레스코 대령이 맡았다.그리고 8개의 부와 9개의 국을 설치했다.이들 기구는 1946년 5월10일 확정한 새 편제에 따라 11개위 부,4개의 처,86개의 국으로 개편되기까지 존속했다. 「주한미군정청」(USAMGIK)이라는 공식명칭은 1946년 1월4일부터 사용되었다.처음의 「주한미군정」의 약어 「USAMGOK」의 끝자리 3자 GOK가 조롱하는 말 GOOK와 비슷하게 들린다고 해서 바꾸었다는 이야기도 있다.어쨌든 미군정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 약 한달이 모자라는 3년 동안 한국을 통치했다. 그러면 미군정의 정책은 어떤 것이었으며,한국에 남긴 군정의 유산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미 시카고대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저서 「한국의 해방과 미국정책」에 적은 표현을 빌리면 「점령당국(미군정)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지고 있었다」는 것이다.그래서 한국은 마치 모래수렁 같았고 점령당국은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고 기술한 그는 비싼 댓가를 치르더라도 한국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성채를 쌓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을 덧붙인 바 있다. ○워싱턴뜻과 배치 미군정은 초기의 정책을 수정,선회할 기로에 서게 되었다.이에따라 1945년 11월 무렵에 수립된 새로운 정책은 크게 네가지를 목표로 했다.그것은 앞으로 탄생할 한국정부를 고려하면서 보수진영과의 제휴,경찰력 강화,군대의 창설,좌익의 탄압으로 요약할 수 있다.이들 정책은 워싱턴 고위층 의도와는 다른 것이었다.그러나 군정에 파견한 국무성 관리들이 이 정책을 지지하고 나섰다. ○일본군출신 두각 한국군 창설과 경찰력 강화 등 미군정의 새로운 정책은 남한 통치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했다.미군정은 1945년 11월13일 국방경비대,육군부와 해군부를 통괄하는 군사국을 설치했다.J R 하지는 점령 초기부터 한국군 창설문제에 관심이 있었다.소련을 의식한 워싱턴 고위국으로부터 많은 반대도 있었지만 실천에 옮겼다.1946년 6월 국방경비대는 통위부로,군사국은 조선경비대로 이름이 바뀌었다.이 군조직은 국군의 모태가 되었다. 군정은 1945년 12월초에 60명의 장교를 선발,군사영어학교에 입교시켰다.이들은 당시 국방경비대 고문 이형근의 추천에 의해 선발되었다.이가운데 40명은 일본군 출신이고 광복군 출신은 20명에 지나지 않았다.일본군 출신들이 유독 두각을 나타내 국군 창건 이후에도 중요 보직을 차지했다.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광복군 출신들은 저만큼 뒤쳐져 있었다. 경비대에게는 내부소요 진압임무가 돌아갔다.1946년 후반기가 저물면서는 파업,폭동과 더불어 몇몇 경찰서가 불타는 등 소요가 잇따랐고 좌익좌파 3당은 남조선노동당으로 통합되었다.1947년 9월에는 좌익검거 선풍이 불었다.국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사연표」에 따르면 남로당과 민애청등의 지하 좌익세력들이 10월15일부터 한라산에 입산을 시작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비대는 폭 넓은 소요를 진압하는 두가지 무기의 하나로 평가되었다.다른 무기는 국립경찰이었다.군정은 1945년 9월17일 조선총독부로부터 경무국을 인수받았다.경찰을 헌병사령관 L E 쉬크 준장의 통제 하에 두었는데 일본인 경찰관들에게까지 「USMG」라는 군정 완장을 지급했다는 것이다.이는 한국인들과 미국 특파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그제서야 일본인 경찰관들의 자리를 한국인들로 메꾸었다. 헌병사령관 밑에 있던 경찰은 11월30일부터 국방군 사령관이 지휘했다.그리고 해방이 되던해 10월 워싱턴 3성조정위원회로부터 한국 경찰 내의 친일파와 미움을 사는 기구를제거하도록 하는 지시가 내려왔다.하지만 경찰의 볼썽 사나운 관행은 계속되었다.군정청이 피의자에 대한 폭행 금지명령을 내리자 대신 소방관을 시켜 폭행했다는 일화를 남길 정도였다.1946년 4월 소방서가 경찰과 분리되기 이전까지는 동료였던 터라 그런 부탁쯤은 들어주었을 것이다. 해방된 이 땅의 경찰은 여전히 변화하지 않았다.일제에 강한 충성을 보였던 사람들을 다시 썼기 때문에 부일배 경찰이 차지하는 비율은 85%나 되었다.1945년 10월 당시 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은 간부의 53%,하위직 25%가 일본경찰 출신임을 시인했다고 한다.A W 그린이 「경찰의 오만 무례는 끝이 없다」고 말한 것을 보면 경찰의 일제 잔재청산은 요원했는지 모른다. 일본인 관리들도 상당 기간동안 군정에 참여했다.1945년 12월 군정청에 지방행정과가 생겼을 당시 일본인이 감독책임을 맡고 있었다.1947년 8월15일까지도 일본인들이 군정에 참여한 증거가 있다.미 대통령 특사인 육군 중장 A C 웨드마이어가 작성한 「한국의 정치·군사 상황보고서」가 그것이다.이 보고서는대일 전승기념일(V J­DAY)이후 북한지역 5백명을 제외하고 남한에서는 일본인 관리들이 모두 철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일제청산 장애로 웨드마이어 보고서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 보인다.「한국에서는 과거 70만명의 일본인들이 모든 경제요소는 물론 기술계층까지를 지배했다.그래서 지금 부산역장을 지냈던 한국인이 철도청장이 되고,직업학교 출신이 큰 수력발전소 책임자 자리에 앉았다고 이상한 일이 될 수 없다」는 대목이다.일반 관료직도 예외가 아니어서 철저하게 승계되었다. 그래서 브루스 커밍스와 같은 사가들은 혹독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미국은 한국 점령기간 내내 군,관료,정치 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들의 자손을 출산하기 보다는 일본인 임신에 산파 역할 만을 해왔다」고….이는 군정의 유산으로 한국정부 수립 이후에도 일제를 청산하지 못한 요소로 작용했다. “영어 아는 보수적 인사 많이 썼다”/군정고문 2인의 전문·보고서 발굴/“「일서 완전 해방」 한국인 열망 외면”/미학자 미군정이 친일세력을 포함한 보수인사들을 그토록 많이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이에대한 해명은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최근 찾아낸 W R 랭던의 「국무성장관에게 보내는 전문」(1945년 11월26일)에 잘 나타나 있다. 랭던은 당시 미 국무성이 한국에 파견한 하지장군의 정치고문.그가 작성한 전문 보고서는 「초기에 보수적 인사들을 많이 뽑아썼다」고 시인하면서 「생면부지의 대중 가운데 누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이어 보고서는 「고위직을 보수인사에서 고른 까닭은 한국인들이 사치스러워하는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역시 NARA에서 입수한 미군정 정치고문 H M 베닝호프의 보고서(1945년 10월10일)에도 같은 맥락의 내용이 보인다.랭던의 전문보다 앞선 이 보고서는 다만 당시의 한국적 상황을 「한국인들은 친일파를 일본인보다 더 증오한다」고 밝히면서도 그들에게 희망을 걸었다.「보수주의자들 대부분이 일제에 협력했지만,이런 낙인이 곧 사라질 것」으로 보고 「많은보수주의자들의 존재는 고무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에대해 미 미들버리대 C L 호그 교수는 「한국분단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남한의 초기 통치과정에서 일본인 관리들과 일제의 경찰을 그대로 썼다는 사실은 정복자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바라는 한국인들의 열망에 무감각했음을 의미했다」는 것이다.여기에는 정부와 경찰을 운영하기 위해 충분히 훈련된 요원들을 일본에만 보낸 워싱턴과 최고사령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 북핵합의 이행 안되면/주한미군 증강 재추진/페리 국방

    【워싱턴=이경형 특파원】 윌리엄 페리 미국방장관은 9일 미·북한간 제네바 기본합의문이 이행되지 않는다면 주한미군 증강 계획을 추진키 위해 의회에 추가 예산을 요청 할 것이라고 밝혔다. 페리 국방장관은 상원 군사위청문회에 출석,내년도 국방수권예산안에 관해 설명하는 가운데 제네바 기본합의문 이행을 위한 예산이 96년도 국방예산안에 책정되지 않았다고 전제,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작년 6월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됐을 때 주한미군을 증강하는 계획을 클린턴 대통령에게 건의했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제네바 합의문이 이행되지 않으면 주한미군 증강 계획을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존 샐리캐슈빌리 합참의장은 하원 국가안보위 증언에서 한반도의 재래식 위협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지적,제네바 합의문 이행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므로 그 기간동안 경계 및 준비태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한­미/북의 「합의이행」마지노선 설정/공 외무­크리스토퍼 회담의의

    ◎남북대화­북미관계 병행 재다짐/북미연락소 개설 사전협의 약속 공로명 외무장관의 첫 워싱턴방문은 한미양국이 북한핵대책의 너트를 다시한번 죄는 것이었다. 공 장관이 6일 크리스토퍼 국무,페리 국방장관에 이어 레이크 백악관 안보보좌관등을 만나 북핵합의이행과 남북대화문제에 관해 재정리한 대목은 두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남북대화와 미북한관계는 조화와 병행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이 가운데 「조화」라는 단어는 다소 추상적이고 신축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으나 두개의 사안이 기본적으로는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공장관은 미국측이 한미관계를 희생하면서까지 미북한관계를 진전시킬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미북관계의 실질적인 개선이 있기 위해서는 남북대화의 의미 있는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른 표현으로 한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남북대화와 미북관계개선을 기계적으로 연계시키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이는 남북대화재개와 미북관계개선의 움직임이 경우에 따라서는 동시에 이뤄지지는 않지만 약간 시차는 있더라도 큰 흐름이 병행하면 된다는 뜻으로도 해석 할 수 있다. 즉 단기적으로 선후의 시차는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둘째는 양국외무장관이 미북한간의 연락사무소 개설시기에 관해 긴밀한 사전협의를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별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는 연락사무소의 개설에는 반드시 한국과 그 시기에 관해 사전협의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표현이 나온 배경은 한국측이 『오는 21일까지 코리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간에 체결키로 되어 있는 경수로 협정과 평양·워싱턴간의 연락사무소의 개설을 사실상 연계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북한측이 미국과의 경수로회담에서 한국형 경수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경수로제공협정을 KEDO가 아닌 미국측과 직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판국에 연락사무소 개설을 추진한다는 것은 한국의 입장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형경수로 수용이 없는 한 적어도 미북한간의 연락사무소 설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연락사무소의 개설과 남북대화재개의 연계를 고집할 경우 한국이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증진에 일부러 훼방을 놓는다는 인식을 줄 우려가 있는가 하면 미행정부의 일부 관리들도 이 문제에 관해 엇갈리는 주장을 하고 있는 점도 고려된 것 같다. 미국무부의 한 고위관리는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가 개설될 경우 남북대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우리측과는 다른 견해를 나타냈던 것이다. 공 외무와 페리 국방과의 회담은 그야말로 양국의 안보와 관련한 대목에 대해서는 확실히 쐐기를 박자는 것이었다. 북한이 틈만있으면 제기하는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대체는 어디까지나 남북한 당사자의 협의에 의해 추진되어야 하며 정전협정은 평화체제로 바꿔지기까지 계속 유효하다는 점과 새로운 아시아태평양전략에 따라 주한미군의 현수준 유지방침을 재확인했던 것이다. 총체적으로 볼때 이번 한미외무장관회담은 북핵대책을 재조율하면서도 마지노선은 분명하게 설정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이양호 장관에 듣는 국방정책(국정 어떻게 돼 갑니까)

    ◎“군지휘부 감축… 일선전력 증강 극대화”/국방부·합참기능 통합… 인력·조직 정예화/사기 진작·정신무장으로 군기사고 예방/핵타결 됐지만 북위협 여전… 안보의식 다져야 □대담=황병선 정치2부장 95년은 군으로서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해이다.지난 2년 개혁의 와중에서 갈피를 잡지못하고 우왕좌왕하던 나사풀린 구태를 털어내고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당당한 군으로 거듭태어날 것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 출범후 우리 군은 정치적 분위기 전환에 따라 정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강한 견제를 당한 것이 사실이다.더욱이 율곡사업과 관련한 옛 비리들이 터져나오고 사조직 병폐해소 조치가 취해지면서 군을 보는 사회의 시선도 별로 곱지 못했다.게다가 장교들의 탈영,은행강도등 기상천외의 군기사고마저 잇따라 나라지키는 일 밖에 모르는 대다수 군인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이같이 어려웠던 2년을 정리하고 문민시대의 새 군대로 재탄생시키는 산파역을 맡은 이양호 국방장관. 취임 1개월이 조금 넘은 그는 역대 국방장관 가운데 가장 부드러운 인품을 지녀 문민시대 국방장관다운 체취를 풍긴다는 평을 듣는다.공군 파일럿출신인 이장관은 그러나 속이 당찬 전형적 외유내강형. 『군인은 강한 훈련속에 탄생합니다.요즘 젊은세대는 편하게만 살려는 사회풍조에 따라 인내심·극기력이 부족합니다.군이 그들을 따라갈 수는 없는 일이고 강훈으로 단결심과 애국심을 갖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이장관은 4일 대담 첫머리에 최근의 군기사고들에 대해 국민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재발방지를 다짐했다. ­65만의 대식구를 거느리다 보니 별난 사람도 많고 의외의 사건·사고도 많아 군의 사기가 훼손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두사람의 잘못이 전체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먹칠을 해 안타깝습니다.초급장교든 사병이든 짧은 기간 훈련으로 내면을 모두 바꾸기는 불가능합니다.엊그제까지 예컨대 압구정동에서 돌아다니다 군에 입대했는데 금방 사람이 달라질 수는 없겠죠.따라서 강인한 실전적 훈련을 통해 군기를 확립하고 신세대 장병들에게 단결심,그리고 개인보다나라를 위하는 바른 자세를 심어주고자 합니다. ­국방을 책임진 군의 전반적 사기가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져 큰 문제라고 지적들을 합니다. ▲지난 2년 변화과정에서 진통도 있었지만 이제 안정을 되찾아 본연의 임무에 박차를 가할 단계에 왔습니다.정치적 때도 벗었고 사회에서 군의 사기를 올려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크게 힘을 얻고 있죠.군내부적으로는 병영시설을 현대화하고 각종 수당을 올리는등 복지향상을 위한 조치를 강구중입니다.그러나 군의 사기가 물질적 보상만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죠.그보다는 강인한 교육훈련을 통해 제대로 된 군인으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병영생활 합리화와 근무여건 개선등에 많은 신경을 써줄 생각입니다. ­정부와 사회 각계가 세계화를 향한 각종 과업들을 설정해놓고 열을 올리고 있는데 군의 세계화구상은 어떤 것입니까. ▲군의 세계화란 한마디로 선진국과 비교해 손색없는 군이 되는 것이죠.이를 위해 구성원 개개인의 자질을 높이고 조직을 선진화해야 합니다.걸프전에서 나타났듯 요즘전쟁은 첨단과학 장비로 수행되기 때문에 한사람으로도 과거 여러사람 몫을 해낼 수 있습니다.또 포탄 10발을 쏴 목표 1개를 맞히던 것을 요즘은 1발로 적중시키고 있죠.그러나 우리 군은 아직 인력과 조직면에서 특히 미흡한 실정입니다.따라서 인력을 정예화하고 조직을 정비할 예정입니다.개혁위등에서 방안을 검토중인데 1·4분기중 실천방안이 확정될 것입니다.기본방향은 전투력발휘와 직접 관계가 없는 「머리쪽」 사령부를 줄이고 팔·다리인 일선 전투부대를 키운다는 것입니다.또 국방부와 합참의 기능을 어느 쪽으로건 통폐합,기능을 일원화 할 생각입니다. ­첨단과학전쟁 시대이고 보면 군이 컴퓨터전문가등 민간기업 못지않게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데 가능합니까. ▲국방과학연구소등 연구기관에서 우수인력양성과 첨단기술개발을 맡고 있습니다.그러나 교육받은 만큼 높은 복지를 요구하는게 사람들의 심리죠.그 결과 우수인력이 민간부문으로 유출되는 사례도 있습니다.그러나 군에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죠.예컨대 조종사들이 모두 민항에 가겠다고 하지는 않습니다.군에는 민간회사에 없는 뛰어난 직업의 안정성과 연금등 노후보장 혜택이 있는게 사실이죠.그보다 나라를 지킨다는 보람에 큰 의미를 두는 건전한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습니다. ­북핵타결 이후 사회 일각에 안보의식 해이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군에서는 걱정이 없습니까. ▲북핵타결로 북한의 핵개발이 중지된 것은 큰 성과입니다.그렇지만 북의 재래식전력은 여전히 크게 위협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또한 북은 믿을 수 없는 정권임에 변함이 없습니다.그들은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이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KAL기 폭파·아웅산사건등 예기치 못한 폭거들을 저질러 왔죠.게다가 요즘 북한은 확고한 체제를 갖추고 있지도 못합니다.따라서 과거식으로 언제든지 도발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북한을 방문하는등 은연중 주적개념이 흐려질 우려가 있어 군에서는 정신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요즘 북한내엔 『어차피 살기 힘드니 한번 붙어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하던데 만에 하나라도 북한이 도발할 경우 우리의 방위력은 충분합니까. ▲한미연합방위체제에 따라 완벽한 방위태세를 갖추고 있으니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24시간 북한을 주시하고 있으며 도발징후가 있으면 전선에서 곧바로 전투태세에 돌입할 준비가 돼있습니다. ­최근 북한의 군사동향은 어떻습니까. ▲북한은 통상 겨울철에 훈련을 많이 하는데 요즘도 훈련을 계속하고 있습니다.그들은 북핵타결 이후 부쩍 대남비방을 강화하고 있어요.그들은 『한국이 핵전쟁 일으키려 한다.우리가 배고픈 것은 바로 남한 때문이다』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종전에 미국에 퍼붓던 욕까지 모두 한국에 돌리고 있어요. 그러나 전쟁은 말로 하는게 아니고 국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죠.남북간 국력을 보면 GNP가 북의 20억달러에 비해 우리가 2천억달러이고 인구는 두배,수출입은 1백배나 많으니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따라서 걱정되는 것은 북한의 국지적 도발입니다.그러나 한­미양국은 첨단 연합전력을 갖추고 있으며 유사시의 증원전력도 완비돼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달 중순 미합참의장 섈리캐슈빌리대장이 방한했을 당시 주로 그런 논의가 있었겠군요. ▲한미연합방위체제가 공고함을 재확인했습니다.우리의 기본입장은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북이 대화에 응해와 남북회담도 되고 또 우리 경제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따라서 한미연합방위체제의 유지가 필수적입니다.미국은 신아·태전략과 관련,동북아 안정과 평화를 위해 이 지역에 미군 10만명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군 전력증강 현황/F16기 8대 7월 추가 도입/99년까지 총 1백20대 실전배치 완료/K1전차 주포 1백20㎜로 화력 강화 한국군은 지난 20여년동안 지속적으로 전력증강 및 현대화에 힘을 쏟아왔다.그 결과 지난 74년 전력증강 사업인 율곡사업을 시작할 당시 북한의 50.8%수준이던 전력이 92년 현재 71%선으로 증강됐다. 주한미군 전력을 배제한 우리 군사력은 이같이 북한에 비해 아직 열세에 머물러 있지만 2천년대에는 자체전력만으로 북한을 감당할 수 있게 될 청사진이 마련돼있다. 우리 군은 이 청사진을 현실화하기 위해 10년단위로 군사력 증강목표를 조금씩 발전시켜오고 있으며 현재는 『대북 억제전력의 확보 및 급변하는 전략환경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군사력건설을 추진중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지상군의 공세적 기동전력을 보강하고 군구조를 공세적으로 전환하며 ▲대 함정 및 대 잠수함 작전능력을 향상시키며 ▲기술집약형 공중전력을 발전시키고 ▲3군 통합차원의 군사력을 건설한다는 세부목표 아래 잠수함과 차세대전투기 도입·전자전 능력 확보·전차개량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군의 이같은 전력목표는 「소총이나 기동력 보강·고속정 증강과 팬텀기 도입」이 고작이었던 70년대나 「전차 및 포 강화·상륙전 능력강화」등 재래전에 필수적인 무장확보에 치중한 80년대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군이 지난해 새로 도입한 전력의 대표적인 것은 차세대전투기인 F­16이다.대당 3백34억원선인 이 전투기는 지난 84년 계획에 들어간지 10년만인 지난 연말 4대가 미국에서 생산돼 한국에 배치됐으며 오는 7월까지8대가 추가도입된다.또 99년까지 국내에서의 면허생산등으로 1백8대가 더 배치돼 모두 1백20대의 F­16전투기가 우리 하늘을 24시간 지키게 된다.이 전투기는 야간에 낮은 고도에서 정밀폭격을 할 수 있는 첨단장비를 부착,우수한 성능을 인정받고 있다.따라서 북한의 주력기인 미그25(팬텀 수준)보다 성능이 월등하며 북한이 15대밖에 갖고 있지 못한 미그29에 비해서도 회전반경이나 기동성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차세대전투기 다음의 주요전력은 잠수함을 꼽을 수 있다. 92년 1번함인 장보고함이 독일에서 조립생산돼 도입된 이후 지난해 4호함 박위함까지 4척(1척당 1천5백억원 상당)이 배치돼있다.앞으로 계속 국내생산될 이 잠수함은 동급 잠수함 가운데 소음이 가장 적어 은밀성이 뛰어난다는 평가를 받고있다.북한은 26척의 잠수함을 작전배치해놓고 있으나 구소련이 50∼60년대에 생산한 구형이어서 연안침투용 잠수정수준을 조금 앞서는 정도로 전해지고 있다. 국방부는 해·공군 전력과 함께 지상전력도 보강,지난 85년부터 생산된 한국형 K­1전차가 오는 96년이면 소요량을 완전히 충족하게 된다.군은 이 전차의 1백5㎜주포를 1백20㎜로 바꿔 화력을 강화하는 개량작업을 하고있다. 이밖에 코브라헬기에 야간에도 적을 찾아낼 수 있게 하는 장비를 부착하는 중이다.코브라헬기 1대는 전차 16대를 동시에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같은 전력증강과 주한미군 전력을 감안하면 북의 어떤 기습적 도발도 충분히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 군당국의 설명이다.
  • 해방정국의 혼란(새로쓰는 한국현대사:6)

    ◎송진우,「건준」 맞서 「국민대회준비위」결성/여운형 내세운 우익의 「합작」노선 반대/“「임정」지지”표방… 고하 피살로 좌익 타격/하지, “「인공」은 소련과 밀접한 관계… 활동 중지”명령 1945년 해방정국은 아주 혼란스럽게 저물어갔다.당시 사회상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있다면 미 국무성이 J R 하지 중장에게 파견한 정치고문 H M 베닝호프의 보고서일 것이다.미군이 진주한 이후 9월15일에 작성한 이 보고서는 「조금만 불똥이 튀어도 폭발할 화약통,그것이 남한의 상황」이라고 기술했다. 그의 말대로 남한은 과연 화약통이었을까.어쨌든 1945년이 세밑에 다가선 12월30일 상오6시 송진우를 저격한 서울 원서동 76의 총성을 시발로 정치테러가 잇따랐다.뒷날 여운형·장덕수·김구로 이어진 암살사건은 해방정국의 혼란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송진우는 여운형이 주도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가 인민공화국(인공)을 선포하자 이에 맞섰다.그래서 건준이 인공을 선포한 다음날인 9월7일 우익지도자 3백80명과 함께 국민대회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아직 중국 중칭(중경)에서 돌아오지 못한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를 지지하고,국민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모임이었다.송진우의 죽음으로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다만 건국대회준비위원회는 9월16일 한국민주당(한민당)을 창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 해방정국의 판도를 선점한 인공의 실체를 먼저 딛고 넘어가는 것이 당시 사회상을 돌아보는 수순이 될 것이다.인공이 병아리라면 달걀 격이기도 한 건준은 194508월15일 발족되었다.여운형은 8월14일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으로부터 일본 패전소식을 들은데 이어 다음날 15일 아침에는 정무총감 엔도(원등륭작)의 방문을 받는다.행정권을 이양할 테니 맡아달라는 부탁을 해온 것이다.이를 수락한 여운형은 그날밤 자신을 위원장으로 하는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부위원장은 안재홍이 맡았다.이와 더불어 5개의 부서를 두고 2천여명의 청년·학생으로 건국치안대도 조직되었다. 건준에 송진우·장덕수등은 불참했으나 안재홍·김병로·이인등 우익및 중간노선의 인물과 박헌영계열의 좌익세력,정백 중심의 장안파 공산당계열이 들어왔다.말하자면 좌우합작성격을 띤 건준은 지방조직도 확대,8월말까지 1백45개의 지부조직이 이루어질 정도였다.그러나 건준은 건국에 실패하고 말았다.좌익계열이 재빨리 조직을 확대,건준을 장악하고 미군이 진주하기 이틀전인 9월20일 조선인민공화국(인공)을 선포한 것이다. 미군이 서울에 진주한 이후 9월12일 하지장군이 시공관에서 정치인들과의 대화를 모색할 때 33개 정당대표가 등록한 것으로 되어 있다.이렇듯 복잡다단한 정치상황은 하지의 정치고문 베닝호프가 9월15일 미 국무성에 보낸 보고서에 나타난다.그는 9월말에 가서 이들 정당을 두 집단으로 분류했는데,민주적 보수집단과 급진 또는 공산주의가 그것이다.특히 미군정은 급진주의 주요세력으로 인민공화국을 주목했다. 그래서 미군정은 인민공화국을 도전세력으로 간주하게 되었다.이는 공식명칭에 국가를 상징하는 「국」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유일한 정부를 표방했기 때문이다.더구나 인공은 1946년3월1일 총선거 실시를 골자로 하는 특별조치까지 마련해놓은 상태였다.이에 대해 군정장관 아놀드는 10월10일 한국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군정이 남한의 유일한 정부』라고 못박고 『군정은 다른 형태의 모든 정부를 통제할 권한을 갖는다』고 선언했다. 인공은 이에 맞서 11월 전국인민위원회대표자대회에서도 공화국명칭을 여전히 사용했다.하지는 맥아더에게 보낸 보고서(미 외교문서시리즈 제6·1945년)에서 「인공은 가장 강력한 공산주의 지지세력이고 소련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전했다.그리고 골수 공산주의자가 아닌 상당수의 좌익세력이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덧붙였다.인공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이 옳겠다고 판단한 하지는 맥아더에게 이 대목에 대한 평가도 구했다. 맥아더로부터 「어떠한 결졍을 내려도 지지할 것」이라는 회신이 돌아왔다.하지는 마침내 인공에 대한 활동중지명령을 내린다.이에따라 주한미군 방첩대(CIC)는 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간판을 떼어버렸다.이렇듯 인공은 미군정 아래서 좌익세력규합 이외에 다른 의미를 거두지 못한 채 사실상 종말을 고한 것이다. 이승만과 김구는 인공중앙인민위간판이 내려지기 얼마 전에 귀국했다.이승만은 10월16일,김구는 11월23일에 각각 돌아왔다.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의 귀환문제,특히 이승만문제는 워싱턴·토쿄(맥아더사령부)·서울(미군정) 사이에 사전조율되었다(미 육군작전국문서 한국편 1945년10월).하지는 한국인의 정서를 고려,이승만·김구·김규식의 귀환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미 국무성은 중국 중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망명지로부터 귀환이 허가되었음을 통보하면서 어디까지나 개인자격 귀환임을 강조했다.여기에는 이승만도 포함되었다.미 국무성은 귀환자들에게 「38도선 이남지역에 머무는 동안 군정당국의 법과 규칙을 준수한다」는 서약서를 받도록 하는 조치도 잊지 않았다.이승만은 귀국 2주만에 반소(반소)논쟁을 벌였다.이에 국무성은 서약을 유의토록 환기시키면서 곧 소련과 가질 교섭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반응을 즉각 보였다. 국제간에 이해가 엇갈린 정치전략은 변화무상한 것인가.철저한 반공주의자에다 항일운동가라는 점을 들어 서둘러 귀국시킨 미국이 이승만에게첫 제동을 건 것이다.김구 역시 이승만과 같은 이유로 여의도 군용비행장을 거쳐 조국땅을 밟았으나 그다음 12월2일 군산비행장에 내린 임정요인들은 고국의 산하조차 바라보지 못하는 미군 장갑차에 실려 서울에 왔다.이승만과 김구의 환국은 다른 정치판도의 변화를 예고하는 서막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이승만의 존재는 하지로 하여금 각양각색의 정치단체통합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겨주었다.당시 이승만의 명성은 대단해서 모든 정당이 거의 다 의장직 수락을 제의해올 정도였으니까….이승만은 귀국한 지 1주일도 안되는 10월23일까지 50여개 단체대표를 만났다.그 결과는 독립촉성중앙회 결성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인공과 공산주의자들이 등을 돌려 좌우익 골은 더욱 깊어갔다. 한편 38도선 이북 소련군 점령지역 평양에서는 9월3일 국내파 공산주의 중심인물의 하나인 현준혁이 암살되는 것으로 정치투쟁조짐을 드러내고 있었다.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위원장 조만식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던 그의 죽음은 한반도 해방정국의 암살1호로 기록된다. 이에 앞서 소련군사령관 치스차코프의 명령에 의해 10월8∼10일 평양에서 북조선 5도대회가 열린데 이어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설립(10월13일)되었다.그리고 김일성이 모습을 드러낸 평양시민대회(10월14일)가 열렸고,들러리정당 조선민주당이 창당되는등 소련의 의도대로 착착 돌아갔다. 역사에는 결코 가정이 없다고 한다.하지만 이런 명제를 무시하고 남북한의 많은 세력이 구심점을 갖추었거나 연합전선을 폈더라면 외세에 의한 분단이 없었을지도 모른다.해방정국은 건국의 옷을 입기는커녕 첫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있었던 것이다. ◎해방뒤 「첫 정치희생자」는 현준혁/「사회장사진」국내 첫 발굴/「송진우 저격」 3개월여전 평양서 적위대에 피살/「9월3일 암살」 묘비서 확인… 「소관련」시사 논문도 우리는 해방정국에서 암살1호하면 45년 12월30일에 숨진 송진우를 흔히 떠올린다.그러나 사실상의 첫 희생자가 이보다 3개월이나 앞서 9월3일 평양에서 소련 민정당국과 결탁한 반대파에 암살된 공산주의자 현준혁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흔치않다. 그는 1906년 평남 개천의 소지주 집안출신으로 경성제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대구사범학교에서 교수를 지낸 인물.8·15해방을 서울에서 맞아 장안파공산당의 평안남도 책임자로 임명됐다.그달 18일 평양에 도착한 직후 조선공산당 평남지구위원회와 적위대를 조직했다.소련군이 진주한 무렵 다른 공산주의 세력을 압도하고 8월27일 조직된 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될 정도였다. 당시 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남의 공산주의 세력은 소련파·화요파·적색노조파등이 복잡하게 얽힌 형국.소련에 대해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곤 하던 그는 소군정과 관계가 좋지 못했고 이를 빌미로 반현준혁파들은 그를 반소분자나 부르주아로 몰아세웠다. 그가 심하게 마찰을 빚었던 상대는 평양 보안서장을 거쳐 평양시 적위대장에 임명된 송창겸과 일제때 포목조합 이사장을 지낸 장시우등 소련파.김일성 영입 계획을 추진하던 소련 민정당국은 결국 송창겸과 장시우등 친소적인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현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9월3일하오1시 소련 민정사령부서 회의를 마치고 소련제 스리쿼터를 타고 돌아가다 적위대 복장의 괴한에게 총을 맞고 숨졌다. 그의 죽음에 대해 일본 도쿄대 와다 하루키(화전춘수)교수는 자신의 논문 「소련의 대북한 정책」에서 「암살범이 누구이든 현준혁의 죽음은 소련측으로는 좋은 일이었던 것 같다」고 기술했다. 현준혁의 암살날짜가 지금까지는 9월28일로 알려졌으나 최근 하와이대 서대숙교수가 평양에서 촬영한 묘비 기록을 통해 9월3일로 확인되었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소련당국이 의도적으로 현준혁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치러준 당시의 사진도 긴급 입수했다. 이날 암살에 대한 또 다른 설은 당시 민족주의 진영의 거목인 조만식 휘하의 반공주의자들의 거사란 주장도 있다.그러나 현준혁은 당시 조만식을 신뢰하는 사이었기 때문에 설득력이 약하다는 반론이다.
  • 미,한국군 보스니아파병 요청/지난달 합참의장에 서신

    ◎23개국에 PKO참여 타진/“유엔서 공식요청땐 검토”/국방부 미국은 최근 내전중인 보스니아지역에 한국군을 유엔평화유지군(PKO)으로 파병할 수 있는지 여부를 우리정부측에 타진해온 것으로 2일 밝혀졌다. 미 정부는 지난달 24일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와 주한 국방무관 매클리대령을 통해 각각 「참고서한」형식으로 보스니아사태에 대한 유엔의 입장을 전달하면서 파병 가능성을 타진해왔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샐리 캐쉬빌리 미 합참의장 명의로 김동진합참의장에게 보내온 이 참고서한은 『이 서한은 지난 12월6일 유엔이 보스니아 PKO파병을 결의한데 따라 전세계 23개국에 발송하는 것으로 한국이 파병을 할수 있을지 여부를 검토해주기 바란다』는 내용으로 돼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서한은 한국측의 PKO파병과 관련,전투,의무,건설등 부대의 종류나 병력규모등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으나 전체 23개국에서 6천5백명 정도의 인원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앞으로 유엔이 공식으로 파병을 요청해올 경우 구체적인 참여여부를 검토키로 했다. 국방부는 이에 앞서 지난해 4월 미국측이 보스니아 PKO참가를 처음 요청해왔을때 현지에 내전이 진행중이라는 점을 들어 「참가불가」의 입장을 통보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유엔의 르완다와 아이티에 대한 PKO파병 요청도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유엔의 공식요청이 있으면 파병여부를 검토하게 될 것이나 보스니아상황이 유동적이어서 파병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등 12개기준 부합해야 가능/외무·국방부 “내전 유동적… 어렵다”(해설) 내전상태인 보스니아에 대해 미국이 한국군의 유엔평화유지활동(PKO)참여의사를 타진해옴에 따라 한국측의 보스니아 파병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국방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재는 미국이 자신의 입장을 간접 통보한 수준으로 구체적 검토 착수 이전에 있는 한국정부로서는 「가타부타」 입장을 표명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PKO활동은 활동비의 3분의 1이상을 부담하는 미국이 「대주주」로 전체를 콘트롤하고 있어 유엔이 한국참여를 요청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주한미군측은 이날 비공식논평임을 전제,『한국측에 전달한 서한은 미국의 요청이 아니라 유엔의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고 밝혀 유엔의 공식통보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외무부와 국방부는 보스니아내부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유동적」상황이라고 규정하고 일단 PKO참여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특히 병력이나 장비파견에 대해 최종결심을 해야할 국방부의 경우 종전에 수립해놓은 PKO파견기준에 따라 보스니아파병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어서 보스니아 상황이 안정세로 즉각 회귀하지 않는 한 사실상 보스니아 PKO참여는 어려운 실정이다. 국방부는 PKO파견 기준으로 ▲현재 분쟁당사자 간의 정전협정 체결 여부 ▲현지 PKO 지휘계통 확립 여부 ▲파견부대의 안전성 여부등 12개 기준을 세워놓고 있다.국방부는 이 기준에 따라 지난해 소말리아 PKO파병과 서부사하라 의료부대 파병등의 결정을 내렸으나 93년 7월과 지난해 3월 유엔의 보스니아 참여요청과 아이티·르완다등지의 참여요청에 대해서는 「안전상의 이유」로 참여를 거절했었다. 한편 한국은 서부사하라에 의료지원단으로 42명,인도·파키스탄·그루지야등에 옵서버로 12명등 모두 54명의 PKO병력을 파견해 놓고 있다.
  • 중국/등 사후 집단지도체제 가능성/미 국방부 「단기적 장례」보고서

    ◎2년내 분열 50%·현상유지 30%/완전붕괴 되면 북한 체제도 위험 중국은 등소평 사후 분열될 가능성이 있으며 중국의 분열은 북한의 장래에도 큰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미 국방부보고서가 내다봤다. 미 국방부가 국방부·의회·학계·금융및 산업계 인사 17명에게 위촉·작성해 지난 24일 공개된 등 사후 중국의 장래에 관한 보고서 「단기적으로 본 중국」는 등 사후 중국에 집단지도체제가 들어서고 경제개혁과 제한적 정치자유화를 강조해온 등의 기본노선도 큰 변화없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군부도 기득권 유지를 위해 과도기의 집단지도체제를 선호할 것이라고 내다본 보고서는 그러나 이같은 과도체제가 『강한 민족주의 성향을 보여 미국의 이해와 상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등 사후 2년 사이 중국이 ▲기존노선을 유지하거나 ▲보다 적극적인 자유화 개혁을 추구하든지 ▲옛 소련과 유사하게 분열되는 3개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면서 이중 분열 확률이 50%로 가장 높고 기존노선 유지는 30%,자유화 개혁 쪽은 20%의 확률 밖에없는 것으로 진단됐다. 보고서는 중국이 갈라지면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비공산 인사가 막강한 배경을 안고 전면에 나서거나 ▲지역 분권화 또는 ▲완전한 붕괴중 하나가 실현될 것으로 내다봤다. 비공산 인사가 부상하면 군부의 입김이 더욱 강해져 중국군의 현대화가 촉진될 것으로 전망됐다.보고서는 이와 관련해 중국군의 ▲예산 대폭 증액 ▲해군 대양 진출 본격화 ▲해·공군 기동력 강화 ▲핵무기 개발및 ▲지상병력 증강이 추구될 것으로 덧붙였다.중국은 이 경우 한반도에 대한 전략으로 북한을 지지하고 주한미군의 철수도 요구할 것으로 관측됐다. 보고서는 중국에서 지역 분권화가 이뤄지면 옛 소련과 비슷한 『느슨한 연방』이 나타날 수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지역별로 새로운 통화가 나오고 토호 세력과 연계된 신흥 지배층이 형성될 것으로 분석했다.이때의 한반도에 대한 정책은 「불개입」이란 기조로 이뤄질 것이라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보고서는 중국의 완전붕괴가 최악의 시나리오라면서 중국이 붕괴되면 극도의 혼란 속에 대규모 난민이발생하고 「북한도 무너지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미국이 등 사후 중국의 장래와 관련해 ▲미·일 안보조약을 유지하는 등 기본 대 아시아 전진 배치 전략을 고수하고 ▲내정 간섭을 피하면서 중국과 경제·안보 협력을 활성화하는 한편 ▲대만의 독립과 이 나라에 대한 미제무기 판매 문제를 둘러싼 워싱턴의 방침을 보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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