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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일제 차량 자동차세 감면 19일부터 보험료도 할인

    서울시의 ‘승용차 요일제’에 참여하는 차량에 대해 자동차세 감면과 자동차 보험료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12일 시에 따르면 승용차 요일제에 참여하는 차량 중 ‘전자태그’를 부착한 차량에 대해 오는 19일부터 자동차세를 5% 할인해준다. 또 25일부터 메리츠화재 자동차보험 상품에 가입할 경우 보험료를 2.7% 할인받을 수 있다. 할인을 받으려면 새로 전자태그를 발급받아 차량의 앞유리에 부착해야 한다. 자동차세는 6월 부과분부터 소급 감면해준다. 전자태그는 자신의 주소지와 상관없이 가까운 동사무소·구청·시청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생활정보지 사채광고 ‘조심’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0월 이후 생활정보지에 불법 대부 광고를 해온 무등록 사채업체 130여개를 경찰청 등 관계기관에 통보했다고 8일 밝혔다.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은 사채업자가 대부 광고를 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또 등록한 대부업자라도 대부 광고에 상호나 등록번호 등 필수 기재사항을 포함하지 않으면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게 된다. 조성목 금감원 비제도금융조사팀장은 “대부 광고에는 명칭이나 대표자 성명, 대부업 등록번호, 대부 이자율 및 연체 이자율, 영업소 주소와 전화번호, 등록한 시·도의 명칭을 꼭 기재해야 한다.”고 밝혔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245만㎞·35년 무사고 운전

    245만㎞·35년 무사고 운전

    1분 30초에 한명씩 교통사고 사상자가 발생하고 하루 18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교통사고 발생률이 가장 높은 나라. 후진적인 우리나라 교통문화의 현주소다. 만 36년 가까이 운전을 하면서 단 한 차례도 사고를 내지 않은 국내 최장 무사고기록 보유자 김기태(58·경기 분당 야탑동)씨. 그의 안전운전은 그래서 더욱 빛나는지 모른다. ●지구 61바퀴 도는 동안 무사고 서울에서 개인택시 운전을 하고 있는 김씨의 공식 무사고 기록은 만 37년 4개월(경찰청 등록). 장롱면허 기간을 빼고 실제로 운전에 나선 1970년 4월부터 따지면 만 35년 9개월이다. 버스, 택시, 화물차 운전자 통틀어 국내 최고다. 경찰기록상 국내 사업자 운전면허 보유자 240만명 중 30년 이상 무사고 운전자는 김씨를 포함, 단 3명뿐이다. 그동안 김씨가 운전한 거리는 약 245만㎞. 꼼꼼한 김씨가 차를 바꿀 때마다 기록해온 거리의 총합이다. 지구둘레(4만㎞)를 61바퀴 넘게 돌고, 국내 도로 총연장(10만㎞)을 24차례 이상 달리는 동안 단 한번도 사고가 없었다는 얘기다. 35년여 동안 그는 포니Ⅰ·Ⅱ, 스텔라, 쏘나타Ⅰ·Ⅲ,EF쏘나타 등 6대의 택시와 트럭을 몰았다. 지인들은 “큰 사고가 없어 김씨가 운전했던 택시는 폐차될 때까지 외형상 흠집 하나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전한다. ●친구의 죽음이 운전 습관 바꿔 “스무살을 갓 넘기면서 화물차를 몰기 시작했지요. 어렵게 살던 시절,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과속, 불법, 졸음 운전을 밥 먹듯이 했죠.”혈기방장했던 20대 초 그의 운전습관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그의 발은 항상 브레이크보다는 가속페달에 가까이 있었다. 그렇게 위험한 질주에 익숙해져 있던 77년 10월 어느날. 김씨는 친구(당시 28세)와 함께 각자의 5t 덤프트럭에 김장용 배추를 가득 싣고 나란히 강원도 산길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구불구불 위험한 길에서 친구의 차는 연방 차선을 넘나들며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걱정스러워 잠깐 쉬어가자고 신호를 보내려던 순간, 트럭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전복됐다. 친구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졸음운전이었다. “정말 한순간이더군요. 차 속에 깔려 피를 흘리는 친구를 그저 바라만볼 뿐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지요. 한번 운행에 4만∼5만원이란 돈에 눈이 멀었던 거죠.” ●“사고 안 내는 것이 운전 잘하는 것” 무사고의 노하우를 묻자 김씨는 다소 난감해했다. 안정적인 마음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고 신호와 규정 속도 지키는 것 외에 별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하는 표정이었다.“운전을 잘한다는 것은 사고 없이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지 얌체운전하며 빨리가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그는 “차는 운전자의 발보다는 마음과 함께 움직인다.”면서 “상대방 차가 끼어들겠다면 기분 좋게 자리를 내주라.”고 했다. 작은 일에 화내고 흥분하면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무사고 못지않은 대단한 기록은 36년 가까운 기간 동안 받은 범칙금 딱지가 단 3장뿐이라는 것. 그나마 과속, 신호위반 등 운행 중 잘못이 아니라 택시승객을 기다리거나 내려주는 과정에서 일어난 주정차 위반 때문이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책꽂이]

    |실용| ●전략가의 리더십(엄광용 지음, 나무의꿈 펴냄) 중국 춘추시대 책사들의 지략을 현실에 접목시킨 리더십 지도서. 천하경영의 기본은 인간경영임을 강조한다.1만원. ●14가지 원리만 알면 너무나 간단한 회계공부(이시이 가즈히토 등 지음, 양영철 옮김, 거름 펴냄) 소설의 형식을 빌려 회계의 핵심 원리 14가지를 설명. 수익비용대응의 회계원칙, 감가상각, 비용배분, 충당금, 원가 계산, 자본의 원천별 분류 등의 개념을 풀이한다.1만원. ●경영의 심리학(에리크 알베르 등 지음, 이세진 옮김, 아라크네 펴냄) 심리학적 도구를 활용해 조직문화를 향상시키고 성과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설명. 기업의 효율성 극대화주의를 비판하며 직원과 기업이 함께 성장하고 보람을 느끼는 풍요로운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1만 2000원. ●시사 IT용어 따라잡기(김학진 지음, 아이뉴스24 펴냄) 휴대인터넷(와이브로), 모바일주소(WINC), 문자서비스(SMS) 등 IT용어 200여개를 골라 풀이했다. 부록으로 게임용어와 인터넷에서 널리 쓰이는 은어 등도 소개한다.1만 5000원.|초등·청소년|●철학자는 왜 거꾸로 생각할까?(요술피리 글, 노현정 그림, 올벼 펴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스피노자, 헤겔, 사르트르 등 인류사를 빛낸 철학자 11명의 사유세계를 귀띔한다. 주인공들의 철학세계를 짧게 압축했지만, 이야기체로 묘사해 이해하기가 한결 더 수월하다. 초등생.1만 9000원.●호기심, 달나라에 착륙하다(고래발자국 지음, 이루다 그림, 디딤돌 펴냄) 고요의 바다(달)에는 물이 있을까, 달의 모양은 왜 변할까, 모두가 잠든 밤사이 달은 어떻게 움직일까…. 과학시간에 초등생들이 머리를 긁적일 만한 달에 관한 모든 궁금증들을 이야기체의 설명, 그림, 사진 등을 곁들여 풀어준다. 초등생. 각권 7000원.●내 마음의 수호천사(신현수 글, 김영장 그림, 푸른나무 펴냄) 평범하지만 화목했던 가정에서 자라난 초등 6학년 은별이. 위암 말기 진단을 받은 엄마를 갑자기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과 마지막 사연들, 아픔을 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이야기가 눈물샘을 건드린다. 가족의 참의미가 책장을 덮을 즈음 차분히 지면위로 도드라진다. 초등생.7800원.|유아·아동|●지구는 돕니다(안느 브루이야르 글·그림, 곽노경 옮김, 미래M&B 펴냄) 찬바람에 끽끽 우는 나무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철따라 바뀌는 풍경…. 지구의 모든 것들이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웅변하는 철학적 감성이 돋보이는 그림책.5세 이상.9000원.
  • [06일 TV 하이라이트]

    ●행복의 오솔길(EBS 오후 1시) 글재주가 있고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어르신’들을 위해 지역시청과 노인센터가 손을 잡고 인터넷 칼럼 기자 일자리를 창출했다. 활발한 사회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실버 인터넷 칼럼기자단을 찾아가 본다. 또 어르신들이 집에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어깨관절을 위한 ‘필라테스’도 배워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여자(SBS 밤 8시55분) 방송사에서 도연을 만난 지수는 당황스럽고, 하고 싶어하던 방송 푸드코디네이터 일에도 관심을 접기로 한다. 제작진으로부터 같이 해보자는 연락에도 미안하다는 말로 대신한다. 한편, 재민은 다인이 다니는 학교에 찾아가서 보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다인은 아빠 딸로 태어난 걸 후회한다는 말에 할 말을 잃는다.   ●글로벌 비전(YTN 오후 1시20분) 몽골은 일년 중 4개월 정도가 겨울에 해당한다. 영하 25∼30도 돼야 춥다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에서 시장경제로 바뀌면서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생태적인 어려움에도 부딪히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몽골인들은 전통생활방식과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레인보우 로망스(MBC 오후 6시50분) 은비는 자신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는 형민과 사귀기로 한다. 그런데 뒤늦게 기범이 역시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희진 교수님은 점을 봤더니 수염이 난 사람이 신년 운을 가로 막는다고 한다. 수염이 난 사람이라면 홍철인데, 희진 교수님은 홍철때문에 불안함을 느낀다.   ●별난여자 별난남자(KBS1 오후 8시25분) 게스트를 그만 두라는 나라의 협박에 겨우 조건부 허락을 받은 종남은 게스트 공부에 열을 올리고, 해인의 행동에 불안감을 느낀 석현은 해인에게 호텔건을 고백하려고 저녁 약속을 한다. 그러나 방송 몇 분 전에 종남의 가슴에 달린 브로치를 발견하고 기겁을 하는데….   ●윤도현의 러브레터(KBS2 밤 12시15분) 타악퍼포먼스의 원조 영국 오리지널팀 ‘스텀프’. 쓰레기통과 물통을 이용한 신명나는 공연이 펼쳐진다.Fly to the Sky는 새 앨범 타이틀 곡 ‘남자답게’를 선보이고, 모던 포크 듀오 재주소년은 추억의 명곡 ‘꿈의 대화’를 부른다. 또 봄여름가을겨울은 새로 발매한 라이브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 우리 주소에 청계천 넣자

    우리 주소에 청계천 넣자

    “청계천을 우리 건물 주소에 담자.” 청계천이 시내 명소로 떠오르면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서울시의 새주소 부여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새 주소 부여 사업의 성공적인 사례는 청계천 옆 갑을빌딩. 건물주는 지난해 말 주소를 ‘종로구 서린동 149번지’에서 ‘종로구 청계천로 11번’으로 바꿨다. 이후 빌딩 이름도 주소에 걸맞게 ‘청계 일레븐(eleven)’으로 바꿨다. 현재 이 빌딩에는 외식업체인 베니건스가 입주, 매일 500여명의 손님들이 몰리고 있다. ‘청계 일레븐’의 주소는 청계천로의 기준점인 청계천과 세종로가 만나는 중앙선에서 20m 간격으로 북쪽은 홀수번, 남쪽은 짝수번으로 번갈아가며 주소를 매기는 새 주소 체계(그래픽 참조)에 따른 것이다. 즉 ‘청계천로 11번’은 청계천 북쪽에 있으며, 청계천로 기준점에서 100m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청계천로에서 가장 앞선 번호의 주소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동아일보사로 ‘종로구 청계천로 5번’이라는 주소가 가능하다. 기준점에서 40m까지는 도로이기 때문에 1∼4번은 도로에 포함된다. 하지만 동아일보사는 아직 ‘종로구 세종로 139번지’라는 주소를 쓰고 있다. 주(主)출입구가 접해 있는 길을 기준으로 주소가 정해지는 원칙에 따라 동아일보는 청계천로쪽이 아닌 세종로쪽을 주출입구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새주소부여사업추진반 김선숙 반장은 “홍보 부족 등으로 청계천로로 주소를 바꾼 빌딩은 아직 드물지만 청계천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데다 새주소가 간단하고 길찾기에도 편하기 때문에 새 주소로 바꾸려는 빌딩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면서 “주소를 바꾸려면 관할 구청에 신고만 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새 주소 사업은 1997년 모든 도로와 건물에 번호를 부여해서 길찾기의 불편함을 없애자는 취지에서 행정자치부 주도로 시작됐다. 서울시는 대전시와 함께 새 주소 사업을 끝냈지만, 전국적으로 새 주소 사업 진행률이 43%에 그쳐 현재 널리 쓰이고 있지 않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길섶에서] 새해 첫날 생긴 일/육철수 논설위원

    전화통화 때는 표정과 감정을 온전히 목소리에만 실어 전하기 때문에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그래서 조심한다고 해왔는데, 새해 첫 출근날 그만 나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오발탄’을 쏘고 말았다. 그것도 목소리가 상냥하기 그지없는 은행 여직원한테…. 회의준비로 한창 바쁜 시간에 은행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카드발급과 관련해서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거였다. 주민번호·주소까지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면서 어디 다른 데 또 연결해서 직접 번호버튼을 누르란다. 시간을 뺏기는 것 같아 순간적으로 신경질을 부렸다.“바빠 죽겠는데, 왜 그리 복잡합니까?” 저쪽에서 약간 당황하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전화를 끊고 나니 여간 후회스러운 게 아니었다.1초만 참을 걸…. 정초부터 못된 고객에게 날벼락을 맞은 그 직원은 얼마나 기분상했을까. 온종일 마음이 편치 않아 ‘요로’를 통해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사과하고 싶으니 그 여직원을 꼭 좀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이튿날 오후,K라고 이름을 밝힌 여직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한사코 괜찮다는 그녀의 목소리는 어제보다 더 예쁘다. 백배사죄하고 나니 체증이 쑥 빠져나갔다. 남에게 기쁨만 주겠다고 다시 굳게 마음을 잡았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데스크시각] 중국과 일본 사이/ 이석우 국제부 차장

    외교관의 자살, 혼외정사, 외국 공안 당국의 협박과 회유…. 첩보영화에나 나옴직한 사건으로 새해 벽두부터 중국과 일본관계가 시끄럽다.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 직원이 중국 기관원에게 약점을 잡혀 기밀유출 요구와 협박에 못이겨 자살했다는 게 일본 외무성의 주장이다. 중국 여인과 관계를 맺어온 이 외교관은 두 나라의 소유권 다툼 대상인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등에 관련된 기밀 유출을 요구받고 고민끝에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28일 일본 외무성이 공식 유감을 표시하며 사건을 공개한 뒤 두나라 외교부간의 반박과 비난성명이 새해로 이어지면서 양측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자살한 외교관은 상하이 총영사관과 일본 외무성 사이에 오가는 암호의 조합과 해석을 담당하는 ‘전신관’. 민감한 정보를 다루던 자리다. 냉전시절 옛 소련과 미국과의 첩보전을 그린, 흑백 영화라도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사건 전개는 근년 들어 꽁꽁 얼어붙고 있는 중·일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 준다. 냉전종식 후 내리막길을 걷던 중·일관계는 지난해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중국내 대규모 반일시위로 이어졌고 잠복해온 두나라의 첨예한 대결 양상을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강행과 일본관광객들의 중국내 ‘기생관광’ 등이 베이징·상하이 등에서 대규모 반일 시위를 촉발시킨 것이다. 지난 4월 중국 시위자들에 의해 깨진 상하이 일본총영사관의 유리창들은 중·일 당국간의 책임소재와 관련한 이견으로 여태껏 깨진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도 양측의 감정싸움을 엿보게 한다. 한류에 앞서 1980년대 중국을 휩쓸던 ‘일류(日流)’, 즉 영화와 드라마, 음식과 복장 등 일본 문화에 대한 열광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자리는 “너희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채워졌고 일본은 오직 규탄 대상일 뿐이다. 과거 일본의 기술·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중국정부가 취했던 조심스럽고 우호적인 태도도 이제는 “할 말은 한다.”는 자세로 바뀌었다.“힘이 생기니 숨겨온 의도와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오만하고 거친 중국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일본인들의 분개한 목소리도 커졌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미국이 중·일을 견제·경쟁시키는 이이제이(以夷制夷)로 동아시아 패권을 유지하려 한다.”는 신중론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집단 최면에 걸린 듯 양측 모두 불붙고 있는 민족주의 속에 힘의 대결로 달려가는 듯한 모습이 대세를 이룬다. 유럽연합(EU)과 같은 공동체 건설 가능성이나 21세기 새 국제관계의 모습으로 기대됐던 동반상승의 노력은 고사하고 동북아는 영토 분쟁과 안보 불안, 과거사와 자존심 등이 뒤범벅된 채 불신의 벽을 높여가고 있다. 중국은 미·일이 미사일방어체제(MD)를 빌미로 중국을 겨냥한 군사동맹을 강화해 숨통을 죄고, 타이완을 중국서 영원히 떼내려 한다고 분개하고 있다.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을 뜯어고치며 재무장의 길로 나가려는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걱정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구매력평가(PPP)로는 이미 세계 2위에 올라선 중국이 경제적 역량을 패권확보를 위한 군비강화에 쏟아붓고 있다며 세어진 중국의 완력을 걱정한다. 방위청서는 중국을 가상 적으로 올려 놓았다. 양측의 불신은 동북아를 세계에서 가장 빠른 군비증가 지역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모습은 100여년 전의 동북아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한반도를 싸움터로 삼고 으르렁대던 청·일의 패권 다툼, 시계의 초침을 돌려놓은 듯한 상황속에서 한국은 부상하는 중국과 재무장을 향해 ‘보통국가’로 변신하고 있는 일본의 틈바구니 속에 끼어 있다. 한 외교관의 애정 행각이 자살이란 파국으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혹여 현재 중·일 관계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중·일이란 두 거인의 각축이 동북아의 더 많은 보통사람들의 비극으로 확대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그런 불안정한 동북아 구조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석우 국제부 차장 jun88@seoul.co.kr
  • [달라진 부동산세법] 종부세 고가주택보유자가 합산 납부

    [달라진 부동산세법] 종부세 고가주택보유자가 합산 납부

    정부는 ‘8·31 부동산대책’ 관련법안이 지난해 말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종합부동산세 합산 및 양도소득세 중과 대상 등을 구체화한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고 2일 밝혔다. 궁금증을 문답으로 알아본다. ◇종합부동산세 관련 ▶결혼한 자녀도 합산과세 대상인가. -1세대란 본인 및 배우자와 동일한 주소에서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 존비속과 형제·자매 등을 말한다. 따라서 자녀가 혼인했더라도 부모와 같은 주소에서 살면 모두 합산과세 대상이다. 취학이나 유학, 요양, 근무상 형편에 따른 일시 퇴거자도 같은 세대로 본다 ▶합산과세 대상에서 빠지는 가족은. -부모와 동거하지 않는 30세 이상의 자녀는 무조건 별도의 1세대로 본다. 배우자가 사망하거나 이혼한 경우 따로 종합세를 매긴다. 별도의 주택을 소유하면서 독립된 생계를 유지하며 최저생계비 이상의 소득이 있는 세대원도 합산하지 않는다. ▶미성년자는 세법상 단독세대가 인정되지 않는가.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가족의 사망이나 결혼 등 부득이하게 1세대를 구성하면 단독세대로 인정된다. ▶부부가 따로 살 경우에는. -본인과 배우자는 주민등록상 따로 살더라도 1세대로 봐 합산과세한다. 이혼하면 합산하지 않지만 이혼한 뒤 사실상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위장이혼이면 합산한다. ▶결혼이나 노부모 봉양시 합산과세를 유예하는 기준은. -종부세 부과 기준일인 6월1일이다. 따라서 올해 6월1일을 기준으로 노부모 등과 거주한 지 2년 이상이 된 자녀는 올해부터 합산과세가 적용된다. 그러나 1년 이상 2년 미만이면 내년부터,1년 미만이면 2008년부터 합산한다. ▶합산과세시 누가 납세 의무자인가. -소유한 주택의 가액이 가장 큰 세대원이며 가액이 같을 경우 종부세를 신고한 자가 된다. 주택을 소유한 나머지 세대원은 연대해 납세의무를 진다. ▶종부세를 면제받는 어린이 놀이방의 기준은. -전용 놀이방의 경우 지금도 지방세법에 따라 재산세가 부과되지 않아 종부세도 면제받고 있다. 주거겸용 놀이방의 경우 시장·군수·구청장의 인가를 받고 놀이방 소유자나 소유자와 함께 사는 세대원이 보육시설의 장으로 일해야 한다. 또한 5년 이상 가정보육시설로 운영해야 하며 의무적인 운영기간을 충족하지 못하면 경감받는 세액은 나중에 추징된다. ▶주거겸용 놀이방을 중단하면. -공공사업 등으로 수용되거나 사망으로 인해 상속받았을 경우, 다른 곳에서 놀이방을 운영하기 위해 이사할 경우 종부세를 추징당하지 않는다. ◇양도소득세 관련 ▶수도권이나 광역시에 주택이 1채, 지방에 1채가 있을 경우 1가구 2주택자로 분류돼 양도세가 중과되는가. -수도권이나 광역시에 있는 주택은 양도세 중과 여부에 관계없이 무조건 주택 수로 계산된다. 그러나 지방의 경우 기준시가가 3억원을 넘는 경우에만 주택 수에 포함시킨다. ▶수도권에 기준시가로 2억원짜리와 9000만원짜리 주택을 보유했다면. -일단 수도권에서는 모든 주택 수를 계산하기 때문에 1가구 2주택자로 본다. 그러나 수도권에서 1억원 미만의 주택은 양도세 중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2억원짜리 주택을 먼저 팔 경우에는 중과 대상이지만 9000만원짜리를 먼저 팔면 양도세가 중과되지 않는다.9000만원짜리 주택도 재개발이나 재건축 지역에 있으면 중과된다. ▶수도권에 4억원짜리 주택을 갖고 있다가 파견근무로 지방에서 3억원짜리 집을 샀다가 2년 거주한 뒤 근무지 복귀로 지방의 주택을 팔았다면. -1가구 2주택자로 분류되지만 근무상 형편으로 지방에서 1년 이상 살고 파견근무가 끝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팔았기에 중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수도권에 임대주택이나 사원주택 등과 일반주택을 보유한 2주택자는. -임대주택이나 사원용주택,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문화재 주택 등은 조세특례제한법상 감면 대상 주택으로 양도세 중과 대상은 아니다. 또한 1가구 2주택자로 분류되지만 어느 주택을 팔더라도 1주택자로 간주해 중과되지 않는다. 소송이 진행 중이거나 소송 결과에 따라 취득한 주택도 마찬가지다. 결혼이나 노부모 봉양을 위해 함께 산 뒤 5년 안에만 팔면 양도세가 중과되지 않는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양도세율 60% 중과 대상 농지는. -부재지주 농지로서 비사업용 토지로 인정되는 경우다. 원칙적으로는 농지가 있는 시·군·구에 살면서 2분의1 이상을 직접 농사짓는 자경(自耕)의 경우는 중과대상에서 제외되지만 개발제한구역과 녹지지역 이외의 도시권 농지는 자경(自耕) 등과 관계없이 무조건 60% 중과한다. 다만 농촌지역에서 자경하던 농지를 도시지역에 편입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팔면 중과하지 않는다. ▶주말·체험농장의 경우는. -농지법에서 소유가 인정됐다면 자경요건 등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300평 미만의 주말·체험 농지는 중과 대상이 아니다. 상속농지나 이농농지도 5년 이내에 팔면 괜찮다.▲매립농지 ▲2005년 12월31일 이전에 취득한 종중소유 농지 ▲5년 이상 자경한 농지를 질병이나 고령(65세 이상), 징집, 취학, 선거 등으로 자경할 수 없는 경우도 중과 대상에서 빠진다. ▶임야나 목장용지의 경우는. -부재지주나 사업용으로 사용되지 않는 임야나 목장용지는 올해부터 양도세가 실거래가로 과세되고 내년부터는 양도세가 60%로 중과된다. 그러나 임야의 경우 고유 목적에 사용되거나 종자용, 자연휴양림·수목원 조성용 등은 중과대상에서 제외된다. ▶부동산을 과다하게 보유한 법인의 주식을 팔 때 양도세율 60%를 적용하는 기준은. -법인의 자산 총액 중 비사업용 토지가액의 합계액이 50% 이상인 법인이다.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법인의 주식양도는 사실상 부동산에 관한 권리의 양도와 같거나 비슷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예컨대 법인의 자산총액 중 부동산 비중이 80%이고 이 가운데 비사업용 토지의 비중이 70%이면 비사업용 토지가액이 자산총액에서 차지하 비율은 56%이므로 일반적인 양도세율 9∼36%가 아닌 60% 세율이 적용된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오늘의 눈] 제2·제3의 ‘태권V’가 필요하다/ 장세훈 공공정책부 기자

    ‘우주소년 아톰’이나 ‘마징가 Z’,‘건담’,‘철인 28호’같은 만화 영화를 보며 꿈을 키운 세대가 있다. 훗날, 어린 시절을 지배한 로봇의 대부분이 ‘메이드 인 재팬’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충격은 컸다. 자존심을 지켜준 건 ‘로봇 태권V’였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용 로봇은 자동차·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의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세계로봇연맹(IFR)에 따르면 2002년 기준 우리나라의 로봇 보유대수는 일본, 미국, 독일, 이탈리아 다음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많은 로봇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만큼의 기술력을 보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보다는 한수 아래라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모터와 감속기 등 핵심부품을 대부분 일본에 의존하기 때문이다.1970∼80년대 만화 영화를 수입했던 것처럼…. 산업용에 이어 지능형 로봇마저 일본에 종속될 수는 없다. 지능형 로봇시장 규모는 2020년쯤 자동차시장을 추월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능형 로봇으로 가장 앞섰다는 ‘아시모’(ASIMO)에 일본 혼다자동차는 1986년 이후 14년동안 3000억원을 쏟아부었다. 지난 2004년말 공개된 한국 최초의 인간형 로봇 ‘휴보’(HUBO)는 아시모보다 종합적인 기능은 다소 떨어진다. 그러나 3년동안 불과 10억원이 투입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훨씬 경쟁력이 있다. 지능형 로봇은 인간과의 상호작용 등 ‘소프트 웨어’가 강조된다. 우리의 앞선 정보통신(IT) 기술은 지능형 로봇시장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원천이 될 것이다. 정보통신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로봇 시대의 미래를 활짝 열어갈 청소년들의 상상력이다. 제2, 제3의 태권V가 쏟아져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은 곧 지능형 로봇산업 육성정책의 시작일 수 있다. 장세훈 공공정책부 기자 shjang@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 -‘부넝숴(不能說)’ 중에서 ●편집자주:원고의 각주는 편의상 모두 본문 안에 삽입했습니다. 1. 형식에서 정서로, 혹은 인식에서 믿음으로 김연수는 똑똑하고 성실한 작가다. 이것은 물론 그의 작품이 증명해 주는 바다. 이미 첫 장편 ‘7번 국도’의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에서 그것이 예고되었고,‘굳빠이, 이상’에서는 그의 ‘좌뇌’가 승한 글쓰기가 과도하다 싶을 만치 절정을 이뤘으며, 최근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는 논픽션적 자료의 편집으로 픽션을 제작하는 방식의 글쓰기(이에 대해서는 김연수 심진경 류보선의 좌담 ‘작가-되기, 혹은 사라진 매개자 찾기’,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참고)가 일가를 이뤘다고 할 만하다. 새로운 소재와 생생한 묘사라는 ‘발로 쓰는’ 글쓰기가 유행하는 가운데, 김연수는 그 나름 ‘읽고 쓰는’ 글쓰기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고나 할까? 예컨대,‘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의 보르헤스식 모티프에서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에 나오는 경성제대 이어철 박사의 ‘냉수를 마셔라’라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또 휘트먼의 시에서 한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레퍼런스는 실로 화려하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비록 대중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읽을 만하다. 읽을 만하다는 것은 그 자료적 풍부함과 형식적 공들임이 해석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김영하나 백민석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라는 소재적 새로움을 문단에 던져줄 때, 김연수는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라는 형식적 새로움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는 자칭 “현학적인 문학근본주의자”인 것이다. 더불어 김연수는 시대적 상처와 유관한 작가다. 첫 단편집 ‘스무 살’의 ‘구국의 꽃, 성승경’에서 투신하는 학생 운동가라든지,‘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첫사랑’에서 수배자의 고백이라든지,‘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의 배경이 되는 광주항쟁과 지역감정의 문제라든지, 이처럼 80년대적 상황과 사회적 투쟁의 상처는 89학번 김연수에 의해 소설 안으로 계속해서 호출된다.“세대의식과 소설가적 자의식을 맞세우며 자신의 소설적 지평을 지속적으로 갱신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김연수가 등단했던 1990년도는 집단의식보다는 ‘나’가 문단의 화두였다. 한편에서는 윤대녕, 신경숙이 ‘나’를 돌아보며 내면으로 침잠할 때, 다른 한편에서는 김영하가 그 ‘나’를 파괴하겠다며 나르시스트의 ‘거울’을 부수고 있었고, 백민석의 주인공들이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러 문화적 코드들이 혼종된 작품들도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억눌렸(렀)던 개인의 욕망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왜곡된 방식으로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드러났으며, 그 와중에 대사회적인 투쟁이나 고민은 이미 유행지난 옷가지처럼 옷장 깊숙이 처박힌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김연수의 주인공들은, 학생운동의 과잉진압으로 죽은 ‘성승경’의 동생 ‘승진’이 죽은 누나의 원피스를 입고 유령처럼 밤거리를 헤매듯, 그 유행지난 옷가지들을 자꾸 꺼내서 입어본다. 그는 자칭 “80년대에 가까운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옷은 역시 유행에 걸맞지 않는 터라, 더불어 이 부채의식이라 할 만한 것에 짓눌려 있기에 작가의 상상력의 궤적이 너무나 크고 그의 지적 발랄함이 너무나 경쾌한지라 “김연수에게 문학적 글쓰기는, 자신의 진실을 고통스럽게 토로하는 것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서영채,‘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문학동네 2002년봄,p328)라는 지적이 폭넓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김연수 식 예의 그 경쾌한 글쓰기는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는 재치있는 연애소설에서 그 빛을 발하고, 결국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편집자, 주석가, 번역가로서의 그의 재구성 능력이 우연과 필연, 진실과 거짓에 관한 통찰까지 얻음으로써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본다면 김연수에게 80년대적 상황 혹은 세대 감각,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다소 우울한 정서의 문제는 작가가 초지일관하고 있는 형식적 구성력에의 관심, 또 그에 값하는 작가의 능력에 의해 묻혀 버리게 된다. 따라서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징후적으로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들과 그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고독과 비애의 정서는 “이 소설만큼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라는 작가의 고백과 함께, 김연수의 작품 목록에서 특이한 것으로서만 간주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집의 독특함 혹은 이질성에 대한 평가는 뒤이어 나온 ‘유령작가’의 형식적 강렬함에서 더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장편 연재를 시작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문학동네,2005년 겨울호)에서 김연수는 다시 80년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끌고 오면서 전후 한국 현대사를 거론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김연수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이쯤 되면, 김연수의 ‘변전’(김형중),‘기획력’(심진경), 혹은 ‘문턱 넘기’(김연수)는 여전히 한쪽에는 세대의식, 한쪽에는 작가의식을 놓고 그 양극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 소설에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김연수는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작가라는 것이다. 그가 유지해 왔고 벌써 정점에 도달한 듯 보이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나 불가지론적인 사고에는 세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의 세계인식이 “그러므로 진실은 없다.”는 냉소나 허무주의가 되지 않고,“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인간에 대한 끝없는 관심 때문일 텐데, 그것은 어떤 ‘정서’의 집약을 통해 스며 나오기도 하고,‘의지’ 혹은 ‘믿음’으로 실천되기도 한다.“아프지 말아라, 너무 아파하지 말아라”(‘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194.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1:페이지수)라는 식의 위로와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작과 비평사,2005,p.28.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2:페이지수)라는 의지 같은 것들이 김연수를 해체적 허무주의자라는 평가로부터 지켜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한복판에 항상 ‘언어’에 대한 고민이 놓인다는 점이다. 소설집의 제목에 ‘작가’라는 말을 대놓고 쓸 만큼, 또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목록이 다수에 해당할 만큼 그에게 언어의 운용은 중요하다. 김연수 소설의 인물들이 흔히 무엇을 쓰거나 말하거나 읽고 있다는 사실도 그 증거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언어 수행 행위를 바탕으로 해서, 김연수만의 진정성과 고민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으로 이 글은 쓰여진다. 그의 형식적 기발함과 재치와 성실성에 묻혀 버린 김연수의 진정성은 무엇이고, 그가 멈추지 않는 질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그 질문을 지금껏 어떻게, 어디까지 해결했나? 2. 기억으로 말할 수 없는 것, 말로 기억할 수 없는 것-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작가가 그렇듯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거나 쓴다. 김병익이 지적했듯,‘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작품들은 이제 무엇에 대해 쓰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먼저 밝히는 것으로 서두를 뗀다.(김병익,‘(해설)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위의 책)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는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 채 혼잣말을 계속하고, 그의 이혼한 아내는 꿈꾼 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부넝숴’와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의 화자는 아예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일방적인 편지 형식이며,‘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여자 친구의 자살 원인을 알기 위해 ‘소설’을 쓴다. 유서에 자신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남겨 놓지 않은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라는 처절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너’의 흔적을 그리고 ‘우리’의 흔적을 더듬는다.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혼잣말이며,“사랑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꿈 속까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며, 편지에는 답장이 없다는 것이며, 소설 속의 인과관계 안에서는 어떤 진실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언어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말은 할수록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처럼 단어 몇 개로밖에 소통할 수 없는 말하기가 더 단호하고 정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계속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허무한 일인가. 그래도, 여하튼, 침묵은 비겁하다. 그래서 인물들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또 말하고 쓴다. 전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도 그랬다. 그렇지만 그들은 타인과 소통할 수 없음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아니 그 점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왜일까? ‘첫사랑’의 ‘나’는 수배중이다. 자수할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첫사랑 ‘정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그 편지 내용이란 건 거창할 게 없다.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역설적으로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떠올려지듯 ‘나’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고 그에 대해 고해성사를 해나간다. 자신의 관심이 무시당하자 정인의 뺨을 때린 일, 혜지누나에게 화풀이하듯 “남의 잔에 술이나 따르는 더러운 년이 일식은 무슨 일식”(1:114)이냐며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 등을 얘기한다. 그런 고백의 사이사이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데프콘 발동”,“직선제 개헌”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무심히 끼워 넣는다. 그런데 그 편지는 단지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1:114)라는 뒤늦은 뉘우침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남겨야만 한다는 초조한 마음”(1:98)에 사로잡혀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특별히 그 대상이 ‘정인’이어야 할 것도 없다는 점이다.‘정인’의 주소는 짐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되었고, 정인에 대한 기억도 따라서 우연히 떠올려 졌을뿐이다. 결국 고백을 들어줘야 할 그 ‘누군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다.“너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을”(1:105) 연구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나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이 바로 자기 안에 머물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까닭 없는 슬픔과 한없는 기쁨과 막연한 불안감이 하늘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처럼 내 안에서 서로 섞여서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 바뀌는 동안, 조금씩 둥근 원이 태양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지. 눈물 방울처럼 검은 유리판에 새겨진 그 아름다운 노란빛. 언젠가 보았던 너의, 또 혜지누나의 눈물 맺힌 눈동자처럼 한쪽 부분부터 흔들리는 그 둥근 빛. 그러나 결코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을 그 소중한 동그라미. 무한히 수축됐다가 다시 온 우주로 퍼져나가는 그 노란 물결.(1:118)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둥근 노란빛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특히 일식을 보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아버지를 따라 나간 시위에서 처음 본 ‘펄럭거리는 노란빛’,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그 노란빛,‘나’는 그게 꿈이었고,‘사랑’이었다고 정의 내리고 이제 일식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 그렇지만 검은 유리판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태양에 의해 완벽하게 가려진 그 노란빛은 꿈도 사랑도 아니다. 어쩌면 꿈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실재(real)를 가리고 있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예쁘던 반딧불이 실은 끔찍한 벌레에 다름 아니었듯 말이다. 이렇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서 사랑하고 내 안에서 꿈꾸고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에서 ‘게이코’는 어떤가. 이 작품에서도 편지는 중요한 모티프다.‘태식’과 ‘김씨’가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 판 돈을 갖고 사라진 게이코를 찾으러 가는 데는, 게이코가 받았던 펜팔 편지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게이코의 아버지는 월남 가서 실종됐고, 엄마는 자살을 했고, 따라서 그녀는 ‘천애고아’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엄마’라는 단어 대신 ‘모친’이라는 단어를 쓰는,“하루에 열 마디 이상을 하지 않고”,“말한다고 해도 더듬기 일쑤”(1:29)인 ‘게이코/경자’는 ‘서유진’이라는 이름으로 ‘수잔’에게 펜팔 편지를 쓴다. 답장도 받았고 게이코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서로 소통하는 듯 보이지만, 그 답장은 ‘게이코/경자’에게 온 것이 아니며,‘게이코’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인 ‘유진’에게 온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편지에 털어놓는 이야기란,“펜팔 가이드”의 예문대로, 자신은 다니지 않는 학교 얘기, 자신은 가본 적 없는 캠핑 얘기일 뿐이다. 학교와 캠핑, 날씨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 등이 ‘게이코’ 또래가 누려야 할 삶의 전형이어야 하는 것이다. 말더듬이 게이코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수잔’에게 일지라도 자신이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빵집에서 일하는 말더듬이 고아라는 것을 이야기할 리 없다. 아니 어쩌면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자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잔’을 대화 상대로 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도 말하기 싫다는 무의식적인 의지의 표명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게이코’는 왜 편지를 쓸까. 그 편지 역시 ‘첫사랑’의 편지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받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빵집에서 여전히 빵처럼 둥근 그 노란 빛 아래서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 자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꾸며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면 그녀가 빵집 창문에 다 못 쓰고 간 ‘New Year‘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편지를 쓰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물러 있듯, 게이코의 행방의 단서가 되었던 편지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간 곳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에게 쓰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려는 행위이며, 결국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다.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될 만한 것들을 차단한다. 단지 각자의 기억을 더듬고 각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처럼 그들의 쓰기/말하기/읽기는 자기 충족적이다. ‘리기다소나무숲에 갔다가’의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끊임없이 ‘만담’을 하는 것도 ‘나’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치유의 과정에 가깝다. 카페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자살 소동으로 시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촌은 내 “인간 연구”의 대상이다. 나는 왜 “인간 연구”에 골몰할까? 대학 1학년 때 분신 장면을 목격한 나는 “죽을 게 뻔한 길인 줄 알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심정”(1:151)이 무엇일까 라는 숭고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질문은 삼촌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삼촌에게 “물망초 여자 진짜로 사랑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삼촌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삼촌 역시 ‘나’에게 답하고 있다는 자의식 없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그들 사이에는 질문과 답의 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다. 삼촌은 넋두리를 늘어놓듯 자신의 로맨스를 말하기 시작하고, 도라꾸 아저씨는 옆에서 “하이고, 조카 듣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뭔 사설이 그래 기나?” 라는 식의 추임새를 넣어 준다. 가히 ‘만담’ 수준이지만, 혼잣말에 가깝다. 이 ‘만담’ 속에서 나는 삼촌을 이해했고, 삼촌은 공감을 얻었을까? 이해는 앎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앎이 이해와 치유의 첫 걸음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해받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삼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길은 가지 않은 길이고, 여전히 삼촌은 ‘리기다소나무 숲’ 안에서만, 혹은 자신 안에서만, 지난 날 부르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더 로드 낫 테이큰’을 읊조리는 수밖에 없는 것을.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만담’을 하는 동안,‘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봉우’는 그야말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국낙서문학회 지역지부에서 ‘나대로’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봉우에게 삶이란 ‘만반의 준비는? 5천. 평생동지는? 12월 22일’ 따위의 말장난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방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주간지의 독자페이지에 이런저런 낙서를 지어서 투고하는 일에 열을 올리면서 봉우에게 삶은 더더욱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봉우가 만든 최고의 낙서는 바로 ‘인생이란? 픽션에 불과하다’였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망상이 빚어낸 허상과 직면하니 그야말로 인생은 픽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192) 뱃 속에서 죽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절에 들어가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예정’은 “시답지 않은 주간지에 아무 짝에나 소용없는 낙서 따위나 투고하는”(1:197) 봉우에게 세상을 모르는 ‘멍청이’,‘어릿광대’라고 소리친다. 봉우는 그야말로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나대로’ 그 상처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이며, 그 외면의 방식이 바로 ‘낙서질’이었던 것이다.“아기가 죽으면서 봉우의 마음속에서도 뭔가가 죽어나갔고” “그 자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지만”(1:198) 봉우는 낙서질을 통해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하는 일이 상책일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 자기를 보호하던 그 ‘노란 빛’은 꺼져버릴 수도 있고,‘리기다소나무 숲’에서 넋두리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봉우 역시 “자기만은 어두운 산길에 혼자 버려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산에서 길을 잃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면 봉우의 그 두려움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괘 감정으로서의 불안(불안과 증상에 대한 논의는,S. 프로이트,‘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정신병리학의 문제들´, 열린책들,2003)에 다름 아닐 텐데, 그 불안은 ‘나대로’의 낙서라는 증상을 극복하고 상처와 맞설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예정이 자기 안의 ‘노란빛’을 밖으로 드높이 내걸 듯, 혹은 게이코가 빵집을 나와 어디론가 첫걸음을 내딛듯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노란 꽃잎 가장자리가 흐려지면서 노란색과 초록색과 진회색이 서로 경계도 없이 뒤엉켜”(1:181) 버리듯,“꼭꼭 막아둔 마음의 가장자리도 그렇게 풀리게” 된다. 이제 자기 밖으로 나와 그렇게 풀린 ‘노란빛’은 ‘첫사랑’에서와 달리,‘사랑’도 될 수 있고,‘꿈’도 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 최소한 그럴 가능성은 있다. 이처럼 증상과의 타협에서, 증상에의 만족에서 나오는 첫걸음이 도달해야 하는 것은 결국에 “병에 걸리는 원인을 제거하는 일”(1:229)이며,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책”이다. 그 원인을 밝히는 일이 어떤 위험을 동반하든 그 알 수 없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이 비로소 윤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의 상처, 그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도출된다. 상처는 분명 어떤 ‘좌절’에서 기인할 텐데, 일단 우리는 각각의 서사 속에 끼워져 있는 시대적 배경들을 통해 그 상처가 밖으로부터 투사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은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이며, 이 작품은 일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물론 여기에서도 쓰기와 말하기에 값하는 ‘읽기’를 통한 상처치유의 행위가 지속된다. 전라도 출신 아버지가 시대에 무기력했던 자신을 용서하고 그 시대 자체를 용서하는 방식은 바로 ‘신문 스크랩’이다. 그리고 ‘내’가 그 초라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아버지의 그 신문 스크랩 ‘읽기’이다.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에 기대 나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천천히, 붙여 놓은 기사를 읽었다.(중략)다 읽은 뒤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를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여름 내내 도서관 한쪽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누구를 용서했던 것일까? 파도와 파도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달빛과 달빛 사이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1:65∼66)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만큼은 읽기의 방식이 자족적이고 자위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소통을 위한 매개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문 채로 그 상처를 짓누르고 있지만, 그 ‘신문 스크랩’은 ‘나’로 하여금 초라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신문 스크랩을 아무리 읽어도 그 아버지의 마음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나는 “고작 딸이 집을 나갔다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고,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기고,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전적으로 회상에 의존한 작품은 ‘뉴욕제과점’이라는 자전소설 밖에 없다고 작가가 밝혔듯, 우리는 이 소설집을 단순히 회상 형식을 통해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추억의 보고서’ 또는 ‘반성의 기록’(정선태,‘(해설)빵집 불빛에 기대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295)으로 읽을 수 없다. 그 속에는 분명,‘언어’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통찰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언어’의 불가능성, 즉 언어 자체로는 어떤 진실에도 가 닿을 수 없고,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해묵은 해체적 사고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언어와 비극은 반복될 수 없는 일회성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즉 구조로 회수될 수 없는 다수성과 사건성이라는 점에서 서로 관련된다. 비극적 인식이란 바로 그러한 언어 안에 놓인 인간 조건을 발견하는 일이며, 이처럼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언어에 의한 고통은 인간이 결코 ‘아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비유로 확인된다.(가라타니 고진,‘언어와 비극’, 조영일 역, 도서출판b,2004,pp65∼86)그런데 고진은 ‘아이’가 단지 비유가 아니며, 아이는 이미 어른 이상으로 인생을 알고 있는 존재, 어떤 순수한 비애와 부조리감을 깨닫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에 기댄다면,‘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전편을 감도는 슬픔과 비애의 정서는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잃어버린 기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반복될 수 없는 ‘기억’, 반복될 수 없는 ‘언어’적 조건과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는 “기억이나 회상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며 “글쓰는 순간만의 진실”(김연수 외 좌담, 앞의 글,p.81)을 믿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기억’해 낼 것은 없고 ‘언어’로 표현해야 할 것도 없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순간 순간의 진실일 뿐이라는 말인 듯싶다. 그 일회적인 언어에 의존하여 쓰고 말하고 읽음으로써 자신의 상처 안에 거주하는 방식으로는 상처가 완벽히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이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2:61)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세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3.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넘어서는 몇 가지 방식-‘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최근작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는 죽기 전 두 개의 글을 쓰고, 하나의 글만 남겨둔다. 남겨둔 글은 “世上萬事 一場春夢 돌아보매 無常ㅎ구나”로 시작되는 203행의 대서사시로서,“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평양전쟁, 한국전쟁,4·19,5·16 등 한국 현대사의 최중심지를 관통해온”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그 한 남자의 생애는 또래의 다른 남자의 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서사시는 한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역사를 다룬 시라고 봄이 정확하다. 할아버지는 그 역사를 증명하는 ‘한 남자’일 뿐인 것이다.“할아버지의 또 다른 글은 누구도 읽어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그 다른 글 역시 태워버렸다. 그 글에는 서사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들어 있을 테고, 그것은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일 테니 다른 사람은 엿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4·4조의 정형적인 형식처럼 그 서사시가 어떤 일관되고 형식적인 구조에 속하는 추상화된 개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불태워진 할아버지의 그 비망록은 여전히 ‘언어’로서도 ‘기억’으로서도 도달할 수 없는 개개인의 진실을 의미한다.“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이고”,“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이니” 할아버지의 그 두 글 사이의 거리는 엄연한 것이고,‘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인과관계의 구조로 엮어진 ‘그’의 소설이 현실(reality)과도, 실재(the real)와도 멀어진 거리와 같다. 실재와 구성화된 그것 사이의 거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지도에서 비워진 행로로 상징된다. 일년 전 이혼한 아내와 우연히 재회한 ‘나’는 아내를 따라 인사동 거리를 걷는다. 아니 함께 걸었다기보다는 아내를 따라 걸었던 것인데, 그 ‘길’은 한 개인의 진실로 들어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을 뜻한다. 꿈 얘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애초에 그런 소통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꿈따위는 잠에서 깬 다음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런 아내의 의지조차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그는 이제 그 아내의 진실, 아니 그녀와 자신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지적도를 사고 그날을 행로를 그려 본다. 하지만 기억의 행로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고, 지형도가 아닌 ‘지적도’일지라도 그것은 실재의 ‘유사물(le semblant)’일 뿐이므로, 그 유사물 속에서는 모방된 진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바디우(Alain Badiou)에 따르면 진리는 언제나 특수한 상황의 진리(S. 지젝,‘진리의 정치, 혹은 성 바울의 독자로서의 알랭 바디우’,「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5,pp.208∼218)이다. 하나로 이어진 선 안에서는 그 다양한 상황의 진리들은 모두 지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연결될 수 없음에도 그어지는 그 많은 선들은 다 무슨 의미일까? 역사의 인과관계가, 혹은 지나간 일들의 진실이 도중에 사소하고 우연적이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숨에 긋는, 그런 선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날 걸어간 복잡하고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는 무엇일까?(2:19) 따라서 ‘나’의 생각이 미치는 지점은 모든 삶의 행로는 우연이고, 그 안에서 진리는 발견될 수 없고, 나의 불행도 그저 불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삶의 우연성을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를 따져 묻는다. 그리고는, 결국엔,“오랜 시간이 흐르고 하면 지금의 우연한 일들도 모두 필연이 된다”(2:28)는 정답을 얻어낸다.“우리가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한 없이 걸어다녔던 일들도 필연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거대한 ‘농담’일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는 윤리적 행위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사건에의 충실성’이라는 말로 윤리를 설명한다.(A 바디우,‘윤리학-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이종영 역, 동문선,2001)그가 정의하는 ‘사건’이란 인식 범위 밖에서 발생하며,‘공식적’ 상황이 ‘억압’했던 것을 가시적이게 만드는, 언제나 어떤 특수한 상황의 진리이다. 따라서 사건에의 충실성이란 사건의 견지에서 ‘인식’의 영역을 횡단하고, 그 속으로 개입하고, 사건의 기호를 찾는 지속적 노력을 가리킨다.(이하 한 단락의 내용은 S. 지젝의 앞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임)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바디우의 논의는 “범역적 우연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보편적) 진리의 소생”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실재 사물과의 모든 열정적 조우가 환영일 뿐이라는 해체주의적 사고와 대립된다. 요컨대, 후근대적 해체주의자들이 비관주의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을 때, 바디우는 “기적은 실로 일어난다.”는 전적으로 정당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성과 불멸성에 대한 이와 같은 바디우의 추구는 물론 개별적인 상황, 다양성의 상황의 전제로 하는 열린 개념이다. 다소 길게 인용된 바디우의 논의를 따라,‘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결국 내가 삶의 모든 길은 우연이고 진실은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한번 버텨보기로 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진리’를 위한 행위이고,‘사건에의 충실성’을 담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자기 안에 머무는 회피나, 삶은 우연에 불과하다는 회의에 빠지지 않고 한 개인의 진실, 혹은 삶의 진실에 가 닿으려는 ‘행위(act)’를 시작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태도는 분명, 자기 안의 둥근 노란빛에 의지하여 자폐적으로 말하고, 쓰고, 읽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속 인물들의 태도와는 차별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그’가 쓴 소설의 첫 문장이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인물들임에 분명하다. 그 고투의 방식을 몇 가지 단계로 분류해 보자. 첫 번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와 같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고 소통에의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이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세영과 네즈미가 지도를 보고 찾아간 길이 잘못 된 길이었지만, 세영이 “돌아갈 수 없어, 네즈미. 우린 계속 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첫 번째 방식 안에서 설명된다. 잘못 들어선 길이 “공로가 아니라 사유지”라는 것도 상징적이다.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의 진리, 혹은 개개인의 사적인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두 번째는 ‘말’이 아닌 ‘몸’으로 다가가는 방식이다.‘부넝숴’를 한번 보자. 지평리 전투에 투입되었던 중공군 ‘나’는 들판을 가득 메운 매화꽃잎들처럼 지평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사자들 틈에서 한 조선인 여성 구호원에게 구조된다. 그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전복되고 그 둘은 외딴 농가에 고립된다. 날짜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먹을 것도 없고, 죽음을 지척에 둔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한 일은 두 가지이다. 몸을 섞거나 시를 읊거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때의 일은. 살아 있다는 건 그토록 부끄럽고도 황홀하고도, 무엇보다도 아픈 일이더군. 아프다는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그 순간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어. 그래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우리는 쉬지 않고 몸을 섞었어. 죽음이 지척이었으니까.(2:71) 그들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몸을 섞는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고통 속의 향유(jouissance)’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고 그 향유의 끝장을 보는 ‘죽음충동’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그들은 그렇게 “몇 번이나 해가 뜨고 저물었는지, 몇 번이나 달이 둥글어졌다가 다시 여위어졌는지”(2:75)도 모른 채, 수색대가 왔다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가는 것을 “죽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만 살아서 지켜보고 있는지”(2:75)도 모른 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결국 ‘그녀’는 죽고 ‘‘나’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나’는 이제 점쟁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라캉이 ‘죽음 충동’과 관련하여 ‘두 죽음 사이의 영역’(위의 책,pp.251~265)이라고 말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캉에 따르면 그곳은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의 영역으로서 존재의 질서 너머에 있는 유령적 환영의 영역이다. 그곳은 ‘죽음 너머의 삶’이 갑작스레 출현한 장소이고, 상징화되지 않는 ‘불가분의 잔여’이기 때문에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예컨대, 그 형상은 운명을 이행한 이후의 오이디푸스, 즉 ‘과도하게 인간적’이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 어떤 인간적 법칙들이나 고려 사항에도 묶여지지 않는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그녀’의 피를 1000그램이나 수혈받고 죽음의 경계를 넘은 ‘나’는 이 ‘산죽은-파괴불가능한’ 유령적 대상과도 같다. 운명을 보아버린 ‘나’는 이제,“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세상에서 믿기 어려운 얘기”(2:77)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죽은’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번째 방식, 온몸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면 그 순간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는 어떠한 ‘언어’도 소용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방식이 성공했는가. 그 둘이 함께 ‘몸’을 통해 ‘유사-죽음’을 경험했더라도, 여하튼 현재 ‘그녀’와 ‘나’ 사이에는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경계가 놓여 있지 않는가? 여기서 굳이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공식을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의 행위를 아예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설령 그게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소통에의 ‘의지’를 드디어 ‘실천’으로 관철하는 일이며, 반복될 수 없는 ‘언어’의 한계,‘기억’의 한계,‘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의 세영이 5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했던 남편에게 자신이 절대로 이해 못하는 다른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아니 극복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식이냐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언니의 동거남,‘네즈미’와 섹스를 하는 방식이다. 네즈미에게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드는” 세영의 방식이 “무모한 열정”으로 보이지만, 세영의 그 무모한 열정은 끝장까지 간다. 자동차 사고로 남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2시간 동안 울기만 했던 세영, 그렇게 다른 삶이 있었던 남편의 죽음을 방조했던, 아니 어떤 행동(action)도 하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으로 행위(act)했던 세영은 결국 ‘자살’한다.(정신분석은 행동과 행위를 분리한다. 행위는 그것의 담지자(행위자)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다는 점에서 행동과 다르다. 행위 이후에 나는 ‘전과 동일하지 않다’. 행위 속에서 주체는 무화되고 뒤어이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라캉은 ‘자살’을 모든 (‘성공적’) 행위의 전형으로 파악한다. 알렌카 주판치치,‘실재의 윤리’,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4,p.133∼134) 세영의 방식이 극단적이고 무모하다면,‘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어떠한가. 이 작품에는 소통 불가능성과 그 불가능을 넘어서는 시도와 그 결론이 모두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랑의 모든 국면을 다 경험”함으로써,“심지어 죽음까지”도 경험함으로써만 가능한 결론이다. 여자 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왕오천축국전’을 읽고 나서도,‘소설’ 쓰기를 통해서도 애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 그녀와 자신의 삶에,“어떤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는”(2:151) 가장 합당한 주석을 달며, 그저 “짐작을 하며”,“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2:143)이거나, 둘째,“지도에서 비워진” 그 곳으로 직접 가보는 일이다.‘그’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서로를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없는”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어두운 구멍”(2:43)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이고,‘의지’의 방식을 택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가 ‘결국 가야하는 길’이고,‘부넝숴’의 ‘나’가 ‘덜/더 가버린 길’이다. 당연히,‘그’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은, 이처럼 ‘몸’으로도 ‘언어’로도 이해 불가능한 그녀를 이해하는, 아니 자신의 진실을 이해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거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2:154) 그곳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공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 어떤 논리도 거부하는 공간, 죽음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 등등. 그러나 어떤 말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그곳은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실재’와 대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실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이다.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트를 사면 항상 옮겨 적던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2:111)라는 릴케의 문장이 떠올랐을 것이다.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에게 그 용기를 갖는 일은 의무이다. 낭가파르바트 등반은 원정대장이 역설한 바대로 “분명히 의의가 아니라 임무”(2:117)인 것이다.“그 꿈이 제아무리 압도적이라고 해도 원정대는 그곳을 ‘정복’해야만 한다.”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오로지 ‘의무’ 때문에 ‘행위’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윤리적 주체(‘의무’와 윤리적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의 책,5장 참고)이다. 4. 진실은 어디에,“대뇌와 성기 사이”(김연수,‘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문학동네 2005년 겨울,p.158)그 어디쯤 ‘유령작가’라는 말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김연수는 그 의미가 ‘대필작가’ 쯤이 된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논자들은 그 안에서 작가적 자의식을 찾아냈다.‘유령’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보면 어떨까?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김연수의 최근 두 소설집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죽음을 넘어선 그 어떤 영역을 살펴보고 ‘유령’이 되어버린 작가가,‘아직’ 언어와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아이’에 머물고 있는 상처받은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말이다.“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그래서 눈물은 조롱거리가 되고 아픔은 비난받고 두려움은 무시되며 믿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2:117). 우울은 도덕적 쇠약함이며, 죄라고 라캉이 말했던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가 위와 같은 말에 의지하여 낭가파르바트로 갔듯이 우리도 각자가 넘어야 할 산 하나쯤은 마음 속에 있을 것이고, 그 산을 넘기 위한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것의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지만 ‘죽음’이 윤리적 행위의 전형이라며, 그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타자의 진실, 나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연수는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현실에서 이해는 필연적으로 오해가 되고, 살 부비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서로의 마음 속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해결은 한 가지다. 그 “대뇌와 성기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마음’으로 진실을 그저 믿는 것이다. 김연수의 세계인식과 작가의식은 이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위의 책,p.121)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 어떻게 들려줄지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의 장편 연재가 기대된다. <끝> ■ 당선소감 “조금은 자신 갖고 내목소리 낼수 있을것” 글쓰기는 나에게 공포다. 학교에서 몇 개월째 학부생들의 리포트 상담을 하고 있지만 난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관하여 조언을 해 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항상 회의적이다. 여전히 나는 무엇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절부절 못하고, 하얀 모니터 앞에서 머릿속까지 하얗게 비워지곤 하는 걸…. 그렇지만 여하튼 읽는 일은 행복하고, 쓰는 일은 나에게 작은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 일들을 멈출 수가 없다. 혼자 품고 있던 그 공포와 행복 사이에 용기를 채워 준 이번 당선이 정말 기적 같다.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지만, 이제 조금은 자신을 갖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라 몹시 부끄럽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만으로도 더없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는 신범순 지도교수님과 국문과의 모든 은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꽃비 내리는 자하연을 몇 번이고 함께 맞이했던 1동의 동료, 선·후배들의 자극에도 빚진 바 크다. 함께 공부하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그리고 나이 서른을 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철없고 무심한 자식을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어렸을 적부터, 성실히 읽고 쓰는 일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게끔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글쓰는 순간이 진실’ 작가의 본질 파헤쳐” 응모작 총 20편은 작가론이 대부분이었고, 김현론을 비롯한 문학사적인 쟁점을 다룬 게 3편 있었다. 작가론 중에는 시인·소설론이 거의 반반씩이었다. 아마 최근 신춘문예 평론의 주류가 작가론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특히 전후문학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4·19세대 작가론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늘의 작가론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시선을 끈 글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행복한 공간-김현론’(김윤정),‘몸의 형이상학, 모성적 관능과 타자없는 육체 사이-김선우론’(함돈균),‘속도에 저항하는 시의 모험-김기택론’(강영준)‘‘틈’을 바라보는 시선-배수아 소설을 중심으로’(김나영),‘고독의 의무, 소설의 의무-윤성희 소설집 ‘거기, 당신?’론’(이은주),‘‘유령’작가의 진실-김연수의 최근작을 중심으로’(조연정) 등이었다. 김현론은 정직한 글쓰기의 자세를 보여준 진솔한 비평적 자세가 돋보였으나 개인적인 체험에 너무 함몰된 점이 아쉬웠다. 김선우론은 인문학적인 거시적 시각으로 시인에 접근하면서 미세한 현대적 환상과 성담론을 분석한 점이 돋보였으나 일반론적인 해설위주에 그쳐서 아쉬웠다. 김기택론은 성실한 독법이긴 하나 해설론에 그친 한계가 있었다. 배수아론은 라캉의 틈 이론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했으나 결론이 너무 조급해 보였다. 최종적으로 윤성희론과 김연수론은 우위를 다툴 정도였다. 윤성희론은 반 루카치적인 소설론을 전개한 점이 시선을 끌었지만 문장력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김연수론은 탈구조주의적인 이론의 틀에 너무 얽매인 느낌이 있으나 기억이나 회상을 불신하고 글쓰기의 순간만이 진실이라는 이 작가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헤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김윤식 임헌영
  • 화마입고 길거리서 새해맞은 우면동 비닐하우스촌 사람들

    화마입고 길거리서 새해맞은 우면동 비닐하우스촌 사람들

    “이런 곳에 사는 게 죄지요. 끔찍해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병술년 새해가 밝은 1일 서울 서초구 우면동 화훼단지 안 무허가 비닐하우스촌. 주민 박옥희(42·여)씨는 요즘 습관적으로 결리는 오른쪽 어깨가 유난히 더 시리다. 박씨는 지난 12월30일 오전 갑자기 들이닥친 불길에 4평 가량의 단칸방 살림살이를 모두 잃고 새해 첫 아침을 근처 구립 노인정에서 맞았다. 지난해 중풍과 치매로 쓰러진 시어머니(75)는 더욱 말을 잃었다. 고2 아들과 중3 딸은 책부터 새로 사야 할 처지다. 식당에서 하루 8시간 일하고 한달 130만원을 받아 다섯 식구를 건사해온 박씨는 일손도 놓은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치매노모 말을 잃어… 보금자리 걱정에 한숨만 우면동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의 새해는 쓰라린 악몽과 함께 시작됐다. 이곳에 갈곳 없는 빈민들이 모여든 건 1980년대 초. 농지에 무허가로 비닐하우스를 개조해 쪽방을 만들었다. 때문에 이곳 주민 212가구 400여명은 주민등록상으로는 다른 곳에 살고 있다. 호구조사를 할 때마다 주소지를 옮겨야 했다. 제대로 된 상수도 시설이 없어 지하수를 이용하지만 화훼단지인 탓에 물에선 농약 냄새가 진동한다. 전국이 세밑 분위기로 한껏 들떠 있던 지난달 30일 오전 8시쯤 여러 집이 함께 쓰는 바람에 과부하가 걸린 전기선에서 갑자기 불꽃이 일었다. 불은 거센 칼바람을 타고 주거용 비닐하우스 150여평을 30여분만에 재로 만들며 22가구 61명을 차가운 거리로 내몰았다. 박씨는 지난 89년 경기도 수원시에 살던 시절 기계 납품대금을 받지 못해 남편(42)의 전기사업이 부도나면서 겨우 백일 지난 아들을 등에 업고 비닐하우스촌에 들어왔다. 그는 “가족들 모두가 허리띠 졸라가며 힘들게 살아왔는데도 2000여만원의 빚이 있다.”면서 “그나마 이대로 있으면 이 땅에 붙어 있을 권리마저 빼앗길 것 같아 또다시 1000여만원의 빚을 내 새로 비닐집을 짓고 있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웃에 사는 김경숙(51·여)씨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91년 수원 세류동에서 가구점을 운영하다 도산하면서 세 딸을 데리고 이곳에 들어왔다. 화훼단지에서 꽃농사를 하는 친척의 도움으로 방 3개에 부엌 하나 딸린 15평짜리 비닐하우스를 겨우 마련해 남편(51)과 함께 중국집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왔지만 최근 경기불황으로 이마저도 접었다. 그나마 안산의 한 공장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매월 30만∼40만원씩 돈을 부쳐주는 큰딸(25) 덕에 입에 풀칠을 해왔지만 갑작스러운 불은 삶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김씨는 “지금은 머리가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나는 친척들이 다시 조금씩 도움을 줘 그나마 낫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부족하기만한 온정의 손길 따뜻한 손길이 있어 사회복지관과 동사무소, 교회와 절 등에서 성금과 쌀, 라면 등 각종 생활필수품이 답지하고 있다. 하지만 화마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들에겐 한참 모자란다. 허술한 비닐하우스집이라도 다시 지으려면 모두 합쳐 수천만원이 든다. 거주민 주거대책위원회 최윤규(55) 위원장은 “당장 갈 곳 없는 사람들이 한숨만 쉬고 있을 순 없어 다시 망치를 들었지만 외부 도움의 손길 없이는 상황이 뚜렷하게 나아지기 어려울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되돌아 본 ‘서울in’ 1년

    되돌아 본 ‘서울in’ 1년

    서울인이 또 한해를 접습니다. 비바람이 있어야 순풍의 소중함을 아는 법입니다. 우리네 세상살이처럼 기쁜 소식과 우울한 소식들이 서울인에도 함께 했습니다. 아쉬운 점들도 있지요. 잊지 못할 황당한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면 사정 탓에 기사로 작성하는 것은 무리였지요. 시민들과 부대끼며 서울인을 만든 기자들이 ‘못다한 이야기’들을 한 자리에서 풀어냈습니다. 김기용 한해 동안 서울인을 만들면서 느낀 점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 격이다.’라는 것입니다. 신문지상에 얼굴을 낼 수 없을 것 같았던 평범한 시민들이 지면에 등장한 뒤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인간시대’에 실린 금천구립합창단 어머니들은 그전에는 큰 규모의 합창단을 부러워했지만 더 이상은 그렇지 않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예술사진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사진과 자신들의 이야기가 넓은 지면에 실렸기 때문입니다. 금천구립합창단은 구 안에서는 유명하지만 소규모의 구립이라는 이유로 기성 언론의 외면을 받아왔습니다. 50대 이상의 아주머니들이 주축이 된 마포구 자전거연합회 기사도 많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할머니’축에 든 분들이 거침없이 페달을 밟는 모습은 무기력에 빠져 있던 비슷한 연배의 어머니들에게 많은 자극을 준 듯합니다. 기사가 나간 뒤 회원가입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뿌듯하기만 했습니다. 송한수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와 수도권에 사는 국민들의 삶에 얽힌 이야기들은 사실 대한민국 절반의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작은 이야기’라는 이유로 알려지지 않던 우리 이웃들의 사연은 훌륭한 기삿거리가 됩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서울인은 서울이야기를 많이 싣는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발상의 전환”이라고 격찬하기도 했습니다. 김성곤 의정뉴스가 서울인을 통해 꾸준히 소개되는 것도 하나의 성과입니다.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인지 하반기 들어서는 지역정가도 후끈 달아 올랐습니다. 이에 따라 당연히 의정 뉴스에 대한 수요도 어느 때보다 높았습니다. 특히 자치구의회나 자치단체별로 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도 돋보였고, 이들 내용은 서울인을 통해 비교적 상세히 전달됐다고 생각합니다. 의회 홈페이지 개편을 통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강화된 것도 서울인을 통해 지역 의회와 주민들의 간극이 좁아진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금석 올해 서울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청계천 복원일 것입니다. 서울인을 만드는 서울시청 출입 기자들 역시 올 초부터 청계천을 제집 드나들 듯이 뒤집고 다녔지요. 6월 시험통수를 앞두고 청계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지난 4월이었습니다. 김유영 기자와 청계천 전 구간을 직접 걸으며 취재했습니다.5.8㎞ 구간이 그렇게 길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것도 공사장 먼지를 다 마셔가면서 걷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반나절 남짓 취재를 한 뒤 기자실로 돌아왔을 땐 이미 녹초가 된 상태였습니다. 특히 목구멍에 낀 먼지를 벗겨내느라고 3∼4일은 저녁 때마다 소주에 삼겹살을 먹어야 했죠. 서재희 서울인에 기사가 아닌 ‘얼굴’로 등장한 게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청계천 특집 때였습니다.‘청계천의 연인들’이 주제였지요. 그러나 하필 마감일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겁니다. 당연히 지나가는 연인은 없고, 편집기자는 독촉하고. 독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함께 기사를 쓴 기자와 연인의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얼굴이 찍히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편집기자에게 최대한 작게 내달라는 특별한 ‘부탁’도 잊지 않았죠. 그러나 신문이 나오자 어안이 벙벙해지더군요. 사진이 한 페이지를 꽉 채워서 나간 겁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한 책자 ‘청계천 풍경’에도 빠지지 않았습니다.‘새로 사귄 애인이냐.’‘이제 시집은 다 갔다.’는 등 기사보다 더 뜨거운 반응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당황스러웠지만 모두 지면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을 하니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계천을 취재하기 위해 열번 넘게 전 구간을 오가며 빠진 살도 하나의 소득입니다. 김유영 ‘거리 탐방 서울연가’는 말 그대로 온갖 사람들을 만나며 서울의 골목길을 다닙니다. 그러다 보니 황당한 일도 많았습니다. 지난 10월에 서울 도심의 한 유명한 거리를 소개하는 기사가 나갔습니다.3주 뒤 카페 여주인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기사가 완전히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겁니다. 그러나 카페 여주인의 말처럼 ‘팩트’가 틀렸다면 카페의 이름도 바꿔야 했습니다. 그래서 반문했더니 말을 흐리는 겁니다. 너무 이상해서 ‘팩트’를 만든 작가에게 확인 전화를 했습니다. 머뭇거리다 “여주인이 옛 여자친구인데 헤어진 뒤 내가 잘 되는 꼴을 못 봐서 언론사마다 전화를 하고 있다.”고 털어놓는 겁니다. 어이 없는 일이었죠. 이두걸 신촌을 취재할 때 일입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이대로 넘어가는 길 사이의 음식점과 카페를 다니는데 30대 후반의 건장한 남자가 뒤를 쫓아오는 겁니다. 차림새도 멀쩡했지요. 그래서 공손히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신경쓰지마!”라는 위협적인 말투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당연히 “당신 뭐야.”라고 받아쳤지요. 잠깐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유 없이 나선 그쪽이 ‘말발’이 딸릴 수밖에요. 결국에는 “이런 가게들이 버젓이 영업하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라고 말꼬리를 내리면서 슬그머니 가는 겁니다. ‘신촌의 별볼일 없는 어깨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빙그레 웃었지요. 고금석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도 당연히 서울인의 취재 대상입니다. 최근에 서울의 달동네를 취재할 때입니다.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상계동 노원마을을 찾았습니다.‘사랑의 김치 나누기’ 행사에서 만든 김치를 함께 배달했지요. 보일러 땔 기름이 없어 전기장판에 의지하고 담요를 둘둘 감은 채 누워있는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특히 할머니가 사회복지사들에게 “너희들이 추우면 안되는데….”라면서 연신 손을 잡고, 저를 보면서 “도련님, 김치 갖다줘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을 잊지 못하시더군요. 눈물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그 동네는 철거예정 지역이라 도시가스를 시공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분들이 오히려 난방비로 10만원 이상 쓰는 모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울인이 외면해서는 안 되는 우리 사회의 그림자입니다. 정은주 서울인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도 취재거리를 만납니다. 어느날 지친 몸으로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버스 운전사가 “안녕하세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더군요.‘절 아세요.’라는 눈빛을 보냈죠.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까지 두른 아저씨는 그저 미소만 보이셨어요. 뒤에 앉아 지켜봤더니 아저씨가 올라오는 모든 승객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하시는 거예요. 일부 승객들은 낯익은 지 “네, 별일 없으시죠?”라고 되묻곤 했습니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싶어서 버스 번호와 회사 연락처를 적어서 내렸지요.10월7일자 ‘대중교통 환골탈태’는 그렇게 작성됐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취재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왜 나를 취재하느냐.”라고 묻는 거예요.“나는 신문에 나올 만큼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기를 거부하는 거죠. 취재하는 것보다, 왜 기삿거리가 되는지 설명하는 게 더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김기용 서울인의 커버 기사는 특히 각 자치구들의 경쟁을 유도하면서 결과적으로 주민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다룬 자치구의 인터넷 방송 실태는 아직 인터넷 방송을 개국하지 못한 자치구들에 좋은 자극을 줬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인터넷 방송을 운영해야 하는지와 필요한 예산 규모 등에 대한 기초 자료 제공, 인터넷 방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환기 등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이동구 유통면과 의회면을 주로 담당해왔지만 올해는 지난해보다 한결 여유로왔던 느낌입니다. 예정된 기사나 지면은 어떤 일이 있어도 책임지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두 저마다의 맡은 바를 100% 이상 해준 덕분입니다.‘안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용어가 새삼 서울인 제작에 맞아떨어진 한해였습니다. 서재희 내년에 개선해야 할 점도 많은 듯합니다. 자신만의 비법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는 ‘성공시대’ 코너가 사라져 아쉽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물론 ‘인간시대’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신선함은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력을 게을리한 것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네 이웃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자는 서울인의 본래 취지를 되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송한수 만만찮은 작업이지만 어렵게 취재한 결과물들인데 꼼꼼하게 다시 살펴볼 시간이 없어 미흡한 점이 많았습니다. 부족한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금석 시민기자제가 취지를 잘 살리지 못하고 1년여만에 사실상 문을 닫은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일반 시민들과 기존 언론과의 괴리와 격차를 결국 좁히지 못한 듯합니다. 주민과 쌍방향 의사소통을 더욱 활발히 할 수 있는 서울인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시도해야 할 제도라고 봅니다. ●‘되돌아본 서울in´ 방담 참여자 김성곤차장·이동구·송한수·이두걸·김유영·정은주·김기용·고금석·서재희(이상 지방자치뉴스부 기자) ■ “아침을 먹읍시다” 현대인의 건강 챙기기 “정말 당첨됐나요?” 서울신문과 CJ㈜가 펼치는 ‘아침을 먹자’ 건강캠페인을 진행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입니다. 당첨자에게 전화를 걸어 주소를 확인할 때면 대부분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집니다. 누군가에게 깜짝 선물을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매주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침도시락을 배달하는 이벤트는 CJ 홍보팀 직원과 점심을 먹다가 갑작스레 기획됐습니다.CJ가 두부시장에 막 진입해서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칠 때였지요. 오피스타운 주변에 아침먹을 곳을 소개하는 연재기사를 준비한다고 했더니, 아침도시락을 보내주는 이벤트를 함께 진행하자고 제안하더군요. 이후 햄스빌, 신선CM, 햇반 등이 추가로 참여했습니다. 아침을 먹자 게시판을 오픈하자마자 도시락을 보내달라는 사연이 쏟아졌습니다. 자신보단 남편과 가족을, 이웃을 걱정하며 아침도시락을 신청했습니다.‘임신으로 몸이 무거워져 아침을 차리지 못합니다.’‘아토피 피부염으로 밤새 뒤척이는 아이를 돌보다 남편을 그냥 보냅니다.’‘출퇴근 시간도 길고, 혼자 자취해 아침밥을 건너뛰기 일쑤예요.’ 객지에서 생활하는 딸, 아이들을 대신 돌보는 시어머니, 홀로 사는 친정어머니, 늦깎이 대학생인 올케 등 바쁘게 살아가는 가족이 아침밥을 챙겨먹기를 기원했습니다. 고맙고 안타까운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도 전해졌습니다. 아이를 자식처럼 돌보는 어린이집 선생님을 위해, 고교입시를 준비하는 딸 친구를 위해, 나라를 지키는 총각 군인을 위해, 정신지체아동과 노숙자를 위해 캠페인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사연이 밀려드니 당첨자를 선정하는 일이 더욱 어려웠졌습니다. 사연을 하나하나 읽고, 여러 명이 의논하며 매주 당첨자를 뽑았지만, 늘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은 계속됐습니다. 아침도시락이 배달되는 날, 현장을 찾아가 취재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쑥스러워하면서도 사진기자가 요청하면 프로처럼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어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경기도 구리시 한 고등학교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선생님이 준비한 깜짝 선물로 고3학생들은 어린아이 마냥 기뻐했습니다. 햄스빌 베이컨 도시락이라 더욱 인기가 많았죠. 그러나 도시락 수가 정해있다 보니 저와 사진기자는 남들 먹는 모습만 지켜보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배가 얼마나 고프던지….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동구민주화 촉발 ‘보수적 평화론자’

    “하느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소서”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善終)을 앞두고 마지막 남긴 한 마디였다. 그것도 이탈리아어가 아닌 모국 폴란드어로. 교황이 아닌 인간 ‘카롤 보이티와’가 평생을 가슴 깊이 모셨던 주에게 건네는 말 같다. 1978년 교황에 올라 지난 4월2일 84세의 일기로 서거할 때까지 요한 바오로 2세는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머감각도 뛰어나 찰리 채플린처럼 지팡이 돌리기 묘기도 곧잘 선보였다. 그는 무엇보다 ‘본업’에 충실했다. 세계를 걱정하고 가엾은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일이 그것이었다. 폴란드 자유노조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등 동유럽 국가들의 가톨릭 전통을 되살리는 데도 힘을 기울였다. 남미나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정치·종교적 분쟁이 시끄러운 나라들을 기꺼이 방문해 왕성한 외교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부임해서인지 한국을 비롯해 130여개국을 방문, 역대 교황 가운데 가장 많았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가톨릭 세계주의자’로 불렸다. 오늘날 가톨릭적 윤리관의 전매 특허가 된 낙태와 동성애, 안락사 등의 반대에 있어 요한 바오로 2세의 역할을 빼 놓을 수 없다.하지만 피임 등 여성의 권리를 제약하고 재임 중 교단 성희롱 스캔들이 있었다며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기 위한 시복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5년간의 유예기간을 없애고 곧바로 기적 사례 등을 접수해 성인 추대 절차를 밟도록 명했으나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홍콩 한국시위대 11명 보석

    홍콩 법원은 23일 구속된 한국 시위대 11명에 대해 경찰 요청대로 유·무죄 및 형량을 가리는 공판을 오는 30일로 연기하되 시위대의 보석을 허가했다. 홍콩 쿤통(觀塘)법원 게리 탈렌타이어 판사는 이날 오후 불법집회 혐의로 구속된 시위대들에 대한 첫 재판을 열어 한 명당 2500홍콩달러(한화 32만 7000원)의 보석금을 내는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했다. 주소지를 카우룽통(九龍塘)의 한 성당으로 기재한 이들 시위대는 다음 공판 전까지 여권을 법원에 압류당한 채 삼수이포 경찰서에 하루 한차례씩 저녁께 출석해야 한다. 홍콩 경찰과 검찰은 추가 혐의 적용을 위해 실시하려던 범인식별 절차를 변호인단 반대로 계속 실시하지 못하는 등 수사 미진을 이유로 공판 연기를 신청하는 한편 출국 가능성을 제기하며 보석 허가를 반대했다. 탈렌타이어 판사는 이에 대해 “구속된 당사자들이 시위에서 보여준 불법 행동의 수준이 경미했고 경찰이 증거를 확보할 때까지 장기간 구금해두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밝혔다. 다음 재판은 30일 오후 2시30분 속개된다. 석방된 시위대들은 불법 집회 혐의는 인정하되 경찰관 폭행, 위험물건 소지 등 추가 혐의는 인정할 수 없으며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처분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 실형은 피하겠다는 입장이다. 재판부측이 이들의 불법집회 혐의를 이미 경미한 수준으로 판단하고 있음에 따라 다음 재판에서 이들은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시위대들이 보석절차를 밟고 석방되자 재판정 밖에 모여 있던 홍콩 반세계화 운동가들과 이미 석방된 한국 시위대 100여명은 구호를 외치며 환영식을 갖고 이들을 숙소로 데리고 갔다. 한편 시위대측은 한국 외교당국의 역할이 미온적이라며 적극적인 외교교섭을 촉구했다.홍콩 연합뉴스
  • “경제교육 부도 위기”

    22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국선진화포럼의 월례토론회에서 우리 경제교육의 현주소와 관련해 쏟아진 말들이다. 경제를 제대로 몰라 ‘반기업 정서’가 팽배하고 시장원리보다 정부 개입을 당연시하는 ‘규제 만능주의’가 나타났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 교수는 ‘초·중·고교 경제교육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경제를 잘 모르면 우리의 앞날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선진화포럼은 각계 원로와 전문가 200여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경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 권 교수는 기업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부정적 인식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12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조사결과 기업의 목표를 이윤 극대화로 꼽은 응답자는 20.1%에 그쳤다. 반면 국가·사회에 기여(21.6%), 고용창출(24.4%), 소비자 만족(18.9%), 근로자 복지(15.1%) 등 공익적 측면에 더 무게를 실은 응답자가 더 많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조사에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이미지로 경쟁(19.4%)보다 빈부격차(28.1%), 물질적 풍요(21.1%), 부정부패(14.2%) 등이 앞섰다. 권 교수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불거진 정경유착과 기업비리, 외환위기 이후 악화된 분배 문제, 빈곤의 대물림 등으로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가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경제교육의 총체적 부실 권 교수는 경제 인식이 부족한 이유로 경제교육의 부실을 지적하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동유럽과 중국은 불필요한 논란없이 경제발전에 매진, 우리를 추격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경제 교과서를 사범대 교수나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현직 교수들이 만드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교직과정 이수에도 교육학 관련 전공만 추가하면 교사로 임용되기 때문에 경제를 이수한 교사가 드물다는 것. 이 때문에 초등학교의 경제교육은 단지 5학년에서 ‘세계속의 우리경제’라는 이름으로 이뤄져 형식적이며 중학교 이후 사회과목에 포함된 경제과목의 비중은 단원 수로는 9%, 수업시간으로는 11%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고등학교에선 경제가 사회과목군 선택의 하나에 불과했다. 반면 지리는 한국지리, 세계지리, 경제지리 등으로 세분화됐다.●‘가치’가 아닌 ‘사실’과 ‘논리’ 중심으로 교육이 개편돼야 지금까지 추상적이고 재미가 없으며 체제·이념적인 교과과정은 제외시켜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권 교수는 경제교육의 목적이 ‘국민의식 계도’가 아니라 ‘경제적 무지’를 해소하는 것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따라서 좋은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집필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교육내용도 동영상과 현장학습 위주로 개선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미국의 경우 유치원에서 고등학교 4학년까지 공부해야 할 9대 핵심과목 중 하나로 경제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경제과목을 최소한 지리나 세계사 수준으로 올리고 TOIEC과 같은 ‘경제학 소양테스트’를 개발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아듀 2005 희망을 쏜 사람들] (3) 박지성·이영표

    [아듀 2005 희망을 쏜 사람들] (3) 박지성·이영표

    초등학교 279개팀 6609명, 중학교 172개팀 5970명, 고등학교 117개팀 3567명.2005년 현재 한국 축구의 현주소다. 이 가운데 13개팀 433명의 프로 선수가 나온다. 이 척박한 현실 속에서 한국 축구는 지난 2002한·일월드컵에서 세계 4위에 올랐다. 산술적으로 따져도,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모두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4강 신화’라고 불렸다. 지난 7월과 8월 우리는 또다른 ‘기적’을 경험했다. 한 명은 175㎝에 72㎏, 다른 한 명은 176㎝에 68㎏의 작은 체구다. 하지만 둘은 세계 최고의 축구 무대라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나란히 진출, 팀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리그 최고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신형엔진’ 박지성(24)과 올시즌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토트넘 홋스퍼의 ‘초롱이’ 이영표(28) 얘기다. 둘 모두 대학 때까진 그늘에 머물렀다. 박지성은 초등학교 6학년때 ‘차범근 축구상’을 받으며 일찌감치 자질을 보였지만 작은 체구 탓에 명지대 진학도 보결로 겨우 들어갔다. 이영표도 안양공고 시절 추계대회 최우수선수 수상이 전부이며 청소년대표조차 발탁된 적이 없다.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둘은 한순간도 꿈을 놓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쉴새없이 뛰는 그들의 멈출 줄 모르는 체력은 그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가를 말해주고, 빅리거들도 놀라는 창조적인 움직임은 누군가에게 배운 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연구를 통해 자신만의 움직임을 익혔음을 드러냈다. 박지성은 2000년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해 2부리그로 떨어진 팀을 한 시즌 만에 다시 1부로 끌어올리며 ‘교토의 별’로 떠올랐다. 이영표 역시 K-리그 부동의 왼쪽 윙백으로 명성을 날렸다. 둘은 2003년 1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으로 옮겨 팀을 04∼05시즌 리그 챔피언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려놓으며 유럽에 ‘태극듀오’ 열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안주하지 않았다. 벤치 신세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뒤로 하고 나란히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해 박지성은 17경기 1골 4도움, 이영표는 12경기 가운데 11경기 풀타임 출장에 1도움을 각각 기록하며 ‘아시안 프리미어리거’ 성공신화를 쓰고 있다. 작지만 옹골찬 그들의 플레이에 새벽잠을 설치며 응원하는 한국인들은 뿌듯한 자긍심을 느낀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재테크 칼럼] 1가구1주택 ‘양도세 비과세’ 제대로 알자

    1가구가 1주택을 3년 이상 보유(서울 및 수도권 신도시는 2년 이상 거주)하고 있다가 팔면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1가구 1주택으로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면 한 집에 살고 있는 가족이 주택을 파는 시점에서 집을 1채만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족의 일부가 학업이나 요양 또는 직장과 사업 형편상 일시적으로 따로 살고 있는 경우는 같이 사는 것으로 보아 1가구 1주택 비과세 요건을 적용한다. 자녀가 따로 살고 있어도 연령이 만으로 30세 미만이면서 소득이 없거나, 결혼하지 않은 경우는 독립된 세대로 보지 않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즉, 이러한 자녀에게 집이 있다면 부모가 가지고 있는 집과 합산해 비과세 요건을 따지기 때문에 임시변통으로 자녀 명의로 집과 주소를 옮기는 것은 효과가 없다. 보유기간과 거주기간은 어떻게 계산하는지도 잘 알아두자. 보유기간은 주택의 등기부등본 또는 토지건축물대장등본에 의해 확인되며 잔금청산일과 등기이전일 중 빠른 날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거주기간은 주민등록상의 전입일자부터 전출일까지의 기간으로 판정한다. 보유기간과 관계없이 1주택이면 비과세를 받는 경우도 있다. 첫째, 거주하던 임대주택을 분양받은 경우다. 분양받은 날짜 즉, 보유기간에 관계없이 당해 임대주택에서 5년 이상 살았으면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둘째, 한 채만 가지고 있던 집이 수용된 경우다. 셋째, 해외로 이주하거나 취학, 직업상의 이유로 1년 이상 계속해 외국에 살게 돼 주택을 파는 경우다. 1년 이상만 보유하고도 비과세를 적용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우선 가구 전원이 취학이나 근무상의 형편, 요양과 같은 부득이한 사유로 다른 시·군으로 이주할 때다. 반드시 가구 전원이 이주해야 하지만 주택 소유자가 아닌 가구원 중 일부가 잠시 주거를 옮기지 못해도 비과세 혜택을 준다. 살고 있던 집이 재건축·재개발되는 동안 다른 주택을 취득해 살고 있다가 재건축·재개발이 완료돼 잠시 살고 있던 집을 팔아도 비과세에 해당된다. 이때는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준공된지 1년 안에 팔아야 한다. 본래 살고 있는 집 외에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집을 소유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공동지분으로 소유하는 집도 각 사람 별로 각 1주택을 소유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2주택자가 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상가주택은 주택이 차지하는 면적에 따라 주택 해당 여부가 달라진다. 주택부분이 상가부분보다 크면 전체 건물을 주택으로 본다. 주택부분이 상가부분과 같거나 작으면 주택부분만 주택으로 본다. 만약 1가구 1주택 비과세요건이 갖춰진 상태이고 거래금액이 6억원 이하면 주택부분이 상가부분보다 커야 절세가 된다. 거래금액이 6억원을 초과하면 고가주택에 해당되므로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양도소득세를 계산하되 6억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한 세금만 내면 된다. 반면 다른 주택이 있는 사람은 상가건물에 조금이라도 주택으로 사용하는 면적이 있으면 크기에 상관없이 2주택이 되어 양도소득세가 과세된다. 안만식 조흥은행 PB사업부 스페셜서비스 팀장·세무사
  • TV 웰빙프로는 간접광고판?

    웰빙. 순 우리말로 ‘참살이’라고 한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웰빙이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코드로 자리 잡았다. 의식주는 물론 문화생활 전반에 걸쳐 건강한 삶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웰빙이 일상 용어로 떠오른 이면에는 매스미디어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정작 매스미디어, 특히 TV는 이 웰빙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TV방송은 웰빙과 관련된 여러 주제(음식, 의학·건강, 미용·뷰티, 여행·관광, 레저, 예술 등) 가운데 유독 음식에만 치우쳐 균형감을 잃고 있으며,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소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원장 유균)은 지난 10월31일부터 1주일 동안 지상파 3사 채널의 전체 프로그램에 포함된 웰빙 코너를 분석한 ‘지상파TV의 웰빙 프로그램 현황과 문제점’이라는 자료를 최근 발표됐다. 이 기간 동안 방송된 웰빙 코너들은 모두 90개에 달했다.SBS가 33건,KBS2가 23건,MBC가 18건,KBS1이 16건 등이었다. 대부분 교양프로그램의 고정 꼭지였다. 이 가운데 66건(73.3%)이 먹을거리에 집중됐다. 특히 MBC는 17건(94.4%)이 먹을거리를 주제로 한 것이었다. 이기현 책임연구원은 “음식은 건강과 직결되는 중요한 분야지만, 웰빙 코너가 음식에 집중된 것은 방송사들이 상호경쟁을 의식한 결과”라면서 “자칫 소재 고갈은 물론 간접광고나 신변잡기 코너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이러한 코너들의 성격은 맛집소개(30.3%)나 음식소개(51.5%)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특히 지난달 5일 방송된 MBC ‘찾아라 맛있는 TV’ 200회 특집에서는 무려 25곳 이상의 음식점을 소개하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상세한 정보를 올려 건강한 외식문화 정보 전달이라기보다는 상업적 성격이 짙다고 지적됐다.지난달 3일 방송된 KBS2 ‘건강테크’도 홈페이지를 통해 이날 방송분과 관련된 업소의 연락처와 인터넷 주소까지 알려줘 간접광고의 의혹을 받을 소지가 컸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책임연구원은 “웰빙 코너 가운데에는 전문가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55.6%에 달해 지나치게 오락화됨은 물론 정보의 신뢰성도 떨어뜨리고 있다.”면서 “전문가를 통해 코너의 신뢰성을 제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가짜 타미플루’ 美서 적발

    조류 인플루엔자(AI)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위조한 가짜약이 미국 세관에서 대량 적발됐다.그동안 인터넷에서 ‘타미플루’가 불법 유통돼 가짜로 의심받아 왔으나 당국에 적발되기는 처음이다. AP통신에 따르면 미 샌프란시스코 세관은 18일(현지시간) 타미플루 위조약 52개 상자를 적발해 성분을 분석한 결과, 타미플루의 약효 성분은 없고 비타민 C 등을 함유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세관은 지난달 26일 샌프란시스코 공항 인근의 우체국에서 한 상자를 발견한 데 이어 이번에 51개 상자를 대량 적발했다. 각 상자에는 ‘타미플루 제네릭(카피약)’이라고 표시된 캡슐이 50개씩 들어 있었고, 상자 겉면에는 중국 글씨가 써 있지만 원산지는 확실치 않다고 세관측은 전했다. 타미플루는 아직 제네릭이 상용 단계에 있지 않다. 미 식품의약국(FDA) 관계자는 이들 위조약이 인터넷에서 주문을 받아 아시아에서 생산된 것 같다며 의사나 병원에서 주문한 흔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타미플루는 한때 인터넷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에 올라와 10알에 104파운드(약 19만원)에 거래되다가 스위스 로슈사의 제동으로 중단됐다.인터넷에선 의사의 처방전 없이 이메일 주소와 신용카드 번호만으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영국의약협회는 “가짜일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었다. AI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인체 감염 가능성마저 제기되자 타미플루는 각국의 사재기 현상과 함께 품귀 우려를 낳아왔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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