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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전역 축제 같은 시위 “이참에 인종차별 끝내자”

    미국 전역 축제 같은 시위 “이참에 인종차별 끝내자”

    주말인 6일(현지시간) 미국 전역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46) 사망에 항의하는 대규모 평화 시위가 열렸다. 열이틀째 시위가 이어지면서 폭력 사태는 완연하게 잦아들어 경찰 폭력과 인종차별을 끝내는 제도 개혁을 외쳤다. 워싱턴 DC에는 경찰 추산 6000여명이 백악관과 링컨 기념관, 국회의사당, 내셔널몰 인근 국립 흑인역사문화박물관 앞을 가득 메웠다고 CNN이 전했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 앞 집회에 구름 인파가 몰리면서 “옆 사람과의 거리가 1인치(2.54㎝)에 불과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시위를 조직한 시민·인권단체들은 길거리 테이블에 간식과 물병을 차려놓고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줬고,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과 거리 곳곳에서는 흑인 청년들이 스피커를 통해 흥겨운 음악을 틀며 시위대를 격려했다. 워싱턴 DC로 원정 온 시위대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메릴랜드주 볼티모어를 거쳐 워싱턴 DC에 입성한 시민도 있었고,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법대 교수와 학생들도 DC 시위에 동참했다고 WP는 전했다. 시위 주최단체 가운데 하나인 ‘프리덤 파이터 DC’의 간부 필로니마 원켄지는 CNN에 “피부색 때문에 내 조카들이 고통을 받는 일이 없도록 기꺼이 날 희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WP는 “토요일의 시위는 거리 축제의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주요 도시에서 야간 통행금지령이 잇따라 완화된 데다 경찰 폭력을 제어하는 행정 조치가 잇따르면서 “주말 시위는 평화롭게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DC 경찰은 이날 오전 6시부터 시내 대부분 거리에서 차량 통행을 금지했다. 대신 교통당국은 시내로 향하는 지하철 운행을 두배 늘렸고, 버스도 추가로 투입했다. 주 방위군은 워싱턴DC를 비롯해 34개 주(州)에서 4만 3300여명의 병력이 경찰의 시위 대응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작은 마을 레퍼드에서는 플로이드의 두 번째 추도식이 열렸다. 플로이드의 시신이 누워 있는 금빛 관은 지난 4일 첫 번째 추모식이 열린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를 떠나 플로이드가 태어난 레퍼드에 도착했다. 추모식이 열린 ‘케이프피어 센터’에는 수많은 추도객이 몰려 플로이드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모든 공공시설은 플로이드를 추모하며 반기를 게양했다. 시위는 뉴욕, 로스앤젤레스(LA),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 대도시 거리에서 평화롭게 진행됐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시위대 100여명은 시 외곽에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소유의 골프 리조트 앞에 모여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때 백악관 지하 벙커에 들어간 것을 언급하며 “대선을 통해 트럼프를 쫓아내자”, “트럼프는 ‘벙커 보이’가 되지 말라”는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며칠째 평화로운 시위가 이어지면서 조지아주 애틀랜타, 텍사스주 댈러스도 이날부터 통행 금지를 해제했다. 항의 시위 진원지였던 미니애폴리스는 전날 통금을 해제했고, LA 카운티도 통금령을 풀었다. 서울에서 100여명의 시위 참가자가 추모의 의미로 검은색 옷을 입고 피켓을 든 채 명동에서 청계천 한빛 광장까지 침묵 행진을 했고, 일본에서는 도쿄도(東京都) 시부야(澁谷)구 소재 JR 시부야역 앞 광장에 시민 500여명이 모여 인종 차별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미국 경찰의 무자비한 대응을 비판했다. 유럽에서도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등의 대도시마다 항의 집회가 열렸다. 호주 시드니와 브리즈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늘과 바다에서 진행된 이색 시위도 있었다. 캐나다의 드미트리 네오나키스는 전날 플로이드 사망을 추모하는 비행에 나서 2시간 30분 동안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상공을 날며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메시지를 하늘에 남겼다. 불끈 쥔 주먹 형상이었다. 민간 항공기 추적사이트 플라이트 어웨어는 트위터를 통해 네오나키스의 비행 경로를 공개하며 공중에서 펼쳐진 항의 시위에 힘을 보탰다. 네오나키스는 “우리가 모두 목소리를 내야 하고, 인종차별을 끝내야 한다”며 “인종차별 항의 시위에는 국경이 없다”고 말했다. 흑인 여성 서핑 모임 ‘블랙걸스 서프’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패들 아웃’(노 젓기) 행사를 제안하면서 전 세계 서퍼들이 바다 위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노 젓기는 죽은 이를 애도하는 하와이 원주민의 전통이기도 하다. 전날부터 이날까지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의 버지니아 비치, 서부 캘리포니아주의 샌타모니카, 하와이주 마우이섬 해변을 비롯해 프랑스와 호주, 세네갈 등에서 잇따라 열렸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북한 통일전선부 “김여정 지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결단코 폐지”

    북한 통일전선부 “김여정 지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결단코 폐지”

    “대남총괄 김여정 경고 담화 심중히 새겨야”金 담화 남측이 ‘엄중히’ 안 본다 판단에 격앙군사합의 파기·개성공단 철거·접경지 도발 주목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이자 ‘2인자’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대북전단 살포 비난 담화문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북한 통일전선부는 5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면서 “첫 순서로 할 일도 없이 개성공업지구에 틀고 앉아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부터 결단코 철폐하겠다”고 밝혔다. 통일전선부는 이날 밤 대변인 담화에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5일 대남사업부문에서 담화문에 지적한 내용을 실무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검토사업에 착수할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며 이렇게 말했다. 북한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통일전선부가 대변인 명의의 담화를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측이 매우 피로해할 일 준비 중” 통일전선부는 김 제1부부장의 담화를 언급하며 그가 대남 사업을 총괄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통일전선부는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제1부부장이 경고한 담화라는 것을 심중히 새기고 내용의 자자 구구를 뜯어보고 나서 입방아를 찧어야 한다”면서 “우리도 남측이 몹시 피로해할 일판을 준비하고 있으며 인차 시달리게 해주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연락사무소 폐지와 함께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단 완전 철거,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언급했었다. 이에 따라 김 제1부부장이 언급한 개성공단 완전 철거 등이 실제 이뤄질 수 있다. 또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고 남북간 긴장감을 고조시키거나 접경 지역에서 군사 도발을 나설 가능성도 있다.“대결의 악순환 갈 데까지 가보자 결심”“어차피 깨버릴 것은 빨리 없애버려야” 통일전선부는 또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직시하면서 대결의 악순환 속에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이 우리의 결심”이라면서 “어차피 날려보낼 것, 깨버릴 것은 빨리 없애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것이 우리 입장”이라고 밝혔다. 통일전선부는 “남쪽에서 (대북전단 제재) 법안이 채택돼 실행될 때까지 우리도 접경지역에서 남측이 골머리가 아파할 일판을 벌여도 할 말이 없게 될 것”이라며 대북전단 제재 법안 처리를 압박했다.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하루 만인 5일 대북전단 살포를 통일부 장관의 승인 하에서만 보낼 수 있도록 제한하는 ‘전단살포 금지법’(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대표발의했다. 통일전선부는 김 제1부부장 담화를 두고 남쪽에서 이상한 해석을 내놓는다며 “조금이나마 미안한 속내라고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고 다시는 긴장만을 격화시키는 쓸모없는 짓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북한이 이날 통전부 대변인 명의 담화를 연속 발표해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은 전단 살포를 비난한 김 제1부부장 담화를 남쪽에서 그만큼 ‘엄중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 “삐라 살포 방치하면 머지않아 최악 국면” 金 “삐라 살포시 북남 군사합의 파기 각오해야” 김여정 제1부부장은 전날 담화를 발표하고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삐라 살포 등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판문점 선언과 군사합의서 조항을 모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6·15(남북공동선언) 20돌을 맞는 마당에 이런 행위가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로 방치된다면 남조선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남조선 당국이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한다면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북남(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북남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전했다. 김 제1부부장은 또 “최악의 사태를 마주 하고 싶지 않다면 제 할 일을 똑바로 해야 할 것”이라면서 “나는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 광대놀음을 저지할 법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도록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통일부 ‘전단 南에 피해’ 설명에 北 “가을 뻐꾸기 같은 소리” 통일부 ‘전단 살포 중단’ 법률 준비에는 “변명, 그런 법안도 없이 군사합의했나” 통일부와 국방부는 담화 발표 당일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위협을 초래하는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해야 한다”고 각각 밝혔다. 통일전선부는 특히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이 “살포된 전단 대부분이 국내 지역에서 발견되고 접경지역의 환경오염, 폐기물 수거 부담 등 지역주민들의 생활여건을 악화하고 있다”는 발언을 언급하면서 “가을 뻐꾸기 같은 소리를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전단 살포 중단을 위한 법률을 준비하고 있다는 통일부 설명을 대해서 “고단수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면서 “그런 법안도 없이 군사분계연선지역에서 서로 일체 적대행위를 중단하자는 군사분야의 합의서에 얼렁뚱땅 서명했다는 소리냐”고 일갈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4일 “청와대는 4·27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박기석의 외교 통일 수첩] 정부의 고심 담긴 표현, ‘일국양제 지속 중요’

    [박기석의 외교 통일 수첩] 정부의 고심 담긴 표현, ‘일국양제 지속 중요’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 시도 두고 미중 갈등 속에양국 모두 내세우는 ‘일국양제 지속’ 정부 입장으로명시적 편 안들면서 미중은 각자 입장대로 해석 가능“갈등 격화 대비해 원칙 세워 자율 공간 확보해야”미중 양국이 중국의 ‘홍콩 국가안전 수호에 관한 법률’(홍콩 보안법) 제정 시도를 계기로 갈등을 확대해 나가면서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양국은 정부에 홍콩 보안법 관련 자국의 입장을 설명하며 이해를 구한 바 있지만, 한미·한중관계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섣불리 일방의 편을 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중 갈등에 대응해 정부가 고심 끝에 내놓은 입장은 “일국양제 지속이 중요하다”이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일 정례브리핑에서 홍콩 보안법 관련, “홍콩은 우리에게 밀접한 인적·경제적 교류관계를 갖고 있는 중요한 지역으로 일국양제 하에 홍콩의 번영과 발전이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1984년 중영공동성명의 내용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일국양제는 하나의 국가에 두 개의 체제를 허용한다는 의미로, ‘홍콩특별행정구는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지 아니하며, 원래의 자본주의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50년 동안 변동하지 아니한다’는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 제5조로 구체화된 제도다. 중국의 홍콩 보안법 제정 시도에 우려를 표한 미국과 영국, 캐나다, 유럽연합(EU)은 일국양제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홍콩 보안법이 일국양제의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홍콩 보안법이 오히려 일국양제의 근간을 강화하고 관철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미국과 중국이 홍콩 보안법에 대해 ‘일국양제 지속’이라는 공통의 명분을 내세워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일국양제 지속이 중요하다고 언급했을 때 미중 양국에 자신의 입장대로 해석할 여지를 주면서도 명시적으로는 어느 입장도 들지 않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마크 내퍼 미국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4일(현지시간) 한국 외교부가 ‘일국양제 하에서 홍콩의 번영과 발전이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언급한 것을 거론하며 “전례 없는 입장”이라며 “한국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후 얼마 되지 않아 나온 것은 의미심장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홍콩의 일국양제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한국이 그 입장을 낸 데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도 지난달 24일 “한국은 홍콩이 번영과 안정을 유지하고 일국양제가 관철되는 것을 희망한다”며 “우리는 한국 친구들에게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의 배경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이에 대해 한국은 이해와 지지를 보낼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정부가 ‘중영공동성명의 내용을 존중한다’고 부연한 것은 홍콩 보안법에 대한 우려를 간접적으로 표명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1984년 중영공동성명에는 홍콩특별행정구가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는 것뿐만 아니라, 홍콩특별행정구에서 법으로 개인, 언론, 집회, 결사, 여행, 통신, 파업, 직업선택, 학술연구, 종교신앙 등의 권리와 자유가 보장된다고 명시돼 있다. 홍콩 보안법이 홍콩의 고도 자치권은 물론 홍콩 시민의 권리를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만큼, 중국이 중영공동성명에 의해 보장된 홍콩 시민의 인권을 고려해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을 에둘러 드러냈다는 해석이다. 정부가 홍콩 보안법 관련 세심하게 조정된 입장을 표명하며 선택의 딜레마를 피하려 하고 있지만, 미중 갈등이 다방면에서 격화될 경우 양국이 홍콩 보안법에 대해 정부가 입장을 분명히 밝힐 것을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4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슈브리프’에서 “한국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들은 미중 대립의 영역이 다원화될수록 원치 않는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미중의 대립과 압박에 따른 전략적 활동 공간 위축에 대비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중의 양자택일적 압박에 대응해 특정국가 지향이 아닌 ‘사안별 지지’와 ‘원칙의 일관성’을 통해 자율 공간을 확보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원칙으로 국가이익, 국제적 포용성, 국제규범과의 합치 등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서울역 폭행남 구속 기각…피해자측 “가해자만 보호하는 법”

    서울역 폭행남 구속 기각…피해자측 “가해자만 보호하는 법”

    “피해자 보호하는 법은 어디에 있나” 서울역에서 지나가는 여성을 밀치고 때린 뒤 달아났던 30대 남성이 구속을 면하자, 피해자 가족은 법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보호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피해자 가족은 지난 4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잠도 못 자고 불안에 떨며 일상이 파괴되었는데 가해자의 수면권과 주거의 평온을 보장해주는 법이라니 대단하다”며 “제 동생과 추가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법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서울중앙지법 김동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상해 혐의를 받는 이모(32)씨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씨는 지난달 26일 오후 공항철도 서울역 1층에서 처음 보는 30대 여성을 어깨로 밀치고 얼굴에 주먹질해 왼쪽 광대뼈가 함몰되는 등의 상처를 입히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법원 “체포영장 없는 체포는 헌법 위반” 철도특별사법경찰대는 지난 2일 서울 용산경찰서 경찰관들과 함께 이씨를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긴급체포한 뒤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체포 과정이 적법하지 못했다고 봤다. 김 부장판사는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이례적으로 1174자(원고지 6매 분량)에 달하는 상세한 기각 사유를 밝혔다. 법원은 헌법 제12조 1항과 3항에 따라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지며 체포, 구속, 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모든 국민이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않으며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는 헌법 제 16조를 들며 강제수사에서 적법한 절차와 영장주의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씨를 체포한 경찰이 이런 헌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얘기다.법원 “범죄 혐의자여도 집은 그의 성채” 법원은 이번 사안이 영장주의 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 경우인 긴급체포 요건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체포 당시 피의자 이씨의 주변의 CC(폐쇄회로)TV 영상과 주민 탐문을 통해 피의자의 성명, 주거지, 휴대전화 번호를 파악한 다음 그의 주거지를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며 이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씨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강제로 출입문을 개방해 주거지에 들어가 침대에서 자던 이씨를 긴급체포했다. 체포 상황에 대해 법원은 피의자의 범죄혐의가 상당하고 정신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신원과 주거지, 전화번호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점 ▲주거지에서 잠을 자고 있어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한 상황도 아니었던 점 등을 볼 때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시간적 여유가 충분히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한 사람의 집은 그의 성채라고 할 것인데 비록 범죄혐의자라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주거의 평온을 보호받음에 예외를 둘 수 없다”고 덧붙였다.피해자 가족 “최근 본 문장 중 가장 황당” 이런 법원의 판단에 피해자 가족은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가족 측은 “한 사람의 집은 그의 성채인데 범죄 혐의자라 할지라도 주거의 평온 보호에 예외를 둘 수 없다는 문장은 최근 본 것 중에 가장 황당하다”며 “덕분에 이제 피해를 고발했던 우리들은 두려움에 떨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를 체포한 경찰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피해자 가족은 “철도경찰은 체포과정을 몰라서 이런 실수를 한 건가. 체포를 한 두 번 하는 게 아닐 텐데…대체 어떻게 이걸 받아들여야 하나. 의문투성이라 화낼 힘도 안 난다”고 했다. 경찰 “피의자 인권보호 강화하는 추세” 가족 측은 5일에도 “분노가 더욱더 차오른다. 기각의 이유도 황당하다”며 “추가 피해자가 지금 몇 명인지 모르시나. 범죄를 막기 위해 두려움을 뒤로 하고 목소리를 낸 사람이 몇 명인지 모르시나. 한국사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라고 한탄했다. 경찰은 이씨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에 당황한 분위기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 경찰관이 긴급체포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고 피의자를 체포하더라도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며 “최근 판례가 피의자 인권보호를 강화하는 추세여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文 교류 손짓에 대답 없던 北, ‘삐라’ 고리로 남북관계 우회 압박

    文 교류 손짓에 대답 없던 北, ‘삐라’ 고리로 남북관계 우회 압박

    개성공단 철거·연락사무소 폐쇄도 거론 사전 예고 없는 전단 살포 막을 길 없자 통일부 “전단·접경지 종합적 입법 검토” NSC 상임위 회의서도 심도 있게 논의 보수 진영 “지나친 北 눈치보기” 반발정부가 4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강력 반발한 대북 전단(삐라)을 규제할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은 데다 실질적으로 전단 살포를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아 남북 관계가 당분간 삐라에 출렁일 가능성이 커졌다. 올 들어 문재인 대통령은 경색된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뚫기 위해 코로나19 공동대응 등 다양한 교류 구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묵묵부답이던 북한이 삐라를 고리로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까지 거론하면서 당장 ‘삐라 해법’이 급하게 됐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날 대북 전단과 관련해 “전단 문제만을 조율하는 별도 법이 아니라 접경지역 평화적 이용과 관련된 종합적 법률 등 다양한 입법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담은 법률안을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제출할 계획이다. 정부입법·의원입법 방식 모두 열어 뒀다. 대북 전단 살포는 북으로선 체제 위협 요인인 동시에 2018년 4·27 판문점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중단키로 합의한 사항이다. 지금까지 경찰이 공개적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접경지역 주민 보호를 명목으로 제지해 왔지만, 사전 예고 없이 비공개로 전단을 살포하면 막을 길이 없다. 더욱이 대북 전단 규제는 접경지역 주민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과 표현의 자유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 왔다. 2008년 대북 전단 살포 전에 통일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는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김 제1부부장이 대책 마련을 촉구하자 정부가 이에 즉각 호응하는 모양새를 취해 보수진영과 탈북자 단체는 “지나친 북한 눈치 보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북미 관계를 떠나 독자적 남북 협력 재개를 모색해 온 데 대해 북한이 9·19 군사합의 파기 압박으로 응수해 남북 관계 경색 국면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 제1부부장은 남측에 대북 전단 대책을 세우라는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동시에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며 ▲개성공업지구의 철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 등을 주장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제1부부장이 내부 매체인 노동신문에서 대남 비방을 한 것은 중장기적으로 강경한 대남 기조를 추진한다고 공표한 것과 다름없다”고 분석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보수진영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는 4·27 판문점선언과 9·19 군사합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심도 깊게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방역을 매개로 남북 대화·교류를 복원하기 위해 드라이브를 거는 상황에서 북측의 자존심을 긁거나 군사합의 파기의 빌미를 제공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미국의 공산주의 비판에 발끈한 北, “폼페이오 발언은 개나발”

    미국의 공산주의 비판에 발끈한 北, “폼페이오 발언은 개나발”

    북한은 4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현존하는 위협이라고 규정한 데 대해 ‘개나발’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중국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 미국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초청 등을 계기로 한국을 반중국 전선에 포섭하려는 반면, 북한은 미국의 반중국 노선을 연일 비판하며 중국에 밀착함에 따라 한반도에서 이데올로기적 냉전 구도가 부각되는 모습이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 국제부는 이날 대변인 담화를 통해 지난달 31일 폼페이오 장관의 폭스뉴스 인터뷰를 언급하며 “중국을 현존하는 위협으로 규정하고 중국의 위협은 공산당의 이념에서 온다고 하면서 미국은 서방의 동반자들과 함께 다음 세기를 미국이 누리는 ‘자유민주주의’를 본보기로 하는 서방의 세계가 되도록 하겠다는 망발을 늘어놓았다”고 말했다. 이날 담화는 북한 주민이 보는 노동신문에 실렸다. 이어 “폼페이오가 홍콩과 대만 문제, 인권 문제, 무역분쟁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 대해 이러저러한 잡소리를 늘어놓은 것이 처음이 아니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사회주의를 영도하는 중국공산당의 영도를 악랄하게 걸고 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담화에서는 “폼페이오가 공산당이 영도하는 사회주의를 서방식 이상과 민주주의, 가치관을 파괴하는 독재로 매도하면서 중국공산당의 통치가 없는 미국과 서방의 세계를 만들겠다고 지껄인 것은 순차가 다르지만 조선노동당이 영도하는 우리의 사회주의도 감히 어째 보겠다는 개나발”이라고 비난했다. 아울러 “극단한 인종주의에 격노한 시위자들이 백악관에까지 밀려드는 것이 찌그러진 오늘의 미국의 실상이고 시위자들에게 좌익의 모자를 씌우고 개까지 풀어놓아 진압하겠다고 하는 것이 미국식 자유와 민주주의”라며 “폼페이오는 미국의 역대 통치배들과 마찬가지로 승승장구하는 공산당과 사회주의를 어째 보려는 허황한 개꿈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노동당 국제부는 사회주의 국가를 대상으로 당 대 당 외교를 주도한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부서 명의 대변인 담화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중국 정부를 ‘중국공산당’이라고 지칭하며 비판한 만큼, 북한도 당 국제부를 내세워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중 갈등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는 이데올로기 경쟁의 성격을 띄게 된 만큼,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도 미국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위협을 느끼고 중국을 지지할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분석이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30일에도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질의응답하는 형식으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홍콩 보안법’ 초안 의결에 대해 합법적인 조치로 평가하고 중국 정부에 전적인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정부 “대북전단 막을 법안 검토”…위헌 논란 가능성

    정부 “대북전단 막을 법안 검토”…위헌 논란 가능성

    北, GP총격 등 군사합의 위반 지적엔 ‘침묵’필요할 때만 “합의 지켜라” 요구통일부는 4일 북한이 문제 삼고 있는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해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위협을 초래하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며 중단을 강제하기 위한 법률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접경지역에서의 긴장 조성 행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긴장 해소방안을 이미 고려 중”이라며 “법률 정비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 대변인은 “법률안 형태는 정부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는 대북 전단 살포가 접경지역의 긴장 요소로 이어진 사례에 주목해 여러 차례 전단 살포 중단에 대한 조치를 취해왔다”면서 “실제로 살포된 전단의 대부분이 국내 지역에서 발견되고 접경지역의 환경오염, 폐기물 수거 부담 등 지역주민들의 생활여건을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이날 새벽 탈북민의 대북 전단 살포에 불쾌감을 표하며 남북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거론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김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남조선 당국이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한다면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북남(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북남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전했다. 여 대변인은 ‘북한의 담화 이전부터 관련 법률 정비를 준비했느냐’는 질문에는 “대북 전단과 관련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 관련 사항이었던 만큼, 판문점 선언 이행 차원에서 정부가 그 이전부터 준비해오고 있었다”고 답했다. 다만 법안 발의 시기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위헌 논란이 불가피하다. 또 진보·보수 간의 입장 차이가 뚜렷해 국회 통과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18년에는 대북전단 살포시 미리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정부는 법으로 금지하는 게 어렵자 예고하고 진행하는 공개적인 대북전달 살포에 대해선 남측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경찰력을 동원해 제지하기도 했다.2014년 10월 북한이 한 탈북단체가 경기도 연천에서 날린 대북전단 풍선을 향해 고사총을 발사하고 이에 군이 응사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크게 고조돼 접경 지역 주민들이 크게 불안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한 법안을 추진하는 한편 그전까지는 경찰을 동원해 이를 막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현행법상 전단 살포를 법으로 금지할 수는 없지만 경찰집무집행법 등 사회안전 관련법들을 통해 자제시킬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공개로 사전예고 없이 전단을 살포하는 전단은 막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북한이 자신들의 9·19 군사합의 위반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군사합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어 비판여론도 크게 일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해 11월 남북접경인 창린도에서의 해안포 사격과 최근 북한군의 남측 감시초소(GP) 총격 사건에 대해 각각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북측에 항의했지만, 북한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단독]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총선 앞두고 밀려난 감사원장의 소신

    [단독]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총선 앞두고 밀려난 감사원장의 소신

    내부 보고서 경제성 부분 ‘긍정적 평가’ 발표 시기 놓고 감사원장과 위원들 충돌 “종합적 판단” “정치적 고려” 찬반 논란어떤 결론 나오든 탈원전 갈등 커질 듯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경제성 평가다. 한수원이 당초 2020년까지 가동하기로 계획된 원전을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2018년 조기 폐쇄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감사원 고위 관계자가 2일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이 저평가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히면서 향후 감사위원회에서 최종 결론이 어떻게 내려질지 주목된다.감사원은 한수원의 자체 경제성 평가와 회계법인의 평가 보고서, 제3연구기관의 연구용역 등을 종합 분석해 “경제성이 저평가됐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는 가동 시 비용과 수익 등 ‘변수’를 어떻게 입력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비용은 원전 운용비용·감가상각비 등을, 수익은 이용률·전력판매단가 등을 반영한다. 그동안 일각에서 “월성 1호기 경제성을 평가했던 회계법인이 원전 이용률을 낮추고, kWh(킬로와트시)당 전력판매단가 추정치를 하향 조정해 의도적으로 총전기 판매 수입을 축소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도 그 때문이다. 감사원은 경제성 저평가 부분과 관련해 비용·수익 세부 변수가 제대로 처리됐는지 집중 점검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원전 운영 자료는 굉장히 정밀하기 때문에 의도적 조작이나 실수가 있을 경우 이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수원 관계자는 “월성 1호기 가동률·전력판매단가 등 현실적으로 부합한 자료를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저평가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입장 차이로 지난 4월 9일에 이어 10일, 13일 감사위원회에서 일부 감사위원들은 추가 자료를 보완해 더 엄밀히 경제성 평가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감사원 내에서는 또 경제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담은 보고서 외에도 감사 발표 시기를 둘러싸고 최재형 원장과 감사위원들 간에 충돌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최 원장은 감사원이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지 않도록 4·15 총선 이전에 감사보고서를 처리하자고 했지만 총선을 코앞에 두고 민감한 감사 사안을 처리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의견도 많았다는 것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총선에 임박해 감사 결과를 처리할 경우 완벽한 감사 결과를 내놓지 않을 경우 ‘부실 감사’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더 확실한 ‘물증‘을 요구하며 ‘보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최 원장은 감사보고서가 일부 감사위원들의 반대로 처리되지 못하자 총선 직전 이례적으로 ‘항의성’ 휴가<서울신문 4월 15일자>를 가면서 월성1호기 감사는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됐다. 감사원은 감사에서 월성 1호기에 대한 경제성 평가뿐 아니라 안전성 및 주민수용성 등도 들여다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경제성 평가뿐 아니라 안전성과 지역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밝히는 등 여러 변수를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만약 감사원이 산업부와 한수원의 입장을 향후 내놓을 감사 결과에 적극 반영하게 될 경우 월성 1호 조기 폐쇄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탈원전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경제성 평가 외적인 부분을 반영하는 것은 ‘정치적 고려’라고 공격할 것이고, 탈원전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종합적인 판단’이라고 맞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감사가 진행 중이기는 하나 큰 틀에서 월성 1호기 경제성은 인정하되 안전성·지역수용성 등을 고려해 조기 폐쇄 자체 문제는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질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 이럴 경우 감사원으로서는 ‘묘수’를 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사설] 사드교체로 재현된 미중 갈등, 신냉전 대응책 마련하라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19 발원지와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등을 계기로 경제와 외교안보 전반에 걸쳐 패권 경쟁에 돌입하는 중에 지난 29일 새벽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경북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에 기습적으로 사드 장비를 반입해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국방부는 이번 장비 반입이 미국이 추진하는 사드 성능 개량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지만 중국 등 주변국은 반발하고 있다. 미중 간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는 상황에서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정부는 추가 장비 반입 시 지역주민들과 협의한다는 약속은 물론 추가 장비 반입은 일반 환경영향평가 종결 이후 결정한다는 원칙도 어겼다. 한국에 미국은 국가 안보의 보루이고 중국은 가장 큰 투자·교역국이다.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지속된 미중 밀월기에 우리는 안보의 경우엔 미국, 경제는 중국에 기대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접근법으로 우리의 국익 극대화 전략을 유지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점차 격렬해지고 있는 미중 갈등기에 우리의 국익 전략이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어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한국과 호주, 러시아, 인도 등 4개국을 별도로 초청해 11개국 정상회의 개최 의사를 피력했다. 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제질서의 새판 짜기와 무관치 않다. 미국이 중국과의 갈등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중국 견제용 반(反)중 세력을 규합한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우리로선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을 높인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미중 편 가르기 상황에서 또 하나의 외교안보 시련이 될 수 있다. ‘2016년 사드 사태’처럼 미중의 양자 선택의 압력은 더 거세질 것이다. 냉정한 판단이 요구된다. 미중 간 군사, 외교, 경제 등 전방위에서 갈등이 첨예화할 것에 대비해 한국도 외교안보의 원칙과 전략적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사안에 따라 선택하지 말고 장기적인 전략으로, 우호관계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국익 최대화 전략이 절실하다.
  • “의원 징계안, 체포동의안처럼 72시간 내 의결 의무화시켜야”

    “의원 징계안, 체포동의안처럼 72시간 내 의결 의무화시켜야”

    “왜 질문하고 있는데 간섭을 해? 말하고 싶으면 나와서 하란 말이야.”(국민의당 김동철 전 의원) “국민들이 다 보고 있어요. 어디다 반말하세요?”(새누리당 이장우 전 의원) 2016년 7월 5일, 20대 국회 첫 대정부질문 둘째 날인 이날 당시 국민의당 소속 김 전 의원이 황교안 국무총리를 향해 지역 편중 인사 문제를 지적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집단 반발했다. 김 전 의원과 이 전 의원이 설전을 벌이면서 질의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고 결국 회의까지 정회됐다. 설전 다음날인 6일 이 전 의원은 김 전 의원이 자신을 모욕했다며 징계안을 제출했고, 일주일 뒤 김 전 의원도 이 전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하며 맞불을 놨다. 하지만 둘은 두 달 뒤에 소리소문 없이 징계안을 동시에 철회했다. 20대 국회 첫 징계안은 이렇게 정쟁용으로 소모됐다. 31일 서울신문이 16~20대 국회 제출된 징계안 195건을 전수분석한 결과, 2012년 5월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기 전만 해도 징계안 제출 사유는 회의 방해와 폭행이 많았다. 상임위 법안 심사 등을 막기 위해 벌인 몸싸움이 폭행으로 번져 의원들이 서로 징계안을 제출한 것이다. 18대 국회(2008~2012년)에서 회의 진행 방해를 이유로 징계안이 제출된 게 25건으로 가장 많았고 폭행은 14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그러다 국회선진화법 통과 이후에는 막말에 따른 모욕 및 명예훼손 등으로 인한 징계안 제출이 다반사가 됐다. 막말에 따른 징계안 제출이 많았던 20대 국회의 징계안을 보면 가장 이목이 집중됐던 것은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5·18민주화운동 망언 논란이었다. 지난해 2월 8일 공청회에서 ‘5·18 유공자는 종북 좌파가 만든 괴물집단’, ‘광주 폭동’, ‘전두환은 영웅’ 등 5·18을 모독하는 망언을 쏟아낸 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전 의원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거셌고 이들에 대한 징계안이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징계 논의는 비상설 윤리특위의 임기가 끝나면서 흐지부지 묻혀버렸다. 정치권에서는 징계안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이유로 ‘의원들의 부담’을 주로 든다. 대부분 징계안이 정쟁 때문에 나온 것을 뻔히 아는 상황에 앞장서서 동료 의원을 자기 손으로 징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10년차 한 보좌진은 “징계안 자체가 정쟁용이라 잠깐 화제를 끌고 나면 그때뿐”이라며 “윤리특위 내에서도 특정 당만 의결하기에는 부담이 있으니 아예 다루지 말자는 인식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국회에서도 대책 차원에서 윤리특위 개선 법안 등이 수차례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진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등 국회법 개정안을 지난 3월 대표 발의했지만 폐기됐다. 통합당 정병국 전 의원은 독립적인 국회의원 윤리전담기구를 설치하여 국회의원의 윤리성을 제고할 수 있는 틀을 만들자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역시 폐기됐다. 특히 기존에 상설기구였던 윤리특위가 20대 국회 후반기에는 비상설로 전환되면서 국회 내에는 의원 징계를 논의할 기구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품위 유지를 위한 의원들의 자정 활동에만 기대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3월 30일 발표한 ‘국회 의원윤리심사기구의 상설화 필요성’ 자료에서 의원윤리심사기구를 상임위원회 등의 상설기구로 설치 운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전진영 입법조사처 정치의회팀장은 “의원이 아닌 일반인이 심사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윤리심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원에 대한 징계 의결시한을 신설해 논의의 강제성을 부여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의원 징계안이 제출된 경우 정해진 기간 내에 반드시 이를 처리하도록 국회법에 명시해 징계안 자체에 무게감을 높이자는 것이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는 “윤리특위가 자문위 의견 접수 후 의결하지 않으면 징계안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간주해 즉시 본회의에 회부하는 방안도 가능하다”며 “이를 체포동의안과 마찬가지로 48~72시간 안에 반드시 의결하도록 의무화해 강제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임지연의 내가갔다, 하와이] “숨을 쉴 수가 없다!”…하와이서 진행된 평화 가두시위

    [임지연의 내가갔다, 하와이] “숨을 쉴 수가 없다!”…하와이서 진행된 평화 가두시위

    미국 경찰의 폭력적인 법집행으로 흑인 남성이 사망한 사건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미국의 비무장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46)가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지는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이 31일 미국 전역 20여 곳의 주, 30개의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분위기다. 하와이 주에서도 지난 30일부터 이틀 째 연이어 호놀룰루 시 도심 한 가운데에서 평화시위가 진행됐다. 특히 31일 진행된 평화 시위는 와이키키 해변에서 시작, 호놀룰루 도심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따라 약 3천 명의 대규모 인원이 참여하는 가두시위로 실시됐다. 이에 앞서 지난 30일 진행된 시위의 형태가 시 의회 광장에서 진행된 개인에 의한 시위였다는 점과 달라진 모습이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주민들은 20~30대 청년층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현지 온라인 sns를 통해 공유된 평화 시위 정보를 통해 자발적으로 가두시위를 기획,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날 오후 2시 경, 와이키키 해변 도로에서 처음 시작된 평화 시위대의 규모는 단 30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호놀룰루 도심으로 가까워질수록 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그 규모는 한 때 약 3천 명에 이르는 등 크게 증가했다. 때문에 호놀룰루 시 중심지에서 다운타운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한 때 호놀룰루 시 소속 경찰들과 마찰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일부 현지 경찰관들은 사복을 착용한 채 평화적인 방식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시위대를 감독하는 등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특히 시위대가 가두시위를 진행하는 동안 수 십여 대의 호놀룰루 시 경찰 소속 차량이 이들을 따라 포위, 이동하는 모습도 발견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대의 가두시위 모습을 발견한 많은 시민들은 목소리를 높여 응원하거나, 자동차 클락션을 울리는 등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다. 이날 진행된 시위는 시위 참여자들이 직접 적은 “I can’t breath”, ‘Black people is better’, ‘Black lives matter’ 등의 문구를 담은 종이를 들고 걷는 평화시위였다. 약 3시간에 걸친 가두시위 중 시위 참여자들은 동시에 목소리를 높여 흑인 인권에 대한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였지만, 어느 한 명 위험한 행동을 섣불리 하는 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시위에 참여한 하와이 주민 헤더 리버스톤 씨는 “이번 시위는 미국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인 인종 차별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서 “인종차별 문제는 단순히 한 개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단순히 폭력 경찰관 1명에 대한 처벌 여부를 요구하는 것이 시위의 목적은 아닐 것”이라면서 “제도적, 암묵적으로 내재된 인종차별 문제를 시정하고 해결해야만 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한편, 현지 경찰관들에 의해 가두시위대의 도로 이동이 제한된 이날 오후 5시 경, 일부 시위대와 공권력이 충돌하는 등 불안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호놀룰루 경찰 측은 가두 시위대의 규모가 불과 3시간 만에 수 천 명을 넘어서자, 이들의 행진을 저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시 30분 경 와이키키 해변 인근에서 시작된 시위대를 따라 2차, 3차, 4차 등의 추가 시위대가 자발적으로 생겨난 것. 첫 시위대가 이동한 도로를 따라 대규모 인원의 시위대가 추가로 발생하는 등의 형식으로 시위대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때문에 현지 경찰관들은 이들을 감독하기 위한 목적으로 호놀룰루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등 시위대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 수준을 늦추지 않는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시위는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약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시위에 참여한 인원 중 일부가 현지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시위를 종료할 것을 강제하는 현지 공권력과 가두 시위를 이어가려는 시위대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위에 참여한 이들 중 일부를 구속, 체포할 것이라는 현지 경찰 측의 엄포가 알려지면서 시위대의 일부 참여자들은 흥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시위는 커다란 충돌 없이 알라모아나 해변 인근에서 이날 오후 5시 30분에 종료됐다. 시위대 참여자들은 시위 종료를 알리는 소식이 sns 상에 전달되자, 이를 확인 후 각자의 일상으로 평화롭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호놀룰루=임지연 통신원 808ddongcho@gmail.com   
  • 막말·몸싸움 품위없는 국회 21대 계속될까…윤리특위부터 상설화해야

    막말·몸싸움 품위없는 국회 21대 계속될까…윤리특위부터 상설화해야

    “왜 질문하고 있는데 간섭을 해? 말하고 싶으면 나와서 하란 말이야!”(국민의당 김동철 의원) “어디다 반말하세요 지금? 국민들이 다 보고 있어요. 어디다 반말하세요?”(새누리당 이장우 의원) “대전의 이장우 의원, 대전 시민들 부끄럽게 하지 마.”(김 의원) 2016년 7월 5일 20대 국회 첫 대정부질문 둘째 날인 이날 당시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이 황교안 국무총리를 향해 지역 편중 인사 문제를 지적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집단 반발했다. 김 의원과 이 의원은 설전을 벌였고 결국 질의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면서 정회됐다. 설전 다음날인 6일 이 의원은 김 의원이 자신을 모욕했다며 징계안을 제출했고 14일 김 의원도 이 의원이 자신을 모욕했다며 징계안을 제출하며 맞불을 놨다. 하지만 두 의원은 두 달 뒤인 9월 8일 소리소문없이 징계안을 동시에 철회했다. 20대 국회 임기 시작 후 처음으로 제출된 징계안은 정쟁용에 그쳤다. 31일 서울신문이 16~20대 국회 제출된 징계안 195건을 분석한 결과 의원 간 막말에 따른 징계안 제출이 69건(35%)으로 가장 많았다. 국회의원 면책 특권을 활용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발언해 징계안이 제출된 것은 33건(17%), 상임위 등에서 회의진행 방해 건은 39건(20%), 국회의원 지위를 활용한 권한 남용건은 23건(12%)이었다. 폭행 20건(10%), 성추행 등 기타 사례는 11건(6%)으로 집계됐다. 2012년 5월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기 전만 해도 상임위 법안 심사 등을 막기 위해 몸싸움 등이 벌어져 폭행을 이유로 상호 간 징계안이 제출된 게 많았다. 18대 국회(2008~2012년)에서 회의 진행 방해를 이유로 징계안이 제출된 게 25건으로 가장 많았고 폭행은 14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국회선진화법 통과 이후에는 몸싸움보다는 막말에 따른 모욕 및 명예훼손 등으로 징계안 제출이 다반사였다. 막말에 따른 징계안 제출이 많았던 20대 국회의 징계안을 보면 가장 이목이 집중됐던 것은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5·18민주화운동 망언 논란이었다. 지난해 2월 8일 공청회에서 ‘5·18 유공자는 종북 좌파가 만든 괴물집단’, ‘광주 폭동’, ‘전두환은 영웅’ 등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모독하는 망언을 쏟아낸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거셌고 이들에 대한 징계안이 윤리특위에 제출됐지만 제대로 징계 논의가 된 적은 없었다. 비상설 윤리특위의 임기 종료와 함께 그대로 흐지부지됐다. 이처럼 징계안이 남발되고 처리도 안 되는 데 대해 10년차 한 보좌진은 “징계안 자체가 정쟁용이다 보니 잠깐 화제를 끌고 나면 그때뿐”이라며 “윤리특위 내에서도 특정 당만 의결하거나 그러기에는 부담이 있으니 아예 다루지 말아버리자는 인식이 강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국회에서 윤리특위 개선 법안 등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진 못했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등을 국회법 개정안을 지난 3월 대표 발의했지만 폐기됐다. 통합당 정병국 전 의원은 독립적인 국회의원 윤리전담기구를 설치하여 국회의원의 윤리성을 제고할 수 있는 틀을 만들자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역시 폐기됐다. 국회의원들의 온갖 만행에도 사실상 윤리특별위원회는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국회의원 스스로 품위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강제성을 가지도록 처벌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윤리특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 정치행정조사실 전진영 정치의회팀장이 지난 3월 30일 발표한 ‘국회 의원윤리심사기구의 상설화 필요성’ 자료에 따르면 의원윤리심사기구를 상임위원회 등의 상설기구로 설치 운영하고 의원이 아닌 일반인이 심사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윤리심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회의원에 대한 징계 의결시한 신설로 강제성을 부여하는 등 실효성 있는 방안 대책으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가 2018년 4월 발표한 ‘국회의원 윤리심사와 겸직제한의 제도적 한계와 개선방안’ 논문에 따르면 윤리특위가 자문위 의견 접수 후 의결하지 않으면 징계안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간주해 즉시 본회의에 회부해 체포동의안과 마찬가지로 48시간 이후 72시간 이내 반드시 의결하도록 의무화해 강제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트럼프 행정명령 서명하자 트위터, 폭력 부추긴다며 그의 트윗 가려

    트럼프 행정명령 서명하자 트위터, 폭력 부추긴다며 그의 트윗 가려

    트위터도 당하지만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이하 현지시간)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미디어(SNS) 회사가 이용자의 게시물을 임의로 고치거나 삭제하면 법적 면책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지 몇 시간 안된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 폭력을 부추길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며 가려 버렸다. 트윗 글을 삭제하지는 않고 경고문이 대신 떠오르게 했다. 이 트윗을 읽고 싶으면 경고문을 읽은 뒤에 ‘읽기’를 클릭하면 해당 트윗이 떠오르게 했다. 경고문은 다음과 같다. “이 트윗은 폭력 미화 행위에 관한 트위터 운영 원칙을 위반했다. 하지만 트위터는 이 글에 접근할 수 있도록 남겨두는 게 대중의 이익에 부합할지 모른다고 결정했다.” 경고문이 붙여진 트럼프의 트윗은 경찰에 체포되던 흑인 남성이 가혹한 폭력에 스러진 것에 항의해 이틀 연속 과격한 시위가 벌어진 미니애폴리스 시에서의 약탈과 소요에 대해 언급한 것이었다. 대통령은 “이들 폭력배가 (사망자인) 조지 플로이드의 기억에 대한 명예를 떨어뜨리고 있다. 국가 방위군을 파견할 것”이며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이 시작된다”고 경고했다. 트위터는 이 마지막 표현을 문제 삼아 경고 문구를 먼저 띄웠다. 트위터는 지난해 중반 중요한 공인이 게재 원칙을 어겼을 때 트윗을 삭제하기보다 경고문을 붙이는 정책을 채택했다. 하지만 트위터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이를 적용하지 않았다. 물론 삭제한 일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 26일 대선 관련 우편 투표가 선거 조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두 건에 팩트 체크 경고문을 붙인 데 이어 이날은 트윗을 가려 버리는 한 발 나아간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른 이용자들이 트럼프의 트윗에 댓글을 달거나 리트윗하거나 하지 못한다. 다만 붙여진 코멘트와 함께 리트윗할 수는 있다. 트위터는 따로 성명을 발표해 “이 트윗의 마지막 문장은 역사적 맥락에 기초할 때 폭력을 부추겨선 안된다는 우리 정책을 위배했다”고 설명했다. 역사적 맥락이란 것은 1960년대 말 마이애미 경찰서장 월터 헤들리가 했던 말이다. 그는 흑인 주민들을 공격적으로 단속하겠다는 의미로 이런 표현을 써 흑인들의 소요를 오히려 부채질했다는 평가를 낳았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 내용을 아예 법으로 만들겠다는 방침이지만 법정 소송에 휘말리는 것은 물론 의회에서도 강한 반발에 직면할 전망이다. 아울로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대선 선거운동에 더욱 의존해야 할 상황에 자신의 손발을 스스로 묶는 우매한 짓이란 비판도 나온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 팔로어만 8000만명이 넘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21대 국회에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조속한 통과 촉구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회장 신원철)는 5월 30일 새롭게 출발하는 21대 국회에 대하여 20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했던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여 줄 것을 건의했다. 의장협의회는 건의문을 통해 “최근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지방자치단체는 창조적이고 다양한 대응책으로 감염병의 확산을 막아 내고 있다.”라면서 “이는 지방의 재발견이자 지방자치의 강화가 국가 발전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행 지방자치 제도의 한계로 인해 각 지역 상황에 맞는 보다 적극적인 정책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설명하며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의 근간인 지방자치법의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는데 국민여론과 정치권이 모두 공감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의장협의회는 “정부가 주민의 적극적인 정책참여를 보장하고 중앙-지방간 협력 확대와 지방의회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지난 2019년 3월 발의했지만, 20대 국회는 정부의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 대해 제대로 된 심의조차 없이 20대 국회 임기를 종료하였고 법안은 이와 함께 폐기되고 말았다.”라고 비판했다. 의장협의회는 다시 한번 동 법안의 개정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21대 국회는 그 절차를 서둘러 법안발의에서부터 소관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 의결을 거쳐 법률공포에 이르기까지, 올해 12월말 이내에 개정이 전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서둘러 지방자치법 개정 절차에 들어갈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中 “테러리스트 아니라면 홍콩보안법 무서워 말라”

    中 “테러리스트 아니라면 홍콩보안법 무서워 말라”

    고위급 동원 유화 메시지로 민심 달래기 변협 “中정부 직접 제정은 기본법 위배” 중국이 홍콩 내 반(反)정부 활동을 감시·처벌하는 내용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직접 제정하겠다고 선언해 미국과의 갈등이 커진 가운데 고위 인사들이 잇따라 홍콩 주민들에게 유화 메시지를 보내며 ‘민심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홍콩보안법은 극소수 적대세력의 음모를 막기 위한 것이어서 일반인에게는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논리다. 26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초대 홍콩 행정장관을 지낸 둥젠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은 전날 밤 긴급 연설에서 “홍콩이 국가 안보의 ‘약한 고리’가 됐다. 새 법은 범죄와 관련된 소수만을 대상으로 한다”면서 “당신이 분리, 전복, 테러 등에 가담하거나 외국과 음모를 꾸미지 않는다면 이 법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둥 전 장관은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1997년부터 2005년까지 행정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홍콩 정부는 지난 20여년간 자체적으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면서 “그 결과 홍콩은 공공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적대적 외국 기회주의자들의 손쉬운 목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홍콩은 ‘스파이의 안식처’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면서 “세상 어느 나라도 테러 행위를 용인하지 않는다. 새 보안법은 홍콩의 경제·사회 문제를 안정시키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셰펑 중국 외교부 홍콩주재사무소장도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홍콩보안법은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와 홍콩 자본주의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다. 홍콩의 독립적인 사법권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라고 전했다. 셰 소장은 “이 법은 폭력과 테러에 대한 국내외 기업계의 우려를 완화시킬 것”이라면서 “지난해 홍콩 경제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 법을 통해 홍콩은 글로벌 금융·무역 허브 위상을 강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홍콩변호사협회는 성명에서 “중국 정부가 홍콩보안법을 직접 제정한다면 이는 (홍콩의 헌법인) 기본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협회는 “기본법 23조는 홍콩인 스스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국은 홍콩보안법을 제정할 법적 권한이 없다”고 비판했다. 홍콩보안법은 중국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폐막일인 28일 통과될 예정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어둑한 근대사에 돋보기…행간 속 민족을 사색하다

    어둑한 근대사에 돋보기…행간 속 민족을 사색하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자 원로 비평가인 임헌영(79) 선생의 이미지는 불가피하게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선명하게 각인된다. 이른바 ‘남민전 사건’으로 인한 투옥과 시련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로 상징되는 사회운동에의 투신이 한 축의 면모라면, 다른 한 축은 치밀한 자료 섭렵을 통해 한국 근현대문학의 실증적·사상적 연구를 축적해 온 면모로 귀납된다. 그 가운데 연구소에서 오랜 열정과 공력을 다해 펴낸 ‘친일인명사전’(2009)의 성과는 우리 근대사의 어둑한 순간들을 현재로 소환해 반성적 자료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세 권 분량에 4300여명을 수록한 이 책의 성과는 두고두고 임헌영 선생의 생애를 집약하는 표지가 돼 줄 것이다.●알리고 밝히고 세워 가야 할 역사 친일 행적을 밝히는 게 쉬울 리 없다. 당시 작업에 대한 폄하와 공격도 상당했다. 선생이 연구자들에게 강조한 점은 이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 조상 다루듯 하라.’ “많이 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저히 뺄 수 없을 경우에만 넣도록 하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창의적 교육관이 아니라 단순히 수동적 집행에 머물렀던 교육자 같은 이들은 모두 빠졌죠.” 민족사적 관점에서 반성적 자료가 되기에 족한 이들, 제국주의 협력의 자의식을 가진 이들만 추린 모종의 정예화 결과인 셈이다.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한쪽에서는 당사자인데도 이러한 과정을 흔연하게 받아들인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분들이 준 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파인 김동환의 자제 김영식 선생은 전집에 아버지가 쓴 친일 문건을 다 실었어요. 아버지가 사죄할 기회가 없었는데 자신이 대신 사죄한다면서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데 큰 힘을 줬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어쨌든 인명사전 출간 후 친일 청산에 대한 긍정적 지지자는 많이 늘어났고, 다수 여론조사에서 친일 청산 여론이 70%가 넘는다고 했다. “우리 연구소는 시민단체 가운데 가장 역사의식이 투철한 구성원들로 이뤄진 것 같아요. 이제 저희 과제는 오늘도 여전히 일본이 옳았다고 하면서 학문이나 예술이나 경제 논리로 포장하는 이들과의 싸움에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도 일본의 새로운 파시스트들과의 싸움이 중요하지요.” 최근 연구소는 각고의 노력으로 서울 청파동에 새 건물을 마련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스튜디오를 만들어 팟캐스트를 찍고 그걸 유튜브에 공개해 일반 시민들과 연구소 성과를 공유하고 있다. 일본 파시즘 지지 세력과 우리 쪽 일부 세력이 보여 주는 정치적 화음에 주목할 때 아직도 연구소가 알리고 밝히고 세워 가야 할 역사의 흐름이 만만치 않은 듯했다. 물론 일본에도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우경화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있고, 우리 쪽에도 민족 경험을 훼손하려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현재형을 돌파해 제대로 된 민족사를 쓰기 위해 선생의 헌신과 노력은 지속될 것이다.친일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된 연구소가 펼치는 한국 근현대사 연구와 과거사 청산 작업 역시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국내외를 망라한 작가들의 정치의식 탐색 사실 인터뷰를 촉발한 직접적 계기는 선생이 오랜만에 두 권의 역저를 잇달아 낸 데 있었다. ‘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역사비평사, 2019),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소명출판, 2020)가 그것이다. 두 책은 대조적 속성을 띠고 있다. 앞의 것이 광폭의 발품과 해박한 독서력을 기반으로 해외에 눈을 돌렸다면, 뒤의 것은 한국소설의 맹장들에 대한 정치적 관점에서의 독법이 담겼다. 먼저 유럽문학 기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감옥에서 나와 여행을 못 다닌 게 원통했어요. 문화센터 같은 데서 강의하다가 외국 문인들의 박물관 방문 프로그램을 계획했는데 모집이 잘돼 제 뜻대로 계획도 짜고 진행도 했어요. 성공적이었지요. 이 책에서 다룬 분들은 모두 평화, 반전, 반제국주의의 작가들이에요. 민중적 정치의식을 가진 분들의 문학을 테마로 한 결과이지요.” 책은 영독불러의 황금분할을 이루고 있다. 푸시킨, 톨스토이, 고리키, 스탕달, 위고, 괴테, 횔덜린, 헤세, 바이런, 로런스 등이 선생의 열정적인 답파(踏破)와 재구성에 의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에세이풍으로 써 가는 선생의 친절하고도 에두름 없는 문장들이 책의 가독성을 한결 높여 준다. 위대한 작가들의 사생활, 특별히 외도 경험 같은 어둑 한 측면까지 훤칠하게 재현했다.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는 어떠할까? “우리가 위대한 시민혁명을 했는데도 여전히 발전된 정치의식이 빈곤하다는 것을 최근 절감했어요. 늘 흔들리고 위태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소설가들을 통해 역사를 올바로 보는 눈, 정치를 제대로 하는 힘을 빌리자고 생각했지요. 이왕이면 독자가 많은 작가들을 골랐어요. 되도록 각주를 빼고 연애소설 읽듯이 쉽게 풀어 갔습니다.” 책에는 장용학, 이호철, 최인훈, 박완서, 이병주, 남정현, 황석영, 손석춘, 조정래, 박화성, 한무숙 등이 담겼는데, 문학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이병주가 다가올 것 같고, 문학의 자의식이 큰 분들에게는 최인훈과 남정현이 매우 유의미하게 다가올 것 같다. “정치사 비판의 현장 중계는 이병주 선생이 최고봉이에요. 어떤 정치평론가도 못 따라가요. 최인훈 선생은 우리 문단의 고질병인 파벌을 넘어선 범례로 다루면 좋겠고요. 그 지성의 날카로움과 처연함이 단연 빛나지요.” 아직도 우리에게는 ‘정치’라는 말을 향한 기대와 혐오의 엇갈림이 있다. 그러나 정치야말로 가장 첨예한 예술이 아니던가. 책 서문에 인용된 나폴레옹의 말처럼 모든 공동체에서는 “정치가 운명”이 아니겠는가. 그 점에서 이 책은 선생의 사회적 실천의 연장선상에서, ‘비평가 임헌영’의 두께를 한 뼘 늘려 줄 것이다.●고단하고도 외로운 길 선생은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그 후 카프(KAPF)나 해방기에 대한 자료를 누구보다도 선구적으로 모았고 자료집을 냈으며 그 논리와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진력했다. 선생은 1980년대 이후 우리 지성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해방 전후사의 인식’ 시리즈에서도 단골 필자였다. 이쪽을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등단하기 전부터 카프에 대한 애정을 가졌어요. 해금 전부터 납월북 작가에게 관심이 많았고요. 그때는 대학 도서관에서 자료를 카메라로 직접 찍었어요. 해독이 잘 안 되면 살아 계신 분들께 전화로 직접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최첨단을 걸었지요.” 임헌영 비평은 참여문학, 민족문학, 리얼리즘, 민중문학에 이르는 패러다임을 모두 품고 있다. 안으로는 동학농민혁명, 4·19혁명,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과 관련한 문학에 대해 꾸준한 비평을 해 왔고, 밖으로는 글로벌 시대의 해외동포문학에 대한 탐구도 줄기차게 수행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외연을 넓혀 갔다. 이처럼 선생은 근현대 민족 수난사와 함께하면서 디아스포라 문제에도 눈을 떴다. 물론 선생은 서정적이고 예술적인 언어도 세상에 많이 내놓았다. 이 점, 선생을 설명하는 데 퍽 중요한 균형추가 아닐 수 없다. 마침 연구소 곁 숙명여대에서 재직하는 권성우 교수가 동석을 해 줬는데, 권 교수가 선생께 ‘앞으로 어떤 책을 내고 싶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북한문학 한번 정리해야 하고요. 해외동포문학도 중요합니다. 해외동포 쪽은 제가 제일 먼저 손대지 않았나 싶어요. 문학사회사, 특별히 필화사에 애정이 가요. 아마도 필화사가 제일 먼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이후로 두 분의 치열한 대화가 오갔다. 재일조선인문학, 특히 김석범과 김시종과 서경식에 대한 경험적 대화는, 비록 즉각적이었지만 임헌영 선생의 경험과 사유가 어디까지 뻗어 나가 있는지를 실물적으로 알려 줬다. “젊은 작가들의 세계를 평하기에는 이제 제 비평의 틀이 안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변해도 문학의 원칙은 그대로라고 생각해요. 그걸 훼손하면 안 됩니다. 원래 문학은 문학 하는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어요. 교양의 정점에서 문사철을 모두 이끌어 갔습니다. 손끝으로 하는 문학 말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문학을 지금도 옹호하고 또 대망하고자 합니다.” 굵직한 의제들을 버리고 쇄말주의에 빠진 우리 문학에 대한 원로다운 문제 제기인 셈이다. 선생의 말씀처럼 근본적 문학의 위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하되 변하지 않을 문학을 위해, 여전히 현재형 의제인 민족사 복원을 위해, 선생이 걷는 고단하고도 외로운 길은 아직도 가파르게만 보였다. 하지만 그 길은 누군가는 걸어 우리에게 비춰야 했던 오랜 지남(指南)으로 남을 것이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김포시의회 상반기 뭐했나… “하반기 원 구성 싹 바꿔야”

    김포시의회 상반기 뭐했나… “하반기 원 구성 싹 바꿔야”

    올가을 창립 예정인 경기 김포시민단체 ‘시민의힘’ 창립준비위원회는 25일 논평을 통해 “민선 7기 김포시의회 상반기 2년동안 시민은 안중에도 없었고 존재가치를 확인할 수 없었던, 말 그대로 ‘식물의회’였다”고 비판했다. ‘시민과 함께하는 든든한 의회’라는 글귀가 김포시의회 홈페이지 대문에 걸려 있다. 창립준비위는 “지난 30여년간 지방의회는 많은 발전을 이뤘고 지방의회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지만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지 않는 한, 세월이 흘러도 자질과 능력, 신념과 정치력에서 뛰어나고 시민을 위한 진짜 의원들로 구성된 의회는 한참 더딜 것 같다”고 말했다. 하반기 원구성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은 지난 달 말 ‘기초의회 의장단 선출에 관한 지침’이라는 제목으로 선출과정의 민주적 절차 보장과 시·도당 및 지역위원회의 관리감독 강화, 선출 시 준수사항 및 해당행위사례(징계)를 담은 공문을 전국 시·도당과 지역위원회에 발송했다. 이에 창립위는 “2년 임기의 기초의회 의장과 부의장은 무기명 투표 선거로 뽑으면 그만인데 당 차원의 지침과 관리감독이 필요한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김포시의 지방자치제는 전문성과 훈련 부족으로 집행부 견제와 감시를 제대로 못할 뿐더러 주민의 눈높이에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자치분권시대 주민의 목소리는 먼 산 메아리이고 협치(?)라는 이름으로 집행부 거수기 역할을 자초해 기초의회 무용론과 불신만 증폭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방의회의 의결권은 지방자치단체의 중요사항에 대한 의사와 정책을 결정하는 본질적 권한이다. 조례의 제정 및 개폐, 예산의 심의·의결, 결산의 승인, 기금의 설치·운영, 대통령령으로 정한 중요재산의 취득·처분 및 공공시설의 설치 및 처분, 기타 법령에 의해 그 권한에 속하게 된 사항 등 일을 하려면 끝도 없다. 대충 하려면 대접받으며 놀고먹는 게 의원이다. 5분 자유발언의 실효성도 언급했다. 창립준비위는 “의원들의 5분발언은 집행기관의 의견이나 답변도 없이 사후관리와 피드백이 없는 공허한 메아리였다”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의회회의 규칙을 개정해 5분 발언의 무게감과 주요 현안·쟁점사항에 대한 집행기관의 입장을 확인하고 의정활동의 실적을 홍보하는 등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민선7기 하반기 원구성은 새로운 의회 비전을 세우고 식물의회를 혁신해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며, 일하는 의회가 되기 위해 상반기 의장과 부의장·상임위원장을 맡았던 의원들은 스스로 하반기 주요 직책을 또 맡겠다고 나서는 염치없는 짓은 하지 말기 바란다”고 충고했다. 마지막으로 창립준비위는 “시민의 알권리와 소통을 위해 상임위 회의 실황을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SNS로 시청할 수 있도록 배려하자”면서 “시민토론회든 시민단체 간담회든 시민을 만나고 시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시민의 요구를 더 반영하는, 발로 뛰고 공부하는 의회가 되고 예산 심의·의결권을 가진 의회는 시민들에게 예산설명회 자리를 만들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시민의힘’ 창립대회는 오는 10월쯤 김포시 사우동 광장에서 ‘김포시민총회’ 형식으로 치를 예정이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사설] 비대위·합당 마무리한 통합당, 명운 걸고 쇄신해야

    비상대책위원회 가동, 미래한국당과의 합당이라는 난제를 해결한 미래통합당은 이제 본격적인 쇄신의 길에 들어설 일만 남았다. 4·15 총선 이후 이미 40일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뼈를 깎는 쇄신에 나서야만 할 것이다. 이번에도 환골탈태하지 못한다면 정당의 생명이 완전히 끝날 수 있다는 절체절명의 각오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28일 열리는 전국위원회에서 한국당과의 합당을 위한 법적 절차를 의결하고, 같은 날 열리는 상임전국위원회에서 당헌 부칙의 ‘8월 31일까지 전당대회를 연다’는 조항을 삭제해야 비로소 ‘김종인 비대위’ 가동 절차가 끝나는데 쇄신에 대한 당 안팎의 강력한 요구에 비춰 보면 두 사안 모두 무리 없이 처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김종인 비대위는 최소한 내년 4월 재·보궐선거때까지 통합당을 이끌게 된다. 비대위 어깨에는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인적 쇄신을 포함한 전면적인 쇄신을 통해 총선 참패 후 빈사 상태인 당을 하루속히 재건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 것이다. 또한 무너진 보수세력을 일으켜 세우면서 당의 외연을 중도 진영까지 확장하는 것 또한 비대위에 내려진 지상명령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통합당으로선 존폐가 불투명한 비상상황인 만큼 비대위의 어떠한 결정에도 일사불란하게 총의를 모아 따라야만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통합당의 쇄신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비판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번 총선까지 내리 4연패를 당한 까닭을 모든 구성원들이 각성해 뼈저리게 아파해야만 한다. 5·18과 세월호 망언 의원들을 징계조차 하지 못하는 ‘꼴통보수’ 이미지로는 표심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 지난 4번의 중대선거에서 입증됐다. 오죽하면 지난 총선 과정에서 당내에서조차 당 해체 요구 목소리가 나왔겠는가. 영남과 강남 여론만 살피는 정당에 다른 어느 지역 주민들이 동조할 것인지는 묻지 않아도 자명하다. ‘극우보수 세력’과 단절하고 새로운 가치를 내세워 중도로 외연을 확장해야 2022년 대선에서 수권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 주민소환은 잇따르는데… 지자체장 파면 13년간 0명

    주민소환은 잇따르는데… 지자체장 파면 13년간 0명

    116번 시도… 2007년 시의원 2명만 성공 주민들은 단체장 눈치 보느라 서명 꺼려 현수막 제작 방해·이장은 반대 마을방송 보은군수 소환본부 주민피해 우려 철회 중앙선관위 투표율 4분의1로 완화 추진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 요구가 잇따르고 있지만 2007년 7월 주민소환법 도입 이래 단 한 명의 단체장도 파면되지 않아 유명무실 논란이 거세다. 주민소환은 일정 비율의 선거인이 청원할 경우 임기 전 선거를 다시 하고 이 선거에서 지면 공직을 떠나게 할 수 있는 단체장 제재 수단이지만 기준이 엄격해 지난 13년간 단 한 명의 단체장도 물러나게 하지 못했다. 24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중앙선관위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시도된 주민소환 116건 중 법 시행 첫해인 2007년 경기 하남시의원 2명만 소환돼 파면됐을 뿐 단체장에 대한 파면은 0건으로 나타났다. 화장장 건립 문제로 하남시장과 시의원 3명이 소환대상이었지만 시장과 시의원 한 명은 투표율이 31%와 24%에 그쳐 살아남았다. 자체 종료만 서명 미제출 53건, 취하 30건, 추진대표 사퇴 8건, 소환인 사직 3건 등 모두 94건에 이른다. 주민소환은 대표자 증명서 발부 뒤 60일 동안 유권자 15%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투표할 수 있다. 또 투표율은 유권자의 3분의1을 넘어야 하고 이 중 과반수가 찬성해야 파면으로 이어진다. 투표율이 기준을 넘지 못할 경우 개표조차 안 한다. 미국 25%, 독일 15~33% 등 주민소환 투표율 기준을 해외와 비교할 때 우리는 지나치게 높다는 설명이다.실제로 이 과정에서 소환대상자의 방해, 주민 무관심, 평일 투표 등 문제로 투표율은 보통 8~30%에 그쳐 파면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앞서 정상혁 충북 보은군수에 대한 주민소환 추진이 무산된 게 대표적이다. 정 군수 주민소환운동본부는 지난 15일 청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명부 공개로 단체장과 추종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주민이 서명하는 것을 꺼린다”며 서명부(주민 4672명) 열람이 시작되자 주민 피해가 걱정된다며 소환 요구를 전격 철회했다. 본부는 “주민소환법은 소환을 하지 말라는 법과 같다”고 비판했다. 본부는 정 군수가 지난해 8월 워크숍에서 “위안부, 그거 한국만 한 것 아니다. 일본인은 한일 국교 정상화 때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며 ‘무개념’ 발언으로 무리를 일으켰다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그해 말 서명에 들어갔으나 소환에 실패했다. 소환을 무산시키기 위한 단체장 측의 방해활동도 활발하다는 설명이다. 보은군수 소환본부는 “군이 서명 독려 현수막은 불허하고 서명반대 현수막은 내걸었다”면서 “현수막도 관내 업체들이 기피해 청주에서 만들었다. 군청의 압력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한 관계자는 “소환을 위한 주민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데 이장이 주민소환 반대 마을방송을 해 황당했다”면서 “정 군수가 퇴직 공무원 중심으로 소환 반대 TF팀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군 측은 “현수막은 남을 비방하거나 군민 분열을 조장하는 내용을 군 조례에서 금지해 수정을 요청했는데 따르지 않았다. 또 이장들이 서명철회 방법을 물어봐 알려줬는데 이는 규정에서 허용하는 부분”이라면서 “퇴직 공무원들의 주민소환 반대 추진위원회 참여는 정 군수와 무관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중앙선관위는 2016년 20대 국회 출범 직후 투표율 기준을 3분의1에서 4분의1로 완화하고 서명부는 공개에서 비공개로, 투표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투표 시간 미보장 고용주 과태료 부과 등 주민소환법 개정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얻지 못하고 있다. 최진혁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같은 지역 단체장과 도움을 주고받거나 파면 시 경쟁관계도 될 수 있는 마당에 국회의원이 주민소환 문턱을 낮추는 것을 달가워할 리 있겠느냐. 주민주권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구환 한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주민 대표성을 반영하는 소환 기준을 낮추는 것보다 주민을 많이 참여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주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보은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판깨스트] 유죄 확정된 한명숙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검찰개혁’ 압박 명분으로 통할까

    [판깨스트] 유죄 확정된 한명숙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검찰개혁’ 압박 명분으로 통할까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여권에서 한명숙(76)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법 수수 사건에 대한 재조사 요구가 잇따라 나오며 5년 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판결이 새삼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검찰의 ‘정치적 수사’의 결과로 한 전 총리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에서 수사 및 재조사를 해야한다는 주장을 여권에서 내놓으면서입니다. 이 같은 주장이 이미 확정된 판결을 뒤집으려는 거대 여당의 ‘정치적 의도’에 의구심과 비판이 맞서면서 당시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는 움직임이 커졌습니다. 한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법 수수 사건은 건설업체인 한신건영 대표 한만호씨에게 한 전 총리가 2007년 3~9월 세 차례에 걸쳐 총 9억원을 받은 혐의로 2010년 7월 20일 재판에 넘겨져 2015년 8월 20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사건입니다. 한 전 총리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유죄로 뒤집혀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이 그대로 이어져 2015년 8월 24일 수감됐습니다. 최근 ‘뉴스타파’에서 한만호씨의 비망록을 공개하면서 수사 과정을 비롯해 이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재판 쟁점 ‘한만호 검찰 진술 신빙성’…1심 무죄→2심 유죄로 뒤집혀 재판에서 핵심 쟁점은 한씨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이었습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한 전 총리의 공소사실과 맞게 세 차례에 걸쳐 9억원을 건넸다고 진술했던 한씨가 돌연 2010년 12월 한 전 총리의 1심 재판 첫 증인신문에서부터 “돈을 주지 않았다”며 말을 바꿨기 때문입니다. 9억여원의 자금을 조성한 건 맞지만, 한 전 총리가 아니라 한 전 총리의 비서에게 빌려주거나 다른 로비 자금으로 쓰기 위한 돈이었다며 검찰에서의 진술이 허위였다고 한 것입니다. 한 전 총리는 당연히 돈을 받은 일이 없다고 극구 부인하던 상황에서 결정적인 직접증거인 한씨의 진술이 바뀌면서 한씨의 검찰에서의 진술이 얼마나 신빙성 있는가가 재판의 주요 쟁점이 됐습니다. 당시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우진)는 한씨의 법정 진술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한씨의 검찰 진술의 신빙성도 인정하기 어렵다며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반면 2심인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 정형식)는 한씨의 1심 법정 진술에도 불구하고 검찰에서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고, 이 진술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통해 한 전 총리가 돈을 받은 게 맞다며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당시 한신건영 경리부장으로 9억여원의 자금 조성에 관여한 정모씨 등 관련자들의 진술과 정씨가 비자금 사용 내역을 기록한 비자금장부, 계좌추적결과, 환전기록 등 객관적인 서류가 있는 데다 한 전 총리의 동생이 1억원짜리 수표를 사용한 사실과 나중에 한씨가 한 전 총리의 비서인 김모씨를 통해 2억원을 돌려받은 사실 등이 여러 정황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것이었습니다.대법원에서는 2심에 이어 최종 유죄 판단이 확정됐습니다. 특히 세 차례 가운데 첫 번째 3억원(2007년 3월 31일~4월 초)에 대해서는 대법관 13명이 전원 유죄로 결론냈는데요. 한씨와 전혀 모르는 사이인 한 전 총리의 동생이 1억원짜리 수표를 사용했고 한신건영 부도 직후 한 전 총리가 한씨에게 2억원을 돌려준 사실 등이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 확인됐다고 본 것입니다. 다만 나머지 6억원에 대해서는 5명의 대법관(이인복, 이상훈, 김용덕, 박보영, 김소영)이 무죄로 반대의견을 내며 약간 엇갈렸습니다. 당시 8명의 대법관들은 “한만호가 피고인 한명숙을 상대로 전혀 있지도 않은 허위 사실을 꾸며내거나 굳이 과장·왜곡해 모함한다는 것이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면서 “또한 한만호가 어떠한 이익을 얻거나 곤란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검찰에서 허위 또는 과장·왜곡된 진술을 한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 역시 특별히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검찰 수사에서 다른 증거가 미리 있는 상태에서 한씨가 검사의 추궁을 받고 한 전 총리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시인한 게 아니라 한시가 먼저 검사에게 그런 진술을 한 뒤 자금 조성 내역과 일치하는 금융 자료나 영수증, 비자금장부 등이 확인됐다는 것입니다. 반면 5명의 대법관들은 2차(2007년 4월 30일~5월 초)·3차(2007년 8월 29일~9월 초) 6억여원에 대해서는 한씨의 검찰 진술을 경리부장 정씨의 진술 등만 갖고 뒷받침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재심보다 재조사·검찰개혁에 무게…황희석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해야” 이처럼 대법원에서 최종 결론이 난 판결을 여권이 다시 문제삼는 이유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옵니다. 특히 판결에 대한 불복 절차인 ‘재심’이 아닌 ‘재조사’를 촉구하는 여권 인사들의 발언을 통해 판결 자체를 뒤집으려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립니다.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확정 판결 이후에 새로운 증거가 있어야 재심 개시가 가능한데 ‘한만호 비망록’은 재판에서도 제출됐다고 하고, 검사의 직권남용이나 직무 관련 범죄 등의 형사소송법상 요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현재로선 불투명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형사소송법 420조에 재심할 수 있는 요건이 7가지 명시돼 있는데, 검사나 판사의 직무상 범죄도 유죄로 확정 판결이 나야만 합니다. 새로운 증거도 면소 또는 공소기각 수준으로 사건을 뒤집을 수 있을 만한 것이어야 할 정도로 엄격한 요건이니 사실상 당장 재심절차를 통해 판결을 뒤집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권에서 촉구하는 ‘재조사’는 유죄 판결이 나오게 된 과정, 특히 검찰 수사를 다시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으로도 읽힙니다. 따라서 여권이 한 전 총리의 사건을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 등 검찰개혁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포석이라는 데 의견이 모이는 분위깁니다. 한씨가 비망록에 남긴 내용 등을 근거로 검찰의 강압적 수사와 정치적 기소로 한 전 총리가 재판에 넘겨졌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문제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한씨의 비망록을 언급하며 “의심스런 정황이 많다”면서 “해당 기관들이 한 번 더 조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기관’으로는 검찰과 법무부, 법원을 지목했는데요. 같은 당 박주민 최고위원은 같은 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공수처가 설치되면 (한명숙 사건이) 수사 범위에 들어가는 건 맞다”면서 “공수처는 독립 기관이니 공수처 판단에 달린 문제”라고 주장하며 공수처에서 이 사건의 수사 과정을 들여다 봐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법무부 인권국장을 지낸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22일 페이스북에 “한 전 총리에 대한 뇌물수수 조작 의혹은 지난해 가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와 총선 직전 채널A와 검사장이 개입했던 사안, 즉 유시민 전 장관에 대한 금전제공 진술조작 시도와 정확히 맥을 같이 한다”면서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황 최고위원은 검경 수사권의 조정 근거가 된 검찰청법 개정안 가운데 부패범죄·경제범죄·공직자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에 한해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문제 삼으며 “새롭게 수사권을 조정한 법으로도 검찰은 기존 수사권에 거의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고 핵심적인 권한을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는 셈이고, 또 다른 한명숙, 제2, 제3의 조국과 유시민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고도 강조하며 검찰의 수사권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습니다.이처럼 여권의 화살이 검찰을 주로 향해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지난해 8월 말부터 본격화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수사에서 비롯된 검찰의 수사 방식이나 관행에 대한 비판이 고조됐고 올해 총선을 앞두고 불거진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으로 여권에서는 검찰을 향해 더욱 날을 세운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여권의 핵심 원로 정치인인 한 전 총리 사건을 통해 검찰개혁의 명분을 더 굳히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르면 오는 7월 출범할 공수처의 수사대상으로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을 타깃으로 하고 수사과정에서 위법이 있었는지를 조사하는 자체도 검찰에겐 타격이 될 수 있습니다. 검찰의 수사방식을 문제삼아 검경 수사권 조정의 근거로 삼아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것 역시 검찰로선 매우 불만일 것입니다. 법조계에서도 결국 정치적 의도에서 ‘재조사’ 요구가 나오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심 사유 자체가 되지 않고 검찰이나 법관에 대한 직권남용을 적용하는 것도 이론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불가능한 걸 정치적 이유로 주장하고 있다고 보여진다”고 말했습니다. 검찰 간부 출신인 또 다른 변호사도 “여당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수사팀을 비롯해 검찰도 당혹스러움을 보입니다. 한 전 총리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도 한씨가 70차례 조사를 받았다는 등 강압수사 의혹이 다뤄진 바 있고, ‘한만호 비망록’도 검찰이 증거로 제출했지만 법원에서 신빙성을 낮게 보고 배척한 증거라며 갑자기 이 사건이 다시 쟁점화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씨 비망록에 ‘6억원은 한명숙 전 총리가 아니라 친박계 다른 정치인에게 주었다’고 기재된 부분도 사실이 아니고 한씨는 검찰 수사에서 한 전 총리 외의 다른 정치인에게 금품을 줬다는 진술을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한씨는 법정에서 허위 진술을 한 혐의(위증)로 추가로 재판에 넘겨져 2017년 5월 17일 징역 2년의 유죄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 전 총리가 봉하마을을 방문해 이 사건과 관련한 입장을 표명할 가능성이 있다고 22일 알려졌습니다. 한 전 총리가 어떤 입장을 내놓는지에 따라 여권의 후속 조치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대법원에서 확정된 지 5년 만에 다시 실체적 진실을 두고 논란이 벌어진 이 사건이 당분간 검찰과 여권 사이의 긴장구도를 더욱 팽팽히 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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