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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 당직개편 안팎-노무현 중심 체제로/민주 새 당직자 프로필

    민주당이 24일 단행한 당직 개편의 특징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후보쪽으로 당의 무게중심이 이동한 점과 주류측이 ‘비주류 껴안기’를 시도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노 후보는 재보선특위 위원장에 김근태(金槿泰) 상임고문을,정책위의장에 임채정(林采正) 의원을 추천,이를 관철시켰다. 당의 사활이 걸린 이번 재보선에서 김 위원장의 ‘클린 이미지’를 활용,한나라당의 ‘부패정권 심판론’에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재야 출신의 임 정책위 의장은 당 정책에 노 후보 색채를 입히는 일을 진두지휘할 전망이다. 비주류의 선두주자격인 박 최고위원이 한화갑(韓和甲) 대표 대신 당발전·개혁특위 위원장이 된 것은 한 대표에게 집중되는 권한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무계보인 유용태(劉容泰) 의원이 최고위원 경선에서 한 대표가 당선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김원길(金元吉) 의원 대신 사무총장 자리에 오른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한 대표는 이낙연(李洛淵) 대변인과 배기선(裵基善) 기조위원장을 ‘투톱’으로 삼아 당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정책위의장에 거명됐던 홍재형(洪在馨) 의원 등 이인제(李仁濟) 의원쪽의 인사 포용에 실패하고,쇄신파 의원들이 당무 일선에서 배제됨으로써 내분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전영우기자 anselmus@ ***민주 새 당직자 프로필 ◇유용태 사무총장= 중앙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4·19세대다.노동관료로 잔뼈가 굵은 재선의원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다.부인 송안옥(宋安玉)씨와 1남2녀.▲경기 여주(63)▲중앙대 법대 ▲노동청 공보담당관·근로기준관 ▲월간 ‘노동’발행인 ▲한국산업연수원장 ▲15·16대 의원 ▲노동부장관 ◇ 임채정 정책위의장=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의 3선 의원.해직 후 민통련 사무처장을 맡아 재야운동에 매진하다 87년 대선때 평민당에 입당했다.기획력과 추진력이 탁월하다는 평이다.부인 기영남(奇永男)씨와 2남.▲전남 나주(61) ▲고려대 법대 ▲국민회의 정세분석위원장 ▲국민회의 정책위의장 ▲14·15·16대 의원 ◇ 이낙연 대변인= 동아일보 정치부기자 출신의 초선의원.지난 4월30일 대변인직에서 물러난 지 두달도 안돼 재발탁됐다.두주불사형에 사교성이 좋다.부인 김숙희(金淑姬)씨와 1남.▲전남 영광(50) ▲광주일고,서울대 법대 ▲동아일보 도쿄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 ▲민주당 제1정조위원장,기획조정위원장
  • 캠프 24시/ 피구등 45명 어젯밤 입국

    한국의 1라운드 D조 마지막 상대인 포르투갈 대표팀이 한국에서 경기를 치르는 16개국 가운데 가장 늦은 30일 오후 9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회색 양복에 회색 넥타이로 복장을 통일한 선수들은 별도의 기자회견 없이 곧바로숙소인 서울 리츠칼튼호텔로 이동,여장을 풀었다. 이번 대회 우승후보 가운데 한팀으로 꼽히는 포르투갈선수단은 안토니우 올리베이라 감독을 선두로 지난해 지네딘 지단을 제치고 ‘FIFA 올해의 선수’로 뽑힌 루이스 피구(레알 마드리드),세계적인 명문클럽 AC밀란의 핵심 미드필더인 루이 코스타,천부적인 골잡이 누누 고메스(피오렌티나) 등 23명의 선수와 임원 등 모두 45명으로 짜여졌다. 이날 공항에는 열성팬들을 포함해,월드컵 인천·전주시민 서포터스 150여명이 나와 꽃다발을 전달하며 환영했다.선수들은 탑승한 버스 안에서 이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사진을 찍는 등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부상으로 부진했던 플레이메이커 피구는 매우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포르투갈 대표팀 관계자는 “한국과 프랑스의 평가전에서 한국이 보여준 기량에 매우 놀랐다.”며 ‘D조에서는 어느 나라가 16강에 진출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 “포르투갈과 한국이 16강전에 동반 진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말했다.“1차전 상대자인 미국팀에 대해서는 문제없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달 25일 중국대표팀과의 평가전 이후 마카오에서 마무리 훈련을 해온 포르투갈 대표팀은 서울 육사 운동장에 훈련캠프를 차린다. 안동환기자 sunstory@ ***'안정환 반지' 오늘 첫선 한국 스트라이커 안정환(페루자)의 골 세리머니 반지를본뜬 액세서리 상품이 선을 보인다.2002 한·일월드컵 액세서리 상품권자인 ㈜유미무역(대표 이태영)은 스코틀랜드전에서 결혼반지에 키스하는 독특한 골 세리머니로 눈길을 끈 안정환을 소재로 반지와 목걸이 등의 액세서리를 제작,31일부터 시판한다. ***브라질 코치 터키팀 엿보다 발각 본선 C조 첫 경기를 갖는 브라질과 터키 사이에 ‘스파이’ 공방전이 펼쳐지고 있다.29일 터키의 기자가 브라질의훈련모습을 비디오 테이프에 담아간 것을 두고 논쟁을 벌인데 이어 30일에는 브라질의 지우손 누네스 코치가 터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다가 발각된 것. 누네스 코치는 신분 확인을 요구하는 터키팀 관계자에게‘기자’라고 속였지만 터키의 칸 코바노글루 단장이 그의 신분을 알고 있어 들통이 난 것.이에 누네스는 “나는 스파이가 아니다.단지 관전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코바노글루 단장은 “모든 팀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브라질이 스파이를 보낸 것은 당연하다.”고 한마디. ***에릭손감독 미용사 팀 전속 고용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잉글랜드 대표팀이전속 미용사로 스벤 고란 에릭손 감독의 미용사 스콧 워런(20)씨를 고용해 화제다. 영국 주간지 ‘더 선’은 잉글랜드 프로축구 토튼햄의 열성팬 워런을 에릭손 감독의 애인 낸시 델 올리오가 소개시켜줬고,결국 그가 국가대표팀의 미용사로까지 채용되는 행운을 안았다고 전했다.이에 워런씨는 가장 먼저 최고 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싶다고 말해 화제.그는 “우선베컴이 현재 하고 있는 ‘혹스턴핀’(모히칸인디언 스타일)을 잘라내고 잘 어울리는 모양으로 바꿔주겠다.”면서 “뒤통수에 흰 바탕에 붉은 색 십자가가 선명한 ‘세인트 조지의 십자가’기(旗)의 문양을 넣어볼까 한다.”고 말했다. ***'부상'켈러 단순 타박상 판명 미국 대표팀의 수문장 케이시 켈러와 주장이자 플레이메이커인 클로디오 레이나,존 오브라이언 등 3명이 부상으로 30일 미사리구장에서 실시된 오전 훈련에 참가하지 못했다.마이클 캐머맨 미국팀 언론담당관은 “전날 훈련 중 팔꿈치를 다친 켈러가 숙소에서 치료 중”이라면서 “뼈에는 이상이 없는 단순 타박상이어서 조만간 정상 컨디션을 찾을 것이고 포르투갈전 출장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밝혔다. ***자체 청백전서 PK 8번이나 실축 볼의 마술사들이 모인 브라질 선수들이 29일 자체 청백전에서 페널티킥을 8차례나 실축해 체면을 구겼다.주전과 비주전급으로 나눠 펼쳐진 청백전에서 전반 호나우디뉴는 골지역에서 상대의 태클에 걸려 넘어진 뒤 페널티킥을 날렸으나 골대를벗어났고 스콜라리 감독으로부터 한번 차보라는 지시를 받은 호나우두,히바우두,주니뉴마저 잇따라 실축. 후반전에는 루이장이 역시 페널티킥을 이끌어냈지만 골로 연결하지 못했고 에디우손,루이장,클레베르손 등이 다시찼으나 이마저도 주전 골키퍼 마르쿠스의 선방에 걸렸다.스콜라리 감독은 “어떤 날은 20골도 넣었는데…”라면서“필요할 때 성공시키지 않겠느냐.”며 개의치 않는 눈치. ***폴란드출신 스님 훈련장 찾아 30일 오후 폴란드 축구대표팀이 훈련을 펼친 대전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에는 ‘벽안’의 스님들이 나타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폴란드 출신으로 계룡산 국제선원 ‘무상사’의주지인 오진(44)과 주불(36)스님으로 폴란드 선수들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폴란드 언론의 열띤 인터뷰 공세에 진땀을 뺐다.폴란드에서 경호원으로 일했다는 주불 스님은 “삶에 대한 회의를 많이 하던 지난 90년 폴란드에서 숭산 스님을 만나 배움을 얻었고 두차례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부터 계속 머물고 있다.”며 한국불교와 인연을맺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들은 “한국팀을 좋아하지만 솔직히 폴란드팀을 응원할 것”이라며 “양팀이 결승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며 입을 모았다. 이기철기자 chuli@
  • ‘한국문학통사’ 불어판 첫 출간

    조동일(63)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한국문학통사’가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 파야르 출판사에서 번역,출간됐다. 불어판 ‘한국문학통사’는 전체 5권중 1∼4권에 해당하는것으로, 한국 문학의 기원부터 1919년까지의 문학사를 한권분량으로 축약했다. 한국문학통사가 외국어로 출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불어권에는 지금까지 116종의 한국문학 작품이 번역 출판될 만큼 다른 언어권에 비해 한국문학 소개가 활발한 편이지만 작품이 현대문학에 집중됐고 특히 문학사 소개는 전무했다. 번역판은 저자인 조 교수와 대니얼 부셰(73) 전 파리7대학동양학부장이 15년간 함께 공을 들여 완성했다.부셰 씨는 한국학을 전공한 학자로 한국 가톨릭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는 등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능통하다.현재 프랑스 과학연구원 명예연구원장이자 프랑스 한국학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85년 조 교수와 부셰씨,하와이대 마셜 필 교수가 한국문학사의 전모를 체계적으로 소개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한국문학통사’를 영어와 불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같이 시작했으나 중간에 필 교수가 작고하는 바람에 중단됐었다. 외국인들이 알기 쉽도록 일부 내용을 첨가하고 개정한 게번역본의 특징.파야르 출판사는 또 불어판을 저본으로 영어판을 내는 작업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조 교수는 “현대문학 부문인 5권이 번역되지 않은 아쉬움은 있지만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한국문학의 전모를 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 교수는 오는 22일 주불 한국문화원과 24일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각각 열리는 출판 기념회와 학술 회의에 참석해 이번 출판의 의의를 설명할 예정이다. 김성호기자 kimus@
  • 서민애환 달래준 가요계 巨木

    13일 타계한 원로가수 현인씨는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 등 질곡의 현대사에서 주옥같은 노래로 대중을 위로했던 한국 가요계의 거목이었다. 약간 치겨든 턱을 떨며 음절음절 끊어부르는 독특한 그의 창법은 후배 가수와 코미디언들이 두고두고 모사(模寫)할 만큼 독특했던 건 물론이고 신세대들에게까지 뚜렷이 각인돼 왔다. 최고의 히트곡인 ‘신라의 달밤’을 비롯해 평생동안 그가 남긴 노래는 ‘꿈속의 사랑’‘베사메무쵸’‘럭키 서울’ 등 1000곡이 넘는다. 1919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성 제2고보를 졸업한 뒤 일본우에노 음악학교(현 도쿄예대)에 진학했다.덕분에 보기 드물게 정통 음악도의 길을 걸은 ‘가요 1세대’로 꼽힌다. 고교시절 군사훈련 시간에 나팔을 분 것이 계기가 돼 연예계에 입문한 그는 우에노 음악학교를 마친 뒤 일본의 징용을 피해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샹송과 칸초네를 부르며 가수활동을 시작했다.해방이 되자 귀국한 그는 ‘고향 경음단’이라는 7인조 악단을 만들어 유엔군 위문공연에 참여하는 등 팝송을 주요 레퍼토리로 극장무대에 서기시작했다. “성악을 전공한 음악도가 유행가를 부를 수 없다.”며대중가요계 참여를 터부시했던 그가 인기가수로 떠오른 것은 작곡가 박시춘씨의 권유로 ‘신라의 달밤’을 취입하면서부터.1947년 발표한 ‘신라의 달밤’은 단박에 평생 최고의 히트곡으로 떠올랐다.이듬해 발표한 ‘고향만리’,‘비내리는 고모령’도 잇따라 히트하면서 해방 이후 가요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신민요나 트로트 등 기존의 국내 가요와 달리 서양 성악에 바탕을 둔 색다른 그의 창법은 이후로도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굳세어라 금순아’‘전우여 잘 자라’ 등 50년대에 발표한 곡들도 한국전쟁으로 실의와 절망에 빠진 서민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노래를 향한 그의 열정은 한순간도 식은 적이 없었다.데뷔 50주년을 맞은 지난 1991년 ‘노래하는 나그네’‘길’ 등의 신곡을 발표하기도 했다.팔순의 고령에 지병인 당뇨병으로 고생하면서도 2년전에는 인기 악극 ‘그 때 그 쇼를 아십니까’에 출연해 전국 순회공연에 나서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평생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사생활은 순탄치 않았다.두번의 결혼과 이혼,사업실패로 지난 74년엔 미국으로 떠나기도 했다.그곳에서 미스코리아 출신인 지금의 부인 김미정씨를 만났다.1년 전까지만 해도 소주 한병을 ‘원샷’으로 마셨던 ‘두주불사’형. 지난해 봄에는 ‘신라의 달밤’의 노래비가 경주 불국사에 세워졌다. 이송하기자 songha@
  • 범국민 절주운동본부 추진위원장 김춘진씨

    “음주 폐해는 우리 사회가 조직적인 노력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줄일 수 있습니다.“ 지난 7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범국민 절주(節酒)운동본부’ 출범식을 마친 김춘진(金椿鎭·49·치과의사) 설립추진위원장은 “음주의 폐해는 가정폭력,청소년 비행,산업생산성 저하 등 사회 도처에 광범위하게 미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한 간질환 사망률과 음주사고,사망률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없었다.”고 지적했다. 한 때 단숨에 폭탄주 17잔을 마시던 김씨가 술을 끊기로결심한 것은 지난 97년.20년전 치과을 개업할 당시 스트레스 때문에 한 두잔 마시던 술이 한 때는 빈 맥주병에 양주를 부어 마시는 ‘두주불사’로까지 발전했다.그러나 폭주 다음 날이면 속이 쓰리고 머리가 아파 환자에게 짜증을내기도 했던 자신을 반성한 그는 97년 대한보건협회 알콜연구회원으로 참가하며 술을 끊게 됐다. 지난해 말의 금연 열풍처럼 절주 운동도 시민운동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에 김수환 추기경과 서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남덕우 전 총리 등 각계 인사를 운동본부에 영입했다.회원수도 벌써 500명을 넘어섰다. 9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성인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14.4ℓ로 세계 2위이며 1.5ℓ짜리 콜라병에 든 소주 약 40병을 한사람이 마신 셈이라는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음주로 인한 직·간접적인 경제적 손실 또한 연간 13조원에 이른다.”고 했다. 김씨는 “운동본부의 가장 큰 목표는 건전한 음주문화가사회규범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청소년 음주 예방,정부 부처간 협조를 통한 절주사업 활동,국제적 연대활동 등을 펼쳐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
  • [씨줄날줄] 프로필

    장·차관 등 고위직 공무원 인사가 나면 신문에 프로필이 실린다.이 프로필들을 대할 때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하나 있었다.독자들이 프로필을 보면서 해당 인물에 대해정곡을 찌르는 정보를 얻었다고 만족해할까 하는 의문이다.판에 박힌 칭송 문구로 채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예산 및 기획 전문가.굵직한 정책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때는 삭발 단식 농성을 벌였으며 의정 활동에서최우수 평가를 받았다.’는 정도면 업무와 관련된 평가가들어 있으니까 들어 줄 만하지만 ‘두주불사’‘소탈 온화’‘보스 기질’‘마당발’ 등등에 이르면 판에 박힌 표현이라는 인상밖에 남지 않는다.자리만 거쳤으면 일을 제대로 했는지 여부는 묻지 않은 채 전문가로 둔갑하는 것도프로필의 마술이다. 최근 한 잡지에 난 공직자 프로필.‘외유내강형의 학자스타일로 일처리가 꼼꼼하며 강직하고 청렴한 데다 자기관리에 철저.부하들 의견을 귀담아 듣는 편이어서 부하직원들의 신망도 두텁다.업무 추진력이 뛰어나며 … 등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고 소개돼 있다.누구에게 갖다 붙여놓아도 그럴듯한 ‘풀빵형’ 프로필의 표본이다. 프로필이 상전벽해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10·26사건의주역인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장이 됐을 때 ‘말이 적은 대신 맺고 끊는 것이 명확하다.과묵하면서도 치밀하며 또 세심한 일면을 간직하고 있다.건설부장관으로서 해외건설 수출에 큰 업적을 남기는 등 탁월한 행정솜씨를 보였다.’고 소개됐다.몇년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쏘고 나서 체포됐을 때는 ‘극히 내성적이며 직선적이어서 군복무 시절 고문관을 폭행했고 부하들을 시켜 기자를 폭행한 적도 있다. 최근 부인이 자녀를 갖지 못해 이혼설이 나돌았으며….’라고 바뀌어 있었다. 이와 관련,대한매일은 2000년 7월 한 사설에서 칭송 일변도의 프로필만 소개해서는 안 된다고 자성론을 펴기도 했다.다행이지만 최근 프로필에는 ‘업무 추진력은 떨어진다는 평’‘윗사람에게 노(NO)라고 하는 일이 거의 없다’‘…분야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는 것이 약점’‘입은 무겁지만 시야는 좁다는 평’ 등 해당 인물에 대해 한꺼풀 더벗겨보려는 시도들이 산견(散見)된다.짧은 프로필에도 더디지만 시대 변화의 흐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강석진 논설위원 sckang@
  • 안개 잦은 인천공항 대책 시급

    지난 15일 짙은 안개로 무더기 결·회항 사태를 빚은 인천국제공항은 김포공항보다 안개 일수가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 30년 동안 6월의 인천공항 일대 평균 안개 일수가 7월에 이어 두번째로 많아 월드컵 대회에 대비한 기상 점검과 악천후 대책 등이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또 개항 전후로 본격화된 공항 주변 신도시의개발·건축 등 인위적인 환경 변화에 따라 안개 일수가 더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인천공항 항공기상대에 따르면 지난 한해동안 인천공항에시정(눈으로 사물을 식별할 수 있는 거리) 1Km 미만의 안개가 계속된 시간은 모두 287시간 8분으로 김포공항의 223시간 9분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개항 전인 지난해 2월20일에는 20시간30분동안,최악의 회·결항 사태를 빚었던 지난 15일에는 15시간동안이나 계속됐다.항공기의 이착륙을 결정하는 최소 시야 확보 거리인 200m 미만의 안개 지속 시간도 38시간 13분으로 김포공항의 29시간 42분보다 길었고 하루 2시간 이상 지속된 날도 8일이나 됐다. 기상청 해양기상 지진연구실의 서장원 연구원은 “해수면과 대기의 온도차이로 인천 공항 주변에서 많이 발생하는 해무(바다 안개)는 일반적인 복사무에 비해 농도가 짙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면서 “인천공항 입지 선정의 요인 중 하나인 북서풍도 주로 겨울철에 불기 때문에 안개 취약 계절인 봄·여름에 해무가 발생할 경우 지속시간은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공항 주변 매립지에주거건물등의 건축이 본격화 되면서 이들이 발열요인으로 작용해 안개일수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인천국제공항은 입지 선정 당시부터 김포공항보다 안개 일수가 적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또 안개가 끼더라도 자주불어오는 북서풍의 영향으로 안개로 인한 큰 장애는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었다. 최병규기자 cbk91065@
  • 폐암 투병 이주일씨 정부와 금연운동

    “이렇게 아파야 됩니까? 끊어야 되는데,내일부터 끊어야 되는데… 하는 사람들 보면 답답합니다.” 폐암으로 투병중인 코미디언 이주일씨(본명 정주일)가 정부와 손잡고 금연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경기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이씨는 지난 12일 병문안을 온 김원길 보건복지부장관과 청소년 흡연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논의한 뒤 정부의 금연운동 추진에적극 협조하기로 했다.“내가 담배를 피워서 이렇게 암에걸려 보니까 참 고통이 심해요.제2의 내가 나오면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해마다 신년초만 되면 금연을 결심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담배 판매량이 급감했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심상찮다. 두주불사에 골초로 유명한 이씨가 수척해진 모습으로 TV화면에 나와 담배의 해로움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훌훌 털고 끊어버리지.그러면 나같이 고통을 안 당할텐데….꼭 이 얘기를,정말 꼭 국민들이 알아듣고 같이 동참해줬으면 좋겠어요.” 어떤 캠페인보다 파괴력이 큰 이씨의 충고다. 김용수기자 dragon@
  • [씨줄날줄] ‘알코올 사회’

    에스키모인은 술 문화가 없다.왜 그런가? 주식(主食)인 조개 등으로 술을 만들 수 없어서란다.회교도는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멀리한다.이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사회에나 술이 있으며 특유의 음주문화는 있다.어떤 음식이든 원료로 해서 인간은 술을 담가 마셨다.수렵시대에 과실주,유목시대에 젖술,농경시대에 곡주와 양조주를 마신 것이다.보편적인 음주문화같지만 국가와 민족별로 조금씩 차이는 난다. 엊그제 우리나라의 15세 이상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이 14.4ℓ로 슬로베니아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해서 화제가 됐다.또위스키 등 알코올 도수 20도 이상의 독주 소비량은 한국이 29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5.7배나 많다. 한국인들이 요즘 개고기를 먹는다고 국제적으로 도마에 오르는데 이어 ‘술 중독자’로 비쳐질까 우려된다. 사실 한국인이 술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은 아니다.프랑스인처럼 식사때마다 포도주를 마시지는 않는다.맥주를 물처럼들이켜는 영국인과 다르며 주말에 다차(dacha:별장)에서 보드카를 폭음하는 러시아사람들과 비교할 수도 없다.한국인의 술 소비량이 많은 것은 사회적 분위기 탓일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인들의 폭음 습관이 술 소비량을 늘린다.술상에서 ‘한다 하면 한다’는 조폭식의 결의가 풍미한다.‘뭔가 보여준다’며 2,3차까지 가서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악습이 있다.코가 삐뚤어지게 마셔야 ‘한잔 한 것 같다’거나 ‘추억에 남는다’는 생각이 진하다. 사회가 음주에 그만큼 관대하다.다음날 출근해서 전날 술자리 이야기를 무용담(?) 비슷하게 말하고 들어주며 술냄새 풍기는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인다.장·차관의 프로필에 ‘두주불사’라거나 ‘폭탄주도 마다하지 않는 인사’라는 말도 수시로 등장한다.그러면 뭔가 호방하고 통 큰 것처럼 간주되는 문화이다.대량 음주자를 정신이상자쯤으로 간주하는 외국과 다른 점이다.더욱이 ‘술을 잘 마셔야 일도 잘한다’고 강조하거나 부하가 폭탄주를 거절하자 ‘출세할 생각이 없냐’고 협박한 고위관료도 있었다.오죽하면 ‘알코올 공동체’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올 상반기에 위스키 수입증가율이 세계최고인 40%에 달한것을 보면 특히 한국은 여유있는 계층의 술 소비가 많다.사회 엘리트들부터 술독에서 빠져나와야 하지 않을까,망년회때 술 한잔 들다가 생각해 볼 일이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 [50대 국가요직 탐구] (27)복지부 연금보험국장

    정부는 국민건강을 보장하기 위해 건강보험과 의료보호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며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서는 국민연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이러한 건강보험,의료보호,국민연금이 모두 보건복지부 연금보험국장 소관 업무다. 7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 적립금과 한 해 15조원에 달하는 건강보험 재정 및 2조원에 달하는 의료보험 기금을 합할 경우 연금보험국장이 관리하는 돈은 무려 87조원이나 된다.우리나라 일반회계 예산에 버금가는 어마어마한 액수다.더욱이 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국민연금공단 등 관리하는 인력도 1만6,800명에 달한다. 연금보험국은 74년 복지연금국으로 출발했으나 77년 의료보험이 실시되면서 사회보험국으로 개편됐다.그 후 87년 의료보험국과 국민연금국으로 나뉘었다가 94년 연금보험국으로 다시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건강보험 관련 3개과와 국민연금 관련 2개과 등 5개과를 관할한다. 연금보험국장은 권한이 크고 업무분야가 방대한 것에 비례해 혹독한 시련을 겪는 자리이기도 하다.99년 4월 국민연금을 도시지역까지 확대하면서 자영업자들의 소득파악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고,의료보험 통합을 놓고도 첨예한 대립관계를 조정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또한 의약분업의 와중에서 보험재정이 악화되어 감사원의 특별감사까지 받는 곤욕을치르기도 했다. 연금보험국장은 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신중한 판단력과 조정능력,추진력이함께 요구되는 자리이다. 인경석(印敬錫) 현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은 국민연금시행 초기에 국민연금국장을 역임했고 국민연금에 관한 연구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전문가다.99년 6월 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국민연금 도시지역 확대과정에서 야기된 문제점을 무난히 해결하고 있다는평가다. 엄영진(嚴永鎭) 전 사회복지정책실장은 복지부 최초로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98년 연금보험국장 재직시 국민연금 제도개혁을 주도했으며 지역의료보험의 통합을 시행했다.현재 세계보건기구 집행이사로 활동 중이다. 두주불사의 술 실력을 가진 강윤구(姜允求)기획관리실장은 식품행정,보육사업 등에 관한 저서를 발간했으며 민주당정책연구실장으로 재직하면서 행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는등 전문성이 돋보이는 노력파다.성품이 원만하고 자상해 후배 공무원이 많이 따른다. 송재성(宋在聖)국장은 사회복지심의관,식품정책국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고,97년 한방정책관으로 재직할 때에는 한약(韓藥)분쟁을 해결하느라 노심초사했다.지난해 보건정책국장으로 있으면서 의료대란을 수습하고 의약분업을 시행했으나 연금보험국장으로 부임한 뒤 건강보험재정 악화에 따라감사원으로부터 문책요구를 받기도 했다. ‘해결사’로 불리는 문경태(文敬太) 현 연금보험국장은풍부한 외국 근무경험과 함께 판단력·분석력·조정력이 뛰어난 편이다.건강보험 재정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사회보험제도가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데 역할이 기대된다. 김용수기자 dragon@
  • 9·7 개각/ 새 장관 프로필

    ■홍순영 통일:외교부 장·차관을 지낸 40년 경력의 전형적인 직업외교관.외무고시(13회) 출신으로 선이 굵고 소신있게 일을 추진한다는 평. 98년 8월부터 외교장관으로 일하다지난해 1월 중국 탈북자 7명의 북한 송환사태로 물러났다가지난해 7월 주중대사로 복귀했다. 외교장관 시절 탕자쉬앤(唐家璇) 중국 외교부장을 서울로초청하는 등 대중 외교수완을 발휘했다. 부인 장동련(張東蓮·61)씨와 2남2녀. ■김동태 농림:농업경제학을 전공한 정통 농림관료 출신이다.농정의 기본틀을 다지고 쌀협상 등 현안을 푸는 데 적합한 실무형 장관으로 기대된다. 무리하지 않는 성품에다 기획·판단력이 뛰어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다. 지난 해 4·13 총선때 차관을 그만두고 야당세가 강한 고향 경북 성주·고령지역구에 나가 한나라당 주진우(朱鎭旴)의원에게 고배를 마셨다.그러나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아 총선후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에 임명됐다.부인 오경자(吳京子)씨와 1남1녀. ■유용태 노동:노동부 전신인 노동청 총무과장,공보담당관,근로기준관 등을 거친 노동문제 전문가 출신의 재선의원. 12·12 직후 노동청에서 강제해직 당한 뒤 한국산업훈련협회를 설립하고 월간 ‘노동’지를 발간하는 등 노동관련 활동을 하다 88년 당시 여당인 민정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 후 한나라당에서 국민회의로 말을 바꿔탄 그는 지난해 총선 때 재선에 성공,영입파 배려 차원에서국회 환경노동위원장에 올랐다.부인 송안옥(宋安玉·61)씨와 1남2녀. ■안정남 건교:선이 굵은 풍모 못지않게 조직장악력이 탁월하고 소신이 뚜렷하다.29년간 국세청에 몸담은 전형적인 세무통으로 부가가치세 전문가다.관련 서적을 내고 모교인 건국대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행정대학원에 출강중이다. 공직은 서울 남산시립도서관 사서(9급)로 시작해 서울시공무원교육원(7급) 생활에 이어 71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국세청에서 일했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주도하는 등 치밀함과 추진력을 갖췄다. 한때 두주불사로 별명은 황소.부인 정해은(丁海銀·60)씨와 1남1녀. ■유삼남 해양:64년 해군 소위로 임관한 뒤 줄곧 바다를지킨 정통 해군 출신. 해군참모총장 시절인 지난 98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국제 관함식’을 통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맺은 인연을 계기로 16대 총선 직전 정치에 입문했다.지난 6월 북한 상선의 영해 및 북방한계선(NLL) 침범 당시 야당의 공세에 조목조목 반박,당 지도부로부터 바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인정받기도 했다. 소문난 ‘학구파’. 전문성과 지역안배(경남 남해) 차원에서 발탁됐다는 후문이다.부인 김옥순(金玉順·55)씨와 1남1녀.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1)김동환 가족사

    한 여인이,생신을 보름 남짓 앞둔 91세의 한 여인이 1993년 3월 18일 세상을 떠났다.‘백구 신원혜지묘(白鷗 申元惠之墓)’라는 묘비명만으로는 이 여인의 죽음이 한국 문학사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아리송할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이름위에 있는 ‘파인 김동환(巴人 金東煥)’이란 각자(刻字)를 보노라면 ‘아,파인의 본처가 그때까지 생존했더란 말인가’라는 자못 회고조의 감탄사가 나올 법하다.1903년 원산에서 태어난 신원혜가 서울 정신여고를 졸업,블라디보스토크,간도,원산 등에서 중학교 교사로 있다가,서사시 ‘국경의밤’으로 이미 명성을 얻은 두 살 연상의 시인 김동환과 결혼한 건 1926년 3월 14일이었다. 가난한 시인의 아내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3남 1녀를얻은 그녀는 1942년 작가 최정희(崔貞熙)와 남편의 관계가알려지자 시인의 “우유부단한 처신을 안타깝게 지켜”보다가 기어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고 그 극심한 어머니의 분노를 이겨내지 못한 아버지는 끝내 여관으로 잠시의 거처를 정하였다”고 셋째 아들 김영식(金英植·68)은 회상한다.“그 후 어머니는 교회 일과 모교인 정신여고 동창회 봉사활동에 전념하면서 아픈 상처를 홀로 달래고” 지냈는데,나중 동네 아낙들에게 “아무리 남편이 속을 썩이더라도 집에서 나가 달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김영식,‘아버지 파인 김동환-그의 생애와 문학’). 조혼이 아닌 어엿한 신여성과 연애를 거쳐 사랑이 그득한결혼을 했던 파인의 예기치 못했던 탈선이 문단에서는 가십이었으나 그의 고향을 비롯한 애독자들로부터는 마침 휘몰아친 친일문학과 함께 따가운 매도의 대상이었다.어쩌면 이 두가지 탈선은 오히려 동시에 수행되면서 인간과 민족의존재론적 본질을 벗어나 원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해준 도피처 역할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파인의 친인척과 고향 사람들로부터 동정과 애정을 받은 것은 정작 남편이 버린 여인 신원혜였다.아니,파인 조차도 그녀를 버릴 수 있었을까. 서울이 인민군에 점령당한 직후인 1950년 7월 초 파인은 홀연히 귀가했다.피신 차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은 비록 짧았으나 단란했는데,이내 최정희의 자수 권유를 받고 나간(7.23) 뒤 그대로 납북,생사도 모르게 분단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앓은 게 이 일가족이었다.가족이랬자 두 아들은 일찍세상을 떠나버려,셋째 영식과 딸 영주(英珠·63)뿐이었다. 영식은 서울 경복고를 거쳐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대통령 비서실,주불 한국대사관 등에서 근무하다 정년을 맞았고,영주는 정신여고와 이화여대 국문과를 나와 시인으로 등단,캐나다 밴쿠버에 살고 있다. 이 한많은 여인이 죽음을 앞두고 마련해 둔 유품 속에는파인의 사진과 애증이 교차하는 몇몇 증빙 서류들,그리고자신이 묻힐 묘소와 묘비명이 포함되어 있었다.살아서 쫓아냈던 지아비를 죽어서야 한 문패 안으로 맞은 것이다.보따리 속에 파인이 보낸 편지도 한 묶음 있었다.파인은 맨몸으로 집을 나갔으니 여러 유품들은 저절로 신원혜가 간직했을 터여서 여간 소중한 자료가 아니리라는 기대에 부푼다.신원혜는 파인에게 보냈던 기라성같은 문인들의 편지를 그 격변의 역사를 헤치면서 고이 간직해 왔었다.신혼초 서울의정동,다동을 거쳐 종로구 돈의동 74번지로 호적을 옮긴 뒤,적선동(1927.5),인사동(1930.7),견지동(1933.12),필운동(1935.10),옥인동(1936.11),통인동(1938.1),효자동(1940.2)을전전하다가 1941년 6월 12일 적선동 183번지의 목조 기와집으로 이사,거기서 해방을 맞았다. 만주로부터 돌아온 피난민의 딱한 사정 때문에 방세도 안받고 그대로 살게 했던 이창규씨가 어느날 정전(停電)이 되자 성냥불을 켜들고 초를 찾다가 넘어져 석유난로에 점화,순식간에 집이 불타 버렸다.바로 1946년 12월 12일 오후 7시쯤,파인의 유품이,그리고 그가 ‘낭자 신원혜’에게 보냈던 달콤한 연애편지가 잿더미로 변해버린 순간이다.일가는창성동 자교(紫橋)교회 목사 사저에서 신세를 지다가 청운동(1948.5∼1953.2)으로 옮겨 6·25와 1·4후퇴를 겪으면서도 행여나 남편이 돌아오려나 싶어 몇 년간 이사도 하지 않았다.이제 파인과 신원혜는 갔고,사랑의 편지도 불타버렸다.그러나 1947년부터 납북당했을 때까지의 격랑을 헤치며 파인이 한 지아비와 육친의 정으로 아내 신원혜와 자녀에게보냈던 32통의 편지는 문단 비사의 차원을 넘어 가난했던글쟁이의 인생론적인 비애를 느끼게 한다. 중학생 아들(영식)과 초등생 딸(영주)을 아내에게 맡긴 빈털터리 시인 김동환은 이 무렵 최정희로부터 지원(1942년생),채원(1946년생) 두 딸을 가진,허리가 휘청거리는 아버지였다.최정희와의 보금자리였던 덕소에서 8·15를 맞은 파인의 심경은 실로 착잡했을 것이다.그의 뇌리에는 선비적 지조의 상징인 매월당 김시습의 18대 후손으로서 민족운동에투신했던 화려한 투쟁 경력들-민요 전설시의 거봉,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중앙위원,침략주의에 항거했던민완 기자,잡지 ‘삼천리(三千里)’의 폭발적인 성공과 민족의식이 강한 각종 출판물 간행,신간회 집행위원 등등이스쳤을 것이다.이런 경력 때문에 오히려 더 부정적으로 보였던 친일행위의 오점들은 그로 하여금 발빠른 자성과 회오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진흙 속에 빼앗긴 두 발 겨우 뽑고/오래 가뒀던 옛 날개 와락 펴 멀리 쳐다보니”(‘돌아온 날개’),“새나라 백성들은 이래서는 안된다/우리는소생하지 않으면 안된다”(‘소생’)는 참회와 함께 “올해엔콩팥을 맘대로 심어/천리객은 몰라도 십리의 벗 맞아들여/소찬에 약주라도 싫도록 대접할꺼나”(‘起耕’)라는 은인자중의 자세를 보여줬다.반민특위 때 그가 자수(1949.2.28)할 수 있었던 심리적인 배경도 여기서 비롯한 것이다. 그가 이승만 정권이나 한민당 추종이 아닌,조선민주당 대변인격으로 정당활동에 몸담았던 것(1946.2)은 나름대로의민족관을 지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혼란 속에서 숙원이었던 잡지 ‘삼천리’ 복간에 온 정력을 쏟았는데,민족 독립노선이나,문인으로 발 빠르게 자아비판한 채만식을 부각시킨 걸로 봐서 다분히 참회적인 자세를 취했다.을지로5가 여관에서 업무를 시작한 파인은 틈틈이 아내와 아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납득시키려고 난필의 쪽지를 보냈다.우편 배달이 아닌 사환이나 인편을 통해 직배시킨 경우가 많았던 시절이라 겉봉에는 ‘영식 모(英植 母)’ 혹은 아예 ‘영식 전(展)’이라 쓰고는 원고지나 적당한 백지에 절박한 용건만적어 보냈다.서른 두 통의 편지중 가장 빈도수가 많은 내용은 잡지 일로 인쇄소에 붙어 있어야 한다든가,당장 돈이없으니 우선 얼마만 보내고 며칠 뒤 더 보내겠다는 등등이다.신원혜의 이성적인 결벽과는 달리 어린 남매들이 아버지에게 귀가와 생활비를 독촉하는 전화를 했던 데 대한 회답으로 보인다. 이 역마살의 시인을 신원혜와 함께 묻고 딸 영주는 “기다리면 다시 올 사람인가/시를 만드시던/파인,내 아버지//하늘 밑을 파고/그를 묻었다.//그가 다니던 길도/함께 넣었다.//눈물도 못 내고/기어 가/나도 묻힌다.//아 아,내 아버지 파인”(‘아름다운 작별’)이라고 마음을 추스렸다.이렇게 담담해질 수 있는 시인으로서의 김영주와는 달리,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았던 딸로서의 김영주는 무척 신랄했다.“친일행동과 여자 문제로 부끄러운 아버지 책을 써서 알리는 것은 정말 내가 부끄러워요”라며,“아버지는 실패한 인간입니다.자신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세상에서 천국의 모형을 이루어 살라고 주신 한 가정의 책임을 저버리므로 해서,어머니와 우리 자녀는 가장아픈 불행을 체험했으며,어머니의 고통과 수치와 배반에 대한 증오와 세상이 보내는 그 부끄러운 수근거림을 어떻게 감당하셨는지 놀라울 뿐입니다”(김영식,위와 같은 책)라고 통매했다. 그러나 파인의 애틋한 조각편지들은 실패한 인간의 자료로서가 아니라 역사의 멍에를 헤어날 길 없었던 인정미 넘치는 나약한 한 서정시인이 치러야만 했던 가정과 사랑과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갈기갈기 찢어진 상처일 것이다. “몸 무고히 학교에 잘 다니느냐.마음에 어느 날 잊은 적이 없었다”거나,“추위가 심하니,남대문 야미(暗)시장에 가서,영식이나 영주의 외투 한 벌 사서,한 아이라도 입히오”,“한방의 침술 운운하지만 큰 아이들 때(장남 영사는 16세로 1942년에,차남 영창은 17세로 1947년에 사망)에 보아도도무지 믿을 사람들이 못 되니 더 보이지 말고,내가 정초에 영식이를 데리고 전문 신의(新醫)들에게 보여 충분히 치료할 터이니,아이에게 겁나는 말을 일체 말고,내가 가기를 기다려 주오”라는 등등의 구절에 이르면 이 시인이 얼마나가슴으로 울었던가를 알법도 할 것이다.“내일 산소에 가는 일은 중지하고,5월 단오에나 가기로 하오”란 구절은 바로 두 아들이 묻혔던 미아리 공동묘지로,거길 가면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묘소에 절하라’고 말한 후 묵념을 했고,어머니는 쌍봉 무덤 앞에 엎드려 흐트러진 모습으로” 울부짖었다고 김영식은 회고한다.살뜰한 지아비와 부정(父情)이 넘치는 글이기에 오히려 다른 서간문에 못지 않게 돋보이는 이 글들을 쓴 주인공이 어째서 가정을 버릴 수 있었을까. 임 헌 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50대 국가요직 탐구](13)환경부 수질보전국장

    ‘내가 이러다가 술병이 나고 말지.’지난 99년 가을 낙동강 물관리 종합대책이 마무리될 즈음환경부의 곽결호(郭決鎬) 당시 수질보전국장은 낙동강 하류의 한 마을에서 주민들과 새벽 3시가 넘도록 소줏잔을 기울였다. 낙동강 상·하류를 오가며 치렀던 ‘소주 간담회’가 벌써 70여차례.상·하류간의 반목으로 공식 공청회가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에 택한 주민 설득방법이다.98년 팔당 때까지를 포함하면 100차례가 넘는 술자리다.환경부 국장에게 소주한잔을 직접 따라주려는 지역단체 대표와 주민들의 성의를마다할 수 없어 다 받아마시다 보면 매일 밤 20잔,30잔이넘는 술을 마셔야 한다.그러고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주민들로서는 수질정책에 따라 재산권이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매서운 눈으로 응시한 것이다. 수질보전국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의 원천을 관리하기 때문이다.우리나라는 생활용수의 98%를 하천과 호소에 의지한다.독일 스위스 등의 유럽국가에서 지하수로 용수의 70∼80%를 이용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게다가 우리는 그동안의 개발위주 정책 때문에 하천과 호소의 오염이심각한 상태다.물 관리는 국민의 생존이 걸린 문제가 됐다. 거기에 덧붙여 수질보전국장은 민원인을 직접 만나는 몇안되는 중앙부처 국장이다.4대강 주변지역 주민들을 직접만나 수질대책을 설명하고 대화를 풀어나가는 적극적이면서도 원만한 친화력까지 요구된다. 지난 3월 8일 김명자(金明子) 환경부장관은 윤성규(尹成奎) 수질정책과장을 수질보전국장으로 전격 승진,발탁하면서이례적으로 간부회의에서 인사의 배경을 상세히 설명했다. 업무의 전문성·연속성,지역주민과의 유대 등이 김장관이밝힌 인사의 기준이었다. 역대 수질보전국장의 면면은 환경부의 대표적인 인물을 모아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화공학박사 출신인 조병환(趙炳桓) 전 국장(현 포항공대교수)은 전문가 영입형식으로 특채돼 주요 국장을 두루 거쳐 국립환경연구원장까지 지냈다.김인환(金仁煥) 전 국장(현 계명대 환경과학대학장)은 두주불사(斗酒不辭)의 호탕한 성격이면서도 업무 처리가 치밀해 수질·대기·폐기물 등이른바3대 국장을 다 마친 뒤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행시 9회 가운데 가장 먼저 차관에 올랐다. 심영섭(沈瑛燮) 전 국장은 9급 임시직 조사원으로 보사부에 들어간 뒤 환경부로 건너와 타고난 성실성과 친화력을바탕으로 주요 국장과 차관까지 지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황홍석(黃弘錫) 전 국장은 경남고가 배출한 대표적 수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고려대에 수석입학했으며 물리학과 출신이면서도 행정고시를 거쳐 환경업무를 담당했었다. 윤서성(尹瑞成) 전 국장(현 KEI원장)은 환경부내에서 “보스기질이 있다”고 평가된 많지 않은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해병대 출신으로 현직 차관 때도 전세아파트에 살 정도로강직한 성격이다.행시 13회 가운데 처음으로 차관이 됐다. 심재곤(沈在坤) 전 국장(현 한국자원재생공사 사장)은 재직시절 환경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실생활에 접목시키는 데주력했다는 평가다.김동욱(金東旭) 전 국장은 광산에서 일하다 행시에 합격한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이규용(李圭用) 전 국장(현 환경정책국장)은 곽결호 전 국장(현 기획관리실장)으로부터 자리를 물려받아 낙동강 물관리대책을 마무리했다.또 재직 당시 새만금사업 추진을 둘러싸고 건설교통부,전라북도,국무조정실 등 정부 각 부처와‘외롭고 힘든’ 싸움을 했던 주인공. 한편으로는 환경단체들로부터 “왜 동진강 유역의 개발은찬성했느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도운기자 dawn@
  • [전통주 이야기] (13)천년주

    ‘천년주'는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다.한약재를 넣어 몸에 약이 되는 약주(藥酒)다.독하지 않으며 숙취도 없다. 천년주는 3대째 전통 술도가를 잇고 있는 충북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 이규행(李奎行·42·세왕양조 대표)씨가 할아버지 때부터 집에서 빚어 만든 술을 4년전 상품화한 것이다. 1929년부터 술을 만들기 시작한 이씨 집안은 이름난 술도가다.박정희 전 대통령은 모내기 행사를 위해 이곳에 올때마다 꼭 이 집의 덕산약주를 찾았다고 한다.이런 전통이천년주의 밑바탕이다. 천년주는 전통 약주 생산 방식을그대로 따르지만 한약재가 들어가는 게 다르다.이씨는 600여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12가지 한약재를 배합했다. 천년주는 술을 병에 담는 공정을 빼고는 일일이 손으로만든다.진천쌀로 고두밥을 만들고 2일간 누룩에 담아 균을배양한 뒤 다시 2일간 발효한다.이어 8일간 숙성과정을거친다.익은 술은 명주자루에 담아 자연 낙차를 이용해 거르면 알콜도수 13도짜리 천년주로 태어난다.물은 지하 150m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를 사용한다. 전통적인술도가 건축양식으로 만들어진 공장은 천정에 1m 두께의 왕겨를 깔고,흙벽돌로 만들어진 벽에도 40∼50㎝의 왕겨를 둬 습도 조절은 물론 보온효과를 보게 돼 있다. 천년주는 매달 20만∼30만병씩 생산되며 농협에서 사거나 전화 주문이 가능하다.이씨는 “건설업을 포기하고 가업을 잇기 위해 시작한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며 “약주 가운데 천년주가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술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문의 (043)536-3567,3568. 글·진천 김동진기자 kdj@. ■조영창 前충북부지사 맛평가. 두주불사로 통하는 조영창(趙永昌) 전 충북도 정무부지사는 천년주 자랑에 입술이 마를 줄 모른다. “젊었을 때는 독주를 주로 마셨지만 나이가 들면서 약주로 자연스럽게 취향이 바뀌더군요.4년 전 우연히 만난 천년주는 이제 친구같은 술입니다”지난달 33년간의 공직생활을 접은 조씨는 지난해 대장암수술을 받고 회복중에 있어 거의 술을 마시지 못하고 있다. 그런대도 천년주는 끊을 수 없어 반주로 입가심이라도 하고 있다.독주를 즐기는 데다 웬만한 술은 다 마셔봤을 정도의 애주가인 그에게 천년주는 종착역 같은 것이다. “식사 전에가볍게 한 잔 정도 마시면 식욕을 돋우고 소화를 촉진시킵니다.감칠맛 나는 술맛 때문에 한 병을 통째로 들이키고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입니다”청주 김동진기자
  • [공직인맥 열전](65)기상청

    대한제국 시절인 1904년에 근대적인 기상업무를 시작한 이래 49년 국립중앙관상대로 발족한 기상청의 인맥은 크게 기상기술원양성소 출신과 80년대 중반 이후 기상청에 들어온4년제 대학의 기상 관련학과 출신으로 나뉜다. 기상기술원양성소는 지난 48년 설립돼 82년까지 홍사선(洪思銑·56) 예보국장 등 많은 기상청 간부들을 길러낸 ‘기상 사관학교’다. 기상 관련학과 졸업자들은 지난 70년 9급으로 기상청에 들어온 이천우(李天雨·56·서울대 천문기상학과) 광주지방기상청장을 비롯,주로 80년대 중반 이후 특채 형식으로 기상청에 입성했다. 이 때문에 기능직을 제외한 일반직 848명중 석·박사 비율이 20%(박사 31명,석사 139명)가 넘지만 4급 이상 간부 76명 가운데 고졸자와 방송통신대 출신도 각각 25명과 16명이나 된다.최근에는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석사 학위가 있어도 6·7급으로 채용된다.대학원 석·박사 과정에서 공부하는 직원만 119명에 이른다.안명환(安明煥·56) 청장을 비롯해 공군 출신이 유난히 많은 것도 특징이다. 일기예보는 철저한 ‘팀 플레이’가 생명이기 때문에 기상청에서는 전통적으로 일사불란한 조직체계가 중시돼 왔다. 그러나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지나친 관료화로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많다. 안명환 청장은 지난 68년 9급 공채로 시작,30여년만에 조직의 총수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강릉지방기상청 예보관으로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면서도 학사학위를 딸 정도로 집념이 강하다.주로 예보 분야에서 일해온 ‘야전’형으로 실무자를 믿고 과감하게 업무를 맡기는 스타일이다. 김덕제(金德濟·56) 기획국장은 과학기술부에서 근무하다가 지난해 말 기상청으로 자리를 옮겼다.외모와는 달리 소탈한 성품이다.낯선 업무를 맡았지만 30년 동안의 공직을거친 베테랑답게 ‘교통정리’에 탁월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홍사선 예보국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예보통’.지난 70년 기상청에 발을 들여놓은 뒤 줄곧 예보분야에서 일해왔다. ‘야근을 밥 먹듯’하면서도 몸가짐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예보회의 때마다 날카로운 지적으로 후배들을 긴장하게 한다. 남기현(南基玄·58) 기후국장은 후배들에게 유난히 인기가 좋다.자상한데다 웬만해서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 ‘맏형’으로 통한다.예보분야 경험이 적은 편이지만 6년 동안이나 기획과장을 역임,전체 업무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는 대표적인 ‘기획통’이다. 정순갑(鄭淳甲·47) 정보화관리관은 87년 5급 기상사무관으로 기상청에 입성했다.기상청의 숙원이었던 슈퍼컴퓨터도입사업을 무난히 처리했다.축구 동호회장으로 활동하는등 대외적인 업무에도 적극적이다.듬직한 체구답게 ‘두주불사(斗酒不辭)’파다. 박광준(朴光俊·47) 관측관리관은 지질학을 전공했지만 공군 기상장교로 일하면서 일기예보와 인연을 맺었다.10년 동안 국제협력과에 근무한 ‘국제통’으로 영어에 능통하다. 직원 교육 때는 대충 넘어가는 것이 없어 ‘호랑이 선생님’으로 불린다. 정효상(鄭孝相·53) 기상연구소장은 80년 7급 특채로 기상업무와 인연을 맺은 뒤 연세대에서 석사 학위를,미국 텍사스A&M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다.공무원이라기보다 학자라는 인상을 짙게 풍긴다.최근 실시한 인공강우실험의 책임자였다. 이호(李昊·58·부산지방기상청),이천우(광주〃),오완탁(吳玩鐸·53·대전〃),신경섭(申慶燮·48·강릉〃),박종주(朴鍾周·58·제주〃) 청장 등도 기상청을 끌어가는 핵심 간부들이다.김상조(金尙照·56) 항공기상대장은 인천국제공항 개항에 맞춰 문을 연 항공기상대 운영을 위해 3급(부이사관) 자리에서 4급 계약직을 자청한 ‘의리의 사나이’다. 전영우기자 anselmus@
  • [전통주 이야기] (4)삼해주

    삼해주(三亥酒)는 전통주 가운데 유일하게 저온(15℃)에서 장기간 발효시킨 곡주다. 고려중기의 문인 이규보(李奎報·1168-1241)가 지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처음 기록된 12세기이전의 궁중술로 알려져 있다.조선 정조 이후 서울·경기·황해 지방의일반인들에게도 애용되기 시작했으나 200여년동안 맥이 거의 끊어졌다가 80년대 들어 삼해주조대표 나강형(羅康炯·69)씨에 의해 재현되면서 서울·경기지방의 전통 명주로 거듭나게 됐다. 황해도가 고향인 나씨는 명절 때마다 할머니가 빚어내던 술맛을 잊지 못해 10여년동안 각종 문헌을 통해 제조비법을알아내 삼해주로 인증받아 85년 주조면허를 취득했다.민속주로는 부산의 산성막걸리,경기도의 부의주에 이은 3번째다. 지난해말까지 서울시 노원구 정릉동의 ‘푸른동산’에서주문생산됐던 삼해주는 현재 생산이 중단됐으나 나씨의 아들 원석(垣碩·33)씨에 의해 대량 생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원석씨는 부친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올 추석전까지 경기도 지역(파주,곤지암)에 최신 설비를 갖춰 연간30억원대의 매출을 계획하고 있다. 삼해주는 정월 첫 해일(亥日·돼짓날)에 찹쌀과 멥쌀을 2대1의 비율로 섞은 뒤 누룩을 넣어 밑술을 담그고 2월 첫해일에 똑같은 방법으로 한번더 밑술을 담근다.또다시 3월첫 해일에 멥쌀만으로 덧술을 쳐 10∼15℃의 저온에서 100일동안 발효시킨다.도수는 13도.곡주 특유의 단맛과 함께은은하면서도 깊은 향으로 삼해주를 먹은 후 다른 술은 싱겁게 느껴질 정도다.특히 차가운 기운을 지니고 있어 무더운 여름철에 더욱 어울리는 건강명주라고 나씨 부자는 말한다. 이동구기자 yidonggu@. *원융희교수의 삼해주 맛 평가. “진한 황금색에 상큼한 과일 향이 멋을 더해줍니다” 전통 민속주에 조예가 깊은 용인대 관광경영학과 원융희(元隆喜·50) 교수는 삼해주의 맛과 멋에 취해 있다. “가장 좋은 술은 자기 입맛에 맞는 술”이라고 주장하는원 교수는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주량을 자랑한다. 그러한 그가 “삼해주를 알고난 뒤 다른 술이 싱겁게 느껴진다”며 삼해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장기간 저온발효된 곡주이기에 맛이 깊고 은은하여 거부감이 전혀없다”며 증언하듯 자랑했다.
  • 佛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새달 임권택감독 영화제

    [파리 연합] 프랑스의 권위있는 영화박물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주불(駐佛) 한국문화원과 공동으로 6월7일부터 7월1일까지 임권택 감독 영화제를 개최한다. 최초의 한국 감독 영화제로 임 감독 개인에 대한 평가는물론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이번 영화제에는 ‘춘향뎐’ ‘서편제’ ‘아다다’ ‘연산일기’ ‘만다라’ ‘장군의 아들’ ‘씨받이’ 등 17편이 소개된다. 한편 프랑스 영화 배급업체인 CJ필름은 6월13일부터 2주간파리 시내 예술영화 전문영화관인 ‘아를르캥’에서 한국영화제를 갖고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JSA)’,정지영 감독의 ‘하얀 전쟁’,정지우 감독의 ‘해피 엔드’ 등6편을 소개한다.
  • 불교 미술로 풀어내는 고려사

    태조 왕건은 실제로 어떻게 생겼을까?EBS의 ‘최완수의 우리미술 바로보기’(매주 수요일 오후8시30분)에서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미술사를 통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기에 걸친 우리 역사를 되짚고 있는 이 프로가 23일부터 왕건이 등장하는 신라 후기부터 후삼국시대,고려시대의 미술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이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연구실장(58)은 최근,신라 교종불교의 마지막 걸작인 석굴암과 불국사 시리즈를 마치고 신라후기 새로운 사회와 이념에의 시대요구에 부응해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선종불교 이야기를 시작한다. 복잡하고 방대한 논리의 숲에서 벗어나 마음 하나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선종의 이념은 전환의 기로에 선 신라사회의 혁신계층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중국으로부터 남종선을 배워와 전국각지에 구산선문을 세운 선사들과 그들을후원했던 호족들에 의해 새로운 선종 불교문화가 꽃피게 된다.바로 그 중심에 선 인물이 태조 왕건이다. 새 이야기는 선종시대를 주도했던 문화·시대적 상황,주옥같은 미술 작품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태조 왕건의 등장전후시기의 사회상황을 세밀하게 조망한다.KBS 대하드라마 ‘태조왕건’을 보면서 가졌던 초기 고려사에 대한 의문들도 풀 수 있을 것이다. 우선 23일에는 선종의 9개 종파 가운데 하나인 구산선문의주불로 선종시대의 개막을 알린 비로자나불의 출현과 전개과정을 소개하는 ‘선종과 비로자나불’이 방송된다.우리나라선종의 총본산인 전남 장흥 보림사의 대적광전 안에 모셔진높이 252㎝의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은 이 시기에 조성된 대표적인 불상이다.화엄경에서 말하는 비로자나불의 의미,보림사 철조 비로자나불상의 특징,팔뚝에 새겨진 명문,선종사찰주불의 상징들을 풀어낸다. ‘최완수의 우리미술 바로보기’의 시청률은 EBS의 평균 시청률엔 못미치지만 열혈 시청자들이 많다.최완수씨는 “교과서식의 역사 교육이 아니라 미술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접근방식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같다”고 흐뭇해했다.27일까지 간송미술관에서 열리는 ‘추사와 그 학파전’ 전시회의 관람객도 2배 이상 늘었다.항상 단아한 모습으로진행하는 최씨의 한복차림에 반해 빼놓지 않는다는 시청자들도 적지않다. 윤창수기자 geo@
  • [씨줄날줄] 막걸리 축제

    시인 조지훈(趙芝薰)만큼 두주불사를 뽐내며 풍류를 즐긴 사람도 드물다.그를 두고 시인 정한모(鄭漢模)는 통금(通禁)은 안중에 없고 야밤에 주붕(酒朋)의 집에 쳐들어가 대작하다가 새벽에 귀가하는 하는 것이 예사였다고 회고한적이 있다.그는 밤새워 통음을 해도 자세를 흐트리지 않은 것으로 유명해서 ‘신출귀몰의 주선(酒仙)’이란 별명을얻었다. 조지훈은 이렇게 노래했다.“나는 항상 삼도주(三道酒)를 마신다.삼도주란 이름은 어디에서 왔는가.중니(仲尼·공자)선생이 애써 가꾸신 쌀과 노담옹(老聃翁·노자)이 손수 만드신 누룩과 실달다상인(悉達多上人·석가)이 길어 오신 샘물로 빚은 까닭이다” 그가 일컬은 삼도주란 다름 아닌 막걸리였다.쌀과 누룩,샘물로 빚은 데 착안해 지은 것이라지만 참으로 기발하다. 막걸리란 이름은 곡주가 익어 청주와 술 지게미를 나누기 이전에 막 걸러서 만든 술이라고 해서 붙여졌다.또 탁하다고 해서 탁주,희다고 하여 백주,농사 지을 때 먹는다고해서 농주라고 한다.제주에 유배당한 인목대비 모친이 술지게미를 재탕한 막걸리를 섬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연유가 되어 왕비의 어머니가 만든 술이란 뜻의 모주(母酒)로도 불린다. 막걸리의 역사는 정확하지 않다.다만 고려 때 배꽃 필 무렵 막걸리용 누룩을 만든다고 하여 당시 탁주를 이화주(梨花酒)로 불렀다고 하니 막걸리가 우리 민족과 오랫동안 애환을 함께 한 술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쌀막걸리에는 1.2%의 단백질이 들어 있다.우유의 단백질량이 3%인 점을 감안하면 그 양이 결코 적지 않다.또 8종의 필수 아미노산과 비타민 B1,B2를 상당량 함유하고 있으며 성인병의 원인 물질인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그런데도 맥주와 소주,위스키에밀려 갈수록 푸대접을 받고 있어 여간 안타깝지 않다. 20일 서울 종로 인사동에서는 우리 막걸리를 알리기 위한 대규모 거리축제가 열린다고 한다.전국의 대표적인 9개탁주업체들이 막걸리의 세계적 브랜드화를 위해 20여종의막걸리를 선보일 계획이라는 소식이다.모처럼 옛 벗들과어울려 일요일 오후 인사동 전통거리에서 기울이는 대포한 잔의맛은 어떠할까. [박건승 논설위원 ksp@]
  • [공직인맥 열전](56)국가보훈처.하

    올해로 창설 40주년을 맞은 국가보훈처는 ‘보훈문화 확산’이라는 대명제 아래 종래의 보상금 지원사업에서 벗어나 국가유공자의 명예선양 및 민족정기 선양사업에 역점을 둔 정책을 펴고 있다. 보훈업무의 중요성에 비해 보훈처의 위상은 아직 미미하다.이재달 처장에 이르기까지 역대 처장과 차장의 면면을보면 위상이 짐작된다.23명의 역대 처장 중 예비역 장성이 13명,총리실 등 행정부 출신이 5명,국가정보원(옛 안기부)이 4명,학자출신이 1명이다.내부 승진자는 단 한명도 없다. 16명의 역대 차장 중 보훈처 내부 승진자는 4명.주로 청와대나 총리실 비서관 출신들이 차지했다.내부승진자 중허길·최병삼·장귀호 전 차장과 김종성 차장 등 4명은 모두 기획관리실장이나 기획관리관을 지낸 뒤 승진한 것이특색이다. 보훈처는 이처럼 처·차장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다보니 특정지역 인맥이나 학맥,근무연 등이 거의 형성되지 않았다.3급 이상 국장급 간부 10명 중 행정고시 출신 2명,예비역 장성 1명 등 3명을 제외한 전원이 7급이나 9급 공무원 임용자로채워져 있다.출신지역도 영남 5명,충청·제주 각 2명,전북 1명으로 분포돼 있다. 반면 과장급은 행시 출신의 진출이 활발하다.행시 27회인 장대섭과장이 주무과장인 선양정책과장을 맡고 있는 것을 비롯,권율정 익산지청장(행시28회),최완근 처장 비서관(행시29회),이병구(행시30회·해외파견)·남창수(행시33회·〃)·이성춘씨(행시33회·〃) 등이 뒤를 받치고 있다. 서원길 보훈관리국장은 보훈연수원 등 연구직에 오래 근무한 경력자답게 박학다식하다.술을 즐기진 않지만 술자리의 분위기를 띄우는 분위기 메이커.다소 드센 9개 중앙보훈단체들의 갈등을 조정,해소하는 주무국장으로 적격이라는 평을 받는다. 황인환 보훈선양국장은 보훈문화 확산업무의 주무국장.기념사업과장을 지내면서 민족정기선양사업의 개념을 정립하고 논리를 개발하는 데 한몫했다.온화한 가운데 추진력이있다는 평을 받는다. 김두현 복지사업국장은 깔끔한 용모에 할 말은 하는 원칙주의자.보훈처 업무 중 가장 골치아픈 보훈병원,88골프장등 산하 사업장의 관리·감독을 맡는다.88골프장을 관리하지만 본인은 골프를 치지 않는다. 백남환 제대군인정책관은 지난해 첫 공개채용을 통해 개방형직제에 임용된 육사 25기의 예비역 준장.이재달 처장이 25사단 72연대장 때 3대대장을 지낸 근무연을 갖고 있다. 김건신 서울지방보훈청장은 서울,경기,강원지방의 보훈업무를 집행하는 보훈처의 ‘얼굴’역할을 무리없이 해내는온순한 성품의 합리주의자로 손꼽힌다. 이종정 부산지방청장은 아마2단의 바둑실력과 당구 500점,두주불사 등 잡기에 능하다.보훈처의 차세대주자로 인정받는다. 노주석기자 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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