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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미대사
    2025-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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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대미화해조치 잇따라/군장성 방미이어 주미대사 곧 귀임

    【워싱턴 로이터 연합】 중국은 이등휘 대만총통의 미국방문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본국에 소환한 이도예 미국주재대사를 2개월여 만에 귀임시키기로 결정,양국간 긴장 해소를 위한 또 하나의 호의적 신호를 보냈다고 미국 관리들이 28일 밝혔다. 이대사의 귀임 결정은 이총통의 미국방문에 대한 보복 조치로 양국간 군사교류를 금지한 이후 처음으로 인민해방군 이희림 광주군구사령관이 미국 국방부의 2차대전 종전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키 위해 하와이로 떠난 것과 동시에 내려졌다. 미국의 한 관리는 중국측에서,이도예 워싱턴주재 중국대사가 『워싱턴에 귀임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국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중국측의 이같은 일련의 긴장해소 신호에 대해,미국 국무부의 니컬러스 번스 대변인은,미국과 중국이 관계 비정상의 기간을 통과했다면서 『우리는 이제 그러한 비정상적 관계가 확대되는 것을 극복,한 고비를 넘겼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 재미 무공무역관 지위개선/뉴욕 등 6곳

    ◎정부기관 인정… 감세 혜택 【워싱턴=나윤도 특파원】 한·미양국정부는 미국에 소재하고 있는 8개 KOTRA(대한무역진흥공사)무역관중 뉴욕·로스앤젤레스·마이애미등 6개 무역관의 법적지위를 외국기관(Foreign Agent)에서 외국정부기관(Government Agency)으로 변경키로 합의했다고 주미한국대사관이 25일 발표했다. 주미대사관측은 『그동안 외국정부기관으로 인정받고 있던 워싱턴등 2개무역관은 제외하고 나머지 6개소는 일종의 로비단체로 분류돼 재산세·부동산세등 각종 세금을 납부해온 것은 물론 미법무부에 매년 2회씩 활동내용을 의무적으로 보고하게 돼있었다』면서 『따라서 우리 무역관의 활동상황이 불필요하게 미측에 노출되는 문제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주미대사관측은 또 『이같은 결정은 지난 93년이래 문제점 개선을 미측에 요구해온 결과 최근 KOTRA의 법적지위 개선에 관한 미정부의 공식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동안 미정부는 KOTRA직원의 부임시 관용비자 대신 취업비자를 발급함으로써 KOTRA직원들은 미국 비자 취득에도 불편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 미 “한국산 감귤 수입 허용”/지난달 24일부터

    ◎수확·포장작업시 양국 검역 등 조건 【워싱턴=김재영 특파원】 미국 농무부는 1일 한국산 제주감귤의 대미수입을 허용하는 최종규정을 발표한다고 주미대사관측이 밝혔다. 미국농무부 동식물검역소는 ▲감귤 궤양병 방지를 위해 수출용 감귤생산지역 주변 4백m에 무병 완충지역을 설치토록 하고 ▲한·미 검역관 합동으로 감귤수출단지에서 수확전후에 현지 검사를 하고 포장작업시에도 검사를 병행토록 하며 ▲포장상자등에 감귤수출이 허용된 주를 표기하는 등의 조건아래 제주감귤의 수입을 허용키로 했다. 주미대사관측은 제주산 감귤의 수입은 지난 7월24일자로 유효하며 감귤궤양병의 전파를 막기 위해 감귤 비생산지역으로부터,캘리포니아·플로리다주 등 생산지역으로의 유통을 금지하는 요건도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 미­중 관계개선 실마리 찾기/내일 브루나이서 양국 외무회담

    ◎「대만 위상」 시각차 “팽팽”… 난항 예상/경제적으르론 서로 “필요”… 절충 가능성 오는 8월1일 브루네이의 수도 반다르 세르 바가완에서 열리는 중국과 미국의 외무장관회의는 두나라 관계의 발전방향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미 외무장관의 이번 만남은 지난 5월말 미국정부의 이등휘대만총통의 방미허용 결정이후 두나라의 최고위급 당국자 회담이라는 무게가 실려있다.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중·미관계를 재검토하고 두 대화 상대국의 현안에 대해 논의,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두나라 관계에 맺듭을 풀어보자는 것이 이번 만남의 직접적인 목표다. 이번 회담은 동남아국가연합의 외무장관회담을 비롯,아세안및 한국·중국·미국등 대화상대국 회담,아세안지역 안보포럼(ARF)등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전보장및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기회를 이용,자연스럽게 마련됐다.이 점에서 지역 안정보장체제 설정문제,남북문제등 두나라의 이해가 얽혀있는 지역 현안에 대한 의견교환도 예상된다. 그러나 이번 회담의 중심은 역시 대만문제다.중국외교부 관계자들은 전기침외교부장과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의 만남에서 중국은 미국측에 대만고위지도자에 대한 방문 불허용과 대만의 국제연합복귀시도등 국제무대 복귀외교에 대한 공동대응등에 대한 약속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미국 국무부는 이같은 중국측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흘리고 있다.이같은 점은 두나라가 쉽사리 합의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등소평사후를 앞두고 있는 강택민정권의 군부등 강경파에 대한 부담과 상·하원의 공화당지배아래 있는 클린턴행정부의 입장으로 볼때 선택의 폭이 넓지는 못할것이란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만 이번 회담이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양측이 동의하고 있으며 서로가 경제적인 이익등의 이유로 아직은 필요로 하고 있는 불안정한 동반자란 점은 엿보게 한다.중국측으로 볼때 미국은 연2백95억달러의 흑자를 내는 황금시장이며 국제무역기구(WTO)가입등과 관련,미국의 지원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대만이 중국에속하는 하나의 성이며 대만문제에 간섭하는 것은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대만은 중국영향권」이란 사실을 기정 사실화시키려하고 있다.이에비해 미국은 표면상 중국만이 유일한 정부라는 「하나의 중국정책」을 지지하고 있지만 대만이 실제적으로 중국영향권밖에 있는 별개의 나라며 별도의 실체라는 사실을 외교정책을 통해 실천해 나가고 있다. 중국측은 이에대해 냉전이후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정책을 노골화했으며 대만의 국제무대 복귀외교를 거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또 대만문제를 통해 중국에 대한 견제를 시작할뿐 아니라 중국내 인권문제에 대한 공세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현재 두나라의 관계를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미국정부가 이등휘의 방미허용으로 인한 악영향을 해소시킬 수 있는 상응하는 행동을 취하는 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이미 공은 미국에 가 있으며 미국의 행동여하에 따라 두나라 관계가 더욱 악화될 수 있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그동안 인사교류중단,주미대사 소환으로 미국의 이등휘총통 방미허용에 대해 대응하더니 지난 6월초 중국계 미국인 인권운동가 해리 우씨에 대한 구속으로 대응의 강도를 한단계 높여왔다.이어 지난 21일부터 26일까지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1백50㎞ 떨어진 대만해협부근에 미사일발사실험을 벌이는가 하면 대만과 마주보이는 복건성에서 군사훈련을 하는등 대만과 미국을 겨냥한 경고성 무력시위를 벌이며 대응강도를 강화시키고 있다. 중국외교부 심국방대변인은 지난20일 외신기자설명회를 통해 『미사일은 중국에 대한 침략과 대만이 분리독립을 시도했을때 사용될 것』이라며 대만의 독립시도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중국은 이미 여러차례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었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회담은 대만문제라는 현안은 논의하지만 양측이 모두 만족스런운 해답을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하지만 이총통이 미국 재방문계획을 포기하는 문제해결의 방안도 모색되고 있어 더이상 양국관계가 악회되는 것을 방지하는 해법이 찾아질 가능성도 없지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외교문서 통신체계 개편/폐쇄회로 온라인망 구축/최승진씨 사건 계기

    ◎편집과정 없애 변조 방지 정부는 주뉴질랜드대사관 외교문서 변조사건을 계기로 현재 외무통신체계에서 수신된 암호문을 편집하는 과정을 없애고 폐쇄회로를 통한 외교통신 온라인망 체제로 개편하는 작업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와 함께 컴퓨터 통신망의 확대로 재외공관 외신담당관의 역할이 사실상 일반공무원인 전산직과 구분이 없는 점을 감안,외신담당관의 직제를 개폐해 나갈 계획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30일 『최근 논란이 된 외교문서 변조사건은 현 외교통신체계상 재발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면서 『본부에서 수신된 암호문을 공관의 외신담당관이 편집하는 과정에서 변조를 방지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이에 따라 미국등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통신 온라인망 구축을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추진중인 통신 온라인망은 일부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데 비선 팩스나 전화기등 폐쇄 통신시설에 특수한 난수체계 전환장치를 부착,사람에 의한 편집과정을 삭제한것으로 현재 주미대사관 등 주요공관에서 일부 시행되고 있다. 이 당국자는 『컴퓨터 통신망이 확대됨에 따라 특수직인 외신담당관의 역할이 전산직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졌다』면서 『이에 따라 외신담당관 업무를 재외공관의 영사직이 함께 맡게하는 방안이나 이를 없애는 직제 조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그러나 전 재외공관의 외신담당관을 일제히 폐지하는 일은 인사체계상 불만이 누적된 외신직 공무원들의 사기를 고려할때 어렵다』면서 『특히 최승진 주뉴질랜드대사관 전행정관 사건을 의식한 조치라는 인식을 우려해서라도 외신직 공무원의 불만을 사지않는 차원에서 조정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김대통령­클린턴 2년새 4번째 대좌/김대통령­방미 여로

    ◎“6·25참전 미군 희생은 한국번영 초석”­김대통령/단독·확대회담 60분… 덕담 교환하며 우호 확인/미 각계 유력인사 4백명 부부동반 초청 환담 김영삼 대통령은 워싱턴 국빈방문 사흘째인 27일 상오 11시40분(한국시간 28일 0시40분·이하 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단독·확대정상회담을 갖고 북한 경수로 지원문제 등 두 나라 사이의 현안을 논의한데 이어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내외신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26일 하오 조지타운대학에서 명예인문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으며 저녁에는 미국의 정계·재계·언론계·문화계 등 각계의 유력인사들을 초청,리셉션을 베풀고 환담을 나눴다. ○회담장 향하며 미소 ▷단독 정상회담◁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의 클린턴대통령 집무실(오벌오피스)에서 20분 남짓 단독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 대통령은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를 취하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 회담에 돌입했다. 양국 정상회담은 지난 93년7월 클린턴대통령의 방한과 93년11월김대통령의 방미,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에 이어 이번이 네번째. 단독정상회담에는 우리측의 유종하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미국의 레이크 백악관 안보보좌관만 배석했다. 두 정상은 여러차례 정상회담과 전화통화 등으로 가까워진 탓인지 회담을 갖기 위해 이동하는 도중에도 시종 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나눴다. ○통상문제 집중 거론 ▷확대 정상회담◁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은 단독정상회담에 이어 캐비닛룸으로 자리를 옮겨 확대정상회담에 들어갔다. 양국 대통령은 확대회담에 앞서 각각 배석자를 소개한 뒤 두 나라 우호관계를 화제로 덕담을 주고 받았다. 약 40분간 진행된 확대정상회담에서는 단독회담에서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그 구체적인 실천방안과 함께 양국간 통상증진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지난해 6월부터 우리 정부가 시행한 외국인 투자환경개선정책을 설명한 뒤 『미국이 지속적으로 한국에 대한 투자를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확대정상회담을 끝낸 양국정상은 단독회담이 열렸던 오벌 오피스로 다시 자리를 옮겨 잠시 환담한 뒤 공동기자회견장으로 이동했다. 확대정상회담에는 우리측에서 공로명외무·박재윤 통상산업부 장관,박건우 주미대사,청와대의 한이헌경제·유종하 외교안보·윤여전 공보수석,임성준 외무부 미주국장이 배석했고 미국측에서는 고어 부통령,크리스토퍼 국무·페리 국방·브라운 상무장관,파네티 백악관비서실장,캔터 USTR(미국무역대표부)대표,레이크 안보보좌관,레이니 주한대사,로드 국무부차관보 등이 배석했다. ○미의 평화지원 다짐 ▷백악관 공식환영식◁ ○…정상회담에 앞서 김대통령은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했다. 레이저 백악관의전실장의 안내로 입장,클린턴 대통령과 인사를 나눈 김대통령은 앨 고어 부통령내외,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존 섈리캐슈빌리 합참의장 등 미국측 환영인사를 소개받은 뒤 사열대로 올랐다. 김대통령은 21발의 예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애국가와 미국국가가 연주된 뒤 의장대를 사열했고 미국 고적대의 분열식을 참관했다. 클린턴대통령은 환영사를 통해 『한·미관계는 상호 고통분담의 역사와 공동목표의 미래를 공유하고 있다』면서 『김대통령의 희생과 집념에 힘입어 한국은 경제성장에 걸맞는 정치적 발전을 이룩했다』고 평가했다. 클린턴대통령은 또 『북한핵문제가 한·미·일 세나라간의 긴밀한 공조체제 아래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면서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남북대화 재개,한반도의 평화와 안정확보를 위한 미국의 확고한 지원을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답사를 통해 『42년전 오늘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참전우방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린 전쟁이 3년만에 역사상 가장 긴 휴전에 들어갔다』고 상기시킨 뒤 『한국국민이 미국의 한국전 참전용사와 국민에게 보내는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미국 젊은이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증언하러 왔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또 『그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4천4백만 한국인은 오늘날 민주주의와 번영을 구가하고있다』고 감사의 뜻을 밝히고 『한국은 앞으로 보다 평화로운 세계,보다 번영하는 지구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미국국민과 굳게 손잡고 나아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5차례 열렬한 박수 ▷미국 유력인사 리셉션◁ ○…김대통령은 26일 하오 백악관 바로 옆쪽에 자리한 코코란 미술관 1층홀에서 톰 폴리 전하원의장,제시 브라운 육군성장관,샘 넌 상원의원 등 미국의 유력인사 4백명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환담을 나눴다. 김대통령은 박건우주미대사의 안내로 리셉션장에 들어선 후 4중주 실내악단의 「아리랑」 등의 연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중앙 플로어에서 45분간에 걸쳐 참석자 전원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 김대통령은 이어 인사말을 통해 『전쟁의 잿더미에서 실의에 빠진 우리에게 미국은 전쟁복구와 경제재건을 위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면서 『어려울 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김대통령이 『한국이 기적을 이루기까지 미국의 도움이 컸다』면서 『그동안 참으로 고마웠습니다』고 인사하자 일제히 박수를 보내는 등모두 5차례에 걸쳐 박수로 호응했다. ○자유는 번영의 열쇠 ▷명예박사학위 수여◁ ○…김대통령은 26일 하오 조지타운대학 본관 힐리홀에서 오도노반 총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명예인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자유는 번영의 열쇠」라는 제목의 학위수락 연설을 했다. 순차통역으로 진행된 연설에서 김대통령은 『한국에서 북한공산주의의 위협은 군사독재를 불러왔고 절대빈곤의 고통은 개발독재를 정당화했다』면서 『그러나 나는 자유와 인권은 양보할 수 없는 권리로 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치임을 확신했다』고 강조했다. ○전화통화도 10여회 ○…스탠리 로스 백악관 NSC(국가안보위) 아시아담당 보좌관은 27일 한·미 정상회담에 앞선 브리핑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 매우 친밀한 관계라며 수치를 비교해가며 강조. 로스 보좌관은 두 정상간의 직접 대좌는 93년 여름 클린턴대통령의 한국방문으로 가진 첫대좌 이래 4번째라고 소개하고 두번째는 블레이크섬 회담후 백악관에서,세번째는 APEC 보고르회담에서라고 발표. 그는 또 양국 정상간에는 전화와 서신교환도 잦다고 설명하고 지금까지 직접 전화통화만도 10차례가 넘는다며 이는 매우 친밀한 관계라고 부연설명. ◎김대통령 미 조지타운대 명박 수락연설/요지 세계 최고수준의 학문적 업적과 교육적 명성으로 빛나는 조지타운대학으로부터 수여받은 이 학위는 나에게 최상의 영예가 될 것입니다.클린턴대통령을 비롯하여 미국과 세계를 이끌어온 이 대학졸업생들,그리고 21세기의 주역이 될 학생 여러분과 동문이 된 이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 대학이 2백여년전,종교적 자유와 미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과정에서 창설되었다는 사실에,40여년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을 해온 나로서는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태평양 너머 동북아 한가운데에 위치한 한국의 지난 반세기는 우리 모두에게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우리는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후 국토분단과 전쟁,그리고 절대빈곤이라는 3중고를 안고 국가건설에 나서야 했습니다.우리는 절망의 어두움으로부터 희망의 빛을끌어내야 했습니다. 대학생으로서 서양철학에 심취해 있던 나는 당시 한국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조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숱한 고뇌를 하였습니다. 나는 미국이 이미 누리고 있던 자유와 평등,풍요와 복지는 다름아닌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맺은 결실임을 확신하였습니다.나는 스물다섯살의 나이로 정계에 투신하여 40여년간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삶을 바쳤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에는 숱한 역경이 있었습니다. 일본 식민통치가 남긴 척박한 토양에 민주주의는 뿌리내리기 어려웠습니다.북한 공산주의의 위협은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군사독재를 불러왔습니다.절대빈곤의 고통은 개발독재를 정당화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유와 인권은 양보할 수 없는 권리로서 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치임을 확신하였습니다.자유민주주의가 빈곤으로부터 해방되는 지름길이며,공산주의의 위협을 극복하는 요체라고 믿었습니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별개가 아니라 자유라는 한 뿌리를 가진 두 가지라는 나의 신념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이러한 신념을함께 한 한국 국민의 기나긴 민주화 투쟁은 마침내 문민 민주주의시대를 활짝 열었습니다. 나는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한국사회에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뿌리내리기 위해 과감한 개혁을 단행해왔습니다. 이러한 개혁조치가 경제를 침체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지금 한국 경제는 몇년전의 만성적 침체를 벗어나 8%이상의 높은 성장을 구가하고 있습니다.정당성과 효율성을 함께 지닌 민주정부만이 국민에게 참다운 번영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오랜 민주화투쟁을 통해 자유 없는 번영은 진정한 번영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자유 없는 번영은 풍족한 노예생활과 같기 때문입니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인류는 새로운 문명을 태동시키고 있습니다.정보화의 거대한 물결이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고 있습니다.동양과 서양이 진정으로 만나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화의 조화」를 통해 인류역사 추진의 두 수레바퀴가 되는 위대한 시대가 열렸습니다. 자유와 정의와 진리의 산실인대학을 비롯한 세계의 지성계가 새로운 문명을 이끌어나가야 합니다.나는 세계공동체의 시대이자 지식사회의 시대를 맞아 세계 대학간의 교류와 협력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해졌음을 강조하고자 합니다.이미 조지타운대학을 비롯한 미국의 대학에서 교육받은 한국의 인재들은 한국사회의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지금도 5만여명의 한국 학생이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이제 세계경제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름으로써 여러분의 새로운 개척지가 될 것입니다. 한·미 우호관계는 자유와 번영의 가치 아래 새로운 세기의 개막과 더불어 더욱 성숙되어갈 것으로 나는 확신합니다.
  • 워싱턴 한·미 인사들 반갑게 공항 마중/김대통령 방미여로

    ◎김 대통령 “「틈없는 동맹」 북한에 보여줘야”/폭서시달린 시카고 방문 때맞춰 비내려 김영삼 대통령은 미국방문 두번째 기착지인 시카고 방문을 마치고 25일 하오(한국시간 26일 상오·이하 현지시간)워싱턴에 도착,3박4일 동안의 국빈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24일 하오 시카고 숙소인 쉐라톤호텔에서 교민초청 리셉션을 베푼데 이어 시카고 외교협회와 미국중부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만찬에 참석,연설을 했다. ○국빈방문 일정 돌입 ▷워싱턴 도착◁ ○…김대통령과 부인 손명순여사는 25일 하오 워싱턴의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박건우 주미대사와 미국 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은 뒤 트랩을 내려와 제임스 레이니 주한미국대사,윈스턴 로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 등 미국측 영접인사들과 주미한국대사관 관계자 및 한인단체 간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나눴다. 김대통령 내외는 교민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양국 국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교민들에게 다가가 악수를 나누며 격려했다. 이에 앞서김 대통령은 이날 새벽 워싱턴 출발에 앞서 시카고 미시간호 주변 축구전용경기장인 숄저필드에서 약 30분동안 조깅을 했다. 김대통령은 경기장을 8바퀴 돌면서 『이 경기장은 지난 94년 월드컵축구대회 개막전이 있었던 곳』이라면서 『오는 2002년 월드컵이 우리나라에 유치되기를 기원하면서 뛰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약 6만명을 수용하는 이 경기장에는 김 대통령의 조깅을 환영하기 위해 경기장 야간조명 등을 모두 켰으며 전광판에는 「환영 김영삼 대통령」과 「시카고 시민 일동」이라는 자막이 조깅이 끝날 때까지 번갈아 나오기도 했다. ▷외교협회연설◁ ○…김대통령은 24일 저녁 시카고시의 아코모빌딩에서 열린 「아·태 번영의 동반자」라는 주제의 연설을 통해 『한·미 두나라가 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토대로 아시아 태평양의 번영을 위해 공동 노력하자』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아코모빌딩 현관에서 존 라이얼리 시카고외교협회장과 토머스 마이너 미국중부위원회 회장의 영접을 받고 엘리베이터를 이용,80층 접견실로 이동한 뒤 참석인사들과 인사를 나눴다. 만찬에서 댈리 시카고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성공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김대통령이 미국 제2의 도시 시카고를 방문해 주신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고 환영한다』고 인사를 한 뒤 김대통령에게 행운의 열쇠를 증정했다. ○시내트라 노래 인용 김대통령은 참석자들이 기립박수하는 가운데 등단,연설 머리에 『시카고가 최근에 혹심한 더위로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비행기에서 시카고에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마침 오늘 비가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좋았다』고 소감을 피력,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김대통령은 또 『한국은 미국 두나라의 올해 교역규모는 5백억달러 수준에 이르고 21세기 초에는 1천억달러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양국 기업인들의 양국의 경제협력 증진을 위해 더욱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시카고를 직접 방문해 보니 역시 가수 프랭크 시내트라가 노래한 것처럼 시카고는 내 마음에 꼭 드는 도시』라고 인상을 피력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웃음과 함께 박수를 치기도 했다. ○주지사 “경협 확대를” ▷주지사 접견◁ ○…김대통령은 24일 상오 시카고 숙소인 쉐라톤호텔에서 짐 에드거 일리노이주지사를 접견하고 기술과 산업협력 증진방안 등 상호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미관계가 과거 일방적인 지원을 받던 단계에서 도움을 주고 받는 동반자관계로 도약했다』면서 두나라의 협력강화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에드거 주지사는 『한국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시카고를 공식방문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면서 『미국 중서부지역 산업중심지인 시카고와 한국간의 실질적인 경제협력이 확대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교포 8백여명 초청 ▷교민 리셉션◁ ○…김영삼 대통령은 24일 하오 시카고 쉐라톤호텔 연회장으로 이 지역 교민 8백여명을 부부동반으로 초청,다과를 베풀며 격려했다. 권덕근 한인회장,고성서 평통지회장 등의 영접을 받은 김대통령은 6인조 실내악단이 가곡 「선구자」와 미국민요 「메기의 추억」 등을 연주하는 가운데 리셉션장에 입장,교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김대통령은 격려사에서 『1893년 미대륙 발견 4백주년을 기념해 열린 시카고 세계박람회에 우리나라는 1천달러 상당의 수공예품을 출품했다』고 시카고와의 인연을 설명하고 『그후 1백년이 지난 93년 우리나라도 대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박람회를 개최했다』면서 조국에 대해 긍지를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시카고 교민들이 흑인밀집 지역에서 흑인과의 우의증진을 위해 각별히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 나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시민,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진정한 이웃이 돼 달라』고 강조했다.
  • 주일미군 현수준유지해야/일 이나 히사요니,니혼게이자이 칼럼서 주장

    ◎아시아 지역분쟁 억제 “지렛대역” 필요 아시아의 번영을 허물어 뜨릴 수 있는 지역분쟁의 발생을 억제하기위해서는 주일미군을 현 수준으로 유지해야한다고 이나 히사요시(이나구희) 니혼게이자이신문 편집위원이 최근 이 신문 칼럼에서 주장했다.다음은 칼럼의 요지. 베트남이 지난 21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에 가입,명실공히 성장센터의 한가운데로 진입하게 됐다.또 베트남은 20년만에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했다.미얀마의 군사정권은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지 여사를 6년만에 가택연금에서 해제하는등 미얀마의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 아시아에서는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변화들은 위험한 요소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시아가 주목받게 된 것은 1980년대의 경제성장 때문.이 10년간 아시아 각국의 국민총생산(GNP)은 전체적으로 64% 늘어났다.이에 비해 같은 기간 유럽에서의 GNP 성장률은 21%에 그쳤다.이같은 수치가 드러나는 시점에서 이미 「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할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되기 시작했다. 90년대에 들어서도 아시아의 성장은 계속돼 생각지 못했던 부산물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부산물이란 곧 경쟁적인 군비확장 추세를 말하는 것으로 스톡홀름의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펴낸 연감에 따르면 93년 아시아 각국의 무기수입은 금액 베이스로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중동 각국을 뛰어넘었다. 게다가 각국이 사들이는 무기 목록들을 보면 중국이 잠수함과 프리깃함,인도네시아가 F16 전투기와 방공미사일,말레이시아가 조기경보기와 공격용 헬리콥터를 사들이는 등 최신병기들로 채워져 있다.경제성장이 가져온 「배당」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배후에는 여러가지 분쟁 요인이 깔려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의 D 볼 교수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동아시아에는 모두 29가지의 분쟁 요인이 있다.가장 눈에 띄는 것이 중국으로 대만,베트남,인도와의 국경분쟁이 있고 남사군도를 둘러싸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외에 일본과도 첨각제도를 둘러싸고 분쟁을 빚는 등 모두 5건의 분쟁에 개입돼 있다.또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닐지라도 한국전쟁에의 인연으로 한반도 정세에도 관계돼 있다. 국제사회가 중국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다면 이같은 역사적 경위 외에도 몇가지 이유를 더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중국의 국방예산 증가.냉전 말기인 90년과 냉전 후인 93년의 국방예산을 비교할 때 미국은 11.2%,러시아는 44.5%가 줄어들었지만 중국은 20.6%나 늘어났다.어디까지나 달러 베이스이긴 하지만 이 기간중 일본의 국방예산도 엔고로 인해 38.2%가 늘어났다.그러나 숫자가 곧바로 군사력의 증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2의 근거가 되는 것은 부시 행정부에서 미국방부 정책기획에 관계했던 Z 해리어트씨의 예측이다.그는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를 감안할 때 중국은 21세기의 어느 시점에선가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며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세번째 이유는 『중국은 국제시스템을 따르지 않고 대등·평등한 입장에서 참가하려는데 지나지 않는다』(E 코엔 존스 홉킨스대 교수)라는 지적이다.핵확산금지조약(NPT)의 무기연장이합의된 직후 핵실험을 실시하는가 하면 유엔 안보리에서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독자노선을 취하는 것이 경계를 요하는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경계심은 특히 미국에서 절정에 달한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 현시점에서의 특징이다.이등휘 대만총통의 미국방문을 둘러싸고 냉각된 미·중관계는 중국이 주미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고 중국계 미국인 해리 우씨를 체포하는 것으로 이어져 냉전시대의 미·소관계를 방불케 하고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경제논리를 내세워 추진됐던 미국과 베트남간의 국교정상화도 이제는 중국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이것이 미국과 중국간에 냉전이 시작됐음을 뜻한다면 미·소 냉전이 그래왔던 것처럼 기본적 관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강대국들간의 게임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경제격차 등 「약한 중국」이라는 측면에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고 중국 뿐아니라 계속 성장하고 있는 인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있다.그러나 인도가 확실히 동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존재가 될 것인가를 예측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29가지의 분쟁 요인 가운데는 소규모 지역분쟁(LRC)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미국 통합합참본부가 지난 3월 발표한 군사전략에는 「유연하고 선택적인 개입 전략」이란 부제가 붙어 있으며 LRC에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는 약속하지 않고 있다. 아시아 번영의 전제조건을 갑자기 무너뜨릴 수 있는 분쟁의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미·일 안보체제에 기초해 현재와 같은 규모의 미군을 유지하고 아세안지역포럼(ARF)을 신뢰조성기구로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것일 것이다.일본의 경제활동도 경제적 상호의존관계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안전보장의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 샌프란시스코시 “김대통령의 날” 선포/김대통령­방미여로

    김영삼 대통령은 미국방문 첫날인 22일(한국시간 23일·이하 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랭크 조던시장을 접견하고 공식수행원들과 오찬을 나눈데 이어 교민을 위한 리셉션을 베푸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특별기편으로 첫 기착지인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환영행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7박8일동안의 방미일정에 들어갔다. 김대통령은 일요일인 23일 재미한국인 과학자들을 초청,간담회를 가진 뒤 24일 아침 다음 기착지인 시카고로 출발한다. ○10여차례 박수갈채 ▷교민 리셉션◁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 샌프란시스코의 숙소인 페어몬트호텔 1층 연회장에서 교민 6백여명을 초청,다과회를 베풀고 격려했다. 김대통령과 부인 손명순 여사는 리셉션장 입구에서 박병호 한인회장과 샌프란시스코·서울자매도시 위원회의 김윤원 위원장 등의 영접을 받은 뒤 교민들과 가벼운 인사말과 함께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헤드테이블로 이동. 김대통령은 격려사에서 『미국 국빈방문 관례상 몇개 지방도시를 방문해주길 희망해 일제시대미국내 독립운동의 거점이자 제일 먼저 미국 이민이 시작된 샌프란시스코를 선택하게 됐다』고 방문 의미를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가장 나쁜 병은 부정부패』라고 지적하고 『삼풍 대참사 역시 부실공사와 관계공무원의 부정결탁 때문에 일어났다』며 부정부패의 척결을 거듭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2차대전 당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을 절대로 잊지 말자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던 점을 상기시키며 『우리도 삼풍붕괴사고의 충격을 잊지 말자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지방자치선거에 대해 『임기중 34년동안 중단됐던 지방자치제를 전면 부활시킨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이는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이달초 방한한 만델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 환영만찬사에서 「한국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함께 이룩한 위대한 나라」라고 칭송하며 「한국으로부터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고 소개하며 조국의 발전에 긍지를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자매시서 오셨다” 김대통령은 『미국은 이민사회로 비록 여러분이 소수민족이지만 미국의 주인』이라고 전제하고 『훌륭한 미국인이 되는 길만이 조국을 위하는 길인만큼 함께 열심히 뛰자』고 격려했다. 참석교민들은 김대통령이 부정부패척결등 평소 소신을 힘찬 목소리로 피력하자 10여차례 박수를 보내기도. 김대통령은 격려사에 앞서 박한인회장등 참석교민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광복 50주년행사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샌프란시스코와 서울이 유대강화를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는 등의 질문을 던지는 등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시장접견◁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숙소인 페어몬트호텔에서 조던시장을 접견하고 15분간 환담을 나눴다. 샌프란시스코 항구와 금문교가 내려다 보이는 페어몬트호텔 23층에서 조던시장을 만난 김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가 미항인줄 알지만 과거 버클리대에서 연설하기 위해 방문한지 20여년만에 다시 와보니 더욱 아름답다』고 인사를 건넸다. 조던시장은 『2년반전 김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서울을 방문했을 당시 축제분위기가 인상깊었다』고 말하고 『서울의 자매시인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해 주셔서 더없이 감사한다』고 답례. 김대통령은 접견이 끝난 뒤 곧바로 공식 수행원들과 오찬을 갖고 방미일정을 협의했다. ▷샌프란시스코 도착◁ ○…서울공항을 출발,11시간의 비행 끝에 샌프란시스코국제공항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박건우주미대사와 오더 샌프란시스코시 의전장대리의 기상영접을 받고 부인 손여사와 함께 트랩에 나서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2백여명의 교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행운의 열쇠」 증정 김대통령 내외는 트랩을 내려와 톰 란토스 미하원의원등 미국측 환영인사 및 우리측 환영인사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도열한 의장대를 지나 공항 환영행사에 참석했다. 조던시장은 『김대통령의 성공적인 미국방문을 기원한다』면서 『오늘을 김대통령의 날로 선포한다』고 환영사를 낭독한 뒤 김대통령에게 「김영삼 대통령의 날」 선포문과 행운의 열쇠를 증정했다. ○“개혁 YS” 피켓 마중 김대통령은 즉석 연설을통해 『성대한 환영에 감사한다』면서 『한국민과 미국민이 하나가 돼서 양국관계의 발전과 우리 모두가 위대한 승리의 길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교포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증정받고 환영나온 교민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악수하며 반갑게 인사. 교민들은 이날 「YS바람 개혁바람」 「세계화는 YS」등의 피켓을 들고 김대통령의 두번째 미국 국빈방문을 환영했다.
  • 김 대통령 샌프란시스코 도착/오늘새벽

    ◎7박8일 방미 공식일정 시작/27일 클린턴과 정상회담/“한·미 아태시대 동방자로” 출국인사 【샌프란시스코=이목희 특파원】 방미길에 오른 김영삼 대통령은 22일 상오11시(한국시간 23일 새벽3시) 대한항공 특별기편으로 첫 기착지인 샌프란시스코에 도착,7박8일간의 미국 공식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김대통령은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이날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조르단 샌프란시스코시장 내외의 영접을 받고 환영식에 참석,「김영삼 대통령의 날」선포문 및 행운의 열쇠를 증정받았다.김대통령은 숙소인 페어몬트호텔에 여장을 푼뒤 조르단시장내외의 예방을 받았다. 김대통령은 23일까지 샌프란시스코에 머문뒤 시카고(24∼25일)를 경유,빌 클린턴미국대통령의 공식초청으로 25일부터 28일까지 워싱턴을 국빈방문한다. 워싱턴 방문중 김대통령은 27일 백악관에서 클린턴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다지는 한편 ▲21세기에 대비한 안보·통상협력강화 ▲통상마찰등 경제현안 ▲아·태경제협력체(APEC)와 유엔등 국제무대에서의 협력증대 ▲북한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및 동북아 주변정세등에 관해 폭넓게 논의할 예정이다. 김대통령은 26일에는 미국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21세기 아·태시대에 대비한 미래지향적인 한·미 동반자관계에 대해 연설하고 조지타운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는다. 이어 김대통령은 27일 워싱턴에서 거행되는 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행사에 클린턴대통령과 함께 참석,민족의 비극이었던 6·25를 회고하는 연설을 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22일 출국에 앞서 서울공항에서 가진 환송식에서 인사를 통해 『광복 50주년이 되는 올해는 한·미간 실질적인 관계가 반세기의 연륜을 채우는 해』라면서 『이제 한·미 두나라는 서로의 발전을 돕는 대등하고 성숙한 동반자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미국이 우리에게 긴요한 우방인 것처럼 한국 역시 미국에 중요한 동맹국』이라면서 『두 나라는 6·25전쟁을 통해 맺어진 혈맹관계를 바탕으로 손을 맞잡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보다 안전하고 번영하는 아시아·태평양시대를 열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방미 공식수행원 명단=▲공로명외무부장관 ▲박재윤통상산업부장관 ▲황창평보훈처장 ▲박건우 주미대사 내외 ▲김동진합참의장 ▲김광석경호실장 ▲한리헌경제수석 ▲유종하외교안보수석 ▲윤여전공보수석 ▲김석우의전수석 ▲문동석외무부의전장 ▲임성준외무부미주국장
  • 한 미 「식품유통 기한」 타결/96년 7월부터 완전 자율화

    한·미 양국은 미국의 제소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절차에 회부됐던 식품유통기한 문제를 96년 7월1일자로 완전 자율화하기로 하고 20일 워싱턴에서 박건우 주미대사와 미키 캔터 미무역대표(USTR)가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로써 양국은 미국 육류업계가 지난해 11월 우리나라를 상대로 미국통상법 301조 청원을 제출하면서 본격화된 분쟁을 극적으로 타결,301조 처리절차와 WTO 분쟁해결절차가 모두 종료됐다. 20일 외무부에 따르면 미국측은 냉동 돼지고기와 닭고기의 유통기한과 육류를 제외한 냉동식품의 자율화시기와 관련,당초 요구해온 12개월 유통기한 및 금년 10월부터 자율화 입장을 철회하고 우리측의 9개월 유통기한 및 96년 7월 자율화안을 수용했다.
  • 27일 한·미 정상회담/김 대통령,22일 미… 29일 귀국

    김영삼 대통령은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공식초청으로 25일부터 28일까지 나흘동안 미국을 국빈방문한다고 윤여전청와대 대변인이 19일 발표했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22일 출국,미국의 샌프란시스코(22∼23일)와 시카고(24∼25일)를 경유해 워싱턴(25∼28일)을 방문한 뒤 29일 귀국한다. 김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은 지난 93년 11월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김대통령은 26일 미국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의 연설을 통해 21세기 아·태시대에 대비한 한·미양국의 미래지향적 동반자관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다. 김대통령은 이어 27일 백악관에서 클린턴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및 동북아 주변정세에 관해 폭넓게 논의할 예정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워싱턴에서 거행되는 한국전 참전기념공원 준공식 행사에 참석,6·25 전쟁의 역사적 의의와 참전용사들의 공헌을 기리는 연설을 할 예정이다. □순방일정 ◇샌프란시스코(22∼23일) ▲시장접견 ▲교민리셉션 ▲재미 한인 과학기술자 격려. ◇시카고(24∼25일) ▲교민리셉션 ▲시카고외교협회 만찬및 연설▲일리노이 주지사 접견. ◇워싱턴(25∼28일) ▲교민리셉션 ▲무명용사묘 헌화 ▲상·하 양원 합동회의 연설 ▲조지타운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및 수락연설 ▲공식 환영식 ▲정상회담및 공동기자회견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 준공식 ▲국빈만찬 ▲고어 부통령 주최 조찬 ▲워싱턴포스트지 회장 접견 ▲워싱턴특파원과의 간담회. 공식수행원명단(13명) ▲공로명 외무부장관 ▲박재윤 통상산업부장관▲황창평 보훈처장 ▲박건우 주미대사내외▲김동진 합참의장 ▲김광석 경호실장 ▲한리헌 경제수석 ▲유종하 외교안보수석 ▲윤여전 공보수석 ▲김석우 의전수석 ▲문동석 외무부의전장 ▲임성준 외무부미주국장
  • 신생 한국의 정치상황(새로쓰는 한국현대사:27)

    ◎“동족상잔 막자”… 김구중심 「대북협상」 강격 제기/5·30선거서 「보수」 약화… 이대통령 자유당 추진 분단정권의 수립후 남과 북에서는 각각 정권을 확고히 하기위해 총력을 기울였다.신생 대한민국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립하지 않을 수 없었던 좌익과 북에 대한 견제를 강화해 나갔다.또 정치적으로 적과 동지가 생겨나고 정치상황도 변화했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도 통일독립촉진회를 주축으로 한 남북협상파는 미소 양군의 철수와 민족자주권을 주장하며 북한과의 평화협상 노력을 기울였다.그러나 목적은 한 번도 이루지 못했다.이런 와중에 북한의 조종을 받는 좌익의 대정부 무장봉기가 거세지기 시작했다.남한에서는 마침내 19 50년 5월 5·30선거를 통해 다시 국회를 구성하고 반공정책쪽으로 기울었고 얼마후 이 땅에서는 전쟁이 발발하고 만다. ○좌익·대북견제 강화 우리는 분단정권 수립후 전쟁발발까지의 기간중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던,즉 당시 정치세력의 흐름을 적지않게 주도했던 통일독립촉진회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주로 남북협상파를 주축으로 결성한 이 통일독립촉진회는 세력을 가진 한독당을 얼마만큼 끌어들이느냐를 놓고 고심했다.남로당의 반정부 무장봉기가 극성을 부리고 좌우의 대립이 거세지는 과정에서 남북협상파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막자는 환상에 기울었다. 이 통일독립촉진회 결성에는 김구 엄항섭 조완구 등이 발기인회를 만들 때까지 참여했다.통일독립촉진회의 주장은 ▲미소 양군의 한반도 동시 철수를 통한 민족자주권 쟁취▲남북 제정당및 사회단체의 정치협상등이었다.김구등 한독당의 일부인사는 초창기 다소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혔다. 1948년이 지나가고 49년에 접어들면서 38선과 산악지대에서의 남북간 무력대립이 심해져갔다.이때 북한은 남북 제정당지도자협의회를 열어 그 협의회에서 남북총선거를 실시할 수 있는 선거지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의해왔다.그 내용은 「남북에 현존하는 정권에 남북총선거를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여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고 외국군대를 철거시켜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것이었다. 북한의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지도자협의회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운동」제의에 대해 김구는 일단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반면 김규식은 소극적이었다.당시 김구의 심경은 그가 1949년 3월21일 「신민일보」사장과의 회견에서 밝힌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김구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우리민족의 생존권과 우리의 주권을 획득하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그것은 민족자결정신에서 미소 양군의 즉시 철퇴를 요구하고 남북협상에 의해 우리의 통일정부를 우리의 손으로 세우는 것입니다.혁명세력과 반역집단이 합작할 수는 없으나 혁명세력끼리의 합작이나 협상이라면 성립되지 않을 하등의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김구는 이 회견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공격하고 혁명세력간 좌우합작과 남북협상등을 통해 자주적 통일민족국가 수립을 호소했던 것이다.「혁명세력끼리의 남북협상」으로써만 동족상잔의 불행을 막을 수 있으므로 그 운동이 실패하더라도 그 길을 가야한다는 주장이었다.이에 대해 김규식은 상당히 회의적이었다.김규식은 이미 서로 다른 정권이 성립한만큼 현실적으로북한의 제의가 불가능하며 자칫 북한 공산당의 계략에 빠져들 수 있다는 신중론이었다.한독당내의 반공주의자들은 물론 김규식의 견해에 동조하는 편이었고 끝내 통일독립촉진회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1949년 4월을 넘기면서 북한은 남조선민전과 북조선민전을 합하고 인공수립에 참가했던 남한의 우익 혹은 중도좌파 정당을 참가시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결성을 서둘렀다.북한은 남한의 한독당,민족자주연맹,통일독립촉진회를 이 전선에 끌어들이기 위해 전전긍긍했지만 성과는 없었다.그러던중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결성대회가 6월25일부터 평양에서 열렸다. 김구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결성대회가 이틀째 접어든 19 49년 6월26일 안두희라는 현역장교의 저격으로 그의 거소 경교장에서 생애를 마쳤다.혁명세력끼리의 합작이나 협상이라면 성립되지 않을 어떠한 이유도 없다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이상을 추구해온 김구는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렇게 마감했다.그 나이 73세였다. 해방공간에서 한때 김구는 이승만과 우정을 나누었다.그들은반탁운동에서는 협력했다.그러나 김구는 단독선거와 단독정부에는 반대의사를 분명히 함으로써 이승만과 사실상 정적의 사이가 되었다.특히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 더욱 그러했다.그리고 김구는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남북협상의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이승만은 김구를 못마땅하게 여겼다.이승만은 김구가 남북협상을 주장하면서 지난날 임시정부 지지를 맹세하는 단체를 조직한다고 비난했다.또 김구가 다음해 예정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기 지지자들을 당선시키려는 준비를 서두르는 가운데 반정부 운동을 선동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협상에 미련” 못마땅 이승만은 김구의 저격범 안두희를 김구의 측근으로 보았다.이승만은 1949년 6월28일 미국의 친지 RT 올리버에게 보낸 편지에서 안두희를 한독당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인물로 단정했던 것이다.이어 이승만은 이 편지에서 안두희가 김구를 방문했을때 비서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둘이서 비밀대화를 나누었다고 전하고 세발의 총성이 울렸다고썼다.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편지내용을 어느 한구절도 인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제헌국회 안에도 이승만을 반대하는 세력이 많았다.그러나 부분적으로나마 반대파들을 통제해나갔다.이승만은 자신이 유엔대사로 임명한 조병옥도 사실상 경계했다.유엔에 남아있기를 희망하는 대통령의 뜻도 능히 거역할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이 쪼들려도 개인자금을 조달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조병옥이라고 평가했다.특히 경찰을 장악하고 있는 내무부장관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민족주의세력 득세 어떻든 이승만은 임시변통으로 사람들을 쓰고 부려먹었다.조병옥도 그러한 케이스였고 뒷날에는 정적이 되었다.초대 주미대사였던 장면도 예외가 아니었다.그리하여 서서히 정치판도가 변화하는 가운데 1950년이 다가왔다.그해 5월30일 제2대 국회로 가는 5·30선거가 실시되었다.그 결과 대한국민당,민주국민당,국민회등 기성 보수정파의 원내세력이 줄어들었다.반면 민족주의 세력을 포함한 중간파가 약간 두두러졌다.특히 여당입장에있던 대한국민당과 원내 제1당이었던 민주국민당이 무소속에 밀려 소수로 몰락해버렸던 것이다. 19 50년 5·30선거는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기반을 약화시켰다.무소속으로 자기 주장을 국민들에게 호소해왔던 이승만은 정당을 등에 업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이승만은 자기가 만들었던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중심으로 자유당을 서서히 엮어나갔다. ◎이정권·민국·한불업계 낙선 공작/“김성수·김준연 남감찹과 내통” 몰아/현야 경찰서장 교체… 중진들 대거 탈락 1950년 5월 실시된 5·30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승만 정권이 카운터파트인 민주국민당과 한국독립당등 경쟁 상대들에 대해 조직적인 선거방해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다.이같은 사실은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긴급 입수한 조인트 위카(JOINT WEEKA),즉 주한미국대사관 주재 무관들이 작성한 주간보고서에서 밝혀졌다. 이 조인트 위카에 따르면 당시 이승만 정권은 선거전 민국당과 한독당 후보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간첩사건을 조작했으며 대대적인 경찰인사도 단행했다.조인트 위카 13편(50년3월31일자)에 따르면 이승만정권은 대한정치공작대를 통해 민국당 중진들이 군경에 잠입한 남파간첩들과 연계된 것으로 조작했다.이는 남북 분단정권 수립후 남쪽에서 좌익에 대한 경계심이 고조되던 시기에서 주효한 전략으로 작용한 것으로 이 보고서는 풀이하고 있다 정치공작대는 그해 3월20일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수사를 위해 경찰 1백명으로 구성한 정보조직으로 김성수,조병옥,백관수,김준연등 민국당 중진들이 간첩과 내통한 것으로 조작했다.이 공작에는 윤치영 임영신 이범석등이 가담했고 특히 윤치영이 이끈 여당격의 대한국민당이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조인트 위카는 기록하고 있다(조인트 위카 16,50년4월14일자).대한국민당은 70여명의 입후보자를 내세워 민국당의 이슈를 혼란으로 몰아갔으며 민국당을 패배시키려는 선거전략도 구사했다(조인트 위카 13,50년 3월31일자). 조인트 위카는 이어 정치공작대 사건은 결국 4월중순경 조작극으로 드러났지만 당시 이승만 지지세력의 가장 큰 적수였던 민국당과 한독당은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결론지었다.한편 이 정보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정권은 선거에 앞서 5월초 미군정 시기부터 민국당이 장악했던 지방 경찰서장직을 대폭 바꾸는 바람에 민국당의 중진들이 선거에서 대거 낙선한 사실도 들추어냈다.
  • 중,대미관계 사실상 격하/주미대사에 영사급 임명

    【홍콩 연합】 중국의 로스앤젤레스주재 총영사 주문중(50)이 주미대사 이도예의 북경소환과 동시에 주미 중국대사관의 공사로 승진발령돼 대사대리직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홍콩 연합보가 25일 1면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워싱턴의 중국대사관 관리와 뉴욕의 유엔주재 중국관리의 말을 인용,이같이 말하고 이번 조치는 미국과의 관계를 격하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대사관의 한 관리는 24일밤(한국시간) 주문중이 지난 20일부터 워싱턴으로 와서 주미대사대리직무를 수행중인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이 관리는 주문중이 대사대리직 부임후 즉시 국무부관리들을 만나는 등 외교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유엔주재 중국관리는 중국이 이도예를 북경으로 소환키로 결정하는 동시에 주문중을 공사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중국대사관 공보처는 주문중이 대사대리직만 수행중이며 실제 대사는 여전히 이도예라는 사실을 강조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지난 20일 중국 외교부 진건 대변인은 이도예가 언제 미국으로 돌아갈지 아직 검토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 외교문서 폐기 변조 훈령받은 사실없다/재외 한국공관

    【워싱턴·도쿄·파리 연합】 해외주재 한국대사관들은 25일 『외무부가 문서변조를 지시했다』는 권노갑 민주당 부총재의 주장과 관련,본부로부터 외교문서를 폐기 또는 변조하라는 어떤 훈령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박건우 주미대사는 25일 『그같은 은폐조작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강력히 부인하고 『권의원이 말한 관련공문에 대해서는 각 공관장들이 원본과 대조하여 확인서명한 문서 사본을 만들어 검찰에 제출한 바 있다』고 밝혔다.
  • 김 대통령 미 의회 연설

    김영삼 대통령은 미국 국빈방문 기간중인 오는 7월26일 상오 11시 미국 상하원의 초청으로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한다고 윤여전 청와대대변인이 16일 발표했다. 윤대변인은 『김대통령의 미국 양원 합동회의 연설은 뉴트 깅리치 미하원의장이 15일 주미대사관을 통해 초청의사와 연설일시를 통보해옴에 따라 확정된 것』이라고 말하고 『김대통령의 이번 연설은 올해초 제1백4대 미국의회가 출범한 이래 외국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이는 한·미관계의 중요성과 한국민주주의 정착에 대한 미국 국민과 의회의 높은 평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다음달 22일부터 31일까지 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과 한미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며 김대통령의 이번 미국 의회연설은 취임후 처음 이뤄지는 것이다.
  • “이등휘 총통 방미/중­미 관계 악영향”/중 외교부 대변인

    【북경=이석우 특파원】 이등휘 총통의 방미는 중국과 대만 양안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중국외교부 심국방 대변인이 13일 밝혔다. 심 대변인은 이날 정례 기자설명회에서 『이등휘 총통의 방미는 양안관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주었고 엄중한 손해를 입혔다』고 전제하고 『이러한 잠재적인 영향은 앞으로 쌍방 관계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심 대변인은 또 『중국정부는 클린턴 대통령이 이조성 주미대사를 불러 미국정부의 건설적인 중·미 관계 수립의사와 한개의 중국정책지지 등을 천명한 것에 주목하고 있으나 우리는 말보다 행동을 중요시 한다』고 미국정부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 「초콜릿 마찰」도 미에 양보/제품유형 표기의무 유예

    ◎정부,7월31일까지 【워싱턴 연합】 정부는 미국과 통관 마찰을 빚어온 초콜릿 부문에서 예상대로 결국 미측에 양보한 것으로 1일 나타났다. 주미대사관 고위 관계자는 워싱턴 특파원들에게 한미 통상현안을 설명하는 가운데 초콜릿 라벨 부착문제에 대해 미측에 『오는 7월31일까지 제품 유형 표기의무를 유예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같은 예외 적용에 따라 그간 세관에 묶여온 모두 1백만여달러 상당의 미제 초콜릿 17개 컨테이너의 통관이 허용됐다고 덧붙였다.
  • 한·미 안보회의 정례화/외무·국방·주미대사 등 참석 격주 개최

    대북 경수로 공급을 둘러싼 협상이 난항을 거듭,한반도에 긴장조성 조짐이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미양국은 공로명 외무장관·이양호 국방장관·제임스 레이니 주한미대사 및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 등 4명이 참여하는 한미안보 4자회동을 격주로 개최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28일 밝혀졌다. 공·이 장관 등 4명은 지난 24일 첫 모임을 조찬형식으로 갖고 ▲최근 현안으로 대두된 주한미군범죄 방지 방안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 ▲한반도 안보상황 ▲정전체제 유지 등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등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해 나가자는데 인식을 같이했다는 것이다. 한미안보 4자회동은 80년대말 용산 미군기지 이전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잠시 이뤄진 적이 있고 최근에는 북한핵문제로 인해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됐던 지난해 상반기 1차례 열린 바 있다.
  • 미·중,동북아 안정에 힘써야(사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심각한 갈등의 마찰을 빚고 있다.중국의 반대를 무릅쓴 미국의 이등휘 대만총통 방미허용이 직접적인 도화선이다.중국의 강력한 항의에 이어 중국 공군사령관이 방미일정을 단축,귀국했으며 주미대사 소환검토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미중관계의 급냉각이다.우리는 이것이 동북아 및 한반도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고 경계한다. 미국의 대만총통 방미수용은 궁극적으로는 중국견제에 목적이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중국의 꾸준한 군비증강 및 아시아패권 추구경향,문제지역에 대한 미사일 등 무기판매와 원자력발전소 이란판매추진 그리고 최근의 지하핵실험 강행 등으로 미국의 중국에 대한 심기가 불편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중국이 강력히 반대하는 이 총통방미 수용은 그러한 대중심기의 표현이자 중국견제 잠재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다.대중외교의 대만카드 활용인 것이다.중국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중국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하나의 중국원칙」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결과적으로 미중관계 냉각내지 제약은불가피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지나친 군사력증강이나 아시아패권추구 및 지하핵실험강행 등은 동북아 안정에 저해요인이 될 수있다.중국이 아시아 최강국으로서 응분의 책임을 다하고 미국의 이유있는 반발도 충분히 참작하고 고려해 주기를 우리는 바란다.그러나 미국이 중국에 대해 대만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옳지못한 처사라 생각한다.핵문제와 관련된 지나친 대북한 온건자세도 결국 중국내지 한국 견제카드가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된다. 물론 양국관계의 냉각이 파국으로까지 치달을 것으로는 보지않지만 여하튼 중국은 물론 미국도 자중해 주기를 당부한다.미중갈등은 동북아 경제는 물론 안보차원에서도 바람직스런 일이 아니다.북핵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협력이 소홀해 질 가능성을 경계한다.북의 핵개발은 대미관계와 상관없이 반드시 저지되어야 할 동북아 평화와 안보의 공통된 필수과제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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