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주최측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파출소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범여권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방송인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수목장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202
  • [외언내언]탈북자 맞선

    지난 2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는‘남남북녀(南男北女) 통일맞선’이라는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다. 북한 출신 미혼 탈북자들과 남한의 미혼 남녀 등 80여명이 모여 자신의 배우자감을 찾는 모임이었다.탈북자 중엔 최초의 대규모 가족 귀순자인 김만철씨의 딸 광숙씨와 여만철씨 딸 금주씨 그리고 귀순 영화배우 김혜영씨 동생순영씨 등도 있었다. 20·30대 미혼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참가한 이번 탈북자 맞선모임은 통일을염원하는 촛불행사를 비롯해 통일전망대 방문 등을 통해 친교와 우의를 다졌다. 이번 남남북녀의 친교행사는 탈북 젊은이들이 한국 생활에서의 소외감과 외로움을 해소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현재 필자가 출연하고 있는TV프로에서 리포터로 활약하고 있는 김순영씨도“한국에 와서 가진 행사 가운데 가장 생동감 넘치는 것이었다”고 말한 점을 미루어볼 때 의미 있는 행사였다고 생각된다. 특히 탈북자는 넓은 의미의 난민이기도 하므로 자유와 빵을 찾아 사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찾은 젊은 탈북자들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은좋은 만남의 자리였다고 하겠다. 탈북자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행복권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매우 바람직한 모임이었다고 여겨진다.최근 들어 탈북젊은이들 일부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심한 갈등 속에서 방황하는경우를 감안하면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국에서 노력만 하면 자신의 성공과 가정의 행복을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젊고 패기 있는 탈북 젊은이들이 남한의 미혼 젊은이들과 만나 결혼을 비롯한 인생문제를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우의를 돈독히 다짐으로써 한국 생활에 자신감을 갖게 한 것은행사의 의미를 더해주는 것으로 평가된다.또한 분단 이후 세대간의 민족동질성 회복의 좋은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이렇게 볼 때 이번 통일맞선행사는탈북 젊은 세대들의 이질감과 자괴감을 해소하고 남한 국민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된다. 이같은 효과를 인식한 주최측은 다음달 2차행사에 이어 내년도에는 남북한교류·협력이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남남북녀 통일맞선행사를 평양에서도 열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서울에서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이번 젊은 탈북자 통일맞선행사가 평양으로 이어질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장청수 논설위원
  • 박세리-월간 ‘아시안골프’ 최근호 커버스토리로

    월간 ‘아시안골프’는 최근호에서 ‘아시아의 퍼스트레이디’라는 제목의커버스토리로 박세리를 다루고 ‘박세리가 새로운 아시아의 시대를 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잡지는 기사에서 박세리가 여자선수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조니워커사가 후원하는 ‘올해의 아시안골퍼’로 선정되는등 아시아권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박세리는 19∼22일 애리조나주 피닉스 문밸리골프장에서 열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99스탠더드 레지스터 핑대회 1∼2라운드에서 베테랑 도티 페퍼와 같은 조로 경기를 한다. 17일 발표한 대회 1∼2라운드 조편성에 따르면 박세리는 페퍼,얀 스티븐슨과 함께 19일 오전 0시50분(이하 한국시간) 10번홀에서 1라운드를 시작한다. 또 주최측 초청으로 출전권을 얻은 재미유학생 아마추어 톱랭커인 박지은은 캐나다 출신으로 LPGA투어 테스트를 수석으로 통과한 신예 애너 제인 이톤,애니카 소렌스탐의 동생 샤롯타와 한조에 편성돼 오전 5시50분 역시 인코스에서 1라운드를 시작한다.
  • 트레킹 전문클럽·여행사들 다양한 도보여행 준비

    부담없이 즐기는 그룹 도보여행,트레킹을 떠나보자. 봄을 맞아 트레킹이 활기를 띠고 있다.전문 트레킹클럽과 각 여행사 레포츠클럽은 각종 이벤트를 준비하고 회원맞이에 한창이다.트레킹하면 사계절 테마여행이지만 한여름·겨울보다는 봄 가을이 제격이다.여름 휴가철엔 본격바캉스가 있고 겨울엔 나름대로 제한된 움직임 속에 즐길 수 있는 겨울 레저가 있기 때문이다. 올 봄엔 특히 주제를 살린 전문 트레킹이 눈길을 끈다.한국트레킹클럽은 오는 21일 치악산 자연휴양림 트레킹,28일 경기도 일산호수공원 주변 트레킹등 두차례 트레킹에 나선다.다음달엔 ‘제주유채꽃 국제걷기’행사와 함께탈북가족과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가족트레킹페스티벌’을 마련한다. 또 유미여행클럽은 20∼21일 강원도 정선의 산골마을 가목리를 찾아가며 27∼28일엔 동강변 오지마을인 운치리의 고성산성 트레킹을 주선한다. 트레킹은 초기에 산악회원들이 산악종주 개념에서 시작했던 것.그러나 이젠 누구나 부담없이 즐기는 대중 레포츠로 자리잡았고 가족,친구나 직장 동호인끼리 소그룹을 짜 나서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특히 단순한 여행에서 탈피해 일정한 목적을 가진 테마여행으로 정착해가고 있으며 강의와 시낭송 레크리에이션 사진까지 곁들이는 추세이다.따라서 주부클럽이나 부부산악회 등이 평일 트레킹을 떠나는 모습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하루 15∼20㎞정도를 걷는 도보여행인만큼 자신을 차분회 되돌아볼 수 있고 찾는 지역의 지리 생물 역사 문화 등을 배우는 교육적 효과도 있다.이에 따라 각 트레킹클럽엔가족단위의 회원가입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한국체육진흥회 유제천 기획홍보부장(38)은 “일반인들의 관심이 세분화되면서 구미에 맞춰 여행을 떠나려는 트레킹 참가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면서“굳이 전문 여행사나 레포츠업체를 찾지 않더라도 사전 정보만 충분하면 소그룹 단위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트레킹은 특별한 장비가 필요없어,자켓 등 간단한 복장과 조깅화처럼 편한신발만 있으면 된다.간편한 토스트나 김밥 등 행동식(길을 가며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비상구급약을 준비해 떠나는 것이 좋다.사전에 찾아갈 지형과 교통 숙박시설을 숙지해야 한다.동행하는 회원 수가 200명이 넘는 집단 여행일 경우 주최측이 마련한 단체행동 지침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전문 트레킹클럽이나 여행사,레포츠사 등을 이용하면 쉽게 참가할 수 있지만 동호인이나가족단위의 소그룹 여행자들은 3∼5명 정도의 팀을 미리짜 호흡을 맞추는게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 박지은 첫 프로무대 ‘티샷’…박세리·김미현등과 경쟁

    전미 아마 골프의 최강 박지은(20·미국명 그레이스 박)이 8월 프로데뷔를앞두고 19일 시즌 첫 프로 무대에 나선다. 박지은은 19∼22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문밸리골프장에서 열리는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99스탠더드레지스터핑대회에 박세리 김미현 펄신 등 한국 낭자 3명과 함께 출전한다. 지난해 아마 메이저 3개 대회를 휩쓴데 이어 올시즌 컬리지투어 와일드캣인비테이셔널대회에서도 우승한 박지은은 아마추어 랭킹 1위 자격으로 대회주최측으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박지은과 박세리는 지난 해 삼성월드챔피언십에도 나란히 참가해 기량을 겨뤘는데 당시 박지은은 2언더파로 공동 6위를 차지했으나 박세리는 4오버파로 최하위권에 그쳐 일단 박지은이 ‘판정승’을 거둔 바 있다. 애리조나 주립대 2학년에 재학중인 박지은은 오는 5월에 4학기를 마친뒤 8월쯤 열리는 프로테스트에 참가할 계획이다.그동안 데뷔를 미루다 전격 프로무대에 나서는 것은 지난해 박세리의 돌풍에 이어 올해 김미현마저 미국으로건너오자 본인 스스로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나비스코다이나쇼(26∼29일)를눈앞에 두고 지난 해 우승자 리셀로테 노이만,애니카 소렌스탐,캐리 웹 등정상급 선수들이 대부분 출전해 더욱 뜨거운 관심을 모은다.박지은은 나비스코다이나쇼에도 초청돼 있다.
  • 서울 여성영화제 새달 개막 불투명

    오는 4월 열릴 예정인 제2회 서울여성영화제가 개최를 불과 한달 앞두고 삐걱대고 있다.예산확보의 어려움에 부딪쳐 일정과 규모 등에서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이 영화제는 시기적으로 올해 가장 먼저 열린다는 점에서 올 영화제의 순항여부를 점치는 시금석으로 여겨져 왔다.따라서 이번 여성영화제의 난항은 그동안 난립된 영화제가 조정국면에 진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성급한 예측을 낳고 있다.아울러행사주최측이 정밀한 계획 없이 주먹구구식 운영을 일삼는 점도 시급히 개선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여성영화제측은 9일 기자회견을 갖고 행사일정 등을 밝힐 계획이었으나 이날 상오 갑자기 기자회견을 취소했다.영화제측은 기자회견에서 “여성의 사회참여 기회를 넓히기 위해 지난 97년에 이어 오는 4월16∼23일 서울 동숭아트센터에서 두번째 행사를 갖고 세계각국의 여성감독 작품 58편을 상영한다”는 내용을 밝힐 예정이었다. 이같이 영화제의 연기를 갑작스레 확정한 것은 예산확보의어려움이 가장큰 이유.영화제 사무국의 한 관계자는 “행사비용을 지원하기로 한 대기업측이 최종결정을 내리지 않아 할 수 없이 일정을 조정하게 됐다”면서 “당분간 기다려야 할 입장”이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이미 출품작과 초청인사등의 섭외가 끝났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난감하다”고 말했다. 영화제측은 앞으로 한달쯤 새로 준비한 뒤 오는 5월 중순쯤 당초보다 규모를 대폭 줄여 영화제를 열 방침이다.이번 행사에 필요한 예산은 대략 3억원선.행사 주최자인 사단법인 여성문화예술기획측은 자체기금과 기업협찬 등으로 행사를 열 계획이었다. 이와 관련,한 관계자는 “기업의 사정이 좋지 않은 점은 이해되지만 약속을 했다가 어김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문화계의 국제적 신용이 실추되게됐다”고 지적했다.또 다른 관계자는 “미 할리우드 일변도의 시각에서 벗어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행사”라며 “자금문제로 난항을겪는게 안타깝지만 영화제측이 주먹구구식 운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된 셈”이라고 말했다. 문화관광부의 한 관계자는 “올해의 경우 이미 자리를 잡은 부산과 부천국제영화제를 비롯해 모두 30∼40여개의 영화제가 개최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난해 전국에서 20여개가 열리는 등 영화제가 수년간 봇물을 이루고 있으나 올해와 내년중 많은 영화제가 정리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 정통국악 유럽나들이…7개국 8개도시 순회

    정통 국악이 유럽 나들이에 나선다. 문화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은 3일 정가 및 정악 등 우리의 전통 궁중음악이 오는 8일부터 31일까지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 헝가리 체크 슬로바키아등 유럽 7개국 8개 도시에서 15차례 공연을 갖는다고 밝혔다. 국립국악원 단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16명의 궁중음악단은 8일 체크 프라하대통령궁 대극장에서 ‘프라하의 봄’축제의 개막공연으로 첫 테이프를 끊으며 12∼13일에는 독일 뮌헨에서 이미륵 박사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공연을 갖는다.파리 공연은 22∼24일 열린다. 문화부는 “과거의 전통음악 공연이 우리의 일방적인 문화공세였던 것과는달리 이번에는 대부분 각국의 문화부와 민간 문화기관의 요청에 따라 공동으로 이루어졌다”면서 “현지 주최측은 입장권 판매 등 공연 수익금을 바탕으로 비용을 충당하게 되며 우리도 CD 등을 판매,수입을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유럽 전문가들 사이에서 ‘천상의 음악’으로 호평받고 있는 ‘수제천’과 가야금 독주 등이 1부와 2부로 나뉘어 90분동안 계속된다.
  • 청각장애 딛고 타악기 주자로 우뚝…이블린 글레니 16일 내한공연

    청각장애를 딛고 음악가로 성장한 인간승리의 주인공이 국내 무대에 선다. 모든 신체장애가 다 불편하지만 청각장애는 음악도에게 사실상 치명적.그러나 영국의 30대 청각장애 여성은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연주자로 발돋움했다. 오는 16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갖는타악기 연주자 이블린 글레니.그녀는 섬세하고 풍부한 음색으로 전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스코틀랜드 애버딘 출신의 글레니는 12세때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피아노를공부하던중 질병으로 청력을 잃어버렸다.이후 팀파니와 타악기로 전공을 바꾼 뒤 미세한 소리진동을 피부의 촉각으로 느끼는 훈련을 통해 자신만의 주법을 확립했다.연주회 때 맨발로 무대에 서는 것은 소리의 진동을 느끼기 위해서다. 지난 84년 영국 런던 심포니 장학재단으로부터 골드메달,91년 올해 최고 음악가상을 수상했으며 89년에는 BBC프롬스 축제 역사상 최초로 타악기 독주무대를 갖고 뉴욕필 등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 활발한 연주활동을벌이고 있다. 그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전세계 TV에서 방영되고 자작곡을 수록한 ‘어둠 속의 빛’ 등의 음반이 출시되면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요즘 글레니는 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의 전통 타악기를 자신의 음악과접목시키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이를 통해 좀더 넓은 음악세계로 나아가려는 것이다. 글레니는 이번 연주회에서 국내에 생소한 악기를 여럿 소개한다.탐탐(태국의 선율용 타악기),마림바,드럼,봉고와 함께 스네어드럼(군악대용 작은 북)등이 무대를 장식한다.또 지브코빅의 ‘플럭터스’와 슈반트너의 ‘빌라서티즈’,스티븐슨의 ‘리드믹 카프리스’ 등의 작품을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인다. 국제청각장애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글레니의 이번 공연에서 악기운송료는 주최측인 예술의 전당이 부담한다.수익금은 국내 장애아를 위한 기금으로 전액 사용된다.(02)580-1300姜宣任 sunnyk@
  • 미아리고개서 펼치는 언더예술 잔치

    ‘미아리 오몽’.낯설다 못해 조금은 이상하기까지 한 이 이름은 오는 3월5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성북구 ‘예술극장 활인’에서 펼쳐지는 언더그라운드 문화행사의 명칭이다. 지난해 8월 대학로 한복판에서 처음 ‘독립예술제 98’을 열어 일반인들을놀라게 했던 언더 팀들이 이번엔 소극장을 점령한 것이다.84개 단체가 22일간 펼친 ‘독립예술제 98’은 5만여명의 관객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었다.이들은 이제 ‘뉴욕에 오프 브로드웨이(off broadway)가 있다면 서울엔 오프시어터(off theator)가 있다’고 주장한다. 오프 브로드웨이가 브로드웨이라는 거대한 주류문화의 틀을 거부하는 비주류들의 대안공간이듯,오프 시어터는 기존의 관습적인 관극행위에서 벗어난자유로운 공간을 지향한다.‘미아리 오몽’은 이러한 한국적 오프 시어터를시험하는 자리.미아리는 예술극장 활인이 위치한 지명이고,오몽은 나의 꿈(吾夢),나쁜(惡)꿈,깨달음(悟)의 꿈,노는(娛)꿈 등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공연자와 관객,시작과 끝,안과 밖의 경계가 없다.관객들은 극장안에서음식을 먹을 수 있고,공연 도중이라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연극 무용 마임퍼포먼스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장르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새로운 경험을 이끌어낸다.주최측은 이 행사를 ‘미아리 고개에서 펼치는 한바탕 꿈의잔치’로 만들 생각이다. 레이블 인디,강아지 문화예술,황신혜밴드 등 대중음악 13개팀,미지예 등 무용 7개팀이 참가하며 ‘열일곱’ 등 영화 10편도 행사에 선보인다.지난해 이화여대앞에서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행사를 주최했던 지하창작집단 ‘파적’의 퍼포먼스도 열린다. 행사는 5일 전야제 콘서트를 시작으로 6·7일 이틀간 마당극,포크,아카펠라의 공연이 릴레이식으로 짜인 오프닝 파티가 진행된다.극장 주변의 성곽터를 따라 노천카페와 바자회도 열 예정.주중에는 정해진 주제에 따라 각 장르별 프로그램이 상영되고,매주 토요일에는 언더 공연장인 ‘카페 빵’과 ‘살 Bar’의 기획프로그램이 새벽까지 펼쳐진다.평일 1만원,심야 1만5,000원짜리입장권 한장이면 누구나 행사에 참가할 수 있다.행사를 기획한 독립예술제사무국의 이선옥씨는 “비주류문화로 대변되는 수많은 언더 예술이 일상적으로 숨을 쉴 공간을 확보하자는 취지”라며 “마음에 맞는 극장주만 있다면언제든지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02)512-6903∼4. 李順女 coral@
  • 무역진흥대상 수상 골프용품업체 (주)랭스필드 梁正武사장

    “국산 골프채를 천시하는 풍조속에서 꾸준히 싸고 질좋은 신제품 개발에몰두했는데 이를 기특하게 여긴 모양입니다” 스포츠용품 업체로는 최초로 22일 한국무역학회가 선정한 무역진흥대상을수상한 골프전문업체 (주)랭스필드 梁正武 사장(40)은 IMF가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梁사장은 “90년대 초반 문민정부가 골프 금지령을 내리면서 은행 대출이 중지되는 등 위기를 맞았다”며 그러나 “이때 자구책으로 단행한 구조조정이 오늘의 초석이 됐다”고 자평했다. 지난해 매출 규모는 전년 대비 20% 이상 늘어난 70억원.이 가운데 300만 달러를는 수출로 벌었다.랭스필드는 고유 브랜드로 국내가보다 50% 높은 가격으로 전세계 30여개국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梁사장은 특유의 마케팅 전략으로 연간 2,000 억원 규모의 국내 골프채 시장에서 10%도 안되는 국산채의점유율을 30%로 늘렸다. 지난 1월 미국 올랜도에서 열린 골프박람회에 주최측의 초청으로 랭스필드를 출품한 梁사장은 “91년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맨손으로 창업한 뒤관광객으로 둘러보았던 박람회에 당당히 초청돼 수출 상담에 나서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했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의 군상 (25)

    ◆친일 미술가 金仁承·景承형제 작년 11월말 한 시민단체가 보낸 공문 한 통이 국가보훈처에 접수됐다.발신자인 신시민운동시민연합(의장 고경철)은 공문을 통해 “친일조각가 손으로세워진 애국선열의 동상을 방치하는 것은 민족사의 왜곡행위로 뜻있는 국민들의 성금으로 다시 세워 민족정기 회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보훈처의조치를 촉구하였다. 이 공문에서 신시민운동연합측은 ‘친일조각가’로 김경승을 지목하고 “해방후 역대 정권과 결탁해 비호를 받으면서 조각계의 거목으로 변신한 김경승이 그 더러운 손으로 민족사에 길이 남을 애국선열과 역사적 기념물을 제작했다는 사실은 반만년 문화민족임을 자부하는 우리민족에게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을 주는 반역행위”라고 지적하면서 “하루 빨리 친일반역자의 작품을철거하고 국민들의 정성을 모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공문에서 김경승이 제작한 애국선열의 동상으로 광화문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1953년 제작),남산 안중근 의사상(1959년 제작),백범 김구 선생상(1969년 제작),도산공원의 도산 안창호 선생상(1973년 제작),서울 종묘공원의월남 이상재 선생상(1989년 제작)등을 들었다. 김경승(金景承,1915∼1992)은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손꼽히는,유명한 조각가이다.그는 서양화가 김인승(金仁承,89·미국 거주)의 친동생으로 두 사람은형제 미술인으로도 유명하다.두 사람은 일제 강점기부터 80년대까지 한국 화단(畵壇)의 원로로 군림해온 사람들이다.이들은 일제 때는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미술전람회에서 상(賞)을 휩쓸었고,해방후에는 교단과 화단에서 다시명성을 날렸다. 특히 김경승은 국내의 대표적인 위인·애국선열들의 동상 제작을 거의 도맡다시피 했다.예인(藝人)으로서 이들 형제는 재능을 떨쳐왔지만 민족사에서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해묵은 미술사 한 페이지를 들춰 그 이유를 알아보자. 1915년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법문학부를 나온 지주 김세형의 6남매중 장남과 차남으로 태어난 김인승·경승 형제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여 학생미술전에서 수차례 입상했다.1932년 김인승은 재능을 살리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미술학교 유화과에 입학하였다.김경승도 2년 뒤 형을 따라 이 학교에 입학했는데 과(科)는 형과 달리 조각과를 택하였다. 1887년 일본 메이지정부에 의해 관립학교로 세워진 이 학교는 소위 서양미술을 가르치는 일본내 유일의 미술학교였다.이 학교는 일본인 외에도 조선·대만의 미술학도들을 청강생으로 받아 장학금을 주면서 미술교육을 시켰다. 이들 형제 외에도 조선인으로 심형구(沈亨求·1908∼1962)가 이 학교를 졸업하였다.김인승과 심형구는 선전(鮮展·조선미술전람회의 약칭)출품과 친일활동은 물론 해방후 이화여대에서 재직하는 동안 반평생을 단짝으로 지낸 사이다. 한편 김인승은 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평균 98점이라는 학교 최고점을 기록하면서 우등생으로 졸업(1937년)하였다.재학시절 그는 이미 일본 문부성이 주최한 ‘황기(皇紀) 2000년(1940년)봉축기념전’에 출품,입선하면서 화단에 얼굴을 내밀었다.졸업하던 해인 1937년에는 제16회 선전(鮮展)에 ‘나부(裸婦)’를 출품하여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하였다. 3·1 만세의거 이후 소위 일제의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시작된 ‘선전’은 1944년까지 23회나 개최되었는데 초기 서예나 4군자를 제외하고는 모든부문의 심사위원이 주최측인 총독부가 위촉한 일본작가였다.따라서 선전에출품된 조선인 작가들의 작품은 일본인 심사위원들의 취향을 반영한,왜색(倭色)이 짙은 작품들이 주로 입선되었다. 바로 이 ‘선전’에서 김인승은 1937년부터 연속 4회 특선,1940년 선전의추천작가가 되었다.이 때 서양화 부문에서 추천작가로 오른 사람은 그를 포함해 심형구·이인성(李仁星) 세사람 뿐이었다. 형에 이어 동생 김경승 역시 ‘선전’에서 연속 입상하였다.1939년 ‘S씨상’(흉상),40년 ‘목동’(전신상)등이 특선으로 입상하였고 41년에는 남자 입상(立像)인 ‘어떤 감정’으로 총독상을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여명’이라는 작품으로 총독상을 2회째 수상하였다.‘선전’에서 관록을 쌓은 그는 43년 마침내 추천작가가 되었다.44년 그는 ‘선전’에 ‘제4반’을 출품하였는데 이는 관변조직인 애국반(愛國班)의 반원인 조선여성이 전시하 후방에서근로봉사에 나선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김경승이 ‘선전’에 출품한 작품들은 추천작가로서 출품한 작품을 포함,다섯 점 모두가 강한 ‘시국색(時局色)’을 띠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일제침략전쟁을 후방에서 지원하기 위해 식량증산이나 근로에 동원된 조선인들을담은 것으로 이는 은연중에 전쟁협력을 부추기고 있다. 두 사람은 또 일제하 대표적인 친일미술단체인 조선미술가협회에서 간부로활동하였다.1941년 2월 22일 시국하의 ‘회화봉공(繪畵奉公)’을 맹세하면서 탄생한 이 단체는 당시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시오바라(鹽原時三郞)가 회장,학무국 사회교육과장 계광순(桂珖淳)이 이사장,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학예부장 백철(白鐵)등이 이사로 있던 관민합작 단체였다.두 사람은 각각서양화부(김인승),조각부(김경승)의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이 단체는 나중에 조선문인협회·선전미술협회·보도사진협회 등 11개 예술단체와 더불어 1943년 1월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의 예술가단체연락협의회를 구성하게 되는데 이들은 전람회를 열어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바치기도 하였다. 한편 김인승의 대표적인 친일행위는 그가 단광회(丹光會)에 참여하여 활동한 점이다.이 단체는 ‘성전하(聖戰下) 미술보국(美術報國)에 매진한다’는취지로 1943년 2월 조선인·일본인 화가 19명으로 결성됐는데 ‘선전’ 추천작가 중심의 최고 엘리트화가 집단이었다. 이 단체는 1943년 8월 조선인 징병제가 실시되자 이를 기념하여 회원 전원이 4개월간 합숙하여 100호 크기의 ‘조선징병제시행기록화’(사진참조)를제작하였다.이 그림은 징집된 조선청년을 중심으로 조선군사령부 보도부장,지원병훈련소장,총력연맹 사무국 총장,경기도지사,친일파 윤치호 등이 등장해 징병으로 나가는 조선인 청년을 믿음직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내용이다.특히 이 그림은 인물 주위로 남산의 조선신궁(朝鮮神宮)과 병사들의 행진모습등을 곁들이고 있어 일본정신 고취와 성전(聖戰)출전의 분위기를 조장하고있다. 김인승은 이밖에도 1944년까지 3차례에 걸쳐 열렸던 ‘반도총후미술전(半島銃後美術展)’에 운보 김기창(金基昶)·심형구·월전 장우성(張遇聖)등과 함께 추천작가로 참여하였다.그는 또 작품의 제작연대를 일본식 황기(皇紀)로표기하였으며 ‘선전’ 출품작에는 작가 사인을 ‘김인승’의 일본어 발음인 ‘Jinsho,Kin’으로 표기하였다.그의 친일의식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할 수 있다. 해방후 이들 형제는 친일미술가로 낙인찍혀 ‘조선미술건설본부’에서 제외당하는 수모를 겪었다.그러나 이들은 도쿄미술학교 출신,‘선전’ 추천작가등의 화력(畵歷)을 앞세워 다른 친일미술가들과 함께 승승장구 하였다.김인승은 47년 이화여대 미술과 교수로 부임한 것을 시작으로 49년 제1회 국전(國展)추천작가·심사위원,예술원 회원·목우회 창립주도,이화여대 미대 학장,미협(美協) 이사장 등을 지내면서 서양화 구상계열을 주도했다. 김경승 역시 국전 심사위원·예술원 회원 등을 비롯해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조각가로서 평통(平統)자문위원을 지냈다.특히 그는 충무공 이순신장군·백범 김구·도산 안창호 선생·안중근 의사 등 애국선열의 동상을 도맡아 제작하였다.이들 형제는 상복도 많아 문화훈장을 비롯해 ‘3·1문화상’까지나란히 수상하였다.남산의 백범 동상을 새로 만들자는 주장은 이래서 나오는것이다.
  • 대책회견 이모저모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부산·울산·경남지역 의원 및 광역단체장들이 참여한 가운데 12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마치 국민대화합과 지역현안 해결을 다짐하는 출정식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이들은 한나라당의 지역감정 선동행위를 강히력 비판하고“국민대화합과지역현안 해결을 위해 당적을 초월해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또 이지역이 金泳三전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점을 감안,金전대통령에 대한 ‘예우론’를 잊지 않았다.양당 의원들은 “청문회문제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金전대통령에 대해서도 전직대통령으로서 깍듯하게 예우해 나갈 것”이라고밝혔다. ▒그러나 국민회의 경남도지부장으로 내정된 盧武鉉부총재는 이 지역 경제파탄 책임이 과거 정부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서는 등 소신을 펴기도 했다.그는 “이 지역이 어려워진 것은 새 정부 때문이 아니며,경제적으로나 정부의 투자측면에서 부산·경남이 소외돼 있지 않은 만큼 냉철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양당 의원들은 기자회견 후 시민단체대표 간담회,공동어시장과 물금취수장 방문 등 밑바닥 민심잡기에 나섰다.▒회견장에는 고리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경남 울주군민 50여명이 들어와 주최측과 잠시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으며,“지역 현안에 관해 새로운대안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중앙에서 고위관계자들이 자주 오지만 해준게뭐 있느냐”는 곤혹스러운 질문이 잇따르기도 했다.
  • 외언내언-국제콩쿠르꾼?

    카루소상(賞)콘테스트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를 기리는 성악 콩쿠르이다.오페라의 나라답게 성악관련 콩쿠르가 해마다 300개 정도열리는 이탈리아에서 비오티 콩쿠르· 베르디 콩쿠르등과 함께 이야기될 만큼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카루소를 능가할 사람은 없다는 취지에서 좀처럼 1등을 배출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콘테스트의 주최측이 올해부터 한국과 일본 참가자들을 배제하기로 했다 한다.일본 교도통신이 이탈리아 안사통신을 인용한 보도이다.한국·일본 참가자를 배제하는 이유는 “참가자수가 너무 많은데다 항상 판에 박힌 숙달된 곡으로 참가하기 때문에 유럽인들의 입상기회를 박탈한다”는 것이다.심지어 “동양 가수들이 콩쿠르를 여기저기 돌아다녀 익숙해져 있을 뿐 아니라대부분 유럽에서 수상한 뒤 본국으로 돌아가 1시간당 50만리라(약 40만원)의교습비를 벌고 있다”는 불만을 심사위원장이 털어놓기도 했다는 것이다. 권위있는 국제콩쿠르가 이처럼 옹졸한 처사를 하는 이유를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그배경은 한번 생각해 볼 일인 듯싶다.현재 이탈리아에 유학하고 있는 한국 성악도는 3,5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지난 96년 로마 캄피돌리오 광장에서는 100여명의 합창단과 7명의 솔리스트가 출연하는음악회가 열렸는데 그 출연진이 모두 이탈리아 유학생 출신 한국인이었을 정도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성악 콩쿠르 참가자의 60%가 한국인,20%가 일본인이고 그 결과 어떤 콩쿠르에서는 한국인끼리 1∼3등을 놓고 겨루는 경우도 일어난다.이탈리아 학생들에 비해 한국학생들은 부모의 적극적인 후원아래 10∼20년씩 공부하면서 콩쿠르에 계속 도전한다.콩쿠르가 자기를 알릴수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따라서 부모의 특별한 도움없이 음악공부를 하는 이탈리아학생들과 한국학생들은 테크닉에서 큰 차이가 난다.그러나 아무리 콩쿠르에 입상해도 동양인이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기는 쉽지 않다.그렇다고 귀국후 국내활동도 여의치 못하다.전문연주자로서 생활할 수 있을만큼 국내음악시장이 활성화돼 있지 않은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카루소상 콘테스트의 동양인 배제 결정이 나온 것이다.“콩쿠르는 휩쓸어도 유럽 오페라무대에서 쓸만한 동양인은 나오지 않았다”는주장은 동양인이 처한 현실을 무시한 백인우월주의적 시각이다. 그러나 음악교육에 대한 그들의 시각은 경청할만 하다. 밀라노의 한·이음악협회 클라라김회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이탈리아인들이 가장 문제 삼는 것은 한국 성악도들이 “긴 안목으로 오페라 전곡을 공부하지 않고 콩쿠르를 위한 아리아만공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일 덜하고 가족과 지내야 출세

    [워싱턴 崔哲昊특파원]직장에서 일을 덜 하고 대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이 더 출세하는 것으로 조사돼 흥미를 주고 있다. IMF시대를 겪는 우리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이지만 미국 퍼듀대학과 캐나다맥길대학이 2년 동안 평균 나이 39세인 전문직업인 87명을 직접 조사한 결과는 분명 그렇게 나타났다. 실험 초기 이들에게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을 줄여 가족들과 함께 하거나 여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했을 때에는 분명히 보수도 적게 나왔고 다른 직원에 비해 처지는 것처럼 나타났다. 그러나 2년 뒤 90%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기 직장에 더 충실하게 되고 시간도 알차게 보내면서 근무성적이 좋아진 결과가 나타났다. 물론 이에 따라 보너스가 늘어나 소득이 증가한 것은 물론 승진하는 데에도 유리해져 결국 직위가 높아졌다. 결과는 근무시간 유동제를 시작하는 많은 회사들을 고무시키고 있으며 앞으로 많은 회사들이 근무시간에 융통성을 발휘,개인시간을 인정하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실험 주최측은 전망한다.
  • 오늘의 눈-요식에 그친 제2건국 공청회

    ‘제2건국’공청회는 요식행위인가.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가 지난 14일부터 시작한 공청회와 관련,뒷말이 무성하다.발표자들과 제2건국위 사이에 발표내용을 둘러싸고 미묘한 신경전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일부 발표원고는 수정에 수정이 거듭돼 발표자료가불과 공청회 몇시간 전에야 배포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4일 ‘부정부패 추방’을 주제로 한 첫 공청회에서는 韓相震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이 발표하기로 했던 내용이 李世中변호사의 주제발표 내용에 포함돼 발표됐다.건국위의 한 관계자는 ‘알맹이의 질과 양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때문에 발표 인쇄물을 부랴부랴 수정해 다시 내놓은 것은 물론이다. 이와 비슷한 사태는 18일 ‘정부혁신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두번째 공청회에서도 되풀이됐다.이날 주제발표자로 나선 趙昌鉉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장은 처음 작성한 원고와 사뭇 달라진 원고를 읽을 수밖에 없었다. 趙원장은 지난 15일 ‘인사제도의 대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은 원고를 제2건국위에 제출했다.그러나 제2건국위는趙원장의 원고 중 상당 부분을 뜯어고쳤다.趙원장은 공청회 당일인 18일 오전에야 제2건국위로부터 원고를 받아 발표하는 ‘촌극’을 빚었다.심하게 말하자면 대독한 셈이다. 이에 대해 제2건국위 관계자는 “趙원장의 원고내용 중 일부가 처음 의도와 달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또다른 관계자는 “이번 공청회가어느 개인의 주장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수정은 불가피했다”고배경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제2건국위의 안을 한꺼번에 제시하고 의견을 구하는게 낫지 않을까. 발표내용이 ‘자기 의견’이 아니고,따라서 질문에 대한 답변도‘진정한 자기 의견’이 아니라면 주제발표를 하고 질문을 한 뒤 답변하는공청회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주제발표자로 나섰던 한 인사의 “주제발표자의 의견마저 정해진 틀에 맞추고자 한다면 진정한 공청회가 될 수 없다”는 자조섞인 얘기에 주최측은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 의전 이야기-’꼼꼼한 준비’ 확인 또 확인 뿐

    행사는 많은 사람이 각각 다른 분야에서 준비하여 같은 시간,같은 장소에집중시키는 작업이다.어떻게 보면 영화나 연극을 만드는 일과 비슷하다.종합예술에 가깝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주최측에서는 행사의 목적이나 성격에 따라 일정한 절차를 사전에설정하고 꼼꼼하게 준비를 하여야 한다.두번 세번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것말고는 다른 왕도(王道)가 없다.행사가 확정되면 먼저 기본계획서를 작성한다. 다음은 세부계획을 총괄계획과 부문별 세부시행계획으로 나누어 작성한다. 날짜가 가까워 오면 주요 참석인사의 행동계획을 작성한다.주요 인사의 행동계획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행사준비 상황을 종합적으로 점검하지 않으면 안된다.따라서 행동계획은 최종 준비작업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렇게 철저히 준비한다고 해도 막상 ‘무대’에 올리면 예기치 않았던 일이 벌어지곤 한다. 金泳三전대통령 시절의 일이다.청와대 국무회의를 앞두고 실무자들은 국민의례를 위해 애국가가 녹음된 테이프를 걸어놓는 등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그런데 사회자가 개식선언에 이어 “국기에 대해 경례”를 외쳤으나 흘러나와야 할 애국가는 감감무소식이었다.사회자는 당황했지만 순간적인 기지를발휘했다.사회자는 애국가 연주는 처음부터 순서에도 없었다는 듯이 침착하게 “바로” 구령을 했다.그러나 참석자들이 손을 내리는 순간 ‘아예 없어야’했던 애국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실무자들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왔음은 물론이다.朴載宅 [과천 청사 관리소장]
  • 남도음식 축제/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벼르고 벼르던 남도음식축제(22∼25일)에 다녀왔다.올해로 5회째가 되는 남도음식축제는 소문대로 볼 만했다.전시음식 코너의 대상 수상작 추월산 다식(이순자·담양군)은 그 섬세한 솜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우수상을 받은 폐백상차림(이예섭·장성군) 구기자 이바지석작(김영숙·진도군)과 장려상의 죽순정과(김금순·담양군) 들깨 꽃송이 튀김(강옥례·곡성군) 수수 부꾸미(송인숙·고흥군) 고구마 오색경단(고영심·해남군)등도 구경꾼들의 찬탄을 받았다.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전남도내 24개 시·군을 대표해서 출품된 음식 모두 군침을 자아냈다. 해마다 10월초에 열리던 축제가 태풍 얘니 때문에 올해는 한달 가까이 늦추어졌지만 언제 심술궂은 태풍이 지나갔나 싶게 남도의 들녘은 평화로웠다. 축제장소인 낙안읍성(전남 순천시 낙안면)은 축제기간이 아니더라도 찾아가 볼 만한 곳이다.여느 민속마을과 달리 100여 가구 주민들의 실제 삶의 현장으로 50∼60년대로 시간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곳에서 전통혼례식·줄다리기·장타령공연등 부대 행사까지 곁들여져 음식축제는 성공적인 지방 축제로 자리잡은 듯했다. 그러나 남도음식 특유의 ‘개미’를 이 축제에서 맛볼 수 없었던 것은 아 쉬웠다.‘개미’란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지만 남도사람들은 “개미가 있다”는 말로 어떤 음식의 맛을 높이 평가한다.‘남도의 멋과 맛’이란 책을 낸 宋秀權 시인에 의하면 개미있는 음식이란 판소리의 수리성과 같다.판소리계에서는 타고난 목소리를 천구성,해맑은 목소리를 양성이라 해서 별로 치지 않으나 오랜 삭힘 끝에 시김새가 붙은,즉 연기가 낀 듯한 수리성을 그늘이 있는 소리라 해서 최상으로 친다. 맛의 고장에서 열린 먹거리 잔치에서 개미를 맛볼 수 없었던 것은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어머니에게서 딸로 계승되는 전통음식을 정작 축제현장에서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최측이 제작비까지 보조해가며 만들어 내는 민가(民家)의 전통음식은 전시품목일 뿐 일반인들은 손댈 수도 없었다. 대량생산의 어려움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전시된 음식을 시식할 수 있도록 해야 이 축제가 더욱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아울러 광주에서 열리는 김치축제와 이 축제를 연계시킨다면 외국인,특히 일본인 관광객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親日의 군상:10/前 홍익대 총장 李恒寧씨(정직한 역사 되찾기)

    ◎“부일의 과오 민족앞에 눈물로 참회”/1939년 ‘고교’ 합격… 일제말 하동·창녕군수 4년 역임/군청 직원들 앞세워 죽창으로 농민 위협하며 쌀 공출/해방 후 35년간 교육계서 근신… 기회있을 때마다 사죄 “일제말 27세의 젊은 나이로 하동(河東)군수를 지내면서 저 자신의 출세와 보신(保身)에 눈이 어두워 (군민들을) 죽창(竹槍)으로 위협까지 했던 저를 너그럽고 따뜻하게 맞아주신 하동 군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謝罪)드립니다” ‘참회’는 아름답다.진솔한 참회는 숭고하기조차 하다.왜냐하면 보통사람들로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일제하에서 고관대작을 지냈거나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한,소위 ‘친일파’로 불리는 사람 중에서도 더러는 자신의 친일전력을 참회한 바 있다.민족대표 33인중 1인으로 나중에 변절한 崔麟은 반민특위 재판에서 법정을 온통 울음바다로 만들었다.“민족의 이름으로 이 최린을 광화문 네거리에서 처단해 주십시오”.그의 진실한 참회 한 마디가 사람들을 울린 것이다.파인 金東煥은 반민족행위를 뉘우치며 반민특위에 자수하였고,玄錫虎(일제때 충남 광공부장,2공화국에서 국방장관 지냄,88년 작고)는 회고록 ‘한 삶의 고백’을 통해 자신의 친일행적을 고백한 바 있다.친일행적을 한번만이 아니라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참회·사죄한 인사도 있다.홍익대 총장을 지낸 李恒寧(84·학술원 회원)씨가 그 주인공이다.그는 다소 껄끄러운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의외로 단번에 허락했다.가을빛이 완연한 정릉 자택으로 그를 찾아가 두어 시간 얘기를 나눴다. ­하동군민들에게 사죄한 것은 언제,어디서 하신 말씀입니까? ▲91년 7월10일 바르게살기운동 하동군협의회 초청 강연회에서 인사말로 한 것인데 여러 신문에 보도가 됐더군요. ­주최측에서 그런 얘기를 해달라고 주문을 하던가요? ▲아닙니다.제 스스로 한 얘깁니다.그 자리에 서니까 50년전의 일이 생각도 나고 군민들을 직접 뵈니까 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얘기가 저절로 나옵디다. ­처음 주최측으로부터 강연요청을 받고서 어떤 감회가 있었습니까? ▲‘하동’이라고 하니까 저로서는 감회가없을 수야 없지요.거기서 군수를 지냈으니까요.해방후에도 더러 하동을 지나친 적이 있었습니다만 ‘죄의식’때문에 (군민들을) 찾아볼 용기가 없었습니다. ○일제 앞잡이로 군민 괴롭혀 ­‘죄’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씀하십니까? ▲일제말기 하동·창녕군수로 재직하면서 일제의 앞잡이가 돼 군민들을 괴롭힌 행위를 말합니다. 李씨는 1934년 경성(京城)제국대학(서울대학교의 전신)에 입학한 후 예과 3년,본과 3년의 6년 과정을 마치고 40년 졸업했다.본과 3학년 때인 39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한 李씨는 대학 졸업후 1년간 시보(試補)생활을 거쳐 1941년 6월 하동 군수로 첫 발령을 받았다.1년 뒤인 42년 7월 그는 창녕(昌寧)군수로 전보돼 그곳에서 3년간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군수는 어떤 경로로 됐습니까? ▲당시 대학을 나와도 마땅한 취직자리도 없고 해서 재학중에 고시(考試)공부를 해서 (군수가)됐습니다. ­당시 고시공부는 주로 직장을 얻기 위한 방편이었습니까? ▲그런 면도 있지만 입신출세를 위해서 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시보 생활은 어디서 했습니까?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했습니다.국회 부의장을 지낸 尹吉重씨가 저와는 고시 동기생인데 尹씨는 총독부 농림국에서 시보생활을 했습니다. ­군수의 대우는 어땠습니까? ▲당시로선 비교적 많은 봉급을 받았습니다.일제말기에는 일본인에게만 주던 가봉(加俸)을 조선인들에게도 지급해 봉급차이도 없어졌습니다. ­하동군수 시절 식량공출(供出)문제로 고생을 하신 것 같은데… ▲제가 군수로 부임한 이듬해인 1942년부터 ‘공출제도’가 시행됐습니다.그런데 하동에선 생산량보다 할당량이 많아서 무리가 있었습니다. ○1942년부터 공출제 시행 ­공출미 할당은 어디서,누가 결정하였습니까? ▲당시 경상남도 산업부장으로 있던 金大羽씨가 군수회의를 소집한 후 각 군수에게 강제로 할당해 주었습니다. ­하동군에 할당된 공출량은 얼마나 됐습니까? ▲군 양곡담당 기수(技手)에게 물어보니 재고가 6,000석이라고 하더군요.그 내용을 金大羽씨에게 보고했더니 ‘기수 말은 못 믿겠다’며 재고량의 무려 5배인 3만석을 할당하더군요. ­최종 공출량은 얼마나 됐습니까? ▲할당량의 1할 정도인 3,000석 가량을 공출했습니다. ­다른 군의 사정은 어땠습니까? ▲대개 할당량의 절반 정도는 달성했었습니다.그 때 제가 있던 하동군이 꼴찌를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죽창’ 얘기는 왜 나온 겁니까? ▲당시 군민들이 집안 곳곳에 쌀을 감추어 두니까 군청직원들이 죽창을 들고 다니며 창고나 벽 같은 쌀을 숨겨둘만한 곳을 쿡쿡 찔러본 것을 두고 한 얘깁니다. ­죽창으로 사람을 해친 사례도 있습니까? ▲그런 적은 없습니다.그러나 ‘공출독려반’들이 죽창을 들고다니니까 군민들에게 위협은 됐을 겁니다. ­하동군수에서 1년만에 창녕군수로 자리를 옮기셨는데 승진은 아니지요? ▲예,군세(郡勢)로 보면 오히려 좌천인 셈이지요.부진한 공출성적이 문제가 됐을 것으로 봅니다. ­본인의 ‘친일’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말합니까? ▲식량공출이나 노무자 징용,학병권유,징병제 독려 등에 대한 방침이 도의 군수회의에서 결정이 되면 군수는 다시 면장회의를 소집하여 그 내용을 하달,독려했습니다.결국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한 셈이지요. ­그같은 일은 당시 군수의 기본적인 직무가 아닙니까? ▲그야 물론이지요.그러나 그같은 직무를 수행하는 군수자리를 직업으로 택했다는 자체가 ‘친일’입니다. ○고등관리 이상 관리는 친일파 ­항간에는 일제말기에 군수 노릇 몇 년 한 사람을 ‘친일파’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도덕적 평가 이전에 지식인의 민족의식 문제라고 봅니다.아무 생각없이 상부기관의 결정사항을 집행한 것도 그렇지만 더러는 출세목적으로 부풀려 집행한 사례도 있었습니다.당시 군수는 일선 행정기관의 실질적 책임자로 지금보다 훨씬 권한과 재량이 많았습니다.어려운 시험을 거쳐 자발적으로 그런 자리에 앉았다면 이는 재임기간이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적어도 고등관 이상의 관리는 친일파로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인 관리들과의 차별대우는 어땠습니까? ▲고급관리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일제말기에는 임금차이도 거의 없었습니다.총독부 내에 ‘계림구락부’라는 고등문관시험 출신 고등관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저도 시보 시절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해방후 그는 45년 10월까지 창녕군수로 계속 근무하다가 미 군정청으로부터 경남도청 사회과장으로 발령을 받고는 한 달만에 사표를 썼다.이유는 자신은 일제때 관리를 지낸 몸이라는 것.이후 그가 자리를 옮긴 곳은 부산 동래구 범어사 입구 청룡초등학교였다.“해방후 민족앞에 속죄해야겠다는 생각에 승려가 되려했습니다.그러나 이미 딸린 아이가 다섯이나 돼 혼자 이 문제를 결정할 수가 없었습니다.그래서 낮에는 교사로 근무하면서 밤에는 범어사 河東山 스님 밑에서 수행생활을 했습니다”.지난 81년 홍익대 총장을 그만둘때까지 그는 35년간 교육계에만 몸담았었다.그 나름의 ‘근신’이었다. 60년대초 그는 수필과 신문에 연재한 자전적 소설을 통해 자신의 친일행적을 참회했었다.또 80년 봄에는 조선일보에 ‘나를 손가락질 해다오’라는 글을 발표,지식인 사회에 파문을 던졌다.거듭된 ‘참회’를 두고 일각에서는 ‘상습적 양심선언가’라고 비아냥거렸다.그러나그의 ‘참회’는 앞뒤,체면안가리고 솔직하다.사실왜곡이나 자신을 미화한 구석도 없다. “사죄를 하고나니 마음이 이렇게 후련할 수가 없습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밝은 모습이었다.묻는 말에 뭘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는 법도 없었다.그의 얼굴 가득히 ‘뉘우친 자’의 평화감과 여유가 넘쳐 흘렀다. ◎日帝下 군수는 어떤 자리였나/군행정 최고 실권 가진 실력자/고등 문관시험 합격자 임용/1년간 시보 거쳐 군수부인/면장·군청직원 인사권 가져/초임은 초등교사의 약 3배 일제하 공직자 관등(官等)은 네 종류였다.최상급은 일황이 ‘친히’ 임명하는 친임관(親任官)으로 조선내에서는 조선총독·정무총감 두 사람뿐.그 다음이 칙임관(勅任官)·주임관(奏任官)·판임관(判任官)순.주임관 이상을 고등관(高等官)으로 쳤는데 현 사무관(5급) 이상에 해당하는 직위다. 군수는 판임관에서 승진하거나 고등문관시험 행정과(현 행정고시)합격자가 임용됐다.고문(高文)출신자의 경우 1년간 시보 시절에는 판임관 6급(군청 과장급)대우를 받다가 군수로 정식 임용되면 주임관 7등급 대우를 받았다.초임 연봉은 1940년 7월1일 기준 1,650원.(당시 초등학교 교사 초봉은 월 45원) 군수는 면장 이하 군청직원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군행정의 최고책임자로 ‘영감(令監)님’으로 불렸고 부인은 ‘마님’소리를 들었다.‘각하(閣下)’라는 용어는 도지사급의 칙임관들에게 붙였다. 李恒寧씨는 “사법과 출신의 법관들은 판결문 작성 등 잡무가 많았으나 군수는 도장찍는 일 밖에 없어 편했다”고 회고했다.
  • 국내 첫 동성애영화제/‘서울 퀴어영화제’ 연다

    ◎새달 6∼14일 아트선재센터/성적 소수집단 삶 영상화/‘과대망상’ 등 88편 선보여 국내 최초의 동성애영화제인 ‘제1회 서울 퀴어(Queer)영화제’가 11월6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다. 심의과정에서 문제가 돼 개막당일 문을 닫아야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심의를 무사히 통과했다. ‘차이의 시선,부정의 시선’이란 주제가 말해주듯 이 영화제의 취지는 우리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면서도 그 존재를 부정당하는 레즈비언,게이 등 성적 소수집단의 삶과 언어를 영화적 맥락에서 짚어보자는 것. 주최측은 여기서 더 나아가 영화 안과 밖을 연결함으로써 사회안에 새로운 가치체계가 생성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과대망상’등 한국영화 9편을 포함,8개 부문에 총 88편의 장·단편 영화가 상영되며 ‘미디어와 동성애 정체성’등 포럼과 심포지움이 부대행사로 진행된다. 문의 (02)766­5626
  • 서울대 취업설명회 학생들 외면

    ◎“일자리 절실한데 웬 경제위기 강의”/“채용박람회 아닌 직업설명회 수준”/‘졸업=실업’ 학생들 처지와 동떨어져 “당장 절실한 것은 일자리이지 경제위기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 아닙니다” 12일 오후 1시 서울대 문화관 소강당.노동부와 한국노동교육원 주최로 열린 ‘대학생을 위한 취업 및 창업 설명회’는 예상과는 달리 썰렁하기조차 했다. 450석이 넘는 설명회장에는 학생 50여명만이 자리를 지켜 노동부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이날 행사는 대졸자 취업난 해소를 위해 41개 대학을 순회하는 첫 행사였으나 채용박람회가 아닌 직업설명회 수준에 그쳤다.‘졸업은 곧 실업’이라는 위기감에 몰린 학생들의 처지와는 다소 동떨어진 내용으로 진행됐다는 게 참가자들의 불만이었다. 학생들은 “취업설명회라는 주제와는 거리가 먼 경제학 원론 수준의 강의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일부 학생들은 주최측이 무료로 배포하는 취업 책자만 챙기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혹시나 하면서 다음 순서를 기다리던 참가자들도 지루한 설명이 계속되자 졸음을견디지 못했다.행사가 끝난 오후 5시쯤에는 불과 30여명만 자리를 지켰다. 독문과 대학원생 李玄慶씨(26·여)는 “정부정책을 홍보하는데 열을 올릴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취업난의 문턱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면서 “앞으로 남은 취업 설명회에서는 이같은 점이 보완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李東煥씨(24·경제학과 4년)는 “금융관련 외국기업의 정보를 얻으러 왔으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서 첫시간 강연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 지구촌 ‘은막 축제’로 발돋움/부산국제영화제 오늘 폐막

    ◎다양한 연령층 관람객 대폭 증가/올 첫 도입 PPP마켓도 성공적/매끄럽지못한 진행·서비스 ‘옥의티’ 지난달 24일 개막된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가 8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1일 막을 내린다. 폐막식은 오늘 밤7시30분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열리며 이어 폐막작인 일본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간장선생’이 상영된다.이에 앞서 오후3시에는 영화제의 유일한 경쟁부문인 ‘새로운 흐름’부문의 수상작발표와 시상식이 있을 예정이다. 올 영화제는 예년보다 한층 뜨거워진 시민들의 열기에 힘입어 진정한 영화축제의 장으로 확고히 자리를 굳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상영작들도 여느 국제영화제에 뒤지지않는 수준급이어서 영화팬의 입맛을 만족시키는데 부족함이 없었다는 평이다. 그러나 집행위가 1,2회의 성공에 자만해 무리하게 외형을 늘리는 바람에 운영과 관객들에 대한 서비스에 차질을 빚었다는 비판도 적지않다. 영화제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람객수는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다.관람객의 대부분은 여전히 대학생 등 젊은이들이지만 중장년층도 심심찮게 눈에 띄어 영화제를 즐기는 연령폭이 두터워지고 있음을 반영했다. 올해 첫 도입된 PPP도 기대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300여명에 달하는 국내외 영화제작자와 기획자들은 3일간 실질적인 프로젝트를 두고 투자를 논의하는 한편 아시아 영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열띤 논쟁을 벌였다.그러나 아시아 전반에 걸쳐 포괄적인 주제를 잡아 개괄적인 현황파악에는 유용했으나 깊이있는 논의에는 이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운영상의 비조직적인 측면과 관객들에 대한 서비스부족은 이번 영화제의 가장 큰 흠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에는 9일간 173편의 영화가 상영됐으나 올해는 8일간 211편의 영화를 소화하느라 극장마다 상영시간에 여유를 두지않아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자마자 밖으로 내몰려야 했다.심지어 27일 ‘누들*’상영중에는 2차례 필름이 끊어지고 후반 5분을 남겨두고는 아예 상영이 중단되는 바람에 환불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부 해외 초청객들은 주최측이 ID카드를 제대로 발급하지 않고 자료도 제때 배포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불평했다.1회때부터 부산을 찾았다는 한 외국인은 “작품선정과 프로그램 구성은 해마다 나아지고 있으나 행사 진행은 점점 후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이번 영화제는 짧은 연륜에 비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 영화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위해서는 좀더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