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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C와 주세마찰 우려/유럽국들 한국에 세율인하 요구

    국내의 위스키 및 코냑에 대한 주세율을 둘러싸고 한국과 EC(유럽공동체)간에 통상마찰이 우려되고 있다. 22일 무역협회에 따르면 유럽주조연맹은 최근 국내의 주세율조정에 불만을 품고 주세율추가인하를 요구하는 항의문을 우리정부와 EC집행위원회에 제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EC지역 국가들의 주세율인하 요구에 직면,위스키의 세율을 현행 2백%에서 1백50%로 인하하는 반면 코냑의 세율은 1백50%로 유지하는 내용의 주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EC지역국가중에서도 코냑의 수출국인 프랑스가 크게 반발,유럽주조연맹의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북한ㆍ소련 관계 급속악화/한­소 수교에 「비망록」 공개로 불만표시

    ◎소 “15개 공화국 독립지지” 공언/「북방 4섬」문제도 일 입장 두둔/소 외무 방북때 오는 26일 뉴욕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소외무장관회담이 열리는 등 한소 관계정상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과 소련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는 조짐을 보여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20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ㆍ3일 평양에서 열린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과 김영남외교부장간의 회담에서 한소 수교가 이뤄질 경우 일소간 최대현안인 북방4개도서 반환문제와 관련,소련측 입장을 지지해 오던 기존의 우호적 태도를 바꿔 일본측 입장을 지지하겠다는 뜻을 소련측에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은 또 소련내 15개 공화국의 분리자치독립을 지지하는 한편 중앙정부와는 별도로 이들 공화국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해 나갈 계획임을 셰바르드나제장관에게 밝혔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같은 태도변화는 특히 북한 정부기관지 「민주조선」이 지난 19일 북한ㆍ소련 외무장관회담에서 북한이 한소 국교수립에 반대하는 이유를 밝힌 비망록을 공개한 사실과도깊은 함수관계를 지닌 것으로 분석된다. 외무장관회담 등 고위급회담에서의 비망록과 같은 비밀문서를 일방적으로 공개한 사실은 외교관례상 극히 드문 일이라고 외교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 외교소식통은 이날 『셰바르드나제장관이 평양방문 당시 한소 수교의 불가피성을 설명했으나 북한은 소련을 협박하는 등 상당히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고 셰바르드나제장관을 수행했던 소련의 한 외교관이 우리측에 알려줬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또 셰바르드나제장관이 한소수교문제는 북한이 간여할 사항이 아닐 뿐더러 북한과는 별개의 문제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다른 소식통은 이와 관련,『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려는 소련과 북한의 관계는 셰바르드나제장관의 북한방문을 계기로 오히려 악화돼 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김일성주석의 지난 11일 급작스런 중국방문도 이러한 대소관계 악화와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또 『김 주석은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중국측 관계자와의 면담에서 주로 소ㆍ북한관계 냉각에 따른 후유증 최소화 방안 및 다각적인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관측된다』고 밝히고 『북경아시안게임 남북 공동응원단 구성,경평축구전 개최 등 일련의 대남 유화제스처도 김 주석의 방중 직후 나온 것으로 주목된다』고 말했다.
  • “한­소 수교는 한반도통일 역행”/대소 항의 「김영남비망록」 내용

    ◎“북한­소 동맹조약 유명무실화” 경고/“소련제 무기 수입 중단” 거센 반발도 북한은 지난 2일 김영남­셰바르드나제 소 외무장관회담때 한­소 수교가 「두개 한국」의 존재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통일역행 행위이며 지난 61년 7월 체결된 북­소 동맹조약을 유명무실한 것으로 되게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항의한 것으로 정무원 기관지 민주조선 19일 자가 보도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이 신문은 김영남­셰바르드나제간 회담에서 한­소 수교문제와 관련해 논의된 내용을 공개하면서 이 자리에서 김영남은 한­소 수교가 ▲한반도 분단현실을 인정하며 ▲소련이 북한과 첫 외교관계를 수립한 국가이고 한반도 분열에 책임있는 나라로서 한반도에 「두개 한국」이 존재함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한국의 북방정책을 실현시켜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소련과 한­미간의 「3각 결탁관계」를 형성하며 ▲북­소 동맹조약을 유명무실화 할 뿐 아니라 ▲한국민들의 통일의지를 막는다는 점을 들어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전했다. 김영남은 특히 한­소 수교시 소­북한간 동맹조약에 의거해 소련의 지원을 받아온 무기를 『자체로 마련하는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강조,소련으로부터의 무기수입 중단을 경고한 것으로 이 신문은 덧붙였다. 북한은 김영남의 이같은 항의내용을 비망록으로 작성,회담이 끝난 후에 소련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조선지는 소련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아 최근호(12일자)가 한소 수교는 『한소 양국 뿐 아니라 북한에도 이로운 일이며 소련은 자주국가 이므로 북한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데 언급,이는 『소련이 두개 조선 조작책동에 말려드는 것』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나라,다른 지역 동맹국의 이익마저 침입하면서 일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김영남이 셰바르드나제에게 전달한 6개 항목의 비망록 전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로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면 조선의 분열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조선반도에서의 긴장상태와 북남사이의 불신과 오해의 근원은분열상태 그 자체에 있다. 따라서 조선의 분열을 조장시키는 것은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되는 평화와 긴장완화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대결과 긴장격화를 초래하게 된다. 둘째로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가지는 것은 다른 나라들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가지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함께 조선을 분열시킨데 책임있는 나라이다. 또한 소련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창건되었을때 맨 처음으로 우리 공화국을 조선 민족의 유일한 합법적 국가로 인정한 나라이다. 그러한 소련이 이제와서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는다면 그것은 조선에 「두개 조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분열주의,명실공히 통일에 역행하는 행동으로 된다. 셋째로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남조선 당국자들의 북방정책을 실현시켜주는 것으로 된다. 북방정책의 본질은 남조선이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맺음으로써 우리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킬 뿐 아니라 미국의 전략대로 「교차승인」을 실현하여 조선을 영원히 두개 조선으론 분열시키려는 것이다. 소련이 이것을 모를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는 데로까지 나가는 것은 공공연히 통일에 역행하는 것으로 된다. 넷째로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면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제도를 뒤집어 엎으려는 미국과 남조선의 공동음모에 가담하여 「3각 결탁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된다. 이렇게 되면 남조선 당국자들은 소련이 저들의 편에 가담한 것을 코에 걸고 더욱 우쭐하고 교만해져서 우리를 독일식으로 흡수ㆍ통합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통일을 위한 북남대화를 파탄에로 이끌고 남북대결을 가일층 격화시킬 것이다. 다섯째로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으면 조­소 동맹조약은 스스로 유명무실한 것으로 되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동맹관계에 의거했던 일부 무기들도 자체로 마련하는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은 조선반도에서 군비경쟁을 격화시키게 되고 조선반도 정세를 극도로 첨예화시키게 한다. 더 나아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전반적인 정세를 첨예화시키게 될 것이다. 여섯째로 전체 조선인민들,특히는 남조선 인민들의 통일의지를 막는 것으로 된다. 남조선 인민들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통일열망이 고조되고 있는 시기에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면 그것은 통일에 대한 조성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고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는 것으로 된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나쁜 일이라는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강행한다면 조선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평화와 안전의 견지에서 보다 조­소 두나라 인민의 이익의 견지에서 보나 그 누구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 못할 것이다.
  • 잇단 “개방미소”… 평양은 변하는가/북측교류공세의 저변/전문가진단

    ◎체제 와해위험 극소화에 전력/“한­중 접근 저지 불가” 인식한 듯/장기적으론 「남북공존」 방식 택할 듯 북한의 대남 평화공세가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분단 45년 만에 처음으로 연형묵정무원총리 등 공식대표단을 서울에 파견,역사적인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을 가졌던 북한은 19일 황병기교수(이대) 등 17명의 우리측 음악인 기자들의 방북에 따른 신변보장을 책임지겠다고 통보해오는 한편 남북한 축구대표팀간의 친선경기 개최를 제의하는 등 분단 이후 가장 적극적이며 유화적인 대남자세를 취하고 있다. 더욱이 오는 10월16일에는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이 평양에서 열리게 돼 있어 범민족통일음악회(18∼24일),남북 축구친선경기(14일) 등 3개의 주목할 만한 행사가 10월중 평양에서 잇따라 개최될 것으로 보여 남북 관계개선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이같은 태도 돌변의 속셈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대부분의 북한문제전문가들은 북한이 현재 취하고 있는 적극적인 대남 유화제스처는이제까지의 경직된 모습과는 크게 달라진 것으로 장기적인 측면에서 남북 관계의 진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그러나 그 진의는 좀더 시간이 지나야 분명히 밝혀질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들이 제시하고 있는 분석은 두가지. 하나는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요구하는 외부,특히 소련과 중국의 압력에 더이상 저항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렀으며 이 결과 북한 스스로도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 인식을 갖게 됐고 이같은 현실인식을 토대로 대남자세의 변화를 꾀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분석은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으로는 본질적인 변화를 추구할 수 없기 때문에 최근에 나온 일련의 유화적인 대남제스처는 한소 수교와 한국의 유엔 단독가입 저지라는 당면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인 수단일 뿐 이라는 것이다. 유석렬교수(외교안보연구원)는 『한소 수교가 이뤄지면 소련무기를 수입하지 않겠다는 정무원 기관지 「민주조선」의 논평,북한ㆍ소외무장관회담에서 보여준 김영남외교부장의 반발등 북한은 소련의 개방압력에 강력히 저항하고 나섰으나 결과는 보다 강력한 압력만을 불러왔을 뿐』이라고 지적하고 『북한은 한소 수교,더 나아가 아시안게임 이후 예상되는 한중 관계개선을 더이상 저지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북한은 이제까지의 반발과 저항을 자제하고 앞으로 북한체제에 밀어닥칠 개방과 개혁의 물결에 맞서 어떻게 하는 것이 체제와해의 위협을 최소화하는가 하는 문제에 골몰하게 됐고 이같은 결과로 적극적인 평화공세를 취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최근 대외정치에 있어서도 주체사상이나 남조선 혁명론을 강조하기보다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거듭 강조하고 「인민중심의 정책」을 우선하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예상되는 개혁과 개방에 따른 북한주민의 반응에 북한의 집권층이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북한은 시간이 지날수록 보다 구체적인 정책전환을 시도할 것이며 대남관계에 있어서도 평화공존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기존의 연방제 통일방안의의미 또한 남조선 해방전술이 아닌 체제공론적 성격으로 바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반해 윤병익교수(통일연수원)는 『남북한의 체제공존과 이를 바탕으로 한 교류 증진은 곧 북한체제의 붕괴를 가져올 뿐이라고 믿고 있는 북한이 대남정책의 실질적인 변화를 꾀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면서 북한이 보이고 있는 최근의 태도변화는 단지 한소 수교의 지연 또는 한국의 유엔 단독가입 저지라는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한소 수교 또는 한국의 유엔 단독가입은 「하나의 조선」을 추구해온 북한의 대남정책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으로 북한은 이의 저지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김창순씨(북한문제연구소 이사장)는 모든 상황이 바뀌는데 자신만이 변화를 거부할 때 얻는 것은 고립뿐이기 때문에 북한은 이같은 상황논리에 밀려 변화를 내외에 과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45년간 북한을 지배해온 김일성과 그 통치집단이 엄존해 있는 한 협상이 변한다 해도본질은 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전략적 이익을 위한 전술적 후퇴라는 측면에서 유연한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북한체제가 결코 무조건적으로 개방을 외면하고 있지 않다는 식의 정치적 유연성을 대외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다는 선전적 효과를 위해 본질을 고수한 채 외형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태도 변화는 결국 장기적인 측면에서 남북 관계의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게 김창순씨의 주장이다.
  • “팔자”주춤… 주가 이틀째 보합/0.8P올라 「6백13」

    ◎거래량은 60만주 늘어 미약한대로 상승세가 이틀째 이어졌다. 11일 주식시장은 걱정스러운 집중호우로 주문 건수 자체가 전날의 70% 수준에 머무른 가운데 장세는 매도층의 관망화가 한층 심해지고 증안기금이 적극적으로 나서 플러스권을 유지했다. 종가는 전일장보다 0.86포인트 올라 종합지수 6백13.49를 기록했다. 지수 상승이 미미하다고 할 수 있으나 5일간의 속락세를 종료시킨 전날의 플러스 0.06포인트와 대조하면 반등력이 나름대로 터를 넓힌 것으로 보여진다. 주문건수는 줄었으나 거래량은 전날보다 오히려 60만주정도 늘어 5백28만주를 기록했다. 증안기금은 전날과 비슷하게 3백억원가량 주문을 냈으며 호가가 약간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증안기금의 뒷받침이 조금 커지긴 했으나 미납물량 청산과 관련해 증권사들이 한달간의 유예기간 중에 「반강제적」인 자율정리를 시행하기로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날의 반등세 확대는 다소 의외이기도 하다. 관계자들은 「반대매매」를 악재로 보는 분위기가 크게 약화되었다고 분석하는 동시에 청산의 구체적인 상황 진전에 따라 현재의 매도 유예세력이 「팔자」로 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빈곤한 매수력이 이를 반증한다는 것이다. 이날 후장 한때 마이너스로 반락했지만 반등세가 주조를 이뤘고 등락폭이 2포인트에 지나지 않았다. 3백54개 종목이 상승(상한가 19개)했고 2백26개 종목이 하락(하한가 18개)했다.
  • “개점 휴업” 정기국회… 양측 속사정과 전략

    ◎“선등원”ㆍ“선양보”… 팽팽한 여야 신경전/갖가지 「카드」로 야에 협상을 재촉 여/「전제」 고수… 복귀명분 극대화 작전 야 여야는 10일 제151회 정기국회 개회에 앞서 각각 의총을 열어 정국정상화방안 및 정기국회대책등을 논의했으나 뚜렷한 접근점을 찾지 못한 채 서로의 기존입장만 되풀이 확인해 정기국회 전망을 어둡게 했다. 민자당은 이날 상오 원내대책회의와 의총을 잇달아 열어 소속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했음에도 야권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지자제 전면실시등 5개항에 대한 토론없이 「야권의 무조건 등원」을 촉구하는 선에서 머물렀다. 평민당도 이날 의총 성명서에서 내각제 포기선언,지자제전면실시 등 5개 요구사항에 대해 여권이 구체적이고 성의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정기국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종전 입장을 되풀이 했다. 이에따라 여야 협상에서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한 이날 개회된 정기국회는 상당기간동안 공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민자당은 이날 상오 서울 여의도 맨하턴호텔에서김영삼대표최고위원 주재로 총무단과 국회상임위원장및 간사등이 참석한 가운데 원내대책회의를 연데 이어 국회에서 의총을 소집했으나 대책논의보다는 국회정상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모양새를 갖추는데 치중한 느낌. 이날 두차례에 걸쳐 열린 회의에서 민자당은 야권의 등원거부를 미리 의식한 듯 등원거부에 따른 구체적인 대응책 논의는 13일의 의원세미나로 미루고 지금까지 되풀이 해온 「야권의 무조건 등원」을 다시한번 촉구하는 성명서를 채택하는 것으로 매듭. 민자당이 이처럼 소극적인 자세로 야권의 공세에 맞서고 있는 것은 야권의 요구조건중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내용이 없는데다 자칫 미리 대안을 제시했을 경우 협상카드로서 효용가치를 상실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 또 야권은 협상보다는 독자적인 등원명분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간파,시간을 끌수록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풀이. 이에따라 이날 비공개로 열린 의총에서도 당지도부는 『야권이 등원만하면 여권으로부터 상당한 양보를 얻어 낼 수 있다』는 「냄새」 정도만 피우면서 『인내를 갖고 대화와 협상을 하자』고 유도. 자유토론에서도 국회정상화문제와 관련,『무작정 정기국회를 공전시킬 것이 아니라 야당이 등원할 때까지 당특위및 분과위등을 전면 가동하여 나름대로 국정을 심도있게 논의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박태권의원),『국회를 단독 운영하더라도 옳은 일만하면 국민들도 지지를 보내게 될 것』(박경수의원)이라는 의견 정도만 개진됐을 뿐 대부분 지역구내의 계파간 갈등,지역구 사업,선거법 개정문제 등을 논의하는 것으로 소모. ○…이날 열린 평민당의원총회는 「사퇴정국」의 원인과 그 타개책에 대한 여권의 책임과 우루과이라운드ㆍ중동사태 등과 관련한 민생문제 및 남북문제 등 급변하는 내외 정세에 대한 여야 공동책임을 주조로 하는 결의문을 채택. 이는 야당의 국회복귀를 위한 적정선의 등원명분을 여권에 촉구하는 「시그널」일 수도 있고 「유사시」 독자적 등원결단을 위한 평민당 나름의 명분 축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듯. 물론 평민당은 이날 의총에서 지난 임시국회의 파행과 관련,민자당 김동영원내총무와 김재광국회부의장의 인책을 요구하는 한편 이른바 시국수습을 위한 5개항을 여권이 수용하지 않으면 국회복귀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재확인. 그러나 여권의 전면굴복을 뜻하는 이같은 요구가 전부 수용되리라곤 평민당지도부도 내심 기대하지 않고 있는 실정. 또 사퇴정국의 장기화는 그 자체로 평민당으로서도 엄청난 부담인 것도 사실. 왜냐하면 사퇴정국이 장기화될 경우 평민당으로서는 장외집회 이외에는 별다른 대여투쟁수단이 없는데다 장외투쟁이라는 대여 전면전을 펴기에는 명분도 약할 뿐만 아니라 야권통합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의 군중집회는 지역성을 토대로 한 기존 지지기반을 재확인 하는 「소모전」에 그칠 공산이 크기 때문. 따라서 평민당은 당분간 계속 원외에 머물면서 「시국타개 5개항」 가운데 어느 정도의 실효성을 거둘 수 있는 지자제문제와 지난 임시국회에서의 법안 여당 단독처리에 대한 시정조치 등을 「물밑대화」를 통해서 촉구하면서 민생문제ㆍ남북문제ㆍ함평 영광 보선참여 등을 명분으로 국회복귀의 타이밍을 저울질 할 전망.
  • 북녘 손님을 보내며… /실향작가 강용준씨

    ◎“겨우 잡힌 「통일의 가닥」 놓칠 수 없기에 「망향설움」도 삼키며 화답 기다리려오”/새벽부터 통일로 달려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5년쯤 전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그때도 이와 비슷한 취지와 내용의 글을 어느 일간지에 쓴 일이 있다. 상당한 세월의 흐름이 있은 뒤의 얘기라 지금 그 구체적인 내용이며 정확한 날짜 등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무슨 가무단의 교환방문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했던 바로 그 회담때의 일이 아니었던가 싶고,그나마 그때 가봐야 알 수 있지 않겠느냐는 식의 다분히 냉소와 불신이 주조가 된 그런 글이었지 싶은 생각이 든다. 이제 그로부터 5년간의 세월이 지나 북측 대표단을 다시 맞게 되었고,3박4일 동안의 일정이 모두 끝나 이제 다시 또 그들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우선 결론부터 얘기하면 5년전의 그때와 거의 비슷한 내용 비슷한 느낌을 되풀이 확인하고 체험하게 된다는 점이다. 「아이고,그 가사에 또 그 곡조로구나」 이렇게 다가온다. 예의 그 불신감이며 냉소라고 하는 악마 같은 놈 말이다. 이 점 필자는분명이 해두려한다. 어떤 당위성이나 분위기의 압력 때문에 있는 것을 없다고 하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필자 개인의 경우 그렇게는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저쪽의 이른바 통일전선 노선이 변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우리는 저쪽을 믿어야 하고 또한 믿을 수 있으며,그래야지만 민족의 숙원인 「통일」은 우리앞에 바짝 다가서게 된다. 하는 투의 발언을 어느 얼빠진 대학교수 하나가 했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이야말로 대단히 수상하고 진짜로 얼빠진 언동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결과적으로 오히려 반통일주의자의 행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속으로는 이렇다 할 신념도 자신감도 없으면서 그저 시세에 따라 무책임하게 언동해대는 감상주의적 작태,혹은 또 그 얄팍한 인기주의 때문에 이랬다 저랬다하는 식의 편승주의 내지 파렴치한 기회주의적 작태를 필자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점 대단히 기이하지만 이번은 그 색감이며 분위기가 약간은 다르게 다가온다. 물론 아직은 너무 막연하고 애매모호하기 짝이없어서 그 섬세한 기미의 핵심을 족집게로 집어내듯이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쨌든 전체적으로 와닿는 느낌이 전과는 조금 다르다. 4일 상오 10시경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으로 넘어온 북측 대표들의 표정이며 언동들이 비교적 밝고 활기에 차 있었다는 점,서울이 처음이라는 연형묵 총리가 계속해서 『45년동안 넘어서지 못한 곳을 오늘 넘어와 보니 쉽게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을때 그것이 예의를 갖춘 인사말쯤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가슴에 와닿는 부피같은 것 때문에 이제까지 많이 보아온 그 과장된 경직성의 제스처며 혹은 또 그 무지막지한 혁명선동자 같은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는데 어쩌면 이런 사정들 때문이었는가. 북쪽의 연총리가 경제테크노크라트 출신이라는 사실도 이쪽의 신경을 풀어놓는 일에 다소간의 심리적 기능으로 작용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강영훈 총리가 주최한 만찬에서 『여기 북과 남의 동포형제들이 어울려 있지만 누가 북이고 누가 남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은 우리가 갈라져 있는 것이 얼마나 참을 수 없고 비현실적인가를 말해준다』고 했다는 대목을 기사를 통해 읽으면서 필자는 솔직히 가슴이 뭉클했었다. 그런데 남북한 유엔 단일가입 문제,팀스피리트훈련 문제,콘크리트장벽 철거문제,미군 및 핵철수문제 등을 다시 들고 나왔을 때는『아이고』하고 한숨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이것이 또 그 판에 박은 자장가인 것이다. 남북문제라고 할 때 가장 현실적인 당면의 문제이면서 절실하고 또한 가장 해결이 쉬운 이산가족의 재회문제에 대하여 북측은 거의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또한 필자는 그렇게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참을 수 없고 비현실적인가를 말한 것」이 불과 몇시간 전의 일이었는데…. 막말로 필자는 우리식의 나이로 겨우 스무살일 때 그림자까지 합쳐야 겨우 혈혈단신의 몸으로 내려온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 그 사이에는 자그마치 40년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의 틈이 끼어들었고 따라서 내일이면 환갑의 나이가 된다. 앞으로 필자몫의 시간이 어느정도나 남아있는 것일까. 건강관리를 제대로 해오지 못한 터라 결코 많은 시간이 남아 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흔한 말로 그 전에 한번쯤이라도 고향땅을 밟아보아야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부모형제의 생사라도 확인해 보아야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제 정말로 시간이 없지 않을까. 근년으로 접어들면서 필자는 이런 식의 절박감 같은 것을 일종의 섬뜩한 본능처럼 종종 체험하게 된다. 그래 필자의 경우 속으로는 불신감과 냉소감으로(더 노골적으로는 분노감과 증오감으로) 속이 편치가 않으면서도 북측 대표들이 판문각을 넘어오는 그 시각부터 3박4일간의 일정이 모두 끝나 돌아가는 그 시각까지 내내 텔레비전앞에 붙박이듯 앉아서 양측 대표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흡사 기도라도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이른바 실세라고 하는 인물들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들인지 필자 같은 사람의 처지로서는 알 길도 없고 또한 솔직히 관심도 없지만 그래도 어쨋든 한 국가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총리들이 아닌가. 이번만은 어떻게든 좀 해달라 이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그들의 언동 하나하나를 주시했던 것이다. 북측 대표들이 돌아가는 7일 아침 필자는 참 웃기지도 않게 평소 같으면 9시쯤이나 되어야 겨우 일어나 꾸무럭대기 시작하는 평소의 생활패턴에도 불구하고 진새벽부터 일어나 소란을 피웠고 이번엔 서둘러 그들이 거쳐갈 통일로까지 직접 달려갔으며 그리하여 또한 그들의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역시 이제 알알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그 절박감과 또한 기도라도 하고 싶은 간절한 염원 때문이었다. 원컨대 원로에 몸들 편히 잘들 가시도록. 아울러 부탁하거니와 85년도인가 가무단을 따라 서울을 다녀간 기자들을 텔레비전앞에 끌어다 놓고는 『거 보니까니 남반부 인민들은 거저 소원이 밥이라도 한번 실컷 먹어보구 죽었으믄 한이 없갔다 그러더구만요』하는 식의 그 우스꽝스러운 짓거리 역시 다시는 되풀이하지 마시도록 당부한다. □약력 ㆍ1931년 황해도 안악태생 ㆍ1950년 평양사대 재학중 인민군 입대,참전중 포로 ㆍ1960년 「사상계」 제1회 신인상에 「철조망」 당선 문단데뷔 ㆍ한국문학 창작상ㆍ작가상ㆍ대한민국문학상 수상.
  • 북 언론,강총리 기사는 간단히 취급/북한언론의 남북총리회담 보도

    ◎연총리 관련기사는 전문게재 “대조”/주관적 표현 일관… 남한언론 비판도 북한은 남북 고위급회담과 관련,5일과 6일 연형묵 총리의 기조발언 내용을 되풀이 보도하는 가운데 고건 서울시장이 북측 대표단을 위해 만찬을 베푼 소식을 전하는 한편 평양방송과 노동신문을 통해 한국 안내원들과 기자들이 북측 기자들의 취재활동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평양방송은 남북 고위급회담 제2일 회의가 비공개로 인터콘티넨틀 호텔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6일 상오 보도했다. 이 방송은 이에 앞서 5일 열린 첫날 회담에서 북한측이 정치 군사적 대결을 해소하는 문제에 의의를 부여하면서 가장 긴급한문제로 ▲유엔의 「단일의석ㆍ공동가입」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 ▲문익환 목사ㆍ임수경양 등 방북인사의 석방문제 해결을 제의했다고 소개했다.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5일 자정뉴스를 통해 고건 서울시장이 북측 대표단을 위해 만찬을 베푼 소식을 자세히 보도했다. 북한 방송들은 이날 만찬에서 연형묵 총리가 행한 연설내용을 상세히 보도한 후 고건서울시장이 『북측 대표단을 열렬히 환영하며 이번 회담이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평양방송은 5일 상오와 하오 두차례에 걸쳐 평양방송위원회 취재단이 보내온 소식을 통해 한국측이 북측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평양방송은 이날 『우리대표단 일행이 가 닿는 곳 마다에 기자완장을 두른 사람들과 안내표식을 단 사람들이 꽉 모여 인해전술로 우리 대표단과 수행원,기자들의 활동에 장애를 조성하고 있다』고 전하고 『이번 무례한 행동을 그저 스쳐 지내 보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행동은 『대화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처사』라고 강조했다. ○…정무원 기관지 민주조선은 5일자에서 4일밤의 만찬회를 보도했는데 연형묵 총리의 만찬사가 전문에 가깝게 소개된 반면 강영훈 총리 만찬사는 단 한문장만 실었다. 기사 곳곳에는 주장과 비평과 비난의 주관적 표현들이 뒤섞여 있어 뉴스기사인지 논평인지 분간이 힘들 정도. 이 신문은 4일자 우리 석간신문에 실린 서울 서초구 우면동 일대 철거민 기사를 인용,「축사를 연상케하는 천막집 한채에 평균 4∼5가구가 살고 있다」며 「빈민들의 비참한 처지」를 애써 부각시키기도. ○…로동신문은 5일 임수경양의 석방을 촉구하는 논평과 평양연극영화대학에 명예학생으로 등록된 임양이 졸업장을 받게 됐다는 소식,전대협의 회담관련 성명 등 임양이나 전대협 관련기사 등을 다양하게 취급했다. 그러나 4일 우리측 부주의로 일어난 북측 대표단 차량의 연쇄충돌사고 소식은 일체 다루지 않았다. ○…북한 방송들의 기사방향과 내용도 신문과 비슷하다. 평양방송과 중앙방송은 5일과 6일 연형묵 총리의 회담기조발언을 되풀이 보도하는 틈틈이 「남측 안내원과 기자들의 취재방해책동」ㆍ「남조선 신문들의 도전적이고 모략적인 중상」 등을 2∼3차례씩 보도했다. ○…당기관지 로동신문은 5일 「고위급회담에 찬물을 끼얹는 고의적인 행동」제하의 논평을 게재,동아ㆍ조선 등 한국의 주요 신문들이 북한 사회체제를 헐뜯는 도발적인 글을 게재했을 뿐 아니라 과거에 서울을 방문한 바 있는 북측 대표단원들을 모해하는 보도를 발표했다고 비난했다. 이 신문은 『남조선 신문 전반이 우리 대표단을 손님으로 맞아놓고 그런 도전적이고 모략적인 글을 일제히 실은 것은 예절도 없고 도덕도 없는 무례한 행동이며 우리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라면서 『북남 고위급회담을 잘 진척시켜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며 통일의 돌파구를 여는 문제를 비롯한 당면한 현안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 보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방송도 5일 북측 기자단의 서울발 소식을 통해 한국측이 인해전술로 북측 기자들의 취재활동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남측의 안내표식을 단 사람들이 3중 4중의 진을 치고 테이프를 가지러 가는 것마저 가로막고 있다』『우리 대표단이 든 호텔을 폭압무력으로 봉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신문ㆍ방송들은 평북 철산에서 월남한 임춘심씨(69)가 남북 고위급회담에 참석중인 북측의 임춘길 책임보좌관(53)이 자신의 동생이라고 주장한데 대해 『우리측 대표단이 서울에 도착하기 바쁘게 그 무슨 누구의 누이라느니,그 누구와 친척간이라 하며 왕청같은(전혀 다르게 엉뚱한) 사람들이 나타나는가 하면 이런 사람들을 텔레비전에 출연시켜 우리를 건드리고 있다』『일부 신문들은 이번 회담참가를 위해 서울에 온 일부 성원들의 친척이 나타났다느니 뭐니 하는 사실과 맞지도 않는 글을 싣고 있다』고 주장했다.
  • 북기자,취재 열올려/북선전 책자주며 선심공세도

    ◎예정없던 언론사 2곳도 방문 북쪽기자 가운데 30명은 이날상오 당초 예정에 없던 동아일보사와 한겨레신문사를 반씩 나누어 방문,신문제작과정 등을 살펴보았다. 민주조선 안복만논설위원 등 북쪽기자 19명은 상오11시45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를 방문,40여분동안 편집국ㆍ노조사무실ㆍ소년동아일보 제작실 등에서 신문제작과정을 살펴보고 기자들과 환담을 나눴다. 안논설위원 등은 김중배편집국장 등과 인사를 나눈뒤 평양축전 비디오테이프ㆍ공예품 등과 동아일보 창사 70주년 기념쟁반을 선물로 교환했다. 이들과는 또다른 북쪽기자 21명은 상오11시50분쯤 수행원 등 1백50여명과 함께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2가 한겨레신문을 방문했다. 이들은 『남한을 방문할때마다 남한국민들의 통일열기가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북쪽기자들은 편집국 곳곳을 돌아다녔고 일부는 직원들과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북쪽기자들은 송건호사장에게 『조국통일의 걸림돌이되는 국가보안법 등을 철폐하는데 앞장서 달라』고 말하는 등 장황한 통일논리를 펴기도 했다. 북쪽기자들은 시민ㆍ학생들에게 북한을 선전하는 팸플릿과 북한가요가 담긴 테이프 등을 나눠주며 선심공세를 펴기도 했다.
  • “북한기자 「김상연」은 내동생”(조약돌)

    ◎60대,호텔서 “찾아달라”사정 ○…6일 하오9시50분쯤 북측기자들이 롯데호텔에서의 만찬을 마치고 인터콘티넨탈호텔로 들어서자 호텔앞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단 김호연씨(64ㆍ성남시 수정구 신정동 73)가 『내동생을 찾으러 왔다』며 호텔 2층에 자리잡은 북한측 프레스센터까지 따라들어가 소리를 치는 바람에 북한기자들이 한때 당황. 황해도 연백군 운산면 용창부락이 고향이라는 김씨는 『TV에서 본 「김상연」이란 북한기자가 내 동생이 틀림없다』며 10여분동안 동생을 만나게 해줄 것을 요구하다 당사자인 민주조선의 김상현기자가 나와 『이름의 끝자와 고향 등이 모두 다르다』고 부인하자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서기도.
  • 두 총리,민속공연 보며 “잦은 귀엣말”

    ◎“회담 진전있으면 경ㆍ평 축구전”/구도영화에 낯선듯 시종 흥미롭게 관람/“만찬분위기 너무 좋다” 연총리 수차례 강조 ▷서울시장 만찬◁ ○…5일 저녁 고건 서울시장이 북측 대표단을 위해 서울 신라호텔에서 베푼 만찬에는 연총리를 비롯한 북측 대표단과 우리측 대표단ㆍ각계 초청인사 등 2백50여명이 참석해 성황. ○2백50명 모여 성황 이날 만찬의 우리측 초청인사로는 박영석 국사편찬위원장,조병화 문인협회회장,김상준 서울시교육감,조중훈 한진그룹회장,정희경 전 현대고교교장(85년 적십자회담대표) 등 각계인사들이 참석. 이날 헤드테이블에는 남북의 강ㆍ연총리와 고시장,홍성철 통일원장관,김광진 인민무력부부부장,정호근 합참의장,정희경씨,선우종원 평통 부의장 등 8명이 자리. 고시장은 만찬사에서 『이번의 만남이 서울과 평양의 교류를 다시 잇는 역사의 큰 장을 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해 이번 회담으로 남북관계의 진전이 있을 경우 경ㆍ평 정기축구전등 교류사업을 추진할 것임을 시사. 연총리는 답사에서 『서울과 평양을더이상 먼 곳에 두지말고 당국자만이 아니라 민간인도 서로 다닐 수 있도록 하자』고 제의하고 『북측은 같은 민족으로서 남침의사가 없고 남측에 위협을 가하지도 않을 것을 확언한다』고 부연. 이날 만찬에 앞서 칵테일을 들고 환담하는 자리에서 강총리가 연총리에게 정희경씨 김천주 주부클럽중앙회장 등 여성참석자 등을 소개했는데 김회장이 『남한에서는 우리 여성들이 열심히 일해서 나라를 이만큼 발전시켰다』고 말하자 연총리는 『그래서 북조선에서는 여성이 역사의 두 수레바퀴중 한쪽을 움직인다는 말이 있다』고 응수. 정희경씨는 지난 85년 적십자회담 대표로 평양을 방문했을때 안면을 익혔던 김상현 민주조선 기자를 알아보고 서로 반가워하면서 추억담을 교환. 만찬이 진행되는 도중 헤드테이블에서는 강ㆍ연총리와 다른 참석자들간에 화기애애한 정담이 오갔다고 한 참석자가 전언. 연총리는 금강산 폭포이름을 딴 북한담배 「삼일포」를 피우다가 『함북 회령담배가 질이 좋으나 평양성천등 여러군데에서 난 입담배를 섞어서 만든 것이 더욱맛이 있다』고 소개. 연총리는 이어 자신과 북측대표단이 피웠던 담배를 고시장등에게 나눠주기도 했으며 우리담배인 「88라이트」도 피워본뒤 『맛있다』고 촌평.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은 이날 인삼이 섞인 음식이 나오자 『개성 인삼은 코에 대면 냄새가 진동하고 조금 많이 먹으면 코피가 쏟아질 정도인데 이 인삼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언급. 그러나 연총리는 『음식이 북조선 음식맛과 똑같다』면서 『음식은 통일됐는데 사람들만 통일되면 좋겠다』고 말하고 만찬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수차례 강조. 강총리가 『서울시장이 총리보다 더 높다』고 조크를 하자 연총리는 『강선생은 항상 겸손하시더라』고 응수. 이날 만찬도중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남침이다 북침이다는 생각을 버린다면 팀스피리트훈련도 중지할 수 있고 군대도 줄일 수 있다』고 까다로운 군비문제를 꺼내자 우리측 정호근 합참의장은 『서울시민들은 지금도 불안할때가 많으며 평화적분위기 조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맞받아 잠시 분위기가 어색했으나 강총리가 『좋은음식 먹으면서 그런 얘긴 그만하자』고 무마. 이날 만찬에 참석한 북측 기자들은 『남쪽 신문들이 대표단원들의 친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도하는 것 같다』며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 한 북측 기자는 『우리가 서로 헤어졌던 혈육들을 만나게 해주자고 회담을 하는데 친척이 있다면 왜 안 만나겠느냐』며 『그동안 남쪽신문에 보도된 친척주장은 확인해본 결과 전부 사실이 아니었으며 이같은 보도를 계속한다는 것은 회담분위기를 깨뜨리려는 저의로 볼 수 밖에 없다』고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인삼차등 선물 준비 한편 연총리는 강총리에게 은차세트ㆍ수예품ㆍ전칠꽃병ㆍ다색단ㆍ인삼차 2백봉지ㆍ술 5병ㆍ담배 20갑 등을,우리측 대표들에게 은신선로ㆍ수예품ㆍ도자기꽃병ㆍ다색단ㆍ인삼차 1백봉지ㆍ술 3병ㆍ담배 10갑 등을 각각 선물로 가져왔으며 금명 이를 전달할 것이라고 북측의 한 관계자가 우리 정부당국자에게 전언. ▷영화관람◁ ○…연총리등 북측 대표단은 강총리를 제외한 우리측 대표단 6명과 함께 이날 저녁 만찬후 종합무역전시관 4층 국제회의실에서 극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관람. 북측 대표단은 불교의 구도과정을 그린 이 영화가 생소한 탓인지 시종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켜봤는데 연총리는 홍성철 통일원장관과 나란히 앉아 영화가 끝날 때까지 2시간동안 한번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특히 북측 수행원과 기자들은 화면에 대학가의 시위장면이 나오자 옆에 앉은 우리측 안내원들에게 질문을 하는등 관심을 표시. 영화가 끝난 뒤 북측 기자 및 수행원들은 이 영화가 빨치산을 아버지로 둔 남자주인공이 연좌제로 방황하는 모습까지 다루는등 소재에 제약이 없는데 대해 다소 놀라워하는 모습. 연총리는 북측 대표단은 영화가 끝난 뒤 이날 밤 11시30분쯤 호텔로 돌아와 밤늦게 취침. ▷민속공연 관람◁ ○…남북 대표단은 이날 하오 쉐라톤워커힐 가야금식당에서 우리측이 마련한 민속공연을 1시간30여분동안 관람하며 즐거운 한때. 이날 하오 2시35분쯤 나란히 입장한 강영훈 총리와 북측 연형묵 총리는 무대앞에 마련된 좌석에 앉아 민속공연을 관람하면서 자주 귀엣말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 주목. 민속공연도중 북측 기자들은 지금은 북측에서 거의 사라진 우리전래의 민속음악이나 춤이 나올때는 자주 공연안내 팸플릿을 뒤적였으며 이따금 공연내용을 기록. 특히 북 장구 꽹과리 징 등이 한데 어우러져 흥겨운 장단을 맞추는 사물놀이 순서에는 공연안내 팰플릿을 보는 북측 관계자들의 모습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기도.
  • 「민주조선」 부주필등 거의가 「남한통」/북한취재단 50명의 면면

    ◎중진급 망라… 언론공세 펼 듯/19명은 두번째 방문… 문화계 인사도 다수 서울회담에 참가할 것으로 통보된 북한측 기자단의 명단은 모두 50명. 북한측은 이들의 소속과 직책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이제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기자단 50명중에는 로동신문 논설위원인 엄일규를 비롯해 문예총제 1부위원장인 최영화,민주조선 부주필인 안복만 등 북한언론계의 중진들이 대거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져 서울회담을 계기로 대대적인 언론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로동신문의 논설위원인 엄일규는 대남통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난 5월 한달동안만 해도 「분단장벽에 대한 역사의 기록은 결코 지울 수 없다」(3일)를 비롯,「불법무법의 파쇼광란」(8일ㆍ문화방송 경찰병력투입 관련),「악랄한 도전,오만무례한 횡포」(26일ㆍ전대협의 미 대사관 항의방문단파견 관련) 등의 기명기사를 쓰는 등 주로 남한내부의 투쟁을 고취시키는 논평을 맡아왔다. 이밖에 로동신문기자로는 한배근ㆍ리길성 등이 있다. 로동신문은 연중무휴로 주7회 매일6면을 발행하고 있는데 발행부수는 90여만부로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 10만부,기타 신문 4만∼5만부에 비해 독보적인 위치를 치지하고 있다. 편집국에는 12개 부서가 있으며 특히 남조선부가 따로 있어 매일 한면씩 남조선면을 내고 있다. 로동신문 다음으로 비중있는 신문은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 이 신문은 부주필 안복만을 서울에 보낸다. 안은 87년 5월 부주필에 임명돼 88년 7월에는 북한을 방문한 루마니아신문대표단과 정준기부총리와의 회동에 배석하기도 했다. 64년 사로청중앙위위원으로 얼굴을 나타내기 시작해 73년에는 직총평남도위원장에 올랐으며 85년에는 북한측 올림픽위원회위원 자격으로 로잔체육회담대표를 맡기도 했다. 안과 함께 민주조선기자로 확인된 사람은 박춘민 김상현,리강후 등. 김상현과 리강후는 판문점에서 열리는 각종 남북대화시 일선 취재를 해왔으며 박춘민은 남조선관련 부서의 부장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론계 인사는 아니지만 기자단의 명단에 올라있는 최영화는 문예총제 1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문화예술계의대표적인 인물의 하나. 지난해 3월 북한이 제의한 남북 작가회담 예비회담의 북측 대표단장을 맡았었다. 또 지난해 4월에는 밀입북한 작가 황석영씨와 좌담회를 갖기도 했다. 최는 53년 작가동맹중앙위위원에 선출된 이후 줄곧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해 왔는데 그동안 맡았던 직위는 김일성종합대학 문학부강좌장(56년) 작가동맹부위원장(68년) 문예총부위원장(73년) 등. 현재는 평화옹호전국민족위부의장을 겸직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로동신문 부주필인 서동범을 기자단에서 제외하고 강두한ㆍ문광우ㆍ엄정온 등 3명을 추가로 기자단에 포함시킨다고 알려왔는데 이중 강두한은 조총련의 조선신보사 부장으로 확인됐다. 한편 이번에 오는 북한기자 50명중 김천일ㆍ홍창식 등 19명은 지난 85년 12월 서울에서 열렸던 제10차 남북 적십자본회담때 서울에 왔던 「기자」들로 밝혀졌다.
  • “이젠 「폐쇄의 빗장」을 푸시오”/강용준

    ◎「상투적 조건」 들어 북녘 망향대열 막아서야 됩니까/김일성주석에 띄우는 어느 작가의 편지(서울신문 광복 45주년 특집) 김일성주석. 이제부터 필자는 비록 제한된 지면인 대로 평소 필자가 『이놈만은…』하고 벼르며 생각해오던 한두가지 고언을 기탄없이 적어볼까 합니다. 피차 멀쩡한 처지에 입에 발린 인사치레 따위는 생략하겠습니다. 지난 71년 8월쯤의 일입니다. 서울의 최두선 한적총재는 1천만 이산가족 찾기운동에 관한 메시지를 귀측을 향해 띄우게 되고 귀측 역시 이산가족 찾기운동은 물론 가족의 자유왕래며 친척·친구 등의 서신교환사업도 아울러 이참에 같이 추가하되 10월중의 제네바가 아니라 당장 내달 9월중 판문점에서 만나자,이렇게 대단히 시원시원하게,순발력있게 대응해나왔습니다. 그 결과 그해 9월20일 제1차 예비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고 솔직이 일말의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으면서도 온 국민들 또한 무언가 이참에 민족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사업 하나가 성사되기는 될 모양이다 싶어 사태의 결과를 긴장감속에서 주시했습니다. 그러나 다 아시다시피 회담은 채 두달이 못가서 삐거덕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락정보부장이며 박성철제2부수상등에 의한 평양과 서울의 교차밀행,7·4 공동성명의 그 신선한 충격,다시 뒤이어 발족한 조절위원회의 기능이 귀측의 표현법을 따라 회담의 성사를 「담보」하는 듯한 기미를 한때 보인 적이 없지도 않습니다만 역시 그뿐,귀하의 실제이기도 한 김영주조직지도부장의 이른바 「8·28 성명」이 이쪽의 공동위원장이기도 한 이후락부장을 「민족의 영웅」으로부터 「민족의 반역자」로 일거에 격하,매도해버림으로써 사실상 모든 사태는 원점으로 되돌아가버리고 맙니다. 아닙니다. 반도간첩사건,휴전선 내에서의 총격사건,또한 저 끔찍한 도끼만행사건 등 보다 더 도발화·야만화·잔인화된 상황속에서 온 국민은 다시한번 시니시즘과 민족패배주의만을 체험해야 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이지만 이에대한 모든 책임은 귀하와 귀하의 충실한 전사들에게로 귀속이 됩니다. 왜냐하면 순수하게 인도적인 차원에서 적십자인들이 오순도순 조용히모여앉아 1천만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해나가면 그만인 것을,자문위원도 설치 운영하자,남북의 각 정당사회단체들도 초청하여 동석시키자,어쩌고하여 판을 깬 것이 바로 귀측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바로 이 대목이 앞에서 필자가 「이놈만은…」하고 벼르어오던 고언들 중의 하나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묻겠습니다. 귀하는 귀하가 통치하는 북쪽의 정치사회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당과 사회단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까. 독재하지 않습니까. 이 사실은 누구보다도 귀하가 더 잘알고 있는 바 입니다. 역시 피차 다 알고 있는 얘깁니다만 73년 9월의 평양회담에서 한적측 대표단은 『마침 추석도 임박했고 하여 추석성묘단의 상호방문을 토의 의제로 제기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귀측은 성묘단의 상호방문이 실현되기 위하여는 먼저 남한의 법률적 사회적 장애부터 제거되어야 한다는 응수해왔습니다. 이 경우 법률적 사회적 장애란 말할 것도 없이 국가보안법을 가리킵니다.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서만주지방의 속담에「삶은 쇠대가리가 다 웃는다」는 것이 있습니다. 「겨묻은 개 ×묻은 개 나무란다」는 식의 속담보다 좀 더 직설적이고 진하게 감정이 개입된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또한 바로 이놈이 필자로서 꼬 해두려고 별러온 다른 하나에 해당이 됩니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앰네스티 보고서속에는 희한하게도 10만명이상의 정치범들이 적법한 재판의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북한의 여러 형무소며 이른바 온성·회령 등 지역의 수용소군도에 수감되어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포함되어 있어서 필자 역시 읽어본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 솔직이 어느 편이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요컨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봉건왕조 세습적이며 오직 한가지 구호만이 판을 치는 사회,이른바 사회안전법 같은 것은 오히려 장식품에 지나지 않아 어떤 의미에서는 법 그 자체조차 의미가 없어지는 1인독재체제 전체주의 사회에서 정치범 사상범이 겨우 10만명정도에 머물 턱이 없는 일입니다. 이 경우 필자는 확신감을 가지고단언할 수 있습니다. 48년도라고 기억됩니다만 19세안팎의 마을 청소년 셋이 뚜렷한 죄목이며 증거도 없이 야밤에 군내무서로 연행되어가 잔인한 고문의 과정을 거쳐서 7년 내지 8년형의 징역을 언도받고 저 유명한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갔는데 그 광경을 필자는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바가 있습니다. 서울의 무슨 청년단체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든가 하는 것이 마을의 세포원에 의해 밀고된 죄목의 내용이었습니다만,물론 웃기는 얘기지요. 왜냐하면 무슨 연락을 하고 자시고 할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 처음부터도 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먼저 남한의 법률적·사회적 장애부터가 제거되어야 한다고요? 그래야지 성묘단이 오갈 수 있게 된다고요? 참으로 삶은 쇠대가리가 다 웃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바로 달포쯤 전,이른바 그 국회회담의 연기통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한번 더 묻거니와 그 쪽에 진정한 의미의 국회며 국회의원이 존재합니까. 물론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에 의하여 지명된 단일후보를 흑백함 투표양식에 의해,그나마도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의식하면서 투표용지를 집어넣는 투표행위,그것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민주선거일 수가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하여 뽑힌 자가 진정한 의미의 국회의원일 수 있을 턱이 없는 일입니다. 김일성주석. 이제 1백년쯤 전에나 통용되었음 직한 낡은 수법은 거두세요. 며칠전 귀하의 충실한 전사 한 분은 『이쪽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합디다만,오오!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하기야 원초적으로 무슨 문제같은 것이 성립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어느 면 그렇기도 하겠습니다만 솔직이 너무 촌스럽게,파렴치하게 들립니다. 현하 세계의 대세가 어떤 식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쯤은 귀하도 익히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귀하가 해야 할 일도 극히 자명하다고 여기는 바입니다. 개중에 세련되지 못한 표현이 더러 끼어들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 동화은,「초과청약제」로 변칙증자/실권주 대비,주식 50% 더 배정

    ◎1주 2천원씩 웃돈 발행… “공돈” 8백억 생겨 동화은행이 2천억원의 증자를 추진하면서 기존상장사들조차도 사용하고 있지 않은 「초과청약제」라는 변칙적인 증자방식을 택해 주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초과청약제란 구주주를 대상으로 증자청약을 받으면서 만일에 발생할 수도 있는 청약미달사태를 가상해 증자금액의 일정분을 주주들에게 더 청약케하는 방법이다. 17일 금융계에 따르면 오는 8월2일부터 약한달간 유상증자청약을 실시하는 동화은행은 최근 실향민 주주들 앞으로 신주배정통지서와 안내장을 보내 주주들이 증자청약에 참여하지 않아 발생할 수 있는 실권주까지 미리 예상,실권주청약을 함께 받기로 했다. 동화은행은 지난해 9월 은행설립을 위한 주주공모를 하면서도 소액주주의 과다발생으로 주주총회때 의결정족수의 확보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자 이북 5도민회 각지방도민회별로 주식인수조합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인수조합이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함으로써 1백만 소액주주들의 의결권행사를 자의적으로 제한시켜 물의를 빚었다. 동화은행은 이번에 1백%증자를 실시하면서 우리사주조합배정분을 제외하고 구주 1주당 0.965주씩 배정키로 하는 한편 실권주와 10주미만의 단주처리를 위해 주당 0.56주씩을 초과청약할 수 있도록 했다. 즉 지난해 주주공모에서 28주씩 배정받은 주주들에게 구주주배정분 27주(28×0.965)에다 초과청약분 15주(28×0.56)를 합쳐 42주를 청약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 주주들이 실제배정되는 27주외에도 15주가 더 돌아오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례마저 나타나고 있어 실권주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주주들에게 상당한 혼란과 불만 또한 가져다 줄것으로 보인다. 동화은행은 이번 증자로 주당 5천원짜리 주식을 7천원에 발행해 주당 2천원씩 총 8백억원(2천원×4천만주)의 주식발행초과금을 끌어쓸 수 있게 된데다 청약기간이 한달이나 돼 초과청약금 1천5백억원에 대해서도 한달간 무이자로 융통해 쓸 수 있게 됨으로써 비상장기업치고는 증자덕을 톡톡히 보게 된 셈이다. 또 주주들에게 42주(29만4천원)를 청약토록하면서 청약사무의 편의를 위해 청약금액보다 6천원이 많은 30만원을 자기앞수표로 입금시켜줄 것과 청약통장으로 일반은행거래까지 해줄 것을 간곡히 당부,증자를 계기로 은행 수신제고까지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주주들은 동화은행측이 업무편의를 위해 지난해 주주들의 주총의결권행사를 주식인수조합으로 제한시킨 것이나 이번 증자에서 실권주에 대비,주주들로부터 청약자금을 미리 끌어쓰는데 적지않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평북이 고향인 한 주주는 공익성이 높은 금융기관에서 주식인수조합의 대표소수가 의결권을 전횡적으로 행사할 경우 주주의 경영감시기능이 약화되는등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증자에서 초과청약금을 더 받기로 한 것도 표면적으로는 주주에게 혜택이 더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은행경영이 제대로 되고 배당이 적정하게 이루어진다면 왜 실권주가 생기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이번 증자로 생기는 주식발행초과금 8백억원은 은행입장에서는 공돈이나 마찬가지여서 정기예금에 넣어두기만해도 연간 80억원을 벌수 있는 규모』라고 지적하고『은행측이 경영내실화를 구실로 경영부담을 주주들에게 전가시키는 듯한 주식할증발행은 비상장회사임을 고려할 때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라고 꼬집었다. 증권관계자들도 상법상 기업이 주주의 의결권을 어떤 방식으로든 제한할 수 없게 돼 있으며 실권주 역시 관계규정상 일반증자청약을 받고난 뒤 실권이 발생했을 때에 한해 이사회결의로 다시 실권주청약을 받든가 기타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동화은행 한 관계자는 『아직 상장이 돼있지 않은 상태이고 주주가 1백만명이나 돼 주주의결권행사나 증자청약업무를 일반상장회사와 같이 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하고 『주식시장에 상장이 되면 주주의결권을 제한시키거나 실권주처리를 목적으로 한 초과청약제를 시행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KBS노조,제작거부 결정/조합원 찬반투표

    ◎오늘부터 생방등 차질 예상/MBC 어제부터 파행방송/방송법 통과 항의/CBSㆍPBC도 동조 방송관계법개정안에 반대하며 문화방송(MBC)노조가 13일 전면제작거부에 들어간데 이어 한국방송공사(KBS)노조도 이날 제작거부여부를 묻는 노조원 찬반투표를 실시하여 가결됨으로써 14일 상오5시부터 무기한 제작거부에 들어가기로 했다. KBS노조측은 13일 상오8시부터 서울본사와 26개 지역국노조원 4천4백41명을 대상으로 찬반투표를 실시,투표에 참가한 노조원 3천9백62명의 74.3%인 2천9백49명이 제작거부에 찬성표를 던져 파업을 결정했다. 한편 기독교방송(CBS)ㆍ평화방송(PBC)노조도 이날 제작거부 찬반투표를 실시,투표자 가운데 각각 80% 및 74.2%의 찬성률도 제작거부를 결정,14일 상오5시부터 함께 제작거부에 돌입하기로 했다. KBS 정초영노조위원장 직무대행(37ㆍ라디오국 프로듀서)은 투표가 끝난뒤 기자회견을 갖고 『현정권은 독소조항이 가득찬 방송관련 악법으로 KBS를 국영방송으로 전락시키려 하고 있다』면서 방송관계법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즉각중단하고 학계ㆍ재야ㆍ방송계의 의견을 수렴해 줄 것을 촉구했다. 노조측은 『그러나 주조정실,송신ㆍ중계소근무 송출직노조원,해외방송과 대북방송을 전담하는 국제국,사회교육국노조원들은 제작거부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하오8시쯤 개표를 마친 노조원들은 대부분 돌아갔으며 노조간부 10여명만이 노조사무실에서 14일 파업 이후의 행동방향 등을 놓고 대책을 논의했다. 노조측의 제작거부결정으로 14일부터 정상방송이 어려워져 1TV의 경우 상오7시 「아침뉴스」 등 보도프로그램의 단축방송이 불가피해졌으며 2TV도 상오7시 「전국은 지금」과 상오9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의 생방송이 단축되는 등 노조원이 참여하는 TV와 라디오의 방송이 차질을 빚게 됐다. 회사측은 이날 제작거부결정이 내려지자 본관 6층 회의실에서 본부장 및 실ㆍ국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갖고 비상근무체제로 전환해 미리 마련해 놓은 「임시방송대책」에 따라 간부 및 비조합원 1천5백여명으로 제작ㆍ편성업무를 수행해 나가기로 하는 등 방송차질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회사측은 또 노조측의 제작거부행위에 대해 강경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간부들에게 조합원들의 근무태만파악지시를 내리는 한편 근무지를 이탈하는 사원에 대해서는 사규에 따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 한편 MBC노조원들의 제작거부로 이날 하오9시 「뉴스데스크」가 평소보다 7분 단축돼 40분동안 방송됐고 하오7시 「저녁뉴스」프로의 진행자도 모두 비노조원들로 대체돼 방송됐다.
  • 야 소장파 사퇴선언의 저변

    ◎“거여견제”·“야권 물갈이” 동시 겨냥/「파행국회」 틈타 선명성 경쟁/양당 구도속 「민주」 입지 확장도 계산 민주당 김정길·이철·노무현의원과 평민당 이해찬의원 등이 13일 상오 기자회견을 갖고 전격적으로 의원직 사퇴서를 국회에 제출함으로써 13대 국회 후반기 정가에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다. 이들의 사퇴에 이어 민주당 이기택총재를 비롯한 의원 전원이 14일 상오 긴급 정무회의를 열어 동조사퇴를 결의할 분위기여서 사퇴파문은 당분간 야권전체로 확산될 조짐이다. 이들의 사퇴배경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거여와 김대중총재등 평민당 지도부를 동시에 겨냥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우선 이들 소장파의원 4명의 사퇴서제출은 거여의 힘에 대한 「옥쇄작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들 4의원이 의원직 사퇴 성명서에서 『의원직을 사퇴함으로써 국군조직법과 방송관계법등 각종 악법을 강행통과시키고 있는 민자당 정권의 횡포에 온몸으로 항거한다』라든가 『13대 국회를 즉각 해산하고 총선거를 다시 해야한다』고 주장한것은 바로 이같은 표면적인 이유를 대변하고 있다. 물론 13대 국회 해산­조기총선 주장은 야권내에서 새로운 얘기도 아니기 때문에 이들이 사퇴서를 낸 시기가 거여의 강행처리와 평민당의 극한 실력저지가 맞서 정치권 전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증폭되고 있는 시점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보면 이들의 사퇴는 그동안 조기총선 주장을 펴면서도 실제 결행에는 옮기지 못하고 있는 평민당에 앞서 세대교체를 주장하고 있는 민주당의 젊은 세대들이 선수를 친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의 의원직 사퇴가 만일 의외로 국민적 호응을 얻을 경우 평민당도 결국 이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럴 경우 평민당 김대중총재의 야권내 지도성과 대표성이 결정적인 흠집을 입어 김총재 2선후퇴등 세대교체론이 다시 고개를 들 것으로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65년 한일 국교정상화협정 비준에 반대해 의원직을 사퇴한 윤보선·김재광의원 등 7명이 그 이후 야권의 선명성 경쟁에서 기선을 제압한 전례가 이번의 이들의 사퇴결행의 준거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다시 말해 이번 사퇴파문의 이면에는 야권내 선명성 경쟁이 깔려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이럴 경우 평민당 김대중총재가 그동안 3당합당 저지를 주장하면서도 원내 강경투쟁에 주력해 여야 1 대 1 구도로 정국양상이 좁혀지자 입지가 약해진 민주당의원들의 계산된 행동으로 분석할 수 있다. 즉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내각제개헌 정국에서 민자당과 평민당의 극한 대결을 앞두고 이들 소장파의원들이 미리 승부수를 띄웠다고 보는 것이다. 이같은 돌발사태에 대해 민자·평민 양당은 우선은 사퇴파문의 확산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민자당내 민정·공화계 등 내각제개헌에 적극적인 계파에서는 이같은 파문이 야권내 연쇄반응을 야기할 경우 13대 국회 후반기와 향후 정국구도에 악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달갑지 않은 변수일 뿐만 아니라 민주계에서도 계파의원들의 동요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특히 평민당 주류의 입장에서는 당소속 이해찬의원의 독자적 행동이 궁극적으로 김대중총재의 당내 카리스마를 훼손시킨다는 점에서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이다. 김총재등 당지도부와 호남출신의원들은 물론 이재근상공위원장등 이의원과 그동안 야권통합 서명에서 호흡을 같이했던 의원들조차 『아직은 독자적 의원직사퇴로 전면적 대여 투쟁을 벌일 적기가 아니다』라며 현시점에서 동반사퇴를 고려할 의사가 없음을 피력하고 있다. 다만 이상수의원을 비롯,정대철·노승환·김종완의원 등 서울 지역구 의원들의 동조여부가 관심사이나 현재로선 이들의 동반사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사퇴파문은 대체로 다음 3가지 정도의 파장을 보이며 확산 또는 수렴될 공산이 가장 크다. 가장 가능성의 큰 경우가 사퇴파동이 단기적으로 민주당 전체로 비화되면서 평민당이 이에 동조하지 않는 양상이다. 국회법 제1백28조를 보면 의원직사직은 회기중에는 토론없이 본회의 표결을 거쳐야 하고 폐회중에는 의장의 허가를 얻도록 돼 있다. 즉 민자당이 표결에 응할 리 만무한데다 이번 임시국회후 이들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을 경우 지난해 노무현의원의 사퇴파동때처럼 「깜짝쇼」 수준의 정치적 해프닝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김총재등 평민당 지도부로서는 과거 5공시절 6·29 전야처럼 국민적 저항 열기가 없는 한 섣불리 전면적인 장외투쟁에 뛰어들 수 없다는 점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3당통합이후 개혁의지의 부분적 후퇴등에 실망한 여론도 적지 않지만 현시점에서 「민주­반민주」 구도로 전면적인 대여투쟁을 벌일 경우 거여에 대한 반사적 지지가 평민당으로 쏠릴 것으로는 김총재 자신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대치는 적지만 이번의 「옥쇄작전」에 우호적인 재야의 압력에 김총재와 평민당이 동조할 경우 그리고 이번 임시국회가 여의 강행처리와 야의 실력저지가 맞서 일그러진 모습으로 끝날 경우 「한여름 정국」이 강경장외대치국면으로 치달을 소지도 있다. 또 이번 국회에서 방송법·국군조직법 등이 여당의 일방처리로 종결된다 하더라도 여야막후 접촉을 통해 지자제등 보다 큰 쟁점에 대해 어떤 「출구」가 마련된다면 김총재가 이번 사퇴파문을 기화로 평민당 의원들의 일괄사퇴서를 무기로 활용해 평민당안의 관철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평민당은 지금보다는 「장외」에 좀 더 체중을 실은 형태로 「원내외 병행투쟁」을 구사하는 정략을 펼 것으로 보인다.〈구본영기자〉 ◎관련국회법과 사례/개회중엔 토론없이 의결로 ○…현행 국회법상 의원의 사퇴는 본인이 서명·날인한 사직서를 의장에게 제출해 국회가 개회중일 경우 찬반토론없이 의결로 허가되고 폐회중일 경우 의장이 직접 허가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또 국회의원 선거법에는 지역구의원에 결원이 생길시 의장이 이 사실을 중앙선관위에 통보한 뒤 90일이내에 보궐선거를 실시하도록 규정. ○…의정사상 의원직을 사퇴한 사람을 보면 우선 6대때인 65년 7월 민중당고문이었던 윤보선의원이 한일 국교정상화와 관련,탈당계를 제출함으로써 당시 헌법에 의해 의원직을 자동 상실. 또 10대 국회에서는 79년 10월13일 신민당 고재청의원등 66명이 김영삼총재의 의원직 제명에 항의,의원직 총사퇴서를 제출했으나 국회 본회의 의결로 사퇴서가 반려된 유일한 사례가 있다. 13대들어서는 지난해 12월29일 민정당의 정호용의원이 「광주사태」의 책임을 진다며 의원직을 비롯한 모든 공직에서 탈퇴를 선언. 13일 사퇴서를 제출한 민주당 노무현의원은 지난해 3월20일 의회기능 무력에 대한 회의를 이유로 사퇴서를 제출,당시 정가에 파문을 일으켰으나 14일만에 사퇴철회서를 제출해 스스로 번복했던 전력의 소유자. 국회의 의결로 사퇴를 허가한 예는 7대의 기세풍·신용남의원,9대의 김옥선의원,11대의 이우재의원 등 3건이 있으며 사직서를 제출한 의원이 철회한 경우는 노의원외에 10대때 이택돈의원이 있다.〈박정현기자〉
  • “「한국의 잠재력」알릴 경제올림픽”/「대전엑스포」의 의의와 과제

    ◎88때 보여준 「국민의 단합」다시 보여줄때/「우리전통문화」주조로한 세계축제돼야 93년 열리는 「대전엑스포」가 최근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박람회기구(BIE)의 공식 승인을 얻은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개발도상국으로서는 60여년의 BIE사상 처음인 국제공인일 뿐더러 이 기구가 오는 2000년까지는 추가적인 공인을 않기로 했던 87년 총회의 결의를 뒤집으면서까지 승인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처럼 BIE가 그 관행과 기왕의 결의를 뒤집으면서까지 승인하기에 이른 것은 경제개발에 착수한지 30여년의 짧은 세월로 후진의 굴레를 벗고 중진국 상위로 발돋움한 국력을 바탕으로 치른 「88올림픽」의 성공과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여망에 크게 힘입은 때문이다. 이로써 「대전 엑스포93」은 공식 세계행사로 격을 높이는 명분을 갖추게 되었고 실익도 함께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비공인의 경우 참가유치의 방도는 박람회 당국의 개별 접촉이라는 번거로움이 따르고 참가규모도 주요 참가 대상국인 BIE회원국의 경우에 국가관 사용이 금지되므로 도시 내지는 기업단위의 참가 위주로 유치되어 그 규모가 현저하게 축소될 뿐더러 주정부나 기업차원의 한정된 전시연출에 그치게 되므로 수준높은 박람회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에 반해 공인의 경우 공식외교경로를 통할 수 있고 참여도 국가단위로 격상되며 기간도 6개월 이내로 길어지고 관람도 일반대중으로 확대 되어서 명실상부한 「경제올림픽」의 면모를 갖출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사이 91년 개최예정을 2년이나 연기하는 등 우여곡절도 허다했고 또 시비와 찬반의 소리도 그치지 않았으나 BIE공인이 끝난 지금에는 오직 어떻게 하면 「대전 엑스포93」을 「88올림픽」에 걸맞는 성공으로 이끌 것인가에 대해서 박람회 조직위를 핵으로 해서 정부나 경제유관단체 및 온국민이 더불어 참여하고 중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새로운 도약에의 길」을 주제로 하는 「대전엑스포93」은 각국 정부의 주도로 제가끔의 노력으로 축적한 문명의 성과와 미래를 위한 지향을 제시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선진의 문턱으로 넘어서는 도약의 계기로 삼으면서 인류공영의 축제를 위한 마당으로 가꾸고자 한다. 박람회조직위측은 「대전엑스포93」의 개최의의와 기대효과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안으로는 여러역사적인 시련과 사회적인 혼란을 극복하고 단시일 안에 산업화에 성공하여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성취를 모두가 공감하고 발전과정에서 두드러지게된 사회경제적 불균형과 전통문화의 침식 및 환경오염의 문제들을 반성하면서 보다 조화로운 새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범국민적인 정신적 지지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밖으로는 개발도상국에게는 우리의 경험과 경제발전의 실상을 제시하여 그들이 발전방향을 모색하는데 새로운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선진국에게는 지난날의 눈부신 산업문명의 여덕에도 불구하고 날로 심각의 도를 더해가는 환경오염과 생태계의 파괴 및 부존자원의 고갈과 윤리의 황폐등에 대한 문제점을 반성케하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속에서 발전을 지속되게 하는 지혜와 방도를 찾는 터전을 마련코자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기다양하고 복합된개최의 의의와 기대효과를 앞으로 남은 2년여의 단시일에 두루 충족시킨다는 것은 지난한 과업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서로 맞서왔던 동과 서와,날로 괴리를 더해가고 있는 남과 북을 하나로 얼러서 세계가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축제의 마당을 가꾼다는 일은 박람회당국의 기능과 노력에만 의지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88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끈 것과 같은 국민적합의와 국가적 총력의 집중이 절실하다. 이같은 맥락에서 박람회조직위에 바라고 싶은 것이 몇가지 있다. 첫째는 원칙을 타협하지 말아야겠다. 짐짓 국제적 규모의 행사에는 국내외로 부터의 압력과 저항이 끊임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원칙의 설정에까지는 신중을 다하되 한번 결정된 원칙은 타협하지 않는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 중구난방으로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올라가 대사를 그르치는 경우를 흔히 보아왔다. 그러나 타협의 원칙도 있다는 유연성도 함께 명심할 필요는 있다. 둘째는 행사의 주제와 기조는 우리 전통문화에 두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20세기 막바지에 치르는 세계4대 박람회 가운데 하나인 「대전엑스포93」을 인류의 축제로 승화시키는 길은 선진문명의 모방이나 아류가 아니라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수 있다는 자긍이다. 따라서 자연의 섭리에 외경의 마음으로 접근하고 순응하면서 조화를 추구했던 문화전통 속에 축적된 고유한 지혜와 정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참여하는 국가나 민족이나 기업을 가릴나위 없이 대등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국가의 대소,경제의 빈부,문명의 선후진,또는 지역의 원근,이념의 차이 까지를 포괄해서 문화에 우열이 없고 이질이 한 터전에서 공존,조화한다는 화동의 원칙만이 박람회 성공의 공통분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 하나 마무리의 중요성도 시작에 못지 않을뿐더러 어떤 의미로는 마무리된 다음의 귀결은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할 수가 있다. 세계가 참여한 지적 잔치를 일과성행사로 마무리하고 이렇다할 보람도 없이 세월의 풍화에 내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당대문명의 집약적인 표현인 모처럼의 자리가 그것을 담았던 자연환경과 더불어 후대를 위한 문화적 유산으로 역사적 생명력을 지속시킬 수 있을때 비로소 박람회는 소기의 보람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 주가 3P 올라

    주가가 소폭 상승,지수 7백40선에 닿았다. 27일 주식시장에서 매수기반이 크게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매도층의 관망화 경향이 일층 강해져 속락세가 멎었다. 도중에 마이너스권으로 빠지기도 했으나 강보합의 색채가 주조였고 종료무렵 증안기금의 효과적 매입에 힘입어 보합권을 능가하게 됐다. 종가는 전날보다 3.59포인트 올라 종합지수 7백40.01을 기록했다. 3일 연속 하락하다 반등한 이날 거래량은 전날과 비슷한 6백43만주였다.
  • 분단 45년… 북한의 생활상 어떻게 이질화됐나

    ◎다른 길로 달린 「남과 북」… “한핏줄의 이방인”/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한핏줄의 남북한은 하나의 역사,하나의 언어,그리고 공통된 생활관습 등을 지켜왔다. 그러나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분단의 길로 들어선 남과 북은 6ㆍ25전쟁이라는 민족최대의 비극을 겪으면서 분단이 고착화됐고 이 결과 전쟁후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삶의 모든면에서 이질화가 심화되어 왔다. 최근 동서독이 통독의 길로 나아가는등 세계의 냉전구조가 타파되면서 세계유일의 분단국이 되고만 한반도에도 냉전의 장벽을 허물어 뜨릴 수 있는 변혁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분단 45년,전쟁발발 40년이 지난 오늘 제각기 달려온 남과 북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됐고 이질화됐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언젠가는 맞이할 통일에 대비해 서로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삼고자 한다. ◎문화ㆍ예술/인간개조의 도구화… 순수예술 명맥 끊겨 지난해 우리는 두개의 서로 다른 경험을 했다. 그 하나는 비록 결렬되고 말았지만 북경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한 남북단일팀 구성논의에서 「아리랑」을 단가로 하자는데 양측이 비교적 손쉽게 합의,문화적 민족정서의 공유가능성을 확인한 일이다. 또 하나는 남북이산가족의 재회를 무산시킨 이른바 북한의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와 「피바다」 공연여부를 둘러싼 논쟁에서 실감했던 남과 북의 현저한 문화ㆍ예술관의 차이다. 이렇듯 남과 북의 문화ㆍ예술은 공감대를 같이하는 한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분단이후 45년간 서로다른 이념과 사회체제 속에서 이질화의 과정을 밟아옴으로써 오늘의 남과 북사이에는 엄청난 높이의 문화적 장벽이 가로놓이게 됐다. 한국의 문화정책이 이어령 문화부장관의 구상처럼 『후기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에 따른 세대간ㆍ계층간ㆍ지역간ㆍ성별간의 이질화와 갈등현상을 문화의 힘으로 치유』하는데 놓여져 있다면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주체사상과 3대혁명에 입각한 공산주의적 정치사회화의 수단적 목적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의 문화예술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기초하에 체제보위 및 최고통치자에 대한 우상화 및 공산주의적 인간개조를 위한철저한 도구로 기능함으로써 전통적 순수예술의 성격은 물론 대중예술과도 거리가 먼 주체예술ㆍ혁명예술ㆍ이데올로기예술로 변모돼 있다. 가령 북한가요 45년사에서 3대명곡으로 꼽히고 있는 「조선의 별」,「김일성장군의 노래」「동지애의 노래」 등이나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시작 「묘향산의 가을날에」,80년대 최고의 미술작품이라는 「강선의 저녁노을」 등은 모두가 김일성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북한의 문화ㆍ예술의 성격을 대변해 주고 있다. ▲사상성이 좋고 ▲가사가 좋으며 ▲선율이 부드럽고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 불후의 「혁명송가」라는 「조선의 별」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투쟁을 할때 그의 추종자들이 김일성을 흠모해 지었다는 노래이며,「동지애의 노래」는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촉구한 노래이다. 「강선의 저녁노을」은 남포시 강선제강소를 소재로 김일성을 찬양한 조선화이며 주체예술의 상징인 5대혁명가극의 하나인 「피바다」는 항일혁명투쟁을 주제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앞세운 목적극이다. 특히 6ㆍ25전쟁 전까지 순수예술과 목적예술간의 대립속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지 못한채 주로 소련에 의존해왔던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전쟁중 전쟁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의 전쟁영웅 형상화에 몰두,목적예술적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전후복구와 「주체」의 슬로건 등장등 상황적 요청에 따라 문예정책은 사회주의 건설에 역점을 두는 새로운 전형을 형상화하는 한편 소련식 문화활동에서 탈피,김일성체제를 뒷받침하는 혁명전통확립과 주민들에 대한 공산주의 교양을 주제로 한 창작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또한 자연만을 노래하거나 예술지상주의 태도는 반혁명적이고 형식주의적인 문화예술이라는 인식하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당성ㆍ계급성ㆍ인민성의 구현이 모든 창작활동중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으로 대두됐다. 현재 북한에서는 이러한 문화예술의 원칙과 과제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작가 미술가 영화인 연극인 무용가 사진가 등 모든 예술인들을 망라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란 조직이 결성돼 있으며 당은 이 조직을 통해 각 분야 종사자들에게 창작 및 공연활동계획서의 제출을 강요,▲혁명전통(30%) ▲전쟁(30%) ▲사회주의건설(20%) ▲조국통일(20%) 등 4개 주제별로 창작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의식구조/어휘마다 정치색… 전투ㆍ파괴적 성격 강조 『서울말은 남존여비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주아적 생활이 지배하는 말로서 오늘 남조선방송에서는 여자들이 남자에게 아양을 떠는데 쓰이는 코맹맹이 소리를 그대로 쓰고 있으며,그것마저 고유한 우리말은 얼마 없고 영어 일본말 한자어가 반절이나 섞인 잡탕말이다. 우리는 혁명의 수도이며 요람지인 평양말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오늘 평양말은 서울말보다 비할 바 없이 우월하다』 김일성이 1969년 평양말을 「문화어」로 삼은 이유를 설명한 교시의 내용으로 북한의 언어정책을 잘 보여준다. 김일성은 또 「표준말」이란 용어 대신 「문화어」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표준어라고 하면 마치도 서울말을 표준하는 것으로 그릇되게 이해될 수 있으므로 그대로 쓸 필요가 없다. 「문화어」란 말도 그리 좋은 것은 못되지만그래도 그렇게 고쳐쓰는 것이 낫다』 특히 북한은 「언어를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의 힘있는 무기」로 보는 언어관을 토대로 일찍부터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언어정책을 펴옴으로써 분단 45년이 지난 현재 남북한간에 벌어지고 있는 언어의 이질화는 단순한 언어 자체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간의 사고와 행동양식 및 의식구조의 이질화에까지 파급되고 있다. 실제 북한에서는 언어를 씩씩하고 힘있는 무기로 다듬는다는 명분하에 『미제의 각을 뜨자』『돌탕을 쳐 죽이자』는 등의 살벌하고 소름끼치는 말들이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성격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않음을 감안할때,북한의 이같은 극단적인 언어관과 언어정책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언어를 쓸 수 밖에 없는 북한주민자신을 공격적이고 전투적이며 파괴적인 성격으로 만드는 잠재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남북한간의 언어이질화에서 빚어지는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의 언어정책은 1949년에 단행된 한자폐지와 이에 따른 한글전용정책에서 시작된다. 문맹퇴치와 인민대중의 조속한 사상교육을 목표로 추진된 한자폐지는 결과적으로 한글전용화로 이어졌고 이결과 북한의 각급학교 교과서 문예작품 신문 및 대중매체에서 한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한자교육은 통일후 남한문헌을 읽기 위해 또한 고전연구를 위해 하나의 외국어처럼 전공과목으로서만 남게됐다. 한글전용에 이어 가로쓰기도 시행되었으나 한자어의 어원을 가진 낱말을 한글로만 표기,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말다듬기운동」이 새로 일어났다. 이에 따라 1954년 일제하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수정한 「조선어철자법」이 생겨났고 1966년에는 「조선말규범집」과 함께 「문화어」라는 새로운 개념의 어휘까지 등장했다. 문화어의 등장은 남북한간 언어이질화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되고 말았는데 그 성격은 서울말을 배격하고 평양말을 토대로 다듬은 그들의 공용어를 표준어로 삼는 데 있다. 한편 한자폐지와 한글전용,말다듬기운동의 결과 새로운 사전의 편찬이 불가피하게 됐는데 1968년 나온 「현대 조선말사전」의 경우 18만어휘가 수록됐던 「조선말사전」(61년)에 비해 어휘가 5만으로 크게 줄었다. 그 이유는 한자가 하나도 없고 옛말 사투리 고유명사 및 이른바 「퇴폐적 사상표현」등을 완전히 제외했기 때문. 또 어휘마다 정치성이 담겨져 있어 김일성의 인용구는 굵은 활자에 별표까지 달아놓았다. 현재 남북한의 언어는 발음의 차이,리듬의 차이,억양의 차이 등과 같은 음성학적인 차이를 비롯해 어휘ㆍ문법ㆍ의미ㆍ문체 및 맞춤범 등 언어전반에 걸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가장 심각한 차이는 어휘부문에서 나타난다. 예를들면 산책길→유보도 채소→남새 화장실→위생실 고기잡이→추어전 개고기→단고기 도시락→곽밥 레코드→소리판 대중가요→군중가요 투피스→동강옷 커튼→창문보 그룹→그루빠 소년단→삐오네르 주제→쩨마 등이다. ◎경제생활/「남농북공」무너져 GNP 남한의 12%/생필품 부족… 암시장 쌀값 배급의 18배 8ㆍ15해방 당시 남북한의 산업배치는 「남농북공」으로 일컬을 만큼 지역적 보완관계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남북분단으로 이같은 보완관계는 무너졌으며 설상가상으로 6ㆍ25가 남과 북 모두의 각종 산업시설을 파괴,경제활동의 토대조차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후 남과 북은 40여년간 천연자원 및 산업구조의 불균형이라는 악조건속에서 통합적 발전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분리적인 발전을 계속해왔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로 굳어진 한국과 북한은 각기 다른 경제질서를 형성ㆍ유지하면서 치열한 체제경쟁을 벌여왔고 이 결과 88년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액(GNP)의 차이는 한국이 북한에 비해 8배나 앞서는 비교우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착수한 이래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듭,개발도상국에서 일약 중진국의 일원으로 도약했다. 1960년 1백달러 미만이었던 1인당 국민소득은 89년말 현재 5천달러에 육박해 있다. 반면 6ㆍ25로 인해 공업생산 수준이 1949년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출발했던 북한경제는 전후복구 3개년계획(1954∼56년)과 뒤이은 5개년계획(1957∼61년)에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성장을 기록했으나 그후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70년대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비해 부분적인 비교우위내지는 형평을 유지해 왔으나 이후부터는 전분야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체제가 다른 북한의 국민총생산액등 각종 경제지표의 개념은 우리와 크게 다를 수 있지만 국토통일원이 북한의 각종 선전자료를 검토ㆍ분석해 추정한 수치는 다음과 같다. 국민총생산액은 88년을 기준으로 2백6억달러로 우리의 1천6백92억달러에 비해 8분의 1 수준이며 1인당 GNP는 9백80달러(한국 4천40달러),자동차 생산능력은 연간 2만대(한국 1백70만대),TV보유율은 10%(한국 1백%),전화는 7%(한국 67%),냉장고는 6.5%(한국 79%) 등이다. 한편 북한주민의 의ㆍ식ㆍ주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평등한 방식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직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임금과 그 임금에 따른 불균형한 소비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임금은 당간부 및 고위직 군인의 급료가 상대적으로 높으며 사무직보다는 기술직이 높다. 또 경노동 보다중노동이,중노동 가운데도 위해노동종사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으며 85년부터는 「사회주의적 노동보수제」가 도입돼 동일직종이라도 숙련도나 생산성 등 노동의 질에 따라 급수를 달리하는 「차등임금제」가 실시되고 있다. 북한은 이같은 화폐소득의 차이를 완화하기 위해 보건ㆍ교육분야를 국가예산으로 충당하는 한편 대중소비물자의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사치품의 가격을 높게 매기고 있다. 이에 따라 쌀ㆍ채소ㆍ옷감ㆍ비누ㆍ치약 등 생필품의 경우 아주 싼값으로 공급되는데 가족수와 연령,직업에 따라 품목과 수량,종류가 정해진 구입카드에 의해 국영상점에서 구입한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먹는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 과제이듯이 국가에서 싼 값으로 공급하는 생필품의 배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주민들은 부족분을 구하기 위해 1㎏당 8전에 불과한 쌀을 「장마당」이라고 부르는 암시장에서 이 가격의 18배가 넘는 1㎏당 15원에 구입하려해도 어려운 실정이다. 주택은 협동적 소유로 행정당국에 의해 직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배분되며 그 보급율은 70% 안팎. 북한은 주택건축률이 경제발전을 대변하는 전시적 기능이 크고 남북한 사회비교의 중요한 징표가 된다는 점에서 70년대 이후 평양ㆍ남포ㆍ원산ㆍ함흥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현대식 고층아파트를 신축하는 한편 농촌의 문화주택을 2층 3가구용,3층 5가구용으로 다양화하고 문화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등 주거양식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북한은 지난 40년간 중공업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친 결과 주민들의 소비생활이 크게 압박을 받아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를 「경공업의 해」로 지정하는 등 최근 경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활풍습/“봉건잔재 없앤다” 관혼상제도 통제ㆍ규격화 북한은 우리민족의 전통적 예의범절에 대해 『봉건지배계급이 착취하는데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규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민족 고유의 예절이나 유교적 도덕관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와 당의 이익에 맞도록 변형되어 있다. 또 관혼상제를 포함한 전통적인 민속과 세시풍속 등도사회주의적 내용으로 변질됐다. 북한에서의 결혼은 『철저히 동지적이고 혁명적인 관계에 의해 이뤄지며 일생을 동지로서 당과 수령께 충성할 수 있는 정신적 풍모가 조건이 된다』고 정의되고 있다. 따라서 결혼연령도 노동과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남자 29세 여자 26세로 제한해 놓고 있으나 불만이 많아 80년대 이후에는 조혼추세가 묵인되고 있다. 배우자선택은 중매(60%)와 연애(40%)가 병행되고 있으나 최근 북한의 남녀대학생들은 서로 손을 잡기도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등 연애결혼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계층의 남녀가 만나는 채널은 연애보다는 부모 친척 등을 통한 중매가 지배적이다. 신랑감으로는 직업에 관계없이 평양거주총각이 최고의 배우자로 꼽히고 있으며 길흉을 가리는 결혼의 택일 풍습은 사라져 대개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치러진다. 회갑이나 생일,돌잔치는 50년대에는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와 식량절약이라는 명분으로 일체 금지되었으나 60년대 후반기부터 묵인되고 있다. 그러나 「60청춘 90회갑」이라는 구호아래 공식적인 회갑잔치는 거의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고위간부의 경우에만 김일성이 하사하는 일정한 규격의 회갑상을 받는다. 장지는 지정된 공동묘지만을 쓰도록 돼있다. 상복은 따로 만들어 입는 것이 없고 머리에 건을 쓰고 팔에는 검은 천을 두른다. 장례식과 매장은 도시의 경우 녹화사업소,편의협동조합 등이 맡아서 처리해 주며 직계존속이 사망했을 경우 상주에게는 3일간의 공식휴가와 장례보조금 10원,쌀 1말이 배급된다. 제사도 다른 풍습과 같이 6ㆍ25전까지는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았으나 휴전후부터 단속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기부터 추석에 성묘하는 것과 직계존속에 대한 탈상까지의 제사는 묵인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60년대 중반까지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김일성 교시에 따라 추석등 고유의 세시풍속을 공식명절에서 제외하고 김일성의 생일,김정일 생일,북한정권 창건일,노동당 창건일,사회주의 헌법제정일 등을 「사회주의 명절」로 지정,공휴일로 해왔으나 지난 88년부터 추석 음력설 단오 한식 등을명절로 부활시켰다. 또한 70년대까지만 해도 인민복,검은 통치마 차림이었던 주민들의 옷차림이 두드러지게 바뀌기 시작해 8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남자는 양복이나 잠바,여자는 양장이나 짧은 치마차림이 보편화됐으며 머리모양이 다양해지고 화장을 한 여자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초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이던 주민들의 부분적 여행자유화 조치가 전면 보류됨으로써 일반 주민들의 북한내 여행 및 휴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금강산ㆍ묘향산 등 유명관광지의 이용자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며 주민들의 경우 공장ㆍ직장별 단체관광 정도일 뿐 가족단위의 여행은 거의 없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의 주요한 오락수단은 TV와 라디오이다. 또 최근 바둑협회가 새로 결성되고 실내 골프장이 생기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있으나 대중이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주민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놀이는 주패놀이로 불리는 서양식 카드놀이와 장기이다. 가정생활은 지난 80년 『셋은 양심이 없습니다. 둘은 많습니다. 하나가 좋습니다』라는 김정일의 지시이후 가족계획이 보편화되기 시작해 점차 대가족에서 핵가족 형태로 옮아가고 있다.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는 등 남녀평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으나 실제로는 가부장적 사회가 유지되고 있으며 여자들이 가정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남편들이 봉급을 타서 여자들에게 넘겨 주기는 우리와 마찬가지다. ◎언론ㆍ교육/비판기능은 무시… 선전ㆍ선동의 매체로 활용 최근 북한은 소련언론들의 잇따른 대북한 비난보도에 대응,소련의 평양주재 기자들에 대한 취재봉쇄조치를 취한데 이어 타스통신기자 1명을 추방함으로써 내외의 관심을 끌었었다. 특히 북한은 『우리 혁명을 지지하는 기사를 쓰라,그러면 당신들의 요청이 충족될 것』이라고 주장한데 반해 소련언론들은 북한언론들의 보도태도와 관련,「목적지향성」보도에만 집착할뿐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비난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북한과 소련의 언론관이 상이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현재 북한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노동당기관지인 「로동신문」과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을 비롯해 도단위 일간지 등 모두 30여종. 방송은 TV의 경우 「조선중앙TV」(평양TV)「만수대TV」「개성TV」 등 3개가 있고 라디오는 「조선중앙방송」「평양방송」「구국의 소리방송」「평양인민 FM방송」 등이 있다. 북한에 있어 언론이란 「김일성의 교시와 당의 정책을 해설ㆍ선전하며 그것을 철저히 비호ㆍ관철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일층 강화하여 인민들을 수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는데 복무해야 한다」는 정치사전(73년도판)의 규정처럼 정치선전도구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또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기사가 아닌 모범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로써 사람들을 교양해야 한다는 김일성의 교시(1960년 11월)에 따라 우리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되는 범죄나 비행ㆍ사고 등의 기사는 신문ㆍ방송 등 언론매체에 일체 실리지 않는다. 우리의 언론들이 사회의 비리ㆍ부조리 등을 파헤침으로써 비판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긍정적ㆍ모범적인 기사를 통해 사회를 계도하겠다는 언론관을 고집하고 있다. 또 북한의 언론은 자본주의언론이 중시하는 속보성보다는 매스미디어의 이념적 이용,즉 당의 정책적 선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정론성」과 「당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정론성이란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전ㆍ선동ㆍ조직ㆍ교육ㆍ동원에 필요한 요소들을 가미하여 「사실」을 각색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북한의 방송은 정무원직속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지도아래 운영되고 있는데 이 기구는 조직ㆍ편제상 정무원에 속해 있지만 당중앙위 선전선동부의 지시와 통제를 받고 있어 사실상 2원화 되어 있다. 북한의 새 학기는 우리와 달리 9월에 시작된다. 북한은 지난 75년부터 유치원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과정으로 된 「11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국민학교에 해당하는 인민학교의 취학연령은 만6세. 그러나 만4세부터 시작되는 2년과정의 유치원교육중 「높은반」부터 의무교육기간에 포함되므로 실질적인 의무교육은 만5세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11년제 의무교육기간에는 수업료는 물론 면제이며 교과서ㆍ교복ㆍ학용품이 무상 또는 일부 부담으로 지급된다. 16세부터 시작되는 고등교육단계로는 2∼3년 과정의 고등전문학교와 교원대학(3년),종합ㆍ단과ㆍ사범ㆍ공장대학(4∼6년) 등이 있다. 현재 북한에는 인민학교 5천여개,고등중학교 4천2백여개,전문학교 5백여개,대학 2백7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북한은 80년중반부터 낙후된 과학기술을 진흥하기 위해 각 시도별로 「제1고등중학교」를 세우는 한편 기술계 대학의 수를 크게 늘리고 있다. 학생들은 또 「한가지 이상의 기술과 기능을 소유해야 한다」는 당의 방침에 따라 예능 또는 실업 등의 실기과목을 배우고 있으며 소년단이나 사로청 등의 조직에 의무적으로 가입,단체활동을 한다. 특히 의무노동이 중시돼 인민학교는 연간 2∼4주,고등중학교는 4∼8주,대학교는 12주정도씩 생산현장노동에 참여한다. 한편 북한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이것을 주체적,창조적으로 적용했다는 「주체사상」을 교육이념으로 삼고있다. 또 계급투쟁을 위해서는 「공산주의적 인간」이,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생산기술적 인간」이,전쟁승리를 위해서는 「체력이 튼튼한 인간」이 바람직하다는 「이상주의적인 인간상」때문에 정치사상교양 및 과학기술교육,그리고 국방체육이 북한교육내용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 대전 택시분규 타결/오늘부터 정상화

    【대전】 대전지역 택시노조의 파업이 15일 전국 택시노련 대전시지부(지부장 안재영)와 대전지역 택시사업주조합(이사장 이규태) 노사양측이 대전지방노동위의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로 함에 따라 16일부터 정상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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