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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서 싫다는 독일식통일 추진않겠다”/노대통령,우리특파원들과 간담

    ◎주변 강국 핵 무장속 한반도 비핵화 무의미/「20세기내 통일」은 예감과 의지에 따른 확신 노태우대통령은 3일 워싱턴을 떠나기에 앞서 숙소인 블레어 하우스에서 한국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일문일답요지는. ­부시 미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밝힌 『금세기말까지의 한반도통일』전망은 막연한 느낌을 피려한 것인지,아니면 어떤 복안에서 나온 것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지도자로서의 예감과 21세기까진 통일을 해야겠다는 의지,그리고 독일통일의 교훈 등이 작용한 종합적인 판단의 표현입니다. ­향후 10년 뒤 한국경제가 북한을 충분히 포용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당면 과제입니다.독일이 통일 후 경제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북한이 싫다는 통일방식은 요구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나의 자세입니다.독일식 흡수 통일은 안해도 좋습니다.남북한정상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그 쪽의 연방제 통일 방안과 우리의 국가연합 통일방안 사이에 공통점이 찾아질 것입니다.작년의 총리회담을 통해서도 공통점이 많이 나왔으므로 인내를 갖고 대처하면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북한체제가 예측불허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어떤 형태의 통일이 되든지 거기에 맞추어 사전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여러가지 통일모델을 상정한 구체적인 대응방안의 연구를 해당 부처에 시켜 놓고 있습니다. ­통일에 대비한 우리의 정치체제는 내각제와 직선제 가운데 어느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 ▲6·29선언에서 밝힌것처럼 내각제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좋은 제도라는 나의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그러나 국민은 지금도 대통령 중심제를 선호한다고 봅니다.그래서 내각제와 대통령제 가운데 어느 것이 되어야 통일이 쉽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서로 연계시킬 수 없는 별개의 문제라고 봅니다. ­미국의 대한시장개방 요구와 관련,이번 정상회담에서 주고 받은 것은 없습니까. ▲이번 방문은 그런것과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미국이 우리의 민주주의 성취에 대한 경의와 걸프전지원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예우를 한 것이었지 무엇을 얻어내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양국간 교역마찰은 실무자들이 다룰 문제이지 정상간엔 논의한 적이 없습니다. ­남한내 미군핵무기 문제에 관해 부시 대통령과 어떤 논의가 있었습니까. ▲북한의 핵시설 사찰과 남한의 미군 핵무기는 별개의 문제입니다.소연 중국 일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북한의 도발성등 전력으로 보아 북한이 핵무기 제조능력을 보유하는 것을 국제사회가 위험시하고 있습니다.미·소·중의 핵은 모두 국제안전협약을 준수하고 있습니다.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해 의심스런 시설에 대한 사찰을 받도록 요구할 권리를 보유합니다. ­핵문제에 대한 노대통령의 철학은 무엇입니까. ▲한반도에 핵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현실적으로 무의미합니다.한반도를 사정거리에 두고있는 미·중·소가 모두 핵을 갖고있습니다.한반도비핵화를 원한다면 사정거리내의 핵을 모두 없애야합니다.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없기때문에 한반도를 비핵지대화하자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미·북한관계의 격상을 우리쪽이 고무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는데.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어느 우방도 북한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바랍니다.다만 그 관계가 남북한관계를 좋게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일본이 북한에 대해 핵사찰 수락을 요구하는 것처럼 관계를 개선하되 내용이 개선되는,다시 말해 협력 신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이 핵안전협정에 서명하면 미·북한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핵 문제에 대한 의심과 위협이 제거되면 큰 진일보로 봐야 합니다. ­한중관계 개선 전망은. ▲한중관계는 착실히 개선되고 있습니다.중국의 국민성과 대북한 관계를 감안할때 성급하게 서두를 생각은 없습니다.미정부가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를 연장하려는 계획과 관련,나는 중국의 입장을 살려 주는게 좋다는 의견을 부시 대통령에게 개진했습니다. 중국이 서서히 변해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도와 주어야 합니다. ­민자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 선출시기는 언제로 보십니까.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1년전 쯤,그러니까 대충 내년초 쯤 될 것입니다. ­민자당 대통령후보 지명권을 행사할 용의가 있습니까. ▲대통령 후보는 당헌에 정해진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미·EC,유고군부 동태 예의 주시”/혼미 거듭하는 유고사태

    ◎겐셔 독 외무,“연방군 미쳐 날뛰고 있다”/미 국무부선 자국민에 조기 출국 권유 ○…유고슬라비아 연방군과 슬로베니아공화국 방위군이 전투를 중단한 것으로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슬로베니아의 밀란 쿠칸 대통령은 『공화국 영토 방위군은 연방군이 「4일중 야만적인 공격」을 개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으며 옐코 카친 공보장관도 공화국측이 입수한 연방군 내부문서를 근거로 새로운 공세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한편 유고에서 2번째로 큰 크로아티아공화국측도 슬로베니아로 향하고 있는 연방군의 합의되지 않은 영내 침범을 「무력도발」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시메 조단 국방장관은 『우리는 적절한 대응태세를 갖출 것이며 모든 크로아타아군은 전투준비 상태에 있다』면서 『우리는 싸우기를 바라지 않으나 우리 국가의 자유가 이에 달려있다면 자유는 대단히 귀중한 것이기 때문에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고연방군이 4일 슬로베니아공화국에 대해 또 다시 무력사용 경고를 발함에 따라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나라들도 늘어나고 있다. 마크 아이스켄스 벨기에외무장관은 유고연방군과 슬로베니아방위군간에 또 다시 폭력이 발생한다면 EC는 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지역 국가지도자들은 3일 유고슬라비아 내전사태에 대해 지금까지 취해온 조심스런 태도에서 벗어나 유고연방군에 대해 강도높은 비난을 퍼부었다. 독일의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은 유고연방군이 『미쳐 날뛰고 있다』고 비난하고 즉각 완전철수할 것을 촉구했으며 이탈리아 외무장관도 이에 가세해 만일 유고군이 휴전약속을 준수하지 않으면 크로아티아공화국 및 슬로베니아공화국과 『연대해서 행동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의 더글러스 허드 외무장관도 유고군은 유고의 분열을 촉진했을 뿐이라고 말했다.그는 의회 연설에서 『유고의 구체제는 상당히 부패된 상태이기 때문에 더이상 존속할 수 없는 것이다.따라서 유고는 단일국가를 유지하기가 이제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무부는 연방군과 슬로베니아공화국 방위군간의 무력충돌로 2백명이 사망하는등 유고사태가 혼미에 빠져들자 4일 슬로베니아및 크로아티아공화국에 체류하고 있는 자국민들에게 가능한한 빨리 빠져나올 것과 유고슬라비아로부터의 출국을 권유했다. ○…바바라 맥더걸 캐나다 대외업무부장관은 3일 캐나다가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유고의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두 공화국을 주권국가로 승인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맥더걸장관은 지난주 발표된 이 두 공화국의 독립선언을 캐나다가 승인할 것인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캐나다 정부는 폭력사태가 중단된다면 민주적으로 이뤄진 어떤 해결책이라도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련은 3일 유고슬라비아 사태와 관련한 가장 강력한 어조의 논평을 발표,이번 사태를 심각히 우려한다고 말하고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두 공화국이 합의한 독립선언의 3개월 유예가 실천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비탈리 추르킨 소연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뉴스 브리핑에서 『우리는 유고의 현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하고 『충돌이 인명손실을 초래했다는 사실은 깊은 유감을 자아내게 한다』고 덧붙였다. ○…알로이스 모크 오스트리아외무장관은 4일 유고연방군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열망을 꺾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경우 오스트리아는 「한치의 주저도 없이」 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크장관은 또 오스트리아외에도 「상당수의」국가들이 두 공화국에 대한 승인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초중고 운영도 「자치시대」로/주민·학부모,재정지원·교재선택 참여

    ◎2학기부터 「협의회」구성… 본격 실시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학교교육에도 자치제가 본격 실시된다. 교육부는 3일 오는 2학기부터 초중고교의 전반적인 학교운영에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을 참여시켜 학교재정지원 및 학교환경개선방안등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학교운영자치제를 도입,활성화시키기로 했다. 이와관련,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이달 8일 광역의회가 구성되면 오는 8월초쯤 교육위원이 선출되고 이에따라 학교교육의 자치제를 본격적으로 실시해야 하므로 이같은 방안을 마련한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학교운영전반에 걸쳐 지역실정을 잘 아는 주민과 학부모를 폭 넓게 참여시키는 「학교운영협의회」를 구성,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학교운영을 해나가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모든 학교행정을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에게 공개함으로써 유대관계를 깊게 하고 신뢰도를 높여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퐁토를 조성해 교육의 민주화와 자주성을 확립해 나가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교육부의 이같은 방침은이날 중앙교육심의회가 교육정책토론회를 열고 「지방교육자치시대에 있어서의 학부모의 학교교육참여 활성화방안」을 논의한뒤 건의해 온 내용을 모두 수용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각학교 별로 설치되는 「학교운영협의회」는 학년별 교사 1인씩과 같은 수의 지역주민,그리고 학부모로 구성하게되며 적어도 1개월에 1회이상의 회의를 열어 학교재정지원 방안을 비롯한 학교 환경개선 방안,교재채택 교복착용문제 자율학습및 보충수업실시여부등에 이르는 사안들을 협의,결정하게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이 방안은 지금까지 몇몇 육성회 임원들에 의해 학교 재정지원이나 후원에 그쳤던 것을 많은 지역주민과 학부모들이 학교운영전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교육자치제의 도입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에대해 교육전문가들은 『학부모의 교육권에 대한 법규정의 신설과 아울러 학교교육에 참여하고 협력할 단체로서 「학부모회」나 「학부모·교사회」와 같은 조직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 한·미 정상의 한반도통일 논의(사설)

    우리 북방외교의 종착역이 평량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리고 튼튼한 우방외교의 바탕없는 북방외교의 확실한 결실이 있을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노태우대통령의 이번 미국방문은 그동안 성공을 거두어온 북방외교의 연장선상에서 우방외교의 기틀을 다지려는데 중요한 목적의 하나가 있는 것이었으며 소기의 성과를 충분히 달성했다고 우리는 본다. 노대통령의 이번 방미 및 부시 미국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종래의 우리 역대대통령 방미의 경우와는 다른 특징을 찾는다면 그것은 한국대통령의 떳떳하고 확고한 자신감과 그에 대한 미국 국민 및 대통령의 따뜻한 경의표시 및 확고한 지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한국의 국가적 성장과 북방외교의 업적,그리고 착실한 민주화 진전이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노대통령은 첫 기착지인 샌프란시스코에서 두가지 사실을 강조했다.한국은 6·29선언이래 민주주의를 하는 새로운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과 민주한국 주도의 통일이 금세기내에달성될 것이라는 확신이 그것이다.스탠퍼드대 초청연설과 교민모임연설 등을 통해 노대통령은 『성숙한 국민의 정치의식과 언론자유가 있고 참고 자제할줄 아는 정부가 있는한 우리 민주주의의 앞날은 밝다』는 여유있는 자부심을 보였으며 『나는 금세기안에 반드시 통일의 날이 올것으로 확신하며 이번 방미도 그날을 재촉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해 현지 교민과 미국인들의 공감과 환영을 받았다. 이같은 분위기는 워싱턴방문과 정상회담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강조되었다.특히 정상회담 내용에서 주목되는 것은 민주화 통일의 강조다.종래의 한미정상회담에서와 같은 한반도 안보의 소극적 관심이 아니라 민주화 통일의 적극적 관심이 강조되고 있는 사실이 대단히 인상적인 변화로 주목된다.한국의 통일 노력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다짐되었고 통일과정에서 뿐 아니라 통일후의 한미협력의 동반자관계 발전까지 강조되고 있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시사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부시 미국대통령은 한국의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노력을 확고히 지지하고 그러한 통일의 달성을 위해 한국과 함께 최대한의 기여를 아끼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당연지사로 인정되었으나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던 「민주화 통일」의 방향제시로 주목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당연한 귀결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다시한번 통일의 전제로서 북한의 민주화 개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북한의 민주화 개혁 없는 「민주화 통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북한의 개혁 거부는 곧 통일의 거부인 것이다.부시대통령의 지적처럼 한반도의 영원한 평화는 통일에 있고 통일을 위해선 북한의 민주화 개혁이 전제조건이라면 북한의 민주화 개혁을 유도하고 지원하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한미정상회담의 결과를 보면서 우리는 미국의 지원약속에 더해 북한을 민주화 개혁의 길로 끌어내기 위한 우리의 노력도 배가시켜 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한반도평화「노태우구상」가시화/위싱턴정상회담의 의의와 전망/긴급대담

    ◎「통일이후」 구도 접근… 영속 파트너십 구축/“미·북한관계 핵과 묶어 상당한 외교압력”/「북방정책」에 대한 미 일부의 불신 완전해소 노태우대통령과 조지 부시미국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신질서구축에 공동노력키로 다짐함으로써 한미관계를 상호보완의 협력관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유정렬교수(외국어대)와 김국진교수(외교안보연구원 연구실장)의 긴급대담을 통해 이번 정상회담이 갖는 의미와 전망 등을 들어본다. □참석자 유정렬교수 김국진교수 (무순) ▲김국진교수=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통일과정뿐 아니라 통일후에도 외교·경제·안보등 모든 면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성숙되고 영속적인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로 한 것은 탈냉전으로 변화하는 동북아의 새로운 정세에 맞게 한미관계를 다져나가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다시말해 한반도가 동북아 냉전탈피의 핵심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태우대통령은 탈냉전분위기에 맞게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체제 구축 의사를 밝혔으며 부시 미대통령은 이에대해 적극지원을 다짐한 것입니다.양국정상은 또 국제사회에서 격상된 한국의 위상을 토대로 통일과정뿐 아니라 통일이후에도 한국이 동북아정세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해야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습니다. ▲유정렬교수=해방이후 한미관계를 보면 50,60년대의 대미의존적 과정과 70,80년대의 동반자적인 관계를 거쳐 이제 상호보완적인 협력관계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이같은 한미관계의 위상변화속에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의 접근,동북아평화구축등에 있어 양국간의 역할과 기능등을 점검해보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자타가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한반도 주변은 최근 몇년사이에 급속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우리의 북방외교는 소연과의 수교에이어 중국과의 급속한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또 북한역시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고 따라서 미·북한간의 관계도 멀지않은 시점에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겪을 것입니다. 이같은 국내외정세의 변화속에서 양국정상들은 우선 민족자결의 원칙에서 한반도의 통일이 추진돼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습니다.사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신장된 경제력등을 바탕으로 북한을 개방사회로 끌어내기위해 각급 남북대화를 시도하는등 꾸준하게 북한과의 대화노력을 기울여 온게 사실이지요.이런 바탕위에서 미국 역시 우리의 통일노력과 남북이 자주적인 노력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도록 객관적인 위치에서 지원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입니다. ▲김교수=양국정상들이 북한측에 국제원자력기구(IAEA)핵안전협정체결을 촉구하면서 핵관련시설과 물질에 대한 조건없는 사찰을 요구한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양국은 북한측이 핵안전협정의 당사국이 돼야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와 아울러 핵개발 가능성이 있는 핵연료재처리시설도 사찰을 받아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확인한 것입니다.북한의 핵개발은 남북관계의 차원을 넘어 아시아·태평양주변국가와 동북아평화질서 구축에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미국뿐만아니라 소련·일본·중국등이 공동으로 우려하고 있는 현안입니다.따라서 일본·미국등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파탄에 직면한 경제적위기를 모면해보려는 북한으로서도 결국 이를 수락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유교수=그렇습니다.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 핵안전협정체결과 핵관련시설및 물질에 대한 조건없는 핵사찰을 촉구한 것은 북한에 대한 상당한 외교적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북한은 유엔가입 발표이후에도 핵사찰 거부등으로 인해 유엔가입을 거부당할까봐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미국측은 오는11일 열릴 미일정상회담에서 가이후(해부)일총리에게 북한의 핵사찰문제를 일북수교협상의 확실한 전제조건으로 제시할 것으로 관측됩니다.또한 이번 회담에서 북의 핵사찰과 주한미군의 핵철수를 연계시켜서는 안된다는데 인식을 같이한 것은 북한의 억지주장 가능성에도 쐐기를 박은 것이라 할수 있죠.그리고 핵사찰 이행 문제는 경제난 극복등을 위해 대미관계개선을 바라고 있는 북한에게는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김교수=이번 회담은 특히 시기적으로 적절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한일정상회담(1월)을 비롯,미일(4월),일소(4월),한소(4월),중·북한(5월),중소(5월)정상회담등 동북아 국가정상들의 행보가 잦아지고 있잖습니까.특히 소련이 선린우호조약체결을 우리에게 제의한 시점에서 한미정상이 만나는 것은 북방외교의 속도를 조절하고 우방국들과 동반자 관계의 동방외교를 다져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데서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또한 다변화되어 가는 국제정세변화 과정에서 최근 걸프전이후 강화되어온 양국 협력관계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더욱 다져졌다고 여겨집니다. ▲유교수=특히 한반도 통일을 성취하기까지는 한미안보협력체제를 더욱 공고히 해야한다는 점을 양국 정상이 재확인한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한미방위조약에 근간을 둔 한미군사협력관계는 동북아 안보의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교수=미국방부는 지난 4월 의회에 보고한 자료에서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거듭 확인한 바 있습니다.우리측 입장 역시 남북간의 군사대치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구도에서 일정수준의 주한미군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요.따라서 양국정상은 주한미군 주둔과 관련한 입장조정의 측면보다는 향후 전략변경이 있을 경우 사전 협의해 나간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유교수=이번 회담에서 주한미군철수여부 문제도 언급됐습니다만 이는 양국간의 견해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향후 예상되는 한반도와 주변정세변화 등과 관련,입장을 정리해 놓기 위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올가을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이 실현될 경우 휴전협정의 평화협정대체,유엔사령부 해체등의 문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김교수=노대통령이 후버연구소 연설에서 아태각료회의(APEC)의 발전을 강조한 것은 APEC를 주축으로한 아태지역협력에 미국도 적극 참여할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한미간 양자적 협력관계가 이제는 국제기구의 다변화 현상 속에서 새로운 양자 협력관계로 발전해야 한다는것이죠.유럽공동체(EC)의 시장단일화,북미자유무역협정(FTA)등 지역경제 블록화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아태지역내 자유무역경제협력의 필요성은 어느때보다 증대되고 있습니다. ▲유교수=이번 회담은 우리의 북방외교추진과 관련한 미국의 일부 부정적인 시각을 교정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봅니다. 전통적인 한미간의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우리 외교의 운신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 결코 미국의 이익과도 배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시켰다는 점입니다.미국이 소연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북한측과도 관계개선을 기울여 나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그동안 우리의 북방외교결실이 미국측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도 간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교수=6·25라는 동족상잔을 경험했고 남침의 당사자인 김일성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남북한간의 통일을 위한 당사자간 노력은 상호신뢰와 평화체제의 구축이 전제돼야 할것입니다. 이같은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남북한과 주변국가들의 관계정립을 한반도문제의 국제화라고한다면 통일을 위한 본격적인 남북대화체계를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라 할수 있습니다. 이제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이 이뤄지면 주변분위기의 성숙과 함께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를 위한 본격적인 남북협상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유교수=한미양국은 작년에 통상마찰을 겪기도 했지만 양국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자유무역체제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성공적 타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천명했습니다.자유무역체제원칙은 우리의 통상·무역정책의 기조를 이루고 있습니다.따라서 농산물 시장을 비롯한 시장개방은 불가피할 것이지만 이문제는 해당 국가의 특성을 고려,급속히 이뤄져서는 곤란하리라 봅니다.결국 양국 관계장관회의를 비롯한 실무자 협의를 거쳐 어느정도 조정되어야 할것입니다.
  • 한국주도 민주통일 지지/노 대통령·부시 정상회담서 재확인

    ◎북한 핵사찰 무조건 수락 촉구/영속적 동반관계·통상협력에 합의/부시 가을 방한 초청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노태우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은 2일 한미양국은 한국의 통일과정에서 뿐아니라 통일후에도 외교·경제·안보면에서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성숙되고 영속적인 동반자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이날 상오10시30분(한국시간 하오11시30분) 백악관에서 한미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집중 논의,이같이 의견을 모으고 『통일한국과 미국의 협조는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했다』고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이 발표했다. 노대통령은 이자리에서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통일 여건을 주도적으로 조성하려는 한국의 노력을 지원국의 입장에서 적극 지지해 줄것을 요망하고,모든 관계국과 국제사회도 이를 지지해 주도록 미국이 적극 협력해 줄것을 요청했다. 부시대통령은 이에대해 한국의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노력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재확인하고 미국은 이를 위해 최대한의 기여를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두나라 정상은 이자리에서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협정체결과 모든 핵관련시설과 물질에 대한 조건없는 국제적 핵사찰 수락을 촉구하고 『이러한 조치는 핵확산금지조약 당사국으로서 북한이 취해야 할 의무이며 어떠한 다른 문제와 연관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이 문제를 주한미군의 핵철수문제와 연계시키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두 정상은 또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양국이 외교적 노력을 다하기로 합의했다.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미·북한관계의 진전은 북한을 개방과 개혁으로 유도,건설적인 남북관계를 정립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노대통령은 이와관련,북한이 핵안전협정서명및 모든 핵시설에 대한 사찰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남북총리회담 재개등 남북대화에 성실히 임해올 경우 미국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부시대통령은 이에 대해 미·북한관계는 남북관계의 진전상황을 충분히 고려,추진해 나감은 물론 한국측과 긴밀히 협의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양국정상은 한미안보협력이 한반도에서의 전쟁억지 뿐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평화에도 긴요하다는 공동인식아래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을 재확인했다. 특히 노대통령은 적정수준의 주한미군이 계속 필요하며 정세변화에 따라 미국의 전략을 조정할때는 한국측과 긴밀한 협의를 가져야한다고 강조하고 한국의 능력범위내에서 방위비부담을 늘려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부시대통령은 경제·통상문제와 관련,한국의 시장개방과 농업구조조정을 위한 계속적인 노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에대해 노대통령은 자유무역질서유지의 원칙아래 다자간 협상에 의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날 부시대통령의 금년 가을 방한을 초청했으며 이에대해 부시대통령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가을에 아태지역을 방문하는 기회가 있으면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 신민 서명파의원들/독자계보 출범선언

    신민당의 노승환·정대철의원등 야권통합 서명파 인사들은 2일 하오 서울시내 모음식점에서 모임을 갖고 「정치발전연구회」라는 명칭의 독자계보를 출범시켜 통합운동과 당의 민주적 개혁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이들은 늦어도 다음주초까지 계보사무실 개소식을 갖고 별도의 규약을 마련키로 했는데 사무실은 마포부근에 이미 마련해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수의원은 『정치발전연구회 회장에는 노승환최고위원이 내정됐으며 산하에 몇명의 이사와 운영위원회를 두기로 했으며 총무·홍보·연구분야를 담당할 3명의 간사도 둘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의원은 또 『현재 추진하고 있는 야권통합을 위한 서명운동에는 20여명의 원내외지구당위원장이 서명을 마쳤으며 호남지역 지구당위원장 2명을 포함해 상당수 의원들이 모임에 가담하겠다고 뜻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대중총재등 당권파측에서는 이들의 계보결성을 분파행동으로 비난하고 있어 앞으로 당권파와 서명파 사이의 마찰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모임에는 노·정·이의원외에 박실·이형배·김득수의원과 한영수·오홍석당무위원이 참석했고 김덕규의원이 새로 가담했다.
  • 외언내언

    「수령」이란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한 당파나 무리의 우두머리」 「도둑의 우두머리」로 풀이되어 있다.사전의 풀이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말을 나쁜뜻으로 쓰고 있다.그러나 북한에서는 이말이 최상의 영광된 칭호로 쓰인다.그곳에서의 「위대한 수령」은 김일성뿐이기 때문. ◆김일성에게 「수령」이란 칭호를 처음으로 붙여준 것은 그의 아들 김정일.우리가 보기에는 불효자인데도 김정일의 풀이는 정반대이다.그의 「수령론」을 들어보자.「수령·당·인민은 혁명의 주체이자 통일체이다.사람들의 생명중심이 뇌수인것처럼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중심은 집단최고의 뇌수인 수령이다.수령을 떠나서는 인민이 자주적인 생명체를 이룰수 없다」 ◆한가지 흥미있는 사실은 김정일이 그의 「수령론」에서 기독교의 신앙핵심을 교묘하게 접목시키고 있다는 점.영적생명과 육체적 생명의 신학적 의미를 정치적으로 변형시킨것도 그렇지만 수령·당·인민을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에 대입시켜 놓은것도 그렇다.때문에 북한인민들은 「위대한수령」을 하느님으로 떠받들 수밖에 없고 수령이 없이는 자기의 생명도 없는것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세뇌되어 있다.글자그대로의 신정체제. ◆그런데 지난1일 인민경제대학 창립45주년 기념보고회에서 이대학 총장이 김정일에게도 「위대한 수령」의 칭호를 헌상했으며 그에게 이 칭호를 바친것은 처음이라고 한다.그렇다면 지금 아버지와 아들 모두가 「위대한 수령」이란 말인가.그것은 있을수 없는 일.「미래의 수령」에 대한 충성심 제고의 뜻으로 그렇게 불렀다고 보는것이 온당하다. ◆어쨌든 인간이 신의 탈을 쓰고 다스리는 그 체제가 온전하게 지탱된다면 그야말로 신에 대한 모독.김일성부자가 「수령」이란 허황된 탈을 벗어버리고 인간으로 되돌아 와야만 그곳도 사람 사는 사회가 될텐데….안쓰러운 마음 금할수 없다.
  • 노 대통령­부시 정상회담의 의미

    ◎“한반도 통일 촉진”… 한·미 공조 확고히/아태 신질서 구축에 공동노력 다짐/UR협상 자유무역 증진 차원 협조 노태우대통령과 부시 미대통령의 2일 한미정상회담은 앞으로 곧 닥칠 한반도 통일에 관해 「공동의 그림」을 그렸다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한반도 통일과정에 있어서의 방향설정과 여건조성을 촉진하기 위한 양국의 공동노력은 물론 「통일한국」의 위상문제까지도 인식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국 정상이 『한국의 통일과정에서뿐아니라 통일후에도 한미양국은 외교·경제·안보면에서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성숙되고 영속적인 동반자관계(Partnership)를 발전시켜나가기로』합의한 대목이나 통일한국과 미국의 협조는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언명한데서 잘 나타나 있다. 역대 한미정상회담에서 「통일한국」 즉,남북한 통일이 성취된 뒤의 한국위상문제를 논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분단 배경의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 『한국의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노력에 확고한 지지와 함께 통일에 최대한 기여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은 단순한 외교수사로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 소연 등 동구의 개방·개혁,전후 냉전체제의 붕괴,그리고 이 기회를 제대로 포착한 6공정부의 강력한 북방정책이 어우러짐으로써 통일의 외적 장애요소는 크게 줄어들었다. 이번 노·부시회담은 통일여건이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주변상황을 더욱 통일여건성숙쪽으로 가속화하고 통일한국과 미국과의 관계설정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내심 남북한 통일에 부정적 내지는 소극적인 입장에 있는 일본과 중국에 커다란 충격을 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번 회담의 두번째 의미는 북한의 핵개발문제와 미·북한관계확대에 관해 확실하게 선을 그어주었다는데서 찾아볼 수 있다.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핵안전협정체결은 물론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포함한 모든 핵관련시설과 물질을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국제사찰하에 두어야 하며 이를 어떤 다른 문제와 연관지을 수 없다』는데 합의했고 『북한의 핵개발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안보에 위협이 되므로 한미양국은 이를 저지하기위해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한다』는 데도 합의했다. 이러한 한미양국 정상의 합의천명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협정체결의사를 표명하면서도 산발적으로 『남한내의 미군핵철수』와 이를 연계시키려는 태도에 대해 분명히 쐐기를 박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미·북한관계개선문제에 대해 노대통령은 ▲북한의 핵사찰 ▲남북대화의 재개등 성실한 자세를 선결과제로 제시했고 이에 부시대통령은 남북관계의 진전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표했다. 따라서 북한이 핵사찰수락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미·북한접촉 창구의 격상및 장소확대·전신전화·직통전화의 개설등 통신개방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미·북한관계진전은 반드시 남북총리회담의 재개등 남북대화의 의미있는 진전도 고려돼야 하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노·부시회담의 논의차원이 한미관계라는 좁은 시각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아태지역 나아가 세계전략적 차원의 넓은 시야에서 협의되었다는 점이다. 한미양국이 아태지역국가로서 이 지역의 화해와 협력체제구축을 위해 적극 노력키로 한 것이나 양국간의 경제·통상문제도 쌍무관계로서가 아니라 자유무역질서의 유지라는 다자간의 문제로서 접근하고 상호이해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요 관심사항인 금융시장개방,우루과이라운드의 성공적 타결을 위한 한국의 노력 등도 양자쌍무관계이긴하나 한국의 경제력 부상에 걸맞는 국제적 수준의 개방을 통해 자유무역질서를 유지해나가자는 큰 테두리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노·부시회담의 가시적인 중요한 성과는 이밖에 기존 한미안보관계의 재확인을 들 수 있다. 남북관계의 발전이나 통일한국의 실현도 안보가 바탕이 되어야한다든가 「한반도에 아직 냉전의 유산이 존재하고 있으며 한미간의 안보협력관계는 매우 중요하다」는 등의 미국의 인식을 끌어낸 것은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을 재다짐받은 것이다.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과 관련,미국이 정세변화에 따라 동아시아전략을 검토하려 할때는 한국과 긴밀히 협의한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통해 『평량으로가기위해 모스크바와 북경으로 돌아간다』는 「북방포석」과 대칭되는 자리에 「통일한국」실현을 위한 미국과의 동반관계설정을 다진 「동방포석」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 노 대통령­부시 오늘 정상회담/한반도 핵·남북한 통일등 논의

    ◎워싱턴서 단독­확대회담 두차례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노태우대통령은 1일 하오(한국시간 2일 상오)워싱턴 근교 앤드루스 미공군기지에 도착,국빈자격으로서의 미국 공식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노대통령은 2일 상오 백악관에서 거행되는 미정부의 공식 환영행사에 참석,부시대통령의 환영사에 답사를 한뒤 곧 이어 약 1시간동안 부시대통령과 단독 및 확대정상회담을 갖는다.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국제정세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정세 전반에 대해 간략히 의견을 교환한뒤 유엔가입 이후 북한의 개방촉진 및 이를 통한 남북한의 조기통일방안,미일 등 우방의 대북한정책방향,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핵안전협정 서명과 핵재처리시설 포기 등을 포함한 한반도의 핵문제 등을 집중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은 특히 이 자리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민주적·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에 통일이 성취될 수 있도록 주변국들은 지원국의 입장에서 통일여건 조성에 최선의 협력을 해줄것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두나라 정상은 회담에서 북한의 핵안전협정 부가입과 핵재처리시설 건설은 한국 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나아가 인류문명 자체에 대한 위협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북한의 핵안전협정서명 및 모든 핵시설에 대한 국제사찰 수용을 촉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김호준특파원】 2일 백악관에서 열리는 노태우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대통령간의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남한의 미핵무기 철수문제가 주요의제로 논의될 것이라고 미국의 동아시아문제 전문가인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버클리대)가 1일 말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두 대통령이 이번회담에서 미핵무기 철수를 한국정부가 선언할 것인지,아니면 철수 후에도 미정부가 핵무기의 존재를 긍정도 부정도 않는(NCND)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의 문제까지도 논의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이날 노대통령의 방미를 맞아 아시아협회가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이제 미국의 NCND정책은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남한의 지상 핵무기문제는 이제 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비무장지대에 집중 배치돼 있는 남북한의 군사력을 감축,문자 그대로의 진정한 비무장지대로 만드는 군축방안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중국공산당 독재 고수/사회주의식 경제개혁 지속 추진”

    ◎강택민 총서기,창당70돌 연설 【북경 UPI 로이터 연합】 중국당총서기 강택민은 1일 세계사회주의의 쇠퇴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한 것이라면서 중국은 결코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은 이날 중국공산당 창당 70주년을 맞아 북경의 인민대회당에서 행한 기념연설에서 중국은 「공산주의 독재기능」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말하고 『오늘날 세계사회주의가 명분면에서 다소 심각한 쇠퇴를 경험하고 있으나 이는 역사상 일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에서 서구식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것은 공산당의 지배를 종식시키자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우리 인민 전체는 결코 이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인민의 민주적 독재는 약화되거나 포기돼서도 안될것』이라고 말했다. 강은 2시간 가까이 계속된 이날 연설에서 의례적인 중국의 시장경제개혁의지를 거듭 천명하면서도 『중국은 먼저 국가소유의 사회주의경제를 통합·확대해 나가야하며 결코 자본주의경제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중국공산당은 이날 관영언론매체들을 동원해 통상적으로 중국인민해방군을 지칭하는 「철의 대장벽」이라는 용어를 사용,서구식민주주의의 침투를 저지하기 위해 「철의 대장벽」을 굳건히 건설해 나갈 것임을 다짐했다.
  • “앞으로의 선거 돈안드는 방법모색”/노대통령기자간담 1문1답 요지

    ◎“중소의 핵 사정권”… 「한반도 비핵화」는 무의미/선거구별 당리당략 버리고 여·야 합의 희망/「2백만호 건설」 공기 늦더라도 안전에 중점 노태우 대통령은 6·29선언 4주년과 미국·캐나다 방문을 이틀 앞둔 27일 낮 청와대에서 출입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갖고 국정전반에 대해 견해를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6·29선언의 마지막 약속사항인 지방의회선거를 잘 마무리해서 기쁘시겠습니다. 『기쁘기보다는 더 잘 하라는 국민의 채찍으로 받아들입니다. 무엇보다 6·29선언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한 것은 사실입니다. 두 차례 지방의회선거는 일부 지적이 있었긴 합니다만 냉정하게 보았을 때 과거에 비해 깨끗하고 공명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선거에 따른 정치적 비용을 줄이면서 나머지 정치일정을 순조롭게 매듭지으면 우리의 민주주의도 한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광역선거 개표초반에 민자당이 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느꼈습니까 ○지자제선거 마쳐 홀가분 『확실히 옛날 부재자투표결과와는 달랐지요. 부재자투표자의 대부분이 군복무자라고 볼 때 우리 군이 선거에 대해 얼마나 중립적인가를 실증해준 것 같아 어느 면서는 자랑스러웠습니다』 ­이번에 미국을 방문하면 부시 미 대통령에게 무슨 말을 하실 생각입니까. 『미국의 외교관행이 유럽이나 중동,동구에 편중되고 있음을 여러분도 느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태평양국가로서의 시각조정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21세기를 앞두고 세계정치,경제의 중심지가 아태지역이 될 것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동북아가 중심이 될 것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동북아에 대한 현재의 정책기조를 그대로 두고 21세기를 맞아도 될 것인가를 지적할 것입니다. 소련의 극동정책변화,21세기를 앞둔 한국의 통일,전후 미국의 도움으로 초강대국으로 돼 있는 일본 등에 대해 미국으로서 결산을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편에서 부시 대통령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것입니다』 ­대통령임기 1년 전에 민자당의대권후보를 뽑겠다고 LA타임스가 보도했는데 좀더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당헌에 그 절차와 시기·방법 등이 명시된 것을 바탕으로 외국의 사례도 참고해서 내 임기 1년 전쯤 민주적 절차에 따라 훌륭한 사람이 차기후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자당에 대해 선거구제의 검토를 여러번 지시했는데 현행 제도에 무슨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선거구제 여·야 합의를 『선거구제엔 장단점이 있습니다. 여당내에서는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의견이 다르고 야당도 내부적으로는 같은 현상입니다. 소·중·대선거구 가운데 대통령 입장에서 꼭 이것이라고 못을 박을 수는 없습니다. 정치상황은 오늘 내일 따라 변할 수도 있으니까. 선거구 문제도 민자당이 그리고 여야가 잘 상의해서 가장 바람직한 제도를 찾아야겠지요.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너무 당리당략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정치상황이란 오늘 내일따라 비뀔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각제개헌 문제도 마찬가지입니까. 『내가 내각제에 대한 얘기를 하면 언론과 정치인이 혼란스럽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우리 정치가 권력구조에 대해 논의한 방식이나 수준이 그렇게 높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혼란이 생기면 나라에 도움이 안 되는 만큼 가능하면 이 문제에 대한 얘기는 안 하겠습니다. 내각책임제에 대한 나의 견해는 이미 여러 차례 밝한 바 있습니다. 개헌은 어느 제도든 국민이 원해야 하지 국민이 바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번 광역의회 선거에서 지방색이 또 문제되니 내각제 얘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 여러 가지를 두고 국민들이 생각을 해보겠지요』 ­차기 대통령은 통일을 맞게 될 가능성이 많은데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된다고 보십니까. 『나는 임기중 통일의 기반을 닦고 다음 대통령이 통일을 이루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대통령은 통일에 대비해 필요한 자격과 요건이 구비돼야 하며 나 이상으로 통일을 깊이 생각하고 필요한 능력을 축적해 나가리라 봅니다. 그런 분이 나라의 책임자가 되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바라는 바 입니다』 ○통일 자질 갖춘 인물 많아 ­그런 자질을 가진사람이 여권내에 있습니까. 『여권내에서 없다면 야권에서 찾으라는 얘깁니까(웃음). 그런 사람이야 많습니다』 ­차기 대통령 후보의 가시화시기는 14대총선 이전이 좋다고 보시는지 아니면 이후가 좋다고 보시는지. 『거기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임기 1년 전쯤 되면 총선일정과 혼란스럽게 중복되지 않으리라 봅니다』 ­후보자가 정리되고 가닥이 잡힌다는 뜻입니까 『가닥도 잡히고 총선스케줄과 중첩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신도시아파트 부실공사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무엇입니까. 『그나마 일찍 발견돼 불행중 다행으로 생각됩니다. 이번 일로 인해 2백만호 주택건설의 대역사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서둘러서는 무리가 있으니 공기가 다소 늦어지더라도 안전성에 문제가 없도록 해 나가겠습니다』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핵사찰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전망됩니다만 최근 미국내 학계 등에서는 남한내에도 미국의 핵무기 배치돼 있다며 이의 철수문제가 거론돼야 한다고주장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제조하는 것과 관련한 위험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미 중 소가 같은 생각입니다. 한반도만의 비핵지대화는 의미가 없습니다. 중소의 핵이 충분한 사정거리에 있는데 설령 남한에 핵이 있다고 치더라도 빼버린다고 비핵지대화가 되겠습니까. 진짜 비핵지대화를 만들려면 한반도뿐 아니라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나라,나아가서는 세계 각국의 비핵지대화가 필요하며 이 문제는 이미 핵을 보유한 나라들이 논의해 입장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캐나다 방문에는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두고 있습니까. ○캐나다와 경협 큰 기대 『캐나다는 국토가 넓고 풍부한 자원과 선진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정말 큰 나라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와는 경제협력면에서 전망이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찰관의 총기난사 사건과 관련,관계책임자의 인책을 생각하고 계시니까. 『고약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내무부 장관이 감독책임자 등에 대해 인책할 일은 하게 될 것입니다』
  • “차기대통령 「통일수행능력」 갖춰야”/노 대통령

    ◎민자후보 내년 2월께 경선 재확인/“신도시건설 잘못 있으면 문책/방미때 21세기 동북아 새질서 논의” 노태우 대통령은 27일 『내 임기중에는 통일의 기반을 닦고 다음 대통령임기중에는 반드시 통일을 맞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따라서 차기대통령은 통일을 맞게 되는 대통령으로서 필요한 조건과 자격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낮 청와대에서 6·29선언 4주년과 미국·캐나다 방문을 앞두고 청와대출입기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차기대통령의 자질을 묻는 말에 이같이 말하고 『차기대통령은 나 이상으로 통일을 깊이 생각하고 필요한 능력을 축적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민자당의 차기대통령 후보선출 시기에 관해 『당헌에 명시된 절차와 민주적 방법에 따라 내 임기종료 1년 전쯤 해서 선출되어야 한다』고 내년 2월 전후 경선원칙을 거듭 밝혔다. 노 대통령은 여권의 차기후보 선출시기가 14대총선 전 또는 총선 후가 될지에 관해 『깊이 생각할 필요없이 임기 1년 전쯤 되면 총선과 중복되지않고 혼란스럽지도 않게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시 도의회선거 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내각개헌 문제에 대해 『내각제에 대한 내 개인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나 어떤 제도라도 국민이 바라지 않는 제도는 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국회의원 선거구제 검토중 선거법 개정 문제와 관련,『대통령으로서 소·중·대선거구 가운데 어느 특정제도를 못 박지는 않고 있다』면서 『여야가 당리당략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상의하면 바람직한 제도를 마련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최근 신도시아파트 부실공사 문제에 대해 『정부의 2백만가구 주택건설에는 근본적인 차질이 없을 것이나 다소 공기를 늦추더라도 안전성을 보장토록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잘못된 점은 가려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경찰관의 민간인 사살사건과 관련,『내무장관이 알아서 책임을 물을 것이며 사건을 규명해 시정할 것은 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미국과 캐나다 방문에 대해 『우리는 이제 경제적 발전과 민주주의를 토대로 우리 스스로 냉전체제를 뛰어 넘어 한반도 및 동북아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앞으로 2∼3년간이 통일의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이며 미국과 캐나다 방문도 이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며 『나는 민주주의를 열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이런 시도의회선거 결과 정치인의 관심사와 국민의 욕구 사이에 너무 격차가 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정치의 모든 국면을 오로지 차기 대권과 관련지어 유·불리의 차원에서 계산하는 정치행태에 국민들이 혐오감을 느꼈다고 본다』고 말했다.
  • 「6·29」 4주년 평가와 과제

    ◎“지자제로 대미”… 민주화 정착단계 진입/제도·법령 꾸준한 정비,“탈권위” 큰 진전/“대화와 타협” 정치문화 쇄신이 숙제로 노태우 대통령의 「6·29선언」은 29일로 4주년을 맞는다. 6·29선언은 한마디로 권위주의 체제를 청산하고 민주체제에로의 이행을 약속한 것이라고 할 때 노 대통령은 취임 후 3년4개월 동안 이를 착실히 실천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금년 3월과 지난 20일 실시된 시군구 및 시도의회의원선거가 마무리됨으로써 6·29선언은 사실상 실천을 완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29선언 8개항을 살펴보면 ①조속한 대통령직선제 개헌과 새 헌법에 의한 평화적 정부이양 ②대통령선거법개정과 공명정대한 선거관리 ③시국관련 사범의 대폭석방 및 사면·복권 ④인간존엄성의 존중과 기본권의 최대한 신장 ⑤언론기본법 폐지 등 언론자유의 창달 ⑥지방자치,대학자율화,교육자치 등 사회 모든 부문의 자치와 자율보장 ⑦정당활동의 보장과 대화·타협의 정치풍토 마련 ⑧과감한 비리척결로 밝고 맑은 사회건설 등이다. 이 가운데①②③항은 6공출범 전후로 모두 실천되었고 ④⑤⑥항은 대통령취임 후 관계법의 민주적 개폐와 실질적인 운영을 통해 보장되었으며 ⑦⑧항도 꾸준히 진전돼 왔다. 다만 교육자치,타협의 정치풍토,비리척결부문은 실천과정에 있거나 아직도 미흡하다는 평가가 없지 않다. 6·29선언을 항목별로 미시적으로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4년을 넘기는 마당에서는 좀더 거시적으로 정치적 시각에서 평가하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로 이행하는 전환기에 관한 국제비교연구의 석학인 후안린츠 교수(미 예일대)의 「틀」을 잠시 원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스페인,포르투갈,중남미,그리스의 사례를 비교연구해 온 그는 권위주의→민주화 전환단계를 자유화단계와 민주화단계로 나누고 민주화단계는 다시 ▲민주화의 개시 ▲민주화의 실현 ▲민주화의 공고화로 세분하고 있다. 자유화의 단계는 억압의 해제를 의미하며 여기에서는 법률제도의 개정,억압담당기관의 축소,반대인사의 공인이 이뤄진다. 여기에 우리의 경우를 대입해 보면 민주주의제도화와 관련한 법령은 그 동안 1천8백여 건을 정비했고 안기부·보안사(현 기무사) 등 과거 인권억압기관으로 불리던 기관들은 기구정비와 함께 그 운영을 크게 쇄신했다. 또한 과거 반정부 재야인사들이 제도권정당에 대거 흡수돼 야당으로 정치활동을 하고 있고 정치적으로 현 정권을 반대하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탄압을 하지는 않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크게 보아 자유화단계는 넘어선 것으로 평가된다. 민주화단계는 민주주의방식에 의한 경쟁시대가 열리는 것으로 이 중 첫 단계인 민주화개시는 여야합의에 의한 6공헌법의 발효,민주화의 제도적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언론자유,사법권의 보장으로 이미 이뤄진 상태이다. 「민주화」의 두 번째 단계인 민주화의 실현은 공정한 선거관리가 보장되는 자유로운 선거,결사·집회의 자유,지방자치의 실시가 되는 단계이다. 민주화의 세 번째 단계인 민주화의 공고화는 민주화가 제도적으로 완성되는 것은 물론 실질적으로 정착되는 것을 뜻한다. 6·29선언 4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한국의 「권위주의→민주화전환단계」는 과연 어디쯤 와 있겠는가를 잘라 말할 수는 없으나 대체로 민주화의 실현과정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김학준 대통령정책조사보좌관은 이에 대해 『우리의 민주화 위상은 「민주화의 실현」으로부터 「민주주의의 공고화」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면서 『이는 대국민 민주화의 약속인 6·29선언이 사실상 모두 실천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6·29선언과 관련한 노 대통령의 앞으로 남은 과제는 민주화의 공고화 즉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정치문화개선의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는 정치풍토의 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풍토쇄신은 노 대통령 자신만의 의지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유권자가 함께 노력할 때 가능하다는 점에서 어쩌면 6·29선언의 완성은 우리 국민 모두의 과제라고도 생각된다. 좀더 현실적인 과제는 앞으로 남은 지자제단체장선거,14대 총선,차기대통령선거 등의 정치일정을 순조롭게 진행시키는 것이다. 이같은 정치일정을 마무리짓게 되면 우리의 민주화는 「실현」단계에서 「정착단계」로 진입하게 될 것이며 「6·29선언」도 명실상부하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 「6·25비화」 소 외교연 학자 본지 특별기고

    ◎“북침으로 꾸며라”… 스탈린,6개항 지침 시달/미 개입에 당황… “정면대결 피하라”/중국 파병따라 공군력 지원약속/「중국공산화」 미서 방관하자 남침 결심/종국엔 북한정권 지키기에 급급… 소,휴전 뒤 재도발 우려해 김일성 감시 서울신문은 6·25 41주년을 맞아 소련 외무부 산하 외교아카데미의 B 발레노프 박사(역사학·필명)가 특별기고한 「6·25는 스탈린의 작품」을 게재한다. 발레노프 박사는 외교아카데미의 최고급 간부 중의 한사람으로 중국문제와 한반도문제에 대한 소련내 최고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비밀문서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활용,지금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는 외무부 보관자료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소장 극비문서 등을 토대로 한국전 발발 배경과 책임소재 등을 규명했다. 발레노프 박사는 자신이 남북한 관계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현역 외무부 관리신분임을 감안,필명으로 게재할 것을 요청해 왔다. 정확히 41년 전 한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그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뒤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났고 세계는 엄청나게 변했다. 소련은 그동안 이념적,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고 강대국들이 「냉전종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도 한국전쟁의 진짜 비극의 역사는 여전히 숨겨진 채로 남아 있다. 소련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N 아닌이 밝혀낸 새로운 자료를 비롯,최근 필자가 어렵게 입수한 극비문서들은 비록 단편적이나마 어떻게 해서 그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됐는지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45년 소련군과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한 뒤 스탈린은 한국에서 얄타협정과 포츠담협정의 조항들을 위반할 의사가 없었다. 1948년 주은래를 만났을 때도 스탈린은 『중국과 북조선 동지들은 절대 해방전쟁을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혁명세력의 무력이 결코 우위에 있지 않으며 미국이 개입하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는 게 스탈린이 내세운 이유였다. 스탈린은 이렇게 모택동의 손발을 묶고 북조선 정부에 대해서도 38도선에서 무력도발을 삼가도록 단단히 지시를 내렸다. 『동유럽에서 제국주의세력과 싸우기에도 벅차다. 소련의 제1관심 지역은 유럽이다』는 게 당시 스탈린의 생각이었다. 스탈린의 이러한 생각은 그러나 1949년 중국공산당이 승리를 차지하자 바뀌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모스크바를 찾아온 모택동과 만난 자리에서 스탈린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그동안 아시아에서 공산혁명세력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했소. 저개발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기 힘들다는 내 생각이 틀렸소』 중국공산당의 승리,동유럽의 공산위성정권 수립과 함께 소련 경제가 꾸준히 성장추세를 보이자 스탈린은 관심을 한반도로 돌리기 시작했다. 북한의 소련대사관과 정보기관들은 한반도에서 혁명에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보내오고 있었다. 『남한 정부는 붕괴 직전에 와 있고 경제는 침체됐으며 사회불안은 통제불능에 빠져 남한인민들은 한결같이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서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정보보고들이었다. 남한 인민들은 북조선에서 전개되는 변화들에 「자석처럼」 이끌리고 있으며 자신들의 비민주적인 정부를 지원하는 미국을 증오하는 반면 소련에 대해서는 최고의 기대감을 품고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소련 정보장교들도 한결같이 남조선에서 전개되고 있는 군사·이념적인 상황은 모스크바에서 지시만 내리면 권력을 탈취할 수 있다는 보고들을 울렸다. ○애치슨 성명에 안심 스탈린은 크게 고무돼 조만간 세계,특히 아시아국가들이 소련의 혁명모델을 뒤따를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에서 혁명이 성공하도록 돕는 것은 소련의 당연한 의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한가지 우려되는 문제는 미국의 대응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중국에서 공산혁명을 수행할 때 미국이 적극 개입치 않았다는 사실에 유의했다. 모택동을 만나서도 그는 이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1950년 6월12일 한국은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된다는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의 성명은 스탈린으로서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당시 소련 외무부에서 지도부에 제출한 보고서는 이 성명을 『미국이 한국의 군사분쟁에 무력개입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분석했다. 스탈린은 미국의 대한 의사와 군사능력을 보다 구체적으로 탐색토록 지시했다. 소련의 외교·군사·정보보고들은 남한내 미 군사력이 전혀 우려할 수준이 아니며 그나마 계속 감축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각국에 파견된 첩보원들로부터도 유사한 정보들이 올라왔고 그 가운데는 미 백악관에서 빼낸 정보들도 있었다. 이 정보들은 영국내 첩보원들에 의해 다시 「더블체크」됐다. 당시 영국 외무부와 정보기관의 고위직책에는 소련첩보 조직이 침투해 있었다. 영국정부가 미국정부에게 새로 수립된 중국 공산당정부에 대한 반대입장을 완화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정보도 런던으로부터 보고됐다. 트루먼 행정부내에는 극동지역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사태에도 미국이 무력개입은 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정보보고들은 한국에서 미국이 어떤 행동,특히 대응 행동을 취할 가능성에 대해서 거의 「제로」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이밖에 소군 지도부는 미국이 이승만 정부를 지켜줄 수 있을 만한 병력을 한국주변에 배치해 놓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유념했다. 스탈린은 미국이 이승만의 독재정치를 크게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도 보고받았다. 스탈린의 의중을 어느 정도 감지한 북한 주둔 소군장성들은 김일성과 함께 한국에서 군사도발을 하는 문제에 대해 크렘린이 관심을 갖도록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소군사령관들과 김일성은 어느 주석에서 남한 괴뢰정부를 쳐부수자는 데 의기를 투합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계획은 여러 경로를 통해 스탈린의 귀에 들어갔다. 한국을 중국처럼 무력으로 통일시키자는 계획은 1949년말 김일성의 모스크바 방문 때 이미 구체적으로 검토됐고 스탈린은 이듬해 봄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최종결정을 발표하기 전 스탈린은 모택동의 의견을 물었다. 이웃 형제국의 「사회주의 해방운동을 종결짓는 일」에 모택동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전쟁계획이 가동되기 시작했고 스탈린은 다음과 같이 전쟁의 주요지침들을 시달했다. 1,전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가 확보돼야한다. 2,소련이 전쟁에 개입됐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 소군사 고문단은 전선으로부터 철수시킨다. 3,북조선 당국은 적과 세계 여론의 주의를 돌려놓기 위해 전쟁 개시 전 평화공세를 강화한다. 동시에 남한당국과의 그들의 앞잡이인 미국이 전면전쟁을 벌일 목적으로 북조선에 무력도발을 일으켰다는 각종 선전을 강화한다. 4,대남 전면공격을 시작하기 전 국지침투를 감행하고 적의 대응공격을 유보하기 위해 전 전선에서 부분공격을 감행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외부세계에 전쟁이 남측에 의해 도발된 것으로 믿게 하는 효과도 얻는다. 5,전면공격은 불시 기습적이고 가능한 한 신속하게 수행돼야 한다. 6,군대가 38도선을 넘는 즉시 남조선 전역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난다. 남조선내 「혁명진보세력」들은 북조선에서 군대가 당도하기 전에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전전 평화공세 강화 전쟁 개시일인 6월25일 스탈린은 측근 참모들과 함께 자신의 별장(다차)에 앉아 전선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속속 낭보가 날아들자 스탈린은 희색이 만면해 이렇게 말했다.『세계혁명에 관한 레닌 동지의 예언이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사업의 큰 공훈자들로 기억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각 한국의 마을과 도시들에서는 수많은 남녀,어린이들이 포탄에 맞아 목숨을 잃고 있었다. 한 늙은 독재자의 탐욕과 광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희생된 것이다. 초기 작전은 극히 순조롭게 진행됐고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은 한달내에 한반도 전체가 해방될 것이라고 보고해 왔다. 스탈린은 측근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모신 지도자의 위대한 천재성에 새삼 경외심을 가졌다. 스탈린은 한국전에서의 조기승리를 이미 예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엄청난 사태반전이 일어났다. 그렘린의 예상과 달리 미국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미의 반격은 매우 효과적으로 진행됐다. 평양의 소련대사관에서 보내오는 전문들은 급전직하 비관적인 내용들로 바뀌었고 외교관들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외부의 도움없이 김일성 군대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들이 내려졌다. 스탈린의 측근 참모들은 김일성을 구하기 위해 소련군을 투입시키자는 주장을 계속 내놓았다. 흐루시초프 몰로토프,베리야도 소련군 투입을 지지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소련군이 미군과 맞서 싸울 만한 힘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끝까지 소련투입에 반대했다. 한국전에서의 완전한 패배를 사실상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였다. 바로 이때 새로운 상황이 벌어졌다. 중공군이 개입한 것이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나서지 않으면 미군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쳐들어 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군대를 투입시키기 전 모택동은 주은래를 모스크바로 보내 소군과 중공군을 한국전에 보내자고 스탈린을 설득시키려 했다. 스탈린은 남부 휴양지에 있는 자신의 시골별장에서 주은래를 만났다.그는 주은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잘들으시오,동지. 미군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오. 만약 우리가 끼어들면 미국은 사회주의 세계 전체를 모두 파괴시키려 들 것이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는 이 시점에서 과연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결정을 내려야 하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할것이지 아니면 소를 지키기 위해 사회주의 세계 전체를 위태롭게 할 것인지』 주은래도 스탈린의 말에 수긍하고 북경으로 돌아갈 채비를 차렸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모택동이 보낸 전문 한통이 소련 주재 중국대사관에 입전됐다. 중공군을 한국전에 투입키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문은 스탈린에게 전달됐고 스탈린도 결국 이에 동의했다. 스탈린과 주은래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중공군이 지상병력을 파견하고 소련군은 북한의 공중방위를 책임진다는 데 합의했다. 전쟁을 치르면서 스탈린과 모는 두가지 목적을 염두에 두었다. 하나는 북한 공산정권을 지키는 것이고,또 하나는 미국과의 전면대결로 전쟁이 확대되는 것을 피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두 가지 목적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민들이 치른 인명과 물질적인 피해는 너무 끔찍했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되자 새 소련지도부는 현상고착을 정책목표로 결정했다(스탈린은 그해 봄 사망했다). 이듬해 흐루시초프는 『한국문제도 독일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돼야 한다』고동료들에게 역설했다. 「두 개의 독일 두 개의 한국」 정책이었다. 흐루시초프는 이제 소련이 북한에 해줄 일은 북한동지들을 도와 북한을 근대화시켜 그 나라를 동아시아에서 사회주의 진열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제국주의 앞잡이 남조선과 무력전쟁이 아니라 경제전쟁에서 이기도록 하자』고 역설했다. 흐루시초프는 실제로 북한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원조를 쏟아부었다. 이러한 원조를 바탕으로 북한은 점차 강성해져 갔다. 그런데 1950년대 후반 들어 소­북한 사이에는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동기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통치를 비난한 것이었다. 김일성은 이 일을 계기로 소련이 이끄는 「사회주의 형제국」의 대열에서 이탈,외부세계에 빗장을 걸고 소위 「주체사상」을 펴나갔다. ○모,주은래 보내 설득 소련이 북한정권에 대해 갖고 있던 신뢰감은 점차 옅어졌고 흐루시초프,브레즈네프는 김일성의 평화의지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 브레즈네프와 그의 이념담당 보좌관인 수슬로프는 수시로 외무부에 『북한의 무력도발 움직임을 체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소련지도자들은 북한대표단과 만날 때마다 한반도 통일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련은 이와 함께 북한에 대규모 첨단공격무기르 공급하는 데도 신중을 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소련은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방식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캄보디아 등지에서 전통적인 팽창주의 노선을 추구했다.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이렇듯 신중한 정책을 고수하려 한 것은 바로 미국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고부터 한국은 물론 기타 모든 문제에서 소련의 입장은 급격하게 변했다. 소련은 이제,첫째 모든 문제에 있어 군사적인 해결방식에 반대하고 있고,둘째 경제문제에 있어서도 북한식 모델을 이제 더이상 지지하지 않게 됐다.
  • “민생치안 주력,일하는 풍토 조성”/노 대통령 임시각의 지시내용

    ◎민주 파괴 폭력행위 결연 대응/지방의회는 중앙정치 도구 안되게/선거결과 국민의 채찍으로 수용해야 이번 선거결과에는 안정을 바라는 대다수 국민의 여망이 그대로 나타났다. 여당인 민자당 후보가 서울과 대도시·중소도시·농어촌에 걸쳐 전국 대부분 지역의 시도의회에서 다수의석을 얻게 된 것은 이러한 국민의 바람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나는 정부·여당을 지지하고 성원해준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더욱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의 바람을 실현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갈 것을 다짐한다. 정부와 민자당은 이번 선거의 승리가 일을 잘해서 국민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착각하거나 자만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정부·여당은 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선거결과를 더욱 무거운 책임감으로,시대와 국민이 명하는 일을 소신껏 해나가라는 국민의 무거운 채찍으로 받아들여 「안정 위에서의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한다. 두 차례 선거를 치렀으나 경제계와 전문가들이 물가나 경제에도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판단할 만큼 깨끗한 선거였다. ▷당면과제 해결◁ 정부·여당은 선거가 끝났다는 안이함이 아니라 이제부터 선거를 시작한다는 자세로 일을 해나가야 한다. 정부는 선거에서 나타난 지역의 민원으로부터 국정차원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뜻을 가려 고칠 것은 과감히 개혁하고 해야 할 일은 강력히 추진해나가야 한다. 6·20 선거는 지난 한 달여에 걸쳐 민주주의체제를 폭력으로 전복하려는 극소수 세력이 벌여온 잇단 소요와 정치사회적 불안을 조장하려는 행위에 대한 온국민의 분명한 대답이었다. 정부는 거리로부터 노사현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불법폭력행위에 더욱 결연히 대응하고 민주주의체제를 파괴하려는 폭력세력의 핵심을 다스려야 한다. 정부는 시위사태로 분산된 치안력을 민생치안에 집중 투입하고 심야영업 단속 등으로 일하는 풍조를 진작해나가야 한다. 국민의 걱정을 끼쳐온 물가와 부동산값의 안정추세가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하며 통화를 안정적으로 운용하면서 자금이 제조업 부문으로 흐르도록 하고 도로·지하철·항만 등의 확충을 추진해나가야 한다. ▷지방자치의 발전방향◁ 우리는 지방자치가 출범 초기부터 그 본래의 이념을 구현하는 바람직한 모습이 되도록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한다. 정치적으로 우리의 지방자치는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획일적 비민주적인 정치구조와 풍토를 개혁하여 다양성이 존중되고 분권화된 민주주의의 참모습을 구현해가는 원동력이 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방의회가 중앙정치의 연장이나 그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행정면에서 지방자치는 권한이 분권화되고 지방과 분야의 특성에 따라 정책결정이 자율화되는 민주행정을 이루는 전기가 되어야 한다. 정부는 중앙부처의 권한과 기능을 과감히 이양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을 높이는 행정개혁을 조속하고 가시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한다. ▷정치풍토 쇄신◁ 6·20 선거는 우리에게 지방자치의 실현과 민주주의의 진전이라는 큰 보람과 함께 가슴아픈 현실에 대한 우리 국민 모두의 각성을 일깨우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에 따라 극히 대조적인결과가 나타났으며 이것은 지난 시대에 걸쳐 패어져온 지역간 갈등의 골이 메워지지 않고 있음을 말한다. 정부·여당은 물론 국민이 이 시대 최고의 민족적 과제인 국민화합을 이루는 데 앞장서주어야 한다. 여야당은 물론 모든 정치인이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심각한 현실을 직시하고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노력을 가시화해줄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 “남북 동질성 회복의 과도기 필요”/최 부총리 보고 통일정책 내용

    ◎독 흡수통합식보단 평화공존 바람직 ◇한반도와 독일의 통일환경 비교=▲한반도와 독일의 유사점은 ①분단 양측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공산당 1당 독재체제와 중앙집권계획경제체제를 각각 유지해왔고 ②국민총생산과 무역규모 등 경제력면에서 한국과 서독이 각기 북한과 동독에 비해 압도적인 격차를 나타내왔으며 ③통일의 외적 측면에 있어서도 주변 강대국의 이해와 협조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내부적 상이점은 ①동서독은 지난 72년 「기본조약」 체결을 통해 사실상 국가관계를 수립하고 평화공존상태를 유지해왔으며 남북한은 전쟁을 겪으면서 고도의 정치·군사적 긴장이 지속되어왔으며 ②통일논의에 있어서도 한반도의 경우 감상적 요소가 강한 민족통합적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반면 독일의 경우 현실적인 국가통합 차원에서 접근해온 점이다. ▲외부적 여건에 있어서도 ①한반도의 경우 독일처럼 국제법적으로 주변 강대국들이 통일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지 않았으며 ②한반도는 독일과는 달리 동북아지역의복잡한 이해관계와 불안정한 안보구조로 인해 지역 통합움직임이 미약하고 따라서 독일과 같은 흡수통합이 아닌 남북이 평화롭게 더불어 잘 사는 통일이 보다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독일 통일이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서독의 기본법이 통합방향을 제시하고 양독간에는 기본조약과 분야별 협정체결을 통해 통일에 대비하여왔으며 통일과정중에는 1,2차 통합조약을 통해 과도적 혼란을 최소화했다. ▲「작은 접촉」을 통한 신뢰구축이 협정체결,제도화·성숙단계로 이어지는 교류협력을 발전시켜왔으며 민족적 이익과 이산가족 문제 등 분단의 고통해소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왔다. ▲통합과정에 있어서는 실업·인플레 등 여러 가지 사회적 긴장이 야기되고 통합 이후에도 양독지역 주민간 차별의식과 문화적 이질성 극복문제,공산체제 청산문제 등 해결이 어려운 과제들이 본격적으로 대두됨으로써 이질체제 통합에는 동질성 회복과 공동체 형성을 위한 과도적 단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통일정책 추진방향=▲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실현을 계기로 북한의 국제사회 참여를 적극 유도하여 북한사회의 개방을 촉진해나가면서 남북대 화진전과 주변 4강의 대남북한 관계조정이 균형을 이를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남북한간의 교류협력이 본격화될 경우에 예상되는 분쟁을 예방,해결할 수 있는 법률 등 대비책을 강구한다. ▲이산가족 재결합,재산권 처리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고 이에 대한 사전합의기반을 형성함으로써 통일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갈등을 최소화한다. ▲통일에 대비한 민주적 정당제도와 지방자치제를 발전시키고 「새질서 새생활운동」의 지속적인 전개로 사회 전반적인 도덕성을 회복해나가며 국민들의 자율적인 비판의식 향상을 통해 합리적인 통일관을 정착시킨다.
  • 소,공화국 독자차관 허용/위기대책 최종안 마련

    【도쿄 연합】 소련 정부와 경제위기긴급대책계획 최종안이 17일 소련 최고회의에 제출되었다고 일 교도(공동)통신이 모스크바 방송을 인용,보도했다. 이 계획은 91∼92년에 걸쳐 공화국과 소련간의 행동 조정을 위한 기초를 수립하고 각 공화국은 독자의 위기 타개계획을 수행,시장경제의 이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계획은 특히 공화국과 연방이 외국으로부터 자주적으로 새로운 대부금,신용,경제원조 등을 얻을 수 있도록 하되 이에 대해 전면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했다.
  • 선거법위반 엄정처리/반윤리적 운동등 중지/여야 3개항 합의

    민자당과 신민당은 15일 상오 국회에서 양당 사무부총장간 공명선거실무협의회의를 갖고 ▲선거법위반 고발사안의 엄정처리 및 재발방지 ▲당선위주의 비민주적,반윤리적 선거운동중지 ▲선거분위기 과열행위 자제 등 공명선거 실현을 위한 3개항에 합의,이를 합의문 형식으로 발표했다. 양당은 이날 회의에서 이들 합의사항을 준수하기 위한 실천방안으로 ▲금품향응 제공금지 ▲관권개입금지 ▲선거폭력행위금지 ▲상대방비방 및 흑색선전금지 등 4개항을 정하고 당원단합대회에서 선물·음식접대 및 향우회·체육회 등 각종 모임시 찬조금 전달행위 등도 하지 않기로 했다. 양당은 특히 현금봉투를 돌리는 매표행위,통반장의 선거운동,연설방해 및 소란행위,후보·운동원간의 폭력·욕설행위,선거벽보·현수막 훼손뿐만 아니라 허위사실 날조유포행위,인신공격,허황된 공약남발,호별방문 및 불법홍보 등을 금지하고 선거법상 허용되는 선거운동이라도 과열을 부추키는 일체의 행위를 가급적 자제하기로 했다. 양당은 이같은 합의문을 후보자들에게도 강력히 주지시켜 위법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노력하며 현행 선거법이 협의해석에 따른 선거운동 제약 등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이번 선거가 끝난 뒤 개정작업을 공동으로 착수키로 의견을 모았다. 이날 회의에는 민자당에서 장경우 부총장과 이병용 당공명선거대책본부장,신민당에서 조희철 부총장과 이상수 당부정선거고발센터본부장이 각각 참석했다.
  • 옐친,부시와 20일 회담/러시아공대통령 당선/“미와 관계수립희망”

    【본·모스크바 AP 로이터 AFP 연합】 사상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선거에서 약 60%의 지지를 얻어 러시아공화국 대통령 당선자로 사실상 확정된 보리스 옐친은 13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방미 초청에 만족을 표시하면서 러시아공화국의 대미 「직접관계」 수립을 희망 한다고 말했다. 옐친은 독일 TV ZDF와의 회견에서 러시아공이 소 영토의 76%를 점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기타 분야 및 다른 나라들과도 「외교관계」를 맺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 및 영국과도 유사한 협정에 서명하게 되길 바란다고 지적하면서 러시아공이 이어 경제·무역 및 문화분야로도 대외관계를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옐친은 오는 20일 시작돼 4일간 이어질 전망인 자신의 방미가 『러시아공과 미국간 새로운 관계를 여는 첫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옐친 대통령 당선자는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노태우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한국을 공식방문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옐친은 14일 러시아공 최고회의 건물에서 우크라이나공최고회의 의원들과 접견한 뒤 환영연 자리에서 『선거결과에 만족하지만 러시아공화국의 운명과 재탄생을 위해 내게 부여된 책임을 절감한다』고 당선소감을 밝히면서 급진적인 정치·경제 개혁을 최우선과제로 추진하고 러시아공과 유럽국간의 역사적 관계를 회복하며 아시아와의 가교를 여는 데 진력하겠다고 말했다. 【워싱턴 연합】 미국은 보리스 옐친의 러시아공화국 대통령 당선과 관련,이번 선거가 소련의 정치개혁과 민주화를 향한 역사적 진일보라고 환영했다.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은 13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최종개표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옐친의 당선이 확실함을 전제로 논평하면서 이번 선거는 소련이 그 동안 고르바초프 대통령 지도 아래 취해왔던 민주적이고 다양성 있는 정치제도의 설립을 위한 계속적인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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