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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출입국 심사 불만

    전북 군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이용객이 급증하며 출입국 심사에 2∼3시간씩 걸려 불만을 사고 있다. 13일 전주출입국관리사무소 군산출장소에 따르면 군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이용객은 2016년 16만 9787명에서 2017년 18만 4046명, 지난해 23만 7695명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는 7월 말 현재까지 20만 3775명이 군산항을 이용했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 한해 이용객은 30여만명으로, 2016년의 배에 육박할 전망이다. 그러나 출입국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증원이 이뤄지지 않은 채 여전히 4∼5명에 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출입국 심사에 보통 2∼3시간이 걸리며, 심할 때는 3시간 이상 소요돼 불만을 사고 있다. 대책이 서둘러 마련되지 않으면 군산항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군산출장소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인원을 추가로 배치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쉽지 않다”며 “가용 인원을 최대한 동원하고, 이용객이 몰리는 시간에는 전주사무소에서 인력을 지원받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英 최초 ‘줄기세포 치료’받은 탈모 환자들…현지 매체 소개

    英 최초 ‘줄기세포 치료’받은 탈모 환자들…현지 매체 소개

    영국 런던에 사는 전직 권투선수 크리스 와일드(39)는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보호시설에서 자란 그는 현재 청소년을 위한 여러 쉼터를 운영할 만큼 불굴의 의지를 갖고 있지만 6년 전 자신의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거의 울 뻔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난 길거리 출신의 거친 사람이지만, 탈모는 내 자신감을 꺾고 말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앞머리는 너비 2㎝ 정도의 새로운 머리카락들이 싹을 틔우듯 자라고 있다. 또 비어가던 정수리 부분에도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다. 머리숱이 무성할 만큼 많아진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영국 데일리메일 일요판인 메일온선데이 11일자 보도에 따르면, 와일드는 축구선수 웨인 루니처럼 모발 이식 수술을 받은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기적의 세포라고도 부르는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다. 그는 영국에서 줄기세포 미세 이식이라는 새로운 치료를 받은 최초의 환자들 중 한 명이다. 이 치료는 탈모를 막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모발이 다시 자라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이에 따라 탈모인들은 줄기세포야말로 진정한 탈모 치료제가 될 것이라고도 말한다.이에 대해 그의 치료를 담당한 런던의 피부과의원 ‘바이 에스테틱스’의 이오아니스 리아카스 박사는 줄기세포는 모발 성장뿐만 아니라 흰머리를 원래 머리색으로 되돌리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병원은 영국에서 줄기세포 미세 이식을 도입한 최초의 병원들 중 한 곳이다. 하지만 치료는 1회 시술에 2000파운드(약 294만원)라는 비용이 들 만큼 절대로 저렴하지 않다. 또 기존 모발 이식 수술과 달리 아직 연구 초기 단계에 있어 결과가 장기간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이에 대해 매체는 이 치료를 받을 가치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해당 병원 측의 허가를 얻어 시술을 받은 환자들과 직접 만나 독점 인터뷰를 진행했다면서 와일드의 환한 미소와 그의 머리카락이 꾸준히 자라고 있는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치료는 가치 있는 투자로 보인다고 전했다. 와일드는 6년간 프로페시아 같은 약물치료를 받던 끝에 줄기세포 치료를 선택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기존 약물이 내 머리카락이 더는 빠지지 않게 해줬지만, 새로운 머리카락이 자라게 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 꽤 긴장했지만, 이 치료가 최첨단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확신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줄기세포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당 병원에 직접 연락해 리아카스 박사와 상담을 예약했고, 지난해 10월 시술을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치료를 받고 나서 4개월 정도 지난 뒤 어머니 집에 갔을 때 어머니가 거의 처음으로 한 말은 ‘머리숱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지난 3월 같은 치료를 받은 한 여성 환자 역시 와일드와 비슷한 결과를 자랑한다. 불과 5개월 만에 트레이시 키스(31)의 점점 넓어지던 가르마는 새롭게 자란 머리카락 덕분에 촘촘해졌다. 개인 트레이너인 그녀는 이런 결과에 흥분했다. 버킹엄셔에 사는 그녀는 “두 아이가 태어난 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5년이 지나도 모발 굵기는 여전히 가늘어지고 있었다”면서 “정수리의 두피를 봤을 때 완전 탈모가 될까 봐 두려웠다”고 회상했다. 이어 “하지만 이 치료를 받은 지 3개월 뒤 난 작은 머리카락들이 자라기 시작한 것을 알아차렸다. 얼굴에서 웃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면서 “그것은 내 자신감을 회복시켰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메일온선데이는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확실히 만족하고 있었다고 전했다.치료 비결은 자가세포를 추출·분리해 주사하는 장치인 ‘리제네라 액티바’(Regenera Activa)에 있다. 이 의료기기는 유럽연합(EU)은 물론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고, 최근에는 국내 시장에서도 공급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탈모는 보통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다이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으로 변화하면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알려졌다. 이는 모낭을 공격해 모낭을 수축시켜 모발을 생성할 수 없게 한다. 반면 귀 뒤쪽 머리의 모낭은 DHT에 면역성이 있어 모발을 계속해서 생성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연구자들이 DHT 내성 모발의 줄기세포를 얇아진 부위에 이식하면 건강한 새로운 모낭을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DHT에 의해 축소된 모낭을 재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17년 이탈리아 로마대 연구진의 한 연구에서는 치료 뒤 23주 만에 머리카락 밀도가 3분의 1 정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방식은 전문의가 환자의 귀 뒤쪽 머리를 부분마취한 뒤 각각 2.5㎜의 작은 구멍을 3개 내서 세포를 추출하는데 리제네라 키트에 넣고 1분 정도 돌려 약 80만 개의 자가 줄기세포를 분리해 식염수와 섞은 뒤 시술이 필요한 두피 부위에 주사한다. 리아카스 박사는 “모낭 줄기세포는 항상 모낭이 될 운명이었으므로 특히 효과적”이라면서 “이들 세포는 또한 잠복해 있는 모낭에 새로운 성장 단계를 촉발시켜 이들 모낭을 성장 주기의 시작 시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환자들은 단 한 번의 치료로 머리카락 밀도가 30~40%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새로운 모발은 적어도 2~6년 어쩌면 훨씬 더 오래 지속할 것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장기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병원에서 모발 클리닉을 이끌고 있으며 모발 재생에 줄기세포를 사용한 연구를 진행한 컨설턴트 피부과의사 오필리아 베라치 박사는 관련 연구들은 재생 모발의학에 줄기세포를 사용할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이런 결과가 치료 2년 뒤에도 지속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장기적인 추적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줄기세포재단의 대표 브렌든 노블 교수 역시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는 “비록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매우 적긴 하지만, 결과는 흥미로워 보인다”고 말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이승훈의 과학을 품은 한의학] 왜 아프지 않은 곳에도 침을 놓을까

    [이승훈의 과학을 품은 한의학] 왜 아프지 않은 곳에도 침을 놓을까

    한의원에 가면 아픈 부위에 직접 침이나 부항 치료를 할 때도 있지만, 아픈 부위와 동떨어진 손이나 발에 침을 놓을 때도 있다. 왜 한의사들은 아프지도 않은 곳에 침을 놓을까. 우선 통증 부위에 직접 침 치료를 하면 주변에 소량의 칼시토닌유전자관련펩티드와 같이 혈관을 확장시키는 물질이 분비돼 혈액순환이 좋아진다. 또 세포외액의 아데노신 농도가 높아져 아데노신A1수용체를 활성화시켜 통증 신호가 신경을 통해 전도되는 것을 억제하며, 근육이나 근막이 이완되는 효과가 있다. 이를 침의 ‘국소 자극’이라고 부른다. 이런 원리로 순환이 안 되는 손발에 침 치료를 받으면 저림 증상이 좋아지고, 아픈 부위에 침 치료를 받으면 통증이 감소하며, 긴장되고 단단해진 근육에 침을 맞으면 뭉친 근육이 풀린다. 통증 부위에서 떨어져 있지만 신경으로 이어진 곳에 침 치료를 해도 통증을 억제할 수 있다. 이는 통증 부위와 같은 피부분절, 근육분절에 해당하는 혈자리에 침 치료를 하는 것으로 ‘분절 자극’이라고 한다. 말초의 감각을 뇌로 전달하는 감각 신경은 ‘수초로 덮여 두껍고 전달 속도가 빠른 신경’과 ‘수초 없이 얇고 느린 신경’ 두 가지가 있다. 보통 만성 통증은 얇고 느린 신경을 타고 척수를 통해 뇌로 전달된다. 이때 침 치료에 특정 수기법이나 전기 자극을 더하면 침 자극은 두껍고 빠른 신경을 통해 통증 감각보다 먼저 척수에 도달, 통증이 뇌로 전달되는 경로를 막을 수 있다. 이를 통증의 ‘관문조절설’이라고 부른다. 대표적 전기치료인 경피전기신경자극 또한 관문조절설을 이용해 통증을 억제한다. 주사 맞기 전에 엉덩이를 손으로 툭툭 치면 통증을 덜 느끼는 것도 이러한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다만 이 기전을 통한 진통 효과는 지속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손이나 발의 특정 혈자리에 침 자극을 가해도 그 신호가 척수를 거쳐 뇌에 도달해 다양한 종류의 신경펩티드나 모노아민을 분비한다. 이때 베타엔도르핀, 세로토닌, 노르아드레날린 등이 척수의 여러 분절에서 통증 신호가 뇌로 전달되는 것을 조절한다. 이를 침의 ‘전신 자극’이라고 부른다. 특히 전통적으로 알려진 오수혈이라는 경혈들이 이러한 물질들을 활발히 분비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통해 침 치료가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통증이 오래되면 뇌의 바깥에 위치한 피질에서 감각적으로 아프다고 느낄 뿐 아니라 뇌의 안쪽에 위치한 변연계에서 불쾌하고 우울하다는 감정으로 기억되기 때문에 잘 낫지 않게 된다. 이때 침 치료가 변연계의 활성을 낮춰 통증의 감정적인 요소까지 조절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일부 만성통증 환자에게서는 뇌정상태회로와 뇌섬엽 간의 기능적 연결성이 증가한다고 알려졌는데, 침 자극이 이러한 연결성을 감소시키며 통증을 줄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 경계인 저항을 읊조리다

    경계인 저항을 읊조리다

    ‘식민지 소년인 나를 열렬한 ‘황국(皇國) 소년’으로 만들어 낸 예전의 일본어와 그 일본어가 자아내던 음률의 서정은 삶이 있는 한 대면해야 할 나의 의식의 업(業)과 같은 것이다.’(‘잃어버린 계절’ 92쪽) 아흔 평생 자신의 업을 갈고닦은 시인, 재일 조선인 김시종의 시집과 비평서가 나란히 출간됐다. 세계인 혹은 경계인으로서의 김시종을 조명하려는 움직임이다. ●反일본적 서정 담긴 7번째 시집 ‘잃어버린 계절’ 창비에서는 2010년에 출간된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잃어버린 계절’을 번역 출간했다. 철학자 이진경(본명 박태호) 서울산업대 기초교양학부 교수와 한국문학 연구자 가게모토 쓰요시의 공동 번역으로 국내에 첫 소개되는 완역본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제주로 건너간 김 시인은 제주 4·3항쟁에 휘말려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1949년 일본으로 탈출, 오사카의 재일 조선인 거주지 이카이노에 정착해 줄곧 일본어로 시를 써왔다. 시인에게 일본어는 자신의 감성과 의식 체계의 밑바탕이 되는 모국어나 다름없다. 그러나 스스로 ‘일본어에 대한 보복’으로 문필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혔듯, 그의 시는 일본식 문체가 아닌 데다 반일본적 서정이 담겨 있다.‘고향도 연고도 잃은 새가/ 쓰레기밖에 주울 게 없는 일본에서/ 나의 말을 모이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점점 까악까악 외칠 수밖에 없는/ 새가 되어가고 있다./ 곧 입술이 붉게 물들 것이다.’(‘조어(鳥語)의 가을’ 중) 낯선 발음을 붙이거나, 쓰지 않던 한자어를 만들어 내고, 한자 아닌 단어들도 익숙한 어법을 피해 어색함과 생소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 김시종의 시다. 이 때문에 오랜 기간 일본 문단에서 비주류 취급을 받았으나 이후 마이니치출판문화상(1986), 오구마히데오상 특별상(1992) 등을 수상했다. ‘잃어버린 계절’은 2011년 다카미준 수상작이다. ●‘김시종, 어긋남의 존재론’ 전설의 시인을 말하다 시집의 번역자이기도 한 이진경 교수는 김시종의 문학을 존재론적 관점에서 비평한 ‘김시종, 어긋남의 존재론’(도서출판 b)도 함께 펴냈다. ‘철학과 굴뚝청소부’, ‘맑스주의와 근대성’ 등 사회학·철학 등 다양한 학제 간 경계를 넘나든 저자의 첫 문예비평서다. 일본에서는 공산주의를 지향하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갈등을 빚어 결별하는 등 남한도 북한도 아닌 일본에 살고 있지만 일본인도 아닌 존재로서 시인의 삶과 시에 대해 분석했다. 이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김 시인은 ‘삼중의 디아스포라’다.시인이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는 의미를 형상화한 장시 ‘니이가타’, 오사카의 재일조선인 집단거주지의 삶을 풍자적으로 그린 ‘이카이노 시집’, 광주민주화운동이 3년 지난 시점에서 ‘광주사태’를 들춰본 ‘광주시편’ 등 대표 시집을 각 장에서 한 권씩 다루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런 삶이, 이런 시가 어떻게 전설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8쪽)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열린세상] 임시정부 수립 100년, 한중 연대의 의미를 짚어 본다/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열린세상] 임시정부 수립 100년, 한중 연대의 의미를 짚어 본다/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지난 8월 2일 일본이 결국 수출 허가 절차 우대국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이후 일본 제품을 사지 않고 일본에 가지 않는 운동이 전 국민적 호응을 얻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한국에서 불매운동이 성공한 적이 없다며 비웃던 일본인들도 심각성을 의식하기 시작한 듯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행동이 옹졸하고 부당한 것임을 지적하는 운동이 시민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조직되고 전개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일본 정부 당국이 그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새삼 지적할 것도 없이 돌이켜 보면 올해는 3·1운동 100년의 해다. 바로 그해에 과거를 거듭 반성하고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 나가기 위해 한일 우호에 진정성을 보여야 할 일본이 일방적인 조치로 한국 경제를 위협한 데 대해 우리 국민의 배신감과 분노는 더욱 거세게 조직됐다. 한국에서 일본 불매운동이 3·1운동을 재현하듯 번지는 동안 우리 청년들이 국민대표단 이름으로 중국의 임시정부 소재지를 순회 방문하고 돌아오는 행사가 있었다. 지난 7월 8일부터 17일까지 100인의 청년 대표단이 100년 전의 역사를 재현해 중국 내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재지였던 충칭, 광저우, 창사, 항저우, 상하이 등 5개 지역을 순회 방문하고 돌아온 것이다. 4000킬로미터의 대장정이었다. 이들의 행로를 뒤쫓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숨결이 중국 중남부의 도시들에 점점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에서 새삼 깊은 의미를 읽는다. 그곳은 단순한 중국의 도시들이 아니었다. 이 지역들은 현재도 그러하거니와 당대 동아시아권 최대급 국제도시들이었다. 중국을 무대로 펼쳐진 우리 독립운동이 국제사회로 열린 곳을 지향하며 늘 국제적 연대를 추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의 집요한 추적에 쫓기면서도 결코 오지에 숨어들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 행사가 일깨워 준 사실이 또 하나 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100년은 조선의 100년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100년이라는 사실이다. 조선의 3·1운동에 중국의 인민이 각성해 일어난 것이 5·4운동이었다. 이후 중국을 무대로 한중 연대의 민족운동이 펼쳐졌다. 세계로 열린 곳에서 펼쳐진 한중 연대는 그 자체로 국제연대였다. 카이로선언이 그 결실이었다. 제국 일본에 패배를 안겨 준 승리의 씨앗이 여기에 뿌려졌던 것이다. 일본이 패전 이후 일본 외교의 실패를 자인하며 작성한 보고서가 있다. 대일 평화조약 체결을 앞두고 당대 총리 요시다 시게루의 지시로 작성된 조서 ‘일본 외교의 과오’라는 50쪽짜리 보고서다. 조서는 일본 외교의 실패를 만주사변에서 찾고 있다. 특히 중국 민족주의에 대한 과소평가가 군부 주도의 만주사변을 용인했던 원인으로 지적됐다. 결론은 이렇다. 일본 패전은 중국 대륙의 민족주의 고양과 그 역사적 의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결과였으며, 일본의 대중 정책이 중국의 반일, 항일, 모일(侮日)만을 문제 삼는 방향으로 치달았던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아베의 일본이 과연 요시다의 반성을 계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 외교의 과오’도 한참 부족한 내용이다. 그래도 그나마 아시아 민족주의에 대한 몰이해가 일본의 실패를 불러왔다는 분석은 전후 일본 외교의 기본 노선에 자리잡고 있었다. 유엔 중심주의와 미일동맹 기축주의, 그리고 아시아와의 관계 중시가 전후 일본 외교의 3원칙으로 자리잡은 것은 아베의 외조부 기시가 총리로 재임하던 시기였다. 기시마저도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시아 민족주의의 에너지를 아베는 적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 아베 시대에 이르러 아시아 민족주의에 대한 평가와 그에 입각한 공존의 모색이라는 전후 일본 외교의 근간이 퇴색하고 있다. 아베의 무역전쟁 도발은 한국에서 이미 희석되고 있던 아시아 민족주의, 즉 저항적 민족주의를 부활시키고 있다. 일본 불매운동, 일본 여행 자제 운동이 그러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명심할 일이 있다. 저항적 민족주의라 해도 승리의 조건은 국제사회에 열린 민족주의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한중 우호 카라반에 참석한 100명의 우리 청년이 100년 전의 역사를 되새김질해 보여 준 핵심 교훈이다.
  • “검경 수장 사과, 아쉽지만 의미 있어… 권한 남용 방지 제도화해야”

    “검경 수장 사과, 아쉽지만 의미 있어… 권한 남용 방지 제도화해야”

    최근 우여곡절 끝에 검찰과 경찰의 과거사 진상조사가 끝났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의욕적으로 과거사 청산 작업에 나선 지 2년여 만이다. 조사의 한계로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검경의 양대 수장이 고개를 숙이고 공식 사과한 것은 성과라면 성과다. 물론 사과를 받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조직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내부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과를 하라”는 권고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기는 어렵다는 것을 안 검경 지휘부는 결단을 내렸다. 이제 검찰과 경찰은 과거와 단절하고 새 출발을 할 수 있을까. 서울신문은 지난달 29일 검찰 과거사위원회와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으로 각각 활동한 김용민 변호사와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를 만나 그간의 소회 및 기대를 들어봤다. -검경 모두로부터 사과를 이끌어 냈다. 김용민(이하 김) “검찰은 선별적 사과를 했다. 진정성 있는 사과였는지도 의문이 든다. 그래도 사과를 하는 것은 의미 있다고 본다. 검찰총장의 사과는 피해자들을 ‘국가 폭력, 공권력 남용의 피해자’로 인정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박진(이하 박) “사과를 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누차 얘기했다. 피해자들이 사과를 당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 기자들 앞에서 먼저 사과하지 말라고도 했다. 그렇게 해서 공식 기자회견 전날(7월 25일) 경찰청장과 피해자들의 비공식 만남이 이뤄졌다. 피해자들은 적어도 민갑룡 청장한테는 사과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아쉽다. 사과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용산참사의 마지막 희생자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6월 말 용산참사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철거민 김모(49)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는 당시 “국가폭력이 그를 죽였다”며 “경찰청장과 검찰총장은 제대로 사과하라”고 추모 성명을 냈다. -사과는 했지만 가해자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 “징계 시효(3년)가 지나 징계 권고를 할 수 없었다. 그러면 ‘검찰 과거사 조사 왜 했나’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과거의 위법한 상태를 그대로 놔두면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 친일파 문제도 청산을 못 하니 또 고개를 들지 않았나. 한 번은 해소하고 가야 했다. 책임자 처벌뿐 아니라 피해 구제, 제도 개선 관점에서도 과거사 사건에 접근했다.” 박 “경찰은 수뇌부가 결정하고 책임은 말단이 지는 구조다. 그래서 총경급 이상만 권고를 하자고 원칙을 세웠다. 그런데 고 염호석(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사건은 총경급 아래가 문제인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의 사병처럼 움직였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혀 있는데 우리가 정한 원칙 때문에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 하지만 경찰이 어떻게 대응할지는 다른 문제다. 그가 말단이라도 책임을 묻는 게 맞다고 본다.” -위원회 내부에서 의견이 달라 첨예하게 다퉜던 사건이 있다면. 김 “장자연 사건이다. 보통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다수 의견을 위원회가 받아들일지 결정하는데 장자연 사건은 특이하게 소수 의견을 받아들인 게 있다. 큰소리까지 쳐 가며 심하게 싸웠던 기억이 있다. 구체적 혐의점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 권고를 할 수 없다 해도 ‘수사를 통해 한 번 확인은 해 보라’는 의미의 수사 개시 촉구는 해야 한다는 게 다수 의견이었다. 소수 의견은 그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박 “제가 보기에는 첫 번째 권고(고 백남기 농민 사건)를 놓고 치열하게 논의했던 것 같다. 민중총궐기 관련 국가 손해배상소송 취하 권고를 놓고 반대 의견이 있었다. 이건 너무 나가는 거라고 하더라. 허황된 권고보다는 경찰이 이행할 수 있는 권고를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반면 최대한 권고를 해서 이행하는 걸 감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오랫동안 토론했다. 처음에 이렇게 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쉬워지더라. 두 번째 권고인 쌍용차 사건에서도 국가 손배소·가압류 철회 권고를 할 수 있게 된 배경이다.” -조사단의 독립성은 유지됐나. 김 “검찰부터 말씀드리면 법무부 산하에 위원회와 조사단을 함께 둬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데, 검찰은 ‘조사단이 기록을 봐야 하기 때문에 대검에 설치해야 한다’며 강하게 주장했다. 그렇게 위원회와 조사단은 각각 법무부와 대검 산하로 설치됐다. 그런데 이후 검찰은 독립성을 보장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지원해 주지 않았다. 경찰과 달리 외부 조사단원을 비상근으로 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면 조사단 단장을 뽑고 단장이라도 상근으로 둬야 소통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그것마저 거부당했다. 결국 조사단은 고립됐다.” -위원회가 중간에서 역할을 할 수는 없었나. 김 “조사단은 대검이 뭘 안 해 주니 위원회밖에 없는데, 위원회도 ‘우리는 모른다’라고 손을 놓다 보니 위원회와 조사단이 서로 불신하는 상황이 됐다. 위원회라도 법무부에 의견을 개진했어야 했는데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 이 모든 게 검찰이 원한 구조가 아니었나 싶다.” -경찰은 독립성이 보장됐나. 박 “경찰은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를 한 번 들여다본 적이 있다. 지금과 다른 구조이긴 하지만 좀더 나은 방식이 뭔지 합의하기가 쉬웠다. 다만 독립적으로 운영됐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협조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진상조사팀이 굉장히 많은 키워드를 입력해서 발견한 것들을 요구하는데, 정보는 폐기가 원칙이라면서 ‘(관련 자료가) 없다’고 하면 얻을 수가 없다. 염호석 사건에서도 어떤 경로로 정보가 올라갔는지 파악하기 위해 자료를 요구했는데 진행 중인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제공이 어렵다고 하더라.” -조사 과정에서 내부 반발도 있었다. 김 “검찰의 조직적 반발은 충분히 예상했다. 과거사위가 끝나고 더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 김 변호사는 한상대 전 총장과 윤갑근 전 고검장으로부터 각각 민사, 민·형사 소송을 당했다.) 그런데 조사단의 권한은 검찰총장의 감찰권에서 나온다. 따라서 현직 검사들의 반발은 검찰총장에 대한 항명이다. 과거사위와 조사단 활동 자체가 법령에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에 대한 도전이다. 필요하면 그 자체를 진상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침묵했다. 법무부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박 “전직 경찰은 조사를 거부하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지만 현직은 부르면 온다. 조현오, 이철성 전 청장도 다 조사를 받았다. 용산참사 당시 서울경찰청장인 김석기 의원만 조사를 안 받았던 것 같다.” -과거사 조사가 불편한 쪽에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이 많다는 등 위원회 구성을 문제 삼기도 했다. 김 “못마땅한 관점에서 트집을 잡다 보니 구성원 출신까지 거론되더라. 구성 자체가 편향되는 건 문제라고 본다. 하지만 위원 9명 중 6명은 법무부 장관이, 3명은 총장이 추천했다. 민변 출신(6명·이 중 1명은 중도 사임)이 많기는 하지만 과거 검찰 개혁과 관련해 활동했던 사람들 위주로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오히려 이분들 생각이 다르고 개성이 강해 의견 합치가 어려웠다.” 박 “진상조사위는 민변 출신이 위원장과 간사 두 명뿐이다. 위원회에는 경찰 지휘부(경찰청 차장, 기획조정관) 2명과 경찰 출신 위원도 1명이 있다. 그렇게 주장하는 건 맞지 않다.” -위원 자리는 잘해야 본전일 텐데 왜 위원을 하기로 마음먹었나. 김 “검찰개혁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과거사위 설치 권고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법무부 장관도 위원회에 들어가라고 제안을 했다. 개인적으로도 검찰권 남용을 확인하고 검찰 개혁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폭을 넓히는 기회가 될 것으로도 봤다. 그럼에도 고민이 되더라. 검찰은 과거사 조사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결국 하게 됐다.” 박 “피해자 단체가 추천해 중간에 합류했다. 조사 결과가 아무리 잘 나와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흡족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피해자 측 입장을 누군가는 전해야 한다고 봤다.” -어렵게 과거사 조사를 끝마쳤지만 검찰은 마무리가 아쉬웠다. 김 “위원 입장에서는 많이 아쉽다. 법무부 장관은 충분히 입장을 표명하고 국민에게 알릴 의무가 있는데 질문을 안 받겠다는 사소한 문제 때문에 그런(기자 없는) 기자회견을 강행했다는 게 안타깝다. 이 과거사는 장관이 직접 챙긴 일이다. 오히려 국민에게 시원하게 말씀드리고 수사가 잘못됐거나 부족했다면 왜 그랬는지 설명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국민도 납득했을 텐데 장관마저 회피했다.” -경찰은 올 초 쌍용차, 용산참사와 관련한 경찰관들의 정신적·육체적 피해에 대해 전액 지원한다고 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부터 해야 되는 것 아닌가. 박 “쌍용차 사건에 투입된 경찰관을 지난해 만났는데 노동자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인 것처럼 분노가 여전했다. 어떻게 보면 그 경찰관 역시 잘못된 시스템의 피해자일 뿐이다. 경찰 개개인에게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경찰도 시민과 마찬가지로 지원을 받는 게 맞다. 그를 치유하는 것이 전체를 위한 일일 수도 있다.”-과거사 조사를 통해 희망을 발견했다면. 김 “처음으로 검찰 캐비닛을 열어 과거 사건들의 과오를 들여다봤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검찰 구성원에 대한 경고라는 측면도 있다. 앞으로 본인이 진행한 사건이 과거사위 사건에 선정돼 조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검사는 ‘정치적인 사건을 안 하면 문제없겠지’라고 잘못된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이번에 조사한 ‘선임계 미제출 변론’(몰래변론) 사건처럼 정치권력과 관계없이 검사가 어떻게 부패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건도 있었다. 권한 남용으로 검찰 스스로 부패할 수 있는 부분도 개선돼야 한다. 국민 모두가 과거사위 위원이 될 때 검찰이 나아질 것이다.” 박 “경찰과 1년 넘게 일하다 보니 한 번 방향을 잘 잡으면 거대한 조직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걸 봤다. 하지만 그 큰 조직은 변하는 것도 쉽게 변한다. 노무현 정부 때 인권 경찰을 표방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 싹 바뀌었다. 당시 현장에서 경찰관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 세상이 바뀐 거 모르시냐고. 이번 기회에 제도화해서 다시는 과거로 회귀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막말 영상’ 한국콜마 회장 나흘 만에 초스피드 사퇴

    ‘막말 영상’ 한국콜마 회장 나흘 만에 초스피드 사퇴

    “여성들께 진심 사죄… 경영서 손 뗀다” 불매운동 확산·주가 급락에 진화나서‘막말·여성 비하 동영상 상영’ 논란을 불러일으킨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11일 대국민 사과와 함께 회사 경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보복 이후 불매운동이 벌어진 가운데 국내 기업 최고경영자가 이와 관련한 처신이 문제가 돼 사퇴까지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회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내곡동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제 개인의 부족함으로 일어난 일이기에 모든 책임을 지고 이 시간 이후 회사 경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여성분들께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이번 일로 많은 심려와 상처를 드린 저의 과오는 무겁게 꾸짖어 주시되 현업에서 땀 흘리는 임직원과 회사에는 격려를 부탁드린다”며 “이번 제 잘못에 대해 주신 모든 말씀을 겸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가슴속 깊이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윤 회장은 지난 7일 직원조회에서 임직원 700여명을 대상으로 문재인 정부의 대(對)일본 대응을 비난하는 극보수 성향의 유튜브 영상을 틀어 논란이 됐다. 이 소식은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윤 회장이 시청하게 한 영상에는 “아베가 문재인의 면상을 주먹으로 치지 않은 것만 해도 너무나 대단한 지도자임에 틀림이 없다”, “누가 뭐래도 일본은 좋든 싫든 우리에게 근대화를 시작시켜 준 존재”, “베네수엘라의 여자들은 단돈 7달러(약 8460원)에 몸을 팔고 있다. 그리고 곧 우리나라도 그 꼴이 날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논란이 거세지자 한국콜마가 지난 9일 “감정적 대응 대신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자는 취지였다”며 공식 사과했지만 한국콜마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하는 등 파문이 가라앉지 않았다. 한국콜마의 주가도 급락했다. 이날 코스피시장에서 한국콜마 주가는 전날(8일)보다 4.88%(2450원) 하락한 4만 775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윤 회장이 한국콜마홀딩스 공동대표를 사퇴하면서 지주사인 한국콜마홀딩스는 김병묵 공동대표가 단독대표로 경영을 이어 갈 계획이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검찰개혁론자’ 조국, ‘검찰주의자’ 윤석열과 호흡 맞을까

    ‘검찰개혁론자’ 조국, ‘검찰주의자’ 윤석열과 호흡 맞을까

    조, 검찰 괴물 지칭·살인검 사용 등 표현 수많은 저서·논문 등서 개혁 필요성 주장 윤 총장은 청문회서 구체적 의견 안 밝혀 수사권 조정 놓고 의견 안 맞을 가능성도검찰을 ‘괴물’이라고 표현한 ‘검찰개혁론자’ 조국(54)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검찰주의자’로 불리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손발을 맞춰 검찰 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까. 조 후보자가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되면서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호흡이 맞을지 법조계 안팎의 관심이 쏠린다.청와대는 조 후보자를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검찰개혁을 완수할 적임자로 판단하고 법무부 장관에 지명했다. 관련 법안은 11월 국회 본회의에 자동으로 상정된다. 법안 통과까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하는 것에 대한 비난을 감수하고 조 후보자를 장관으로 지명했다. 조 후보자의 2011년 저서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를 보면 조 후보자는 검찰을 괴물이라고 지칭하며 ‘살인검을 휘두른다’고 표현했다. 조 후보자는 “민주사회에서 통제받지 않는 괴물을 방치해 둘 순 없다. 이 괴물의 권한을 분산시켜 힘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을 군사정권 시절의 하나회에 견주며 ‘인피를 벗기는 형벌에 준하는 검찰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형법학자인 조 후보자는 수많은 저서, 논문, 칼럼, 인터뷰 등에서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밝혀 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민정수석을 맡아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만들어 냈다. 지난해 6월 정부가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1차 수사권과 종결권을 부여하는 수사권 조정안을 발표할 때도 직접 설명하고 기자들 질문을 받았다. 지명 직후 소감을 밝히며 “서해맹산(誓海盟山)의 정신으로 공정한 법질서 확립, 검찰 개혁, 법무부 혁신 등 소명을 완수하겠다”며 검찰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반면 윤 총장은 ‘검찰주의자’이자 ‘원칙주의자’로 불린다. 인사청문회에서 수사권 조정이 필요하다면서도 구체적인 의견은 밝히지 않은 상태다. 검찰 안팎에서는 윤 총장이 조직 논리를 내세우는 주장을 하지 않을지라도,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에 상정된 수사권조정 내용이 검찰의 힘을 빼는 데 방점이 찍힌 만큼 오롯이 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수사권 조정 각론을 두고 조 후보자와 윤 총장의 의견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윤 총장은 인사청문회에서 검경의 상호 협력을 강조하면서 “검경의 의사가 일치하지 않을 때는 소추권자의 의견이 우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내가 친일파·매국노? 법적 대응” 눈물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내가 친일파·매국노? 법적 대응” 눈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사죄한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부른 주옥순 엄마부대봉사단 대표가 자신을 ‘친일파’, ‘매국노’라 부른 이들에게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주옥순 대표는 8일 유튜브를 통해 “저를 친일파라 하고 매국노라 한 사람들을 찾아 법적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주옥순 대표 등 엄마부대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옆에서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중 애국국민운동대연합 등 다른 단체 회원들은 주옥순 대표 등을 향해 “매국노”라고 고함을 질렀다. 한 남성은 주옥순 대표를 향해 항의하며 밀가루가 든 봉지를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의 제지로 주옥순 대표는 밀가루를 맞지는 않았다. 또 시민단체 겸 인터넷 언론 ‘서울의 소리’의 백은종 대표는 주옥순 대표에게 다가가 “매국노”라고 외치고 밀친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다. 목 보호대를 차고 유튜브 방송을 진행한 주옥순 대표는 “나를 친일파라 하고 매국노라 한 사람들을 다 녹화했다. 이번만은 참지 않고 법적 대응하겠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9일 방송에서도 주옥순 대표는 “내가 이완용이냐, 나라를 팔아먹었느냐”면서 “주사파 ××들이 반일 감정을 선동하는 것은 북한을 옹호하기 위해서다”라고 주장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마약투약‘ 로버트할리 징역형 집행유예 구형…“죽을 때까지 반성”

    ‘마약투약‘ 로버트할리 징역형 집행유예 구형…“죽을 때까지 반성”

    검찰 “초범이고 자백·반성하고 있다”마약 투약 혐의로 기소된 방송인 하일(미국명 로버트 할리·61)씨에게 검찰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9일 서울서부지법 형사1단독 이승원 판사 심리로 열린 하씨의 첫 공판에서 “초범이고 자백과 반성을 하고 있다”며 집행유예를 구형했다. 하씨는 법정에서 제기된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하며 반성한다고 밝혔다. 그는 최후 변론에서 울먹이며 “어려서부터 모범생으로 살았고 결혼 뒤 모범적 아버지로 노력했다. 순간 잘못된 생각으로 모든 사람을 실망시켰다”면서 “아들들이 아빠를 존경했는데 그마저 다 잃었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을 실망시켰다”면서 “앞으로 제가 어떻게 사죄해야할지 모르겠다. 사과드리면서 죽을 때까지 반성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씨는 지난 3월 중순 서울 자택에서 인터넷으로 필로폰 1g을 구매한 뒤 같은 날 외국인 지인 A(20) 씨와 함께 투약하고 이후 홀로 자택에서 한 차례 더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4월 서울 강서구 한 주차장에서 하씨를 체포했다. 경찰은 하씨 집에서 필로폰 투약에 사용된 주사기도 압수했다. 검찰은 하씨와 함께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구형했다. A씨 측 변호인은 “A씨와 하씨는 한 달에 두번가량 만나 술 마시는 친구 사이였다”며 “A씨는 구매한 것이 필로폰인지와 투약하는 방법도 몰랐다. 하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씨는 재판이 열리기 전 법정 앞에서 취재진을 만나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성실히 재판을 받겠다”고 말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김필 시술 고백 “현기증 날 정도..시술 부위 기억 안 나”

    김필 시술 고백 “현기증 날 정도..시술 부위 기억 안 나”

    가수 김필이 과거 성형 시술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지난 8일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4’에 출연한 김필은 ‘슈퍼스타K’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 당시 보톡스와 필러 시술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김필은 “오디션 프로그램 특성상 한두 달 사이 큰 변화를 줘야 했다. 운동도 하고, 성형외과에서 주사도 많이 맞았다”라고 밝혔다. 김필의 갑작스러운 성형시술 고백에 MC들은 “뭘 맞았냐”, “어딜 맞았냐” 등 질문을 쏟아냈다. 이에 김필은 “보톡스와 필러를 맞았다”라며 “이마, 코 부위를 맞은 거 같은데, (맞은 부위를) 정확히 기억 못 하는 게 너무 많이 맞아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필은 또 “그때 맞아서 지금 이 정도”라며 “처음에 맞을 땐 너무 어지럽고 당황스러웠는데, 조금 지나 자리를 잡으니까 ‘이래서 맞는구나’ 싶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사진=KBS2 ‘해피투게더4’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75년前이나, 지금이나 반복되는 일본의 과오

    75년前이나, 지금이나 반복되는 일본의 과오

    일본 제국 패망사/존 톨런드 지음/박병화, 이두영 옮김/글항아리/1400쪽/5만 8000원 “짐의 선량하고 충성스런 국민에게. 오늘날 세계 대세와 일본 제국의 실태를 깊이 고려해 본 후 짐은 비상 조치를 취함으로써 현 상황을 타개해 나가도록 결정했다….”1945년 8월 15일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온 카랑카랑하고 비현실적인 ‘학’(일왕을 상징)의 목소리를 들은 수백만명의 일본인은 동시에 눈물을 흘렸다. 수년에 걸친 태평양전쟁도 이렇게 막을 내렸다. 태평양전쟁은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었지만, 우리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조선인 수십만명이 징용돼 머나먼 타국으로 끌려갔다. 젊은 여성들은 일본군의 성 노리개가 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75년이 지났지만, 전쟁의 상흔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일본은 가해 사실에 대해 사과는커녕 외면하고 있고, 강제 징용에 대한 피해자 배상을 요구하자 우리에게 경제보복을 하고 있다. 일본의 이런 행태를,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태평양전쟁을 통해 가늠할 만한 책이 나왔다. 1970년 출간했지만 이제서야 한국에 번역 출간된 세계적인 전쟁사학자 존 톨런드(1912~2004)의 ‘일본 제국 패망사´에 손이 간 이유다. 책은 1936년부터 일본이 패망한 1945년까지 10년 동안을 무려 1400쪽에 이르는 분량에 담았다. 만주사변 이후 이어진 중일전쟁, 삼국동맹 조약, 미 교섭 결렬, 나치의 유럽 침공, 진주만 기습 전야부터 이후 벌어진 전쟁의 양상을 관통해 서술했다. 이어 일본의 말레이반도와 필리핀 상륙, 싱가포르 함락, 자바섬 장악, 미드웨이 해전, 사이판·레이테섬·이오섬 전투, 오키나와 사투, 도쿄 공습,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일왕의 항복 등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의 상승과 쇠망을 다룬다. 저자는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을 ‘기묘한 전쟁´이라 말한다. 연합함대 사령관이자 해군의 실질적인 총수였던 야마모토 이소로쿠 해군 대장은 미국과의 개전을 앞두고 “처음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우세하겠지만, 그 뒤는 장담할 수 없다”면서 전쟁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전쟁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방대한 자료와 인터뷰, 관련 인물들의 적극적 협조를 바탕으로 답을 찾는다. 당시 어전회의와 연락회의의 기록들, 타다 남은 부분으로 추정되는 고노에 전 총리의 일기, 육군 원수 스기야마의 1000쪽짜리 메모, 그리고 주요 전범과의 인터뷰 등으로 역사를 재구성했다. 일본이 대미 전쟁을 결정한 배경엔 나치 독일의 승리에 편승해 한몫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회주의적인 욕심,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한 수뇌부의 판단 오류 등이 조합된 결과라고 봤다. 결국 300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패했다. 책은 방대한 분량이지만, 사건에 관한 세밀한 설명과 인물에 관한 탁월한 묘사, 대화체 형식 구성으로 페이지를 술술 넘기게 한다. 예컨대 2·26 당시 군부의 오카다 총리대신 살해 미수 사건은 마치 소설을 읽는 느낌마저 든다. 원자폭탄 개발 과정과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장면, 그리고 이후 참상도 생생하다. 특히 원폭 투하 당시의 상황은 피해자를 옮겨 가며 오히려 담담하게 묘사한 것이 오히려 오싹하다. 원폭 투하 이후 도쿄 최상층부에서 일왕을 두고 벌이는 암투 역시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저자는 책을 쓴 이유를 두 가지 들었다. 우선 태평양전쟁 당시에 관한 새롭고 중요한 기록들이 1970년대 나왔다는 점,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점을 들었다. 당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는 “일본 측은 전쟁을 통해 중국인에게 저지른 심각한 피해에 대한 책임을 날카롭게 알아채고, 스스로 깊게 책망한다”고 중국에 사과했던 때다. 그러나 책이 세상에 나온 뒤 일본의 태도는 분명히 후퇴했다. 우경화가 가속하고, 과거사를 문제 삼았다는 이유로 경제보복을 서슴없이 해대는 지금의 일본을 본다면 저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김필 “오디션 프로그램 당시 시술 많이 해..현기증 날 정도”

    김필 “오디션 프로그램 당시 시술 많이 해..현기증 날 정도”

    ‘해투4’ 김필이 충격 고백을 한다. 8일 방송되는 KBS 2TV ‘해피투게더4’(이하 ‘해투4’)는 ‘8월의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꾸며진다. 이날 방송에는 귀가 황홀한 음악으로 무더위를 날려줄 뮤지션 정재형, 윤민수, 소유, 벤, 김필, 정승환이 출연할 예정이다. 그중에서도 순수 예능에 처음 출연한 김필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황홀한 음색으로 사랑받고 있는 김필은 최근 진행된 녹화에서도 가슴을 울리는 노래를 선보였다고. 이와 함께 거침없는 그의 입담이 모두를 빵빵 터지게 만들었다고 전해져 기대를 높인다. 특히 김필의 폭탄 발언이 스튜디오를 발칵 뒤집었다고. 김필은 “오디션 프로그램 할 때 현기증이 날 정도로 수많은 주사를 얼굴에 맞았다. 어떤 종류를 어디에 맞았는지 기억을 못 할 정도”라며 성형 시술 사실을 고백했다. 이에 출연진들은 모두 깜짝 놀라며 폭풍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이어 뮤지션계의 닮은꼴 부자에 등극한 김필이 현장 분위기에 열기를 더했다. 자신과 닮은 연예인들의 이름이 쏟아지는 가운데 김필은 “컨디션이 좋을 때는 김영광, 소지섭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컨디션이 안 좋고 안경을 쓰면 지석진과 닮은꼴이다”고 밝혀 모두를 폭소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김필은 데뷔 후 사기를 당해 어려웠던 과거 이야기, 여러 아르바이트 중 고물상에서 일했던 경험, 그의 몸속에 흐르는 특별한 음악 DNA에 대한 이야기까지. 흥미진진한 토크로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고 한다. 과연 김필의 솔직한 토크는 얼마나 큰 웃음을 선사할지 본 방송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한편, KBS2 ‘해투4’는 8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창원시, 마산음악관에 친일행적 논란 조두남 전시물 철거

    창원시, 마산음악관에 친일행적 논란 조두남 전시물 철거

    경남 창원시가 음악가 조두남의 친일 행적 논란에 따라 시립 마산음악관에 있는 조두남 기념물을 철거했다. 시는 7일 마산음악관에 전시돼 있던 조두남 흉상과 밀랍 인형 등 상징물과 그가 쓴 ‘선구자’ 악보 전시물을 이날 철거했다고 밝혔다.시는 선구자 노래 가사에 나오는 것으로 마산음악관 야외에 설치돼 있는 일송정과 용두레 우물 조형물, 기증석 등은 마산음악관 운영위원회 의견과 시민여론을 수렴한 뒤 정비하거나 철거할 예정이다. 앞서 지역 시민사회단체인 ‘열린사회희망연대’와 ‘적폐청산과 민주사회건설 경남운동본부’는 지난 6일 마산음악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두남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있는 친일 인사라며 창원시는 마산음악관에 진열된 선구자 관련 설치물과 조두남 형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마산음악관은 2003년 조두남기념관으로 개관했으나 조두남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면서 2005년 마산음악관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시는 앞으로 마산음악관에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지역 음악인을 발굴해 전시하고, 각종 음악 관련 자료를 진열하는 등 마산음악관이 음악교육 장으로 널리 이용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규종 시 문화관광국장은 “마산음악관에 전시됐던 조두남의 이번 친일행적 논란을 계기로 전시자료를 다시 점검해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내용들은 수정해 시민과 함께 음악으로 소통하는 공간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친일 가곡 ‘선구자’가 항일로… 대국민 사기”

    “친일 가곡 ‘선구자’가 항일로… 대국민 사기”

    “지역에 독립투사 흉상도 하나 없는데 세금으로 친일 인사를 기리는 것이 말이 됩니까?” ‘열린사회희망연대’와 ‘적폐청산과 민주사회건설 경남운동본부’는 6일 경남 창원시립마산음악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창원시는 마산음악관에 진열된 선구자 관련 설치물과 조두남 형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조두남은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는 친일 인사다. 그는 해방 후 마산(현 창원시)에 정착하기 전 일본이 만주에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에서 작곡가로 활동하며 징병제 등 일본을 찬양하는 가요를 보급했다. 창원시는 지난 5월 지역 출신 음악인들을 소개하는 마산음악관을 리모델링하면서 조두남 관련 기념물을 추가로 설치했다. 기존에 있던 조두남의 흉상과 피아노 치는 밀랍 인형 외에 대표작인 ‘선구자’ 악보와 그의 행적을 소개하는 글을 새로 전시했다. 친일 행적도 함께 소개했다.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상임고문은 “조두남이 해방 후 귀국하면서 창작 배경 등을 조작해 친일 인사가 만든 친일 색 짙은 곡인 ‘선구자’가 마치 항일 노래인 것처럼 대국민 사기극을 벌여 왔다”고 주장했다. 선구자는 독립운동가를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라 일본과 일제의 앞잡이로 독립군을 토벌하는 데 앞장선 ‘간도특설대’나 일제 식민지인 만주를 개척하는 데 첨병 역할을 한 ‘오족 협화회’ 등 친일 조선인들을 지칭하는 호칭이었다고 지적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 “아베 수상님에 사죄…지도자 무지”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 “아베 수상님에 사죄…지도자 무지”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대응으로 전국적으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한 보수성향 단체 대표가 아베 신조 총리를 향해 사과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6일 유튜브 채널 ‘엄마방송’에 올려진 영상을 보면 엄마부대봉사단(이하 엄마부대)의 주옥순(66) 대표와 회원 10여명은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문재인 정권은 일본 정부에 사과하라’, ‘반일 감정 조장은 대한민국 공산화 전략이다’, ‘반일 감정을 조장한 문재인 (대통령)을 탄핵하라’고 외치며 오히려 정부 대응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주 대표는 이 자리에서 “아베 수상님, (한국의) 지도자가 무력해서, 무지해서 한일 관계의 모든 것을 파괴한 것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주 대표는 또 “우리 국민들은 정말 좋은 이웃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면서 “과거는 과거이고 현재에서 미래로 가야 한다. 과거에 매여있는 지금의 종속·이념적 사고를 가진 주사파 정권은 국민이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목솔리를 높였다. 일본 정부의 백색 국가(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에 앞서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서 주 대표는 “내일 하는 화이트 리스트(배제 결정)에 우리 국가를 절대로 제외하지 마시고 간절한 호소를 들어주시기를 부탁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엄마부대는 보수를 표방하는 단체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를 하거나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집회에 맞서 비판 집회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조선을 강제 합병한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다. 뒤이어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어 한반도를 군수기지화해 무자비한 수탈을 감행한다. 조선 청년 40만명이 징병으로, 72만명은 징용으로 끌려가 이역만리에서 죽거나 죽을 고생을 했다. 특히 제주도는 육지가 당한 수탈에 더해 중국 침략의 전초기지로, 일본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이중 삼중의 피해를 입게 됐다.●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띠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넓은 감자밭에 수십 개의 풀무덤들이 작은 오름과 같이 펼쳐져 있다. 자세히 보면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띠를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들이다. 그 옆에 마련된 넓은 벌판은 과거 활주로의 흔적이다. ‘아래 펼쳐진 벌판’이라는 뜻의 ‘알뜨르’ 비행장은 1937년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을 폭격하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난징 폭격은 일본 나가사키현에 기지를 둔 오무라항공대가 담당했다. 나가사키에서 이륙한 항공대는 난징을 폭격하고 알뜨르에 착륙, 연료와 폭탄을 보충해 이튿날 다시 난징을 폭격한 후 나가사키로 귀환했다. 총 36회 출격, 300여t의 폭탄을 투하해 난징의 도시 시설 89%를 파괴했다. 폭격에 뒤이어 진주한 일본 육군은 3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8만명의 여성들을 강간했다. 아직도 중일 간에 해결이 안 된 ‘난징대학살’이다. 1941년 일제는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을 도발했다. 초기에는 우세했지만 곧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반격에 밀리게 된다. 1944년 4월, 8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미군은 오키나와를 함락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1만 5000명, 일본군 6만 5000명이 전사하고 섬 주민 20만여명 중 12만명이 사망했다. 그해 11월부터 대대적인 일본 본토 공습이 시작됐다. 미군의 이른바 ‘몰락작전’의 시작이었다. 이 작전은 공습으로 일제를 무력화한 후 일본 규슈와 혼슈를 차례로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이에 대응해 일제는 전원 죽음으로 본토를 수호한다는 ‘결○호작전’을 펼친다. 일본 본토를 1호부터 6호까지 나누어 방어하고 7호는 제주도가 맡는다는 내용이다. 일제는 미군이 곧 제주도에 상륙하리라 예상했고, 제주도를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삼았다. 제주도는 이른바 ‘결7호작전’의 작전지가 돼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대대적인 노역에 시달린다. 알뜨르 외에도 여러 곳에 군사비행장을 만들고 훈련장과 포대, 대피소, 특공대 기지 등을 섬 전체에 건설했다. 대부분의 군사시설은 지하로 파들어 간 진지동굴이었는데, 제주도 내 총 360여개의 오름 중 160여개에 지하 진지를 구축했다. 58군 사령부 예하에 5개 사단, 보병 5만 8000명, 포병과 기갑부대 1만 6000명이 주둔했다. 이는 한반도 전체에 주둔한 군대보다 많은 숫자이며 10만명이 주둔했던 오키나와에 육박하는 규모였다.●모슬포 마을 주민 5000여명 강제 동원해 격납고 38개 지어 알뜨르비행장이 있는 모슬포 일대는 결7호작전의 핵심지역이었다. 비행장은 1944년부터 활주로를 늘리는 등 대대적으로 확장했고 이때 지은 격납고 38개 중 20개가 잔존하고 있다. 매일 주민 5000여명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 결과였다. 격납고는 폭 10m, 길이 20m, 높이 4m의 반원통형 구조로, 전투기에 꽉 끼는 옷과 같은 최소한의 크기이다. 30~80㎝ 두께의 매우 견고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서, 공중 관측을 피하기 위해 지붕에 풀을 덮어 위장했다. 여기에 숨긴 전투기는 일본의 주력인 제로센이었다. 제로센은 기체의 무게를 과감하게 줄여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고 개전 초기에 우수한 전과를 거두었다.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저출력 경량엔진을 장착하고 보호용 장갑판을 제거했다. 그래서 민첩함은 얻었으나 속도가 느려 쉽게 노출되고 적기의 공격에 취약한 문제가 있었다. 전쟁 말기에는 급기야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의 운송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알뜨르의 격납고들은 모두 가미카제 특공대를 위한 위장 보호시설이었다.격납고 인근에 지하 벙커가 남아 있다. 터널같이 긴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에 3~5m 두께의 잡석들을 쌓아 인공 둔덕을 만들었다. 풀을 심은 둔덕은 얼핏 동산같이 보이지만 벙커 내부는 수십 명이 너끈히 들어가 작전을 펼 수 있다. 환기용 굴뚝과 배수로, 별도의 설비관로까지 설치한 모습으로 보아 아마도 중요한 통신시설로 쓰인 듯하다. 활주로 반대 송악산 쪽으로 3개의 작은 오름이 연달아 있는데 이를 통틀어 셋알오름이라 부른다. 이 오름 정상부에는 고사포진지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땅을 파고 지름 6m의 원통형 콘크리트 진지를 구축했다. 원통의 중심부에 고사포를 설치해 360도 회전하며 적기를 공격할 수 있었다. 현재 포좌는 없어지고 원통부만 남아 하늘에서 보면 마치 숲속에 뚫린 원형탈모 상흔과 같다. 모두 5기를 배치했는데 하나는 미완성이며 2기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인근 송악산의 원래 이름은 ‘절울이오름’으로 ‘물결이 우는 소리를 듣는 오름’이란 뜻이었다. 바다 위에 솟은 대단한 절경이지만 60여기의 일제 동굴진지가 여기저기 뚫린 상처 입은 오름이다. 화순포구 쪽에서 보면 인공적으로 뚫은 해안동굴들이 절경을 훼손하고 있다. 총 15기의 해안동굴에는 1인용 모터보트들을 주둔시켰는데, 선두에 250㎏의 폭약을 싣고 적함에 돌진해 자폭하는 특공함이었다. 합판으로 선체를 만들고 자동차 엔진을 달았다니 애초부터 돌아오지 못하는 1회용 자살함정이었다. 하늘에 가미카제가 있었다면, 바다에는 인간어뢰라고 불린 가이텐 특공대가 있었다. 모두 나 죽고 너 죽자 식의 무모한 전술이며 최후 발악의 광기였다.●“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다시 봐야 할 이유 전쟁은 건축을 파괴하지만, 그래도 군사용 시설은 건설된다. 1940년대 제주에 남겨진 알뜨르비행장의 격납고나 지하 벙커, 고사포진지, 해안동굴 진지들은 여러 감상을 불러온다. ‘이 땅과 민족을 희생시켜 일본의 영토를 지킨다?’ 일제에 분노가 치밀지만 이 지경까지 당하게 된 역사적 수치심이 앞선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이 수치 유산들을 둘러보고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왜 이 땅에 이런 것들이 세워졌으며 어쩌다 그러한 역사에 처하게 됐는가. 어두운 체험과 불쾌한 사유의 여정을 일컬어 다크 투어리즘이라 한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제주의 일제군사시설은 거의 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인장력(당기는 힘)에 강한 철근과 압축력(누르는 힘)에 강한 콘크리트를 합쳐 천하무적이 된 건축 재료다. 20세기 초 발명한 이 재료는 강하기는 강철 같지만 밀가루 반죽과 같이 어떤 형태든지 만들 수 있다. 알뜨르의 격납고는 공중폭격에 가장 강한 반원통 구조로 지어졌다. 지하 벙커는 수m 두께의 토압을 견디고 내부 통행이 가능하도록 아치형 터널로 만들었다. 철저하게 기능적이며, 단순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건축은 죄가 없다. 하지만 이를 만들고 사용한 인간들의 탐욕과 광기는 용서 못 할 죄악이다. 식민지근대화론도 그렇다. 일제는 이 땅에 항만, 철도, 공장 등 근대적 시설을 지었다. 해방 후 근대화는 그 혜택의 연장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누가 차지했는지 손익 계산을 해야 한다. 그러면 식민지근대화는 허구이며 식민지수탈이 있을 뿐이다. 2차대전 직전에 프랑스 국방장관 앙드레 마지노는 350㎞ 길이의 초대형 철근콘크리트 지하 진지를 완성했다. 참호전으로 점철했던 1차대전의 교훈에서 얻은 방어선이었다. 그러나 개전과 동시에 독일군은 탱크를 앞세운 기동력으로 마지노선을 돌파, 이를 무력화했다. 마지노선 건설은 지상 최대의 삽질로 비웃음거리가 됐다. 일제의 전략은 무모하고 시설은 어리석다. 전원 옥쇄란 사무라이 싸움에서나 있을 법한 전략이다. 총길이 15㎞에 달하는 제주 내 동굴 진지들도 자학적이다. 내부에 아무 지원시설 없어 단 며칠도 버티기 어려운 동굴에서 미군의 첨단 전투력을 어찌 대항하나. 가미카제나 가이텐 특공대의 성공 확률은 얼마나 높을까. 통계에 따르면 특공대 1명의 자폭으로 미군 1명을 사살했을 정도라 한다. 전쟁의 실체를 모르는 시대착오적 전술은 얼마나 허망한가. 해방 74년, 일제가 남긴 알뜨르의 군사건축이 던지는 역설적 교훈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조선을 강제 합병한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다. 뒤이어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어 한반도를 군수기지화해 무자비한 수탈을 감행한다. 조선 청년 40만명이 징병으로, 72만명은 징용으로 끌려가 이역만리에서 죽거나 죽을 고생을 했다. 특히 제주도는 육지가 당한 수탈에 더해 중국 침략의 전초기지로, 일본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이중 삼중의 피해를 입게 됐다.●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띠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넓은 감자밭에 수십 개의 풀무덤들이 작은 오름과 같이 펼쳐져 있다. 자세히 보면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띠를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들이다. 그 옆에 마련된 넓은 벌판은 과거 활주로의 흔적이다. ‘아래 펼쳐진 벌판’이라는 뜻의 ‘알뜨르’ 비행장은 1937년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을 폭격하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난징 폭격은 일본 나가사키현에 기지를 둔 오무라항공대가 담당했다. 나가사키에서 이륙한 항공대는 난징을 폭격하고 알뜨르에 착륙, 연료와 폭탄을 보충해 이튿날 다시 난징을 폭격한 후 나가사키로 귀환했다. 총 36회 출격, 300여t의 폭탄을 투하해 난징의 도시 시설 89%를 파괴했다. 폭격에 뒤이어 진주한 일본 육군은 3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8만명의 여성들을 강간했다. 아직도 중일 간에 해결이 안 된 ‘난징대학살’이다. 1941년 일제는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을 도발했다. 초기에는 우세했지만 곧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반격에 밀리게 된다. 1944년 4월, 8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미군은 오키나와를 함락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1만 5000명, 일본군 6만 5000명이 전사하고 섬 주민 20만여명 중 12만명이 사망했다. 그해 11월부터 대대적인 일본 본토 공습이 시작됐다. 미군의 이른바 ‘몰락작전’의 시작이었다. 이 작전은 공습으로 일제를 무력화한 후 일본 규슈와 혼슈를 차례로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대응해 일제는 전원 죽음으로 본토를 수호한다는 ‘결○호작전’을 펼친다. 일본 본토를 1호부터 6호까지 나누어 방어하고 7호는 제주도가 맡는다는 내용이다. 일제는 미군이 곧 제주도에 상륙하리라 예상했고, 제주도를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삼았다. 제주도는 이른바 ‘결7호작전’의 작전지가 돼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대대적인 노역에 시달린다. 알뜨르 외에도 여러 곳에 군사비행장을 만들고 훈련장과 포대, 대피소, 특공대 기지 등을 섬 전체에 건설했다. 대부분의 군사시설은 지하로 파들어 간 진지동굴이었는데, 제주도 내 총 360여개의 오름 중 160여개에 지하 진지를 구축했다. 58군 사령부 예하에 5개 사단, 보병 5만 8000명, 포병과 기갑부대 1만 6000명이 주둔했다. 이는 한반도 전체에 주둔한 군대보다 많은 숫자이며 10만명이 주둔했던 오키나와에 육박하는 규모였다.●모슬포 마을 주민 5000여명 강제 동원해 격납고 38개 지어 알뜨르비행장이 있는 모슬포 일대는 결7호작전의 핵심지역이었다. 비행장은 1944년부터 활주로를 늘리는 등 대대적으로 확장했고 이때 지은 격납고 38개 중 20개가 잔존하고 있다. 매일 주민 5000여명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 결과였다. 격납고는 폭 10m, 길이 20m, 높이 4m의 반원통형 구조로, 전투기에 꽉 끼는 옷과 같은 최소한의 크기이다. 30~80㎝ 두께의 매우 견고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서, 공중 관측을 피하기 위해 지붕에 풀을 덮어 위장했다. 여기에 숨긴 전투기는 일본의 주력인 제로센이었다. 제로센은 기체의 무게를 과감하게 줄여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고 개전 초기에 우수한 전과를 거두었다.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저출력 경량엔진을 장착하고 보호용 장갑판을 제거했다. 그래서 민첩함은 얻었으나 속도가 느려 쉽게 노출되고 적기의 공격에 취약한 문제가 있었다. 전쟁 말기에는 급기야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의 운송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알뜨르의 격납고들은 모두 가미카제 특공대를 위한 위장 보호시설이었다.격납고 인근에 지하 벙커가 남아 있다. 터널같이 긴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에 3~5m 두께의 잡석들을 쌓아 인공 둔덕을 만들었다. 풀을 심은 둔덕은 얼핏 동산같이 보이지만 벙커 내부는 수십 명이 너끈히 들어가 작전을 펼 수 있다. 환기용 굴뚝과 배수로, 별도의 설비관로까지 설치한 모습으로 보아 아마도 중요한 통신시설로 쓰인 듯하다. 활주로 반대 송악산 쪽으로 3개의 작은 오름이 연달아 있는데 이를 통틀어 셋알오름이라 부른다. 이 오름 정상부에는 고사포진지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땅을 파고 지름 6m의 원통형 콘크리트 진지를 구축했다. 원통의 중심부에 고사포를 설치해 360도 회전하며 적기를 공격할 수 있었다. 현재 포좌는 없어지고 원통부만 남아 하늘에서 보면 마치 숲속에 뚫린 원형탈모 상흔과 같다. 모두 5기를 배치했는데 하나는 미완성이며 2기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인근 송악산의 원래 이름은 ‘절울이오름’으로 ‘물결이 우는 소리를 듣는 오름’이란 뜻이었다. 바다 위에 솟은 대단한 절경이지만 60여기의 일제 동굴진지가 여기저기 뚫린 상처 입은 오름이다. 화순포구 쪽에서 보면 인공적으로 뚫은 해안동굴들이 절경을 훼손하고 있다. 총 15기의 해안동굴에는 1인용 모터보트들을 주둔시켰는데, 선두에 250㎏의 폭약을 싣고 적함에 돌진해 자폭하는 특공함이었다. 합판으로 선체를 만들고 자동차 엔진을 달았다니 애초부터 돌아오지 못하는 1회용 자살함정이었다. 하늘에 가미카제가 있었다면, 바다에는 인간어뢰라고 불린 가이텐 특공대가 있었다. 모두 나 죽고 너 죽자 식의 무모한 전술이며 최후 발악의 광기였다.●“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다시 봐야 할 이유 전쟁은 건축을 파괴하지만, 그래도 군사용 시설은 건설된다. 1940년대 제주에 남겨진 알뜨르비행장의 격납고나 지하 벙커, 고사포진지, 해안동굴 진지들은 여러 감상을 불러온다. ‘이 땅과 민족을 희생시켜 일본의 영토를 지킨다?’ 일제에 분노가 치밀지만 이 지경까지 당하게 된 역사적 수치심이 앞선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이 수치 유산들을 둘러보고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왜 이 땅에 이런 것들이 세워졌으며 어쩌다 그러한 역사에 처하게 됐는가. 어두운 체험과 불쾌한 사유의 여정을 일컬어 다크 투어리즘이라 한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제주의 일제군사시설은 거의 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인장력(당기는 힘)에 강한 철근과 압축력(누르는 힘)에 강한 콘크리트를 합쳐 천하무적이 된 건축 재료다. 20세기 초 발명한 이 재료는 강하기는 강철 같지만 밀가루 반죽과 같이 어떤 형태든지 만들 수 있다. 알뜨르의 격납고는 공중폭격에 가장 강한 반원통 구조로 지어졌다. 지하 벙커는 수m 두께의 토압을 견디고 내부 통행이 가능하도록 아치형 터널로 만들었다. 철저하게 기능적이며, 단순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건축은 죄가 없다. 하지만 이를 만들고 사용한 인간들의 탐욕과 광기는 용서 못 할 죄악이다. 식민지근대화론도 그렇다. 일제는 이 땅에 항만, 철도, 공장 등 근대적 시설을 지었다. 해방 후 근대화는 그 혜택의 연장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누가 차지했는지 손익 계산을 해야 한다. 그러면 식민지근대화는 허구이며 식민지수탈이 있을 뿐이다. 2차대전 직전에 프랑스 국방장관 앙드레 마지노는 350㎞ 길이의 초대형 철근콘크리트 지하 진지를 완성했다. 참호전으로 점철했던 1차대전의 교훈에서 얻은 방어선이었다. 그러나 개전과 동시에 독일군은 탱크를 앞세운 기동력으로 마지노선을 돌파, 이를 무력화했다. 마지노선 건설은 지상 최대의 삽질로 비웃음거리가 됐다. 일제의 전략은 무모하고 시설은 어리석다. 전원 옥쇄란 사무라이 싸움에서나 있을 법한 전략이다. 총길이 15㎞에 달하는 제주 내 동굴 진지들도 자학적이다. 내부에 아무 지원시설 없어 단 며칠도 버티기 어려운 동굴에서 미군의 첨단 전투력을 어찌 대항하나. 가미카제나 가이텐 특공대의 성공 확률은 얼마나 높을까. 통계에 따르면 특공대 1명의 자폭으로 미군 1명을 사살했을 정도라 한다. 전쟁의 실체를 모르는 시대착오적 전술은 얼마나 허망한가. 해방 74년, 일제가 남긴 알뜨르의 군사건축이 던지는 역설적 교훈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간염 ABC… 감기 같은 A형·출산 중 수직 감염 B형·예방주사 없는 C형

    간염 ABC… 감기 같은 A형·출산 중 수직 감염 B형·예방주사 없는 C형

    A형 간염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4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이달 기준 A형 간염 환자는 1만 104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772명)보다 6.2배 늘었다. A형 간염 환자가 1만명을 넘어선 것은 2009년(1만 5231명) 이후 처음이다. 특히 항체가 없는 30~40대가 비상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젊은층의 A형 간염 항체형성률이 떨어져 감염자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위생 상태가 불량했던 1980년대 초에는 10대가 되면 A형 간염에 자연감염돼 항체가 생겼다. 6살 이하의 아동은 감염되더라도 대개 감기처럼 가볍게 앓고 지나가기에 나도 모르게 걸리고, 나도 모르게 항체를 얻었던 것이다. ●항체 없는 3040 A형 간염 비상 1997년 A형 간염 예방접종이 도입됐고 2015년부터는 2012년 이후 출생한 모든 소아에 대해 국가예방접종이 시행돼 현재 10대와 20대 초반은 A형 간염 항체가 있다. 문제는 위생 상태가 개선된 다음에 태어나 A형 간염에 걸려 본 적도, 예방접종을 한 적도 없는 30~40대다. 2015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보면 30대의 항체형성률은 31.8%에 불과하다. 10명 중 7명은 A형 간염의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A형 간염 바이러스는 다른 간염과 달리 오염된 음식이나 식수, 또는 감염자의 분변과 직접 접촉했을 때 전염된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제조돼 국내에서 추가 가공한 조개젓에서 A형 간염 바이러스 유전자가 검출됐다. 항체가 없는 사람이 오염된 음식을 먹으면 A형 간염에 걸릴 수 있다. 전대원 한양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A형 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평균 28일 정도의 잠복기를 거쳐 증상이 나타나는데, 증상 발현 2주 전부터 증상 발현 후 8일까지 전염력이 있어 증상이 나타나기 전 환자가 감염 여부를 인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환자가 늘고 있지만 다행히 A형 간염은 간염 중에서 증상이 가장 가벼운 편이다. 어린이는 감기처럼 앓고, 성인은 식욕 감퇴, 구역, 구토, 전신 쇠약, 고열, 복통, 설사 등의 심한 몸살감기 증상을 보인다. 또 10명 중 7명은 황달 등 간 기능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좀 심하게 앓더라도 이런 급성간염 증상은 대증요법으로 6개월 내에 치료할 수 있다. A형 간염은 99%의 환자에게서 급성간염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드물게 간성혼수 등을 동반한 급성간부전으로 빠르게 악화하기도 하며 이 경우 간이식을 하지 않으면 위험해진다. 가장 중요한 예방책은 위생관리다. 85도 이상에서 1분간, 조개류는 90도에서 4분간 가열하기만 해도 A형 간염 바이러스를 없앨 수 있다. 채소, 과일은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겨 먹어야 하며, 식수 오염이 의심된다면 끓여 마시거나 시중에서 판매하는 생수를 마시는 편이 좋다. ●150만명이 B형 간염 보균자 최근 A형 간염이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에는 B형 간염 환자가 더 많다. 보고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8%가 B형 간염에 걸린 것으로 추산된다. 150만명 이상이 보균자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주로 출생 중 모체로부터 수직 감염된다. 병원체는 태반을 직접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임신 중에 태아가 감염되는 일은 많지 않지만, 출산 과정이나 직후에 산모의 혈액이나 체액에 다량 노출돼 전염된다. 이 시기는 체내의 면역체계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시점이라 바이러스가 제거되지 않고 오랫동안 간에서 증식할 수 있다. 이 경우 만성간염이 될 확률이 90%나 된다. 반면 성인은 바이러스에 오염된 주사를 맞거나 성 접촉을 통해 B형 간염에 걸린다. 오염된 면도날이나 주삿바늘, 칫솔 등을 함께 사용해도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 하지만 A형 간염처럼 음식물 섭취로는 감염되지 않는다. 기침이나 재채기, 술잔 돌려 마시기나 포옹 등의 일상생활로는 감염되지 않는다. 성인이 돼 B형 간염에 걸리면 10% 정도만 만성화되고 대부분 회복된다. 급성 B형 간염은 95% 이상이 휴식을 취하면 거의 회복된다. 만성간염은 서서히 진행하는 질환으로, 대부분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며 검사 중 우연히 알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손주현 한양대구리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간염이 급성으로 악화되거나 상당히 진행되면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가장 일반적인 것은 피로감이다. 간염이 심해질수록 피로감이 심해지고 입맛이` 떨어지며 속이 메슥거리고 구역질이 난다”고 설명했다. 특히 양치질을 할 때 구역질이 나거나 흡연자는 담배 맛이 떨어지기도 한다. 심재준 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B형 간염은 간경화나 간암 위험도가 높아 40세 이상부터는 일 년에 적어도 두 번 간 초음파 검사와 혈액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적으로 75% 이상의 원발성 간암이 만성 B형 간염자들에게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B형 간염을 예방하려면 미리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출산 후 12시간 내에 면역 항체 주사를 맞아야 한다. B형 간염은 완치될 수는 없지만 적절히 치료하면 간경화나 간암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C형 간염, 소리 없이 다가와 치명적 결과 A·B·C형 간염 가운데 가장 치명적 바이러스는 C형 간염이다. A형, B형 간염과 달리 예방주사도 없고, 초기 증상이 없다 보니 상태가 악화된 후에야 C형 간염임을 알게 된다. 자신도 언제 감염됐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만성간염이 돼도 피로감, 소화불량 외에는 특별한 증세가 없어 병을 간과하기 쉽다. 누구든 나도 모르는 새 간염에 걸려 간이 망가질 수 있다. C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자는 30만명으로 추정되며, 50~80%의 감염자가 만성으로 진행된다. 전파 경로는 B형 간염과 흡사해 주로 혈액과 체액을 통해 감염된다. 2015년 서울 양천구의 한 의원에서 주사기를 재사용해 1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집단감염되기도 했다. C형 간염은 급성으로 앓고 난 후 자연 회복되는 비율이 30~40%에 불과하다. 70% 이상이 만성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간경변증을 일으킬 확률이 매우 높다. 또 간경변증으로 진행된 환자는 B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자보다 간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다. 김형준 중앙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만성 C형 간염 환자 중 약 30%가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진행하므로 향후 B형 간염보다는 C형 간염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C형 간염을 예방하려면 환자의 혈액이 묻을 수 있는 생활기구를 함께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C형 간염 환자는 꼭 금주를 해야 하는데, 다른 간질환보다 음주가 간 기능을 악화시키고 간암 발생을 더욱 촉진하기 때문이다. 간염 바이러스는 A형, B형, C형뿐만 아니라 D형, E형도 있다. 발견된 순서대로 알파벳 A부터 E까지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D형과 E형 발병은 극히 드물고 99% 이상이 A·B·C형 간염이다. 만성간염 환자나 보유자에게는 헛개나무, 인진쑥, 돌미나리, 신선초, 민물고둥, 한약재를 섞은 붕어즙, 스콸렌 등을 민간요법으로 권장하는 일이 많은데, 의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데다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전 교수는 “간에 가장 좋은 약은 간을 쉬게 하는 것”이라며 “불필요한 약은 오히려 간에 해로울 수 있으므로 꼭 필요한 약물만을 복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리한 체중 감량도 간에 부담을 주며, 특히 체중이 급격히 줄면 몸에 필요한 비타민이나 미네랄 성분, 영양분이 부족해져 심한 지방간염이나 간부전증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홍준표 “주사파 정권의 본질은 친일청산”

    홍준표 “주사파 정권의 본질은 친일청산”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 정부를 “주사파 정권”으로 간주하면서 어떤 목적을 위해 한일 관계 악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 전 대표는 3일 페이스북에 “작년이 평화로 위장한 친북의 한해였다면 올해는 친일 청산을 내세워 반일 운동으로 날을 지새우고 내년에는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을 구실로 반미 자주화를 부르짖을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그는 “나라야 어찌 되든 말든 그들은 그렇다”며 “주사파정권의 본질은 친일청산과 반미 자주화, 우리민족끼리라는 것을 국민들은 잊어 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전 대표는 한일 갈등을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늘어놨다. 그는 “최근 한일관계에 대한 언론 논조 방향을 보니 마치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에서 보인 언론의 호들갑을 다시 보는 것 같다”며 “한일관계 악화를 초래해서 문(재인) 정권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려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홍 전 대표는 “안보는 북한의 인질이 되고 경제는 일본의 인질로 만드는 무능한 정권에 대한 지지가 올라갔다는 어느 여론조사기관의 발표를 보니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라며 “감성정치와 이미지정치가 나라를 망친다”고 주장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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