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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르스·에볼라·니파뇌염 배후엔 모두 박쥐가…

    메르스·에볼라·니파뇌염 배후엔 모두 박쥐가…

    “에이즈는 불과 35년 전에 등장했지만 가장 위험한 질병이 됐습니다. 이런 신종 전염병은 언제든 등장해 인류를 팬데믹(대유행)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이를 막으려면 전 세계가 정보를 공유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앨리스 도트리 박사는 2012년 한국을 찾아 기자간담회를 갖고 ‘인류를 위한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에이즈를 비롯해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9년 신종플루, 2014년 에볼라,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최근 몇 년 새 급증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신종전염병의 75%는 야생동물에서 사람으로 넘어와 진화한 바이러스다. 이런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감염병을 인수공통전염병이라고 한다. 인수공통전염병은 대개 동물이 먼저 갖고 있던 병이어서 사람에게는 항체가 없는 탓에 더 치명적이다. 하지만 인수공통전염병을 유발하는 동물바이러스 가운데 인류가 밝혀낸 것은 고작 1%다. 이마저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많다. 메르스처럼 동물 숙주에 잠복해 있다가 언제든 나타나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1976년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처음 출현해 이후 주기적으로 발병하며 숱한 생명을 앗아갔을 때도 세계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가난한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질병이어서 제약사도 백신 개발을 외면했다. 그러다 결국 지난해 에볼라 바이러스가 대대적으로 유행해 감염자 2만 2000여명과 사망자 9000여명이 발생했다. 무관심과 제약사의 탐욕이 빚어낸 참사였다. 메르스만 해도 최근에 등장해 중동에서만 발생하다 보니 백신 개발은커녕 연구가 시작된 지 3년도 안 됐다. 보건 당국 관계자는 “메르스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뤄졌으면 대응도 빨랐을 텐데, 메르스에 대한 정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2m 이내 한 시간 이상 밀접 접촉 때 감염 가능’이란 것밖에 없어 혼란이 컸다”고 털어놨다. 메르스 연구는 한국에서 유행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분위기다. 단지 우리 앞에서 비켜 있을 뿐 어딘가에서 확산을 기다리며 도사리고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은 메르스 외에도 많다. 1998년 1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말레이시아의 ‘니파 뇌염’이 잠재적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전염병이다. 치사율은 50%로, 말레이시아와 방글라데시에서만 크게 퍼졌지만 이 바이러스의 최초 숙주인 과일박쥐는 인도네시아,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 여러 나라에 걸쳐 서식하고 있다. 초기 증상은 독감과 비슷하나 뇌염으로 발전해 혼수상태에 빠진 뒤 사망한다. 동남아나 아프리카 열대 지역에서만 발생한다고 여겼던 뎅기열은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병을 옮기는 흰줄숲모기가 점차 북상해 한반도도 안전하지 않게 됐다. 이미 중국과 대만, 일본 등 주변국에서도 발생하고 있으며 제주도에서 흰줄숲모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뎅기열은 사망률이 높지 않으나 출혈열로 발전하면 40~50%가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신이나 치료제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백신이 있어도 이런 바이러스는 박멸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백신을 맞더라도 메르스 바이러스는 원래 숙주인 박쥐나 낙타에, 뎅기 바이러스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사는 원숭이의 몸에 도사리고 있다가 재등장할 수 있다. 교통의 발달로 지구촌이 하나로 묶이면서 풍토병이 퍼져나가기 쉬운 환경이 됐다. 에볼라, 니파바이러스, 메르스의 공통된 특징은 박쥐가 자연숙주란 점이다. 에볼라는 박쥐에서 바로 사람으로, 니파바이러스는 박쥐에서 돼지를 통해, 메르스는 박쥐에서 낙타를 통해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 왔다. 박쥐는 조류가 아닌 포유동물이어서 야생 조류에 비해 종간(種間) 장벽이 낮다. 게다가 무리 지어 살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무리 내에 고루 전염되어 존재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바이러스가 인간으로 숙주를 바꿔 탈 기회를 노리며 밀림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먼 나라 얘기라며 대비하지 않으면 일종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신의 방패’ 이지스함 이번에도 반쪽짜리?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신의 방패’ 이지스함 이번에도 반쪽짜리?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모든 공중위협을 잠재울 수 있는 신의 방패, 이지스 구축함 추가 도입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 : Defense Security Cooperation Agency)은 9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우리나라가 요청했던 이지스 구축함용 레이더와 미사일 발사기 및 관련장비의 한국 수출에 대한 국무부 승인이 이루어졌으며 관련 사실을 미 의회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가 이번에 판매를 요청한 무기들은 오는 2023년부터 3척이 전력화되는 세종대왕급 배치(Batch) II 구축함에 장착되며, 2027년 이들 3척이 모두 전력화될 경우 우리나라는 모두 6척의 이지스 구축함을 보유하게 되는데, 새로 도입되는 3척의 이지스 구축함에는 주목할 만한 ‘무엇’인가가 있다. -대당 1조원 '세종대왕급' 탄도미사일 요격못해 '이지스'(Aegis)라는 명칭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방패 이름인 아이기스(Αιγίς)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이 방패는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Zeus)가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토스(Hephaestus)를 시켜 만들었으며, 전쟁의 여신인 아테나(Athena)가 사용했다. 이 방패는 모든 악을 씻어냄과 동시에 모든 창과 방패, 심지어 벼락까지도 막아낼 수 있으며, 방패를 흔들면 천지가 구름에 뒤덮이고 천둥벼락이 치면서 모든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무적의 방패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이지스함’이란 AN/SPY-1 계열의 레이더와 이를 통제하는 전투체계를 탑재한 군함을 말하는데, 그 성능이 워낙 강력하여 해상에서는 사실상 무적의 전투함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선진 해군을 꿈꾸는 모든 나라들은 이러한 이지스함을 보유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우리 해군 역시 1985년 이지스 구축함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여 무려 20여 년 만에 한국해군 최초의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을 전력화할 수 있었다. 3척이 건조된 이지스 구축함은 해군의 소유이지만, 단일 무기체계로는 국군이 도입했던 무기체계 가운데 가장 비싸며, 가장 강력한 무기체계이기 때문에 전략자산으로 분류되어 합동참모본부의 지시와 승인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 있다. 3척의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은 척당 1조 원에 달하는 고가의 무기체계이고, 우리 군 최고의 전략자산으로 분류되지만, 취역한지 몇 해 되지 않아 몇 가지 약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가장 큰 문제는 핵심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탑재하지 않아 가지고 있는 잠재 성능을 100%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비용 절감에 지나치게 매달린 나머지 운용 초기 단계에서 적지 않은 애로사항을 겪어야만 했다는 것이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3년 회계연도 국가결산 자료에 따르면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 3척의 평균 가격은 약 9,105억 원에 수준이다. 그러나 배 자체의 가격은 2,600억 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6,500억 원 가운데 3,500억 원은 배 외관에서 볼 수 있는 8각형 레이더, 즉 AN/SPY-1D(v) 레이더 값이고, 나머지 3,000억 원은 미사일 수직 발사기와 함포 등 각종 무장과 통신장비 값이다. 레이더 가격이 워낙 비쌌기 때문에 해군은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동분서주했고, ‘공동구매’라는 방법을 찾아냈다. 매년 2~3척의 이지스함을 건조하며 현재까지 80여 척에 달하는 이지스함을 전력화하고 있는 미국 해군은 물론 신형 이지스함 도입을 준비 중이던 일본과도 협력 방안을 타진했다. 그리고 3국이 공동으로 동일한 레이더와 전투체계를 구매하는 조건으로 제작사가 최초에 제안했던 가격보다 약 2억 7000만 달러, 약 3,000억 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이 공동구매를 통해 동일한 레이더와 전투체계를 구입했지만, 전력화 이후의 행보는 달랐다. 미국과 일본은 1척에 2,500억~3,000억 원의 비용을 추가로 들여 BMD(Ballistic Missile Defense) 설비를 갖추는 개량 공사를 실시했다. 이러한 개량을 통해 원거리에서 발사된 탄도 미사일에 대한 탐지·추적은 물론 SM-3 미사일을 이용해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이지스함이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격통제시스템와 레이더 시스템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이 소프트웨어로 통제되는 수직발사기용 ORDLT(Ordinance Alteration) 개조 키트와 지원 시스템 등 각종 부가 장비를 갖추고 탄도 미사일 요격에 특화된 SM-3 미사일을 탑재해야 한다. 세종대왕급과 같은 시기에 전력화된 미 해군 구축함 일부와 일본 해상자위대의 구축함들은 이러한 개량 사업을 통해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즉각 탐지,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탐지와 식별, 추적과 요격이 모두 가능한 미국과 일본의 이지스함과 달리 우리나라의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은 탐지와 식별, 추적만 가능할 뿐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 이 때문에 우리 이지스 구축함들은 북한이 은하 3호 로켓을 발사했을 때도, 동해상에서 각종 미사일을 발사할 때도 북한 미사일의 궤적만 탐지하고 추적하는 정도의 임무만 수행할 뿐 요격시도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척당 1조원에 가까운 예산을 써 놓고도 정작 가장 큰 위협인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는 대응할 수 없는 ‘반쪽짜리’ 이지스함으로 써 왔던 것이었다. -진정한 신의 방패로 거듭나기 위한 조건 해군에는 '3직제'라는 개념이 있다. 1척의 군함을 항상 바다에 떠 있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 3척의 군함이 필요하다는 개념이다. 1척이 임무수행을 위해 바다에 나가 있으면 다른 1척은 임무수행을 마치고 돌아와 정비와 휴식을 하고, 나머지 1척은 다음 임무 수행 준비를 위한 훈련과 보급 등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3직제 개념을 대입해보면 동해와 서해에 각각 1척의 이지스함을 상시 배치하기 위해 적어도 6척의 이지스함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해군이 이지스함 3척 추가 도입을 요구했던 배경도 이 같은 맥락이다. 현재 해군은 12척의 한국형 구축함을 보유하고 있다. 3,800톤급 크기인 광개토대왕급 3척은 동해와 서해에 분산 배치되어 운용중이고, 4,500톤급인 충무공 이순신급 6척은 3척은 소말리아 해적 퇴치 작전 투입과 복귀, 임휴식 및 정비에 묶여있고, 3척은 서해 NLL 경계 작전 지원에 교대로 투입되기 때문에 독도나 이어도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이지스 구축함 3척도 3직제에 따라 1척이 동해나 서해에서 경계 작전 임무를 수행하고, 나머지 2척은 교육훈련과 정비에 투입되기 때문에 긴급 상황이 발발했을 때 투입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해군은 오래 전부터 이지스 구축함 추가 도입을 추진해 왔고, 지난 2013년 3척 추가 건조가 확정되어 현재 설계 작업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다. 오는 2023년부터 도입되는 세종대왕급 Batch II 구축함은 Batch I에 비해 10년 이상 늦게 등장하는 만큼 초기에는 어느 정도 장비를 갖추고 어느 정도 수준으로 건조될 것인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지스함을 구성하는 여러 장비 가운데 가장 핵심인 레이더와 관련해서는 현재 세종대왕급이 탑재하고 있는 AN/SPY-1D(v) 레이더가 점차 구식화될 것이고, 조만간 단종될 것이기 때문에 차세대 이지스 레이더인 AN/SPY-6(v) AMDR(Air and Missile Defense Radar)을 구입해 탑재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제기되기도 했었다. 실제로 세종대왕급 Batch II 구축함이 등장하는 2023년에 미 해군은 AN/SPY-6(v) 레이더를 탑재한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이 배치되는 시기이고, 이 레이더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해 탁월한 대응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래 중국과 일본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서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우수한 성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AN/SPY-6(v) 레이더 도입론은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척당 추가 3000억 원 비용이 관건 그러나 이 레이더의 가격은 세종대왕급이 가지고 있는 AN/SPY-1D(v)의 2배에 달하고, 운용유지비 역시 기존 레이더에 비해 과도하게 높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세종대왕급 Batch II 사업은 신규전력 확보 사업이 아니라 개량형 도입사업이기 때문에 기존 세종대왕급 대비 성능과 비용이 20%를 초과할 수 없다. 즉, 현재 규정과 예산 범위 안에서는 신형 레이더 탑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최신형 레이더 구매와 탑재가 어렵다면 현재 구입이 결정된 장비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어 부족한 성능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미국으로부터 구매할 예정인 AN/SPY-1D(v) 레이더와 베이스라인(Baseline) 9 전투체계는 현재 개발된 이지스 전투체계 가운데 가장 최신형으로 몇 가지 개량만 가해지면 현재 세종대왕급보다 압도적으로 우수한 성능을 보유해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주변국의 다양한 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우선 일본이 신형 아타고급 이지스함 2척을 전력화하자마자 개량사업을 실시해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부여한 것처럼 세종대왕급 Batch II 역시 전력화와 동시에 개량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미 국방안보협력국이 밝힌 판매 승인 내역을 보면 미사일 방어를 위한 BMD 체계 구성요소나 CEC(Cooperative Engagement Capability) 구성 요소는 빠져 있다. 이러한 장비들을 모두 탑재하는 개량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척당 3,000억 원 안팎이다. 적지 않은 부담이지만, 이러한 개량을 거치면 세종대왕급 Batch II는 이지스라는 이름 그대로 무적에 가까운 능력을 갖게 된다. 공군의 피스아이와 연계하여 사정거리 400km에 달하는 SM-6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게 되어 부산 앞바다에서도 독도나 이어도 상공에 일본이나 중국 전투기가 얼씬도 못하게 견제할 수 있고,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더라도 SM-3 미사일을 이용해 북한 영공에서 요격해 버릴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을 갖추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군 통수권자와 정치권의 의지, 그리고 각 군 사이의 의견 대립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증대됨에 따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구축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지만, 야권에서 “본격적인 미사일 방어 능력을 갖추면 미국의 MD에 협력하는 것으로 비춰져 중국과의 관계가 멀어질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고, KAMD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공군 역시 해군이 이지스함과 SM-3 미사일을 이용해 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추는 것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이지스함을 ‘진정한 신의 방패’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결단을 이번에도 포기한다면 4조원의 비용을 들여 들여오는 3척의 이지스함 역시 제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할 것이고, 대한민국 국가 전체를 수호하는 전략무기가 아니라 해군 함대만 보호하는 전술무기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10년 전 세종대왕함을 만들 때 우리는 신의 방패를 가질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현실화되고 중국과 일본의 군비경쟁 열기가 격화되는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일우 군사통신원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신의 방패’ 제 노릇 하려면...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신의 방패’ 제 노릇 하려면...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모든 공중위협을 잠재울 수 있는 신의 방패, 이지스 구축함 추가 도입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 : Defense Security Cooperation Agency)은 9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우리나라가 요청했던 이지스 구축함용 레이더와 미사일 발사기 및 관련장비의 한국 수출에 대한 국무부 승인이 이루어졌으며 관련 사실을 미 의회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가 이번에 판매를 요청한 무기들은 오는 2023년부터 3척이 전력화되는 세종대왕급 배치(Batch) II 구축함에 장착되며, 2027년 이들 3척이 모두 전력화될 경우 우리나라는 모두 6척의 이지스 구축함을 보유하게 되는데, 새로 도입되는 3척의 이지스 구축함에는 주목할 만한 ‘무엇’인가가 있다. -탄도미사일 요격 못하는 '반쪽짜리 이지스함' '이지스'(Aegis)라는 명칭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방패 이름인 아이기스(Αιγίς)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이 방패는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Zeus)가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토스(Hephaestus)를 시켜 만들었으며, 전쟁의 여신인 아테나(Athena)가 사용했다. 이 방패는 모든 악을 씻어냄과 동시에 모든 창과 방패, 심지어 벼락까지도 막아낼 수 있으며, 방패를 흔들면 천지가 구름에 뒤덮이고 천둥벼락이 치면서 모든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무적의 방패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이지스함’이란 AN/SPY-1 계열의 레이더와 이를 통제하는 전투체계를 탑재한 군함을 말하는데, 그 성능이 워낙 강력하여 해상에서는 사실상 무적의 전투함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선진 해군을 꿈꾸는 모든 나라들은 이러한 이지스함을 보유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우리 해군 역시 1985년 이지스 구축함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여 무려 20여 년 만에 한국해군 최초의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을 전력화할 수 있었다. 3척이 건조된 이지스 구축함은 해군의 소유이지만, 단일 무기체계로는 국군이 도입했던 무기체계 가운데 가장 비싸며, 가장 강력한 무기체계이기 때문에 전략자산으로 분류되어 합동참모본부의 지시와 승인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 있다. 3척의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은 척당 1조 원에 달하는 고가의 무기체계이고, 우리 군 최고의 전략자산으로 분류되지만, 취역한지 몇 해 되지 않아 몇 가지 약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가장 큰 문제는 핵심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탑재하지 않아 가지고 있는 잠재 성능을 100%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비용 절감에 지나치게 매달린 나머지 운용 초기 단계에서 적지 않은 애로사항을 겪어야만 했다는 것이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3년 회계연도 국가결산 자료에 따르면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 3척의 평균 가격은 약 9,105억 원에 수준이다. 그러나 배 자체의 가격은 2,600억 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6,500억 원 가운데 3,500억 원은 배 외관에서 볼 수 있는 8각형 레이더, 즉 AN/SPY-1D(v) 레이더 값이고, 나머지 3,000억 원은 미사일 수직 발사기와 함포 등 각종 무장과 통신장비 값이다. 레이더 가격이 워낙 비쌌기 때문에 해군은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동분서주했고, ‘공동구매’라는 방법을 찾아냈다. 매년 2~3척의 이지스함을 건조하며 현재까지 80여 척에 달하는 이지스함을 전력화하고 있는 미국 해군은 물론 신형 이지스함 도입을 준비 중이던 일본과도 협력 방안을 타진했다. 그리고 3국이 공동으로 동일한 레이더와 전투체계를 구매하는 조건으로 제작사가 최초에 제안했던 가격보다 약 2억 7000만 달러, 약 3,000억 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이 공동구매를 통해 동일한 레이더와 전투체계를 구입했지만, 전력화 이후의 행보는 달랐다. 미국과 일본은 1척에 2,500억~3,000억 원의 비용을 추가로 들여 BMD(Ballistic Missile Defense) 설비를 갖추는 개량 공사를 실시했다. 이러한 개량을 통해 원거리에서 발사된 탄도 미사일에 대한 탐지·추적은 물론 SM-3 미사일을 이용해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이지스함이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격통제시스템와 레이더 시스템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이 소프트웨어로 통제되는 수직발사기용 ORDLT(Ordinance Alteration) 개조 키트와 지원 시스템 등 각종 부가 장비를 갖추고 탄도 미사일 요격에 특화된 SM-3 미사일을 탑재해야 한다. 세종대왕급과 같은 시기에 전력화된 미 해군 구축함 일부와 일본 해상자위대의 구축함들은 이러한 개량 사업을 통해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즉각 탐지,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탐지와 식별, 추적과 요격이 모두 가능한 미국과 일본의 이지스함과 달리 우리나라의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은 탐지와 식별, 추적만 가능할 뿐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 이 때문에 우리 이지스 구축함들은 북한이 은하 3호 로켓을 발사했을 때도, 동해상에서 각종 미사일을 발사할 때도 북한 미사일의 궤적만 탐지하고 추적하는 정도의 임무만 수행할 뿐 요격시도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척당 1조원에 가까운 예산을 써 놓고도 정작 가장 큰 위협인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는 대응할 수 없는 ‘반쪽짜리’ 이지스함으로 써 왔던 것이었다. -진정한 신의 방패로 거듭나기 위한 조건 해군에는 '3직제'라는 개념이 있다. 1척의 군함을 항상 바다에 떠 있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 3척의 군함이 필요하다는 개념이다. 1척이 임무수행을 위해 바다에 나가 있으면 다른 1척은 임무수행을 마치고 돌아와 정비와 휴식을 하고, 나머지 1척은 다음 임무 수행 준비를 위한 훈련과 보급 등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3직제 개념을 대입해보면 동해와 서해에 각각 1척의 이지스함을 상시 배치하기 위해 적어도 6척의 이지스함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해군이 이지스함 3척 추가 도입을 요구했던 배경도 이 같은 맥락이다. 현재 해군은 12척의 한국형 구축함을 보유하고 있다. 3,800톤급 크기인 광개토대왕급 3척은 동해와 서해에 분산 배치되어 운용중이고, 4,500톤급인 충무공 이순신급 6척은 3척은 소말리아 해적 퇴치 작전 투입과 복귀, 임휴식 및 정비에 묶여있고, 3척은 서해 NLL 경계 작전 지원에 교대로 투입되기 때문에 독도나 이어도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이지스 구축함 3척도 3직제에 따라 1척이 동해나 서해에서 경계 작전 임무를 수행하고, 나머지 2척은 교육훈련과 정비에 투입되기 때문에 긴급 상황이 발발했을 때 투입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해군은 오래 전부터 이지스 구축함 추가 도입을 추진해 왔고, 지난 2013년 3척 추가 건조가 확정되어 현재 설계 작업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다. 오는 2023년부터 도입되는 세종대왕급 Batch II 구축함은 Batch I에 비해 10년 이상 늦게 등장하는 만큼 초기에는 어느 정도 장비를 갖추고 어느 정도 수준으로 건조될 것인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지스함을 구성하는 여러 장비 가운데 가장 핵심인 레이더와 관련해서는 현재 세종대왕급이 탑재하고 있는 AN/SPY-1D(v) 레이더가 점차 구식화될 것이고, 조만간 단종될 것이기 때문에 차세대 이지스 레이더인 AN/SPY-6(v) AMDR(Air and Missile Defense Radar)을 구입해 탑재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제기되기도 했었다. 실제로 세종대왕급 Batch II 구축함이 등장하는 2023년에 미 해군은 AN/SPY-6(v) 레이더를 탑재한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이 배치되는 시기이고, 이 레이더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해 탁월한 대응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래 중국과 일본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서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우수한 성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AN/SPY-6(v) 레이더 도입론은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척당 추가 3000억 원 비용이 관건 그러나 이 레이더의 가격은 세종대왕급이 가지고 있는 AN/SPY-1D(v)의 2배에 달하고, 운용유지비 역시 기존 레이더에 비해 과도하게 높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세종대왕급 Batch II 사업은 신규전력 확보 사업이 아니라 개량형 도입사업이기 때문에 기존 세종대왕급 대비 성능과 비용이 20%를 초과할 수 없다. 즉, 현재 규정과 예산 범위 안에서는 신형 레이더 탑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최신형 레이더 구매와 탑재가 어렵다면 현재 구입이 결정된 장비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어 부족한 성능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미국으로부터 구매할 예정인 AN/SPY-1D(v) 레이더와 베이스라인(Baseline) 9 전투체계는 현재 개발된 이지스 전투체계 가운데 가장 최신형으로 몇 가지 개량만 가해지면 현재 세종대왕급보다 압도적으로 우수한 성능을 보유해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주변국의 다양한 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우선 일본이 신형 아타고급 이지스함 2척을 전력화하자마자 개량사업을 실시해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부여한 것처럼 세종대왕급 Batch II 역시 전력화와 동시에 개량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미 국방안보협력국이 밝힌 판매 승인 내역을 보면 미사일 방어를 위한 BMD 체계 구성요소나 CEC(Cooperative Engagement Capability) 구성 요소는 빠져 있다. 이러한 장비들을 모두 탑재하는 개량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척당 3,000억 원 안팎이다. 적지 않은 부담이지만, 이러한 개량을 거치면 세종대왕급 Batch II는 이지스라는 이름 그대로 무적에 가까운 능력을 갖게 된다. 공군의 피스아이와 연계하여 사정거리 400km에 달하는 SM-6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게 되어 부산 앞바다에서도 독도나 이어도 상공에 일본이나 중국 전투기가 얼씬도 못하게 견제할 수 있고,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더라도 SM-3 미사일을 이용해 북한 영공에서 요격해 버릴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을 갖추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군 통수권자와 정치권의 의지, 그리고 각 군 사이의 의견 대립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증대됨에 따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구축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지만, 야권에서 “본격적인 미사일 방어 능력을 갖추면 미국의 MD에 협력하는 것으로 비춰져 중국과의 관계가 멀어질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고, KAMD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공군 역시 해군이 이지스함과 SM-3 미사일을 이용해 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추는 것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이지스함을 ‘진정한 신의 방패’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결단을 이번에도 포기한다면 4조원의 비용을 들여 들여오는 3척의 이지스함 역시 제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할 것이고, 대한민국 국가 전체를 수호하는 전략무기가 아니라 해군 함대만 보호하는 전술무기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10년 전 세종대왕함을 만들 때 우리는 신의 방패를 가질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현실화되고 중국과 일본의 군비경쟁 열기가 격화되는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일우 군사통신원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세계 2위 아시아 군수시장… 美 메이저 업체들엔 ‘그림의 떡’

    세계 2위 아시아 군수시장… 美 메이저 업체들엔 ‘그림의 떡’

    ‘잔치는 소문났는데, 먹을 건 없었다?’ 미국 메이저 군수업체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지난 10년 동안 아시아 지역 국방 예산이 급증하며 북미 지역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으로 치솟았지만, 미 군수업체들엔 ‘그림의 떡’이었다는 얘기다. 역설적으로 기술적으로 너무 훌륭하기 때문에 미 군수업체들이 이 시장에서 고전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다. 너무 복잡하고 비싼 국방 장비는 아시아 지역에 맞지 않고, 한국과 같은 시장 후발 주자들이 아시아 국가에 공을 들이며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난해 글로벌 국방지출 총액을 1조 7190억 달러로 집계했다. 이 가운데 25%인 4230억 달러를 아시아·오세아니아에서 썼다. 5960억 달러를 지출한 북미에 이어 2위다. 아시아 지역 국방 지출은 지난 10년 동안 62% 급증했다. 아시아가 ‘뜨는 시장’인 셈이다. 더욱이 아시아에서 역내 군사적·정치적 갈등은 고조되는 분위기다. 중국과 남중국해 주변국 간 영유권 분쟁 양상을 보면 베트남과 필리핀이 이미 분쟁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를 제외한 나머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국가 전체가 갈등을 겪을 잠재군으로 분류된다. 중국이 미 군수업체 무기를 쓸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지만, 미국의 우방인 필리핀뿐 아니라 한때 적대 관계였던 베트남마저 미국산 무기에 관심을 기울일 처지가 된 셈이다. 그럼에도 현재 아세안 10개국 가운데 미국산 최신 전투기를 보유한 곳은 싱가포르가 유일하고, 미국 초현대식 군함을 보유한 나라는 없다. 1970년대엔 한국을 비롯해 대만·인도네시아·싱가포르·태국 등이 미국의 노스롭 F5를 구비했던 것과 대비된다. 가뜩이나 올해 미국 정부의 국방 예산이 5600억 달러로 4년 전 7210억 달러의 77.7%로 급감한 가운데 떠오르는 아시아 시장에서 고전하며 미 군수업체들의 매출도 감소했다. 레이테온의 지난해 매출은 228억 달러로 2010년 252억 달러보다 줄었다. 록히드마틴의 지난해 순매출액은 4년 전과 차이 없는 456억 달러였다. 미 군수업체들은 이렇게 된 이유가 미군을 위한 비싼 최첨단 제품 개발에 치중해 온 탓이라고 자평했다.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FA18 슈퍼호넷 다목적 전투·공격 항공기의 글로벌 세일즈를 총괄하는 하워드 베리 보잉 부사장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제품은 자동차로 따지면 캐딜락”이라고 말했다. 록히드마틴의 F35 통합 전투기도 아시아 고객에겐 지나치게 정교하며 비싼 제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40대에 70억 달러를 지불하고 F35를 구매할 만한 나라는 일본과 한국뿐이라고 지적했다. 정작 아시아 국가들은 훈련부터 실제 전투까지 가능한 다기능, 유지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효율적 무기를 선호한다. 이들이 선호하는 전투기 가격대는 대당 1억 2500만 달러 선으로 F35의 가격과 격차가 크다. 미국 KAT컨설팅의 조 카츠만 컨설턴트는 “미국이 ‘금띠 두른’ 무기체계로 소수의 고가 시장 고객만 만족시키려고 한다”면서 “저가 시장을 외면하면 신규 구매자를 잃게 된다”고 평가했다. 비용뿐 아니라 무기 카테고리 측면에서도 미 군사업체들은 경쟁력을 잃고 있다. 최근 아시아 국가들은 디젤 잠수함을 선호하지만 미 군수업체들은 핵잠수함만 만든다. 결국 최근 몇 년 동안 말레이시아·베트남·싱가포르·인도·인도네시아 등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신형 잠수함을 발주했을 때 한국, 유럽, 러시아 제조사들이 수주권을 따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업체들 중 선박을 만드는 대우조선해양, 전투기를 생산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을 주목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인도네시아 잠수함, 영국·노르웨이·태국의 군함을 수주했다. KAI는 인도네시아·터키·페루·이라크·필리핀 등지에 수출 거점을 확보했다. 삼성테크윈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터키와 폴란드에 최신 자주포를 판매했다. 7일 한국국방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방산 수출액은 2006년 2억 5000만 달러에서 2011년 23억 8000만 달러로, 같은 기간 수출 대상국은 47개국에서 85개국으로 늘었다. KAT컨설팅의 카츠만 컨설턴트는 한국 방산업체의 성공을 현대차의 성장과 결부해 분석한 글을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했다. 그는 “현대차는 신속한 기술 확산, 초기의 값싼 노동력,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지렛대 삼아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경쟁자로 부상했다”면서 “글로벌 방위산업에서도 현대차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카츠만 컨설턴트에 따르면 한국·파키스탄·인도의 전투기들은 미국 F16보다 33~50% 싸다. 한국처럼 무기 시장의 틈새를 파고들며 신흥국을 공략하는 나라가 늘어나면, 미 군수업체들이 저가 시장을 파고드는 쪽으로 전략을 바꿀까.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럴 가능성을 낮게 보며 한국이 전투기 등을 판매할 때 미 군수업체들도 반사적으로 이익을 얻는 구조를 설명했다. 예컨대 KAI의 수출 품목인 한국형 복합 훈련기 T50은 록히드마틴과 공동 개발한 기종으로 허니웰인터내셔널, 록웰콜린스, 레이테온 등의 장비를 쓴다. 한국의 T50이 판매되면 미국 업체들에게도 일정한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인 셈이다. 허니웰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방·우주 체계 수석책임자인 마크 버지스는 “우리에게 아시아 항공기 제조사들의 부상은 위협이 아닌 기회”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경쟁사로 보는 그룹은 유럽 업체”라고 덧붙였다. 유럽 업체들의 자세는 미국 업체들과 다소 다르다. 특히 방산 분야에서도 ‘히든 챔피언’을 키운 독일은 고가 시장과 저가 시장을 넘나들 수 있는 국가로 분류된다. 독일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방 예산이 삭감되자 수출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독일 슈피겔은 “독일 군수업체들은 주로 독일 연방군인 분데스베르에 무기를 납품했지만, 10년 전부터 수출 비중을 늘려 최근에는 제품의 70%를 해외에 판매한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독일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무기 수출을 규제하는 결정을 내렸고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무기 수출국 3위의 자리를 중국에 넘겨주고 프랑스에 이어 5위로 내려앉은 처지이지만, 독일은 여전히 각종 무기 시장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2차 세계대전 사과 문제를 놓고 이견을 빚었던 일본 시장에도 적극 구애를 펴고 있다. 독일 국영 독일의 소리(DW)는 “지난달 일본이 전후 처음으로 자국에서 개최한 방산 전시회에 독일 군수업체들이 적극 참여했다”고 전했다. 해군 장비 부품 제작업체, 무인 전차 개발업체 등에 소속된 직원들은 “당장 계약을 따내지 않더라도 관련 시장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참석”이라고 전했다. 일본과 동맹 관계인 미국 군수업체들의 경쟁 우위를 인정하면서도 틈새 시장을 노리겠다는 독일의 포석이다. 지난달 13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일본의 방산 전시회에는 미국과 독일의 군수업체뿐 아니라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업체들도 참가했다. 프랑스의 무기 수출액도 지난해 82억 유로로 1년 동안 18% 증가, 15년 만에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고 최근 AFP가 전했다. 이집트와 카타르에 라팔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중동 지역에 공을 들인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2010~14년 프랑스는 중동(38%)과 아시아(30%)에 대한 무기 수출에 집중했다. 이어 유럽(13%), 북미(11%), 아프리카(4%) 순으로 무기를 수출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메르스 민폐국’ 추락한 ‘사스 예방 모범국’

    중국과 홍콩에서만 64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1명의 확진 환자도 내지 않아 세계보건기구로부터 ‘사스 예방 모범국’이란 평가까지 받은 한국이 ‘메르스 민폐국’이 됐다. 방역체계가 12년 전보다 후퇴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보건당국의 조기 방역 태세 미흡을 꼽는다. 우선 2003년 사스 사태는 중국과 홍콩에서 먼저 발생했기 때문에 보건당국은 일찍 비상 방역 태세를 갖출 수 있었다. 방역의 최전선인 공항에서부터 철저하게 검역을 실시했고 국내에 사스가 발생할 경우 국민 대응 요령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당시에도 보건당국의 사스 전담 인력은 4~5명 수준으로 매우 적었으나, 고건 당시 총리를 중심으로 ‘사스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전 부처가 일사불란하게 사스와의 ‘전투태세’를 갖췄다. 상위 부처인 국무조정실이 나서자 국방부, 행정자치부 등 관련 부처가 모두 움직였다. 고 전 총리는 조영길 당시 국방부 장관을 불러 “사스 방역도 국가를 방어하는 일이다. 군의관과 군 간호 인력이 필요하다”고 협조를 요청했다. 덕분에 군 의료진 70여명을 공항 사스 방역에 투입할 수 있었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는 일단 초기 대응이 늦었다. 주변국에 환자가 없었고 중동에서도 2012년부터 3년간 환자가 매우 적게 발생해 보건당국은 긴장을 늦췄다. 최초 환자도 입국할 때는 발열 증상이 없어 공항 방역망을 제지 없이 통과했다. 이후 초기 대응만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환자 확산을 막을 수 있었지만, 보건당국은 최초 환자 발생으로부터 2주일이나 지난 2일에서야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장을 복지부 장관으로 격상하는 등 재빨리 움직이지 않았다. 천병철 고려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3차 감염이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는 등의 얘기는 과거의 데이터인데 보건당국이 이런 데이터를 기준으로 매뉴얼을 작성해 방역을 하다 보니 허점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서울 원다연 인턴기자 panda@seoul.co.kr
  • [구본영 칼럼] 북핵 막아낼 ‘마지노선’이란 없다

    [구본영 칼럼] 북핵 막아낼 ‘마지노선’이란 없다

    미국 상원이 심의 중인 국방수권법에 ‘북한은 핵무장국’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우발적 실수가 아니라면 세계의 경찰국가 격인 미국이 으르고 혈맹이었던 중국이 달래도 북한은 핵 개발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열 경찰이 도둑 한 명 못 잡는다’는 속설 그대로다. 하긴 김정은은 얼마 전 러시아 전승 70주년 행사 참석 약속을 펑크 내면서까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 시험을 했다. 문제는 만일의 사태 시 최대 피해자일 우리에게 지렛대가 없다는 거다. 답답한 노릇이다. 생각해 보라. 이웃에 칼을 든 강도가 있다면 내려놓도록 설득하거나, 제압하든가 양단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전자는 번번이 실패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적잖은 현찰을 쥐여 주면서까지 달랬지만 북한 핵 개발에 전용됐다는 의심만 사고 있다. 후자도 여지껏 주효하지 못했다. 북의 도발 때마다 국제 제재에 나서지만 중국이 늘 뒷문을 열어 주면서 별무효과다. 한국형미사일방어 체계(KAMD)도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북한의 SLBM 시험과 핵 소형화 움직임이 빌미가 된 걸까. 미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카드를 빼들 태세다. 존 매케인 미 상원 군사위원장은 며칠 전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북한의 위협에 관한 ‘최신 정보’에 따라 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은 관영 환구시보를 통해 “사드 배치로 한국은 미국의 총알받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오만불손한 으름장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중국 주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과 미국이 바라는 사드 배치로 한국은 미·중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말과 달리 자칫 미·중 사이에서 샌드위치 꼴이 될 판이다. 안보 정책의 코페르니쿠적 대전환이 절실하다. 북한의 도발과 미·중 등 주변국의 훈수에 끌려다니지 말고 선제적으로 대비하라는 얘기다. 북한이 들쑤실 때마다 허겁지겁 이 무기, 저 무기를 사들이는 대응보다 공세적 방어로 전환해야 한다. 스포츠에서도 상대 공격을 우르르 몰려다니며 막아도 골을 먹기는 일쑤다. 난공불락이라던 프랑스의 마지노선도 독일 기갑부대의 기습에 한순간에 뚫렸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남북 협력의 대도로 나오면 우리로선 최상이다. 그러나 핵으로만 세습체제를 지킬 수 있다는 미망에 사로잡힌 김정은이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북한의 핵·미사일을 무력화하는 게 차선이다. 냉전 시기 미 레이건 행정부는 천문학적 비용으로 우주 공간에서 소련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스타워스 계획’을 추진했다. 당시 경제가 거덜난 소련이 군비 경쟁을 감당하기란 뱁새가 황새를 쫓는 격이었다. 결국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감축 협상에 응하고 개혁·개방을 택했다. 사드 도입도 만사 불여튼튼이란 견지에선 이해된다. 다만 중국의 압력보다 우리 경제 여건에서 엄청난 비용이 더 문제일 수 있다. 그렇다면 북이 감히 핵을 쓸 엄두도 못 내게 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다. 이를 위해 우리도 핵을 보유해 이른바 ‘공포의 균형’을 추구한다고? 우리의 핵 기술력으론 가능하지만, 한·미 동맹의 와해까지 각오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까닭에 유사시 북 핵·미사일 기지는 물론 북한 지도부를 핀포인트로 직격할 능력을 갖추는 게 선택 가능한 차선의 대안이다. 어제 우리 군이 사거리 500㎞ 이상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했단다. 북 핵·미사일을 선제 타격하는 ‘킬 체인’ 구축의 첫 단계 개가다. 이에 자족할 게 아니라 사거리가 더 긴 순항미사일과 스마트탄 등 정밀유도무기(PGM)를 확보해야 한다. 무고한 사람들을 사지로 내몰고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는 전쟁광도 자신의 안위는 두려워하는 법이다. 이달 중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가 주목된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 구상을 설명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인다면 나쁜 그림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란 의문이 남는다면 공허하다. 물밑에서 미국의 PGM 증강과 전진배치 등 실효성 있는 북핵 대응을 논의하는 정상회담이길 바란다. 화려한 외교적 수사는 다음 문제다.
  • 5조원어치 美 첨단 무기 한달 새 집중 구입한 일본

    일본이 아베 신조 총리의 미국 방문 이후 한 달 사이에 5조원이 넘는 규모의 첨단무기를 집중적으로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지지하겠다고 천명함에 따라 일본이 재무장을 강화하는 길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현지시간) 미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에 따르면 국무부는 지난 1일 일본에 E2D 개량 호크아이 공중 조기경보통제기 4대를 판매하는 계약을 승인했다. 노스롭 그루먼사가 제작한 이 경보기 4개와 엔진, 레이더, 기타 장비 등의 판매가격은 모두 17억 달러(약 1조 9000억원)에 달한다. 이로써 아베 총리가 미국을 다녀간 이후 일본은 모두 3건에 48억 9000만 달러(약 5조 4445억원)에 이르는 미국산 첨단무기를 구매하게 됐다. 앞서 국무부는 지난달 5일 30억 달러 규모의 V22B 오스프리 수송기 17대의 판매 계약을 승인한 데 이어 같은 달 13일 1억 9900만 달러 상당의 UGM84L 하푼 미사일 관련 장비·부품·훈련과 군수지원을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일본이 사들인 첨단무기 시스템은 자위대의 해군 전력을 대폭 증강시킬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의 이 같은 구매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이 2015회계연도 예산편성에서 방위 비용을 사상 최대인 4조 9800억엔(약 44조 2948억원)으로 책정하고 각종 첨단무기를 조달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미국산 첨단무기 구매는 또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동북아 질서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보인다. 그러나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일본이 주변국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과도하게 군사력을 증강할 경우 역내에서 세 확장을 시도하는 중국을 자극해 동북아 전반의 긴장도를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이날 북한 서해안과 인접한 보하이(渤海) 해역에서 실탄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최근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영유권 갈등을 빚는 중국은 과거 민감한 시기에 보하이만을 봉쇄, 군사훈련을 해 왔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열린세상] 한국 외교 위기 아니다/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한국 외교 위기 아니다/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일본의 지식인들과 만나면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한다.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지니 이 다음에 중국과 힘을 합쳐 일본에 적대적인 나라가 되지 않을지 걱정됩니다”라고. 한국과 중국의 지나간 역사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고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멀리 조선시대로 되돌아가 한국이 중국에 조공 바치던 역사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중국은 한국전쟁 때 대규모의 군대를 출병해 남북이 분단되도록 한 나라라는 역사적 판단도 못 하는 것이다. 중국과 국교를 열고 지금은 명동에 중국인이 넘쳐 나지만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중국과의 역사 관계에서 배태된 ‘중국 공포’라는 염색체가 단단히 박혀 있다는 사실은 웬만한 한국 사람들은 다 안다. 단지 중국과의 관계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은 명철하게 알고 있고 이 다음에 혹여 경제적 힘에 휘둘리지 않을까 걱정스런 속내들이 있다. 그래서 안보는 미국과 함께하면서 중국과는 경제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돼야 한다는 것이 대중적 상념일 것이다. 그러면 일본과는 어떤가.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침략 사과에 대해 “너무 자주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인들의 속내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반성과 사과에 전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감상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총리가 사과를 하면 며칠도 안 가 각료 중 한 사람이 과거사 망언을 되풀이해 왔으니 말이다. 위안부 문제와 식민 지배에 대한 억울함을 딛고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로 가자고 약속한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인가. 한국이 이런 대승적 견지에서 일본을 용서하고 파트너로 생각하게 된 배경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부터 나름대로 민주주의 가치를 지닌 국가 경영을 해 왔기 때문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신뢰의 바탕 위에서 한국은 일본과의 좋은 관계를 심화해 나갈 것이고 이 관계는 한국의 미래에 좋은 토양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한·일 관계가 경색돼 있지만 조만간 풀릴 것이라는 낙관적 평가를 하는 이유도 한반도 주변 국가 중 일본이 그래도 민주주의의 가치가 훈련된 나라라고 한국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이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중국은 어떤가. 중국과의 지나간 역사를 회고해 볼 때 중국이 과거처럼 동북아를 바라본다면 결코 주변국의 속마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일본이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며 군사력 증강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이 기존 질서를 흩트리고 이미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센카쿠를 넘보면서 심지어는 난사제도를 군사요쇄화하며 필리핀·베트남을 불안하게 하니 미래가 불 보듯 뻔히 보이는 것이 아닌가. 중국의 국력이 강대해지면 강대해질수록 주변국들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민주주의의 경험이 부족한 중국이기에 더욱 그러하고 미국을 맞상대하는 힘이 길러지면 힘의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측하는 것이다. 중진국의 반열에 올라 있는 한국이 선진국을 향해 달려가려면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와 같이 전쟁이 없고 평화가 유지돼야 한다. 중국의 대두, 미·일의 신방위협력지침으로 한국 주변의 안보 상황에 큰 역사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외교가 위기가 아닌가”라는 물음이 쏟아지고 있다. 필자는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기회라고 답하고 싶다. 우리 국민들이 한국 주변의 변화에 촉각을 세워 민감하게 감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해답을 찾으면 될 일이다. 한국 주변의 가장 큰 변화인 일본의 우익화, 중국 대두의 바닥에서 군사력 증강에 많은 돈을 쓰는 중국과 일본을 보게 된다. 그래서 한국이 능동적으로 나서서 국가 예산을 허비하는 군비경쟁을 해소하고 중국·일본 국민들의 복지증진과 경제적 번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한국이 주도해 만들어 나가는 외교의 길을 택하면 설득력이 있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겠지만 침략의 역사가 없는 한국이 동북아 평화의 꿈을 그리는 대화 체제를 제안하며 꾸준한 설득해 나가면 번영의 동북아가 될 수 있다. 위기의 한국 외교가 아니라 기회의 한국 외교가 되도록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
  • [열린세상] 세계문화유산과 일본의 민낯/이옥순 인도연구원장

    [열린세상] 세계문화유산과 일본의 민낯/이옥순 인도연구원장

    근대화 산업 유산 23개를 묶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리려는 일본 정부의 최근 행보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서구에서 비서구로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이동한 첫 성공 사례”라는 주장을 내세웠으나 그 산업화가 주변국, 다른 민족의 희생으로 이뤄진 사실에 대해선 침묵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일본 산업화의 결정체라는 이들 시설 중 7곳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끌려간 5만 7900명의 조선인이 강제 노동으로 혹사를 당했다. 허나 일본은 이런 부정적인 역사를 가린 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역사도 그렇다. 몇 사람을 오랫동안 속이거나 여러 사람을 잠시 속일 순 있어도 여러 사람을 영원히 속이는 역사란 불가능하다. 설령 일본이 이번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의 권고를 무시하고 자국 내 산업 유산의 전체 역사를 감추더라도, 즉 산업혁명의 전면을 보여 주지 않더라도 일본의 부정적인 근대의 행적이 지워지는 건 아니다. 유일한 비서구 출신의 제국이었으나 파행과 희생으로 점철된 일본의 근대적 유산이 유형·무형으로 다른 나라에 많이 남아 있어서다. 메이지유신 이후 철강, 조선, 석탄광을 기반으로 급속히 산업화해 제국이 된 일본의 탐욕은 멀리 인도까지 미쳤다. 필리핀, 말레이반도 등 동남아를 장악한 일본이 육로로 미얀마를 거쳐 인도 동부에 침입했고, 바다를 통해서는 1942년 3월에 570여개의 섬으로 구성된 벵골 만의 안다만니코바르제도를 점령한 것이다. 당시 그곳을 지배하던 영국인들이 재빨리 탈출한 관계로 총성 없이 열두 시간 만에 안다만을 차지한 일본군은 악명 높은 정치범 수용소 셀룰러 감옥의 문을 열고 죄수들을 석방했다. 그러고는 안다만의 전역을 약탈하고 방화한 뒤에 민간 정부를 세우고 강압적인 통치에 들어갔다. 여기서 2015년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든 안다만제도의 셀룰러 감옥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영국 제국주의의 잔혹성을 예증하는 포트블레어에 자리한 이 감옥은 1857년 세포이의 저항을 필두로 이어진 대규모 반영 운동의 주모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세워졌다. 1858년 200명의 첫 수감자들이 섬에 갇힌 뒤에 영국에 저항한 수많은 인도인이 연이어 이곳으로 실려 왔다. 위험 요인을 제거하려고 육지에서 400㎞ 떨어진 섬에 독립 투사들을 격리한 영국은 수감자들을 각각 격리하는 방법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공동 건물 없이 698개의 감방(셀룰러)만 있는 셀룰러 감옥의 정치범들은 변기도 없이 쇠창살문만 있는 한 평이 안 되는 독방에서 수갑을 차거나 족쇄에 매인 채 죽을 때까지 누가 이웃인지 모르고 혼자 지냈다.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뜻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바다’로 불린 안다만제도를 차지한 새로운 점령군은 제국주의 선배인 영국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악행을 이었다. 단지 수상하다는 이유로 감옥에 구금된 수많은 현지인과 영국인이 심한 고문과 신문을 받다가 죽었다. 자백할 것이 없는 그들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피부가 다 탈 때까지 불을 붙이거나 매일 신체의 일부를 절개하고 거기에 소금이나 고춧가루를 뿌리는 고문이 자행됐다. 고문은 가족이 보는 앞에서 이뤄졌고, 그 고통을 견딘 자들은 총살로 사라졌다. 패전이 분명해지고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주민 1000여명을 죽여서 먹을 입을 덜어 내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약 100년간 많은 사람들이 교수형에 처해지거나 고문으로 죽어 가는 걸 말없이 지켜본 셀룰러 감옥은 인류의 비극적인 역사를 증명하는 시설로 세계문화유산의 등재 자격을 갖췄다. 유네스코는 셀룰러 감옥과 같은 무서운 감옥이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고 인정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이룬 영국과 비서구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를 이룬 일본, 해가 지지 않을 만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식민지를 가졌던 ‘대영제국’과 아시아의 대동단결을 외치며 영국을 배우고 이기려던 ‘대일본제국’이 안다만제도의 세계문화유산 후보에서 어둔 민낯을 함께 드러낸 건 우연이 아니다. 역사는 가까이서 보면 부당하지만 멀리서 보면 정의를 향한다.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고 바로 처신할 때다.
  • [아시아 안보회의] “남중국해 인공섬 중단” vs “美에 맞서 싸울 준비”

    미국과 중국이 31일 싱가포르에서 끝난 제14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충돌했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전날 연설에서 “중국이 남중국해에 건설하는 인공섬은 이 해역 긴장의 근원이다. 얼마나 더 많은 인공섬을 만들지 모르겠다”면서 “즉각적이고 영구적으로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터 장관은 특히 무력 충돌 방지를 위해 ‘남중국해 행동강령’(COC)이 연내에 채택돼야 한다며 중국을 압박했다. 미 국방부 대변인 스티븐 워런도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남중국해 난사군도(스프래틀리 제도)의 인공섬으로 무기를 반입한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중국의 무기 배치를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카터 장관의 발언이 전해지자 중국 외교부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미국은 역사적 사실과 법리를 무시한 채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면서 “멋대로 입을 놀려 주변국을 이간질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중국 인민해방군보는 “인민해방군은 미국의 무력 위협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됐다”고 맞받아쳤다. 쑨젠궈(孫建國)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은 31일 연설에서 “우리의 권리 주장이 반박의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대단한 자제력을 보여왔다”면서 “미국은 중국의 주권행사에 간섭하지 마라”고 강조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스위스 은행 비밀주의 철폐 EU 시민 조세 회피 못 한다

    철옹성 같던 스위스의 ‘은행 비밀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수세기에 걸쳐 유지해온 고객에 대한 철저한 비밀 유지 전통이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주변국들의 금융거래 투명성 제고 요구에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EU 집행위원회는 27일(현지시간) 스위스와 은행 계좌 정보를 공유하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비밀주의 철폐 합의에 따라 앞으로 EU 시민들은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에 재산을 은닉할 수 없게 된다. 피에르 모스코비치 EU 경제·조세 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합의서에 서명한 뒤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조치로 조세회피자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며 유럽에서 조세의 투명성이 향상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2018년부터 스위스와 EU 국가는 은행계좌 소유주 이름과 주소, 생년월일, 그리고 조세 인식번호 등을 자동으로 교환하게 된다. 앞서 EU는 탈세 방지를 위해 은행 비밀주의를 철폐하고 은행계좌 정보를 자동으로 교환하는 제도를 확대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EU 주요 5개국은 2013년 은행계좌 정보를 상호 교환하기로 합의했고, 지난해에는 28개 EU 회원국 간 은행계좌정보 공유로 확산됐다. 미국도 2009년 2월 스위스연방은행(UBS)을 상대로 비밀계좌를 유지하는 미국인 고객 5만 2000여명의 명단을 제출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같은 해 4월 스위스를 조세피난처 혐의가 있는 ‘회색국가군’에 포함시키는 등 압력을 가중시켜 왔다. 결국 스위스 정부는 2009년 미국 측에 미국인 고객 관련 정보 일부를 제공했고, OECD의 세금관련 국제 기준도 수용했다. EU는 이날 비회원국인 스위스와 계좌정보 공유를 끌어낸 데 이어 리히텐슈타인, 모나코, 안도라, 산마리노 등 금융거래의 투명성이 떨어지는 다른 조세회피 국가들과도 은행계좌정보 교환을 추진할 방침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朴대통령 “청년 일자리 절박… 노동시장 개혁 미룰 수 없어”

    朴대통령 “청년 일자리 절박… 노동시장 개혁 미룰 수 없어”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우리 청년들의 절박한 상황을 생각하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미루거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성세대의 기득권을 조금 양보해서라도 우리 아들, 딸에게 희망을 주는 소명의식과 용기”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정년 연장으로 청년의 고용절벽 우려가 점차 커지는 상황이고 한쪽에서는 청년고용창출을 위한 법안이 계속 통과되지 못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노동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청년들의 미래는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말하고 “노사정 지도자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내서 세대 간 상생의 노동개혁이 될 수 있도록 다 함께 힘을 모아 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국회에는 “오랫동안 계류된 민생법안 중 합의가 안 된다면 청년 일자리 창출 관련 법안이라도 통과시켜 주셔서 우리 젊은이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이어 “정부는 경제활성화와 4대 부문 구조개혁과 함께 부패청산을 비롯한 정치·사회개혁이라는 이 시대에 꼭 해내야만 하는 시대적 과제를 추진해 나가고 있는데 이것은 국민적 요구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라면서 “이번 국회에서는 꼭 공무원연금개혁안을 통과시켜줄 것을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또한 지난주 국무총리 후보자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지명한 사실을 언급하며, “황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와 국회인준 절차를 거쳐 국민적 요구인 막중한 과제들을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국회에 많은 협조를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박 대통령은 북한 도발 위협과 일본과의 과거사 갈등과 관련,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을 하고, 내부의 공포정치로 주민들의 삶이 무너지고 있고, 우리 주변국과의 과거사 문제 등도 계속되고 있다”면서 “이런 때 우리는 사회분열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더욱 굳건히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日학자 6900명 “주변국 위안부 피해 직시하라” 아베에 경고

    日학자 6900명 “주변국 위안부 피해 직시하라” 아베에 경고

    일본사연구회, 역사학연구회 등 일본의 16개 역사 연구 및 교육단체가 25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영어와 일본어로 냈다. 이들 단체는 이날 도쿄 중의원 제2의원회관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의 역사학회·역사교육자단체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고노 담화’에서 밝힌 그런 자세로 역사적 연구와 교육을 통해 다시 같은 잘못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강제 연행된 위안부의 존재는 그동안의 많은 사료와 연구에 의해 실증돼 왔다”며 “일본군에 의한 이 같은 성노예 행위를 부인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일부 정치가나 미디어가 계속한다면 일본은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국제사회에 말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또 “이 같은 행위는 가혹한 고통을 겪어 온 피해자들의 존엄을 또다시 짓밟는 행위”라면서 “정치인들과 일부 언론기관이 과거에 일본이 끼친 (주변 국가에 대한) 피해와 피해자들을 직시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성명에는 일본역사학협회, 종합여성사학회, 조선사연구회간사회, 일본사연구회, 역사과학협의회, 역사학연구회, 역사교육자협의회 등이 참여했다. 구보 도루 역사학연구회 위원장은 성명에 서명한 학자 수가 69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자국 학자들까지 나서 아베 신조 정권의 과거사 왜곡에 대한 경고를 보낸 것이어서 앞으로 일본 내 여론 형성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역사학자들의 총의가 반영된 성명을 일본 정부가 직시하고 위안부 협상과 과거사 문제에 대해 성의 있게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문서를 국가급 기록문헌 유산으로 승격했다. 중국 국가기록국은 중앙기록관 등 9개 기록관이 함께 신청한 ‘위안부-일본군 성노예 문서’를 국가급 기록문헌 유산으로 승격시켰다고 중국 현대쾌보가 25일 보도했다. 일본 우익세력이 위안부의 역사적 진상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일본군의 인권 침탈 행위를 기록으로 남기고, 수치스러운 역사도 후대를 위해 보전하기 위한 조치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시론] 강화된 한·미 동맹과 한·미·일 공조/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시론] 강화된 한·미 동맹과 한·미·일 공조/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비빔밥, 케이팝, 강남 스타일.” 싸이의 말춤은 2012년에 이미 유행해 추지 않겠다는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은 한국 문화에 대한 친근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난 18일 고려대 인촌기념관 강연회장에서의 모습이다. 미국의 대선 주자를 지내고 상원 외교위원장을 경험한 노회한 외교관은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고자 했다. 케리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을 마치고 한·미 동맹 관계가 ‘빛 샐 틈’도 없다면서 역대 최고 수준임을 확약했다. 케리는 한국을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용산 미군기지에서 장병들을 만났다. 최근 알려진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면서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한국에서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물밑으로 가라앉는 듯했던 사드 문제를 제기했다. 미 국무차관보는 사드의 한반도 영구 배치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한국은 ‘3NO’로 일관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요청, 협의, 결정이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아직까지도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리고 있다. 지난 4월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유례를 찾기 힘든 굳건한’ 한·미 동맹을 평가하면서 ‘동맹국과의 신뢰’를 강조했다. 미 국방장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천안함 전시시설을 방문했다. 북한의 위협과 도발에 대한 한·미 공동 대응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 주고자 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와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이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공동 인식을 표명했다. 하지만 이를 방어하기 위해 계획하고 있는 사드는 아직 논의하기에 시기상조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미국은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돼야 할 ‘필요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 때문에 아직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히지만 사실상 배치 수순에 접어들어 시기와 장소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미 한반도 내 배치 장소에 대한 예비검토는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한 미군과 그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운다면 딱히 거절하기도 어렵게 될 것이다. 미군의 예산으로 구입한다면 더욱 그렇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달 최초로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행하면서 미·일 동맹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할 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미·일 양국은 새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 서명하면서 역내 미사일방어(MD) 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자위대를 위해 헌법 개정까지도 밀어붙일 태세다. 위안부 문제는 보편적 인권 문제로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한·일 정상회담도 열지 못하고 상호 혐오하는 대상으로만 인식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본에서는 어떤 조치를 취해도 한국을 만족시킬 수 없기에 상관하지 않는다는 반응도 보인다고 한다. 1905년 일본과 미국은 가쓰라·태프트조약을 통해 일본은 조선으로, 미국은 필리핀으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 당사국들도 모르게 밀약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나라를 잃어버리는 전초가 됐다. 한반도의 운명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의 어깨 너머로 결정되는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남북한 문제와 한·미·일 공조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이달 말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대화)에서 한·미·일 국방장관은 만나게 될 것이다.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의 커튼 뒤에 더이상 숨지 않아야 한다. 미국은 사드를 배치할 것인지 아닌지 밝혀야 한다. 미국이 비용 부담을 할 것인지 한국에 이를 요구할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한반도 주변 정세는 미·일 대 중·러 구도로 재편되려는 조짐마저도 보인다.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지만 무책임하게 끌려다니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져서는 곤란하다. 남북한 관계는 경색 일로로 치닫고 있다. 지난 20일 북한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공단 방문도 하루아침에 철회하는 예측불허의 행동을 보이고 있다. 한국이 보다 능동적으로 주변국을 활용하는 전략적 마인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 [사설] 日, 과거사 미화 유산등재 불가여론 수용해야

    조선인 강제노동 시설이 포함된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23곳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과 관련해 한·일 간 양자 협의가 오늘 일본 도쿄에서 열린다. 이번 협의는 일본 측의 일방적 등재 추진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 정부는 주변국 고통의 역사를 외면한 채 단순히 산업혁명 시설로 미화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역사 왜곡이며 인류 보편적 가치를 보호한다는 세계유산협약의 기본 정신에도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현재로선 일본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본 언론들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일본 산업혁명 유산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도록 유네스코에 권고했으며 문화유산 중 ICOMOS가 권고했다가 최종 단계에서 뒤집힌 사례는 없다고 덧붙였다. 6월 말 독일에서 열리는 제39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최종 결정이 이뤄지지만 사실상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식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인 하시마 탄광이나 미케 탄광 등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 정도로 일본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본으로서는 산업혁명 유산 23곳이 근대 일본의 초석을 닦은 혼이 담겨 있는지 몰라도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착취와 수탈을 당한 우리로서는 고통스런 역사의 기억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픈 과거사를 공유하고 있는 중국 역시 “식민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며 강한 불만을 쏟아 놓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산업혁명 유산 23곳 중 7개 시설에서 강제 징용된 조선인 가운데 94명이 숨지고 5명은 행방불명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동의 한을 외면하고 근대화 산업시설만 강조하는 것은 전형적인 과거사 왜곡이다. 일본의 일부 언론들도 과거사 미화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다. 최근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근현대사를 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고 일본 발전의 이면에 있었던 희생과 비극도 연구해 전달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진실 그대로 보여 주고 올바른 사실을 후세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일본 정부의 책임이다. 메이지 산업 유산의 밑바닥에 강제 징용과 수탈의 고통스런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가해자 일본이 먼저 주변국들의 고통을 경청하고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동북아 전체의 갈등을 해소하고 공존 공영의 길로 나서는 첫걸음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오늘의 눈] 성과 없이 부작용만 낳은 해경 해체 1년/김학준 사회2부 부장급

    [오늘의 눈] 성과 없이 부작용만 낳은 해경 해체 1년/김학준 사회2부 부장급

    세월호 사고 수습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선언했다. 말과 표정에서는 비장함이 묻어나왔다. 하지만 해경의 문제점과 체질 개선에 대한 심층적 진단 없이 ‘희생양 만들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언론과 해양 전문가들에게서 제기됐다. 그럼에도 해경 해체는 강행됐다. 그러면 1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달라졌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명칭이 해양경비안전본부로 변경됐지만 줄여서 ‘해경’이라고 한다. 기능은 수사권의 일부가 육지경찰로 이전됐을 뿐이다. 제복과 엠블럼, 함정명, 출장소 간판도 그대로다. 바꾸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지만 그만 한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경 해체는 ‘사기 저하’와 ‘비효율’이란 심각한 부산물을 낳았다. 한 대원은 “아직 해양경찰 모자를 쓰고 다니지만 국민들은 해경이 해체된 것으로 알고 있기에 민망하다”고 말했다. 해경은 원래 힘이 약한 기관이었다. 중국 선원들의 폭력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온 것도 외교분쟁을 우려하는 정부를 의식한 측면이 크다. 해경이 해체되자 중국 선원들은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실제로 이후 서해상에서 불법조업이 크게 늘어났다. 심리적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수모를 당한 해경은 개혁을 외쳐 보지만 마음은 이미 떠난 상태여서 공허하게 들린다. 모멸감은 일시적인 분발을 일으킬 수 있지만, 진정한 환골탈태를 위한 동인이 되지는 못한다. 게다가 인천 송도에 있는 해양경비안전본부의 세종시 이전설마저 나돌자 직원들은 뒤숭숭하다. 최근 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국들은 해상기관을 강화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해경 해체는 묘수가 아니라 해상주권을 지키는 기관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국민들의 분노에 편승해 깊은 생각 없이 내놓다 보니 ‘자충수’가 됐다. 소 잡는 칼과 닭 잡는 칼은 따로 있다. 좀더 시간을 갖고 냉철히 진단했으면 해체라는 극단적인 수단이 아니더라도 해경을 개혁할 수 방안이 있었을 것이다. 지난 일을 복기해 보는 것은 안목이 결여된 판단으로 실익 없이 고비용만 치르는 불합리가 되풀이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kimhj@seoul.co.kr
  •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류성룡 ‘징비록’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류성룡 ‘징비록’

    때는 1604년 싸락눈이 날리는 한겨울의 깊은 밤이다. 경북 안동의 유서 깊어 보이는 한 사랑채에서 나이가 지긋한 선비가 일렁이는 촛불에 의지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덧입혀지는 내레이션. “화살이 빗발치는 속에서도 이순신은 직접 나서 싸우다가 날아오는 총탄에 맞고 말았다. 총탄은 가슴을 관통하고 등 뒤로 빠져나갔다.” 현재 KBS에서 주말 밤마다 방송하고 있는 대하드라마 ‘징비록’(懲毖錄)의 첫 회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서애(西涯) 류성룡(柳成龍·1542~1607)을 클로즈업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쓰는 글에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내레이션을 통해 들려줌으로써 이 드라마가 류성룡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임진왜란 이야기라는 것을 넌지시 드러낸다. 실제로 ‘징비록’은 류성룡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가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쓴 임진왜란 7년간의 기록물이고 드라마는 바로 류성룡의 이 저작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류성룡은 중종 37년(1542년)에 경상도 의성 지방에서 황해도 관찰사 류중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을 자랑했던 그는 21세가 되던 해 퇴계 이황 밑에서 학문을 사사하게 되는데, 이때 이황이 류성룡을 가리켜 “이 사람은 하늘이 낳은 인물이다. 반드시 뒷날에 크게 쓰일 날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25세에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에 나온 그는 10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재상의 자리에 머문 인물이고, 당파 간의 다툼이 예사롭지 않았던 선조 대에 남인의 영수라 거론되면서도 한 번도 유배를 가지 않은 인물이다. ‘하늘이 내린 재상’이라고 불릴 뿐 아니라 이순신과 함께 육지에서 임진왜란을 이끈 탁월한 리더십의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할 당시에 그는 좌의정이면서 병조판서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4월 13일 오후에 부산포에 상륙한 일본이 거칠 것 없이 부산, 동래, 밀양을 함락시키며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해 올라오자 이에 놀란 조정에서는 류성룡을 도체찰사로 임명해 군사 업무를 총괄하게 했다. 선조가 한양을 떠나 피란길에 오를 때 수행 업무를 맡았고 개성에 도착해서는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이후 7년 동안 전란의 한가운데서 진두지휘를 맡았던 그는 전쟁이 끝나자 임진왜란 7년의 기록을 담은 ‘징비록’을 저술하게 된다. ‘징비록’이라는 책 제목은 중국의 고전인 ‘시경’에서 유래한다. 류성룡 자신이 직접 서문에서 “‘시경’에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해서 후에 환란이 없도록 조심한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야말로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고위직에 있으면서 전쟁을 막아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이 땅에서 다시는 임진왜란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우국충정에서 쓰인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징비록’은 류성룡 개인이 저술한 초본과 나중에 인쇄된 간행본 두 가지가 전해 온다. 간행본에서는 초본의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 오류를 바로잡았으며 선조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들이 상당 부분 수정되었다. 예를 들면 초본에서는 선조가 주도하여 한양을 버리고 도망간 것처럼 서술하고 있으나 간행본에서는 그냥 조정 내에서 한양을 떠나자는 논의가 이루어졌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간행본은 다시 16권본과 2권본으로 나누어진다. 16권본은 ‘징비록’ 상·하 2권과 ‘근폭집’ 2권, ‘진사록’ 9권, ‘군문등록’ 2권과 ‘녹후잡기’로 구성되어 있고, 2권본은 ‘징비록’ 상·하 2권과 ‘녹후잡기’로만 구성되어 있다. 현재 출판되어 있는 ‘징비록’의 대부분은 간행본의 2권본을 번역한 것이다. ‘징비록’ 1권(상)은 1586년에 일본 사신 다치바나 야스히로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서신을 가지고 조선에 온 일부터 시작한다. 통신사 파견을 요구하는 히데요시에게 물길이 험해서 사신을 보내지 못한다고 답장을 보낸 일, 소 요시토시가 다시 사신으로 오고 이에 대해 조건부로 통신사 파견을 수락하는 과정, 통신사의 파견, 일본에 다녀온 황윤길과 김성일의 엇갈린 보고, 날로 극성스러워지는 왜적 때문에 뛰어난 장수를 천거하라는 선조의 명에 그동안 세운 공에 비해 진급이 늦었던 이순신을 천거한 일, 그리고 임진왜란의 발발과 함께 변변히 싸워 보지도 못하고 도망 다니기에만 급급했던 초기 전황, 선조의 피란, 명나라 원군의 도착과 패전, 이순신을 비롯한 조선군과 의병들의 활약상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2권(하)은 대부대를 이끌고 온 명나라의 2차 원군과 권율의 행주대첩, 일본이 한양을 점령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면서 굶어 죽는 것이 다반사가 되어버린 백성들의 딱한 상황, 한양 수복, 수군통제사 이순신의 하옥과 원균의 패전, 명나라와의 갈등, 곽재우와 유정의 활약, 이순신의 복귀와 전사 과정 등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녹후잡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한강의 물이 3일 동안이나 붉은 모습을 띠었다든가 도성 안에 항상 검은 기운이 퍼져 있었는데도 하늘이 간절히 알려준 이상한 기운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임진왜란이 지속된 기간 동안 보고 들은 내용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징비록’은 전쟁 기간 동안 재상과 도체찰사를 겸임한, 요즘 말로 하면 국정 최고책임자였던 류성룡이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당파의 색깔 없이 객관적으로 집필한 저서로서 임진왜란에 대한 그 어떤 기록물보다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역사적인 가치로만 빛나는 건 아니다. 일본 열도를 통일한 뒤 조선과 중국까지 자신의 손아귀에 넣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에서 시작하여 그런 히데요시의 야망을 한순간에 꺾으며 장렬히 죽어간 이순신의 죽음으로 책을 마무리한 구성이 마치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드라마틱하여 기록 문학으로서의 재미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있다. 또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는 말도 있다. ‘징비록’은 책 제목에 드러나듯이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자는 뚜렷한 목적 의식을 갖고 집필된 책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그때의 모습과 얼마나 다를까. 다시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중국과 자위대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새로운 방위지침을 마련한 일본, 그러한 일본을 명실상부한 파트너로 점찍은 미국 등 우리나라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정세는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임진왜란의 끔찍한 경험을 하고도 자신을 ‘징비’하지 않은 우리에게 역사는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남북분단과 같은 비극으로 되돌아왔다. 또다시 씻을 수 없는 역사적 과오를 범하기 전에 ‘징비록’을 썼던 류성룡의 마음을 되돌아봐야 할 때이다. 권경주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사설] 고교 한국사 근현대사 축소해선 안 된다

    정부가 2018년부터 사용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 비중을 현행 50%에서 40%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그제 역사교육과정 토론회를 열어 이 같은 얼개의 시안(試案)을 공개했다. 시안대로라면 현재 중학교 1학년이 고교에서 배울 한국사 교과서는 정치사 중심으로 경제·사회·문화사 등이 과다하지 않은 기본 내용으로 구성되며 단원 수는 크게 줄어든다. 대신 ‘고대국가의 발전’ 부분을 따로 떼어 별도 주제로 다루는 등 고대사 분량은 늘어난다. 고교 한국사는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필수 과목이 된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덜어 주는 쪽으로 교과서가 개정되는 취지에는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논란이 커지는 이유는 시안이 자칫 근현대사 교육을 퇴보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근현대사 교육을 강화하는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한다는 지적이 많다. 중국은 근현대사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고, 일본은 자국 역사와 세계사를 통합한 근현대사를 별도 과목으로 신설하려고 한다. 특히 일본은 위안부 강제동원 부정 등 터무니없는 내용을 교과서에 넣어 쐐기를 박으려는 꼼수가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근현대사 비중을 줄이려는 것은 그동안 정치·이념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해 온 논쟁을 피하기 위한 방책이라는 의혹도 불거진다. 그런 의도가 눈곱만치라도 있었다면 시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뜨거운 논쟁이 따르더라도 역사 문제에만큼은 우회 논리가 끼어들 수 없다. 교육과정평가원은 “우리나라 근현대사 150년을 교과서의 절반에 할애하면 학생들이 지나치게 복잡한 상황까지 외워야 한다”면서 “학생들이 편한 쪽으로 바뀌는 것”이라는 설명도 했다.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역사 교육의 맥락은 특정 의도에 흔들려서도 안 될뿐더러 편의성에 좌우되는 것은 더더욱 어불성설이다. 한국사 교과서는 미래세대의 역사 인식과 국가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교육부가 주변국들의 역사 왜곡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역량을 키우기 위해 근현대사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천명한 것이 불과 10년 전이다. 교육부는 공론 작업을 거쳐 9월에 개정교육과정을 최종 확정·고시할 계획이다. 역사 교육의 방법에 하나의 정답은 없다. 남은 기간 시안을 숙고하고 또 숙고해야 하는 까닭이다.
  • ‘일본 과거사 반성’ 지키기 나선 日시민단체

    ‘일본 과거사 반성’ 지키기 나선 日시민단체

    철거 위기에 놓인 조선인 강제 징용 희생자 추도비를 지키기 위해 일본 시민단체와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12일 민단 등에 따르면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시 ‘군마의 숲’에는 2004년 세워진 조선인 강제 징용 희생자 추도비가 있다. 추도비 앞면에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는 ‘강제 징용 등으로 조선인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를 반성하며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한글과 일본어로 기록돼 있다. 군마현은 지난해 추도비 갱신 불허 판정을 내렸다. 보수우익단체에서 “비문이 반일 내용을 담고 있고, 추도집회에서 정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추도비 철거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맞서 의식 있는 군마현의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조선인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이 결성됐고, 민단 군마본부도 힘을 보탰다. 추도비 모임 측은 “군마현이 설치 허가 갱신을 거부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위헌”이라며 처분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지난해 11월 마에바시 지방법원에 냈다. 지난달 18일에는 조선인 강제 징용 희생자 추모집회가 열렸고 시민 180여명이 제단에 헌화하기도 했다. 이노우에 데루오 추도비 모임 공동대표는 “2차대전 말기에 조선에서 100만여명이 강제 징용(징병)돼 다수 희생자가 나왔지만 정부는 지금까지도 피해 배상은 물론이고 정확한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면서 “일본이 주변국에 끼친 잘못을 사과하고 반성을 통해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추도비를 지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시작된 서명운동에는 일본 시민뿐만 아니라 민단과 재일동포도 적극 나서 지금까지 4만명이 동참했다. 모임 측은 서명록을 첨부해 6월 군마현의회에 추도비 설치 기간 갱신을 요구하는 청원을 제출할 예정이다. 박선용 민단 군마본부 단장은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하는 한 계속 사과를 하는 것이 진정한 사과”라며 “우경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지만 양식 있는 지식인과 시민들은 잘못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韓·美 ‘킬체인·KAMD’ 바다로 확장… 北SLBM 대응 공조 박차

    韓·美 ‘킬체인·KAMD’ 바다로 확장… 北SLBM 대응 공조 박차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위협에 대비한 군사 공조 체제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군 당국은 북한 핵, 미사일에 대비한 ‘킬 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체계 개념을 바다로 확장하고 대잠수함전 능력을 보강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미국뿐 아니라 일본과의 공조 필요성도 제기돼 북한 SLBM 위협을 매개로 한·미·일 삼각 군사 협력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군 당국은 기본적으로 북한 SLBM 위협에 대해 ‘4D 개념’을 기반으로 한 작전 계획으로 대처하겠다는 방안이다. 4D는 방어(Defense), 탐지(Detect), 교란(Disrupt), 파괴(Destroy)를 의미한다. 한·미는 이를 작전 계획으로 완성해 해상의 이동식 발사대와 같은 SLBM 탑재 잠수함을 탐지하고 파괴하는 임무를 분담할 예정이다. 군은 유사시 북한 잠수함이 기지를 벗어나기 전에 타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12일 “한·미 공동으로 북한 잠수함을 표적화해 관리하고 이에 대응하는 수중 요격 체계를 갖추고 있다”면서 “앞으로 잠수함의 이동 경로를 탐지하기 위한 수중감시음향센서와 수상함의 음파탐지기(소나) 성능도 개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우리 군 탄도탄 탐지레이더인 ‘그린파인’이 750㎞까지 탐지할 수 있고 미국의 조기경보위성(DSP)도 한반도를 고정적으로 감시하고 있다”며 한·미 공조를 강조했다. 우주 궤도에 정지해 있는 미국 DSP는 6개로 이 중 하나가 북한 지역을 24시간 감시하고 있다. 군 당국도 2022년까지 군사정찰위성 5기를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이 밖에 16대의 해상 초계기가 동·서·남해 상공에서 잠수함을 탐지한다. 군은 특히 우리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사거리 1000㎞의 잠대지 순항 미사일 ‘해성3’와 구축함에서 발사하는 대잠어뢰 ‘홍상어’도 북한 잠수함을 타격할 수단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는 지난달 ‘2016~2020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하면서 원거리 탐지용 음향센서 도입 사업은 반영하지 않았다. 북한 잠수함을 잡을 해상작전헬기 사업도 3년째 표류하고 있다. 북한 SLBM 위협을 애초부터 고려하지 못한 ‘사후약방문식 대응’이라는 지적이 남는다. 정부는 특히 이달 말 싱가포르 아시아안보대화(샹그릴라 회의)에서 열릴 한·미,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에 주목한다. 군 관계자는 “이 회의에서 북한의 상황과 SLBM 위협에 대한 평가도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일본의 공식 요청에 따라 샹그릴라 회의에서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개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지난달만 해도 과거사 문제와 독도 영유권 등 민감한 사안을 고려해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다소 선회한 것이다. 일본은 주변국 위협에 대비해 4기의 군사첩보위성을 운용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한·미·일 공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 체결한 한·미·일 군사정보공유약정을 구속력이 강한 정보공유협정 수준으로 격상시킬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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