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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드로 윌슨(미국의 대통령 문화:13)

    ◎‘민족자결주의’ 제창 국제평화 기본틀 다져/독점기업·세제 등 개혁… 노동자보호 앞장/‘이상주의자’ 평가속 20년 노벨평화상 수상 【스톤튼(미버지니아주)=나윤도 특파원】 민족자결주의로 한국민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는 28대 미국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이른바 ‘버지니아왕조’,즉 버지니아주 출신 대통령 8명중 마지막 대통령 이다. 프린스톤대 총장을 지낸 학자 출신의 이상주의자로 알려진 윌슨 대통령은 1차대전의 와중에서 미국익의 성실한 수호자역을 맡아 국제정치의 무게중심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 놓은 훌륭한 대통령으로 평가되고 있다.대통령은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명실공히 국가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던 그는 온화한 외적 분위기와는 달리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했다. 그의 생가가 있는 스톤튼은 애팔래치아산맥 동부의 빼어난 절경인 셰난도계곡 복판에 위치해 있으며 윌슨의 도시로 유명하다.이 작은 도시에서는 도시 설립 250주년을 기념,지난해 9월부터 올 1월말까지 5개월 동안 생가에서 ‘스톤튼의 이야기들’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가졌다. ‘윌슨시대의 도시(1855­1912)’라는 부제가 붙은 이 전시회에는 윌슨이 이곳 장로교회의 목사관에서 태어나 자라고 대통령이 되어 이 도시를 떠났던 때까지,사진과 각종 유품 등 당시의 생활상을 상세히 진열해 윌슨을 키워낸 이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잘 살펴볼수 있게 했다. ○한국독립 운동에 침묵 이곳의 윌슨 사적지에는 그의 생가가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새로 지은 박물관과 부친 조셉이 시무하던 교회,설립한 대학 등이 시가지 곳곳에 그대로서 있다.우드로 윌슨 재단에 의해 사적지 내에 세워진 박물관에는 윌슨의 존스 합킨스대 박사학위논문을 책으로 펴낸 ‘의회 정부론’를 비롯,‘민주주의 국가론’‘분열과 통합론’‘조지 워싱턴’‘미국 민중사’ 등 그의 명저들을 비롯,1차대전과 관련된 많은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프린스톤 총장에 이어 뉴저지 주지사를 역임했던 윌슨 대통령은 총장 당시 리승만 대통령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함으로써 한국과의 인연을 시작했다.그러나 3·1운동 이후 임시정부수반으로조선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리승만의 거듭된 주장에 그는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한국민에게는 섭섭한 감정을 남기고 있다. 20세기 초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해 미국내 일기 시작한 혁신주의운동은 정당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윌슨에 의해서도 계승됐다.남북전쟁 이후 경제적 사회적 침체와 함께 사회 도처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일소하여 미국을 진정한 민주사회로 개혁하자는 이 운동의 가장 큰 목표는 당시 모든 폐해의 근원이 되고 있던 국내의 독점기업을 타도하는 것이었다. 윌슨이 내세운 정강은 바로 이같은 사회적 욕구를 반영한 것으로 기업의 독점을 와해시켜 시장원리에 따른 자유경쟁을 부활시키자는 이른바 ‘신자유(New freedom)’였다.‘신자유’는 대대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재선을 꾀하던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은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는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대중을 독점기업의 강력한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 개개인을 모든 형태의 압제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한 정책을 내세웠고 이를 위해 개혁주의자들을 전면에 포진시켰다.대표적인 정책으로는 관세인하,연방소득세 신설 등 세제개혁과 연방지불준비법 등 은행제도의 개혁이 있었다.루즈벨트 시대의 셔먼법보다 훨씬 강화된 독접 규제법인 ‘클레이턴 트러스트 금지법’도 제정했다. ○전쟁중 경제활황 재선 윌슨 대통령이 이같이 국내문제에 심혈을 쏟고 있는 동안 1914년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인해 발발한 1차대전은 미국에 국제정치의 중심역할을 맡게하는 계기를 가져왔다.초기에 미국은 중립을 선언했고 급증하는 군수수요는 미국의 경제활황을 가져다 주었다.이같은 상황에서 16년 그의 재선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그러나 독일군 잠수함의 집요한 미국 상선 공격은 1917년 4월 마침내 미군의 참전을 불러오게 했다.미해군과 육군의 참전은 전세를 급속히 반전시켰으며 이듬해 1월 윌슨은 1차대전 이후 국제평화의 기본틀이 된 유명한 ‘14개항 원칙’을 발표했다. 자유주의와 민족자결주의의 원칙에 따라 전후의 세계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가 담긴 이 선언의 주요 내용은 ▲공개외교 ▲평화시나 전쟁시 항해의 자유 ▲군비축소 ▲자유무역의 원칙 ▲식민지 요구에 대한 공정한 판결 ▲영토본전을 위한 국제연맹 창설 등으로 돼있다. 이 선언은 파리평화회의를 가져왔고 이 회의에서는 국제연맹규약이 포함된 베르사이유조약을 도출해 냈다.그러나 집단안전보장을 골자로 하는 국제연맹의 설립은 윌슨에게 뜻하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안겨주었다.공화당이 가맹국의 내전에 간섭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상호 불간섭의 원칙을 표방했던 먼로주의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반대입장을 밝혔다. 윌슨은 국민들에의 직접 설득을 통해 이를 돌파하려 애썼지만 국제연맹 가입안은 미상원에서 부결됨으로써 막상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가입을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이같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여러차례 윌슨은 겪어야 했고 이때문에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지나친 이상주의자라는 평을듣고 있다.그러나 그의 이상주의는 1920년 노벨문화상수상으로 보상 받은 셈이 됐다. ◎룰라 브룩스 윌슨박물관 큐레이터/“도덕정치·개혁 실천한 지도자”/“이상주의 추진” 용기와 노력 본받을만/첫부인 앨런과 사별… 재임중 재혼 기록 【스톤튼(미버지니아주)=나윤도 특파원】 ‘스톤튼의 이야기들’전시회를 주관했던 우드로 윌슨 박물관의 엘렌 시아 큐레이터는 “5개월간의 전시기간중 많은 관람객들로 붐벼 윌슨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데 놀랐다”며 말문을 열었다. ­.윌슨 대통령의 성품에 대해 설명해달라. ▲윌슨을 흔히 미국의 마지막 지성인 대통령이라고 한다.그는 높은 도덕정치와 과감한 개혁을 동시에 행한 지도자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이때문에 그는 라이딩스의 대통령 랭킹에서 42명중 6위라는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지나친 이상주의자라고 비난을 받기도 하는데. ▲오늘날 생각하면 그의 생각들은 모두 옳은 것이었다.한 예로 그의 세계정부론은 선견지명이 있던 것이다.그러나 당시의 수준에서는 너무 앞선 것이어서 인정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이상을 실현하려는 그의 용기와 노력은 우리가 본받을만 하다. ­.어린 시절은 어떠했는가. ▲아버지가 장로교회 목사 였기 때문에신앙이 좋고 매우 검소한 분위기에서 성장했다.특히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임지에 따라 남부의 여러곳을 다니며 성장했다.그러나 출생지인 스톤튼에 대한 애정은 남달라 성장후에도 틈틈이 찾아왔던 기록이 있다. ­.가족관계는 어떠했는가. ▲첫부인인 앨런과 사이에 세 딸을 두었다.대통령 취임 2년만에 그녀가 죽고 불과 9개월만에 에디트 갈트와 재혼,재선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하는 측근들의 우려를 사기도 했다.타일러,클리브랜드와 함께 대통령 재임중 결혼의 기록을 남겼다.
  • 일본 사회주의운동과 사회주의문학/김채수 지음(화제의 책)

    ◎일 사회주의 문학의 탄생과 전개양상 일본 사회주의문학의 성립과 전개양상을 고찰한 연구서. 일본의 사회주의문학은 기독교 사회주의 혹은 기독교 인도주의에 입각한 점진적사회개량주의를 사상적 배경으로 한다. 기노시타 나오에(목하상강)의 ‘불기둥’이 그 효시로 꼽힌다. 그러나 나오에의 사회주의문학은 ‘남편의 자백’이라는 작품을 끝으로 단절되고 만다. 일본의 사회주의 문학은 정치소설과 사회소설을 기초로 성립됐다. 일본문학에서의 정치소설은 자유민권운동의주의·주장을 선전하기 위한 것으로 메이지 10년,즉 1877년부터 20년대 초기에 걸쳐 왕성하게 발표됐다. 도다 긴도(호전흠당)의 ‘정해파란’이 첫 작품이었다. 이러한 정치소설은 청일전쟁 뒤 중국에서 무술정변을 일으킨 양계초 등 유신파들에 의해중국에 전해져 20세기초 만청소설 또는 견책소설을 낳았다. 일본의 정치소설과 중국의 만청소설은 ‘혈의누’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신소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일본 근대문학사에서의 사회소설은 청일전쟁 후의 사회모순을 주로 다룬 것으로,정치소설을 계승하고 사회주의 소설을 예비한 장르로 자리매김 된다.그것은 산업혁명 전반기(1895∼1898)의 관념소설이나 비참소설 혹은 심각소설과 후반기(1898∼1904)의 ‘작은 의미의 사회소설’로 나뉜다. 가와카미 비잔(천상미산)의 ‘서기관’이 전자를 대표한다면 오자키 고요(미기홍엽)의 ‘금색야차’와 우치다 로앙(내전노암)의 ‘섣달 그믐날’등은 후자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밖에 이 책에서는 일본 사회주의문학의 한 갈래로 무정부주의문학을 다루고 있어 주목된다. 일본의 무정부주의는 고토쿠 슈스이(행덕추수)가 미국을 통해 받아들인‘아나코 생디칼리즘’,즉 혁명적 노동조합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려대학교출판부 1만4천원.
  • 위구르족의 땅 신강성(중앙아시아를 가다:5)

    ◎중국면적의 17%… 사막과 산맥으로/예부터 세갈래 무역통로의 교차로·요충지/상술 뛰어나 친구사이도 흥정하는 장사꾼 중국 신강성 타크라마칸 사막을 흔히 ‘죽음의 사막’이라 했다.그 죽음의 사막에 이르면 대자연에 압도되어 인간은 왜소해질 뿐이다.타크라마칸사막이 있는 신강성은 북으로 천산산맥,남으로는 곤륜산맥이 에워쌌다.그리고 서쪽은 카라콜룸산맥으로 막혀있다.이들 높은 산자락을 빼고나면 온통 사막인 신강성의 크기는 중국 전체면적의 6분의 1이나 되었다. 그 넓은 땅에는 위그루족과 카자흐족,기르키스탄족과 몽골족이 퍼져 산다.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위그루족이 신강성의 주인이다.투루판에서 신강성 수도 우루무치까지 두번씩 갈아탄 고장난 버스에서 만난 사람들도 거의가 위그루족이었다.차내 온도가 40도를 웃도는 만원 버스에서 그들과 꼬박 6시간을 함께 지냈다.그들은 불평 한마디가 없다.털털거리는 버스안에서 놀랍도록 인내심을 발휘하는 그들은 외국인에게 더 없이 너그러웠다. ○산자락 빼면 온통 사막 그 버스에는 일곱살 짜리 꼬마 승객이 탔다.로신이라는 사내아이였는데,차안이 덥고 지루한 탓인지 멋대로 딩굴었다.몸을 엄마한테 맡긴 로신이의 몸부림은 대단한 것이었으나 후덕한 엄마는 그 떼를 다 받아주었다.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보였던 그 사내아이의 조상은 본래 투루크의 한 갈래로 몽골지역에서 들어온 위그루라는 설이 있다.투루크,또는 돌궐은 흉노의 후예들로 모두 몽골 알타이산맥이 기원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위그루족은 몽골족과 다르다는 사실이 외모에서 드러난다.흉로와 투루크는 제 나름대로 각각 대제국을 세웠던 강력한 세력의 민족이다.그토록 큰 힘을 지녔던 민족이 몽골에서 왔다면,지금 몽골에 상당수의 투루크족이 살아야 할 것이다.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로신이의 선조가 아직은 불분명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비단길 한 목을 맡은 것은 분명하다.중국 서안에서 비단을 싣고 비잔틴에서 짐을 내리자면 반드시 타크라마칸사막을 거쳐야 했다.또 비잔틴과 로마의 공산품과 호탄의 옥을 서안으로 실어가는 길도 타크라마칸사막이었다.그렇듯 대상들이 동서를 오가는 목 좋은 길가에 살았던 위그루족의 상술은 뛰어났다.그것은 가히 체질적이었다. 위그루족을 장사속으로 만나지 않으면 무척 관대하다.그러나 일단 상업적인 거래라면 무자비할 만큼 안면을 바꾼다.친구 사이에서도 이익을 챙긴 흥정을 자랑으로 여길 정도라는 것이다.이슬람이 지닌 공통점이기도 한 위그루족의 상술은 물론 비단길에서 비롯되었다.농업생산에 삶을 의족한 전통적인 경사회 사람들 정서로는 헤아릴 수 없는 대목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타크라마칸은 중요한 전략요충지였다.서역의 유목민들로부터 중원을 보호한다는 것과 중국산 비단의 대외무역 주통로를 지킨다는 두가지 목적이 함축되었다.그래서 한대에 이미 신강성 장악을 서둘렀다.천산북로에는 중앙아시아로 넘어가는 길이,천산남로에는 오늘의 중동으로 가는 페르샤통로가 존재했기 때문에 타크라마칸을 중시했다.남쪽 사막을 따라 인도로 가는 길을 합하면 신강성은 세 갈래 무역통로를 거느린 물물의 교차로였던 것이다. ○동서문화매개자 역할 세계에 위용을 떨친 징기스칸의 몽골제국 뒤에도 위그루족이 숨어 있었다.그렇듯 위그루족은 동서문화의 매개자 역할을 했다.그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동양인들은 위그루족이 이슬람을 대표하는 민족인 것으로 생각했다.중국과 더불어 우리는 옛날에 위그루족을 한문으로 회홀 또는 회골이라 썼다.그리고 이슬람을 지칭하는 회회교라는 말은 위그루족이 믿는 종교를 뜻하는 것이다. 이들이 사육한 말은 중국에서 첫 손가락을 꼽는 명마였다.한대나 당대에 마(천마)라고 한 명마는 위그루말을 의미했다.그 품종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으나 비단길을 거쳐 들어온 아랍종 혈통의 말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하다.오늘날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말은 아랍종 피를 받지않은 말이 없다고 할 정도이고 보면 고대 중국인들 역시 위그루말을 선호했을 것이다. 중앙아시아 일대가 이슬람으로 편입한 중세 이후 이 지역은 투르크스탄이라는 통합적 개념으로 호칭되었다.그리고 신강성의 위그루는 동투르크스탄이라 불렀다. 볼세비키혁명 이후 스탈린은 범투르크주의운동을 아주 싫어했다.그래서 위그루의 땅 신강성은 급기야 소련과 중국 공산정권 사이의 주도권다툼에 휘말렸다.신강성의 석유와 광물이 두 공산세력의 각출을 유도했던 것이다. ○55년 자치지역으로 선포 그것은 20세기에 재현한 비단길 분쟁이었는지 모른다.1949년 모택동의 대장정은 신강성까지 이어졌다.1955년에는 신강위그루족자치지역으로 선포되었다.어떻든 공산정권의 중국은 1959~60년 사이에 이른바 ‘신강성 해방’을과감히 단행하고 소련과의 국경분쟁을 마무리지었다.오늘도 위그루족의 땅신강성을 가면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민족분열을 절대 반대한다’는 붉은글씨 구호가 곳곳에 널렸다.위그루족의 독립운동을 반대하는 내용이다. 그 표어는 이방인에게 혼돈을 안겨주었다.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우리에게는 조국과 민족이 얼핏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떼를 내놓았던 위그루족 꼬마 로신이가 어느 틈에 잠이 들었는지 조용하다.로신이가 자라 중국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알게 되는 순간 지금처럼 행복할 것인가.유구한문화와 선천적 상술을 지니고 태어났을 위그루족 장래가 자못 궁금했다.
  • 황장엽씨 ‘김정일 승계 비판’ 기고

    ◎북 정권 승계에 정책변화 기대는 ‘환상’/시대 뒤떨어진 세습 감추려 3년3개월간 고심 흔적 ‘역력’/쇄국·민족배타 노선 버리고 평화 통일 ‘열린 길’로 나서라 오늘 북한 통치자들은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를 놓고 마치 새로운 태양이 솟아 오른 우주의 대사변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떠들고 있다. 후계자의 권력승계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오래전에 시작되었으며 적어도 1974년 2월 노동당 조직비서로서 제2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자기 삼촌(김영주)을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사실상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수령의 유일독재체계는 후계자의 유일적 영도체제를 통해서만 실현된다는 원칙이 전면적으로 관철되게 되어 실권은 완전히 후계자가 장악하고 수령은 더욱 신격화되었을뿐 좋은 경우에 후계자의 최고 고문의 역을 담당하게 되었다.그러므로 수령이 사망하였다고 하여 통치자가 달라진 것이 아니며 권력승계를 공식화한다고 하여 김정일의 지위가 더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김정일이 공식승계를 서두르지 않은 이유의 하나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실제 승계 23년전 마감 그러면 북한 통치자가 3년3개월이나 공식승계를 미루는 남다른 변덕을 부리다가 오늘은 또 공인된 정상적 선거절차도 밟지 않고 공식승계를 슬쩍 해버린 의도는 어디에 있겠는가? 첫째로 김정일에게 가장 아픈 약점은 현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세습승계를 한다는 점이다.이 문제를 무마시켜 보려고 매우 고심해왔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쇠퇴 몰락이 그 이론이나 그것을 구현한 사회체제의 본질적 결함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수령의 후계자를 잘못 선발한데 있다는 그릇된 주장을 내놓고 저들의 세습적 승계를 정당화해보려고 하였다.그들은 이러한 논리적 기만술책만으로는 부족하여 후계자인 ‘광명성’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 ‘태양’의 지위를 승계할 운명을 지니게 되었다는 허황한 미신까지 만들어 냈던 것이다.김정일은 공식승계를 미루면서 부친의 방조없이도 자체의 힘으로 능히 영도자의 지위를 지키고 나라를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신격화된 계승 중요시 둘째로 김정일은 총비서라든가 국가주석 같은 공식적인 법적 지위보다는 절대적으로 신격화된 수령의 초법적인 지위를 계승하는 것을 더 중요시 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수령의 지위를 계승하는데서 첫째가는 조건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기 때문에 김정일은 수령에 대한 자기의 충성과 효성을 과시하여 수령의 지위 승계를 위한 도덕적 권위를 높이는데 1차적 의의를 부여하였다.따라서 수령의 사망후 굶어죽어가는 수많은 주민들은 돌보지 않고 부친의 시신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화려한 궁전을 건설하는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였던 것이다. 또 그는 ‘탁월한 사상이론가’라는 영상을 높이기 위하여 글만 쓰는 학자들도 무색케 할 정도로 연이어 글을 발표하였으며 수령에 대한 우상화 수준과 후계자에 대한 우상화 수준을 비등하게 만들기 위하여 모든 선전수단들을 동원하였다. 이러한 준비에 기초하여 김정일은 당규약과 세계가 공인하는 선거절차를 무시하고 총비서 추대를 선포함으로써 자기가 초법적이며 초국가적인 존재라는 것을 시위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정권 본질은 결코 불변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대하여야 하겠는가? 물론 우리가 바라는 것은 김정일이 봉건적인 개인독재체제를 버리고 개혁 개방의 길로 나오는 것이며 무모하고 범죄적인 무력통일노선을 버리고 남북대화와 교류의 길로 나오는 것이다.그러나 김정일 정권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은 것만큼 큰 정책적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첫째로 북한통치자들은 세계 어떤 경제적 파동에도 끄떡하지 않는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하여 놓았다고 호언장담하여 왔는데 그것을 누가 다 망쳐먹고 북한땅을 가장 가난한 나라,빌어먹는 나라로 만들었는가에 대하여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권력을 다 틀어쥐고 있는 북한 통치자가 민생고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북한 인민은 수령복을 누린다고 하는데 수령복의 내용이 주민이 헐벗고 굶주리는 것인가? 우리는 1995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만 하여도 수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굶어죽어 가고 있다. 북한당국자들은 어째서 세계 각국에 식량을 구걸하면서도 이 사실을 숨기고 있으며 실태를 조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가? 더욱이 엄중한 것은 남한동포들이 순결한 동포애적 심정으로부터 북한동포들의 민생고를 책임지고 풀어주려고 하는데 그것을 왜 가로막는가? 앞으로 남한동포들이 보내는 식량과 의약품 등 구제물자들을 판문점을 통하여 무조건 받아들이겠는가,않겠는가? 우리는 이것이 알고 싶다. 둘째로 북한 통치자들은 오늘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자유가 없고 인권이 유린된 일대 감옥으로 만든데 대하여 응당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최고 인권유린국 반성 조선민족을 ‘김일성 민족’으로 부를 권리를 누가 주었는가? 조선사람은 수령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하면서 수령을 옹위하는 총폭탄이 될 것을 강요하고 있는데 이 이상 더 큰 인권유린이 어디 있으며 인민을 노예화하는 정책이 아니고 무엇인가? 수령을 우상화하기 위하여 모든 선전수단을 동원하고 역사를 왜곡하다 못해 이제는 우리민족의 자랑인 금강산·묘향산·백두산 같은 명승지에 자연경치까지 못쓰게 만들고 있는데 이 죄과를 인정하는가? ○언제까지 굶길 것인가 셋째로,북한 통치자는 무엇 때문에 굶주린 북한주민들을 계속 전쟁준비에만 내몰고 있는가? 북한 사람들을 굶겨죽이다 못해 전쟁의 폐허 속에서 행복과 번영을 쟁취한 남한동포들까지 죽일 작정인가? 북한 주민도 먹여살리지 못한 통치자가 무슨 염치로 전조선을 통치해 보겠다는 망상을 가지려고 하는가? 청년학생들이 군사훈련과 충성의 무슨 운동 때문에 재학기간에도 공부할 시간이 없는데 13년간이나 군대에 복무하면서 수령옹위의 총폭탄이 되는 연습만 하다보면 그들이 어떻게 청춘의 희망을 꽃피울수 있단 말인가? 청년들의 희망을 짓밟는 만행을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는가? 넷째로.북한 통치자는 입으로는 ‘민족대단결’이요 ‘민족통일’이요 떠들지만 남한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 여기에 무슨 평화통일의 의지가 있단 말인가? 미국이나 일본하고는 회담을 하자고 하면서 동족끼리는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는 속셈이무엇인가? 일본인 처는 고향방문을 허용하면서 남북간에는 편지거래조차 못하게 하고 이산가족 상봉도 절대 반대하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 ○‘벼랑끝’ 외교전술 중단 다섯째로 북한 통치자들은 인민들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우고 손쉽게 개인독재를 실시하기 위하여 쇄국정책을 계속 실시하고 있는데 쇄국정책이 망국의 길이라는 역사적 진리를 왜 외면하고 있는가? 북한 통치자들은 주변대국들의 모순을 조장시켜 어부지리를 취하고 전쟁과 테러로 평화애호 인민들을 위협하여 양보를 얻어내는 ‘벼랑끝 전술’을 김정일이 발명한 대단한 외교지략인 것처럼 떠들고 있는데 이렇게 한 모든 선행자들의 말로가 비참하였다는데 대하여 왜 교훈을 찾지 못하는가?북한 통치자들의 사상은 인간중심의 사회주의 사상과 인연이 없을뿐 아니라 스탈린주의로부터도 멀리 후퇴·변질하였다.그들의 사상은 무자비한 계급투쟁을 신봉하는 계급주의이고 쇄국주의를 주장하는 민족배타주의이며 철저한 개인숭배에 기초한 전제주의적 개인독재 사상이며 폭력을 신성화하는 군국주의 사상이다.계급투쟁과 폭력혁명의 역겨운 자화자찬으로 가득찬 이른바 ‘고전적 노작’들을 대담하게 버리고 보다 겸손한 자세로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길,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길로 일대 방향전환을 하여야 할 것이다.
  • 도시와 인도주의/김석철 아키반 대표·건축가(서울광장)

    베네치아에 오래 있으면 문득 행복하다.자동차가 없는 까닭이다.서울에서 걷는 일은 고행이다.서울만이 아니다.어느사이 우리도시는 자동차에 점령되어 있다.차를 타도 차에 밀리고 길을 걸어도 차에 밀린다.도시에서 걷는 일이 험한 일이 되었다. 플라자호텔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 걸어보자.다른 도시면 가장 아름다운 보행공간일 시청광장에서 세종로 사이가 차를 피해 지하도를 오르내려야 갈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자동차가 도시의 안방까지 들어와 있다.누가 도시의 주인인가.도시에서 걷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 되었으니 이제는 너도 나도 차를 갖고 다닐수 밖에 없다.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도시에서조차 걷는 일은 고행이다.지난주 자동차가 1천만대를 돌파했다.이제는 자동차에게 도시를 내줄수 밖에 없게 되었다. 지난 3년동안 세계의 600명 도시계획가와 학자들이 모여 21세기 도시선언인 ‘메가리데 헌장’을 만들었다.지난해 유엔 HABIYATII에서 발표된 헌장의 핵심은 자연과 문화와 역사가 함께하는 인간중심의 도시를 말하는 것이었다.21세기는 인간이 도시의 주인인 걷는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100년만의 새로운 세기와 천년만의 새로운 밀레니엄의 날이 앞으로 천일도 남지 않았는데 우리도시는 자동차로 황폐해진 20세기 도시의 막다른 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시는 인간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자동차를 위한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차를 피해 사람이 육교와 지하도를 오르내려야 한다.서울의 중심공간인 경복궁에서 세종로를 지나 명동으로 가자면 연옥의 거리를 지나야 한다.파리나 런던이면 문명적 체험일수 있을 거리가 인간이 소외된 자동차의 거리가 되어있다.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도시에서 인간의 길을 되찾아야 한다. ○차에 소외된 ‘인간의 길’ 도시의 문화공간들도 도시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거리에 있지 않고 가기 힘든 장소에 밀려있다.도시의 꽃인 문화공간이 문화인프라가 되려면 도시의 대중교통과 보행공간의 흐름과 닿는 곳에 있어야 한다.지하철역에서 컴컴한 도시의 뒷길을 걸어야 하는 예술의 전당과 국립극장은 일부 소수의 공간일 수 밖에 없는것이다.사람이 걷는 문화의 거리를 지방도시에서 만든다 하여 석달동안 전국 30여도시를 다녀보았다.자연과 역사와 문화공간이 도시의 일상과 하나가 되어 있는 문화의 거리는 어디에도 없었다.워싱턴의 스미소니언,런던의 웨스트엔드,파리의 샹젤리제,빈의 링스트라세같은 사람들이 걸어서 도시의 공공 공간에 닿게 되는 문화인프라를 전국 어디에도 볼수 없었다. 사람이 걷는 길에서 도시의 문화가 시작하는 것이다.인간이 걸을수 있는 인간의 길인 인도가 도시의 주공간이 되어야 한다.인간이 무시된 도시는 이미 문명도시가 아니다.편리함만을 추구한 도시는 결국 불안한 도시가 될 수 밖에 없다.자동차와 인간이 공존하려면 도시에서 걸어다닐수 있는 공간이 우선되어야 한다.사람이 도시에서 안전하게 걸어다닐수 있어야 좋은 도시다.자동차에 잃은 도시공간을 되찾기 위해서는 인도위주의 도시가 되어야한다. 21세기 도시의 가장 큰 과제인 인간과 자동차의 공존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차없이 살 수 있는 도시 구역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베네치아만 한 인구 10만 도시이면 중심가로에 대중교통을 두고 서비스차량만 도시내부를 다니게 하면 자동차 없이 걸어서 대부분의 장소에 갈 수 있는 도시를 만들수 있다.인구 5만인 대학도시 케임브리지에도 중심가로와 도시외곽으로만 차가 다닌다.기존의 대도시를 걸어서 다닐수 있는 ‘자동차없는 도시구역’의 집합으로 재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보행 전용구역 조성을 한때 명동을 차없는 거리로 만들어 보았고 최근 인사동거리를 일요일은 차 없는 거리로 하고 있으나 자동차 위주의 도시구조가 되어 있는 도시에서 공휴일만의 임시 보행전용 구역은 별 뜻이 없다.도시구조를 사람위주의 도시로 바꿔야 한다.‘보행 전용인 도시구역’을 만들어 자동차는 보행도시구역 외곽과 중심가로에만 다니게 하는 인도위주의 도시구조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자동차가 도시의 피할수 없는 현실일때는 자동차의 도시영역과 인간의 도시영역이 이원구조인 도시구조로 기존 도시를 재구성해야 한다. 대도시권을 인간의 길이 위주가 된 수백 수천의 보행전용 도시구역으로 재조직하여 도시의 모든 길을 사람이 걸을수 있는 인간의 길로 만들수 있을때 우리시대의 도시문명과 문화를 말할수 있는 것이다.도시에서 사람이 걷는 길인 인도가 우선할 때 도시의 인도주의가 시작되는 것이다. 새로운 2000년을 맞아 자연과 역사와 문화가 하나가 되는 인간이 주인인 도시의 인도주의운동이 시작되어야 한다.
  • 북의 대남통일 책략 경계하자/홍승길(전문가 기고)

    현 단계에서 북한이 구사하고 있는 통일전략의 한 축이 「평화문제」 해결이라면 다른 한 축은 대남통일전선책략이다.특히 북한은 올들어 「조국통일3대원칙」「연방제」「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이른바 「통일 3대헌장」으로 규정하고 이와 관련된 행사 등을 통해 통일전선공세를 강화하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북한의 대남통일전선책략은 우리가 북한식량난과 4자회담문제에 몰두해 있는 동안 아예 관심밖으로 밀려나 있는 실정이다. 올들어 북한은 종래의 8·15민족대회 외에 한미공조와 협력을 깨기 위한 남·북·해외동포간 「3자연대회의」를 새롭게 추진하고 있다.이를 위해 지난 3∼4월 국내 각계 대표급 인사 120명에게 서신을 발송했는가 하면 4∼5월에는 범민련,범청학련 등의 공동투쟁결의대회를 수차례 열었다.이와 함께 5월3일에는 과거에 없던 「조국통일 3대원칙발표 기념대회」를 개최했으며 7·4공동성명발표일을 기해서는 남·북·해외에서의 「조국통일선언」채택을 획책하고 있다.북한의 이러한 대남통일전선공세는 『조국통일투쟁에서 주도권을 확고히 장악했다』는 식의 호기에 찬 태도 아래 이뤄지고 있어 더욱 주목을 끈다. ○한·미 공조깨기에 안간힘 북한은 지난 90년 8월 「광범한 통일전선형성」 전략을 제시한 이래 이를 꾸준히 추구해오고 있다.민족대통일전선전략으로의 방향전환을 꾀한 것이다.당시 남북한 국력경쟁에서의 패배와 동구 공산권의 붕괴라는 상황불리에 직면하여 불가피하게 택하지 않을수 없었던 전략방침이었다.이는 공산주의자들이 혁명정세가 불리해질 경우 구사하는 전형적인 전략으로서,남북한 역량관계의 발전추세로 볼때 북한에게 통일전선 말고는 대남전략상의 다른 대안이란 있을수 없다고 하겠다.따라서 북한은 공산주의이념과 어긋나는 주장들까지 내세우면서 통일전선에 매달리고 있다.그 하나가 민족주의노선 표방인데 이는 『민족주의운동을 자극하여 공산주의화를 꾀하겠다』는 계략이다.다른 하나는 계급을 초월한 통일주장인 바 정부와 여당세력의 타도를 위해 모든 계급과 계층의 단결을 유도하려는 논리이다.결국 북한의 현 민족대통일전선공세는 남북한간체제대결의 판가름을 앞둔 막판상황에서 사력을 기울이고 있는 최후수단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대남공세 무력화 시켜야 이같은 입장에 더하여 특히 금년에는 김정일 공식권력승계를 위한 가시적 성과를 필요로 하고 있고 또한 대남공작의 호기로 활용할 수 있는 우리의 대선정국이 전개되고 있다.그러므로 7·4→8·15→10·10(고려연방제제안일)→대통령선거기에 걸친 북한의 대남통일전선공세는 전례없이 대담하고 집요하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우리는 4자회담과 북한식량난에만 관심을 쏟을 것이 아니라 대남통일전선책략에도 주목하여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겠다.기본적으로 국내 좌경세력의 발본색원은 물론 국민들로 하여금 대남통일전선전략의 실체를 정확히 알도록 해야 한다.통일전선이란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전략이므로 국민들이 그 실체를 알고 있을때 그 전략은 효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이를 바탕으로 자신감을 갖고 보다 과감한 역공세를 취해야 한다.우리의 이런 대응만이 북한의 대남통일전선 공세를 무력화시킬수 있으며나아가 북한으로 하여금 대남화해정책 외에는 다른 방책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케 할 수 있다.또한 이 과정에서 현 남북관계의 교착상태를 타개할 수 있는 돌파구 마련의 기회도 잡을수 있다.다시 강조하거니와 금후 북한의 대남전략의 향배는 현 단계 북한의 대남통일전선공세에 대한 우리의 제압 여부가 좌우할 것이다.
  • 국내 테마파크 선두주자 중앙개발(고비용을 깨자:18)

    ◎몸에 밴 예절로 감동서비슬 판다/「서비스 아카데미」의 철저한 현장교육 정평/팀별 점검서 낙제 판정땐 영업정지·재교육 『관람객이 화장실에서 금반지를 잃어버렸다.직원이 변기를 뜯고 한시간만에 금반지를 찾아주었다』용인 애버랜드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이다. 국내 테마파크의 선두주자 중앙개발.중앙개발은 신임간부 임명식때 집게와 흰장갑을 준다.휴지집는 일을 습관화하기 위해서다.애버랜드 내 중앙개발본사 지하1층 「서비스아카데미」에서는 연중 서비스교육이 열린다. 『여러분은 애버랜드에 오는 고객의 행복을 지켜주어야 합니다.여러분에게 그들의 행복을 깨뜨릴 권리는 없습니다.여러분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순간,그들의 행복은 깨집니다.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은 모두 고객입니다…』 중앙개발의 고품질 서비스교육은 업계에 정평이 나있다.허태학 사장이 맡으면서부터 시작됐다.레저산업도 고품위의 서비스없이 생존할 수 없다는 전략에서 비롯됐다.서비스아카데미는 94년 6월 세워졌다.「서비스사관학교」로 불리는 이 곳에서는 실습장 강의장 어학실 등 교육시설과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서비스대사」와 「친철교도」를 양산해내고 있다.기본예절에서부터 전통예절,국제매너,고객응대,티켓서비스,식음료관리,서빙(Serving) 등 서비스의 모든 것이 이곳에서 전수된다. ○공무원 등 6천명 교육 서비스아카데미의 명성은 삼성그룹은 물론 사외에도 자자하다.지금까지 8천여명이 이곳에서 서비스조련을 받았다.서울시 경기도청 안양시청 무주군청 한국통신 철도청 부천지법 등 관청과 조선호텔 엑스피아월드 우방랜드 유성스포츠 한국콘도 태영CC 위닉스파크 고려증권 제일제당 삼성계열사 한양대학교 등이 거쳐갔다.경기도청은 이인제지사의 특별요청으로 민원실 직원들이 4차례 서비스교육을 받았다. 중앙개발에 입사하는 직원들은 입사후 2주일간은 반드시 그린키퍼(Green Keeper)를 한다.청결인이 되기 위한 수양과정으로 비자루와 쓰레기통을 들고 애버랜드내를 하루종일 다니는 게 일과다.이 과정이 끝나면 본격 서비스수업이 시작된다.전화 인사 보행 복장 용모 등 5대 항목의 기본지키기부터출발한다. 『고맙습니다.xx팀의 ○○입니다』 『o과장 있나?』 『외출중이신데요.실례지만…』 『딸깍』 누구나 이런 전화를 경험한 일이 있게 마련.실습생들이 전화서비스를 하는 통신업체에 직접 걸어본다.전화내용이 강의실스피커로 중계된다. 『oo씨좀 부탁드립니다』 『누구요? 없는데요.뚝』정부부처에도 걸어본다.전화벨이 4번 울려도 안받는다.이내 나온 목소리,『누구요.없는 데요…』 서비스아카데미의 전화응대지침은 간단하다.「전화를 걸때는 먼저 신분을 밝힌다.상대가 부재중일때는 메모를 부탁한다.끝인사(감사합니다.부탁합니다 등)를 한다.전화받을때는 3번이상 벨이 울리지 않도록 한다.먼저 인사하고 전화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한다.상대방이 끝는 것을 확인하고 끝는다」. 인사 편.「망설이다 마지못해 하는 엉거주춤 인사나 까딱인사는 곤란.먼저 인사하고 이왕이면 밝은 얼굴로…,인사각도는 상황에 따라 3가지.처음 손님을 볼땐 30도,매장에서 다시 만날땐 15도,손님이 돌아갈 땐 45도…」.보행(뒷짐지고 걷지 않기.주머니에 손넣지않기.1초에 2보 속도로 걷되 손님 앞을 지나치지 않기.손님을 안내할 때는 손님보다 한발 왼쪽 앞에서)이나 복장(구겨지지 않고,구두는 윤이나게.단추는 채우고 양말은 짙은 색,스타킹은 피부색),용모(깔끔하고 단정하게.면도는 깨끗이.화장은 엷고 자연스럽게.악세서리는 금지)의 기본지키기도 강조된다. 기본이 끝나면 여러 상황에 따른 고객응대교육이 따른다.몇가지 예. (상황1=손님이 와서 물만 먹고 나갈려고 할 때)손님기대=물은 그냥 줄거야.기본서비스=목마르셨나봐요.여기 물컵이 준비돼있습니다.부가서비스=물컵을 손님께 드린다.(상황2=음식물에 이물질이 발견됐을 때)손님반응=밥이고 뭐고 필요없다.환불해다오.기본서비스=사죄한다.책임자를 불러온다.실수했습니다.다른 음식을 준비해드리겠습니다.부가서비스=다른 식당으로 안내한다.다른 음식으로 서비스해 드리겠습니다. 화법도 중요시된다.『여기는 금연입니다』라는 표현 대신 『흡연장소는 저쪽에 마련돼 있습니다』,『왼쪽 문으로 나가세요』보다는 『왼쪽 문을 이용해 주시겠습니까』 등으로사용한다.애버랜드 직원들은 『수고하십시요』란 말을 쓰지 않는다.수고란 말은 웃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하대여서 『애쓰십시요』라고 말한다.『감사합니다』라는 한자말대신 『고맙습니다』라는 우리말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쟁력 향상 행사 다양 서비스 경쟁력향상을 위한 행사도 현란할정도로 다채롭다.매년 전 사업부를 대상으로 각종 서비스매뉴얼 경진대회를 갖는다.매뉴얼의 미비점을 보완,고객에게 감동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다.영업팀(매표 그리팅 서비스 유기시설 안내소 상담센터) 식음팀(주방 홀 음료 캐셔) 상품팀(판매) 동물원(동물쇼 사파리) 시설팀(기술서비스)의 매뉴얼이 고객위주인지,부가서비스가 많이 가미되었는지가 체크포인트다. 댕큐서비스 발표회도 하나.엄청난 인파가 몰려드는 테마파크에는 갖가지 일이 일어난다.놀이시설을 타다 구토하거나 대소변을 보는 아이,입장료를 미처 안갖고 온 고객,지갑분실 등이 적지않다.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거나 미아를 보호했다가 부모에게 무사히 안겨준 「댕큐사례」들이 발표된다.서비스의 왕중왕을 선발하는 「베스트 서비스 페스티발」,「미소경진대회」,1년간 고객감동사례를 꽁트와 연기로 선보이는 「역할연기 경진대회」,서비스가 저하된 팀은 일정기간 영업정지를 내리고 재교육시키는 「드롭커튼제」,해외선진업체의 벤치마킹을 위한 신입사원의 「눈높이 연수」,고객의 입장이 돼 하루를 즐기는 「미스터리 쇼핑」,대표이사와의 도시락간담회가 그것이다. 최근 선보인 전문분야 서비스품질 배가운동은 장애인의 특성과 이해 강의,휠체어의 계단이동법,장애자 응대요령,시각장애인·청각장애인 응대법 등의 프로그램.휠체어를 직접 타보기도 하고 수화도 직접 가르친다. 중앙개발은 63년에 설립됐다.애버랜드 외에 리조트개발사업,빌딩관리·엔지니어링컨설팅사업,식생활개선사업을 하고 있다.임직원은 3천2백명.골프장 서비스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유지하는 안양골프클럽도 중앙개발이 운영한다.간판인 애버랜드는 96년 12월 입장객 8백10만명을 기록,미국의 디즈니사단에 이어 8대 테마파크(미국 Amusement Business 지 선정)에 올랐다.지난해 5월 11일 입장객 6천만명 돌파했고 2년 연속 세계 최고의 입장객 증가기록을 세웠다.93년 매출 5백67억원에서 지난해에는 2천억원으로 높아졌다.마켓쉐어 역시 29%에서 36%로 높아졌다.지난 해에는 세계 최초의 실내외 워터파크인 「캐리비안 베이」와 환상적인 나이트스펙터클쇼,대규모 쇼핑타운 글로벌 페어 등 국제수준의 시설물과 빅이벤트를 선보이면서 명실상부한 테마파크로 단장했다. ○신개인주의운동 추진 그러나 중앙개발은 여기에 만족치 않는다.중앙개발의 거뿜빼기는 삼성그룹에서도 유별나다.「신개인주의 운동」이라는 이름의 실천운동이 그것. 하루 한사람이 종이컵 3개를 줄이면 4천50만원(3천명x3x300x15원),물탱크의 물을 1리터 줄이면 연간 1억원,직원 한사람이 버리는 음식물쓰레기를 절반만 줄여도 연간 1억5천만원,회사에서 사사로운 통화만 안해도 5천40만원….이런 식이다.구내식당 퇴식구에 「푸른 저울」을 설치,음식물이 70g를 넘으면 5백원의 환경기금까지 내게하고 있다.
  • 내년 당 수뇌부 물갈이 사전조율/막오른 중국 북대하회의 전망

    ◎중앙위·정치국 등 대폭 개편 예고/양상곤 전주석 활발한 행보 관심 중국 주요 국정방향을 사전조율하는 「북대하」회의가 고위수뇌부의 새로운 물갈이 논의 속에 20일부터 한달가량의 일정으로 하북성 해안가 휴양도시 북대하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회의는 직접적으론 9월말쯤 열리는 14기6중 전회(당 중앙위원회 14기6차회의)의 정책방향을 조율한다.그러나 올해 당중앙위회의가 14기 마지막 대회이고 내년 97년말 현 중국공산당 수뇌부가 새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대규모 인사개편 준비,당 수뇌부구성및 조직개편 논의 여부에 뜨거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97년 9월말 15차 당대회에선 중국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당중앙위원회및 정치국이 새로 짜여지며 당 총서기도 새로 선출된다.이 점에서 97년이후 5년간 국정의 기본방향과 기초를 놓는 작업이 이번 회의에서 이뤄진다. 이같은 지도부의 새 구성과 중장기 정책방향 결정과 관련,양상곤전국가주석의 활발한 행보는 관심거리다.인민해방군의 대부이며 등소평을 제외한 당 최고원로인 양은 실권은 없지만 군에대한 영향력,계파간 막후 조정을 통한 정치역량 건재를 과시중이다.양전주석은 지난해말 강소성·절강성과 올 4월 연안지역 시찰에 이어 이번 회의를 앞두고 지난6일부터 17일까지 흑룡강성을 시찰,공식활동을 사실상 재개했다. 이번 회의의 주제인 「정신문명건설」논의도 이러한 권력구도의 변화및 중장기 정책 방향결정과 관련,의미부여및 구체적 후속조치 단행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이미 정치국과 당 중앙은 경제·물질건설에 치중한 나머지 일부 지식인들을 포함한 일반 대중의 정치교육및 도덕적 기율 훈련에 소홀,심각한 부작용이 일고 있다고 내부 반성을 결의했다.이점에서 올 북대하회의와 이에 이은 올 9월말 14기 마지막 당중앙위회의는 사상·정치교육을 적극 강조하는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이같은 정신문명에 대한 강조는 ▲식민지주의적인 외래사상및 문화사조의 배격 ▲당·정간부의 부정부패및 집권 반대세력을 겨냥한 사정운동의 계속적 진행 ▲강력범죄 억제를 위한 엄벌주의운동의 연장을 내용으로 한다.특히 각 성의 당위원회 서기,성장등 주요 간부의 인사평가에 경제실적과 함께 「정신문명건설」실적을 포함키로 했다는 당관계자들의 지적으로 보아 보수회귀 우려도 일고 있다.이같은 안정우선의 보수색채 정책방향은 약화돼 가는 당의 역할 강화와 함께 강택민중심의 상해·산동 집권파의 장악력강화 시도로 해석돼 귀추가 주목된다.〈북경=이석우 특파원〉
  • 「신레이건식 외교정책」/윌리엄 크리스톨(해외논단)

    ◎“미국은 보수주의로 과감히 돌아갈때”/탈냉전이후 대외역할 축소 국익에 도움안돼 냉전이후 미국의 국제역할 감소가 뚜렷해진 가운데 미 정치주간지 「스탠더드」 발행인이자 공화당 및 보수계의 「전략귀재」로 명성이 높은 윌리엄 크리스톨은 이와 반대되는 「미국제일주의」 외교정책론을 주장하고 있다.「포린 어페어즈」 최근호에 실린 그의 「신 레이건식 외교정책을 향하여」를 소개한다. 외교정책에 관한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갈팡질팡하고 있다.그들은 일단 클린턴 현행정부가 민주당 전통에 맞춰 표방하는 윌슨 대통령의 국제다자주의엔 콧방귀를 뀐다.대통령후보 지명전에 나온 패트릭 부캐넌의 신고립주의에 마음이 끌리면서도 주위 눈치를 살피며 고립주의자의 손길을 애써 뿌리치고 있다.그래서 당장은 헨리 키신저류의 보수적 「현실주의」에다 그럭저럭 마음을 의탁하고 있는 형국이다. 탈냉전 이후 미국인들은 미국이 2차대전 직후부터 짊어져온 거대한 책임감에서 벗어나 집안일에 온 정력을 쏟을 때라고 입을 모았다.소련제국의 붕괴로미국의 외교·국방정책은 정상으로 복귀,미국 「국익」을 보다 좁게 해석하고 이에따라 해외간여와 국방예산이 감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화당과 보수주의자들은 처음엔 이같은 냉전이후 컨센서스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보수주의자들은 새로운 정치 「현실」에 자신들의 외교·국방정책을 이리저리 짜맞추지 않으면 안되었다.일반 미국인들은 이제 대외맹약이나 외교 자체에 무관심해 세계를 이끌어가는 일보다는 균형재정 달성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전쟁억지력에 돈을 쓰기 보단 「평화배당금」을 현금화하는데 더 열심이라는 것이 새 「현실」로서 기정사실화한 것이다.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이 풍조에 반기를 들지않고 묵인했다. 그런데 지금의 이 상황은 지난 70년대 중반을 상기시킨다.그러나 그땐 로널드 레이건이 당시의 뜨뜻미지근한 컨센서스와 과감히 맞섰었다.여론은 소련과의 공존 및 수용 노선을 선호했는데 이는 즉 미국도 어쩔 수 없이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현상의 변화를 두렵고 비싼 대가가 드는 일로 여긴 것이다.그러나 레이건은 국제공산주의 세력에 이념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승리하고 말 것이라는 당시로선 논란의 여지가 큰 비전을 제시하면서 소련의 위협에 더이상 회피하지 말고 직시하며,국방비를 대폭 증액하고,공산주의의 제3세계 진출을 저지하며 미 외교정책이 보다 도덕적으로 투명하고 목적의식을 가져야 된다고 역설했다. 당시 미국의 많은 식자층은 레이건을 경멸하거나 위험시했었다.그러나 76년의 후보지명전부터 바람을 일으킨 레이건은 공화당과 미국의 보수주의운동을 바꿔놓았으며 80년 대통령당선과 함께 미국과 세계를 변화시키고 말았다. 최근들어 탈냉전을 이유로 미국의 역할이 축소된 것으로 여기는 미적지근한 여론은 잘못된 것이다.보수주의자라면 여기에 동의해서는 안된다. 국익에 도움이 안될뿐아니라 보수주의 자체에도 해로운 태도인 것이다. 그러면 대체 어떤 역할이 보다 고양되어야 할 것인가.다름아닌 남에게 덕을 베푸는 「지구 패자의 역」이다.「악의 제국」을 멸망시킨 미국은 전략적,이념적으로 다른 강대국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위를 누리게 됐다.이 우위를 유지하고 앙양시키는 일에 미 외교정책의 최고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오늘날 세계에서 미국이 실제로 누리고 있는 리더의 지위는 바로 「친절한 패자」의 역할에서 비롯된다.중국과 러시아도 이를 이해하고 있으며 최근 반년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갔는가를 살펴보면 미국의 패자 지위는 확실해진다. 결국 미국의 헤게모니 장악은 평화와 국제질서가 와해되는 것을 막는 유일한 믿을만한 방어책이다.그러므로 미국의 현실은 군사 최고주의와 도덕적 자신감이 넘치는 신레이건 외교정책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 아!북조선(상·하)/김학준 지음·이동우 그림(화제의 책)

    ◎북한사 첫 세계화… 알기쉽게 만화로 구성 중진 정치학자인 김학준단국대이사장이 지난해 10월 펴낸 「북한 50년사」를 만화로 그려냈다. 이 책은 북한정권의 전사로서 항일독립투쟁의 한줄기인 연해주의 공산주의운동부터 시작한다.이어 러시아·만주·중국에서 진행된 공산주의운동,해방과 함께 김일성이 소련의 지원으로 북한에서 정권을 잡는 과정,한국전쟁에 얽힌 비밀들,전쟁후 반대파 숙청,이후 끊임없이 남한과의 대결및 경쟁을 벌이는 과정들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또 김일성사후 논란이 되고 있는 김정일후계 체제에 대해서도 그 흐름을 명쾌하게 분석했다.지은이는 김정일후계 구도가 사실상 1973년 시작돼 80년부터는 「김일성·김정일 공동통치」가,84년부터는 김정일시대가 열렸다고 본다.따라서 김정일이 아직 공식적으로 권력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그 체제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이사장의 저서는 북한사를 처음 체계화한데다 객관적으로 서술해 높이 인정받고 있다.이 책은 역사책이라면 아무래도 딱딱하게 여길 독자를 위해 그 내용을 만화로 재구성한 것이지만 원저의 수준을 그대로 살렸다는 평을 듣는다. 동아출판사 각권 5천8백원.
  • 마가단 동물농장(시베리아 대탐방:60)

    ◎여우·밍크 한해 2만마리 모피로/생후 6개월 되면 가죽 벗겨 가공업자에/사육 우리마다 종자번호·품질평가 기록표/검은 단비 1백마리로 만든 긴 코트 5만불 호가 국내에 모피의류 보급이 무섭게 확산되고 있다.하지만 아직까지도 사치품이란 인식이 적지 않다.그러나 러시아인들에게는 모피 코트,모자,목도리가 사치품일 수 없다.문자 그대로 생활필수품이다.러시아의 겨울은 길고 혹독하기 때문이다. 동물들도 추운 지방에서 겨울을 지내려면 따뜻한 털로 무장해야 한다.그래서 마가단,사하,캄차카 등 북해인접 지역의 모피는 세계최상의 질을 자랑할만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극동 마가단주의 마가단시내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즈베로 솝호즈 마가단스키」를 찾았다.마가단 국영 동물농장이다. 드넓은 오호츠크해변에 위치한 이 동물농장에서는 북극여우와 밍크를 사육한다.도로 위쪽에 북극여우 사육장이,아래쪽에는 밍크사육장과 건조실 등이 있다.북극여우는 종자 좋은 수놈 5백마리와 암놈 2천마리씩을 기른다.수놈 한마리가 암놈 4마리씩을상대하는 셈이다.밍크도 종자로 1천5백마리정도 기른다. ○좁은 우리에 가둬 사육 매년 북극여우는 5∼8마리,밍크는 2∼8마리씩 새끼를 낳는다.그래서 이 농장에서 연간 북극여우 1만4천마리,밍크 6천마리씩을 잡아 모피를 뽑아내 모피의류 제조업자들에게 넘긴다. 북극여우는 2∼3월에 교미시켜 56∼58일의 임신기간을 거쳐 4∼5월중에 출산한다.6개월이 지난 10월중순부터 11월말까지 잡는다.더운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털이 쓸만하게 다 자라는 추운 겨울이 늦게 오기 때문에 잡는 시기가 늦어지고 크리스마스를 넘기면 판매시기를 놓친다고 한다. 여우는 지상으로부터 1m정도 공간을 두고 높이 70㎝,가로 세로 1m쯤 되는 좁은 우리에 가둬 기르고 있었다.우리당 새끼는 두마리,어른은 한마리씩 들어 있다.짧은 일생을 갇혀살다 모피를 남기고 가는 신세가 딱해 보인다.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것과 흰색의 두종류를 기른다.우리마다 부모와 자신의 고유번호,품질평가번호가 적혀 있다.종자는 새끼를 많이 낳고 털이 길고 좋은 것으로 매년 20%씩 교체한다. 사육장에는 털이 날아다니고 우리 주변에는 오물이 널려 있어 악취가 대단했다. 지난 7월부터 이곳 여우 우리에서 일을 시작했다는 옥사나 즈이코바양(22)은 『처음 왔을 때는 일이 무척 힘들었지만 이젠 적응이 돼서 괜찮다』면서 『월급 1백10만루블(약19만원)을 받는데 옷사고 식품사고 친구들과 파티에 가기에도 빠듯해서 저축할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건조실앞 쓰레기통에는 털을 벗겨낸 동물의 내장이 수북이 쌓여 있다.아침에 주사기로 약을 투입해 죽인 뒤 껍질째로 털을 벗겨낸다.벗겨낸 모피는 폭 10㎝,길이 1.5m,두께 1㎝쯤 되는 노 비슷한 모양의 끝이 뾰족한 나무판자에 거꾸로 뒤집어 씌운뒤 작은 못을 박아 고정시켜 건조시킨다.난방된 상태에서 하루를 말린 다음 다른 곳으로 보내 기름제거 등 1주일 정도 제조작업을 거쳐 모피가 완성된다고 한다. 북극여우 한 마리분 털값은 45만∼50만루블(8만원 내외)이다.목도리는 한마리분이면 되지만 코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16∼18마리가 필요하다. ○여우 한마리 털값 8만원 밍크도 60일간 임신기간을 거쳐 3∼5월에 새끼를 낳는다.생후 6개월이 지나면 10월말부터 잡기 시작한다.낳을 때는 5∼6㎝에 불과하지만 6개월이 지나면 60∼70㎝ 크기로 자란다.사진을 찍기 위해 우리에서 꺼내자 생사의 기로에 접한 듯 겁에 질려 이빨을 드러낸채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가로 40㎝,세로1m,높이 30㎝쯤 되는 길쭉한 우리에 갇혀 산다.암놈털이 길고 좋아 코트는 암놈 것으로만 만든다.수놈털은 주로 모자를 만드는데 쓰인다.목도리는 2마리,모자는 3마리,반코트는 20마리,긴코트는 30∼35마리가 필요하다.마리당 모피가격은 질에 따라 18만∼31만 루블. 모피중 최고급은 검은 담비로 1백마리 분량의 담비털이 들어가는 긴코트는 5만달러(약3천8백50만원) 이상 호가한다.밍크코트의 8∼9배,여우코트의 17배 정도 가격이다.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 정복에 나선 이유는 넓은 땅을 탐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담비털에 욕심을 낸 것도 이유중의 하나라고 할 정도다.그래서 정복후 소수민족들에게 야사크라는 현물세를 부과,담비모피를 징수해가기도 했다. ○사료·연료값 올라 고전이 농장 직원은 모두 1백10명.동물 사육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하는 일은 모두 여자몫이다.남자는 운전기사와 보일러실에서 일하는 10여명뿐이다.아침8시면 출근해 하오4시까지 먹이주고 오물치우고 가죽벗기고 하다 보면 하루해가 금방 간다. 이 동물농장의 예브게니 이사예프 사장은 『마가단을 비롯한 북극과 시베리아 지역의 모피는 긴털안에 또 작은 털이 있는 최상품이라서 노보시비르스크 등 러시아에서 뿐 아니라 한국 등지에서도 많이 사간다』고 말했다.모피값도 조금 올랐지만 사료,연료값은 더 많이 올라 남는 게 없다고 걱정한다. 하오4시가 조금 지나자 직원들이 옷을 갈아입고 나간다.피묻고 털묻은 작업복 차림에 초라하던 여인들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루즈 바르고 모피나 가죽옷을 차려입은 멋쟁이 여인들뿐이다.통근버스가 이들을 싣고 집앞에까지 데려다준다. 마가단 시내 식당에서 대신흥산의 박찬문사장(48)을 만났다.모피구입 상담차 왔다고 한다. 『러시아의 모피는 종자개량을 하지 않고 좋은 사료를 많이 주지 못하기 때문에 질이 점점낮아지고 있는데도 값을 비싸게 달라고 해 거래에 어려움이 많다』고 박사장은 말한다.지구온난화 현상과 동물보호주의운동 등으로 인해 모피산업 자체가 고전하고 있고 한국산 모피의 수출도 점차 어려움을 겪고 있단다. 미국의 모피소비량이 최근 7∼8년 사이에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서구에서는 모피에 대한 수요가 급속도로 곤두박질치고 있다.그러나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모피 인기는 최근 들어 더욱 치솟고 있다.평균 봉급이 1백∼2백달러 정도에 불과한 일반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같이만 여겨지는 고액을 주저할 것 없이 지불할 수 있는 신부유층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러시아의 이러한 모피 인기도 세계에서 두번째다.첫번째는 한국이라고 한다.
  • 중 부패척결에 단호/주용기 부총리 강조

    【홍콩 연합】 중국의 주용기 부총리는 중국공산당과 국제공산주의운동은 부패척결문제에서 실패했다고 밝혔다고 홍콩의 중국계 신문 문회보가 9일 북경발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중국의 견해를 자주 그대로 대변해온 이 신문은 주용기가 지난달 북경의 중남해회인당에서 당·정의 장관급 고위관리들을 대상으로 행한 연설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말했다. 주용기는 중국의 부패문제가 심각하기 짝이 없다고 통박하고 『부패척결운동은 중국공산당의 생사존망이 걸린 대문제』라고 천명했다고 문회보는 말했다. 주부총리는 『강택민을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은 부패척결문제에서 단호하다.
  • 1905∼1914/재러 한인언론민족운동 구명

    ◎수원대 박환 교수저 「러시아 한인 민족운동사」/해조신문·대동공보·권업신문이 주도/국내와 의병활동·일제의 만행 등 보도 러시아 극동지역은 1900년대 초기 한인 민족운동의 중추적 활동기지.한러수교 이후 학술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이 지역의 민족운동을 다룬 새로운 연구성과가 축적되는 추세다.최근 탐구당이 펴낸 수원대 박환 교수(한국근대사)의 「러시아 한인 민족운동사」는 이러한 맥락의 연구성과를 집약한 저술.지금까지 한인 공산주의운동에 치중한 기존연구의 틀을 깼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박교수가 연구대상으로 잡은 시기는 1905년 이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이 시기에 민족운동을 주도해 나간 한인사회 발행 신문들에 대한 연구가 없다는 사실에 착안했다.그래서 해조신문·대동공보·권업신문·대한인정교보 등의 한인신문에 초점을 맞추어 민족운동단체와 민족운동의 성격을 살폈다.또 운테르베르게르와 곤다치 등의 시베리아 극동총독과 민족운동의 관계도 새롭게 밝혀냈다. 해조신문은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이 만든 신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1908년 2월26일 일간으로 창간되었다.1908년 5월26일 75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된 이 한글 민족지의 본래의 이름은 옛 맞춤법에 따른 「□됴신문」.논설·잡보·외보·전보·소설·만필·본항정보·광고·별보 등의 체제를 갖추고 동포들의 교육,풍속의 교정,민족의 단결,국내외의 의병활동,일제의 만행 등에 보도초점을 맞추었다. 해조신문의 발행인 겸 편집인은 최민학과 듀코프,사장은 최봉준이었고 장지연과 정순만은 기자로 활약했다.특히 최봉준은 재정을 담당한 중심인물로 일자무식이었지만 북한지역에서 소를 사다 팔아 돈을 모아 8백t급 선박까지 소유했던 거상.그가 매년 1만루블을 내는 조건으로 창간했다.박행 겸 편집인의 하나인 듀코프는 동시베시아 제13 보병연대 중위.이는 신문발행 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군지사를 움직이기 위한 조치로 밝혀졌다. 박교수는 해조신문 간행성과를 당시 항일민족운동의 구심점이 없는 연해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단체조직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의 단결을 촉진한 것으로 평가했다.또 해조신문에 이어 간행된 대동공보·권업신문·대한인정교보와 같은 다른 민족지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박교수의 분석이다. 대동공보의 경우 1908년 11월18일 창간되어 1910년 9월1일까지 2년여 동안 간행된 민족지.동포를 계몽,독립을 성취한다는 목표를 둔 이 신문은 러시아의 한인배척운동에 대처하면서 안중근을 러시아법정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 유명한 사설을 남겼다.그리고 권업신문은 1911년 12월19일 조직된 권업회가 1912년 4월22일부터 1914년 8월30일까지 발행한 신문.한인들에게 유화정책을 보인 곤다치총독도 권업회 명예회원이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대한인정교보는 1912년 11월2일 러시아 자바이칼지역 치타에서 대한인국민회가 1914년 6월까지 간행한 잡지.러·일관계와 러시아의 대한인국민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따라 러시아정교회(정교회)치타교구 명의로 발행되었으나 종교적 논조에서 탈피,독립전쟁론을 일관했다는 것이다.
  • 실리추구의 정상외교(민주화에서 세계화로:3)

    ◎“조정과 담판외교” 한국위상 높이다/APEC·북핵처리 결단력 발휘/아태서 영향력 있는 지도자 부상/새달 유러15개국 순방… 새역량 기대 김영삼 대통령은 7분이 넘도록 클린턴 대통령을 홀로 「장악」하고 있었다.다른 정상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김 대통령이 손을 내저었다.그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5백여 기자의 눈과 카메라가 이 장면을 전세계로 전송했다. ○한·미·일 공조체제로 지난해 11월15일 인도네시아의 보고르궁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는 회의도중 10분동안 산책시간을 마련하고 있었다.18개국 정상은 궁전 앞뜰에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눴다.그러나 카메라는 회의장에서 나란히 걸어나와 10분동안 이야기를 계속한 김대통령과 클린턴에게 맞춰져 있었다.시간이 끝날 무렵 김 대통령은 무라야마 일본총리를 불러 한·미·일 3각공조체제를 카메라에 남기는 기지를 발휘했다.여유였다. 김 대통령은 두 차례의 APEC정상회의를 통해 아시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자리를굳혔다.김 대통령이 인도네시아에서 호주로 날아가는 특별기 안에서 「세계화구상」을 입안했다는 사실은 보고르회의에서 한국의 위상과 자신감을 확인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취임 2년동안 김대통령의 외교는 한국의 위상을 현재의 경제력이나 잠재적 발전가능성보다 한단계 위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최근 재외공관장회의에 참석한 한 공관장은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위신이 크게 향상됐다』고 분명히 밝혔다.그는 김대통령의 외교에 대해 『민주주의운동의 선봉에 섰던 경력에서 나오는 자신감의 뒷받침으로 세계의 지도자 누구를 만나도 당당하게 마주하고 분위기를 주도해나간다』고 말했다. 93년11월23일,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대통령집무실 오벌오피스.김 대통령은 시애틀에서 1차 APEC정상회의를 끝낸 뒤 워싱턴으로 옮겨 클린턴과 마주앉았다.한·미 외교실무진들은 최고의 현안이던 북한핵협상에 대해 모두가 「포괄적 협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었다.단독회담이 끝날 무렵 김대통령은 『남북한 상호사찰은 양보할 수 없다』고잘라 말했다.이어 『팀스피리트훈련도 한국대통령이 북한의 특사를 만난 뒤에 중단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기습했다. ○회담전 충분히 설명 클린턴과 크리스토퍼 국무장관,레이커 안보보좌관의 안색이 변했다.그러나 동석한 고어 부통령이 김대통령의 뜻에 동조했다.김대통령이 이날 아침 고어를 미리 만나 한국의 처지를 충분히 설명한 탓이다.단독회담시간을 50분이나 넘기면서 김대통령의 집요한 설득은 계속됐고,마침내 클린턴 대통령도 동의하기에 이르렀다.북한핵협상은 그 뒤에도 여러 고비를 넘기지만 이날의 회담은 한국의 핵주권과 한·미외교에 일대전환을 가져왔다.미국 우월외교가 동등외교로,의전외교가 실질·담판외교로 바뀐 날이다.회담내용은 후일 더 자세하게 알려지겠지만 김대통령은 회담을 마친 뒤 『이런 게 담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난해 6월 러시아 방문 때 김대통령이 옐친 대통령 측근들의 완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북한에 공격용이건 방어용이건 무기수출을 하지 않는다』는 옐친의 답변을 얻어낸 것도 대단한 일이다.두번째회의에서 옐친은 김대통령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두손을 들어 보였다.그 순간 옐친이 뭐라고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그러나 우리식으로 해석하면 『당신에게 졌다』는 표현이 아니었던가 싶다. 김 대통령의 외교는 직선적이다.김대통령의 정통성이 이런 직선형 회담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외교가의 분석이다.그러나 무엇보다 APEC정상회의에서 보여준 빼어난 조정능력과 이제는 국민에게 익숙해진 「전화외교」등을 감안할 때 김대통령은 적어도 아시아·태평양권에서는 그의 경력과 친화력에 따른 일정한 카리스마를 가진 「좌장」으로 자리매김된 것이 아닌가 여겨지고 있다.30년에 걸친 끈질긴 민주화투쟁과 집권후의 탁월한 개혁정치,67세란 지긋한 나이가 이지역 지도자들이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의 한 외교관계자는 『김 대통령과 클린턴 사이에는 한·미정상이란 관계를 넘어 서로 존경하는 선후배로서의 관계가 형성된 듯 보인다』고 평했다.그는 『김 대통령은 클린턴에게 미국의 국내문제에 대해서도 애정어린 조언을 하고,클린턴도 경청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다른 관계자는 보고르회의에서의 에피소드와 보고르선언의 채택과정은 이지역 지도자 사이에 형성된 김 대통령의 위상을 고려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라고 풀이했다.김 대통령은 보고르회의 현장에서 2010년으로 잡혀 있던 한국의 무역자유화 연도를 개발도상국의 2020년으로 늦추면서도 개발정도가 다르고 이해관계도 서로 다른 18개국이 별말 없이 이 선언을 채택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전화회담도 적절히 김 대통령은 지금까지 최소한 클린턴과 열차례,일본의 총리들과는 다섯차례이상 전화를 했다.옐친 대통령,라모스 필리핀대통령등 그가 만난 정상들 모두와 한차례 이상 통화를 가졌다.현안을 협의하기 위한 것도 있었고,단순히 안부를 묻는 전화도 있었다.이러한 전화통화가 정상외교의 실질효과를 높이면서 한국외교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 대통령은 다음달 2일 유럽순방과 함께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에 참석한다.아시아·태평양권에서 굳힌 그의 외교적 역량이 이제 전세계를 대상으로 새로운 실험을 하게 된 셈이다.여기서 성취하려는 우선과제는 세가지로 요약된다.한국의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월드컵축구대회의 서울 유치,김철수 대사의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당선이다.어렵겠지만 김대통령의 외교적 역량에 기대를 걸게 만들기도 한다. ◎문민정부 치적평가/「경제5대개혁」… 기업경쟁력 살렸다/금융·부동산 실명제로 「재산투명성」 제고 2년전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신경제5개년계획」이 발표되었고 참여와 창의로 새로운 도약을 이룩하기 위하여 경제정책의 다섯가지 분야에서 개혁의 청사진을 내놓았다.즉 재정개혁·세제개혁·금융개혁·행정규제개혁 및 경제의식개혁 등이 그것이다. 우선 재정개혁에서의 기본구도는 작지만 강력한 정부를 지향한다는 것이다.낭비요인을 철저히 배격하면서 국가경쟁력제고와 국민편익증대를 위해 필요한 사업을 반드시 추진해나가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물론 이를 위해서 재정능력을 확충해나가고 재정제도의효율화를 달성한다는 전제를 안고 있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다음으로 중요한 개혁과제로서 세제개혁을 꼽았다.이의 기본방향은 조세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제고하면서 재정수입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이다.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합소득세·재산세의 체계를 개혁하고 음성·불로소득을 포착하며 깨끗하고 투명한 조세행정풍토를 확립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또 한가지 특기할 사항으로는 신경제5개년계획기간중 조세부담률이 경상 GNP의 22.5% 내외로 상향조정될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즉 튼튼한 재정기반을 구성하기 위한 전국민적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개념이다. 다음으로 큰 과제가 금융개혁이었다.과거 우리경제의 성장과정에서 금융기관의 역할이 기업성이나 수익성보다는 공익성이 지나치게 강조됨으로써 금융산업의 경쟁력제고가 벽에 부딪히고 생산성 향상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따라서 과거의 지시와 통제위주의 금융경영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자율과 경쟁하에서 시장원리에 입각한 경영이 되도록유도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다.즉 금리가 자금의 수급상황에 의해 움직이고 외환 및 자본시장의 국제화가 이룩되며 은행인사의 자율화,자금운용의 자율성제고,그리고 금융실명제의 실시등이 개혁과제로 제시되었다. 네번째 개혁과제로서 행정규제개혁이 강조되었다.사실 이 분야가 그 어느 개혁과제보다도 중요하며 다른 나라사람도 이 부문에 대하여 큰 진전을 기대하였다.과거 권위주의시대로부터 누적되어온 정부의 간섭과 지시·통제체제는 행정의 능률성을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 부조리의 원천이 되어온 것이다.새로운 경제활력을 되찾고 실절적인 민간주도경제를 실현하기 위하여 경쟁을 제한하는 각종 인·허가사항,진입규제,창업 및 공장설립절차,생산·유통·가격관련 규제와 절차를 대폭 완화 또는 간소화할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었다.그러나 올바른 규제는 이를 엄격히 집행하여 행정능률의 제고를 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다섯째 분야로서 경제의식개혁이 제기되었다.이는 경제발전의 주축을 이루는 국가적 공동의식을 창출해내는 것으로 사실상신경제5개년계획의 성패를 가름한다고 볼 수 있는 절체절명의 과제라고 볼 수 있다.과거 수년동안 발생한 각 경제주체와 욕구분출과 개인 및 집단이기주의 만연 등 불건전한 정신풍조를 굉정하기 위해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직업정신·진취정신의 배양과 합리성의 추구등이 요구되었다. 이상에서 요약된 개혁의 5대과제는 지난 2년동안 지속적이고 또한 일관되게 추진되어왔다고 본다.5년에 걸쳐 해낼 분량중에 가장 시급한 것부터 첫 2년동안에 착수했고 그 성과를 보고 있다고 평가된다. 먼저 재정계획분야에서 열거할 수 있는 주요실적은 무엇보다도 최근 단행된 정부조직개편과 재정의 경기조절기능제고라고 볼 수 있다.총예산의 70%를 넘는 인건비·방위비등 고정적 지출이 이번 조직개편으로 인해 큰 폭으로 절감되었고 95년도 예산편성에는 흑자원칙을 도입하여 재정의 경기조절적 기능을 부여한 일은 개혁적 사고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해내기 힘든 것이었다. 세제개혁에서는 사회간접자본확충 등 엄청난 재정수요를 감당키 위해 역사상 최초로 담세율을 20%선 이상으로 인상한 용단과 부동산실명제·금융실명제,그리고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등을 통해 탈루·부정소득을 막고 과세대상을 철저히 포착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금융분야에서도 몇년동안 보류되었던 금융실명제의 전격적 실시를 위시해서 여신금리·장기수신금리의 자유화,외환보유의 자유화,은행장 선임제도의 개선 등 개혁프로그램에 포함된 과업을 차질없이 시행한 것은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이상의 성공적인 개혁조치와 병행하여 규제완화와 의식개혁도 꾸준히 추진하였다.정부는 「행정규제완화위원회」를 설치하여 그동안 1천1백28건의 개선과제를 확정,그중 9백95건에 대해 조치를 완료한 것으로 발표했다.정부의 꾸준한 개선노력은 인정되면서도 사실상 이 분야에서 국민이 기대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그 이유는 규제완화의 초점이 규칙·고시개정 등 너무 세세한 부분에 맞춰져 있다는 점과 일선공무원의 행태·관행이 구태의연하다는 점이 많이 지적되고 있다. 의식개혁분야에서도 우리의 경제수준에 걸맞는 선진형사고가 국민 의식속에 싹트고 있는가는 평가하기가 아직 이르다.집단이기주의·배타주의·국수주의·소국의식,그리고 보호주의적 사고가 아직도 우리사회 각분야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세계화」선언의 취지도 바로 이렇듯 미진한 의식개혁분야에 새로운 개혁의 불을 붙이려는 데 있다고 본다.세계화는 이제 우리가 편협한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과감히 벗어나 세계일류국가를 지향하는 능동적인 노력을 기울이자는 정신혁명의 선언이라고 본다.개혁 2년의 성과는 컸다고 보며 향후 3년이 조국선진화를 위해 더욱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 1백년 한국교회사 산증인 노진현목사/회고록 「진실과 증언」출간

    ◎59년 장로교단 분열 원인 등 밝혀 1백년 한국교회사의 산증인 노진현목사(92·부산 새중앙교회 원로목사)가 최근 「진실과 증언」(도서출판 하나)이라는 회고록을 출판했다. 노목사는 한경직목사와 함께 한국교회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으나 목회활동을 일본과 부산지역에서만해 전국적으로는 많이 알려지지않았다. 1904년 부산 구포에서 출생한 노목사는 소년시절 주기철목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34년 일본 고베중앙신학교를 졸업한뒤 교토에서 한국인 목사로 지내다가 45년 귀국했다. 노목사는 부산 YMCA초대총무로 취임,교회청장년 지도에 힘썼고 부산 대정동에 있던 일본 감리교회를 인수,부산중앙교회를 설립,평생을 목회에 헌신했다. 노목사는 이 회고록에서 지난 59년 제44차 예장 총회에서 장로교단이 합동과 통합으로 분열된 원인은 신학적견해차이와 합동신학교 박형룡박사의 「신학기금유용」사건 으로 알려져왔으나 사실은 에큐메니칼 운동과 복음주의운동의 대립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신학기금 유용사건은 신학교 총무로 있던 사람이 공금 3천만원을 교제비로 사용 한 것을 당시 교장인 박형룡박사가 도의적인 책임을 진 것으로 교단 분열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노목사는 일평생을 주기철목사의 순교정신과 칼뱅의 개혁주의사상으로 살아오면서 개혁주의 신앙으로 교권주의 추방에 일생을 바쳐왔다. 대학생 선교회대표 김준곤목사는 서평을 통해 노목사의 일생을 한경직목사와 비유했다.
  • “말콤X 딸 음모는 회교단체서 사주”/미지 보도

    미국 흑인 분리주의운동 지도자였던 말콤 X의 딸 쿠빌라 샤바즈(34)는 정부기관의 수사대상에서 벗어나려는 한 남자의 꾀임에 빠져 아버지의 숙적이었던 흑인 회교도단체인 회교민족연합의 지도자 루이 파라칸을 살해하려는 청부살인 음모에 끌려 들어간것 같다고 13일 전해졌다. 미니애폴리스에서 발간되는 스타 트리뷴지는 수사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하여 샤바즈가 고용하려고 했다는 『청부살인자』는 지난 78년 뉴욕에서 있은 한 폭탄폭파 음모사건때 정부기관의 정보원이었고 그후 연방증인보호계획의 한 대상자가 된 사람이라고 보도. 이 신문은 그 남자가 『샤바즈를 유혹하여 음모에 끌어들인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을 했으며 이와는 전혀 무관한 일에 대한 정부당국의 수사대상에서 벗어나려 했다』고 샤바즈의 변호사 스코트 틸센이 말한것으로 전언.
  • 김정일의 권력승계 북방송 당위성 선전

    【내외】 북한은 23일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지지하는 해외친북인사들의 언급을 장황하게 소개하면서 김일성의 사망에 따르는 김정일 권력승계의 당위성을 부각,선전했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이남 전체코공산당위원장,벨기에 노동당위원장,프랑스의 한 대학교수 등 해외친북인물들의 말을 인용,『김일성이 공산주의운동역사에 남긴 업적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생전에 혁명위업계승문제를 해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방송은 『여러나라들에서 수령의 위업계승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해 사회주의가 좌절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김정일이 사회주의위업을 계승한 것은 세계 사회주의자들에게 있어 실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 굴절을 거부했던 사회주의자/타계한 김철 전통일사회당 위원장

    ◎71년 대선 출마… 민추협부의장 맡기도 11일 별세한 김철전통일사회당위원장은 「반공」이 국시였던 3공화국 당시 남한에서 사회주의 정당의 명맥을 이어온 「불굴의 사회주의자」였다. 김전위원장은 1925년 함북 경성에서 출생한뒤 청년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49년 도쿄대 문학부 역사철학과를 수료했다.이 때부터 당시 일본 사회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사상에 심취하게 됐으며 55년에는 재일한국거류민단 중앙본부 사무총장을 맡아 일본내 한국인들의 생존권과 민권 확보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김씨는 국내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본격화하기 위해 귀국한뒤 71년 통일사회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도 출마해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73년에는 당시 브란트서독수상이 이끄는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에서 간사를 맡는등 잠시 「전성기」를 구가하는듯 보였다.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등으로 활동을 계속해나갔으나 당시 사회분위기에서 사회주의 정당은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으며 긴급조치위반과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수년간 옥고를 치르기도했다. 김전위원장은 당시 고비가 올 때마다 『정치적 현실여건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민주사회주의운동이 일보라도 전진할 수 있는 여건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노력할 뿐이지,고난 때문에 이탈할 수는 없다』는 신념을 되뇌곤 했다. 80년대에 들어와서는 통일운동의 선봉대격인 민주화추진협의회에 참여,부의장을 맡기도 했으며 사회민주당을 통해 사회주의 활동도 계속해나갔다. 그러나 90년으로 접어들면서 소련붕괴등 세계조류의 변화로 진로를 쉽게 찾지 못한채 3남 누리씨가 살고있는 독일에 머무르다 지병인 고혈압이 악화되자 지난 2월 귀국,조국에서 영면하게 됐다.
  • 동서문학/여권신장 추구노력 뚜렷

    ◎여성문학연,「페미니즘과 민족주의」 학술토론회/윤정모 「고삐」,사회변혁·여성운동 동참 제시/퀘벡문학은 “언어속의 성차별 추방” 주력/토니 모리슨 “이중고통의 흑인여성 내면세계 표출” 한국과 미국,그리고 캐나다등 각기 다른 사회적 여건과 환경속에서 살고있는 여성들의 삶은 문학속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을까.또 그 사회가 추구하는 민족해방운동의 흐름속에서 맞물린 여성해방의 과제는 어떤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을까.최근 진취적이고 새로운 여성의 모습이 방송광고등의 인기있는 소재로 쓰이고 페미니즘 소재의 연극이 만들어지는등 여성운동과 관련,다양한 각도의 움직임이 이는 가운데 민족주의라는 대명제속에서 여성의 모습을 살펴보는 문학토론회가 열려 관심을 끈다. 한국여성문학연구회(회장 박영혜)가 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제6회 학술발표회가 그것. 그동안 페미니즘문학의 입장에서 비평 및 창작활동을 해온 국내·외 여성문학교수 6명이「페미니즘과 민족주의」주제의 논문발표와 함께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퀘벡문학을 통해본 페미니즘과 민족주의」를 주제로 발표를 한 캐나다 캘레튼대 패트리샤 스마트교수는『1976년 퀘벡독립정부가 수립될때까지 독립운동선상에서 이루어진 이 지역 민족주의 문학은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묘사가 대부분이었고 그속에서 여성은 결코 주체가 아니라 상징적인 존재로 묘사됐다』고 말한다.그러나 76년 민족주의운동의 종말과 함께 급부상하기 시작한 「퀘벡」페미니즘문학은 정통가톨릭의 관습을 비판하고 새로운 인물설정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문학형태를 보여졌다는 것.특히 두드러진 방향점은 남과 여를 구분짓는 「언어」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설명했다.주인을 의미하는 낱말 maitre의 여성형 maitresse가 되면 정부의 뜻도 함께 내포하는 언어속에서의 여성비하를 개선하는 노력이 여성문학계의 최대의 과제였고 그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한 소설 윤정모의 「고삐」에서 나타난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을 고찰한 문학평론가 송명희교수(부산수산대 국문과)는 이소설이 지닌 여성관점의 한계가『성차별적인 사회구조의 변혁을 위해서는 여성이 사회변혁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별도의 여성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알수있게 한다고』결론지었다. 송씨는 「고삐」가 여성문제의 하나인 매춘의 원인을 외세의 지배에 의한 종속주변부국가의 구조적 모슨 병폐에서 찾고자하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작품이지만 모성·현모양처 이데올로기,순결이데올로기의 한계속에 초역사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남성중심의 성적향략을 위한 여성의 도구화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 한편 93년 노밸문학상을 수상한 흑인 여성작가 토니모리슨의 작품세계를 분석한 숙대 두진숙(영문학)교수는 이 작가의 기본작품 흐름은 『흑인이면서도 여성이라는 이중의 어려움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면세계를 그림으로써 백인사회에서 흑인여성들이 처한 극단적인 환경과 딜레머를 표현』하는것이라고 말했다.두씨는 또 억압 해결의 방법을 흑인 여성들간의 유대와 협력을 작품세계에서 제시하는 등 소설을 통해 흑인여성들에 위로와 치유를 하는 토니모리슨은 흑인음악이 해왔던 커다란 역할을 바로 문학으로 대체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불 정부­회교과격파 “긴장”(특파원코너)

    ◎영사 납치 등 무장활동에 “보복단속” 프랑스 경찰이 9일 프랑스내 알제리 이민사회의 회교구원전선(FIS)동조세력에 대한 일제 단속에 나서 회교과격파 세력과 프랑스간에 긴장의 파고가 일고 있다.이는 알제리에서 FIS의 무장단체가 지난 9월 프랑스 기술자 2명을 살해하고 10월 30일 프랑스 영사 3명을 납치한데 따른 보복 조치다. FIS의 간부등 88명을 전격 체포한 이번 일제단속과 관련,프랑스의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는 『우리 영토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프랑스의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파스쿠아 내무장관은 따로 『종교를 이용,프랑스의 국기를 흔드는 정치적 운동을 프랑스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전격적인 국내 회교주의자 일제 검거는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프랑스내에서의 폭력적 회교주의 운동의 싹을 자르겠다는 예방조치이자 회교주의운동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의미는 이보다 더 복잡하다.프랑스가 반민주적인 알제리 군사정부를 지지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91년 12월 총선거 1차투표에서 회교주의자들의 정당인 FIS가 압도적으로 승리,집권을 눈앞에 두게 되자 알제리 군부는 92년 1월 이른바 「합법적 쿠데타」로 국가최고위원회를 만들고 2차투표를 못하게 만들었다. 이때 프랑스는 알제리에 회교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꺼려 음성적으로 군사정부를 지원했다. 프랑스내 회교계 이민은 3백만명에 이르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알제리인이 80만명으로 제일 많으며 결집력도 가장 강하다. 이번 조치는 알제리의 FIS에 경고를 주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들을 자극,알제리내 프랑스 거류민의 안전을 더욱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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