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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시대’로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시대’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대표이사에 오르며 경영 전면에 나선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9월 정 수석부회장 취임 반년 만에 ‘정의선 체제’가 공고해지게 된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이사회를 열어 다음달 22일 정기 주주총회 이후 별도 이사회 결의를 거쳐 정 수석부회장을 대표이사로 확정할 계획이라고 26일 밝혔다. 대표이사 선임 안건이 이사회를 통과하면 현대차는 정몽구 대표이사 회장, 정 대표이사 수석부회장, 이원희 대표이사 사장, 하언태 대표이사 부사장 등 4인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바뀐다. 현대모비스 역시 정 회장과 정 수석부회장, 박정국 사장 등 3명의 각자 대표이사 체제를 갖추게 된다. 앞서 기아차도 지난 20일 이사회를 열고 다음달 15일로 예정된 주총에서 정 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기로 의결해 정 부회장은 기아차 대표이사로도 선임될 가능성이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 수석부회장은 미래산업 전환기에서 패러다임을 주도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유관순 열사 서훈 승격에 충남도 환영

    정부가 유관순(1902~1920) 열사의 서훈을 3등급에서 1등급(건국훈장 대한민국장)으로 상향하기로 하자 충남도 등이 일제히 반겼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26일 도청에서 긴급 간담회를 열고 “정부 결정은 조국의 독립, 자유와 평화, 인권과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국민적 열망을 반영한 것”이라며 “유 열사의 숭고한 정신이 세계 평화 정신으로 승화되고 민족사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양 지사는 유 열사의 서훈 상향 100만인 서명 운동을 중단한다고 했다. 유 열사는 천안이 고향이다. 구본영 천안시장은 “70만 시민과 함께 환영한다”며 “천안이 선조의 호국정신과 민족의 얼이 담긴 3.1운동 정신을 계승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충남도와 15개 시장·군수는 유 열사의 서훈 상향 국민 청원을 시작으로 상훈법 개정 결의문 채택과 100만인 서명운동 등 서훈 격상을 위해 힘써왔다. 박완주·이명수 등 지역 국회의원들도 당적을 떠나 특별법 제정안을 발의하는 등 입법 활동을 통해 힘을 보탰다. 유관순 열사는 1962년 서훈 5등급 중 3등급인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아 공적과 상징성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경실련 “5대그룹 땅값 10년간 2.8배 증가”

    경실련 “5대그룹 땅값 10년간 2.8배 증가”

    현대차, 삼성, SK, 롯데, LG 등 5대 그룹의 토지자산 총액이 지난 10년간 장부가액 기준으로 2.8배 규모로 증가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26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경실련 강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재벌 기업들이 본연의 주력사업을 외면하고 부동산 투기에 몰두해 10년간 부동산 거품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경실련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5대 그룹이 보유한 토지자산은 금융감독원 공시 기준 총 67조 5000억원으로 2007년 24조원에서 43조 5000억원 증가해 2.8배 규모로 늘어났다. 2017년 말 기준 토지자산이 가장 많은 그룹은 현대차(24조 7000억원)였다. 삼성(16조 2000억원), SK(10조 2200억원), 롯데(10조 1900억원), LG(6조 3000억원)가 뒤를 이었다. 2007년 대비 토지자산이 가장 많이 증가한 그룹도 현대차가 19조 4000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삼성 8조 4000억원, SK 7조 1000억원, LG 4조 8000억원, 롯데 4조원 등의 순이었다. 이들 그룹 계열사별로 보면 현대자동차 10조 6000억원, 삼성전자 7조 8000억원, 기아자동차 4조 7000억원, 호텔롯데 4조 4000억원, 현대모비스 3조 5000억원 순으로 증가해 5위 내에 현대차그룹 계열사 3곳이 포함돼 있었다. 경실련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세청에 등록된 상위 10개 기업이 보유한 토지자산의 공시지가 총액은 385조원으로, 2007년 102조원에 비해 3.8배 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실제 공시한 토지자산 규모는 42조원으로, 공시지가의 10%에 불과했다고 경실련은 주장했다. 경실련은 “국세청 자료에는 상위 10개 기업의 상호는 나와 있지 않으나 5대 재벌 계열사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추정한다”며 “이는 공시를 근거로 재무상태를 파악하는 주주와 투자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투명경영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으므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또 “지난 10년간 재벌 기업들이 땅 사재기를 통해 몸집 불리기에 주력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며 “토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불로소득, 분양·임대수익 등에서 생산 활동보다 더 많은 이윤이 발생하다 보니 부동산 투기에 집착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기자회견에서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은 “기업들이 설비투자나 연구보다 부동산 투기에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 사회도 발전 동력을 찾기 어렵다”며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모멘텀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정부와 시민사회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계획과 관련해서는 “재벌 대기업들의 설비투자 규모와 부동산 투자 규모를 비교·분석해 다음 기자회견에서 그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권오인 경실련 재벌개혁운동본부 국장은 “2007년의 경우 공시자료에 기업들이 계열사별 보유 토지 면적과 주소 등을 상세히 명시했으나, 2011년쯤 회계기준이 바뀐 뒤로는 장부가액 수준만 공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산 5조원 이상의 공시대상기업집단에 대해서는 보유 부동산의 건별 주소, 면적, 장부가액, 공시지가를 사업보고서에 의무 공시하게끔 공정거래법 등을 개정해 시장에서 감시 기능이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유관순 열사 서훈 ‘1등급’으로…문 대통령 “독립운동가 예우 자세 새롭게”

    유관순 열사 서훈 ‘1등급’으로…문 대통령 “독립운동가 예우 자세 새롭게”

    정부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유관순(1902~1920) 열사에게 최고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26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개최한 현장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올바른 역사관과 애국정신을 길러 민족정기를 드높이고 국민통합에 기여한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로 서훈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유관순 열사에게는 3등급인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으나 최근 유 열사의 공적을 평가할 때 훈격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 현황에 따르면 김구·안창호·안중근 등 30명이 대한민국장(1등급)이고, 신채호 등 93명은 대통령장(2등급)으로 분류돼 있으나 유 열사는 이들보다 낮은 단계인 독립장(3등급)에 포함돼 있다.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우리 정부는 그동안 독립운동 역사를 기억하고 독립운동가를 예우하는 국가의 자세를 새롭게 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이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뿌리가 됐기 때문”이라고 유관순 열사 훈격 격상 배경을 설명했다. 또 “이곳 백범기념관과 함께 후손들에게 독립운동 정신과 민주공화국 역사를 건설할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도 계속되고 있다”며 “이 모두가 우리를 당당하게 세우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늘 유관순 열사에게 국가 유공자 1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를 의결하는 정신도 같다”며 “유관순 열사는 3·1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16살 나이로 당시 시위를 주도하고 꺾이지 않는 의지로 나라의 독립에 자신을 바친 유관순 열사를 보며 나라를 위한 희생의 고귀함을 깨우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관순 열사가 3·1 독립운동의 표상으로 국민에게 각인돼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1등급 훈장 추서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추서가 3·1 독립운동 100주년의 의미를 한층 더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국가보훈처는 “국내외 유관순 열사의 서훈 상향을 요구하는 열망에 따라 기존 독립운동 공적 외 보훈처에서 별도 공적심사위원회(유관순 열사 추가 서훈 공적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참석위원 만장일치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하기로 심의·의결했다”고 전했다. 당시 공적심사위는 유관순 열사가 “광복 이후, 3·1운동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서 전 국민에게 독립정신을 일깨워 국민통합과 애국심 함양에 기여했다”며 “비폭력·평화·민주·인권의 가치를 드높여 대한민국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제100주년 3·1절 중앙기념식장에서 유관순 열사 유족에게 훈장을 직접 수여할 예정이다. 보훈처는 “유관순 열사 추가 서훈과 함께 올해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에 대한 다양한 행사와 기념사업을 통해 100년 전 3·1운동에서 나타난 조국독립과 자유를 향한 정신을 계승하고 국민의 역사적 자긍심을 높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유관순 열사에게 국가 유공자 1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기로 하자 충남도와 지역 정치권이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이날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간담회를 하고 “정부의 결정은 조국의 독립, 자유와 평화, 인권과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국민적 열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환영했다. 양 지사는 “유 열사의 서훈 상향을 위해 진행했던 100만인 서명 운동은 중단할 계획”이라며 “유 열사의 숭고한 정신이 세계평화 정신으로 승화되고 민족사에 깊이 뿌리내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충남 천안을)도 논평을 내고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이 나가야 할 새로운 100년의 이정표를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박 의원은 “이는 단순히 유 열사 개인에 대해 합당한 예우를 하는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이 앞으로 새로운 100년 동안 지향해야 할 가치를 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며 “유 열사에 대한 건국헌장 1등급 추서가 저평가된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새로 발굴하고 합당한 예우를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관순 열사의 고향인 천안도 감격으로 들썩였다. 구본영 천안시장은 “70만 천안시민과 함께 환영을 뜻을 밝힌다”며 “선조들의 호국정신과 민족의 얼이 담긴 3.1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일에 우리 천안이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인치견 천안시의회 의장은 “같은 공적에 대해 훈장을 다시 추서하거나 변경을 할 수 없도록 한 현행 법규를 개정하기 위해 지난해 ‘상훈법 개정 촉구 건의문’을 채택하는 등 노력해왔다”며 “그동안 천안시의회의 노력이 빛을 본 것 같아 기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 재학 중인 1919년 3월 5일 서울 남대문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했고, 이어 4월 1일 충남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 장터의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1920년 18세 꽃다운 나이로 옥중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열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보혁 가치 아우른 2·28 민주운동 정신 되살리겠다”

    “보혁 가치 아우른 2·28 민주운동 정신 되살리겠다”

    60년대 고교생·대학생 무능 정권 규탄 최초 민주화 운동… 4·19혁명 전주곡 돼 명덕 사거리~경북도청 상징거리 만들고 기념비 등 흩어진 시설 한곳에 모을 것“우리나라 6대 학생의거인 2·28민주운동이 원래대로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아우르는 용광로 정신으로 되살아나도록 애쓰겠습니다.” 우동기(67)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은 25일 “59년 전 주역들을 재평가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2·28역사를 보면 1960년 한 번에 그친 게 아니라 1961~1963년 대구 고교생들이 3만명씩 모여 부패한 자유당 독재정권은 물론 무능한 민주당 정권을 규탄했다. 대학까지 연결돼 고교생과 대학생이 연석회의를 갖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당시 까까머리 아이들이 이승만 정부의 불의를 고발하며 달렸던 명덕 사거리에서 경북도청(현 대구시청 별관)까지를 상징거리로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최초 민주화운동인 2·28민주운동은 마산 3·15 학생의거, 대전 3·8 학생의거, 4·19혁명, 광주 5·18항쟁, 6·10전국반독재투쟁과 함께 6대 민주화운동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60년 2월 28일 당국이 야당 유세장에 가지 못하게 일요일에 등교시킨 데 맞서 학생들은 학교에 모여 스크럼을 짜고 “민주주의를 살리자”, “학원 자유를 달라”, “학생을 정치도구화하지 말라”고 외치면서 시가를 행진했다. 이후 서울·대전·수원·부산 등지로 학생집회가 확산하면서 4·19혁명의 전주곡이 됐다. 우 회장은 구상하고 있는 2·28민주화운동 관련 사업도 의욕적으로 밝혔다. 우선 “국가기념일 지정에 걸맞은 일을 하고 관련 조례를 말끔하게 정비해야 한다”며 입을 앙다물었다. 현재 대구시 조례는 행사지원 관련 여섯 줄밖에 없다. 2·28에 대한 관심이 과거와 다른 만큼 재정 등 포괄적인 지원방안이 담긴 조례로 개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와 함께 “기념비(달서구 두류공원), 기념회관(중구 남산동), 기념공원(중구 공평동) 등 세 곳으로 흩어져 있는 관련 시설물도 한곳으로 모으는 방안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 22일 취임한 그는 내년 60주년을 앞두고 2·28 회원 배가운동을 펼치고 있다. “40주년 때인 2000년 회원이 4만명이었는데 이젠 500명을 밑돈다”고 혀를 찼다. 그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교육감으로 일하며 2·28과 관련된 사업을 많이 벌였다. 2·28민주운동 기념 고교생 마라톤 대회를 만들었다. 폐교된 신암중학교를 2·28기념도서관으로 탈바꿈시켰는데, 이곳엔 내년 2·28민주시민교육센터를 개관한다. 글 사진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2025년까지 사회적경제 조직 300개 육성…‘모바일 완주’ 한걸음

    2025년까지 사회적경제 조직 300개 육성…‘모바일 완주’ 한걸음

    “올해부터 15만 완주시 대도약 실현을 위해 담대한 발걸음을 내딛겠습니다.” 박성일 전북 완주군수는 25일 “‘소득과 삶의 질이 높은 으뜸도시’를 만들기 위해 군민들과 함께 견고한 주춧돌을 놓겠다”며 지역발전 청사진을 펼쳐보였다. “지난해까지 미래 성장의 기틀을 다지면서 완주의 위상과 존재감을 전국 최상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며 각종 우수 시책을 소개하는 박 군수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특히 박 군수는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해 누구보다 강한 신념과 소신이 있다. 그는 전국 최초로 소통 관련 조례를 제정하는 등 주민 참여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왔다. 그 결과 주민들의 자치역량이 높아지고 의식이 깨어나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완주형 사회적기업과 청년시책, 로컬푸드는 지자체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완주군의 올해 사자성어는 뜻이 있으면 이뤄진다는 ‘유지사성’(有志事成)이다. 다음은 박 군수와의 일문일답.-민선 5년차다. 지난 성과는. “완주의 미래 성장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테크노밸리 2단계, 중소기업 전용 농공단지, 삼봉웰링시티, 복합행정타운 등 미래 성장동력이 될 대규모 프로젝트 기반을 구축했다. 행정의 신뢰성도 높였다. 공약 이행률이 97.5%로 4년 연속 전국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단체장 철학을 실현한 성과를 꼽는다면. “풀뿌리 민주주의는 주민과 소통하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게 핵심이다. 주인인 군민의 뜻을 받드는 행정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주민참여 예산제를 도입했다. 읍면별로 4억~7억원씩 배정해 주민 스스로 필요한 사업을 추진토록 했다. 그 결과 지난 4년 동안 주민들이 원하는 1000여건의 소규모 생활 사회간접자본(SOC)이 확충됐다. 주민들 참여와 자치역량이 높아진 것은 훌륭한 성과다. 이에 그치지 않고 각급 학교와 청년들에게도 예산을 배정하고 집행하는 교육과 기회를 부여해 참여와 의식변화를 유도하고 있다.”-기초 지자체로서는 눈에 띄게 많은 상을 받았다. “완주군 위상이 전북을 넘어 전국 최상위 클래스로 자리매김됐다. 일자리 대상, 다산목민대상 등 220여 차례 외부기관 수상과 평가를 받았다. 지방자치박람회 5관왕, 정부혁신평가 1위, 주민참여예산제 최우수기관 등 자치경쟁력이 최고 수준임을 인정받았다. 다른 지역에서 완주군의 다양한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모든 게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공직자들이 헌신한 덕분이다.” -완주군청 직원들의 행정력도 돋보인다. “창의행정을 도입한 결과다. 처음에는 창의행정의 부작용도 있었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맡은 분야는 곧 자신이 군수라는 인식을 가지도록 강조했다. 그 결과 책임의식과 주인의식이 높아졌다. 이제 모든 직원들이 어떻게 해야 군민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고 지역발전을 앞당기는지 강한 의지를 가지게 됐다.” -15만 자족도시를 기치로 내걸었다. 배경과 전망은. “군정의 큰 비전을 설정하고 군민들과 함께 실현해 나가자는 취지다. 인구 늘리기에 그치지 않고 30만 수준의 도시 기반시설, 50만 도시 수준의 삶의 질을 목표로 한다. 올해부터 견고한 주춧돌을 놓겠다. 현재 추진 중인 도시개발 등을 감안할 때 2030년에는 목표가 달성될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로 대부분 군지역 인구가 감소추세지만 완주군은 증가하고 있다. 군민과 공직자들이 힘을 모아 철저히 준비하고 계획을 실천해 나가겠다.”-15만 자족도시로 발돋움하려면 일자리 창출과 인구 유입이 필요충분조건이다. “완주의 1번 정책은 일자리다. 모두가 바라는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모바일 완주’를 위해 ▲기업형 ▲특화형 ▲재정투자형 등 입체적인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테크노밸리 2단계와 농공단지를 조기 분양해 기업을 유치하고 복합행정타운 조성 등 정주 여건을 개선해 인구유입 기반을 마련하겠다.” -숙원인 삼봉지구 개발사업을 이끌어냈다. 지역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삼봉지구는 10년 가까이 장기 표류한 현안이었다. 민선 6기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노력한 끝에 2016년 1월 착공했다. 앞으로 완주군의 새로운 중심 도시로서 15만 자족도시의 한 축이 될 것이다. 이곳에는 6000여 가구의 주택이 건립돼 인접 산업단지 종사자와 군민들의 주거 안정이 기대된다. 1만 5000명의 인구가 유입돼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전주, 익산 등 인접 지자체 개발 효과가 완주에 영향을 준다. 지역발전과 연계 방안은. “인접 지자체와 협력하고 상생하는 시대다. 전주시와는 혁신도시 활성화를 통해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최고의 성공모델로 육성하겠다.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와 연계한 식품산업 육성에도 적극 나서겠다. 이미 로컬푸드를 넘어 푸드플랜을 시행하고 있다. 인접 도시와 상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발굴해 지역발전의 견인차로 삼겠다.” -사회적경제가 새로운 가치 실현의 방안으로 떠오른다. 완주형 특징은. “지속 가능한 일자리와 소득 창출,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소셜 굿즈다. 2025년까지 사회적경제 조직을 300개로 늘리고 군민 조합원 참여도 30%까지 확대하겠다.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5000개 창출하고 100억원의 관련 기금을 확충하겠다. 특히 양적 팽창보다 질적 성장을 견인하는 민관협치 시스템을 구축하겠다. 완주만의 경쟁력 있는 사회적경제 상품을 발굴하는 데 주력하겠다. 올해는 공유마을을 시범 조성하고 공유센터도 만든다.” -청년들을 위한 시책이 많다. 성과와 대책은. “청년들이 꿈과 희망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들어가려 한다. 일자리뿐 아니라 교육, 문화,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통합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참여를 보장하고 있다. 청년들이 참여해 수립한 청년 점프업 프로젝트는 전국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청년참여예산제는 내실을 꾀하고 청년 10% 할당제를 확대하겠다. 청년창업공동체 지원 등 각종 시책과 배려도 아끼지 않겠다. 전국 최초로 월 5만원인 청년 쉐어하우스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완주는 로컬푸드의 메카다. 먹거리 정책과 농가소득 증대 방안은. “완주의 먹거리는 차별 없이 보장돼야 할 공공재이다. 시장논리에 맡기지 않고 누구나 안전하게 먹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완주 먹거리 헌장’을 선언했다. 12개 로컬푸드 직매장은 한 해 600여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완주 생산 농산물의 4분의1을 유통시켜 농민들의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앞으로 먹거리 생산, 가공, 유통, 창업까지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치유 농식품 활성화를 위해 4년간 70억원을 투입하고 농촌 신활력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핵심 내용과 방향은.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찍었다. 지역경제팀을 신설했고 에너지관리팀을 신재생에너지팀으로 변경해 수소에너지 관련 업무를 강화했다. 푸드플랜을 실현하기 위해 먹거리정책과를 신설한 것도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먹거리 종합계획과 정책 방향을 잘 연계시키기 위해 푸드플랜팀을 새로 꾸렸다. 기존 공동체활력과를 사회적경제과로 변경하고 소셜굿즈팀을 주무팀으로 배치했다.” 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박성일 군수 프로필 △행정고시 23회△정읍시 부시장△총리실 제주4·3사건 처리지원단장△안행부 감사관△국민권익위 상임위원△전북도 행정부지사△제44·45대 완주군수
  • 올해 인도 총선 비용, 2016년 미국 대선 비용 추월 전망

    올해 인도 총선 비용, 2016년 미국 대선 비용 추월 전망

    오는 4∼5월로 예정된 인도 총선의 선거 비용이 2016년 미국 대선 때 규모를 넘어 민주주의 선거 역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25일 PTI통신과 CNN 등에 따르면 올해 인도 총선은 선거 비용 등 여러 면에서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후보자와 정부 등이 지출할 선거 비용의 경우, 이번 총선은 65억 달러(약 7조3000억원)가 투입된 2016년 미국 대선(의회 선거 포함) 규모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다. 카네기국제평화연구원 밀란 바이슈나브 남아시아 팀장은 “50억 달러 수준이었던 2014년 인도 총선 선거 비용이 이번에는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경우, 올 인도 총선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치르는 선거 행사가 된다. 바이슈나브 팀장은 집권 인도국민당(BJP)과 야당 간 지지율 격차가 줄어드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이번에는 어느 때보다 선거 비용 투입이 많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부 지출도 늘고 있다. 인디아투데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09년 총선에서는 유권자 1명 당 15.5루피를 썼으나 2014년에는 관련 비용이 1인당 46.4루피로 늘었다”며 “2014년 총선 때 정부는 총 387억 루피(약 6100억원)를 지출했다”고 설명했다. 하원 의원 543명을 뽑는 인도 총선은 한 달가량 실시된 뒤 개표는 하루 만에 이뤄진다. 2014년에는 4월 7일부터 5월 12일까지 총선이 실시됐다. 올해 총선 세부 일정은 3월 초 발표된다. 2014년 총선에서는 2009년 총선 때보다 1억여명 많은 8억 3000만명의 유권자가 등록됐다. 이번에는 이보다 더 많은 8억 7500만여명이 투표에 나설 권리를 확보했다. 역시 세계 최대 규모의 유권자 수다. 투표소는 인도 전역 100만 곳에 설치된다. 군인, 경찰 등 치안 병력 포함 1000만명의 선거 관리 요원이 투입된다. 선거 참여 정당과 후보 수 기록도 이번에 깨질 가능성이 크다. 2014년에는 BJP, 인도국민회의(INC) 등 총 464개의 정당에서 8251명의 후보가 선거전에 뛰어들었다고 CNN은 전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에듀파인 도입은 좌파의 교육 장악 시도” 국회 앞에 모인 한유총

    “에듀파인 도입은 좌파의 교육 장악 시도” 국회 앞에 모인 한유총

    이덕선 이사장 “사회주의형 인간 만들려 해”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에듀파인 반발“사유재산권 침해·유아 교육 말살 반대”“전교조를 통해 초·중·고·대학교를 지배한 좌파들이 유치원을 장악해 어릴 때부터 사회주의형 인간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는 교육 사회주의를 반대한다” 25일 오후 서울 국회 앞 도로에서 열린 ‘‘유아교육 사망선고! 교육부 시행령 반대 총 궐기대회’에서 이덕선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이사장은 주최 측 추산 3만여명(경찰 추산 1만 1000명)의 한유총 회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국 각지 사립유치원 원장들과 교사들은 지난해 11월 29일 광화문광장에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집회 이후 3개월만에 다시 거리로 나왔다. 이 이사장은 “유아교육을 획일화하고 강제로 한 가지 교육만 강요하는 것은 사회주의”라며 “정부는 사립 유치원 생존, 유아교육의 창의성과 다양성, 자녀 교육기관 선택권, 우리나라 미래에 대해 사망선고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교육부의 관료주의와 유아기 때 교육으로 사회주의형 인간을 양성하려는 좌파들의 교육사회주의가 야합하여 오늘의 사립유치원 문제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는 정태옥·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 노광기 전 전국어린이집연합회장, 박병기 한국민간장기요양기관협회장, 서석구 변호사 등이 참석했다. 정태옥 의원은 “에듀파인 도입은 유치원이 사소한 잘못을 해도 어마어마한 법의 잣대로 유치원의 손발과 재산을 묶겠다는 치졸한 발상”이라며 “경찰·국세청·교육청을 동원해 유치원을 범죄자 잡듯 잡는데 무장공비 토벌도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언주 의원은 “일부 사립유치원이 잘못했다고 경영권과 사유재산권을 몰수하고 폐원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면서 “문대통령이 세금으로 지원금을 주면서 생색을 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한유총은 에듀파인이 들어간 손팻말은 다시 수거하는 등 집회가 에듀파인 거부로 비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에듀파인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경자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대표는 “에듀파인은 개인사업인 유치원을 국가에서 강제 관리하겠다는 것”이라며 “에듀파인을 강행하는 유은혜 장관을 끌어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지지 발언이 이어지자 검은 옷을 입고 참석한 회원들 사이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참가자들은 “유은혜 심통불통 유아교육 다 죽인다” “110년 사립유치원 110일만에 사형선고” 등의 구호를 외치며 ‘유아교육 말살하는 시행령을 철회하라’고 적힌 피켓을 흔들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15개 시도지사 “5·18 망언은 헌법·민주주의 부정”

    15개 시도지사 “5·18 망언은 헌법·민주주의 부정”

    대구·경북 불참… 무소속 원희룡은 동참자유한국당 김순례·김진태·이종명 의원의 ‘5·18 망언’ 파문이 3주째 지속되는 가운데 24일 전국 15개 시도지사가 공동 입장문을 내고 세 의원에 대한 규탄 행렬에 동참했다. 한국당은 이종명 의원의 제명 조치를 결정했지만 전당대회에 출마한 다른 두 의원의 징계는 유예한 상태다. 그러나 김순례 의원은 사과 입장을 발표하며 되레 5·18 허위 유공자를 철저히 걸러내야 한다고 주장해 국민적 공분을 더 키웠다. 김진태 의원도 ‘진짜 유공자’에게 상처를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면서 5·18 유공자 명단 공개를 요구하며 망언 논란을 선거전략으로까지 활용했다. 더불어민주당과 무소속인 전국 15개 시도지사는 국회 정론관에서 공동 입장문을 발표하고 세 의원의 5·18 망언, 망동을 비판했다. 기자회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용섭 광주시장, 양승조 충남지사, 송하진 전북지사, 김영록 전남지사, 허종식 인천 정무부시장이 직접 참석했다. 전국 17개 시도지사 중 한국당 소속인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는 입장문에 불참했고 무소속 원희룡 제주지사는 동참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나 왜곡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행위를 배격하고 5·18 역사왜곡처벌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의원 전원뿐 아니라 바른미래당 의원 16명과 무소속 손금주·손혜원·이용호 의원 등 166명이 지난 22일 공동 발의한 5·18 역사왜곡처벌특별법은 5·18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한 행위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장은 “1980년 5월 자행됐던 ‘총칼의 학살’이 이제는 ‘망언의 학살’로 이어지고 있다”며 “한국당은 세 의원을 제명 조치하고 국회 윤리특위는 의원직에서 제명 조치하며 국회는 역사왜곡처벌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5·18 망언에 대한 공개 유감 표명을 했던 권영진 시장이 동참하지 않은 데 대해 “권 시장은 망언이 부적절하고 굉장히 유감이라는 생각을 갖고 계신 게 맞지만 (한국당 소속) 당인으로서 공식적으로 이름을 올리기가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진보 진영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5·18시국회의와 5·18역사왜곡처벌 광주운동본부는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주최 측 추산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세 의원의 퇴출과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국가 권력이 부풀린 서훈등급…사상·이념 족쇄 풀고 재평가를”

    “국가 권력이 부풀린 서훈등급…사상·이념 족쇄 풀고 재평가를”

    24일 서울신문 심층 설문조사에 참여한 역사학계 전문가들은 “이제부터라도 사상과 이념의 족쇄에서 독립운동가들을 풀어 줘야 한다”고 밝혔다 민족주의자, 자유민주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여부를 떠나 ‘한국의 독립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최우선 기준에 놓고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남북 화해 분위기를 반영하고 통일에 대비하고자 우파 독립운동사 위주로 진행됐던 연구 범위도 넓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독립 위해 무엇을 했는지 평가해야 역사학계는 김원봉(1898~1958)과 박헌영(1900~1956)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계열 활동가들을 독립운동사에서 복권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원봉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스무 살이던 1918년 중국 난징의 진링대학(현 난징대학)에 입학한 뒤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이 조선 같은 약소국을 돕지 않을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고 무장투쟁가의 삶을 선택했다. 이듬해 ‘의열단’을 창단하고 광복을 맞아 한국에 돌아온 1945년까지 26년간 일제와 끊임없이 맞서 싸웠다. 조선총독과 친일파, 한국인 밀정을 처단하고자 의열투쟁을 진두지휘했고, 1938년 중국 국민당 정부로부터 첫 한인 무장세력으로 인정받은 ‘조선의용대’도 세웠다. 서울신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 작가는 “만약 그가 해방 뒤 ‘친일 경찰’ 노덕술(1899~1968)에게 치욕스런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면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노덕술의 고문은) 일부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보다 우위에 섰던 당시 대한민국의 현실을 상징하는 뼈아픈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김원봉은 해방 뒤 북한 정권 수립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배제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후대에 만들어진 시각으로 역사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라면 그가 어떤 사상을 가졌든지 상관없이 해방을 맞은 1945년까지 무엇을 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학계 “임병직 서훈은 5등급이 적당” 학계에서는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고평가된 인물로 임병직(1893~1976)과 이승만(1875~1965)을 지목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정권을 쥔 이들이 자신과 측근의 공적을 지나치게 부풀렸다는 지적이다. 임병직은 이승만이 미국에 머물던 시절 그를 보좌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위원을 지냈고 해방 뒤 외무부 장관과 주인도 총영사 등을 맡았다. 박정희(1917~1979)의 5·16 쿠데타를 지지했고, 사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에 추서됐다. 그에 대한 서훈등급을 두고 ‘정치적 처세의 결과물’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홍선표 하나역사연구소장은 “임병직은 이승만의 비서 일을 한 것 말고는 한국 독립에 크게 기여한 게 없다. 학계에서는 ‘5등급 정도가 적당하다’는 평가가 많다”며 “그럼에도 그가 김구, 윤봉길 등과 같은 반열의 유공자가 된 것은 1976년 서훈 심사 당시 (임병직이 지지선언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 권력에 의해 포상 체계가 흔들린 대표적 사례로 반드시 거론돼야 할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역사학계는 우리 독립운동사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로 김구(1876~1949)와 안창호(1878~1938), 안중근(1879~1910)을 꼽았다. 외국인으로는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와 장제스(1887~1975), 후세 다쓰지(1880∼1953)를 들었다. 스코필드는 영국 태생의 캐나다 감리교 선교사로 1919년 일제의 제암리 학살사건 참상을 전 세계에 타전해 일제의 만행을 알렸다. ‘석호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3·1 운동 민족대표 제34인’으로도 불린다. 후세는 일본의 인권변호사로 박열(1902~1974) 등 항일운동가들을 변론하며 한국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제대로 된 독립운동사 연구 풍토 마련해야 학계에서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을 맞아 정부가 우리 역사학계의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진단해 제대로 된 독립운동사 연구 풍토를 만들 수 있게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언론 역시 일회성 100주년 기획들로 끝내지 말고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방안을 강구해 달라고 주문했다. 홍 소장은 “역사의 성과는 (국가나 언론의) 각종 기념행사나 기획기사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찾지 않던 자료를 어렵게 발굴해 밤새워 연구하는 외로운 학자들에 의해 피어나는 것”이라며 “우리 역사학계 연구 수준은 매우 미약하다. 인문학이 고사 위기인데 역사학계 역시 마찬가지다. 밤낮 없이 연구실에 처박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연구에 몰두하는 이들에게 희망과 열정이 피어오르게 할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문서가 1932년 윤봉길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와 한국전쟁 등으로 대부분 소실됐다. 아직도 행방을 모른다. 정부는 (일본이나 북한 등과 교섭해) 이것부터 찾아야 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도 “독립유공자 포상이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그사이 상당수 자료가 사라져 지금도 연구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아직도 3·1운동, 독립운동과 관련해 포상을 못 받은 분들이 다수다. 보훈처 등에서 연구를 지원한다면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무질서한 서훈 체계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이번 기회에 독립운동가 서훈 체계를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대한민국 건국훈장은 국가 수립에 뚜렷한 공을 세웠거나 국기(國基)를 다지는 데 공적이 있는 자에게 수여한다. 대한민국장(1등급)과 대통령장(2등급), 독립장(3등급), 애국장(4등급), 애족장(5등급) 등 5단계로 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가보훈처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남성 1만 5180명, 여성 357명 등 모두 1만 5537명이다.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가산을 모두 팔아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1867~1932),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1858~1932) 등이 3등급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이승만은 대통령 재임 중 자신을 1급으로 ‘셀프 서훈’해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서훈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며 “정부는 독립운동 주동자 가운데 거사를 벌이다가 죽지 않은 이는 알아주지도 않는다. 이건 정말 아니다. 단순 정량 평가가 아닌 정성 평가를 통해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설문응답자 명단 기유정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김삼웅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 김형목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위원, 노상균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원,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 백옥진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이양희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 연구원, 이원규 역사소설가, 장규식 중앙대 사학과 교수, 장석흥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 전성현 동아대 사학과 교수, 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최기영 서강대 사학과 교수,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 홍선표 하나역사연구소장, 익명 요청 2명(가나다순)
  • 봉건군주제 뛰어넘은 3·1운동… 상하이 임시정부 씨앗되다

    봉건군주제 뛰어넘은 3·1운동… 상하이 임시정부 씨앗되다

    급작스런 고종 서거… 3·1운동에 도화선복벽주의 아닌 왕정 극복한 민족자결주의 19세기말 독립협회 등 민주공화정 꿈꿔 수많은 임정 탄생… 세 키우기 위해 통합우리나라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돼 있다. 정부는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수립일인 4월 11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919년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임정의 의미를 기리자는 취지다. 19세기 말부터 우리 민족은 민주공화정에 대한 열망을 서서히 키워 나갔다. 고종의 죽음을 계기로 3·1운동으로 이를 분출했고 상하이에 임정을 세워 계승했다. ●3·1만세운동 도화선이 된 고종의 죽음 “사실 조선 멸망의 최대 원인은 궁정 자체에 있었다.” 1910년 중국의 대표적 개혁가 량치차오(1873~1929)는 사라진 대한제국을 두고 이렇게 개탄했다. 그는 “오늘날(20세기 초) 입헌국에서 군주는 정치적 책임이 없고 약정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전제국가는 이와 다르다. 국가의 운명이 전부 궁정 한 곳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이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탈바꿈하지 못해 망국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강제로 병탄조약을 맺고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았다. 육군 대장이 조선 총독으로 부임해 행정과 입법, 사법권을 모두 장악했다. 우리 역사의 최대 암흑기였던 36년간의 일제 통치기간이 시작됐다. 1919년 1월 21일 고종(1852~1919)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한반도 전체가 충격과 비통에 휩싸였다. 건강 하나만큼은 ‘완전체’에 가깝던 그가 돌연사하자 ‘고종이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성난 민초들이 고종의 서거를 애도하고자 서울로 향했다. 이런 움직임이 3·1운동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하지만 이들이 ‘복벽주의’(나라를 되찾아 왕을 다시 세우겠다는 주장)를 내세운 것은 아니다. 되레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새 나라는 대한제국(조선)을 계승하되 국가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인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24일 “3·1운동 당시 고종에 관한 구호가 아예 없었다”면서 “1911년 중국 신해혁명, 1917년 러시아혁명, 1918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공통점은 황제로 상징되는 절대 권력을 부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민족은 고종의 죽음을 계기로 왕정을 완전히 극복했다. 3·1운동은 과거 봉건군주제를 넘어선 것이기에 가히 ‘혁명’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강조했다. ●1896년 독립협회 때부터 민주공화제 열망 우리 민족은 대한제국 멸망 이전인 19세기 말부터 민주공화정에 대한 열망을 키워 나갔다. 1896년 조선에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독립협회가 만들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자주독립과 천부인권 존중, 한글 사용 등을 강조했는데, 배후에는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1858~1902)를 포함해 서양 선교사들이 있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만들어 조선인에게 영어와 민주주의를 가르쳤다. 이승만(1875~1965)도 이 학당의 학생이었다. 독립협회는 종종 대중집회인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만민공동회는 관민공동회로 이어지며 국정개혁의 대원칙을 결정하기도 했다. 미국의 한인들이 발간한 신한민보 1910년 7월 6일자 사설에는 독립협회 정신을 계승해 “현 정부(대한제국)가 일본에 투항한 지 오래됐는데, 우리는 인민의 정신을 대표해 우리의 복리를 도모할 만한 정부를 세울 것임을 선언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은 일본 병합 뒤 국내외 망명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1911년 12월 연해주 한인들은 항일 결사체인 권업회를 세웠다. 이들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대한광복군 정부를 수립했다. 1917년 12월에는 ‘전로한족중앙총회’를 세워 독자적인 활동에 나섰다.1915년 3월 중국 동포들은 상하이에서 신한혁명당을 결성했다. 1917년 7월 박은식과 신채호, 김규식 등 독립운동가 14명이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독립운동 최고기관으로 공화정제로 운영되는 임시정부를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도 3·1운동을 준비한 천도교를 중심으로 임시정부수립운동을 펼쳤다. 3·1운동을 계기로 수많은 임시정부가 생겨났다. 이 가운데 러시아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와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의 한성임시정부는 힘을 모으고자 하나로 통합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임정의 시작이다. 김정인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회’ 기획소통분과위원회 위원장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한 임정의 임시헌장은 정당성의 기원을 3·1운동에서 찾고 있다”고 밝혔다. 1920년 1월 임정 신년축하회 연설에서 내무총장 안창호는 민주공화국 탄생의 감격을 이렇게 전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황제가 없나요? 있습니다. 과거에는 황제가 단 한 사람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2000만 국민이 모두 황제요. 제군 모두가 황제란 말입니다. 황제란 무엇이오? 주권자의 이름입니다. 지금은 제군이 모두 다 주권자외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종철이 죽음 헛되지 않도록 남영동 대공분실 원형 복구해야”

    “종철이 죽음 헛되지 않도록 남영동 대공분실 원형 복구해야”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묻힐 뻔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경찰의 어이없는 설명에도 대꾸할 수 없는 게 당시 분위기였다. 그렇게 의문사로 남을 수도 있었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건 전적으로 우연들이 만들어 낸 힘 때문이었다. 만약 1987년 1월 당시 최환 부장검사가 경찰의 은폐 조작을 저지하지 않았다면? 일부 언론이 서슬 퍼런 5공화국의 보도지침 검열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열사의 친형이자 현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청년회장을 맡고 있는 박종부(61)씨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고 했다. 그는 “하나의 우연이 또 하나의 우연과 연결되고 결국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고 본다”면서 “역사의 엄중한 무게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동생과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오늘도 새벽을 깨우는 박씨를 지난 19일 서울 용산의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만났다.-지난해 문무일 검찰총장이 세 차례에 걸쳐 부친을 찾았다. 검찰은 무슨 잘못을 했나. “대다수 국민들은 검찰이 당시 어떤 잘못을 했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미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검찰도 사건의 축소·은폐 조작에 깊이 관여한 점을 밝히고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10년이 흐른 지금도 당시 수사 검사(박상옥 대법관)를 포함해 수사 라인에 있던 검사 3명 모두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를 한 적 없다. 물론 검찰이든 경찰이든 자기 허물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겠지.” -문 총장 방문은 어떻게 이뤄졌나. “지난해 초에 종철이 고등학교 친구(김기동 부산지검장)한테 연락이 왔다. 총장이 아버지(고 박정기씨)를 찾아뵙고 싶다고. 그때는 아버지께서 의식이 또렷하셨을 때였다. 아버지께서도 반대하시지 않아 만남이 성사됐다. 2월 3일 오후 3시. 정확히 날짜도 기억한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와서 아버지께 사과를 했다.” -부친이 뭐라 하셨나. “아버지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사과를 받아주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보다 어제가 더 좋았을걸 그랬습니다’라고 말씀하시더라. 왜 조금 더 일찍 오지 않았느냐는 의미 아닐까. 그 말씀을 하시는데 울컥하더라. 당시 병상을 둘러 서 있던 저와 아내, 여동생 모두 뒤돌아서서 눈시울을 붉혔던 기억이 난다.” -총장의 사과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나. “총장이 종철이와 아버지의 삶을 다룬 책 ‘유월의 아버지’를 읽고 왔다고 들었다. 그전에는 아버지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고. 형식적으로 사과를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 달 뒤 공식 방문을 했고, 아버지 돌아가시기 직전 또 한 번 찾아왔다.” -옆에서 지켜본 아버지의 삶은 어땠나. “종철이가 3년 동안 민주화운동을 했다면 아버지는 30년을 했다. 외롭고 힘든 일도 많았을 거다. 어떤 날은 경찰 방패에 맞아 피멍이 들어 밤새 끙끙 앓으시다가도 새벽같이 일어나 유가협 사무실에 청소하러 가셨다. 제 아버지이지만 참 큰 어른이셨다.” -아버지가 동생을 떠나보내며 하신 말씀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가 지금도 회자된다. “왜 할 말이 없었겠나. 아들이 죄 없이 죽은 게 힘없고 못난 아비 때문이라고 생각하신 거지. 아버지는 1987년 11월 30일부터 거의 30년 동안 일기를 써내려갔다. 이 일기를 기록물로 남겨 놓는 작업도 하려고 한다.” 1994년 4월 26일 고인의 일기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막내야, 다음에도 나는, 이 아버지는 민주화운동을 할 거야/ 역사에 없어도 나는 네가 하다 간 그것 할 거야!’ 3년 뒤인 1997년 5월 8일 일기장에는 아들을 떠나보냈을 때의 심정을 10년 만에 글로 담았다. ‘처절한 심정으로 이 넓고 큰 지구에서/ 나 혼자 변을 당하는 외로움/ 사지가 마비되는 고독감/ 당하고 마는구나 하는 마음이 바로 이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조의를 표했다. 어떤 인연이 있나. “종철이가 그렇게 되고 나서 나흘 만인가 당시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집으로 찾아와 부모님을 위로해 줬다. 이후 아버지와 가깝게 지내셨다. 그런데 두 분 다 대통령이 되면서 예전같이 자주 만날 기회는 없어지더라(웃음).” -동생이 고문당한 남영동 대공분실이 드디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생전에 이뤄내지 못한 것이 아직도 가슴 아프다. 1999년 아버지가 유가협 회원들과 고령의 몸을 이끌고 국회 앞에서 422일간 천막농성을 벌인 적이 있다. 그 당시 민주화 과정에서의 희생자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보상심의위원회, 과거사위원회 등이 꾸려졌다. 그때 남영동 분실을 넘겨받았어야 했는데 사회운동권 단체의 역량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 기회를 한번 놓치니 20년이 흘러 버렸다.”-분실을 경찰이 관리하면서 원형이 훼손됐다고 하던데. “원형 보존과 복구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이곳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도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다. 우리가 지켜낸 민주주의와 인권은 후대에 물려줄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2022년 개관(민주인권기념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의문사 가족들과 연대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은 세상에 안 알려진 제2의 박종철 열사를 기리기 위함인가. “문영수, 김두황, 한영현, 기혁, 한희철, 허원근, 우종원, 신호수, 김성수, 최우혁, 안치웅, 김용권….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로 너무 많다. 1988년 행방불명돼 시신도 못 찾은 안치웅의 경우, 행여 돌아올까 문도 못 잠그고 지내다 23년이 지나서야 시신 없는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뿐 아니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목숨 바친 수많은 열사들, 그들의 뒤를 이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수십년을 헌신한 유가족들, 그들이 국가유공자가 아니면 누가 유공자이겠나.”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할 때라는 뜻인가. “그렇다. 그들은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로 언제나 약자였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거다. 너무 늦어 많은 분들이 한 많은 가슴을 부여안고 돌아가시는 현실이 안타깝다. 의문사는 누구든지 당할 수 있다. 불행한 과거가 다시 오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박씨는 인터뷰를 마칠 즈음,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치됐을 때 위원회 명칭이 거북했다고 털어놨다. 피해자들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화해’라는 단어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처럼 꼭 필요한 말도 없다고 했다. 지금도 진행 중인 과거사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길도 화해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세상에 안 알려진 종철이가 너무 많다…의문사 가족에도 관심을”

    “세상에 안 알려진 종철이가 너무 많다…의문사 가족에도 관심을”

    묻힐 뻔한 죽음, 지금 생각해도 아찔…역사적 우연 연결되며 민주항쟁 이어져아버지 병상에서 문무일 검찰총장 만나 “오늘보다 어제 왔으면 더 좋았을걸…”아버지, 30년간 힘든 싸움 일기에 남겨…의문사 유가족에 손만 내밀어도 위로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묻힐 뻔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경찰의 어이없는 설명에도 대꾸할 수 없는 게 그 당시 분위기였다. 그렇게 의문사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건 전적으로 우연들이 만들어 낸 힘 때문이었다. 만약에 1987년 1월 당시 최환 부장검사가 경찰의 은폐 조작을 저지하지 않았다면? 일부 언론이 서슬 퍼런 5공화국의 보도지침 검열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열사의 친형이자 현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청년회장을 맡고 있는 박종부(61)씨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고 했다. 그는 “하나의 우연이 또 하나의 우연과 연결되고 결국 6월 민주 항쟁으로 이어졌다고 본다”면서 “역사의 엄중한 무게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동생과 아버지를 떠나 보낸 뒤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오늘도 새벽을 깨우는 박씨를 지난 19일 서울 용산의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우리 사회 민주화를 앞당긴 1987년은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힘든 한 해였을 것 같다. “그해 4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고 박정기씨)는 6월 정년퇴직이 예정돼 있었고. 그런데 갑작스런 동생의 사망 소식에 우리 가족은 몹시도 힘들었다. 아버지는 기관으로부터 회유와 압박에 시달렸다. 그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아버지가 많이 흔들리시는 것 같아 자주 부산에 내려갔다. 조금만 버텨보자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그후로 부모님과 여동생은 시민사회단체에 소속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가족들과 달리 회사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아들을 키워야 했으니까. 2001년 아버지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사람 뽑는다고 슬쩍 권유를 하시더라. 그때도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그래도 마음은 늘 사회운동단체에 닿아 있었다. 틈나는 대로 연대 활동도 했고. 그러다 2010년 퇴직하고 난 뒤 아버지 활동도 뜸해지면서 바통을 이어받은 거지.” -지난해 문무일 검찰총장이 세 차례에 걸쳐 부친을 찾았다. 검찰은 무슨 잘못을 했나. “대다수 국민들은 검찰이 당시 어떤 잘못을 했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미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검찰도 사건의 축소·은폐 조작에 깊이 관여한 점을 밝히고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10년이 흐른 지금도 당시 수사 검사(박상옥 현 대법관)를 포함해 수사 라인에 있던 검사 3명 모두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를 한 적 없다. 물론 검찰이든 경찰이든 자기 허물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겠지.” 지난해 10월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정권 안정이라는 정치적 고려를 우선해 치안본부에 사건을 축소·조작할 기회를 줬고, 치안본부 간부들의 범인 도피 행위를 의도적으로 방조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당시 검찰의 수사를 ‘졸속 수사’, ‘늦장 수사’, ‘부실 수사’였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 총장 방문은 어떻게 이뤄졌나. “지난해 초에 종철이 고등학교 친구(김기동 현 부산지검장)한테 연락이 왔다. 총장이 아버지를 찾아뵙고 싶다고. 그때는 아버지께서 의식이 또렷하셨을 때였다. 아버지께서도 반대하시지 않아 만남이 성사됐다. 2월 3일 오후 3시. 정확히 날짜도 기억한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와서 아버지께 사과를 했다.” -부친이 뭐라 하셨나. “아버지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사과를 받아주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보다 어제가 더 좋을 걸 그랬습니다’라고 말씀하시더라. 왜 조금 더 일찍 오지 않았느냐는 의미 아닐까. 그 말씀을 하시는데 울컥하더라. 당시 병상을 둘러 서 있던 저와 아내, 여동생 모두 뒤돌아서서 눈시울을 붉혔던 기억이 난다.” -총장의 사과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나. “총장이 종철이와 아버지의 삶을 다룬 책 ‘유월의 아버지’를 읽고 왔다고 들었다. 그전에는 아버지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고. 형식적으로 사과를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 달 뒤 공식 방문을 했고, 아버지 돌아가시기 직전 또 한 번 찾아 왔다.” -옆에서 지켜본 아버지의 삶은 어땠나. “종철이가 3년 동안 민주화운동을 했다면 아버지는 30년을 했다. 외롭고 힘든 일도 많았을 거다. 어떤 날은 경찰 방패에 맞아 피멍이 들어 밤새 끙끙 앓으시다가도 새벽같이 일어나 유가협 사무실에 청소하러 가셨다. 제 아버지이지만 참 큰 어른이셨다.” -아버지가 동생을 떠나보내며 하신 말씀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가 지금도 회자된다. “왜 할 말이 없었겠나. 아들이 죄 없이 죽은 게 힘없고 못난 아비 때문이라고 생각하신 거지. 아버지는 1987년 11월 30일부터 거의 30년 동안 일기를 써내려갔다. 이 일기를 기록물로 남겨놓는 작업도 하려고 한다.” 1994년 4월 26일 고인의 일기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막내야, 다음에도 나는, 이 아버지는 민주화 운동을 할 거야/ 역사에 없어도 나는 네가 하다 간 그것 할 거야!’. 3년 뒤인 1997년 5월 8일 일기장에는 아들을 떠나보냈을 때의 심정을 10년 만에 글로 담았다. ‘처절한 심정으로 이 넓고 큰 지구에서/ 나 혼자 변을 당하는 외로움/ 사지가 마비되는 고독감/ 당하고 마는구나 하는 마음이 바로 이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조의를 표했다. 어떤 인연이 있나. “종철이가 그렇게 되고 나서 나흘 만인가 당시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집으로 찾아와 부모님을 위로해 줬다. 이후 아버지와 가깝게 지내셨다. 그런데 두 분 다 대통령이 되면서 예전같이 자주 만날 기회는 없어지더라(웃음).”-동생이 고문당한 남영동 대공분실이 드디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생전에 이뤄내지 못한 것이 아직도 가슴 아프다. 1999년 아버지가 유가협 회원들과 고령의 몸을 이끌고 국회 앞에서 422일간 천막농성을 벌인 적이 있다. 그 당시 민주화 과정에서의 희생자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보상심의위원회, 과거사위원회 등이 꾸려졌다. 그때 남영동 분실을 넘겨받았어야 했는데 사회운동권 단체의 역량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 기회를 한 번 놓치니 20년이 흘러 버렸다.” -분실을 경찰이 관리하면서 원형이 훼손됐다고 하던데. “원형 보존과 복구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역사 왜곡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나아가 이곳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도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다. 우리가 지켜낸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대에 물려줄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2022년 개관(민주인권기념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의문사 가족과의 연대 활동도 많이 한다고 들었다. “문영수, 김두황, 한영현, 기혁, 한희철, 허원근, 우종원, 신호수, 김성수, 최우혁, 안치웅, 김용권…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로 너무 많다. 1988년 행방불명돼 시신도 못찾은 안치웅의 경우, 행여 돌아올까 문도 못 잠그고 지내다 23년이 지나서야 시신 없는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뿐 아니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목숨 바친 수 많은 열사들, 그들의 뒤를 이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수 십년을 헌신한 유가족들, 그들이 국가유공자가 아니면 누가 유공자이겠나.”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할 때라는 뜻인가. “그렇다. 그들은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로 언제나 약자였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거다. 너무 늦어 많은 분들이 한 많은 가슴을 부여 안고 돌아가시는 현실이 안타깝다. 의문사는 누구든지 당할 수 있다. 불행한 과거가 다시 오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박씨는 인터뷰를 마칠 즈음,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치됐을 때 위원회 명칭이 거북했다고 털어놨다. 피해자들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화해’라는 단어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처럼 꼭 필요한 말도 없다고 했다. 지금도 진행 중인 과거사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길도 화해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설훈 “20대 지지율 하락, 이명박근혜 교육 받아서?” 망언 논란

    설훈 “20대 지지율 하락, 이명박근혜 교육 받아서?” 망언 논란

    세차례 인터뷰서 거듭 주장한국당 “청년 혐오…사퇴해야”설훈 “오해 일으켜 죄송” 사과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인 설훈 의원의 이른바 20대 비하 발언으로 정치권과 온라인이 발칵 뒤집혔다. 최근 20대 남성들의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하락한 것이 이들 세대가 이명박·박근헤 정부 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것이다. 설 의원은 망언 논란에도 거듭된 언론 인터뷰에서 주장을 굽히지 않다가 “오해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결국 사과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전임 정부의 교육을 탓한 설 의원의 발언에 대해 ‘청년 혐오’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 21일 인터넷 매체 ‘폴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시작됐다. 설 의원은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20대 남성의 굳건했던 지지율이 하락한 원인을 묻는 질문에 “젠더 갈등 충돌도 작용했을 수 있고 기본적으로 교육의 문제도 있다”고 답변했다. 현재 20대가 학교 교육을 받았을 때가 10년 전부터 집권 세력인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이었고 그때 제대로 된 교육이 됐을지 의심스럽다는 게 설 의원의 주장이다. 그는 유신 이전에 학교 교육을 마친 자신을 예로 들면서 “되돌아보면 민주주의 교육을 잘 받은 세대였다고 본다”며 “민주주의가 중요한 가치이고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로 앞으로 가야 한다는 교육을 정확히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 교육이 있었기에 유신정권이 잘못이라는 걸 몸으로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설 의원은 정확한 분석이 아니라 조심스러운 추측이라고 덧붙였다. 설 의원은 이튿날 문화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같은 맥락의 주장을 반복했다. 그는 “인간의 의식과 사고를 규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차지하는 게 교육”이라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다면 보다 건강한 판단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물의를 일으키자 해명에 나섰다. 그는 22일 오후 세종시청에서 열린 예산정책협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일부만 떼어서 보면 실언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내가 한 이야기의 녹음을 다 풀어서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거듭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 그게(지지율 하락과 교육이)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래서 특별히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설 의원은 “20대가 독특한 현상이 있다. 다른 연배에 비해 당 지지율이, 특히 남성이 다른 현상이 나타나면 (그 이유가) 뭔가인지를 찾아봐야 한다. 그래서 제가 생각할 때는 그때의 교육환경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야당은 정부의 정책 실기를 되돌아보지 않고 전 정부를 탓하는 설 의원의 발언을 거세게 비난했다. 이만희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설 최고위원을 겨냥, “국정문란과 경제 정책 실패에 더해 특히 최악의 고용 참사와 갈등 지향적인 성 정책으로 젊은 층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라고 비판했다.이 원내대변인은 “국민을 계몽과 훈계의 대상으로 보는 또 하나의 국가주의적 발상일뿐”이라며 “설훈 최고위원의 논리대로라면 현 정권초기에는 지지율이 높았으니 교육을 탓하려면 전 정부가 아니라 현 정부의 대학과 기업에서 이뤄진 교육을 탓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장능인 한국당 대변인은 “과거의 일부 인사의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국개론’, 국민 개·돼지 발언을 능가하는 역대급 망언”이라며 “본인이 속한 진영에 대해 지지를 보내지 않으면 바로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은 멍청이가 된다는 건가. 국개론에 이어 ‘이개론’, ‘이남멍’이라는 신조어를 설파라도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직격했다. 이어 “설 최고위원은 본인의 잘못을 즉각 인정하고 의원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민주당은 2030세대를 모욕한 설훈 최고위원을 제명하고 국민께 사과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김홍균 바른미래당 청년대변인은 논평에서 “여당의 ‘청년 혐오 릴레이’에 설훈 최고위원이 동참했다”며 “설 최고위원 자신은 이승만, 박정희 정부가 설계한 교육제도 속에서 교육받았다. 대부분 민주화운동의 주역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는 이승만, 박정희 정부의 교육제도가 건강한 비판의식과 인지력을 배양했기 때문인가”라고 반문했다. 김 대변인은 “스스로의 등에 칼을 꽂는 빈약한 논리에 청년들은 웃음 섞인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우리 20대는 부정에 대항한 촛불 혁명의 시작이었고, 모든 과정과 결과에 동참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도 우리는 문재인 정권의 부정과 부패, 무능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며 “이런 청년들의 건전한 불만을 전 정권의 교육탓으로 매몰시키는 것은 참으로 비열한 언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설 최고위원은 우리가 받은 민주주의 교육을 탓하지 마라”며 “청년들의 분노와 서러움을 그저 성숙하지 못한 무능한 인지의 어리광 탓으로 돌리지 마라. 대신 스스로의 무능함과 여당, 나아가 정부의 무능함을 탓하라”고 요구했다. 민주평화당 김형구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에서 “국민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라면서 “청년실업 등으로 인한 20대 지지율 하락에 반성하기는커녕 되지도 않는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민주당은 20대에게 상처를 주고 국민을 분노에 차게 한 발언에 대해 즉각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설 의원은 공식 입장문을 내고 “오해를 불러일으켜서 상처가 된 분들이 있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죄송하다”며 “다만, 사실이 아닌 일로 20대 청년들을 자극하고 갈등을 초래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해명했다. 그는 “젊은 세대를 겨냥해 지적한 게 아니다. 교육이 인간의 의식과 사고 규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교육 환경과 정책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며 “모든 책임은 열악한 교육환경을 만든 본인을 포함한 여야 정치권과 기성세대에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사설] 당권에 눈멀어 헌정질서 흔드는 황교안의 위험천만한 인식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로 출마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박근혜 탄핵’을 부정하는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절차상 하자를 문제삼아 탄핵의 타당성을 부인하더니만 탄핵의 단초를 제공한 최순실의 태블릿PC가 조작됐을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황 후보는 지난 21일 당대표 후보 TV토론에서 김진태 후보가 “태블릿PC에 문제가 많다는 주장에 어떤 입장인가” 묻자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것을 토대로 재판이 진행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후보가 “조작 가능성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가” 재차 묻자 황 후보는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보고 있다”고 답했다. ‘태블릿PC 조작설’은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 등을 통해 이미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태블릿PC 조작설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보수논객 변희재씨는 지난해 12월 1심 법원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태극기 부대’와 같은 극우 세력이 일방적으로 내세우는 근거 없는 주장을 제1 야당의 유력 당권주자가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황 후보는 앞서 “박 전 대통령이 돈 한 푼 받은 것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탄핵이 타당한 것인지 동의할 수 없다. 형사사법 절차가 진행되는 중에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있었다.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박근혜 탄핵’을 부정하는 발언도 했다. 당시 국회의원 234명이 탄핵소추에 찬성해 헌법재판소에서 심판한 사안을 부정하는 것은 헌정질서를 흔드는 반(反)민주주의인 행태이다. 최순실이 국정농단 사태 때 국무총리로, ‘대통령 박근혜 탄핵’ 때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전 과정을 지켜보고 관리했던 국정의 최종 책임자였으면서 뒤늦게 사회적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황 후보는 당대표 출마 기자회견때 “한국당을 정책정당, 미래정당으로 혁신하겠다”면서 “내년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을 압도적 제 1당으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최근 그의 발언과 행동을 보면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친박 표심을 얻고자 적법한 절차를 밟은 탄핵을 부정하고, 태블릿PC 조작설에 동조해 얻은 당권으로 무슨 재주로 내년 총선에서 제1당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당시 70~80%의 국민이 탄핵을 찬성했는데, 그 국민들이 우습게 보인다는 것인가. 어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황 전 총리는 한국당 지지층에선 호감도가 52%로 당권 후보 가운데 1위였지만, 전체 응답자 사이에선 22%에 불과해 오세훈 후보(37%)에 밀렸다. 지금과 같은 구태로는 혹여 당권을 얻을 지라도 집권에 필요한 민심은 얻을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스벅보다 많은 당구장, 4억대 PBA 투어 낳다

    스벅보다 많은 당구장, 4억대 PBA 투어 낳다

    전 세계 스타벅스 매장보다 더 많은 당구장을 보유한 한국 당구가 3쿠션 프로리그인 ‘PBA 투어’를 오는 6월 출범시킨다. 지난 1968년 남자프로골프가 첫 출범한 뒤 프로의 명찰을 단 국내 스포츠로는 2004년 닻을 올린 프로배구에 이어 통산 8번째다. 프로당구추진위원회와 스포츠마케팅 전문회사인 ‘브라보앤뉴’는 21일 서울 신도림동 씨네큐 영화관에서 ‘프로당구 출범 선포식’을 열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를 모델로 한 PBA 투어를 오는 6월 출범시킨다고 밝혔다. 시즌은 매년 5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지만 올해는 시간이 촉박한 탓에 6월부터 투어 대회를 시작해 인비테이셔널과 파이널 대회를 포함해 최대 8개 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는 다음 시즌부터는 10개 대회 이상, 궁극적으로는 최대 30개 대회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상금 규모는 정규투어의 경우 총상금 2억∼3억원 규모에 우승상금 5000만원 이상, 메이저 대회는 총상금 4억원에 우승상금 최대 1억원을 내걸었다. 시드를 받은 128명이 출전하는 투어에서는 1승만 거두더라도 100만원 이상의 상금을 받게 된다. 1부 투어 외에 2부 투어도 운영되는데, 승강제를 적용해 매 시즌 하위 투어 선수들의 승격이 가능하도록 했다.경기 방식은 원칙적으로 세트제다. 기존의 40점 점수제와 달리 PBA 투어에서는 15점 3세트제 또는 9점 5세트제를 도입, 이변과 예상 외의 승부를 이끌어내 보는 이의 흥미를 배가시킨다는 계획이다. 첫 프로선수 선발전은 4월에 열린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당구용품의 80%를 소비할 정도로 방대한 당구 인프라에다 1200만명으로 추정되는 동호인을 보유하고 있어 프로화에 적합한 시장 여건을 갖췄다. 한국당구연맹의 집계에 따르면 2월 현재 2만 5159개에 달하는 국내 당구장은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의 전 세계 매장수 2만 3571개보다 많다. 프로당구는 20년 전에도 출범했지만 2년도 되지 않아 사라졌다. 자금력이 충분치 않은 데다 서둘러 추진된 탓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당구 전문채널인 ‘빌리어드 TV’의 대주주인 브라보앤뉴는 6개에 이르는 든든한 후원사를 확보해 재정적인 기반은 탄탄하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장상진 브라보앤뉴 마케팅부문 대표는 “우려의 시선이 있는 걸 잘 안다”면서 “그러나 투어 대회 개최의 지속성을 보장하고 확약한다. 제2의 이상천, 김경률이 나올 수 있는 세계적인 투어로 성장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軍 댓글 공작’ 김관진 징역 2년 6개월… 법정구속은 피해

    ‘軍 댓글 공작’ 김관진 징역 2년 6개월… 법정구속은 피해

    실형 선고 후 구속된 김경수 지사와 대비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관여 활동(댓글 공작)을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법정 구속되지는 않았다. 온라인상 국민 여론 조작·왜곡이라는 본질적으로 유사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이 나와 법정 구속된 김경수 경남지사와 대비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김태업)는 21일 군 형법상 정치 관여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장관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김 전 정관이 구속됐다가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났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시절의 ‘세월호 보고 시간 조작’ 혐의로 별도 재판 중인 만큼 항소심도 불구속 상태에서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다. 구속적부심 당시 법원은 김 전 장관에 대해 “범죄 성립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어 방어권을 보장해야 하고 주거가 일정하고,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즉각 항소했다. 재판부는 김 전 장관에게 “피고인의 범행은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왜곡함과 동시에 정당과 정치인의 자유 경쟁 기회를 침해하는 결과를 야기했다”며 “국가기관이 특정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자유로운 여론 형성과정에 불법 개입하는 건 어떤 명분으로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 조항은 과거 군이 정치에 깊이 관여해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 불행한 역사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1987년 6월 항쟁 이후 헌법에 명문화한 것”이라며 “그런데도 국방부 최고 책임자인 피고인이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해 국민이 갖는 군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저버렸다”고 질타했다. 김 전 장관은 재판에서 북한의 대남 심리전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작전을 펼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결과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를 야기했다”며 “명분이 정당하다고 해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범법까지 면책되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2013년 사이버사 정치 관여 의혹 국방부 수사를 방해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으나 2012년 댓글 공작 군무원을 새로 채용하며 호남 출신은 배제하도록 한 혐의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 판결했다. 앞서 김 지사는 드루킹 댓글 조작 공범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공모 관계 성립에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 인멸 가능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고 주거와 직업 등을 종합해 보면 구속 상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기각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공모 관계가 인정된다며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징역 2년6개월 선고받고 ‘법정구속’ 면한 김관진 “재판부 존중”

    징역 2년6개월 선고받고 ‘법정구속’ 면한 김관진 “재판부 존중”

    법원 “軍 정치적 중립 정면 위배는 중대한 헌법 침해”불구속…“다른 재판도 받아…항소심도 불구속 바람직”이명박 정부 시절 국군 사이버사령부 여론조작 사건의 축소·은폐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김관진(70) 전 국방부 장관이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법정구속은 면했다. 김 전 장관은 선고 직후 만난 기자들에게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라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김태업)는 21일 정치관여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장관에게 이같이 선고했다. 법원은 그러나 이날 실형이 선고된 김 전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하진 않았다. 재판부는 “애초에 김 전 장관의 구속적부심에서 불구속 재판 선언을 했고, 다른 재판부에서도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재판에 대해 항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항소심도 불구속 상태에서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구속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함께 기소된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66)에 대해선 금고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52)에 대해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북한의 대남 사이버 심리전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김 전 장관의 주장에 대해 “부대원의 신분을 감춘 채 정부와 대통령, 여당에 유리하도록 정치 편향적 글을 올린 것으로 확인된다.”라며 “사이버사령부 부대원들의 댓글작전은 정치관여에 해당한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2013~2014년 국방부 조사본부가 사이버사 정치 관여 범행을 수사하자 김 전 장관이 축소 수사를 지시한 혐의에 대해서도 “‘군이 조직적으로 정치에 관여한 진상이 드러나는 건 안 된다’고 지시를 내리는 등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라며 유죄를 선고했다. 다만 김 전 장관이 사이버사 군무원 채용 당시 신원조사 대상자가 아닌데도 1급 신원조사를 시행하게 한 혐의에 대해선 “그런 지시를 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라며 무죄로 판단했다. 면접에서 특정 지역(호남) 출신을 배제하도록 한 혐의에 대해서도 “김 전 장관이 이를 직접 지시한 사실은 없다.”라며 인정하지 않았다.재판부는 김 전 장관에 대해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는 6월 항쟁 이후 명문화된 규정으로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데도, 이를 정면으로 위반한 건 헌법을 중대하게 침해한 것”이라며 “북한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활동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가 시작되자 이를 방해한 건 법치주의를 훼손한 것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며, 이 때문에 수사를 진행하지 못한 조사본부원들은 심한 내적 갈등을 겪었을 것”이라며 “건전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꾀하고 국민의 신뢰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라도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라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은 이날 선고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라며 “항소에 대해서는 검토해보겠다.”라고 밝혔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51) ‘M&A 승부사’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51) ‘M&A 승부사’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김 회장, 38년만에 그룹매출 43배 키워태양광사업과 해외사업 확장에 ‘올인’집행유예기간 끝나 경영전면복귀 관심 김승연(67) 회장이 이끄는 한화그룹의 역사는 인수·합병(M&A)의 역사다. 그는 굵직한 M&A를 성사시켜 그룹 회장에 취임한 1981년 당시 그룹 매출 1조 6000억원에서 2018년 68조원까지 키웠다. 자산규모는 7500억원에서 61조 3000억원, 국내 계열사 숫자는 20개에서 76개로 늘어 재계 8위로 올라섰다. 한양화학(한화케미컬), 대한생명보험(한화생명) 등을 비롯해 삼성테크윈(한화테크윈) 삼성탈레스(한화시스템) 삼성토탈(한화토탈) 삼성종합화학(한화종합화학) 등을 사들였다.  김 회장의 승부사 기질은 현재진행형이다. 핵심사업과 신사업을 중심으로 오는 2023년까지 모두 22조 원을 투자하고 3만 5000개의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항공기 부품 및 방위산업 분야에 4조원, 석유화학 부문에 5조원,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신규 리조트와 복합 쇼핑몰 개발 등 서비스산업에 4조원가량을 투자하기로 했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3020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태양광 분야의 투자를 강화하고 금융 부문에서는 별도로 추가 투자 규모를 정하기로 했다.  한화그룹은 김 회장의 지휘로 2010년 중국의 ‘솔라펀파워홀딩스’를 인수, ‘한화솔라원’으로 사명을 변경해 태양광 산업에 본격 진출했다. 2012년 독일의 태양광업체인 ‘큐셀’을 인수하고 2015년 태양광 사업의 양대 축이었던 한화큐셀과 한화솔라원을 ‘한화큐셀’로 통합했다. 이런 노력으로 미국, 독일, 일본, 한국 등 태양광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시장에 매물로 나와있는 롯데그룹의 금융 계열사를 인수할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 1월 말 한화생명을 통해 롯데카드 매각 예비입찰에 참여해 롯데그룹의 금융 계열사 인수전에 뛰어든 상태다.  김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글로벌사업 확대, 인재확보, 준법경영 등 3가지를 한화그룹의 경영방향으로 제시했다. 특히 글로벌사업 확대를 위해 베트남을 전진기지로 삼고 시장개척에 나선다는 포부를 밝혀 김 회장의 M&A의 DNA가 해외시장에서도 빛을 발할 지 관심사다.  김 회장이 회장 취임 이후 38년만에 그룹을 비약적으로 키운 것은 의리를 중시하는 한화그룹만의 독특한 조직문화가 크게 작용했다. 김 회장은 2010년 서울프라자호텔 리모델링으로 호텔이 6개월간 문을 닫게 되자 공사기간 모든 직원에게 유급휴가를 줬다. 2014년 한화건설 이라크 공사현장을 방문할 때 직원들이 회를 먹고 싶어 한다고 하자 광어회 600인분을 비행기로 공수했다. 미국 해군정보국 정보분석가로 일하다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미국 정부에 수감된 로버트 김을 개인적으로 계속 지원했다. 방위업체를 운영하는 것을 감안해 2011년 천안함 승조원 유가족중 일부를 한화그룹 계열사에 우선 채용했다. 지난해 10월 19일 한화이글스가 11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자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 내려가 10년 넘게 성원해준 팬들을 위해 1만 3000송이의 장미를 선물했다. 김 회장은 대주주지만 지난 5년간 표면적으로는 그룹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다. 지난 2014년 2월 회사와 주주들에게 3000억원대의 손실을 입힌 배임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아 한화, 한화케미칼, 한화건설, 한화L&C, 한화갤러리아, 한화테크엠, 한화이글스 등 7개 계열사 대표에서 물러났다. 이후 그룹의 주요 사안은 김창범 한화케미칼 부회장과 차남규 한화생명 부회장 등이 이끄는 그룹CEO 시니어보드에서 결정하고 이를 김 회장이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런데 지난 18일 5년간의 집행유예기간이 끝나자 김 회장이 그룹 전면에 다시 나서지 않겠냐는 전망이 대두됐다. 하지만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날 부터 2년동안 금융회사나 유죄판결을 받은 관련 업체의 취업에 제한이 있어 기존 회사로의 대표이사 복귀는 당장 힘들다. 다만 한화큐셀 등 태양광 관련 계열사 대표이사에 오를 가능성은 제기된다.  이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이 판결 이후에 각 계열사 이사회 중심으로 책임경영제를 운영해왔고, 대주주로서 주요사안을 관장했기 때문에 특정 회사의 등기임원으로 등재하는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경기고에 다니다가 1968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멘로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76년 드폴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룹에서 실무를 익히던 김 회장은 지난 1981년 한화그룹의 전신인 한국화약그룹 창업자인 부친 김종희 회장이 갑작스럽게 작고하면서 29세의 젊은 나이에 회사를 물려받았다. 경영 전면에 나선 지 38년째다. 개인적으로는 검찰과 악연이 있기도 했으며, 생존을 위해 선친의 손길이 잔뜩 묻은 우량 계열사들을 매각하기도 했다. 한화의 부활을 알리는 대한생명 인수때에는 로비 의혹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2세 경영의 성공적인 착근을 넘어 제2의 창업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부친의 타계 1년 후인 1982년 서정화 당시 내무부 장관의 장녀 서영민(58)씨와 결혼했다. 당시 서울대 약대 4학년이던 서씨는 결혼 이후에도 공부를 계속해 서울대 약대를 수석 졸업했다. 슬하에 동관(36), 동원(34), 동선(30) 등 세 아들을 뒀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박상현의 디지털 미디어] 청와대 국민청원이 인기 있는 진짜 이유

    [박상현의 디지털 미디어] 청와대 국민청원이 인기 있는 진짜 이유

    청와대 국민청원 제도는 문재인 정부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 중 하나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백악관의 ‘위 더 피플’(We The People) 사이트에서 착안했다고 하는데, 국민적 관심이나 참여도에서 백악관의 사이트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를 보충하는 청원제도가 이 정부에 들어서 처음 생겨난 개념은 아니다. 국민이 정부 부처나 기관을 상대로 의견을 제안할 수 있는 제도는 전에도 있었고, 청와대가 아닌 다른 부처의 웹사이트에도 온라인 민원, 국민신문고 등의 제도는 존재한다. 그런데 유독 청와대의 국민청원이 큰 인기를 끄는 진짜 이유는 뭘까? 사람들마다 다양한 이유를 들지만, 의외로 그 서비스가 가진 우수한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이야기하지 않는 게 안타깝다. UI란 복잡한 기계, 컴퓨터 등을 인간이 쉽게 이해하고 조작할 수 있게 해 주는 시스템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조작하는 기계나 모니터상의 모든 것들이 UI를 가지고 있다. 흔히 좋은 UI의 원칙으로 드는 것이 논리적 구조, 간결성, 시인성, 분명한 피드백인데,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는 그 원칙들을 거의 모두 만족시키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공공서비스다. 웹사이트에 가서 ‘지금 청원하기’ 버튼을 누르고, 자주 사용하는 SNS의 ‘소셜 로그인’ 버튼을 누른 후 바로 내용을 적어서 제출하면 끝난다. 국민청원 웹사이트가 가진 UI의 우수성은 다른 부처의 비슷한 서비스와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다른 정부 부처의 비슷한 서비스는 우리가 흔히 보는 전형적인 ‘한국식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깨알 같은 글자로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등등을 전부 적어 넣어야 하고, 휴대전화를 이용해 인증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특히 대부분 서비스가 그렇듯 주소를 적기 전에 반드시 우편번호를 적어야 한다. 그런데 우편번호를 찾으려면 주소를 적어야 한다. 그렇게 우편번호를 찾아서 기입한 후에 다시 주소를 적어야 하는 이상한 시스템이다. 내가 우편번호를 외우고 있어도 적어 넣을 수 없고, 반드시 주소를 두 번 적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우편번호를 실수로 잘못 적었을 때 생기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사용자에게 네가 시간을 더 사용해서 확인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복잡한 인증 절차로 대표되는 한국식 UI의 특징으로, 그 핵심은 혹시 모를 사고의 책임을 시스템이 아닌 사용자에게 넘기려는 데 있다. 보안을 위해서는 복잡성을 더해야 하는데, 사용자에게 복잡한 과정을 직접 수행하게 하는 것으로 해결해 버리는 것이다. 시스템이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전형적인 예다. 물론 이런 방식은 정부 부처 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부분 서비스에 사용되고 있다. 결국 청와대의 국민청원 페이지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의 담당자에 따르면 국민청원 페이지를 만들면서 복잡한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소셜 로그인을 도입하자고 했을 때 내부에서 반대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용자의 편의성을 우선으로 하자는 주장이 결국 이겼고, 그 결과 국민청원이 밀려들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물론 단순히 로그인이 쉽다고 좋은 UI가 아니다. 가령 앞서 이야기한 좋은 UI 원칙 중 피드백이 확실하지 않을 때 사용자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런데 청원 숫자가 20만명을 넘기면 청와대 비서관이나 장관급 책임자가 30일 내에 직접 답변하는 방식은 유사한 예를 찾기 힘들 정도로 확실한 피드백 시스템이다. 이 정도면 거의 중독성 있는 UI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청와대 국민청원이 인기 있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정책이 많이 달라졌다기보다는 그렇게 간결하고 피드백 분명한 정부의 UI를 국민이 처음 경험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으로서의 관료제는 어쩔 수 없이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 국가나 금융기관이 하는 일에는 절차가 있어야 하고, 각 절차에는 책임자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시스템이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복잡한 절차 뒤에 숨어 시스템 스스로를 보호하기 시작하면 관료제는 ‘관료주의’로 변한다. 사용자가 시스템의 존재 목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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