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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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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원규모 축소”… 고심의 줄다리기/대미 페만분담금 협상타결 안팎

    ◎수재ㆍ중동건설 미수금 악재 작용 설득/의료진 파견문제 파병시비 부를 수도 페르시아만사태와 관련,한미 양국 정부간의 그동안 지루할 정도로 진행됐던 우리 정부의 다국적군 군비 부담금협상이 지난주말 양측간의 접점을 찾아 모두 2억2천만달러 규모로 최종 낙착됐다. 정부가 24일 밝힌 지원금액은 현금 5천만달러와 함께 항공기ㆍ선박 등 수송수단의 제공 및 방독면ㆍ군복 등의 현물지원을 포함한 1억2천만달러 정도의 「다국적군 특별지원금」과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고 있는 요르단ㆍ터키ㆍ이집트 등 주변 3국에 대한 정부보유미 3만t(1천만달러 상당) 지원 및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4천만달러 제공을 비롯한 「대인접국 경제지원금」 1억달러로 크게 2분된다. 인접국 경제지원금에는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잔류하고 있는 각국의 난민수송을 위해 국제이민기구(IOM)에 50만달러를 기부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 정부는 이같은 지원규모를 결정하면서 『다른 우방국들의 지원내용을 고려했으며 현재의 어려운 국내경제사정과 특히 최근 홍수피해로 인한 재정부담 등을 충분히 감안했다』고 밝혀 페만지원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의료진 파견문제를 긍정 검토중이며 파견계획은 관련국과의 협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돌아가는 분위기로 볼 때 군의료진으로 구성될 것으로 예상돼 파병시비를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정부는 이에 앞서 지난 7일 부시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방한한 브래디재무장관을 통해 다국적군 유지경비 1억5천만달러와 인접국 지원금 2억달러 등 총 3억5천만달러 규모의 지원을 우리측에 정식 요청한 바 있다. 미측의 이같은 요구가 있고나서 경제기획원ㆍ외무부ㆍ상공부 등 관계부처는 『우리 경제 수준에 맞는 적정한 액수가 얼마인가』를 놓고 서너차례 고위실무자회의를 가지면서 상당히 고심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지원금액을 검토하고 있는 와중에 수재가 발생,4천억원(6억달러 상당)의 긴급복구자금이 필요하게 되자 정부는 지원 자체에 회의적인 국민여론을 상당히 의식했던 것으로 얽혀진다. 연간 20억달러 규모의 주한미군 유지비도 우리 정부가 분담금액수를 선뜻 결정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페만사태와 관련,우리 건설업체들이 이라크ㆍ쿠웨이트로부터 받지 못한 10억달러 규모의 미수금도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정부는 여러가지 현실적 측면을 고려,가능한 한 적은 액수로 그것도 현금보다는 물품지원쪽으로 방침을 정한 뒤 미측과의 협상에서 이러한 어려움을 충분히 전달,미측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외무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설명한다. 이와 관련,최호중외무장관은 지난 21일 도널드 그레그 주한 미국대사를 불러 정부의 지원금액을 통보했으며 같은 시각 박동진 주미대사를 통해 키미트 미국무차관에게도 이같은 정부방침을 전달했다고 이 당국자는 밝혔다. 미측은 일단 우리측의 지원규모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표시하고는 있으나 그다지 만족해하지는 않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측은 주로 현금지원을 원하는데다 3억5천만달러 규모가 한국의 경제상황과 페만 원유의존도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부담가능한 액수라고 계산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정부가 액수결정을 늦추는 기미를 보이자 미의회와 언론 등이 파병 등을 거론하며 파상적인 압력을 가한 것도 따지고 보면 미행정부의 속마음을 읽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액수의 다소를 떠나 한국이 대이라크 군사ㆍ경제제재조치에 참여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측은 외교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가도 만만찮다. 결국 정부는 이번 결정을 함에 있어 안보적 측면,경제통상 측면,외교적 측면,국내경제상황 등을 두루 고려한 것으로 관측된다. 우선 안보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도움으로 국가존립위기를 벗어났던 우리로서는 이라크의 무력에 의한 쿠웨이트침공 및 합병은 남북한 대치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고 따라서 페만지원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도 연간 도입원유의 75%인 2억5천만 배럴의 원유를 중동에서 도입해야 하는 형편인 만큼 배럴당 1달러만 상승해도 2억5천만달러의 추가부담이 발생하는 것을 감안치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페만사태의 조속한 해결은 안정적인 원유공급확보와 깊은 연관을 가진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페만지원에 당위성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대외경제협력기금에서 제공되는 장기저리(3% 내외)차관도 20년내지 25년거치로 상환되는 것은 물론 이집트 등 주변국이 이 자금을 이용,사업별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물품을 구입하도록 돼 있는 만큼 「투자환급」이라는 측면에서 전체적인 우리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외무부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같은 여러 측면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심각한 경제난ㆍ수재복구ㆍ과중한 미군주둔비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2억2천만달러 규모의 지원액수는 『너무 많다』는 것이 대체적인 여론이어서 국회심의 과정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유종하외무차관 일문일답/“이라크에도 우리 정부입장 통보” ­페르시아만사태 군비분담금 등을 2억2천만달러 규모로 결정한 시기는. 『예산당국을 비롯한 정부관련부처간에 3∼4차례 회의를 갖고 안보ㆍ경제ㆍ외교문제 등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지난주 결정했다』 ­3억5천만달러를 요청한 미국이 우리의 결정에 만족하고 있는가. 『최근의 수해 등 미국의 요청에 전적으로 따를 수 없는 우리의 상황을 미측에 설명했다. 미국측도 우리가 제한된 상황하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이해하고 있다. 지난주말 결정사항을 미측에 통보했다』 ­이라크정부측에도 분담금 규모결정을 사전통보했나. 『사전 통보는 하지 않았지만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과 원칙 등은 계속 알려주고 있다』 ­병력파견 등 추가지원을 고려하고 있나. 『주한미군 감축 등 우리의 안보문제를 고려할 때 파병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보며 미국정부도 우리의 입장에 긍정적인 자세이다. 따라서 상징적인 의미로 의료진을 파견할 계획이다』 ­이라크 및 쿠웨이트에 잔류중인 교민들의 안전에는 영향이 없는가. 『물론 교민안전을 고려했다. 미 소를 비롯,아랍의 거의 모든 국가가 군비분담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라크정부도 우리 입장을 이해할 것으로 본다』 ­다른 나라들의 지원 상황은. 『GNP가 우리의 13.5배와 5.7배인 일본과 서독은 각각 18배인 40억달러,9배인 20억8천만달러 규모의 지원금을 부담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이외에 우리나라에게 페르시아만사태 지원을 요청한 나라가 있나. 『사우디아라비아ㆍ쿠웨이트 등 아랍국가들도 우리의 지원을 다양하게 요구해 왔다』 ­페르시아만사태의 전망은. 『미ㆍ소ㆍEC국가 등 거의 모든 나라의 해결 의지가 강하다. 따라서 시기가 문제이지 결국은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
  • 「아태지역 대화ㆍ평화ㆍ협력」 논의/블라디보스토크회의 오늘 개막

    ◎남북한ㆍ미ㆍ소ㆍ중ㆍ일 등 21개국 참가/우리 대표 남덕우ㆍ김경원ㆍ박철언씨 등 6명/북한선 오창림 평화군축연 부소장등 7명 【블라디보스토크 연합】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이 참석하는 제2차 블라디보스토크 아태지역회의가 4일 블라디보스토크시내 콜리트 프로스베트 국제회의장에서 개막된다. 「아태지역ㆍ대화ㆍ평화ㆍ협력」을 주제로 소련 과학아카데미 주최로 열리는 이번 회의에는 남북한을 비롯,미국ㆍ소련ㆍ일본ㆍ중국 등 아태지역 21개국에서 전ㆍ현직 고위관리와 정치학자ㆍ경제계 인사 등 70여명이 참석,오는 6일까지 이 지역의 정치ㆍ군사ㆍ경제 및 인권 등 제반문제를 폭넓게 토의할 예정이다. 특히 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은 2ㆍ3일 양일간에 걸친 북한방문을 마친 뒤 4일 이번 아태지역회의의 개막식에 참석,「소련의 대아태정책」이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을 통해 한반도를 포함한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ㆍ협력문제 등에 관한 소련의 새로운 구상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의 기조연설은 또 남북 총리회담의 개최와 시기를 같이하고 있는 데다 소련이 아태지역의 일원임을 천명하고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안보협의체의 창설을 제의했던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블라디보스토크선언(86ㆍ7)과 크라스노야르스크연설(88ㆍ10)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어서 남북 관계개선등 한반도 긴장완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번 회의에 남덕우무역협회회장을 비롯,김경원 전주미대사ㆍ박철언 민자당의원ㆍ이시영외무부본부대사ㆍ정종욱서울대교수ㆍ김영희중앙일보상무 등이 토론참가자로 초청됐으며 북한측에서는 북한외교부 산하 평화군축연구소부소장인 오창림등 7명의 대표가 토론에 참가할 예정이다.
  • 미,한국에 군수지원 요청

    【워싱턴=김호준특파원】 미국정부는 21일(한국시간 22일) 한국정부에 대해 페르시아만사태와 관련한 미국의 군사활동을 간접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미 정부의 요청중에는 ▲미국의 사우디아라비아 파병으로 인한 국방비 추가부담을 보전하기 위해 주한미군의 직접 경비를 한국이 좀더 부담하는 방안 ▲비살상용 군수품을 한국이 지원하는 문제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무부의 리처드 솔로몬 동아태담당차관보는 이날 박동진 주미대사를 불러 한국도 참여하고 있는 대이라크 경제제재조치의 효율적인 추진방안등 페르시아만사태와 관련한 한미 협조문제에 관해 약 30분간 요담하는 자리에서 이같은 요청을 전달했다고 한 외교소식통이 밝혔다. 이날 요담에선 특히 군수품 지원문제와 관련하여 총기와 포탄류등을 제외한 의약품,의류,담요,텐트 등 한국측의 지원 가능 품목에 대해 구체적인 협의가 있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 남북한 고위인사 소서 군축논의/평화회의에 동시 초청받아

    ◎새달 4∼6일 박철언·김경원·남덕우씨 등 참가/북한선 손성필등 고위급 올 듯 남북한 정계·학계 고위급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제2차 「아·태지역 대화·평화및 협력회의」가 오는 9월4일부터 6일까지 소련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다. 20일 외무부등 관계당국에 따르면 소련 과학아카데미가 주관,역내 국가간의 경제협력및 군축문제등을 다룰 예정인 이번 회의에는 남북한을 비롯,미·일·중·소·몽고 등 아태지역 15개국의 정계와 관계및 학계 고위급인사들이 두루 참석한다. 소련이 자국내에서 열리는 국제학술회의에 남북한을 동시 초청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지난 88년 10월의 제1차회의에는 소련측의 초청이 없어 불참했던 우리측은 이번 회의에 박철언 전정무1장관·이시영 외무부특정외교정책추진특별반장·남덕우무역협회장·김경원 전주미대사(사회과학원장)·정종욱서울대교수 등이 참가하며 북한측도 역시 손성필 주소대사등 고위급인사들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번 회의에서는 남북한 고위급인사들간의 한반도 긴장완화및 평화구축,이를위한 실질적인 군축조치,남북간 교류협력증진문제 등에 관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 히로히토 「종전어록」 45년만에 공개/한국계 외상이 기록

    ◎“포츠담선언 수락… 국민 어려움 달래야 태평양전쟁이 막판으로 치닫고 있던 1945년 8월14일 쇼와(소화) 일왕이 최후의 소위 「어전회의」에서한 종전을 결심하는 말을 출석자의 한사람이었던 한국계 외상 도고 시게노리(동향무덕)가 받아 기록했다는 사실이 45년만인 14일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의 조사결과 밝혀졌다. 이 기록은 도고외상의 유족들이 보존해온 1945년의 수첩에 남아 있었다. 3페이지에 이르는 8월14일의 기록에 따르면 일왕은 『전국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국체를 파괴해야될 뿐만 아니라 민족도 절멸상태에 이르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이제는 어려움을 참고 이것(포츠담선언)을 수락,국가를 국가로서 남기고 신민의 괴로움을 어루만져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 그런 정신을 가져주기 바란다』며 육군을 중심으로 하는 전쟁계속론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 조칙을 내리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육ㆍ해군내에 이론도 있겠으나 이것도 잘 알 수 있도록 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도고외상은 저서 「시대의 일면」에 「어전회의」의 모습을 기술하고 있으나 그 원본이 되는 당시 기록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고외상은 비서였던 양자 후미히코(문언ㆍ후일 주미대사)에게 구술해 받아 적게했다. 국회도서관측은 이 기록을 『소화사의 한 단면을 나타내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하며 오는 11월부터 국회개설 1백년을 기념해 전시되는 의회정치전에서 공개할 방침이다.
  • 한ㆍ미 통상파고 왜 거세지나/양국의 마찰음 언저리

    ◎미 「수입규제 캠페인」확산 우려,선제 공격/한 미의 불공정무역 사례 공개,“맞불작전” 한동안 잠잠하던 한미간 통상마찰의 파도가 다시금 거세졌다. 지난 13일 칼라 힐스 미무역대표부(USTR)대표가 박동진 주미대사를 불러 한국내 수입규제 움직임에 유감을 표시했고 모스배커 미상무장관의 특명을 받고 내한한 웨인버만 상무부자문관(차관급)은 19일 박필수 상공부장관을 만나 한국시장에서의 수입품 판매부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확인하고 귀국했다. 미국측이 대한통상문제에 대해 이처럼 공식외교 및 통상채널을 풀가동하다시피 하며 적극적인 자세로 나선 것은 드문 일이지만 우리 측의 대응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무역협회가 대미 수출이 감소한 1백10개 품목을 정밀 조사해 미국의 대한불공정 무역사례를 발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측이 한국내 사치용품 수입자제 캠페인을 정부가 부추기고 있다고 추측하고 이 캠페인이 확산되면 대한수출이 크게 영향받을 것을 우려한 나머지 「선제공격」을 해왔다면 한국측은 미국의 불공정무역 사례를 공개함으로써 거꾸로 「맞불작전」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측의 대미반격은 한미통상관계에서 처음있는 일로 최근 통상마찰조짐이 내부적으로 상당히 격앙되어 있는 상황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동안 미국측의 한국내 수입자제운동에 대한 대응은 매우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모스배커 미상무장관이 지난 11일 방미중인 대미통상사절단장인 금진호 무역협회고문에게 돌연 수입규제조사단 파견계획을 통보한 것을 비롯,칼라 힐스 대표의 박대사초치,낸시 애덤스 USTR 부대표보의 주미특파원 간담회를 통한 경고로 이어졌다. 미국측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한국정부가 수입규제정책을 실시,사치용품 수입자제 캠페인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는 것으로 요약된다. 미국측 관계자들은 지난달 서울의 7대 유명 백화점들이 외제품 매장을 동시에 철수,축소한다고 발표했고 이에 앞서 국산품과 수입상품간의 가격 차이를 확대,수입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지게 만들었다며 한국정부가 수입개방이라는 합의사항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한국측은 수입개방과 외제 사치품 매장의 철수는 다른 차원의 일이며 소비재 수입문제에 대해 정부가 관여한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무협이 발표한 미국의 대한불공정 무역사례는 수출이 극히 부진한 현 상황에서 한국이 처한 어려운 통상환경을 잘 말해준다. 미국측이 운동화 끈까지 섬유제품으로 간주,쿼타적용을 받게 하는 등 온갖 관세ㆍ비관세 장벽을 강화하고 있으면서 오히려 한국측을 불공정 무역국가로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자구적인 성격을 무협에 대응에서 엿볼 수 있다. 무협의 반박과 함께 이승윤 부총리가 때마침 18일 서울에서 열린 제3차 한미재계회의에 참석,한미통상마찰의 근본원인이 미국 자체의 거시경제정책상의 문제와 보호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양국 통상마찰의 책임이 미국측에 보다 많다는 것을 명확히 한 정부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사치성소비재의 수입규제이나 사실 미국의 대한 총수출에서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2.4%에 불과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미수출은 올들어 지난 4월말까지 6.8% 감소한데 반해 수입은 무려 18.3%나 증가,대미 무역수지는 3억8천8백만달러의 흑자에 그쳤고 현재의 추세가 계속될 경우 연말께는 수입이 수출보다 많아져 흑자전환 8년만에 대미 무역수지 적자를 나타낼 전망이다. 대미무역수지 흑자는 지난 82년 1억6천3백만달러를 시작으로 87년 95억5천3백만달러로 최고를 기록했고 88년 이후에는 감소세로 돌아서 89년에는 47억2천8백만달러로 85년 수준에 머물렀다. 미국측은 한국의 수입상품 반대켐페인이 중지되지 않는다면 이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질세라 우리측도 미국의 대한수입규제강화는 국제적인 무역장벽을 제거하기 위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규정에 위배된다며 관계당국간의 대응방안을 모색중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모두 이같은 경고는 아직 엄포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측은 한국의 수입규제가 소비재를 넘어 다른 상품으로 파급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가 강하고 한국측은 제1의 수출시장인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는데 1차적인 통상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버만 미상무부 자문관은 방한기간중 우리측 재계 인사들과의 접촉,백화점 견학등을 통해 한국정부가 이들에게 사치성 소비재수입을 자제해 달라는 압력을 가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미국언론일부에서 한국정부가 수입개방을 막고 있는 것처럼 자의적인 보도를 계속하는데 있으나 버만이 서울행로에서 보고 느낀 것을 본국정부에 정확히 보고한다면 더이상의 통상마찰요인은 없을 것으로 한국측은 기대하고 있다. 더욱이 나웅배 전부총리와 한승수 전상공장관등 의원 6명이 오는 24∼29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의원 합동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방미하는 동안 미의회 행정부인사들과 폭넓게 접촉,우리측 입장을 설명할 예정이어서 한미통상마찰은 더이상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더 많은 편이다.〈정종석기자〉
  • 북한 「핵무기 생산」설/사실여부 확인지시

    ◎정부,주미ㆍ소 공관에 훈령 정부는 18일 북한이 6개월내에 핵무기제조 기술을 가질 것이라는 정보를 소련측이 미국에 제공했다는 외신보도에 대해 사실여부를 확인토록 주미대사관과 주소영사처에 훈령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정부는 현재 북한의 핵무기제조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미국이나 소련으로부터 제공받은 사실이 없다』면서 『북한의 핵무기 제조능력에 대한 정부자체의 평가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개발단계로 보아 북한이 국제핵안전조치협정에 서명토록 하는 국제적인 분위기조성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 국회의장 비서실장 구창림씨

    박준규국회의장은 15일 의장비서실장(차관급ㆍ사진)에 구창림민자당 국제국장을 임명했다. ◇구실장 약력(서울ㆍ49) ▲서울대 외교학과 졸 ▲대통령 공보비서실 근무 ▲주미대사관 공보관장 ▲문공부공보국장
  • 한ㆍ미 통상마찰 재연 조짐/양국,재계회의 앞두고 신경전

    ◎한국내 수입억제 분위기에 불만/미,외교경로등 통해 공개적 압력 한미 양국 재계중진들의 민간경제협력협의체인 한미재계회의 제3차 연례총회가 18ㆍ19일 이틀동안 서울에서 열린다. 어찌보면 친목단체회의 같은 행사가 열리는 것이지만 올 한미재계회의를 바라보는 상공부를 비롯한 통상당국의 마음은 편치가 않다. 로버트 모스배커 미상무장관이 회의 참석멤버 가운데 일원인 웨인버만자문관(차관급)에게 최근 한국내 외제품의 수입 규제상황을 조사한뒤 귀국하라는 특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미상무부의 고문변호사인 버만씨는 이번 한미재계회의에서 18일 「양국간 무역 및 경제협력에 관한 미국의 시각」이란 주제의 연설을 할 예정이며 19일에는 박필수상공부장관도 만날 계획이다. 따라서 그는 이런 자리를 통해 최근 한국내 외제사치품 배격운동의 배경을 따지고 백화점 등 소매시장을 돌며 「수입규제」현황을 직접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통상마찰은 대미무역수지가 사상 최고로 96억달러에 이르렀던 87년을 고비로 수그러졌고 올해는 급격한수출감소로 연말쯤 가서는 8년만에 다시 대미무역수지의 적자위기가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에서 왜 미국이 돌연 수입규제조사단을 파한하는 등 과잉대응을 하고 있느냐에 쏠리고 있다. 모스배커 미상무장관이 11일 방미중인 대미통상사절단장인 금진호전상공부장관에게 수입규제조사단 파견계획을 통보한데 이어 칼라 힐스 미무역대표부(USTR)대표는 13일 박동진주미대사를 불러 『10년 공든 탑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느낌』이라며 한국내 수입규제 움직임에 강력히 항의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상공부는 미국측이 최근 한국내의 경쟁적인 외제사치품배격운동이 확산되면 대한상품수출이 크게 영향받게 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선제공격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현재 무역협회상임고문인 금전상공장관이 현대통령의 동서로서 이른바 「실세」인 점을 고려,민간차원 형식을 통해 우려를 전달하는 한편 박대사를 불러 외교경로를 통해서도 항의하는 등 조직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비공식통로를 통해 대한압력을 가해오던 미국이 돌연 공개적인 압력으로 돌아선 것은 앞으로 한미통상관계를 낙관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통상전문가들은 박상공장관부임이래 우리 정부가 수출최우선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상대적으로 외국을 자극할 정도로 수입억제분위기를 조성한 것이 결과적으로 통상마찰 조짐을 낳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지난 4월부터 확대개편된 상공부무역위원회(KTC)가 성급하게 수입상품 2백여개에 대한 경쟁력조사 계획을 발표한 것 등이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한국의 수입개방정책에 대한 공연한 경계를 불러일으킨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상공부는 미국이 정부차원의 구체적인 대응조치를 요구해올 경우 수입개방과 외제사치품 매장의 철폐는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우리 정부의 수입개방정책에는 아무런 차질이 없다는 것을 설명할 방침이다. 이번 한미재계회의에는 데이비드 로더릭 전유 에스 스틸회장을 비롯한 40여명의 미재계중진들이 참석,방한기간동안 공식회의외에도 과거 자몽ㆍ우지파문때 보여줬던 것과 같은 통상문제에 관한 대한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의 「수입규제」상황에 대한 미국의 대처방향은 버만자문관과 미국측 재계중진들의 귀국보고를 토대로 결정될 전망이나 실제 서울의 백화점에서 외제품매장의 철수가 형식적인 시늉에 그치고 있는 것을 알게되면 오히려 한국의 수입개방실태를 대외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 “올 대미무역 적자 가능성”/박대사 외제품배격운동 미 항의에 답변

    【워싱턴=김호준특파원】 미 무역대표부(USTR)의 칼라 힐스대표는 13일 하오(한국시간 14일 상오) 박동진 주미대사를 불러 최근 한국내 외제사치품 배격운동과 이에따른 수입상품 판매부진이 한국정부의 수입규제를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명했다. 힐스대표는 『지난 5월초부터 한국내 수입상품 판매부진과 관련한 움직임을 서울주재 미국 상사와 대사관으로부터 보고받고 미 정부는 우려를 금치못했다』고 말하고 『한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추지해온 수입개방정책이 후퇴ㆍ역행하는 일이 없도록 한국정부가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대해 박대사는 『한국내 외제품 배격운동이 과소비를 억제하려는 사회적 분위기때문에 일어난 자율운동이지 정부가 조장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한국정부는 수입개방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미국과 합의한 대로 관세율 인하와 시장개방 정책을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대사는 또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88년의 90억달러에서 89년에 47억달러로 줄어들고 금년에 다시 적자로 반전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며 『미국은 전반적인 한미 통상관계가 긍정적으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번 문제를 다뤄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고 한국측 관계자가 전했다.
  • 노대통령 방미외교 3박4일 취재비화

    ◎“정상회담장 극비 예약자는 고르비”/소 겉으론 “덤덤” 안으론 “치밀한 준비”/라이사도 한인 점포서 “계산된 쇼핑”/성과 없었으면 두 대통령 기념촬영 못했을 듯 노태우대통령의 지난 3박4일간에 걸친 샌프란시스코ㆍ워싱턴 일정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고 전후 냉전체제의 마지막 유산인 분단 한반도를 어느날 갑자기 화해와 협력의 세계물결의 중심부에 실어 놓았다. ○끝난 뒤에 겨우 촬영 노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주미대사관저에서 수행기자단,워싱턴주재 한국특파원들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우리가 세계변화의 중심에서 세계의 변화를 만들고 있다』 『힘이 없어 강대국의 분단을 감수해야 했던 과거는 가고 이제 우리 스스로의 운명을 우리가 개척하고 결정하는 시대가 왔으며 그 누구도 우리의 가는 길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난 4일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호텔 신관 23층 스위트룸에서 있은 노­고르비 대화는 아직도 많은 비화를 간직하고 있다. 정상간의 만남은 물론 모든 국가간의 회담은 외교관행상 포토세션(기념촬영의 의전절차)은 언제나 회담직전에 이뤄진다. 그러나 노­고르비 대좌의 기념촬영은 회담이 끝난뒤 가까스로 이뤄졌다. 한소 양측의 공식 기록사진사 1명씩 2명이 회담시작 전부터 회담장 바깥 다른 방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나 소련측 경호원들은 회담이 시작되어도 촬영을 허용치 않았다. 1시간여에 걸친 회담이 끝나자 그들은 소련측 사진사만 들여보냈다. 이에 우리측 배석자 한 사람이 『우리 사진사는 왜 안 들어 오느냐』고 재촉하자 우리측 촬영사를 들여보내 역사적인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우리 사진사가 두 대통령에게 악수하는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자 노대통령은 고르비에게 손을 내밀었고 고르비도 미소를 지었으며 노대통령은 다시 왼손으로 고르비의 허리를 감싸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소련측은 두 정상의 만남을 사진기록으로 남기는 데 반대했으나 우리측은 「사진 안 찍으면 회담은 무효다. 누가 그런 회담을 믿느냐」고 완강하게 버텼다는 것. ○총영사관저등 주장 우리측 수행원의 한 사람은 노­고르비회담의 결과가 성공적이지 못했다면 그들은 회담후에도 기록촬영을 거부했을 지 모른다고 피력. 소련측은 겉으로는 한소 정상회담이 세계적인 뉴스의 초점이 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은 듯 회담직전까지도 회담성사가 유동적인 인상을 주려고 했으나 내부적으로는 노대통령과의 회담을 치밀하게 준비했던 증거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우선 회담장소문제인데 소련측은 노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기 전날까지도 샌프란시스코 소련총영사관이나 총영사관저를 주장했다. 우리는 「미국내 소련영토」인 총영사관은 불가하다면서 제3의 장소를 주장했다. ○23층 스위트룸 추적 우리 실무팀들은 온갖 정보채널을 동원,회담장소를 물색하던 끝에 페어몬트호텔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원수급이 사용하는 스위트룸의 예약상황을 점검했다. 4개의 스위트룸은 노대통령 숙소(본관 7층과 그 위층)와 IMF총회에 참석중인 미 재무장관,스위스은행연합회장의 숙소 등으로 3개는 예약자가 파악이 되었으나 나머지는 전혀 파악이 되지 않았다. 호텔측이 극비에 부친 나머지 한개의 스위트룸 예약자는 바로 고르비였다. 소련측은 회담장소를 고르비의 숙소인 소련 총영사관저나 총영사관을 주장하면서도 그이전에 이미 노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신관 23층 스위트룸을 예약해둔 것이었다. 또 하나의 증거는 당초 노­고르비회담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됐던 4일 하오 4시무렵 고르바초프대통령 부인 라이사여사가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는 한국인 점포에 우연히 들르는 것처럼 해 한국상품을 사면서 「보드카는 얼마나 팔리느냐」고 묻는등 한국에 대한 친근한 제스처를 보였던 것도 그 실례가 된다. ○소 외무부 소외된 듯 소련수뇌부의 의사결정은 고르바초프대통령과 대통령궁의 핵심막료들에 의해 결정되고 있으며 이번 한소정상회담 추진도 거의 막판까지 고르비와 두 핵심참모등 3사람만이 알고 있었다. 이 핵심참모는 이번 회담에 배석한 5명의 소련측 인사가운데 두 사람이라는 것. 배석인사는 마슬리코프 경제담당정치국원,프리마코프 대통령위원회위원(전 연방최고회의의장),도브리닌 대통령외교고문(전 주미대사),체르니아예프대통령안보보좌관,말케비치 연방상공회의소장 등인데 도브리닌과 체르니아예프가 그 두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도브리닌은 30년간 주미대사를 했기 때문에 서방측에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체르니아예프는 골수당료 출신으로 고르비와는 40년동안 친분을 유지했으며 흐루시초프때부터 개혁을 주장한 인물. 안보보좌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대통령제로 체제를 바꾸면서 신설한 최근접보좌관 4명 가운데 1명으로 정식 직함은 자본주의국가담당 대외정책보좌관인 것으로 전해졌다. ○수준높은 화술 구사 이번 회담에 셰바르드나제외상이 배석에서 빠진 것은 유럽지역의 국가와 외상회담이 사전에 약속이 돼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사실은 한소 정상회담이 한소 외무성도 모르는 가운데 추진됐기 때문에 외무성이 외상회담 일정을 따로 잡아놓았을 것이란 분석들. 노대통령은 이번 고르비와의 회담때 매우 수준높은 대화술을 구사,고르비와의 친근미를 돋보이게 했다. 회담장소가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는 사실을 들어 한소 두 나라가 태평양국가임을 자연스럽게 지적했고 방한공연했던 레닌그라드교향악단 지휘자의 「고르비대통령은 너무 바빠 우리 교향악단공연을 관람한 적이 없으나 한국의 대통령은 관람해줘 고맙다」는 말을 인용함으로써 대소우의를 표시. 노대통령은 고르비와의 회담에 대비,러시아 속담 슬라브 속담을 섭렵했고 고르비대통령도 아무런 서류파일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을 공부하고 임했다는 것. 이번에 노대통령을 수행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 대통령이 어느새 이렇게 커져버렸나」하는 것이었다.
  • “정상회담을 마치고” 노대통령 일문일답

    ◎「평양우회로」 개척이 북방정책의 열매/한ㆍ소수교 편리한 시기에… 선결사항 많아/고르비,북의 군사력 감축에 긍정적 반응/“전격 대좌 소선 3명만 알아… 하고픈 얘기 고르비가 먼저” 노태우대통령은 6일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후 주미대사관저에서 수행기자단 및 워싱턴주재 한국특파원들과 오찬간담회를 갖고 이번 한소ㆍ한미 연쇄회담의 성과와 의의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노태우대통령=남북한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평양으로 직접 가는 길이 최선이나 지난 45년간 그 길이 뚫리지 않아 어쩔수없이 모스크바와 북경을 우회하는 차선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모스크바가 길을 열어줘서 우리의 북방정책이 큰 결실을 얻게돼 기쁘다.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대화과정에서 우리한테 경제협력을 기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는가. ▲물론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은 보도를 통해 우리측이 당연히 소련측에 경제협력을 할 것으로 알고서 안심하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고르바초프는이번 정상회담개최 계획을 일체 비밀에 붙여 모스크바 출발때까지 소련측에서 한소 정상회담개최 계획을 알았던 사람은 고르바초프를 포함해 3명에 지나지 않았다. ­미소 정상회담기간중 크렘린대변인은 이번 회담에 대해 『들은 바 없다』 『노 코멘트』라고 말해 저쪽이 얼마나 진지하게 나올지 우려된 면이 없지 않았다. ▲고르바초프는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먼저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그는 첫마디에서 우리의 만남을 정상화로 나가는 시작이라면서 여기서 우리 사이의 모든 얼음을 녹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만난 사이처럼 서먹서먹하지 않고 분위기가 자연스러웠으며 농담도 스스럼없이 오고갔다. 보통 생각하는 소련사람들과는 다르더라. ­못한 얘기는 없는가. ▲거의 다했다. 재미있었던 일은 지난해엔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측의 시장개방 요구에 대해 내가 『과일이 익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똑같은 얘기를 고르바초프가 나한테 했다. 수교라는 과일이 익어가는데 그 매듭은 실무차원에서짓자는 얘기같았다. 이에대해 나는 내가 동양에서 제일 오래 기다리고 참을 줄 아는 사람이니 『내가 익었다고 하면 익은 줄 아시요』라고 답변해 서로 웃었다. ­미소 정상회담에서 한소문제가 어떻게 거론됐는지 부시대통령으로부터 얘기를 들었는가. ▲부시대통령은 고르바초프에게 북한의 막강한 군사력과 공격적 테러에 우려를 나타내고 핵문제 등에 영향력을 행사해 주도록 촉구했다고 밝혔다. 특히 핵무기개발문제와 관련,소련이 북한에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고 한반도 평화정착,남북대화 진전을 위해 소련이 최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주도록 주문했다고 하더라. 이에대해 고르바초프는 부시대통령의 주문을 받아들이면서 미국도 상응한 노력을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들었다. ­남북대결의 해소를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에 달려있다. 소련은 군사지원문제등을 포함해서 여러면에서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고르바초프와 나하고의 대화에 대해 북한은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그러나 앞으로 무엇이 북한이 살아나갈 길이며 고립에서 벗어날 길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고르바초프도 그런 신념을 갖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잘못된 폐쇄노선을 수정토록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북한의 군축제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북한의 제의는 선전이지 군축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미소 군축협상이 쌍방이 만나 오랜 협상을 거쳐 이루어졌듯이 우리도 군축을 하자면 우선 책임자가 만나야 할 것이다. 고르바초프도 북한의 얘기를 믿어달라고는 하지 않았다. ­미 행정부관리는 한반도에서 유럽식 신뢰구축을 통한 군축을 촉구하고 있다. 가능하다고 보는지. ▲우리 군사력은 북한의 65%밖에 안된다. 북한이 무력통일 노선을 포기하고 공세전략을 폐기하면 우리도 군축방향으로 나아가 주한미군과 우리 군사력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와 남북한의 유엔가입문제를 거론했는가. ▲거론치 않았다. 한소관계의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때에 그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중국과의 정상회담이 추진되고 있는지. ▲피할 수 없는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소련 타스통신 보도는 한소관계 정상화가 빨리 오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는데. ▲나도 오늘내일 수교가 될 것으로는 바라지 않는다. 무리하게 추진해서는 안된다. 경제협력문제만 하더라도 절차상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다. 외교관계가 정상화된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소경협에 대해 국내에서 기대가 크지만 위험성이 적지않기 때문에 이에대한 대비책을 정부가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되지 않는가. ▲물론이다. 체제가 달라 민간차원에서 주도하기는 어렵다. 투자보장협정,2중과세방지협정 등을 정부간에 체결해야 하며 현재 소련 루블화의 태환성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구상무역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소련은 치솔ㆍ치약ㆍ비누와 같은 일상생활용품이 없어 고통을 겪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지원할 수 있는 분야다. 소련이 이 물건들을 살 돈이 없다면 소련이 갖고 있는 원자재를 파악해서 그것과 바꾸도록 해야 한다. 우리 중소기업이 정부를 믿고 안심하고 물건을 수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단기적 과제이다. ­수교시기는 구체적으로 언제쯤으로 예상하는지. ▲그렇게 늦지는 않을 것이다. 양쪽이 다 편리한 시기에 수교가 실현될 것이다. 언제 수교하는 것이 더 이익이냐는 양쪽의 공통된 이해다. 이번 회담시 보도사진취재가 제한됐던 것은 저쪽 사정을 반영한 것이었다. 당초엔 TV카메라촬영은 물론 안되고 사진도 안찍었으면 좋겠다고 그쪽에서 요구했으나 우리측 주장으로 공식사진만 찍게됐다. ­북한과 소련간의 군사동맹체제에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군사력을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 고르바초프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나는 『귀하의 철학이 북한에도 관철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는 좋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르바초프와 청와대에서 직접 통화할 생각은. ▲생각해 봅시다. ­고르바초프가 주한미군 철수얘기는 하지 않았는지. ▲일체 하지 않았다. 미군핵 철거는 언급했다. 이에대해 나는 핵문제는 미소양국간 전략적 협상의 대상이니 그 차원에서 해결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북한이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중국이 한소 정상회담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입장이 한소관계 개선속도에 미칠 영향은. ▲우리와 중국관계는 경제면에서 소련보다 앞섰지만 정치에선 뒤진 것 같다. 우리의 대미ㆍ대소ㆍ대일 외교가 한중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시안게임때 북경을 방문할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고르바초프에게 다시 만나자고 말했는지. ▲헤어질 때 고르바초프가 『다스비다니아(또 만납시다)라고 했다. 또 서울올림픽때 소 선수단이 환대받았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고맙다는 말도 했다. ­고립감을 느낄 북한에 대해 앞으로 감싸주는 태도를 보이는 게 바람직할텐데. ▲내가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신뢰받고 존경받는 일원이 되는 것을 원하며 소련이 이를 도와달라고 말했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의 북방정책을 달가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렇지 않다. 미국은 이번 한소 정상회담이 성사되도록 1백20% 협력했다. ­이번주에 일본이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 같은데. ▲일본은 한소 정상회담을 지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은 대소경제협력과 시베리아개발 참여에 소극적이었는데 앞으로 이런 자세가 바뀌지 않을까 생각된다.
  • “군축논의 남북 정상회담 긴요”/노대통령,워싱턴서 회견

    ◎소에 북한개방 협조요청/“북한서 무력통일정책 포기땐/우리 군사력과 주한미군 조정”/한ㆍ중 정상회담 피할 수 없는 과제/노대통령 오늘 하오 귀국/호놀룰루서 1박 【워싱턴=김호준특파원】 노태우대통령은 6일 『중국과의 정상회담 추진은 피할 수 없는 앞으로의 과제』라고 강조하고 『이번 한소 정상회담으로 중국도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주미대사관저에서 가진 수행기자단과 워싱턴 주재 한국특파원의 오찬회견에서 한일ㆍ한소ㆍ한미 연쇄 정상회담의 의의와 성과등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노대통령은 「한소 관계정상화가 빨리 오지 않을 것」이란 타스통신 보도에 대한 논평요구에 『나도 동감』이라고 전제한 뒤 『대소 관계정상화를 서두르지는 않겠지만 빠르지도 않고 늦지도 않은 시기에 수교를 실현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노대통령은 『어떻게 보면 현재의 한소관계가 너무 빠른 것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고립감을 느낄 북한을 어떻게 포용해 나갈것이냐』는 질문에 『한소사이가 가까워진다고 해서 소련이 북한을 버려서는 안된다고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당부하면서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신뢰받고 존경받는 일원이 되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한반도에서 군축을 실현시키자면 우선 남북한 책임자끼리 만나야할 것』이라고 남북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북한이 무력통일노선과 공세전략을 포기하면 군축방향으로 나아가 주한미군과 우리 군사력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노대통령(정상회담 여로)

    ◎“노대통령­고르비 만남은 엄청난 지진” 퀘일/노­부시,8개월만에 3번째 반가운 악수/교민들 「통일대통령」 피킷들고 대환영 ○…노태우대통령은 6일 상오 10시(한국시간 하오 11시) 정각 이날 아침 함께 조찬을 했던 퀘일 부통령의 안내로 백악관 동쪽집무실에 도착,존 리드 국무부의전장으로부터 영접을 받으며 로비에 대기중이던 미측 배석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교환. 노대통령은 이어 루스벨트룸에서 방명록에 서명한 뒤 부시대통령의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 들어섰고 이때 자신을 맞기 위해 입구에 서있던 부시대통령과 반갑게 악수,8개월여만에 3번째 만나는 돈독한 우의를 과시.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오벌 오피스의 소파에 나란히 앉아 내외신 사진기자들에게 두 차례에 걸쳐 포즈를 취해주며 담소.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기념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소 정상회담에 관해 환담. 부시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회담은 아주 적절했으며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오늘 노대통령과의 만남을 고대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부시대통령은 『오늘 이 자리에서 한소회담 내용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하자』고 제의. 이에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바쁘고 열띤 하루를 보냈다고 하더라』고 전하며 『그는 무척 기분이 좋아보이더라』고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대좌인상을 피력. ○…노태우대통령은 부시 미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을 갖기 앞서 백악관 서쪽 부통령집무실 2층에서 댄 퀘일 미부통령과 조찬을 함께하며 환담. 퀘일 부통령은 『노대통령께서 백악관 서쪽 집무실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지난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샌프란시스코지역에 지진이 일어나서 만나뵙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피력. 이어 퀘일부통령이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 소대통령을 만나본 소감이 어떠냐』고 묻자 노대통령은 『대단히 우호적인 분위기속에서 성과있는 회담이었다』고 대답. 조찬에 앞서 퀘일부통령은 접견실에서 노대통령은 반갑게 맞은 후 이어 도보로 조찬장으로 자리를 옮겨 2층 발코니에서 백악관을 내려다 보며건물구조를 설명했고 멀리 보이는 워싱턴 초대대통령기념관과 제퍼슨 대통령기념관을 가리키며 친절하게 설명. 이어 노대통령과 퀘일부통령은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해주며 손을 흔들어 인사하기도. 조찬도중 퀘일부통령은 『지난해 노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샌프란시스코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올해도 또 지진이 일어났다』며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것 자체가 엄청난 지진이 아니냐』고 노­고르바초프회담을 지진에 비유해 의미를 높이 평가. ○…노대통령과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45분동안 회담할 예정이었으나 이보다 15분 연장된 11시까지 회담했으며 당초 배석을 하지 않기로 했던 퀘일부통령까지 자리를 같이해 한소 정상회담 내용에 대한 미국측의 깊은 관심을 반증. 백악관측은 이날 11시부터 미군기지 이전문제가 현안이 되고 있는 그리스의 콘스탄틴 미초타기스수상과 부시 대통령의 회담일정을 잡아 놓았으나 노대통령과의 회담시간이 연장되는 바람에 이 일정을 11시30분부터로 연기하기도. 노대통령이부시 대통령과 약 1시간동안의 회담을 마치고 나오자 오벌 오피스앞에 기다리고 있던 20여명의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샌프란시스코회담 내용을 집중 질문.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북한의 개방화와 남북대화재개를 강조하며 『고르바초프대통령도 이를위해 북한에 압력을 넣기로 했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고 만족스런 표정으로 대답. 노대통령은 또 『고르바초프대통령과 만난 결과 한반도긴장완화에 대한 자신을 얻었으냐』는 질문에 『물론 확신한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면 주한미군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고 주한미군철수문제를 우회적으로 답변.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노대통령이 약 5분동안 질문에 대한 즉석답변을 마치고 백악관을 떠나려하자 계속 한소 정상회담과 관련한 질문공세를 벌이는등 큰 관심을 보이기도. ○…노대통령은 이에앞서 5일 하오 5시10분(한국시간 6일 상오 6시10분)부시 미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근교 앤드루스공군기지에 도착,교민 3백여명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노대통령은 박동진주미대사,리드 백악관의전장 등으로부터 기상영접을 받고 트랩을 내려 앤더슨 미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로해치기지사령관 등 미국측 인사와 이승곤주미공사등 한국측 인사들과 악수. 노대통령은 교포소녀 김민아양(11)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곧바로 교포들이 대기하고 있는 환영대로 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교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 교포들은 「통일대통령 노태우」 「축 한소 정상회담 성공」 「북방정책성공으로 평화통일 앞당기자」라는 등의 피킷등을 흔들며 노대통령에게 『수고 많이 하셨어요』라고 일제히 환호. 노대통령은 한 교포가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회담성과가 좋아서인지 화색이 작년보다 좋으시다』고 인사를 하자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요』라고 답례. 노대통령은 남매어린이를 안고나온 교포부부가 대형태극기를 내밀며 사인을 요청하자 매직펜으로 「대통령 노태우ㆍ1990년 6월5일」이라고 친필 서명.
  • 미,“한·소수교 적극 지원”/노대통령·부시 정상회담

    ◎한·미 긴밀한 안보협력 재확인/부시,“북한개방·남북대화에 적극 협조” 【워싱턴=특별취재반】 노태우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은 6일 한소 관계증진이 한반도 긴장완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미국이 한소간의 국교정상화등 관계개선을 적극 지원,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이날 상오 10시(한국시간 하오 11시) 백악관에서 1시간동안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최근 잇따라 열린 미소,한소 정상회담 결과를 상호 설명하며 향후의 한반도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같이 합의했다. 양국 대통령은 또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문제와 관련,이 문제는 한미 양국은 물론 소련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한반도의 안정과 북한의 개방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특히 노대통령은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있어서는 ▲북한이 남북대화에 성실한 자세로 임하고 ▲핵안전협정에 가입,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성을 보이는지를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이에대해부시대통령은 그것은 바로 미국의 대북한 기본입장이라며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했다. 노대통령은 한소간의 경제협력방향을 설명하는 가운데 『시베리아개발등 소련의 대형프로젝트는 한국단독으로 보다는 미국과 공동으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부시대통령은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남북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한미간의 협조체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특히 남북관계의 기본적 정세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양국은 긴밀한 안보협력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시대통령은 안보협력과 관련,『장기적으로는 주도적 방위는 한국이 맡고 미국은 지원체제로 전환해 나가지만 주한미군의 기본적 역할과 미국의 대한 방위조약은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부시대통령은 노대통령으로부터 방일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노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한일 양국이 과거문제를 매듭짓고 미래지향적 협력우호관계를 구축한 것은 미국으로서도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최근 일련의 한소및 한일 정상회담과 미소 정상회담의 결과와 관련,동북아지역에서의 양국 협력방안과 대소정책을 논의했으며 한ㆍ미ㆍ일 등의 3국 협력관계강화문제도 깊이있게 논의했다. 양국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지난 88년의 86억달러 수준에서 점차 감소,올해에는 양국간의 무역수지가 균형을 이뤄갈 것임을 지적하고 통상문제가 양국간 원만한 협의를 통해 조정돼가고 있다는 데 만족을 표시했다. 한편 노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주미대사관저에서 주미한국특파원과 수행기자단이 참석한 가운데 오찬회견을 갖고 자신의 이번 연쇄정상회담의 의의와 성과등을 설명하고 소감을 피력했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촉진시키는 데 협조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히고 『나와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런 원칙에 동의하고 노력함으로써 나는 한국의 재통일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이날 상오 9시(한국시간 6일 하오 10시) 퀘일 미부통령과 조찬을 함께하며 양국간의 협력방안과 한반도 주변정세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노대통령은 3박4일간에 걸친 샌프란시스코및 워싱턴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이날 하오 3시(한국시간 7일 상오 4시) 워싱턴 앤드루스공군기지를 출발,호놀룰루로 떠났으며 이곳에서 1박한 후 8일 하오 귀국할 예정이다.
  • 한ㆍ소 정상회담 어떻게 추진되나

    ◎「태백산계획」 마무리… 부산한 청와대/한국,“동등관계” 주장… 장소싸고 진통/회담 결과는 따로 「언론발표」 갖기로 역사적인 4일의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과 6일의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3일 미국으로 떠나는 노태우대통령의 방미계획(암호명 태백산계획)을 준비해온 청와대는 출국 하루전인 2일 대부분의 작업을 일단 마무리. 그러나 청와대당국은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회담에 따른 배경설명은 하면서도 회담의 시간ㆍ장소ㆍ의제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계속 함구로 일관. ○…한소간에 막바지까지 절충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문제는 회담장소. 회담장소는 소련측이 샌프란시스코의 소련총영사관을 주장한 반면 우리측은 페어몬트호텔로 주장. 한소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양국간 실무협상은 고르바초프가 미국에 도착한 지난달 30일 워싱턴에서 이정빈외무부제1차관보와 고르바초프의 외교고문인 아나톨리 도브리닌 전주미대사와 사이에서 진행되었다고. 소련측은 보안,경호상의 이유로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이나 총영사관관저를 주장하고 있으나 한국측은 양국이 출발부터 대등한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소련의 외교특권(총영사관이긴해도 대사관과 같이 치외법권을 인정해주는 것이 외교관행)이 미치는 총영사관은 곤란하며 제3의 중립적인 장소를 선정해야 한다고 완강히 반대. 제3의 장소로는 고르바초프가 한소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경제인을 상대로 연설을 하게되고 또 1948년 유엔창립총회가 열린 유서깊은 페어몬트호텔내의 특별회의실이 적절하다는 게 우리의 주장. 이 과정에서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스탠퍼드대학도 한때 거론되었다고. 소련실무팀은 한국의 이같은 완강한 태도때문에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직접 결정을 내리도록 건의했다는 것. 한국측은 특히 총영사관에서의 회담이 자칫 구한말 고종의 아관파천의 기억을 국민들에게 연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 매우 신경을 쓰는 눈치. ○…회담시간은 4일 하오 4∼6시사이(현지시간)가 될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나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알려진 당일일정 가운데 비어있는 시간대는 정확히 하오 4시15분부터 5시30분까지.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상오에는 레이건 전 미대통령과 조찬을 하고 한소 정상회담직전에는 미경제인 2백명을 상대로 연설을 하는데 2천여명의 방청신청이 있어 페어몬트호텔내의 폐쇄 TV를 활용하게 된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당초 5일 귀국도중 캄차카반도에기착,대아시아정책과 관련,중요연설을 할 예정이었으나 이 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안다면서 한소 정상회담의 시간도 가변적인 요소가 많다고 전망.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는 시간도 하오 7∼7시30분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것도 유동적이라는 것. 회담후 양국정상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않고 대신 개별적인 언론발표문(Press Release)을 통해 회담결과를 발표하기로 이미 합의돼 있다고. ○…노대통령과 부시 미대통령과의 회담은 6일 상오 10시 백악관에서 약 45분간 진행될 계획이라고. 부시대통령은 노대통령과의 회담이 결정되기 이전에 이미 이날 그리스수상ㆍ유엔사무총장ㆍ콜롬비아대통령 등과의 회담일정이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조찬회담이 고려됐다가다른 일정을 밀치고 다시 상오회담으로 낙착되었다고. 한편 청와대 당국자는 국내언론이 「한소 양국정상의 연내 교환방문 가능성」 「대소 대규모경협차관 검토」 등을 보도하고 있는 데 대해 『정상회담에서 상호초청의사는 표할 수 있지만 시기문제 등은 수교이후에 양국 외교경로를 통해 얘기할 성격일 뿐만 아니라 아직은 그같은 추측을 할 단계가 아니다』 『소련측에서 소련내 소비제품의 공급을 원활히 하는데 한국측이 기여해주었으면 하는 타진이외에 일체 차관공여문제를 거론한 적이 없다』고 극구 부인.
  • 한ㆍ소 정상 4일 회담/양국,동시발표

    ◎샌프란시스코서 역사적 첫 대좌/조기수교ㆍ한반도평화 논의/노대통령 3일 출국/6일 워싱턴서 부시와도 회담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오는 6월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소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31일 하오 3시(한국시간) 서울과 모스크바에서 동시발표했다. 노대통령은 이를위해 오는 3일 미국 방문길에 오른다. 노대통령은 4일 한소 정상회담을 가진뒤 5일 워싱턴에 도착,6일 상오(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부시 미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호놀룰루를 거쳐 8일 하오 귀국할 예정이다. 한소양국 역사상 처음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한소 국교정상화 문제를 집중논의,가능한 한 빠른 시일안에 양국간의 국교를 정상화 한다는데 합의할 것으로 보이며 남북한 관계개선을 포함한 한반도에서의 안정과 평화문제를 중점 논의한다.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이번 회담은 두나라가 이미 수교원칙에 합의한 시점에서 이뤄져 한소 수교를 앞당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것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련이 중국과 함께 북한의 마지막 남은 지원국이며 군사동맹국이란 점에서 두 정상의 만남은 북한의 향후 진로 및 남북한 관계개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미소 정상회담후 미네소타주에 잠시 들렀다가 한소 정상회담이 열리는 샌프란시스코로 올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소 정상회담의 정확한 회담시간과 장소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6일 백안관에서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노대통령은 한소 및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부시대통령에게 설명하며 부시대통령은 미소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한미 양국정상은 이 자리에서 한소간의 관계정상화및 북한의 개방유도를 위한 공동노력 방안등을 아울러 협의한다. 부시 미대통령은 한소 정상회담이전에 솔로몬 미 국무부차관보와 메틀록 주소대사를 샌프란시스코로 보내 노대통령에게 미소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의 한소및 한미 정상회담을 위한 방미에 수행할 공식수행원은 다음과 같다. ▲최호중외무장관 ▲박동진주미대사 ▲공로명주소영사처장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 ▲이현우대통령경호실장 ▲김종인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 ▲노창희대통령의전수석비서관 ▲이수정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 ▲최규완대통령주치의 ▲박건우외무부의전장 ▲김삼훈외무부미주국장 ▲나원찬외무부구주국장
  • 세계 전직 국가정상들 “서울 총집합”/23일부터 한국서 IAC총회

    ◎지스카르 전대통령·후쿠다 전총리등 31명 참석/83년 빈서 설립… 국제현안등 해결에 영향력 발휘 세계각국의 전직국가지도자들이 서울로 모여들고 있다. 오는 23∼27일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제8차 전직정부수반협의회(Inter­Action Council·IAC)총회에 참가하기 위해 22일부터 입국하는 「퇴임 정상」들은 IAC회장인 헬무트 슈미트 전서독총리(현 디차이트지 발행인),지스카르 데스탱 전프랑스대통령(현 유럽의회의원) 후쿠다 다케오(복전규부) 전일본총리,트뤼도 전캐나다총리 등 31명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이 대회준비위원장인 신현확 전국무총리가 정회원으로 참가한다. 참석자중에는 전직대통령이 4명,총리가 16명이며 공산권에서는 30년이상 주미대사를 역임한 소련의 도브리닌 현대통령고문,유고의 리비치크 전연방간부회의의장,헝가리의 포크 전각료회의의장 등이 포함돼 있다. 참석자 31명중 정회원은 21명이며 준회원및 특별초청자는 10명이다. 특별초청자였던 황화 전중국외교부장은 사정상 참석하지 못하며 정회원이었던 레바논의 호스 전총리와 모로코의 오스만 전총리는 최근 각각 현직 총리와 국회의장으로 복귀,「자격상실」로 참석이 불가능해졌다. IAC는 지난 75년 당시 서방 7개국 정상회담개최를 주도했던 슈미트 전서독총리,데스탱 전프랑스대통령 등이 자신들의 퇴임후에도 계속 만나 국제현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83년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설립한 민간국제기구이다. 이 기구에는 세계 30개국의 전직대통령및 총리 등이 정회원으로 가입돼 있으며 회장인 슈미트 전서독총리와 후쿠다 전일본총리가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의 멤버는 정회원 31명,준회원 31명. 뉴욕과 파리 두곳에 사무국이 설치돼 있으며 경비는 각국 정부·재단·기업·개인의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IAC총회는 83년이후 브리오니(유고)·파리·도쿄·콸라룸푸르·모스크바·워싱턴에서 매년 열려왔는데 서울대회는 6차 모스크바총회에서 제안돼 7차 워싱턴총회에서 결정됐다. 원래 이번 IAC총회는 서방국과 공산국에서 벌갈아 개최한다는 원칙에 따라 중국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신현확 전총리의 「활약」으로 서울유치에 성공했다는 후문이다. IAC는 회원들이 공동연구한 제안들을 각국 국가원수및 최고정책결정자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지난 몇년동안 국제현안들에 관해 공식·비공식적으로 세계여론을 환기시켜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있다. IAC는 세계각국의 정치지도자들과 정기적인 접촉을 함으로써 계속 영향력을 확대해 오고 있다. 이제는 정부나 국제기구뿐 아니라 민간단체들과도 정기적인 교류를 유지해 「국제원로자문기구」 「OB정상기구」로서의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IAC가 관심을 갖고 있는 사업은 ▲중거리 핵무기완전폐기 ▲미소정상회담의 정례화 ▲요격용유도탄(ABM)억지조약 강력준수 ▲개발도상국의 군비문제 ▲지역갈등의 평화적 해결노력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개선 ▲인구·환경및 개발의 상호관련문제 ▲전세계적인 삼림황폐화방지 ▲생태계를 고려한 에너지 정책 ▲세계 경제부흥 ▲외채에 관한 제안 ▲21세기를 위한 준비 등 광범위하다. IAC는 특히 85년 3차 파리총회에서 핵전쟁금지·군사력 균형·안보이익 추구·군비지출감소등 초강대국(미국)간의 관계원칙을 공동선언토록 미소정상에 촉구,주목을 끌기도 했다. IAC는 이번 서울총회에서 모두 5차례의 회의를 열어 ▲90년대 아시아지역의 정치발전 ▲유럽에서의 급격한 변화및 타지역에의 영향 ▲금융시장의 세계화및 그 위험성 ▲생태계및 인구·환경문제 등에 대한 발표와 토론을 거쳐 최종선언문을 채택,각국의 정책에 반영시키기 위해 전세계 지도자들에게 통보한다. 이번 총회에서는 이와함께 지역특성상 한반도 긴장완화와 상호 신뢰구축방안이 심도있게 논의될 것으로 보여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전직수반들은 총회시작전날인 22일 판문점을 방문,분단상황을 살피며,23일 저녁에는 청와대에서 노태우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만찬에,24일 저녁에는 강영훈국무총리 주재의 리셉션에 참가한다. 이번 총회에 참가하는 그밖의 주요참석인사는 다음과 같다. ▲핀타실고 포르투갈 전총리(IAC부회장) ▲아하트 네덜란드〃 ▲알리 이집트〃 ▲비스타 네팔〃 ▲샤방 델마 프랑스〃 ▲데라 마드리드 멕시코 전대통령 ▲프레이저 호주 전총리 ▲퍼글러 스위스 전대통령 ▲리술로 잠비아 전총리 ▲나시멘토 앙골라〃 ▲오바산조 나이지리아〃 ▲파스트라나 콜롬비아 전대통령 ▲우요아 페루 전총리 ▲울스텐 스웨덴〃(이상 정회원) ▲맥나마라 미국 전국방장관 ▲이반 체코 전시민포럼의장(이상 특별초청자)
  • “소련은 이데올로기와 외교 분리”

    ◎소ㆍ북한대표,워싱턴 학술회의서 설전/평양­모스크바 동맹 “사실상 변질” 시사/한소수교 불가피성 강조에 북측 발끈 북한과 소련이 미국에서 언쟁을 벌였다. 한국은 입을 다문 채 지켜보았다. 18일 워싱턴의 조지 워싱턴대 주최 학술회의 석상에서 벌어진 이변이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소련간의 이견이 급기야 설전으로 번진 것이다. 발단은 소련 과학 아카데미의 한일관계 정책연구부장인 게오르기 쿠나제가 개진한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시각」이라는 주제발표문의 내용. 쿠나제는 이 발표에서 소련의 대북한 동맹관계에 대해 『뚜렷한 이유없이 북한이 제3자로부터 침공을 받았을 경우 도와준다는 정도』라고 평가했다. 그의 주장은 소­북한 동맹관계가 사실상 변질돼 과거처럼 혈맹 운운하던 시대는 지나갔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다른 참석자들에게 이해되었다. 그는 또 한소관계에 언급,『남북한에 대한 주변 강대국들의 교차 승인절차가 완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수용하지 않는다』면서 『한소 수교는 필요하면 언제든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대해 북한측 대표들은 『한반도 문제는 통일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한소수교는 한반도 문제 해결이나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론을 펴며 쿠나제가 역설한 한소 수교 불가피성에 대해 못마땅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쿠나제는 『남한은 주권국가이며 자신의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북한은 한국의 실체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을 계속 해온 한국과의 경제력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쿠나제는 특히 『동서독의 경우 유엔 동시가입과 교차승인이 통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며 북한측을 공박했다. 또 쿠나제가 시대변화에 따라 이데올로기와 외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한 데 대해 북한측은 분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앞서 북한측 참석자인 허종(주유엔대표부 부대사)은 교차승인에 반대하는 북한의 입장을 분명히 했고,최우진(평화군축연구소 부소장)과 이형철(연구실장)은 「남북한 관계」 「북한의 대외정책」이란 주제발표를 통해한반도 통일의 전단계로서 고려연방제의 실시를 거듭 주장했다. 이들은 또 『북한은 개방을 하려고 하는데 주위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일본측 참석자인 미카나기 전주한대사가 「한반도의 정치적 추세와 주변안보」라는 주제발표에서 북한의 권력이양 문제를 거론하자 북한측은 『왜 남의 나라 문제를 왈가왈부 하느냐. 지도자문제 토의는 사전 협의해야 한다』고 제동을 걸어 장내에 폭소가 터졌다. 이날 토론에서 한국측 대표인 김경원(전주미대사) 한승수(민자의원 전상공장관) 김진현(동아일보 논설주간) 민병석씨(청와대 북방정책담당 비서관)등은 북한측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북한측 참가자들의 어거지 주장에 대해 논평이나 반박을 일체 하지 않았으며 북한­소련 참석자간에 언쟁이 계속될 때도 이에 개입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18일 회의가 끝난 후 남북한 참석자들은 조지 워싱턴대 김영진교수의 안내로 한국음식점 우래옥에서 저녁을 함께 하며 허심탄회한 의견 교환 기회를 가졌다. 회의 마지막날인 19일 하오 북한대표들은 한국 특파원들과의 회견을 끝으로 워싱턴을 떠나 귀환길에 오른다. 「격동기의 아시아」라는 주제로 지난 17일 개막한 이번 학술회의에는 남북한을 비롯하여 미­중­소­일­말레이시아 등의 학자 언론인 경제인 정부요인 등이 참석해 주로 동북아의 평화 안보 경제협력 문제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 소,주미대사 경질

    【모스크바 타스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18일 알렉산데르 베스메르트니흐 외무 제1차관(57)을 주미 소련대사로 임명했다. 베스메르트니흐 신임 주미 대사는 소련 외무부 산하 모스크바 국제관계 연구소를 졸업,지난 57년 외무부에 투신한 뒤 지난 83년까지 주미 소련대사관에서 1등서기관ㆍ참사관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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