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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최고인민회의 개막] 김정일 국방위원장·장성택 국방위원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9일 재추대되면서 김정일 3기 체제가 공식 출범했다. 북한은 이날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회의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재추대하고 사회주의 헌법을 수정 및 보충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회의장 입장 때 왼쪽 다리를 가볍게 절룩거리며 들어와 지난해 8월 앓은 뇌혈관질환에서 회복 중에 있음을 보여줬다. 이날 김 위원장의 매제며 2인자로 불리는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국방위원에 선임됐다. 장 부장은 김 위원장의 후계구도를 전면에 나서서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위원회 위원은 기존의 4명에서 8명으로 늘어나는 등 강화됐다. 권력승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일 내각 총리는 유임되는 등 새로 내각도 구성했다. 국방위 부위원장으로는 김영춘·리용무·오극렬 등 군부내 김 위원장의 최측근들이 선임됐다. 이는 북한이 현상 유지 기조 속에서 친정체제 강화를 통해 김정일 체제의 안정화에 주력했음을 의미한다. 또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새로 등극한 주규창 노동당 군수 공업부 제1부부장의 경우 지난 5일 발사된 북한의 장거리 로켓 광명성 2호의 개발 총책임자로 알려져 2012년 강성대국 건설에 광명성 2호 발사를 적극 활용할 의지를 드러냈다. 북한은 또한 이날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11년만에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개정 내용은 설명하지 않았다. 북한은 지난 1998년 9월5일 열린 제 10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에서 사회주의 헌법을 수정해 국가 주석제 폐지, 국방위원회 지위 및 권한 등을 강화했었다. 특히 이날 회의에선 남북간 경제 협력을 담당하는 ‘민족경제협의회’가 내각에서 제외돼 주목된다. 이는 자칫 내각 차원에서 향후 남북경색 국면에서 남북경협을 확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장성택 부장이 정권 안정화를 위해 전면에 나섰으며, 2 012년이후 개최될 당 대회 및 당 중앙 전원회에서 후계 문제를 공식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통일플라자/북한의 군부/김정일 확고한 체제 구축, 국방위원 서열도 급상승

    6·29 서해교전을 계기로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군부의 관계가 관심사다.김 위원장의 지도가 먹히지않는 강경파가 북한의 군부내에 존재하는지,또 김 위원장이 무리하게 선군(先軍)정치를 앞세우는지 등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지난 91년 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해 착실하게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지난 94년 7월8일 김일성(金日成)주석 사망 이후 3년간 계속됐던 유훈통치 동안 홍수 피해와 식량난 등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자신의 체제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지난 97년 김일성 사망 3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 공식 탈상을 선언한 김 위원장은 98년 9월5일 사회주의 헌법을 수정·보완했다.당·정·군을 포괄 통치했던 주석제도와 명목상 국가 주권 최고지도기관이었던 중앙인민위원회를 없애면서 더욱 강화한 직책이 국방위원장이다. 북한 헌법 100조는 국방위원회를 ‘국가주권의 최고 군사지도기관이며 전반적 국방관리기관’으로 규정했다.102조는 ‘국방위원장은 일체 무력을 지휘통솔하며 국방사업 전반을 지도한다.’로 돼 있다.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가 국방위원장으로 추대되며 명실상부한 권력의 중심이 됐다. 지난 2000년 6·15 정상회담때 평양을 다녀온 영남대 정태욱 교수는 “김위원장이 북한 군부에 대해 큰 부담을 느낄 것으로 봤으나 군부를 비롯한 북한 정국 전반에 대해 확고한 지도력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헌 이후 북한 정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군부의 위상이 지속적으로 강화됐다는 점이다.군부 중심의 정치 체제를 제도화하는 이른바‘선군정치’를 내세우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물론 김정일 위원장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조치다. 국방위원의 서열이 급상승하였다는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이에 따라 조명록제1부위원장은 김일철 인민무력부장보다 서열이 높다.과거 오진우,최광 등 인민무력부장이 군부인사 중 최고서열을 차지한 것과는 다른 흐름이다.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국방위원회의 위상강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통일부 한 관계자 역시 “군부가 김 위원장의 지도력에 반기를 들었다는 정보를 아직까지 접한 적이 없다.”면서 “유훈통치 3년을 거치면서 안정적으로 군부를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김정일 체제’ 틀·방향 구체화 계기

    다음달 5일 평양에서 열리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4차회의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기류속에서 북한의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첫 공식 자리다. 김정일(金正日) 시대를 특징짓는 ‘신사고 ·새시대’의경제·사회운영 방식을 어떻게 법적·제도적으로 구체화할지가 이번 회의의 과제다. 지난 1998년 9월, 4년 4개월만에 열린 10기 1차회의에서‘김정일 체제’를 공식 선언했다면 이번 회의는 ‘김정일체제’의 틀과 방향을 구체화시키는 계기로 볼 수 있다. 1차회의 당시 주석제를 폐지하고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으로 재추대했으며 정무원을 내각으로 개편하는 구조개편도단행했다.독립채산제 실시·원가 및 가격개념 도입,개인소유 허용범위 확대 등을 위한 헌법수정도 이뤄졌었다. 지속적인 신진 경제관료의 등용,세대교체 가능성 등 경제활성화를 위한 인사개편도 점쳐진다.경협 활성화를 위해개성공단 및 관광 특구지정을 위한 법령제정,외국자본 유치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은 향후 남북경협의 속도를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회의 결정 내용은 북한의 정책 의지란 점에서 향후 개혁개방과 남북관계 개선,대미관계에 대한 북측 의지와 태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남북경협과 관련,우선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 등 경협제도화를 위한 남북합의에 대한 비준여부와 보다 넓은 의미의 외국자본 유치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마련 여부도 주목된다. 경제활성화를 ‘제1의 과업’으로 강조하고 있는 북한은이번 회의에서 4차 경제개발 7개년 계획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최근 회복된 경제상황을 바탕으로 체제안정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시도다.북한은 3차 경제개발계획을 1996년에 마쳤지만 경제난으로 새 경제계획을 시행하지 못해왔었다. 큰 틀의 변화가 있었던 1998년 1차회의에 이은 2차회의(1999년 4월)에서는 ‘인민경제계획법’을 제정했다.‘인민경제계획법’은 시장경제요소의 확산 추세속에서 사회주의계획경제체제의 안정유지를 위한 것으로 우리식 사회주의경제체제를 강조했다. 3차회의에서는 김정일의 ‘인민을 위한 지도자’상을 부각시키는 등 98년 출범한 ‘김정일 체제’의 안정을 과시한 점이 특징이다. 이석우기자 swlee@
  • 최고인민회의 새달 5일 개막

    다음달 5일 평양에서 열리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4차 회의는 북한이 그동안 천명해온 ‘신사고’와 개혁개방정책 등 변화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특히 개성공단 및 관광특구 지정을 위한 법령제정과 외국자본 유치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 여부가 주목된다.지난 1998년 10기 1차 회의에서는 개인소유 허용범위 확대 등을 위한 헌법수정이 이뤄졌다. 개혁개방 추진을 위한 신진 경제관료의 등용과 세대교체 가능성 등 인사개편도 점쳐진다.연형묵(延亨默)자강도 당 책임비서의 총리 기용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 등 경협제도화를 위한 남북합의에대한 비준과 4차경제개발 7개년계획의 채택 여부도 관심거리다.3차 경제개발계획은 96년 끝났지만 경제난으로 새로운 경제계획이 시행되지 못했다. 정부 당국자는 16일 “경제관리권이 당에서 내각으로 이동하고 있고 독립채산제의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면서“경제개혁을 제도화하기 위한 시도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또 김정일 시대의 본격 진입을 위한 준비도 이뤄질 것으로전망했다. 98년 9월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 회의에서는 주석제를 폐지하고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했으며 정무원을내각으로 개편하는 등 ‘김정일체제’를 공식 선언한 바 있다.이번 회의에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참석이 유력시된다. 국회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는 법령의 승인·채택,국가기구개편 및 주요인사 선출,예산 결산 및 승인 등을 다룬다. 이석우기자 swlee@
  • 北 金正日통치 2년…‘은둔’서 점진적 개방으로 물꼬 돌려

    북한의 김정일(金正日)체제가 5일로 공식 출범 2주년을 맞았다.지난94년 김일성 사후 극심한 경제난과 과도기적 체제불안을 보이던 북한은 마이너스 성장이 둔화되는 등 정치·경제적 안정을 되찾고 있다. 김정일 자신도 최고지도자로서 명실상부한 실권을 장악하고 체제강화와 실리추구를 위해 점진적이지만 구체적인 대외개방을 선택해 나가고 있다. ■대내적 체제안정 선군(先軍)정치를 축으로 체제안정과 경제회복을시도하고 있다.군을 사회질서 유지에서 경제회복에 이르기까지 모든활동의 전면에 내세우고 실권을 부여한 군부중시정책이다.98년 9월5일 북한 최고인민회의(10기 1차)에서 국방위원장을 국가최고직책으로격상시키고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에 재추대했다.헌법을 개정하고 주석제를 폐지,40년간 지속되어온 ‘김일성 체제’를 마감한 것. 앞서 97년 10월 총비서에 취임한 김정일은 국가와 당·군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다. ■강성대국 김정일 체제의 국가적 목표다.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틀 위에서 변화된 현실을 수용한 실리추구의 생존전략이다.경제번영과 군사력 강화,사상적 안정 확보를 위한 것이다.대남정책의 획기적인 수정과 대외개방 등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된다.생존을 위해 대남관계의개선과 대외개방의 확대가 합리화되면서 교류가 확대되고 있다. ■향후 과제 대외개방과 체제유지란 두 가지 명제의 조화가 과제다. 대외개방에 소극적일 경우 경제회복이 어렵고 반면 개방은 체제안정성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이 점에서 제한적이고 단계적인 개방과인적교류의 확대보다는 경제적 실리추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당대회를 통한 북한내 체제정비와 중국·러시아 등 전통적 우방과의 관계강화도 전망된다. 이석우기자 swlee@. 북한 김정일(金正日) 체제가 5일로 공식 출범 2주년을 맞았다.북한최고인민회의(10기 1차)에서 국방위원장을 국가최고직책으로 격상시키고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에 재추대한 것이 98년 9월5일.94년 김일성(金日成) 주석 사후 극심한 경제난과 과도기적 체제불안을 보이던 북한은 마이너스 성장이 둔화되는 등 정치·경제적 안정을 되찾고있다. ■대내적 체제안정 김정일 자신도 최고지도자로서 명실상부한 실권을장악하고 체제강화와 실리추구를 위해 점진적이지만 구체적인 대외개방을 선택해 나가고 있다.선군(先軍)정치를 축으로 체제안정과 경제회복을 시도하고 있다.선군 정치란 군을 사회질서 유지에서 경제회복에 이르기까지 모든 활동의 전면에 내세우고 실권을 부여한 군부중시정책이다.북한은 98년 주석제를 폐지하는 헌법개정을 단행, 40년간지속되어온 ‘김일성 체제’를 마감했다.김정일은 97년 10월 당 총비서에 취임,국가와 당·군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다. ■강성대국 김정일 체제의 국가적 목표다.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틀 위에서 변화된 현실을 수용한 실리추구의 생존전략이다.경제번영과 군사력 강화,사상적 안정 확보를 위한 것이다.대남정책의 획기적인 수정과 대외개방 등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된다.생존을 위해 대남관계의개선과 대외개방의 확대가 합리화되면서 교류가 확대되고 있다. ■향후 과제 대외개방과 체제유지란 두가지 명제의 조화가 과제다.대외개방에 소극적일 경우 경제회복이 어려운 반면 개방은 체제안정성을 흔들수 있기 때문이다.이 점에서 제한적이고 단계적인 개방과 인적교류의 확대보다는 경제적 실리추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당 대회를 통한 체제정비와 중국·러시아 등 전통적 우방과의 관계강화도전망된다. 이석우기자 swlee@. *남북간 4대 분야별 점검. ■이산상봉 확대. 이산가족 문제는 우리측이 워낙 공을 들이는 부분이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으로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다.63명의 비전향장기수를 우리측이 기꺼이 송환한 데 대해 어떻게든 성의를 보여야 할입장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재결합이나 이주 등 완전한 해결책까지 염두에둔 것 같지는 않다.사실상 체제 붕괴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김 위원장이 면회소를 통한 상봉 등 제도화에 대해적극적인 것 같지도 않다.남쪽 가족과 접촉하는 주민들이 갈수록 많아지면 ‘사상 오염’이 커져 상당한 부담이 된다. 따라서 당분간은 이산가족 교환방문과 같이 홍보효과는 크면서도 단발성인 행사에 주력할 것 같다.최근 남북이 합의한 연내 2차례 추가교환방문이 김 위원장의 제안에 따른 것에서도 짐작이 간다.서신교환도 여러 사람을 만족시키면서도 가족들이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교적 안전한 방법일 수 있다. 면회소 설치는 최대한 늦출 것으로 보인다.통일연구원 임순희(林順姬)박사는 “면회소가 설치되더라도 북측은 가급적 적은 규모로 상봉을 주선하는 등 소극적 자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경제난 해소.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과연 ‘정치는 틀어쥐고 경제는 푸는’중국식 경제 개혁·개방 모델을 구상하고 있는 것일까. 장기적으론 몰라도,당장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경제분야의 완전 개방이 체제 전체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물론 북측이 개성이나 금강산 등 특정 지역만을 개방하는 것은 중국의 초기 경제개방 방식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그러나 운용 방법면에선 사유재산 제도를 불허하고 강력한 사상통제를 실시하는 등확연히 다른 모습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사상무장이 잘 돼있는 극히일부 인사만 남쪽 사람과 접촉하고 기술을 전수받으면 사상적인 ‘오염’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이렇게 해서 일부 특구가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대다수 ‘인민’들을 먹여 살린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경협 분야에서의 북측의 적극성이 치밀한 시나리오에 의한 것 같지는 않다.생존을 위해 일단 ‘빗장’을 열고 보자는 식이란견해가 지배적이다. 통일연구원 임강택(林崗澤)연구위원은 “대외 경제교류가 가속화할경우 북측의 의도대로 사상적 통제가 완벽하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군사적 긴장완화. 가장 가늠키 힘든 분야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뚜렷한 입장표명이 없기 때문이다. 군사적 긴장완화 분야에 있어 북측은 남북정상회담 이전까지는 줄곧미국과의 대화만을 고집했다. 53년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닌 남한은미국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논리에서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 왔다. 우리측은 급속한 남북화해 물결 속에서 북측이 과거와 같이 우리를노골적으로 따돌리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그렇지만 북측이 과거의 입장을 쉽게 바꾸리란 보장도 없다. 최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2+2(평화체제 남북 합의+미·중 보증)’시스템을 역설한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따라서 김정일위원장이김 대통령의 평화구축안을 받아들일지가 최대 관심사인데, 이는 미국의 대북경제제재 해제 조치 등에 따라 유동적일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 신지호(申志鎬)박사는 “김 위원장은 군사 직통전화설치와 국방장관 회담은 우리측과 직접 타결하고,군축, 평화협정 체결 등 핵심적 문제는 미국의 참여를 구상하고 있을 것”이라며 “북측은 타협 속도를 가급적 늦추면서 남한과 미국으로부터 실리를 최대한 얻어낼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상연기자. ■대외 개방정책. 북한은 미·일·중·러 등 한반도 4강 외교를 축으로 전세계의 문을두드리는 전방위(全方位)외교에 나서고 있다. ‘은둔 외교’에서 적극 개방쪽으로 돌고 있는 셈이다. 경제적 실리와 체제보장 확보를 위한 관건인 대미 외교 등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전망이다.오히려 미국 내 사정이 대북 관계개선을 지연시키는 상황이다. 정상회담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국제무대에서의 위상 강화도 시도될 전망.김 위원장은 지난 5월29일부터 시작된2박 3일간의 중국 비공식 방문을 시작으로 6월의 평양 남북정상회담,7월 평양 북·러 정상회담 등 연이은 정상외교를 통해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한국과의 수교 이후 소원하던 중국,러시아와의 우호관계 복원이 이뤄졌고 북한의 외교 발언권도 정상회담을 통해 한층강화시켰다. 북한의 최대 외교과제는 미·일과의 관계정상화.워싱턴과의 정상화가 우선이지만 함께 병행하며 양자를 경쟁시키는 양상으로 나타나고있다.각종 국제경제기구에 가입,지원을 얻어내기 위해서도 미국과의관계정상화가 필수다.김 위원장이 대미 관계에 직접 관여하고 있는것도 이 때문이다. 이석우기자
  • [김삼웅 칼럼] 7·4성명과 6·15남북공동성명

    “실은 평양에 다녀왔습니다.” 28년전 오늘(4일) 오전 10시,중대 방송이 예고된 가운데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기자회견에서 느닷없이 평양엘 다녀왔다고 밝혔다.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만해도 평양에 다녀왔다면,간첩이 아니라면 황천(黃泉)을 다녀온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그것도 중앙정보부장이 다녀왔다는 데는 놀라지않을 수 없었다. 이부장은 72년 5월2일부터 5월5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의 김영주 조직부장과 회담하고,박성철 제2부수상이 서울을 방문하여 회담을 가졌다는 사실을 공개했다.평양에서 김일성 수상과 회담을 가졌고 박성철도 서울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면담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이렇게 하여 발표된 7·4선언은 ①통일원칙으로서 ▲외세 의존과 간섭을 배제한 자주적 해결 ▲무력행사가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한 민족적 대단결 도모 ②상대방을 중상 비방하지 않고무력도발과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 ③남북 사이의 다방면적 교류 실시 ④남북적십자회담의 성사에 적극 협조 ⑤군사사고 방지와 남북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서울과 평양 사이에 상설 직통전화 가설 ⑥이후락 부장과 김영주 부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 구성·운영⑦이 합의사상의 성실한 이행을 민족 앞에 약속한다는 내용이었다. 국민은 흥분했다.초당적인 지지가 나타나고 박대통령과 ‘이념적’ 적대관계이던 장준하씨까지도 이를 지지했다.그러나 ‘성실한 이행’을 민족앞에약속한 7·4공동성명은 얼마후 한낱 휴지로 변하고 말았다. ■7·4성명 양측 체제강화에 악용 7·4공동성명이 휴지로 변한 데는 몇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남북정상이직접 서명하지 않고 대리인을 통한 것 ▲공개적인 접촉이 아닌 밀실에서 이루어져 양측 주민의 합의절차 생략 ▲남북 두 권력자가 영구집권체제를 만드는 데 악용 ▲동서냉전의 틈바구니에서 미·소 등 주변강대국의 방해 등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기화로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체제를 만들고,김일성수상 역시 주석제로 헌법을 바꾸어 주석에 취임했다.양측 권력자가 ‘적대적공조’ 관계에서7·4공동선언을 짓밟고 자신들의 권력강화에 악용한 것이다.민족사에 씻지 못할 죄악을 범했다.그로부터 28년이 지난 올 6월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에서 “남북정상들은 분단 역사상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하면서 5개항에 합의했다. 합의사항은 ①통일의 자주적 해결 ②연합-연방제 공통성 인정 ③친척방문단교환 ④경제협력 확대 ⑤당국대화 재개 등이다.원칙이나 큰 틀에서는 7·4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내용)과 맥을 같이한다. 차이라면 ▲전자의 주도층이 분단·냉전세력인 데 비해 후자는 통일지향 세력인 점 ▲7·4성명이 밀실에서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6·15선언은 대명천지공개리에 합의한 점 ▲양측의 최고권력자가 직접 5개항을 도출한 것 ▲ 주변4강이 속셈과는 상관없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6·15남북공동선언의 후속조치도 착실하게 진척되고 있다.남북적십자회담에서는 이산가족의 8·15 상호방문,면회소 설치 9월초 회담에서 확정,장기수 9월초 희망자 전원 북송 등 3개항에 합의했다.또한 남북군대는 즉각적으로 상호비방과 적대용어 사용을 철폐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한편 금강산 일대를경제특구로 개발하기로 현대가 북한과 합의하는 등 경제교류와 협력체제도착실하게 자리잡아가고 있다.스포츠 분야에서도 시드니 올림픽 동시입장과축구·탁구의 단일팀 구성,2002년 월드컵 분산개최,경평(京平)축구 부활,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 등이 성사될 전망이다. ■맹목적 반북세력이 문제 비전향장기수 북송과 관련,맹목적 반북세력이 국민감정을 자극하려들지 모른다.우리가 먼저 아량을 베풀면 북한도 국군포로·납북어부 송환 등 좋은성과가 나타날 것이다.북한의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인내가 필요하다. 7·4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가 이루지 못한 겨레의 소망이 이번에는 기필코 성사되도록,냉전세력이 남북화해의 물꼬를 교란시키지 못하도록,깨어있는 국민이 이를 지켜내야 한다. 김삼웅 주필.
  • ‘金正日체제 1년’ 親政기반 확립

    ‘김정일(金正日)체제’가 5일로 공식 출범 1년을 맞았다. 지난해 9월5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제10기 1차 회의)를 열어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에 추대했다.헌법 개정을 통해 주석제를 폐지하고 실질적인 국가 최고지위로 격상된 국방위원장에 김정일을 재추대해 ‘김정일 시대’를 연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김정일은 ‘친정’기반을 확립하면서 ‘순항’을 거듭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최고권력층의 세대교체를 단행해 측근 및 같은 연배의 전문관료들을 요직에 앉혀 권력기반을 더욱 다졌다. 김용순(金容淳)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연형묵(延亨默) 전정무원 총리 등의 부상이나 조명록(趙明祿)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김일철(金鎰喆) 인민무력상,김영춘(金英春) 총참모장의 전면 배치도 같은 맥락에서다. 경제도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고 외국의 원조도 늘어 순항을 돕고 있다. 미국 등과의 대외협상에서도 핵과 미사일을 내세워 ‘과실’을 눈앞에 두고있다.‘협상카드’를 세분화해 대미협상을 실리협상으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남한과는 계속 접촉을 피하며 햇볕정책을 무산시키려 하고 있다.유럽 국가들과 적극적인 관계회복을 시도하는 등 국제사회로의 복귀노력도 이처럼 좋아진 상황에 따른 자신감 회복으로 해석된다.김일성(金日成)의 유훈통치에서 벗어나 김정일을 정점으로 한 ‘보통국가’로 체제를 정비함에 따라 외국과의 정상회담도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이 직면한 도전도 만만치 않다.대외개방과 체제안정이란 양립키 어려운 두 명제의 조화가 무엇보다 숙제다.대외개방의 속도조절에 실패한다면 경제가 붕괴되거나 체제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자생력을 잃은북한의 앞날은 내부 회생력보다는 대외 전략 및 교섭의 성패에 달려있다고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석우기자 swlee@
  • 北 金炳植 前부주석 사망

    북한의 김병식(金炳植·80) 전 부주석이 21일 ‘불치의 병’으로 사망했다고 북한 중앙방송이 22일 보도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 1차회의에서 주석제가 폐지되면서 부주석에서 물러나 북한 조선사회민주당(사민당) 중앙위 고문 등의 직책을 맡아왔다. 구본영기자 kby7@
  • [국회 현안별 對 정부 질문] 金日成사망 5주기 북한의 현주소

    8일로 북한은 김일성(金日成) 사망 5주기를 맞는다.그의 그림자는 여전히북한 전역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북한의 ‘내일’조차도 그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북한 주민들의일상을 규율하는 ‘유일사상’과 식량난으로 요약되는 최악의 경제난을 유산으로 남긴 탓이다. 남북 차관급회담 박영수(朴英洙) 북측 단장은 지난 3일 북한의 구호를 하나소개했다.‘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선전문구였다. 북한의 엄혹한 ‘오늘’을 이보다 더 적절히 함축할 수는 없을 것 같다.90년대 이후 한계를 드러낸 ‘우리식 사회주의’는 김일성 사후 더욱 빠른 속도로 뒷걸음질쳤다. 김일성이 사망했던 94년 경제성장률이 -1.7%였다.그후 95년 -4.5%, 96년 -3.7%, 96년 -3.7%, 97년 -6.8%를 기록하는 등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95년 수해 등 잇단 자연재해는 설상가상격이었다.매년 200만t 안팎의 식량부족 사태로 번진 것이다. 북한당국도 자존심을 접고 국제사회에 구호의 손길을 내밀었다.아사자가 적게는 수십만,많게는 200여만명에 이른다는 소문이 나도는 마당임에랴. 북한당국도 자구책을 강구했다.97년부터 김일성 유훈통치를 끝내고 김정일(金正日)을 전면에 내세웠다. 97년 10월 김정일은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됐다.이후 북한은 98년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주석제를 폐지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중심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김정일의 지도력은 여전히 취약한 느낌이다.선군(先軍)정치를 강조하는 등 북한의 병영국가 색채가 날로 짙어지고 있음이 이를 반증한다. 북측도 폐쇄체제의 한계를 느꼈던 것 같다.그러나 대외 관계에서는 일차적으로 위험부담이 큰 체제개방보다는 ‘벼랑끝 외교’를 선택했다. 이를테면 핵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을 야기한 뒤 협상과정에서 대가를얻는 방식이다.영변 핵시설로 북­미 제네바 협정을 이끌어냈다.그런가 하면 금창리 지하시설로 미국으로부터 식량지원을 받아냈다. 대남 관계에서는 양면성이 특징이다.이따금 긴장을 고조시키면서도 우리측민간과의 경협을 통해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방식이다.금강산관광객을 억류하면서도 금강산사업 자체에는 의욕을 보이고 있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북한의 ‘선미후남(先美後南)’ 노선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미국과는 관계개선을 적극 추구하지만 남한당국과의 대화에는 소극적이라는 점에서다. 오히려 남북관계에 인위적 긴장을 연출하기도 했다.최근의 서해 북방한계선침범사건이 단적인 사례다. 그러나 북측의 제한적인 대외 개방노선은 또 기로에 섰다.한·미·일이 제시한 대북 포괄적 접근안을 수용,개방의 길로 나아가느냐,쇄국정책으로 점진적인 고사의 길로 가느냐의 양자택일의 문제다. 구본영기자 kby7@
  • 臨政 법령 처음 ‘집대성’

    ‘3·1의거’ 직후인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포한 헌법·건국강령을 비롯한 각종 법령을 수집,정리한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령집’이 출간됐다.편자는 단국대 역사학과 한시준(韓詩俊)교수,발행처는 국가보훈처.해방후 역대정권마다 ‘3·1정신’과 임정의 법통(法統)계승을 강조해왔으나 정작 임정의 실체라 할 수 있는 ‘법령집’ 출간은 임정수립 80년만에야 처음 이뤄진 것이다. 이번에 간행된 ‘법령집’에는 선열들이 망명 정부라는 어려운 여건 아래에서도 정부로서의 조직과 체제를 유지하면서 치밀하게 활동한 면모가 소상히나타나 있다.우선 법령은 임시정부의 헌법을 비롯해 임시대통령령·교령(敎令)·국무원령·부령(部令)·훈령·규정·조례 등과 입법기관 역할을 한 임시의정원과 관련된 규정·조례 등도 포함돼 있다.이밖에 3·1운동 직후 각지에서 수립을 선포한 ‘임시정부’들의 결의안·창립장정(章程)·약법(約法)등도 망라돼 있다. ?朗亮? 이번 법령집의 첫머리에 올라있는 것은 임시정부의 국체(國體)와 정체(政體)를 규정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첫 임시헌법은 총10개조로구성과 내용면에서는 간단하다.그러나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규정,한민족의 역사가 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제로 대전환했음을내외에 천명했다.국가기관은 행정부(임시정부)와 의회(임시의정원)로 나누고 권력의 주체인 국민의 자유·권리·의무 등을 규정했다.임시헌법이 민주주의 원리에 기초한 한국 최초의 기본법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 것은 이 때문이다.임시헌법은 대통령제·주석제 등 지도체제를 놓고 총 다섯차례 개정됐다. ?嵐熏? 임시정부에서 제정,공포한 법령의 전모는 현재로선 파악되지 않고 있다.‘법령집’에 수록된 것은 118건으로 주로 임정 초기와 말기에 집중 제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임정 관리들의 급여를 규정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중앙직원 급여잠행규정’(44.7.24 공포)에 따르면 주석 1,150원(사무보조비 350원 포함),부주석 1,050원,국무위원 950원,부장 850원,과장 650원 등으로 나와있다.또광복군 창설후 제정된 ‘한국광복군 전선공작인원 우대잠행규정’(42.4.28공포)에는 공작대원의 사고시 그 가족을 특별우대한다(제3조)는 규정도 마련,일제에 대한 독립투쟁을 강화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卵풉? 준비 광복후 민족국가 건설에 대한 ‘대강(大綱)’을 밝힌 ‘대한민국건국강령’도 눈여겨볼 대목이다.일제가 기승을 부리던 때인 41년 1월 28일 발표된 이 ‘강령’은 총강(總綱)·복국(復國)·건국(建國)의 3장 24개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가운데는 적(敵)에 부화(附和)한 자,독립운동 방해자,정신결함자 등에게는 선거권·피선거권을 부여하지 않는다거나 지방자치제를 실시한다는 내용등을 비롯해 토지국유화·국비 의무교육 등 광복후 건국계획이 구체적으로 나와있다. ‘자료집’ 간행을 주선한 국가보훈처 이선우(李善雨)보훈선양국장은 “임정수립 80년만에 법령집이 간행돼 선열들 앞에 부끄럽기 짝이 없다”며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다시 한번 기리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 북,김정일 시대 본격 진입(사설)

    북한은 5일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에서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했다. 북한은 예상을 깨고 이전의 주석제를 폐지하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를 신설,‘국가 대표기관’으로 개편한 개헌을 단행했다. 이 기구의 특징은 과거 주석제와 중앙인민위원회 권한 대부분을 흡수·통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중앙인민위원회와 정무원을 내각에 흡수함으로써 내각중심의 국정운영 방침으로 전환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번 헌법개정은 외형상 72년 12월 헌법개정 이전의 국가기구형태로 환원했지만 과거에 비해 국방위원장의 권한이 상당히 강화된 것이 특징으로 지적된다.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개회사를 통해 국방위원회 위원장 직책과 관련,‘나라의 정치·군사·경제부문을 통솔지휘하는 국가의 최고직책’이라고 규정한 것도 그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 江澤民 국가주석의 金正日 국방위원장 재추대에 따른 축전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金正日이 군부를 완전장악했음을 의미하며 앞으로 군사우위 정치를 예고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이렇게 볼때 북한의 이번 개헌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본격적 金正日 체제의 출범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金日成 사후 4년간의 유훈통치를 마감하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명실상부한 金正日시대로 진입했다는 판단이다. 이번 헌법개정에서 보는 바와 같이 金正日체제는 상징적 조직기구를 폐쇄하고 실무형의 내각중심으로 생산적 국가운영을 시도하고 있다. 洪成南 새 총리를 비롯한 새로운 내각체제로 심각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金正日 핵심측근들로 구성된 새로운 내각 개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金正日시대의 앞날은 결코 밝지만은 못하다는 것이 지배적 견해다. 북한이 당면한 구조적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구적 정책 전환이 필수적 과제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개혁·개방의 필연성을 절감하면서도 체제에 미치는 위해와 역기능을 인식해서 실천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출범한 내각이 과연 그같은 과감한 개혁정책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각이 많다. 또한 金正日의 군부중심 정책도 남북관계 개선에 부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아무튼 북한은 金正日체제의 본격개막을 계기로 남북화해와 개방·개혁을 위한 혁신적 발상의 전환이 시급한 과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 장막 걷고 金正日 시대 공표/北,국방위원장 재추대 안팎

    ◎‘1인자 서리’ 떼고 세습 공식적 완결/주석직 없애 ‘영원한 주석 김일성’ 예우 金日成 사후 4년2개월만에 북한에서 ‘金正日시대’가 공식 개막됐다.5일 열린 북한의 제10기 최고인민회의 1차회의에서 金부자 세습체제 구축이 제도적으로 완결된 것이다. 金正日은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개정과 국가지도기관 선거 등을 통해 그의 권력기반을 한층 강화했다.영화광 金이 마침내 막후 감독역에서 주연배우로 전면에 나선 셈이다. 물론 그는 金日成 사망 전에도 후계자로 내정된 74년부터 거의 무소불위의 전권을 휘둘러 왔다.金日成의 후광을 업고 당·정·군을 배후 조종해온 것이다.지난해에는 최고권력직인 당총비서직도 이어받았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일체의 무력을 지휘통솔’하는 군통수권자에서 ‘국가의 최고직책’으로 위상이 격상된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됐다.북한이 ‘병영국가’임을 염두에 둔다면 제도적으로 최고권력자임을 다시 못박은 격이다. 그럼에도 북한 내부에 드리워진 金日成의 그늘은 상상 이상으로 짙었다.이는 金日成이 죽기전까지 보유했던 주석직을 폐지한데서도 알 수 있다. 특히 전7장166조로 ‘수정·보충’된 북한헌법은 서문에서 ‘金日成 헌법’임을 분명히 했다.나아가 그를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로까지 규정하고 있다.여전히 金正日이 金日成의 유훈통치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임을 말해준다. 金이 주석직을 폐지하고 국방위원장 권한 강화 방식을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효성을 강조해온 그가 아버지를 ‘영원한 주석’으로 예우하는 뜻으로 풀이되는 탓이다. 이는 미국 프로야구계 등에서 슈퍼스타의 은퇴후 배번을 영구결번으로 남겨놓는 방식에 비견된다.북한은 정무원을 내각으로 위상을 강화하면서도 ‘내각 수상’ 대신 ‘내각 총리’라는 직명을 사용했다.지난 72년 헌법개정으로 주석제 도입 전 내각 수상이었던 金日成을 의식한 결과인 듯하다. 이같은 변칙적 권력승계 방식에는 金正日의 독특한 성격과 스타일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예컨대 주어·술어가 뒤죽박죽인 그의 화술부터 ‘의전’에는 맞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위원장 김영남)를 신설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같다.‘국가대표기구’로서 과거 주석이 맡았던 외교사절 접견 등 대외 업무를 분담토록 한 것이다. 다만 70년대초까지 유지됐던 내각을 부활시킨 데는 북한의 당면 경제난이 감안됐다는 게 우리측 전문가들의 해석이다.그러나 북한의 미사일(인공위성) 발사과정이나 빗나간 주석직 승계 예상 등을 통해 우리측 정보력에도 상당한 허점이 노출됐다는 지적이다.
  • 혁명적 정화(金三雄 칼럼)

    단재 신채호선생은 우리는 ‘혁명적 정화’가 없는 민족이라고 아쉬워했다. 혁명 쿠데타 반정 정변 경장 등 정치상의 모든 방법이 나타났지만 한번도 ‘혁명적 정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해방 후에도 몇차례 기회가 없지 않았다. 건국과 함께 반민특위에서 친일반역자들을 처단하여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정화의 기회가 있었지만 이승만 세력에 의해 좌절되고, 4·19혁명후 독재세력을 청산할 혁명재판이 열렸지만 군사 쿠데타에 짓밟히고 말았다. 6월항쟁후 여소야대 국회의 5공청산 작업은 3당야합으로 역전되고,문민정부의 개혁은 역사의식의 부재와 너무 쉽게 부패하여 스스로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되었다. 金大中 정부의 개혁작업은 지금 심한 도전에 직면했다. 모든 개혁을 좌절 역전시킨 반개혁 수구세력의 도전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최근의 몇가지 사례만 봐도 과연 이들의 도전으로 개혁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다. 첫째,햇볕론에 대한 수구세력의 도전이다. 이들은 동해안 간첩사건을 계기로 햇볕론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과거 햇볕론이 없고 강경일변도로 나갈때도 수차례 공비가 출몰했던 사실을 외면한채 정부의 햇볕 정책때문에 간첩이 나타난 것처럼 비판하면서 왜 응징하지 않느냐고 앙탈이다. 한바탕 붙기라도 하잔 말인지,지난 50년 강풍정책의 결과를 한 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둘째,국민정신을 반개혁 성향으로 오도한다. 반민주와 쿠데타와 양민학살을 일삼아온 독재자들을 영웅으로 추켜세우면서 국민이 개혁보다 강압통치 시대에 향수를 갖도록 여론을 조성한다. 셋째,‘우파는 사정(司正) 좌파엔 화해’란 도식을 만들어 햇볕정책을 색깔론으로,개혁을 우파 또는 특정지역에 대한 탄압으로 비약시키면서 계층과 지역감정을 조장한다. 명백히 드러난 수뢰 정치인의 사정도 표적수사 또는 지역차별이라고 억지를 부려 정치권의 사정과 개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군사독재와 부정부패의 늪지대에서 성장해온 남한의 극우세력과 부자 세습체제에서 성장해온 북한의 극좌세력은 평소 가장 적대적 상대인 듯 하지만 비상시에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적대적 공조관계’가 유지된다. 예컨대,1972년 朴正熙의 유신헌법과 金日成의 주석제헌법 개정이 거의 동시에 단행되고, 87년 야권의 승리가 보이는 듯 할 때 마유미(김현희)의 대한항공 폭파사건,92년 대선때 이선실의 간첩사건,96년 총선때 판문점 무장북한군 출몰사건,97년 대선때 특정세력과 북측의 내통사실 등 개혁세력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면 북한은 어김없이 안보위기나 공안사건을 만들어 수구세력을 도와주었다. 최근 북한의 잠수정침투사건도 햇볕론이 국민의 관심을 모으면서 소떼입북, 금강산관광등 한창 화해무드가 조성될 때 나타나 수구세력의 입지를 도와준 셈이다. 한국의 수구세력은 민주주의와 반공을 내세울 도덕적 자격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학살해온 독재전위 세력이었으며,반공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방편일 뿐이고, 오늘의 국난을 불러온 중심세력이기 때문이다. 독재자를 영웅시하고 화해정책을 용공시하고 사정을 계층과 지역감정으로 몰아가면서 개혁의 발목을 잡는 수구세력에 대한 ‘혁명적 정화’없이는 국난극복은 불가능하다. 50년만의정권교체는 민족모순과 사회모순을 바로 잡으라는 역사의 뜻이고,색깔론과 지역감정을 뛰어넘으라는 국민의 선택이다. 언제까지 이런 해묵은 ‘악령과 괴담’속에서 우리 정치와 사회가 세월을 보내야 하겠는가. 정부는 더 이상 원칙없는 온정주의와 눈치보기로 개혁에 갈팡질팡해서는 안된다. 좀더 과감한 사정과 개혁으로 5,000년 묵은 역사의 찌꺼기들을 퇴출시켜야 한다. 보수라는 이름 아래 역사의 방향과 전진을 가로막는 기득세력의 ‘여론’을 혁파해야 한다. 金大中 대통령은 1917년 러시아혁명의 어려웠던 시절 레닌의 침착함과, 1932년 대공황때 보인 루스벨트 대통령의 밝은 미소,프랑스가 패배한후 국민을 다시 규합한 드골의 리더십,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의 여유와 지략으로 총체적 개혁을 단행할 때이다. ‘혁명적 정화’를 통해 제2 건국을 이뤄야 한다. “태양이 비칠때 풀(草)을 말리라”는 서양격언이 있다.
  • 황장엽·김덕홍 주요 진술내용:Ⅱ

    ▷김부자 관련사항◁ ○김정일의 건강·성격 최근 김정일의 건강은 양호한 편이며 금년 1·1 ‘금수산 기념궁전’참배시 만났을 때에도 건강에 이상징후는 보이지 않았음. 김정일은 일을 하거나 파티를 하기 위해 밤을 새는 일이 잦으며 새벽 3∼4시에 건설현장이나 행사준비장에 갑자기 나타나거나 간부들에게 전화를 하는등 거의 잠을 자지않고 일한다는 것을 과시하고 있음. 김일성은 김정일이 포용력이 크다고 자랑하였으나 사실은 소심하며 좋고 싫은 것에 대한 감정의 변화가 지나칠 정도여서 아부하는 부하를 편애하다가도 조금이라도 의심의 소지가 생기면 내팽개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음. ○김정일의 호화사치 행태 본질적인 면에서는 ‘김부자’가 다 개인독재로 다를 바가 없으나 김일성은 스케일이 크고 폭이 넓어 인민들을 기만해도 무난했는데 김정일은 무계획적이며 조급함. 김일성은 정책결정시 간부들의 의견을 묻기도 했으나 김정일은 독단으로 결정하며 자기의 정책이나 노선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면 가차없이 처벌함. 김정일은 사소한 일까지도 일일이 간섭을 하여 당비서 주택을 몇층 몇호로 배정하라거나 선물을 보내는 것까지 직접함. ○김일성 권력장악 과정 김일성은 6·25전후 국내파(남로당)→연안파→소련파→빨치산내 반대세력(갑산파·군사파)의 순으로 단계적 숙청을 진행하였으며 전쟁직후 이승엽·박헌영 등 남로당 계열을 ‘간첩죄’로 몰아 전쟁책임을 덮어 씌우면서 제거하였음. 50년대 후반 김일성이 동구권을 장기 외유중(56·6∼7)최창익·윤공흠 등이 반김일성 음모를 꾸민 소위 ‘8월 종파사건’을 계기로 연안파·소련파를 제거하였음. 60년대 후반의 갑산파·군사파 제거에는 삼촌 김영주의 세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김정일이 관여하기 시작하였음. 69∼70년중 허봉학·김광협 등 군사인물 숙청과정에는 김정일과 친하게 된 오진우가 주도하였고 김영주의 세력 약화가 목적이었으며 60년대말부터 김정일이 당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했음. 김일성은 60년대 후반의 2차례에 걸친 빨치산직계 패거리들에 대한 숙청으로 절대적 충성을 확보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간부들은 김정일의눈치를 보기 시작하였음. 60년대 반대파 숙청이후 김일성 1인독재가 심화되었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여지는 말살되었음.60년대까지는 당내 토의과정에서 형식상이나마 ‘거수가결’도 행해졌으나 김정일이 70년대초 유일사상체계를 강조한 이후는 절대지지 일색이었음. ‘수령의 말씀은 곧 ‘법’으로 100% 내리먹일뿐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에 의한 간부들의 창발성은 허용의 여지가 없어졌음. 이때부터 김정일이 오진우를 비롯간 일부 군 간부와 함께 군대를 2배로 늘리는등 중국의 도움없이 전쟁에서 이길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아래 군국주의를 강화하였음. ○김정일의 권력장악 과정 김정일은 아동시절에는 ‘수상놀이’를 하고 학생시절에는 ‘김일성 업무에 조력’하는 등 권력 지향적 행태를 표출하였음. 어린시절 놀이하는 모습을 보면 김정일이 자신은 수상 노릇을 하고 다른 아이들은 상(장관)을 시켜놓고 호령을 하곤 했으며 청소년 시절에는 김일성의 관심사안을 연구하는 등 김일성에게 잘보이려고 무척 노력했음. 59·1 황장엽은 김부자를 수행하여 소련 공산당 21차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그때 김정일(17세)이 김일성의 일정을 주도해서 짤 정도로 맹랑한 모습을 보였음. 김정일은 중앙당 근무시작(64·6)이래 인사문제 및 숙청에 관여하고 김일성 우상화를 주도하는 등 정치력을 발휘하였음. 64·6 중앙당에 지도원으로 처음 들어와서는 놀기를 좋아해서인지 선전·예술분야의 일을 맡아 보더니 점차 사람을 끌어모으고 조직부의 인사문제에도 관여하였으며 60년대 후반 김일성이 같은 빨치산파이나 직계가 아닌 세력을 숙청하는 과정에도 개입하는 등 충실성을 과시했음. 73·9 김정일이 김영주의 조직비서직을 가로채고(선전비서 겸임),74·2 정치위원에 오름으로써 후계자 지위를 확고히 하였음. 한편 93·12 김영주를 평양(부주석)으로 다시 불러들인것은 김정일의 권력이 확고한 상황에서 김일성이 “저렇게 오래 버려두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때문이며 김영주는 ‘허재비’(허수아비)에 불과함. 김정일은 당 장악과정에서 전국에서 벌어진 모든 내용을 일보체계로 종합했으며 중요한 문제들이 발생할 경우에는 시·군당 이라도 당중앙위에 직접 보고하는 직보체계로 만들어 놓았음. ▷북한 정치분야◁ ○독단적인 정책결정 당·정·군 등 각 조직은 계선을 통해 정기적으로 자체보고를 하고 있으나,토의 등을 통한 정책결정은 없으며 오직 김정일 자신의 판단에 따라 정책을 결정·지시함으로써 독단이 지배하는 체제임. 93년초 ‘NPT 탈퇴선언’도 사전 간부가 협의가 없었으며 향후 전쟁을 일으킬 경우에도 유·불리점에 대한 논의는 있을 것이나 ‘개전시기’는 독단적으로 결정할 것으로 예상. 김정일에게 비위를 거슬리는 내용을 보고할 경우 파직을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어느누구도 제대로 보고를 하지 못하며 모든 간부들은 ‘옳소 부대’이며 다만 김기남(당 선전선동 담당비서)정도가 “∼좀 했으면 합니다”라고 말할수 있는 정도에 불과함. ○권력 승계문제 3년 탈상후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을 승계할 것으로 보이며 총비서의 경우는 당 전원회의에서 선출할 가능성이 있음. 한편 김정일은 황장엽에게 “내가 국가주석을 하는 것이좋겠는가”라고 질문한 바 있고 김기남이 “주석제 유지를 건의하였다”는 점등으로 보아 주석직 승계여부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것 같음. ○김일성 사망… 지도층 분위기 루미나아 ‘차우세스크’처형(89.12)당시 김일성은 “군대를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으며 김정일을 최고사령관에 등용(91.12)한 것도 군부를 확고하게 장악하려는 의도였음. 김일성 사망시 지도부내에 불안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김정일이 그간 실질적으로 통치해 왔고 김정일 활동에 대한 ‘소감문’작성 등으로 들볶아 위기감 마저 느낄 여유를 갖지 못한 상태였음. 94.7 남북정상회담 추진시 김일성은 “내가 서울에 가면 수백만 군중이 환영할 것이므로 통일에 유리할 것”이라고 하는 등 흥분상태였으며 “연방제 통일과 남부 경제교류문제 논의”가 주목적이었음. ○북한 체제의 강·약점 김정이 우상화가 극단적으로 강화되고 있어 주민들은 그를 신처럼 여기고 있고 충성·효성을 기본으로 하는 봉건주의 사상이 흔들리지 않고 있음. 고위간부들은 ‘도청장치와 숙청’의 공포를 느끼면서 생활하고 있어 파벌형성 소지가 없으며 아부하기에 급급함. 주민들의 반체제는 불가능하며 굶어 죽으면서도 ‘김정일 만세’를 부르는 실정임. 북한체제가 사회주의가 아닌 ‘현대판 봉건주의’체제라는 현실이 가장 큰 취약점임. 주민들의 ‘비사회주의 현상’이 점차 확산되고 공산주의 도덕이 땅에 떨어졌으며 관료들의 부패와 주민들의 일탈행위가 만연되고 있음. ○최근 정책 중점사항 96년초 당·군·청년보 ‘공동사설’에서 사상·군사·경제 등 소위 ‘3대 진지’강화를 촉구한 이래 이를 지속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당면한 북한의 대내외 정세가 어려운 사정임을 반영하고 있는 것임. 김정일이 ‘3대 진지’운운하며 한마디 한 것을 밑에서 체계화 한 것으로 정책노선이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님.현재 사정이 어려우니까 강조하고 있는 것이며 경제진지야 엉망일지 몰라도 군사·사상진지는 튼튼하다고 할 수 있음. ‘3대혁명소조’운동은 폐지되고 ‘대학생 현실체험’으로 대체되고 있는바 최근들어 3대 혁명소조부를 폐지하는 등 흐지부지 되었으며 그대신 대학졸업후 무조건 지방의 생산현장에서 3년간 노동해야 하는 ‘대학생 현실체험’제도로 바뀌었음.‘소조운동’이 김정일의 정책추진을 뒷받침하는데 목적이 있었는데 반해 ‘현실체험’은 평양인구 분산과 주민통제에 이용하겠다는 것임. ○권력구조 재편 전망 김정일의 변덕스런 성격때문에 공식승계후 인사개편 방향에 대해 확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음. 경제일꾼들은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있어 대폭교체할 것이며 지병과 고령으로 활동이 부진한 부총리들도 모두 바꿀 것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도 선거한지가 오래되어 많이 바뀔 것이며 선발기준은 김정일에 대한 충정심이 절대적인 고려 기준임. ○정권붕괴 및 타도가능성 북한은 지금 경제가 마비상태에 빠지고 인민들은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등 파탄에 직면해 있음. 그러나 북한은 오랫동안 쇄국정책을 실시하면서 전제주의적 통치기반을 강화해왔기 때문에 북한체제가 1∼2년내에 쉽게 무너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임. 다년간 이중 삼중의 감시하에 귀를 막고 눈을 가리운채 개인숭배교육을 받아온 북한 사람들은 독재자의 명령을 무조건 따를 뿐이며 김정일을 거부하는 세력은 있을수 없음. ○권력핵심의 동요징후 최근의 경제난·식량난 등과 관련하여 일부 간부들이 “큰일인데”라고 종종 말하고 있으나 뚜렷한 대책없이 서로 걱정만 하고 있는 실정임. 특히 고위간부들은 ‘도청장치와 숙청’에 공포를 느끼면서 생활하고 있어 김정일에게 충성경쟁을 할 뿐임.
  • 보직퇴임 학생처장등 2명에 서울대 학생회서 감사의 선물(조약돌)

    ○…서울대 총학생회(회장 이석형)가 8일 보직을 내놓은 이정빈(의대) 학생처장과 백종현(철학과) 부학생처장에게 감사의 선물을 전달해 눈길. 총학생회는 『지난해 한총련 사태 당시 대학측이 징계 신중론을 펴고 농활,제2 학생회관 건립 등 학생회 사업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라며 주석제품 전달배경을 설명.
  •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청산/이연복(기고)

    ◎임정수립 75주년 아침에 4월13일 오늘은 이역만리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가 수립 선포된지 75주년이 되는 날이다.1919년4월10일과 11일 프랑스 조계 김신부로 22호에서 29명의 의원으로 임시의정원을 구성,국호·연호및 관제를 의결해 국무원을 선거함과 함께 임시헌장을 선포함으로써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출범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이는 4월13일 내외에 선포되었다. 임정은 말할 나위없이 3·1운동의 한 결정체였다.독립을 선언한 이상 정부의 수립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그리하여 이 무렵 무려 8개곳에서 임정이 수립 선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실제로 활동한 정부는 한성정부,노영정부,상해정부였으며 이 정부들은 1919년9월15일 ①임정의 위치를 상해로 ②법통은 한성정부의 법통을 계승 ③노령정부는 해소된다는 선에서 통합되었다.이는 헌법개정으로(1차) 이루어졌다.그리고 2차 개헌(1925년)에서는 국무령제(의원내각제)를,3차 개헌(1927년)에서는 국무위원제(집단지도제)를,4차 개헌(1940년)에서는 주석제를,그리고 5차 개헌(1944년)에서는 주석·부주석제를 채택함으로써 모든 당파의 임정으로의 합류와 정치적 상황에 대처해 나가면서 법통을 유지해 왔다.그 사이 임정은 연통제와 교통국의 설치,외교활동,군사활동 등 외로운 항쟁을 지속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임정도 정부조직으로 환국하지 못했다.개인자격으로 귀국했지만 제2의 독립운동이랄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앞장 설 수밖에 없었다.그후 임정의 법통은 비상국민회의→국민회의(대한국민회)→대한민국에 계승된 것이다. 1948년 제헌 헌법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부를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 국가로 재건함에…」라고 하여 (현)대한민국은 임정을 재건한 것이라 하였으며,5·16헌법 전문에서는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유신헌법에서도 같이 표현),그리고 5공화국 헌법 전문에도 「유구한 민족사…3·1운동의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하였으며,6공화국 헌법 전문에서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하여 제1공화국과 함께 임정의 법통을 명시한 것이 특이하다 하겠다.즉 모든 헌법전문에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 하였다.정권의 정당성을 논의할 때 그 정통성이란 무엇인가? 이는 전근대사회에서는 혈연적인 의미를 내포한 「바른계통」 「정당한 혈통」을 뜻하는 적장의 계통을 가리켰다.그런데 근대 이후 대중의 발언권이 강화되면서 대중의 지지를 근거로 한 것인가에 따라 그 정통성 여부가 가려지게 마련이다.임정의 법통이란 정통성에 다름아니라고 할 수 있다.역대정권이 과연 얼마나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임정의 법통을 계승하였는지 의문이다.그 계승한 자취를 체계적으로 밝혀내고 더욱 소중하게 이어나갈 참된 노력이 부족하거니와 어느 의미에서는 독립운동의 전통이 도시 희미하고 그것이 여러가지로 문제시되지 않은데에 여전한 민족적 고난의 씨앗이 깃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최근 다행히 중국과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상해의 마지막 임정청사 「마당로4호」가 복원되고 1990년부터는 임정수립기념식이 정부주관으로 행해질 뿐아니라 1993년 이래 임정요인들의 유해가 국립묘지에이장되고 있다.또 멀지 않아 중경의 임정청사가 복원된다고 하니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이런 일들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우리 역사상 최초로 민주공화국이 선포된 김신부로 22호도 정확한 고증을 받아 보존할 가치가 있다.이런 유사한 유적지를 상당수 찾을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보다 더 급한 것은 임정의 법통을 계승한 정부라면 임정주석 김구의 암살 경위부터 밝히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청산하지 못한 역사부터 청산해야 하지 않을까?
  • 대만,대중 적대표현 삭제(지구촌단신)

    【홍콩 연합】 대만의 집권 국민당은 올 여름에 열릴 당 14차 전국당원대표대회(14전당대회)에서 당장(당헌)수정을 통해 중국공산당에 대한 적대적 표현을 삭제하고 당부주석제를 신설할 것이라고 홍콩의 명보와 성도일보가 5일 보도했다.
  • 공예품 경진 대상/김정렬씨 「탈을…」

    제22회 전국공예품경진대회 대상은 경기도의 김정렬씨가 양주의 별산대 놀이탈을 주제로 자개와 금속을 이용한 「탈을 이용한 여성용 액세서리」가 차지했다. 수상자는 ◇은상 ▲어순영(장식을 겸비한 복주머니) ▲이학천(한국의미·단추) ◇동상 ▲백한복(식탁용품세트) ▲김용민(탐라자기) ▲최남선(화려한 변신) ▲신철(테이블 서비스) ▲강소자(왕골함) ▲이종환(분청사감 문구류) ▲임부원(주석제 주방용품세트) ▲정찬복(물고기를 응용한 생활용품) ▲황락순(목각표주박) ▲정대해(신라장인의 얼이 숨쉬는 장신구)
  • 김정일,인민군 완전 장악할까(오늘의 북한)

    ◎25일 창군기념일 계기로 점검 해본다/원수계급 받으면 사실상 군지배/「권력승계」관련 보수파 숙청 예상/당군사위장·국방위장 맡을지는 불투명 북한의 「붉은 군대」「조선인민군」이 오는 25일로 창설 60주년을 맞는다.김정일의 50회생일(2·16),최고인민회의 제9기3차회의(4·8∼10),김일성의 80회생일(4·15)등 굵직한 행사에 이어 치러지게 될 이번 인민군 창군60주년기념행사는 김정일의 명실상부한 군권력장악과 관련,또다시 내외의 관심을 끌고 있다.현역병 1백만명의 규모를 자랑하는 「조선인민군」은 『조선노동당의 혁명적 무장력』이란 북한의 명문규정대로 로동당의 절대적 지배하에 있는 「당의 군대」「혁명의 군대」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동시에 이러한 당적·혁명적 성격은 김일성의 유일체제와 연관되어 이제까지 조선인민군을 철저한 「김일성의 군대」로 각인시켜 왔다. ○매년 기념행사 요란 지난 1977년까지 2월8일을 인민군창건일로 기념해 오던 북한은 1978년부터 김일성이 항일유격대를 창설(1932)했다는 4월25일로 일자를 변경,해마다 요란한 기념행사를 벌여오고 있는데 이같은 결정 역시 인민군의 김일성 사병화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의 생일 이틀전인 지난 13일 「중대방송」을 통해 당중앙위원회,당군사위원회,중앙인민위원회,국방위원회 공동명의로 「김일성주석에게 대원솔칭호를 수여한 데 대한」「결정」을 발표,지난해말 인민군최고사령관에 취임한 이후 예측돼왔던 김정일에의 원솔계급수여가 오는 25일 현실화될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북한군의 장성서열은 소장·중장·상장·대장·차솔·원솔로 올라가는데 원솔의 자리는 6·25전쟁이 끝날 무렵인 지난 53년2월부터 김일성주석이 지켜오고 있으며 차솔는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이 올라있다. 북한군은 최고사령관아래 「모든 군사정책을 마련하고 군산업발전에 관한 사업을 조직·지도하며 전인민군을 지휘하는 최고 군사기관」(당규약 27조)인 당군사위원회와 이를 심의·집행하는 국가기구차원에서의 국방위원회를 최상위에 두고 있다. 실제적인 군정은 최고 당·정협의체기구인 중앙인민위원회직속의 인민무력부가 위 두기구의 통제 아래 인민군총참모부(총참모장 최광)를 통해 시행하도록 되어있는데 김일성주석은 당군사위원장과 국방위원장을 모두 맡고 있어 정책결정의 정점에 서 있다. 한편 김정일은 그의 권력승계작업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지난 80년 당중앙위 6기 제1차 전원회의에서 「정치국상무위원」「정치국원」「비서」로 선출됨과 동시에 오진우에 이어 두번째 위치로 당중앙위 군사위원에 올랐다. 이어 81년 후계자호칭이 공식적으로 나오면서 군사업의 70%이상을 직접 지시하기 시작했고 90년5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에서 중앙인민위원회와 동격의 위치로 확대개편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선출됐으며 지난해 12월 당6기 19차 전원회의에서 인민군최고사령관에 추대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계급은 소좌 따라서 실질적으로 군을 장악하고 있으나 공식계급은 73년 당조직선전부 근무당시의 소좌계급에 머물고 있는 김정일이 차솔인 오진우위의 원수계급에 올라간다는 사실은 군내 위계질서를 명확하게 확립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볼 수 있다. 북한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실제 군을 통제하는 국방위원회위원장과 당군사위원회 위원장을 이번 25일 군창설기념식에서 김일성으로부터 물려받을 것인가의 여부가 김정일의 명실상부한 군권장악을 측정하는 관건이 될것이며 이는 또한 「총비서」 「주석」직이라는 공식권력승계를 점칠수 있는 자대가 될 것으로 분석한다. ○대폭 인사개편 될듯 이와관련,서재진민족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군은 심각한 인사적체에 직면,50세의 「김정일원수」가 들어섬으로써 이을설등 연로하고 무기력한 혁명빨치산1세를 솎아내 군의 신진대사를 꾀함과 동시에 권력승계와 관련한 군의 지지강화를 꾀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 같다』고 분석하고 『따라서 25일 행사이후 대대적인 군인사개편과 김정일의 양위원장 취임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헌법 일부개정 검토 북한헌법 93조는 그러나 주석이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회위원장이 된다고 규정해놓고 있기 때문에 김정일의 당군사위와 국방위 위원장직승계를 위해서는 헌법개정이 불가피하다. 바로 이 대목이 지난 10일 폐막된 최고인민회의 제9기 3차회의에서 제기된 「헌법수정」안의 내용에 관심을 갖게하는 부분이다. 그 구체적 내용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있는 이 헌법수정안에 대해 서실장은 『북한이 공개한 내용이 「김일성동지와 로동당이 새롭게 제시한 사상과 이론,그 밑에 인민이 이룩한 성과를 반영해」라고 돼있어 애매하긴 하지만 「포괄적」이라는 측면에서 헌법 93조의 수정등도 점쳐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연구소의 김창순이사장은 『지난해 이뤄진 김정일의 인민군최고사령관 추대가 위헌사항이므로 이를 바로 잡기위해 주석=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이라는 고리를 끊었을 수도 있다』고 밝히고 『이번에 김일성에 수여된 대원솔계급을 새로 만드는 안도 포함될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나 김이사장은 최근 일부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제1부주석제 신설」가능성에 대해서는 『원래 제1부주석제가 북한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과거 김동규와 김일(76·4)이 그 자리에있었다』고 지적,『김정일은 왕위계승자로서의 동궁의 개념에 드는 이상,영의정·우의정과 같은 개념의 제1부주석등 행정의 수위자리를 꼭 거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석렬교수(외교안보연구원)는 『원수가 국방위원회와 당군사위원장을 맡는 것이 상식이긴 하지만 신설된 대원솔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것』이라며 김일성의 대원솔계급이 단순한 상징적 계급이 아닌 스탈린식의 실질적 권한을 갖는 것이라면 군을 통제하는 양 위원장자리는 당분간 김정일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 했다. 김일성이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엔 결코 최고권력의 지위를 김정일에 넘겨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있는 전문가들 역시 인민군의 현계급제도에 없는 「대원솔」계급 신설은 향후 김정일에게 「총비서」 「주석」 등의 자리를 물려주더라도 김일성이 더 「상위」의 지위를 만들어 눌러 앉을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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