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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미대사
    202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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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수석들/유럽순방 수행 사양

    ◎국내업무 산적… 세계화 견문 기회 “양보 경쟁” 오는 3월2일 장도에 오르는 김영삼 대통령의 유럽순방 비공식수행원자리 하나가 남게 됐다. 새정부 출범이후 대통령의 해외순방에는 관련업무가 없는 청와대수석들도 돌아가며 한사람씩 비공식수행원으로 따라갔었다.국제적인 흐름을 알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그러나 이번 유럽순방에는 수행희망자가 없다.국내사정,또는 맡고 있는 일의 처리시한 때문에 차례가 된 수석들이 자리를 비울 수가 없는 탓이다. 유럽순방에 참가할 차례가 된 사람은 이원종 정무수석과 이의근 행정·박세일 정책기획·최양부 농수산수석 등이다.한이헌 경제·유종하 외교안보·윤여전 공보수석은 당연히 수행해야 하는 공식수행원에 포함된다.김영수 민정수석은 동남아순방,홍인길 총무수석은 러시아순방 때 수행했기 때문에 차례가 지나갔다. 이정무 수석은 선임수석으로,특히 대통령이 해외에 나갈 때는 국내정치문제를 도맡아야 하는 처지여서 동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이 행정수석은 지방자치선거준비와 국회에서의 지방선거관련 협상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역시 수행을 못하고 남아 있는다.박 기획수석은 임박한 사법개혁과 교육개혁작업을 마무리해야 하는 실정이다.박 수석은 『대통령이 청와대를 비우면 기자들도 자리를 비우게 돼 오히려 순방기간이 일을 하기에 가장 좋다』고 말한다. 공식수행원에 포함돼 있는 한승수 비서실장도 처음과는 달리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소문이다.전임 박관용 실장은 대통령의 첫 해외순방이던 미국방문만 수행하고 그뒤에는 모두 국내에 머물며 청와대를 지켰다.한 실장은 주미대사를 지냈기 때문에 이번에 대통령을 수행하면 여러가지 도움이 되겠지만 국내에서 해야 할 일도 많아 이래저래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 풀브라이트(외언내언)

    지난 9일 타계한 미국의 윌리엄 풀브라이트 전상원의원(89)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50∼60년대 풀브라이트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은 그시대 야망에 넘치던 한국청년들에겐 선망 이상의 것이었다.이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중에 이현재 전국무총리 조순 전부총리 한승수 대통령비서실장 현홍주 전주미대사 등 저명인사들이 줄줄이 끼어있는 것만 봐도 알만하다. 풀브라이트장학금으로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은 현재까지 1백20개국에서 자그마치 10만여명.우리나라에서만 1천1백여명에 이른다.풀브라이트의원은 상원에 진출한 직후인 46년 미국과 세계의 이해증진을 목표로 이 장학재단법을 제안했고 이 재단이 지금까지 유지되면서 수많은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미국유학의 기회를 제공해온 것. 그러나 풀브라이트의 진면목은 60∼70년대 미국 리버럴세력의 기수로 미국정치에 미친 강력한 지도력에 있다.그는 월남전개입을 극력 반대,반전운동의 정치적 지주역할을 했으며 그의 저서 「권력의 오만」은 반전운동의 이론적 근거가 됐었다. 59년부터 74년까지 상원외교위원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그의 이름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의회의 통제력을 상징하기도 했다.같은 민주당소속이면서도 케네디 대통령의 월남전 초기개입과정에서부터 그는 월남전의 부도덕성을 줄기차게 비판했다. 「권력의 오만」에서 그는 『미국은 역사이래 강대국들이 스스로 쇠락의 길을 걷게한 오만한 권력행사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했었다.그의 선견은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에서 뒷받침됐다. 미국 현대사의 한 시대를 장식했던 한 위대한 리버럴리스트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 민자 정책 싱크탱크/여의도연/오늘 출범… 규모와 역할

    ◎통일·경제 등 10분야 전략 연구/소장에 박필수씨 등 3명 물망 민자당이 세계화에 앞장서는 정책정당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여의도연구소(YDI)가 6일 현판식을 갖고 공식출범한다. YDI는 우리나라 정당이 운영하는 최초의 본격 정책연구소.외교·경제분야를 중심으로 국가 장기경영전략을 연구하는 「싱크탱크」의 역할을 맡는다. 민자당은 이 연구소의 기금으로 올해 안에 우선 1백억원을 출연할 계획이다.이미 당사와 이웃한 건물에 5백평짜리 사무실을 마련했다.이사장 소장 이사 감사등 임원진에 박사급 연구원도 10명을 확보하고 있다.박사급 연구원은 곧 10명을 증원하게 돼 있다.장기적으로는 1천억원의 기금에 2백여명의 연구원들을 거느린 대규모 연구재단으로 키우려 한다. 얼마전 마감한 박사급 연구원 공모에는 모두 2백27명이나 지원,관계자들마저 놀라게 했다.이들 가운데 10명을 선정,정치 통일 안보 경제 환경 복지 건설 교통등 10개 분야로 나누어 전담시킬 방침이다. 이사장은 당 사무총장이 당연직으로 맡는다.연구소의 얼굴인 임기 4년의 소장에는 20명 남짓한 중량급 인사들이 물망에 오른 끝에 박필수 전상공부장관과 신동원 전 주독일대사 김경원 사회과학원장(전주미대사)등 3명으로 압축됐다.당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낙점」한다. 박 전장관은 경제기획원과 상공자원부 등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관료 출신의 대학교수로 외국어대총장과 소비자보호원장을 역임하는등 실물경제의 이론과 현실에 두루 밝다.정통외무관료 출신인 신전대사는 주독일대사로 독일의 통일전후 현실을 직접 지켜보았고 외교안보연구원장등을 맡아 국제정치 및 민족문제를 깊이 연구한 점이 평가되고 있다.김 원장은 미국 뉴욕대와 고려대에서 정치학을 강의했고 대통령특보 및 비서실장,유엔대사 등을 거쳐 지난해 국제화추진위원장을 맡아 폭넓은 비전을 갖고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임기 4년의 이사로는 이원경 전외무부장관 김계수 외대명예교수 이상희 과학기술자문위원장 노승우 민자당국책연구실장 등이 내정됐다.감사는 서울 서초갑지구당위원장인 김찬진 변호사가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여의도연구소를 김대중씨의 아시아·태평양재단이나 전두환전대통령이 추진했던 일해재단과 같은 정치적 목적의 기구로 보기도 한다.그러나 YDI의 설립을 처음 제안했던 이인제의원은 『YDI를 대형 전문연구재단으로 키워 세몰이식 정치판에 정책논쟁을 불러 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민자당은 이 연구소의 기금을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의 일부로 충당할 계획이나 이에 대한 일부의 오해가 있음을 감안,다른 방법도 함께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북 종교인들/은밀한 나들이 “분주”/워싱턴 조찬기도회 안팎

    ◎한국대표 인사 건네자 반응 시큰둥/북측행사 비공개… 구체내용 베일에 미의회가 주관한 2일의 미 국가연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북측대표들은 기도회 참석을 전후로 워싱턴에서 은밀한 나들이로 분주했다. ○…이날 아침 워싱턴 힐튼호텔에서 열린 기도회에는 북측에서 장재철단장(조선천주교연맹위원장)등 평양에서 온 6명과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의 박길연 대사와 김종수 부대사 등이 참석. 한국측에서는 백악관 신임장 제정절차를 아직 마치지 않은 박건우 신임주미대사를 대리해 번기문공사가 참석했으며 워싱턴을 방문 중인 최창윤 국제교류재단이사장 등도 참석. 이날 기도회에는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앨 고어 부통령,깅리치 하원의장,미행정부의 전현직 장관,상하의원 및 대법원판사,외교단 등과 이집트 서부사하라,피지,도미니카 등의 수상과 외국인사 등 모두 3천8백여명이 참석,대성황을 이뤘다. 북한측 대표의 초청자이자 이날 기도를 인도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기도도중에 『북한대표의 참석을 환영하며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지혜와 힘으로 미래가 축복을 받을수 있도록 간구한다』고 기도. 번공사는 인근 좌석에 배치된 북측 인사들에게 수인사를 건넸으나 평양에서 온 장단장 등은 별로 대화를 하고싶지 않은 표정이었고 김종수 부대사와 간단한 얘기만 나눴다고. 장단장은 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KBS특파원이 소감을 묻자 『하나님의 축복으로 조국의 평화통일이 이뤄지도록 기도드렸다』고 피력. 그는 북한에 종교도 있느냐는 질문에 『물론 있다』고 대답했고 이어 『종교가 확대되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엔 『묻지 않아도 당연한 것 아니냐. 신앙인의 당연한 소망이 아니냐』고 다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고. ○…장단장 등 일행은 지난달 26일 뉴욕에 도착한 뒤 시카고에 머물다가 31일 저녁 워싱턴에 도착,기도회가 열린 워싱턴 힐튼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들 일행은 장단장 외에 이범 천주교협회책임지도원, 오정우 칠곡교회목사, 리춘구 기독교연맹선전부장,군축평화연구소의 이정인,전용갑 연구원 등인데 장단장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자 외교분과위 위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3일 상오(한국시간 3일밤)코리아 소사이어티가 주최하는 비공개 토론회를 카네기재단 연구소에서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주제는 「북한의 문화와 사회」였다는 것. 이들 일행은 4일 필라델피아를 거쳐 뉴욕으로 가 6일께 평양으로 갈 예정이라고. 한편 북한인사들의 활동은 국무부는 물론 초청자인 그레이엄 목사측에서도 모든 행사는 가급적 비공개 대외비로 할 것을 바라고 있어 그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나고 있지 않은데 톰 허바드 국무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는 『국무부측이 북측 기도회참석 대표들을 만날 계획이 없다』고 분명하게 답변.
  • 키신저 「미국의 대아정책」 강연 요지

    ◎“미,한·중·일 특성 고려 「동시 대화」 필요”/북핵 현상유지 우려… 합의이행 주시를/「통일한국」 주변국에 큰 파장 가져올것 헨리 키신저 전미국국무장관은 1일 저녁 헤리티지재단이 워싱턴시내 포시즌즈 호텔에서 주관한 고 이병철전삼성그룹회장 추모 제1차 연례강연회에 초청연사로 참석,「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이날 연설에는 한국측에서 김철수통상대사,박건우주미대사,현홍주전주미대사,최창윤국제교류재단이사장 등이,미측에서 포일러 헤리티지재단이사장,리처드 앨런 전백악관안보보좌관,진 진 쿼크패트릭 전유엔대사,스티븐 솔라즈 전미하원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등 한미양국인사 2백여명이 참석했다. 다음은 이날 키신저박사의 연설요지. 냉전이 끝남에 따라 미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강대국으로 남게 되었다.냉전시대의 집단안보나 특정국가로부터의 위협등에 대해서는 전혀 도전을 받지 않는다.과거처럼 구체적인 이념적 적도 없고 국제사회에서 매우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은 냉전종식이후의 국가이익에 관한 명백한 정의를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그뿐만 아니라 냉전이후시대에 적합한 국익개념을 발전시켜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이를 위한 초당적 노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미국은 아시아를 미국식 사고방식으로 대해 왔고 유럽과의 관계는 매우 시들해졌으며 러시아와는 이제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있을 뿐이다. 아시아 특히 중국,일본,한국 등은 각기 국가적·문화적 특성을 갖고 있어 서로 상이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토대로 각국과 심도있는 동시대화를 전개해야 할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는 무역분쟁만 전면에 부각되어 있는데 정치적 혁명을 하다시피 양국관계를 회복시켜야 한다.중국은 앞으로 주요한 경제강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되는데도 미국과 중국간에는 진정한 대화가 없는 것같이 보인다.미국의 국가이익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여 미·중대화를 심화시켜야 한다.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의 기본원칙은 친구와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한반도문제에 관한 협상에서 한국을 배제한채 북한과 대화를 해서는 안된다.만약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북한과 대화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북­미간의 핵합의에 만족하지도 않고 또 잘됐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이는 북한의 핵개발 현상태를 그대로 용인한 것이다.따라서 북한핵의 현상유지가 우려되고 있다.그러나 지금 할 일은 북­미합의를 북한측이 잘 이행하는지를 예의주시하고 이를 독려해야 하는 일이다. 냉정한 현실을 얘기하면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문제에 관해 한국과의 이해관계를 같이한다고 볼 수 없다.일본과 중국은 한반도의 분단이 그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과 함께 한반도가 통일이 되지 않는한 중국과 일본이 동맹관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이런 역학적 고려에서 볼때 통일한국은 주변국가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클린턴의 대북핵거래」 헤리티지 재단 세미나/요지

    ◎“한국민,「북·미 합의」 과정·형식에 불만”/향후 대북관계 「미 일방통행」 지양을/북 경수로 완공뒤에도 NPT체제 강화해야/「남북대화 재개」 못박지않은것 실책 미국 워싱턴소재 헤리티지재단은 31일 하오 「클린턴행정부의 북핵협상,위험과 기회」주제로 세미나를 가졌다.공화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재단의 리처드 앨런 고문(전백악관안보보좌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는 최창윤국제교류재단이사장의 인사에 이어 현홍주전주미대사,프랭크 머코스키 미상원 에너지위원장(공화·알래스카),토마스 허바드 미국무부동아태부차관보등이 주제발표를 했으며 리처드 솔로몬 미평화연구소소장(전국무부동아태차관보),최근 평양을 1주일간 방문하고 돌아온 돈 오버도프 존스 홉킨스대 연구원 등이 토론자로 참가했다. 다음은 이날 있은 세미나의 요지. ◇최국제교류재단이사장=한국민은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진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북한의 제네바 핵합의의 성실한 이행,테러의 포기,인권의 신장,미사일수출의 포기,휴전선에 전진배치된 군사력과 화력의 철수,그리고 남북한 당사자간의 대화와 화해를 위한 미국의 의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물론 한국은 시간이 자신의 편에 있다는 점을 확신하고 있다.한국은 북한이 좀더 개방폭을 넓혀나가기를 바라고 있다.이에 따라 남북경제협력의 분위기도 활발히 조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북·미관계가 중요한 전기를 맞고 있는 이때에 한·미양국의 대북한 정치·경제관계가 미국의 일방적인 통행이 아니라 긴밀한 협조체제아래 이뤄지기를 촉구한다. ◇현전대사=북·미간의 합의내용도 그렇지만 한국민은 합의가 도출된 과정과 형식을 우려하는 것이다. 한국민의 불만도 바로 이런 것에 연유한다. 북한이 북·미합의이행과 관련해 한·미관계를 이간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머코스키의원=클린턴행정부가 남북대화 재개를 북·미합의의 이행조건으로 확실히 못박지 않은 것은 실책이었다. 북한의 핵폐기물저장소에 대한 사찰을 유예시켜줌으로써 그들의 과거 핵개발을 5∼6년동안 규명할 수 없도록 한 것도 큰 잘못이었다.북핵합의이행과 관련하여 클린턴대통령은 이의 확실한 이행을 보장하는 서한을 김정일에게 보냈는데 이에 상응하는 북한측의 보장서한이 없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모두가 북한의 주장대로 된 것이다.남북대화의 전망이 극히 어두운 현난국을 타개할 묘안이 없는 형편이다. ◇허바드부차관보=미국이 현재 북·미합의이행과 관련하여 최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남북대화의 재개다.북한측에 대해 남북대화가 재개되지 않고는 북·미관계의 진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북한측에 거듭 강조해왔다. 지난번 헬기사고로 미국과 북한간에 커뮤니케이션채널이 구축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앞으로 몇달안에 연락사무소가 교환설치될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과 북한간에 연락사무소가 설치되면 북한과 미사일수출문제,재래식군비의 감축,한국전 실종미군유해송환문제등을 협의해나갈 것이다. 북한의 인권문제도 짚어야 할 사항의 하나며 미국은 북한의 인권이 국제적 기준에 부합되기를 바란다. 북한은 한국형 경수로 공급에 동의하지 않고있다.북한은 여전히 한국형을 거부하고 있으며 아직도 협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한국형 경수로의 공급이 불가피하다는 우리의 입장은 분명히 알고 있다. 헬기사건을 다루면서 북한 군부와 외교부간에 특별한 마찰이 있었다고는 생각지 않으며 김정일이 국정을 장악,통치하고 있으며 조종사의 석방도 그의 결정이라고 들었다. 북한이 이란에 1∼2개의 핵무기제조기술을 수출했느냐고 물었는데 이는 처음 듣는 것으로 그렇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이 만약 핵합의를 실천하지 않고 대결노선을 취한다면 그때는 불가분 다시 국제제재국면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솔로몬소장=북한을 핵비확산체제로 묶어두는 것은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앞으로 북한이 경수로를 완공한 뒤에도 비확산체제의 취약점이 보강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제네바합의이행을 촉구하고 그리고 한반도및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서는 국제적 연대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오버도프연구원=지난 14일부터 21일까지 북한의 평화및 군축연구소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김정일은 못 만났으나 김영남외교부장,김용순노동당대남비서,김정우대외경제위원장등을 면담했다. 북한측의 주장을 요약하면 북·미합의의 철저한 이행을 요청하고 있으며 남북대화재개를 위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했다.그리고 적개심을 버릴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가지 관심을 끄는 것은 그들은 남한의 조문봉쇄문제에 대한 김영삼대통령의 사과를 요청하면서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과를 하면 족하다』는 입장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휴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에 관심을 보이며 미국과의 직접협상을 통해 이의 해결을 원하고 있었다.북한은 평화협정의 전단계로 중간과정의 협정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으나 그들은 이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분명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미국과 북한간에 직접적인 군사회동을 가지면서 비무장지대의 긴장축소와 신뢰회복을 꾀해나가자는 것같았다.북한은 남북대화와 연락사무소설치등 북·미합의이행을 공식연계하거나 전제조건으로 내건다면 이를 단호히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 미,대북합의 이행 조건/남북대화 재개 최우선/미 국무부 부차관부

    【워싱턴=이경형특파원】토머스 허바드 미국국무부 부차관보는 31일 미국이 현재 북한·미국 합의 이행과 관련해 남북대화 재개에 『최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허바드 부차관보는 미 헤리티지 재단이 마련한 「클린턴행정부의 북핵협상­ 위험과 기회들」이란 제목의 세미나에 참석해 이같이 지적하고 북·미간 연락사무소 교환과 관련,『지난번 미 헬리콥터 사고로 (북·미간에)커뮤니케이션 채널이 구축돼야 할 필요성이 (다시 한번) 제기됐다』고 밝혔다. 그간 북·미 기본합의를 비판해온 프랭크 머코스키 미상원의원(공화·알래스카)은『클린턴 행정부가 남북대화 재개를 북·미합의 이행 조건으로 확실히 못박지 않은 것은 실책』이라고 거듭 지적하면서 이로 인해 『남북대화 전망이 극히 어두운 현 난국을 타개할 묘안이 없는 형편』이라고 강조했다. 현홍주 전주미대사는 한국민이 『북·미간 기본합의의 내용보다는 합의가 도출된 과정과 형식을 우려하는 것』이라면서 『북한이 북·미 합의 이행과 관련해 한미관계를 이간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창윤 국제교류재단이사장도 『미·북관계가 중요한 전기를 맞고 있는 만큼 한미 두 나라의 대북 관계가 미국의 일방 통행이 아닌 상호 긴밀한 협조 속에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미,한국차시장 개방 촉구할듯/공 외무 새달 방미때

    ◎통상실무협상 진전 없어 【워싱턴 연합】 미국은 내달초 공로명 외무장관의 방미때 자동차시장을 비롯한 통상문제를 주요 안건으로 거론할 움직임이다. 미통상 관계자들은 지난주 워싱턴에서 한미 통상실무협의가 열렸으나 미국측이 특히 관심을 갖고있는 자동차·쇠고기 및 의료기기 부문에서 진전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미 정부는 공장관에게 이들 통상 현안 해결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도록 촉구할 것이라고 미 관계자들은 말했다. 이들은 자동차의 경우 미일 협상이 이번주 워싱턴에서 재개되는 등 미국이 특히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분야임을 상기시키면서 따라서 관련 대한 압력도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미 관계자는 미키 캔터 무역대표가 최근 디트로이트에서 미국 3대 자동차 메이커회장들과 만나 미일 자동차 현안을 주로 언급하면서 한국 시장문제도 거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주미대사관측도 지난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한미 통상실무협의에서 별다른 진전이 없었음을 강력히 시사한 바 있다. 미 관계자들은 한미 통상실무협의가 오는 3월쯤 재개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 “북 연락사무소 남북문제 해결 채널로”/부임 앞둔 박건우 주미대사

    박건우 신임주미대사는 25일 부임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워싱턴에 북한연락사무소가 개설되면 이 연락사무소를 「우리 문제를 우리가 푸는 틀이나 채널」로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남북대화는 북·미간 연락사무소개설의 전제조건인가. ▲양자가 잘 조화돼 이뤄지도록 한다는 게 한미양국 정부의 기본입장이다.양국은 조만간 이 「조화방안」을 가시화시킬 것이다.북한이 합리적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은 막지 않을 것이다. ­한미관계를 새로 설정할 의향은. ▲미국과의 관계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양국간의 관계는 튼튼한 동맹관계 축에 서있다. ­최근 미국이 대북관계를 진전시키며 한국을 따돌린다는 지적이 있는데. ▲북·미간의 접근으로 한국이 소외되고 있다는 것은 기우다.미국측이 우리와 북한을 놓고 저울질할 때 어디를 중하게 여기겠는가.
  • 레이니미대사­현홍주「북한」대담/“김정일 건재…「숨은 권력자」있는듯

    ◎살아 남으려 주체사상도 포기한듯/개방폭·속도 내부이견… 일정 늦어져/남북비교 우려,사사건건 한국기피 제임스 레이니 주한미국대사는 20일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을 극복하여 살아 남기 위해 제네바 미­북협상에서 주체사상을 포기하고 핵동결에 합의를 했다고 말하고 개방폭과 속도의 이견때문에 늦어지고 있으나 북한은 개방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레이니 대사는 이날 밤 방영된 MBC­TV 특별대담(현홍주 전 주미대사)에서 지난번 미군헬기 조종사를 송환토록 최종결정을 내린 것은 김정일이 아니라 「다른 권력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다음은 대담요지. ▲현홍주전대사=북핵사태,김일성사망,미국 의회선거에서의 공화당 압승등 94년은 한국과 미국 양국의 입장에서 참으로 다사다난 했던 한해였습니다. ▲제임스 레이니대사=다사다난 했다는 표현이 적절한것 같습니다.중요한 일이 많았는데 전반적으로는 괜찮았던 한해인 것 같습니다.북한의 전면 핵사찰거부로 긴장이 조성됐고 그래서 미국이 패트리어트 미사일,신형 헬리콥터,적의 포대위치 확인 레이더등 첨단무기와 항공모함을 한반도와 주변 해역에 배치했었죠.이런 조치들이 없었더라면 미­북간의 제네바합의가 실현되지 않았을 것입니다.또 분명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것이죠.다행스럽게 한­미양국이 바라는 쪽으로 타협이 이뤄져 제재조치와 같은 쪽으로 상황이 나아가지 않았죠. ▲현홍주=그러나 미­북협상과정에서 한국이 소외됐다는 점을 우려하는 한국인이 적지 않습니다.더욱이 제네바합의사항이 제대로 이행될지,그리고 믿을수 없는 상대인 북한과 그같은 합의를 한것 자체가 잘 된것인지 우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레이니=미­북간 제네바 협상과정에서 미국은 한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모든 회담관련 자료를 한국측에 전달했습니다.갈루치특사는 북한과의 협상이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매일 진지하게 겸토했습니다.그러나 현실적으로 회담은 미국과 북한 양국 대표만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기 때문에 한국측에서 소외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이 그토록 자부심을 갖고 주장해온 자신들의 노선,즉 주체사상을 포기했다는 점입니다.북한은 오랜세월 많은 손실을 감수하며 자기들의 노선을 추구해왔습니다.물론 북한은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최소의 희생을 치르고 최대의 이익을 챙겼다고 주장합니다.그러나 누구도 북한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수 있습니다.사실 북한은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까지 말할수 있습니다.특히 미 행정부는 남북대화가 궤도에 들어서야 한다는 점을 중시,제네바합의에 남북대화 조항을 삽입했습니다.협상과정에서 북한은 한국을 배제시키려 애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한­미양국은 북한의 이같은 의도를 인식해야 할뿐 아니라 더욱 긴밀한 양국의 유대관계로 그같은 의도를 무산시켜야 합니다. ▲현홍주=지금까지 북한측은 제네바합의를 충실히 이행하려 하고있습니까. ▲레이니=지금까지는 성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북한에서 일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대표들은 핵연료봉을 봉인하고 핵물질 추출을 방지하는 등의 작업과정에서 전혀 방해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지금 미국의 기술진도 영변에 가있습니다만 작년이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죠. ▲현홍주=제네바합의 사항인 한국과의 직접대화를 망설이는 북한의 태도를 어떻게 보십니까.그들은 또 한국형 경수로를 기피하고 있는데. ▲레이니=북한은 어떻게 해서든 한국을 애먹이려고 합니다.미국도 북의 이런 태도때문에 난처한 것이 사실이죠.그러나 남북대결은 이미 남쪽의 완승으로 끝났습니다.그래서 북한은 어떻게 해서든 한국과 비교되는 것을 피하려고 합니다.경수로 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미국은 한국 말고는 세계 어느나라도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반면에 한국이 경수로를 지원하는 것은 한국의 국익에도 보탬이 된다고 봅니다.수십억달러에 달하는 경수로 건설과 운용과정에서 건설을 비롯한 경제 여러부문에 파급효과를 기대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홍주=북한 내부상황으로 얘기를 돌려보죠.김정일의 건강문제,심각한 경제난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레이니=북한에 관한 정보는 제한된 것이어서김정일의 건강은 어느정도이고 왜 아직 주석에 취임하지 않는지 오리무중인 부분이 많죠.다만 그가 아직은 건재하다는 정도는 알수 있습니다.그러나 지난번 미군 헬기사건때 조종사석방 교섭에서 밝혀진 사실은 북측에도 틀림없이 어떤 문제에 대해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점입니다.북한은 조종사석방이 김정일의 결정이었다고 했지만 그것은 김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결정일 수도 있습니다.김의 더 이상 동향과 정치세력내의 파벌투쟁에 대해 현재로서 정확히는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 경제가 심각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북한은 개방을 하지않고는 필요한 경제지원과 교역확대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그래서 제네바합의도 한것인데 개방폭과 속도에 여러 견해가 있는것 같아요.그래서 개방이 다소 지연되고 있는데 분명한 것은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선 개방을 서두르고 확대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 주미대사 박건우씨

    정부 임명 정부는 17일 주미대사에 박건우 외무부차관을 임명했다. 박신임대사는 오는 30일 부임한다.박차관의 후임으로 내정된 이시영오스트리아대사는 20일 귀국한다. ◎대미업무 13년 전담 “베테랑”/박건우 주미대사(얼굴) 직업외교관으로선 첫 주미대사에 발탁된 행운아.63년 외무부 입부이래 32년의 경력중 미국 관련 업무만 13년간을 맡아왔다.많은 미 행정부와 의회,학계 인사들과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깔끔한 업무처리가 강점이지만 지나치게 매끄럽다는 지적도.부인 문희옥씨와 1남1녀.취미는 음악감상 ▲대전 58세 ▲서울대 법학과졸 ▲미주국장▲캐나다 대사 ▲월드컵 유치위원회 사무총장 ▲외무부차관
  • 정부 대북정책 강성 전환/공외무 시사

    ◎남북 기본합의­북미합의 철저이행 촉구/일방적 양보 않고 인권문제 적극 제기 정부는 최근까지의 대북정책이 다소 무원칙적 온건론으로 흘러 외교정책 전반에 걸친 혼선을 초래하는 요인이 됐다는 자체분석에 따라 대북정책의 기조를 강성쪽으로 조정·정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에 따라 북한에 남북기본합의서와 북미합의서의 철저한 이행을 촉구하는 한편 북한의 인권상황의 문제점을 적극 제기하는등 남북관계 및 남북한을 둘러싼 4강 외교에서 주도권을 잡아나가기로 했다. 공노명 외무부장관은 3일 새해 시무식에서 『세계는 탈냉전 속에서 새로운 국제질서를 모색하고 있으나 남북한은 여전히 분단국가로 남아 화해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불확실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남북관계에서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잡아가는 것이 올해의 가장 중요한 외교과제』라고 강조했다. 공장관은 『우리의 안보여건은 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과 비핵화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면서 『북­미합의서의 실천도 1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검증돼야 하며,첫 관문이라고 할 한국형 경수로에 대한 북한의 합의 도출에는 상당한 우여곡절이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외무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공장관의 발언과 관련,『대북관계에 대한 명확한 원칙을 설정함으로써 앞으로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불필요한 양보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것이 공장관의 방침』이라고 말하고 『앞으로 남북관계와 남북을 둘러싼 외교에서 이제껏 보다는 강경한 정책이 채택될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지난해 말 당시 한승주 외무부장관과 한승수 주미대사,공노명 주일대사,황병태 주중대사,김석규 주러시아대사등 4강 대사가 참석한 「북한정책토론회」에서도 이러한 의견이 집중적으로 제기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덕부 총리겸 통일원장관도 통일원 시무식에서 『최근 북한에 대한 이런저런 상황분석이 나오지만 기대와 희망사항이 포함된 것이 많아 현실로 착각해서는 안된다』며 근거없는 대북 온건론을 경계했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4각 외교」와 대사인사(청와대)

    김영삼대통령은 한승주전외무부장관을 좋아한다.깔끔하고 지적인 스타일을 대통령은 좋아한다.그의 재임중 업무평가도 대통령의 기대에 그리 어긋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한장관은 장관직을 물러나더라도 주미대사나 주일대사쯤으로 가지 않겠느냐 하는 예상이 있었다.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문민정부의 첫 외교안보수석이었던 정종욱씨도 비슷한 하마평에 올랐었다.그 또한 대과 없이 외교안보참모라는 어려운 자리를 소화했었다.그가 유임되지 않는다면 주요국 대사로 기용되는 것이 당연시됐었다.그런데도 28일 발표된 주요국 대사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주요국 대사 모두에 차관급 직업외교관들이 기용된 것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세계화의 전진기지 역할을 해외공관들이 맡아야 하므로 정치적 비중보다는 커리어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주조다.외교관 인사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평가도 있고 국가의 인재운용에 외교관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 하는 견해도 있다. 모두 이유가 있는 분석들이지만 대통령이 직업외교관들을 고집한 진짜 이유는 「나라의 자존심」 때문인 듯하다.청와대 참모들이 그렇게 분석을 하고 있고 그동안 김대통령이 주장해 온 『한국의 위상이 엄청나게 달라졌다』는 말과도 맥이 통한다. 주요국의 대사란 자리는 화려해 보인다.그러나 실상은 주재국 외무부의 차관보들이 주된 대화 파트너들이어서 안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점이 많다.김대통령은 차관보나 상대해야 하는 자리에 장관을 지낸 인사를 보내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국가의 위상과 걸맞지 않고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이다. 정권창출 과정에서 중요한 자리에 있었던 C모씨등도 주미대사등을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학교로 돌아간 한전장관도 주요국의 대사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김대통령은 이런 점을 알고 있었음에도 관례를 깨고 차관급 인사들을 주요국 대사로 발령했다. 김대통령의 해외공관장에 대한 이런 인식은 정권출범 초기와는 다른 것이다.주미대사에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한승수현비서실장을 보냈었고,주중대사에도 당의 3역을 지낸 황병태씨를 기용했었다.때문에 주요국 대사는 차관급이면 된다는 인식은 그 뒤에 생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누가 그런 인식을 대통령에게 심어주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다만 청와대 참모들은 아니라는게 정설로 돼 있다. 대통령은 우리가 강대국이라고 생각한다.28일 기자단과의 송년오찬에서도 서울에 1백45개국 공관이 있는데 그런 나라가 몇 안된다고 했다.우리나라가 그렇게 중요한 나라라는 반증이라는 것이다.새해에 우리나라를 방문하겠다는 외국원수들이 너무 많아 선정에 애를 먹고 있다고도 했다.우리에게도 도움이 돼야 하므로 「짜게」선정을 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교역규모 세계12위국은 김대통령이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가장 자주 쓰는 말이다.대통령의 이런 생각은 지난 여름에는 『우리도 이젠 중요한 나라,강국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4강(강)외교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면서 『이제 4각(각)외교라고 쓰자』고 제안하기에 이른다. 한국은 위대한 나라라는 식의 인식이 반드시 좋은 것이냐 하는데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직업외교관들,그것도 차관급 인사들로만 주요국 대사를 채우는 일본식 인사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어찌됐든 대통령이 나라의 위상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점은 여러모로 국가운영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 주요 공관장·외무차관 내정

    ◎주미대사 박건우/주일대사 김태지/유엔대사 박수길/주독대사 홍순영/외무차관 이시영 정부는 28일 공석중인 주미대사에 박건우외무차관을,주일대사에 김태지주독대사를 내정하는등 조만간 대사급 공관장 20명에 대한 인사를 대대적으로 단행할 방침이다. 정부는 또 주유엔대사에 박수길외교안보연구원장,주독일대사에 홍순영 전외무차관을 각각 내정,곧 해당국에 아그레망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외무차관에는 이시영 주오스트리아대사가,외교안보연구원장에는 이정빈연구위원이 각각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공관장인사에서 황병태 주중국대사와 김석규 주러시아대사는 유임될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종욱 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은 유럽지역 대사로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이와함께 외무부 본부에 대한 인사를 곧 단행,외무부 1차관보 직무대리에 이재춘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부장,기획관리실장 직무대리에 김항경 주LA총영사,외교정책실장 직무대리에 번기문 주미공사,의전장에 문동석 주터키대사를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사급 내정인사는 외부인사기용을 배제하고 정통외무관료출신을 중용한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세계화와 통일대비 실무내각이 구성된 만큼 외무부도 김대통령의 신외교를 적극 뒷받침하기 위해 정통외무관료출신으로 주요 포스트를 포진했다』며 이번 인사특징을 설명했다. 주요 재외공관장과 차관보급 이상 본부의 간부인사 내정이 마무리됨에 따라 근무지 이동등 국·과장급에 대한 대대적인 정기인사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 정통 외교관 중용… 세계화 역량 강화/주요 공관장 인사(해설)

    ◎외부영입 철저 배제… 세대교체 가속화 예고 28일 주미,주일대사 등 주요국 공관장 내정자가 밝혀짐으로써 드러난 「문민」제2기 외교사령탑의 특징은 학자나 정치권인사등 외부인사의 기용을 철저히 배제하고 정통외교관료들을 주요 포스트에 대거 포진시킨 점을 들 수 있다.외교문제 전문가들은 신임 공로명장관이 최근 국정의 최대목표가 된 「세계화」역량집결을 위해 실무에 밝은 직업외교관들을 중용시킨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또 이번 공관장인사를 통해 외무고시 1회(68년)이재춘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부장이 처음으로 1차관보에 내정,승진함으로써 직업외교관들의 세대교체바람이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외무부 자체에서조차 「놀라운」인사로 평가되고 있는 부분은 박건우차관의 주미대사 내정.당초 김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정치권인사나 학자등 외부인사출신이 유력시돼 외무부로서는 기대를 하지 않았던 영역이었다.더욱이 박차관의 기용은 49년 초대 장면대사이후 정통외무관료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주미대사에 발탁된 케이스다.박차관은미주국장과 캐나다대사등을 역임,부내에서 미주통으로 알려진 정통외교관료. 80년대이후 11대 대사는 군출신인 유병현대사,12대는 청와대비서실장을 지낸 김경원대사,13대는 외무장관을 지낸 박동진대사,14대는 안기부1차장등을 지낸 현홍주대사,15대도 장관등을 지낸 한승수대사가 봉직,그동안 주미대사 자리는 하나의 「정치적 자리」로 여겨져 왔었다. 주일대사의 경우도 최근 들어서야 정통관료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자리.이 자리에 내정된 김태지대사는 고시8회출신으로 주일정무과장,아주국장등을 거치면서 공장관과 더불어 일본통으로 꼽힌다.일본어가 능숙해 일찌감치 일본대사 하마평에 0순위에 지목됐었다.이원경(9대)·오재희(10대)·공로명대사(11대)가 있기 전까지 김정렴(6대·청와대비서실장출신)·최경록(7대·군출신)·이규호씨(8대·장관출신)등 정치적 인물들이 대부분 임명됐다. 박수길 외교안보연구원장의 유엔대사기용,이시영대사의 외무차관 기용은 특히 정부의 세계화 구상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박원장은 유엔의 군축분야 위원회가 몰려있고 국제기구 본부가 소재한 제네바대사를 역임,다자외교에 나름대로의 식견을 가진 인물이며,이대사는 사무관시절부터 거의 본부와 유엔을 오간 전형적인 「유엔통」으로 알려져 있어 두사람 모두 다자외교에 강한 인물들이다.95년 유엔총회에서 한국의 「96∼97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목표를 앞두고 이들의 팀 플레이가 기대되고 있다.
  • 신임 외무·비서실장/공·한대사 귀국

    「12·23」개각에서 외무부장관으로 임명된 공로명 전주일대사가 25일 하오 대한항공편으로 귀국했다. 이어 청와대비서실장으로 임명된 한승수 전주미대사도 이날 하오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이들은 26일 청와대에서 각각 임명장을 받고 취임식을 가진뒤 업무에 들어간다.
  • 미·일·중·러·유엔/「빅5대사」 관심 집중

    ◎외무부주요 포스트 하마평 무성/한승주·김철수·정중욱·홍순영·박수길씨 물망/“안정 겨냥 무리한 인사 않을 것” 조심스런 관측 「12·23」개각으로 한승수주미대사등 주요국대사들이 입각하거나 청와대로 자리를 옮김에 따라 대사자리가운데 핵심인 「빅5」에 누가 임명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빅5」는 미·일·중·러등 4강대사와 유엔대사를 일컫는 외교가의 별칭. 이들 「빅5」인사는 23일 차관급인사직후 또는 늦어도 새해 초까지는 마무리될 전망이다. 이처럼 「빅5」인사가 거론되는 것은 한주미대사가 청와대비서실장으로,공로명주일대사가 외무부장관으로,유종하유엔대사가 청와대외교안보수석으로 각각 입각 또는 영전한데다 황병태주중대사,김석규주러대사도 대체로 대사 평균재임기간을 초과하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이번 후속인사에서는 고시13·14회의 뒤를 이어 외시1회가 처음으로 차관보급에 발탁될 전망이어서 외무부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어닥칠 것인지 여부 또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외무부의 「맏형」격인 공로명대사가외무장관에 임명됨에 따라 서열을 뛰어넘는 무리한 인사보다는 체제안정적인 안정적인 인사가 주류를 이루지 않겠느냐는 것이 부내의 조심스런 관측이다. 25일 현재 주요국대사자리에 하마평이 오르내리는 인물은 모두 9명.한승주전외무,김철수전상공,박수길외교안보연구원장,신동원전외무차관,홍순영전외무차관,김태지주독일대사,이시영주오스트리아대사,장만순주EU대사,정종욱전외교안보수석등이다. 주미대사는 전직 장관이나 청와대비서실장등이 전통적으로 차지해왔던 「정치적인 자리」.이 자리에는 한전장관과 정전수석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그러나 한전장관은 모교강단으로 돌아갈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으며 정전수석은 청와대로 들어올때 교수직에 사표를 던지고 와 「구제」차원에서 거론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어 아직 누구라고 지목하기에는 불투명한 상태다. 김전상공은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의 진출가능성이 희박한 상태인데다 김영삼대통령이 주요국대사 임명에도 세계화의 추진과 통상관계에 비중을 둘 것이므로 어떤 식이든 중용이 예상된다.통상관계 현안이 산적해 있는 미국 또는 EU대사의 기용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주미대사로는 정치적인 인물이 「배치」되는데 반해 주일대사는 전문외교관출신의 「자리」라는 것이 특징.과거 이원경·오재희·공로명씨등이 그래왔다.이에 따라 박원장,김주독대사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으며 홍전차관이 내정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유엔은 우리 외교다변화의 전진기지라는 점에서 풍부한 경험과 실력을 겸비한 직업외교관이 임명될 것으로 전망된다.이 때문에 홍전차관,박원장,장주EU대사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황주중,김주러대사의 귀국이 확실해지고 있는 가운데 주중대사에는 중국전문가로 알려지고 있는 정전수석등이 갈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으며 이주오스트리아,장주EU,박원장등도 자주 거론되고 있다.
  • 장관 스타일·진용개편 “촉각”/새장관 첫출근… 각부처 표정

    ◎대사3명 영전… 연쇄승진 부푼 꿈/외무부/국민 존중·상식에 의한 행정 다짐/내무부/“신경제 첨병”… 무역전뱅 「전의」 고취/통산부 ▷총리실주변◁ ○…행정조정실장과 비서실장 인사를 기다리고 있는 국무총리실은 인선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했고 오린환장관이 유임된 공보처는 평소와 다름 없이 차분한 분위기 속에 새로운 결의를 가다듬는 모습. 이홍구 국무총리는 상오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각료 임명장 수여식과 임시국무회의에 참석한 뒤 하오에는 사무실을 이전한 재정경제원과 건설교통부를 방문했으며 서울 상계동에 있는 시립노인요양원을 위문하기도. 장관이 바뀐 총무처·법제처·정무장관실은 이·취임식과 상견례 등으로 조금은 들뜬 분위기. 서석재 신임총무처장관은 국무회의가 끝난 뒤 곧바로 청사로 돌아와 이·취임식을 갖고 직원들과 상견례. 서장관은 본인이 직접 작성한 취임사에서 ▲개혁의 지속적인 추진 ▲행정서비스 수준의 질적 향상 ▲공직사회의 안정 도모 ▲성실한 업무 풍토 조성등 4가지를총무처의 역할로 제시. 오공보처장관은 직원조회를 소집해 공보처가 세계화의 첨병이 될 수 있도록 마음가짐을 가다듬을 것을 당부. 오장관은 『개혁을 국민들에게 잘 알린 부처로 인식돼 유임된 것 같다』면서 『모두 여러분들 덕분』이라고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 신임 김기석 법제처장은 청와대에서 돌아와 간부회의를 갖고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자리에서 세계화와 통일에 대비한 법령의 입법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당부. 뜻밖에 정무1장관에 취임한 김윤환장관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기자실을 찾아 출입기자들과 잠시 환담했고 김장숙 신임정무2장관은 직원들과 상견례를 마친 뒤 낮 12시쯤 퇴근. ▷재정경제원◁ ○…강봉균 전 경제기획원 차관과 김용진 전 재무부 차관을 비롯한 양 부처의 차관보 등 통합된 부처의 정무직들의 신분이 법적으로 애매한 상태.새 정부조직법 및 직제령은 「일반직은 개편 전 부처 소속으로 본다」는 경과규정이 있으나 정무직에 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기 때문. 재경원의 후속 인사에서는차관과 차관보 자리가 한명씩 줄어들며 누군가 현 직책에서 떠나게 돼 있어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도 멋쩍은 표정. 재경원 차관실은 아직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 주인인 강기획원차관이 임시로 사용 중인 반면 김재무부차관은 재경원이 쓰는 옛 농림수산부 차관실에 의자를 마련. 국·과장급과 하위 직원들도 재경원장관의 인사 발령이 나지 않은 상태라 『현재 공무원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며 「무임소」의 처지를 자조. 한편 과천청사의 사무실 이전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늦어져 재정경제원 등 경제부처의 행정공백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 ▷통일원◁ ○…김덕신임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이 24일 상오 열린 취임식에서 내년을 「신통일원의 원년」으로 설정했다면서 「업무 니힐리즘(허무주의)」의 청산을 주문하자 통일원 직원들은 아연 긴장하는 분위기.김부총리는 이날 『모든 조직은 기능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퇴화될 수 밖에 없다』면서 『통일이 오늘 내일 되는 것도 아니고 구름잡는 얘기니까 업무니힐리즘에 빠지기 쉬운 만큼 일에대한 열정과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직원들의 분발을 강도 높게 촉구. 김부총리는 취임식이 끝난뒤 송영대차관,김경웅대변인등 간부들과 함께 곧바로 청사 5층 기자실에 들러 자신의 통일관을 피력.그는 『통일을 너무 거창한 과제로 생각해 다분히 신화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제 신화의 영역에서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내려야 한다』면서 통일논의의 「탈신화화」와 통일 준비태세의 확립을 강조. ▷외무부◁ ○…일본에서 잔무를 정리하고 있는 공로명 신임장관이 귀국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주미대사등 공석이 된 공관장등의 후임인사에 관심이 집중.23일의 개각으로 주미대사와 함께 유엔대사,주일대사등의 자리가 빈데다 당초 연말에 공관장 및 본부 보직에 대한 인사가 예정돼 있어 구체적으로 이름이 거명되는등 외무부 직원 전체가 인선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 한편 한승주 전장관은 24일 상오 종합청사 19층 대회의실에서 이임식을 갖고 『지난 22개월 동안 한국 외교의 새로운 방향을 열어 놓은데 보람을 느끼며 아쉬움 없이 떠난다』고 감회를 피력. ▷주미대사관◁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된 한승수주미대사는 23일 하오 대사관에서 이임행사를 가진데 이어 24일 상오 (미국시간)서울로 떠난다.이날 주미대사관 직원들은 한대사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영전되어가는 데다 이번 개각및 청와대비서실 개편으로 주미대사,주유엔대사,주일대사등 주요 포스트의 대사자리가 세자리나 비기 때문에 외무부에 연쇄 승진바람이 불것으로 기대,상당히 즐거워하는 표정들. 특히 대사관 관계자들은 외무장관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 직업외교관 출신들이 기용된 사실에 매우 흡족해 하면서 『공로명신임외무장관과 유종하외교안보수석 모두가 북한핵문제에 대해 강성입장을 갖고있어 북한측이 미·북한기본합의문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단호히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기도. ▷주일대사관◁ ○…40년 가까운 정통 외무관료 생활 끝에 장관으로 발탁된 공로명신임장관은 일본국왕 탄생일인 23일부터 25일까지의 연휴에도 불구하고 공관에 출근한 간부진및 필수요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이임준비에 바쁜 모습. 공신임장관은 임명사실을 23일 왕궁 연회석에서 전달받고 바로 일본 국왕에게 『앞으로 못 뵙게 될 것』이라고 이임 인사를 한 데 이어 저녁에는 고노외상 주최의 리셉션에 참석,주로 주일 외교사절단인 참석자들과 이임인사. 25일 상오 10시 대사관 직원등이 참석한 이임식을 가진 뒤 곧 이어 하오 3시50분 KAL 001기 편으로 귀국할 예정인 공장관은 일본 정부 관계자등과의 공식 이임인사는 불가능한 형편이어서 주로 전화로 석별의 정을 나누기도. 한편 대사가 장관으로 영전한 데 대해 대사관 직원들은 『경력과 능력으로 보아 당연한 일』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않으면서 후임대사로 물망에 오르내리는 P모씨,K모씨 등의 이름을 놓고 『정치논리를 벗어나고 있는 대일관계를 원만히 처리해 나가기 위해서는 외교실무와 일본에 대해 잘 아는 분이 임명돼야 할 것』이라고 나름대로의 희망을 피력하기도. ▷내무부◁ ○…김용태 신임 장관은 이날 상오 대회의실에서 본부의 과장급 이상,경찰청의 경무관 이상 간부등 1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취임식을 가진데 이어 하오에는 실·국별 업무보고를 받는 등 첫날부터 강행군. 업무보고를 마친 김장관은 종로소방서 「119 긴급구조대」와 서울 명동파출소를 차례로 방문,성탄절을 앞두고 비상근무에 들어간 소방관과 경찰관의 근무상황을 점검하고 곧바로 서울 종로구 구기동의 청운양로원을 찾아 노인들을 위문. 한편 김장관은 취임식에서 「세계화」에 이어 내년 6월의 지방 동시선거,민생치안,공직기강,빈발한 대형 사건사고 등 내무행정 현안을 두루 언급하며 진단과 처방을 제시하는 기민함을 보여 눈길.특히 지방세 비리와 관련,김장관은 『국민을 경시하는 데서 연유한 범죄행위』였다고 진단하고 『국민을 존중하고 무서워할 줄 아는 공직풍토』를 소리 높여 강조. 김장관은 『비록 행정경험은 없지만 「건전한 상식」으로 내무 행정을 통찰·판단하고 최종 정책을 결정해 나가겠다』고 「상식론」을 피력. ▷국방부◁ ○…국방부는 대폭 개각이 있은 다음날인 24일 「전날의 대량진급」 충격속에서 깨어나 다시 업무에 몰두하는등 「정상」을 회복했다.그러나 군관계자들은 앞으로 차관인사나 후속인사가 어떻게 될 것인지 저마다 점을 치는등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관계자들은 이번 장관 및 육군참모총장인사의 여파로 육군의 경우 윤용남육군참모총장의 선배인 2명의 대장이 조만간 거취를 표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또 총장과 동기인 2명의 대장도 임기가 내년 초에 끝나게 됨에 따라 용퇴 내지는 자리이동이 점쳐지고 있다. ▷정보통신부◁ ○…체신부에서 확대 개편된 정보통신부는 이날 상오 10시 경상현 초대 장관의 취임식에 이어 현판식을 거행하는 등 시종 엄숙하고 고무적인 분위기 속에서 새 부처의 출범을 자축. 이와함께 부처의 약칭을 정통부로 하고 영문표기도 종전의 「MOC」(Ministry of Communications)에서 「MIC」(Ministry of Information & Communications)로 변경. ▷건설교통부◁ ○…건설교통부는 이날 1급 이하 과장급까지의 인사를 단행.오명 장관은 두 부처의 화학적 융합을 위해 대폭 섞을 생각이었으나 기술직의 전문성을 감안,교류의 폭을 당초 구상보다 좁혔다. 이에 따라 국장급은 3명,과장급은 6명씩 교차 임명됐고 1급인 건설지원실장과 수송정책실장은 먼저 부처 출신으로 유임시켰다.기획관리실장은 구 교통부 몫으로 하되 구 건설부 기획관리실장 직무대리이던 박병선씨는 국장으로 발령한 뒤 승진서열 1위로 배려. ▷통상산업부◁ ○…박재윤 통상산업부 장관은 24일 취임식에서 20분간의 「신경제 강의」로 취임사를 대신.그는 『선배 장관으로부터 재무부는 Powerful(막강)하고,상공부는 Colorful(화려)하며,경제기획원은 Honourable(명예롭다)하다고 들었으나 막상 재무부 장관을 80일 정도 해보니 고통스러웠다(Painful)』며 『앞으로 통상산업부가 Colorful에서 어떻게 바뀌어 갈지 보고 싶다』고 말머리를 장식. 박장관은 『신경제는 우리 경제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새로운 경제발전의 메커니즘으로 선택된 것』이라고 설명.이어 『신경제는 통제가 아니라 참여와 창의,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힘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신경제의 주역은 앞으로 통상산업부가 될 것』이라고 강조. 그는 『재무부가 보급부대라면,통상산업부는 전투부대이며,보급부대장에서 전투부대장으로 옮긴 걸 대영전으로 생각한다』며 『대학교수나 경제수석 때에는 개인 아이디어 중심으로 일했지만 앞으로는 구성원의 참여와 창의력에 의존할 생각』이라고 피력.
  • 12·23 개각/주요 포스트 취임 일성

    ◎김용태 내무장관/“내년 지방선거·민생치안 만전” 『갑자기 중책을 맡게 돼 개인의 영광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23일 내무부장관으로 발탁된 김용태 국회 예결위원장은 『앞으로 내년의 4대 지방선거를 차질 없이 공명정대하게 치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장관은 『세무비리사건으로 내무공무원들이 한꺼번에 고통을 당하고 있으므로 사건을 철저히 파헤치되 새로운 공직분위기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역점을 두겠다』고 강조하고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치안확보에도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경북출신의 민정계 중진으로서 요직에 발탁된 것은 내년 선거에서 대구·경북표를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이른바 「TK정서」라는 것은 3대에 걸쳐 대통령을 창출한 뒤 새로운 환경에 대한 허전한 심정을 말하는 것이다.정부가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신뢰를 얻음으로써 치유될 것이다. ­과거정권에서 원내총무와 정책위의장등 요직을 지냈는데 발탁의 배경을 어떻게 보나. ▲14년 동안 의정생활을하면서 경험한 바를 대통령이 시기적으로 활용하려고 판단한 것 같다.특히 민정계로서 기용된 것은 「탈계파·무계보」를 선언하는 김영삼대통령의 조치로 보인다. ­내년 지방자치선거를 집권당 의원이 관리하면 공정성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공정성의 시비가 없도록 철저하고 공명정대한 선거를 치르겠다고 약속할 수 있다.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이라해서 불안감을 갖는 국민이 일부 있을 수 있으나 지금은 지난날의 관권개입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실천으로 보여주겠다. ­복잡·방대한 내무행정의 운용 구상은. ▲어제 대통령으로부터 요직을 맡을 것이라는 귀띔만 받아 아직 업무파악이 안돼 있다.서둘러 업무보고를 받은 뒤 구체적인 방향을 밝히겠다.다만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한데는 내무공무원을 비롯한 공직사회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며 살림규모가 커지면서 생긴 일부 부작용은 제도와 환경을 바꿈으로써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본다. ­전임 최형우장관에 대한 평가는. ▲스타일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최장관은 공무원의 사기진작과 일하는 풍토조성에 전력을 다해 왔다고 본다. ◎서석재 총무처장관/“공직자 신바람 불러일으킬 계획” 『공직사회가 세계화 추진에 앞장서 신바람나게 일하는 터전을 마련하는데 역점을 두겠습니다』 문민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이면서도 뒷전에서 눈물을 삼켜야 했던 「불운의 정치인」 서석재 신임총무처장관은 23일 하오 서울 인사동에 있는 개인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포부를 밝혔다. 서장관은 일찍부터 상도동계에 투신,김영삼대통령을 만드는데 누구보다 헌신한 핵심측근 가운데 한명이다. 그러나 89년 4월 동해 보궐선거 후보매수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고 무소속으로 다시 금배지를 달았으나 지난해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뒤에도 한동안 일본 등지에서 유랑생활을 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정치인으로서 절정기에 5년8개월동안 활동을 유예했던 만큼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 중·하반기에 어떤 형식으로든 「보상」을 받게 될 것으로 주변에서 기대했다. ­청와대로부터 언제 연락을 받았는가. ▲어제 하오 김영삼대통령으로부터 중책을 맡아달라는 통보를 받았으나 어느 자리를 맡을 지는 몰랐다. ­실세 장관으로 내각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나갈 생각인가. ▲「실세」나 「허세」라는 말은 언론이 만들어 낸 것이다. 제발 그런 말을 쓰지 말아 달라. 융화와 화합을 통한 능률적인 활동으로 세계화 추진에 맡은 역할을 하겠다. ­2차 정부조직 개편은. ▲솔직하게 말해 이 자리에 임명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좀더 시간을 두고 파악해야 할 것 같다. ­뚝심있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뚝심있게 사람이기 보다는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장관이 됐으므로 민자당당무위원을 그만 두어야 하지만 장관도 넓게 말하자면 정치를 하는 자리가 아닌가. ­민자당의 전당대회가 대표 경질과 관련 있는가. ▲대표임명도 전당대회를 거쳐야 하므로 당연히 관련이 있다. 하지만 지금이 자리에서는 총무처장관의 역할에 대해서만 물어 주었으면 좋겠다. ◎한승수 비서실장/“「세계화」 플랜 차질없도록보필” 『대통령비서실의 구체적인 운영방향은 귀국하여 김영삼대통령을 뵌 뒤에 구체적인 지침에 따라 마련하겠다.그러나 무엇보다 깨끗한 정치,튼튼한 경제,건전한 사회,통일조국의 국정지표를 구현하고 내각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여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최대한으로 보필하는데 심혈을 다하겠다』 한승수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은 23일 새벽 1시 15분(한국시간 하오 3시 15분) 심야에 워싱턴의 대사관저를 찾아온 특파원들과의 즉석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비서실장을 맡게 된 소감은. ▲여러가지로 부족한 사람이 어려운 자리를 맡아 어깨가 무겁다.대통령의 높은 뜻을 받들어 정치·경제·사회가 안정적으로 발전되도록 노력하겠다.1년8개월동안 주미대사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교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언제 임명소식을 전해 들었는가. ▲시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대통령께서 중책을 맡기기로 결심했을 때 나에게 각오를 다질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한비서실장은 『오늘은 어떻게 보냈느냐』는 나중의 질문에 『오늘 아침백악관과 국무부를 방문해 주요인사들을 만나 귀국인사를 했다』고 말해 오래전에 자신의 비서실장 발탁을 통보받았음을 시인했다) ­청와대의 「상도동 가신그룹」과는 낯이 설지 않은가. ▲문민정부 출범초기엔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지만 거의 2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그같은 용어를 사용해 대통령보좌진을 구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번 발탁 배경 가운데 하나는 세계화를 지향하는 대통령의 국정목표와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문민정부 출범후 1년 10개월간 부단한 개혁을 추진해 왔다.그 개혁을 통해 과거 누적돼 왔던 부작용을 어느정도 없앤 만큼 이제는 이를 바탕으로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다.착실히 앞을 내다보고 나아가야 하며 문호개방과 함께 국민 모두가 세계인으로서 자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외교 통상 등의 분야에 대한 미력한 경험이나마 세계화로 나아가는 데 모두 바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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